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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8.29 세계 100회 강연(4) 피렌체
안녕하세요. 오늘은 법륜 스님의 세계 100회 강연 중 네 번째 강연, 이탈리아 피렌체에서 강연이 열리는 날입니다.nbsp새벽 3시반에 기상, 기도를 마치고 6시에 렌트카를 타고 오늘의 일정을 시작합니다. 어제 밀라노에 늦게 도착을 하는 바람에 곧바로 강연 준비를 하느라 밀라노 시내에 있는 유적지 방문을 하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아침에 출발할 때 밀라노 시내 유적지 몇 곳을 먼저 관람하고 피렌체로 이동하기로 했습니다.nbsp오전 7시, 밀라노에서 가장 유명한 건축물인 두오모 대성당에 들렀습니다. 두오모 대성당은 4000명 이상을 수용할 수 있는 고딕 양식의 성당으로 유럽에서는 규모 면에서 세 번째로 큰 교회입니다. 1386년에 설계되어 600년이 지난 후에 완성되었다고 합니다. 대성당 앞 광장에 들어서자, 크고 웅장함 앞에 감탄사가 절로 나왔습니다. 원래 낮에 방문할 경우 수많은 관광객들로 인해 줄도 많이 서야 하고 주차할 곳도 마땅치 않아 많은 시간이 소요될 수 있었는데, 스님 일행은 오전 7시에 성당 문이 열리자마자 아침 일찍 방문했기에 여유 있게 주위를 둘러 볼 수 있었습니다. 스님께서는 합장을 한 채 성당에 들어가셔서 묵언으로 조용히 둘러보신 후, 예배당 의자에 앉아 조용히 기도를 하셨습니다.nbsp▲ 밀라노 두오모 대성당nbsp두오모 대성당 옆에는 ‘빅토리아 엠마누엘레 2세 갤러리아’ 쇼핑 센터가 반짝이는 대리석 바닥과 함께 명품 상점들로 골목을 이루고 있었습니다. 옛날 건물들 사이를 돔 모양의 지붕으로 연결한 것이 특이했습니다. 사진 몇 컷을 남기고, 스포르체스코 성으로 이동했습니다.nbsp스포르체스코 성은 밀라노의 도심 중앙에 공원과 함께 자리잡고 있는 15세기 성으로 스포르차 왕조가 거주한 르네상스 건축물입니다. 외벽을 붉은 벽돌로 쌓아 성벽 바깥쪽으로는 해자를 파고 침입을 막았으며, 모서리에는 망투가 세워져 있었습니다. 스님께서는 일본에 있는 오사카성처럼 이렇게 성 전체가 잘 복원되어 있는 곳은 많치 않다고 하셨습니다. 특히 우리나라에 있는 산성의 경우 일부분만 남아 있는 경우가 많으니까요.▲ 스포르체스코 성아침을 먹지 못해 이동하는 중 빵집을 찾아 빵 몇 개를 구입해서 이동하는 차량 안에서 아침을 해결했습니다. 오전 9시 밀라노를 출발하여, 12시가 다 되어서 피렌체에 도착했습니다. 어제 밀라노에서 강연에 참석했던 이창인 거사님의 적극적인 추천으로 피렌체에 가면 꼭 둘러봐야 하는 곳 4군데를 안내 받았습니다. 조망이 좋은 카페, 우피치 미술관, 베끼오 다리, 피렌체 nbsp대성당, 이렇게 안내 받은 순서대로 4곳을 둘러본 후 강연장으로 들어가기로 했습니다. nbsp가장 먼저 찾아간 곳은 피렌체 시내의 전경이 한 눈에 보이는 레지아 레스토랑 앞 벤치입니다. 구불 구불한 길을 한참을 올라가니 언덕 꼭대기에 레스토랑 한 곳이 있었는데, 카페 앞에 돌로 된 벤치가 있고 벤치에 앉으니 피렌체 전체 풍경이 보였습니다. 대부분의 관광객들은 피렌체 시내를 조망하기 위해 미렐란젤로 언덕을 많이 가는데 저희는 거사님의 추천으로 사람들에게는 잘 알려지지 않은 곳을 가볼 수 있는 기회를 가졌습니다.nbsp▲ 피렌체 조망이 한눈에 보이는 레지아 카페 앞.nbsp피렌체 시내의 조망을 본 후 다시 시내로 들어가 우피치 미술관을 관람하였습니다. 보티챌리의 ‘봄의 알레고리’, ‘비너스의 탄생’, 레오나르도 다빈치, 미켈란젤로, 티티안 등 이름만 들어도 유명한 르네상스 예술가들의 미술품들이 소장되어 있는 유럽 최대 규모의 미술관이었습니다. 시간이 넉넉지 않아 빠른 걸음으로 속도감 있게 전체를 둘러보았습니다. 대부분 예수님의 탄생과 성장, 일대기를 묘사한 그림과 조각상들이 많아서 중세시대까지 유럽 전역에 기독교의 신앙이 얼마나 많은 영향을 미쳤는지 짐작해 볼 수 있었습니다. 미술관 앞부분 전시실에는 성화를 중심으로 한 신 중심의 세계관을 보여준다면, 뒷부분으로 갈수록 점차 인간 중심의 세계관을 보여주는 작품들을 보여주었습니다. 미술관 관람을 마치고 스님께 간단한 소감을 여쭤보았으나, 스님께서는 그냥 웃음을 보이셨습니다.nbsp▲ 르네상스 시대 미술품들이 총 망라되어 있는 우피치 미술관.nbsp우피치 미술관을 둘러본 후, 바로 옆 강가에 있는 베끼오 다리에 가보았다가, 피렌체 대성당을 찾았습니다. 스님께서는 이번에도 대성당에 들어가셔서 조용히 기도를 잠시 하신 후 나오셨습니다. 밀라노 대성당처럼 건물 외벽에 새겨진 조각상, 실내를 떠받치는 높은 기둥 등 그 세밀함과 웅장함을 보면서 과연 중세 시대 유럽인들에게 기독교는 어떤 의미였을까 잠시 생각해 보게 되었습니다.피렌체 대성당에서 걸어서 5분 거리, 비좁은 골목 사이에 ‘Suore Oblate dellAssunzione 수도원 건물이 있었는데, 오늘 저녁 강연 장소와 숙소는 이곳 수도원으로 잡혀 있었습니다. 강연장이 1층이고 숙소가 2층이여서 숙소에 짐을 풀고 곧바로 강연을 할 수 있어 참 좋았습니다. 이곳 수도원을 빌리기 위해 요청 공문을 보냈는데, 수도원 원장 수녀님이 스님이 하시는 일에 대한 소개를 읽고 감명을 받고 흔쾌히 사용을 허락해 주셨다고 합니다. nbsp피렌체는 원래 강연을 할 계획이 없는 도시였으나, 작년에 밀라노에서 강연을 할 때 오신 이창인 거사님이 “르네상스 문명의 꽃이 피렌체이니까 스님께서 피렌체를 꼭 가보셔야 한다” 고 계속 얘기를 하셔서, 스님께서 그냥 듣고 흘렸는데, 이번에 세계 100회 강연 일정을 잡으면서 교민들이 적게 있든 많이 있든 가보자 하는 취지가 있어서 오늘 강연이 잡히게 되었습니다. 대부분 유럽에서는 교민들이 1000명 이상 되는 곳을 찾아가보는데 피렌체는 교민 수가 200명 정도 되었습니다. 아마 전체 강연 중에서 가장 적은 수의 인원이 모여 강연이 이뤄질 것이라 예상이 되었습니다. 스님께서는 강연을 시작하기에 앞서 몇 명이나 올까 내기를 하자고 제안하셨습니다. 스님께서는 10명을 예측하셨고, 스텝들은 대부분 15명을 예측했고, 최말순 보살님은 20명을 예측했는데, 결국 누가 내기에서 이겼을까요? 정답은 사진 속에 있습니다. 몇 명이 왔는지 한번 세어 보세요.nbsp▲ 피렌체 강연이 열린 ‘Suore Oblate dellAssunzione 수도원그리고 피렌체에는 아직 정토회와 인연이 된 분이 아무도 없어, 강연 신청자 한분이 일찍 오셔서 강연 준비를 도와주시고, 스님 일행과 스텝들이 강연을 모두 준비했습니다.nbsp저녁 7시, 강연이 시작되자 예상했던 것보다 여러 곳에서 사람들이 찾아왔습니다. 어디서 무엇을 보고 이곳까지 찾아왔는지 정말 궁금할 정도로 15명이나 되는 사람들이 찾아와 강연이 진행되었습니다. 이탈리아 한인들이 이용하는 인터넷 카페에서 강연 소식을 접하고 베네치아에서 2시간 걸려 이곳까지 왔다는 학생 2명도 있었고, 유학 온 학생 몇분, 기업에서 사업차 파견 나와 계신 분 몇분, 현지에서 의류업을 하고 계신 분 등 다양한 분들이 오늘 강연을 함께 했습니다.nbsp총 5개의 질문이 있었는데, 베네치아에서 온 조선족 학생의 질문도 있었습니다. 조선족 학생은 nbsp통일한국의 희망과 자신이 앞으로 어떻게 통일에 기여할 수 있는지 묻기도 했습니다.nbsp오늘은 그 중에서 이탈리아에 유학을 와서 외국인 친구와 함께 살아가는 것이 불편해서 어떻게 해야 하는지 묻는 질문과 스님의 답변을 여러분께 소개합니다.nbsp“혼자서 이곳 이탈리아에 유학을 와서 이탈리아 친구와 일본 친구와 함께 집을 같이 쓰고 있습니다. 이탈리아 친구는 굉장히 캐릭터가 강합니다. 모든 걸 자기 위주로 생각합니다. 언어가 딸리니까 참고 넘어가는 것이 많은데, 울컥울컥 할 때가 있어 괴롭습니다.”nbspnbsp“사물에는 두 가지 성질이 있어요. 첫째, 비슷한 면이 있습니다. 둘째, 다른 면이 있습니다. 즉 비슷한 점도 있고 다른 점도 있고 두 가지 성질을 가지고 있어요. 쉽게 얘기하면 콩을 100개 정도 한움큼 쥐었어요. 이 100개의 콩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크기와 빛깔, 모양이 조금씩 다 달라요. 얼른 보면 다 같은 것 같지만 자세히 보면 다 다릅니다. 그런데 그 콩을 팥과 비교하면 어때요? 콩 사이에 서로 다른 것은 중요하지 않고 팥과 비교했을 때는 모두 같은 콩이라고 말합니다. 크기와 모양, 빛깔이 다른 데도 같은 콩이라고 말하죠. 콩끼리 비교할 때는 서로 다른 콩이라고 말하지만, 팥과 비교할 때는 같은 콩이라고 말합니다. 또 콩과 팥은 서로 다르지만 채소와 비교할 때는 같은 곡식이라고 말합니다. 그런데 콩과 팥, 채소를 돌멩이와 비교할 때는 어때요? 같은 식품이라고 말합니다. 같은 콩이라고 말하는 속에도 자세히 들여다보면 서로 다른 콩이에요. 사물에는 같은 것도 있고 다른 것도 있고 동시에 두 가지 성질이 함께 있어요. 다르다 해도 같은 점이 있고, 같다 해도 다른 점이 있습니다.nbsp그런데 존재의 본질적 측면에서는 같은 점도 없고 다른 점도 없습니다. 즉, 같은 것도 아니고 다른 것도 아닙니다. 같다, 다르다 하는 것은 우리가 인식을 어떻게 하느냐에 달려 있습니다. 어떻게 인식하느냐에 따라서 같다고 인식할 때도 있고 다르다고 인식할 때도 있습니다. 인식을 떠나버리면 존재는 다만 존재일 뿐입니다. 그것은 다만 그것일 뿐이다, 이것이 진리입니다.nbsp그러나 우리가 현실에서 사물을 인식할 때에는 같다고 인식할 때도 있고 다르다고 인식할 때도 있습니다. 같다, 다르다 하는 것은 우리들의 인식에서 일어나는 일이며 동시에 상대적입니다. 즉, 주관적일 수 있습니다. 존재 그 자체는 다만 그 존재일 뿐인데 그 사물을 인식을 할 때 같다고 인식할 때고 있고 다르다고 인식할 때도 있습니다.nbsp수많은 사람 중에서 어떤 사람과 대화를 해보면 취미도 같고, 이상도 같고, 종교도 같고, 이렇게 같은 것이 4,5가지 발견이 되면 굉장히 기뻐지고 친해집니다. 누군가를 만났을 때 서로 다를 것이라 생각했는데 지나보니까 같은 점이 발견되면 호의적 반응이 일어나는 겁니다. 그래서 연애도 하고 결혼도 하게 됩니다. 그러나 연애를 하거나 결혼해서 살 때는 너와 나는 같은 점이 많다는 점이 전제가 되어 버립니다. 처음에는 같은 점이 발견되니까 친해졌지만, 애인이 되거나 결혼을 하면 계속 다른 점이 발견됩니다. 음식을 먹을 때도 청소를 할 때도 계속 다른 점이 발견되니까 싫어지는 마음이 일어나는 겁니다.nbsp이것은 그 이탈리아 친구와 살 때만 일어나는 것이 아닙니다. 학교 선생님들의 고민도 자기 반의 한 아이 때문에 힘들다고 하면서 저 아이만 없으면 살만하다 생각하지만 그 아이가 없어지면 해결될까요? 아니에요. 결혼해서 살면서 남편 때문에 힘들다고 할 때도 이혼을 하면 해결 될까요? 아니에요. 더 큰 문제가 자식을 키우면서 일어납니다.nbsp이태리 친구와 룸메이트를 하고 살 때는 당연히 한국 사람과 이태리 사람이니까 서로 다르죠. 그 다른 것을 ‘저렇구나’ 하고 바라보세요. ‘저 친구는 수건을 저렇게 침대에 던져두는구나’ 하고 바라보세요. 그것은 그 사람의 습관입니다. 그것은 쉽게 안 고쳐집니다. 특히 어릴 때 형성된 것은 거의 못 고칩니다. 그래서 ‘그냥 그렇구나’ 이렇게 봐야 합니다. 그것은 좋은 것도 아니고 나쁜 것도 아니고 그 자체는 그 사람의 삶입니다. 양은 양대로, 소는 소대로, 돼지는 돼지대로 각자의 자기 삶을 사는 겁니다. 나를 기준으로 하니까 옳다 그르다 하는 인식이 생기는 겁니다. ‘그렇구나’ 하고 그대로 받아들여 보세요.nbsp그런데 이게 항상 잘 안되죠. 인간은 항상 자기 기준으로 바라보니까요. 