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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3.14 (인도 12일째) 상카시아 석가족 수련 2일째
nbsp안녕하세요. 오늘은 상카시아 석가족들과 함께하는 수련 2일째 날입니다. 오늘 스님께서는 어제에 이어서 새벽부터 오후까지 석가족들을 위해 부처님의 가르침에 대해 많은 법문을 해주셨습니다.nbspnbsp석가족들과 함께하는 2일째 수련은 새벽 5시 30분부터 명상을 하며 시작되었습니다. 스님께서는 먼저 명상하는 방법에 대해 석가족들에게 안내를 해주셨습니다.nbspnbsp▲ 석가족들에게 명상을 지도해 주시는 스님nbsp“콧구멍 끝을 가만히 주시하면 내가 호흡을 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호흡을 한다는 것은 숨이 들어가고 나온다는 것입니다. 숨이 들어갈 때는 숨이 들어가는 줄을 알아차립니다. 숨이 나올 때는 숨이 나온는 줄을 알아차립니다. 숨이 길게 들어올 때는 숨이 길게 들어오는 것을 알아차립니다. 숨이 길게 나올 때는 숨이 길게 나온다는 것을 알아차립니다. 숨이 규칙적이면 규칙적이구나 알아차립니다. 의도적으로 숨을 들이쉬거나 내쉬지 않고 자연상태로 그대로 숨을 두고 그 숨의 상태를 알아차리는 것입니다.nbspnbsp몸과 마음을 편안하게 합니다. 긴장하지 않습니다. 애쓰지도 않습니다. 편안한 상태로 마음을 코 끝에 집중합니다. 시작합니다.”nbspnbsp스님의 안내가 끝나자 죽비 삼성과 함께 명상이 시작되었습니다. 고요한 정적 속에서 명상은 30분간 계속되었고 어두웠던 창밖이 서서히 밝아올 즈음 죽비 삼성과 함께 명상을 마쳤습니다. nbspnbsp명상을 마치고 스님께서는 어제에 이어서 즉문즉설을 계속 진행하셨습니다. 석가족들은 어제 스님께 들은 법문 중에서 또는 자신들이 평소에 궁금해했던 것들에 대해서 계속해서 질문했습니다. 1시간 30분 동안의 즉문즉설을 마치고 아침 7시30분에 아침 식사를 했습니다.nbspnbsp아침 식사를 마치고 나서는 잠시 휴식을 한 후 8시30분부터 다시 수련을 계속 이어갔습니다. 오전 시간에는 스님께서 “이 좋은 붓다 담마를 어떻게 더 많은 사람들에게 전파할 것인가?”에 대해서 법문을 해주셨습니다.nbspnbsp▲ 스님의 설법을 듣고 있는 석가족들nbsp“오늘은 이 좋은 붓다 담마를 어떻게 많은 사람들에게 전파할 것인가 하는 주제를 갖고 이야기를 해보겠습니다. 그럴려면 첫째, 내가 먼저 담마에 대해서 알아야 합니다. 담마를 공부해야 합니다. 그럴려면 담마를 가르치는 사람이 있어야 하고, 배우는 사람이 있어야 하고, 배울 수 있는 곳이 있어야 합니다. 두 번째는 담마를 이해한다고 하더라도 그것을 내 삶의 경험으로 받아들일 수 있어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내가 담마에 대해 많이 안다는 지식에 불과합니다. 내가 아무리 많이 알아도 경험하지 않으면 번뇌에서 벗어날 수는 없습니다. 그래서 매일 수행을 해야 합니다. 세 번째는 이 좋은 담마를 다른 사람도 들을 수 있도록 전파해야 합니다. 그렇게 하려면 공간이 필요합니다. 이곳에 담마센터가 지어지면 상카시아 지역의 많은 사람들이 와서 담마를 배우고 수행을 할 수 있습니다. 또 각 디스트릭마다 작은 센터들을 만들어야 합니다. 그렇게 하려면 혼자서는 할 수 없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함께 모인 것입니다.nbspnbsp그런데 이 일을 누가 할 것인가 하는 문제입니다. 그래서 부처님은 어떻게 했냐를 생각해 봐야 합니다. 부처님은 왕자였습니다. 부처님이 왕자일 때는 밑에서 말을 모는 종도 있고, 옷 갈아 입혀주는 종도 있고, 침실을 청소하는 종도 있는 등 하인이 많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부처님이 출가할 때 그 시종들을 데리고 갔어요? 안 데리고 갔죠. 깨달음을 얻으신 뒤에도 시종들을 다 데리고 살았어요? 시종들 없이 살았지요.nbspnbspnbsp당시 사회는 노예제 사회였습니다. 모든 일을 다 노예들이 하는 사회였습니다. 그런데 부처님은 그 제도를 버리셨습니다. 상가 안에는 어떠한 노예 제도도 없었습니다. 오직 여기는 수행자만 있었습니다. 마하가섭 존자도 굉장한 부자집의 아들이였지만 출가하고 나서는 걸식하고 살았습니다. 상가를 돕기 위한 어떤 노예도 시종도 없었습니다. 만약 그 당시에 큰 절을 지어서 밥을 해먹고 살려면 누군가는 일하는 사람들이 있어야 할 거예요. 그러나 부처님은 옷은 주워서 입고, 밥은 얻어 먹고, 잠은 나무 밑에서 잤습니다. 그러니 아무런 노예가 필요하지 않았습니다. 노예제 사회에서 노예 없는 삶을 사셨어요.nbspnbsp부처님이 나이가 드셔서 누군가 도와주는 사람들이 필요했어요. 그래서 아난다가 그 일을 하는 사람이 되었어요. 아난다는 수행자로서 부처님을 도와주는 사람이였어요? 노예로서 부처님을 도와주는 사람이였어요? 수행자였습니다.nbspnbsp오늘날 우리들이 사는 사회는 자본주의 사회입니다. 자본주의 사회는 돈을 주고 사람을 부리는 사회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이 세상에 살려면 돈을 주고 사람을 부리는 시스템 없이 이 세상을 살기가 어려워요. 제가 만약에 절을 운영하는데 수위가 필요하다고 해서 돈을 주고 수위를 고용한다, 밥 할 사람을 돈을 주고 시킨다, 청소할 사람을 돈을 주고 시킨다면 이 절은 자본주의 시스템으로 운영되는 것이잖아요. 그러면 그 수위가 저를 볼 때는 제가 사장으로 보이겠어요? 스승으로 보이겠어요?”nbspnbsp“사장으로 보일 것 같습니다.”nbspnbsp“그러면 여러분들에게는 제가 사장이예요? 스승이예요?”nbspnbsp“스승입니다.”nbsp“정말 그럴까요? 스님이 수자타아카데미에서 22년째 활동하고 있어요. 둥게스와리에 있는 마을 사람들은 제가 스승일까요? 사장일까요?”nbspnbsp“사장으로 보일 겁니다”nbsp“그래서 제가 둥게스와리 마을 사람들에게는 아직까지 담마를 이야기하지 않습니다. 그들이 저를 볼 때 스승으로서 존경하는 것이 아니라 사장으로서 존경합니다. 우리가 모두 수행자이고 제가 스승이라면 여러분과 저하고 사이에 돈을 주고 받는 거래는 없어야 합니다. 그럼 제가 여러분들에게 돈을 줘야 해요? 여러분들이 저에게 보시를 해야 해요?”nbspnbsp“저희들이 보시해야 합니다.“nbsp“법륜 스님이 지난 20년 동안 무언가를 해줄 것이라고 기대했지만 지금까지 아무것도 안하고 있잖아요. 제가 여러분들의 사장이 되려면 지금이라도 금방 절을 지을 수 있어요. 월급을 1만 루피씩 주면서 금방 지어버리면 되거든요. 그렇게 되면 여러분들은 제가 주는 돈을 받고 생활하게 되잖아요. 그러면 저는 여러분들의 스승이 아니고 사장이 된단 말이예요. 이해하셨어요?”nbsp“스님은 저희들에게 스승이시지만 우리는 너무 가난해서 때로는 사장으로 보일 때가 있어요.” nbspnbsp“아주 솔직하게 잘 말했어요. 그래서 진짜 붓다 담마가 행해지려면 제가 여기서 사장이 되면 안되고 스승이 되어야 해요. 절이 중요한 게 아니예요. 절은 필요하지만 핵심은 아니예요. 아난 존자가 부처님을 시봉할 때 노예로서 했어요? 월급 받고 했어요? 같은 수행자로서 하신 것이지요. 부처님이 빔비사라왕에게 돈을 달라고 해서 그 돈을 받아서 사람들에게 줘서 절을 지으라고 했어요? 사람들이 절을 지어서 부처님에게 주었어요?”nbspnbsp“사람들이 절을 지어서 부처님께 드렸어요.”nbsp“그런데 여러분들은 왜 저한테 절을 지어달라고 해요?”nbspnbspnbspnbsp“아난다핀디카라든지 빔비사라왕은 재산이 많았기 때문에 그런 일을 할 수 있었지만 우리는 그렇게 많은 재산을 가지고 있지 않기 때문에 그렇게 해드릴 수 없어요. 우리들 말고 한국에서 스님한테 배운 수행자들 중에 많은 돈을 가진 사람들이 있기 때문에 그 사람들이 보시하면 우리가 거기에 보태서 할 수 있을 것 같아요. 우리는 주로 몸으로 노동을 해서 참여할 수 있습니다. 인도 사회에서 우리들은 석가족이 멸망할 때 겨우 도망쳐서 숨어서 살다가 노예로 살게 되었고, 노예로 살면서 밥도 제대로 못 먹었는데 이제 와서 어느 정도 살만 하게 되었습니다. 그래도 아직 형편이 넉넉지 않기 때문에 스님한테 이런 부탁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하지만 우리도 해볼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nbspnbsp“잘 알았습니다. 우선 원칙이 무엇인지를 이야기하려고 하는 것입니다. 절을 짓는 것은 여러분들이 해야 하는 일이라는 것을 이해하셨어요? 그런데 여러분들의 실제 사정은 그런 경제력이 없다는 것 아니예요? 그렇다면 절을 지을 수 있는 땅이나 철근이나 시멘트 등 자재는 스님이 일부 지원해 주겠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여러분들이 절반을 모으면 제가 절반을 지원해 주겠다고 지난번에도 회의를 했잖아요.”nbspnbspnbspnbspnbsp석가족들은 근심어린 표정이었다가 스님께서 자재는 지원해줄 수 있다고 하니 박수를 치며 금새 얼굴이 환해졌습니다. 그런데 한분이 다시한번 질문했습니다.nbspnbsp“스님한테는 아난다핀티카처럼 돈이 많은 수행자들이 한국에 많이 있지 않나요?”nbsp“그런데 부처님이 아난다핀티카에게 ‘너는 돈이 많으니 절을 하나 지어라’ 이렇게 말을 했어요?”nbspnbsp“아닙니다. 스스로 했습니다.”nbspnbsp“그런데 한국의 돈 많은 사람들 중에는 스스로 이곳 상카시아에 절을 지어주겠다고 얘기하는 사람들이 없는데 어떡해요? 인도에서도 누군가 돈 많은 사람들이 이곳에 절을 지어주겠다고 하는 사람이 없는데 어떡해요? 그런데 여러분들은 절이 필요하잖아요. 그렇다면 여러분이 절을 지어야 하잖아요. 그래서 여러분들이 돈이 없다고 해서 절반은 여러분이 모으고 절반은 제가 지원해주겠다고 한 것입니다.nbspnbsp그리고 절을 지으려면 누군가는 여기 와서 책임을 지고 관리를 해야 하잖아요. 그런데 ‘먹고 살아야 한다’ 고 하면서 아무도 할 사람이 없잖아요. 그런데 어떡해요? 제가 여러분들에게 월급 줄게 하면 당장 시작할 수 있어요. 그러면 제가 여러분들에게 스승이예요? 사장이예요? 제가 사장을 해서 절을 지으면 거기서 어떻게 붓다 담마를 할 수 있어요? 스승도 없이 건물만 크게 지어서 무슨 일을 할 거예요? 여러분들이 여기서 절을 지으면서 월급을 받으면 그것은 노동자이지 부디스트는 아니예요. 그러니 여러분들은 여기서 수행자로써 쉬람단을 해야 합니다.nbspnbsp돈이 많은 사람들이 돈을 내어서 절을 지으면 그 사람들이 그 절의 주인이 됩니다. 만약에 한국에서 다 돈을 가져와서 여기에 절을 지으면 이 절은 한국 절이예요? 석가족들의 절이예요? 여기 땅을 산 이유는 한국 절을 지으려고 한 것이 아니고 석가족들의 절을 지으려고 한 것이예요. 여러분들이 아무 것도 안하면 석가족들의 절이 될 수가 없어요. 그래서 스님이 계속 이렇게 기다리고 있는 거예요. 제가 벌써 상카시아에 온지 20년이 되었습니다. 왜 아무것도 안하고 있을까요? 절 하나 못지어서 가만히 있을까요? 여러분들이 참여해야 여러분들의 절이 되는 것이예요. 저는 사장이 되기 싫어요.”nbsp“스님의 마음 속에서는 석가족들을 사랑하는 자비심이 있다는 것을 저희들이 알고 있는데...”nbspnbsp“저는 여러분들을 사랑하기 때문에 사장이 되기 싫다 이말입니다. 부처님도 전륜성왕이 될 것이냐, 부처가 될 것이냐 두 가지 길이 있었잖아요. 둥게스리에서 수행하실 때도 마왕이 나타나서 붓처가 되기를 포기하고 전륜성왕이 되라고 자꾸 요구하잖아요. 그것처럼 여러분들은 저보고 자꾸 스승이 되지 말고 사장이 되라고 요구하잖아요. 여러분들이 마왕이예요?”nbspnbspnbspnbspnbsp“저희도 스승으로 모시고 싶지만 저희들 형편이 워낙 안 좋으니까요.nbsp스님이 이곳에 오신 것은 담마를 전하러 온 것이지 절을 지으러 온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아요. 스님께서 이렇게 1년에 한번씩 오셔서 담마를 가르쳐 주셔서 너무 좋지만, 스님께서 가시고 나면 다시 똑같은 자리로 돌아옵니다. 왜냐하면 우리들은 돈을 벌어야 하고 가족들도 돌봐야 하기 때문입니다. 여기도 스님들이 마을마다 계시는데 이 스님들이 스님이 가시고 나서 스님처럼 담마를 계속 알려주실 수 있으면 좋은데 그렇지 못해요.”nbsp“이런 얘기를 하는 것은 부처님의 가르침이 무엇인지 분명히 하고자 하기 위함입니다. 여러분들에게 저는 사장이 아니라는 것을 분명히 하고자 하는 것입니다. 그렇게 되어야 담마가 인도 사회에 널리 퍼져나갈 수 있어요. 담마에 대해서는 스님께 의지하는 것이 괜찮은데, 절 짓는 것은 여러분들이 해야 합니다.”nbsp“스승 역할도 해주시고 사장 역할도 해주시고 두 개 다 해주시면 안될까요?”nbspnbsp“그럼 부처님이 전륜성왕도 되고 부처도 되고 두가지 다 하셨어요?”nbspnbsp아니요nbspnbsp“인도 불교를 부흥하기 위해서는 석가족이 앞장서는 것이 굉장히 중요합니다. 왜냐하면 인도 전체에 불교도가 0.5 밖에 안됩니다. 그런데 그것도 북쪽에 있는 탄트라 불교는 티벳 난민들이거나 소수민족이예요. 동쪽에 있는 테라바타도 소수민족이예요. 암베드카르는 신분적으로 nbsp낮은 사람들이예요. 모두 인도의 비주류예요. 숫자도 적지만 사회의 중심이 되기에도 어려워요. 그렇다고 영향력 있는 브라만이 불교로 바꾸지는 않을 것 아니예요? 그래도 여러분들은 계급이 높지도 않고 낮지도 않은 평민이잖아요. 여러분들이 마음을 내면 인도 사회에 영향을 줄 수 있습니다.nbspnbsp20년 전에 젊은 석가족 청년들이 저한테 약속을 했어요. 자기가 출가를 하든지 아니면 아들을 출가시키든지, 그렇지 않으면 스님이 안되더라도 일생을 바쳐서 불교를 부흥시키는 운동을 하겠다고요. 많은 청년들이 그렇게 하겠다고 손을 들었어요. 지금은 다 어디 갔어요?nbspnbspnbsp그래서 여러분들이 조금 더 각성을 하라는 것입니다. 스님이 못되었으면 세속에 살더라도 스님이 된 것 같은 마음으로 시간을 더 내고 마음을 더 내어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불교를 새롭게 일으키는 것에 대한 책임의식을 좀 가지시라는 것입니다.nbspnbsp담마는 신에 의지하지 말고 내가 내 인생의 주인이 되라는 것이잖아요. 그것처럼 상카시아의 불교 발전을 위해서는 저를 신으로 만들지 말고, 여러분들이 중심이 되어서 하면 제가 스승 역할을 하면서 서포트를 하겠다는 것입니다. 지금 좀 어렵다는 것을 저도 잘 알고 있어요. 담마 센터를 지으려면 더 마음이 모여져야 해요. 아직 부족해요. 여러분들이 준비가 되면 저는 언제든지 지원을 해줄 준비가 되어 있습니다.”nbsp스님께서는 석가족들의 머리가 다들 복잡해지면서 웅성거리게 되자, 여기까지만 말씀하시고 일단 휴식 시간을 가지셨습니다. 이것 뿐만 아니라 스님께서는 수련이 진행되는 동안 석가족들이 이 일의 주인이 될 수 있도록 끊임없이 독려하고 설명하고 때론 반복해서 대화를 나누셨습니다. 수 차례 “사마지가 헤?” 라고 물어보시고 표정이 갸우뚱 하면 다시 다른 비유를 들어서 설명을 해주셨습니다. 그러면서 석가족들은 점점 더 스님의 뜻이 무엇인지 명확하게 이해하기 시작했습니다.nbspnbsp휴식 시간을 마치고 나서 다시 법상에 오르신 스님께서는 이번에는 우리들의 삶이 모범이 되어야 한다고 강조하시면서 열가지 계율을 함께 지켜보자고 당부하셨습니다. 그리고 협동조합 운동을 통해 새로운 마을개발 모델을 만들어보자고 제안해 주셨습니다. 그러자 인도 석가족 청년 8명이 자신이 그런 일을 해보겠다고 당당하게 손을 들어서 스님도 무척 기뻐하셨습니다.nbspnbsp“붓다 담마만 공부한다고 불교 전파가 되느냐? 그것도 아닙니다. 석가족들에게는 그래도 불교 전파가 쉽지만 다른 카스트로 전해지는데 까지는 시간이 많이 걸리게 됩니다. 부디스트들이 수행도 잘 하지만 생활하는 모습도 다른 사람들이 보기에 더 좋아보여야 합니다. 그래서 첫째, 계율을 잘 지켜야 합니다. 우리가 어떤 사람을 보고 훌륭하다고 말할 때는 그 행동을 보고 말하는 것입니다. 말과 행동을 바르게 하는 것이 계율입니다. 올해는 10가지는 꼭 지켜봅시다.nbspnbspnbsp첫째, 때리지 않는다. 애 키우면서 안 때릴 수 있어요? nbspnbsp그래도 불교신자는 아이를 때리면 안됩니다. 아이를 교화해야 합니다. 학교에 갔더니 선생님이 불교신자라고 하면 아이들이 ‘올해는 맞을 일은 없겠구나’ 하도록 해야 합니다. 결혼을 할 때 남자가 불교신자라고 하면 ‘저 남자는 부인을 절대 때리지는 않겠구나’ 이것이 분명해야 합니다.nbspnbsp둘째, 훔치지 않는다. 지킬 수 있어요? 여기에 아무리 물건을 놓아두어도 잃어버릴 일이 없어야 해요.nbspnbsp셋째, 성추행하지 않는다. 남자들은 특히 잘 지켜야 해요. 아무리 외진 곳에서 둘이 있다고 하더라도 상대를 성추행하면 안돼요. 상대가 부디스트라고 하면 ‘절대로 나를 괴롭히지는 않겠구나’ 이것이 분명해야 해요.nbspnbsp넷째, 거짓말하지 않는다.nbsp다섯 번째, 욕설하지 않는다.nbsp여섯 번째, 잔소리하지 않는다.nbsp일곱 번째, 짜증내지 않는다.nbspnbsp여덟 번째, 술먹고 취하지 않는다. 술먹고 취하게 되면 때리게 되고 훔치게 되고 성추행하게 되고 욕하게 되고, 그래서 나머지 계율을 다 어기게 돼요. 그래서 술을 안 먹는 것이 가장 좋고, 술을 먹더라도 취하면 안돼요. 술 먹고 취하면 불자라고 할 수 없어요.nbspnbsp아홉 번째, 음식에 탐착하지 않는다.nbsp열 번째, 사치하지 않는다. 옷이나 가방을 유명 상품으로 산다거나 하지 않고 돈이 있더라도 수행자는 검소하게 살아야 합니다. 가난하게 살아라는 것이 아니라 검소하게 살아라는 것입니다.nbspnbsp지킬 수 있겠어요? 물론 살다보면 어길 수 있어요. 그러나 그럴 때는 반성하고 참회를 해야 합니다. 이 열가지만 잘 지켜도 괜찮은 사람이라는 소리를 들을 수 있겠죠? nbspnbspnbsp그리고 우리가 사는 모습이 좀 잘 살아야 사람들이 존중하겠죠? 그런데 여러분 개개인이 잘 살려고 하면 굉장히 어렵습니다. 물론 개인도 열심히 일을 해야하지만 그러면 경쟁이 너무 치열해져요. 그러나 우리가 협력을 하면 조금 쉽습니다. 협동조합이라고 아세요? 협동조합에는 크게 세 가지 사업이 있어요. 첫째, 공동구매입니다. 비료나 농약, 벽돌, 시멘트 등 우리가 필요한 것을 한꺼번에 많이 공장에서 구매하면 값을 낮게 살 수 있어요. 둘째, 공동판매입니다. 여러분들이 생산한 농산물을 개인이 판매하는 것보다 모아서 한꺼번에 사업자한테 팔면 더 비싸게 팔 수 있어요. 셋째, 마을금고입니다. 우리가 남는 돈을 저축하고, 저축했을 때 이자는 은행보다 더 받고, 우리가 돈을 빌릴 때는 사채보다 더 값싸게 빌리고요. 이런 것을 부디스트들이 공동체를 이뤄서 마을을 공동개발해서 다른 마을보다 잘 살게 되면 이것도 굉장한 효과가 있습니다. 개개인들은 힘이 없지만 뭉치면 힘이 생깁니다. 이런 것들을 여러분들이 앞으로 해나가야 합니다.nbspnbsp첫째, 붓다 담마를 공부해야 합니다. 둘째, 붓다 담마를 공부할 수 있는 공간을 마련해야 합니다. 셋째, 붓다 담마를 다른 사람들에게 전파해야 합니다. 넷째, 개인이 계율을 잘 지켜서 사람들로부터 존경을 받아야 합니다. 다섯째, 협동 조합을 만들어서 우리들의 생활이 더 좋아지면 이것 역시 불교의 영향력을 크게 하는 것이 됩니다. 그래서 다른 카스트라 하더라도 부디스트들이 잘 산다고 하면 관심을 갖게 됩니다. 그래서 다른 카스트들도 조합원이 되고 싶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럴 때 담마 센터에 가서 수련을 해야 조합원이 될 수 있다고 하면 그들도 담마를 배울 수 밖에 없게 됩니다. 이렇게 확대시켜 나갈 수 있습니다. 하나는 순수하게 담마를 전파시켜 나가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담마를 전파할 수 있는 좋은 조건을 만드는 것입니다. 저는 여러분들이 이런 운동을 하면 잘 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동네마다 있는 담마센터가 이런 일을 같이 해야 합니다. 그래서 수행하는 것과 사회활동이 따로 분리가 되지 않고 같이 이뤄져야 합니다. 다른 곳에서도 이런 일을 할 수 있겠지만 우리는 붓다 담마를 수행하고 전파하기 위해서 이런 일을 한다는 목표의식이 분명합니다.”nbsp그리고 스님께서는 석가족들을 천천히 둘러보시면서 누가 한번 이 일을 해볼 것인지 물으셨습니다. nbspnbsp“그런데 문제는 누가 나서서 이 일을 할 것이냐 하는 것이죠. 월급을 주면 노동자가 되잖아요. 한국의 정토회는 많은 일을 하지만 100 자원봉사자로만 운영이 됩니다. 왜냐하면 우리 모두가 수행자로서 이 일을 하기 때문입니다. 인도에서는 이것을 어떻게 만들 것이냐, 이것이 큰 과제입니다. 그래서 젊은 사람들이 좀 나서야 합니다. 여기 청년들 중에서 ‘결혼 안하고 내가 평생 이런 일을 하겠다’ 하는 사람 없어요?”nbsp▲ 인도 불교 부흥을 위해 평생 일해보겠다고 당당히 일어선 청년들nbsp스님께서 이렇게 묻자, 인도 청년 8명이 당당하게 손을 들고 일어섰습니다. 남자 4명, 여자 4명이였습니다. 스님께서 “부모님이 반대해도 할 자신이 있어요?” 라고 묻자 “허락 받으려고 노력하겠습니다” 라고 대답했고, “허락 안하면 그냥 집을 나와버릴 수 있어요?” 라고 다시 묻자 “네, 그렇게 하겠습니다” 하고 당당히 이야기를 해서 큰 박수를 받았습니다.nbspnbsp▲ 스님과 함께 일해보겠다고 말하고 있는 인도 석가족 여성 4명nbspnbsp그리고 한 청년의 아버지가 함께 자리하고 있어서 스님께서는 아버지에게도 물어보았습니다. “아들이 하겠다고 하면 반대 안할 거예요?” 그러자 아버지는 “아들이 하겠다고 하면 저도 할 말이 없습니다” 라고 대답했습니다. 스님께서는 흔쾌히 마음을 낸 청년들을 위해 이렇게 격려를 해주셨습닌다.nbspnbsp▲ 부모의 반대를 무릎쓰고 일해보겠다고 말하는 인도 석가족 청년 4명nbspnbsp“물론 세상살이도 좋은 면이 많이 있어요. 그러나 결혼하고 농시짓고 아이 낳고 그것 밖에 더 하겠어요? 죽을 때까지 밥 벌어 먹고 살고, 아이 키우기만 하다가 죽어요. 그런데 우리가 크게 마음을 내면 붓다 담마도 공부할 수 있고, 붓다 담마를 널리 전할 수도 있고, 또 우리가 마을 개발을 한다면 동네를 발전시킬 수도 있습니다. 공동판매, 구매 같은 협동조합 운동도 할 수 있고요. 그러나 우리는 붓다 담마를 하면서 이 일을 하기 때문에 개인적으로 이익을 얻을 수 없다 뿐이지 활동은 얼마든지 할 수 있어요. 오늘 손 든 청년들은 학교 공부하면서 준비하고 있어요. 스님이 데리러 올 테니까요. 스님이 아주 기뻐요. nbsp인도 사람들은 나고 죽고 윤회한다고 믿고 있잖아요. 계속 이 일을 하라는 것이 아니고 이번 한 생만 이런 일을 해보자는 것이예요. 우리가 이번 한 생만 투자하면 이 인도를 변화시킬 수 있어요. 여러분들도 이 청년들처럼 완전히 집에서 나오지는 못해도 마음을 더 내셔야 해요. 여러분들도 처음보다는 조금 더 마음을 내셨어요? 한번 해볼까요? 변화를 위해서 스타트를 할 준비가 되었어요?”nbspnbsp이번에는 마을 주민들이 큰 목소리로 대답을 했습니다.nbspnbsp“준비되었습니다”nbsp“그리고 초등학교 다니는 자녀를 둔 사람 손들어 보세요. 사미승 학교를 만들면 보내줄 거예요? 스님이 되어도 괜찮아요?”nbspnbsp“문제 없습니다.”nbspnbsp“아주 좋았어요. 그러면 올해 1년 동안 준비해서 무엇이든지 한번 해봅시다. 인도에 다시 불교가 일어날 기회가 지금 왔습니다. 거기에 여러분들이 중심이 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것은 단순히 담마만이 아니라 우리의 생활도 변화시키는 방식으로 해나가야 합니다. 나의 인격이 다른 사람들로부터 존중받을 수 있어야 합니다. 우리가 비록 가난하게 살지만 정말 서로 협력해서 좋게 사는 모습을 이 세상에 보여줘야 합니다. 그렇게 해서 이 시골에서 가장 모범적인 사람들이 되어야 합니다. 그러면 불법이 인도 사회에 빠른 속도로 전파될 것입니다.nbspnbspnbsp그렇게 하려면 누군가가 나서야 합니다. 여러분들이 나서지 못하면 여러분들의 자녀라도 나서도록 하고 서포트 해주어야 합니다. 누군가가 이런 일을 앞장서서 하는 사람들이 있어야 이 일이 이뤄진다는 것입니다. 오늘 우리 정토회가 이렇게 이뤄진 것도 누군가가 활동을 하기 때문에 가능했던 것입니다. 이렇게 해외에 나와 있으면 부모님 마음이 얼마나 아프겠어요? 그러나 이렇게 활동하는 사람이 있기 때문에 이 일이 이뤄지는 것이예요. 개인 생활만 생각하면 우리는 아무 일도 못합니다. 그러니 우리가 조금씩 마음을 내어서 같이 해봅시다. 준비 되었어요?”nbsp“네” nbsp1박2일 동안의 스님 법문을 듣고 하루밤 사이에 이렇게 사람들이 달라지다니 놀라운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것은 법문 곳곳에서 느껴진 스님의 석가족들에 대한 사랑과 자비심 때문인 것 같았습니다. 이렇게 인도 불교의 새로운 부흥은 가난한 석가족 사람들의 초발심을 통해 그 첫바퀴가 막 굴러가려고 삐끄덕 거리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지난 20년 동안이나 석가족들이 스스로 마음을 낼 수 있도록 매년 법문을 해주고 기다려주고 하셨던 스님의 애틋한 사랑이 아니였다면 석가족들도 오늘처럼 이렇게 마음을 내지 못했을 겁니다. 