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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1.29 알라원_필리핀JTS 사업장 방문 2일째
▲ 필리핀JTS가 알라원 마을에 세운 학교nbsp안녕하세요. 오늘은 필리핀JTS의 구호활동이 펼쳐지고 있는 사업장 중에 하나인 알라원 마을을 방문하는 날입니다. 알라원 마을은 해발 1800미터 고지의 산속 깊숙한 곳에 위치해 있어 차량으로 이동할 수 없고 JTS 센터에서 왕복 6시간 동안 산행을 해야 다녀올 수 있는 곳입니다. 어제 스님께서 “알라원 마을로 가는 길은 민다나오 전체 사업장 중에서 가장 힘든 코스 중에 하나”라고 얘기하셔서 살짝 긴장감을 가진 채 오늘 하루를 시작했습니다. nbspnbsp새벽4시 JTS 센터 3층 강당에 모인 일행은 108배와 명상을 하며 어제 하루를 돌이켜보고 자신의 마음을 살펴보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nbspnbspnbsp기도를 마치고 재빨리 나와 간단히 세수만 하고 새벽 5시20분에 알라원 마을을 향해 출발했습니다. 아직 해가 뜨지 않아 조심히 발을 딛으며 30분 정도 새벽길을 걷다보니 저 멀리 산 위로 붉은 기운이 꿈틀거리기 시작했습니다. nbspnbspnbsp큰 길을 조금 걷다가 본격적인 산길이 시작되었는데, 산길로 들어서니 울창한 나무와 식물들이 빼곡한 원시 자연 그대로의 정글을 만날 수 있었습니다. 새벽녘이여서 그런지 물기가 촉촉해 바위가 미끌미끌 했습니다. 오르막과 내리막이 반복되는 가운데 행여 미끄러질까봐 온 신경을 발에 집중하며 한발 한발 걷고 걸었습니다. 1시간 정도 걷고 나니 벌써 온몸이 땀에 젖고 얼굴에도 쉼없이 땀이 흘러 내렸습니다. 비가 자주 온다고 하길래 옷이 젖을 각오는 했지만 이미 온몸은 땀으로 흥건해져 버렸습니다. 스님께서는 진흙탕에 신발이 푹푹 빠지는 일행의 모습을 보시며 “이런 곳을 정글이라고 한다”고 하시며 웃으셨습니다. nbspnbspnbsp nbspnbsp땀을 비오듯이 흘리며 한참을 걷고 있는데, 스님께서 “오늘 같은 날은 다리가 얼마나 소중한 줄 알 수 있지?” 하시며 “다리야, 고맙다” 라고 하셨습니다. 그래서 뒤돌아보니 “여기 내 다리 좀 봐라” 하셨습니다. 신발과 행건에 진흙이 가득 묻어 있었지만, 스님의 얼굴은 어느 때보다 해맑게 웃고 계셨습니다. nbspnbsp▲ 진흙 범벅이가 된 스님의 신발과 행건nbsp한참을 걷고 나니 물소리가 가까이에서 들리고 금새 계곡이 나타났습니다.nbspnbspnbsp시원한 계곡에 손을 담궈 세수도 하고 땀도 식힌 후 가방에 넣어 온 주먹밥을 아침식사로 맛있게 먹었습니다. 땀을 흠뻑 흘리고 난 후 먹는 주먹밥이여서 그런지 꿀맛이었습니다. nbspnbsp▲ 나뭇잎을 접시로 삼아 주먹밥으로 아침 식사를 하고 계신 스님nbsp주먹밥을 먹은 후 다시 산행은 계속 되었고, 한참을 다시 걸어가니 커피 나무가 곳곳에 군락을 이루고 있는 모습이 보였습니다. 붉은 색으로 변해 바닥에 떨어져 있는 커피 열매도 보이고, 나뭇가지 마다 커피 열매가 주렁 주렁 매달려 있는 모습도 보았습니다. nbspnbsp▲ 길쭉한 나무들이 모두 커피 열매가 열리는 나무들nbspnbsp다시 한참을 걸어가니 작은 다리 하나가 나왔습니다. 중간에 발판으로 삼은 대나무가 조금 깨어진 것을 제외하고는 너무나 잘 지어져 사용되고 있었습니다. 이곳 다리 공사를 총괄한 필리핀JTS 자원활동가 이재곤님은 “이 다리를 짓기 위해 마을 주민들은 이렇게 거칠고 먼 길을 매일 같이 왕복하며 건축 자재들을 손수 다 들고 날랐다” 고 알려 주었습니다. 그러자 스님 일행 모두 감탄사를 연발했습니다. 빈손으로 걷기만 하는데도 이렇게 힘든데 건축 자재들을 다 손으로 들고 날라서 다리를 지었다니 모두들 놀라움을 금치 못했습니다.nbspnbsp▲ JTS에서 마을 주민들을 위해 놓아준 다리.nbspnbsp▲ 다리 공사를 맡았던 필리핀JTS 활동가 이재곤님.nbspnbsp다리를 지나니 이제 알라원 마을이 점점 가까워져 옴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산행을 시작한지 벌써 2시간30분이 넘어가고 있었고, 앞으로 30분만 더 가면 마을이 나온다는 얘기가 일행 사이에서 들려오기 시작했습니다. 드디어 산행을 시작한지 3시간째인 8시20분 경에 알라원 마을 전경이 한눈에 펼쳐졌습니다.nbspnbsp▲ 알라원 마을 학교 전경.nbsp알라원 마을에 도착한 스님께서는 제일 먼저 아이들과 악수를 나누고 함께 사진을 찍으셨습니다.nbspnbspnbsp그러자 마을 리더인 아넬이 이 모습을 보고 맨발로 뛰쳐 나와 스님을 끌어 안으며 너무가 기뻐했습니다.nbspnbsp▲ 알라원 마을의 리더인 ‘아넬’nbsp아이들은 오랜만에 이곳에 오신 스님을 기쁜 마음으로 반겼습니다. 순박한 웃음을 띠며 스님을 바라보는 모습이 너무나 천진난만하기만 했습니다.nbspnbspnbsp마을 주민들은 고구마와 따뜻한 커피를 준비해 와서 스님 일행을 정성껏 접대해 주었습니다. 스님께서는 고구마와 커피를 맛있게 드시고 교실 안으로 들어가셔서 마을 주민들과 학교 운영 방안에 대해 회의를 하셨습니다.nbspnbsp▲ 마을 주민들과 학교 운영에 대해 논의하시는 모습nbsp현재 알라원 마을에 세워진 학교는 운영이 되지 못하고 있습니다. 마을 주민들 모두 이 학교를 짓느라 정말 고생을 많이 했지만, 정작 아이들을 가르칠 수 있는 선생님들이 오랫동안 근무하지 못하고 다 가버려서 현재는 학교가 열리지 않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스님께서는 아이들의 등교 현황과 연령대 등을 두루 살펴보시고, 학교에 선생님을 데려올 수 있는 방법에 대해 주민들과 같이 이야기를 나누셨습니다.nbspnbsp“제가 온지가 3년이나 4년 정도가 되었지요? 지금 학교 운영이 안된다면서요? 지금 아이들은 어떻게 하고 있어요? 저 아래 실리폰에 내려보내서 공부 시키는 아이가 몇 명 정도 돼요?”nbspnbsp“14명 정도 됩니다.”nbspnbsp“그럼 여섯 살부터 열두살까지는 학교를 다녀야 하는데 학교를 못 다니는 아이들이 동네에 몇 명 정도 돼요?”nbspnbsp“30명 정도 있습니다.”nbspnbsp“학교를 운영하면 다닐 수 있는 아이가 30명 정도 되네요. 마을 젊은이들 중에서 아이들을 가르칠 수 있는 사람이 없어요?”nbspnbsp“고등학교 졸업한 친구가 딱 한명 있는데 실리폰에 살고 있습니다.”nbspnbsp“실리폰에서 학교를 다니고 있는 아이들은 어떻게 다니고 있어요?”nbspnbsp“실리폰에 있는 친척집에 머무면서 주말에만 이곳 알라원으로 왔다 갔다 하고 있습니다.”nbspnbsp“실리폰에 있는 학교를 다니는 14명 중에 혹시 1학년부터 6학년까지 각 학년별로 몇 명이 있어요?” nbspnbsp“2학년에 4명, 3학년에 6명, 4학년에 4명 총 14명입니다.”nbspnbspnbsp“지금 1학년은 없고 2,3,4학년만 있는 것은 알라원에 학교가 운영될 때는 여기서 다니다가 학교가 문을 닫으니 실리폰으로 내려보낸 것 같네요. 1학년은 학교가 문을 닫으니 아예 없는 것이고요. 5,6학년이 없는 이유는 그 때는 알라원에서도 학교가 없을 때였기 때문이고요. 학교가 없을 때는 아이들을 아예 공부시킬 생각을 안했는데, 학교가 있다가 스톱이 되니까 아이들이 계속 학교를 가고 싶어해서 부모가 실리폰으로 아이들을 보냈다는 얘기거든요.”nbsp“지금 제 아이는 실리폰에서 학교를 다니고 있지만 너무 멀어서 힘들어요. 이곳에 학교가 다시 운영되면 이곳에 아이를 보내고 싶어요.”nbspnbsp“그럼 실리폰에 있는 학교에도 못 보내고 여기 학교도 못가고 집에만 있는 아이들은 누구인지 손을 한번 들어보세요.”nbspnbsp“30명입니다.”nbspnbspnbsp“자, 그럼 30명의 이름을 부를테니 몇 살인지 알려주세요. 라에다? 전에는 학교에 다녔는데 지금은 못 가고 있어요? 어머니는 누구예요? 바리겔리또? 몇 살? 여기 학교에 다닌 적은 있었어요? 부모는 누구예요?”nbspnbsp이렇게 스님께서는 30명의 아이들 한명 한명의 이름을 호명하며 일일이 다 확인하고 나이도 체크하고 부모가 누구인지 점검을 하셨습니다. 스님의 몇가지 질문으로 인해 순식간에 마을 아이들의 상황이 한눈에 파악이 되었습니다.nbspnbsp▲ 아이들의 이름과 나이, 부모를 꼼꼼히 체크하시는 스님nbsp이곳 알라원 마을에 선생님들이 안오는 이유는 첫째, 이곳까지 오는 게 너무 힘들고, 둘째 여기서 살면 젊은 선생님들은 많이 외로워한다고 합니다. 게다가 이곳 학교는 정부 학교로 등록이 안되어 있어서 정부에서 파견을 받을 수가 없는 어려운 점도 있는 상황입니다. 정부의 정책이 이곳 주민들이 여기에 못살도록 이주시키는 것이 목표이기 때문이라고 합니다.nbspnbsp스님께서는 다시 JTS 스텝들을 모아놓고 마을 주민들의 의견을 들은 후 스님의 의견을 공유해 주셨습니다.nbspnbsp“제가 생각할 때는 1,2,3,4학년까지는 여기서 문맹 퇴치 정도만 가르치고, 5,6학년이 되어서 선생님이 혼자서 도저히 못가르치는 것은 실리폰으로 내려보내서 거기에 작은 방을 마련해주고 JTS에서 급식을 지원해주든가 하면서 거기서 배울 수 있도록 하는 방식을 고려하는 게 필요할 것 같아요.nbspnbsp그런데 이것도 아이들을 위해 정말 잘하는 것인지 아직 몰라요. 공부를 안 하면 이 동네에서 계속 살 수 있는데, 배웠다 하면 이 동네에서 못 살고 나갈 궁리를 하게 되거든요. 배우면 막노동은 안하게 되고 직장은 쉽게 못 구하고 소비 수준은 높아져서 핸드폰을 구하고 싶어하고, 집안에서 골칫거리가 되거든요. 문맹 퇴치라는 측면에서는 좋은데 딱 문맹만 퇴치하고 포기해버리면 되는데 중학교, 고등학교까지 가르쳐주다보면 아이들이 겉멋이 들어서 안좋게 되는 경우도 생기더라구요.”nbspnbsp아이들을 계속 공부시켜주는 것이 진정으로 이 아이들을 위해 잘하는 것인지 아직은 잘 모른다는 말씀에 공감이 갔습니다. 스님께서는 아이들의 문맹을 퇴치하면서 가난한 부모의 삶도 존중하는 어른으로 아이들을 키우기 위해 어떤 교육 환경을 마련해주면 좋을지 다각도로 고민하고 계셨습니다. 이어서 스님께서는 학교에 선생님을 데려오는 방안, 학교 외에 주민들의 경제적 자립을 위해 할 수 있는 일 등에 대해 계속 의견을 수렴해 나가셨습니다.nbspnbspnbsp“학교 선생님이 여기 파견되었는데 여러분들이 생각하기에는 왜 여기 오래 못 있고 그냥 가버리는 것 같아요?”nbspnbsp“여기까지 오는 것이 너무 힘듭니다. 길이 험합니다. 그리고 외로워합니다. 저녁이 되면 할 것이 없어서 외로워합니다. 그게 가장 힘든 점입니다.”nbsp“그래도 누군가는 이 아이들이 글을 쓰고 읽을 수 있게는 가르쳐야 하지 않겠어요? 정식 학교가 아니더라도 말이죠. 또 더하기 빼기 곱하기 나누기는 할 수 있어야 하지 않겠어요? 정부에 가서 요청했을 때 왜 선생님 파견을 안해준다고 해요?”nbspnbsp“그 이유를 모르겠어요.”nbspnbsp“그러면 여러분들은 이 학교가 운영되기를 원하세요?”nbspnbsp“ 간절히 원합니다.”nbspnbsp“여러분들이 이 학교를 지을 때 정말 고생을 해서 지었습니다. 그것은 이 아이들을 공부시키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지금 학교가 운영되지 않으니까 여러분들이 한 노력이 성과가 무용지물이 되고 있습니다. 그때 스님이 여러분께 ”교육청에 가서 우리는 선생님을 원한다고 간절히 요청해 보라“고 얘기한 적이 있습니다. 그런데 여러분들이 그렇게 노력했음에도 불구하고 선생님이 있다가 없다가 하기 때문에, 앞으로 요청해도 안 될 것 같아요?”nbspnbsp“같은 문제가 되풀이 될 것 같습니다.”nbspnbsp“그러면 제가 선생님이 파견될 수 있도록 노력하겠습니다. 대신 선생님이 여기 오면 여러분들이 좀 잘 보호해줘야 합니다. 어쨌든 선생님을 3개월 안에는 파견하도록 노력해 보겠습니다.nbspnbsp“감사합니다.” nbspnbspnbsp“그 외에 마을에 필요한 것은 무엇이 있어요?”nbspnbsp“다리가 대나무로 되어 있어서 위험합니다. 소가 다닐 수 있게 바닥만 좀 교체해 주세요. 가능하면 철판으로 깔았으면 좋겠습니다.”nbsp“철판으로 까는 것은 다리 무게 때문에 어렵습니다. 더 의논해서 무게가 가능한지 기술적으로 검토한 후에 진행하겠습니다. 철근이 안된다면 대나무가 아닌 통나무로 한다든지 방법을 연구해 보겠습니다.nbsp커피는 1년에 얼마가 생산이 돼요?”nbspnbsp“예전에 3000kg까지 생산한 적이 있는데 지금은 500kg 정도 생산합니다. 시장에서는 1kg에 80페소 정도 합니다.”nbsp“시장에서 kg당 얼마쯤 받아야 수입이 좀 돼요?”nbspnbsp“100페소 정도 받으면 여유가 좀 생길 것 같아요.”nbspnbsp“그런데 커피 나무가 너무 늙어보이던데 커피 나무를 새로 심으면 안돼요?”nbspnbsp“지금 하고 있습니다.”nbspnbsp“그러면 현금 수입이 될 수 있는 것이 커피 말고 다른 것은 무엇이 있어요?”nbspnbsp“카사바나 고구마가 있는데 무거워서 갖고 내려가기가 힘듭니다. 시장에 내다 팔기 가장 좋은 것은 들기 가벼운 커피와 아바카입니다. 바구니를 만드는 라탄도 수입에 도움이 됩니다. 그런데 라탄을 채취해 가는 것을 정부가 못하게 합니다.”nbsp“자, 그럼, 첫 번째는 학교 운영이고 두 번째는 다리 보완, 이렇게 해서 시작해 봅시다. 다른 것들은 이 두 가지를 먼저 해결한 후에 다시 얘기합시다.” nbspnbsp주민들은 스님의 대답을 듣고 너무나 기뻐하면서 박수를 쳤습니다. 주민들이 기뻐하는 모습을 보니 가슴이 짠해지고 울컥한 마음이 들었습니다.nbspnbspnbspnbsp이어서 스님께서는 마을 주민들과의 미팅을 모두 마치고 손수건 한 장씩을 주민들에게 선물하고, 아이들에게는 사탕을 선물했습니다.nbspnbsp▲ 주민들에게 손수건을 나눠주시는 스님nbsp주민들은 스님께서 나눠준 손수건을 받아들고 너무나 기쁜 나머지 손수건을 들고 그 자리에서 덩실덩실 춤을 추었습니다. 스님께서도 마을 주민들과 금새 동화가 되어 같이 어깨를 들썩이며 덩싱덩실 춤을 추셨습니다. nbspnbspnbspnbsp학교를 나와서 알라원 마을 주민들과 작별인사를 하면서 다함께 기념사진을 찍었습니다.nbspnbspnbsp원래 9시30분에 알라원에서 출발하려고 했으나 주민들과의 대화가 길어져서 10시20분이 되어 산에서 내려오기 시작했습니다. 시간이 많이 지체되어서 이후 일정에 차질이 생길 것을 염려한 스님께서는 거의 뛰어가다시피 하면서 산을 내려가셨습니다. 그래서 올라갈 때는 3시간이 걸렸는데, 내려올 때는 2시간 10분만에 내려올 수 있었습니다.nbspnbsp알라원 마을에서 JTS 센터로 내려가는 길에는 유독 대나무가 많이 보였습니다. 여러 대나무들이 옹기종기 모여서 하늘 높이 솟아올린 모습을 보니 절로 입이 벌어지기도 했습니다. nbspnbsp▲ 대나무 숲nbsp내려가는 길 역시 올라가는 길 못지 않게 만만치 않게 땀이 비오듯이 흘러 내렸습니다. 스님께서는 지난 6개월 동안 세계 100회 강연을 다니시며 운동을 거의 하지 못했는데, 이번에 왕복 6시간이라는 무리한 산행을 하셨는지 거의 다 내려와서 다리에 쥐가 나신다며 조금씩 천천히 걷기 시작하셨습니다.nbspnbspnbsp산을 내려오는 도중 해가 뜨면서 정글 속은 조금씩 열기로 채워지고 다시한번 땀이 비오듯이 쏟아졌습니다. 스님께서는 수건으로 땀을 닦으시며 “부자거나 지위가 높은 사람들은 이렇게 좋은 경험을 못해보겠지?” 라고 하시면서 원시 자연의 아름다움을 만끽하셨습니다.nbspnbspnbsp드디어 12시30분에 JTS센터에 도착하신 스님께서는 흙이 가득 묻은 신발과 행건, 양말을 벗으셨는데, 양말을 뚫고 거머리가 들어와서 스님의 피를 빨아먹은 것을 발견하기도 하셨습니다. 스님 뿐만 아니라 현희련 JTS 사무국장님은 거머리 6마리에게 물려서 다리에 피가 흥건했고, 카메라 촬영을 하는 이준길 법우도 거머리에 물려 피를 보았는데, 스님께서는 “한국에서 온 사람들만 거머리가 물은 것 같다” 며 “절에 사는 우리는 고기 맛도 안날텐데 왜 물었을까?” 하시며 농담을 하셨습니다. 그리고 황순태 한국국제학교 교장선생님은 3번이나 넘어져서 엉덩방아를 찍었다고 하고, 문경수련원에서 오신 안병주님도 바위 위에 크게 엉덩방아를 찍는 등 많은 분들이 산행을 하는 동안 온갖 고초를 겪었다며 일화를 들려주었습니다.nbspnbsp▲ 신발을 벗고 거머리를 떼어내고 계신 스님nbspnbsp그리고 1시간 뒤에 맨 마지막 일행이 JTS센터로 들어오자 스님께서는 “모두들 수고 많았다”고 격려해 주시면서, 식당에 모인 일행들과 다함께 점심 식사를 하셨습니다.nbspnbsp식사 후에는 원래 JTS 센터 기숙사 준공식이 예정되어 있었으나 스님께서 건물이 잘 지어졌는지 꼼꼼히 답사를 해 보시더니 “아직 건물이 완공되지 않은 부분이 많이 있다”고 하시면서 “완공을 한 다음에 준공식을 하자”고 하셔서 준공식은 다음으로 연기가 되었습니다.nbspnbsp▲ JTS 센터 기숙사nbspnbsp준공식이 연기가 되는 아쉬움을 뒤로 하고 오후 3시20분에 센터를 출발해 마라막으로 향했습니다. 스님께서는 센터를 출발하기 전 민다나오 활동가 3명에게 “정말 수고가 많다”고 격려하시면서 함께 기념 사진을 찍고 새책 lt지금여기 깨어있기gt를 각각 사인해서 선물하셨습니다.nbspnbsp▲ JTS센터 앞에서 민다나오 활동가 3명과 함께. 왼쪽부터 박영일, 이재곤, 김희자.nbspnbsp센터를 나와 마라막으로 향하는 길에 델몬트에서 운영하고 있는 거대한 규모의 파인애플 농장을 구경할 수 있었습니다. 파인애플 농장은 끝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광범위하게 펼쳐져 있었습니다. 그리고 길가에 옥수수 밭을 보니 어떤 곳은 추수를 끝냈는데, 어떤 곳은 새로 심어서 자라고 있는 등 일년 내내 농사를 지을 수 있을 정도의 풍요로운 땅임을 눈으로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nbspnbsp▲ 델몬트에서 운영하고 있는 거대한 규모의 파인애플 농장nbsp센터를 출발한 스님 일행은 오후 4시 무렵 마놀로폴티치를 경유하고, 오후 5시 20분 무렵 말라이발라이를 경유하여 저녁 7시에 오늘 하룻밤 머무를 숙소가 있는 마라막에 도착했습니다. 마라막으로 오는 길에 스님께서는 알라원 학교 운영과 마을 주민 지원 사업에 대해 이원주 대표님, 김희자님과 함께 한번 더 의견을 나누셨습니다. 스님께서는 “알라원 학교 운영을 위해 선생님을 구하는 방법은 첫째, 민다나오의 인근 대학에서 대학생들이 봉사활동 프로그램의 일환으로 교사를 하도록 하는 방법이 있는데 이것은 문맹퇴치만 할 수 있지 정식 학교교육으로 인정을 받지는 못한다는 단점이 있고, 둘째, 알라원 마을 주민 중에 고등학교를 나온 한 명의 친구가 교사 역할을 하는 방법이 있는데 이 경우는 아이들이 선생님을 얕보는 단점이 있다” 라고 하시면서 조금 더 고민을 해볼 것을 제안하셨습니다.nbspnbsp그리고 스님께서는 “마을 주민들의 소득 향상을 위해서는 환금성 작물로 커피 나무를 집집마다 심도록 지원해주어서 최소 100페소를 보장해 주고 시장가격이 100페소 이상이면 시장가격보다 10페소 정도 더 높게 JTS에서 구입해줘서 소득을 보장해주면 좋겠다”고 제안해 주셨습니다. 특히 “커피의 경우 가벼워서 알라원과 같은 산간마을에서 운반이 편리하고, 또 한국에서도 커피는 수요가 많아서 정토회에서 공정 무역이라는 형식으로 구매를 연결시켜 주면 소비가 될 수 있을 것” 이라고 하시면서 커피 나무를 지원해주는 방안을 적극 검토해 볼 것을 이야기해 주셨습니다. nbspnbsp▲ 말라이발라이nbspnbsp저녁7시30분부터 마라막 숙소에 있는 식당에서 필리핀JTS 이원주 대표님이 사주신 저녁식사를 맛있게 먹은 후 오늘 일정을 모두 마쳤습니다. 스님께서는 계속 오후 불식을 하고 계셔서 저녁식사는 하지 않으시고 간단히 물과 음료만 드셨습니다.nbspnbsp스님께서는 9시 무렵 숙소로 오셔서 한국에서 보내온 이메일을 체크하시고, 전화를 통화를 하시면서 여러가지 업무들을 처리하시다가 오늘 일과를 모두 마치셨습니다.nbspnbsp내일은 오전6시에 다물록으로 출발하여 JTS가 신축한 보건소와 고등학교의 운영실태를 둘러보신 후 정부 반군인nbsp무슬림해방전선의 본거지nbsp마긴다나오에서 vice president와 미팅 및 식사를 하시고, 저녁에는 송코에 도착해서 추장인 타투와 미팅을 가지실 예정입니다. 내일 또 생생한 소식을 전해드리겠습니다.nbspnbsp
