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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9.29 세계 100회 강연(35) 미국 버팔로
안녕하세요. 오늘은 법륜 스님의 세계 100회 강연 중 35번째 강연이 미국의 뉴욕주인 버팔로에서 열리는 날입니다.nbsp어제 스님께서는 캐나다쪽 나이아가라폴에 도착하여 오전까지 휴식을 취하셨습니다. 오전 7시경에 녹두죽으로 간단히 요기를 하고, 저희들은 각자의 업무를 보다가 오전 11시에 미국으로 넘어가기 위하여 숙소를 나왔습니다. 미국으로 넘어가기 전에 차에서 내려 미국쪽 폭포와 캐나다쪽 폭포를 잠깐 보고 국경을 넘어 버팔로 시로 들어왔습니다. 나이아가라 폭포를 기준으로 동북부에는 온이타리오 호수가 있고 서남부에는 이리호가 있는데 이둘은 규모도 거의 비슷한것 같습니다. 국경을 넘어 버팔로 시로 들어오니 이리호가 시작되는지 오른쪽편으로 호수가 보이기 시작하였습니다.nbsp버팔로 시내로 들어와서 한국식당을 찾아서 점심식사를 하러 갔습니다. 입구에 스님의 버팔로 강연 포스터가 문 앞에 붙어 있어 더 반가웠습니다. 식사를 하고 계산을 하고자 하였더니 사장님이 “스님 식사는 공양으로 올리는 것입니다”고 하면서 식사비를 받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사장님은 저녁에도 성당으로 스님 강연을 들으러 갈 것이라며 저녁에 뵙겠다고 인사를 하였습니다. 점심 식사 후 오후 2시에 오늘 강연이 열리는 버팔로 성김대건 성당에 도착하였습니다.nbsplt버팔로 성김대건 성당gt도착하니 미주동북부캐나다동부 지구장인 임금이님과 이곳 자원봉사자들이 나와서 반갑게 스님일행을 맞아 주었습니다. 오늘 숙소는 이곳 성당 부속으로 있는 기숙사에서 하룻밤을 묵기로 하였고, 임금이 지구장님은 오늘 행사를 총괄하기 위해서 어제 뉴욕에서 유정희님과 함께 올라와 미리 사전 준비를 하고 있었습니다.nbspnbsplt미주동북부캐나다북부 임금이 지구장님gt강연이 오후 7시에 있기 때문에 시간 여유가 있어 스님께서도 숙소에서 업무와 휴식을 하고, 저희도 각자 개인시간을 갖기로 하였습니다.nbsp버팔로는 이리호에 면하여 화학공업이 발달한 도시였으나 이리호 인근 도시인 디트로이트, 클리버랜드와 마찬가지로 미국에서 화학공업이 쇠퇴하면서 도시가 점점 쇠락의 길을 걷고 있는 곳 입니다. 그래도 근처에 나이아가라 폭포가 있어서 관광사업을 하고 있으나 캐나다 쪽 보다는 훨씬 뒤쳐져 있는 느낌입니다. SUNY Buffalo 뉴욕주립버팔로대학교가 있어서 한국 유학생 약 700명을 포함하면 전체 버팔로에 거주하는 한인들은 약 1,500명2,000명을 예상한다고 합니다.nbsp스님께서는 6시에 SUNY 버팔로 대학교의 Mark Nathan nbsp미국인 교수와 김욱수 교수와 잠깐 미팅을 하였습니다. Social Work를 가르치는 김욱수 교수님은 이번 행사에서 홍보 등을 적극적으로 지원하였다고 합니다. 그리고 Mark Nathan 교수는 한국 역사와 동아사아 불교를 버팔로 대학교에서 가르치고 있는데 이전에 고려대학교에서 1년간 공부할 때에 정토회를 방문한 적이 있었다고 하였습니다. 그래서 스님께서 이곳을 방문하신다는 소식을 듣고 미팅 요청을 하였다고 하시면서 한국에서의 포교와 스님의 활동에 대해서 질문을 하셨습니다. 또 스님께서는 지난해 유니온 신학대학교의 초청으로 ‘기독교와 불교와의 대화’라는 컨퍼런스 참가하여 즉문즉설을 하셨던 얘기를 들려주셨습니다. 김욱수 교수와 Mark Nathan 교수는 한국말이 유창하여 스님의 즉문즉설 강연을 끝까지 참가하여 듣고 갔습니다. 스님께서는 김욱수 교수님께 새로운 백년 책에 사인을 하여 선물로 드렸고 Mark Nathan 교수에게는 최근에 번역한 영문 기도 책을 선물로 드렸습니다. nbspnbsp스님께서는 강연 전 로체스터에 살고있는 손정애님께서 준비해오신 저녁 식사를 한 후, 버팔로 성김대건 성당의 김영수 시몬 신부님과 반갑게 인사를 했습니다. 이어서 바로 1층 강연장으로 내려와서 자원봉사자들과 참가자들과 반갑게 인사를 나누었습니다. 이곳 버팔로에서 강연이 이루어질 수 있도록 강연장을 내어주시고 후원해주신 버팔로 성김대건 김영수 시몬 신부님의 환영사에 이어서 스님께서는 6시 50분에 큰 박수와 함께 연단으로 오르셨습니다.nbsp“만나서 반갑습니다. 학생들 손들어 보세요. 절반이나 되네요. 모두 버팔로 대학에 다니는가봐요. 이렇게 좋은 장소와 좋은 숙소를 제공해주신 김영수 시몬 신부님께 감사드립니다. 이번 100회 강연에는 성당에서 강연을 많이 하게 되었는데 작은 도시는 저희 활동가도 적고 인연도 없고 해서 남미나 소도시는 성당에서 많이 협력해주셔서 이렇게 강연이 진행될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다시 한번 장소를 제공해주신 김영수 시몬 신부님께 감사 말씀드립니다.”nbspnbsp이렇게 인사말을 하신 후 곧바로 청중들로부터 인생고민에 대해 질문을 받았습니다. 오전부터 스님께서는 몸상태도 좋지 않고 목소리도 많이 가라앉아 있었는데 사전 미팅때부터 목소리가 갈라지기 시작해서 행사를 시작하자 목소리가 더 안좋으셨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온 정성을 다해 질문에 답해 주셨습니다.nbsp오늘 강연에는 총 11명이 스님께 질문을 했습니다. 성당근처에 SUNY 버팔로 대학교가 있어서 학생들의 참여가 높았고 질문도 많았습니다. 말법 시대에 부처님이 나타나면 부처님의 말씀을 믿고 알수 있을텐데 왜 부처님은 기간을 정해놓고 지금 나타나지 않는지 묻는 분, 성당에 사람들을 더 많이오게 하고 싶은데 어떻게 하면 사람들이 더 많이 오게 할 수 있는지 방법을 묻는 분, 작은 생물이라도 소중하게 여겨야 한다고 배웠는데 최근에 실험을 하다가 쥐를 죽여서 충격을 먹었다며 이를 어떻게 바라봐야할지 묻는 분, 남들과 비교를 많이 해서 스스로도 힘들고 자기 자신이 더 싫어지는 것 같은데 어떻게 마음을 다스려야 할지 묻는 분, 대학생 때 불상에 “오직 예수” 라는 빨간 라카칠을 하는 종교인들을 보고 충격을 받아서 그들의 종교에 대해서는 일절 대화를 끊고 있는데 앞으로 교수가 되어서도 이런 태도를 견지해야 하는건지 고민인 분, 막연한 불안감이 밀려올 때 세상을 비관적으로 바라보게 되는데 어떻게 대처하는게 좋은지 알고 싶은 분, 외출할 때마다 문이 잠겼는지 매번 확인해야 하는 등 강박증을 앓고 있는데 어떻게 치료할 수 있는지 묻는 분, 나눔을 실천할 때 행복을 느끼는데 남의 시선이 불편할 때가 있어서 어떤 마음가짐으로 나눔을 실천해야 하는지 묻는 분, 다른 사람을 판단할 때 어떻게 판단해야 하는지 묻는 분, 현실에서 최고는 아니더라도 최선의 결과를 도출해낼 수 있는 방법이 궁금한 분 등 다양한 질문에 대해 스님께서는 정성껏 답변해 주셨습니다.nbspnbsp오늘은 그 중에서 이기심과 이타심의 차이에 대해 질문한 내용과 스님의 답변을 소개합니다. 무엇이 진정으로 남을 돕는 길인지 성찰해 볼 수 있는 명쾌한 답변이었습니다.nbsp“이기심과 이타심이 헷갈립니다. 내가 조금 불편하더라도 봉사는 더불어 잘 살 수 있는 길이고, 불편하더라도 내가 괴롭지 않으면 불편함을 감수할 수도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달라이라마 스님은 내적 갈등이 있어도 행을 함에 있어서는 나를 우선에 두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기심과 이타심 사이에서 이 말이 무슨 뜻인지 헷갈립니다. 나를 존중하는 것과 이기적인 마음을 명확하게 구분할 수 있는 기준은 무엇인가요?”nbsp“원시 시대에 내가 혼자서 사냥을 하면 토끼 한 마리를 잡을 수 있습니다. 그런데 둘이서 협력을 하면 세 마리를 잡을 수 있습니다. 각각 하는 것보다 협력하는 것이 이익이라고 다들 생각을 하죠. 협력을 했을 때 생산량이 늘어나는 것은 맞습니다. 그러나, 협력하는 것이 이익이라고 말할 수는 없습니다. 협력했을 때는 분배가 문제가 됩니다. 내가 세 마리를 다 갖고 싶어집니다. 내가 세 마리를 다 가지면 상대편은 한 마리도 못 갖게 되잖아요. 그러면 상대는 손해를 보게 됩니다. 손해를 봤기 때문에 이 사람은 다음부터는 협력을 안 하게 됩니다. 그럴 때 내가 세 마리를 갖는 것은 오늘은 이익인데 내일도 지속적으로 이익을 유지할 수가 없어요. 오늘 하루로써 끝나버리는 것입니다.nbspnbsp그러면 이 분배를 어떻게 해야 하느냐? 최소한으로 너 한 마리 나 한 마리는 가지고 증산된 한 마리를 갖고 어떻게 나눌 것이냐의 문제입니다. 내가 가질 수 있는 최소는 한 마리이고, 최대는 세 마리가 아니고 두 마리라는 것입니다. 이럴 때 ‘내가 한 마리를 갖겠다’ 하는 것은 욕심이 아닙니다. 이것은 기본 권리에 속합니다. 내가 한 마리 이상 두 마리 이하를 갖겠다고 하는 것은 욕망이라고 합니다. 내가 두 마리 이상 세 마리를 갖겠다고 하는 것은 과욕이라고 합니다. 이 과욕을 부리게 되면 상대에게도 손실이지만 나에게도 곧 손실입니다. 그래서 과욕은 버려야 합니다. 사회제도적으로는 과욕을 못 부리게 규제를 해야 합니다. 한 마리를 갖겠다고 하는 기본적인 욕구는 제도적으로 보장을 해줘야 합니다. 기본 권리는 보장해주고 과욕은 제재를 가해야 합니다. 지금 한국 사회가 혼란스러운 이유는 기본 권리는 보장해 주지 않고 과욕은 규제를 안해주기 때문입니다. 이 과욕을 규제 안해주면 다른 사람에게 해만 되는 것이 아니라 장기적으로는 본인한테도 해가 됩니다. 즉, 이익이 지속적으로 보장이 안 됩니다.nbsp환경적으로도 지속가능한 성장을 말하잖아요. 오늘날 우리 문명은 지구 생태계에 비하면 과욕에 속하는 것입니다. 만약에 이렇게 우리가 성장을 계속하면 우리 인류 문명은 곧 종말에 다다르게 됩니다. 그래서 지속적인 우리의 발전을 유지하려면 과욕은 규제를 해줘야 합니다. 그러니까 한 마리와 두 마리 사이에서 어떻게 나눌 것이냐를 놓고 너와 내가 경쟁을 해야 합니다. 이상적인 것은 1.5마리를 갖는 것이지만, 이것이 꼭 현실은 아닙니다. 왜냐하면 오늘 토끼를 잡는데 너는 게을렀고, 나는 열심히 일했는데 똑같이 나눈다면 기분이 나쁘고, 좀 섭섭하고 불평이 생깁니다. 그래서 이 분배는 1.2대 1.8이 될 수도 있고, 1.7대 1.3이 될 수도 있습니다. 이상적인 것은 1.5이지만 현실은 1.5가 되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는 1.5를 향해서 분배를 해 나가야 합니다.nbsp여기서 세 마리를 갖겠다고 하는 것은 과욕이고 이기심입니다. 이것은 버려야 합니다. 한 마리 이상 두 마리 이하를 갖겠다고 하는 인간의 욕심은 절제를 해야지 비난할 일은 아닙니다. 서로 절제를 해야 1.3대 1.7로 나누던지 1.4대 1.6으로 나눌 수 있습니다. 혼자서 두 마리를 다 갖겠다고 하면 싸움만 일어납니다.nbspnbsp여기서 이타심은 무엇일까요? 한 마리를 갖는 것과 두 마리를 갖는 것 사이에서 이타심이 나옵니다. 나의 기본 권리도 못 찾아 먹는 것은 바보이지 이타심이 아닙니다. 그래서 제도적으로 기본 권리는 보장해줘야 하고, 또 기본 권리의 보장을 위해서 우리가 노력해야 합니다. 그러나 내 기본 권리마저도 스스로 포기하고 타인을 위해서 희생하면 “이타”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한 마리 갖는 것과 두 마리 갖는 것 사이에서 자기 욕망을 절제하는 것도 “이타”에 속합니다. 이타심과 이기심은 완전히 다릅니다.nbsp여기 거지가 한 사람 있다고 합시다. 내가 도와주려니 돈은 없고, 안 도와주고 가려니 마음이 불편합니다. 이럴 때 어느 것을 우선으로 해야 할까요? 자기 마음 다스리는 것을 우선으로 해야 합니다. 이것은 이기심이라고 하겠지만 그렇지 않습니다. 스스로가 행복하다는 것은 이기심이 아닙니다. 자기를 행복하게 하는 것이 우선적으로 해야 할 일입니다. 즉 내가 행복해야 남을 실제로 도울 수 있습니다. 내가 행복하지 않는데 남을 돕는다는 것은 희생의 대가를 바라는 행동이 되기 쉽습니다. 그래서 너부터 먼저 행복하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내가 짊어진 짐이 너무 무거우면 옆에 사람의 무거운 짐을 들어줄 생각조차도 할 수 없습니다. 옆 사람이 무거운 짐을 들고 있는지 보이지도 않습니다. 설령 내가 옆 사람이 무거운 짐을 들고 있다는 것을 알아도 도와줄 수 있는 능력도 안 됩니다. 그러나 나의 무거운 짐을 탁 내려놓아버리면 옆에 사람이 무거운 짐을 지고 있는 것이 보입니다. 또한 들어줄 여력도 있게 됩니다. 그래서 자기가 먼저 행복해야 합니다. 이것은 이기심이 아니라 이타심의 전제가 되는 것입니다.nbsp세속에서 말하는 “이타심”과 수행에서 말하는 “이타심”은 서로 다릅니다. 세속에서 말하는 이타심은 자기도 무거운 짐을 지면서도 남의 무거운 짐을 들어준다는 것인데, 이것은 남을 위해서 자기가 희생을 하는 것입니다. 세상에서는 이것을 “이타심”이라고 말하지만, 이것은 반드시 나중에 원망하는 마음을 내게 됩니다. ‘내가 이 고생을 하며 너를 도와주었는데 너가 그 은혜를 모르는구나’ 하면서 서로 원수가 됩니다. 그래서 이것은 수행 차원에서는 좋은 것이 아닙니다. 수행 차원에서는 ‘내가 너를 돕는 것이 나한테 좋다’ 이런 마음이여야 합니다. 자기 희생이라는 생각을 넘어서서 남을 도울 때 이것을 수행에서는 “자리이타”라고 부릅니다. 자기를 이롭게 하는 “자리”와 남을 이롭게 하는 “이타”가 둘이 아니라는 뜻입니다.”nbsp질문자는 “도움이 많이 되었다”며 감사 인사를 했고, 스님의 대답에 청중들도 큰 박수로 환호해줍니다. 스님께서는 11명의 질문에 모두 답해 주신 후 이렇게 정리 말씀을 해주셨습니다.nbsp“재미있었어요? 유익했어요? 진리의 길은 재미도 있고 유익하기도 해야 합니다. 재미만 있고 유익하지 못하면 끝나고 나면 허전해지고요, 유익하긴 한데 재미가 없으면 지루해집니다. 그래서 여러분들이 종교를 지루하게 생각하는데 그렇지 않습니다. 예수님의 가르침의 본질에 근접해야 여러분의 삶에 기쁨이 일어납니다. 그런데 세속적으로 돈을 많이 벌게 해주고, 원하는 것을 해주는 이런 식으로 신앙을 갖기 때문에 여러분의 신앙이 흔들리고 있습니다. 인생을 조금 더 가벼운 마음으로 살아야 합니다. 너무 인간을 위대한 존재로 규정해서 자기가 쪼그러 들어 있어요. 자기가 규정한 그 수준이 안되기 때문에 위축감을 같고 살고 있습니다.nbsp산에 있는 다람쥐나 토끼 한마리와 같이 우리 인간들도 그냥 나고 죽습니다. 다람쥐도 토끼도 괴롭다고 하면서 살고 있지 않는데 인간이 더 괴롭다고 하는 것은 잘못된 것입니다. 얼마나 속박을 받았으면 날고 있는 새를 부러워 하겠어요. 자기의 아상에 지나치게 집착하거나 자기를 지나치게 우월하게 여기기 때문에 생기는 문제입니다. 삶이란 단순하게 생각해야 합니다. 그래야 훨씬 행복하게 됩니다. 세상은 내 뜻대로 되지 않습니다. 두번 세번 해보고 안되면 그만두고 다른 일을 해보면 됩니다. 이렇게 가볍게 생각하면 행복하게 살 수 있습니다. 자신의 주어진 상황을 긍적적으로 받아들이면 행복해집니다. 그러면 하나님이 보시기에도 좋아보일 것입니다. 그렇게 가볍고 기쁘게 살아가시길 바랍니다.”nbspnbsp처음부터 목이 갈라져서 걱정을 많이 했는데 목이 아픈대도 불구하고 2시간 20분동안의 강연을 마치니 참석자들이 스님께 큰 박수로 감사함을 표했습니다. 법륜스님 강연의 주제는 언제나 행복과 자유입니다. 스님께서는 우리가 어떤 경우에도 행복하고 자유로와야 한다고 말씀하시는데 오늘도 132명이 스님과 함께 하여 행복과 자유에 관하여 즐겁고 행복한 시간이 되었습니다.행사를 마치고 나서 바로 스님께서는 책 사인을 할 자리로 옮겨서 길게 줄을 서서 기다리고 있던 분들께 한사람 한사람 사인을 해주시고 기념 사진촬영도 해주셨습니다. 줄을 서서 기다리는 동안 사인을 받는 분들께 오늘 강연이 어떠했냐고 물어보니 다들 너무 좋았다고 특히 뭐가 더 좋았냐고 하니 전부 다 좋았고 많은 깨달음이 있었다고 하였습니다. 참석한 많은 분들이 유학생이었는데 공부하는데 많은 도움이 될 것 같다고 하였습니다.nbspnbsp그리고 스님께서는 이번 행사의 총 책임을 맡은 버팔로 대학교 대학원에서 공부하는 최지혜님과 스님 일행의 식사를 준비한 로체스터에 계시는 손정애님께 사인을 하여 책을 선물로 드렸습니다. 손정애님은 스님께 공양 올리기 위하여 1시간 30분 정도 떨어진 로체스터에서 음식을 준비해오셨습니다. 그리고 자원봉사자 7명과 함께 사진촬영을 하고 김영수 시몬 신부님께도 감사함을 담아 사인을 하여 새로운 백년 책을 선물하고 기념촬영을 하였습니다.nbsp버팔로는 김영수 시몬 신부님께서 흔쾌히 강연장과 숙소를 제공해주셨으며, 또 성당 청년들이 자원봉사를 할 수 있도록 임금이 지구장에게 소개시켜주셔서 오늘 행사가 성공적으로 끝날 수 있도록 물심양면으로 지원을 해주셨다고 하였습니다.nbspnbsplt스님 왼쪽이 식사를 준비해주신 손정애님, 오른쪽이 강연을 준비해주신 최지혜님gt스님께서는 내일 강연을 위하여 숙소로 올라와 업무를 보고 휴식을 취하셨습니다. 수요일부터는 매일 하루 2번 이상의 강연 혹은 미팅이 있기 때문에 내일까지는 충분히 휴식을 취하여야 합니다. 그리고 숙소에서 저는 스님과 잠깐 내일 일정에 대해서 의논을 하고 제 숙소로 돌아와서 스님의 하루를 정리하고 저의 업무를 보았습니다.nbsplt성김대건 성당의 김영수 시몬 신부님gtnbsp버팔로 강연은 한인성당이 후원하지 않았으면 행사자체가 어려웠다고 합니다. 많은 분들이 버팔로에서 강연 포스터가 보이지 않은 곳이 없었다고 할 정도로 버팔로 대학교 및 한인 식당, 상가 등 구석구석에 자원봉사자들이 포스터를 붙이고 홍보를 해주었다고 합니다. 버팔로 대학교의 김욱수 교수님은 도대체 누가 자원봉사를 했느냐고 궁금하기도 하였다고 합니다. 중간고사와 겹쳐서 학생들이 바쁜 가운데 정말 열심히 홍보를 하고, 행사 당일날 자원봉사도 해주어서 감사했습니다. 봉사했던 학생들도 이곳까지 스님께서 오셔서 강연을 해주시고 또 강연 자체가 많은 깨달음을 갖게 해주었다며 즐겁고 좋아했습니다. nbsp이렇게 많은 분들의 정성과 자원봉사로 오늘 35번째 미국 버팔로 강연도 잘 진행되었습니다. 내일은 36번째 강연이 미국 시라큐스 대학교에서 열립니다. 내일은 시라큐스에서 뵙도록 하겠습니다. ▼nbsp법륜 스님의 세계 100회 강연, 지난 날짜 소식 보기
2014.9.28 세계 100회 강연(34) 캐나다런던
안녕하세요. 오늘은 법륜 스님의 세계 100회 강연 중 34번째 강연이 캐나다의 온타리오주인 런던에서 열리는 날입니다.nbsp스님께서는 미국에 도착하신 이래로 건강을 회복하여 강연에 집중하기 위해 계속 휴식을 취하고 계십니다. 그래서 오늘도 오전에는 충분히 휴식을 취한 다음에 행사장으로 이동하셨습니다. 저희는 아침 식사를 하고, 휴식 및 빨래 등 개인 업무를 보고 난 다음에 점심 식사를 하고 행사장으로 출발하였습니다. 스님은 캐나다 런던으로 떠나기에 앞서 작년에 이어 올해도 숙소를 제공하고 스님 일행에게 식사를 준비해주신 정연희님께 스님 사인을 한 인생수업 책을 선물로 드리면서 감사의 인사를 한 후에 둘째 아드님과 기념 촬영을 한 후 12시에 런던으로 출발하였습니다. nbspnbsplt정연희님과 둘째 아드님gt캐나다 런던은 인구가 약 43만명인 비교적 작은 도시이나 인근에 유명한 워털루 대학이 있고, 미국 국경과 가까워서 그런지 한인들이 오타와 보다 많은 약 4천명 정도가 거주한다고 합니다. 어제 묵은 숙소에서 런던 행사장까지 2시간 정도 걸려서 도착하였습니다. 런던으로 오는 길은 한국의 가을 걷이를 끝내고 있는 어느 농촌 마을의 평화로운 풍경처럼 마음이 평화로워졌습니다.nbsp오늘 캐나다런던 강연장은 조그만 호텔 의 Conference Room을 예약하여 장소를 마련하였습니다. 그래서 스님께서는 행사장에 도착하여 행사팀에서 마련한 휴게실에 휴식을 취하셨습니다. 행사를 진행하는 자원봉사 두 분이 스님께서 이곳 런던을 방문해 주심에 감사드린다고 휴게실에서 삼배로 스님께 인사를 올렸습니다.nbsp“캐나다 런던에서 이런 행사가 열린 것 자체가 처음있는 일”이라며 행사장에서 총괄하는 책임자는 “한 50명정도 오지 않겠냐”고 하였습니다. 그러나 행사를 시작하자 계속 사람들의 입장이 이어져서 의자를 계속 셋팅하고도 의자가 모자라 바닥에도 앉게 되어 최종적으로 약 160명의 사람들이 참석하였습니다. 스님께서는 환영 영상과 소개 영상이 나오자 2시 50분에 무대위로 올라가셨습니다. nbspnbsp“안녕하세요 반갑습니다. 오늘 일요일인데 놀러 안가시고 이곳에 오셨네요. 교회는 다녀오셨어요? 교회 다녀오신 후에 강연 오시라고 오후 3시에 강연을 마련했습니다. 이곳에 절은 없지요? 절에 다녀오신 분은 없을 것이고요. 저도 이번에 강의를 잡으면서 캐나다에 런던이 있는 줄 처음 알았습니다. 런던에서 한다고 하니 영국 런던 강연과 얼마 떨어지지 않아서 강연이 또 있으니 잘못되었다고 고치라는 문의가 많이 왔고, 영국 런던과 헷갈려 하시는 분들이 많았습니다. 런던에 사는 소감이 어때요?”nbsp“아주 좋아요” nbspnbsp오늘 제가 여러분들께 특별히 전달할 메세지가 있는 것은 아니예요. 인생은 자기 좋을대로 살면 된다는 것이 저의 생각입니다. 혹시 인생을 살아가면서 힘든 것이 있다면 대화를 통해서 조금 더 나은 길을 찾아보자고 말씀드리고 싶어요. ‘인생에는 정답이 없다’ 이런 얘기입니다. 그런데도 세상은 인생은 이렇게 살아야 된다, 저렇게 살아야 된다는 너무 많은 주장이 있어서 오히려 인생살이가 헷갈리기도 합니다. 그래서 인생은 그냥 자기 좋을대로 살면 됩니다. 다만 몇가지 제한이 있는데 같이 살기 때문에 이것은 어쩔수 없는 것 같아요. 사람은 다 누구나 자기가 살 방도를 마련할 수가 있지만 남을 헤칠 자유는 없어요. 사람은 누구나 다 자기 이익을 추구할 권리가 있지만, 남의 이익을 침해할 권리는 없어요. 사람은 누구나 다 행복하고 사랑할 권리가 있지만 남을 괴롭힐 권리는 없어요. 사람은 누구나 다 마음껏 말할 자유가 있지만 남을 속일 자유는 없어요. 이런 정도의 한계를 제외하고는 사람은 좋은대로 살면 됩니다.nbsp그런데 쥐가 쥐약을 먹듯이 쥐는 살려고 먹는데 결과적으로 죽습니다. 그런데 이런 경우는 나쁜게 아니라 어리석은 것으로 자기가 자기를 손해끼치고, 자기가 자기를 해치고, 자기가 자기를 괴롭히고, 자기가 자기를 속이는 사람입니다. 