그런데 이 이탈리아 친구를 통해서 그런 나를 극복해 버리면 앞으로 회사에 취직하는데 있어서도 굉장히 자기 단련이 됩니다. 결혼을 해도 잘 살 수 있게 됩니다. 남편이 아무리 문제가 있어도 이 친구보다는 덜할 테니까요.nbsp이탈리아 친구와 살면서 그것을 나의 수행으로 받아들여 보세요. 참으면 안 됩니다. 참으면 화가 나고, 화가 나면 갈등이 생기고, 이것이 습관이 되면 나중에 결혼을 해도 옛날의 상처가 덧나서 남편과의 관계도 힘들어집니다. 억지로 참았던 습관은 나중에 결혼생활과 직장생활에 모두 장애가 됩니다. 참는다는 것은 결국 나를 움켜쥐고 있다는 겁니다. 존재의 본질적 측면에서는 용서해줄 것도 없습니다. 서로 다를 뿐이기 때문에. ‘내가 내 기준을 굉장히 고집하는구나’, ‘나를 움켜쥐고 있구나’ 이렇게 알아차리고 내려놓으면 됩니다.nbsp모든 걸 다 극복해야 되느냐? 그건 아닙니다. 너무 안 맞으면 같이 안 살면 됩니다. 결혼을 해도 서로 안 맞으면 이혼을 하는데, 룸메이트가 서로 안 맞아서 헤어지는 게 뭐 그리 어려운 일일까요? 결혼도 다 맞아야 사는 게 아닙니다. 안 맞아도 같이 사는 이유는 헤어질 때 오게 되는 과보가 크기 때문에 안 맞아도 같이 사는 겁니다. 우리는 자기가 원하는 것은 다 하려고 하고 싫은 것은 다 안하려고 하는데, 현실의 삶은 좋다고 다 할 수도 없고, 싫다고 다 안할 수도 없습니다. 좋고 싫고 하는 그 자체가 자기 삶의 습관에서 오는 것이지 절대적인 것이 아닙니다.nbsp이탈리아 친구는 평생 그렇게 살아왔기 때문에 아무런 문제의식을 못 느낄 겁니다. 내가 시비를 하는 거죠. 그래서 저 친구한테 맞추는 게 어렵겠다 싶으면 같이 안 살면 되고, 그렇게 되면 방값을 내가 더 많이 부담해야 되겠죠. 이런 이해 관계가 걸린 겁니다. 이해 관계가 걸렸으면 싫어도 참으면 안 됩니다. 참으면 상처가 됩니다. 그래서 참지 말고 나와 다른 것을 인정하고 이해해야 합니다. ‘요즘 젊은이들은 저렇구나’ 하면서 좋다 나쁘다로 보지 말고 인정하고 이해하고 살던지, 그러함에도 불구하고 나의 업이 그와 부딪히는 걸 도저히 못 견디겠다 싶으면 내가 다른 일을 해서 돈을 더 벌더라도 생활 문제는 혼자 살아야겠다 이렇게 바꾸던지, 그것은 내 선택입니다.nbsp이탈리아 친구를 시비할 때는 참거나 욕하거나 하는 것 빼고는 해결책이 없었데, 이것을 내 문제로 보면 그냥 살아도 되고, 수입을 조금 더 늘여서 환경을 바꿔도 됩니다.nbsp제가 보기에는 질문자의 문제이지 이태리 친구의 문제가 아닙니다. “이태리 사람 중에서도 이 아이는 특별하다” 이렇게 가져다 붙이지 마세요. 이태리 사람이라서 그런 게 아닙니다. 늘 자기 기준으로 판단하는데, ‘여기는 그렇구나’ 하면서 여기에 맞추면 됩니다. 엄격하게는 서로 다를 뿐이에요. 이것을 예수님은 뭐라 그랬습니까? 남의 눈에 티끌은 보고 자기 눈에 대들보는 못 본다,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그래서 수행으로 삼아 보세요 그 사람과 같이 살면서도 웃을 수 있다면 질문자의 포용력도 넓어지고 더욱 성숙해지는 과정으로 간다 이렇게 말할 수 있습니다.”질문한 여성 분의 얼굴이 스님의 답변을 듣고 활짝 밝아졌습니다. 강연이 끝나고 질문자 분을 찾아가 오늘 강연 참가 소감을 물었더니, 혼자서 외국에서 유학생활을 하다보면 힘들고 외로운 마음을 그 누구에게 상담받기가 참 어려운데, 오늘 이 자리가 정말 소중한 자리가 되었다고 합니다. 무엇보다 이 먼 곳까지 손수 찾아와주신 스님에 대한 깊은 감사의 마음을 표현했습니다.nbspnbsp스님께서는 강연에 참석해준 분들을 위해 책 사인과 기념사진 촬영을 해주셨습니다. 강연을 마치니 밤10시가 다 되었습니다. 강연을 마치고 수도원으로 들어오는 골목길에 붙여진 강연 포스터를 떼는 일을 함께 했는데, 스님께서도 함께 도와주셨습니다.nbsp오늘은 현지에서 강연 담당자가 없어 스텝들이 강연준비까지 모두 하다 보니 스님과 스텝들 모두 저녁 식사를 하지 못했습니다. 뒷정리를 마친 후 수도원 인근 카페에 가서 간단히 요기를 한 후 오늘 일정을 마무리하였습니다.nbsp8월30일, 새벽 3시30분에 기상하여 천일결사 기도를 마친 후 개인 정비 시간을 가졌습니다. 스님께서는 한국에서 들어온 원고들을 검토하시다가 수도원 식당에서 아침식사를 하셨습니다.nbsp스님께서는 수도원 원장 수녀님께 하룻밤 재워주신 것에 대해 감사의 마음을 표현하셨습니다. 수녀님도 Thank you very much” 하시며 감사 인사를 기쁜 마음으로 받아주셨습니다.nbsp이제 이탈리아에서의 마지막 강연장인 로마로 갑니다. 세계 100회 강연 중 다섯 번째 강연이 로마 Villa Benedetta 수도원에서 열립니다. 내일은 로마 강연 소식을 전해드리겠습니다.nbsp
2014.8.30. 세계 100회 강연(3) 밀라노
안녕하세요. 오늘은 법륜 스님의 세계 100회 강연, 이탈리아 밀라노에서 세 번째 강연이 열리는 날입니다. 스위스 베른시 근교 ‘툰’이라는 곳에 위치한 박향숙 보살님 댁에서 편안하게 하룻밤을 보내고 보살님이 정성껏 준비해주신 아침식사를 든든히 먹고 6시에 오늘의 여정을 시작했습니다.nbsp오늘은 스위스 제네바를 지나 국경을 넘어 프랑스를 경유했다가 몽블랑 터널을 지나 다시 이탈리아 국경으로 넘어가는 일정입니다. 스님께서는 어제밤 구글 지도를 보시며 이동 경로를 연구하셨는데, 제네바까지 원래 고속도로를 탈 수 있었으나 국도가 왠지 더 괜찮을 것 같다 하시며 국도를 선택해서 갔습니다. 스님의 탁월한 선택 덕분에 스위스 시골 풍경의 아름다움을 만끽할 수 있었습니다. 스님께서는 “스위스는 도시도 깨끗하게 잘 가꾸어져 있지만, 시골도 이렇게 잘 가꾸어져 있다” 하시며, “대부분의 나라들은 도시는 잘 살아도 시골은 그렇지 못한 경우가 많은데, 스위스는 그만큼 국가 전체적으로 경제 수준이 높은 나라임을 알 수 있다” 고 하셨습니다. 또 이어서 도착한 제네바 시의 잘 정돈된 도시 구역들을 보시면서도 “우리 나라도 조금만 정신 차리고 서로 협력하면 통일도 하고 이 정도로 발전시킬 수가 있는데, 맨날 서로 싸우기만 하고 있으니...” 하시며 약간의 안타까움을 보이셨습니다.nbsp2시간을 달려 오전 8시 무렵 스위스 ‘로잔’에 들렀습니다. 로잔에는 작년에 정토회와 인연이 되어 스위스에서 처음으로 스님 강연을 할 수 있도록 인연을 맺어준 김이화씨가 살고 있습니다. 아이를 낳은지 얼마 되지 않아 어제 베른 강연에는 오시지 못했는데, 스님께서 “마침 제네바로 가는 길에 로잔에 들러 김이화씨 얼굴을 잠깐 보고 가자” 하셔서 만나게 되었습니다. 김이화씨가 살고 있는 아파트 앞 주자장에서 잠깐 얼굴을 보고 인사를 나누었습니다. 김이화씨는 “스님께서 직접 찾아오신 것이 너무나 감사하다”며 다니면서 차안에서 먹을 빵과 음료를 선물해 주었습니다.▲ 스위스에 처음으로 스님 강연의 인연을 맺어준 김이화씨.nbsp제네바로 가는 도중 휴게소에서 스님의 하루를 올리는데 많은 시간이 소요 되었습니다. 다시 1시간을 달려 오전 10시 무렵 스위스 제네바를 경유했습니다. 제네바에서는 시내 중심을 지나가다 호수 남쪽 끝부분에 있는 140m 높이의 제트 분수를 볼 수 있었습니다. 엄청난 힘으로 하늘에 거대한 물기둥을 만든 모습이 장관이었는데 그냥 지나칠 수 없어 내러서 사진 한 장을 찍었습니다.nbsp▲ 스위스 제네바. 남쪽 호수가에 위치한 제트 분수 앞에서.nbsp다시 1시간을 달리니 몽블랑 터널이 나왔습니다. 터널에 들어가기 전, 정상 부위에 눈이 녹지 않은 아름다운 몽블랑의 설경이 한눈에 들어오는 곳에 휴게소가 나타났습니다. 이곳에서 박향숙 보살님과 김이화 보살님이 싸준 도시락도 먹고 사진도 몇 장 찍고 가기로 하고 차에서 내렸습니다. 몽블랑 산은 알프스 산맥에서 가장 높은 봉우리로 4735미터나 됩니다. 날씨가 화창해 몽블랑의 아름다운 설경을 만끽할 수 있었습니다.nbsp몽블랑의 설경을 배경으로 휴게소 벤치에서 점심식사를 하였습니다. 그동안 바쁘게 다니면서 제때에 챙겨먹지 못했던 남은 음식물들을 모아보니 꽤 많은 양이 되어, 오늘 점심은 남은 음식물 처리하는 것을 목표로 삼았습니다. 김치만 먹는 데도 꿀맛처럼 맛있었습니다.nbsp▲ 뒤에 보이는 설경이 바로 알프스 산맥에서 가장 높은 봉우리인 몽블랑.nbsp길고긴 몽블랑 터널을 지나 이탈리아로 넘어왔습니다. 국경을 넘어오니 이탈리아와 스위스의 차이가 크게 다가왔습니다. 이탈리아의 시골 풍경은 그렇게 잘 가꾸어져 있지 않아 두 나라의 경제 수준이 많이 비교가 되었습니다. 한참을 달리고 달려 오후 4시가 넘어서야 밀라노에 도착할 수 있었습니다. 현지 교민 분의 소개로 아파트 빈집을 빌려 숙소로 삼고 짐을 먼저 풀었습니다.nbsp스님께서는 숙소에서 간단히 밥과 김치로 식사를 하신 후 저녁 강연장으로 향하셨습니다. 오후 6시 45분쯤, 오늘 강연 장소인 베스트윈스턴 호텔에 도착해 일찍 도착한 교민들과 인사를 나누셨습니다. 밀라노 강연에는 현지 교민들 총 30여명이 참석해 조촐하게 강연이 열렸습니다. 강연을 주최한 밀라노 현지 교민 한 분이 “ 죄송한 마음이 듭니다” 라고 하자, 스님께서는 “괜찮아요. 준비는 최선을 다하되 결과는 상관하지 않는 것이예요” 하시며 따뜻하게 격려를 해주셨습니다. nbsp▲ 밀라노 강연이 열린 베스트윈스턴 호텔.nbsp밀라노 강연에는 총 5명이 질문을 했습니다. 그 중에서 오랫동안 이태리에 거주하면서 갖게 된 한국 사람과의 이질감에 대한 질문과 스님의 법문을 소개합니다.nbsp“밀라노라는 지역의 특성 상 이민을 온 사람보다는 유학을 왔거나 사업을 하기위해 정착한 사람이 많습니다. 저는 여기서 10년 넘게 살면서 오랫동안 한국을 지켜봤을 때 점점 더 시간이 갈수록 내 가족이 살고 있고 내가 태어나고 자란 곳에 대한 애착과 사랑보다는 한국에 대한 이질감을 더 많이 느끼게 됩니다. 그 마음 이면에는 오히려 기대나 관심이 있기 때문인 것 같아요. 멀리 살고 있으면서 계속 동질감을 갖게 위한 방법이 있을까요? 조국을 위해서 제가 무엇을 할 수 있을까요?”nbsp“지금 이태리에 살고 있고 이태리 남자와 결혼해서 살고 있는데 왜 자꾸 한국 사람들과 동질감을 가지려고 그래요? 한국말을 이미 할 줄 아는 것도 동질감이고, 얼굴이 노란 것도 동질감이고, 한국 역사를 아는 것도 동질감이고, 이미 동질감을 많이 가지고 있는데요. 이태리에서 오래 살면 한국에 사는 사람들과 이질감이 생기는 것이 자연스러운 것 아니예요? 왜 자꾸 자연스러움을 이상하게 보려고 할까요?nbsp형제도 멀리 떨어져 살면 자연히 이질감이 생기기 마련입니다. 부부도 한집에 안 살고 오랫동안 해외 출장을 가서 떨어져 살다가 다시 같이 살게 되면 불편해지기 마련입니다. 무엇이든지 오랫동안 지속되면 습관이 됩니다. 생명의 종도 시간이 지날수록 지역적으로 분화되고 달라집니다. 나눠져 가면서 조금씩 달라지는 것은 자연스러움입니다. 안 달라져야 된다 이것이 잘못된 생각입니다.nbsp이태리에 살면서 나는 한국 사람과는 인연을 끊겠다 이럴 필요도 없고, 몸은 늘 이태리에 살면서 머리는 늘 한국만 생각한다 이럴 필요도 없습니다. 늘 한국 생각만 해서, 맨날 한국 신문 복사해서 나눠보고 그러는데, 이태리 시민권을 얻었으면 이태리의 여러 문제에 관심을 가져야지 지나치게 한국 문제에 관심을 두는 것은 좋지 않은 것 같아요. 물론 나의 출신이 한국이니까 한국이 잘 되었으면 좋겠다는 마음은 충분히 이해가 됩니다. 그런데 외국 사람들이 봤을 때 한국에 대해 가장 걱정하는 문제가 무엇일까요?nbsp많은 외국 사람들이 묻기를 “혹시 한반도에 전쟁 나는 것 아닌가” 하고 묻습니다. 아직도 전쟁 우려를 받고 살고 있습니다. 그러니 적어도 한반도에 다시는 전쟁은 없어야 한다, 이것이 확고부동해야 합니다. 어떤 이유로도 전쟁은 없어야 합니다.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싸우는 것을 보세요. 