2015.1.28 민다나오 센터 도착_필리핀JTS 사업장 방문 1일째
▲ 민다나오 라긴딩안 공항에 도착nbsp안녕하세요. 오늘부터 2월6일까지 9박10일 동안 스님께서는 필리핀JTS 사업장을 직접 방문하고 둘러보실 예정입니다. 오늘은 하루 종일 비행기를 타고 한국에서 민다나오의 JTS 센터까지 들어가는 일정입니다.nbspnbspJTS는 스님께서 1991년 인도성지순례를 하시다가 가난한 나라의 열악한 현실을 보시고 국제 기아 질병 문맹 퇴치를 서원하고 1993년에 설립하신 구호단체입니다. 그 중 필리핀JTS는 2002년 스님께서 아시아의 노벨평화상이라고 불리우는 막사이사이상 평화와 국제이해 부문을 수상한 인연으로 그 뜻에 보답하기 위해 필리핀 지역에서 가장 열악하며 분쟁이 빈번한 민다나오 지역에서 구호활동을 시작하면서 설립되었습니다.nbspnbsp필리핀 사업장에 구호물품으로 가져갈 짐을 이민 가방에 가득 담아 차량에 싣고, 새벽 5시에 서울 정토회관을 출발한 스님께서는 인천공항에서 출국 수속을 밟으신 후 아침 8시10분 비행기로 필리핀 마닐라로 출발했습니다. 4시간의 비행 끝에 시차 1시간을 포함하여 현지 시간으로 11시10분에 마닐라 공항에 도착했습니다. 짐을 찾아 나오는 과정이 조금 오래 걸려서 12시10분이 되어서야 공항을 간신히 나오니 필리핀JTS 이원주 대표님과 필리핀정토회 윤경숙 총무님이 반갑게 스님 일행을 맞이해 주셨습니다. nbspnbsp오후2시20분에 가가얀데오로로 향하는 비행기를 타야 해서 시간이 조금 빠뜻한 듯 했지만 필리핀정토회 한금화 대표님이 국수를 정성껏 준비해 주셔서 대표님 댁에 들러 식사를 하고 공항으로 출발했습니다. 그런데 공항 바로 앞에서 주차장을 방불케 할 정도로 차가 막혀 비행기를 놓치지 않을까 노심초사 했는데, 1시50분이 넘어서 간신히 공항에 들어갈 수 있었습니다.nbspnbsp▲ JTS 민다나오 사업장으로 가져갈 짐을 부치는 스님 일행nbsp마닐라 공항에는 필리핀 정토회의 이규초님, 김명옥님과 필리핀JTS에 책걸상을 지원해 주신 한국국제학교 황순태 교장선생님이 미리 도착해 스님 일행과 함께하기 위해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nbspnbspnbsp민다나오 구호물자로 가져가야 하는 짐이 이민가방 5개, 박스 5개나 되어서 수하물을 부치는데 시간이 조금 걸렸지만 2시 20분에 출발한 가가얀데오로행 비행기에는 무사히 탑승할 수 있었습니다. 스님께서는 늘 그러시듯이 비용을 절약하기 위해 저가항공을 타고 이동하시는데, 혹시나 해서 생수 한병을 달라고 스튜어디스에게 부탁했더니 50페소를 내어야 한다는 대답이 돌아왔습니다.nbspnbsp▲ 비행기 창문 밖으로 보이는 것이 민다나오 섬nbsp스님께서는 공항에서 대기하며 비행기를 타신 후에도 틈틈이 아이패드로 한국에서 보내온 메일을 점검하시거나 바랑에 챙겨오신 문서들을 읽으시며 업무를 보셨습니다.nbspnbsp▲ 비행기 안에서 업무를 보고 계신 스님nbsp1시간 30분의 비행 끝에 민다나오 섬의 라긴딩안 공항에는 조금 연착하여 오후4시10분에 도착했습니다.nbspnbsp▲ 민다나오 라긴딩안 공항에 도착한 스님 일행nbsp짐을 모두 찾아 나오며 이번 9박10일 동안 필리핀 사업장 방문을 함께 동행할 일행 모두가 함께 기념사진을 찍었습니다.nbspnbsp▲ 왼쪽부터 한국JTS 현희련 국장님, 황순태 한국국제학교 교장선생님, 문경정토수련원 산림팀장 안병주님, 필리핀정토회 김명옥님, 한금화님, 법륜 스님, 이규초님, 필리핀JTS 이원주 대표님, 최말순님. nbspnbsp리긴딩안 공항을 나오니 필리핀JTS 활동가 김희자님이 차량을 대절하고 나와 스님 일행을 반갑게 맞이해 주었습니다. 스님께서는 김희자님에게 “수고가 많다”며 악수를 건내고 격려도 해주셨습니다.nbspnbsp▲ 필리핀JTS 김희자님 nbspnbsp차량에 짐을 싣고 가는데 JTS가 운행하는 차량에는 뒤에 JTS 로고가 박힌 현수막을 붙이고 있어서 참 재미있어 보였습니다.nbspnbspnbsp짐을 모두 싣고 가가얀데오로를 경유하여 2시간30분을 달렸습니다. 해가 지고 컴컴한 산길을 덜컹거리며 한참을 지나 저녁 7시에 필리핀 JTS 민다나오 센터에 도착했습니다. 담장이 쳐져 있는 넓은 공터로 들어오니 전기 불빛이 들어오는 3층 건물이 모습을 드러내었습니다.nbspnbsp▲ 필리핀JTS 민다나오 센터nbsp일행 모두 배정된 숙소에 짐을 풀고 1층 식당에 모여 저녁식사를 함께한 후 필리핀JTS 김희자님으로부터 민다나오에서의 전체 일정에 대해 브리핑을 받았습니다. 산행을 힘들게 해야 하는 일정들이 있어서 체력이 약하신 분들은 산행을 할 때는 JTS센터에 쉬기로 하고, 이동 중에 도시락은 어떻게 준비해서 갈지 등 세부 사항들을 의논한 후 9시 무렵 오늘 일정을 마쳤습니다.nbspnbsp▲ 민다나오에서의 일정을 브리핑해 주고 있는 김희자님nbsp스님께서는 식당 한쪽 구석에 놓인 원두 커피를 보시곤 알라원 마을의 커피 생산 현황에 대해 김희자님에게 물어보셨습니다. 김희자님은 “알라원 마을에서는 연간 많게는 1000kg, 적게는 300kg 정도의 커피가 생산되는데, 최근 외국계 커피 회사가 농장을 구입하여 kg당 60페소에 원두를 구입해 가고 있다”고 알려주었습니다.nbspnbsp▲ 필리핀JTS에서 구매한 알라원 마을의 원두 커피nbsp스님께서는 “JTS에서 마을 주민들을 위해 외국 회사보다 조금 높게 커피를 구입해 주면 좋겠다”고 제안을 해주셨는데, 김희자님은 “얼마 전에 마을 주민들로부터 60페소 보다 많은 80페소에 원두를 구입했다” 고 대답해 스님께서도 고개를 끄덕이셨습니다. 그러면서 스님께서는 “집집마다 커피 나무를 재배하도록 하면 어떤지?” 의견을 물어보시기도 하셨는데, 마을 주민들의 경제적 자립을 위해 많은 고민을 하고 계심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특히 알라원에서 생산되는 원두는 이곳 사람들이 농약을 살 돈이 없어 무공해로 원두가 생산되고 있는데, 청정한 원료를 찾는 분들이나 공정 무역에 관심 있는 분들을 위해 한국에서도 수요가 많이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nbspnbsp오늘은 이렇게 하루 종일 한국에서 민다나오 JTS 센터까지 이동하면서 길에서 시간을 보냈습니다. 내일은 새벽 5시10분부터 센터에서 알라원 마을까지 왕복 6시간 동안 산행을 해야 하고, 또 먼 길을 달려온 터라 여독을 풀기 위해 모두들 일찍 휴식을 취했습니다. 스님께서도 업무를 더 보시다가 원고 교정을 보신 후 잠자리에 드셨습니다.nbspnbsp내일은 오전에 알라원 마을을 방문하고, 오후에는 JTS 농업기술훈련센터 기숙사 준공식을 한 후 마라막으로 이동할 예정입니다. 내일 또 생생한 소식 전해드리겠습니다. nbspnbsp
2015.1.27 성도재일 기념법회
nbsp안녕하세요. 오늘은 부처님께서 출가하신 후 전정각산에서 6년의 고행 끝에 마침내 깨달음을 얻으신 것을 기념하는 성도재일 법회가 있는 날입니다.nbspnbsp전국의 정토법당에서는 어젯밤 9시30분부터 오늘 새벽 6시까지 많은 분들이 철야 정진을 했습니다. 영상으로 스님의 법문을 들으며 밤새 정진을 하신 분들은 유미죽을 간단히 먹고 새벽 5시에 천일결사 정진을 마친 후 부처님처럼 동쪽 하늘에 뜬 샛별을 보며 각자의 집으로 귀가하였습니다.nbspnbsp그리고 스님께서 머무시고 계신 서울 정토회관에서는 오늘 아침 9시부터 10시까지 50여명의 정토행자들이 1시간 동안 300배 정진을 하는 등 성도 재일의 의미를 자신의 수행을 돌아보는 계기로 삼고자 하는 열기가 가득했습니다.nbspnbsp▲ 스님의 법문을 듣기에 앞서 300배 정진을 하고 있는 서울정토회 대중들nbspnbsp300배 정진의 후끈한 열기가 다 빠져나가기 전에 곧바로 이어서 10시부터 삼귀의 반야심경을 시작으로 성도재일 기념법회가 시작되었습니다. 오랜만에 스님의 직강을 듣기 위해 서울 정토회관에는 300여명의 대중들이 자리를 가득 메워 부처님 성도의 뜻을 가슴에 새겨보고자 귀를 쫑긋 세우고 스님의 법문을 경청했습니다.nbspnbsp스님께서는 부처님께서 출가하여 6년 간 고행 끝에 마침내 성도에 이르는 과정을 경전의 기록을 근거로 자세하고 구체적으로 들려 주신 뒤 부처님의 삶을 통해 우리들은 무엇을 배울 수 있는지 법문을 해주셨습니다.nbspnbsp“오늘은 부처님께서 6년 고행 후 마침내 깨달음을 얻고 부처님이 되셨다고 하는 성도재일입니다. 올해가 불기 2559년, 부처님이 성도 후 45년에 열반에 드셨으니 지금으로부터 2604년 전의 일입니다.nbspnbsp부처님은 룸비니에서 태어나 29살 되던 해에 인간의 참자유과 참행복 즉, 모든 속박에서 벗어난 해탈과 모든 괴로움이 사라진 경지인 열반을 얻기 위해 왕위를 버리고 출가하셨습니다. 부처님은 당시 인도 대륙에서 가장 큰 나라, 마가다국의 수도인 왕사성으로 가셔서 두 분의 스승을 만나 부지런히 정진하여 스승의 경지에까지 이르렀지만 그것은 완전한 해탈이 아님을 깨닫고 스승의 곁을 떠나 ‘가야’라고 하는 곳에 이르렀습니다. 당시 시체를 버리는 곳이었던 가야 근교의 시타림인 전정각산 아래에서 목숨을 걸고 정진을 하셨습니다. 더위와 추위, 벌레 등에 아랑곳 하지 않고 식음도 전폐하다시피 해서 갈비뼈가 드러나고 뱃가죽이 등허리에 달라붙어 얼핏 보면 죽은 사람 같았습니다. 천민 아이들이 숲속에서 부처님을 보고 ‘저 사람이 살았나, 죽었나’ 하며 막대기로 때리고 찌르고 할 정도였습니다. 죽음이 눈앞에 어른거릴 정도로 그렇게 무려 6년이나 고행을 했지만 깨달음을 얻지 못했습니다.nbspnbsp6년이 지난 뒤 가만히 자신의 지난 삶을 돌아보니 12살 때 새가 벌레를 잡아 먹는 것을 보고 ‘왜 하나가 살려면 하나가 죽어야 하는가’ 하며 염부수 아래에서 사색할 때 보다도 오히려 지금의 선정이 더 못한 수준인 것 같았습니다. 그래서 자신의 수행을 자세히 점검해보니 세속에 살 땐 욕망을 좇아서, 먹고 싶으면 먹고, 자고 싶으면 자고, 그러면 기분이 좋아지는 그것을 행복으로 삼았습니다. 우리들도 기분 좋은 걸 추구하며 그것을 행복이라고 생각하고 있지요. 그러나 욕망이 채워지면 그 만족감이 지속되지 않고 욕망이 계속 커집니다. ‘1억만 있음 좋겠다’ 생각했는데 1억이 들어오면 ‘아이고, 저 사람은 10억이 있네’ 하면서 그렇게 크던 1억이 이제 별것 아니게 돼요. 이렇게 또 욕구가 일어나고 번뇌가 따릅니다. 그래서 즐거움을 행복으로 삼을 때 그 행복은 지속이 안돼요. 하나를 만족시키면 또 다른 괴로움이 생겨요. 그래서 욕망을 따라가면 완전한 행복에 이를 수 없습니다. 만족했다 불만족 했다가 이렇게 고락이 반복됩니다. 그것을 윤회라고 해요. 고락이 되풀이 된다는 것이지요. 여기 앉아 있는 것도 고락이 되풀이 돼요. ‘스님 직강이란다’ 하면 기분이 좋다가 한 시간이 넘어가면 ‘아 길다’, 두 시간 넘어가면 ‘아, 스님 말씀이 너무 많다’, 즐거움은 온데 간데 없고 괴로움만 남습니다. nbspnbsp결혼하면 행복할 것 같았는데 결혼하고 나면 결혼 때문에 괴롭고, 자식이 안 생겨서 괴롭다가 자식이 생기면 좋지만 오히려 그것이 또 괴로움이 되고... 정토회 와서도 마찬가지에요. 괴로워서 왔는데 정토회 와서 봉사하다가 괴로워진 사람이 많아요. ‘정토회만 안 나가도, 총무만 안 맡아도 살만한데...’ 이런 마음이 반복되는 겁니다. nbspnbspnbsp고락은 동전의 양면처럼 분리될 수가 없어요. 고락의 뿌리는 욕망이에요. 뿌리인 욕망으로부터 충족과 불충족이 생기고 이렇게 되풀이 돼요. 끝이 안나는데 우리는 늘 이것만 충족되면 끝날 것이라고 생각해요. ‘내 집만 마련하면 무슨 걱정이 있나’ 해도 그게 끝이 안나요.nbsp모든 고락의 원인은 욕망입니다. 욕망을 따라가면 평생 욕망의 노예가 됩니다. 그래서 욕망의 씨를 말려 용납하지 않아야 진정한 자유가 온다고 생각하고 부처님은 6년을 욕망과 싸웠습니다. 어떠한 욕망도 용납 안하는 심한 고행을 했는데 이것 또한 완전한 해탈에 이르지 못했습니다. 결국 욕망을 따라가는 것도 욕망의 노예이지만 욕망을 억압하는 것도 욕망의 노예라는 것을 깨달으신 것입니다. 욕망을 따라가는 것도 욕망에 대한 대응이고 거부하는 것도 욕망에 대한 대응입니다. 누가 손을 잡아 끌어당기면 끌려가는 것도 대응이지만 안가겠다고 버티는 것도 대응입니다. 현상은 정반대이지만 뿌리를 보면 같은 것이에요. 바로 이것을 발견한 것이 붓다의 위대함입니다. 욕구가 나쁘다고 정반대의 길로 갔는데 그 뿌리가 같다는 것을 발견한 것이 대단한 것이에요. 그 고행마저도 욕망의 대응이라는 것이지요.nbspnbsp우리는 하고 싶은 마음이 일어나면 두 가지 길 밖에 없잖아요. 하든지 아니면 참든지 말이죠. 다리가 아프면 펴든지 아니면 이를 악물고 참든지 이 두 길 밖에 없는데 이게 양 극단이에요. 이쪽 아니면 저쪽 두 길에 치우칩니다. 그러나 부처님께서 발견한 제 3의 길은 ‘알아차리는 것’입니다. 욕망을 욕망이라고 알아차리는 것. 다리에 통증이 있구나 하고 알아차리는 것. 그리고 이 알아차림을 찰나 찰나로 지속하는 것을 ‘지켜보기’라고 합니다. ‘담배가 피우고 싶다’ 하면 ‘담배 피우고 싶은 욕구가 올라오는구나’ 하고 다만 알아차릴 뿐이지 참는 것이 아닙니다. 긴장할 필요가 전혀 없어요. 이것은 고행이 아닙니다. 안한다는 면에서는 고행과 같지만 참지 않는다는 측면에서는 고행이 아닙니다. 양극단에 치우치지 않는 것을 ‘중도’라고 말은 하지만 이것을 제대로 아는 사람은 별로 없어요. 이것이 붓다가 발견한 완전히 새로운 방법이에요.nbspnbspnbsp무언가를 안한다 하는 것만으로는 수행이 아니에요. 단지 그것을 알아차리는 거에요. 붓다는 잘못된 길에 대해 반성하고 잘못된 길을 정확하게 분석해서 새로운 길을 발견한 것이지, 처음부터 쾌락주의에서 바로 중도를 발견했을까요? 아니에요. 여러번 시행착오를 거쳐서 새로운 길을 발견한 것이에요. 그것도 양쪽을 끝가지 가봤으니 알았지 중간쯤 갔으면 몰랐을 거에요.nbsp그러니 시행착오는 낭비가 아니에요. 잘못된 것을 확인했기 때문에 다시는 그 길을 갈 필요가 없어요. 아닌 것을 확인 할수록 제대로 가는 길을 발견할 확률이 높아집니다. 그런데 여러분은 이것을 낭비라고 생각합니다. 무턱대고 가는 게 아니라 최선을 다해서 갔는데도 길이 아니라는 사실을 알았다면 나쁜 게 아니에요. 큰 깨달음입니다. 우리는 아닌 것을 아닌 줄 모르는 게 대부분입니다.nbsp그렇게 온갖 번뇌와 유혹을 뛰어넘어 깨달음을 얻으신 날이 음력으로 12월 8일입니다. 여러분은 성도의 의미를 정확하게 알아야 합니다. 마음 속에서 모든 번뇌가 사라져 버렸어요. 우리는 무의식 즉, 자신의 까르마로부터 늘 영향을 받고 있어요. 그 모든 것들로부터 자유로워진 경지, 이것이 해탈과 열반의 경지입니다. 무의식에 지배를 안 받는 것은 아무런 편견이 없다는 거에요. 우리는 자유를 나 하고 싶은대로 하는 것인 줄 아는데 그게 아니라 주어진 어떤 상황에서도 두려움과 번뇌, 속박이 없는 상태가 해탈입니다.nbspnbsp부처님께서 이 좋은 법을 혼자만 간직하지 않고 우리에게 이렇게 하면 된다고 자세히 알려줬기 때문에 우리는 그 길을 가기가 무척 쉬운 겁니다. 그런데 우리는 그것도 싫다는 거에요. 부처님처럼 밥도 안먹고 잠도 안자고 옷도 안입고 들판에 혼자 있고 갈비뼈가 나오도록 그렇게 수행할 것을 요구하지 않잖아요. 먹지 말라는 것이 아니라 뭘 먹든지 그저 조금만 먹어서 배만 채우면 된다 이런 정도로 생각하면 먹는 것으로부터 자유로워집니다. 한 끼 굶었다고 괴롭지 않습니다. 시체 쌌던 옷을 주워 입으라는 것도 아니고 그냥 옷을 입으면 되지 명품에 좀 껄떡거리지 말라는 얘기입니다. 모양 색상에 껄떡거리지 마라 이거에요. 나무 밑이나 동굴에서 자라는 것이 아니라 집 평수와 모양에 껄떡거리지 마라 이런 얘기입니다. 