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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3.27. 출가재일 기념법문
nbsp nbsp 어제 해관 장두석 선생님의 시타림에 다녀오니 새벽 3시 40분이었는데, 스님께서는 잠시 개인정비를 하신 후 바로 새벽기도와 발우공양에 참가하셨습니다. nbsp 스님께서는 오늘이 출가재일이라고 하시면서 “출가열반절 사이 일주일간 정토회에서는 전통적으로 모든 일을 쉬고 용맹정진 해왔어요. 이런 정진기간 중에는 개별적 외식은 삼가주시고 각자 정진에 소홀함이 없도록 해 주시기 바랍니다. 재가자는 출가열반재일이라고 모두 절에 와서 정진하는데, 여기 절에 사는 대중들은 업무 본다고 정진에 참여하지 않는다면 이치에 맞지 않습니다. 대중들 정진기간이라는 것 명심해서 공동체 대중들은 정진 중에 잠시 나와서 일 본다는 생각으로 업무에 임하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출가·열반재일 입재·회향법문은 직강이니 가능한 법회에 참가하기 바랍니다.”라며 공동체 성원들도 이번 출가열반재일기간에는 업무보다는 정진에 중심을 두고 생활하도록 당부하셨습니다. nbsp 발우공양후 7시 30분부터는 평화재단에서 헌법개정의 필요성을 제기하시는 사회원로분을 만나 이야기를 듣고 나누신 후 10시부터는 서초동 정토법당에서 출가재일기념법문을 하셨습니다. nbsp nbsp nbsp 스님께서는 “오늘은 부처님께서 수행하기 위해 출가하신, 29년간 살던 집을 나오신 출가일입니다. 날짜로는 음력 2월 8일, 나이는 29세였습니다. 부처님께서는 출가하여 6년간 고행하신 끝에 마침내 깨달음을 얻으시고 45년간 쉬임없이 전법을 하시다가 80세에 열반에 드셨습니다. 정토회에서는 출가일인 음력 2월 8일에 입재하여 열반일인 음력 2월 15일 회향할 때까지 하루도 빠지지 않고 용맹정진을 하고 있습니다.”라며 말문을 열었습니다. nbsp 이어서 스님께서는 출가절을 비롯한 4대 명절과 부처님께서 태어나신 2600여년전 인도의 브라만 시대에 대해 설명해주셨습니다. 브라만시대는 역사적으로 1천여년간 지속되었는데, 베다시대, 종교시대, 철학시대, 쇠퇴기로 구분할 수 있다고 하셨습니다. nbsp nbsp 브라만시대의 특징은 세가지인데 첫째가 우주만물을 신이 창조했다는 창조설이고, 둘째는 신이 인간을 4개의 계급으로 창조했으므로, 인간은 신의 창조질서에 따라 계급질서에 맞게 충실하게 살아야 한다는 것이고, 셋째는 신에게 드리는 제사 의식을 통해 죄를 사하고 구원을 받는다는 믿음이라고 설명해 주시면서 nbsp “그런데 사회가 발전, 변화하면서 이러한 주장에 모순이 나타났습니다. 예를 들어 전쟁에서 무기 등 군사력의 중요성이 높아지면서 신의 보살핌이 전쟁의 승패를 좌우한다는 믿음이 약화되었습니다. 그래서 사제계급의 권위가 떨어지고 왕족의 힘이 강해지고 장자계급의 힘이 커졌습니다. 급기야는 우리의 운명을 좌우하는 신, 전쟁의 승패를 좌우하는 신은 없다는 주장까지 등장하게 됩니다. 이처럼 이런저런 다양한 주장이 나타나고 지지자가 등장하여 브라만 사상에 반대하는 비주류를 형성해 갔습니다. 그런 많은 견해 중에 영향력이 큰 세력을 불교에서는 ‘6사외도’라고 합니다.” nbsp nbsp “이러한 때에 부처님이 태어나셨는데, 부처님은 전통 브라만 사회에서 자랐으므로 기본적으로는 전통 브라만 사상을 지녔습니다. 부처님은 성장하면서 사회의 여러 모순을 접하게 되고 그동안 믿었던 전통 브라만 사상에 대해 회의를 가지게 됩니다. 오히려 비주류의 주장에 동조하는 등 13년 동안 많은 고뇌를 하고 사색을 하게 됩니다. 부모의 권유로 결혼하고 애를 낳기도 했고, 왕인 아버지의 명령으로 한 지역을 맡아 다스려 보기도 했는데 이 세상에서는 자신의 의문이 해결되지 않았습니다. nbsp 결국 29세때 집을 나와 스승을 찾아 답을 구했지만 여전히 의문을 풀지 못해서 결국은 스스로 답을 찾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래서 가야 근방의 전정각산으로 가셔서 6년 동안 용맹정진을 했습니다. 6년의 고행 끝에 욕구를 따라가는 쾌락의 길도, 욕구를 억압하는 고행의 길도 해탈의 길이 아님을 깨달으시고 중도의 길을 발견하신 것입니다. nbsp 부처님은 출가 전에는 주류의 길인 쾌락주의를 ?다가 출가 후에는 비주류의 길인 고행주의를 ?다가 다시 이 길, 저 길을 다 버리고 새로운 길을 발견하셨습니다. 이것이 중도이고 이 중도의 수행을 하셔서 마침내 깨달음을 얻으셨습니다.” nbsp nbsp nbsp 부처님이 어떻게 출가하시고 어떻게 중도의 길을 발견하셨는지 열정적으로 설명하실 때 대중의 분위기가 숙연해 집니다. 출가가 나 자신에게 어떤 의미가 있는지 성찰해 보기도 했습니다. nbsp 스님은 이어서 부처님이 출가 전과 출가 후의 어떤 옷을 입으시고, 어떤 음식을 드시고, 어떤 집에서 사셨는지를 말씀하시면서 출가정신에 대해 말씀하십니다. nbsp “부처님은 당시 최고의 옷을 입으시다가 출가해서는 사람이 죽으면 시체를 덮는 천, 부정한 것으로 여겨 아무도 손대지 않는 분소의를 입으셨습니다. 부처님은 당시 최고의 음식을 드시다가 출가해서 얻어먹었습니다. 어떤 사람보다 더 못한 음식을 드셨습니다. 부처님은 비단으로 장식하고 향을 피운 최고의 집에서 사시다가 출가해서 나무밑이나 동굴에서 사셨습니다. nbsp nbsp 의식주생활이 달라졌습니다. 이렇게 바꿔지는 게 출가입니다. 스님 된다고 다 출가가 아닙니다. 가치관과 생활태도가 바뀌어야 합니다. 스님이 된다고 다 출가가 아닌 이유는 가치관이 안바뀌었기 때문입니다. 출가하고도 높은 지위, 부귀영화를 못 버리잖아요. nbsp 집이 무엇인가요? 집이 상징하는 것은 안온한 곳입니다. 동시에 속박, 구속이기도 합니다. 그래서 ‘집 으로 돌아간다’, ‘집을 뛰쳐 나간다’고 말하잖아요. nbsp 정토행자 한 분이 지금까지 여기에서 사시다가 오늘 집으로 돌아간대요. 왜 절에 왔을까? 그때는 집이 속박으로 느껴지니 뛰쳐나온 거예요. 그럼 왜 다시 들어가는가? 집이 안온한 보호처로 보이기 때문이지요. 그런데, 다시 들어가면 처음에는 안온하지만 다시 또, 속박으로 느껴지겠지요. 그럼 또 집을 나오겠죠. 이렇게 갔다 왔다 하는 것은 출가가 아니고 가출이라고 합니다. 더 좋은 보호처를 찾아가는 것은 가출입니다. 더 좋은 보호처는 더 큰 속박이 됩니다. nbsp nbsp 부자집이나 지위가 높은 집으로 시집가면 맛있는 거 먹고, 좋은 집에서 살겠지만, 속박은 커지고 하녀가 되기 쉽습니다. 이것이 과연 행복일까요? 사람들은 더 좋은 안온한 곳을 찾는데, 이것이 더 큰 속박이 된다는 것을 잘 꿰뚫어봐야 합니다. 안온처가 되었다가, 굴레가 되었다가, 이렇게 늘 뒤바뀌는 게 윤회입니다. 그래서 해탈은 ‘윤회를 끊어버린다, 집을 불살라 버린다’고 하는 것입니다. nbsp 속박과 안온처는 분리할 수 없습니다. 여러분, 끔찍이 사랑받고 싶지요? 끔찍이 사랑받을 때 속박이 더 심해지지요. 그래서 제가 늘 말하잖아요. 누가 나를 좋아 한다고 하면 나는 겁난다고. nbsp 중생은 낙만 있고 고는 없고, 안온처는 되고 굴레는 되지 않기를 바랍니다. 그러나 이 둘은 동전의 양면처럼 같이 움직입니다. 이를 꿰뚫어 알아야 고집멸도에서 ‘일체가 고이다’ 하는 것을 알게 되는 것입니다. 낙이 고인줄 알아야 고성제를 아는 것입니다. ‘낙이 고’인줄 알아야 낙에 대한 집착을 내려놓을 수 있습니다. nbsp 집을 불살라버리는 게 출가입니다. 더 좋은 집을 찾아 집을 떠나는 것은 가출입니다. 과연 집을 불살라버리는 자가 몇이나 있을까요? 집이 고임을 꿰뚫어 아는 자가 몇이나 있을까요?” nbsp nbsp 이 대목에서 대중들은 모두 숙연해 집니다 nbsp “이게 딱 안 잡히면서, 절에 다니며 ‘불교가 좋다’, ‘정토회가 좋다’하는 것은 모래 위에 성 쌓기입니다. 출가하겠다고 절에 찾아온 사람들은 대부분 가출한 사람입니다. 집에 가겠다고 하는 사람도 가출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갔다 오너라’ 하고 얘기합니다. 부처님이 좋은 옷 입고 마차 타고 다니면 어땠을까요?” nbsp 스님은 분위기를 바꿔 다정한 어조로 말씀을 이어가십니다. 대중은 중간중간에 밝은 목소리로 일제히 “예, 쉬워요.”라고 대답합니다. nbsp “출가절을 맞아서 오늘부터 열반일까지 1주일만 출가정신으로 살아봅니다. 출가의 자세로 살아보기 위해 작은 거 몇 개만 지켜서 해봅시다. 여러분, 하실 수 있어요?” 첫째, 걸식하라는 소리는 안할테니, 일주일만 더 맛있는 거 찾지 않도록 합니다. 있는 것만 먹지, 먹는 거 가지고 껄떡거리지 않습니다. 둘째, 하루 한끼 먹으라 소리는 안할테니까 정해진 3끼 이외에는 먹지 않습니다. 쉬워요? 안쉬워요? 셋째, 일주일만 고기 안 먹는다. 이미 섞여있는 것을 골라낼 것까지는 없지만, 일부러 먹지는 않습니다. 넷째, 분소의를 입으라는 소리는 안할테니까 옷 입을 때 고르지 않고, 무얼 입을까 머리 굴리지 않습니다. 입는 것 가지고 신경쓰지 않습니다. 다섯째, 나무 밑이나 동굴에 자라고는 하지 않을테니까, 때 아닌 때에 졸거나 자지 않습니다. 밤에 자지 말라는 게 아니고, 낮에 자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다섯가지를 지켜서 해보고 괜찮으면 계속하고 못하면 열반절까지 해봅니다. nbsp nbsp 머리 장식은 꾸며서 잘보이게 하는 것입니다. 이거 못하게 하려고 머리 깎게 한 것입니다. 머리를 자르고 분소의를 입었다는 것은 기존의 가치관과 기득권을 버렸다는 것입니다. 이번주 수행중에는 사장이라 하더라도 권위를 부리지 않습니다. 이번 주 중에는 엄마라는 이유로 아이에게 권위적으로 대하지 않습니다. 기득권을 내려놓고 한 사람으로 살아갑니다. 교만하지 않고 겸손하라는 뜻입니다. 이번 주에는 어떤 권위에도 기죽지 않고, 비굴하지 않고, 당당해야 합니다. 자기가 교만해지거나 비굴해 질 때 빨리 알아차려야 합니다. nbsp 작은 거라도 구체적으로 실천해 봅니다. 자기 습관으로 살아가는 것을 극복해 봅니다. 욕망의 노예, 습관의 노예로 살아가지 않습니다. 욕망과 습관으로부터 자유로와야 합니다. 이번 주만이라도 결심을 해서 5가지를 지키면서 300배 정진을 해봅시다. 어떤 경우에도 포기하지 말고, 자기가 자기를 제어할 줄 알아야 합니다. 이래야 출가절의 의미가 있습니다.”라며 출가열반절을 맞이하여 5가지를 지키면서 정진할 것을 당부하셨습니다. nbsp 오늘 참석한 대중들은 모두 힘차게 “네”라 답하여 스님께서 당부하신 것을 지켜서 해보겠다는 다짐을 하기도 했습니다. nbsp 이렇게 출가절 법륜스님의 법문은 마무리되었습니다. 태산 같은 가르침을 주시고 출가열반재일 용맹정진 기간 동안 지켜야 할 과제를 받았습니다. 하지만 각자의 습관 때문에 과제를 이행하는 게 쉽지만은 않을 것입니다. 자상하고 따뜻한 가르침에 감사한 마음이 올라옵니다. 법문이 끝나자 스님의 가르침을 새기며 300배 정진을 시작했습니다. 4월 3일 회향법문 때 뵐 때까지 300배 정진과 출가정신으로 살아갈 것을 다짐해 봅니다. nbsp nbsp 법회후 JTS 관계자와 간단히 업무 논의를 한 후 이어서 법사단 회의가 방 1에서 12401510까지 두시간 반 동안 진행되었습니다. 오늘 논의는 전국 가을불대생 대상으로 진행되는 4월 경주남산순례 일정 및 코스 점검, 신규법사님들의 역할 배정, 9월 미주행자대회에 참가할 법사 배정, 초파일 이후 진행될 법사단 수련 일정, 본부불사, 연수원 불사, 인도와 필리핀 공동체 운영, 의식 및 염불 등에 대해서 다뤘습니다. nbsp 경주남산순례에 대해서는 참가자 수에 따라서 순례횟수를 조정하고 코스 조정을 어떻게 할 것인지 방침을 정했습니다. 스님께서는 답사를 먼저 다녀오신 뒤에 법사단에서 담당 코스별로 답사를 할 때 체크해야 할 사항들을 알려주셨습니다. 특히 가장 위험한 코스, 가장 먼 코스, 가장 볼 것이 없는 코스 등에 대해서 어떻게 하면 대중이 안전하면서도, 시간에 맞추어서, 볼 것도 많도록 할 것인지 의견을 주셨습니다. nbsp 매년 틈나는대로 자주 자주 올라보는 남산인데도 행사 전에는 다시 한번 답사를 하며 꼼꼼하게 볼거리와 안전문제, 시간 등을 체크하시면서 연구하시는 스님의 모습을 뵈면서 큰 배움을 얻습니다. nbsp nbsp 신규법사님들에 대한 역할을 배정하면서도 개개인의 부족함에 초점을 맞추고 이제는 극복하는 방식보다는 이미 갖고 있는 장점이 잘 살려지도록 기회를 주고자 고려하시는 모습에서 법사는 이래야 한다는 고정관념을 깨게 됩니다. nbsp 인도와 필리핀에 공동체가 다시 자리를 잡으면서 제이티에스 사업과 공동체 살이가 섞이거나 충돌이 되지 않도록 다시 정리해보기도 했습니다. 이렇게 이런 저런 논의를 하다보니 시간이 예상보다 길어졌습니다. nbsp 법사단 회의를 마치자 마자 스님께서는 정토회 고문이신 각해보살님을 문병하기 위해 오후 3시 부산으로 출발하셨습니다. 가는 길에 김두관 전 경남도지사님의 어머님 별세소식을 듣고 병원에 먼저 들러 문상을 한 후 성불사를 찾아 각해보살님 병문안을 하셨습니다. nbsp 스님께서는 계속해서 해외 일정이 있어서 병환소식을 듣고도 찾아뵙지 못하다가 오늘 찾아뵈니 각해보살님께서는 너무 좋아하셨습니다. 이렇게 오늘도 바쁜 하루를 보내신 후 두북 숙소로 들어가니 밤 12시가 다 되었습니다. nbsp 내일은 아침 9시부터 용인에서 평화리더십아카데미 강의가 있습니다.