이런 어리석은 것은 깨우쳐야 합니다. 어린이들은 어리석기 때문에 인생을 잘 살도록 어른들이 깨우쳐 주어야 합니다. 그런데 가끔 어른이 되었는데도 자기가 자기를 해치는 분이 의외로 많은 것 같아요. 더 행복할려고 한 행동이 더 나쁜 결과를 가져온다면 이럴 때는 조정을 해보고, 원인 규명을 해보면 좀 더 나은 결과로 나아갈 수 있습니다. 그래서 오늘 저하고 여러분들이 제기하는 문제, 그것이 개인 문제든, 사회 문제든, 종교 문제든, 과학 문제든, 인간역사 문제든, 자연 문제든, 환경 문제든 주제에는 전혀 구애받지 말고 자기가 평소에 의문이 있거나 얘기하고 싶은 고뇌가 있으면 자유롭게 얘기해보도록 합시다. 대화방식도 제한이 없고, 주제도 없고, 그냥 대화하듯이 두서없이 얘기해도 됩니다. 자, 누구든지 시작해보겠습니다.”nbsp이렇게 말하시면서 3시부터 바로 질문을 받았습니다.오늘은 총 9명이 스님께 질문을 했습니다. 스님의 영문저서 True Freedom을 읽었는데 한국의 예가 아닌 중국의 맹모삼천지교의 예를 들어서 섭섭하다는 분, 고집과 믿음의 다른 점이 무엇인지 알고 싶은 분, 요즘 시대는 돈이 없으면 살기가 어려운데 어떻게 무소유를 실천할 수 있는지 묻는 분, 지금 하고 있는 일과 꿈꾸는 일이 반대일 때 현실을 생각해야 할지 꿈을 따라가야 할지 고민인 분, 대학을 지원할 때 하고 싶은 게 많아서 결정을 내리지 못해 고민인 분, 언니가 피해망상증으로 보호시설에 있는데 언니를 사회에 맡겨야 할지 어느 정도 도와줘야 할지 고민인 분, 선행을 할 때 보상을 바라고 자만심이 생기는데 이것을 극복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묻는 분, 세월호 사고가 난지 6개월이 지났지만 특별법 제정이 안되고 있는데 국민들은 어떻게 해야 하는지 묻는 분 등 다양한 질문에 대해 스님께서는 정성껏 답변해 주셨습니다.nbspnbsp오늘은 그 중에서 기독교의 적극적인 전도 사상으로 인해 친구 관계에서 갈등이 생긴 기독교인의 고민과 스님의 답변을 소개합니다.nbsp“저는 기독교입니다. 가족들도 다 기독교입니다. 제 친구들 중에 절친한 중국 친구도 불교인데요. 제가 기독교인으로서 신앙이 부족해서 그런지 모르지만 친구들을 기독교로 전도를 못했어요. 그 대신 저는 캐나다에서 어려서부터 생활해 왔으니까 불교, 힌두교 등 다른 종교를 가진 친구들은 각자의 믿음이 있으니까 그것을 존중해줘야겠다는 마인드를 갖고 있어요. 그런데 기독교는 ‘무조건 전도해야한다’ 고 강조하니까 거기서 갈등이 생겨요. 한국 신문을 보니까 신부님, 목사님, 스님이 함께 토론회를 하던데, 불교에서는 기독교의 적극적인 전도를 어떻게 생각하시는지요? 종교 때문에 전쟁도 나고 하잖아요.”“종교 때문에 전쟁이 일어나는 것이 아니고, 사실은 세속적 이익 때문에 전쟁이 일어나는 것입니다. 세족적 이익을 추구하는데 종교를 이용하죠. 예를 든다면 ‘하나님을 믿으면 복 받는다’, ‘헌금 많이 하면 복 받는다’ 하는 건 돈을 많이 벌기 위해서 하는 소리이지 예수님이 그렇게 가르치지 않았거든요. ‘절에 와서 기도하면 좋은 일이 생긴다’ 이것도 부처님이 한 번도 그렇게 얘기한 적이 없어요. 세속적 이익을 추구하는 건 신앙의 본질에서 벗어난 것입니다. 그것은 깨달은 성인이 출현하기 전에 일어났던 현상으로, 원시 종교의 맥락에 있는 것입니다. 종교가 갖는 배타성도 무지에 기반을 둔 원시적인 종교 신앙에서 형성된 것입니다.nbspnbsp크리스트교의 핵심은 예수님의 가르침을 따르는 것 아닙니까? 구약을 따르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의 말씀을 따르는 것이죠. 구약의 하나님은 하나님의 말을 안 들었다고 징벌을 하잖아요. 그러나 예수님 이후의 하나님은 징벌의 하나님이 아니라 사랑의 하나님입니다.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은 사람, 창을 갖고 오른쪽 옆구리를 찔러 피흘리게 한 사람, 그 사람을 향해서 예수님은 어떻게 말했나요? 만약에 구약의 하나님 같으면 “주여, 저 두 놈을 지옥에 보내주세요” 이렇게 얘기해야 되잖아요. 그런데 “주여 저들을 용서하소서. 저들은 자기 지은 죄를 모르옵니다.” 이랬단 말입니다. 교회 안 가는 정도가 아니고 자기를 죽인 사람에 대해서도 그렇게 얘기했단 말입니다. 여기에는 이 두 사람에 대한 예수님의 온전한 이해가 있어요. 그 두 사람은 요즘 같으면 그냥 교도소의 공무원이었어요. 판결이 나면 그냥 형을 집행하는 사람이었어요. 늘 아침에 출근해서 사형장에 사람이 나오면 십자가에 못 박고 하는데 빨리 죽어야 새로운 사람을 또 매달을 수 있으니까 빨리 안 죽으면 창으로 찔러서 죽이고 했던 그런 사람이었습니다. 오늘날 도실장에 근무하는 사람, 생선가게에 근무하는 사람을 지옥에 보낸다고 하면 자기들 입장에서는 좀 억울할 것 아니겠어요. 그것은 직업이니까. 예수님은 그들을 온전하게 이해했기 때문에, 그들이 나쁜 놈이지만 용서해주라는 것이 아니라 ‘저들은 자기 지은 죄를 모르옵니다’ 이렇게 말했단 말입니다. 이것은 사랑의 하나님입니다. 하나님의 성격이 이렇게 전혀 다른데 오늘날 기독교의 대부분은 구약의 하나님으로 다 되돌아가 있습니다. 사랑의 하나님이라면 어떻게 어떤 사람이 스님이 되었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지옥에 보낼 수가 있겠습니까. 교회 안 오면 지옥에 간다 이런 논리 자체가 성립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nbspnbsp유대교에서는 구원의 기준이 유대 민족이여야 한다는 점입니다. 유대 민족이면 구원을 받고 유대 민족이 아닌 모든 민족은 이방인이라고 하죠. 이방인에게는 구원이 없다는 것이 유대교의 전통입니다. 그러니 유대교는 유대인 말고는 아무도 안 믿잖아요. 유대인이 아니면 구원을 못 받으니까요. 그런데 예수님께서는 유대교의 특수성을 보편화시킨 분입니다. “이방인에게도 구원이 있습니까?” 라고 예수님께 물으니까 예수님께서 “이방인에게도 구원이 있다” 말씀하셨습니다. 그런데 이 얘기를 이방인을 앞에 두고 얘기했으면 하나도 이상하지 않은데, 유대인을 앞에 두고 이방인에게도 구원이 있다고 얘기하니까 유대인의 전통에서 볼 때는 말도 안 되는 소리가 된 것입니다. 오늘날 “이교도에게도 구원이 있다”고 얘기하면 기독교에서 쫓겨나겠죠? 그러니 당연히 예수님은 전통 종교로부터 배척 받을 수밖에 없었습니다.nbsp그래서 사람들이 물었어요. “이방인에게 어떻게 구원이 있습니까”. 그러니 예수님께서 이렇게 말했어요. “여기 중환자가 하나 있다. 바리새 교도와 율법 학자는 지나가면서 돌보지 않았는데, 사마리아인은 그를 불쌍히 여겨 잘 돌봐주었다. 그리고 자기 갈 길이 바쁘니까 다른 사람에게 부탁해서 돌봐달라고 하고 돌아와서 또 돌봐주었다. 이럴 때 하나님이 보시기에 누가 더 좋아 보이시겠느냐?” 그러자 청중들이 다같이 “사마리아인이요” 이렇게 말했습니다. 이것이 선한 사마리아인의 얘기이고, 이방인에게도 구원이 있다는 반증입니다. 구원의 기준이 민족과 인종에서 보편적으로 변한 것입니다. 어느 민족이냐 어느 인종이냐가 중요한 것이 아니고 이 작은 자 한 사람에게 어떤 마음을 내고 어떤 행동을 했느냐가 구원의 기준이라는 것입니다. 구원의 기준이 완전히 바뀌어 버렸어요.nbspnbsp마태복음 25장에 “최후의 심판 날 왕께서 오셔서 산 자와 죽은 자를 다 일으켜 세워서 양 때와 이리 때를 나누듯이 둘로 나누고 한편에 앉은 자들에게 ‘너희는 지옥의 불구덩이에 떨어지리라’ 하니, ‘주여, 왜 우리가 지옥에 떨어져야 하니까?’ 하니까 ‘너희들은 내가 주릴 때에 먹을 것을 주지 아니하였고 목마를 때에 마시게 하지 아니하였고 나그네 되었을 때에 영접하지 아니하였고 벗었을 때에 옷 입히지 아니하였고 병들었을 때와 옥에 갇혔을 때에 돌아보지 아니하였느니라’ 하시니, ‘주여, 주가 언제 그런 적이 있었습니까’ 하니 이 세상에서 ‘지극히 작은 자 하나에게 하지 아니한 것이 곧 내게 하지 아니한 것이니라’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구원의 기준이 아주 명백합니다. 유대인이라고 구원 받는다든지, 교회 다닌다고 구원받는다든지 이렇게 안되어 있어요. 이 세상에서 가장 작은 자 하나에게 너가 어떻게 했느냐, 이것이 구원의 기준입니다.nbsp예수님의 가르침에 의한다면 오늘날 제3세계에서 굶어죽는 사람들을 돕고, 병든 사람을 치료하고, 물 없는 마을에 가서 식수를 파주고, 국제 난민들을 돕고, 억울하게 감옥에 갇힌 자들을 구제하는 것이 천국으로 가는 길이지 다른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러니 불교가 더 나으냐, 기독교가 더 나으냐, 하는 질문은 무의미합니다. 불교 신자들도 부처님과는 아무런 관계없는 것을 믿고 있는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사람이 욕심을 부리면 죽어서 돼지가 되고, 미련하면 소가 되고 이런 것은 대부분 힌두교적인 사고입니다. 성인과는 관계가 없다는 것입니다. 불교냐 기독교냐가 중요한 것이 아니고 각각 본래 성인의 가르침으로 돌아가는 것이 중요합니다. 본래 가르침으로 돌아간다는 관점만 갖는다면 서로 대화가 가능해집니다. 공통점이 굉장히 많아집니다.nbsp불교에서 “내 인생의 주인이 되라”는 얘기가 성경에도 다 있습니다. 성경에 “5리를 가자면 10리를 가주라. 겉옷을 달라 하면 속옥까지 내어주라. 왼뺨을 때리면 오른뺨을 대주라” 이런 말은 주어진 상황에서 주인으로 살아라는 가르침입니다. 선한 사마리아인의 이야기는 불교적으로 보면 인연과보를 설명하는 것입니다. 너가 어떤 인연을 짓느냐에 따라서 과보가 생긴다는 얘기거든요. 용어는 중요한 게 아니에요. 용어만 다르지 그 핵심 내용은 일맥상통해 있습니다. 그런 측면에서 불교냐 기독교냐 하는 논쟁이 아니라 진리의 길로 되돌아가는 것이 필요합니다. 거기에는 불교적인 지혜도 필요하고, 기독교적인 지혜도nbsp필요하고, 과학적인 지혜도 필요하고, 인류가 지금까지 발견한 많은 지혜들을 모아서 우리가 어떻게 더 자유롭고 행복한 세계로 나아갈 것인가가 연구되어야 합니다.nbsp예수님은 “진리가 너희를 자유케 하리라” 그랬잖아요. 유대인들은 편협되어 있었기 때문에 이방인에게도 구원이 있는 줄 알지 못했는데, 예수님은 그 편협함을 깨어버렸기 때문에 진리를 인류 보편적으로 적용하신 것입니다. 내가 교회를 다니기 전에는 불교나 힌두교를 잘 이해하지 못했는데, 내가 기독교 신앙을 가지면서 다른 신앙을 이해하게 되었다고 해야 자유의 폭이 넓어진 것 아니겠어요? 그런데 오늘날은 멀쩡하던 사람이 불교나 기독교를 믿으면 더 폐쇄적이 되고 배타적이 된다면 그것은 원래의 가르침에서 벗어나는 것입니다. 그런 면에서 질문자가 진실로 기독교 신자라면 ‘예수님의 가르침을 내가 실천하지 못한 것을 어떻게 실천할까?’ 여기에 삶의 초점이 맞춰져 있어야 됩니다. 그렇게 신앙을 갖고 살아갈 때 옆에 있는 친구들이 감화를 받습니다. 놀러가도 휴지를 줍고, 청소도 하고, 허드렛일은 다 하고, 그래서 감동이 되어서 ‘나도 교회에 한번 가볼까?’ 이렇게 되는 것이 전도이고 선교입니다. 배고픈 사람한테 가서 빵을 딱 내어놓고 기독교 믿으면 주고 안 믿으면 안 준다 하는 것은 전도가 아닙니다.nbsp그러나 요즘 개신교의 지나친 배타성은 국민적 저항을 불러오잖아요. 우리가 평화를 유지하려면 개신교가 각성을 하는 것도 방법이지만, 각성은 자기 스스로 하는 것이지 옆에서 강제로 시키는 것이 아니잖아요. 그래서 저는 그런 개신교의 배타성도 인정하자는 것입니다. 배타성마저도 포용해줘야 평화가 온다는 것입니다. 평화로 가는데 이익을 논해서는 안 되거든요. 남북 간에 대화를 하려면 우리는 북한의 배타성을 인정해줘야 해요. 북한의 처지를 이해하고 대화를 해야 대화가 되지 “내 한번 갔으니, 너도 한번 와라” 이렇게 하면 대화가 안 됩니다.nbsp그런데 저는 목사님과 북한동포돕기를 같이하면서 친해져서 매년 크리스마스 때마다 찾아가서 찬송가도 부르고, 목사님도 절에 와서 설교를 해주시고, 초파일 날에는 성당에서 성가대가 와서 노래를 불러주고 합니다. 그리고 이번 세계 100강을 할 때도 성당에서 강연하는 것이 열 번이 넘습니다. 또 강연 주선을 목사님이 많이 해주셨어요. 이렇게 교류를 하고 있는데, 친구를 자꾸 종교로 접근해서 끌어들이려고 하는 것은 올바른 자세는 아닙니다. 친구는 그냥 친구로서 지내야 합니다. 불교든 힌두교든 무슬림이든 인종이나 민족을 차별하지 말고 친구는 평등하게 대하라는 것이 예수님의 가르침입니다.nbsp그런데 친구 중에 자기가 행동하고 말하는 것을 보고 ‘나도 한번 교회에 가고 싶다’ 할 때는 굳이 “오지 말라” 할 필요도 없습니다. 그런 면에서 신앙은 자기 행복이 더 우선되는 것이 중요합니다. 이번에 유럽에서 강연을 할 때도 부인이 스님의 유튜브 법문을 듣고 삶의 자세가 바뀌는 것을 보고 감동을 한 외국인 남편들이 강연 준비를 많이 도와주었거든요. 유럽의 어떤 가족은 아내가 짜증을 내면 남편이 “법륜 스님 법문, 법문...” 그런다고 합니다. 이렇게 삶의 자세가 바뀌면 그 어떤 것도 필요 없이 관심이 생겨서 찾아가게 되거든요. 신앙의 핵심은 삶의 행동입니다. 시어머니가 아무리 독실한 불교신자라고 하더라도 고집이 세고 아집이 강하면 며느리는 시어머니가 싫어서 불교도 싫어집니다. 선교는 삶의 모범을 보여주는 것입니다.nbsp그리고 강제는 안되지만 알림은 필요합니다. 몰라서 그 길을 못갈 수 있잖아요. ‘여기 교회가 있습니다’, ‘여기 이런 공부가 있습니다’ 이렇게 알릴 뿐이지 오고 안 오고는 그 사람의 문제입니다. 숫자를 채우기 위해서 사람을 끌고 오는 방식은 상업적인 호객행위와 같습니다.nbsp이렇게 하여 스님께서는 5시 10분에 질문자의 모든 질문에 답변을 마치고 다음과 같이 정리말씀을 해주셨습니다.“우리 인생살이는 너무 무거우면 안됩니다. 가볍게 살아야 합니다. 신부님, 목사님, 스님들이 일반 재가 신자들보다는 평균적으로는 욕심이 적습니다. 그런데 신자들이 행복할까요? 신부나 스님들이 행복할까요? . 왜그럴까요? 그것은 바로 신부님이나 스님들은 굉장한 사명감을 가지고 있어요. 인생을 무겁게 산다는 거에요. 무거우면 행복해질 수 없어요. 어깨가 너무 무겁기 때문이에요. 그래서 부모님들이 자식들에게 특히 엄마가 너무 잘해 주면 자식들은 부모에게 효도해야 하는 무거운 짐을 지고 있기 때문에 인생이 무거워집니다. 자기 인생를 살지 못합니다. 부모가 볼 때는 효도한다고 하지만 사실은 부모의 노예입니다. 자유인이이 아니예요. 누구도 노예가 되어서는 안되고 자유인이 되어야 합니다. 스님, 신부님들은 사명감이 크기 때문에 무거워요. 스님은 깨달아야 한다, 목사님은 선교해야 한다는 사명감을 크게 가지고 있기 때문에 행복도도 떨어지고 웃음이 적어요. 늘 긴장되어 있고 늘 어깨에 무거운 짐을 지고 있어 무겁게 보입니다. 스님이 된다고 신부님이 된다고 행복해지는 것은 아니예요. 인간은 다 똑같아요.nbspnbsp살아있는 모든 인간은 행복할 권리가 있습니다. 피부색이 검고, 희고, 남자도, 여자도, 기독교도, 불교도, 무슬림도, 장애자도, 비장애자도, 성적취향이 동성애자도, 이성애자도, 그 무엇이든 살아있는 모든 존재는 어떤 경우에도 행복할 권리가 있어요. 이것이 부처님 말씀이예요. 이것은 일체 중생은 다 부처다라는 말입니다. 모든 것에 불성이 있다는 것이예요. 그래서 우리는 어떤 경우에도 자기 인생의 주인이 되어야 하고 행복하게 살아야 합니다. 그런데 그 자유와 행복이라는 것이 우리는 늘 밖으로 구하기 때문에 늘 행복하게 살지 못하고 종속적으로 살게 됩니다. 그것이 자기로부터 일어난다는 것을 알게 되면 자기인생의 주인이 될 수 있고 스스로 행복을 만들어 갈 수 있어요. 행복은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만들어 가는 것이라는 것을 알게 되요. 결혼한다고 이민 온다고 행복해지는 것이 아니라 행복은 자기 하기 나름이예요.nbsp지금 연세드신 분들은 고국이 그립지요? 그런데 한국에 돌아가면 또 살기 어렵습니다. 어떤 분들은 여기서도 이방인 저기서도 이방인이라고 하는데 남한테 자꾸 견주어서 자기 정체성을 쌓기 때문에 그래요. ‘캐나다 사람 중에 나는 한국을 가장 잘 알고, 나는 한국 사람 중에 캐나다를 가장 잘 알고, 나는 두 개 다 안다.’ 이것을 정체성으로 삼아야 합니다. 이렇게 해서 행복하게 사시기 바랍니다. 감사합니다.”nbsp이렇게 말씀하고 강연을 마무리 하니 건강도 좋지 않는데 2시간 25분 동안 강연을 해주신 스님께 청중들은 큰 박수로 감사를 표하였습니다. 오늘 강연에서는 젊은 학생에 대한 따뜻한 격려의 말씀, 그리고 스님의 애정어린 답변이 끝날때 마다 참석자들이 큰 박수로 스님께 화답을 해주어서 보는 내내 집중된 분위기 속에서 화기애애하고 행복한 시간이 되었습니다.nbspnbsp행사를 마치고 바로 스님께서는 책 사인을 할 자리로 옮겨서 길게 줄을 서서 기다리고 있던 많은 분들 한사람 한사람 사인을 해주시고 기념 사진촬영도 함께 해주셨습니다.nbsp어제 캐나다 토론토 강연장에서 밖에서 자원봉사하느라 스님 강연을 듣지 못했던 토론토 자원봉사자들은 오늘은 강연장이 아주 작고 소박한 덕분에 강연장 안에서 함께 안내하면서 스님의 강연을 들었는데, 소감을 들어보니 모두들 너무 좋고, 특히 스님께서 젊은 학생의 눈물어린 질문에 상세하고 자상한 답변을 해주시는 모습에 큰 감동을 받았다고 하였습니다.nbsp그리고 스님께서는 자원봉사자들과 단체사진 촬영을 한 다음에 자원봉사자 모두들에게 단주를 선물로 손목에 끼워주셨습니다.nbsp그리고 런던강연을 맡아 행사진행한 워털루열린법회의 김재명법우님과, 캐나다런던 지역에서 행사를 할 수 있도록 물심양면으로 준비해주신 정정완님과 최용구 한인회장님께 사인을 한 책을 선물로 드렸습니다.nbspnbsplt정정완님gt스님께서는 자원봉사자들에게 몸이 좋지 않아 함께 나누기도 못하고 먼저 숙소로 들어가니 묘덕법사님, 김정란 총무님과 함께 나누기를 하면 좋겠다고 하시면서 자원봉사자들을 격려한 후 오늘 숙소가 있는 캐나다 나이아가라 폴로 6시에 출발을 하였습니다. 내일 미국으로 넘어가기 쉽도록 하기 위해서 바로 미국캐나다 국경 지역인 나이아가라 폴로 2시간 정도 운전해 갔습니다.nbspnbsp오늘 하루 밤을 묵게 될 Inn에 도착하여 짐정리를 한 후에 스님께서는 간단히 죽으로 요기를 하고 휴식을 취하셨습니다. 짐정리를 하고 보니 거의 10시가 다 되었는데, 호텔에서 오늘 밤 10시에 불꽃놀이가 있다고 하여 스님을 모시고 폭포 근처로 가니 5분만에 싱겁게 불꽃놀이가 끝나서 숙소로 돌아왔습니다. 스님께서는 내일 강연을 위하여 충분히 휴식을 하여야 하기 때문에 저는 스님과 잠깐 내일 일정에 대해서 의논을 하고 제 숙소로 돌아와서 스님의 하루를 정리하고 저의 업무를 보았습니다.nbspnbsp오늘 런던 자원봉사자들은 18명 정도 되었는데 마음나누기에 10명 정도 참석하였습니다. 스님의 즉문즉설 유튜브를 본다는 젊은 커플과 가족들이 참가하였는데, 이분들은 런던에서 이런 행사를 하게 되고, 또 함께 자원봉사를 해서 좋았다고 하였습니다. 그리고 행사를 준비함에 있어서 함께 마음을 맞추어서 하는 곳이 잘 없는데 이번에는 이렇게 마음을 맞추어서 행사가 잘 끝나서 기분이 굉장히 좋다고 하였습니다. 그리고 모녀지간에 참석하신 분은 가족들이 다 자원봉사에 참가하고 싶었는데 남편이 미국 출장으로 함께하지 못해 아쉽다고 하였습니다. 그리고 런던에도 모임이 생겨서 함께 마음공부를 할 수 있으면 좋겠다고 하였습니다.nbspnbsplt왼쪽 제일 끝이 런던 강연 총책임을 맡은 워털루열린법회 담당자 김재명님gt이렇게 많은 분들의 정성과 자원봉사로 오늘 34번째 캐나다 런던 강연도 성황리에 잘 마무리 되었습니다. 내일은 35번째 강연이 미국 뉴욕주의 버팔로에 열립니다. 내일은 미국 버팔로에서 뵙도록 하겠습니다.nbsp ▼nbsp법륜 스님의 세계 100회 강연, 지난 날짜 소식 보기
2014.9.27 세계 100회 강연(33) 캐나다 토론토
