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님의하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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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4.28. 송코 탈란딕부족 문경수련원 방문, 청년리더십아카데미 강의

nbsp nbsp 어제밤 10시 40분경 부산을 출발한 스님께서는 오늘 새벽 2시경 문경에 도착해서 휴식을 취할 시간도 없이 새벽 4시 30분부터 새벽예불을 하고 발우공양을 함께 하셨습니다. nbsp nbsp 대중공사시간에 스님께서는 늘 문경정토수련원을 방문하는 송코 탈란딕 부족을 안내할 때 나이 드신 분들을 위해 올라갔다내려갔다 하지 않고 위에서부터 둘러서 보고 내려올 수 있도록 안내해 줄 것을 당부하셨습니다. nbsp 그리고 문경대중들과 백일출가생들을 위해 계율에 대해서 다시 짚어주셨습니다. nbsp nbsp “참회내용 중에 ‘때 아닌 때 먹었다’고 하는데 밖에 외출을 하거나 차타고 다니다보면 때 아닌 때 먹을 가능성이 높죠. 때 아닌 때 먹는다고 해서 잘못된 건 아니에요. 그러나 백일출가생등 정해진 수행을 하는 사람들은 그것을 한번 지켜보는 것이 매우 중요합니다. nbsp 백일출가생들은 밖에 살 때보다 밥을 많이 먹게 되는데 일을 많이 해서 그럴까요? 그런 것도 있지만 우리가 밖에 살 때는 자기도 모르게 군것질을 하고 있습니다. 내가 군것질했다는 기억도 안납니다. 과자를 하나먹든, 과일을 하나먹든, 커피를 한잔 마시든 뭘 자꾸 먹게 됩니다. 그러기 때문에 밥을 조금 먹게 되고, 그러니까 또 군것질을 하게 되는 거죠. 행자로서는 정해진 세끼 외에 중간에 먹지 않기 때문에 첫째는 식사양이 늘어난다는 것이고, 두 번째는 심리적인 압박이 있습니다. 무의식 세계에서 언제든지 먹을 수 있다고 생각되면 조금 먹어도 되는데 지금 안 먹으면 못먹는다고 생각하면 많이 먹게 됩니다. 많이 먹어도 정해진 시간에 딱 정해진 식사를 한다는 것은 건강에 아주 좋습니다. nbsp nbsp 그래서 ‘때 아닌때 먹지 않는다’는 계율을 여러분들이 한번 지켜보는 것이 필요합니다. 누가 먹으라고 하든, 누구나 다 먹는 분위기이든, 그건 그 사람의 얘기고, ‘나는 나 나름대로 한번 지켜본다’ 이렇게 하는 자세가 있어야 합니다.”라며 누가 뭐라고 하든지 정해진 계율을 스스로 지켜서 자기의 업식을 극복해 보는 것이 필요하다고 말씀해주셨습니다. nbsp 또, 몸이 아파서 쉬었다는 얘기가 많은 것을 들으시고는 “우리가 기계를 사용할 때 너무 많이 쓰면 기계에 열이 납니다. 열이 나면서 기계가 파손이 됩니다. 또 기계를 안쓰고 가만히 놔두면 녹이 습니다. 그러니까 적당하게 쓰는 게 안쓰는 것보다 훨씬 더 오래갑니다. 그래서 기계도 이렇게 막 처음 구입해서 안쓰던 것을 쓰면 새것인데도 작동이 잘 안됩니다. 그래서 ‘질 낸다’는 말이 있습니다. 이 말은 기계등은 어느 정도 써야 잘 작동한다는 얘깁니다. 그런데, 과하게 쓰면 파손이 되고 안쓰면 녹이 습니다. 적절하게 써줘야 그것이 더 잘 살아난다는 것입니다. nbsp nbsp 우리 몸도 마찬가지입니다. 여러분들이 과로를 하거나 과식을 하게 되면 몸이 병들게 됩니다. 그래서 지나치게 몸을 쓰지 말라는 것입니다. 어떤 일에 집착해서 몸이 가지고 있는 용량 이상으로 쓸 때 그것을 ‘과로’라고 말하는데, 여러분들이 여기서 청소 좀 한다고 과로가 절대 아니에요. 오해하지 마세요. . nbsp 여러분들은 태어나서 지금껏 일을 잘 안하고 누가 해주는 것 가지고 살았기 때문에 용량이 100인데 사용하는 것은 30밖에 안했어요. 그래서 여러분들의 무의식세계에서는 자기 용량이 30인 것처럼 착각하고 50만 써도 과로로 느껴집니다. nbsp 108배 절하는 것 아무것도 아니에요. 우리 몸이 백팔배 절도 못하게 되어 있겠어요? 절 안하다가 백팔배를 하게 되면 계단도 못내려가는데, 이게 과로일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그동안에 너무 안써서 생기는 문제입니다. 이것을 극복하려면 쉬어야 되는 것이 아니라, 계속 써야 합니다. 일이 몸에 익는다 그러죠. 몸에 일이 익는다는 말은 피곤하지만 자고 일어나면 괜찮아지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렇게 꾸준히 해야 합니다. 일단 여기 처음 들어오면 반드시 자기 까르마를 극복해야 합니다. 극복하지 않고 겁을 내어 몸에 집착해서 일을 두려워하면 ‘아이고 자야 되는데, 아이고 먹어야 되는데, 아이고 저거하면 피곤할텐데’하는 마음이 드는데 이것이 수행에서는 마장입니다. nbsp nbsp ‘절도 많이 하면 다리 아플텐데, 혹시 무릎 고장 나는거 아니야?’ 자꾸 이렇게 우리 마음속에 늘 이런 속삼임이 있습니다. 인도에서는 마왕의 유혹이다 이렇게 표현했지만 자기업식대로 하려고 하는 그런 하나의 욕망의 속삭임입니다. 거기 넘어가면 안됩니다. ‘어, 까르마대로 살라고 속삭이는구나’라고 알아차리고 멈추진 말고 꾸준히 해야 합니다. 꾸준히 해서 여러분들이 그 고비를 넘기면 됩니다. 그 고비를 못 넘기면 늘 심리적으로 부담이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늘 뒷방에 가서 누워있어도 불편하고 그래요. 다리가 성한데 다리가 아프다고 떼를 써서 절을 안하면 늘 미안하고 죄스럽고 그렇죠. 그런데 다리가 딱 부러져서 누워있으면 아무렇지도 않아요. 미안하거나 참회 못했다는 이런 생각이 들지 않습니다. nbsp 내가 돈이 하나도 없을 때 누가 돈빌려달라 그러면 고민이 하나도 안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호주머니에 돈이 있는데 빌려달라고 할 때 없다고 하면 속이 켕겨요. 할 수 있는데 안하면 켕기게 됩니다. 마음이 켕기면 자기를 살펴봐야 합니다. 내가 하려면 할수있는데 지금 도망가구나. 그래서 그 업식을 딱 극복해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여기 백일이든 몇 년을 살아도 늘 그것 때문에 전정긍긍하게 됩니다. 먹는 것 하나갖고 전전긍긍하고 눈치 보는 사람, 자는 것, 일 갖고 전전긍긍하면서 눈치 보는 사람은 다른 사람 얼굴도 제대로 쳐다보지 못하고 고개 숙이는데, 이런 것을 딱 극복해 나가야합니다. nbsp nbsp 극복을 하는건 과로를 하라는 것이 아니라 꾸준히 해나가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용량이상으로 갑자기 몸을 쓰지 않도록 해야 하고, 음식도 용량이상으로 먹지 않도록 해야 합니다. 너무 많이 쓰는 것은 일에 집착해서 몸을 돌보지 않는것에 해당이 되고 반대로 자기업식에 사로잡혀서 일만 보면 두렵다거나 몸에 집착해서 몸을 사리는 것입니다. 그것을 가지고 ‘이렇게 하면 몸에 집착하는 것이고, 저렇게 하면 일에 집착하는 것이라는데, 어쩌란 말이냐’고 할 것이 아니라 자기의 마음상태를 점검해보면 금방 ‘아, 이게 일에 집착하구나, 이게 몸에 집착하구나.’는 것을 알 수가 있습니다. nbsp 그러니까 정말 몸이 안좋구나하면 쉬어야 합니다. 그러나 가만히 마음을 살펴보아서 하기 싫어서 몸이 아픈 경우는 다시 일어나서 꾸준히 해야 합니다. 몸이 좀 불편하면 천천히 하면 됩니다. nbsp nbsp 지난번에도 말씀드렸지만 마음이 편안한 상태에서 늘 깨어 있어야 하기 때문에 가능하면 수행생활이든, 일이든 자발성이 있어야합니다. 자기가 딱 알아차리고 자기일로 해야지 자꾸 눈치봐 가면서 하게되면 심리가 억압이 되기 때문에 행복하지가 못합니다. 그리고 이중생활 하지 말고 항상 자기 마음을 살펴서 자기 마음의 무거움을 가볍게 돌리고 다시 일어나서 꾸준히 절을 하든지, 꾸준히 일을 하든지 힘들면 속도를 조금 줄여서 천천히 움직이면서 하도록 합니다. 그렇게 유의하면서 해나가면 누구나 다 부족하면 부족한대로 각자의 인생을 행복하고 자유롭게 살 수 있습니다. 붓다의 위대함은 누구나 다 부처님이 될 수가 있다는 것인데, 이 말은 누구나 다 행복할 권리가 있다, 행복할 수 있다는 얘기입니다. 그러니까 그렇게 여기 생활이 행복한 삶이 되도록 스스로 만들어 나가길 바랍니다.”라며 항상 자기의 마음을 살펴서 하기 싫은 마음에서 일어나는 것이라면 천천히 해 나가면서 극복해보라고 지도해주셨습니다. nbsp nbsp 문경공동체에서는 스님과 함께 하는 시간이 많지 않은데, 지난 며칠동안 스님과 함께 발우공양을 하면서 우리가 놓치고 있거나 우리 업식대로 움직이는 것에 대해 점검을 받을 수 있는 좋은 시간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nbsp 발우공양 후 스님께서는 어제 못다본 원고를 점검하시고 수련원 경내를 둘러보신 후 11시에는 송코 탈란딕 팀을 환영하는 자리에 함께 하시고 점심 공양을 함께 하셨습니다. nbsp nbsp 스님께서는 점심 공양을 함께 하면서 송코 탈란딕팀에게 “아무리 현대 교육을 받고 과학 교육을 받고 미국 가서 살아도 내가 탈란딕부족이다는 생각을 가지고 명절이 되면 전통 옷을 입을 수 있고, 전통 노래를 부를 줄 알고, 전통춤을 출 줄도 알고, 그런 것을 자랑스럽게 생각해야 합니다.”라며 자신들이 가진 전통문화를 자랑스러워 하며 잘 보존해야 한다고 말씀해주셨습니다. nbsp nbsp 덧붙여서 “내가 도시에 가서 교육을 받고 변호사가 되어 도시에 살면서 내 전통을 지킬 수 없겠다 생각되면 도시를 버리고 다시 고향에 돌아와서 전통을 지키고 사는 것이 도시에서 변호사를 하는 것보다 더 낫다는 말이예요. 전통도 지키고 변호사도 하면 괜찮지만, 전통을 지키지 못한다면 변호사를 포기하고 전통을 지키는 것이 더 필요합니다.”라며 전통을 지키며 살아가는 것이 스스로 자긍심을 가지고 살아가는 것이라고 말씀해주셨습니다. nbsp 미키타이 추장님은 자신들이 전통을 지키고 살고 있었기 때문에 한국에도 올 수 있었고 여러곳을 방문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진 것이라며 감사해 하셨습니다. nbsp 또, 스님께서는 지금 한국의 전통은 박물관에 보관되어있는 것처럼 보여주기 위해서 남아있지 생활속에서는 찾을 수 없는 그냥 구경거리만 되어 있다고 안타까워하시면서 “탈란딕 부족들은 관광객들에게 보여주는 전통문화가 되면 안되고 지금처럼 살아가는 삶의 문화가 되어야 된다”고 강조하시면서 “앞으로 남은 시간 한국의 전통문화를 더 둘러보면서 탈란딕 부족의 전통을 지키는데, 더 많은 아이디어를 얻기를 바란다”고 덧붙였습니다. nbsp 미키타이 추장님도 그동안 사찰등을 둘러보면서 “우리가 가지고 있는 전통도 이 사찰처럼 관광객들이 찾아오는 그런 장소가 될 수 있겠다. 탈란틱 민족은 저런 사찰같은 건물을 가지고 있지는 않지만, 탈란딕 부족은 살아 숨쉬고 있는 그러한 사찰과 같은 존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nbsp nbsp 또, 함께 오신 다른 분들도 탈란딕부족도 몰락과 위기를 겪었지만 이겨내어 왔고 이번 같은 한국방문이 전통을 지키는 더 좋은 계기가 되는 것 같다며 초청해주셔서 감사하다는 말씀을 하기도 하셨습니다. nbsp 스님께서는 “전통을 지키는 것은 사실은 어려운 일입니다. 지금 이 시대에 이 젊은이들이 아무리 노력을 해도 실패할 확률이 높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실패하더라도 이런 노력을 해야 됩니다.”라며 스스로 전통을 지켜나가는 것이 비록 힘겨울지라도 그런 노력을 통해 자긍심을 가져야 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nbsp nbsp 점심공양 후 수련원 경내를 둘러본 후 법주사로 이동하였습니다. 스님께서도 함께 법주사로 가서 간단한 안내와 인사를 한 후 서울로 이동하셨습니다. nbsp 저녁 6시에는 스님께서 중국에서 활동활때 스님을 도와주셨던 분이 아들과 함께 스님을 방문하셔서 여러 가지 말씀을 나누셨습니다. nbsp nbsp nbsp스님께서는 저녁 7시 30분부터 평화재단에서 운영하는 청년리더쉽아카데미 강의에 참여하셨습니다. nbsp 5번째 강의를 맞이하는 청년리더십아카데미는 오늘 법륜스님을 모시고 “즉문즉설로 풀어본 소통의 길”이란 주제로 강의를 진행하였습니다. 우리 사회가 다원화되고 복잡해지면서 개인간의 소통과 사회내 집단간의 소통이 갈수록 어려워지고, 이로 인한 갈등으로 사회 발전에 큰 장애가 되고 있습니다. 풀리지 않는 갈등은 계속 쌓이고 서로간의 불신만 높아지고 있는 지금의 답답한 현실속에서 어떻게 하면 원활한 소통을 통해 이 난국을 잘 해결할 수 있을지를 스님과의 즉문즉설을 통해서 풀어보고자 하였습니다. 60여명의 청년들은 법륜스님이 등장하자 환호와 큰 박수로 맞이하였습니다. 쉽지 않은 강의 주제였지만 청년들은 스님의 열정적인 강의에 시종일관 집중하는 모습이었습니다. 청년들과 나눈 대화중 일부를 소개드립니다. nbsp nbsp “살면서 극과 극인 상황이 많습니다. 충분히 합의할 수 있는데도 각자 자기 이야기만 하고 입장을 바꿔서 생각하지 않는 것 같습니다. 이렇게 자기 주장만 내세우는 사람들이 과연 상대방의 입장에서 생각할 수 있을까 의문이 들고, 이런 문제들을 어떻게 바라봐야 할지 궁금합니다.” nbsp “자기 생각을 고집하는 사람은 자기 생각이‘을’이 되면 저항하고,‘갑’이 되면‘갑’질을 합니다. 자기 생각만이 옳다는데 사로잡혀 있기 때문입니다. 어떤 특정 종교를 보면 자기 신앙만 옳다고 해 종교적으로 탄압 받거나 아니면 종교적 탄압을 하거나 둘 중에 하나입니다. 자기가 을일 때 갑에게 저항하니까 탄압을 받고, 자기가 갑이 되면 다른 종교를 탄압합니다. 갑과 을은 전혀 다른 입장인 것 같지만 사실 둘은 똑같습니다. nbsp 생물종은 다양하지 않습니까? 여러 생물종이 있고, 같은 종이라도 그 안에 크고 작은 것이 있고 모양도 각각 다릅니다. 예를 들어 쥐도 큰 것은 고양이 만하고, 사람도 큰 사람, 작은 사람이 있습니다. 산에 핀 진달래도 같아 보이지만 가까이 보면 색이 많이 다릅니다. 이렇게 다양한 것이 자연스러운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의 의식은 흑백논리로 작용합니다. 늘 신과 악마, 선과 악, 천당과 지옥, 옳음과 그름과 같이 둘로 나눕니다. 그러나 세상은 이렇게 둘로 나누어지지 않습니다. nbsp nbsp 보통 사람도 남자와 여자 이렇게 둘로 나누잖아요. 그런데 세상에 남자와 여자 둘만 있는게 아니라 실제로는 네 종류가 있습니다. 남자, 여자. 남자도 여자도 아닌 사람. 남자이기도 하고 여자이기도 한 사람이 있습니다. 세 번째, 네 번째 부류의 사람들은 극소수입니다. 그러다보니 다수에 의해서 소수자들은 병신, 장애 또는 신의 저주로 규정받아요. nbsp 이 세상 사람들의 99는 성적취향이 남자는 여자에게, 여자는 남자에게 즉, 이성간에 성적호기심이 일어납니다. 하지만 동성 간에도 성적호기심이 일어나는 사람도 있습니다. 이건 그 사람 탓이 아니고, 체질적으로, 선천적으로 그런 것입니다. 기독교에서 동성애를 부정하는데, 그러면 동성애가 나타난 것은 모든 것을 창조한 하느님 책임입니다. 하느님이 불량품을 만들었다는 말인거죠. 그렇다면 하느님의 무오류성 자체가 잘못된 것 아닙니까? 하느님은 완전하다고 이야기합니다. 그런데 왜 불량품을 만듭니까? 이는 말이 안되는 겁니다. 기독교가 동성애를 부정한다는 것은 곧 자기 신앙을 부정하는 것과 다름없습니다. 그러나 세상 사람들은 다수의 논리에 늘 세뇌되어서 살기 때문에 이런 말을 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우리는 상식이라는 이름으로, 경험으로, 다수의 생각으로 절대화 시켜버립니다. 그래서 동성적 취향을 갖는 사람은 사탄이고, 악이라고 이야기를 합니다. 그 사람이 남을 때린 것도, 성추행한 것도 아니고, 다치게 한 것도 아닙니다. 다수와 다르다는 한 가지 때문에 죄악시 합니다. nbsp 우리가 이 문제를 볼 때 한발 더 나아가야 하는 것은 동성애를 인정하는 것과, 동성애자들간의 결혼을 허용하는 것, 동성애자 부부에게 아기를 입양할 수 있는 권리를 허락하는 것은 모두 똑같은 문제가 아닙니다. 동성애는 그 사람 체질이니 자연스러운 것입니다. 그러나 결혼까지도 인정할 수 있는가는 윤리적인 문제입니다. 사회적으로 동성애자들간의 결혼을 인정할 것인가, 말것인가 이것은 무조건 인정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다수의 선택의 문제입니다. 결혼은 사회적 계약이기 때문입니다. 동성애자 부부에게 입양권을 인정해 줄 것인가 역시 또 다른 차원의 문제입니다. 왜냐하면 입양된 아이가 동성애자면 문제가 없는데 어린 아이라서 알 수가 없습니다. 아이는 부모의 영향을 절대적으로 받는데도, 아이에게는 선택권이 없어집니다. 그래서 아이가 성장하면 혼란을 느끼게 됩니다. 이 세 가지 모두 다른 것인데, 모두 허용하거나 모두 거부하는 것 역시 편견입니다. nbsp nbsp 그래서 옳은 주장속에서도 오류가 있을 수 있고, 오류 속에서도 일부 진실이 있는 것을 보아야 사실에 근접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상대의 행동 중에 10가 나쁜 행동이고 90가 좋은 행동이면 성인이라고 규정해 버리고, 어쩌다 10 나쁜 점이 발견되면 성인이 하루 아침에 나쁜 놈이 되어버립니다. 존재라는 것은 흑백으로 나누어 지는 것이 아닙니다. 사람의 생각도 마찬가지입니다. 이렇게 생각하는 사람도 있고 저렇게 생각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그래서 진실은 같은 것도 아니고, 다른 것도 아닙니다. 존재 자체는 같은 것과 다른 것이 공존하는 것입니다. 같다, 다르다는 어떤 입장에서 보느냐에 따라 달라지기 때문에 인식상의 문제라고 할 수 있습니다. 사람의 인식이라는 것은 상대적인 것입니다. 내가 어디에 있냐에 따라서 앞산이 되기도 하고, 뒷산이 되기도 하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nbsp 스님께서는 소통이 안되는 이유가 인간이 자연의 존재로서 가지고 있는 다양성을 인정하지 못하기 때문임을 지적하시며, 최근 우리사회 갈등의 문제 중 하나인 성소수자들의 문제를 예로 들어서 자세히 말씀해주셨습니다. nbsp 그리고 최근 우리사회에 심해지고 있는 극단주의를 어떻게 볼지에 대해서도 덧붙여 말씀하셨습니다. nbsp “다양한 사회에서 극단주의를 없애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극단주의는 인간의 정신작용에 늘 있습니다. 우리 속에도 있습니다. 그 사람이 나빠서 그런 것이 아니라 사물을 단편적으로 이해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전체 스페트럼을 조사해보면 극단주의가 소수고, 합리주의가 다수입니다. 그래서 이것은 자연스러움에 속합니다. nbsp nbsp 사회는 중도 성향의 사람이 다수를 차지하고, 극단주의가 양쪽에 소수로 있으면 안정이 됩니다. 그러나 사회가 미성숙하면 극단주의가 득세합니다. 가령, 극단적인 좌파가 집권해서 상식적이지 않은 행동을 할 경우 중도 사람들은 그들의 비합리성을 비판합니다. 그러나 한국의 중도는 비판의식은 뛰어나지만 행동을 하지 않습니다. 앉아서 입으로만 비판하는 것입니다. 반면 극단적인 좌파의 행동이 점점 커지면 우파 극단주의는 목숨을 걸고 싸웁니다. 그러면 좌파 극단주의에 분노했던 국민들은 중도파가 행동을 하지 않으니 우파 극단주의로 쏠리게 됩니다. 그래서 우파가 집권을 합니다. 그런데 해결은 되지 않고 이들이 다시 극단화됩니다. 이럴때도 중도는 비판만 하고 행동하지 않으니 국민들은 또다시 그 반대편에 대한 지지로 쏠리게 됩니다. nbsp 한국사회가 극단주의로 흐른다는 것은 한국사회가 독특하게 문제가 있다고 볼 수는 없습니다. 우리나라는 테러를 하지는 않습니다. 또 종교적 극단주의도 다른 나라에 비해 적은 편입니다. 우리 나라는 개신교 일부만 문제를 일으키지 않으면 종교적으로 갈등이 없습니다. 예전에는 좌파 극단주의자들이 한국사회를 흔들었는데, 지금은 일베라는 우파 극단주의자들이 흔들고 있습니다. 그러다 보니 사회가 점점 극단으로 갑니다. 진실이란 것은 이것도 아니고 저것도 아닌 너머에 있는데, 흑백논리는 선명성이 있다 보니 짧은 시간내에 대중의 마음을 휘어잡을 수 있습니다. 사회가 성장할때는 숨통이 트여서 극단주의가 주도하지 못합니다. 최근 일본이 극단주의로 흐르는 것은 20년간 사회가 정체되어 팍팍해져서 어느쪽으로든 돌파구를 찾기를 바라는 내적인 요인때문입니다. 그리고 외적으로는 미국의 대중국 견제에 따른 일본의 재무장 필요성이 대두되기 때문입니다. 한국도 성장이 정체되어 있기 때문에 앞으로 극단주의 비율이 점점 늘어날 것입니다. 유럽도 최근 정체되니 프랑스 등에서 점점 극우주의가 늘어납니다. 그러면 파시즘이 등장하고 이성이 마비되게 됩니다. 우리 사회가 그런 방향으로 가고 있습니다. nbsp 세월호를 보면 한쪽에서 진상 규명을 안 하는 것이 문제지만, 지금은 규명이 안되는 것에 대한 현실적 해결책을 찾기보다 오히려 억울하고 분하니깐 극단적으로 대처하게 됩니다. 타결책을 찾기 보다 갈수록 간격이 벌어지는 것입니다. 사실 세월호 문제는 처음부터 갈등을 일으킬 사안이 아니었습니다. 정부와 민, 여야, 진보와 보수 모두 합심해서 우리 사회가 이렇게 가서는 안되며, 통렬한 반성을 해야 한다는 공통점에서 출발했습니다. 그러나 1년이 지나면서 지금은 극단적 대결로 가고 있습니다. 이것은 결국 다양성을 인정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nbsp 그러면 왜 우리나라는 이렇게 되었을까요? 첫째는 역사적으로 보면 주자학, 즉 성리학의 영향 때문입니다. 성리학은 유교원리주의입니다. 그래서 불교, 무속신앙 등을 억압하고 사상적, 신앙적 탄압을 했습니다. 또한 부모가 돌아가시면 상복을 얼마나 입어야 하는지를 가지고 엄청나게 싸웠습니다. 우리 민족의 역사에 이런 경우는 많지 않았습니다. 원래 우리 민족은 서로 다른 것을 인정하였습니다. 가령 고구려는 다섯 개 부족의 군대가 있어서 전쟁이 나면 그 중에서 착출해서 중앙부대를 만들었습니다. 왕권도 여러 종족 중 일부이지 절대 왕정이 아니었습니다. 고려도 호족연합 정권이었습니다. 조선시대 이후로 우리 사회가 전제주의로 변화되었습니다. 조선시대는 신흥사대부가 중심이 되어서 500년을 집권했습니다. 여성들이 철저하게 억압되어 사회 진출이 막히고, 무시된 것은 우리 민족의 전통이 아니라 조선시대 500년동안 그렇게 자리잡은 것입니다. 조선시대 이전의 역사에서는 여성이 왕이 될 수도 있을 만큼 사회적 지위가 높았습니다. nbsp nbsp 두 번째는 일제식민지와 군부독재 정권을 거치면서 일체 타협을 하지 않았던 투쟁문화가 시대가 바뀌었는데도 그대로 남아있기 때문입니다. 일제식민지 때 일본과 싸우면서 적절히 타협하는 것을 중도라고 말할 수는 없습니다. 독립운동은 독립을 하든가, 안하든가이지 타협이란 없습니다. 그러니 목숨을 걸고 싸웠습니다. 군사독재 시절에 군부독재와 타협하는 것도 또한 용납되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6.25전쟁을 겪으면서 남북간에 이념적 갈등으로 서로 철천지 원수가 되었습니다. 이런 역사적 배경으로 만나서 타협하는 것은 배신자로 취급하였습니다. 그리고 자기 완결성에 흠집이 생긴다고 여깁니다. 기업에서도 노조는 강성노조가 우세합니다. 이들이 아닌 합리적인 노조가 들어서기는 굉장히 어렵습니다. 이런 전통이 우리속에 내재되어 있어서 합의하고 타협하는 것에 대한 훈련도 되어 있지 않고 부정적인 이미지만 있습니다. nbsp 과거 역사는 이렇지만 현재 우리가 놓여진 사회에서는 경제와 민주주의가 이 정도로 발전해왔으니 절대적으로 누가 옮고, 나쁘다고 하는 것은 없습니다. 어떤 주장이든 있을 수 있는 주장입니다. 다양한 주장을 적절하게 받아들여서 타협하는 자세가 되어야 하는데 이게 훈련이 되어있지 않습니다. 민주화를 주장해서 목숨을 받친 사람들이 전혀 민주적이지 않습니다. 민주화를 위해 독재와 맞서 싸울 때 민주적으로 싸우지 않고 독선적으로 싸웠습니다. 그러니 민주주의에 대한 훈련이 안되어 있습니다. 적과 싸우면서 적을 닮는 것처럼 말입니다. 노조도 민주적인 것 같으면서 독선적이고, 이런 요소들 때문에 우리 사회가 타협을 하는게 문화적으로도 제도적으로도 안되는 것입니다. nbsp 아버지세대는 살아온 환경이 그렇기 때문에 여러분들이 이해해야 합니다. 이해를 하지만 바람직하지 않기 때문에 여러분들의 세대는 바꿔야겠다고 생각하셔야 합니다. 누군가 테이블에서 독선적인 주장을 하더라도 외면하지 말고 인내를 가지고 들어주어야 합니다. 그 한 사람이 합리적인 다수에 의해서 포용이 되도록 해야 합니다. 독선적인 사람을 빼버리고 가면 안됩니다. 그런데 늘 독선적인 한 명이 판을 깨던지 주도를 잡게 됩니다. 반면 합리적인 사람들은 이들과 이야기 해보고 안되면 외면해 버리는 성향이 있습니다. 그것은 잘못된 것입니다. 그래서 이 문제를 해결하려면 합리적인 중도 우나 중도 좌가 서로 경쟁하면서 협력을 해야 합니다. 그래서 극단적인 사람들을 용인하되 흔들리지 말고, 주도권을 뺏기지 않는다면 여러분의 시대에는 좀 달라 질 것입니다.” nbsp 스님께서는 마지막으로 아버지 세대와 다른 우리 세대에 사회가 어디로 가야할지, 이런 사회를 만들어갈 우리에게 어떤 리더십이 필요한지를 말씀해주셨습니다. nbsp nbsp “앞으로 여러분들이 살아갈 미래세대에는 모든 요소를 감안해서 합리적인 해결방안을 도출해 통합을 해야 합니다. 부부문제를 시작해서 밀양 송전탑 문제 등까지도 각각의 입장과 요구를 들어보고 합리적인 안을 만들 수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자신의 의견이 전적으로 받아들여지기를 바랍니다. 심적으로는 이해되지만 현실적으로 불가능합니다. 그렇게만 가다보면 상호피해가 커집니다. 철학적으로도 정리를 하면, 서로의 주장이 부딪혀 싸워 둘의 요구가 정반대인 것 같아도 통합할 수 있는 방법이 있다는 것이 화쟁사상입니다. 여러분들은 이런 철학적인 이해를 바탕으로 삶속에서 끊임없이 적용해 나가는 것이 필요합니다. 그리고 민주화 사회는 투쟁해서 쟁취하는 리더십, 산업화 사회는 나를 따르라는 리더십이었다면 지금 여러분에게는 화쟁의 리더십이 필요합니다. 서로 다른 욕구를 통합해내는 통합의 리더십이 필요합니다. 남북간의 갈등, 우리사회의 다양한 갈등을 해소할 수 있는 리더십입니다. 그러나 이 훈련이 아직 많이 안되어 있습니다. 철학적으로도 빈곤하고, 경험적으로도 빈곤하고 모델도 없습니다. 그래서 사회갈등이 증폭됩니다. 충분히 해결할 수 있는 문제도 갈등비용이 천문학적으로 듭니다. 이런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 정치입니다. 대중의 다양한 요구를 통합해 내는 것이 정치입니다. 이제 국민의 요구가 다양해져 이를 대변할 수 있는 정당도 다양해져야 합니다. 그래서 양당제에서 다당제로 변화해야 합니다. 그 다당제 속에서 합리적인 다수가 연정을 해서 정책연합을 하는 구조가 되면 국민이 나서서 싸울 필요가 없습니다. 가령 강정마을의 이익을 대변하는 정당과 국가의 이익을 대변하는 정당이 서로 대화를 하면 주민들이 나서서 싸울 필요가 없습니다. 지금의 국회는 정치력이 없습니다. 이런 것을 만들어가는 것이 국민통합입니다. 국민의 요구를 어떻게 평화적으로 관리할 것인가입니다. 합리적인 선택이 반드시 최선은 아니지만 최선이 안되면 차선, 차선이 안되면 차악이라도 선택해야 합니다. 최악을 막기 위해서라도 차악을 선택해야 합니다. 선택으로 인한 부작용은 감수해야 합니다. 그리고 우리사회는 시스템으로 가야 합니다. 중앙정부와 대통령에게 권력이 집중되어 있기 때문에 개헌을 해서 권력을 분산시켜야 하며 양당제가 아닌 다당제로 가야 합니다. 여러분들의 세대는 이렇게 가야 합니다. 합리적인 타협을 찾아나가는 새로운 세대로 나아가야 합니다.” nbsp 오늘 스님의 말씀속에서 우리 사회가 왜 소통이 안되고 있는지에 대한 전반적인 진단과 함께 나아가 새로운 세대로 가기 위해서는 우리 청년들의 역할이 중요해짐을 다시금 가슴에 새기게 되었습니다. 늘 갈등속에 있는 사회를 탓하고, 기성세대를 탓하고, 정치인을 탓해왔지만 이제는 청년들인 우리가 나서서 새로운 사회의 모델을 만들어가야 함을 느낄 수 있는 소중한 시간이었습니다.