2015.3.26.SBS촬영팀과 식사및 회의, 제12기 평화리더십아카데미 입학식등
오늘 새벽 12시 40분경 인천공항에 도착하신 스님께서는 새벽 1시 40분경 서울 정토회관에 도착하셨습니다. nbsp nbsp 스님께서는 계속 원고수정등 업무를 보시다가 새벽 5시 기도와 발우공양에 나오셨습니다. 오늘 스님께서는 대중공사를 통해 공동체 봄 나들이 일정을 확정지었고, 스님께서 일정중에 언제 공동체 대중들과 함께 할 것인지를 의논하셨습니다. 또, 어제 대중공사에서 스님께서 발우공양을 준비하는 것에 대해 말씀해주셨는데, 오늘은 누가 공양당번이었는지를 확인하시고는 어제 스님께서 짚어주신대로 잘 하셨다고 칭찬해주셨습니다. 오늘은 두부구이가 나와서 기름이 좀 있었는데, 팔팔 끓는 숭늉을 잘 준비하였고, 밥도 촉촉하게 잘 했다고 대중들앞에서 공양당번들을 칭찬해 주셨습니다. nbsp nbsp 발우공양을 마치고나서 스님께서는 어제 밤 잠을 주무시지 않아서 오전은 휴식을 취하셨다가 12시부터 평화재단에서 SBS촬영팀과 함께 점심식사를 하면서 앞으로 어떤 방향으로 촬영할 것인지, 스님께서 어떤 것을 더 지원해주면 되는지를 논의하셨고, 또 촬영팀은 스님을 더 이해하기 위해 궁금한 것들을 질문하기도 하였습니다. nbsp 촬영팀 중 한 분이 스님께 스님에 대해 취재하고 공부하면 할수록, 잘 전달하고 싶은 마음이 드는데 능력이 부족해서 우울해진다고 말씀하시니 스님께서는 잘 전달하고 싶다는 것은 괜찮지만, 잘 전달하고 싶다는 것에 너무 집착을 하게 되면 지금과 같이 우울해 지게 된다면서, 어차피 100를 전달하는 것은 불가능하고 30를 전달할 때도 있고, 70를 전달할 수도 있는데. 가능하면 조금 더 퍼센테이지를 높여야겠다는 생각으로 임하라는 조언을 해 주셨습니다. nbsp nbsp 이어서, 촬영팀에서 “이틀전 평화나눔연구소 개소식에서 종교인이라면 정부가 막는다 하더라도 그런 것을 넘어서서 감옥에 가더라도 굶주리는 사람들을 위해 인도적 지원을 해야 한다고 하셨는데요. 이것을 방송에서 방영해도 괜찮을까요?”하며 질문하셨습니다. nbsp 스님께서는 이렇게 대답하셨습니다. “제가 말 표현을 세련되게 하지 못해 오해를 불러일으키는 것 같아요. 종교인들은 신앙의 원칙과 목표가 있습니다. 굶어죽는 사람이 있으면 도와야 하고 병든 사람이 있으면 치료해야 합니다. 일반인은 사람이 굶어 죽어도 범죄인이니까, 적이니까 죽는 게 잘된 것이란 식의 사고를 하기 쉽지만, 이는 감정에 치우친 것입니다. 그것은 보통사람의 이야기이고, 종교인이면 그 감정을 뛰어넘어서 국적, 성별, 인종과 상관없이 굶어죽는 사람을 먹여 살리고 아픈 사람을 치료해야 합니다. 그런 정신이 적십자 정신 이고 인도주의 정신입니다. nbsp 북쪽에 어린이, 환자 등 소위 말하면 인도적 지원이 필요한 사람이 있으면, 정부에게 인도적 지원이 필요하다고 해야 합니다. 각 국의 법을 넘어선 보편적 윤리가 바로 유엔인권헌장입니다. 다시 말해 한 나라의 입장이 아니라 전 인류의 입장에서 본 원칙입니다. 정부가 이 원칙을 지키지 않을 때 우리가 정부를 설득해야하지만 그래도 정부가 지원을 반대한다면 시민단체는 이것을 넘어설 수 없습니다. 그러나 종교인이라면 때로는 이것을 넘어서야 합니다. 거기에 갇혀 있으면 굳이 종교라고 할 필요가 없습니다. 그렇다고 종교인들은 법을 어겨도 된다는 것은 아닙니다. 만약 법을 어겨서 처벌은 받게 된다면 그 처벌도 당연히 받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한 이야기 인데 발표장에서 짧게 얘기하다보면 오해가 생길 수가 있는 것 같아요. nbsp nbsp 이명박 정부 들어서고 5년 동안 인도적 지원이 잘 안되었고, 박근혜 정부에서도 인도적 지원이 안 되고 있습니다. 인도적 지원의 필요성이 없으면 정부가 지원하라고 해도 지원할 필요가 없고, 인도적 지원이 필요하면 정부가 지원하지 말라도 해도 해야 합니다. 지금 북쪽에서 가난한 사람들이 고통을 겪고 있고 우리는 그 사람들을 도와야 하는데, 북한 권력자가 미워서 안 돕는다는 것은 이 사람들에게 이중피해를 입히는 것입니다. nbsp 다만 그것이 북한이라는 나라의 구성원이라는 이유로 북한지도자가 밉다고 그들을 외면해서는 안된다는 것이지요. nbsp 정말 도움이 필요하다면 사람들이 정말 굶어 죽고 있는지, 영양실조 상태가 심각한 지를 먼저 조사해야 하고 또, 우리가 지원한 것이 그들의 열악한 상태를 개선하는데 조금이라도 도움 되는가를 모니터링 해야 합니다. 제가 볼 때는 지원하면 100 가는 것은 아니고, 하나도 안 가는 것도 아니고 일부가 유출됩니다. 그것을 감안하고라도 지원하는 것이 그들에게 도움 된다고 판단된다면 지원해야 합니다. 그런 원칙에서 벌써 56년 이상 있으니까 이제는 종교인들이 너무 정부눈치 보지 말고 굶어죽는 거 알면서 못 돕고 있으니까 좀 극복해야 합니다. 첫째 정부를 설득 해야 하고, 더 이상 설득 안 되면 지원해야 합니다. 그리고 거기에 따른 비난은 감수해야 합니다. 그것을 십자가를 질어진다라고 표현할 수 있습니다. 그것이 십자가라면 마땅히 져야 하는 거 아닙니까? 우리에겐 그런 십자가 정신이 필요합니다. 어쨌든 그런 측면에서 얘기 한 것입니다. 요약하면 인도주의적 원칙에 어긋난다면 현행법에 연연할 필요 없다는 것이에요. 그리고 그런데서 오는 불이익을 감수할 수 밖에 없지 않나? 하는 뜻으로 말했는데. 과격하게 들릴 수도 있을 것 같아요.”라며 인도적 지원에 대해서 종교인이 어떤 입장을 가질 것인지에 대해 다시 자세히 알려주셨습니다. nbsp nbsp 이어서, “일반적으로 사람들이 갖고 있는 오해나 무지가 있습니다. 스님께서 여러 가지 사회활동, 환경활동 등을 하시는데 이런 것들을 일반인들이 하면 되지, 왜 불교에 있는 스님께서 이렇게 열심히 하시는가? 하는 궁금증들을 갖고 있습니다.”는 질문이 이어졌습니다. nbsp 스님께서는 이렇게 답변하셨습니다. nbsp “여러분들은 스님이다 하면 스님이라는 정해진 울타리 안아 가두게 됩니다. 예를 들면 결혼했을 때, 당신은 누구입니까 하고 묻는다면, 뭐라고 하겠습니까? 아내와의 관계에서는 남편이고, 아이와의 관계에서는 아버지이고, 회사와의 관계에서는 직원이 됩니다. 가정에서 부인이 아내 역할만 충실하기만을 바라고, 아이는 아버지 역할만 제대로 하기를 바라고, 회사에서는 직원으로 보고 직원으로 충실하길 바란다면, 이것만 가지고도 갈등이 됩니다. 이것만이 아니라 교회를 다닌다면 교회에서 신도 역할을 해야 하고 학교에 가면 학생, 가게에 가면 손님역할을 해야 합니다. 존재가 그렇습니다. 그런데 법륜스님 뿐만 아니라 누구든 마찬가지로 역할이 많고 바쁩니다. 근데 이게 현실인데 각자 자기가 생각하는 신자 역할만 해라, 직원 역할만 하라고 하는 것입니다. nbsp 또 사회 구성원의 한사람으로 사회가 요구하는 일을 해야 할 것 아니에요? 그러면 제가 사는데 승려니까 승려로써 요구되는 일이 있어요. 승려는 수행자입니다. 수행자가 뭐냐 하면, 자신의 인생을 행복하게 하는 자입니다. 내가 나라가 독립이 안 되었다고 괴로워하면 애국자는 되더라도 수행자는 아닙니다. 인도에 있는 아이들을 돕고 싶은데 돈이 없어서 못 돕는다고 괴로워하면 사회사업가는 될지언정 수행자는 아니에요. 수행자는 어떤 상황에서도 자신을 자유롭고 행복하게 해야 합니다. 이것만 하면 되는 게 아니라 이것이 주 역할이에요. nbsp nbsp 그 다음에 수행자는 자기만 행복해지면 된다고 하면 소승불교에요. 그리고 자기도 행복하고 남이 행복하고 자유로운데 기여하는 게 대승불교에요. 그 기여하는 방법은 첫째 이 좋은 법을 남에게 알려야 합니다. 불교 신자 만드는 게 아니라 내가 깨달은 이런 이치를 다른 사람도 배우면 자유로워지니까 ‘괴로운 사람들 이거 한번 해 봐라’하고 권하는 것이에요. 또 내가 수행자인데 초심자가 아니라 시니어 그룹에 속하면 다른 사람이 행복해 지도록 도움을 주는 역할을 해 줘야 합니다. nbsp 저는 정토회에서 지도 법사입니다. 이 길을 가는 데 안내자 역할을 해야 합니다. 무작위 대중을 위해서는 즉문즉설을 해서 도움을 줍니다. 그 다음에 불교 대학에 다니는 사람들에게 불교진리에 근거해서 체계적으로 가르칩니다. 그 다음에 황사 문제가 있고 후쿠시마 방사능 오염이 문제된다면 수행자라고 황사나 방사능 오염의 피해를 입지 않는 것이 아닙니다. 이것은 수행을 하던 안하던 다 해당이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환경문제에 적극적으로 관여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종교단체, 시민단체 할 것 없이 다 같이 해야 합니다. nbsp 그러니까 나도 숨 쉬고 사니까 인류의 한 사람으로 환경은 보존해야 하고, 한민족의 일원으로 한반도에 다시는 전쟁 없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전쟁이 나서 수백만 명이 죽고 재산을 잃는 고통은 수행한다고 해결되는 것이 아닙니다. 전쟁은 안 일어나야 하고 평화를 유지하려면 미래를 보고 서로 협력해야 합니다. 옛날 얘기만 하면 부부싸움도 끝이 안 납니다. 우리사회도 마찬가지에요. 계속 옛날 얘기만 하면 갈등이 끝이 없습니다. 서로 부족함이 있지만 협력하는 게 이익입니다. 이런 측면에서 평화 통일을 얘기해야 합니다. nbsp 또 인류의 한 사람으로써 인도 불가촉천민들처럼 이런 사람들이 있으면 도와야 합니다. ‘왜 이런 일 하느냐?’고 질문 하는데 이게 맞는 얘기인가요? ‘너는 왜 네 남편 네 자식만 돌보느냐’고 사람들이 문제제기 하지, ‘왜 이웃집 애까지 돌보냐?’ 하는 것은 말은 이치에 맞지 않습니다. nbsp 정리해 본다면, 우리는 사회적 존재인데 자기가 생각하는 특정 존재로 규정하게 됩니다. 그리고 어느 부분에서 영향력을 주느냐가 중요한 게 아니라 무슨 영향력을 주느냐가 중요합니다. 그러니까 스님이 인도에서도, 여기에서도 열 가지를 얘기합니다. 어떤 경우에도 때리지 말고 훔치지 말자. 성추행 하지말자. 거짓말하지 말자. 욕설 하지 말자. 그 다음에 술 먹고 취해서, 취한 행동 하지 말자. 화내거나 짜증 내지 말자. 잔소리 하지 말자. 음식에 욕심내지 말자. 물건에 탐착하지 말자등 열 가지를 말합니다. 그러면 이런 거는 법보다도 더한 윤리를 지키는 운동을 하는 것입니다. 당연히 법도 지켜야 합니다. 그런데 지금 얘기한 인도적 지원에 해당하는 것에 있어서 정부의 정책은 인도주의 지원을 현행법이 막고 있는 경우가 있습니다. 이런 법은 우리가 잘못 되었다고 지적을 해야 합니다. 조선시대에 남녀 차별하는 관습이 있고, 제가 조선시대 태어낫다면 이런 관습을 시정해야 합니다. 그러면 사회지배질서를 무너뜨린다고 저항을 받겠지요. 그러니까 어떤 관습이냐가 중요합니다. 남녀차별, 계급차별, 인종차별등은 극복해야 합니다.” nbsp nbsp 또한 스님은 촬영팀과 촬영일정과 인터뷰 대상자에 관한 사항을 의논하시고, 앞으로 촬영을 진행하면서 필요하면 중간에 다시 회의를 하자고 하셨습니다. nbsp 이후에 윤여준 전 교육원장님과 조민 현 교육원장님과의 만남이 있은 후 저녁 7시 30분부터는 평화재단 3층 강당에서 12기 평화리더십아카데미 입학식에 함께 참석하셔서 축하해주셨습니다. nbsp “한국사회가 지나온 모습을 보면 산업화를 거쳐 민주화로, 민주화에서 이제 그 다음 단계로 나아가야 합니다. 인류 역사의 발전을 볼 때, 민주화는 지방자치가 더 심화되어야 하고, 경제적인 것은 이제는 생산만이 아니라, ‘어떻게 삶의 질을 높여야 하는가?’ 하는 고민을 통해 새로운 방향으로 나아가야 하는데, 불행히도 현재 우리는, 남북이 분단되어 있는 상황에서 이념 논쟁을 하고 있고, 지금의 정치인들은 한쪽에서는 산업화의 공로를 주장하고, 다른 한쪽에서는 민주화의 공로를 주장하면서, 과거를 먹고 사는 세력만 있지 미래의 방향을 제시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nbsp nbsp 이런 상황 속에서 오늘날의 젊은이들이 무엇을 향해서 헌신하고 희생하고 성과를 얻을 수 있는가? 하는 목표가 없기 때문에, 지금 방황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이제, ‘젊은이들이 어떤 꿈을 가지게 할 것이고, 어떤 성취를 할 수 있게 할 것인가?’에 대한 고민이 필요합니다. 이제는 통일이 입에 발린 소리가 아니라 우리 사회가 통일없이 지속가능한 성장도 할 수 없습니다. 바로 앞선 민주화 세대라면 통일 시대의 길을 만들어 가야 합니다. 바로 청년들에게 꿈을 심어주고 여러분들처럼 어느 정도 성공하신 분들은 그런 리더의 역할을 할 수 있도록 하자는 생각에서 평화리더십 아카데미 강좌를 개설하였습니다. 이제는 통일 국가의 비전을 논해야 합니다. nbsp nbsp nbsp 우리의 지향은 통일 국가이고, 그것의 첫 발은 통일을 지향하는 남한의 새로운 정치세력을 구성하는 것입니다. 정치하겠다, 국회의원을 하겠다, 시장을 하겠다는 이런 문제가 아니라, 통일국가를 만들어가는 중심세력이 되어야겠다는 목표의식을 가지고, 현재 하는 직업이 무엇이든 그것을 넘어서 통일에 부합할 수 있도록 본 강좌에 참여하셨으면 좋겠습니다.”라며 스님께서는 입학식 축하 인사를 하시면서 통일한국의 비전 및 이를 위해 평화리더십 아카데미 수강생들의 역할의 중요성을 말씀하시면서 인사말씀을 마무리하시고, 재단을 떠나셨습니다. nbsp nbsp nbsp 그리고 그동안 스님과 관계를 맺어오던 해관 장두석 한민족생활문화연구회 이사장님이 별세 하셔서 저녁 8시에 광주로 이동하셨습니다. 밤 11시 30분경 광주 조선대병원에 도착한 스님께서는 장두석 선생님의 영정에 인사를 한 후 상주와 장례위원 분들과 만나 장례식에는 참여를 못하지만 49재때 참석하겠다고 약속하신 후 12시 30분경에 다시 서울로 이동하시면서 하루를 마무리하셨습니다. nbsp nbsp 내일은 새벽 7시 30분부터 조찬모임이 있으시고 오후에는 부산으로 이동할 계획입니다.
2015.3.25 서울 공동체 새벽기도, 발우공양
nbsp 스님께서는 오늘도 새벽 5시부터 대중들과 함께 기도하시고 발우공양하시면서 서울 공동체 대중들의 수행을 지도해 주셨습니다. nbsp nbsp 985170수행생활을 할 때 질서를 중요시 합니다. 단지 보기 좋아라고 하는 것이 아니라 ‘지금 여기 깨어 있어라, ’자신의 동작에 깨어 있어라, ‘정신없이 살지 말고 매 순간 깨어 있어라는 것입니다. 그 결과가 질서로 나타납니다. ‘방석을 가지런히 놓으라는 것은 보기 좋고 사용하기 편하게 한다는 것은 부차적인 것이고, ‘방석을 놓는 그 순간에 깨어 있어라’는 것이 그 취지입니다. ‘신발을 가지런히 놓아라’는 것도 ‘신발을 벗을 때 깨어 있어라’는 것입니다. nbsp 법당에 예불 준비하는 사람은 촛불을 켜고 부처님께 절을 하고 난 후, 불상을 가운데 두고 양쪽 촛대가 균형 있게 놓여 있는가, 향로와 공양구가 중심에 있는가, 앞에 놓인 법상이 딱 가운데 놓여 있는가, 스님 방석을 놓는다면 균형이 맞게 놓여 있는가 잘 살펴야 합니다. nbsp nbsp 발우를 놓으면서도 상석을 기준으로 하여 줄을 맞춰서 놓는 자세가 필요합니다. 군대식으로 선을 그어 줄을 맞추라는 것이 아니라, 수행자라면 누구든지 들고 날 때 살펴서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라고 말씀하시며 항상 무슨 일을 하든지 깨어서 살피면서 하도록 지도해 주셨습니다. 그러면서 스님께서 한 선방의 부목으로 살 때 선방스님들의 쓰레기통을 치우면서 쓰레기의 내용을 보면 수행자들이 얼마나 깨어서 살고 있는지 알 수 있다고 경험을 얘기해주시기도 하셨습니다. 그러면서 오늘 발우공양 좌석을 준비하면서 제대로 살피지 못한 부분을 지적해주셨습니다. nbsp 985170첫째, 여러분들이 항상 깨어 있어야 합니다. 스스로 살피는 자세가 필요합니다. 매사에 그렇게 해야 합니다. 이것을 지적하면 이것만 하고, 다른 것은 신경을 쓰지 않으면 안 됩니다. 연등을 달면 연등 간격이 바른지, 처진 것은 없는지, 불 꺼진 것은 없는지 등을 살펴보아야 합니다. 연등에 불이 꺼져 있어도 아무도 얘기하지 않고 몇날며칠이 지나가기도 합니다. 회관 옆에 부착되어 있는 현수막도 행사기간이 지났는데도 계속 붙어 있습니다. 여기 대중들이 이렇게 많이 모여 살고 있는데도 아무도 지적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내 일이 아니라도 담당자에게 전화를 해서 처리하도록 알려야 합니다.” 나 자신만을 살피는 것을 넘어서 우리가 살고 있는 이곳 정토회관의 여러 가지 일들도 잘 챙겨야 함을 알려주셨습니다. 그리고 발우공양을 준비하면서 좌석을 배치할 때 유의점, 공양을 준비할 때 유의해야 할 점에 대해서도 다시 짚어주셨습니다. nbsp nbsp “음식을 준비할 때도 반찬에 기름이 들어갔다고 하면 숭늉을 팔팔 끓여서 내야합니다. 기름기와 고춧가루는 섞이게 되면 붉은 색깔이 잘 닦이지 않기 때문에 뜨거운 물을 부어 깨끗이 씻을 수 있도록 해야 합니다. 이렇게 얘기하면 ‘아예 기름을 쓰지 마라’고 이해하기도 하는데, 가능하면 발우공양에는 기름을 안 쓰거나 적게 쓰고, 기름을 쓸 때는 거기에 맞추어서 뜨거운 물을 준비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청수도 보통 때는 차게 해도 되지만, 오늘처럼 기름기가 있는 음식이 있을 때는 청수도 데워서 준비해야 합니다. 공양을 준비하는 사람이 주변을 살피고 상황을 살펴서 준비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이런 것이 다 수행입니다. 수행을 형식화 하면 군대처럼 되기 쉽습니다. 그러면 늘 긴장해서 살아야 합니다. 군대생활처럼 외출 나오면 퍼지게 되고, 다시 복귀하게 되면 긴장하게 되는 것입니다. 명상할 때 편안한 가운데 알아차림을 유지해야 하는데, 이것은 긴장을 풀고 편안히 하라는 것입니다. 편안한 가운데 또렷이 깨어 있는 연습을 해야 합니다. 그것이 일상생활에 적용되도록 해야 합니다. 편안하면 얼굴이 밝을 것이고, 긴장하면 얼굴이 굳고 건드리면 터지게 됩니다. 편안한 가운데 뚜렷이 깨어 있으면 됩니다. 여기 이곳은 우리가 계속 살아야 하는 우리들의 집입니다. 여기서 계속 긴장해서 살 수는 없습니다. 이렇게 생활하면서 수행자로 살펴서 사는 것이 바로 생활불교, 불교의 생활화라고 말 할 수 있습니다. 이것을 겸해서 정진을 해 나가시기 바랍니다.”라며 우리가 일상에서도 편안하면서 깨어 있도록 지도해주셨습니다. 그리고 참회에 대해서도 다시 한 번 말씀해주셨습니다. nbsp nbsp “대중 공사에서 참회하는 것은 두 가지 의미가 있습니다. 하나는 내가 놓친 것을 자각해서 참회하는 것이고, 다음은 대중들의 의혹을 풀어주기 위한 것입니다. ‘내가 계율을 놓쳐서 이렇게 참회합니다.’ 그러면 대중들은 ‘저 사람은 자기가 계율을 어긴 것을 알고 있네.’ 하고 그 사람을 이해하게 됩니다. 내가 어떤 사정이 있어서 계율을 어긴 것을 대중 참회를 통해 대중들에게 왜 그렇게 되었는지 그 의혹을 해소해 주는 것입니다. 어떤 사람이 아침에 기도하다가 갑자기 밖에 나갔다 왔는데, ‘저 사람은 왜 나가나’ 하는 의혹이 들게 됩니다. 나갔다 온 사람은 대중공사시간에 ‘내가 아침에 설사를 해서 기도 중에 나갔다 왔습니다.’고 참회를 하면 됩니다. 나갔다 온 것이 잘못은 아니지만 다른 사람의 마음에 의혹이 생긴 것을 대중 참회를 통해서 풀어주고 상대를 편안하게 하는 것입니다. nbsp 똑같은 계율을 가지고 참회가 오늘도, 내일도 계속 반복된다면 이번 달에는 이중에 한 개는 꼭 지켜봐야겠다고 목표를 세우는 것이 필요합니다. 한꺼번에 하려고 하지 말고 ‘때 아닌 때 먹지 말자’, ‘비닐에 든 것을 먹지 말자’등을 이번 달에 1개를 정해서 지켜서 해보겠다고 결심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저녁예불을 빠진다고 참회를 매일 반복한다면 이번 달에는 내가 사업은 사업대로 하더라도 예불은 예불대로 꼭 지켜서 해야겠다고 목표를 세우고 해보는 것이 필요합니다. 그렇게 중심을 가지고 해보면 일이 안 되는 것이 아니라 일에 더 집중할 수 있습니다. nbsp 천주교에서는 12시 종을 치면 면담하다가도 ‘죄송합니다. 잠시 기다려주세요.’ 하고 그 자리에서 기도를 하고 끝나면 다시 일을 하게 됩니다. 그것을 기분 나빠 하는 사람은 거의 없고, 오히려 저 사람들은 저렇게 하는구나 하고 이해하게 됩니다. nbsp 전에 아프간에서 택시를 타고 가는데, 택시기사가 가다가 기도시간이라고 택시를 세우고 그 자리에다 자리를 깔고 기도를 마친 후 다시 갔습니다. 그럴 때 그것을 미쳤다고 하기보다는 이 사람들은 이렇게 하는구나 하고 이해를 하게 됩니다. nbsp 저는 지난 1월부터 인도, 동남아 지역을 다니다 보니 남방불교의 관습대로 지금 오후불식중입니다. 손님과 저녁 일정이 잡혔어도 양해를 구하고 있습니다. 식사초대를 해놓고 나는 안 먹으면 실례입니다. 그렇기에 가능한 저녁 식사 일정은 안 잡는 것이 제일 좋고, 어쩔 수 없다면 비록 실례이긴 하지만 내가 정한 것을 하기 위해 양해를 구하고 할 수도 있습니다. 그렇게 자기 생활의 원칙을 정하고 지켜나가는 것은 업무에 방해 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중심을 잡고 있으면 일을 훨씬 더 잘 할 수 있습니다.” 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더불어 제대로 지켜지지 않는 계율은 한 가지씩 목표를 세우고 지켜보는 것이 필요하다고 가르침을 주셨습니다. 그리고 계율이 불합리하다고 생각되면 1년에 한 번씩 건의를 하거나 또, 지역에 따라 맞지 않다면 일정기간 유보할 수도 있다고 하셨습니다. nbsp nbsp “인도 짜이나 한국의 차처럼, 필리핀 원주민 마을에는 커피가 기호식품이 아니라 식음료에 해당합니다. 그동안 행자들은 다른 사람은 어떻게 하더라도 나는 무조건 지키는 것이 방침이었는데, 필리핀의 경우 이번에 행자들까지도 커피는 마시도록 했습니다. 우리가 하는 모든 수행이나 계율은 다 잘 살려고 하는 것입니다. 이것을 통해서 여러분들의 삶에 변화가 있어야 합니다. 정토회에 살다보면 주로 행자들이 엄격하게 잘하고, 신참들이 잘 지키고, 오래된 사람들은 적당히 합니다. 그러니까 그것을 보고 나도 빨리 고참 되기를 바라기만 합니다. 계율보다 관습이 더 무섭기 때문입니다. 그런데서 여기 정토행자들은 선배도 그렇다, 법사도 그렇다고 하면서 따라하지 말고 여기에 수행하러 왔으니까, 남을 따지지 말고 나는 한 번 해본다는 자세를 가져야 합니다. 내가 물드는 것이 아니라 시간이 흐르면 새로운 사람이 많아져서 분위기가 좋은 쪽으로 갈 수 있어야 합니다. 남들이 안한다고 이야기 하지 말고 내가 지키는지 안 지키는지 살피면 됩니다. 그래야 새로운 분위기로 갈 수 있습니다. 우리 모두 그렇게 생활해 봅시다.” nbsp nbsp nbsp 스님께서는 지나온 습관대로 살기보다는 내가 새로운 바람이 되어 수행정진 해 나가기를 당부하셨습니다. nbsp 스님께서는 이렇게 대중들과 함께 아침 일정을 마치시고 중국 방문 일정으로 공항으로 출발하셨습니다.