스님의 간절한 서원에 저절로 고개가 숙여졌습니다.nbspnbsp그리고 점심 시간에는 인도 대학에 다니면서 박사 학위 과정에 있는 인도 스님 몇분들과 함께 식사를 하시면서 대화를 나누셨습니다. 특히 요즘 스님께서는 인도에 와 있는 동안 오후 불식을 하고 계신데, 오후 불식 하는 계율이 생기게 된 배경과 현재 남방 불교의 스님들은 어떻게 걸식을 하고 어떻게 오후 불식이라는 계율을 지키고 있는지에 대해 자세히 물어보시고 이야기를 들으셨습니다.nbspnbsp▲ 남방 불교의 계율에 대해 대화를 나누시는 모습nbsp또 스님께서는 마을에 살고 있는 인도 스님들을 보시면서 한국인 스텝들에게 “이런 스님들이야 말로 진정으로 출가한 스님들 같다”고 하시면서 “대부분의 남방 스님들은 목에 힘이 들어가 있는데, 이 마을 스님들은 여기 온다고 아무런 대접도 안해주는데 법문도 열심히 듣고 참 소박하지 않느냐?”고 이야기하셨습니다.nbspnbsp이어서 마지막 순서로 지금까지 스님 얘기를 듣고 더 궁금한 것에 대해 더 묻고 답하는 시간이 이어졌습니다. 스님께서는 석가족들의 다양한 질문들에 대해 명쾌한 답변을 해주신 후 이번 수련을 마무리하면서 다시 한번 석가족들이 부디스트로서 자긍심을 가질 것을 당부하셨습니다.nbspnbsp“여러분들이 부디스트로서 자신감이 있어야 해요. 전 인도 사람이 다 힌두교이고 나 혼자만 부디스트라고 하더라도 자신있게 살아야 해요. 부처님이 깨달음을 얻으셨을 때는 전부 브라만교이고 혼자 부디스트이였잖아요. 우리가 잠을 자고 있다고 합시다. 제가 혼자 깨었어요. 여러분들이 다 꿈을 꾸면서 잠꼬대를 해요. 그럴 때 이 한 사람이 백명을 깨우겠어요? 이 백명을 따라서 한 사람이 다시 잠꼬대를 하겠어요?”nbsp“한 사람이 잠꼬대 하는 사람들을 깨울 수 있습니다.”nbspnbspnbsp“붓다는 깨달은 이, 깨어있는 사람이라는 뜻입니다. 그러니 여러분들이 인도 사람 전체를 깨워야지 여러분들도 같이 따라서 잠을 자면 안돼요. 자, 그러면 붓다 담마를 공부하는 것을 자랑스럽게 생각하면서 이번 수련을 모두 마치겠습니다.”nbsp석가족들은 큰 박수를 치면서 스님께 감사의 마음을 전했습니다. 그리고 이곳 인도 절의 주지이신 담마빨 스님이 남방불교 방식으로 법회를 마치는 의식을 해주셨습니다.nbspnbsp법회를 모두 마치고 나서는 수바스지의 사회로 지난 1박2일 동안 도움을 주신 분들에 대한 소개 시간이 있었습니다. 매 끼니 때마다 식사를 준비해주신 분들, 설거지를 해주신 분들, 법당을 사용할 수 있게 해주신 분, 한국에서 이곳까지 함께 와준 스텝들 등 모두에게 큰 박수로 다함께 감사의 마음을 전했습니다.nbspnbsp그리고 어린 아이 중에서 한명, 여성들 중에서 한명, 남자들 중에서 한명, 한국 사람 중에서 한명 각각 나와서 노래 한곡씩을 부르며 오늘 수련을 마치는 기쁨을 표현했습니다. 한국 사람 중에서는 스님 의전을 맡고 계신 최말순 보살님이 한국 가요를 멋지게 불러주셔서 석가족들로부터 큰 박수와 환호를 받았습니다.nbspnbsp▲ 인도 석가족들에게 한국 가요를 들려주는 최말순 보살님nbsp이어서 수련에 참가한 석가족들은 스님께 꽃 공양을 올리고 스님의 발에 손을 올리는 예를 취하면서 감사의 마음을 담아 보시를 하였습니다. 스님께서는 보시 들어온 돈 전체를 이곳 인도 절을 수련을 할 수 있게 빌려주신 담마빨 스님께 전달하셨습니다.nbspnbsp▲ 법문을 해주신 스님께 감사의 마음을 전하며 꽃공양을 올리는 석가족들nbsp스님께서도 참석한 석가족 모두에게 선물로 단주를 하나씩 직접 손목에 끼워 주셨습니다. 석가족들은 단주를 받고 너무나 기뻐했습니다.nbspnbsp▲ 스님께 단주를 선물 받는 석가족들nbsp이렇게 수련을 모두 마치고 나서는 다함께 기념 사진을 찍었습니다. 먼저 여성들이 나와서 스님과 함께 사진을 찍었습니다. 그리고 남자들이 나와서 사진을 찍고, 마지막으로 20년 전부터 스님과 함께 인연을 이어오고 있는 석가족 청년회 멤버들이 함께 사진을 찍었습니다.nbspnbsp▲ 스님과 함께 단체 사진 촬영nbsp석가족들이 모두 집으로 돌아가고 난 후에는 석가족 청년회 구성원들과 함께 회의를 하였습니다. 오늘 수련을 한 것을 토대로 올 한해 동안 어떤 일들을 할지 등에 대해서 서로 의견을 나누고 최종 계획을 세웠습니다.nbspnbsp▲ 상카시아 불교 부흥 사업에 대해 논의하는 모습nbsp회의를 마치고 나서 다시 숙소인 미얀마 절로 돌아오니 저녁 7시가 넘었습니다. 스님께서는 오후 불식을 하고 계셔서 곧바로 휴식을 취하시며 한국에서 온 이메일 등을 체크하시며 업무를 보셨습니다.nbspnbsp내일은 오전에 상카시아 스투파 근처에 또다른 불교 유적지가 있다고 해서 잠깐 둘러본 후 슈레스지가 인도 불교 관련해서 하고 있는 사업장을 둘러보고 격려를 해주신 후 이따와로 와서 기차를 타고 다시 수자타아카데미로 들어가실 예정입니다. 내일 또 소식 전해드리겠습니다.nbsp nbsp ▼ 배고픈 사람은 먹어야 합니다, 아픈 사람은 치료받아야 합니다, 아이들은 제 때에 배워야 합니다. JTS가 인도 둥게스와리 아이들을 위해 펼치고 있는 기아, 질병, 문맹 퇴치 활동에 함께해 주세요.nbspnbspnbsp nbspnbsp nbspnbspnbspnbsp nbspnbsp
2015.3.13 (인도 11일째) 상카시아 석가족 수련 1일째
▲nbsp상카시아 석가족 수련 1일째nbsp안녕하세요. 오늘 스님께서는 가야에서 이따와로 이동하셔서 상카시아 석가족들을 위해 수련을 해주셨습니다. 오늘부터 내일까지 1박2일 동안 상카시아 인도 절에서는 석가족들 100여명이 모여 스님과 함께 수련을 하는데 오늘은 그 첫 번째 날입니다.nbspnbsp▲nbsp가야에서 상카시아로 가는 기차nbspnbspnbsp새벽1시30분에 이따와 역에서 도착 예정이였던 기차는 예상했던 대로 밤새 서행을 하더니 5시간이 연착되어 아침6시30분에 이따와 역에 도착했습니다. 스님께서는 기차 안에서 휴식을 취하시다가 새벽4시30분에 일어나셔서 명상을 하셨습니다.nbspnbsp▲nbsp기차 안에서 명상 중이신 스님nbspnbsp이따와 역에 도착하니 석가족 청년회 회장인 수바스지가 아들과 함께 마중을 나와 반겨주었습니다.nbspnbsp▲nbsp기차역에 마중을 나온 석가족 청년회 회장 수바스지nbspnbspnbsp차량을 타고 수바스지의 집으로 가서 짜파티와 사부지, 달로 아침식사를 한 후 8시30분에 출발하여 오늘 개원법회 및 불상 점안식이 있는 메인뿌리의 산띠뿌르 마을까지 1시간20분 동안 차를 타고 이동했습니다.nbspnbsp산띠뿌르 마을에 새로 개원한 법당에 스님께서 도착하자 인근 지역의 스님들 30여분과 마을 주민들은 스님께 합장을 하거나 스님의 발에 손을 대는 방식으로 공경의 예를 표하며 스님을 정성껏 맞이해 주었습니다.nbspnbsp▲ 법당 입구에서 긴 줄로 나란히 서서 환영해주는 스님들과 마을 주민들nbspnbsp먼저 스님께서 한국식으로 간략하게 점안식을 하고 부처님께 공양을 올리며 예불을 하시고 난 후 이곳 산띠뿌르 법당과 마을 주민들을 위해 축원을 해주셨습니다.nbspnbsp▲nbsp산띠뿌르 마을 개원법당 점안식nbspnbsp이어서 인도 스님들이 인도 방식으로 예불을 올렸습니다. 점안식을 마치고 난 후에는 스님께서 참석자들이 잡고 있는 오색 실을 가위로 끊어주셨고, 참석자들은 끊어진 오색 실을 서로에게 묶어주면서 서로의 행복을 기원하는 예를 표했습니다.nbspnbsp▲nbsp오색 실을 잘라주는 스님nbspnbsp법당 밖으로 나와서는 스님께서 마을 주민들을 위해 법당 개원 기념 법문을 해주셨습니다. 쁘리앙카님의 통역 덕분에 마을 주민들은 스님의 법문을 듣고 모두들 기뻐하였습니다.nbspnbsp“안녕하세요. 새해 잘 보냈습니까? 지난 한해의 근심걱정은 다 잊어버리시고 올해 새해에는 좋은 일만 있으시길 바랍니다.nbspnbsp▲nbsp석가족 산띠뿌르 마을 법당 개원법회nbspnbsp오늘 이곳 산띠뿌르 마을에 좋은 일이 생겼습니다. ‘담마로꼬 쁘라까스 실 보드 비하르’ 라는 새로운 절이 생겼습니다. 부처님도 새로 모셨습니다. ‘로터스 수투라’라고 하는 경전에 보면 어린 아이들이 바닷가에서 모래로 부처님 얼굴을 그리고 탑을 쌓아도 큰 공덕이 있다고 나와 있습니다. 그런데 금방 없어질 모래로 만든 것도 아니고 이렇게 법당을 짓고 불상을 모신 것은 그것보다 수천배 더 공덕이 있는 일입니다. 이렇게 절을 지을 수 있도록 많은 도네이션을 해주신 분이 실소만 스님이십니다. 그리고 담마실 스님이 많은 도움을 주셨습니다. 이분들께 박수 부탁드립니다. 이 절을 책임 맡으신 분은 보드 길라얀 스님이십니다. 박수 부탁드립니다. 그리고 오늘 점안식을 위해 30여분의 스님들도 오셔서 자리를 빛내주셨습니다. 환영의 박수를 부탁드립니다.nbspnbsp부처님이 계실 때는 우리는 부처님께 경배를 했습니다. 부처님이 계시지 않을 때는 우리가 경배할 것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부처님 대신에 보리수 나무를 경배하기도 하고, 부처님의 발바닥 무늬를 경배하기도 했습니다. 그러다가 나중에 부처님의 모습을 그리거나 조각한 불상이 나오게 된 것입니다. 저 불상은 돌로 만든 조각입니다. 조각이 부처님은 아닙니다. 그래서 우리가 부처님 같이 생긴 조각을 부처님으로 여기는 의식인 ‘점안식’을 하는 것입니다. 점안식을 하기 전에는 조각 작품입니다. 그러나 이 점안식을 하고 나면 비록 돌로 만든 조각이지만 부처님과 같은 역할을 합니다. 점안식의 내용은 이렇습니다. 불법승 삼보를 먼저 청합니다. 그래서 이 불상 속에 부처님의 기운이 들어가도록 요청합니다. 그럴 때 다른 잡귀들이 접근하지 못하도록 붉은 팥을 뿌려서 다 쫓아냅니다. 그리고 덮어쓴 천을 벗깁니다. 부처님의 미간에 부처님의 지혜의 광명이 깃들도록 점안을 합니다. 눈을 뜨게 한다 이런 의식입니다. 점안을 하면 비록 돌로 만들어진 불상이지만 오늘부터는 부처님처럼 그 앞에서 경배를 해야 합니다. 이제 자주 자주 찾아오셔서 부처님께 공양을 올리고 기도를 해야 합니다. 그렇게 하시겠어요? nbspnbspnbsp그리고 오색실을 쥐고 있으셨는데 오색실은 불교기를 상징합니다. 그래서 부처님으로부터 여러분을 모두 연결해서 부처님의 기운을 받도록 한 것입니다. 그 오색실을 손목에 묶고 있으면 올 한해 좋은 일이 생긴다고 하는 종교 의식입니다.nbspnbsp부처님은 2600년 전에 이 세상에 오셔서 45년 동안 이 나라 저 나라 이 마을 저 마을을 다니시며 교화활동을 하셨습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쿠시나가르에서 열반에 드셨습니다. 부처님의 종족은 육체적으로는 대를 이어서 지금의 여러분들에게 이르렀습니다. 그러나 여러분들은 부처님의 육체는 받았는데 부처님의 마음은 잃어버렸습니다. 붓다 담마는 없고 힌두의 믿음만 마음 속에 남아 있습니다. 그러나 붓다 담마는 석가족이 아니더라도 다른 나라 사람들에게 계속 퍼져나갔습니다. 한국에는 부처님의 가르침이 2천년 전에 들어왔습니다. 그 때 인도에서 담마를 전하는 스님이 한국까지 와서 전했습니다. 그래서 저희들은 몸은 석가족이 아니지만 붓다 담마는 지금까지 간직하고 있습니다. 여러분께 제가 한번 물어보겠습니다.nbspnbspnbsp이 몸둥이가 석가족인 것이 진짜 석가족이예요? 붓다 담마를 가지고 있는 사람이 진짜 석가족이예요?nbsp붓다 담마를 가진 사람이요nbsp그럼 여러분은 석가족이 아니예요?nbspnbsp석가족 맞아요nbsp이 몸둥이가 중요해요? 사람 마음이 중요해요?nbsp사람 마음이 중요해요nbsp그러니 몸둥이만 석가족이라고 해서 석가족이라고 하면 안돼요. 반쪽 밖에 안돼요. 마음 속에 붓다 담마를 가져야 진짜 석가족이라고 말할 수 있어요. 사무지가 헤? nbspnbsp▲nbsp스님의 법문을 듣고 기뻐하는 석가족 산띠뿌르 마을 주민들nbspnbsp그러니 여러분들이 진짜 석가족이 되려면 붓다 담마를 공부해야 돼요. 붓다 담마를 공부 안 한 사람은 “너 성이 무엇이냐?”고 물으면 “석가족이다” 라고 대답하면 안돼요. nbspnbsp오늘 절도 새로 생겼고 스님들도 이렇게 계시니까 이제 붓다 담마를 공부하셔야 해요. 알았지요? 절에 가서 붓다 담마는 공부 안하고 기도만 하면 힌두와 다른 차이가 없어요. 여기 절을 지은 이유는 붓다 담마를 공부하라고 지은 것입니다. 붓다 담마를 공부하겠다고 약속 하시겠어요? nbspnbsp오늘 절을 개원하는 것을 기념해서 제가 이곳에 온 것은 개원식에 참여하기 위한 것이 아니고 여러분께 붓다 담마를 꼭 공부하라고 이야기해주기 위해서 온 것입니다. 진짜 석가족이 되려면 몸만 석가족이 아니라 붓다 담마를 가슴에 안아야 합니다.”nbspnbsp이렇게 스님께서는 석가족 마을 주민들에게 여러차례 반복해서 강조하며 붓다 담마를 공부할 것을 당부하셨습니다. 그리고 4대 성지와 8대 성지에 대해 이야기해 주시면서 인도에 살면서 부처님의 성지를 순례히지 않으면 안된다고 강조하셨습니다. 스님의 감로의 법문을 듣고 마을 주민들은 모두들 큰 박수를 치며 감사의 마음을 전했습니다.nbspnbsp법문 후 스님께서는 석가족 마을 주민들에게 생활 형편이 어떤지 파악하기 위해 몇가지 질문들을 하셨습니다.nbspnbsp▲nbsp주민들의 생활에 대해 물어보시는 스님nbspnbspnbsp“농사를 얼마나 지어요?”nbsp“5비가 지어요”nbspnbsp“농사 그만큼 지어서 생활이 괜찮아요?”nbsp“생활이 어려워요 감자, 마늘, 쌀, 밀 농사를 지어도 값이 낮아서 남는 것이 없어요”nbspnbsp“소를 빌려서 키우기도 해요?”“네”nbspnbsp“소를 나중에 어떻게 해요?”“팔아서 생긴 이익을 주인과 반반 나누어요”nbspnbsp“돈을 빌리면 이자를 얼마 갚아야 해요?nbsp“월 5입니다.”nbspnbsp“비싸지 않아요?”nbsp“비싸요”nbspnbsp“그러면 열집이나 스무집이 힘을 합쳐서 수확한 농산물을 창고에 보관해 두었다가 값이 오를 때 판매한다든지, 비료를 스무집이 한꺼번에 구입한다든지 하면 좀 싸게 구입할 수 있잖아요. 공동 판매하면 조금 더 비싸게 팔 수도 있고요”“그러면 좋은데 단합이 잘 안돼요”nbspnbsp이곳 상카시아 석가족 마을에서도 스님께서는 둥게스와리에서 고민하고 있는 것처럼 협동조합을 통한 주민생활의 개선에 많은 고민을 하고 계셨습니다. 둥게스와리에서 모델이 빨리 만들어지게 되면 이곳 상카시아에도 좋은 영향을 줄 것 같다는 기대감이 들었습니다.nbspnbsp▲nbsp짜파티를 만들고 있는 부녀자들nbsp▲nbsp뿌리를 만드는 남자들nbspnbspnbsp그리고 부녀자들은 집집마다 나무판과 막대기를 가져와서 법문을 들으면서 짜파티를 만들었고, 또 한쪽 편에는 남자들이 짜파티를 기름에 튀기며 뿌리를 만드는 등 정성껏 요리를 해서 스님 일행에게 점심 식사를 대접해 주었습니다. 유미죽도 아주 달콤하고 맛있었습니다.nbspnbspnbspnbsp스님께서는 참석한 스님들 한분 한분에게 거마비를 드리고 마을 주민들과도 인사를 한 후 산띠뿌르 법당을 나왔습니다. 마을 주민들은 스님께서 차를 타고 떠나실 때까지 정성껏 배웅을 해주었습니다.nbspnbsp차를 타고 곧바로 오늘 석가족들을 위한 수련을 진행할 상카시아 인도 절로 이동했습니다. 오후 2시쯤 절에 도착하자 이곳 주지인 담마빨 스님을 비롯한 미리 도착한 석가족들이 스님 일행을 반겨주었습니다. 스님께서는 잠시 인사만 하고 오늘 숙소로 잡은 근처의 미얀마 절에 짐을 내린 후 오후 3시에 다시 인도 절로 와서 석가족들과 함께 수련을 하셨습니다.nbspnbsp석가족들은 스님을 뵙자 스님의 발에 손을 대고 엎드려 절을 하며 스님께 공경의 예를 올렸습니다. 그리고 저 멀리 가야에 있는 석가족 청년들도 김정준님과 함께 15시간 동안 기차를 타고 이곳까지 와서 “수련에 참가하러 왔다”고 하면서 스님께 삼배를 하였습니다.nbspnbspnbsp스님께서는 법문을 시작하시면서 먼저 다들 어디에서 왔는지 물어보셨습니다. 메인뿌리, 이따와, 까노즈, 에따, 가야 등 곳곳에서 많은 석가족들이 참석했습니다. 특히 가야에서 온 석가족들은 스님께서 멀리서 왔다고 특별히 소개를 시켜 주셔서 큰 박수를 받았습니다. 그리고 다들 직업이 어떻게 되는지 물어보셨는데, 대부분 농사 짓는 사람들이 많았지만, 사업하시는 분, 학교 선생님, 공무원 등 다양한 직업을 가지신 분들도 있었습니다. nbspnbsp▲nbsp스님을 법문을 듣고 있는 석가족들nbsp스님께서는 1년 만에 다시 만나게 되어 반갑다고 하시면서 첫 번째 법문에서는 불교가 어떤 면에서 다른 종교와 다른가에 대해서 집중적으로 설명해 주셨습니다. nbspnbsp“무한한 힘을 가진 신이 있고 미약한 인간이 있는데, 미약한 인간이 무한한 신의 도움으로 구원을 얻는다. 대부분의 종교는 이런 시스템으로 되어 있습니다. 그 신의 도움을 얻는 의식이 ‘푸자’입니다. 그런데 불교는 이것과는 완전히 다릅니다. 불교와 힌두교만 다르고, 불교와 크리스천만 다른 것이 아니고, 불교는 모든 종교와 근본적으로 그 입장이 다릅니다.nbspnbspnbsp부처님은 브라만교의 가르침에 대해 의문이 생겼어요. 정말 이 세상 만물을 신이 만들었을까 이런 의문이 생겼어요. 신이 만들었다고 하면 그럴 듯 안해요? 현대 사회에서도 그렇게 생각하는 사람이 훨씬 더 많아요. 과학을 배우고 우주를 공부하고 인공위성이 날아다니는 이런 시대에도 아직도 신이 세상을 만들었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많아요. 그런데 부처님은 2600년 전에 이미 ‘이건 아닌 것 같다’ 고 생각하셨어요. 그 당시에 이런 생각을 할 수 있는 사람이 있었겠어요?nbspnbsp두 번째는 사람이 진짜 브라만, 크샤트리아, 바이샤, 수드라, 이렇게 종자가 다른 것일까, 이것에 대해서도 부처님은 의문이 들었어요. 그 당시에는 남자는 귀하고 여자는 천하다고 여겼는데 부처님은 남자와 여자가 왜 차이가 있을까 이것에 대해서도 의문을 가지셨어요.nbspnbsp세 번째는 사람이 죄를 지어놓고 제사 지낸다고 그 죄가 없어질까 이것에 대해서도 의문을 가지셨어요. 강가강에 가서 목욕을 하면 죄가 없어진다고 하는데 목욕한다고 죄가 없어지는가 이런 생각이 든 거예요. 그리고 우리가 행복해지고 불행해지는 것은 운명을 좌우하는 신이 있어서 그렇다는 것에 대해 의문이 든 것입니다. 요즘식으로 표현하면 문제아 였습니다. 세상 사람들이 다 그렇게 생각하는 것에 대해서 ‘왜 그런가?’ 계속 문제를 제기한 것입니다. nbsp nbspnbspnbsp그래서 부처님은 부모의 반대를 무릎쓰고 브라만의 가르침을 따르는 것을 그만두고 집을 나와서 출가 사문들의 무리 속으로 참여하게 된 것입니다. 극심한 고행을 했지만 깨달음을 얻지 못하자 자신의 생활을 돌아보았습니다. 출가하기 전에는 욕망을 늘 따라갔고, 출가한 후에는 욕망을 무조건 억압했다는 것을 알게 되었어요. 그런데 욕망을 따라가는 것과 억압하는 것이 정반대인 것 같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그것은 욕망에 대한 대응이라는 측면에서는 같습니다. 그래서 부처님은 욕망에 일체 반응을 하지 않는 쪽으로 가야 한다는 새로운 길을 발견합니다. 붓다가 발견한 길은 지금까지 그 누구도 가보지 않은 길로 쾌락과 고행을 떠난 제3의 길 ‘중도’입니다. 그것은 바로 ‘알아차림’입니다. 욕구를 다만 알아차릴 뿐입니다. 참는 것과 알아차리는 것은 다릅니다. 참는 것은 저항을 하는 것이고, 알아차림은 모든 긴장을 내려놓고 ‘그런 욕구가 있구나’ 하고 다만 알아차릴 뿐인 것입니다. 즉 욕구를 따라가지도 않고 저항하지도 않고 다만 알아차릴 뿐입니다.nbspnbspnbsp즉 ‘담배를 피우고 싶구나’ 하고 알아치리고 있다는 것은 담배를 피운다는 얘기예요? 안 피운다는 얘기예요? ‘담배를 피우고 싶구나’ 알아차리고 있다는 것은 참고 있는 거예요? 안 참고 있는 거예요? 알아차림이 있어야지 참으면 안됩니다. 지금까지 우리는 하고 싶은 대로 하든지 참든지 두 길 밖에 없었어요. 그러나 니르바나로 가는 길은 이 두 길을 떠나야 합니다. 그것이 알아차림입니다.nbspnbsp마침내 깨달음을 얻은 부처님은 모든 의문이 다 풀렸어요. 이 세상은 누가 만든 것이 아닙니다. 이것은 서로 연관되어 존재할 뿐입니다. 즉, 이 세상을 신이 창조했다는 것을 부정하신 것입니다. 그리고 브라만, 크샤트리아, 바이샤, 수드라가 서로 다른 종자라는 것도 부정하셨습니다. 모든 인간은 똑같은 사람이예요. 어떻게 사고의 습관을 들였느냐, 즉 왕자로 훈련시켰느냐, 브라만으로 훈련시켰느냐, 노예로 훈련시켰느냐, 하는 의식의 차이에 의해 나눈 것이지 모두 똑같다는 것이죠. 남자다 여자다 하는 것도 서로 다를 뿐이지 높고 낮음이 없다는 것입니다. 이런 계급제도를 부정하신 것입니다. 그리고 인간이 괴로운 것은 신의 벌이 아니고, 인간이 행복한 것도 신의 축복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우리의 운명을 누군가가 조정하는 아무런 존재가 없다는 것입니다. 우리의 괴로움은 우리의 무지에 의해서 형성된 까르마에 의해서 생기는 것이지 누군가가 조정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우리가 괴로움에서 벗어나려면 수행을 통해서 이 무지를 깨뜨려야 니르바나를 증득하는 것이지 푸자를 지낸다고 니르바나를 이루는 것은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신과 인간 사이에서 제사를 지내주는 사제 계급도 필요없어 지는 것입니다. 붓다 담마 안에는 브라만도 없고 크샤트리아도 없고 바이샤도 없고 수드라도 없고, 그냥 수행자 딱 한가지만 있는 것입니다.nbspnbsp그러니 부처님이 깨달음을 얻은 것도 위대한 것이지만, 그 당시의 브라만 사회에서 부처님의 법을 전파해서 세상을 변화시켰다는 것도 위대한 것입니다. 그리고 그런 사회에서 태어난 사람들이 부처님의 법문을 듣고 그 가르침을 따랐다는 것도 정말 위대한 것입니다. 보통 사람은 하기 어렵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불교에 귀의한다고 할 때는 나무 붓다, 나무 담마, 나무 상가, 이렇게 삼보에 반드시 귀의해야 해요. 한번 따라해 보세요.nbspnbsp‘행복도 내가 만드는 것이네. 불행도 내가 만드는 것이네. 진실로 그 행복과 불행 다른 사람이 만드는 것 아니네.’nbspnbspnbsp중요한 것은 붓다 담마를 올바르게 이해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자기 운명이 주인이 되어야 합니다. 자신을 행복하게 만들 줄 알아야 합니다. 돈이 있어도 행복하고, 없어도 행복해야 합니다. 가족이 죽어도 행복하고 살아도 행복해야 합니다. 결혼해도 행복하고 혼자 살아도 행복해야 합니다. 어떤 경우에도 자신의 행복을 유지해야 합니다.”nbsp이렇게 해서 무려 3시간 동안 법문을 해주셨습니다. 모두들 스님께서 들려주시는 부처님의 가르침을 귀기울여 들으며 불교가 어떻게 다른 종교와 근본적으로 다른지 조금씩 알아가고 있었습니다. 고개를 끄덕이며 “아차” 하는 소리가 곳곳에서 들렸습니다.nbspnbsp이어서 저녁식사 및 휴식 시간을 가진 후 저녁7시30분부터 다시 수련이 시작되었습니다. 저녁에는 방금 전 낮에 스님 강의를 들으면서 또는 평소에 붓다 담마에 대해 궁금하던 것들이 있으면 무엇이든지 묻고 답하는 ‘즉문즉설’ 시간을 가졌습니다. 먼저 스님께서는 석가족들이 편안하게 질문할 수 있도록 분위기를 열어주셨습니다.nbspnbspnbsp“제가 작년 8월부터 세계 115회 도시 강연을 했습니다. 매일 한 도시씩 바꿔가면서 115일 동안 강연을 했어요. 세계는 빠른 속도로 변해가고 있었습니다. 옛날 생각만 하고 살면 안돼요. 유럽이나 아메리카는 부처님 당시와 비교하면 모두 왕족처럼 살고 있다고 볼 수 있어요. 그러나 그들은 행복하지가 않습니다. 먹는 것도 충분하고 집도 좋고 차도 좋고 옷도 좋고 사회 시스템도 좋고, 옛날과 비교하면 이상세계라고 할 만큼 아주 좋아졌어요. 그러나 인간의 괴로움은 해결하지 못했습니다. 기독교만 가지고는 그 사람들의 정신적인 고뇌를 해결할 수가 없습니다. 바로 붓다 담마만이 그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고 저는 봅니다. 왜냐하면 부처님은 왕자로써 모든 것이 다 갖추어졌는데도 고뇌가 있었고 그런 조건에서 이 고뇌가 어디에서 오는지를 찾았기 때문에 지금 현대인들의 고뇌와 문제의식이 같습니다. 이 고뇌는 대부분 정신적인 문제입니다. 이 정신적인 고뇌를 어떻게 해결할 것인가에 대해 가장 깊은 연구가 된 것이 붓다 담마입니다.nbspnbspnbsp아마 인도에서도 앞으로 경제적으로 잘 사는 사람들에게 붓다 담마가 새롭게 요구될 거예요. 그래서 여러분들이 붓다 담마를 공부하면 첫째 자기자신을 위해서도 좋은 일이고, 둘째는 앞으로 여러분들이 해외에 나가 다른 나라 사람들과 교류를 하게 되면 ‘인도에서 왔다’ 하면 다 불교에 대해 질문할지도 몰라요. 그러기 때문에 여러분들이 물질적으로는 그 사람들이 우리보다 더 잘 살아도 정신적으로는 여러분들이 지도를 해줘야 합니다. 그런데 정작 부처님이 태어나신 인도에는 붓다 담마가 없단 말이예요. 그래서 여러분 석가족들이 이 붓다 담마를 공부해서 인도 뿐만 아니라 전세계로 전파하는데 앞장서야 합니다.nbspnbsp그래서 남에게 얘기하기 전에 우선 나부터 붓다 담마를 알아야 돼요. 그래서 오늘 작은 의문이라도 의문이 있는 것은 다 물어보세요.”nbsp그러면서 석가족들이 궁금해 하는 것들에 대해 질문을 받았습니다. 