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님의하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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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12.10 세계 100회 강연(108) 필리핀 세부 Cebu

nbsp안녕하세요. 오늘은 세계 100회 강연 중 108번째 강연이 필리핀 세부에서 열리는 날입니다.nbspnbsp필리핀JTS 이원주 대표님 댁에서 하루밤을 묵은 스님 일행은 아침 6시20분에 한금화 지구장님이 정성껏 차려주신 아침을 먹고, 6시40분에 숙소에서 공항으로 출발했습니다. 세부행 비행기를 타기 위해 짐을 모두 부치고 출국 수속을 마친 후 오전 9시20분에 마닐라를 출발했습니다. 비행기는 오전 11시에 세부 공항에 도착했습니다. 짐을 모두 찾아 공항 밖을 나오니 오늘 세부 강연을 준비한 세부 정토불교대학생들이 마중을 나와 열렬한 환호를 보내며 환영을 해주었습니다. 그리고 포항에서도 백연우 임재은 부부가 와서 강연 준비를 도와주었습니다.nbspnbsp▲ 오늘 강연을 주관한 세부 정토불교대학생들nbspnbsp세부 정토불교대학은 올해 3월에 개설되어서 매주 토요일마다 수업이 진행되고 있는데, 김화진님, 이문순님, 홍미자님, 임유경님 등이 중심이 되어 운영되고 있다고 합니다. 불교대학생들은 오늘 공항에서 스님을 직접 뵙고 악수를 할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너무나 기뻐했습니다.nbspnbsp세부는 필리핀 중부 세부 주에 있는 도시이며 주도입니다. 수도 마닐라보다 오래된 필리핀 최초의 식민지 도시로 인구는 80만명이며, 주변 지역을 포함하여 대도시권인 메트로 세부의 인구는 230만명에 달합니다. 국제선, 국내선 등 수많은 항공 노선의 중요한 허브이며, 필리핀 중부 비사야 제도부터 남부의 민다나오에 이르는 지역의 상업, 무역, 산업의 중심지입니다. 최근에는 관광 산업과 가구 생산이 번성하고 있으며, 콜센터 운영, 소프트웨어 제작 등 IT 산업의 하청 업체들이 입주해 급성장하고 있는 도시입니다.nbspnbsp▲ 필리핀 세부nbspnbsp역사적으로는 1521년 페르디난드 마젤란이 이 섬에 도착하였으며, 이때 이미 원주민들의 도시가 번창하고 있었는데, 이후 스페인 세력이 1565년 이 곳에 필리핀 일대 최초의 선교 기지와 정착지를 건설하여 필리핀의 중심지로 발전하였습니다. 이후 스페인 식민지의 수도는 마닐라로 옮겨졌으나, 세부는 중남부의 중심지로 남게 됩니다. 동쪽의 세부 해협과 막탄 섬으로 인해 바다로부터 보호되고 세부 해협과 서쪽의 산맥 사이에 위치하여 항구로서 좋은 조건을 갖추고 있습니다. 이 곳을 중심으로 섬 각지로 도로가 연결되며, 막탄 섬에 국제공항이 있습니다.nbspnbsp공항에서부터 세부에서의 모든 일정을 위한 봉고차량 지원은 김영탁 사장님이 해주셨습니다. 그리고 이동과 관련한 안내는 이곳에서 커피숍을 운영하며 10여년 넘게 살고 계신 김지니님이 해주셨습니다. 김영탁 사장님은 세부에서 가장 규모가 큰 ‘만타 다이빙샵’과 ‘세부 스터디’ 영어 학원을 운영하면서 15년째 살고 계신 분입니다. 차량으로 이동 도중에 스님께서는 김 사장님에게 “왜 세부에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관광을 하러 오는지?” 물어보셨고, 사장님은 “한국에서 세부까지 비행 시간이 4시간 밖에 안되는 저가항공사들이 많이 생겼고, 영어를 사용하는 곳인데다가 막탄 국제공항에 내리면 20분 만에 해변가에 다다를 수 있어서 휴식하러 오기에 정말 좋은 휴양지” 라고 설명해 주셨습니다. 그리고 “값싼 노동력으로 미국의 밤시간대에 콜센터를 운영할 수 있는 이점으로 통신업체들이 많이 들어와 있으며, 막탄 섬에서 1km 안에 수심 450m에 달하는 해구가 있어서 다이빙을 즐기는 사람들이 많이 찾는 곳” 이라고 합니다. 현재는 전세계에서 한국 사람들이 가장 많이 방문하고 있으며 연간 35만명이 넘게 찾아온다고 합니다. 한국과 연결된 직항 노선만 아홉 항공사가 있다고, 대부분 관광 및 휴양으로 찾아오지만, 어학원을 통해 영어 공부를 하기 위해서도 대학생들이 많이 찾아오며, 6개월 이상 체류하는 현지 교민은 대략 5천명 정도가 된다고 합니다.nbspnbsp공항에서 강연장으로 이동하기 전, 현지 교민인 김주형님이 운영하는 영어캠프 숙소에서 점심 식사를 하고 휴식을 취하기로 했습니다. 점심 식사는 세부 정토불교대학생들이 도시락을 정성껏 싸주셔서 감사히 먹을 수 있었습니다.nbspnbsp식사 후 현지 교민인 김영탁 사장님이 자신이 운영하는 만타 다이빙 샵에 초대를 해서 잠깐 방문해 보았습니다.nbspnbspnbsp만타 다이빙샵은 다이빙을 체험할 수 있게 해주는 곳인데, 사장님이 “스님께서 이곳까지 오셨는데 세부의 바다를 체험해 보고 가시면 좋겠다”고 하시면서 스님 일행 모두에게 배도 태워주시고 특히 스님과 이원주 대표님 두분께는 패러 글라이딩 체험도 시켜 주었습니다. 짧은 시간이었지만 세부가 이런 곳이구나 느껴보는 시간이 되었습니다.nbspnbspnbsp스님께서는 “생전 처음으로 희한한 것도 타 봤다” 하시면서 웃으셨습니다.nbspnbspnbsp▲ 스님 일행을 자신의 다이빙샵에 초대한 김영탁 사장님과 오후 휴식 공간을 마련해 주신 김주형님nbsp세부의 해변을 짧게 구경하고 다시 점심을 먹었던 장소로 이동해 잠시 휴식 시간을 가졌습니다. 저녁식사는 마루 한식당 김광석 대표님이 제공해 주시기로 했으나, 스님께서 식당까지 갈 일정이 되지 않아서 마루 한식당 김 대표님은 도시락을 싸서 스님께 식사를 보내주셨습니다. 그래서 저녁 식사를 한 후 강연장으로 이동할 수 있었습니다. 스님께서는 사인한 책을 김화진 강연 담당자님에게 전달하며 김광진 대표님께 감사의 마음을 전하셨습니다.nbspnbsp도시락으로 저녁식사를 한 후 휴식 공간 바로 맞은편 강연장 건물로 이동하니 6시 20분이 되었습니다.nbsp6시30분부터는 세부 교민사회의 지역 인사 분들이 대기실로 찾아와 스님과 환담을 나누셨습니다.nbspnbspnbsp조봉환 한인회 회장님과 사모님, 양성애 여성한인회 회장님, 이완재 세부 한인천주교성당 신부님, ANY CEBU 김재은 사장님, 김여훈 이모캠프 사장님 등이 자리해 스님과 이야기를 나누시고 함께 기념촬영도 하였습니다. nbspnbspnbsp저녁7시가 되자 환영 영상과 소개 영상에 이어서 스님께서 큰 박수를 받으며 무대 위에 오르셨습니다. 오늘 강연장에는 200여명이 참석하여 자리를 가득 찼습니다.nbspnbspnbsp스님께서는 먼저 필리핀에는 많이 와봤지만 세부에는 처음 와보셨다고 하면서 반가운 인사와 함께 강연을 시작하셨습니다.nbspnbsp“얼굴을 보니까 다들 좋은 곳에 사시는 것 같네요. 제가 필리핀으로 다닌지는 10년이 넘는데 세부에는 한번도 못왔어요. 그런데 이번에 세계 100회 강연 일정으로 전세계를 다니면서 필리핀에서는 세부가 제2의 도시라고 하고, 교민들이 1만명 이상 산다고 해서 여기에 오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한인회 회장님 얘기를 들으니까 교민들이 2만명이 산다고 하네요. 그런데 도시가 별로 크지도 않는데 다들 무엇으로 먹고 살아요?nbspnbsp한국에서는 세부로 가는 직항 비행기가 많아서 굉장히 큰 도시인 줄 알았어요. 휴양지도 어마어마하게 큰 규모로 있는 줄 알았는데, 아직 구경을 못해서 그런지 그 많은 관광객들이 다들 어디로 가는지 아직 의문이 안 풀렸습니다. nbspnbsp즉문즉설은 강의가 아니라 대화의 시간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자기 얘기를 하고 또 제 얘기를 듣고 다시 자기 얘기를 하고 이렇게 대화를 주고 받습니다. 그래서 의문이 해결되면 “알겠습니다.” 하고 앉으면 되는데, 그렇지 않으면 마이크에서 절대 손을 떼면 안돼요. 끝까지 물고 늘어져서 토론을 해서 자신의 의문이 해소되거나 고뇌가 사라지면 그 때 마이크를 내려놓으면 됩니다. 다른 사람 눈치 보지 말고 우리 둘이만 있다 이런 생각으로 대화를 해주시면 됩니다. 그러면서 우리는 진실을 규명해 갈 겁니다. 실제는 어떤가? 사실은 어떤가? nbsp자, 그럼 시작해 보겠습니다.”nbsp그러면서 질문을 받기 시작했습니다. 총 8명이 스님께 질문을 했습니다.nbspnbsp“선택하는게 어려워서 고민입니다. 무엇가를 선택해야 되는 기로에 놓였을 때 어떻게 해야겠습니까?”nbsp“기회에 대해서 여쩌보고 싶습니다. 기회를 잡기 위해서는 어떤 준비를 해야 될까요? 스님께서는 사시면서 찾아온 기회들을 어떻게 잡으셨습니까? 저는 제가 하는 일이 만족스러운데 만약 배우자나 자식들이 저의 일에 불만족스러워 한다면 어떻게 해야겠습니까?”nbspnbsp“지금 하는 일이 너무 행복하고 만족스럽습니다. 하지만 경제적으로는 너무 부족한 일입니다. 지금 하는 일을 계속 해야 될까요?”nbsp“진정한 친구가 없습니다. 어떻해 해야 진정한 친구를 사귈 수 있을까요?”nbspnbsp“아들 때문에 고민이 있습니다. 아들은 외국에서 생활하고 있습니다. 아들은 외국에서 계속 공부하고 싶다 하는데 어느 정도까지 아들의 결정을 받아들여야 할지 모르겠습니다.”nbsp“불교에서는 살생을 금하는데 한 여름에 모기나 벌레를 잡아도 되겠습니까? 참선을 할 때 잘 될 때도 있지만 잘 되지 않을 때도 있습니다. 그럴 때도 참선을 잘 하고 있는 건가요?”nbspnbsp“인생에서 가장 궁금한게 있습니다. 과연 신이 존재하는지 내세가 있는지 궁금합니다. 내세가 있다면 그 곳은 어떤 곳인지 궁금합니다.”nbsp이렇게 다양한 질문에 대해서 스님께서는 지혜로운 말씀을 들려주셨습니다. 오늘은 그 중에서 관광업을 하고 있는데 손님들이 너무 많이 찾아와서 접대하는 게 힘들다는 분의 질문과 스님의 답변을 소개합니다. nbspnbspnbsp“안녕하세요? 세부까지 찾아와 주셔서 감사합니다. 2001년부터 세부에서 살았습니다. 한국에서 굉장히 많은 손님들이 찾아옵니다. 손님이 오실 때마다 일일이 대접을 하다보니까 굉장히 지치고 저의 시간이 없어집니다. 그렇다고 손님한테 푸대접 하기에는 마음 한구석이 찝찝합니다. 저는 어떻게 해야 될까요?nbspnbsp“욕심을 많이 내지 마세요. 다시 말하면 손님을 다 깎듯이 접대한다는 것은 투자를 많이 한다는 얘기거든요. 그러니까 질문자가 쓸 돈이 없다는 것 아니예요. 생활비도 안 남겨두고 다 투자를 해버렸다는 것 아니예요? 이것은 다음과 똑같아요. 생활비를 많이 쓰고 투자는 조금 할 것인지, 생활비는 겨우 밥 먹고 살 정도로만 남겨두고 나머지는 전부 다 투자를 할 것인지 이것은 본인 선택이거든요. 무슨 말인지 아시겠지요? 한달에 100만원을 벌어서 30만원을 쓰고 70만원으로 주식을 살 것인지, 50만원을 생활비로 하고 50만원으로 주식을 살 것인지, 80만원을 생활비로 하고 20만원으로 주식을 살 것인지와 똑같은 거예요. 질문자가 365일 중에 300일을 본인 생활로 쓰고 65일만 손님 접대에 쓸 것인지, 본인이 절반씩 절반씩 쓸 것인지, 지금 말한대로 생활에 조금 쓰고 손님 접대에 많이 쓴다든지요.nbspnbsp손님 접대를 많이 한다는 것은 투자입니다. 스님이 들을 때 ‘투자량이 조금 과해서 본인 생활이 조금 어렵다’ 이렇게 들리거든요. 그러면 본인이 조정을 하면 되지 크게 어려운 일은 아니예요. 생활이 조금 곤궁하다고 하면 생활비에 조금 더 쓰고 투자를 조금 줄이고요. 지금은 조금 어려워도 내생까지 보고 미래를 생각해서 투자를 많이 해놓든지요.”nbsp“한국에서 오시는 분들은 정말 오랜만에 계획해서 오시는 분들이잖아요. 그래서 항상 그런 손님들을 많이 맞이하다 보니까 저는 잘해주고 싶은 마음은 있는데 너무 거기에 신경을 쓰다보면 제 생활이 너무 기울게 되어서 조율을 잘 해야 되고요. 사실은 세부가 제 땅도 아닌데 오지 말라고 할 수도 없는 거고요. 손님들도 ‘아, 친구가 있는데’ 기대하고 오고, 저 같은 경우에는 여기까지 왔는데 섭섭하지 않을 정도로 또 대접을 해줘야 하고요.”nbsp“그러니까 투자라는 거예요. 친구들을 위해서 하는 것이 아니예요. 본인 체면을 위해서 하는 거지요. 왜 자꾸 친구들을 위해서 한다고 그래요. 본인이 하기 싫으면 안해버리면 돼요. 그러면 질문자는 자기 시간 낭비 안해도 되는 대신에 조금 체면이 깎이게 되는 것이지요. 질문자는 지금 욕심 부리는 거예요. 본인 시간도 많이 갖고, 친구들한테도 체면 안 깎이고 지금 그러고 싶잖아요? 그런 길은 없어요. 체면을 지키려면 시간 투자를 조금 많이 해야 되고, 본인 시간을 조금 가지려면 체면을 좀 버려야 돼요. 질문자가 지금 욕심 부리고 있어요. 두마리 토끼를 다 잡겠다고 하는 거예요.”nbspnbsp“그러면 좀 섭섭하더라도 그냥 좀...”nbspnbsp“그렇지요. 욕 좀 들으면 돼지요. 친구한테서 전화가 와서 “내 세부간다” 그러면, “내 그때 마닐라 가는데” 그러면 되지요. “몸이 아프다” 그러든지, ‘우리 애가 오늘 시험을 치는데’ 그러든지요, “나도 오래만에 우리 남편하고 어디 여행가기로 했다” 라든지, “남편 친구하고 어디 가기로 해서 이번에 좀 어렵다” 든지 이렇게 얘기하면 되지요.”nbsp“그런데 그것은 또 사실이 아니니까 또 마음이 불편할 것 같아요.”nbspnbsp“괜찮아요. 큰 거짓말 아니잖아요.”nbspnbsp“그러다 우연히...”nbsp“‘나 지금 시간이 없어, 너 접대할 시간이 없어. 나도 내 시간을 가져야 해’ 이렇게 얘기하는 것보다 그렇게 얘기하는 것이 질문자에게도 또 그 사람에게도 더 낫잖아요. 그게 어디 거짓말이예요? 꼭 진실로 말을 해가지고 남의 속을 확 긁어놓아야 겠어요? nbspnbspnbsp어떤 사람이 스님 보고 좋다고 그러면 ‘나 너 싫어’ 이렇게 얘기해야 겠어요? ‘아이고 스님한테 그러지 마세요’ 이렇게 말하는게 나을까요?”nbspnbsp“저도 이제 친분이 없는 분한테는 그렇게 많이 거절하는데, 그래도 제가 있어서 오시는 분 한테는 잘해주고 싶고요…”nbsp“그러니 그것이 본인 욕심이라는 거예요. 그리고 또 잘해줘야 나중에 무슨 이익이라도 있지요. 체면 생각하는 것이 아닌가요?”nbsp“또 어머니도 온 사람은 잘해주라고 또 이러시니까, 그런 말씀들이…”nbsp“어머니는 투자를 조금 많이 해라, 즉 지금 생활이 힘들더라도 미래를 생각해서 저축 많이 해라 이런 얘기지요. 노인들은 대부분 저축을 많이 하라고 그러잖아요.”nbspnbsp“네. 감사합니다.”nbsp“별로 해결된 것 같지 않네요. 딱 마음에서 우러나오면 얼굴 표정을 보면 ‘아, 그러면 되겠다.’ 그런 것이 있어야 되는데, ‘아이고 스님하고 얘기해봐야’ 이런 심보 같아요.”nbsp“그건 아니예요. 친구가 오면 사실 더 반가워요. 그런데 손님들이 세부는 가까워서 제주도처럼 오시기 때문에... 3박4일 동안 아무래도 손님이 와 계시면 신경이 쓰이고 대접을 해드려야하고, 또 그러니까 그런 것들이…nbsp“본인은 지금 좋다는 것 아니예요? 오면 반갑고 가면 더 반갑고, 그것은 좋다는 거 아니예요. 오면 괴롭고 가면 반갑고 이것도 아니고, 오면 반갑고 가면 슬프고 이것도 아니고, 오면 반갑고 가면 더 반갑고 이것이 도대체 뭐가 문제예요? 아무 문제가 없네요.”nbspnbsp“그런가요? 저는 제가 좀 적절히 하면 좋을 것 같아요.” nbsp“질문자는 스님하고 얘기하면서 어떤 것을 느꼈어요?nbsp“세부에 오더라도 제가 접대해 줄 수 있는 사람만 오라고 그랬는데, 요즘 세부에 저가항공도 많이 생기고 하면서 3박4일로 올 수 있다 보니까 왔다간 사람들이 또 오고…”nbsp“저가항공이 생기든지, 자기들이야 오든지, 가든지, 질문자 본인하고 아무 관계없는 일을 가지고 핑계대지 마세요. 저가항공하고 본인하고 무슨 관계가 있어요? 자기들이야 오든지, 자기들이야 가든지, 저가항공 타고 많이 오든지, 비싼 비행기 타고 적게 오든지, 그것은 그들의 인생이고 질문자하고는 아무 관계가 없는 일이예요. 그중에 내가 해줄 만큼 해주고, 못해주면 못해주고 그러면 되잖아요. 그것을 왜 자꾸 남의 핑계를 대고 그래요?nbsp오늘 강연에서 질문이 많든지 적든지 그것은 자기들 사정이고 스님이 시간을 딱 봐가지고 두시간 하기로 했으니 서비스로 한 30분 더해주고 나서 끝내면 끝이지요. 강연 끝나고 밖에 나가서 “스님, 하나만 물어봐도 돼요?”, “사람들한테 부끄러워서 말을 못했어요” 이렇게 사정을 해도 그것은 자기들 사정이지 스님하고 무슨 상관이 있어요? nbspnbspnbsp그래서 스님도 딱 근무 시간만 지키고 강연이 끝나면 메달리고 울고불고해도 스님은 절대로 눈 하나 깜짝 안해요. 거기에 눈 깜짝하면 스님이 못 살아요. 지금 이렇게 다니는 것만 해도 죽을 정도인데, 거기다가 그것까지 받아주면 어떻게 스님이 살아요? nbspnbsp그러니까 스님이 이 시간 내에서는 최대한 친절하게 해주지만 이 시간 딱 마치고 밖에 나가서는 신경도 안씁니다. 책 사인까지 해주기로 했으니 책 사인까지는 하는데, “사진찍어요” 그러면 신경도 안씁니다. 자기야 찍든지 말든지, 자기 알아서 찍도록 내버려둬요. 사인하고 있는데 포즈 취해 달라고 하면, 사인도 하고 포즈도 취하고 어떻게 스님이 두 개를 다 해줘요? 다 못해줘요. 스님이 한석봉이 어머니인 줄 아나봐요. 눈 감고 떡 썰게요. 스님은 글을 봐야 글을 쓸 수 있어요. 포즈 취하면서 어떻게 글을 써요? 그렇기 때문에 스님은 글만 쓰는 거예요. 자기들은 사진을 찍든지 말든지요. nbspnbsp그러면 섭섭해 하는 사람들이 생기는 거예요. 그래서 스님이 얘기하죠. “스님을 너무 반가워했던 사람일수록 나중에 섭섭해진다” 라고요. 특히 스님한테 선물까지 가지고 온 사람들은 삐져요. 그런데 ‘어떤 스님이 왔나?’ 하면서 오다가다 온 사람은 하나도 섭섭 안해요. 그래서 너무 좋아하는 사람하고는 항상 원수가 되는 거예요. 그럼 스님이 특별히 그 사람한테 해를 끼쳤느냐? 그래서 원수가 되는 것이 아니예요. 너무 좋아하면 기대가 크기 때문에 원수가 된다는 거예요. 우리가 좋아하는 것 까지는 좋은데, 기대를 가지면 안됩니다. 그래서 인생이라는 것은 늘 자기가 할 만큼 하면 돼요.nbspnbsp내가 원하는 것이 다 이루어질 수 없고, 남이 원하는 것을 내가 다 해줄 수도 없습니다. 내가 원하는 것을 다 이룰려고 하는 것이 욕심이듯이 남이 원하는 것을 내가 다 해줄려고 하는 것도 욕심이예요. 질문자는 좋은 사람이 아니고 그냥 욕심쟁이예요. 질문자가 지금 욕심부리고 있는 거예요. 그래서 본인이 지치는 거예요. 본인 시간을 다 가지고도 그것은 불가능해요. 욕 좀 들으면 어때요? 만약에 질문자가 시간이 없다면 거절을 자꾸 해봐요. 한 1년만 거절을 해봐요. 소문이 나서 모든 연락이 딱 끊어지고 한명도 연락을 안할 거예요. nbspnbsp‘걔한테 연락하지 마라, 걔 싫다고 하더라’ 그러면서 소문이 나고 딱 끊어지지요. 스님도 딱 해달라는 것만 해주지, 더 이상 안해주면 ‘아, 저 스님은 굉장이 냉정한 인간이야’ 라고 소문이 나요. nbsp그러면 딱 끊어져 버려요. 그래서 적당하게 자기를 절제해야 돼요.nbspnbsp질문자가 딱 6개월만 연락을 끊어버려봐요. 본인이 그렇게 하는 것이 힘들면, 이사를 딴 곳으로 가서 6개월 연락을 안해버리면 돼요. 본인이 거짓말을 안 할려고 그러면요. 아들네 집에 가 있다든지, 어디 6개월 있다가 오면 딱 연락이 끊어져요. 그러나, 질문자는 또 전화를 해서 ‘내 이제 돌아왔다’ 이렇게 전화해서 얘기 할 사람이예요. 그러니까 그런 쓸데없는 저가항공이 어떻고, 뭐가 어떻고 그런소리 그만하시고요, 내인생 그냥 내식대로 살면 됩니다. 남탓하지 말고요.”nbsp“그러니까 제 마음이 편한 정도만 남한테 해주면 된다는 거죠?” nbspnbsp“남한테 해주지 말라니까요. 내가 좋으면 해주고요.”nbsp“아,,,” nbspnbsp“내가 그 사람을 만나는게 더 좋으면 만나고, 안 좋으면 만나지 말고요. 그것은 죄는 안돼요.”nbspnbsp“네, 많이 도움이 되었습니다.”nbspnbsp“그런데 질문자는 욕심 때문에 잘못할 거예요. 남이 나한테 부탁한 것을 다 해줄려고 하는 것은 실제로는 내가 원하는 것을 다 할려고 하는 것보다 더 큰 욕심이예요. 본인을 과대평가하기 때문에 그런 것이 생기거든요. 질문자는 지금 본인을 과대평가하는 거예요. 본인을 굉장히 좋은 사람으로 세상 사람에게 인식시켜 놓을려는 그런 욕심이 있기 때문에 그렇게 무리해서 하는 거예요.nbspnbsp그래서 2가지입니다. 하나는 본인이 힘들면 안해도 된다. 아무 문제도 없다는 거고요. 두번째, 별로 힘이 안들면 여기에 살 때 복많이 지어놓는 것이 좋아요. 스님은 오히려 후자를 권유하고 싶어요. 다른 곳에 살면 질문자를 찾아올 사람이 누가 있겠어요? 뭐 좋다고 찾아오겠어요? 세부에 사니까 질문자한테 연락도 하고 찾아오는 거예요. 그러니 그때 많이 뿌려놓으면 그 중에 10명에 9명은 몰라라 하지만 100명에 1명은알아요. 그렇기 때문에 오히려 여기에 살 때 기쁘게 복을 짓는 것이 좋다는 거예요.nbsp아까 성경을 인용했잖아요. 질문자는 지금 5리를 가자니까 죽겠다고 난리를 피우는 것 아니예요. 질문자가 예수님한테 이 얘기를 하면 예수님이 뭐라고 할까요? ‘5리를 가자면 십리를 가주라’. 그래서 본인이 1년에 200일 정도를 쓰는 것 같으면 1년에 365일 다 쓰겠습니다 하고 마음을 내세요. nbsp“감사합니다.”nbspnbsp밝고 경쾌한 목소리로 질문자가 감사 인사를 하자 청중들도 뜨거운 박수갈채를 보내줍니다. 마지막으로 강연을 마무리하시며 스님께서는 이렇게 닫는 말씀을 해주셨습니다.nbspnbspnbsp“불경이든 성경이든 그 속에는 예수님과 부처님께서 우리가 지혜롭게 살 수 있는 주옥같은 말씀을 다 해놓았어요. 사물을 어떻게 볼 것인가?, 어떻게 평등하게 보고, 어떻게 집착을 놓고, 어떻게 본인이 주인이 될 것인가? 하는 이런 내용들이 다 있습니다. 내생이 있느니 없느니, 천당이 있느니 없느니, 사람을 만들었느니 안 만들었느니 등 예수님는 이런 말씀을 하신 적이 없어요. 전혀 예수님과 관계없는 구약의 이스라엘 역사에 나오는 얘기들을 가지고 계속 시비하지 말고, 정말 우리의 스승이시고 우리의 구주이신 그분의 말씀에 딱 근거해서 신앙생활을 하면 굉장히 행복해져요. 그것이 불교로 말하면 수행이예요. 불교 수행이라는 것은 늘 사물을 긍정적으로 보고 자기를 행복하게 하는 것입니다. 그것이 해탈이예요. 그렇게 행복하게 사시길 바랍니다. 감사합니다.”nbsp2시간 30분 동안 열강을 해주신 스님께 뜨거운 박수 갈채가 쏟아졌습니다.nbspnbspnbsp스님께서는 무대 위에서 곧바로 책 사인회를 가지셨습니다.nbspnbspnbsp길게 줄을 선 참석자들이 스님의 사인도 받고, 스님의 뒤에 서서 기념 사진을 찍기도 했습니다.nbspnbspnbspnbsp이어서 오늘 세부 강연을 위해 곳곳에서 수고해준 자원봉사자들 모두 다함께 기념 촬영을 했습니다. 오늘 강연은 세부 정토불교대학생 네 분을 중심으로 세부 지역에서 현지 교민들과 어학 연수를 온 학생들을 대상으로 자원봉사자를 모집하여 진행이 되었습니다. 자원봉사자만 무려 36명이 함께했습니다.nbspnbspnbsp봉사자 모두에게는 스님께서 직접 단주를 선물하고 손목에 직접 끼워주셨습니다.nbspnbspnbsp특히 오늘 강연 총괄 책임을 맡고 가장 많은 수고를 해주신 김화진님에게는 스님께서 사인한 책을 선물하고 스님과 함께 기념사진도 찍었습니다. 사진 찍는 모습을 지켜보며 봉사자들도 큰 박수를 보내며 “수고 많으셨어요” 하고 응원도 해주었습니다.nbsp▲ 오늘 강연 총괄 책임을 맡아 nbsp수고해 준 김화진님. 현재 세부에서 정토불교대학을 공부하고 있습니다.nbspnbsp스님께서는 내일 강연을 위해 일찍 숙소로 들어가시고, 한금화 동아시아 지구장님과 묘덕 법사님은 강연장에 남아서 자원봉사자들과 마음나누기를 하였습니다. 밤 10시가 넘었지만 땀이 흐르는 무더운 날씨였는데, 자원봉사자 36명 모두 에어컨 바람도 없이 무대 위에서 서로의 마음에 귀기울이는 시간에 끝까지 함께 했습니다.nbspnbsp강연을 총괄한 김화진님은 “봉사자 36명이 함께 마음을 모아 해냈다는 점이 너무 흐뭇하다”며 기뻐했습니다. 50대 남자 분은 “밖에서 주차 담당을 하다가 스님과 악수까지 하게 되었는데 너무 감사했고, 살아서 존경하는 스승을 직접 뵐 수 있었다는 점에서 잊지 못할 하루였다”고 합니다. 또 불교대학생 중에 한 명은 “처음에는 불대생 4명이서 도대체 어떻게 이 큰 강연을 치러내나 걱정했는데 봉사자 36명이 마음을 모아져서 너무 고마웠고, 오늘 공항에서 스님을 직접 뵈는 순간 평생의 기쁨을 다 느낀 것 같다”며 보람 있어 했습니다.nbspnbspnbsp또 어학연수를 왔다는 학생은 “세부에 와서 혼자 갇혀서 살았던 것 같은데 이번에 강연을 함께 준비하면서 좋은 사람들이 참 많음을 많이 느꼈다”고 합니다. 또 다른 학생은 “스님께서 밥을 먹고 살 수 있으면 내가 하고 싶은 것을 하라고 하신 말씀이 가장 기억에 남는다”고 합니다. 또 자신은 기독교인이라고 소개한 한 학생은 “법륜 스님은 저의 인생의 멘토로서 오늘 강연을 듣고 이제 고난과 시련을 지혜롭게 대처할 수 있을 것 같다”며 감사해 했습니다. 또 한분은 “질문자들이 계속해서 못 알아듣고 질문을 함에도 불구하고 스님께서 흔들림없이 답변하시는 모습을 보고 큰 감동을 받았다”고 하면서 “다음에도 이런 기회가 있다면 주저함 없이 참여하고 싶다”고 하였습니다.nbspnbsp▲ 강연장 뒷정리를 모두 마치고 다함께 마음나누기nbspnbsp묘덕 법사님은 마음나누기를 마무리하면서 “정토회는 일과 수행의 통일을 해나가는 곳”이라고 소개해 주신 후 “이번에 함께 일하면서 불편해하는 마음이 들었다면 그것을 나를 알아가는 기회로 만들어가면 좋겠다. 수행은 나도 행복해질 뿐만 아니라 그 모습을 보고 주위 사람들도 행복하게 하는 일이다. 내가 할 수 있는 작은 역할이라도 함께 하면서 혼자만의 부처가 아니라 모자이크 부처를 만들어갈 수 있다. 오늘 강연도 함께하는 것이 기쁘구나 느낄 수 있었다. 앞으로도 함께하는 이런 일들을 통해 모자이크 붓다의 길을 만들어가면 좋겠다.”고 오늘 수고한 봉사자들을 격려해 주었습니다.nbspnbsp오늘 스님 일행이 머물 숙소는 ANY CEBU 잡지를 운영하고 있는 김재은 이문순 부부 댁입니다. 숙소에 도착하니 밤11시가 넘었습니다. 스님께서는 늦은밤이라 내일 일정에 대해 간단히 의논한 후 일과를 모두 마치셨습니다.nbspnbsp오늘도 이렇게 많은 분들의 땀과 정성이 모여 108번째 필리핀 세부 강연도 잘 마칠 수 있었습니다. 내일은 대만에서 109번째 강연이 열릴 예정입니다. 대만에서 또 생생한 소식 전해드리겠습니다.nbspnbsp▼nbsp법륜 스님의 세계 100회 강연, 지난 날짜 소식 보기