2015.3.24. 공동체 발우공양 및 천주교 평화나눔연구소 개소식
스님께서는 오늘 새벽 약 20여일간의 인도 일정을 마친 후 오랜만에 서울 정토회관 공동체 대중들과 함께 기도를 올린 후 발우공양을 함께 하셨습니다. nbsp nbsp nbsp 스님과 함께 한 새벽기도 시간은 평소보다는 더 경건하고 감동적인 분위기였습니다. 그리고 좀 더 기도에 집중할 수 있었습니다. 기도에 이어 스님과 함께 발우공양을 한 후 스님께서는 대중들의 모습을 지켜본 후 대중들이 발우공양에 임하면서 간과하는 몇가지를 짚어주시기도 하셨습니다. nbsp nbsp nbsp 먼저 발우공양 좌석에 대해 대중들의 드나듦이 많아 좌석배치에 혼란함이 오는 것에 대해 “발우공양 좌석 배치는 원래 발우공양을 하기로 한 사람들을 우선 배정하고 갑자기 일정이 변경되어 발우공양을 하게 되는 사람들은 바라지 옆 말석에 배치하도록 해라”고 지도해 주셨습니다. 그래야 혼란을 최대로 줄일 수 있다고 하셨습니다. nbsp 또, 대중들이 참회하는 내용을 들으시면서 참회에 대해서도 다시 짚어주셨습니다. nbsp nbsp “참회는 계율에 따라 하는 것으로 계율은 내가 행복과 자유로 가는데 어긋나지 않게 나를 보호해주는 것입니다. 그러나 중생들은 찰라무지가 있기 때문에 나도 모르게 어기게 됩니다. 그럴 때 자기도 모르게 놓친 것을 아이고 놓쳤구나 하고 알아차리고 되돌아오는 것이 참회입니다. 그러나 알고도 어기는 것은 참회가 아니고, 계율을 받아들이지 않은 것과 같습니다. 반복되는 참회는 잘 살펴봐야 합니다. ‘때 아닌 때 먹었습니다’라고 참회를 일상적으로 한다면 그 사람의 내면에는 때 아닌 때 먹는게 뭐가 문제인가, 계율은 그렇게 되어 있지만, 나는 내 식대로 한다는 마음이 있습니다. 계율을 지키려는데 과거의 습관 때문에 잘 안되어서 어기게 되므로 고쳐나가는 연습 기간인지, 고칠 의지가 전혀 없는 형식적 참회인지를 잘 살펴봐야 합니다. 고칠의지가 없는 것은 참회가 아닙니다. nbsp nbsp nbsp 회의등 업무적 일정으로 인해서 예불, 잠자는 시간이 안지켜지겠다고 하면 미리 체크해서, 사전에 공지를 해야 합니다. 지키는 것이 원칙인데 어떤 상황 때문에 어긴다고 각성하고 있어야 상황이 달라지면 바로 돌아올 수 있습니다. 계율이 이치에 안 맞다고 생각이 들면 이의를 제기해서 재검토하도록 해야 합니다. 타성적인 참회가 되지 않게 잘 살펴보아야 합니다. 안그러면 절에 10년을 넘게 살아도 개인의 변화가 없습니다.”라며 서울 공동체 대중들이 절에 살면서 습관적으로 이루어지는 수행생활부분에 대해서도 짚어주시니 내가 지금 이렇게 하는 것이 수행자로서의 자세가 맞는지 다시 돌아보는 시간이 되었습니다. nbsp 그 외에도 스님께서는 소심경 게송의 음이 늘어지는 부분에 대해서도 세세히 짚어주셨고, 신규법사님들과 대중들이 인사하는 시간도 가지면서 신규법사님들이 만행을 떠나는데, 법사수계를 받고 만행을 떠나는 것은 정토회의 오랜 전통이라고도 알려주셨습니다. nbsp 또, 서울 공동체의 식목행사를 언제 어떻게 할 것인지, 또 봄이 되었는데도 몸이 좋지 않아 움츠러 든 대중들을 살피시면서 다함께 봄에는 야외로 나가서 자연을 만끽하는 것을 제안해 주셨습니다. nbsp 이렇게 스님께서는 공동체 대중들에게 수행지도를 해주시고는 평화재단으로 이동하셨습니다. nbsp 아침 7시부터 기획위 회의가 있었는데, 스님께서는 대중들과 발우공양을 함께 하느라 회의에 조금 늦게 참석하셨습니다. nbsp 4시간여의 긴회의를 하다보니 12시 가까이가 되어 회의를 마치신 후 다시 몇 분의 기획위원들과 점심공양을 겸한 논의 시간을 더 가지시고는 천주교 평화나눔연구소 개소식에 참석하기 위해 명동성당으로 이동하셨습니다. nbsp 그동안 천주교가 평화통일에 관계된 기관이 없었는데, 이번에 평화나눔연구소를 개소하면서 앞으로 남북관계의 평화적 통일을 위해 활동을 할 것임을 밝히면서 목사님, 신부님, 스님을 모시고 통일에 대해 함께 나누는 평화토크를 마련한 것입니다. nbsp nbsp nbsp 행사에 앞서 염수정 추기경님, 박종화 목사님, 최창무 대주교님과 함께 차담을 하면서 인사를 하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1995년도에 북한 동포돕기를 위해 김수환 추기경님과 강원룡목사님을 모시고 천주교, 기독교, 불교가 함께 힘을 모아 북한돕기를 시작한 이야기등 약 20여년전부터 함께 해 온 이야기들을 나누었습니다. 그리고 조금 늦게 오태순 신부님까지 자리를 함께 하면서 20여년 전에 북한동포돕기를 시작한 주 멤버들이 다모여서 그때를 다시 회상하면서 차담을 나누기도 하셨습니다. nbsp nbsp 행사시간이 가까워지자 행사장인 프란체스코홀로 이동하였습니다. 스님께서는 먼저 평화나눔연구소를 개소한 것에 대해서 축하를 하면서도 천주교가 가진 역량에 비해 너무 늦었다고 아쉬움을 밝히면서 평화나눔 연구소가 한반도의 평화가 더 이상 나빠지지 않도록 큰 역할을 해주기를 당부하시면서 지금의 한반도 정세에 대해서 말씀해주셨습니다. nbsp “지금 다시 한반도에 전쟁이 일어날 가능성이 좀 더 높아졌다 하는 것은 중국의 부상으로 미·중이 경쟁 관계가 치열해지는 등 동아시아의 주변 정세가 바뀌었기 때문입니다. 중국은 자기 힘에 걸맞는 세계적 역할을 하고자 하고 미국은 과거에 자기 패권을 그대로 유지시키고자 하는 둘 사이에서 갈등이 발생하고 있는 것입니다. 여기에 북한은 오직 자기 체제 유지를 위해서 수단방법을 가리지 않고 살아남으려고 하는 등 이런 각각의 이해관계가 충돌하면서 남북갈등이 심해지고 있습니다. 이럴때 대한민국은 국가 목표가 뭐냐는 것입니다. 이것이 불분명합니다. 지난 50여년간 피땀 흘려 모은 재산과 인명을 온전히 지키려면 어떤 이유로든 한반도에 다시는 전쟁이 없어야 합니다. 그리고 또 지금까지는 분단상태 만으로도 성장이 가능하고 번영이 가능했지만 현재 주어진 국내외 조건은 더 이상 분단 상태로는 국가 발전을 모색하기가 어렵다는 것입니다. 북한은 체제 붕괴 위험에, 남한은 성장한계에 노출되어 있습니다. 이 문제를 풀어내려면 통일만이 유일한 해법입니다. 남북한 양쪽 다 그 부분에 있어 뚜렷한 국가비전을 갖고 있지 못합니다. 그러다보니 요즘 일어나는 현상처럼 한쪽은 미국의 요구에 끌려가고, 한쪽은 중국의 요구에 끌려가고 이러지도 저라지도 못한 엉거주춤한 모습입니다. 이 사이에서 적극적 평화를 주도하지 못하고 강대국의 하위 변수로 끌려다니는 모습이 우리 민족의 장래에 큰 불행을 초래할 위험이 있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상태에서 우리가 사는 이 땅에 평화를 유지하고 통일을 만들어가는 자세를 분명히 해야 합니다.”라며 지금 우리 한반도 놓여진 상황에 대해서 먼저 짚어주셨습니다. nbsp nbsp 그리고 어떤 요소들이 한반도 평화를 위협하는지에 대해서는 “우리 사회에 갈등이 심합니다. 세대간에 갈등, 지역간의 갈등, 노사간의 갈등, 진보보수간의 갈등 등이 많은데 그 갈등들의 근저에 있는 주원인은 분단 갈등입니다. 분단 상황이 극복되지 않고는 남한사회 안에 진정한 국민화합과 계층간의 협력은 어렵습니다. 평화는 남북간의 평화만이 아니라, 남한안의 화합과 협력을 가져오기 위해서도 유지되어야 합니다. 남북간에 분단 70년이 됐는데도 왜 이렇게 대립 갈등이 심한가하고 돌아보면, 일본에 36년간 지배당하면서 엄청난 피해를 입었지만, 해방 후 20년만에 한일 국교정상화가 되었습니다. 그 이후 한일간에 많은 교류 협력이 있습니다. 물론 아직도 일본은 독도문제나 위안부 문제에 대한 반성이 부족합니다. 그런 요소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한일 협력은 우리에게도 이익이고 동아시아에 평화를 가져오는 것입니다. 또, 한국 전쟁때 중국은 100만 군대 보내서 우리에게 엄청난 피해를 줬습니다. nbsp nbsp 그러나 지금은 한중수교 20년이 넘었고. 한중간에 무역교류액은 한미, 한일 합한 것보다 1.5배이상 많습니다. 중국을 생각하지 않고는 이제 우리의 경제성장을 얘기하기 어렵습니다. 그러면 중국이 우리에게 한국전쟁에 참여한 것을 반성했냐면 아닙니다. 시진핑 주석이 부주석으로 있을 때 한국전쟁에 대해서 소위 항미원조전쟁은 정의로운 전쟁이었다고까지 했는데도 아무도 항의하지 않았습니다. 다른 민족인 일본과 중국에게는 이렇게 관용하면서 왜 같은 민족인 북한에게는 관용하지 않냐는 것입니다. 이렇게 하기 때문에 남북 간의 문제가 풀리기 어렵습니다. 물론 북쪽에서 내려오신 분들의 아픔을 충분히 이해해야 하고, 전쟁때 돌아가신 많은 분들의 원한을 이해해야 합니다. nbsp 그러나 계속 원한을 가지고 살 것이냐는 것입니다. 이제는 아픔을 뛰어넘고 미래를 희망적으로 만들어 가야합니다. 지금 이 시점에서 남북이 협력하는 것이 우리 민족에게, 더 나아가 동아시아 평화 번영 위해서 큰 이익입니다. 자꾸 과거 이야기로 풀려고 하지 말고, 미래 희망으로 이 문제를 풀면 능히 풀 수 있습니다. 우리는 끊임없이 과거 얘기를 하고 있습니다. 여야 정치 갈등도 과거에 경제성장을 이루어 낸 쪽과, 민주화를 이룬 쪽이 서로 자기가 한 이야기만을 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갈등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과거의 상처는 이해하지만 미래를 보고 서로 공동의 이익을 위해 나아가는 자세가 된다면 우리가 갈등을 극복할 수 있지 않을까 합니다.”라며 한반도의 평화를 위해서는 남북갈등이 해결 되어야 하고 그러기 위해서는 우선 남남갈등부터 해결되어야 한다고 말씀해 주셨습니다. nbsp nbsp nbsp 그리고 오늘 행사는 종교인들이 모여서 평화에 대해 이야기 하는 시간이다 보니 한반도 평화에 대해 종교인들의 소명은 어떻게 찾아야 하는지에 대한 질문에 대해서는 “종교인들은 보통사람보다 선한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세상 사람들은 싸우면서 북한을 미워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종교인은 남을 미워하는데 앞장서는 경우는 없어야 합니다. 만약 북한에서 총격이 있었다고 하더라도 종교인이 앞장서서 ‘한 대 때리면 다섯대 때리자.’고 한다면 맞지 않습니다. 보통사람보다 못하지는 말아야 합니다. 예수님이 십자가를 짊어지듯이 우리가 대신 참회하는 운동이 이뤄져야 합니다. 대신 참회하지 않으면 원한이 풀리지 않습니다. 남북정부간에 갈등이 일어나도 우리 종교인들은 그런 것을 넘어서서 북한의 굶주리는 사람들을 위해 인도적 지원을 해야 합니다. nbsp 일본이 독도문제, 위안부 문제를 사과하지 않고 우리 감정을 건드려도 후쿠시마 원자력 사고 때 우리는 일본을 도왔습니다. 종교인들은 이런 불행이 왔을 때 원수도 도와야하는 것입니다. 최소한 종교인들은 정부간의 갈등이 생겨도 지속적 지원을 해야 합니다. 이런 활동이 국민의 저항을 받아도 종교인은 이런 저항마저 기꺼히 받아야 합니다. 그런 자세가 필요합니다. 인도적 지원을 허용하고 종교인이 정부에 호소해서도 안되면 직접 인도적 지원을 해버리는 수밖에 없습니다. 이것은 우리 신앙의 문제입니다. 인도적 지원에 대해서는 특별한 행동이 필요합니다. nbsp nbsp nbsp 그리고 북한 난민을 지원하고 북한 인권 개선을 위해서 함께 노력해야 합니다. 남북 관계 갈등이 분쟁으로 가는 정도가 아니라면 북한의 반발이 있더라도 인권개선, 난민지원문제는 꾸준히 해 나가야 합니다. 또, 남북간의 교류 협력을 계속 확대해 나가는 것이야 말로 정말 북한 민심을 잡는 것입니다. 어려울 때 도와주면 감동이 있습니다. 이것은 인도적 지원인 동시에 통일정책입니다. 종교인들은 일반인들과 다르게 십자가를 지는 행동이 필요합니다.”라며 종교인들이라면 어려움에 처해 있는 사람들을 위해 십자가를 짊어지는 자세가 필요하다고 말씀해 주셨습니다. nbsp nbsp nbsp 그리고 행사를 마무리 하면서 스님께서는 “처음에 천주교, 개신교, 불교, 민간단체가 협력해서 북한인도적 지원을 함께 했습니다. 민간 종교단체가 조금 더 종교적 실효성이 나타나려면 현장에 대한 이해가 필요합니다. 가난이라는 말이 똑같지, 가난이 처해있는 상황은 남북간에 천양지차입니다. 그런 면에서 조금 더 기부하는 문화, 적극적으로 모금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또, 지원단체들은 정부허락을 얻어서 해야 하지만. 정부가 하겠다고 한 영유아 지원등 인도적 지원마저도 허가를 안해주면 종교인들은 감옥가게 된다 하더라도 그냥 하는 용기가 필요합니다. 정부를 반대하는 것이 아니라 인도적지원 원칙을 지키는 입장을 고수해야 합니다. 그래야 정부가 인도적 지원의 원칙을 어기는 것을 극복할 수 있습니다. 이것은 다른 민간단체는 할 수 없습니다. 인도적 지원을 정치적으로 이용하지 말고, 생색내려고도 하지 말고 공덕을 땅에 묻어두는 것이 필요합니다. 종교적으로 말해서 천국가서 이자 붙여 받을 생각해야 합니다. 좋은일 해서 금방 복 받으려 하니까 성과가 제대로 나지 않는 것입니다. 시민단체는 어쩔 수 없다하더라도 종교단체는 숨은 공덕을 만들어서 한반도의 평화를 위해 나아갔으면 합니다.”라며 우리가 하는 활동이 비록 인정받지 못하고 비난과 저항에 부딪히더라도 종교인이라면 담담히 받아안고 나아가자고 말씀하셨습니다. nbsp nbsp 행사가 모두 끝나고 스님께서는 평화나눔연구소 현판식에도 함께 하셔서 ‘나중 간자가 앞서간다.’는 성경구절을 인용하시면서 늦었지만 앞서 가 줄 것을 당부하면서 다시한번 축하드렸습니다. nbsp 그리고 정토회관으로 돌아오셔서 못다 한 업무를 하시면서 하루를 마무리 하셨습니다. nbsp
20150323 경주 남산 답사 및 행정처 집행위 회의등
오늘 새벽 4시 30분부터 기도를 한 후 5시 30분경에 아침을 먹고 서울로 가기 전에 경주 남산에 다시 올랐습니다. 오늘도 4월 19일에 있을 가을불대생들의 경주남산순례에 대비한 답사를 겸했습니다. 오늘은 용장골로 올라서 용장사 삼륜대좌불, 바위에 새겨진 마애여래좌상, 3층 석탑을 보고 통일전으로 내려오는 코스였습니다. nbsp nbsp 이른 아침이라 그런지 어제의 따뜻한 날씨는 온데간데없이 다시 몸을 움츠리게 하는 찬바람이 불었습니다. 그래도 어제 핀 진달래, 산수유, 개나리, 벚꽃등은 움츠러들지 않고 그대로 있었습니다. nbsp 용장골로 오르는 길은 용장사 3층 석탑으로 가는 어려운 탐로와 일반 탐방로가 있었는데, 스님께서는 어려운 탐방로로 오르셨습니다. 바위가 가파르게 자리잡고 있어서 중간에 밧줄을 타고 오르기도 하였습니다. nbsp nbsp 먼저 용장사 삼륜대좌불을 보았습니다. 목 없는 부처님이 삼륜대좌에 앉아 있는 모습이 비록 목은 없으나 그 기운만은 당차게 느껴졌습니다. 그리고 그 곳을 지나 바위에 새겨진 마애여래좌상을 보니 단순하지만 천년이상을 그 자리에서 이곳을 지키고 있었음이 당당해 보였습니다. nbsp 두 부처님을 친견한 후 조금 더 올라가니 삼층석탑이 있었습니다. 마치 산아래를 다 관장하듯이 웅장하게 서 있는 모습이 힘들게 여기까지 온 보람을 느끼게 해주었습니다. 3층 석탑으로 가는 길은 험하기도 했고 낭떠러지가 이곳저곳에 있어서 그런지 CCTV가 설치 되어 있기도 했습니다. nbsp nbsp 용장사 3층 석탑까지 어려운 탐방로로 오는 과정에서 바위에서 미끄러지기도 하셨던 스님께서는 ‘어려운 탐방로는 위험하기도 하고, 또 많은 사람들이 오를때는 등산로의 흐름이 원활해야 하는데 정체되기 때문에 어렵겠다.’고 하시면서 나중에 불대생들이 올때는 일반 탐방로로 오는게 좋겠다고 하셨습니다. nbsp nbsp 삼층석탑을 지나 다시 통일전으로 내려왔습니다. 통일암에 도착하니 유수스님, 묘덕법사님이 계셔서 가을불교대 남산순례때 다함께 모이는 장소에 대해 어떻게 정비할 것인지를 의논했습니다. 약 1천여명의 대중이 모이니 스님께서는 어떻게 하면 수많은 대중들이 다함께 어울릴 수 있을지, 어떻게 장소를 좀 더 편안하게 만들것인지에 대해서도 함께 고민하셨습니다. nbsp 경주 남산 답사를 마치고 스님께서는 서울로 향했습니다. nbsp 오후 2시부터는 4월 일정을 비롯해 정토회 대중부 1년 일정을 확정하고, 각 사업에 대한 스님의 조언을 듣는 행정처 집행위 회의가 있었습니다. 제8차 천일결사 제5차 백일기도 입재식 기획안을 중심으로 해외총무단 교육수련, 통일학교 기획안, 안산 다문화 센터 준비등 굵직한 사안을 함께 의논했습니다. nbsp nbsp 그리고 뒤이어서 2번의 외부인사와 만남을 가진 후 저녁 8시부터는 신규법사님들의 일정과 역할에 대한 논의를 중심으로 정토회 전반에 대한 논의를 위한 법사단 회의가 있었습니다. 오늘도 11시가 넘어서야 회의를 마치고 하루를 마무리 하셨습니다. nbsp 내일은 조찬회의를 시작으로 천주교 평화나눔 연구소 개소식에 참가하는 일정이 있습니다.