맨발로 다니라는 것도 아니니까 그냥 발에 가시만 안 박히면 됐지 명품 구두 찾고, 구두 장사도 아닌데 집에서는 종류별 색깔별로 쫙 놔두고 그러지 말라는 거에요. 대중교통이든 자가용이든 타고 다니면 되지 더 폼잡고 타기 위해 돈 많이 들이고 하지 마라는 것입니다. nbspnbspnbsp자기 인생도 제대로 못 살아서 건강도, 돈도, 아이도, 시험도, 승진도, 이런 것들을 다 부처님에게 해달라고 하잖아요. 그러면 부처님께서 다 해주려면 여러분들이 도대체 노력하는 일은 뭐가 있어요? 동물들도 자기가 먹을 것 알아서 먹고 사는데 왜 인간이 그것을 남한테 해달라고 합니까? nbspnbspnbsp부처님의 법을 천분의 일만 알아도 ‘아 부처님은 안 먹고도 살았는데 이 정도면 됐지. 분소의를 입었다는데 이 정도면 되었지’ 하게 됩니다. 부처가 되겠다는 사람이 왜 부처님한테 해달라고 합니까? 붓다의 지혜를 조금만 살피면 얼마든지 자유롭고 행복하게 살 수 있어요.nbsp부처님의 성도는 우리에게 새로운 길을 열어놓으신 거에요. 여러분들이 조금만 어리석은 생각에서 벗어나면 삶을 만끽하며 자유롭게 그리고 세상을 유익하게 하면서 살 수 있습니다. 절에 오래 다닌다고 법문 많이 듣는다고 되는 게 아닙니다. 정말 생각이 탁 바뀌어야 합니다. 머리 안 깍아도 출가자의 마음을 내야 돼요. 그러면 세상이 혼탁한 것을 해결할 수 있어요. 그렇지 않으면 자기 생각에 빠져서 욕망의 세계에 갇혀 지옥의 불덩이 위에 사는 것과 똑같아요.nbspnbsp그러니 탁 내려놓으면 우리는 지옥으로 가도 행복을 누릴 수 있습니다. 제가 연초에 인터뷰를 하면서 ‘지옥가면 할 일도 많고 좋다. 벌 받아서 가면 고통스럽지만 지옥 중생을 불쌍히 여겨서 가는 것은 괜찮다’ 말했는데, 종교를 부정하는 것 같다고 야단들이더군요. 그러니까 덕 볼려고 하지말고 ‘내 인생 정도는 내가 알아서 살고, 내 주위에 조금이라도 도움주는 사람이 되자’ 이런 관점을 가지면 성도의 은혜, 붓다의 깨달음의 은혜를 마음껏 누릴 수 있습니다.nbspnbsp그러니 오늘 짧은 시간이라도 정진을 하세요. 복 비는 정진을 하지 마시고요. ‘나도 오늘 생각을 바꿔 살아야겠다. 까르마에 끌려 다니는 삶을 그만 살아야겠다’ 다짐 하는 기도를 하세요. 그러면 여러분의 삶에 큰 변화가 올 거에요. 성도의 은혜를 만끽하시기 바랍니다.” nbspnbsp부처님의 삶을 이야기하실 때는 부처님의 삶을 닮고자 하는 스님의 간절한 원이 느껴졌고, 껄떡거리지 말라고 누누이 강조하실 때는 대중들에 대한 진심어린 애정이 가득 느껴졌습니다.nbspnbsp스님께서는 대중들의 큰 박수를 받으며 퇴장하셨습니다. 잠시 자리를 정비하고 남은 대중들은 관세음보살 염불 소리에 맞춰 정진을 하였습니다. 정진을 하며 스님 법문을 다시 떠올려 보기도 하고, 부처님의 삶과 나의 삶을 반추하며 습관에 끌려다니지 않는 삶을 다짐하는 108배 정진을 했습니다.nbspnbsp스님께서는 오후에는 평화재단으로 가겨서 미팅을 가지신 후, 다시 정토회관으로 돌아오셔서 업무를 보셨습니다. 오후 3시30분터는 인터넷 방송 사업 준비를 위한 회의에 참석하셨습니다. 스님께서는 인터넷 방송을 어떻게 준비할 것인지, 어떤 내용을 기획할 것인지, 행정처 기획홍보국국과 평화재단 미디어팀 책임자의 아이디어를 수렴하고 역할분담을 논의 하셨습니다.nbspnbsp▲ 인터넷 방송 관련 회의nbsp회의를 마치고 5시부터는 내일 필리핀 사업장 방문을 위한 출장 준비와 출장 전 처리할 업무들을 보시며 정토회관에 머무셨습니다.nbspnbsp내일 스님께서는 오전8시 비행기로 인천공항을 출발하여 필리핀 민다나오로 가십니다. 1월28일부터 2월5일까지 약 열흘 동안 필리핀 사업장 전체를 직접 방문해 보시면서 필리핀JTS 사업을 전체적으로 점검하실 예정입니다. 내일은 필리핀에서 소식을 전해드리겠습니다. nbspnbsp
2015.1.26 평화재단, JTS, 좋은벗들, 에코붓다 이사회
nbsp안녕하세요. 오늘은 평화재단, JTS, 좋은벗들, 에코붓다 이사회가 연이어 하루 종일 열리는 날입니다.nbspnbsp스님께서는 아침부터 원고 교정 업무 등을 보신 후, 오전 8시에 법사단과의 회의를 시작으로 하루 일과를 시작하셨습니다. 법사단은 새로운 법사님을 임병하는 법사 수계식과 2월에 있을 전국 대의원대회를 앞두고 스님께 논의 사항에 대해 질문을 했고, 스님께서는 다양한 의견을 제시해 주셨습니다.nbspnbsp그리고 12시부터는 에코붓다 이사진들과 점심 식사를 함께 하신 후 정기 이사회를 가지셨습니다. 에코붓다 이사회에서는 내부의 자원활동가들부터 환경실천을 더욱 철저하게 하는 문화를 어떻게 만들 것인가에 대해 집중적인 토론이 있기도 했습니다.nbspnbspnbsp▲ 에코붓다 정기 이사회nbsp이어서 2시부터는 좋은벗들 이사진들과 함께 정기 이사회를 가지셨습니다. 동국대학교 박순성 교수님과 통일연구원 김수암 박사님, 최연 이사님 등 이번에는 이사 7명 전원이 참석해주셔서 열띤 토론을 해주셨습니다. 먼저 스님께서는 좋은벗들의 작년 한해를 돌아보며 “좋은벗들은 남북관계 경색이 오래되면서 북한 조사연구사업과 북한인권사업이 주춤한 반면, 탈북민들의 정착지원과 일반 시민들의 통일 교육 사업이 매우 활발하게 이뤄졌다”고 이사님들께 개괄적인 설명을 해주셨습니다.nbspnbsp김수암 이사님은 “탈북민들의 남한 입국 수가 점차 줄어들고 있으니 정착지원사업과 평화통일을 위한 사업을 전략적으로 조정해나가야 할 시점이 된 것 같다”고 조언해주셨습니다. 또 “우리 사회 일부 NGO들이 국제사회와 협력해서 그간 북한인권운동을 열심히 해왔는데, 이제 더 이상 할 게 없는 한계에 다다른 것 같다”고 진단하고, “진짜 북한 인권 개선을 위해 무엇을 할 것인지 실질적인 개선 전략을 짜야할 때가 된 것 같다”는 말씀도 해주셨습니다. 좋은벗들의 적극적인 역할이 필요하다는 말씀이셨습니다.nbspnbsp▲ 좋은벗들 정기 이사회nbsp스님께서는 “지금처럼 남북관계가 경색국면일 때 남북관계를 해치지 않으면서 북한 인권을 개선할 수 있는 돌파구를 뚫어야 하는데, 쉬운 일은 아닌 것 같아요” 라고 하시면서 “관련 연구자와 활동가들이 올해는 보다 이 부분에 적극적으로 논의를 모아보자”고 제안하고, 이사님들도 적극 협조해달라고 당부하셨습니다.nbspnbsp박순성 이사님도 “북한의 지난 10년 동안의 변화를 단편적으로 연구한 논문들이 많이 있지만, 종합적으로, 그리고 대중들이 알기 쉽게 풀어쓴 책은 없다”면서 좋은벗들에서 관련 연구자들을 모아 책을 펴는 것도 해보면 좋겠다고 제안해주셨습니다. 스님과 이사님들의 활발한 토의에 이사회 시간은 훌쩍 1시간 30분을 넘겨서야 끝이 났습니다.nbsp4시부터는 JTS 이사진들과 함께 정기 이사회가 열렸습니다. 지난 이사회 회의록을 다시한번 확인하고, 2014년 사업내용과 2015년 사업계획 및 예산안에 대해 점검하고 승인한 후 JTS의 발전을 위한 다양한 의견을 수렴하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지난 한해는 남북 관계가 계속 단절되어 있었기 때문에 정부의 승인을 얻지 못해 북한구호사업 예산을 전혀 사용하지 못했다는 보고가 있었는데 안타까운 마음이 많이 들었습니다.nbspnbsp▲ 한국JTS 정기 이사회nbsp특히 스님께서는 JTS의 사업이 올해를 기점으로 큰 전환을 해야 할 것이라고 하시면서 2월과 3월에 해외 사업장을 직접 다 방문해서 점검해 볼 계획임을 알려주셨습니다.nbspnbsp“인도JTS 사업장이 작년에 설립 20주년이 되었는데, 처음 설립할 때의 목표였던 문맹 퇴치와 결핵 퇴치는 거의 이루어졌습니다. 이제 지금의 기반 위에 다음 단계를 추진해야 하지 않나 생각합니다. 그래서 제가 3월 한 달 동안 인도에 가 있으면서 다음 차원의 사업을 실무자들과 의논해서 잡을 계획입니다. nbspnbspnbsp필리핀JTS 사업은 지금까지 산간 마을과 무슬림 마을에 학교 40여개를 지어주었는데, 돌아보면 인프라는 깔아 주었는데 필리핀 사정 상 활용이 잘 안되는 것 같습니다. 내일 모레부터 열흘 정도 필리핀으로 가서 모든 사업장을 다 방문하고 실제로 어떻게 유지되고 있는지 점검하려고 해요. 앞으로 학교가 없는 마을에 학교를 짓는 사업은 계속하겠지만 이것이 주 사업이 되어서는 안되고, 실제로 교육이 잘 이루어질 수 있도록 학생과 교사, 마을 리더를 데려다 교육시키는 연수 프로그램을 강화해야 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nbspnbsp긴급구호는 필리핀에 태풍 피해가 제일 많이 나니 필리핀에 긴급구호 대책반을 하나 두고, 인도에도 하나 둘 수 있을 것 같아요. 한국에서는 신속히 대응하기가 쉽지 않으니 재난상황 발생시 현지에서 바로 활동가를 파견하고 물자도 현지에서 충당하며, 한국에서는 모금을 통해 재정을 지원하는 것으로 운영하는 것이 어떨까 생각합니다.”nbsp스님께서는 모레부터 필리핀 사업장을 방문하는 것을 시작으로 라오스, 인도 등의 사업장을 두루 둘러보실 예정인데 현장에서 더욱 구체적인 방법들이 많이 찾아질 수 있을 것 같다는 기대감이 들었습니다.nbspnbsp저녁 6시30분부터는 평화재단 이사진들과 함께 정기 이사회가 열렸습니다. 윤여준 전 환경부 장관님, 김홍신 작가님을 비롯하여 많은 분들이 바쁜 시간을 내셔서 참석해 주셨습니다. 이사님들은 최근 정부가 통일 대박이라고 하면서 통일을 강조하시면 구체적 실천은 별로 없어서 국민들이 통일에 대해 지루하게 받아들이는 경향이 많아지고 있음을 우려하면서 평화재단이 이것을 보완해줄 수 있는 다양한 활동들을 2015년에는 활발히 전개해 줄 것을 요청하면서 이를 위한 여러 아이디어들을 제시하기도 했습니다.nbspnbsp▲ 평화재단 정기 이사회nbsp특히 스님께서는 갈수록 분열과 갈등이 심화되는 한국사회에서 갈등을 없애지는 못하더라도 서로 만나서 대화라도 할 수 있는 공론의 장을 마련하는 것이 필요하다는 말씀에 공감을 하시고 이를 위해 현재 평화재단에서 구상하고 있는 몇가지 계획들을 공유해 주셨습니다.nbspnbsp이사진들은 모두 만장일치로 평화재단의 2015년 사업계획과 예산안을 승인했습니다. 그리고 이사회에 함께 참여하신 모든 분들과 기념사진을 찍고 정기 이사회를 모두 마쳤습니다. nbspnbspnbspnbsp스님께서는 밤 9시가 넘어서 모든 일정을 마치시고 평화재단에서 서울 정토회관으로 귀가하셨습니다. 밤늦게까지 업무를 보시다가 오늘 일정을 마치셨습니다.nbspnbsp내일은 오전 7시부터 조찬 모임이 있으시고, 오전 10시에는 성도재일 기념법회를 하신 후 오후부터는 각종 미팅들을 이어가실 예정입니다. 내일 또 소식 전해드리겠습니다.nbspnbsp
2015.1.25 제8차 천일결사 4차 백일기도 입재식
nbsp안녕하세요. 오늘은 이 땅에 맑은 마음·좋은 벗·깨끗한 땅을 실현하고자 큰 서원을 세우고 시작한 정토회의 만일결사 중 제 8차 천일결사 4차 백일기도 입재식이 열리는 날입니다.nbspnbsp스님께서는 어제 방콕에서 정토불교대학 수계식 및 졸업식을 마치고 아침 6시30분에 인천공항에 도착하여 하루종일 서울 정토회관에 머무시며 평화재단, JTS, 좋은벗들, 에코붓다 이사회 자료들을 검토하시면서 업무를 보셨습니다. 그리고 오후에는 잠시 시간을 내어 이비인후과에 가서 진료를 받으셨습니다. 지난 세계 100회 강연에 이어서 연일 계속된 각종 미팅과 인도 성지순례로 인해 목소리가 회복되지 않으시고 미열이 있으십니다. 모레부터는 다시 해외 일정이 있으셔서 검진을 받으셨습니다.nbspnbsp오늘은 제8차 천일결사 4차 백일기도 입재식에 참가하기 위해 새벽 6시에 서울 정토회관을 출발하여 오전 9시에 김천 실내체육관에 도착했습니다. 행정처장님으로부터 입재식 준비사항에 관한 보고를 간단히 받으신 후 10시부터 입재식에 함께 하셨습니다.nbspnbspnbsp제8차 천일결사도 어느새 4차를 맞이한 오늘, 뒤를 돌아보니 7300일 동안이나 부지런히 달려왔음을 새삼 느끼게 됩니다. 타종, 예불, 반야심경 봉독으로 마음을 청정히 한 후 이기혜 대표님의 인사말과 함께 입재식이 시작되었습니다.nbspnbsp▲ 김천 실내체육관을 가득 메운 4000여명의 정토행자들nbsp먼저 전국에서 모인 정토행자님들을 소개하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해외에서 귀국해 참여하신 분들을 비롯해 서울, 제주, 강원, 경기동부, 인천, 경기서부, 대전, 충청, 광주, 전라, 대구, 경북, 부산, 울산, 경남, 청년대학생, 교사, 길벗, 공동체에서 총 4000여명이 참석하여 각 지역이 소개될 때마다 김천 실내체육관은 뜨거운 열기와 환호로 가득찼습니다. 특히 해외에서 오신 분들과 바다 건너 제주정토회에서 오신 분들은 더 큰 박수로 환영을 받았습니다.nbspnbspnbsp먼저 입재식 오픈 공연으로 행자대학원 9기와 11기 분들이 ‘새들처럼’, ‘함께 걸어 좋은 길’을 아름다운 선율로 합창해 분위기를 차분하게 해주었습니다.nbsp▲ 행자대학원의 합창 공연nbsp이어서 지난 백일 간 정토회에서는 어떤 일들이 있었는지 영상을 통해 돌아보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돌아보니 스님께서는 세계 115회 강연으로 전세계에 희망의 씨앗을 뿌리셨고, 정토행자들은 전국에서 1,000회 이상의 기획법회를 열어서 대한민국에 희망의 씨앗을 뿌렸음을 영상을 통해 다시 느낄 수 있었습니다. 수행, 보시, 봉사로 알차게 백일을 채워 온 정토행자님들의 모습이 참으로 자랑스럽게 다가왔습니다.nbspnbsp무엇보다 지난 2014년은 정토회의 역사에 한 획을 그은 해였습니다. 국내에서는 30개의 법당이 새롭게 문을 열어서 전국의 법당 숫자가 100개가 되는 순간을 눈 앞에 두고 있으며, 해외에서는 115회 강연이 열려 작지만 소중한 전법의 씨앗이 심어졌습니다. 이를 기념하여 힘차게 달려온 지난 2014년을 자축하는 의미로 청년대학생정토회에서 축하 공연을 보여주었습니다.nbspnbsp▲ 축하공연 중 카드섹션 ‘스님 세계 115강 전국 100개 법당 개원’nbsp통통 튀는 색깔의 다양한 개성의 옷차림으로 신나는 음악과 함께 등장한 청년들은 다양한 포즈와 율동을 보여주며 전세계로 스님의 법문이 퍼져나가는 모습을 재미있게 표현해 대중들의 큰 박수와 환호를 받았습니다.nbspnbsp이어서 3차 백일기도 실천과제 결과 발표가 있었습니다. 실천과제 중 첫 번째인 ‘우리동네 기획법회 열기’는 전국에서 475개 모둠이 총 1,107회의 기획법회를 열어 13,455명에게 스님의 법문을 듣게 해주는 성과가 있었습니다. 특히 대구경북 지부는 68개의 모둠 중에서 66개의 모둠이 기획법회 3회 열기 과제를 달성해 97의 달성율을 보여주어 더 많은 박수를 받았습니다. 실천과제 중 두 번째인 ‘사회활동 3회 참여하기’는 통일 활동에 2,498명, 환경 활동에 1,809명, 복지 활동에 3,142명이 참여하는 등 많은 참여가 있었지만 3회 이상 모두 참여한 사람은 921명에 그쳐 18의 달성율을 보여주었습니다.nbspnbsp다음은 정토세상을 만들기 위해 지난 백일을 누구보다도 열심히 수행해 온 두 분의 수행담을 들어보는 시간이 있었습니다. 안양법당 최민정님은 홀시어머니의 생활비, 친정아버지의 대장암투병으로 친정의 생계비를 감당해야 하는 힘든 시기에 기독교 신자였지만 스님의 즉문즉설 동영상을 권유받고 새로운 희망을 발견했으며, 지금은 불교대학에 입학해 봉사를 시작하면서 나뿐만 아니라 주위 사람들에게도 도움을 주는 새로운 삶을 살아가고 있는 경험담을 들려주었습니다.nbspnbsp▲ 수행담을 발표하는 달서법당 차영미님nbsp달서법당 차영미님은 천정엄마가 뇌출혈로 쓰러지고 대소변을 받아내는 간병을 하면서 자신의 건강도 악화되어 몇 달을 링거를 맞으며 누워 지닐 때 스님의 즉문즉설 테이프를 주위로부터 선물받고 ‘책임지는 인생을 살아야겠다’는 발심을 하고 새로운 인생을 살게 된 사연을 들려주었습니다. 누워서 법문을 듣고 삼배도 제대로 못하던 상태에서 매일 법당을 찾아가 예불을 하기 시작하면서 도반들의 도움으로 몇 달이 걸려 겨우 108배까지 하게 되고 지금은 총무 소임까지 맡아서 자유로운 삶을 살고 있다는 얘기를 듣고 많은 대중들이 눈시울을 붉혔습니다.nbspnbsp두 분의 감동적인 수행담에 이어 스님께서 무대로 올라오셔서 3차 백일기도 회향 법문을 해주셨습니다. 스님께서는 2600년 전 부처님의 삶이 현대인들에게 주는 희망, 세계 100회 강연을 하게 된 까닭, 지난 백일 동안 곳곳에서 헌신해준 정토행자들을 위한 격려의 말씀 등을 애정을 담아 해주셨습니다.nbspnbsp“아침부터 일찍 출발해서 이곳까지 오신다고 수고들 많이 하셨습니다. 전국에서 수행하시는 분들이 한자리에 모여서 지난 백일 동안 어떻게 수행했는지 돌아보고 다음 백일을 새로운 마음으로 정진할 것을 다짐하는 입재식을 우리가 이렇게 하고 있습니다. 사람 마음이 한번 마음 먹으면 꾸준히 지속된다면 우리가 이렇게 백일마다 모일 필요가 없을 겁니다. 그만큼 습관이란 바꾸기가 어렵습니다. 그러나 2600년 전의 고타마 싣다르타라고 하는 한 젊은이는 인생이 이렇게 살아지는 것에 대해서 큰 의문을 가졌습니다. 이것을 변화시킬 수 있는 방법은 없을까? 그 좋은 왕위도 버리고 집을 떠나 수많은 고생을 하면서 그 길을 찾으셨습니다. 욕망을 쫓아가는 것도 욕망을 따르는 것이지만 욕망을 억압하는 것도 욕망에 대한 작용임을 깨닫고 욕망을 따르지도 않고 욕망을 억압하지도 않는 다만 그 욕구를 있는 그대로 알아차리고 지켜보는 제3의 길을 발견하셨습니다. 그리고 나서 ‘이 좋은 법을 고통받고 있는 이 세상 사람들과 함께 나눌 수는 없을까?’ 하시면서 이 법을 세상에 나눠갔기 시작했습니다. 그 이후로 어리석거나 고통받는 많은 사람들이 이 붓다의 가르침에 귀기울임으로 해서 그들 또한 해탈을 증득할 수 있었습니다. 이 법은 시간적으로는 2600여년 간 면면히 이어오고, 공간적으로는 인도 대륙을 넘어서서 전세계로 퍼져나가서 우리가 사는 이 한국에도 이르게 되었고, 그래서 우리는 공간과 시간을 멀리 지나 지금 이 법을 만나게 되었습니다.nbspnbspnbsp오늘날 현대사회는 물질적으로 많이 풍요로워졌습니다. 지금 우리들의 삶은 물질적인 면에서는 옛날에 비해서 수백배 수천배 더 좋아졌습니다. 