2015.04.29. 20,990 읽음 댓글 12개

2015.4.27. 구미, 부산 희망세상만들기 강연

nbsp nbsp 어제 필리핀 송코 탈란딕 부족 사람들이 두북수련원에서 1박을 하면서 이원주 필리핀 대표님도 함께 자리를 했습니다. 스님께서는 새벽기도를 하신 후 이원주 회장님 부부와 아침을 함께 하셨습니다. 그리고 송코팀 미키타이 추장님에게 두북수련원이 스님께서 다니시던 초등학교라고 소개하시면서 스님께서 초등학교를 다닐때는 차도 다니지 않고 전기도 없어서 지금의 송코마을과 비슷했다며 서로 공감을 나누셨습니다. 그리고 한국이 지금 경제적으로 많이 발전했지만 한국적인 전통들이 많이 사라지고 없다고 안타까워 하시면서 수련원 여기 저기를 안내해주셨습니다. nbsp nbsp 송코 탈란딕 팀을 대표해서 미키타이 추장님께서는 스님께 초청해주셔서 감사하다며 송코마을 사람들이 직접 만든 북, 동물소리 내는 작은 악기, 흙 그림, 직접 따서 볶은 커피 등을 선물해주셨습니다. 스님께서는 오늘 아침 구미 강연이 있어서 구미로 출발하고 송코 탈란딕 팀은 울산 현대중공업으로 출발했습니다. nbsp nbsp 오늘 오전 희망강연은 어제 입재식에 이어 구미에서 법륜스님의 희망세상만들기 즉문즉설 강의가 진행되었습니다. 340명의 청중과 53명의 자원봉사자들이 보다 더 행복한 삶을 찾고자 모였습니다. 4월의 눈부신 햇살만큼이나 환하고 밝은 스님의 웃음과 함께 강의는 시작되었습니다. 강의 동안 잠시도 눈을 뗄 수 없을 만큼 유쾌했고, 삶의 본질에 대해 이야기 나눌 때는 더 없이 묵직하게 다가왔습니다. nbsp nbsp 스님께서 강의 서두에 즉문즉설의 진정한 의미에 대해서 말씀해주셨습니다. “즉문즉설은 지식을 묻는 자리가 아니라 인생의 고민을 직접 해결할 수 있는 지혜를 나누고 대화하는 자리입니다. 요즘 사회는 지식을 인터넷 통해서 얼마든지 찾을 수 있습니다. 우리 사회는 지금까지 지식을 배우는데 혈안이 되어 있습니다만 이제는 한 단계 더 나아가야 합니다. 지식을 기초로 하되, 문제를 어떻게 풀 수 있는지가 중요합니다. 옛날에는 촌로도 지혜가 있었는데 요즘은 박사도 지혜가 없습니다. 그래서 삶이 힘들어집니다. nbsp 50년전보다 경제적으로 크게 발전해서 살기 많이 좋아졌다고 하지만 자살률, 우울증이 더 많아지는 등 우리가 더 행복하다고 느끼지는 못하는 것 같습니다. 이것은 지혜가 부족해서 그렇습니다.‘명상을 어떻게 하느냐, 목탁을 어떻게 치느냐’이런 것은 기술에 불과하고,‘공이 무엇인가, 연기가 무엇인가’이런 것은 지식에 불과합니다. 그런데 우리는 이런 것을 고상한 불교라고 생각합니다. 흔히들 생각하는 부처님께 복을 빌고 지식을 구하는 것은 불교의 본래 가르침이 아닙니다. nbsp nbsp 한편‘남편이 술 먹어서 힘들어요, 아이가 매일 게임해서 힘들어요’이런 질문에 대한 답을 구하는 것을 사람들은 보통 상담이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오히려 이런 질문에 대한 해결책을 찾는 것이 진정한 불교입니다. 왜냐면 지혜가 있어야 해결이 되기 때문입니다. 지혜를 증득해야 열반을 증득하며, 고뇌가 없어지고 행복을 얻을 수 있습니다.” nbsp 즉문즉설을 늘 들어왔지만 스님께서 해주신 자세한 설명을 듣고 나니 그 의미를 곱씹을 수 있었으며, 많은 사람들의 삶의 고뇌를 나누고 지혜를 찾는 이 자리가 더욱 소중하게 느껴졌습니다. nbsp 오늘 역시 많은 분들의 고민이 담긴 질문들이 이어졌습니다. 몸이 아픈데 가족들을 챙겨주는 것이 힘들다는 여성분, 시어머니와 친정어머니를 부양해야 하는 책임에 힘들어하는 여성분, 일을 하면 구역질이 나서 일을 할 수 없다는 젊은 여성분, 어렸을때 고생을 많이 했는데 지금은 남편 때문에 힘들다는 분 등, 질문자들은 스님과 함께 마음 깊이 담아둔 속내를 훌훌 털어 놓아 버리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nbsp nbsp 그 중 한 질문자에 대한 스님의 말씀을 전합니다. nbsp “저는 41세 평범한 주부입니다. 별 어려움 없이 지내왔으나 친정어머니에게 많이 의지하고 자랐습니다. 어머님께 거스르는 행동을 하지 않으려고 힘이 들 만큼 최선을 다해 살았습니다. 시집와서도 마찬가지고요. 그런데 아이들이 크고 보니 제가 시댁식구, 친정식구, 남편에게 눈치를 많이 본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그러나 이제 와서 제 마음대로 하려고 해도 뭔가 뒤가 캥기게 되고 멈칫해집니다. 지금까지 저는 다른 사람과는 조금의 문제도 일으키지 않고 살려고 했습니다. 그것이 저에게 큰 짐이었나 봅니다. 딱히 힘든 일이 없는데도 자꾸 마음이 불편합니다. 하고 싶은 일이 있고 다른 사람에게도 피해를 주지 않는다면 가족의 반대를 무릅쓰고라도 하는게 옳을까요? 그리고 그렇게 하면 불편한 마음이 좀 나아질까요?” nbsp “제가 답변하기 전에 여러분, 한 번 물어봅시다. 주변과 갈등이 생기더라도 자기 하고 싶은 것 한번 해보는게 좋겠다는 사람 손 들어 보세요. 아니면 부모와 남편에게 순종하면서 사는게 좋겠다는 사람 손 들어보세요.” nbsp nbsp “주위에 의지가 될 만한 사람들과 이야기하다 보니 저 마음대로 살라고 권유하지만 저에게 중요한 사람인 어머니, 시어머니, 남편의 뜻을 거스른다는 것이 제 마음에 와 닿지 않습니다. 힘들어서 지금 정토회에 다니고는 있지만 이유도 모르는 채 계속 불안한 것이 기도가 부족해서 인지, 마음공부가 부족해서 인지 모르겠어요.” nbsp “질문자는 착하지만 지혜롭지는 못합니다. 두 가지 예를 들어볼게요. 산에 가서 토끼나 노루의 새끼를 한 마리 잡았습니다. 집에 와서 아직 어리니까 풀도 주고 먹이를 줘서 오랬동안 직접 키웠습니다. 다 크자, 이제 산에 가서 스스로 살라고 놓아주었는데 산으로 돌아갈까요, 아니면 다시 집으로 돌아올까요? 처음에는 나가지만, 나중에는 집으로 돌아오게 됩니다. 왜 다시 돌아올까요?” nbsp “짐승들이 무서워서,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모를 것 같아요.” nbsp nbsp “이 짐승은 우리에 갖혀 있으면 답답하니깐 나가고 싶기도 하고, 나가면 먹이를 구하기 어려우니까 다시 집으로 돌아옵니다. 이렇게 가둬 놓으면 나갈려고 하고, 나가라고 하면 또 돌아옵니다. 꼭 질문자와 같습니다. 왜 그럴까요? 산에 사는 짐승이 너무 추워 보여서 좋은 맘으로 돌봐줬는데 결과적으로 짐승의 야생성을 잃어버리게 한 겁니다. 만약 어미가 이렇게 새끼를 보살피면 야생의 생물이 존재 할 수 없겠죠. 이것은 실제로는 제대로 도와주는게 아닌 겁니다. 외국 공원에 가 보면 야생 짐승에게 먹이를 주지 못하게 합니다. 야생성을 잃어버리기 때문이죠. 야생성을 잃어버린다는 것은 결국 그 짐승을 죽음으로 몰아가는 것입니다. nbsp 미국이 원주민인 인디언에게 인디언 보호구역을 설정하고 태어나서 죽을때까지 모든 생활비도 지원해줬는데, 이것이 인디언들을 더욱 더 몰락하게 만드는 원인이 되고 있습니다. 일은 안 하고 계속 술만 먹게 되면서 인생의 자립심이 점점 더 없어지게 되었습니다. 일부 학자는 옛날에 미국이 인디언 학살할때보다 더 나쁘다고 비판하고 있습니다. nbsp nbsp 아이를 낳으면 세 살까지는 엄마가 100 보살펴줘야 합니다. 만약에 이때 엄마가 직장다닌다고 제대로 보살피지 않으면 아이들은 육체적, 정신적으로 굉장히 잘못됩니다. 그런데 우리나라에서는 부모들이 직장 다니느라 잘 보살피지 않아서 청소년들의 우울증 비율이 굉장히 높습니다. 그리고 세 살 이후 초등학교까지는 70 돌봐주고 나머지는 스스로 하게 해 주고, 중학생이 되면 50 정도 도와주고, 고등학생이 되면 30만 도와 주고, 스무살이 넘으면 아무것도 안해 줘야 합니다. 그렇게 해야 자립심을 키워서 스스로 살아가게 됩니다. 이게 진정한 사랑입니다. 어릴 때는 따뜻하게 보살펴 주는게 사랑이고, 커서는 냉정하게 정을 끊어 주는 게 사랑입니다. 어릴 때 보살피지 않는 것은 외면이고, 커서 보살피는 것은 사랑이 아니라 집착입니다. 그래서 우리 아이들은 어릴 때 부모로부터 외면당해서 상처받고, 커서는 부모가 집착해서 자생성을 잃어버립니다. 부모가 과잉보호함으로써 자식이 자립하지 못해 부모는 자식에 대해 무거운 짐을 지게 되고, 자식은 자립성을 잃어 부모의 노예로 살아야 합니다. 봄날 제비를 보세요. 알을 낳아 새끼가 나오면 입에 작은 벌레를 하나씩 물어 줍니다. 그래서 새끼들이 골고루 자랍니다. 새끼들이 더 자라서 검은 털이 나기 시작하면 먹이도 굵은 것을 잡아오고, 새끼 입에 바로 넣어 주지 않고 어미가 벌레를 물고 가만히 있습니다. 그러면 새끼들이 벌레를 달라고 아우성입니다. 하지만 어미가 절대로 주지 않고 있으면 새끼들이 몸부림을 쳐서 뺏어 먹습니다. 많이 뺏어 먹는 새끼는 빨리 자라고 못 뺏어 먹는 새끼는 늦게 자랍니다. 그래서 시간이 지나면 새끼들마다 3일에서 일주일까지 각기 다른 날에 날라서 밖으로 나갑니다. 어미가 모질러서 그렇게 하는 것이 아니라 어미의 입에 있는 벌레를 뺏는 것은 사냥하는 훈련을 하는 겁니다. 그리고 새끼들이 벌레를 뺏기 위해 몸부림 치면서 날개에 힘이 생깁니다. 간혹 이 와중에 한, 두 마리가 떨어져 죽습니다. 그렇다 하더라도 새끼가 자립을 할 수 있게 해줍니다. 날아가버린 새끼는 다시는 어미 뒤롤 따라 다니지 않고 어미도 새끼를 보호하겠다며 따라다니지 않습니다. 그래서 짐승 세계에서는 어미와 새끼 사이에 부담되거나 원수 되는 경우는 없습니다. nbsp nbsp nbsp 그런데 짐승보다 영특한 동물인 인간만이 부모와 자식이 원수가 되고 자식이 부모의 억압속에 살아야 하는 이런 일이 생깁니다. 왜 그럴까요? 이것은 바로 엄마가 자식을 낳으면 목숨을 걸고라도 보살펴야 하는데 아이보다 자기 직장, 출세, 인생이 먼저라서 제대로 보살피지 못합니다. 그러다보니 아이들의 마음속에 사랑이 충만하지 못해 늘 허전한 마음 때문에 사랑을 껄떡 거리고, 욕구 불만이 생깁니다. 또 과잉 보호를 받게 되면 자기를 제대로 추스리지 못하며 살아갑니다. 이것이 인간사회의 고뇌입니다. 대부분 모든 인간들이 비슷한데 서양 사람들보다 한국 사람들이 더 심합니다. 옛날에는 중학생 정도만 되어도 자기 힘으로 먹고 살았는데 지금은 유학을 보내도 자기 힘으로 잘 살지 못합니다. 이것은 우리 삶이 잘못되었기 때문입니다. 질문자도 이런 사람들 속에 포함되어 있습니다. nbsp 그러니 선택은 두 가지입니다. 이번 생은 이미 야생성을 잃어버렸기 때문에 산에 갈까, 우리에 있을까를 고민하지 말고 그냥 애완동물로 사는 방법입니다. 엄마, 남편, 시어머니의 애완용 동물로 삽니다. 자기가 입장을 정해버리면 괴롭지 않습니다. 다른 사람보면서 나도 저랬으면 하고 공연히 고민하니 힘든 겁니다. 애완용 동물은 착하죠. 착하다는 소리를 듣고 싶으면 순종하고 사세요. 이렇게 사는 것이 나쁘다는 것은 절대 아닙니다. 다만 자기가 선택하는 겁니다. 자기가 길들여진 짐승도 아니고 노예도 아니라고 생각하면 남편의 사랑을 포기하는 한이 있더라도 모험을 해야 합니다. 나쁜 사람이라는 소리를 들어야 합니다. 사춘기 때 아이들이 부모 말을 안 듣기 시작해야 자립이 되는 겁니다. 이것이 아이가 잘 되는 길입니다. 아이들이 부모의 말을 안 듣는 것은 너무나 자연스러운 것입니다. 부모 말 잘 들으면 부모의 노예가 되는 것입니다. 질문자처럼 되는 겁니다. nbsp nbsp 불교는 내가 주인 되는 것이 핵심입니다. 그런데 여러분들은 신의 종이 되어서 잘 먹고 잘 살겠다, 천국에 가겠다고 합니다. 스님은 주인이 되고 싶지, 종이 되고 싶지는 않아요. 그런데 대부분 사람들은 종을 자처하고 있습니다. 그게 나쁜게 아니라 부모의 종으로서 천국에서 살겠다고 선택하면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질문자는 자꾸 나를 보고 스님처럼 살겠다고 천국을 나오려고 하니 천국에서 나오면 지옥으로 갈지도 몰라요. 스님은 지옥에 가더라도 주인으로 사는 것을 더 선호합니다. 좋은 환경의 종으로 살겠는가, 아니면 나쁜 환경이라도 주인으로 살겠는가. 이제는 선택을 해야 합니다. 자기는 주인으로도 살고 좋은 환경도 가지고 싶다고 하는 것은 욕심입니다. 한 쪽은 포기할 각오를 해야 합니다. 주인으로 살려고 하면 그 동안의 주인이 반대하겠죠. 그것을 두려워하면 종이 되는 겁니다. 내가 주인으로 살겠다고 하면 지금까지 길들여진 삶의 습관을 벗어나야 하기 때문에 나쁜 사람이라는 소리 듣고, 갈등이 일어나는 등 정말 어렵습니다. nbsp 여러분도 아이들 말 안 들으면 집을 나가라고 하고 밥 안 준다고 그러죠. 늘 아이들이 주인이 되려고 할 때, 먼저 주인된 부모들이 아이들의 행동을 막으려고 합니다. 때로는 아이들을 때리기도 하는데, 부처님이 그래서 때리지 말라는 겁니다. 인간관계는 평등한 관계입니다. 그래서 계율에 첫 번째 때리지 마라, 두 번째 남의 물건을 훔치거나 뺏앗지 마라, 세 번째 사랑을 하더라도 강제로 성추행 하지 마라, 네 번째 말하더라도 거짓말 하지 마라, 다섯 번째 술을 먹더라도 행패를 부리지 마라가 있습니다. 이 다섯 가지 계율만 잘 지켜도 세상이 많이 좋습니다. 요즘 학교 폭력의 대다수가 뺏고, 때리고, 욕설하고, 성추행하는 것입니다. 공부는 잘할지 몰라도 인간이 되는 가장 기초적인 것을 안 가르치기 때문에 세상이 시끄러운 것입니다. 그래서 질문자가 주인으로 살려고 할때 다섯 가지 계율에 어긋나지만 않으면 남 눈치 볼 필요가 없습니다. 두 번째는 남편이나 자식이 내 말 안 듣는다고 속상할 때도 나도 남의 인생에 간섭하지 말아야 합니다. 남눈치 보지 말고 간섭하지 않으면 세상이 자유로우면서 남에게 손해도 끼치지 않고 함께 잘 살 수 있습니다. nbsp nbsp 그런데 질문자는 어렵습니다. 착하다는 말에 중독되어 있습니다. 나쁜 사람이라는 말은 절대로 듣기가 싫습니다. 노예로 살아가는 조건이 주어져 있는데 그것을 버리기 어렵습니다. 부처님은 그걸 확 버렸습니다. 왕위와 부모, 아내, 자식을 버리고 자유의 길을 갔습니다. 질문자는 절에 오지 말고 교회로 가면 딱 맞겠습니다. 그럼 고민할 필요가 없습니다. 거긴 순종하는게 목적이니까요. 불교는 주인 되는게 목적이기 때문에 조금 안 맞아요. 절에 다니니 고민이 되는 겁니다. 다시 얘기하지만 선택입니다. 질문자의 지금 마음은 남의 돈을 빌리면 갚아야 하는데 돈을 빌리고 안 갚는 방법을 찾으려고 하는 것과 같습니다.” nbsp 스님의 말씀을 통해 주인으로 살아가는 부처님의 법을 다시금 마음에 새기게 되었습니다. 강연 마친 후 한 질문자는 그동안 늘 듣기만 하다가 실제로 질문을 해 보니 훨씬 가벼워졌다고 말했습니다. 청중들은 살아있다는 것만으로 성공했으니 당당하게 아무 거리낌없이 주인이 되어 살라는 스님의 가르침을 마음에 새기며 가벼운 발걸음으로 돌아갔습니다. nbsp nbsp 시간이 조금 늦게 즉문즉설이 끝나고 스님께서는 청중과 책 사인회를 마치고 일정이 있으시다고 양해를 구하며 급히 강연장을 떠나셨습니다. 스님의 뒷모습을 보면서 늘 강건하기를 바래봅니다. nbsp 구미 강연이 조금 늦어져서 스님께서는 서둘러서 통도사로 출발하셨습니다. 원래 송코 탈란딕팀과 함께 통도사를 안내하려고 했으나 오전 강연이 늦어졌고 또 구미에서 통도사로 오는 고속도로가 공사로 체증이 심해서 결국 통도사를 다 구경하고 나온 송코 탈란딕팀과 기념사진을 찍고 스님께서 아이스크림을 사 주시기도 하셨습니다. nbsp 통도사 일정을 마치고 바로 부산 사하구에 있는 관음사 환희 노인요양병원으로 향했습니다. 그 요양병원에 계시는 노보살님께서 부산 사하구에 있는 작은 건물을 정토회로 보시해 주셔서 건물을 기증하는 약정식이 있었습니다. 고순화 보살님께서는 가지고 있는 건물이 아픈 사람들을 위해 쓰여졌으면 해서 보살님을 보살피던 백승완 부산대 교수님께서 정토회를 추천해서 이 자리가 마련되었습니다. 보살님께서는 거동이 불편하신데도 스님을 뵙고 환한 웃음을 지으며 보시해주셨고 스님께서는 스님의 책을 선물하기도 했습니다. nbsp nbsp 기증식이 끝난 후 바로 저녁 강연이 있는 서면 롯데호텔로 이동하셨습니다. nbsp 저녁 6시 20분경, 법륜스님께서는 2015년 JTS후원의 밤과 함께 진행될 희망세상 만들기 즉문즉설 강연을 위해서 부산 서면 롯데호텔 3층 크리스탈볼륨홀을 찾으셨습니다. 이 강연에서는 특별히 필리핀 민다나오 송코마을의 원주민 딸랑딕 부족이 초청되어 전통 문화 공연을 볼 수 있는 뜻 깊은 자리가 마련되었습니다. nbsp 초여름 무더위로 하루 종일 사람들이 지치고 월요일 저녁시간임에도 불구하고 스님의 강연을 듣기 위해 많은 분들이 일찍부터 줄을 서서 기다렸다가 입장했습니다. 1,200개의 좌석이 어느듯 꽉 채워졌습니다. 스님께 직접 좋은 말씀을 듣는다는 기대감으로 강연장에는 즐거운 설레임이 가득찼습니다. nbsp nbsp 강연에 앞서 특별히 준비된 JTS 활동영상을 시청하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그동안 법륜스님과 봉사자들이 오랫동안 함께 일궈낸 활동을 청중들이 흐뭇한 미소로 호응하였습니다. 영상을 시청한 후 스님께서는 JTS 활동 및 송코마을에서 오신 분들을 소개해주셨습니다. nbsp “안녕하세요. 요즘 날씨 좋죠. 이런 좋은 봄날, 이런 좋은 곳에서 여러분들 만나서 반갑습니다. 오늘은 저와 여러분들의 대화인 즉문즉설도 있고, 또 필리핀 민나다오의 딸랑딕 원주민 음악과 춤도 준비되어 있습니다. nbsp nbsp 정토회 산하에 국제구호단체인 JTS가 있습니다. 배고픈 사람은 먹어야 합니다. 병든 사람은 치료받아야 합니다. 어린 아이는 제때 배워야합니다.라는 설립 정신을 바탕으로 동남아시아의 가난한 아이들을 돕고 있습니다. 아이들을 위한 학교를 많이 세우고 병원도 운영하고 있습니다. 필리핀에는 민다나오라는 섬이 있는데, 그 섬 산속에 사는 원주민들이 교육을 못 받고 매우 열악한 환경속에서 살고 있습니다. 또 무슬림 분쟁지역도 환경이 매우 열악합니다. 그래서 지난 12년 동안 초등학교 2칸3칸짜리를 원주민 부락, 무슬림부락에 약 40여 곳에 지었습니다. 그리고 지난해 하이옌 태풍이 휩쓸고 간 필리핀 마라봇 지역에도 교실 87칸을 복구하는 활동에 참여했습니다. nbsp 원주민 중에 자기 전통문화를 잘 지키는 부족이 있습니다. 우리도 우리 전통 문화를 잘 지켜야 하죠. 그런데 너무 서양화 되어서 옷도 서양옷 입고 다닙니다. 나만 이렇게 전통을 고수하고 있어요. 집도 여러분들은 양옥에 살고 있잖아요. 나만 전통한옥에 살고 있어요. 그래서 스님들은 종교인의 한 사람이지만 한국인의 입장에서 볼 때는 비교적 전통을 지키면서 사는 사람에 속해요. 그래서 저는 다른 나라에 가도 자기 전통을 지키는 사람에게는 호감을 갖습니다. 특히 인구가 얼마 안 되는 원주민 소수민족이 자기 전통문화를 지키는 것을 보면 애틋한 마음이 들어요. 그래서 전통문화를 지키는 부족을 찾아서는 물질적인 구호만이 아니라 전통문화를 보존할 수 있도록 지원을 해주고 있습니다. 오늘 그 부족중의 한 부족을 초청했습니다. nbsp nbsp 오늘 여러분께서는 그분들이 옷은 어떻게 입고, 춤은 어떻게 추고, 미술은 어떻게 그리고, 음악은 어떻게 하는지 보시고 격려해주셨으면 좋겠습니다. 그리고 나갈 때는 그들을 위해서, 그리고 이런 좋은 JTS의 사업을 위해서 후원도 해주세요.” nbsp 스님의 말씀을 통해 우리 고유의 전통문화를 지키는 것이 얼마나 소중한지를 다시금 되새기는 시간이었습니다. nbsp 스님의 소개 말씀이후 바로 청중들이 기다리던 즉문즉설이 시작되었습니다. 공연프로그램으로 스님의 즉문즉설 강연 시간이 30분 줄었음에도 총 10명의 질문자가 궁금한 것을 여쭈었고, 스님께서는 특유의 명쾌한 답변을 척척 내주셨습니다. nbsp nbsp 남편과 대화가 전혀 없고 의사소통이 안 돼서 답답하다는 분의 질문을 시작으로, 영가가 보여서 힘들어하는 친정엄마와 새벽에 파자마 입고 108배하는 남편을 바꾸고 싶다는 보살님의 질문, 내 인생에 자신이 존재하지 않는 것 같고, 그러다보니 죽고 싶다는 생각에 빠지게 된다며 고민을 털어놓는 젊은 여성분의 질문, 담배 끊은 남편이 술도 좀 줄였으면 좋겠다는 아내, 게을러서 움직이기 싫어하는 통통한 딸이 걱정이라는 엄마, 귀농을 꿈꾸는 신혼부부의 식용 곤충사육에 대한 도전과 세계 식량난에 대한 스님의 견해를 묻는 질문, 결혼 후 인터넷 스포츠 도박으로 재산을 다 잃은 남편이 용서가 잘 되지 않는다는 아내, 나이든 보살님께서 도솔천 내원궁에 계신다는 미륵부처님에 대한 질문 등, 인생을 살며 누구나 겪을 수 있는 가지각색의 고민들이 풀어졌습니다. 질문자들이 가진 아픔에 대해 스님께서 격려와 위로의 따뜻한 말씀과 명쾌한 해법을 해주셔서 소중한 시간을 보낼 수 있었습니다. nbsp 질문들 중에 한가지를 소개드립니다. nbsp nbsp “저의 딸이 서른 두 살입니다. 좋은 인연을 찾고 싶은데 나름대로 기도도 하고 있지만, 좀처럼 좋은 인연이 나타나진 않고 있어요. 언제쯤 좋은 인연이 짠하고 나타나 맺어질까요? 저도 친구들처럼 장모님 소리도 듣고 싶어요. 스님 명쾌한 답변 부탁드립니다.” nbsp “네. 아주 좋은 질문 하셨어요. 쥐는 먹이를 어떻게 구합니까. 밥상을 차려놓고 먹어요? 쓰레기장을 뒤져서 먹어요? 쓰레기장 뒤져서 먹죠? 그러다가 갑자기 접시에 자기가 좋아하는 음식이 짠 하고 차려진 음식이 나타났어요. 그게 뭘까요? ” nbsp “쥐약” nbsp “질문자는 모르는 거예요? 아니면 차마 그 얘기가 하기 싫은 거예요? 어느 순간 내가 원하던게 짠하고 나타나는 건 99 쥐약입니다. 쥐약 빼고는 쥐한테 그런 게 나타날 가능성은 거의 없습니다. 나한테 인물도 잘났고, 돈도 많고, 가정환경도 좋은 사람이 나타나면 100 쥐약이예요. 엄마가 딸한테 쥐약 먹이면 되겠어요? 안되겠어요?” nbsp “안되지요. 근데 지금 딸 나이가 서른둘이니까. 갈 때가 되었거든요.” nbsp “서른 두살에 쥐약 먹는 게 좋아요? 쥐약 안 먹더라도 더 사는 게 좋아요?” nbsp “안먹더라도 더 사는게 좋긴 한데요.” nbsp “그러면 놔둬요. 지금 너무 밀어붙이면 쥐약 먹을 가능성이 높아요. 한번 생각해봐요. 내 딸이 인물도 훨씬 낫고, 학벌 좋고, 집안 가문도 좋고, 돈도 잘 버는 그런 남자와 결혼할 가능성이 높아요, 낮아요? 엄마가 자꾸 그런 걸 원하면 결혼하기 힘들어 혼자 살기가 쉽습니다. 근데 이게 쥐약인데, 쥐약이 아니라고 치고, 그런 남자가 나타나 결혼했다고 치십시다. 결혼 잘했지요? 그런 남자가 결혼한 뒤에 자기보다 인물도 못하고, 재산도 못하고, 학벌도 못하고, 집안도 못한 이 여자만 사랑하며 살까, 아니면 딴 여자도 힐끔힐끔 보고 살까요? 어떻게 생각하세요?” nbsp “저만 바라보고 살지는 않을 거 같습니다.” nbsp nbsp “그럼 이런 남자 주위에는 여자가 늘 있게 되고 그 부인은 질투심이 생기겠죠. 그런데 어디 가서 그런 남자를 또 구하나라는 생각에 이혼도 못하겠죠. 그래서 이혼도 못하고 속만 끓이며 살게 되는 거예요. 또 그런 남자는 아내를 존중할까요? 안하겠지요. 그럼 시부모도 며느리를 존중할까요? 안하겠지요. 하인 부리듯 부리겠지요. 그러면 자기는 자기 딸을 부잣집 하녀로 파는 거예요. 그런데 엄마들이 자기 체면을 위해서 자기 딸을 그렇게 파는 사람이 굉장히 많아요. 그러니까 지금 엄마의 생각은 자기 딸보고 쥐약 먹으라고 기도하는 것과 똑같다는 겁니다. nbsp 여러분들, 사기꾼이 보통 인물 잘 생겼죠? 옷 잘입죠? 친절하죠? 말 잘하죠? 차 좋은 거 타죠? 그런 사람 안 좋아할 여자, 남자 있어요, 없어요? 없기 때문에 우리가 사기를 당하는거예요. 예를 들어 우리가 물고기 낚을 때, 쥐를 잡을 때 좋아하는 음식을 놔요? 싫어하는 음식을 놔요? 우리가 ‘이야 저거 정말 좋다’ 하는 건 미끼일 확률이 굉장히 높습니다. 그래서 그거 잘못 물어서 고생하는 사람 지금 여기도 얼마나 많아요?” nbsp 그러니 엄마가 되어서, 딸이 남자를 잘못 물면 인물 갖고 사는 거 아니다, 가문으로 사는 거 아니다, 돈 갖고 사는 거 아니다 하고 이렇게 말려야 합니다. 그런데 엄마가 딸 앞에 짠하고 나타날 왕자를 요구하니까 잘 나타나지도 않아, 결국 혼자 살도록 만들게 되는 겁니다. 게다가 혹시 나타나도 그건 쥐약이예요. 요새 봄날이 오니 제비가 막 날아오던데 딸보고 제비 한 마리 키우라구요? 그런 생각을 하면 불행을 자초하게 됩니다. nbsp nbsp 지금 딸의 결혼을 기도할 것도 없고, 그런 생각을 딱 끊으셔야 해요. 내가 딸의 결혼에 관심을 가지면 가질수록 딸에게 불행이 자초됩니다. 결혼을 하겠다 해도 말려야 하고, 좋은 결혼조건 일수록 말려야 해요. 이렇게까지 모질게 얘기해서 죄송합니다만 쥐약을 안 먹도록 하기 위해서 말씀드리는 겁니다” nbsp “네. 잘 알겠습니다.” nbsp “자, 부처님께 열심히 빌면 진짜 좋은 신랑, 좋은 아내 만난다고 생각한다면, 부처님께서 중생의 결혼생활에 관여한다는 말이죠? 부처님께서는 자신이 결혼해서 자식이 있는데도 이게 ‘고’라고 하여 아내와 자식을 두고, 왕위도 버리고 출가를 했는데, 그런 부처님께 여러분들이‘왕이 되고 싶다’‘좋은 결혼하고 싶다’라고 바라면 힘 실어줄까요? 부처님께서는‘그건 쥐약인데’ 이런 말씀은 해줍니다. 재앙은 막아 줘야하니까요. 그런데 세상에 욕심 갖고 제 딸은 형편없는데 사위는 좋은 사람 봐야겠다고 하면 부처님이 관여할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nbsp 부모의 역할은 스무살까지 키워 주는 겁니다. 스무살 넘으면 자식이 알아서 살도록 놔두는 거예요. 결혼을 해도 좋고, 결혼을 안 해도 좋고, 어떤 남자하고 해도 좋고요. 질문자는 남편 잘 만났어요? 남편이 짠하고 나타나서 딱 마음에 들었어요? 아니면 조금 부족했어요?” nbsp “옛날에는 아이 아빠가 배를 타서 단점이 안보여서 잘 몰랐습니다. 그런데 살아보니 단점이 보이기 시작해 안 맞는 게 있긴 했지만, 아르바이트로 일하면서 보니 남편이 나한테 참 많이 양보를 해줬구나하는 참회하는 마음도 있습니다.” nbsp nbsp “질문자는 제 남편도 못 알아봤잖아요. 자기 남편도 못 알아봤으면서 남의 남편 구해줄 눈이 될까요? nbsp “친구들이 왜 딸 시집 안보내냐고 물어봅니다. 요즘 동창회 밴드 하면서 친구들이 사위와 며느리 얻어서, 특히 사위 자랑을 많이 해요. 그래서 저는 좋은 사위를 좋은 인연으로 만나서 딸을 너무 늦지 않게 결혼시키고 싶습니다. 요즘 결혼에도 때가 있는데 너무 늦는 것 같아서요” nbsp “여러분들은 아이들이 말 안 듣고 속상하게 하면 어떤 얘기합니까?‘너도 나중에 결혼해서 애 한번 낳아봐라.’이렇게 말하죠. 이게 사랑의 마음이예요? 증오의 마음이예요? 나는 이 고생하지만 너는 결혼해서 이 고생하지마라 그렇게 해야 하는데, 너도 너 같은 애 하나 낳아서 눈물을 펑펑 쏟아야 내 마음 이해한다며, 부모가 제 자식 놔두고도 이렇게 저주합니다. 주변 친구들 이야기는 사실 자식들 결혼시켜 놓고 보니 지금 속상하거든요. 그런데 질문자를 보니 질투심이 나서 ‘너도 좀 고생해봐라.’ 하는 소리니까 너무 귀담아 들을 필요 없습니다. ” nbsp “네 잘 알겠습니다.” nbsp nbsp “여자 친구, 남자 친구 하나 없이 혼자 사는 사람이 공원을 산책 하는데, 저 멀리 남녀 둘이 걸어가는 모습 보면 부럽죠? 멀리서 보면 좋아 보이죠? 그런데 저 둘은 이혼하려고 얘기를 하고 있어요. 그래서 주변에서 하는 소리 너무 믿으면 안돼요. 그냥 하는 소리예요. nbsp 제가 상담하면서 제일 많이 듣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저에게 딸이 뭐도 안하고, 뭐도 안하고 하면서 욕을 해놓고는 조금 있다가‘아이고 스님, 좋은 남자 있으면 우리 딸 소개 좀 해주세요.’ 그게 말이 되요? 제 엄마도 욕을 해 좋고, 좋은 남자한테 보낼려고 해요. 이런 심보 가지면 안돼요. 이렇게 엄마가 이야기하고서도 아무런 모순을 못 느껴요. 엄마도 제 자식을 못 봐주는데 어느 남자가 그 딸을 받아주겠어요? 심지어 좋은 남자 소개 시켜 달라고 그래요. 시대가 바뀌었으니 너무 욕심내지 말고, 젊은이들이 알아서 살도록 해야 해요. 결혼하고 안하고, 스님 되고 안되고 그런 건 간섭하면 안됩니다.” 스님의 답변을 통해서 우리의 삶이 늘 내 입장에서만 바라보는 이기심에서 비롯됨을 다시금 깨닫는 시간이었습니다. 이렇게 오늘도 스님의 즉문즉설은 웃음과 공감, 지혜로 꽉 찬 시간이었습니다. nbsp nbsp 법륜스님의 즉문즉설이 끝나고 이어서 필리핀 민다나오 송코마을의 원주민 딸랑딕 부족의 공연이 바로 이어졌습니다. 자연의 소리를 담은 연주와 개구리 춤, 원숭이 춤, 매의 춤, 구애의 춤 등 원주민 부족의 전통이 담긴 다양한 춤을 볼 수 있었습니다. 어린 아이부터 청년, 연세 많으신 분들까지 다양한 세대의 원주민들이 함께 하는 춤을 보고 있자니 마치 어느덧 자연속으로 빠져드는 느낌이었습니다. 청중들 역시 춤에 맞춰 박수치며 색다른 희망 강연 시간을 즐겼습니다. 춤 공연의 마지막 무대에서는 법륜스님과 무대 앞자리 청중들이 딸랑딕 부족과 함께 춤을 추며 하나가 되는 흥겨운 시간도 가졌습니다. nbsp nbsp 강연 끝나고 뒤돌아 나가는 청중들의 모습이 모두 가벼워 보입니다. 스님의 말씀 듣고, 필리핀 딸랑딕 원주민의 음악을 듣고, 함께 박수치며 춤추는 사이 각자 가지고 있던 고민 하나 쯤, 강연장 바닥에 흘린 것 같이 홀가분한 모습입니다. 사람들로 가득 넘친 JTS 홍보부스를 보며 이곳이 부처님의 자비가 가득한 아름다운 사찰이구나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nbsp nbsp 스님께서는 오늘 강연을 마치고 바로 문경으로 이동하셨습니다.

