스님의하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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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7.4 동북아 역사 누비길 넷째날

오늘은 백두산의 날입니다. 북문으로 백두산에 올라 천지를 보고 소천지, 녹연담, 지하삼림을 구경하기 위해 오늘도 일찌감치 출발했는데 하늘에 구름이 끼어있어 다소 걱정스러웠습니다.nbspnbsp장백의 숙소에서 백두산 천지로 가는 길은 압록강을 따라 상류 지역으로 올라가게 됩니다. 국경지역이라 민간인 집보다는 군인들의 초소 및 군인가족의 집들이 가까이 보이는데 어제 압록강변에서 보았던 모습보다 왠지 마을도 집도 정리가 잘 되어 있는 듯이 보입니다. 이번엔 지붕에 비닐을 덮은 온실이 처음 등장했습니다. 비록 텃밭 수준이지만 온실 덕에 수확량이 늘어 배고프지 않기를 바래봅니다.nbsp버스로 달리면서 북한 측에 새로운 초소나 사람이 보이거나 하면 스님께서는 “야 저 봐라. 초소를 새로 지었네 저기 할머니도 보인다. 비닐을 우리가 주지 않았는데 누가 줬노, 이제 우리를 별로 필요로 하지 않겠네” 하고 마치 아이처럼 신기해하십니다. 이번으로 33번째 역사기행을 안내하시면서도 아직 새롭게 느껴지고 감동이 있으신지 질문을 받으시고는 이렇게 대답하셨습니다. “이 길도 작년의 그 길이 아니고, 나뭇잎도 매번 다른 나뭇잎이에요.”우문현답이었습니다. nbspnbspnbspnbspnbsp그 대답을 들으니 언젠가 말씀하신 스님의 발원문인 ‘난 길가에 핀 한포기 풀과 같은 존재이다’와 ‘오늘 처음 시작한다’가 생각났습니다. 웬만한 사람들은 몇 년 동안 같은 걸 하게 되면 매너리즘에 빠지고 지루해하는데 스님께서는 이 발원문과 같이 매번 처음 시작하는 것처럼 호기심을 가지고 사시는 것 같습니다. 두 번, 세 번 와놓고는 전에 봤던 거라고 잘 보지 않거나 대충 듣는 우리들의 모습을 반성하게 됩니다.nbspnbspnbspnbspnbsp원래 남문을 통해 백두산에 오르려 했는데 폐쇄되어 있어 천지 뿐 아니라 비룡폭포나 지하삼림이 있어 더 구경할 곳이 많은 북문 쪽으로 올라가기로 해서 남문에서는 내려서 사진만 찍고 다시 서문 쪽으로 이동했습니다. 이 도로는 목숨을 걸고 압록강을 건너와 백두산 원시림 이곳저곳에 숨어 있다가 결국 만강 검문소에서 적발되어 도로 북한으로 송환되었던 수많은 북한 난민들의 ‘피 맺힌 사연이 있는 곳’이라고 소개해 주시기도 했습니다. 약 100년 전 지독한 가난에서 살아남기 위해 갈 수 밖에 없었던 피눈물 역사는 1990년대 후반에 또 한번 북한 난민의 피눈물의 역사로 반복되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nbsp서문 입구에서 아침을 먹고 거의 직선에 가까운 원시림속의 길을 따라 1시간 30분 가까이 달려 드디어 북문에 도착하여 입장권을 구입하고 백두산에 올랐습니다. 그리고 다시 산 정상에 올라가는 승차권을 구입해서 9인승 차에 나눠 타고 천문봉으로 올라가는데 길 양편에 야생화가 군데군데 봉오리 맺고 예쁜 모습을 보여주고 있었습니다. 야생화의 절정 시기라는 7.1020일 사이에 언젠가 기회가 되면 다시 와보고 싶은 마음이 들었습니다. 정상에 가까울수록 아래를 내려다보면 산이 마치 바다처럼 저 아래 펼쳐진 모습이 정말 스님의 말씀처럼 산이라는 개념이 다른 것 같습니다. 이러니 하루종일 백두산을 휘젓고 다녔는데도 마지막에 ‘근데 백두산은 어디 있냐?’는 우스개 말이 있는 것이 이해가 됩니다. nbspnbspnbsp차에서 내려 천지를 내려다 볼 수 있는 봉우리에 오르는데 구름이 있을듯하여 조마조마하는 마음으로 올라갔습니다. 다행히 천지는 활짝 열려 있었습니다. 아주 밝은 모습은 아니었지만 구름으로 가린 부분이 거의 없이 신비로운 모습을 우리 의병들에게 선사했습니다. 모두 행복한 표정으로 천지를 구경하고 사진을 찍으면서 즐거운 시간을 보냈습니다. 이렇게 2014년 통일의병 동북아누비길에서 활짝 열린 천지를 봤으니 백두산의 정기를 듬뿍 받아 앞으로 통일 운동에 더욱 박차를 가할 것을 기대해 봅니다.nbsp아쉽지만 천지 구경을 마치고는 정상을 내려와서 다른 버스를 타고 비룡폭포를 구경하러 갔습니다. 천지의 맑은 물이 북쪽 천문봉과 용문봉 사이로 떨어지면서 폭포 중간에 큰 바위가 있어 물줄기가 두 갈래로 나뉘어 떨어지는 것이 바로 비룡폭포인데 그 모습이 절경일 뿐 아니라 백두산의 강한 기상을 느끼게 합니다. 그다음에 소천지, 녹연담, 지하삼림의 순으로 구경을 했는데 소천지는 전과 달리 둘레를 돌 수 있는 길을 막아놓아 멋진 산책을 할 수 없었고 지하삼림도 일부 코스를 막아놓아 백두산이 개발이 되어갈수록 구경은 제한적이 되는 것 같습니다.nbspnbsp녹연담은 세 개의 폭포와 맑은 녹색 빛의 물이 신비로움을 주는 곳이고, 지하삼림은 지반이 함몰한 곳에 숲이 형성되어 있어 지하삼림이라고 불리는데 까마득한 아래로 숲을 내려다보는 기분도 특이하고 용암이 굳을 때 갈라진 좁은 틈 사이를 흐르는 천지물의 웅장한 소리도 가슴을 시원하게 해주었습니다.nbsp이로써 하루종일 행복했던 백두산 기행이 모두 끝났습니다. 즐거운 마음으로 내려오다 생각하니 어제, 그제 우리 선조들의 유적을 보면서 느꼈던 기쁨보다 오늘 백두산 천지가 우리에게 준 기쁨이 더 컸던 것 같습니다.nbspnbsp또한 백두산 정기를 받아 모두들 피곤하지만 환한 표정으로 저녁식사를 하고 “독립운동사”에 대한 스님 강연을 들었습니다.nbspnbspnbspnbspnbsp모두에 오늘 둘러본 백두산에 대해 다시 정리해 주신 후 19세기 중반 이후 형성된 이민의 역사와 독립운동사에 대해 상세하게 설명을 해주셨습니다. 아울러 이번에 항일독립유적지를 기행하면서 무엇을 염두에 둘 것인지와 통일운동과의 연결고리를 제시해 주셨습니다. nbspnbspnbspnbspnbsp“통일을 낙담으로만 봐서는 안 되고 가능하도록 만들어야 합니다. 대부분 통일이 언제 되는지 물어보는데 통일은 언제 오는 것이 아니라 2020년에 되도록, 또는 가능하다면 더 빨리 되도록 현실을 감안해서 우리가 만들어 내야 합니다. 통일은 주어진 환경에 따라 오기도 하고 인연이 돼야 한다고도 말할 수는 있는데 무엇보다 조건이 무르익어야 하고 그 조건을 활용할 수 있는 인간의 의지와 지혜가 있어야 합니다. nbspnbspnbspnbspnbsp그런 면에서 통일운동은 독립운동처럼 목숨을 걸어야하는 것도 아닌데 무엇 때문에 두려워하는지 모르겠어요. 통일운동 한다고 아직 칭찬은 어렵고, 나쁘면 비난받을 소지가 있지만 중차대함은 독립보다도 더 큰 일입니다. 백년의 상처 치유를 넘어 천년의 한을 풀고 미래 동아시아 문명에 초석을 다지는 일입니다. nbsp독립운동의 현장에서 정규군이 아닌 사람들을 통해서 배워야 합니다. 그들의 희생 없이 어떻게 지금의 대한민국이 있겠어요? 당장의 성공과 실패보다 훨씬 더 중요한 게 그 정신입니다. 이게 정말 바른 길이라면 승패를 넘어서서 할 수밖에 없다는 의지와 지혜가 필요하고 가능하면 현실 속에서 구현될 수 있도록 좋은 전략과 전술을 가지고 하는 지혜가 필요합니다. nbspnbspnbspnbspnbsp이제 동북아누비길 4일째의 밤이 깊었습니다. 매일 강행군이 계속되지만 하루 이틀이 지나자 몸이 적응하고 정신이 맑아지는 것이 신기할 따름입니다. 우리 조상들의 도움과 백두산의 정기가 정말 있는 것이 아닐까 싶습니다. 내일은 독립을 완성시킬 통일을 이루어야 할 의병이 꼭 가봐야 할 항일독립운동 유적지에 갑니다.