2014.12.12. 37,425 읽음 댓글 29개

2014.12.9 세계 100회 강연(107) 필리핀 마닐라 Manila

nbsp안녕하세요. 오늘은 세계 115회 연속 강연 중 107번째 강연이 필리핀 마닐라에서 열리는 날입니다.nbspnbsp베트남 호치민의 호텔 로비에서 오전 6시에 아침 식사를 하고, 7시에 호치민 공항으로 출발했습니다. 어제 호치민 강연을 성공적으로 마친 최대현 유영아 부부가 새벽부터 찾아와 스님 일행을 공항까지 안전하게 배웅해 주었습니다. 공항으로 가는 길, 개미때처럼 몰려가는 출근길 오토바이 행렬을 보니 탄성이 절로 나오기도 했습니다.nbspnbsp▲ 베트남 호치민. 출근길 오타바이 행렬.nbspnbspnbsp스님께서는 “오토바이 타는 사람들이 전부 자동차를 몰고 나온다면 과연 어떻게 될까?” 하셨는데, 앞으로 베트남의 발전이 과연 어떤 모습으로 펼쳐질지 상상해보기도 했습니다.nbspnbsp오전 7시 30분에 공항에 도착하여 최대현, 유영아 부부와 작별 인사를 하고 기념 촬영을 했습니다. 어제 스님께서 두 부부에게 정토회 모임을 만들어보라는 제안을 해주셨는데, 베트남에서 새로운 씨앗이 싹트길 기원하면서 두분에게 희망을 기운을 보내주고 출국장으로 들어왔습니다.nbspnbsp▲ 베트남 호치민 강연을 담당해 준 최대현, 유영아 부부nbsp그리고 지난 12월1일 인도네시아 자카르타 강연부터 어제 베트남 호치민 강연까지 총 7개 도시에서의 강연을 준비하고 총괄한 홍정혜 지구장님과도 작별 인사를 했습니다. 홍정혜 지구장님은 각 도시마다 봉사자를 모집하고 연결하고, 강연 준비를 위한 실무 지원을 도맡아 해주셨습니다. 동남아시아 강연 모두를 아무런 사고 없이 무사히 잘 마치고, 오늘 방콕으로 돌아가십니다. 스님께서는 홍 지구장님에게 정말 수고 많았다고 하시며 손을 꼭 잡아 주셨습니다.nbspnbsp▲ 동남아시아 7개 도시 강연을 총괄해 준 홍정혜 지구장님nbspnbsp호치민 공항에서 9시30분에 출발한 비행기는 오후 1시 15분에 필리핀 마닐라 공항에 도착했습니다. 짐을 찾아 도착장으로 나오니 필리핀JTS 이원주 대표님과 필리핀정토회 윤경숙 총무님이 환영 푯말을 들고 나와 스님 일행을 반갑게 맞이해 주었습니다.nbspnbsp▲ 필리핀 마닐라 공항에 스님을 마중하러 나온 필리핀정토회 이원주 대표님과 윤경숙 총무님nbspnbsp필리핀은 서태평양에 있는 동남아시아의 섬나라입니다. 환태평양 조산대에 위치하고 있으며, 이런 이유로 필리핀은 지진과 태풍이 많이 일어나는 지역입니다. 이번 세계 100회 강연 중에도 태풍이 찾아와 오늘 마닐라 강연이 취소될 뻔한 위기가 있었습니다. 7,107개의 섬으로 구성되어 있는 필리핀은, 크게 루손 섬, 비사야 제도, 민다나오 섬의 세 지역으로 나뉩니다. 인구는 1억 명으로, 세계에서 12번째로 인구가 많은 나라입니다. 또한, 약 1,100만 명의 필리핀인들이 해외에 살고 있다고 합니다.nbspnbsp1521년, 페르디난드 마젤란이 필리핀에 도착한 이후, 스페인이 필리핀에 관심을 갖기 시작하였고, 결국 스페인의 지배를 받게 되었습니다. 식민 지배 동안에 마닐라는 아카풀코와의 무역 연결점이 되었으며, 필리핀에는 카톨릭이 널리 전파되게 됩니다. 19세기 말에 필리핀 혁명이 일어나고, 짧은 기간 동안 유지된 필리핀 제1공화국이 세워졌습니다. 그 뒤를 이어 미국스페인 전쟁과 필리핀미국 전쟁이 일어났고, 전쟁 이후 미국의 지배가 시작되었습니다. 제 2차 세계대전이 끝나고 필리핀이 독립을 할 때까지, 일본군이 점령했던 기간을 제외하고는 미국이 필리핀의 주권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미국의 지배를 계기로 영어와 서양 문화가 필리핀에 많이 전해지게 되었다고 합니다. 필리핀은 50년대부터 70년대까지는 아시아 지역에서 일본 다음으로 잘 사는 나라였으나, 마르코스 정권 말기의 타락, 몰락과 함께 빠르게 쇠퇴해 갔습니다.nbspnbsp▲ 필리핀 마닐라nbsp마닐라는 루손 섬 남서부에 있는 필리핀의 수도로 면적은 약 38㎢, 인구는 약 165만 명입니다. 메트로 마닐라로 확대하면 인구 약 1,185만의 대도시권입니다. 세계에서 가장 좋은 항만으로 일컬어지는 마닐라 만에 임한 항구 도시로, 시가지는 파시그 강을 끼고 그 남북으로 펼쳐집니다. 1990년대 후반부터 한국의 많은 학생들이 영어를 배우기 위해 찾는 대표적인 어학 연수지입니다. 북쪽에는 비옥한 중부 루손 평야를, 남쪽에는 남부 루손의 화산성 저지를 끼고 있습니다. 동양 최고의 대학인 산토토마스 대학, 필리핀 최고의 대학인 필리핀 국립대학과 아테네오 대학, 미리암 대학 등을 비롯한 교육 기관이 퀘존 시 지역에 집중되어 있다고 합니다.nbspnbsp현재 필리핀에 거주 및 체류 중인 교민 수는 약 10여만명으로 추정하는데, 1990년대 들어 대기업의 직접투자, 중소기업 투자에 따라 교포 수가 점차 증가하기 시작했으며, IMF 경제위기 이후 개인사업자들의 유입이 눈에 띄게 늘어났다고 합니다. 특히 2000년 들어 유학생 및 관광객이 급격히 증가하면서 2007년 필리핀 체류 및 거주교민은 역대 최대 규모인 15만명을 넘어서기도 했다고 합니다. 지금은 조금씩 줄어들고 있는 추세라고 합니다.nbspnbsp공항을 나오니 태풍이 지나가긴 했지만 아직 비가 조금씩 내리고 있었습니다. 공항에서 곧바로 오늘 숙소인 이원주 대표님 댁으로 이동했습니다. 댁에 도착하자마자 이원주 대표님, 한금화 지구장님, 윤경숙 총무님은 마닐라를 방문한 스님께 삼배로 인사를 올렸습니다.nbspnbspnbsp새벽부터 먼 길을 달려 온 스님 일행에게 한금화 동아시아 지구장님이 정성껏 점식 식사를 준비해 주어 감사히 먹었습니다. 식사 후 스님께서는 이원주 대표님과 필리핀JTS 사업 전반에 대해 회의를 하셨습니다.nbspnbsp▲ 필리핀JTS 사업 논의를 하고 있는 모습nbspnbsp스님께서는 회의 후 저녁 nbsp강연을 위해 잠깐 휴식을 취한 후 오후 6시20분에 강연장으로 이동하셨습니다.nbspnbsp▲ 오늘 강연장,nbspAsia and the Pacific CollegenbspAuditoriumnbsp오늘 강연장은 Asia and the Pacific College Auditorium 입니다. 강연장에 도착하니 입구에서부터 주황색 티셔츠를 입은 대학생 봉사자들이 골목 곳곳에서 자리해 주차 안내를 해주었습니다.nbspnbsp▲ 태풍을 뚫고 오신 스님 이라는 푯말로 참가자들을 맞이하고 있는 대학생 봉사자들nbspnbsp오후 6시30분부터는 필리핀 지역 교민사회의 주요 인사 분들과 차담 시간을 가지셨습니다. 오충석 한국문화원 원장님, 진현용 참사님, 김근한 한인회 회장님, 민주평통 동남아 북부 협의회 이영백 회장님, 필리핀 대한체육회 윤만용 회장님, 김영기 회장님, 이관수 전직 한인회 회장님, 이원주 필리핀정토회 대표님 등 많은 분들이 오셔서 스님과 환담을 나누셨습니다. 모두들 스님의 세계 115회 연속 강연 소식을 듣고 스님의 건강을 많이 염려하셨고, 스님께서는 세계를 다니시며 있었던 에피소드와 소회를 이야기해 주셨습니다.nbspnbsp▲ 강연 전, 마닐라 교민사회 지역 인사 분들과 차담을 나누시는 모습nbspnbsp특히 이영백 회장님은 스님께 “요즘 젊은 사람들이 자립심이 많이 부족한데, 스님께서 젊은 사람들을 위해 이런 좋은 강연을 많이 해주셨으면 한다”는 바램을 이야기 하셨는데, 스님께서는 “그 문제는 아이들의 문제가 아니라 부모들이 자식을 과잉보호 해서 생긴 문제”라고 하시면서 부모 역할의 중요성을 이야기해 주셨습니다. 강연 시간이 다 되어서 다함께 기념 촬영을 하고 강연장으로 이동하셨습니다.nbspnbsp▲ 마닐라 지역 교민 사회를 일궈오신 지역 인사 분들과 함께nbspnbsp오늘 마닐라 강연은 총 300명이 자리해 대성황을 이루었습니다. 환영 영상과 소개 영상에 이어서 저녁7시에 큰 박수를 받으며 스님께서 무대에 오르셨습니다.nbspnbspnbsp스님께서는 태풍으로 인해서 강연이 취소될 뻔한 이야기를 하면서 강연을 시작하셨습니다.nbspnbsp“안녕하세요. 만나서 반갑습니다. 태풍 피해는 없었습니까? 저는 어제 호치민에서 강연을 하고 태풍 때문에 비행기가 안뜰수 있다고 해서 홍콩으로 들러서 와야 한다고 얘기가 많았어요. 그런데 아침에 공항에 나가니까 다행히 비행기가 출발한다고 해서 무사히 잘 왔습니다. 115강 중에서 태풍으로 강연 하나가 빠지는가 했는데 사고 없이 잘 끝날 것 같아요. 오늘이 107번째 강연입니다. 이제 거꾸로 메달아 놓아도 마칠 수 있을만큼 왔어요, 9번만 더하면 끝이 나니까요. 오늘이 고비였던 것 같아요. 만약에 태풍이 심해서 비행기가 뜨지 않았으면 여러분들 얼굴을 못 볼뻔 했습니다.nbspnbspnbsp저희들도 작년에 태풍 하이옌이 지나가고 긴급구조단을 파견해서 학교 열 몇 개를 복구했습니다. 저희들이 가장 빨리 복구를 해서 그 지역에서 표창도 받고 했는데, 여러분들이 잘 아시는 이원주 회장님이 아주 신속하게 대응을 하셔서 큰 도움을 주셨습니다.nbspnbsp저는 2002년도에 제가 큰 일을 한 것도 없는데 막사이사이상 평화와 국제이해 부문에서 상을 수상하는 것을 계기로 해서, 필리핀에서 상금을 받는 게 좀 그래서 그 상금보다 열배는 더 돌려줘야 되겠다 생각해서 그 이듬해에 민다나오로 들어가서 원주민 마을과 무슬림 분쟁지역에 가서 작은 학교 40여개를 지금까지 건설을 했습니다. 5년 전부터는 ‘다물록’이라고 하는 곳에 중학교도 만들고 지역 보건소도 만들면서 시와 협력해서 개발사업을 추진하고 있습니다. 이런 일들로 인해 다른 나라보다는 필리핀에는 1년에 한두번씩은 꼭 오는 편이예요.nbspnbsp인류가 20세기에 들어오면서 많은 물질적인 발달과 성장을 해왔지 않습니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 인간의 행복이라는 문제가 해결이 안되고 있어요. 그래서 GDP 순위와 행복도 순위가 서로 다릅니다. 그런 면에서 지금 우리에게는 어떻게 하면 과연 인간이 좀 더 행복할 수 있을까 이것이 새로운 과제가 되고 있습니다. 배고픈 사람은 밥을, 병든 사람은 약을, 목마른 사람은 물을, 헐벗은 사람은 옷을 주는 등 이런 기본적인 인도적 지원도 필요하지만, 밥도 먹고 옷도 입고 집도 있고 잘 사는데 행복하지 못하고 괴로운 사람들에게는 정신적인 위로를 위해 성인의 가르침이 필요합니다. 현대사회야 말로 이런 성인의 가르침이 더 필요로 하는 시대가 되었습니다. 그런 면에서 서구사회에서는 불교의 가르침이 새로운 사상으로 받아들여지고 있습니다. 얼마 전에 구글 본사에서 저를 초청한 것도 그런 측면에서 아이디어를 얻으려고 했던 것 같아요. 붓다가 가르친 가르침은 종교를 초월해 있습니다. 그래서 오늘 이 자리에 오신 분들은 각자가 갖고 있는 종교적인 문제를 뛰어넘어서 어떻게 하면 우리 인간이 좀 더 행복할 수 있느냐 하는 문제로 함께 얘기를 나눠보면 좋겠습니다. 각자 자기 종교를 갖고도 우리는 새로운 문제를 받아들일 수 있지 않느냐 생각합니다. 그래서 오늘은 종교와 관계 없이 대화를 해보려고 합니다.nbspnbsp즉문즉설은 인생을 살면서 겪는 고뇌와 의문에 대해서 아무런 주제의 제한 없이 금기사항 없이 마음껏 대화해보는 자리입니다. 자, 그럼 시작해 보겠습니다.”nbspnbsp그러면서 질문을 받기 시작했습니다. 총 7명이 스님께 질문을 했습니다.nbspnbsp“학업과 연애 대해서 질문드립니다. 제가 여자친구가 한명 있습니다. 20살이 되어서 대학을 가야할 나이인데 대학을 해외에 가기로 했어요. 서로 떨어져서 연애를 해야 하는데, 하지만 제 신분은 학업에 충실해야 하는 신분이고요. 학업과 연애를 같이 하는 건 욕심인 것 같은데, 두 마리 토끼를 다 잡을 수 있는 방법이 있을까요?”nbspnbspnbspnbsp“카톨릭 신자인데 법륜 스님의 법문을 들어도 되는지요? 스님 법문을 열심히 듣고 있는데 왠지 마음에 걸림이 있습니다.”nbspnbspnbsp“최근에 반야심경을 읽고 궁금증이 생겼어요. 대승불교는 기원전 1세기 경에 일어난 운동으로 알고 있습니다. 사리자와 부처님은 기원전 6세기경의 사람이구요. 같은 시간대에 언급될 수 있는지 궁금합니다. 반야심경에 나오는 공이라는 개념과 무라는 개념이 같은 의미인지요? 이것은 또 금강경에 나오는 범소유상 개시허망과 같은 의미인지요?”nbspnbsp“만약 스님이라면 좋아하는 일과 잘 하는 일 두 가지가 서로 다른 일이라면 무엇을 택할 것인지요? 계속다른 사람과 비교하게 되는데 그것 땜에 스트레스를 받습니다.”nbspnbspnbsp“유별나게 행동을 하는 아이가 있습니다. 그러려니 하며 놔둔 결과, 현재는 그런 행동들이 개념이 없다는 피드백을 받아서 매일 매일 저에게 스트레스를 가져옵니다. 그래서 이 아이를 어떻게 키워야 할지 고민입니다.”nbspnbspnbsp“나이가 39세입니다. 한국에서 이곳 필리핀에 파견 와서 혼자 지내다 보니깐 적적합니다. 여러가지 취미를 하는 도중에 티비에서 아이들이 크는 모습들을 보니깐 결혼도 하고 싶은데, 필리핀에서 한국 여자 만나기도 어렵고 필리핀 여자 만나기도 힘든 것 같습니다.”nbspnbsp이렇게 다양한 질문에 대해서 스님께서는 지혜로운 말씀을 들려주셨습니다. 오늘은 그 중에서 친어머니와 사별하고 새어머니를 만났는데 서로 사이가 좋지 않아 고민인 청년의 질문과 스님의 답변을 소개합니다. 갈등을 어떻게 풀어나갈 수 있는 스님의 지혜가 깃든 말씀에 많은 청중들이 깊이 공감했습니다. nbspnbspnbsp“안녕하세요. 저는 20살입니다. 제가 가지고 있는 고민은, 어머니와 사이가 굉장히 안 좋아요. 사실 어머니가 친어머니는 아니세요. 이제 2년 된 새어머니세요. 제가 필리핀에 살고 있어서 같이 오래 살아본 적은 없는데, 한두달 정도 같이 지냈었습니다. 그런데 제가 뭘 잘못했는지는 모르겠지만, 언제부터인가 저를 싫어하신다는 것이 느껴졌어요. 그래서 관계를 회복하고 싶어서 둘이서 얘기로 풀어볼려고 한 적도 있는데, 시도했을 때마다 더 관계가 악화되고 요즘은 너무 사이가 안좋아요. 이제는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어요.”nbspnbsp“스물살이면 독립해야 되잖아요. 집에서 나오면 되지요.”nbspnbsp“그런데 지금 같이 살고 있는 것이 아니라 떨어져 살고 있는데, 저는 정말 독립을 하고 싶어요. 저는 혼자 살고 싶은데 아버지와 어머니가 저를 너무 애 취급하시는 게 있어요.”nbsp nbsp“지금 질문자가 재정적으로 독립했어요? 아니면 부모님이 도와주는 것으로 살고 있어요?”nbsp“부모님이 돈을 보내주셔서 그 돈으로 살고 있어요.”nbspnbsp“부모님의 재정적 지원을 받고 살고 있는데 어떻게 독립을 해요? 독립하고 싶으면 먼저 재정적으로 자립을 해야지요. 질문자는 지금 필리핀에 있고, 아버지는 어디에 있어요?”nbsp“아버지는 파퓨아뉴기니에서 사업하고 있고, 새어머니도 같이 계세요.”nbsp nbsp nbsp“떨어져 있는데 갈등이 왜 있고 나쁠 게 뭐가 있어요?”nbsp“앞으로 관계를 회복해야 될까? 아니면 저도 그냥 …”nbspnbsp“부모님이 어떻게 했길래요? 지금 뚝 떨어져서 사는데 관계 회복할게 뭐가 있어요?”nbsp“그냥 앞으로 관계에 있어서 고민이예요. 아무래도 그럴 기회가 오면은...”nbspnbsp“질문자가 지금 도움을 얻고 살고 있다면서요? 도움을 얻고 살고 있으면 항상 ‘감사합니다’ 하면 되지요. 본인의 부모님이라고 생각하지 말고, 질문자의 스폰서라고 생각해요. 본인의 스폰서라고 생각하면 고마워요? 안 고마워요?” nbspnbsp“고마워요.”nbsp“그래요. 고마우면 사모님한테도 잘 해야지요. 사모님한테 질문자가 잘못하니까 지금 이런 것이지요. 사모님이라고 생각하고 잘해요. 아버지는 스폰서이고, 엄마는 스폰서의 사모님이예요. 그러니 사모님한테 잘 하면 금방 해결이 돼요. nbspnbspnbsp아버지가 원래 생모인 엄마하고는 이혼했어요? 사별했어요?nbsp“사별하셨어요.”nbsp“그러면 이 어머니는 새어머니가 아니고 그냥 어머니예요. 새어머니 이런 말을 할 필요도 없이 그냥 ‘어머니’예요. 그런데 친어머니라 하더라도 내가 스무살이 넘으면 부모는 더이상 나를 도와 줄 책임이 없습니다. 그러니까 이제부터는 스폰서예요. 스폰서로부터 지원을 계속 받을려고하면 스폰서한테 잘해야 될까요? 못해야 될까요?”nbspnbsp“잘해야죠.”nbsp“그러니 아버지, 어머니라고 생각하지 말고 스폰서라고 생각하고 깎듯이 잘하면 아무 문제가 없어요. 관계를 개선하니 안하니 그렇게 생각하지 말고, 어머니하고 둘이서 말로 풀려고 하지 말고, 스폰서에게 깎듯이 공손하게 대하면 저절로 풀려요. 스님 얘기를 듣고 본인의 소감을 얘기해 보세요.”nbsp“저는 정말 사이가 좋았으면 했어요.”nbsp“아니, ‘사이가 좋았으면’ 하는 그런 말로 안된다니까요? 스폰서라고 생각하고 깎듯이 예우를 갖추면 관계가 좋아진다니깐요. 요점은 결국에는 새어머니하고 관계가 좋아지고 싶다 이 말 아니예요?”nbsp“그런 셈이지요.”nbspnbsp“요점은 스폰서라고 생각하고 사모님한테 깎듯이 예의를 갖추면 관계가 좋아져요. 만난지 2년밖에 안되었는데 그냥 말로서 관계를 좋게 하자 이런 것은 없어요. 그렇게 될 수가 없어요. 더구나 어머니는 아버지를 좋아해서 결혼했을까요? 질문자를 좋아해서 결혼을 했을까요?nbspnbspnbsp“당연히 저희 아버지이죠.”nbsp“그러면, 아무 관계도 없는 질문자가 붙어 있으니까 좋아할 리가 뭐가 있어요? 자꾸 돈이나 가져가고 나쁘지요. 그런데 그것을 자꾸 말로 해결할려고 하니 그것이 어떻게 좋아지겠어요? 말로는 ‘어머니’ 하지만, 사장집 사모님 대하듯이 깎듯이 대하면 관계는 저절로 좋아져요.”nbspnbsp“네, 알겠습니다.”nbspnbsp“어머니하고 관계를 개선하고 싶다고 했는데 관계가 왜 나빠졌어요? 말을 안들었나 보네요?”nbsp nbsp“제가 계속 공부를 잘 못해서 실망을 시키는 모습을 아버지한테 많이 보여드려서 아버지가 많이 힘들어 하셨어요.”nbspnbsp“그러니까 자기 남편을 힘들게 하는 사람을 좋아할 리가 있나요?”nbsp“네. 그렇게 얘기하셨어요. 어머니가 ‘너가 아버지 힘들게 하면 용서 못한다’ 고 했어요.” nbspnbsp“그러니까 ‘죄송합니다’ 라고 해야지요. 질문자한테는 아버지이지만, 그 엄마한테는 남편이잖아요. ‘사모님, 제가 남편을 힘들게 해서 죄송합니다’, ‘사모님, 제가 남편 돈을 계속 받아서 죄송합니다’ 어머니에게 이런 마음을 가져야지요. 말은 어머니라고 하지만 속으로는 사모님 같이 대하세요. 그러면 관계가 금방 풀려요. 들은 소감을 말로 한 번 해봐요.”nbsp“그런데 제가 걱정되는 것은 저도 어머님을 많이 싫어하게 될까봐요.”nbsp“질문자도 어머니를 싫어할 수 밖에 없지요. 왜냐하면 ‘저게 어디서 굴러와서 남의 아버지를 데려가나?’ 이렇게 생각하지요. 질문자는 ‘아버지 빼앗겼다’ 생각하니 싫고, 그 여자는 ‘저게 어디서 우리 남편 돈을 계속 가져가고 걱정을 끼치나?’ 이렇게 생각해서 싫어할 수 밖에 없는 거예요. 그것은 자연의 이치예요. 그러니 그런 생각을 하지 말고, 그냥 ‘그 분은 우리 아버지의 부인이고, 아버지는 나를 지원해주는 스폰서이고, 그 분은 스폰서의 사모님이다’ 이렇게 생각하고, 항상 깎듯하게 대해야 합니다. nbspnbsp그리고 ‘아버지 돈이 내 돈이다’ 이렇게 생각하면 안돼요. 나는 아버지 돈을 내 돈이라고 생각하지만, 어머니는 아버지 돈을 자기 돈이라고 생각해요. 여기에서 이해가 상충되는 거예요. 질문자가 스무살 이전에는 괜찮은데, 이제 스무살이 넘었기 때문에 아버지 돈은 본인 돈이 아니예요. 결혼한 부인은 자기 돈이라고 생각할 수 있지만 질문자는 이제 더 이상 아버지 돈을 본인 돈이라고 생각하면 안돼요. 그래서 스님이 스폰서라고 그러는 거예요. 스폰서에게 후원을 받을려면 스폰서가 요구하는 어떤 조건을 갖춰야 장학금을 계속 받겠지요. 원하는 정도로 공부를 하지 않든지 기대만큼 안하면 지원을 끊어버리겠지요. 그러니까 스폰서의 요구 조건을 잘 들어주어야지요. 그게 싫으면 지금이라도 경제적으로 딱 자립을 해버리고요. 본인 얘기 한 번 해봐요.”nbsp“그러면 제가 자립하기 전까지는요?”nbspnbsp“자립하기 전까지는 지원을 받아야 하잖아요. 그러니 지원하는 사람이 고마워요? 안 고마워요? 고맙지요. 그러니 깎뜻이 예를 갖추어서 대하면 아무 문제가 안생겨요. 말로 해결하려고 하지 말고요. 알았지요?”nbspnbsp“네, 잘 알겠습니다.” nbsp“어떤 사람이 돈을 백만원을 빌려가 놓고 말로 해결하려고 하면 기분이 나쁘겠지요? 돈을 갚든지, 아니면 사근사근하게 심부름을 잘 해주든지, 뭐 둘 중에 하나는 해야지요. 그러니까 사모님을 깎듯이 모셔요. 알았지요?”nbspnbsp“네”nbspnbspnbsp“재혼을 했을 때 이것이 제일 큰 문제예요. 애들 생각에 아빠는 자기들 아빠이니까 ‘우리 아빠인데, 우리 아빠 돈을 왜 너가 마음대로 하냐?’ 이렇게 생각하고, 부인은 애들이 있든지 말든지 남편은 내 남편이니까 내 돈이지요. 그런데 ‘왜 애들이 자꾸 가지고 가나?’ 이렇게 생각하는 거예요. 그래서 지금 전혀 관점이 서로 달라요.nbspnbsp그래서 스무살 밑으로는 아이들이 아버지로부터 보호받을 책임이 있고 의무가 있어요. 그러나 스무살이 넘었기 때문에 질문자는 아버지한테 더이상 지원받을 아무런 권리가 없어요. 이제는 딱 독립을 해야돼요. 그러니까 더이상 그 쪽 신경 쓸 필요가 없고, 새어머니하고 관계를 해결할 필요도 없고, 그냥 ‘안녕히 계십시오’ 하고 관계를 딱 끊고 본인 인생을 살면 돼요. 그런데 지금 본인이 경제적으로 그럴 형편이 못되니까 좀 스폰서한테 사근사근하게 곱신곱신하게 해서 지원을 받고, 그 스폰서 부인인 사모님한테도 잘못 보이면 안돼잖아요.nbspnbspnbsp요즘 남자들은 부인한테 꼼짝을 못해요. 사회 분위기가 남자들이 여자 말을 다 듣는 쪽으로 바뀌었어요. 그러니까 사모님한테 깎듯히 대해야 해요. 엄마를 넘어서서 사모님처럼 모셔야 돼요. 그래야 이 문제가 해결돼요. 요즘 남자들은 본인이 어떤 결정을 못해요. 남자들이 어쩌다가 이리 되었는지 모르겠어요. 아무 결정권이 없어요. 저도 몇 번 경험이 있는데 여자가 딱 얘기를 하니 저절로 돼요. 그래서 저도 앞으로 어떤 문제가 있으면 남자하고 얘기 안할려고 그래요. 허수아비예요. 그래서 사모님한테 잘해야 돼요. 내 아버지다 이렇게 생각하면 아무 소용이 없어요. 아버지는 허수아비예요. 스무살이 넘었기 때문에 사모님을 잘 모셔야 해요. 그래야 지원을 받지요.”nbsp“네” nbsp스님께서 ‘새어머니’가 아니라 ‘사모님’이라고 표현하는 순간부터 청중석에서는 ‘사모님’ 표현이 나올 때마다 박장대소가 터져나왔습니다. 같은 사물을 어떻게 바라보는지에 따라서 마음이 이렇게 가벼워질 수도 있구나 하는 것을 체험할 수 있었습니다. 무거웠던 얼굴 표정에 웃음이 드리우고 경쾌한 목소리로 대답하는 학생에게 청중들도 격려의 박수를 크게 보내주었습니다.nbspnbspnbsp마지막으로 스님께서는 지금 이대로 행복해야 한다고 강조하시면서 이렇게 닫는 말씀을 해주셨습니다.nbspnbsp“행복하기 위해서 노력하면 안돼요. 지금이 행복한 줄 알아야 합니다. 여기 학생들이 많이 봉사를 하고 있는데, 밥만 먹고 공부만 해도 되는 시기가 인생에서 얼마나 될까요? 학생 때 밖에 없죠. 어른이 되어서 아무 일도 안하고 공부만 하면 밉상이지요. 그런데 아무것도 안하고 밥만 먹고 공부만 해도 그저 이쁘기만 한 때가 학생 때입니다. 그래서 학생들은 밥만 먹고 공부만 하는 이 시기를 만끽하는 것이 필요합니다.nbspnbsp 학생은 공부하는 게 좋아야 하고, 직장 다니는 사람은 직장 다니는 게 재미있어야 하고, 결혼한 사람은 결혼생활이 좋아야 해요. 저처럼 늙으면 늙은 것이 좋아야 하고, 혼자 살면 혼자 사는 게 좋아야 합니다. 저는 혼자 사니까 얼마나 좋아요? 이렇게 전세계를 돌아다녀도 뭐라 하는 사람이 없잖아요. 결혼해서 이렇게 돌아다니면 밉상이겠죠? 그러니까 같이 있으면 같이 있어서 좋고, 혼자 있으면 혼자 있어서 좋아야 합니다. 살아 있을 때는 삶을 만끽하고, 때가 되면 기꺼이 죽어줘야 돼요. 늘 주어진 상황이 좋음을 알아야 합니다. 평상심이 도입니다. 지금 이대로 좋아야 돼요. 필리핀에서 사는 게 좋아야 해요. 그렇게 행복하시기 바랍니다.”nbspnbsp2시간 20분 동안 열강을 해주신 스님께 마닐라 교민들은 큰 박수를 보내주었습니다.nbspnbsp강연을 마치고 스님께서는 로비로 이동하여 책 사인회 시간을 가졌습니다. 사인을 해주시는 스님께 마닐라 교민 분들은 반가운 인사를 건냈고, 스님께서 세계 100회 강연을 건강히 잘 마치시길 모두들 응원해 주었습니다.nbspnbspnbsp다시 강연장으로 이동하여 오늘 강연을 위해 곳곳에서 소임을 맡아 준 자원봉사자 모두와 함께 기념 촬영을 하였습니다. 특히 필리핀에 유학을 와 있는 대학생들 20여명이 자원봉사 신청을 해서 주차 안내부터 무대 시설까지 팀별로 역할을 나누어 많은 일을 해주었습니다. 그리고 필리핀정토회에서 활동하시는 교민 분들이 곳곳에서 큰 역할을 해주셨습니다.nbspnbspnbsp특히 이번 강연을 총괄해준 윤경숙 필리핀정토회 총무님에게는 스님께서 직접 사인한 인생수업 책을 선물하고 기념사진도 함께 찍었습니다.nbspnbsp▲ 오늘 마닐라 강연 총괄을 맡아 수고해준 윤경숙 필리핀정토회 총무님nbspnbspnbsp자원봉사자 모두에게는 스님께서 직접 단주를 손목에 걸어주시며 선물했습니다. 봉사자들은 스님께서 직접 주신 단주를 의미있게 여기며 감사해 했습니다.nbspnbspnbsp그리고 스님께서는 “매일 강연을 하다보니 몸이 많이 안좋다” 하시면서 “마음나누기는 묘덕법사님과 함께 하세요” 라고 부탁하시고, 숙소로 바로 이동하셨습니다.nbspnbsp행사장 뒷정리를 모두 마친 자원봉사자들은 묘덕 법사님과 함께 마음나누기를 하였습니다. 오늘 마닐라 강연의 가장 큰 특징은 40대 50대 남자 분들이 자원봉사에 많이 참여해 주신 점입니다. 한 거사님은 “홍보 담당을 하면서 태풍 때문에 걱정을 많이 했지만, 다행히 많은 분들이 왔다” 하시면서 “마닐라 강연 소식이 지역 신문에 기사도 나고, 또 오늘 아침에는 태어나서 가장 많은 카톡 메시지를 날려 보았다” 며 보람있어 했습니다. 그리고 “다음에 강연을 준비할 때는 지금보다는 더 체계화된 초청리스트를 만들어서 사전 작업을 해보겠다”고 하빈다. 또 다른 거사님은 “욕심이 자꾸 생기더라” 면서 “우리끼리는 모든 객석을 다 채워보고 싶었는데 태풍 때문에 3분의1은 안 온 것 같다” 고 아쉬워 했습니다. 주부 봉사자 중에 한 분은 “사람 수를 채우기 보다는 스님의 법문들 듣고 난 사람들의 반응이 궁금했는데, 젊은 친구들이 질문도 하고 봉사하는 모습을 보니 많이 대견스러웠다.”고 합니다. 또 한 분은 “기독교 신자인데 청년들이 많이 참여한 것을 보니까 참 좋았고, 정토회가 참 발전하는구나 느꼈다.”고 합니다. 또 한 분은 “젊은 친구들이 봉사하는 모습을 보니까 너무 고맙고, 청년들이 불교대학도 들어서 마닐라 정토회에 청년회가 생기면 좋겠다”는 바램을 이야기하기도 했습니다.nbspnbsp▲ 묘덕 법사님과 함께한 마음나누기nbspnbsp묘덕 법사님은 마음나누기를 마무리해 주시면서 “오늘 많은 분들이 오셔서 행복해하는 모습을 보았죠? 봉사자 여러분들도 다들 뿌듯해 하시는 것 같아요. 이런 좋은 시간을 봉사자 여러분들이 만들어주셨어요” 라고 하시며 모두에게 감사의 마음을 전했습니다.nbspnbsp오늘도 이렇게 많은 봉사자들의 땀과 정성으로 107번째 필리핀 마닐라 강연도 잘 마쳤습니다. 내일은 필리핀 세부에서 108번째 강연이 열릴 예정입니다. 그럼 세부에서 또 생생한 소식 전해드리겠습니다.nbspnbsp ▼nbsp법륜 스님의 세계 100회 강연, 지난 날짜 소식 보기