2015.04.29. 23,930 읽음 댓글 17개

2015.4.26 제8차 천일결사 5차 백일기도 입재식

▲ 정토회 제8차 천일결사 5차 백일기도 입재식nbsp안녕하세요. 오늘은 이 땅에 맑은 마음, 좋은 벗, 깨끗한 땅을 실현하고자 큰 서원을 세우고 시작한 정토회 만일결사 중 제8차 천일결사 4차 백일기도 회향식 및 5차 입재식이 열리는 날입니다. 스님께서는 새벽4시에 일어나셔서 문경정토수련원 대웅전에서 새벽 예불과 천일결사 기도를 하며 하루를 시작하셨습니다.nbspnbsp▲ 천일결사 기도nbsp기도를 마치고 아침7시 무렵 정토수련원을 출발해 오늘 입재식이 열리는 구미체육관에는 9시 무렵 도착하셔서 김은숙 행정처장님과 오늘 행사 프로그램에 대해 의논을 하셨습니다.nbspnbsp9시40분부터 타종, 예불, 반야심경 봉독을 시작으로 대중들은 이기혜 대표님의 환영 인사말씀을 들었고, 이어서 오늘 이 자리에 모인 참가 단체 소개가 있었습니다.nbspnbsp▲ 참가단체 소개nbsp서울제주, 강원경기동부, 인천경기서부, 대전충청, 부산울산, 경남, 광주전라, 대구경북, 해외에서 총 3,948명의 천일결사자들이 지부별로 소개되자 대중들은 열렬한 환호로 반가운 마음을 표현했습니다. 스님께서도 직접 일어나셔서 눈빛을 마주치며 환한 웃음으로 천일결사자들을 맞이해 주셨습니다.nbspnbspnbsp특히 오늘 입재식에는 저 멀리 해외정토회에서 33명의 활동가들이 함께 참여해 큰 박수와 격려를 받았습니다. 해외에는 현재 17개의 정토법당과 5개의 정토법회, 21개의 열린법회가 운영되고 있는데, 오늘 참석한 33명은 이 모든 운영을 담당하고 책임지고 있는 총무급 등 지도자들입니다. 지난 4월20일부터 어제까지 일주일 동안 두북과 문경에서 진행된 지도자 수련을 마치고, 오늘은 국내의 천일결사자들과 인사의 시간을 갖고자 함께 자리했습니다.nbspnbsp▲ 해외정토회 활동가들nbsp스님께서는 직접 무대로 올라오셔서 한분 한분의 소임과 이름을 직접 소개해주셨습니다. 해외정토회 활동가들을 대표하여 미주 중부 지구장 하일숙님이 인사 말씀을 나누어 주었습니다.nbspnbsp▲ 하일숙 미주 중부 지구장님nbsp“처음에 스님께서 세계 100회 강연을 말씀하셨을 때는 정말 엄두도 안나고 어떻게 해야할지 막막했는데 여러분들이 모두 계시니까 그것을 믿고 스님께서 하신 것 같아요. 국내에 계신 여러분들이 100강이 끝나는 날까지 기도해 주신 덕분에 저희가 무사히 마칠 수 있었고요. 해외는 불모지여서 사람 한명이 정말 소중한데, 이렇게 많은 분들을 보니까 저희들은 너무 너무 힘이 납니다. 이 기를 받아 새로운 정토행자로 다시 태어나서 제2차 만일결사를 잘 준비해서 전세계로 뻗어나가는 초석이 되도록 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nbsp4천명의 천일결사자들은 우레와 같은 함성과 박수로 해외정토회 활동가들의 다짐을 응원해 주었습니다. 스님께서는 열악한 조건 속에서도 열심히 활동을 해나가고 있는 해외 활동가들 모두에게 반야심경 족자를 선물했습니다.nbspnbsp이어서 백일출가 24기생들의 축하 노래가 이어졌습니다. 우리 모두에게 익숙한 음정인 ‘봉선화 연정’이 불러지자 곳곳에서 웃음이 터져 나옵니다. 또 낭랑한 목소리와 표정으로 ‘봄 봄 봄’ 노래가 울려퍼지자 순식간에 행사장은 봄기운이 완연해진 느낌입니다.nbspnbsp▲ 백일출가 24기생들의 축하 노래nbsp이어서 지난 백일간 정토회에서는 어떤 일들이 있었는지 ‘정토행자 100일간의 발자취’를 영상을 통해 만나보았습니다. 전국에서 불교대학생 4천7백여명이 입학했고, 스님의 JTS 해외사업장 방문, 전국 대의원 회의, 통일의병학교, 불교대학 경전반 담당자들과 총무 부총무 등을 대상으로 한 다양한 교육 수련 활동, 그리고 100번째로 개원한 성동법당 소식까지 활발하게 전개된 지난 100일의 모습을 함께 보며 ‘참 많은 일을 했구나’ 하고 더욱 생생하게 느껴보았습니다.nbspnbsp다음은 지난 4차 백일기도 실천과제 결과가 발표되었습니다. 법당 과제는 기획법회 열기였고, 개인 과제는 정토불교대학에 지인 1명 이상 인연맺기였습니다. 기획법회 열기는 서울제주지부의 경우 67라는 가장 높은 달성률을 보여주었습니다.nbsp정토불교대학 1명이상 인연맺기는 경남지부가 21라는 가장 높은 달성률을 보여주어 큰 박수를 받았습니다. 이를 보면 함께 협력해야 하는 법당 과제는 달성률이 높은 반면 개개인에게 주어진 과제는 아직 달성률이 낮음을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nbspnbsp이어서 희망세상을 만들기 위해 누구보다도 열심히 수행 정진해 온 분들의 수행담을 들어보는 시간이 있었습니다. 먼저 천안정토회 홍성법당 이근우님, 이어서 서울정토회 서초법당 김정옥님의 발표가 있었습니다. 두 분의 발표는 눈에 눈물이 맺힐 정도로 감동적이였습니다.nbspnbspnbsp“저의 아버지는 단 한번도 자식들을 따뜻하게 안아주신 적이 없었습니다. 아버지의 무시와 냉대를 받아야했던 어머니는 그 스트레스를 고스란히 우리들에게 풀었습니다. 심한 핀잔과 욕설은 물론이고 때론 매까지 드셨습니다. 집이 죽도록 싫어서 중학교 때는 가출을 해서 소주 한병과 함께 약을 먹었는데 죽는 것도 마음대로 되지 않았습니다... 그러던 중 홍성법당에서 열린 정토불교대학에 다니게 되었습니다... nbsp부모님께 감사하라는 법문을 듣고 아침 기도를 하며 감사한 마음을 내보려했지만 처음에는 잘 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세 달 정도를 계속 해보니 조금씩 감사한 마음이 들기 시작했습니다. 정토회에 들어온지 만 2년, 그동안 제 삶에는 많은 변화가 있었습니다. 술을 마셔대던 시절에 정말로 죽을 뻔한 적이 몇 번 있었습니다. 그래도 이렇게 죽지 않고 살아 있는 것은 남은 생을 부처님의 말씀대로 ‘상구보리 하화중생’의 삶을 실천하며 살라고 주신 기회라 여겨집니다. 묵묵히 봉사하며 정진해 나가겠습니다.” nbsp 홍성법당 이근우님nbspnbspnbsp“저는 태어난 지 얼마 안 되어 아버지가 돌아가셨습니다. 5학년 무렵부터 엄마가 돈을 벌러 나가면 오빠가 저를 때리기 시작했습니다. 오빠는 저를 무자비하게 때리며 맨손으로 때리는 게 쾌감이 있다고 했습니다. 결혼할 나이가 되자 저는 ‘나를 때리지만 마라. 그럼 내가 같이 살겠다’ 고 했습니다. 남편은 저를 때리지 않았지만 5년 동안 생활비를 주지 않았습니다. 열한평짜리 아파트에서 시동생 셋을 데리고 있으면서 제가 번 돈으로 시동생들과 시어머니를 부양했습니다. 남편은 결혼하고 30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제 얼굴을 제대로 쳐다본 적이 없습니다. 어느날 남편은 저에게 ‘네 눈에 살기가 있어서 너를 안 쳐다봤다’는 말을 했습니다. 어리석게도 저는 두 아들에게 늘 ‘엄마는 갈거야. 너희가 자라면 엄마는 떠날거야‘ 하고 말하곤 했습니다. 이젠 정말 떠날 때가 됐구나 싶어 돈을 벌기 위해 도배 일을 시작했는데 그만 사다리에서 떨어져 다리가 부러지고 말았습니다... nbsp병상에 누워있는 동안 유튜브에서 즉문즉설을 보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깨달음의장에 다녀온 뒤 지금까지 300배씩 하루도 빠지지 않고 ‘제가 죽을 죄를 지었습니다’ 하고 참회의 절을 하기 시작했습니다. ‘아버지, 죄송합니다. 참회합니다’ 그렇게 절을 하다보니 울음이 터져 통곡이 되어 나왔습니다. 힘들 때 마다’ 아버지가 살아 계셨다면’ 하고 얼굴도 모르는 아버지를 원망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 미움의 파장이 남편에게도 가고, 자식들에게도 갔습니다. 서초법당 수행법회에 다니다가 불교대학에 입학했고, 신도사무실에서 당직 봉사를 시작했습니다. 평생 살면서 내 일이다 생각되는게 없었는데 이제 정토회 일이 내 일이 되었습니다.nbspnbsp▲ 수행담을 들으며 눈시울을 붉히는 대중들nbsp내가 남편으로 인해서 여기까지 올 수 있게 되었다 생각하니 남편이 부처님 같이 느껴졌습니다. 이제는 남편이 밉거나 원망스럽지 않습니다. 얼마 전에는 오빠에게 전화해서 오빠를 죽이고 싶도록 미워해서 미안하다고 말했습니다. 지금은 큰 돈을 날리고 사글세를 살아도 행복할 수 있다는 것이 신기할 따름입니다. 정토회에서 하는 봉사활동은 무척 재미있습니다. 이런 복을 만나려고 제가 지금까지 그 고생을 했나 싶을 정도입니다... nbsp얼마전 1박2일로 불교대학 특강 수련에 가서 ‘내 집을 문경으로 만들어야지’ 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리고 집에 돌아오자 어릴 때부터 분리불안증이 심했던 작은 딸이 “엄마, 잘 갔다 왔어요? 이제 엄마 어디 가도 괜찮아. 엄마는 어디 안 가고 다시 집으로 올 거니까” 하는 것이였습니다. 저는 정말 놀랐습니다. 나의 한 생각이 아이들에게 정말 큰 영향을 미친다는 걸 새삼스럽게 깨닫게 되었고, 진정한 수행자로 살아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저는 그저 하루하루가 행복하고 모든 것에 감사할 따름입니다. 정토회를 만나지 않았다면 제가 어떻게 살았을까요?” 서초법당 김정옥님nbsp마지막에 김정옥님이 ‘정토회를 만나지 않았다면 제가 어떻게 되었을까요?’ 하는 순간 눈물이 울컥하고 터져나왔습니다. 그렇게 원망스럽던 아버지와 남편, 오빠였는데 불교대학을 다니며 마음공부를 하고 나니 지금은 이들 모두가 나를 불법으로 안내해준 은혜로운 사람이였다고 여겨진다는 두 분 이것이야 말로 기적이 아닐까 싶은 생각이 들어 가슴이 짠해졌습니다.nbspnbsp대부분 이런 상황에 놓이면 삶을 포기하는 쪽으로 가게 되는데 불법을 만나 자신의 무지를 자각하고 이를 극복하는 길로 들어섰기에 비록 문제가 완전히 해결된 것은 아니지만 우리 모두에게 큰 감동을 준 것 같습니다. 대중들은 수행담을 발표해준 두 분에게 뜨거운 격려의 박수를 보내주었습니다.nbspnbspnbsp이렇게 감동적인 두 분의 수행담을 뒤로 하고 이어서 스님께서 법상에 올라오셔서 4차 백일기도 회향 법문을 해주셨습니다.nbspnbsp“부처님은 왕자로 태어나셨고 사회적 지위나 물질적으로 아무런 불평불만이 없는 조건에 있었지만 삶이 행복하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그분은 왜 삶이 행복하지 못할까 너무나 많은 연구와 탐구를 하셨습니다. 그래서 그 왕위를 버려보기도 하고 물질의 사용도 최소화하는 고행도 해보면서 행복의 본질이 무엇일까 깊이 탐구를 하셨습니다. 그래서 새로운 길인 ‘중도의 길’을 발견하셨습니다. nbspnbspnbsp바로 이 부처님의 깨달음은 오늘날 우리 현대인들의 고뇌를 해결하는 실마리를 제공해 준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그러니 이제 더 이상 남에게 도움 받으려하는 그런 복을 비는 불교가 아니라 남의 의지처가 되어주고 남을 도와주고 베풀어주는, 지금까지와는 전혀 다른 불교의 근본 가르침으로 돌아가야 합니다. nbspnbsp조금 전에 우리는 두 분의 수행담을 들었습니다. 저도 모르게 제 눈에서 눈물이 고였습니다. 얼마나 힘들었을까. 어린 아이들이 그런 가정에서 자랄 때 얼마나 마음이 아팠을까. 만약에 자신이 자란대로 반응을 한다면 고통이 계속되다가 죽는 운명이 결정되어 있다고 말할 수 있을 겁니다. 그런데도 두 분은 이런 최악의 상황에서 한 줄기 빛을 발견하고 새로운 희망을 가지고 지금 출발하는 모습을 보여주었습니다. 이분들의 문제가 모두 해결되었느냐? 그렇지는 않습니다. 앞으로도 과거에 받았던 고통 이상의 더한 고통이 찾아올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이분들은 이제 한줄기 희망을 갖게 되었습니다. 주어진 환경을 개선해서 행복이 이뤄지는 것이 아니라 그 환경을 내가 어떻게 받아들이느냐 하는 자기 주인의식이 이 문제를 해결하는 길임을 발견한 것입니다. 그래서 미움의 대상이 되었던 부모와 남편, 가족마저도 내가 이 새로운 깨달음의 길을 발견할 수 있도록 안내해준 격이 되었습니다.nbspnbspnbsp이렇게 깨닫고 나면 ‘재앙마저도 나에게 큰 복이었구나’ 하고 의식이 변하게 됩니다. 이렇게 되면 이 세상에 더 이상 두려울 것이 없어집니다. 내가 원하는 일이 이뤄지는 것만이 복이 아니라 내가 원하지 않는 일도 나에게 다가온 큰 복임을 알 수 있습니다. 기독교 신자라면 그 재앙이야말로 하나님의 은혜이고, 불교인들이라면 그 재앙이 곧 부처님의 가피임을 자각하게 됩니다. 이렇게 아무런 두려움이 없어지는 이것이야말로 해탈과 열반의 길입니다. 남편이 고쳐져서도 아니고, 부모가 고쳐져서도 아니고, 형제가 고쳐져서도 아니고, 아내가 고쳐져서도 아니고, 세상이 바뀐 것도 아니고, 자신이 사물을 보는 관점이 바뀌었을 뿐인데 이런 새로운 기적이 일어났습니다.nbspnbsp이것은 더 이상 한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우리 인류가 가야 할 새로운 희망입니다. 이제는 환경을 개선하는 것만이 사회운동이 아니라 이런 ‘수행하기’가 새로운 사회운동의 하나가 되어야 합니다. 이런 획기적인 의식의 변화없이 인류가 진정한 행복에 도달한다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이런 수행에 대한 노하우가 가장 많이 쌓여있는 곳이 불교입니다.nbspnbsp자기 상태를 자각하는 깨달음이야말로 나를 진정으로 자유롭고 행복하게 해줍니다. 우리들은 이미 어릴 때 형성된 까르마대로 반응합니다. 그러나 인간이 가진 특별한 능력은 내가 짜여진대로 움직이는 존재라는 것을 작각하면, 내가 이렇게 하면 이런 재앙이 올 수 밖에 없다는 것을 자각하면, 그 재앙을 피하거나 달리 반응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여기에 바로 우리가 속박에서 벗어날 수 있는 해탈의 길이 있습니다.nbspnbsp두 분의 수행담을 잘 들어보시면 가장 중요한 계기는 ‘아, 내가 계속 이렇게 고통을 받을 수 밖에 없는 반복된 행위를 하고 있구나’ 하는 자각입니다. 이것을 자각하는 순간 거기서 벗어나는 계기를 마련하게 됩니다. 그래서 가장 먼저 내 상태를 자각해야 합니다. ‘내가 소비에 중독되어 있구나’, ‘내가 고집이 세구나’, ‘내가 성격이 급하구나’, ‘내가 짜증을 잘 내는구나’ 이것을 먼저 자각해야 합니다. 자동으로 반응하고 있음을 자각하게 되면 피할 가능성이 열려지게 됩니다. 그렇게 우리는 자유와 해탈의 길을 갈 수가 있습니다.nbspnbspnbsp진정한 행복은 좋은 의지처에 의지해서 얻어지는 행복이 아니라 내가 타인의 의지처가 되어주는 행복입니다. 진정한 행복은 남에게 도움을 받는데서 오는 행복이 아니라 내가 남에게 도움을 줄 수 있을 때 얻어지는 행복입니다. 관점이 완전히 다른 거예요. 노예로서 부자가 되거나 중생으로서 천상에 태어나는 것은 불교의 본질이 아닙니다. 오늘날 현실에 있는 불교의 99는 그것을 불교라고 합니다. 그러다보니 불교와 다른 종교, 불교와 세속 사이에 아무런 차이가 없는 것입니다. 명칭과 이름, 형식만 다르지 내용은 똑같습니다. 그러나 붓다의 가르침의 본질은 그런 노예로서의 풍요로운 삶을 누리는 것이 아니라 설령 가난하다 하더라도 주인으로서의 삶을 가르치는 것입니다. 어디 가서 많이 얻으려는 것이 아니라 작은 것이라도 베풀어주는 것, 내가 어려울 때 남이 내 손을 잡아주는 것을 고마워하는 존재가 아니라 누군가 어려움에 처했을 때 내가 그의 손을 잡고 일으켜주는 존재로의 전환, 이것이 붓다의 길입니다. 우리는 그런 길을 가고자 하는 것입니다.nbspnbsp그래서 이런 수행을 가장 기초로 하고, 그러나 수행만이 아니라 평화도 도래하게 해야 하고, 우리 이웃에 빈곤에 처한 사람도 없게 해야 하고, 지구 환경도 보존해 가야 합니다. 이런 일은 혼자서 할 수 없습니다. 서로 힘을 모아서 같이 해야 합니다. 그래서 한 세대인 30년간 이런 원을 세우고 힘을 합해서 노력한다면 그런 세상을 만드는 기초를 마련할 수 있다고 보고 만일결사를 시작한 것입니다. 복을 비는 기도는 다른 절, 다른 교회, 다른 성당이 있으니까 거기 가서 하시면 돼요. 거기는 신도가 부족해서 오라고 난리니까요. nbspnbsp우리가 여기 모인 이유는 비록 나도 얻어먹고 싶기도 하고, 나도 복을 빌고 싶기도 하고, 나도 의지처가 필요하지만, 그러나 내 인생의 목표는 좋은 의지처에 가서 안주하는 것이 아니라 내가 방황하는 사람들의 의지처가 되어주는 것으로 한다는 것입니다. 이런 관점을 분명히 가진 사람들이 모여야 합니다. 현재 부족한 것은 저도 그렇고 여러분도 그렇고 인정을 합니다. 그러나 관점은 이렇게 가져야 합니다. 그래야 엎어지고 자빠지면서도 목표에 도달할 수 있지 목표 자체가 노예로서 좀 잘 살고 싶은 것이라면 이 결사에 해당하지 않습니다. 여러분들이 보기에는 오라고 싹싹 빌어도 올까 말까 한데 스님은 무슨 똥배짱으로 갈테면 가라고 큰소리를 치느냐 이렇게 생각할지 모르겠어요. nbspnbspnbsp하지만, 질을 유지하고 양이 확대되어야 의미가 있지 질이 담보되지 않고 양만 확대된다면 세상에 있는 많은 종교와 무슨 차이가 있습니까. 정토회 회원 수가 1만명, 10만명 100만명이 된다고 한들 세상에 무슨 변화가 있겠습니까. 앞에서 얘기한 두 분의 수행담과 같은 그런 기적을 우리는 만들고자 하는 것입니다. 두 분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보통 사람이라면 그런 환경 속에서 희망을 찾기란 불가능합니다. 숫제 먹을 것이 없거나 병든 사람은 남의 도움을 받을 수 있지만 이런 문제는 남의 도움도 받을 수가 없습니다. 오직 자기만이 해결할 수 있습니다. 바로 여기에 부처님의 광명, 즉 진실한 근본 불교의 가르침이 여기에 비춰졌기 때문에 새로운 희망을 갖게 된 것입니다.nbspnbsp그래서 우리는 이런 길로 많은 사람들이 참여할 수 있도록 전법을 해나가야 합니다. 적어도 우리가 사는 한국에는 읍면동마다 이런 사람들의 모임이 하나 정도는 있어야 누구든지 원한다면 이런 수행자들의 모임에 참여할 수 있는 기회를 줄 수 있습니다. 그런데서 만일결사의 목표가 읍면동에 법당을 하나씩 만드는 것이 되었습니다. 그러면 여러분들은 한 개 법당의 법사가 되어야 합니다. 법사가 된다는 것은 적어도 자기 인생 문제를 어떤 힘 있는 자에게 의지해서 해결하려는 것이 아니라 내 인생 문제는 내가 해결하고 조금이라도 남에게 도움을 줄 수 있는 존재가 되는 것을 말합니다. 여러분들, 법사가 될 준비는 다 되었어요? nbspnbspnbsp우리의 구호는 ‘내 인생의 희망이 되어 행복하게 살겠습니다’입니다. 내가 어떻게 희망이 될 수 있느냐? 그것은 바로 붓다로부터 비춰진 이 광명이 있기 때문에 우리는 그 빛을 반사만 하면 됩니다. 중생을 위해서 반사만 하면 많은 고통받는 사람들이 이 불빛을 만나서 새로운 희망을 가질 수가 있습니다. nbspnbsp항상 뒤를 돌아보면서 ‘아, 그래도 이만큼 왔네’ 하면서 자신감을 가지고, 또 목표를 쳐다보면서는 ‘아직도 부족하네. 조금 더 가야되겠다’ 하고 발심을 하는 그런 계기가 백일기도 입재식의 취지입니다. 오늘 그런 생각을 가지시고 좋은 마음으로 다시 발심하는 계기가 되시기 바랍니다.”nbspnbsp이렇게 정토회 만일결사의 방향과 백일기도의 취지에 대해 이야기해 주신 후 지난 백일 동안 불교대학을 홍보하고 기획법회를 열고 법당도 새롭게 개원한 모든 분들의 노고를 격려해 주셨습니다. 특히 백일 동안 한번도 빠지지 않고 기도한 사람을 손들어보게 하면서 이분들에게는 더 큰 격려를 해주셨습니다. 또 반대로 한번도 기도하지 않고 입재식과 회향식만 참석한 사람도 손들어 보게 하면서 “안 온 사람에 비해서는 온 것만 해도 잘한 일”이라고 하면서 역시 큰 격려를 해주셨습니다. nbspnbsp사홍서원을 끝으로 4차 백일기도 회향식을 마친 후 곧바로 점심 시간이 되었습니다. 날씨가 화창해서 모두들 야외로 나가서 돗자리를 깔고 앉아 각자 싸온 도시락을 나눠 먹었습니다. 봄기운을 흠씬 느끼며 먹는 도시락은 꿀맛이였습니다. 대중들은 함께 이야기 꽃을 피우다가 자리에서 일어나 각 단체에서 마련한 부스들을 둘러보며 즐거운 점심 시간을 보냈습니다.nbspnbsp▲ 북한식 두부밥과 만두를 선보인 좋은벗들 부스nbsp▲ 장바구니, 면생리대, 수저집, 손수건 등 환경상품을 판매하는 에코붓다 부스nbsp▲ 필리핀 민다나오 딸린딕 부족의 문화를 전시한 사진전nbspnbsp▲ 필리핀 원주민 마을에서 직접 가져온 원두 열매로 우려낸 커피를 선보인 JTS 부스 nbspnbspnbsp스님께서도 체육관 주위를 한바퀴 둘러보시며 점심을 먹고 있는 대중들과 눈을 맞추며 인사를 하셨습니다. 전통놀이 부스에서는 신발 던지기에 참여하셔서 사탕을 상품으로 받기도 하는 등 대중들과 함께 하는 시간을 가지셨습니다.nbspnbsp2부 프로그램은 사하정토회 사하법당에서 준비한 퍼포먼스로 활기차게 시작되었습니다. 황금색 모자에 황금색 빨간색 허리띠를 메고 나와 재미있는 율동을 선보이자 청중석은 금새 웃음 바다가 되었습니다.nbspnbsp▲ 사하법당이 준비한 퍼포먼스nbsp다음에는 특별 프로그램이 이어졌습니다. 먼저 필리핀 민다나오 JTS의 활동을 소개하는 영상을 함께 보았습니다. 스님께서는 2002년 막사이사이상 국제 평화와 이해 부문을 수상한 것을 인연으로 토니 대주교님의 소개로 민다나오에서 구호활동을 시작했습니다. 산골 오지의 원주민 마을에 학교를 지어주는 일을 시작으로 분쟁 지역인 무슬림 마을까지 그 범위를 넓히는 등 민다나오의 평화를 위해 10여년간 해온 학교 건축, 교육, 마을개발 사업 등이 사진으로 소개되었습니다. 그 중에는 원주민들의 전통문화 보존을 지원하는 사업도 있습니다. 그래서 오늘은 전통문화 보존을 위해 JTS가 지원하고 있는 민다나오 송코 마을의 딸란딕 부족을 초청해 그 공연을 함께 보는 시간이 마련되었습니다.nbspnbsp먼저 딸린딕 부족의 추장 미끼따이씨 부부가 스님과 함께 무대로 올라와 오늘 공연을 하게 된 소감과 인사말을 했습니다. 미끼따이씨는 오늘 보여줄 공연은 무엇을 표현한 것인지도 짧게 소개해 주었습니다.nbspnbsp▲ 필리핀 민다나오 송코 마을 딸린딕 부족의 미끼따이 추장nbsp“저희 딸란딕 부족을 환영해 주셔서 감사하고요. 이렇게 함께하는 것이 저희 공동체가 잘 살 수 있는 또 하나의 길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저희는 문화를 잘 간직해서 부자임을 느낍니다. 이 문화를 저희 아이들에게 전할 수 있어서 저는 또한 정말 부자라고 생각합니다. 딸란딕의 문화는 평화, 화해, 정의, 자유를 갖고 있습니다. 저희는 문화를 통해서 저희가 누구인지 정체성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저희 문화를 여기에 소개할 수 있어서 정말 자부심을 느낍니다. 현재 인류는 문화에 대한 소외, 자연에 대한 소외를 겪고 있습니다. 저희는 문화를 지키고 자연을 지키기 위해서 노력하고 있고 저희 모두가 하나로 연결될 수 있게 노력하고 있습니다.nbspnbsp저희가 보여드릴 공연은 자연에 대한 것입니다. 자연에서 우리가 어떻게 갈등을 해결할 수 있는지, 자연에서 어떻게 아이들을 가르칠 수 있는지, 자연에 대한 소리를 들려드리고자 합니다. 감사합니다.”nbsp이어서 스님께서 공연을 보기에 앞서 JTS가 왜 구호 활동을 넘어서서 원주민들의 전통문화 보존 활동까지고 하게 되었는지 그 이유를 설명해 주셨습니다.nbspnbspnbsp“우리 자연 속에는 많은 생물종이 있습니다. 그러나 최근에 들어와서 그 생물종 중에 많은 종이 매일 매일 사라지고 있습니다. 이것이 지구 환경의 큰 위기로 대두되고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생물종을 보존하자는 환경운동을 하지 않습니까. 이것과 똑같은 비중으로 인류 문화의 많은 유산들이, 특히 소수 부족의 문화가 마치 생물종이 사라지듯이 그 문화가 사라져가고 있습니다. 문화는 인류가 수천년 수만년 동안 만들어온 인류의 유산입니다. 이것이 오늘날 세계화라는 이름으로 거의 멸종해 가고 있습니다. 그래서 이런 전통문화를 인류의 유산으로 어떻게 보존할 것인가. 우리 문화만이 아니라 다른 작은 부족들의 문화도 마치 생물종을 보존하듯이 보존하는 것이 필요합니다.nbspnbsp딸란딕 부족은 아무도 알지 못하는 필리핀 민다나오의 깊은 산속, 소외된 곳에 살고 있지만, 그들은 조상으로부터 내려온 자신들의 전통문화를 소중하게 간직하고 있습니다. 많은 부족들이 자신의 전통문화를 잃어버리고 있는데 이들은 자신들의 전통문화를 지키고자 애를 쓰고 있습니다. 이들을 보고 어쩌면 우리가 부끄러워해야 할지도 모르겠습니다. 우리는 비록 먹는 음식이라든지, 사는 집이라든지, 다니는 교통편은 좋아졌을지 몰라도, 나의 정체성이 되는 민족의 전통문화를 급속도로 상실해 가고 있습니다. 그런 면에서 우리는 이들을 응원하면서 우리 또한 반성하면서, 또 이들 외에도 지구상에 있는 많은 소수 민족들의 문화를 함께 후원해서 지켜나가는 것이 우리 인류 모두를 위한 길이 됩니다.”nbsp스님의 전통문화 보존 활동의 취지에 모두들 공감의 큰 박수를 보내주었습니다. 박수 소리가 잦아들자 이어서 송코 마을 딸란딕 부족의 공연이 시작되었습니다.nbspnbspnbsp나무를 깍아 만든 악기로 자연의 소리를 그대로 표현한 듯한 소리를 들려주자 청중석 여기저기서 탄성이 나오기도 했습니다. 이어서 신나는 북소리가 시작되고 어린 아이들이 나와 개구리가 폴짝 폴짝 뛰는 모습을 재현 춤을 보여 주었습니다.nbspnbspnbsp이번에는 성인이 된 남자 여자 청년들이 나와 서로 구애활동을 하는 모습을 손수건을 이성의 어깨에 얹었다가 뺏어가는 모습으로 재미나게 보여주었습니다. 처음에는 서로 갈등하는 모습을 보여주더니 다시 연세 지긋한 할머니들이 나와 서로 손을 맞잡고 발을 맞추며 협력하는 아름다운 춤을 보여주었습니다.nbspnbspnbsp마지막 피날레는 공연자들이 모두 무대 아래로 내려와 청중과 함께 어우러져 춤을 추는 모습이 되었습니다. 행정처장님을 비록하여 청중석 앞줄에 앉아 있던 많은 분들이 북소리에 맞춰 딸란딕 부족과 함께 덩실 덩실 어깨 춤을 추었습니다.nbspnbspnbsp스님께서도 자리에서 일어나 딸린딕 부족의 추임새에 함께 호응하며 덩실 덩실 팔을 흔드셨습니다.nbspnbspnbsp딸린딕 부족과 청중들이 함께 어우러지는 모습을 보며 많은 청중들이 열렬한 환호 소리와 박수를 보내주었습니다. 행사장은 화합의 물결로 후끈 열기가 달아올랐습니다. 공연을 마친 후 스님께서는 딸린딕 부족 모두와 함께 기념사진을 찍은 후 무대에서 함께 내려오셨습니다.nbspnbsp잠시 무대를 정비한 후 스님께서는 다시 법상에 오르셔서 5차 백일기도 입재 법문을 해주셨습니다. 스님께서는 정토회 만일결사의 목표와 더불어 이번 5차 백일기도 기간 동안 천일결사자들이 다함께 실천할 실천과제의 주요 내용과 그 취지에 대해 법문을 해주셨습니다.nbspnbspnbsp“정토회의 창립 취지 중 하나는 수행정진해서 해탈 열반을 성취하는 성불의 길을 가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내가 태어난 인연있는 이 땅에 살고 있는 고통받는 사람들에게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고자 하는 민족 중흥의 길입니다. 우리의 6천년의 역사를 살펴보면 과거 5천년의 역사는 동북아 대륙에서 자주적인 강건한 국가였습니다. 그러나 발해 멸망이후 고려와 조선의 1천년을 거쳐오면서 동아시아 대륙의 변방으로 전락해 약소국이 되었습니다. 그러니 남북의 통일은 그저 분단된 남북을 통일하는 것을 넘어서서 동아시아 공동체를 우리가 만들어냄으로 해서 다시 천년의 꿈을 실현해 나가고자 하는 것입니다. 이것을 민족 중흥이라고 표현한 것입니다.nbspnbsp그래서 이번 8차 천일결사의 목표는 바른 불교를 실천하는 1만 정회원을 양성하는 것과 동시에 우리 민족의 현재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길은 남북은 통일하는 것이라는 문제의식을 확고하게 갖고 활동할 1만 통일의병을 양성하는 것입니다.nbspnbsp그런 의미에서 이번 5차 백일기도 기간에는 자기 정진을 통한 수행을 기초로 할 뿐만 아니라 통일을 위해 일할 통일의병을 양성하는 학교를 운영하고 다양한 활동을 해나갈 예정입니다. 그래서 5차 백일기도의 실천과제는 왜 통일을 해야 하는지 충분히 이해를 하는 것입니다. 이해가 되어야 실천할 수 있겠죠. 통일 강좌를 듣든지, 스님이 쓴 ‘새로운 100년’ 책을 읽고 공부하든지, 여기에 관계된 역사 유적지를 찾아서 기행을 하든지 이런 통일에 대한 관심을 갖고 활동하는 것이 실천과제의 주요한 내용입니다. 특히 6,7,8월은 민족사의 많은 애환과 기쁨이 있었던 계절입니다. 이 계절 동안 내가 태어난 이 땅에 은혜를 갚기 위한 통일 활동에 대해 크게 발심하셔서 공부해 나가시기 바랍니다.”nbspnbsp다시 천년의 꿈을 실현해보자는 스님의 간곡한 호소에 대중들은 큰 박수로 실천의 의지를 표현했습니다.nbspnbspnbsp이어서 스님께서는 신규 입재자들을 비롯하여 천일결사자 모두가 수행을 최우선으로 한 생활을 하겠다는 발심을 하도록 매일 아침마다 한 시간씩 정진을 해야함을 적극적으로 독려해 주셨습니다.nbspnbsp“첫번째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한시간 수행해야 합니다. 아침에 5시에 하면 좋지만 5시에 못일어나면 6시에 해도 괜찮고 7시에 해도 봐주겠다는 것입니다. 원칙은 5시이지만 못일어나면 봐주는 대신에 눈 뜨자 마자 세수도 하지 말고 화장실도 가지 말고 수행부터 먼저 하십시오. 그러다가 오줌 싸면 어떡하냐구요? 괜찮습니다. 오줌을 싸면 옷만 버리지만 수행을 안하면 인생을 버린다 이말이예요. nbspnbspnbsp제가 이렇게까지 얘기하는데도 안 하실 거예요? nbspnbspnbsp그러니까 5차 백일기도를 시작하는 오늘, 저와 딱 약속을 하셔야 해요. 첫째, 아침에 눈 뜨자 마자 천일결사 기도 한 시간을 한다. 둘째, 수행자라면 그래도 품위가 있어야 합니다. 다음의 열가지 계율을 어기면 아침에 절하면서 참회를 해야 됩니다.nbspnbsp첫째, 때리지 않는다. nbsp둘째, 훔치지 않는다.nbsp셋째, 성추행 하지 않는다.nbsp넷째, 술 먹고 주정하지 않는다.다섯째, 욕설하지 않는다.nbsp여섯째, 속이지 않는다.nbsp일곱째, 잔소리하지 않는다.nbsp여덟째, 짜증내지 않는다.아홉째, 음식에 탐착하지 않는다.nbsp열째, 사치하지 않는다.nbspnbsp못지키면 반성을 철저히 하고, 그래도 못지키면 전파상에 가서 전자충격기를 사와서 자신의 몸을 지져 버리세요. 이렇게 지져버려서 한번 까무라치는 것이 낫지 내가 수행자의 조직에서 탈퇴할 수는 없다, 이렇게 딱 마음을 먹으면 누구나 다 새로운 변화를 가져올 수 있습니다. nbspnbspnbsp이런 마음 가짐을 가지고 제5차 백일기도 기간에는 ‘하루도 빠지지 않고 기도한 사람 손드세요’ 하면 너무 많은 사람들이 손을 들어서 손을 내리게 하고, ‘하루 정도만 빼먹은 사람 손드세요’ 하면 다섯명 정도만 손을 드는 일이 생기도록 그렇게 정진을 해나가시기 바랍니다.”nbspnbsp스님의 거듭된 요청에 대중들은 한껏 웃음을 머금으며 지금의 원을 마음에 새기고 게으름에 빠지지 않고 부지런히 수행정진할 것을 다짐했습니다.nbspnbsp이어서 예비 입재자 결의식이 진행되었습니다. 예비 입재자들은 처음으로 오늘 입재식에 참가하여 수행 보시 봉사할 것을 다짐한 분들입니다. 먼저 각 지역 상임법사님들이 무대 아래에서 각 지부 사무국장님에게 백일 동안 부지런히 수행정진할 것을 당부하며 108 염주를 목에 걸어주었습니다. 예비 입재자들도 미리 받은 염주를 스스로 목에 걸며 수행 정진을 다짐했습니다.nbspnbsp▲ 예비 입재자들을 위해 108 염주를 선물하는 지역 상임 법사님들nbsp이어서 스님께서는 오늘 큰 원을 세운 예비 입재자들을 위해 간절한 마음을 담아 축원 기도를 해주셨습니다.nbspnbsp“저희는 이곳 신라 불교 초전 법륜 성지인 일성군 모래 장자의 집이 있었던 구미시에 모여 옛일을 생각하며 바르게 정진하고 이 땅에 고통받는 사람을 위하여 전법할 것을 발원하였습니다. 오늘 특별히 제불 보살님들에게 저희의 이 좋은 마음을 바치는 것은 다름이 아니오라 964명의 새로운 정토행자가 발심하여 오늘 이렇게 제8차 천일결사 5차 백일기도에 입재하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참으로 거룩한 일입니다. 중생으로 세세생생 살아오다가 오늘에야 인생의 자유와 행복의 길로 나아가겠다고 큰 원을 세우고 오늘 첫발을 내딛게 됩니다. 먼저 이 거룩한 분들을 옹호하여 주옵소서.nbspnbspnbsp그러나 오늘은 이렇게 발심하지만 내일, 아니면 모레, 또는 한달 후에 오늘 큰 마음 낸 것은 온데간데 없어지고 중생심으로 돌아가서 또다시 윤회고를 헤매일지 모르겠습니다. 그 때 대비 관세음보살님과 대원본존 지장보살님께서는 본래 서원 어기지 마시고, 우리들을 격려하시고 깨우쳐 주셔서 처음 세운 그 원으로 되돌아 오도록 도와주시옵소서. 이들이 바르게 잘 정진하여 스스로 붓다의 길을 갈 수 있도록, 그리고 자신이 가진 재능을 세상 사람을 위하여 유용하게 쓸 수 있도록 저희를 인도하여 주옵소서.nbspnbsp먼저 입재해 정진해온 저희 대중들도 신규 입재자들과 함께 그들을 이끌고 격려하면서 부지런히 정진해 나가겠습니다. 저희들 만일결사에서 세운 원, 이 땅에 부처님의 바른 법을 전하겠다는 그 원이 꼭 성취되도록 저희들에게 온갖 힘을 내려주시옵소서.nbspnbsp오늘 이와같이 만일결사에 참여한 인연 공덕으로 건강하시고 행복하시기 바랍니다. 또한 이 공덕으로 배고픈 자는 배불러지고 병든 이는 쾌차하고 배우지 못한 아이들은 배움이 성취되는 등 괴로운 모든 중생들 이고득락케 하여 주옵소서. 저희가 발원한 이 모든 공덕 조상 영가들에게 회향하오니 유주무주 모든 고혼들도 함께 왕생극락 하옵소서.nbspnbsp제불 보살님들은 저희가 세운 이 발원을 증명하여 주옵시고, 천륭팔부 신중님들은 이 발원이 성취될 수 있도록 옹호하여 주옵소서. 나무 석가모니불, 나무 석가모니불, 나무 시아본사 석가모니불.”nbspnbsp스님의 간절한 축원에 예비 입재자들은 더욱더 원을 굳건히 하는 마음을 가질 수 있었습니다. 물론 수행 정진은 스스로 해나가야 하는 것이지만 스스로의 의지가 약해질 때는 불보살님도 도움을 달라는 스님의 간곡한 축원에 절로 고개가 숙여졌습니다.nbspnbsp그러면서 스님께서는 굳건히 원을 세우는 한편 기도는 또한 가벼운 마음으로 해야 함을 강조하셨습니다. nbspnbsp“기도하는 것은 어렵지 않습니다. 아침에 눈 딱 떠보고 일단 죽었나 살았나 자기를 점검해 봅니다. 죽었으면 기도 안해도 괜찮아요. 죽은 뒤에는 빼줄게요. 그러나 살았으면 살은 기념으로 한 시간 기도합니다. 알았지요?nbspnbspnbsp백일이든 천일이든 만일이든 따질 필요가 없고, 오늘 살았으면 오늘 산 기념으로 오늘 한 시간 기도합니다. 내일 죽으면 내일은 안해도 돼요. 하루 한번만 하면 천일이 지나면 천일 기도가 되고, 만일이 지나면 만일 기도가 되는 거예요. 쉽죠? 만일을 한꺼번에 하려고 하지 말고 하루에 한번만 하면 됩니다. 살았거든 살은 기념으로 하루 한번만 하면 됩니다.”nbsp살았으면 산 기념으로 하루 한번만 하면 된다는 간단한 방법에 청중석에서는 웃음이 터져나왔지만 이 말씀이야 말로 정말 맞는 말씀이라는 생각이 들어 절로 고개가 끄덕여 졌습니다.nbspnbspnbsp이어서 스님께서는 지난 3월1일 새롭게 법사 수계를 받으신 신규 법사님을 무대로 올라오게 해서 한분 한분 맡은 소임을 소개해 주셨습니다. 공동체에 상주하는 전문 법사님들은 주로 깨달음의장 수련 진행을 하게 되시고, 대중부에 소속된 대중 법사님들은 주로 각 지역에 소속되어 정토회 회원들의 상담 역할을 맡게 되었습니다.nbspnbsp▲ 신규 법사님들을 소개해 주시는 스님nbsp다음은 김은숙 행정처장님이 나오셔서 이번 5차 백일기도 기간 동안 천일결사자 모두가 집중해야 하는 실천과제 소개를 해주셨습니다. 먼저 모둠별로 해야 하는 과제는 지난 차수에 이어서 ‘모둠법회 열기’를 월 1회씩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개인별로 해야 하는 과제는 모둠, 법당, 지부, 권역별로 주최하는 각종 통일활동에 3회 이상 참여하는 것입니다. 앞서 스님께서 강조해 주신 통일 운동의 필요성을 다시한번 상기하며 열심히 실천할 것을 다짐해 봅니다. nbspnbsp어느덧 웃고 울다 보니 벌써 마칠 시간이 되었습니다. 오늘 입재식은 특히 해외 활동가 및 송코마을 딸린딕 부족과 함께한 즐거운 시간이었던 것 같습니다. 이 흥겨움을 이어 장준호님과 청년 대학생들은 신나는 노래와 율동을 보여주었습니다.nbspnbsp▲ 신나는 노래와 율동을 보여준 청년대학생정토회nbsp그리고 마지막으로 오늘 입재식을 마무리하면서 정토회 대표 이기혜님의 정리 말씀을 들었습니다. 대표님은 “오늘은 민다나오에서 손님도 오시고 해외 활동가 분들도 함께해서인지 그 어느때보다 풍성하고 꽉찬 느낌이었고 감동적이였습니다”라고 하면서 “저희는 검소하고 소박한 삶을 바탕으로 거대한 물질 문명을 거슬러가는 문명전환 운동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니 쉽지 않겠죠. 하지만 우리는 함께 가고 있습니다. 저는 돌아보니까 공공의 원은 의리였더라요. 우리는 함께라는 것을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 라고 덧붙인 뒤 “오늘의 희망찬 기운을 갖고 안녕히 돌아가시고 다음 입재식에는 실천과제를 모두 이수해서 다시 만납시다”라고 인사해 주셨습니다.nbspnbsp▲ 정리 말씀을 하고 있는 이기혜 정토회 대표님nbsp스님과 법사단, 해외정토회 활동가들 모두 무대 위로 다시 올라오고 천일결사자 전체 대중은 다음 6차 백일기도에 다시 만날 것을 기약하며 손을 맞잡고 다함께 산회가를 불렀습니다. 그리고 스님께서는 집으로 돌아가는 대중들을 향해 활짝 웃으며 손을 흔들며 인사를 해주셨습니다.nbspnbspnbsp이렇게 입재식을 모두 마치고 스님께서는 구미체육관에 남아서 법사단과 함께 회의 시간을 가지셨습니다. 법사단과의 회의를 마친 후에는 두북으로 이동하셨습니다.nbspnbsp내일은 희망세상만들기 즉문즉설 강연이 구미와 부산 서면에서 있습니다. 내일 또 소식 전해드리겠습니다.nbsp