얼마나 어리석은 짓입니까.nbsp첫째 전쟁은 없어야 합니다. 이것은 한국만의 문제가 아니라 전 세계의 문제입니다. 한국 사람으로서 전쟁 우려에 대한 질문을 받는 것은 창피한 일입니다.nbsp둘째, 북한 주민들이 굶어죽고 있는 문제를 생각해야 합니다. 아프리카 사람도 굶어죽으면 돕는데... 굶어죽는 문제는 더 이상 자기 나라 문제도 아니고 인류의 문제입니다. 나라가 다르고 인종이 다르고 민족이 달라도 기아 문제는 이제 우리 모두의 책임입니다. 북한 사람들의 영양실조가 심각하다고 하면, 가장 가까운 이웃인 남한에 가장 큰 책임이 있습니다. 더군다나 같은 민족이라면 더더욱 책임이 있습니다. 어떤 이유를 대서 이것을 외면한다면 현대 인류가 발전시켜 온 세계시민의식 수준에 한참 떨어지게 되는 것입니다. 아직도 전근대적인 보복적 사고에 갇혀 있는 것입니다. 징벌적 사고의 시대는 지났습니다. 이제는 좀 더 고상해져야 합니다. 그런 면에서 북한 주민들이 굶어죽는 문제는 한국 사람으로서 창피한 일에 속합니다. 이런 일은 없어야 합니다. 나머지 문제들은 어느 나라이든지 있는 문제입니다. nbsp여러분들이 정말 고민해야 할 것은 내가 한국 사람이기 때문에 난리 나는 그런 일 말고, 이곳에 사는데 이태리 사람들도 한국을 걱정하는 그런 문제들에 신경을 써야 합니다. 내가 태어난 나라가 인류의 보편적 가치관의 수준에 못미친다 하는 문제들, 즉 평화문제, 인도적지원, 인권문제 이런 것들에 신경을 써야 합니다.nbsp이런 문제들이 근원적으로 해결되려면 한반도가 통일이 되어야 합니다. 나머지는 다 임시방편적인 해결책들입니다. 통일이 되면 80 이상이 대부분 해결될 수 있습니다. 통일이 된다면 북한 주민들이 굶어죽는 일은 없어집니다. 북한 자체가 북한 인권 문제를 해결하려면 10년 20년 걸릴지 몰라도, 통일이 된다면 인권 문제의 개선이 가장 빠른 과정을 걸을 수 있을 겁니다. 내부 갈등도 있겠지만 평화문제도 근원적으로 해결될 것입니다. 한국 사람이라면 통일에 대해서는 좀 더 관심을 가졌으면 합니다.nbsp한국 사람으로서 한국에 관심을 갖는 것이 필요는 합니다. 그러나 인류의 보편적인 관점에서도 부족한 것에 일차적으로 먼저 관심을 가지시면 좋겠습니다. 그 다음에 한국 사람만이 가질 수 있는 관심에 대해서는 선택사항이다 이렇게 생각해요. 한국 사람들이 해외에 살면서 자꾸 한국만 잘났다고 하면 전 세계 사람들로부터 미움을 받게 됩니다. 이것이 한국을 위하는 것이 아닙니다. 가장 중요한 것은 한국 사람들이 앞서가는 세계 시민의식을 가질 때 한국을 더욱 빛나게 만든다는 것입니다. 예를 들면 행사를 해도 한국 사람들은 분리수거를 정말 잘한다더라, 인권 문제에 대해서는 한국 사람들이 열성적이다, 이런 식으로 인류가 갖는 보편적인 문제에 앞서갈 때 우리 한국이 빛날 수 있다고 봅니다.물론 해외에서도 한국 사회의 비민주적이고 불평등한 요소에 대해 개선을 요구하는 서명을 하거나 편지도 보내고 해야 합니다. 그러나 그것에 못지않게 우리가 인류로서 나아가야 할 길에 더 많은 기여를 해나가는 것이 필요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우리가 물질 수준에서는 유럽에 비해 조금 뒤지고 있다는 점을 인정해야 하지만, 정신적인 힘은 너희들보다 더 있다 하는 것을 가질 수 있다면 굉장한 자긍심이 될 수 있습니다. 너무 물질적인 것에 치중되지 않았으면 해요.”스님께서는 해외에 살고 있는 한국인들이 보다 인류 보편적인 문제에 더욱 관심을 가져줄 것을 당부하셨습니다. 질문자도 청중들도 모두 스님이 제시해주시는 더 큰 방향에 깊은 감명을 받고 고개를 끄덕였습니다. 조촐하게 진행된 강연이었지만, 내용은 깊고 폭넓은 이야기가 오가는 뜻 깊은 시간이었습니다.nbsp강연을 마치고 스님께서는 참석한 교민들을 위해 책 사인을 해주고, 기념사진을 찍은 후, 수고한 봉사자들과 소감 나누기를 함께 하셨습니다. 봉사자들은 “스님께서 밀라노에 온다는 소식만으로도 가슴이 뛰고 설레였다”고 하면서 “스님을 바로 앞에 두고 마음나누기를 하고 있는 지금이 꿈인지 생시인지 모르겠다” 며 감격스러움을 표현했습니다. 스님께서는 봉사자들 한분 한분의 소감을 모두 듣고 단주를 하나씩 선물했습니다. 그리고 “모두 행복하기를” 하고 기도하셨습니다.nbsp숙소로 돌아오니 밤11시가 다 되었습니다. 오늘은 유럽 강연 실무를 총괄하고 있는 김선희 법우님이 구토를 하고 몸이 계속 안좋았습니다. 장시간의 차량 이동으로 스텝들이 좀 지쳐있어서 최말순 보살님이 시장을 보셔서 간단한 상을 차려주셔서 조촐하게 먹고 잠자리에 들었습니다. 스님께서도 몸이 지친 스텝들을 보시고 조금이라도 강연을 일찍 마치려고 하셨으나 여의치 않았다고 하시며 스텝들의 건강을 살피셨습니다. 기운을 내어서 다시 내일 일정을 시작해 봅니다. 내일은 이탈리아 피렌체에서 세계 100회 강연 중 4번째 강연이 진행될 예정입니다. 내일 뵙겠습니다.nbsp
2014.8.27 세계 100회 강연(2) 스위스 베른
안녕하세요. 8월27일 법륜 스님의 영상편지입니다. nbsp nbspnbsp nbsp 영상을 먼저 봐주세요. nbsp 오늘은 법륜 스님의 세계 100회 강연 중 두번째 강연, 스위스 베른에서 강연이 열릴 예정입니다. 새벽3시30분에 기상하여 천일결사 기도를 마친 후 새벽5시30분에 프랑크푸르트를 출발하였습니다. 렌터카에 몸을 싣고 독일 아우토반 위를 힘차게 달렸습니다.nbsp 프랑크푸르트 출발 2시간 후 오전 7시30분, 독일 슈튜트가르트에 들렀습니다. 처음에 세계 100회 강연 일정 중에 슈튜트가르트가 예정되어 있어서 이곳에 사시는 최선미 보살님이 현지에서 친구들을 모으고 강연 준비까지 열심히 해 놓았었다고 합니다. 그런데 마지막에 일정이 여의치 않아 슈튜트가르트 강연이 취소되었습니다. 그런 연유로 스님께서는 미안한 마음이 많으셨는지, 강연을 열려고 준비했던 최선미 보살님 댁을 방문해서 인사라도 하고 가자 하셔서 잠시 들르게 되었습니다. 마침 아침을 못 먹고 출발한 터라, 최보살님께서 손수 해주신 따뜻한 밥을 든든히 먹을 수 있었습니다. 내년에는 꼭 슈튜트가르트에서 강연이 열릴 수 있기를 기원해 봅니다. nbsp ▲ 슈튜트가르트에서 아침 식사를 대접해 주신 최선미 보살님과 따님.nbsp 아우토반을 2시간 정도 달리자 스위스 국경을 만날 수 있었습니다. 오전 11시 무렵, 취리히를 경유하다가 그래도 취리히가 유명한 도시인데 한 군데라도 둘러보자며 무작정 지도 위에 나타난 큰 돔 지붕 건물로 갔습니다. 자세히 보니 취리히 대학교의 공과대학 건물이었는데, 날씨가 화창해서 햇빛도 잠시 쐬고 화장실을 다녀온 후 다시 길을 나섰습니다.nbsp nbsp ▲ 취리히 대학교 캠퍼스에서 바라본 취리히 시내 전경 오후 1시 무렵에는 루체른에 도착할 수 있었습니다. 산들로 둘러싸인 호수가 참 아름다운 도시였습니다. 중세 시대에 지었다고 하는 건물들도 각양각색의 다채로움을 보여주었습니다. 잠시 차에서 내려 루체른의 상징이라고 불리우는 교회당 다리를 둘러보았습니다. 점심을 먹으려 하였으나 강연이 있는 베른까지 오후5시까지 도착하려면 시간이 빠듯하여 빵을 몇조각 사서 차안에서 먹기로 하고 곧장 출발하였습니다.nbsp nbsp ▲ 루체른의 상징인 교회당 다리 앞에서 오후4시 무렵에는 코발트빛 호수가 너무나 아름다운 인터라켄을 지날 수 있었습니다. 햇빛을 받은 호수는 더욱 옅은 빛깔로 그 아름다움을 보여주고, 산비탈을 끼고 들어선 예쁜 집들이 그 모습 그대로 평화를 느끼게 했습니다. 인터라켄에서 협곡으로 더 깊이 올라가니 융프라우 설산이 보였습니다. 양편으로 이어지는 가파른 바위들과 높은 산들은 절경을 이루었습니다. 저녁 강연을 위해 일찍 도착해야 하는 관계로 더 깊은 계곡까지는 들어가보지 못하고 차 안에서만 쓰윽 살펴보는 정도로 하고 돌아왔습니다. nbsp ▲ 설산의 절경으로 유명한 융프라우 앞에서.nbsp 식사를 할 수 있는 시간이 여의치 않아, 스님께서는 차 안에서 간단히 점심을 해결하셨습니다. 차량에 전기밥솥을 가지고 다니며 밥을 직접 해먹기도 하면서 그렇게 이동하고 있습니다.nbsp 오늘 강연이 열리는 스위스 베른에는 오후5시30분에 도착할 수 있었습니다. 오늘 이동한 거리를 되돌아보니 무려 700km 가까이 되었습니다. 새벽 5시에 출발해 오후5시30분까지, 오늘 하루는 차량 안에서만 줄곧 시간을 보냅니다.nbsp 스위스에는 한국 교민들이 2,156명이 살고 있다고 외교부 통계자료는 밝히고 있습니다. 주로 국제 결혼과 입양을 통해 정착하게 된 경우가 많다고 합니다. 오늘 강연장에서는 어떤 분들이 오셔서 스님과 어떤 대화를 하게 될지 기대감을 안은 채, 강연이 열리는 프랑스 교회로 들어갔습니다.nbsp nbsp▲ 베른 강연이 열리는 프랑스 교회.nbsp 6시에는 베른 강연 봉사자들이 정성껏 준비해온 도시락을 맛있게 먹었습니다. 6시30분에 강연이 시작인데 벌써부터 많은 교민들이 자리를 잡고 스님의 강연을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그러고보니 베른에는 너무 늦게 도착해 유적지를 둘러본 여유 시간이 없었습니다. 다행히 강연이 열리는 프랑스 교회로부터 걸어서 5분 거리에 국회의사당 건물이 있어 거기로 가서 기념사진으로 한장 남기기로 했습니다. 빠른 걸음으로 사진 한장 찍고 다시 돌아오니 곧바로 강연이 시작될 시간이 되었습니다. nbsp nbsp nbsp nbsp nbsp nbsp nbsp nbsp nbsp nbsp▲ 스위스 베른에서 가장 상징적인 건물인 국회의사당nbsp 베른 강연에는 오늘 교민들 총 70여명이 참석하였습니다. 찾아온 교민들은 주로 국제 결혼을 한 경우가 많은지, 스위스인 남편과 함께 온 부부가 세 쌍 정도 눈에 띄었습니다. 각자 배우자에게 스님의 법문을 최대한 통역해주려고 소근 소근 거리거나 노트에 단어를 적어주는 모습이 인상적이었습니다. 총 6명이 질문했는데, 오늘은 스위스인 남편과 살아가고 있는 한 여성분의 질문과 스님의 답변을 소개해 드립니다.nbsp “저는 64세이구요. 스위스인 남편과 국제 결혼을 했습니다. 한달 뒤에 남편이 퇴직을 하면 한국으로 같이 돌아갈 계획을 하고 있습니다. 어떤 마음으로 제2의 인생을 살아야 할지요?”nbsp “질문자가 한국으로 돌아가고 싶다는 것은 이해가 됩니다. 그런데 늙으면 누구나 회귀 본성이 있습니다. 음식도 젊을 때는 외국 음식도 괜찮은데 늙으면 한국 음식이 그리워지게 됩니다. 모든 인간은 회귀 본성이 있거든요. 그러므로 남편도 스위스에 있고 싶은 회귀 본성이 있다는 것입니다. 한국에 가면 남편이 많이 힘들어지게 되겠죠. 한국 가서 6개월이나 1년 정도 있는 건 괜찮은데, 남편의 나이가 더 들면 들수록 한국에서의 생활이 힘들어지게 됩니다. 질문자가 스위스에서의 생활이 힘들었듯이. nbsp 이성적인 것과 무의식에서 일어나는 마음과는 일치하지가 않습니다. 질문자도 남편이 좋아서 외국인 스위스에 살았지만 심리의 근저에는 늘 어려움이 있었던 것처럼 남편도 한국에 오래 살면 그럴 수 있다는 겁니다. 내가 편하니까 남편도 아무 문제가 없을 거다 이렇게 생각하면 나중에 늙어서 서로 마음에 금이 갑니다. 독일에 이민 온 분들 이야기를 들어보면 60살이 넘어서 상당히 많은 수가 이혼을 합니다. 그 이유는 젊을 때는 빵만 먹고도 외국생활이 가능하지만, 늙으면 회귀 본능이 있기 때문에 아내는 자꾸 한국 쪽으로 회귀하려고 하고 남편은 더 독일 쪽으로 회귀하려고 합니다. 예를 들어, 한국 음식 중에서도 김치는 외국인들이 적응하기가 쉬운데, 된장은 외국인들이 적응하기가 굉장히 어렵습니다. 자꾸 된장찌개를 끓여 식탁 위에 올려두면 이런 것으로 작은 갈등이 생기기 시작합니다.nbsp nbsp 우리의 마음이라는 것은 젊을 때는 말로 의사 표현하는 것이 다 가능하지만, 나이가 들수록 말하기 이전에 마음으로 통해야 합니다. 