2015.3.22 한국 귀국 및 정토불교대학 특강수련
▲ 가을 정토불교대학 특강수련nbspnbsp안녕하세요. 스님께서는 어제 오후 인도를 출발하여 오늘 새벽6시에 인천공항에 도착하셨습니다. 곧바로 문경정토수련원으로 이동해 정토불교대학 특강수련 법문을 해주신 후 두북으로 내려가셨습니다.nbspnbsp어제 오후 2시50분에 인도의 가야 공항을 출발한 비행기는 바라나시를 경유해서 밤 9시30분에 방콕공항에 도착한 후 1시간 30분 동안 방콕 공항에 머문 후 11시 10분에 출발해서 밤새 5시간을 비행하여 오늘 새벽6시에 인천공항에 도착했습니다.nbspnbsp▲ 인천공항에 내리기 전 비행기에서 바라본 하늘nbsp스님께서는 비행기 안에서 앉은 채 자다 깨다를 반복하시다가 인천공항에 내려서는 곧바로 문경정토수련원으로 이동하셨습니다. 오전10시부터 정토불교대학생들을 위한 특강수련 법문이 예정되어 있어서 혹시나 법문 시간에 늦어질 것이 염려되어 잠시도 지체할 여유가 없었습니다. 공항까지 따라온 SBS 촬영팀은 이런 스님의 스케쥴을 보고는 매우 놀란 표정을 지었습니다.nbspnbsp▲ 인천공항에 도착한 스님nbspnbsp다행히 오전 9시 30분경 정토수련원에 도착한 스님께서는 세면을 하시는 등 정비시간을 가지신 뒤 10시15분부터 작년 가을에 입학한 정토불교대학생들을 위해 즉문즉설 법문을 해주셨습니다. 정토불교대학생들은 어제 오후3시부터 이곳 문경정토수련원에서 특강수련 프로그램을 갖고 있었는데, 이번 시간에는 그동안 불교대학을 다니면서 궁금했던 점에 대해 스님께 묻고 답하는 즉문즉설 시간입니다. 이렇게 이번 주말에는 영남권과 중부권 불교대학생들이 이렇게 스님과 수련을 하고, 다음주 주말에는 수도권 불교대학생들이 이렇게 수련을 할 예정입니다. nbspnbspnbsp스님께서는 즉문즉설 법문을 통해 부처님의 근본 가르침이 무엇인지, 정토불교대학을 다니면서 수행, 보시, 봉사를 함께 해야 하는 이유, 불자로서 사회적 역할을 다해야 하는 이유 등에 대해 소중한 가르침을 주셨습니다. 총 8명이 그동안 불교대학에 다니면서 궁금했던 점들을 질문했습니다.nbspnbsp▲ 가을 정토불교대학 특강 수련nbspnbsp“부처님은 도를 이루기 전에 마왕 파순에게 ‘나는 전생에 셀 수 없는 많은 보시를 했다”고 하고, 정근과 희사의 시간에는 “다겁생래 지은업장 지금 내가 참회하니” 이런 구절들을 보면 전생과 내생을 불교가 인정하는 것이 아닌가 싶어요. 전생과 내생이란 없다는 것이 불교의 교리라고 배웠는데, 업을 지으면 내생에 과보를 받는다는 이런 것을 어떻게 이해해야 하는지요?”nbsp“춘다는 부처님 법문을 듣고 한번만에 깨쳤다고 나와있는데 우리들과는 다른 특별함이 있었을까요?”nbsp“지난주 근본불교 1강을 들었는데 윤회란 없다고 하셨어요. 맞나요?”nbspnbsp“천일결사 기도에 입재하였는데 108배 안하고 마음나누기만 올리면 안될까요?”nbsp“부처님의 세력이 커지면서 왕이나 귀족들의 탄압이 있었는지요? 제가 속한 조직이 보수적인 공무원 조직이라 정토회라는 것을 밝히면 불이익이 있을 것 같은데 밝혀도 괜찮을지요?”nbsp“명상을 하면 이 생각 저 생각이 많이 납니다. 정상인가요? 명상의 의미와 알아차림에 대해 알고 싶습니다.”nbsp“천일결사 입재식을 다녀오게 되었습니다. 간염으로 약을 복용하고 있어서 새벽에 일어나 108배 하는 것이 혹시 무리가 되지 않을까 생각이 드는데 어떻게 할까요?”nbsp“정토회에 나오게 되면서 우리 민족이 겪고 있는 분단 문제와 통일에 대해 심각하게 고민하게 되었습니다. 주위 사람들은 하나 같이 통일이 불가능하다고 얘기합니다. 정말 통일은 힘든 걸까요? ”nbspnbsp이렇게 다양한 질문 중에서 두번째 질문인 참 나는 무엇인지에 대한 스님의 답변을 소개해 드리겠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불교공부를 하면서 잘 모르는 부분인데 오늘 스님께서는 쉬운 비유를 들어주시면서 명쾌하게 답변을 해주셨습니다.nbspnbsp“나라고 할 것이 없는 고정된 ‘나’는 없다고 배웠는데요. 업식과 까르마도 진짜 나의 모습은 아닐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렇다면 그럼 참 나는 어디에 있고 어떤 것일까요?”nbspnbsp“자기가 자기 엄마를 만나면 자기를 뭐라고 불러요?”nbsp“딸이요.”nbspnbsp“아이는 자기를 뭐라고 불러요?”nbsp“엄마요.”nbsp“남편은 자기를 뭐라고 그래요?”nbsp“아내요.”nbsp“가게에 가면 자기를 뭐라고 그래요?”nbsp“손님이요.”nbspnbsp“택시 타면 자기를 뭐라고 그래요?”nbsp“승객이요.”nbsp“학교에 가면 자기를 뭐라고 그래요?”nbsp“학부모요.”nbsp“절에 가면 자기를 뭐라고 그래요?”nbsp“신도요.”nbspnbsp“이렇게 열번 스무번 물을 때마다 불리는 이름이 같아요? 달라요?”“달라요.”nbspnbsp“그럼 자기는 그 중에 무엇이예요?”nbsp“전부 다요...”nbspnbsp“엄마 노릇을 오래 하면 내가 엄마라고 착각하기 쉽고, 아내 노릇을 오래 하다 보면 내가 아내로 착각하기 쉽죠. 아내 노릇을 오래 하다가 남편이 죽으면 ‘나는 남편이 없는 아내인가’ 이런 생각을 하잖아요. 이것은 자기를 아내라고 착각하고 있는 것입니다. 남편이 죽으면 자기는 아내예요? 아내 아니예요?”nbspnbsp“아내 아니예요”nbspnbsp“남편이 죽으면 더이상 아내가 아닌데 아내라고 착각하고 있는 거예요. 다른 남자랑 다시 손을 잡아야 아내가 됩니다. 남편이 없기 때문에 더 이상 아내가 아니예요. 그래서 ‘남편이 죽은지 얼마 안되었는데 내가 벌써 다른 남자를 만나도 될까’ 이런 생각은 다 헛된 생각이예요. 남편이 없는데 자기가 아내라고 착각하는 이것이 ‘자아’ 입니다.nbspnbspnbsp모든 존재는 관계 속에서 규정되어 집니다. 그런데 이것은 영원한 것이예요? 일시적인 것이예요? 일시적인 것입니다. 하루든 열흘이든 십년이든 백년이든 천년이든 그것은 다 일시적인 것입니다. 관계가 바뀌면 바로 다른 것으로 규정되는 것입니다. 사실은 하루에 열두번도 더 규정이 바뀌지요. 이것이 존재의 본질이예요. 그런데 그 어떤 것으로 나를 삼을 것인가? 그 무엇도 ‘나’라고 규정할 것은 없어요. 그렇기 때문에 나는 시시때때로 그 무엇도 될 수가 있는 거예요. 나는 그 무엇도 아닙니다. 그러나 시공간의 한 순간과 한 입장에서는 그 무엇도 될 수가 있는 존재입니다. 이것이 ‘무아’입니다.nbspnbsp그런데 ‘이것 빼고 또 나는 무엇이냐?’ 이런 생각을 nbsp왜 또 해요? ‘참 나’ 라는 말은 ‘나’라는 것이 있다는 전제 위에 나온 생각입니다. ‘이것이 나다’ 해서 따지고 보니 ‘나 아니네’ 이렇게 되니까 그럼 ‘진짜 나는 무엇인가?’ 이렇게 엉뚱 생각을 하는 것입니다. 이렇게 ‘내가 있다’는 전제를 깔아놓고 있기 때문에 이것이 가짜냐 진짜냐 따지는 것입니다. 가짜냐 진짜냐 하는 것은 없습니다. 진짜 나가 있다고 하면 “그렇지 않다” 이 얘기만 하면 됩니다.nbspnbsp nbspnbsp그래서 우리는 자유로운 것입니다. 우리는 그 무엇도 아니고 그 무엇도 될 수 있는 것입니다. 얼마나 좋아요? 옛날에는 한국에서 태어나면 한국 국민이여야지 중국 국민, 미국 국민이 될 수 없었죠. 그런데 요즘 시대에는 한국에서 태어났는데도 중국 사람, 미국 사람이 되는 사람들이 많이 있지요. 옛날에는 한번 결혼하면 남편이 죽어도 영원히 한 남편의 아내여야 했는데, 요즘은 남편이 살아있어도 헤어지고 다른 남자의 아내가 되는 것이 가능하잖아요. nbspnbspnbsp만주벌판에 살고있는 사람들이 고구려 사람이었다면 지금도 다 한국 사람이여야 하잖아요. 그런데 지금은 다 중국 사람이 되어 있죠. 한국 사람들이 다 죽고 중국 사람들이 늘어나서 중국 사람이 되었을까요? 뇌 속에서 한국 사람이라는 생각이 중국 사람이라는 생각으로 바꾸어 버린 것일까요? 육체적으로는 그대로이지만 생각이 바뀌어버린 것입니다. 또 양반과 쌍놈이 다 죽어서 양반과 쌍놈이 없어졌어요? 양반이다 쌍놈이다 하는 생각이 없어졌어요? 생각이 없어진 것이죠.nbspnbsp‘나’라는 것이 있다는 생각이 있느니까 죽으면 옮겨 다니면서 이것이 되었다가 저것이 되었다고 하는데, 이런 아트만관에 따라서 윤회니 전생이니 이런 사고를 하게 된 것입니다. 그러나 부처님은 ‘그런 아트만은 없다’ 고 하셨습니다. 아무 것도 없다는 얘기가 아니라 고립된 단독자는 없고 모든 것이 다 연관되어 존재한다는 것입니다. nbspnbsp자, 여기 물체가 세 개 있습니다. 이 두 개 중에 어느 것이 더 큽니까?nbspnbspnbsp이렇게 하면 이 컵이 커요, 적어요? nbsp이렇게 하면 이 컵이 커요, 작아요? nbsp그렇다면 이 컵은 큰 것이예요? 작은 것이예요? nbspnbsp그러니 첫째, 크다 작다는 언어를 갖고 대답을 하면 이 컵은 큰 것도 아니고 작은 것도 아닙니다. 둘째, 크다 작다는 언어를 사용하지 않고 대답하면 그냥 그것일 뿐입니다. 크냐 작냐 열두번을 물어도 ‘그냥 그것일 뿐이다’ 이렇게 대답하는 것입니다. 셋째, 이것을 철학적인 용어로 ‘공’이라고 말합니다.nbspnbsp그런데 이번에는 또 “큰 것도 작은 것도 아닌 이것은 또 뭐예요?” 이렇게 묻습니다. 왜 꼭 그 무엇이 되어야 합니까? 이 두개만 비교하면 작은 것이 되지요. 그런데 영원히 작은 것입니까? 이 조건에서만 작은 것이지요. 다른 조건에 가면 큰 것이 됩니다. 그러니 이것은 크다 할 수도 있고 작다 할 수도 있고, 새것이다 할 수도 있고 헌것이다 할 수도 있고, 신선하다 할 수도 있고 부정하다 할 수도 있고, 그 무엇도 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 무엇도 아닙니다. 이것이 연기법이고, 이 연기법에 따라서 ‘무아’가 나오는 것입니다.nbspnbspnbsp이렇게 차근차근 사실적으로 접근하면 누구나 다 알 수 있습니다. 그래서 자세히 보고, 살펴보고, 있는 그대로 보면 진실을 볼 수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습관적으로 얼핏 보기 때문에 “그건 큰거야”, “그건 작은거야” 이렇게 말 하고 말죠. 즉 사실은 이 컵이 크고 작은 것이 아니라, 크다 작다고 하는 것은 인식 작용에 불과한 것입니다. 그래서 일체가 다 마음의 작용이라는 것입니다. 존재의 문제가 아니고 인식의 문제입니다. 이것을 반야심경의 논리로 말하면 ‘색즉시공이요 공즉시색’이 됩니다. 크다 작다고 규정되는 것이 ‘색’이고, 크다고 할 수도 없고 작다고 할 수도 없는 것이 ‘공’입니다. 그러니 색이 곧 공이고, 공이 곧 색이 되는 것입니다.nbspnbsp그러니 우리가 불교를 공부하고 교리다 뭐다 온갖 것을 다 배우면서도 항상 우리는 태어나서 지금까지 실체가 있고 불변하는 것이 있다는 사고인 ‘아관’과 ‘상관’이 무의식 속에 깔여 있어요. 그래서 이런 것을 배워도 항상 그 틀로 인식을 합니다. 그러니 지식으로는 그 용어를 아는데, 다가오지는 않는 것입니다. 그래서 교리를 외우는 것입니다. 말로는 불교는 무아이고 무상이다 하지만, 실제 삶은 아관과 상관을 가지고 있습니다. 불교 교리를 굉장히 연구해서 박사 학위를 따서 수많은 사람들에게 불교를 가르치는 사람도 아내 때문에 괴로운 경우가 있겠지요? 이것은 그냥 불교 지식을 많이 아는 것이지 붓다 담마는 아닙니다.nbspnbspnbsp우리는 지금 불교 철학을 공부하러 왔어요? nbsp종교로서의 불교를 공부하러 왔어요? nbsp과학을 공부하러 왔어요? nbspnbsp우리는 진리로서의 불교인 ‘붓다 담마’를 공부해서 고뇌로부터 벗어나려고 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붓다 담마를 공부하면 내가 병이 안나게 될까요? 내가 병이 나도 웃을 수 있게 될까요? 이것은 차원이 다른 얘기입니다. 그런데 여러분들은 병이 안 나는 게 중요하지 웃을 수 있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하지 않잖아요. 그러나 현대 사회로 올 수록 점점 붓다 담마를 공부하는 사람들이 늘어납니다. 시험에 걸리고 안 걸리고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이 고뇌로부터 자유로워지는 것이 중요해집니다.nbspnbsp부처님은 왕위를 버리고 출가를 하셨는데 여러분들은 지금 왕이 되게 해달라고 부처님께 기도하잖아요. 부처님은 왕이 되어도 이 문제는 해결되지 않을 일이라고 아셨기 때문에 새로운 길을 찾아나선 것입니다. 그런데 여러분들은 저한테 자꾸 찾아와서 왕이 되게 해달라고 부탁하잖아요. 그러면 저로서는 얘기하기가 굉장히 어렵죠.” nbspnbspnbsp스님의 명쾌한 답변에 큰 박수갈채가 쏟아졌습니다. 굉장히 철학적으로 어려운 내용이였지만 스님께서는 대중들이 이해하기 쉽게 비유를 들어가며 명쾌하게 설명해 주셨습니다. 즉문즉설을 통해 인생 상담을 하면서도 그 속에 불교의 핵심 교리를 쉽게 설명해주셨는데, 불교 교리에 대해 질문을 해도 이렇게 쉽게 설명해 주시니 불교대학생들도 무척 기뻐하였습니다.nbspnbsp스님께서는 8가지 질문에 대해 무려 3시간 15분 동안 쉬는 시간도 없이 열정적으로 답변을 해주셨습니다. 그리고 답변을 모두 마치시고 마지막으로 왜 수행, 보시, 봉사를 해야 하는지 한번 더 강조하시면서 이렇게 법문을 해주셨습니다.nbspnbsp“적어도 우리가 정토행자라면 그리고 부처님의 제자라면 앞을 내다보는 눈이 있어야 합니다. 개인도 착하고 성실해야 하지만, 주위 사람에게도 이익이 되는, 그리고 미래에도 이익이 되는 약간의 선지자적인 요소도 있어야 역사 속에서 존경을 받습니다. 자기끼리만 노력해서 자기들 세력만 키우고, 그래서 큰 절 하나 짓고 큰 교회 하나 짓고 자기들끼리 만족한다면, 그래서 세계 최대의 불상이니 세계 최대의 교회를 짓는다는 것은 그 교회 밖에서 볼 때는 별 의미가 없습니다.nbspnbspnbsp그래서 정토회는 첫째 개인 수행을 하고, 둘째는 대한민국에 태어났기 때문에 정토회를 넘어서서 대한민국이 잘 되는 일을 해야 하고, 셋째는 대한민국을 넘어서서 다른 나라 사람들이 봐도 참 좋은 일을 한다는 생각을 갖는 일을 해야 합니다. 그래서 필리핀 민다나오에서도 어려운 사람들을 돕고, 인도에서도 어려운 사람들을 돕고 그러는 것입니다. 그리고 사람한테는 잘하지만 환경한테는 못하면 결국 사람한테도 해가 되잖아요. 그래서 환경까지 고려해서 살아가는 것이 정토회입니다.nbspnbsp이런 일을 하려면 첫째 수행을 해야 합니다. 그리고 이런 일들을 하기 위해서는 경비가 들겠죠. 인도에서 좋은 일을 한다고 하지만 다 돈이 들지요. 정토불교대학이 각 도시마다 있어서 좋다고 하지만 법당을 유지하려면 다 돈이 들겠지요. 정부나 재벌이 지원해주는 것도 아니고 nbsp결국 누가 이 돈을 다 내야할까요? 우리가 이 돈을 다 내야 합니다. 그래서 둘째, 보시해야 합니다.nbspnbsp그리고 이 일을 하기 위해 월급을 주는 사람을 고용하면 일시적으로는 효과적이겠지요. 그러나 부처님이 말을 타거나 마차를 타고 다니면서 전법하고, 장자들에게 절을 지으라고 시키면서 그렇게 살았어요? 걸어다니고 나무 밑에서 살으셨죠. 어떻게 보면 그 당시 사회에서 얼마나 비효율적이였습니까. 그러니 우리도 불법의 원칙에 어긋나면 안됩니다. 여러분들은 이 법이 좋아서 법문을 듣고 공부하지만, 여기서 월급받고 일하는 사람은 저와 수행자로서의 관계가 아니라 사장과 종업원의 관계가 되잖아요. 그럼 우리가 회사를 운영하는 게 되잖아요. 그렇게 되지 않으려면 모든 운영을 수행자들이 와서 역할분담을 해야 합니다. 그래서 여러분들이 여기 와서 청소도 하고 방석도 깔고 하는 봉사를 해야 하는 겁니다. 저희 정토회에서는 일체 월급을 주거나 하인을 부리지 못하게 되어 있어요. 그래서 특별한 경우가 아니면 가능한 반찬과 도시락을 집에서 싸오고 그릇도 집에 가서 씻으라고 하는 겁니다. 그 이유를 이제 아시겠어요? nbspnbspnbsp우리는 이곳에 수행하려고 모였죠? 첫째, 수행을 해야 합니다. 둘째, 보시해야 합니다. 셋째, 봉사해야 합니다. 정토불교대학을 다니면서 교리 강의 듣고 부처님 일생만 안다고 되는 것이 아니예요. 이 내용을 이해하는 것은 전체 학사과정의 50도 안됩니다. 마음나누기를 하면서 자기 체험화해야 하고요. 그리고 천일결사 입재해서 매일 아침 수행을 해야 하고요. 불교는 깨달음의 종교인데 깨달음의 맛을 봐야 하거든요. 교리를 이해하는 것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진짜 고뇌가 해결되네’ 이렇게 맛을 봐야 정체성이 딱 잡힙니다. 그래서 깨달음의 장도 다녀와야 하고요. 그리고 마지막으로 크든 작든 형편따라 보시를 해야 이 모든 것들이 유지가 될 수 있습니다. 또 봉사를 해야 유지가 됩니다. 이곳에는 월급 받고 일하는 그 어떤 사람도 없어요. 여러분들이 주인이예요. 이곳은 우리가 함께 만들어가는 공동체이기 때문입니다. 그렇게 정진해가시기 바랍니다.”nbsp수행, 보시, 봉사를 함께 해나가야 깨달음의 길로 나아갈 수 있음을 명쾌하게 이해할 수 있었습니다. 인도에서 한국에 도착하자 말자 시차 적응도 없이 곧바로 연이어 강행군을 하셨지만, 조금도 피곤한 기색없이 열정적인 법문을 해주신 스님께 불교대학생들은 다시한번 큰 박수를 보내주었습니다.nbspnbspnbsp법문을 마치고 정토수련원 대수련장을 나오신 스님께서는 곧바로 대기해 있던 차를 타고 경주로 가셨습니다. 인천공항에 내리자마자 문경까지 따라와서 촬영을 하던 SBS PD님은 막 차에 타려고 하는 스님께 “지금 공항에서 오자마자 3시간 동안 강연을 하신 것 같은데요. 어떻게 이런 일정이 가능하시죠?” 라고 물었습니다. 스님께서는 그냥 웃으셨습니다.nbspnbsp중부권과 영남권 가을 불교대학 특강수련을 마친 후 스님께서는 경주에서 갑자기 일정이 생기셔서 바로 경주로 이동하셨습니다. 경주일정을 마치신 후 다시 경주 남산으로 향해서 앞으로 있을 불대생들의 경주남산순례에 필요한 답사를 하셨습니다. 더불어 약 20일간 인도에 계시면서 듣지 못한 한국의 봄소식을 산을 오르면서 몸으로 직접 봄을 느껴보기도 하셨습니다.nbspnbsp▲ 경주 남산nbsp경주 남산에는 노란 산수유가 피어있고, 진달래도 양지 바른 여기저기서 꽃망울을 터트리며 봄소식을 전하고 있었습니다. 그 외에 다른 꽃들과 나무들도 연두빛깔을 잎을 드러내며 봄을 알리기 위해 꿈틀거리고 있었습니다.nbspnbsp내려오는 중에 멀리서 용장사 3층 석탑을 보며 잠시 참배를 드리기도 하였고, 용장골을 거의 다 내려와서는 목이 없는 절골 석조여래좌상을 보기 위해 다시 옆길을 오르기도 하였습니다. 남산순례코스 중 용장골 코스가 제일 짧아서 한군데 더 볼 곳을 답사하기 위해서였습니다.nbspnbsp nbsp nbspnbsp목이 없는 부처님은 약사여래불이신데 어떤 연유인지 목은 없고 아름다운 무늬의 몸만 덩그렇게 있었습니다. 원래 이곳은 절터였으나 무너지고 절터의 기단들만 남은 채 부처님은 땅에 앉아 있었습니다. 그리고 계곡 여기저기에 탑의 잔재들, 절터의 잔재들이 흩어져 있었습니다. 가능한 빠른 시일내에 이 부처님이 원래의 모습을 되찾기를 바랍니다.nbsp약 5.5km의 산행을 끝으로 어제밤 비행기를 탄 이후로 기나긴 오늘 하루를 마무리 하셨습니다. 내일은 아침 경주 남산 추가 답사와 평화재단에서 회의와 외부인사 만남이 있을 예정입니다.