안녕하세요. 오늘은 법륜 스님의 세계 100회 강연 중 서른 세번째 강연이 캐나다의 온타리오주 토론토에서 열리는 날입니다.nbsp노향숙님과 친구분들이 오셔서 어제 저녁 및 오늘 아침 식사를 준비해주어서 스님 일행은 오전 7시에 아침 식사를 하였습니다. 노향숙님은 오타와에서 스님 강연이 열린다고 하길래 정말 기쁜 마음으로 숙소와 식사 대접을 하고 싶다고 행사준비팀에 먼저 연락을 주셨습니다. 스님께서는 숙소와 식사준비를 해주신 노향숙님께 인생수업 책에 사인을 하여 선물로 드리고 함께 기념촬영을 하고 하룻밤 편안하게 숙박하고 식사까지 대접해주셔서 감사드린다 고 인사를 하셨습니다. 그리고, 오전 7시 30분에 토론토로 출발하였습니다. nbspnbsplt노향숙님gt캐나다 수도인 오타와와 캐나다 동부 최대의 도시인 토론토가 속해있는 온타리오주는 호수와 강의 땅입니다. 오타와에서 토론토로 가는 길은 온타리오 호수 북쪽편을 끼고 달리는데 이 길은 Thousand Islands Parkway로 세인트 로렌스 강을 따라가는 고속도로 입니다. 온타리오 호수에 있는 천개의 섬을 천섬이라고 하는데 이 천섬은 온타리오 호수 내에 있는 유명한 관광 명소입니다. 온타리오 호수는 남쪽으로는 미국의 뉴욕주와 북쪽으로는 캐나다 온타리오주가 둘러싸고 있는데 미국쪽에는 로체스터에서 천개의 섬으로 들어가는 유람선이 있고, 캐나다 쪽에서는 킹스톤에서 천섬으로 가는 유람선이 있습니다. 저희는 천섬을 둘러보지는 못하지만 고속도로를 따라 가는 길에 잠깐 화장실도 들를겸 호수를 구경하기로 하고 잠시 호수쪽으로 들어갔습니다.nbsp호수인지 바다인지도 모를 정도로 넓은 온타리오 호수를 잠시 감상하고, 토론토로 오는 길에 마지막 휴게소에 들렀는데 어떤 분이 법륜 스님께 인사를 하면서 천주교 신자인데 스님의 즉문즉설을 듣고 있다고 하면서 반갑게 인사를 하였습니다. 다시 길을 들어 1시쯤에 토론토의 정연희님 댁에 도착하였습니다. 정연희님 댁에 와서야 저희도 스님께 아직 인사를 못드린 것이 생각나서 정연희님과 함께 스님께 삼배로 인사를 드리고 정연희님이 준비해놓은 음식으로 점심 식사를 하고는 휴식과 각자의 업무를 한 후 행사장으로 출발하였습니다.nbsp오늘 한인회에서는 마라톤 대회를 개최하여 한인회관 주변에 도로를 막아두고 있었기 때문에 강연 준비를 하던 자원봉사자들은 청중들이 적게 올까봐 걱정을 하였다고 하였습니다. 토론토 한인회관은 2012년, 2013년에 이어서 3번째로 같은 장소에서 강연을 하게 되었습니다. 행사장으로 들어서니 벌써 많은 자원봉사자들이 안내를 하고 있었는데 이번 강연은 지난 6월에 개원한 토론토 법당의 불교대학생들이 중심이 되어서 준비를 하였다고 합니다.nbsp스님께서는 강연장에 도착하신 후 책 사인을 위해 줄을 서 있던 분들께 책사인회를 해주시고 강연장에 오신 분들과 인사를 하였습니다. 이어 스님소개 영상이 나온 후 5시에 무대에 오르니 큰 박수로 참가자들이 스님을 반갑게 맞이해 주었습니다. 토론토는 약 550만명의 인구가 살고 있으며 이중에서 한인들은 약 65,000명 정도 거주한다고 합니다. 그런데 오늘 강연에는 450여명이 함께 하여 많은 분들이 주말임에도 불구하고 행사장을 찾아주었습니다.nbspnbsp스님께서는 먼저 “안녕하세요. 주말인데 놀러도 안가고 여기에 오셨어요? 다들 놀러가고 아무도 안올 줄 알았습니다. 유럽 순회강연을 하고 미주로 오는 관계로 조금 목을 다쳤습니다. 감기 몸살에 목이 쉬었으니 목소리가 듣기 싫더라고 좀 참아주세요. 그리고 무대가 너무 높아서 서서 하면 높아지니 앉아서 하겠습니다” 라고 양해를 구하시면서 처음으로 자리에 앉아서 강연을 시작하셨습니다.nbsp그리고 자원봉사자 분들과 한인회 관계자들께 감사인사를 하셨습니다.nbsp매년 토론토는 한인회의 좋은 공간에서 편안하게 강연을 하고 있습니다. 2012년, 2013년에 이어서 올해도 이렇게 좋은 공간에서 강연을 할 수 있도록 해주신 토론토 한인회장님 이하 관계자 여러분들께 진심으로 감사를 드립니다. 그리고 오늘 이 행사에 자원봉사를 하고 있는 분들께도 진심으로 감사를 드립니다. 저의 이 강연은 완전 무료로 진행됩니다. 자원봉사하는 분들이 장소도 정하고 포스터도 붙이고 홍보를 해서 강연이 이루게 지게 된 것입니다. 이분들의 수고를 위해서 감사드립니다.” nbsp그리고, 유튜브를 통해서 즉문즉설을 보신 분들을 손들라고 하니 약 23 정도가 손을 들었습니다. 해외에서는 유튜브의 열기가 뜨겁다는 것을 과연 실감할 수가 있었고, 많은 분들이 유튜브를 통해서 삶이 바뀌었다고 하고, 한 분은 외국인 분인데 자기 와이프가 매일 컴퓨터 앞에서 스님을 매일매일 보고 있다고 하면서 즐거워하였습니다.nbsp스님께서는 “즉문즉설 강연은 어떤 특정한 메세지를 전달하기 위해서 하는 것이 아니라 인생의 여러 문제를 대화를 통해서 해결하는 방식입니다. 그러니 nbsp어떤 주제도 좋습니다. 종교 얘기, 사회 얘기, 정치, 과학, 인생 등 주제는 제한이 없고, 얘기하는 방식에도 제한이 없습니다. 어떤 애기를 어떤 방식으로 해도 좋습니다. 자 시작해 볼까요?” 라면서 바로 질문을 받으셨습니다.nbspnbsp오늘 강연에서는 총 10명이 질문을 했습니다. 두려움, 슬픔, 분노가 많은데 순간순간 자신을 다스리는 방법에 대해서 알고 싶다는 분, 큰집에서 시부모님 제사를 지내고 있는데 자신도 따라 제사를 지내도 되는지 묻는 분, 심리 상담사인데 상담자들의 상처가 자꾸 생각나서 마음이 무겁고 상담을 잘했는지 죄책감도 드는데 어떻게 마음을 다스려야 하는지 묻는 분, 우울증이 와서 휴학을 반복하고 있는데 자신을 극복하는 방법을 묻는 분, 친정어머니가 돌아가실 때 장례식에 가지 못해 마음이 너무 불편하다는 분, 인간이 이기적이라는 사실을 알고 인간관계가 편해졌는데 뭔가 허전한 마음이 들어 고민인 분, 전생에 지어진 운명이 있는 것인지 궁금한 분, 박사과정 5개월만에 이 길이 내 길이 아니란 생각이 들어 고민인 분, 캐나다의 이혼율이 40라고 하는데 결혼해서 잘 살려고 하면 어떤 마음으로 살아야 하는지, 그리고 천생연분이란 것이 정말로 있는지 궁금한 분 등 다양한 질문에 대해 스님께서는 정성껏 답변해 주셨습니다.nbsp오늘은 그 중에서 마지막 열번째 질문인 한국 문화와 캐나다 문화 사이에서 고통받는 친구들을 어떻게 도와주어야 할지 고민인 캐나다 교포 1.5세 친구의 질문과 스님의 답변을 소개합니다.nbspnbsp“저는 캐나다에 11살 때 온 교포 1.5세입니다. 어렸을 때는 한국에서 자랐고 커서는 캐나다에서도 자랐고 그래서 한국과 캐나다의 문화를 함께 접했기 때문에 두 문화를 잘 이해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한국 사람들과 있을 때와 캐나다 사람들과 있을 때 서로 간의 문화 차이를 많이 느껴요. 주변에 있는 사람이 고통을 받고 있는 것을 보며 ‘내가 접한 문화에서는 이렇게 해서 쉽게 해결하는데’ 하는 순간들을 양쪽에서 많이 느끼게 됩니다. 저는 그 상황에서 해결하는 방법들을 알아서 마음이 편할 수 있는데, 고통 받는 사람들을 볼 때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그 사람을 위한다면 그냥 그 사람이 가는 길을 놔두어야 할지, 옆에서 내가 참견을 해야 할지 판단이 안될 때가 많습니다. 어떤 태도를 가져야 세상에 도움이 되는 사람이 될까요?”nbsp“질문자가 좋을 대로 하시면 됩니다. 하고 싶으면 하고, 하기 싫으면 안하면 됩니다. 하고 싶어서 말을 했더니 내 말 안 들으면 그만 두면 되고요. 그러나 내 말 안 듣는다고 내가 스트레스 받으면 안 됩니다. 나를 위해서 말한 것이 아니라 그 사람을 위해서 말했기 때문에 그 사람이 말을 안 들으면 그만이지 내가 스트레스 받으면 안 된다는 것입니다. 내가 스트레스를 받는다는 것은 그를 위해서 한다고 착각했지 사실은 내 식대로 하려고 했던 것입니다. 이것을 알아야 됩니다.nbsp그래서 질문자가 스트레스를 안 받으면 말을 해주면 되고, 스트레스를 받으면 말을 안 하면 됩니다. 왜냐하면 스트레스를 받는다는 것은 나를 위해서 한 것이기 때문에 내가 안 하면 되고, 스트레스를 안받는다는 것은 그를 위해서 했기 때문에 하면 됩니다. 해야 된다, 하지 말아야 된다고 정해진 법이 없어요. 그래서 제가 즉문즉설을 하는 이유도 인생에 정답이 없기 때문입니다. 어떻게 살든 자기가 알아서 살면 되는데 물으니까 대답을 하는 것이거든요. 제 말을 받아들여서 하면 좋고, 안 해도 그만이에요. 그건 그들의 자유입니다. 안 받아들이는 것이 기분 나쁘면 제가 스트레스를 받아서 강연을 하기 싫어지겠죠. ‘묻기만 하고 얘기해줘 봐야 소용 없더라’ 이렇게 되잖아요. 묻기 때문에 그냥 저의 관점을 말하는 것이고, 그들이 그것을 듣고 동의가 되면 그렇게 하면 되고, 동의가 안되면 안해도 되고, 그것은 그들의 자유입니다. 저는 다만 할 뿐이거든요. 그래야 저도 스트레스를 안 받고 계속 강연을 할 수가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물을 것이 없으면 강연은 그냥 끝나는 것이고, 물을 것이 있으면 더 하는 것입니다.”nbsp“그 사람이 고통 받는 모습을 보면 불쌍함을 느낄 때가 있는데...”nbsp“그것은 질문자의 기분입니다. 산에 가다가 큰 나무 밑에 작은 나무가 있는 것을 보고 작은 나무를 불쌍하게 느끼면 그것은 질문자의 기분이지 작은 나무의 문제는 아닙니다. ‘내가 저 사람이 불쌍하게 느껴지는구나’ 이러고 가면 되지요. 길거리에 앉아서 구걸하는 사람을 불쌍하게 느끼는 것은 내 문제이지 그 사람의 문제는 아닙니다. 거기 앉아 있는 사람 중에는 하나도 안 불쌍한 사람도 있어요. 수행 방법에 구걸하는 것이 있거든요. 제가 수행 삼아서 다 떨어진 옷 입고 길거리에 딱 앉아 있으면 실제로 불쌍한 사람이에요? 불쌍한 사람이 아니지요. 그러나 지나가는 사람들은 다 불쌍하게 여기지요. 그러니 다 자기 문제라는 것입니다.nbsp그러니 내가 주고 싶으면 주고, 주기 싫으면 안 주면 됩니다. 왜 너는 구걸하느냐고 나무랠 필요도 없고, 내가 한푼 준다고 그 사람이 고마워할 것이라고 생각할 필요도 없고, 주는 것은 내 문제이고, 고마워하는 것은 그의 문제입니다. 항상 자기 문제라고 봐야 합니다. 그래서 내가 그 사람에게 도움이 되겠다는 마음이 들면 도움을 주면 됩니다. 밥이 필요하다고 하면 밥을 주면 되고, 돈이 필요하다고 하면 돈을 주면 되고, 필요 없다고 하면 안 주면 됩니다. 예전에 알렌산더 대왕이 작은 통 속에 살고 있는 디오게네스를 찾아가서 “도움이 필요하냐? 너가 원하는 것은 무엇이든지 다 들어주겠다”고 하니까 “비켜라. 햇빛 가리지 마라” 이렇게 얘기 했다고 하잖아요. 그런 것처럼 우리가 남을 도울 때 ‘그 사람이 불쌍하다’는 생각은 좋은 생각이 아니에요. 그러기 때문에 자기가 다시 상처를 입게 되거든요. 제가 인도에 구호활동을 가기 전에도 인도의 아이들은 다 잘 살았어요. 그런데 제가 가서 초등학교 공부를 시키니까 중학교를 가고 싶다는 생각을 낸 것입니다. 제가 만약에 초등학교 공부를 안시켰으면 그 아이들이 중학교에 갈 생각은 안냈겠죠. 중학교에 가고 싶은데 안보내주면 섭섭하죠. 고등학교 졸업했는데 대학에 안보내주면 섭섭하죠. 섭섭하니까 원수가 되어요. 우리가 도와주면 나중에 과보는 원수가 되는 것입니다. 그것이 은혜로 돌아온다고 생각하면 잘못된 생각이에요. 그래서 자선사업을 하는 사람들이 나중에 다 노후가 힘들거든요. ‘내가 도와주었다’ 이 생각을 하기 때문에 그래요. 도와주면 원수 되기가 쉬워요. 물에 빠진 사람을 건져주면 “내 보따리 내놔라” 이렇게 하기가 쉽다 이말입니다. 그런대도 왜 돕느냐? 아이들은 공부가 필요해요. 비록 원수가 된다고 하더라도 도울 것은 도와야 합니다. “내 보따리 내놔라” 하더라도 죽어가는 생명은 건져야 합니다. 칭찬받으려고 어떤 일을 하면 안 됩니다.nbspnbsp우리가 길 가는 사람과 원수되는 일은 극히 드뭅니다. 다 좋은 관계들이 원수가 되는 이유는 기대 심리 때문에 그렇습니다. 이 기대 심리를 버리는 것을 ‘무주상’이라고 합니다. 기대 심리를 갖는 것을 ‘상을 갖는다’고 하고, 기대 심리 없이 베푸는 것을 상이 없이 베푼다고 해서 ‘무주상보시’라고 합니다. 그러니까 우리가 좋은 일을 한다고 반드시 좋은 과보가 돌아온다는 것은 잘못된 생각이에요. 내가 남을 돕고도 기대가 크면 실망이 커지는 법입니다. 내가 결혼해서 만난 남자가 훌륭해서 잘 산다 이런 것이 아닙니다. 예를 들어 상대 남자의 능력이 100인데 200을 기대하고 만나면 결혼하면 실망하고, 50을 기대하고 만나면 결혼하면 만족하는 것입니다. ‘어, 생각보다 사람이 괜찮더라’ 이렇게 됩니다. 내가 기대가 크면 ‘어, 살아보니 생각보다 사람이 모자라더라’ 이렇게 됩니다. 상대의 문제가 아니라 다 나의 문제입니다. 그래서 나의 기대를 낮추면 행복도가 높아지고, 기대가 높아지면 행복도가 낮아지는 것입니다.nbsp대한민국이 경제적으로는 50년 전에 비해 260배 더 잘 살아졌지만 과연 대한민국 국민이 더 행복해졌나요? 그렇지 않습니다. 어떤 기대를 인간이 갖고 있느냐의 문제입니다. 그래서 마음공부를 해야 자신의 행복도를 높일 수 있습니다.”“그런데, 상대방이 한 행동이 정말 나쁜 행동이여서 도저히 용납이 안 될 때는 어떻게 해야 하나요?”nbsp“자기 마음에 안 들면 마음에 안 든다고 얘기하면 되지요. 마음에 안 드는 것을 마음에 든다고 거짓말 할 수는 없잖아요. 마음에 안 들면 안 든다고 얘기하면 되지 화낼 필요는 없다는 것입니다. 이 세상 모든 사람들이 다 자기 마음에 맞도록 태어나서 사는 건 아니잖아요? 사람들은 다 자기 생각대로 행동하는데 그것을 다 내 생각에 맞춰서 사람을 바꾸려고 하면 내가 힘들어지죠. 한국 사람과 캐나다 사람을 나눌 수도 없어요. 한국 사람 중에도 캐나다 사람 기질을 가진 사람이 있고, 캐나다 사람 중에도 한국 사람 같은 기질을 가진 사람이 있어요. 그러나 다수를 보면 캐나다에서는 자식이 스무살이 넘으면 과잉보호를 안하죠. 그러니 부모가 늙어서 자식 때문에 부담이 덜 되고, 자식들도 부모의 무거운 짐을 안지죠. 그런데 우리는 자식이 스무살이 넘었는데도 과잉보호 한다고 부모가 힘들고, 자식들은 부모의 무거운 짐을 지고 살아야 해서 힘들죠. 이런 것은 캐나다의 문화가 오히려 더 나아 보인다고 볼 수 있습니다. 그러나 다른 것은 한국식 문화가 더 나은 것도 있습니다. 한국은 공동체적인 성격이 많고, 캐나다는 개별적인 성격이 많다는 점에서는 캐나다 쪽이 오히려 늙으면 더 외롭죠. 이런 장단점이 있습니다. 그러나 이 장단점이라는 것도 누가 보느냐에 따라 또 달라져요. 그러니 장단점이라고 말할 수 없고 문화가 서로 다른 것입니다. 중간에서 보기에 내 취향에 이거는 캐나다가 낫고 이거는 한국이 낫다는 그 판단마저도 내가 하는 것이지 캐나다 문화와 한국 문화로 이렇게 나눌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그러니 내 견해를 상대에게 얘기할 수는 있지만 그것은 내 견해일 뿐이지 그것을 상대가 꼭 들어야 하는 것은 아닙니다. ”내가 보기에는 당신이 이런 문제가 있는 것 같은데 어떻게 생각하느냐?“ 물어보고 상대가 수용하면 다행이고, 수용하지 않으면 그만입니다. 왜냐하면 그것은 내 견해이기 때문에 그렇습니다.nbspnbsp“그렇게 되면 내 취향과 가까운 사람과는 가까워지지만 내 취향과 먼 사람과는 멀어지게 되잖아요. 나랑 맞지 않는 사람들과는 아예 만나지 않게 될 것 같은데...”nbsp“그러면 질문자만 손해이지요. 질문자의 인생살이가 그만큼 좁아지게 되는 것이죠. 질문자의 선택입니다. 취향에 맞는 사람끼리만 살려고 하면 폭이 좁아지고, 폭이 넓어지려면 취향이 다른 사람을 인정하고 살아야 합니다. 취향은 취향일 뿐이니까요. 나는 술 먹는 게 싫다면 술 안먹는 사람끼리 모여야 하고, 나는 술을 안 먹지만 술 먹는 사람들과 같이 지내려면 술집에 같이 가서 술도 따라주고 해야 합니다. 나는 담배를 안 피우지만 담배 피우는 사람들과 어울려 지내는 겁니다. 나는 불교를 믿지만 기독교인들과도 같이 어울리는 것이고, 기독교인이랑 어울린다고 꼭 기독교 신앙을 가져야 될 이유는 없잖아요. 불교를 믿는다고 기독교 신앙을 배척할 필요도 없고요. 그렇게 인생은 자기 선택입니다.nbsp자기 취향을 고집하면 인생의 폭이 좁아집니다. 또 폭을 넓히려면 자기 취향에 너무 사로잡히지 말아야 합니다. 나는 채식을 하지만 고기 먹는 사람들과 같이 식사를 할 수 있어야 여러 사람들과 같이 밥을 먹지요. ‘나는 채식만 하겠다’고 고집해서 상도 따로 차려줘야 하면 늘 혼자 밥을 먹어야 합니다. 그러나 내가 안 먹을 뿐이지 먹는 것에 대해 시비를 안 하면 사람들과 어울려 살 수 있습니다. 그러니 이것은 나의 선택입니다. 자기 가치관을 고집할것인가, 그렇지 않으면 자기 가치관을 지키되 다른 사람의 가치관도 용납할것인가에 따라서 교류의 폭이 좁아지기도 하고 넓어지기도 합니다. 넓어지는 것이 꼭 좋다 이렇게 생각해도 안 됩니다. 이렇게 해도 되고, 저렇게 해도 되고, 그것 자체는 자기 선택입니다. 인생은 자기가 선택하고, 그 선택에 대한 책임을 져야 합니다. 선택에는 좋고 나쁜 것이 없습니다. 그러나 선택을 망설이는 이유는 책임을 안 질려고 하기 때문입니다.nbsp예수님이나 부처님은 이런 원리를 가르치신 분입니다. 우리는 어리석어서 그 원리를 모르다가 그 얘기를 듣고 ‘아, 원리가 이렇구나’, ‘악하게 살면 앞으로 재앙을 받겠구나’ 이렇게 자기가 스스로 원리를 터득해서 사는 것이지 지옥 간다니까 겁을 내거나 천당 간다니까 혹해서 하는 것은 어린 아이와 같은 행동입니다.”nbsp스님께서는 청중들과 웃음과 함께 호흡하며 즐거운 시간을 갖는 가운데 벌써 2시간이 지나갔습니다. 스님께서는 오늘도 목이 많이 아픈 것 같았습니다. 처음부터 목소리가 가라앉아 있고 갈라지셨습니다. 질문에 모두 답변해 주신 후 “끝까지 들어줘서 감사하다” 하시며 “자신의 삶을 긍정적으로 받아들일 것”을 당부하면서 지금까지 나온 질문들을 정리하며 다음과 같이 닫는 말씀을 해주셨습니다.nbsp“이 세상에 태어난 사람은 그 사람이 어떤 사람이든 태어남에 의해서 주어진 것은 주어진 대로 존중받아야 합니다. 그 모든 사람은 행복할 권리가 있습니다. 태어난 아이가 성스러운 것이지, 태어나는 방식에 의해서 성스럽고 추하고가 정해지는 것은 없습니다. 어릴 때 어떤 상처가 있었든 지금 여러분들이 살아 있다면 여러분들은 지금 행복할 권리가 있습니다. 다만 여러분들은 과거에 사로잡히기 때문에, 오지도 않은 미래를 자꾸 걱정하기 때문에, 여러분들이삶이 괴롭고 근심걱정이 많은 것입니다. 그러니 지나간 과거에 연연하지 말고 오지도 않은 미래에 연연하지 말고 지금 깨어 있으세요.nbsp나는 행복할 권리가 있고 행복할 수가 있습니다. 이 말이 ”일체 중생이 다 부처다”라는 뜻입니다. 여러분들이 지금 깨어 있으면 지금 행복할 수가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이 행복과 불행이 남이 준다고 생각합니다. 하늘이 주든 전생이 주든 남편이 주든 아내가 주든 남이 준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우리는 늘 헐떡거리고 살아야 됩니다. 또 누구를 미워해야 합니다. ‘너만 아니라면, 당신만 아니라면 나는 행복할텐데’ 라고 생각하지만 그렇지 않습니다. 주어진 조건 속에서 자신은 항상 행복할 수가 있습니다. 이것을 자각하셔서 여러분의 인생이 행복해야 합니다.nbsp캐나다에 온다고 행복해지는 것이 아니에요. 한국에서 캐나다에 오면 다 행복해질 줄 알았는데 현실은 그렇지 않죠. 그러니 자기가 좋아야 천당이 됩니다. 이것을 ‘유심정토’라고 말합니다. 자기가 좋으면 천당입니다. 한국이 좋으면 한국이 천당이고, 캐나다가 좋으면 캐나다가 천당입니다. 지장보살에게는 지옥이 극락입니다. 왜 그럴까요? 남을 돕는 일은 지옥에 가야 많을까요? 천당에 가야 많을까요? 내가 선택해서 가서 그곳에 할 일이 많으면 그곳이 천당입니다. 그런 것처럼 우리가 지나치게 물질에만 연연하면 안 됩니다. 물질이 필요는 한데, 그것이 우리를 진정으로 행복하게 해주는 것은 아닙니다. 전 지구적으로 200여개의 나라 중에 캐나다 정도면 물질적으로도 풍요롭고 제도적으로도 좋은 편이에요. 여기에 살면서도 불행하다면 그것은 개인 문제라고 봐야지 세상을 탓해서는 안 됩니다. 어떻게 생각하느냐에 따라서 좋은 일이 되기도 하고 나쁜 일이 되기도 합니다. 그러니 자기 삶을 긍정적으로 받아들일 때 여러분들의 삶은 어제보다는 오늘이 더 행복해질 수 있습니다. 행복하게 사시기 바랍니다. 감사합니다.”nbsp이렇게 말씀하고 강연을 마무리 하니 목소리가 크게 나오지도 않고 갈라지는 가운데 2시간 10분 동안이나 강연을 해주신 스님께 청중들은 큰 박수로 감사를 표하였습니다.nbsp오늘 토론토에서는 주말이라 큰 마라톤 대회가 2시까지 있어서 도로 곳곳에 교통을 막아놓아 사람들이 많이 오지 못할 것이라는 예상을 뒤엎고 450여명이 참석하여 끝까지 자리를 지키며 스님과 함께 즐겁고 유익한 시간을 보냈습니다. 옆에 앉아서 시종일관 스님의 말씀에 웃음을 보이던 젊은 커플과 1.5세로 보이는 커플에게 오늘 강연이 어땠는지 물으니 정말 유익하고 재밌는 시간이었다고 합니다. 행사를 마치고 바로 연단 아래에 마련된 책상에서 책사인회가 열리자 많은 분들이 길게 줄을 서서 기다렸습니다. 스님께서는 한사람 한사람 사인을 해주시고 기념 사진촬영도 함께 해주셨습니다.nbspnbsp또한 스님께서는 항상 이렇게 훌륭한 토론토 한인회관에서 행사를 할 수 있도록 도움을 주고 장소를 내어주는 한인회장님과 한인회에 감사의 표시로 최근에 나온 책 3권을 사인하여 한인회관 도서실에 기증하였습니다.nbsp그리고 스님께서는 자원봉사자들과 단체사진 촬영을 한 다음에 자원봉사자 모두에게 선물로 단주를 손목에 끼워주셨습니다. 오늘 자원봉사자들은 거의 대부분이 불교대학생들로써 처음으로 자원봉사를 하는 분들이었지만 어느 지역보다도 편안하고 능숙한 모습으로 열심히 해주셨고, 자원봉사자는 모두 20명이나 되었습니다. 토론토 정토법당은 올 6월에 개원한 법당으로서 작년과 올해 2번의 행사는 열린법회를 개척한 김정란 총무님이 맡아서 진행하였습니다. 김정란 총무님은 이번에 캐나다 동부 4개 지역을 스님과 함께 다니면서 행사 총괄을 하고 있는데, 스님께서는 감사의 마음을 담아 책을 사인하여 선물로 드렸습니다. 또한 행사책임을 맡았던 김미셀님 및 스탭들에게도 책을 사인하여 선물로 주고, 자원봉사자들이 모두 감사의 큰 박수를 보내는 가운데 기념사진을 함께 촬영하였습니다.nbspnbsplt왼쪽부터 김민석님, 김미셀님, 김종원님, 김정란 총무님, 장호님gt스님께서는 자원봉사자들에게 몸이 좋지 않아 함께 나누기도 못하고 먼저 숙소로 들어가니 묘덕법사님, 김정란 총무님과 함께 나누기를 하면 좋겠다고 하시면서 자원봉사자들에게 정말 수고가 많았고 인사를 하고 저녁 8시에 숙소로 돌아오셨습니다. 스님께서는 정연희님과 일본식당을 운영하는 한승진님께서 준비해온 음식으로 저녁 식사를 하시고 휴식을 취하셨습니다. 이후 저는 스님과 내일 일정에 대해서 의논을 하고 제 숙소로 내려와서 스님의 하루를 정리하고 저의 업무를 보았습니다.nbspnbspnbsp오늘 자원봉사자들은 홍보하는데 많이 참여하지 못해서 미안했는데 이렇게 오늘 즐거운 마음으로 자원봉사를 했고, 많은 분들이 함께하여 행복해 하는 모습을 보니 뿌듯하고 보람된다고 하였습니다. 특히 처음 행사를 총괄했던 김미셀님은 이전 두 번의 행사 때는 그냥 김정란 총무님을 도와서 시키는 일만 했었는데 막상 총무님이 캐나다 동부지역을 총괄하게 되어 본인이 전적으로 토론토 강연을 책임지게 되니 마음의 부담이 많았는데 준비를 하면서보니 꼼꼼히 김정란 총무님이 잘 챙겨놓고 가서 쉬운 점도 있었고, 또 의외로 준비하고 점검해야 할 것이 많아서 그동안 김정란 총무님 혼자서 참 수고가 많았다는 것도 알게 되어서 좋았다고 하였습니다.nbsp그리고 작년에는 강연장에 청중으로 왔었는데 올해는 봉사자로 참가를 해보니, 스님 강연이 이루어지기 위해서 많은 사람들이 봉사를 하고 있다는 것이 놀랍고 또 보람이 된다고 하였습니다.nbsp봉사자들은 지난 6월 토론토 법당 개원때 만났던 분들이라서 저도 더 반가웠습니다. 이분들은 거의 대부분이 내일 캐나다런던 강연의 봉사를 위해서 캐나다런던으로 가실 것이라고 합니다. 또한 작년에 한국에서 불교대학을 졸업하고 워털루에서 아내, 애기와 함께 왔던 김재명님은 이번에는 강연 봉사자로 다시 만나니 더 기뻤습니다.nbspnbspnbsp이렇게 한 분 한 분의 정성과 자원봉사로 오늘 33번째 토론토 강연도 성황리에 잘 마무리 되었습니다. 내일은 34번째 강연이 캐나다런던에서 열립니다. 캐나다런던에서 뵙도록 하겠습니다.