한국 사람끼리는 언어를 적게 써도 대충 짐작하면서 살 수 있는데, 외국인과는 정서적 교감이 떨어집니다. 이런 저런 문제로 갈등이 생기게 되죠. nbsp 어쨌든 한국에 돌아가서 산다고 했을 때 상대에게는 타향살이가 되기 때문에 스위스에서 살 때보다 10배 정도는 더 남편의 마음을 헤아려야 합니다. 방심하게 되면 전혀 예기치도 못한 갈등이 생기기 시작합니다. 가까이 있는 사람과는 미세한 것들로 마음에 금이 가서 헤어지게 됩니다.nbsp 그러니, 지금 스위스에 있는 집을 그대로 두고, 한국에 가서 1년 정도 살아보면 좋겠어요. 모든 것을 다 털고 가면 실패할 확률이 굉장히 높습니다. 먼저 살아보시면서 점진적으로 정리해 가는 것이 안정성이 있습니다. 젊어서는 살림을 말아먹어도 다시 일으킬 수 있는데, 나이 들어서 엎어지면 노후가 굉장히 초라해집니다. 실험적으로 해보면서 점진적으로 이동해 보세요.” 스님의 답변이 끝나자 질문자가 다시 스님께 물었습니다.nbsp “한국 가도 고아가 된 느낌이고, 스위스에 가도 고아가 된 느낌입니다. 국제 고아에서 벗어나는 방법을 알려주세요.”nbsp “그것은 질문자가 선택한 것입니다. 예를 들어 초등학교까지 미국에서 다니고 중고등학교는 한국에서 다니고 대학은 미국으로 간 친구가 정체성에 대해 질문했어요. 한국에 있으니까 한국말이 딸려서 친구들과 못 어울리고. 미국에서는 영어가 딸려서 못 어울린다며 하소연을 했습니다. 그런데 미국에서 자란 아이가 나보다 영어를 잘 하는 것은 너무나 당연한 일이고, 한국에서 자란 아이가 나보다 한국어를 잘한다는 것도 너무나 당연한 것이잖아요. 그렇다면 어떻게 봐야 할까요?nbsp 당연한 것을 받아드리면 이렇게 됩니다. 미국에서 자란 아이는 영어 밖에 할 줄 모르고, 한국에서 자란 아이는 한국어 밖에 못하는데, 나는 미국에서 자란 아이보다 한국말을 잘하고, 한국에서 자란 아이보다 영어를 잘한다, 이것이 자신의 아이덴티티입니다.nbsp nbsp 질문자도 nbsp마찬가지입니다. 한국 사람 치고는 스위스에서도 살아봤고, 스위스 사람 치고는 한국말도 잘합니다. 이렇게 자기의 독자적인 정체성을 가져야지 남의 정체성에 자기를 견주어 가지면 질문자는 국제 고아가 될 수 밖에 없습니다. 누군가가 질문자를 국제 고아로 만든 것이 아니고 자기가 스스로를 국제 고아로 만든 것입니다. 그래서 먼저 자기 정체성을 가져야 합니다.nbsp 만약 스님이라면 혼자 사는 사람으로 자기 정체성을 삼아야지 자꾸 결혼한 사람과 비교하면 안됩니다. 비교하면 스스로가 열등해집니다. 스님이 결혼한 사람을 부러워한다는 것은 자신의 승려생활에 만족하지 못하는 것이 됩니다. 제가 결혼을 했으면 이렇게 115일 동안 강의를 하러 다닐 수 없겠죠. 혼자 살기 때문에 가능한 것들이 굉장히 많은데, 이렇게 자기를 긍정적인 측면으로 봐야 합니다. 질문자는 국제 고아가 아닙니다. 이것도 아니고 저것도 아니고 나는 무엇인가 이게 아닙니다. 나는 이것도 되고 저것도 된다, 이렇게 해야 합니다.”nbsp 오늘 강연의 마지막 질문과 답변이었는데, 외국 땅에서 오랜 시간 살아온 교민들에게는 더욱더 공감이 많이 되는 답변이었습니다. 질문하신 분도 “스님 덕분에 남편을 더 깊이 헤아리게 되는 것 같다” 며 기뻐하였습니다.nbspnbsp 강연은 2시간 반 동안 진행되었고, 강연 후에는 오늘 강연을 위해 수고한 봉사자들과 함께 소감을 나누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모두들 스님이 직접 이렇게 찾아와서 강연해 주심을 너무나 감사해 했습니다.nbsp 강연을 마치고, 베른시 근교에 살고 있는 박향숙 보살님 댁에서 짐을 풀었습니다. 박향숙 보살님은 스위스인 남편과 결혼하여 벌써 30년째 스위스에서 살아오신 분입니다. 오랜 타국 생활에서 우울증이 깊어가던 중 스님의 법문을 듣고 우울증도 치료하고 새로운 삶을 살게 되었다고 합니다. 그래서 오늘 스님 일행이 하룻밤 묶고 가게 된 것을 너무나 감사하게 생각하셨습니다.nbsp nbsp ▲ 스위스 베른에서 30년째 살아오고 계신 박향숙 보살님 부부 스님께서는 내일 저녁에 있을 밀라노 강연 준비상황과 베른에서 밀라노로 갈 때 어떤 도로를 이용할지 등을 체크하시고, 미국 강연 준비상황을 전화를 통해 점검 하신 후 오늘 일정을 마치셨습니다. nbsp내일은 이탈리아로 넘어갑니다. 저녁 6시30분 밀라노에서 강연이 있습니다. 내일 뵙겠습니다.nbsp
2014.8.26 세계 100회 강연(1) 프랑크푸르트
nbsp강연일자 2014년8월26일nbsp강연장소 독일 프랑크푸르트nbspSaalbau Gallusnbsp8월26일, 프랑크푸르트에서 보내는 법륜 스님의 영상 편지입니다.nbsp nbsp영상을 먼저 보시고, 자세한 내용은 아래 글을 읽어주세요.nbspnbsp유럽에서 맞이하는 첫번째날 아침입니다. 오늘은 프랑크푸르트에서 세계 100회 강연의 첫번째 강연이 열렸습니다. nbsp어제 밤은 배형옥 보살님이 운영하는 게스트하우스에서 편안하게 잘 쉬었습니다. 배 보살님은 스님 일행이 프랑크푸르트에 오실 때마다 항상 무료로 숙식을 제공하고 계시는 분입니다.nbsp▲nbsp게스트하우스를 제공해 주신 배형옥 보살님 부부오전 7시에 게스트하우스 1층에서 아침식사를 간단히 하고, 8시부터 스텝 회의를 하였습니다. 스텝 회의에서는 이번 유럽 강연을 진행하기 위해 준비해야 할 것들을 함께 의논했습니다. 스님께서는 먼저 “모든 식사는 간단하게 하고, 출발은 새벽 일찍 하자” 하시며 큰 틀의 방향을 일러주셨고, 그래서 매일 매일 아침 일정은 3시30분 기상, 4시 천일결사 기도, 5시 20분 출발하는 것을 기본으로 하기로 했습니다. 그리고 강연 준비를 도와준 분들에게 선물할 책과 염주를 어떻게 확보해서 갈지 등을 논의하고, 또한 스님께서 단식을 시작한 이후 목이 좋지 않으셔서 모든 일정에 소형 마이크를 항상 휴대하기로 했습니다.nbsp오전 9시부터 11시까지는 유럽중동 지구장 김선희 보살님과 독일정토회의 송임덕 보살님과 각 법당 총무님들이 모여 유럽 지역 포교 방안에 대해 회의를 하셨습니다. 독일정토회 및 베를린 법당 이희정 총무님, 프랑크푸르트 정토법당 신재숙 총무님, 뒤셀도르프 정토법당 최순진 총무님이 각 법당별 운영 현황과 과제를 설명하고 개선 방안에 대해 스님께서 조언해 주셨습니다. 베를린과 프랑크푸르트, 뒤셀도르프에도 정토불교대학과 경전반이 운영되고 있으며, 어려운 여건 속에서도 각 도시마다 대략 10명 정도의 교민들이 함께 공부하고 있었습니다. 대부분 장소를 임대해서 사용하는 경우가 많아서 임대료가 발생하기 때문에 2주 분량의 수업을 한번에 진행하는 방식으로 월 2회 수업을 진행하고 있는데 좀 무리가 있어 2년 과정으로 하기로 하였습니다. 스님께서는 “초기에는 이민 온 광부와 간호사 출신 교민들이 많았지만, 이제는 점점 세대 교체가 되어 갈 것” 이라며 포교할 때 고려해야 할 점들을 자세히 일러 주셨습니다.nbsp11시에는 독일정토회 신도님들이 역할을 분담하여 비빔밥을 만들어 오신 것을 감사히 먹었습니다. 점심을 먹은 후 오후에는 프랑크푸르트 시내 구경을 했습니다. 게스트하우스에서 20분 거리에 시내 중심가가 있었습니다. 프랑크푸르트는 유럽 중앙은행과 독일 중앙은행이 소재한 유럽의 금융 중심지라고 합니다. 시내 중심에는 은행과 금융회사 건물들이 빽빽하게 들어서 있었습니다. 스님 일행은 높은 건물들 사이에 있는 괴테 하우스, 뢰머 광장, 프랑크푸르트 대성당을 차례대로 둘러보았습니다.nbspnbsp▲nbsp괴테하우스. 괴테가 창작 활동을 했다는 서재괴테하우스는 1749년 독일의 대문호 괴테가 태어난 생가인데, 괴테가 사용한 책상을 비롯한 18세기의 주거 문화를 엿볼 수 있는 곳이었습니다. 연기가 밖으로 빠져나갈 수 있게 방마다 벽난로가 잘 만들어져 있는 점이 특이했습니다. 옆 건물에는 박물관이 개설되어 괴테와 동시대를 살았던 미술가들의 그림들이 전시되어 있었습니다. 스님께서는 여명이 밝아오는 풍경을 그린 그림을 가장 마음에 들어 하셨습니다.nbspnbsp▲nbsp뢰머 광장nbsp구시가지의 대부분이 1944년 연합군의 폭격으로 사라졌는데 전쟁이 끝난 후 대대적인 재건이 이뤄졌다고 합니다. 특히 뢰머 광장에 있는 시청 건물은 삼각형 지붕으로 연결된 점이 특이했고, 맞은편에 있는 유럽풍 건물 3채도 무척 이국적이게 다가왔습니다.nbsp▲nbsp프랑크푸르트 대성당뢰머 광장 뒷편에는 프랑크푸르트 대성당이 1944년 폭격에도 살아남아 빼족하게 솟은 첨탑과 함께 그 위용을 보여주고 있었습니다. 스님께서는 대성당 안으로 들어가자마자 십자가에 못 밝힌 예수님의 동상 앞에서 두 손 모아 기도를 하셨습니다. 6500개의 파이프로 되어 있는 오르간은 그 웅장함에 저절로 숙연한 마음이 들었습니다. 조용히 대성당을 둘러본 후 마인강을 옆에 끼고 산책을 하며 흔들다리로 향했습니다. 흔들다리에서 주위를 둘러보니 유럽중앙은행과 대성당 등이 함께 보여 독일의 현재와 과거를 함께 느낄 수 있었습니다. nbspnbsp▲nbsp프랑크푸르트의 중심을 흐르는 마인 강을 가로지르는 흔들 다리nbspnbsp시내 구경을 마친 후, 스님과 스텝들을 한달 동안 안전하게 이동시켜 줄 렌트카에 처음으로 탑승했습니다. 교통비를 아끼기 위해 직접 렌터카를 운전해서 유럽 전역을 돌아다닐 예정입니다. 렌트카 앞에서 유럽 강연 실무 총괄을 맡으신 김선희 유럽 지구장님과 이희정 독일정토회 총무님을 소개하는 영상 촬영을 하였습니다. 깨끗하게 반짝이는 렌트카가 한달 뒤에 어떻게 변해 있을지 기대가 됩니다. 유럽 강연을 사고 없이 안전하게 마칠 수 있게 도와주길 기도해 봅니다. nbsp강연장으로 향하기 전, 교민 한 분이 운영하고 계신 식당을 방문했습니다. ‘미소 식당’ 이라는 간판을 걸고 식당을 운영하고 계신 이종서 거사님이 직접 요리를 해서 스님 일행을 초청했습니다. 거사님은 직접 공항에 마중을 나가 스님을 반갑게 맞이해 주신 분입니다. 대부분의 한국 사람들이 아시아나 또는 대한항공 직항으로 프랑크푸르트에 오기 때문에 저녁6시 무렵 도착하는데, 유독 스님만 밤10시가 넘어서 항상 도착하신다며 그 이유를 알고 크게 감동을 받으셨다고 합니다. 스님께서는 비행기 경비를 조금이라도 아껴서 어려운 이웃을 돕는 일에 쓰고자 항상 저가 항공을 이용하시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이번에도 스님께서 오신다는 소식을 전해 듣고선 꼭 식사 대접을 하고 싶다 요청하셔서 오늘 자리가 마련되었습니다. nbsp오후6시30분부터는 프랑크푸르트 시내에 위치한 Saalbau Gallus 라는 곳에서 세계 100회 강연의 첫번째 강연이 열렸습니다. 비가 내리는 날씨에도 불구하고 프랑크푸르트 법당 신도님들의 정성 가득한 준비로 총 170명의 교민들이 참석하여 성황을 이루었습니다. 강연장 입구에서는 뜻밖에도 대전정토회 김태권 거사님이 포스터를 들고 비를 맞으며 길안내를 하고 있었습니다. 깜짝 놀라 상황을 물으니 독일로 출장을 왔는데 때마침 시간이 맞아 자원봉사를 하고 있다며 활짝 웃으셨습니다. 비를 맞으며 서 있는 거사님을 보며 정토행자는 어디를 가든 주인이 되어 일하는구나 하는 감동이 일었습니다.nbspnbsp▲nbsp프랑크푸르트에 출장 와서 강연장 앞에서 비를 맞으며 길안내를 하고 있는 김태권 거사님강연에서는 총 5명이 스님께 질문을 했습니다. 공부를 하고 있는데 집중이 잘 안 되어 고민이라는 분, 가까운 사람들에게 감정 통제가 되지 않아 화를 잘 내게 되어 고민이라는 분, 정도를 가려면 무엇을 기준으로 살아가야 하는지 묻는 분, 세월호 사고와 같은 일이 반복되는 이유와 책임자 처벌 문제에 대해 묻는 분이 있었습니다.nbsp그 중 독일인 시부모님과의 갈등 때문에 힘들어하는 한 여성분의 질문에 대한 스님의 법문을 소개합니다.nbsp“독일 남자와 결혼한지 7년 되었는데, 독일 분 시아버님이 이기적이고 독불장군처럼 자기 말만 하시는 분이예요. 