2015.3.21 (인도 19일째) 수자타아카데미 교장 이취임식 및 한국 귀국
▲ 인도JTS 스텝들과 함께nbsp안녕하세요. 오늘 스님께서는 수자타아카데미 교장 이취임식 및 전체 조회에 참석해 학생들과 JTS 자원봉사자들을 격려한 후 한국으로 귀국하셨습니다.nbsp▲ 새벽 예불nbsp오늘도 새벽4시30분 도량석 소리와 함께 일어나 새벽 예불 및 108배와 명상을 하면서 하루를 시작했습니다. 명상을 하고 있는데 수자타아카데미 교정에 있는 나무들에서 새소리가 들려와 마음을 맑게 해주었습니다.nbspnbspnbsp6시30분, ‘불생가비라 성도마갈다 설법바라나 입멸구시라...’ 소심경을 외우며 발우공양이 시작되었습니다. 오늘은 인도에서 스님과 함께하는 마지막 발우공양 시간입니다. SBS 촬영팀은 스님의 하루를 담기 위해 식사도 함께하지 못하고 분주히 움직였습니다. 그런 가운데서도 스님께서는 대중들과 함께 발우를 펴고 조용히 식사를 마치셨습니다.nbspnbsp▲ 발우공양nbsp스님께서는 발우공양을 마치고 이곳 둥게스와리에서 수행정진을 하게 될 행자님들에게 소중한 가르침을 주셨습니다. nbspnbspnbsp“계율이라는 것은 우리를 보호해주는 것입니다. 우리가 욕구를 중심에 두고 생각할 때는 ‘왜 이것도 못하게 하고 저것도 못하게 하느냐?’ 이렇게 규제처럼 받아들여지잖아요. 그러나 그 욕구를 따라하게 되면 그 과보가 고통으로 오게 됩니다. 담배를 피우면 지금은 기분이 좋은데 나중에 건강을 해칩니다. 이렇게 수행자들을 보호하기 위해서 부처님께서 미래를 내다보고 하신 말씀인데, 중생은 당장 눈 앞에 보이는 현실만 생각하니까 ‘왜 못하게 하느냐?’ 이렇게 받아들여서 계율이 규제처럼 느껴집니다. 그래서 계율을 어기는 문제가 자꾸 발생하는 겁니다.nbspnbsp제가 처음에 이 마을에 왔을 때 이 마을 사람들에게 가장 현실적으로 요구되는 것은 식량, 옷 이런 것들이였습니다. 그런데, 우리가 학교를 지어서 학생들을 가르치려고 했으니까 이것은 마을 사람들의 현실적인 요구는 아니였어요. 아이들을 가르치든 안 가르치든 당장 이익이 있는 것은 아니잖아요. 그래서 마을 사람들의 요구와 우리가 하고자 하는 것 사이에 차이가 생겼어요. 그러나 10년 20년을 내다보면 아이들을 가르치는 것이 훨씬 더 큰 이익이죠.nbspnbspnbsp지금도 마찬가지입니다. 지금 당장 요구되는 것과 이 마을의 20년 후를 내다볼 때 차이가 있습닌다. 마을 사람들은 지금 땅값이 조금 오르니까 팔려고 생각할 때는 참 좋은데, 그러나 마을 사람들이 볼 때는 비싼 값이지만 외지인이 볼 때는 비싼 값이 아니잖아요. 이 땅을 팔면 앞으로 10년 지나면 땅값이 다시 오릅니다. 외지 사람은 돈이 있으니까 언제든지 땅을 살 수 있지만, 이 마을 사람들은 다시 땅을 못 삽니다. 그래서 제가 땅을 팔지 말라고 얘기하지만 이 말이 주민들에게는 귀에 안들어 옵니다. 높은 가격으로 거래할수록 당신들에게 손해라고 하는 이 말을 알아듣기 어렵잖아요. 낮은 가격으로 거래할수록 급할 때 팔았다가 필요할 때 살 수가 있는데, 높은 가격으로 팔면 다시 살 수가 없습니다. 이런 것까지 못 본다는 것이죠.nbspnbsp그런데서 부처님께서 이런 삶의 지침을 주신 것은 우리가 하고 싶은 것을 못하게 하려고 그런 것이 아닙니다. 조금 더 미래를 보고 그것이 손실이 나기 때문에 하지 마라 하신 겁니다. 조금 더 미래를 보고 그것이 이익이 되기 때문에 권장을 하신 겁니다. 그래서 모든 악은 멈추고 모든 선은 행하겠다는 원을 우리가 세우는 것이예요.nbspnbsp지금 업무 배치 속에서도 내가 이것 하고 싶은데 그걸 못하게 하면 흥이 안나죠. 하기 싫은데 하라고 하면 이것도 흥이 안나죠. 그러나 정토회가 여러분을 괴롭힐 이유가 없잖아요. 지금은 그렇지만 미래를 생각하면 ‘이건 위험이 따른다’, ‘이건 극복하는 것이 좋겠다’ 이렇게 해서 규칙과 계율이 있는 것입니다. 한치 앞을 모르는 것이 인생이기 때문에 수행자는 항상 주어진 대로 마음을 내는 연습을 해나가는 것입니다. ‘바깥에 나가서 활동하면 좋고 사무실에 있으면 나쁘다’ 이렇게 자꾸 생각하면 안됩니다. 우리는 필요한 일을 하기 위해 이곳에 왔지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하기 위해서 이곳에 온 것이 아닙니다.nbspnbspnbsp일반 자원봉사자들은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을 할 수 있게 해줘야 하지만, 수행자는 하고 싶은 일에 배치되면 능력을 발휘하고, 나에게 별로 적성이 안 맞는 일이 주어지면 내 까르마를 극복하는데 초점을 맞추어야 합니다. 그래서 행자님들은 수행을 하는 것이 더 우선적이라는 것을 꼭 명심하시기 바랍니다.nbspnbsp계율을 금기와 규제로 여기면 수행 생활이 감옥살이가 됩니다. 수행은 자유와 행복을 위해서 하는 것인데 수행자가 늘 긴장해서 감옥살이 하듯이 삽니다. 그래서 밖에 나가서 계율을 어겨도 되면 기분이 좋고 ‘아이고, 살았다’ 이렇게 되는 것입니다. 요구가 있을 때 요구를 만족시켜 주면 기분이 좋고, 만족이 안되면 기분이 나쁜 것은 사람의 심리 현상이예요. 이것 자체는 심리가 작용하는 현상이니까 좋다 나쁘다 할 수 없지만, 기분을 따라가면 반드시 고가 따릅니다. 그래서 고와 락이 되풀이 되는 것을 윤회라고 하는 것입니다. 죽어서 사람이 개가 되었다가 소가 되었다가 하는 것이 윤회가 아닙니다. 이런 ‘윤회에서 벗어나는 것이 수행이다’ 라는 원칙을 갖고 정진을 하시기 바랍니다. nbspnbsp계율은 자율적이여야 합니다. 계율은 해탈로 나아가기 위한 보호대이지 규제가 아닙니다. 학생들이 규칙을 어길 때도 마찬가지입니다. 학생들을 보호하기 위해서 규칙을 정하는 것이지 학생들을 통제하기 위해서 규칙을 정하는 것이 아닙니다. 말을 안 들으니까 두드려 패서라도 질서를 잡는다 이런 관점에 서면 안되고, ‘질서를 지키는 것이 아이들의 미래에 좋은 일이고, 깨끗이 하는 것이 아이들의 미래에 좋은 일인데 이것을 아이들이 몰라서 지금 이렇게 안한다. 그러니 이것을 바르게 해야 된다’ 이런 자비심을 가지고 아이들의 미래를 생각하면서 엄격하게 야단도 쳐보고 설득도 해보고 규제도 해보고 하는 것은 괜찮지만 마음에서 ‘이것들이 내 말도 안듣고 학칙도 안지키고’ 이렇게 접근하게 되면 화가 나고 아이들을 미워하게 됩니다.nbspnbspnbsp사랑이라는 것은 아이들이 하자는 대로 내버려 두는 것이 아닙니다. 이 아이들을 보호하는 것이 사랑입니다. 아이들이 지금은 모르니까 때로는 기다려줘야 하고, 때로는 설득도 해야 하고, 때로는 규제도 해야 합니다. 이런 관점이 중요합니다. 이 사람들은 태어나면서부터 질서 없이 살아온 사람들입니다. 마을 개발이 안 되는 이유도 협동하면 이익이라는 것을 다 알고 있지만 누구도 못 믿기 때문입니다. 여기서 협동조합을 하려면 누군가가 한 사람은 희생을 해야 합니다. 한 사람이 헌신적으로 해서 신뢰를 얻어야 협력사업이 가능해집니다. 그래서 우리가 해야 할 일은 일단 시작을 하도록 해주는 일입니다. 동네 사람들이 한다고 하면 못 믿지만 JTS가 한다고 하면 믿음을 줄 수 있거든요.nbspnbsp그러나 앞으로는 인도인들에 의해서 사업이 진행되어야 합니다. 한국인들은 뒤에서 보조해주는 것이 목표입니다. 그러나 당장 마을개발을 하려면 인도 사람만 갖고는 안됩니다. 아이디어와 신뢰 문제가 있기 때문에 당분간은 한국 사람들이 더 많이 파견되어서 시도를 해서 자리를 잡으면 다음 단계에서는 인도 사람들이 자립적으로 사업을 할 수 있도록 해야 합니다. 즉, 시작은 우리가 해야 하고 결과는 인도 사람들이 책임자가 되도록 해야 합니다. 그래서 항상 사업을 시작할 때는 내가 앞장서서 해주고, 목표는 인도 사람들이 맡아갈 수 있도록 해야 합니다. 이렇게 현실과 결과를 동시에 염두해 두고 일을 해야 합니다.nbspnbsp우리가 너무 설쳐 버리면 이 사람들을 의지하게 만드는 것으로 끝나버려서 지금은 성과가 있지만 미래에 자생력이 없어지고, 자생력을 키운다고 ‘너네가 알아서 해라’ 이러고 있으면 시작 자체가 안됩니다. 그래서 이 두가지 모순을 어떻게 중도적으로 통합할 것인가, 이것을 우리가 늘 고민해야 합니다. 쉬운 것은 아니예요. 조금 앞서서 하면 의지하게 되고, 조금 물러서면 진척이 안되어 버리는 문제가 늘 반복되거든요. 이것을 염두해 두고 일을 하시기 바랍니다.”nbsp스님의 말씀은 30분 동안이나 계속되었습니다. 한국으로 떠나시기 전에 조금이라도 더 수행정진할 수 있도록 챙겨주시는 모습 속에서 스님의 행자님들에 대한 애정을 느낄 수 있습니다.nbspnbsp8시부터는 인도JTS 활동가들과 함께 수자타아카데미 담벼락 주위를 둘러보시고, 또 주택 개량을 위해 시범적으로 지어 놓은 가옥을 살펴보시면서, 앞으로 건물을 어떻게 더 지을 것인지, 땅은 어떻게 구입할 것인지 등을 검토하셨습니다.nbspnbsp▲ 아직 건물을 짓지는 않았지만 JTS가 병원 뒤쪽에 보유하고 있는 땅nbsp▲ 주택 개량을 위해 시범적으로 지어 놓은 가옥. 마을 주민들의 호응도 아주 좋았다고 합니다.nbspnbsp다시 숙소로 돌아오셔서 원고 교정 업무를 보신 후 오전 10시부터는 쁘락보디홀 대강당에서 열린 수자타아카데미 아침 조회 및 교장 이취임식에 참석하셨습니다. 스님께서는 아침 조회에 모인 학생들에게 어제 마을 잔치 때 즐거웠는지 물어보신 후, 학생들의 장래희망이 무엇인지 대략적으로 파악을 해보셨습니다. 아마도 앞으로 수자타아카데미에 추가로 더 세워지게 될 직업학교, 예술체육학교 등을 염두해 두신 것 같았습니다.nbspnbsp▲ 수자타아카데미 아침 조회 시간nbsp“풋볼 선수가 되고 싶은 사람 손들어 보세요.”“크리켓 선수가 되고 싶은 사람 손들어 보세요”“배드민턴 선수가 되고 싶은 사람 손들어 보세요.”“춤을 잘 추는 무용수가 되고 싶은 사람 손들어 보세요.”“노래를 잘 하는 가수가 되고 싶은 사람 손들어 보세요.”nbsp“공부를 잘 해서 공무원 시험을 보겠다는 사람 손들어 보세요.”“과학자가 되고 싶은 사람 손들어 보세요.”“기술자가 되고 싶은 사람 손들어 보세요.”“선생님이 되고 싶은 사람 손들어 보세요.”nbspnbspnbsp학생들은 스님께서 물어보실 때마다 손을 번쩍 들었는데, 스님의 예상대로 예술과 체육 쪽으로도 관심을 갖는 학생들이 무척 많았습니다. nbspnbsp“앞으로 무엇이 되든지 간에 지금 학생 때는 공부를 열심히 해야 돼요? 안해야 돼요?”“열심히 해야 돼요”nbsp“앞으로 공부 열심히 잘 할 거예요?““네”nbspnbsp▲ 수자타아카데미 교장 이취임식nbsp학생들은 쁘락보디홀 강당이 무너질 듯한 큰 목소리로 “네”라고 대답했습니다. 그리고 스님께서는 지난 8년 동안의 봉사활동을 마치고 오는 6월에 한국으로 돌아가는 라니 시스터 김신아님을 격려해주시고, 이번에 새롭게 교장 선생님으로 취임하는 쁘리앙카님을 학생들에게 소개해 주셨습니다.nbspnbspnbsp“지난 8년간 인도JTS에서 라니 시스터가 많은 활동을 했습니다. 그리고 작년부터는 교장선생님을 맡아서 여러분들의 학교를 책임졌습니다. 그러나 8년간 인도에 있었기 때문에 앞으로 조금 더 있다가 이제 한국으로 돌아가야 합니다. 그래서 오늘 새로운 교장선생님이 오시게 되었습니다. 쁘리앙카 선생님이 예전에 교장선생님을 하시다가 8년간 한국에서 공부를 하셔서 박사 학위를 따고 다시 돌아왔습니다. 그래서 새로운 교장선생님으로 이사회에서 임명했습니다. 새로운 교장 선생님 쁘리앙카님을 위해서 환영의 박수를 부탁드립니다.”nbspnbsp학생들은 환영의 박수를 크게 쳐주었습니다. 그리고 라니 시스터 김신아님의 이임사와 새로 교장선생님이 된 쁘리앙카님의 취임사를 들었습니다.nbspnbsp▲ 수자타아카데미 교장선생님을 이임하는 라니 시스터 김신아님nbsp▲ 새로 교장선생님으로 부임한 쁘리앙카님nbspnbsp지난 8년 간 함께해온 김신아님의 이임사를 들으면서 수자타아카데미 교사들은 무척 아쉬워하는 눈빛이였고, 새롭게 함께 하게 된 쁘리앙카님의 취임사를 들으면서 학생들은 큰 박수로 환영의 마음을 보내주었습니다.nbspnbspnbsp초등학생 조회를 모두 마치고 나서 11시부터는 중학생들과 교사, 스텝들만 모두 법당에 모여서 이번에 새롭게 파견을 오게 된 행자님들 6명을 비롯해 신규 스텝으로 인준을 받은 인도인 활동가 4명 등 각 팀별 담당자들을 전체적으로 함께 소개하는 시간을 가졌습니다.nbspnbsp▲ 인도JTS 스텝들 소개 시간nbsp먼저 이번에 인도JTS 전체를 총괄하는 역할로 오신 보광법사님을 스님께서 소개해 주셨습니다. 보광법사님은 인도JTS 식구들에게 간단히 소감을 나눠주셨습니다.nbspnbsp▲ 인도JTS 총괄 책임자가 되신 보광 법사님nbspnbsp“저는 98년 1월에 인도에 처음 왔었습니다. 그 때는 부처님의 성지를 따라서 순례를 왔었고요. 17년 만에 다시 이곳에 온 것은 여러분들과 함께 생활하기 위해서입니다. 처음에 제가 인도에 왔을 때와 지금은 많이 바뀌었습니다. 법륜 스님 말씀처럼 수자타아카데미가 새로운 방향으로 나아가야 할 때가 된 것 같습니다. 학교도, 병원도, 마을개발도 새롭게 해나갈 수 있도록 제가 뒤에서 열심히 뒷바라지 하겠습니다. 지구 어느 곳에 가더라도 둥게스와리에서 왔다는 것을 자랑스럽게 생각할 수 있는 그런 둥게스와리를 함께 만들어 갑시다. 부족한 것이 많으니 먼저 하고 계신 선생님들과 스텝들이 많이 가르쳐 주셨으면 합니다. 감사합니다.”nbspnbsp인도JTS 식구들은 큰 박수로 보광법사님을 환영해 주었습니다.nbspnbspnbsp이어서 올해 학교 파트에서 일하게 된 한국인과 인도인 활동가들을 소개하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학교 파트에서는 유치원 책임자로 인드라짓 선생님이 배정되었고, 초등학교 책임자로 빠완 선생님이 배정되었습니다. 그리고 수자타아카데미 까나홀 분교 교장선생님으로는 카필데오지가 배정되었습니다. 한국인 담당자는 기획실장을 맡은 권도영님이 배정되었습니다. 권도영님은 쁘리앙카 교장선생님을 도와서 앞으로 수자타아카데미가 직업교육, 예체능교육, 인문계 교육 체계 등을 내실있게 갖추기 위한 많은 실무들을 맡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이번에 한국에서 새로 파견을 온 김미정, 심애남 행자님이 학교 파트에서 올해 1년간 일하게 되었습니다.nbspnbsp▲ 수자타아카데미 학교 파트 담당자들nbspnbsp다음은 올해 병원 파트에서 일하게 된 한국인과 인도인 활동가들을 소개하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먼저 한국인으로는 박종화님이 병원팀장이 되었고, 인도인으로는 작년에 이어서 까미스와지와 삼부지가 배정되었습니다. 그리고 이번에 한국에서 새로 파견을 온 김민경 행자님이 병원 파트에서 함께 일하게 되었습니다.nbspnbsp▲ 지이바카 병원 파트 담당자들nbspnbsp이어서 올해 마을개발 파트에서 일하게 된 한국인과 인도인 활동가들을 소개하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먼저 한국인으로는 최동호님과 신예슬님이 배정되었고, 인도인으로는 아룬지가 새롭게 마을개발 담당자로 배정되었습니다. 그리고 한국에서 새로 파견을 온 박영민, 정유진님이 마을개발 파트에 함께 결합하게 되었습니다. 또 주연우님이 무더운 4월6월 동안 잠시 한국에 귀국했다가 오는 7월부터 다시 돌아와 마을개발 파트에서 일할 것이라고 합니다.nbspnbsp▲ 마을개발 파트 담당자들nbsp스님께서는 마을개발 파트 담당자들을 소개하면서는 특별히 더욱더 많은 관심을 가져줄 것을 부탁하셨습니다.nbspnbsp“앞으로 마을개발 파트에 조금 더 사람이 배치되어야 합니다. 왜냐하면 이 활동이 점점 더 커지기 때문입니다. 다른 곳에 가서 취직을 안 하고 이 동네에 뼈를 묻고 살게다고 하는 사람은 마을개발 파트로 옮겨 오시기 바랍니다. 앞으로 주택을 개량하거나 협동조합 운동을 하거나 길을 새로 만드는 등 마을개발 파트에 관심있는 분들은 신청하세요.nbspnbsp우선 이번 마을개발팀이 해야 할 일은 인구 센서스 카드를 새로 발급하는 일입니다. 이것을 짧은 시간에 해내려면 많은 사람의 도움이 필요합니다. 그러니 선생님들이 파트 타임으로 많이 도와주세요. 그렇게 하실 수 있죠? nbspnbsp이것이 빨리 이뤄져야 청년회를 만들든, 부녀회를 만들든, 마을 조직을 만들 수 있습니다. 유치원 운영을 위해서도 필요하고, 초등학생들이 정부학교와 우리학교에 몇 명이 다니는지 파악할 수도 있고, 중학교에 못 간 아이들이 파악되어야 우리가 직업학교를 어떻게 만들지 알 수 있고요. 모든 것의 기초가 인구 센서스 카드이기 때문에 이것부터 시작해야 합니다. 그래서 여러분들이 협조를 해주셔야 합니다.“nbspnbsp스님의 당부 말씀에 교사들도 모두 마을개발에 적극 협력할 것을 약속했습니다.nbspnbspnbsp그리고 마지막으로 사무 파트 담당자들을 소개하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먼저 한국인으로는 수자타아카데미 교장선생님을 이임한 김신아님이 대외협력팀장을 맡았고, 새로 파견 온 분들 중에서는 강명희 행자님이 사무 파트를 담당하게 되었습니다.nbsp이렇게 각 파트별 담당자들을 모두 소개한 후 이번에 새로 인도인 스텝으로 인준을 받은 4명의 인도인들에게 스텝 임명장을 스님께서 직접 전달하고 격려를 해주셨습니다.nbspnbsp▲ 인도JTS 스텝 임명장을 받은 인도인 활동가들nbsp한명 한명에게 임명장을 수여한 후 스님과 함께 기념촬영도 하였습니다. 이 모습을 지켜보던 인도인 스텝들도 새 식구가 된 4명을 뜨거운 환호와 박수갈채로 환영을 해주었습니다.nbspnbsp그리고 스님께서는 오늘 함께 모인 수자타아카데미 교사들, 인도인 스텝들, 중학생들 모두에게 “올 한해도 열심히 해봅시다” 라고 하시면서 용돈을 주셨습니다. 스님께 “단야바드” 라고 크게 인사한 후 모두들 전정각사 법당 앞 계단에 모여 기념사진을 찍었습니다.nbspnbspnbsp모두 환하게 웃으며 “함까랑게” 구호를 외치자 카메라의 셔터가 찰칵 찰칵 눌러졌습니다. 스님께서 이곳 천민마을인 둥게스와리에 학교를 세우신지 21년째, 이제는 한국인이 인도인을 돕는다는 구분은 없어지고 다만 ‘둥게스와리를 어떻게 살맛나는 공동체로 만들어갈 것인가?’를 함께 고민하는 한 식구가 되었음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nbspnbspnbsp이렇게 전체 조회를 마치고 스님께서는 가야 공항으로 가기 위해 수자타아카데미 트럭에 올라타셨습니다. 인도JTS 활동가들은 공항으로 떠나는 스님께 합장을 하며 “스님, 고맙습니다”라고 거듭 인사를 했습니다. 좀 지쳐 있는 활동가들은 스님 덕분에 새롭게 기운을 얻었고, 새로 파견을 온 활동가들은 3개월 이상 걸릴 현황 파악을 스님을 통해 3주만에 할 수 있었으니 시간을 내어주신 스님께 너무나 감사한 마음이 들었나 봅니다. 스님께서는 ‘잘 있어“ 하시며 손을 흔들어 주셨습니다.nbspnbspnbsp▲ 20일 동안 머물렀던 수자타아카데미를 떠나며nbsp가야 공항을 2시50분에 출발한 비행기는 바라나시를 경유하여 방콕공항에 9시30분 무렵 도착했습니다. 방콕공항에서 잠시 머문 후 밤 11시10분에 출발한 비행기는 내일 새벽 6시에 인천 공항에 도착할 예정입니다.nbspnbspnbsp스님께서는 인천공항에 도착하자마자 곧바로 문경으로 내려가셔서 오전 10시부터 정토불교대학 특강수련에 참석해 법문을 해주실 예정입니다. nbsp ▼ 배고픈 사람은 먹어야 합니다, 아픈 사람은 치료받아야 합니다, 아이들은 제 때에 배워야 합니다. JTS가 인도 둥게스와리 아이들을 위해 펼치고 있는 기아, 질병, 문맹 퇴치 활동에 함께해 주세요.nbspnbspnbspnbsp
