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님의하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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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12.21 제1차 전국 정회원 대회

nbsp안녕하세요. 오늘은 수행공동체 정토회의 역사상 처음으로nbsp제1차 전국 정회원 대회가nbsp열리는 날입니다.nbspnbsp이 땅에 새로운 문명 전환 운동을 만들어나가기 위해 1993년 만일결사를 시작한 정토회는 22년 역사상 처음으로 오늘 정회원 1000여명이 모여 전국 정회원 대회 를 개최하게 되었습니다. 처음에는 스님 혼자서 뜻을 세우셨지만, 지금은 천명이 넘는 대중이 평범한 시민에서 이제는 정토회의 핵심 일꾼이 되어 함께 정토 세상 만들기를 해나가고 있다고 생각하니 감개가 무량한 기분이 들었습니다.nbspnbsp스님께서는 문경 정토수련원 명상원에서 하룻밤을 주무시고, 아침 8시에 식사를 하신 후 원교 교정 업무를 보시다가 정토회 법사단의 인사를 받으신 후 10시부터 ‘전국 정회원 대회’ 에 참석하셨습니다.nbspnbsp정토회는 후원회원, 일반회원, 정회원이라는 세가지 종류의 회원이 있습니다. 그리고 정회원에도 참여도와 헌신성 등에 따라 발심행자, 서원행자, 결사행자로 구성되는데, 먼저 발심행자는 수행, 보시, 봉사하는 정토행자의 길을 발원해야 합니다. 수행으로는 정기법회 또는 불교대학을 참석하고, 천일결사에 입재해서 매일 기도를 해야 하며, 깨달음의 장에 참가해야 합니다. 또 보시는 삼보수호비를 내어야 하고, 봉사는 주2시간 이상 해야 자격을 갖추게 됩니다. 이런 자격을 갖춘 사람 중에 발심행자가 되겠다고 참가신청서를 내게 되면 일정한 교육을 받은 후 임명됩니다. 여기에 천일결사 3년 이상, 불교대학과 경전반 졸업, 나눔의장 참가, 명상수련 참가 등의 수행 경력을 더 갖추게 되면 자격심사위원회의 추천을 받아 일정한 교육을 받은 후 서원행자로 임명됩니다. 여기에 더 많은 수행 경험과 헌신성을 갖추게 되면 결사행자가 되게 됩니다.nbspnbsp오늘은 전국에서 발심행자, 서원행자, 결사행자 1000여명이 모여 문경 정토수련원 대수련장을 발디딜 틈 없이 가득 메웠습니다.nbspnbspnbsp삼귀의 반야심경 봉독으로 도량을 청정히 한 후, 1차 정회원 대회를 함께 하는 기쁜 마음을 모아 정토회 대표 이기혜님의 인사말씀을 들었습니다. 대표님은 “부처님 당시의 천이백 제대 아라한이 모인 것 같다”고 하시면서 대수련장을 가득 메운 정회원들을 반갑게 환영해 주었습니다.nbspnbsp그리고 오늘은 정토회 회원들이 지난 115일간 세계 100강을 하신 법륜 스님을 처음으로 뵙는 날이기도 합니다. 그래서 정회원 대회의 오전 일정은 세계 100강 원만 회향을 축하하는 한마당으로 진행되었습니다. 먼저 어려운 여건 속에서도 세계 100강을 성공리에 진행한 해외사무국 활동가들의 소감과 발원이 담긴 영상을 함께 보았습니다.nbspnbsp nbsp▲ 세계 곳곳에서 법륜 스님께 보내는 응원과 감사의 영상 메시지nbspnbsp해외에서 고생한 자원활동가들의 얼굴과 목소리를 들으니 가슴이 뭉클해졌습니다. 많은 분들이 영상을 보며 눈시울이 붉어지고 손수건으로 눈물을 닦기도 했습니다.nbspnbspnbsp이어서 행정처 저녁부에서 자원활동을 하고 있는 백기순님이 세계 100강을 마치고 오신 스님께 감사 편지를 낭독했습니다.nbspnbsp“길고 긴 백일이 지나고, 이렇게 우리나라에서, 그것도 문경수련원에서 스님과 함께할 수 있어 정말 기쁩니다. 지난 백일은 길고 길었습니다. 8월26일 프랑크프루트에서 첫 강을 하실 때만 해도 설레는 마음이었습니다. 유럽 곳곳을 여행도 하시고, 부처님의 법도 전하고 신나는 일정이라 여겼습니다. 그런데 유럽 일정이 진행되며 잠을 거의 못 주무시고 무리한 일정이 계속되면서, 감기 기운이 심하고, 편두통까지 있어 몸을 가누는 것도 많이 힘들어하셨다는 소식이 들리기 시작했습니다. 런던 시내 유적지 방문 일정을 모두 취소하고 방에서 휴식을 취하셨다는 ‘스님의 하루’를 읽을 때는 눈물을 멈출 수가 없었습니다. 왜 이런 고행의 길을 가시는지 꼭 그래야 하는지 원망하는 마음도 올라왔습니다.nbspnbsp왜 꼭 하루 한강씩 하셔야하냐는 질문에, ‘며칠에 한 번씩 여유롭게 강연을 하면 그게 여행이지 수행은 아니지 않냐’고 하셨다는 얘기를 전해 들었습니다. 잠을 안자도 살 수 있다는 것을 처음 알았다고 말하는 수행 도반의 이야기를 듣고 저는, 스님과 함께 세계백강 다니지 않아서 참 다행이라는 생각부터 먼저 들었고 감동으로 가슴이 먹먹한 건 그 다음의 일이었습니다. ‘불신지옥’이라는 얘기를 들으면 지옥 갈까봐 불안한 마음이 조금 들기도 했는데, 할 일이 많은 지옥이 좋아 오히려 찾아다닌다는 스님 말씀을 들으며 왜 이 혹독한 일정을 소화해내시는지 모든 의혹이 풀어졌습니다.nbspnbsp스님, 저는 아직 많이 먹고, 많이 자는 것이 더 좋은 어리석은 중생입니다만 스님의 가르침을 만나 제 삶이 조금씩 바뀌어 가고 있습니다. 젊은이가 더 이상 찾지 않는 유럽의 텅 빈 교회를 둘러보고 온 도반이 이제 ‘우리가 희망이다’고 할 때 무한한 자긍심이 올라왔습니다. 부처님의 제자임이 자랑스럽듯이, 스승님의 제자임이 자랑스럽습니다.nbspnbspnbsp통일을 왜해야하는지 묻는 오사카의 115번째 마지막 강의에 가슴이 두근거렸습니다. 해외에서도 뜨거운 통일에 대한 관심을 보며 우리 민족의 저력과 에너지를 느꼈습니다. 그 한복판에서 함께하는 스님과 정토회가 자랑스럽습니다. 해외 백강은 종교를 떠나 모두가 하나 되는 축제의 장이었습니다.nbspnbsp부처님의 가르침을 행했던 1250명의 아라한들처럼 오늘 제1차 결집에 모인 저희들은 이제 이 축제를 이어 통일과 정토세상을 발원합니다. 스승님의 가르침을 따라 안 되면 될 때까지 그냥 하겠습니다. 이제 저희가 하겠습니다.”nbsp가슴이 먹먹해지게 한 편지 낭독에 이어서 스님께 감사와 환영의 꽃다발 증정이 이어졌습니다. 가장 연세가 많으신 정회원 중에 한분이신 서대문법당의 이상순님과 가장 젊은 정회원 중에 한명인 광주전라지부 청년팀장 김하정님이 함께 앞으로 나와 스님께 꽃다발을 건냈습니다.nbspnbspnbsp이어서 온갖 어려움과 육체적 고통 속에서도 굴하지 않으시고 수행자의 자세로 전세계에 살고 있는 교민들을 만나서 소중한 가르침을 전해주고 오신 스님께 청법가와 삼배를 올리고 ‘세계 100회 강연의 의미’에 대해 법문을 청해 들었습니다.nbspnbspnbsp스님께서는 세계 100회 강연을 다녀오신 소회와 발원을 함께 나누어 주시면서 앞으로 정토회가 나아가야 할 방향과 비전에 대해서도 이야기해 주셨습니다.nbspnbsp“안녕하세요. 오늘 날씨가 매우 춥다는데 새벽부터 일어나서 먼 길을 어렵게 오셨습니다. 여러분들의 성원과 각 법당에서 지극 정성으로 기도해 주신 덕분에 세계 115회 강연을 잘 마쳤습니다. nbspnbspnbsp물론 중간에 몸이 아파서 조금 중단될 뻔한 위기가 있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위기를 잘 넘겼구요. 중남미로 갈 때는 비행기 스케줄이 워낙 빡빡해서 강의를 못할 뻔한 위기를 넘겼고, 동남아시아에 와서는 갑자기 필리핀에 태풍이 불어서 비행기가 못 뜰 뻔한 위기를 넘겼고요. 맨 마지막날 폭설이 쏟아져서 강의장에 도착을 못할 뻔한 위기도 있었습니다. 겨우겨우 무사히 잘 마쳤습니다. 넉달이 조금 안되는 시간동안 지구를 한바퀴 돌았는데, 교민들이 많이 사는 데는 다 가봤다고 할 수 있을 것 같아요.nbspnbsp돌아다니면서 느낀 소감은 첫째, 우리 국민들이 참 억척스럽다 싶었어요. 정부에서 아무런 도움도 안주고, 제 몸 하나 들고 낯설고 물설은 외국에서 악착같이 일을 해서 그 사회에서 뿌리를 내리고, 또 어떤 경우는 상당히 성공을 해서 지역사회에 기여를 하면서 살아가는 모습을 보면서 정말 눈물 겹고 고맙기도 했습니다.nbsp백년 전에 나라를 빼앗기고 국내에서 못살아서 괴나리 봇짐을 지고 두만강과 압록강을 건너서 추운 만주 벌판에서 고생고생 하면서 삶을 개척해 나가셨고, 국가로부터 아무런 도움을 못 받고 도움은 커녕 착취만 당하다가 나라를 떠나 살던 그들이 오히려 나라를 뺏긴 뒤에는 독립운동의 근거지가 되었고, 그래서 수많은 희생을 치루고, 그렇게 나라를 되찾고 새로운 나라를 만들어 놓으니 이나라 또한 국민들을 제대로 보살피지 않으니, 또 국민들이 나라를 떠나서 전 세계로 나가 이렇게 잘 살아주는 것만해도 너무나 고마웠습니다.nbspnbsp한국에 살아도 우리가 살기가 힘든데 외국에 가서 살면 말도 잘 안 통하지, 음식도 다르지, 문화도 다르지, 친구도 없지, 그런 곳에서 삶을 개척해 간다는 것이 말이 쉽지 쉬운 일이 아닙니다. 그러니 그들이 말은 안하지만 가슴 속에 아픔이 얼마나 많겠습니까.nbspnbspnbsp특히 외국인과 결혼해서 사는 사람들은, 물질적으로 보면 우리가 가난할 때는 잘 산다고 했을지 몰라도, 얼마나 그 삶이 힘들었겠습니까? 가난한 사람이 부잣집에 시집을 가면 말이 시집이지 거의 노예생활이나 다름이 없지 않습니까.nbspnbsp다니면서 그런 아픔들을 느낄 수가 있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들의 아픈 얘기를 들어주고 얘기 나누고 어루만져 주고 위로해 주고 그랬어요. 또 위로한다고 해결되는 것이 아니라 그런 가운데도 “내 인생은 내가 책임지고 내가 정신 차려야된다”는 혹독한 얘기를 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 왜냐하면 그 누구도 내 인생을 대신해 줄 수 없기 때문입니다. 부처님 법의 위대함은 그런 가운데에서도 스스로 주인이 되어 살도록 해주신 것입니다. 어느 곳에서 어떤 경험을 하더라도 스스로 자기 단도리를 잘하면 자기 인생의 주인이 되어 살아갈 수 있습니다. 이런 입장에서 대화를 나누고 지침을 주고 그래서 그들이 그 어려움 속에서 다시 기운을 내고 정신을 차리고 살아가는 모습을 보면 정말 마음이 기뻤습니다.nbspnbsp그런 것을 볼 때 우리들이 조금만 노력을 한다면 가까이 있거나 먼 곳에 있거나 고통 받는 사람들에게 도움을 줄 수 있겠구나 싶었어요. 우리의 능력이 출중해서가 아니라 부처님의 위대한 법을 우리가 계승했기 때문에, 비록 미약한 존재인 우리들도 그 법의 가피를 입었기 때문에, 이런 중요한 일을 할 수가 있는 것입니다. 그럴 때마다 부처님께 더 감사하고 더 귀의하는 마음이 일어났습니다.nbspnbsp두 번째로는, 대한민국이 지난 50년 동안 우여곡절을 겪으면서도 많이 발전을 했습니다. 먹고 살기도 좋아졌고 사회도 민주화가 되고요. 초기 이민 갔던 사람들은 가난한 나라에서 온 사람이라고 멸시당하고 그랬는데, 대한민국이 이렇게 발전하고 좋은 나라가 되고 세계 모든 사람들이 다 한국을 알게 되고 이렇게 되니까 세계 각국에 살고 있던 우리 교민들이 움츠려 있다가 가슴을 펴고 고개를 들고, 그래서 한국사람이라는 것을 당당히 말할 수 있는 그런 모습은 정말 보기가 좋았습니다. 그런데 올해 세월호 사건이 생기고, 처음엔 마음이 하나로 모아지는듯 하다가 뒤에는 오히려 이것이 국민 분열을 가져오고 갈등이 생기고 뒷수습이 최소한의 상식 수준으로도 되지 않음으로써 대한민국 국민임이 부끄러워지고 국적을 바꾸고 싶다며 물러나는 마음까지 생겨난다며 가슴 아파하는 교민들을 보게 되었습니다. nbsp어쩌면 한국에 살고 있는 우리들보다도 훨씬 더 가슴아파하는 모습들을 보며서 한국에 살고 있는 우리들이 좀 잘 살아야되겠다 싶었어요. 우리가 잘 살 때 그들에게는 희망이 되고, 우리가 못 살 때 그들에게 절망이 되는구나 느낄 수 있었습니다.nbspnbsp또 남북관계가 이렇게 갈등이 계속됨으로해서 교민사회까지 분열이 일어나고, 밖에서 보면 한민족인데 어르렁 대며 싸우고 조금도 양보하지 않고 대결하는 모습은 그들에게는 큰 아픔이 된다는 것을 보았습니다. 남북관계를 잘 풀어서 평화로운 한반도, 자랑스러운 통일한국을 만들어 나간다면, 우리가 특별히 도와주는 것이 없다 하더라도 해외에 있는 우리 교포들이 힘을 얻고 용기를 갖고 신나게 살아갈 수 있을 것 같았습니다. 국내에서 살고 있는 우리들이 좀 더 개인의 이익에만 치중하지 말고 공공의 이익을 위해서 좀 더 노력하는 것이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nbspnbsp제가 이번에 세계 100강을 한 것은 한국에 사는 국민들을 위해서 시군구에 가서 300회 강의를 했듯이, 해외에 사는 우리 교민들을 위해서도 이런 혜택을 주자는 것이 첫째구요. 둘째는 2차 만일결사를 대비해서 세계를 한바퀴 돌아보고 점검을 하고, 먼저 교민사회에 뿌리를 내려서 거기서 다른 나라 사람들을 위한 기초도 마련해 보자는 의미도 함께 있었습니다. 아마 이번 8차 천일결사의 남은 2년 동안 제가 강의한 115개 도시 중에서 50개 정도의 도시에서는 수행 모임을 만들 수 있지 않을까 싶어요. nbspnbsp그리고 아무에게도 말은 안했지만 저에게는 이렇게 하는 이유가 또 하나 있습니다. 그것은 나라의 통일을 위해서입니다. 나라의 통일을 위해서 우리가 무엇을 할 것인가? 물론 평화재단을 통해서 남북 관계의 정치적인 변화를 가져오는 활동을 하지만 우리는 그냥 사회인이 아니라 종교인이지 않습니까. 종교인이란 세상 일이 꼭 수치적인 계산으로만 이루어지지 않는다고 믿지 않습니까. 어떤 초월적인 힘을 믿지 않는다고 하더라도 우리들의 보이지 않는 공덕이 있어야지만이 통일이라는 과보가 이뤄질 수 있다고 믿기 때문에 우리는 종교인이 되어있는 것 아니겠어요?nbspnbsp우리가 통일이라고 하는 큰 탑을 세우려면 보이지 않는 많은 공덕을 지어야 합니다. 첫째 남한 사람들은 미국이나 남한으로부터 피해를 입었다고 생각하는 북한사람들에게 참회해야 합니다. 우리가 미군이 되고 한국군이 되어서 북한의 상처입은 사람들에게 참회를 해야하고, 또 우리는 북한 사람, 북한 지도부가 되어서 남한 사람들이 북한 공산당으로부터 상처 입었다고 생각해서 악감정을 갖고 있는 사람들에게 많은 참회를 해야 합니다. 또 전세계 사람들에게 우리가 과거 역사 속에서 알게 모르게 지은 많은 잘못에 대해서도 우리가 대신 참회를 해야 합니다. 이 참회를 해서 통일의 장애를 제거해 나가야 합니다. 또 많이 베풀어서 통일의 공덕을 쌓아야 합니다. 그래서 제가 시군구를 다 방문해서 사람들을 만나고 이야기를 듣고 함께 울고 웃고 한 것은 남한 안에서 우리가 통일의 공덕을 쌓자는 것이였고요.nbspnbsp두 번째는 북한 안에서도 공덕을 쌓아야 합니다. 그런데 북한 안에서는 이렇게 위로를 해줄 수가 없으니까 “모든 북한의 시군구를 방문하게 해주면 모든 시군구마다 옥수수 100톤씩을 지원하겠다” 고 제가 북한에 제안을 했습니다. nbspnbsp그래서 배고파서 당장 굶어죽어 가는 사람들에게 적어도 20kg 한포대라도 전달할 수 있도록, 그래서 200일 동안 매일 북한의 시군구를 한 곳씩 다니면서 100톤씩 전달하면 한 100억이 필요해요. 그러니까 그 정도는 모금할 수 있겠죠? nbspnbsp물론 정치도 바꾸어야 하고, 연구도 해야 하고, 준비도 해야 하지만 제가 말씀드리는 것은 공덕 쌓기입니다. 아무런 표시 없이 북한 주민들의 아픔을 달래주어야 그것이 공덕이 되어 통일의 과보를 받을 수가 있습니다. 그런데 지금 당장 북한을 방문할 수가 없잖아요. 남북관계가 계속 안 풀리고 있어서 방문할 수가 없게 돼서, 세 번째 공덕 쌓기의 일환으로 전 세계 사람들을 위해서 찾아간 것입니다. 제가 언어가 안되니까 외국인들을 위해서는 할 수가 없고 외국 땅에 사는 우리 800만 교민들의 아픔을 치유함으로해서 그 공덕으로 통일의 과보를 가져오도록 해보자 하는 마음으로 세계 100강을 가게 되었습니다. nbspnbsp현실적으로는 통일국가를 건설할 수 있는 시민운동을 강력하게 전개해야 해요. nbsp그러나 종교인들은 사람의 힘만 갖고는 이런 일이 이뤄지는 것이 아니라고 보고, 보이지않는 힘, 천지신명의 기운, 불보살의 가피, 호법신들의 옹호를 받아야한다고 봅니다. 지성이면 감천이라고 지극한 정성을 기울이면 하늘도 감동을 합니다. 그런 감동이 있어야 기적이 일어나게 됩니다.nbspnbsp현재의 남북관계와 동북아 정세를 봐서는 우리가 통일한국을 만드는 일은 거의 기적에 해당되는 일입니다. 이미 기회를 놓쳤다 이런 생각이 드는데, 사람의 힘으로는 기회를 놓쳤다면 이제는 호법선신들의 옹호를 받아서 우리가 기적을 만들어내는 수밖에 없습니다. 세상 사람들처럼 상식적인 노력을 해서는 호법선신들이 감동을 하지 않습니다. 완전히 안되는 것이다 하는 것을 우리가 해낼 때 바로 세상에 기적이 일어나게 됩니다. 이런 일을 해나가려면 저 혼자 할 수가 없어요. 이제 여러분들이 해나가셔야 해요.nbspnbsp정말 발심을 해야 합니다. 안하면 “왜 안하노?” 이렇게 물을 수 있는 사람을 만들어보자 그렇게 해서 정회원 제도가 생긴 겁니다. 여러분들은 하면 당연하고, 안하면 문제제기를 받아야 하는 사람들입니다. “너 왜 기도 안하니?”, “너 왜 봉사 안하니?” 이렇게 물어도 되는 의무가 있는 사람, 그런 사람이 정회원이예요. 권리는 없어요. 갈수록 의무만 늘어납니다. 갈수록 지옥에 가깝게 다가가는 겁니다. 지옥을 없앨려면 우리가 지옥으로 많이 가야 지옥을 없애지요. 우리들이 지옥에 안가면 누가 지옥을 없애요? 지장보살님 혼자서는 그 일을 다 못해요. 때를 모아 가서 한꺼번에 힘을 합해줘야 무슨 수가 나지요. nbspnbspnbsp이렇게 해서 우리가 이 땅에 세운 원을 한번 성취해보자는 것입니다. 우리가 세운 원은 크게 두 가지입니다. 첫째, 우리가 태어난 이 땅에 은혜를 갚자. 그것은 나라의 평화와 통일을 이루는 것입니다. 다시는 이 땅에 전쟁이 없어야 한다는 평화와 분단을 극복해서 통일 한국을 만드는 것입니다. 지금처럼 개인 기도 수준은 이제 넘어서야 합니다. 개인 기도는 마땅히 해야 하고, 이제 힘을 내어서 사회를 변화시키고 통일의 기운을 만드는데 집중해야 합니다. 둘째, 이 땅에 정토를 건설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민족이나 종교를 초월해야 합니다. 세상의 모든 중생을 평등하게 아끼고 사랑하는 마음으로 해야 합니다. 인간을 넘어서서 다른 동식물까지도 다 포함한 그런 아름다운 세상을 우리가 꿈꾸고 있습니다. 평화를, 환경을, 제3세계 구호활동을 더 해야 하고, 세계의 문제를 가지고 세계 사람들의 고통을 해결하고 평화와 행복을 가져올 수 있도록 우리가 노력을 해야 합니다.nbspnbsp우리가 밀알이 되고 중심이 되어주어야 합니다. 만나보면 해외든 국내든 마음은 다 같아요. 그런데 도무지 기댈 데가 없다고 해요. 중심이 있어줘야 옆에 같이 붙어서 할텐데, 중심이 없어서 지금 안되고 있거든요. 그러니 정토회가 중심이 되어주고 여러분들이 지역사회의 중심이 되어주셔서 우리가 새로운 기적을 한번 만들어보자는 것입니다. 그래서 세상에 희망을 우리가 만듭시다. 내 인생의 희망이 되고, 내 가족의 희망이 되고, 우리 사회의 희망이 되고, 우리 민족의 희망이 되고, 인류에게 희망이 되는 그런 삶을 함께 살아갔으면 합니다.”nbsp우리가 희망이 되자는 말씀에 정회원 모두가 가슴이 뜨거워지고 기쁜 마음이 되었습니다. 전 세계의 교민들에도 희망의 메시지를 전해주신 스님께서 오늘은 정토회의 정회원들에게도 희망의 기운을 북돋아 주셨습니다. 특히 스님께서 북한 전역을 다니시며 옥수수를 나눠주시는 모습은 상상만 해도 눈물이 날 것 같고 가슴이 설레였습니다.nbspnbsp눈물을 훔치는 감동을 뒤로 하고 점심시간이 되었습니다. 질서있게 구역을 나눠 맛있게 식사를 한 후, 1시20분부터는 신나는 정토행자 한마당으로 2부 행사가 시작되었습니다.nbspnbsp강원경기동부 지부와 경남지부에서 “거북이” 노래와 “빙고” 노래에 맞춰 신나는 율동을 보여주고, 장선옥 경산법당 총무님의 맛깔스런 노래 장단에 행사장은 화끈 달아올랐습니다. 한바탕 크게 웃고 박수치고 하다보니 방금 전 먹은 점심이 벌써 다 소화가 되어버린 기분이 되었습니다.nbspnbspnbspnbspnbsp이어서 “나도 한마디”를 주제로 3분 스피치 시간을 가졌습니다. 이영조님은 “통일 기도를 한지 1주년이 되어서 1주년 행사를 했다. 새터민도 함께 했는데, 요즘은 통일 얘기만 하면 눈물이 난다”고 이야기를 했고, 안선영님은 “스님 얼굴을 가까이서 보려고 나왔다”고 해서 웃음을 자아내었습니다.nbspnbspnbspnbsp유애경님은 “북한에는 아직도 100여만명에 가까운 결핵환자가 있습니다. 동지 기도에 만원씩이라도 보시하는 정성을 모으면 좋겠습니다. 만원이 없는 사람은 차제걸이처럼 아는 사람 일곱명에게 전화하시고, 안 주면 내 수행을 돌아보시면 어떨까 합니다” 라고 제안하기도 했습니다.nbspnbspnbsp정토행자 한마당을 마무리하면서 사회자 권완수님이 오늘의 역사적인 순간을 사진으로 남기고 싶다며 셀카봉을 들고와서 다함께 셀카를 찍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1000여명의 대중들도 열렬히 환호를 하면서 함께 셀카를 찍었습니다. nbspnbspnbsp웃음꽃이 만발하고 흥겨운 분위기가 계속 되었는데, 아쉽게도 집으로 돌아가야 하는 시간을 고려하다보니 더 시간을 갖지 못했습니다. 아쉬움을 뒤로 하고 2차 정회원 대회에서는 즐겁게 어울리는 시간을 더 많이 가졌으면 하는 바램을 가져보았습니다.nbspnbsp다시 스님을 법상에 모시고 “1차 만일결사를 하게 된 취지와 그 속에서 정회원의 역할”에 대해 법문을 청해 듣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스님께서는 “깨어 있어서 늘 수행하는 자세를 갖는 것이 모든 활동의 기초”라는 점을 강조하시면서 이렇게 법문을 해주셨습니다.nbspnbsp“우리가 중심을 딱 잡고 있어줘야, 10년 간 관망만 하다가 이 일에 동참하기 위해 찾아오기도 하고, 너무 좋아하다가 원수가 되어 나갔는데 다시 돌아오게 할 수도 있습니다. 그래서 이렇게 중심을 잡아주는 사람을 정회원이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무슨 권리를 행사하려거나, 출판사 책 사거나 성지순례 갈 때 할인 받으려고 정회원이 되는게 아닙니다. nbspnbspnbsp좀 흔들흔들 하더라도 이렇게 중심을 잡아주는 사람이 정회원이예요. 정회원 주위에 일반회원이 붙고, 일반회원 주위에 후원회원이 붙어서 정토회를 이끌어가게 됩니다. 그래서 1차 만일결사를 회향할 때 정회원이 10만명이 되면 일반회원은 50만명이 됩니다. 전국 시군구 읍면동에 수행법회가 하나씩 있고, 이 사람들이 중심이 되어 동네 쓰레기도 치우고 노인들도 돌보고 온갖 궂은 일을 도맡아 할 때 이 세상은 좀 나아집니다. 이렇게 해보려고 정토회를 시작한 거예요.nbspnbsp그래서 첫째, 정회원들은 매일 수행정진을 해서 자기가 행복해야 합니다. 얼굴이 방실방실 웃어야 합니다. 자기가 행복해야한다. 이것이 최대의 무기입니다. 그래서 매일 정진해야 합니다. 남탓하는 사람은 수행자라 할 수가 없습니다. 최소한 오계를 지켜야 합니다. 그래서 자기보다는 남을, 개인보다는 사회와 나라를 생각하는 사람이어야 합니다.nbspnbsp둘째, 이 좋은 행복을 이웃에 전하는 일을 해야 합니다. 우리가 약을 먹고 나았을 때 얼마나 이웃에게 권합니까. 자기가 먼저 효험을 봐야 합니다. 내가 행복해야 이 좋은 법을 전하는데 힘이 생깁니다.nbspnbspnbsp셋째, 우리가 사는 사회를 아름답게 만드는 일을 해야합니다. 환경운동도 하고, 구호활동도 하고, 평화 운동도 하지만, 대한민국에 태어난 인연으로 지난 백년의 한을 풀고 새로운 백년의 희망을 만들기 위해서는 통일을 중요하게 생각하고 통일에 필요한 일이라면 그것이 무엇이든 두려움 없이 행동해야 합니다.nbspnbsp일반회원들에게 이런 것을 요구하면 안됩니다. 일반회원들은 본인이 힘들어서 왔기 때문에 자기 치유를 할 수 있는 시간을 주어야 합니다. 자기 치유가 어느정도 되고 자발적으로 정회원이 되었을 때 ‘세상의 희망이 되자’ 이런 얘기를 할 수 있는 것입니다.nbspnbsp그래서 수행을 해야 합니다. 항상 분별심이 일어나면 정진을 해야 합니다. 지금 정토회 안에서도 곳곳이 찌그락 찌그락 하잖아요. 남탓 하는 것은 수행이 아닙니다. 행정적으로 개선해야 할 것은 얘기해야 합니다. 속에서 화가 나거나 짜증이 나면 분별심입니다. 화나고 짜증이 나지 않는 상태에서는 열 번이고 스무번이고 건의도 하고 비판도 하고 문제 제기를 해도 좋습니다. 그래서 이 정진을 기초로 하고 일을 해야 정토회가 앞으로도 급속도로 확산이 될 수 있습니다.nbspnbsp지금 이 시대가 수행을 필요로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지금 세상에는 믿을 수 있는 단체가 너무 없어요. 믿을 수 있는 단체를 우리가 만들어낸다면 우리도 깜짝 놀랄 일이 앞으로 전개될 수가 있습니다. 일도 해야 하지만 제일 중요한 것은 수행입니다. 수행이 기초가 되어야 정토회가 탄탄하게 확산이 되지, 수행이 기초가 안되면 나중에 분란이 생기고 허물어질 위험이 있습니다. 그래서 정회원 여러분들은 모든 것에서 항상 수행을 놓치지 않고 해나가는 그런 분들이 되시기 바랍니다.”nbsp수행을 항상 가장 우선에 두라는 말씀을 가슴에 새기면서 잠시 명상하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첫째도 수행이고 둘째도 수행이고 셋째도 수행이구나 하는 것을 다시한번 깨닫게 되는 시간이었습니다.nbspnbsp마지막 순서로 ‘정토행자 발원문’ 낭독의 시간을 가졌습니다. 스님께서 일러주신 간절한 원을 우리의 서원으로 받아안고 정토회 만일결사의 주인으로 거듭날 것을 다짐하며 2014년 신규 발심행자 24명이 초를 들고 무대 앞으로 나와 스님의 양옆에 서서 발원문을 낭독했습니다.nbspnbspnbsp스님께서도 발원문 낭독을 듣고 발심행자들을 위해 간절한 마음을 담아 축원을 해주셨습니다.nbspnbsp“오늘 발심행자 대중 일동은 이곳 정토수련원 부처님 고행상 앞에서 두 손 모아 합장하옵고 발원하옵니다. 저희들은 부처님 법 만나기 전에는 삶이 힘들었고 괴로웠습니다. 세상에 원망도 많았습니다. 나는 이렇게 열심히 노력하는데 왜 결과는 내가 원하는만큼 이뤄지지 않는지, 왜 다른 사람들은 저렇게 되는데 나는 그렇게 될 수 없는지, 어떤 사람은 부모를 잘 만나서, 어떤 사람은 남편을 잘 만나서 저렇게 행복하게 사는데 나는 왜 이런 집안에 태어나고 이런 사람을 만났는지 원망도 했습니다.nbspnbsp그러나 부처님 법 만나서 스스로를 돌이켜보니 이 모든 괴로움이 누가 나에게 준 것이 아니라 나의 어리석음이 나의 잘못된 생각이 스스로 만들어낸 것임을 알게 되었습니다. 마치 누에가 제 입에서 나온 실로 고치를 만들고 그 속에 갇히듯이. 그러나 그 애벌레가 고치에 구멍을 뚫고 나와 하늘을 나르듯이 저희들 또한 관념의 감옥을 뚫고 저 넓은 세상으로 나아가 내 인생의 주인, 우주의 주인이 되는 길로 나아가겠습니다.nbspnbspnbsp지금까지는 내 인생도 제대로 살지 못해 늘 도움을 요청했습니다. 누군가가 내 길을 인도해주기를 바라고, 나에게 온갖 것을 알려주기 바라고, 누군가가 나를 위해서 일해주기를 바랬습니다. 나는 언제나 부족하고 알지 못하고 능력이 모자랐습니다. 그러나 이제 부처님 법을 만나 깨닫고 보니 내 자신이 정말 소중한 존재임을 알게 되었습니다.nbspnbsp눈이 있어 볼 수 있는 것만 해도 큰 복이였습니다. 이제는 뜬 눈으로 앞을 보지 못하는 사람을 인도하겠습니다. 귀가 들리는 것만 해도 큰 복임을 알게 되었습니다. 듣지 못하는 많은 사람들에게 들을 수 있는 귀가 되겠습니다. 두 손이 있으니 큰 복임을 알게 되었습니다. 두 손이 없어서 불편한 많은 사람들의 손이 되겠습니다. 두 다리가 있는 것만으로도 큰 복임을 알게 되었습니다. 움직이지 못하는 많은 사람들을 대신하여 그들을 태우고 부지런히 달려가겠습니다. 내가 가진 것 어느 하나 소중하지 않는 것이 없고, 내가 가진 것 그 어느 하나 남에게 도움이 되지 않는 것이 없음을 알게 되었습니다.nbspnbsp부처님 이제 더 이상 구걸하지 않겠습니다. 세상 사람들의 원을 수용하고, 그들의 바램을 성취시켜주는 사람이 되겠습니다. 아우성치는 사람이 아니라 아우성치는 사람들의 한을 풀어주는 사람이 되겠습니다. 우는 사람이 아니라 우는 사람의 눈물을 닦아주는 사람이 되겠습니다.nbspnbspnbsp거룩하신 부처님 이렇게 오늘부터 작은 보살이 되어 이 땅에 정토가 이뤄질 때까지, 이 땅에 평화와 통일이 이뤄질 때까지 정토행자로써 통일일꾼으로써 부지런히 정진해 나가겠습니다.nbspnbsp대자대비하신 관세음보살님이시여 대원본존 지장보살님이시여 저희가 스스로 이렇게 나갈테니 저희가 힘이 부족할 때 저희와 함께해 주시고, 저희를 응원하여 주옵소서. 제불보살님들께서는 저희의 이 발원을 증명하여 주옵시고, 천룡팔부 모든 신중님들은 저희의 이 발원이 성취될 수 있도록 옹호하여 주시옵소서. 나무 석가모니불, 나무 석가모니불, 나무 시아본사 석가모니불.”nbspnbsp스님의 간절한 발원을 가슴에 새기며 관음정근 시간을 가졌습니다. 한배 한배 절을 하면서 작은 불보살이 되고 통일 일꾼이 될 것을 다짐하는 시간을 가졌습니다.nbspnbspnbsp마지막으로 이기혜 정토회 대표님이 무대 위로 올라오셔서 오늘 제1차 전국 정회원 대회를 마무리하는 닫는 인사를 해주셨습니다. 대표님은 “오늘이 통일의 물꼬를 틀 수 있는 역사적인 결집이 될 수 있도록 내년에는 신나게 뛰어보자”고 하시면서 먼길을 마다하지 않고 함께 자리해준 정회원 분들에게 한번 더 기운을 북돋아 주었습니다.nbspnbspnbsp역사적인 오늘을 기념하여 다함께 기념사진을 찍었습니다. 두고 두고 길이 남을 사진이 되지 않을까 싶네요.nbspnbspnbsp그리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는 수련원에서 떡을 배분해 주었습니다. 모두들 떡을 한 입에 물고 도반들과 정겨운 이야기를 나누며 정토수련원의 솔숲 길을 걸어 내려갔습니다. 가슴 속에는 뜨거운 원을 지니고, 발걸음은 가볍게 하면서, 오늘 스님께서 들려주신 말씀을 오롯이 새기면서 집으로 향합니다.nbspnbsp스님께서는 오후5시에 다시 서울로 출발하셨습니다. 중간에 휴게소에 들러 4500원짜리 국수를 드시고 있는데, 아이를 데리고 부부가 찾아와서 “스님 덕분에 엄마수업 책 읽고 아이를 잘 키우고 있다” 고 인사하면서 음료수를 드리고 갔습니다. 스님께서도 합장을 하고 감사해 하셨습니다.nbspnbspnbsp서울에 도착하니 저녁 8시가 넘었습니다. 스님께서는 정토회관에서 그동안 장기간 해외에 계시느라 처리하지 못한 업무들을 밤늦게까지 보시다가 오늘 일정을 마치셨습니다.nbspnbsp내일은 오전과 저녁에 동지법회와 송년법회가 있는 날입니다. 한해를 어떤 마음으로 마무리하면 좋을지 스님의 지혜로운 말씀을 듣는 시간이 있습니다. 생생한 소식 또 전해드리겠습니다.nbsp