2014.12.10. 40,572 읽음 댓글 31개

2014.12.8 세계 100회 강연(106) 베트남 호치민 Hochiminh

nbsp안녕하세요. 오늘은 세계 100회 강연 중 106번째 강연이 베트남 호치민에서 열리는 날입니다.nbsp호치민은 베트남에서 가장 큰 도시로 메콩 강 하구 삼각주에 자리하고 있습니다. 16세기에 베트남인에게 정복되기 전에는 프레이 노코르 란 이름의 캄보디아의 주요 항구였습니다. 사이공이란 이름으로 프랑스 식민지인 코친차이나와 그 후의 독립국인 남베트남의 수도이기도 했습니다. 1975년에 사이공은 호찌민 시로 이름이 바뀌었습니다. 그러나 여전히 사이공이 많이 쓰입니다. 시 중심부는 사이공 강의 강둑에 놓여 있습니다. 옛날에는 캄보디아인이 살고 있었으나 17세기에 베트남인의 지배 하에 들어갔고 19세기에 프랑스의 도시계획으로 근대 도시가 된 후 정치 · 경제의 중심지로 발전해 왔습니다. 호찌민 중심부로부터 남서쪽 약 6㎞의 촐롱은 화교가 많은 거리로서 상업중심지입니다. 메콩 삼각지에서 나오는 쌀도 여기서 거래되고 정미된다고 합니다. 호치민 시에 한국 교민은 약 10만명 정도가 살고 있다고 합니다. 푸미흥 지역에는 한인 밀집 지역이 형성될 정도로 큰 교민사회를 이루고 있습니다.nbspnbsp▲ 베트남의 최대 도시, 호치민nbsp아침 5시30분에 숙소에서 내려와 호텔 로비에서 간단히 아침 식사를 하였습니다. 새벽부터 어제 하노이 강연을 담당한 혜명회 박미선 회장님과 운전 봉사를 하러 이병국님이 나와 주셨습니다.nbspnbsp▲ 하노이 공항까지 배웅을 해준 박미선님과 이병국님nbspnbsp6시에 숙소를 출발하여 공항으로 이동했습니다. 공항으로 이동하는 길에 출근하는 오타바이 행렬을 곳곳에서 만날 수 있었는데, 배트남은 남녀 구분 없이 정말 많은 사람들이 오토바이를 즐겨 타고 있었습니다.nbspnbsp▲ 자전거와 오토바이를 타고 출근하는 하노이 시민들nbsp▲ 통일궁.nbsp과거의 대통령 관저.nbsp일기예보에 따르면 현재 필리핀 남동쪽 100km 지점에서 태풍이 발생해 호치민 방향으로 계속 서쪽으로 이동하고 있는데, 자칫하면 내일 아침 마닐라로 향하는 비행기가 못 뜰 수도 있을 것 같았습니다. 그래서 스님만이라도 먼저 오늘밤이나 내일 아침일찍 홍콩으로 가고 홍콩에서 안전하게 마닐라로 갈 수 있는 방법을 찾느라 아침부터 분주했습니다.nbspnbsp▲ 하노이의 일출 풍경. 메콩 강 위로 햇빛이 반짝입니다.nbspnbsp짐을 모두 부치고 공항까지 배웅을 나와 준 박미선님, 이병국님과 함께 담소를 나누었습니다. 그리고 어제 강연 준비하느라 정말 수고가 많았다고 감사 인사를 하고 스님 일행은 게이트 안으로 들어왔습니다. 아침 8시35분에 하노이를 출발한 비행기는 10시 40분에 호치민 공항에 도착했습니다. 짐을 모두 찾고 게이트로 나오니 오늘 호치민 강연 담당자인 최대현 유아영 부부가 주황색 티셔츠를 입고 나와 스님 일행을 반갑게 맞이해 주었습니다. 두 부부는 어제 하노이로 가는 길에 만났던 분들이라 훨씬 친근감이 들고 마치 우리 식구인 양 금새 반가운 마음이 들었습니다. nbspnbsp공항에서 곧바로 오늘 묵을 속소인 호텔로 이동했습니다. 강연장이 한인회관인데 한인회관 바로 옆에 호텔이 위치해 있어 이동거리가 짧아 참 좋았습니다. 호텔에 도착하니 이곳 매니저인 노원미님과 강연 준비팀이 나와서 스님께서 차에서 내리자마자 꽃다발을 선물하며 열렬히 환영해 주었습니다.nbspnbsp▲ 반갑게 환영해 준 호텔 매니저 노원미님과 호치민 강연 담당자 최대현님nbspnbsp숙소에 짐을 풀고 있으니 강연준비팀에서 점심 도시락을 가져다 주었습니다. 감사한 마음으로 점심을 먹고, 스님께서도 오후 강연을 위해 잠시 휴식을 취하셨습니다.nbspnbsp오늘 강연장은 호치민 한인회관 2층 강당입니다. 오후 2시가 되자 빈자리 없이 청중들이 빼곡이 찼고 스님께서 등장하자 입구에서부터 많은 봉사자들이 스님께 반가운 인사를 했습니다. 좌석이 150석이 마련되어 있었는데 총 170여명이 참석했습니다.nbspnbsp▲ 호치민 한인회관을 가득 메운 170여명의 교민들nbsp호치민 교민들의 열렬한 환호를 받으며 무대에 오른 스님께서는 즉문즉설은 대화를 통해 진실을 발견해나가는 자리라고 강조해 주시면서 이렇게 강연을 시작하셨습니다.nbspnbspnbsp“즉문즉설은 우리가 인생을 살면서 겪는 어떤 고뇌나 의문에 대해 스님과 대화를 하는 것입니다. 대화를 하다보면 해결의 실마리를 찾을 수 있어요. 대화를 하다가 자기 의문이 덜 해소되면 끝까지 문제를 제기해도 괜찮습니다. 주눅들지 말고 뭐든지 자유롭게 표현해 보세요. 왜냐하면 우리가 어떤 선입관과 금기가 있으면 진실로 나아가기가 어렵습니다. 자 그럼 시작해 봅시다.”nbsp그러면서 질문을 받기 시작했습니다. 총 7명이 스님께 질문을 했습니다.nbspnbsp“귀신의 존재가 무섭습니다, 어릴적 보았던 영화 때문에 트라우마가 생긴 것 같습니다, 오래전이지만 성인이 된 지금도 귀신의 존재가 두렵습니다. 어떻게 극복해야 할까요?”nbspnbsp“딸과 오랫동안 떨어져 지내다 다시 같이 지내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15세 딸이 밖에 나가기를 싫어합니다. 무엇이 문제 일까요?”nbspnbspnbsp“어떻게 하면은 젊게 살 수 있을까요? 스님께서는 10년 전에 뵈었을 때보다 훨씬 젊어지신 것 같은데, 젊어질 수 있는 비결은 무엇인가요?”nbsp“사후 준비로 베풀면서 욕심을 버리고 살려고 하는데, 계속 욕심이 다시 생깁니다, 어떻게 하나요? 그리고 사후 세계가 있나요? 만약 있다면 지난 생에 대해 확신이 없어 걱정이 됩니다.”nbspnbspnbspnbsp“20년 동안 사업을 했던 남편과 두 달 전에 호치민에 왔습니다. 이제는 남편이 아닌 저도 스스로 무언가를 하러 왔는데, 오기 전에 세운 계획이 허술했던 것 같고, 다른 나라에서의 문화 차이도 있고 지금 많이 혼란스럽습니다. 어떻게 해야할까요?nbsp“외동딸로 자라서 부모님을 실망시켜드리기가 너무 겁나고, 세상 사람들에게도 의미있는 사람이 되고 싶습니다. 이 세상에 혼자 남게 되더라도 좋은 사람이 되고 싶은데 어떻게 살아야 할까요? 행복하려면 어떻게 해야하나요?”nbspnbspnbsp“베트남에서 산지 1년 되었습니다. 어떻게 보면 타지에서 살게 되는 건데, 교만한 생각으로 베트남인들과의 갈등이 조금 있는 것 같습니다. 어떻게 해결해야 하나요?”nbsp이렇게 다양한 질문에 대해서 스님께서는 정성껏 답변을 해주셨습니다. 오늘은 그 중에서 남편이 술을 먹고 귀가하시는 시간이 늦어서 해외에서 혹시 사고가 나지 않을까 싶어 매일 걱정된다는 한 분의 질문과 스님의 답변을 소개합니다. 스님께서 얘기해 주시는 발상의 전환을 듣고 모두들 크게 공감하고 즐거워 했습니다.nbspnbspnbsp“유튜브를 통해 스님의 도움을 많이 받고 있습니다. 개인적인 사생활문제라서 질문을 할까말까 계속 고민을 하다가 용기를 내어서 질문을 드립니다.”nbspnbsp“동네에 소문날까 싶어서 망설였어요? 그런 것 신경쓸 필요없어요”nbspnbsp“제 남편은 평소에는 정말 잘하는데 술을 너무 좋아하거든요. 술을 좋아해서 먹다가 보면 귀가 시간에 답이 없어요. 그래서 맨날 싸우게 됩니다. 특히나 결혼 전인 과거에 남편이랑 다른 회사 동료들이, 베트남에 근무를 하다가 늦은 시간까지 술을 마시고 택시 타고 귀가하다가 택시 기사에게 나쁜 일을 당한 적이 있었거든요. 그 일에 대한 트라우마도 있고 해서, 술먹는 것에 대해서 집착을 좀 하게 되는 것 같아요. 남편은 술을 먹으면 ‘절대 시간 약속은 지킬 수 없다. 술은 그냥 느낌대로 먹는 것이기 때문에 절대 너와 약속은 지킬 수 없다. 그러니 푹 자라’ 이러는데 푹 잘 수가 없어요. 저는 계속 고민을 하거나 혹시 핸드폰이 꺼져 있다거나 그러면 불연듯 과거 생각이 나면서 ‘혹시 무슨 일을 당하지 않았을까?’ 그런 생각 때문에 계속 힘든 생활을 겪고 있거든요. 계속 반복되고 있는데 이것을 어떻게 해결해야 할까요?”nbspnbsp“남편 말이 부처님 말씀이예요. 남편 말대로 하면 되겠네요.” nbspnbspnbsp“그런데 편히 자라고 하는데 절대 편히 잘 수가 없고, 계속 과거 그 생각 때문에 걱정이 되어서요.”nbspnbsp“과거에 한번 경험했던 것이 머리 속에 남아가지고 그것이 계속 마치 지금 일어나는 것처럼 착각을 불러 일으키는 것이니까, 과거 생각이 일어나면 스위치를 꺼야지요. ‘내가 스위치 꺼야지’ 이렇게 생각을 하는게 좋지요.” nbspnbsp“아무래도 해외이다 보니까 술이 취하면 한국보다는 그런 일이 더 쉽게 일어날 수 있는 상황이잖아요.”nbspnbsp그렇지요. 그래서 죽으면 결혼 한번 더 하고 좋죠. . 뭐가 고민이예요? 그러면 다음에는 술 좀 덜 먹는 남자하고 결혼하죠 뭐. . 그런데 남자가 술을 먹고 늦게 오면 걱정이 되고 기다려 진다는 것은 남자가 괜찮다는 거예요? 안 괜찮다는 거예요? nbspnbspnbsp괜찮으니까 빨리 죽으면 내가 손해잖아요. 그죠? 그래서 남편 걱정해서 그런 것이 아니라 본인 손해 안볼려고 그런 거예요. 그래서 그런 거니까 이기심을 좀 버려야 돼요. 이것은 남편을 걱정하는 것이 아니예요. 남편한테 갑자기 무슨 일이 일어나면 본인한테 오는 손해를 질문자가 감당하기 싫어서 걱정하는 거니까, 진짜 남편을 걱정하면 남편말 대로 남편이 하자는 대로 해주는 것이 진짜 남편을 걱정하는 것이고 사랑하는 거예요. 지금 질문자가 남편말대로 안하고 안절부절하는 것은 본인한테 손해날까 싶어서 그런 거거든요. 이 사람을 아직 더 뺏겨 먹을 수 있는데 지금 사고나면 안 돼잖아요. nbspnbsp그렇다고 사람을 바꿔치기 할려고 해도 이만한 사람 만나기도 어렵고, 그래서 지금 여기에 집착을 하는 건데 괜찮아요. 안 죽을 거니까요. 걱정하지 마세요. 죽으면 결혼 한번 더 하면 되고요. 그래서 편안하게 자는 게 좋아요. 결혼한지 몇 년 되었어요?nbsp“이제 4년차입니다.” nbspnbsp4년간 얘기했으면 고칠려면 벌써 고쳤을까요? 안 고쳤을까요? 고쳤겠지요. 그러니 이것은 안고쳐지는 거예요. 그러면 이것은 자기 습대로 나둬야 돼요. 그러고 질문자는 푹 자요. 푹 자고요. 저녁에 기도할 때 ‘안 죽고 살아오면 아직 쓸만하고, 죽으면 결혼 한 번 더하고. 이래도 괜찮고 저래도 괜찮다.’ 그러고 그냥 푹 자면 돼요. 이것이 첫째고요. 두번째는 질문자가 밤새도록 걱정한다고 사고가 나고 안 나고에 영향을 주면 걱정하는 것도 괜찮아요. 그런데 내가 걱정한다고 사고가 안나고 내가 걱정 안한다고 사고가 나고 이럴까요? 그것은 아무 관계가 없어요. 무슨 말인지 아시겠어요? 그러니까 푸욱 자고 사고났다고 전화오면 그때 가서 처리하면 돼요. nbspnbspnbsp그런데 사고도 안났는데 매일 걱정하는 것은 낭비란 말이예요. 그리고 그런 걱정을 한 것이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면 되는데 도움이 전혀 안된다는 거예요. 그래서 걱정하는 것보다는 질문자가 택시를 타고 가서 그 가게 앞에 가서 기다리는 것이 낫지요. 그러면 나오면 데리고 오면 되잖아요. 어차피 집에 있어도 잠 못자죠. 그러면 그 술집 가게 앞에 있으면 전혀 걱정 안해도 되잖아요. 나오면 같이 오면 되니까요. 그러니 매일 남편이 술 먹으면 그 가게 앞으로 가면 돼요. 그 가게 안에 들어가서 행패 부리지 말고요. 학교 입구에서 엄마가 아이들을 기다리고 있다가 학교 마치고 귀가하면 딱 태워가듯이 그 가게 앞에 기다리고 있다가 남편이 나올 때 태워오면 사고 위험도 없고요.nbspnbsp두번째는 남편도 늘 부인이 그러면 술을 조금 줄이는데 도움이 될까요? 안될까요? nbsp이렇게 방법을 구체적으로 세워야 돼요. 앉아서 걱정하는 것은 실제로 아무 도움이 안돼요.nbsp“ 네, 감사합니다.” nbspnbsp“그러면 매일 술집에 출근할래요? 그게 낫겠어요? 그러니 걱정이 되는 날은 얼른 차 몰고 가서 그 술집 앞에서 기다리고, nbsp안 그러면 푹 자버리고요, 잠이 안오면 차 몰고 가서 기다리고요. 그러면 걱정은 안해도 되잖아요.”nbspnbsp“네. 감사합니다.”nbspnbsp“여기 남자들 얼마 안 되지만요, 제발 술 좀 먹지마세요. 먹더라도 일찍 들어가고요. 왜 이렇게 부인들 걱정하게 하도록 그렇게 술을 먹어요? 반성 좀 해요. 술먹는 것을 문제 삼는 것이 아니라 술에 취하고 늦게 들어가고 동료들을 매일 회사에서 하루종일 보고, 또 술집에 가서 보고, 무슨 동성애자예요? 또 매일 친구들하고 어울려서 술먹는 것은 집에 들어가기 싫다는 거잖아요. nbspnbsp그러니 여자들도 좀 생각을 해봐야 해요. 얼마나 집에 들어가기 싫으면 밤 12시까지 술먹고 그러겠어요? 그러니까 앉아서 그렇게 걱정하지 말고 남자가 회사 땡하면 집에 올 수 있도록 미끼를 던져봐요. 아시겠어요? 요부같이 해서 유혹을 하든지, 음식을 잘 만들어서 오도록 하든지, 늦게 온다고 싸우지 말고 남자가 일찍 집에 오고 싶도록 만들어봐요. 아니면 저렇게 걱정되는 사람은 숫제 집에서 매일 술상을 차려놓고 남자가 술먹고 싶다고 하면 친구 데리고 와서 집에서 술을 먹도록 하던지요. 그러면 걱정 안해도 되잖아요. 그렇게 할려면 또 시장을 봐가지고 요리를 해야하니, 요리하기 싫다 이러고, 그래서 남편이 부인 힘들게 안할려고 술집에 가서 알아서 먹어주는 것 아니예요? 고맙다고 생각해야지요. nbspnbsp그러니까 집에 와서 매일 술상차리라고 하는 것 보다는 본인이 알아서 먹고오니 그게 낫다 이렇게 생각하면 편안한 일이예요. 걱정이 되면 오히려 집에서 술상을 차리든지 안 그러면 가게앞에 가서 기다렸다가 데리고 오든지 이렇게 뭔가 구체적인 방법을 가지고 시도를 해야 하는데 그냥 앉아서 걱정만 하고 매일 들어오면 싸우니까 스트레스 받고 이틀날 또 술먹고 그러잖아요. nbspnbspnbsp그러니 이제 술먹고 들어오면 ‘아이고 우리 남편 참 착하네요. 친구를 집에 데리고 오면 마누라 힘든 것 알아서 어찌 이리 밖에 나가서 자기가 알아서 먹고 오고요. 아이고 우리 남편 착하네요.’ 하고 등도 두드려 주고요. ‘아이고 이쁘다.’ 이러면서 뽀뽀도 해주고요. ‘아이고, 마누라 밖에서 좀 놀다가 오라고 이렇게 늦게 와주니 얼마나 좋아요? 나도 오늘 친구하고 10시까지놀다 왔어요.’ 이러면서 ‘나는 그래도 당신이 먼저 오는가 싶어서 조마조마해 하면서 달려왔는데 당신이 나보다 뒤에 와줘서 너무너무 고마워요.’ 이렇게 얘기해줘봐요, 사는데 유머가 좀 있어야 안될까요? 술먹고 기분좋게 들어왔는데 멱살 잡고 싸우니까 기분이 굉장히 나빠지는 것이지요. 그러니 신경질 나니까 이튿날 또 먹게 되고 집구석에 가봐야 잔소리만 하고, 그러니까 밖에서 빙빙 돌면서 술먹고 그런 거예요.nbspnbspnbsp그러니까 그것은 여러분들이 할 나름이예요. 그러니까 밖으로 도는 것이 좋다고 생각하면 ‘아이고 고맙다’ 생각하고 그냥 놔두고요, 밖에 도는 것이 나쁘다 생각하면, ‘무엇 때문에 이렇게 밖에 돌까?’ 하고 집에 올 수 있는 방법을 연구해요. ‘친구 좋아한다’ 그래 친구 좋아하는 것은 맞는데, 친구가 아내보다 좋으니까 그렇겠지요. 그래요? 안그래요? 친구하고 술먹고 대화하는 것이 아내하고 있는 것보다 재미있으니까 그런 것 아니예요? 그러니까 나하고 있는 것이 더 재미있다고 하도록 만들어보세요. 옛날에 연해할 때는 남편이 친구들하고 술 먹을려고 했어요? 아니면 애인하고 연애할려고 했어요? 나하고 연애할려고 했지요. 그런데 이제 결혼했으니 집토끼가 되었으니까 이제는 놔두고 자기들은 돌아다니는 거예요. 그러면 집토끼가 자꾸 집을 나갈려고 해야지요. 그래야 집토끼한테 관심을 가지지요. nbspnbspnbsp꼭 그렇게 해야 남자들은 술을 덜 먹겠어요? 그런데 결혼 생활에 대해 이렇게 모르고 어떻게 장가를 가고 시집은 갔는지요? 이렇게 잘 아는 나도 안 갔는데요.” nbspnbsp스님의 유머가 깃든 지혜로운 답변에 웃음이 빵빵 터지고 큰 박수갈채가 쏟아졌습니다.nbspnbspnbsp이렇게 7명의 질문에 모두 답하고 나니 벌써 2시간 30분이 흘렀고 이제 마칠 시간이 다 되었습니다. 마지막으로 스님께서는 지금 행복해야 함을 강조하시면서 이렇게 마무리 말씀을 해주셨습니다.nbspnbspnbsp“수행이란 항상 이치를 알아서 그 이치를 삶에 적용하는 것을 말합니다. 부처님의 가르침은 원래 이런 수행을 가르친 것입니다. 부처님께 빌면 복을 받는다 이것은 부처님과는 관계 없는 그냥 세상 속에 있는 종교적 불교이고, 원래 붓다가 가르친 것은 삶의 이치와 마음의 작용을 딱 살펴서 삶을 조금더 행복하고 아름답게 만들어가는 것입니다. ‘행복하기 위해서’ 이건 욕심이예요. 행복하지 못하게 하는 요소를 찾아서 제거해 나가면 저절로 점점 행복해집니다. 그래서 행복하기 위해서 노력하지 말고 지금 행복해야 합니다. 이곳 베트남에서 1년을 살든 3년을 살든, ‘여기서 사는 것이 정말 행복했다’ 이렇게 되도록 사셔야 해요. 행복하게 사시기 바랍니다.”nbspnbsp긴 시간 열강을 해주신 스님께 호치민 교민들은 뜨거운 박수갈채를 보내주었습니다.nbspnbspnbsp강연을 마치고 스님께서는 무대 위에 마련된 테이블 위에서 책 사인회를 가졌습니다. 스님께서는 참석한 분들 한명 한명에게 사인을 해주시며 짧은 인사를 하며 반가운 마음을 나눠주셨습니다.nbspnbspnbsp그리고 강연장 곳곳에서 소임을 맡아 자원봉사를 해준 봉사자들 모두와 함께 기념사진을 촬영했습니다.nbspnbspnbsp봉사자 모두에게는 한국에서 가져온 단주를 손목에 직접 걸어주시면서 고마운 마음을 전했습니다.nbspnbspnbsp특히 오늘 강연을 총괄한 최대현 유영아 부부에게는 친필 사인을 한 책을 직접 선물하고 함께 기념 사진을 찍었습니다. 봉사자들은 이 모습을 뒤에서 지켜보며 “가장 수고하신 분들이예요” 라고 하면서 큰 박수를 보내주었습니다.nbspnbsp▲ 호치민 강연 총괄을 맡아 준 최대현 유영아 부부nbspnbsp스님께서는 봉사자들에게 “매일 강연을 다니다보니 건강이 좋지 않으니, 마음나누기는 묘덕법사님과 함께 하시기 바란다” 고 얘기한 후 숙소로 이동하셨습니다.nbspnbsp강연장 뒷정리를 모두 마치고 봉사자들은 묘덕법사님과 함께 마음나누기를 하였습니다. 강연 총괄을 맡은 유영아님은 “다른 곳에 비해서 장소가 열악해서 미안하고, 강연이 끝나고 나니 얼떨떨한 기분” 이라며 가장 수고를 많이 해서 그런지 강연이 모두 끝났다는 것이 아직 실감이 가지 않으신 것 같았습니다. 한 분은 “스님께서 답을 주시는 것이 아니라 질문을 해서 계속 생각하게 해주는 것이 너무 인상적이었다”면서 “아이들 교육시킬 때도 꼭 적용해 보고 싶다”고 합니다. 한 분은 “카카오스토리를 통해서 스님을 뵙고 정말 찾아 뵙고 싶었는데, 오늘 직접 만나뵙게 되어 너무나 뜻깊었다”고 하고, 또 한분은 “오늘 교민들이 많이 참석못한 이유가 평일에 아이들 픽업 시간인데다가 공단 쪽에 사는 남자 분들이 많이 못오신 것이 아쉽다”고 하면서 “호치민은 교민 수가 많으니 많은 분들이 올 수 있는 일요일에 다시 꼭 와주셨으면 한다”고 했습니다. 강연을 총괄한 최대현님은 “이번에 집사람과 함께 준비하면서 역시 남자는 여자 말을 잘 들어야 한다는 것을 많이 배웠다” 고 하시면서 수고한 집사람에게 박수를 부탁해 봉사자들의 큰 공감을 얻었습니다.nbspnbsp▲ 묘덕 법사님과 함께하는 마음나누기nbsp한 분은 “많은 분들이 호치민에도 정토회 지부가 생겼으면 하는 바램을 갖고 있는 것 같다” 고 했는데 봉사자 모두가 함께 공감하며 박수를 쳤습니다. 그리고 한 분은 “정토회 해외지부는 어떻게 운영되고 있는지?” 묻는 분도 있었습니다. 특히 봉사자들은 스님께서 강연 중에 언급한 깨달음의장 수련에 많은 관심을 보였습니다. 조만간 호치민에 정토회 모임이 하나 생길 것 같은 좋은 느낌이 들었습니다.nbspnbsp묘덕 법사님은 마음나누기를 마무리해 주시면서 “정토회는 뜻 맞는 사람들이 모여서 가정법회를 하면서 대부분 시작한다”고 하시면서 “먼저 함께 모여서 법륜 스님의 영상 법문으로 마음공부를 해보시고, 한국에 오셔서 깨달음의장 수련도 해보시면 좋겠다”고 안내해 주었습니다. 홍정혜 지구장님은 “원을 세우면 이루어집니다. 함께 뜻을 모아서 정토회를 만들어보면 좋겠습니다.” 라며 봉사자들의 마음을 잘 받아주었습니다.nbspnbsp▲ 호치민에서도 정토회 모임을 만들어보고 싶다는 봉사자들의 나누기에 큰 응원을 말씀을 해주고 있는 홍정혜 지구장님. 자카르타부터 오늘 호치민까지 동남아시아 7개 도시 강연을 총괄한 홍 지구장님은 오늘 호치민 강연을 마지막으로 임무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가십니다. 수고한 홍 지구장님에게 봉사자들이 열렬한 박수를 보내주었습니다.nbspnbsp오늘은 강연이 저녁6시에 끝나서 밤 시간에 여유가 조금 생겼습니다. 그래서 호치민에서 한인들이 밀집해서 살고 있다는 푸미흥 지역을 잠시 들러보기로 했습니다. 최대현님의 운전과 안내로 호치민 시티의 도심을 통과하며 퇴근길 오토바이 행렬도 보고, 다리를 건너 푸미흥 지역으로 가서 한인들이 어떻게 살고 있는지 한인 타운의 모습도 살펴볼 수 있었습니다.nbspnbsp▲nbsp베트남 호치민 시에 위치한 한인 밀집 지역, 푸미흥nbsp스님께서는 한인 밀집지역을 다 둘러보고 돌아오는 길에 최대현 유영아 부부에게 “사람들이 정토회 모임을 하고 싶다고 하니 어제 하노이와 오늘 호치민에서 들어온 보시금을 종잣돈으로 드릴테니, 이곳에서 정토회 모임을 한번 시작해보라” 하시면서 격려를 해주셨습니다. 아무런 연고가 없는 곳이다 보니 처음에는 많은 어려움이 있을 수도 있겠지만, 베트남에서 새로운 씨앗이 싹틀 수 있겠구나 하는 희망을 엿볼 수 있었습니다.nbspnbsp이렇게 오늘도 많은 분들의 정성과 노력으로 106번째 베트남 호치민 강연도 잘 마칠 수 있었습니다. 내일은 필리핀 마닐라로 이동해 107번째 강연을 하게 됩니다. 마닐라에서 또 소식 전해드리겠습니다.nbsp ▼nbsp법륜 스님의 세계 100회 강연, 지난 날짜 소식 보기

2014.12.10. 42,998 읽음 댓글 19개

2014.12.7 세계 100회 강연(105) 베트남 하노이 Hanoi

nbsp안녕하세요. 오늘은 세계 100회 강연 중 105번째 강연이 베트남 하노이에서 열리는 날입니다.nbsp캄보디아 프놈펜의 캄코시티 아파트에서 하룻밤을 묵은 스님 일행은 새벽 5시30분에 최말순 보살님이 정성껏 차려주신 아침 식사를 했습니다. 스님께서는 새벽부터 요청 들어온 원교 교정 업무를 마치신 후 6시30분에 공항으로 출발했습니다. 어제 강연을 준비해준 황영금 김재성 부부와 배한교님이 박주선님과 함께 새벽녘에 찾아와서 스님께 삼배로 인사를 올렸습니다. 스님께서는 감사한 마음을 담아 사인한 책을 두 부부와 배한교님에게 선물하고 기념촬영을 하였습니다. 그리고 세 분은 프놈펜 공항까지 스님 일행을 배웅해 주었습니다. nbsp▲ 출발하는 스님께 삼배로 인사를 올리는 캄보디아 강연 준비 봉사자들nbsp출국 수속을 마치고 7시20분에 프놈펜 공항을 출발한 비행기는 8시20분에 베트남 호치민 국제 공항에 도착했습니다.nbsp▲ 캄보디아 프놈펜에서 베트남으로 향하는 비행기nbsp오늘 스님께서는 호치민 공항을 경유하여 국내선을 타고 다시 하노이까지 가야 하는 일정입니다. 그래서 일단 호치민 공항에서 베트남 입국 수속을 마치고 짐을 찾아 나왔습니다. 공항에는 내일 호치민 강연 담당자인 최대현 유영아 부부가 나와서 스님 일행을 반갑게 맞아 주었습니다.nbsp하노이로 가는 국내선 비행기로 갈아타기 위해서는 호치민 공항에서 3시간을 기다려야 하는데, 최대현 유영아 부부가 공항 라운지 내의 음식점에서 쌀국수를 대접해 주셔서 감사히 먹고, 스님께서는 베트남에서 8년 동안 많은 경험을 해오신 최대현님과 베트남의 발전 상황과 교민사회에 대해 많은 대화를 나누셨습니다.nbsp▲ 하노이로 가기 위해 베트남 호치민 공항에 내린 스님 일행을 마중나온 최대현 유영아 부부nbsp▲ 베트남의 현황에 대해 안내해 주고 있는 최대현님nbsp최대현님은 어제 프놈펜 강연을 준비하고 차량지원을 해주신 최대룡님과 형제 사이인데, 최대룡님의 부인인 배한교님의 소개로 최대현님이 이번에 호치민 강연을 흔쾌히 기쁜 마음으로 준비하게 되었다고 합니다. nbsp여유가 있다고 생각하고 하노이행 비행기를 타려고 국내선 출국장으로 이동했는데, 체크인 카운터에 도착하니 직원이 마감 시간이 끝났다고 해서 놀라 비행 시간을 다시 확인하니 비행기 시간이 갑자기 50분 앞당겨졌다는 것입니다. 순식간에 스님 일행은 비상 상황이 되었습니다. 카운터에 도착한 시간은 10시40분인데 비행기 출발시간은 원래 11시 50분인데 11시로 변경 되었습니다. 20분 만에 모든 수속을 밟고 탑승해야 하는 상황에 모두의 발걸음이 빨라졌습니다. 다행히 무사히 11시에 스님 일행 모두가 비행기에 탑승하고 하노이행 비행기는 무사히 이륙했습니다. 나중에 알아보니 저가항공사 비행기는 탑승객이 없을 경우 앞시간 대 비행기로 합승시키는 경우가 종종 있다고 합니다.nbsp▲nbsp비행기 안에서 원고 교정 업무를 보고 계신 스님nbsp우여곡절 끝에 오후1시30분에 무사히 하노이 공항에 도착했습니다. 게이트를 나오니 오늘 하노이 강연을 준비한 박미선님을 비롯한 혜명회 회원분들이 스님을 환영하는 푯말과 함께 스님 일행 모두에게 각각 꽃다발 하나씩을 준비해 열렬한 환영을 해주었습니다. 한 분은 셀카봉을 준비해와서 꽃다발을 든 스님과 셀카를 찍었습니다.nbsp▲ 하노이 공항에 마중 나온 혜명회 회원들과 운전 봉사자 이병국님세계 100회 강연을 다니면서 공항에서 이렇게 큰 환대를 받아 본 것은 처음인 것 같았습니다. 정성 가득한 환영에 감사한 마음을 전하고, 곧바로 오늘 강연장과 숙소가 함께 있는 그랜드 프라자 호텔로 이동했습니다. 그리고 이곳 베트남에 온지 15년이 되는 이병국님이 스님의 일행의 차량 운전을 해주셨습니다.nbsp베트남은 북쪽으로는 중국, 서쪽으로는 라오스 및 캄보디아와 국경을 접하고, 동쪽과 남쪽으로는 남중국해에 면해 있습니다. 인도차이나 반도에서 가장 인구가 많은 나라로 약 8700만명으로 세계에서 13번째로 인구가 많은 나라입니다. 수도는 하노이이며, 최대 도시는 호치민 시입니다. 공산주의 국가이지만, 중국과 같은 사회주의 시장경제체제를 가진 명목상 공산주의 국가입니다. 근세에는 프랑스 식민지배 기간 동안 계속하여 독립운동을 벌였고, 제2차 세계대전 기간에는 일본의 지배를 받기도 하였습니다. 전쟁 후 베트남은 남베트남과 북베트남으로 분단되어 싸우다가 1976년 통일을 한 후 전후 복구와 공산주의 경제체제를 통한 발전을 도모하였으나, 1979년 크메르 루주와 전쟁을 치렀고, 중국과도 국경분쟁으로 중국베트남 전쟁을 치르는 등 순탄하지 않았고, 1986년 베트남 공산당은 도이 머이를 시작하여 시장 경제를 도입하였고, 2000년에는 대부분의 국가와 수교를 맺었습니다.nbsp▲ 베트남의 수도, 하노이 하노이는 베트남의 수도로, 홍 강 삼각주와 송코이 강 연안에 위치하고 있습니다. 인구는 2007년 통계자료 기준으로 340만명이라고 나와 있으나, 현지 교민 분들의 설명에 따르면 최근 12년 사이에 급격한 인구 유입이 이뤄지고 있어 벌써 800만명은 넘었을 것이라고 합니다. 오랜 역사를 지닌 도시로 6세기경부터 홍 강 삼각주의 중심 도시로 성장했고, 이조·진조·여조 등 베트남 역대 왕조는 이 곳에 수도를 두었고 원조는 안남의 후에를 왕도로 삼았으나 프랑스 통치 시대에는 1887년부터 1954년까지 식민지 기간에 이 곳에 통킹 지방의 정청을 두어 행정의 중심으로 삼았습니다. 1945년부터는 베트남 민주 공화국의 수도가 되었고, 1954년에서 1976년까지 북베트남의 수도였고, 1976년 통일 후에 베트남의 수도가 되었습니다. 하노이는 홍 강의 오른쪽 편에 위치해 있으며, 호치민 시에서 1,760km 떨어져 있습니다. 최근에는 삼성에서 세운 세계 최대의 휴대폰 생산 공장을 비롯하여 우리나라 대기업의 진출이 활발해지면서 베트남 교민사회의 규모도 폭발적으로 커져가고 있다고 합니다. 현재 하노이에만 약 3만명 정도의 교민이 살고 있습니다.nbsp▲ 오늘 강연장, 하노이 그랜드 플라자 호텔호텔에 도착하니 벌써부터 강연 준비를 위해 도착한 혜명회 회원 분들과 자원봉사자들이 스님께 반갑게 인사를 했습니다. 스님께서는 마중을 나오신 모든 분들과 호텔 로비에서 기념촬영을 하였습니다.nbsp모두들 “일찍 봉사하러 나오니까 스님과 함께 사진을 찍는 영광을 누렸다”며 즐거워했습니다. 숙소에 도착한 스님은 짐을 풀고 저녁 강연을 위해 휴식을 취하셨습니다. nbsp오후 5시30분 대기실로 오신 스님은 하노이 지역 인사 분들과 차담을 나누셨습니다. 오늘 강연 장소와 숙소를 후원해 주신 고상구 하노이 한인회 회장님, 박낙종 하노이 한국문화원 원장님, 김정인 코참 회장님, 유경호 공사님, 신현갑 한인회 고문님 등 하노이 교민사회를 대표하는 많은 분들이 함께 자리했습니다. 다들 세계 115회 강연 일정을 듣고 스님의 건강을 많이 염려하셨고, 스님께서는 100회가 넘는 강연이 진행되는 동안 있었던 다양한 에피소드와 소회를 함께 나눠주셨습니다.nbspnbsp오늘 강연은 그랜드 플라자 호텔 2층 밀레니엄 볼룸에서 열렸습니다. 차담을 마치고 오후 6시가 되어 스님께서 강연장 안으로 들어오셨습니다. 오늘 강연에는 300여명이 넘는 하노이 교민들이 참석해 대성황을 이뤘습니다.nbsp스님께서 강연장에 들어오시자 모두들 열렬한 환영을 보내주었습니다. 무대에 오른 스님께서는 오늘 강연이 있기까지 수고해주신 분들께 감사인사를 전하며 강연을 시작하셨습니다.nbsp“안녕하세요. 만나서 반갑습니다. 베트남에 사시는 게 좋아요? 저는 2000년 1월1일에 베트남에 왔었습니다. 그리고 14년 만에 이곳에 왔는데 하노이가 많이 변했네요. 베트남에 2000년 이전에 오신 분 계세요? 그 때 저는 중국에서 북한 난민들을 돕고 있었는데, 난민들 중에서도 국군포로라든지 재일동포 자녀라든지 중국에서 도저히 보호할 수 없는 분들을 한국으로 이동시키기 위해 하노이에서 중국 국경 쪽으로 답사를 다녀온 적이 있었습니다.nbsp지금은 우리 해외 교포들이 살고 있는 전세계 지역을 다니면서 삶의 애환을 듣고 대화를 나누는 시간을 갖고 있습니다. 8월26일에 유럽을 출발해서 북미주, 중남미, 오세아니아를 돌아 지금 동남아를 다니고 있는데요. 오늘 이렇게 우리가 만날 수 있는 좋은 자리를 마련하고 후원해주신 한인회 회장님과 관계자 여러분들과, 지금 주황색 티셔츠를 입고 자원봉사를 해주고 계신 혜명회 회원 분들께 감사의 말씀을 드립니다. 후원해주신 분들과 자원봉사 해주신 분들을 위해 박수 한번 부탁드립니다.즉문즉설은 강연이 아닌 대화입니다. 아무런 제한 없이 자유롭게 대화하는 자리입니다. 그럼 누가 한번 주제를 던져보시죠. 이야기하고 싶은 분은 손을 들어보세요.”그러면서 질문을 받기 시작했습니다. 오늘은 총 7명이 스님께 질문을 했습니다.nbsp“하노이에는 현재 한국인이 약 3만명이 있다 보니 월 1회 정도 한인 사망사고가 발생을 합니다. 올해도 구정 1월1일 떡국을 먹고 있는데 한 분이 돌아가셨다고 떡국을 먹다 말고 중간에 불려갔습니다. 외국에서는 아는 분이던 모르는 분이던 시신을 확인하는 절차가 있는데요, 매번 그 시신을 보고 나면 몇 달 동안 밤에 무섭습니다. 그런데 이 봉사를 계속 할 계획인데 시신을 보고도 무섭지 않을 수 있는 방법을 알려주세요.”“지금 한국은 사상적으로나 연령별, 세대별로 여러가지 사회 문제가 일어나고 있습니다. 본국의 경제가 잘 발전해야 우리 교민들도 마음이 편해집니다. 우리나라 사람 5명중 3명은 종교를 가지고 있고, 스님처럼 좋은 말씀을 해주시는 분들도 많은데 왜 우리 사회는 늘 어려움에 직면할까요? 정치를 하는 분들이 좀 더 잘 행동하면 좋지 않을까요?”“아들이 베트남에서 집을 얻어서 광고업을 하고 있습니다. 저는 꿈 얘기를 좀 하려고 하는데요. 제가 처음 베트남에 와서 혼자 방에서 잠을 자는데 새벽에 56살 짜리 꼬마 세 명이 머리 옆에서 춤을 막 추는 거에요. 너무 깜짝 놀래서 깼는데 이게 무슨 꿈인가 궁금해서 며칠 동안 너무 신기하고 이상했는데. 마침 스님이 베트남에 오셔서 물어보려고요, 꿈 해몽 좀 해주세요.”“저는 출장 때문에 하노이에 왔는데요. 스님을 카카오스토리로만 매일 뵙다가 오늘 직접 뵙네요. 제 주변에 주말 부부가 정말 많아요, 그리고 저도 결혼을 하더라도 주말 부부로 지낼 것 같습니다. 주말 부부인 제 친구를 보니깐 굉장히 힘들어 하던데, 이분들을 위해 위로의 한 말씀해주세요.”“스님은 통일에 관심이 많으신 것 같습니다. 현재 남북관계는 긴장과 분쟁이 꾸준히 유지되고 있는데요. 통일의 방법 중 하나로 북한의 민심을 얻자라고 하셨는데, 통일이 왜 필요한지 스님의 의견을 구체적으로 듣고 싶습니다.”“얼마 전부터 식생활을 채식으로 바꾸고 자연식으로 먹으려고 하는데요. 사실 쉽지가 않아요. 이상하게 보는 시선도 있고요, 집안에서는 그나마 어떻게든 하겠는데 여행을 가거나 나가게 되면 식생활을 맞추기가 참 쉽지가 않아요. 스님께서는 이곳 저곳 많이 다니시고 여행도 다니실 텐데 어떻게 음식을 맞춰서 드세요?”“하노이에서 9년째 살고 있습니다. 해외생활을 하다 보니 지치고 힘들 때 제 자신을 위로할 수 있는 말이 좀 필요한데 그걸 못하고 살아요. 그리고 남편에게도 좀 용기를 주고 싶은 말을 하고 싶은데 그게 잘 안됩니다. 베트남에서 스스로 개척을 해나가는 게 지치고 힘이 듭니다.”이렇게 다양한 질문에 대해서 스님께서는 정성껏 답변을 해주셨습니다. 오늘은 그 중에서 아내와 두 명의 자녀는 호치민에서, 그리고 본인은 하노이에서 기러기 아빠 생활을 하고 있는 남성 분의 질문과 스님의 답변을 소개합니다. 그동안 기리기 엄마가 된 여성 분들의 질문은 많았는데, 오랜만에 기러기 아빠가 된 남성 분의 질문이 있어서 함께 소개해 드리고자 합니다.nbsp“저는 결혼한지 8년째 되었고, 7살, 5살 아들 딸이 있습니다. 제가 어떻게 하면 좋은 아버지가 되고, 좋은 가장이 되고, 저희 가족을 더 잘 이끌 수 있을까요? 아내와 아이들은 호치민에서 지내고 있고, 저는 혼자 하노이에서 생활하고 있습니다. 어떤 공허함 같은 것이 느껴지는데 따로 살고 있으니까 그런 마음이 더 많이 드는 것 같아요.”“그것도 모르는데 왜 장가를 갔어요? 그것을 아는 나도 장가를 안갔는데요.” nbspnbsp“예, 맞습니다. 그런데 모르겠습니다. 가족을 위해서 산다는 것이 무엇인지 그러면서 공허함은 왜 생기는지 잘 모르겠어요.”nbsp“가족을 위해서 희생한다는 그런 생각을 자꾸 하면 앞으로 살기가 힘들어지지요. 그렇게 생각하면 질문자가 스트레스를 좀 많이 받게 되지요. 그러니까 ‘가족을 위해서 내가 헌신한다, 희생한다, 아이들을 위해서 내가 헌신한다, 희생한다’ 이런 것은 사명감이잖아요. 사명감을 가지면 어깨가 무거워요. 그러면 얼굴이 밝지 못해요. 그러니까 ‘누구를 위해서’ 이런 생각을 버리고요. 질문자 스스로 한번 nbsp생각을 해보세요. 혼자 사는게 나아요? 아내와 함께 사는게 나아요? 본인한테는 어느 것이 나아요?”nbsp“같이 살면 물론 좋지요.”nbspnbspnbsp“같이 사는 것을 얘기하는 것이 아니고요, 결혼 안 하고 혼자 사는 것이 질문자 본인한테 좋으냐? 같이 살든 떨어져서 살든 어쨌든 결혼해서 사는 것이 질문자한테 좋으냐는 거예요. 질문자는 어느 것이 더 좋아요? ‘결혼해서 사니 너무 너무 힘들다, 혼자 살았으면 좋겠다’ 이런 거예요? 안 그러면 ‘혼자 사는 것 보다는 여러가지 문제가 있기는 있어도 그래도 결혼한 것이 좀 나아요?”nbspnbsp“종교에 귀의하지 않는 이상은 남자와 여자가 분명히 결혼을 해야 한다고 생각을 하고 있어요.” nbsp“그렇게 복잡하게 생각하지 말고요. 결혼한 것이 더 나아요? 혼자 사는 게 나아요? YES인지 NO인지만 분명히 얘기해 봐요.”nbsp“제 입장에서는 결혼 생활은 당연히 좋다고 생각을 합니다.”nbspnbsp“그러면 질문자는 아이들 없이 부부 둘이서만 사는 것이 나아요? 돈도 들고 힘도 들지만 그래도 아이 둘이 있는 것이 질문자에게 나아요?”nbsp“후자 때문에 문제가 발생하고 있는 거죠.”nbspnbsp“다른 얘기하지 마시고요. 질문자는 아이들 없이 부부 둘이서만 사는 것과 아이들이 있는 것 중에 어느 것이 본인의 행복에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나요? 아이들이 없는 것이 도움이 되나요? 아이들이 있는 것이 도움이 된다고 생각해요?nbsp“아이들이 생겼으니까 지금 입장에서는 아이들이 있는 것이 낫죠.”nbsp“저런 남자하고 사는 여자는 속이 터지겠어요. 사람이 쌀과자처럼 좀 바싹바싹하지 못하고, 엿처럼 찐덕찐덕하게 그렇게 말을 하시네요. ‘아내를 위해서, 자식을 위해서 어떤 가장이 되고 어떤 아버지가 될 것이냐?’ 고 하는 사명감적인 얘기는 자기 인생을 불행하게 만들어요. 그런 성인군자 같은 생각 그만 하시고요. 본인은 속물에 찌든 한 인간이지요. 본인에 대해서 솔직하게 먼저 인정을 해야 된다는 말이예요.nbsp그러니까 질문자는 혼자 사는 것하고 아내하고 사는 것 중에서 어느 것이 좋으냐 했을 때 결혼해서 사는 것이 낫다고 했고, 자식 없는 것하고 있는 것하고 어느 것이 더 나은가 했을 때 자식이 있는 것이 낫다고 했어요. 물론 여기에는 자식이 애를 먹이는 것도 다 있지만, 플러스 마이너스 해보니까 51점이라서 1점이라도 낫다면, 질문자가 아내하고 사는 것이 본인한테 좋은 것이지 아내 좋으라고 질문자가 같이 살아야 한다는 것이 아니라는 말이예요. 자식 좋으라고 질문자가 같이 살아야 한다는 것도 아니고요. 자식이 있는 것이 본인한테 좋다는 거예요.nbsp그러니까 문제가 좀 있지만 ‘당신이 있어서 나는 행복하다’, ‘너희가 있어서 나는 좋다’ 이렇게 생각하고 살면 질문자는 부인 때문에 본인의 인생을 희생하거나, 자식 때문에 희생해야 한다는 생각을 안해도 된다는 거예요. 항상 아이들한테도 ‘고맙다. 너희가 있어서 내가 행복하다’고 하고, 아내한테도 ’가끔 잔소리도 하지만, 당신이 있어서 nbsp내가 사는 재미가 있다’ 이런 생각을 하고 살면, 저절로 좋은 가정, 좋은 남편이 되고, 저절로 좋은 아버지가 되는 거예요. 질문자처럼 ‘내가 당신을 위해서, 아이들을 위해서 어떤 역할을 해야지?’ 이런 생각을 하면 본인을 희생하는 것이 되기 때문에 오래하지 못해요.nbsp사람이 참는 데는 한도가 있어요. 주로 몇 번 참아요? 삼세번이지요. 자기를 희생하면 남이 볼 때 좋아보이지, 자기가 오래 못 참아요. 그러면 회의가 들어요. ‘인생을 이렇게 살 필요가 있나? 내가 왜 가정에 묶여가지고 이렇게 살아야 하나?’ 이러면서 삶이 지속가능하지 못하게 돼요. 그래서 결국에는 중간에 회의가 들어서 터지게 되어 있어요. 그래서 항상 ‘아내를 위해서 사는 것이 아니라 아내가 있어서 내가 득을 본다’, ‘아이들이 있어서 내가 득을 본다’ 이렇게 생각하고 살면 저절로 좋은 아버지가 되고, 저절로 좋은 남편이 되지요.nbsp‘아내를 위해서, 자식을 위해서 내가 무엇을 하겠느냐?’ 그런 쓰잘대기 없는 생각을 하지말야야 돼요. . 질문자가 뭐 남을 위해서 하기는 해요? 자기 좋으라고 하는 일이지요. 질문자는 들은 소감을 얘기한 번 해봐요.”nbsp“여기 나와 계신 선배님들하고 가족분들 모두 저와 같은 생각을 하고 계시지요?nbspnbsp“질문자처럼 그렇게 생각하는 사람은 가끔 있지 많지는 않아요.” ”“가족들을 위해서 열심히 해외에서 근무하시는 선배님들 더 노력해 주시고, 가족을 위해서… 화이팅 하십시오”nbsp“무슨 가족을 위해서 열심히 살아요? 또 저런 소리 하네요. nbspnbsp누구를 위해서 한다는 생각을 너무 하면 보상심리가 생깁니다. ‘내가 너를 위해서 이렇게 하는데 너는 나한테 이것 밖에 안하나? 내가 너희들을 위해서 이렇게 하는데 너희들은 공부도 안하고 이러니?’ 이렇게 섭섭해지고 나중에는 자기 신세 한탄이 됩니다. 자꾸 누구를 위해서 산다고 내세우지 마세요. 그러면 스트레스 받아요. 두 부부가 악을 쓰고 싸우면서 아이 잘 되게 하려고 온갖 돈 들여서 아이들을 키우면 아이들이 나빠져요. 그러나 부부가 서로 행복하게 살면 아이들은 저절로 잘돼요. 공부를 못해도 나중에 다 잘돼요. 그러니까 아이들 갖고 부부가 싸우는 것은 바보 짓이예요. 부부가 화목하게 살면 그것이 아빠 역할이 되고, 엄마 역할이 되는 것이예요.nbsp‘아내가 있어서 참 내가 행복하다. 그래도 한 달에 한번 당신 손이라도 잡아보니 내가 얼마나 좋아?’ 이렇게 해보세요. 사실은 스님은 한달에 한번은 고사하고 1년에 한번도 잡아볼 손이 없는데요. nbsp질문자는 그래도 한달에 한번 손이라도 잡아보니까 얼마나 좋아요? 그렇게 생각하면 아내 귀한 줄 알게 되는 거예요. 그리고 결혼을 했다는 것은 같이 살려고 결혼했어요? 떨어져 살려고 결혼했어요? 같이 살려고 결혼했으니 가능하면 부부가 같이 살면 좋지요. 그런데 어쩔 수 없이 같이 못살 형편이 된다면, 그것도 서로 합의하면 되지만, 그러나 가능하면 같이 사는 것이 좋아요.nbsp다시 말하면 호치민에서 가족이 같이 살면서 수입이 300만원이고, 여기와서 혼자 살면서 수입이 500만원이다 그러면 2백만원 포기하고 같이 사는 것이 스님이 볼 때는 훨씬 낫다는 거예요. 호치민에서는 아이들을 좋은 국제학교에 보낼 수 있는데, 여기서는 아직 시설이 안되죠. 그래도 떨어져 살면서 아이들을 아무리 좋은 학교에 보내봐야 아이들은 나빠져요. 오히려 아이들을 여기서 아무 학교나 보내도 두 부부가 화목하게 살면 훨씬 아이들한테 장래적으로 좋다는 거예요.nbspnbsp절대로 부모가 자식을 위해서 희생을하면 안 돼요. 부모가 자식을 위해서 희생하면 자식이 나빠집니다. 왜냐하면 부모가 희생하면 부모는 자식에게 거는 기대가 크고, 거는 기대가 커면 자식은 부모의 무거운 짐을 지고 살아야 하기 때문에 젊은이가 활기가 없어져요. 항상 부모 눈치를 보고 살아야 하고요. 이런 남자는 결혼해 놓으면 부모 눈치를 너무 봐요. 부모에게 효도해야 된다는 너무 무거운 짐을 지고 있어도 한 남자로서 별 볼 일 없어요.nbspnbsp그래서 항상 우리 아이는 부모의 짐을 지지 않도록 ‘너희들 맘껏 살아라, 이 세상에 나가서 마음껏 살아라. 혼자 살아도 좋고, 결혼해도 좋고, 흑인하고 결혼해도 좋고, 장애인하고 결혼해도 좋고, 너 뜻대로, 너 원하는대로 살아라. 엄마는 너를 지지한다.’ 이렇게 탁 풀어서 황야에 내 보내줘야 아이들이 활기차게 살지, 무슨 강아지처럼 끈을 묶어가지고 이리로 가면 안되고, 저리로 가도 안되고, 그러니까 아이가 강아지 밖에 안돼잖아요. nbsp여러분들은 자식을 위해서 한다고 하지만 본인 욕망을 아이에게 실현하는 것이지 아이를 위해서 하는 것이 아니예요. 헤어져 살면서 아이를 위한다 하는 것은 다 거짓말이예요. 부부가 같이 살기 귀찮으면 아이 핑계대고 미국가서 살고 그래요. 알았어요? 그러니까 그런 얄팍한 생각하지 말고 딱 결혼했으면 부부가 중심을 딱 잡으세요. 아이라는 것은 아무곳에서나 키워도 잘 자라요. 우리가 어렸을 때 언제 아이를 위해서 부모가 살았아요? 그냥 마당에 내어놓으면 닭똥 주워먹고 그냥 사는 거지요. . 보리밭 메는데 그냥 밭구석에 놓아두고 사는 거고요. 뭐 다람쥐도 자기 새끼 키우고 개도 자기 새끼를 키우는데, 사람이 자기 자식 키우는게 뭐 그리 힘들어요?nbsp아이 키우는 것이 너무너무 괴롭다 하면 자식은 잘못됩니다. 왜냐하면 조그만 아이 때부터 부모를 괴롭히니까 부모에게 불효하잖아요. ‘너가 있어서 나는 행복하다.’ 이렇게하면 조그만 아기 때부터 아기가 그냥 효자잖아요. 부모를 즐겁게 만들어 주잖아요. 그래서 조금 힘이 들어도 아이 키우는 것을 항상 즐겁게 생각하고, 좋게 생각해요. 부담으로 느끼면 안돼요. 그런데 여러분들은 아이 키우기 힘들다고 ‘저놈의 자식, 없었으면 얼마나 좋겠냐? 저놈의 자식만 없었다면...’ 이런 생각들 많이 하시죠. 그러다 자식이 갑자기 죽고나면 또 울고불고 난리예요.nbspnbsp이번에 세월호에서 아이가 죽은 어는 한 분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아이와 외식도 한 번 못해 봤다는 거예요. 아이들 좋은 대학 보내고, 공부 시킬려고 돈 번다고요. 아이와 대화도 한번 제대로 안 해보고, 밥도 한끼 안먹고, 죽어라고 돈 벌어서 애들 뒷바라지만 하다가 아이가 죽고 나니까 ‘이럴 줄 알았으면 밥이라도 한끼 먹을 걸, 하루 소풍이라도 갈 걸...’ 이러잖아요. 그런 후회되는 인생을 살 필요가 없잖아요.”nbspnbsp답변을 마치니 청중석에서 우레와 같은 박수가 쏟아졌습니다.nbsp마지막으로 스님께서는 이렇게 닫는 말씀을 해주셨습니다.nbsp“재미있었어요? 재미만 있고 유익하지 않으면 끝나고 나서 허전해요. 유익하기만 하고 재미가 없으면 지금 지루해요. 그래서 재미도 있고 유익해야 합니다. 오늘 강연이 재미도 있고 자기 삶에 유익하기도 했어요? nbspnbsp재미있다는 것은 지금 좋다는 뜻이고, 유익하다는 것은 나중에도 좋다는 뜻입니다. 우리의 인생은 지금도 좋고 나중도 좋아야 합니다. 그런데 우리는 지금은 좋은데 나중에 손해나는 것이 너무나 많습니다. 학생이 공부 안하고 놀면 지금은 좋은데 나중에는 손해가 되잖아요. 그래서 지금 좋고 나중에 손해가 되면 안됩니다. 그런데 우리는 성공을 위해서 죽기 살기로 일하는 사람들이 있어요. 나중을 위해서 지금 희생하는 사람들이 있어요. 그러다가 내일 죽어버리면 얼마나 억울해요? 그래서 우리는 나중을 위해서 지금을 희생해도 안되고 지금을 위해서 미래를 희생해도 안되요. 그래서 항상 지금도 좋고 나중도 좋아야 합니다.nbsp두 번째, 나한테는 이익인데 저 사람한테는 손해가 되면 안돼요. 나는 좋은데 저 사람한테는 나쁘다면 이 일은 오래 지속되지 못합니다. 즐거움이 지속될 때 행복이라고 합니다. 쾌락은 순간적인 즐거움이지만 행복은 그 즐거움이 지속되는 것입니다. 나는 좋은데 남한테는 해로운 것은 이 좋음이 지속될 수가 없어요. 또 남을 위해서 나를 희생하는 사람도 이 희생을 오래 지속할 수 없어요. 참는 것은 결국 터지게 됩니다. 그래서 나를 위해서 남을 희생해도 안되고, 남을 위해서 나를 희생해도 안돼요. 즉, 나도 좋고 너도 좋아야 합니다.nbsp진리는 네 가지가 갖춰져야 합니다. 지금도 좋고 나중도 좋고, 나도 좋고 너도 좋은 것이여야 합니다. 진리라는 것을 너무 어렵게 생각하면 안돼요. 이 진리에 근접하면 삶이 보다 더 자유로워지고 행복해집니다. 그렇게 행복하게 사시기 바랍니다.”마지막 정리 말씀까지 하고 나니 어느덧 2시간 30분이 흘렀습니다. 긴 시간 열강을 해주신 스님께 다시한번 뜨거운 박수 갈채가 쏟아집니다.nbsp곧바로 책 사인회가 열리는 로비로 가서 강연장을 찾은 한분 한분과 눈을 맞추며 인사를 나눴습니다. 많은 분들이 “오늘 강연 듣고 큰 힘을 얻고 갑니다” 라며 감사 인사를 했습니다.nbsp그리고 행사장 곳곳에서 소임을 맡아 수고해준 봉사자들 모두가 모여 기념사진을 촬영을 했습니다.nbsp▲ 하노이 강연을 후원해준 한인회 관계자 분들과 혜명회 회원 분들특히 강연 총괄 책임을 맡고 모든 실무들을 하나씩 챙겨 준 혜명회 박미선 회장님에게는 스님께서 직접 사인한 책을 선물하고 스님과 기념촬영을 한번 더 했습니다. 함께한 봉사자들도 “가장 수고가 많았던 사람”이라며 이 모습을 지켜보며 큰 박수를 보내주었습니다.nbsp▲ 하노이 강연 총괄 책임을 맡아 준 박미선님nbsp그리고 봉사자 한분 한분에게 선물로 한국에서 가져온 단주를 손목에 직접 끼워주고 나서 “계속 강연을 다니다보니 몸이 좋지 않아서 마음 나누기는 묘덕법사님과 함께 해주세요”라고 부탁하고 스님께서는 숙소로 올라가셨습니다.nbsp▲ 스님께 단주를 선물받고 있는 봉사자들▲ 봉사자들에게 감사 인사를 하고 떠나시는 스님행사장 뒷정리를 모두 마치고, 봉사자들은 묘덕 법사님과 함께 마음나누기를 하였습니다. 오늘 강연은 하노이 한인회에서 후원하고 혜명회에서 주축이 되어 준비해 주었습니다. 마음나누기는 주로 혜명회 회원 분들과 함께 했습니다. 어떤 분은 “유튜브로만 보는 것보다 직접 강연을 들어보니 훨씬 생생하고 느낌이 달랐다”고 하고, 한 분은 “식당을 하면서 베트남 사람들에게 야단을 많이 쳤는데, 오늘 스님 법문을 듣고 나니 내일부터는 다른 표정으로 대해줘야겠다 싶었다”고 하고, 한 분은 “6년 동안 하노이에서 생활했는데, 하노이는 교회가 많아서 불자라고 말하기가 늘 위축되었는데 오늘 스님께서 이 먼 곳까지 오셔서 너무 감격스럽다” 면서 눈물을 보였습니다.nbsp▲ 묘덕 법사님과 함께 하는 마음나누기 시간그리고 한 분은 “공항 마중팀을 했는데 스님과 단독으로 사진을 찍어서 너무 좋았고, 지금 10개월 아들을 둔 아이 엄마인데 스님 법문을 들었으니 집에 가서 아이에게 좋은 기를 줄 수 있을 것 같다” 며 기뻐했습니다. 그리고 “오늘 강연이 너무 좋아서 그동안 다운받아 두었던 즉문즉설 동영상을 처음부터 다시 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는 분도 있었고, “이 먼 베트남에서 정토회와 법륜 스님을 만나서 너무나 기쁘고, 이 머나먼 하노이 사람들에게 좋은 법문을 선물해 주셔서 너무나 감사하다”는 분도 있었습니다. 그리고 또 한 분은 “법륜 스님 강연을 준비하기로 한 그 순간부터 지금까지 모두가 내 일처럼 오늘 강연을 준비해 왔다” 면서 “법당 하나 없는 혜명회이지만 법륜 스님 덕분에 더욱 단합할 수 있어 기쁘다”고 합니다.nbsp▲ 마음나누기 하고 있는 하노이 강연 봉사자들혜명회 회장 박미선님은 오늘 강연을 총괄해주신 분인데 “생각이 다른 상대에게 맞춰나가는 경험을 통해서 내가 더 커지는 느낌이 들었고, 정말 감사한 것은 이 강연을 준비하면서 살이 쭉 빠졌다는 겁니다” 라며 기뻐했습니다. 그리고 “스님 법문이 스폰지처럼 제 가슴에 스며들었고, 긍정적으로 바라보는 시각을 갖게 되어서 너무 큰 행복을 얻어간다” 며 기뻐했습니다. 또 한 분은 “스님이 강연장에 들어오는 순간 눈물이 났다”면서 너무 감사해 했습니다.nbsp오늘도 이렇게 많은 분들의 정성과 노력으로 105번째 베트남 하노이 강연도 잘 마쳤습니다. 내일은 베트남의 최대 도시 호치민에서 강연이 열릴 예정입니다. 호치민에서 또 소식 전하겠습니다.nbspnbsp ▼nbsp법륜 스님의 세계 100회 강연, 지난 날짜 소식 보기