2015.3.20 (인도 18일째) 둥게스와리 마을잔치, JTS 이사회
▲ 둥게스와리 마을잔치 nbsp 안녕하세요. 오늘 스님께서는 오전에 둥게스와리 마을잔치에 함께 참석하셨고, 오후에는 인도JTS 이사회와 인도정토회 이사회에 참석하셨습니다.nbsp nbsp 인도에 온지 18일째 아침을 맞이하였습니다. 오늘도 새벽4시30분에 일어나 예불 및 108배와 명상을 하면서 하루를 시작했습니다. 6시30분부터는 발우공양을 하였고, 발우공양을 마치고 나서는 숙소 주변이 깨끗이 청소가 안 된 모습을 보시고는 청소할 때의 원칙에 대해 그 기준을 말씀해 주셨습니다.nbsp nbsp ▲ 발우공양 nbsp “항상 수행 도량을 깔끔하게 해두어야 합니다. 수행자는 옷을 기워 입더라도 항상 깔끔하게 입어야 합니다. 그리고 청소 배정은 적어도 우리가 사는 구역은 우리가 해야지 노동자들을 시키면 안돼요. 우리의 기준은 늘 부처님 당시에 부처님이 어떻게 사셨느냐입니다.nbsp nbsp 부처님처럼 위대하신 분이 전법을 효과적으로 하기 위해 마차를 타거나 말을 타고 다니면서 했다면 훨씬 더 많이 하실 수 있었잖아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말이나 마차를 전혀 타지 않으셨거든요. 말을 타지 말라는 계율이 있는데, 그 이유는 두 가지인데 하나는 말을 탄다는 것은 내가 편리하기 위해서 동물을 학대하기 때문이고, 다른 하나는 너무 편리를 쫓기 때문입니다. 수행자는 편리를 너무 쫓으면 안됩니다. 지금 우리가 타고 다니는 자동차는 동물을 괴롭히는 것은 아니지만 지나치게 편리를 쫓아서는 안됩니다. 일에 필요해서 자동차를 타긴 하지만 자꾸 더 좋은 차를 타려고 하는 것은 안된다는 것입니다.nbsp nbsp 그리고 가능하면 우리가 운전해서 가면 괜찮지만 운전수를 고용해서 생활해서는 안됩니다. 지금 학교와 병원에서는 우리들을 위한 것이 아니고 마을 사람들을 위한 것이니까 어쩔 수 없이 하고 있습니다. 장기적으로는 운전자도 다 수행자들이 맡아서 해나가면 제일 좋습니다. 이것은 현실 속에서 어쩔 수 없이 하는 것이지만, 적어도 우리가 생활하는 수행 도량에는 노동자를 시켜서 청소를 한다든지 밥을 한다든지 하는 것은 절대로 해서는 안됩니다. 병원, 학교 등 마을 개발을 위해서는 당분간 시간적으로 유예를 하는 것이지 원칙적으로는 안되는 것입니다. 아무리 어렵더라도 우리가 먹고 사는 수행 도량은 우리 손으로 가꾸어야 합니다. 자원봉사는 괜찮지만 수행 도량에 월급을 받고 일하게 해서는 안됩니다. 이것은 부처님 당시에 절에서 노예를 부리는 것과 똑같은 것이거든요.nbsp nbsp 이 사회 속에서 세상까지는 못 바꾸더라도 우리가 사는 도량은 이런 원칙에 의해서 생활해야 합니다. 일상 생활을 할 때는 하인 부리듯이 사람을 돈주고 고용해서 생활하면 안됩니다. 어쩔 수 없이 그렇게 할 때는 참회를 해야 합니다. 법당과 숙소의 경계 안에는 청소를 할 때 노동자를 시키면 안됩니다. 여기는 우리가 청소 당번을 정해서 청소를 해야 합니다.” nbsp 스님과 함께 생활을 하게 되니까 참 많은 것을 배우게 되는 것 같아 감사한 마음이 들었습니다. 이 외에도 오늘 발우공양 시간에 스님께서는 이곳은 학교를 다니는 아이들과 같이 지내는 공간이니까 활동가들이 늘 모범을 보여주어야 함을 강조하셨습니다. 그리고 어제에 이어서 오늘 함께 배울 소심경 구절을 다함께 독송했습니다.nbsp nbsp “원단일체악 원수일체선 원공제중생 동성무상도”nbsp nbsp nbsp 스님께서는 이 구절의 의미에 대해 법문을 해주셨습니다.nbsp nbsp “원단일체악, 원하옵나니 일체 악을 멈추겠습니다. 악은 남을 해치거나 남을 괴롭히거나 남을 손해끼치는 것을 말합니다. 내가 남을 돕지는 못할망정 남을 손해끼쳐서는 안됩니다. 내가 죽어가는 생명을 살리지는 못할망정 살아있는 생명을 죽여서는 안됩니다. 내가 남을 즐겁게 해주지는 못할망정 내가 남을 괴롭혀서는 안됩니다. 남을 해치지 말고, 남을 손해끼치지 말고, 남을 괴롭히지 마라. 이런 저런 변명을 할 게 아니라 이런 행동을 딱 멈추어야 합니다.nbsp nbsp nbsp 원수일체선, 원하옵건데 일체 선은 내가 다 닦겠습니다. 남을 해치는 것이 악이라면 남을 해치지 않는 것은 제로 베이스이지 선은 아닙니다. 선은 여기서 더 나아간 행동입니다. 죽어가는 생명을 살리는 것입니다. 남에게 손해끼치는 것이 악이라면 손해끼치지 않는 것은 제로 베이스입니다. 선은 남을 이익되게 하는 것입니다. 남을 괴롭히지 않는 것을 넘어서서 남을 즐겁게 해야 합니다. 또 말로써 남을 해치거나 남을 손해끼치거나 남을 괴롭히지 말고, 남을 위로하고 남을 격려하고 자비롭게 말해야 합니다. nbsp모든 부처님의 가르침을 요약하면 일체의 악은 멈추고 일체의 선은 닦는 것인데, 이것만 하면 윤리의식 밖에 안되잖아요. 그래서 더 나아가 스스로 그 마음을 깨끗이 해야 합니다. nbsp nbsp 원공제중생 동성무상도, 원하옵건데 모든 중생이 다함께 위없는 도를 성취하기를 원하옵니다.nbsp nbsp 이렇게 밥 먹기 전에 다짐을 한 후 식사를 하게 됩니다. 그리고 식사를 한 후 발우를 물로 깨끗이 씻는데 씻고 난 후 물이 깨끗해야 해요. 고춧가루 하나 있어도 안됩니다. 그릇 씻은 물이 깨끗하다는 것은 그릇이 그만큼 청결하다는 것입니다. 아귀는 늘 배고픔에 껄떡거리는 존재예요. 이를 비유해서 말하기를 배는 산만큼 크고, 목구멍은 바늘 구멍만 합니다. 바늘 구멍만한 곳으로 음식이 들어가서 산만한 배를 채우려니까 현실적으로 불가능하잖아요. 이렇게 늘 기아에 헐떡거리는 것을 아귀라고 합니다. 우리가 그릇을 씻고 남은 이 청수물만이 아귀의 목구멍에 걸리지 않고 그 아귀를 배부르게 한다는 것은 인도의 문화에서 유래된 것인데, 즉 청수물이 지저분하게 되면 아귀의 목구멍에 걸려서 아귀가 고통을 받습니다.nbsp nbsp nbsp 현실적으로 해석하면 음식 찌꺼기를 하나도 남기지 않고 깨끗이 먹는 것은 결국 배고픈 자를 배부르게 하는 것과 똑같습니다. 우리가 음식을 먹고 함부로 버리면 그만큼 식량이 필요하고, 그만큼 많이 수입하게 되면 식량값이 오르게 되고, 식량값이 오르게 되면 가난한 나라 사람들은 식량을 구입할 수 있는 양이 적어집니다. 결국 그 사람을 배고프게 만듭니다. 우리가 여기 음식 한 숟가락 버리는 것이 제3세계에서 굶주리는 사람과 직결되어 있습니다. 내가 버리는 것에서 끝나는 것이 아닙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가 음식을 적당하게 적게 먹어야 될 뿐만 아니라 버리지 말아야 합니다.nbsp nbsp 아차세발수 여천감로미, 내가 발우를 씻은 이 물은 하늘 나라의 감로수와 같다. 시여아귀중 개령득포만, 너희 아귀들에게 베푸노니 다 받아먹고 배불러지이다.”nbsp nbsp 이렇게 해서 발우공양의 의미와 소심경에 대한 법문을 모두 마쳤습니다. 배고픈 사람들을 늘 생각하는 정신이 발우공양 속에 담겨 있는데, 이곳 수자타아카데미는 배고픈 사람들과 늘 함께 사는 곳이니 발우공양의 의미가 더욱 와 닿는 시간이 되었던 것 같습니다.nbsp nbsp 스님께서는 발우공양을 마치고 원고 교정 업무를 보시다가 8시30분부터 SBS와 인터뷰를 하셨습니다. SBS 촬영팀은 스님께 “석가모니는 왜 둥게스와리를 고행의 장소로 정하셨는지?”, “처음 둥게스와리에 구호의 둥지를 틀려고 했을 당시 이 사람들이 가장 필요로 하는 것은 무엇으로 보였나요?”, “처음 시작할 때보다 규모가 커졌는데, 스님께서는 어느 정도까지 이분들을 보살펴야 한다고 보시는지?”, “JTS의 구호 사업의 원칙이 무엇인지?”, “스님을 따라다니다 보니까 체력이 딸려서 픽픽 쓰러지는데 스님은 항상 왕성하신 것 같아요. 왜 이렇게 바쁘게 생활하시는 것인지?”, “작년에 115회 연속 세계 강연을 하셨는데 어떤 목적이 있으셨는지?”, “건강이 안 좋으신데도 쉬지 않으시고 끝까지 마치신 이유가 무엇인지?” 등에 대해 질문을 했습니다. 스님께서는 진솔한 이야기를 가볍게 해주셨습니다. 그 중에서 한가지 질문에 대한 스님의 답변을 소개해 드리겠습니다.nbsp nbsp ▲ SBS 인터뷰nbsp nbsp “인도에 구호사업을 하게 된 이유가 어디에 있으신지요? 인도가 스님에게 갖는 의미가 있는지요?” nbsp “인도는 인구가 12억이니까 큰 대국이고요. 나라로만 보면 구호 대상이 안됩니다. 그런데 인도는 계급제도가 있다 보니까 빈부격차가 극심해요. 그래서 소위 인도에서의 하층 계급인 극빈층의 인구는 아시아의 전체 극빈층보다 많습니다. 왜냐하면 인도의 인구 자체가 많으니까요. 그래서 나라만 보면 안되고 그 나라 안에 살고 있는 극빈층을 봐야 해요. 그 극빈의 상태가 우리가 보통 생각하는 아주 가난한 나라보다 더 심합니다. 저희가 여기서 구호활동을 하다가 아프가니스탄에 난민 구호하러 갔는데 여기 사람들이 그래도 우리보다 낫다는 평가를 한다든지, 쓰나미 피해지역에도 파견을 하니까 ‘왜 우리들이 여기까지 와서 부자들을 도와줘야 하느냐’ 하는 얘기를 할 정도거든요. 이렇게 극빈층이기 때문에 지원을 하는 것이고요.nbsp nbsp nbsp 계기는 부처님과 관련이 있어요. 제가 부처님의 성지순례를 왔다가 이 사람들을 만났거든요. 성지이기 때문에 구호사업을 시작하게 된 것은 아니지만 성지순례를 왔다가 만난 경우입니다. 부처님과의 관련성은 부처님도 평생 인도 사회에서 이분들에게 얻어 드셨잖아요. 그러니 우리가 그것을 좀 갚아야죠. 또 혜초 스님도 여기 오셔서 얻어 먹었으니까요. 이것을 2500년 동안 복리로 이자를 계산하면 아마 꽤 많을 거예요. 그러니까 그 은혜를 갚는다는 마음으로 하고 있어요.” nbsp 부처님은 인도 사람들에게 얻어 드셨으니 그 은혜를 갚는 마음으로 하고 있다는 말씀이 큰 울림으로 다가왔습니다. 스님께서는 한반도의 평화와 통일을 발원하실 때에도 한국에 태어난 은혜를 갚기 위해서라고 말씀하신 적이 있는데, 이렇게 늘 은혜를 갚는 마음으로 임하시는 모습을 보니 절로 고개가 숙여졌습니다.nbsp nbsp 인터뷰를 마치고 오전 10시부터는 두르가푸르, 자그디스푸르의 마을 주민들과 주변 15개 마을의 리더들을 포함해 1,800여명을 수자타아카데미로 초대해서 마을 잔치를 열었습니다. 마을잔치가 열린다는 소식을 듣고 많은 주민들이 수자타아카데미로 몰려 왔습니다. 아이를 등에 엎고 온 가족이 함께 손을 잡고 오는 등 많은 주민들이 삼삼오오 무리를 지어 학교 안으로 입장했습니다.nbsp nbsp ▲ 마을 잔치에 참석하러 수자타아카데미로 들어오는 마을 주민들nbsp nbsp 먼저 잔치를 시작하기에 앞서 스님께서 나오셔서 인사 말씀을 해주셨습니다.nbsp nbsp ▲ 인사말씀을 하시는 스님 nbsp “나마스떼 오늘은 우리 둥게스와리 마을의 축제날입니다. 지난번 설은 잘 보내셨어요? 원래 홀리 때 잔치를 열었어야 하는데 홀리 때 열지 못하고 오늘 열었어요. 오늘은 새해를 맞이하여 마을 사람들이 모여서 흥겹게 노는 날입니다. 마을마다 다 나와서 해야 하는데 다 나오지는 못하고, 마을에서 다섯 팀과 짜르카 하시는 부녀팀 이렇게 총 여섯 개 팀이 나왔습니다. 심사를 할 때 가장 큰 점수는 여러분들이 얼마나 응원을 하느냐입니다. 그러니 각 팀마다 잘했다고 생각하면 열렬히 박수를 쳐주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여러분의 자녀들인 학생들이 찬조 출연으로 나와서 공연을 보여줄 겁니다. 자, 그러면 큰 박수로 마을 잔치를 시작하겠습니다.”nbsp nbsp nbsp 마을주민들의 우레와 같은 함성과 박수소리와 함께 둥게스와리 마을잔치가 시작되었습니다. 먼저 ‘뱅뱅’ 이라는 음악에 맞춰 수자타아카데미 남학생들이 멋진 댄스 공연을 보여주었습니다.nbsp nbsp nbsp ▲ 멋진 춤을 보여준 수자타아카데미 학생들 nbsp 마을주민들은 자녀들이 멋진 춤사위를 보여주자 웃음을 머금으며 기뻐했습니다. 한국식으로 치면 자녀들의 갈고 닦은 솜씨를 부모님과 가족들에게 보여주는 학예회와 비슷한 느낌이 들었습니다.nbsp nbsp 마을별 풍물팀이 나와서 공연을 시작하자 심사위원들은 점수표를 보면서 하나씩 체크하면서 심사를 함께해 주었습니다.nbsp nbsp ▲ 스님을 비롯한 심사위원들nbsp nbsp 첫 번째 출연팀으로는 짜르카를 짜는 부녀회 여성들이 나와서 인도 노래를 들려주었습니다. 이 분들은 엄청나게 긴 노래 가사를 개사해서 노래를 불렀는데, 노래가 너무 길어서 도중에 스텝이 올라가서 그만 부르도록 부탁했지만 아랑곳하지 않고 결국 끝까지 노래를 다 불렀습니다. 아주머니들의 표정이 다들 심각해서 그런지 한국인들 모두 이 아주머니들을 보고 무척 즐거워 했습니다.nbsp nbsp ▲ ‘짜르카’라고 하는 물레를 짜는 부녀회 여성들 nbsp 다음으로 두 번째 출연팀으로는 바가히 마을에서 결성된 팀이 나왔습니다. 저마다 인도 전통 악기를 손에 들고 나와 신나게 북을 두드리고 구수한 노래도 함께 들려주었습니다.nbsp nbsp ▲ 바가히 마을 풍물 공연팀nbsp nbsp 마을마다 풍물 공연을 보여주면서는 특히 여자 옷 사리를 입은 남자들이 한명씩 나와서 여자 모습을 흉내내어서 주민들의 큰 웃음을 자아내었습니다.nbsp nbsp 다음은 자그디스푸르 마을 주민들로 구성된 팀이 나와서 풍물 공연을 보여 주었습니다. nbsp nbsp ▲ 자그디스푸르 마을의 풍물 공연팀 nbsp 다음은 잠시 쉬어가는 시간으로 수자타아카데미에서 태권도를 배우고 있는 학생들이 나와서 멋진 품새를 보여주었습니다.nbsp nbsp ▲ 태권도 시범 nbsp 이어서 사두들로 구성이 된 만코시힐 마을팀이 나와서 멋진 풍물 공연을 보여주었습니다. 사두들은 힌두 종교인들이여서 그런지 마을 사람들보다 훨씬 더 노래를 멋들어지게 잘 불렀습니다. 특히 노래 가사를 JTS의 역사로 개사해 불러서 마을 주민들의 더 큰 박수와 호응을 얻었습니다.nbsp nbsp ▲ 만코시힐 마을에서 온 사두 공연팀nbsp nbsp 다음은 수자타아카데미 여학생들이 나와서 ‘Soil Pot’과 ‘비하르 겔릴라’ 라는 음악에 맞춰 아름다운 춤사위를 보여주었습니다. 여학생들의 공연이여서 그런지 더 큰 박수와 환호를 받았습니다.nbsp nbsp nbsp ▲ 수자타아카데미 여학생들 공연 nbsp 다음은 두르가푸르에서 마을 풍물팀이 나왔습니다. 두루가푸르 풍물팀은 마을에서 많은 사람들이 함께 출연해서 무리를 지어 나왔습니다. 조금 어수선하기는 했지만 그래도 모두들 서서 정말 풍물 놀이를 하듯이 무대 이곳 저곳을 옮겨다니며 한껏 흥을 돋구었습니다.nbsp nbsp ▲ 두르가푸르 마을 풍물팀nbsp nbsp 다음은 마지막 마을 공연팀으로 가왈비가 풍물팀이 나와서 신나는 공연을 보여주었습니다. 가왈비가 풍물팀은 노래 가사도 개사를 새로 했을 뿐만 아니라 여장을 한 남성의 춤 실력도 뛰어나 보였습니다. 그리고 북을 치는 분의 손놀림도 거의 보이지 않을 정도로 점점 박자가 빨라지더니 어디서 그런 힘이 솟아나오든지 한참 동안 빠른 박자를 유지하며 구경하는 초등학생들도 빠른 박자에 어깨를 들썩거렸습니다. nbsp nbsp ▲ 가왈비가 마을 풍물팀nbsp nbsp 오늘 마을잔치의 대미를 장식하는 공연은 초등학생들의 댄스 공연이었습니다. 남학생들이 여름에 무더울 때 머리에 둘러쓰는 감치를 목에 둘러메고 나와서 멋진 동작을 보여주자 마을 주민들로부터 뜨거운 환호 소리가 터져 나왔습니다.nbsp nbsp nbsp nbsp ▲ 감치를 목에 메고 율동을 보여주는 수자타아카데미 남학생들 nbsp 이렇게 한바탕 함께 어우러진 후 스님께서 다시 무대 위로 올라오셔서 인사말씀을 해주셨습니다.nbsp nbsp nbsp “여러분 재미있었어요? 얼마나 재미있었어요? 오늘 출연해서 우리를 즐겁게 해준 모든 분들게 큰 박수 부탁드립니다. 오늘 즐겁게 놀았는데, 오늘만이 아니라 올 한해가 모두 즐거운 날이 되기를 바랍니다. 점심 준비를 했으니까 부족하지만 잘 드시기 바랍니다.”nbsp nbsp 마을 주민들은 초대해준 스님께 감사의 뜻으로 큰 박수를 보내주었습니다.nbsp nbsp nbsp 이어서 시상식이 열렸습니다. 먼저 특별상으로 짜르카 팀이 사리 한 벌씩을 선물로 받았습니다. 그리고 4등은 두르가푸르 마을 풍물팀에게 돌아갔습니다. 두루가푸르 마을 풍물팀에게는 마을별로 잔치를 할 때 사용하라고 큰 물통을 하나 선물했습니다.nbsp nbsp ▲ 4등을 하고 물통을 선물 받은 두르가푸르 풍물팀nbsp nbsp 3등은 가왈비가와 자그디스푸르 두 개 마을 풍물팀에게 동시에 돌아갔습니다. 두 마을에는 카페트를 각각 선물했습니다. 2등은 사두들이 중심이 되어 멋진 공연을 보여준 만코시힐 풍물팀이 받았습니다. 그리고 공연에 참가한 모든 분들께는 티셔츠 한 장씩을 선물했습니다. nbsp 마지막으로 영예의 1등은 주민들의 환호가 가장 많이 나온 바가히 마을의 풍물팀에게 돌아갔습니다. 1등 상품은 앞으로 마을에서 더 신나게 춤추고 지내라는 뜻으로 악기 세트와 룽기를 각각 스님께서 무대 위로 올라오셔서 시상해 주셨습니다.nbsp nbsp ▲ 마을잔치 시상식 nbsp 시상식을 마치고 나니 초등학생들이 모두 무대 위로 올라와 신나는 춤판을 벌였습니다. 어른들의 기운을 물려 받아서 그런지 아이들도 춤을 추는 체력과 자세가 보통이 아닌 것 같았습니다.nbsp nbsp nbsp 이어서 마을별 점심식사 장소가 공지로 나가고 즐거운 식사 시간이 되었습니다. 아주머니들은 한두명씩 어린 아이들을 데려왔는데, 아이들 먹을 것까지 다 챙기느라 배식 장소는 아주머니들로 둘러쌓여 잠시 소란스러워지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오랜 시간 JTS로부터 훈련을 받고 익숙해져서 그런지 평화롭게 배식이 끝났고, 또 엄마들과 어린 아이들 모두 배부르게 먹을 수 있었습니다. nbsp nbsp nbsp ▲ 점심 식사 시간 nbsp 든든히 점심을 먹은 주민들은 아주 즐거워하는 표정으로 수자타아카데미 정문을 걸어 나갔습니다. 