2014.12.22. 28,554 읽음 댓글 31개

2014.12.20 평화연구원 워크숍 및 통일의병 임명장 수여식

nbsp안녕하세요. 오늘은 어제에 이어서 평화재단 평화연구원 워크숍 두번째 날입니다. 스님께서는 아침부터 원고 교정 및 업무를 보시다가 8시에 전문가분들과 아침 식사를 함께 하셨습니다. 9시부터 워크숍 프로그램이 시작되었는데, 스님께서는 원고 교정을 보셔야 하는 일이 있어서 30분 늦게 워크숍에 참석하셨습니다.nbspnbsp오늘은 “한국 사회의 통일 준비를 위한 2015년 집중 과제”를 주제로 이정훈 관동대학교 교수님의 사회를 통해 전분가 분들의 발표와 토론이 계속 이어졌습니다. 모두들 어제 워크숍이 열렸던 세미나실이 많이 추웠다고 하셔서, 오늘은 잠을 잤던 숙소 방으로 장소를 옮겨서 워크숍을 시작했습니다. 모두들 따뜻해서 좋다며 시골 방에 옹기종기 모여 앉아 정겨운 분위기 속에서 워크숍이 진행되었습니다.nbspnbsp이성훈 한국인권재단 상임이사님이 ‘글로벌 사회운동과 한국의 시민사회운동의 도전과 과제’에 대해 발표해 주셨고, 이태호 참여연대 사무처장님이 “한국 사회통합과 지속가능성을 위한 과제”에 대해 발표해 주셨고, 고경빈 평화재단 이사님이 “통일 준비에 필요한 남한 사회의 아젠다”에 대해 발표를 해주셨습니다. 그리고 이어서 “2015년의 과제와 평화재단의 역할”에 대해서 전체가 다함께 집중 토론하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좋은 아이디어가 많이 나왔는데, 특히 평화재단이 갈등의 한국 사회에 공론의 장을 마련해 주면 좋겠다는 의견이 많았습니다.nbspnbsp스님께서는 전문가분들의 의견을 모두 경청 한 후 다양한 아이디어들을 수렴해 주시면서 이렇게 정리 말씀을 해주셨습니다.nbspnbspnbsp“공론의 장을 만들어달라는 의견을 많이 주셨는데, 공론의 장을 어떻게 기획하느냐가 중요한 것 같아요. 어떤 주제로 어떤 사람들이 참여해서 할 것인가 하는 것이죠. 그리고 그것을 언론에서 적극 받아주면 함께 해나가기가 훨씬 수월한데, 현재의 언론 상황에서는 이것을 별로 다루지 않을 것이란 거죠. 현재의 언론은 서로 싸워야 이슈가 되고, 극단적인 주장을 해야 이슈가 되는데, 서로 합리적인 대화를 해나가는 것은 뉴스 거리가 안되는 것 같아요.nbspnbsp왜냐하면 제가 작년에 한국 사회의 중도 보수 진보에 해당하는 100여분을 만나서 그 중에 여야 중진의원들을 포함한 20여분의 사람들과 20여차례 회의를 해서 통일 문제에 대한 여섯가지 합의점을 도출했고, 그것을 조계종 총무원장님과 천주교 주교님 등 각 종단의 대표까지 총 66명의 사회지도층 인사들의 사인을 다 받아서 국회 외통위와 본회의까지 통과시켰는데, 그래도 뉴스 거리가 안되더라구요. 우리가 생각할 때는 그 정도 되면 뉴스가 되지 않겠느냐 예상했는데 뉴스에 한 줄도 안나니까 참여했던 정치인들이 맥이 딱 빠져버렸어요. 그 정도 되면 자기들이 생각할 때도 여야 중진의원들이 다 참여하고, 전직 외교부 통일부 장관 출신까지 다 참여했는데, 보수 언론 뿐만 아니라 진보 언론에도 안 나는 것을 봤을 때, 도대체 언론에서는 무엇을 실으려고 하는 것인지 의문이 들었거든요. 특히 정치인들은 이런 합의를 하는 것이 언론에 좀 나주어야 자기들이 힘을 좀 받는데, 그렇게 갈등이 있는 것을 겨우 중재를 써서 합의를 봐 놓았는데 언론에 한줄도 안나와 버리니까 힘이 좀 빠지는 것 같았어요.nbspnbsp이런 공론의 장을 만드는 것이 어려운 게 아니라, 진보와 보수가 만나서 합리적인 방법을 찾아나가는 이런 공간을 어떻게 기획하고 어떤 목표를 설정하고 어떤 사람을 선택해서 어떤 주제를 갖고 만들어나갈 것인가 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이건 평화재단 혼자서 할 수 있는 건 아닌 것 같아요. 여기 계신 분들이 공동으로 만들어가는 것이 필요할 것 같아요.”nbsp3시간 남짓한 시간 동안의 열띤 토론을 마치고 다함께 밖으로 나와서 취옹예술관의 눈이 내린 마당과 한옥을 배경으로 기념사진을 찍었습니다.nbsp모두들 2015년에는 한반도 통일을 향해 더욱더 힘을 모아나가자고 마음을 모으면서 악수도 하고 인사도 하면서 각자의 공간으로 돌아가셨습니다.nbspnbsp스님께서는 점심 식사도 하지 못하시고 곧바로 서울로 이동하셔서 오후3시부터 평화재단 3층 강당에서 열린 통일의병 임명장 수여식에 참석하셨습니다.nbspnbsp통일의병은 평화재단 리더십아카데미를 졸업한 사람들이 중심이 되어 시대적 과제인 한반도 통일을 위한 다양한 실천들을 하기 위해 만들어진 모임입니다. 2013년 6월17일에 155명이 모여 창립대회를 한 이후 지금까지 총 368명의 통일의병이 함께 활동해 오고 있습니다. 통일의병은 통일시민학교 등 일정한 교육을 받은 후 임명이 되게 되는데 임명장에 순번이 메겨지게 되어서 각 개인마다 고유번호가 부여됩니다. 오늘은 369번째부터 399번째까지 총 21명의 통일의병이 임명장을 받는 날입니다.nbspnbsp통일의병 소개영상을 함께 시청한 후, 백왕순 통일의병 사무총장님이 나와서 그동안 통일의병이 걸어온 길에 대해 소개해 주었습니다. 그리고 스님께서 직접 나오셔서 오늘 새롭게 통일의병이 되시는 분들 한명 한명에게 임명장을 수여하고 악수를 했습니다. 또 조성수 통일의병 대표님이 기념 메달을 증정하고, 각각 스님과 함께 기념사진을 찍는 시간이 주어졌습니다.nbspnbspnbsp▲ 통일의병 임명장 수여식nbsp스님께 직접 임명장을 부여 받고 다들 너무나 기뻐하면서 앞으로 열심히 통일 운동에 참여할 것을 약속했습니다. nbspnbsp스님께서는 새롭게 통일의병이 되시는 분들에게 통일이 왜 시대적 과제인지, 어떤 자세로 통일의병 활동에 임해야 하는지 40여분간 격려의 말씀을 해주셨습니다.nbspnbspnbsp“우리는 분단시대에 살고 있기 때문에 통일이 얼마나 중요한 시대적 과제인지를 잘 알지 못합니다. 통일이 얼마나 국가의 비약적 성장을 가져오고 얼마나 국민을 행복하게 만드는 것인줄을 분단 시대에 살고 있는 동안에는 알기가 어렵습니다. 과거 역사를 돌아볼 때 신라가 가야와 통합을 한 뒤에 국가가 얼마나 비약적 발전을 했는지를 우리는 역사 속에서 알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 당시에는 그러한 통합이 어떤 변화를 가져올지 아무도 예측하지 못합니다.nbspnbsp분단 상태로도 우리가 이만큼 성장해 오긴 했지만, 앞으로도 계속 이렇게 발전할 수 있을 것인가 하는 문제입니다. 이제는 성장 동력이 거의 다 소진되었습니다. 인구 구성으로나 산업의 성장 정도로나 국제 무역 환경이나, 이제는 정체 국면에 들어섰습니다. 이것을 극복하려면 우리에게는 기회가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평화적 통일과 북한 개발을 통해서, 마치 미국이 서부 개척을 통해서 성장의 동력을 되찾는 것처럼, 통일은 우리에게 국가적으로는 발전의 기회를 가져오고, 또 국민적으로는 우리가 정신적으로 겪고 있는 이념 갈등, 세대 갈등, 금기, 이런 많은 것들을 해소할 수가 있습니다. 이산가족의 아픔 등 과거의 상처를 치유하는 것 뿐만 아니라 미래를 개척해 나가는데 지금 통일 이외에 다른 대안이 없다고도 할 수 있습니다.nbspnbsp이런 통일의 중요성을 우리가 이해한다면 우리 선배들이 그 어려운 가운데 산업화를 이루었고, 그 어려운 가운데 민주화를 달성했는데, 여기에 안주할 것이 아니라 한발 더 내딛어서 더 큰 틀의 새로운 국가 건설과 국민 행복 시대를 우리가 마련하려면 통일 없이는 어렵습니다. 이런 관점에서 가능하면 속도를 빠르게, 가능하면 평화적으로, 가능하면 과정에서 고통이 적도록, 가능하면 통일 이후에 부작용이 적도록, 가능하면 상승효과가 크도록 그런 통일을 우리가 만들어야 합니다. 무조건 통일이 아니라 행복을 가져올 수 있는 그런 통일을 만들어가야 합니다.nbspnbsp그런 통일의 길에 여러분들이 의병으로 나선 것입니다. 또 북한에 살고 있는 것이 아니라 남한에 살고 있기 때문에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은 남한 안에서 영향을 미칠 수 있습니다. 남한이 통일 준비가 될 수 있는 사회를 만드는데 여러분들이 옛날의 의병처럼 목숨 걸고 하는 자세로 나서야 합니다. 목숨 걸 자세로 나서되 죽을 일도 없고, 감옥 갈 일도 없고, 약간 주의로부터 초기에는 왕따를 당하기도 하고, 약간의 손실을 볼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삶에서 큰 위협은 아닙니다.nbspnbsp그리고 요즘은 운동이 너무 무거우면 겁을 내요. 약간 가볍고 누구나 참여할 수 있고 그러나 목표는 분명히 해야 됩니다. 통일은 결국 정치적 행위이기 때문에 정치적 변화를 가져와야 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개인적으로는 정치에 관심이 없다고 하더라도 새로운 세상을 건설하는데는 정치가 중요한 역할을 하는 것이 현실이기 때문에, 어느 계파에 편들거나 정부와 싸우는 그런 것이 아니라, 통일을 위해서 새로운 나라를 만드는 일에 작은 힘이지만 적극적으로 행동을 해주시면 좋겠습니다.nbspnbsp그래서 가끔 소집을 해야 합니다. 강화도 마니산 꼭대기에서 아무날 아무시에 보자고 소집 명령이 떨어지면 와야 돼요. 알았지요? 언제나 비상 출동을 할 수 있는 훈련을 받아야 내가 의병이구나’ 하는 것을 알지, 의병 임명장만 받고 메달은 집에 걸어두고만 하고 나중에 통일되면 ‘내가 통일의병이었다’ 그러지 마시고, 공로로써 기여를 하시기 바랍니다. 잘 하실 것이라 믿고요. 다시 한 번 통일의병에 참여하시게 된 것을 진심으로 축하드립니다.”nbspnbsp스님의 격려 말씀에 모두 큰 박수로 화답했습니다.nbsp오늘 임명장을 받은 통일의병 한 분은 “스님과 함께해서 너무 영광스럽고 감격스럽다” 면서 “직장 일로 많이 바쁘지만 부지런히 통일운동에 동참하겠다”는 다짐을 보여주었습니다.nbspnbspnbsp스님께서 주신 통일의병의 자세를 가슴에 새기고, 임명장을 받은 분 모두 다함께 스님과 기념사진을 찍었습니다. 통일 한반도의 희망을 만들어갈 새로운 일꾼들이 탄생하는 순간입니다.nbspnbsp▲ 오늘 스님께 직접 임명장을 받은 21명의 통일의병들nbspnbsp이어서 저녁6시부터는 가수 김장훈씨의 초청으로 서강대 MARRY HALL에서 열린 콘서트를 관람하셨습니다. 김장훈씨는 지난 11월18일 평화재단 창립 10주년에 참석했다가 스님의 통일 강연을 듣고 큰 감명을 받았다고 합니다. 스님께서 한국 사회를 통찰하는 지혜를 듣고 느낀 바가 커서 스님을 꼭 자신의 콘서트에 초청하고 싶다고 했는데, 오늘 스님께서도 특별히 시간을 내셔서 응원 방문을 하셨습니다.nbspnbsp김장훈씨는 열정적인 3시간 동안의 콘서트를 마치면서 마지막 노래를 앞두고 “오늘은 제가 존경하는 특별한 손님이 찾아오셨다”면서 스님을 소개했습니다. “올 한해 동안 복잡 다난했던 사건들을 보면서 마음이 답답해서 한국 사회를 통합해내는 정치인이 아닌 다른 인물이 있었으면 하고 바랬는데, 스님을 뵙고 그런 희망을 보았다”고 하면서 스님께 인사를 했고, 콘서트에 참석한 청중들도 스님을 환영하며 박수를 보냈습니다. 김장훈씨는 “나가는 길에 절대 스님과 사진을 찍으려 하거나 사인을 받으려고 하지 마라”고 당부하면서 nbsp직접 찾아주신 스님을 반갑게 환영해 주었습니다.nbspnbspnbsp콘서트가 끝나고 스님께서는 무대 대기실을 방문해서 공연에 초대해준 김장훈씨에게 그저께 발간된 새책 lt지금 여기, 깨어있기gt를 사인해서 선물했습니다. 김장훈씨는 “그렇지 않아도 요즘 힐링이 필요했는데 잘 되었다” 면서 “스님 책을 잘 소화해서 공연 때 좀 많이 써먹겠다” 고 해서 스님도 활짝 웃으셨습니다.nbspnbsp▲ 스님께 새책 lt지금여기 깨어있기gt를 선물받은nbsp가수 김장훈씨.nbspnbsp스님께서는 김장훈씨가 내년에는 150회 콘서트를 계획하고 있다는 이야기를 들으시고는 “나도 300회, 100회 강연을 해보면 쉽지가 않은데, 몸에 너무 무리가 되지 않도록 하라” 고 당부하시면서 김장훈씨의 건강을 염려했습니다. 그리고 김장훈씨는 앞으로 스님께서 부르시면 청년들을 위한 공익적인 활동에 적극 나서겠다고 하면서 내년 6월에 예정된 청년들과 함께하는 모임에 참석할 것을 약속하고 미리 시간을 비워두기로 했습니다.nbspnbsp▲ 콘서트 관람을 마치고 김장훈씨와 함께nbspnbsp무대 대기실에서.nbspnbsp콘서트를 마치고 밖으로 나오니 밤10시가 넘었는데, 스님께서는 곧바로 문경 정토수련원으로 이동하셨습니다. 새벽 1시에 문경에 도착해서 오늘 일정을 모두 마치셨습니다.nbspnbsp내일은 문경 정토수련원에서 제1차 정토회 정회원의 날 행사가 열립니다. 내일은 문경에서 또 소식 전해드리겠습니다.nbsp nbsp

2014.12.21. 20,640 읽음 댓글 10개

2014.12.19 한국 귀국 및 평화연구원 워크숍

nbsp오늘은 한국으로 돌아가는 날입니다. 스님께서는 한국에 도착하셔서 또 바로 평화연구원 워크숍에 참가하셔야 해서 100강은 끝났지만 잠시도 쉴 틈이 없는 또 하루가 시작되었습니다.nbsp오사카에서의 숙소 제공과 nbsp아침 식사는 박현정님이 정성스럽게 마련해 주었습니다. 전에 요리사였다고 하는데 그 이른 아침에 우동 국물까지 만들어 와서 호텔방에서 편안하게 맛있는 아침 식사를 할 수 있었습니다.nbspnbspnbsp▲ 오사카에서 숙소를 제공해 주시고 아침식사를 제공해주신 박현정님nbsp아침 식사를 마치고 짐을 챙겨 로비로 내려가 공항까지 차량 봉사를 해주실 최영진, 박영신 부부를 만났습니다. 이 분들은 스님 공항 가시는 1시간을 배웅하기 위해 시코쿠라는 섬에서 4시간을 차를 타고 오셨다고 하니 그 정성이 대단했습니다. 1년 전 쯤 남편 최영진씨가 유투브로 법문을 듣다가 먼저 깨장에 다녀오고 이어서 부인도 깨장에 다녀왔다고 하여 일행은 요즘 서울대 가기 보다 어렵다는 깨장에 부부가 모두 다녀온 것을 기쁜 마음으로 축하해 주었습니다.nbsp이렇게 해외를 다니면서 만나는 봉사자들을 보면 오직 유투브를 통해 스님의 법문을 접하면서도 깨달음을 얻어 삶이 나아지고 행복해져서 스님께 뭔가 은혜를 갚고 싶어 봉사를 자원하시는 분들이 많습니다. 회사에 휴가를 내고 차량 운전을 해주시고, 스님께서 기력을 되찾으시도록 맛있는 음식을 제공해 주시고 또 편안히 쉬실 수 있는 잠자리를 마련해 주시는 그 마음과 정성이 그대로 전해져 스님의 커다란 원력에 큰 힘이 보태지는 것 같습니다.nbsp어느덧 눈앞에 멀리 오사카 간사이 공항이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간사이 공항은 바다에 인공섬을 만들어 그 위에 공항을 만든 곳이라 마치 바다 위에 공항이 떠 있는 듯 하다고 합니다.nbsp여유 있게 도착하여 차량봉사를 해주신 최영진 박영신 부부에게 감사의 뜻으로 책을 선물하고 함께 사진을 찍었습니다.nbspnbsp▲nbsp공항까지 차량 운전 봉사를 해주신 최영진, 박영신 부부와 자녀들nbsp또한 이번 일본 전체 5강을 총괄하여 동분서주했던 이봉식님에게도 정토회 인연이 없는 곳에서 혼자 수고 많았다며 책 선물과 함께 사진을 찍으면서 다시 한번 노고를 치하해 주셨습니다.nbsp▲nbsp일본에서의 전체 5강을 총괄해 주신 이봉식님nbsp탑승을 대기하면서 스님께서는 한국에서 온 메일을 체크하시고 업무 연락을 하시다가 11시 40분 출발 비행기에 오르셨습니다. 이번 일본행 역시 저가 항공을 이용했는데 좌석이 반 정도 차지 않을까 했는데 거의 다 차는 걸 보시고는 저가 항공이 나오는 바람에 사람들의 해외여행을 더 부추기는 것 같다고 하셨습니다.nbspnbsp약 2시간의 비행을 마치고 인천 국제 공항에 막 착륙할 무렵 다시한번 세계 100강이 끝났다는 것이 실감나서 스님께서는 지금 어떤 느낌이실지 궁금하여 100강을 끝내신 소감이 어떤지 여쭤봤습니다. 처음에 막막했지만 어느새 다 끝나서 시원섭섭하단 말씀을 하시지 않을까 했지만 전혀 뜻밖의 소감을 말씀해 주셨습니다.nbspnbsp“뭐 매일 매일 똑같지. ‘100강’이다 이름 짓지 않았을 뿐 하루 하루 살아가는 것은 같아.”nbspnbsp하기야 세계 100강을 한다며 오늘이 100번째다, 101번째다 세면서 의미를 부여해서 매우 특별한 나날인 것처럼 느껴지지만 스님의 하루는 그 어느 때와 마찬가지로 스님의 도움이 필요한 사람을 만나고 법문해 주시고 또 도움을 요청하는 곳으로 떠나시는 순간의 연속인 것 같습니다. 이제 다 끝났다며 집에 가서 푹 쉴 생각만 하다가 스님의 말씀을 들으니 부끄러운 마음이 들었습니다.nbspnbsp▲ 세계 115회 강연을 모두 마치고 한국으로 돌아오는 비행기 안.nbspnbspnbsp연세가 많으심에도 꿋꿋하게 스님 시봉을 다니시는 최말순 보살님께도 소감을 여쭤보니 역시 의외의 답을 들을 수 있었습니다. 중간에 힘든 적도 있었지만 지금 다시 100강을 한다고 해도 하실 수 있을 거 같다고. 역시 그 스님에 그 시봉자인 것 같습니다.nbsp▲ 115일 동안 스님과 동행하며 스님을 시봉해 주신 최말순 보살님nbspnbsp스님께서는 이번 일본 일정 중에 편두통이 시작되는 증세가 있어 많이 조심하며 약으로 참고 다니셨는데 오늘 아침부터 미열이 있고 얼굴이 부으신 게 편찮아 보였습니다. 하지만 놀라운 것은 그런 몸 상태여도 공항에서 이동하실 때는 마치 아이들처럼 민첩하게 날라 다니십니다. 그래서 허둥지둥 따라 걷다가 스님을 한번 놓치면 저만치 앞에서 휙 휙 동에 번쩍, 서에 번쩍하시는 모습을 볼 수 있는데 편찮으신 몸 어디서 그런 힘이 나오는지 불가사의 중 하나인 것 같습니다. 또 일행 중에 남자가 없다 보니 무거운 짐을 내릴 때는 항상 손대지 못하게 하시고는 손수 무거운 짐을 싣고 내려주시는 모습에 죄송하기도 하고 안쓰럽기도 한 마음이 듭니다.nbsp nbsp nbspnbsp짐을 찾아 출국장을 나서니 정토회 행정처에서 김은숙 행정처장님과 조성숙 기획홍보국장님, 장미희 지원부장님이 스님을 환영하기 위해 나와 있었습니다. 스님을 보고 반갑게 인사하고 꽃다발을 안겨드리고 “별에서 온 스님, 환영합니다”는 문구가 적힌 푯말을 들고 함께 기념사진을 찍었습니다.nbspnbsp▲ 세계 115회 강연을 마친 스님을 환영하기 위해 공항으로 마중을 나온 정토회 행정처 분들.nbspnbsp공항에서 정토회관에 도착하니 정토회 서울공동체 대중들이 모두 모여 세계 115회 강연이라는 먼 길을 다녀오신 스님을 열렬히 환영해 주었습니다. 법당 양쪽으로 길게 서서 스님께서 입장하자 우레와 같은 박수갈채를 보내주었고, 법당에 들어오신 스님께서는 공항에서 받은 꽃다발을 불단에 올리고 부처님 전에 정성껏 삼배를 하셨습니다.nbspnbspnbspnbsp대중들로부터 삼배로 인사를 받으시고, 세계 100회 강연을 마친 소감을 간단히 나눠주셨습니다.nbspnbsp“여러분들의 성원과 격려로 세계 115회 강연을 모두 마치고 오늘 잘 귀국을 했습니다. 그동안 성원해 주신 여러분들께 진심으로 감사말씀을 드립니다.nbspnbsp처음에는 몸도 아프고 조금 어려웠어요. 그래도 하루 하루 지나오면서 무사히 마치게 되었습니다. 해외를 다니면서 우리 교민들이 그 물설고 낯설은 곳에서 개척하고 생활하는 것을 보니 정말 눈물겨웠습니다. 그리고 다들 잘들 살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마음 속에 외로움, 허전함 이런 것들이 있어서 그런 것들을 함께 나누고 격려도 하고 위로도 했습니다. 또 그들이 갖고 있는 재능들이 우리의 국가 발전과 국민 행복을 위해 잘 쓰일 수 있는 기회가 주어졌으면 좋겠다 하는 바램도 들었습니다.nbspnbspnbsp교민들을 보면서 우리 대한민국이 발전해가면서 그들이 한국 출신이라는 것을 자랑스럽게 생각하는 모습은 참 보기 좋았습니다. 그러나 올해 들어와서 세월호 사고를 잘 수습하지 못한 것이라든지, 또 남북 간의 갈등이라든지, 이런 것들은 우리 교민들에게 큰 아픔을 주고 있었습니다. 그걸 보면서 국내에 살고 있는 우리들이 좀 잘 살아야 되겠다, 좋은 사회를 만들어야 되겠다, 그래서 그들이 한국 출신이라는 것이 자랑스럽도록 만들어야 되겠다 싶었습니다. 한반도가 평화스럽고 통일로 나아간다면 해외에 계신 800만 우리 교민들이 얼마나 자랑스럽고 기쁨으로 살겠습니까?nbspnbsp그래서 성원해 주신 여러분들께 우리가 살고 있는 이 나라를 좋은 사회로 함께 만들어가자는 부탁을 드리고 싶습니다. 여러분들의 성원 덕분에 세계 100회 강연을 모두 잘 마쳤습니다. 감사합니다.”nbspnbsp▲nbsp세계 100회 강연을 마치고 법륜 스님의 영상 메시지그리고 115일 동안의 강행군을 모두 무사히 마친 스님께 대중들은 다시한번 뜨거운 박수갈채를 보내주었습니다. 그리고 세계 115회 강연 회향을 축하하는 케익 컷팅식 시간을 가졌습니다.nbspnbspnbsp이어서 오랜만에 공동체 대중들 전체와 함께 기념사진을 찍었습니다.nbspnbspnbsp서울정토회 대중부에서도 스님께서 귀국하셨다는 소식을 듣고 사무실에서 법당으로 내려와 스님을 뜨겁게 환영해 주었습니다.nbspnbspnbsp이렇게 세계 100회 강연이 모두 끝났지만 스님께서는 한국에 도착하자마자 계속해서 바쁜 일정을 이어가셨습니다. 오늘 저녁부터 경기도 가평 취옹예술관에서 평화재단 평화연구원 워크숍이 있습니다. 가평으로 가기 전에 스님께서는 건강이 좋지 않으셔서 이비인후과에 잠시 들르셨습니다.nbspnbsp오후 6시 무렵, 경기도 가평 취옹예술관에 도착하자 먼저 오신 워크숍 참석자 분들이 저녁 식사를 하고 있었습니다. 반갑게 인사를 나누고 함께 저녁식사를 하신 후, 저녁7시부터 평화연구원 워크숍이 시작되었습니다.nbspnbsp“통일의 조건, 한국 사회 변화가 우선이다”는 주제로 열린 제19회 남북화해와 평화 네트워크 워크숍은 올 한해동안 평화재단과 함께 교류하고 발표도 해주셨던 20여명의 전문가 분들이 참석해 1박2일 열띤 토론도 하고 친목도 다지는 시간이 되었습니다.nbspnbsp▲ 평화재단 평화연구원nbsp제19회 남북화해와 평화 네트워크 워크숍nbsp먼저 스님께서 “세계 정세 변화 속, 한국 사회의 현재와 미래를 묻다”는 주제로 여는 말씀을 해주셨는데, 이번에 세계 115회 강연을 다녀시면서 느낀 소회와 변화되는 세계의 모습에 대해 이야기를 해주셨습니다. 이어서 윤여준 전 장관님이 “2014 한국 사회, 지금 어디에 서 있는가?”를 주제로 기조 발제를 해주셨습니다.nbspnbsp곧이어 3명의 전문가 분들의 주제 발표가 있었습니다. 홍기빈 글로벌경제연구소 소장님이 “자본주의의 구조와 대안적인 ‘사회경제모델’의 원리”에 대해, 이김현숙 여성평화포럼 대표님이 “한국 사회의 평화를 위협하는 것들”에 대해, 조한범 통일연구원 선임연구위원님이 “분단체제 발전의 한계와 통일시대 신 국가발전의 모색”을 주제로 각각 발표해 주셨습니다. 전문가들은 모두들 “지금 한국 사회는 벼랑 끝에 있다. 이것을 견인할 정치 리더십이 부재하다”는 데에 인식을 같이 하면서, 각자가 바라본 현실 진단들을 다양하게 펼쳐 주셨습니다.nbspnbspnbsp저녁 9시부터는 참석자 모두가 함께 참여하는 전체 토론이 진행되었습니다. “한국 사회의 통일준비, 무엇부터 시작할 것인가?”에 대해 많은 의견들이 나와 풍성한 시간이 되었습니다. 아쉽게도 열띤 토론이 오가는 가운데 세미나실에 난방시설이 갖춰져 있지 않아서 전기 난로와 히터기 등을 여러대를 동원했음에도 한기가 가시지 않아, 예정된 시간까지 토론을 하지 못하고 조금 일찍 토론을 마쳐야 했습니다. 행사를 준비한 스텝들이 전문가분들게 거듭 사과 말씀을 드렸지만, 모두들 “졸리지 않아서 참 좋네”, “좋은 추억을 남기고 간다”고 긍정적으로 받아들이시면서 가볍게 웃었습니다.nbspnbsp마지막으로 스님께서는 오늘 토론에서 나온 한국사회의 다양한 문제점들에 대해 모두 경청하신 후 스님의 의견을 나누어 주셨습니다.nbspnbsp“문제는 어떻게 해결해 나갈 것인가 입니다. 해결해 나갈 때 어디서부터 시작해야 해결이 가능한가 하는 문제입니다. 국제 정세의 변화를 보면, 결국은 전통적인 한미 관계에서 한중관계, 한러관계, 또 변화되는 한일관계를 도대체 어떻게 풀어야 국가 이익에 도움이 되고 한반도의 평화에 도움이 되겠느냐 하는 문제인 것 같아요.nbspnbsp두번째는 북한이 좋다 나쁘다 하는 얘기는 이제 아무리 얘기해봐야 소용없고요. 저 북한을 어떻게 관리하고 협상하고 포용해야 한반도의 평화를 안정시키고 통일을 달성할 수 있느냐 하는 문제입니다.nbspnbsp세번째는 국내의 성장 동력이 소진된 현재의 상황에서, 성장이 문제 해결의 키는 아니지만 아직 조금 더 성장해야 한다는 것이 국민의 여망이기 때문에, 성장을 조금 더 지속적으로 할 수 있고 동시에 국민을 행복하게 하기 위해서는 정치 민주화를 더 심화시키고 경제적 양극화를 해소해서 경제 민주화를 진척시킬 수 있는 방안들을 우리가 찾아나가야 합니다. 거기에 맞게끔 헌법 개정이라든지 국가 운영시스템도 바꿔야 합니다.nbspnbspnbsp이런 것들을 다 해낼 수 있는 핵심은, 외교도 정부가 해야 하는 것이고, 남북 관계도 결국 정부가 풀어야 하는 것이고, 경제 민주화와 정치 민주화도 결국 정부의 정책으로 해결해야 하는데, 그런 정부를 만들어 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런 정부를 국민이 선택해야 하는데, 여기에는 국민이 그런 정부를 선택하게 하는 국민의 각성이 필요합니다. 결국 통일 문제는 국민이 통일이 중요하다고 각성을 하는 것이 중요합니다.nbspnbsp통일 정책이 어떠냐에 따라서 국민의 투표가 달라지고 투표에서 통일 문제가 차지하는 영향력이 높다고 한다면 당연히 모든 정당은 국민의 지지를 받기 위해서 경쟁적으로 통일 정책을 낼 것이고, 또 통일 정책이 제대로 안 이루어지면 정부가 구성된 후에도 통일 정책을 지지를 받는 쪽으로 바꿔나갈 것입니다. 이명박 정부 때는 통일정책이 선거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1였다고 하고, 박근혜 정부 때는 조금 높아져서 10 정도는 되었다고 하는데, 그 정도 갖고는 정부가 통일 정책 같은 것은 안중에도 없을 것 아닌가 싶어요. 결국은 경제정책 갖고 국민이 다 선택을 한다고 하니까 주로 경제 성장과 복지 이 두 가지만 잡고 얘기를 하게 되는 것 같아요.nbspnbsp그런 면에서 우리에게 주어진 두 가지 과제는 첫째, 외교, 통일, 국내 이 세가지 문제를 풀어낼 정치 세력이 형성될 수 있도록 어떻게 할 것인가, 둘째, 그런 정치 세력이 국민의 선택과 지지를 받으려면 이것을 각성시킬 수 있는 어떤 국민운동이 이뤄져야 하겠느냐입니다. 이런 구체적인 행동이 나와야 변화를 가져올 수 있지 그렇지 않으면 굉장히 어려운 문제이지 않겠나 싶어요. 민주주의 사회에서 그런 변화를 가져올 수 있는 것은 선거 밖에 없죠. 결국은 선거를 통해서 이런 국가의 변화를 가져올 수 밖에 없다 싶어요. 이를 위한 국민운동은 과연 어떤 것이어야 하는가 하는 관점에서 좀 더 구체적으로 얘기해 볼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nbsp스님의 의견에 전문가들도 모두 공감을 표시했습니다. 스님께서 제안해 주신 과제에 대해서는 내일 오전에 열릴 두 번째 토론시간에 더 구체적인 대화가 이뤄질 것 같습니다. 내일 토론에 대한 기대감을 안고 오늘 토론을 모두 마쳤습니다. 그리고 연말에 이렇게 뜻깊은 자리에 함께 모인 것을 기념해서 다함께 기념사진을 찍었습니다.nbspnbsp▲ 평화재단 평화연구원 워크숍에 참가한 전문가 분들과 함께nbspnbsp20여명의 전문가 분들은 스님과 함께 추운 세미나실을 뒤로하고 따뜻한 방으로 이동하여 오순도순 모여 한해를 마무리하는 조촐한 뒷모임 시간을 가졌습니다. 뒷모임 시간에서는 토론장에서 나오지 않은 더 진솔한 이야기가 오고 가는 소중한 시간이 되었습니다. 정겨운 이야기가 오가는 속에 밤은 점점 깊어갔습니다.nbspnbsp스님께서는 원고 교정을 보셔야 하는 일이 있으셔서, 뒷모임 중간에 나오셔서 밤늦게까지 업무를 보신 후 오늘 일정을 모두 마치셨습니다.nbspnbsp내일은 평화재단 워크숍 2일째 프로그램을 함께 하신 후 오후에는 서울로 이동하셔서 통일의병 임명장 수여식에 참석하실 예정입니다. 내일 뵙겠습니다.nbsp nbsp