2014.07.06. 16,412 읽음 댓글 5개

2014.7.3.동북아 역사 누비길 셋째날

오늘은 국동대혈과 압록강 유역, 그리고 발해 유적 영광탑을 돌아보는 일정이었습니다. 우리 통일의병들은 3시 20분에 기상하여 4시에 국동대혈을 향해 출발했습니다. 처음에는 의병들이 신병이라서 아침 출발 시간을 제대로 맞추지 못하는 경우도 있었는데 이제 3일째가 되자 청년들까지도 잘 일어나 시간에 맞춰 움직이는 것이 눈에 보입니다. nbspnbspnbspnbspnbsp이른 시간에 출발해서인지 대부분의 사람들이 버스 안에서 잠이 들었는데 한숨 자고 나자 국동대혈에 도착했다고 내리라고 합니다. 국동대혈로 올라가는 계곡 입구가 홍수 때문인지 전과 달리 모습이 변해 있었습니다. 스님은 옛날에는 아주 보기 좋았는데 계곡 길이 망가졌다며 안타까워하셨습니다.nbspnbspnbspnbsp신선한 공기를 마시며 길을 따라 걸어 올라가니 기분이 상쾌해지는 걸 느끼면서 관음굴에 도착했습니다. 관음굴은 국동대혈 올라가기 직전에 있는 대혈로서 그 지역의 민간신앙을 모시는 곳입니다. 유화부인의 모습일 것 같은 아름다운 여신상이 한가운데, 그 양쪽에는 각각 의신과 재신이 모셔져 있어서 3가지 복 즉, 행복, 건강, 부를 비는 곳입니다. 로마에 가면 로마법을 따르듯이 우리 의병들도 각자의 행복과 건강 그리고 부를 빌었습니다만, 아마도 우리 의병님들이라면 통일이라는 결과 뿐 아니라 통일을 하는 과정에서의 행복과 통일 운동할 수 있을 만큼의 건강. 군자금을 낼 수 있는 정도의 부를 빌지 않았을까 기대해 봅니다. nbspnbspnbspnbspnbsp관음굴에서 조금 더 올라가면 유리왕의 전설이 있는 사랑 바위가 있어 구경을 했는데 3가지 복에 사랑까지 좋은 건 다 가지겠네 하고 서로 농담을 나누었습니다. 이렇게 즐거운 마음으로 조금 더 올라가니 고구려 시대에 왕이 천제를 지내던 국동대혈에 도착했습니다. nbspnbspnbspnbspnbsp나라의 동쪽에 있는 큰 동굴의 의미로서 처음에는 어느 나라를 의미하는지 몰랐다가 국은 수도, 즉 국내성을 의미하는 것이 밝혀졌다고 합니다. 양쪽이 트인 넓은 동굴로서 한쪽 면에는 하늘로 통하는 동굴이라는 뜻의 통천동이라고 큰 글씨로 쓰여져 있고 고구려 당시 왕의 세속적인 통치력과 천손으로서의 제사장을 겸하는 제정일치 문화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우리 통일의병도 천손의 후예로서 천 오백여년 만에 이곳 국동대혈에 찾아와서 간략하게나마 하늘에 천제를 지냈는데 여기 참여한 한 청년 의병은 천제를 지내고 나니 천손의 후예라는 것이 마음에 와 닿고 이 지역이 처음엔 낯설었는데 지금은 전부터 살던 곳처럼 친숙하게 느껴진다고 소회를 밝히기도 했습니다. 작년에는 그냥 산길이었던 곳에 계단과 난간이 만들어지고 길을 닦는 등 큰 돈을 투자하여 유원지로 개발된다는 소식에 우리의 신성한 국동대혈이 중국인들의 상술에 어떤 피해를 입게 될지 마음이 무거워졌습니다.nbspnbspnbspnbspnbsp다시 숙소로 돌아와 아침을 먹고 림강을 떠나 압록강을 따라 장백으로 향했습니다. 어제부터 보아 온 압록강 건너편 북한의 대표적인 풍경은 낡은 집과 누렇고 볼품없이 자라는 농작물, 그리고 한없이 계속되는 뙈기밭입니다. 어떻게 저렇게 가파른 곳에 올라가 농사를 지을 수 있을까도 불가사의한데 가뭄 때문인지 작물조자 제대로 되지 않는 것 같아 보는 내내 마음이 안타깝습니다. nbspnbspnbspnbsp스님 말씀대로 압록강을 따라 계속 뙈기밭이 계속되는 모습은 좋은 건 아닐지라도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될 만큼 대단한 것은 맞는 것 같습니다. 저런 걸 내셔널 지오그래픽스의 다큐멘터리물처럼 우리도 북한의 뙈기밭 풍경을 동영상으로 찍어서 “뙈기밭을 아십니까?인간의 한계를 초월한 극단의 생존 전략”같은 제목으로 유투브에 올려서 한국은 물론 전세계 여러 사람들과 공유하면 어떨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북한에는 산불이 자주 난다는데 그건 뙈기밭을 만들기 위해 불을 내다가 생긴 것이라고 합니다. 강에서 특이한 것은 여러 사람들이 강에서 허리를 숙이고 뭔가를 채취하는 것 같았는데 첨엔 고동 같은 것을 잡는 것인가 했는데 알고 보니 사금을 채취하는 것이라고 합니다.nbspnbspnbspnbspnbsp장백으로 가는 내내 압록강변을 따라 올라가는데 간간히 북한 주민들이 보이면 친척이라도 찾은 듯 모두들 반가워했습니다. 강에서 빨래를 하거나 목욕을 하는 모습이 자주 보이고 특히 여자들이 모두 벗고 목욕을 하는 장면을 목격했을 때는 다소 문화적인 충격이 있었습니다. 개인 집에는 목욕을 할 수 있는 시설이 없고 전기 사정도 안 좋아 밤에 씻을 수도 없을테니 생활고에 따라 부끄러움의 수위도 달라지는 건가 싶어 어쨌든 대한민국에 태어난 게 정말 축복이란 생각이 들었습니다. 간간히 강변에서 한가로이 풀을 뜯는 소들의 모습을 볼 수 있어서 그곳 주민들은 생활이 괜찮은가 했는데 북한의 소는 개인 소유가 아니고 협동농장 소유라서 소 관리 담당자가 있다고 합니다.nbspnbspnbspnbspnbspnbsp13도구에 들어서서 길에서 파는 수박을 사서 중간에 버스를 세우고 내려서 오랜 버스 탑승으로 지친 몸도 풀어주고 달콤한 수박을 나눠 먹으니 피로가 풀리는 것 같았습니다. nbspnbspnbspnbspnbsp압록강을 따라 계속 달리면서 건너편 북한 땅에 산사태 모습에 안타까워하고 아이들에게는 손을 흔들고 또 끝없이 펼쳐지는 뙈기밭을 보면서 스님의 설명을 듣다 보니 어느새 북한의 혜산이 훤히 건너다보이는 영광탑에 도착했습니다. 탑 앞에 간단하게 제물을 차려놓고 예불을 올렸는데 유일한 발해의 유적에서 100 여명이 예불을 올리는 소리는 아름답고도 감동적이었습니다. nbspnbspnbspnbspnbsp“영광탑은 발해시기의 탑으로 그 밑에는 무덤으로 되어 있습니다. 보통은 탑 안에 화장된 유골이 있는 것이 탑인데 발해는 매장의 전통 문화에 사리탑을 세우는 불교 문화가 결합되어 능 위에 탑이 세워져 있습니다. 이런 종류의 탑은 한국에도 하나가 더 있는데 바로 경주에 있는 문무대왕의 능지탑입니다.”nbspnbspnbspnbspnbspnbspnbsp영광탑 참배를 마친 후 통화 포도주와 함께 저녁 식사를 맛있게 하고 나서 스님께서는 독립운동사와 북한의 현실에 대해 강의를 해주셨는데 통일의병이라면 보복의 관점보다는 이웃 나라에 대한 열린 마음과 북한 체제에 대해서도 양쪽 측면을 다 고려하는 지혜를 가질 것을 당부하셨습니다. “우리가 감정에 치우쳐 있으면 손실을 불러오는 행동을 할 때가 있습니다. 그러니 앞으로 통일의병은 상대에 대해 원수를 갚겠다가 아닌, 감정보다는 이성에, 과거보다는 미래지향적으로 봐야 합니다. 민족 정체성을 분명히 하면서 이웃 민족에 대해 열린 마음을 가져줘야 한다는 거예요. 그러면 북한이라는 나라에 대해 이해할 필요가 있어요. 우리가 북한에 대해 나쁜 이미지만 갖고 있는데, 북한이 그런 집단이라면 미국이라는 나라와 겨룰 수가 없겠죠. 다른 요소가 또 있다는 이야기지요. 북한의 체제에 대해 긍정8226부정적인 면을 동시에 봐야 합니다.”nbspnbspnbspnbspnbsp 또한 1945년 독립 이후 북한의 형성 과정과 주변 강대국과의 역학 관계 속의 근현대사 과정을 자세하게 설명해 주셨습니다. 또한 일부 보수 세력이 주장하는 흡수 통일의 문제점 및 대안에 대해서도 관점을 잡아 주셨습니다.“만약 북한 사회를 즉시 해체하고 남한에 흡수시킨다면 혼란이 엄청나게 발생할 거예요. 동서독은 그전에 사전준비를 굉장히 해놓았는데도 문제가 발생했는데, 우리는 현재 이 상태로라면 엄청난 혼란이 발생하게 될 겁니다. 그래서 이 상황을 오히려 이해하고나면 서로 다른 것을 동질화 시키는 게 아니라, 다른 것을 인정하고 서로 협력해서 공존의 체제로 간다면 이질적 문제가 크고 작다는 건 문제가 안 돼요. 지금은 이질적 문제를 인정하지 않기 때문에 더 복잡한 거예요. 서로 다른 사람이 같이 살려면 서로의 성질을 인정하고, 공통점을 같이 하면 내일이라도 같이 사는 게 문제될 것이 없어요. nbspnbspnbspnbspnbsp북한은 역사적으로 봤을 때 민주화의 경험이 없잖아요. 일당독재일인독재 시스템으로 왔으니까. 그런데서 북한 주민의 아픔을 생각해야 합니다. 통일을 하려면 국토 얘기보다 젤 먼저 가장 고통 받는 북한 주민이 혜택을 입어야 합니다. 그런 면에서 인도적 지원은 도덕적으로 해야 하는 것일 뿐 아니라 통일로 가는 지름길입니다. 또한 북한의 인권문제에 대해서도 관심을 가져야 하는데 이는 체제 갈등 문제와 연관되어 있기 때문에 지혜롭게 대처해야 합니다. 통일은 수많은 상처를 치유하는 성격도 있고 미래의 동아시아 문명시대를 여는 기초가 되므로 미래를 생각하면 통일은 결코 종착점이 아닙니다. 미래의 비전을 달성하기 위해서는 통일 없이는 불가능하기 때문에 통일은 그 출발점이고 결국 통일된 대한민국이 어떤 세상을 만들고 주변국과는 어떤 관계를 만들지 구상해야 합니다.”nbspnbspnbspnbspnbsp이렇게 통일의 과정 뿐 아니라 통일한국의 비전까지 보여주시니 우리의 할 일이 많구나 하고 가슴이 설레이는 한편 어깨가 무겁기도 합니다.nbspnbspnbspnbspnbsp내일은 하루종일 백두산을 구경하는 날입니다. 제발 날씨가 맑아 천지를 볼 수 있기를 빌어봅니다.