그런데 우리 인생은 행복해졌느냐? 이런 관점에서 볼 때 더 행복해졌다고 말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현재 한국에서 하루에 자살하는 사람이 46명이라고 합니다. 자살은 현재 삶에 희망이 없다는 절망의 신호입니다. 출산율은 세계 최저입니다. 왜 자식을 낳지 않느냐? 미래에 희망이 없기 때문입니다. 이 현상을 갖고 살펴본다면 국민 소득이 100불에서 3만불이 되었음에도 이런데 3만불이 아니라 10만불이 된다고 해서 우리 삶에 변화가 있기는 어렵습니다. 희망과 기쁨을 갖고 살아가려면 이제 우리는 다른 길을 찾아야 합니다.nbspnbsp그러기 위해서는 붓다의 초기 가르침에 귀기울일 필요가 있습니다. 붓다는 지금 우리와 같은 조건에 있었습니다. 사회적 지위나 경제적인 수준이 충분히 주어져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인생에 많은 번뇌가 있었기 때문에, 이 인생의 고뇌를 해결하는 길은 지위를 높이거나 소비 수준을 높인다고 해결되지 않는다는 것을 그 분은 아셨던 겁니다. 그것처럼 지금 충분히 먹고 충분히 입고 충분히 쓰고 있는데도 우리는 고뇌하고 있습니다. 문제는 이 상황에 놓였는데도 돈이 더 많으면 집을 더 크게 사면 지위가 높아지면 행복할 것이라는 환영에서 아직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이제 우리는 다른 길을 찾아야 합니다. 고타마 싣다르타가 처했던 현실과 지금 우리의 현실이 비슷하기 때문에 그가 그것을 극복한 가르침은 시간이 2600여년이 지났음에도 불구하고 인도와 한국이라는 다른 환경임에도 불구하고 우리의 고뇌를 벗어나는데 좋은 양약이 될 수 있습니다.nbspnbsp오늘 우리는 ‘키가 작기 때문에’, ‘신체가 장애이기 때문에’, ‘어릴 때 가난했기 때문에’, ‘유학을 못갔기 때문에’, ‘공부를 못했기 때문에’, ‘성추행을 당했기 때문에’, ‘어릴 때 왕따를 당했기 때문에’, 이렇게 자기에게 주어진 조건이나 자신이 겪었던 경험을 핑계로 내세우고 ‘나는 이래서 괴로울 수 밖에 없고, 나는 이래서 불행할 수 밖에 없다’ 는 수백가지 증거를 제시합니다. 왜 자기가 괴로울 수 밖에 없다는 것을 증명하려고 그렇게 애를 씁니까?nbspnbsp그러나 내가 괴로워할 이유는 아무 것도 없습니다. ‘혼자 살아서 좋다’, ‘결혼해서 좋다’, ‘직장이 있어서 좋다’, 이렇게 행복의 조건을 찾아서 ‘저는 이래서 행복합니다’ 하는 쪽으로 나아가야 합니다. 그런데 늘 자기는 불행하다는 것을 증명하려고 노력합니다. 그래서 ‘너 불행하다’는 판정을 받으면 그렇게 좋아요? nbspnbspnbsp붓다가 깨닫고 나서도 엄청난 일들이 일어났습니다. 온갖 모함도 있었고, 온갖 비난도 있었습니다. 잠은 나무 밑에서 자고, 옷은 분소의만 걸치고, 맨발로 살으셨습니다. 살아 생전에는 나라가 망하고 자신의 친족이 다 멸종하는 것을 보셨습니다. 자신이 사랑하는 제자인 사리 푸트라와 목갈리나가 먼저 죽기도 했습니다. 자신의 친족이며 아끼는 제자가 반역을 하고 교단을 분열시키는 일도 일어났습니다. 탁발을 하러 갔는데 가뭄이 들어 먹을 것이 없어 말이 먹는 밀기울을 얻기도 했습니다. 붓다를 좋아하던 여인이 자신을 특별하게 대해주지 않는다고 모함을 해서 대중이 붓다와 상가를 엄청나게 배척하는 일이 일어나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그 수많은 일 가운데서 그분은 여여했고, 자신을 늘 자유롭고 행복하게 간직했고, 고통받는 수많은 사람들에게 고통에서 벗어나는 길을 제시하고 실천하도록 격려해 주셨습니다. 숨이 넘어가는 순간까지 그렇게 사시다 가셨습니다.nbspnbsp우리는 이런 그 분의 삶에서 교훈을 얻어 나도 행복하고 자유롭게 살 수 있는 길을 발견해 갈 수 있습니다. 교통사고가 나서 장애가 되기도 하고, 살다보면 성폭행을 당하기도 하고, 직장에서 쫓겨나기도 하고, 하던 사업이 망하기도 하고, 이혼을 하기도 하고, 부모 앞에 자식이 먼저 죽기도 하고, 병원에 갔더니 갑자기 암 선고를 받기도 하고, 우리의 인생에는 온갖 일들이 벌어집니다. 그러한 가운데에서도 이 좋은 법을 만나면 우리는 내 삶의 자유와 행복을 유지할 수 있습니다. ‘내가 살아있다는 것만 해도 정말 큰 복이구나’, ‘보이는 것만 해도, 들리는 것만 해도 큰 nbsp복이구나’ 이렇게 자기에 대한 긍정성을 하나 하나 발견해 가면서 조금씩 조금씩 행복해져 갑니다. 이렇게 주어진 이대로도 이 세상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소중한 존재임을 자각해서 여러분의 삶이 먼저 행복하고 자유로워야 합니다.nbspnbsp그리고 주위를 돌아보세요. 온갖 사람들이 괴로워하며 좌절과 절망 속에서 살아가고 있습니다. 내가 이 좋은 법을 만나서 행복을 얻었다면 나 또한 그분들에게 도움이 될 수 있도록 해야 합니다. 배 고픈 사람에게는 밥 한그릇이라도 사주고, 외로운 사람에게는 대화라도 해주고, 넘어진 자는 일으켜 세워주고, 내가 할 수 없다면 인연이라도 맺어주고, 재물이 부족한 사람에게는 보시로 베풀어주고, 여러 가지 도움이 필요한 사람에게는 봉사로 베풀어주어야 합니다. 먼저 나부터 수행을 하면서, 보시와 봉사를 통해서는 이웃 사람에게도 도움이 되는 삶을 한번 살아보자, 이것이 불교인이 가야할 길이고, 이것이 정토행자의 삶입니다.nbsp그러니 먼저 이 법을 이해하기 위해서 정토불교대학을 다녀야 합니다. 정토불교대학을 다닐 수 있도록 주위 사람들에게 많이 권유해야 합니다. 내가 먼저 해보고 주위 사람들도 경험할 수 있도록 인연을 맺어주어야 합니다. 내가 즉문즉설을 듣고 기쁨을 얻었다면 많은 사람들이 이 법을 들을 수 있도록 주위에 전파해야 합니다. 내가 책을 보고 도움을 얻었다면 다른 사람들도 도움을 얻을 수 있도록 인연을 맺어주어야 합니다.nbspnbsp그러면서 행복할 때도 정진하고 마음에 괴로움이 있을 때도 정진해야 합니다. 그런데 우리는 힘들면 발등에 떨어진 불처럼 느끼고 급하게 정진하다가 조금 살만해지면 또 팽개치고 놉니다. 그러니까 불행이 닥쳐야 수행을 합니다. 불행이 그렇게 좋아요? nbspnbspnbsp좋을 때도 늘 정진해서 불행이 일어나지 않도록 막아야 합니다. 또 불행이 일어나더라도 이겨내는 힘을 키워야 합니다. 이렇게 수행을 기본으로 해야 합니다. 그런데 이렇게 결심하고도 내일 아침부터 못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렇다고 삼일마다 모일 수도 없으니, 매일 매일 정진하고 일주일마다 한번씩은 꼭 법문을 들어야 합니다. 그렇게 매일 매일 정진을 하면서 백일을 이어갈 수 있습니다. 이렇게 정진하는 힘이 있어야 보시도 하고 봉사도 할 수 있습니다. 정진하는 힘이 있으면 보시와 봉사가 정말 이웃과 나누고자 하는 보시와 봉사가 됩니다. 정진을 하지 않고 보시와 봉사를 하면 복 비는 봉사와 보시가 됩니다. 수행 정진을 하는 사람이 보시하고 봉사는 것은 도움이 필요한 이웃을 돕기 위해서 하는 것이지 내 복을 받으려고 하는 것이 아닙니다. 복은 인연의 과보로 주어지는 것입니다. 대가를 바란다면 그것은 상거래이지 수행이 아닙니다. 그래서 우리 정토행자들은 어떤 일을 하든지 수행이 바탕이 되고, 수행자로서 사회활동을 하는 것입니다.nbspnbsp세계 100회 강연을 한 것도 지금은 조금 힘든 일이지만 당장 효과를 보려는 것이 아니라 지금의 청년 세대가 전 세계로 뻗어나가 인류를 위하여 이 좋은 법을 전파할 수 있는 기초를 마련해놓자는 것이였습니다. 스님이 그런 일을 할 수 있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젊은 사람들이 가서 앞으로 일할 수 있는 터전을 마련해놓자는 것이였습니다. 먼저 전 세계로 나가 있는 교민들을 위로하고 또 그들이 이 법을 전할 수 있는 터전이 되겠기에 먼저 텃밭을 일군 겁니다. 또 이 좋은 법이 각 나라의 언어로 번역되어서 그들도 이 법을 접할 수 있는 기초를 마련해 놓고자 한 것입니다. 이것이 다음 만일을 위해 우리 장년 세대들이 해야 할 일입니다. 그동안 아무 것도 없는 것에서 개척하느라 얼마나 힘들었습니까? 우리가 조금 노력해서 발 디딜 틈이라도 마련해 놓으면 우리 젊은이들이 새로운 세상으로 나가서 활동하기가 훨씬 수월해지지 않겠습니까? 이것을 위해서 해외사무국에서 세계 100강을 준비한다고 정말 수고들 많이 하셨습니다. 박수로 감사를 표해주십시오.nbspnbsp또 국내에 계신 분들은 기획법회를 1,107회를 열어서 저보다 10배를 더 많이 하셨어요. 또 불사팀에서는 광주 법당을 옮겨서 지부 역할을 할 수 있도록 새로 내었고, 청주 법당도 옮겨서 새롭게 규모를 넓혔고, 그 외 새로운 곳에 법당을 열어서 지난 1년 동안 30개의 법당이 새롭게 개원했습니다. 수고하신 모든 분들께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그리고 오백 대중이 모여서 여법하게 성지순례도 잘 했습니다. 또 지난 1년 동안 불교대학을 공부하신 분들도 곧 졸업을 하게 되는데 이를 위해 노력해주신 모든 분들에게도 진심으로 감사 말씀을 드립니다.”nbsp스님의 법문을 들으며 지난 1년을 돌아보며 각자의 수행을 점검해보는 시간을 가질 수 있었습니다. 감로의 법문을 해주신 스님께 뜨거운 박수갈채가 쏟아졌습니다.nbspnbsp이어서 실내체육관 복도에 삼삼오오 돗자리를 펴고 앉아 집에서 싸온 도시락을 나눠먹는 점심 식사 시간을 가졌습니다. 스님께서는 식사를 하고 있는 대중들을 빙 둘러보시며 한분 한분과 눈을 맞추며 인사를 하셨습니다.nbspnbspnbsp체욱관 바깥에는 사회 단체별로 부스가 마련되어 잔치 마당처럼 다양한 이벤트가 진행되었습니다. ‘통일하자’는 깃발을 들고 둥글에 모여 힘찬 구호와 신나는 율동을 보여준 ‘좋은벗들’ 부스, 통일을 위한 다양한 사회활동을 사진으로 전시하면서 후원회원을 애타게 찾는 ‘평화재단’ 부스, 스님 책을 할인된 가격에 판매하는 이벤트를 실시한 ‘정토출판’ 부스, 환경 실천을 약속하는 스티커 설문을 하며 환경 상품을 판매하는 ‘에코붓다’ 부스, 백일출가 사진전을 하며 다음 기수를 모집하는 ‘행자원’ 부스, 108배 하는 방법을 친절히 안내해 주는 ‘천일결사’ 부스, 고등학생 교복을 입고 다니며 2015년 신입생 모집을 재미나게 알린 ‘정토불교대학’ 부스 등 다양한 풍경들이 어우러져 활기를 더했습니다.nbspnbsp▲ 정토불교대학 신입생 모집을 홍보하는 청년들nbspnbsp▲ 후원금 모집을 애타게 하고 있는 평화재단nbspnbsp▲ 스님의 새책 홍보를 열심히 하고 있는 정토출판nbsp▲ 환경상품을 판매하는 에코붓다nbspnbsp▲ 108배 하는 방법을 안내해 주는 천일결사 부스nbsp점심 식사를 마치고 1시50분부터 시작된 ‘정토행자 한마당’ 에서는 다양한 끼와 재능을 가진 분들이 올라와 신나는 무대를 보여주어서 연신 웃음을 자아내게 했습니다. 먼저 저녁부에서 ‘바라밀다 플래시몹’이라고 하면서 떼창이 아닌 떼춤을 마음껏 발산해 흥을 돋구웠습니다. 수십명이 무대 위와 아래에서 일제히 동작을 맞춰 춤을 추는 모습은 장관을 이루었습니다.nbspnbsp▲ 저녁부에 보여준 ‘바라밀다 플래시몹’nbspnbsp인천정토회 송도법당에서는 ‘다함께 춤’ 공연을 보여주었는데 복장과 춤이 너무 우스꽝스러워서 공연 내내 대중들은 배꼽을 잡고 웃었습니다.nbspnbspnbsp▲ 대중들을 포복절도하게 만든 송도법당의 ‘다함께 춤’ 공연nbsp이어서 동래정토회 강혜원님이 트로트 반주에 맞춰 ‘도로남’과 ‘잘살거야’를 불러주어 큰 박수를 받았습니다. 정토회를 처음 만났을 때는 다들 괴로움이 많았지만 지금은 이렇게 인생이 행복해져서 도반들과 호흡을 맞춰 자신의 재능을 마음껏 발산하는 모습을 보니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감동이 밀려왔습니다.nbspnbsp신나는 무대를 뒤로 하고, 다시 명상을 하고 마음을 차분히 한 후 신규 입재자 결의식이 진행되었습니다. 스님께서는 매일 수행정진할 것을 다짐한 신규 입재자들을 위해 “다겁 생래로 지은 업장으로 인해 물러서는 마음을 낼 때마다 오늘의 이 서원과 결심이 유지되도록 제불보살님들은 옹호하여 주옵소서” 라며 간절한 발원을 해주셨습니다.nbspnbsp▲ 신규 입재자 결의식을 하는 630여명의 대중nbspnbsp그리고 “대부분 첫 백일을 넘기가 어렵습니다. 백일을 어떻게 하나 고민하지 말고 아침에 눈 뜨자마자 한번만 한다고 생각하세요. 그러면 시간이 흘러서 저절로 백일이 만들어져요. 아침에 일어나보고 살아 있으면 ‘아이고, 살았네’ 하고 살아있는 기념으로 하루에 한번씩만 기도하면 돼요.” 라고 하시면서 매일 빠지지 않고 기도할 수 있는 방법도 재미있게 알려주셨습니다.nbspnbspnbsp이어서 많은 분들이 기다리던 시간인 ‘정토행사상’ 시상식이 진행되었습니다. 한 해 동안 각 부문에서 모범적으로 활동하신 분이나 단체에게 총 여덟 개 부문에서 나누어 시상이 이뤄졌습니다.nbspnbsp‘복지상’은 제3세계 어린이를 돕기 위한 캠페인에 적극적인 활동을 하면서 분당 지역의 캠페인 정착에 크게 기여한 김복경님이 받았고, ‘환경상’은 실험과 연구를 통해 청정 법당의 발판을 만드는데 크게 기여한 동래법당이 받았습니다. ‘통일상’은 새터민정착사업과 새로운백년 읽기 모임, 통일 강좌 열기 등 적극적인 활동을 한 해운대법당 김은주님이, ‘포교상’은 진주 지역의 포교에 귀감이 된 진주정토회가, ‘정진상’은 꾸준한 정진을 통해 도반 간의 화합을 이룬 대구법당 이명숙님이, ‘보시상’은 활동 속에서도 꾸준한 보시를 통해 정토회 발전에 큰 기여를 한 노희경 작가님이 받았습니다.nbspnbspnbsp그리고 ‘특별상’은 산모, 영유아 어린이 등 취약계층 새터민에 애정을 갖고 지원을 해준 배우 신민아님이 받았는데, 신민아님은 수상 소감과 감사 인사를 영상으로 보내와서 큰 박수를 받았습니다. nbspnbspnbsp▲ 정토행자상 수상 소감을 영상으로 촬영해 보내준 배우 신민아님nbsp이렇게 일곱 개 부문에 대한 수상을 마치고, 드디어 수행, 보시, 봉사 모든 면에서 정토행자의 귀감이 되는 분에게 드리는 정토행자상 ‘대상’이 발표되었습니다.nbspnbsp영예의 대상은 헌신적인 봉사활동으로 세계 115회 강연을 성공적으로 치렀으며 정토행자의 서원을 모든 면에서 잘 실현해준 해외사무국에게 돌아갔습니다. 지난 한해는 그 어느 부서보다도 바쁜 1년을 보낸 해외사무국임을 모두가 잘 알고 있었기에 뜨거운 박수갈채가 쏟아졌습니다. 법륜 스님께서 직접 올라오셔서 해외사무국을 대신해서 무대에 올라온 시애틀 정토회 주상휴 총무님에게 수상을 해주셨습니다.nbspnbsp▲ 해외사무국을 대신해서 정토행자상 대상을 받고 있는 주상휴님nbspnbsp그리고 즉석에서 미국 워싱턴으로 전화 연결을 해서 해외사무국 국장 김순영님의 소감을 들었습니다. 김순영님은 새벽 1시이지만 성도재일 철야정진을 미리 앞당겨서 도반들과 함께 하고 있다며 밝은 목소리로 수상 소감을 이야기해 주었습니다.nbspnbsp“이 상은 지금보다 더 열심히 전 세계를 정토세상으로 만들어달라는 뜻으로 받아들이겠습니다. 2차 만일을 위한 초석을 해외에서 잘 다지도록 하겠습니다.” nbspnbsp▲ 미국 워싱턴과의 전화연결을 통해 대상 수상 소감을 말하고 있는 김순영님nbsp영예로운 정토행자상을 수상한 모든 분들은 스님과 함께 기념사진을 찍었습니다. 수상자는 물론 이를 지켜보는 모두가 함께 기뻤던 시간이었습니다. 이렇게 정토세상을 함께 만들어가는 도반이 있어 참으로 감사하다는 것을 다시한번 느껴봅니다.nbspnbsp▲ 2014년을 빛낸 영예의 정토행자상 수상자들nbsp수상식을 마치고 스님께서 제4차 백일기도 입재 법문을 해주셨습니다.nbspnbsp“오늘로써 만일결사 중 제8차 천일결사 제4차 백일기도가 시작되겠습니다. 우리는 늘 처음 하는 마음으로 해야 합니다. 대부분 사람들은 한 번 하고 두 번 하고 세 번 하면 타성에 젖습니다. 대충대충 하게 되면 변화가 없습니다. 매 순간을 항상 처음하듯이 하는 사람이 수행자입니다. 초발심이 끝까지 간다면 그것이 곧 깨달음입니다. 그래서 지금까지 어떻게 공부했든 그것은 다 버리고 오늘 처음 시작하듯이 임해봅니다.nbspnbsp어느 때나 가장 중요한 것은 매일 매일 빠지지 않고 개인 정진을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웃과 세상에 보탬이 되기 위해서 보시와 봉사를 해야 합니다. 다음으로 이번 4차 백일기도 기간 동안 가장 중요한 것은 정토불교대학 인연 맺기입니다. 우선 이 좋은 법을 공부할 수 있도록 입학을 시켜야 합니다. 그리고 입학한 사람은 공부할 수 있도록 잘 관리를 해주어야 합니다. 그래서 4차 백일 입재자들의 전체 실천 과제는 정토불교대학에 한 명 이상 인연맺어서 부처님의 좋은 법을 공부할 수 있게 하는 것입니다. 할 수 있겠어요? nbspnbspnbsp그리고 두 번째는 불교대학까지는 참여시키지 못하더라도 이 좋은 법을 듣도록 인연 맺어 주자는 것입니다. 직장마다 학교마다 동네마다 열명이 오든 스무명이 오든 기획법회를 열어서 누구나 희망의 길을 갈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해 주자는 것입니다. 힘들어하고 괴로워하던 사람들이 즉문즉설을 권유 받아 듣고 불교대학에 입학하면서 아직도 괴로움이 남아 있지만 그것을 이겨낼 수 있는 힘을 가졌다는 것은 얼마나 눈물나고 아름다운 일입니까? 저는 이런 사연을 들으면 ‘1년 노력해서 이런 사람 한 사람만 생겨도 할 만한 가치가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nbspnbsp그리고 우리 정토행자들은 매주 수요일날 수행법회에 꼭 참석하셔야 합니다. 이것을 기본으로 하면서 다른 좋은 일도 해나가자는 것입니다. 개인적으로는 불교대학에 한 사람 이상 인연을 맺고, 이 좋은 법을 주위에도 널리 알리기 위해서 모둠별로는 기획법회를 3회 이상 열어나갑시다. 