2014.12.21. 52,176 읽음 댓글 28개

2014.12.18 세계 100회 강연(115) 일본 오사카 大阪市

nbspnbsp안녕하세요. 방금 전 교토 강연에 이어 대망의 세계 100회 강연의 마지막 강연인 오사카 강연 소식을 전해 드리겠습니다.nbsp강연이 끝나자마자 쏜살같이 준비하여 출발해서인지 아주 여유 있게 오사카에 도착하는 듯 했지만 고속도로에서 빠져 나오는데 시간이 걸려 강연 1시간 전에 도착할 수 있었습니다. 눈이 많이 와서 걱정했는데 낮 동안 다 녹아서 다행히 오사카 가는 길에는 지장이 전혀 없었습니다. 우리가 이미 지나온 도쿄 쪽은 폭설로 전차나 비행기가 다 운행을 멈췄다는 소식을 들으니 스님이 100강 하시는 길에는 정말 날씨가 많은 도움을 주는 것 같습니다. 필리핀 강연 일정 중에도 하이옌보다 더 큰 태풍이 올 거라 걱정했는데도 결국 세력이 급속도로 약해져서 스님 가시는 길은 태풍도 피해 간다고 다들 신기해했는데 여기 일본에서는 폭설과 추위가 스님을 피해 가는 것 같습니다.nbspnbsp▲ 일본 오사카nbsp오늘 강연은 오사카 시립아베노 구민센타에서 진행되었는데 일본 강연 중 가장 넓고 좋은 장소였고 교토 강연을 잘 치러낸 봉사자들도 기차를 타고 와서 합류하여 오사카 봉사자들과 함께 강연을 준비했습니다. 기대보다는 다소 적은 인원인 100여명이 참여한 가운데 스님께서는 오늘까지 해외 115개 도시를 돌며, 115강을 해왔는데 바로 이번이 115번째 강연이라며 환하게 웃으시면서 역사적인 마지막 강연을 시작하셨습니다.nbspnbsp“총 115일 동안 115회 강연을 하루도 빠지지 않고 매일 하루 1개 도시에서 강연을 했습니다. 비행기 일정 때문에 하루가 빠지면 다음에 하루에 2번 강연 하는 방식으로 오늘까지 왔습니다. 오늘 오사카 강연이 마지막 강연입니다. nbspnbspnbsp4개월 동안 한 집에서 이틀 밤도 못 자고 매일 옮겨 다녔기 때문에 아침에 눈을 뜨면 여기가 어느 나라인지 구분이 안될 때가 많아요. 정신을 차려야 ‘여기가 교토이구나’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115개 도시를 다녀서 여기까지 왔습니다. 이렇게 무사히 전세계에 살고 있는 교민들을 만나서 애환을 듣고 함께 울고 함께 웃고 한 것이 잘 마무리 되어서 오늘은 기쁜 날이예요.nbspnbsp115강 중에 8번만 통역을 해서 미국 사람들을 대상으로 대화를 해 보았습니다. 프린스턴대학, 미시간주립대학, 조지워싱턴대학, 텍사스AampM, UCLA, 구글 본사에서 강연을 했고요. 조금 전에는 일본인들을 대상으로 교토에서 통역으로 강연을 했습니다. 아무튼 이렇게 해서 우리 교민들이 좀 산다 하는 곳은 다 방문해서 대화를 해보았습니다.nbspnbsp해보니까 이런 특징이 있었습니다. 제가 직접 보기 전에는 막연히 부자 나라에 사는 우리 교민들은 편안할 것이고, 가난한 나라에 사는 우리 교민들은 이민 생활이 힘들거다 이렇게 생각했거든요. 그런데 현장에 가보니까 정반대 현상이 나타났어요. 가난한 나라인 동남아나 중남미에 사는 우리 교민들은 그 나라에서는 잘 사는 축에 들어가요. 제가 대부분 가정집에서 자고 호텔에 자게 되더라도 70불 이하로 해야 한다고 원칙을 정해 주었는데, 동남아에서는 70불 짜리 호텔은 완전히 고급호텔이었어요. 그런데 독일이나 스위스, 일본, 이런 나라에 와보니까 잘 사는 나라에 우리 교민들은 그 나라에서 어렵게 사는 축에 들어 기를 못펴고 사는 것 같았어요. 훨씬 살기가 좋은 줄 알았더니 마음 고생이 더 많은 것 같았어요. 독일에서도 방 두칸짜리에 움추려서 자고, 노르웨이는 물가가 너무 비싸서 물 한병도 아까워서 못 사먹고 굶고 다녔고요. GDP가 10만불이 된다고 해서 좋은 줄 알았는데 좋은 게 아니였어요. 그러니 물가와 비교해서 생활이 결정되는 것이지, 명목상 GDP 만으로는 생활 정도를 알기 어렵겠어요. 거기서 벌어서 다른 나라에 가서 쓰면 아주 좋지만, 거기서 벌어서 거기서 쓰면 별로 잘사는 게 아니였어요. 백문이 불여일견이라고 직접 다녀보고 견학을 해야 진실을 알 수 있지 막연히 생각하는 것 하고는 다른 점이 많았어요.nbspnbsp유럽에서 사시는 교민들은 주로 외국인들과 결혼해서 사시는 분들이 많다 보니까 정체성 문제가 고민이 많았어요. 스위스에서 30년 살았는데도 스위스 사람이 아니고, 늙어서 한국에 가봐도 한국 사람도 아니고, 영원한 이방인 같은데 어떻게 해야 하는지 묻는 분들이 있으셨고, 또 아이들을 도대체 스위스 사람으로 키워야 하는지 한국 말을 가르쳐야 하는지 이런 정체성 문제에 대한 고민이 많더라구요. 그런데 미국은 전혀 달라요. 미국은 외국에 와서 살 뿐이지 대부분 한국 사람끼리 결혼한 부부가 한국 식으로 먹고, 사는 장소만 미국이지 완전히 한국 식으로 살기 때문에 이민 생활의 갈등이 덜한 편이였어요.nbspnbsp오늘 대화는 우리가 인생을 살면서 겪는 이런 저런 고뇌에 대해서, 정말 우리는 이런 문제에 대해서 고뇌할 수 밖에 없는지, 그리고 인생에 이런 저런 의문이 있다면 한번 드러내놓고 대화해 보자는 것입니다. 어떤 주제의 제한 없이 편안하게 친구가 친구에게 이야기하듯이 서로 대화를 해봅시다. 정답을 찾는 것이 아니예요. 인생에는 정답이 없어요. 보다 나은 길을 한번 찾아가보는 거예요. 자, 그럼 시작해 보시죠.”nbsp그러면서 질문을 받기 시작했습니다. 총 7명이 스님께 질문을 했습니다.nbspnbsp“저는 일본으로 시집온지 10년정도 됐거든요. 일본 남편과 잘 살고 있고 지금까지 아르바이트를 쭉 해왔는데 이제는 조그만 가게를 해보고 싶어요. 잘 될까요?”nbsp“지금까지는 제가 주로 연구직을 많이 하다보니까 혼자서 일하는 게 많았는데 2,3년 전부터는 제가 리드를 해야 하는 입장에 올라가고 팀원이 4명 정도 되었어요. 어떻게 하면 팀원들과 소통을 잘 할 수 있을까요?”nbsp“저의 고민 대신에 어머니 고민을 묻고 싶은데요. 저희 어머니가 같이 일하는 동료 분이 너무 밉다고 하세요. 그 분이 일처리를 제대로 안 해주시면 어머니한테 피해가 와서 그렇답니다. 밉기는 한데 일을 같이 해야 된데요. 어머니가 어떤 마음가짐을 가져야 편할 수 있을까요?”nbspnbsp“한국에서 1년 반 정도 결혼해서 살다가 일본에 온 지 3년 됐습니다. 아들 하나 딸 하나가 있습니다. 요즘 점점 커가면서 느끼는 것은 한일 역사에 대해 어떻게 가르쳐야 하는지. 아니면 일본 공교육에 맡겨둬야 하는지 고민입니다. 그리고 둘째 아들이 군대를 가야되는데 저도 군대를 만기전역 했지만 솔직히 군대를 보내고 싶지 않습니다. 그래서 아들이 일본 국적을 선택했으면 하는 마음도 있지만 그 의견을 아이에게 투영해도 될지 고민이 됩니다.”nbspnbsp“멘탈 카운셀링이라는 직업을 하고 있어요. 우울증을 전문으로 하고 있는데, 스님은께서는 108배를 하라고 하셨는데, 일본 사회에선 종교를 멀리 하는 경향이 있거든요. 저희는 수면요법 같은 걸 쓰는데 그럴 땐 심리 묘사나 카운셀러가 필요해요. 그런데 108배는 스스로 해야 하니까 면담이 끝나면 원래대로 돌아갈 가능성이 있는 것 같아요. 조언이 있으면 듣고 싶습니다.”nbspnbsp“저는 108배에 대해서 궁금한 것이 많았거든요. 예전에는 교회에 다녔거든요. 저는 교회를 다니지 않게 되고 나서 1년 후에 즉문즉설 영상을 봤는데요, 제가 불자도 아니고 하느님을 섬기는 것도 아닌데 아무데나 아무 것을 향해서 108배를 해도 되는지요?”nbsp이렇게 다양한 질문에 대해 스님께서는 정성껏 지혜로운 말씀을 들려주셨습니다. 오늘은 그 중에서 통일은 왜 해야 하는지 묻는 질문과 스님의 답변을 소개합니다. 마지막 115번째 강연의 대미를 장식하는 스님의 즉문즉설은 한반도의 통일 이야기입니다.nbspnbspnbsp“15년 전만 해도 이산가족 상봉이다 해서 통일에 대한 염원이 굉장히 강했었는데요. 한 2,3년 전부터 통일이 그렇게 좋은 것이 아니다는 분위기인 것 같아요. 왜냐하면 통일비용이 들고 정치적 이념은 어떻게 할 것이냐 이런 말들이 많이 나옵니다. 일본에 와서 보니까 저희들 민단쪽 친구들은 통일에 대한 염원이 별로 없고, 조총련계 친구들은 통일에 대한 염원이 굉장히 강한 것 같습니다. 스님께서도 통일에 대해서 굉장히 힘을 쓰시고 계신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통일은 왜 해야 되는지요?”nbspnbsp“그런 얘기를 어떻게 짧은 시간에 다해요. . 질문이 너무 거창해요. 통일은 본인이 통일을 하는 것이 좋겠다 싶으면 통일을 지지하면 되고요. 통일하는 것이 별로 안좋다 싶으면 지지 안해도 돼요. 같은 민족이니까 꼭 통일을 해야 한다 이런 법칙은 없어요.nbspnbspnbsp다만 인류 역사의 전 과정을 살펴보면, 현재 전세계에 한 200개가 넘는 나라가 있어요. 그런데 나라를 분류해 보면 크게 두 종류가 있어요. 하나의 민족이 하나의 국가를 형성하는 게 있고, 여러 개의 민족이 하나의 국가를 이루는 경우가 있어요. 전자를 단일민족국가, 후자를 다민족국가라고 해요. 한국 같으면 단일민족국가이고, 중국 같으면 다민족국가예요.nbspnbsp다민족 국가를 보면 주류 민족이 있어요. 50 이상을 차지하는 주류 민족이 있고, 그 다음에 소수 민족이 있어요. 그런데 주로 주류 민족은 당연히 우리가 하나의 국가를 만들어야 한다고 생각을 하는데 비해 소수 민족들은 가능하면 독립하고 싶어해요. 그런데 주류 민족의 힘에 의해서 거의 독립을 못합니다. 중국 같으면 티벳, 위구르 지역, 북쪽에 있는 몽골 이런 지역은 다 독립을 하고 싶어해요. 그러나 주류 민족인 한족의 힘에 의해서 꼼짝을 못 해요. 중국 같으면 한족이 94 정도 돼요. 그러니까 소수 민족은 그 민족의 수는 많지만 인구수는 한족의 인구에 비해서 아주 적기 때문에 국민 투표를 해도 이길 수가 없어요. 요즘은 특히 내몽고 자치구나 위구르 자치구나, nbsp티벳 자치구 안에 한족이 이사를 많이 가서 그 지역에서 주민투표를 해도 이길 수가 없어요. 왜냐하면 한족이 더 다수이기 때문에 그래요. 이런 형태를 갖고 있기 때문에 독립을 원하지만 독립이 되기가 어려워요.nbsp우리는 영국이라고 해서 하나의 나라인 것으로 알지만, 자세히 보면 잉글랜드 이외에 스코틀랜드도 있어요. 이번에 스코틀랜드가 독립하겠다고 투표하는 것 봤지요. 억압을 안하는 나라에도 다 자기 민족은 독립할려고 그래요. 여러분들 스페인 하면 하나의 나라인 줄로 늘 생각하잖아요. 그런데 거기도 북쪽의 바스크족도 독립할려고 그러고, 바르셀로나 이 지역도 이번에 독립할려고 했잖아요. 체코슬로바키아도 체코와 슬로바키아로 따로 독립을 했잖아요. 유고슬라비아는 여섯개로 독립했잖아요. 다 나눠서 독립을 했어요. 그러니까 이 세계 전체로 보면 단일민족국가와 다민족국가가 있는데, 다민족국가 안에 있는 소수민족들은 대부분 독립을 하고 싶어해요. 러시아에서도 바스크 민족주의자들은 독립 할려는데 독립이 안되니까 테러하고 그랬잖아요. 그러니까 독립이 안되어서 그렇지 다들 독립하고 싶어해요.nbsp이런 성질을 보면 같은 민족은 하나의 독립국가를 구성하고 싶은게 우리나라 사람들만 그런 것이 아니라 세계 사람들의 특징인 것을 알 수 있잖아요. 그러나 다수와 소수의 크기가 너무 차이가 나면 어쨌튼 현실에서는 힘이니까 이것이 다 해결이 안돼요. 그러나 호주나 미국은 성격이 틀려요. 이런 국가는 이민을 와서 서로 다른 민족이 섞여 있었기 때문에 그곳에 뿌리를박고 살아온 여러 민족 사이의 갈등이 아니라 이민을 와서 섞인 것이기 때문에 이것은 다민족이라도 러시아나 중국하고는 성격이 달라요. 그래서 인류 전체 문화로 볼 때는 같은 민족이 하나의 국가를 형성하는 것이 자연스러움이예요. 한 민족이 두 개의 국가를 구성하는 경우는 그 수가 손에 꼽을 만큼 적어요. 그것도 역사적으로 한시적으로 있어요. 즉 내전이 일어나거나 외세의 개입에 의해서 분단되어 따로 정부를 구성하는 경우인데, 그런 것은 역사상에서 보면 그러다가 다시 통합이 돼요. 그래서 지금 베트남도 통합이 됐고, 독일도 통합이 됐고, 예맨도 통합이 되었어요. 심지어 중국도 조그만 타이완하고 양한관계라고 해서 통합해 나가잖아요.nbspnbsp이런 것을 볼 때 인류문화사적으로 보면 100 당연한 것은 아니지만 보편적으로 봤을 때는 하나의 민족은 하나의 국가로 구성하는데, 분단으로 2개의 국가를 형성하는 것은 내전이 일어나서 생긴 일시적 현상입니다. 아니면 외세가 개입해서 분단을 시켰을 때 생긴 일시적 현상으로 볼 수 있기 때문에 길게 보면 통일이 될 수 밖에 없다는 것입니다. 이런 것이 하나 있고요.nbspnbspnbsp두 번째는 남한은 분단된 상태로도 지난 50년간 발전을 해왔습니다. 이유는 경제가 제일 앞서고 규모가 제일 큰 미국과 동맹 관계에 있었기 때문에 이 선진 기술이 빨리 들어올 수 있었고, 그 배후를 통해서 세계로 진출할 수 있었습니다. 외교적으로 보면 무슨 하수인 같았지만, 어쨌든 발전할 수 있었던 거예요. 안보적으로 보면 세계 최강국과 동맹관계에 있다보니까 북한이 아무리 그래도 현실적으로는 침략할 수가 없는 거잖아요. 그런 면에서 남한의 발전이 가능했던 거예요. 물론 분단으로 고통도 많이 겪었지만 남한의 발전에는 그런 면이 있다는 거예요.nbspnbsp그런데 지금은 상황이 많이 바뀌어 버렸어요. 즉 미국이 계속 경제가 성장하는 최고의 강국이 아니고, 경제 규모는 아직 최고로 크기는 하지만 경제는 이미 지는 해로 전락했어요. 일본도 거기에 따라가서 지금 정체 국면에 가 있잖아요. 규모 면에서는 아직 막강하지만 이것은 이미 지는 해예요. 그런데 중국은 규모가 작아도 급격하게 뜨는 해에 속해요. 그러면 시간이 지나면 균형이 깨질 수 밖에 없잖아요. 이런 균형이 아직은 유지되지만 점점 이 균형이 깨어져 가는 세계사적인 변화 국면에 지금 우리가 놓여 있어요. 우리 역사 속에서 보면 원나라가 명나라로 교체되고, 명나라가 청나라로 교체되고, 청나라는 일본으로 교체되는 시기와 같은 이런 패권세력의 힘이 바뀌어가는 상황에 놓여 있어요. 그런데 이런 상황 속에서 우리의 내적으로는 성장 동력이 다 소진되었어요. 분단 국가인 남한으로서는 더이상 성장이 어렵고 마치 미국이 쇠퇴하듯이, 일본이 쇠퇴하듯이 한국도 따라서 쇠퇴해 갈 수 밖에 없는 상황에 지금 놓여 있어요. 그런데 우리가 여기서 안주한다면 괜찮은데 여기서 한번 더 성장에 도전하겠다고 하면 우리에게는 북한 개발이라고 하는 것이 있어요. 미국이 마치 서부개척, 중국이 지금 동북공정을 하는 것처럼 우리는 북한개발이라고 하는 새로운 하나의 투자처가 나오게 되고 소비시장이 넓어지고 자원이 확보되는 전혀 다른 희망이 있어요.nbsp100년 전에 일본은 이런 것을 침략을 통해서 했는데 지금 시대에는 침략을 할 수가 없잖아요. 그래서 지금 일본은 출구가 없는데 우리는 침략이 아니잖아요. 통일이라고 하는 문제는 실제로는 영토를 두배로 넓히고 인구를 50 늘리고 자원을 확보하는 길을 가능하게 하는 거예요. 현재 북한의 입장은 놓아두고서라도 우리 입장만 가지고 봐도, 통일이 아니고는 지금 이 정체 국면을 돌파할 다른 대안이 마땅이 없어요. 그러니 과거에 분단되었기 때문에 통일하자가 아니라 지금 우리가 어떤 국가적 비전을 가질려면 통일이라고 하는 길이 남아있다는 것인데 이것은 예전과는 전혀 다른 입장이예요. 그런데 북한의 입장에서는 남한에 흡수되는 그런 통일을 원하지 않잖아요. 힘으로 밀어붙이면 전쟁이 일어나게 되는데 그러면 이것은 통일보다도 더 못하게 돼요. 그러니 전쟁은 절대로 안 된다는 평화가 먼저 전제가 되고, 평화가 전제가 된 상태에서 남북이 경제통합을 하고 통일로 간다면 이것은 박근혜 대통령이 얘기한대로 대박이 될 가능성이 있어요.nbspnbspnbsp그리고 여러분들이 소비성 물질을 사는 것은 비용으로 계산을 하지만, 아이들 교육시키는 것을 비용으로 계산해요? 돈이 나가는 것은 맞는데 이것은 투자라고 그러잖아요. 여러분이 아이들 공부 안시키면 생활수준이 훨씬 더 높이 살 수 있잖아요. 그런데 무엇때문에 아이들 공부를 시켜요? 그런 것처럼 북한을 개발하는 것은 투자비용이지 소비비용이 아니예요. 철도를 건설해도 투자고, 도로를 닦아도 투자고, 건물을 지어도 투자고, 광산을 개발해도 투자고, 투자를 하는 데에는 돈이 들어요. 그런데 투자하는 돈은 모자라면 외국에 빌려서 사용해도 돼요. 왜냐하면 투자라고 하는 것은 나중에 이익이 남기 때문에 갚으면 되거든요. 그런데 먹고 써버리는 것은 없어지면 다른 대안이 없잖아요. 그래서 그것은 비용이 많이 들지만 투자 비용이기 때문에 걱정할 필요가 하나도 없어요. 또 투자는 자본이 있는 만큼만 투자를 하면 돼요.nbspnbsp그런데 한꺼번에 금방 통일을 해버리면 북한주민들이 같은 대한민국 국민이 되기 때문에 북한 주민들의 요구가 너무 커요. 현실 가능하지도 않지만 통일이 되었다고 해도 돈이 한꺼번에 너무 많이 요구되기 때문에 진짜 우리가 감당을 못해요. 그런데 현실적으로도 북한이 자기 체제를 유지할려고 하고, 또 실용적으로도 우리가 한꺼번에 돈을 그렇게 많이 투자할 수가 없기 ?문에 이 양쪽을 생각하면 점진적으로 투자를 확대하면 돼요. 북한주민이 대한민국 국민으로 내일이라도 되어버리면 일당으로 당장 오만원을 달라고 하겠지요. 현재 북한에서는 일당 천원만 지급해도 노동이 가능하단 이말이예요. 그러니까 북한은 굉장히 값싼 노동력을 지금 갖고 있잖아요. 중국도 지금은 이것 가지고는 안돼요. 중국도 이미 월 500불을 넘었고, 베트남도 지금 월 250불 정도 해요. 지금 필리핀도 월 300불이예요. 그런데 지금 북한은 월 120불, 150불 남짓 해요. 지금 우리나라의 중소기업들이 어려운데 전부 해외로 빠져나가야 되거든요. 중국에서도 ?겨나가면 사실은 북한 밖에 살데가 없어요. 그러니 이것이 북한을 이롭게 하는 것이 아니라 남한이 살 방법도 이것 밖에 없고 북한도 지금 빠른 시간 내에 경제개발을 할려면 남한하고 협력하는 것이 제일 빨라요. 언제 순서 밟아가지고 천천히 개방해서 베트남 전철을 밟고 중국 전철을 밟아서 지금 중국처럼 될려고 해도 30년이 걸리는데요. 