시어머님이 신랑에 너무 집착해 신랑이 매주 시댁에 오기를 바랍니다. 그런데 매주 가는 것이 힘들어 몇 번 가지 않았는데 삐치시는 것 같아요. 한국인과 너무 틀리니까, 독일인 시부모님을 모시시가 너무 힘듭니다. 5살 아들이 있는데 시댁에 가서 할아버지에게 좋은 것을 배우는 것이 없어 아들도 보내기가 싫습니다.” nbspnbsp“엄마가 자기 자식을 보고 싶어하는 걸 내가 어떻게 할 수 있나요? 자식이 부모를 보고 싶어하는 걸 내가 어떻게 할 수 있나요? 그냥 놓아 두세요. 같은 가족이라도 관여할 일이 있고, 관여하지 말아야 할 일이 있습니다. 시아버지는 원래 그런 사람으로 생긴 것이고, 시어머니는 그런 시아버지를 받아들이고 사신 분입니다. 독선적인 면도 있지만 돈을 잘 벌거나 다른 좋은 면이 있으니까 그 이유로 같이 살고 있는 겁니다. 우리가 보기에는 왜 저런 인간과 같이 살까 하지만, 시어머니 입장에서는 안 그렇습니다.nbspnbsp질문자는 시어머니가 정성껏 키워준 좋은 아들을 공짜로 얻은 것이잖아요. 공짜로 얻었으면 그 대가를 지불하던지, 대가를 지불하기 싫으면 이혼을 하던지 그러면 되지요. 조선시대 같으면 이해가 되는데 요즘 같은 시대에 무슨 문제가 될까요? 질문자도 아이 놓고 살아보았으니 엄마와 자식 관계가 보통 관계가 아니란 것을 알게 되었잖아요. 엄격하게 말하면 엄마와 아들 사이의 자연스런 관계이지 내가 간섭할 일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들의 인생이라 생각하고 놓아주세요. 질문자의 아이도 나중에 크면 여자친구가 생기는 순간부터 질문자와 멀어지는 게 좋겠어요? 그 때 일어나는 엄마로서의 서운함을 생각한다면 남편이 시어머니와 자주 연락하는 것을 나쁘게 보지 마세요.그리고 시아버지는 자기 집에서 자기가 살던 습관대로 살고 있는 건데, 왜 질문자가 갑자기 들어가서 그것을 시비 삼을까요? 그게 싫으면 시댁에 안 가면 되지요. 그런데 살다 보면 싫어도 해야 할 일이 있잖아요. 선택의 여지가 없어요. 가기 싫으면 안 가면 되고, 싫어서 안가는 것이 더 손해겠다 싶으면 싫어도 가면 됩니다.nbsp아들을 시댁에 안 보내려고 하는 것도 질문자 마음대로 하면 안됩니다. 아들은 질문자의 아들이기도 하지만 남편의 아들이기도 하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남편이 보내지 말자 해서 부부가 합의를 해서 안보내면 괜찮은데, 권리의 절반이 남편에게 있기 때문에 질문자가 의견은 낼 수 있지만 남편이 보내자고 하면 보내야 합니다. 아이 문제는 질문자에게 절반의 권리만 있습니다. 지금 질문자는 월권 행위를 하려고 하는 겁니다. 사람이 어떻게 자기가 원하는 대로만 하고 삽니까. 원하는 대로 되는 것도 있고, 원하는 대로 안 되는 것도 있는 것이 인생입니다.질문자의 못된 성질이 아이에게 나쁜 영향을 주는 것이지 시아버지가 아이에게 나쁜 영향을 주는 것은 하나도 없습니다. 아이가 시아버지한테 욕을 한마디 배우는 것이 나쁜 영향이 아니고, 그런 시아버지를 용인하지 못하는 엄마의 성질이 아이에게 나쁜 영향을 주는 것입니다. 아이들은 원래 친구들과 놀면서 욕도 배우고 금새 잊어버리고 그렇게 크는 것입니다. 큰 문제가 아닙니다.nbsp어떻게 나이 칠십이 넘은 독일 할아버지의 성질을 고칠 수 있습니까? 질문자에게는 독일 할아버지의 성질을 고칠 수 있는 능력이 없습니다. 시아버지를 엄마가 창피하게 여기면 자녀는 엄마로부터 나쁜 영향을 받게 됩니다. 그런 시아버지를 나쁘다고 여기면 아이들은 나쁜 할아버지의 손자가 되니까 자긍심이 없어집니다. 시아버지는 성격이 그럴 뿐이지 좋은 사람도 아니고 나쁜 사람도 아닙니다. 다만 나와 가치관이 다를 뿐입니다. 잘 생각해 보세요. 내 아이가 나쁜 할아버지의 손자이길 원합니까?nbsp그런 시부모님 밑에서 자란 자신의 남편이 괜찮은 사람이라고 여겨진다면, 남편의 부모님도 큰 문제가 없는 것입니다. 남편과 시부모님의 관계가 그것을 증명해 주는 겁니다. 시어머니도 그런 시아버지의 안 좋은 면을 보면서도 같이 사는 겁니다. 이 세상 모든 사람이 다 내 마음에 들 수가 없습니다. 이것은 질문자가 집에서 너무 편안하게 자라서 그렇습니다. 한국 사람인 시아버지도 내 마음에 들기가 쉽지 않은데, 어떻게 독일 사람인 시아버지가 내 마음에 들 수 있겠습니까? 불가능합니다.nbsp시부모님은 질문자가 생각한 것만큼 그렇게 나쁜 사람들이 아닙니다. 질문자가 좀 유별난 것입니다. ‘이런 사람도 있구나’ 하고 가볍게 받아들이면서 저런 시부모님 밑에서 어떻게 저런 괜찮은 남편이 나왔을까 한번 연구를 해보세요. 연구를 해보면 재미있어요. 엄마의 지나친 스트레스는 자라나는 아이들에게 결정적으로 정신적 장애를 가져다 줍니다.nbsp질문자는 지금 본인이 할 수 없는 것을 가지고 고민을 하기 때문에 유튜브에서 즉문즉설 동영상 1만개를 봐도 실제 삶은 해결이 안됩니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남을 고치는 게 아니고 내가 스트레스를 안 받는 것입니다. 그래야 아이도 좋아집니다. 내가 어찌할 수 없는 일은 긍정적으로 받아들여 보세요. 그래야 나에게도 아이에게도 모두 좋습니다.“프랑크푸르트 교민들과의 즉문즉설은 3시간 동안이나 진행되었습니다. 스님께서는 목이 편찮으심에도 불구하고 열정적으로 강의를 해주셨습니다. 참석한 교민들도 낯선 이국 땅에서 소중한 강연을 들을 수 있어 너무 감사하다며 기뻐했습니다. 매일 유튜브로만 즉문즉설을 보다가 스님을 가까이서 처음 뵙는다는 분도 많았습니다. 강연을 마치고 스님께서는 한분 한분에게 책 사인을 해주셨고, 이어서 오늘 프랑크푸르트 강연을 준비하기까지 수고한 봉사자들의 소감 나누기도 함께 듣고 격려와 감사의 인사와 함께 염주를 하나씩 선물해 주셨습니다.nbspnbsp강연장을 나오니 비가 많이 쏟아졌습니다. 프랑크푸르트 정토회 신도님들의 환송을 뒤로하고 게스트하우스로 돌아와 오늘 일정을 마무리하였습니다. 밤11시가 넘었습니다.nbsp내일은 새벽 3시 30분에 기상하여 4시에 천일결사 기도를 하고 5시에 스위스 베른으로 출발합니다. 스위스에서 만나게 될 풍경과 사람들이 기대됩니다. 내일도 생생한 사진과 영상으로 다시 찾아뵙겠습니다.
2014.8.25 인천공항, 세계 100회 강연 출발
반갑습니다. 오늘은 ‘세계 100회 강연’을 위해 인천공항에서 독일 프랑크푸르트로 출발하는 날입니다. 오늘부터 법륜 스님은 8월25일부터 12월18일까지 115일 동안 세계 115회 강연을 하십니다. 전 세계 곳곳에서 흩어져 살고 있는 해외 교포들을 찾아 하루 1개 도시를 방문하며 그분들의 애환을 듣고 대화를 나누는 즉문즉설 강연이 진행됩니다. nbsp 세계 100회 강연 출발을 앞두고 오전7시부터는 평화재단에서 민족의 화해와 평화를 위한 종교인 모임이 있었습니다. 신부님, 목사님 등 이웃 종교인 분들과 회의를 하셨는데, 목사님과 신부님 모두 세계 100회 강연을 출발하는 스님에게 아무 사고 없이 원만히 다녀올 수 있기를 기도하겠다며 응원의 말씀을 전해 주셨습니다. nbsp 종교인 모임을 마치고 인천공항으로 향하기 전, 한국을 방문한 태국의 슐락 박사님을 찾아 뵈었습니다. 슐락 박사님은 국제참여불교회의를 창립하고 이끌어오신 분으로 스님과는 오래 전부터 인연이 있으신 분입니다. 한국 INEB의 초청으로 오셨는데 오신 김에 미얀마 스님들의 요청으로 미얀마 노동자들을 위해 강연을 하셨답니다. 한국을 들러 미국 순회 강연을 한달 가량 하신다고 하셨습니다. 스님께서 직접 찾아와 인사를 올리니 너무나 반가워하셨습니다. 스님께서 정성껏 준비한 선물을 슐략 박사님께 드리자, 슐략 박사님도 스님께 책과 걸망, 목걸이를 선물로 주셨습니다. nbsp두 분은 1시간 동안 많은 이야기를 나누셨습니다. 스님의 세계 100회 강연 소식을 듣고선 “스님은 매우 활동적이시다” 라며 고개를 흔들며 탄복하셨습니다.nbsp 슐락 박사님은 “젊은 청년들을 위해 사회적인 의식을 담아내는 불교 교육을 새롭게 시도하고 있다” 하시며, 한국과 쓰리랑카, 태국을 넘나드는 “움직이는 불교 학교”에 대한 자신의 생각을 나눠주셨습니다. 스님께서도 슐략 박사님의 새로운 기획에 대해 적극 긍정하시면서, 정토회가 지금껏 운영해온 정토불교대학의 사례를 소개해 주셨습니다. 대화를 나누며 두 분은 불교의 미래 발전을 위해서는 새로운 접근 방법이 필요하다는 데에 뜻을 같이하셨습니다. 스님께서는 “세계 100회 강연 기간 중 12월15일에 방콕 강연이 있는데, 이 때 다시 직접 찾아뵙겠다” 하시며 미국 강연 잘 다녀오시라고 인사를 드리고 인천공항으로 출발하셨습니다.nbsp nbsp 인천공항에서는 희망편지 120만 카카오스토리 구독자들에게 세계 100회 강연을 시작하는 인사 말씀을 영상으로 남겨 주셨습니다.nbspnbsp nbsp “오늘부터 세계 100회 강연을 시작합니다. 115일 동안 115회 강연을 하기 위해서 인천공항을 출발합니다. 해외 교포들이 계시는 곳곳을 찾아 가서 그들의 애환도 듣고 고민도 듣고 함께 얘기 나누는 그런 시간이 될 것 같습니다. 그분들의 이야기 속에서 새로운 희망을 발견해 여러분들에게 전해 드리겠습니다. 또 일부이지만 외국인들을 만나서도 오늘 우리 인류가 당면한 문제인 지구 환경의 파괴, 공동체 붕괴, 인간성 상실, 이런 문제들을 우리가 어떻게 극복할 수 있는지 대화를 나누고 그 내용의 일부를 여러분들에게 알려드리겠습니다. 잘 다녀오겠습니다.” 더불어 이번 세계 100회 강연이 무사히 진행되도록 실무를 맡은 스텝들을 한 사람씩 소개하는 영상을 촬영했습니다. 식사, 의전 등 생활 전반을 맡아주실 최말순 보살님, 해외에서 발생하는 긴급상황들을 발빠르게 대처해주실 박지나 JTS 대표님, 경비를 줄이기 위해 렌터카로 이동을 하게 되는데 유럽 전역을 달리며 운전을 맡아 줄 김경희 법우님, 스님의 하루를 글과 사진, 영상으로 생생하게 전해줄 이준길 법우님 등 4명의 스텝을 스님께서 직접 소개해 주셨습니다.nbsp 인천공항에 마중 나온 실무자들과의 인사를 마치고, 스님과 4명의 스텝들은 인천공항을 출발하였습니다. 오후 1시에 인천공항을 출발했는데, 모스크바 공항을 경유하여 독일 프랑크푸르트에 도착하니 한국 시간으로 새벽 5시가 다 되었습니다. 장장 16시간에 걸친 기나긴 비행이였습니다. 비행기에서 나눠준 기내식이 조금씩 남았는데, 스님께서는 남은 음식물들을 모두 챙기셔서 이후에 다시 먹을 수 있게 하셨는데, 작은 것도 낭비하지 않으시려는 그 마음을 느끼고 배울 수 있었습니다. 공항에서 그리고 비행기 안에서 이동 중에는 해외에 살고 있는 재외 동포들의 전반적인 현황과 유럽 각 나라별 도시별 지역 특징에 대한 자료들을 읽어보고 파악하는 시간을 가지셨습니다.nbsp nbsp 독일 현지 시각으로는 밤 10시, 독일 프랑크푸르트 공항에는 이번 유럽 강연의 총괄을 맡으신 김선희 법우님과 이희정 법우님을 비롯한 7명의 신도님들이 늦은 시간에도 불구하고 스님 일행을 맞이하러 나와주셨습니다. 스님께서는 환하게 웃으시며 신도님들에게 악수를 건냈습니다. 도심에서 2km 정도 떨어진 지점에 독일 정토회 신도님이 운영하는 게스트하우스에 짐을 풀고, 독일 정토회 신도님들과 독일 강연 스케쥴 등에 대해 두런두런 담소를 나눴습니다. 독일 정토회를 이끌어가고 계신 김선희 법우님, 송임덕님, 이희정님, 최순진님, 신재숙님 등 한분 한분의 얼굴을 직접 뵙고 이야기 나눌 수 있어서 참 좋았습니다.nbsp 내일은 오전에 독일정토회 신도님들과 독일 지역의 활동 현황을 점검하는 회의를 한 후, 오후에는 괴테 하우스, 뢰머 광장, 대성당 등 프랑크푸르트 시내의 유적지 몇 곳을 둘러본 후 저녁6시30분에 프랑크푸르트 시내에 위치한 nbspSaalbau Gallus 강연장에서 세계 100회 강연의 첫번째 강연을 시작합니다. 내일 뵙겠습니다.