특히 불교대학을 졸업한 사람들은 수행법회를 빠지지 말고 꼭 참석하면서 봉사활동을 해나가셨으면 좋겠습니다.”nbspnbsp그리고 스님께서는 정토회에서는 다른 사람들의 수행을 도와주는 법사 제도가 있음을 알려주시면서 혹독한 과정을 거쳐서 전문법사 수행을 마친 분 다섯 분과 재가자로 있으면서 꾸준히 정진해서 대중법사 수행을 마친 다섯 분을 소개해 주셨습니다. 곧 법사 수계를 하려고 하는데 이들이 헌신성과 수행적 태도에 혹시 이의가 있는 사람은 그 의견을 한달 안에 법사실로 제출해 달라고 하시면서 대중들의 동의를 구했습니다. nbspnbsp▲ 법사 수계 예정자인 열 분을 한분 한분 소개하는 시간nbsp곧 법사 수계를 받으실 분들이 무대 위에 올라 한분 한분 자세히 그 이력이 소개가 되자 큰 박수가 쏟아졌습니다. 법사 수계에 대한 공지에 이어서 스님께서는 “여러분들도 어느 정도 활동을 하시고 난 뒤에는 수행을 꾸준히 하셔서 법사가 되셔야 합니다. 자기 집을 법당으로 만들고, 자기가 법사를 하고, 자기 가족부터 회원으로 만들어서 동네마다 수행공동체인 정토법당을 만드셔야 합니다.” 라며 당부의 말씀을 덧붙이셨습니다. nbspnbsp스님의 입재 법문에 이어서 김은숙 행정처장님이 나와서 4차 백일기도 실천 과제를 발표했습니다. 첫째는 법당별 과제로써 모둠별로 3회씩 기획법회 열기이고, 둘째는 개인별 과제로써 정토불교대대학 지인 1명 이상 인연 맺기입니다. 이 실천과제를 많은 분들이 달성하게 되면 올 봄에는 더 많은 분들이 새롭게 인연을 맺어서 행복한 삶을 찾아가게 되겠구나 싶어 마음이 설레였습니다.nbspnbsp▲ 4차 백일기도 실천과제 발표nbspnbsp마지막으로 오늘 입재식을 마무리하면서 이기혜 정토회 대표님이 닫는 인사를 해주셨습니다. 대표님은 “울고 웃다 보니 마칠 시간이 되었다”면서 “자기 괴로움의 당위성을 찾아서 거기에 빠져 있지 말고 긍정의 세계로 나아가라는 스님의 간절한 말씀에 정신이 번쩍 들었다”고 덧붙인 뒤 신규 입재자들을 향해 “이 행복의 물결에 동참한 것을 다시 한번 환영한다”며 반겨주었습니다.nbspnbsp▲ 마지막 닫는 말씀을 하고 있는 이기혜 대표님nbspnbsp그리고 5차 백일기도 입재식인 4월 26일에도 한분도 빠짐없이 함께할 것을 기약하면서 스님과 법사님들이 모두 무대 위에 올라오고 산회가를 함께 손잡고 부르면서 오늘 입재식을 기쁜 마음으로 마쳤습니다. 스님께서는 집으로 돌아가는 정토행자들에게 한껏 웃으시며 손을 흔들어 주셨습니다.nbspnbspnbsp입재식을 마치고 스님께서는 체육관 안 회의실에서 곧바로 대중부 집행위원들과 2015년 대중부 사업계획 및 일정에 대해 간단히 회의를 하셨습니다. 그리고 이어서 법사단 전체와 함께 2015년 전체 일정과 엊그제 다녀온 인도성지순례 평가 및 해외 구호사업 파견자 인사 발령에 관해 회의를 하셨습니다.nbspnbsp▲ 대중부 집행위, 법사단과 회의nbspnbsp회의를 마치고 오후 6시 무렵 행사장을 출발하여 밤9시 무렵 서울 정토회관에 도착하셨습니다.nbspnbsp내일은 오전 8시부터 법사단 회의, 오후에는 평화재단, JTS, 좋은벗들, 에코붓다 이사회에 하루 종일 이어서 참가하실 예정입니다. nbspnbsp
2015.1.23 방콕 정토불교대학 졸업식 및 수계식
▲ 방콕과 프놈펜 정토불교대학 졸업식 및 수계식nbsp안녕하세요. 오늘은 방콕 정토법당에서 정토불교대학 졸업식 및 수계식이 열리는 날입니다.nbspnbsp스님께서는 밤 12시20분 비행기로 델리 공항을 출발하여 현지 시간으로 새벽 5시30분에 방콕 공항에 도착하셨습니다. 비행기 안에서 잠깐 휴식을 취하고 방콕 공항에 내리니 방콕정토회 황소연 총무님과 남동생 분이 함께 마중을 나오셔서 스님 일행을 방콕정토법당까지 무사히 운전을 해주었습니다.nbspnbsp아침 7시30분쯤 방콕 정토법당에 도착한 스님께서는 아침 일찍부터 신도님들이 정성껏 준비해주신 떡국으로 식사를 하신 후 9시20분부터 정토불교대학 졸업식 및 수계식에 함께 하셨습니다.nbspnbspnbsp오늘 졸업식 및 수계식에서는 방콕정토법당에서 불교대학을 수료하신 분 2명과 경전반을 수료하신 분 2명, 그리고 캄보디아 프놈펜에서 불교대학을 수료하신 분 2명까지 총 6명이 스님께 수계를 받았습니다. nbspnbspnbsp어제 일찍 도착한 무변심 법사님도 함께해서 수계식 인례를 맡아주셔서 여법하게 식이 진행되었습니다. 스님께서는 부처님 당시에 수계가 처음 시작된 유래와 그 의미에 대해 자세히 법문해 주신 후 호궤합장을 하고 참회게를 염하는 졸업생들에게 연비를 해주셨습니다.nbspnbsp▲ 스님께 연비를 받는 불교대학 졸업생들nbsp“이 수계식은 부처님 당시로부터 시작해서 긴 역사를 두고 2600년이 지나도록 오늘까지 이어져 오고 있습니다. 그래서 오늘 이 수계식도 그 전래를 따라 시행합니다. 부처님을 대신하여 여러분들이 삼보에 귀의하고 오계 받기를 청하기에 오늘 이렇게 수계를 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니 이 법을 잘 받아 지녀서 수평적으로는 이 법을 널리 이 세상의 많은 사람들에게 전하도록 하고, 수직적으로는 미래의 후세들에게 대를 이어서 전해서 미륵 부처님이 오실 때까지 이 바른 법을 계승해 나가야 합니다. 오늘은 그런 소중한 자리입니다.”nbsp연비를 마치고 스님께서는 졸업생 한명 한명에게 불명을 주시고, 불명의 의미에 대해 자세하게 설명해 주신 후 염주와 함께 직접 사인한 ‘기도’ 책을 선물하셨습니다. 그리고 방콕정토회 홍정혜 대표님은 졸업생들에게 정진할 때 입을 수 있는 계량한복 상의를 선물해서 졸업생 모두 기쁜 마음으로 선물을 받았습니다.nbspnbspnbsp수계식을 잘 마치고 이어서 졸업식이 진행되었습니다. 방콕정토회 황소연 총무님의 정토불교대학 경과보고에 이어서 홍정혜 대표님의 영접사를 들은 후 스님께서 졸업생들을 위해 기념 법문을 해주셨습니다. 정토불교대학을 통해 무엇을 배워야 하는지 일목요연하게 다시한번 정리해주시면서 졸업생들이 앞으로 어떻게 살면 좋을지 당부의 말씀과 더불어 격려도 해주셨습니다.nbspnbsp“불자가 된다는 것은 내 인생을 행복하게 하는 사람이 된다는 것입니다. 천상에 태어난다, 복을 받는다, 이것이 불자의 목표가 아닙니다. 불교 수행의 궁극적인 목표는 해탈과 열반입니다. 여러분들은 오늘부터 계를 받았으니 이제 붓다로 가는 첫걸음을 뗀 것입니다. 그래서 첫째, 불교란 무엇인가에 대해 공부를 하셨습니다. 둘째, 부처님은 누구인가. 어릴 때는 어떤 고민을 했고 어떤 과정을 거쳐서 수행을 했고, 깨닫고 난 이후에 그분은 어떻게 살았고 어떤 법문을 했는지 자세히 공부했습니다. 셋째, 대승불교를 하더라도 근본불교를 공부하고 그 위에 대승불교를 해야 합니다. 근본불교 없는 선불교를 하면 부처님 없는 선을 하게 돼요. 그러면 신앙의 중심이 제대로 서지 않습니다. 그래서 부처님의 근본 가르침을 먼저 알아야 됩니다. 연기법과 사성제, 팔정도, 중도, 이런 기본을 제대로 알아야 여기서부터 대승이 나오고 선이 나오게 됩니다. 넷째, 불교의 역사를 공부했습니다. 근본불교, 대승불교, 밀교, 선불교는 역사적인 변천과정에서 생겨난 것입니다. 이것을 제대로 공부해서 이름이 어떻든 불교의 근본 정신이 꿰뚫어져야 합니다. 그리고 점점 발전해온 것임을 알아야 선불교의 아이덴티티도 가지고 다른 불교를 포용할 수도 있습니다. 불교 역사 공부를 하더라도 근본 가르침이 이어져가는 그 맥을 잡고 어떻게 변화해 왔는가를 알아야 여러 불교 간에 모순이 안생깁니다. 그동안 공부한다고 수고가 많으셨고요. 이제 다음은 경전반에 입학하셔야 합니다.nbspnbsp졸업이 공부의 끝이 아니고 이제 기초가 잡혔으니 앞으로는 더욱 정진을 하셔야 합니다. ‘나’ 아닌 것으로 ‘나’를 삼으면 안됩니다. 옷이 ‘나’가 아니고 지위가 ‘나’가 아닙니다. 육신도 ‘나’가 아닌데 무엇이 ‘나’ 이겠어요? 그런 것에 정신을 팔면 죽을 때까지 헐떡거리며 살게 돼요. 그래서 항상 중심을 딱 잡고 살아야 해요. 그런 좋은 법을 우리에게 깨우쳐주신 분이 부처님이시고, 나도 이 좋은 법을 따라서 붓다처럼 자유롭고 행복한 사람이 되는 것이 바로 불자의 길입니다.”nbsp감로의 법문을 들은 졸업생들은 바른 가르침으로 인도해 주신 스님께 감사의 마음을 담아 정성껏 삼배를 하고 ‘스승의 은혜’ 노래를 함께 부르면서 꽃다발을 선물했습니다.nbspnbsp▲ ‘스승의 은혜’ 노래로 스님께 감사의 마음을 전하는 졸업생들nbsp졸업식을 모두 마치고 스님께서는 졸업생 모두와 함께 기념 사진을 찍으시고, 또 이어서 졸업생 한명 한명과도 일대일로 기념사진을 찍으셨습니다.nbspnbsp▲ 오늘 스님께 수계를 받은 방콕과 프놈펜 정토불교대학 졸업생들nbsp기념사진 촬영을 모두 마치고 나서는 모두 한 자리에 모여 비빔밥을 만들어 먹으면서 먼 길을 달려오신 스님과 오순도순 정겨운 이야기들을 나누는 시간을 다 가졌습니다.nbspnbsp스님께서는 오후에는 오랜만에 휴식을 취하셨습니다. 인도성지순례부터 시작해서 오늘까지 쉴틈 없이 바쁜 일정을 강행해 오셨고 특히 어제는 하루종일 4번의 강연을 소화하시느라 피로가 많이 누적되어 있으셨는데, 건강을 회복하시기 위해 모처럼 휴식을 취하실 수 있었습니다.nbspnbsp스님께서 휴식하시는 동안 무변심 법사님은 방콕과 프놈펜에서 오신 불교대학 졸업생들과 정토회 회원들을 위해 정토회의 사상과 운영 방침 등에 대한 직무 교육을 해주셨습니다.nbspnbsp▲ 무변심 법사님과 함께한 직무 교육nbsp그동안 해외에서 자원봉사를 하면서 정토회의 원칙과 그 취지를 잘 몰라 어려움이 많았던 분들은 법사님의 강연과 질의응답 시간을 통해 명쾌하게 궁금증이 다 해소되었다며 좋아했습니다.nbspnbsp무변심 법사님과 함께하는 직무 교육까지 모두 마치고 스님 일행은 신도님들이 정성껏 차려주신 저녁식사를 함께 먹고 저녁7시에 방콕정토법당을 나왔습니다. 신도님들은 스님께 삼배를 올리면서 부지런히 수행 정진하며 지낼 것을 다짐했습니다.nbspnbsp방콕정토회 황소연 총무님이 법당으로 이용하면 좋을 것 같다는 건물 답사를 하기 위해 잠시 들렀습니다.nbspnbspnbsp2층으로 된 주택인데 거실과 방이 넓직해서 법회와 불교대학을 진행하기에는 적절해 보였습니다. 방콕은 동남아시아에서 교통의 중심이 되는 도시여서 주변 다른 도시들에서 접근하기가 아주 좋은 위치인데, 방콕정토법당이 조금 더 규모있게 확장되어서 다양한 수련과 교육이 이곳에서 이뤄져서 동남아시아 포교가 더욱 활성화되었으면 하는 바램도 가져보았습니다.nbspnbsp방콕 공항에 저녁8시30분경에 도착해 출국 수속을 밟고 게이트로 들어오니 비행기 이륙 시간까지 2시간 정도 여유가 있었습니다. 스님께서는 라운지에서 한국에서 온 이메일 등을 체크하시며 업무를 보시다가 밤 11시20분 비행기로 한국으로 출발하셨습니다.nbspnbspnbsp내일은 오전 6시30분에 한국 인천공항에 도착하셔서 서울에서 일정을 보내신 후 모레는 정토회 4차 백일기도 입재식에 참석하실 예정입니다.nbsp
2015.1.22 인도 델리 즉문즉설 강연
nbsp안녕하세요. 오늘 스님께서는 인도 델리에 머무시면서 아침 일찍부터 델리 정토불교대학 졸업식과 성지순례 인도국립박물관 안내, 델리 한국문화원 인도인 통역 강연, 한국인 즉문즉설 강연 등 하루 종일 바쁜 일정을 보내셨습니다.nbspnbsp인도 델리 불자회에서 운영하는 자혜정사에서 하루밤을 묵은 스님께서는 오전 8시 같은 장소에서 델리 정토불교대학 수계식 및 졸업식에 참석하여 졸업생들을 위해 수계 및 법문을 해주셨습니다. 델리에는 아직 정토법당이 마련되어 있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델리 정토불교대학생 5명은 지난 1년 동안 열심히 학사 일정을 완수하여 오늘 스님으로부터 수계 및 졸업식을 갖게 되었습니다.nbspnbsp▲ 델리 정토불교대학 졸업식 및 수계식nbsp스님께서는 5명을 앞에 두고 2시간 동안 정성을 기울여 수계의 의미에 대해 설법하시고 수계를 해주셨으며 한명 한명에게 불명도 주시고 그 의미에 대해서도 자세히 설명을 해주셨습니다. 항상 100명, 500명, 1000명의 대중들에게 법문해주시는 모습을 많이 보아왔는데 오늘은 이렇게 5명을 위해서도 한결 같이 정성껏 법문을 해주시는 모습을 보니 ‘스님에게는 한명이나 오백명이나 차이가 없구나’ 하는 잔잔한 감동이 일었습니다.nbspnbsp▲ 참회게를 부르며 스님께 연비를 받는 델리 정토불교대학 졸업생들nbsp수계식에 이어서 곧바로 델리 정토불교대학 졸업식이 진행되었습니다. 스님께서는 5명이 전원 졸업한다는 얘기를 들으시고 “졸업률이 100 네요. 한국은 졸업률이 50 밖에 안되는데요” 하시면서 출석 체크와 봉사 시간 체크를 정확하게 했는지 물으시고는 법문을 시작하셨습니다. 정토불교대학을 통해 무엇을 배워야 하는지 일목요연하게 다시한번 정리해주시면서 졸업생들이 앞으로 어떻게 살면 좋을지 당부의 말씀과 더불어 격려도 해주셨습니다.nbspnbsp▲ 졸업생 한명 한명에게 불명을 주시고 그 의미를 설명해주시는 스님nbsp이렇게 5명의 정토행자가 머나먼 이국땅 이곳 델리에서 탄생하였습니다. 5명의 졸업생들은 앞으로 수행, 보시, 봉사하는 삶을 다짐하며 스님께 삼배로 인사를 하고 졸업식까지 원만히 잘 마쳤습니다.nbspnbsp▲ 델리 정토불교대학 졸업생들과 델리 불자회 분들nbsp스님께서는 졸업생들을 비롯하여 함께 참석한 델리 불자회 분들과 기념사진을 찍었습니다. 그리고 참석한 델리 불자회 회장님을 비롯한 몇몇 분들에게는 새책 lt지금 여기 깨어있기gt에 사인을 해서 선물하셨습니다. 델리 불자회 분들은 1년만에 델리를 찾으신 스님과 더 여유있게 이야기를 나누고 싶어 하셨지만 곧 11시부터 델리에 하루 더 남은 성지순례객들을 위해 인도국립박물관 안내를 해야 해서 아쉬움을 뒤로 하고 곧바로 박물관으로 출발하셨습니다.nbspnbsp차가 막혀서 11시 10분경에 박물관에 도착한 스님은 박물관을 관람하고 있던 1,2,8호차 순례객들을 위해 인도의 역사와 불교 유물, 부처님의 진신사리에 대해서 정성껏 안내를 해주셨습니다.nbspnbsp박물관 안내를 마치고 곧바로 델리 한국 문화원으로 향했습니다. 12시30분경 한국 문화원에 도착한 스님께서는 김근평 문화원장님과 함께 비빔밥으로 점심식사를 하고 차도 같이 마시면서 지난해 세계 100회 강연을 다녀오신 소회와 가야 근교에서 수자타아카데미를 운영해온 경험, 인도 불교 성지 복원 및 정비 사업 등에 대해 많은 이야기를 나누셨습니다.nbspnbsp▲ 인도 델리 한국 문화원nbsp특히 김 원장님은 스님께서 3월에 수자타아카데미에 머무실 때 직접 둥게스와리를 방문해보고 싶다고 하셔서 스님께서도 흔쾌히 환영의 뜻을 전하셨습니다. 김 원장님은 이번에 3년 더 인도에서 근무하게 되셨는데, 원장님과 스님의 좋은 인연이 앞으로도 계속 될 것 같다는 기대감이 들었습니다.nbspnbspnbspnbsp오후2시부터는 델리 한국문화원 주관으로 인도인들을 위한 즉문즉설 강연이 한국문화원 지하 강당에서 쁘리앙카님의 힌디어 통역으로 열렸습니다. 쁘리앙카님은 정토회 실무자로 근무하고 있는데 그동안 석가족들과 수자타아카데미 학생들 교육 때는 힌디어 통역을 여러차례 해왔지만, 즉문즉설 강연을 통역하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라고 합니다.nbspnbsp▲ 인도인 대상 힌디어 통역 즉문즉설 강연nbsp총 40여명이 인도인들이 참석하여 스님께 다양한 질문을 했습니다. 한국은 원래 불교가 번성했는데 왜 크리스쳔이 많이 늘어나게 되었는지 묻는 분, 스스로 자기 구제를 해야지 신을 믿을 필요가 있는지 묻는 분, 비교하지 말라고 말씀하셨는데 불교에서도 자기 종교가 더 우월하다고 얘기하는 내용이 있는지 묻는 분, 불교를 믿어야 해탈할 수 있는지 묻는 분, 사랑하는 사람이 많으면 그만큼 괴로워진다고 하셨는데 그렇다면 사랑하는 사람이 없어야 하는 건지 묻는 분, 내 성격이 있고 내가 하고 싶은 일이 있는데 수행을 하면 나의 중요한 색깔이 없어지는 것이 아닌지 묻는 분 등 많은 질문이 쏟아졌고 스님께서는 2시간 30분 동안 다양한 비유를 들어가며 답변을 해주셨습니다. 특히 쁘리앙카님의 유창한 힌디어 통역 덕분에 스님의 법문이 인도인들에게 잘 전달되는 기회가 되었습니다.nbspnbsp▲ 힌디어 통역을 해준 쁘리앙카님nbsp그 중에서 인도인 학생 중에 한명이 질문한 “불교를 믿어야 해탈할 수 있습니까?” 라는 질문에 대한 스님의 답변을 간단히 소개해 드리겠습니다. 스님께서는 힌두교를 대부분 믿고 있는 인도인들에게 이렇게 답변을 해주셨습니다.nbspnbspnbsp“고뇌가 어떻게 생기는지 이치를 깨달아서 자유로워지는 것이 붓다의 가르침입니다. 그러나 불교에는 두 종류가 있습니다. 하나는 불교, 힌두교, 기독교라고 불리우는 종교로서의 불교입니다. 어떤 것이 더 높고 어떤 것이 더 옳다고 말할 수 없고 서로 다르다고만 말할 수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서로 다름을 인정하고 존중해야 합니다.nbspnbsp다른 하나는 종교로서의 불교가 아닌 진리로서의 불교가 있습니다. 그가 갖고 있는 종교가 무엇인지는 상관하지 않고 어떻게 해야 깨달을 수 있는지를 가르칩니다. 이것은 힌두교라 하더라도 진리를 깨달으면 자유로워지는 것이고, 불교인도 깨닫지 못하면 자유롭지 못해지는 것입니다. 붓다의 본래 가르침은 깨달음에 대한 가르침입니다. 제가 여러분께 권유하고 싶은 것은 이것에 대한 공부를 하라는 것입니다. 사무지가 해? nbspnbspnbsp그런데 여러분들은 제 말을 이해하기가 어려울 거예요. 한국에서는 종교가 선택의 문제입니다. 그러나 인도에서는 종교가 선택의 문제가 아니라 태어나면 주어지는 것이기 때문에 차이가 있습니다. 한국에서는 family name을 선택하는 것이 아니라 태어나면 주어지는 것이듯이 인도에서는 아버지가 무슬림이면 나도 무슬림이고 부모가 힌두이면 나도 힌두가 됩니다. 그런데 진리의 가리침은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선택하는 것입니다. 여러분들이 힌두라고 하는 주어진 종교는 그대로 간직하고 진리에 대해서는 선택해서 공부할 수 있습니다. 제가 ‘최’라고 하는 family name을 가지고 있으면서 부디스트인 것과 같습니다. 