30년 걸려서 지금 중국만큼 되면 이미 중국하고 남한이 더 앞서 가버리면 그게 무슨 의미가 있어요?nbspnbsp그러기 때문에 북한주민들이 굶어죽는 것도 통일이 되면 단박에 해결이 될 것이고, 인권도 개선될 수 있고, 개발도 해결될 수 있고요. 우리도 지금 노동력의 문제나 자원의 문제도 해결될 수 있기 때문에 이것은 굉장한 새로운 비젼이 된다 이렇게 볼 수가 있어요. 다만 적대감정 때문에 그 악감정을 못 벗어나고 있어요. 둘이 협력하면 이익인 것을 아는데 지금 한국정부는 ‘너가 무릎 꿇고 굴복해라, 빌어라’ 이렇게 하고 있어요. 그런데 저쪽은 nbsp‘나는 죽어도 무릎 꿇고 비는 것은 싫다. 건드리기만 해봐라. 나만 죽나? 너도 죽는다’ 이것이 서울 불바다론 아니예요? 그래서 건드리면 ‘너하고 나하고 확 껴안고 같이 죽어 버린다’ 이러는 겁니다.nbspnbsp일본은 우리를 36년간 식민지 지배를 하고 엄청난 고통을 주었고, 아직도 위안부 문제, 독도문제가 남아 있는데도 해방 후 20년 만에 한일수교를 했어요. 벌써 내년이 되면 수교 50주년이 돼요. 한일 간의 협력은 한국과 일본 양자에게 다 이득이었나요? 손해였나요?”nbsp“이득이었어요.”nbsp“이득이었지요. 중국은 한국전쟁 때 100만 대군을 보냈어요. 그런데도 중국이 한국전쟁에 참전했던 것을 반성하기는 커녕 “항미원조 전쟁은 정의로운 전쟁이었다” 라고까지 말하잖아요. 그런데도 한국사람은 아무도 말을 안하잖아요. 왜냐하면 지금 중국하고 외교를 맺은지 20년 만에 엄청난 교류가 벌어지고 있잖아요. 그런데 왜 꼭 제 동포인 북한하고는 옛날에 네가 뭐라 했으니 사과해라 이러고 있잖아요. 그리고 앞으로 통일이 되고 교류협력이 된다 하더라도, 중국하고도 역사문제, 일본하고도 독도문제로 말썽이 있듯이 북한하고도 말썽이 있겠지요. 그게 어떻게 없어지겠어요. 그럼 문제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교류협력과 통일로 가는 것이 엄청난 폭발적 이익을 가져오게 된다는 거예요. 그런데 왜 그런 길을 안가요? 바보 멍청이지요.nbspnbsp그러니 우리가 너무 감정에 치우쳐 있다는 거예요. 꼭 하나가 “너가 와서 무릎을 꿇어라. 너가 와서 잘못했다고 빌어라” 이렇게 하면 너와 대화를 하겠다 이렇게 하는 것은 대화를 하겠다는 것이 아니예요. 대화는 그렇게 하는 것이 아니예요. 대화는 일단 테이블에 조건없이 앉고, 앉은 다음에 “너 사과해라”고 말을 해야지, 사과를 먼저하면 앉겠다 하는 것은 대화를 안하겠다는 얘기예요. 그러고 항상 협상에는 유리한 쪽, 약간 힘이 있는 쪽에서 양보를 해야돼요. 힘있는 쪽이 양보하면 포용이라고 해요. 힘이 없는 쪽에서 양보를 하면 그것은 굴복, 비굴이라고 해요. 돈이 있는 사람이 검소하게 살면 청빈하다고 그러고, 돈이 없어서 가난하게 살면 극빈이라고 해요. nbspnbspnbsp힘 있는 사람이 고개를 숙이면 겸손이라고 하고, 힘이 없어서 고개를 숙이면 비굴이라고 그래요. 그러니 우리가 포용해야 하고, 우리가 겸손해야 하고, 우리가 열어줘야 돼요. 일본하고 한국하고 관계를 보면 일본이 버팅기는데 우리가 일본하자는 대로 하면 비굴하다고 그러잖아요. 우리부터도 안되잖아요. 그런데 이 문제를 풀려면 일본이 과거사를 진솔하게 반성해주고 좀 너그럽게 나오면 문제가 금방 풀리잖아요. 그런데 그런 것을 일본한테 요구하면서 또 우리는 북한한테 “너 무릎꿇어라” 이러니까 이것이 해결이 안되지요. 그러니까 동아시아 문제를 풀려면 일본이 주변국에 진솔하게 사과하고 경제적인 이익을 주면서 통합을 해나가야 해요. 독일이 모범이라고 볼 수 있잖아요. 그러면 한국도 북한을 포용해서 좀 이끌어 나가야 된다는 거예요. 힘으로 밀어부치면 저쪽에는 대량살상무기가 있잖아요. 이기지는 못해도 자폭해서 우리에게 상당한 피해는 줄 수 있어요.nbspnbsp이번에 후코시마에서 원자력 발전소가 하나 터지니 어때요? 피해가 엄청 나잖아요. 북한에서 우리나라에 있는 원자력 발전소 하나만 터트려버려도 쑥대밭이 돼요. 그런 위험을 안고 있으면서 전쟁할 수 있다는 것은 얼마나 어리석은 생각인지 몰라요. 그래서 협력하는 것이 상호에게 이익이예요. 북한 쪽에서 자발적으로 통일을 결정하면 중국이 그것을 막을 길이 없지만 힘으로 밀어붙이면 안그래요. 북한이 남쪽으로 힘으로 밀어붙였을 때 미군이 남한에 진주했지요. 우리가 힘으로 북한을 밀어붙이면 중국이 개입하겠지요. 그러면 우리가 중국한테 이기겠어요? 어떻게 터무니없는 그런 생각을 하고 있어요. 그런데 북한이 자발적으로 동독처럼 합하겠다고 결정을 하면 중국이 개입을 할 수가 없어요. 그렇게 될려면 북한의 민심을 얻어야 해요. 북한주민의 민심을 얻을려고하면 하층민은 인도적지원을 통해서 먹을 것을 충분히 지원해야 될 것이고, 중간층 사람은 중국보다 한국경제가 낫다고 하니 한국하고 통합하면 먹고살기가 훨씬 좋아진다고 하는 그런 유혹이 있어야 할 것 아니예요?nbspnbsp높은 사람들은 신분이 보장되어야 해요. 통일이 되면 다 처벌받는다고 하면 누가 통합을 할까요? 안하겠지요. 이런 것을 우리가 상식적으로 생각해야 될 거 아니예요? 꼭 저놈을 잡아가지고 벌을 주겠다고 하는데 총들고 있는 군인이 총을 내려놓겠냐는 거예요. 벌을 주더라도 우선은 다 대우해주겠다고 하고 나중에 벌을 주더라도 줘야지 벌써부터 잡아가지고 죽이겠다 그러는데 누가 항복을 하겠어요. 우리가 테러조직, 깡패조직도 회유를 할때 잡아서 처벌하겠다고 하면 끝까지 저항하잖아요. 이것이 인간세상이라는 거예요. 그런 면에서 우리가 조금 더 과거의 감정에 치우치지 말고 현실가능한 방법을 서로 찾아야 됩니다. 그러니 항상 자기 입장만 주장하지 말고 서로 다른 사람의 입장도 고려해서 해결점을 찾아야 됩니다.nbspnbsp한일 간에도 서로의 입장을 고려하면서 대화를 해야되겠지요. 그런데 이 한일간의 문제를 풀 때는 키가 오히려 일본에게 있고, 남북 간의 경우에는 오히려 키가 한국한테 있다고 말할 수 있어요. 인간세상이 그렇다는 거예요. 내가 힘이 없는 주제에 할 수 없이 굴복해서 타협을 하면 힘이 좀 생기면 도전을 해요. 그래서 평화가 곧 깨어져요. 그런데 힘 있는 쪽에서 포용을 해버리면 모든 문제가 없어져 버려요.nbspnbsp그러니까 신라하고 가야를 봐요. 신라가 힘이 있고 가야가 힘이 없는데 신라가 가야를 통합할 때 가야 왕족을 다 신라 왕족으로 받아들이고 가야의 불교를 신라가 수용해 주었잖아요. 그때 신라는 불교를 금지하고 있었고 가야는 불교국가였거든요. 그런데 그것을 다 받아주었어요. 우리가 공산주의를 인정해 주듯이요. 그런데 백제하고 고구려는 외세를 끌여들여서 힘으로 밀어부쳤찮아요. 그러니 200년 후에 신라의 힘이 약해지니까 후백제, 후고구려가 나오잖아요. 이게 세월이 흘러도 또 일어나는 문제예요. 그래서 힘있는 쪽에서 양보해서 포용을 하면 갈등이 해소되고, 힘없는 쪽에서 굴복해서 억지로 통합하면 시간이 지나면 분쟁은 또 발생하는 거예요.nbspnbsp한일관계도 우리가 힘이 없어서 억지로 굴복해서 하면 우리가 독립운동 하듯이 그렇게 또 생기는 거예요. 그러나 힘있는 쪽에서 양보해서 포용해버리면 이 문제는 끝이 나버린다는 거예요. 그런 면에서 남한이 북한에 포용정책을 써야 해요. 포용정책은 북한이 다 옳다는 그런 얘기가 아니라, nbsp북한이 문제가 있다는 것을 고려한 후에 정책을 써야 한다는 거예요. 이것을 몰아붙이면서 항복받겠다 이러면 안돼요. 이미 우리 역사에서 한번 써 봤잖아요. 북한이 힘이 세고 남한의 힘이 약할 때 한달만 밀어부치면 다 된다고 했을 때, 실제로 부산만 남기고 다 밀어부쳤잖아요. 그런데 뒤에 미국이 있어서 결국에는 안됐잖아요. 그러니까 이런 실패의 경험을 했는데 우리가 힘 좀 있다고 밀어부치면 중국에서 또 개입을 해가지고 엄청 난 피해만 오고 아무 문제도 해결이 안될 거잖아요. 북쪽이 썼든 남쪽이 썼든 한번 잘못한 정책을 두번 답습하는 것은 어리석다는 거예요. 그러니 남한이 북쪽 민심을 확보하는 정책, 즉 포용정책을 써야 한다는 거예요. 동독하고 서독이 통일을 할 때도 동독이 한 거예요. 서독은 통일을 할 기반을 조성했지, 통일을 결정한 것은 서독이 아니라 동독이 한 거예요. 서독이 했다고 하는 것은 잘못알고 있는 거예요. 서독은 준비도 안되었는데 동독 주민들이 투표를 해서 통일을 하자고 한 거예요. 왜 그랬나면 독립적으로 있는 것보다는 통일하는 것이 더 이익이니까 그런 거예요. 그래서 우리도 북한주민들이 통일하는 것이 우리에게 더 이익이다 라고 하는 생각을 갖게 할려면 우리가 좀 퍼줘야 할까요? 안줘야 할까요?”nbsp“퍼줘야겠지요.”nbsp“북한한테 퍼줘야 되고, 통일이 되면 더 많이 얻을 게 있다는 생각이 있어야 될 것 아니예요? 그런데 퍼주기를 못하게 하는데 무슨 통일이 되겠어요? 그 사람들이 왜 통일을 하겠다고 하겠어요? 이익이 되니까 통일을 하겠다는 거잖아요. 그러니까 지금도 먹여살려줄 것이고, 통일이 되면앞으로 더 많이 줄 것이다 하는 그런 믿음을 줘야 그런 결정을 할 것이 아니예요. 그러니까 통일이라는 더 큰 국가이익을 생각하면 이런 문제는 우리가 충분히 풀어나갈 수 있어요.”nbsp“알겠습니다.”nbsp통일의 필요성에 대한 명쾌한 답변에 청중들의 큰 박수가 쏟아졌습니다. 더불어서 만약 통일 한국을 이뤄낸다면 전세계 800만의 우리 교민들에게 얼마나 큰 자긍심과 기쁨을 가져다줄까 상상해 보게 됩니다.nbspnbspnbsp마지막으로 스님께서는 이번 세계 115회 강연을 마무리하면서 진리로 가는 길에 대해 다시 한번 강조해 주시면서 이렇게 닫는 말씀을 해주셨습니다. 스님께서 지난 115회의 강연을 통해 우리들에게 전하고자 하셨던 메시지의 요지가 담겨있는 것 같습니다. 마지막 스님의 메시지 함께 전합니다.nbspnbsp“진리라는 것은 어렵지 않아요. 재미도 있고 유익해야 합니다. 재미가 있다는 말은 지금 좋다는 말이고, 유익하다는 말은 나중에도 좋다는 말입니다. 지금을 위해서 나중을 희생해도 안되고 나중을 위해서 지금을 희생해도 안됩니다. 애들이 공부 안하고 노는 것은 지금을 위해서 나중을 희생하는 것이고, 애들이 이를 악 다물고 죽기 살기로 공부하는 것은 나중을 위해 지금을 희생하는 것입니다. 그러다가 내일 죽어버리면 얼마나 억울해요? 그러나 공부하는 것을 재미있어 하면 지금도 좋고 나중도 좋습니다. 그래서 과정을 중요시해야 합니다. 삶은 결과가 아니라 과정입니다. 지금도 좋고 나중도 좋아야 합니다.nbspnbsp나는 좋은데 너는 손해인 것은 상대가 가만히 있지 않습니다. 그래서 이 복은 오래 지속이 안돼요. 너한테는 좋은데 내가 희생한다고 하면 내가 오래 참지 못해요. 참는데는 한도가 있기 때문에 이것도 오래 지속이 안됩니다. 오래 지속이 되려면 나도 좋고 너도 좋아야 합니다. 일시적 기쁨은 쾌락이라고 하고, 지속적 기쁨을 행복이라고 해요. 그 기쁨이 지속적으로 유지될 때 행복이라고 말합니다. 그렇게 되려면 너도 좋고 나도 좋아야 합니다. 너도 이익이고 나도 이익이 되어야 합니다.nbspnbsp시간적으로는 지금도 좋고 나중도 좋고, 공간적으로는 나도 좋고 너도 좋아야 합니다. 이 네가지 조건이 갖춰줘야 진리라고 말할 수 있어요. 부처님과 예수님은 이러한 진리를 우리에게 설파해 주신 분들입니다. 그 가르침대로 살면 지금도 좋고 나중도 좋고 나도 좋고 너도 좋은 길을 갈 수 가 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이 “진리가 너희를 자유케 하리라” 이런 말씀을 하신 것입니다.nbspnbsp그런데 오늘날 종교는 이런 본질적인 것이 다 없어지고 그냥 복 빌고 돈 벌고 출세하는 이런 세속적인 이익을 추구하는 역할을 종교가 대신하고 있잖아요. 그러니 종교가 우리를 자유롭고 행복하게 못 만드는 것이예요. 일시적 쾌락을 위해 지금 종교가 있는 것이지 행복을 지속화시켜 주는 역할을 못하고 있습니다. 그런데서 여러분들이 종교에 대해 굉장히 부정적인 것에 대해서 저도 이해를 합니다. 우리는 이제 ‘무엇이 진실인가?’, ‘무엇이 지속가능한 행복을 가져오는가?’ 이런 것들에 대해서 여러분들이 이제는 탐구를 해야 합니다. 물질적인 복을 넘어서는 진정으로 자유롭고 행복해지는 길을 찾아가야 합니다.nbspnbspnbsp그런 길을 가는데에 붓다의 근본 가르침은 매우 유용합니다. 그리고 붓다의 근본 가르침은 종교를 초월해있지 종교 가운데 하나가 아닙니다. 여러분들이 이 마음의 원리를 알고 삶에 적용을 하면 누구나 다 행복해질 수가 있습니다. 지금 행복한 줄을 알아야지 노력해서 행복하겠다는 것은 지금 행복하지 않다는 말이예요. 지금 이대로 여러분들은 행복한 사람들이예요. 살아있는 것만으로도 행복합니다. 이걸 여러분들이 아셔야 해요. 일본 온다고 행복해지는 게 아니예요. 그러면 한국으로 돌아가면 해결이 될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지금 여기에서 행복해지는 길을 찾아야만이 세월이 가도 어디를 가도 자기 행복을 유지할 수가 있습니다. 여러분 행복하시기 바랍니다.”nbspnbsp이렇게 스님께서는 남은 힘을 모두 내어 2시간 동안 지혜의 법문을 해주셨습니다. 강연이 끝나자마자 그동안 각 도시에서 강연 담당을 맡았던 자원봉사자 분들이 보내온 115강 회향 축하 영상 편지를 스님과 함께 보았습니다. 스님께서도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뭔가 하시다가 영상편지임을 아시고는 흐뭇한 표정으로 영상을 보셨습니다. 축하 영상이 끝나고 힘겨운 115강의 여정을 꿋꿋하게 걸어오신 스님의 원만한 회향을 축하드리며, 한금화 동남아 지구장님이 꽃다발을 증정하였고 청중들은 모두 자리에서 일어나 기립 박수로 함께 기쁨을 나눴습니다.nbspnbsp이어서 청중들을 위한 책 사인회가 이어졌는데 스님의 사인을 받기 위해 사람들의 줄이 길게 늘어선 가운데 설레는 표정으로 스님께 사인을 받는 사람들과 열심히 사인하는 스님을 같은 화면에 넣어 사진을 찍으려는 사람들로 사인회 공간은 작은 축제와 같은 분위기였습니다.nbspnbspnbsp사인회를 마치고 나서 스님께서는 웃는 얼굴로 밝은 표정의 봉사자들과 함께 단체사진을 찍고 강연 준비에 수고한 봉사자들을 격려하시며 일일이 단주를 끼워주셨습니다.nbspnbspnbsp특히 이번 오사카 강연을 담당한 신은숙님은 강연장 여기 저기서 너무 바쁘게 움직이느라 함께 사진을 찍지도 못해 아쉬움을 남겼습니다.nbspnbsp▲ 교토에서 숙소를 nbsp제공해 주신 채영옥님nbspnbspnbsp마지막 강연이라 동남아 일정부터 함께 수고하신 한금화 동남아 지구장님과 이봉식 일본 강연 총괄에게도 수고했다고 격로하시며 함께 사진을 찍었습니다.nbsp▲nbsp일본 강연 전체를 총괄해 주신 이봉식님과 동아시아 전체 강연을 총괄해 주신 한금화 지구장님nbspnbsp필리핀, 대만, 홍콩, 일본 등 동아시아 강연 전체를 총괄한 한금화 지구장님은 세계 115강을 위해 수고하신 모든 분들께 감사드립니다. 강연을 준비하면서 힘든 부분도 있었지만 지역 담당자들과의 소중한 인연들을 만나서 함께한 좋은 시간들이었습니다. 끝난 지금 참 뿌듯하고 행복합니다. 이 강연을 시작해서 끝날 때까지 함께한 모든 인연들께 고마움과 감사의 마음을 전합니다 라고 소감을 이야기해 주었습니다.nbspnbsp스님께서는 먼저 호텔로 들어가시고 한금화 지구장님은 마음나누기를 하기 위해 남았다가 다른 지역과 달리 봉사자들이 강연 장소 청소까지 마무리해야 해서 함께 나누기도 하지 못하고 호텔로 돌아왔습니다. 호텔 로비에는 내일 아침 공항까지 차량 봉사를 해주실 최영진, 박영신 부부가 스님을 기다리고 있다가 인사를 나눈 뒤 호텔 근처의 숙소로 돌아갔습니다. 부부는 앞서 교토 강연에서 질문을 했던 11살 소년의 부모이기도 한데 이번 강연에 보탬이 되기를 희망했다가 스님이 공항 가시는 길을 배웅해 주는 역할을 맡았다고 합니다.nbsp어제 도쿄에서부터 나고야, 교토, 오사카까지 안전 운전을 해주신 김세환님이 도쿄로 돌아가기 위해 스님께 인사를 하였습니다. 스님께서는 너무 많이 수고했다며 고마워하셨고 대신 김세환님이 선물용으로 사온 책 여러권에 사인을 해주는 걸로 마음의 빚을 조금 갚고자 하셨습니다. 그리고 김세환님 본인에게도 감사의 뜻으로 사인한 책을 선물하시고 함께 사진을 찍었습니다. 이전부터 부인을 통해 스님에 대해 많이 들었지만 이틀 동안 스님을 모시면서 정말 많은 것을 공부하고 느꼈다면서 이제 스님 법문만 들으면 눈물이 나는 이유를 밤새 돌아가는 길에 생각해 봐야겠다며 680km 거리의 도쿄를 향해 출발했습니다.nbsp▲ 도쿄에서부터 나고야, 교토, 오사카까지 운전 봉사를 해주신 김세환님nbsp스님께서도 휴식을 취하시고 일행은 내일 한국으로 돌아가기 위해 짐을 정리하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특히 오늘 오사카 강연에는 통일교 신도이면서 15년 전에 일본인에게 시집 온 분이 지난 처음으로 스님의 세계 100회 강연 소식을 들은 9월18일부터 스님의 통일에 대한 발원과 열정에 감사하는 마음으로 매일 봉투에 날짜와 함께 “스님, 감사합니다”라고 적고 천엔씩 모아온 돈을 가져와 스님께 전달해 달라고 하기도 했습니다. 스님 일행은 정토회 회원인 우리보다 그 분이 더 낫다며 그 정성에 감탄했습니다.nbspnbsp오사카 강연은 상대적으로 홍보나 강연 준비가 조금 부족해 보인 면도 있었지만, 정토회 회원이 없는 황무지에서 씨앗 몇 개 뿌려지고 여리디 여린 새싹이 돋아난 것과 같이 정토회가 2차 만일결사를 하는 시기에는 더욱 크게 자라고 꽃 피울 것을 기대하게 됩니다.nbsp이렇게 밤이 깊어가면서 세계 115회 강연의 대단원의 막을 내렸습니다.nbspnbsp건강이 좋지 않으셨음에도 마지막까지 교민들을 위해 열정적으로 법문을 해주신 법륜스님께 머리 숙여 깊이 감사드립니다. 그리고 지금까지 세계 100회 강연 이야기에 많은 성원을 보내주신 모든 분들께도 깊이 감사드립니다.nbspnbsp내일은 오전 11시50분 비행기로 일본을 출발해 한국 인천 공항에 오후 2시에 도착할 예정입니다. 공항에 도착한 후 곧바로 평화재단 평화연구원에서 주최한 ‘남북화해와 평화네트워크 워크샵’가 열리는 경기도 가평으로 이동하실 예정입니다.nbspnbsp nbsp