2014.9.26 세계 100회 강연(32) 캐나다 오타와
안녕하세요. 오늘은 법륜 스님의 세계 100회 강연 중 서른 두번째 강연이 캐나다의 수도인 오타와에서 열리는 날입니다.nbsp nbsp 김해숙님과 친구분이 오셔서 아침식사를 준비해주셔서 저희들은 7시 30분에 아침 식사를 하였습니다. 이분들은 2012년에는 뉴욕 스님 희망콘서트에도 참여하셨고, 또 2013년 토론토 희망세상만들기 강연회에도 오셨던 분들이라 반갑게 인사를 나눌 수 있었습니다. 스님께서 몬트리얼에 오신다는 소식을 듣고 꼭 식사와 숙소를 제공하고 싶다고 하여서 이렇게 하룻밤 묵게 되었습니다.nbsp nbspnbsp 원래 일정은 오전 7시에 몬트리얼 시내를 둘러보고 갈 예정이었지만 스님께서 휴식이 필요할 것 같아 오전 일정을 취소하고 각자 맡겨진 업무를 보기로 하였습니다. 스님께서는 숙소와 식사준비를 해주신 전민락님과 김해숙님께 반야심경 이야기 책을 선물로 드리고 아드님과 함께 기념촬영을 하였습니다.nbsp nbsp lt전민락, 김해숙님 가족gt nbsp 두 분은 스님께서 이곳까지 방문하셨다 가시니 스님께 삼배로 인사를 드리겠다고 하여 삼배를 드렸습니다. 스님께서는 따뜻한 환대에 감사드린다고 인사를 하고 박지나 대표님의 언니인 박소영님 댁으로 출발하였습니다.nbsp 10시 30분에 박소영님 댁에 도착하여 휴식을 취하고 공양을 한 후에 12시 30분에 오타와로 출발하였습니다.nbsp 스님께서는 출발하기 전에 오늘 점심공양 준비를 해주신 박소영님께 사인한 책을 선물로 드리고 박지나 JTS 대표님과 함께 기념사진 촬영을 하였습니다. 박소영님은 스님께서 몬트리얼에 오시게 되어 이렇게 박지나 대표님도 만나고 스님 공양 대접을 할 수 있게 되어 무엇보다도 너무 기쁘다고 하였습니다. 박소영님은 현재 몬트리얼의 한글학교 교장선생님입니다. nbsp nbsplt박소영님gtnbsp 그리고 아침에 일찍 오셔서 어제 행사 자원활동을 하고 오늘 함께 박소영님과 식사준비를 해주신 권남수님은 13년 전에 한국에서 깨달음의 장과 나눔의 장을 하고 캐나다인과 결혼하여 현재 이곳에 거주하고 있는데 한글 학교 교감선생님으로 재직하고 있다고 합니다. 이번 몬트리올 법륜스님의 희망세상만들기 강연 덕분에 스님과 정토회 식구들을 만나게 되었다고 너무 기뻐하면서 이곳에 정토회 모임이 생길 수 있도록 해보겠다고 하였습니다. 이번 행사도 즐거운 마음으로 준비했다고 합니다. 스님께서는 권남수님께도 사인한 책을 선물로 드리고 기념촬영을 하였습니다.nbsp nbsplt권남수님gt 몬트리얼은 캐나다 최대주이며 불어를 사용하는 퀘백주에 있으므로 교통도로 표지판이 온통 불어로 되어 있어 표지판을 보는 것이 익숙하지가 않아 운전하는데 조금 불편할 것 같았습니다. 그러나 김명호 거사님의 운전 덕분으로 편안하게 오후 4시에 오늘의 숙소인 오타와의 노향숙 보살님 댁에 도착했습니다. nbsp숙소는 퀘백주인 Gatineau시에 있었고, 아름다운 호수를 끼고 호수변에 집이 있었습니다. 오타와는 캐나다의 수도이며, 온타리오주에 위치하여 영어를 사용하지만 리도우나 강을 사이에 두고 퀘백주와 마주보고 있기 때문에 영어와 함게 불어도 사용하고 있었습니다. 리도우나 강에는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되어 있는 UNESCO Rideau Canal 이 있으며 캐나다의 아름다운 관광지 중의 하나인 천섬까지 연결된다고 하였습니다. nbsp 스님께서는 휴식을 취한 다음에 죽으로 간단히 공양을 하신 후 6시에 32번째 강연이 열리는 Dominion Chalmers United Church로 출발하였습니다. 오타와도 몬트리얼과 마찬가지로 정토 열린법회도 없고 정토회와 인연이 없는 곳이지만 세계 100회 강연을 기획한 다음에 홈페이지에 자원봉사자를 찾는다는 홍보를 하여 임신효씨를 중심으로 하여 자원봉사자들이 서로 협력하여 행사를 준비하였다고 합니다. 오늘 행사를 진행한 교회도 아주 큰 외국인 교회였는데 강연은 교육관에서 하도록 준비되어 있었습니다.nbsp nbsplt행사장인 Dominion Chalmers United Churchgt 오타와는 캐나다의 수도로서 인구는 약 121만명 정도이며 외교부 통계자료에 따르며 한인들은 약 2,700여명 거주한다고 하였습니다. 그래서 오늘 강연에는 한 100명 정도 오지 않겠느냐고 예상했습니다. 6시 25분경에 스님께서 강연장에 도착하니 길가와 주차장에서 부터 안내를 하고 있는 자원봉사자들을 만났습니다. 오늘 자원봉사자들은 대부분 젊은 청년들이었고, 행사 총괄을 맡은 임신효씨도 곧 결혼을 앞둔 청년이었습니다.nbsp 스님께서는 6시 50분에 강연을 시작하였습니다. 오늘 오타와 강연에는 150개의 의자를 마련했는데 약 180명이 참석하여 행사장을 가뜩 채웠고, 자원봉사자들은 강연이 시작되자 행사장으로 들어와서 모두 바닥에 앉아 강연을 들었으며, 나중에 오신 분들은 모두 뒤에 서거나 옆에 서서 강연을 들었습니다.nbsp nbsp 스님께서는 “안녕하세요”라고 인사를 하니 청중들도 반갑게 “안녕하세요”라고 인사합니다. 그러자 스님께서 만나서 반갑습니다. 제가 유럽을 순회강연을 하는 중 감기몸살로 목을 다쳐서 목소리가 거북하니 양해를 해주시면 좋겠습니다. 토론토는 여러번 왔다 갔는데, 이곳 오타와에 오기는 처음입니다. 오타와에 도착하면 바로 시내를 한바퀴 둘러보기로 했는데 nbsp건강이 안좋아서 보지 못했습니다. 내일 아침에 나으면 둘러볼 계획입니다. 라고 서두를 시작했습니다.nbsp 그리고 최근에 한국 사회에서 일어난 세월호 사고 등 가슴 아픈 사건사고들을 어떻게 바라봐야 하는지 여는 말씀을 해주셨습니다.nbsp “같은 북미주에 있어 미국하고 캐나다는 그냥 일반적으로 시스템상으로는 구분이 안되는 것 같지만 캐나다는 유럽 쪽의 사회민주주의 개념이 강하고 미국은 신자유주의 경향이 강한 것 같습니다. 그러니 젊은이는 세금을 내기 싫어 미국으로 갈려고 하고, 나이드신 분들은 국가가 아들보다 효자라고 생각하고 이곳 캐나다에서 산다고 들었습니다. 한국사회는 그동안은 주로 미국을 벤치마킹해서 압축성장을 했지만, 앞으로 성숙할려면 유럽과 캐나다의 시스템을 받아들여야 하지 않겠냐 싶습니다. 그래서 이곳에 사는 여러분들의 경험이 한국사회를 발전시키는데 많은 역할을 해주면 좋겠습니다.nbsp 이번에 유럽을 다니면서 느낀 점은 교민들이 이국 땅에서 자기 살기도 바쁘지만 한국에서 발생한 세월호 사건 등으로인해 비통함에 젖어 있었고, 아직까지도 이 문제가 갈등구조로 있는 것을 보고 가슴이 아프고 국적을 바꿔버리고 싶다고도 하였습니다. 또한 윤일병 사건 등을 보면서 아들의 국적을 바꿔서라도 군대를 안보내고 싶다고 하엿습니다. 한국에 살고 있는 사람으로서 그리고 종교인으로서 교민들에게 자랑스러운 대한민국을 보여주지 못하고, 이국 땅에서 사는 것도 힘든데 조국까지 자랑스럽지 못하게 해서 미안했습니다. 여러분들도 그런 아픔을 가지고 있지 않겠냐 싶습니다. 그러나 종합적으로 보면 한국사회가 문제점도 많지만 좋은 점도 굉장히 많습니다.nbsp 한국사회에 대한 긍적적 토대위에서 건설적인 대안을 가지고 비판을 해야합니다. 긍정적인 시각위에 개선점을 제안하고 비판해야 혁신의 에너지가 나옵니다. 그러나 부정적인 시각에서 비판을 하게 되면 파괴의 에너지가 나옵니다. 일련의 사건 사고 속에서 감정이 부정적으로 흐른다는 것은 이해가 되지만 자기 조국에 대해서 사랑하는 마음을 가지고 많은 비판을 해주시면 좋겠습니다.”nbsp 그러면서 자유롭게 얘기를 해보자고 하시며 청중들의 질문을 받았습니다. nbsp nbsp 오늘은 8명이 질문을 하였고, 시간관계상 1명은 질문하러 나왔지만 질문을 하지못했습니다. 대학에서 종교학을 전공하는데 인문학을 공부하다 보니 현실적으로 먹고 사는 것과 정토세상을 건설하고 싶다는 본인의 희망사이의 고민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 묻는분, 오타와에서 북한학을 전공하고 있는 박사과정의 학생으로서 좌파적이고 진보적인 본인의 신념을 유지하면서 북한학을 공부할 수 있는지에 대해서 묻는 분, 마음한번 고쳐먹으면 극락이라고 하는데 어떻게 마음을 고쳐야 현실속에서 실천할 수 있겠는지 묻는 분, 공인의 모습이 아니라 개인의 모습으로 볼때 스님을 제일 잘 연상시킬수 있는 물건이나 사물이 무엇인지 스님께 묻는 분, 다음스토리볼에서 스님을 많이 보았는데 이렇게 세계 여러나라를 다니면서 강연한 내용을 모아서 책으로 출판할 생각이 있는지 묻는분, 한국군대에 있을때 왕따를 당한 경험이 있어 마음의 벽을 쌓고 다른 사람들에게 다가기가 힘들고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다는 분, 일베같은 극우보수적인 사람들을 이해하기 힘든데 어떻게 해야 하는지, 그리고 세월호 같은 사건이 일어났을때 불교적인 관점에서는 이것을 어떻게 생각하는지 궁금하다고 하는 분들의 질문이 있었습니다. nbsp 그중에서 오늘은 원증회고의 불교 교리에 대해 궁금해 한 분의 질문과 스님의 답변을 소개합니다.nbsp “저는 어렸을 때부터 예수님의 제자로서 부활의 증인으로 살아가고자 하는 크리스찬입니다. 그리고 불교에 대한 이해를 하고 싶어서 불교 교리 공부를 독학으로 시작했습니다. 사성제 중에서 고성제가 있는데, 고성제의 팔고 중에서 원증회고가 개인적으로 마음에 많이 와 닿습니다. 체험도 많이 하고 있고요. 혹시 스님께서도 원증회고의 고통을 겪어보신 경험이 있으시면 어떻게 극복하셨는지 말씀해 주시면 많은 도움이 될 것 같습니다.”nbsp “원증회고는 미운 사람과 함께하는 고통입니다. 이것은 여러분들도 다 경험했죠? 제일 심한 것이 부부지간입니다. 회사에 가면 상사와의 관계가 그렇고, 어디를 가도 미운 사람과 같이 살아야 되는 것은 참 힘든 일입니다. 남일 때는 쉬워요. 미우면 안 보면 되니까요. 그런데 미움에도 불구하고 안 볼 수가 없기 때문에 고통이 됩니다.nbsp 이것과 또 하나 있는 것이 애별리고입니다. 사랑하는 사람과 이별하는 고통입니다.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있고 싶은데 헤어져야 하는 겁니다. 그것이 부모 자식 간이든 형제 간이든 남북이산가족도 그렇고 연애뿐만 아니라 뭐든지 자기가 좋아하는 것을 못하는 것이 ‘애별리고’입니다. 하고 싶은 것을 못하는 것이 ‘애별리고’라면, 하기 싫은데 해야 하는 것이 ‘원증회고’입니다. 사람만 꼭 미운 사람과 함께 살아야 하는 것이 아니라, 하기 싫은데 해야 되는 것도 ‘원증회고’입니다. 이것은 저 뿐만 아니라 모든 인간이 겪습니다.nbsp 사랑하면 꼭 헤어져야 하고 미운 사람과는 꼭 같이 살아야 되느냐? 그런 의미로 받아들이면 안 됩니다. 근본은 내가 어떤 사물과 사람을 좋아하고 싫어하는 데에 있습니다.nbsp 이 분과 저하고 둘이 있다고 합시다. 내가 이 분을 좋아할 수도 있고 싫어할 수도 있죠. 그런데 또 상황은 어떠냐? 우리 둘은 만날 수도 있고 헤어질 수도 있어요. 나의 주관은 좋아하고 미워하는 두 가지가 있고, 우리 둘 사이에 주어진 객관적 상황은 함께 있는 것과 헤어지는 것 두 가지가 있습니다. 내가 좋아하는데 만나는 인연일 때는 아무런 고가 안 됩니다. 그런데 내가 좋아하는데 헤어지는 인연이 되면 고가 발생합니다. 이 고를 ‘애별리고’ 라고 합니다. 그러나 내가 저 사람을 미워하는데 헤어지는 인연이 되면 고가 발생하지 않습니다. 내가 미워하는데 만날 인연이 되면 고가 발생합니다. 이것이 ‘원증회고’입니다.nbsp nbsp 객관적인 주어진 상황, 즉 우리가 만날 인연인지 헤어질 인연인지는 내가 선택하는 것이 아닙니다. 상황이 그렇게 주어진다는 것입니다. 만나는 상황이 주어질 때 나의 주관으로 보면 좋아할 수도 있고 싫어할 수도 있고, 헤어지는 상황에서도 내가 그것을 좋아하고 싫어할 수도 있는 것입니다. 또는 내가 좋아할 때도 객관적인 상황은 만나기도 하고 헤어질 수도 있고, 내가 싫어할 때도 만나기도 하고 헤어질 수도 있는 인연이라는 것입니다.nbsp 그러면 사람은 사랑하면 괴로워지고 미워해도 괴로워지느냐? 그런 것은 아닙니다. 사랑할 때 헤어지는 인연은 괴로움이 되지만 사랑할 때 만나는 인연은 괴로움이 안 되고, 미워할 때 만나는 인연은 괴로움이 되지만 미워할 때 헤어지는 인연은 괴로움이 안되니까, 네 가지 경우 중에 두 가지는 아무런 문제가 안 된다는 것입니다. 고가 발생하지 않습니다. 네 가지 중에 두 가지가 고가 발생합니다. 좋아하는데 헤어지는 인연이 되면 고가 발생하고, 미워하는데 만나는 인연이 되면 고가 발생합니다. 그런데 만나는 인연과 헤어지는 인연은 내 마음대로 할 수 있는 게 아니기 때문에 이 문제를 극복하려면 내가 어떻게 하느냐에 달려 있습니다. 사랑하는 마음과 미워하는 마음으로부터 내가 자유로울 수 있으면 나는 고로부터 벗어날 수 있습니다.nbsp nbsp 그래서 신심명의 제일 첫구절이 “至道無難이요 唯嫌揀擇이니, 지극한 도는 어렵지 않다, 다만 사랑하고 미워하지만 않으면 된다” 이렇게 되어 있습니다. 여기서 사랑하고 미워한다는 용어를 남녀관계로 해석하시면 안됩니다. 여기서 ‘사랑하고 미워하지 않으면’의 뜻은 좋아하고 싫어하지 않으면 된다는 뜻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좋아하고 싫어하는 감정이 있어요. 좋아하면 가져야 되고 싫어하면 버려야 되는데, 주어진 객관적 상황은 좋아하는데 가져지지가 않고 싫어하는데 버려지지가 않기 때문에 고가 발생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내가 좋아하고 싫어하는 것은 변화를 안 시키고 그대로 놔두고 바깥 상황을 잡아 당겨 와서 갖거나 있는 것을 밀어내서 버리려고 하는데 이게 뜻대로 안되니까 지금 괴로운 것입니다. 그래서 수행은 바깥 상황은 그대로 두고, 만날 인연일 때는 미워하면 고가 발생하니까 만날 인연일 때는 미워함에 구애를 받지 말고, 헤어질 인연일 때는 사랑하는 마음이 있기 때문에 고가 발생하니까 사랑하는 마음에 구애를 받지 마라, 이런 얘기입니다.nbsp 우리는 정반대로 항상 자기 주관을 중심으로 해서 바깥을 변화시키려고 합니다. 그런데 바깥이 내 뜻대로 변하지 않으니까 힘든 것입니다. 그러나 수행은 주어진 상황은 그냥 받아들여라는 것입니다. 너의 감정, 즉 ‘갖고 싶다’, ‘버리고 싶다’ 하는 그것을 놓아버려라. 감정은 내 까르마, 업식, 습관으로부터 일어나는데, 그것을 놓아버리게 되면 자유로워집니다. 이것이 해탈, 완전한 자유입니다. 우리가 흔히 말하는 “자유가 아니면 죽음을 달라”는 내 마음대로 하는 자유를 말하거든요. 내가 내 마음대로 하려고 할 때는 객관 상황이 될 때도 있고 안 될 때도 있으니까 늘 반쪽 자유입니다. 그러나 내가 내 마음대로 하려고 하는 생각을 놓아버리면 완전한 자유가 됩니다. 이것을 ‘해탈’이라고 말합니다. 그래서 자기로부터의 자유, 즉 자기 까르마, 자기 업식으로부터의 자유, 자기 욕구로부터의 자유, 이것이야말로 완전한 자유입니다. “밖의 백만 대군을 이기는 것보다 자기가 자기를 이기는 자가 더 큰 장부다” 이런 말에서도 자기가 자기를 이긴다고 할 때 그 “자기”는 자기 업식, 자기 감정, 자기 까르마를 말합니다. 여기로부터 우리가 자유로워질 수 있느냐, 이것이 수행의 과제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nbsp nbsp 제가 오늘 여기서 몸이 안 좋으면 감정은 ‘몸이 아프니까 강의 안했으면’ 이런 욕구가 일어납니다. 그러면 강의를 안 할 수도 있죠. 그러나 상황이 강의를 해야 할 상황일 때는 ‘강의 안했으면’ 하는 이것을 빨리 놓아버리고 기꺼이 하는 쪽으로 전환을 해야 합니다. 그래야 내가 이 상황에서 자유를 얻게 됩니다. 그러나 그렇게 하기가 쉽지가 않죠. 여러분들도 부부가 결혼해서 살면서 ‘남편이 싫다’ 할 때 남편을 버리기가 쉽지 싫은 자기 감정을 버리기가 쉬워요? nbsp 그래서 자기로부터 자기가 자유로워져야 됩니다. 좋고 싫고는 절대적인 것이 아니고 자기 습관이에요. 여러분들이 만약에 ‘된장찌게는 맛이 있다’, ‘버터는 맛이 없다’ 할 때 그것은 된장이나 버터에 있는 것이 아니예요. 자기가 습관이 들어있으면 맛있음이 일어나고, 습관이 안들어 있으면 구역질나게 느껴지는 겁니다. 여러분들이 어릴 때부터 교회를 다녀서 기독교 문화에 젖어 있으면 법당에 들어가면 뭔가 거부 반응이 생기는 겁니다. 하나님이 작동해서 거부 반응이 일어나는 것이 아니라 자기의 무의식 세계가 거부 반응을 일으키는 것입니다. 어릴 때부터 절에 다닌 사람들은 조용한 것을 좋아하는데 교회에 가서 찬송가 부르고 통성 기도 하는 것을 보면 뭔가 안 어울리는 느낌이 듭니다. 그러면 그것은 교회가 문제가 있어서 그런 것이 아닙니다. 자기의 까르마에 맞지 않는 것입니다.nbsp 이 까르마는 무의식이라 할 수 있고, 습관이라고 할 수 있고, 무지라고 할 수 있습니다. 나도 모르게 화를 벌컥 내어 놓고 말을 세 가지로 하지요. 첫째, 나도 모르게 화를 냈다. 이것은 그 상태에서 의식에 깨어있지 못했다는 것입니다. 둘째, 습관적으로 냈다. 셋째, 무의식적으로 냈다고 합니다. 이것은 다 습관화 되어 있는 업식을 말합니다. 마치 마약 중독, 담배 중독처럼 습관화되어 있는 것입니다. 그것이 우리의 감정을 불러일으키는 바탕입니다. 여러분들의 감정이 굉장한 것 같지만 그렇게 형성되어진 것으로부터 반응하는 것입니다. 그 감정이 여러분들 자신이 아니예요. 어릴 때 어떤 습관을 들이느냐에 따라서 그 아이의 감정도 그에 따라서 나오는 겁니다. 그런데 우리는 자기 감정을 자기가 절대화시켜서 자기 감정에 맞춰서 세상을 바꾸려고 하니까 힘들죠. 감정을 없애라는 얘기가 아닙니다. 이런 이치를 알고 거기로부터 자기가 구애받지 않을 때 자유의 길로 나아가는 것입니다.nbsp 저도 80년대에 고문을 받으면서 정말 많은 것을 배울 수 있었습니다. 그 순간은 고통이지만 지나놓고 보면 밖에서 참선을 하고 명상을 했던 것보다 그 짧은 기간 동안 깨치고 반성했던 것이 훨씬 더 수행에는 도움이 되었다고 볼 수 있습니다. 그래서 어떤 복이 꼭 행운으로만 오는 것이 아닙니다. 재앙으로 복이 올 수도 있습니다. 우리가 인생에서 재앙을 복으로 볼 줄 아는 안목이 있다면 ‘그 어떤 것도 복이 아닌 것이 없다’ 이렇게 볼 수 있죠. 성경 구절에 “주여 뜻대로 하옵서소”는 굉장히 중요한 말입니다. 우리는 “우리 아들 대학시험 걸리게 해주세요” 이렇게 기도하잖아요. 대학시험에 걸리게 해주면 주님의 은총을 받았다, 걸리게 안해주면 은총을 못받았다 이렇게 하는 것은 진정한 신앙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대학 시험에 걸리는 것이 좋은지 나쁜지는 무지한 내 눈으로는 알 수가 없잖아요. 그런데 우리는 내 뜻대로 되면 가피를 입었다고 하고 내 뜻대로 안되면 은총이 없다고 합니다. 그러니까 우리가 무지하고 그분께서 전지전능하다는 것을 정말 받아들인다면 그분께서 알아서 하실 일이라는 것입니다. 떨어지는 게 좋으면 떨어지게 하실 것이고, 걸리는 게 좋으면 걸리게 하실 것입니다. 그러면 수행이란 ‘주님께서 좋으실 대로 하옵소서’ 이렇게 맡길 수 있는 것입니다. 이것을 불교 용어로 하면 ’자기 생각을 내려 놓는다‘, ‘인연따라 이루어진다’ 는 것입니다.” 대기하고 있던 한사람은 질문을 하지못하였지만 마지막 질문자의 질문과 대답이 끝나자 9시 10분이 되었고, 마지막 강연자의 질문에 대한 스님의 답변이 끝나자 참석자들이 큰 박수를 스님께 보냈습니다. 오늘 강연을 마무리하며 스님께서는 이렇게 정리 말씀을 해주셨습니다.nbsp “오늘 강연 분위기가 좀 무거웠습니까? 우리가 사는 세상은 개인적인 것도 필요하고 사회적인 것도 필요합니다. 많은 수확을 거둘려면 밭도 좋아야 하고 씨앗도 좋아야 합니다. 그러니 nbsp개인은 씨앗과 같고 우리 사회, 이 세상이라고 하는 것은 밭과 같은 것입니다. 같은 밭에서는 씨앗에 따라 수확량이 달라지고, 같은 씨앗을 여러 밭에 뿌렸을 때는 밭의 상태에 따라서 수확량이 달라집니다. 이렇게 볼때 좋은 씨앗, 즉 개인은 인이라 하고, 좋은 밭, 즉 사회는 연이라고 합니다. 인과 연이 만나서 결과를 만듭니다. 그래서 인연과보라고 합니다. 결과를 위해서 인을 개선하는 것을 수행이라고 하고, 연을 잘 가꾸어가는 것을 정토건설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세상을 아름답게 만드는 것은 이 두가지를 하는 것이고, 이 두가지를 동시에 하는자를 보디사트바, 보살이라고 합니다. 즉 상구보리 자기 인격을 닦는 수행과 하화중생 사회를 좋게 만드는 것, 성불과 정토건설을 동시에 하고, 개인 수행과 이상 세계를 만들어가는 것을 하나로 보는 자를 보살이라고 하는데, 수행자는 이 두 가지를 동시에 합니다.nbsp 자기 깨달음에만 치중하면 소승이라고 합니다. 주로 종교는 개인문제로 책임을 돌리는데 이것이 종교의 한계입니다. 