2014.12.09. 39,437 읽음 댓글 23개

2014.12.6 세계 100회 강연(104) 캄보디아 프놈펜 Phnom Penh

nbsp안녕하세요. 오늘은 세계 100회 강연 중 104번째 강연이 캄보디아 프놈펜에서 열리는 날입니다.nbspnbsp방콕에서 하룻밤을 묵고 새벽 5시30분에 호텔 로비로 내려와 간단히 아침 요기를 한 후 6시에 공항으로 출발하였습니다. 방콕정토회 황소연 총무님과 남편인 키티퐁 탐롱씨쑥님이 스님 일행을 방콕 공항까지 안전하게 배웅해 주었습니다. 황소연 총무님은 “스님 덕분에 어제 많은 분들이 좋아했다”고 하면서 감사의 마음을 전했고, 키티퐁 탐롱씨쑥님도 스님 일행의 짐을 운반해 주면서 정성껏 배웅을 해주었습니다.nbspnbsp▲nbsp방콕정토회 황소연, 키티퐁 탐롱씨쑥 부부nbsp오전8시 방콕을 출발한 비행기는 오전10시에 캄보디아 프놈펜 국제공항에 도착했습니다. 도착비자를 발급 받고 입국 수속을 마치고 나오니, 오늘 캄보디아 강연을 총괄하고 있는 박주선님과 함께 스님 일행의 짐을 픽업하기 위해 거사님이 세 분이나 나오셔서 차량 이동을 지원해 주셨습니다.nbspnbsp▲nbsp캄보디아 프놈펜 국제공항에 마중을 나와 준 분들. 왼쪽뿌터 김재성, 최대룡, 박주선, 문현성님nbspnbsp한명씩 소개해 드리면, 최대룡님은 프놈펜 현지에서 ‘초이스 택시’라는 운송업을 하고 계신 분인데, 이번에 공항 픽업을 위해 차량을 지원해 주셨습니다. 최대룡님은 형님 분이 이번 세계 100강에서 베트남 호치민 강연을 담당하기도 하십니다. 김재성님은 원래 JTS사업에 꾸준히 후원을 해오신 분은데 이번 강연을 위해서도 후원을 해주셨습니다. 문현성님은 프놈펜에서 자재 판매업을 하시는 분은데, 예전에 방콕정토회에서부터 스님의 법문을 오랫동안 들어오신 분입니다.nbspnbsp캄보디아는 동남아시아에 있는 입헌 군주국입니다. 크메르 제국의 유적인 앙코르 와트로 유명한 나라입니다. 종교는 90 이상이 소승 불교입니다. 1863년 프랑스의 보호령이 되었으며 이후 계속해서 식민지로 남아있다가 1954년 프랑스 공동체 내의 자치국으로 독립했지만, 베트남 전쟁 등의 영향으로 인해 크메르 루즈가 득세하는 등 계속해서 정권이 불안정했습니다. 크메르 루주 등의 준동과 베트남의 개입으로 인해 내전이 1980년대 말까지 계속되었으며, 이 시기 중 킬링필드가 일어나기도 하였습니다.nbspnbsp▲ 캄보디아 프놈펜nbspnbsp킬링필드는 1975년에서 1979년 사이, 민주 캄푸차 시기에 캄보디아의 군벌 폴 포트가 이끄는 크메르 루주라는 무장 공산주의 단체에 의해 저질러진 학살을 말합니다. 원리주의적 공산주의 단체인 크메르 루즈는 3년 7개월간 전체 인구 700만 명 중 3분의1에 해당하는 200만 명에 가까운 국민들을 강제노역 하게 하거나 학살하였습니다. 이 당시의 상처가 워낙 커서 지금도 대다수의 국민들이 사회 변화 운동에 대해 nbsp소극적인 경향을 보인다고 합니다.nbspnbsp▲ 공항에서 프놈펜 도심으로 들어가는 길nbspnbsp프놈펜은 캄보디아의 수도이자, 행정, 경제, 문화의 중심지로 캄보디아 최대의 도시입니다. 메콩 강과 쌉 강의 합류점에 위치하고 있고, 또 도심에는 왕궁이 있는데 여기에 캄보디아 국왕이 살고 있습니다. 최근에는 두 자리 수 성장률을 기록하며 개발이 촉진되어 새로운 호텔과 레스토랑, 바, 주거지 등이 시내 곳곳에 빠르게 지어지고 있다고 합니다. 프놈펜 왕립대학교가 캄보디아에서 가장 오래되고 가장 큰 고등교육기관인데 5,000명의 대학생이 다니고 있다고 합니다. 오늘 스님 강연도 프놈펜 왕립대학교에서 열릴 예정입니다.nbspnbsp프놈펜 공항에서 곧바로 오늘 머물 숙소인 캄보디아 불자모임 법당으로 향했습니다. 캄보디아 불자모임 법당은 프놈펜에서 한국인들이 많이 모여 살고 있는 캄코시티 아파트 건물을 임대해서 운영되고 있었습니다. 짐을 풀자마자 이번 강연을 준비한 캄보디아 불자모임의 회원분들이 스님께 다함께 삼배로 인사를 올렸습니다.nbspnbsp▲nbsp오늘 프놈펜 강연을 함께 준비해준 캄보디아 불자모임 회원분들. nbsp이 네 분은 오늘 점심 다과와 저녁 식사도 정성껏 준비해 주셨습니다. 캄보디아 불자모임은 재가 불자들이 협력하여 회비를 내어 이곳 아파트 공간을 빌려 격주마다 한번씩 법회를 진행하고 있다고 합니다. 이번 강연도 박주선님이 전체를 총괄하고 캄보디아 불자모임에서 많은 도움을 주셨습니다.nbspnbsp스님께서는 캄코시티의 불자모임 법당에서 잠시 다과를 하신 후 김한수 주 프놈펜 한국대사님의 식사 초대를 받아 대사님과 점심식사를 하시며 많은 이야기를 나누셨습니다.nbspnbsp▲ 오늘 강연장, 프놈펜 왕립대학교 CKCCnbspnbsp이어서 오후4시30분에 오늘 강연이 열리는 프놈펜 왕립대학교 CKCC에 도착하셨습니다. CKCC는 코이카가 프롬펜 왕립대학교에 기증한 건물인데, 공간도 넓고 음향시설도 잘 갖춰져 있었습니다.nbspnbsp강연에 앞서 스님께서는 CKCC 미팅룸에서 캄보디아 지역 인사 분들과 차담을 나누셨습니다. 백숙희 코이카 소장님 부부, 문병수 캄보디아 불자모임 회장님 부부가 오셔서 스님관 환담을 나누셨습니다. 모두들 세계 100회 강연과 스님의 건강에 대해 많이 걱정하셨고, 스님께서는 세계 100강을 하며 배울 수 있었던 다양한 경험들을 이야기해 주셨습니다.nbspnbsp▲ 강연에 앞서 미팅룸에서 차담을 나누는 모습. 왼쪽부터 코이카 백숙희 소장님, 캄보디아 불자모임 문병수 회장님 부부nbsp오후 5시가 되자 스님께서는 강연장으로 자리를 이동하셨습니다. 강연장 입구에서부터 책판매대, 내부 안내 등 곳곳에서 봉사자들이 자기 소임을 맡고 있었습니다. 특히 이번 강연회에는 코이카에서 캄보디아에 파견을 나와 있는 많은 청년들이 자발적으로 이번 강연회에 자원봉사 신청을 해서 함께 하고 있었습니다.nbspnbsp▲nbsp코이카에서 캄보디아에 파견을 나와 있다가 이번 스님 강연에 자원봉사로 참여하고 있는 청년들nbspnbsp스님 소개 영상이 끝나고 큰 박수와 함께 스님께서 무대에 오르셨습니다. 오늘 강연에는 총 150여명이 참석하였고, 현지 교민들도 많이 오셨지만 코이카에서 봉사활동 차 캄보디아에 와 있는 친구들도 함께 참석했습니다.nbspnbspnbsp스님께서는 이번 세계 100회 강연을 하면서 가장 더운 날씨를 만났다고 하시면서 인사말씀과 함께 강연을 시작하셨습니다.nbspnbsp“안녕하세요. 날씨가 많이 덥네요. 제가 지금 세계 115개 도시를 115일 동안 다니면서 매일 1개 도시씩 강의를 하고 있는데요. 지금까지 다닌 곳 중에서 가장 더운 것 같아요. 완전히 한국의 한여름 날씨네요. 그래도 여기가 북위 쪽인데 춥지는 않더라도 선선해질 때가 되었잖아요? 강연을 오후5시로 잡아서 퇴근 시간이랑 겹쳐서 사람들이 오기가 어렵다고 걱정하더니 그래도 용하게 잘 오셨네요. 반갑습니다.nbspnbspnbsp제가 지금 하고 있는 즉문즉설은 불경이나 성경을 읽고 그것을 해설하고 그것을 우리 생활에 적용해서 어떤 교훈을 얻을 것인지 하는 하늘에서 땅으로 내려오는 방식이 아니고, 이런 문제로 ‘괴롭다’, ‘힘들다’ 등 우리 땅의 얘기를 먼저 하면서 조금씩 조금씩 대화를 하다보면 점점 진리의 세계로 나아가는 즉 땅에서 출발해서 하늘로 올라가는 방식으로 해보자는 취지입니다. 인생살이에서 겪는 여러 고민들과 의문들을 친구가 친구에게 묻듯이 편안하게 대화를 나눠봅시다.”nbsp그러면서 질문을 받기 시작했습니다. 총 7명이 스님께 질문을 했습니다. 오늘 강연에는 코이카 소장님을 비롯하여 코이카에서 파견 나온 청년들이 많이 참석한 관계로 해외 봉사활동을 하고 있는 청년 3명이 자신의 고민들을 연달아 질문했습니다.nbspnbsp“저는 캄보디아에서 1년 6개월째 봉사활동 하고 있습니다. 봉사활동을 하면서 많은 분들을 만나보지만 세상이 아름답지 않다고 생각하는 분이 아름답다고 느끼는 분보다 많은 것 같습니다. 제 조그만 노력으로 그런 분들이 세상이 아름답다고 느낄 수 있도록 돕고 싶은데, 그게 가능한지 그리고 그런 방법이 있다면 어떤 것들이 있을까요?”nbsp“캄보디아에서 봉사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사람들에게 보통 안부 인사를 전하면 “잘 살고 있다”, “나중에 잘 살고 싶다” 이런 얘기를 많이 하는데, 어떻게 사는 것이 과연 잘 사는 것인지 여쭈어 보고 싶습니다.”nbspnbsp“저는 지난 2월에 한국에서 딸을 시집 보냈습니다. 서운한 마음을 뒤로하고 이제는 시집간 딸을 내려놓는 마음을 가지려 하는데, 딸은 이런 저의 생각과 태도를 보고 서운해합니다. 어떻게 하면 딸이 평소 가지고 있는 서운해하는 마음을 잘 다독여 줄 수 있고, 저도 딸을 걱정하는 저의 마음을 잘 다스릴 수 있을지요?”nbsp“이번에 캄보디아에 오면서 처음으로 부모님과 떨어져서 생활해봤는데, 멀리 떨어져 있다 보니까 부모님 어깨가 얼마나 무거운지, 많은 고생을 하시는지 알게 된 것 같습니다. 어떻게 해야 좋은 성인이 될 수 있을지요?”nbspnbsp“저는 남자친구가 있는데, 남자친구 집 쪽에서 제가 독실한 기독교 신자가 아닌 것에 대해서 탐탁치 않아 합니다. 저는 앞으로 사랑하는 남자친구와 남자친구 부모님과의 관계를 잘 맺어가고 싶은데, 종교에 대한 이러한 인식의 차이가 존재하는 지금 상황을 어떻게 하면 잘 풀어나갈 수 있을지요?”nbsp“저는 원래 맛있는 음식을 맛있게 먹는 걸 좋아합니다. 근데 요즘 들어서 식욕이 절제가 안되고, 운동도 안하는 불규칙한 생활을 하게 되는데 이러한 식욕과 불규칙한 습관을 어떻게 고칠 수 있을지 조언을 부탁드립니다.”nbsp이렇게 다양한 질문에 대해 스님께서는 지혜로운 답변을 해주셨습니다. 오늘은 그 중에서 캄보디아에서 봉사활동을 마치고 한국으로 돌아가는데 걱정과 두려움이 앞선다는 분의 질문과 스님의 답변을 소개합니다. 우리가 자원봉사를 할 때 어떤 마음자세를 가져야 하는지 되돌아 볼 수 있는 소중한 가르침을 배울 수 있었습니다.nbspnbspnbsp“저는 캄보디아의 깝봉스프라는 지역에서 2년간 거주하며 봉사활동을 하고, 다음달 한국으로 출국을 앞두고 있습니다. 저와 저희 단원들 모두 2년 전에 한국에서의 직장생활을 접고 같이 들어와서 2년동안 활동을 하고 다시 귀국할 예정에 있습니다. 그런데, 막상 갈려고 생각을 해보니까 한국에서 새로이 취업을 해야 되고, 등록금으로 낸 남아있는 빚들도 갚아야 하고, 한국의 다른 친구들은 현재 대부분 취직하여 안정된 상태에 있다보니 ‘내가 잘 할 수 있을까?’ 하는 생각들이 생겨나면서 마음 속에 자꾸 두려움이 자라게 됩니다. 이 두려움의 실체가 무엇일까요? 어떻게 하면 극복해서 용기를 낼 수 있을까요?”nbsp nbsp“한국에서의 생활이 더 열악해요? 질문자가 여기 봉사하는 곳의 생활이 더 열악해요?”nbsp“사실 제 개인적인 생활은 열악하지는 않았어요.”nbsp“여기서 너무 편하게 있어서 이런 우려가 생기는 거예요. 코이카에서 이거 문제네요. 밥도 못 먹고 비도 새는 집에 모기가 물어 뜯는 그런 곳에서 생활을 시켜야 그것이 진정한 봉사이지요.nbspnbsp그런데 온갖 것을 다 해주니, 즉 돈도 주고, 생활비도 주고, nbsp뭐도 주고 해가지고 이지역 사람들 보다 훨씬 더 좋은 사무실에 좋은 조건에 일하면서 생활을 했기 때문에 지금 이런 문제가 생기는 거예요. 쉽게 얘기하면, 여기 마을 사람들이 한국 사람보다 더 열악하죠? nbsp그 마을 사람들과 질문자가 똑같이 살았다고 생각해봐요. 그러면 질문자에게 한국 생활보다 여기 생활이 더 열악하겠죠? 그리고 한국에서 어떤 직장을 구하든지 한국에서 받는 월급이 많아요? 여기에서 봉사하면서 받는 월급이 많아요?”nbsp“한국에서 받는 게 많지요.”nbsp“그러면 여기 생활보다 한국 생활이 더 편하고, 여기 월급보다 한국 월급이 더 많은데 걱정할 것이 뭐가 있어요? 아무 걱정할 것이 없잖아요.” nbspnbsp“마음가짐이 좀 문제인 것 같아요. 안 좋은 부분일 수도 있지만, 말씀 하신대로 여기에서는 저보다 훨씬 교육의 기회도 적고 삶도 열악한 사람들 하고 같이 있다 보니까 내 삶에 대해서 만족할 수 있는 시야를 가지게 되는데, 한국에 있다 보면 자꾸 나보다 잘 되는 사람, 나보다 더 좋은 곳에 취업한 친구들을 자꾸 더 보게 되는 것 같아요.”nbspnbsp“그래요. 그것은 맞는 얘기예요. 그것을 상대적 열등감과 우월감이라고 합니다. 상대적 우월감을 갖고 본인이 행복을 구하려면 본인은 여기에 영원히 살면 돼요. 한국에 가지 말고요. 늘 상대적 우월감으로 살 수 있잖아요. 여기 현지에 있는 한국인 회사 있잖아요. 그런 곳에 월급을 많이 달라고 하지 말고요. 아까 들어보니까 이곳 사람들한테는 최저 임금이 80불, 100불 하다가 이제는 120불, 128불 한다고 그러더라구요. 그런데 한국 사람을 채용하면 적어도 3천불은 줘야 하니까 한국 직원을 적게 둔단 말이예요. 왜냐하면 120불, 130불만 하면 되는데 3천불을 줘야 되니까요. 그러니까 질문자가 여기 회사에다가 월급을 한 500불만 받겠다고 제출을 해서 신청을 하면 어느 회사든지 오라고 할 거예요. 500불만 받겠다고 입사원서 제출해도 질문자는 여기 현지에 있는 사람들보다 월급을 4배 더 많이 받잖아요. 그러면 늘 우월감을 가지고 살 수 있지요. 굳이 한국 가서 2백만원 받아도 3백만원, 4백만원 받는 친구들과 늘 비교해서 열등감을 갖고 살 필요가 없잖아요.”nbspnbsp“그러면 대학교 빚은 누가 갚아주나요?”nbspnbsp“대학교 빚요? 한국에 안 가면 안 갚아도 돼요. 그럼요. 안 가면 안 갚아도 돼요. 한국에 없는데 무슨 재주로 받는데요? 공항에 내리면 체포가 되겠지요. . 그래서 한국에 안 가면 된다니까요. 아예 한국에 안 가버리면 아무 문제가 없고요.nbspnbspnbsp두번째, 여기서는 500불만 해도 4배 더 받는 것이니까 회사에 신청을 하면 돼요. 1000불 미만까지는 한국 회사에서도 아마 기꺼이 채용할 거예요. 3000불 주고는 채용을 못하더라도, 한 700800불까지는 한국 사람이 어쨌든 훨씬 필요하니까요. 그 정도 채용을 하면 질문자는 500불까지만 본인의 우월감을 가지고 살고, 200불 내지 300불은 꾸준히 한국에다가 정기적으로 갚으면 되지요. 20년 목표를 세워서요. 계속 보내주면 되는 거예요. 그러다가 여기 현지인의 월급이 만약 200불 대로 오르면 자기도 700불로 올리면 되고, 또 300불로 오르면 질문자도 1000불로 올리면 돼요. 그 정도는 여기서 다 해 줄 거예요.nbspnbsp그러니까 그런 상대적인 우월감으로 인간이 사는 존재인 것은 맞는데, 그것의 본질을 딱 꿰뚫어서 ‘여기서 500불을 받고 상대적 우월감을 갖고 사는니, 한국에 가서 2000불 받고 사는 게 낫겠다’ 해서 ‘여기 500불보다 4배나 더 받지 않느냐’ 이런 생각을 할 수 있다면 한국에 가는 것이 하나도 두렵지 않지요.nbsp여기 있을 때도 질문자는 늘 남하고 비교하는 인생을 산다는 얘기 아니예요. 남하고 비교해서 살면 월급을 15000불을 받아도 또 30000불 받는 친구하고 비교하면 또 열등감을 가지게 돼요. 질문자가 직장에서 과장이 되어도 질문자는 부장이 된 친구하고 비교하면 또 열등감을 가져야 되고요. 질문자가 사장이 되어도 회장이 된 친구하고 비교하면 또 열등감을 가져야 되고요. 그래서 영원히 열등감 속에서 살아야 돼요.nbspnbspnbspnbspnbsp그래서 저는 이것을 거꾸로 생각하라고 권유합니다. 여기와서 해외봉사를 안해 본 청년들은 nbsp불만과 불안 속에서 살지만 해외봉사를 나와 보니까 ‘내가 한국 시민권 가진 것만 해도 엄청난 이익이구나’ 알게 되잖아요. 여기 캄보디아 사람들이 현재 한국에 가서 일하면 여기 월급의 10배를 받을 수 있잖아요. 그런데 이 사람들은 한국에 갈 수 있는 방법이 없잖아요. 한국에 가도 시민권이 안 주어지잖아요. 게다가 불법 체류자는 월급을 절반 밖에 못받잖아요. 그리고 두려움 속에 살아야 되는데, 나는 한국에 가면 시민권을 갖고 불법 체류를 안해도 되고요. 공장에 간다 해도 월급도 두배 받잖아요.nbspnbsp그래서 여기서 2년 봉사하다가 한국에 가면 ‘내가 한국 시민권을 가지고 있는 것만 해도 엄청난 기득권이고 재산이다’ 하는 것을 자각할 수 있고, 여기서 열악하게 사는 사람들을 봤기 때문에 한국에 가서는 셋방에 살아도 여기서 개인 주택보다는 더 시설이 낫고, 공장에 가서 생활을 해도 훨씬 이 사람들 보다는 조건이 낫구나’ 하고 자각할 수 있죠. 그러면 이런 열악한 곳에서도 돈 안 받고 일할 수 있었는데, 한국에 가서 돈 받고 일하는데 뭐가 두려울 것이 있어요? 그러니까 ‘한국에 가서는 청소부를 하든, 가정부를 하든, 무엇을 해도 나는 할 수 있다’ 이런 깨달음을 얻기 위해서 봉사를 보내는 거예요. 여기와서 도움을 준다 하지만 솔직하게 말해서 별로 도움이 안됩니다. nbspnbspnbsp우리 젊은이들이 이것을 통해서 인생을 자각하고 건강한 한국 국민으로 살아가도록 하는 훈련된 장소로서는 필요하지만, 이곳 사람들한테는 실제로 도움이 별로 안돼요. 질문자는 봉사하러 왔지만, 이 사람들이 볼 때는 한국에서 온 봉사자들이 호화판 생활을 하고 있는 거예요. 여기 사람들이 보기에는 꿈에도 못보던 것을 다 먹고 입고 그러면서 봉사한다고 와 있는 거예요. 그러니 여기 와 있는 것이 실제로는 도움이 별로 안돼요. 그러나 우리 한국 젊은이들에게는 굉장한 도움이 돼요. 여기에 와서 내가 대한민국에 대해서 정말 불평 불만을 가지고 있었는데, ‘그래도 한국은 캄보디아나 라오스나 베트남에 비해서는 참 민주적이고 경제도 낫고, 사회보장제도도 낫다’ 이렇게 볼 수 있어요. 우리도 고칠 것이 많이 있지만 한국사회도 부정적으로만 보지않고 긍정적으로 보는 위에서 개선할 것을 생각하게 된다는 거예요.nbspnbsp그리고 ‘나는 한국에서 무엇을 해도 할 수 있겠다’ 라고 하는 가능성을 열어주기 때문에 젊은이들은 가능하면 미국이나 유럽에 보내지 말고, 저개발국으로 보내서 그곳에서 1,2년을 보내고 한국으로 돌아오면, 우리 젊은이들이 굉장히 건강해집니다. 그런데 얼마나 여기서 호화판으로 살았길래 지금 한국가는 것이 걱정이라고 할 정도예요?nbspnbsp“네, 제가 호화판으로 산 것 같네요.” nbspnbspnbsp“여기서 호화판으로 살아봤자 얼마나 호화판으로 살았겠어요? 어떻게 살았는지 이해는 하는데요. 그러나 지금 여기 있으면서 너무 안일하게 살았기 때문에 여기서는 상대적인 우월감으로 편안하게 살다가 ‘한국 가서 또 그런 경쟁사회에서 어떻게 사나?’ 그런 걱정이 있다는 것을 이해는 해요. 그러나 객관적으로 봐서 ‘여기서도 살았는데 한국에서 왜 못살겠느냐’ 이렇게 생각하면 하등 두려울 것이 없어요. ‘돈을 조금 받고도 일했는데 한국가서 큰 돈을 받는데 왜 못하겠느냐?’ 이렇게 생각해 보세요. 그래서 여기 한번 살다가면 한국 사는 게 걱정이 하나도 안되어야 해요. 강남 고속버스 터니널에 가서 이렇게 돈통 하나 놓고 앉아 있어도 여기 노동자보다 수입이 많을 거예요.nbsp그런데 뭐가 걱정이예요? 안 되면 그냥 지하철에서 손을 벌려도, 고속터미널 앞에 앉아서 돈통을 놓고 절해도 돼요. 꼭 구걸하라는 것이 아니라 돈통을 놓고 입다물고 그냥 앉아 있어도 돈을 줘요. 그런데 그때 그냥 앉아있는 것 보다 머리 깎고 먹물 옷 입고 앉아 있으면 수입이 10배나 더 나요. 보시함 통하나 놓고 ‘불’자라고 써놓고 거기에 질문자도 승복 비슷한 옷 하나 입고 계속 절만 하고 있으면 두 시간에 10만원 들어와요. . 제가 그 사람한테 수입이 얼마 들어오는지 직접 물어봤어요.”nbsp“좋은 정보 감사합니다.”nbspnbsp“그러니까 여기에서 살다가 한국 가서 살면 걱정이 하나도 없어야 돼요. 여기서 봉사활동을 해본 경험이 없는 사람들이야 한국에서 걱정이 많지만, 여기서 경험을 딱 해봤으면 ‘아이고, 내가 대한민국에 가서 무엇을 한들 못살겠어’ 이런 생각이 딱 들어야 돼요.”nbspnbsp“네. 감사합니다.”nbspnbsp“고생을 한번 해보면 안일해졌던 삶에 대한 반성이 일어나거든요. 그래서 옛날부터 ‘젊어서 고생은 사서한다’ 이런 말이 있잖아요. 젊어서 고생은 돈을 주고 사서라도 할만하다. 왜냐하면 이렇게 고생을 한 번 겪어야 nbsp세상을 살아가는 힘이 생기고 적응력이 생겨요. 무보수로도 했던 일을 더 쉬운 일에 돈을 주는데 못할 게 뭐가 있어요? 전에는 ‘이 정도는 되어야 취직을 한다’ 이렇게 생각을 가지고 있다가 ‘뭐든지 한다’ 이렇게 생각을 바꾸게 되면, 이제 일자리가 널려 있는 거예요. 이런 자세로 일을 하면 직장을 두세번만 바꾸면nbsp금방 정상적으로 돌아가요.nbspnbsp그러니 여기서의 생활이 조금 고생스러운게 사실은 이익이예요. 그런데 이제 한국도 좀 살만 하니까 이 KOICA에서도 해외파견자에게 재정적 지원을 해주잖아요. 우리 JTS에서 해외파견을 보낼 때는 일체 지원비를 안 줍니다. 무료로 봉사해야 돼요. 먹고, 자고 하는 생활은 보장해 주지요. 첫번째 파견자는 비행기표도 본인이 끊어 가야 해요. 그런데 정부에서 지원을 해서 한달에 500불씩 주면 나중에 훨씬 성실도가 떨어져요. 일에 집중도 안하고 불평도 많고요. 이런 방식은 사람을 더 많이 보낼 수는 있지만, 훈련은 잘 안 된다는 거예요. 그래서 여기 온 김에 고생 좀 하셔야 돼요. 편하게 살수록 오히려 도움이 안 돼요. 젊을 때는 오지에 가서 고생도 엄청나게 해보고 위험도 감수해보고 이렇게 해야 삶이라는게 정말 생기가 돕니다. 사람이 위험에 처하면 살고자 하는 욕구가 일어난다는 거 알아요? 더 악착같이 살려고 그래요. 여기 목 메어서 죽을려고 하다가 호랑이가 나타나면 죽어라고 도망을 가요. nbspnbsp혹시 제 얘기를 잘못 알아듣고 “스님이 봉사단원들에게 돈 주지 말라고 하더라” 이렇게 받아들이시면 안 돼요. 고생이라고 하는 것이 꼭 나쁜게 아니다는 말씀입니다. 그 이유는 우리의 이 의식은 상대적인 의식을 갖고 있습니다. 행복도 상대적인 행복이고요, 그렇기 때문에 아무리 이것이 높아져도 상대적으로 더 높은 것과 비교하면 열등감이 생기거든요. 그래서 고생을 해서 비교 대상이 낮아져 버리면 삶의 만족도가 확 높아져 버린다는 거예요.nbspnbsp그래서 이 GDP 순위하고 행복지수 순위가 다르다는 것 아시죠? 빈부 격차가 심하면 상대적 빈곤감이 nbsp커요. 우리 사회가 살만 한데도 행복도가 떨어진다는 것은 구조적으로는 빈부격차가 크다는 거예요. 그래서 정치적으로 사회적으로는 이 상대적인 빈곤, 소위양극화를 좀 줄여주어야 국민 행복도가 높아지고요. 개인적으로는 자기 기대 수준을 낮춰주면 만족도가 좀 높아지는 거예요. 이 나라 사람들이 우리가 보기에는 불쌍해 보이지만 자기들은 다 웃으면서 행복하게 사는 이유는 기대가 낮기 때문에 그래요. 같이 가난하기 때문에 열등감이 적은 거예요.nbspnbspnbsp수행이라는 것은 이렇게 마음이 어떻게 작용하고, 우리의 기분이 어떻게 작용하는지, 그 원리를 알아서 내가 나를 행복하게 만들어 가는 방법이예요. 그래서 이번에 한국에 복귀하시거든 그런 마음을 가져요. ‘캄보디아에서 살았는데 한국에서 왜 못살겠나?’ 이렇게요. 그리고 나보다 잘된 사람과 자꾸 비교해서 따지지 마세요. 내가 보기에 좋게 보이지, 실제로 그 사람이 좋은지 안좋은지는 몰라요. 혼자 사는 여자나 남자가 공원을 산책하면 약간 외롭잖아요. 그런데 남자 여자 둘이 걸어가면서 얘기하고 있는 모습이 너무너무 다정해 보이거든요. 그런데 그 둘은 지금 이혼하는 논의를 하고 있는 거예요. nbspnbspnbspnbsp그러니까 내가 보기에 결혼한 사람들이 좋아보이고, 취직해 있는 사람들이 좋아보이고, 지위가 높은 사람이 좋아보이는 것이지, 그 사람이 실제로 좋은지 그것은 전혀 다른 문제예요. 내가 이렇게 2년 봉사한 것이 한국에서 2년 먼저 취직한 사람보다 못하다고 느끼는 이유는 돈과 지위만 가지고 계산하기 때문이예요. 행복도를 따지면 외국에 봉사한 경험이 없는 그는 나보다 월급이 한 100만원 많거나 지위가 조금 높아도 그는 불만족 속에서 살고, 나는 그보다 월급이 작고 지위가 낮아도 늘 만족하여 살기 때문에 행복도는 누가 더 높아요? 내가 더 높다는 거예요. 그러니까 이 봉사는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나의 소중한 자산으로 여겨야지, ‘괜히 봉사 2년 했다가 취직도 늦어지고, 결혼도 늦어지고, 나만 손해봤잖아’ 이렇게 생각하는 것은 어리석은 생각입니다.”nbsp“감사합니다.”nbspnbsp걱정과 두려움이 앞섰던 질문자의 표정이 환하게 밝아져 있었습니다. 질문자는 한쪽 측면만 바라보고 있었는데, 스님께서는 다른쪽 측면도 질문자가 볼 수 있게 해줌으로써 그 고민으로부터 자유롭게 해준 것 같습니다. 한층 밝아진 질문자의 목소리에 청중들도 큰 박수를 보내주었습니다.nbspnbspnbsp마지막으로 스님께서는 붓다의 고뇌와 말로 현대인들의 고통을 치유하는 해결책이 될 수 있다고 강조해 주시면서 이렇게 닫는 말씀을 해주셨습니다. nbsp nbspnbsp“오늘날 근본불교가 우리의 인생에 큰 도움이 될 것이라고 저는 예측합니다. 그 이유는 현대사회가 먹고 살만해졌다는 것입니다. 먹고 살만해졌는데도 우리의 고뇌가 지금 해결되지 않잖아요. 우리는 지금 어쩌면 부처님 당시의 왕궁에 살았던 사람들과 비슷한 상황인지 몰라요. 지금 아무리 가난하다고 해도 그때와 비교하면 다 왕자들이고 공주들이예요. 붓다는 이 문제를 추구해 들어갔기 때문에 제가 생각할 때는 특정한 종교로서의 불교가 아니고 붓다가 가졌던 문제의식은 현대인이 갖는 고뇌를 해결하는데 굉장히 유용할 것이라고 생각해요. 저도 직접 경험해봤구요.nbspnbspnbsp그래서 이 붓다의 가르침은 불교니 기독교니 하는 종교를 뛰어넘는 얘기이지 불교가 낫니 기독교가 낫니 하는 상대적 개념의 종교는 아닙니다. 그래서 우리가 이 공부를 하는데 있어서, 여러분들이 기독교인이라 하더라도 이 마음 공부를 하면 더 깊이 하나님의 음성을 자각할 수 있고 신앙이 더 깊어질 수 있어요. 불교를 공부하니까 기독교 신앙이 옅어지는 게 아니고, 불교를 공부하면 기독교 신앙이 더 깊어져요. 왜냐하면 이것은 특정한 종교가 아니고 깨달음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음성을 깨칠 수 있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오늘 우리의 대화는 한 종교로서의 불교가 아니고 그보다는 한 차원 높은 진실을 추구하는 관점에서의 불교입니다. 그러면 진실을 추구하는 기독교의 관점과도 일치합니다. 이런 말씀을 들리면서 마치겠습니다. 행복하게 사시기 바랍니다.”nbsp청중들은 2시간 30분 동안의 열강을 해주신 스님께 뜨거운 박수갈채로 감사의 마음을 전했습니다.nbspnbsp이어서 강연장 입구를 나와서 중앙 로비에서 책 사인회가 열렸습니다. 밤8시가 넘었음에도 기온이 30도가 넘고 푹푹 찌는 더운 날씨였는데, 스님께서는 가사 장삼을 다 입으신 채 정성껏 한분 한분에게 사인을 해주셨습니다.nbspnbspnbspnbspnbsp그리고 강연장 곳곳에서 소임을 맡아 수고해준 봉사자 전체와 함께 기념 사진을 찍었습니다.nbspnbspnbspnbsp또한 봉사자 모두에게는 한국에서 가져 온 단주를 스님께서 직접 손목에 끼워주셨습니다.nbspnbspnbspnbsp특히 가장 수고가 많았고nbsp오늘 강연을 총괄한 박주선님과 황금영님에게는 스님께서 사인한 책을 직접 선물하고 함께 기념 사진을 찍었습니다. nbspnbspnbsp스님께서 숙소로 출발하려는데 백숙희 코이카 소장님을 비롯하여 코이카에서 온 청년들이 스님께 별도로 찾아와 짧게 이야기를 나눴습니다. 스님께서는 코이카 청년들에게 “기왕에 이곳에 나온 김에 고생을 좀 많이 하고 가겠다는 마음을 내어라. 그래야 나에게도 좋다” 하시면서 앞서 강연에서 하신 말씀을 한번 더 강조해 주셨습니다. 백숙희 코이카 소장님도 청년들에게 좋은 말씀을 들려준 스님께 거듭 감사의 인사를 했습니다.nbspnbsp▲ 코이카에서 봉사활동을 나온 학생들에게 격려 말씀을 해주시는 모습nbspnbsp봉사자들은 스님을 숙소로 떠나보내고 묘덕 법사님, 홍정혜 서남아 지구장님과 함께 마음나누기를 하였습니다. 강연 준비를 총괄한 황금영님은 “협력하는 것보다 혼자서 하는 걸 좋아하는 성격인데, 일을 함께 나눠서 하는 것이 어려웠지만 많은 공부가 되었다” 고 합니다. 한 분은 “스님의 말씀도 정말 좋았지만, 봉사자들을 보면서 나를 드러내지 않고도 많은 사람들에게 도움을 줄 수 있다는 것을 경험한 것이 참 좋았다”고 합니다. 한 분은 “많은 분들이 질문하지 못해 아쉬었다”면서 “스님께서 답변을 짧게 해서 더 많은 사람들이 질문할 수 있게 해주셔도 좋겠다”는 바램을 이야기하기도 했습니다. 사회를 보신 분은 “종교를 떠나서 세상을 살아가는 지혜를 배울 수 있었는데, 매년 이런 기회를 만들어주시면 좋겠다”는 바램을 이야기했습니다. 한 분은 “정토회에서 보내준 행사 진행 매뉴얼이 정말 훌륭했지만, 현지에서 봉사하시는 분들의 의견도 많이 수렴해 주면 좋겠다”고 제안을 해주기도 했습니다. 한 분은 “작년 강연에 비해 올해 강연은 새로운 사람도 많이 왔고 특히 젊은 사람들이 많이 와서 새로웠다”며 보람 있어 했습니다.nbspnbsp▲ 묘덕법사님과 함께 마음나누기nbspnbsp묘덕 법사님은 봉사자들의 마음 나누기를 정리해주시면서 “개인적으로 질문을 못해 아쉬웠다는 분들이 많았는데, 다른 사람의 질문과 답변 속에 담긴 깊은 뜻을 내 삶에 적용함으로 인해 더 많은 것을 배울 수 있다” 라고 하시면서 아쉬운 마음을 다시 긍정적으로 돌이킬 수 있게 환기를 시켜 주셨습니다. 모두가 서로에게 수고가 많았다며 격려해 주면서 마음나누기를 마쳤습니다.nbspnbsp숙소로 돌아오니 밤10시가 넘었습니다. 스님께서는 늦은 시간까지 원고 교정을 더 보시다가 오늘 일과를 마치셨습니다.nbspnbsp오늘도 이렇게 많은 봉사자들의 땀과 정성으로 104번재 프놈펜 강연도 잘 마쳤습니다. 내일은 베트남 하노이에서 105번째 강연이 열릴 예정입니다. 내일은 하노이에서 또 소식 전해드리겠습니다.nbsp▼nbsp법륜 스님의 세계 100회 강연, 지난 날짜 소식 보기