2014.12.20. 42,249 읽음 댓글 49개

2014.12.18 세계 100회 강연(114) 일본 교토

nbsp안녕하세요. 오늘은 세계 100회 강연 중 마지막 114번째와 115번째 강연이 일본 교토와 오사카에서 열리는 날입니다. 지난 8월26일 프랑크푸르트에서 시작한 강연이 대단원의 막을 내리는 날이여서 그런지 조금 설레이기도 하고 감개가 무량한 느낌입니다.nbspnbsp오늘 2시에는 일본인을 위한 교토 강연이 있고, 저녁 6시 반에는 마지막 오사카 강연이 연달아 있어서 스님은 물론 일행들도 혹시나 마지막에 또 뭔가 복병이 나타날까봐 긴장하는 날이기도 했습니다. 오늘은 스님의 하루도 2편 작성하여 연이어 올리도록 하겠습니다. 먼저 교토에서 열린 114번째 강연 소식부터 전해드리겠습니다. nbspnbsp여느 때와 같이 8시에 숙소에서 식사를 했습니다. 식사하시면서 스님께서 아침에 눈을 뜨면 여기가 어딘지 감이 잡히는데 115일간 세계를 하루에 한 군데씩 옮겨다니다 보니 아침에 눈을 뜨면 여기가 어딘지를 모를 때가 있다고 하셔서 그동안의 노고를 또 한편 느낄 수 있었습니다. 오늘도 어제 나고야부터 운전 봉사를 해주시고 있는 김세환님의 차에 짐을 싣고 10시에 호텔을 나섰습니다. 오늘은 스님이 어느 정도 건강이 괜찮으신지 교토에서 유명한 절에 한번 가보자고 하셔서 한 두 군데 가보기로 했습니다. 거리에는 아직도 눈이 내리고 있었는데 점점 눈발이 굵어져서 함박눈이 내리자 고풍스러운 교토의 거리와 잘 어우러져 멋진 풍경을 이루었습니다.nbsp▲ 함박눈이 내리는 교토의 거리nbspnbspnbsp처음 도착한 곳은 산주산겐도라는 곳으로 정식명칭은 렌게오인, 1266년에 재건한 천태종 사찰인데 천수천안관음상이 모셔진 본당의 기둥 사이가 33칸이어서 붙여진 이름이라고 합니다.nbspnbsp▲nbsp산주산겐도nbspnbsp본당 안에는 천수천안관음상이 1,001구의 금불상이 있는데, 중앙에는 높이 3.4m 규모의 천수관음좌상을, 그 좌우로 관음상을 각각 500구씩 나누어 안치해 놓았습니다. 편백나무를 깎아서 제작하여 옻칠을 한 다음 그 위에 금동을 입힌 것이라는데 나무가 아니라 금동불상으로 착각할 정도로 정교하게 제작되어 있었습니다. 관음상 앞에는 금강역사, 제석천 등의 28신상이 도열되어 있었는데 스님 법문에 자주 등장하는 여러 신들의 모습을 볼 수 있어서 신기했습니다. 우리나라의 고려시대에 해당하는 거대한 고찰을 보자, 아직 이런 문화재가 보존되어 있다는 것이 부러웠고 우리나라의 수많은 유적과 유물들이 몽고항전, 임진왜란, 6.25전쟁을 겪으면서 소실된 것이 매우 안타까웠습니다. 처음엔 33개의 불상이 모셔진 곳이라 잘못 전해져서 갈까 말까 했던 곳인데 실제 가 보니 엄청난 규모로 천수천안상을 형상화한 것으로 기대 밖에 멋진 참배를 할 수 있었습니다.nbspnbsp시간의 깊이를 알려주는 짙은 나무색의 고색창연한 절 건물도 멋진데 거기다 함박눈까지 내려서 그야말로 한 폭의 그림처럼 멋진 광경이 연출되기도 했습니다.nbspnbspnbsp시간이 많지 않아 가까운 절 한군데만 더 가기로 하고 찾아 갔는데 교토는 정말 절 동네라 할 만틈 곳곳에 절이 있었습니다. 여기도 절, 저기도 절, 차창 밖으로 교토 거리를 구경하시며 스님도 매우 좋아하시면서 “중이라 그런지 절이 많으니까 좋다” 하셔서 일행이 모두 웃기도 했습니다.nbsp다음 찾아간 곳도 겉보기에 큰 절 건물이 보여 들어가 구경을 했는데 정토진종의 절이라고 쓰여 있었고 법당에 들어가보니 일반적인 절이라기보다는 금장 장식이 많고 불상은 아주 작은 것이 매우 색달라 보였습니다.nbspnbsp구경을 다 하고 나와서 서둘러 차를 타고 점심 식사를 할 곳으로 가다보니 조금 지나서 정작 엄청난 규모의 절이 나타났습니다. 조금 전에 본 곳이 우리가 가고자 했던 곳이 아니고 엉뚱한 곳을 서본원사로 잘못 알고 구경하고 온 걸 깨닫고 다시 한번 크게 웃었습니다. 나중에 알고 보니 교토는 정토진종이라는 종파의 총 본산이라고 합니다. 그래서인지 큰 규모의 절도 많이 보였는데 시간이 없어 더 둘러보지 못함이 아쉬웠습니다.nbsp오늘의 점심 메뉴는 소바로 정하고, 교토의 재래시장 어귀에 있는 까페로 향했습니다. 목요일에만 전문 요리사가 와서 직접 반죽을 하고 면을 뽑아서 메밀 소바를 서비스한다고 합니다.nbspnbspnbsp깔끔하게 차려진 식사를 하고 난 후 스님께서 “그동안 가짜에 길들어져 있어서 그런지 오리지날을 먹으니 오히려 맛이 별로 없다”고 하셔서 서로 웃었습니다.nbspnbspnbsp점심식사를 마치고 다소 여유 시간을 가지고 강연장에 가보니 봉사자들이 강연 준비를 하고 있었습니다.nbspnbsp▲ 오늘 강연장,nbsp히또마치 교류관nbsp강연장은 히또마치 교류관이라는 곳인데 우리나라로 치면 문화센터나 복지회관 같은 곳인데 강연 전까지 도서관 앞에 책상이 있는 공간에서 원고 교정을 하시면서 기다리셨습니다.nbspnbspnbsp교토 강연 담당자인 이노우에씨가 번역한 즉문즉설 책을 출판한 출판사 사장과 잠깐 만나서 인사를 나누기도 하셨습니다.nbsp▲ 스님의 즉문즉설 일본어판을 출간한 출판사 사장님nbspnbsp2시가 되자, 드디어 114강이 시작되었습니다. 이 강연은 일본인들을 위한 법문으로서 스님과 일어 통역을 할 이노우에씨, 그리고 질문을 스님께 통역할 양소영씨가 함께 진행했습니다.nbspnbsp▲ 일어 통역을 해주신 이노우에씨, 그리고 질문을 스님께 한국어로 통역해 주신 양소영씨nbsp스님께서는 먼저 점심은 잘 먹고 왔는지 물어보시면서 강연을 시작하셨습니다.nbspnbsp“점심은 제대로 먹었어요? 저는 재래시장에 가서 메밀 국수를 먹었습니다. 한국에서 가짜를 너무 많이 먹어서 가짜에 맛이 들었는지 여기와서 진짜를 먹었는데 맛이 별로였어요. 그런 것처럼 불교도 불교 아닌 것을 자꾸 믿다가 보면 진짜 불교를 만나면 오히려 이상하게 느껴져요. nbspnbspnbsp오늘 여러분과 대화를 하고 싶어서 왔습니다. 인생을 살아가면 이런저런 어려움이 있잖아요. 이 고뇌로부터 어떻게 벗어날 수 있을까? 여러분들이 갖고 있는 고뇌에 대해 대화를 해봅시다. 또 하나는 인생을 살다보면 의문이 많이 생기는데 이런 의문에 대해서도 대화를 해봅시다. 어떤 의문도 좋습니다. 어떤 얘기든지 같이 해봅시다. 대화를 하면서 조금 더 진실을 규명해간다고 생각하시면 됩니다. 자, 그럼 시작해 봅시다.”nbspnbsp그러면서 질문을 받기 시작했습니다. 아담한 공간에 약 40여명의 청중들이 모여 총 6명이 질문을 하였습니다. 이노우에씨와 양소영씨의 빠른 통역으로 스피드있게 대화가 이루어질 수 있었습니다.nbspnbspnbsp“지금 교토에 와서 8년째가 됩니다. 처음에는 유학으로 와서 공부를 6년간 해서 지금은 학교나 복지현장에서 일하고 있습니다. 제 질문은 하나의 생각을 계속 해나갈 수 없는 집중력에 대한 것입니다. 논문을 쓰거나 얘기하거나 할 때 처음부터 끝까지 예쁘게 정리가 안 될 때가 많아서 조금 더 집중해서 생각할 수 있는 방법을 묻고 싶습니다.” nbspnbsp“저는 별로 불교에 대해서 자세히 몰라요. 불교의 그림을 본 적이 있습니다만 호랑이에게 자신의 몸을 던지는 것과 자살이라는 것은 무엇이 다른 것인지 아직 잘 알지 못해서 묻고 싶습니다.”nbspnbsp“8년 전에 일본에 와서 6년간 박사학위를 따고 내년부터 전임교원이 돼서 일하게 됐습니다. 일본에 오는 것이 꿈이었기 때문에 뭘 봐도 감사합니다. 그리고 더 감사한 것이 임신한 것을 알게 됐습니다. 방금 스님도 말씀하셨듯이 너무 기뻐하지 않도록 주의하고 있습니다. 그래도 지금까지와는 다른 인생을 살고 싶다는 것인데 이런 저에게 도움이 되는 말이 있다면 부탁드립니다.”nbsp“최근 남편이 담보를 얻어서 새로운 사업을 하는데, 저는 불안해지는 경우가 많습니다. 남편이 하려고 하는 것이 정말 괜찮은지 옆에서 조언하는 것이 좋은지 아니면 모든 것을 받아들일 각오로 ‘이것은 잘 되는 것이다’ 라는 마음으로 살아야 하는 것인지 고민입니다.”nbsp“저는 손가락을 씹는 버릇이 있는데 어떻게 나을 수 있을까요?”nbspnbspnbsp이렇게 다양한 질문에 대해 빠른 통역을 통해 대화를 해나가셨습니다. 오늘은 그 중에서 결혼한지 9년째인데 아이를 갖지 못해서 고민인 주부의 질문과 스님의 답변을 소개합니다.nbspnbspnbsp“안녕하세요. 저는 교토대학에서 박사과정에서 공부하고 있는 중국인 조선인입니다. 저는 결혼한지 9년째이고, 지금까지 열심히 살아 왔습니다. 그런데 이것저것 열심히 하다보니 엇갈려서 아직 아이가 없습니다. 다른 사람들이 볼 때는 뭐라고 할까 제가 무척 부러움을 살 부분이 많아요. 부모님도 건강하시고 형제들도 건강하고 고생없이 저도 잘 커서 하나도 고민될 것이 없습니다. 그런데요. 결혼한지 9년이 되었는데 아직 nbsp아이가 없는데 어떻게 하면 좋을까요?”nbsp“우선 병원에는 가봤어요?”nbspnbsp“병원에는 가 봤습니다만 특별히 문제는 없다고 해요.”nbsp“두 사람 다 특별히 문제가 없어요?” nbspnbsp“예”nbspnbsp“요즘에는 인공수정도 있잖아요. 수정이 잘 안 돼면...”nbspnbsp“그러네요. 하지만 그 하나가 안돼요. 공부하고 있으니까 이것저것 다 찾아보고, 아는 선생님도 찾아보고 했지만, 한걸음이 잘 안되네요. 그게 그렇게 간단하지가 않네요.”nbsp“임신이라는 것은 자연의 법칙이잖아요. 그러니까 낯선 사람한테 한번 성폭행을 당해도 임신이 될 수가 있어요. 또 10년간 결혼해서 같이 살아도 임신이 안 될 수도 있어요. 이것은 자연의 법칙이기 때문에 거기에 너무 그렇게 매달릴 필요는 없다고 생각해요.nbspnbsp애기가 없으면 어때요? 공부하고 연구하는데 애기가 있으면 오히려 더 힘들잖아요. 왜 꼭 애기가 있어야 할까요? 그것도 너무 과거의 생각에 사로잡히는 거예요. 옛날에는 여자를 애기를 낳는 하나의 도구처럼 생각해서 애기를 못 낳으면 쫓겨나기 때문에 애기 낳는 것이 중요했어요. 지금은 그런 시대가 아니잖아요. 여성도 자기의 일을 가지고 자신의 인생을 살 수 있는 시대인데 왜 꼭 애기를 낳아야 합니까?nbspnbspnbspnbsp두번째는 애기가 꼭 필요하면 입양을 해서 키워도 되잖아요. 이 세상에는 애기를 낳아 놓고도 못키워서 버려진 아이들도 엄청나게 많은데 꼭 내가 낳아서 키워야 돼요? 내가 데려다 키우면 되지요. 그러니까 질문자는 중국에서 자라서 그런 중국의 전통적인 사고에 너무 매여있기 때문에 그런 고민이 생기는 거예요. 세번째는 그래도 내 애기를 꼭 갖고 싶다면 인공수정을 하면 돼요.”nbspnbsp“솔직히 말해서 제 잘못일지도 모르겠네요. 지금 말씀하셨던 세가지를 모두 생각해봤어요. 그렇지만 마음이 가라앉지 않아요. 그게 저 혼자의 문제가 아니라 제 남편에게 얘기한다는 것 자체가 굉장히 여러가지 장애가 있어요.”nbsp“질문자가 애기를 못 낳는 것이 왜 본인 책임이예요? 자기 몸에 이상이 없다는데요. 본인의 몸에 그리고 건강에 아무 이상이 없는데, 애기가 없는 것이 왜 여자의 책임이냐는 거예요? 그것은 옛날 생각이예요. 질문자가 뭘 잘못했는데요? 무엇 때문에 시댁이나 남편한테 기가 죽어야 돼요? 병원에 가서 조사해 봤는데 본인의 몸에 이상이 없다잖아요. 그런데 왜 질문자가 죄의식을 가져야 해요? 대학에서 박사까지 공부를 해가지고도 아직까지 그런 생각을 해요?” nbspnbsp“저도 문제가 없고 상대도 문제가 없어요. 둘 다 문제는 없어요. 그래서 무척 고생을 하고 있는 거예요. 문제가 있다면 문제를 해결하면 되고 병이 있다면 병을 고치면 되지만, 저도 문제가 없고 상대방도 문제가 없다는 것은 현대의학으로 증명이 되었습니다. 그래서 현재 살고 있는 환경이나 스트레스가 문제가 된다고 하면, 현재 이런 상황을 마음적으로 잘 받아들여서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은 없을까 해서요.”nbspnbsp“몸에 이상이 없는데 애기가 없다는 것은 지금 애기가 태어날 때가 아니라는 것을 말해요. 그런데도 억지로 애기를 원하게 되면, 만약에 장애인 애기나 지체부자유 애기를 낳게 되면 질문자는 후회를 하겠어요? 아니면 그 애기라도 생겼다고 기뻐하겠어요?”nbsp“지금까지는 그런 생각을 한 적이 없어요. 거기까지는요.”nbspnbsp“그러니까 어리석다는 거에요. 만약에 장애인 아이를 낳게 된다면 ‘장애인 아이라도 너무너무 사랑스럽고 좋다’ 이렇게 정말 온 정성을 다해서 질문자가 키우겠느냐? 아니면 ‘장애인 아이라면 안 낳는게 나았겠다’ 라는 생각을 할거냐는 거예요. 만약에 장애인 아이라면 안 낳는 게 나았겠다고 생각한다면 질문자는 애기를 가지면서 도로 불행을 자초한다는 거예요. 그러니까 본인이 한치 앞도 못보고 지금 애걸복걸 하는 거예요. 그러니 마음을 조금 진정시켜야 돼요.nbspnbsp그러니까 어쩌면 애기가 없는게 본인을 더 복되게 하는 것일지도 모른다는 거예요. 이 세상에 자식 때문에 괴로워하는 부모들이 얼마나 많은지 알아요? 그래서 ‘무자식 상팔자다’ 이런 말도 있잖아요. nbspnbspnbsp그렇기 때문에 지금 나에게 주어진 애기가 없는 이 상황이 복인지 불행인지 섣불리 단정할 수가 없다는 거예요. 그렇기 때문에 ‘애기 낳게 해주세요’ 이렇게 기도하면 안돼요. 그러면 불행을 자초할 수가 있습니다. 절에 다녀요? 교회에 다녀요?”nbspnbsp“아무데도 안 다녀요.”nbsp“그러면 이렇게 기도해 보세요. ‘애기를 갖는 게 좋으면 나에게 애기를 갖게 해주시고, 애기를 갖는 것이 나에게 불행이 된다면 갖지 않게 해주세요’ 이렇게 기도를 해야 합니다. 꼭 애기를 갖는 게 좋은 것이 아니예요. 그런데 우리는 ‘반드시 애기를 가져야 한다. 낳아야 한다’ 이런 생각을 하기 때문에 자기 불행을 자초하게 되는 거예요.nbspnbsp그래서 이렇게 한 번 기도해 보세요. 종교가 없다니까 그냥 우선 부처님을 부릅시다. 만약에 기독교 신자라면 하나님을 부르고 기도하면 돼요.nbspnbsp‘부처님 감사합니다. 지금까지 부처님의 은혜 속에서 잘 살아왔습니다. 아이를 원하지만 지금 나에게 아이가 태어나는 것이 좋은 일이라면 태어나게 해주시고, 지금 태어나는 것이 좋은 시기가 아니라면 저는 기다리겠습니다. 인연을 따라서 그 과보를 받겠습니다.’nbspnbsp이런 마음을 가지고 기도를 하셔야 됩니다. 해달라는게 꼭 좋은 기도가 아니예요. 그것이 불행을 자초할 때도 많습니다. 그러니 지금 애기가 태어나지 않는 것은 지금 이 시점에게 아이가 태어나는 것이 아이에게나 엄마에게 좋지 않기 때문에 태어나지 않는 거예요. 그런데 그것을 억지로 하게 되면 불행을 자초하게 됩니다. 그래서 애기에 대해서 질문자가 전전긍긍하는 이것을 탁 놓고 편안해져야 합니다. 이렇게 초조불안한 상태에서 혹시 수정이 되어도 장애가 되기 쉽습니다.nbspnbsp그리고 복을 좀 지어야 돼요. 저 인도나 아프리카에 가면 엄마가 아기를 낳아도 엄마가 가난해서 키우지 못하는 아이들이 많이 있잖아요. 북한에도 영양실조 아이들이 아주 많아요. 그런 아이들이 한명 자라는 데에는 한달에 3천엔 밖에 안든단 말이예요. 그래서 내가 한 열명 정도 아이를 키우는 경비를 늘 그런 곳에 후원하여 보내셔야 해요. 그렇게 죽어가는 아이들을 살리고, 그 아이들을 키우는 일에 꾸준히 후원을 하면 ‘복을 짓는다’ 라는 말을 해요. 그러니까 아까 기도하는 그런 마음과 이런 보시하는 행위를 같이 하여 좋은 인연이 되면 좋은 아이를 낳을 수가 있습니다. 지금 몇 살이에요?”nbsp“37살 입니다.”nbspnbsp“마흔까지는 괜찮으니까 아직 한 3년 정도 기도해 보세요.”nbspnbsp“감사합니다.”nbsp질문자도 활짝 웃고, 청중들도 뜨거운 박수를 보내줍니다. 강연장은 점점 훈훈해지고 따뜻한 기운이 감돌았습니다.nbspnbspnbspnbspnbsp마지막으로 스님께서는 이미 일어나버린 일에 대해서는 긍정적으로 바라보는 것이 행복으로 가는 길임을 강조하시면서 마지막 닫는 말씀을 해주셨습니다. nbspnbspnbsp“이미 일어나 버린 일에 대해서는 긍정적으로 생각해야 행복해지는 거에요. 그래서 자신을 행복하게 하셔야 해요. 그러니까 아기가 없는 것을 긍정적으로 생각해야 하는데 저렇게 부정적으로 생각하니까 괴롭잖아요. 애기가 없는게 얼마나 좋은지 알아요? 자기는 애기는 없어도 남편은 있잖아요. 저는 애기도 아내도 없는데요. 자기는 저보다 낫잖아요. 그런데 저는 웃는데 자기는 왜 울어요. 그러니까 항상 자신을 긍정적으로 바라봐야 합니다. 그러면 행복해집니다. 행복하게 사시길 바랍니다.”nbsp마음이 밝아진 청중들이 다시한번 뜨거운 박수갈채를 보내줍니다.nbspnbspnbsp4시가 되자, 스님께서는 오사카 강연에 늦지 않게 서둘러 강연을 마무리하시며 청중들에게 양해를 구하셨습니다. 오늘은 첫 질문이 매우 무겁게 시작됐지만 그 뒤로는 재밌는 질문자들이 많아 집중되고 화기애애한 분위기에서 진행이 되었습니다.nbspnbsp스님의 답변이 이어질 때마다 앞으로 혹은 뒤로 고개를 흔들며 웃으시는 분들이 많아서 강연이 끝나자 한바탕 재밌는 토크콘서트를 본 기분이 들기도 했습니다.nbspnbsp하지만 스님 말씀대로 많이 웃긴 했는데 뭐 때문에 웃었는지 기억도 안 나고 마음이 허전한 게 아니라 함께 고민을 듣고 함께 다른 면을 생각해보면서 마음은 깃털처럼 가벼워지고 속이 꽉 찬 듯한 편안함이 느껴졌습니다. 모쪼록 오늘 질문하신 분들도 오늘 법문을 듣고 고민의 실마리를 풀어 행복하게 사시길 기원해 봅니다.nbsp▲ 책 사인회nbspnbsp강연이 끝난 후 서둘러 봉사자들과 단체 사진을 찍고 단주를 나눠주고 강연 담당자에게 책 선물을 하고는 재빨리 짐을 챙겨 차에 오르니 한 10분 만에 번개같이 준비하고 나온 것 같습니다.nbspnbspnbspnbsp▲nbsp질문을 스님께 한국어로 통역해 주신 양소영씨nbsp▲nbsp일어 통역을 해주신 이노우에씨nbsp마지막 강연을 위해 바짝 서두르니 의외로 일찍 도착할 것도 같아 스님께서는 “봉사자들과 좀 더 시간을 갖고 격려해 주고 올 걸 그랬나” 하고 아쉬워하시기도 했습니다.nbspnbsp오전에 그렇게 눈이 펑펑 내리더니 어느새 하늘이 맑게 개이고 햇빛이 쨍쨍한 날씨로 바뀌어 있었습니다. 차창 밖으로 서서히 석양에 물 들어가는 하늘을 보며 마지막 강연에 대한 기대감과 아쉬움이 섞인 묘한 느낌을 안고, 세계 100회 강연의 마지막 종착점인 오사카를 향해 달려갔습니다.nbspnbsp대망의 세계 100회 강연을 마무리하는 115번째 오사카 강연 소식은 곧이어서 바로 전해드리겠습니다.nbspnbsp nbsp

2014.12.20. 57,681 읽음 댓글 25개

세계 100회 강연을 무사히 잘 마쳤습니다

nbspnbsp▲ 일본 오사카에서 마지막 세계 100회 강연 115번째 강연을 마치고 봉사자들과 함께 nbspnbspnbspnbsp많은 분들의 성원에 힘입어 어제 일본 오사카 강연을 끝으로 세계 100회 강연을 모두 마쳤습니다.nbspnbsp지난 8월26일 nbsp독일 프랑크푸르트에서 시작한 첫번째 강연이nbsp유럽 29개 도시, 북미주 59개 도시, 남미 6개 도시,nbsp오세아니아 4개 도시, 동남아시아 12개 도시, 일본 5개 도시 등nbsp전세계 115개 도시를 거쳐,nbspnbsp어제 12월18일 일본 오사카 강연을 끝으로 nbsp대단원의 막을 내렸습니다.nbspnbsp가는 곳마다 많은 자원봉사자들이 힘을 합해nbsp강연장을 마련하고, 홍보를 하고, 숙소와 식사를 준비하고, 행사장 안내를 하는 등 정성을 기울여 주셨습니다.nbsp봉사자들의 땀과 노력이 없었다면 세계 100회 강연은 불가능 했을 겁니다.nbspnbsp그리고 희망편지와 스님의 하루를 통해 응원해 주신 모든 분들께도 진심으로 감사의 말씀을 드립니다.nbspnbsp세계 100회 강연을 무사히 마칠 수 있게 도움을 주신 모든 분들께 다시한번 감사 드립니다.nbsp한국에 귀국하신 법륜 스님의 영상 메세지 함께 전합니다.nbspnbsp nbsp 12월 18일에 일본 교토와 오사카에서 열린 마지막 강연 소식은 오늘 저녁 중에 자세히 전해 드리겠습니다.nbsp