2015.04.28. 32,780 읽음 댓글 18개

2015.4.25 해외정토회 지도자 수련 3일째 ‘회향식’

nbsp안녕하세요. 오늘 스님께서는 해외정토회 지도자 수련 3일째 마지막날을 함께 하셨습니다. 어제와 마찬가지로 새벽 4시에 일제히 기상하여 문경 정토수련원 대웅전에서 새벽 예불과 천일결사 기도를 하며 하루를 시작합니다. 아직 동이 트지 않은 새벽, 명상원에서 대웅전으로 올라가는 언덕 길은 숨이 차긴 했지만 밤하늘을 수놓은 별빛을 구경하며 조용한 탄성이 터져나오기도 했습니다.nbspnbsp▲ 문경정토수련원 대웅전nbspnbsp▲ 새벽 예불nbspnbsp해외 총무단은 스님과 함께 한시간 동안의 새벽 기도 시간을 가진 후 무변심 법사님으로부터 곧바로 불교 의식 교육을 받았습니다. 불교 의식 교육을 마친 후에는 문경 공동체 행자님들을 비롯하여 100여명의 대중들과 함께 발우공양 시간에 함께 참석했습니다. 오늘은 발우공양을 한지 3일째 되는 날이여서 그런지 모두들 어제보다 더 여유있는 모습입니다. nbspnbsp▲ 발우공양nbsp발우공양을 마치고 대중공사 시간이 되자 많은 행자님들이 계율을 어긴 것에 대해 발로 참회하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스님께서는 어제에 이어서 백일출가 행자님들을 위해 참회를 하는 마음 자세와 정토회가 지향하는 바른 불교, 쉬운 불교, 생활 불교의 세 가지 방향에 대해 법문을 해주셨습니다. 그 중에서 참회를 하는 마음 자세에 대해서는 이렇게 말씀해 주셨습니다.nbspnbspnbsp“40개의 정토행자 계본에 따라서 자신이 지키지 못했을 때 참회를 합니다. 참회를 할 때는 첫 번째, 내가 스스로 나의 잘못을 자각하고 ‘참회’합니다. 두번째, 이렇게 대중 앞에 드러내어서 참회하는 것은 일종의 ‘포살’에 해당합니다. 스스로 대중 앞에 자신의 허물을 드러내어 참회하는 발로 참회이죠. 세 번째는 내가 내 잘못을 자각하지 못할 때 도반으로부터 지적을 받아서 ‘아, 내가 놓쳤구나’ 하고 자각하는 것을 ‘자자’라고 말합니다. 참회, 포살, 자자, 이렇게 세가지로 나누는데 이것은 모두 참회에 들어갑니다.nbspnbsp여러분들이 매일 매일 아침 정진을 하면서 스스로 어제 하루 생활을 돌아보고 ‘아, 내가 이걸 놓쳤구나’ 하고 반성하는 것을 참회라고 합니다. 그런데 여기서는 공동 생활을 하니까 나는 스스로 내 잘못을 자각하고 참회를 했지만 나의 잘못이 다른 사람에게는 의혹으로 작용할 수 있습니다. ‘저 사람은 예불 시간에 왜 저렇게 나가지?’ 이런 생각이 듭니다. 한편으로는 분별심이라고 할 수 있지만 계율에 따라서 의혹이 일어날 수 있죠. 그래서 나의 잘못도 참회하지만 함께 사는 도반의 의혹을 풀어줘야 할 의무가 있습니다. “예불하는 중에 갑자기 설사가 일어나서 화장실을 다녀왔습니다. 참회합니다” 이렇게 말하면 내가 계율을 어긴 것에 대한 참회 뿐만 아니라, ‘아, 그래서 예불 중에 나갔다 오셨구나’ 이렇게 도반들의 마음 속에 있는 의혹을 풀어주게 됩니다.nbspnbspnbsp그런데 참회를 하면서 같은 내용이 반복된다면 한번 살펴봐야 합니다. 즉 오늘도 ‘수업 시간에 졸았습니다’ 하고, 내일도 ‘수업 시간에 졸았습니다’ 하고, 모레도 ‘수업 시간에 졸았습니다’ 이렇게 타성으로 참회를 하면 안됩니다. 이렇게 자신이 매일 매일 참회하는 내용 중에 반복되는 것이 있을 겁니다. 어쩌다가 한번 때 아닌 때에 먹었다고 참회하는 것은 괜찮은데, 어제도 때 아닌 때에 먹고, 오늘도 때 아닌 때에 먹고, 이렇게 반복이 되면 자기가 자각을 해야 합니다. 이 중에 이것 하나만은 하늘이 두쪽 나더라도 꼭 지켜보겠다, 이렇게 개선하고자 하는 의지가 있어야지 그렇지 않고 그냥 타성적으로 하면 안된다는 것입니다.nbspnbsp또, 듣는 사람은 ‘저 사람은 맨날 똑같은 걸 참회하네. 고치지도 않을 거면서 말만 한다’ 이렇게 들을지 모르지만, 못 고쳐도 계속 참회를 한다는 것은 자기가 계율을 어기고 있다는 것을 자각하고 있다는 것을 말합니다. 그래서 듣는 사람은 ‘저 사람은 고치지는 못해도 자각은 하고 있구나’ 이렇게 이해해야 됩니다. 자각하고 있다는 것은 언젠가는 고칠 가능성이 있는 것을 말합니다. 대다수는 자각도 못하죠. 참회조차 하지 않는 것은 자각도 아직 못한다는 것인데 저 사람은 그래도 자기 잘못을 알고는 있다는 것입니다. 저 사람은 맨날 똑같은 말한 한다고 받아들이면 안되고, ‘자각하고 있구나’ 하면서 훌륭한 수행자로 여겨야 합니다. 반면에 본인은 반복되는 내용에 대해 개선하려는 의지를 가져주어야 합니다.nbspnbspnbsp그래서 첫째, 못 고치더라도 잘못을 알아차릴 줄은 알아야 합니다. 둘째, 반복되는 것은 딱 주의를 해서 개선할 의지를 분명히 가져야 합니다. 그래야 우리는 나날이 발전해 갈 수가 있습니다.”nbsp스님의 말씀은 점점 타성에 젖어가는 공동체 생활에 대한 따끔한 일침이 되었습니다. 반복되는 참회 내용 속에서 계율에 대한 자각도 점점 무뎌져 가기 쉬운데, 스님의 말씀을 들으니 마치 꿈 속에서 번쩍 깨어난 듯한 기분이 들었습니다.nbspnbsp발우공양을 마치고 아침 8시부터는 어제에 이어서 그동안 법당을 운영하거나 개척하면서 궁금했거나 불편했던 점들을 마음껏 묻고 스님의 지혜를 듣는 시간을 가졌습니다.nbspnbspnbsp먼저 스님께서는 정토회의 조직 구조에 있어서 지구장, 총무, 대표, 대의원, 법사 등 각 직급의 역할과 위상에 대해 자세히 설명을 해주셨습니다. 특히 지구장과 대표, 대의원의 경우 해외는 아직 낯설은 개념이여서 한국의 사례를 들려주시면서 쉽고 분명하게 말씀해 주셨습니다. 또, 워싱턴정토회의 경우 총무와 해외사무국장이 함께 활동하고 있어서 생기는 역할 갈등이 있는데 어떻게 해결하면 좋을지, 새로 신설된 지구장 제도를 언제부터 본격적으로 집행할지, 인력이 부족한 상황에서 어떻게 인력을 배치하고 결재구조는 어떻게 가질지 등에 대해서 질의응답을 주고 받았습니다.nbspnbsp이어서 스님께서는 지난 세계 100회 강연의 성과를 이어받아서 유럽, 중동, 아프리카, 호주, 일본, 중국, 북미, 남미, 아시아 각각에 대한 포교 전략을 어떻게 세울지 대략적으로 짚어 주셨습니다. 또 법당에서의 상거래는 금지되어 있는데 보시 들어온 물건을 판매하여 그 수익금을 JTS에 기부할 수 있는지, 또는 불사 기금으로 사용해도 되는지, 허용되지 않는다면 그 이유는 무엇인지, 법인이나 NGO 설립을 할 때 어떤 절차를 거쳐야 하는지 등 많은 질문들이 있었습니다. 스님께서는 각각에 대해 정토회의 원칙을 설명해 주신 후 이런 의문이 들면 상부로 보고해서 결재를 받아서 처리해줄 것을 당부하셨습니다.nbspnbsp▲ 스님께 궁금한 점을 묻고 있는 김순영 해외사무국장nbsp또 잠시 휴식 시간을 가진 후 이어진 토론에서는 세계 100강 이후 적극적인 전법 계획 수립의 필요성, 해외에서도 불교대학생들에게 봉사 활동 프로그램을 제안하는 것을 가을 학기부터 시작할 수 있을지, 국내에서 새롭게 시작한 통일의병 사업을 해외에서는 어떻게 시작할지, 해외에서 혼자 천일결사 수행을 하고 있는 사람의 경우 온라인 법문 서비스를 어떻게 지원할지 등에 대해 많은 이야기가 오고 갔습니다. 스님께서는 한국의 경험을 해외에 빨리 공유해줘서 상반기에 실험 기간을 거친 후 올해 9월에 열리는 해외 정토행자대회를 통해서 최종 결정을 하자고 하시면서 논의를 마무리 해주셨습니다.nbspnbspnbsp특히 질의 응답 중에서는 “현재 유럽에서는 명상 수련에 대한 요구가 많은데 스님께서는 왜 적극적으로 명상에 포커스를 두지 않으신지?” 묻는 질문이 있었습니다. 스님의 답변 속에서 정토회는 무엇을 추구하는 단체인지 명확하게 알 수 있어서 참 좋았습니다. 스님께서는 이렇게 답변해 주셨습니다.nbspnbspnbsp“한국 사람들에게는 기도법을 알려주면 접근이 용이하듯이 해외에서는 명상법을 알려주는 것이 접근이 용이한 것은 맞습니다. 그런데 서양 사람들이 생각하는 명상과 부처님이 말씀하신 깨달음과는 조금 거리가 있는 것 같아요. 대부분의 명상은 심신이 편안한 것에 초점이 맞춰져 있거든요. 명상을 자꾸 기술적으로 접근하면 안됩니다. 찰나 찰나 일어나는 자기의 마음을 알아차리는 것이 명상입니다. 앉아서 호흡을 지켜보는 것은 ‘알아차림’으로 가기 위한 잠시 동안의 수단에 불과하거든요. 지금 여러분들이 하고 있는 수행이 모두 명상이예요. 절을 하는 것도 명상이고, 업무를 하면서 사람들과 부딪히는 자신의 마음을 살피고 ‘아, 놓쳤구나’ 하는 것을 알아차리는 이것이 바로 명상입니다. 그 중에 앉아 있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고, 걷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고, 일하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 되지요.nbspnbsp예를 들어 우리에게는 까르마에 의해서 ‘명상을 하고 싶다’, ‘기도를 하고 싶다’ 이런 욕구가 있습니다. 그러나 수행은 이런 욕구를 내려놓는 것입니다. 그런데 지금 행해지는 대부분의 명상은 이런 욕구를 뛰어넘는 명상이 아니고 욕구를 만족시켜주는 명상을 하고 있단 말입니다. 그래서 이것은 아무리 모양이 그럴 듯 해도 정법에서 벗어난 것입니다. 그러니 대중들을 얼마나 많이 모을 것이냐에 너무 신경쓰지 말고, 불법의 이치를 내가 사람들과 부딪혀 가면서 경험해야 합니다. 그래서 경계에 흔들림 없는 안정된 심리로 나아가는 것을 경험할 때 이것만이 정법의 핵심이지 그 방식을 명상으로 하는 것은 핵심이 아니예요. 명상에 대한 집착을 놓으셔야 해요. 여기에 미련을 갖고 있으면 한국인들이 기도에 대한 미련을 못 버리는 것만큼이나 내려놓기가 어렵습니다.nbspnbspnbsp때로는 명상도 일종의 쾌락주의와 밀접하게 연결이 됩니다. 마약을 섭취하고 즐거움을 느끼는 것이나 명상을 통해서 즐거움을 느끼는 것이 동일한 경우도 있습니다. 그래서 대다수의 명상 프로그램이 중독 증상이 있습니다. 마치 마약이 갈수록 조금씩 더 투여되어야 하는 것처럼 끊임없이 다음 단계가 없는지 찾는 독성이 있습니다. 그래서 명상에 한번 미치면 미얀마 갔다가 티벳 갔다가 하면서 어디가 좀 더 나을까 계속 찾는 증상이 생기거든요. 자신이 지금 사는 이곳에서 그대로 마음이 안정이 되어야 하는데 끊임없이 ‘더, 더, 더...’ 하는 추구가 있는 거예요. 지금 여러분들은 좋은 정법을 두고 또다른 즐거움의 욕구를 찾고 있는 겁니다. 고락의 윤회에서 벗어나는 것이 해탈의 길인데 우리는 지금 불법마저도 락을 추구하는 수단으로 사용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이 관점이 바로 안잡히면 정법을 이해하기 어렵습니다. 우선 자신의 흔들리는 이 마음의 뿌리를 뽑고 나서 그 다음에 이것 저것 검토해서 필요하면 무엇이든 수용하면 되는데, 그렇지 않으면 정법을 행하기가 매우 어렵습니다.nbspnbsp그리고 불교의 핵심 가르침은 연기법인데 내가 타인과 함께하려는 것에 기초를 두고 있는가 살펴봐야 합니다. 즉 계율적인 측면이 있는가를 살펴봐야 합니다. 마음만 닦는다고 하고 계율이 없으면 윤리 도덕성이 떨어집니다. ‘계정혜’를 함께 닦아 나가야 합니다. 그 중 ‘혜’가 근본이여야 하고, 통찰력이 생겨야 붓다의 가르침으로 가는 것이지 능력을 추구하는 것은 외도에 들어갑니다.nbspnbsp이것을 즉문즉설 법문으로 말한다면 이렇습니다. “명상을 어떻게 합니까?” 물으면 스님은 “왜 명상을 하려는데요?” 이렇게 대답합니다. “명상 하면 좋잖아요” 그러면 “뭐가 좋은데요?”, “마음이 편안해지잖아요” 그러면 “그럼 니 마음이 불편하다는 얘기니?” 이렇게 물어요. “네” 그러면 “왜 니 마음이 불편하니?” 라고 다시 묻습니다. 즉 불편한 마음을 직시하는 것이 수행이예요. 불편한 마음이 일어나는 당처를 꿰뚫어 보고 그 무지에서 탁 벗어나는 것을 깨달음이라고 말합니다. 그러니까 호흡을 이렇게 한다, 절을 이렇게 한다는 것은 기술적인 문제입니다. 이것은 담마가 아닙니다. 명상을 하는 것이 좋다 나쁘다가 아니라 왜 명상하고 싶은가? 하는 이것을 조금 더 살피셨으면 합니다.nbspnbsp여러분들이 생각할 때는 “공이 무엇입니까?”, “연기가 무엇입니까?”, “명상을 어떻게 합니까?” 이런 것들이 굉장한 불법을 질문하는 것 같고, “남편하고 힘들어서 못 살겠어요”, “아이가 말을 안들어요” 이런 것들은 그냥 생활 상담 같은데 그렇지 않습니다. 후자가 법문입니다. 문답을 통해서 고뇌가 사라지고 편안해지는 것이 법문입니다. 공이 무엇입니까 묻는 것은 지식에 들어갑니다. 지식을 알았다고 해서 고뇌가 사라지는 것은 아니예요. 이것을 구분하지 못하고 단순히 ‘명상하면 좋다더라’ 이렇게 하면 정법에 접근하기가 어렵습니다. 정법은 이론적이거나 기술적인 문제가 아닙니다. 모든 번뇌의 뿌리에는 욕망이 도사리고 앉아 있습니다. 그것을 알아차리고 거기로부터 자유로워지는 것이 정법입니다.nbspnbspnbsp그러니 누가 “명상 좀 가르쳐주세요” 하면 “이 근처에 명상하기 좋은 곳이 있는데 거기 가서 배우세요” 이러면 됩니다. 태권도를 가르쳐 달라고 하면 근처의 태권도장을 알려주면 되듯이 안내를 해주면 됩니다. 저 사람이 우리 절에 와야 되는데 명상법을 안가르쳐 주어서 신도를 다 뺏긴다고 생각하면 안돼요. 그 수요는 그 수요대로 있고, 여기 정법에 대한 수요는 여기 수요대로 있기 때문입니다. 배우고 싶은 욕구를 따라서 무엇인가를 요구하는 사람에게는 배우는 곳을 안내해주세요. 물론 정토회에서도 이것 저것 다 수용해주면 좋지 않으냐 하는 그 마음은 충분히 이해가 됩니다만, 지금 우리에게 중요한 것은 정법을 확립하는 것입니다. 정법은 찰나에 일어나는 자신의 모순된 마음을 딱 알아차리는 거기에 있습니다.nbspnbsp무지가 탁 터져서 일순간에 마음이 가벼워지는 깨달음의 상태가 되면 첫째, 내 자신이 가벼워지고, 둘째, 세상에 대한 이해의 폭이 넓어집니다. 우리는 좋은 일을 하더라도 신념이나 믿음에 의해서 하잖아요. 그게 아니라 세상을 넓게 이해하게 되면 자연스럽게 배고픈 사람이 보이고, 병든 사람이 보이고, 고뇌하는 사람이 보이고, 그래서 이런 문제들을 어떻게 해결할지 행동하게 됩니다. 정토회에서 복을 빌어주지 않는데도 보시하는 사람들이 많이 늘어나고, 전법하면 복 받는다고 하지 않는데도 전법하는 사람들이 자꾸 늘어나잖아요. 이것은 자기 고뇌가 해결되면서 일어나는 현상입니다. 이런 관점을 조금 더 가지셨으면 좋겠다 싶습니다.”nbsp그동안 해외에서는 명상수련에 대한 요구가 많았는데, 스님께 정법이 무엇인지 명확한 가르침을 듣고 나니 마음이 한결 가벼워짐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또 스님께서는 항상 부처님의 근본 가르침에 입각해서 대중들을 지도하고 있음을 다시 한 번 알게 되어 자긍심과 더불어 감사한 마음이 크게 느껴졌습니다.nbspnbsp이후에는 한국과 해외가 실무적으로 협의해서 처리해야 하는 건의들이 많이 제기되었습니다. 스님께서는 행정처 김은숙 처장님께 해외 총무단의 건의사항을 적극 수렴해줄 것을 당부하시면서 처장님께 잠시 자리를 내어주셨습니다. 해외 총무단은 그동안 공간적으로 멀리 떨어져 있어 제기하지 못했던 건의 사항들을 마음껏 요청했고, 처장님은 흔쾌하게 요청들을 수렴해 주었습니다.nbspnbsp▲ 해외정토회의 다양한 실무 요청들을 수렴하고 있는 김은숙 행정처장nbsp이제 수련은 마지막 순서만 남겨 두었습니다. 지난 일주일 동안의 해외정토회 지도자 수련 모습을 사진 슬라이드로 함께 보면서 지난 시간을 추억하며 흐뭇한 웃음을 지어보았습니다. 일주일이 정말 짧게 느껴질 정도로 많은 것을 경험하고 느낀 시간들이었던 것 같습니다. 애틋한 마음이 느껴졌는지 사진을 보며 눈물을 글썽이는 분들도 있었습니다.nbspnbsp사진 슬라이드를 다 본 후 스님께서는 이번 2박3일 동안 문경정토수련원에서 열린 집중 수련을 마무리하면서 해외 총무단을 위한 회향 법문을 이렇게 해주셨습니다.nbspnbsp“일주일 동안 수고들 많이 하셨습니다. 여러분들을 보면서 2000년 전 옛날 일이 생각이 났습니다. 2000년 전 인도에는 아유디아라는 불교 왕국이 있었습니다. 그 왕국에서는 해외에 많은 전법사를 파견했습니다. 그 전법사 중에 한 사람이 공주였는데, 스스로 나서서 ‘제가 저 멀리 법을 전하러 떠나겠습니다’ 하니 마침 왕족 중에 출가해서 스님이 되신 분이 계셨습니다. 그래서 공주는 그 스님을 모시고 배를 타고 수만리를 와서 한국 땅인 합포에 도착해서 김수로왕과 결혼했습니다. 요즘 식으로 말하면 우리나라의 대통령 딸이 불법을 전하기 위해서 저 아프리카의 어느 나라에 가서 원주민 추장하고 결혼을 한 셈입니다. 당연히 그 자녀들은 앞선 문명을 가진 어머니를 따를 수 밖에 없겠지요. 그래서 그 나라 그 부족들에게 불법을 전했다 이런 얘기입니다. 이것이 우리나라의 김해에서 일어난 일입니다. 그 스님의 이름이 장유 화상인데 김해시에는 장유면도 있고 장유 폭포도 있습니다.nbspnbspnbsp부처님 이후에 인도의 불자들은 이 좋은 법을 전세계에 전하기 위해서 이렇게 까지 하면서 법을 전했습니다. 우리나라에 법을 전한 분들도 보면 다 인도 분들이예요. 그 이후에 AD 372년에 고구려에 불교를 처음 전한 순도 화상도, 신라에 법을 처음 전한 아도 화상도 다 인도 분들이세요. 인도에서 중국에 왔다가 한국으로 오신 것이지요. 마라난타 대사는 인도에서 동진에 와있다가 백제로 불교를 전했습니다. 요즘에도 우리가 인도에 가서 살기가 참 어려운데, 1700년 전에 인도 사람이 한국까지 와서 불모지에 불법을 전하려고 했을 때는 아마 오다가 대부분 죽었을 겁니다. 이렇게 불법의 씨앗을 뿌려서 이 땅에 불교가 꽃을 피운 역사가 시작이 되었습니다.nbspnbsp오늘 우리들의 활동은 그 은혜를 갚는 일이 되지 않겠나 생각합니다. 다시 이곳에서 부처님의 정법의 씨앗을 전세계로 나가서 심는 것입니다. 그래도 당시에 아유다국의 공주보다는 수월한 일이라고 생각을 합니다. 교통편도 수월하고, 언어를 배우는 것도 수월하고, 사는 것도 수월하지 않겠나 싶은데, 그러나 이 막막함이라는 것은 그때나 지금이나 큰 차이가 없겠다 싶어요. 그것을 이겨내는 것이 신심이라고 말할 수 있겠죠. 대지에 깊은 신심으로 씨앗을 심고 때를 기다리는 것이죠. 때가 도래하면 싹이 트고 꽃이 필 것이고, 때가 도래하지 못하고 폭풍이 몰아칠 때는 움크리고 좀 있다가 또 때가 되면 꽃이 피어나겠죠. 그런 마음으로 조급하게 서두르지 말고 내가 그런 역할을 한다고 생각하시고 편안한 마음을 갖고 내가 사는 곳에서 새로운 시작을 해야 됩니다.nbspnbspnbsp종교로서의 불교는 별로 생명력이 없습니다. 한국 불교다, 태국 불교다, 이런 것은 하나의 문화일 뿐입니다. 이런 문화를 가지고 외국으로 들어가서 그 나라의 문화를 대체한다고 하는 것은 문명이 월등하게 우월할 때만 가능합니다. 마치 서양 문화가 우리 나라에 들어와서 뿌리를 내리듯이 말이죠. 한국에 기독교가 번창하는 것은 서구 문명이 한국 문명을 압도해서 생긴 것이지 이것은 기독교가 전법되었다고 말할 수는 없습니다. 그래도 기독교는 이런 선진 문명의 파워를 타고 들어오니까 쉽게 되었는데, 우리는 거슬러 올라가야 합니다. 문명은 반드시 선진 문명에서 후진 문명으로 이동하는데 우리는 부처님의 법을 선진 문명 쪽으로 그 물줄기를 타고 거슬로 올라가서 전하려고 하기 때문에 매우 어려운 일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과학기술이나 물질 문명은 서양이 앞서 있지만 그들의 정신 문명이 어려움을 겪고 있기 때문에 거슬러 올라가는 것도 현재 충분히 가능한 시점에 놓여 있습니다. 왜냐하면 이 정법의 씨앗은 그런 것들을 충분히 거슬러 이겨내는 힘을 가지고 있기 때문입니다.nbspnbsp동남아의 테라바타 불교는 식민지 지배를 당했지만 거슬러 올라가서 오늘날 유럽에 불교를 전해서 비파사나 수행은 오히려 서양 사람들에게도 영향을 주고 있습니다. 이것은 그만큼 어느정도 생명력이 있다고 볼 수 있죠. 그러나 이 정도의 생명력을 갖고는 서양에 정신적인 위안을 주는 수준이지 그들이 갖고 있는 많은 문제들을 해결하는 수준은 되기 어렵습니다. 그런 면에서 우리는 서양 문명을 받아들이고 그 속에서 많은 어려움을 겪었지만 지금은 그것을 어느정도 이겨내고 있습니다. 특히 정토회의 활동은 물질 문명의 풍요로움 속에서도 그것을 이겨내는 관점에 서 있기 때문에 여러분들이 정법을 간직하고 출발한다면 처음에는 좀 어렵겠지만 능히 이겨낼 것이라고 생각합니다.nbspnbspnbsp지금 우리가 시작하는 이 일은 어쩌면 무모하고 과대망상으로 느낄지 몰라도 다시 30년이 지나고 2차 만일결사가 끝나고 나면 어쩌면 20년 전에 한국에서 정토회가 시작할 때 무모한 짓을 한 것 같았지만 그래도 현재 한국 사회에서 작지만 유의미한 일을 하고 있고, 다시 10년이 지나면 더 큰 유의미한 일을 하게 되는 것처럼, 2차 만일이 지나면 세계에서도 그런 역할이 어느 정도 가능할 것입니다. 그러니 너무 조급하게 생각해서 이것 저것 섞어 타협할려고 하지 마세요. 다만 배타만 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바른 법에 귀의하는 입장을 갖고 시절 인연이 잘 안 받아지면 조금 기다리는 것이 필요합니다. 섣불리 이것 저것 타협해서 효과적으로 대응하려다가 오히려 중심을 잃어버리게 되면 씨앗이 싹을 못 틔우고 썩어 버립니다. 이런 자신감을 가지고 추진해 나가시기 바랍니다.nbspnbsp우선 현지인들에게 나아가기 전에 실험을 해본다고 생각해야 합니다. 해외 포교는 현지 교민들을 위하는 것도 있지만 우리가 세계 포교를 위해서 하나의 실험을 하는 것입니다. 정말 약효과가 있는 것인지 실험해본다는 가벼운 마음으로 꾸준히 해나간다면 분명히 새로운 길을 찾을 수가 있을 것입니다. 또 우리가 이렇게 기초를 닦으면 우리의 후손들이 이 바탕 위에서 그들은 또 새로운 길을 찾아나갈 것입니다. 나 혼자서 다 하려고 하지 말고 다음 세대가 할 것을 믿으면서 그들에게 도움이 될 일을 우리가 해 놓는 것이지 우리 세대에 다 하려고 해서는 안됩니다.nbspnbspnbsp부지런히 끊임없이 정진하지만 마음은 편안해야 합니다. 편안한 가운데 뚜렷이 깨어서 해나간다면 여러분들의 삶이 훨씬 보람있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세계 어디를 가서 살아도 ‘고향으로 돌아가야 한다’, ‘영원한 이방인이다’ 이런 생각을 할 필요가 없어요. 인생은 장소와 시간이 중요하지 않아요. 눈을 감고 코 끝에만 딱 집중하고 있으면 한국이든 인도든 똑같습니다. 굳이 인도에 갈 것도 없고, 한국에 올 것도 없습니다. 땅에 무슨 진리가 있으면 땅을 찾아가야겠지만 진리는 마음 가운데 있기 때문에 장소와 때가 바뀌는 것에 너무 구애받을 필요가 없습니다. 마음이 약간 혼란스러우면 조용히 앉아서 코 끝에 딱 집중해서 들숨과 날숨을 관찰하면 시간도 초월하고 공간도 초월합니다. 시간을 초월하면 그것이 영생입니다. 오래 사는 것이 영생이 아닙니다. 그런 관점을 가지시고 정진을 해나가시기 바랍니다.”nbspnbsp스님의 감로와 같은 법문에 수련생들은 뜨거운 박수갈채로 감사의 마음을 표했습니다. 특히 인도 아유다국의 공주 이야기로 시작해서 오늘 우리의 활동은 그 은혜를 갚는 것이라는 부분에서는 울컥 하며 눈물이 흘러내릴 것만 같았습니다. 당시와 비교했을 때 오늘날 우리들은 훨씬 수월한 환경에 놓여있다는 말씀에 자신감도 생겼습니다. 또 정법의 씨앗을 간직하면서 때를 기다리면 된다는 말씀 속에서는 새로운 희망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들숨과 날숨을 알아차리면 시공간을 초월한다는 말씀 속에서는 지금 여기로 돌아와 마음이 편안해짐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수련생들은 이런 소중한 가르침을 주신 스님께 다시한번 합장 반배하고 감사의 박수를 보내면서 편안한 마음으로 부지런히 정진해 나갈 것을 함께 다짐했습니다.nbspnbspnbsp회향 법문을 마치고 스님께서는 ‘지금 여기 깨어있기’ 책을 각각 한권씩 선물하셨습니다. 책이 작년 12월에 출간되면서 세계 100회 강연을 하는 동안 미처 선물하지 못했는데, 해외 총무단 일행은 오늘에서야 새 책을 받아들고선 무척 기뻐했습니다.nbspnbspnbsp사홍서원을 끝으로 수련을 모두 마친 후에는 정정당 마루에 걸터 앉아 다함께 기념사진을 촬영했습니다. 함께 사진을 찍으며 세계로 도약하는 정토회를 꿈꿔 봅니다.nbspnbspnbsp스님께서는 수련생 33명을 모두 데리고 문경새재를 구경시켜 주셨습니다. 잠시만 여유 시간이 생기면 조금이라도 더 좋은 것들을 보여주고 싶어하시는 스님의 마음이 느껴졌습니다.nbspnbsp▲ 문경새재 산책nbsp문경새재에 내려서는 가볍게 산책하듯이 걸었습니다. 그동안 하루 종일 강의 듣고 학습 하느라 전세계에서 어렵사리 모인 도반들과 정겹게 얘기한번 나누지 못했는데, 삼삼오오 손잡고 걸으면서 도반의 소중함을 만끽해 봅니다.nbspnbspnbsp문경새재를 걸어나와서는 다함께 식당으로 저녁 식사를 하러 갔습니다. 식사 중 스님께서는 “작년에 세계 100회 강연 준비 하시느라 모두들 정말 수고 많으셨어요” 라고 말씀하시면서 감사의 마음을 거듭 표현했습니다. nbspnbsp또 스님께서는 해외 총무단의 몇몇 분들이 “내일이 백일기도 입재식인데 목욕 재계를 하고 새단장을 좀 해야 하지 않겠어요?” 라고 부탁해서 문경 온천으로 가서 목욕도 하도록 배려해 주셨습니다. 문경 온천에서 정토수련원으로 돌아오는 길에 몇몇 분들은 “스님께서 이렇게 일주일씩이나 수련을 함께하시는 경우는 처음 있는 일” 이라고 하면서 감격해 하는 분위기였습니다.nbspnbspnbsp밤 9시가 넘어서 문경 정토수련원으로 돌아온 해외정토회 총무단 일행은 내일 아침 일찍 백일 기도 입재식 장소로 떠날 채비를 마치고 잠에 들었습니다.nbspnbsp내일 스님께서는 해외정토회 총무단 일행과 함께 정토회 제8차 천일결사 5차 백일기도 입재식에 함께하실 예정입니다. 내일 또 소식 전해드리겠습니다.