2014.12.08. 39,125 읽음 댓글 31개

2014.12.5 세계 100회 강연(103) 태국 방콕 Bangkok

nbsp안녕하세요. 오늘은 세계 100회 강연 중 103번째 강연이 태국 방콕에서 열리는 날입니다. 법륜 스님과 함께하는 마음 공부 세계 여행 이야기 오늘도 시작해 봅니다.nbspnbsp태국은 동남아시아 중심부에 위치해 인도차이나와 미얀마, 그리고 중국 남부 지역의 관문 역할을 하고 있는 나라입니다. 국왕을 국가의 수반으로 하는 입헌군주제 국가이며 동남아시아 국가 중 유일하게 외세의 지배를 받은 적이 없는 나라입니다. 인구는 타이인, 중국인이 대부분이고, 그 외 말레이인, 라오스인, 인디언, 버마인 등이 차지합니다. 공식어는 타이어이지만 유명 관광지에서는 영어를 통상적인 언어로 사용합니다. 국교는 상좌부 불교 또는 남방 불교입니다. 소수 종교는 남쪽 지역민이 믿는 이슬람교를 비롯해 힌두교와 기독교 등이 있습니다. 초기 태국지역 사람들은 중국의 남부 지역에서 이주해 온 것으로 추측하며 타이 라는 국명은 자유를 의미하는 타이어에서유래했다고 합니다.nbspnbspnbsp태국 내 교민은 약 2만명 정도 거주하고 있다고 합니다. 그 중 방콕에 거주하고 있는 교민은 약 1만 5천명입니다. 교민들은 주로 40대가 주축이 되어 있으며, 대체적으로 70에 가까운 수가 2000년대 이후에 이주해 온 분들로 젊은층이 많습니다. 최근에는 삼성, LG, 현대, 코스코, CJ 등을 비롯하여 중소기업체도 많이 진출해 있다고 합니다. 이 중에 유학생은 교민 전체의 67 정도를 차지합니다.nbspnbsp학생과 주재원을 제외한 거의 모든 교민들은 일반 체류자 자격으로 거주하고 있는데, 교민들은 주로 관광 서비스 업계에 많이 종사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올해 1월부터 ‘비자런’이 막혀서 한국으로 돌아가거나 주변 국가로 이주한 경우가 많이 생기기도 했습니다. 그동안은 주변 인근 국가인 캄보디아, 라오스, 미얀마, 말레이시아 등을 잠깐 경유한 후 다시 재입국하는 방법으로 체류 기간을 연장해 왔는데, 이것을 전면 금지하는 바람에 태국 교민사회는 일대 충격에 빠지기도 했다고 합니다. 이번 강연을 준비하는 과정에서도 방콕정토회에서 활동하는 몇몇 분들이 한국으로 다시 돌아가는 바람에 같이 강연을 준비할 사람을 초기에는 구해지 못해 어려움이 많았다고 합니다.nbspnbsp▲ 방콕nbsp방콕은 태국의 수도로 동남아시아에서 가장 빠른 속도로 성장하고 있는 도시입니다. 세계에서 22번째로 인구가 많은 도시로, 약 828만명을 기록하고 있는데 실제로는 이보다 많을 것으로 추정됩니다. 방콕은 약 3천여년간 독립을 지속해 온 독립 왕국으로서의 태국의 문화 유적과 풍물 등 각종 관광자원이 많은 곳이며 동서양을 잇는 아시아의 관문이기도 한 도시입니다. 특히 수완나폼 국제공항은 세계 각지에서 몰려 드는 여행객으로 연일 붐비고 있었습니다.nbspnbsp새벽 5시30분에 한윤복 대표님을 비롯한 어제 강연을 준비했던 봉사자들이 스님 일행이 하룻밤 묵은 미얀마 양곤의 숙소 Pears Condo에 오셨습니다. 다시 먼길을 떠나시는 스님께 삼배로 인사를 드리고, 스님께서도 수고한 봉사자들에게 격려의 말씀을 해주셨습니다.nbspnbsp▲ 새벽에 출발하시는 스님께 인사하러 온 미얀마 강연 봉사자들nbspnbsp강영애님이 새벽부터 식사까지 준비해 오셔서 아침까지 든든히 먹고 새벽 6시에 공항으로 출발했습니다. 7시에 양곤 국제공항에 도착해 출국 수속을 밟고 게이트 안으로 들어왔습니다. 공항에는 한윤복 대표님과 한승국씨, 강영애님, 김진동님이 나오셔서 스님 일행이 비행기를 타는 시간까지 끝까지 배웅을 해주셨습니다.nbsp강영애님은 이곳 미얀마에서 사신지 18년이나 된 분이신데, 현지 언어를 능수능란하게 잘 하셔서 공항 안까지 들어오셔서 출국에 아무 문제가 없도록 세심히 챙겨 주셨습니다.nbsp▲ 출국 수속을 도와주신 미얀마 현지 교민 강영애님nbspnbsp어제 강연을 주관한 한윤복 대표님은 “미얀마가 요즘 변화가 급격한 곳이여서 교민들이 스트레스가 많은데 어제 스님의 강연으로 많은 분들이 마음의 평온을 찾아갔다” 며 스님께 거듭 감사 인사를 했습니다.nbspnbsp▲nbsp미얀마 강연을 총괄해주신 한윤복 대표님nbspnbsp8시30분에 미얀마 양곤을 출발한 비행기는 10시40분에 태국 방콕의 수완나품 국제 공항에 도착했습니다. 공항에는 방콕정토회 황소연 총무님의 남동생 황두연님이 마중 나와주셔서 스님 일행을 반겨 주고 차량으로 픽업해 주었습니다.nbspnbsp▲ 짐을 운반해 주기 위해 공항 마중을 나와준 황두연님nbsp공항에서 오늘 숙소인 호텔로 바로 이동해 짐을 내려놓고 곧바로 점심 식사를 하러 한국식당 ‘명가’로 이동했습니다. 비빔밥을 간단히 먹고 식당 사장님께 사인한 책은 선물로 드렸습니다. 스님께서는 “저녁식사 때 태국의 슐락 박사님이 이곳에 오셔서 같이 식사하려고 한다” 면서 준비를 잘해 달라고 부탁하고 다시 숙소로 돌아오셨습니다.nbspnbsp오늘 스님 일행이 머물 호텔은 주 태국 한인회 채언기 회장님이 제공해 주셨습니다. 회장님은 포스터 및 전단지 인쇄, 한아시아 사이트 팝업창 홍보 등을 위해서도 지원을 해주시는 등 많은 지원을 해주셨습니다.nbsp스님께서는 호텔에서 잠시 휴식을 하셨다가 오후1시45분에 강연장인 한국 문화원으로 이동하셨습니다.nbspnbsp2시부터는 대기실에서 방콕의 지역 인사 분들과 차담을 나누셨습니다. 주 태국 한국문화원의 이준호 원장님, 서남아 평통위원회 채규준 회장님 부부와 이정국 고문님, 스님께서 태국에 오실 때마다 차량 지원을 해주고 계신 김장열 사장님, 교민광장 전용찬 사장님, 박종하님, 문범덕님 등이 함께 자리해 스님의 이번 세계 100회 강연에 대해 궁금한 점과 스님의 건강, 방콕 지역의 교민 현황 등에 대해 대화를 나누셨습니다.nbspnbsp▲ 스님과 차담을 나누고 계신 방콕 지역 인사 분들nbspnbsp모두들 스님이 오늘로써 연속 103번째 강연을 하고 있다고 하니 깜짝 놀라워 하셨고, 한 분은 “이제부터는 그냥 법륜 스님이라고 소개하면 안되고, 세계의 법륜 스님이라고 소개해야 한다” 면서 교민들을 자비롭게 헤아려주시는 스님의 노고에 대해 큰 감동을 받으셨습니다. nbspnbsp특히 오늘 12월 5일은 태국의 푸미폰 국왕의 생일 겸 ‘아버지의 날’로 공휴일이면서 동시에 국민들은 이 날을 기념하여 하루 동안 노란색 옷을 입고 저녁에는 광장에 모여 국왕의 건강을 기원하는 의식에 참여하기도 한다고 합니다.nbsp공휴일이여서 그런지 오후 2시30분에 강연이 열림에도 불구하고 많은 분들이 강연장을 찾아주셨습니다.nbspnbspnbsp총 130여명이 참석하여 한국문화원 강당을 가득 메운 가운데, 강연에 앞서 한인회 전 회장님인 김장열 사장님이 “세계 115회 강연을 다니고 계신 스님께 뜨거운 박수 갈채를 보내달라” 고 환영의 말씀을 해주셨습니다.nbsp박수 갈채를 받으며 무대에 오른 스님께서는 오늘이 103번째 강연이라고 알려주시면서 강연을 시작하셨습니다.nbspnbsp“저는 지금 해외에 계신 교포들과의 대화를 위해서 115회 강연을 다니고 있습니다. 유럽을 시작해서 캐나다, 미국, 멕시코, 남미로, 오세아니아로 해서 지금 동남아시아를 다니고 있습니다. 오늘이 103회 강연이니까 이제는 거꾸로 메달아 놓아도 나머지 강연은 다 해낼 수 있지 않나 싶습니다. nbspnbsp처음 시작했을 때는 많이 힘들었어요. 유럽 강연을 할 때는 거의 중단해야 되지 않을까 싶을 정도로 많이 아프기도 했고요. 아예 목소리가 안 나와서 강연을 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르기도 했어요. 또 그런 상태에서 계속 강연을 했더니 편두통이 생겨서 심한 고통도 겪으면서 하루 하루 한발 한발 다니다보니까 여기까지 오게 되었습니다. 아직도 컨디션이 썩 좋은 상태는 아니고요. 조심해서 다니고 있습니다. 방콕은 그래도 1년에 한번씩은 강연을 주욱 해왔어요. 제가 인도성지순례를 매년 가니까 가는 길에 들러서 강연을 하거든요. 아무튼 오늘 만나뵙게 되어서 반갑습니다.nbspnbsp인생에는 정답이 없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저와 같이 대화를 해보는 겁니다. 대화를 하다보면 문제를 삼았던 것이 문제가 안될 수도 있고, 문제 해결의 실마리를 찾을 수도 있고, 무거웠던 마음이 가벼워지기도 합니다. 그것은 제가 그렇게 해주는 것이 아니고, 대화를 하다보면 그렇게 되어가는 것입니다. 그래서 뚜렷한 주제가 있는 강의는 아니지만, 결과적으로는 좀 더 행복해지고 좀 더 자유로워진다 이렇게 말할 수 있습니다. 좌절했던 사람이 삶의 새로운 희망을 가지게 될 수도 있습니다. 이렇게 하면 희망이 생긴다 이런 얘기가 아니라 대화를 하다보니 ‘아, 별 문제가 아니었구나’ 하는 것을 발견하게 되는 것이 바로 희망이죠. 그러니 누구든지 자유롭게 얘기를 해보세요.”nbsp그러면서 질문을 받기 시작했습니다. 총 7명이 스님께 질문을 했습니다.nbspnbsp“배낭여행 중인 학생입니다. 전역 후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 또한 내가 무엇을 잘하는지 모르겠고, 부모님께 의지하고 싶지 않고, 독립적으로 살아갈 수 있는 방법을 말씀해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공부가 제일 쉬운 것을 알지만 저에게 진정 맞는 진로를 잘 모르겠습니다.”nbspnbspnbsp“결혼 적령기를 넘긴 33세 여성입니다. 사람은 태어나면 공부를 해야하고 30대에는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고 살아야 하는데 결혼의 유무를 떠나서 자기 자신과의 싸움에서 이기고 싶습니다. 사람은 왜 이렇게 외로운 것일까요? 저 자신의 내면과 싸우는 힘을 얻고 싶습니다. 마음의 소리를 들어라고 하는데 어떻게 들어야 하는지를 모르겠습니다.”nbspnbsp“두 딸에게 부처님의 법과 가르침을 주고 싶은데 멀리 외국에 사는 관계로 부처님의 법을 전하기 어렵습니다. 집안이 불교 집안인데도 불구하고 젊은시절 열심히 수행하지 못한 것 같아 아쉬운 마음에 딸들에게 의도적으로라도 불법을 전해주고 싶습니다.”nbspnbsp“저 자신에 대해 정체성이 없습니다, 중국의 조선족인 관계로 외국인이 ‘너는 어디에서 왔느냐?’ 라고 질문을 받을 때 한국인인지 중국인인지 헷갈려 저의 정체성을 알고 싶습니다.nbspnbsp그리고, 남자친구를 사귄지는 1년이 다 되어 가는데 만날 때 마다 작은일로 싸우고 있습니다. 서로 안맞는 관계인데도 불구하고 결혼 애기를 하고 있는데 결혼을 해야 할지 않해야 할지 잘 모르겠습니다.”nbspnbsp“결혼을 한지 2년 된 새댁입니다. 결혼을 하고 나니 아이를 꼭 가져야 하냐 하는 생각이 듭니다. 남편은 좋고 긍정적인 사람이라 결혼을 하게 되었는데요 남편은 아이를 가지기를 원하는데 저는 좋은 엄마가 될 자신이 없습니다. 엄마의 삶을 보면서 어릴 때 안쓰러워 보인 기억이 있어 그런지 아이를 가지기에 두렵습니다.“nbspnbsp“그동안 열심히 살아온 이유는 목표가 분명해서입니다. 한 순간이 괴로워도 인생의 목표가 있어 살아왔는데요. 현재 목표가 사라지고 나니 인생의 허무함을 느낍니다. 앞으로 계속 목표가 있는 삶을 살아야 할까요?”nbspnbspnbsp이렇게 다양한 질문에 대해서 스님께서는 정성껏 답변을 해주셨습니다. 오늘은 그 중에서 부모님의 심한 갈등으로 힘들어하는 여성분의 질문과 스님의 답변을 소개합니다. 가정에서 부모가 갈등할 때 자녀는 어떤 마음을 가져야 거기로부터 자유롭게 행복해질 수 있는지 지혜로운 방법을 알려주셨습니다.nbspnbsp“남편하고 결혼해서 한국에서 살다가 작년에 방콕에 왔습니다. 올해 몸이 너무 안좋아서 한국에 가서 한두달정도 있다가 다시 잠깐 방콕에 왔습니다. 조금 뒤에 다시 한국에 치료를 받으러 가야 하는데요, 문제는 제가 친정에 있을 때 부모님들이 자꾸 다투세요. 엄마는 한참 다투시면 아빠욕을 하시고, 아빠는 엄마욕을 하세요. 옛날부터 지금까지 굉장히 다투시는데 제가 너무 괴롭고요, 심지어 두 분이 워낙 혈기가 왕성하셔서 아빠는 싸우시다가 집도 나가시고 그러시는데그 모습을 지켜보는게 매일매일 너무 힘이 듭니다.”nbsp“집에 안가면 되지요.” nbsp“제가 몸이 안좋다 보니까 한국에서 치료를 계속 받아야하는 실정이거든요.”nbspnbsp“딴곳에 살면서 치료를 받으면 되잖아요.”nbsp“네, 그래서 생각을 해봤어요. 친구네 집에 한 3일 정도 있고, 부모님 집에 한 4일 정도 있는데, 제가 갈 때마다 많이 싸우시더라구요. 저를 가운데 두고 얘기를 들어달라 하시면서 막 싸우시는데, 그 옛날 몇십년 전 얘기를 계속하면서 서로 다 반복해서 얘기하고 계시니까, ‘오죽 마음이 쌓이셨으면 이러실까’ 하고는 계속 얘기를 들어드리기는 하는데, 제가 가운데서 너무 힘이 드는 거죠.”nbsp“뭐가 힘들어요?”nbsp“엄마한테서 괴로운 얘기를 들으면, 저는 아빠를 사랑하는데 엄마가 아빠 욕을 하시니까 괜히 여러가지 마음이 드는 거죠. 아빠한테 미워하는 마음도 들고, ‘엄마는 저렇게까지 아빠를 왜 이해하지 못할까?’ 이런 마음도 들고요. 아빠 얘기를 들으면, 또 반대의 입장이 드는거죠. 아빠가 불쌍하기도 하고, ‘왜 아빠는 엄마를 이해하지 못할까?’ 그런 마음도 많이 들거든요. 두분이 또 싸우다 보면 격해지고 폭력이 나와 두 분이 몸싸움까지 가끔 하시게 되는데 그것을 보는 입장이 또 그렇게 힘들더라구요.”nbspnbsp“왜 힘들어요? 싸우는 것 구경하는 것은 재미있잖아요. 닭싸움 하는 거 구경하면 얼마나 재미있는데요? 소싸움 하는 것도 보면 재미있어요. 염소도 싸움 붙여놓고 뿔로 부딪히는 것 구경하면 재미있어요. 질문자가 두 분이서 싸울 때 마다 박수 치면서 ‘누가 이기나? 이기는 건 우리 소’ 하면서 응원 좀 해봐요. 그럼 두 분이서 싸우다가 싱거워서 그만두죠. 질문자가 말리면 더 싸워요.”nbspnbspnbspnbsp“그게 좀 힘들어요. 그래서 한참 동안 얘기도 안 하고 두 분이서 싸우시는 것을 물끄러미 보기도 하는데 나중에는 몸이 되게 힘들어지고 마음도 힘들더라구요.”nbsp“그러니까 두 가지 방법이 있어요. 응원을 하던지, 두 분이 싸우면 빨리 집을 나와가지고 다른데 가 있던지요. 내가 그 집에 가든 안가든 그 집은 싸우잖아요. 내가 가서 있을 뿐이예요. 그건 내 문제이지 엄마 아빠 문제가 아니예요. 엄마 아빠는 싸우면서도 질문자를 낳아서 잘 살아오셨잖아요. 그러니까 질문자가 볼 때는 문제인 것 같지만, 엄마 아빠는 싸우면서도 자기들은 아무 문제가 없어요.”nbspnbsp“제가 밖으로 나가서 친구네 집에 있는데도 계속 전화를 해서 하소연을 하시면서 좀 만나자고 그래요.”nbsp“그러면 들어줘요. 엄마가 얘기하면 ‘아, 네, 네, 네. 네. 아이고, 엄마 힘드시네요’ 하고 들어주기만 하세요. 엄마 말을 따라서 아빠 욕을 해서도 안 돼고, 아빠가 얘기할 때도 아빠 말을 따라서 엄마 욕을 해서도 안 돼요. 그 이유는 엄마 말을 듣고 아빠 욕을 하면 질문자는 나쁜 여자가 되고 불효자가 돼요. 아빠 말을 듣고 엄마 욕을 해도 질문자는 나쁜 여자가 돼요. 그러다가 ‘엄마 그런 얘기하지 마세요’ 그렇게 하면 부모님 말도 안 들어주니 또 나쁜 여자가 되는 거예요. nbspnbsp그러니까 들어주되 그냥 ‘아이고, 엄마 힘들겠어요’ 그렇게만 하면 아빠 욕하는 것은 아니잖아요. 아빠 때문에 엄마 힘든 것만 들어주지 아빠는 노터치 하세요. 반대로 아빠가 힘든 걸 얘기하면 ‘아이고 힘들었네요, 아빠’ 하고 ‘아빠가 어떤 여자 때문에 힘들어 하는구나’ 하고만 들어주세요. ‘아빠가 힘드시네요’ 라고만 하지 아빠한테 가르칠려고 하면 안 된단 말이예요. 아빠한테 ”엄마 좀 이해해요“ 이런 말을 하면 아빠가 그 얘기를 들을 사람이예요? 안 듣지요. 아빠가 내 말도 안 들으면 아빠가 미원진단 말이예요. 그리고 엄마에게 ”아빠를 이해하라“ 고 하면 엄마도 내 얘기를 안 들어주니 엄마도 미워지는 거예요. 그러면 엄마도 기분 나빠해요. 딸이라고 얘기해 봤더니 저게 아빠 편든다 이렇게 말해요.”nbsp“네, 맞아요. 그래서 지금 양쪽에서 욕을 듣고 있어요.” nbspnbsp“그래요. 그래서 절대로 누구 편을 들지 말고, 전화가 오면 “아이고 어머니 힘드시네요” 이렇게만 자꾸 얘기하면 돼요. 계속 “네, 네, 네, 네, 네” 하고, 내가 듣기가 조금 힘들면 귀에 이어폰 꽂아놓고 음악 틀어놓고, 입으로만 그냥 “네, 네, 네, 네, 네” 이러면 되는 거예요. 하나도 힘들지 않아요.” nbspnbspnbsp“그러면 괜찮아질까요?”nbspnbsp“괜찮아진다는 뜻은 엄마 아빠가 안 싸운다는 것이 아니라 싸우는 것이 나하고는 관계가 없어진다는 뜻이예요. 내가 괜찮아진다는 거예요. “네, 네, 네, 네” 하면 누가 괜찮아질까요?”nbspnbsp“제가 괜찮아지죠.”nbsp“내가 괜찮아진다는 거예요. 사실은 응원하는 게 제일 좋아요.” nbsp“아, 응원하는 것 까지는 아직 안 될 것 같아요.”nbspnbsp“응원하는 마음을 내면 두 분이서 싸워도 나는 아무 상처를 안 입거든요. 그리고 연구를 하는 거예요. ‘엄마는 저렇게 해서 저러는 구나, 엄마는 저럴 때 성질을 저렇게 내고, 저렇게 해서 아버지한테 한대 치는구나, 아버지는 성질이 나면 말로 안되니까 주먹으로 때리는구나, 사람을 때릴려고 하지만 그래도 자기 아내니까 그릇을 때려 부시는구나’ 이렇게 보면 얼마나 재미있는데요.nbsp남자들이 막 아내한테 성질을 낼 때 보면 서로가 싸우면서 때리기 전에 먼저 물건을 집어 던지잖아요. 차마 때릴 수는 없으니까 때리는 것 대신에 물건을 집어 던져서 깬다든지 하는 거예요. 옛날에는 여자가 아까워하는 것이 살림이었으니 남자들이 주로 살림을 부셨던 거예요. 여자가 아까워하는 것을 깨어 버려서 분풀이를 좀 할려고 했던 거죠. 그리고 여자들은 성질이 나면 남자 얼굴을 할켜 버려요. 왜냐하면 흉터가 나서 길거리에 가면 망신이잖아요. 그래서 여자는 할퀴고 남자는 그릇 깨고 그러거든요. 그런데 요즘 여자들은 그릇 깬다고 별로 신경 안쓰잖아요. 같이 깨니까요.” nbspnbsp“두 분이 나이가 드시니까 이제 상황이 바뀌었어요. 옛날에 쌓인 것 때문에 엄마가 이제 아빠를 공격하실려고 하고, 아빠는 막 피해 다니세요.” nbsp“잘 됐어요. ‘아, 나이가 드니 저렇게 되는구나’ 하면서 나는 “아빠, 내 쪽으로 와요. 내 뒤로 숨어요. 이쪽으로 피해요” 하고 도와주면서 마음을 가볍게 먹어야 돼요. 왜그러냐 하면, 그 싸움은 내가 볼 때 굉장한 것 같지만 사실은 별거 아니예요. 그 사람들은 늘 일상적으로 있는 일이예요. 그러면서도 지금까지 잘 살아왔고 앞으로도 잘 살거예요.nbsp엄마와 아빠가 싸우는 것을 질문자가 간섭한다고 해서 해결될 일이 아니예요. 질문자가 싸우지 말라고 하면, 엄마도 내 말 안 듣고, 아빠도 내 말 안 들으니까, 나는 엄마도 미워지고 아빠도 미워지게 되면서 질문자가 엄마 아빠를 다 미워하면 삼각형 세 변이 다 싸워요. 그런데 내가 응원을 하면 한 변만 싸우고 두 변은 괜찮아요. 나하고 엄마도 괜찮고, 나하고 아빠도 괜찮거든요. 그것이 유리하잖아요? 그러니 신경 쓸 필요가 없어요. 제일 좋은 것은 응원하는 것인데, 응원을 한번 해보세요.”nbspnbsp“네, 한번 해볼께요.”nbspnbsp“처음에는 속으로만 응원해 보세요. ‘누가 이기나? 누가 이기나?’ 이러다가 조금 지나고 나서는 소리를 내어가지고 “야, 게임 시작했다” 고 하면서 질문자가 마이크를 하나 들고 나와 가지고 “자, 엄마가 한대 찌릅니다. 아빠가 피하네요.” 이러면 두 분이서 싸우다가 웃을 거예요. nbspnbspnbsp그 정도 유머가 있어야지요. “청도 소 싸움한다” 이러면서 나와 가지고 응원을 해봐요. 그게 제일 낫고요. 그런데 그것이 잘 안되고, 싸우는 것을 보면 마음이 자꾸 아프면, 조용히 밖으로 나가서 안 보는 게 제일이예요. 질문자가 결혼 후 친정 집에 안 갔을 때는 이런 문제를 몰랐잖아요.”nbspnbsp“네. 몰랐지요.”nbsp“안 보면 아무 문제가 없거든요. 봐도 문제가 없을려면 응원을 해버리면 아무 문제가 없어져 버리고요. 그래서 절대로 엄마 말 듣고 엄마 편도 들지 말고, 아빠 말 듣고 아빠 편도 들지 말고 그냥 엄마 얘기를 들어주고, 아빠 얘기를 들어주세요. “엄마, 아빠한테 그런 욕 하지마” 라고 하면 엄마가 기분이 나빠져요. 엄마 얘기 듣고 또 아빠한테 욕하면 아빠도 그 소리 듣고 아빠 기분이 나빠져요. 그리고 자기들끼리 좋으면 또 서로 그래요. nbsp“아이가 당신 욕하더라” 그래요.”nbsp“진짜요?” nbspnbsp“그런 것 잘 몰랐지요?”nbspnbsp“네, 몰랐어요.”nbspnbsp“질문자가 엄마 얘기에 동조해 준다고 아빠 욕을 같이 하면, 속으로는 ‘그 년 자기 아버지를 저렇게 욕을 하네’ 그래요. 아시겠어요? 그래서 절대로 부부지간에 싸움할 때는 어느 한쪽 편을 들면 안 돼요.”nbspnbsp“네, 알겠습니다. 감사합니다.”nbsp질문자는 마지막에 nbsp아주 밝은 목소리로 감사 인사를 했습니다. 스님의 답변을 듣고 무거운 짐을 탁 내려놓듯이 활짝 밝아진 표정이 되었습니다. 청중들도 밝아진 질문자를 보고선 큰 격려의 박수를 보내주었습니다.nbspnbspnbsp이렇게 7명의 답변에 모두 답변을 마치고 나니 2시간 30분이 지나 있었습니다. 마지막으로 스님께서는 진리는 나도 좋고 남도 좋게 하는 길이라고 하면서 이렇게 닫는 말씀을 해주셨습니다.nbspnbsp“일시적인 기쁨은 행복이 아닙니다. 그것이 지속가능해야 행복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오늘 여러분들 어땠어요? 재미도 있었죠? 유익하기도 했죠? 나한테도 좋았죠? 남한테 손해나는 말은 한마디도 없었죠? 그래서 이 길은 나도 좋고 너도 좋고 지금도 좋고 나중도 좋은 길이예요. 그래서 우리는 진리에 근접해 가고 있습니다.nbspnbspnbspnbsp불교냐 기독교냐 하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고, 우리가 어떻게 좀 더 진실을 향해 나아가느냐, 마음이 좀 더 편안해지고 삶이 더 행복해지느냐 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살아 있을 때는 삶을 만끽하고 죽을 때가 되면 기꺼이 죽어줘야 합니다. 천국 가기 위해서 매일 교회에 나가면서 왜 천국 가는 걸 싫어해요? 죽어야 천국을 갈 수 있지요. 그러니 죽음을 너무 두려워하지 마세요. 크게 보면 죽고 사는 것도 없어요. 그러나 짧게 보면 좋은 곳에 가는 것인데 두려워할 것이 뭐가 있어요? 그러나 살아 있을 때는 삶을 만끽하자는 겁니다. 그렇게 행복하게 사시기 바랍니다.”nbspnbsp긴 시간 열강을 해주신 스님께 청중들이 다시한번 뜨거운 박수 갈채를 보내주었습니다.nbspnbspnbsp강연을 마치고 곧바로 무대 위에서 책 사인회 시간을 가졌습니다. 참석한 청중들에게 사인을 해주며 반갑게 인사를 하기도 하고, 청중들은 오늘 강연을 기념하고자 사인을 하는 스님 모습을 배경으로 기념 사진을 찍기도 했습니다.nbspnbspnbsp청중들이 모두 돌아가고 강연장 곳곳에서 소임을 맡아 역할을 해준 자원봉사자들 모두가 모여서 스님과 함께 기념사진을 촬영하였습니다.nbspnbspnbsp그리고 봉사자 모두에게는 한국에서 가져온 단주를 스님께서 직접 손목에 끼워 주셨습니다.nbspnbspnbspnbsp특히 강연 전체를 총괄한 황소연님에게는 스님께서 특별히 사인한 인생수업 책을 선물하고 일대일 기념사진 촬영을 하였습닌다. 이 모습을 지켜보던 봉사자들도 뒤에서 큰 박수를 보내주었습니다. 황소연님을 중심으로 방콕정토회 활동가들이 중심이 되어 오늘 강연이 무사히 치러질 수 있었습니다.nbspnbsp▲ 방콕 강연 총괄을 맡아 주신 황소연 방콕정토회 총무님nbspnbsp행사장 뒷정리를 모두 마치고 봉사자들은 묘덕 법사님과 함께 마음나누기를 하였습니다. 황소연 방콕 정토회 총무님은 “소풍을 가는 기분으로 즐겁게 강연 준비를 했더니 몸은 힘들었지만 아이디어도 많이 나오고, 욕심을 부리고 있구나 알아차리기도 하고 좋았다”고 합니다. 한 분은 “봉사란 멀리 있는 것이 아니었는데 직접 참여해보니 참 좋구나 느꼈다” 고 소감을 말해주었습니다. 한 분은 “다른 나라에서 진행되는 모습을 스님의 하루를 통해 보고 있었는데, 어떻게 저렇게 사람들이 많이 모였을까 싶어서 걱정이 많이 되었다”며 “하지만, 오늘 방콕 강연에도 많은 분들이 와주시고 잘 마쳐서 너무 기쁘다” 고 하였습니다. 한 분은 “봉사를 했다기 보다는 내가 얻은 것이 훨씬 더 많았고, 즉문즉설을 동영상으로만 보는 것보다 현장에서 직접 들어보니까 더 느끼는 것이 많았다” 며 기뻐했습니다. 한 분은 “홍보를 하면서 희망편지와 유튜브를 통해서 법륜 스님의 법문이 널리 퍼지고 있음을 느낄 수 있었고, 오늘 강연을 통해 방콕 교민들에게 큰 희망을 불어넣어 주셨음을 많이 느낄 수 있었다” 며 보람있어 했습니다.nbspnbsp▲ 묘덕 법사님과 함께 하는 마음 나누기 시간nbspnbsp묘덕 법사님은 봉사자들의 이야기를 모두 듣고 나서 “강연을 함께 준비하다 보면 시비하고 분별하는 마음이 계속 일어나는데, 정토회는 그 때 자기 마음을 보아 나가는 과정을 수행으로 삼고 있다” 면서 “이번 강연이 자신을 알아가는 좋은 수행의 기회가 되었길 바란다” 고 한 분 한 분에게 격려를 해주셨습니다. nbspnbspnbsp스님께서는 강연장을 나와서 곧바로 태국의 저명한 참여불교학자 슐락 시바락사 박사님 부부를 저녁식사에 초대를 해서 함께 하는 시간을 가지셨습니다. 슐락 박사님은 스님과는 오랜 인연으로 INEB 활동을 함께해 온 분입니다. 슐락 박사님 부부가 올해로 결혼 50주년이 된다고 하셔서 저녁을 함께 드시며 조촐한 축하 파티를 해드렸습니다. 스님께서는 슐락 박사님께 “박사님, 오래 오래 건강하셔서 더 많은 사람들에게 가르침을 설해 주세요” 라고 하시면서, 케익에 초를 켜고 축하 노래도 불러드리고 선물도 드렸습니다. 박사님은 큰 감동을 받으시고 “감사합니다” 라고 거듭 말씀을 하셨습니다.nbspnbspnbsp슐락 박사님은 올해 연세가 82세이시고 거동이 많이 불편하신데, 스님께서 어깨를 부축하며 박사님을 극진히 모시는 모습을 보니 왠지 모르게 가슴이 뭉클해지기도 했습니다. 부처님의 가르침을 올바르게 전하기 위해 평생을 헌신한 어르신을 이렇게 극진히 모시고, 스님께서는 도 이를 계승하여 새로운 활동을 이어나가시니 과거, 현재, 미래가 이렇게 연결되는구나 싶었습니다.nbspnbsp▲ 태국의 저명한 불교학자 슐락 시바락사 박사님nbspnbspnbsp오늘은 강연이 낮시간에 열려 모든 일정이 일찍 끝난 관계로 저녁에는 봉사자들과 함께 저녁식사도 함께 할 수 있었습니다. 뒷풀이 겸 저녁을 함께 먹으며 이야기 나누는 시간을 가졌는데, 봉사자 중 한 여성 분이 아름다운 노래 nbsp두 곡을 불러주어서 분위기가 후끈 달아오르기도 했습니다. 봉사자들 스스로도 많은 것을 배울 수 있는 경험이었고, 봉사자들의 수고로 강연에 참석하신 교민들도 스님의 법문을 듣고 행복을 얻어간 그런 뜻깊은 하루였던 것 같습니다. 스님 말씀대로 정말 나도 좋고 남도 좋은 그런 일을 우리들이 했구나 느낄 수 있었습니다.nbspnbsp스님께서는 슐락박사님 부부와 방콕 강연 봉사자들과의 저녁식사를 모두 마치고 오후 9시 무렵 숙소로 돌아오셨습니다. 방콕정토법당 불사 문제와 내일 일정에 대해 홍정혜 서남아 지구장님과 황소연 방콕정토회 총무님과 간단히 회의를 하신 후 오늘 일정을 마치셨습니다. 그리고 늦은 밤까지 원고 교정 업무를 보시다가 휴식을 하셨습니다.nbspnbsp▲ 늦은밤, 태국 국왕의 생일인 오늘 아버지의 날을 맞이해 곳곳에서 축하 행사가 열리고 있었습니다.nbspnbsp오늘도 이렇게 많은 봉사자들의 땀과 정성으로 103번째 태국 방콕 강연도 잘 마칠 수 있었습니다. 내일은 다시 비행기르 타고 이동해 캄보디아 프놈펜에서 104번째 강연이 열릴 예정입니다. 내일은 프놈펜에서 또 생생한 소식 전해드리겠습니다.nbspnbsp▼nbsp법륜 스님의 세계 100회 강연, 지난 날짜 소식 보기