2014.8.24. 서원행자대회 회향
nbsp 서원행자대회 이틀째 날입니다. 오전에는 ‘불교대학교 졸업률을 70프로이상으로 높여라’ 라는 주제로 각 모둠이 토론을 하고 발표를 하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nbsp 풍부한 경험을 가진 서원행자님들과 총무님들의 다양한 아이디어를 들으며 이번 가을 불대에서부터 한번 해보자 라는 다짐을 하게 되었습니다. 전체적으로 불교에 대해 궁금해서 입학하거나 마음 공부하고 싶어서 혹은 법륜스님에 대한 관심으로 많은 불교대학생이 입학을 하지만, 이분들이 끝까지 졸업을 하기 위해서는 활동가들이 꾸준히 관심과 사랑을 보여주며 지속적으로 공부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참 중요함을 느꼈습니다. 스님께서는 분과 토론이 진행되는 동안 이번에 졸업하는 행자대학원 졸업생들을 위한 법문이 있었습니다. 이 자리에는 졸업반 2명과 재학생 20여명이 참석하여 스님의 가르침을 받았습니다. nbsp 행자대학원 졸업생들을 위한 법문을 마친 후 스님께서는 원고교정업무를 보시다가 다시 서원행자대회에 참석하셔서 모둠토론의 결과를 함께 들었습니다. 그리고 모든 서원행자들과 함께 나누고 싶은 이야기들을 3분 스피치를 통해 함께 나누는 시간을 가지기도 했습니다. nbsp 모든 발표를 들으시고 스님께서는 “모둠 발표내용이 아주 좋았습니다. 또 3분 스피치도 활기차고 재미있는 시간이었습니다. 특히 1조에서 발표한 불교대 입학금 12만원을 내는데 왜 따로 보시하느냐는 문제제기에 대해서 현재 불교대 입학금 12만원은 20년째 변동이 없는 금액입니다. 이것은 입학금으로써 학사관리 비용입니다. 수업료는 따로 없는 것입니다. 부처님과 수행자는 법을 보시하고 대중은 법을 들은 기쁨을 보시로써 표현하는 것입니다. 수행자의 원칙은 바로 어떠한 경제적인 목적으로 자기의 재능을 팔아서는 안됩니다. 그래서 남의 운명을 점쳐주고 관상을 봐주고 날짜를 잡아주고 손금을 봐주고 보시를 받으면 안된다고 계율에 분명히 나와 있습니다. nbsp 수행자가 돈을 주고 사람을 고용해서 내가 방청소 할 것을 파출부를 부르거나 직원을 시켜서 하는 것은 엄격히 말하면 계율에 어긋납니다. 그것은 부처님 시대로 말하면 수행자들이 그 당시 제도인 노예제도를 인정하고 노예를 부리는 것과 같습니다. 우리나라에서도 신라시대, 고려 시대에 신분사회에서 종이 있으니, 절에도 종이 배치되었고, 그들이 농사짓고, 빨래하고, 밥해서 그 위에서 스님들은 수행을 하셨습니다. 아무리 신라시대, 고려시대 훌륭한 스님이라 하더라도 다 그 사회적인 제도 시스템 안에 존재했습니다. 마치 오늘날 모든 절에 일꾼을 두고 생활하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우리 정토회에서는 건물을 짓는 등의 특별한 경우를 제외한 일상생활에 관계되는 것은 직접 같이 밥을 해먹고, 같이 청소하고 빨래도 합니다. 이럴 때 여러분이 밥을 하거나 빨래하거나 청소하는 것은 노동이 아니라 봉사입니다. 우리는 그러한 봉사, 보시의 혜택을 받고 있기 때문에 절에 사는 사람들은 법문도 하고 수련지도도 합니다. 그러니까 이 법문을 하거나, 이런 수련을 진행을 하거나 할 때 그 수입이 개인 또는 법사의 수입으로 들어가지 않습니다. 아직은 정토회가 원칙을 유지해 나가고 있고 그래서 많은 분들이 정토회가 커지는데도 굉장히 비효율적으로 모든 걸 다 자원봉사로만 유지한다라고 평가합니다. 이것은 돈 안 들이려고 한다라는 개념과는 다릅니다. 이것은 부처님이 살아가신 삶의 방식을 우리가 유지해 나가려는 것입니다. 그래서 보시는 생활화되어야 합니다. 보시·봉사 문화가 정착이 되면 아무 문제가 안됩니다. 입학금을 냈기 때문에 보시금을 안내도 된다라는 논리는 올바른 자세가 아닙니다. 12만원 돈을 내는 것은 일년간 학사관리를 하는데 드는 최소한의 경비이며, 법문을 듣고 감사하는 자기의 마음의 표현으로 보시를 해야 합니다.” nbsp 몇가지 불교대학을 운영하는 부분에 대해 스님께서는 점검을 해주시고 수행을 중심으로 하여 불교적인 윤리가 미래사회를 바람직하게 만들어가는 삶의 윤리로써 체득하여 남에게도 신뢰받는 사람이 되도록 하는 것이 중요함을 짚어주셨습니다. nbsp “지금은 만일결사 기도 중 8차입니다. 9차 때는 다음 만일을 준비하는 만준위가 꾸려질 것입니다. 지금 나이가 50대는 만일은 활동을 하시지만 다음 만일때는 2차 만일을 활동하는 분들을 지원해주는 역할을 해주셔야 합니다. 이렇게 나가려면 정토회가 이번 만일에 다음 세대가 만일을 해나갈 준비를 해줘야 합니다. 이번 만일의 핵심은 새로운 세상을 만드는 기초를 닦는 것이고 국내에서는 최고 과제가 통일입니다. nbsp 2차 만일 세대는 대한민국의 역할을 넘어서서 세계 역할을 해야 합니다. 정토회가 세계화가 되려면 한국이란 나라가 형편없으면 힘을 못 받습니다. 한국이라는 나라가 세계에서 상당히 괜찮은 나라이면 한국에서 일어난 단체가 자동으로 힘을 받아요. 그래서 이번 만일에 통일의 기초를 마련하지 못하면 다음 만일에 차질이 생깁니다. 완전한 통일은 아니더라도 통일로 갈 수 밖에 없는 문턱을 넘어서 과정만 남은 정도까지는 해내야 합니다. nbsp 두 번째는 세계 백강을 하는 것은 이번 만일을 위해서 하는 것이 아닙니다. 다음 만일의 씨앗을 뿌리고 근거지를 잡는 것입니다. 이렇게 준비를 해서 씨앗을 심어놓으면 다음 만일에 세계적인 활동을 하는데 기초가 됩니다. 그러나 우리가 통일, 통일 한다고 통일이 될까요? 통일을 하려면 국민의 지지도 필요하지만 핵심은 결국 정부입니다. 통일지향적 정부가 들어서야 합니다. 그래서 첫째는 우리 남북당사자의 역할이 중요하고, 두 번째는 주변 외교가 중요합니다. 그래서 통일이 우리들만의 이익을 위한 통일이면 주변국이 절대 협력하지 않아서 통일이 안됩니다. 우리의 이익이 주변국의 이익이 되고, 동아시아의 평화가 온다고 하는 열린 자세의 관점에서 가야 주변국이 협력하게 됩니다. 일본의 군국주의를 비판하고, 일본의 평화를 사랑하는 사람과는 같이 가야 합니다. 중국을 반대하는 게 아니라 중국의 패권주의를 반대하고 중국 인민과 함께 가야합니다. 패권을 행사하는 중국은 경계해야 하지만 중국사람을 미워해서는 안됩니다. 우리가 자주성을 가지고 미국과 협력해야 합니다. 그래서 중국편에 서도 안되고, 미국편에 서도 안됩니다. 이것은 통일 대한민국이어야 균형을 잡지, 분단된 대한민국으로는 안됩니다. 그러니까 다음 정부가 통일을 지향하는 확실한 정부가 들어서야 통일에 대한 희망을 가질 수 있는 것입니다. nbsp 대한민국이 아시아 공동체 중심으로 평화, 인권, 환경, 모든 문제에서 앞서가는 혁신으로 가고 세계의 모델을 만들어 간다면 새로운 문명의 운동이 그냥 민간에서 하는 운동을 넘어서서 세계적인 확산을 가져올 수 있습니다. 내년부터는 여러분들은 통일의병운동에 적극적으로 참여를 해서 대한민국에 희망을 만들어줘야 합니다. 그래서 우리 세대는 만일결사를 하면서 통일대한민국을 만들고 다음세대는 전세계로 나가서 새로운 문명을 확산시킬 수 있도록 해야 합니다. 그래서 제가 무리한 세계100강 일정을 소화 하는 겁니다. 무리한 것 저도 알아요. 이번에는 원을 세운 걸 성취하고 빙긋이 웃으며 죽을 수 있는 준비를 합시다.” nbsp 참가자들은 통일한국을 기반으로 세계로 나아간다라고 하는 법문을 들으며 가슴이 벅차 올랐습니다. nbsp 정리 말씀을 마친 스님께서는 미국에서 사용할 홍보영상을 촬영한 후 전국서원행자대회를 마무리 하는 회향식에서 전국서원행자들에게 당부의 말씀도 해주셨습니다. nbsp “만일결사를 시작한 지도 21년 6개월이 지났습니다. 아직 8년이 남았지만 막바지를 향해 나아가고 있습니다. 서원행자는 이 땅에 정토를 구현하겠다고 맹세를 한 사람입니다. 1차 만일 결사의 목표는 불교중흥과 민족중흥입니다. 이 땅의 불교가 실망스러운 불교가 아니라 희망스러운 불교가 되어야 합니다. 부처님은 혼자 시작해서 그 당시 인도의 한줄기 빛이 되신 것처럼 말입니다. nbsp 첫 번째 남 탓을 하는 것이 아닌 나부터 잘하는 사람이 되고 누구나 좋은 마음, 청정한 마음을 내면 그가 수행자이고 그곳이 절입니다. 그가 어떤 마음을 내고 그가 어떤 행동을 하느냐를 중요하게 생각하는 원칙을 갖고 지금껏 왔고 그렇게 나아갑니다. nbsp 두 번째는 불교를 넘어서서 지난 백년간 너무나 실패를 거듭하고 억압과 분열과 절망 속에 사는 이 땅의 민중들에게 통일의 희망을 선물하는 단체가 되어야 합니다. 불교신자라면 정토회가 있음으로 해서 내가 불교인이라는 자부심을 가질 수 있고, 우리 정토회가 통일의 희망을 만들어 냄으로 해서 대한민국 국민으로서 자부심을 갖도록 해야 해외에 있는 우리 교포들이 정말 내가 한국사람 이라는 것에 대해서 자긍심을 갖게 됩니다. nbsp 해외 100강에 마음을 모아서 기도해 주시고 스님이 가 있는 동안 국내 일은 여러분들이 더 열심히 해주시기 바랍니다. 통일된 한국을 이루기 위해서는 내적 혁신을 해야 합니다 우리 정토회가 작은 힘이라도 보태고 기여를 할 수 있도록 꾸준히 준비를 해 나갑시다.“ nbsp 앞으로 3개월 동안 스님을 국내에서는 뵙기가 어렵지만 저희 서원행자들은 꾸준히 수행 정진하여 정토세상을 만들기 위한 원을 위해 한발 한발 나아가고 있겠습니다.” nbsp 스승님의 가르침대로 부지런히 수행정진하겠습니다. 스님. 잘 다녀오십시오
2014.8.23. 전국대의원대회 회향 및 전국서원행자대회
nbsp 2014년 제3차 대의원대회가 어제부터 1박2일로 문경정토수련원에서 열렸습니다. 2014년 상반기 행정처 사업에 대한 보고와 평가 및 하반기 집중 사업에 대한 논의가 있었으며, 대의원회의 성과 및 과제를 주제로 한 워크숍도 있었습니다. 오늘 워크숍에서 정토회 대표 이기혜님은 만나자 회의라는 표어로 대의원의 활동 방향을 제시하면서 만일 결사 시대를 대비하여 지부별로 기획조정위를 구성하고 주 1회 정도 꾸준히 모여 운영방안을 논의하자고 제안했으며, 이를 주제로 한 모둠 토론과 결과 발표가 있었습니다. 워크숍을 지켜보신 스님께서는 정리 말씀에 법문을 더하여 먼저 정토회의 설립 취지와 정토회원으로서의 관점을 잡아주셨습니다. nbsp 정토회의 지난 역사를 보면 정토회가 설립될 때 첫째가 이 땅에 살고 있는 고뇌하는 사람들을 자유와 행복의 길로 이끄는데 우리가 무엇인가 좀 기여를 하자. 어떻게 기여할 수 있겠는가? 부처님의 근본 가르침으로 돌아가서 그 부처님의 근본 가르침을 지금의 이 현실 사회에 구현하자고 하였습니다. 기존의 불교는 이러한 취지에서 너무나 멀어져버려 불교라는 용어를 쓰면 대중들이 헷갈리지 않겠느냐는 염려와 아울러 종교라는 카테고리, 불교라는 형식에 갇힐 위험도 있으므로 이 불교라는 형식마저도 버리는 게 더 낫지 않겠느냐는 깊은 논의가 있었습니다. 하지만 우리가 하고자 하는 영역이 세상 사람들이 볼 때 사회운동인지 종교인지 혼란을 겪을 것이라는 문제가 제기되면서 불교라는 이름과 형식을 그냥 담아가자고 결론이 났습니다. 그런데 정토행자들마저도 자기를 이 세상에 말하는 종교의 한 부분, 그 중 불교의 한 부분으로 은연중에 규정하면서 불교라면 이래야 하지 않는가, 또는 종교가 이런 걸 해도 되나 하는 등의 의문을 끊임없이 제기한다면 정토회의 설립취지를 모르는 것입니다. 적어도 대의원이라면 이 문제에 대해 입장이 아주 분명히 정리가 되어야 합니다. nbsp 앞으로 경쟁을 하려면 종교가 아니라 과학, 사회민주주의 등 우리 사회에서 가장 앞서가는 진보적인 경향과 경쟁해서 더 앞서가야 세상에 공헌을 할 수 있습니다. 그런 면에서 어떤 사물을 총체적으로 보는 눈이 있어야 하고 세상의 그 어떤 사상보다도 앞서 가는 진보적인 눈이 있어야 합니다. 붓다께서 제시하시는 관점은 현 시대에서도 가장 앞서 있습니다. 이것이 깨우쳐져야 진짜 가슴속에서 붓다에 대한 믿음이 일어납니다. nbsp 대중 주체의 의미와 대의원회의 설립 취지에 대해서는 다음과 같이 말씀해 주셨습니다. 옛날에는 붓다가 중심이 되어 높이 받들면 되었지만 지금은 누가 주체가 될 것입니까? 비록 부족하지만 붓다가 되겠다고 원을 세우고 나가는 사람들입니다. 궁극적으로는 대중이 다 붓다의 길로 가야하므로 승려, 법사, 실무자가 중심이 아니라 대중이 주체가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다른 어떤 대상을 따로 귀의 대상으로 삼을 필요는 없습니다. 부처님과 법에 귀의하고 우리 스스로가 승의 멤버로서 참여하는 것이 대중주체입니다. 이렇게 되었을 때 첫째, 내가 승의 일부이기 때문에 수행정진해서 붓다의 가르침을 경험해야 합니다. 그런데 우리는 아직 수다원과 이상을 증득한 승이 되기에는 수준미달이므로 우리들의 좋은 면을 서로 모은 모자이크 붓다를 제안하는 것입니다. nbsp 부족한 우리들이 운영하기 때문에 부족한 것을 충분히 인정하고 민주주의의 삼권 분립과 같이 크게 세 가지로 대의원제도, 행정처, 법사단을 두었습니다. 