많은 질문들이 있었지만 그 중에서 한가지 질문을 소개합니다. 한 분이 죽고 태어나는 전생에 대해 질문을 했습니다.nbspnbsp“이런 얘기가 있어요. 강도 한명이 총 맞아 죽었는데 우리 가족이 한명 태어났어요. 그 아이에게 흉터가 하나 있었어요. 그런데 이 아이의 전생에 강도가 총맞아서 죽었고 그 강도가 이 아이로 태어났다는 이야기가 있었고 그 이야기가 맞았어요. 이건 뭐예요? 강도가 죽은 것이예요? 아이가 새로 태어난 것이예요?”nbspnbspnbsp“이런 얘기는 모든 종교마다 엄청나게 많아요. 기도해서 병이 나았다, 기도해서 대학 시험에 걸렸다, 이런 얘기는 모든 종교마다 다 있어요.nbspnbsp얼음 알아요? 얼음으로 만든 구슬 세 개를 어린 아이에게 주었다고 합시다. 어린아이는 그 구슬을 그릇에 담아 놓고 밖에 나가서 한참 동안 놀다가 돌아왔어요. 그러니까 얼음이 없어지고 물만 생겼어요. 그러면 어린 아이는 ”엄마, 얼음이 없어졌어“ 그럴 것 아니예요? ”물이 생겼다“ 이럴 것 아니예요? 왜 어린 아이는 이렇게 얘기할까요? 그것은 얼음과 물이 다르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다르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없어졌다, 생겼다“ 하고 말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얼음이 녹아서 물이 되는 과정을 아는 어른은 ”없어졌다, 생겼다“ 이렇게 말하지 않겠죠. ”모양이 변했다“ 이렇게 말하지요. 변화 과정을 아는 사람은 ”생기는 것도 아니고 없어지는 것도 아니고 다만 변했을 뿐이다“ 라고 말합니다. nbspnbspnbspnbsp이 세상 모든 사물은 변화할 뿐이지 생기고 사라지는 것이 아닙니다. 변하지 않는다고 생각하니까 생겼다 사라졌다는 생각을 하게 되는 것입니다. 이것은 우리의 제한된 인식에서 발생하는 것입니다. 실제의 세계는 변화할 뿐이예요. 태양이 영원할 것 같지만 그렇지 않습니다. 변화합니다.nbspnbsp삼각형의 내각의 합은 180도이지요. 이것을 진리라고 생각하잖아요. 그러나 이것은 진리가 아니예요. 왜 그럴까요? 여기에는 평면이라는 전제가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사는 세계는 평면이 아니예요. 지구 표면은 휘어져 있잖아요. 그렇기 때문에 우리가 알고 있는 진리는 제한된 범위 안에서만 성립하는 것이예요.nbspnbsp여기 앞에 앉은 사람과 저 사이에 최단 거리의 선은 몇 개 그을 수 있어요? 그런데 서로 뒤로 물러서서 이 사람은 북극점에 가서 서고, 저는 남극점에 가서 선다고 합시다. 그럼 선을 몇 개 그을 수 있어요? 무한히 그을 수 있어요. 왜 그럴까요? 지구가 둥그니까요. 하나 밖에 그을 수 없다는 것은 평면이라는 전제 위에서만 그렇습니다. 곡면이 되면 전혀 다른 문제가 돼요.nbspnbsp우리가 갖는 상식을 가지고 얘기하는 것과 진리는 다릅니다. 붓다 담마는 상식을 뛰어 넘어 있습니다. 인도에서 태어난 사람은 그 문화 속에서 생각하는데 붓다 담마는 그 문화를 뛰어넘어 있는 것입니다. 붓다는 2600년 전 사람이니까 2600년 전의 생각을 해야하는데, 지금 봐도 합당한 그런 생각을 하신 거예요. 그래서 붓다 담마를 진리라고 얘기하는 거예요. 그러나 그 시대에 사는 사람들은 붓다 담마를 온전하게 이해하기 어렵고 자신이 아는 범위 속에서 이해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붓다 담마의 근본 가르침을 이해해야지 다음 시대로 가면 또 안 맞아 버립니다. 인도 역사 속에서 있는 불교를 배우면 진리라고 하면서도 붓다 담마와는 다를 수 있습니다. 부처님이 계급차별이 없다고 하신 이야기는 당시 인도 사람들이 이해하기 굉장히 어려웠어요. 남녀 차별이 없다는 이야기도 알아듣기 굉장히 어려웠어요. 그래서 중간에 세상의 상식으로 그것을 없애버린 것이예요. 그런데 지금은 어때요? 계급차별이 없고 남녀차별이 없는 것이 세계적인 추세예요. 중간에 인도에 맞도록 붓다 담마를 해석한 것은 지금 와서 안 맞는 거예요. 오히려 부처님이 가르쳤던 그것이 지금 시대에 맞는 거예요. 과학이 발달하면 할수록 불교가 맞다는 것을 증명해주는 거예요.nbspnbsp저는 붓다 담마가 얼마나 위대하냐는 것을 이야기하는 것입니다. 다른 종교는 세상이 이렇게 점점 변해가면 더 이상 견디기가 어렵습니다. 그래서 아인슈타인이 이렇게 말했어요. “이 과학의 시대, 우주의 시대에 맞는 종교는 불교 밖에 없다.” 그 불교라는 것은 지금 우리가 말하는 종교가 아니라 붓다 담마를 말하는 것입니다.nbspnbsp붓다 담마는 진리입니다. 진리라는 것은 그것이 객관적으로 검증가능하다는 것입니다. 즉 그것은 있는 그대로의 사실을 말합니다. 믿음이라는 것은 이것과 조금 다릅니다. 믿음은 사실일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습니다. 우리들의 생각도 마찬가지입니다. 사실일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습니다. 우리가 갖는 지식도 마찬가지입니다. 신이 이 세상을 창조했다는 것은 믿음입니다. 그것은 사실인지 아닌지 검증할 수가 없습니다. 그렇게 믿는 사람들에게는 있는 것처럼 작용합니다. 믿지 않는 사람들에게는 의식 속에서 그것이 없습니다. 믿음은 그 개인의 문제이기 때문에 사실이냐 아니냐 논쟁할 필요가 없습니다.nbspnbsp인도에서는 모든 것을 다 전생에 한 것으로 설명해 왔습니다. 여기 두명이 싸우게 되면 전생에 원수였기 때문에 싸우게 된다, 이렇게 하면 설명은 쉽습니다. 그러나 이것은 증명할 수가 없습니다. 이런 것들을 문화라고 합니다. 어릴 때부터 이런 것들을 믿는 사람은 그것이 진실처럼 보입니다. 그러나 이것은 붓다 담마가 아닙니다. 이것은 믿음에 속합니다. 이것은 문화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것을 ‘옳다 그르다’, ‘좋다 나쁘다’ 라고 말하면 안되고 ‘아, 저 사람들은 저런 문화를 가지고 있구나’, ‘저런 믿음을 가지고 있구나’ 이렇게 봐야 합니다.nbspnbsp옛날에는 이런 문화를 갖고 있었는데 이것을 지금 시대에는 다시 검토할 필요가 있습니다. 예를 들어 전생에 복을 많이 지어서 남자가 되었고, 전생에 복을 적게 지어서 여자가 되었다고 합니다. 결국 이것은 남자와 여자를 차별하는 것을 합리화시키는 이야기입니다. 이것은 현실적으로 개선할 수 있는 문제인데도 믿음으로써 이 시스템을 그대로 인정하도록 하는 것입니다. 만약에 전생에 죄를 지어서 장애인이 되었다고 말하는 것도 장애인을 차별하는 것을 합리화하는 것입니다.nbsp부처님의 가르침은 이런 것이 아닙니다. 저 사람이 장애인이다 할 때 죄가 많아서 그렇게 된 것이 아닙니다. 그냥 다쳤거나, 유전인자적인 문제가 있거나 한 것입니다. 부처님은 그런 장애가 있다고 하더라도 장애가 없는 사람과 똑같이 존중받아야 한다는 것을 가르치셨습니다.nbspnbsp몇 년 전에 미얀마에서 싸이클론 피해가 있었습니다. 그래서 5천명이 죽었습니다. 그런데 한국의 어떤 기독교 목사는 ‘하나님을 안 믿어서 벌 받았다’ 이렇게 말했습니다. 담마는 무엇이냐? 미얀마에서 싸이클론으로 많은 사람이 죽고 많은 재산이 파괴가 되었다면, 비록 내 가족도 아니고 내 나라 사람들도 아니지만 그들이 이렇게 불행을 겪었을 때는 우리가 그들을 도와주어야 한다, 이것이 담마입니다.nbspnbspnbsp그래서 우리가 믿고 있거나 알고 있는 것과 담마는 다르다는 것을 구분할 줄 알아야 합니다. 우리 불교에도 담마가 아닌 것들이 많이 있습니다. 왜 그럴까요? 불교가 인도에 있었기 때문에 인도의 힌두 문화를 받아들여서 섞였기 때문입니다. 또 불교가 중국에 들어오면서 중국 문화와 섞이면서 중국 불교는 인도 불교와 또 다릅니다. 담마는 인도 문화와 중국 문화를 넘어서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당시 부처님도 인도의 전통문화 속에서 굉장히 저항을 받았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또 세계화가 될 수 있었던 것입니다.nbspnbsp우리는 그런 문화와 믿음을 존중해야 합니다. 그러나 여러분들은 인도 문화와 담마를 구분할 수 있어야 합니다. 담마라는 것은 사실 그대로입니다. 불교인이 봐도 기독교인이 봐도 한국인이 봐도 인도인이 봐도 다 이해할 수 있는 것입니다. 이제 질문한 것이 해결되었어요?”nbspnbsp“네”nbspnbsp이 외에도 다양한 질문이 계속 이어져 나왔습니다. 스님께서는 다양한 비유를 들어가며 자상하게 답변을 해주셨습니다. 통역을 맡은 쁘리앙카님도 마치 스님의 입이 된 것처럼 통역을 잘해주어서 석가족들은 스님의 법문을 듣고 다들 기뻐했습니다. 스님께서 “너무 어렵지 않았어요?” 라고 묻자 “좋았어요. 사회와 연결되어서 생각할 수 있어 더 좋았어요” 라고 대답했습니다. 스님께서는 “내일은 이런 불교를 어떻게 전파할 것인지를 의논해 봅시다”라고 하시면서 오늘 수련을 모두 마치셨습니다.nbspnbsp수련을 마치고 절을 나오니 밤10시가 넘었습니다. 스님 일행은 오늘 숙소인 미얀마 절로 왔고, 석가족들은 수련이 열렸던 인도 절에서 잠을 청했습니다.nbspnbsp내일은 새벽5시30분부터 명상을 하며 수련을 다시 시작할 예정입니다. 내일 또 소식 전해드리겠습니다. nbsp nbsp ▼ 배고픈 사람은 먹어야 합니다, 아픈 사람은 치료받아야 합니다, 아이들은 제 때에 배워야 합니다. JTS가 인도 둥게스와리 아이들을 위해 펼치고 있는 기아, 질병, 문맹 퇴치 활동에 함께해 주세요.nbspnbspnbspnbsp nbspnbspnbspnbsp nbspnbsp
2015.3.12 인도 10일째 수자타아카데미 유치원 병원 학교 방문
nbsp안녕하세요. 오늘 스님께서는 둥게스와리 마을 유치원과 지이바카 병원, 수자타아카데미 학년별 교실을 각각 방문하여 운영 현황을 점검하고 학생들과 선생님들을 격려해준 후 상카시아 석가족들의 수련을 위해 기차를 타고 이따와로 이동하셨습니다. nbspnbsp오늘도 새벽4시30분에 기상하여 새벽 예불과 108배 정진을 한 후 발우공양을 하였습니다. 스님께서는 발우공양을 마치고 어제에 이어서 소심경의 의미에 대해 법문을 해주셨습니다.nbspnbspnbsp“음식 배분이 모두 끝나면 공양을 먹기 전에 내가 받은 이 공양을 먼저 베풀어야 합니다. 상공시방불, 위로는 부처님께 공양을 올립니다. 중공제현성, 가운데로는 모은 현인과 성인들께 공양을 올립니다. 현인이라는 것은 현명한 사람, 지혜로운 사람을 말하고, 성인이라는 것은 성문승, 연각승, 보살승과 같이 아라한과를 증득한 사람을 말합니다. 하급군생품, 아래로는 일체 중생의 무리들에게 이 공양을 베풉니다. 등시무차별, 차별없이 똑같이 베푸노니. 수함개포만, 이것을 다 받아서 배불러지이다. 영금시수등, 주는 이와 받는 이가 다함께. 득무량바라밀, 한량없는 바라밀을 증득하여지이다. nbspnbsp즉, 차별없이 베푸노니 다 받아 배불러지이다. 이 음식을 베푼 자와 받아먹는 자가 다같이 한량없는 바라밀을 얻어지이다, 이런 뜻입니다.”nbspnbsp스님께서는 이렇게 설명을 해주신 후 다함께 이 뜻을 새기며 다함께 이 게송을 함께 읊어보자고 하셨습니다.nbspnbsp“차식색향미, 상공시방불, 중공제현성, 하급군생품, 등시무차별, 수함개포만, 영금시수등, 득무량바라밀”nbspnbsp이렇게 발우공양을 마치고, 오전 9시부터는 14개 마을 유치원의 전체 책임자인 인드리짓 선생님과 함께 그동안 마을 방문을 하면서 미처 방문하지 못한 유치원 세 곳을 방문하여 운영 현황을 점검한 후 학생들과 선생님을 격려해 주셨습니다.nbspnbsp▲ 소라즈비가 마을 유치원nbsp먼저 소라즈비가 마을 유치원에 들렀습니다. 스님께서 유치원 건물 안으로 들어서자 아이들은 일제히 “나마스떼” 하며 스님을 반겼습니다.nbspnbspnbsp스님께서는 “선생님 말씀 잘 들어야 해요” 라고 학생들에게 강조하고 아이들에게 과자 한봉지씩을 나눠주신 후 바로 다음 마을로 이동하셨습니다.nbspnbsp전정각산을 반바퀴 돌아서 산 넘어 가왈비가 마을 유치원에 도착했습니다. 평소의 운영 모습을 점검하기 위해 아무런 예고 없이 갑자기 방문을 하셨는데, 원래는 4살 연령의 너서리반, 5살 연령의 LKG반, 6살 연령의 UKG반 3개 반으로 나뉘어져 운영되어야 하는데 한반에 모두 합쳐서 수업이 진행되고 있었습니다. 언니, 오빠를 따라온 3살, 4살 또래의 아이들은 엉엉 울음을 터뜨리기도 해서 도저히 수업이 진행이 안될 정도였습니다.nbspnbsp▲ 오빠 등에서 떨어지지 않으려는 너서리반 아이들nbsp스님께서 원인을 물으니 “원래 교사를 하던 중학생들이 오늘 시험을 치러 가서 초등학교 교사 한분이 대신해서 오는 바람에 교사 수가 부족해서 오늘만 한반으로 합쳤다”고 합니다. 그래서 스님께서 다시 3개 그룹으로 나누어서 앉힌 다음에 각각의 그룹에 대해 “유치원에 결석하지 말고 열심히 나올 것”을 당부하시면서 선물로 과자를 하나씩 나눠주셨습니다.nbspnbspnbsp▲ 가왈비가 마을 유치원nbsp다음은 까나홀 마을의 수자타아카데미 분교에 소속되어 운영되고 있는 까나홀 마을 유치원을 방문했습니다. 이곳은 까나홀 분교의 카필데오지 분교장선생님이 직접 관리를 하고 있어서 그런지 다른 유치원에 비해 아이들이 조금 더 질서있고 체계적으로 교육을 받고 있는 것 같았습니다. 까나홀 유치원 아이들에게도 “선생님 말씀 잘 들어야 해요” 라고 강조한 후 과자 한봉지씩을 나눠주셨습니다.nbspnbsp▲ 까나홀 마을 유치원nbsp이어서 까나홀 분교의 각 교실을 방문하여 초등학교 1학년과 2학년 학생들이 어떻게 수업을 받고 있는지 둘러보셨습니다. 먼저 2학년 교실에 들어가셔서 아이들이 덧셈과 뺄셈을 배우고 있자 스님께서 직접 수학 문제를 칠판에 내셨습니다.nbspnbsp▲ 수자타아카데미 까나홀 분교nbsp“6053 누가 나와서 한번 풀어볼래요?”nbsp모두들 망설이고 있다가 한 학생이 나와서 문제를 풀었는데 처음에는 68을 썼다가 답이 아니라고 하자 다시 계산하더니 58을 쓰자 스님께서 “참 잘 했어요” 라고 칭찬해 주셨습니다. 그리고 학생들에게 다음의 다섯 가지를 반드시 지킬 것을 강조하셨습니다.nbspnbsp▲ 수자타아카데미 까나홀 분교 2학년 교실nbsp“수자타 아카데미 학생들은 다섯 가지를 꼭 지켜야 해요. 한번 따라해 보세요.nbspnbsp첫째, 때리지 않는다.nbsp둘째, 훔치지 않는다.nbsp셋째, 거짓말하지 않는다.nbsp넷째, 욕하지 않는다.nbsp다섯째, 화내지 않는다.nbspnbsp이해하시겠어요?”nbspnbsp“네”nbspnbspnbsp“그럼 새해 선물을 드릴게요. 앞으로 한명씩 나와보세요 .”nbspnbsp학생들은 스님께서 강조하신 다섯가지를 세 번씩 반복하며 큰 목소리로 따라했습니다. 그리고 차례대로 줄을 서서 앞으로 나와 스님께 용돈을 받고 나서는 다들 즐거워하며 “단야바드” 하고 자리에 앉았습니다.nbspnbspnbsp이렇게 산 너머에 있는 분교와 유치원을 둘어보신 후 다시 수자타아카데미로 들어오셨습니다. 다음은 지이바카 병원에 들러 병원의 운영 상황을 점검하고, 환자들을 진료하고 있는 Dr. 파닥 의사선생님에게 몇가지 질문을 하며 대화를 나누셨습니다. nbspnbsp▲ 지이바카 병원nbsp▲ 호모 페틱 진료를 맡고 있는 Dr. 파닥 선생님nbsp“주로 어떤 환자들이 많이 와요?”“계절이 바뀌면 감기 환자들이 많이 와요.”nbspnbsp“병원에 필요한 것이 뭐가 있어요?”“다 괜찮아요”nbspnbsp“호모 페틱은 주사요법은 없고 수술도 없고 약물요법만 있어요?”“수술도 있어요”nbspnbsp“인도에서 호모 페틱은 어느 정도 호응을 얻고 있어요?“50 정도의 사람들이 이용하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부작용이 없기 때문입니다.”nbspnbsp“호모 페틱은 어느 나라에서 시작된 거예요?“독일이요”nbspnbsp“한국에는 호모 페틱이 없는데, 어느 나라에서 주로 호모 페틱을 이용해요?”“독일, 프랑스, 영국, 유럽, 방글라데시, 인도, 아프가니스탄, 파키스탄 등 많은 나라에서 이용하고 있어요. 그 중에서 인도, 파키스탄, 방글라데시에서 가장 호응이 좋아요.”nbspnbsp“어떤 병이 호모 페틱에 효과가 좋아요?”“모든 병에 효과가 좋아요. 양의로 낫지 않는 병도 호모 페틱으로는 나아요.”nbspnbsp그리고 방금 수술을 마치고 나온 까미스와지 의사선생님에게도 몇 가지 부탁을 하셨습니다.nbspnbspnbsp“마을에 갔더니 환자들의 건의사항이 병원이 너무 일찍 문을 닫아서 치료받을 기회가 없다고 민원이 많더라구요.”nbspnbsp“여기서 일하는 학교 아이들 때문에 어려워요. 학교 아이들이 여기서 일하고 있는데, 여기 일 끝나면 가서 밥 먹고 자기 수업도 들어야 하니까 길게 시간을 못내요.” nbspnbsp“주민들에게 ‘왜 병원에 안오느냐?’ 하니까 ‘가면 병원 문이 닫혀 있어서 그렇다’고 그래요. 그리고 자르하리에 가니까 몸 전체에 화상을 입은 사람이 있더라구요. 그리고 바가히에 가니까 저체중아가 한명 있더라구요. 제가 오늘 병원에 오라고 했거든요. 잘 치료해 주세요.” nbspnbsp그리고 진료실, 수술실, 약품실, 입원실을 차례대로 둘러보셨습니다. 입원실에는 마침 두르가푸르에 살고 있는 1학년 학생 한명이 누워 있어서 어디가 아픈지 잠깐 대화를 나누셨습니다. nbspnbspnbsp그리고 병원 담당자인 박종화님에게는 “늦게라도 환자가 찾아오면 까미스와르지에게 전화를 해서 진료를 해달라고 연락을 하세요” 라고 말씀하시면서 아픈 사람들이 최대한 치료받을 수 있게 해줄 것을 당부하셨습니다.nbspnbsp병원을 다 둘러보신 후에는 숙소로 들어오셔서 라면으로 점심 식사를 하셨습니다. 잠시 쉬었다가 12시30분에는 수자타아카데미 학교 건물로 가셔서 1층 교실부터 3층 교실까지 차례대로 둘러보셨습니다.nbspnbspnbsp“나마스떼”nbspnbsp“몇학년?”“1학년입니다.”nbsp“두르가푸르에 사는 사람 손들어 보세요. 자그디스푸르에 사는 사람 손 들어보세요. 방갈비가에 사는 사람 손들어 보세요. 지금 뭐 배우고 있어요?“nbsp“과학 배우고 있어요.”nbspnbsp“결석 하지 말고 학교에 다녀야 해요.”nbsp“네”nbsp“공부 잘하면 계속 지원해줄 테니까 열심히 해요.”nbspnbspnbsp그리고 2,3,4,5학년 교실에도 차례대로 들어가 보셨습니다.nbspnbsp“몇 학년이예요?”“5학년이예요.”nbsp“지난 1년 동안 한번도 결석 안 한 사람 손들어 보세요.”nbspnbspnbsp“잘 했어요.”nbspnbsp“책상은 몸에 맞아요? 너무 크지 않아요?”nbsp“괜찮습니다.”nbspnbspnbspnbsp“책상이 몸에 맞아요?”“저에게는 좀 큽니다.”nbspnbsp“열심히 공부해요. 열심히 공부하면 지원해 드릴게요. 결석하면 안돼요.”nbspnbsp그리고 선생님은 “3층 교실은 지붕이 시멘트 지붕이 아니라서 여름에는 너무 덥다”고 이야기 했습니다. 스님께서 “1층으로 내려와서 공부하면 안되는가” 하시며 대책을 생각해보셨는데, 1층 교실은 창고로 사용하고 있었습니다. 어쨌든 대책이 필요해 보였습니다. 그리고 책상이 없는 교실들도 많아서 스님께서는 “교실마다 책상을 다 넣어주라”고 이야기해 주시면서 “직접 제작하는 것과 구입하는 것 중에서 가격 차이가 어느 정도 나는지 파악해 볼 것”을 부탁하셨습니다. nbspnbsp▲ 지붕에서 내려오는 열기가 심한 3층 복도와 교실nbsp이렇게 교실을 다 둘러본 후 스님께서는 유치원 전체 책임자인 인드라짓과 학교 전체 책임자인 빠완에게 “교육 관련해서 필요한 것 있으면 적어서 저한테 전달해 주세요.” 라고 말씀하신 후 숙소로 들어오셨습니다.nbspnbsp▲ 유치원 책임자인 인드라짓과 학교 책임자인 빠완nbspnbspnbsp그리고 오후에는 석가족 청년들을 위한 수련을 해주러 가기 위해 오후 2시50분 기차를 타고 가야에서 이따와로 이동하셨습니다. 트럭을 타고 가야역으로 가는데 햇살이 평소보다 더욱 강렬해져 가고 있었습니다. 스님께서는 “오늘 날씨는 정말 덥네. 어제 마을 방문을 다 마쳐서 다행이다” 하시며 웃으셨습니다.nbspnbsp오후2시50분에 가야역을 출발한 기차는 밤새 달려서 내일 새벽1시30분에 이따와 역에 도착할 예정인데, 아마도 인도 기차의 특성상 도착시간이 많이 연기될 것 같습니다. 상카시아에는 아침녘에 도착하지 않을까 싶네요.nbspnbsp▲ 상카시아로 가는 기차 안nbsp기차 안에서는 인도JTS 활동가들과 함께 그동안 사업 논의를 해오면서 미진했던 부분들에 대해서 더 깊이있는 이야기를 나누셨습니다. 마을마다 청년회와 부녀회를 어떻게 조직해서 마을마다 활기를 불어넣을 것인지, 유치원을 어떻게 강화하고 학부모회를 조직해서 감시 기능을 어떻게 갖출지, 병원 파트는 어떻게 운영할지, 이번에 새로 파견을 온 행자님들의 소임 배정은 어떻게 할지, 공동체의 수행적 원칙을 인도의 상황을 고려하여 적용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상카시아 석가족들을 위한 지원을 어떻게 할지 등에 대해서 많은 이야기들을 나누었습니다. 스님께서는 기차를 타고 다니실 때에도, 언제 어디서나 늘 연구하시는 모습을 보여주시는 것 같습니다.nbspnbsp스님과 함께 사업논의를 하고 있는 동안 창 밖으로는 인도의 들녘이 끝없이 펼쳐졌습니다.nbspnbspnbsp내일은 오전에 상카시아에서 점안식 및 개원법회를 한 후 오후부터는 석가족 청년들을 위한 1박2일 동안의 수련을 진행하실 예정입니다. 내일 또 소식 전해드리겠습니다. nbsp nbsp ▼ 배고픈 사람은 먹어야 합니다, 아픈 사람은 치료받아야 합니다, 아이들은 제 때에 배워야 합니다. JTS가 인도 둥게스와리 아이들을 위해 펼치고 있는 기아, 질병, 문맹 퇴치 활동에 함께해 주세요.nbspnbspnbsp nbspnbsp nbspnbspnbspnbsp nbspnbsp
2015.3.11 인도 9일째 스리람푸르 바가히 까나홀 가왈비가 자르하리 마을 방문