2014.12.07. 38,278 읽음 댓글 29개

2014.12.4 세계 100회 강연(102) 미얀마 양곤 Yangon

nbsp안녕하세요. 오늘은 세계 100회 강연 중 102번째 강연이 미얀마 양곤에서 열리는 날입니다.nbspnbsp미얀마는 1989년 이전에는 ‘버마’라고 불렸습니다. 미얀마의 군사 정권이 버마족 외에 다른 소수 민족도 아우른다는 차원에서 미얀마로 국호를 변경하였다고 합니다. 현재도 민주화 운동을 하는 활동가들은 군사 정권에서 붙인 국명인 미얀마와 현 국기를 거부하고, 버마라는 호칭과 옛 국기를 고집하고 있기도 하다고 합니다. 1962년, 네윈 장군의 쿠데타로 군사 정권이 집권하였고, 네윈은 거의 26년간 버마식 사회주의를 추구하며 버마를 통치하였습니다. 1990년 자유 선거에서 아웅산 수치가 이끄는 야당세력이 압승하자 군부는 선거무효를 선언하고 아웅산 수치를 무기한 가택연금하기도 했습니다. 2010년 11월 7일 미얀마 군사 정권은 총선을 통해 민간에 정권을 이양했지만, 군부의 지원을 받는 통합단결발전당이 압승으로 끝났고, 2010년 총선은 관제 야당들을 들러리로 내세운 사실상 관제선거였다는 비판이 많았습니다. 인구는 5600만명 정도이고, 전 국민의 대다수가 불교 신자이기 때문에 승려들은 국민들로부터 사회적 영향력이 상당히 강력한 편입니다.nbspnbsp▲nbsp미얀마 양곤nbspYangonnbsp양곤은 미얀마에서 가장 큰 도시이자 옛 수도입니다. 원래의 이름은 랑군이었으나 국호를 버마에서 미얀마로 바꾸면서 랑군의 명칭을 양곤으로 바꾸었습니다. 2008년 5월에 사이클론 나르기스가 양곤을 강타했고, 도시의 사상자는 별로 없었지만, 양곤의 도시기반시설의 4분의 3이 파괴되거나 피해를 입었고 피해액은 8억 달러에 이르렀습니다. 2005년 11월에 군사 정부는 양곤에서 북쪽으로 322km 떨어진 네피도로 행정 수도를 이전하였지만, 어쨌든 양곤은 지금도 미얀마에서 가장 크고 가장 중요한 상업 중심지로 남아있습니다. 최근 양곤은 토지 가격이 치솟고 있다고 합니다. 현지 교민 분의 이야기에 따르면 작년 보다 올해 집값이 10배 이상 오른 곳도 있다고 하니 변화의 물결이 실감나기도 했습니다. 미얀마 사회에 불어닥칠 변화의 물결은 아마 한국이 20년 동안 변화해온 과정을 2년 안에 모두 경험하게 되는 것이라고 보면 된다고 합니다.nbspnbsp콰알라룸푸르에서 윤금주 한인회 부회장님 댁에서 하룻밤을 묵고 아침6시30분에 부회장님이 정성껏 차려주신 아침을 먹고 7시에 공항으로 출발했습니다. 공항에 도착하니 어제 강연을 정성껏 준비해주신 반야원 회장님을 비롯한 신도님들이 스님을 배웅하러 나와 있었습니다. 짐을 부칠 때까지 시간 여유가 생겨서 스님께서는 반야원 신도님들과 잠시 담소를 나누셨습니다.nbspnbsp▲nbsp공항 배웅을 나온 반야원 신도님들nbsp게이트를 통과하고 나서 대기하고 있는데 비행기가 25분 연착되었다고 해서 스님께서는 명상을 하시며 시간을 더 보내셨습니다. 콰알라룸푸르 공항을 오전 11시에 출발한 비행기는 현지 시간으로 1200에 미얀마 공항에 도착했습니다.nbspnbsp입국 수속을 밟고 나오니 미얀마 강연준비 총괄을 맡은 아쿠아랜드 한윤복 대표님과 한승국님, 강연준비 봉사자 강영애님과 김진동님, 현지인 우멍주윈님이 스님 일행을 반갑게 맞이해 주었습니다. 비자를 전산 처리하는 과정에서 문제가 조금 생겼지만, 미얀마 현지 분들의 발빠른 대응으로 무사히 공항을 통과할 수 있었습니다.nbspnbsp▲ 미얀마 공항에 마중을 나온 분들. 왼쪽부터 한윤복 대표님, 강영애님, 김진동님, 현지인 우멍주윈님nbspnbsp공항에서 곧바로 오늘 숙소인 Pearl Condo로 이동했습니다. 숙소에 도착하여 미얀마 강연 준비팀 봉사자들이 스님께 삼배로 인사를 올렸습니다.nbspnbspnbsp그리고 김근영님과 이근숙님이 점심식사를 준비해 주셨는데 구수한 된장국부터 손수 만드신 반찬들을 보며 많은 정성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nbspnbsp스님께서는 약간의 편두통이 있으시고 감기 기운이 있으셔서 오후에는 숙소에서 잠깐의 휴식을 취하신 후 원고 교정 업무를 보시다가 오후5시 30분 무렵 강연장으로 출발하셨습니다. nbspnbsp오늘 강연이 열리는 곳은 양곤 북부 Inya 호수가에 위치한 Inyalake Hotel입니다. 호텔에 도착하니 고요하고 평화로운 호수가가 보였습니다.nbspnbsp▲nbsp호텔에서 바라본 인야 호수 전경nbsp강연을 준비하기 위해 십여명의 봉사자들이 일찍부터 곳곳에 안내 포스터와 현수막을 장식하고, 마이크를 테스트하고 의자를 배치하고, 책 판매대를 꾸미는 등 분주하게 움직이고 있었습니다.nbspnbsp오후6시 무렵 강연장에 도착한 스님께서는 대기실에서 지역 인사 분들과 차담을 나누셨습니다. 코트라 안재용 과장님을 비롯하여 권성혜님, 강영애님과 민주평통에서 유진 사장님, 최용석님, 대사관에서 정병배 참사님, 김평회 소장님, 정분자 회장님 등 많은 분들이 자리해 차담을 나누며 스님과 짧은 이야기를 나누셨습니다. 스님께서는 함께해주신 분들게 직접 사인한 책을 선물로 드렸습니다.nbspnbspnbsp저녁7시가 되자 소개 영상에 이어서 큰 박수를 받으며 스님께서 무대에 오르셨습니다. 오늘 강연은 120명 정도가 참석하여 유익한 시간이 되었습니다. 현지 교민 분의 설명에 따르면 미얀마 전체에 한국 교민이 2천명 산다고 하니 120명이면 그 중에 5 정도나 온 것이니 많은 분들이 참석한 것이라고 합니다.nbspnbsp먼저 강연에 앞서 오늘 강연 준비 총괄을 맡아주신 한윤복 대표님의 인사말씀이 있었습니다. 대표님은 스님의 설법을 듣고 좀 더 행복해지는 길을 찾아가는 소중한 시간이 되길 바란다 며 참석해 주신 분들께 감사의 마음을 전했습니다.nbspnbsp▲ 인사말씀을 하고 있는 한윤복 대표님nbspnbspnbsp스님께서는 미얀마에 부는 변화의 바람에 대해 이야기하시며 오늘 강연을 시작하셨습니다.nbspnbspnbsp“안녕하세요. 길이 많이 막힌다고 주최하신 분들이 걱정이 많으셨는데, 다들 시간 맞춰서 잘 오셨네요. 미얀마에서 다들 잘 살고 계세요? 연세 드신 분들은 한국의 70년대와 80년대에 한참 변화를 가져왔던 그런 기분을 느끼실텐데 그런 기분 느끼세요? 우리도 이런 사회적인 변화를 거쳤다는 것을 젊은 사람들은 잘 모를 거예요. 아까 전에 여기 오다보니까 트럭에 사람들이 콩나물 시루처럼 타고 옆에는 사람이 조롱조롱 메달려서 가는 걸 봤습니다. 70년대에 한참 농촌이 붕괴되고 도시 변두리로 빈민들이 모여들고 할 때 우리나라 버스들도 정말로 김밥 옆구리 터지듯이 차가 가득 찼어요. 그래서 버스 기사가 사람이 많아서 더 이상 안 들어가면, 마대에 물건 담을 때 흔들면 더 들어가듯이 버스를 커브길에서 오른쪽으로 한번 기울게 하고 왼쪽으로 한번 기울게 해서 사람을 더 태우고 그랬어요. 여기 상황을 보니까 그 때 생각이 났습니다.nbspnbsp저는 이곳 미얀마에 99년도에 구호활동을 하기 위해 답사를 하러 한번 왔었구요. 4,5년 전에는 태풍으로 많은 피해를 입어서 저희 JTS가 들어와서 무너진 다리를 놓고 학교를 복원하는 일을 했었어요. 그래서 준공식 하러 몇 번 왔었어요. 그러다가 한윤복 사장님을 만나서 작년에는 강연도 했었습니다.nbspnbsp즉문즉설은 강연을 하는 것이 아니고 여러분들과 대화를 하는 자리입니다. 자신이 궁금한 걸 물으면 그걸 갖고 대화를 하는 겁니다.nbspnbspnbsp보통 설교나 설법은 경전에 있는 얘기를 먼저 하고 해석해 주고 생활에 적용하고 즉 하늘에 있는 얘기를 땅으로 끌어내리는 방식인데, 오늘 우리는 우리의 고뇌나 의문 등 사람 얘기를, 즉 땅의 얘기를 먼저 하고, 대화를 하다보면 결국 하늘로 올라가서 진리에 대한 얘기로 귀결될 수가 있다는 겁니다. 그래서 우리들의 얘기를 먼저 시작해 봅시다. 이렇게 우리는 진리로 나아가는 방식이 좀 다릅니다. 전제를 먼저 하고 그것을 우리에게 끌어맞추는 것이 아니라, 우리 얘기를 먼저 해보고, 그리고 그 좋은 길을 찾아 가다보면 예수님의 가르침에도 도달하고 부처님의 가르침에도 도달하고 즉 행복과 자유의 길로 한발 한발 갈 수가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니 여러분들의 고뇌가 곧 진리로 가는 문이예요. 이것을 불교에서는 ‘번뇌 즉 보리’ 라고 부릅니다. 번뇌가 곧 깨달음이다는 말입니다. 그런 자리를 오늘 만들어보자는 것입니다. 자, 그럼 누구든지 질문이 있는 사람은 시작해보세요.“nbspnbsp그러면서 질문을 받기 시작했습니다. 총 7명이 스님께 질문을 했습니다.nbspnbsp“꿈이 제벌 2세인데 부모님이 안 따라 줍니다. 어떻게 할까요?”nbspnbspnbsp어린 학생의 당돌한 질문에 모두가 크게 웃으며 강연이 시작되었습니다.nbspnbsp“스님 책을 읽었는데 건전한 인간관계를 가지려면 기대하는 마음을 가지지 말라고 하셨는데 사람이 살다보면 어떻게 기대감을 가지지 않고 사람 관계를 맺을수 있는지 알고 싶습니다.”nbsp“처음 사회생활을 시작하면서 많은 부조리들을 보고 있는데 과연 이 문제들을 지나쳐야 하는지 저런 부조리를 먼저 지적을 해야 하는건지 알고 싶습니다. 자기 자신의 불이익을 떠나서 nbsp남을 위한 지적도 필요한지 알고 싶습니다.”nbspnbspnbsp“스님 말씀을 듣고 깨우친 점도 많지만 혼란스러운 점도 많습니다. 항상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에 대한 질문을 가지고 살지만, 어쩌면 길들여져서 살아가는 건 아닌가 싶어요.”nbspnbsp“나이가 들다보니 사람의 인관관계에 대해서 고민이 생깁니다. 어릴 때는 사람들을 더 알아간다는 즐거움이 있었는데, 슬슬 관리를 벗어나는 대인관계를 만나면서 스스로가 점점 대외적으로 나빠지는 이미지를 얻게 되는 것 같아요. 그렇기 때문에 더 이상 누구를 더 알아가기도 좀 겁이 나기도 합니다. 하지만 회사 생활을 하면서 인간관계를 계속 관리를 해야 하는데, 어떻게 해야 할까요?”nbspnbsp“미얀마 학생들과 함께하는 시간이 많은데, 이곳 아이들은 항상 꿈이나 비전없이 경직된 경우가 많습니다. 어떻게 하면 아이들에게 꿈과 희망을 심어 줄수 있을까요?”nbspnbsp이렇게 다양한 질문에 대해 스님께서는 지혜로운 말씀을 들려주셨습니다. 오늘은 그 중에서 미얀마 사람들을 인격적으로 대하지 않는 한국 사람들을 보면 속상하다며 아이들을 위해 어떤 교육을 해워야 하는지 묻는 여성 분의 질문과 스님의 답변을 소개합니다.nbspnbsp“외국에서 한국인으로 살아가는 것에 대해서 여쭙고 싶습니다. 이곳이 아직 문화적으로 미흡한 곳이다 보니 미얀마인을 인격적으로 대하지 않는 한국인을 많이 보게 됩니다. 그래서 한국인으로서의 자긍심을 많이 잃고 있습니다. 어린 딸 아이에게도 한국인으로서 어떠한 자긍심을 심어줘야 할까요? 그리고 미안먀 뿐만 아니라 캄보디아와 중국에서 산 적이 있었는데요. 그런 분들을 보면서 많이 속상했었습니다. 한국인으로서 가끔씩 창피할 때도 있었고요. 자라는 아이들에게 제가 어떻게 얘기를 하고 한국인으로 어떻게 살아가는 것이 좋을지에 대해서 궁금합니다.”nbspnbsp“외국에 나와서 한국인으로 어떻게 사느냐? 이런 생각 너무 할 필요가 없어요. 인간이 사는데 무슨 한국인과 미얀마인이 다르겠어요? 그러니 한국인으로서 어떻게 해야 되는 것이 아니고 사람으로서 어떻게 할 것이냐 이렇게 보편화 시켜야 해요. 자꾸 특수화시키지 말고요.nbspnbsp사람으로서 진실에 근접하려면 생태계를 기준으로 놓고 보면 됩니다. 개가 강아지를 낳았는데 새끼가 까만 것도 있고 흰 것도 있고 노란 것도 있을 때가 있잖아요. 그런데 그 어미개가 까만 것, 노란 것, 흰 것을 차별합니까? 안 합니까? 안합니다. 사람들도 개털 색깔이 다른 것을 가지고 차별해요? 안해요? 안하지요. 그런데 개도 차별을 안하면서 인간이 피부가 까맣고 노랗고 하얗다고 nbsp왜 차별을 해요? 이것은 한국인이고 아니고에 관계없이 진실이 아니다 이렇게 말할 수 있어요. 그러나 고양이나 개를 봤을 때 질문자가 흰털이 좋다, 까만털이 좋다, 노란털이 좋다. 이것은 질문자의 취향이잖아요. 그러니깐 나는 백인이 좋다, 나는 흑인이 좋다, 나는 황인이 좋다 하는 이것을 차별이라고 보면 안 돼요. 이것은 그의 기호이기 때문이예요. 이것은 인종차별하고는 성격이 다릅니다.nbspnbspnbspnbsp내가 백인을 좋아하는 것은 괜찮은데 흑인이라고 괄시해서는 안 되죠. 그러니까 우리가 미얀마에 살면서 미얀마인을 괄시하는 것은 안 되지요. 이것은 잘못된 거예요. 사람이 서로 태어난 나라가 다르거나 인종이 다르거나 종교가 다르다고 해서 차별을 하면 안된다는 거죠. 무슬림이다 하면 벌써 ‘저 사람은 위험하다’ 이런 식으로 보면 안된다는 거죠. 또 여자라고 차별해서도 안되고, 신체장애라고 차별해서도 안되고, 더 나아가서는 성적 지향이 다르다고 차별해서도 안되고, 그 태어남에 의해서 주어진 것을 가지고 차별해서는 안된다는 거죠. 그러니까 아이들에게 이것을 가르쳐야죠.nbspnbsp그런데 지금까지 기독교인들은 기독교인들끼리만 살아왔고, 한국사람들은 한국사람들끼리만 살아왔고, 일본사람은 일본사람끼리만 살아왔고, 서양사람은 서양사람끼리만 살아왔습니다. 그러다 보니 자기만 옳다, 자기들이 우월하다는 것을 너무나 당연히 생각하고 있지요. 이렇게 살아온 환경의 영향이 큽니다. 한국사람들은 인종이 다른 사람, 민족이 다른 사람과 같이 살아 본 경험이 없어요. 경험이 없다 보니 한국사람이 아닌 것은 다 이상하게 생각하는 것 같아요. 그런데 여기에 2가지가 있어요.nbsp우리가 서양문화를 모방하고 있다보니까 서양사람에 대해서는 무조건 열등감을 가지게 되었어요. 이것은 모방하다보니깐 형성된 거요. 그다음에 우리가 조금 동남아시아에있는 사람들 보다는 잘사니까 자기도 모르게 목에 자꾸 힘을 주게 되는거요. 좀 낮춰보고 있습니다. 그런데 내가 서양사람들에게 열등감을 가질 필요가 없듯이 동양사람에 대해서도 우월감을 가질 필요가 없습니다. 열등감을 가지면 우월감이 생기고, 우월감을 가져도 열등감이 생겨요.nbspnbsp예를 들면, 돈은 그냥 돈일 뿐이지요. 돈을 그리 중요시 안 하면 나보다 돈 많다고 해서 내가 열등의식을 가질 필요가 없고, 나보다 돈이 적다고 해서 내가 멸시할 필요도 없어요. 그런데 내가 돈에 대한 집착을 하게 되면 나보다 돈많은 사람한테는 기가 팍 죽고, 나보다 돈 적은 사람한테는 나도 모르게 목에 힘을 주게 되요. 내가 지위에 집착하면 nbsp나보다 지위가 높으면 그냥 자기도 모르게 기가 죽고, 나보다 지위가 낮으면 자기도 모르게 반말이 나와요.nbspnbspnbsp그러니까 이런 것들은 첫째 자기 열등 의식의 발로예요. 두 번째는 경험이 없어서 자기도 모르게 하는 행동이예요. 그러니 여기 나와 있는 한국 사람의 대다수는 이 두 가지가 섞여 있어요. 하나는 서양에 대한 열등 의식을 가지고 있고, 다른 하나는 동남아에 대한 우월 의식을 가지고 있습니다. 옛날부터 때리는 시어머니보다 말리는 시누이가 더 밉다 이런 말이 있잖아요. 서양 사람이나 미국 사람 한테는 굽신거리면서 여기와서는 한국이 경제적으로 좀 잘 산다고 큰소리 치니까 동남아 사람들은 우리가 더 얄미운 거예요. ‘너가 언제부터 잘 살았다고?’ 하는 이런 생각이 드는 거예요. 그 다음에 두 번째는 이런 것보다는 한국 사람이 외국인하고 살아 본 경험이 없기 때문입니다. 한국식으로 살고 있는데 외국 사람이 느낄 때는 굉장히 차별의식을 느끼는 거예요.nbspnbsp조선족들은 상담을 해보면 이런 얘기를 하는 것이 참 많거든요. 한국의 노가다 판에 가보면 한국 사람끼리도 주고 받는 언어가 욕설이 절반이예요. 그런데 중국에 있는 우리 조선족들이 한국에서 20년 전부터 일하기 시작했잖아요. 옛날에 한국에 오는 사람은 전부 중국에서는 괜찮은 사람들이였어요. 학교 선생님하다가 오거나, 판사하다가 오거나, 공무원하다가 오거나, 보통사람들은 올 수가 없으니까 주로 이런 사람들이 오는데요. 그런데 한국에 오면 다 하는 일이 노가다 일을 해요. 그런데 거기서 쓰는 언어가 모두 쌍소리예요. 지식인이다 보니 모두 다 엄청난 모멸감을 느끼는 거예요. 그래서 막 사고가 나는 거예요. 그럼 이럴 때 이 사람들이 차별을 하려고 한 것이 아니고 그냥 자기 습관대로 살았는데 상대가 누구냐에 따라서 차별감을 느끼게 되는 거죠. 그래서 이것은 우리의 무의식적인 오류가 되는 것입니다. 이런 오류가 여기에도 있을 거예요.nbspnbsp그러니까 한국에서도 조금 더 지식인이고 배운 사람들이 차별을 덜 하고요. 한국의 시골에서 초등학교, 중학교만 나와서 시골에서 유지하는 사람들이 더 심한 편입니다. 이런 사람들이 모여서 동남아로 여행을 오면, 자기도 고생을 했으니까 여기 사람들을 더 존경해야 하는데 그렇게 안되고 오히려 더 식당이나 술집에 가서 행패를 피우고 그래요. 자기도 모르게 그렇게 해요. 의도적인 것이 아니예요. 그런 사람들이 그런 행동을 할 때 너무 나쁘게만 보면 안되요. 업식이기 때문에요. 그것을 불교에서는 카르마라고 그래요. 그래서 나는 그러지 않겠다 하는 생각을 가져야 하지만, 남이 그러면 그런 점은 이해를 해야 해요. 그러나 이해하는 것 하고 그것이 옳은 것 하고는 다른 것입니다. 화가 난다는 것은 이해가 안 된다는 거예요. 이해는 하지만 개선은 해야 할 일이예요. 그래서 스님이 ‘화 내지마라, 화를 내는 것은 내 문제다’ 라고 하는 거예요.nbspnbspnbsp한국 분들이 이렇게 함으로해서 국가의 위신을 떨어뜨리고 한국 사람에 대해 저항감을 가져오게 됩니다. 그래서 여행을 하거나 사업을 할 때 좀 유의를 해야 해요. 한국에도 중소기업을 하시는 분들이 사정이 어려워서 그렇긴 한데 동남아시아에서 한국에 돈 벌러온 노동자들에게 일 시키고 월급 안 주고, 여러가지 문제가 생기잖아요. 여성 노동자들에 대해서 성추행이 있고요. 요즘 한국 여성 분들에게 그랬다가는 신문에 나고 난리가 나잖아요. 외국에서 온 노동자들에 대해서는 그런 게 더 심하단 말이예요. 또 한국에 결혼하러 온 베트남 여성 분들이 시골에서 인격적으로, 인권적으로 받는 모욕감이 굉장하거든요. 한국은 앞으로 이것이 큰 문제예요. 이것은 한국 국민이 나빠서가 아니라 첫째 역사적으로 남과 살아본 경험이 없고, 두 번째는 가난한 나라 사람들을 데려올 때 대부분 돈을 좀 지불하고 데려오거든요. 말이 결혼이지 좀 지원을 하고 데려오니까 부인이라고 받아들이기 보다는 조금 우월의식을 갖고 마치 하녀처럼 취급하는 이런 개념이 있어요. 그래서 인권침해가 상당히 많습니다. 그러나 개인이 나빠서 그런 것은 꼭 아니예요. 이것은 무지로부터 오는 건데, 자기도 잘 인식을 못하고 행동을 한다는 겁니다.nbspnbsp그래서 앞으로 대사관 같은 곳에서나 또는 학교 교육에서 우리 한국의 어린 아이들에게 굉장히 새로운 교육을 해줘야 합니다. 우리가 자랄 때에는 이런 교육을 못 받았는데요. 요즘 학교에는 혼혈아가 많아졌잖아요. 다문화 가정이라고 해서 학교에서는 아이들이 다 경험하고 있거든요. 어릴 때부터 교육도 시켜야 되고, 종교가 다른 사람들과 공동체로 생활하는 것에 대한 훈련도 많이 받아야 해요. nbspnbspnbsp이런 것은 시간이 좀 걸려요. 우리가 노력도 해야 되지만, 시간이 걸리는 문제이므로 기다려 주어야 해요. 금방 될 수 있는 일은 아닙니다. 그래서 첫째는 이해하는 것이 필요하고, 두번째는 그러나 개선되어야 할 일이기 때문에 계획을 세워서 학교에서는 어떻게 교육하고, 시민사회에서는 이런 문제를 어떻게 풀지 차분하게 준비해나가는 것이 필요해요. 왜냐하면 이런 것이 개선되지 않으면 우리에게 불이익이 돌아올 수 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그런 관점에서 같이 노력을 해나갑시다.nbspnbsp이제는 우리가 새로운 시대에 돌입해 있다는 것입니다. 여기서 가장 중요한 이슈가 창조입니다. 창조를 하기 위해서는 융합할 수 있어야 해요. 문호를 활짝 열고 정말 내가 갖고 있는 문제, 우리가 해결해야 할 인류적 과제에 있어서 그것이 기독교적 아이디어든, 불교적인 아이디어든, 과학적인 아이디어든, 그것을 받아들이는데 제한을 두면 결국은 창조성이 안나옵니다. 그런데 여러분들은 신앙에 갇혀 있고, 민족에 갇혀 있고, 관습에 갇혀 있잖아요. 그런 것을 무시하라는 것이 아니라 갇혀 있지 마라는 거예요. 그래야 여러분들이 새로운 시대의 주인이 될 수 있다는 거예요.nbspnbsp왜 스님이 서양에 가서 통역해서 강의하는데 서양 사람들하고 대화가 되느냐 하면, 새로운 시대를 이야기 하기 때문이예요. 여기에 오면 이 나라 문화를 존중해야 돼요. 내 문화를 존중하듯이 이 나라의 문화를 존중해줘야 해요. 그러나 우리는 그 장벽을 넘어서서 다음 세계로 나아가야 될 과제를 안고 있습니다. 그래서 남의 문화를 무시하면 그것은 아까 얘기한대로 현대인이 되기 어려운 거예요. 현대인이라는 것은 모든 것을 다 용인하고 용납하고 수용하는 거예요. 그리고 그것을 넘어서서 우리는 새로운 세계로 나아가자 이것이 이제 세계 평화의 길이예요.”nbsp“감사합니다.”nbspnbsp질문자는 스님의 답변에 크게 공감하면서 감사 인사를 했습니다. 강연을 마치고 질문한 분에게 찾아가 소감을 물어보았더니 “너무 공감이 가서 감동을 받았다”고 하였습니다.nbspnbspnbspnbsp마지막으로 스님께서는 강연을 마무리하면서 존중은 상대에 대한 이해라고 강조해 주시면서 이렇게 닫는 말씀을 해주셨습니다.nbspnbspnbspnbsp“딱 내 마음에 드는 사람은 이 세상에 없습니다. 70억 인구 중에 한명도 없어요. 나와 DNA가 같은 사람이 한명도 없듯이요. 그러니까 우리는 서로 맞춰 가야 합니다. 공통점이 많지만 똑같아 질려고 하니까 거기에 맞는 사람은 한명도 없게 되는 겁니다. 나와 다른 사람의 인식을 존중해야 합니다. 존중은 그 사람의 의견을 다 들어줘야 한다는 것이 아닙니다. 존중은 나와 다른 상대를 인정하는 것입니다. 두 번째는 이해하는 것입니다. ‘그 사람 입장에서는 그럴 수 있겠다’ 이렇게 이해하는 것을 존중이라고 합니다. 이렇게 이해해 나간다면 지금보다는 조금 더 행복하게 살 수가 있지 않겠나 이렇게 생각합니다. 감사합니다.”nbspnbsp마무리 말씀을 마치자 청중들은 2시간 40분 동안 열강을 해주신 스님께 큰 박수를 보내주었습니다.nbspnbspnbsp스님께서는 2시간이 넘어가자 조금 무리를 하셨는지 목소리가 갈라지고 하셨지만 한분이라도 더 고민이 있으면 도움을 주시려고 추가 질문을 2명 더 받으셨습니다.nbspnbsp강연을 모두 마치고 스님께서는 로비로 이동해서 스님의 사인을 받고자 길게 줄을 선 청중들에게 사인을 해주시며 반갑게 인사를 하셨습니다.nbspnbspnbsp미얀마 현지에서 사업을 하시는 40대 50대 남자 분들도 많이 참석했는데, 한 분은 스님께 사인을 받으면서 “질문을 정말 하고 싶었는데 차마 용기를 못냈었다”고 하면서 “내년에 오시면 꼭 질문을 하겠다” 고 해서 스님께서도 고개를 끄덕이며 웃으셨습니다. 오늘 강연은 개인의 구체적인 고민이 담긴 질문이 많이 나오지 않아 조금 아쉬웠는데, 이곳 미얀마의 교민사회는 규모가 작아서 개인 고민을 질문하기에는 조금 꺼려지는 부분도 있었던 것 같습니다.nbspnbsp이어서 강연장 곳곳에서 소임을 맡아 수고해준 봉사자들과 함께 기념 사진을 촬영했습니다.nbspnbspnbsp그리고 봉사자들 모두에게는 스님께서 직접 한국에서 가져 온 단주를 손목에 걸어주셨습니다.nbspnbspnbspnbspnbsp특히 미얀마 강연 전체를 총괄하여 주신 한윤복 아쿠아랜드 대표님에게도 스님께서 직접 사인한 책을 선물로 드리고 기념 사진을 찍었습니다.nbspnbsp뒷정리를 모두 마치고 자원봉사자들은 묘덕 법사님과 함께 마음나누기를 하였습니다. 사회자 소임을 맡은 분은 “행사는 준비가 70이고 행사는 30이라고 생각하는데 준비 과정에서의 노력들을 보고 많은 감동을 받았다” 고 하고, 강연 실무를 맡은 김진동씨는 “작년 스님 강연 때는 참석자였는데, 올해는 자원봉사자로 참여해서 더 많은 것을 배울 수 있었다”고 합니다. 강연 실무 전반을 총괄한 한승국씨는 ”미얀마는 온라인이 활성화되어 있지 않아서 한인들이 모이는 곳에 직접 발로 뛰어서 홍보했다“ 면서 ”처음에는 능력이 부족해서 잘해보려고 욕심을 부렸는데, 일을 하나씩 내려놓고 다른 사람들에게 일을 부탁하는 연습을 해보는 경험을 가질 수 있어 참 좋았다”고 합니다. 봉사자 한 분은 “미얀마의 교민사회가 좁기 때문에 자기 고민을 공개적으로 이야기하는 게 쉽지 않은데, 질문하는 방식에 대해 더 연구하면 좋았을 것 같다”고 아쉬움을 말하기도 했습니다. 또 다른 봉사자 한 분은 “이번 스님 강연을 계기로 앞으로도 미얀마에서 봉사활동을 계속 이어나가는 모임을 새로 만들어야겠다는 뜻을 가져 보았다”고 하여 함께한 봉사자들 모두의 큰 호응을 얻었습니다.nbspnbsp▲nbsp묘덕 법사님과 함께 마음나누기nbsp또 한분은 “미얀마 교민사회는 생업으로 바쁘신 분들이 많은데 주말이 아니라 평일에 강연 시간을 잡아서 오고 싶지만 못 오신 분들도 많았던 것 같다”면서 “다음에 강연을 하게 되면 주말에 꼭 강연 시간을 잡아주면 좋겠다”고 바램을 이야기하는 분도 있었습니다. 오늘 강연 전체를 총괄한 한윤복 대표님은 “우리가 한 노력에 비해서 사람들이 많이 온 것 같지 않아 섭섭한 점도 있었지만, 준비 과정에서 모든 기쁨을 누렸다” 면서 밝게 웃었습니다. 그리고 “의외로 교회와 성당에 다니시는 분들도 많이 오셔서 무척 놀랐다”고 했습니다. 묘덕 법사님은 봉사자들의 이야기를 모두 듣고 마음나누기를 마치면서 “홍보를 적극적으로 했던 과정이 중요한 것이지 참여 숫자에는 신경쓰지 않으시면 좋겠다”고 당부하면서 수고한 봉사자 모두에게 격려와 감사의 마음을 표하셨습니다. nbspnbsp스님께서는 숙소로 이동하셔서 간단히 내일 일정에 대해 의논한 후 밤12시가 넘어서 일과를 모두 마치셨습니다.nbspnbsp오늘도 이렇게 많은 분들의 자원봉사와 정성으로 102번째 미얀마 강연을 잘 마쳤습니다. 내일은 미얀마 양곤에서 태국 방콕에서 강연이 열립니다. 내일은 방콕에서 또 생생한 소식 전해드리겠습니다.nbspnbsp ▼nbsp법륜 스님의 세계 100회 강연, 지난 날짜 소식 보기