집에 있는 다른 가족들에게 가져다 주려고 하는지 대부분 음식을 남겨서 한 봉지씩 들고 가는 모습이었습니다.nbsp nbsp nbsp 이어서 오후 2시부터는 JTS 이사회가 열렸습니다. 수자타아카데미를 도와주고 계신 지역 인사 분들이 모두 이사회의 회원으로 참여하고 계신데, 스님께서는 바쁘신데도 불구하고 참석해주신 분들게 먼저 감사 인사를 해주신 후 지난 1년 동안의 사업에 대해 간략히 설명을 덧붙여 주셨습니다.nbsp nbsp ▲ 인도JTS 이사회nbsp nbsp “지난해 1년 동안은 인도JTS 사업에 여러 가지 어려움이 있었습니다. FCRA 문제가 해결이 되지 않아서 특히 어려움이 많았습니다. 그러나 한국JTS 박지나 대표님과 쁘리야팔 스님과 많은 분들이 노력해 주셔서 FCRA 문제는 이제 해결을 했습니다. FCRA 쪽에서 FCRA가 해결될 때까지 모든 사업을 일시 중단시켰으면 좋겠다고 얘기를 해서 작년에 어쩔 수 없이 모든 사업을 일시 중단시켰습니다. 저희들은 지난 20년 동안 이곳에 있으면서 학교를 문 닫은 적은 한번도 없었습니다. 사람이 죽는 큰 일이 생겼을 때도 학교 문을 닫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이것은 정부 쪽에서 FCRA 문제가 완전히 해결될 때까지 사업을 중단해 달라고 해서 어쩔 수 없이 문을 닫았습니다.nbsp nbsp nbsp 그래서 지난 1년 동안 사업보고를 할 것은 적어졌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러 가지 현상 유지를 하는데 경비가 들었습니다. 그러나 JTS를 통해서는 돈을 지출할 수가 없었기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JTS를 통하지 않고 지원을 해서 그나마 지금까지 오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오늘 사업보고는 JTS에서 경비를 지출한 것만 보고를 하기 때문에 아주 간략합니다. 이제 2015년부터는 다시 정상적으로 사업을 진행해 나가겠습니다.“ nbsp 스님 말씀에 이어서 사무국장 라니 시스터가 2014년 사업보고를 해주었습니다. 그리고 2015년 사업계획에 대해 발표한 후 스님께서 “이 외에 다른 제안이 있으신 분은 말해 보라”고 하자 교사들이 몇가지 제안을 해주었습니다.nbsp nbsp ▲ 인도JTS 2015년 사업계획에 대한 다양한 아이디어를 제안하는 수자타아카데미 교사들 nbsp 먼저 유치원 책임자인 인드라짓은 마을에 술을 마시는 사람들이 너무 많은데 JTS에서 대책을 세워주면 좋겠다고 제안했고, 또 다른 교사 한 분은 지금 수자타아카데미는 3개 마을 학생들만 입학을 받고 있는데 다른 마을에서도 정말 집이 가난해서 학교에 가지 못하는 아이들은 별도로 받아주면 어떨지 건의를 해주었습니다. 또 초등학교 책임자인 빠완은 마을 아이들이 숙제를 안 해 오는 경우가 많은데 그 이유가 집에서는 전기가 안 들어오기 때문이여서 마을별로 유치원에 불이 들어오게 해줘서 저녁에는 아이들이 숙제를 할 수 있게 해주면 좋겠다는 제안을 해주었습니다.nbsp nbsp 스님께서는 “좋은 제안을 해주셨다”고 하시면서 긍정적으로 검토해 보겠다고 대답해 주셨습니다. 그리고 FCRA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지난 한해동안 노력해주신 모든 분들게 큰 박수를 부탁한 후 JTS 이사회를 마쳤습니다.nbsp nbsp 다함께 법당 앞으로 나와 기념사진을 찍었습니다. 기념사진을 찍고 나서 스님께서는 오랜만에 수자타아카데미를 방문한 이사회 회원 분들게 안부를 물으시면서 개개인별로 감사 인사를 하셨습니다.nbsp nbsp ▲ 인도JTS 이사회 회원들 nbsp 이어서 곧바로 인도정토회 이사회가 열렸습니다. 2014년 사업보고와 2015년 사업계획을 발표하고 이사회 회원들의 의견을 더 수렴한 후 간단히 이사회를 마치셨습니다.nbsp nbsp 이렇게 인도에서의 18일 동안의 일정을 모두 마무리하였습니다. 이로써 내일 오전에 있을 전체 조회 일정만 남겨 놓게 되었습니다. 스님께서는 이번에 새로 파견을 온 보광 법사님과 쁘리앙카님, 6명의 행자님들을 축하하고, 또 곧 업무를 인수인계하고 한국으로 돌아오게 될 쿠스 브라더와 주연우 법우님, 그리고 라니 시스터를 격려해주기 위해 다함께 가야로 데리고 나가서 맛있는 저녁을 사주셨습니다. 덜컹거리는 트럭을 타고 가야에 나갔다 오니 밤9시가 넘었습니다.nbsp nbsp ▲ 스님께서 사주신 맛있는 저녁을 먹고 돌아오는 길 nbsp 다시 학교로 돌아와서는 상카시아에서 온 수바스지를 비롯한 석가족 청년들이 다시 상카시아로 돌아간다고 해서 다함께 배웅을 해주었습니다. 그리고 다함께 사무실로 들어와서 스님과의 마지막 사업논의를 하였습니다. 스님께서는 그동안 논의했던 내용들을 간략히 정리해주시면서 아직 역할 배정이 확정되지 않은 부분 등을 다시 체크하시고 최종적으로 방침을 정리해서 알려주셨습니다. 밤 10시 무렵 회의를 다 마치고 난 후 스님께서는 오늘 일정을 마무리하셨습니다.nbsp nbsp ▲ 인도JTS 사업 논의nbsp nbsp 내일은 오전에 초등학교 전체 조회를 갖고, 이어서 중학생, 교사, 스텝들과 조회를 가진 후 오후 2시50분 비행기로 가야 공항을 출발해 방콕을 경유하여 한국으로 귀국할 예정입니다. 내일 또 소식 전해드리겠습니다.nbsp nbsp ▼ 배고픈 사람은 먹어야 합니다, 아픈 사람은 치료받아야 합니다, 아이들은 제 때에 배워야 합니다. JTS가 인도 둥게스와리 아이들을 위해 펼치고 있는 기아, 질병, 문맹 퇴치 활동에 함께해 주세요.nbsp nbspnbspnbsp
2015.3.19 (인도 17일째) 둥게스와리 마을리더, 수자타아카데미 교사 모임
▲ 전정각산에 올라 수자타아카데미를 바라보고 계신 스님 nbsp 안녕하세요. 오늘 스님께서는 오전에 둥게스와리 마을 리더들과 회의를 하고, 오후에는 수자타아카데미 교사들과 모임을 갖고, 저녁에는 인도JTS 활동가들을 위해 법회를 해주셨습니다.nbsp nbsp 오늘도 새벽4시30분에 도량석 소리와 함께 전정각사 법당으로 올라가 새벽 예불 및 108배와 명상, 경전 독송을 하며 하루를 시작했습니다. 6시30분부터는 발우공양을 하며 함께 밥과 국, 반찬을 나눠 먹었습니다. 오늘 발우공양에는 상카시아 석가족 청년회에서 온 인도인 세 분이 함께 참석해서 더욱 특별한 시간이 되었습니다.nbsp nbsp ▲ 발우공양 nbsp 발우공양을 마치고 스님께서는 석가족 세 분에게 소감을 물어보셨습니다. 석가족 분들이 “인도에서 옛날에 밥 먹는 방식과 너무 비슷해요” 라고 말하자 스님께서는 “그래요. 맞아요. 발우공양은 인도에서 전래되어 온 것이예요. 그런데 한국에서도 이렇게 인도식으로 밥을 먹는데, 너희들은 인도에서 살면서 왜 다 잊어버렸어요?” 라고 하시며 웃으셨습니다.nbsp nbsp ▲ 상카시아 석가족 청년 세 분이 함께한 발우공양 nbsp 그리고 스님께서는 어제에 이어서 발우공양 때 함께 외우는 소심경의 의미에 대해 법문을 해주셨습니다. 먼저 오늘 배울 게송을 함께 따라해 보았습니다.nbsp nbsp “여등귀신중 아금시여공 차식변시방 일체귀신공 옴 시리시리 사바하nbsp nbsp오관일적수 팔만사천중 약불염차주 여식중생육”nbsp nbsp 이어서 스님께서 이 게송의 의미에 대해 말씀해 주셨습니다.nbsp nbsp nbsp “여등귀신중, 너희 귀신의 무리들아. 아금시여공, 내가 지금 이 음식을 너희들에게 공양을 올리노니. 차식변시방 일체귀신공, 이 음식이 온누리에 있는 일체 귀신들에게 두루 베풀어져 다 먹고 배불러지이다.nbsp nbsp 우리는 살아있는 사람만 생각하는데 옛날 사람들은 모양 있는 사람과 모양 없는 사람 두 가지를 늘 함께 생각했거든요. 사람이 죽으면 없어지는 것이 아니라 모양 없는 사람으로 존재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모양 없는 사람, 즉 우리 눈에 보이지도 않고 들리지도 않는 사람들이지만 그 사람들도 함께 배불러지이다 하는 의식을 했단 말이예요. 그래서 자기 밥에서 조금 덜어서 발우에 모은 후 ‘옴 시리시리 사바하’ 하고 진언을 외우는데, 이것은 성경에 비유하면 오병이어의 기적과 같은 의미입니다.nbsp nbsp 예수님께서 산상에서 설교를 하실 때 많은 사람들이 그 설교를 듣기 위해 산 위에 올라와서 그 설교를 듣고 점심 때가 되었는데 가난한 사람들이다 보니 대부분 음식을 못 가지고 왔습니다. 그런데 몇 사람이 음식을 들고 온 거예요. 예수님께서 “가지고 온 것을 이리 다 내어놓아라” 하니까 빵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였습니다. 그것을 다시 주욱 나눠주었더니 다 먹고도 남았다. 이것이 오병이어의 기적입니다.nbsp nbsp nbsp 이것이 현재에도 이뤄질 수 있다는 의미입니다. 한국에서 값비싼 호텔에서 두 사람이 먹는 비용이면 이곳 마을 사람들 200명이 먹을 수 있습니다. 한국에 있는 돈을 가져와서 마을잔치를 한다고 하면 이것은 현대판 오병이어의 기적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한국에서는 호텔에서 먹으면 10여명 밖에 먹지 못하는 돈이 이곳에 오면 2천명이 먹을 수 있게 됩니다. 손가락을 튕길 때에는 그런 마음이어야 합니다. 이 음식이 오병이어의 기적처럼 뻥튀기가 되어서 배고픈 무리들은 모두 배불러지이다. 배고프다고 내 먹는 데에만 신경쓸 것이 아니라 밥을 먹을 때는 늘 배고픈 사람을 생각하자는 것입니다. 한국에서 한끼 굶어서 그 돈을 북한에 보내주면 일주일치의 식량이 됩니다. 돈을 보시하는 것도 있지만 배가 고파봐야 배고픈 사람의 마음을 알 수 있습니다.nbsp nbsp 오관일적수, 물 한반울을 현미경으로 들여다보듯이 관해보니. 팔만사천충, 한량없는 생명체가 살고 있구나. 약불염차주, 만약에 이 염불을 하지 않고 이 음식을 먹는다면. 여식중생육, 중생의 고기를 먹는 것과 같다.nbsp nbsp 우리가 산다는 것은 이렇게 다른 생명의 희생 위에서 살고 있습니다. 그러니 그것을 내가 알아야 합니다. 옛날 사람들은 ‘아니, 깨끗한 물 한방울 속에 뭐가 들어있노’ 라고 하겠지만, 아무리 깨끗한 물 속이라도 수많은 생물들이 살고 있죠. 이렇게 자신의 삶의 존재 방식을 정확하게 인지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내가 어떤 상태에서 생존하고 있는지 늘 깨어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nbsp 늘 배고픈 사람을 함께 생각하고, 내 존재가 수많은 생물들의 희생 위에서 살고 있음을 자각하면서 음식을 먹는다는 발우공양의 의미를 들으니 ‘밥 한끼 먹는 것도 큰 수행이 되는구나’ 하는 것을 크게 느낄 수 있었습니다.nbsp nbsp 이렇게 발우공양을 모두 마치고 아침 7시40분에는 SBS 촬영팀과 함께 전정각산에 올라갔습니다. 스님께서는 전정각산을 올라가시면서 21년 전 수자타아카데미를 처음 세울 때의 이야기를 들려주셨습니다. 유영굴로 올라가는 길 위에서 수백명의 아이들이 구걸을 하고 있었는데, nbsp수자타아카데미가 세워지고 난 후 지금은 구걸하는 아이들은 거의 보이지 않게 되었습니다.nbsp nbsp ▲ SBS 촬영팀과 함께 전정각산으로 출발하시는 스님 nbsp 그런데 올라가는 길에 구걸하고 있는 아이 한명을 만났습니다. 스님께서는 곧바로 아이에게 물었습니다.nbsp nbsp “너는 왜 학교 안 가고 여기에 있니?” “집이 가난해서 학교에 안보내줘요” nbsp 그러면 수자타아카데미에 오면 되지 않느냐?nbsp 수자타아카데미에서는 안 받아 주어요. nbsp 왜? 라르푸르에 살아요. 입학 대상이 아니예요. nbsp 알았다. 스님이 허락해 줄테니nbsp오늘 바로 수자타아카데미에 와서 입학 등록을 하거라”nbsp nbsp 이렇게 얘기를 해주고 스님께서는 전정각산으로 올라가시고 아이는 마을로 내려갔는데, 산을 내려와보니 이 아이는 정말로 학교에 다니고 싶었는지 몸을 씻고 새옷으로 갈아입은 후 입학 등록을 하러 학교에 와 있었습니다.nbsp nbsp ▲ 아침에 스님을 만나고 구걸하지 않고 학교에 다니겠다며 교무실로 찾아온 아이 nbsp 스님께서는 전정각산 위에 올라가서 산 아래 수자타아카데미를 바라보고 계셨는데, 촬영팀이 스님께 “여기서 수자타아카데미를 보시면 어떤 생각이 드세요?” 라고 물어보니 이렇게 대답하셨습니다.nbsp nbsp ▲ 전정각산nbsp nbsp “멀리서 마을을 내려다보면 참 아름답게 보여요. 그러나 마을 속에서 사는 사람들은 참 어렵게 살고 있죠. 자연 풍경은 아름다운데 그곳에 사는 사람들은 힘들게 살고 있어요. 여기 온 관광객들이나 멀리서 이 모습을 보는 사람들은 그들의 고뇌를 잘 모르죠. 그러나 그 속에 들어가서 보면 사람들이 먹고 살기도 힘든 상태에서 살고 있습니다.nbsp nbsp 제가 여기 학교를 짓겠다고 해서 여기 지은 것이 아니고요. 마을 사람들과 이야기를 했는데, 자기 마을과 제일 멀리 떨어져있고, 농토로 부적합한 황무지여서 못 쓰는 제일 위쪽 땅을 저한테 준 것이죠. 45평씩 10명이 450평을 초등학교 지을 자리만 저한테 기증을 했는데, 나중에 알고보니 불교의 가장 중요한 성지인 부처님이 6년 고행했던 그 자리에 학교가 지어지게 된 것입니다.nbsp nbsp 의도한 바는 전혀 아니였고요. 여기 유영굴에 성지순례를 왔다가 아이들이 구걸하고 있어서 그 이유를 물으니 “학교가 없어서 그렇다” 하고, 주민들은 “학교가 필요하다” 해서, 제가 “그럼 너네가 못 쓰는 땅을 좀 내어놓아라” 하니까 이 땅을 준 것이고, 그렇게 해서 학교를 짓게 되었는데 결과적으로 의미있는 학교가 된 것입니다.” nbsp nbsp 학교를 물끄러미 바라보고 계시는 스님의 모습을 보며 잔잔한 감동이 물밀 듯이 올라왔습니다. 한 수행자가 심은 작은 보리수 나무 씨앗 하나가 21년을 자라 지금은 제법 큰 나무가 되어 많은 사람들의 쉼터가 되어주고 있으니 말입니다.nbsp nbsp 스님께서는 부처님이 물을 드신 곳인 샘터와 명상을 하시던 자리에 남겨진 탑터를 더 둘러보시고 잠시 앉아서 명상을 하시기도 하셨습니다.nbsp nbsp ▲ 부처님께서 명상을 하셨던 곳 nbsp 전정각산을 내려와서는 곧바로 10시부터 마을 리더들과 ‘어떻게 하면 둥게스와리 마을을 더 아름답게 가꿔나갈 것인가’ 하는 주제로 많은 이야기를 하셨습니다. 스님께서는 지난주에 1400여 가구를 모두 방문하시면서 새해 인사를 하셨는데, 마을 방문을 하시면서 생각해낸 마을 발전을 위한 아이디어들을 이야기해 주시고 또 이에 대한 주민들의 의견을 수렴하셨습니다. 쁘리앙카님이 스님의 입이 되어 원활히 통역을 해주어서 스님과 마을 사람들 모두 편안하게 대화를 나눌 수 있었습니다.nbsp nbsp ▲ 마을 리더들과의 회의 nbsp 특히 오늘은 젊은 여성 분들이 많이 참석했습니다. 스님께서 마을에서 유치원 선생을 할 수 있는 여성들을 데리고 오라고 마을 리더들에게 부탁했는데 오늘 함께 온 분들이 많았습니다. 그래서 먼저 마을의 유치원 선생님을 이 여성들이 맡을 수 있는지를 확인하시고, 주민들도 이것에 대해 만족해하는지 최종 의사를 확인해 보셨습니다. 모두들 여성들이 맡으면 좋겠다고 동의를 해주었습니다.nbsp nbsp ▲ 마을 유치원 교사를 할 수 있다고 말하는 젊은 여성들 nbsp 또 유치원에 화장실을 지어달라는 요청에 대해 시범적으로 한두곳 지어서 운영해보고 난 후 확대하자고 대답해 주셨습니다. 그리고 마을별로 축구장으로 꾸밀 수 있는 공터가 있는지 알아봐달라고 부탁하시고, 또 까나홀 마을은 하수구와 도로를 새로 정비하면 좋겠다고 제안하셨습니다. 이 외에도 다양한 얘기들을 함께 나누신 후 둥게스와리의 마을 개발에 대해 큰 틀에서 이런 제안을 해주셨습니다.nbsp nbsp “앞으로는 우리가 마을별로 여자는 여자대로 남자는 남자대로 어른은 어른대로 청년은 청년대로 조직을 만듭시다. ‘우리 마을을 어떻게 잘 만들 것이냐?’ 하고 머리를 맞대면 훨씬 더 빨리 개선할 수 있어요. 마을에 골목을 어떻게 정비할 것인지 고민해서 벽돌을 깔아서 비가 와도 괜찮도록 하고요. 하수구로 어떻게 물을 뺄 것인지, 핸드펌프를 파더라도 어느 위치에 파서 보다 더 많은 사람이 이용하기 편하게 할 것인지, 주택을 지을 때도 협동해서 지으면 더 잘 지을 수 있고요. 비료나 벽돌, 시멘트 같은 것들은 1000명이 필요한 것을 동시에 구입하게 되면 훨씬 더 싸게 구입을 할 수 있습니다. 염소나 소를 키우는 문제도 이런 마을별 조직을 통해서 하면 키우는 사람에게 더 유리하게 할 수 있습니다. 우유 같은 것도 공동으로 모아서 판매를 하거나, 우리가 공장을 만들어서 판매를 하면 훨씬 더 이익이 남습니다.nbsp nbsp nbsp 현재처럼 이렇게 그냥 살면 더 이상 수입이 없으니까 공부한 젊은이들은 다 외지로 나가버리고 시간이 흐르면 노인들만 남게 됩니다. 땅은 외부인들이 다 사서 가져가 버리고요. 그래서 마을이 우리 것이 되지 못합니다. 자그디스푸르와 두르가푸르는 조금만 시간이 지나면 다 외부인들이 땅을 사버릴 겁니다. 왜냐하면 곧 도로가 나고 관광객이 몰려오고 가게가 생기면서 외부인들이 땅을 비싸게 준다고 하면 여러분들도 땅을 다 팔어버릴텐데 지금 팔 때는 돈이 비싼 것이 좋지만 한번 팔면 다시 살 수는 없게 됩니다. 그래서 우리가 우리 마을을 지켜야 합니다.nbsp nbsp 그럴려면 수입이 될 만한 것들을 자꾸 만들고, 주택도 개량하고 도로도 정비해서 가난하지만 예쁜 동네를 만들어야 합니다. 아이들도 대학까지는 못보낸다고 하더라도 고등학교까지는 공부할 수 있는 분위기를 만들어야 합니다. 이제는 우리가 노력하면 가능합니다. 20년 전에는 마을에 배운 사람들이 없어서 불가능했는데, 이번에 마을을 주욱 돌아보니까 수자타아카데미를 졸업한 젊은이들이 많아져서 ‘이제는 할 수 있겠다’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어떻게 생각하세요?”nbsp nbsp 주민들 중에 한 분이 큰 목소리로 대답했습니다.nbsp nbsp nbsp “스님께서 저희들의 미래에 대해서 참 좋은 이야기를 해주셨어요. 지금 스님말씀처럼 하지 않으면 우리 자식들도 우리들처럼 살게 될 것입니다.”nbsp nbsp 스님께서는 다시 한번 주민들에 대한 애정어린 마음을 담아서 이야기하셨습니다.nbsp nbsp “젊은이들이 가야나 큰 도시로 돈 벌러 간다고 하지만 돈 조금 더 버는 것 외에는 남 밑에서 고생하고 건강만 더 헤치게 됩니다. 우리가 지금 외부로 나가봐야 남들 밑에서 심부름 하는 것 외에 다른 할 일이 있어요? 여기서 조금만 노력하면 우리 동네에서 우리가 살 수 있어요.” nbsp 주민들 모두 고개를 끄덕였습니다. 이렇게 2시간 동안 스님께서는 주민들의 의견을 경청하고, 핸드펌프부터 주택 개량, 마을의 장기적인 발전 방향 등에 대해 스님의 아이디어들을 세세하게 나누어 주셨습니다. 