2014.07.05. 17,151 읽음 댓글 2개

2014.7.2. 동북아 역사 누비길 둘째날

오늘은 통일의병 동북아누비길 둘째날입니다. 4시 반 출발 예정이었으나 이런저런 사정으로 5시가 다 되어서야 출발할 수 있었습니다.고구려의 첫 수도인 환인에서 두번째 수도인 집안을 향해 약 3시간 이동하게 되는데 환인보다 따뜻하고 좀 더 살기 좋은 자연조건을 찾아간 것이기도 하겠지만 외부인인 주몽에 이어 유리왕까지 외부에서 들어오다 보니 토착 세력에 대한 왕권 강화를 위해 천도하지 않았나 추측하게 됩니다. nbspnbspnbspnbspnbsp오늘의 첫 방문지인 장군총에 가는 길에 잠시 압록강변에 들러 강 건너 북한의 뙤기밭을 함께 보고 사진을 찍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처음으로 가까이 북한의 모습을 보는 참가자들은 흥분을 감추지 못합니다. nbsp몇 년 전에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된 뒤 갈 때마다 입구나 주변 모습이 달라지는 장군총은 초기엔 광개토대왕릉으로 알려졌다가 실제 광개토대왕릉이 발견되자, 다시 장수왕릉으로 추정되고 있는 적석무덤입니다. 발견 당시의 장군총 부근엔 약 20 여호 정도의 사람들이 살고 있었는데 그들은 누구의 무덤인지 모르고 대략 어느 장군의 무덤일거라 하여 지금까지 장군총으로 불리우고 있습니다.nbspnbsp역사기행 참가자들은 시원한 그늘에 모여 가이드로부터 장군총에 대한 설명을 들었습니다. 장군총은 몇 가지 특징이 있는데 그 하나가 계단식으로 단을 쌓되, 45도 각도로 비스듬하게 쌓아 올린 것입니다. 또한 단순히 돌을 쌓은 것이 아니라 아래층 돌에 홈을 파서 윗돌을 끼워넣어 돌이 밀려가지 않도록 한 것이 두 번째 특징입니다. 그다음에 거대한 크기의 호석을 한 면에 3개씩 받쳐 밀려나오는 것을 막았습니다. 이 호석도 그냥 받쳐 놓은 것이 아니라 호석이 놓이는 바닥에 큰 돌을 박아놓고 중간에 쐐기돌을 놓아 호석도 밀리지 않도록 한 걸 보면 놀라움을 금할 수 없습니다. 또 무덤의 입구와 제단의 위치가 한족과 고구려 사이에 서로 다르다는 것을 들으니 문화의 차이가 신기했습니다. 우리의 문화에서는 문 쪽에 머리를 두게 되고 또 제단을 망자의 발쪽에 두어서 제사를 지내면 일어나서 바로 인사를 받을 수 있게 하는 반면 한족의 경우에는 제사를 지낼 때는 망자의 머리가 제단 쪽에 둔다고 합니다. 이런 특징을 안다면 설사 무덤의 주인이 누군지 몰라도 고구려인인지는 알 수 있을 것 같습니다.nbsp가이드의 설명에 뒤이어 스님이 보완 설명을 해주셨습니다.nbspnbspnbspnbspnbsp“초기엔 천손의 상징으로 석실이 지상에 있다가 5세기 이후로는 다른 문명의 영향을 받아 지하로 들어가게 됩니다. 원효대사가 경기 지역에서 무덤에 들어가 하룻밤 자다가 해골에 든 물을 마시는 이야기가 있잖습니까? 지금 얼핏 들으면 무덤에 어떻게 들어가냐 하지만은 경기도는 부여 문명을 계승한 백제 땅이었기 때문에 지하무덤이라 할지라도 입구가 있고 들어갈 수 있는 공간이 있었습니다. 신라 사람인 원효에게는 동굴처럼 보였겠죠. 이런 특징으로 고구려 무덤은 전부 도굴당하고 신라 무덤은 도굴이 어려워 금관 같은 유물이 보존된 것으로 볼 수 있습니다.”nbspnbspnbspnbspnbsp장군총 뒤편 오른쪽으로 가면 작은 규모의 묘가 하나 더 있는데 제 2부인의 묘로 추정됩니다. 또 발굴을 해보니 처음엔 배묘로 알려진 북쪽 편의 건축유지가 실제로는 제단인 것으로 밝혀졌다고 합니다.nbspnbspnbsp “처음 왔을 때 배묘가 5개라 해서 첩이 5명이라는 설명을 들었는데 발굴을 해보니 배묘가 아니라 제단이란 게 밝혀졌습니다. 고구려 문명이 중간에 끊기고 문화를 모르는 중국인들이 이를 해석하다보니 이런 일이 생기는 겁니다. 문명을 계승하지 않으면 유적의 의미도 사실상 알 수 없게 되는 겁니다.“nbsp역사기행을 하면서 우리 선조들의 유적들이 제대로 관리되지 않는다는 인상을 받은 터에 이 말씀을 들으니 마음이 살짝 무거워집니다.nbspnbspnbspnbspnbsp다음 여정은 광개토대왕릉비와 광개토대왕릉이었습니다.nbspnbsp 광개토대왕릉비는 우리뿐만 아니라 꽤 많은 중국인들도 구경하러 오는 것을 보니 왠지 가슴이 뿌듯해지기도 했습니다. 왜구의 침략으로부터 신라에 5만의 군사를 보내 도와주는 내용을 들으면서 당시에도 동족의식이 있었나 하는 궁금증이 일어났습니다. 또 힘이 강한 패권 국가라는 것은 당대에는 위용을 자랑하지만 어떻게 처신하느냐에 따라 반드시 보복의 역사가 반복되는 것을 보면 역사에도 인연과보의 법칙이 적용되는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정복욕으로 남의 나라를 침략해도 안 되고 그렇다고 굴욕적인 항복으로 평화만을 구하는 것도 민족에게 역사의식의 상처와 열등의식이 남는다는 점에서 리더의 역할이 매우 중요한 것 같습니다. 금관가야와 신라의 합병에 의한 통일의 중요한 의미를 스님께서 왜 그리 강조하시는지 이곳 동북아에 와서 실감하게 됩니다. nbsp광개토대왕릉은 장군총보다 2배 가까이 크게 만들어졌지만 광개토대왕 즉위와 동시에 만들기 시작한 지 22년 만에 갑자기 사망했기 때문에 강돌로만 쌓지 못하고 일반 돌을 사용해서 많이 무너져 있어 장군총 같은 완전한 모습을 볼 수 없습니다. nbspnbspnbspnbspnbsp고구려 벽화를 보기 위해 찾아간 5회분 5호묘에서는 팀을 나누어 설명을 듣기 위해 지하 무덤으로 들어갔는데 32도가 넘는 무더위에 지친 참가자들은 무덤 전실에 들어서면서부터 매우 시원한 기온에 환성을 지르자 일행 중 한분이 “남의 무덤에 들어가면서 이렇게 좋아하는 사람들 첨 본다”하여 모두 웃었습니다. 그 어두운 석실 내에 가운데 남자의 관대가 있고 입구에서 봤을 때 왼쪽에 제1부인의 좀 작은 관대, 오른쪽에 제2부인의 더 작은 관대가 놓여있습니다.사방에 그려진 그림들을 손전등으로 비춰가며 자세히 설명을 해주셨습니다. 어떻게 그 안에 그림을 그렸으며, 약 천오백년이 지난 지금도 어떻게 염료의 색을 유지하고 있는지 불가사의해 보입니다. 이미 불교가 전해진 후에 그려져서 연꽃 등의 불교 문화도 엿볼 수 있었습니다.nbspnbspnbspnbspnbsp5호묘를 보고 나와서는 전시관에 전시되어 있는 4호묘의 벽화에 대해 스님으로부터 설명을 들었습니다. 일월신도, 씨름도, 수렵도, 예불도, 생활도 등 다양한 그림 가운데 옷을 입은 소가 그려진 그림 아래에 중국의 농사의 신인 신농씨라고 쓰여 있는데 실은 고구려 시대의 마가, 우가, 저가, 구가, 양가 중 농사를 관장하는 우가를 그린 것이라고 설명해주셨습니다. 장군총에서의 느꼈던 것처럼 우리의 유적이 남의 땅에 있다 보니 허술하게 관리되고 잘못 해석되는 것이 안타까웠는데 그러면 우리는 어떻게 할 것인가 생각해 보게 됩니다. 그렇다고 다시 남의 나라를 침략해서 되찾을 수는 없는 것이 현실입니다. 비록 우리 땅이 아니라 하더라도 그 유적을 연구하고 그 의미를 정확하게 널리 알리는 것이 최선이라는 생각이 듭니다.nbsp다음은 사방이 둥글게 산으로 둘러싸인 천연의 지형을 가진 환도산성으로 향했습니다.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의 AAAA 등급으로 등재된 곳으로 망루에 올라 멀리 국내성을 바라보며 현지 가이드의 설명을 들었습니다. 그 중 재밌는 것은 우리 민족이 기마 민족이라는 증거 3개를 이야기하셨는데 그 한 가지가 급한 성격입니다. 중국의 한족들은 수레 민족이기 때문에 만만디로 대부분 국도로 다니기 때문에 고속도로가 한산하다고 합니다. 두 번째 특징으로는 옷고름의 위치입니다. 옷고름이 가운데 있지 않고 한쪽 끝에 있는 것은 말을 타고 달리는 데 유리하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마지막으로는 버선코를 들었는데 말을 탔을 때 발걸이에 발을 걸고 달리다 보면 발이 빠져나오는 걸 막기 위해 버선코의 모양이 그렇게 된 것이라고 합니다. 우리가 갖고 있는 것인데도 그게 기마민족의 특징이라고는 생각지 못했는데 조선족 분들은 중국 문화와 한국 문화를 다 같이 접하기 때문에 이런 특징이 보인다고 합니다. nbspnbspnbspnbspnbsp환도산성과 짝을 이루는 평지성인 국내성은 몇 년 전부터 유네스코에 등재된 이후 해마다 더욱 정리가 되어가는 모습입니다. 아직은 아파트 단지를 싸고 있지만 곧 복원이 완성되면 얼마나 멋질까 기대가 됩니다. 성벽을 따라 걸어가면서 국내성에 대한 설명을 들었는데 특히 서문 특징에 대해 스님께서 아주 상세하게 설명을 해주셔서 이제 공자형 성문의 특징에 대해서는 확실하게 알 것 같습니다. nbspnbsp 남쪽 성벽을 따라 걸어가다 보니 아침에 잠시 들렀던 압록강변에 다시 도착했습니다. 아침엔 압록강 건너 북한땅의 뙤기밭이 뭔가 파릇파릇한 느낌이었는데 한낮의 더위가 아직 남아있어서인지 늦은 오후에 흙색으로 드러난 뙤기밭은 더욱 안쓰러움을 자아냅니다. 잠시 자유시간을 가진 뒤 근처에 있는 조선족 식당에 들러 즐거운 저녁식사를 한 다음 호텔로 들어가 스님으로부터 저녁 강의를 들었습니다. nbsp오늘은 단군조선61600부여61600고구려의 역사에 대하여 강의해 주셨습니다.“우리 역사는 크게 환단시대, 부여8226고구려8226발해시대, 고려8226조선시대 이렇게 3 시대로 나눌 수 있습니다. 환단시대는 상고사로서 이 부분이 많이 왜곡되어 있어요. 상고사 부분에 대해서 확신이 없기 때문에 중국문명의 아류 혹은 변방이라는 인식이 머릿속에 뿌리깊게 자리잡고 있는 겁니다. 이게 중국에 대한 사대 혹은 열등의식이라고 볼 수 있어요. 그리고 근대에 들어와서 일본에 대한 피해의식이 있습니다. 일본에 대한 적개심도 있지만 일본에 대한 피해의식이 있습니다. 그래서 일본에 대해 이야기 하면 감정이 먼저 앞서게 됩니다. 현대사에 대해서는 서양열강인 미국에 대한 열등의식과 고마움이 있습니다. 이렇게 우리의 역사에 대한 열등의식이 크게 세 가지가 있는데 중국에 대해서는 상고사에 대한 정확한 이해가, 일본에 대해서는 독립운동사가, 미국에 대해서는 현대 문명을 뛰어넘어 열등의식을 반드시 극복해야합니다.“ nbspnbspnbspnbspnbsp더불어 오늘 둘러보았던 유적들의 주인공인 고구려의 역사에 대해 상세히 말씀해 주시면서 이번 역사기행의 의미를 명확하게 짚어주셨습니다. nbspnbspnbspnbspnbsp“오늘 역사기행의 의미는, 고구려가 부여를 계승했고 발해에게 계승되었다 라는 것을, 직접 손으로 만지고 발로 딛고 느껴보자는 것입니다. 그리고 왜 지금하고 고구려의 기상이 다른가? 어디서부터 단절이 왔기에 이러한 현상이 생겨났는가에 대해서도 이야기해야 합니다.이러한 부분이 정립이 되어야 통일에 대해서 생각할 때, 평화라는 소극적 의미의 통일을 넘어서서 남북이 하나 되어야 하고 더 나아가서 원래의 모습을 되살려야 된다는 의식이 생길 수 있습니다. 남북이 하나 되는 것은 지난 100년의 역사를 치유하는 것이지만, 원래의 모습을 되살린 다는 것은 천년의 한을 푸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것을 넘어서서 새로운 문명을 창조해야 한다는 겁니다. 미국으로부터 전파된 문명을 대체할 새로운 문명이 동양에서 일어나야 한다고 한다면, 그 문명은 우리가 만들어야 합니다.“ nbspnbspnbspnbspnbsp어제, 오늘 기행을 강행군을 하며 다녀서 몸은 피곤하지만 스님 강의를 듣고 나니 새로운 문명을 창조해야 한다는 희망으로 가슴이 두근거리는 것 같습니다. 내일은 국동대혈에 가기 위해 새벽 4시에 출발합니다.