▲ 둥게스와리 까나홀 마을nbsp안녕하세요. 오늘 스님께서는 JTS가 구호활동을 하고 있는 스리람푸르, 바가히, 까나홀, 가왈비가, 자르하리 등 5개 마을의 523가구를 모두 방문하여 쌀을 나눠주고 새해 인사를 하셨습니다. 오늘로서 전정각산을 둘러싼 둥게스와리 지역 전체 1,433가구에 대한 쌀 배분을 모두 무사히 마칠 수 있었습니다.nbspnbspnbsp오늘도 새벽4시30분에 기상하여 새벽 예불 및 108배와 명상을 한 후 6시30분부터 발우공양을 함께 하였습니다. 발우공양을 마치고 스님께서는 어제에 이어서 소심경에 대한 법문을 해주셨습니다.nbspnbsp“오늘 소심경 강의는 십념입니다. 열가지를 염한다는 뜻인데, ‘염’이라는 것은 또렷이 깨어있는 것을 말합니다. 즉 열가지에 대해서 뚜렷한 알아차림을 유지한다는 뜻입니다. 그 열가지 중에 핵심이 불법승 삼보입니다. 수행자는 불법승 삼보에 귀의하는 것이 굉장히 중요합니다. 우리는 수행자이지 사제가 아닙니다. 불교의 가르침은 우리의 운명을 좌우하는 나 밖의 어떤 존재가 있고 그 존재에 위해서 우리가 조정되는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누군가에게 빈다고 우리의 인생 문제가 해결되는 것이 아니라 무지를 깨치고 까르마를 고쳐서 번뇌가 없는 삶을 산다, 이 관점이 분명하기 때문에 세상의 모든 종교들과 근본적으로 입장이 다릅니다.nbspnbspnbsp이런 가르침을 주신 위대한 스승인 붓다에게 귀의한다는 것이 분명하지 않으면 붓다의 위대함을 모르는 것입니다. 그냥 세상의 다른 종교와 똑같아요. 그래서 이 진리를 스스로 깨달으시고 우리에게 가르쳐주신 붓다의 위대함과 중생을 어여삐 여기시는 그분에 대한 존경이 있어야 합니다. 이것의 귀의불입니다.nbspnbsp둘째, 그분의 가르침은 우리를 해탈과 열반으로 인도하기 때문에 세상의 다른 가르침과는 성격이 완전히 다르기 때문에 이 가르침에 귀의한다는 입장이 분명해야 합니다.nbspnbsp셋째, 이 가르침에 따라 수행정진하는 사람들은 진짜 위대한 사람들입니다. 세상의 관습과 풍속과 문화에 젖어서 사는 이 세상에서 그와 전혀 다른 이 길을 가는 이 수행자들은 정말 중생으로부터 존중받을 만한 사람들입니다.nbspnbsp그래서 이렇게 불법승 삼보를 그냥 형식적으로 하는 것이 아니예요. 입장이 분명하면 수행생활 하는 것이 쉽고, 그렇지 않으면 아무리 절에 오래 살아도 수행 생활이 어렵습니다. 여러분들도 여기 수행자라고 하고 와 있는데 늘 비교를 세속에 있는 내 친구와 부모님 말씀을 듣고 합니다. “저기는 자가용이 있는데...”, “이웃집 누구는 결혼을 했는데 너는 왜 그러니?” 이런 말에 자꾸 흔들리는 이유는 입장이 분명하지 않다는 것입니다.nbspnbspnbsp부처님은 수행하실 때 마왕이 “지금 수행을 포기하고 신에게 제사를 지내면 전륜성왕이 될 수 있다”고 계속 유혹을 하잖아요. 그러나 부처님께서 “그런 소리를 하지 마라” 이렇게 단호하지 않았습니까. 빔비사라왕이 “당신 같이 훌륭한 사람이 이렇게 수행하는 것은 옳지 않다. 그러니 나와 함께 내 나라를 다스리자. 그것도 싫다면 내가 내 나라를 줄테니 너가 다스려라. 그것도 부담스럽다면 내가 군대를 줄테니까 너가 큰 나라를 만들어라” 이런 식으로 제안했을 때 부처님께서는 “대왕이시여, 제 입에 있는 가래침이 필요없다고 뱉은 사람이 누가 뱉어 놓은 더 큰 가래침을 보고 주워 먹는 사람이 있습니까?” 라고 대답합니다. 이렇게 왕의 자리를 가래침에 비유했습니다. 이렇게 흔들리지 않았습니다. 우리가 흔들리는 이유는 부와 명예와 권력을 추구하는 지극히 세상의 가치에 기준을 두니까 ‘나는 아무것도 아닌가’ 자꾸 이런 생각이 드는 것입니다. nbspnbsp이 세상 모든 사람들이 지위를 추구하고, 돈을 추구하고, 명예를 추구하고 사는데 그런 길을 가는 세상 사람들이 행복하냐? 여러분들은 그렇지 않다고 해서 지금 이 길을 온 것이잖아요. 그런데 현실의 불교는 제 실력으로 좋은 대학에 못 가니까 부처님 빽을 써서 좋은 대학에 가겠다는 이것이 입시 기도 아닙니까. 이것은 이 세상에서도 불공정한 경쟁을 조장하는 부정·부패한 것입니다. 이것은 세속보다 더 못한 것이잖아요.nbspnbsp그러니 삼보에 귀의하는 것이 얼마나 소중합니까. 세속에 물드는 존재가 아니라 세속의 때를 씻어주는 사람, 물 들이는 사람이 되는 것이 붓다의 길입니다. 여러분들이 수행자로써 살아감으로 해서 여러분의 부모님들도 여러분들을 보고 처음에는 반대하다가 ‘아, 나도 저 길을 가야되겠다’, ‘나는 못가더라도 격려라도 해줘야 되겠다’ 이렇게 된다든지, 형제들이나 친구들도 후원자가 된다든지 해야 하는데, 친구들과 어울리다보면 친구들이 여러분의 영향을 받아서 이 좋은 길에 입문하기 보다는 밥한끼 얻어먹거나 술한잔 같이 하다보면 여러분들이 친구들한테 물들잖아요. 그래서 집에 한번 다녀오면 고민이 생깁니다.nbspnbspnbspnbsp이것은 수행자로서의 입장이 불분명하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그래서 항상 수행을 기초로 해야 합니다. 그 핵심이 삼보에 귀의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늘 기준으로 삼아야 할 것은 부처님 당시의 수행자들입니다. 부처님 당시의 수행자들은 나무 밑이나 동굴에서 잤는데 내가 그렇게는 못해도 그보다는 잠자리가 낫다, 옷은 다 떨어진 분소의를 입었는데 나는 그보다는 낫다, 음식은 동네에서 얻어 먹었는데 아무리 반찬이 없어도 그것보다는 내가 낫다, 이렇게 기준을 부처님과 수행자들에게 두고 항상 거기에 못 미치는 나에 대해서 근신하고 살아야 되는데, 기준을 세속 사람들에게 늘 두고 사니까 자꾸 힘들다는 얘기를 하게 되는 것입니다.nbspnbsp그래서 십념에서는 무엇을 기준으로 삼아야 하는지를 이야기해 줍니다. 먼저 법신, 보시, 화신 세 분의 부처님과 저 타방에 있는 극락 세계의 아마타 부처님, 미래에 오실 미륵 부처님, 이 다섯 부처님을 비롯한 모든 부처님께 귀의합니다. 그리고 모든 부처님의 가르침에 귀의합니다. 그리고 모든 스승님들께 귀의하는데, 우리는 대승불교이니까 문수보살, 보현보살, 관세음보살, 지장보살 등 모든 존귀하신 보살님들께 귀의를 합니다. 이것이 십념입니다. 이런 마음을 가지고 걸식을 하면 ‘이 집이 밥을 많이 줄까’ 이런 생각을 하는 것이 아니라 오직 불법승 삼보만 생각을 한다 이런 뜻입니다. 그리고 수행자는 계정혜 삼학을 닦아야 하니까 이어서 계정혜를 생각합니다. 즉 십념은 발우를 펴면서 또 음식을 담으면서 불법승 삼보에 귀의하고 계정혜 삼학을 닦아나가야 함을 다시한번 확인하는 그런 내용입니다.”nbspnbsp그러면서 스님께서 다같이 십념 부분을 같이 외워 보자고 하자 큰 목소리로 게송을 읊어 보앗습니다.nbspnbsp“청정법신 비로자나불, 원만보신 노사나불, 천백억화신 석가모니불, 구품도사 아미타불, 당래하생 미륵존불, 시방삼세 일체제불, 시방삼세 일체존법, 대지문수 사리보살, 대행 보현보살, 대비 관세음보살, 대원본존 지장보살, 제존보살마하살 마하반야바라밀.nbsp불삼신진언 옴 호철모니 사하바, 법삼장진언 옴 불모규라혜 사바하, 승삼승진언 옴 수탄복다혜 사바하, 계장진언 옴 흐리브니 사바하, 정결도진언 옴 합부리 사바하, 혜철수진언 옴 나자바니 사바하”nbspnbsp스님의 말씀을 듣고 나니 아침마다 늘 수행자의 마음으로 돌아갈 것을 다시한번 다짐해보고 활기차게 하루를 시작했습니다. 발우공양을 마치고 나서는 마을 방문을 하러 나가기 위한 준비를 했습니다.nbspnbsp오늘은 전정각산의 산너머에 있는 5개 마을 523가구를 방문하기로 했기 때문에 아침부터 쌀을 트럭에 싣느라 평소보다 더 분주했습니다. 8시에 수자타아카데미를 출발하여 제일 먼저 도착한 마을은 ‘스리람푸르’입니다. 스리람푸르는 총 92가구가 살고 있는데, 스님께서는 입구의 첫 집에서부터 시작해서 골목 사이 사이를 찾아가며 쌀을 나눠주고 새해 인사를 하셨습니다.nbspnbsp▲ 오늘 523가구에 나눠줄 쌀을 이동하고 있는 인도JTS 활동가 주연우님nbspnbspnbsp오늘은 방문해야 할 집들이 너무 많아서 집집마다 찾아가 간단히 인사만 하고 쌀을 나줘주었습니다. JTS에서 인구 센서스 조사를 통해 집집마다 가족사항이 적힌 카드를 만들어 놓아서 카드를 보여주면 바로 쌀을 나눠주는 방식으로 중복이 되지 않도록 하면서 쌀을 나눠주었습니다. 그만큼 카드가 소중하기 때문에 집집마다 비닐 봉지 깊숙한 곳에 꼭꼭 숨겨서 보관하는 경우가 많았습니다.nbspnbsp▲ JTS에서 발급한 카드를 확인하고 있는 스님nbsp스리람푸르는 돌광산 근처에 있는 마을이라 남자들은 돌광산에서 일하는 경우가 많이 있었는데 최근에 돌광산이 중단되면서 일을 못하고 집에서 놀고만 있는 남자들이 많이 보였습니다. 놀고 있는 남자들에 대해 대책이 필요할 것 같았습니다.nbspnbsp다음은 바가히 마을로 넘어와서 총 100가구에 대해서 집집마다 다니면서 쌀을 나눠주고 새해 인사를 하였습니다.nbsp방문하는 중에 저체중아를 한명 발견해서 내일 지이바카 병원에서 진료를 받도록 하는 일이 생기기도 했습니다.nbspnbspnbsp“홀리 잘 보내셨어요?”nbsp“아니요. 아기가 아파요.”nbspnbsp“왜요?”nbsp“아이에게 영양이 부족해요.”nbspnbsp▲ 영양실조 상태에 놓여 있는 아이를 안고 있는 아기 엄마nbsp스님께서는 병원 담당자인 박종화님에게 “한번 체크해보라”고 하셨는데 박종화님이 “저체중아가 맞습니다” 라고 하자 스님께서는 아기 엄마에게 “내일 병원에 한번 나와서 진료를 받으세요” 라고 말씀하셨습니다.nbspnbsp바기히는 가야시에서 마을개발 시범마을로 선정이 되어서 많은 부분 시설 보완이 된 집과 깔끔하게 정비된 골목이 많았습니다. 특히 인상적인 것은 수도관을 설치해서 집집마다 수도가 나오게 했다는 점과 하수도를 만들어서 물이 흘러가도록 했다는 점, 전기가 들어오는 집이 있다는 것이였습니다. 인도 정부에서도 이제 이곳 천민 마을에 대해서 관심을 갖고 지원을 하기 시작한 것 같았습니다.nbspnbsp▲ 바가히 마을에 수도관이 설치된 모습nbsp▲ 골목마다 설치된 하수도nbsp▲ 전기가 들어오는 모습nbspnbsp그러나 지금까지 방문했던 마을들에 비해서 개발된 정도가 너무나 확연히 차이가 나서 깜짝 놀라기도 했습니다.nbspnbsp그리고 JTS가 세운 스리람푸르와 바가히의 마을 유치원에 잠깐 들러 아이들이 어떻게 공부하고 있는지를 둘러보았습니다. 아이들은 선생님의 구령에 맞춰 “A, B, C, D, E ......” 알파벳을 큰 소리로 외우고 있었습니다. 스님께서는 아이들에게 “선생님 말씀 잘 들어야 해요” 라고 강조한 후 과자 한봉지씩을 선물로 나눠주셨습니다.nbspnbsp▲ 스리람푸르 유치원nbsp바가히 마을 방문을 모두 마치고 까나홀 마을로 지나가는 길에 큰 나무 아래에 그늘이 넓게 드리워져 있었습니다. 스님께서 “잠깐 그늘 밑에서 쉬었다 가자” 하셔서 물로 목을 축이고 앉아서 과자를 나눠 먹었습니다. 다닐 때는 무척 더웠는데 나무 밑에 앉아 있으니 바람이 불어와서 아주 시원했습니다.nbspnbsp▲ 나무 그늘 아래에서 잠시 휴식 시간nbsp다음은 까나홀 마을로 이동해서 총 190가구를 모두 방문하고 쌀을 나눠주고 새해 인사를 하였습니다. 까나홀 마을은 둥게스와리 전체에서 가장 큰 마을입니다. 또 양민 마을이여서 집집마다 농사를 짓고 소도 많이 키우고 있었습니다.nbspnbsp▲ 넓은 농토와 높게 쌓은 짚을 갖고 있는 까나홀 마을nbspnbsp그런데 좁은 골목 사이로 빼꼭히 집들이 들어서 있고, 심지어 어떤 골목은 사람 한명이 겨우 지나다닐 정도로 비좁았습니다. 거기다가 동네 아이들이 계속 쫓아와서 좁은 골목을 비집고 다니는데 어려움을 겪기도 했습니다. 스님께서는 “이렇게 골목이 좁아서 어떻게 살지?” 하시며 “집이 서로 떨어져 있는 천민마을이 훨씬 나은 것 같다”고 하셨습니다. 아무리 잘 사는 양민이라고 하지만 앞으로 집집마다 차가 생기면 주차할 공간도 필요할텐데 이 마을 사람들은 이사를 가지 않는 이상 골목이나 마당을 더 가지기가 어려울 것 같았습니다. 그래서 그런지 어떤 집은 가왈비가 마을에도 집을 하나 더 지어서 집을 두 채 가진 경우도 있었습니다.nbspnbsp▲ 까나홀 마을의 좁은 골목길 사이로 쌀을 나루고 있는 인도JTS 활동가들nbsp스님께서는 까나홀 마을의 좁은 골목길을 다니며 인사를 하셨는데, 초반에는 인도인 활동가들이 골목길 사이로 쌀을 나르다가 길을 잃어버려서 다른 마을에 비해서 시간이 더 지체되기도 했습니다.nbspnbspnbsp“홀리 잘 보내셨어요?”“네”nbspnbsp“음식 뭐 만들어 먹었어요?”“뿌와 만들어 먹었어요”nbsp“왜 나는 안 주고 혼자서만 먹었어요?”nbsp“지금 드릴까요?”nbspnbsp“아니요. 농담이예요.nbsp이 소는 누구 것이예요?”nbsp“제가 키우는 소예요.”nbspnbsp“새해 선물 가져왔으니 받으세요.”nbspnbspnbsp양민 마을이여서 그런지 다른 마을에 비해서 대부분 여유가 있어보이고 옷차림새도 더 깔끔해 보였습니다. 그리고 집집마다 소를 다섯 마리 이상 가지고 있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골목마다 소가 많이 묶여져 있는 모습에서 잘 사는 마을임을 금방 느낄 수 있었습니다.nbspnbsp▲ 집집마다 소를 키우고 있는 까나홀 마을nbsp그럼에도 불구하고 마을 곳곳에 있는 우물은 많이 지저분하고 핸드펌프가 설치되어 있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이 마을 출신 교사에게 다시 물어보니 “잘 사는 집은 집 마당에 핸드펌프가 설치되어 있다” 고 합니다.nbspnbsp▲ 까나홀 마을의 우물nbspnbsp190가구나 되는 큰 마을이다 보니 방문을 다 마치지 못한 채 점심 시간이 되었습니다. 까나홀 마을에는 아이들 수가 많아서 수자타아카데미의 분교가 세워져 있는데. 까나홀 분교에서 점심을 함께 먹었습니다.nbspnbsp▲ 수자타아카데미 까나홀 분교nbsp오전 내내 걸었더니 무릎이 아프고 발바닥이 뻐근했는데 앉아서 밥을 먹으니 밥도 맛있고 이제 좀 숨을 돌릴 수 있을 것 같았습니다.nbspnbsp▲ 인도인 스텝들과 함께 점심 식사를 하고 있는 JTS 활동가들nbsp점심식사 후에는 수자타아카데미 분교 교장을 맡고 있는 카필데오지가 스님께서 오셨다고 학교로 찾아와서 스님께서는 분교 운영에 대해 카필데오지랑 잠시 이야기를 나누셨습니다. 예전에는 까나홀 마을 아이들의 대부분이 수자타아카데미 분교에 다녔는데 최근에는 모두 정부학교로 보내게 되면서 현재는 1학년에 66명, 2학년에 40명 총 106명이 분교에 다니고 있다고 합니다.nbspnbsp▲ 수자타아카데미 까나홀 분교 교장선생님인 카필데오지nbspnbsp이어서 다시 마을방문을 시작했습니다. 스님께서는 “오늘 갈 길이 멀어요. 우리가 아니면 대신 해 줄 사람도 없기 때문에 어차피 우리가 해야 하는 일” 이라고 하시면서 스탭들에게 다시한번 힘을 낼 것을 부탁하셨습니다. 점심을 먹고 나니 몸이 노곤해지려고 했는데 스님의 기운 찬 목소리를 들으며 모두들 벌떡 일어나서 다시 마을로 향했습니다. 육십이 넘으신 스님께서 서른살 청년들에게 기운을 넣어주시고 계시는 모습을 보니 좀 이상하기도 해서 웃음이 나왔습니다.nbspnbsp▲ 오후 방문 일정을 힘차게 시작하시는 스님nbsp분교를 나와서 걸어가고 있는데 까나홀 마을 주민들이 “JTS 식구들에게 보시하고 싶다” 고 하면서 감자 한 포대를 주었습니다. 스님께서는 “아니, 우리가 돈을 주고 살게요” 라고 했지만 마을 주민들이 보시한 것이라고 하자 그 마음을 그대로 받아주셨습니다. 가난하지만 고마운 마음을 나눌 줄 아는 둥게스와리 주민들을 보니 잔잔한 감동이 일었습니다.nbspnbsp▲ 까나홀 마을 주민들이 보시한 감자 한 포대nbspnbsp오후에는 까나홀 마을에서 아직 찾아가지 못한 집들을 더 방문하고 가왈비가 마을로 이동했습니다. 가왈비가 마을로 넘어와서 총 95가구를 모두 방문하고 쌀을 나눠주었습니다. 가왈비가 마을은 도로를 중심으로 양쪽으로 집들이 차례대로 늘어서 있어서 쌀 배분이 비교적 수월했습니다. nbspnbspnbsp“홀리 잘 보내셨어요?”nbsp“네”nbspnbsp“홀리 때 무슨 음식 만들어 먹었어요?”“집이 가난한데 뭐 먹을 것이 있겠어요?”nbspnbsp“새해 선물 가져왔어요.”nbspnbsp마을 주민들은 스님과 JTS 활동가들에게 “단야바드” 라고 인사를 하면서 모두들 고마워 했습니다. nbspnbsp어떤 할머니는 계속 스님을 쫓아와서 “아까 전에 밭에 다녀온 사이에 우리 집이 빠졌어요” 라고 하기도 해서 JTS에서 발급한 카드를 확인하고 쌀을 나눠주기도 했습니다. nbspnbspnbsp다음은 이번 마을 방문의 마지막 종착지인 자르하리 마을로 이동했습니다. 자르하리 마을은 전정각산에서 멀리 떨어져 있는 마을이라 트럭을 타고 이동했습니다. 밀밭이 넓게 펼쳐진 평원을 10분 정도 차를 타고 가니 자르하리 마을이 나왔습니다. 마을로 들어가는 길에 논밭이 많아서 차를 세우고 걸어서 마을로 들어갔습니다. nbspnbspnbsp▲ 자르하리 마을로 들어가는 길nbsp주민들은 먼곳에서 온 JTS 활동가들을 무척 반겨주었습니다. 총 46가구를 집집마다 방문하며 새해 인사를 하고 쌀을 나눠주었습니다. 가구수가 적어서 다른 마을에 비해 금방 배분을 마치고 다시 수자타아카데미로 돌아왔습니다.nbspnbsp▲ JTS 스텝들을 졸졸졸 따라다니며 환영을 해준 자르하리 마을의 아이들nbsp이렇게 해서 오늘 하루 동안 523가구에 대한 방문을 모두 마쳤고, 또 지난 4일 동안 진행된 둥게스와리 전체 1,433가구에 대한 방문도 모두 마무리 지을 수 있었습니다. 스님께서는 “다들 수고가 많으셨어요. 다 방문할 수 있을까 걱정했는데 다 해내었네요.” 하시며 인도인 활동가와 한국인 활동가들 모두에게 격려를 해주셨습니다. nbspnbspnbsp▲ 523가구에 대한 방문을 모두 마치고 홀가분한 표정을 지으시는 스님nbsp큰 일을 해내었다는 뿌듯함 때문인지 수자타아카데미로 돌아오는 발걸음은 한결 가벼워져 있었습니다. 스님께서도 “원래 내일까지 방문할 계획인데 오늘 다 마쳤으니 하루 벌었다”고 하시면서 좋아하셨습니다.nbspnbsp개인정비 시간을 가진 후 저녁6시45분부터는 어제에 이어서 오늘 마을 방문에 대한 평가 및 인도JTS 사업 논의를 진행하였습니다. 3시간 동안 많은 논의를 하였지만 다 소개해 드리지는 못하고 스님께서 마을 주민들과 항상 회의를 하는 이유에 대해 말씀하신 내용을 짧게 소개해 드립니다.nbspnbspnbsp“마을별로 6개 조직을 구성하면 좋겠다고 제가 말씀드렸는데, 마을별로 23명씩을 불러서 의견 청취를 한번 들어보면 좋겠네요. 선생님들이나 마을 주민들과 회의를 해야 하는데요. 결정을 하기 전에 의견 청취를 해야 하는 이유는 두가지입니다. 첫째는 우리 생각이 아닌 진짜 주민들의 실정에 맞는 결정을 하기 위해서이고요. 둘째는 별다른 의견이 나오지 않아도 회의를 하는 이유는 결정을 통보받는 방식이 아니라 사전에 논의구조에 참가시키기 위한 것입니다. 이것은 민주주의 훈련에 있어서 굉장히 중요한 것이예요. 이렇게 하지 않으면 마을 주민들이 인도처럼 위에서 밑으로 내리먹이는 구조에서 민주적인 훈련을 받을 기회가 거의 없어요. 그렇게 함으로해서 주민들이 갖게 되는 자긍심도 있어요. 그러면 자기들도 나중에 그렇게 일을 하게 되거든요. 배움이라는 것은 늘 자신이 보고 들은 것의 적용을 받거든요.”nbspnbspnbsp스님께서는 다음주에 마을 리더들, 학교 교사들과 더 논의를 하면서 최종적으로 사업 방향을 결정하자고 하시면서 오늘 회의를 마무리 하셨습니다. 회의를 마치니 밤10시가 넘었습니다. 내일 일정에 대해 스텝들과 간단히 회의를 더 하신 후 오늘 일정을 모두 마치셨습니다.nbspnbsp내일은 오전에 아직 방문하지 못한 유치원 23곳과 지이바카 병원, 수자타아카데미 교실들을 둘러보신 후 오후에는 석가족 청년들을 위한 수련을 하기 위해 상카시아로 이동하실 예정입니다. 내일 또 소식 전해드리겠습니다.nbspnbsp ▼ 배고픈 사람은 먹어야 합니다, 아픈 사람은 치료받아야 합니다, 아이들은 제 때에 배워야 합니다. JTS가 인도 둥게스와리 아이들을 위해 펼치고 있는 기아, 질병, 문맹 퇴치 활동에 함께해 주세요.nbspnbspnbsp nbspnbsp nbspnbspnbspnbsp nbspnbsp
2015.3.10 인도 8일째 안투비가 아자드비가 아마르푸르 산티나가르 마을 방문
nbsp안녕하세요. 오늘 스님께서는 JTS가 구호사업을 펼치고 있는 둥게스와리 지역의 안투비가, 아자드비가, 아마르푸르, 산티나가르 4개 마을의 343가구를 모두 방문하면서 쌀을 나눠주고 새해 인사를 하였습니다.nbspnbsp평소처럼 새벽4시30분에 기상하여 새벽 예불 및 108배 정진과 명상을 하였고, 6시30분부터는 발우공양을 하였습니다.nbspnbspnbsp스님께서는 발우공양을 마치고 어제에 이어서 발우공양 때 염하는 소심경의 의미에 대해 법문해 주셨습니다.nbspnbsp“계수바가바, 계수는 머리를 조아린다는 뜻입니다. 바가바는 존중받을만한 분이란 뜻이예요. 그러니 계수바가바는 존중받을만한 분께 머리 숙이옵니다는 뜻입니다. 즉 부처님께 귀의합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nbspnbsp원만수다라, 원만은 모든 것이 두루 갖추어져 있다는 뜻입니다. 수다라는 수트라의 음역인데 경전을 뜻합니다. 즉 부처님의 말씀인 경전에는 진리가 두루 갖추어져 있습니다 이런 뜻입니다.nbspnbspnbsp대승보살중, 대승은 보살의 무리들입니다. 즉 대승은 보살의 무리들로 이루어져 있다는 뜻입니다. 소승은 상가의 구성원이 출가수행자들입니다. 비구, 비구니, 우바새, 우바이, 식차마나 등 출가 5중으로 상가를 구성하는데, 대승은 승속의 구분 없이 누구든지 발심하여 보살이 되면 상가 구성원이 될 수 있다고 보았습니다. 마치 부처님 당시에 사제 계급은 오직 브라만만이 될 수 있었지만, 수행자가 되는 데에는 브라만, 크샤트리아, 바이샤, 수드라의 구분이 없고, 그리고 남자든 여자든 누구나 다 부처님 법에 귀의해서 바른 길로 가면 상가 구성원이 될 수 있었던 것과 같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불교가 다시 승속이 나눠지게 되니까 형식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마음이 깨달음의 길로 가겠다고 발심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보고 대승은 보살의 무리들로 상가를 구성합니다.nbspnbsp공덕난사의, 이렇게 불법승 삼보에 귀의하고 대승의 길을 따르는 것은 그 공덕이 헤아릴 수 없을 정도로 많다는 뜻입니다.nbspnbsp그러니까 발우공양을 하면서 ‘우리는 대승 수행자이다’ 이것을 분명히 하는 것입니다. 존경받을만한 분인 부처님께 머리 숙여 귀의합니다, 부처님의 가르침은 모든 진리를 두루 원만히 다 갖추고 있습니다. 대승은 보살의 무리들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이렇게 불법승 삼보에 귀의하는 것은 그 공덕이 이루 헤아릴 수 없이 많아서 우리의 생각으로는 가늠할 수가 없습니다, 이런 뜻입니다. 같이 함께 해보겠습니다.”nbspnbsp그리고 스님께서 함께 게송을 해보자고 하셔서 다함께 그 뜻을 새겨보면서 큰 목소리로 게송을 읊어 보았습니다.nbspnbspnbsp“계수바가바 원만수다라 대승보살중 공덕난사의”nbsp이렇게 발우공양을 마치고 간단히 개인 정비 시간을 가진 후 트렉터에 쌀을 모두 싣고 8시15분에 마을로 출발했습니다. 오늘은 안투비가를 시작으로 아자드비가, 아마르푸르, 산티나가르 총 4개 마을의 343가구에 쌀 10kg씩을 나눠주면서 주민들에게 새해 인사를 다닐 예정입니다. 이 마을들은 모두 천민들이 사는 곳입니다. 둥게스와리에서도 가장 가난한 동네라고 보시면 됩니다. 다른 마을은 양민 마을에 인접해 있는 천민 마을인데, 이 마을들은 산 아래에 천민들만 모여사는 마을들이여서 더욱 열악한 조건에서 살고 있었습니다.nbspnbspnbsp먼저 8시30분부터는 안투비가의 80가구에 대해 가가호호 방문을 시작했습니다. 스님께서는 여성분들에게는 인도의 새해인 ‘홀리 ’를 어떻게 보냈는지 주로 물어보셨고, 남성분들에게는 요즘 어떤 일을 하고 있는지를 물어보셨습니다. 아이들이 있는 집에는 학교를 잘 다니고 있는지 체크를 하셨습니다.nbspnbspnbsp“나마스떼 홀리 잘 보내셨어요?”“네, 잘 보냈어요.”nbspnbsp“홀리 때 뭐 만들어서 먹었어요?”nbsp“뿌와 만들어서 먹었어요.”nbspnbsp“왜 나한테는 안 주고 혼자만 먹었어요?” “스님이 오신 줄도 모르고 있었어요. 다음에 드릴게요.” nbspnbsp“새해 선물 가져왔어요.”nbspnbsp▲ JTS 로고가 박힌 쌀 포대를 받고 좋아하는 주민nbsp스님께서 우리 마을에 오셨다고 금새 소문이 났는지 동네에서 아이들이 개미떼처럼 모여들어서 졸졸 따라 다녔습니다. 스님께서는 “지금 학교 갈 시간인데 왜 여기에 있니? 어서 학교 갈 준비를 하거라” 라고 야단을 쳤더니 몇몇 아이들은 돌아갔지만, 대부분의 아이들은 씨익 웃기만 하고 계속 졸졸졸 따라다녔습니다.nbspnbspnbsp▲ JTS 활동가들을 따라다니는 안투비가 마을의 아이들nbsp안투비가에서는 산 중턱에서 힌두교 사원을 운영하고 있는 사두도 내려와서 스님을 반겼습니다. 스님께서는 사두에게도 쌀 한자루를 선물하며 “새해 잘 보내세요” 라고 인사를 하셨습니다.nbspnbsp▲ 스님을 무척이나 반가워 하는 힌두 사원의 사두nbspnbsp그리고 안투비가 마을 유치원에 잠시 들러 수업하는 모습을 잠깐 지켜보고 아이들에게 “공부 열심히 하세요”라고 격려를 해주신 후 과자를 하나씩 나눠주셨습니다. 유치원은 두 반으로 나뉘어서 운영되고 있었는데 한 반은 ‘너서리’라고 해서 아직 나이가 어린 아이들이 언니 오빠를 따라 와서 수업을 듣는 교실이고, 한 반은 정식 유치원 과정으로 운영되는 교실이였습니다.nbspnbsp▲ 안투비가 마을 유치원nbsp그런데 너서리 반은 3살, 4살 정도 되어 보이는 너무 어린 아이들도 많아서 앵앵 울음을 터뜨리는 등 소란스러운 느낌이 많이 들었습니다. 스님께서는 “저렇게 어린 아이들은 유치원에 들여보내면 안된다”고 선생님과 담당자에게 강조를 하셨습니다.nbspnbspnbsp다음은 아자드비가 마을 104가구와 아마르푸르 마을 76가구를 가가호호 방문을 하였습니다. 앞서 방문한 안투비가를 포함하여 이 세 마을은 산아래에 있는 마을로써 대부분의 주민들이 돌을 깨는 일을 하고 살고 있습니다. 그런데 최근 인도 정부가 전정각산을 보호하기 위해 채석장 사업을 불허하면서 이곳 마을 주민들은 할 일을 잃어버리게 되었습니다. 오늘 마을 방문을 하는데 대부분의 남자들이 “요즘 할 일이 없어졌다”며 도와달라는 눈빛를 보냈습니다.nbspnbspnbsp“홀리 잘 보내셨어요?”nbsp“그냥 지냈어요.”nbspnbsp“요즘 무슨 일 해요?”nbsp“아무 일도 안하고 그냥 있어요.”nbsp“원래 무슨 일을 했는데요?”nbsp“돌을 깨는 일을 했어요. 그런데 요즘 공사가 멈췄어요.”nbsp“아이고....”nbspnbsp“새해 선물 가져왔어요. 이거 드시고 힘내세요.”nbspnbspnbspnbsp스님께서는 할 일을 잃고 집에만 있는 건장한 남성들을 보며 안타까운 마음을 계속 내비치셨습니다.nbspnbsp어떤 집 앞에는 오토바이 두 대가 서 있어서 스님께서 깜짝 놀라서 물어보셨습니다.nbspnbsp“이 오토바이는 누구 거예요?”“석탄 사러 온 사람들이 타고 온 거예요.”nbspnbsp▲ 기차에서 훔쳐온 석탄이 집집마다 곳곳에 있었습니다.nbspnbsp마을 사람들이 석탄을 판매하는 것이 신기해서 스님께 여쭤보니 이 마을 앞에 철길이 하나 지나가는데 기차가 잠시 멈춰 서 있을 때 석탄을 훔쳐온다고 합니다. 오늘도 기차 한 대가 철길 위에 한참 동안 서 있었는데 마을 주민들 중에 석탄을 한 아름 안고 오는 모습이 보였습니다. 대부분의 주민들이 땅이 척박해서 농사를 짓지 못하고, 소는 비싸서 사지를 못하니 산에 가서 돌을 깨거나 석탄을 훔쳐오는 방식으로 생계를 유지해 오고 있었습니다.nbspnbsp▲ 돌을 캐느라 파헤쳐진 산 아래. 석탄을 싫은 기차가 들어오는 아자드비가, 아마르푸르 마을nbsp그리고 아무르푸르 유치원에 가서 아이들의 수업 모습을 잠깐 지켜보고 과자를 하나씩 나눠주었습니다. 스님께서는 “예전에는 중학생들을 선생으로 맡겼을 때 제법 의젓한 어른처럼 보였는데, 오늘 보니까 너무 어린 티가 나는 것 같다”고 하시면서 유치원 선생님들의 질을 어떻게 높일 것인가 고민을 하시는 것 같았습니다.nbspnbsp오전 내내 걸어다녀서 모두들 지쳐있었는데 다행히 스님께서 잠시 쉬었다 가자 하셔서 아마르푸르 유치원 앞에서 잠깐 목을 축였습니다. 그리고 아마르푸르 76가구를 모두 방문하여 쌀을 나눠준 후 철길을 건너 20분 가량을 걸어가서 산티나가르 마을에 도착했습니다.nbspnbsp▲ 둥게스와리를 빠져나와 산티나가르 마을로 가는 길nbsp오늘은 수자타아카데미로 다시 들어가서 점심을 먹기에는 시간이 더 소요될 것 같아 산티나가르 마을 유치원 앞에서 학교 급식을 차로 실어와서 점심을 먹었습니다. 