2014.12.06. 37,213 읽음 댓글 24개

2014.12.3 세계 100회 강연(101) 말레이시아 콰알라룸푸르 Kuala Lump

안녕하세요. 오늘은 세계 100회 강연 중 101회째 강연이 말레이시아 콰알라룸푸르에서 열리는 날입니다.nbsp말레이시아는 인구가 약 2,500만 명으로 다민족 국가입니다. 여러 종교를 축으로 각각의 국민성을 지니고 있으며, 인구의 약 50는 말레이인인데 이들의 대부분은 이슬람교에 기반을 둔 계율을 따릅니다. 약 25는 말레이시아 화교, 중국계 말레이인 등으로 불리는 화교들입니다.대부분은 불교에 기반을 둔 계율을 따르며 광동어 등의 중국어 방언을 씁니다. 또다른 집단은 인구의 약 8를 차지하는 인도계로 대부분은 힌두교에 기반을 둔 계율을 따릅니다. 다민족 국가인 말레이시아에서 각각의 지역 사회를 형성하고 있으면서도 말레이시아만의 조화로운 공존을 보여주고 있습니다.nbsp▲ 말레이시아 콰알라룸푸르nbsp콰알라룸푸르는 말레이시아 연방의 최대 도시이자 수도입니다. 제2차 세계 대전 당시 1942년 1월 11일에 일본군이 쿠알라룸푸르를 점령하여 44개월 동안 통치하기도 했습니다. 쿠알라룸푸르는 1990년대 아시아 경제 성장 붐을 타고 연 10 대의 성장을 했습니다. 활기 없던 식민지 도시였던 쿠알라룸푸르에는 고층 건물이 세워지기 시작했고, 동남아시아에서 가장 활기차고, 진보한 도시로 거듭났습니다. 발전 계획 없이 커진 도심의 대부분의 도로는 비좁고, 복잡하며, 정체가 매우 심한 것 같았습니다. 한국 교민은 말레이시아 전체에 약 1만 5천명 정도가 살고 있다고 합니다.nbsp▲ 콰알라룸푸르의 상징인 페트로나스 트윈 타워, 세계에서 가장 높은 쌍둥이 건물이자 세 번째로 높은 건물입니다. 강연을 마치고 숙소로 가는 길에 지나갔습니다.nbsp오전7시 싱가포르 YMCA 숙소에 한인여성회 회장님을 비롯한 회원 분들과 박기태 영사님이 도시락을 들고 찾아와 숙소 로비에서 간단히 아침식사를 한 후, 8시 무렵 싱가포르 국제공항으로 출발했습니다. 한인여성회와 박기태 영사님은 공항까지 무사히 스님 일행을 배웅해 주셔서 공항에서 함께 기념사진을 찍고 감사의 마음을 전했습니다.nbsp오전10시 싱가포르를 출발한 비행기는 오전11시30분 말레이시아 콰알라룸푸르에 도착했습니다.nbsp입국 수속을 밟고 나왔지만 게이트에 아무도 마중을 나온 분이 없어 스님 일행은 잠시 당황했습니다. 게이트에서 터미널 출입문까지 왕복하며 마중 나오기로 한 분을 찾아보았지만 찾지 못했습니다. 다시 최초에 스님 일행이 나왔던 출구 앞으로 가서 1시간 정도를 기다리며 강연 담당자와 연락을 시도하고, 희망세상만들기 주황색 티셔츠를 들고 스님과 함께 공항에 서 있으면서 강연 담당자가 우리를 빨리 발견하기를 기다렸습니다.nbsp▲nbsp희망세상 티셔츠를 들고 강연 준비 담당자를 기다리는 스님 일행오늘 공항 마중을 나오기로 한 분들은 강연 주관 단체인 반야원 회원분들인데, 연락이 닿게 되어 원인을 알아보니 비행기 편명을 착각해 다른 공항 터미널에 가 계셨던 것입니다. 결국 공항 대기 1시간 만에 반야원 회원분들과 감격의 조회를 했습니다. 정은강 회장님을 비롯한 반야원 회원 분들은 스님을 뵙자마자 거듭 머리를 숙이며 “기다리게 해서 죄송합니다.” 라며 몸둘 바를 몰라 했습니다. 스님께서는 “괜찮다” 며 마음을 계속 달래주셨지만, 모두들 너무나 미안한 마음에 다들 식은 땀을 흘렸습니다.nbsp이렇게 한바탕 소동을 치르고 오후2시 무렵 공항에서 무사히 한국 사찰인 ‘반야원’에 도착한 스님께서는 법당의 부처님을 향해 삼배를 한 후 반야원 회원들과도 삼배로 인사를 나누었습니다. 스님께서는 “이렇게 식사 초대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라고 하신 후 함께 식사를 하셨습니다.nbsp연일 비행기를 타고 이동하다 보니 에어컨 바람을 많이 쐬었는지 스님께서는 감기 기운이 심해져 반야원 법당 한쪽 방에서 휴식을 취하셨습니다. 오후 5시 30분에 반야원을 출발해 오늘 강연이 열리는 한국 대사관으로 향했습니다.nbsp6시 20분부터는 주 콰알라룸푸르 대사관의 조병제 대사님이 다담 초대를 하셔서 대사관 관저에서 지역 인사 분들과 간단한 다담 및 환담을 나누셨습니다.nbsp▲nbsp스님을 반갑해 맞이해 주신 대사님대사님은 “인터넷으로 스님의 세계 100회 강연 소식을 많이 읽어보았다”고 하시면서 스님께 세계 100회 강연을 다니게 된 계기와 미국에서 외국인 강연도 많이 하셨는데 외국인들은 주로 어떤 질문을 하는지 등을 물어보셨습니다. 스님께서는 이번 세계 100회 강연을 다니며 일어났던 다양한 에피소드들을 말씀해 주셔서 모두들 관심있게 경청했습니다. 대사님은 스님의 115회 연속 강연에 대해 무척 놀라워하시면서 스님께서 마지막까지 무사히 강연을 마칠 수 있기를 기원해 주셨습니다.nbsp대사님 부부를 비롯하여 함께 자리한 유선규 한인회장님, 윤금주 부회장님, 한국국제학교 권병화 이사장님, 말레이시아 관광청 이진복 고문님, 대사관 윤창렬 공사님, 최용규 영사님, 그리고 반야원에서 정은강 회장님께 인생수업 책과 새로운 백년 책을 사인해서 선물해 드리고, 대사관 입구에서 다함께 기념촬영을 한 후 오늘 강연이 열리는 대사관 강당으로 대사님과 함께 이동하셨습니다.nbsp▲nbsp오늘 강연장, 주 콰알라룸푸르 한국 대사관 강당nbsp7시가 되자 오늘이 101번째 강연임을 알리는 사회자의 안내가 나가고, 조병제 대사님과 권병화 한국국제학교 이사장님의 환영 인사말씀이 있은 후 스님께서 무대에 오르셨습니다.nbsp오늘 콰알라룸푸르 강연에는 300여명이 자리해 빈 자리 없이 꽉 찼고, 강연장 뒤편에서 서서 강연을 들으셔야 하는 분들도 있었습니다.nbsp스님께서는 먼저 이른 저녁에 강연을 시작한 관계로 저녁을 드시고 오셨는지 청중들에게 물어보시며 강연을 시작하셨습니다.nbsp“안녕하세요. 저는 콰알라룸푸르에 오늘 처음 왔습니다. 다들 잘 살고 계세요? 저는 어제 저녁에 싱가포르에서 강연을 하고 오늘 낮에 콰알라룸푸르에 도착했고요. 조금 전에 대사님과 얘기 나누면서 김밥을 먹었습니다. 저녁 식사는 다들 하시고 오셨어요? 여러분들은 아직 저녁을 못 드신 분들도 있는 것 같은데요. 육신을 위한 식사는 그동안 많이 했으니까 오늘은 우리들의 정신, 마음, 영혼을 위한 양식을 먹어보도록 합시다.“ nbspnbsp강연 전에 손을 들어보라고 하면서 확인해 본 결과, 대부분 유튜브와 팟캐스트로 스님의 즉문즉설 강연을 매일 접하고 있으신 분들이 많아 즉문즉설에 대한 설명은 짧게 하고 곧바로 질문을 받기 시작했습니다. 총 6명이 스님께 질문을 했습니다.nbsp“저희가 살아가는 존재의 이유에 대해 여쭙고 싶습니다.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지 고민입니다. 길을 갈 때도 목적지가 분명하다면 혹은 우리가 가는 궁극적 길을 알 때 앞으로 계속 나아갈 수 있습니다. 우리가 가야할 목적지와 존재의 이유는 무엇인가요?”nbsp“어떻게 하면 불교를 전할 수 있을까요? 나는 불교가 좋은데, 이것을 다른 사람들에게도 전하고 싶습니다. 어떻게 하면 좋을까요?”nbsp“기독교 신자입니다. 우연히 스님을 알게되고, 불교에 대해 관심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스님 말씀을 통해 인생관과 신앙관에도 변화를 겪게 되었습니다. 스님 말씀에 자녀가 스무 살이 넘어가면 독립된 인격체이니 정을 떼라 하시는데, 구체적 문제 앞에 서면, 좋게 조언하려는 것이 나중에는 싸움으로 끝납니다. 예전에는 제가 윽박질러서 결국 이겼는데, 지금은 제가 울면서 끝이 납니다. 조언과 간섭 사이에서, 조언을 하고 싶으나 결국은 간섭인 것 같습니다. 중도를 어떻게 찾아야 하나요?”“기독교에도 진리가 너희를 자유케하리라 라는 말이 있습니다. 불교를 철학적으로 접근해 왔는데, 불법을 좀 더 공부할 수 있는 방법을 소개해 주실 수 있을까요?”“20대 때는 힘들어도, 열정을 가지고 하고 싶은 일을 하기 위해 최선을 다했는데, 30대에는 스트레스도 없고 사는 것은 편안한데, 하고 싶은 일에 대한 열정이 사라진 것 같습니다. 어떻게 하면 열정을 다시 찾을 수 있을까요? 저는 글을 쓰는 작가가 되고 싶습니다.”이렇게 다양한 질문에 대해서 스님께서는 2시간 30분 동안 정성껏 답변해 주셨습니다. 오늘은 그 중에서 자아실현과 가정의 행복 사이에서 고민하는 남성 분의 질문과 스님의 답변을 소개합니다. 남편 분과의 문답에 이어서 아내와의 문답이 이어지고 마지막에는 청중들의 의견까지 수렴하는 배심원 판결까지 갔고, 최종적으로 스님께서 생각하시는 조언도 들려주셨습니다. 이쪽 저쪽 상대편의 입장까지 모두 고려해보는 즉문즉설의 생동감을 그대로 느낄 수 있는 시간이 되었습니다.nbsp“일만 하며 살다가, 5년 전에 아이가 많이 아팠던 것을 계기로 쿠알라룸푸르에 와서 살게 되었습니다. 여기 와서는 제 일이나 개인적인 자아실현 등을 모두 포기하고, 아이만 돌보며 살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얼마 전에 제가 하고 싶은 일에 대한 제안을 받았습니다. 그런데, 그 일을 하려면 한국으로 가야 합니다. 쿠알라룸푸르에서 편하게 애들 잘 키우고 싶어 왔고, 아직 10년은 아이들을 더 키우고 아버지로서 살아야하는데, 개인적인 자아실현 등을 이유로 몇 년간 가족과 떨어져 살면서 제가 원하는 일을 하는게 맞는지, 지혜를 구하고 싶습니다.”“스님의 경우를 가지고 얘기해 보겠습니다. 질문자의 경우를 가지고 얘기하면 잘 못 알아 들을 수도 있으니까요. 남의 경우를 듣고 얘기를 해보면 판단이 빠르잖아요. 그죠? 그러면 스님이 지금까지 승려생활 사십 몇년을 해왔는데 갑자기 예쁜 여자가 나타나서 결혼을 요청했어요. 나도 마음이 움직여서 ’죽기 전에 결혼을 한번 해볼까?’ 그래도 이제까지 승려생활을 해왔는데 ‘지금 늙어가지고 무슨 짓인가?’ 이러면서 스님이 이 두 가지를 가지고 고민할 때 어떻게 하면 좋을까요? 질문자에게 상의하면 질문자는 어떻게 할래요? nbsp그냥 스님이 질문자에게 상담한다고 생각하고 본인 생각대로 한번 얘기해봐요.”nbspnbsp“둘 중에 저질렀을 때 나중에 후회가 덜할 것을 골라서 하라고 말씀을 드리고 싶습니다.”nbsp“본인이 볼 때 어느 것이 후회를 덜 할 것 같아요?”nbsp“결혼하는거요.” nbsp“질문자는 40년 승려생활을 안했으니깐 답이 금방 나왔는데요. 40년 이상 승려생활을 한 사람한테는 그렇게 답이 금방 나오기가 굉장히 어려워요. 그리고 만약에 이런 문제를 가지고 혼자서 고민할 때 여기 청중들한테 조언을 구해봅시다. ‘결혼 한 번 해보세요. 승려생활 40년 그거 뭐 중요해요?’ 하고 생각하는 사람 손 한번 들어봐요. ‘그냥 마 참으세요’ 하는 분 손 들어봐요. 자, 이것 봐요. 차이가 나지요. 나중에 손 든 사람은 주로 불교신자일 거예요. nbsp그러면 또 이런 경우를 한 번 생각해봐요. 스님이 승려생활을 30년 했는데 저희 부모님이 ‘너 결혼해라’ 이렇게 얘기해요. 그럴 때 제가 안하겠다고 하니까 ‘그럼 너 나 죽는꼴 보고싶니? 만약에 너 안나오면 나 그냥 약 먹고 죽겠다’ 이렇게 저한테 문제제기를 했어요. 이렇게 할 때 내가 어떤 선택을 해야 할까요? 승려생활을 하면 부모가 돌아가실 것 같고, 부모 돌아가신다고 해서 결혼을 해버리면 내가 추구하던 꿈이 다 없어질 것 같아요. 이럴 때 질문자는 어떤 결정을 했으면 좋겠어요? 이것은 굉장한 딜레마예요. 여러분들은 세속적인 딜레마가 있지만 우리도 딜레마가 있어요. 어떨까요? 질문자 얘기 한번 해봐요.”nbsp“몰래 결혼을 하고 승려생활을 하겠습니다.” nbspnbsp“양다리 걸쳐라 그말이네요. 자 이런 얘기를 들어보면, 스님들 중에 비공식적으로 결혼해서 사는 소위 은처승이라는 사람이 있다는 얘기 들었죠? 그런 분들 이해되요? 안되요? 여러분들 앞으로 이런 스님을 욕하지 마세요. 질문자 얘기처럼 어머니는 안 돌아가시게 해야하고, 승려생활도 해야하고 하니까, 그럼 비공식적으로 결혼을 해서 부모님부터 우선 살려놓고 보자 이런 아이디어를 내잖아요. 그러니 그런 은처승 중에는 이런 문제가 있는지도 모른다 이런 얘기예요. 또 아까 앞의 경우처럼 한번 결혼해봐야겠다 한다면 유명한 스님이 속퇴해서 결혼했다 할 때 함부로 욕하면 안되요. 그 사람도 또 그런 고뇌가 있었을 수도 있기 때문이에요. 그런데 사람이 자유롭게 살기 위해서 그리고 솔직하게 살기 위해서 출가해서 사는데, 그 은처승은 숨어서 들통날까봐 늘 조마조마하면서 살아야 되잖아요. 그러면 그렇게 조마조마하게 살면서 승려 생활을 할 필요가 뭐가 있어요? 우리가 종교를 갖는다는 것은 좀 더 자유롭고 행복하기 위해서인데, 남으로부터 훌륭한 스님이라는 소리도 듣고 부모님도 모시고 살지만, 결혼했다는 것이 폭로가 되면 내 인생 망신 사잖아요? 그렇게 불안, 초조하게 살 필요가 있느냐 하는 거예요. 이런 삶이 앞에서 솔직하게 승복 벗고 나가서 결혼하는 것보다 사실은 더 불행을 자초할 가능성이 있잖아요.nbsp그런데 질문자가 결론 내리는 것을 보면 nbsp지금 본인 문제를 nbsp결론내릴 때도 좀 어렵겠어요. 스님이 왜 물어봤느냐 하면 질문자가 어떤 생각을 하느냐 하는 문제이거든요. 그러니까 질문자는 나이도 얼마 안되는데 아이가 아프다고 은퇴를 왜 하느냐? 이것부터 잘못 선택한 거예요. 아이한테 시간을 좀 더 많이 투자하면 되지, 은퇴를 해가지고 완전히 인간 관계를 끊고 가정일에만 집중하겠다 이런 선택은 너무 치우쳤다는 거죠. 그 전에는 너무 일에 치우쳐 가지고 가정이고 뭐고 그저 돈버는 데만 집중하다가 아이가 덜컹 아프다고 하니 ‘아이고 내가 헛살았구나’ 해가지고 이번에는 일을 확 버리고 아이하고 같이 산다고 여기와서 아이 하고만 붙어 있잖아요. 돈 버는게 극단이면 여기 온 이 선택도 극단이 되는 거예요. 또 이렇게 살다보니 질문자는 아직 나이도 젊은데 세상하고 완전히 단절하고 사니깐 어떤 생각이 드나요? 자식이나 아내를 위해서 나를 완전히 희생하는 것 같잖아요. 그런데 나도 내 인생이 있잖아요. 그러니까 기회가 오니까 또 저쪽으로 갈려고 그러잖아요. 그럼 그렇게 해서 자기 일을 성취하다가 아이가 덜렁 죽어버리거나 아내가 ‘당신은 약속을 안 지킨다’고 하면서 이혼을 요청하면 질문자는 어떻게 할래요?”nbspnbsp“지금 저의 집사람이 여기에 와 있어요.”nbspnbsp“어떻게 할래요? 집사람 여기 있는 것 따지지 말고요. ‘나는 이 길을 가야하니 이혼해 달라고 해도 할 수 없다’ 이렇게 딱 결심이 섰어요?”nbspnbsp“아니요.”nbsp“그런데 그렇게 요구하면 어떻게 할래요? 그러니까 이것도 너무 극단적으로 생각을 해요. 둘 중에 하나를 선택해야 된다고 자꾸 이렇게 생각할 필요가 없어요. 중도라는 것은 극단에 치우쳐서 이것 아니면 저것, 저것 아니면 이것, 이렇게 하지 않는 것입니다. 조금 전의 질문자도 간섭을 해야 하느냐 외면을 해야 하느냐 이렇게 하는 것이 극단이란 말이예요. 간섭도 하지말고 외면도 하지말고. 집착을 안하면 이 두 모습이 다 극복이 돼요. 간섭도 안하고 외면도 안하게 돼요. 간섭하고 외면하는 것은 정반대인데 사실은 같은 거예요. 그래서 속박을 받는 거에요. 이것하면 저게 문제이고 저거하면 이게 문제이고요. 그러니까 질문자는 사업에도 한번 집중해 보았고 가정에도 집중해 보았는데 이것은 이것대로 문제고, 저건 저것대로 문제인 거예요. 사업에만 집중할 때는 내 인생은 되는데 가정의 가치를 훼손하고, 가정에만 집중하니까 가정의 가치는 되는데 내 인생이 훼손되고요. 그러니 이 둘 다가 아니구나. 그러면 여기서 조화를 이루는 방법은 뭘까? 자기 일도 하고 가정에도 충실한 그런 일을 해야 되겠지요. 사고가 너무 극단적으로 치우치면 안 돼요. 지금 사고가 너무 극단적이라는 거예요.nbsp아까처럼 은처승, 결혼도 하고 승려생활도 하고, 이런 방식을 욕심이라고 해요. 이것은 중도가 아니고 욕심이예요. 둘 다를 잡을려고 하기 때문에 이런 문제가 생기는 거예요. 그러니 질문자가 내 인생을 실현해야 되겠다 딱 결정을 하게 되면, 아내가 이혼하겠다 해도 이 길을 갈 것이다, 아이가 죽어도 어쩔 수 없다, 이렇게 결심을 해야 돼요. 즉 내가 승려생활을 할려면 부모님이 돌아가신다 해도 어쩔 수 없다, 돌아가시면 장례는 치뤄드려야지, 이 정도로 생각해야 돼요. 굉장히 독하죠? 이렇게 해야 이 길을 갈 수 있어요.nbsp그 다음에 내가 결혼을 하겠다고 결론을 내면 그 사십년 동안 승려생활을 하면서의 명예 이런 것들은 다 포기를 해야 해요. 움켜쥘려면 안되요. ‘신도여러분, 그동안 저를 지지해줘서 감사합니다. 그런데 제 수준이 여기까지 입니다. 저도 이 길로 갈 수 밖에 없습니다. 혹시 제가 승려생활을 하면서 시건방을 떨었다면 죄송합니다.’ 이렇게 하고 그냥 결혼생활로 돌아가서 그냥 평범한 신자로 돌아가주면 됩니다. 그렇게 질문자가 선택을 해야 돼요. 그러면 신자로 돌아가도 승려로서 내가 가진 경험을 승려로서가 아닌 신자로서 주위에 전하면 승려못지 않은 역할을 할 수가 있어요. 또 승려생활을 포기하지 않으면 어머니가 돌아가셔도 내가 어머니를 위해서 천도재도 지낼수 있고 장례도 치뤄줄 수 있고 할 게 많이 있잖아요. 그러니까 자기가 회사 일을 결정하면 가족의 문제에 대해서 포기해야 돼요. 두 개를 다 움켜쥘려면 은처승의 길을 가게 되죠. 그러면 양쪽 다 망해요. 그러니까 가족하고 의논해서 하는 것이 제일 좋지요. 그런데 지금 그 일을 할려면 가족을 여기에 두고 가야해요? 데리고 가야해요?“nbspnbsp“가족을 여기 두고 가야 합니다.”nbsp“그러면 그것은 올바른 선택이 아니예요. 그건 곧 후회할 일이예요. 가족하고 같이 안 살려면 자기가 이혼을 해서 부인이 좋은 남자를 만날 수 있도록 길을 열어 주어야지요. 무슨 그런 해괴한 생각을 해요? . 그러니까 돌아갈려면 부인하고 의논해서 아이들을 다 데리고 한국으로 들어가야 돼요. 아이들은 여기 남아있고 나만 들어가는 것은 아까 은처승 길처럼 양쪽을 다 쥘려는 거예요. 그러니까 부인하고 의논해서 아이들 같이 데리고 한국에 들어가서 내 기회를 잡되 지금까지처럼 집을 버리는 행동을 하지 말고 항상 가정을 중요시하면서 회사 일을 하는 기회를 잡고, 내가 그렇게 하는 것을 아이나 가족이 동의하지 않으면 그 기회는 내 것이 아니예요.nbspnbsp그러니까 제일 좋은 것은 부인하고, 아이들하고 의논하는 거예요. 그런데 ‘너는 여기 있고 나는 가고’ 이런 선택을 하면 안 돼요. 이것은 양쪽을 다 쥘려는 욕심이예요. 그러니까 ‘이런 기회가 왔는데 어때요?’, ‘아, 여보, 당신 한번 해보세요. 우리 같이 살면서 한번 해보자’ 그러면 돌아가고, ‘여보, 아무리 좋아도 우린 그렇게 못해요’ 하면 그것은 내 것이 아니예요. 제안이왔다고 내 것이라고 생각하면 안 돼요. 거기에는 아무 미련을 갖지말고 버리고 나중에라도 부인한테 ‘그 좋은 기회가 왔는데 너희들 때문에 내가 못했다’ 이런 생각을 하면 안되요. 그것은 내 것이 아니예요. 그것은 낚시밥이고 쥐약이예요. 그것은 버리고, 여기 있으면서 사람하고 인간관계를 단절하고 살지말고 여기서 가정을 이루면서 여기 나름대로 직업을 가지고 직장을 가지고 이렇게 한인회 활동도 하고 이렇게 생활을 하면 돼요.nbspnbsp부인이 여기에 왔다니까 한번 얘기를 들어보죠. 그냥 얘기해봐요. 괜찮아요. 창피하게 생각하지 말고요.” nbsp“네. 저희 신랑이 그 얘기를 처음 했을 때, 저는 아이들과 남고 신랑 혼자 가라고 했거든요. nbsp그런데 스님 말씀을 들어보니까 다시 한번 진지하게 저희 신랑이랑 얘기해보고 결정을 하겠습니다.”nbsp“그런데 이거는 안 돼요. 신랑은 가고 나는 여기에 있는 거요. 남편이 군대를 갔다. 남편이 전쟁에 나갔다. 남편이 한 30년 전에 사우디아라비아에 갔다. 그런데 거기에는 동행하기가 불가능하잖아요. 그죠? 이럴 때는 떨어져서 사는 것도 어쩔수 없기 때문에 선택할 수 밖에 없는 방법인데, 돈벌이가 더 잘된다고 아내 남겨놓고 간다든지, 돈벌이가 더 잘 된다고 남편보고 가서 돈 좀 벌어오라고 하는 이것은 인생의 제일의 가치가 돈이 되기 때문에 이것은 돈의 노예가 되는 거예요. 그렇게 하면 가정은 불행을 자초합니다. 우리는 결혼을 했으니까 함께 살아야 된다, 이게 딱 첫째 원칙이고, 그런데 내가 여기 살아야 되고, 자녀가 이런 문제가 있다면 남편은 나한테 온 기회라고 다 기회라고 생각하면 안 돼요. 스님한테 예쁜 여자에게서 청혼이 들어왔다면 그것이 기회가 아니고 쥐약일 수 있다는 거예요. 그러니까 본인은 지금 어때요? ‘남편에게 좋은 기회가 주어졌으니까 내가 한국에 따라가서 살면서 한번 같이 해보자’ 이런 생각이 있어요?”nbspnbsp“없어요. 우리 신랑은 한국에 가서 좋은 일 하고 저는 여기서 아이들 잘 키우고 한달에 한번씩 만나는 것도 나쁘지 않겠다 생각해요.”nbspnbsp“별로 같이 살고 싶지가 않군요. ‘너는 돈이나 벌어 다 주면 된다, 너 할일이 뭐고? 돈이나 벌어다 주면 되지’ 이 얘기네요. ‘나 여기서 생활할 돈만 보내주면 너 같은 것은 없어도 된다’ 지금 이 얘기네요. 솔직하게 얘기해봐요. ‘그래요. 저 인간은 돈만 벌어다 주면 돼요. 심심한데 한달에 한번씩 와서 그냥 나를 외롭지 않게만 해주면 된다’ 이 얘기 맞죠? 아니예요?”nbsp“같이 살면 가장 좋은 방법이기는 하지만 저희 신랑이 지금까지 여기서 살면서 많이 힘들어 하는 부분도 제가 알기 때문에 서로 각자 있는 것도 좋을 것 같아요. 그런데 신랑이 저희랑 같이 여기서 생활하는 것이 가장 좋은 방법이죠.”nbspnbsp“그래요. 그러면 신랑이 큰 돈 안 벌어도 되고 작은 돈 벌어도 되고, 내가 예를 들어 신랑이 한국에 가면 한달에 천만원 벌고, 여기 있으면 한 달에 이백만원 밖에 못번다고 하면, ‘너 천만원 벌어서 나한테 팔백만원 보내주고 너하고 떨어져 살아도 좋다.’ 이런 가치를 취할 것인가? 아니면 ‘같이 살면서 이백만원 밖에 못 벌면 집이 조금 작아도 괜찮고 먹는게 좀 작아도 괜찮으니 우리 같이 사는 게 좋겠다’ 이런 생각이예요?”nbsp“남편이랑 같이 살고 싶습니다.”nbsp“그러면 ‘너는 가라’ 이런 소리는 하면 안되지요. nbsp‘너는 가라’ 이 소리는 ‘너 돈이나 벌어 오너라’ 이 소리와 똑같아요. 그러니 솔직해야 돼요. 그러니 ‘여보, 당신이 가서 출세하고 돈 많이 버는 것도 좋은데 그게 나한테는 행복은 아니예요. 당신한테 행복이라고 당신이 선택하면 어쩔 수 없지만은 나한테는 행복이 아니예요. 돈을 조금 적게 벌어도 내가 감내 할께요. 그러니까 우리 여기서 같이 살았으면 좋겠어요’, 아니면 기꺼이 한국으로 돌아가서 남편에게 이런 기회가 왔으니까 ‘여보, 여기도 좋지만은 돌아가서 당신 이상을 한번 실현해봐요. 내가 가서 살겠어요.’ 이렇게 딱 자발적 포기를 하든지요. 안 그러면 내 의사를 좀 더 분명히 얘기해요. 이렇게 어중간하게 타협하면 안되요. 지금처럼 ‘당신 좋다니 당신 좋은대로 살고 나는 나 좋은대로 살고’ 이렇게 할 때는 이미 결혼 생활의 절반은 금이 간 거예요.nbsp그러면 남자가 한국 가서 돈 벌고 지위도 높아지고, 그러다가 외로우면 여자가 생길까요? 안생길까요? 남자가 바람핀다는 그런 뜻이 아니라. 부인과 같이 오밀조밀 재미있게 살 때는 여자가 오더라도 한 눈이 안팔아지는데, 이렇게 떨어져서 오래 살고 있는데 외로우면 사람 생각이 바뀐다는 거요. 자기도 옆에서 이 사람 저 사람 지나가면서 눈독 들이는 사람이 생길까요? 안생길까요? nbsp따로 살면 반드시 파탄난다는 얘기를 하는 것이 아니라 같이 살 때 보다는 일단 확률이 높아요. 그러니까 그것을 분명히 해서 본인이 선택을 해야해요. 남편의 꿈을 조금 키워주고 자기도 같이 살려면 자기가 여기 생활을 포기하고 한국으로 돌아가야 하고, 자기가 여기 생활과 아이들이 더 중요하다면 남편에게 그것을 확실하게 얘기를 하세요. ‘갈려면 가라’ 이렇게 얘기를 하지 말고요.nbsp각자가 모두 나는 여기 죽어도 있어야 되고, 죽어도 가야 되고 이럴 때는 위험이 높아진다는 거예요. 헤어질 위험이 높아질 각오를 해야 됩니다. 오늘 집에 가서 한번 협의해 보시겠어요? 오늘 스님하고 얘기하면서 어떤 생각이 들었어요? 소감을 한번 얘기해봐요.”nbspnbsp“오늘 밤에 다시 한번 좀 더 깊이 생각을 해보고요. 좀 더 진중하게 생각을 해볼께요. 저도 신랑이랑 가족이랑 같이 말레시아에서 생활을 했으면 하는 바램이 가장 크구요. 잘 알겠습니다.”nbsp“어떤 선택이 좋으냐 이런 것은 없습니다. 선택은 3가지가 있는데, 그 3가지 선택에 따르는 각각의 결과가 이미 눈에 보입니다. 나중에 후회하면 안된다는 거예요. nbsp감수해줘야 합니다. 그러니까 그 감수를 안할려고 하니 어느 것이 나을까 자꾸 고민을 하게 돼요. 고민을 할 필요는 없어요. 침을 딱 튀겨서 아무거나 선택해도 돼요. 돈을 빌리면 갚아야 되고, 갚기 싫으면 빌리지 말아야 되는 것처럼 선택이 지금 3가지가 있어요.nbspnbsp하나는 여기 사는 것, 그랬을 때 결과는 이런 결과가 나와요. 여기 사는 선택을 하면 남편이 계속 살면서 자기 기회를 잃었다고 이런 생각을 하겠지요. 그러면 자기가 그런 것을 조금 감수하고 그럴 때는 ‘여보 미안해요. 나 때문에 당신 꿈을 실현 못해서 미안해’ 이렇게 등 두드려 줘야 해요. 남편은 ‘그게 아내 탓이 아니고, 그건 본래 내 것이 아니다’ 라는 것을 알고 버려줘야 해요. 그런데 남편은 ‘거기에 갈 걸’ 하고 꽁해 가지고 있고, 아내는 ‘당신이 쓸데없는 생각을 하고 있다’ 이렇게 하고 있으면 이제 같이 있어도 갈등이 더 생기게 돼요.nbspnbsp그 다음에 한국으로 따라가면 이제 아내가 불평을 해요. ‘내가 당신 때문에 여기에 따라와서 이 고생을 한다. 애도 문제다.’ 이렇게 자꾸 투덜거리면 남편이 이 때는 ‘여보 미안해요. 나 때문에 당신이 고생해요’ 이러고 다독거려서 가면 되는데, 본인 일에 빠져가지고 아내가 어떤 고민을 하는지 생각을 안하면 갈등이 더 생길 수가 있어요. 그다음 둘이서 ‘나는 여기에 있고 싶으니 여기 있고, 당신은 가고 싶어 하니 가거라’ 이렇게 되면 또 그에 따르는 제 3의 결과가 나타날 소지가 있어요. 그래서 그것은 어느 것이 좋으냐가 아니고, 각자 3가지의 선택에 대한 결과가 있는 것을 미리 알고 자기가 선택을 해야지, 그냥 선택하면 좋아지겠거니 이렇게 생각하면 나중에 불행을 자초하게 됩니다. 자, 그러면 마이크를 본래대로 남편에게 얼른 가져다 주세요. 결론은 질문자가 내면 되는데 질문자는 여기에서 있었던 대화를 가지고 어떤 생각을 하세요?”nbsp“생각해야 할 것들이 명확해진 것 같습니다. 그런데 그 중에서 어떤 결정을 해야 할 지는 좀 더 얘기를 해봐야 알 것 같습니다.”nbspnbsp“제가 지금 두 사람 얘기를 들어보면 두 사람 다, 한 사람은 여기 있고 싶다는 것을 포기 안하고 끝까지 생각해보겠다고 하고 있고요. 질문자도 가겠다는 것을 딱 포기 안해버리고 생각해보겠다고 하고 있네요. 미련을 둘 다 가지고 있는데, 있고 싶다는 미련과 가고 싶다는 미련을 못 버리고 있다는 얘기예요. 그러니 집에 가서 의논을 해봐야 결론이 잘 안날 것 같네요. nbsp왜냐하면 진실이라는 것은 명확하기 때문에 금방 얘기를 듣는 순간에 ‘아 내가 잘못 생각했구나’하고 탁 교통정리가 되어야지, 지금 그것이 안되고 있다는 것은 각자 있고 싶은 것과 가고 싶은 것에 너무 사로잡혀 있기 때문에 이렇게 결론이 안나는 거예요. 그럼 현재 상태에서 스님이 볼 때는 어떤 결론이 날 확률이 높냐면 따로 따로 갈 확률이 제일 높아요.nbsp그렇다면 여기 청중들하고 다시 얘기해봐요. 도움이 될 겁니다. 세 가지 결정이 있어요. 하나는 남편이 자기의 이상을 잃더라도 여기 있는게 낫겠다 하는 것 하고, 하나는 아내가 따라가는 것이 낫겠다. 또 하나는 각자 한번 있어보는 게 낫겠다. 셋 중에 투표를 한번 해봐요. 배심원이라고 생각하고 재판을 한번 해줘요.1번, 남편이 가고 아내도 따라가는 것이 좋겠다고 생각하는 사람 손들어 보세요. 내리세요.2번, 아내가 여기 있는데 남편이 가능하면 아내와 같이 이곳에 있는게 낫겠다 생각하는 사람 손들어봐요.nbsp3번, 따로따로 가는 게 좋겠다. 생각하는 사람 손들어봐요.nbspnbsp남자편을 많이 드네요. 왜 그럴까요? 판정이 부인한테 좀 불리하게 되었어요. 그런데 이것은 다수결로 할 수 없는 거예요. 아시겠어요? 저도 주위사람이 스님 되지 말라고 했어요. 내 주위에 있는 모든 분, 가족도, 친구도, 선생님도 반대했지만 그래도 결정을 해서 이렇게 살잖아요. 그러니 이것은 다수결로 할 수 있는 것은 아니예요. 두 사람이 협의를 잘 해보세요. 스님이 마지막으로 조언을 해준다면, 배심원과 판사의 판결이 균형을 맞추어야 하니 아내 뜻을 더 깊이 진지하게 고려해봤으면 좋겠다 이렇게 말씀을 드립니다.”nbsp“네, 감사합니다. 스님.” nbspnbsp처음에 남편의 이야기만 들었을 때와 그 다음에 아내의 입장을 들었을 때를 함께 비교해보니 조금 더 시야가 넓어지고 미처 고려하지 못했던 요소들을 생각하게 되는 경험을 가졌던 것 같습니다. 스님께서는 한쪽 측면에서만 보던 질문자의 시각을 반대편에서도 보게 하고 위에서도 보게 하고 아래에서도 보게 하는 등 다양한 측면을 보게해서 균형잡힌 생각을 하도록 이끌어주고 계셨습니다. 그 모습에 잔잔한 감동이 있었습니다.nbsp6명의 질문에 모두 답을 마친 후 마지막으로 스님께서는 나도 좋고, 남도 좋고, 지금도 좋고, 나중도 좋은 것이 진리라고 하시면서 이렇게 닫는 말씀을 해주셨습니다.nbsp“오늘 우리가 이렇게 인생의 고뇌를 얘기했는데, 그래도 재미있잖아요? 어제는 자살하겠다는 사람하고 스님이 대화하는데 사람들이 배꼽을 잡고 재미있어 했어요. 그러니 우리 인생이 한쪽에 마음이 사로잡히면 꼭 죽어야 될 것 같고 괴로울 수 밖에 없는데, 관점을 바꿔놓고 보니까 별 일 아니지요? ‘아, 내가 너무 좁게 생각했구나’, ‘크게 생각해보니 사실 별 것 아니구나’ 라는 것을 알게 됩니다. 결혼해서 살아보니 어때요? 꼭 이 남자 아니면 안되었을 것 같아요? 다른 남자와 살아도 별 문제 없었을 것 같아요? 사실은 다른 남자, 다른 여자와 살아도 큰 문제 없어요. 내 마음에 꼭 맞아야 된다고 생각하면 천하에 어떤 사람을 만나도 거기에 맞는 사람은 없고, 내가 적당히 맞춰서 살겠다고 하면 길 가는 아무하고나 살아도 괜찮아요. 그런데 여러분들은 내 마음에 꼭 드는 사람을 찾으려고 하니까 힘든 거예요.nbsp하지만 이만한 남편, 이만한 아내가 이 세상에 없어요. 지금 귀한 줄 알고 살아야 합니다. 그러다가 갑자기 사고가 나서 죽으면 또 다른 남자, 다른 여자와 같이 살면 됩니다. 같이 살 때는 ‘너만이 나의 행복’이라고 생각하고 살고, 돌아가거나 헤어지면 ‘너 없어도 나는 잘 산다’ 이렇게 되어야 인생이 행복해질 수가 있습니다. 혼자 있으면 자유로워서 좋고, 같이 있으면 같이 있어서 좋고 그래야 합니다. 그런데 우리는 혼자 있으면 외로워서 못 살겠고, 같이 있으면 귀찮아서 못 살겠고 이럽니다. 인생을 그렇게 힘들게 살 필요가 없어요. 오늘 우리가 이렇게 괴로운 문제를 웃으면서 얘기했다는 이 말은 인생살이가 원래 이렇게 괜찮은 것이라는 뜻입니다.nbsp나도 좋고 남도 좋아야 이 행복이 오래 지속될 수 있습니다. 즉 일시적 기쁨을 ‘즐거움’이라고 하고 지속적 기쁨을 ‘행복’이라고 합니다. 순간의 기쁨은 행복이 아닙니다. 기쁨이 지속가능할 때 우리가 행복이라고 부릅니다. 행복하기 위해서는 너도 좋고 남도 좋은 지금도 좋고 나중도 좋은 길을 가야 합니다. 그런 면에서 남을 위해서 나를 희생해도 안되고, 나의 이익을 위해서 남을 손해끼쳐도 안됩니다. 지금 행복해야 합니다. 행복하시기 바랍니다.”청중들의 우레와 같은 박수갈채가 쏟아집니다. 어느덧 강연을 시작할 때보다 마음이 가벼워져 있고 기쁨이 생겨납니다. 스님께 감사한 마음이 올라옵니다. 오늘따라 청중들의 박수갈채가 떠 크고 길게 들려오는 것 같습니다.nbsp강연을 모두 마치고 무대 위에서 곧바로 책 사인회가 진행되었습니다. 강연 내용이 너무 좋았는지 책은 완판이 되고, 없어서 못 산 분들이 너무 많았습니다.nbsp그리고 강연장 곳곳에서 역할을 맡아 수고해준 봉사자들 모두가 모여서 기념촬영을 하였습니다.nbsp먼저 인터넷과 SNS를 통해 스님의 말레이시아 강연 소식을 듣고 자원봉사를 신청한 분들이 많았습니다. 그 중에서는 학생들이 많았는데, 함께 마음나누기를 하지는 못했지만, 기념사진을 같이 찍었습니다.nbsp이어서 오늘 행사를 주관한 반야원 신도님들이 스님과 함께 사진을 찍었습니다.nbsp봉사해주신 모든 분들에게는 한국에서 가지고 온 단주를 스님께서 손목에 직접 끼워주셨습니다. nbsp특히 강연 준비를 애써주신 네 분은 스님과 함께 별도로 더 사진을 찍었습니다.nbsp▲오늘 강연을 준비해 주신 반야원 임원진 분들.nbsp최민숙님,nbsp박연희님,nbsp정은강님,nbsp최정숙님행사장 뒷정리를 모두 마친 봉사자들은 다함께 모여서 묘덕법사님과 마음나누기를 하였습니다. 한 분은 “스님께서 매일 고생하시며 돌아다니시는 것이 저희들에게는 큰 힘이 되는 것 같다”며 감사한 마음을 전했고, 또 한 분은 “정토회가 굉장히 기획력도 좋고 조직적이라는 것을 많이 배웠다”고 하였고, 또 “반야원은 10년 되었지만 부족했는데 법륜 스님을 보고 지도자에 대한 갈구를 느끼게 되었다” 고 얘기하신 분도 있었습니다. 또한 “스님이 오신 덕분에 반야원이 단합하는 계기가 된 것 같다”고 하였습니다.nbsp강연 책임을 맡은 최정숙님은 “콰알라룸푸르 교민들을 대상으로 한 이런 강연을 통해 반야원도 좋은 일에 함께 동참해서 기뻤다”고 합니다. 그리고 “모니터와 사진으로만 뵙던 스님을 직접 뵈었다는 것만으로도 너무 감동적이고 기뻤다” 고 합니다. 학생 봉사자들 운영을 맡으신 분은 “학생들이다보니 조금 우왕좌왕했지만 각자 역할에서 다들 보람을 느끼는 모습을 보면서 흐뭇했다” 고 합니다. 한 분은 “오늘 예배가 있는 교회도 많았는데 종교를 넘어서서 이렇게 많은 분들이 모인 것은 너무 흡족한 일이다” 고 하며 보람있어 했습니다. 한 분은 “2년 전에 싱가폴에서 뵈었을 때보다 많이 야위워서 스님의 건강이 걱정되었다”고 하면서 “그럼에도 불구하고 2시간 넘게 강의해 주신 것에 큰 감동을 받았다”고 하였습니다.nbsp스님께서는 곧바로 오늘 숙소인 윤금주 한인회 부회장님 댁으로 이동하셨습니다. 윤금주님은 외국인 남편 피터씨와 함께 살고 계셨는데, 피터씨도 스님을 반갑게 환영해 주었습니다. 스님 일행을 위해 정성껏 다과를 준비해 주시고 내일 새벽에는 식사도 제공해주실 예정입니다.nbsp▲nbsp숙소를 제공해주신 윤금주님 한인회 부회장님과 남편 피터씨스님께서는 다과 후 원고 교정을 늦게까지 보시다가 휴식을 취하셨습니다.nbsp오늘도 이렇게 많은 분들의 정성 덕분에 101번째 콰알라룸푸르 강연도 잘 마쳤습니다. 내일은 다시 비행기를 타고 미얀마로 갑니다. 미얀마에서 또 소식 전해드리겠습니다.nbsp▼nbsp법륜 스님의 세계 100회 강연, 지난 날짜 소식 보기nbsp