2014.07.05. 16,819 읽음 댓글 2개

2014.7.1 동북아 역사 누비길 첫째날

오늘은 통일의병, 평화재단의 리더십 아카데미 출신들과 함께 하는 ‘2014 동북아 역사 누비길’을 시작하는 날입니다. 이른 아침 6시에 전국 각지에서 약 90여명이 인천공항에 모여 동북아의 중심지 심양으로 출발했습니다. 심양공항에 도착 후 창밖으로 보이는 산하의 모습은 전혀 낯설게 느껴지지 않습니다. 마치 어릴 때부터 말로만 듣던 할아버지의 고향을 찾아 가는듯한 기분이 들어 설레이기도 합니다. 심양에서 첫 여정인 백암산성으로 가기 위해 2대의 버스에 나눠 타고 가면서 버스 안에서 스님으로부터 심양과 백암산성에 대해 설명을 들었습니다.nbspnbspnbsp심양은 배달문명인 요하문명의 영향권에 있었는데 고조선시대에는 고조선의 땅이었고 그 뒤로 부여, 고구려, 발해, 거란, 여진, 원, 명, 청, 만주국에 이르기까지 많은 나라가 흥망성쇠를 거듭하는 가운데 동북아시아의 중심이었다고 합니다. 심양에서 백암산성으로 가는 길은 대련으로 가는 고속도로였는데 고구려가 당나라의 침략을 막기 위해 연개소문이 천리장성이 쌓았던 길이라고 합니다. 심양 부근 일대는 또한 철광과 석탄자원이 풍부한 곳으로 제철 등 중화학 공업단지이기도 한데 자원이 달라서인지 울산의 석유화학단지와는 사뭇 다른 모습을 보여줍니다.nbspnbspnbspnbspnbsp백암산성으로 가는 버스 안에서 바라본 산과 들의 모습은 우리나라의 산하와 그리 다르지 않고 강원도의 힘이 좀 크게 느껴지는 정도일 뿐, 이국적인 느낌이 전혀 없습니다만, 사람들이 살고 있는 집의 모양만은 우리와 많이 달라 보입니다. 창밖 풍경을 보다 보니 고조선 시대, 고구려, 부여시대의 우리 조상들은 어떤 집에서 어떤 모습으로 살았을까 타임머신이 있다고 꼭 가보고 싶을 만큼 궁금해집니다.nbspnbspnbsp심양에서 출발한지 약 2시간 정도 되자 어느덧 왼쪽으로 멀리 백암산성이 보입니다. 참가자들이 모두 버스에서 내리고 스님이 앞장서서 올라가시면서 백암산성의 특징을 상세하게 설명해 주셨습니다. 고구려의 성은 평지성과 산성이 짝을 이루는 것이 특징인데 백암산성은 천혜의 조건을 이용하여 최전방에서 고구려를 지키는 역할을 했다고 합니다.nbsp65279nbsp백암산성이 뚫리면 바로 단동의 봉황성이 뚫리고 그 다음엔 압록강을 넘어 바로 평양성으로 들어갈 수 있기 때문에 백암산성은 군사상8226교통상 매우 중요한 위치에 있습니다. 백암산성의 한쪽 낭떠러지 아래 흐르는 태자하는 물이 많이 말라 곳곳이 바닥이 드러나 있지만 물살이 힘차게 느껴지는 한편 그 유유함이 든든해 보입니다. 백암산성은 고구려 산성의 특징을 잘 보여주고 있는데 성을 보호하는 덧성과 치, 그리고 독특한 축성 방식이 대표적입니다. 전엔 잘 보이지 않았지만 발굴 작업으로 드러난 남쪽 성벽에는 분명하게 덧성을 볼 수 있습니다. nbsp65279nbsp65279스님이 초기에 이곳에 오셨을 때는 고구려의 산성의 특징은 독특하며 그 유래를 찾을 수 없다고 얘기 들었지만 지금은 요하 문명의 유적이 알려져 그곳에서 고구려 산성의 특징을 엿볼 수 있어 고구려가 요하문명 즉, 배달문명을 계승했다는 걸 알 수 있다고 합니다. 이런 천혜의 요새를 찾아내고 자연 그대로의 형태를 이용하여 적절하게 성을 쌓는 고구려인들의 지혜가 감탄스럽기도 하면서 한편으로는 적의 침입을 발견했을 때의 병사의 심정이 상상이 되고 요동성이 무너졌을 때 너무도 힘없이 함락된 걸 보면 철옹성도 소용없고 지금 우리의 평화가 얼마나 중요한지 되새겨집니다.nbspnbsp백암산성이 있는 곳에서 평야지대가 끝나고 백두산까지 산악 지대가 계속되고 다음 여정인 홀본산성으로 가는 길은 고구려가 요동 정벌을 나갔던 길이기도 했고 반대로 이 길을 통해 3번의 침략을 당했다는 스님 말씀을 들으니 역사의 아이러니를 느끼게 됩니다.nbspnbspnbsp다음 도착한 곳은 고구려의 첫 수도, 홀본산성입니다. 중국에서는 다섯 여신의 전설이 내려오는 오녀산성이라 불리는 곳이기도 합니다. 길고 가파른 계단을 오르면서 약 20여년 전 스님이 북한 아사자를 돕기 위해 현장 조사하러 오셨을 때 우연히 이곳 홀본산성을 찾아오게 된 사연을 얘기해 주신 덕분에 스님은 숨이 차셨겠지만 우리들은 재밌게 올라갈 수 있었습니다. nbspnbspnbspnbsp계단을 다 올라가서 숨을 고르며 서쪽 성문의 특성에 대해 설명 듣고는 전망이 좋은 망대에 들러 사진을 찍기도 했습니다. 다시 동쪽으로 조금 내려가다 보면 전망이 기가 막힌 장소가 나옵니다. 날씨가 맑으니 멀리 내려다보이는 풍경이 마치 백두산 천지와 견줄 수 있을 만큼 멋지게 펼쳐져 있어서 스님께서는 이번에 천지를 못 볼 수도 있으니 실컷 봐두라고 농담을 하셨습니다. 정말 천지와는 사뭇 다르지만 역시 우리나라에서는 좀처럼 볼 수 없는 광활한 경관인 것은 분명한 것 같습니다. 원래 저 아래 내려다보이는 환인 지역에는 고구려의 고분들이 많았는데 댐을 건설하면서 모두 수몰되었다는 설명을 들었을 때는 속상하기도 했지만 물속에 있다고 해서 없는 것이 되는 것도 아니고 또 어쩌면 지상에 있는 것보다 더 보존이 잘 될 수도 있다고 위안해 봅니다. 하지만 중국은 유적은 있되 역사가 없고 우리는 역사는 있되, 유적이 없다는 스님 말씀에 안타까움이 이는 것은 어쩔 수 없는 것 같습니다. nbspnbspnbspnbsp좁고 매우 가파른 계단을 잔뜩 긴장하면서 내려가다 보면 말에 물을 먹였다는 음마지가 나오고 좀 더 내려가면 동문 성벽에서 공자형 성문의 모습을 만날 수 있습니다. 스님께서는 힘들게 왔는데 다 보고 가야 한다며 가파른 지형에 쌓아놓은 동문 성벽의 특징과 공자형 성문의 모습을 한 사람이라도 다 알 수 있도록 정성스럽게 설명해 주셨습니다. nbspnbspnbsp산을 내려가서는 박물관에 가서 방금 보고 온 홀본산성의 모습을 다시 설명해 주셨고 폐관 시간 때문에 서둘러 여기 저기 둘러본 후 박물관을 나오니 초생달이 우릴 반겨 주었습니다. 빠듯한 일정 때문에 빵 하나로 점심을 때운 일행은 저녁 식사를 맛있게 하고 호텔로 이동 후 바로 가방만 로비에 둔 채 강의장에 모여 스님의 강연을 들었습니다. 다들 피곤할 것을 예상하시고 사람들과 눈을 마주칠 수 없는 자리에 앉지 않으시고 맨 앞사람들 사이에 서서 사람들이 지루해 하거나 졸지 않도록 배려하시면서 강의해 주셨습니다.이번 강의는 민족의 시원에 대한 것이었습니다. nbspnbspnbspnbspnbsp“배달 문명은 동북지역의 모든 민족에 해당이 되는 거예요. 그 중 ‘민족의 주류, 가장 장자가 우리 민족이다‘라고 할 수 있어요. 우리 민족 밑에 있다가 제일 먼저 독립해서 나라를 만든 게 선비족, 연나라, 그 다음에 제나라. 연나라는 3,4세기에 후연을 만들어서 고구려와 각축을 하죠. 그 다음에 흉노, 그 다음이 돌궐, 지금의 몽고, 그리고 거란의 요나라, 여진의 금나라, 몽골의 원나라로 이어지지요. 그러나 이쪽은 초원에 살기 때문에 우리처럼 단일국가라고 보기보다는 추장의 연합체 같은 성격을 갖는다고 볼 수 있어요.”거란, 여진, 돌궐, 흉노 등의 민족은 우랄 알타이어계로 오히려 한족보다 우리에게 가까운 사촌 같은 민족이지만 미개한 오랑캐로 인식이 남아있는 것은 중국에 대한 사대주의의 영향 때문인 것 같습니다. 또한 이러한 민족과 이들의 국가를 모두 중국으로 인식하는 오류에 대해 지적해 주셨습니다. nbspnbspnbspnbsp“민족의 시원에 대해 알아야 하고 고구려와 발해의 역사에 대해서도 알아야 합니다. 우리 손에 잡히고 현재 볼 수 있는 건 고구려8226발해에요. 고구려 발해가 도대체 어디서부터 왔느냐 하면 부여에요. 부여의 뿌리는 조선이고 조선의 뿌리는 배달인데, 배달과 조선에 대해서는 아무런 유적이 없는데 지금 요하 상류에서 이런 거대한 유물과 유적이 발굴이 되어 있어 중국과 협력해서 연구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요하 문명은 중국과 우리 사이에 논쟁하기보다는 동아시아 문명의 풍요로움이라고 볼 수 있고 세계 문명가운데 가장 앞선 문명이라고 해석할 수 있어요.” nbspnbspnbspnbspnbsp우리 민족의 시원에 대해 간명하게 설명해 주시며, 국사시간에 배웠지만 잘 꿰어지지 않는 중원의 역사를 일목요연하게 정리해 주셨습니다. 지금 우리가 얼핏 계속 중국 땅이었을 거라 생각되는 동북아시아의 땅이 실제로는 중국 땅이 아닌 기간이 훨씬 많았음을 일깨워주실 때 우리도 모르게 중국이 원하는 시각으로 보고 있는 게 아닌가 해서 흠칫 놀라게 됩니다.nbspnbspnbspnbspnbsp“이 동북 땅은 원래 중국이 아니었어요. 오히려 동북지역 사람들이 중원을 점령한 게 더 많습니다. 고조선이 있었고 그 다음에 올라오면서 금나라, 원나라, 청나라 이게 다 중원의 주인이었어요. 그러나 대충 보면 북경지역을 경계로 해서 기력이 세면 내려갔다가 밀렸다가 이런 거예요. 역사기록을 할 때 동아시아 전체 역사를 알고 우리 역사를 알아야 하는데 항상 부족한 게 현재 우리 조선민족만 보고 하니까 역사가 왜소해 보이는 거예요. 크게는 문명사로 봐야 돼요. 동북민족과 남방민족이 세력을 겨루는 형세를 보고 동북민족 중에 누가 주도를 잡느냐를 봐야 합니다. 순서로 보면 다시 우리한테 기회가 온 거예요, 문명의 순환론으로 본다면.”nbspnbspnbspnbsp한국의 역사 뿐 아니라 이와 관련된 중국의 역사를 함께 설명해 주시니 훨씬 역사가 입체적으로 다가오고 더 재미있었습니다. 밤 11시가 다 되어서야 열기가 뜨거운 첫 날 일정이 모두 끝났습니다. 내일은 집안의 고구려 유적지를 돌아보기 위해 4시 반 출발이라서 모두들 서둘러 방으로 들어갔습니다.