담마를 공부해서 해탈하는 것이 중요하지 최씨라는 것을 버려야 하는 것은 아닙니다. 붓다의 근본 가르침은 진리를 가르친 것이지 종교의 개념이 아니었습니다.”nbsp인도인들은 스님의 답변을 듣고 고개를 끄덕이며 공감을 표시했습니다. 강연을 모두 마치고 스님께서는 한국문화원 원장님으로부터 꽃다발을 선물 받으셨습니다.nbspnbsp▲ 델리 한국문화원 김근평 원장님nbsp그리고 오늘 강연을 들은 인도인들과 함께 기념 사진을 찍었습니다.nbspnbsp▲ 즉문즉설 강연에 참석한 인도인들과 함께nbspnbsp스님의 답변이 너무 좋았는지 강연이 끝나고 나서도 무대 앞으로 다가와 다음 한국인 강연이 있기 전까지 계속해서 스님께 궁금한 점을 물었습니다. 스님께서는 쉴 시간도 없이 계속해서 인도인들의 질문에 답변을 해주셨습니다.nbspnbsp▲ 미진한 점들을 더 묻기 위해 무대 앞으로 나온 인도 학생들nbsp이어서 오후 5시부터는 같은 장소에서 델리에 살고 있는 한국인들을 대상으로 즉문즉설 강연이 열렸습니다. 총 100여명이 참석하여 한국 문화원 강당은 자리가 꽉 찼고, 서서 강의를 듣는 사람도 생겨서 추가로 의자를 더 가져오는 등 스님의 강연에 대한 델리 교민사회의 높은 관심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nbspnbsp▲ 인도 델리 한국인 대상 강연nbsp스님께서는 지난해 세계 100회 강연을 다니시며 전세계의 많은 교민들을 만나셨는데 그 소회를 함께 나눠주시면서 강연을 시작하셨습니다. 먼저 스님께서 “즉문즉설은 주제에 관계 없이 무엇이든지 묻고 대화하면서 진리를 규명해가는 자리”라고 말씀하시면서 “누구든지 자기 고민이 있는 사람은 손을 들어 보세요” 라고 하자 여기저기서 손을 들었고 곧바로 즉문즉설 강연이 시작되었습니다.nbspnbspnbsp앞서 외국인 강연보다 훨씬 더 다양하고 구체적인 질문들이 쏟아졌습니다. 지금 뮤지컬을 배우고 있는 학생인데 가보지 못한 길을 가야해서 두려움이 크고 내가 재능이 있는지 잘 모르겠다는 분, 부처님은 신이 아니고 사람인데 다른 종교와 어떤 차이가 있는지, 불교는 왜 채식을 하게 되었는지, 불교는 범어로 기도를 많이 하는데 한글로 된 기도 방법은 없는지, 인도 사람들과 같이 일하는 것이 많이 힘들다고 묻는 분, 세입자가 아직 계약 기간이 끝나지 않았는데 사정이 급해서 보증금을 먼저 빼달라고 하는데 남편과 의견이 달라 어떻게 해야할지 고민인 분, 13살이 되는 초등학생인데 정치에 대해 관심이 많으니까 어른들이 안좋게 바라보셔서 고민이라는 학생, 수익을 극대화하지 못하면 도태되는 경쟁 사회가 심해지는 것 같은데 이런 시대에 불교가 어떤 역할을 할 수 있는지 묻는 분, 만드는 것을 잘하고 손재주가 있어서 꿈이 건축가인데 무엇을 준비해야 하는지 잘 할 수 있을지 걱정인 학생 등 다양한 질문에 대해 스님께서는 정성껏 답변을 해주셨습니다.nbspnbspnbsp그 중에서 남편이 강아지 키우는 걸 싫어해서 고민인 여성 분의 질문과 답변을 소개해 드리겠습니다. 스님의 명쾌한 답변에 웃음이 빵빵 터져나왔습니다.nbspnbsp“저는 작년에 강아지 두 마리를 집으로 데리고 왔어요. 그런데 남편이 강아지를 너무 싫어했지만 겨우 승낙을 받았어요. 강아지가 처음에는 작았는데 지금은 너무 커져서 남편의 불만이 너무 많이 쌓이고 있습니다. 저도 나름대로는 강아지 옷도 만들고 가능하면 남편이 신경을 안쓰도록 노력도 했는데 최근에는 남편과 강아지 때문에 너무 힘들어요. 또 한편으로는 강아지들이 너무 불쌍해서 잘 키우려고 데리고 왔는데 다른 곳으로 보내기가 그렇고, 강아지를 다른 곳으로 보내려고 하니까 아이들도 ”엄마, 우리도 힘들어지면 다른 곳으로 보낼거야?“ 이런 얘기를 해요. 강아지를 생각하자니 남편이 마음에 걸리고, 남편을 생각하자니 강아지가 마음에 걸리고 그렇습니다.”nbsp“질문자가 관점이 틀렸어요. 어떻게 남편을 강아지와 비교해요? 수준 이하네요. 어떻게 남편의 의견을 강아지의 입장과 비교해서 얘기를 합니까? 남자가 뭣 때문에 저런 여자랑 사는지 모르겠네요, nbspnbsp남편이 싫다고 하면 어디든지 강아지를 딱 보내야지요. 처음에는 강아지가 어릴 때 동의를 했지만 이제 강아지가 커서 동의가 안되면 남편의 의견을 존중해야지요. 남편의 의견을 존중하지 않을거면 혼자 살지 왜 결혼해서 같이 살아요?“nbsp“저도 고기를 정말 안 좋아하는데 고기를 좋아하는 남편을 생각해서 고기를 먹기 시작했거든요.”nbspnbsp“그렇게 내가 하나 맞춰주었으니 너도 하나 맞춰달라고 하면 그건 장사이지요. 그렇게 장사를 하려면 결혼을 안했어야죠. 내가 열 개 맞춰 주었는데 너는 왜 한 개 밖에 안 맞춰주냐 이렇게 거래를 하면 안돼요.” nbspnbsp“그럼 강아지를 어떻게 처리해야죠?”nbspnbsp“그거야 질문자가 알아서 처리하면 되지요. 남편이 강아지가 싫다고 하면 ”알았습니다“ 하고 처리하기로 먼저 결정을 해놓고 어디로 보낼건지는 연구하면 방법이 나오지요. 어떻게 남편과 강아지를 비교해요? 그것은 동물애호가이기 때문이 아니예요. 부부 지간에 자기 취향을 고집하는 겁니다.”nbsp“아이들의 정서적은 부분은 어떻게 제가 다독여야 하나요?”nbspnbsp“가정에서 어떤 일을 할 때 아이들과 남편을 동격으로 두면 질문자 때문에 아이들이 나빠집니다. 집안의 질서는 사람이 똑같다고 일대일이 아니예요. 남편의 의견이 우선이고, 아이들의 의견은 보조적으로 들어야 합니다. 강아지의 의견은 그 밑에 두어야 해요.” nbspnbspnbsp“예, 알겠습니다. 혹시 청중들 중에 제 강아지를 잘 키우주실 분 없을까요?” nbspnbsp“강아지를 주면서 잘 키워줄 사람을 찾으면 안됩니다. 잘 키우든지 못 키우든지 그건 가져간 사람이 알아서 할 일이지요. 거기에 얽매여서 ‘강아지를 데려가서 그렇게 키우면 어떡하냐?’ 하면 그건 남의 인생에 간섭하는 것이 됩니다. 어떻게 키우든지 주었으면 그걸로 끝내야 합니다.”nbsp“감사합니다. 정말 명쾌한 답이 되었습니다.” nbspnbsp“그런 질문을 해서 제가 이제 강아지랑 원수가 되겠네요. 왜 저한테 그런 질문을 해서 강아지한테 업을 짓게 해요? 일은 자기가 벌여놓고요.” nbspnbsp스님의 명쾌한 답변에 청중들의 박수갈채가 쏟아졌습니다. 강연은 무려 2시간 30분 동안 계속 되었습니다. 강연을 마무리하시며 스님께서는 법의 이치를 깨달아야 행복해질 수 있다고 강조하시면서 이렇게 마무리 말씀을 해주셨습니다.nbspnbsp“진리와 법의 이치를 깨닫게 되면 행복하고 자유로워질 수 있습니다. 좋은 대학 가게 해달라고 열심히 빈다고 부처님이 그것을 들어주면 그럼 부처님은 입시 브로커가 되잖아요. 입시 브로커가 아닌 이상 이 문제를 어떻게 해결해 줄 수가 있어요? 넣어주려면 실력이 되는 아이를 빼고 넣어주어야 하잖아요. 이런 일을 부처님이 하셔야 할 일이예요? 그런데도 많은 사람들이 믿는 부처님은 입시 브로커와 같은 존재예요. 그래야 소원이 이뤄지니까요. 부처님은 공평하시고 모든 중생을 자비롭게 여기시는 분인데 왜 그런 일을 하시겠어요? 부처님은 이런 세속의 모습을 깊이 관조하시고 이것을 뛰어넘어서 6년 간 수행 끝에 이런 제로섬 게임을 벗어나는 연기법과 공존의 길을 발견하신 것이거든요. 열심히 사업을 해서 돈을 벌어야지 왜 부처님한테 돈을 달라고 해요? 부처님은 자기 돈도 버렸는데 왜 여러분 돈을 벌어주는 일을 하겠어요?nbspnbsp부처님한테 비는 것이 꼭 나쁘냐? 그건 아니예요. 다만 붓다의 가르침과는 관계가 없는 일이라는 겁니다. 그래도 믿고 의지하면 불안한 심리가 안정되기 때문에 도움이 되긴 해요. 그래서 함부로 부정하면 안돼요. 그러나 이것은 해탈과는 거리가 멉니다. 그래서 여러분들이 인생의 진정한 자유와 행복에 대해서 좀 관심을 가지셔야 해요. 여러분들이 믿는 천주교와 개신교를 버려라는 얘기가 아니예요. 평생 교회 다니다가 절에 오면 친구도 없지 가족도 반대하지 힘들잖아요. 부처님은 그런 걸 바꾸게 해서 복잡하게 만드시는 분이 아니예요. 그것은 그것대로 유지하시되 우리가 가진 가치관의 모순, 생각의 잘못을 깨우쳐서 조금 더 자유로워지면 됩니다.nbspnbspnbspnbsp‘이것은 커피잔이다’ 하는 것이 상입니다. 그럼 이것으로 물은 못 마시잖아요. 그러나 이것은 ‘공’이예요. 다만 그릇이예요. 물을 담으면 물잔이 되고, 커피를 담으면 커피잔이 되고, 우유를 담으면 우유잔이 되고, 아이 오줌 눌 때 받으면 요강이 되는 거예요. 이렇게 공하기 때문에 자유로운 겁니다. 그 무엇도 아니기에 그 무엇도 될 수 있게 되는 겁니다. 이렇게 연기법과 제법의 공한 이치를 깨달으면 여러분의 삶이 훨씬 더 자유로워집니다. 그렇게 공부를 한번 해나가시면 좋겠습니다.nbspnbsp자신의 소중함을 아시고 행복하시기 바랍니다. 남을 괴롭히지도 말아야 하지만 자신을 학대하지도 말아야 합니다. 여러분들 하나 하나는 굉장히 소중한 존재입니다. 그리고 지금까지 안 죽고 살은 것만 해도 대성공입니다. 다 성공적인 삶을 지금 살고 있는 거예요. nbspnbsp내가 아닌 지위, 돈 이런 것 갖고 자기를 학대하면서 열등의식을 갖지 마시고 존재의 귀중함을 아시고 행복하게 사시기 바랍니다. 인도에 사시면서 인도를 사랑하시고, 한국에 가시면 한국을 또 사랑하시고요. 인도에서는 맨날 한국 그리워하고, 한국에서는 맨날 한국 욕하고 그러지 말고 지금 여기 행복해야 합니다.”nbspnbsp긴 시간 동안 열강을 해주신 스님께 델리 교민들도 다시한번 뜨거운 환호와 박수갈채를 보내주었습니다.nbspnbspnbsp강연을 마치고 참석한 교민들과 다함께 기념 사진을 찍었습니다. 인원이 많아서 두 번에 걸쳐 나눠서 사진을 찍은 후, 한국 문화원 1층 카페로 올라왔습니다.nbspnbspnbsp한국 문화원 원장님을 비롯해 관계자 분들과 저녁 식사를 하면서 많은 이야기를 더 나누셨습니다. 스님께서는 인도성지순례를 시작하면서부터 남방 스님들처럼 오후 불식을 계속 해오시고 계셔서 물 한잔만 드시면서 문화원 관계자들과 계속 대화를 나누셨습니다.nbspnbspnbsp문화원 관계자 분들과 델리 불자회 분들의 환송을 받으면서 저녁 8시30분 무렵 한국문화원을 나와 델리 공항으로 출발했습니다. 9시30분 무렵 공항에 도착해 출국 수속을 밟은 후 스님께서는 1시간 30분 가량 라운지에 머무시며 아이패드로 업무를 보시다가 밤 12시 20분 비행기로 방콕으로 출발하셨습니다.nbspnbsp내일은 방콕에 도착하셔서 방콕 정토불교대학생들의 졸업식과 수계 법회에 참석하셔서 법문을 해주신 후, 정토회 4차 백일기도 입재식에 참석하기 위해 밤 비행기로 한국으로 귀국하실 예정입니다. 내일 또 소식 전하겠습니다.nbspnbsp
2015.1.21 인도성지순례 15일째 델리
▲nbsp부처님의 진신사리가 모셔져 있는 델리 인도국립박물관nbspnbsp안녕하세요. 오늘은 부처님의 발자취를 따라서 인도성지순례를 떠난지 마지막 날인 15일째가 되는 날입니다.nbspnbsp아그라에서 하룻밤을 자고 오늘은 오전 8시에 숙소를 출발합니다. 순례 기간 동안 매일 새벽3시, 4시에 출발했는데, 어제 일정 공지 시간에 스님께서 “비싼 호텔에 잤으니까 본전을 좀 뽑아야 되잖아요. 그래서 오늘은 8시에 출발한다” 고 하니 곳곳에서 환호성이 터져나왔습니다. 7시부터 로비로 내려오는 순례객들의 얼굴을 보니 다들 샤워도 하고 머리도 감았는지 깔끔한 모습들입니다.nbspnbsp버스에 올라타 이제 마지막 여정인 델리로 향합니다. 버스가 델리를 향해 출발하자 스님께서는 송수신기로 “잘 주무셨어요?” 라고 인사를 하십니다. 순례단의 밝은 표정들을 보며 스님께서 “좀 씻으니까 좋아요? 뭐 씻으나 안 씻으나 달라진 게 없네” 농담을 하시니 모두들 크게 웃습니다. 그리고 또 “이제 오늘부터는 노상 방뇨의 자유가 사라졌어요. 노상 방뇨하던 버릇을 한국, 미국, 독일로 가져가면 안돼요” 말씀하시니 다들 ‘나도 모르게 습관적으로 노상 방뇨를 할 수도 있겠다’ 싶은 공감이 되었는지 깔깔깔 웃습니다.nbspnbsp아그라에서 델리로 가는 길은 지금까지 성지순례를 다니며 보았던 풍경과는 완전히 다른 세상이었습니다. 4차선 고속도로가 깨끗하게 펼쳐져 있고, 양 옆으로 아파트가 줄줄이 건축되고 있고, 사람들이 모두 신발을 신고 다녔습니다. 순례단이 다닌 비하르주에서 만난 맨발로 헐벗은 차림의 인도인들과 허름한 집들과는 너무나 대비되는 풍경이었습니다.nbspnbsp▲ 인도에서 유일한 고속도로라고 하는 아그라와 델리 사이의 야무나 익스프레스nbsp고속도로를 달리는 중간에 휴게소에 잠시 들렀다가 버스 안에서 어젯밤 숙소에서 미리 싸둔 주먹밥을 꺼내 먹었습니다. 다들 우리 조가 싼 주먹밥이 더 맛있다며 자랑도 하면서 함께 나눠먹고, 마지막 여정의 아쉬움을 달래며 쉴새 없이 이야기꽃을 피웠습니다.nbspnbsp▲ 버스 안에서 먹는 주먹밥nbsp오전 12시20분경 무렵 델리 박물관에 도착한 순례단은 도착한 순서대로 세 그룹으로 나뉘어서 스님께서 해주시는 박물관 안내를 들었습니다. 검색대를 통과해야 해서 기다리는 시간이 조금 길었지만, 도반들과 정겹게 이야기도 나누느라 모두들 표정이 밝습니다. 특히 박물관 안에 부처님의 진신사리가 모셔져 있다는 얘기를 듣고 다들 기대감을 안고 차례를 기다렸습니다. nbspnbsp박물관에 안에 들어서자 입구에서부터 부처님 진신사리가 모셔져 있는 곳까지 스님께서 차례대로 자세히 설명을 해주셨습니다.nbspnbsp“이곳은 델리 인도국립박물관입니다. 인도의 모든 문화유물을 전시하고 있어요. 첫 번째 전시실에는 고대 인도 문화인 인더스 문명에 대한 유물이 있습니다. 세계 4대 문명의 발상지가 여기 그려져 있는데, 우리 입장에서 보면 황하 문명 보다도 천년 내지 2천년 앞선 요하 문명이 발견되었어요. 우리의 배달문명이라고 볼 수 있는데 앞으로 세계적으로 인정이 되어서 밝혀지면 세계 4대 문명이 아니라 세계 5대 문명이 될 수 있죠.nbspnbsp▲ 국립인도박물관nbsp인더스강 유역에 영국 사람들이 철도를 놓다가 노동자들이 자꾸 어디서 벽돌을 가져와서 “어디서 가져오느냐?” 물었더니 “땅에서 캔다”고 하는 겁니다. 벽돌을 땅에서 캔다는 것이 말이 안되잖아요. 그래서 가봤더니 진짜 땅 속에 벽돌이 가득한 거예요. 조사해 보니 고대에 아주 발달된 도시의 집터와 신전터인 5천년 된 유물이 발견되었습니다. 초기에 하라파와 모헨조다로 지역에서 발견되면서 이 지역이 유명해졌는데, 여기 점 찍어 있는 지역에서 유적이 다량으로 발견되었어요. 구자라트, 하리아나 지역까지 포함한 이 전체를 인더스 문명이라고 부릅니다. 인더스 문명은 유물로 연대 측정을 했을 때 한 5천년에서 4천년 전의 문명입니다. 문자가 일부 발견되었는데 아직 해독이 안되고 있고, 이 문명이 왜 어느날 갑자기 망했는지는 현재로서는 아직 밝혀지지가 않았습니다. 현재 추산하기로는 원주민이였던 흑인 계열의 드라비다족의 문명이었을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nbspnbsp이것이 망하고 지금으로부터 3천5백년 전에 북쪽에 있는 아라안족이 힌두쿠시 산맥을 넘어 지금의 파키스탄 지역으로 내려와서 동쪽으로 이동해 간 것이 동아리안, 서쪽으로 이동해 간 것이 서아리안입니다. 서아라인이 오늘날 유로피안이 되고, 동아리아인이 인도의 브라만 문명이 됩니다. 브라만 문명의 마지막 쇠퇴기에 붓다가 출현합니다. 붓다가 출현했을 당시에 문명의 중심은 힌두스탄 평원에 있었고, 고대 문명의 중심은 인더스강 유역에 있었습니다. 비옥한 토지가 다 갠지스강 유역에 있는데 왜 고대 문명은 인더스강 유역에 발달했을까요?nbspnbsp고대 문명은 모두 산림 지대가 아닌 건조 지대인 초원에 발달했어요. 그 이유는 당시에 사용하던 도구가 석기였는데 석기로는 풀은 벨 수 있지만 나무는 벨 수 없습니다. 그래서 초원 지대에 초기 문명이 발달했습니다. 그 다음에 제기로 청동기가 나오고, 결국 청동기로 무기도 만듭니다. 그리고 철기가 나오면서 도끼, 칼 같은 도구도 만들면서 산림 벌채가 가능해졌고, 그러면서 온대 산림 지역이 개간되기 시작한 겁니다. 중국도 첫 문명에 황하문명이었는데 나중에 춘추전국시대에 들어오면서 양자강 이남이 개발되기 시작합니다. 인도도 마찬가지로 인더스 문명은 초기 문명이고 3천5백년 전부터 철기가 나오면서 갠지스강 유역이 개발되기 시작합니다. 여기 있는 대부분의 유적들은 5천년 전에서 4천 8백년 전 것입니다. 어마어마하게 오래된 유물들이죠.nbspnbsp여기 보시면 장신구가 많이 있죠. 4천 5백년 전의 장신구인데 지금 목에 걸어도 괜찮을 정도죠? 그래서 여러분들이 목걸이 귀걸이 다는 것은 역사가 오래된 겁니다.nbspnbsp여기는 마우리안 왕조 때 것인데 BC43세기 부처님 입멸 후 200년 뒤에 아쇼카왕이 탑을 쌓고 하면서 조각이 나오기 시작합니다. 조각이 굉장히 정교한데 당시의 문명 수준이 아주 높았다는 것을 알 수 있어요.nbspnbsp여기에 돌 색깔이 흰색 비슷하게 나는 것을 ‘아무라바티’라고 합니다. 남인도에 가면 두 종류의 불교 유적이 있는데 하나가 ‘아무라바티’, 하나가 ‘나가르쥬나콘다’입니다. 나가르쥬나콘다 양식은 아주 활석 같은 맨들맨들한 돌에 새겨진 것이고, 아무라바티 양식은 약간 흰색이 나는데 거칠어요. 여기 문양은 다 부처님의 일생과 전생 이야기가 새겨져 있습니다.nbspnbspnbsp▲ 아시타 선인에 관한 이야기가 새겨진 조각nbsp이 문양은 어떤 이야기인지 금방 알 수 있는데 왼쪽에 앉아 있는 사람이 정반왕이고 오른쪽에 앉아 있는 사람이 아시타 선인이예요. 무릎 꿇고 무얼 하나 얹어 놓고 있지요. 그게 싣다르타 태자예요. 태자의 관상을 보는 것을 조각으로 표현한 겁니다.”nbsp아시타 선인이 태자의 관상을 보고 예언하는 장면은 엊그제 카필라성에서 스님으로부터 자세히 설명을 들은 부분이여서 그런지 순례객들 모두 “오호” 하며 고개를 끄덕였습니다. 그러자 스님께서 “바보도 티는 소리 나온다” 라고 농담을 하셔서 또 모두들 크게 웃었습니다. 다음은 쿠샨 왕조의 유물이 있는 칸으로 넘어왔습니다.nbspnbsp“여기서부터는 쿠산 왕조인데 AD 1세기에서 3세기 경의 유물입니다. 간다라 미술이 발달하고 마투라 조각이 나오기 시작합니다. 마투라 조각은 붉은 사암에 여성을 아주 사실적으로 묘사해 놓고 있어요. 마투라 조각은 여성의 성기도 노출해 놓는 경우가 많습니다. 