2015.04.27. 28,741 읽음 댓글 19개

2015.4.24 해외정토회 지도자 수련 2일째

nbsp안녕하세요. 오늘은 해외정토회 지도자 수련 2일째 날입니다. 어제에 이어서 문경정토수련원 명상원에서 두 번째 밤을 보낸 해외정토회 수련생들은 새벽 4시에 일어나 대웅전에서 스님과 함께 새벽 예불과 천일결사 기도를 했습니다.nbspnbsp기도 후에는 수련생 모두 문경공동체 대중 100여명과 함께 불교 전통 식사법인 발우공양에 참석했습니다. 어제는 처음하는 발우공양이라 다들 밥이 코로 들어가는지 입으로 들어가는지 분간이 안될 정도로 정신이 없었는데, 오늘은 조금 숙달이 되었는지 어제보다 여유가 느껴졌습니다. 그리고 대수련장을 가득 채운 100여명의 대중들이 뿜어내는 발우공양 게송은 참으로 웅장한 느낌이 들었습니다.nbspnbsp▲ 발우공양nbsp발우공양을 여법하게 마친 후, 스님께서는 “여러분들 밥하는 솜씨가 많이 좋아졌네요.”라고 칭찬하시면서 백일출가 행자님들을 위해 수행 자세에 대해 간단히 법문을 해주셨습니다.nbspnbsp“대중이 이렇게 모여서 여법하게 발우공양을 하니 참 좋습니다. 행자님들이 새로 들어오셔서 이렇게 어려운 생활을 여법하게 해주셔서 감사말씀 드립니다.nbsp그런데 수행이라는 것은 마음이 편안해야 합니다. 군대에 가면 군인들이 아주 질서 정연하지 않습니까? 하지만 마음이 긴장되어 있습니다. 반면 농촌 같은 곳에 가면 사람들이 다 편안합니다. 그러나 아무런 질서가 없습니다. 질서를 잡으면 긴장이 되고, 긴장을 풀면 무질서해집니다.nbspnbspnbsp수행은 어떤 것이냐? 긴장을 풀고 마음이 편안한 가운데 질서가 딱 잡히는 것입니다. 명상할 때는 코 끝에 집중해서 호흡에 깨어있어야 하는데, 호흡에 깨어있으려 하면 몸과 마음이 긴장이 됩니다. 몸과 마음의 긴장을 풀고 편안하게 하면, 호흡에 깨어있지 못하고 졸거나 망상을 피우게 되죠. 이렇게 하면 이쪽으로 치우치고 저렇게 하면 저쪽으로 치우치게 됩니다. 이 양쪽으로 치우침을 떠나는 것, 편안한 가운데 호흡에 뚜렷이 깨어있는 것, 알아차림을 유지하는 것, 이것이 중도입니다.nbspnbsp그러니 여러분들은 이곳 문경에서 백일출가든, 49일 기도든, 행자대학원에 다니든 현실은 그렇게 안되지만 목표는 집에 있는 것보다 더 마음이 편안해야 합니다. 그런데 집에서는 마음은 편안한데 게을러지고 질서도 없고 깨어있지 못합니다. 반면 여기에 오면 질서도 있고 깨어있기도 한데 늘 긴장을 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여러분들이 피곤한 겁니다. 물론 노동을 많이 해서 피곤하기도 하지만 마치 군대에 있는 것처럼 긴장이 되어 있기 때문에 피곤한 것입니다. 늘 마음이 쫓기게 되니 밖으로 나가게 되면 퍼지게 됩니다. 긴장이 풀어지면서 음식도 함부로 먹게 되고, 아무데나 눕게 되고, 계율도 지키지 않고, 정진도 하지 않게 됩니다.nbspnbspnbsp백일출가를 해도 여기 있을 때만 지키고, 나가면 23일 있다가 다 풀어지는데, 그렇다면 과연 이 생활이 무슨 의미가 있을까요? 그러니 여러분들은 여기 있으면서 편안한 가운데 뚜렷이 깨어있는 정진을 해야 합니다. 처음부터 바로 되는 것은 아닙니다. 자꾸 게으름에 빠지고 자기 업식대로 끌려가죠. 그런데 여기서는 백일 동안 조금 강제성 있게 하게 됩니다. 아침에 일어나기 싫어도 일어나야 되고, 일하기 싫어도 일해야 되는 약간의 타율성도 가미되지만, 여기서 자기 중심을 딱 잡고 연습을 해서 백일출가를 하고 나가더라도 혼자서도 정진을 할 수 있어야 합니다. 집으로 가서 혼자 있어도 4시반이 되면 딱 기상해서 혼자서도 정진을 하고 하루 일과를 시작해야 하는데 실제로는 잘 안되죠. 왜냐하면 이곳에서 약간 긴장해서 억지로 했기 때문입니다. 강제성이 없어지면 원래 까르마 대로 돌아가버리게 되죠.nbspnbsp그런데, 여러분들은 이곳에 자발적으로 들어왔잖아요. 군대처럼 소집해서 들어온 게 아니잖아요. 직장도 그만두고 부모 반대도 무릎쓰고 자발적으로 들어왔잖아요. 이 자발성을 늘 유지해야 합니다. 내가 백일출가를 얼마나 하고 싶어 했던가. 여기 들어와 있는 것만 해도 기뻐하고, 이렇게 발우공양 하는 것만 해도 기뻐하고, 아침예불하는 것도 기뻐하고, 얼마나 내가 이 생활을 원했던가. 이렇게 처음 들어올 때의 마음을 늘 간직하면 모든 것이 다 재미가 있습니다. 발우공양이 힘든다, 밥이 안 넘어간다가 아니라 ‘아, 내가 평생은 수행자가 못되더라도 백일이라도 수행자로 산다는 것은 큰 복이구나’ 이렇게 자신에 대해 자발적으로 받아들이게 되면 모든 것이 다 기쁨이 됩니다. 이렇게 생활하면 나가서도 이것을 지속하기가 매우 쉽습니다. 아무도 강제를 안해도 지속하기가 굉장히 용이해집니다. 여기 생활도 편안해지고 나가서도 지속하기가 쉽습니다. 그러나 타율적으로 남의 눈치를 보면서 억지로 하게 되면, 편안하려고 여기 왔는데 수행 생활이 힘들고, 언제 나갈 수 있는지 기다리게 되고, 나가게 되면 퍼지게 됩니다. 그래서 수행이 형식화됩니다. 그러니 자발적이여야 합니다.nbspnbspnbsp자기 인생의 주인이 자기가 되려면 스스로 마음을 내어야 합니다. 스스로 마음을 내는 발심을 해야 끝없이 실수해도 결과적으로 되는 쪽으로 나아가게 됩니다. 이것을 명심하셔서 마음의 긴장을 풀고 편안한 마음으로 하시기 바랍니다. 편안한 마음이 안되는 이유는 자발성이 떨어지기 때문입니다. 마음을 스스로 일으켜서 일을 하면 편안해집니다. 지적을 받아도 ‘아, 내가 그것을 놓쳤군요. 감사합니다’ 하고 이렇게 마음을 내면 눈치를 안보게 됩니다. 마음은 긴장이 되지만, 긴장이 되는 자기를 보면서 자꾸 긴장을 풀어나가고, 또 긴장을 풀면 자꾸 욕망이 일어나게 되는데 이런 것들을 잘 지켜보면서 억누르지도 말고 포기하지도 말고 그것을 알아차리고 꾸준히 계율을 청정히 지키면서 연습을 하면 됩니다. 그렇게 해나가야 돈으로도 살 수 없는, 그 어떤 것으로도 대체할 수 없는 소중한 백일이 됩니다.nbspnbsp그러니 자발성을 가장 중요시해야 합니다. 오늘날 우리 사회의 가장 큰 이슈인 창조성도 강제성에 의해서는 나오지 않습니다. 항상 자발성에 기초해서 스스로 알고 싶어하고 궁금해 하면서 탐구하는 자세를 가져야 창조성이 발현됩니다. 그렇게 해서 여기 하루 산 것이 밖에서 백일 산 것보다 더 값어치 있는 그런 하루하루를 사시기 바랍니다.” nbspnbsp백일출가 행자님들은 처음으로 스님과 함께 발우공양을 한 것만으로도 무척 기쁘게 여겼는데, 이렇게 소중한 가르침까지 주셔서 귀를 쫑긋 세우고 스님의 말씀을 경청했습니다.nbspnbspnbsp해외 총무단 일행은 발우공양 후 잠시 휴식 시간을 가진 후 9시부터 유수스님을 모시고 ‘정토회 대중조직의 현황’에 대해 설명을 들었습니다. 유수 스님은 정토회 8차 천일결사의 목표가 무엇인지, 총무 부총무 팀장 등 각 직급의 역할은 무엇인지, 어떻게 자원봉사자를 발굴하고 양성하고 배치할 것인지, 이 세가지에 대한 구체적인 현황과 방향을 자세히 말씀해 주셨습니다.nbspnbspnbsp해외 총무단 일행은 유수 스님께서 들려준 국내의 현황을 참조하여 해외에서는 어떻게 정토회 활동을 해나갈지 계획을 세워보는 시간이 되었습니다. 즐겁게 강의를 듣다 보니 벌써 점심 시간이 되었습니다.nbspnbspnbsp점심 식사 후에는 유수 스님의 안내로 수련원 맞은 편 희양산 아래에 있는 봉암사로 사찰 순례를 나섰습니다. nbspnbsp크고 웅장한 대웅전을 비롯하여 봉암사 지증대사탑비, 지증대사탑, 3층 석탑, 선원, 등을 둘러보았습니다. 봉암사는 지금부터 약 1100여년 전 신라 헌강왕 5년에 지장국사가 창건한 고찰로 선종산문인 구산선문의 일맥인 희양산문으로 매우 역사 깊은 사찰입니다. 정토회와 인연은 스님께서 정신적 스승으로 모시는 서암 큰스님이 이곳 봉암사에 조실로 있으셔서 스님께서 부목으로 한 철을 이곳에서 나신 적이 있다고 합니다. 그 인연으로 맞은편에 정토수련원을 짓게 되었구요.nbspnbsp▲ 봉암사 사찰순례nbspnbsp수련생들은 봉암사의 뒷 배경을 이루고 있는 기암괴석을 보며 넋을 잃고 감탄을 하며 사진을 함께 찍기도 했습니다. 특히 선원은 스님들의 수행처소인데 마당에 아무런 장식물도 없이 텅 비어 있어서 선불교의 힘과 기상이 느껴지는 것 같았습니다. 수련생들 중 몇몇은 “선방의 문고리라도 잡으면 성불의 인연을 짓는다”고 하면서 문고리를 잡고선 아주 즐거워하기도 했습니다.nbspnbsp봉암사 사찰 순례를 마치고 다시 수련원으로 돌아온 해외 총무단 일행은 모둠별 토론 시간을 가졌습니다. 국장지구장, 총무, 부총무, 팀장담당자 등 각 직급별로 모둠을 형성하여 현재 어떻게 사업 진행, 결재, 보고, 회의, 팀웍을 만들어가고 있는지 각자 발표하면서 잘된 사례를 함께 공유할 수 있었습니다.nbspnbsp▲ 모둠별 토론 시간nbsp모둠별 활동 시간을 마친 후 다함께 다시 강의장에 모여 모둠별로 잘된 사례 하나씩을 전체적으로 공유하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스님께서도 함께 자리해 각 법당의 구체적인 현안에 대해 경청하셨습니다.nbspnbsp▲ 모둠별 토론 내용 발표nbspnbsp특히 시애틀정토회의 주상휴님은 이번에 입학한 불교대학생 5명이 모두 기독교인이라 깨달의장 가는 것을 꺼려하는데 어떻게 해야할지 고민을 나누어 주었고, 뉴욕정토회의 이영숙님은 젊은 사람들이 법당에 찾아오는 경우가 부쩍 늘었는데 기도비 납부에 대한 이해가 부족해 어떻게 홍보를 해야할지 고민을 나누어 주었습니다. 그리고 전세계의 많은 법당에서 지난 세계 100회 강연의 성과에 힘입어 각 도시별로 기획법회를 확대해 가면서 법당 형성의 토대를 닦고 있는 성과를 함께 나누어 주었습니다. 대부분의 법당들이 주로 천일결사 입재식, 수행법회, 불교대학, 부처님오신날 행사 진행을 중심으로 역할분장이 되어 어려운 여건 속에서도 열정적으로 운영이 되고 있었습니다.nbspnbspnbsp발표를 모두 마친 후 오후 6시부터는 저녁 식사 시간을 가졌습니다. 낮부터 온갖 채소로 정성을 기울여 만든 음식들이 눈에 보이자 모두들 반가운 미소를 머금으며 숟가락을 들었습니다. 음식 색깔이 너무 예뻐서 어떤 분들은 반찬을 소복히 쌓아놓고 사진을 찍기도 했습니다. nbspnbspnbsp저녁 식사 후 7시15분에 다함께 저녁 예불을 올리고, 곧바로 이어서 스님께 법문을 청해 들었습니다. 먼저 스님께서는 어제 질문한 내용 중 회원들이 사사로운 모임을 여는 것에 대해 어떻게 입장을 가져야 하는지에 대해 다시한번 정리를 해주시면서 법문을 시작하셨습니다.nbspnbsp“정토회는 부처님의 근본 가르침을 지금 이 시대 이 땅에 실현시키고자 하는 모임입니다. 다른 말로 하면, 복을 비는 신앙인들의 모임이 아닌 자기를 참으로 자유롭게 행복하게 하는 수행자들의 모임입니다. 그러나 현실을 살고 있는 중생은 복을 빌고 싶은 마음을 누구나 다 가지고 있습니다. 그러니 이런 사람들을 배척해서는 안되고 용인하고 수용해야 합니다.nbspnbspnbsp길은 두가지예요. 사람들이 이런 것을 원하니까 이 중심으로 가는 길이 하나 있고, 부처님의 정법이 이러니까 다른 것은 일체 용인을 안해버리는 길이 있습니다. 그러면 여러분들이 훨씬 머리가 덜 아프겠죠. 그러나 우리는 부처님의 정법을 실현하고자 하는 목표로 이 모임을 만들었고, 그래서 우리들의 모임은 신자들의 모임이 아니라 수행자들의 모임이예요. 그래서 정토회에서는 공식적으로 ‘신자’라는 말을 사용하면 안됩니다. 법륜스님이든 여러분이든 모두 똑같이 ‘정토회 회원’이고, 불교 용어를 사용한다면 ‘정토행자’입니다.nbspnbsp부처님 당시로 비교하면 지금 스님 같은 종교인들이 브라만이고, 신자 같은 사람들이 크샤트리아, 바이샤, 수드라 이렇게 되어 있었는데, 부처님 정법 안에 들어오면 그의 출신에 관계없이 모두 ‘출가 수행자’로 불렸습니다. 그런데 시간이 흐르면서 다시 출가 수행자들은 브라만처럼 사제가 되고, 재가 수행자들은 신자로 변질되었고, 다시 대승불교가 새로 일어나면서 이 모임에 참여한 사람들을 ‘보디사트바’, 즉 ‘보살’로 불렀습니다. 그래서 대승에서는 승속의 개념이 없습니다. 비구, 비구니, 우바새, 우바이 관계없이 부처가 되겠다고 발심한 자가 보살이고 이 보살들로 상가를 구성했습니다. 이것은 부처님이 무슨 계급이든 상관하지 않고 출가 수행자로 상가를 구성한 것과 같은 것입니다.nbspnbspnbsp그러나 대승불교도 또 시간이 흐르면서 사제와 신자로 전락하니까 선불교에 와서는 ‘선지식’이라는 딱 한 용어로 부릅니다. 그런 것처럼 정토회는 부처님의 근본 가르침 뿐만 아니라 역사 속에서 근본 가르침으로 돌아가고자 했던 대승의 초기 입장과 선의 초기 입장을 견지하려고 합니다. 그래서 저희는 대승불교, 선불교에 이어서 불교 역사 속에서는 네 번째로 다시 부처님의 근본 가르침으로 돌아가려고 하고 있고, 기독교인이든 불교인이든 따지지 않고, 스님이든 재가자든 따지지 않고, 종교가 있다 없다 따지지 않는 해탈과 열반을 추구하는 사람들의 모임을 지향하고 있습니다.nbspnbsp지향은 이런데 현실도 있기 때문에 현실을 철저하게 배격하는 것도 아니고, 현실을 따라가는것도 아니고, 우리는 원칙을 갖고 수행하지만 대중들이 자기 습관들을 갖고 오는 것은 일부 용인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개인적으로 하는 행위는 용인하지만 정토회 이름으로 복을 비는 행위는 용인이 안됩니다. 혼자 와서 입시 기도를 하는 것은 괜찮습니다. 그러나 공식적으로 정토회가 대학 시험치는 부모들 오라고 공지해서 기도하는 것은 안됩니다. 물론 시험치는 날 학부모들의 불안한 마음을 안정시키기 위해서 같이 기도하자 하는 정도는 괜찮아요. 이런 것들을 분명히 구분할 줄 알아야 찾아오는 대중들을 다 수용하면서도 수행의 중심을 잡아갈 수 있는데 이게 잘 안되는 것 같아요.nbspnbspnbsp그래서 여러분들의 기본 입장은 종교인이나 종교인 아닌 분들을 차별하면 안됩니다. 종교 없는 사람을 문제 있는 사람으로 취급해서도 안되고, 천주교나 기독교를 믿다가 찾아왔다고 해서 절대로 차별하면 안됩니다. 그 사람이 갖고 있는 종교에 대해서는 전혀 관계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그 사람들에게 이 가르침에 귀의해서 진정한 행복을 추구하라고 가르쳐야지 불교 신자가 되라고 얘기할 필요는 없는 것입니다.nbspnbsp즉문즉설 강연을 한번 보세요. 소재는 무엇이든 상관이 없습니다. 어떻게 자신의 무지를 깨쳐서 해탈 열반으로 나아갈 것인가 하는 것이 초점이고, 이를 위해서 불교 형식이 필요하면 불교 형식을 빌리고, 성경 인용이 필요하면 성경 인용도 해가면서 대중의 상황을 수용해서 해나갑니다. 그러나 원칙은 부처님이 말씀하셨던 해탈과 열반을 추구하는 수행자들의 모임이라는 것이고 또 현실에서는 대중들의 요구도 배척해서도 안됩니다. “여기는 그런 기도 안해요” 이렇게 얘기하면 안되고, “아이고, 기도하시네요. 혼자 기도하시는 것은 좋은데 이곳은 수행하는 곳이니까 그런 것을 대중들에게는 같이 하자고 안했으면 좋겠습니다” 이렇게 부드럽게 얘기하면 좋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불교인이다” 이렇게 주장해도 안되고, “우리는 불교 아니다” 이렇게 주장해도 안됩니다. “이곳은 부처님의 근본 가르침을 실현하는 곳입니다” 이렇게 말해야 합니다.nbspnbsp사사로운 모임이나 친목 모임이 빈번히 발생하는 문제도 우리는 수행자의 모임이라는 것을 분명히 할 필요가 있습니다. 부처님의 근본 가르침을 같이 공부하고 수행하고 마음나누기 하는 것이 중심입니다. 그러나 현실에 있는 대중은 가끔 밥도 같이 먹고, 술도 한잔 하고, 잡담도 하면서 친해지고 싶은 요구들이 있기 때문에 그런 것도 수용을 해야 합니다. 초파일 끝나고 어느 집에서 파티를 한번 한다든지, 누구 생일에 한번 모여서 마음을 나눈다든지, 이런 정도는 괜찮습니다. 그러나 친목이 주가 되는 것은 안됩니다. 친목을 한다면서 같이 모여서 불평이나 하고 수행이 뒷전이 되면 안됩니다. 친목마저도 항상 수행하는 사람들을 아우르는데 도움이 되도록 활용하는 것이지 그 자체가 중심이 되면 안됩니다.nbspnbspnbsp그래서 “무조건 파티는 하지 마라”하고 금기로 한다든지, “스님이 해도 된다더라” 하면서 거기에 너무 빠져도 안됩니다. 그래서 이런 모임을 할 때는 가능하면 총무님에게 물어보고 하는 것이 좋습니다. 또 파티 같은 것도 가능하면 공식적으로 하는 것이 좋아요. 대신 사사로운 모임으로 빠지는 것은 유의해야 합니다. 중심만 잘 잡혀있으면 유연하게 접근이 됩니다. 중심이 안 잡혀 있다 보니까 헷갈리게 되거든요.”nbsp스님께서 정토회 설립 취지와 불교 역사까지 포괄적으로 설명하면서 사적인 모임들에 대한 원칙을 이야기해 주시니 훨씬 더 깊이있게 이해를 할 수 있었습니다. 수련생들은 모두 고개를 끄덕이며 열심히 메모하면서 스님의 말씀에 귀기울였습니다. 특히 해외는 파티 문화가 발달해 있어서 법당 총무님들이 이런 고민을 많이 해왔는데 오늘 이 시간을 통해서 명확히 중심을 잡는 계기가 된 것 같습니다.nbspnbsp그리고 스님께서는 방금 전 있었던 모둠 발표를 들으면서 해외 총무들이 꼭 알았으면 하는 점들을 상기시켜 주시면서 다양한 주제에 대해 정토회의 운영 원칙에 대해 말씀해 주셨습니다. nbsp nbspnbspnbsp시애틀의 경우 불교대학생들이 깨달음의장 가는 것을 꺼려한다는 얘기가 있는데 깨달음의장은 불교대학생들의 의무가 아니라 특혜 개념으로 설명되어져야 한다는 점, 뉴욕 법당과 뉴저지 법당이 초파일 행사를 함께 할지 따로 분리해서 할지, 불교대학 입학생들에게 받은 수업료는 가입비 성격에 해당하기 때문에 환불이 안된다는 점, 법회를 할 때는 반드시 정근희사를 해야 하고 전체가 자발적으로 보시를 할 수 있는 문화를 만들어 나가야 한다는 점, 회원들의 의견을 수렴하는 민주주의를 정토회 안에서는 어떻게 실현할지, 아시아의 관료주의 장점과 서구 민주주의의 장점을 어떻게 취합할지, 이 두 가지를 극복하는 상가의 모델과 삼의제가 갖는 장점이 무엇인지, 그래서 정토회가 일을 해나가는 방식도 모든 이들의 모델이 될 수 있도록 만들어가보자는 말씀, 또 정토회의 회원 구조는 어떻게 되어 있고, 그 중 정회원의 권한과 의무는 무엇인지 등에 대해 자세히 말씀해 주시면서 “아직 부족한 것이 많지만 정토회는 가장 민주적인 방식을 실현하고자 노력하고 있다”고 소개해 주셨습니다.nbspnbsp그리고 해외정토회의 총무단은 2차 만일결사의 씨앗을 만들어갈 분들이기 때문에 2차 만일결사의 방향에 대해서도 큰 틀에서 설명을 해주셨습니다.nbspnbsp“2차 만일결사에 가면 어떻게 될까요? 해외의 비중과 국내의 비중이 출발할 때 이미 같아질 거예요. 지금은 해외 지부가 한국의 9개 지부 중에 하나인데, 그 때가 되면 한국이 전세계 9개 지구 중에 하나의 지구가 될 거예요. 독특하게 청년지구가 세계적으로 있을 수 있고요. 현재는 교민을 상대로 하기 때문에 미국이 많고 아시아가 하나로 묶여 있는데 현지인 중심으로 가면 그렇게 되지 않겠죠.nbspnbspnbsp세계화를 위해 현지 사람들을 교화하는 쪽으로 간다면, 아시아에는 중국 지부, 일본 지부, 동남아 지부 이렇게 3개가 될 것이고요. 그리고 태평양 지부가 하나 더 생길 수 있겠죠. 아니면 태평양과 일본이 묶여서 하나의 지부가 될 수도 있고요. 유럽 쪽은 중동 아프리카 지부, 유럽 지부 이렇게 2개로 나눠지게 될 것이고요. 미국은 동부, 중부, 서부 이렇게 3개 지부와 라틴 아메리카 지부로 나눠질 수 있을 겁니다.nbspnbsp그리고 본부를 우선 미국으로 옮겨가야 할 것 같아요. 그럴려면 포교를 할 수 있는 인력을 양성해야 하는데, 깨달음의장을 통한 현지인들이 수용되어야 하고, 법사들도 양성되어야 하겠죠. 이런 큰 틀에서 해외에 계시는 여러분들은 1차 만일결사에서는 교민을 상대로 하는 현재의 시스템으로 운영하지만, 2차 만일결사를 대비한 씨앗도 심어야 합니다. 첫째는 교민들이 수행의 맛을 잘 경험하게 되면 분명히 남편이나 자녀들에게 영향을 주게 될 것이고, 남편이나 자녀들을 통해 다음 단계로 넘어가는 길이 있습니다. 둘째는 영어로 번역이 되거나 바로 영어로 수련시키는 방법이 있습니다. 또 앞으로 은퇴한 사람들이 중심적인 역할을 많이 하게 될텐데 이분들이 겨울 추위를 잘 못견디거든요. 그래서 냉난방 장치를 안해도 되는 따듯한 곳에 세계적인 수련 시설을 마련하고자 방콕을 물색했던 적이 있습니다.nbspnbspnbsp그리고 미국은 전세계 온갖 사람들이 다 와서 살고 있잖아요. 거기서 포교를 하면 그 사람들이 각자 자기 고향으로 돌아가면 전세계 포교가 되는 것이거든요. 한국 사람들이 독일어 배우고, 불어 배워서 포교한다는 것은 실제로 어려워요. 그래서 본부나 수련 센터는 미국으로 옮겨야 될 겁니다. 초기에는 한국어와 영어를 같이 할 수 있는 교포 2세들이 역할을 일정하게 하고, 그 다음에 현지인이 본격적으로 하는 것을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이런 큰 그림을 생각하면서 2차 만일결사와 3차 만일결사를 그려야 합니다. 3차 만일결사가 지나면 한 세기가 지나지 않습니까? 한 세기가 지난 후에는 세계에 큰 영향을 주게 될 거예요.”nbsp스님의 말씀을 들으며 머리 속으로 세계 지도를 펼쳐봅니다. 그리고 지금은 비록 작은 씨앗에 불과하지만 한 세기가 지난 후에는 큰 보리수 나무가 되어 전세계인들에게 불법을 널리 전할 수 있다는 상상을 하니 생각만 해도 가슴이 뛰는 것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nbspnbsp밤이 점점 깊어감에도 해외 총무단들의 질문은 그칠 줄 몰랐습니다. 독일 지역에 수련원을 지어야 한다는 필요성을 말씀하셨는데 지금부터 어떤 준비를 해야 하는지, 불교대학 학사과정에 예불문과 소심경 수업이 올해부터 갑자기 빠졌는데 다시 포함시킬 수는 없는지, 불교대학의 사회활동 특강 영상이 너무 오래 되었는데 최신 강연 내용으로 교체해 줄 수 있는지 등 주로 불교대학 운영에 관련된 질문들이 계속 이어져 나왔습니다. nbspnbspnbsp특히 해외에서 불교대학 수강을 하는 분들 중에 중도 탈락자가 많은데 이들을 구제하기 위해 수시 입학 제도, 과목별 입학 제도, 졸업 못한 사람들은 다음해 다시 보충할 수 있게 하는 제도, 보강 수업을 마련해주는 방안 등에 대해서는 다양한 의견이 쏟아지면서 토론에 토론이 거듭되기도 했습니다.nbspnbsp마지막으로 스님께서는 토론 내용을 종합적으로 정리해 주시면서 “해외에서 필요한 것들을 한국에 적극 건의하고, 법사단과 행정처에서는 이를 종합 검토해서 빠른 시일 내에 답변을 주고, 한국에서도 해외에 요청할 내용을 적극 제안하세요” 라고 마무리를 해주셨습니다. 그리고 오늘 미처 다 논의하지 못한 내용이나 미진한 부분에 대해서는 내일 더 논의하자고 하시면서 오늘 수련 일정을 모두 마쳤습니다.nbspnbsp내일은 해외정토회 지도자 수련의 마지막 날인 3일째 일정이 있을 예정입니다. 또 소식 전해드리겠습니다.nbsp