2014.07.03. 19,426 읽음 댓글 8개

2014.6.30. 평화재단 10주년 특별기획대담 4회

오늘은 아침 8시부터 하루 종일 4차례나 특별기획대담 녹화를 진행하셨습니다. 첫 번째 주제는 ‘통일, 북한 민심을 얻으라’였습니다. nbspnbspnbspnbspnbsp고경빈 평화재단 평화연구원 연구위원, 김영수 서강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김도일 북한 출신 전문가와 함께하는 대담 자리에서 스님께서는 북한 주민을 세 계층으로 분류하고 각각의 민심을 얻을 수 있는 방향에 대해 얘기하셨습니다. nbsp“북한 사회는 대략 세 부류로 나눌 수 있는 것 같아요. 첫 번째는 일상의 생활에 전전긍긍하고 식량난으로 고통 받는, 병이 나도 제대로 치료받지 못하는 다수의 일반 주민들이 있고요. 도시 노동자, 농민들이 여기에 속할 겁니다. 두 번째 부류는 당원, 중간간부들, 즉 중하위 관료들입니다. 생존에 급급한 건 아니지만, 잘 살아보고 싶은 욕망이 많은 사람들입니다. 세번째 최상류층인 지배집단은 사는 게 급급한 게 아닙니다. 외제도 많이 쓰고, 집이며 식량도 다 보장되고 북한 안에서 특혜를 누리는 지배층입니다.nbspnbspnbspnbspnbsp최상이 10 이내, 중이 20, 일반 주민이 70 정도라고 대충 본다면, 일반 주민들은 먹고 사는 것을 안정화시켜준다면 민심을 얻지 않겠나 싶습니다. 하루하루 사는 게 급급한 사람들이고 그들의 생존을 국가가 보장해주지 못하고 있기 때문에 당과 국가에 대한 충성심이 사라진 지 이미 오래되었습니다. 이때 남한의 지원으로 먹고사는 삶이 어느 정도 보장된다면 당연히 마음이 남한 쪽으로 기울어질 수 밖에 없을 것이고, 인도주의적 지원은 도덕적 측면에서도 우리가 마땅히 해야 할 일이지만, 이와 더불어 북한 일반 주민의 민심을 얻을 수 있다는 면에서 통일정책으로도 매우 유용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그리고, 잘 살고 싶은 이들을 위해서는 경제교류와 협력이 매우 중요하지요. 남한의 많은 상품들이 북한 시장에 유통이 되고 실제 그들의 삶의 질이 높아진다면, 국가정책상의 통일론이 아니라 개개인의 마음으로부터 통일을 기대할 수 있게 할 겁니다.nbspnbspnbspnbspnbsp그런데 상류층은 통일 후에 자기들의 기득권과 신변안전에 대해 우려를 하니까 당장 사는데 지장이 없고, 통일이 되면 자기들의 기득권이 오히려 위협을 받을 수 있으니까, 우리가 생각하는 남한중심의 통일은 당연히 반대하겠죠. 그들이 우려하는 신변안전보장문제를 어떻게든 해줘서 통일이 그들에게도 이익이 될 수 있다는 것을 설득할 수 있겠느냐는 것입니다. 이게 아래층의 요구와 윗층의 요구가 상반되기 때문에, 쉬지 않은 문제입니다. 북한 지배층의 우려를 불식시키고 통일로 이끌어내려면, 북한에 대한 반대의식을 갖는 사람들에 의해 이 문제가 남한 안에서 반대에 부딪힐 것이므로 남한에서 어떻게 극복할 거냐가 관건입니다.nbsp일반주민은 경제적으로 돈이 든다 하는 정도의 문제인데, 그건 남한 사람들에게 통일이 되면 다른 것으로 경제적 이익을 볼 수 있다고 설득하면 되는데, 지배층에 대한 신분 보장문제는 인권 측면에서 굉장한 반대에 부딪힐 수 있겠죠. 남한 안에서 이것까지 극복할 수 있어야 평화통일이 가능합니다.”nbspnbspnbspnbsp 간단한 점심 식사를 마친 후 12시 부터는 이영훈 평화재단 평화연구원 연구위원, 손병두 전 전경련 부회장, 이상만 중앙대 북한개발협력학과 교수와 함께 ‘통일경제’를 주제로 한 대담을 촬영했습니다. nbspnbspnbspnbspnbsp스님은 “북한과 우리의 소득격차를 줄이기 위해 북한을 한국 개발 모델, 중국 개발 모델에 맞출 필요는 없지 않느냐. 북한이라는 게 또 하나의 독자 개발 모델이 될 수 있지 않는가. 북한이 독립국가가 아니라 남한과 함께 민족국가로 협력하면 연평균 2030의 성장도 가능하다고 봅니다. 그런면에서 북한이 갖고 있는 장점이 있죠. 우리가 시행착오를 되풀이한 방식을 그대로 적용하는 것이 아니라, 장점은 살리고 단점은 되풀이 하지 않도록 협력한다면 북은 훨씬 빠른 속도와 다른 방식으로 발전할 수 있을 것입니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nbspnbspnbspnbspnbsp이어 분열과 차별이 발생할 수 있음을 지적하며 “다연방제 방식으로 일정 소득 불균형을 용인하고 중앙정부가 소득 불균형을 해소하는 균형발전 전략을 추구해 나가는 시스템이 고려되어야 합니다.” 라고 덧붙였습니다. nbsp또한 “통일의지는 갖되 통일 절차는 현실에 맞게 추진해야죠. 이렇게 되면 통일은 어렵지 않고 시너지 효과를 가져올 수 있습니다. 그런데 경제력 격차는 한국 안에도 많고 한국 안에도 소득 불균형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계속 남북 소득 불균형만 이야기한다면 그런데서 오히려 통일에 대한 부작용 문제만 강조되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듭니다.”는 말씀도 했습니다.nbspnbspnbspnbspnbsp더불어 스님께서는 ‘경제’를 강조하며 통일이 목표화되는 것을 경계해야 함을 지적하며 경제적 발전은 통일의 비전중의 하나일 뿐이라는 점을 분명히 하셨습니다.nbspnbspnbspnbspnbsp“단지 통일이 우리의 궁극적 목표라면 통일을 해도 8천만으로 일본의 23 수준입니다. 이게 우리의 비전이 될 수는 없죠. 19세기는 유럽의 시대였고, 20세기는 아메리카의 시대, 21세기는 아시아의 시대가 도래한다고 하죠. 경제력만 보면 아시아 시대의 도래라고 말할 수 있지만 경제력은 세계문명의 중심 요소이지 전부는 아닙니다. 여기에 민주주의의 발전, 인권 문제, 과학기술, 여러 문화적 사회적 제도들도 앞서가야 합니다. nbspnbspnbspnbspnbsp남북간에 협박하고 싸우는 것이 인류 문명을 앞서간다고 볼 수는 없죠. 이런 상태서 남한이 경제적으로 발전한다고 아시아가 경제력이 커진다고 아시아 시대의 도래라고 말할 수는 없습니다. 진정한 아시아 시대가 도래하려면 남북한의 갈등이 화해, 통합이 이루어져야 하고, 이는 세계 40여 곳의 민족적 종교적 갈등에 좋은 해법을 줄 것입니다. 이것 하나만으로도 문명을 앞서갈 수 있는 겁니다. 통일 이후에는 과거 적군이었던 인민군 무덤의 열사능에도 참배를 해야 될 것 아니에요? 이것은 원수를 사랑하라는 것을 이론이 아니라 삶속에서 실천하는 것이죠. 통일은 경제적 문제를 넘어서서 정신문명을 가장 높은 수준으로 끌어올리는 것입니다. 또한 통일된 한국은 한국만의 평화와 번영을 가져오는 것이 아니라 아시아의 평화와 번영에 이바지할 수 있는 것입니다.“nbsp발전된 경제는 통일이 가져올 좋은 결과 가운데 하나이지만 이보다 더욱 중요한 것은 정신적nbspnbsp가치와 인식의 전환임을 잊지 않아야 함을 일러주시는 말씀이었습니다.nbspnbspnbspnbspnbsp곧이어 오후 3시에는 ‘21세기와 통일 코리아’라는 주제로 통일연구원 조민 박사님, 최상용 고려대학교 명예교수님, 임현진 서울대학교 사회학과 교수님과 함께 대담을 하셨습니다. 21세기에 들어 변화의 조짐을 보이는 한반도를 둘러싼 역학구도 속에서 지난 100년의 역사를 돌아보며 오늘의 교훈을 찾고자 하는 시간이었습니다.nbspnbspnbspnbspnbsp스님께서는 식민 지배와 분단에 이르기까지의 역사를 짚으며 지난날의 과오를 반복하지 말아야 한다는 점을 강조하셨습니다.“조선 왕조가 몰락하던 시기 내부적 모순을 안고 있는 상황에서 외부적으로도 종주국인 청국이 몰락하는 상황에 처했습니다. 당시 깨어있는 개화파 지식인들이 청으로부터 독립하고자 했지만 자주적인 방법이 아닌 일본을 끌어들이는 방식을 택함으로써 3일 천하로 끝나고 말았습니다. 변화를 시도한 것은 좋았지만 그 방법이 잘못되어 오히려 수구파의 장기집권을 용인하는 결과를 낳은 것 아닌가 싶습니다.”nbsp이어 “이후 아래로부터의 혁명인 갑오농민혁명이 일어났지만 지배 계급은 또 청이라는 외국 군대를 끌고 와 해결하려고 했고, 이에 일본군까지 개입해서 혁명은 실패하고 말았습니다. 또 청일전쟁이 발발해 일본이 승리하면서 조선은 일본의 반식민지로 전락했고 결국 1910년에 나라를 빼앗기게 되었죠.nbspnbspnbspnbspnbsp우리 내부에서도 삼정이 문란해져서 민중의 고통이 날로 심해져 내부 개혁이 필요한데도 개혁에 실패하고 외부적으로는 대륙 세력이 바뀌고 있는 것을 알지 못하고 외부 세력에 대한 능동적 대응을 못함으로 해서 식민지배까지 오는 100년의 역사를 만든 것 아닌가 생각합니다.” 라며 조선 말기 내부적인 모순과 세계 판도를 자각하지 못한 실수로 인해 민족사의 수난이 계속되었음을 말씀하셨습니다.nbspnbspnbspnbspnbsp스님은 또 “그럼 다시 이 시점에서 우리에게 닥친 주변정세를 본다면, 분단 상태 속에서도 평화를 유지하고 산업화와 민주화에 성공해 이만큼의 성과를 냈는데, 또 다른 문제가 발생하고 있습니다. 중국이 급격하게 부상하면서 대륙판이 변화하고 있습니다. 미중이 경쟁과 갈등을 하는 판국에 우리가 휩쓸리면서 입장정리를 하지 않을 수 없는 상황 속에서 분단된 상태를 계속 유지하는 한 한반도는 또다시 미국과 중국의 하위변수로 전락해 우리의 운명이 남의 손에 좌우될 위험에 놓이게 되는 것입니다. nbsp이것을 극복하지 못한다면 또 새로운 백년을 과거 백 년처럼 민족사의 수난을 겪을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그런데 만약 남북이 통일된다면 두 개 문명의 충돌 지점에서 강대국의 하위 변수로 분열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통일 한국이 그 두 문명의 융합, 조화를 이루도록 균형을 잡아줄 수 있는 역할을 할 수 있고, 지금까지 생각지도 못했던 새로운 역할을 할 수도 있습니다. 그런 측면에서 지금 우리는 패권 충돌의 피해자로 한 세기를 보낼 것인지, 아니면 융합문명 속에서 새로운 문명을 꽃피울 비전의 기회로 잡을 것인지 선택의 지점에 서 있다고 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라고 말씀하시며 오늘날 위기의 상황을 새로운 기회로 삼아야 한다고 강조하셨습니다.nbspnbspnbspnbspnbsp우리 민족이 식민 지배 받은 역사에 대해 여전히 상처를 갖고 있는 현실에 대해서는 “피해를 준 사람이 가장 나쁘지만 피해의식에 젖어있어도 더 이상 발전하기가 어렵습니다. 가해자에게 사과를 받는 것으로는 일시적 해소는 되지만 완전한 해결이 되는 것은 아닙니다. 식민 지배의 상처와 전쟁의 상처, 분단의 아픔은 통일을 통해 스스로 치유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우리 힘으로 통일하면 그 과거 역시 여기까지 올 수 있었던 자산으로 남을 수 있는 것입니다. 통일이 우리의 목표가 되어서는 안 됩니다. 통일은 미래로 나아갈 출발점입니다.nbsp우리도 세계평화, 인류공동번영, 환경 보전등 인류 발전에 기여하는 역할을 해야 할 때입니다. 며칠 전 신문을 보니 우리나라의 인류 발전 기여도가 46위로 나왔습니다. 그 중 평화문제는 거의 100위에 가까웠습니다. 그런 면에서 우리 젊은이들은 이제 통일이 되면 민족적 자긍심에 근거하되 지나친 민족주의는 지양하고, 이웃과 함께하며 인류를 향해 공헌하는 국가로 나아가는 것이 21세기 속에서 통일코리아의 비전이 되지 않겠나 생각합니다.” 라며 통일코리아의 새로운 꿈과 비전을 제시하셨습니다.nbspnbspnbspnbspnbsp저녁 7시에는 전체 대담의 마지막 일정이 ‘통일코리아가 보는 민족 100년사’를 주제로 진행되었습니다.김형기 평화재단 평화연구원장, 역사학자 이이화 선생, 박태균 서울대학교 국제대학원 교수 세 분을 모시고 진행된 자리에서는 지난 100년의 역사를 돌아보는 시간을 가졌습니다.세 대담자 분들께서는 일제 식민지 지배, 분단, 전쟁, 냉전이라는 어두운 100년의 역사와 그 100년을 만든 그 이전의 100년의 흐름에 대해 정리해주셨습니다.스님은 “지금의 대한민국은 분단 상태에서 상당히 성공적입니다. 많은 부족함이 있지만 그 속에서 성공을 만들어냈어요. 이 힘을 가지고 새로운 100년을 새롭게 개척할 거냐, 또 주어진 조건에 끌려갈 거냐 그 기점에 서 있지 않나 싶습니다. 객관적으로 보면 과거 주체 역량이 너무 부족해서 바깥의 힘에 규정받을 수밖에 없지 않았는가. 아쉽지만 그게 현실 아닌가. 이렇게 생각해본다면 지금은 그런 시행착오를 되풀이하지 않아도 될 정도의 역량이 성숙했다고 볼 수 있지요. 그런데 안목과 의지가 있느냐가 문제죠. 21세기에 새로운 대한민국을 만들어나갔으면 좋겠습니다. 새로운 대한민국의 첫 발은 통일이 되어야 하지 않겠는가. 통일이 결과가 아닌 출발이 되어야 한다. 통일없이 어떻게 새로운 대한민국을 생각할 수 있겠는가 생각해봅니다.” 라며 부정적 역사 속에서 희망을 찾고 우리의 역량을 발휘해야 한다고 말씀하셨습니다.nbsp“분단이 가져온 역사적 왜곡으로 인해 분단사 뿐만 아니라 독립운동사마저 심각한 왜곡을 빚어냈습니다. 특히 70년 가까이 분단 상태에 있으면서 우리는 국토의 절반에 살고 있는 민족의 일부를 적대 세력으로, 서로 괴뢰라고 하잖아요. 이렇게 규정한 상태에서 역사를 기술하기 때문에 우리 독립운동사가 아주 빈약해지고 말았어요. 통일된 대한민국에서는 양자를 다 민족사 내부로 받아들여야 합니다. 과거 역사에서도 신라 중심의 역사를 기록하다보니까 발해 역사를 제외시킴으로써 영토적 불균형도 가져왔어요. 이런 문제를 또 범해서는 안 됩니다. nbspnbspnbspnbspnbsp중국은 만주족이 세운 나라도, 거란족이 세운 나라도, 몽골족이 세운 나라도 다 중국 역사의 일부로 보고 거대한 중국을 만들어내었는데, 우리는 우리 민족이 만들어 낸 역사마저도 이렇게 역사 속에 묻어버린다면 우리의 민족사는 자꾸 더 좁아지고 왜소해지지 않겠어요? 그런 데서 통일코리아는 미래의 희망일 뿐만 아니라 과거로부터 상처받은 걸 치유하고 묻힌 걸 복원해내는 것이기 때문에 과거 100년을 통일의 관점에서 평가해야 하고 또, 통일 이후에라야 진정한 평가가 이루어질 것 같습니다. 분단 상태에서는 체제 방어적인 의식이 있기 때문에 왜곡된 역사 편집을 하지 않겠습니까. 이런 데서 완전하지는 못하지만 지금부터라도 남북 양쪽이 그래도 근접하는 공통점을 갖는 역사 교과서를 만들어야 하지 않을까요? nbspnbspnbspnbspnbsp한일, 한중간 역사 왜곡 때문에 공동의 역사 교과서를 편찬하자는 얘기가 있는데 우리 민족 안에서도 공동의 역사를 펴지 못하면서 이런 건 부끄러운 얘기 아닐까 싶습니다. 그런 관점에서 과거 100년의 역사를 재평가하는 작업이 필요하지 않나 생각합니다. 남북 세력에 있어 우위에 있는 남쪽이 포용성을 가지고 북을 포함해서 평가하는, 북을 부정하냐 긍정하냐의 문제가 아니라 민족의 정체성, 그런 큰 역사를 그리는 관점이 되는 게 통일을 준비해가는 과정이 아니겠나 생각합니다.“nbsp우리의 역사를 균형있게 서술하고 제대로 정립하기 위해서도 통일은 반드시 필요한 과정임을 알 수 있었습니다. nbspnbspnbspnbspnbsp끝으로 스님께서는 “저는 사람은 자유롭게 살아야 한다고 생각해요. 과거에는 신분 제도와 성별로 인해 많은 차별이 있었죠. 최근에는 많은 부분에서 자유로워졌지만 남북 체제 대립 속에서 여전히 국가주의라는 울타리 안에서 자유롭지 못한 측면이 있습니다. nbspnbspnbspnbspnbsp남한 사회에서 빚어지는 남남갈등의 원인을 들여다보면 그 원인은 대부분의 경우 분단에 기인하고 있습니다. 송전탑을 반대해도 종북, 원전을 반대해도 종북, 심지어 세월호 서명을 받으러 가도 빨갱이냐는 소리를 듣습니다. 왜곡된 의식상태 속에 살고 있는 겁니다. 이런 면에서 저는 분단 극복과 통일은 새로운 세상을 열어놓을 것이라고 생각해요. 상상도 못할 사고와 사상의 자유를 가져올 것이고, 종교 역시 폐쇄된 종교에서 열린 종교로 발전할 겁니다. 민족 안에만 갇혀있는 것에서도 벗어날 수 있습니다. 구태와 첨단이 뒤섞인 것들을 통일을 계기로 철학적, 사상적, 과학기술적으로 새롭게 바뀔 수 있지 않겠는가. nbspnbspnbspnbspnbsp우리 사회가 굉장한 역동성을 갖고 있는데 아직 출구를 찾지 못해서 소용돌이가 일고 있습니다. 이것이 통일을 계기로 신바람이 일어난다면 굉장한 승화로 훌륭한 예술, 음악이 나올 수 있습니다. 사회에 희망이 있어야 예술가에게도 비전이 생기는데, 살만한 세상, 해볼만한 일이 있다면 여기 사는 모든 사람들에게도 희망이 있지 않을까요?nbspnbspnbspnbspnbsp분단이 되어 있다 보니 국가 안보에만 치중되어 있는 현실도 더욱 중요한 인간 안보를 중심으로 바뀌고 성장, 속도, 물질 중심에서 생명, 사람, 안전, 행복으로 가치관이 바뀌고, 사회도 시스템도 그렇게 나아갈 수 있는 계기가 된다면 세월호 304인의 희생이 큰 걸음이 될 수 있지 않겠나 생각해 봅니다.“nbspnbspnbspnbspnbsp전체 대담의 일정을 끝내며 스님께서는 우리 사회의 극심화된 갈등을 해결하고, 잃어버린 희망을 되찾고, 잊어버린 정신적 가치들을 복원해 낼 수 있는 시작이 곧 ‘통일’임을 말씀하시며 세월호 희생자들의 희생이 희생에만 머무르지 않고 우리 사회의 뼈아픈 성찰과 발전으로 거듭나야 한다는 점을 다시 일러주셨습니다.nbsp우리가 진정 지향해야 하는 바는 무엇이며, 우리가 잃어버린 혹은 잊어버린 것들이 무엇인지 돌아보고 반성하며 다시금 희망과 꿈을 품을 수 있게 한 시간이었습니다. nbspnbspnbspnbspnbsp오늘 하루종일 4번의 대담으로 잠시도 쉴 틈이 없으셨던 스님께서는 모든 대담을 마치고 10시가 넘어서 이기혜 정토회 대표님의 시아버님이 돌아가셔서 문상을 다녀오신 후 다시 원고교정등의 업무를 보셨습니다.nbspnbspnbspnbspnbsp내일은 통일의병과 함께 동북아 워크샵을 하기 위해 중국으로 가실 예정입니다.