2014.12.19. 25,153 읽음 댓글 150개

2014.12.17 세계 100회 강연(113) 일본 나고야 名古屋

nbsp안녕하세요. 오늘은 해외 100강 중 113번째 일본 강연이 일본 나고야에서 열리는 날입니다. 그리고 일본에서는 3번째로 열리는 강연입니다. nbspnbsp아침 7시에 호텔 식당에서 식사를 하고 짐을 챙겨 8시에 나고야를 향해 출발했습니다. 아침 출근 시간이라 그런지 정체가 매우 심해 고속도로 진입하는데 한참 시간이 걸렸는데 차량 봉사하신 분에 의하면 다른 시간대에 비해 1시간 30분이 더 걸렸다고 할 정도로 도쿄의 도로 정체도 심각한 수준이었습니다.nbspnbsp▲ 나고야nbsp나고야시는 일본 중부 지역의 가장 큰 도시로서, 일본 전체에서 세번째로 인구가 많으며, 아이치현의 현청 소재지입니다. 아이치현의 총생산량은 동경, 오사카에 다음가는 전국 3위로, 덴마크 오스트리아와 맞먹는 경제력을 자랑한다고 합니다. 아이치현은 산업별로는 제조업이 차지하는 비율이 일본 내에 비해서 상당히 높은 지역특성이 있는데 그 중에서도 자동차 산업품 관련이 약 60퍼센트, 그외 식료품 플라스틱제품 등 기타 소형 품목이 40퍼센트를 차지해 자동차산업 중심으로 경제생산이 이루어지는 곳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는 토요타 자동차 공장과 그 부품 업체가 나고야시 근방에 있기 때문이며, 나고야도 토요타와 함께 발전해 온 산업도시라 할 수 있습니다. 우리나라의 울산이나 포항이 현대 및 포철과 함께 발전한 것과 비견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나고야 사람들은 일본 내에서 평소에는 구두쇠고 견실한 반면 명품이나 고급품을 좋아한다고 재밌는 정평이 나 있기도 합니다.nbspnbsp▲ 나고야시 전경nbspnbsp나고야를 향해 남쪽으로 내려가면서 차창 밖으로 펼쳐지는 풍경은 겨울이라기 보다는 봄이나 늦가을 같았습니다. 아직 고운 단풍과 노란 은행나무, 억새풀을 볼 수 있어 우리나라와 별 차이가 없는데 고속도로가 계속해서 외벽으로 막혀 있어 바깥 풍경을 보기 어렵다는 점이 달랐습니다. 소음과 사생활 보호를 위해 그렇다고 하는데 남에게 최대한 피해를 주지 않는 일본의 특성을 잘 보여주고 있습니다.nbspnbsp스님께서는 일본에서 가장 특이했던 것은 이른바 공사판까지도 깔끔하게 잘 정리되어 있는 것이었다고 합니다. 우리나라에서는 공사판이라는 단어가 뭔가 무질서하게 놓여있거나 어수선한 이미지를 주는데 비해 일본은 모든 공구가 질서 정연하게 정리되어 있고 먼지도 없이 깨끗하게 청소되어 있는 것 같았습니다.nbsp한참을 가다가 운전 봉사하시는 김세환님이 오른쪽을 가르켜서 보니 일본의 영산인 후지산이 보였습니다. 정상 부분은 구름에 가려서 보이지 않았지만 굉장히 큰 산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습니다.nbspnbsp▲ 후지산nbspnbspnbsp김세환님은 목소리도 작게, 주로 손짓으로 이야기를 하셨는데 알고 보니 집에 계시는 보살님한테 편찮으신 스님을 배려하여 묻는 말 이외에는 아무 말도 하지 말라고 단단히 교육을 받고 왔다고 하여 함께 웃었습니다.nbspnbsp▲ 예쁘게 다듬어진 차밭nbspnbsp바다가 보이는 마을도 지나고 예쁘게 다듬어진 차밭이 유명한 곳도 지나고 어느샌가 눈발이 조금씩 날리기도 하여 일본의 가을, 겨울의 계절도 경험할 수 있었고 휴게소라기보다는 우리의 대형 마트나 쇼핑몰 같은 느낌을 주는 고속도로 휴게소에서 우동으로 점심을 때우면서 가다보니 6시간 정도 걸렸지만 지루하지 않고 짧은 여행을 하는 기분이었습니다.nbspnbsp▲ 고속도로 휴게소에서 먹는 우동nbspnbsp2시쯤에야 강연 시간 전까지 쉴 곳을 제공해주시기로 한 분의 집에 도착할 수 있었습니다. 김경미씨라고 나고야 시에서 가까운 아이치현의 나가쿠테시라는 신도시에 사는 분인데 기업체 연수를 주로 하다가 동북대지진 이후 국내 대기업의 연수가 딱 끊겨 지금은 한글 강좌, 스포츠웨어 총판, 통역이나 번역 등의 일을 하고 계신다고 합니다. 이 분은 천주교 신자인데 남편이 스님의 유투브 즉문즉설을 열심히 들으면서 성격이 바뀌어 삶이 많이 편해졌다고 하면서 정성껏 어묵국을 끓이고 맛있는 배추김치를 내어 주고 쉴 곳을 제공해 주셔서 스님과 일행은 맛있게 음식을 먹고 편안히 쉴 수 있었습니다.nbspnbspnbsp이 분에게는 다섯 살짜리 딸이 있는데 전날 스님의 희망강연 포스터를 따라 스님의 모습을 그리고 어떤 과일을 좋아하시냐는 편지까지 써놓은 것을 구경할 수 있었습니다.nbsp▲ 김경미씨의 5살 된 딸이 그려 준 스님 얼굴과 희망세상만들기 글자nbspnbspnbsp스님께서는 강연 전에 일본 중부지역 총영사관의 김인환 부총영사와 저녁 약속이 되어 있었는데 10분 늦게 출발한데다 모두 나고야 초행길이라 약속 장소를 잘 못 찾아 빙빙 돌다 시간이 늦어 스님께서는 매우 미안해 하셨습니다. 다음에는 꼭 현지 지리를 잘 아는 사람을 태워서 다녀야겠다는 것을 또 하나 크게 배우는 날이었습니다.nbsp오늘 강연이 이루어진 곳은 나고야 시내에 있는 윙크 아이치 산업노동센터로서 108개의 좌석을 마련했는데 좌석이 거의 다 차서 봉사자 포함하여 110명의 교민들이 모인 가운데 113강이 시작되었습니다.nbspnbsp먼저 스님께서는 인생을 살면서 꼭 지녀야 할 기본 가치관 네 가지를 말씀해 주시면서 강연을 시작하셨습니다.nbspnbsp“인간은 자유롭게 살 권리가 있습니다. 그러나 더불어 살기 때문에 타인의 자유를 뺏을 권리는 없어요. 그래서 첫째, 남을 헤치지 마라. 둘째, 남을 손해끼치지 마라. 셋째, 남을 괴롭히지 마라. 넷째, 말로 남을 괴롭히지 마라. 이 네가지를 제외하고는 인간은 마음껏 살아도 좋습니다. 나도 남 눈치 보지 말고 살고, 다른 사람에게도 이 네가지를 어기는 것이 아니면 간섭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어린 아이가 수업 시간에 졸고 있다고 합시다. 그러면 이 네 가지에 들어가요? 안 들어가죠. 그러니 야단치면 안돼요. 성적이 떨어졌다고 합시다. 남을 헤쳤어요? 손해 끼쳤어요? 괴롭혔어요? 말로 괴롭혔어요? 그래서 이것도 야단치면 안돼요. 성적이 떨어진 것은 오히려 칭찬 받을 수 있는 일이예요. 남의 성적을 올려주었기 때문에 그래요. nbspnbspnbsp그런데 수업시간에 떠든다고 합시다. 이것은 다른 사람의 공부에 방해를 주었잖아요. 이것은 잘못된 행동에 속합니다. 그러니까 잘못된 행동은 아주 어릴 때부터 바로잡아 주어야 해요. 3살짜리 4살짜리라고 하더라도 남을 때리면 안 된다고 얘기해줘야 해요. 남의 장난감을 뺏으면 안 된다고 야단을 쳐야 합니다. 남을 괴롭혀도 안 되고, 욕설해서도 안 된다고 가르쳐야 합니다. 그런데 이런 기본 가치관을 어릴 때부터 안 심어주니까 학교 폭력이 일어나는 것입니다.nbspnbsp공부를 안 하는 것은 나쁜 짓은 아니에요. 공부를 안 하는 것은 어리석은 행동에 속합니다. 나쁜 것과 어리석은 것은 틀려요. 어리석다는 것은 자기가 자기에게 손해 끼치는 것을 말합니다. 공부를 안 해서 자기한테 손해 끼치고 수업시간에 졸아서 자기한테 손해 끼치죠. 어리석은 것은 깨우쳐주어야 합니다. 이것은 잘못한 것은 아니에요. 깨우쳐줄 때는 야단치면 안 돼요. 열 번 이야기해서 말을 안 들으면 열 한번 깨우쳐 줘야지 야단치면 안돼요. 그런데 여러분들은 성적이 떨어졌다고 야단을 치잖아요. 이것을 구분할 줄 모르기 때문에 사회질서가 안 잡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아이들이 부모로부터 심리적으로 억압을 받아요.nbsp그래서 이 네가지에 해당이 안되면 남의 인생에 간섭도 하지 말고, 이 네가지에 해당이 안되면 남의 눈치도 볼 필요 없어요. 우리 인생은 마음껏 살아도 좋아요. 그러나 이 네가지는 안됩니다. 그 이유는 내가 마음껏 산다고 남을 헤치거나 손해끼칠 권리는 없기 때문입니다.nbspnbsp그럼에도 불구하고 인생을 살다보면 고뇌가 생기고 의문이 생깁니다. 그런 얘기를 오늘 마음껏 해보자는 것입니다. 답이 있는 게 아닙니다. 살아가면서 겪는 많은 인생의 문제를 갖고 대화를 하면서 해결의 실마리를 좀 찾아보자는 것입니다. 제가 답을 주는 것이 아니고 대화를 나누는 것입니다. 자기 고민이 해결이 되면 마이크를 놓지 그 전에 마이크를 놓으면 안 됩니다. 끝까지 대화를 해서 ‘아, 그렇구나’ 해서 더 이상 대화할 필요가 없으면 “알겠습니다”하고 마이크를 놓으면 됩니다. 같이 대화를 하면서 진실을 규명하자는 것입니다. 자, 시작해 봅시다.”nbsp그러면서 질문을 받았습니다. 총 7명이 스님께 질문을 했습니다.nbspnbsp“둘째 딸아이가 고등학교 들어와서 학교생활이나 일본에서 활동하는 스포츠 활동이나 이런 것으로 어려움을 많이 겪었습니다. 아이들이 성장하는 과정에 있다고 생각하면서도 딸이 학교 생활에서 방황하고 갈등하고 공부를 집중해서 하는 것 같지도 않고 그걸 제가 편안히 바라보지 못하겠습니다.”nbspnbsp“15년 전에 결혼했으나 이혼을 했고 애가 하나 있어요. 음식을 잘 해서 10년 전부터 식당을 시작했으나 말아 먹었어요. 다시 청소부터 시작해서 지금은 잘되는 한류 이자카야를 만들었습니다. 하지만 특이한 당뇨에 걸려 쓰러지기를 반복하고 목에도 종양이 생겼어요. 병원마다 처방이 다르고 너무 힘들었는데, 한국에 계신 할머니가 무당이여서 굿이란 걸 한 이후 깜짝 놀랄 정도로 좋아졌으나 3개월 후 또 나빠졌습니다. 한국에서는 더 굿을 하고 신내림을 받아야 한다고 합니다. 정말 무병이라는 게 있는지 알고 싶습니다. 어떻게 살아야 행복하고 즐겁게 살 수 있을까요?”nbspnbsp그리고 12살 정도 되는 여자 아이가 질문을 해서 큰 웃음을 자아내었습니다.nbspnbsp“결정을 잘 내리지 못해서 고민이에요. 바닐라 아이스크림을 먹을까, 초콜릿 아이스크림을 먹을까, 이런 걸 잘 결정 못해서 고민이에요.”nbspnbsp“평상심을 유지할 수 있는 방법을 알고 싶습니다. 제가 감정기복이 너무 심합니다. 기분이 좋을 때는 산책하는 것도 기쁜데 나쁠 때는 다 싫습니다. 좋은 기분을 항상 유지하고 싶은데 어떻게 해야 합니까?”nbspnbsp“스님께서 행복을 위해서라면 자유롭게 행하되 4가지를 유념하면 행복하고 자유롭게 살 수 있다고 하셨는데, 만약에 자유를 침범하는 사람이 있다면 어떻게 대처하면 됩니까? 남을 어떻게 설득해야 하나요? 예를 든다면 이번에 대한항공의 부사장님 사건이 큰 이슈가 되었는데 그 사무장의 입장이라면 어떻게 대해야 하는지 의견을 듣고 싶습니다.”nbspnbsp“서울에서 나고야에 온지 23년인데요. 부모님이 함경도에서 오셔서 그런 것도 있고 통일에 대해서 어떻게 협력할 수 있는지 가르쳐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nbspnbsp이렇게 다양한 질문에 대해 스님께서는 지혜로운 말씀을 들려주셨습니다. 오늘은 그 중에서 사춘기 아이가 불만이 많아서 어떻게 해줘야 할지 몰라서 자신 없어 하는 재일교포 어머니의 질문과 스님의 답변을 소개합니다. 문답이 길게 이어지며 마지막에는 옆에 앉아 있던 딸도 자신의 모습을 돌이키는 큰 감동이 있었습니다. nbspnbspnbsp“안녕하세요. 저는 재일교포 엄마입니다. 요즘에 아이들이 사춘기가 와서 조금 힘들어요.”nbsp“사춘기가 왔다는 기준이 뭔가요? 말을 안 듣는다는 거예요? 요즘은 말 안 들으면 무조건 사춘기라고 그래요. 어떤 분이 “우리 애가 사춘기를 너무 일찍 시작했어요” nbsp해서 스님이 “몇학년이에요?” 라고 하니 “초등학교 6학년이에요” 그래요. 이것은 초등학교 6학년부터 말을 안 듣는다는 얘기이고요. “우리 애는 사춘기가 좀 늦어요” 해서 “몇학년이에요?” 라고 하니 “고등학교 1학년요” 그러면 고등학교 1학년부터 말을 안 듣는다는 얘기에요. 사춘기가 아니고 엄마 말을 안 듣는다 이 말이지요?”nbspnbsp“네. 말을 안 들어요. 요즘에는 제가 좀 많이 힘들어서요.”nbsp“애가 힘든 게 아니고 왜 어른이 힘들어요?” nbsp“저는 한국에서 결혼해서 남편이 주재원으로 일본에 왔는데요, 재일교포로서 한국으로 시집을 가서 다른 엄마들보다 교육같은 것이 부족해서 좀 자신이 없거든요.”nbspnbsp“질문자가 자신이 없다고 하는데, 질문자는 개보다는 나아요? 못해요? 질문자가 생각할 때 한국말이 좀 부족해도 강아지보다는 나아요? 못해요?”nbspnbsp“강아지보다는 낫구요.” nbsp“개도 새끼를 낳아서 키우는데 사람인데 왜 못 키우겠어요? 아무 문제없어요. 부족한 것 없어요. 질문자가 그냥 부족하다고 생각하는 거예요. 애를 낳아서 키우는 것은 한국말을 못하는 것 하고는 아무 관계가 없어요. 한국말을 못하면 그냥 일본말을 하시면 돼요. 그러면 아이들은 한국말도 배우고 일본말도 배우고, 2개들 다 배우게 돼요.”nbspnbspnbspnbsp“앉지 말고요. 서서 계속 얘기해요. 벌써 그만 둘려고 그래요? 뭐가 어려워요?”nbsp“저는 잘해주고 싶은데요, 다른 엄마들과 비교했을 때 저한테 불만이 많아요. 밥 같은 것은 제가 잘 하는 데요.” nbspnbsp“밥만 해주면 돼요. 옷도 빨래해서 입혀요? 빨래는 안 해줘요? 질문자가 집안 청소는 해요? 집을 엉망으로 해놓고 살아요?“nbsp“아니요. 깨끗하게 해놓고 살아요.”nbsp“일본에서 살았으니 뭐든지 깔끔하게 할 거 아니에요? 그러면 됐어요. 그게 엄마가 해야 할 거 다에요. 그런데 어떻게 해서 어려워요?” nbspnbsp“애들이 엄마한테 불만이 좀 많아서요. 그게 좀... 제가 좀 많이 만만한 것 같아서요. 애들이 남편은 좀 무서워하거든요.”nbspnbsp“아빠는 주먹이 있으니까 겁내는 것이고, 질문자는 주먹이 없으니까 그런 거지요. 그것은 당연하지요. 구체적으로 뭐가 어떻게 힘드는 데요? 남편하고 관계 때문에 힘들어요? 아니면 아이들 때문에 힘들어요?”nbsp“애들 때문에 그런 것 같애요.”nbsp“남편하고는 문제가 없어요? 남편하고 문제가 없으면 애들하고 힘들 일이 없어요. 솔직하게 얘기해봐요.” nbsp“특히 우리 딸이 자신감이 없습니다. 저가 좀 많이 부족해서 딸이 그렇게 자신이 없나 싶어가지고요.”nbspnbsp“질문자는 괜찮아요. 아무 문제가 없어요. 지금 그런 것을 자학이라고 그래요. 자기를 학대한다 이렇게 말하거든요. 아무 문제도 없어요. 또 뭐가 문제예요?”nbspnbsp“다른 것은 없습니다.” nbspnbsp“애가 말을 안 듣는다고 했는데 어떻게 말을 안 들어요?”nbspnbsp“그냥 좀 많이 짜증을 내는 것 같애요. “엄마가 해주는 것이 없다”고 얘기도 하고요.”nbspnbsp“엄마가 해주는 것이 없다고 하면, “엄마는 밥해주고, 빨래해주고, 학교 보내주면 그것으로 다 했지, 나머지는 엄마가 해 줄 의무가 없다” 이렇게 말하면 돼요.” nbspnbsp“알겠습니다.”nbsp“강아지도 새끼 낳아서는 젖만 먹여주면 돼요. 다른 것은 아무것도 안 해줘도 돼요. 학교 안 보내줘도 되고, 옷 안 입혀줘도 되고요. 그래도 사람이니까 학교도 보내주고, 옷도 입혀주는 것인데, 그럴 때는 웃으면서 “아이고, 밥해주고 빨래해주면 됐지. 엄마가 뭘 더 해주냐?” 이렇게 편안하게 얘기하면 되지요. 그런데 ‘왜 나는 해주는 게 없다’ 이렇게 생각해요?”nbspnbsp“저가 원래 자신이 없는 것 같애요.”nbspnbsp“질문자가 자신이 없으니 애도 자신이 없는 거예요. 그러니까 질문자가 지금부터 “밥해주면 됐지? 뭐가 문제니?” 이렇게 자신있게 답을 해주면 애도 자신이 있어져요.”nbsp“네”nbsp“또 뭐가 문제예요? 얘기 꺼낸 김에 다 얘기해봐요. 진짜 어려운 게 뭐에요? 솔직하게 얘기해봐요. 일본 사람들은 자기 속내를 잘 안 밝힌다고 하더니 일본에 살아서 그래요?”nbsp우리 딸이 좀 아팠습니다. 몸이 아팠는데요, 지금은 많이 건강해졌는데요.nbsp“딸이 아프면 병원에 데리고 가면 되지요. 의사가 할일이지, 질문자가 할일은 아니잖아요. 진짜 뭐가 문제예요? 사는데 뭐가 힘들어요?” nbspnbsp“우리 딸이 저보고 “왜 태어나게 했냐?” 고 그런 얘기도 하고요.”nbsp“너희 아버지하고 좋다가 보니 생겼다 이렇게 얘기하면 되지요. 그게 뭐 어렵다고 그래요. 그러면 “나도 너 낳고 싶어서 낳은 게 아니다. 그럼 너는 왜 나한테 태어났니?” 이렇게 말하면 되잖아요. “왜 나를 낳았나?” 그러면 “왜 나한테 태어났니?” 이렇게 얘기하면 되지요. 그러면 비기잖아요. . 뭐 그것을 가지고 걱정을 하고 그래요. 또 얘기해봐요. 스님이 다 답해 줄테니까요.”nbspnbspnbsp“그냥 그런 것만 힘든 것 같애요.”nbspnbsp“그것 밖에 없어요? 그러면 힘든 것도 아니네요. 딸이 말을 어떻게 안 들어요? 그냥 얘기해요. 남 눈치 보지 말고요. 뒤에 계신 분이 누구에요? 시어머니요? 언니에요?”nbspnbsp“친구언니입니다.”nbsp“친구언니인데 왜 자꾸 뒤를 쳐다보고 얘기를 해요. 스님을 보고 얘기를 해야지요.”nbspnbsp“한국말을 잘 못 알아들어요. 통역을 해주고 있어요. 자기 표현을 못해서요.”nbsp“그러면 천천히 얘기를 해보세요. 스님도 천천히 말 할게요. 자, 다시 물을게요. 인생을 사는데 있어서 뭐가 힘들어요?”nbsp“애기 키우는 것이요.”nbsp“애기는 밥만 주면 본인이 알아서 크는데 왜 힘이 들어요?”nbspnbsp“마음이 힘들어요. 짜증내면서 저한테 부족한 것을 많이 얘기할 때요. 그냥 계속 외모에 자신이 없어 해요”nbspnbsp“외모에 자신이 없을 때는 지체부자유 아이들이 있는 곳 있지요? 거제도에 가면 애광원이 있는데, 그런 곳에 봉사를 시키면 돼요. 그러면 ‘내가 건강한 것만 해도 엄청난 복이구나. 내가 제대로 말하고 걷는 것만 해도 엄청난 복이구나.’ 이렇게 자각하게 되거든요. 그러니까 외모가 조금 열등의식이 있다는 것은 잘났다는 얘기에요.nbspnbsp여러분들이 생각할 때는 못났기 때문에 그런다고 생각하지만 그렇지 않아요. 잘났기 때문에 외모에 열등의식이 있는 거예요. 즉 딴 것은 다 괜찮은데 눈만 조금 크면 이렇게 되기 때문에 눈에 열등의식이 생기고, 눈을 수술하고 나면 코만 조금 높으면 미인인데 이렇게 해서 또 코가 문제고요. 또 코를 고쳐놓으면 턱이 조금 문제인데 하면서 턱을 조금 깍아놓고, 이러고 나면 볼이 조금 나와가지고 이렇게 해서 성형 병에 걸리게 되거든요. 그런데 스님같이 못난 사람은 어디부터 뜯어 고쳐야 할지 모르기 때문에 아예 문제가 안돼요. nbspnbspnbsp그러니까 얼굴에 흉터가 있다거나, 언청이라든지, 아예 부상을 크게 입어서 그런 것은 예외이고요. 얼굴에 열등의식이 있다 이런 경우의 대부분은 어릴 때 예쁘다는 소리를 들은 사람이, 어릴 때부터 예쁘다고 소리를 들었는데 본인보다 더 예쁜 사람을 만나게 되면 열등의식을 갖는 거예요. 그래서 그런 것은 “괜찮아, 괜찮아. 너 잘났어” 이렇게 말해주면 돼요. “엄마보다 잘났나? 못났나?” 이렇게 한번 물어보고 엄마보다 못 났으면, “그것은 네 아버지 탓이야” 이러고요. 엄마보다 잘나도 “그건 네 아버지 공덕이다. 엄마하고는 관계가 없다. 아버지한테 가서 감사하다고 얘기해라. 네가 못생겼으면 아버지한테 가서 따지고, 칭찬을 해도 아버지한테 가서 얘기해라” 이렇게 웃으면서 얘기해요. 애들 얘기에 무슨 어른이 그것을 듣고 상처를 입어가지고 질질 짜고 울고 그래요. 그냥 애들이 하는 소리에요. 사춘기가 되면 온갖 것이 다 불만이에요. 얼굴에도 불만이고, 옷 입는 것도 불만이고, 뭐도 해달라고 그러고 원래 그래요.nbspnbsp그러면 그것이 나쁘냐? 그게 아니에요. 그렇게 해서 어른이 되어가는 과정이에요. 시켜서 말을 잘 들으면 어린애이고요. 반항도 하고 불평불만도 하면 ‘우리 딸이 어른이 되어가는 과정이구나’ 하고 이렇게 지켜봐야지요. 그것을 힘들다고 하면 안돼요. 애 키우는 것이 힘들다고 하면 애들이 커서 잘못돼요. 왜 그럴까요? 조그만한 아이가 벌써 엄마를 괴롭히잖아요. 그러면 불효하는 거잖아요. 불효하는 아이는 크면 훌륭한 사람이 못돼요. 엄마는 육체적으로 조금 힘들어도 항상 아이를 키우는 것이 좋아야 돼요. ‘아이고, 네가 있어서 행복하다. 엄마는 너 보는 낙으로 산다’ 이런 기분으로 살아야 애가 잘 돼요. 그 이유는 아이가 엄마를 즐겁게 해준다는 얘기 아니에요? 그러면 아이가 효자라는 얘기거든요. 밥해주고 빨래해주는 것은 조금 힘들지만 애들이 커가는 것을 보면서 항상 즐거워야 해요. 아이가 그런 불만을 말하면 ‘아이고 그래그래. 그래도 잘났다. 엄마 보기에는 이 세상에서 네가 제일 예쁘다’ 이렇게 웃고 넘어가야지 그것을 애들처럼 하나하나 다 가슴에 새기고 힘들어 하면 안돼요. 애를 둘이나 낳은 여자인데 지금 질문자는 애 같은 짓을 하고 있어요. nbspnbsp어른이 되세요. 아이만 낳는다고 어른이 되는 것이 아니라, 아이들 하는 얘기를 그냥 웃어넘겨야 돼요. 빙긋이 웃으면서 ‘그래그래’ 하면서 그것을 가슴에 담아두지 말고요.”nbsp“감사합니다.” nbspnbsp“옆에 앉아 있는 딸에게 마이크 한번 줘봐요. 스님하고 얘기하면 재미있어요. 학생은 뭐가 엄마한테 불만이에요? 그냥 얘기해봐요.”nbspnbsp지금부터는 딸과 스님의 대화가 이어집니다.nbspnbsp“불만 없어요.”nbspnbsp“미인이지요? nbsp제가 얘기했잖아요. 잘 생긴 사람이 성형한다구요. 스님같이 못생긴 사람은 그런 생각을 할 여가도 없어요. 학생은 지금 뭐가 힘들어요?”nbspnbsp“힘든 것 없고요. 그냥...”nbsp“그런데 왜 엄마가 힘들다고 그래요?”nbspnbspnbsp“힘든 것 없는데 왜 울어요?”nbsp“그냥 눈물이 막 나요.”nbsp“엄마 눈물 닮았구나. 엄마 딸 아니라 그럴까 싶어서 그래요. 공부하는 것이 힘들어요?”nbspnbsp“공부하는 게 힘든 게 아니고, 그냥 저보면 한심해요. 그냥 제가 싫어요. 그냥 다 불만이 많아요. 얼굴도 그렇고 그냥 다요. 그냥 못 생겼어요.”nbspnbspnbspnbsp“그냥 못 생겼어요? 영화배우들을 너무 쳐다보다가 저래 생겨놓으니 그래요. 영화배우보다 못 생긴 것은 맞아요. 못 생겼어요. nbspnbsp자, 여기 스님 책상 앞을 봐요. 여기 마이크 스탠드가 있고 여기 물병이 있고, 여기 물잔이 있어요. 자, 여기 물병을 들고 마이크 스탠드하고 비교하면 물병은 커요? 작아요?”nbspnbsp“작아요”nbsp“물잔하고 비교하면 커요? 작아요?”nbsp“커요.”nbspnbsp“그러면 이 물병 하나만 딱 놓고 보면 커요? 작아요?”nbsp“모르겠어요.”nbspnbsp“지금 본인이 한 번은 크다고 그러고 한번은 작다고 그랬는데 비교해서 얘기했잖아요. 그러면 비교하지 말고 물병 하나만 딱 놓고 보면 커요? 작아요? 물병 이것 자체는요?”nbsp“몰라요.”nbspnbsp“그러니까 이 물병은 이 스탠드하고 비교하면 작다. 이 물잔하고 비교하면 크다가 돼잖아요. 그러면 크다 작다라고 하는 것은 이 물병에 있는 것이 아니고, 내 인식 상에 있어요. 즉 스탠드하고 비교해서 인식할 때는 작다고 머리가 인식을 하고, 물잔하고 비교해서 인식할 때는 크다고 머리가 인식을 하는 거예요. 그러니 이 물병은 크다고 할 수도 없고, 작다고 할 수도 없어요. 그런데 이 물병이 나한테 인식이 될 때 어떤 때는 크다고 인식이 되고, 어떤 때는 작다고 인식이 된다 이말이에요. 그러니까 큰 것하고 비교하면 작다고 인식이 되고, 작은 것하고 비교하면 크다고 인식이 되는 거예요. 그러니 물병 자체를 두고 크냐 작냐고 물으면 뭐라고 말하기가 어렵지요. 그래서 크냐 작냐고 묻는 그 용어를 빌려서 대답을 하면 “큰 것도 아니고 작은 것도 아니다” 이렇게 대답을 해요. 무슨 말인지 이해했어요?nbspnbsp스님이 묻기를 ‘크냐? 작냐’고 하면 ‘큰 것도 아니고 작은 것도 아니다’가 되고요. 스님이 묻기를 ‘무거우냐? 가벼우냐?’고 하면 ‘가벼운 것도 아니고 무거운 것도 아니다’가 되고요. ‘새것이냐? 헌것이냐?’ 라고 물으면 ‘새것도 아니고 헌것도 아니다’가 되고요. ‘긴가? 짧은가?’ 라고 물으면 ‘긴 것도 아니고 짧은 것도 아니다’가 됩니다. 즉 존재 그 자체는 존재 그 자체일뿐이지, 이것은 큰 것도 아니고 작은 것도 아니에요. 이것을 한문으로 고쳐서 말하면, ‘비대비소’, ‘큰 것도 아니고 작은 것도 아니다’. 이것을 선적이 언어로 표현하면 ‘다만 그것이다’, ‘다만 그것일 뿐이다’. 이것을 철학적인 용어로 말하면 “공이다” 그래요.nbspnbsp그러면 여기서 자네는 지금 이 물병을 가지고 작다고 얘기해요. 작다고 얘기할 때는 스탠드하고 비교할 때 작다고 했는데, 지금 본인이 못생겼다 라고 하는 말은 지금 본인이 영화배우하고 본인의 얼굴을 비교해서 못생겼다 이렇게 생각한다 이말이에요. 그러면 본인은 죽을 때까지 못생겨요. 이 물명을 계속 스탠드하고만 비교하면 나는 영원히 작아요. 그래서 내 존재 자체가 작은 줄 아는데 원래는 작은 것이 아니라는 거예요. 비교를 스탠드하고 하기 때문에 작다고 인식되는 거예요. 이 물컵하고 비교를 하면 크다고 인식이 돼요. 자네가 2m 키의 사람과 비교를 하면 늘 작아요. 그런데 150cm 키의 사람과 비교하면 늘 커요. 그러면 자네는 큰 것도 아니고 작은 것도 아니고, 잘 생긴 것도 아니고 못 생긴 것도 아니고, 아름다운 것도 아니고, 추한 것도 아니고, 착한 사람도 아니고 악한 사람도 아니고, 공부 잘하는 사람도 아니고, 공부 못하는 사함도 아니고, ‘나는 그냥 나다’ 이거예요.nbspnbsp공부 잘하는 학생들과 반 편성을 하면 자네는 꼴찌를 해요. 그런데 본인보다 공부를 못하는 학생들과 반 편성을 하면 본인은 일등을 해요. 그러면 비교해서 일등하고 비교해서 꼴찌를 하는 것이지, 일등한다고 공부 잘 한다, 꼴찌한다고 공부 못 한다. 이렇게 말할 수가 nbsp없어요. 그래서 이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것들은 있는 그대로 소중하다, 있는 그대로 완전하다 이렇게 말하는 거예요.nbspnbsp그래서 다시는 본인보고 못 생겼다느니, 잘 생겼다느니 하지 말고, 본인이 못 생겼다 해도 본인을 잃어버리는 것이 되고, 본인이 잘 생겼다 하고 우월감을 가져도 본인을 잃어버리는 거예요. 본인은 잘 생긴 것도 아니고 못 생긴 것도 아니고, 키가 큰 것도 아니고 키가 작은 것도 아니고, 잘난 것도 아니고 못난 것도 아니고, 공부 잘하는 것도 아니고 공부 못하는 것도 아니고, 착한 아이도 아니고 악한 아이도 아니고, 나는 다만 나다. 그것은 다만 그것일 뿐이다.nbspnbsp그래서 이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것들은 있는 그대로 다 존엄하다. 소중하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가 차별해서는 안 된다. 피부 빛깔이 검다고 희다고 차별해도 안 되고, 남자 여자라고 해서 차별해도 안 되고, 신체 장애 유무를 가지고 차별해도 안 되고, 성적 지향을 가지고 차별해도 안 되고, 태어남에 의해서 자연적으로 주어진 것을 가지고 차별하는 것은 옳지가 않다. 이것이 불교 철학의 가장 핵심이에요. 그러면 지금 본인은 잘 생겼어요? 못 생겼어요?”nbsp“못 생긴 것도 아니고 잘 생긴 것도 아니에요.” nbsp“그래요. 그럼 본인은 공부 잘 해요? 못 해요?”nbsp“못하는 것도 아니고 잘하는 것도 아니에요.” nbsp“나는 나다, 아시겠어요? 지금 자네 실력을 가지고 전국에서 꼴찌하는 학생들 모아놓고 그 반에 자네가 들어가면 일등을 하겠지요. 전국에서 일등하는 아이들만 모아놓은 자리에 자네가 들어가면 꼴찌 하겠지요. 그러니 꼴찌했다고 공부 못하는 것도 아니고, 일등했다고 공부 잘하는 것도 아니에요. 이번 시험에 성적이 올라갔다고 내 실력이 좋아진 것도 아니고, 낮아졌다고 나빠진 것도 아니에요. 내가 공부 안하고 놀아도 다른 친구가 내보다 더 놀아버리면 내 성적이 올라가고, 내가 죽어라고 공부해 갔는데 다른 애들이 나보다 더 열심히 공부해버리면 성적이 못 나오고 그러는 것이지요. 시험은 다만 상대적 평가를 할 뿐이에요. 그러니 본인 자신을 소중하게 여겨야지, 본인을 못났다든지, 열등의식을 가져도 안 되고 거꾸로 잘났다 하는 우월의식을 가져도 안돼요. 알았지요?”nbspnbsp“네, 감사합니다.” nbsp“그래요. 딸이 엄마보다 훨씬 낫네요. 딸은 말귀를 알아듣는데 엄마는 도대체 말귀를 못 알아들어요. 한국말이 서툴다고 못난 여자도 아니고, 본인은 뭘 못하는 사람도 아니고 ‘나는 나일 뿐이다’ 그런 자신감을 가져야 애들이 좋은데 엄마가 저렇게 자신감이 없으니까 아이들도 영향을 받는 거예요. 알았지요? 그러니까 앞으로 자꾸 나는 못한다 이런 생각을 하면 안돼요. 그렇다고 나는 잘났다 이래도 안되고요. 잘못했으면 ‘죄송합니다’ 이러면 되고, 틀리면 ‘아이고 틀렸네요, 고치겠습니다’ 하고, 모르면 물어서 알면 되고요. 그런것을 가지고 우리가 위축될 필요가 없어요.nbspnbspnbsp스님이 지금 말을 쉽게 해도 이것은 굉장한 철학이에요. 이것이 전부 반야심경, 금강경 교리의 요점이에요. 우리가 지금 믿고 있는 종교는 성인의 말씀은 성인의 말씀으로 따로 하고, 생활은 생활대로 따로 하고 그래서 지금 문제예요. 그래서 절에 다니고 교회에 다녀봐야 삶의 문제가 해결이 안 되는 것은 그것은 하늘의 얘기 따로 두고 땅의 얘기 따로 두고 이렇게 살기 때문에 그런 거예요. 땅과 하늘이 둘이 아니에요.”nbsp질문한 엄마도 활짝 웃고, 엄마와 갈등하던 딸도 활짝 웃고, 강연장 전체에 잔잔한 감동이 일었습니다. 청중들은 다시 한번 모녀에게 뜨거운 박수를 보내주었습니다.nbspnbsp오늘은 강연장 대여 시간을 엄격히 지켜야 하는 곳이라 닫는 말씀을 따로 하지 못하고 시간이 다 되어 곧바로 강연을 마치셨습니다.nbspnbsp2시간 20분간의 강연이 끝나고 바로 스님의 책 사인회가 있었습니다. 오늘 청중 중에는 일본인들도 간혹 보였는데 어떤 분들은 한국어를 공부하는 중이라 어느 정도는 알아듣지만 좀 어려운 내용일 때는 알아듣기 힘들었다고 하고 또 어느 부부는 부인이 열심히 수첩에 스님의 말씀을 일본어로 적어주면서 남편에게 내용을 전달하는 훈훈한 모습을 보여주기도 했습니다.nbspnbsp강연을 듣고 감동한 분들이 책을 사서 스님의 사인을 받으면서 감사하다고 인사하는 분이 많았습니다. 장소 대관 시간의 제약 때문에 스님께서는 서둘러 책 사인을 하시면서도 웃으시며 사람들의 인사를 받아주셨습니다.nbspnbspnbsp강연을 잘 치러낸 봉사자들과 단체 사진을 찍었습니다.nbspnbspnbsp그리고 강연 담당자 부부에게 책을 선물하고 사진도 같이 찍었습니다. 특히 이 부부는 신혼여행을 갔다가 이번 해외 100강 중 핀란드 강연에 참가하여 스님께 나고야에서 뵙겠다고 인사를 했는데 마침 나고야 담당자가 중간에 비는 바람에 스님과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 강연을 담당하여 열심히 준비해왔다고 하여 인상적이었습니다.nbspnbspnbsp그리고 또 하나 특이한 것은 오늘 봉사자는 거의 대부분 학생들로서 처음 자원봉사를 해보며 함께 이루는 기쁨을 경험한 게 좋아서 다음에도 꼭 하고 싶다는 말을 하는 사람들이 많았습니다.nbspnbspnbsp▲ 한금화 동아시아 지구장님과 함께 마음나누기nbspnbspnbsp오늘은 바로 교토로 이동해야 했기 때문에 스님께서 먼저 들어가 쉬시지 못하고 봉사자들의 나누기 시간을 기다려 주시고 정리정돈과 짐 챙기는 것도 손수 함께 도와주셨습니다.nbspnbspnbsp서둘러 짐을 챙겨 바깥으로 나와 보니 하얗게 눈이 내리고 있었습니다. 나고야의 첫 눈이라고 하는데 차량 봉사를 하신 김세환님은 약간 들뜬 목소리로 첫 눈이 오는 날 스님을 모실 수 있어서 너무나 뜻 깊은 날이라고 기뻐했습니다.nbsp교토로 가는 길에 밤인데도 약간의 정체가 있어 일본에서는 강연장 근처에서 자고 밥은 도시락으로만 먹어야겠다며 일본의 교통 정체를 경험하며 함께 웃었습니다.nbsp교토의 호텔에 도착하니 1시가 넘었습니다. 내일은 하루에 2번의 강연이 있는 날입니다. 오후 2시에는 114번째 강연이 교토에서, 저녁 6시30분에는 이번 세계 100회 강연의 마지막 강연인 115번째 강연이 오사카에서 열릴 예정입니다.nbspnbsp지난 8월26일 프랑크푸르트에서 시작한 첫 번째 강연이 엊그제 같은데 벌써 115개 도시를 거쳐 마지막 115번째 강연이 드디어 내일 열립니다. 마지막 강연을 앞두고 있으니 만감이 교차하는 것 같습니다. 내일 마지막 강연 소식까지 생생하게 전해드리겠습니다.nbsp▼nbsp법륜 스님의 세계 100회 강연, 지난 날짜 소식 보기