밥과 달, 사부지를 담은 차가 도착하자 온 동네 사람들이 모여 들어서 스님 일행이 식사하는 모습을 구경했습니다.nbspnbsp▲ 점심 식사 시간nbsp식사를 마치고 잠시 휴식을 취하고 있는데 스님께서는 이런 저런 이야기들을 들려주셨습니다. “가난한 사람들을 돕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예요” 라고 말씀하시면서 “너무 많이 지원해주면 의존심이 많아지고, 너무 적게 지원해주면 스스로 일어설 수가 없고, 너무 많이도 아니고 너무 적게도 아닌, 스스로 해보려고 하는데 힘이 부족할 때 필요한만큼 조금씩 도와주어야 진짜 도움이 된다” 고 이야기해 주셨습니다. 그리고 “마치 식물을 키울 때 비료를 너무 많이 줘도 웃자라서 죽고, 비료를 적게 주면 제대로 안자라는 것과 같다”고 덧붙이시면서 “그렇게 하기가 결코 쉽지가 않다”고 이야기하셨습니다.nbspnbsp▲ 구호활동을 하면서 겪었던 다양한 경험담을 들려주시는 스님nbsp이번에 마을마다 쌀을 나눠주면서도 여러가지 어려움이 있었는데 스님의 말씀에 절로 공감이 갔습니다. 그리고 스님께서는 북한 동포 돕기를 하면서 겪었던 여러 가지 경험담을 들려주시면서 “어떻게 하면 이 사람들을 거지로 만들지 않으면서도 조금 더 잘 살 수 있도록 도와줄 수 있을지 여러분들도 많은 연구를 해보세요” 라고 활동가들에게 당부를 하셨습니다. nbspnbsp달콤한 휴식 시간을 마치고 이어서 산티나가르 마을 83가구에 대한 쌀 배분을 시작했습니다.nbspnbsp▲ 오늘도 9기 행자대학원 행자님들이 열심히 쌀포대를 지고 날랐습니다.nbspnbsp스님께서는 집집마다 둘러보신 후 “예전보다 형편이 많이 좋아졌네” 하시며 격세지감을 표현하셨습니다. 특히 인도 정부의 지원을 받아서 벽돌로 새로 지은 집이 많았는데, 인도 정부도 최근 들어 많이 변하고 있음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nbspnbspnbsp“홀리 잘 보내셨어요?”nbsp“네”nbspnbsp“무슨 음식 만들어 먹었어요?”nbsp“뿌와 만들어 먹었어요.”nbsp“집을 잘 지었네요. 인도 정부에서 얼마 받았어요?”“7만5천 루피 받았어요.”nbspnbsp“지붕은 왜 없어요?”nbsp“돈이 없어서 더 못 지었어요.”nbspnbsp“새해 인사 왔어요. 새해 선물로 쌀을 가져왔어요.”nbspnbspnbsp집집마다 정부 지원금을 받았지만 어떤 사람은 술 사먹는데 쓰기도 하고, 인도 정부가 생색내기용으로 돈을 적게 주어서 그런지, 벽면만 쌓아올리고 사진만 찍고 가는 것인지, 대부분의 벽돌 집이 완성된 경우는 거의 없고 짓다가 만 경우가 많았습니다.nbspnbsp무더운 날씨 속에서 343가구에 대한 방문을 모두 마치고 나니 오후1시30분이 되었습니다. 어제보다 속도를 빨리 내었더니 조금 일찍 마칠 수 있었습니다.nbspnbsp마지막으로 산티나가르 유치원 아이들을 모두 모아놓고 스님께서는 “학교 열심히 다녀야 해요” 라고 강조하시면서 과자를 하나씩 나눠주었습니다. 유치원에 안 다니는 아이들도 뒤섞여서 아이들이 바글바글 모여 있었지만 스님께서는 모두에게 과자를 나눠주셨습니다.nbspnbsp▲ 산티나가르 유치원nbsp동네 주민들도 담벼락에 고개를 내밀고 스님께서 아이들에게 과자를 나눠주는 모습을 지켜보며 연신 웃음을 보이며 좋아했습니다.nbspnbsp▲ 유치원 담장 너머로 수업이 끝나기를 기다리는 학부모들nbsp마을 방문을 모두 마치고 산티나가르에서 수자타아카데미로 다시 돌아오니 오후2시가 되었습니다. 그리고 3시30분이 되자 수자타아카데미도 학교 수업이 모두 끝났고, 아이들은 삼삼오오 마을별로 모여서 집으로 돌아갔습니다.nbspnbsp▲ 수업을 마치고 교문을 나서는 수자타아카데미 학생들nbsp스님께서는 학교 교사들과 1시간 30분 동안 회의를 하셨습니다. 그동안 마을 방문을 하면서 몇가지 의문점과 확인해야 될 것들이 있었는데 스님께서는 교사들에게 궁금한 점들을 물어보며 그동안 해오시던 고민을 더욱더 구체화하시는 것 같았습니다.nbspnbsp▲ 수자타아카데미 교사들과의 회의nbsp스님께서는 다음과 같이 10여가지의 질문들을 물어보셨습니다.nbspnbsp“만코시힐과 소라즈비가에 소를 빌려서 키우는 사람들이 많았어요. 송아지를 한 마리 빌려와 키워서 큰 소를 만들어서 팔면 절반씩 이익을 나눈다고 그럽디다. 이것이 정확한 것인지 누가 자세히 아는 사람이 있으면 한번 설명해 보세요.”nbspnbsp“가난한 사람마다 소 한 마리 정도는 키울 능력이 돼요?”nbsp“염소, 소, 돼지, 닭 네가지 중에서 어떤 것을 키우는 것이 가장 이득이 커요?”nbspnbsp“일반 소와 버팔로는 우유 생산량이 얼마나 차이가 나요?”nbspnbsp“마을 사람들에게 집집마다 소를 한 마리씩 키우게 공급을 해주고, 거기서 나온 우유를 JTS가 구입해서 가야에 판매해주면 도움이 많이 되겠어요?”nbspnbsp“정부에서 받는 주택 지원금 7만5천루피로 집을 다 지을 수 있어요? 부족해요? 방이 3개 정도 있는 집을 지으려면 얼마 정도 들어요?”nbsp“10명 단위로 협동조합을 구성해서 10명이 함께 시멘트, 철근, 벽돌, 노동자를 구하면 돈이 더 적게 들고, 돈을 다른 곳에 쓰지도 못할 것 아니예요? 주민들이 집을 새로 지을 수 있는 방법을 연구해보자는 것입니다.”nbspnbsp▲ 힌디어 통역을 하는 쁘리앙카님과 인도에 새로 파견을 오신 보광법사님nbsp“또 마을에서 우리가 조금만 더 노력하면 잘 될 수 있는 것이 뭐가 있어요? 여기서 수입이 안 생기니까 다 다른 곳으로 나가야 하잖아요.”nbspnbsp“마을에 가보니까 청년들이 많이 있던데요. 여자 아이들도 15세에서 20세 사이인데 아직 시집 안 간 처녀들도 보이고, 25살 이하의 아직 결혼 안 한 남자 청년들도 있고, 또 애기가 한두명 있는 부인들도 있고요. 옛날에 수자타아카데미를 다녔던 사람들도 많이 있던데요. 그래서 젊은 사람들을 중심으로 조직을 만들면 주택 개량이나 소 먹이는 거나 마을 개발 같은 것을 할 수 있지 않는가 싶어요.”nbspnbsp“유치원 선생님은 8학년 정도를 다닌 아줌마들에게 맡기면 어떨 것 같아요? 왜냐하면 중학생들은 계속성이 없는데 이런 아줌마들은 오래 할 수 있잖아요. 유치원을 조금 더 좋은 유치원을 만들려고 할 때 어떤 방법이 좋을지 아이디어를 좀 내어주세요. 첫째는 시설도 좀 보완해야 하고요. 둘째는 교육 기자재도 있어야 하고요.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지속적으로 가르칠 수 있는 선생님이 있어야 합니다. 훈련을 시키면 활용을 할 수 있어야 하는데 중학생들은 계속 바뀌니까요. 아줌마가 유치원 선생을 하는 것이 마을 풍속 상 문제는 없어요?”nbspnbspnbsp“정부 학교의 운영 실태는 어때요? 오늘 마을에 가보니까 정부학교에 다니는 아이들은 학교에 거의 잘 안나가는 것 같던데요.”nbspnbsp“유치원에서 공부를 아주 잘 가르쳐서 정부학교에 들어가면 1학년 때부터 공부 잘 하는 아이로 만들어서 양민 아이들한테 기 안죽고 다닐 수 있게 하면 어떨까요?”nbspnbsp“청년들이 가장 좋아하는 운동이 크리켓이예요? 축구도 좋아해요? 1년에 한번씩 크리켓 대회를 하면 청년들의 기운을 살리는데 도움이 될까요? 마을의 공터를 축구장으로 꾸며도 괜찮을까요? 가야시에서 누구든지 참여하게 해서 대회를 열면 너희들이 이길 수 있어요?”nbspnbsp“여자 아이들은 어떤 운동을 좋아해요? 배드민턴을 좋아해요? 마을마다 팀을 만들 정도가 돼요?”nbspnbsp교사들은 스님께 자신이 생각하고 경험한 것들을 자세히 이야기해 주었습니다. 스님께서는 대답을 다 듣고 나서 아직 미진한 것이 남으셨는지 “내일도 이렇게 수업 마치고 1시간 정도 대화를 하자”고 제안하신 후 미팅을 마치셨습니다.nbspnbsp스님과 교사들이 마을의 발전을 위해서 열정적으로 토론하는 모습을 보니 가슴이 뭉클해졌습니다. 2천년이 넘는 긴 세월 동안 천민으로 살아왔고, 21세기가 된 지금에도 가난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마을 주민들을 위해 ‘과연 어떻게 하면 스스로의 힘으로 이 가난에서 벗어날 수 있게 도와줄 것인가?’ 끊임없이 연구하고 연구하는 모습 속에서 무엇이라고 표현할 수 없는 가슴 뭉클함이 느껴졌습니다. 토론 과정 속에서 교사들 또한 자신들의 마을에 대해 더 깊이 고민하게 되고, 그 속에서 많은 배움이 있었을 것입니다.nbspnbsp저녁6시45분부터는 어제에 이어서 한국인 활동가들과 함께 인도JTS의 사업 방향을 잡는 회의를 하였습니다. 스님께서는 오늘 마을 방문을 한 결과와 교사들과 의논한 결과를 다시 정리해 주시면서 몇 가지 과제들을 도출하시고 남은 기간 동안 더 연구해 보자고 하셨습니다.nbspnbsp“우물이 많이 지저분하던데 장대에 바구니를 달아서 쓰레기를 좀 건져주면 좋겠어요. 그리고 우물 뚜껑을 좀 설치해 주면 좋겠어요. 그리고 시대가 바뀌었으니까 가능하면 핸드펌프를 설치해 주는 계획을 좀 세웁시다. 제가 보기에는 열 집 당 하나씩 핸드펌프를 파주려면 수요가 많거든요. nbsp핸드펌프 파는 기계를 어떻게 확보할지 조사해 보는 것이 필요할 것 같아요. 한국에 가서도 알아볼게요.nbspnbsp▲ 인도JTS 활동가들과 회의nbspnbsp그리고 아자드비가 안투비가에서 돌광산이 중지되면서 마을 주민들이 직장을 다 잃어버린 문제를 어떻게 할지 연구를 좀 해봅시다. 집집마다 젊은 사람들이 할 일 없이 앉아 있는 것 보니까 가슴 아프더라구요. 첫째는 필요 있든 필요 없든 건물을 하나 지으면서 노는 주민들을 데려와서 노동을 할 수 있게 해주는 방법이 있고요. 둘째는 주택 조합을 만들어서 집 지어주는 일을 하는 노동자로 쓰는 방법이 있고요. 셋째는 그냥 돈을 주는 셈 치고 토목 공사를 벌이는 방법이 있을 것 같아요. 도로 파진 것을 자갈을 가져가서 메운다든가 트렉터 하나에 5명 정도를 고용해서 길 닦는 일을 계속 하게 한다든지, 각자 자기 마을의 도로를 닦도록 하는 방법이 있을 것 같아요. 쉬람단으로만 할 수 없는 규모가 큰 공사를 하는 것이죠. 주택건설회사를 만들어서 기술자를 붙여서 마을마다 집을 지어주는 일을 해주면 어떨까요? 상시적으로 일을 주고 대신에 일당은 적게 주고요. 집을 이렇게 지어라 하고 모델 하우스를 정해 줘야 할 것이고요. 한팀이 아니라 여러 팀을 만들어야 하고요.nbspnbsp소 키우는 문제로 마을 리더들과 이야기해보니까 염소를 키우는 것이 제일 이익이 낫다고 하네요. 그런데 염소는 집집마다 이미 다 키우고 있으니까 염소를 분양해 주는 것이 별로 의미가 없잖아요? 소 보다는 염소가 주민들에게는 돈 순환이 훨씬 빠를 것 같아요. 예를 들어 염소 새끼를 한 마리 주면 커서 새끼를 다시 낳는데 1년 걸린다고 하니까요. 그리고 1년에 두 번 새끼를 낳는다고 하네요. 분양을 해주면 1년 반이면 회수가 되잖아요. 소는 56년 걸리는데 말이죠. 그러면 학교 뒷 담벼락 쪽에 울타리를 쳐서 소나 염소를 한번 키워 보면 어떨까요? 노동자 한명이 배정해서 관리를 맡기면 되거든요. 새끼를 낳으면 계속 분양을 해주면 되고요.nbspnbspnbsp소는 빌려주더라도 현재 마을에서 거래되는 방식보다는 키우는 사람에게 더 이익이 돌아가도록 빌려주면 좋을 것 같아요. 그래서 앞으로 동네 사채 이율이 떨어지면 거기에 따라서 우리도 이율을 더 떨어뜨리면 되거든요. 송아지는 크는데 시간이 너무 많이 걸리니까 조금 큰 5천 루피 되는 소를 빌려줘서 키우게 해서 한 사람당 1만 루피를 벌 수 있게 해주면 괜찮을 것 같아요. 아니면 새끼를 두 마리를 돌려주게 하고 어미소를 갖게 해주든지요.nbspnbsp그리고 마을마다 축구장을 만들 수 있는 공터를 한번 확인해 보면 좋겠습니다.nbspnbsp정부 학교는 인터넷에 민원 제기를 계속 올려서 정상화 되도록 좀 해보면 좋을 것 같아요. 장기적으로는 아이들을 정부 학교로 보내는 것이 원칙인데, 아이들이 정부 학교에 적응을 못하고 또 정부 학교가 제대로 운영이 안되니까 중학교 들어올 때까지 중간에 공백이 생겨요. 이것을 어떻게 보완할 것인지가 과제입니다. 그래서 제 생각은 유치원 교육을 강화해서 공부를 착실히 가르쳐서 정부 학교에 가서 주도권을 잡도록 하는 방법 밖에 없지 않나 싶어요. 천민 아이들이라 하더라도 공부를 잘하면 학교에서 튕겨지지는 않거든요. 양민 아이들은 똑똑하지 선배들도 있지 자기 동네에 학교가 있는 반면에 천민 아이들은 이웃 마을에 가서 선배도 없지 공부도 할 줄 모르니까 그냥 다니다가 말아버리는 겁니다. 오늘은 이 정도로 하고 더 연구를 해봅시다.”nbspnbsp이렇게 스님께서 이야기해 주신 것 외에도 오늘은 마을 개발 담당자 최동호님, 병원 파트 담당자 박종화님, 학교 파트 담당자 권도영님, 시설 관리 담당자 주연우님이 각자 자신의 경험을 갖고 다양한 의견들을 내어주어서 더 풍성한 토론 시간이 되었습니다. 내일 하루 더 마을 방문을 해보면 둥게스와리 전체 마을을 다 둘러보는 것이 되기 때문에 지금까지 도출된 과제들에 대해서 더 분명한 결론들이 나오게 될 것 같다는 기대감이 들었습니다.nbspnbsp내일은 전정각산 산 넘어 마을인 바가히, 까나홀, 가왈비가, 자르하리, 스리람푸르 총 523개 가구를 직접 방문하며 쌀을 배분할 예정입니다. 오늘까지 매일 평균 300여 가구를 방문했는데 내일은 500여 가구를 방문해야 해서 무척 바쁜 하루가 될 것 같습니다. 내일 또 소식 전해드리겠습니다.nbspnbsp▼ 배고픈 사람은 먹어야 합니다, 아픈 사람은 치료받아야 합니다, 아이들은 제 때에 배워야 합니다. JTS가 인도 둥게스와리 아이들을 위해 펼치고 있는 기아, 질병, 문맹 퇴치 활동에 함께해 주세요.nbspnbspnbsp nbspnbsp nbspnbspnbspnbsp nbspnbsp
2015.3.9 인도 7일째 방갈비가 만코시힐 나훌나가르 소라즈비가 마을 방문
nbsp안녕하세요. 오늘 스님께서는 인도 달력으로 새해를 맞이하여 둥게스와리의 방갈비가, 만코시힐, 나훌나가르, 소라즈비가 4개 마을을 가가호호 방문하여 316개 가구에 쌀 10kg씩을 나눠주셨습니다.nbspnbsp오늘은 평소대로 새벽 4시30분에 기상하여 새벽 예불 및 108배 정진과 명상을 한 후 6시30분에 발우공양을 하였습니다.nbspnbspnbsp스님께서는 발우공양을 마치고 그저께 법문해주신 ‘발우공양의 의미’에 이어서 오늘은 발우를 펼 때 염하는 ‘회발게’의 의미에 대해 법문을 해주셨습니다.nbspnbsp“대중이 모두 앉아 있으면 입승 법사님이 죽비 삼성을 치면서 합장 반배를 하고, 다시 죽비 일성을 쳐서 시작 신호를 알리면 “불생가비라, 성도마갈다, 설법바라나, 입멸구시라” 이렇게 회발게를 합니다. 왜 이렇게 4대 성지를 생각하느냐면 이것은 부처님의 마지막 말씀을 모아 놓은 열반경에 이런 얘기가 나옵니다. 부처님께서 오늘밤에 돌아가신다고 하니까 아난다 존자는 갑자기 걱정이 되어서 여러 가지 질문을 하는 장면이 나옵니다. “부처님이 안 계시면 우리는 누구를 생각해야 합니까?”라고 아난다가 묻자, 부처님께서 “아난다여, 걱정하지 마라. 여래가 없는 세상에서는 4대 성지를 생각하라” 라고 답하십니다.nbspnbspnbsp부처님이 태어나신 곳, 도를 이루신 곳, 처음 설법하신 곳, 열반하신 곳이 4대 성지인데, 그곳을 순례하고 또 그곳에 가서 여래가 태어날 때 어떤 모습으로 태어나셨는지, 여래가 성도하실 때는 무엇을 성도하셨는지, 여래가 설법을 하셨을 때는 어떤 내용으로 설법을 하셨는지, 여래가 돌아가실 때의 그 마지막 모습이 어떠하였는지, 이 4가지를 늘 생각하면 수행자가 어긋날 일이 없다고 하는 부처님의 최후 유언이 있습니다. 이 뜻을 계승해서 소심경에서는 발우를 펴고 음식을 먹기 전에 맨 먼저 4대 성지를 생각하도록 하고 있습니다.nbspnbsp불생가비라, 부처님은 가비라에서 태어나셨습니다. 가비라는 인도말로 ‘카필라바스투’를 말합니다. 부처님은 카필라바스투의 룸비니 동산에서 태어나셨습니다. 한글로 바꾸면 “부처님은 카필라성 룸비니 동산에서 탄생하시었고” 가 됩니다.nbspnbsp성도마갈다, 부처님은 마갈다에서 도를 이루셨습니다. 마갈다는 마가다국을 말합니다. 지금 우리가 있는 이곳이 옛날에는 마가다국이였습니다. 부처님이 태어나신 곳은 카필라성이지만 도를 이룬 곳은 마가다국의 보드가야였습니다.nbspnbspnbsp설법바라나, 부처님은 바라나에서 처음으로 설법을 하셨습니다. 바라나는 바라나시를 말합니다. 부처님은 어디서 최초로 설법을 하셨느냐? 도는 이곳에서 보드가야에서 이루셨지만, 바라문은 자신이 알고 있는 지식에 사로잡혀서 부처님의 법문을 이해하지 못했고, 또 상인은 자신의 복만 구했지 법을 청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부처님은 이 좋은 법을 누구에게 전할까 생각하시고 두 분의 스승을 생각했는데 이미 돌아가셔서 자신과 함께 수행했던 다섯명의 도반들을 찾아가서 처음으로 설법하는 대상으로 삼으셨습니다. 그들은 바라나시의 사르나트에 머물고 있었어요. 그곳으로 가셔서 콘다냐 등 다섯 비구에서 처음으로 설법을 하셔서 그들을 깨달음의 길로 인도하셨습니다. nbsp nbspnbsp입멸구시라, 부처님은 구시라에서 열반에 드셨습니다. 구시라는 쿠시나가르를 말합니다. 부처님은 쿠시나가르의 사라숲에서 열반에 드셨습니다. 사라나무가 자욱하게 우거져 있는 숲속 사라나무 두 그루 사이에서 열반에 드셨습니다. 발우를 펴면서 이 네가지를 회상하는 것입니다.”nbsp이렇게 회발게의 의미에 대해 법문을 들은 후 모두 함께 모여서 오늘 해야 할 업무들에 대한 일나누기를 하였습니다. 일나누기를 마치고 나서는 각자 자신이 맡은 일을 준비하러 갔습니다.nbspnbsp오전 8시에는 각 마을마다 유치원 선생님을 하면서 6학년, 7학년에 다니고 있는 중학생 31명이 찾아와서 스님께 새해 인사를 했습니다.nbspnbsp▲ 스님께 새해 인사를 하러 온 중학생들nbsp“홀리 잘 보냈어요?nbsp“네”nbspnbsp“유치원이 몇시부터 시작해요?”nbsp“9시부터요”nbspnbsp“아이들 잘 가르치세요.nbsp그리고 신발을 벗을 때는 항상 잘 정돈해야 돼요. 조금 전에 보니까 신발이 다 흐트러져 있었어요. 나갈 때 한번 보세요. 그리고nbsp새해니까 스님이 용돈을 줄께요.”nbspnbsp▲ 스님께 용돈을 받는 중학생들nbsp스님께 용돈을 받은 중학생들은 꼬깃꼬깃 돈을 접어서 주머니에 넣었습니다. 그리고 법당을 나가면서 자신들이 아무렇게 벗어놓은 신발들을 신으면서 부끄러운 듯 눈치를 살피며 웃었습니다. nbspnbsp▲ 신발 정돈이 안된 것을 스님께서 지적하자 부끄러워하는 중학생들nbsp오늘은 방갈비가, 만코시힐, 라훌나가르, 소라즈비가 4개 마을을 방문하여 총 316개 가구에 쌀을 나눠주기로 했습니다. 트럭에 쌀포대를 모두 싣고 8시50분에 수자타아카데미를 출발하여 9시에 방갈비가 마을에 도착했습니다.nbspnbspnbsp방갈비가 마을에서는 총 34가구가 살고 있는데 스님께서는 집집마다 모두 찾아가서 새해 인사를 하고 선물로 쌀 10kg 씩을 나눠주었습니다.nbspnbsp지난번 두르가푸르와 자그디스푸르 마을에는 교사들이 쌀 배분을 도와주었는데, 오늘 수자타아카데미의 정상 수업이 열리는 날이여서 9기 행자대학원 분들이 쌀을 지고 나르며 쌀 배분을도와주었습니다.nbspnbspnbsp“나마스떼. 홀리 잘 보냈어요?”nbsp“네”nbspnbsp“음식은 뭐 만들어 먹었어요?”nbsp“뿌와 만들어 먹었어요”nbsp“자녀가 몇 명이예요?”nbsp“네 명이요”nbspnbsp“일은 뭐하고 있어요?”“아파서 일을 못하고 있어요.”nbsp“보드가야에 요즘 정부 병원이 새로 생겼다는데 한번 가보지 그래요?”“지금 한약처럼 만든 약을 먹고 있어서 일단 그것부터 먹어보려구요.”nbspnbsp“오늘 홀리 인사 왔어요. 홀리 선물 드릴게요.”nbsp▲ 쌀을 선물 받고 기뻐하는 방갈비가 마을의 할머니nbspnbsp스님께서는 이렇게 인사를 드리며 마을의 골목 골목을 다 들여다보시고, 사람들의 얼굴과 표정, 그리고 집안 형편 등을 하나 하나 확인하셨습니다.nbspnbsp▲ 지푸라기를 깔고 이 위에서 잠을 잔다는 마을 주민들nbsp그리고 수업이 한참 진행 중인 유치원에도 들어가셔서 수업이 어떻게 이루어지고 있는지 참관하시고 아이들에게는 “공부 열심히 하라”는 격려의 말씀과 더불어 과자 한봉지씩을 나눠주셨습니다.nbspnbspnbsp▲ 방갈비가 유치원nbspnbsp다음은 만코시힐과 나훌나가르 마을로 이동했습니다. 이곳에는 140가구가 살고 있었습니다. 역시 이곳에서도 스님께서는 쉬지 않고 가가호호 방문하셔서 새해 인사를 하고 안부를 물었습니다. nbspnbspnbsp먼저 학교에 갈 나이 또래의 아이 한명이 집에 있어서 스님께서 물어보셨습니다. nbspnbsp“오늘은 학교 안 가요?”nbsp“아직 등교 시간이 안되었어요”nbsp“몇 학년이예요?”nbsp“2학년이요”nbsp그리고 두 부부가 합장을 하고 인사를 하자 스님께서는 nbsp새해를 잘 보냈는지 안부를 물어보시며 nbsp아직 벽돌로 집을 짓지 못한 이유가 무엇인지 여쭈어 보셨습니다. nbspnbsp“홀리 잘 보냈어요?”nbsp“네”nbsp“음식은 뭐 만들어 먹었어요?”nbsp“뿌와 만들어 먹었어요”nbsp“그런데 이 집은 정부에서 집 지으라고 돈 못받았어요?”nbsp“네, 못 받았어요”nbsp“이유가 뭐예요?”nbsp“모르겠어요. 늙었다고 그러는지...”nbsp“오늘 홀리 인사 왔어요.nbsp홀리 선물 드릴게요.”nbsp▲ 만코시힐 마을의 두 부부nbsp만코시힐과 나훌나가르 마을에는 학교 갈 시간인데 학교를 가지 않고 있는 아이들이 많이 보였습니다. 얼마전부터 정부학교가 생기면서 수자타아카데미에 다니던 학생들이 정부학교로 대부분 옮겨 갔는데, 정부학교는 제대로 운영이 되지 않아서 학교에 가지 않는 날이 많다고 합니다.nbspnbsp▲ 정부 학교는 부실하게 운영되어서 학교에 가지 않는 날이 많다는 만코시힐의 아이들nbsp그리고 만코시힐과 나훌나가르 마을의 특징은 정부의 지원금을 받지 못한 집이 많다는 것이였습니다. 어떤 집은 작년에 비가 많이 내려서 지붕이 완전히 주저 앉아 버린 곳이 있었습니다. 할머니 한분이 스님께 “집이 이렇게 무너졌어요” 하며 도와달라고 부탁을 하는데, 안타까운 마음이 들었습니다.nbspnbspnbsp▲ 작년에 비가 많이 내려서 무너진 나훌나가르 마을의 흙집 nbspnbsp이렇게 오전 내내 약 3시간 동안 총 174가구에 쌀을 나눠주고 나니 벌써 점심 먹을 시간이 되었습니다. 스님께서는 전혀 지치는 기색 없이 계속 다니시는데, 오히려 주위에 있는 인도인 활동가들과 한국인 활동가들이 다들 배가 고프다며 조금 힘겨워하는 눈치였습니다.nbspnbsp▲ 트랙터로 쌀을 계속 실어나르는 행자님들과 인도인 활동가들nbsp허기진 배를 채우기 위해 다시 수자타아카데미로 돌아와서 점심을 먹었습니다. 점심을 먹고 나서 오후1시부터는 초등학생들을 모두 쁘락보디홀 강당에 모이게 하고 스님께서 간단히 새해 인사와 격려의 말씀을 해주셨습니다.nbspnbsp▲ 수자타아카데미 초등학교 1학년5학년 학생들nbsp“홀리 때 엄마가 맛있는 것 해줬어요?”nbsp“네”nbsp“어떤 게 제일 맛있었어요?“nbsp“뿌와가 제일 맛있었어요”nbspnbsp학생들은 쑥스러운 듯 자신있게 이야기를 하지 못하고 부끄러움을 많이 타는 것 같았습니다. 스님께서는 새해 인사로 격려를 해주시면서 다섯가지를 꼭 지킬 것을 여러차례 반복해서 강조하셨습니다.nbspnbspnbsp“공부 열심히 하고 있어요?”nbsp“네”nbspnbsp“올해는 스님이 말한 다섯가지를 꼭 지킵니다. 첫째, 때리지 않는다. 지킬 수 있어요?”nbsp“네”nbsp“둘째, 훔치지 않는다. 지킬 수 있어요?”nbsp“네”nbsp“셋째, 거짓말 하지 않는다. 지킬 수 있어요?”nbsp“네”nbspnbsp“넷째, 욕하지 않는다. 지킬 수 있어요?”nbsp“네”nbsp“다섯째, 화내지 않는다. 지킬 수 있어요?”“네”nbsp“다 외웠어요?”“네”nbspnbsp“다시 따라해 보세요. 올해는 이것을 꼭 지켜야 해요.nbspnbsp자, 그럼 한명씩 나오세요. 스님이 새해 선물을 드릴게요.”nbspnbsp학생들도 스님께서 강조한 다섯가지에 대해 큰 목소리로 따라하며 열심히 지킬 것을 약속했습니다. 스님께서는 다시한번 더 강조하기 위해 학생들 몇 명에게 다섯가지를 다 외웠는지 확인을 해보셨습니다. 남학생 한명, 여학생 한명이 다섯가지를 정확하게 외우자 스님께서는 “참 잘했어요” 하시며 과자 한봉지를 선물로 주셨습니다.nbspnbspnbsp이어서 새해 선물로 전체 학생들에게 용돈과 더불어 비스켓 한봉지씩을 나눠주었습니다. 학생들은 용돈은 접어서 주머니에 넣고 비스켓은 손에 든 채 싱글벙글 웃었습니다. nbspnbsp잠시 쉬어갈 여유도 없이 곧바로 오후1시30분에는 소르즈비가 마을로 가서 총 142가구의 집을 가가호호 방문하며 새해 인사를 하고 쌀을 나눠주었습니다. 스님께서는 쉬지 않고 계속 방문을 이어가셨는데, 어떤 집은 정부로부터 지원금을 받기도 하고, 어떤 집은 지원금을 받지 못하기도 하는 등 마을마다 집집마다 편차가 많이 있었습니다.nbspnbsp▲ 쌀을 받고 있는 소라즈비가 마을 아주머니nbsp“집을 잘 지었네요. 정부에서 돈을 얼마나 지원해 주었어요?”nbsp“7만 루피요”nbsp“아이고, 이 집은 지원을 많이 받았네요.”nbsp또 어떤 집에 갔더니 이렇게 대답했습니다.nbspnbspnbsp“여기는 정부에서 돈을 얼마나 지원 받았어요?”nbsp“3만5천 루피요”nbsp“오늘 홀리 인사 왔어요.”nbsp“홀리 선물 드릴게요.”nbsp그리고 소라즈비가 마을에는 소를 키우는 사람들이 참 많았습니다. 전체 가구의 절반 이상이 소를 키우는 것 같았습니다. 그러나 대부분은 자기 소가 아니고 빌려서 키우고 있었습니다.nbspnbsp▲ 집집마다 양민 마을에서 소를 빌려와서 키우고 있는 모습nbsp“소가 몇 마리예요?”