2014.07.01. 15,484 읽음 댓글 3개

2014.6.29. 제8차 천일결사 제2차 백일기도 입재식

6월 29일, 오늘은 제8차 천일결사 제2차 백일기도 입재식이 있는 날입니다. 백일간의 기도를 회향하고 새로운 백일을 시작하는 날이기에 전국에서 김천 실내체육관으로 행복도 함께 싣고 왔습니다. 행사장에 모인 정토행자들과 봉사자의 환한 모습을 보면서 백일간의 마음을 읽을 수 있었습니다.nbsp65279nbspnbspnbspnbspnbspnbsp행사장 안에 걸린 명심문, ‘내 인생의 희망이 되어 행복하게 살겠습니다’는 백일동안의 마음가짐을 다시 한 번 돌아보고 새로운 다짐을 하게 했습니다.nbsp65279nbspnbspnbspnbspnbspnbsp오늘 입재식에는 국내에서 총 3703명이 참석하셨습니다.행사에 앞서 함께 예불을 올리고 순국선열과 세월호 희생자를 위한 묵념을 한 후 김병조님의 사회로 입재식이 시작되었습니다. 65279nbsp65279먼저 정토회 대표 이기혜님의 인사에 이어서 지역별 정토회 소개와 인사가 있었습니다. 65279nbspnbsp65279nbsp65279지역 정토회가 소개 될 때 마다 특색있게 준비한 소품도 흔들고 구호도 외치면서 박수와 함성으로 한 자리에 모인 정토행자의 기쁨을 마음껏 뿜어냈습니다.nbspnbspnbspnbspnbspnbsp전국청년 정토회에서 준비한 ‘청년 치어쇼’로 행사가 힘차게 열렸습니다. 경쾌한 음악으로 청년만이 할 수 있는 공연은 보기만 해도 즐거웠습니다.nbspnbspnbspnbspnbspnbspnbsp이어서 용성조사 탄생 150주년 기념 특별 영상을 보면서 상구보리 하화중생의 대승 불교 정신으로 불교의 정법을 확립하고 독립운동에 헌신하신 용성조사의 정신을 계승하여 부처님 바른 법을 따라 수행정진하고, 분단된 조국을 평화적으로 통일하는데 일조할 수 있는 통일의병으로 앞장서야겠다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nbspnbspnbspnbspnbsp정토행자들의 백일간의 발자취를 보면서는 한 명 한 명 모아진 힘은 크고, 감동적이며, 아름다웠습니다. 아 중중무진연기의 진리, 사회개혁, 세계변화의 중심이 여기에 있었습니다.nbspnbspnbspnbspnbsp일산법당 안명렬님과 대구정토회 박나교님의 수행 사례담 발표가 있었습니다.욕구대로, 하고 싶은 대로 사는 것을 자유로 알고 상대를 변화시켜 행복을 찾으려고 가정의 불화를 만들었던 것을 수행정진을 하면서 극복해 가는 것이 멋져 보였습니다.nbspnbspnbspnbspnbsp스님께서 81차 백일기도 회향법문을 해주셨습니다.“지난 백일간의 영상을 보면서 ‘지난 백일동안 여러분들 참 수고가 많았구나 고생이 많았구나’ 하는 생각과 그렇게 부지런히 수행하고 활동해주신 여러분들에 대해서 고마운 마음이 들었습니다.nbspnbspnbspnbsp지금부터 21년 전에 정토회는 우리가 살고nbspnbsp있는 지금 여기에서 내가nbspnbsp좀 더 행복할 수 있고, 좀 더 자유로울 수 있으며, 나뿐만이 아니라 너와 우리 모두가 지금보다는 좀 더 행복할 수 있는 그런 세상을 한 번 만들어보자는 원으로 시작된 것입니다. 너 때문에 괴롭다라고 남을 탓하는 그런 자세가 아니라 이 주어진 조건 속에서 그래도 살아있다는 지금의 상황을 긍정적으로 받아들이고, 여기에서 출발해서 조금 더 좋은, 지금은 나로부터 시작이 되지만nbspnbsp이런 수행정진과 우리들의 활동의 노력으로 만 일이 지나면 그때는 전 세계는 몰라도 우리나라만큼은 우리들로 인해 확실히 좋아졌다며 우리들의 원과 노력으로 좋은 변화가 일어날 것이다. 이렇게 한 번 해보자고 해서 시작이 되었습니다.nbspnbspnbspnbspnbsp그리고 7천일이 지나고 이제 8천일에 접어들면서 지금부터 백일 전에 앞으로 천일을 어떻게 정진하고 활동할 것인가 하는 것뿐만 아니라 우리가 세운 목표를 달성하는 데 이번 천일을 어떻게 잘 대응할 것인가 이런 과제를 가지고 출발을 했습니다. nbspnbspnbspnbspnbsp 아무리 큰 목표도 좋지만 내가 살아 있어야 하고 내가 행복해야 합니다. 나로부터 시작하기 때문에 우선 나부터 좋아야 합니다. 그래서 그 첫째 조건으로 아침에 일어나서 한 시간 정진을 하자. 오늘 아침에 일어나서 살아있다는 것에 감사하자. 그리고 나에게 물어보자, 행복한가? 이렇게 행복을 점검하고 오늘 하루 살아있고 행복하니 감사하는 마음으로 오늘 하루는 기도를 하자. 자신부터 기도하면서 살아있는 공덕으로 나만이 아니라 이웃에 감사표시를 하자. 쓰고 남은 돈을 보시할 것이 아니라 조금 덜 쓰고 어려운 이웃을 위해서 보시하고 시간이 남아서 봉사하는 것이 아니라 바쁜 가운데서도 시간을 쪼개 틈을 내서 나를 필요로 하는 사람을 위해 봉사를 하자. 내일도 안 죽고 살아있으면 계속 감사할 수 있는 것이고 죽으면 안 그래도 힘든데 안 해도nbspnbsp되니까 감사 합니다 하고 기꺼이 죽을 수 있는 그런 사람이 되어보자고 했습니다.nbspnbspnbspnbspnbsp 그래서 부처님께서 불방일, 게으르지 말고 부지런히 정진해라, 낙숫물이 바위를 뚫듯이 꾸준히 해라, 성과가 있든 없든, 칭찬받든 비난받든, 효과가 있든 없든, 남이 좋아하든 싫어하든 너무 개의치 말고 하고 싶을 때도 하고, 하기 싫을 때도 하고, 살아있는 한은 꾸준히 한 번 해 보자는 것입니다. 가볍게 살아있는 것에 대한 감사를 늘 하면서 오늘 또다시 백일이 지나 이 자리에 모였습니다. 살아있는 여러분들께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nbspnbspnbspnbspnbsp지금 정토회에서는 세월호 특별법 천만인 서명운동을 하고 있습니다. 4월 16일 세월호 참사로 유가족들은 ‘왜 이런 사건이 생겼는지 진상규명이 좀 속 시원히 됐으면 좋겠다. 우리 아들, 딸들이 희생됐는데 왜 죽어야했는지 좀 알았으면 좋겠다’고 하면서 다시는 이런 일이 일어나지 않을 수 있도록 조치를 취하고 그렇게 될 수 있도록 법을 마련해서 분명하게 해줬으면 좋겠다는 것이 유가족들의 요구입니다. 다시는 이런 참사가 일어나지 않게 하려면 잊지 말아야 합니다. 그래서 특별법 제정을 위해서 천만인 서명운동을 하는 것입니다. nbspnbspnbsp유가족들은 처음에는 1000만명 서명이 금방 될 줄 알았는데 시간이 흐르면서 그 서명이 쉬운 일이 아니고 100만명을 넘어가면서 부터는 진척이 없다고 합니다. 그분들이 초조해하고 답답해하고 불안해하기에 이제 그분들이 가장 필요로 하는 서명운동을 정토회에서 하기로 했습니다. 정토행자들이 전국 방방곡곡에서 얼마나 온 힘으로 했는지 일주일 조금 지났는데 76만명을 달성했습니다. 기적 같은 일입니다. 유애경보살님은 팽목항에 계속 있었습니다. 실종자가 11명이나 남았있어 철수하지 않고 정토회를 대표해서 그곳에서 상주하고 있습니다. nbspnbspnbspnbspnbsp유가족분들이 원하는 건 가족의 희생이 헛되지 않게 해달라는 것이니nbspnbsp서명이라도 해서 일차적으로 도와주고 다시는 이런 일이 일어나지 않도록, 대한민국을 물질중심이 아닌 사람중심으로 행복중심으로 나아가도록 우리부터 사는 방식을 바꿔야 합니다. 투표를 할 때 우리마을에 공장을 세우고 기업을 유치하겠다 하는 그런 이익에만 너무 중심 두지 마시고 어떻게 해야 우리사회를 안전하게 만들 것인지, 우리 아이들이 정말 안심하고 살 수 있는 세상을 어떻게 만들것인지, 우리가 늙어 노인이 돼도 두려워하지 않고 근심걱정 없이 살 수 있겠는지 하는 좀 더 좋은 세상을 만들려고 노력해야 합니다. 우리 자신도 그런 방향으로 살아가는 가치관이나 인생관이 바뀌지 않고는 이런 일은 계속 재발될 수밖에 없습니다. 특정한 사건 ,사고뿐만 아니고 우리들 자신이 속도도 지키고, 질서도 지키고 ,이런 쪽으로 우리들 자신이 바뀌어줘야 됩니다.” 하시면서 지난 백일동안 정진하고 활동하느라 수고한 정토회 회원들에게 감사를 드리며 스님께서는 회향법문을 마치셨습니다.nbspnbspnbspnbspnbsp회향법문 후에 입재식에 참가분들은 김천 실내 체육관 주변으로 여기저기 옹기종기 모여 맛난 점심공양을 하였습니다. 스님께서는 공양하는 대중과 각 부서와 단체의 홍보공간을 둘러보셨습니다. nbspnbspnbsp오후 행사는 정토행자의 한마당으로 시작되었습니다.nbspnbsp65279포항 정토회 삼태기메들리와 신궁님의 노래로 모두 함께 웃고, 손뼉치고, 흥겨운 시간을 가졌습니다.nbspnbspnbspnbspnbspnbsp한마당 후에 지금까지 가장 많은 인원인 773명의 신규 입재자 결의식을 가졌습니다. 결의식을 마친 신입 천일결사자는 다시 기존의 정토행자에게 인사를 하면 함께 수행정진하겠다는 다짐을 하기도 했습니다.nbspnbspnbspnbsp 정토행자가 쓰는 희망편지를 행자대학원 22기 백일 출가자들이 촛불을 들고 낭독한 후 제8차 천일결사 제2차 백일기도 입재법문이 이어졌습니다.nbspnbspnbspnbspnbsp스님께서는 “오늘부터 제2차 백일기도에 들어가게 됩니다. 새로운 출발을 가볍게 해봅니다. 제가 지난 상반기 동안에 전국 40군데 정토회를 찾아다니며 대중들과 즉문즉설 법회를 했습니다. 한 두 시간 대화를 하다보면 아무런 주위환경의 변화가 없는데도 마음이 조금 바뀌니까, 여름에 수분부족으로 시들던 채소가 물을 주면 금방 생기가 돌듯이 얼굴이 환해집니다. nbspnbspnbspnbspnbsp우리는 육체를 가지고 있으니까 밥을 먹어야 합니다. 그러나 우리는 또한 정신을 갖고 있는 존재이기 때문에 밥만으로는 살 수 없고 행복해야 합니다. 하지만 우리는 불행히도 우리의 행복을 물질적인 것에 지나치게 의지하고 있습니다. 사람답게 산다는 것이 무엇일까요? 이것은 자유롭게, 행복하게 사는 것입니다. 내가 원하는 대로 이루어지면 기분이 좋습니다. 내가 원하는 대로, 바라는 대로, 되면 우리는 행복하고 그것을 자유라고 생각합니다. 이렇게 생각하는 한 우리는 완전히 자유롭게 살 수가 없습니다. 왜냐하면, 이 세상은 내가 원하는 대로 될 수가 없기 때문에, 우리가 원하는 대로 이루어져서 행복한 것은 절반의 자유와 행복입니다. 나머지 절반의 자유와 행복은 어디서 찾아야 하느냐? 그 절반은 내가 원하는 대로 이루어지길 바라는 것으로부터의 자유입니다.nbspnbspnbspnbspnbsp내가 원하는 것, 내가 바라는 것, 그것으로부터의 자유까지 얻어야 완전한 행복을 얻는 것입니다. 그래서 내가 원하는 것이 모두 이루어질 수 없다는 것도 알아야하고 남이 원하는 것을 원하는 대로 내가 모두 해줄 수 없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내가 원하는 대로 모두 되지 않는다고 괴로워 할 일도 아니고, 남이 원하는 대로 내가 모두 해줄 수 없다고 자책할 필요도 없습니다. 내가 원하는 것이 이루어지면 다행이고, 이루어지지 않으면 그만입니다. 그래도 이루고 싶으면 다시 노력해보면 되고, 노력해 본 뒤에도 안되면 그만입니다. 남이 원하는 것을 내가 해줄 수 있으면 다행이고 없으면 죄송합니다 하고 가볍게 받아들이면 됩니다. nbspnbspnbsp 지나친 욕심과 자기 생각대로 안 된다고 분노하고 미워하는 마음과 아예 모르거나 거꾸로 아는 어리석음이 모든 고통의 원인입니다. 탐.진.치 삼독은 자기를 병들게 하고 남을 해칩니다. 그래서 탐.진.치 삼독에서 벗어나면 즉 병든 마음에서 벗어나게 되면 우선 자기가 좋아집니다. 미워하지 않으면, 괴로워하지 않으면 내가 좋아집니다.우리 대부분은 사실 부모로부터 충분한 사랑을 받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모두 허기져 있는데 이것을 해결하려면 부모님께 감사기도를 해야 합니다. 이 헐떡거림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한 우리가 해탈을 한다는 것은 불가능 합니다. 낳아주시고, 길러주신 것에 감사한 마음을 가져야 됩니다. 그래서 아침에 눈뜨자마자 부모님께, 나를 사랑해 준 많은 사람들에게 감사기도를 해야 합니다. 이렇게 감사의 기도를 먼저 해야 자기 고질병을 스스로 치료할 수 있습니다. 그러니 여러분들이 밖에 가서 한 시간 일해서 번 돈, 한 시간 공부해서 얻은 이익은 진짜 이익이 아니고, 내 속에 있는 중생의 업, 사랑에 대한 헐떡거림을 치유하는 것이야말로 진짜 나의 이익이고, 나를 사랑하는 것이고 진실로 내가 내 인생의 주인되는 것입니다. 현재 우리가 가진 것만으로도 우리는 이 세상을 훨씬 더 좋은 세상, 아름다운 세상으로 만들어 갈 수 있습니다. nbspnbspnbspnbspnbsp그런데서 수행이 모든 것의 근본입니다. 정토행자는 우리가 사는 세상에nbspnbsp좋은 일도 많이 하지만 아무리 세상에 좋은 일을 많이 해도 자신이 자기를 사랑하지 않고, 행복하지 않다면 그것이 무슨 의미가 있겠습니까? 그러니 나부터 사랑하기, 나 자신이 소중한 줄 알고 내가 부처임을 자각하고, 내가 보디사트바임을 알아차리는 이것이 가장 우선 되어야 합니다. 그래서 수행을 기초로 합니다. 정토회의 첫 번째 목표가 괴로움이 없는 사람, 자유로운 사람이 된다. 두 번째가 이웃과 세상에 잘 쓰인다. 나만 행복할 것이 아니라 다른 사람의 행복에 내가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었으면 좋겠다. 그래서 첫 번째가 수행이고 두 번째가 보시와 봉사입니다. nbspnbspnbspnbsp나도 좋고, 남도 좋고, 우리 모두가 좋은 이런 세상을 만들어 보고자 우리가 정토 만일결사를 시작한 것입니다. 여기 천일결사 입재하신 분들 중에 간혹 이런 사람이 있습니다. 아침에 일어나서 내 기도만 하면 되지 않느냐? 내 기도만 하면 안됩니다. 정토행자 자격이 없어요. 내 기도를 하는 것은 기본입니다. 세상을 위해서 아무리 좋은 일을 해도 나를 위해서 수행하지 않으면 안 되지만, 내 기도만 해서는 안 됩니다. 그래서 수행. 봉사. 보시입니다. 수행을 기본으로 하고 남도 행복하게 해야 합니다. 내가 내 인생의 희망이 될 뿐만 아니라 내가 우리가족의 희망이 되고, 사회의 희망이 됩니다. 그러므로 보시와 봉사를 함께 해 나가야 합니다. 이것이 정토행자이고 만일결사의 목표입니다. 기도는 반드시 해야 하고 우리사회가 좀 더 나은 사회로 갈 수 있는 사회적 실천활동을 해 나아가야 합니다. 수행. 봉사. 보시. 이 세 가지를 하자고 만일결사, 천일결사를 하는 것입니다. nbspnbspnbspnbspnbsp사회적 실천활동은 무엇을 해야 하느냐? 지구환경을 잘 보존해야 합니다. 그래서 될 수 있는대로 걸을 수 있으면 걷고, 에너지를 절약하고, 휴지도 가능하면 적게 쓰고, 물도 아껴 쓰고, 우리가 지구자원을 쓰지 말자는 것이 아니라 쓰는 것은 좋은데 스스로 복원 할 수 있는 능력 안에서 사용하자는 것입니다. 수십억년 동안 자연이 축적해온 것을 하루아침에 모두 파내면 자원도 고갈될 뿐만 아니라 환경오염으로 인해서 스스로 우리의 삶의 토대를 파괴시키는 것입니다. 내 사랑하는 후손들이 살아갈 삶의 토대를 우리가 파괴하면 안 됩니다. nbspnbspnbspnbspnbsp그러니 쓰는 것은 좋은데 좀 아껴쓰고 돈이 없어서 벌벌 떨고 살라는 것이 아니라 있어도 스스로 소비를 줄이고, 검소하게 살자, 청결하게 살자하는 것입니다. 지구 저편에 굶어 죽는 사람, 병든 사람, 배우지 못한 사람을 위해 나눠 쓰자는 것입니다. 그런데서 수행정진 한다하는 것은 자기 괴로움을 없애는 것이고, 우리 이웃을 위해서 할 수 있는 것은 이 좋은 법을 사람들이 받아들일 수 있도록 인연 맺어 주는 것도 있고, 자연환경을 보호해주는 것도 있습니다. 그래서 제8차 천일결사 제2차백일기도 실천과제인 사회활동 내용을 실천하여 나를 바꾸면서 사회에 조금이나마 기여해서 세상을 아름답게 바꾸는데 참여했으면 좋겠습니다.” 라고 하시며 입재법문을 마치셨습니다.nbspnbspnbspnbspnbsp마지막으로 이기혜 대표의 인사와 10월 12일, 83차 백일기도 입재식에서 다시 만날 것을 약속하며 스님, 법사님들과 대중들이 산회가를 함께 부르며 입재식은 마무리 되었습니다. nbspnbspnbspnbspnbsp입재식을 마친 후 스님께서는 법사님들과 함께 법사단 회의를 하고 난 후 서울로 출발하셨습니다. 서울에서는 9시부터 다시 북한지원사업과 관련한 외부손님과의 만남을 가진 후 밤 12시가 되어서야 하루를 마무리 하셨습니다.nbspnbspnbspnbspnbsp내일은 평화재단 10주년 특별기획대담이 있을 예정입니다.