사회운동은 너무 사회문제로만 책임을 돌립니다. 만약 내가 인도에 태어났다면 카스트 제도를 없애도록 하는 것으로 세상을 바꾸는데 더 신경을 써야 합니다. 그러나 캐나다는 세상을 바꾸는 것 보다 개인 수행에 더 많이 정성을 쏟아야 합니다. nbsp 한국사회는 이 두 가지가 비슷합니다. 먹고 살만 하고 민주화도 어느정도 되었기 때문에 이제 개인의 변화도 매우 필요합니다. 그러나 아직 사회적인 변화도 가져와야 할 요소가 많습니다. 정치는 사회를 변화시키는 아주 중요한 요소이므로 정치적 무관심은 사회변화를 더디게 가도록 합니다. 그러니 정치에 실망했다고 정치에 무관심해지면 안됩니다. 금방 안된다고 분노하고 국적을 바꾼다고 해결되는 것이 아닙니다. 꾸준한 노력을 통해서 해결될 수 있습니다. 20년만에 광주 폭동을 민주 혁명으로 바꾸지 않았습니까?nbsp 세월호 사건도 이번에 특별법이 안 만들어진다고 실망하지 말고 꾸준히 물량중심, 속도중심에서 안전중심, 생명중심으로 후진국에서 선진국으로 질적변화를 이루어 나갈 수 있도록 우리 모두가 관심을 가지고 변화를 추구해야 합니다. 후세에 세월호 사건 이후로 한국사회가 질적으로 달라졌다고 한다면 304인의 죽음이 헛된 죽음이 안됩니다. 이것은 살아 있는 우리의 몫으로 가지고 가야 합니다. 저항을 지속적으로 지혜롭게 해나가야 합니다. 슬픔에만 젖어있고 분노만 한다고 해결되지 않습니다. 어떤 조건에서 태어났던 모든 존재는 행복할 권리가 있습니다. 행복도 내가 만드는 것이고, 불행도 내가 만드는 것입니다. 진실로 그 행복과 불행은 다른 사람이 만드는 것이 아닙니다. 행복하시길 바랍니다.”nbsp 건강이 좋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2시간 30분 동안 질문 하나하나에 애정을 담아 답변을 하니 청중들은 뜨거운 박수로 스님께 화답했습니다.nbsp nbsp 행사를 마치고 스님께서는 한사람 한사람에게 사인을 해주시고 기념촬영을 해주셨습니다.nbsp 그리고 자원봉사자들과 단체사진 촬영을 한다음에 자원봉사자 모두들에게 단주를 선물로 손목에 끼워주셨습니다. 그리고 오늘 행사 전체를 총괄한 임신효씨에게는 결혼을 앞두고 있다고 하여 스님의 주례사에 사인을 하여 선물했습니다.nbsp nbsplt임신효님gt 또한 늦은 시간까지 교회건물을 쓸 수 있도록 한 교회 스텝인 찰쓰씨에게 영문 기도책을 사인하여 선물로 주었습니다.nbsp nbsplt찰스씨gt 그리고 스님께서는 자원봉사자들에게 몸이 좋지 않아 함께 나누기도 못하고 먼저 숙소로 들어가니 묘덕법사님과 토론토법당의 김정란 총무님과 함께 나누기를 하면 좋겠다고 하시면서 자원봉사자들에게 정말 수고가 많았고 고맙다고 인사를 하고 숙소로 돌아오셨습니다. 10시 10분이 되어 저는 스님과 내일 일정에 대해서 잠깐 의논을 하고 제 숙소로 내려와서 스님의 하루를 정리하고 저의 업무를 보았습니다.nbsp nbsp 오늘 자원봉사자들은 거의 대부분이 젊은이였으며, 청년 직장인 2명과 교수님 1분, 그리고 대학생 1명, 고등학생 1명 등 총 12명 정도였습니다. 오늘 참가한 자원봉사자들은 법륜 스님도 잘 모르는 상태에서 자원봉사를 시작했는데 준비과정은 즐겁고 재미있었고, 또한 여기 살면서 한국사람들을 이렇게 많이 본 것은 처음이라고 하였습니다.nbsp 그리고 오늘 스님 강연에 참가하여 강연을 들으면서 왜 사람들이 법륜스님, 법륜스님 하는지를 알게 되었다고 하였습니다. 그리고 자원봉사자 한 명은 학교행사를 많이 하는데 이번 강연은 자기가 너무 하고 싶어서 참가를 하게되었다며 공부하고 아르바이트 하면서 아주 바쁜 가운데 즐겁고 재미있게 자원봉사를 했다고 하였습니다. 그리고 봉사자들은 내년에도 오타와에서 강연이 있으면 좋겠고, 정 안되면 몬트리올이라도 스님께서 오셔서 강연을 해주면 좋겠다고 하였습니다. 토론토는 가기에 너무 멀고, 몬트리얼은 정기버스가 있기 때문에 참가할 수가 있다고 하였습니다.nbsp 또한 행사를 준비한 임신효씨는 내년에 오타와에서 또 강연이 있으면 즐거운 마음으로 다시 행사를 준비해보겠다고 하였습니다. 또한 김정란 총무님께서는 오타와 강연에서는 외국인의 영어 강연 요청이 많았고 내년에는 영어 강연을 했으면 좋겠다는 문의가 많았다고 합니다. 그래서 그런지 오늘 강연에도 외국인들이 한국분들과 함께 온 경우가 많았습니다.nbsp 이렇게 이번 32번째 오타와 강연도 자원봉사자들의 아름다운 봉사활동으로 성황리에 행사가 마쳤습니다. 우리는 모두 모자이크 붓다라는 스님의 말씀이 다시 생각납니다. 내일은 33번째 강연이 토론토에서 있으니 토론토에서 뵙도록 하겠습니다.
2014.9.25 세계 100회 강연(31) 캐나다 몬트리올
nbsp안녕하세요. 오늘은 법륜 스님의 세계 100회 강연 중 서른 한번째 강연이 캐나다 몬트리올에서 열리는 날입니다.nbsp최말순 보살님과 이경미 보살님께서 아침식사를 준비해주셔서 오전 6시30분에 간단히 아침식사를 하고 바로 보스턴에서 몬트리얼로 이동을 하였습니다. 차를 타기 전에 리랜드 애커슨 박사와 이경미 보살님, 그리고 두 아드님과 함께 기념촬영을 하고, 스님께서는 “하룻밤 잘 묵고 간다”고 감사의 인사를 전하시고 7시15분에 출발하였습니다.nbspnbsplt이경미,리랜드 애커슨 가족gt고속도로로 들어서서 조금 달리다가 휴게소에 들러서 화장실을 다녀오는 틈에 스님께서는 잠시 원고 교정업무을 보셨습니다.nbspnbsplt휴게소에서 원고 교정업무를 보시는 스님gt93번 도로를 타고 몬트리얼로 올라가는 길에 White Mountain이 있었습니다. 뉴햄프셔주와 버몬트주는 산이 많다고 하였는데 과연 산세가 아름답고 단풍이 멋지게 물들어 있어서 한폭의 수채화를 보는듯 하였습니다. 워싱턴DC지역은 아직 단풍이 들지 않았고, 어제 보스턴 지역을 보니 조금씩 단풍이 물든다 싶었는데, 이곳은 완연한 가을 단풍 모습을 보여주고 있었습니다. 10시 30분경에 단풍구경도 하고 휴식도 취할겸해서 세계 3대 단풍명소중의 하나인 화이트마운틴 산맥의 뷰포인트에서 잠시 단풍구경을 하기로 하였습니다.nbsp뷰포인트에서 보니 저멀리 보이는 단풍들이 아주 멋지고, 스님께서는 계곡으로 내려가셔서 물에 손을 담겨보기도 하셨습니다.nbspnbsp미대륙의 양대 산맥은 서부에 로키 nbsp산맥과 동부의 애팔래치안 산맥이 있습니다. 그 중 동부의 nbsp애팔래치안 산맥의 최고봉이 White Mountains이며, 그중 미국의 초대부터 16대까지의 대통령의 이름이 다 붙여져 있는 Presidential Range 선상에 있는 Mountain Washington이 1972m로서 가장 높다고 합니다. Mountain Washington은 White mountain으로 불리는데 1년 중 7개월 이상 봉우리에 눈이 덮여있고 여름에도 항상 흰구름에 싸여 그 모습을 드러내지 않아서라고 합니다. 또한 미국 내에서 바람이 가장 드세기로도 유명한데 그 이유는 북극에서 내려오는 한냉 전선과 대서양을 거슬러 올라온 습한 공기와 대륙을 건너온 건조한 바람이 이 곳 정상부근에서 항상 부딪치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또한 이 지역 일대는 나무 수종이 다양하고 무성하여 국유림으로 지정 관리되며 세계에서 단풍이 가장 아름다운 세 곳 중의 하나로 미동부에서 탐방객이 가장 많다고 합니다.nbsp단풍 구경을 잠시하고 곧 다시 길을 들어 고속도로를 달리다가 미국 국경을 넘기 직전에 잠시 점심 요기를 할 곳을 찾아서 고속도로 옆에 있는 크리스탈 호수 공원으로 이동하였습니다. 이곳에서 김명호 거사님께서 준비해 온 누룽지를 끓여서 간단히 점심요기를 하기로 하였습니다. 12시 30분에 크리스탈 호수 공원에 들어서니 드넓은 호수와 호수비치가 있어서 정말 미국 자연환경이 아름답게 보존되고 있음을 다시 한번 느껴보았습니다. 평화롭고 한가롭게 호수가운데를 오리들이 지나가고 저멀리 보이는 산봉우리에는 풍력발전소가 돌아가는 밝고 아름다운 가을 날씨와 함께 정말 멋진 풍경이었습니다.버너에 물을 끓여서 각기 숭늉과 사과 한조각으로 점심요기를 하고 다시 길을 들어 1시 40분에 캐나다 국경에서 입국 수속을 하고 국경을 넘어서 캐나다로 들어왔습니다. 다시 길을 달려 오니 저멀리 몬트리얼 이정표가 나옵니다.nbspnbsp몬트리얼 이정표가 나오자 다리 저편으로 다운타운이 보이고 우리가 넘어가고 있는 다리 주변으로 아름다운 호수 풍경이 펼쳐졌습니다. 세인트로렌스강이 몬트리얼을 서쪽편으로 두고 남북으로 흐르고 있었습니다.nbspnbsp오후 4시 45분에 오늘의 숙소인 전민락 거사님 댁에 도착하니 전민락 거사님께서 아주 반갑게 저희들을 맞이해주셔서 차에서 짐을 내려 잠시 휴식을 취한 다음에 스님께서는 다시 누룽지로 간단히 요기를 하신 후에 6시 10분경에 강연장으로 출발하였습니다.오늘 강연이 열리는 곳은 몬트리얼 한인천주교회였습니다. 몬트리얼은 정토 열린법회도 없고 nbsp정토회와 인연이 없는 곳이지만 세계 100회 강연을 기획한 다음에 홈페이지에 자원봉사자를 찾는다는 홍보를 하여 몬트리얼 행사를 맡아주시겠다고 하신 김은아님을 중심으로 자원봉사자를 찾아 자원봉사자들이 서로 협력하여 행사를 준비하였다고 합니다. 한인천주교회가 아주 웅장하고 크고 아름다웠는데 기꺼이 법륜스님께서 강연을 할 수 있도록 교회를 빌려주셨다고 하였습니다. 6시 30분경에 스님께서 강연장에 도착하니 자원봉사자들과 참석자들이 다가와서 스님께 반갑게 인사를 하였습니다.nbsp스님께서는 입구에 들어오시면서 토론토 정토법당 김정란 총무님과 자원봉사자들에게 반갑게 인사를 한 후에 잠시 의자에 앉아 기다리고 있자 이번 행사를 후원하고 홍보 등을 적극적으로 지원해주신 몬트리얼 한인회의 김광인 회장님께서 간단한 인사말씀을 하셨습니다. 법륜스님께서 이곳 몬트리얼까지 찾아주시니 한인들이 이렇게 모이게 되어 무엇보다 기쁘고 힐링의 시간이 되면 좋겠다고 하였습니다. 이어서 스님께서 6시 50분에 무대에 오르셨습니다.nbsp스님께서는 몬트리얼 강연은 처음이고, 20년전에 몬트리얼을 잠시 방문한 적은 있지만 강연을 한적은 없다고 하시면서 이렇게 좋은 공간을 사용할 수 있도록 해주신 성당에 깊이 감사드리며 또한 적극적으로 후원해주신 한인회장님께 깊이 감사드린다고 인사말씀부터 해주셨습니다. 그리고 현재 감기 몸살로 목소리가 좋지 않는 것도 양해해주면 좋겠고, 또한 자원봉사자 여러분들께도 감사드린다고 하였습니다.nbspnbsp어제도 하버드대학에서 질문이 20개 이상 나왔지만 시간이 너무 지체되어 18개만 받았는데, 오늘도 스님께서는 마음껏 인생사 개인 얘기, 사회 얘기, 종교 얘기, 과학 얘기, 사람 얘기, 자연환경 얘기 등, 주제에 구애받지 않고 자연스럽게 편안하게 얘기를 해보자고 하셨습니다.nbsp오늘은 총 10명이 질문하였고, 어제와 마찬가지로 대기하고 있던 2명의 질문자도 시간관계상 질문을 하지 못했습니다.nbsp nbsp남편의 직장을 따라 몬트리올에 온지 2년이 되었는데 영어와 불어를 못하는 것도 짜증이 나고 나중에 한국에 돌아갈 것을 생각하니 적응할 수 있을지 걱정된다는 분, 평생 열정적으로 일하고 싶은데 취직이나 돈버는 문제 때문에 고민이 된다는 학생, 논리정연하게 말을 잘하는 친구들을 보면 열등감이 생기고 말주변이 없어서 취업 면접도 걱정된다는 학생, 아이들 교육 문제로 몬트리올에 왔는데 시부모님과 관계가 안좋아 한국에 다시 돌아갈 것이 걱정된다는 분, 천주교 신자인데 스님의 ‘깨달음’이란 책을 읽고 크게 의심하고 분노하라는 구절에 대해 자세한 설명을 듣고 싶은 분, 이민을 온지 20년 동안 하고 싶은 것을 마음대로 하지 못해 허무한 마음을 달래는 법을 묻는 분, 즉문즉설을 유튜브를 통해 보고 인생이 행복해져서 스님께 감사인사를 하고 싶다는 분, 어렸을 때 부모님이 이혼하고 폭력적인 아버지 밑에서 자랐는데 아버지와의 관계를 어떻게 회복해야 할지 묻는 분, 동아리 활동을 하며 많은 친구들을 사귀게 되어 본분인 공부를 소홀히 하게 되어 고민이라는 분 등 다양한 질문에 대해 스님께서는 정성껏 답변해 주셨습니다.nbsp오늘은 그 중에서 이모와 어머니가 서로 사이가 좋지 않아 그 사이에서 고민하는 한 청년의 질문과 스님의 답변을 소개합니다.nbspnbsp“저는 이곳 몬트리올에 14살 때 혼자 유학을 와 이모네 집에서 자라 지금 나이는 22살입니다. 처음 오게 된 계기는 몬트리올에 이모랑 이모부가 살고 계셔서입니다. 이모 댁에 같이 살다가 사이가 나빠져서 나와서 살게 되었습니다. 가끔씩 이모랑 이모부를 뵙기는 했는데, 작년에 오랜만에 가족들을 보러 한국에 가기 위해 돈을 다 준비했는데, 이모와 이모부가 굉장히 반대를 하셨어요. “그 돈을 학비에 보태지 뭐하러 한국에 가느냐” 그러셨어요. 지금 어머니랑 이모랑 관계가 굉장히 안 좋은데 제가 어떻게 해야 할까요?“nbsp“엄마랑 이모가 서로 관계가 안 좋은 것은 자기들끼리 문제이니까 신경 쓰지 마세요. 옛날에 은혜 입은 것은 은혜 입은 것이고, 스무살이 넘은 성인이니까 질문자는 자기대로 자유롭게 살면 됩니다. 스물까지 키워야 하는 것은 부모의 의무인데 엄마가 의무를 방기하고 이모한테 맡겼잖아요? 그러니 책임을 방기한 것에 대해 엄마가 이모한테 갚아야 합니다. 질문자의 책임은 아닙니다. 질문자는 상관할 필요가 없고 자기 나름대로 살면 됩니다. 이모가 보고 싶으면 방문하면 되고, 보기 싫으면 안가면 됩니다.nbsp스무살 이전에는 미성년자이니까 결정권이 나한테 없었어요. 이모가 되었든 부모가 되었든 보호자에게 결정권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어쨌든 질문자가 스무살이 넘었으니까 결정권은 질문자에게 있습니다. 그러니 엄마가 “이렇게 해라, 저렇게 해라” 하는 것은 참고사항으로 받아들이고 “네 알겠습니다” 이렇게 대답하면 됩니다. “아니요” 하지 말고 “네 알겠습니다” 하고 마음에 내키지 않으면 안하면 됩니다. 왜냐하면 나는 스무살이 넘은 자유인이기 때문에 그렇습니다.nbsp다만 이것은 이해해야 합니다. 친척 아이나 형제 아이를 데려다가 키우면 반드시 원수가 됩니다. 이모는 나쁜 사람이 아니고 어리석은 사람입니다. 언니의 아이를 받아서 키웠기 때문에 이런 결과가 나타난 것입니다. 아무리 언니가 좋아도 언니의 아이를 데려다가 키우는 것은 바보 같은 행동입니다. 원수가 되기 쉽습니다. 친구가 아무리 좋아도 친구 아이를 데려다 키우면 열에 아홉은 원수가 됩니다. 그런데 이모가 바보 같은 행동을 한 겁니다. 그래서 질문자와 관계도 안 좋고 형제간에 관계도 안 좋아진 겁니다. 그러니 질문자의 책임은 아닙니다. 이모의 책임입니다. 왜냐하면 이모 본인이 멍청해서 바보같은 행동을 했기 때문입니다.nbspnbsp왜 친척 아이를 데려다 키우면 관계가 나빠질까요? 그렇게 될 수밖에 없는 원리가 있습니다. 그래서 이모를 조금 불쌍하게 여기는 것이 필요합니다.”“내년에 사촌 누나가 결혼을 해요. 제가 한국에 가려고 했는데 이모도 한국에 간다고 해요. 같이 가면 서로 보게 되는데 어떡하죠?”nbsp“서로 보면 어때요? 보면 인사를 해야지요. 여기에서도 이모를 만나고 싶으면 언제든지 마나러 가면 됩니다. 가지 말라는 것이 아니라 가기 싫으면 안 가도 된다 이런 뜻입니다. 한국에 가서 만나게 되면, 이모한테 밥 얻어먹고 공부 했으니 ”고맙다”고 인사를 해야지요.nbsp이모가 왜 바보 같은 행동을 했느냐면, 남의 애를 데려다가 키우면 두 가지 어려움이 있어요. 내 아이가 아니더라도 아이는 다 자기 마음대로 하려고 하는 성질이 있잖아요. 그것을 야단치게 되면 아이가 반발하게 되고 아이가 반발하게 되면 그것을 자기 엄마한테 얘기하게 됩니다. 그러면 엄마는 아이 얘기를 듣지 다른 사람 얘기를 안 듣기 때문에 섭섭해집니다. 말을 계속 안 들으면 또 이모는 엄마한테 전화해서 “아이가 문제 있다” 고 합니다. 그러면 엄마는 그게 또 듣기 싫어집니다. 그래서 야단을 쳐도 관계가 나빠지고 가만히 놔두어도 나중에 원망을 듣게 됩니다. “나는 너 믿고 맡겨 놓았더니 제대로 돌보지도 않았냐” 이렇게 해서 이래도 문제고 저래도 문제가 됩니다. 그래서 이모 잘못이 아니라 이모가 바보 같은 행동을 해서 그런 겁니다.nbsp이모는 바보 같은 행동을 해서 손해만 봤고 질문자는 덕을 봤습니다. 그러니 이모를 멀리할 이유는 없습니다. 그래서 바보 이모를 고맙게 생각해야 합니다. 이모 본인은 손해가 좀 있는데, 질문자한테는 손해난 것이 없어요. 이모가 잔소리를 했다고 하는데, 이모가 아닌 엄마와 같이 있었더라도 잔소리를 더 했으면 더했지 마찬가지였을 겁니다. 그런데 이모가 잔소리를 하는 것은 엄마가 한 것보다 더 상처를 입습니다. 그러나 이치로 따지만 이모는 고마운 존재입니다. 아무런 잘못이 없어요.nbsp이모는 애를 먹어가면서 키우고 돌봐줬는데 말도 안 듣고 해서 이모 또한 지금 상처를 입은 것입니다. 그래서 저렇게 야단을 치고 난리인 것입니다. 그러니 항상 이모님께 “아이고, 이모님 감사합니다” 이렇게 하거나, 뭐라고 하면 “죄송합니다” 이렇게 하세요. 그리고 앞으로는 스무살이 넘었으니까 자기가 알아서 살면 됩니다. 말은 안 들어도 됩니다. 그러나 과거에 질문자를 키워준 것에 대한 고마움은 알아야 합니다. 질문자 혼자서 큰 게 아닙니다. 그래서 항상 고마운 마음을 지니고 서로 만나면 인사해야 하고 짐이 있으면 들어줘야 합니다. 그러나 내 인생은 내가 사는 것이니까 구애받지 말고 자립적으로 주체적으로 살면 됩니다. 무거운 짐을 질 필요는 없는데 고마운 줄은 알고 살아야 합니다.”nbsp스님께서는 오늘도 10명의 질문자들과 함께 즉문즉설을 진행하다보니 2시간 35분간 강연을 하였고, 1시간 20분이 넘어서니 스님 목소리가 가라앉고 갈라지는 듯 하였습니다. 마지막 질문자의 대답에 정성스레 답하신 후에 스님께서 목소리가 갈라지니 듣기가 힘들죠? 라고 오히려 청중들을 걱정하니 청중들은 아니라고 합니다. 오늘은 300명 이상이 참석하였는데 몬트리얼은 세계적으로 유명한 맥길대학교가 있고, 대학이 많은 교육도시이기 때문에 유학생 등 유동인구가 많다고 합니다. 그런데 그런 유동인구까지 다 포함해도 최대 6000명을 추정하는데 오늘 300명 이상이 모인 것은 엄청 나다고 다들 말씀해 주셨습니다. 스님께서는 많이 참석해주시고 오늘 또 이렇게 경청해주셔서 감사합니다. 라며 마무리 인사를 이렇게 해주셨습니다.nbsp“인생을 살면 이런저런 일이 많이 생깁니다. 남이 원한다고 내가 다 해줄 수 있는 것이 아니고, 내가 원한다고 또 다 내 마음대로 되는 것이 아닙니다. 오늘 질문자가 2명이 남았습니다. 남은 2명의 질문자는 질문을 원하지만 제가 다 해줄 수가 없었습니다. 못해주면 “죄송합니다.” 이렇게 하면 됩니다. 인생이 뜻대로 다 되는 것이 아니며, nbsp그것은 욕심입니다. 행복하게 살면 나를 위해서도 좋고, 다른 사람들에게도 희망을 주는 일이 됩니다. 여기 이곳에서 내가 행복하지 못하다는 것은 전적으로 내 문제이지 세상 문제가 아닙니다. 지금보다는 더 나은 행복을 찾아갈 수가 있기 때문에 자기 인생을 행복하게 사시길 바랍니다. 끝으로 다함께 해보겠습니다. ‘행복도 내가 만드는 것이네. 불행도 내가 만드는 것이네. 진실로 그 행복과 불행, 다른 사람이 만드는 것 아니네’ 행복하시길 바랍니다”nbsp스님께서 인사말을 하시니 2시간 35분동안 목이 아프고 건강이 좋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열강을 해주신 스님께 청중들은 큰박수를 보냈습니다.nbsp2012년, 2013년 캐나다 토론토와 벤쿠버 지역을 다니면서 느낀 것은 대중들과의 공감이 어느 곳 보다 뛰어나고 스님과 함께 하는 호흡이 좋다는 것을 느낍니다. 오늘도 강연 중에 웃음꽃이 피어나고 팡팡 웃음이 터졌습니다. 그러니 2시간 35분의 강연이 전혀 지루하지가 않고 흐트려지지 않으며 끝까지 집중된 모습을 보였습니다. 강연을 마치고 나오자 성당에 계시는 수사님께서 스님의 큰 팬이 되었다고 하면서 스님과 깊은 허그를 나누셨습니다.nbspnbsp스님께서 이렇게 훌륭한 장소를 제공해주셔서 진심으로 감사드린다고 다시한번 인사를 하셨고, 자리를 이동하여 북 사인회를 하였습니다. 준비한 책이 영문책 몇권을 제외하고는 모두 다 팔릴 정도로 스님의 책도 인기가 많았고, 사인을 받아가기 위하여 줄을 길게 섰습니다. 스님께서는 끝까지 사인을 다 해주시고, 자원봉사자들께도 사인을 해주셨습니다. 또 늦은 시간까지 함께 해주었을 뿐만 아니라 이번 행사의 후원도 하고 홍보도 적극적으로 해주신 김광인 회장님께 책을 선물해드렸습니다.nbsp또한 이번 행사를 총괄한 김은아님께도 스님 사인을 한 책을 선물해 드리고, 성기택 베드로 신부님과 서 수사님께도 책을 선물해드리고 그리고 성당을 빌려주심에 감사 헌금을 전달해 드렸습니다. 신부님과 서 수사님과 함께 기념 사진촬영도 하였습니다.nbsp또한 함께 자원봉사를 해준 자원봉사자들과 단체사진 촬영을 하고, 한사람 한사람에게 단주를 선물로 주시면서 몸이 아픈 관계로 함께 나누기 하지 못해서 미안하다는 양해를 말씀을 구하고 스님께서는 10시에 숙소로 돌아갔습니다.nbspnbsp스님께서 돌아가시고 나서 묘덕법사님과 함께 남은 물품을 뒷정리하고 행사준비를 한 분들과 마음나누기를 하였습니다. 대중 교통편으로 돌아가야하고 개인적으로 바쁘신 분들은 먼저 돌아가고 4명이 남아서 나누기를 하였습니다. 몬트리얼 책임을 맡아서 행사를 진행한 김은아씨는 성당에 다니신다고 하였습니다. 그리고 자원봉사자들의 대부분이 풀타임 직업을 갖고 계시는 분들이라서 정말 시간적으로 바빴지만 봉사를 하면서 재밌고 신나게 행사를 준비하였고 홍보 또한 적극적으로 하였다고 하였습니다. 또한 준비하는 과정 자체가 힐링의 시간이었다라고 하면서 정말 즐거운 시간이 되었다고 합니다. 그리고 지속적으로 스님의 좋은 법문을 듣고 함께 마음 공부를 할 수 있는 모임이 이곳 몬트리올에서도 생겼으면 좋겠다고 하였습니다.nbsp나누기를 하고 숙소로 귀가하니 11시 30분이 되었습니다. 스님과 내일 일정에 대해 잠시 논의하는 시간을 가지고 저는 제 숙소로 돌아왔습니다.내일은 32번째 강연이 캐나다의 수도인 오타와에서 열립니다.nbsp 실외 사진 촬영은 이형만 감독님, 강연장 사진 촬영은 장호 거사님께서 해주셨습니다. nbsp