“4마리예요. 빌려서 키우고 있어요.”nbsp“다 크면 어떻게 나누어요?”nbsp“반 반 나누어요.”nbsp“몇년 키워야 큰 소가 됩니까?”nbsp“78년 키워야 해요.”nbsp“송아지는 얼마 해요?”nbsp“2,000루피 정도 해요.”nbsp큰 소는 얼마 해요?20,000루피 정도 해요.nbsp“78년 키워서 10,000루피 번다는 이야기인데...”nbspnbsp이렇게 소라즈비가 마을까지 쌀 배분을 모두 마치고 나니 오후3시가 되었습니다. 수자타아카데미로 다시 들어와서는 내일 마을 방문을 위해 준비를 한 후 각자 씻고 개인정비하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9기 행자대학원 분들은 쉴 여유도 없이 곧바로 전정각사 법당으로 가서 300배 정진을 했습니다.nbspnbsp오후3시30분이 되니 수자타아카데미 학생들도 수업을 모두 마치고 각자 집으로 향했습니다. 교문 밖을 나서는 학생들의 모습에 밝은 웃음이 가득했습니다. 아마도 오늘 스님께서 용돈을 주셔서 더 그런 것 같았습니다.nbspnbsp▲ 수자타아카데미 정문nbsp저녁7시부터는 인도JTS 활동가 모두가 모여서 오늘 방문한 마을에 대한 평가 및 인도JTS의 장기적인 사업계획에 대해 회의를 하였습니다. 스님께서는 수자타아카데미가 향후 10년을 바라보며 지금 무엇을 준비해야 하는지 큰 그림을 그려주셨습니다. 스님께서 해주시는 수자타아카데미의 비전을 들으면서 정말 그렇게 된다면 어떤 변화가 생길지 상상해 보니 가슴이 뛰기도 했습니다.nbspnbsp“오늘 하루 다들 수고하셨습니다. 오늘 다니면서 체크가 된 것은 소를 빌려와서 키우고 나중에 이익을 나누는 일을 하고 있는 집이 굉장히 많았다는 것입니다. 절반 정도가 이 일을 하고 있는 것 같아요. 그동안 마을에 생산물이 없어서 이익을 증대하기가 어렵다고 봤었는데, 오늘 소를 키우는 것을 보니까 한 집에 소를 한두마리씩 다 키울 수 있다면 우유를 생산해서 공동 판매하는 것을 해보면 좋을 것 같아요. 그리고 소를 빌려와서 키우는 사람들에게 이익을 더 줄 수 있도록 지원하는 방법이 있을 것 같아요. 그러나 양민 마을에서 소를 빌려왔을 테니까 이익이 충돌되지 않도록 진행을 하려면 청년회 조직이나 주민회의 조직에 가입한 사람들부터 키우는 사람에게 이익이 더 많이 남도록 지원해주면 이것은 회원제니까 문제가 적을 수 있을 것 같아요. 옛날에 우리나라도 소작농들의 소작료 지불이 70 정도 되었다가 시간이 흐르면서 반반 되었다가 나중에는 거꾸로 30가 되고, 요즘은 10도 채 되지 않을 거예요. 어떻게 해서든 양민과 천민, 부농과 빈농 사이에 지나친 이익 불균형을 개선해 주는 게 필요합니다.nbspnbspnbsp오늘 파악해보니 송아지를 빌려와서 키운 후에 시장에 팔면 그 이익을 주인과 반반 나눠갖는다고 해요. 예를 들어 2천 루피짜리 소를 가져와서 7년을 키워야 2만 루피에 팔 수 있다고 하니까 이익을 반분하면 1만 루피를 벌게 되잖아요. 송아지 주인이 7년만에 5배의 이익이 남는다고 하면 이율로 보면 연 35 정도로 볼 수 있거든요. 은행 이자로 보면 거의 10배 정도 이자가 많은 것에 속하거든요. 이것을 연 1할 정도로 계산하도록 조정한다면 이익 배분을 조금 개선할 수 있거든요. 이 문제가 공동 생산 문제에서 중요한 아이템이 될 것 같아요. 이것을 마을 리더들과 의논해서 이익 배분이 어느 정도 되면 키울만 한지, 키울 때는 무엇이 어려운지, 어떤 문제가 해결되면 키우기가 쉬운지가 자세히 분석되는 것이 필요할 것 같아요.nbspnbsp그리고 문맹퇴치를 하려면 유치원에 100 다니게 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만약 우리가 유치원은 확실하게 강화하고 초등학교는 과감하게 정부학교에 보낸다고 할 때는 나중에 수자타아카데미 중학교에 고급학교나 예술학교를 만들면 정부학교에서 5년 동안 방치된 아이들을 다시 데려와야 하는 문제가 발생합니다.nbspnbsp그리고 컴퓨터 공급을 어떻게 할지 연구가 필요합니다. 첫째는 스텝들에 대한 공급이고, 장기적으로는 선생님들에게도 공급해줘야 할 겁니다. 둘째는 자원봉사로 오는 선생님들은 이곳에 있으면서 사용하도록 해야 하고요. nbspnbsp오늘 마을 가보니까 기부스를 한 사람들이 몇 명 있던데요. 기부스는 Xray를 찍어서 뼈가 부러진 것은 큰 병원에 보내줘야 하거든요. 무조건 기부스를 하면 평생 잘못될 수가 있어요. 그래서 Xray 기계를 도입할 필요가 있는지, 있다면 병원 담당인 까미스와르지가 어느정도 훈련을 받으면 되는지 한번 체크해 봐야 할 것 같아요.nbspnbsp그리고 전기는 태양열 발전판을 도입하려면 어느 정도의 경비로 어떻게 시설을 할 수 있는지 조사가 필요합니다. 너무 경비가 비싸면 최소한의 컴퓨터만 사용할 수 있는 정도만이라도 시설을 갖추면 좋을 것 같아요.nbspnbsp유치원 15개는 시설 보완도 해야하지만 교육기자재 보완도 해야 하고, 선생님 훈련도 해서 인도에서는 정말 괜찮은 유치원이 될 수 있는 곳이 되도록 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지금처럼 아이들만 모아놓는 수준이 아니고 23시간을 가르쳐도 제대로 가르치도록 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그런데 여기는 따로 특별한 기자재가 없으니까 한국보다 공부를 더 시키는 것 같더라구요. nbspnbspnbsp지금까지는 중학생들이 유치원 선생님을 맡아 왔는데, 중학생들의 문제는 지속성이 없다는 것입니다. 고등학교 가버리면 자기 공부하기 바빠서 더 이상 유치원을 못가르치거든요. 가장 안정적인 것은 마을에 가보니까 이제 젊은 아줌마들 중에는 수자타아카데미에서 8학년까지 나온 경우가 제법 있는 것 같아요. 이런 아줌마들은 자기 아이들과도 관계가 있으니까 조금 훈련시키면 지속성이 보장될 것 같아요. 아니면 이런 아줌마들이 유치원 원장을 하고 중학생들이 수업을 도와주는 방법도 있어요. 왜냐하면 지금 유치원을 책임지는 어른이 없거든요. 제가 갑자기 방문해보면 아예 문을 열지도 않은 경우도 있거든요.nbspnbsp초등학교는 정확하게 실태조사를 해서 두르가푸르, 자그디스푸르, 방갈비가 3개 마을만 수자타아카데미로 다니고 나머지는 다 정부학교로 다니도록 유도를 하고요. 까나홀 사람들은 교육열이 높아서 정부학교에 덜 만족하잖아요. 앞으로 수자타아카데미를 고급학교로 만들려면 학교 운영 상 까나홀 아이들은 입학을 받아야 할 것 같아요. 지금 선생님도 까나홀 사람들이 가장 많으니까요.nbspnbsp유치원 교육을 강화해서 여기 유치원을 나온 천민 아이들이 양민 학교로 올라가서 공부를 잘하도록 해버리면 차별을 덜 받을 수 있거든요. 그런데 천민 아이들이 양민 아이들보다 성적이 훨씬 떨어지니까 선생님도 박대하고 친구들에게도 외면당하고 부모도 지원을 안해주니까 아이들이 기를 못펴서 학교를 안 가버리는 것이거든요. 학교가 재미가 없으니까요. 우리도 학교 다닐 때 생각해보면 공부 못하면 학교가 재미없잖아요. 이 문제를 해결하는 유일한 방법은 유치원 교육을 강화해서 천민 아이들이 초등학교 1학년에 들어가서 공부를 잘해서 빨리 자리를 잡도록 해주는 것입니다. nbspnbsp중학교는 3개 정도로 나누는 것이 필요할 것 같아요. 첫째는 직업학교입니다. 실제로 생활에 필요한 어학이라든지 기술이라든지 사무행정이나 노동을 배우도록 처음부터 학부모와 이야기해서 취직시켜주겠다고 약속하고 잘 다니도록 해주는 게 필요합니다. 둘째는 예술체육학교입니다. 초등학교 때부터 재능을 발굴해서 전문적으로 배울 수 있게 해주는 것입니다. 셋째는 약간 공부를 잘하는 아이들을 중심으로 한 고급학교를 운영하는 것입니다. 영어나 외국어를 강화시키고 수업도 많이 시키고요. 너무 많이 뽑지 말고 한 학년에 한 반 정도만 운영을 해보면 좋을 것 같아요. 직업학교는 여자 아이들은 중학교만 졸업하면 바로 사무직을 할 수 있도록 훈련을 시키고, 남자 아이들은 공고처럼 조금 더 기술을 익혀서 전문 기술자가 될 수 있도록 하면 좋겠습니다. 여자 아이들은 결혼을 해버리면 재능을 발휘할 기회가 없어지기 때문에 여기 시스템상 어려운 것 같아요. 그리고 유치원 때부터 재능있는 아이들은 초등학교를 정부학교 아닌 바로 수자타아카데미로 다니도록 배치를 하는 게 필요할 것 같아요. 그럴려면 수자타아카데미가 사립학교 인가를 받아야 합니다.nbspnbspnbsp그 다음 단계로는 10학년까지 인가를 받아야 합니다. 그 다음 단계로는 인터 칼리지까지 인가를 받아야 합니다. 그 다음 단계로는 수자타 칼리지까지 가야 합니다. 칼리지로 가게 되면 불교학과, 간호학과, 사회복지학과, 마을개발학과 등을 만들 수 있습니다. 농업기술이나 토목건축 정도는 기술학교 단계에서 가르칠 수도 있고요. 나이가 더 어릴 때 가르치는 것이 습득도 더 빠르거든요. 이것을 목표로 한 단계 한 단계로 쌓아 올려가자는 것입니다.nbspnbsp그리고 만약 고급학교를 만들어 수업료를 받게 된다면 이 동네 아이들은 다 장학금으로 처리해서 다닐 수 있게 하는 겁니다. 장학금을 지급하게 되면 한국에서 장학재단을 만들어서 지원하기가 오히려 쉬워요. 무상 교육을 하기 때문에 특정한 아이들에게 혜택이 돌아가면 교육상 좋지 않기 때문에 그동안 일대일 지원은 일체 안 받아 왔거든요. 이렇게 바뀌면 장학금 지원을 해도 괜찮습니다.nbspnbsp마을개발은 제일 먼저 해야할 것이 인구 센서스 조사입니다. 인구 센서스 조사에 기초해서 연령별로 면담을 하고 그에 따른 마을별 조직을 만들어서 그릇계중, 주택개량, 소 키우는 것, 이에 따른 우유 생산, 마을금고, 공동구매, 이에 따른 창고 건립을 해나가야 합니다. 수요조사를 해서 몇 집당 한 개씩 핸드펌프를 팔지, 도로를 어디로 어떻게 낼지, 등 마을 설계를 계속 해야 합니다. 그럴려면 롤러, 트랙터, 포크레인 3개는 꼭 있어야 할 것 같아요. 그러면 마음 주민들과 쉬람단을 해서 도로 정비를 우리가 할 수 있거든요.nbspnbsp또 마을에 활기를 불어넣기 위해서 축구장도 만들고, JTS배 쟁탈전 경기를 열고, 또 실력이 쌓이면 가야에서 열리는 대회에 참가해서 상금도 받고 해서 어쨌든 이 동네가 가야에서는 중심이 되도록 할 수 있습니다. 초파일 행사처럼 큰 행사가 있을 때는 우리 동네의 문화예술단이 보드가야에 가서 공연을 해준다든지, 아니면 가야에 있는 공연장을 대여해서 공연을 해도 좋겠어요.nbspnbspnbsp우선 주택 조합을 만들어서 주택을 어떻게 전체적으로 개량할 것인지, 그 다음에 도로를 내고 하수도 개선하고 핸드펌프를 파서 식수 문제를 어떻게 해결할 것이지, 그리고 제일 큰 일이 협동조합입니다. 협동조합 안에는 공동판매 파트, 공동 구매 파트가 있는데, 소의 경우에는 공동 판매에 해당합니다. 왜냐하면 우유를 생산하는 것이 목적이니까요. 우유를 집산해서 가야로 판매를 하려면 도로도 빠리 정비가 되어야 하거든요. 그리고 JTS 딱지가 붙으면 품질 보증이 되어야 합니다. 우유에 물을 타지 않도록 수분 측정을 해서 품질이 보장되도록 해야 합니다. 장기적으로는 우유 공장을 세워서 여기서 생산된 것을 가야시까지 배달해 주는 시스템을 갖추는 것이 가장 좋습니다. 그리고 공동구매는 시멘트와 벽돌, 철근 같은 경우는 우리가 대량으로 저렴하게 구입할 수 있게 해주면 좋습니다. 이렇게 아이디어를 잘 내면 주민들에게 이익이 많이 돌아가게 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마을 금고의 경우에는 마을별 조직을 만들어서 처음에는 신용을 검토해서 괜찮은 사람만 들어오게 하면 됩니다. 그러면서 점점 확대해 가면 됩니다. 이것은 구호와는 성격이 다릅니다. 자기들이 노력해서 생산하도록 하되 대신에 사적 이익으로 가지 않고 협동이 되도록 해야 합니다. 그럴려면 끊임없는 조합원 교육과 연수가 필요합니다.nbspnbsp요즘처럼 홀리가 끝나면 마을 축제를 열어준다든지, 체육대회는 언제 연다든지, 크리켓 대회는 언제 한다, 문과공연대회는 언제 한다 하는 계획이 나와야 하고 또 기술 겨루기 대회도 해야 합니다. 벽돌 빨리 쌓기, 의자 빨리 만들기, 재봉틀로 옷 빨리 만들기 등 기술자들이 모여서 경연 대회를 한다든가, 일반 노동자들은 벽돌 빨리 나르기 같은 것을 하고 시상을 해주면서 주민들에게 기쁨을 줘야 합니다. 그리고 주민들의 건강을 위해 수질조사도 해보면 좋을 것 같습니다.nbspnbsp20년 전에는 이런 아이디어들을 도저히 시도할 수가 없었어요. 왜냐하면 글을 아는 사람이 아무도 없고 전부 무지몽매한 상태였거든요. 그런데 지금은 마을에 다녀보니까 벌써 수자타아카데미를 다닌 젊은 사람들이 많이 있는 것 같거든요.”nbsp스님께서는 2시간이 넘게 그동안 고민해오시던 것과 오늘 마을 방문을 하시면서 들었던 소감을 들려주셨습니다. 많은 과제들이 도출되어서 앞으로 마을 방문을 더 진행하다보면 새로운 아이디어들이 더 추가되고 부족한 계획들은 더욱 보완이 되어갈 것 같습니다.nbspnbspnbsp사업논의 회의를 마치고 나서는 스텝들과 함께 내일과 모레 마을 방문 일정을 어떻게 가질지 회의를 하셨습니다. 특히 모레 까나홀과 바가히, 가왈비가, 자르하리는 집들이 빼곡이 밀집해 있어서 이동 동선을 어떻게 가질지 많은 연구가 필요한데, 스님께서는 아이패드로 구글지도를 보시면서 이동 동선을 많이 고민하셨습니다. 밤10시가 넘어서 회의를 마친 후 스님께서는 오늘 일정을 마무리 하셨습니다.nbspnbsp내일은 아자드비가, 안투비가, 아마르푸르, 산티나가르 4개 마을의 총 343가구를 직접 방문하셔서 새해 인사와 쌀 배분을 할 예정입니다. 내일 또 소식 전해드리겠습니다.nbsp nbsp ▼ 배고픈 사람은 먹어야 합니다, 아픈 사람은 치료받아야 합니다, 아이들은 제 때에 배워야 합니다. JTS가 인도 둥게스와리 아이들을 위해 펼치고 있는 기아, 질병, 문맹 퇴치 활동에 함께해 주세요.nbspnbspnbsp nbspnbsp nbspnbspnbspnbsp nbspnbsp
2015.3.8 인도 6일째 인도인활동가 라즈길 소풍
nbsp안녕하세요. 오늘 스님께서는 인도인 활동가 30명과 함께 라즈길로 소풍을 다녀오셨습니다. 지난 한해 동안 수자타아카데미를 운영하기 위해 곳곳에서 역할을 맡아서 수고한 인도인 활동가들을 격려해주기 위해 스님께서 어느 곳으로 소풍을 갈지 고민을 많이 하셨는데, 비교적 거리가 가까운 라즈길로 향했습니다.nbspnbsp먼 길을 떠나기 위해 평소보다 이른 새벽3시30분에 기상하여 새벽 예불 및 108배와 명상을 마친 스님 일행은 5시부터 소풍 갈 채비를 마치고 인도인 활동가들을 맞이할 준비를 했습니다.nbsp그런데 버스를 대여한 회사에 전화를 했더니 “어제밤 운전기사가 술을 너무 많이 먹어서 출근을 안했다”고 하면서 “다른 기사를 보내주겠다”고 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버스가 계속 도착하지 않아 여러차례 전화를 했지만 “다 왔다”는 말만 되풀이할 뿐이였습니다. ‘인도란 이런 곳이구나’ 다시한번 크게 느낄 수 있었습니다. nbspnbsp학교에 도착한 인도인 활동가들은 전정각사 법당에서 스님께 새해 인사를 올렸습니다.nbspnbspnbsp스님께서는 세배를 한 인도인 활동가들에게 새해 덕담과 격려의 말씀을 해주셨습니다.nbspnbspnbsp“나마스떼 새해에는 다들 건강하시고, 원하는 일이 잘 성취되기를 바랍니다. 홀리는 잘 보냈어요? nbspnbsp그런데 왜 옷에 물감이 안 묻었어요? 얼굴에도 물감이 안 묻었네요. nbsp왜 여러분들만 맛있는 것 먹고 스님한테는 왜 좀 안줘요? nbspnbsp오늘은 원래 6시에 출발하기로 했는데 기사가 술을 먹고 뻗어서 버스가 늦게 온데요. 홀리 기간이니까 여러분들이 좀 이해를 하세요.”nbspnbspnbsp그리고 스님께서 세배돈을 주자 모두들 하하호호 웃음을 띠었습니다.nbspnbspnbsp결국 약속한 시간 보다 2시간이나 늦은 8시에 버스가 도착했습니다. 그런데 늦게 도착한 버스는 우리가 주문한 50인승 버스가 아니라 작고 낡은 30인승 버스였습니다. 일정이 늦어져서 버스를 되돌려 보낼 수도 없어서 한국인 활동가들 중에 최소한의 스텝 인력만 함께 타고 나머지는 수자타아카데미에 그냥 남기로 했습니다. 새로 오신 행자님들은 소풍 간다고 새벽부터 준비했는데 많이 아쉬워 했습니다.nbspnbspnbsp우여곡절 끝에 드디어 버스가 출발했습니다. 덜컹 거리는 버스에 몸을 싣고 부처님이 가셨다는 길을 따라 라즈길로 향합니다.nbspnbspnbsp인도인 활동가들은 벌써부터 신이 났는지 스피커에 인도 음악을 크게 틀고 어깨를 들썩였습니다. 스님께서는 혹시나 스님 때문에 눈치를 볼 것을 염려하셨는지 “오늘은 신나게 노세요” 라고 하시면서 분위기를 가볍게 해주셨습니다.nbspnbsp버스가 늦게 출발하는 바람에 스님께서는 일정을 조정하셨습니다. 영축산 가는 일정과 기리악의 호수까지 걸어가서 배를 타보는 일정은 취소하고 곧바로 제띠안으로 가서 공터에서 크리켓을 하면서 놀고 점심 식사를 하기로 했습니다. 스님께서는 아이패드로 구글 지도를 보시면서 혹시나 운전 기사가 길을 잘못 들까봐 계속 점검을 하시면서 가셨습니다.nbspnbspnbsp그런데, 인도인 교사 중에 한 명이 둥게스와리가 아닌 처갓집이 있는 와질락에서 버스에 탑승하기로 해서 길을 조금 돌아가게 되었고, 또 원래 나 있는 도로가 아닌 지름길로 가로질러 가다가 도로 사정이 예상했던 것보다 너무 나빠서 오히려 시간이 더 걸리게 되었습니다. 거기다가 출발도 이미 2시간 늦은 상황이라 스님께서는 시간이 계속 늦어지고 있는 상황을 인도인 활동가들에게 설명하고 양해를 구했습니다. 인도인 활동가들은 “No Problem” 하며 웃었습니다. nbspnbspnbspnbsp그리고 “작년에 탔던 덜컹거리는 버스에 비하면 오늘이 훨씬 좋다”고 하며 즐거워 했습니다. 일정이 자꾸 늦어셔서 조금 미안한 마음이 들었는데 다시 생각해보니 늘 둥게스와리에서만 지내고 바깥으로 나가볼 수 있는 기회가 거의 없는 이들에게는 오늘처럼 이렇게 외부로 나간다는 사실 자체가 큰 즐거움이겠구나 싶었습니다. nbspnbsp드디어 오전10시30분이 되어서 제띠안에 도착했습니다. 스님께서는 “그저께 자전거 타고 왔을 때도 10시30분에 여기 도착했는데 오늘은 버스 타고 왔는데도 비슷하네” 하시며 웃으셨습니다. 부처님께서 우루벨라 가섭 등 1000명의 제자들과 라즈길로 왔을 때 빔비사라왕이 부처님을 영접했다고 하는 곳이 ‘제띠안’입니다. 제띠안에는 큰 공터가 있어서 여기에 짐을 풀고 운동도 하고 점심도 먹고 가기로 했습니다.nbspnbsp인도인 활동가들은 버스에서 내리자마자 크리켓 기구들과 축구공을 들고 공터로 뛰어갔습니다. 스님께서도 인도인 활동가들과 함께 크리켓과 축구를 하며 함께 어울리셨습니다. nbspnbspnbsp▲ 인도인 활동가들과 함께 크리켓을 하고 있는 스님nbspnbsp인도인 활동가들은 스님께서 안타를 치자 모두들 환호를 지르며 좋아했습니다. 그리고 축구공도 스님께 계속 패스를 했는데 스님께서 공을 뻥 차자 박수를 치기도 했습니다.nbspnbsp▲ 축구nbspnbsp이렇게 잠깐 인도인 활동가들과 어울리신 스님께서는 자기들끼리 더욱더 마음껏 놀 수 있게 자리를 비키셨습니다. 그리고 나무 그늘 아래에 앉으셔서 크리켓 하는 모습을 지켜보시면서 누가 크리켓을 잘하는지, 크리켓의 규칙은 어떻게 되는지, 둥게스와리 마을에서는 어떻게 선수 선발을 해서 가야시 전체의 크리켓 대회에 참여하는지, 크리켓할 때 보통 팀은 어떻게 구성하는지 등에 대해 물어보셨습니다.nbspnbsp오늘은 주니어팀과 시니어팀으로 팀을 나누어서 경기를 하고 있다고 합니다. 주니어팀은 대학을 다니고 있는 교사들이고, 시니어팀은 대학을 졸업한 교사들이라고 합니다.nbspnbsp남자들이 크리켓을 하고 있는 동안 한국인 활동가들은 인도식 라면과 한국식 라면을 끓이고 있었습니다. 라면은 불으면 안되기 때문에 라면이 다 끓여지자 크리켓을 하고 있는 남자들을 급히 다 불렀습니다. 허겁지겁 땀을 흘리며 달려온 남자들은 후후 입김을 불어가며 맛있게 라면을 먹었습니다.nbspnbspnbsp먼저 인도식 라면을 먹었습니다. 인도식 라면은 카레 가루를 섞은 국물이 전혀 없는 비빔면입니다. 양이 적었는지 다들 아쉬워하는 눈치여서 다시 한국 라면을 가득 끓였습니다.nbspnbsp▲ 인도식 라면을 먹는 모습nbsp▲ 한국식 라면을 먹는 모습nbsp인도식 라면과 한국식 라면을 다 먹어본 인도인 활동가들에게 “어느 나라 라면이 더 맛있냐?”고 물어보았습니다. 모두들 “인도 라면이 더 맛있어요” 라고 이구동성으로 이야기를 하였습니다. 아무래도 한국 라면은 매운 맛이 강해서 그런 것 같았습니다. 어제 남은 찬밥까지 챙겨와서 라면 국물에 찬밥까지 말아 먹고 나니 다들 배가 두둑해졌는지 모두들 만족스러운 표정입니다.nbspnbsp일찍 식사를 마친 스님께서는 주위를 살펴보시더니 “설거지할 물이 없네” 하시면서 직접 개울가로 가셔서 설거지물을 뜨시러 가셨습니다. 스님께서 한국에서는 늘 대중들을 위해 법문을 통해 깨우쳐주는 역할을 하시는데, 이곳 인도에서는 직접 몸으로 하시는 일이 많으십니다.nbspnbsp▲ 개울가에서 설거지물을 떠 오시는 스님nbsp점심을 먹고 나서 스님께서 “누가 이겼어요?” 물어보셨습니다. 그러자 “오전에는 한팀만 공격을 했어요. 오후에 다른 팀이 공격을 한번 더 해야 해요” 라고 해서 오후에 다시 경기가 시작되었습니다.nbspnbsp경기가 진행되는 동안 스님께서는 나무 그늘 아래 바위에서 잠시 휴식을 하셨는데, 나무 아래 바위는 찬 기운이 느껴질 정도로 시원했습니다. 그런데 햇볕으로 나오기만 하면 뜨거운 열기가 느껴졌습니다. 나무 그늘이 인도 사람들에게는 얼마나 소중한 것인지 느낄 수 있었습니다.nbspnbsp▲ 제띠안을 뒤로 하고 크리켓을 하고 있는 인도인 활동가들nbsp크리켓은 투수가 공을 던져서 나무 막대기를 맞추면 타자가 아웃이 되는데, 그렇게 하지 못하게 하기 위해서 타자가 투수가 던진 공을 저 멀리 쳐내는 경기 방식입니다. 열 번을 아웃 시켜야 경기가 끝나서 시간이 오래 걸릴 줄 알았는데 다행히 예상보다 빨리 경기가 끝났습니다.nbspnbsp스님께서 다시 “누가 이겼어요?” 라고 물어보자 “주니어팀이 이겼습니다” 라고 했습니다. 스님께서 시니어팀을 향해 “너희들은 벌써 늙어서 힘이 밀리나봐” 라고 하자 모두들 크게 웃었습니다. nbspnbsp이렇게 한바탕 땀을 흘리며 어울리는 시간을 가진 뒤에는 왕사성 북문 밖 나란다 대학으로 가는 중간에 있는 ‘실라오’라는 마을의 시장으로 갔습니다. 시장에 차를 멈추고 스님께서는 1인당 100루피씩 주시고는 “맛있는 ‘카자’ 한봉지씩 사서 집에 선물로 가져다 드리세요” 라고 하셨습니다. 인도인 활동가들은 각자 시장에 있는 여러 가게들로 흩어져서 ‘카자’ 한봉지씩을 샀습니다. 1kg에 70루피를 주고 산 사람도 있고 90루피를 주고 산 사람도 있고 다양했습니다. nbspnbspnbsp▲ 인도인들이 즐겨먹는 음식 중 하나인 ‘카자’nbsp▲ ‘카자’를 구입하고 있는 인도인 활동가들nbsp다들 집으로 가져갈 카자 한봉지씩을 한아름 들고 버스에 다시 올라탔습니다. 목이 마른 사람들이 많다고 하자 스님께서는 사이다와 애플주스도 한병씩 사주셨습니다. 한손으로는 서비스로 더 받은 ‘카자’를 먹고, 다른 한손으로는 사이다를 마시며 흥겨운 인도 음악을 들으며, 버스는 오늘의 마지막 코스인 ‘기리악’으로 향했습니다.nbspnbsp‘기리악’은 왕사성의 동문 끝에 위치한 수투파 유적지가 있는 곳입니다. 오늘 스님 일행은 빔비사라왕이 부처님을 영접했다고 하는 왕사성의 서문 쪽에 위치한 제띠안으로 들어와서 왕사성의 북문으로 나가서 ‘카자’를 산 다음에 다시 들어와서 그 중앙을 관통하는 산길을 넘어와서 왕사성의 동문 끝에 이른 곳입니다. 동문 끝에는 성벽의 흔적과 더불어 부처님과 연관이 있을 것이라고 추정되는 수투파가 산꼭대기에 세워져 있었습니다.nbspnbsp산 아래에 버스를 주차하고 한참 동안 계단을 올라가니 이 지역 전체가 한눈에 보이는 멋진 풍경이 펼쳐졌습니다.nbspnbsp nbspnbsp▲ ‘기리악’에 있는 스투파를 참배하러 올라가는 길nbsp산 중턱에는 성벽을 쌓은 흔적이 보였습니다. 스님께서는 성벽을 가리키면서 “산 봉우리가 높은 곳에는 성벽을 낮게 쌓아도 되지만 저렇게 계곡처럼 움푹 들어간 곳은 지대가 낮아서 성벽을 높게 쌓아야 한다” 고 설명을 해주셨습니다.nbspnbsp▲ 왕사성 동쪽편 끝에 쌓아진 성벽의 흔적nbsp산 꼭대기에 오르니 큰 수투파가 세워져 있었습니다. 수투파에는 보수 공사가 한창 진행 중인 것 같았습니다. 스님께서는 “작년에 왔을 때는 도굴을 해갔는지 파헤쳐져 있었는데 제법 보수를 많이 해놓았네” 하셨습니다.nbspnbsp▲ 기리악에 세워진 수투파nbspnbsp수투파 참배를 마치고 나서는 다함께 기념사진을 찍었습니다. 모두들 “나마스떼” 라고 하면서 활짝 웃었습니다.nbspnbspnbsp단체사진을 찍고 나서 스님께서는 이곳 기리악의 수투파가 왕사성에서 어떤 위치에 있었는지를 땅에 그림을 그리면서 설명을 해주셨습니다.nbspnbsp“왕사성에 있는 산 줄기는 이렇게 생겼습니다. 여기가 제띠안이고요. 여기가 북문입니다. 여기가 남문이예요. 여기가 서문이예요. 여기가 영축산이예요. 우리는 지금 여기에 있어요. 성벽은 이렇게 둘러져 있어요. 이것을 외성이라고 해요. 이 안에 내성이 있어요. 내성에 왕이 살았어요.nbspnbspnbsp나중에 빔비사라왕이 죽고 아자타사투왕 때는 북문 밖 여기에 성을 새로 쌓았어요. 이것을 ‘신왕사성’이라고 해요. 이렇게 성 주위를 산이 빙 둘러싸고 있어서 천연의 요새입니다. 왕사성은 산으로 둘러쌓여 있어서 적을 방어하기에는 최적의 조건을 갖추고 있었어요.nbspnbsp가야는 이쪽에 있어요. 죽림정사는 북문 밖에 있어요. 부처님은 제띠안이 있는 서문 쪽으로 들어오셨어요. 