2014.12.18. 54,285 읽음 댓글 43개

2014.12.16 세계 100회 강연(112) 일본 가와구치 川口市

nbsp안녕하세요. 오늘은 세계 100회 강연 중 112번째 강연이 일본 가와구치에서 열리는 날입니다. 그리고 일본에서는 어제 도쿄에 이어서 두 번째 강연이 열리는 날입니다.nbspnbsp가와구치는 일본 사이타마 현 남동부의 아라카와 강 북안에 있는 인구 약 50만 명의 시입니다. 사이타마 현 내에서는 사이타마 시에 이어 두 번째로 인구가 많은 도시입니다.nbspnbsp▲ 일본 가와구치 nbsp그간 다른 나라에서의 일정에 비해 여유 있는 아침을 맞이할 수 있었는데 7시에 아침식사를 하셨습니다. 식사를 하시면서 “어제 강연 후 책 사인회 때 고맙다고 인사하면서 눈물을 글썽이는 분들이 많았다”고 하시며 타국, 특히 일본에서 사는 교민들의 아픔에 안타까워 하셨습니다. 일본인들이 외국인에 대해 배타적인 성향이 강한데다가 일제 강점기때부터 살아온 재일교포들은 일본에서 항상 약자의 입장에 있었기 때문에 매사 행동을 조심하면서 한국인임을 숨기며 살아왔다고 하니 그 어려움은 상상하기도 어려운 것 같습니다. 이런 재일교포뿐 아니라 80년대 이후 일본에 온 자영업자나 유학생, 주재원들을 의미하는 이른바 뉴 커머들 또한 타국에서의 삶이 녹록치 않음을 봉사자들의 말을 통해 알 수 있었습니다.nbspnbsp식사 후에는 잠시 휴식 시간을 가진 뒤 도쿄에서 제일 오래되었다는 센소지라는 절에 가보기로 하고 아사쿠사로 향했습니다. 어제까지는 스님께서 건강이 안 좋으셔서 아무데도 가실 수 없었는데 아침에 스님이 좀 나아지셨는지 한번 가보자 하셔서 나서게 됐습니다. 센소지는 우리나라 조계사와 같이 시가지 내에 위치하고 있고 그 주변은 인사동처럼 전통상점들이 즐비하게 늘어서 있어 많은 일본인들이 이곳을 찾고 있었습니다. 센소지는 건물들이 크고 깔끔하게 지어졌고 정원도 잘 꾸며놓은 곳이었습니다.nbspnbsp▲nbsp도쿄에서 제일 오래된 절 센소지 방문nbsp중간에 어느 작은 다리 아래에 노는 잉어들이 파란색이라서 놀라서 다시 보니 물속에 파란색 LED 등을 켜놓은 것입니다. 물이 파란색으로 보이니 물고기들도 파랗게 보이는 것이었습니다.nbspnbspnbsp센소지에 도착했을 때 이미 비가 꽤 내리고 있어서 우산을 쓰고 구경을 다녔는데 혹여나 스님께서 감기라도 들게 되면 남은 강연에 차질이 생길까봐 한군데 더 가보려던 계획을 취소했습니다.nbspnbsp스님께선 점심 식사로 500엔 이하의 서민들이 즐겨먹는 우동을 먹어보자고 하셔서 차량 봉사하시는 서현관님이 급히 인터넷을 검색하여 유명한 우동 체인점을 찾아 갔습니다. 종업원들의 빠른 손놀림으로 여러 종류의 우동이 서비스되고 있었고 우동값은 290엔이라 저렴한데 같이 파는 고구마, 호박, 새우 등의 튀김은 값이 비싸서 거기 온 일본인들은 주로 우동만 먹는 모습을 볼 수 있었습니다.nbspnbsp▲ 점심식사. 290엔짜리 우동. nbsp식사 후 숙소로 돌아와 간단히 짐 정리를 하거나 휴식을 취하다가 저녁식사 시간에 맞춰 강연 봉사자분들이 추천하는 식당으로 저녁식사를 하러 갔습니다. 원래 3분 정도 걸린다는 거리라 하여 거기에 맞게 시간을 계산했는데 저녁 퇴근시간이라 그런지 길이 막혀서 10분이 걸리고 음식 주문에도 시간이 예상외로 많이 소요돼서 스님께서는 음식이 나오자마자 급히 드시다가 다 드시지도 못하고 강연 장소로 먼저 출발하셨습니다.nbspnbsp오늘 강연장은 정확하게 10시까지 모든 것을 끝내야 하는 곳이라 강연 전에 사인회를 먼저 하셔야 했습니다. 비가 오는 쌀쌀한 날씨라서 청중이 많지 않을 것이라고 걱정했는데 예상 외로 많은 분들이 자리를 채우고 있었습니다.nbspnbsp▲ 오늘 강연장, 리리아 홀.nbspnbspnbsp일본에서는 이런 날씨에 집에 가는 습성이 있어 절반 정도는 행사가 취소된다고 하는데 준비된 150석이 대부분 채워져서 봉사자 포함하여 약 130여명이 참가한 가운데 112강이 진행되었습니다.nbspnbsp“즉문즉설은 여러분들이 살아가면서 겪는 고뇌를 먼저 드러내놓고 저와 함께 대화하는 것입니다. 인생에는 정답이 없어요. 어떻게 살아야하는지 정해진 길이 없습니다. 자기 좋을 대로 살면 돼요. 문제는 자기 좋을 대로 살면 행복해야 되는데 자기 좋을 대로 사는데 인생이 괴롭다는 겁니다. 왜 그런가? 세상이 내 뜻대로 안되기 때문에 그래요. 그래서 인생에 의문이 듭니다. 그런 문제들로 인해 혼자 끙끙 거리고 고민해봐야 시간만 낭비하고 해결이 잘 안되죠. 주위 사람들도 힘들게 만들고요. 이런 것들을 꺼내놓고 잘 살펴보면 혼자 생각할 때는 해결 불가능한 것 같은 것도 같이 보면 쉽게 해결할 수 있는 길을 찾을 수가 있습니다.nbspnbsp그러나 사실 개인 얘기를 꺼내놓기 어렵잖아요. 특히 일본 사람들은 속 얘기를 잘 안한다고 하던데 맞아요? 그런데 여러분들도 일본 살다보니 닮았을 것 아니에요? 그래서 속앓이를 많이 하시는데 오늘은 일본에 살지만 우리 한국 사람끼리 모인 자리니까 속에 있는 얘기들을 좀 꺼내놓고 스트레스를 좀 풀고 가세요. 눈치 보지 마시고요. 언제 또 볼 거라고 눈치를 보고 그러세요. nbspnbspnbsp개인 얘기도 좋고요. 사회 얘기도 좋습니다. 종교 얘기, 과학 얘기, 자연환경 얘기도 좋습니다. 주제는 상관 없어요. 자신이 고민하거나 의문이 있거나 하는 내용이 있으면 편안하게 내어놓고 대화를 하면 되겠습니다. 자, 그럼 시작하겠습니다.”nbsp그러면서 질문을 받았습니다. 오늘은 총 5명의 질문자가 질문을 했습니다.nbspnbsp“둘째 아이를 위해서 집에서 작은 공부방을 시작했었는데 어떻게 하다보니 너무 커져버렸습니다. 미국, 필리핀 그리고 일본 직원들과 일을 하다보니 너무도 다른 언어와 문화 때문에 그 안에서 일어나는 직원들의 질투와 다툼을 해결하는 것이 스트레스였습니다. 올해는 미군 감축으로 원생들이 많이 줄어 수입이 적어졌습니다. 이렇게 계속 간다면 제가 이 일을 그만두는 것이 맞는 건지 스님은 어떻게 생각하십니까?”nbspnbsp“저는 재일교포 3세인 남편을 만나 올해로 결혼한 지 20년이 되었습니다. 최근 남편과 딸에 대한 교육문제로 충돌이 있는데, 남편은 일본식 교육을 원하고, 저는 한국식으로 교육을 하고 싶어합니다. 딸의 장래를 위해 어떤 식으로 해야할지 조언해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nbspnbsp“스님 말씀 듣고 불교에 대해 공부하면서 궁금한 점이 생겼는데요. 첫번째 과보는 피할 수 없다 하셨는데, 세상에는 나쁜 짓 하면서도 떵떵거리며 사는 사람이 있습니다. 이런 상황을 어떻게 이해해야하는지 혼란스러운데 그에 관한 스님 의견을 듣고 싶습니다. 그리고 제가 일본 회사에서 일을 하고 있는데요. 회사에서 한국에 관한 비판을 들으면 신경이 민감해 지곤 합니다. 덤덤하게 대응하고 싶은데, 마치 부모님 욕을 듣는 것 같은 부분이라 쉽게 감정 조절이 안 됩니다. 이럴 때 어떻게 해야 할까요?”nbsp이렇게 다양한 질문에 대해 스님께서는 정성껏 답변을 해주셨습니다. 오늘 강연도 어제 신주쿠에서와 같이 스님과 청중들이 하나가 된 듯 호응이 좋아 스님 말씀에 청중들이 파도처럼 일렁이는 듯한 모습이었습니다. 질문자는 5명이었지만 다소 꺼내놓기 어려운 질문도 솔직하게 내어놓고 스님의 조언을 구하니 청중들의 집중과 이해가 좋았고 처음엔 다소 굳어있던 청중들의 표정이 강연이 진행된 2시간 20분 동안 환하게 바뀌어져 있었습니다.nbspnbsp오늘은 그 중에서 일본인 남편과 결혼해서 살고 있는데 남편이 자주 삐져서 너무 힘들다는 아내의 질문과 스님의 답변을 소개합니다. 문화가 서로 다른 상대와 어떻게 화합해서 살 수 있는지 명쾌한 답변 속에 시종일관 웃음이 빵빵 터지면서도 많은 배움이 있었던 유익한 시간이었습니다.nbspnbsp“일본 사람이랑 결혼해서 1살짜리 남자 아기가 있어요. 아기는 건강하고 남편은 성실하게 살고 있는데요. 그런데 남편이 자주 삐쳐요. 1년 중 300일은 보통 남자들의 10배정 도로 자상해요. 밖에서도 좋은 사람이지만 저한테도 굉장히 잘하고 그래요, 그런데 평소에 본인이 잘하고 배려하던 것들이 스트레스로 돌아오면 말도 안 되는 작은 것을 가지고 저한테 짜증을 부리고 삐쳐서 말도 안하고 혼자서 텔레비전만 보고 핸드폰 게임만 하고 있고, 그럴 때면 제가 이런 생각을 안하고 싶은데도 ‘내가 너 하나 믿고 이 나라 와서 혼자서 애 키우면서 이러고 있는데’ 이런 생각이 올라오면서 막 서러워요.nbspnbsp사실 생각해 보면 누가 내밀어서 내가 이 나라에 온 것도 아니고, 내가 내 행복을 찾아서 여기 와서 둘이 열심히 살고 있는데도 왜 그렇게 삐지는 걸까요? 평소에는 다 맞춰주고 웃으면서 넘어가는데, 피곤이 쌓이면 제 평소 행동에 대해서 ‘너는 왜 그러냐?’ 그러면서 넘어가지를 않는 거예요. 연애할 때부터 남자가 삐돌이라는 것을 알고 연애를 했어요. 그것을 감안하고 결혼을 했는데, 변하지 않고 여전히 삐돌이가 되어서 싸우다 보면 막 눈물이 나요. 이런 것이 계속 주기적으로 반복이 되니까 힘들어요.”nbspnbsp“질문자도 감정 기복이 심한 것 같은데요.”nbsp“네, 제가 좀 그런 것 같애요. nbsp울고 싶지 않은데요. 솔직히 너무 자잘한 것을 갖고 삐지기 때문에 일일이 상대하고 싶지 않아요.”nbsp“남편도 남편 심리상태를 보면 본인이 어릴 때 자란 환경이 있어서 남편도 자기가 어쩔 수 없어서 그런 것도 있어요. 질문자가 감정기복이 심한데 남편이 참다가 참다가 남편도 터져서 그래요. 질문자가 평소에 본인 감정 기복을 좀 조절을 하면 남편이 그렇게 삐지는 횟수가 줄어들 거예요. 남편이 많이 참기 때문에 조그마한 일을 가지고도 나중에 터지는 거거든요. 질문자가 평소에 남편의 참는 압력을 줄여주면 삐질 횟수가 좀 적지요.”nbsp“평소에 제가 거의 맞춰주는 편인데요.”nbspnbsp“남편이 질문자를 맞춰주는 것 같은데요.” nbspnbsp“물론 남편도 맞춰주지만, 저도 잘하는데요.”nbsp“잘한다 이런 생각을 하지 말고 기도를 좀 해야 돼요. 질문자가 감정 기복이 좀 심해요. 감정 기복이 좀 심하니까 남편이 참다가 자꾸 터지는 거예요. 주로 어떤 것을 가지고 갈등이 생기는지 좀 구체적으로 얘기를 해봐요.”nbsp한동안 괜찮다가 그저께 삐쳤는데, 저녁에 기분 좋게 밥을 먹고 애기를 재우고, 제가 와인을 한잔 마신다고 들고 거실에 들어왔어요. 거실 바닥이 카펫트인데 제가 와인잔을 카펫트 위에 올려놓은 거예요. 그런데 텔레비전을 보고 있다가 넘어뜨렸죠. 그 와인잔이 카펫트에 쏟아졌어요. 내가 어떡하지 하고 있는데 애기가 깨어서 방에서 우는 거예요. 남편은 이미 좀 열을 받아가지고 있는 상태였어요. 카펫트 위에 와인잔을 올려놓은 상태부터가 이미 열을 받아 있는 거예요. “너는 도대체 왜 그렇게 주위가 산만하냐?”, “너는 또 저렇게 해서 카펫트 위에 넘어뜨리냐?”고 하면서 팔짱을 끼고 보고 있는 거예요. 애기가 우니까 저는 애기한데 가잖아요. 그러면 남편이 씩씩 거리면서 이제 카펫트를 빨아요.nbspnbsp나중에 애기 재우고 nbsp제가 다시 와서 “내가 쏟았으니까 내가 할께, 내가 치울게” 라고 하면 이미 삐져서 그때부터 말을 안 해요. 물어도 대꾸도 안하고요. 그러고서, 오늘은 쉬는 날인데 하루종일 입술 삐죽 해가지고, 밥 먹을 거냐고 물어봐도 “몰라” 그렇게 하고 있는 거예요. 그러면 “왜 삐졌냐?”고 계속 묻고 하면, “사실은 어제 와인잔을 쏟았을 때부터”라고 하는 거예요. “열을 받으면 치우지 마라, 당신이 열 받으면서 치우는 것이 나는 싫다. 차라리 내버려두면 내가 쏟은 것을 내가 치우지, 당신은 친절을 베풀어 놓고 그것을 가지고 삐져가지고 일주일 동안 nbsp말을 안 하고 그러냐, 나는 그것이 싫다” 라고 말을 해요.nbsp“네. 하나의 구체적인 예를 들어보니 질문자는 일본 사람하고 결혼할 성격이 아니네요. 개인이 문제라기보다는 질문자의 성격이 일본 문화하고 너무 안 맞아요. 일본 사람들은 아주 작은 것도 굉장히 깔끔하게 용의주도하게 하는데, 와인잔을 가지고 와서 카펫트 위에 쟁반도 깔지 않고 놓는다는 것 자체가 일본 사람이 볼 때는 터무니없는 짓을 한 거예요.”nbsp“맞아요. 그런 식으로 저를 보는 거예요.”nbsp“한국사람 국제 망신시키고 있어요.” nbspnbsp“결국에는 제가 “알았다. 이제 와인잔은 카펫트 위에 안 올려 놓겠다” 이렇게 해서 화해하고 나오긴 나왔는데요.”nbsp“그래도 그것은 질문자의 행동이 ‘잘못해 놓고 사과 한마디 하면 된다’, nbsp‘놔두세요. 내가 알아서 빨게요’ 하는 그런 생각이 잘못 되었어요. 어떻게 잘못을 해놓고 ‘내가 쏟든지 말든지 당신이 관여 안하면 되지 뭐 그러냐’ 이렇게 생각하는데, 부부가 같이 사는데 어떻게 그렇게 돼요? 좀 주의를 하고 살아야지요. 일본 남자하고 살려면 일본에 좀 맞춰서 살아야지 한국의 선머슴아도 아니고요. 말괄량이처럼 그렇게 사니까, 사랑 안하면 벌써 헤어졌을 건데, 당신을 사랑하니까 어떻게 하지도 못하고 그러니까 삐질 수밖에 없는 거예요. 그것이 어떻게 하루 만에 풀어지겠어요? 자꾸 반복되니까 ‘아이고, 저것 때리지도 못하고, 저것을 어떻게 할까? 내가 말을 해도 듣지도 않고...’ 그러니 말이 하기 싫은 거예요.nbspnbsp일본에 시집을 왔으면 일본의 그런 문화를 조금 익혀야 돼요. 우리는 절에 살면서 차를 컵에도 따라 마시고, 밥 먹고 나서 밥그릇에도 따라 마시고 우리는 절에서 그렇게 살아요. 그러나 일본 사람은 차 문화도 요래 무릎 꿇고 앉아서 따라주는데 스님이 봐도 속이 터져서 죽을 것 같은데요. 문제는 그렇게 하는 사람들한테 시집을 왜 왔냐는 거예요. 그런데 와인잔을 가지고 와서 카펫트 위에 무식하게 그냥 놓아요? 아이고, 스님 같이 밥그릇에 커피 받아 마시는 사람도 카펫트 위에 그냥은 안 놓아요. nbspnbsp그런데 한국 사람들이 좀 문제예요. 호텔에 들어가면 한국 사람들은 과일이나 커피 이런 것을 침대 위에 턱 올려놓고 그러거든요. 그러면 안돼요. 스님하고 같이 다니는 일행도 그렇게 하지 말라고 스님이 잔소리를 얼마나 하는데도 잘 안돼요. 그 나라마다 가면 예의가 있는데 막 함부로 해요. 한국 사람들의 제일 큰 특징이 남이 보든지 말든지 아무데나 벌여놓고 밥 먹고 냄새 풍기고 함부로 해요. 이 세상에 제일 함부로 하는 사람이 한국 사람이라면, 제일 눈치보는 사람이 일본사람이니까, 한국하고 일본은 굉장히 가깝지만, 이 눈치 문화는 굉장히 차이가 나요. 그래서 진짜 일본 사람들은 숨막힐 정도로 너무 남의 눈치를 보고, 한국 사람은 포항제철소에 갔다 온 사람처럼 진짜 너무 뻔뻔스럽게 남의 눈치 안보고 아무데나 벌리고 그래요. nbspnbspnbsp그러니 이 둘이 가까이 있고 비슷한데 결혼하면 많이 부딪힐 수밖에 없어요. 질문자가 일본사람하고 결혼을 했으니까 지금 애기까지 있는데 애기만 없으면 ‘그 성질을 가지고는 일본사람하고 살기 어렵다, 헤어져라’ 고 하겠지만 , 애기가 있으니 20년은 살고 헤어져도 헤어져야 해요. 알았지요?”nbspnbsp“네”nbspnbsp“이렇게 엄마가 스트레스를 받으면 애기한테 나빠요. 이것은 문화 차이이기 때문에 누가 옳다 그르다 할 수는 없지만 질문자가 이런 것을 가지고 스트레스를 받으면 애기한테 굉장히 나빠요. 그러니까 질문자가 남녀의 문제로 보지 말고, 일본 것이 다 좋다가 아니라, 애기 엄마로서 내가 스트레스를 안 받기 위해서 남편이 몇 가지를 얘기하면 남편이 지적하는 것 몇가지를 맞춰주는 것이 좋아요.nbspnbsp결혼이라는 것은 서로 맞춰서 사는 거예요. 내가 상대에게 100 맞춰서 살면 결혼 생활은 100 성공해요. 50 맞추면 50 성공하는 거예요. 그래서 결혼을 할려면 최소한 50는 맞춰야 해요. 50는 내 것을 포기해야 돼요. 이것을 움켜쥐고 결혼을 하면 부딪쳐서 못살아요. 그러니까 그럴 때는 사과를 정중하게 해야 돼요. 질문자는 일본 수상을 닮은 것 같아요. ‘어제 내가 사과를 했잖아’ 지금 이런 식이잖아요. nbspnbsp‘아이고 여보 미안해요.’ 그 자리에서 애기 우는 것 신경쓰지 말고 남편부터 먼저 달래야 해요. 애기가 울어도 놔두세요, ‘여보, 미안해요. 내가 부주의해서 쏟아서 미안해요.’ 남편이 말 안해도 내가 12번이라도 ‘미안해요, 미안해요’ 라고 그 자리에서 넙죽 절을 하고 애기가 울어도 카펫트부터 먼저 다 닦아놓고 해야 돼요. 애기는 좀 울어도 큰 지장이 없어요. 작은 애기보다 큰 애기가 더 중요하지요. 질문자가 우선 일본 문화에 대한 이해가 부족해요. 한국에서 연애했어요? 일본에서 연애했어요?”nbsp“연애는 일본에서 했어요. 일본에 유학을 왔고, 지금 일본에서 1년 살았어요.” nbspnbsp“1년 살았는데도 일본에서 살지 않는 나보다 일본 문화를 모르네요. 일본, 한국을 떠나서 서로 맞춰야 돼요. 그런데 종교가 다르거나 민족이 다르고, 문화가 다르면, 내가 맞추는 것이 마치 내가 상대에게 지는 것 같고, 내가 한국 사람으로서 일본사람에게 지는 것 같은 그런 마음이 생겨요. 자기 자존심을 자꾸 민족 문제로 환치시키면 안돼요. 그것은 잘못하는 거예요. 문화를 넘어서서 ‘여보 미안해요. 내가 부주의했어요.’ 이렇게 해줘야 합니다. 한국사람 같으면, ‘아이고, 내가 몇 번을 얘기했어. 그렇게 하지 말라구’ 이러고 말아버리는데, 여기는 문화가 안 그래요. 그러니까 질문자가 이런 것을 세심하게 배려해야 돼요. 그 사람도 해도 해도 안 되니까 말을 안 하겠지요. 그런 삐치는 성질도 있겠지만, 질문자가 알면 그것을 조절을 해줘야지요. 이런 것이 맞추는 연습이에요. 이런 것 맞추기 싫으면 스님이 되면 돼요.” nbspnbsp“네, 맞추겠습니다.”nbspnbsp“삐졌다고 자꾸 그러지 말고요. 이 사람하고 못 살겠다 그러지 말고요. 그러면 한국사람하고 결혼하지요. 일본 남자 싹싹하다고 일본 남자하고 결혼했지요?”nbsp“네”nbsp“질문자는 무뚝뚝한 경상도 남자하고 사는게 낫겠어요. 무뚝뚝한 사람은 그렇게 흘리는 것을 보고 nbsp“아이고, 지랄하고 있다” 이렇게 말은 험악하게 해도 별 게의치 않아요. “아이고 저 미친것 봐라. 내 몇번 얘기했나?” 이러고 말아요. 텔레비젼도 안보고 밖으로 나가버려요. 그래도 들어오면 풀고 그래요.nbspnbspnbsp그래서 착실할수록 빼꼬롬한게 많아요. 성질을 버럭낼수록 뒷끝이 없어요. 모든 인간이 다 그래요. 성질이 급한 사람은 뒷끝이 별로 없고, 착한 사람은 꿍해가지고 있어요. 그래서 스님이 “착한 여자가 무섭다. 조심해라” 고 하는 거예요. 착한 여자도 무서운데 착한 남자가 더 무섭지요. . 그러니까 질문자가 이왕지사 결혼을 했으니까 지금 당장 안살 것은 아니잖아요. 성질이 날 때 못살겠다 그런 마음이 들고, 365일 중에 300일은 괜찮고 65일 정도는 거꾸로 매달아 놓아도 살겠네요. 평균을 내어보면 일주일에 한번 정도예요. 일주일에 하루 정도는 ‘아, 오늘은 삐지는 날이다’ 하고 달력에 표시해 놓으세요. 이렇게 하고 사는 수밖에 없어요. 달리 방법이 없어요. 그런데 이것 말고 구체적으로 한 두개 더 최근에 일어났던 일을 얘기해봐요.”nbspnbsp“이런 얘기를 하면 제가 이상한 여자처럼 보일 것 같은데요.”nbsp“그래도 자존심은 있어가지고, 이상한 여자처럼 보이는 것이 아니고 이상한 여자예요.” nbspnbsp“이 남자가 얼마나 조그만 것에 삐지냐 하면요. 크린랩 있잖아요. 음식 쌀 때 하는 크린랩요. 제가 랩을 놓는 위치가 찬장에 있는데, 제가 항상 랩을 그 위치에 놓는다고 놓는데 남편의 말로는 제가 자꾸 잊어 먹는다는 거예요. 남편이 요리하는 것을 좋아해요. 그래서 주말에는 요리를 자기가 하고 싶어해서 기본적으로 부엌이 자기 공간이라고 생각을 해요. 자기 공간이지만 주중에는 아내가 관리를 하는 것이라고요. 그런데 아내의 관리방법이 마음에 안드는 거죠. 랩을 넣는 것을 잊어먹고 찬장문을 열어놓은 채로 잠이 든다 라든가.” nbsp“그것도 질문자 문제네요. 놓는 자리에 딱딱 놓으면 되잖아요.” nbspnbsp“아, 그렇긴 하죠. 그런데...” nbsp“그 남자하고도 못 사는데 질문자는 절에 오면 더 못 살아요.” nbsp“절에는 걸레도 딱 쓰고 딱 빨아서 그 자리에 갖다 두고, 빗자루도 딱 제자리에 걸어 두고 이렇게 해야지. 이렇게 걸레 닦고, 급하다고 이런데 아무데나 던져놓고 가다가 스님한테 잡히면 죽비로 맞아요. 그 남자는 삐지지 스님은 때려버려요. 거 봐요. 얘기하면 할수록 질문자가 문제네요. 아까도 얘기했잖아요. 일본 사람들은 정리 정돈을 잘한다고요. 그래서 사용하고 나면 딱딱 그 자리에 두고 그런데, 질문자는 랩을 쓰고 나서 여기 갖다 놓고, 저기 갖다 놓고, 두 번 세 번 얘기해도 또 잊어버리니까 찬장 문을 딱 열면 짜증이 나지요. 그러니까 삐지는 것이 아니라 ‘너는 말해도 안 된다. 너한테 말하면 뭐하나. 개한테 얘기하지’ 이렇게 되는 거예요. nbsp그래서 스님이 질문자는 일본 남자하고 살 수준이 안 된다고 아까부터 얘기했잖아요. . 일본 남자가 수준이 높다는 것이 아니라 문화 차이가 있어요. 질문자가 맞춰야 해요. 일본 문화라서가 아니라 그것은 절에 와도 고쳐야 하는 거예요. 아까처럼 와인잔은 카펫트 위에 그냥 놓는다고요? 어떻게 꿀렁꿀렁한 카펫트 위에 그냥 놓아요? 방바닥이라도 받침 없이 안 놓아요. 여기도 봐요. 한국 사람이 했으니 이랬지, 일본 사람이 받침 없이 이렇게 갖다 놓는 것 봤어요? 이것 누가 했어요? 질문자가 한 것 아니에요? nbspnbspnbsp저도 일본 문화를 좋아는 안 해요. 어제도 선물을 하나 받았는데 포장이 5겹이었어요. 봉투 있지, 하나 뜯으니 그 안에 또 있지, 또 있지. 뜯으니까 그 안에 요만한 과자 몇 개 들어 있었어요. 스님이 환경운동하기 때문에 이런 것은 싫어하는데, 그런데도 여기는 문화가 그렇다는 말이예요. 딱 받쳐서 깔끔하게 가져다 주고 하는 그런 문화가 있는데 질문자처럼 랩을 아무데나 갖다놓고 칼도 아무데나 놔놓고 그러면 짜증이 나지요.nbspnbsp특히 남자가 부엌을 자기 공간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면 조정을 해야 돼요. 남이 사용해도 딱 제자리에 두는 그런 문화인데 자기 집에서 랩을 쓰고 아무데나 놓아두니 남편이 신경이 쓰이는 거예요. 그러니 질문자가 월요일부터 금요일까지는 함부로 사용하더라도, 금요일 오후에는 부엌 주인이 오니까 매뉴얼대로 정리를 해서 찬장문도 딱 닫아놓고 인수인계를 해주세요. 그래서 토요일 일요일은 남편이 사용하도록 해주고, 월요일부터 출근하고 가버리면 대충 내 맘대로 사용하다가 금요일이 오면 딱 정리해서 넣어놓는 그런 센스라도 있어야지요. nbspnbsp‘남편이 조그마한 일에 삐진다’ 이렇게 말하는 것은 맞지 않아요. 질문자는 nbsp스님하고도 못 살겠어요. 그것은 질문자의 잘못이예요. 남편이 삐진다 이렇게 생각하면 안 돼요. 사랑하는 것도 한도가 있지 질서를 안 지키면 동거하기가 힘들어요. 말이 부부지 사실은 같이자취하는 사람 아니예요? 자취하는 사람은 뭐가 중요해요? 밥 당번은 밥 제대로 하고, 청소 당번은 청소 제대로 하고, 물건 사용하고 제자리에 놓아두고 이렇게 해야 오래 같이살지요. 그것을 막 자기 맘대로 어질러 놓고 살면 같이 살기 힘들어요. 일본을 넘어서서 질문자는 잘못하고 있어요. 엄마가 누구예요? 엄마를 불러다가 야단을 좀 쳐야겠어요. 이렇게 해가지고 시집을 보냈어요? 남편을 문제삼지 말고 그것은 질문자가 좀 고쳐야겠어요.”nbsp“네” nbspnbsp“그리고 잘못할 수도 있잖아요. 잘못했으면, ‘죄송합니다. 아이고, 정말 잘못했습니다.’ 이렇게 하세요. 일본 사람들은 잘하잖아요. ‘하이’ 이러면서요. 스님이 일본 사람들한테 제일 마음에 드는 것이 ‘하이’라고 할 때에요. 누구를 불러도 ‘하이’ 이렇게 대답을 하고요. 한국사람은 불러도 대답을 안 하고요. 그러다가 옆에 대답도 안 하고 와요. 오기는 또 와요. 오든지 안 오든지 대답을 우선해야지요. 그러니까 이것은 남편 탓하지 말고 질문자가 조금 조정을 해야 돼요. 알았지요? 애기가 몇돌 되었어요?”nbspnbsp“아직 두돌 안되었어요.“nbsp“애기 엄마가 너무 스트레스 받으면 애기한테도 안 좋고 정신적으로 굉장히 안좋으니 애기 엄마는 항상 얼굴이 밝아야 돼요. 알았지요?nbsp“네”nbspnbsp질문자도 웃고, 청중들도 질문자를 응원하는 마음으로 큰 박수갈채를 다시 보내줍니다. 너무 웃겨서 배꼽을 잡고 웃었고, 또 내용이 너무 유익해서 참 좋았던 감동적인 스님의 답변이였습니다.nbspnbsp“여러분들, 여기서 사는 게 힘들죠? 제가 전 세계를 돌아다녀보니까 이런 특징이 있습니다. 가난한 나라에 가서 사는 한국인들은 그 나라에서 비교적 잘 사는 축에 들어가요. 그래서 대부분 깃을 세우고 살고 제가 가도 다 환대를 잘 받아요. 차도 가지고 나와 태워주고 집도 크고 그래요. 그런데 독일이나 스위스나 부자 나라에 가면 대부분 한국 사람들이 그 나라에 사는 사람들에 비해서는 사는 수준이 밑이에요. 그래서 스님이 초대 받아서 가보면 방 두칸 짜리에 조그마한 집에서 살고 있어요. 이게 아이러니예요. 부자 나라에 간 한국 사람은 부자 나라에서 가난하게 살고, 가난한 나라에 간 한국 사람은 그 나라에 부자로 살고요. 그러니까 인간이 느끼는 빈곤은 상대적 빈곤이예요. 저는 가난한 나라에 사는 교민들을 더 애틋하게 생각하고 갔는데 전체를 돌아보고 느낀 점은 우리나라보다 더 잘 사는 나라에 간 교민들이 진짜 불쌍한 사람들이예요. nbspnbspnbsp그래서 일본에 사시는 여러분들도 눈치를 좀 많이 보고 사는 것 같아요. 그래서 마음 고생 좀 하겠다 이런 생각이 드는데, 이것은 상대적 빈곤감입니다. 그러니 기죽지 마시고요. 그러나 문화는 받아들여야 해요. 로마에 가면 로마법을 따라야 하듯이 일본에 왔으면 일본 문화를 지켜주면서도 한국의 정체성을 가져야지 저항감으로 버티고 여기 살면서 일본 사람들을 욕하면 여기 사는 내가 피곤해져요. 알았지요?nbspnbsp일본에서 기죽지 않고 당당하게 살더라도 일본 문화를 존중해주는 자세를 갖는 게 좋아요. 그렇게 해서 사는 게 행복해야 합니다. 행복하려고 이렇게 다 사는 것 아닙니까. 우리는 누구나 다 고민이 있는데, 이것을 내어놓고 대화를 하면서 풀어야지 혼자서 이성적으로 꾹 눌려 놓기만 하면 나중에 더 위험해져요. 그러니 서로 소통하면서 삽시다. 행복하게 사세요.”nbsp스님께서 “행복하게 사세요” 라고 말씀하시자 청중들의 뜨거운 박수갈채가 쏟아졌습니다. 오늘도 많은 분들이 조금 더 행복해질 수 있는 방법을 알게되어 기뻐하는 시간이 되었습니다. nbspnbsp강연을 마치고 이어서 강연 전에 스님 사인을 못 받은 사람들을 위해 잠시 사인회를 마저 가졌습니다. 그리고 스님께서는 오늘 강연 준비에 애쓴 봉사자들을 격려해 주셨습니다.nbspnbspnbsp봉사자들은 행사를 잘 치러냈다는 뿌듯함을 느끼는 듯 행복한 표정으로 스님과 함께 단체 사진을 찍었습니다.nbspnbspnbsp스님께서는 강연 담당자인 한정숙 보살님과 이틀 동안 차량 봉사를 열심히 해주신 김숙이 보살님, 서현관 거사님께 책을 선물하고 사진을 같이 찍으셨습니다.nbspnbsp▲ 강연 담당자 한정숙님nbspnbsp▲nbsp이틀동안 차량 운전 봉사를 해주신 서현관님nbspnbsp▲nbsp이틀동안 차량 지원 및 봉사를 해주신 김숙이님nbsp정토회 인연도 전혀 없는 분들이 만나 막막하기만 했던 강연을 잘 치러낸 봉사자들에게 스님께서는 일일이 단주를 나눠주고 악수를 청하시니 모두 기뻐하며 서로 사진을 찍어주고 하는 모습이 들뜬 잔치집 같았습니다.nbspnbspnbsp스님은 먼저 숙소로 돌아가시고 봉사자들은 서둘러 강연장을 정리하고 모여 앉아 한금화 지구장님과 함께 나누기를 했습니다.nbspnbspnbsp처음이라 얼떨떨했지만 처음 한 것 치고는 너무 잘 한 것 같다며 다음에도 꼭 불러달라는 얘기를 하는 분도 있었고 좀 더 많이 참여하지 못한 것에 대해 아쉬움을 나타내는 분도 있었습니다. 어제 신주쿠 강연과 오늘 강연 모두 참여한 봉사자는 양 쪽이 진행하는 방식이 너무 달라 당황했지만 이렇게도 저렇게도 강연이 이뤄지는 모습에 감동적이라고 했습니다. 특히 일본인 2분이 있었는데 강연담당자인 한정숙 보살님의 지인들로서 묵묵히 봉사하시는 모습도 눈에 띄었지만 나누기 하실 때 스님 말씀을 알아듣지 못해 유감이었다고 하여 청중들이 그렇게 웃을 때 내용이 얼마나 궁금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어제 신주쿠 강연에 오신 한 스님의 제안대로 일본인들을 위한 즉문즉설이 이뤄지게 되면 스님의 법문으로 그들의 철벽같은 마음이 녹아내리고 우리 교민들도 훨씬 살기 좋아지지 않을까 합니다.nbspnbsp일본에 와서 한일관계나 남북관계에 따라 우리 교민들의 삶이 큰 영향을 받는 것을 보니 우리 정부의 역할이 정말 중요하다는 것을 새삼 알게 되었고 하루빨리 한일관계과 남북관계가 평화적이고 협력적인 관계로 나아가길 기대해 봅니다.nbspnbsp오늘도 이렇게 기적처럼 112강이 훌륭하게 진행되었습니다. 과정을 몰라서 그렇지 기적은 없다는 스님의 말씀처럼 이런 해외 강연도 쉽게 하루 아침에 이뤄지는 것이 아니라 뿔뿔히 흩어져 있던 많은 사람들이 하나둘 모여 땀과 눈물로서 이뤄내는 감동적인 결과인 것 같습니다.nbsp내일은 113강이 열리는 나고야로 떠납니다. 나고야에서 또 생생한 소식 전해드리겠습니다.nbspnbsp ▼nbsp법륜 스님의 세계 100회 강연, 지난 날짜 소식 보기