2014.9.24 세계 100회 강연(30) 미국 보스톤
안녕하세요. 오늘은 법륜 스님의 세계 100회 강연 중 서른 번째 강연이 미국 보스톤에서 열리는 날입니다. 유럽 29회 강연을 마치고 오늘부터는 미주 순회 강연이 새롭게 시작됩니다.nbsp어제 더블린 강연을 마지막으로 유럽 29회 강연을 마친 스텝진과 파리법회, 프랑크푸르트법회 담당자, 더블린 강연 담당자들은 오민씨 댁에서 하룻밤을 자고, 아침식사를 한 후 유럽 강연을 위해 온몸을 나투신 스님께 삼배로 인사를 올렸습니다.nbspnbsp스님께서는 삼배를 받으시고 난 후 “공덕을 많이 쌓으셨습니다. 다들 수고 많으셨어요.” 하며 한 달 동안 잠도 거의 못자고 하루에 수백 킬로미터를 이동하며 강연 준비를 위해 수고한 스텝진들과 강연 담당자들을 격려해 주셨습니다.nbsp오민씨 부부와 허윤진씨 부부, 김기용 학생의 차량 운전으로 오전 9시에 더블린 공항에 도착하였습니다. 스님께서는 유럽 강연과 더블린 강연 담당자들에게 각각 감사 인사를 한 후 기념촬영을 함께 하였습니다.nbspnbsp그리고 미국 보스톤으로 출발하기 전, 전국의 정토행자들과 카카오스토리 희망편지 120만명의 구독자들에게 유럽 29회 강연을 마치고 미주 순회강연을 시작하는 인사말을 다음과 같이 남겨 주셨습니다.nbsp“안녕하세요.nbsp오늘로서 유럽 강연 29회를 모두 마쳤습니다.nbsp정말 많은 사람들의 도움으로nbsp강연을 무사히 마칠 수 있었습니다.nbsp곳곳에 사시는 분들의삶의 애환을 많이 들었습니다.nbsp고국을 떠나서 낯설은 외국에서nbsp뿌리 내리고 사는 우리 교민들을 볼 때때로는 감동도 있었고nbsp때로는 눈물겨움도 있었습니다.nbsp특히 최근에 세월호 침몰 사고를nbsp한국에서 제대로 처리하지 못하는 것을 보고nbsp우리 교민들이 너무 가슴아파하고nbsp조국에 대해서 실망하는 모습을 보았습니다.nbsp한국에 살고 있는 우리들이nbsp해외에 있는 교포들에게nbsp다시는 실망을 주지 않아야겠습니다.nbsp그들에게 희망을 줄 수 있는nbsp좋은 나라를 우리가 만들어나갔으면 합니다.nbsp우리는 지난 반세기 동안nbsp미국으로부터 많은 것을 배워서nbsp빠른 성장을 할 수 있었습니다.nbsp그러나 이제 우리는nbsp공동체적인 삶으로의 전환이 필요한 시기입니다.nbsp현 시기에는 유럽으로부터nbsp많은 것을 배울 수 있지 않겠나 느꼈습니다.nbsp사회복지제도라든지 지방자치제도라든지질서와 안전을 중요시하는 면에서nbsp유럽에서 많은 것들을 배우는nbsp기회를 가졌으면 하는 바램을 가져봅니다.nbsp또 나라가 다름에도 불구하고nbsp서로 협력해서 국경이 개방되는 유럽을 보면서우리는 같은 민족임에도 불구하고nbsp아직도 철조망이 가로놓인 분단의 현실이너무나 가슴이 아팠습니다.nbsp유럽 강연을 무사히 끝내고nbsp이제 미국으로 가게 됩니다.nbsp미국에 가서 여러 도시들을 다니면서그곳에 살고 있는 교민들의 애환을nbsp또 그들의 희망과 자랑스러움을nbsp여러분께 전해드리도록 하겠습니다.nbsp그동안 영상 봐주시고 글 읽어주신nbsp여러분께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더블린 공항에서 미국으로 출발하며 남겨주신 스님의 영상 편지입니다.nbsp 스님께서는 오전 11시50분 비행기로 미국 보스톤으로 출발하셨습니다. 이제 미주 순회 강연이 시작됩니다. 미국에는 많은 교민들이 살고 있는데, 그곳에서는 또 어떤 사람들을 만나 어떤 삶의 애환을 듣고 어떤 지혜를 들려주실까요? 세계 100회 강연을 무사히 끝나칠 때까지 많은 관심과 응원을 바랍니다.nbsp유럽 강연이 끝나고 그동안 스님의 하루를 올려준 희망플래너 이준길 법우님과 차량 운전과 촬영을 맡아준 김경희 법우님은 한국으로 귀국했습니다.nbsp한국에서는 묘덕법사님과 촬영을 담당할 이형만 감독님이 어제 워싱턴 미주정토회관에 도착해 오늘 아침 해외지부 김순영 사무국장과 워싱턴에서 만나 보스턴으로 왔습니다. 그리고 보스턴부터 캐나다를 거쳐 뉴욕까지 운전 봉사를 해주실 뉴욕정토회 김명호 거사님과 토론토 정토법당의 장호 거사님께서 토론토에서 오셔셔 합류하였습니다. 그래서 오늘부터 스님과 함께 다닐 스텝진이 모두 바뀌게 되었습니다. 특히 김명호 거사님께서는 스님을 편안하게 모시고자 비교적 실내공간이 넓고 편안한 GM 밴을 새로 구입하여 보스턴으로 오셨습니다. 다함께 새차 앞에서 북미주 강연을 시작할 스텝들과 함께 단체 사진을 찍었습니다.nbspnbsp스님께서는 최말순 보살님, 박지나 JTS 대표님과 함께 아일랜드 더블린 공항에서 비행기가 1시간 20분 연착되는 관계로 총 7시간의 비행 후에 오후 3시에 보스턴 공항에 도착하셨습니다.nbspnbsp▲nbsp보스턴 공항에 도착하신 후 주차장으로 이동하시는 스님과 스텝분들장호 거사님은 이형만 감독님과 함께 먼저 행사장으로 갔고, 저희는 더블린에서 오신 법륜 스님, 최말순 보살님, 박지나 JTS대표님과 함께 공항에서 짐을 찾아 주차장으로 가서 스님과 함께 김명호 거사님 차에 짐을 싣고 오늘 묵을 이경미 보살님 댁으로 이동하였습니다.이경미 보살님은 현재 보스턴 열린법회 담당자로서 미국인 남편, 그리고 8학년, 10학년인 두 아들과 함께 하버드 대학교 인근에서 살고 있었습니다.nbsp야수 식당을 운영하고 계시는 나정희 보살님께서 스님과 일행들께 공양 대접을 하기로 하였으나 스님의 건강이 좋지 않고, 또한 비행기도 늦게 도착한다고 하여 보살님께서 손수 집에서 음식을 준비해서 이경미 보살님 댁으로 음식 배달을 해오셨습니다. 그래서 저희들은 감사히 점심 겸 저녁식사를 하고 스님께서는 보살님께 엄마수업 책을 사인해드렸습니다. 보살님과 두 분의 따님은 스님 뵙기를 간절히 기다렸다고 하면서 반갑게 환영인사를 하고 함께 사진도 찍었습니다. nbspnbsp▲nbsp저녁 공양 준비를 해주신 나정희 보살님과 두 따님저녁 식사를 한 후 스님께서는 간단히 세면을 하신 다음 6시에 강연장으로 출발하였습니다. 30번째 보스턴 강연은 하버드 대학교 사이언스홀에 이루어졌는데 미주 동북부캐나다 동부 지구의 임금이 지구장과 보스턴 지역 대학의 자원봉사자, 그리고 보스턴 지역에서 열린법회를 하고 있는 분들이 다함께 정성을 모아 준비를 했다고 합니다. 또한 하버드 대학교에서 박사과정을 하고 있는 남궁범진씨는 2012년부터 매년 강연장소를 무료로 빌릴 수 있도록 애를 써서 이번에도 하버드 대학교에서 무료로 강연이 이루어질 수 있게 해주었습니다.nbsp▲nbsp강연이 열리는 하버드 대학교 사이언스 홀 모습강연장에 도착하니 희망세상만들기 주황색 티셔츠를 입은 자원봉사자들이 반갑게 인사를 하고 스님일행을 맞이해 주었습니다. 7시 5분 전에 환영 영상과 스님 소개 영상이 나오고, 스님께서는 정확하게 7시에 무대에 오르셨습니다.nbsp▲nbsp스님 강연장으로 들어오시는 모습어제 유럽 강연을 마치고 오늘 보스턴에 도착한 스님을 박수와 함께 큰 환호로 환영을 하니 스님께서도 안녕하세요. 날씨도 좋죠? 덥지도 않고, 춥지도 않고, 좋은 가을날씨입니다. 라고 인사를 하셨습니다.nbsp“저는 지난 한달 동안 유럽의 각 도시를 순회해서 강연을 하고 오늘 보스턴에 도착했습니다. 지난 한달 간 유럽의 각 도시를 순회하고 교민과 유학생들과 만나 그들의 애환도 듣고 했는데, 요즘 교민들은 고국에서 일어난 사건에 대해서 특히 지난 4월에 있었던 세월호 사건, 군대에서 있었던 사건 등에 대해서 가슴 아파하고, 분노하고, 슬퍼하고, 실망을 많이 하고 있었습니다.nbsp저는 인생은 특별히 이렇게 살아야 한다는 메세지는 없습니다. 인생에는 정답은 없습니다. 다만 어떻게 살면 지금보다는 조금 더 자유롭고 행복하게 살 수 있을까 하는 길을 찾을 수 있도록 하는 것입니다. 어제보다 나은 오늘, 작년보다 나은 올해, 오늘보다 나은 내일, 이런 것은 조금만 노력하면 됩니다. 그러니 대화는 여러분과 자유롭게 어떤 주제, 어떤 얘기, 어떤 방식에도 상관없이 하면 됩니다. 또한 자기 애환을 얘기해도 됩니다. 다만 한 사람이 너무 오래만 하지 않으면 됩니다.nbsp그리고 바로 즉문즉설 강연이 시작되었습니다.nbsp오늘 보스턴 강연은 총 250여명이 참가하였는데 대학교에서 하다보니, 참가자의 23 정도가 학생들이었으며, 교민들보다 학생들과 젊은 분들의 질문이 많았습니다. 오늘은 많은 분들이 질문을 위하여 마이크 앞에 줄을 섰지만 시간 관계상 더 이상 질문을 받지 못했습니다. 2시간 50분동안 총 18명이 스님께 질문을 하였고 스님께서는 답변을 해주셨습니다.nbsp1 강연이나 법문을 듣고 난 후에 들은 내용을 일상생활에서만 적용해서 살면되는지 어려운데 가서 봉사도 하고, 절에가서 수행도 해야 하는지 묻는 분2 절에 가서 사시기도 시에 천수경을 하고 기도하고, 발원을 한 다음에 3배만 하고 나오는데 괜찮은지 묻는 분nbsp3nbsp교회를 꼭 가야 한다고 많은 사람들이 말하는데 꼭 특정한 종교를 가져야 하는지 질문하는 분4 최근에 교회에 다니기 시작한 유학생으로 믿음이 잘 가지 않는데 교회분들은 본인에게 친절하게 대하니 어떻게 해야 하는지 고민이라는 학생분5 교환 학생으로 있는 학생인데, 연애를 하면서 좋은 사람을 만나려면 좋은 사람이 되어야 한다고 많이 들었는데 좋은 사람의 정의가 무엇인지 묻는분,nbsp6 세상이 조금 더 평화롭고 정의로운 세상이 되도록 하는 것을 공부하고 있는 유학생인데 근본적으로 좀 더 평화롭고 정의로운 세상을 만들기 만들기 위해서는 관점을 어떻게 잡아야 하는지 궁금하다고 질문하는 분7 비지니스 스쿨에 다니고 있는 학생으로 요즘 본인의 화두가 리더쉽인데, 스님께서 보시기에 리더쉽은 후천적으로 습득이 가능한지 아니면 선척으로 타고나야 하는 것인지 질문하는 분8 로봇을 연구하는 학생인데, 본인이 추구하는 학문 속에서 세상이 선한 방향으로 가는 길을 함께 추구할 수 있는지 궁금하다는 분9 현재 직장인이고 결혼도 하고 아이도 있는데 아내와 다툴 일도 많아지고 하니, 치밀어 오르는 것을 누르는 것 같은 느낌이라서 이런 것을 근본적으로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이 있는지 묻는 분10 결혼한지 1년된 주부인데 처음에는 남편과 취미도 잘맞고 해서 결혼을 하여 미국와서 살고 있는데 1년이 되니 사소한 것들이 마음에 안들기 시작하는데, 스님 책을 보고서는 머리로는 이해했지만, 행동은 잘되지 않는데 어떻게 하면 이것을 고칠 수 있는지 묻는 분11 유학생인데, 지금처럼 공부하는 회사원, 유학생, 열심히 살고 있는 청년들에게 미래는 잘 보이지는 않지만, 잘 가고 있다고 따뜻한 위로의 말씀을 부탁드린다는 분nbsp12 처음 유럽으로 갔을 때의 마음가짐과 지금 아곳에서 공부하고 있는 마음을 보았을 때 전반적인 태도가 나태해지는 것 같은데, 처음의 열정이나 도전의식을 회복할 수 있는지 궁금하다고 질문하는 분nbsp13 북한과 통일을 해야 하는지, 통일을 해야 한다면 어떻게 하면 통일을 할 수있는지 궁금하다고 한국어를 서툴게 하면서 질문하는 학생.14 컴퓨터 공학을 공부하고 있는 학생인데, 열심히 사는 것에 어떤 가치를 두고 살아야 하는 것인지 궁금하다고 질문하는 분15 인공지능을 전공하는 박사과정 유학생인데, 많은 유학생들이 정신이 나간 것 같다고 하신 말씀을 들었는데, 어떻게 하면 벗어날수 있는지 궁금하다고 질문하는분16 정책학을 공부하고 있는 주부학생으로서 두살된 아기가 한국에 있는데 보고 싶어서 마음이 아프고, 지금 현재 아이와 유학생활 사이에서 어떻게 하는것이 좋을지 고민하는 젊은 유학생 엄마의 질문nbsp17 8살, 5살 둔 주부인데 아이들이 잘못했을때 엄격하게 가르쳐야 하는지, 아니면 아이들의 눈높이에서 사랑으로 감싸면서 이해해 주어야 하는지, 이 둘 사이에서 혼란이 있는데 어떻게 해야 좋을지 고민이라고 하는 분nbsp▲nbsp강연장 질문자 모습이렇게 17명이나 질문 하였는데도 질문자가 앞으로 5명이나 더 있자 스님께서 4명은 양보하고 마지막 한 분만 질문하고 마치자고 하자, 중년의 남자분께서 10년전에 나온 예수는 신화다라는 책과, 그리고 SBS의 2008년 신의길, 인간의 길이란 방송에 대한 본인의 생각을 한참 얘기를 하셨는데, 이분의 긴 질문을 들으시고 나와 생각이 다른 것에 대해서 어떻게 인정하고 대화를 해야 하는지에 대해서 스님께서는 자상하게 대답을 해주셨습니다.nbsp▲nbsp질문자들이 마이크 앞에서 대기하고 있는 모습질문자가 18명이 되다보니 강연시간이 2시간을 넘어가서 스님의 목소리가 약간 갈라지고 가라앉는 것 같았습니다. 질문자가 많아서 다른 곳에 비해 스님의 답변도 간단한 게 많았습니다. 마지막 질문자의 질문과 대답에 이어서 스님께서는 마무리로 다음과 같이 말씀해 주셨습니다.nbsp“이 세상에 사는 사람은 그 누구든, 즉 무슬림 신자이든, 개신교 신자이든 존재하는 모든 것은 다 존중받아야 합니다. 개신교는 좀 배타성이 있구나 하고 인정하고 대화를 해야 진정한 평화가 오고, 북한의 특수성을 이해해고 대화를 해야 한반도에 평화도 옵니다. 모든 것을 동등한 관점으로만 봐서는 대화를 할 수가 없습니다. 따라서 수행자는 항상 상대의 특수성을 인정하고 그것을 수용해야 평화에 한발 더 다가설 수 있습니다. 이것은 절대 상대에게 끌려가는 것도 아니고 비굴한 것도 아니고 더 큰 것을 향해 나아가는 것입니다.”nbsp진정한 평화는 배타성을 인정해야 올 수 있다고 하신 말씀이 저에게는 큰 감동으로 다가왔습니다.nbsp“또한 행복은 어떻게 자기가 주인이 되느냐 하는 것인데, 오늘은 학생들이 많은데 나이들어 생각해보면 밥만 먹고 공부만 하던 때가 언제 있겠습니까? 지금이 굉장히 소중한 시기입니다. 공부할때는 공부하는게 재미있어야 하고 항상 지금을 좋은 시절로 바라보고 살아야 여러분들이 행복합니다. 항상 행복하시길 바랍니다.”nbsp이렇게 마무리를 하시니 청중들도 큰 박수로 스님의 2시간 50분 동안의 강연에 대한 감사의 마음을 전했습니다.nbspnbsp강연을 한 다음에는 스님의 책을 구입하고 북사인회를 기다리는 분들께 사인회를 하고 사진도 함께 찍어주셨습니다. 이후에는 10명의 자원봉사자들과 단체사진 촬영을 한 후에 스님께서는 자원봉사자 한명 한명에게 단주를 끼워주시면서 수고했다고 감사의 인사를 전했습니다.nbsp건강이 좋지 못하여 함께 나누기를 못하니 묘덕법사님과 나누기를 하세요 라고 양해를 구하고 스님께서는 먼저 숙소로 이동하여 도착하니 10시 40분이 되었습니다. 스님께서는 이후에 한국에서 온 검토사항 등을 보시고 휴식을 취하셨습니다.nbsp한편 자원봉사자들과 단체 사진촬영을 한 후에 묘덕법사님은 임금이 지구장과 함께 자원봉사자들과의 나누기를 하였는데, 자원봉사자들은 시험기간인데도 불구하고 홍보하고 준비하는 것이 재미있고 즐겁고 특별히 어려운 일은 없었다고 하였습니다. 이분들의 정성어린 홍보 덕분으로 250명이라는 많은 분들이 함께 할 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nbsp이번 자원봉사자 10명은 하버드대학교 학생들, MIT및 보스턴 지역의 학생들로 구성되었습니다. 봉사자들도 하고 싶은 질문이 많았는데 다른 학생들의 질문과 스님의 답변 속에서 본인들의 어려움도 해결되었다는 분들이 많았습니다. 스님 강연이 두 시간을 넘어가고 학생들의 질문이 많다보니 어른들은 조금씩 일찍 나가고 수업 이후에 또 들어오는 학생들이 있다보니 나중에는 집중력도 조금 떨어지고 산만한 면도 있었다며 다음에는 이런 부분도 고려하면 좋겠다는 의견도 주었습니다.nbsp▲nbsp단체사진이렇게 오늘 보스턴 미주지역 첫 강연도 많은 분들의 노력과 수고덕분으로 무사히 강연을 마칠 수 있었습니다. 내일은 캐나다 몬트리얼에서 31번째 강연이 있습니다. 보스턴에서 몬트리얼은 8시간 운전을 예상하고 있습니다. 내일은 몬트리얼에서 뵙도록 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nbsp강연장 사진은 토론토 정토법당 장호 거사님께서 찍어주셨습니다.nbsp
2014.9.23 세계 100회 강연(29) 아일랜드 더블린
▲ 아일랜드 더블린, 트리니티 대학에서 열린 유럽에서의 마지막 강연.안녕하세요. 오늘은 법륜 스님의 세계 100회 강연 중 유럽에서의 마지막 강연이 아일랜드 더블린에서 열리는 날입니다. 매일 1개 도시를 방문하여 드디어 29일째인 오늘, 유럽 29개 도시 순회 강연을 모두 마무리하게 됩니다.nbsp▲ 에든버러에서 더블린으로 가는 비행기nbsp새벽6시30분 숙소를 나와서 아침8시 에든버러 공항을 출발한 스님 일행은 9시에 더블린 공항에 도착하였습니다. 공항에는 오늘 강연 담당자인 오민씨 부부와 허윤진씨 부부가 함께 마중을 나와 주었습니다.nbsp오민씨는 프랑스에 유학 와서 공부를 하다가 아일랜드인 남편을 만나서 자녀 둘을 낳고 이곳 더블린에서 살고 있는 분입니다. 스님의 유튜브 즉문즉설을 듣고 삶이 행복해져서 지난번 한국에 와서는 정토회에서 공동체 생활을 하며 한달 동안 자원봉사를 하기도 하신 분입니다. 오늘은 더블린에서 봉사자 38명을 모집하여 강연 준비를 담당해 주었습니다. 허윤진씨 부부는 아일랜드에 있는 유일한 천일결사자 부부입니다. 깨달음의 장을 한 후 지난 8차 천일결사 때부터 남편과 함께 매일 아침 108배를 하며 천일결사 기도를 하고 있다고 합니다.nbsp▲ 공항 마중을 나와 준 오민씨 부부와 허윤진씨 부부.nbsp오늘 숙소인 오민씨 부부의 집에 짐을 모두 풀고, 점심 식사를 함께 했습니다. 부엌 한 켠에서는 저녁에 먹을 김밥을 부지런히 싸고 있는 봉사자들이 있었습니다. 이곳 더블린 강연 준비팀은 봉사자가 무려 38명이나 되어서 각 팀별로 역할 분담이 잘 되어 있었습니다.nbsp전날 저녁부터 바라지팀 자원봉사자들과 더불어 파리지회 정토회 분들이 결합하셔서 나물과 김밥 재료 셋팅 등 거의 밤새다시피 준비를 했다고 합니다. nbspnbsp▲ 하루 종일 봉사자 38인분의 김밥을 싸 준 봉사자들.nbsp스님께서는 어젯 밤에도 공항에서, 오민씨 집에 도착한 후에도, 계속 편두통으로 고생하셨습니다. 점심만 드시고 휴식을 취했지만 통증이 멈추지 않아 마침 오민씨 남편인 가빈씨의 아버지가 병원에서 의사로 일하셨던 분이라고 해서 가빈씨를 통해 스님을 모시고 병원 진료를 받으러 갔습니다. 늦은 시간에 병원에 도착하였음에도 불구하고 오민씨의 간절한 요청과 의사 선생님의 배려 덕분에 진료를 무사히 마칠 수 있었습니다. nbsp오후6시에는 주 더블린 한국대사관에서 박해윤 대사님 부부와 김보연 한인회장님, 손학순 한글학교 교장선생님, 목헌 트리니티 대학 교수님을 비롯한 교민 여러분들이 함께 찾아오셔서 스님과 대화하는 시간을 가지셨습니다.nbsp▲ 오른쪽부터 트리니티 대학 목헌 교수님, 손학순 한글학교 교장선생님, 박해윤 주 더블린 한국대사님 부부, 김보연 한인회장님, 김경희님 외 교민 1명nbsp오늘 즉문즉설 강연은 더블린 교민사회에서도 의미있는 자리가 되었다고 합니다. 학생들 행사에는 교민이 안 오고, 교민들 행사에는 학생들이 안 오고 그랬는데, 오늘 강연은 학생들과 교민들이 함께 하는 뜻 깊은 시간이라면서 다들 좋아하셨습니다. 목헌 교수님은 더블린의 명문대학인 트리니티 대학 최초의 한국인 남성 교수님이라고 합니다. 특히 오늘 강연을 위해 트리니티 대학의 인문사회관을 무료로 대여하는데 많은 도움을 주셨습니다.nbsp스님께서는 편두통이 계속 있으셨지만 통증을 그대로 감내하시면서 저녁 7시에 강연을 시작하셨습니다. Trinity College Dublin Arts Building의 인문사회관을 가득 메운 300명의 청중들은 뜨거운 박수와 환영으로 스님을 맞이했습니다. 