제띠안이 있는 산 뒤쪽으로 올라가면 꼭대기에 부처님이 계셨다는 동굴이 있어요. 그리고 영축산에서도 부처님이 계셨어요. 그리고 동문 쪽에도 동굴이 있는데 부처님은 거기서도 계셨어요. 그리고 여기도 부처님이 계셨어요. 그래서 수투파가 지금 세워져 있는 거예요. nbspnbsp그래서 다음에 시간을 내어서 이 왕사성의 외성 성벽을 따라서 이렇게 주욱 돌아봅시다. 그리고 가야에서 왕사성까지 자전거를 타고 와 봅시다. 이틀을 시간 내어서 하루는 자전거를 타고 왕사성까지 오고, 하루는 성벽을 따라서 한바퀴 돌고요.”nbsp스님께서 왕사성의 성벽을 따라서 하룻동안 걷자고 하자 다들 “와우” 하면서 웃었습니다. 힘들 것이라는 뜻인지 재미있을 것 같다는 뜻인지는 잘 모르겠으나 아무튼 다들 웃었습니다.nbsp그리고 수투파에서 조금 더 올라가 제일 높은 봉우리에 올라가니 저 멀리 큰 호수가 보였습니다. 스님께서는 호수를 가리키시면서 버스가 늦게 오는 바람에 가지 못했던 원래 계획이 되어 있었던 일정에 대해 이야기해 주셨습니다.nbspnbsp“원래는 영축산에서 저기 호수로 걸어와서 배를 탈려고 했어요. 호수 왼쪽에 있는 바위산 밑에 부처님이 계셨다는 동굴이 있어요. 동굴도 보고 배도 타보고 하려고 했는데, 버스가 늦게 와서 저기에 못 갔어요. 다음에 와서는 배를 꼭 태워줄게요.nbspnbspnbsp그리고 댐이 여기 막혀 있는데 그것이 왕사성의 동문이예요. 성벽은 동문에서 시작해서 양쪽 능선이를 따라 주욱 있어요. 시간만 있으면 밑에 내려가보면 더 좋은데 여학생들은 집에 늦게 가면 안되니까 여기서만 보고 그냥 내려갈게요.” nbspnbsp호수에서 배를 탈려고 했었다고 하자 다들 ‘아하’ 하면서 탄성을 내었는데, 해가 벌써 지고 있어서 아쉬움을 뒤로 하고 산을 내려왔습니다.nbspnbsp산을 내려오니 또한번 버스 운전수가 말썽을 일으켰습니다. 모두 산에서 내려왔지만 버스가 보이질 않았습니다. 한참을 기다려도 버스가 나타나지 않아서 전화를 해보니 “타이어를 갈려고 이동했다”고 하는 것이였습니다. 할 수 없이 타이어를 갈고 있는 버스가 있는 곳으로 강을 건너 걸었습니다. 한 30분 정도를 걸어서 기리악 시내를 관통하고 나서야 버스를 만날 수 있었습니다. 아무튼 오늘은 버스 때문에 이리저리 고생을 많이 하는 하루입니다.nbspnbspnbsp다시 버스에 탑승해 신나는 인도 음악을 크게 틀어놓고 둥게스와리로 향했습니다. 창 밖에는 붉은 태양이 뉘엿뉘엿 땅 속으로 들어가고 있었습니다.nbspnbspnbspnbsp해가 지자 스님께서는 여학생들이 집에 늦게 들어가는 것을 많이 걱정하셨습니다. 그래서 수자타아카데미에서 산 넘어 마을인 까나홀, 바가히, 가왈비가에 살고 있는 사람들은 둥게스와리로 들어가기 전에 ‘부순다’라는 마을에 모두 내려 오토릭샤를 잡아 주셔서 오토릭샤를 타고 안전하게 집으로 들어갈 수 있게 해주셨습니다.nbspnbsp▲ 오토릭샤를 잡아주고 있는 쁘리앙카nbsp4시50분에 기리악을 출발한 버스는 해가 다 지고 껌껌한 저녁 7시가 되어서 둥게스와리에 도착했습니다.nbspnbsp한국인 스텝들은 버스에서 짐을 모두 내리고 인도인 활동가들이 모두 무사히 집으로 돌아가는 것을 배웅하고 난 뒤 학교 안으로 들어왔습니다.nbspnbsp스님께서는 저녁 일정은 따로 갖지 않으시고 한국에서 온 이메일과 원고들을 점검하시며 업무를 보신 후 오늘 일정을 모두 마치셨습니다.nbspnbsp내일은 방갈비가, 만코시힐, 라훌나가르, 소라즈비가 4개 마을 총 316가구를 직접 방문하시면서 쌀 10kg씩을 나눠주고 새해 인사를 하실 예정입니다. 내일 또 소식 전해드리겠습니다.nbspnbsp ▼ 배고픈 사람은 먹어야 합니다, 아픈 사람은 치료받아야 합니다, 아이들은 제 때에 배워야 합니다. JTS가 인도 둥게스와리 아이들을 위해 펼치고 있는 기아, 질병, 문맹 퇴치 활동에 함께해 주세요.nbspnbspnbsp nbspnbsp nbspnbspnbspnbsp nbspnbsp
2015.3.7 인도 5일째 보드가야 대탑 참배 및 사업논의
▲ 보드가야 대탑 참배nbspnbsp안녕하세요. 오늘 스님께서는 인도 달력으로 새해를 맞이하여 부처님께서 깨달음을 얻으신 곳을 기념하여 세워진 보드가야 대탑을 참배하신 후 수자타아카데미로 돌아와서 인도JTS 사업에 대해 회의를 하셨습니다.nbspnbsp오늘도 새벽4시에 기상하여 전정각사 법당 안에서 새벽 예불 및 108배 정진을 함께 하며 하루를 시작합니다. 인도JTS 활동가들의 우렁찬 염불 소리와 목탁소리가 고요한 둥게스와리의 아침을 깨웁니다.nbspnbsp▲ 새벽 예불nbsp각자 맡은 구역에서 청소를 정성껏 한 후 6시에 다시 법당으로 모여 발우공양을 했습니다. 부처님의 일생과 가르침이 담긴 소심경을 외우며 발우를 펴는데 ‘부처님이 수행하신 바로 이곳에서 소심경을 읊고 있구나’ 하는 생각이 들자 마음 속에 잔잔한 기쁨이 일어나기도 했습니다.nbspnbsp▲ 발우공양nbsp스님께서는 발우공양을 마치고 대중공사 시간이 되자 “주연우님은 이번에 발우공양을 처음 해보는 거예요?” 물으신 후 “네” 라고 하자 “그럼 오늘부터 제가 발우공양 때 읊는 소심경에 대해 매일 강의를 조금씩 해드릴게요”라고 하시며 오늘은 그 첫 번째 시간으로 발우의 의미와 부처님은 왜 걸식을 하셨는가에 대해 법문을 해주셨습니다.nbspnbsp“‘발우’라고 할 때 ‘발’자는 인도말 ‘발다나’에서 온 것인데 ‘적당한 양을 담는다’는 뜻입니다. ‘우’자는 그룻 ‘우’자라고 해서 중국말입니다. 두 말이 합쳐진 것입니다. 적당한 양을 담는다는 것의 의미는 수행을 하려면 이 몸이 살아있어야 하잖아요. 살아있기 위한 최소한의 양이 적당한 양입니다. 마음껏 먹는 양이 적당한 양이 아니고요. 몸을 유지하기 위한 최소한의 음식을 담는 그릇이라는 뜻으로 ‘발우’라고 부릅니다.nbspnbspnbsp부처님 당시에는 걸식을 해서 밥을 드셨는데 ‘발우’의 의미대로 최소한의 양만 얻어 드셨습니다. 얻어 먹는데 고기를 줄리 만무하잖아요. 그래서 대부분 채식을 하셨지만 채식주의자는 아니였습니다. 왜냐하면 주는 대로 먹는데 채식만 요구할 수는 없잖아요. 계율에는 음식을 가리지 않고 주는 대로 먹게 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맛에 탐닉하지 말라’는 계율이 있습니다. 그러나 대승불교에 와서 ‘고기를 먹지 마라’는 풍속이 생긴 것은 계율이라기 보다는 불교가 브라만교를 흉내내면서 ‘우리가 고귀하다’는 것을 나타내는 데서 전래되어 온 것이 아닌가 싶어요. 원래 브라만은 채식을 하였습니다. 남방불교 계율에는 ‘고기 먹지 마라’, ‘오신채를 먹지 마라’, 이런 계율은 없습니다. 이것은 브라만의 영향을 받은 대승불교의 전통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어쨌던 우리는 전통을 계승해야 합니다.nbspnbsp그런데 불교가 중국으로 넘어오면서 중국은 걸식을 성스럽게 생각하지 않고 거지 취급을 했거든요. 그래서 중국에 선불교가 들어오면서부터는 절에서 밥을 해먹게 된 것입니다. 그러나 밥을 해먹더라도 걸식의 정신은 살리자는 취지로 밥을 얻어먹는 것 같은 발우공양의 예식을 갖추었습니다. 밥을 배분하는 방식은 인도에서 잔칫날에 초대받아 가면 배분해주는 방식과 비슷합니다. 음식을 만들더라도 걸식하는 모양을 갖추어서 발우공양을 했습니다.nbspnbsp그래서 발우공양의 가장 중요한 정신은 걸식하는 마음입니다. 수행자들은 걸식을 함으로써 당시 사회제도인 노예 계급에 의지하지 않고 생활할 수 있었습니다. 정토회가 월급을 주는 고용을 하지 않고 자원봉사자로써만 생활하는 중요한 이유도 이 걸식의 정신과 같습니다. 이곳 마을의 주민들이나 선생님들이나 모든 사람들이 스님에 대해서 존경을 한다고 하지만 그 존경은 사실은 수행자에 대한 존경이 아닙니다. 자기를 도와주는 사람, 즉 사장으로서의 존경이죠. 자신들에게 월급을 주거나 생활을 도와주는 사람이니까요. 그래서 한국의 정토회에서는 적어도 수행생활에서는 일체 고용을 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우리는 자본주의 사회에 살지만 자본주의 시스템을 갖지 않으려고 하기 때문입니다. 부처님은 노예 계급의 사회 시스템 안에 살으셨지만 걸식함으로 해서 노예가 필요없는 삶을 사셨거든요.nbspnbsp신라 시대에는 사찰이 다 노비를 갖고 살았습니다. 부처님처럼 사회의 신분질서를 벗어나지 못했던 것이죠. 아무리 유명한 고승이라고 해도 사회의 계급 질서 위에서 학문적으로 훌륭한 사람이지 모든 것을 초월한 수행자라고는 할 수 없습니다. 오늘날 한국에 있는 모든 절도 마찬가지죠. 돈을 주고 노동자를 고용해서 생활하고 있잖아요. 우리가 수행의 원칙을 엄격하게 지킬려면 사람을 고용하면 안됩니다. 누군가에게 월급을 지불하면 그것은 사장이지 수행자는 아닙니다. 하지만 인도는 우리의 수행 생활을 위해서가 아니라 병원과 학교를 운영해야 하다보니까 그 원칙을 못지키고 있습니다. 그러나 아직 한국에서는 철저하게 원칙을 지키려고 하고 있습니다.nbspnbspnbsp절에서 노동자에게 인건비를 적게 주면 나쁜 주인이고, 인건비를 많이 주면 좋은 주인이 됩니다. 나쁜 주인과 좋은 주인의 차이만 있지 수행자의 모습은 아닙니다. 그래서 제가 인도에 있으면서 마을 사람들에게 일체 법문을 안하는 이유도 제가 이 사람들에게 수행자로 다가가지 않으면서 불교를 가르친다는 것은 이치에 맞지 않기 때문입니다. 제가 어떤 좋은 말을 해도 돈을 주고 그 돈을 받아서 주민들이 생계를 유지하고 있기 때문에 이것은 노동자와 주인의 관계입니다. 그래서 이 시스템을 어떻게 극복할 것인지는 우리에게 큰 과제입니다.nbspnbsp부처님은 이 시스템에 관계되는 일은 아무리 효율적이라고 해도 하지 않으셨거든요. 부처님이 바라나시로 가기 위해 강가강을 건너실 때 사공에게 “배를 좀 태워주겠는가?”라고 묻자 “네”라고 하면서 “돈을 주십시오” 하자 부처님은 그 배를 타지 않으시고 날아서 건너셨다고 하잖아요. 그래서 지난 20여년 동안 제가 이곳 사람들에게 윤리적인 측면에서는 얘기를 했지만 수행법을 잘 얘기하지 않았던 이유는 아직 관계가 도반의 관계로 정립이 안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제가 처음에 이곳에 학교를 세울 때는 돈을 주고 받는 개념은 없었거든요. 마을 사람들도 다 자원봉사로 와서 함께 일을 하고 식량을 가져갔는데, 제가 한국에 다녀오는 사이에 이것을 월급 주는 개념으로 바꿔놓아 버렸더라구요. 그래서 다시 환원시키기가 어려웠어요. 학교를 유지할 때도 100 자원봉사자로만 운영을 했는데 지금은 학교를 유지하는데 고용된 사람들이 10명 이상 이거든요. 물론 우리 생활을 위해서 고용한 건 아니예요. 우리 생활을 위한 고용은 지금도 절대로 허용될 수 없습니다. 학교와 병원을 유지하는 것이기 때문에 현실적으로 용인이 되고 있는데, 그러나 적어도 불법을 전파하려면, 그리고 공동체를 유지하려면, 이 문제를 어떻게 극복할 건지가 중요한 과제가 됩니다.nbspnbsp자본주의 시스템 속에서 어디까지를 수행공동체로 하고, 어디까지 자본주의 시스템을 받아들일 것인가 하는 문제인데요. 적어도 상가 안에는 절대로 자본주의 시스템을 받아들이면 안됩니다. 그러면 상가는 대중의 존중을 받는 조직이 될 수 없습니다. 오늘날 모든 절이 자본가로 전락했습니다. 공양주, 운전수 모두 고용된 사람들이잖아요. 우리의 모든 목표는 부처님의 근본 가르침을 기준으로 해서 그 부족함을 반성하고 닮아가는 것입니다.nbspnbspnbsp그런데서 부처님이 걸식을 하신 이유는 그 당시에 노예제 시스템을 벗어날 수 있는 길은 걸식 밖에 없었기 때문입니다. 음식은 걸식을 하고 옷은 주워서 입고 잠은 나무 밑에서 자지 않는 이상 노예제 시스템을 받아들이지 않을 수가 없었기 때문에, 적어도 상가 만큼은 그 시스템의 영향을 받지 않도록 한 것입니다. 그래서 상가는 중생으로부터 존중을 받을 수 있었던 것입니다. 그 시스템에 구애받지 않고 살으신 분들이기 때문에 그것만 갖고도 존중받을 만한 존재들이였습니다.” nbspnbsp부처님이 노예제 시스템을 벗어나 걸식을 하셨듯이 정토회는 자본주의 시스템을 벗어나 자원봉사자로 구성하고 있다는 말씀이 큰 울림으로 남았습니다. 어렵지만 부처님의 근본 가르침 대로 살아가려고 하는 스님의 깊은 뜻을 배울 수 있어 감사한 마음이 들었습니다.nbspnbsp발우공양을 마치고 스님께서는 “오늘은 인도 달력으로 신년 초이기 때문에 보드가야 대탑을 참배하는 것이 좋겠습니다” 라고 하신 후 “또 푸자 기간이라 운전사도 쉬어야 하니까 가능하면 사람을 고용하지 말고 우리 힘으로 다녀옵시다” 하시면서 대탑까지 걸어서 다녀오자고 제안하셨습니다. 모두들 “네”라고 크게 대답하고 밖으로 나갈 채비를 했습니다. nbsp nbspnbsp▲ 걸어서 수자타아카데미에서 보드가야 대탑으로 향하는 길nbsp아침 7시20분에 수자타아카데미를 출발한 스님 일행은 전정각산 아래의 두르가푸르, 방갈비가, 만코시힐, 모라탈 마을을 지나 부처님이 고행을 그만두고 네이란자라강에서 목욕을 하시다가 쓰러지셨다고 하는 곳에 세워진 탑터를 먼발치서 보면서 수자타 마을을 지나갔습니다. 논두렁길을 걷다 보니 수자타가 부처님께 공양을 올렸다고 하는 곳에 세워진 탑과, 수자타의 집터에 세워진 탑을 먼발치서 볼 수 있었습니다.nbspnbsp▲ 부처님께서 쓰러지셨다고 하는 네이란자라강nbspnbsp그리고 인도정토회가 명상센터 부지로 구입해 놓은 곳 앞에서 잠시 휴식을 하였습니다. 이곳에 명상센터가 지어지면 참 좋을텐데 아직은 여력이 없어서 부지만 구입해 놓은채 계속 시간이 흘러가고 있어 안타까운 마음이 들기도 했습니다.nbspnbsp▲ 뒤에 담벼락으로 둘러쳐진 부분이 인도정토회의 명상센터 부지nbsp▲ 논두렁길nbsp구불구불한 논두렁 길이 끝나자 보드가야로 넘어가는 긴 다리가 나타나고, 저 멀리 뾰족하게 ?은 보드가야 대탑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습니다.nbspnbsp▲ 다리가 나타나자 왼쪽편에 뽀족하게 생긴 대탑이 모습을 드러냅니다.nbspnbsp오전 10시 쯤에 보드가야 대탑에 도착한 스님 일행은 대탑 앞에 서서 사시예불을 올렸습니다. 3월의 뜨거운 뙤양볕이 내리비쳤지만 모두들 아랑곳하지 않고 정성껏 새해 맞이 기도를 했습니다. 사시예불을 올리며 스님께서는 인도JTS 활동가들을 위해 발원과 축원을 함께 해주셨습니다.nbspnbsp▲ 보드가야 대탑 앞에서 사시예불nbsp“2015년 인도의 새해를 맞이하여 부처님께서 성도하신 마가다국의 보드가야 대탑을 참배하며 발원하옵나니 저희의 발원을 성취되게 하옵소서.nbspnbsp저희 대중 일동은 전정각산 산하 전정각사 수자타아카데미에서 자원봉사하는 정토행자들로서 가난한 이의 복전이 되고자 배고픈 사람에게는 먹을 것을, 병든 이에게는 약품을, 배우지 못한 아이들에게는 배움의 터를 제공하는 등 가난하고 괴로운 이를 돕기 위하여 이와 같이 보살행을 하고 있으니, 이들 대중들의 수행정진을 제불보살님들은 증명하여 주옵시고, 이들 행자들의 발원이 성취되고 수행정진이 깊어지고, 보살피는 사람들까지도 모두 행복하도록 천룡팔부 신중님들은 옹호하여 주옵소서.nbspnbsp▲ 새해를 맞이하여 인도JTS 활동가들을 위해 축원을 해주시는 스님nbsp이와 같이 수행정진하는 동안 모두 건강하고 심신이 강건하여 세운 원이 성취될 때까지 물러서지 않는 불퇴전의 용기로 용맹정진 하기를 발원하옵나니 대자대비하신 관세음보살님과 대원본존 지장보살님께서는 본래 서원 어기지 마시고 이들 행자들을 잘 보살피고 옹호하여 주옵소서.nbspnbsp이와 같이 정초에 부처님이 성도한 마하보디 수투파를 참배하고 발원한 인연 공덕 일체 중생에게 회향하오니 일체 중생들 모두 이고득락 하게 하옵시고, 이 모든 공덕 먼저 돌아가신 조상 영가님들께 회향하오니 유주무주 모든 고혼들 왕생극락 하게 하옵소서. 나무 석가모니불 나무 석가모니불 나무 시아본사 석가모니불.”nbspnbsp스님의 간절한 발원과 축원을 들으니 더욱더 마음이 모아지고 기운이 솟아나는 것 같았습니다. 이렇게 스님께서 직접 축원을 해주셨으니 올 한해는 정말로 인도JTS 활동가들 모두가 부지런히 수행정진 하는 보람찬 한해가 될 것 같습니다.nbspnbspnbsp대탑 주위에는 태국, 스리랑카, 티벳에서 오신 스님들과 불자들이 많이 있어서 스님의 목소리가 잘 들리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대탑 남쪽 편에 인적이 드문 나무 그늘 아래로 이동해 앉았습니다. 스님께서는 이곳에 처음 와본 9기 행자님들을 위해 보드가야 대탑에 대한 설명과 부처님의 수행, 성도와 교화에 대한 이야기를 자세히 들려주셨습니다. nbspnbsp▲ 보드가야 대탑 옆에서 부처님의 일생에 대해 이야기해 주고 계신 스님nbsp“부처님께서는 카필라바스투에서 출가하신 후 남동쪽으로 내려오셔서 라즈길에 이르러 스승을 찾아 정진을 하셨습니다. 그 스승의 경지까지 이르렀지만 그 경지가 해탈의 경지가 아님을 아시고 스승 곁을 떠나서 이곳 가야 근교의 둥게스와리에 오셔서 그 누구도 흉내낼 수 없을 만큼 용맹정진을 하셨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깨달음을 얻지 못하시자 자신의 삶을 되돌아 보셨습니다. 세속에 있으면서는 욕구를 쫓아 갔고, 출가해서는 욕구를 억압하는데 급급했음을 자각하고, 쾌락과 고행을 떠난 제3의 길 ‘중도’를 발견하시고 전정각산에서 내려오셨습니다. 강가에서 목욕을 하시고 쓰러지셔서 떠내려 가다가 나뭇가지를 잡고 강변으로 기어올라와 있는데 소에게서 우유를 짜러 나온 ‘수자타’ 라는 소녀가 그 쓰러진 그 수행자를 보고 우유에 쌀을 갈아 넣은 유미죽을 만들어서 공양 올리자 부처님께서는 다시 건강을 회복하셨습니다.nbspnbspnbsp강을 넘어오셔서 이곳에 있는 큰 보리수 나무 아래에 앉으셔서 마지막 정진을 하셨어요. 마침 풀을 베고 있던 목동에게 길상초를 얻으셔서 한아름 깔고 49일 동안의 용맹정진 후에 마왕의 유혹을 물리치고 마침내 깨달음을 얻으셨습니다. 인도 달력으로 2월 보름에 성도한 것으로 전해져 내려 오고 있습니다.nbspnbsp성도 후에 부처님께서는 보리수 나무 아래의 그 자리에 앉아서 일주일 간 깨달음의 기쁨을 만끽하셨고, 두 번째 주에는 앉았던 보리수 나무를 응시하면서 일주일 간 정진을 하셨어요. 세 번째 주에는 열아홉 발자욱을 왔다갔다 하면서 행선을 하셨습니다. 네 번째 주는 가만히 앉아 있는데 몸에서 빛이 나는 방광을 하셨어요. 다섯 번째 주는 어떤 바라문이 지나가다가 부처님을 만나서 “이 세상에서 제일 고귀한 것이 무엇입니까?” 라고 물으니 부처님께서 “마음이 청정한 자가 가장 고귀합니다” 했더니 그 바라문이 “흥” 하고 콧방귀를 끼고 지나갔다고 합니다. 여섯 번째 주는 이 지역에 홍수가 나서 이곳이 다 물에 잠겼나 봐요. 일주일 내내 비가 쏟아져서 큰 용왕이 부처님 몸을 보호했다고 해요. 일곱째 주에는 부처님이 앉아 계시는데 두 명의 상인이 지나가다가 부처님께 공양을 올려서 성도 후 처음으로 식사를 하셨다고 합니다. nbspnbsp그리고 부처님은 이 좋은 법을 혼자 간직하지 않고 세상 사람들과 나눠야 되겠다고 마음을 먹으셨어요. 그러나 이 법이 너무나 미묘하기 때문에 세상 사람들이 쉽게 알아듣기가 어렵다고 보신 것 같아요. 당시에는 절대적인 힘을 가진 신이 있고 유한한 인간은 그 무한한 신에게 제사를 지내서 복을 구하는 것이 모든 신앙 형태였어요. 그러나 부처님은 “인간의 운명을 좌우하는 나 밖의 어떤 특별한 존재가 없다. 그런데 왜 인간은 이렇게 고뇌하는가. 이것은 무지에 의해 형성된 까르마 때문에 그렇다. 그래서 이 무지를 타파하게 되면 모든 고뇌에서 벗어난다” 라고 하는 새로운 길을 제시하셨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창조설도 부정되고 인간계급설도 부정되고 제사를 지내는 종교의식도 다 필요없는 것이 되어버렸습니다. 남녀의 평등, 계급의 평등을 말씀하셨고, 오직 수행정진을 통해서 해탈하는 길을 가르치셨습니다.nbsp지금은 불교마저도 불법을 버리고 다 종교화 되어 버렸는데, 그 당시에 이것을 듣고 이해한다는 것은 사실은 어려운 일이였어요. 깨닫는 것도 어렵지만 이것을 남에게 얘기를 하게 되면 더 저항을 받게 되니까, 경전에서는 마왕이 “법을 설하지 말고 혼자 열반에 들어라” 하고 유혹하는 장면이 나오고, 다른 한쪽에서는 범천이 “그렇지 않다. 세상 사람들이 어리석지만 그래도 이 좋은 법을 만나면 깨달을 수 있는 사람이 있다” 하고 권청을 합니다. 그래서 부처님께서는 이 법을 듣고 이해할 수 있는 사람으로 두 분의 스승을 생각했어요. 그러나 그 분들은 이미 돌아가시고 없었어요. 다음으로 생각한 것이 전정각산 아래에서 자신과 함께 정진했던 다섯 도반들입니다. 그래서 부처님께서는 그 옛 친구들과 깨달음의 기쁨을 함께 나누기 위해서 여기서 보름 동안 걸어가셔서 바라나시 근교의 사르나트에서 처음으로 설법을 하셨습니다.nbspnbspnbsp그리고 다섯 도반들 다음으로 구리가 장자의 아들인 야사 비구를 교화하고 그 친구들 55인을 교화해서 총 60명을 모아 놓고 “나는 모든 신과 인간의 굴레로부터 벗어났다. 너희들도 해탈을 얻었다. 자, 이제 전법의 길을 떠나거라” 하는 전법 선언을 하시고 이곳 가야로 오셨습니다. 우루벨라 가섭과 500명의 제자들을 교화하고, 나디 가섭과 300명의 제자들, 가야 가섭과 200명의 제자들까지 총 1000명을 교화해서 가야산에서 탐진치 삼독의 불을 꺼라는 설법을 하셨습니다. 자신들이 신성시하는 불을 섬기던 제사 도구들을 다 강에 버리자 부처님께서 “너희들은 이제 불을 섬기는 것은 버렸다. 그러나 마음 속에 탐진치 삼독의 불은 아직 꺼지지 않고 타고 있으니 그 불을 꺼라” 고 하는 불의 설법을 가야산에서 하셨습니다.nbspnbsp수자타아카데미가 있는 곳은 부처님이 6년간 수행한 자리이고, 이곳은 성도한 자리이고, 우루벨라 가섭과 나디 가섭과 가야 가섭이 있었던 곳은 교화한 자리입니다. 그 1000명이 교화되었기 때문에 왕사성으로 들어갔을 때 빔비사라왕을 교화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여기는 수행, 성도, 교화 세 개의 성지가 다 있는 곳입니다. 대부분 성도한 자리인 이곳만 보고 가는데 이것은 일부에 불과합니다. 성도한 자리가 소중하지만 실제로 부처님의 모든 수행은 전정각산 아래에서 이루어진 것이기 때문에 그곳도 무척 중요합니다. 물론 성도한 자리도 정말 소중하고요.nbspnbsp그래서 저희가 신년초에 이곳에 와서 참배를 한 것입니다. 오늘 참배를 했으니까 내일부터는 각자 업무를 맡아서 열심히 일을 합시다. 이 기운을 받아서 올해 1년 동안 잘 지내시기 바랍니다.”nbsp500여명의 대중들을 이끌고 성지순례 안내를 해주시는 스님께서 오늘은 10명 남짓한 젊은 청년들을 위해서 성지 안내를 해주셨습니다. 한명이든 오백명이든 정성을 다해 이야기해주시는 스님의 모습을 보며 ‘스님께서는 항상 지금 여기에 깨어있으시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리고 스님의 설명을 다 듣고, 다함께 대탑 앞에서 기념 사진을 찍었습니다.nbspnbsp이어서 스님께서는 부처님께서 성도 후에 7주 동안 머무셨다고 표시되어 있는 곳을 하나 하나 안내해 주셨습니다. “이곳은 두 번째 주에 보리수 나무를 응시했던 곳이예요”, “이곳은 세 번째 주에 열아홉 발자욱을 행선하신 곳이예요” 등 스님의 안내를 들으며 대탑 주위를 모두 둘러 보았습니다.nbspnbsp▲ 부처님께서 성도 후 세 번째 주에 열아홉 발자욱을 행선하셨다는 곳nbsp특히 오늘은 태국에서 많은 스님들이 오셔서 한줄로 차례대로 줄지어 대탑을 참배하고 가시는 모습이 참 인상적이였습니다. 한가지 색깔의 가사와 가방을 깔끔하게 맞춰 입고 행선을 하셨는데 스님께서는 “태국에도 아직 이런 좋은 스님들이 많이 있으시네” 하시며 관심있게 지켜보셨습니다.nbspnbsp▲ 줄을 맞춰 행선을 하시는 태국 스님들nbsp대탑을 참배하고 나서는 주위의 식당가로 가서 국수와 수제비, 볶음밥, 만두를 함께 먹었습니다. 그리고 인도JTS에서 자원봉사를 하다가 1년 전에 회향을 한 김정준님과 정수진님이 얼마전부터 가야에 머물고 있어서 오늘 스님께서 보드가야에 오신다는 소식을 스님의 하루를 통해 읽고 인사를 하러 찾아왔습니다.nbspnbsp▲ 점심 식사nbsp스님께서는 식사를 함께 하면서 또 보드가야에서 수자타아카데미로 들어오는 길에 김정준님과 최근 가야 인근 지역의 변화된 모습들에 대해 많은 이야기를 나누셨습니다.nbspnbsp▲ 가야의 변화된 최근 모습에 대해 이야기해 주고 있는 김정준님nbsp그리고 수자타아카데미로 다시 들어가는 길에는 부처님께서 바라나시에서 전법 선언을 한 후 가야로 돌아와서 나디 가섭을 교화한 곳이라고 추정되는 유적지를 찾아가 보았습니다. 지금은 힌두교 유적지로 이용되고 있었지만 스님께서는 “경전 기록과 지도 상의 위치로 보면 여기가 아마도 나디 가섭이 수행하던 곳인 것 같다” 고 알려주셨습니다.nbsp▲ 부처님께서 성도 직후 교화한 나디 가섭의 수행터에 세워진 탑nbspnbsp나디 가섭의 탑 앞에는 커다란 반얀트리가 큰 그늘을 드리우고 있어서 이곳에서 잠시 휴식을 취했습니다. 햇살이 따갑게 내리쬐니까 그늘과 그늘 아닌 곳의 온도차가 매우 컸습니다. 시원한 그늘 아래에서 두런 두런 이야기를 나누다가 다시 일어서서 수자타아카데미로 향했습니다.nbspnbspnbsp오후3시 무렵 수자타아카데미에 도착한 스님 일행은 잠시 휴식을 취한 후 내일 인도인 스텝들과 함께 떠날 봄소풍을 준비를 함께 했습니다. 