대중이 해야 할 일은 두 가지인데 한 가지는 실제로 정토회 일을 유지, 관리, 진행해 나가는 행정처 업무와 그에 대한 최종적인 의사결정을 해주는 대의원입니다. nbsp 대의원의 역할에 대해서도 두 가지로 나누어 말씀해 주시고 대위원 제도의 비전에 대해서도 말씀해 주셨습니다. 대의원이 해야 할 것은 첫째, 정토회를 민주주의적으로 운영해야 합니다. 민주주의적으로 운영하려면 정회원들의 의견을 민주적으로 정토회에 반영해야 합니다. 여러분들은 항상 나에게 위임된 열 명의 정회원을 생각하고 그 회원들이 정토회에 대해서 무엇이 부족하다고 생각하고 어떻게 개선했으면 좋겠다 생각하는지를 늘 살펴야 합니다. nbsp 두 번째는 여러분들은 정토회가 나아갈 방향을 최종적으로 결정하는 사람입니다. 예산 집행, 사업 계획 등도 결정을 해야 되고 그에 대해 책임도 져야 합니다. nbsp 우리 정토회가 대중의 의견을 수렴하고, 두 번째는 가장 민주적으로 의사를 결정하고, 그에 대한 책임을 담보하는 게 이루어져서 정계도, 회사도, 다른 종교 단체도 우리를 벤치마킹해서 조금씩이라도 사회전체를 개선을 해나갈 수 있다면 그만큼 세상을 아름답게 만들어 갈 수 있는 것입니다. nbsp 원칙을 지키는 것과 현상을 변경하는 것에 대한 대의원들의 논의에 대해서는 다음과 같이 말씀해 주셨습니다. 원칙만 지키면 고리타분하다 그러고, 의견을 들어서 자꾸 변경하면 원칙이 없다 그럽니다. 대중의 의사를 늘 반영하는 유연성을 지녀야 하지만 또 정토회의 설립 취지를 살리는 원칙도 지켜야 합니다. 가만히 보면 자기가 대중의 의사를 받아들이기 싫을 때 원칙을 강조합니다. 한편 자기가 정토회 원칙이 마음에 안 들면 대중들이 못하겠다고 핑계를 대는데 가만히 들어보면 자기가 하기 싫어서 그렇습니다. 이 두 가지 병폐를 대의원이나 행정 단위에 있는 사람들은 굉장히 염두에 두어야 합니다. 부처님은 이미 정해진 법은 특별한 사유가 없으면 폐지하지 말고 아직 정해지지 않은 법은 특별한 사유가 없으면 새롭게 제정하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이것이 부처님의 원칙과 변경에 대한 기본 입장으로 이것을 지키는 한 쇠망은 없다고 하셨습니다. nbsp 스님께서는 끝으로 문명의 혁명적 전환에 대해 말씀해 주셨습니다. 인류 문명을 보면 이집트 문명, 에게문명, 그리스문명, 로마문명이 일어난 것은 각각 오백년 내지 천 년 정도 걸렸습니다. 그 안에서도 주도세력의 흥망성쇠가 있습니다. 우리는 항상 크게 보고 길게 보는 것이 필요합니다. 문명적 전환은 혁명이지 개선이 아닙니다. 대원군이 서원을 철폐한 것은 개선입니다. 역사가 혁명적으로 전환할 때 개선은 아무 도움이 안 됩니다. 흑인인 오바마가 대통령이 된 것은 혁명적 변화가 아니라 개선입니다. 미국의 제국주의적인 성격은 이 시기에 더욱 적나라하게 나타났습니다. nbsp 정토회가 멀리만 보고 꾸준히 나갈 것이냐, 단기간의 문제도 풀면서 갈 것이냐에 대한 입장이 있어야 할 것입니다. 세월호는 지금까지 우리 사회가 안고 있던 부정적 모습을 한꺼번에 노출시켰으나 이것을 우리 사회가 혹은 정토회가 받아 사회를 혁신할 수 있겠는가. 그런 역량이 있는가? 어느 게 더 큰 문제인가를 보는 큰 눈이 있어야 합니다. 항상 큰 틀의 안목을 갖지 못하게 되면 반짝 일어났다가 소멸합니다. 우리가 꾸준히 발전하려면 큰 틀의 문제도 잘 봐야 하지만, 두 번째 정반대로 굉장히 정밀하게 세세하게도 봐야 합니다. 끊임없이 혁신을 하지 않으면 발전이 없습니다. 대의원제도도 끊임없이 연구해야 합니다. 정토회를 창립하고 대중주체를 하고 큰 틀에서 성공적으로 됐다 하더라도 지속적인 내부 혁신이 없으면 답보 상태가 됩니다. 각 분야에서 끊임없이 혁신을 해나가야 합니다. nbsp 이어서 진행된 서원행자대회에는 서원행자 320명중 약 180여명이 참석하였습니다. 스님께서는 입재 법문에서 그동안 우리가 아침마다 독송하는 정토행자의 서원에 대해 자세히 짚어주시면서 서원행자는 어떤 자세로 임해야 하는지에 대해 일러주셨습니다. nbsp “백일기도 입재자는 매일 아침 정토행자의 서원을 독송합니다. 첫 구절이 ‘지금 우리인류는 인간성 상실, 공동체 붕괴, 자연환경파괴라는 중대한 위기에 처해있다.’에서 인간성 상실은 정신질환으로 나타나고 있습니다. 아이들의 정신건강이 심각한 것은 엄마들의 마음상태가 좋지 않아서 생겨난 것입니다. 가정불화가 심하면 엄마의 정신 건강이 안좋기 때문에 아이들이 정신적으로 불안할 확률이 높고, 학교에서 약한 아이를 집단 폭행하고 괴롭히고, 그렇게 자란 아이들이 군대에 와서도 폭행하니까 요즘 일어나는 군대폭행 사태같은 일이 발생합니다. 지금은 이렇게 인간성 상실의 시대에 처해 있습니다. 지금은 자살을 하지만 앞으로 자살을 넘어서서 무차별 살인을 하는 단계로 나아가게 되는데 그것은 나혼자 죽기는 억울하니까 다 쏴 죽이고 자기도 죽는다고 합니다. nbsp 두 번째 그러면서 급격하게 공동체성이 사라지고 있습니다. 더 나아가 지구환경문제도 심각해 지고 있습니다. 문명이 거의 종말에 가까워져 가고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지금 같은 방식으로 생활해서는 더는 안됩니다. 작은 공동체로, 지역공동체로 새로운 공동체가 되어야 합니다. 지금 우리가 이런 식으로 사는 것은 이제 얼마 안남았기에 우리는 새로운 모델, 공동체의 모델, 삶의 모델을 개발해야 합니다. 지금처럼 살아가는 이러한 삶이 엄청난 위기에 처했을 때, 저것만이 살길이다라는 대안적 모델을 만들어야 합니다. 이것마저도 없으면 공멸할 수도 있습니다. 우리의 삶이 인류에 희망이 될 수 있는 해결책을 붓다의 근본 가르침속에서 찾으려고 합니다. nbsp 현대인의 세계관, 즉 사물을 바라보는 관점은 부속을 하나하나 분해해서 바구니에 담아 놓은 것처럼 개별 존재의 집합으로 보고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의 존재는 사람과 사람이, 자연과 사람이 서로 연결되어 있습니다. 즉 연기적 세계관입니다. ‘이것이 있으므로 저것이 있고, 이것이 없으면 저것이 없다는 존재의 상호연관성이 존재하는 모든 것들의 있는그대로의 모습이다. 네가 죽으면 나도 죽고, 네가 살면 나도 산다. 네가 불행하면 나도 불행하다는 연기적 세계관에 입각하여 함께 살고 함께 행복해지는 이 길을 추구한다. 여러 가지 꽃들이 모여 하나의 화단을 이루듯이 각자의 다양한 개성이 모여 조화와 균형을 이루게 한다. 시기와 질투를 뛰어넘어 사랑을, 대립과 경쟁을 뛰어넘어 화합을, 투쟁과 전쟁을 뛰어넘어 평화를 이루는 새로운 문명을 창조하고자한다.’ 이처럼 정토행자의 서원 첫 번째는 새로운 문명에 대한 것입니다. 1차 만일결사자는 와닿지 않겠지만, 앞으로 2차, 3차 만일결사자는 현실에 당면한 문제일 것입니다. nbsp ‘부처님과 보살을 우리 삶의 모범으로 삼는다.’ 모델이 부처님입니다. 우리는 소비주의를 극복해야 합니다. ‘평생을 가사 한 벌과 바루 한 개로 걸식하며 살아가신 부처님의 삶을 본받아 적게 먹고, 적게 입고, 적게 자며, 어디에도 구애 받지 않고 살아가는 구도자의 자세를 갖는다.’ 이것은 하나의 대안적 방향입니다. 원시사회로 돌아가자는 것이 아니라, 소비하는 것에서 행복을 찾는다면 근본적으로 해탈하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검소하게 살고, 그것을 가난한자와 나누며 살자는 것입니다. 붓다의 삶이 우리의 대안적 삶입니다. 동시에 우리는 해탈로 가지만, 이웃에 대해서는 아픔을 나누고 가난과 고통을 나누는 이것이 보디사트바입니다. 관세음보살입니다. nbsp ‘나아가 중생의 아픔을 자신의 아픔으로 여기고 스스로 사바세계와 지옥 속으로 뛰어들어 중생을 구제하시는 대비 관세음보살님과 대원 지장보살님의 원력을 본받아 일체 중생을 구원하는 대승보살이 되고자 한다.’는 것은 수행·보시·봉사를 말합니다. nbsp 이런 실천의 근본 사상은 ‘무아·무소유·무아집을 수행의 지표로 삼는다.’입니다. ‘정토세계를 이룩하기 위하여 나를 버리고, 내 것을 버리고, 내 고집을 버리고, 오직 중생의 요구에 수순하는 보살이 되고자 한다. 그리하여 한 생각 돌이켜 사로잡힘에서 벗어나 괴로움도 없고 얽매임도 없는 대자유인이 되고자 한다.’ 이것이 성불이고 상구보리입니다. ‘나아가 인류에게 불어닥친 이 위기를 극복하고 행복한 인생, 평화로운 사회, 아름다운 자연을 일구어 살기좋은 세상 정토를 만들고자 한다.’ 행복한 인생은 인간성 상실의 극복이고, 평화로운 세상은 공동체 회복이며 아름다운 자연은 자연환경을 보전하는 것으로 볼 수 있습니다. 이것이야말로 내가 살아가야 할 길, 인류가 나아갈 길입니다. 이것이야말로 부처님의 근본 가르침입니다. 이것에 대한 깊은 이해, 현실속에서 실천해서 대안을 만들어가는 것, 이것이 정토행자의 길입니다. nbsp 발심행자는 이런 사상에 동조하여 한번 해보겠다고 마음을 낸 자이고, 서원행자는 이것을 확고히 받아들이고 내 삶을 이것에 투신하겠다고 하는 것입니다. 정토회의 핵심은 서원행자입니다. 적어도 정토회의 임원이 되려면 서원행자가 되어야 하는데, ‘대표를 하시오. 총무를 하시오라고 요청을 했을 때 내가 하겠다고 나서는 것은 욕심을 못버린 것이고, 하라는데 안하는 것도 수행자가 아닙니다. 이것은 서원행자의 자격이 없는 것입니다. 그러나 가정형편이나 건강이 허락지 않아 못하는 것은 들어보고 그럴 수 있겠다고 대중의 동의가 있으면 괜찮지만 아니면 안됩니다. nbsp 서원행자가 된다는 것은 언제나 정토회를 대변하는 사람입니다. 직책은 임시로 붙여진 것입니다. 대의원은 우리를 대신해서 역할을 하는 것이고, 제도상에서 우리 모두가 다 의사결정하기가 어렵기 때문에 우리가 권한을 줬지만, 결정을 제대로 했는지는 들어봐야 합니다. 제대로 하지 못했다면 다음에 바꿔야 합니다. 그래서 서원행자대회를 한다는 것은 이 서원행자중 3분의1이 결정하지만 그 결정을 서원행자 전부가 내린 결정으로 받아들여 솔선수범해서 나가자고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서원행자대회를 하는 것입니다. nbsp 대의원대회에서 회의 결정은 정토회 존립이 걸린 문제인데, 이번에는 95 참석했습니다. 10정도 빠진다는 것은 사람이 하는일이기 때문에 감안해야 합니다. 근데 참가율이 50도 안된다면 서원행자가 뭔지 모르는 사람이 많구나고 볼 수 있습니다. 법사단이 교육을 잘하고 서원행자 선발할 때 잘해야 합니다. 수행이란건 분위기 따라서 하는 것을 넘어설 수 있어야 합니다. 뜻을 같이 모으느냐, 안모으냐가 중요합니다. 우리가 마음을 모아주는게 중요합니다. 대의원들이 회의해서 결론낸 것에 대해 박수쳐 주고 우리가 할께하는 마음을 가져야 합니다. 직책을 가진 사람이 하면 일반회원들이 볼때는 직책이 있어서 한다고생각하지만, 서원행자는 직책이 없는데 더 열심히 하면 일반회원에 미치는 영향력이 더 대단합니다. nbsp 우리는 법의 상속자가 되어야 합니다. 재산의 상속자가 되어서는 안됩니다. 이런 관점이 분명해야 합니다. 새로운 세상, 새로운 문명, 새로운 세계를 열어갈수 있다고 말만 하고 행동이 옛날과 똑같으면 안됩니다. 스님도 백일 입재식에는 무조건 참여한다라고 정해져 있습니다. 다음 백일기도 입재식에는 워싱턴에서 강연회를 하다가 입국해서 입재식을 하고 당일 미국으로 강연하러 가야 합니다. 죽어서 못오면 몰라도 역할 때문이 아니라 참여를 하는 자세가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백일 입재식에 꼭 참여하는 것처럼 서원행자는 서원행자대회에 꼭 참여해야 합니다. 내가 뭘 하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놀다가 가더라도 왔다가는 것이 중요합니다. 흔쾌히 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서원행자는 이런 자세를 갖는 것이 중요합니다.” nbsp 스님께서는 정토세상을 만들고자 원을 세운 서원행자들을 위해 현재 우리의 상황과 미래에 다가올 문명의 종말에 대한 대안으로써 부처님의 삶을 본받자고 하는 정토회의 취지에 대해 상세히 설명을 해주시면 서원행자의 자세에 대해서도 자세히 설명 해주셨습니다. nbsp 스님의 말씀을 들으면서 부처님의 법을 전수받는다는 자세로 어떠한 일이 일어나도 흔들림없이 수행정진하도록 법의 상속자가 되겠다는 발심을 다시 해보았습니다. nbsp 이어서 저녁 공양시간을 가지고 저녁예불 후 7시부터 8개지부와 공동체의 서원행자 소개의 시간을 가졌고, 또 각 부서의 보고를 받고 질의 응답시간을 가진 후 오늘 일정을 모두 마무리 하였습니다.