2015.04.25. 28,451 읽음 댓글 16개

2015.4.23 해외정토회 지도자 수련 1일째

▲ 해외정토회 지도자 수련nbspnbsp안녕하세요. 오늘은 해외에서 정토법당을 운영하고 계신 총무님들을 위한 수련이 문경정토수련원에서 열렸습니다. 해외 총무단 일행은 어제밤 문경에 도착해 하룻밤을 잔 후 새벽 4시에 일어나 대웅전에서 새벽 예불과 함께 문경에서의 일정을 시작했습니다. 무변심 법사님으로부터 발우공양 작법에 대한 교육을 받고, 100여명의 대중이 함께하는 발우공양에도 참석해 불교 전통 식사법에 대해 체험하는 시간도 가졌습니다.nbspnbsp스님께서는 새벽에 두북을 출발해 아침7시 무렵 문경정토수련원에 도착하셨습니다. 해외 총무단은 간단히 생활안내를 받은 후 아침8시30분부터 스님께 입재 법문을 청해 들었습니다. 먼저 스님께서는 “문경의 봄날이 좋아요? 혹시 발우공양 하면서 체하지는 않으셨어요?” 라고 가볍게 인사를 하시면서 법문을 시작하셨습니다.nbspnbsp▲ 입재 법문nbspnbsp그리고 인간의 정신 작용과 부처님이 발견하신 ‘알아차림’의 수행법, 정토회가 이 땅에 실현하고자 하는 근본 불교의 의미, 2차 만일결사를 위해 정토회를 세계화 하는 방안 등 해외 총무단이 알아야 할 핵심 내용들에 대해 개괄적으로 법문을 해주셨습니다.nbspnbsp“인간의 정신작용은 컴퓨터 프로그램과 거의 비슷합니다. 그래서 짜여진 대로 작용을 하는 성질이 있습니다. 그러면 이 프로그램은 누가 짰을까요? 어떤 특정한 존재가 짠 것이 아니고 수백만년 혹은 수천만년 동안 자연 속에서 진화해 오면서 조금씩 변화를 거쳐 여기까지 온 것입니다. 수없는 학습 작용을 통해서 현재 인간이 갖고 있는 정신 작용이 형성되었는데, 이렇게 프로그램이 짜여져 있기 때문에 우리는 이 프로그램대로 반응을 합니다. 그래서 사실은 자율권이 거의 없다고 볼 수도 있습니다.nbspnbspnbsp그러나 여기서 가장 중요한 것은 ‘이렇게 프로그램이 짜여져 있다’, ‘이런 원리로 반응을 한다’는 것을 미리 알면 그렇게 반응을 안 할 수도 있는 능력이 있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알아차림’을 하게 되면 종속적으로 반응하는 데서 다르게 반응을 할 수도 있게 되어서 윤회의 사슬로부터 벗어날 수가 있는 계기를 마련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정신 질환을 치료하는데 있어서도 ‘자기 상태를 알아차리는 것이 치료의 절반이다’는 말도 나오고 있죠. 옛말에 호랑이에게 물려가도 정신만 차리면 산다는 것처럼 어떤 상황에 처하든 자기 상태만 딱 점검이 되면 그렇게 살고 싶지 않을 경우 다른 방향으로 전환이 가능합니다.nbspnbsp그러나 이 상태가 점검이 안 되고 전환하려고 하는 것은 거의 작심삼일이 됩니다. 왜냐하면 마음의 작용은 대부분 의식이 아닌 무의식에서 일어나기 때문에 스스로 통제가 잘 안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그런 사실까지도 알아차려야 됩니다. 잘 안 된다는 사실마저도 알아차리면서 시도를 하면 안 된다고 좌절하지는 않아요. 안 되는 것을 보면서 또 해보고, 또 해보고 할 수 있거든요.nbspnbsp첫 번째, 대부분은 무지한 상태에서 윤회하면서 살아가고요. 두 번째는 바꿔보려고 하지만 잘 안되니까 대부분 좌절하지요. 그 이유는 이것은 바꾸기가 굉장히 어려운 것인데 욕심으로 쉽게 생각하니까 안 된다고 좌절하는 것입니다. 바꾸기가 굉장히 어렵다는 것을 알고 시작하면 안 되더라도 좌절은 하지 않습니다. ‘아, 이렇게 하니 안 되네. 저렇게 한번 해볼까?’ 이렇게 조금씩 조금씩 계속 해나가면 변화가 일어나거든요. 큰 변화가 일어나려면 한번 죽을 고비를 넘겨야 됩니다. 부처님도 6년 고행을 하면서 죽을 고비를 넘겼고, 서암 큰스님도 결핵에 걸려 치료가 안되니까 이왕지 죽는 것 정진하다가 죽겠다고 하고 산속에 죽으러 들어갔다가 살으셨거든요. 이 때 죽었다고 하는 것은 몸은 안 죽었지만 자신의 원래 까르마가 이미 죽은 것입니다. 예수님도 황야에서 40일 금식하면서 자신이 하나님의 아들임을 자각하는 그런 과정이 나오지 않습니까.nbspnbsp용수 보살도 젊은 때 못된 짓 하고 돌아다니다가 잡혀서 죽을 뻔 했거든요. 그래서 쾌락을 즐긴다는 것이 얼마나 위험하고 어리석은 짓인 줄을 자각했기 때문에 거기로부터 완전히 자유로워지니까 오히려 성인이 되어버린 것입니다. 젊을 때부터 착실해서 성인이 된 것이 아니고 쾌락을 즐기고 못된 짓을 하고 돌아다니다가 죽을 고비를 넘기고 새 사람이 된 것입니다. 그래서 착한 사람이 좋기는 하지만 착하기만 한 사람은 크게 깨닫기가 어려워요. 왜냐하면 착하다고 주위로부터 칭찬의 소리만 듣기 때문에 자기를 바꿀 생각이 거의 없어요. 반면에 너무 망나니로 산 사람은 거기에 물이 들어서 헤어 나오지를 못합니다. 뭐든지 뜻대로 안되어서 자포자기해버린 사람은 극복할 의지가 없고, 너무 자기 뜻대로 된 사람은 극복할 필요성을 못 느끼죠. 뜻대로 되기도 한 것이 있어서 도전할 의향이 생기고, 뜻대로 안되기도 해서 안주하지 않기도 해야 하거든요. 그래서 천상이나 지옥이 아니라 인간 세상이 좋다고 하잖아요.nbspnbsp이런 것을 보면 여러분들이 사는데 장애라는 것이 꼭 불행이라고 볼 수가 없습니다. 결혼 생활 중에 갑자기 남편이 돌아가신다, 재산이 파산이 된다, 건강이 안 좋아진다, 이런 것들은 우리 인생에서 큰 불행이잖아요. 그러나 이 불행이 불행으로 끝나면 불행이지만, 그 앞에서 ‘내가 그동안 집착하고 살아온 것이 아무 것도 아니구나’ 이것을 한번 깨달으면 큰 변화가 일어나게 됩니다.nbspnbsp그러니까 내가 원하는 대로 잘 되어도 좋은 것이고요. 해탈은 못해도 중생으로서는 괜찮은 삶이니까요. 반대로 장애에 부딪히고 재앙이 쏟아지면 중생으로서는 좀 힘들지만 해탈의 기회가 주어진 것이라고 생각하면 이것 또한 축복으로 받아들일 수 있습니다. 그래서 인생은 이러면 이렇게 배울 것이 있고, 저러면 저렇게 배울 것이 있습니다. 이렇게 경계에 영향을 안 받는 것이 진정한 자유입니다. 그런데서 첫째 이 수행의 관점을 분명히 가지는 것이 필요합니다.nbspnbspnbsp붓다의 위대한 자각인 근본 불교를 통해서 현대인이 갖는 고뇌를 해결해보자는 것이, 즉 근본불교를 다시 재현해보자는 것이 정토회의 설립취지입니다. 근본 불교가 현대사회에서 한번 꽃필 수 있다고 생각하는 이유는 지금 현대사회는 물질이 충분히 주어졌는데도 인간의 고뇌가 해결되지 않는 이 문제에 봉착해 있기 때문입니다. 어떻게 하는 것이 인간을 진정한 자유와 행복의 길로 안내하느냐? 여기에 바로 붓다의 가르침이 이 문제를 풀어낼 수 있습니다. 붓다는 2500년 전에 이미 현대사회가 경험한 수준을 스스로 경험했습니다. 왜냐하면 왕자였기 때문입니다. 물질적 풍요를 누리고 살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간의 고뇌가 해결되지 않았기 때문에 이 문제를 탐구한 것입니다. 그런데 현대 사회는 경제적 풍요로 말하면 다수가 소비의 왕이 된 사회이거든요. 붓다의 문제의식의 출발이 그랬기 때문에 제가 생각할 때는 현대인의 고뇌에 어쩌면 유일한 해결책이 불교일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공자의 말씀, 서양 철학, 기독교에서도 우리가 배워야 할 좋은 점들이 많지만 이 문제를 본질적으로 꿰뚫은 것은 아닌 것 같아요.nbspnbsp그런 면에서 ‘우리 불교가 최고다’ 하는 것이 아니라 ‘불교를 통해서 이 문제를 풀 수 있다’는 불자로서의 아이덴티티를 가져야 합니다. 이를 위해서는 첫째, 자신이 수행을 통해 조금이라도 이 맛을 봐야 하고요. 둘째는 세상 사람들의 고뇌를 해결하기 위해서 이 법을 널리 전해야 합니다. 앞의 것은 내가 해탈해야 한다는 소승의 수행 원칙이라면, 뒤의 것은 중생에게도 이 혜택을 줘야 한다는 대승의 원입니다. 이것을 교리적으로 말하면 상구보리 하화중생입니다.”nbsp이렇게 큰 방향을 일러 주신 후 이어서 2차 만일결사를 통해 하고자 하는 일에 대해 자세히 말씀해 주셨습니다.nbspnbsp“2차 만일결사의 목표는 1차 만일결사 때 한국에서 여러 가지 실험을 해본 것을 다른 나라 사람들도 혜택을 받을 수 있도록 해보자는 것입니다. 한국에서 실험한 1차 만일결사의 성과를 기초로 해서 다음 만일에서는 세계화를 해나가야 합니다. 그런데 한국 사람들은 1차 만일의 목표를 이루는데 초점이 맞춰져 있지만, 여러분들은 외국에 살고 있는 교민들이기 때문에 2차 만일의 씨앗도 함께 준비해야 된다고 볼 수 있습니다. 여러분들은 남편이 외국인이든, 자식이 외국인이든 그렇잖아요. 이들을 통해서 우리는 다음 단계로 나아갈 수 있습니다. 또 교민 사회를 중심으로 해서 점차 주위로 확대해 나아갈 수도 있습니다.nbspnbspnbsp그럴려면 언어 문제가 해결되어야 합니다. 그래서 먼저 책을 영어로 번역하고, 즉문즉설도 모두 영어로 바꾸어야 합니다. 제가 영어를 배우면 되는데, 제 수준이 좀 안돼요. 그래서 그에 합당한 통역사를 확보해야 합니다. 즉, 러시아어, 프랑스어, 독일어, 영어를 유창하게 하는 정토행자가 각각 있어야 합니다. 현재 교민들의 2세들 중에 이런 사람들이 나오면 이 문제는 어느 정도 해결되겠죠.nbspnbsp이제 다음에는 영어로 깨달음의장을 진행하는 사람이 나와야 합니다. 또 기도법도 다 영어로 바뀌어야 합니다. 현재 기도법에는 용어가 한국적인 것이 많이 들어 있습니다. 또 종교적인 언어도 많이 베여 있습니다. 전통 불교와 비교해서는 많이 대중화, 생활화 되었다고 하지만, 요즘 대학생이나 외국인이 볼 때는 ‘이게 무슨 소리예요?’ 라고 묻는 부분이 많거든요. 2차 만일결사에서는 이런 것들을 모두 다 덜어내야 합니다. 종교적인 언어는 완전히 다 빼고 보편적인 생활 언어로 바꾸어야 하고, 한국적인 것들도 다 빼고 외국인도 자기나라 말로 번역을 하면 바로 이해할 수 있도록 바꾸어야 합니다. 절할 때 ‘관세음보살’ 부르는 것도 다 바꾸어야 합니다. 한국 사람들의 정서에는 맞을지 몰라도 외국사람 입장에서는 한국식 발음을 해야 되거든요. 예불문도 세계 보편적인 빨리어로 바꾸든지 해야 할 겁니다.nbspnbsp즉, 1차 만일 기간 동안에는 국내와 같이 한국 교민을 위해 그들도 부처님 법의 가피를 입을 수 있도록 각 지역에 법당을 열어나가는 것이 필요하고요. 동시에 여러분들은 2차 만일의 씨앗을 만들어가는 기초도 함께 마련해야 합니다. 2차 만일이 되면 한국은 세계 정토회의 하나의 지구로 편재될 수도 있습니다.nbspnbsp그런데 아마 이런 의문이 들 수도 있어요. ‘내가 왜 내 밥 먹고 뭣 때문에 이런 일을 하고 있나’ 하고요. 여러분들이 안 그렇다면 여러분들의 가족들은 ‘진짜 너 미쳤다’ 이럴 수도 있고요. nbspnbspnbsp한국에 사는 사람들은 그래도 종교 활동이라고 해서 이해가 되지만, 외국에 살고 있는 분들은 ‘국가도 나를 구제해주지 못하니 내가 내 몸 하나라도 살려고 이 먼 나라까지 와서 몸부림치며 사는데 왜 갑자기 지구를 구제하겠다고 난리냐?’ 그러겠지요.nbspnbsp그런데 삶에는 두 가지가 있어요. 하나는 자기가 원해서 하는 즐거움이 있고요. 다른 하나는 남에게 도움이 되는 보람이 있습니다. 즐거움은 내가 원하는 일을 할 때 그 순간에 생기는 것인데, 보람은 항상 지난 뒤에 생깁니다. 보람은 내가 남에게 유의미한 일을 했을 때 드는 행복감입니다. 보람 있는 일만 한다고 하면 현재가 힘들 수 있어요. 그러나 재미있는 일만 하면 나중에 보람이 없으니까 허전해져요. 그래서 행복은 지금도 좋고 나중도 좋아야 하는 것이거든요. 그런데서 여러분들이 외국에 가서 잘 산다 하지만, 마치 부처님이 왕자였지만 고뇌가 해결되지 않았듯이 여러분들도 ‘내가 밥 먹고 살려고 이 고생 했나’ 하면서 허무해질 수가 있습니다.nbspnbsp그러나 여러분들이 ‘내가 외국에 와서 왜 이 고생하고 살았나?’ 했더니 알고보니 ‘아, 부처님 법을 전하라고 내가 여기 왔구나’, ‘그동안 이것도 모르고 허둥대고 살았는데, 이런 사명을 갖고 씨앗이 되라고 여기 왔구나’ 이렇게 생각하면 여기 와서 산 의미가 밥 잘 먹는 성공과는 전혀 다른 새로운 삶의 방향을 잡아나갈 수가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지금은 좀 힘들지만 이 정도의 고생은 할 값어치가 있다는 것을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그러니 조금 어렵더라도 서로 격려하면서 해나갑시다.nbspnbsp nbspnbsp지금 생각하면 2차 만일결사의 목표가 까마득한 것 같지만 우리가 잘해서가 아니라 시절 인연이 도래하기 때문에 어렵지 않게 이루어질 거예요. 우리가 준비해놓고 있으면 세상에서 이것을 가져가겠다는 사람들이 늘어나서 어느 순간 빠르게 확산이 되게 됩니다. 개인은 별 영향이 없을지 몰라도 이렇게 앞서나가서 함께 준비해 놓으면 나중에 모두 의미 있는 존재가 됩니다. 제가 말씀드리는 것은 우리의 이 일은 사양 산업이 절대 아니고 미래 성장 산업이라는 것이예요. nbspnbspnbsp정토회가 노력해서 성장하는 것도 있지만 이런 시대의 요구에 부합해 나가기 때문에 앞으로 더욱더 확대되어 나갈 것입니다. 지금 하고 있는 통일 운동도 지금은 굉장히 어렵죠. 하지만, 10년, 20년 지나놓고 보면 독립운동 했던 수준의 평가를 받습니다. 이번 수련 기간 동안 문경 공동체는 어떻게 살고 있는지, 현재 정토회가 어떻게 운영되고 있는지, 행정적으로는 무엇이 필요한지를 배우고, 질문도 많이 해보시고, 자기 고민도 충분히 이야기해서 같이 해결해보는 그런 시간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nbspnbsp스님께서는 이렇게 1시간 40분 가량 법문을 해주셨고, 해외 총무단은 시대의 요구를 내다보고 바른 길을 일러주신 스님께 큰 감사의 박수를 보냈습니다. 더불어 2차 만일결사를 위한 씨앗을 지금부터 만들어나갈 것을 함께 다짐했습니다.nbspnbsp잠깐 휴식을 가진 후 10시40분부터는 정토회 행정처 박종숙 국장님으로부터 ‘법당 운영 원칙’에 대해 실무 교육을 자세히 받았습니다.nbspnbsp▲ 법당 운영 원칙에 대해 강의 중인 행정처 박종숙 국장nbspnbsp해외 총무단은 ‘불상을 액자로 모신 법당이라 하더라도 불단이 클 경우, 화분이나 조화를 불단에 올려도 되는지?’, ‘법당을 타단체에 임대하지 못하도록 원칙이 정해져 있는데, 해외는 우리가 타단체 시설을 많이 이용하기 때문에, 우리도 타단체의 사용을 허락해야 하는 것이 아닌지?’, ‘해외에서는 천일결사 입재식에 참여하기가 어려운데, 정토회의 정회원이 되려면 이 자격 요건을 어떻게 갖출 수 있는지?’ 등 궁금한 점들을 물었고, 행정처로부터 각각의 원칙에 대해 명확히 확인하는 시간을 가졌습니다.nbspnbsp스님께서는 해외 총무단이 실무 교육을 받는 동안 명상원에 머무시며 새로 출간하는 ‘세계 100회 강연’ 책의 원고 교정과 그동안 밀린 업무들을 보셨습니다.nbspnbsp점심 식사 시간이 되어 모두들 명상원 마당으로 나오자, 스님께서도 마당으로 나오셔서 “복사꽃이 많이 피었네. 저기 봐바. 복사꽃 국경 좀 하세요.” 라며 점심 식사 후 한국의 봄날을 조금이라도 더 만끽할 것을 권유하셨습니다. 모두들 곳곳에 핀 복사꽃을 보며 사진도 찍고 즐거운 시간을 만끽했습니다.nbspnbsp▲ 문경정토수련원의 복사꽃nbspnbsp점심 식사 시간에는 하얀 접시와 그릇이 각각 제공되었고, 모두들 식사 후 김치조각으로 깨끗이 닦아먹어서 음식물 쓰레기가 하나도 남지가 않았습니다. 전세계에 살고 계신 분들이 이렇게 한자리에 모이는 기회가 쉽지 않기 때문에 식사를 하면서도 서로 이야기를 멈출 줄 몰랐습니다. nbspnbspnbspnbsp▲ 2박3일 동안 식사 바라지를 맡으신 조선경, 최경숙, 김유정님. 조선경, 최경숙님은 전직 해외사무국 출신이여서 그런지 더욱더 애틋한 마음이 전해지는 것 같았습니다. nbspnbsp새벽부터 일정이 진행되어 다들 피곤한 기색이 역력했는데, 식사 후에는 어디서 또 힘이 나오는지 몇몇 분들은 “저기 쑥 봐라” 하며 쑥을 캐러 나섭니다. 해외에서는 쑥을 볼 수가 없는데, 오랜만에 방문한 한국에서 쑥을 발견하자 어릴 적 기억을 떠올리며 또 한 번 이야기꽃이 피었습니다.nbspnbsp▲ 점심 시간을 이용해 쑥을 캐러 나온 수련생들nbspnbspnbsp▲ 점심 때 캔 쑥으로 만든 특별 요리nbsp열심히 캔 쑥은 공양간으로 가져다주고, 오후1시30분부터는 정토수련원 원장이신 유수스님과 함께 수련원 곳곳을 둘러보며 설명을 들었습니다. 정토회의 초창기 역사적인 모임들이 많이 열렸던 제1수련장을 시작으로 깔끔하게 새로 지은 제2수련장, 제3수련장, 수련사무실, 나눔의장이 진행되는 제4수련장, 수련원에서 가장 웅장한 건물인 대웅전과 자비당, 원력당을 차례대로 둘러보고, 마지막으로 대강당과 이곳에 가장 처음으로 세워진 건물인 백화암까지 둘러보았습니다. nbspnbsp▲ 문경정토수련원 대웅전nbspnbsp해외 총무단 일행은 10년, 15년 전에 이곳에 왔었던 기억을 떠올리며 그 때와 비교해 많은 건물들이 위용 있게 들어선 모습을 보며 모두들 자랑스러움을 느꼈습니다. 특히 해외는 비좁은 공간을 임대해서 법당으로 사용하는 경우가 많은데 ‘해외에서도 이런 수련장을 가지면 정말 좋겠다’ 는 바램과 함께 ‘우리 법당도 이렇게 짓자’ 며 모두들 설레여 했습니다.nbspnbsp대웅전에 올라와서는 유수스님께 앞으로 이곳 수련원 불사를 어떻게 진행해나갈 것인지 이야기를 들은 후 대웅전 앞 금강 계단에서 다함께 기념사진을 찍었습니다.nbspnbspnbsp이렇게 1시간 남짓한 시간 동안 정토수련원을 모두 둘러본 후 오후 3시부터는 정토회의 회계 원칙에 대해 강의를 들었습니다. 또 이어서 3시40분부터는 정토회의 통합정보시스템에 대해 설명을 듣고, 해외에서는 어떻게 활용 가능할지 생각해보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현재 국내는 작년부터 불교대학생, 천일결사자, 수련생 모두 통합정보시스템에 의해 관리되고 있는데, 해외에서도 이 시스템을 활용하면 좋겠다고 하며 다들 좋아했습니다. 시스템부를 담당하고 있는 김도영님은 해외의 다양한 의견을 수렴하여 조만간 해외를 위한 시스템도 마련하겠다고 해서 큰 박수를 받았습니다. 다만 회계 부분은 국내와 사정이 많이 달라 어떻게 적용할지 과제로 남았습니다.nbspnbsp▲ 정토회 통합정보시스템에 대해 강의하고 있는 김도영 시스템부 부장nbsp오후4시50분부터는 정토회 이기혜 대표님을 모시고 대의원제도에 대해 설명을 들었습니다. 대표님은 “정토회가 운영방식에 있어서도 모범이 되어보자는 취지로 대의원제도를 도입했다”고 하면서, “현재 정토회는 선출직 88명, 당연직 38명 등 총 126명의 대의원들이 회원들의 민의를 대변하는 역할을 하고 있다”고 소개해 주었습니다. 해외는 아직 정회원이 30명 이상 되는 곳이 없어 대의원이 선출되지 못하고 있는데, 앞으로 정회원이 많아지면 우리들 손으로 뽑은 대의원을 탄생시킬 수 있다는 기대감에 대의원 제도에 많은 관심을 보였습니다. 마음이 급한 어떤 분은 “해외는 넓게 퍼져 있으니까 지구별로 대의원을 한명씩 선출하면 안 되는지?” 제안을 하기도 했습니다.nbspnbsp▲ 대의원 제도에 대해 설명하고 있는 이기혜 정토회 대표nbsp오늘의 모든 교육을 마치고 저녁 식사 시간이 되었습니다. 빈그룻 운동으로 깨끗이 접시를 닦아 먹은 후 7시부터는 스님도 함께 참석하셔서 다함께 저녁예불을 올렸습니다.nbspnbsp▲ 빈그릇 운동nbsp예불 후 곧바로 즉문즉설 시간을 가졌습니다. 그동안 해외에서 활동하면서 힘들었던 점이나 의문이 들었던 점에 대해 마음껏 묻고 스님의 답변을 청해 들었습니다.nbspnbsp먼저 스님께서 “다들 피곤하시죠?” 라고 묻자 모두들 “예” 라고 대답했습니다. 그러자 스님께서는 “저도 어제 엄나무 순을 자른다고 늦게 까지 일했더니 손이 펴지질 않네요”라고 하시면서 “낮에 쉬지 않았기 때문에 밤에는 잠을 푹 잘 수 있을 거에요. 그러면 내일부터는 시차 적응도 잘 될 겁니다. 때로는 하고 싶은 것에 구애받지 않는 경험들을 해야 삶이 자유로워집니다.” 라며 다들 기운을 내도록 격려해 주었습니다.nbsp▲ 즉문즉설 강연nbspnbsp그리고 즉문즉설을 시작하기에 앞서 원칙의 적용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 그 중도적 자세에 대해 강조를 해주셨습니다.nbspnbsp“정토회 대중부에서는 ‘한국은 이렇게 한다’ 라고 말할 수는 있지만, ‘해외에도 한국과 똑같이 해야 한다’고 말하면 해외의 실정이 덜 반영될 소지가 있습니다. 반면 해외에서 하자는 대로 따라가면 나중에 시간이 지나면 다 자기들 마음대로 될 소지가 있습니다. 출발 선상에서는 각도가 1도쯤 벌어지면 12미터 가봐야 별 차이가 없습니다. 그런데 수백키로 수천키로를 간다고 하면 엄청나게 사이가 벌어집니다. 그런 것처럼 작은 차이가 시간이 흐르면서 지역이 달라지면서 점점 벌어지는 것은 어쩔 수 없는 것이예요. 그러나 우리가 최초의 원형을 잘 통일시켜 놓으면 벌어지는 시간을 좀 더 멀리까지 연장할 수가 있습니다. 즉, 우리가 원칙대로 잘 살면 변질되는 시간을 좀 길게 잡을 수 있죠.nbspnbspnbsp그래서 정법이라는 것은 아주 심플해야 합니다. 아주 심플한 그것만 지키고, 나머지는 상황에 따라 변하는 것도 각오를 해야 합니다. 그래야 원칙도 유지가 되고 현실 적용도 됩니다. 그러나 너무 많은 것을 다 정법이라고 정해버리면 현실에 적용이 안 되기 때문에 통째로 변질되어 버릴 수도 있습니다. 또 원칙을 너무 안 잡아 주면 말이 정토회이지 법사님에 따라서 완전히 다른 종파가 되고, 지역에 따라서 서로 완전히 다르게 되어 버릴 수 있습니다. 그런데서 원칙도 지키고 현실 적용도 유연하게 해야 하는 것입니다.nbspnbsp원칙을 지킨다는 것을 너무 강조하게 되면, 굉장히 경직되고 대중의 요구를 무시하게 되고, 대중을 계속 고쳐야 할 대상으로 보게 됩니다. 그렇다고 대중의 요구를 너무 받아들이다 보면 원칙이 없어져 버리고 혼란스러워지게 됩니다. 그래서 원칙을 지키면서도 대중의 요구를 늘 유연하게 수용하는 이것이 ‘중도’입니다. 중도는 모든 부분에 적용이 됩니다.nbspnbsp원칙을 잘 지킬수록 훨씬 유연하게 적용이 되고, 원칙이 안 잡힐수록 원칙을 너무 경직되게 강요하거나 원칙없이 혼란스럽게 진행이 됩니다. 정토회 대중들을 가만히 지켜보면 ‘이래야 된다’, ‘저래야 된다’ 너무 강하게 적용해서 대중성을 잃어가고 있다고 말할 수 있어요. 분별심을 버리는 것이 수행인데, 원칙을 칼 같이 드리밀면서 분별심 덩어리가 되어 자꾸 부딪히는 것입니다. 중도란 이렇게 말한다고 되는 것은 아니예요. 중도는 원칙에 대한 이해와 현실에서의 여러 시행착오를 거듭하면서 조율되어 가는 것이여서 결국 시간이 요하고 연수가 필요한 것입니다. 처음에는 100으로 벌어졌던 것이 한번 연수하면 70으로 좁혀지고, 또 현실에 적용하면 갈등을 일으키다가 다시한번 중심을 잡으면 이번에는 50, 30, 20으로 차이가 좁혀져 나가면서 중도에 근접해 나가게 됩니다.nbspnbspnbsp이쪽 저쪽 치우침의 원인은 자기의 욕망에 있습니다. 일이 수행이 되는 이유는 열심히 일하다 보면 자꾸 치우치게 되는데, 그 치우치는 것을 가지고 자기를 보면서 ‘아, 내가 지금 욕망을 갖고 대응을 하고 있구나’ 이것을 자각하게 되기 때문입니다. 그렇게 해서 욕망으로부터 자유로워지는 것이거든요.nbspnbsp가족이 협조하지 않는 문제도 마찬가지입니다. 일하다 보면 가족 중에 협조하지 않는 사람이 있죠. 가족과 화합하려니 정토회를 그만둬야 하고, 정토회 활동을 하려고 하니 가족과 갈등이 생깁니다. 이럴 때 ‘나보고 어떡하란 말이냐’ 하는데, 이것도 자기 속에 욕망을 기준으로 생각하기 때문에 일어나는 현상입니다. 이 때 자기의 욕망이 작용하는 것을 알아차리고 내려놓으면 가족이 그렇게 반대하는 것도 이해가 됩니다. 남편 입장에서는 정토회 일하라고 결혼한 것이 아니니까요. 그렇다고 남편이 하자고 하는 대로 살면 내 인생이 없어지잖아요. 그러나 치우치지 않으면 나는 내 인생을 살고도 가족들의 서운함도 받아들여서 ‘죄송합니다’ 하면서 부딪히지 않고 수용할 수 있게 됩니다. 그러나 내가 이 길이 바르다고 생각한다면 또한 내 갈 길을 가는 중심도 분명히 있어야 됩니다. 이 모든 것이 다 수행입니다.nbspnbsp그래서 오늘은 업무든 개인 얘기든 무엇이든지 자기 속에서 번뇌가 되거나 의문이 되는 것들을 편안하게 얘기해 보세요.”nbsp이렇게 여는 말씀을 해주신 후 수련생들의 질문을 받기 시작했습니다. 먼저 세계 100회 강연을 마치고 몸이 아프고 다시 활동을 못하게 될까봐 불안했는데 귀의하는 것과 의지하는 것의 차이가 무엇인지 묻는 분, 몇 번 주의를 주었지만 사적으로 모임을 계속 여는 사람이 있어서 어떻게 해야 할지 묻는 분, 재정 형편이 열악해서 법당 공간을 임대해줘서 수익을 취해도 괜찮은지 묻는 분, 법회에 나오는 사람은 많은데 정작 법당을 책임질 사람이 없어 고민인 분 등 총 4명이 스님께 질문을 했습니다.nbspnbsp그 중에서 첫 번째 질문 내용과 스님의 답변을 소개해 드리겠습니다.nbspnbsp“세계 100회 강연을 하면서 보람도 컸지만 제 안에서 화가 폭발한 적이 몇 번 있었어요. 100회 강연 끝나고 나서 맨붕 상태가 오더라구요. 그래서 휴가를 내고 아버지가 위독해서 한국에 나와 있었는데요. 몸이 아플 때 첫 번째 드는 마음이 ‘이러다가 정토회 활동 못하게 되겠다’ 하는 불안함입니다. 정토회 활동을 못하게 될 수도 있다는 불안감이 정토회 활동에 대한 집착인 것인지, 승가에 대해 귀의한 마음에서 오는 것인지 모르겠는데요. 어떻게 초발심으로 돌아가서 일을 할 수 있을까요? 당장 돌아가서 명상수련 준비도 해야 하거든요.”nbspnbsp스님께서는 이렇게 답변해 주셨습니다.nbspnbsp“결혼 생활은 두 가지 경우가 있어요. 하나는 결혼을 했으니까 마지못해 사는 경우입니다. 애를 낳았으니까 살아야 되고, 시부모님과 남편 눈치보고 살아야 되는 경우입니다. 그렇게 행복하지 않지만 그냥 사는 경우가 많이 있죠. 이것은 주체적인 자기 인생이라고 말할 수가 없습니다. 그냥 환경이 주어진 대로 바람에 부는 낙엽처럼 사는 것이지요.nbspnbsp이런 부정적인 면이 있는 반면에 또 달리 살펴보면, 우리는 자기가 일어나는 생각대로 다 행동했으면 결혼생활을 끝까지 하는 사람이 거의 없을 거예요. 오늘은 도저히 못 살겠다 했지만, 내일 갑자기 시어머니가 아파서 도와주다보면 한 고비를 넘어가고, 아이 키우다보니 또 한 고비를 넘어가고 그렇거든요. 우리 인생이라는 것 자체가 이렇습니다. 우리의 생각은 늘 일시적으로 일어났다가 사라지고 하는데, 주위에 주어진 조건들이 나를 살아가게 하는데 중요한 역할을 하기도 합니다. 우리는 이렇게 환경에 영향을 받는 존재입니다. 영향을 받는 존재라는 것을 자각하지 못하면 정말 노예처럼 사는 것이 되지만, 우리는 영향을 받는 존재라는 것을 알기에 그 영향으로부터 자유로워지는 길이 열리는 것입니다.nbspnbsp또 반대로 내가 주인으로 산다는 것을 환경에 영향을 안 받고 내 마음대로 사는 것으로 오해하면 이것 역시 잘못된 생각입니다. 세상은 내 뜻대로 안됩니다. 우리가 아무리 날고 기어봐야 정해진 울타리 안에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환경에 영향을 받는 존재라는 것과 자각을 하면 이 영향으로부터 좀 더 자유로운 존재가 될 수 있다는 것, 이 두 가지를 동시에 봐야 합니다. 자유로운 존재가 된다는 것을 영향 안 받는 존재가 되는 것으로 자꾸 오해를 하는데, 영향을 받지만 그 속박으로부터 자유로워질 수 있다는 뜻입니다. 영향을 받는 것이 주위와 종속적 관계라면 이것을 자각함으로 해서 주어진 환경을 자신이 주체적으로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자각하든 안하든 남이 보면 똑같아요. 그러나 하나는 노예처럼 속박되어 있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자신이 능동적으로 수용해서 나가기 때문에 내면의 세계가 자유로운 상태에 있습니다.nbspnbspnbsp지금 질문자는 근본적으로는 이렇습니다. 정토회 문제도 아니고 결혼 생활 문제도 아니고 부모 문제도 아니고, 질문자는 지금 심리적 불안 증세가 있습니다. 감정 기복이 있어서 한번은 이렇게 갔다가 한번은 저렇게 갔다가 극단적으로 치우치고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첫째, ‘아, 나는 다른 사람보다 감정 기복이 조금 심하다’ 이것을 자기가 자각을 하고 있어야 합니다. 자각하고 있지 못하면 감정기복이 늘 널뛰기를 하게 되는데, 이것은 누구의 문제도 아니고 나의 까르마의 문제라고 자각하고 있으면 감정에 놀아나지 않게 되고 이것을 지켜볼 수 있게 됩니다. ‘너 또 감정이 증폭되어서 일어나네’ 하면서 가만히 자신의 상태를 보고 있으면 조금씩 감정 기복이 낮아지면서 다시 정상으로 돌아옵니다. 부처님의 가르침으로는 이렇게 ‘알아차림’을 통해서 치료할 수 있고, 현대 의학에서는 약물 투여를 통해 증폭을 가라앉힐 수 있습니다. 증폭이 가라앉으면 지켜보는 것도 용이해지죠.nbspnbsp그래서 이런 경우는 대부분 귀의가 안 되고 의지가 되기 쉽습니다. 정토회에 귀의가 되었다고 한다면, 내가 내 일처럼 최선을 다하되 내가 능력이 안 되어서 정토회에 아무런 기여를 못해도 불편하지 않습니다. 정토회에서는 자기가 할 수 있으면 하면 되고, 못하게 되면 안 해도 괜찮아요. 몸이 아프면 이곳에서 약 먹고 쉬어도 되고요. 몸이 더 아프면 그냥 이곳에서 요양만 해도 되고요. 이런 믿음이 아직 부족한 겁니다. 이것은 자기 생각을 내려놓은 것이 아니라 아직도 자기 생각으로 하고 있는 것입니다.nbspnbsp초발심으로 돌아간다고 할 때도 그 초발심이 정말 깨달아서 생긴 것이냐, 아니면 자기가 그냥 좋아서 생긴 것이냐 하는 문제죠. 필이 딱 꽂혀서 좋아서 생긴 초발심은 시간이 흘러가면 약화되거나 반대로 뒤집어지는 현상이 있습니다. 그러나 딱 자각을 해서 일어난 초발심은 시간이 흐르면 흐를수록 시행착오를 거듭하면서 마음이 더욱더 단단해지는 쪽으로 갑니다.nbspnbsp첫째는 자신의 심리 불안에 대한 치유를 명심하고 있는 것이 필요하고요. 이것 때문에 스님이 아무리 안심하라고 얘기해도 심리 불안이 일어나면 스님의 말이 온데 간데 없어져 버리거든요. 그러나 믿음이라는 것은 여기에 몸을 탁 맡기는 것입니다. 내가 아프면 ‘나를 보살펴 줄거냐’ 이런 생각은 할 필요가 없어요. 수행적 관점이 딱 잡히면 일이 많으면 내가 열심히 하고, 일이 적으면 여유 있게 놀고, 환경에 따라서 바쁘면 빨리 가고 여유가 있으면 천천히 가고 이렇게 형편에 따라서 물 흐르듯이 살 수 있습니다. 그런데 자기 욕망을 움켜쥐고 일을 하게 되면 정토회에서 엄청나게 일을 많이 하고 나중에 ‘나는 희생되었다’고 서운해 하는 문제가 발생합니다. 그러나 자기 공부만 딱 되어 있으면 정토회는 아주 살기 좋아요.nbspnbsp모든 것을 다 그만두고 자기 공부만 한다, 이건 수행과는 아주 거리가 먼 얘기입니다. 다만 ‘내가 지금 심리 불안 상태가 심하니까 조금 휴식 시간이 필요합니다’ 이건 괜찮습니다. 그만두려고 했는데 일이 있어서 한다는 것은 일에 대한 집착이고, 내 수행이 안 되었기 때문에 일을 그만두겠다 하는 것도 전혀 수행적 관점에 안 맞는 얘기가 됩니다. 질문자가 뉴욕에 있어서 명상수련도 준비하고 하면 좋은 일이예요. 그러나, 질문자가 없어도 우리는 명상 수련을 할 겁니다. 200명 진행할 것을 150명만 받아서 할 거고, 매끄럽게 진행할 것을 조금 불편하게 할 겁니다. 이런 차이 밖에 없고 지나놓고 보면 큰 차이가 없습니다. 있으면 되고 없으면 안 되고 이런 개념은 아닙니다. 있으면 좋지만 없어도 괜찮습니다.nbspnbsp제가 ‘너가 없어도 해는 뜬다’ 이런 얘기를 하는 이유는 질문자가 필요 없다는 얘기가 아니라 너무 일에 집착하지 말라는 얘기입니다. 또 여러분들 한명 한명이 힘을 보태주기 때문에 지금 일이 이뤄지는 것이거든요. 그래서 여러분 한 사람 한 사람은 또한 매우 소중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너가 없어도 해는 뜬다 이런 얘기입니다.nbspnbspnbsp부처님이 안 돌아가셨으면 불교가 더 발전했을까요? 부처님이 살아계실 때는 살아계셨기 때문에 그 누구도 할 수 없는 일을 하셨고, 그러나 부처님이 돌아가셨기 때문에 더욱더 불법이 확산이 된 것입니다. 부처님이 안 돌아가셨으면 부처님이 한분 밖에 없었을 텐데, 부처님이 돌아가심으로 해서 오백 아라한이 오백 부처의 역할을 한 것입니다. 부처님이 전 세계를 다닐 수 없잖아요. 그러나 오백명은 다 역할분담을 할 수 있잖아요. 초기에 오백명을 만드는 것은 부처님이 아니면 불가능했습니다. 그러나 확산은 부처님이 계속 계셨다면 오히려 더 어려웠을 겁니다. 부처님이 돌아가셨기 때문에 나머지가 다 모자이크 붓다처럼 협력이 되어서 인도 전역으로 확산이 된 것입니다.nbspnbsp여러분들 한 사람 한 사람이 있으면 좀 잘 되고, 없으면 좀 부족할 뿐이지, 광명이 거기로부터 나온 것은 아니거든요. 그러나 스님이 아무리 잘해도 여러분들이 없으면 해외의 일을 할 수가 없어요. 그렇다고 여러분들이 하는 일이라고 생각하면 안돼요. 여러분들이 하는 일이라고 생각하면 쉽게 지치거나 과대망상을 하는 문제가 생깁니다. 항상 여기서 나가는 빛을 받아서 여러분들이 일을 하기 때문에 걱정할 필요가 없어요. 그냥 열심히만 하면 돼요. 문제가 생기면 보고를 하면 돼요. 여기서 의논해서 지침을 알려줄테니 그대로 해보면 되지 너무 혼자서 머리 싸 메고 죽기 살기로 고민 안 해도 돼요. 갈등이 생기면 문의하면 돼요.nbspnbsp그런데 여러분들은 자기가 한다고 생각하고 자기 머리로 문제를 풀려고 생각하니까 쉽게 지치고 머리가 아픈 겁니다. 이것을 가볍게 받아들여야 해요. 엄격하게 말하면 부처님이 태양이라면 우리는 그냥 달이예요. 빛이 반사되어서 투여하는 역할을 하는 것이지 우리가 발광체는 아니거든요. 물론 여러분들은 스스로 발광체가 되기 위한 정진을 끊임없이 해야 되지만요. 이 말의 뜻은 너무 어렵게 생각하지 말고 편안하게 해도 된다는 겁니다. nbspnbspnbspnbsp질문자가 지금까지 기여한 것만 갖고도 공덕이 많으므로 정토회 오면 밥도 먹여주고 재워 줍니다. 여기가 그렇게 의리 없는 집단이 아닙니다. 다만 여기서 소란을 피우면 안 됩니다. 아무리 경력이 많아도 여기 와서 자기 성질대로 하려고 하면 안 됩니다. nbspnbspnbsp그래서 수행적 관점을 딱 지켜야 합니다. 수행적 관점은 법문을 많이 안 들어도 우리가 매일 아침마다 읽는 수행문에 있어요. 그런데 늘 읽는 것하고 실제로 자신이 그 관점을 딱 유지하는 것과는 전혀 다른 것 같아요. 수행문을 딱 간직하고 있으면 불안한 심리도 안정시킬 수 있습니다. 그런데 세속적으로 의지처를 삼으면 나중에 실망하게 됩니다. 그러나 수행적으로 의지를 하게 되면 이런 불안한 마음을 안 가져도 됩니다. 놀아도 노는 것을 편안하게 얘기하게 되고, ‘아이고 스님, 휴가 좀 주십시오’ 이렇게 가볍게 얘기할 수 있습니다.nbspnbsp그런데 수행적 관점이 안 잡히면 휴가 받고 노는 것이 불안해집니다. 다른 사람은 다 일하는데 나만 논다고 생각하거든요. 쉬고 일하자, 밥먹고 일하자고 할 때는 쉬는 게 일이고, 밥 먹는 게 일인 것처럼 지금은 휴식하는 것이 일이고 수행입니다. 아픈 몸으로 계속 일하다 몸을 버려서 병이 나면 아무 것도 못하잖아요. 아직 20년, 30년 더 정토회에서 봉사할 수 있는데 1,2년 잘하려다가 병들어 버리면 비효율적이잖아요. 이런 관점을 가지고 편안하게 접근을 하면 좋겠습니다.”nbsp스님께서 이렇게 편안하게 임할 것을 일러주시니 질문자도 편안한 표정을 지으며 자리에 앉았습니다. 어떤 상황에 놓이더라도 수행적 관점을 갖는 것이 중요함을 다시 한 번 되새길 수 있었습니다.nbspnbsp스님께서는 질문자가 자리에 앉고 나서도 우리가 생각하는 이 믿음의 불안정성에 대해 구체적으로 더 설명해 주셨습니다.nbspnbsp“우리의 믿음이라는 것은 전제 조건 하에 믿음이거든요. 어떻게 해주면 내가 너를 믿는다, 이런 전제 하에 있는 믿음이기 때문에 이런 믿음은 굉장히 불안정한 믿음입니다. 그래서 우리의 행복은 그 행복이 높으면 불행도 깊게 같이 나타납니다. ‘아이가 내 행복의 전부이다’ 라고 하는 사람은 아이에게 집착하기 때문에 아이가 죽으면 정신이 나가버리잖아요. 그래서 저는 ‘아이가 제 인생의 전부입니다’ 라고 말하면 ‘너 핵폭탄 가지고 있구나’ 이렇게 말하거든요. nbspnbspnbsp그래서 스님에 대해서도 지나치게 환상을 갖고 접근을 하면 제가 뒤집어 놓는 이유도 그 사람을 위해서입니다. 스님에 대한 소문은 어떻게 들리고 전해질지 모르잖아요. 누구든지 음해하려고 하면 무슨 일이든 생길 수도 있잖아요. 그럴 때 이것을 여여하게 받아들이는 것이 공부이고, 이것을 다시 한 번 확인해보는 것이 공부인데 ‘어떻게 그럴 수가 있냐?’ 획가닥 해버리잖아요.nbspnbsp이 때 이 좋아함이라는 것은 불안정성을 내포하고 있기 때문에 상대가 나를 좋아하는 것에 놀아나면 안 된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원한이 됩니다. 불안정성에서 좋아하기 때문에 ‘자기 생각에 안 맞으면 다시 원수가 되겠구나’ 미리 보고 있어야 합니다. 원수가 안 되면 다행이지만, 원수가 되더라도 나를 좋아해준 과보이니까 미워하는 과보를 그냥 받아들여야 합니다. 그래야 자기가 자기를 보호해 나갈 수가 있습니다.nbspnbsp그래서 사람들이 스님을 막 좋아하면 저는 제 나름대로 방어를 칩니다. 또한 그 사람들을 보호하기도 해야 합니다. 나에 대한 환상이 그 사람들을 불행에 빠트리는 것을 막아야 되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나도 또 나를 보호해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저도 가을 바람이 불어서 낙엽이 공중에 올라가니까 잘 올라가는 줄 알다가 바람이 멈추면 개굴창에 떨어지듯이 그 거품에 놀아날 수가 있거든요. 누구도 나를 보호해 줄 수가 없어요. 그래서 자기를 보호하는 것과 남을 보호하는 것이 사실 둘이 아니예요. 내가 희생해서 남을 보호해준다는 것도 아니고, 내 이익을 위해서 남을 희생시킨다는 것도 아니예요. 결국은 남을 배려하는 것이 나를 가장 잘 보호하는 방법입니다. 이런 공부까지 가려면 시간이 좀 많이 걸립니다.nbspnbsp세상에는 행복이 있고, 행복이 있으면 반드시 불행이 따르는데, 이 행복과 불행이 윤회하는 것이 이 세상입니다. 열반이라는 것은 이 고와 락이 사라지는 것입니다. 이 고락의 널뛰기로부터 잔잔해지는 것이 열반이기 때문에 열반은 들뜨는 행복이 아닙니다. 그런데 우리는 열반을 이 들뜨는 행복과 혼돈하기 때문에 늘 윤회에서 못 벗어나게 되는 겁니다.” nbspnbsp다소 어렵게 들릴 수도 있는 법문이었지만 스님의 쉽고 명쾌한 설명에 모두들 고개를 끄덕였습니다. 스님을 믿고 따르는 사람들에게도 혹시나 그 믿음이 불안정성에 기초하고 있을 경우 그들에게 닥쳐올 괴로움을 헤아리셔서 미리 방책을 쓰신다는 말씀에 스님의 대중들에 대한 깊은 애정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nbspnbsp이어서 세명의 질문이 더 이어졌는데, 주로 정토회에서 회원들 사이에 사적인 이익을 추구하는 모임을 자꾸 만들려고 할 경우 어떻게 해야 하는지에 대한 대화가 오갔고, 스님께서는 이에 대한 명확한 지침을 일러주셨습니다.nbspnbsp질문에 대한 답변을 모두 마치니 밤10시가 넘었습니다. 2시간 30분이 넘게 진행되었지만 모두 스님의 말씀에 몰입이 된 분위기였습니다. 모두들 열강을 해주신 스님께 큰 박수를 보냈습니다.nbspnbspnbsp스님께서는 “너무 늦었으니 오늘은 여기까지만 하자”고 하신 후 “더 궁금한 내용은 내일 계속해서 이야기를 이어나가자”고 여지를 남겨 두시고 오늘 즉문즉설 강연을 마치셨습니다.nbspnbsp내일은 계속해서 해외 총무단 수련 2일째 일정이 계속될 예정입니다. 또 소식 전해드리겠습니다. nbsp