자리를 모두 메우고도 부족해 측면 계단에도 빼곡이 앉아서 스님의 강의를 경청했습니다.nbsp봉사자들은 오늘이 유럽 29개 강연의 마지막 강연이 더블린이라는 점을 의미있게 생각하며 ‘나에게 희망세상이란 무엇인지’를 인터뷰한 특별영상을 준비해서 보여주었습니다.nbsp ▲ 더블린 강연 봉사자들이 만든 특별 영상. nbsp봉사자들은 처음에 스님께 희망세상을 만들어달라는 의미의 영상을 제작하려 했는데, 인터뷰 과정에서 희망세상은 누구에게 만들어달라는 것이 아니라 내가 만드는 것이라는, 이번 즉문즉설 강연의 취지를 깨닫게 되어 영상 내용도 우리가 희망세상을 만들자는 내용으로 바꾸게 되었다고 합니다.nbsp봉사자들은 스님께서 유럽 29회 강연을 모두 무사히 마친 것에 대한 감사의 마음을 담아 ‘내가 만들고자 하는 희망세상’을 한지로 덧붙여 만든 연등과 신문지를 재활용해 만든 소망 노트를 선물했습니다.nbsp오늘 강연장은 유럽 강연 중 가장 많은 수가 모였을 뿐만 아니라 열기가 가장 뜨거웠습니다. 그래서 스님께서도 “예상 밖의 환영에 감사드린다” 며 이렇게 자리를 마련한 자원봉사자 분들께 감사의 인사를 하셨습니다.nbsp오늘 강연에는 총 8명이 스님께 질문을 했습니다. 부모님은 곁에서 편하게 지내라고 요구하지만 본인은 고생을 통해 내공을 얻고자해서 자신의 미래에 대한 고민인 분, 오랫동안 친하게 지내왔던 친구의 청혼과 새롭게 마음 가는 사람이 생겨 두 사람 사이에서 결혼을 고민하는 분, 아일랜드에 공부하러 왔는데 학원에서 사기를 당해서 화가 난다는 분, 조금만 뜻대로 되지 않아도 자기 비하를 하는 성격을 고치고 싶은데 그 방법을 묻는 분, 우리는 폭력에서 자유로워 질 수 있는지 묻는 분, 외국 생활하며 만나는 한국 사람들이 수단방법을 가리지 않고 이익을 챙기려는 경우가 많은데 어떻게 대해야 할지 묻는 분, 지금도 어딘가에서 전쟁으로 사람들이 죽고 있고 우리가 사용하는 모든 것도 결국 환경을 파괴하는 것이 아닌지 묻는 분 등 다양한 질문에 대해 스님께서는 명쾌한 답변을 들려주셨습니다.nbsp오늘은 그 중에서 유럽을 여행하며 종교 전쟁에 대해 의문을 가진 한 청년의 질문과 스님의 답변을 소개합니다.nbsp“지금 더블린에 여행하러 와 있습니다. 종교 전쟁을 어떻게 봐야 할까요? 저는 지금 경주에서 출발하여 중국을 거쳐 중앙아시아를 지나 이란과 터키, 로마를 거쳐 지금 더블린에 와 있는데, 여행을 하다보니 3가지 종교를 만났습니다. 한국과 중국에서 불교를 만났고, 이란과 터키에서 이슬람을 만났고, 서유럽에서 카톨릭을 만났습니다. 종교가 사람들의 삶에 많은 도움을 주고 긍정적인 효과를 주기도 하지만, 종교를 통해서 굉장히 부정적인 삶을 사는 사람들도 있었습니다. 종교 전쟁을 보며 우리가 어떻게 종교를 믿어야 하는지 궁금합니다.”nbsp“종교는 자연발생적인 원시적인 종교가 있고, 깨달은 이가 삶의 올바른 방향을 제시한 종교가 있습니다. 자연발생적인 종교는 기본 원리가 인과응보에 바탕을 두고 있습니다. 좋은 일을 하면 복을 받고 나쁜 일을 하면 벌을 받는다. 그러니까 이것은 좋게 말하면 좋게 들리지만, 법률로 따지만 ‘이에는 이, 눈에는 눈’과 같은 얘기입니다. 나쁜 짓 하면 징벌을 당하는 겁니다. 힌두교에서 얘기하는 것도 결국 나쁜 짓 하면 나쁜 과보를 받고 좋은 일 하면 좋은 과보를 받는다, 유대교에서도 하나님의 말씀을 안 들으면 소돔과 고모라에서처럼 유황불로 지져버리고 소금 기둥으로 만들어버리고 이렇게 다 징벌을 합니다. 이것을 법으로 정한 것이 함무라비 법전의 논리예요. 이런 인과응보적 사고가 모든 종교에 공통적으로 행해지고 있습니다.nbsp그러나 예수님과 부처님이 가르치는 종교는 성격이 좀 다릅니다. 그런 인과응보적인 것이 아니에요. 즉, 예수님을 십자가게 못 박아 죽였으면 그 사람은 당연히 인과응보적으로는 지옥의 불구덩이에 떨어져야 하잖아요. 그런데 예수님은 뭐라고 했나요? “주여, 저들을 용서하소서. 저들은 자기 지은 죄를 모르옵니다.” 그랬습니다. 이것이 바로 용서의 하나님, 사랑의 하나님입니다. 예수님 이전의 구약의 하나님은 징벌의 하나님이라면, 예수님 이후의 하나님은 용서의 하나님, 사랑의 하나님입니다.nbsp그런데 오늘날 크리스트교는 원시 종교로 돌아갔다는 것입니다. 자기 종교를 안 믿거나 하면 징벌을 한단 말입니다. 하나님이 징벌을 하든 질문자가 징벌을 하든 징벌을 합니다. 십자군 전쟁 같은 경우를 보면 다 보복을 하지 않습니까. 그러니까 종교의 이름은 있지만 실제로 그 종교를 창시한 성인과는 별 관계가 없습니다. 예를 들어서 불교도 마찬가지입니다. 고등학교에서 전교에서 1등하는 아이는 서울대 의대를 가든 법대를 가든 충분히 합격하잖아요. 그런데 그 아이의 어머니가 ‘우리 아이 서울대 넣어달라’고 하루에 천배씩 기도할까요? 안할까요? 안하겠지요. 그런데 우리 아이의 성적으로는 서울대 들어가기가 좀 어려운데도 서울대를 가고 싶으면 죽기 살기로 기도를 할 것입니다. 그렇게 만약 기도를 해서 들어갔다고 하면 어떻게 됩니까? 결국 실력이 안 되는 아이를 넣었다는 것은 실력 되는 아이 하나를 빼고 넣어줬다는 것 아닙니까? 그러면 부처님이나 하나님이 하는 역할이 입시 브로커 역할이잖아요. 성인으로서의 하나님과 부처님은 이런 역할을 하지 않습니다. 그런데 오늘 종교는 다 이런 식이 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세속적인 이익을 추구하는 종교는 원시 종교입니다 종교의 이름이 어떻든 그것은 별로 중요하지 않습니다.nbsp그래서 오늘날 종교 간의 갈등 이런 것들은 예수님과 부처님, 마호메트와는 관계가 없는 그냥 세속적인 이해의 충돌이다 이렇게 보면 됩니다. 세속적 이익을 종교의 이름으로 추구하는 것입니다. 종교가 특히 갈등이 심한 이유는 자기만이 옳다는 믿음이 강조되는 것이 종교의 성질이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사람이 보통 자기가 옳다 하지만 틀릴 수가 있는데, 진리라는 이름으로 나만 옳다고 주장하는 것이 신앙이다 보니까 종교는 서로 협력하고 타협하기가 어렵습니다. 그러나 다종교 사회가 되면서 이 문제는 점점 풀리어 가지 않겠나 싶고, 종교 간의 전쟁은 과거의 문화유산이다 이렇게 보면 됩니다.nbsp오히려 예수님의 가르침이나 부처님의 가르침은 종교에 있는 것이 아니고, 즉 ‘원수를 사랑하라’ 는 것은 기독교 안에는 없고 오히려 세속에 있습니다. 세속은 지금 법률적으로 다 남녀 평등 실현하고, 인종 평등, 민족 평등을 실현하고 요즘은 성적 지향까지 다 개방하고 있잖아요. 신체장애자도 차별하지 않잖아요. 그런데 거꾸로 종교는 아직도 신체장애가 되면 하나님의 벌이라든지 전생의 업보라든지 이렇게 설명하잖아요. 이것은 신체장애가 무슨 죄라는 얘기 아닙니까. 여자로 태어난 것이 죄라든지, 성적 지향이 다른 것이 죄라든지, 그러니까 이것은 아직도 옛날의 원시적인 인간의 사고를 못 벗어난 현상입니다.nbsp옛날에는 전쟁에서 이기면 적군 중에 부상당한 사람도 다 죽이고, 성을 점령하면 어린 애까지 다 죽였잖아요. 그런데 지금은 적병이라 하더라도 공격력이 없는 부상자는 치료해주고 포로는 보호해서 나중에 송환해주고 전쟁에 상관없는 민간인은 다치게 하지 말자고 합니다. 이렇게 세속이 훨씬 더 원래 예수님의 가르침에 근접해 가고 있습니다. 반면 종교는 아직도 원시적인 형태를 가지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종교 전쟁은 예수님과 부처님의 문제는 아닙니다. 그냥 종교라는 이름의 세속적인 이익 충돌 때문에 갈등이 생기는 것입니다.nbsp종교가 무엇 때문에 거대한 탑이 필요하고 거대한 성전이 필요하겠습니까? 거대한 궁전과 성당들을 다 누가 지은 것입니까? 황제가 지었잖아요. 기독교가 로마로부터 공인을 받으면서 황제가 바로 교회의 수장이 되었잖아요. 황제가 교회의 수장이 되었다는 것은 이미 세속화가 되었다는 것 아닙니까. 그러기 때문에 이것은 종교 문제가 아니라 세속적인 문제입니다. 이 세속적인 문제를 갖고 자꾸 종교라고 봐서는 안 됩니다. 그러나 이것이 현실의 종교이기 때문에 현실의 종교의 공허함을 직시할 필요가 있습니다. 그러나 그렇다고 예수님의 가치가 떨어지는 것은 아닙니다.nbsp중세에서는 신이 다 세상을 움직였잖아요. 천체의 움직임도 신이 한다고 했는데 뉴턴의 만유인력의 법칙이 발견되면서 신의 영역에서 벗어났죠. 모든 생명도 하나님이 창조했다고 했는데, 다윈의 ‘종의 기원’이 나오면서 창조할 필요가 없어졌잖아요. 인간의 선한 소리 악한 소리를 신의 소리 악마의 소리라고 했잖아요. 그런데 이것은 프로이트에 의해서 무의식의 세계라고 다 밝혀졌잖아요. 이렇게 엄청난 기성 사회의 벽을 뚫고 새로운 세상으로 왔기 때문에 세속이 더 진리에 가깝고 진보적이 되었고, 종교가 더 기득권화되어 있고 어리석음에 빠져있습니다.세상은 지금 부정입학이 다 없어졌잖아요. 있더라도 다 몰래 하고 있잖아요. 그런데 종교는 공공연히 하잖아요. 교회나 사찰 앞에서 ‘기도해서 유명대학에 들어갔다’ 선전하는데, 이건 부정입학 했다는 얘기거든요. 이것을 공공연히 하잖아요. 이런 것에 대해서 이제 우리는 인식을 새롭게 해야 합니다. 그런 면에서 종교 간의 전쟁이라 하지만 그냥 세상의 이념 전쟁, 즉 세속적 이익 다툼의 한 수단으로 종교가 이용되고 있을 뿐입니다. 또 종교 자체가 세속적 이익을 추구하는 수단이 되어 있기 때문에 생기는 문제가 아닐까 생각합니다.”nbsp질문한 친구는 명쾌한 답을 얻었다는 듯 기쁜 마음으로 활짝 웃으며 자리에 앉았습니다. 스님께서도 지난 29일 동안 순회 강연을 하며 유럽 곳곳에 세워진 성당과 모스크를 많이 보게 되었는데, 종교란 무엇인지 느끼신 바가 크셨나 봅니다. 종교가 무엇을 추구해야 하는지 성찰해보는 뜻깊은 시간이었습니다.nbsp오늘 강연에는 어학연수를 온 유학생들이 많았습니다. 그래서 강연을 마무리하며 정리 말씀으로는 ‘지금 행복’ 할 것을 강조해 주셨습니다.nbsp“이 세상에 태어난 사람은 그 어떤 사람도 행복할 권리가 있습니다. 또 과거에 어떤 경험을 했다 하더라도 지금 살아 있다면 우리는 지금보다는 더 행복할 권리가 있습니다. 지금 유학생활은 괴롭게 보내고 유학생활이 끝나면 행복할거다, 이렇게 생각하지 마세요. 공부할 때가 가장 행복한 시절이라는 자세로, 직장 다닐 때가 가장 행복한 자세로, 젊을 때가 가장 행복한 자세로 임하세요. 먼 미래의 행복을 위해서 지금 희생하는 것은 자기 인생을 후회하게 만듭니다. 우리는 내일 죽을지 모레 죽을지 모르기 때문에 내일 행복하기 위해서 오늘 희생할 필요는 없습니다. 그러면, ‘되는 대로 살아라’ 이런 얘기도 아닙니다. 밥만 먹고 공부만 해도 되는 때가 인생에서 몇 년 되겠습니까? 그런 시기를 즐기는 것이 필요합니다.nbsp공부도 하고 싶고 연애도 하고 싶다면, 애인과 같이 공부를 하면 됩니다. 공부도 하고 술도 먹고 싶다면, 술집에서 공부 토론을 하면 됩니다. 자꾸 분리하지 마세요. 왜 우리는 연애를 하면 공부는 포기해야 하고, 술을 먹으면서 공부 얘기를 하면 안 될까요? 공부를 하는 유학생은 공부에 초점을 맞추고, 필요한 것은 곁들어서 같이 하면 됩니다. 물론 지나치면 안 되겠지만요. 그런 자세로 자기 삶을 항상 행복하게 만들어나가야지 누구도 나를 행복하게 해줄 사람은 없습니다. 자기가 자기를 행복하게 만들어나가는 것입니다.nbsp부처님이나 하나님이 계신다면 어떨까요? 지금 내가 욕심 부리는 것을 도와줄까요? 가난한 나라 굶어죽는 사람들을 구제할까요? 부처님이나 하나님이 계신다면 다른 곳에 할 일이 많겠지요. 나를 도와준다고 해도 “아이고, 부처님. 저는 제가 알아서 살 테니까 저 사람들 좀 도와주세요” 이런 자세가 신앙입니다. 욕심이 신앙이 아닙니다. 신앙은 욕심을 버리는 것입니다. 그래서 항상 고난에 처할 때만이 하나님의 음성을 들을 수 있습니다. 이익을 추구하는 것을 신앙이라고 생각하면 안 됩니다.nbsp부처님께서도 이렇게 말했어요. “행복도 내가 만드는 것이네. 불행도 내가 만드는 것이네. 진실로 그 행복과 불행, 다른 사람이 만드는 것 아니네” 또 예수님께서도 “진리가 너희를 자유케 하리라.” 라고 말했습니다. 그러니 우리가 진리 속에서 자유를 얻고 행복을 얻어 나가기 바랍니다.”nbsp스님께서는 강연을 마치고 책 사인회를 하며 참석자들과 인사를 나누었습니다. 유학생들 사이에서도 스님의 인기를 실감할 수 있었습니다. 오늘 강연에는 봉사자들이 무려 38명이나 되어서 봉사자들과 다같이 소감나누기는 하지 못하고 봉사자들과 단체사진만 찍었습니다.nbsp특히 오늘 강연 장소인 트리니티 대학의 인문사회관을 무료로 빌리는 등 목헌 교수님이 보이지 않는 곳에서 많은 도움을 주셨습니다. 스님께서는 “목헌 교수님을 비롯하여 38명이나 되는 자워봉사자가 함께 뜻을 모아 이런 자리를 마련해주셔서 감사합니다.” 라며 봉사자들에게 단주를 선물로 주고 목헌 교수님께도 감사의 마음을 전한 후 오늘 일정을 마무리하셨습니다.nbsp▲ 오늘 더블린 강연 총괄을 맡아준 오민씨 부부nbsp오민씨네 집으로 돌아와서는 유럽 29개 순회 강연을 마무리하며 독일, 영국, 파리에서 각각 강연 책임을 맡았던 분들이 오셔서 함께 평가회 겸 소감 나누기를 하였습니다.nbsp▲ 유럽 29개 도시 순회 강연을 마무리하며 평가회 및 소감나누기nbsp유럽 강연 전체를 총괄한 김선희 유럽지구장은 “준비과정이 더 재미있었다”며 보람있어 했고, 직장을 한달 휴가 내고 강연 전체를 담당한 이희정님은 “바로 내일 출근해야 하는데 마음은 가볍다”며 기뻐했고, 파리 강연을 담당한 박지현님은 “스님이 너무 무리하지 않았으면 한다”며 아직 70일이나 남은 100회 강연 일정을 걱정했습니다. 프랑크푸르트 강연을 담당한 신재숙님은 “프랑크푸르트는 매년 해왔지만, 런던, 더블린은 정토회를 처음 알게된 봉사자가 많았음에도 새로운 방식의 진행으로 봉사자들이 행복해하는 모습을 보았다” 며 기뻐했고, 추희숙님은 “유럽 강연은 참석자가 10명 남짓한 경우도 있었는데 이렇게 투자를 많이 할 필요가 있을까 의문이 들었는데, 씨앗을 심는 것임을 깨닫고 1명을 위해서도 마음을 열어주는 단체가 꼭 필요하구나” 느낄 수 있었다고 합니다. nbspnbsp평가회 겸 나누기를 모두 마치니 새벽 1시가 다 되었습니다. 스님께서는 한 달 동안 수고한 책임자들을 위해 거듭 격려와 함께 감사의 마음을 전하셨습니다.도시별로 강연을 준비하는 과정이 굉장히 길거든요. 많은 분들의 정성으로 원만히 잘 진행되었습니다. 교민들이나 학생들이 해외에 살면서 이번 강연을 통해 격려를 받거나 자극을 받은 것들이 그 분들의 인생에는 작은 변화의 계기가 될 수 있었을 겁니다. 모두들 수고 많이 하셨습니다. 감사합니다.nbsp내일은 스텝진들도 모두 공항으로 가서 각자의 생활 공간으로 돌아갑니다. 유럽 순회 강연 소식도 오늘이 마지막이네요.nbsp스님께서는 오전11시50분 비행기로 보스톤으로 가십니다. 보스톤을 시작으로 세계 100회 강연 중 미주 순회 강연이 시작됩니다. 미국에서 새롭게 만나는 다양한 사람들의 인생 고민과 스님의 법문이 다시 펼쳐집니다. nbsp스님의 건강과 세계 100회 강연의 원만 성취를 기원해 주세요.nbsp ▼nbsp법륜 스님의 세계 100회 강연, 지난 날짜 소식 보기
2014.9.22 세계 100회 강연(28) 스코틀랜드 에든버러
안녕하세요. 오늘은 법륜 스님의 세계 100회 강연 중 28번째 강연이 스코틀랜드 에든버러에서 열리는 날입니다.nbsp스님께서는 그저께부터 편두통이 심해져서 밤새 끙끙 앓으셨습니다. 새벽 5시에 전영진 보살님이 정성껏 차려주신 아침을 먹고, 6시에 런던 Kings Cross 역으로 향했습니다. 출근 시간에 교통 체증이 생길 것을 대비하여 기차역에서 대기하는 시간을 많이 갖기로 하고 서둘러 길을 나섭니다.nbsp▲ 새벽녘부터 박인화 거사님이 차를 가져오셔서 안전하게 스님 일행을 기차역으로 데려다 주었습니다.nbsp▲ 스님께서는 기차를 기다리며 대기하는 동안 원고 교정 업무를 보셨습니다.nbsp▲ 런던 Kings Cross 역을 7시50분에 출발한 기차는 에든버러 역에 12시10분에 도착했습니다.nbsp에든버러 역에는 선효정님이 마중을 나와서 스님 일행을 반갑게 맞이해 주었습니다. 효정님은 이곳 에든버러에 과학기술혁신학을 공부하기 위해 딸과 함께 유학을 오신 분인데, 벌써 4년이 다 되어간다고 합니다.숙소인 민박집에 도착하니 오늘 강연 담당자인 이정재님이 스님의 편두통 소식을 듣고 약을 준비해서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이정재님은 이곳 에든버러에서 간호학 박사 과정을 공부하고 있는데, 오늘 강연을 책임지고 준비해준 분이기도 합니다.nbsp민박집에 짐을 풀고, 스님께서는 곧바로 이정재 학생이 구해 준 약을 드시고 저녁 강연을 위해 오후 내내 휴식을 취하셨습니다. 스님의 건강이 많이 염려되었습니다.nbsp선효정님은 스님 일행의 점심 식사를 위해 손수 김밥과 샌드위치를 만들어와 주셨습니다. 스텝진들은 그 정성에 감동하며 감사히 점심을 먹었습니다.nbsp▲ 기차역 마중을 나오고 점심 식사를 준비해준 선효정님과 오늘 강연 담당을 맡은 이정재 학생.nbsp스님께서는 스코틀랜드에 처음 와 보셨는데 휴식이 너무나 필요한 상태라 오후에 예정된 유적지 방문 일정을 모두 취소하고 계속 휴식을 취하셨습니다. 편두통을 앓은지 3일째가 되었는데 통증이 몇 초 간격으로 계속 있으십니다.nbsp▲ 로얄 마일.nbsp에든버러 성에서 홀리루드 궁전으로 연결된 에든버러의 역사를 말해주는 가장 오래된 길.nbsp▲ 스코틀랜드의 전통의상 킬트를 입고 전통 악기인 백파이프를 불고 있는 연주자.nbsp오늘 강연은 저녁7시에 애든버러의 도심 한가운데에 위치한 ‘Augustine United Church’ 라고 불리우는 교회 건물에서 열렸습니다. 총 50명이 참석하여 스님께 자신의 고민을 묻고 지혜로운 답변을 듣는 시간을 가졌습니다.nbsp▲ 오른쪽에 높게 솟은 첨탑 건물이 오늘 강연장인 Augustine United Church스님께서는 항상 밝은 표정으로 선 채로 강연을 하시는데, 오늘은 통증이 너무 심하셔서 앉은 채로 강연을 하시면서도 얼굴이 자주 찌푸려지셨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스님께서는 자신의 괴로움을 해결하고 싶어 하는 청중들의 마음에 응답하고자 2시간 20분 동안이나 열강을 해주셨습니다.nbsp강연을 시작하면서 스님께서는 특히 ‘종의 기원’을 쓴 찰스 다윈이 이곳 에든버러 대학에서nbsp공부했다는 사실과 얼마 전 힉스 입자의 존재를 증명해서 노벨 물리학상을 받은 힉스 교수가 에든버러 대학교 교수라는 사실을 듣고선 “제가 중요한 도시에 왔네요.” 하시며 무척 반가워하기도 하셨습니다. 그러면서 얼마 전 있었던 스코틀랜드의 독립을 위한 국민투표 관련해서도 짧은 소회를 말씀하셨습니다.nbsp“스코틀랜드의 독립 문제는 우리야 국외인이니까 독립이 되거나, 안 되거나 상관없는 일이지요. 그러나 저는 기본적으로 문화가 다르면 독립을 하는 것이 좋다고 생각합니다. 약소 민족으로 살아봤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가령 이준 열사가 만국평화회의에 가서 우리나라가 독립해야 한다고 했을 때 세계 열강들이 다 외면했지 않았습니까. 서양 사람들이 보기에는 한국이 중국의 일부라고 해도 받아들이고, 한국이 일본의 일부라고 해도 받아들이잖아요. 그런 것처럼 지금 유럽에도 체코와 슬로바키아가 분리 독립을 했고, 유고슬라비아도 6개의 나라로 분리 독립을 했고, 코소보는 EU에서 인정을 안 해줘서 독립을 못하지 않았습니까.nbsp그런데 EU가 없으면 독립을 심각하게 재고해 봐야 합니다. 왜냐하면 각각이 독립을 하면 갈등이 생길 수 있으니까요. 그런데 앞으로 EU가 발전하면 앞으로 유럽합중국처럼 될 수 있기 때문에 각 나라라는 것은 주 정도 밖에 안 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자치권을 확대해서 활동하는 것도 큰 무리는 없을 거예요. 그런 면에서 유럽의 나라들, 특히 스코틀랜드 같은 경우는 독립을 해서 자기 전통을 지키는 것도 괜찮지 않을까 생각합니다.nbsp민주주의의 심화는 권력이 국가에서 주민에게로 이양되는 과정입니다. 이양되는 절차가 지방자치가 확대되고 다시 지방자치가 주민자치로 확대되는 과정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국가 권력의 일부가 국제기구로, 유럽 같으면 유럽 연합으로 확대되고, 그래서 절대적 국가 권력이라는 것이 축소되어 가는 것이 민주주의 심화 과정의 한 추세입니다.그런 의미에서 유럽의 공동체적인 사회민주주의는 전통문화를 가진 우리나라에서는 본받을 만 한 점이 많은 것 같아요. 이민사회에서 만들어진 미국 민주주의는 압축 성장을 하는 데는 도움이 되었는데 이제 성숙한 사회로 나아가는 데는 한국사회에 딱 맞지는 않는 것 같아요. 그래서 유럽에 나와 있는 여러분들이 한국의 다음 사회를 만드는데 좀 더 많은 기여를 했으면 좋겠어요.”nbsp오늘 참석자들은 유학생들이 대부분이었습니다. 그래서 유학생들이 한국사회에 기여했으면 하는 바램과 함께 최근에 있었던 스코틀랜드의 독립에 대한 스님의 고견도 들을 수 있어 참 좋았습니다.nbspnbsp nbsp오늘 강연에는 총 6명이 스님께 질문을 했습니다. 