2014.8.22 한국 도착, 3번의 회의
nbsp 스님께서는 어제 필리핀 마닐라를 출발해서 오늘 새벽 5시 30분경에 인천공항에 도착하셨습니다. 오늘 아침에 조찬회의가 있고, 또 오늘부터 진행되는 대의원대회에 참여하기 문경으로 이동하셔야 하기 때문에 정토회관에 도착하자마자 짐을 풀고 다시 짐을 꾸린 후 조찬회의가 있는 평화재단으로 이동하셨습니다. nbsp 7시 30분부터 평화연구원 전문가 모임인 북한이해와 현실모임에 참석하셔서 최근 중국에서 접한 북한 식량 상황과 난민 상황을 공유해주셨습니다. 중국도 가뭄이 심해 보였는데 북한은 가뭄 피해가 더 심하다고 하셨습니다. 스님 말씀에 다른 전문가들도 같은 소식을 들었다며, 뙈기밭에 심은 옥수수 키가 발목까지밖에 안 자랐더라고 덧붙였습니다. 벼농사도 어렵지만 옥수수 농사 피해는 더 심각해보인다는 의견이었습니다. nbsp 스님께서는 남북관계 경색 국면이 길어질수록 북한 주민들의 생존 문제가 심각해지는 것에 우려를 표하셨습니다. 그 외 최근 북한 경제, 사회, 문화 상황을 상반기 평가 차원에서 되짚어보고 하반기 전망을 해보며 마무리 했습니다. 스님은 세계 100강 일정으로 모임 참여가 어렵지만 전문가들의 동향 분석은 계속될 예정입니다. nbsp 9시 30분부터는 어제 인도에서 들어온 JTS의 김신아 법우님의 인사를 받고 인도 JTS의 현안에 대한 의견을 주시고 어제 다녀온 필리핀 JTS의 사업변경에 대해 JTS 활동가들과 업무공유를 하셨습니다. nbsp 스님께서는 목이 부어서 목소리가 잘 나오지 않고 따끔거려서 문경으로 가기전에 잠시 이비인후과에 들렀는데, 24일까지 휴진이어서 바로 문경으로 이동했습니다. 스님께서는 대의원대회와 서원행자대회를 마치고 바로 다음날 해외 100강을 위해 독일로 출국하시기 때문에 오늘 오후는 조금 쉬면서 목을 안정시키기로 했습니다. nbsp 오후 3시에는 문경경찰서장님과 점촌에서 한의원을 하시는 분이 스님의 경주고등학교 후배라면서 인사차 들르셨습니다. 두분은 스님보다 약 20년 후배로서 오늘 스님을 뵙는다는 생각에 어젯밤부터 잠을 설쳤다고 합니다. 인터넷에서만 뵙다가 이렇게 직접 뵙게 되어 영광이라고 하시면서 스님께 인사를 드리며 최근 일어난 제주 지검장의 음란행위에 대한 원인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기도 하셨습니다. nbspnbsp 스님께서는 사회적, 법률적 입장에서 보는 것과 정신적, 종교적인 입장에서 보는 것의 차이에 대해서도 이야기 해주시면서 앞으로 건강한 사회를 위해 각계 각층에서 함께 노력하자고 격려 겸 힘을 북돋아 주시기도 하셨습니다. nbsp 손님들께서 돌아가신 후에 이번 해외 100강중에 인터넷 서점에서 판매할 책 60권에 싸인을 하고 원고 교정을 보셨습니다. 몸이 좋지 않은 가운데에서도 스님께서는 저녁에 시간을 내어 문경수련원 주변마을을 산책하고 돌아와서 오늘은 일찍 휴식을 취하셨습니다. nbsp 내일은 대의원대회 회향과 서원행자대회가 있습니다.
2014.8.21 마닐라 정토법당 법회, 한국으로 출국
nbsp 스님께서는 아침 6시에 숙소 주변을 산책하시다 들어오셔서 아침공양을 과일로 간단하게 하셨습니다. 단식 후 아직 회복식 중이시라 제대로 된 식사를 못하고 계십니다. 아침 식사후 스님과 필리핀JTS 대표님, 현지에 파견된 실무자들과 1시간 30여분 동안 타클로반 마라붓 사업에 대한 평가와 남은 일정등에 대한 회의를 하시고 9시 30분에 마닐라로 가기 위해 공항으로 출발했습니다. nbsp 공항으로 오는 길에 여전히 아직도 그날의 아픔들이 곳곳에 서려 있고, 복구중인 가옥들의 모습이 눈 안으로 들어옵니다. 타글로반은 바다로 둘러싸인 도시입니다. 태풍으로 바다가 뒤집혀서 고기가 몇 달간 잡히지 않아 어민들이 일거리가 없어서 태풍피해 복구현장에서 일용자로 일을 하다가 얼마 전부터 고기가 잡혀서 어민들이 생업으로 돌아가고 있다고 합니다. 겉으로 보기에는 비교적 평온해 보이는 도시의 모습입니다. 하루 빨리 태풍으로 인해 가족을 잃은 슬픔, 고통으로부터 벗어나 예전의 모습으로 돌아가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타클로반 공항을 출발했습니다. nbsp 마닐라 공항으로 오는 비행기 안에서도 스님과 JTS 대표님들은 타클로반의 복구지원사업과 민다나오 사업에 대한 논의를 하셨습니다. 1시경에 마닐라 법당에 도착하셔서 간단한 과일로 점심공양을 하시고 바로 이어서 필리핀 정토회 활동가들과 계속해서 필리핀 정토회 사업 전반에 대한 논의를 하셨습니다. 스님께서 약 1년만에 필리핀을 방문하신 까닭에 현지 사업에 대한 논의할 일이 정말 많은 것 같았습니다. nbsp 2시부터 활동가들과 만나 하반기 해외 100강, 활동가들의 정일사 수련, 마닐라 법당이 임대 기간이 끝남에 따라 새로운 법당으로 이전하는 공간에 대한 리모델링, 공사범위등의 제반 업무들에 대해 논의를 하셨습니다. 또한 활동가들과 짧은 만남에서 활동가들이 활동을 하면서 어렵고 힘들어 하는 모습들을 수행적 관점과 공인으로서의 자세등에 대해 말씀을 해주셔서 가벼운 맘으로 활동할 수 있게 해 주셨습니다. nbsp 활동가들과 만남에 이어 필리핀 정토회원들을 대상의 스님의 즉문즉설이 있었습니다. 오늘 즉문즉설 법회에는 45명이 참석하여 법당이 가득하였습니다. nbsp 스님께서는 작년 태풍 하이옌으로 피해를 입은 타클로반 지원내용과 복구사업에 대한 자세한 내용을 설명하시면서 필리핀 거사님들의 적극적인 지원활동에 대한 감사인사와 격려말씀을 전하시고 총 5분의 질문을 받으셨습니다. 첫 번째 질문은 치매를 앓고 있는 어머님의 변해가는 모습을 보면서 내가 어떻게 살아가야 노년을 아름답게 살아 갈수 있는지에 대한 질문이었습니다. nbsp 두 번째 질문자는 재혼을 해서 전처의 아이를 키우고 있는데 어떻게 키워야 하는지? 가끔 착한 계모로 보이기 위해 키우는 것은 아닌지 하는 생각이 많이 든다며 스님께 답을 구했습니다. 스님께서는 질문자에게 “‘내가 계모다.’고 하는 생각을 없애야 합니다. 기른자가 엄마입니다. 앞으로 선진사회로 갈수록 애 낳는 사람이 점점 줄어들 것입니다. 아이를 낳는다는 것은 별 의미가 없습니다. 자기가 키우면 자기 아이가 됩니다. 생물학적으로는 하나도 중요하지 않습니다. 기른 것이 중요합니다. 내가 계모다 이런 생각하지 말고 아이에게 바른말과 바른 행동을 가르쳐야 합니다. 그리고 아이와 엄마는 절대 싸워서는 안됩니다. 전처가 낳았다고 생각하지 말고 누가 뭐라고 해도 항상 ‘내 아이’라고 생각하고, 아이가 아무리 계모라서 자기를 사랑하지 않는 것 아닌가 하더라도 ‘너는 내 자식’이라고 분명희 말하며 나는 너 밖에 자식이 없다는 원칙과 믿음의 자세가 필요합니다.”라고 말씀해 주셨습니다. nbsp 세 번째 질문자는 “현재 고3인 쌍둥이 아이를 키우고 있는데 크게 차이 없이 키웠다고 생각하는데, 아이들이 생각하고 느끼는 것이 다르고, 한명은 외국인 아이들과 친하고 한명은 한국인 아이들과 친합니다. 형 친구와 아우 친구가 서로 친하지 않고, 성격도 많이 달라서 쌍둥이가 아니었으면 편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어서 빨리 졸업을 하고 각자 살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듭니다.”는 질문에 대해 스님께서는 “부모입장에서는 고민이 되겠지만 두아이가 똑 같으면 자기 정체성이 없습니다. 얼굴도 닮았고, 친구도 같으면 얼마나 혼란스럽겠어요? 서로 달라야 자기 정체성을 가질 수 있습니다. 두 살 터울 형, 아우도 싸우는데, 나이도 같고 형, 동생이라는 이름만 다르지 몇 분 차이인데, 동생입장에서 형이나 자신이나 무의식 세계에 차이가 없다는 것을 느끼고 있습니다. 아이의 성향, 친구가 다른 것이 좋은 현상입니다. 달라야 다른 사람이 되는 것이니 두 아이의 특성을 인정하고 개성을 각각 살리는 것이 좋습니다. 그러니 엄마는 다르다는 것을 받아 들여야 합니다. 그리고 20살이 넘으면 독립하도록 하는 것이 자기 정체성을 가질 수 있도록 해 주는 것이 부모의 역할입니다.”라고 말씀해주셨습니다. nbsp 네 번째 질문은 요즈음 우리나라에 세월호등 큰 사고가 많은데, 사건사고로 국민 패닉도 생기는데, 새로운 영화 ‘명량’ 이나 프란시스코 교황 방문으로 위로를 많이 받는다고 생각하는데 불교인으로 위로를 받고 싶은 마음을 어떻게 받아야 하는지 궁금하다는 질문이었고, nbsp 다섯 번째 질문은 어릴 때 교회도 다니고 성당을 다니다가 불교를 접한 지 8년이 되었는데 불교를 믿으면서 마음이 편해져서 이래도 좋고 저래도 좋은 마음인데, 그래서 다른 종교를 믿을 때는 죄의식이 있었는데 불교를 믿으면서 과보를 받으면 된다고 생각하니 내 삶이 정체되는 듯한 느낌을 많이 드는데 온전히 받아들이는 순종하는 삶을 살아도 되는지에 대한 질문등이 있었습니다. nbsp 스님께서는 마지막으로 정리말씀을 해 주시면서 “수행은 자기를 행복하게 하는 자기 구원입니다. 내가 자유롭고 행복해야 남을 미워하지 않으며 또 남을 미워하지 말아야 진정으로 자기 자신을 사랑할 수 있습니다. 남을 이해하면 자기가 편합니다. 먼저 남을 사랑할 줄 알아야 진정으로 자기를 행복하게 하는 길입니다. 나만이 아니라 다른 사람에게도 도움이 되는 존재가 되는 것이 나를 행복하게 하는 길입니다. nbsp 인간의 심리가 남에게 도움이 되었을 때 보람이 생깁니다. 길거리에서 구걸하는 사람에게 돈을 주면 편안하고, 안주게 되면 오히려 불편할 때가 있는데, 남에게 도움이 되었을 때 보람이 일어나며 자기가 행복하고 자기 존재감이 있습니다. nbsp 그리고 너무 물질에 집착하지 않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일주일에 하루정도는 봉사를 해서 자기를 완성시켜 나갔으면 좋겠습니다. 특히 교민 사회는 이민사회이다 보니 남의 나라에 와서 돈에 의지할 수 밖에 없겠지만, 그러나 너무 돈에 집착하면 행복할 수가 없습니다. 개인의 역동성은 잘 살리고 교민들끼리는 너무 경쟁만 하지 말고 서로가 협력하는 자세로 살아가길 바랍니다.”며 어떤 삶이 보람있고 잘 사는 삶인지에 대해 말씀해 주셨습니다. nbspnbsp 오늘 스님께서는 아침부터 저녁 6시30분까지 하루 종일 회의와 법문으로 저녁에는 목이 잠기셔서 말씀을 제대로 하지 못하시는 모습이었지만, 필리핀 활동가들을 위해 아낌없이 수행지도를 해주셨습니다. nbsp 즉문즉설 법회를 마치고 임시법당으로 사용될 공간으로 이동하여 저녁식사 겸 마닐라 정토회 신도들과 만남의 시간을 가진 후 22일 00시 30분발 인천공항으로 출발하는 비행기를 타기 위해 9시 30분에 마닐라 공항으로 출발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