2015.04.24. 28,606 읽음 댓글 15개

2015.4.22. 해외정토회 활동가 경주남산순례

nbsp nbsp 오늘은 해외정토행자들이 경주 남산순례가 있는 날입니다. 원래는 월요일에 하려고 했으나 비가 오는 바람에 오늘 남산순례를 하기로 일정을 조정했는데, 다행히 아침에 일어나보니 날씨가 아주 맑았습니다. nbsp nbsp 경주는 동쪽은 명월산, 서쪽은 선도산, 남쪽은 남산, 북쪽은 소금강산, 중간에 낭산 이렇게 5개의 산으로 둘러싸여 있습니다. 이중 거북 형상을 하고 있는 남산은 민중불교의 대표적인 장소로 민중들의 염원이 담긴 불상과 탑, 절이 온 산과 골짜기에 자리 잡고 있습니다. 유적이 있는 골짜기가 43개, 불상이 118체, 탑 96기 등 700여점의 문화유적이 남아있으며 2000년 12월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되어 그 가치를 보호받고 있습니다. nbsp nbsp nbsp 새벽예불과 기도를 마치고 아침고양을 한 후 7시 30분, 두북수련원을 나선 스님과 수련참가자들은 배리 삼존불입상에서 출발하여 삼릉골 코스를 따라 금오산 정상에 오른 뒤 용장골 코스를 따라 하산하였습니다. nbsp nbsp 스님께서는 남산을 답사하시며 가는 곳마다 상세하고 풍부한 설명으로 문화유적 답사의 참맛을 느끼게 해주셨습니다. nbsp nbsp 일명 냉골로 불리는 삼릉골로 들어서자 유동 인원을 헤아리는 기계가 설치되어 있었습니다. 삼릉계곡은 산 아래 중생의 세계에서, 산으로 올라갈수록 관세음보살에서 아미타부처까지 모시고 있어 전체 골짜기가 마치 하나의 절과 같이 불상과 탑들이 구성되어 있다고 합니다. 오늘 만난 열 다섯 분이 넘는 부처님께 스님과 대중들은 가는 곳곳에서 삼배를 드리고 염불을 하였습니다. nbsp nbsp 먼저 배리 삼존불을 친견하고 삼배를 올렸습니다. 배리 삼존불은 친근하고 투박한 모습을 하고 있는 불상으로 원래는 지붕이 없었으나 불상을 보존하기 위해 설치한 지붕이 오히려 불상의 느낌을 해치는 듯 했습니다. nbsp nbsp 삼릉골에 들어서 처음 방문한 마애관음보살상에서 먼저 관세음보살을 부른 후 “입술이 붉은 아름다운 보살로 왼손에는 중생구제를 위한 감로수병을, 오른손에는 본래 부처임을 상징하는 연꽃을 들고 있으며 입술부위는 붉게 되어 있습니다. 불상 뒤의 바위가 광배역할을 하며 정남향을 하고 있어 언제나 아름다운 자태를 드러내고 있는 불상”이라는 스님의 설명을 들었습니다. nbsp nbsp 설명이 없었다면 그냥 돌에 조각된 불상이라고만 생각했을텐데, 설명을 들으니 관세음보살님의 모습이 더 경이로워 보입니다. nbsp nbsp 마애관음보살상에서 내려와 냉골 석조여래좌상에 대한 설명을 들었습니다. “원래는 계곡에 엎어져 묻혀 있던 것을 발견한 것으로 머리와 손발이 파괴되어 있었고, 가사에 매듭이 2개 있는 것으로 미루어 원효상이나 미륵 또는 지장보살상으로 추정되고 있다”고 설명해주셨습니다. nbsp nbsp 스님께서는 경주에서 고등학교를 다니던 시절 한때 이 불상의 머리 찾기 운동을 하기도 하셨다고 합니다. nbsp nbsp 스님께서는 계속해서 여기 불상의 머리찾기를 그만둔 사연을 말씀해주셨습니다. “머리는 불교적 가치, 즉 불법을 상징합니다. 두 손은 자비의 행을 의미합니다. 불상이 머리와 두 손발이 없다는 것은 현재의 한국불교가 불교라는 몸뚱이는 있지만 머리 같은 불법은 없고 손발 같은 실천도 없다는 것을 상징적으로 보여주고 있습니다. nbsp nbsp 없어진 불상의 머리를 찾기보다는 머리와 손발 역할을 할 수 있는 불교를 만들자는 발원을 한 것입니다. 이런 연유로 바른불교를 사회속에서 실천하는 정토회가 창립된 것이었습니다.” nbsp nbsp 안타까운 마음을 뒤로 한 채 다시 산을 올랐습니다. 남산을 오르는 길 곳곳에는 연달래와 수달래가 활짝 피어 있었고, 그 사이사이에 이제 그 수명을 다해가는 진달래가 지고 있었습니다. nbsp nbsp 다들 산을 오르면서 연달래, 진달래, 수달래의 차이를 살펴가면서 어떤 꽃인지, 어떻게 차이가 있는지 서로 이야기 해보기도 했습니다. 연달래는 진달래, 수달래에 비해 꽃이 크고 화려하고 색깔이 옅은 편이었습니다. nbsp nbsp 가파른 길을 조금 오르다 보니 선각으로 표현된 여섯 분의 부처님이 바위에 새겨져 있었습니다. 불상이 두 개의 바위 면에 새겨져 있는 선각육존불은 뛰어난 회화를 보는 듯 하였습니다. nbsp nbsp 바위속에 신이 있다고 믿었던 신라인들은 불교를 받아들인 이후에는 바위속에 부처님이 계신다고 생각하고 그 바위 속에 계신 부처님이 형상을 드러낸다는 믿음을 가지고 조각을 하였기 때문에 자연상태를 최대한 유지하면서 불상을 조각했다고 합니다. nbsp 이 부분은 불국사와 석굴암과는 다른, 남산만의 큰 특징이기도 합니다. 그런데 몇 년전부터 기후변화로 바위에 검은 이끼가 끼면서 선으로 표현된 부처님의 형상을 알아보기가 점점 어려워지고 있다고 안타까워 하셨습니다. nbsp nbsp 여기부터는 좀 더 가파른 길이 이어지기 때문에 연세가 드셨거나 몸이 좋지 않은 분은 내려가고 다른 분들은 다시 다음 유적지를 향해 움직였습니다. 올라가는 길은 선각육존불이 새겨진 바위 위를 지나가기 때문에 바위위에 빗길을 내고 구멍을 뚫어 나무를 세워 보호막을 친 흔적을 볼수 있었는데, 이는 신라인들의 지극한 불심을 엿볼 수 있었습니다. nbsp nbsp 연달래가 만발한 가파른 산길을 올라가자 두툼한 입술을 가져 선각여래좌상이 새겨진 바위가 나타났습니다. 신라시대 예술품에 비해 섬세함이 떨어져 고려시대의 것으로 추정되고 있는데, 이 또한 검은 이끼로 하단의 형체가 흐려지고 있었습니다. nbsp nbsp 다음으로 불상의 오른쪽 팔짱을 끼고 부처님과 유일하게 데이트 할 수 있는 석조여래좌상이 나타났지만, 근래에 이 불상을 보호하기 위해 보호막을 쳐놓아서 아쉽게도 팔짱을 껴보지는 못했습니다. nbsp nbsp 다시 가파른 길을 오르니 상선암에 이르렀습니다. 이곳에서 물 한 모금으로 목을 축이고 다시 길을 오르니 경주 시내가 한 눈에 펼쳐졌습니다. nbsp nbsp 스님께서는 태종무열왕릉, 김유신장군묘, 박혁거세가 태어난 나정, 경주 최부자집 등 경주시내를 지도를 보듯 상세히 가리키시며 이에 얽힌 이야기들을 해주셔서 한 권의 역사책을 읽은 듯 했습니다. nbsp nbsp 이 바위에 빌면 아들을 낳는다는 상사바위를 지나고 동쪽 저 멀리 거대한 자연 암반의 벽면에 새겨진 상선암 마애대좌불이 보였습니다. nbsp nbsp 스님께서는 이 불상이 “마치 ‘너 왔냐?’라고 하는 듯 바위속에서 얼굴을 삐죽히 내밀고 있다”고 하셨습니다. 몸은 선으로 음각되어 있고 얼굴과 어깨만 살짝 튀어나온 양각으로 되어 부처님께서 바위에서 나오시는 듯 하여 선각육존불에 이어 신라인들의 산신신앙을 다시 볼 수 있었습니다. nbsp nbsp 마애대좌불을 바라보며 참여하신 분들은 모두 지극한 마음을 모아 이곳에서 사시예불을 올리고 난 후 다시 발길을 옮기니 해발 468미터의 금오산 정상을 나타내는 표식이 나타났습니다. nbsp nbsp 남산의 정상에 왔다는 표시로 지부별로 스님과 사진을 찍었고, 또 순례 중간부터 우리 팀에 섞여서 왔던 등산객 3분도 스님과 함께 사진을 찍고 기뻐했습니다. nbsp nbsp 정상을 지나 용장골 쪽으로 하산을 하는 중에 용장사지로 꺾어지는 곳에서 밥을 먹자고 자리를 펴기 시작했는데, 일부에서 너무 이르다고 좀 더 경치 좋은 계곡에서 먹자고 해서 다시 자리를 접고 내려가기 시작했습니다. nbsp nbsp 바위길을 내려가니 용장사 삼층석탑이 나타났습니다. 이곳에서 석가모니불을 정근하면서 탑돌이를 한 후 스님께서는 “이 석탑은 산의 중턱에 있지만, 아래에서 바라보면 산을 기단으로 산의 정상에 자리하고 있는 모습으로 보입니다. nbsp nbsp 용장사의 법당터보다 높은 곳에 세워진 이 탑은 계곡 아래에서 보면 수미산 꼭대기에 하늘과 맞닿은 듯 탑이 서 있는 모습”이라며 일반적인 절의 구조와는 다르게 불상이 아래쪽 앞에, 탑이 위쪽 뒤에 위치해 있다고 설명해 주셨습니다. nbsp nbsp 다시 암벽등반을 하듯 밧줄을 잡고 내려가는 어려운 코스로 내려오니 삼륜의 대좌에 머리가 없는 석상이 앉아있는 독특한 형태였습니다. nbsp nbsp 목이 없는 이 불상을 보니 스님께서 머리찾기 운동을 벌였던 냉골 석조여래좌상이 생각나 숙연한 마음이 들었습니다. nbsp 그리고 그 옆 바위면에는 이목구비가 뚜렷한 마애여래불상이 조각되어 있었습니다. nbsp nbsp 이제 남산순례의 막바지에 이르렀고 내려가는 길만 남았습니다. 대나무밭을 지나 스님의 끝이 없는 연달래 찬사를 들으며 걸어가니 중간에서 내려간 분들이 설잠교에서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nbsp nbsp 비록 몸이 좋지 않아 함께 완주를 한 것은 아니지만, 다시 마음을 내어 올라오신 보살님들을 뵈니 반가움이 더한 것 같았습니다. nbsp nbsp 다시 조금 내려가서 시원한 계곡물이 흐르는 바위 위에서 몇몇 보살님들이 준비해 주신 김밥을 여기저기 계곡을 바라보며 맛있게 먹었습니다. nbsp nbsp 원래 일정은 다시 남산중 고위산을 올라 새갓골로 내려오려고 했으나 다들 지친듯한 표정에 스님께서는 대중을 이끌고 용장골로 하산하셨습니다. nbsp nbsp 조금 일찍 하산을 했기 때문에 목욕을 하고 수련원에서 문경으로 가기 위한 짐정리와 휴식을 취한 후 두북에서의 마지막 공양을 들었습니다. nbsp nbsp 스님께서는 울산에 계시는 지역유지 몇몇분들이 통일운동에 대한 스님의 조언을 듣겠다고 막무가내로 찾아와서 산행을 하신 후 휴식도 하지 못하고 손님들과 1시간 이상 면담을 하셨습니다. nbsp 해외정토회 활동가들은 저녁공양 후 모두 문경으로 이동하였고, 스님께서는 오늘이 아니면 엄나무 순이 너무 자라 먹을 수도 없기 때문에 신규 법사님 4분과 함께 다시 엄나무 가지를 자르고 순을 따는 작업을 했습니다. 날이 어두워지기 전에 스님께서 먼저 엄나무를 자르고 순을 따는 작업을 전기불을 켜고 밤에도 계속 작업을 했습니다. nbsp nbsp 오늘도 이렇게 하루를 마무리한 스님께서는 내일 오전 8시에 문경정토수련원에서 진행되는 해외정토회 지도자 수련 입재식에 참석해서 입재법문을 하실 예정입니다.