2014.07.01. 20,025 읽음 댓글 5개

2014.6.28 경주남산 산행등

스님께서는 오늘 아침 6시경에 남산 순례에 나섰습니다. 오늘은 남산을 오르는 길 중에서 가장 긴 코스로 가보자고 하셨습니다. nbsp최치원 사당이 있는 상서장에서 금오정을 거쳐 금오봉정상까지 올랐다가 이영재를 거처 용장골로 내려오는 일정이었습니다. nbsp이번 코스는 처음 오르는 코스로 남산의 끝에서 끝으로 가보자고 해서 올랐는데, 오르는 길은 능선을 따라 완만하게 가는 길이었습니다. 이른 아침이라서 그런지 사람들은 거의 없어 한산했으나 가는 길 곳곳에는 새벽이슬과 거미들이 밤새 내려와 가는 길을 가로막기도 했지만, 나뭇잎으로 앞을 헤치며 나아갔습니다.금오정, 팔각정, 금오봉을 지나쳐 이영재에서 잠시 쉬었다가 다시 용장골로 내려왔습니다. 내려오는 길에 멀리 용장사 3층 석탑을 바라보며 기도하기도 했습니다. 용장골까지 내려오니 9시 30분이 되었습니다.nbsp스님께서는 쌓인 피로를 푸는 방법으로 산행을 하거나 산책, 농사 짓기를 하고 계십니다. 오늘도 지난 주에 끝난 희망강연에 이어 몽골일정, 또 바로 계속 되는 모임등으로 제대로 휴식을 취하지 못한 관계로 쌓인 피로들을 풀기 위해 경주 남산을 올랐습니다.nbspnbspnbspnbspnbsp두북으로 돌아와서 늦은 아침을 먹고 난 후 잠시 휴식을 취한 후 그동안 가뭄으로 말라가는 화단의 꽃들과 고추, 토마토, 오이, 수박등의 작물들에 물을 주고 잡초를 뽑아주고 꽃나무들이 너무나 빼곡이 있던 화단을 시원하게 정리했습니다.nbspnbsp약 2주간 오지 못해 돌보지 못한 채소들이 어느새 열매를 맺고 있기도 했습니다. 또, 활짝 피어 있던 꽃들이 지고 새로운 꽃들이 다시 피어나고 있기도 했습니다.nbspnbspnbsp 늦은 점심을 먹은 후 다시 탑곡 산책에 나섰습니다. 저수지를 따라 걸어가니 이곳 또한 풀들과 나무들이 무성해져 있었습니다. 이제 막 열매를 맺고 있는 딸기도 있었습니다. 처음 보는 종류의 산딸기였는데, 아직 덜 익어 시큼했습니다. 저수지를 따라 한바퀴를 돌아오니 벌써 어두워지고 있었습니다.nbsp스님께서는 오늘 하루종일 몸 쓰는 일만을 하시면서 그동안 쌓인 피로를 풀었습니다. 이것으로 스님의 피로가 다 풀리지는 않겠지만, 그대로 조금이라도 나아졌기를 바래봅니다.nbspnbspnbspnbspnbsp내일은 제8차 천일결사 제2차 백일기도 입재식이 김천 실내체육관에서 있습니다.