2014.12.05. 45,393 읽음 댓글 34개

2014.12.2 세계 100회 강연(100) 싱가포르 Singapore

nbsp안녕하세요. 오늘은 세계 100회 강연 중 100번째 강연이 싱가포르에서 열리는 날입니다. 지난 8월26일 프랑크푸르트에서 시작한 강연이 오늘 12월2일 드디어 100회째를 맞이하였습니다.nbspnbsp스님께서는 매일 1개 도시를 쉼없이 달려왔습니다. 어떤 날은 2번의 강연이 있는 날도 있었고, 어떤 날은 차를 타고 1000km를 달린 날도 있었고, 어떤 날은 비행기가 연착되어 강연장에 늦게 도착한 날도 있었습니다. 무엇보다 유럽 강연을 마치면서는 스님의 건강이 악화되어 세계 100회 강연이 중단될 위험에 놓이기도 했습니다. 온갖 고생 끝에 오늘 100회에 이르렀다고 생각하니 감회가 새롭고 가슴이 벅차오르기도 합니다.nbspnbsp그러함에도 불구하고 오늘 싱가포르에서 열린 100회 째 강연은 평소와 다름 없이, 여느 강연 때와 마찬가지로, 소박하게 진행되었습니다. 마치 금강경에 나오는 부처님의 탁발 모습이 그 모습 그대로 이듯이 말이죠.nbspnbsp오전7시 자카르타 강연 준비 담당자인 김지영님이 정성껏 차려주신 음식을 감사히 먹고, 7시30분에 숙소를 나왔습니다. 9시 무렵 공항에 도착하여 출국 수속을 밟고 11시 25분에 싱가포르로 가는 비행기에 몸을 실었습니다. 저가 항공사여서 그런지 의자가 뒤로 넘어가지도 않고 앞사람과의 간격도 좁아서 불편하긴 했지만, 스님께서는 비행기 안에서 잠깐의 휴식을 편안히 취하셨습니다.nbspnbspnbsp비행기는 오후1시에 싱가폴 공항에 도착했습니다. 공항에는 오늘 싱가포르 강연을 주관한 한인여성회 유현숙 회장님을 비롯한 여성회 회원분들과 천종후님, 주 싱가포르 한국대사관에서 박기태 영사님이 함께 마중을 나와 스님을 반갑게 맞이해 주셨습니다.nbspnbsp▲ 공항 마중을 나와 주신 싱가포르 한인여성회 분들과 박기태 영사님, 천종후님.nbspnbspnbsp공항에서 곧바로 오늘 강연이 있는 YMCA 건물로 이동했습니다. 이동하는 차 안에서 박기태 영사님은 스님과 싱가포르 전반에 대한 대화를 나누셨습니다. 영사님은 싱가포르의 정치, 경제, 인구, 문화적인 면에서 포괄적인 안내를 해주셨습니다. nbspnbsp싱가포르는 동남아시아, 말레이 반도의 끝에 위치한 섬나라이자 도시 국가입니다. 1963년에 말레이시아 연방의 일원으로 영국으로부터 독립하였으며, 1965년에 말레이시아 연방 정부와의 다툼 끝에 결국 연방을 탈퇴하여 독립국가가 되었습니다. 내년은 독립 40주년이 되어서 도시 곳곳에서 큰 행사가 열릴 예정이라고 합니다.nbspnbspnbspnbsp1990년까지 리콴유 수상의 장기 집권 기간 동안 놀라운 경제성장을 이루어 홍콩에 버금가는 경제력을 가지게 되었고, 1990년에 고촉통이 수상직을 승계하였으며, 2004년에는 리콴유 전수상의 큰아들인 리셴룽이 3대 수상으로 집권하고 있습니다. 1959년부터 현재까지 리콴유가 이끄는 보수주의 정당인 인민행동당이 집권하고 있고, 야당이 존재하기는 하지만 여당의 장기집권과 강력한 정권의 힘으로 존재가 미미한 편이라고 합니다. 이 때문에 공산주의 국가나 사회주의 국가보다 더 강력한 독재국가로 보는 시각도 있습니다.nbsp▲nbsp싱가포르의 다운타운nbsp중국계가 전체 인구의 77를 차지하며, 말레이인이 14로 두번째로 많다고 합니다. 그 밖에 영연방 출신인 인도인 등의 여러 민족이 거주하고 있습니다. 지속적인 경제성장을 위해서 국가에서 이민을 장려하고 있으며, 한 해에 태어나는 싱가포르의 아기보다 이민으로 유입되는 새로운 시민의 숫자가 더 많습니다. 외국인을 위한 우대 정책이 잘 되어 있는 반면에 내국인들의 이에 대한 반발감도 큰 편이라고 합니다. 그야말로 다민족 다문화 특징을 잘 보여주는 곳인 것 같습니다. 그러나 경쟁 교육과정이 심해 학교 생활에서의 스트레스 정도가 매우 높은데, 마치 카스트제도처럼 초등학교 성적이 평생을 좌우하게 될 정도라고 합니다.nbspnbsp▲nbsp오늘 강연장 YMCAnbspYMCA 건물 1층 대강당이 오늘 강연이 열리는 장소이고, 건물 7층이 오늘 스님 일행이 머물 숙소입니다. 특히 오늘 강연을 주관한 한인여성회에서는 100회째 강연을 이어오신 스님께서 어떻게 하면 최대한 여행의 피로를 푸실 수 있을까 배려해서 모든 준비를 하였다고 합니다. 숙소와 강연장이 한 곳에 있어서 오후에는 스텝진들도 휴식을 취하고, 스님께서도 어제와 오늘 에어컨 바람을 씌었더니 감기 기운이 있으셔서 짧은 휴식을 취하셨습니다.nbsp오후6시30분이 되어 스님께서는 오늘 강연에 참석하는 지역 인사 분들과 차담을 나누셨습니다. 김완중 공사님, 정건진 한인회장님, 봉세종 민주평통 지회장님, 이현경 상공회의소 회장님, 박기태 영사님, 이미경 생명의전화 원장님 등과 함께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시시다가 다함께 기념촬영을 한 후, 강연장으로 이동하였습니다.nbspnbspnbsp싱가포르 강연은 다른 지역 강연과는 달리 선착순 입장이 아니라 사전 예약을 받았습니다. 공공건물에 250석이 마련되어 있는데 너무 많은 인원이 몰릴 경우 소방법에 저촉이 되는 엄격한 법 적용을 받기 때문에 부득이하게 사전 예약을 받았다고 합니다. 강연 한달 전부터 250석이 모두 예약이 끝났고, 강연이 열리는 오늘까지도 참석 문의가 들어와서 대기자 명단을 계속 조정했다고 합니다. 스님의 강연을 듣고 싶어하는 한명 한명의 사연을 듣고 강연 담당자인 유현숙님은 많은 감동을 받았다고 합니다.nbspnbsp오늘 강연은 싱가폴 한인 여성회가 중심이 되어 봉사자를 모집하여 진행되었습니다. 강연에 앞서 유현숙 한인여성회 회장님이 나오셔서 강연에 도움 주신 봉사자들과 참석한 내빈들을 함께 소개해 주셨습니다. 봉사자들 중에선 한인 여성회 뿐만 아니라 오늘 강연을 위해 휴가를 내었다는 일반 봉사자들도 있었습니다. 회장님은 인사말씀에서 “질문자들의 질문을 통해 나를 돌아보고 스님의 답변을 통해 문제가 해결되고, 우리 모두 행복해지는 특별한 시간, 귀한 시간이 되길 바란다” 라고 하시며 강연을 열어주셨습니다.nbspnbsp▲nbsp행사를 주관해 주신 한인여성회 유현숙 회장님nbsp싱가포르는 스님께서 작년에도 오셔서 올해가 두 번째라고 합니다. 특히 오늘이 딱 100번째 강연이어서 봉사자들과 내빈들도 100번째 강연을 싱가포르에서 맞이하게 된 것을 무척 뜻깊게 여기고 있었습니다.nbspnbsp저녁 7시가 되자 스님께서 연단에 오르셨습니다. 강연장은 250석이 반자리 없이 꽉 찼고, 뒤에서 서서 들으시는 분도 생기고 옆에서 바닥에 앉아서 듣는 분들도 많았습니다.nbspnbspnbsp먼저 스님께서는 좌석을 꽉 채운 교민들에게 반가운 마음을 전하며 강연을 시작하셨습니다.nbspnbsp“시작하자마자 제가 사과말씀부터 드릴게요. 오늘 강연이 사전 예약을 받았다는 얘기를 듣고 250명 신청 받았으면 오늘 180명 밖에 안온다며 조금 더 신청을 더 받았어야 하지 않냐고 제가 그랬거든요. 그러자 준비하신 분이 싱가포르는 다르다고 했어요. 예약을 받으면 보통 70정도 오면 많이 오는 것이거든요. 그런데 빈자리 없이 다들 오셨네요? 아까 저랑 얘기하신 분한테 미안해요. 왜 다들 오셔서 제가 사과하게 만들어요? 싱가포르는 역시 다른 나라이군요. nbspnbsp이렇게 바쁜 시간을 내어서 왔으니까 오기 전보다는 여기 잘왔다 하는 생각이 들 수 있게 한번 대화를 나눠봅시다. 즉문즉설은 답을 이야기해주는 것이 아니고, 같이 대화를 나누면서 인생의 어떤 문제를 같이 해결해나가는 것을 말합니다. 여러분들이 살아가면서 겪는 인생의 고뇌나 의문에 대해서 질문을 하시면 저와 같이 대화를 하면서 해결의 실마리를 찾아간다고 할 수 있어요. 자, 그럼 뭐든지 마음껏 이야기를 나눠봅시다.”nbsp그러면서 질문을 받기 시작했습니다. 오늘은 총 6명이 스님께 질문을 했습니다.nbspnbsp“힘든 시기에 법륜스님의 “주례사”라는 책을 읽고 어려운 시기를 잘 이겨냈습니다. 참선이라는 것에 대해 많은 것을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참선이란 어디서 오는 것이고 진정한 화두란 어떤 것이고, 어떻게 깨달음에 이룰 수 있는지에 대해 알고 싶습니다.”nbspnbsp“어머니가 병원에서 5년정도 입원해 계시다가 작년에 돌아가셨습니다. 아직도 마음이 많이 아프고 한국에 돌아가기가 힘듭니다. 이 슬픔을 어떻게 극복할 수 있을까요?”nbspnbsp“병원에서 사람들의 업무를 평가하고 그에 따른 보상 책정을 결정하는 일을 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제가 새로 옮긴 병원에서는 이런 평가제도가 옳은 것인가에 대한 의문으로 평가제를 폐지했습니다. 그리고 나서 이 평가제 폐지가 맞는 선택이었는지, 그렇다면 사람들의 업무를 어떻게 평가하고 어떻게 보상책정을 결정해야하는지에 대해 알고 싶습니다. 또한 병원에서 추구해야 하는 가장 중요한 가치는 무엇일까요?”nbsp“3년 전에 싱가포르에 와서 직장생활을 하고 있습니다. 한국에 비해 조금 여유롭고 편안한 직장 생활에 이곳에서 사는 것에 만족하고 있습니다. 단 한가지 한국에 노부모님이 계시다 보니 그것이 마음에 걸립니다. 또한 부모님도 3년간 외국 생활을 했으니 이제 돌아와도 되지 않으냐 제안하십니다. 이렇게 싱가포르에서 부모님과 떨어져 생활하는 것이 옳은 것인지, 너무 이기적인 행동은 아닌지, 나중에 후회하게 되지는 않을 런지 고민입니다.”nbspnbspnbsp“해외에 살고 있는 한국인들이 한국의 남북 통일을 위해 할수 있는 일들이 어떤 것이 있는지 스님의 생각을 말씀해주세요.”nbspnbsp이렇게 다양한 질문에 대해 스님께서는 정성껏 답변을 해주셨습니다. 오늘은 그 중에서 우울증을 앓고 있는 청년의 고민과 스님이 얘기해 주시는 치료 방법에 대한 말씀을 소개해 드립니다. 현대인들이 많이 앓고 있는 우울증에 대해 어떻게 접근해야 하는지 배울 수 있는 소중한 가르침을 얻을 수 있었습니다.nbspnbspnbsp“안녕하세요, 싱가폴에 와주셔서 감사합니다. 제가 여쭤보고 싶은 것은 우울증과 불안함에 대해서 입니다. 제가 영국에서 대학원을 다니는 동안 극심한 우울증으로 인해 약물치료와 상담치료를 받고 생활을 하다가 영국에서 대학원을 마치고 이제 싱가폴로 잠시 오게 되었습니다. 이따금씩 우울증과 불안함으로 인하여 자살에 대해 끊임없이 부정적인 생각이 계속되고 있습니다. 긍정적인 생각을 해서 이 상황을 타개하고 싶지만 그 상황 안에 있을 때는 너무나 괴롭고 아무 것도 생각이 안듭니다. 그래서 심각할 때는 약을 먹으면서 진정을 하려고 하지만, 장기적으로는 약물을 먹으면서 생활을 하기에는 좀 문제가 있는것 같고 그래서 어떻게 이 상황을 타개해야 할지 여쭈어 보고 싶습니다.”nbsp“현재까지 우울증에 대해서 의학적으로 완치할 만한 특별한 약은 없는 것 같아요. 그렇다고 상담치료를 한다고 해도 확실하지는 않고요. 다만 조기 발견을 해서 치료를 하면 크게 문제되는 것은 아니예요. 그러나 이게 조금 만성화되면 치료가 좀 어렵고 대부분 자살로 종결이 되고 있는 것 같아요.”nbspnbsp“지금 부모님이 계시는데 자살을 하는 것은 아닌 것 같구요.” nbsp“그런 생각을 계속 갖고 있으면 좋은데, 병이 확 돌면 그런 생각은 온데 간데 없고 딱 죽어야만 된다는 생각에 사로잡히게 되거든요. 그러니 자기도 어떻게 못하는 거예요. 그러니 병이 확 엄습할 때 그 때 정신을 딱 차려야 하는데 그게 잘 안되지요. 그래서 약을 가지고 다녀야 돼요. 심하면 조금 멍해지는 한이 있더라도 약을 먹어야 해요. 죽는 것 보다는 낫잖아요.nbsp여러분들은 자꾸 완치를 생각하거든요. 다리가 하나 없으면 좀 불편하지 열등한 것은 아니예요. 다리가 하나 없으면 없는 만큼 조금만 활동하면 돼요. 다른 사람이 100을 활동하면 자기는 80만 활동하면 되거든요. 그런데 자꾸 100을 목표로 잡으니까 자꾸 열등해지는 거예요. 그러니까 우울증이 있다면 우울증을 하나의 내 상태로 받아들여야 돼요. 이것을 완치한다 그러니 완치가 잘 안되니까 우울증을 더 가중시키게 되는 거예요.nbspnbsp그러니까 제일 중요한 것은 내가 우울증이 있다는 것을 첫째 인정을 해야 되요. 그리고 둘째 우울증이라고 하는 것은 현재 완치시킬 수 있는 약은 없다는 것입니다. 세 번째, 우울증은 확 사로잡히면 대부분 자살로 종결이 된다는 것입니다. 이 세가지를 인정해야 돼요. 이걸 먼저 질문자가 자각을 해야 돼요.nbspnbsp그런데 부모님도 계실 뿐만 아니라 죽으면 안되잖아요. 지금 병이 심하지 않을 때는 죽어서는 안 된다는 생각이 들죠? 그런데 병이 들면 자기 정신이 자기 마음대로 안되니까 문제이지요. 그래서 비상약을 딱 가지고 있어야 해요. 자살하고 싶다든지 어떤 충동이 일어나거나 하면 무조건 약을 먹어야 해요. 그래야 자살이 예방되는 거예요.nbsp왜냐하면, 병이 확 도졌을 때는 죽어야 된다는 생각 하나 밖에 안들고 아무 생각도 안들기 때문에 평소에 아무리 결심을 해놓았다고 하더라도 의미가 없어요. 생각 자체가 바뀌어 버리기 때문에 그래요. 그래서 항상 비상약을 준비해서 ‘심각해지면 약을 먹는다’ 이렇게 계속 자기에게 암시를 줘야 돼요. 낫고 안 낫고의 문제가 아니예요. ‘이것 먹는다고 낫느냐?’ 이런 생각하면 안돼요. 일단 약을 먹으면 자살하려는 충동은 진정이 돼요. 비상약이예요. 그래서 언제든지 비상약을 가지고 있어야 돼요. 이것만 딱 질문자가 목표를 세우고 그렇게 하면 죽는 것은 면할 수 있어요. 그러니까 죽고 싶을 때 그 생각이 들자마자 끌려가지 말고 일단 약부터 찾아서 입에 넣어야 돼요. 그러면 사로잡힌 것이 조금 진정되면서 위기는 넘어갈 수 있거든요.nbspnbsp두번째는 의사 선생님과 상담을 해보고 우울증이 심하다고 할 때는 약을 계속 먹어야 돼요. 만약 1년 정도 먹고 이 위기가 극복이 된다고 하면, 그 다음에는 계속해서는 안먹더라도 항상 약을 갖고 있어야 돼요. 그리고 계절이 바뀌는 환절기에는 충동이 더 자주 일어나요. 그런데 그냥 몸이 이상해서 충동이 일어나면 내가 감지할 수 있는데, 항상 어떤 사람을 시비하면서 일어나요. 이 병은 그런 병이예요. 어머니하고 갈등이 생긴다든지, 애인하고 갈등이 생긴다든지, 어떤 시비거리가 생기면서 일어나기 때문에 자기가 이것을 우울증이라고 인정을 안 해요. 그 때 옆에서 약 먹으라든지 병원에 가라고 하면, 성질을 내면서 ‘왜 나를 정신병자 취급을 하냐?’ 이렇게 나오기 때문에 치료가 굉장히 어려워요.nbspnbsp그래서 이 병의 핵심은 자기가 우울증이라는 것을 자각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질문자는 지금 본인이 우울증이라는 것을 알고 있잖아요?”nbspnbsp“네.”nbsp“그런데 우울증 환자들의 80는 본인이 우울증인 것을 인정을 안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자살이 많은 거예요. 내가 우울증이라는 것을 딱 자각을 하고 본인이 인정을 해버리면 얼마든지 치료가 가능해요. 그런데 대부분은 자기가 인정을 안해요. 정신병 취급한다고 펄쩍펄쩍 뛰거든요. 질문자도 그런 적 있어요?nbsp“네.”nbspnbsp“아이고, 잘 되었어요. 지금 질문자가 ‘우울증입니다’ 라고 인정을 하니까 제가 이렇게 말을 솔직하게 하는 거예요. 보통은 자신이 우울증이라고 말을 안하고 질문을 해요. 제가 이런 식으로 말하면 ‘저 스님이 내 고민을 얘기하는데 나를 정신병 취급한다’ 고 막 펄쩍펄쩍 뛰고, 인터넷에 스님이 말을 함부로 한다고 하면서 글을 막 올리고 그러거든요. 그래서 저도 몇 번 당해봤기 때문에 말할 때 조심스러워요. nbspnbspnbsp그런데 오늘 제가 이렇게 탁 깨놓고 ‘그러면 죽는다’ 라고까지 얘기하는 것은 질문자가 처음부터 스스로 ‘제가 우울증을 앓았습니다’ 얘기를 했기 때문에 ‘아, 그러면 얘기하기 쉽겠구나. 상처를 덜 입겠구나’ 이렇게 보고 얘기해 주는 거예요. 그러니까 어떤 경우에도 고치기 이전에 아는 것이 굉장히 중요해요. 그래서 질문자는 우울증이라는 것을 알았기 때문에 그 위험이훨씬 적어지는 거예요. 이렇게 되면 의사 선생님하고 상담을 하면서 치료하는 것이 제일 좋아요. 그런데 이 병을 잘 모를 때는 귀신이 들었다 해서 구병시식을 한다, 무슨 안수기도를 한다며 난리를 피우는데요. 그것도 옛날에는 도움이 되었지만 지금은 그래도 제가 볼 때는 양의가 가장 도움이 되요. 그리고 이건 호르몬 분비와도 연관이 있데요. 그렇기 때문에 약물 치료도 필요하고, 상담 치료도 필요한 거예요. 이렇게 우선적으로 치료해 보시고요.nbspnbsp보조적으로 도움을 드릴 수 있는 것은 질문자가 정신을 딱 차리는 훈련을 계속 하는 겁니다. 그런데 보통 이것을 해도 효과가 크게 없는 것은 우울증이 일어날 때 마음이 확 도는 것은 무의식에서 일어나는 일이기 때문입니다. 내가 ‘아, 정신차려야지’ 하는 것은 의식에서 일어나는 일이기 때문에 무의식이 의식을 항상 앞섭니다. 그래서 아무리 결심해도 소용이 없어요. 그래서 의식적 암시를 지속적으로 하면 의식이 무의식화 됩니다. 그러면 우울증이 일어날 때 본인이 자각하는 계기가 됩니다.nbspnbsp그래서 종교와 상관없이 절을 하루에 108배씩 해보세요. 절은 육체를 가지고 하는 단순한 전신 운동이고, 정신적으로 따지면 자기가 옳다는 생각을 내려놓은 방법이지, 무슨 우상숭배하고는 아무 관계가 없는 거예요. 아침에 일어나서 매일 해야 합니다. 아프거나 안아프거나 비가 오나 눈이 오나 하기 싫거나 하기 좋거나 매일 108배 절을 하면서 세 개의 문장을 외우셔야 돼요.nbspnbsp‘저는 편안합니다.’nbsp‘살아있음에 감사드립니다.’nbsp‘저는 잘 살 겁니다.’ nbspnbsp이 세가지를 계속 본인한테 암시를 줘야 해요. 한번 해보세요. 기독교 신자라면 ‘주님, 저는 편안합니다. 살아있음에 주님께 감사드립니다. 주님의 은혜 속에 저는 잘 살 겁니다.’ 이렇게 하면 됩니다. 불교 신자라면 ‘부처님, 저는 편안합니다’ 이렇게 하는 거예요. 심리적으로는 다 똑같은 거예요. 이렇게 계속 매일 108배 절을 하면서 자기 암시를 줘야 돼요. 그러면 조금 도움이 될 거예요.nbsp그러나 증상이 심하면 이런 것도 필요 없어요. 왜냐하면 당뇨병 환자가 당분기가 떨어지면 그냥 딱 기절해버리듯이 그때는 결심한다고 안돼요. 효과가 없어요. 여러분들 내시경 검사할 때 전신 마취하죠? 그때 ‘나 정신차려야지’ 이렇게 결심하고 있어봐요, 정신이 차려지는지... . 어느 순간에 딱 가버리죠. 그래서 우리가 정신도 중요하지만 이 물질적인 것도 굉장히 중요합니다. 몸에 이상이 있는 것은 물질적으로, 즉 약물을 넣든 이렇게 치료를 해야 하고, 프로그램상 이상이 있는 것은 정신적인 치료를 받아야 됩니다. 그런데 이것이 밀접하게 서로 연관이 되어 있어요. 근본 원인이 어느 쪽에 있느냐를 보고 치료를 해야 되거든요. 몸의 작용과 정신의 작용은 상호작용을 해요. 그래서 약물치료와 같이 겸하셔야 해요. ‘죽을 때까지 어떻게 약을 먹나?’ 이렇게 생각을 하면 안돼요. 질문자는 죽을 때까지 밥을 먹어야 돼요? 안 먹어도 돼요?”nbsp“밥은 먹어야 돼죠.”nbsp“죽을 때까지 하루 세번 밥 먹는 것이 더 귀찮지, 약 조그만한 것 하나 딱 먹는 것 그게 뭐가 귀찮아요? nbspnbspnbsp죽을 때까지 먹어도 아무 문제가 없어요. 밥은 이따만한 걸 하루 세 번 먹으면서 약은 요만한 것 하나 넘겨버리면 되는데 그게 뭐가 힘들어요? 그런 생각하지 말고, 약을 지속적으로 먹어야 되면 먹으세요. 약 먹는 것을 너무 거부하면 안돼요. 약이란 것은 먹으면 약간 좀 맹해지잖아요. 맹해지면 안된다 그런 생각을 하면 안 되고, 맹해지더라도 죽는거 보다는 사는게 낫다 이렇게 생각해야 돼요.nbspnbsp그러나 약을 먹으면 완치된다는 이런 생각을 하면 안돼요. 약을 먹어서는 완치가 안되요. 그러나 위기는 극복할 수가 있어요. 응급치료약으로 위기를 극복한 위에 기도를 꾸준히 하면 나중에 약을 안먹어도 되는 그런 단계로 갈 수 있어요.”nbsp“부모님은 제가 지금 우울증을 겪는 것을 모르시는데 걱정을 끼쳐드리는 것도 좀 불효인 것 같고 이것을 부모님께 알리는게 상책인지요?”nbspnbsp“알려야지요. 팔이 하나 없는데 계속 있다고 속이고 다닐 수는 없잖아요? ‘제가 우울증이 좀 있습니다. 심각하게 우울증이 있어서 치료도 받고 기도를 합니다.’ 이렇게 주위에서도 알도록 해줘야 해요. 주위에서 알아야 딱 발병을 할 때 도와줄 수 있거든요.nbspnbsp안그러면 신경질 내고 짜증 내면 옆에서 맞대응을 한다 말이예요. 맞대응을 하면 오히려 더 폭발하기 때문에 딱 발병할 때 옆에서 알면 도와줄 수 있죠. 본인이 자각하는 것이 제일 좋고, 주변에서도 아는 것이 좋아요. 그러면 발병할 때 협력해 줄 수가 있거든요. 나에 대해 시비하지 않고, 정상적인 사람처럼 맞대응을 안 하고 약간 협력을 해줄 수가 있기 때문에 훨씬 도움이 돼요.”nbspnbsp“네, 그리고 상담치료를 하면서 느꼈던 점은 제가 우울증이 발병한 원인 중의 하나가 내가 없어져도 슬퍼할 사람도 별로 없을 거라는 생각이 계속되면서부터입니다.”nbspnbsp“맞아요. 나 하나 죽어도 슬퍼할 사람도 없고 죽어도 아무도 신경 안써요. 질문자만 그러냐? 저도 그래요. 우리가 산에 있는 토끼 한마리 죽었다고 누가 슬퍼하며, 산에 있는 나무잎 하나 떨어졌다고 누가 신경써요? 아무도 신경 안 써요. 그런 생각을 하면서 우울증이 걸린 것이 아니라 우울증이 걸렸기 때문에 그런 생각을 하는 거예요.nbspnbsp깨달음이라는 것은 ‘나는 하나의 티끌 같은 존재이고, 풀벌레 같은 존재이고, 개미같은 존재라는 것을 깨닫는 것입니다. 그걸 탁 깨달아 버리면 남이 나를 어떻게 보든 신경 안쓰고, 남의 인생에 간섭 안하고 그렇게 돼요. 인생이란 것을 뭐 굉장한 것 같이 여기는 이런 자만심이 우리를 괴롭게 만드는 겁니다. 질문자가 그런 생각을 하니 우울증에 걸린 것이 아니고 우울증 증상이 있으니까 그런 게 죽는 핑계로 작용하는 거예요. nbspnbspnbsp산에 있는 다람쥐한테 새끼가 태어났든지 말든지 우리가 신경 안 쓴다고 다람쥐가 다 자살해요? nbspnbspnbsp그러니깐 그런 것은 질문자가 자살 할 핑계거리를 그렇게 찾는 거예요. 그게 다 병이요. 정신이 건강한 사람은 그것을 자각하면 오히려 행복해지고 고뇌가 사라지는데, 질문자는 약간 병들었으니까 똑같은 문제를 자각하는데 죽는 쪽으로 그 문제의 해결책을 생각하고 ‘아 내가 없어져도 이 세상은 아무 문제가 없으니 나는 죽겠다’ 이렇게 생각이 되는 겁니다. 질문자가 왜 세상에 도움이 되어야 돼요? 그게 자만이지요. 그런 생각이 자만이예요. 그래서 이 자만이 오히려 병을 가져오는 거예요.”nbspnbsp“존재의 의미가 없다면 살아가는데 이유가 없잖아요?”nbsp“존재라는 게 본래 의미가 없어요. 의미는 우리가 만드는 거예요. 이걸 접시라고 이름을 붙이고, 값을 정하고 하는데, 본래는 의미가 없어요. 그냥 하나의 존재일 뿐이예요. 그러니까 깨달음은 의미가 본래 없다는 것을 깨닫는 것 그게 깨달음이예요. 의미는 우리의 의식이 만들어 낸 거예요. 값이 있다 없다, 선하다 악하다, 잘한다 잘못한다, 이런 것은 다 인간의 의식이 만든거예요. 천당이다 지옥이다, 부처다 하늘이다 신이다 뭐 이런 것은 다 인간의 의식이 만든거예요. 인간은 가만히 못 있고 뭘 만들어 놓고 거기에다 매달리어 살고 그런거요. 괜히 복잡하게 사는 거죠.”nbspnbsp“의미가 없다는 것이 너무 슬프지 않나요?”nbsp“의미가 없으니 좋지요. 신경 안써도 되고. 의미가 없는데 왜 슬프지요? 의미가 있으니까 슬픈 것 아닌가요? 슬퍼할 이유도 없는데 뭐가 슬퍼요? 존재가 먼저일까요? 의미가먼저일까요? 의미 이전에 존재가 있었는데 존재에 무슨 의미가 있어요? 존재가 먼저 있고, 거기에 인간의 소유라든지 의미를 부여한 거예요.nbsp그런데 우리는 후에 의미를 부여한 것을 가지고 존재를 규명할려고 그래요. 그게 잘못된 거요. 그래서 ‘왜 사는가?’ 하는 이것을 추구하면 딱 자살하게 되어 있어요. 왜 그럴까요? 삶이 먼저 있고 왜 라는 사고를 하는데, 왜 라는 사고를 가지고 삶의 의미를 찾으니까 끝까지 찾아보면 없다 이렇게 나오거든요. 그러면 죽어야 되겠네 이렇게 되는 거요. 왜 사는가가 아니라 이미 존재는 던져진 것이고 이미 있는 거예요. 그러면 이왕지 사는데 괴롭게 사는 사람도 있고 즐겁게 사는 사람도 있고 행복하게 사는 사람도 있고 불행하게 사는 사람도 있고 자유롭게 사는 사람도 있고 속박받고 사는 사람도 있으니 너는 어떻게 살래? 이 ‘어떻게’가 우리에게 주어진 화두이지 ‘왜’는 화두가 아니예요. ‘왜 살지?’ 이거는 죽고 싶다 이 말이예요.nbspnbsp생각하는 것마다 죽을 꾀를 내고 있네요. 산에 가면 다람쥐가 도토리 구하기 어렵다고 자살하는 다람쥐 봤어요? 못봤어요? 질문자가 만약에 자살을 하면 다람쥐보다 못해요. 질문자는 인간 존재의 값어치를 모르는거예요. 그러니까 의미가 있어서 사는 것이 아니예요. 의미는 우리가 사는 동안 만드는 거예요. 내가 아무 의미 없어도 살아 있어요. 이왕지 사는데 어떤 의미를 만들어 살면 더 재밌냐 해가지고 사는 거요. 의미는 우리들이 계속 만들어 나가는 거요. 그러니까 의미가 필요없다는 것이 아니라 본래는 의미가 없는 존재인데 의미라는 것은 우리의 의식이, 정신 작용이 의미를 만들고 그 의미를 통해서 보람을 느끼고 기쁨을 느끼고 이렇게 하는 거요.”nbspnbsp“감사합니다.”nbspnbsp질문자는 스님의 자상한 문답에 깊은 감명을 받고 밝게 웃었습니다. 문답을 통해 질문자 스스로 많은 위안과 치유를 받고 있음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질문자에게 조금이라도 도움을 주려는 스님의 마음이 느껴져서 더욱 잔잔한 감동이 일었던 순간이었습니다.nbspnbsp마지막 질문은 한반도의 평화와 통일에 대한 질문이었는데, 그 답변의 연장선 상에서 스님께서는 마지막 닫는 말씀으로 긍정의 토대 위에 자긍심을 갖고 새로운 창조를 해나가자며 이렇게 닫는 말씀을 해주셨습니다.nbspnbspnbsp“인류 역사를 보면 선진 문명이 있고, 선진 문명에서 너무 떨어져 있으면 기술력이 없고, 그 중심에 있으면 창조력이 없고, 항상 그 바로 변두리인 충돌 지점에서 창조력이 생깁니다. 그래서 서구 문명을 보면 이집트 문명은 그 변두리인 에게해로, 에게해는 그 변두리인 그리스로, 그리스는 그 변두리인 로마로, 로마는 그 변두리인 게르만, 즉 오늘날 서유럽으로, 유럽은 그 변방인 미국으로, 미국 문명은 그 변방인 동아시아로 올 가능성이 있다고 하잖아요. 그런데 경제력이나 군사력 등의 조건을 보면 동아시아가 한 100년 후에 문명의 중심이 될 가능성이 있는데, 내용적으로 보면 아직 문명의 중심은 될 수 없어요. 인권, 민주주의, 기술개발, 창조성, 문화, 모든 것에 있어서 아직 전근대적 수준입니다.nbspnbsp이걸 뛰어넘어야 해요. 통일은 그럴 수 있는 가능성을 보여줍니다. 통일이 되면 북한의 열사능을 국립묘지에 편입하게 되겠죠? 그러기 때문에 통일을 하게 되면 우리는 6.25전쟁 때 싸웠던 북한의 장군한테도 훌륭한 장군이라고 부르게 되겠죠. 이것은 바로 원수를 사랑하라는 예수님의 가르침이 현실 속에서 이뤄지는 것 아닙니까? 그러니 통일은 정치 경제적인 것을 넘어서서 완전히 새로운 사고를 갖게 만듭니다. 모든 장벽을 허물어버려요.nbspnbsp그래서 한국의 통일은 세계의 모델이 될 수 있어요. 팔레스타인과 이스라엘 갈등 해결의 모델이 될 수도 있고, 각각의 충돌 지점에서 새로운 가능성을 열어주게 되죠. 한국이 갖는 어떤 새로운 것이 세계에 미치는 영향이 굉장히 커집니다. 이런 가치를 우리 국민들이 아직 잘 모르고 있죠. 왜냐하면 미래 문명을 안 보고 당장 눈 앞에 이익만 보고 있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통일 한국은 한중일 삼국의 공동체를 만들어가는 견인 역할을 할 수 있어요. 그래서 동북아의 새로운 협력관계가 유지되면 세계 문명의 중심이 21세기 말에는 동아시아로 옮겨올 수도 있고, 그 동아시아 문명의 핵심이 한국이 될 수도 있습니다. 배타적 민족주의가 아니라 세계와 하나되면서 새로운 문명을 끌고 가는 역할을 해낼 수가 있습니다. 어쩌면 이것은 2천년 만에 우리에게 주어진 하나의 기회입니다. 아무리 적게 잡아도 발해 멸망 이후 천년의 꿈이 실현되는 것이 됩니다. 이런 희망을 갖고 자신의 삶을 한평생 바친다면 얼마나 재미있을까요? 이런 가능성을 열어나가는데 우리가 집중한다면 삶의 에너지가 팍팍 솟아납니다. 이런 새로운 시대를 만들어나가는데 여러분들이 역할을 해주시기 바랍니다. nbspnbspnbsp여기 싱가포르는 동서양이 교차하는 곳이잖아요. ‘혼란스럽다’ 이러지 말고 혼란은 새로운 질서를 만드는 가장 좋은 소재입니다. 기존 질서가 딱 짜여 있으면 창조와 새로운 것을 못 만듭니다. 그게 무너지고 뒤죽박죽 혼란이 오면, 비창조적인 인간에게는 혼란이 고통이지만, 창조적인 인간은 혼란이야말로 새 질서를 만들 수 있는 절호의 기회입니다. 이렇게 우리의 장점을 봐야 합니다. 대한민국은 부정적인 것이 굉장히 많아요. 하지만 제가 볼 때는 좋은 점이 와 로 따지면 하나라도 좋은 점이 더 많다고 생각합니다. 그런 가능성을 갖고 부족한 것을 개선해나간다 이렇게 생각을 해나간다면 자긍심이 생기지 않을까 싶습니다. 감사합니다.”nbspnbsp2시간 50분 동안의 열강이 끝나자 청중들도 우레와 같은 박수 갈채를 보내줍니다. 이어서 강연장 옆쪽 통로에서 책 사인회가 열렸습니다. 스님께서는 한분 한분 반갑게 인사를 나누며 사인을 해주셨습니다.nbspnbspnbsp그리고 행사장 곳곳에서 소임을 맡아 수고해준 봉사자들과 단체 사진을 찍었습니다.nbspnbspnbsp봉사자들에게는 스님께서 직접 단주를 손목에 끼워주며 감사의 마음을 전했습니다.nbspnbspnbsp특히 오늘 강연 책임을 맡아주신 한인여성회 윤현숙 회장님께서는 스님의 사인한 책을 직접 선물해 드리고 단독으로 기념사진을 촬영하였습니다.nbspnbsp▲ 오늘 강연을 총괄해준 한인여성회 회장 유현숙님 부부nbspnbsp행사장 뒷정리까지 모두 마치고 자원봉사자들은 묘덕 법사님과 함께 마음나누기를 하였습니다. 유현숙 한인여성회 회장님은 강연 준비과정을 이야기해 주셨는데, 싱가포르는 다문화, 다종교가 공존하며 다름을 인정하는 분위기가 많아서 종교에 대한 배척이 없었고 그래서 강연장을 섭외하거나 준비하는 데에 별로 어려움이 없었다고 합니다. 지난 7월부터 한인들이 많이 접속하는 사이트를 중심으로 인터넷 홍보를 시작했고, 많은 분들이 이미 카카오스토리 희망편지와 유튜브 즉문즉설을 통해 이미 스님의 세계 100회 강연 소식을 접하고 있어 홍보하기가 수월했다고 합니다. 그리고 한국인이 주로 가는 식당, 상점 곳곳에 포스터를 붙이러 다녔는데 오늘 강연이 있기까지 많은 노고가 있었음을 알 수 있었습니다.nbspnbsp▲nbsp묘덕 법사님과 마음나누기nbsp한인여성회의 한 분은 “참석자들의 대다수가 20대 30대 젊은 사람들이었던 것이 감동이었다”고 합니다. “시내 중심가에서 저녁 시간에 강연이 열린 덕분에 퇴근길에 젊은 사람들이 쉽게 강연장을 찾을 수 있었던 것 같다”며 앞서 우울증에 대해 질문한 청년을 예로 들며 “스님의 강연을 정신적으로 힘들어하는 젊은이들이 많이 들을 수 있게 된 것이 무척 기쁘다” 고 하였습니다. 스님의 법문이 서로 다름을 인정하는 개방성을 많이 이야기하다 보니 종교가 비록 다르지만 타 종교인들도 많이 참석했는데, 특히 봉사자들도 대부분 성당에 나가시는 분들이었습니다. 그리고 또 한분은 “스님께서 한명이라도 더 치유해주고자 하는 그 마음이 느껴져서 가슴이 뭉클했다” 고 합니다.nbspnbspnbsp▲nbsp오늘 행사를 준비해 주신 주 싱가폴 한인여성회 분들nbsp이렇게 많은 분들의 정성 덕분에 100번째 강연도 싱가포르에서 잘 마칠 수 있었습니다. 내일은 다시 비행기를 타고 북쪽으로 이동해 말레이시아의 수도 콰알라룸푸르로 갑니다. 콰알라룸프르에서 또 소식 전해드리겠습니다.nbspnbsp ▼nbsp법륜 스님의 세계 100회 강연, 지난 날짜 소식 보기

2014.12.04. 50,524 읽음 댓글 57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