2015.04.23. 19,390 읽음 댓글 12개

2015.4.21. 청송 주왕산 산행, 울산 KBS강연

nbsp nbsp 아침 4시 30분, 스님께서는 해외정토회 활동가들과 함께 새벽예불을 올리며 평소보다 30분 일찍 하루 일정을 시작하셨습니다. 원래는 5시가 기도시간이었으나, 오늘 일정을 조금 빨리 하기 위해 공양시간을 앞당겼는데, 도량석 도는 분이 착각을 해서 전체 시간을 앞당기는 바람에 모두들 잠이 깨버려서 기도시간도 앞당기게 되었습니다. 덕분에 약간 여유가 생기게 되었습니다. nbsp 아침공양 후 7시, 해외활동가들과 함께 주왕산 산행과 불국사 탐방을 위해 두북수련원을 출발하였습니다. 스님께서는 아마도 해외에 계신 분들이 주왕산을 가보지 못했을거라고 생각했는데, 의외로 가보신 분들이 몇 분 있었습니다. nbsp nbsp 경북 청송군에 위치한 주왕산은 주봉이 720m에 달하는 국립공원으로 산은 그리 높지 않으나 기암괴석과 석벽이 병풍처럼 둘러서고 수려한 계곡이 빚어내는 절경으로 유명하며, 당나라 말기 봉기를 했다가 실패한 주왕과 마장군의 전설이 곳곳에 배어있는 유서 깊은 산입니다. nbsp nbsp 첫 방문지인 주왕산 대전사에 도착하자 입구에서 스님을 알아본 사찰 매표소 직원이 입장료 전액을 자신의 돈으로 보시해 주셨습니다. 대웅전 마당에 들어선 스님께서는 오른쪽 무릎을 땅에 붙이고 왼쪽 무릎은 세운 우슬착지의 자세로 부처님께 삼배를 올리셨고, 참가자들도 다들 우슬착지로 부처님께 삼배올렸습니다. nbsp nbsp 앞으로 넘어질 듯 기울어 치솟은 바위와 떡을 찌는 시루와 같이 생긴 시루봉 등 갖가지 모양의 기암괴석들이 병풍처럼 둘러싼 산길에는 진달래와 연달래, 수달래 등이 가는 봄을 장식하고 있었고 스님께서는 꽃들의 모양과 색깔의 차이를 자세히 설명하시며 오랜만에 방문한 해외 활동가들에게 조국의 산천에 봄꽃이 무르익었을 때 제대로 보여주지 못한 아쉬운 마음을 드러내셨습니다. nbsp nbsp nbsp 속세와 천상을 가른다는 용추협곡의 용추폭포를 지나니 오히려 평평한 산길이 이어졌습니다. 응달엔 아직도 진달래가 만발해 있었습니다. nbsp nbsp 절연폭포를 들러 주왕산에서 가장 크고 웅장한 규모의 용연폭포에서 단체촬영을 하고 진달래꽃 흐드러진 산길을 밟으며 주왕굴로 향하였습니다. nbsp nbsp nbsp 주왕굴은 ‘당나라의 주왕이 진나라의 회복을 꿈꾸며 반역을 일으키다 신라까지 ?겨와 은거하던 곳으로, 동굴 입구에 떨어지는 낙수를 마시다 당의 요청을 받은 신라왕의 명령으로 주왕을 추적해온 마장군에게 발각되어 최후를 맞았다’는 전설이 있습니다.nbsp nbsp 주왕산을 내려와서 1700년대 조선시대에 만들어진 주산지를 방문하였습니다. 김기덕 감독의 영화 ‘봄·여름·가을· 겨울, 그리고 봄’의 촬영지로 유명한 이곳은 저수지 가운데 능수버들과 왕버들이 물에 잠긴 채 자라 신비한 풍광을 이루고 있었습니다. 또, 저수지 주변에는 진달래들이 허트러지게 피어 사람들의 시선을 끌고 있었습니다. nbsp 주왕산에서 예정된 시간보다 많이 지체되어 2시 40분경에야 점심식사를 할 수 있었습니다. nbsp 점심식사 후 불국사로 이동하는 버스안에서는 올해 9월 뉴욕에서 개최될 명상수련과 행자대회와 관련된 내용들을 말씀하시며 참가자격요건이나 장소, 물품들이 구비되어 있는지등에 대해 함께 의논하셨습니다. nbsp nbsp 불국사에 도착한 스님께서는 불국사 방문이 단순한 관광이 아니라 역사유적에 대한 교육적 차원이라고 강조하시며 주왕산에서 시간을 많이 보내는 바람에 불국사 안내는 1시간여만에 핵심적인 내용만을 짚어가셨습니다. nbsp “불국사는 신라 경덕왕 10년에 신도인 김대성의 발의에 의해 창건된 사찰로 법화경에 근거한 석가모니불의 사바세계와 정토삼부경에 근거한 아미타불의 극락세계 및 화엄경에 근거한 비로자나불의 연화장세계를 형상화하여 통불교적 구성을 특징으로 하고 있습니다. nbsp nbsp 불국사 경내에 높게 솟은 석축과 양 옆의 대웅전, 극락전으로 통하는 계단에서 오른쪽은 청운교와 백운교를 올라가 자하문을 지나면 부처의 세계로 들어서고 왼쪽 연꽃이 음각된 연화교와 칠보교를 통해 안양문을 들어서면 아미타불의 극락세계로 가게 됩니다. nbsp 건물을 받치는 석축의 제일 아래는 자연 상태의 큰 돌과 작은 돌로 쌓아올렸고 위로는 작은 돌을 빼곡하게 쌓았는데 그 사이에 반듯한 기둥을 간격을 두고 박아놓았습니다. 이는 아래는 중생의 세계, 위는 부처의 세계로 이 두 세계를 보디사타바를 상징하는 기둥이 연결해주는 것입니다. 결국 정토세계는 모두가 완변할 필요가 없이, 각자의 자신의 능력을 모아서 하나의 부처님으로 만들어가 가는 모자이크 붓다를 보여주는 것입니다.” nbsp nbsp 현재 보수중으로 현존하는 세계 최고의 목판 인쇄물인 무구정광다라니경이 발견된 석가탑과 나무로 ?은 듯 정교하고 화려한 다보탑을 지나, 금강경의 설함이 없음을 의미하는 무설전, 천수천안 관세음보살을 모신 관음전, 비로자나불을 모신 비로전 등을 빠르게 훑으며 설명하시고 강연이 열리는 울산으로 향하셨습니다. nbsp 울산 강연장으로 가는 버스안에서 스님께서 들려주시는 농사 수련법, 정토농원의 구상 등으로 함께 즐거운 상상을 하며 울산 정토회 김용주 대표님께서 마련해주신 저녁을 먹고 강연장으로 향했습니다. 김용주 대표님은 ‘해외활동가들이 이렇게 한자리에 모이기 힘든데, 이런 자리를 마련해준 지도법사님께 감사드리고 참석해주신 해외활동가들을 환영한다’고 하셨습니다. 스님께서는 요즘 저녁을 드시지 않기 때문에 김용주 대표님과 바로 강연장으로 이동하셨습니다. nbsp nbsp 희망강연이 있는 울산 KBS홀은 6시부터 손님이 입장하여 객석이 조금씩 조용히 채워지기 시작했습니다. 40대 여자분들도 많았지만, 연세 많으신 분들이나 젊은 남녀들도 참석해 다양한 연령층이 함께 했습니다. 교복 입은 여학생이 혼자 찾아와 앞자리에 앉는 모습도 눈에 띄었습니다. 오늘 울산 강연은 언양, 화봉, 방어법당을 산하에 두고 있는 울산정토회에 계신 분들 약 90여명의 봉사자들이 준비해서 약 1650여명의 관중이 참석했습니다. 참여하신 분들은 사전영상을 보면서 ‘장미’ 노래를 불렀는데 신기하게도 서로 모르는 관객들이 박수를 치면서 하나가 되어 노래를 불렀습니다. 곧이어 스님이 환한 미소를 지으면서 들어오셨고 큰 환호와 박수가 터졌습니다. nbsp nbsp nbsp 스님은 함께 불렀던 노래처럼 꽃 이야기로 대중들의 긴장을 풀어주며 분위기를 편안하게 해주셨습니다. 그리고 친구에게 이야기하듯 편안하게 말하되 의문이 풀릴 때까지 질문하라는 당부말씀을 하시고 질문을 받기 시작하셨습니다. nbsp 질문하신 분은 모두 여덟 분입니다. 아이가 있는 이혼남과 교제하는 중인데 부모님께 어떻게 말씀드려야할지 모르겠다는 스물일곱 살의 아가씨, 스님의 말씀으로 인생이 굉장히 많이 바뀌었지만 과로할 정도로 수행에 집착하게 되어 AS 받고 싶다고 하신 분, 얼마 전 세상을 떠난 스물한 살의 딸이 생각나서 어떻게 살아야할지 모르겠다는 분, 기독교 이외의 종교들은 다 사이비라고 하신 목사님 말씀 때문에 혼란스러운 분, 자상하고 진실한 애인의 외적인 조건을 탐탁해하지 않는 어머니와 함께 오신 따님, 조울증 때문에 세 살 아이를 대하는 것이 많이 걱정되시는 분, 3년 전부터 혼자 불교공부를 하다가 마음을 보게 되어 좋았지만 앞으로 어떻게 공부할지를 물으시는 분, 부처님 같은 존재였던 어머님을 4년 전에 잃고 잠재되어 있던 희귀난치병을 앓게 된 분들입니다. nbsp nbsp 이 중에서 여섯 번째 질문자에게 하신 말씀을 옮겨보겠습니다. “반갑습니다. 저는 재발된 조울증으로 세살 아이에게 화를 참지 못해서, 저도 죄책감으로 너무 힘들고, 아이도 너무 힘들어합니다. 진정으로 아이를 위한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남편에게 결혼 전 제 병에 대해 말하지 못했습니다. 원래도 사이가 안 좋았는데, 지금 가정도 위태롭네요. 그리고 죄를 짓지는 않았지만 조울증이 정신병이라는 사실 때문에 남의 시선이 신경쓰여 매우 부끄럽습니다.” nbsp 스님께서는 “조울증이 왜 부끄러워요? 그렇다면 눈이 하나 없는 사람은 바깥에 갈 때 얼마나 부끄럽겠어요? 팔이 하나 없어 의수한 사람은 상대방이 악수하면서 ‘어, 의수네’ 그러겠지요. 그러나 몸이 불편한 거는 불편할 뿐이지 열등한 게 아닙니다. 눈치 볼 필요도 없어요. 다른 사람들에게도 ‘나는 조울증이다. 성격이 오락가락하니까 이해해 달라.’ 그러면 되지요. 그런데 아이한테 성질내는 건 문제입니다. 아이 감정은 엄마와 같이 파동이 일어나서 성장하면 자기보다 더 심한 조울증이 될 수 있어요. 육체적인 유전인자를 물려줘서 장애가 되는 것은 어쩔 수 없지만 엄마가 자식한테 조울증을 물려준다는 것은 부모의 문제입니다. nbsp 옛날에는 병인지 몰랐기 때문에 성질이 더럽다고 했는데, 현대에는 치료하면 되는 거예요. 팔이 부러지면 처음에는 치료를 해야 되고, 두번째는 불편을 덜기 위해 의수를 해야 되는 것처럼 마음의 병에도 치료가 필요합니다. 하지만 정상인처럼 목표를 세우고 완치에 조급하면 조울증이 더 심해집니다. 다른 사람이 100이라면 난 환자기 때문에 80밖에 안 된다고 하면 목표를 80에 두면 돼요. nbsp 얼마 전에 중국에서 아파트가 무너졌는데 3일 만에 아이를 품에 안은 죽은 엄마를 발견했는데 아이가 살았어요. 그럴 정도로 아이를 보호하는 마음을 강하게 가지면 한 개인으로는 병을 극복 못하지만 엄마는 극복할 수 있어요. nbsp nbsp 또 내가 유전인자를 잘못 가져서 아이가 장애를 가진 것처럼, 내가 병자이기 때문에 아이에게 전이되는 것은 어쩔 수 없습니다. 그래서 그걸 감수하고 어려운 삶을 사는 것을 받아들여야 합니다. 선택은 두가지입니다. 하나는 내 장애를 극복해서 아이에게 전이 안 되도록 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아무리 해도 안된다고 하면 죄책감을 가질 필요는 없고, 나도 앓았듯이 아이도 그걸 감수해야 합니다. 둘 중에 선택해서 가는 수 밖에 없습니다.” nbsp 그리고 이어서 말씀하셨습니다. “그런데, 인간의 정신작용은 이런 성질이 있다는 걸 알아야 합니다. 여러분들이 어떤 사람을 웃기려면 어떤 말을 해야 저 사람이 웃을까? 이런 것은 조금 알 수 있다는 건 그 사람이 어떻게 반응할 것인지 거의 예측가능하다는 겁니다. 그래서 어떤 결과를 내려면 이렇게 하면 된다는 것이 나옵니다. nbsp nbsp 여러분 개인이 ‘난 이렇게 생각하고, 이렇게 살고, 이렇게 가고자 한다’고 생각하지만 실제로 여러분은 자율권이 없습니다. 이미 어떤 상황에 부딪히면 어떻게 반응할지가 정해져 있다는 것입니다. nbsp 자율적인 것 같지만 실제 크게 보면 자율적이지 않습니다. 거의 정해진 패턴, 까르마, 즉 업식대로 움직입니다. 내가 어떤 걸 보고 좋아한다, 싫어한다고 느끼지만 사실 객관적으로 좋고 싫은 건 없습니다. 이 사람의 프로그램에서 이 업식에는 좋게 반응하게 되어 있고, 저 업식에는 싫게 반응하게 되어 있어 아무런 자율권이 없습니다. 거의 노예수준이예요. nbsp nbsp 네비게이션은 주소를 입력하면 길을 안내하도록 되어있습니다. 다른 길을 갈 때 금방 수용합니까? 아니면 처음과 똑같은 이야기를 계속 합니까? 네비게이션의 위대함은 화를 안 내고 똑같은 이야기를 계속한다는 것입니다. 수행자로서는 최고예요. 그런데 또 하나 문제가 뭡니까. 고집이 황소고집이예요. 절대로 꺾여지는 법 없이 상황이 변하든, 안 변하든 계속 똑같은 주장을 합니다. 여러분들의 정신구조도 이와 같습니다. 의식이 형성되고 길들여지면 그렇게만 보이고 다른 건 안보입니다. nbsp 그래서 운명이 정해져 있다고 합니다. 이 말은 부자나 가난한 사람이 되도록 운명이 정해져 있다거나, 내가 너하고 만나도록 운명이 정해져 있다 이런 뜻이 아닙니다. 이런 상황이 되면 이렇게 반응하도록 프로그래밍이 되어있다는 말입니다. 그래서 중생은 육도윤회하는 겁니다. 계속 쳇바퀴 돌듯이 돌고 돌게 되어 있습니다. nbsp nbsp 그런데, 상대가 이 말을 하면 내가 화를 내도록 되어 있구나라고 알면 다음엔 똑같은 행동을 해도 화를 안 낼 수 있어요. 어떤 상황에 처하면 나도 모르게 이렇게 반응하도록 되어있으니 ‘아 내가 이렇게 반응하구나’라고 아는 것입니다. 첫째, 자각하고 둘째, 다음에는 안해야지 하고 각오를 하면 바로 바뀌는게 아니라 1정도 바뀔 가능성이 열립니다. 그래서 인간의 운명이 정해져 있지 않다고 할 수 있습니다. 1의 뚫고 나갈 수 있는 활로가 있는데, 그 핵심적인 키는 반응의 법칙을 알아차릴 때 거기로부터 벗어나기 시작하는 시초가 됩니다. 알아차리지 못할 경우 지나고 보면 늘 프로그램대로 움직이는 존재가 됩니다. 자신을 알아차리면 그때부터 변화가 일어나기 시작합니다. 이것을 점점 키워나가면 까르마로부터 자유로워집니다. 이 법칙을 최초로 발견한 사람이 부처님입니다.”라며 우리는 까르마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지만, 내가 까르마로부터 속박 받고 있다는 것을 알아차림만으로도 그것을 개선할 여지를 가질 수 있다고 말씀해주셨습니다. nbsp nbsp “아이와 남편이 병원에 가보라고 할 때 ‘내가 왜?’하는 사람은 치유 불가능합니다. 그런사람 여기도 많아요. 그러나 질문자는 조울증이 심하긴 하지만 그래도 자각하고 있어요. 남편한테도 성질냈다가도 내 병 때문이라고 자각하고 있습니다. 되고 안되고 옳고 그르고가 아니라, 현재의 상태를 자각하는 것이 치유의 길로 가는 첫 출발입니다. 자각하고 있으면 거기에 휘말리는 것으로부터 조금씩 벗어날 길이 있습니다. 자기가 병이라는 것을 알았기 때문에 아이한테 전이가 된다는 것도 알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자기가 아무리 자기도 모르게 짜증이 올라오더라도 적어도 아이한테는 짜증을 내면 안됩니다. 이것은 엄마로서 할 일이 아닙니다. 열번 해봐도 안 된다면 차라리 다른 곳에 입양을 시키든지 고아원에 맡겨야 합니다. 내가 아이보고 싶은 게 중심이 아니고, 아이가 건강하게 사는 게 엄마의 진정한 사랑이기 때문에 어떻게든 병을 고치는 쪽으로 가야 합니다. 목숨을 걸고라도 바꿀래요? 아니면 아이를 고아원에 맡길래요?”라며 질문자가 아무리 짜증이 올라오더라도 아이한테는 절대 짜증을 내면 안된다고 말씀해주시니 질문자가 계속 고민되는 것들을 스님께 물었습니다. nbsp nbsp “스님 지금 치료 중인데, 병원에서는 입원을 하라고 하거든요. 병원에 입원하는 것까지는 괜찮은데 신랑하고 사이가 많이 안 좋아요. 남편이 다른 사람이 생길까봐 사실은 두려워요.” nbsp “딴 여자 생기면 아기 봐 줄 사람도 생기고 좋네요. 보모 구하려면 돈도 많이 드는데요. 내가 환자면 남편이 건강한 여자 만나서 살도록 도와줘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평생 ‘을’로 살아야 됩니다. 내가 병원에 입원해서 빨리 고쳐서 나오겠다 이렇게 마음 먹어야 합니다. 나도 모르게 통제가 안 되니까 치유에 집중하는 게 좋겠어요. 지금 병을 고치는 것보다 이혼이 되느냐 안 되느냐 그런 걸 걱정하잖아요. 지금 스스로 이혼을 해야지, 왜 이혼을 당했다고 생각해요. 주식을 200원 손해보고 파는 게 좋아요? 500원 손해보고 파는 게 좋아요? 그런 걸 손절매라고 합니다. 덜 손해보고 팔 수 있는 지혜가 있어야 주식투자에 성공할 수 있어요. 손해 봤다는 이 생각 때문에 못 하는 거에요. 손해를 봐도 덜 손해보는 쪽을 선택하는 게 이익 보는 겁니다. 그런 결정을 못 하기 때문에 늘 인생이 피곤합니다. 아이에게 어떤게 더 큰 손실이 됩니까? 정신적으로 힘든 게 더 손실입니다.”라며 질문자가 두려워하는 질문에도 큰 일 아니라며 좀 더 긍정적으로 생각할 수 있도록 가볍게 대응을 해주셨습니다. nbsp nbsp 갑자기 나온 주식 손절매 이야기에 웃음이 터졌습니다. 스님의 박식한 상식과 현실적인 비유와 명쾌한 답변에 즐거운 시간이었습니다. nbsp 스님께서는 질문자에게 “어때요. 결론을 내렸어요?”라며 질문자가 스님과 대화를 하면서 어떤 결론을 내렸는지 물으니 질문자는 환하게 웃으며 “네. 감사합니다.”라며 밝아진 모습을 보였습니다. nbsp “옛날에는 정신질환에 대해서 이해가 굉장히 부족했기 때문에, 네가 정신만 차리면 된다라고 했어요. 그래서 병이 완전히 악화돼서 치유가 불가능할 정도가 되어야 정신병이다라고 인정을 했어요. 교통사고가 났다거나 팔 부러진 것은 치료를 하는데 놀란 마음을 치료하지는 않아요. 육체적인 상처만이 아니라, 정신적인 상처도 치료를 해야 합니다. 성추행을 당했을 때 정신적인 충격이 크기 때문에, 평생의 삶을 왜곡시키게 됩니다. 그래서 치유를 해야 합니다. 육체의 병에도 가벼운 감기부터, 독감, 중환자가 있듯이 정신적으로도 작은 상처도 있습니다. 이런 상처는 며칠 지나면 자동적으로 치유가 됩니다. 그런데 상처가 다음 행위에 제약이 되는 경우도 있습니다. 그래서 그걸 모두 치유해야 됩니다. 육체의 병은 80 정도 밝혀졌지만, 정신병은 아직 10밖에 안 밝혀졌어요. 그러나 밝혀진 범위 안에서라도 도움을 받는 게 좋습니다. nbsp nbsp 그래서 그 병이 우울증, 조울증, 분열증, 불면증이든, 내 병이든, 가족 중에 환자가 있든그것을 두려워하거나 숨길 필요 없습니다. 감기처럼 몇달 있으면 괜찮겠다 하는 경우가 있고 치유가 필요한 경우도 있습니다. 몸의 호르몬 이상이 있어서 나타나는 경우도 있기 때문에, 약물치료도 필요합니다. 정신질환을 두려워하지 마세요. 이것도 병중에 하나고 그것도 가볍게 치료를 받으면 됩니다. 조기에 치료하면 되는데 쉬쉬하고 숨기고 만성이 돼서 치료하면 치료하기 굉장히 어려워집니다. 육체병은 남한테 피해주는 게 없습니다. 정신병은 가족들한테 피해가 엄청납니다. 우울증이나 이런 경우는 대부분 자살로 생을 망칩니다. 자살하면 가족들한테 주는 충격이 크잖아요. 그래서 치료가 중요합니다. 응급치료는 병원에 가서 하고, 근본치료는 수행이나 상담을 통해 해결하면 좋습니다. 치료의 첫 출발은 내 상태를 자각하는 것입니다.” nbsp 많은 청중들은 질문자들의 질문에 함께 안타까워하면서도, 스님의 말씀에 깊이 공감하며 시간을 보냈습니다. 마지막 질문에 대한 답을 마무리하면서 당부말씀을 하셨습니다. nbsp “스님이 부러워하는 마음이 들도록 살아줘야 여러분들이 잘사는 거예요. 저는 여러분들에게 뭘 바꿔줄 능력은 없습니다. 정말 세상에 많은 사람들에게 고통을 주는 사람도 못 바꾸는데, 어떻게 남편 술 먹는 버릇까지 바꿀려고 하세요? 바꿀 수는 없지만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면 지금보다 훨씬 행복해질 수 있습니다. 그 행복은 내가 만드는 거예요. 그렇게 행복하게 사시기 바랍니다.” 라며 어떠한 경우에라도 행복해야 하며 그 행복은 자신이 만든다는 것을 다시한번 정리해주셨습니다. nbsp nbsp 스님의 책 싸인회 시간에는 길게 늘어선 줄이 보이지 않을 정도였고 끝나고 봉사자들과 기념촬영을 하고 난 후 스님과 간단히 인사를 하는 순간에도 봉사자들은 환호를 하며 스님께 인사를 하였고 스님께서도 봉사자들에게 수고했다며 인사를 해주셨습니다. nbsp nbsp 내일은 해외정토회 활동가들과 경주남산순례가 있습니다. nbsp

2015.04.22. 20,733 읽음 댓글 14개

2015.4.20. 해외정토회 지도자 수련 정일사

nbsp nbsp 오늘도 비가 내립니다. 지난 토요일 저녁부터 내린 비가 쉼없이 내리고 있습니다. nbsp 오늘 아침 7시 30분부터는 해외정토회 지도자 수련 정일사 입재식이 있었습니다. 스님께서는 먼저 해외에서 오신 분들에게 ‘먼 길 오시느라 수고하셨다.’며 인사를 하시고 어제 보지 못한 분들에게는 언제 왔는지등을 묻기도 하시면서 분위기를 조금 가볍게 하신 후 입재식을 가졌습니다. nbsp nbsp 스님께서는 입재법문에서 1992년에 시작한 해외포교가 벌써 23년째라고 하시며 법문을 시작하셨습니다. nbsp “사람이 굉장히 자율적으로 움직이는 것 같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정해진 대로 움직인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매순간 내가 옳다고, 잘했다고 생각하고, 말하고, 행동하는데 지나고 보면 그렇게 살아올 수밖에 없도록 정해져 있는 것입니다. 어떤 사람을 화나게 하거나, 웃게 하려고 할 때, 어떻게 건드리면 어떻게 반응할지 예측이 가능합니다. 그래서 운명론이 나오게 된 것입니다. nbsp nbsp 인간의 운명이 정해진 대로 움직인다는 것은 ‘내가 너하고 만나게 되어있다.’, ‘나는 부자가 되도록 되어 있다’, ‘가난하게 되도록 정해져 있다’라고 오해되고 있는 것입니다. 그 뜻은 부자가 되든 가난하든 너는 괴롭게 살도록 정해져 있다는 것입니다. nbsp nbsp 미래세상에 대한 영화를 보면 로봇은 프로그램 짜진대로 움직이는데 그 중에서 더 발달되어 독특하게 움직이는 로봇이 있는데 그게 인간인 것입니다. 컴퓨터나 로봇은 100 짜진 대로만 움직이는 데 반해 인간은 고도로 발달되어 90는 짜진대로 되고, 나머지는 창조적으로 움직이는 독특함이 있습니다. nbsp 인간은 거의 결정된 대로 의식구조가 작용을 하는데, 내가 지금 짜진 대로 움직인다라는 사실을 자각하면 짜진대로 안 움직이는 성질이 있습니다. 내가 이런 경우에 화를 내는 프로그램이 짜져 있다고 자각하는 순간 이런 경우가 와도 화를 안 낼 수가 있습니다. 그래서 붓다께서 바로 알아차림이라는 새로운 길을 발견하신 것입니다. 그것이 좋다거나 나쁘다거나를 떠나 그 상태를 자각하면 종속으로부터 벗어나는 길이 열린다는 것입니다. nbsp nbsp 그래서 내가 노예로 의식구조가 형성되어 있으면, 즉 어릴 때부터 노예로 훈련되어 있으면 거의 시킨대로 하는데, 내가 본래 노예가 아니고 노예로 길들여져서 노예로 살고 있다는 것을 자각하면 노예로부터 벗어나는 첫 발을 디딜 수가 있는 것입니다. nbsp 어느 순간에 ‘내가 굉장히 잘나고 싶어하고, 잘난 척을 하는구나.’를 자각하게 되면 그때부터 그런 성질의 변화가 가능해집니다. 그렇다고 금방 변한다는 것이 아니라 가능성이 열린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겨우 정신분석학이나 심리학에서 이 부분에 대해서 이제 조금 알려진 것 같아요. 우울증이 있을 경우, 우울증을 어떻게 치료한다는게 아니라 모를 때는 늘 남 탓을 하다가 ‘내가 우울증이다. 내 심리가 이렇게 작동을 하는구나.’하며 알게 되면 치료의 계기를 마련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라고 하시며 알아차림이 우리를 변화할 수 있는 계기가 된다는 것을 알려주셨습니다. nbsp nbsp “우리는 다 자기가 잘나서 다 자기 원하는 대로 세상이 살아지는 것 같은데, 살아 놓고 보면 사실은 풀 한포기 자라는 것이나, 개미 한 마리 사는 것이나, 고양이 한 마리 사는 것이 사실 별 차이가 없습니다. 크게 내려다보면 그냥 요것저것 하다가 그냥 죽는 것이지요. nbsp 그런데 세상사람들은 지위가 높아지고, 돈을 많이 벌고, 좋은 옷을 입는 것에 엄청나게 의미 부여해서 사는데, 그것이 고양이한테 때때옷을 입히나, 안 입히나 하등 중요한 것이 아닌 것과 같은 것입니다. 명품을 좋아하는 사람은 상표에 중독되어 있고, 커피에 집착하는 사람은 커피 맛에 중독되어 있습니다. 이런게 한 두가지가 아니라 모든 부분에서 그렇다는 것입니다. nbsp 저도 어릴 때 감나무, 밤나무에서 감이나 밤을 따 먹고 자라니까 밤나무마다 맛이 다 다르고 감나무마다 맛이 다 다르다는 것을 알아요. 그러니까 거기에 훈련이 안 되면 무뎌지고, 훈련이 되면 예민해 진다고 할 수도 있고, 다른 말로는 좋게 말하면 예민해지고 날카로워 진다고 볼 수 있고 다른 말로는 중독된다고 볼 수도 있습니다. nbsp nbsp 오늘 날 애들보고 컴퓨터에 중독되었다고 하고, 새로운 스마트 폰이 나오면 거기에 열광을 하는데, 이런 것은 인간의 정신적인 성질 때문에 오는 문제입니다. 그런데 한 발 떠나 어른이 되어서 애들 하는 것을 보면 그게 별 의미가 없다는 것을 알 수가 있어요. 이런 성질을 알고 있으면 자기가 그런 행동을 하더라도 내가 그렇게 훈련이 되어 있어 그냥 그렇게 반응을 하는 거라는 것을 알게 되는 것입니다. nbsp 부모 말을 잘 들어야 한다는 것은 한편으로는 좋지만, 부모 말만 듣고 살게 되면 그게 부모의 노예입니다. 왕의 노예나 부모의 노예나 아무 차이가 없는 것입니다.”라고 하시며 어느 하나에 집착한다는 것이 자신은 대단한 것 같지만, 그렇지 않은 사람이 볼때는 아무것도 아니고 그런것도 그렇게 훈련이 되어 그렇게 행동하는 것이라고 일러주셨습니다. nbsp nbsp “사람들은 저사람 종교에 미쳤다고 하는데, 정토회도 밖에서 볼 때는 종교에 미쳤다고 평가 되잖아요. 이럴 때 자기를 봐야 합니다. 이것이 종교에 미친 증상이냐? 종교에 빠져서 일어난 증상이냐? 아니면 항상 자기의 삶이 더 깨어져 가는 원리를 알아서 자기의 의식이 깨어져 가는 과정이냐? 이런 공부를 우리가 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개인에게 있어서도 새로운 희망이고, 현대사회가 안고 있는 물질문명의 병폐인 소비 주의를 치료할 수 있는 거의 유일한 길이 부처님이 발견하신 ‘알아차림’이 아니겠느냐는 생각이 듭니다. nbsp 불교의 가르침은 탁월하다고 생각이 되는데, 현대 불교에서 이런 가르침이 살아있는 것은 1도 안 되고, 99는 그냥 세상의 보통 종교로서의 성질로 남아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정토회가 설립된 것도 개인의 마음병이나 사회적으로는 문명의 한계등을 치유하는데 우리가 한 번 시작을 해보자해서 설립된 것입니다. 또, 다른 하나는 우리가 한국에서 태어났기 때문에 한국의 사회적인 과제를 해결해보자는 것인데, 이것이 통일에 대한 것입니다. nbsp nbsp 1차 만일 결사에서 사회적인 과제를 해결해야 2차 만일결사에는 본질적인 이슈를 갖고 세계화에 치중을 할텐데 이 민족적인 이슈를 계속 가지고 있으면 한국사람들이 볼 때는 다 중요하다고 하지만 외국인들이 볼 때는 보편성이 굉장히 떨어집니다. 결국은 ‘한국 사람들이다 보니 한국 이야기만 하구나.’라며 오해할 확률이 굉장히 높습니다. 여기에 해외에 계신 여러 분들은 한국 출신이기 때문에 한국적인 이슈에 대해서 관심을 가져야 하지만 여러분들이 해야 할 일은 다음 만 일을 대비한 정토회의 본질적인 목표를 달성하는데 중요한 씨앗의 역할을 한다고 볼 수 있습니다. nbsp nbsp 그렇기 위해서는 첫째, 내가 먼저 이 가르침에 따라서 정진을 해서 내가 자동 반응하는 이 윤회로부터 조금 자유로워지는 새로운 길로, 자유의 길로 나아가는 경험을 해 보셔야 합니다. 본인이 경험을 못하면 그냥 옷만 갈아입은 것처럼, 인간관계가 좋으면 열심히 일하고, 인간 관계가 조금 나빠지면 팽개쳐 버리는등 아직 우리 수준이 다 그렇습니다. 여러분들이 조금 좋아졌다고 해도 경계가 세게 부딪히면 본래 모습을 나타냅니다. 그래서 옷만 갈아입은 것 뿐이지, 몸에 무슨 변화가 온 것이 아니듯이 옷을 갈아입고 나오니 딴 사람인 줄 아는데, 결국은 그 사람이듯이 조금 변한 거 같은데 알고보면 그 꼬라지를 못 벗어나 있어요. 못 벗어난다고 문제가 있는 게 아니라 못 벗어 나는게 사실은 중생입니다. 그게 윤회인데 거기서 벗어나는 길을 열어 놓은게 붓다잖아요. 벗어나는 길을 열어 놓았다고 하니까 우리는 획 바뀌는 줄 알지만 그렇지는 않습니다. nbsp nbsp 그래서 세속적인 인간관계에서 서로 좀 알아주고 격려도 해주고 이런 것도 필요하지요. 정말 자기가 이 문제를 자각을 해서 ‘아, 이게 법이구나.’하고 알게되면 인간관계가 좀 나빠도, 자기 원하는 대로 안 되어도 가는 길에는 변화가 없습니다. 이것은 딱 중심을 잡고 나머지는 우리가 아직 중생이니까 기분 나빴다가 좋았다가 하는 건 어쩔 수 없습니다. 이렇게 되어야 진짜 ‘씨가 뿌려졌다’라고 할 수 있습니다. nbsp nbsp 여러분들은 지금 씨가 뿌려진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그냥 봄이 되어 풀이 날 때 우 같이 올라오는 잡초가 되지 말고 겨울에도 자기의 씨앗을 간직하고 죽지 않고 땅 속에 웅크리고 있다가 봄이 되어 피어나듯이 주어진 환경이 안 되면 뿌리나 씨앗으로 간직하고 있다고 주변조건이 마련되면 피어나는 그런 씨앗이 되어줘야 합니다. 이게 부처님 전법의 핵심입니다. 이런 씨앗을 간직한 사람은 해외 어디를 보내놔도, 아무도 없는 세상에 혼자 가서 그 씨앗을 심어서 자라게 하고 꽃을 피우잖아요. 같이 있고 격려해 줄 때는 잘 하다가 혼자 떨어져 있으면 못하고 절에 살 때는 기도를 하다고 혼자 있으면 안 하게 되는데 그건 씨앗이 아닙니다.”라며 정진을 통해 법의 길을 경험하고 난 후 세계 어디에 있던 싹을 틔우는 사람이 되어야 된다고 말씀해주셨습니다. nbsp nbsp “일차 만일결사 기간 동안 정토회가 세운 목표는 한국의 국민들이 행복하도록 도와주듯이 해외에 계신 우리 교민들을 도와주는 것이 제 1차 목표에 속하는 겁니다. 한국에 있든 외국에 있든 한국 사람이 불법에 귀의하도록 도와주는 것이 1차 목표에 해당 됩니다. nbsp 2차 만일 결사의 목표는 외국인들도 이 불법에 귀의하도록 하는 겁니다. 해외에 계시는 여러분들이 1차 만일 결사 기간 동안 교민들에게 불법을 전하는 것과 2차 만일 결사의 씨앗을 만드는 것 입니다. 이렇게 두 가지가 여러분들의 역할입니다.” 라며 1차 만일결사동안 해외에 계신분들이 무엇을 중점적으로 해야 하는지를 알려주셨습니다. nbsp nbsp “여러분들이 정일사 수련을 하면서 자기의 문제를 고치는 것에 초점을 맞추지 말고 내가 성질을 잘 낸다, 내가 고집이 세다, 내가 게으르다. 이런 것을 부끄러워 하지 말고 자각하는 것이 수행의 시작입니다. 자꾸 선악 개념을 넣으니까 부끄러워서 꺼내 놓지를 못하는 문제가 생깁니다. 내가 상처가 있으면 상처가 있다, 병이 있으면 병이 있다는 것을 자각하는 것이 먼저고, 치유는 그 다음의 문제입니다. 앞에서도 이야기 했지만 자각이 치유의 첫 걸음이니까 여러 분들이 정일사 수련을 하면서 자신을 잘 살펴야 합니다. nbsp nbsp 또, 우리가 같이 수련하는 중요한 이유는 다른 사람들을 통해서 내가 나를 알아가는 과정이기 때문입니다. nbsp 남의 이야기가 옳으냐 그르냐를 이야기 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 사람들 100명이 다 동의했다고 그게 100 옳다고 할 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내가 나를 아는 것에는 그 100명의 이야기를 거울로 삼는 것이 굉장히 유용합니다. 이렇게 어느 정도 자신이 자각된 뒤에는 혼자 정진해야 하는 것입니다. 절에 와서 처음부터 혼자 정진하면 사도로 빠질 확률이 높습니다. 반드시 대중살이를 통해서, 대중 거울을 통해서 자신을 자각한 뒤에 첫 번째는 혼자서 극복을 하고, 두 번째 다시 보림을 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대중 속에서 실험을 해서 체크를 해 보는 것입니다. nbsp nbsp 마치 운전을 배워서 길거리에서 도로주행 하듯이 그렇게 수행을 체크해 보는 것이 ‘보림’인데, 그런 과정을 거쳐야 하는 것이기 때문에 오늘 여러분들이 정일사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자기 상태를 스스로 점검해야 합니다. 남의 이야기를 귀담아 들으라는 것은 다른 이를 통해서 점검하는 것이지, 그 사람의 이야기가 맞다는 것이 아니라 내가 아는 나와 다른 사람이 아는 나 사이에 어떤 차이가 있고 그 중에 어떤 것이 더 정확한 지를 자기가 점검을 해 보는 것입니다. nbsp nbsp 오늘 수련하기 전보다는 하고 난 뒤가 조금 한 발 더 나아가야 하고, 내가 어떤 상처가 있다는 것을 자각을 해야 합니다. 우리가 수련을 하는 것은 이렇게 자각해 나가는 것이기 때문에 편안하게 하셔야 합니다. 왜냐면 무의식의 상처는 긴장을 안 하고 편안할 때 마음 밑바닥에서부터 올라오거든요. 약간이라도 내가 긴장을 하거나 움츠려 들면 내가 눌러져서 잘 안 일어납니다.”라며 편안한 마음으로 수련에 임해서 자신의 모습을 자각하는 것을 목표로 해보도록 안내해주셨습니다. nbsp nbsp 스님께서는 해외에서 활동하시던 분들이 이렇게 모인 것은 수련의 목적도 있지만, 지난 해외 100강때 각 지역에서 모두들 수고하셨는데, 스님께서 특별히 수고했다는 인사를 못드렸기 때문에 다들 그동안의 노고를 치하하는 잔치의 자리라고도 할 수 있다면서 수련에 집중해서 임하고 또 신나게 놀기도 하라면서 법문을 마쳤습니다. nbsp 해외에서 오신 분들이 정일사를 하는 동안 스님께서는 이번에 준비하고 있는 해외 100강 관련한 책의 원고를 보시면서 교정하셨습니다. nbsp nbsp 그리고 점심공양후에는 신규법사님 4분과 함께 마당에 난 클로버를 제거했습니다. 비가 내리는 가운데서도 지금이 아니면 이후에는 일체 시간의 여유가 없다고 하시면 비를 맞으면서 제초작업을 하셨습니다. nbsp 오후 8시, 정일사 수련이 모두 끝나고 최말순 보살님께서 정성껏 준비한 저녁이 준비되어 있었습니다. 최말순 보살님께서는 스님을 모시고 해외 100강을 다니시면서 각 지역에 정성껏 준비해주시고 도와주셔서 감사하다는 뜻에서 꼭 인사를 하고 싶었다면서 음식을 직접 정성껏 준비해주셨습니다. nbsp nbsp 저녁공양을 하면서 각 지역에서 오신 분들의 소개가 있었습니다. 서로 멀리 떨어져 있어서 이름만 알고 얼굴은 본적이 없었는데, 이렇게 직접 만나 서로 소개하고 인사를 하니 더욱 더 친밀해지는 것 같습니다. nbsp 내일은 청송 주왕산과 울산 KBS 강연이 있습니다. nbsp

2015.04.21. 21,103 읽음 댓글 17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