스님께서는 한국에서 온 이메일과 원고를 체크하시면서 업무를 보셨습니다.nbspnbsp그리고 저녁7시부터는 인도JTS 활동가들과 함께 사업논의 시간을 가졌습니다. 먼저 3월21일까지 스님과 함께하는 일정에 대해 꼼꼼하게 다시 점검을 했습니다. 그리고 이어서 마을 개발을 어떻게 할지, 학교 운영을 어떻게 할지 등에 대해서 스님께서 생각하시는 구상을 들려주셨습니다.nbspnbsp“앞으로 행자들이 많이 들어오게 될텐데 대중들이 더 많아질 경우에 대비해서 건물 전체에서 대중방을 어디에 새로 마련하는 것이 좋을지 연구가 좀 되어야 합니다. 제일 좋기는 기숙사로 옮겨가면 부엌 시설도 넓고 좋은데, 이곳 게스트하우스 내의 창고 자리는 여름에 습기가 차고 물이 새는 문제가 있거든요. 한번 체크를 해보세요. 기숙사 곳곳을 둘러보고 공간 사용을 어떻게 할지 연구가 필요합니다.nbspnbsp▲ 인도JTS 사업논의nbsp그리고, 학교 안에 정원을 어떻게 정비할 것인지, 나무를 베거나 심거나 내부 정비를 어떻게 할지 살펴야 합니다. 그리고 학교 외벽에 부처님의 일생이나 전정각산 고행과 관련된 그림과 경전 문구를 어떻게 그릴지 정하면 좋을 것 같고요. 또 학교 정문 옆에 불교 기념품을 판매하는 가게를 어떻게 낼지 방안을 정해야 할 것 같아요. 그 다음에 학교 뒤쪽에 땅 구입을 어떻게 할지 살펴봐야 합니다.nbspnbsp장기적으로는 인도인 스텝들의 집을 지어주자는 제안도 있었는데, 젊은 스텝들은 월급을 많이 못주는 대신에 아예 집을 괜찮게 지어주는 것도 검토가 필요할 것 같아요. 자원봉사 선생님들을 아예 생활비를 지급해주는 시스템으로 가게 될 경우 생계를 평생 보장해줘야 하는 문제가 되어서 간단한 문제는 아니예요. 공동체로 가야 하거든요. 꼭 출가해서 들어오는 공동체가 아니라 결혼해서도 공동체로 지낼 수 있도록, 그래서 교사의 부인들도 유치원 선생을 하든가 일정한 역할을 하게 하는 것도 필요할 것 같아요. 아니면 교사의 부인들이 직업을 가질 수 있게 해서 오히려 교사의 부인들이 약간의 수입을 갖고 교사들은 봉사자로 참여할 수 있게 한다든지, 이렇게 우리의 전체 사업이 갖는 공동체성을 훼손하지 않으면서도 생활비를 충당할 수 있는 방법을 연구해 봐야 할 것 같아요.nbspnbsp일단 마을 인구 현황이 담긴 카드 발급 문제는 빠른 시일 내에 마무리를 지어야 합니다. 그것을 기반으로 해서 마을마다 총 여섯가지 부류를 조직해야 합니다. 첫번째는 우선 35세 미만의 결혼해서 애기가 있는 남자들을 조직하는 것이 필요하고요. 그 나이의 아기 엄마들을 부녀회로 조직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두 번째는 15세에서 25세 사이에 2차 결혼을 아직 하지 않은 애기를 갖지 않은 남자와 여자들을 각각 조직해야 합니다. 세 번재는 35세 이상 50세 미만의 장년 조직이 남자와 여자 각각 필요합니다. 이렇게 여섯 개의 조직을 각 조직마다 최소 10명 정도씩 한 마을에 총 60명을 조직할 수 있습니다.nbspnbsp이것을 먼저 조직하면 앞으로 마을금고와 공동구매를 본격적으로 진행해 볼 수 있을 것 같아요. 총 15개 마을에 60명씩 조직을 하면 총 900명이 됩니다. 이렇게 1000명 정도가 조직이 되면 1000명의 필요성에 따르는 건축 자재든 공산품이든 제사 음식이든 공동구매해서 배분해줄 수가 있습니다. 그리고 ‘그릇계중’처럼 조직 단위로 그 연령대에 맞는 필요 물품들이 있다면 공동 사용 물품을 지원해 주면 좋을 것 같습니다.nbspnbsp그리고 주택 조합을 구성하게 되면 이들이 다 주택조합원이 될 수 있습니다. 기본설계는 같이 하지만 추가로 더 필요한 것은 자기들이 내게 하든가 용자를 내어 주든가 할 수 있을 것 같아요. 그리고 동네마다 우물을 열 집 마다 파주기 위해서는 몇 년 계획을 세워 어떻게 하자는 등 이런 설계들을 주욱 해나가야 하는데, 그렇게 하기 위해서는 이런 의논을 상시적으로 하는 조직이 필요합니다. 현재의 마을 리더들은 영향력이 없잖아요. 이렇게 실질적으로 생활에 관계된 것을 풀어나가는 것이 필요할 것 같아요.nbspnbsp청년회 조직은 크리켓 대회를 한다든지 축구 시합을 한다든지 해서 활성화 할 수 있는데, 두 개 마을 당 1개 정도의 축구장을 빈터에 마련해 주면 좋을 것 같아요. 개인이 쓰는 게 아니라 청년회에서 관리하도록 하면 되거든요. 여자들은 그 나이에 글 모르는 사람들이 있으면 가르쳐주고요.nbspnbsp미리 조사를 해서 초등학교에서 중학교에 못 올라가는 아이들은 두 가지 길이 있는데 공부를 못하는 아이들은 기술 노동 훈련을 시켜줘야 하고, 공부는 좀 하는데 집이 가난해서 진학을 못한다면 사무직 노동 훈련을 할 수 있게 해주고요. 그래서 컴퓨터를 구비해서 사무 교육과 청소하고 심부름 하는 행정 업무를 보조할 수 있는 훈련을 좀 시켜주면 좋을 것 같아요. 12년 간 학교와 병원에서 근무하게 하면서 교육을 시켜주고 약간의 용돈도 주면서 장기적으로 취직을 시켜줄 수 있게 해준다든지 할 수 있습니다. 인도가 앞으로 발전을 하게 되면 전화도 받고 서류 정리도 해주는 사무 보조자들에 대한 수요가 굉장히 많아질 수 밖에 없어요. 그래서 미리 교육을 시켜놓아서 ‘우리 아이들을 데려가면 일을 잘한다’ 하는 소문이 나도록 훈련을 시키는 것이 필요할 것 같아요.nbspnbspnbsp초등학교는 정부 학교가 있으니까 앞으로는 유치원을 강화시켜야 할 것 같아요. 유치원 교육과 시설을 보완하고, 건물 리모델링을 하고, 유치원 선생을 더 보완해서 문맹 퇴치를 하고, 초등학교는 대부분 가까이에 있는 정부학교로 기본 배치를 하고, 자그디스푸르와 두르가푸르, 방갈비가, 세 군데 마을만 수자타아카데미에서 관장하고요. 중학교는 확실하게 직업학교로 전환을 하고요.nbspnbsp다른 하나는 아예 리더를 키우는 고급학교를 만들 수 있을 것 같아요. 아이들에게 컴퓨터도 가르쳐주는 등 가야에서 괜찮은 사립학교가 되도록 하는 방법도 있어요. 다른 지역에서 오는 아이들은 숫제 학비를 받고 입학을 시키고요. 우리 마을 출신들은 시험을 쳐서 성적이 되면 장학금을 줘서 학교를 다닐 수 있게 하고요. 선생님도 시간 강사들을 다 불러서 영어나 외국어 등을 제대로 가르치게 하고 강의료를 주는 방법도 있습니다.nbspnbsp다른 하나는 예술체육학교로 만들면 어떨까 싶어요. 철저하게 춤, 노래, 무용, 체육 이런 것만 전문적으로 가르쳐서 아이들이 자긍심을 가질 수 있게 하면 좋겠어요. 어차피 대학에 못갈바에야 이런 기능이라도 있는 것이 낫잖아요. 필요하다면 상카시아나 가야에서 행사 있을 때 공연도 하고, 태권도를 강화하거나 축구도 마을별로 리그를 만들고 강팀을 하나 만들어서 대회에 내보낼 수 있습니다. 동네 아이들이 어릴 때부터 굉장히 강하게 자라서 체육을 하면 오히려 괜찮을 것 같아요. 아이들이 기를 못펴고 사는데 유명한 선수가 되지 않는다 하더라도 우선 자긍심을 가질 수 있잖아요. 이렇게 예체능계로 학교를 만들고, 마을 사이에 규격 축구장을 만들어줄 수도 있습니다. 인도 전통 예술을 잘 가르쳐서 전세계로 공연도 하고요. 아이들이 춤에 재미를 붙여서 죽기 살기로 연습하면 한국의 KPOP 못지 않게 될 수도 있어요. nbspnbsp초등학교를 졸업하기 전에 미리 조사를 해서 성적이 나쁘면 일반 학교를 보내면 안되고 기술 노동 훈련을 시켜야 합니다. 또 학습능력은 있는데 집이 가난해서 상급학교로 진학을 못한다고 한다면 이런 아이들은 바로 직업학교를 보내면 좋습니다. 그렇게 해서 15살이 되면 바로 취직을 시키면 됩니다. nbspnbsp그래서 아이들이 잘 할 수 있는 걸 가르쳐야 하거든요. 우리 아이들은 인문계 공부는 안 될 것 같아요. 공부는 내내 가르쳐봐야 어차피 공무원 시험을 쳐서 합격해도 뒷돈을 줘야 하기 때문에 공무원이 될 수가 없으니까 다 룸펜이 되거든요. 공부을 안 가르쳤으면 그냥 노동해서 밥 먹고 살텐데 수자타아카데미 나와서 대학까지 나왔는데 취직은 안되고 농사도 안짓고 룸펜이 되어서 마누라 애만 먹이고, 또 소비 수준은 높아져서 핸드폰도 가져야 하고, 자전거도 가져야 하고 이러니까 골칫거리가 됩니다. 물론 열명 중에 한두명은 잘 되기도 합니다. 그러나 우리는 전체 마을을 살려야 되기 때문에 이런 방식은 옳지 않을 것 같습니다.nbspnbsp유치원 선생은 앞으로 부녀회에서 맡아도 됩니다. 이제 부녀회에도 수자타아카데미를 졸업한 사람들이 많아졌잖아요. 그래서 유치원 선생은 동네에 시집 와 있는 ?은 여성들에게 맡기면 됩니다. 그렇지 않으면 중학교나 고등학교 나와서 시집 안 가고 집에 있는 여자 아이들을 모두 유치원 선생으로 맡겨도 됩니다.nbspnbspnbsp직업학교는 실제로 주민들을 위한 것이고, 예술학교는 장기적으로 둥게스와리를 대외적으로 알리고 사람들에게 자긍심을 갖도록 하기 위한 것이고, 고급학교는 하나의 브랜드 이미지인 간판 역할을 하기 위한 것입니다. 고급학교의 이미지가 좋아지면 직업학교도 이미지가 좋아지게 되는 것이거든요. 유치원 운영만 잘 하면 이제 우리가 굳이 초등학교 운영은 안해도 될 것 같아요. 또 정부가 계속 학교를 짓고 하니까 굳이 중복된 투자를 할 필요는 없지 않나 싶어요.nbspnbsp그리고 출가한 사미승들을 받아서 사미 학교를 기숙사에 겸하는 것도 필요합니다. 필요하면 건축을 더하는 것도 검토해야 하고요. 그러나 현재 있는 시설만 갖고도 지금 얘기한 것은 다 가능할 것 같아요. 초등학교를 모두 정부학교로 보내면 교실이 많이 남거든요.nbspnbsp이렇게 20년 후에 인도가 어떻게 변할지를 예측하고 지금부터 준비해야 합니다. 굶어죽는 사람들을 도와주고 글 모르는 사람들 가르쳐주었다는 것은 20년 후에는 아무 소용이 없습니다. 왜냐하면 20년 후에는 인도 사회 전체가 다 문맹퇴치가 될 것이거든요.nbspnbsp문맹 퇴치를 위한 교육은 유치원에 초점을 맞춰주고, 초등학교는 정부학교로 역할을 넘겨주고, 수자타아카데미는 예술학교와 고급학교로 조금 더 가르쳐주는 학교로 전환하고, 중학교는 직업학교로 만들고요. 운전이든 컴퓨터든 자전거든 중학교 때 배워야 몸에 익숙해집니다. 나이 들어서 배우면 몸에 익지는 않습니다. 공부는 어학이나 기술 같은 실용적인 교육을 시켜야 합니다. 이런 큰 틀에서 고민을 더 해보면 좋겠다 싶습니다.”nbsp이렇게 2시간 30분 동안의 사업논의를 통해 마을개발과 학교 운영에 대한 큰 틀의 방향을 세울 수 있었습니다. 스님께서 이렇게 큰 방향을 일러주시자 각 담당자들은 그에 맞춰서 자신들의 경험을 이야기하면서 조금씩 공감대를 만들어 갔습니다. 스님께서는 앞으로 마을 리더들, 학교 교사들과 미팅을 더 가지시면서 실제로는 어떻게 가능할지 더 검토해 보시기로 하셨습니다.nbspnbsp이렇게 사업논의를 마치니 밤9시가 넘었습니다. 스님께서는 내일 인도인 교사들과 라즈길 소풍을 가는데 코스를 어떻게 잡을지 구글 지도를 보며 더 논의를 하신 후 최종 코스를 확정짓고 오늘 일정을 마치셨습니다.nbspnbsp내일은 인도인 교사들과 함께 라즈길로 소풍을 다녀올 예정입니다. 내일 또 소식 전해드리겠습니다. nbsp ▼ 배고픈 사람은 먹어야 합니다, 아픈 사람은 치료받아야 합니다, 아이들은 제 때에 배워야 합니다. JTS가 인도 둥게스와리 아이들을 위해 펼치고 있는 기아, 질병, 문맹 퇴치 활동에 함께해 주세요.nbspnbspnbsp nbspnbsp nbspnbspnbspnbsp nbspnbsp
2015.3.6 인도 4일째 전정각산 산행
▲ 부처님께서 6년 간 고행하신 전정각산nbsp안녕하세요. 오늘 스님께서는 인도JTS 활동가들과 함께 전정각산 산행을 하시면서 전정각산 곳곳에 남겨진 부처님의 발자취에 대해 안내를 해주셨습니다. 그리고 인도의 새해 첫날인 ‘홀리 데이’를 맞이하여 차례상을 올리고 사시예불을 함께 하신 후 활동가들에게 새해 덕담과 격려의 말씀을 해주셨습니다.nbspnbsp오늘도 새벽 일찍 전정각산에 오르기 위해 평소보다 30분 일찍 4시에 기상하여 새벽 예불 및 108배와 명상을 했습니다.nbspnbspnbsp오늘은 인도 달력으로 새해 첫날이 되는 날입니다. 그래서 쁘리앙카님은 인도의 명절 음식인 ‘뿌와’를 새벽부터 만들어서 불단에 올렸고, 예불 후에는 다함께 정초기도를 함께 올렸습니다. nbspnbsp▲ 인도식 새해를 맞이하여 인도 명절 음식인 ‘뿌와’를 새벽부터 만들고 있는 쁘리앙카.nbsp그리고 아침식사를 한 후 6시30분에 수자타아카데미 교문을 나와 전정각산 산행을 시작했습니다. 학교 바로 뒤에 전정각산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인도JTS 활동가들은 “스님 오실 때만 올라가지 거의 올라가본 적이 없다”고 하며 다들 좋아했습니다.nbspnbsp스님께서는 먼저 수자타아카데미 교문 앞에 있는 탑을 가리키며 이 유적지의 유래에 대해 설명을 해주셨습니다.nbspnbsp▲ 부처님께 분소의를 드린 여인을 기념하여 세워진 탑nbsp“이곳은 부처님께서 6년간 고행을 하실 때 버려진 시체더미 가운데서 명상을 하셨다는 곳입니다. 경전을 보면, 어떤 한 여인이 숨이 덜 끊어졌는데 이곳에 버려졌어요. 그런데 그 여인은 부처님을 보고 ‘자신을 덮어 쌌던 분소의를 저 수행자가 입었으면 좋겠다’ 하고 숨을 거두었는데, 부처님이 그 분소의를 입으시자 그 여인은 바로 천상에 태어났다는 기록이 있습니다.”nbspnbsp이어서 탑을 향해 삼귀의 반야심경을 한 후 전정각산 산행을 시작했습니다. 오늘은 명절이여서 그런지 늘 북적하던 유영굴 올라가는 길은 인적이 드물고 한적했습니다.nbspnbsp▲ 유영굴로 올라가는 길nbsp즐겁게 담소를 나누다보니 벌써 유영굴에 도착했습니다. 스님께서는 먼저 유영굴을 참배한 후 동굴 속에서 잠시 명상을 하셨습니다.nbspnbsp▲ 유영굴nbsp그리고 유영굴을 나와서는 삼귀의 반야심경을 한 후 유영굴이라고 이름 불리어진 그 유래에 대해서 설명을 해주셨습니다.nbspnbsp“당시 수행자들은 인공적인 건물 안에 들어가서 생활하지 않으니까 평상시에는 나무 밑이 머물기 제일 좋은데 혹서기나 혹한기에는 동굴이 머물기에 제일 좋아요. 그래서 수행자들이 동굴에 많이 머물렀어요. 부처님도 수행하실 때 이 산에 있는 동굴에 머무셨는데 이 동굴이 제일 넓고 아늑해서 머물기 좋아요. 총 3개의 동굴이 있는데 다 조금씩 머무셨지 않았나 싶지만, 모양새를 보면 이 동굴이 주동굴이었던 것 같아요.nbspnbspnbsp부처님은 여기에 오래 머무셨으니까 부처님의 흔적이 남아있다고 볼 수 있어요. ‘유영굴’이라는 이름이 붙은 것은 부처님께서 이곳에서 6년 고행을 하다가 고행의 무익함을 깨닫고 중도를 발견하시고 하산을 하셨어요. 네이란자라 강가에서 목욕을 하시고 수자타의 공양을 받아 건강을 회복하신 뒤에 새로 발견된 중도의 길을 따라 마지막 용맹정진을 하려고 할 때, 둥게스와리 산신은 여기 와서 마지막 성도를 하시라고 부탁하고, 다른 한 신은 네이란자라 강가의 보리수 나무 아래에서 성불을 하라고 권유를 해요. 그런데 부처님께서는 보리수 나무 아래로 가시기로 결정하면서 이 산신의 요청에 따라서 그림자를 남겨 놓았다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그래서 유영굴이라고 부릅니다.nbspnbsp이것을 요즘 식으로 해석을 하면 오랫동안 수행을 해왔던 이곳에서 마지막 정진을 해야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과 그러나 이곳은 마을 주민들이 가까이 없으니까 공양 얻기가 어려운 곳이였어요. 그래서 수자타 마을을 지나 강 건너 편으로 가서 정진을 하는 것이 더 낫지 않겠느냐 생각하셔서 그리로 가신 것 같아요. 그곳이 보드가야가 되었죠. 당시에는 마음의 작용을 신의 소리로 항상 그렸으니까 기록에는 ‘둥게스와리 산신의 요청에 따라서 그림자를 남겨놓았다’ 이렇게 남은 것입니다. 성도는 보드가야에서 하셨지만 실제 수행은 대부분 이곳에서 하셨기 때문에 이곳이야말로 부처님의 체취가 가장 많이 남아있는 곳이라고 보시면 돼요.”nbsp설명 중에 갑자기 스리랑카에서 관광객들이 몰려와서 다소 소란스러워지자 스님께서 “저쪽에 부처님이 명상하셨다는 조용한 곳이 있으니 거기로 가자”고 하셔서 모두 자리에서 일어나 스님을 따라갔습니다.nbspnbsp산 중턱 즈음에 이르니 작은 샘터가 하나 나타났습니다. 이곳은 부처님께서 물을 마셨다는 곳이라고 합니다.nbspnbsp▲ 부처님이 물을 드셨다는 샘터nbsp원래는 샘터 옆에 이를 기념하여 쌓은 허물어진 탑이 있었는데, 이런 의미를 잘 모르는 정부에서 발굴조사 없이 메워진 연못을 파면서 탑을 모두 허물어 버렸다고 합니다. 스님께서는 부처님의 발자취가 남아있는 유적지가 이렇게 무참히 훼손되는 것을 무척 안타까워하셨습니다. nbspnbsp샘터를 지나 바위 언덕을 넘으니 명상하기에 참 좋은 아늑한 공간이 나타났습니다. 사방이 바위로 막혀 있어서 바람을 막아주어서 따뜻한 온기가 느껴질 정도였습니다. 바위 사이의 공터에는 부처님이 명상하셨던 자리를 기념하여 탑을 세운 흔적도 남아 있었습니다.nbspnbsp▲ 부처님이 명상을 하셨다는 곳nbsp스님께서 “명상을 하겠습니다” 하시자 각자 자신이 원하는 자리에 앉아 죽비 소리에 맞춰 명상에 잠겼습니다.nbspnbspnbsp눈을 감고 호흡이 들어가고 나오는 것에 집중하고 있는데, 산 전체에서 새소리가 아름다운 하모니처럼 들려왔습니다. 곧이어 햇살이 등을 감싸안으며 손끝 발 끝에 찌릿찌릿한 정전기가 돌고 머리도 맑아졌습니다. 부처님이 명상하셨던 자리에 앉아서 명상을 하고 있다고 생각하니 마음 속에서 잔잔한 기쁨이 일어나기도 했습니다.nbspnbsp한 20분 정도 명상을 하고 나서는 칼끝처럼 날카롭게 솟아 있는 전정각산의 능선을 따라서 계속 걸었습니다.nbspnbsp▲ 수자타아카데미와 전정각산의 능선이 한눈에 보이는 곳nbsp봉우리 위에 올라가니 수자타아카데미를 비롯하여 두르가푸르, 자그디스푸르, 수라즈비가, 라르푸르, 쁘레와 등 이 일대 전체 전경이 한눈에 펼쳐졌습니다.nbspnbsp▲ 전정각산에서 수자타아카데미를 바라보고 계신 스님nbspnbsp스님께서는 저 강 건너편에 가야산을 가리키시며 “부처님이 이곳 전정각산에 오시기 전에 저 가야산에 오르셔서 이곳이 수행하기 적당한 곳임을 보셨어요. 또 가야산은 우루벨라 가섭 등 가섭 삼형제와 천명의 제자들에게 탐진치 삼독의 불을 꺼라는 설법을 하여 교화한 곳이기도 합니다” 라고 설명을 해주셨습니다.nbspnbsp▲ 스님께서 손을 가리키는 곳이 가야산.nbspnbsp산 봉우리마다 벽돌로 쌓은 탑무더기가 곳곳에 남아 있었습니다. 스님께서는 “먼 곳에서 보면 산봉우리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탑” 이라고 하시면서 “이 탑은 2300년 전에 아쇼카왕이 세우고 난 뒤 그 누구도 손을 안 댄 거예요. 그때 그대로 남아 있어요. 사람들이 안 오니까 파괴가 안되었는데 최근 들어와서 사람들이 자꾸 오니까 파괴가 되네요” 라고 안타까워 하셨습니다. nbsp nbspnbsp▲ 뒤에 봉우리처럼 보이는 것이 아쇼카왕이 세운 탑nbsp그리고 이 전정각산에는 총 17개의 탑이 있다고 이야기해 주셨는데, 부처님께서 머무신 흔적이 정말로 많이 남아있는 곳임을 알 수 있었습니다. 이렇게 인도식 새해를 맞이하여 전정각산을 오르며 부처님의 발자취가 남아 있는 곳곳을 친견하고 나니, 마음이 뿌듯해지고 스님께 감사한 마음도 많이 들었습니다.nbspnbsp전정각산의 칼 능선을 따라 걸으며 시원한 바람을 만끽한 활동가들은 스님과 함께 단체사진을 함께 찍고 다시 수자타아카데미로 내려왔습니다.nbspnbsp▲ 전정각산과 수자타아카데미, 그리고 인도JTS 활동가들▲ 전정각산의 칼 능선nbsp내려오는 길에는 부처님이 명상을 하셨다는 제2유영굴을 볼 수 있었습니다. 스님께서는 유영굴에 들어가셔서 잠시 명상을 하셨습니다.nbspnbsp▲ 제2유영굴nbsp전정각산을 내려와서 10시부터는 새해맞이 사시예불을 함께 올렸습니다. 정성껏 기도를 올리고 나서 활동가들 모두 스님께 삼배로 새해 인사를 드렸습니다.nbspnbsp▲ 스님께 세배를 하는 인도JTS 활동가들nbsp스님께서는 세배를 받으시고는 활동가들에게 격려의 말씀과 더불어 새해 덕담을 해주셨습니다.nbspnbsp“인도에서 이렇게 새해를 맞이해 본 것은 처음인 것 같아요. 올해 인도에 좋은 일이 생길려고 하나봐요. 다들 건강하시고요. 늘 수행하는 마음으로 일을 하시기 바랍니다.nbspnbspnbsp부처님께서 이곳에서 6년 고행을 하시면서 해탈과 열반을 위해 정진을 하셨지만, 그렇게 극심한 고행을 하고도 해탈과 열반을 성취하지 못하셨습니다. 그래서 경전 기록을 보면 마왕의 유혹이라는 이름으로 많은 번뇌가 생겼습니다. ‘이러다가 여기서 죽어버리면 무의미한 것 아닌가’. ‘열반이란 없어. 그런 단어만 존재하지 실제 그런 세상은 없어. 그러니 정진을 그만둬라’. ‘제사를 지내고 신을 찬미하고 복을 구하면 전륜성왕이 될 수 있는데 무엇 때문에 이런 황야에서 혼자 외로이 정진을 하느냐’. 이런 많은 번뇌가 생겼어요.nbspnbsp여러분들도 여기 있어보면 ‘여기 몇 년 있어봐야 인생의 낭비 아닌가. 이게 무슨 의미가 있나’ 하는 번뇌가 생깁니다. 우리가 어떤 일을 하다보면 ‘세월만 보내고 늙으면 후회하지 않을까’ 이렇게 번뇌가 많이 일어납니다. 그럴 때 부처님께서는 다시 마음을 다잡고 출가하실 때의 원을 생각하고 다시 정진하셔서 마침내 성도를 하셨거든요. 꾸준히 앞으로 간 것도 있지만 무조건 간 것이 아니라 ‘내가 무엇이 잘못되었나?’, ‘어느 부분이 잘못되었기 때문에 문제가 안풀리나?’ 이렇게 늘 돌아보셨어요. 돌아보니 출가하기 전에는 항상 욕구를 따라갔고, 출가한 이후에는 욕구를 억압하는데 급급했음을 알게 됩니다. 두 길은 정반대의 길이지만 결국 욕구에 메여있었던 것이었음을 자각하게 됩니다. 이렇게 자기가 경험한 것을 돌이켜보면서 문제점을 발견하고, 욕구에 메이지 않는 길은 다만 욕구를 알아차릴 뿐이지 거기에 따라가는 것도 아니고 억압하는 것도 아닌 제3의 길을 발견하신 겁니다. 이렇게 ‘중도’를 발견하셔서 모든 긴장을 풀고 용맹정진을 하셔서 깨달음을 얻으신 것입니다.nbspnbsp그것처럼 우리가 여기서 일을 할 때도 첫째는, 자기 마음 속에서 늘 번뇌가 생깁니다. 어떤 일이 장애에 막히면 ‘어떻게 이것을 극복해야지?’ 하기 보다는 ‘하면 뭐하냐? 해도 안된다’ 이렇게 좌절과 절망이 오는 것은 욕심에서 비롯됩니다. 그게 그렇게 쉬우면 왜 아직까지 해결이 안되고 이렇게 남아 있겠어요? 어려우니까 과제가 남아있는 것입니다. 항상 연구하고 수행정진하는 자세로 해나가시기 바랍니다.nbspnbsp그래서 여기서 생활한 것이 경험이 되어서 다른 곳에 가서 어떤 일을 하더라도 ‘그 때 내가 그 시절에 인도에서 1년이든, 3년이든, 10년이든 있었던 것이 내 인생에서 가장 많이 배우고 깨친 소중한 시간이었다. 내가 만약 그 기간이 없었다면 내 인생이 이렇게 값진 인생이 될 수 있었겠느냐’ 이렇게 될 수 있도록 정진을 하시기 바랍니다.”nbsp그리고 세배를 올린 활동가 모두에게 세배돈을 주셨습니다. 세배를 받은 활동가들의 얼굴에는 웃음꽃이 활짝 피었습니다. 그리고 활동가들 상호 간에도 함께 맞절을 하며 서로 세배를 했습니다.nbspnbsp▲ 인도JTS 활동가들을 격려하며 세배 돈을 주시는 스님nbsp새해 맞이 기도를 마치고 11시부터는 발우공양을 함께 했습니다. 그동안 이곳 전정각사는 발우공양을 하지 않고 지내왔는데 이번에 행자대학원 9기가 보광법사님과 함께 새롭게 파견되어 오면서 발우공양을 처음으로 하게 되었습니다. nbspnbspnbsp▲ 발우공양nbsp“불생가비라, 성도마갈다, 설법바라나, 입멸구시라” 를 시작으로 부처님의 일생과 가르침을 게송으로 외우며 여법하게 발우공양이 진행되었고, 발우공양 후 활동가들은 공동체 계본 40가지를 기준으로 각자가 지키지 못한 것에 대해 드러내어 참회를 하였습니다. 그리고 스님께서는 발우공양 후 오늘과 내일, 모레 일정에 대해 활동가들에게 자세히 공유를 해주셨습니다.nbspnbspnbsp오늘이 인도 달력으로 새해 첫날이여서 마을에서는 홀리 축제가 열렸습니다. 활동가들은 마을로 가서 학생들, 주민들 집을 방문하여 함께 어울리는 시간을 가졌고, 스님께서는 한국에서 온 이메일과 원고들을 체크하시며 업무를 보셨습니다.nbspnbsp▲ 마을 주민들과 홀리 축제를 함께한 인도JTS 활동가들nbspnbsp인도에서 홀리 날은 나쁜 기운을 멀리 쫓아내는 의미로 형형색색의 물감을 서로에게 발라준다고 합니다. 오늘 하루 둥게스와리 마을 주민들은 울긋불긋한 색깔의 향연 속에 빠져 새해에는 좋은 일이 생기기를 기원하였습니다.nbspnbsp저녁7시부터는 전정각사 법당 안에서 한국인 활동가들의 정기 수행법회가 열렸습니다. 한국의 여느 정토법당과 똑같이 삼귀의 반야심경을 한 후 즉문즉설 영상 강의로 법회가 열렸습니다. 활동가들은 스님의 영상 법문을 경청하며 지난 한주를 돌아보고 수행적 관점을 다시한번 가다듬는 시간을 가졌습니다.nbspnbsp▲ 인도JTS 활동가 정기 수행법회 및 마음나누기nbspnbsp스님께서는 활동가들이 수행법회를 하는 동안 오랜만에 휴식을 취하며 업무도 보셨습니다.nbspnbsp내일은 새벽4시에 기상하여 예불 및 108배 정진을 한 후 발우공양을 마치고 보드가야로 가서 대탑을 참배할 예정입니다. 대탑을 참배한 후에는 모레 수자타아카데미 선생님들과 함께하는 라즈길 소풍 준비를 위해 시장을 본 후 다시 학교로 돌아와 사업논의를 할 계획입니다. 내일 또 소식 전해드리겠습니다. nbsp nbsp ▼ 배고픈 사람은 먹어야 합니다, 아픈 사람은 치료받아야 합니다, 아이들은 제 때에 배워야 합니다. JTS가 인도 둥게스와리 아이들을 위해 펼치고 있는 기아, 질병, 문맹 퇴치 활동에 함께해 주세요.nbspnbspnbsp nbspnbsp nbspnbspnbspnbsp nbspnbs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