2014.06.29. 17,220 읽음 댓글 8개

2014.6.27. 평화재단 10주년 기념 특별대담 - 4,5번째

오늘은 오전 7시부터 ‘민족의 화해와 평화를 위한 종교인 모임’이 있었습니다. 오늘 모임에서는 오는 7월 8일에 있을 세월호 관련한 심포지움에서의 프로그램, 각자의 역할, 어떤 메시지에 중점을 둘 것인지에 대한 논의들이 있었습니다.nbsp65279nbsp그리고 이어서 오전 9시 30분부터는 평화재단 창립10주년 기념 특별기획대담이 이어졌습니다. 스님께서는 통일에 관련된 9가지 주제에 대해 우리 사회 각 분야의 전문가 분들과 대담을 나누실 계획입니다. 지금까지 총 3회의 대담이 진행되었고, 오늘 2회의 대담이 진행되며, 6월30일에는 4회의 대담이 진행될 예정입니다. 대담 내용은 원고로 정리되어 7월2일부터 9월3일까지 매주 수요일마다 평화재단 웹진 ‘피스원코리아’ 를 통해 발행될 예정입니다.nbspnbspnbsp nbsp오늘 오전과 오후 두 차례에 걸쳐 평화재단 창립 10주년 특별 기획 대담을 하셨습니다.nbsp 오전 9시에는 ‘분권과 자치, 그리고 통일 한반도 연방제 프로젝트’를 주제로 국가균형발전위원장을 역임하신 성경륭 교수님과 평화교육원 조민 원장님이 스님과 함께 대담을 하셨습니다. 대담은 9시 30분부터 12시까지 약 2시간 30분 동안 진행되었습니다. nbspnbsp6527965279“그동안 우리는 단일 민족, 단일 문화로 살아오다가 최근에는 100만명이나 되는 외국인들이 들어와서 결혼도 하고 노동도 하고 살아가고 있습니다. 또 북한에서 넘어온 이탈주민들이 3만명이 채 안되는데도 불구하고 많은 이들이 적응을 못하고 여러 가지 문제가 발생하고 있습니다. 미국사회 같이 아예 이민사회일 경우에는 다양성을 인정하는 것이 비교적 쉽습니다. 그러나, 미국사회도 지금껏 성장할 때까지는 괜찮았는데 앞으로 성장이 정체 되고 쇠퇴할 때는 미국사회의 주인이 없이 여러 가지 이해 관계로 결속력이 떨어질 것이라 봅니다. nbspnbsp그런데 우리나라처럼 단일민족으로 된 나라는 책임성이 있는데 비해 배타성도 있기 때문에 세계적인 교류와 협력이 증대되는 지금의 현대사회와는 많은 장애도 갖고 있습니다. 결국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은, 책임지는 측면에서는 민족주의적인 정체성이 강조되어야 하지만, 배타적인 민족주의는 절대로 안 됩니다. 오늘날에는 다양한 민족들과 나라들이 공존해야 합니다. 그런데 이렇게 갑자기 한국 사회 안에 외국인들이 막 들어오니까 실제로는 우리들이 감당을 못하고 있고 전혀 준비가 안 되어 있습니다. 이렇게 볼 때는 한국 사회가 아직 체제가 다른 북한을 받아들이는 통일 준비가 안되어 있다고 말하는 것이 합당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우리가 단일성이 아니라 다양성을 중시하는 사고를 갖는다면 어떨까요? 북한의 2천만 동포들이 남한의 시스템으로 그대로 섞이면 이 이질적인 요소가 굉장히 부각이 될 것입니다. 하지만, 우리가 분권적인 사고를 한다면, 그들이 그들의 지역에서 그들의 특색에 맞는 시스템을 유지해 나가면서 하나의 국가로 통합하는 그런 통일국가운영 시스템을 우리가 만들어간다면 통일이 그렇게 어려운 문제는 아닐 것입니다. 북한주민들이 남한으로 이주해 와서 남한 시스템에 한꺼번에 섞인다고 한다면 사회적 통합이 매우 어려운 과제이지만, 1단계로 이웃나라처럼 교류 협력이 강화되고, 2단계로 각자의 독자성을 갖되 더 결합도를 높이는 국가연합을 이루고 3단계로 다양성을 인정한 위에 통일성을 추구하는 다연방제 통일국가를 구성한다면 이 방법은 통일도 가능하고, 통일 이후에 부작용도 줄이고 상승효과를 낼 수도 있고, 다른 이주민까지도 결합할 수 있는 국가 모델이 아니겠는가 생각합니다. nbsp65279nbsp이렇게 생각해볼 때 우리가 통일국가의 모델로서 ‘다연방제’를 조금 더 적극적으로 검토했으면 합니다. 통일 된 후에 실현하려고 하지 말고 남한 사회 안에 먼저 시행을 하고 시행착오를 거듭해서 수정 보완을 하고, 그동안에 북한은 평화공존의 원칙에서 교류협력을 강화하고 국가연합까지는 갈 수 있도록 북한을 끌고 오고, 한편 남한 안에서는 통일에 대비하면서도 남한 사회의 발전을 위한 내부 개혁을 하고, 그 둘이 다음단계로 북쪽까지 포함하는 다 연방 국가로 가는, 우리사회도 개혁시키고 통일도 가능한 그런 관점에서 좀 연방제가 빨리 검토되고 준비되어야 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nbsp65279nbsp통일로 가기 위해서는 남북한 모두의 변화를 함께 만들어가야 하고, 특히 남한 사회의 개혁이 곧 통일을 앞당기는 길이 될 수 있음을 지적해주신 부분에 대해, 대담에 함께하신 전문가 분들도 모두 크게 공감했습니다. nbsp65279nbsp토론에 참가한 성경륭 교수님은 노무현 정부 시절 국가균형발전위원회를 이끄시며 지역발전과 지방분권의 문제에 대해 풍부한 경험과 연륜을 가지신 분이셨는데, 오늘 스님의 말씀을 듣고 나선 “오늘 스님을 직접 뵌 건 처음인데, 어쩌면 이렇게 같은 생각을 하고 있었는지 놀랍습니다” 하시며 스님의 생각에 적극 동의를 표하시고 그 근거가 될 수 있는 경험담도 풍부하게 들려주셨습니다. 특히 노무현 정부 시절 국가균형발전을 추진하며 겪었던 시행착오들을 말씀하시면서, 지방분권이 먼저냐 균형발전이 먼저냐 하는 토론이 있기도 해 흥미를 더했습니다. 자세한 내용은 평화재단 통일웹진에서 꼭 읽어보실 것을 권해 드립니다. nbsp65279nbsp스님과 성경륭 교수님 두 분이서 서로 의견을 주고 받으며 통일 한국의 모습을 그려나가는 모습은 잔잔한 감동마저 느껴졌습니다. 새로운 통일 방안으로 ‘연방제’와 ‘지방 분권’에 대해 깊이 있게 되돌아 보는 뜻깊은 시간이었습니다.nbsp65279nbsp오후 3시부터는 평화재단 고경빈 이사님의 사회로 전 통일부 장관을 역임하신 정세현 원광대학교 총장님과 길정우 새누리당 국회의원님을 모시고 ‘통일, 북한도 변해야 한다’는 주제로 대담이 진행되었습니다. 대담자 분들은 북한이 변화화기 위해서 필요한 외부의 조건에 대해서, 또 북한 스스로 해야할 노력에 대해서, 또 남한이 할 수 있는 역할에 대해서, 2시간이 넘게 깊은 토론을 하셨습니다. 특히 정세현 총장님은 통일부에서 일하셨던 다양한 경험들을 들려주시며 북한의 변화를 위해서 무엇이 갖춰줘야 하는지, 현실 가능성은 어느 정도 되는지 다양하게 짚어주셔서, 풍부한 토론이 되었습니다. 전문가 분들과의 긴 시간 토론을 마치며, 마지막 정리말씀으로 스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해 주셨습니다. “국가 지도자는 자신의 권력을 공고히 하는 것을 최우선적으로 할 것 입니다. 그리고 자기 권력이 유지되면 국가 체제를 유지하는 것에 관심을 가질 수밖에 없을 것 입니다. 그것이 이루어진 다음에 국가 발전을 위한 모색을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이렇게 우리가 생각해 본다면, 현 정부의 대북 정책은 북한체제가 붕괴하는 것을 전제로 한 입장을 갖고 있기 때문에 북한 입장에서는 거기에 대한 저항을 할 수 밖에 없을 것이고, 그렇게 되면 아무런 변화를 가져올 수 없지 않느냐 생각합니다. 이런 점을 우리가 감안한다면, 우리가 북한 변화를 위한 노력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 알 수 있을 것입니다.65279nbsp북한이 외부의 지원을 받아서 변화를 추동하는 방안은 핵이 있는 한은 현실적으로 어렵습니다. 그러니까 북한은 핵을 포기함으로써 외부 지원을 받는 입장을 취하던지, 핵을 유지하는 입장에서는 내부 개혁을 먼저 이룰 수 밖에 없을 것 입니다. 외부의 조건을 이유로 내부 개혁을 하지 않는다면, 시간이 걸릴 뿐이지 점점 더 체제가 위험한 쪽으로 가지 않느냐, 그런 면에서 북한 스스로 변화를 가져와야 합니다.nbspnbsp 그리고 남한은 ‘통일을 해도 그만, 안해도 그만’ 이렇게 생각할 게 아니라, 지금 남한은 성장 동력이 소진된 상태 하에서 지속적 발전을 위해서도 통일이 중요한 계기라는 것을 새겨주면 좋겠습니다. 중국의 급격한 부상에 따르는 미중 사이의 대립과 갈등 구조 속에서 우리의 자주적 입장을 견지할려면 통일을 통해서만이 이 문제가 풀릴 수 있지, 그렇지 않으면 이 구조 속에서 분단고착화로 주저앉을 수밖에 없지 않느냐 하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nbsp65279nbsp이런 면에서 저는 남한 국민과 남한 지도자가 국가 발전에 대해 좀 생각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지금까지는 분단 상태로도 어느 정도 발전해 왔지만 앞으로는 분단 상태로 지속적인 발전이 어렵다는 것을 자각해야 하는데, 막연히 그냥 ‘앞으로도 발전하지 않겠느냐’ 하는 이 생각이 통일에 대한 적극적인 이니셔티브를 갖지 못하게 하는 것 아닌가 생각합니다. 국가 발전에 있어서 통일이 정말 중요하다면 ‘북한이 나쁘다, 북한이 안된다’ 이런 얘기는 할 필요가 없습니다. 북한의 현실적 처지를 인정하고 북한을 어떻게 관리함으로써 함께 협력해서 갈 수 있는 길을 찾느냐 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여기에서 미국, 일본, 중국만 쳐다보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방법을 찾고 대시를 하고, 미국 중국 일본과 협력하는 길을 찾고, 이렇게 적극적으로 나서서 통일의 당사자로서의 책임을 다하는 입장이 되어주었으면 합니다. 그렇게 해야 방법이라는 것이 나오게 되고, 북한의 변화를 가져오게 하기 위해서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을 찾을 수 있는데, 이런 책임자적인 입장이 결여된 것이 저는 가장 큰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자꾸 남 탓만 하고 앉아 있는 것은 해결책이 아닙니다. 이런데서 북한도 변화해야 하지만 변화를 위한 우리들의 적극적인 노력도 필요하다 이렇게 생각합니다.” 65279nbsp통일이 국가 발전의 핵심 키라는 인식이 최고 지도자와 정치 지도자들에게 잡혀 있지 않기 때문에 통일논의만 많이 이루어질 뿐 수용이 안 되는 것 아닌가라는 스님의 질문에 모두들 공감을 표현해 주셨습니다. 또한 우리가 우리 문제의 중심이 되어야지, 이웃 국가에게 책임을 전가하는 것은 옳지 않다는 의견도 많은 것을 돌아보게 해주었습니다. 결국 북한의 변화를 가져올 수 있는 것도 우리의 노력이라는 말씀에 우리들이 북한의 변화를 어떻게 바라봐야 하는지 보다 주체적인 관점을 갖게 된 것 같습니다.nbsp65279nbsp스님께서는 대담을 마치고는 두북으로 이동하셨습니다.

2014.06.29. 16,235 읽음 댓글 1개

2014.6.26. 인천공항 도착.

스님께서는 오늘 새벽 3시 45분경 인천공항에 도착하셨습니다.nbsp65279nbspnbspnbspnbspnbspnbsp서울 정토회관에 도착하셔서 그동안 쌓인 피로를 풀기 위해 휴식을 취한 후 늦은 점심을 드시고 바로 JTS 업무 관련한 회의를 하셨습니다.nbspnbspnbspnbspnbsp그리고 저녁 5시에는 스님께서 몽골을 방문한 동안 몽골에서의 스님 일정을 잡고 몽골의 사회인사들을 소개해준 김선정 교수님과 만남이 있었습니다. 김선정 교수님께서는 몽골에 사시지만, 이번에 다른 업무차 한국에 나와 계시면서도 스님께서 몽골을 방문하시는 동안 일정에 차질없게 해주었습니다.nbspnbspnbspnbspnbsp스님께서는 몽골인사들과의 만남에서 나온 이야기를 김선정 교수님께 자세히 알려주신 후 후속사업을 위한 모임에 대해서 일임하셨습니다.nbspnbspnbspnbspnbsp이어서 6시에도 외부인사와 만남을 가진 후 원고교정과 여러 업무를 처리하고 밤 10시경 정토회관으로 돌아오셨습니다.nbspnbspnbspnbspnbsp내일은 종교인 모임과 평화재단 10주년 기념 특별대담 4,5번째가 이어집니다.

2014.06.27. 14,092 읽음 댓글 4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