2014.12.17. 47,091 읽음 댓글 41개

2014.12.15 세계 100회 강연(111) 일본 도쿄 신주쿠 Tokyo

nbsp안녕하세요. 오늘부터는 해외 115강을 멋지게 마무리할 일본 강연을 소개해 드리겠습니다. 일본에서는 총 5강이 진행되는데 이중 첫 강연이 오늘 저녁 도쿄 신주쿠에서 열릴 예정입니다.nbsp서초 법당에서 5시 45분에 출발하여 인천 공항에 도착하자, 필리핀 마닐라에서 출발하신 한금화 보살님이 먼저 와서 스님 일행을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보통 국내 메이저 항공사의 경우 비행기를 타면 기내식이 나오지만 스님께서 이용하시는 저가항공은 기내식이 제공되지 않아 서둘러 아침식사를 하고 탑승을 해야 했습니다. 탑승권 수속을 하고 식사 주문을 기다리고 공항 지하철을 타고 가거나 비행기 안에서도 스님께서는 시간을 허투루 쓰지 않으시고 짬짬이 원고 교정을 하셨습니다.nbspnbsp▲ 탐승권 수속을 기다리면서nbspnbsp▲ nbsp공항 지하철을 타고 가면서nbsp▲ 일본으로 가는 비행기 안에서nbspnbsp주말까지 청년 캠프로 강행군을 하셔서인지 일본으로 떠나는 스님의 건강은 그리 좋지 못하고 다시 편두통까지 있으신 듯하여 함께 하는 일행들이 안타까운 마음이었습니다.nbspnbsp▲ 일본 도쿄 신주쿠nbspnbspnbsp도쿄는 일본의 혼슈 동부에 있는, 메이지 시대 이후 사실상 일본의 수도이자 최대 도시입니다. 행정 구역 상으로는 도쿄 도에 속하고, 도쿄 도는 다마 지역이나 이즈 제도, 오가사와라 제도의 넓은 지역을 포함하고 있습니다. 도쿄에는 일본 각 정부 부처, 일본 천황이 기거하는 고쿄 등이 있습니다.nbsp현재 도쿄 23구의 인구는 852만 명이고 도쿄 도 전체는 1264만 명, 도쿄 권으로 보면 3400만 명 이상입니다.nbsp약 2시간 반 가량 지나자, 도쿄 나리타 공항에 도착했습니다. 일본은 굳이 소개할 필요도 없이 우리에게는 가깝고도 먼 나라로 잘 알려져 있는 나라입니다. 과거 역사 속에서도 2014년 현재에도 끝없이 이어진 떼려야 뗄 수 없는 인연의 나라이기도 합니다. 출국장으로 나가자 일본 5강 총괄 담당인 이봉식님, 가와구치 강연 담당 한정숙님, 그리고 오늘과 내일 이틀동안 차량봉사를 해주실 김숙이님과 서현관님이 마중을 나와 스님을 반갑게 맞이하였습니다.nbspnbspnbsp스님 일행과 강연봉사자들이 두 대의 차량으로 나눠 타고 숙소가 있는 가와구치로 출발했는데 보통 1시간 정도 걸리는 길이 오늘따라 차가 꽉 막혀 거의 2시간이 걸렸습니다. 우리가 이용한 도로가 한국식으로 보면 외곽순환도로라고 할 수 있는데 나리타 공항, 요고하마 항 등에서 물류가 이동하는 루트라 연말에 특히 밀린다고 합니다. 가는 길에 유명한 도쿄 디즈니랜드도 멀리서나마 볼 수 있었고 에도 가와를 건너는 다리를 지나면서 전면에 스카이트리 타워라는 높은 탑을 볼 수 있었습니다.nbspnbsp▲ 가와구찌로 가는 길에 에도가와 다리를 건너면서 본 스카이트리 모습nbspnbsp새롭게 일본의 상징으로 떠오르는 스카이트리 타워는 높이 634m의 철골 구조로 된 전파송신탑으로 두바이의 부르즈 칼리파에 이어 세계에서 2번째로 높은 건물이라고 합니다. 2011년 동일본 대지진 이후 재건 일본을 상징하는 건물이기도 한데 전망대와 쇼핑몰이 유명하다고 합니다.nbspnbsp▲ 도쿄 신주쿠의 마천루nbspnbsp길이 밀리긴 했어도 강연 시간은 저녁이라 여유있게 이틀 동안 묵을 가와구치 호텔에 도착하여 내부 식당에 미리 주문한 도시락을 먹으려는데 식당에 자리가 없어 직원의 양해를 구하고 호텔 로비에서 식사를 했습니다. 강연 전까지는 시간 여유가 있어 방에서 잠시 휴식을 취하다가 한금화 지구장과 강연 봉사자들은 강연 준비를 위해 4시에, 스님은 4시 반에 오늘의 강연이 열리는 신주쿠로 출발했습니다.nbspnbsp▲ 호텔 로비에 놓여져 있는 희망세상만들기 즉문즉설 신주쿠 강연 홍보 전단지nbspnbspnbsp신주쿠는 서울로 치면 명동에 비견되는 곳으로 특히 신오오쿠보 지역에는 한국인들이 운영하는 상점들이 많은데 최근에는 한국과 같이 커피숍 붐이 일어나 두 집 걸러 하나씩 커피숍이 성업하기도 한다는데 곳곳에 한글로 된 간판이 보여 반가운 마음이 들었습니다. nbspnbsp▲ 오늘 강연장, 아스카 신용조합nbspnbsp오늘의 강연 장소는 한국분이 운영하는 아스카 신용조합이라는 곳인데 입구에서 봉사자들이 서서 손님을 맞이하고 있었고 아직 이른 시간인데도 강연장을 찾는 분들이 심심치 않게 보였습니다.nbspnbspnbsp일반사단법인 정경문화교류회에서 재일교포 3분이 찾아오셔서 잠시 환담을 나누셨고 스님께서는 직접 책에 사인을 하셔서 선물을 드렸습니다.nbspnbspnbsp강연장에 가보니 벌써 준비한 자리에 많은 분들이 앉아 계셨고 계속해서 자리를 속속 채우고 있었습니다. 총 150석을 준비했다는데 봉사자 포함하여 약 320여명이 참가한 가운데 청중들의 따뜻한 환대를 받으며 스님께서는 강연을 시작하셨습니다.nbspnbsp“오늘 일본에 도착했어요. 115회 중에 110회 강연을 했고 이제 5번만 더 하면 끝이 납니다. 지난 번에 100회를 마치고 이제는 어려운 고비를 다 넘겼다 싶어서 거꾸로 매달아 놓아도 끝까지 가겠다 했는데, 필리핀에 태풍이 불어서 강연을 못할 뻔 했어요. 호치민에서 필리핀으로 가는 노선에 태풍이 있어서 홍콩으로 둘러간다 어쩐다 하는데 마침 세력이 갑자기 약화되어서 갈 수가 있었어요. 이제는 어려움이 없겠다 했더니, 필리핀에서 대만으로 가는 비행기가 3시간 늦어서 강연 시간에 겨우 도착했어요. 또 대만에서 홍콩가는 비행기가 또 늦었어요. 대만에서 관제탑에 이상이 생겨서 비행기가 뜨고 내리는 것이 전부 딜레이 되는 바람에 그랬나봐요. 그렇게 어려운 고비를 넘기고 왔는데, 일본은 문제가 없을 것 같아요. 일본은 기차든 비행기든 다 제 시간에 가는 나라 아닙니까?nbspnbspnbsp여러분들이 인생을 살아가면서 겪는 고민이 있으면 뭐든지 내어놓고 한번 얘기를 해보는 시간입니다. 또 살다보면 인생이 뜻대로 안되잖아요. 그래서 생기는 의문이 있으면 함께 얘기해 봐도 좋습니다. 이야기를 나눠보면서 진실을 규명해 간다 이렇게 이해하시면 될 것 같아요. 그런데 일본 사람들이 속내를 잘 못내어 놓는다면서요? 20년을 이웃집에 살아도 이웃집 친구 남편이 무슨 일을 하는지 모른다고 하던데요. 그래서 아마 여러분들도 같이 살면서 좀 닮았지 않았겠나 싶어요. 그래서 오늘 이 자리에서 속내를 잘 못내어 놓을 것 같아요. 어떡하죠? 속내를 내어 놓아야 얘기를 할 수 있는데...nbspnbsp혼자 꽁 움켜쥐고 온갖 고민들을 하는데 이렇게 드러내놓고 살펴보는 시간입니다. 저는 여러분들이 살펴보는 것을 도와주는 거예요. 찬찬히 살펴보면 별 것 아닌 경우가 많아요. 자기는 엄청나게 큰 일인데 옆에서 보면 아무 일도 아니예요. 여러분들은 물체의 한쪽 면만 보고 마음에 안든다고 하는데 대화를 하면서 앞만 보던 사람을 뒤도 보게 하고, 옆만 보던 사람을 반대편 옆도 보고 하고 이렇게 해서 사물의 전모를 보게 하는 겁니다. 자, 그럼 시작해 보겠습니다.”nbsp그러면서 질문을 받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나 일본인의 특성을 닮아 재일교민들도 속내를 잘 드러내지 않아 즉문즉설이 쉽지 않을 거라는 선입견을 깨고 총 17명이 질문자가 있는 가운데 총 7명의 질문에 문답이 이루어졌습니다.nbspnbsp“안녕하세요. 저는 최근에 한달 전에 싸움을 했는데요. 싸울려고 싸운 게 아니라 일적으로 부딪혀서 싸우게 됐는데 마음으로 대화를 했으면 그렇게 크게 되지 않았을 것 같고요. 또 제가 그렇게까지 다치게 하려고 한 게 아니고 그냥 일적으로 그렇게 된 거라서요. 제가 얘기를 하려고 하는데 상대방이 피하네요.”nbspnbsp“저는 일본에서 어학연수로 일본에 왔다가 남편하고 결혼해서 20년이 됐고요. 자식이 3명 있거든요. 남편이 사업을 하다가 조금 어려워지니까 굉장히 우울해지고 잠을 못자서 수면제를 먹고 술을 먹기도 해요. 원래 말이 없는 사람인데 집안에 들어오면은 무거운 얼굴로 있어요. 요즘에는 한국에서 살고 싶다는 생각이 자꾸 들어요. 집에 가기도 싫어지구요.”nbsp“저는 초등학교 1학년짜리 딸이 있는 데요. 올해 학교에 들어갔는데 같은 반 친구가 저희 딸을 괴롭히려고 한 건 아닌데 어떻게 하다가 저희 딸이 괴롭힘을 당하는 상태인데 어떻게 대처를 해야 하는지 잘 모르겠어요”nbspnbsp“궁금한 건 백인, 흑인 어느 나라 친구를 봐도 범죄가 있고, 동성애가 있다는 걸 느꼈는데 답을 못내겠더라고요. 언어랑 피부는 다른데 왜 닮았을까. 운동을 하다가 정말 깜짝 놀랐는데 건장한 외국인 친구가 동성애할 친구가 아닌데 고백을 하는 거예요. 가끔 군인들이나 운동선수들보면 그런 분들이 있어요. 이런 사람들을 실제로 봤을 때 어떻게 해야 하는지요?”nbsp“저는 두돌 반 된 남자 아이가 하나 있고요. 일본 남편과 셋이서 살고 있는 주부입니다. 정말 귀여운 아들 때문에 둘 다 아이를 너무 사랑하니까 본인들이 아이를 어떻게 키우겠다는 주관 때문에 남편에 대한 사랑이 식어가는 거 같아요. 저도 아이를 어떻게 키워야겠다는 계획이 있었고, 거기에 터치가 들어오면 기분이 상해서 그게 남편에게 전달이 되거든요.”nbspnbsp“현재 동거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알고 지낸지는 12년 정도고 동거한지는 10년 됐습니다. 처음에는 결혼할 생각에 26살 나이 차이를 극복하고 시작했는데, 결혼까지는 아니라는 생각이 들고 있습니다. 나쁜 사람이라면 냉정하게 뿌리치겠는데 착하고 마음씨가 좋은 사람이라서 머리로는 헤어져야지 하는데 마음이 쉽게 움직이지 않고요. 회사 사장님이라서 혼자 덩그러니 내버려두고 떠나자니 정이 들어서 제 마음이 아프고 속상합니다.”nbsp질문자와 스님의 문답을 들으며 300여명이 함께 웃고 울다 보니 어느덧 정해진 시간을 40분이나 넘겨 총 2시간 40분이 흘렀습니다. 오늘도 매 질문마다 청중들의 웃음을 자아냈지만 특히 작년에 착실한 외아들을 갑작스럽게 과로사로 잃은 분의 안타까운 질문에 대한 스님의 말씀을 소개하고자 합니다.nbspnbsp“일본에 온지 32년 정도 됐습니다. 아들이 하나 있었는데 1년 전에 갑자기 회사를 다니다가 죽었어요. 죽은 것도 몰랐다가 한 이틀 후에 발견되었어요. 과로사였어요. 속도 안 썩이고, 하나 밖에 없는 아들이었고, 학교다닐 때도 아침에 한 번도 깨워본 적 없고, 검도도 3년 하고, 대학교도 연맹에서 부회장을 했던 아들이 갑자기 죽으니까 제가 길을 잃었습니다. 여기 계신 스님이 인연이 되어서 49재를 지내줬습니다. 작년 6월 말일날 죽고 7월1일에 발견됐어요. 수면제도 먹고 알콜도 맨날 마시고 좀 힘이 듭니다. 아파트 문을 열었는데 죽어 있더라고요. 저도 장사를 한 20년 했는데 그래도 남편이 저보다 16살이 많으니까 남편 먼저 보내고 제가 가야지 하는데, 제가 너무 힘드니까 요즘엔 어떻게 죽을까 생각만 해요.”nbspnbsp“사람이 죽으면 영혼이 있다고 생각해요? 없다고 생각해요?”nbsp“영혼이 있다고 생각할 때도 있고, 없다고 생각할 때고 있고, 반반이라고 생각해요”nbspnbsp“영혼이 있다고 생각해서 아들이 지금 자기를 보고 있다면 엄마가 지금 헤매고 다니는 게 아들에게는 좋아보일까요? 괴로울까요?”nbspnbsp“아들은 안 좋겠죠.”nbspnbsp“안 좋은 행동을 왜 해요? 첫째, 자기는 지금도 아들이 괴롭도록 행동하고 있습니다. 둘째, 자기 아들이 착했어요? 악했어요?”nbspnbsp“착했어요.”nbspnbsp“착했으면 죽은 뒤에 좋은 곳에 갔을까요? 나쁜 곳에 갔을까요?”nbspnbsp“좋은 곳에 갔다고 생각해요.”nbspnbsp“극락은 이 세상보다 좋다고 하죠. 그러면 아들이 좋은 곳에 갔는데 무엇 때문에 울어요?”nbspnbsp“좋은 곳에 갔어도 여기서 만져볼 수도 없고 신기루처럼 잡을 수도 없고요...”nbspnbsp“아들이 아무리 좋은 곳에 가도 내가 못 보면 싫고, 내가 보는 곳에 있었으면 좋겠다 이 말이예요?”nbspnbsp“네, 살아만 있었으면 좋겠어요.”nbspnbsp“아들이 살아 있었다면 결혼해서 아무리 잘 살아도 다른 여자랑 사는 건 보기 싫다 이렇게 되었을 것 아니예요? 아들이 극락에 갔으면 여기보다 좋은 곳에 갔잖아요. 좋은 곳에 갔는데 왜 불만이예요?”nbsp“그렇게 생각해야 되는 건가요?”nbspnbsp“그럼요. 나쁜 곳에 갔다면 불쌍하니까 불만이 있지만요.”nbsp“그럼 저는 살아야 되는 건가요?”nbspnbsp“살든지 죽든지 그건 자기가 알아서 하세요. 그런데 우선 자기 문제는 놔놓고 우선 아들 문제에 대해 얘기해 봅시다. 우선 아들이 죽은 뒤에 영혼이 있는지 없는지는 너도 모르고 나도 모르는데 세상 사람들이 보통 말할 때는 영혼이 있다고 하죠. 영혼이 있다면 엄마가 즐겁게 사는 것이 보기 좋겠어요? 괴롭게 사는 것이 보기 좋겠어요?”nbsp“즐겁게 사는 것이 보기 좋겠죠.”nbsp“죽은 아들이 보기에는 엄마가 즐겁게 사는 것이 보기 좋겠죠. 그리고 자기 아들은 극락에 갔을까요? 지옥에 갔을까요?”nbspnbsp“극락에 갔겠죠.”nbspnbsp“그럼 자기 아들은 여기보다 좋은 곳에 갔어요? 나쁜 곳에 갔어요?”nbspnbsp“좋은 곳에 갔죠.”nbspnbsp“좋은 곳에 갔으면 되었지 않나요? 조금 아쉽기는 하지만 그래도 좋은 곳에 갔잖아요. 내 아들이나 내 딸이 결혼하면 조금 아쉽지요? 그렇다고 내 좋으라고 영원히 결혼도 안하고 내 옆에 있는 게 좋아요? 아이를 위해서는 결혼을 하는 게 좋아요?”nbspnbsp“결혼하는 게 좋죠.”nbspnbsp“조금 섭섭하지만 결혼하는 게 좋으니까 우리가 보내주잖아요. 그런 것처럼 이 생에서 헤어지는 것이 좀 섭섭하지만 그래도 아들이 좋은 곳에 갔으니까 걱정할 일은 없다는 겁니다. 좋은 곳에 갔는데 왜 불만이예요? 헤어진 것은 좀 섭섭하지만 좋은 곳에 갔잖아요. 같은 회사에 다니는 친구나 상사가 좌천되어서 다른 부서로 갔다고 할 때는 마음이 아프지만, 승진을 해서 다른 부서로 갔다고 할 때는 조금 섭섭하기는 하지만 괜찮잖아요. 그러니까 좋은 곳에 갔으니까 크게 걱정 안해도 됩니다.nbspnbsp저도 시계를 가지고 있다가 이것을 잃어버리면 얼마나 아쉬운데요. 값이 12만원 밖에 안되는데도 오래 쓰다가 잊어버리면 아까운데 내가 낳아서 내가 키운 아들을 잃어버렸으니 얼마나 가슴 아프겠어요? 그 마음은 이해가 됩니다. 그러나 좋은 곳에 갔기 때문에 걱정할 일은 아니라는 겁니다.”nbspnbsp“감사합니다.” nbspnbspnbspnbsp“자기는 아들 걱정할 일이 없어요. 아들은 좋은 곳에 갔으니까요. 그런데 그 아들이 자기를 볼 때 걱정이라는 겁니다. 엄마가 죽느니 사느니 하고 있으니까 아들은 그게 걱정이라는 겁니다. 그러니 아들에게 걱정을 안 시킬려면 자기가 어떻게 해야 될까요? 울고 불고 살아야 해요? 행복하게 살아야 해요? 지금이라도 아들을 즐겁게 좀 해주세요. 엄마가 되어서 왜 그렇게 아들을 고생시키려고 그래요? 내가 행복하게 살고 있어야 저 하늘에서 내려다볼 때 아들이 좋단 말이예요. ‘아이고 엄마가 슬퍼하고 힘들어 하더니, 오늘 스님 만나고부터는 저렇게 행복하게 사니 얼마나 좋노’ 이렇게 되도록 아들을 좀 기쁘게 해주란 말이예요.”nbsp“법륜 스님께서는 영혼이 있다고 생각하세요?”nbspnbsp“저는 몰라요. 그거 있으면 어떻고 없으면 어때요? 없으면 아무 상관이 없잖아요. 죽으면 그만이니까요. 그런데 있다고 치면 좋은 곳에 갔으니까 좋은 일이고요. 또 아들이 보기에 내가 행복하게 사는 것을 좋아하겠죠? 그러니까 영혼이 있다고 치면 자기가 행복하게 살아야 지금이라도 그곳에서 아들이 기뻐합니다. 그러니 기쁘게 살아야 될까요? 괴롭게 살아야 될까요?”nbspnbsp“기쁘게 살아야 되겠죠.”nbspnbsp“그런데 자기가 죽는 것이 아들한테 무슨 도움이 되나요? 죽으면 서로 만날 수 있나요? 자기가 죽으면 누가 장례를 치러 주나요? 왜 사람을 그렇게 귀찮게 해요? 그러면 그 스님이 또 49재 지내고 염불해 줘야 하잖아요. nbspnbspnbsp49재 지내고 염불하려면 목 아프지 제사상 차려야 하지 얼마나 일이 많은데요. 왜 그렇게 남을 귀찮게 하려고 해요. 주위 사람들을 또 슬프게 만들고요. 그러니 그런 쓸데없는 생각을 하지 마세요. 약 사러 갈려면 얼마나 귀찮아요. 돈도 들고요. 살아 있으면 그냥 살면 되는데 뭐 때문에 일부러 죽으려고 그래요? 저런 사람들이 꼭 죽을 때는 안 죽겠다고 산소호흡기 끼고 또 난리를 피워요. nbspnbsp살아 있을 때는 일부러 죽으려고 하지 말고 잘 살고, 때가 되어서 죽을 때는 기꺼이 죽어줘야 돼요. 아시겠어요? 안 죽으려고 발버둥치고 그러지 말고요. 평소에는 즐겁게 살고 때가 되면 죽으면 돼요. 그래서 너무 슬프게 생각하지 마세요. 절에 다녀요? 교회 다녀요?“nbspnbsp“성당에도 다녔는데요. 아들이 죽고 나니까 성당 문을 열기가 무서워졌어요. ‘하나님은 없구나’ 싶었거든요. 그런데 여동생이 한국 절이 있다면서 저를 데려다 주어서 거기 주지 스님과 1년 동안 공부를 했어요.”nbspnbsp“기독교 식으로 표현하면 ‘주여 감사합니다’ 이렇게 생각해야 합니다. 왜 그럴까요? 우리 아들을 천국으로 데려가셨잖아요. 이렇게 좋은 일로 여겨야 해요.”nbspnbsp“그런 말이 안 나와요. 문을 아예 닫아버렸어요.”nbspnbsp“그러니까 자기는 천주교 신자가 아니다 이말이예요. 문을 열고 다시 가세요. 기독교식으로 설명하면, 살고 죽는 것은 주님께서 하는 일이니까 ‘주여 뜻대로 하옵소서’ 이런 마음으로 ‘주님, 감사합니다. 아무런 고통 없이 하나님 곁으로 데려가 주셔서 감사합니다’ 이렇게 기도를 해야 돼요.nbspnbsp불교식으로 말하면 인연이 다한 겁니다. ‘여기에서 너무 과로하고 애썼으니까 이제는 과로 안해도 되는 극락에 가서 편안하게 잘 살아라. 엄마도 잘 살다가 인연이 다하면 또 따라갈게’ 이렇게 마음을 내어야 합니다.”nbsp“그런데 저는 절이 제 마음에 좀 맞는 것 같더라구요.”nbspnbsp“절에 다니다가 성당 가고 성당 다니다가 절에 가고 그런 것은 괜찮아요. 하나님이 그것 때문에 성질을 낼까요? 하나님이 그 수준 밖에 안 될 것 같아요? 저 위에서 보시기에는 이 집 가든 저 집 가든 별 것 아니예요. 성당도 좋고 절도 좋고 다 좋은데 어려움을 당해보니 내 경우에는 절이 낫더라 이렇게 생각하고 다니면 됩니다. 천주교 식으로 얘기해도 하나님 하시는 일이니까 불만을 갖지 마세요. ‘주님의 뜻이려니’ 이렇게 생각하고, 또 좋은 곳에 갔다니까 ‘주님 감사합니다’ 이렇게 기도하면 됩니다. 또 불교식으로 얘기하면 ‘아이고, 인연이 다했구나. 새 몸 받아서 극락에 가서 살고, 다음 세상에는 과로 안해도 되는 세상에서 살아라’ 이렇게 생각하면 됩니다. 알았지요? 또 아들 얘기하면서 울고 불고 하면서 정신없이 살래요? 이제 정신 차리고 살래요?”nbspnbsp“그래도 시간이라는 게... 죽을라니까 이것도 정리해야 하고 저것도 정리해야 하고, 땅문서도 정래해야 하고요”nbspnbsp“죽는 사람이 지금 땅문서 걱정하게 생겼어요? 질문자는 절대로 못 죽을 사람이예요. nbspnbspnbsp정말 죽어야겠다 싶으면 문서 전부 저한테 가져다 주세요. 제가 정리해 드릴게요. 그러니까 죽을 생각을 하지 말고 즐겁게 살아야 됩니다. 즐겁게 살아야 나중에 아들과 관계가 좋아져요. 아들은 착해서 극락갔는데, 자기는 자살해서 지옥가면 이제 못 만나잖아요. 영혼이 있든지 없든지 간에 영혼이 있다고 치고 하는 얘기예요. 저는 영혼이 있든지 없든지 상관 안 하는 사람이예요. 저는 지옥이 더 좋아요. 천당은 살기 좋은 곳이여서 도와달라는 사람이 없잖아요. 그러니 제가 가봐야 할 일도 없고 빈둥빈동 놀아야 되잖아요. 그런데 지옥에 가면 살기가 어려우니까 도와달라고 부탁하는 사람이 많겠죠? 거기 가면 할 일이 얼마나 많은데요. 그런데 왜 제가 지옥에 가지 천당에 가겠어요? 천당에 가서 심심해서 놀고 있느니 지옥 가서 열심히 일하는 게 낫지요. nbspnbspnbsp지옥이 있나 천당이 있나 이렇게 자꾸 묻지 말고 천당 가고 싶으면 천당에 갈 행동을 해야 해요. ‘천당이 있다면 나 빼고 누가 가겠노?’ 이렇게 살아야 합니다. 지옥이 있느냐 없느냐 생각하지 말고 지옥에 안 갈 행동을 하면 됩니다. 그런데 천당이 있냐 지옥이 있냐 자꾸 묻는 사람들의 심보가 뭔지 알아요? 있다고 하면 억지로라도 좋은 일 좀 하고, 없다고 하면 좋은 일 안 하려고 그러는 거예요. 심보가 얼마나 더러워요? 그러니 있는지 없는지가 중요한 것이 아니예요. 있든지 없든지 마땅히 천당에 갈 수 있는 인생을 살면 됩니다. 어떻게 하면 천당에 갈 수 있는지는 성경에도 있고 불경에도 다 적혀 있어요. 그런 삶을 사는 게 중요합니다. 이생도 행복하게 살면 다음 생도 행복하게 살 수 있는 겁니다. 오늘 불행하게 살면 내일도 불행하게 살게 됩니다. 저렇게 미쳐서 날뛰면 다음 생에 가서도 또 미쳐서 날뛰게 됩니다. 그러니까 이 생에 나쁜 업은 다 끊어야 합니다. 아들이 극락가서 살기를 원해요? 무주고혼이 되어서 떠도는 걸 원해요?“ nbspnbsp“극락가서 살기를 원하죠.”nbspnbsp“엄마가 계속 울고 불고 하면서 아들을 그리워하면 아들이 극락갈 수 있을까요? 자꾸 부르면 극락에 못가고 허공에서 떠돌게 돼요. 그러면 무주고혼이 돼요. 자기가 지금 하고 있는 행동은 자기 아들을 지금 무주고혼으로 만드는 행동이예요. 아들을 탁 놓아버려야 아들이 극락가든지 천당 가든지 갈 수 있어요. 보내주는 게 나아요? 잡고 있는 게 나아요?”nbspnbsp“보내 주는 게 좋겠죠.”nbspnbsp“그러면 ”아들아, 잘가 안녕“ 한번 해봐요.”nbspnbsp“ 아들아 잘가” nbspnbsp“울먹이며 그러는 것은 가지 말라는 얘기예요. 스님을 속이면 되나요? 저는 그런 것에 잘 안 속는 사람이예요. 진심으로 ‘잘가 안녕’ 할 때는 뒷끝이 탁 올라가야 해요. 뒷끝이 내려가면 가지 말라는 얘기예요.”nbsp“너가 있어서 행복했고, 엄마가 너를 굉장히 보고 싶어 했는데 오늘 법륜스님한테 여러 가지 말씀 들으면서 너를 내 마음에서 떠나보내도록 열심히 노력할게.”nbspnbsp“왜 그렇게 사설이 길어요? 노력하면 안 돼요. 노력한다는 말은 하기 싫다는 뜻이예요. 하기 싫은 것을 억지로 하는 것을 노력이라고 해요. 노력하면 안돼요. 길게 말하지 말고 ”아들아, 잘가 안녕“ 이렇게 해보세요.”nbspnbsp“아들아, 안녕 사요나라” nbspnbspnbsp“그렇게 탁 놓고 행복하게 사세요. 그렇게 살아야 하나님이 보시기에도 좋아보이시고, 부처님이 보시기에도 ‘너가 참 불자다’ 그러십니다. 천도라는 것은 내 마음에서 떠나 보내는 것을 말합니다. 49재를 지내는 것은 집착을 끊는 의식이예요. 재를 아무리 지내도 저렇게 집착을 못 끊으면 천도가 안되는 거예요. 스님이 천도의식은 해주지만 천도는 자기가 하는 거예요. 내 마음에서 떠나보내버리면 천도가 되고, 움켜쥐고 있으면 천도가 안돼요.”nbsp질문하신 할머니의 얼굴도 밝아지고, 청중들도 할머니의 변화된 모습을 보고 뜨거운 박수갈채를 보내줍니다. nbspnbspnbsp나가실 때 이 질문하신 할머니에게 문답을 통해 답을 얻으셨는지 물어보니 안정제에 많이 취해있는 상태라 잘 정리하긴 어렵지만 아들을 위해 마음의 집착을 끊어주고 보내줘야 한다는 건 확실하게 이해했다고 하며 아직도 눈물을 흘리셔서 마음이 안타까웠습니다.nbspnbsp마지막으로 스님께서는 진리의 성격 4가지를 말씀해 주시며 강연을 마무리해 주셨습니다.nbspnbsp“이런 저런 얘기를 하다보니 시간이 많이 지났네요. 재미있었어요? 유익했어요? 이 얘기가 나만 좋자는 얘기예요? 남도 같이 좋자는 얘기예요? 남한테 좋기 위해서 너를 희생하라는 얘기예요? 나의 이익을 위해서 남을 손해끼치라는 얘기예요? 진리의 성격은 4가지입니다. 재미도 있고 유익해야 합니다. 재미가 있다는 말은 지금 좋다는 말이고, 유익하다는 말은 나중에 좋다는 말이예요. 그리고 나도 좋고 너도 좋아야 합니다. 그래야 지속가능합니다. 이 즐거움이 순간적이지 않고 오래도록 지속될 때 행복이라고 합니다. 오늘 우리는 대화를 하면서 조금씩 조금씩 진리에 근접해 갔습니다. 진실을 규명해 갔습니다.nbspnbsp아무리 내 아들이라도 죽으면 놓아 주어야 합니다. 놓아주어야 하는데 못 놓고 있는 겁니다. 이것을 집착이라고 합니다. 집착하면 괴로움이 생깁니다. 미래를 위해서 지금을 희생해도 안되고 지금을 위해서 미래를 희생해도 안되고, 나를 위해서 남을 희생해도 안되고, 남을 위해서 나를 희생해도 안되요. 항상 지금도 좋고 나중도 좋은 길, 나도 좋고 너도 좋은 길을 가야 됩니다. 이 중에 하나만 빠져도 인생에 괴로움이 생깁니다. 그렇게 행복하게 사시기 바랍니다.“nbspnbsp강연이 끝나고 책 판매와 사인회가 바로 이어졌는데 스님의 강연에 감동을 받은 분들이 너도나도 책을 구매하면서 준비한 책 170 여권이 모두 판매되었고 스님의 사인을 받기 위해 길게 줄을 서서 기다리는 분들의 표정이 한결 밝아 보였습니다.nbspnbspnbsp강연장을 나서는 몇몇 분에게 오늘 강연이 어땠는지 물어보니 유투브에서 스님 강연을 들어왔지만 현장에서 실제 들어보니 이렇게 재밌는지 몰랐다면서 기쁜 표정으로 마음을 나눠주는 분들이 많았습니다.nbspnbsp사인회를 마치신 스님께서는 총 24명의 주황색 티셔츠를 입은 자원봉사자들과 단체 사진을 찍었습니다.nbspnbspnbsp그리고 오늘의 성공적인 강연을 열성적으로 준비한 강연 담당자 김세환씨 부부에게 책을 선물하고 함께 사진 촬영을 하셨습니다.nbspnbsp▲ 신주쿠 강연 담당자인 김세환씨 부부nbspnbsp모든 봉사자들에게도 단주를 일일이 끼워주시고 한명 한명 악수를 하시며 수고했다고 위로해 주시니 다들 행복한 표정이었습니다.nbspnbspnbsp스님께서는 아직 몸이 성치 않으시다고 한금화 보살님과 나누기하실 것을 당부하시며 호텔로 돌아가셨습니다. 한금화 지구장님과 봉사자들이 동그랗게 둘러 앉아 이번 강연을 준비하면서 느낀 점을 나누기하는데 이번 강연에는 이벤트 전문가가 참여하여 체계적으로 진행이 되었고 SNS 홍보도 주효했지만 그 분 덕택으로 신주쿠에 전광판 홍보를 한 것도 오늘 많은 청중이 온 이유인 것 같습니다.nbspnbsp▲ 한금화 지구장님과 함께 마음나누기nbspnbspnbsp정토회 인연이 없는 분들이 인터넷이나 지인을 통해 봉사를 하게 되면서 함께 강연을 준비하는 과정에서 보람을 느끼고 다음에도 참여하고 싶다는 의견을 내고 또 어떤 분들은 자원봉사자에 대한 연락 체계에 대해 문제점을 제안하기도 했습니다.nbspnbsp저녁 식사를 못해서 숙소로 돌아오는 길에 김밥을 사가지고 방에 와서 나눠 먹고 하루를 마무리했습니다. 스님께서는 강연 전에 가볍게 조금 드시고는 저녁식사를 따로 하지 않으시고 원고 교정을 하시면서 휴식을 취하셨습니다.nbspnbsp이렇게 111번째 강연도 많은 분들의 정성과 노력으로 잘 치러졌습니다. 이렇게 곳곳에 민들레 홀씨처럼 작은 씨앗이 뿌려지고 있는 것이 실감납니다. 언젠가는 싹이 트고 자라서 예쁜 꽃을 피워내는 때가 올 거라는 기대감에 설레이기도 합니다.nbsp내일은 가와구치에서 강연이 있는 날입니다. 강연장도 가깝고 시간 여유도 있어서 아사쿠사의 센소지를 방문할 계획입니다. 내일 또 생생한 소식 전해 드리도록 하겠습니다.nbsp ▼nbsp법륜 스님의 세계 100회 강연, 지난 날짜 소식 보기

2014.12.16. 50,622 읽음 댓글 47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