뭘 그렇게 거기를 자세히 보려고 해요?” nbspnbsp▲ 붉은 사암으로 만든 마투라 양식의 조각nbsp마투라 양식의 여성 신상을 자세히 들여다보려고 하는 순례객들을 스님께서 농담을 하자 또한번 모두들 크게 웃었습니다.nbspnbsp칸을 넘어가며 시대 순으로 다양한 불상들이 펼쳐졌습니다. 다만 5세기 굽타시대까지는 불상들이 많이 보이는데 그 이후에는 대부분 힌두교 신상들이 많아지면서 인도에서 불교가 세력이 약해져감을 알 수 있었습니다. 스님의 설명은 계속 이어졌습니다.nbspnbsp“여기 불상을 보시면 상호와 어깨를 보면 힘이 느껴지죠? 간다라 시대의 불상입니다.nbspnbsp▲ 간다라 시대의 불상nbsp여기는 굽타 왕조인데 AD 5세기 경의 유물입니다. 굽타 왕조까지가 불교 국가의 모습입니다. 여기 보시면 부처님 허리에 끈을 맨 자국이 있고 얼굴이 동굴동굴하게 동안으로 되어있죠. 이것은 사르나트식 불상입니다.nbspnbsp▲ 사르나트식 불상nbsp힌두교에서는 석가모니 부처님을 비슈누의 8번째 화신이라고 봅니다. 그래서 부처님도 힌두교 안에서는 하나의 신이 되어 버렸습니다.nbspnbsp여기는 다 힌두교 신상입니다. 불상처럼 생겼는데 아랫도리가 노출되어 있는 이것은 자이나교의 마하비라상입니다.nbspnbsp▲ 자이나교의 마하비라상nbsp나머지는 다 신상입니다. 이 신상은 사람들이 가슴을 하도 많이 만져서 반짝거리네요.” nbspnbsp▲ 사람들이 많이 만진 부위가 반짝 거리는 힌두교 신상.nbspnbsp힌두교 신상의 가슴이 반짝 거리는 것을 보며 다들 웃음을 터뜨렸습니다. 마지막으로 연대 순에 관계 없이 여러 가지 불상들이 모셔져 있는 칸에 들어왔는데 스님께서 “바로 이곳에 부처님의 진신사리가 모셔져 있습니다” 라고 말씀하시자 모두들 “와” 하면서 감탄사를 쏟아내었습니다. 눈이 동그래져서 진신사리를 뚫어지게 쳐다보고 있는 순례객들에게 스님의 설명이 이어집니다.nbspnbsp▲ 삐쁘라하와에서 발굴된 부처님의 진신 사리nbspnbsp“여기에 바로 부처님의 진신사리가 모셔져 있습니다. 부처님의 진신사리가 3군데에서 나왔다고 했죠. 바이샬리에서 나온 진신사리는 현재 파트나 박물관에 있고요. 랑그람 진신사리탑은 아직 발굴을 안했다고 했고요. 이것은 석가족이 세운 삐쁘라하와 진신사리를 여기로 옮겨온 것입니다. 1800년대 말에 영국 사람이 거기서 이 사리 용기를 발굴했어요. 그리고 1900년대 중반에 다시 발굴을 했는데 탑의 더 밑부분에서 또 사리 용기가 나왔어요. 저 유리관 속에 있는 것이 부처님의 진신사리입니다.nbspnbsp사리는 유골을 의미합니다. 유골이 그냥 방치되면 썩어 버리잖아요. 그런데 미라처럼 오랫동안 용기에 보관이 되면서 돌처럼 되었어요. 그러나 뼛조각의 모양을 가지고 있습니다.nbspnbspnbsp예전에 한번 한국 스님들이 와서 이것을 보고 “가짜다” 라고 말하는 모습을 봤어요. 왜냐하면 한국에서는 사리라고 하면 아주 영롱한 보석이라고 생각을 합니다. 자세히 보시면 뼛조각 모양이 확실합니다.” nbspnbsp삐쁘라하와 진신사리탑은 엊그제 순례단이 직접 가서 참배하고 예불 공양을 올린 곳이어서 스님의 설명이 더 사실적으로 와닿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그리고 한국 사람들이 사리는 보석이라고 생각하는 고정관념에 대해 이야기해 주시자 또한번 모두들 자신도 그러했다며 고개를 끄덕였습니다.nbspnbsp부처님의 진신사리를 30cm 앞에서 자세히 들여다 볼 수 있다니 꿈인지 생시인지 꼬집어 보고 싶을 정도로 감개가 무량했습니다. ‘2600여년 전 고통받는 중생들의 행복을 위해 평생을 길에서 살다가신 그 분의 흔적이구나’ 하며 찬탄 공경하는 마음이 일었습니다.nbspnbsp스님께서 “부처님의 진신사리를 향해 우슬착지로 찬탄 공경합시다” 하시자 모두들 오른쪽 무릎을 땅에 꿇고 진신사리를 향해 머리를 조아리며 공경의 예를 포했습니다. 스님의 안내에 따라 천천히 오른쪽으로 빙 돌면서 더 가까이서 진신사리를 친견하는 시간을 가진 후, 스님께서는 박물관 안내를 모두 마치셨습니다.nbspnbsp시간 여유가 좀 생겨서 박물관 안쪽 정원에서 짜이와 음료를 나눠마시며 잠시 휴식을 취하다가 오후 2시가 되어서 ‘라즈가트’로 이동했습니다. 라즈가트는 인도 사람들이 가장 존경하는 인물인 마하트마 간디를 화장한 곳이라고 합니다. 무너진 벽돌 더미에 황량하기만 했던 부처님의 성지와는 달리 라즈가트는 넓은 공간에 잔디밭으로 깔끔하게 둘러싸여 공원처럼 잘 조성되어 있었습니다. 간디를 화장했다는 그곳으로 걸어가면서 스님께서는 간디의 삶에 대해 간단히 소개를 해주셨습니다.nbspnbsp▲ 간디를 화장한 곳인 라즈가트nbsp“이곳 라즈가트는 마하트마 간디를 화장한 곳인데 인도 사람들이 굉장히 성스럽게 여기는 곳입니다. 간디는 인도 독립의 아버지이며 국부라고 말할 수 있죠. 비폭력 운동을 해서 인도 사람들이 폭력적으로 대항하려 할 때 오히려 단식을 해서 폭력을 하지 못하도록 했죠. 간디를 화장한 후에 꺼지지 않는 불꽃이라고 해서 계속 불꽃이 타오르도록 해놓고 있습니다.nbspnbsp인도가 원래 면화 생산이 많고 면직물이 발달해서 그것을 주변 나라에도 수출하면서 부를 축적했는데, 영국에서 산업혁명이 일어나면서 면직물 생산이 기계화되고 인도는 오히려 원료 공급처가 되고 모든 면직물들이 소비시장으로 전락했어요. 거기에 반대해서 간디가 운동을 한 것이 물레 운동입니다. 자기가 직접 실을 뽑아서 베를 짜서 옷을 입으면서 영국에 저항을 했습니다. 또 영국 사람들이 소금에다가 세금을 많이 부과한다고 해서 그것을 안 사먹고 바닷가에 가서 직접 소금을 생산하는 저항 운동도 했습니다.nbspnbsp인도 사람들이 많이 지지한 것도 있지만, 사실은 영국 사람들이 감동을 해서 오히려 독립의 길이 열렸다고 볼 수도 있어요. 식민지 지배를 했던 총독의 딸이 간디의 독립운동을 지지하고 같이 따라다니고 했다고 해요.nbspnbsp간디는 근대에 출현한 성인이라고 볼 수 있어요. 인도 사람들에게는 부처님과 같은 반열에 오를 만큼 존경을 받는 분이죠. 인도인에게는 거의 신이 된 분이예요. 부처님처럼 비폭력 운동 등 인류에게 많은 희망을 준 분입니다.nbspnbsp그럼에도 불구하고 인도가 영국으로부터 독립을 할 즈음에 힌두와 무슬림과의 갈등이 심해집니다. 힌두와 무슬림 사이의 갈등으로 파키스탄이 인도로부터 분리독립을 하게 되었는데, 간디는 이 분리독립을 막으려고 “정권을 무슬림에게 넘겨주더라도 우리는 분리하면 안된다” 이렇게 주장을 했어요. 그래서 힌두의 극단적인 청년한테 결국 암살을 당했습니다. 1947년 1월 26일날 인도가 독립을 했거든요. 독립된 인도에서 1년 밖에 못 살았어요. 1948년 1월 30일날 암살을 당했으니까요. 독립을 위해서 50년을 싸웠는데 독립된 나라에서는 1년 밖에 못 살고 돌아가셨습니다.”nbsp스님께서는 이렇게 설명을 마치고 “모두 라즈가트를 향해 서서 삼배를 드리고 해탈주 일편을 독송하자”고 하셨습니다. 순례단은 인류에게 새로운 희망을 보여준 간디의 삶을 떠올리며 정성껏 삼배를 하고, 화장터를 향해 해탈주를 독송했습니다.nbspnbspnbsp화장터 자리에는 지금도 꺼지지 않는 불꽃이 계속 활활 타오르며 간디의 넋을 기리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공원 한켠에 “My life is my message” 라고 적힌 간디의 명언이 잔잔한 여운을 남겨주기도 했습니다.nbspnbsp라즈가트를 나와 길을 건너니 간디 박물관이 나왔습니다. 간디의 전 생애가 다양한 사진들로 전시가 되어 있었는데 시간이 부족해서 주마간산 식으로 쭈욱 훑어보고만 나왔습니다. 간디가 얼마나 인도 민중들의 행복을 위해 전 생애를 바쳤는지 사진으로도 곳곳에서 느낄 수 있었습니다.nbspnbsp▲ 간디 박물관nbspnbsp오후4시에 다시 버스에 올라타 공항 근처에 있는 만찬장으로 향했습니다. 만찬장에 도착한 순례객들의 얼굴에 웃음꽃이 활짝 피었습니다. 곧 있으면 한국으로, 고향으로 돌아간다는 기분에 살짝 들떠있는 것 같았습니다.nbspnbsp▲ 한국으로 출발하기 전 만찬장nbsp만찬을 시작하면서 스님께서 가장 먼저 인도인 한분을 소개해 주셨습니다. ‘수쿨라지’ 라는 분인데 1991년 스님께서 처음 인도성지순례를 하러 오셨을 때, 영축산이 있는 라즈길에서 처음 만나 그곳 성지를 이분이 안내해 주셨다고 합니다. 수쿨라지는 스님께 환영의 의미로 작은 선물을 전달했습니다.nbspnbsp▲ 스님의 첫 인도성지순례 때부터 인연이 된 수쿨라지nbsp성지순례의 시작과 함께한 인연이라고 하니 순례객 모두 뜨거운 박수갈채로 수쿨라지를 반갑게 환영해 주었습니다.nbspnbsp그리고 인도 델리 불자회에서 두 분이 오셔서 스님께 꽃다발을 선물했습니다. 스님께서는 내일 인도 델리 불자회 분들을 위해 법회를 해주실 예정입니다.nbspnbsp▲ 스님께 꽃다발을 전달하는 인도 델리 불자회 분들nbsp이어서 13대의 차량을 각각 담당해준 차장님들이 앞으로 나와서 그동안의 소감을 이야기하고 인솔에 잘 따라준 순례객들에게 감사의 마음을 전하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또 차량별로 노래를 잘하는 분들이 나오셔서 즐겁게 노래하며 함께 어울리는 시간이 되었습니다.nbspnbspnbsp그리고 무엇보다 가장 수고가 많으셨던 법사님들도 앞으로 나와서 인사하는 시간이 이어졌습니다. 특히 이번 성지순례 운영을 전체 총괄한 선주 법사님은 “부처님 당시를 재현한 듯한 오백 대중 중에 한명이어서 너무나 영광이었다”고 하면서 “언젠가는 천이백오십명이 함께 순례하는 날이 오기를 희망한다”고 말씀하셔서 순례객들도 큰 박수로 호응을 해주었습니다.nbspnbsp차량별로 비행기 출발시간이 모두 달라서 만찬 도중에 공항으로 먼저 출발하는 차량들도 있었습니다. 먼저 저녁7시에는 유수스님과 함께 11호, 13호 차량이 공항으로 출발했고, 7시20분에는 묘덕 법사님과 함께 3호, 7호 차량이 출발했습니다. 7시50분에는 선주법사님, 보수법사님, 묘당법사님과 함께 1호, 2호, 8호 차량이 출발했습니다. 선주법사님과 함께 가는 이 차량들은 오늘 델리에 하루 더 숙박한 후 내일 델리 인도국립박물관을 관람하고 한국으로 돌아갈 예정입니다.nbspnbsp일찍 떠나야 하는 차량들을 모두 떠나보내고, 나머지 분들은 더 남아서 서로 소감을 나누고 어울리는 시간을 더 가졌습니다. 스님께서는 만찬을 마무리하시면서 “순례 기간 동안 한국 돈 339만원, 인도 돈 33만 루피, 달러 11,000, 영국 돈 250 파운드가 보시 들어왔다”고 전해주시고, “이 돈은 수자타아카데미에 기증해서 아이들을 위해 잘 사용하겠다”며 순례단에게 감사의 마음을 전하셨습니다. 8시20분 무렵 모든 일정을 마치고, 스님께서는 마지막으로 공항으로 출발하는 6호차를 향해 작별의 손을 흔들어 주셨습니다. 버스 안에서도 스님께 작별의 손을 크게 흔들었습니다.nbspnbsp▲ 마지막으로 공항으로 출발한 6호차를 향해 손을 흔드시는 스님nbsp스님께서는 마지막까지 전화 통화를 하시며, 순례단이 모두 공항에 잘 도착했는지 출국 수속을 무사히 잘 밟았는지 확인하시며 순례단을 애정있게 챙기셨습니다.nbspnbsp이상으로 지난 15박 16일 동안의 제26차 인도성지순례는 대단원의 막을 내렸습니다. 그동안 성지순례를 함께 하는 마음으로 스님의 하루를 열심히 읽어주신 모든 분들게 감사 말씀 드립니다.nbspnbsp오늘밤 델리 불자회에서 운영하는 법당에서 하룻밤 주무시는 스님께서는, 내일 오전8시부터 델리 정토불교대학 졸업생들을 위한 수계식을 비롯하여, 1,2,8호차의 인도국립박물관 관람 안내, 델리 교민들을 위한 강연, 인도인들을 위한 통역 강연까지 쉴틈 없는 일정을 하루 종일 가지실 예정입니다. 그리고 방콕에 들러 방콕 정토불교대학 졸업 및 수계식을 하고, 정토회 제4차 백일기도 입재식 참가를 위해 모레 한국으로 귀국하실 예정입니다. 내일 또 소식 전해드리겠습니다.nbsp
2015.1.20 인도성지순례 14일째 아그라
nbsp안녕하세요. 부처님의 발자취를 따라서 인도성지순례를 떠난지 14일째 되는 날입니다. 어제 스리랑카절, 미얀마절 등 다섯 개의 숙소에 흩어져 묵었던 오백 대중은 새벽 3시 20분에 기상하여 4시 정각에 아그라로 출발하였습니다.nbspnbsp이제 빡빡한 순례일정에 익숙해져 모두들 새벽같이 일어나 짐을 싸는 바람에, 오히려 드라이버지들이 준비할 시간이 필요하니 너무 일찍 버스에 탑승하지 말라고 스님께서 주의 방송을 할 지경이 되었습니다. 어제로서 부처님이 머무신 8대 성지를 모두 참배하고 가사를 반납한 순례객들은 교복을 벗은 학생들처럼 마음이 가볍습니다. 오늘은 재가수행자로서 다시 맞는 첫날이기도 하니까요. 막바지의 순례길, 그래서인지 버스 안에서의 새벽예불과 천일결사 기도는 더욱 간절하게 울려 퍼졌습니다.nbspnbsp오늘의 일정은 무굴제국의 대표적인 건축물인, 황제 샤 자한 부부의 무덤인 타지마할과 아그라 포트를 둘러보고 자유시간을 가진 뒤, 성지순례 평가회와 만찬이 예정되어 있습니다.nbspnbsp▲ 강가강의 한 지류인 야무나 강nbsp새벽예불 후 버스에서 잠들었던 순례객들은 짙은 안개와 밤이슬이 내려앉은 들판에서 볼일을 보고 다시 버스에 몸을 실었습니다. 예정보다 한 시간 이른 8시 쯤 타지마할 동쪽 주차장에 도착하여, 어제 숙소에서 해놓은 전기밥솥의 밥과 반찬으로 아침밥을 먹었습니다.nbspnbsp식사시간에도 스님과 법사님들은 공양도 거른 채 주차장 한켠에서 선 채로 회의를 하셨습니다. 대중들이 공양을 마치자 스님께서는 타지마할과 아그라 포트에 관한 설명을 해주셨습니다.nbspnbsp“오늘은 성지순례가 아니고 관광입니다. 이곳 아그라는 인도 무굴 제국의 수도였어요. 무굴 제국의 여러 유적지가 남아 있습니다. 무굴 제국은 이슬람 왕조 국가입니다. 아프가니스탄이 있는 지역에서 일어난 티무르의 후예들인데, 그들이 남쪽으로 내려와서 인도를 정복하고 대제국을 건설했어요. 인도 대륙은 역사적으로 세 번 정복이 되었어요. 첫 번째는 아리안족이 아프가니스탄 지역에서 내려와서 인도를 지배하면서 브라만 문화를 만들었고요. 두 번째는 1세기 경에 쿠샨 왕조도 아프가니스탄 지역에서 내려와서 인도 대륙을 지배했어요. 세 번째는 이슬람이 내려와서 인도 대륙을 지배한 것이 무굴 제국이예요.nbspnbspnbsp무굴 제국은 1530년에 시작이 되어서 1600년대에 가장 번성을 했고, 1700년대에 들어가면서 쇠락하기 시작해서 1800년대 후반에 망했어요. 여기 있는 유적들은 대부분 1600년대의 유적입니다. 지금으로부터 400년 전에 만들어진 것이니 우리나라와 비교하면 조선시대 쯤 됩니다.nbspnbsp무굴 제국은 바부르에 의해서 시작되었다고 하지만 후마윤에 의해서 실질적으로 건국이 되는데 그 아들인 악바르 대제 때 전 인도를 통일합니다. 다음 황제는 자한기르이고 그 다음에 샤자한에 이르는데, 악바르 대제는 인도 대륙을 지배하면서 반대가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힌두 여자를 황후로 받아들입니다. 그래서 아그라 포트에 가면 부인이 힌두 절을 성 안에 지을 수 있도록 종교 융화책을 썼습니다. 무슬림은 이런 경우가 별로 없는데 이 사람은 전 인도를 통일하려다 보니까 그렇게 했던 것 같아요. 그 사이에서 태어난 자한기르는 엄마를 인도 사람으로 두다 보니까 무슬림이라 하더라도 좀 유화적이었던 것 같습니다.nbspnbsp그 다음 황제인 샤자한은 부인이 애를 열네명째 낳다가 죽었어요. 그 부인을 위해서 세운 무덤이 타지마할입니다. 너무 부인을 사랑해서 그렇게 무덤을 아름답게 지은 거예요. 그 강 건너편에 자기 무덤을 만들고 다리를 놓아서 영원히 사랑을 나눌 계획이었다고 합니다. 그런데 그 무덤을 짓는데 국고를 너무 많이 낭비해서 결국 아들이 참다 못해 나라가 망하게 생겨서 쿠데타를 일으켜서 아버지를 무덤 지으려던 그곳에 가두어서 유배시킵니다. 그 아들이 아우랑제브왕입니다. 그런 사랑과 비극이 함께 있는 곳입니다.nbspnbsp타지마할 무덤을 짓는데 전문 기술자가 2만명 있었다고 해요. 왕이 “새로 짓는다면 이것보다 더 잘 지을 수 있느냐?” 물으니까 기술자들이 “새로 지으면 더 잘 지을 수 있다”고 말했데요. 그래서 그 2만명의 손목을 다 잘라버렸데요. 다시는 이런 것을 못 짓도록. 그런 비극이 있는 곳입니다.nbspnbsp그래서 한번 가보시는데, 안 가보면 후회하고 가보면 별 것 없고 그래요. nbspnbsp타지마할은 안에 들어가보면 흰 대리석을 파서 거기에 온갖 꽃무늬로 보석을 박아 놓았어요. 위에 무덤이 아주 아름답게 되어 있고 지하에 진짜 무덤이 있어요. 도굴할까 싶어서 위에 아름다운 관은 가짜이고, 지하에는 아무 무늬 없는 진짜 관이 있어요. 아그라 포트는 엄청나게 큰 성인데 현재는 절반만 개방이 되어 있습니다. 성문을 들어가서 한바퀴 돌아보면 돼요.”nbsp아들이 아버지를 감옥에 가두었다는 얘기를 들으니 라즈길에서 스님께서 들려주신 빔비사라왕이 그의 아들 아자타삿투에 의해 감옥에 갇히게 된 이야기가 겹쳐집니다. 권력을 가래 같은 것이라 하던 부처님의 말씀도 떠올려봅니다.nbsp스님께서는 이렇게 아그라에 대해 안내만 해주시고 성지순례 평가회 준비를 위해 숙소로 먼저 들어가셨습니다. 순례객들은 두 팀으로 나눠 타지마할로 갈 팀은 조별로 릭샤를 타고 출발하고, 아그라 포트로 갈 팀은 버스에 탑승해 출발했습니다. 타지마할은 검색이 엄격해 주머니 속에 있는 사탕도 반입이 불허 되어 사탕을 입에 나눠 먹으며 입장했습니다.nbspnbspnbsp▲ 타지마할nbsp안개 속에서 드러내는 타지마할은 사진 속의 모습보다 아름답고, 두 부부의 사연 때문인지 슬픔이 안개 속에 부서지는 듯 했습니다. 만약에 죽은 후에 남편이 저런 건물을 지어주면 행복하겠냐는 미혼의 한 법우님의 말에 한 보살님은 단칼에 “지 좋아서 하는 일에 죽은 내가 행복할 게 뭐가 있겠어요?” 라고 답해서 웃으며 타지마할을 둘러보았습니다.nbspnbsp▲ 아그라 포트nbsp그리고 아그라 포트로 가서 산책하듯이 빙 둘러보았습니다. 순례객들은 조별로 모여 즐겁게 사진을 찍으며 친목도 도모하고 여유도 즐겼습니다. 