그리고 내일 마을 잔치에 꼭 오시라고 부탁하시고 마을 리더들과의 회의를 마치셨습니다.nbsp nbsp 집안일이나 밭일을 제쳐두고 시간을 내어 준 마을 주민들에게 스님께서는 티셔츠 한 장씩을 선물로 주었습니다. nbsp nbsp ▲ 회의에 참석한 주민들에게 티셔츠를 나눠주시는 스님 nbsp 그리고 마을 주민들과 함께 학교 급식으로 점심 식사를 함께 하셨습니다. 주민들과 식사를 하시면서는 주민들이 농사를 어떻게 짓고 있는지, 모판을 만드는 것, 모내기 하는 시기 등에 대해 주민들과 많은 이야기를 나누셨습니다. 스님께서는 정말 화두를 참구하듯이 어떻게 하면 둥게스와리 마을 주민들이 조금 더 행복하게 살 수 있을지에 대해서 몰입해 계신 것 같았습니다.nbsp nbsp ▲ 마을 주민들과 함께 사부지와 달로 점심 식사를 하고 계신 스님 nbsp 쉴 틈도 없이 바로 이어서 오후1시부터는 수자타아카데미 교사들 전체와 모임을 가지셨습니다. 오늘 교사들과의 모임은 무려 4시간 30분 동안이나 진행이 되었습니다. 스님께서는 지난 20년간 마음 속에서만 간직하고 있던 말씀들을 진솔하게 들려 주셨는데, 교사들은 스님의 간곡한 말씀에 많은 감동을 받았습니다.nbsp nbsp ▲ 수자타아카데미 교사들과의 모임 nbsp 무엇보다 그동안 수자타아카데미에서는 윤리와 도덕적은 측면에서만 항상 이야기를 해오셨는데, 오늘은 처음으로 “붓다 담마에 대해 이해를 해야 JTS의 활동 원칙에 대해서도 더 깊이 이해할 수 있다”고 하시면서 붓다 담마에 대해 이야기를 들려주셨습니다.nbsp nbsp 부처님은 2600년 전에 인도에서 태어나셨습니다. 당시에 이곳 둥게스와리는 시체를 갖다 버리는 곳이였어요. 그래서 사람들이 잘 오지 않았습니다. 부처님은 이곳이 수행하기 적당하다 생각하시고 이곳에서 6년간 정진을 하셨습니다. 밥도 안 먹고 하루에 대추 한알씩 드시기도 했어요. 이 동네에 대추 많이 있죠? 여러분들도 많이 주워서 먹었죠?nbsp nbsp 네 nbsp nbsp 그러니 여러분들도 부처가 될 수 있어요. 그런데 부처님처럼 조금 먹어야 하는데 너무 많이 먹어서 아직 부처가 못 되고 있는 거예요. nbsp nbsp nbsp 그래서 이런 고행상의 모습이 되도록 수행을 하셨습니다. 그래도 깨닫지를 못하니까 왜 깨닫지를 못하는지 반성하기 시작했어요. 출가하기 전에는 욕구를 쫓아 갔습니다. 여러분들도 하고 싶은 것을 하게 되면 기분이 좋지요? 그것으로 행복을 삼는 것을 쾌락주의라고 합니다. 그런데 그것으로 끝나요? 욕망이 더 커져요? 그래서 욕망은 끝이 나지 않습니다. 지금은 돈이 1락만 있으면 좋겠다 생각하지만, 1락이 생기면 그것으로 만족이 될까요? 이렇게 우리의 욕망은 끝이 없어요. 그렇게 치면 한국 사람들이나 미국 사람들은 괴로울 일이 없어야 합니다. 그런데 그들은 여러분들보다 더 괴롭다고 합니다. 부처님은 이것이 길이 아니다 하는 것을 어떻게 알았을까요? 왕자였기 때문입니다. 충분히 물질적 풍요를 누려보았기 때문에 그것이 길이 아닌 줄 알게 된 것입니다.nbsp nbsp 그래서 출가를 하고 나서는 욕구를 무조건 억압을 한 것입니다. 먹는 것도 포기하고, 자는 것도 포기하고 목욕도 안 했어요. 이렇게 고행을 하시다가 욕구를 억압하는 것은 욕구를 따라가는 것과 정반대이지만 사실은 이것도 욕구에 대한 대응이라는 것을 발견하십니다. 욕구를 따라가는 것과 욕구를 억압하는 것이 모두 욕구에 대한 대응이라는 것을 이해하세요? nbsp nbsp 세상에는 이 두가지 길 밖에 없었어요. 그러나 이 두 길은 결국 욕구에 대한 대응이라는 측면에서는 똑같아요. 이 두 길이 아닌 제 3의 길은 무엇일까요? nbsp nbsp nbsp 이 제3의 길을 바로 이곳에서 발견하신 겁니다. 그것은 붓다가 이 세상에서 처음 발견한 길입니다. 이 길은 욕구에 반응하지 않는 길이예요. 그것은 바로 ‘알아차림’입니다. 즉, 지금 다리가 아프다면 첫 번째 길은 다리를 펴는 거예요. 두 번째 길은 참는 거예요. 이 둘을 떠난 제3의 길은 그냥 ‘다리가 아프구나’ 하고 알아차리는 것이예요. 참는 것이 아니라 그냥 알아차리는 것이예요. 긴장하는 것이 아니고 ‘통증이 있구나’ 하고 편안한 상태에서 다만 알아차리는 것입니다.nbsp nbsp 이렇게 6년간 수행하신 곳이 바로 이곳입니다. 이곳은 정말 중요한 곳입니다. 보드가야에서는 100일 계셨고, 이곳은 6년 계셨어요. nbsp 부처님은 깨달음을 얻으신 후 어떻게 생활하셨는지 한번 봅시다. 당시는 노예제 사회였어요. 노예제 사회라는 것은 심부름하는 노예가 있다는 것이죠. 말을 모는 사람도 있어야 하고, 옷 입혀주는 사람도 따로 있어야 하고, 음식 만드는 사람도 따로 있어야 하죠. 만약 왕이라면 종이 10명이든 30명이든 있어야 합니다. 그런데 부처님이 출가한 뒤에, 또 부처님이 되신 뒤에 종을 데리고 살았다는 기록이 있어요? 당시에 집을 지어서 살았다면 누군가 밥해주는 사람이 있어야 하잖아요? 그런 것 없이 살려면 어떻게 살아야 해요? 밥은 남의 집에 가서 얻어 먹고, 옷은 시체 싸던 것을 주워서 입고, 잠은 나무 밑에서 자고요. 그러면 남의 도움을 받을 필요가 없잖아요. 그렇게 부처님은 노예제 사회에서 노예가 없는 삶을 사셨어요. 부처님 뿐만 아니라 모든 수행자가 그랬어요.nbsp nbsp nbsp 그런데 지금 절은 어떻습니까? 절에 밥하는 사람도 있어야죠. 운전해주는 사람도 있어야죠. 사무실에서 일하는 사람도 있어야죠. 그러면 그 사람들 월급을 줘야 하잖아요? 그 사람들이 보기에는 스님들이 스승이예요? 사장이예요?”nbsp nbsp “사장입니다” nbsp “그러면 저는 어떻해야 합니까? 여러분과 저의 관계에서 저는 여러분의 스승이예요? 사장이예요? 그래서 제가 여러분들에게 그동안 붓다 담마를 이야기하지 않았던 겁니다. 왜냐하면 제가 여러분들의 스승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저는 사장을 하기 위해서 출가를 했어요? 스승이 되기 위해서 출가를 했어요?”nbsp nbsp “스승이 되기 위해서요.”nbsp nbsp “그런데 저는 지금 여기서 사장하고 있잖아요. 이것이 지금 저의 가장 큰 고민이예요. 저는 여러분들에게 스승이 되고 싶지 사장이 되고 싶지 않아요. 그런데 여러분들은 모두 저한테 돈을 달라고 하잖아요. 그러면 저는 사장이 되어야 하잖아요. 여러분들은 자꾸 저보고 사장이 되라고 하잖아요. 저는 여러분들의 스승이 되고 싶고, 여러분들은 자꾸 저보고 사장이 되라고 하고, 이 사이에 간격이 자꾸 생겨요. 이해하시겠어요?”nbsp nbsp “이해하는데 이해 안하고 싶어요.” nbsp nbsp “그런데 저는 한국 사람들에게는 사장이 아니고 스승이예요. 왜냐하면 서로 돈을 주고 받는 관계가 아니기 때문이예요. 모두 다 수행자예요. 수행자로써 역할이 분담되어 있을 뿐이예요. 부처님이 나이가 많을 때 아난존자가 옆에서 도왔죠? 그런데 종으로서 도왔어요? 월급 받고 도왔어요? 아닙니다. 그것은 수행자로서 역할을 분담한 것이예요. 우리는 지금 수행자로서 어떤 사람은 운전하고 어떤 사람은 밥을 하고 역할이 분담되어 있는 것이예요. 이것을 현대식으로 말하면 모두가 다 자원봉사자로 함께 하고 있습니다. nbspnbsp nbsp 그런데 지금 인도는 그렇지 않아요. 이런 모순이 있습니다. 앞으로도 이 모순은 계속될 거예요. 그래서 우리가 어떻게 하면 수행자로서 함께 만들어가는 마을이 될 수 있을까 이것이 저의 고민이예요. 둥게스와리 사람들은 한국 사람들도 아니고 저의 친척들도 아니고 저의 자식들도 아니고 불교신자도 아니예요. 그러나 저는 둥게스와리 사람들이 어떻게 하면 조금 더 행복하게 살 수 있을까 늘 생각해요. 집을 보면 어떻게 집을 개선해야 할까, 물은 어떻게 더 확보할까, 골목은 어떻게 정비해야 할까, 먹고 살 수 있는 수입은 어떻게 마련할 수 있을까, 서로 협력하면 좋을텐데... 이런 생각을 합니다. 그런데 여러분들은 자기 마을에 살면서도 이런 생각을 안해요.nbsp nbsp 학교 안가는 아이들을 보면 어떻게 하면 저 아이를 학교에 보낼 수 있을까, 공부 못하는 아이를 보면 어떻게 하면 더 잘 가르칠 수 있을까, 학용품이든 교복이든 어떻게 하면 더 좋게 할 수 있을까... 그런데 여러분들에게는 이 아이들이 다 여러분의 마을 아이들이잖아요. 다 인도 사람이고. 같은 둥게스와리 마을에 살고 있고, 우리 친척의 아들인데... 어떻게 하면 서로 힘을 합해서 더 잘 가르칠 수 있을까? 이런 생각들을 좀 하면 좋겠어요.nbsp nbsp 우리가 조금만 더 머리를 맞대고 힘을 합하면 좋은 방법이 많이 있는데 전부 자기 이익만 생각하고 살기 때문에 아무런 변화가 없습니다. 오늘 제가 붓다 담마를 이야기한 것은 이런 붓다 담마에 기초해서 일을 하고 있기 때문에 여기에는 노동자를 고용하면 안돼요. 그것은 부처님 당시에 노예를 데리고 상가를 구성하는 것과 같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월급을 주고 받는 사장과 종업원의 관계가 아닌 우리가 같이 이 마을을 좋도록 만드는 같은 활동가가 되어야 합니다. 그런데 여러분들도 먹고 살아야 하잖아요? 현실은 이해해요. 그런데 그렇게 되면 죽을 때까지 먹고 사는 것만 하다가 죽어요. 어떤 길을 갈 것인가 하는 문제입니다. nbsp nbsp 여러분들이 만약 ‘우리는 좋은 마을을 만들기 위해 같이 일하는 사람이다’ 이렇게 생각한다면 스님은 악덕 기업주가 아니라 좋은 스승이 될 수 있고, 좋은 스폰서가 될 수 있습니다. 제가 여러분들에게 돈을 많이 주면 좋은 사장은 될 수 있지만, 좋은 스승은 될 수 없어요. 여러분들은 사장이 필요하지 스승은 필요 없죠?” nbsp nbsp “저희들은 둘 다 필요해요.”nbsp nbsp nbsp “오늘 스님이 갖고 있었던 20년 동안의 고민을 처음 이야기 했어요. 왜 오늘에서야 이야기하느냐? 지금까지는 여러분들이 너무 어렸어요. 그러나 이제 어른이 되었어요. 이제는 이 문제를 어떻게 풀어갈 것인가 함께 고민해야 합니다. 저는 여러분들이 노동자가 되기를 원치 않습니다. 우리가 함께 아이들을 가르치고 마을을 변화시키는 활동가가 되기를 원합니다. 그러니 학교를 운영하든, 유치원을 운영하든, 병원을 운영하든, 마을개발을 하든, 스님 일을 도와준다는 것이 아니라 내가 내 마을을 가꾼다는 생각을 해야 됩니다. nbsp 제일 중요한 것은 스스로 ‘정말 내 일이다’ 생각하고 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많은 일을 해도 지치지가 않아요. 그래서 둥게스와리 마을을 가난하지만 세상에서 가장 살기 좋은 마을로 만듭시다. 전 세계 어디를 가도 “너 어디서 왔느냐?” 하고 물으면 “둥게스와리에서 왔다” 이렇게 자랑스럽게 말할 수 있어야 합니다. ‘둥게스와리’라는 말 뜻이 원래는 ‘부정한 곳’이잖아요. 그러나 부처님이 이곳에서 6년간 수행함으로 해서 성스러운 곳이 되었단 말이예요. 그런데 천민들이 가난하게 살다보니 다시 나쁜 마을이 되었단 말이예요. 바깥 사람들은 위험하다고 이곳에 가지 말라고 해요. 그런데 JTS가 들어오고 나서 위험한 것도 많이 없어졌잖아요.nbsp nbsp 그렇게 되기 위해서는 설성봉님 같은 분의 희생이 있었어요. 설성봉님의 죽음이 없었다면 이렇게 치안이 유지되지 않습니다. 그래서 어떤 변화를 위해서는 이렇게 누군가가 노력을 해야 합니다. 다들 동네 버리고 도망갈 생각만 하잖아요. 그러지 말고 둥게스와리를 자랑스럽게 한번 만들어 봅시다.” nbsp 스님의 간곡한 호소에 인도인 교사들은 모두 “Yes” 라고 크게 대답했습니다. 인도인 교사들의 눈빛은 더욱더 초롱초롱 빛나고 있었습니다. 무려 4시간 30분 동안 법문을 해주신 스님께, 그리고 통역을 해준 쁘리앙카님에게 모두들 뜨거운 박수를 보냈습니다.nbsp nbsp nbsp 둥게스와리 마을을 가난하지만 가장 살기좋은 마을로 만들어보자는 스님의 말씀에 눈물이 왈칵 쏟아질 것만 같았습니다. 통역을 하던 쁘리앙카님은 이곳에 봉사를 왔다가 강도의 총에 맞아 돌아가신 설성봉님을 스님께서 언급하자 목이 메여서 목소리가 떨렸습니다. 그리고 사장이 아니라 스승이 되고 싶다는 스님의 호소에 뒤에 앉아 있던 한국인 활동가들은 눈시울이 붉어졌습니다.nbsp nbsp 스님께서 법문을 마치고 법당을 나가시자 인도인 교사들은 한층 밝고 들뜬 마음으로 함께 모여서 내일 있을 마을잔치 준비를 위해 회의를 했습니다. 회의를 하는 모습 속에 평소보다 더 큰 생동감이 느껴졌습니다. 스님께서 교사들에 대해 그리고 수자타아카데미에 대해 그리고 둥게스와리 마을에 대해 갖고 계신 따듯한 사랑을 모두들 느꼈을 것입니다.nbsp nbsp 긴 시간 법문을 마치시고 스님께서는 잠시 쉬었다가 6시부터는 어제에 이어서 상카시아에서 온 석가족 청년들과 담마 센터 건립을 위한 회의를 하셨습니다.nbsp nbsp ▲ 상카시아에서 온 석가족들과 회의 nbsp 저녁 식사 시간도 없이 회의를 하고 나서 오후 6시45분부터는 인도JTS 활동가들을 위해 수행법회를 해주셨습니다. 인도JTS 활동가들은 원래 매주 목요일마다 수행법회를 영상으로 하고 있는데 오늘은 스님께서 직접 즉문즉설 법회를 해주셨습니다. 기존에 파견되어 있던 활동가들, 그리고 이번에 새로 파견을 오게 된 9기 행자대학원생들, 보광법사님, 쁘리앙카님, 그리고 SBS 촬영팀까지 카메라 촬영을 멈추고 스님께 고민을 묻는 시간을 가졌습니다.nbsp nbsp ▲ 인도JTS 활동가 수행법회nbsp nbsp 총 6명이 스님께 질문을 했습니다. 화를 잘 내는 편인데 인도에 파견을 와서 다시 아이들에게 화를 낼 것 같아 걱정이 된다는 분, 한가지 일에 집중을 잘 하지만 전체를 살피는 눈이 없어 고민인 분, 인도에 오고 나서 언어를 잘 몰라 의사소통이 잘 안되어서 조급한 마음이 올라온다는 분, 남들보다 긴장을 많이 하는 성격을 어떻게 고쳐야할지 묻는 분, 행자 교육을 받고 있지만 잘 생긴 남자를 보고나 결혼한 사람을 보면 마음이 흔들린다는 분, 인도에 행자로써 파견이 되어 왔는데 마음가짐이 어떠해야 하는지 등 각각의 질문들에 대해 스님께서는 지혜로운 답변을 들려주셨습니다.nbsp nbsp 각각의 질문에 대한 답변을 모두 소개해 드리지는 못하지만, 질문에 대한 답변을 모두 마치고 나서 스님께서 수행자의 자세에 대해 마지막으로 정리해 주신 내용을 소개해 드리겠습니다. 조금 더 행복한 삶을 살고자 하는 우리 모두에게 소중한 가르침이 될 것 같아 함께 나눕니다. nbsp nbsp “욕구를 따라가면 반드시 괴로움이 발생합니다. 반대로 욕구를 억압하면 괴로움이 발생하지는 않지만 욕구를 억압하는 그 자체가 괴로움이 됩니다. ‘행자는 어떻게 살아야 한다’ 이렇게 너무 자기를 규정하지 마세요. 일단 자기 상태를 늘 알아차리면 됩니다. ‘나는 이런 욕구에 치우치는구나’ 이렇게 알아차리면 되지 ‘치우치면 나쁜 거야’ 이렇게 규정을 자꾸 짓지 마세요. 그러면 스트레스를 받게 돼요.nbsp nbsp nbsp 부족하다고 열등의식을 가지며 안돼요. 열등의식을 갖는다는 것은 자기가 잘 나고 싶어서 열등의식을 갖는 것입니다. 어차피 우리는 모두 부족해요. 그러나 우리는 그 부족한 상태에서 출발해서 그 부족한 점을 개선해가는 것이 우리의 목표입니다. 너무 빨리 개선하려고 하면 부족한 것이 자꾸 부각이 되니까 자학 증상이 생기고, ‘나만 그런가? 사람이 다 그렇지 뭐’ 이렇게 부족한 것을 합리화시키면 현실에 안주하게 됩니다. 그러면 발전이 없어져 버려요. 부족한 현실에서 출발해서 부족한 것을 극복하는 쪽으로 나아가야 합니다. 엎어지고 넘어지고 하면서 꾸준히 해나가면 됩니다.nbsp nbsp 수행자는 밖을 보지 않고 자기를 봐야 합니다. 어떤 경우에도 자기를 봐야 합니다. 원칙대로 행동하지 않는 도반이 있다고 합시다. 그것을 보고 화가 나는 것은 내 문제입니다. 이 화는 내가 다스러야 할 문제이지 저 사람 문제는 아닙니다. 그러나 그 사람이 원칙을 어긴 것은 지적해서 개선해야 합니다. 그러나 화가 나서 지적을 하거나 불평을 하면 안된다는 것입니다. 불평으로 어떤 문제를 제기하면 그것은 자기 문제로 봐야 합니다.nbsp nbsp nbsp 개선이 필요하면 두 번이고 세 번이고 계속 요구를 해야 됩니다. 불평하거나 화내지 않고 끝없이 문제제기를 해나가야 합니다. 그러나 그 속에서 화가 나는 것은 내 문제라는 얘기입니다. 문제가 있다면 어떻게 개선할 것인지 연구하고 시도하고 도전해 나가야 하지요. 그러나 화가 나면 ‘내가 나를 고집하고 있구나’ 이렇게 내 문제라는 것을 딱 알아차려야 합니다. 화를 냈다고 하더라도 ‘앗, 내가 집착하고 있었구나’ 이렇게 다시 돌아올 수 있으면 수행자이고, ‘아니, 그런데도 화를 어떻게 안 낼 수가 있어?’ 이렇게 나가면 수행자 아닙니다. 화를 낼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 때 자기로 돌아올 수 있으면 수행자이고, 그것을 놓쳐버리면 수행자가 아닙니다. 놓치면 다시 돌아오고, 놓치면 다시 돌아와야 합니다. 그래서 아침마다 정진을 하는 것입니다.”nbsp nbsp 스님의 명쾌한 말씀에 인도JTS 활동가들도 모두 마음이 가벼워졌습니다. 법회를 마치고 나서는 세명씩 네명씩 모여서 마음나누기를 하였습니다. 모두들 스님의 구체적이고 명쾌한 답변에 마음이 홀가분해졌음을 알 수 있었습니다.nbsp nbsp ▲ 수행법회 후 마음나누기 nbsp 법회 후 8시30분부터는 사업논의 회의를 하였습니다. 내일 마을잔치 준비 상황을 함께 점검하고, 초등학교 인도인 책임자는 누구를 배정할지, 마을 개발 인도인 담당자는 누구를 배정할지 등을 논의하면서 인도JTS 2015년 사업계획을 거의 완성시켜가는 시간을 가졌습니다.nbsp nbsp ▲ 인도JTS 사업논의 nbsp 이렇게 오늘 스님께서는 오전에는 마을 주민들의 마음을 가볍게 해주시고, 오후에는 인도인 교사들의 마음을 가볍게 해주시고, 저녁에는 인도JTS 활동가들의 마음을 가볍게 해주셨습니다. 함께 하는 사람들의 마음을 조금이라도 더 행복하게 만들어주시려는 스님의 애정을 곳곳에서 느낄 수 있는 오늘 하루였던 것 같습니다.nbsp nbsp 내일은 둥게스와리의 마을 잔치가 열리는 날입니다. 마을별로 장기자랑 경연대회도 하고, 푸짐한 음식도 함께 먹으면서 왁자지껄하고 신나는 날이 될 것 같습니다. 내일 하루 만큼은 둥게스와리 마을 주민들도 먹고 사는 걱정 없이 마음껏 놀 수 있는 날이 되었으면 합니다. 내일 또 소식 전해드리겠습니다.nbsp nbsp ▼ 배고픈 사람은 먹어야 합니다, 아픈 사람은 치료받아야 합니다, 아이들은 제 때에 배워야 합니다. JTS가 인도 둥게스와리 아이들을 위해 펼치고 있는 기아, 질병, 문맹 퇴치 활동에 함께해 주세요.nbsp nbspnbspnbs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