에든버러에 와서 대학원에 진학해 이론물리학을 공부하고 있는데 부담감에 시달리고 있고 어릴 때 부모님이 이혼한 것이 지금 자신에게 어떤 영향을 주는지 궁금해 하는 분, 의료생물학을 공부하고 있는데 아직 진리는 신과 통한다고 믿는데 불교에서는 신과 관계를 맺을 수 있는지, 예수님의 피가 아닌 순전한 저의 노력만으로도 에고를 극복할 수 있는지 묻는 분, 결혼하기 전에 다양한 사람과의 경험을 가져보면 좋다고 하는데 아직 7년 동안 여자 친구가 없어서 고민이라는 분, 스님께서는 대중들의 고민을 들어주시기만 하는데 스님의 고민은 무엇인지 묻는 분, 친한 친구가 얼마 전 동성애자로 커밍아웃을 한 것을 어떻게 봐야 하는지 묻는 분 등 다양한 질문에 대해 스님께서는 정성껏 답변해 주셨습니다.nbsp오늘은 그 중에서 유럽에서 배운 가치관을 갖고 한국에 돌아갔을 때 생길 충돌을 염려하는 유학생의 질문과 스님의 답변을 소개합니다.nbsp“인류학과 국제개발학을 공부하기 위해 에든버러에 4년째 살고 있습니다. 외국에 나와 살면서 이곳의 자유롭고 다양성을 존중하는 문화에서 스스로 가치관의 변화를 많이 느꼈습니다. 내년에 석사를 마치고 한국에 돌아가게 되면 이곳에서 가진 가치관의 변화들이 한국 사회의 권위적인 문화와 많이 충돌할 것 같습니다. 예를 들어, 작년에 한국 분들과 레스토랑에 갔을 때 어른도 있는데 제가 먼저 앉았다며 굉장히 화를 내셔서 그 때 문화적 충격을 받았습니다. 이곳은 교수님들도 그런 권위적인 문화가 없거든요. 제가 한국에 돌아가서도 신념과 소신을 가지고 행복하게 살 수 있는 방법이 궁금합니다.”nbsp한국 사람이 볼 때 외국에 가서 4년 살다 와서 그런 식으로 행동하면 ‘저게 외국 물이 잘못 들어서 영국 사람도 아닌 것이 영국 사람을 흉내 낸다’ 이렇게 말합니다.nbsp만약 한국사회로 돌아가서 선생님을 한다면, 한국은 주입식으로 달달 외우게 해서 시험을 치도록 그렇게 가르쳐야 하잖아요. 그런데 아이들을 창조적으로 어릴 때부터 훈련을 하려면, 아이들을 테이블에 앉혀놓고 주제를 제시해서 아이들에게 답을 하게 할 때 정답이 없어야 합니다. 아이들이 대답하면 ‘그렇게 생각할 수 있겠구나’, ‘그것도 일리가 있는 얘기야’, ‘선생님도 그런 생각을 못해봤는데 너는 어떻게 그런 생각도 해봤니?’ 이렇게 얘기해 줘야 합니다. 자기가 한 말의 앞뒤 모순은 지적해 주지만 이 생각이 “틀렸다. 맞다”는 말하면 안 됩니다. 틀렸다 맞다 하는 정답 쓰기 훈련이 안되도록 해야 사고가 창조적이 됩니다. 그래야 사고가 모든 가능성을 생각할 수 있는데, 우리는 어떤 생각을 말하면 “그것은 틀린거야” 라고 하거나 “너는 빨갱이야”, “너는 이단이야” 이렇게 짤라 버립니다. 그런 속에서는 인간의 사고가 창조적이 될 수 없습니다.nbsp한국 사회처럼 남북으로 분단이 되어 있고 국가보안법이 있는, 즉 인간의 자유로운 사유를 금기시하는 이런 사회 속에서는 철학 사상적인 창조성이 나오기는 불가능합니다. 그래서 통일이 되어 이런 것들이 한꺼풀 걷어져야 한국 사회도 유럽처럼 자유롭게 생각할 수 있는 문화가 이뤄집니다. 서양도 처음부터 그랬던 것은 아닙니다. 신앙에 어긋난다고 하는 엄청난 압박을 받고 종교 재판에 회부되는 그런 어려움을 뚫고 이 자유를 얻은 것이지 그냥 얻어진 것이 아닙니다.nbsp그러기 때문에 질문자가 한국에 가서 살려면 두 가지 자세가 필요합니다. 첫째, 중요한 게 아닌 것은 그 사회에 적응하는 것이 좋아요. 별 내용이 없는 형식적인 것을 갖고 따지는 것은 별로 안 좋습니다. 예를 들면, 기독교가 한국 사회에 들어와서 제사 지내지 않는 것을 가지고 목숨 걸고 싸우는 것을 보면 그것은 기독교 신앙에는 별로 중요한 문제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전통문화를 파괴하는 효과만 있습니다. 중요하지 않은 그런 문화적인 것은 그 문화를 존중해야 합니다.nbsp둘째, 정말 내용적으로 중요한 것은 양보하면 안 됩니다. 앞서 얘기한 아이들의 교육 훈련은 양보하면 안 됩니다. 이런 것은 계속 부딪히고 왕따 당하면서도 지속적으로 변화시켜 나갈 수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겪는 불이익은 받아들여야 합니다. 새로운 것을 하려면 불이익을 감수해야 됩니다. 그런데 우리는 불이익을 감수하지 않으려 합니다. 예수님 이후에 초기 기독교인들은 기독교를 믿음으로 해서 이익이 되었어요? 불이익이 되었어요? 불이익이 되었습니다. 죽기까지 했습니다. 신앙을 통해서 이익을 얻으면, 즉 돈을 더 벌고 입학시험에도 걸리고 출세하기 위해 신앙을 가진다면 그것은 이미 세속화입니다. 그것은 신앙과 아무런 관계가 없는 것입니다. 기독교 신앙이든 불교 신앙이든 그 본질은 세속적 불이익을 보면서도 그 신앙을 지킬만한 가치가 있느냐 하는 것입니다.nbsp왜 하나님이나 부처님에게 빌어서 돈을 벌려고 해요? 돈을 버는 것은 인간이 해야 할 일인데... 스스로가 노력해서 벌어야지요. 기도해서 돈 벌겠다는 것은 노력도 안하고 공짜로 먹겠다는 것 아닙니까. 자신을 믿는다고 공짜를 바라는 사람의 소원을 들어준다면 하나님이나 부처님이 브로커가 되는 것 아닙니까. 그것은 전혀 신앙이 아니에요. 그것은 이미 신앙성이 없는 세속 권력 집단에 불과하다 이렇게 볼 수 있어요. 그래서 부처님과 예수님도 “기득권을 버려라” 라고 말씀하셨잖아요. 이 길은 기득권과 기존의 가치관을 버리고 손해를 보면서도 따르는 길입니다. 손해를 보면서 거기서 행복을 얻고 자유를 얻는 길입니다.nbsp그래서 첫째, 질문자가 만약 이곳에서 배운 장점이 있더라도 한국에 들어오면 한국의 전통문화는 일단 받아들이시면 좋겠어요. 내용상 별로 중요하지 않는 것들을 가지고 ‘기득권 사회다’ 라고까지 비난할 것은 없어요. 즉 노인들이 의자에 좀 먼저 앉으면 어때요? 이런 문화는 때가 되면 저절로 고쳐지는 것이니까 별로 중요하지 않습니다.nbsp그러나, 내용적으로 중요한 것은 용기가 필요합니다. 다시 말하면 기존의 질서에 저항할 줄 알아야 합니다. 저항한다는 것은 손해를 본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손실을 감수하지 않으려 하니까 저항하기 어려워지는 것입니다. 손실을 감내할 자세만 딱 가지면 됩니다. 손해 보기 싫으면 그냥 묻혀 살고, 그것을 개선하려면 손해를 감수해야 합니다.nbsp가장 중요한 것은 손실을 감수할 거냐 이겁니다. 손실 중에서 가장 마지막 손실은 목숨마저 버릴 수 있느냐 입니다. 독립운동을 하려면 목숨을 버려야 해요. 민주화 운동을 하려면 감옥에 가야 해요. 그런데 요즘은 한국사회에서 뭔가 새로운 것을 개선하려면 죽을 일도 없고 감옥 갈 일도 없어요. 약간의 경제적 손실과 출세 손해만 감수하면 됩니다. 남보다 앞에 가려는 승진이나 월급 같은 몇 가지만 조금 포기하면, 무엇이든지 새로운 시도를 할 수가 있죠. 예를 들어 검사나 판사가 되어서 약간 민주적인 시각을 가지면 그 사회 안에서 승진을 누락시킬 수 있겠죠. 약간 좌천시키거나 왕따를 좀 시키겠죠. 죽는 것도 아니고 감옥 가는 것도 아닌데, 그 정도는 감수해야 새로운 사회를 만들어 갈 수 있습니다.nbsp한국 사회에 돌아가서 새로움을 시도하려면 두 가지를 유의하세요. 첫째, 지켜야 할 것은 불이익을 감수하고 지켜낼 것. 둘째, 중요하지 않은 문화적 차이를 갖고 너무 싸우면 안 됩니다. 문화는 그냥 수용하는 것이 낫습니다.nbsp스님의 답변이 끝나자 질문자도 고개를 끄덕이며 공감을 표시했습니다. 질문을 하고 싶은 분들이 더 있었지만, 스님께서는 건강이 많이 안 좋으시다며 청중들에게 양해를 구하고 강연을 마치셨습니다. 대신에 책 사인회를 하며 참석한 한분 한분에게 인사를 건냈습니다.nbspnbsp▲ 오늘 에든버러 강연에는 유학생들이 많이 참석했습니다. 에든버러 한인 학생회 이상준 회장과 김낙평 부회장을 비롯한 에든버러 학부 학생들이 자원봉사를 해주셨습니다.nbspnbsp봉사자들과의 기념촬영을 끝으로 곧바로 숙소로 가셔서 휴식을 취하셨습니다. 스님의 건강이 점점 염려가 되고 있습니다. 오늘은 스님의 건강을 기도하며 잠자리에 듭니다.nbsp▲ 오늘 강연을 책임지고 준비해 준 이정재 학생. 간호학 박사 과정에 있는데 통일에 관심이 많아 북한 의료 지원 문제에 기여를 하고 싶은 꿈 많은 청년이었습니다. 스님께 ‘새로운 100년’ 책을 선물 받고 무척 기뻐했습니다.nbsp내일은 세계 100회 강연 중 유럽 29개 도시 순회강연의 마지막 날입니다. 비행기를 타고 아일랜드의 수도 더블린으로 가서 유럽 강연의 피날레를 장식할 예정입니다. 내일 또 소식 전해드리겠습니다. nbsp nbspnbsp ▼nbsp법륜 스님의 세계 100회 강연, 지난 날짜 소식 보기
2014.9.21 세계 100회 강연(27) 영국 런던
안녕하세요. 오늘은 법륜 스님의 세계 100회 강연 중 27번째 강연이 영국 런던에서 열리는 날입니다.nbsp새벽 5시30분, 포르투갈 리스본의 민박집 숙소를 나와 리스본 공항으로 향했습니다. 김윤정, 세르지오 부부는 새벽녘 공항까지 나와서 스님 일행을 안전하게 배웅해 주었습니다. 스님께서는 김윤정씨가 아기를 갖고 있어서 두 부부에게 엄마의 마음이 편안해야 아이가 건강해진다는 것을 강조해 주셨습니다. 두 부부도 스님의 말씀을 명심하고 스님께 감사 인사를 했습니다.nbsp▲ 공항까지 안전하게 배웅해준 김윤정, 세르지오 부부리스본에서 8시20분에 출발한 비행기는 3시간을 비행하여 11시20분에 런던 히드로 공항에 도착하였습니다. 공항에 도착하니 런던의 한국 사찰인 연화사에서 나오신 박인화 거사님이 짐을 실을 수 있는 벤을 몰고 마중을 나와 주셨습니다. 거사님은 1996년부터 한국 기업의 주재원 생활을 영국에서 하다가 그만두시고, 2005년부터는 현지 교민이 되어 이곳 런던에 정착해 살고 계십니다. 하루 종일 운전을 너무 편안하게 잘해주셔서 스님께서는 칭찬과 더불어 감사해 하셨습니다. nbsp▲ 스님 일행의 런던 일정을 차량 운전해주신 박인화 거사님.nbsp거사님의 차량 운전 덕분에 오전 12시 무렵, 편안하게 오늘 숙소인 전영진 보살님 댁에 도착했습니다. 보살님께서는 스님 일행을 위해 점심 식사를 준비해 주셨습니다. 스님께서는 몸이 많이 편찮으심에도 불구하고 보살님의 정성스런 준비를 보시곤 밥 한그릇을 모두 드셨습니다.nbsp▲ 점심 식사를 정성껏 준비해주신 전영진 보살님과 딸nbsp오후에는 원래 런던 시내 유적지 방문이 예정되어 있었으나, 스님께서 몸이 많이 편찮으셔서 일정을 모두 취소하고 방에서 휴식을 취하셨습니다. nbsp스님께서는 3일째 목이 계속 잠겨 있으시고, 감기 기운이 심하며, 편두통까지 있으셔서 몸을 가누는 것도 많이 힘들어하셨습니다.nbsp오후 내내 휴식을 취하신 스님은 전영진 보살님이 차려주신 호박죽을 간단히 드신 후 저녁5시30분 강연장으로 이동하셨습니다.nbsp▲ 강연장으로 향하는 길에 영국의 국회의사당과 Big ben이라 불리는 시계탑이 보였습니다.nbsp영국에는 한국 교민이 현재 4만5천명 정도 거주하고 있다고 합니다. 특히 런던과 한인거주밀집지역인 뉴멀던 사이에 약 40 정도가 거주하고 있으며, 런던에는 대략 1만 5천명 정도가 살고 있을 것이라 예상한다고 합니다. 주로 유학생들이 많고 현지 교민은 적은 편이라고 합니다.nbsp▲ 오늘 강연장인 웨스트민스터 대학의 New Large Lecture Theatre. 스님의 강연을 듣기 위해 1시간 전부터 줄을 서서 기다리고 있는 교민들.nbsp오늘 런던 강연은 웨스트민스터 대학의 New Large Lecture Theatre에서 오후6시에 열렸습니다. 총 240명이 참석하여 지금까지 27번의 유럽 강연 중에서 가장 많은 인원이 참석한 가운데 뜨거운 박수와 환영 속에서 열렸습니다.nbsp오늘 강연은 권금영님이 주축이 되어 많은 봉사자들과 함께 준비를 해주셨습니다. 권금영님은 영국에 사신지 7년 되셨고, 예술을 하시는 분입니다. 이번에 스님께서 런던에 오신다는 이야기를 듣고 반가운 마음에 자워봉사를 신청하셔서 이번에 총괄까지 맡게 되셨다고 합니다. 스님께서는 감사의 마음을 전하고 간단히 사진도 함께 찍으셨습니다.nbsp▲ 오늘 강연 총괄을 맡아주신 권금영님.nbsp스님께서는 강연을 시작하기에 앞서 한국에서 세월호 침몰 사고로 인한 아픔을 상기하면서 종교인으로서 화합된 모습을 만들어내지 못한 것에 대해 사과의 말씀을 드리고, 희생자들의 명복을 빌고 유가족들을 위로하는 묵념을 1분간 한 후 강연을 시작하셨습니다.nbsp오늘 강연에는 총 6명이 스님께 질문을 했습니다. 유학을 와 있는데 부모님이 잔소리를 해서 전화 통화하기가 불편하다는 분, 영국에서 공부를 하고 있는데 경제적 지원을 더 이상 하지 않겠다는 부모님의 이야기를 듣고 갈팡질팡하는 스스로가 한심스럽다는 분, 만족하는 삶을 살면 자기 발전은 없어지지 않는지 묻는 분, 실험관으로 아기를 낳았는데 아기 키우는 것이 너무 힘들어 고민이 된다는 분, 국민들을 힘들게 하는 한국의 대통령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 그런 절망 속에서도 국민들은 어떤 희망을 갖고 살아야 하는지 묻는 분 등 다양한 질문에 대해 스님께서는 정성껏 답변해 주셨습니다.nbsp오늘은 그 중에서 부모님과의 불편한 관계로 고민하는 한 유학생의 질문과 스님의 답변을 소개합니다. nbsp“런던에서 공부하고 있는 학생입니다. 부모님한테 전화가 오면 전화를 받아도 불편하고, 전화를 안 받아도 불편합니다. 전화를 받으면 대화를 하고 싶은데 부모님은 자기 얘기만 하고 끊으세요.”nbsp“스무살 넘어서 지원을 좀 받았어요?”nbsp“대학 등록금 지원을 받았습니다.”nbsp“스무살까지는 미성년자이고, 스무살 넘어서는 성년이기 때문에 독립을 해야 합니다. 그런데 질문자는 지원을 좀 받았잖아요. 그래서 지원받은 것을 다 갚았어요?”nbsp“금전적으로는 안 갚았습니다”“안 갚았으니까 아직 간섭을 좀 받아야 됩니다. 잔소리를 들을 때 그것을 화폐로 계산해서 다 갚으세요. 여기서 한 시간 아르바이트 하면 6파운드 정도 벌 수 있죠? 그러면 아르바이트 하는 것이 나아요? 전화기를 귀에 대고 말 듣는 것이 나아요?nbsp그러니까 한 시간에 6파운드씩 계산해서 엄마의 전화통화를 20분 들어주었다면 2파운드씩 빼면 돼요. 그렇게 해서 10년, 20년 모아서 대충 갚았다 하면 그때부터는 이제 전화를 안 받아도 돼요.nbsp그런데, 듣는 것이 뭐가 그렇게 힘들어요? 대화 하는 것이 오히려 힘들지 듣는 것은 “네네, 네네” 하기만 하고 끊으면 되잖아요. 질문자가 엄마한테 할 이야기가 많아요? 엄마가 일방적으로 얘기만 하고 질문자가 엄마한테 얘기 할 기회는 안 준다고 했는데, 그렇다면 질문자가 지금 엄마한테 할 얘기가 있다는 것이네요. 엄마로부터 독립하려면 할 얘기가 없어야지요. 그런데, 부탁이든 하소연이든 할 얘기가 있다는 거네요. 질문자가 할 얘기가 있다는 것은 질문자가 아직 엄마로부터 완전히 독립이 안 되었다는 것을 뜻합니다. 엄마한테 할 얘기가 뭐가 있어요?nbsp엄마는 자식한테 투자한 것이 많으니까 할 얘기가 좀 있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투자를 했다 하더라도 스무살 밑으로 투자한 것은 감사하기는 하지만 안 갚아도 됩니다. 그 이유는 부모가 아이를 낳으면 져야 할 책임에 해당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스무살 넘어서는 부모가 자식을 지원해야 할 책임이 없습니다. 스무살 넘어서 받은 지원은 다 빚이 됩니다. 지원받은 만큼 나중에 갚아야 해요. 잔소리를 듣는 것으로 갚던지, 돈을 벌어서 갚던지 해야 됩니다. 그런데 질문자는 지금 돈을 벌어서 갚을 능력은 안 되니까 어머니의 하소연을 들어주는 것은 해야 됩니다. 어머니는 질문자에게 이미 선금을 지불했단 말입니다. 그러니 질문자는 어머니한테 얘기할 기회가 안 주어진다고 불만을 가지면 안 됩니다. 어머니를 미워할 자격은 없다는 것입니다. 어머니가 내 얘기를 들어주신다면 다행이지만, 안 들어준다고 해서 잘못은 아닙니다.nbsp어머니가 내 얘기를 들어줘야 한다고 생각한다면, 질문자는 몸은 32살이 되었음에도 아직 스무살 이전의 미성년자일 때의 사고를 움켜쥐고 있는 것입니다. 밖에서는 성인으로 살아가는데, 엄마와 만나면 어릴 때의 사고를 못 버리고 있기 때문에 이런 불만이 생기는 것입니다. 질문자는 이제 성년이 된 독립된 인간입니다. 다만 부모와 자식 관계를 떠나서 엄마로부터 스무살 넘어서도 후원을 받았잖아요. 부모님이 지원 안 해주었다면 등록금을 은행에 빌려서 다 갚았어야 했잖아요. 그런데 질문자는 그것을 부모님한테 빚을 내어서 갚는 것이란 말이예요. 그러니 돈을 안 갚는 대신에 그 정도 서비스는 해야 됩니다. 그래서 기꺼이 “네네, 알겠습니다. 어머니, 감사합니다.” 이렇게 좀 들어주세요.nbsp전화가 받기 싫으면 안 받아도 되요. 그런데 안 받으면 질문자의 마음이 불편할 거예요. 왜냐하면 빚을 지고 안 갚으면, 돈은 안 나가지만 심리적으로 늘 빚진 마음이 있거든요. 그래서 어머니의 전화를 잘 받아주고 어머니에게 위로를 해주는 게 내가 빚진 것의 일부를 갚는 것이다, 이렇게 긍정적으로 생각을 하면 됩니다. 조금 더 들어주면 조금 더 갚게 되는 것이니까, 식당에서 서빙 하는 것보다는 그게 더 편할 것입니다. “어머니, 더 할 말 없어요? 시간 있는데 조금 더 얘기하세요.” 이렇게 됩니다.nbsp이것을 예수님의 가르침으로 표현하면 이렇습니다. 성경에 이런 말이 있어요. “5리를 가자고하면 10리를 가주라.” 누가 5리를 나보고 가자고 하면, 가자는 사람이 주인이 되고 내가 종이 됩니다. 가자는 사람이 갑이고 내가 을이 되는데, ‘내가 10리를 가줄게’ 라고 마음을 내어버리면 내가 갑이 됩니다. 이것이 내가 종으로 살지 않고 주인으로 살 수 있는 방법입니다. 여기에 “겉옷을 달라하면 속옷까지 벗어주라”, “왼뺨을 때리면 오른뺨도 대주라” 구절을 추가해서 이렇게 3가지 말씀이 나옵니다. 다 같은 뜻입니다. 어쩔 수 없이 ‘을’로 주어진 상황에서 내가 어떻게 ‘갑’의 위치로 전환할 것인가, 즉 어떻게 내 인생의 주인으로 전환하느냐 하는 문제입니다.nbsp어머니에게 일방적으로 전화가 와서 듣고 있으면 어머니가 주인이고 내가 종이 되잖아요. 그러니까 받을 수도 없고 안 받을 수도 없고 내가 전화에 얽매이게 됩니다. 그런데 ‘어머니한테 빚을 갚아야 하는데, 전화 받는 것으로 빚을 갚는다’ 이렇게 생각해서, 어머니가 평소에 20분을 얘기 한다면 이제는 1시간을 들어줄 마음을 내는 겁니다. 이렇게 생각을 바꿔버리면 “벌써 끊어요? 조금 더 하셔도 됩니다” 이렇게 될 수 있습니다. 똑같은 전화인데 내가 듣기 좋아한다고 통화시간이 더 길어지고, 내가 듣기 싫어 한다고 통화시간이 더 짧아지는 것이 아닙니다. 어머니는 내가 듣기 싫다고 해도 자신의 할 말을 다 할 것이고, 내가 더 얘기 하시라고 해도 본인의 할 말을 다하면 끊는 분이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그래서 내가 적극적으로 마음을 내었다고 해서 통화시간이 조금 더 길어질 뿐이지 많이는 길어지지 않습니다. 그러면 나는 괴롭지가 않아집니다. 어머니로부터 속박 받을 필요가 없습니다.nbsp어떤 날은 시간이 있을 때 어머니 얘기를 많이 들어드리면, 어떤 날은 바빠서 얘기를 안 들어드려도 내가 죄책감이 안 들어요. 전화를 받아도 괜찮고 안 받아도 괜찮아 집니다. 그런데 전화를 받아서 얘기를 듣기 싫어하면 시간이 아깝고, 안 받으면 죄의식도 생기고, 이래도 저래도 내가 어머니에게 속박을 받게 됩니다. 그런데 적극적으로 마음을 탁 내어버리면, 받아도 별로 구애 안 받고, 안 받아도 마음이 편안합니다.”질문자는 활짝 웃으며 “네, 감사합니다” 하고 자리에 앉았습니다. 청중들도 질문자에게 격려의 박수를 보내주었습니다. 스님께서는 항상 이렇게 주어진 상황에서 주인이 되는 방법을 일러 주십니다. 생각을 바꾸면 마음이 더 이상 괴롭지 않아지는 이치를 듣고, 청중들도 모두 기쁜 마음에 스님께 박수갈채를 보내었습니다.nbsp스님께서는 통증이 계속 있으셔서 몸을 가누기가 힘드심에도 불구하고 2시간 30분 동안 열강을 해주셨습니다. 강연을 마치고 책사인회를 하며 참석한 한 분 한 분에게 활짝 웃으시며 인사를 건냈습니다.nbsp봉사자들과 소감 나누기를 매번 챙겨서 하셨는데, 오늘은 기념촬영만 간단히 하시고 소감나누기는 함께하지 못하시고 곧장 숙소로 이동하셔서 휴식을 하셨습니다.nbsp내일은 런던에서 기차를 타고 스코틀랜드의 에딘버르로 이동합니다. 에딘버르에서 세계 100회 강연 중 28번째 강연이 열립니다. 내일 또 소식 전해드리겠습니다.nbsp ▼nbsp법륜 스님의 세계 100회 강연, 지난 날짜 소식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