몇몇 순례객들은 “성지순례할 때는 눈을 감고 명상하고 기도하는 시간이 많아 마음이 잘 알아차려지고 차분해져서 좋았는데, 관광을 하니까 바깥으로 눈이 팔려서 피곤하다”고 얘기하기도 했습니다.nbspnbsp▲ 쇼핑센터nbsp오후 2시30분, 관광과 쇼핑을 마친 순례객들은 마지막으로 묵을 숙소인 호텔에 도착했습니다. 모든 짐이 검색대를 통과하느라 혼잡했지만 검색대를 통과하는 호텔은 처음 자 본다며 즐거워하는 모습이었습니다. 짜증내지 않고 즐겁게 받아들이는 모습은 쇼핑하면서 들떴던 마음을 내려놓고 수행자로 돌아온 듯 했습니다.nbspnbsp배정받은 방에 짐을 풀은 대중들은 3시에 호텔 1층의 큰 홀에 개인 매트를 깔고 자리를 잡았습니다. 어제까지만 해도 부처님 당시의 풍광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을 것 같은 흙과 풀들 위에 깔았던 매트를 네모반듯한 대리석 홀 위에 까니 퍽 어색합니다. 그러나 성지순례의 긴 여정을 마무리하는 이 자리에 대한 감동이 교차하는 듯 순례객들이 스님께 올리는 청법가는 어느 때보다 우렁찹니다. 제 26차 인도성지순례 평가회는 법륜 스님의 법문으로 시작되었습니다.nbspnbsp▲ 제26차 인도성지순례 평가 법회nbsp스님께서는 어제 버스 안에서 차량별로 나누기를 할 때 채널을 바꿔가며 모니터링을 하셨는데, ‘너무 많은 곳을 돌아봐서 어디가 어딘지 모르겠다’, ‘부처님의 생애를 룸비니부터 순서대로 순례했으면 덜 헷갈렸을 것’이라는 의견들이 있었다며, “그런데 부처님이 인도 전역을 왔다갔다 했는데 그걸 다 왔다갔다 하려면 45년이 걸려요.” 라고 하시고는 “그래도 순서가 덜 헷갈리게 잡은 게 이 정도”라고 하자 순례객들은 한바탕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습니다.nbspnbspnbsp스님께서는 부처님의 생애를 탄생부터 열반에 이르기까지 2시간에 걸쳐 촘촘히 정리해서 복습해주시고 이어 지난 며칠간의 순례 일정에 따라 순서대로 복기해주시니 순례를 다시 다녀온 듯 기억이 생생하게 살아납니다. 풀밭에서, 석산에서, 탑 앞에서, 보리수나무 아래에서, 강당에서, 버스 안에서, 밤낮으로 펼쳐주셨던 법문을 대중들이 조금이라도 놓쳤을 새라 살뜰히 챙겨주시는 스님의 마음이 감동으로 전해집니다.nbspnbsp각 성지에 얽힌 중요한 교화이야기와 신화적 표현 속에 숨은 인류문화사적, 상징적 의미도 다시 짚어주셨습니다. 룸비니에서 부처님이 어머니의 오른쪽 옆구리에서 탄생했다는 것은 왕족출신을 상징하고, 일곱 발자국을 걸은 것은 육도윤회에서 한걸음 나아가 해탈열반을 상징한다는 것, 천상천하 유아독존 삼계개고 아당안지는 상구보리 하화중생의 뜻을 의미한다는 것, 아시타 선인의 예언에서 혼란스러웠던 인도 사회를 세속적으로 다스려줄 전륜성왕과 가치관의 혼란을 잡아줄 붓다의 출현을 희원하는 시대적 분위기를, 카필라성에서 두 스승님에게 받은 교육이 왕이나 브라만을 교화할 수 있는 식견을 갖추는 바탕이 되었음을, 사문유관을 통해 ‘어떻게 이길 수 있는가’가 아니라 ‘어떻게 같이 행복질 수 있는가’에 대해서 의문을 가지고 ‘시혜적 자비’가 아닌 ‘자기화된 자비’를 보여주셨음을, 당대 육사외도 등의 출가사문은 인도의 전통사상에 반대하는 비주류였음을, 히말라야산 아래 카필라성의 지리적 환경이 뒤가 높고 앞이 트여 심리가 안정된 심성을 형성하는 데 작용했을 것이라는 것, 왕위를 버림으로서 기득권을 포기하고, 머리를 자름으로서 기존의 가치관을 버렸다는 것, 고행하는 이들을 보면서 복진타락의 한계를 깨닫고, 빔비사라왕과의 일화에서 왕위를 가래에 비유하며 권력을 버린 이야기, 전정각산에서의 6년 고행에서 욕망을 따르는 거나 억압하는 것 모두 욕망에 대한 작용 반작용에 불과함을 알고 악 쓰고 참는 수행이 아니라 편안한 상태에서 미세한 것을 알아차리는 중도의 길을 가셨음을, 다양한 교화사례를 통해 재가자도, 여성들도 모두 수행해서 해탈할 수 있음을 알게 해준 이야기 등을 구슬에 실을 꿰듯 찬찬히 꿰어주셨습니다.nbspnbsp스님은 여성과 관련된 설법을 순례 중에 빼먹으셨다며 연화색녀 교화사례에 대한 이야기도 해주셨습니다. 이어서 보름 동안 바라나시부터 어제 샹카시아까지 순례한 공간들을 모두 훑어주시니 복잡하게 얽혀있던 지난 일정들이 환하게 정리되고 부처님의 발자취를 다시 압축적으로 체험한 것 같아 환희심과 감동이 일어났습니다. nbspnbsp그리고 스님은 성지순례를 마치며 이제 더 이상 껄떡거리지 말고, 겸손하고 당당하게 살 수 있도록 삶의 방식을 바꾸자고 강조하시면서 이렇게 법문을 해주셨습니다.nbspnbsp“이제 정리가 좀 돼요? 성지순례를 하면서 바깥으로 보면서는 ‘우리가 가진 것이 참 많구나’ 하는 것을 많이 느꼈죠. 그러니 첫째, 이제 더 이상 껄떡거리지 말고 있는 것만으로도 풍요롭게 생각하는 자세를 가져보세요. 둘째, 조금이라도 나눠가져야겠다는 마음을 좀 내었으면 좋겠습니다. 껄떡거리지 않으려면 가치관이 바뀌어야 해요. 검소하게 살고 겸손하게 사는 것을 기쁨으로 여겨야 해요. 그래야 당당해질 수 있어요. 우리 삶의 방식을 바꾸자는 것입니다. 완전히 다 버리고 출가하라는 것은 아니지만 방향을 그쪽으로 잡고 항상 지금 누리고 있는 것만으로도 참 미안하다는 마음을 가졌으면 해요. 부처님보다 더 많이 먹고 잘 입고 잘 자고 하면서도 늘 괴로워하는데 이 먹고 입고 자는 문제로 인생의 행복이 주어질 수 없다는 것을 이제는 분명히 아셔야 합니다.nbspnbspnbsp그래서 돈이 필요없다는 얘기가 아니라 이제 돈에 너무 껄떡거리지 말자는 것입니다. 화장하지 마라는 것은 아니지만 거기에 너무 집착은 하지 마라는 것이예요. 머리를 손질하지 마라는 것은 아니지만 거기에 너무 집착하지는 마라는 겁니다. 옷을 아무렇게나 입으라는 것은 아니지만 깔끔하게 입으면 되지 옷으로 너무 폼 잡으려고 하지 마라는 것입니다. 열등의식이 있으니까 자꾸 옷으로 커버하려고 하고, 얼굴로 커버하려고 하고, 머리 모양으로 커버하려고 하고, 큰 집으로 커버하려고 하고, 차로 커버하려고 하는데, 아무리 해봐야 그건 내 것이 아닙니다. 이 몸둥이도 내 것이 아닌데 그것이 어떻게 내 것이 될 수 있겠어요?nbspnbsp이렇게 헐떡거리며 살면 죽을 때가 되어서 후회가 됩니다. 그래서 우리가 불법에 귀의함으로써 삶의 자유와 행복을 얻어야 되고, 우리가 사는 모습이 현대 문명이 갖는 구조적 모순을 해결할 수 있는 그 길에 우리가 서 있어야 합니다.nbspnbsp성지순례를 마치셨으니 이제 법에 귀의하는 불자가 되자는 것입니다. 그래서 해탈 열반을 수행의 목표로 해야 합니다. 이것은 내 인생에서도 새로운 희망이지만 이런 방향으로 살면 우리 인류에게도 새로운 희망이 됩니다. 그렇게 해야 환경문제도 해결되고, 양극화문제도 해소되고, 계급차별도 해결됩니다. 그래서 여러분들이 좀 더 앞서가는 문명을 만드는 선진적인 사람이 되자는 발원을 하셨으면 좋겠습니다. ‘불교가 최고야’, ‘불교 믿으면 부자가 된다’ 이런 신심이 아니라 법의 이치를 깨닫고 삶이 좀 차분해져서 좋다고 들뜨지 않고 뜻대로 안된다고 가라앉지도 않고 거기에 빠지지 않는 여여한 삶을 우리가 살아갔으면 해요.nbspnbsp요즘 세상이 얼마나 좋습니까? 옛날에는 불법을 공부하려면 머리 깍고 스님이 안되면 접할 수가 없었어요. 그런데 요즘은 직장 다니면서도 불교 공부할 수 있지, 결혼하고도 공부할 수 있지, 이렇게 세상이 너무 좋아져서 공부가 제대로 안되는 것 같아요. 결혼을 하지 말라는 것도 아니고 재산을 다 버려라 하는 것도 아니고 좀 껄떡거리지만 말라고 하잖아요. 그래서 나에게도 남에게도 자랑이 되는 그런 불자가 되셨으면 좋겠습니다.nbspnbsp그렇게 발심이 되면 이 보름이 아깝지가 않습니다. 돈 삼백만원이 아까운 것이 아닙니다. 앞으로 술먹고 옷사고 낭비할 것을 생각하면 이것은 돈 축에도 안들어가는 액수잖아요. 앞으로 평생 껄떡거리면서 보석 사고 화장품 사고 좋은 술 사고 비싼 향수 뿌리고 하는데 쓸 돈은 죽을 때까지 수십만 달러가 될 거예요. 그래서 이번에 성지순례 왔다 간 덕분에 엄청난 돈을 버신 거예요. nbspnbspnbsp인간적으로 따지면 밥도 똥밭에서 먹고 세수도 제대로 못하고 덜덜덜 떨면서 다니는 것 보면 마음이 안되었어요. 모두 집에 가면 마나님이고 사회에서는 목에 힘주고 다니는 분들인데 이런 숙소에 재우고 오라 가라 하는 것이 미안할 때도 있는데, 그렇게 정에 끄달리면 제대로 가르쳐주질 못해요. 그러나 인간적으로 보면 좀 미안해요. 나이 오십이 넘어서 스님한테 야단 맞아 가면서 다니고 싶은 사람이 누가 있겠어요? 집에 가면 다 자기가 왕인데... 그런데 우리 인생의 행복을 위하고 새로운 인생을 살려면 저 같은 사람이 이렇게 야단을 치고 구박을 안 하면 누가 그렇게 해주겠어요? nbspnbspnbsp대구에 있는 어떤 분은 남편이 죽고 굉장히 열등의식을 갖고 있었는데 성지순례 한번 왔다가 ‘내가 가진 것이 너무 많다’ 이렇게 느끼고 애들 셋을 혼자서 키우는데 아무 열등의식이 없이 아주 당당하게 키웠어요. 그래서 저를 만나면 늘 “저는 온전히 성지순례 다녀온 덕택입니다” 라고 얘기하는 분이 있어요. 여러분들도 성지순례를 다녀와서 삶이 조금 더 여유가 있었으면 좋겠다 싶습니다. 이렇게 정리를 하면서 저의 역할은 마치겠습니다.”nbsp대중은 그동안의 고생이 다 풀린 듯 박수를 치며 끄덕끄덕합니다. 모두들 스님의 깊은 뜻을 이해하며 환호를 보내었습니다.nbspnbsp법문 후에는 각 조별로 나누기가 진행되었습니다. 조별 나누기 후 6시 20분부터 전체 나누기가 홀에서 진행되었습니다. 차량별로 한명씩 13호차부터 소감문을 발표하였습니다. 소감문에는 순례 기간 중에 느꼈던 감상과 순례 기간 중 개선해야 할 부분으로 나누어 발표하였습니다.nbspnbsp▲ 소감문 발표 시간nbsp한 발표자는 순례기간 자신의 행동을 돌아보며 울먹이기도 하였는데 순례객들은 발표자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면서 연신 박수로 열렬한 공감을 표현했습니다. 아마 보름 동안 동고동락한 경험이 서로 공유되어 있어서 그런 것일 겁니다.nbspnbsp막내라는 이유로 조장을 맡았지만 일의 흐름을 몰라 헤매었는데 조원들의 도움으로 거듭날 수 있었던 기회가 되었다는 분, 캘커타에서 구걸하는 아이들과 병든 노인들을 보며 IT강국 인도에 대해 화가 났으나 2600년 전 수행자들처럼 행선을 하고 정진하다 보니 앞으로 가족이란 울타리를 벗어나 자등명 법등명하며 여여한 삶을 살겠다고 발원하셨다는 분, 법륜 스님의 크신 사랑에 힘입어 8대 성지를 모두 참배하게 된 공덕에 감사하고 이를 모두 중생에게 회향하며 소승의 기본원칙에 충실하여 대승으로 나아가겠다는 분, 부처님이 춘다를 위로하시는 마음에서 자신도 위로 받으셨다는 분, 부처님이 설법하셨던 장소에서 그 경전을 독송했던 매일매일이 감동이었고 오백 대중과 함께 해서 더욱 여법하고 장엄했다는 분, 업식대로 짐을 많이 싸가지고 와서 고행을 했으나 다 보시하고 가방이 반으로 줄어 기쁘고 내 꼬라지를 볼 수 있어 좋았다는 분, 바이샬리에 비구니 절을 세우는 것에 대한 법륜 스님의 원에 대해 생각해보시게 되었다는 이번 순례에 함께 하신 비구니 스님 등 다양한 소감이 발표되었습니다.nbspnbsp그리고 마지막으로 이 분은 꼭 해야 한다고 추천받아 발표하신 고정석님의 소감문 일부를 소개합니다.nbspnbspnbsp“부처님이 이루신 것은 없고, 다만 상구보리 하화중생이라는 큰 서원이 있었을 뿐이라는 걸 알았습니다. 법륜 스님이 이루신 것을 보고 많이 감탄했는데, 인도에 와서 보니 법륜스님이 이루신 것들이 생각보다 더 많음을 깨달았습니다. 그런데 스님 자신은 이루신 것이 없고, 다만 커다란 원을 세우고 현재에 깨어 한걸음 한걸음 나아가실 뿐이라는 걸 알았습니다. 스님의 서원과 아름다운 마음들이 얽히고 설키여 이루어낸 많은 일들을 보며 저 또한 지금 이 순간 깨어서 삶을 살아가겠습니다.”nbsp스님께서는 순례단의 소감을 다 들으신 후 간단하게 정리 말씀을 해 주셨습니다.nbspnbspnbsp“이제 내일 끝나면 고생했다는 생각은 하나도 없을 거예요. 왜냐하면 자발적 고생은 고생이 아닙니다. 여러분들은 자발적 고생을 했기 때문에 그래요. 누가 회사 직원 훈련을 이렇게 시켰으면 어떻게 될까요? 월급을 주고 이렇게 해도 굉장히 불평이 많이 나오겠죠? 군대 훈련을 이렇게 시켜도 불평이 많을 겁니다. 그래서 고행과 고문의 차이는 고문은 타의에 의해서 하기 때문에 상처가 굉장히 많이 남고, 고행은 스스로 행하기 때문에 통증은 똑같은데 지나놓고 보면 사라져버립니다. 그래서 수행은 자발성이 굉장히 중요합니다. 그래서 이번 성지순례도 자기가 좋아서 자발적으로 오신 분들은 아마 좋았을 거예요. 그런데 누가 가라고 해서 왔거나 멋 모르고 왔거나 하는 분들은 똑같이 힘든데도 마음에 괴로움이 있습니다. 그래서 내년에 성지순례 가는 사람들에게 꼭 이렇게 말해주세요. “거기 절대로 가지 마라. 갈려면 고생을 각오하고 가거라” 이렇게 얘기해 줘야 아주 기쁜 마음으로 순례를 하게 되는데, 편안한 해외 여행 오듯이 오면 본인이 괴롭습니다. 제가 여러분들을 괴롭히려고 이런 일 하는 건 아니거든요. 그래서 가보라고 너무 권유하지 마세요.”nbsp그리고 똑같이 돈을 내고 왔는데 차장들은 특별히 소임을 더 맡아서 고생을 많이 했습니다. 그래서 스님께서 모두 일으켜 세우고 크게 박수를 쳐주게 해주셨습니다. 그러면서 “박수를 안 쳐주면 공덕이 쌓이기 때문에 박수를 쳐주어서 공덕을 까먹게 해야 돼요. 공덕도 많이 갖고 있으면 무거우서 안돼요.” 하셔서 모두들 크게 웃었습니다. 그리고 수고한 조장들도 모두 일으켜 세워서 “공덕을 까먹게 해주자”라고 하셔서 박수를 일제히 쳐주니 서로 격려하는 분위기가 되고 평가회장은 잔잔한 감동의 물결이 일었습니다. nbspnbsp▲ 박수 받는 차장님들, 조장님들nbsp스님은 어제 저녁에 만난 석가족들에 대해서도 말씀을 덧붙이셨습니다. 석가족들의 저녁공양을 받은 후 대중들이 낸 보시금이 7만 루피가 되었다며 석가족에게 잘 전달했다고 감사를 표하셨습니다. 석가족들은 인도에서 힌두교라는 바다에 섬처럼 고립되어 있는 존재들인데 스님께서는 담마 센터를 세우고 큰 불상을 세워 이를 방편 삼아 위축된 이들의 기를 살려주고 불자라는 자긍심을 길러주려 한다고 합니다. 또 수자타아카데미 학생들에게도 문맹퇴치의 단계를 넘어 자긍심을 심어주고 경제적 자립을 도와주는 대안을 모색 중이라고 합니다. 우리 순례단에게도 열등의식을 넘어 자긍심을 가지고 내면의 당당함과 여유를 가진 삶을 살 것을 강조하시면서 돈의 욕망을 쫓는 기복 신앙을 넘어 자본주의 물결에서 거뜬히 이겨나오는 그런 불자가 될 것을 독려해 주셨습니다.nbsp스님께서는 이번 성지 순례를 통하여 바깥의 성지를 보면서 동시에 자신의 내면을 지켜보라고 자주 강조하셨는데 많은 발표자들이 자신을 돌아보는 모습을 발표해서 감동이 컸던 것 같습니다. 스님께서는 “부처님을 찾으셨어요?” 물으시면서 마지막 마무리 말씀을 해주셨습니다. nbspnbspnbsp“여러분들이 부처님 찾기를 했잖아요. 부처님을 찾아서 룸비니도 가보고 카필라성도 가보고 바이샬리도 가보았는데 부처님을 찾으셨어요? 부처님은 그런 곳에는 없어요. 우리가 있을만 하다고 생각하는 곳에 있을 분이 아니예요. 부처님은 두 종류에 있을 가능성이 있어요. 하나는 내 마음 속에 한참 분별을 일으키는 그것을 잘 보면 그 밑에 부처님이 계실 수 있어요. 하나는 어쩌면 구걸하는 아이들 속에서, 길거리에 쓰러져있는 노파들 속에서, 나한테 물건 팔려고 쫓아다니면서 귀찮게 하는 상인들 속에서 부처님을 발견할 수가 있을 겁니다. 부처님께서는 천백억화신 한다고 하시니까요. 그런 모습을 보고 불쌍하게 여기든 귀찮게 여기든, 일으키는 내 마음 속에서 부처님을 발견할 수 있을 겁니다. 찾으신 분은 별도로 저한테 오세요.” nbspnbspnbsp소감 발표 후 호텔 야외정원에서 만찬의 시간을 가졌습니다. 하얀 식탁보가 차려져있고 반짝이는 꼬마전구가 커튼처럼 내려오는 만찬장은 어제까지 보았던 인도와는 다른 이면을 보게 했습니다. 남겨진 음식들을 보며 거지들이 생각나고, 쏟아지는 분수를 돌리는 전기와 물이 아깝단 생각이 들었습니다. 며칠간 쌓은 공덕을 다 까먹고 가야한다고 농담처럼 말씀하신 스님의 본 뜻은, 인도를 한 측면만 보고 섯부른 시혜적 자비심을 내지 말고 다양한 측면을 고루 보고 바른 통찰과 지혜를 내길 원하시는 듯 했습니다.nbspnbsp▲ 만찬장nbsp대중들은 조별로 둘러 앉아 인도 요리들을 맛보며, 며칠 간의 고생한 기억을 말끔히 씻어낼 듯 즐거운 한 때를 보내었습니다. 스님은 법사님들, 스텝들, 기사님들을 일일이 거론하며 감사를 표한 뒤, 함께 노래하는 시간을 가졌습니다.nbspnbsp▲ 순례단을 안전하게 모셔준 버스 기사님들을 격려해 주시는 스님nbspnbsp노래를 못하면 나오지 말라는 스님의 말씀에도 즐겁게 나와 노래하시는 순례객들 덕분에 모두 웃었습니다. 인도성지순례에 우쿠렐라, 태평소를 갖고 오신 분들이 있어 만찬 분위기를 한껏 북돋아 주셨습니다.nbspnbsp만찬 후 순례단은 내일 델리로 가면서 먹을 주먹밥을 조별로 준비했습니다. 그리고 그동안 사용했던 바랑, 요가매트, 돗자리, 반찬통, 그리고 인도에 보시할 옷이나 반찬 등을 모두 내어 놓았습니다.nbsp스님께서는 만찬을 마치고 13대의 차량을 담당하여 대중을 인솔해준 차장님들을 모두 불러서 다시한번 “수고 많았다”고 격려를 해주시고 함께 기념사진을 찍었습니다. 그리고 순례 중에 대중들이 불편해 했던 점을 다시한번 물어보신 후, 한국에 돌아가서 개선점에 대해 잘 정리해서 JTS에 제출해줄 것을 당부하셨습니다.nbspnbspnbsp이어서 법사단과 평가회의를 하시고, 이어서 실무자 스탭들과 평가회의를 하시는 등 밤12시가 넘을 때까지 계속 평가하고 점검하는 시간을 가지셨습니다. 성지순례 때마다 이렇게 꼼꼼한 평가와 점검을 통해 하나씩 하나씩 개선을 해나가시는구나 느낄 수 있었고, 지금의 성지순례 프로그램이 이런 노고 위에 개선되어 왔음을 다시한번 알 수 있었습니다. nbspnbspnbsp내일은 인도성지순례의 마지막 날로 델리에 도착 후 박물관을 관람하고 공항으로 가서 한국으로 귀국할 예정입니다.nbs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