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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6.18 평화재단 심포지엄 및 통일의병 임명장 수여식
nbsp안녕하세요. 오늘 스님은 평화재단 심포지엄에 참석해 ‘한반도 평화공동체 건설을 위한 실천 전략’에 대한 전문가들의 발표를 경청하고 소감을 나눠주었고, 통일의병 임명장 수여식에 참여해 통일의병의 마음가짐에 대해 말해 주었습니다.nbspnbsp오늘도 새벽 4시30분에 도량석 소리와 함께 법당에 내려와 새벽 예불과 천일결사 기도를 하며 하루를 시작했습니다.nbspnbsp▲ 새벽 예불nbsp기도를 마친 후 발우공양 시간에는 어제 정토회 행정처 간부들과 함께 메르스 대책에 대해 의논한 결과를 공유해 주면서 6월말까지 예정되어 있는 다중 행사에 대해서 어떻게 방침을 정할지 이야기해 주었습니다.nbspnbsp“메르스로 인해서 전국적으로 대중이 모이는 이번 주의 행사는 전부 취소했습니다. 지역 행사라 하더라도 방역 등 예방에 최선을 다해주시기 바랍니다.nbspnbsp먼저 이번 주말에 있는 불교대학 특강 수련과 다음 주말에 있는 경전반 특강 수련을 둘 다 취소했습니다. 23일 전에 갑자기 취소하면 스탭들이 많이 힘들다고 해서 이번 주만 취소하려다가 다음 주 것까지 같이 취소를 했습니다. 취소하기가 어려웠던 이유는 취소해 버리면 다시 할 수 있는 게 아니고 일정이 안 나와서 못하는 것이 되기 때문입니다. 메르스 자체는 그렇게 위험한 것이 아닌데 지금 정부가 잘못 대응함으로 해서 국민들의 불안이 굉장히 가중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일단 전국에서 모이는 행사는 만의 하나라도 위험할 수 있으니 취소를 했고요.nbspnbspnbsp용성스님 탄신 기념일 행사는 1박을 하지 않는 당일 행사이고 일반 대중이 아닌 정토회 회원이 참석하는 행사여서 취소를 안 하려고 했는데 장수군에서 취소해 달라고 요청을 해왔어요. 그래서 용성스님 탄신 기념일 행사에 대중이 참여하는 것도 취소하기로 했습니다. 문경 공동체 대중들만 가서 도량을 정비하고 다례제를 지내고, 서울 실무자들도 바쁘지 않으면 가서 행사도 참석하고 도량정비도 했으면 좋겠다 싶습니다.nbspnbsp그리고 6월말에 있는 청춘콘서트 행사도 취소할지 논의를 했는데요. 하루에 34시간 행사하는 것은 의학적으로 봐서는 큰 위험이 없는데 지금 사회 전체적으로 공포 분위기가 되어 있어요. 사회 전체를 안정시킨다는 측면에서는 행사를 진행하는 것이 낫지만, 다중 집회에 대해서 장소 제공하는 쪽에서 안 했으면 좋겠다는 문제 제기가 있어서 조금 더 검토해 보고 결정하기로 했습니다. 일단은 진행하는 것을 원칙으로 하되, 며칠 더 경과를 지켜보기로 했습니다.nbspnbsp지금까지는 병원에서만 전염이 되었는데 앞으로 어떤 전염 경로가 나타날지 모르고, 또 잠복 기간이 최장 18일까지 나타나고 있으니까 며칠 더 유의해 주시고, 꼭 메르스가 아니더라도 감기 환자는 별도의 방에서 취침을 해주시기 바랍니다. 혹시 기침을 하면 다른 대중을 위해서 마스크를 꼭 써주시기 바랍니다.nbspnbspnbsp현재 정부에서는 너무 공포 분위기가 되어가니까 관광객이 줄고 경제에 악영향을 주는 것을 우려하고 있는 것 같아요. 실제 위험에 비해 사람의 두려움이 더 커서 사회적 불안정을 초래하고 있는 측면도 있기 때문에 우리는 수행하는 사람들이니까 같이 불안해하지 말고 조금 진정을 해서 기존 사업들을 차분하게 진행해 주시기 바랍니다.nbspnbsp그러나 대중들이 불안해하는데도 고집을 해서 막무가내로 행사를 진행한다는 인상을 주지는 않도록 해주세요. 대중만 원한다면 우리는 아무런 흔들림 없이 추진한다고 관점을 잡아야 합니다. 대중이 빠지면 빠지는 대로 추진을 하면 됩니다. 그러나 장소를 제공해주는 측에서 강력하게 하지 않기를 원하면 굳이 하려고 고집할 필요는 없습니다. 대중들이 불안해하면 취소를 하고, 그렇지 않으면 그대로 진행하는 것으로 방침을 정해서 추진해 주시기 바랍니다.”nbsp메르스로 인해서 행사를 담당하고 있는 스텝들이 걱정이 많았는데, 스님이 대략의 방침을 일러주자 조금은 마음이 가벼워진 듯 했습니다. 그러나 스텝들은 행사를 위해 한 달 전부터 정성껏 준비를 해왔는데 줄줄이 행사가 취소되는 바람에 아쉬움은 여전히 남는 것 같습니다.nbspnbsp발우공양 후 스님은 곧바로 평화재단으로 이동해 아침 7시부터 찾아온 손님들과 미팅을 가졌습니다. 그리고 9시부터는 출판, 영상, 미디어를 담당하고 있는 실무자들과 함께 스님의 법문을 어떻게 더 많이 알려나갈지에 대해 회의를 하였습니다.nbspnbsp▲nbsp출판, 영상, 미디어 관련 담당자 회의nbsp회의를 통해 스님은 그동안 출판, 영상, 미디어 관련 업무들이 산발적으로 진행되어 왔는데 통합된 하나의 부서로 개편하는 방안을 제안했습니다.nbspnbspnbsp그리고 현재 서비스되고 있는 희망편지를 더욱 참신하게 다가가도록 해야 할 필요성, 스님의 하루와 희망편지를 시각 장애인들이 들을 수 있도록 오디오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을지, 인터넷방송을 어떻게 준비할지, 연령과 지역을 구분한 타겟 홍보 방식, 불교대학 강의 내용의 개편 방안, 3.1절과 8.15 등 기념일별 기획 법문 제공의 필요성 등 다양한 주제에 대해 함께 머리를 맞대고 의논을 하였습니다. 스님은 “앞으로는 출판, 영상, 미디어가 서로 융합되어 시너지 효과를 낼 수 있도록 해서 정토회가 홍보에 있어서도 좋은 모델이 되면 좋겠다”고 하며 회의를 마무리 하였습니다. nbspnbsp오후 1시에는 프레스센터로 이동하여 광북 70주년을 맞이해 ‘한반도 평화공동체 건설을 위한 실천 전략의 모색’을 주제로 열린 평화재단 심포지엄에 참석했습니다.nbspnbsp심포지엄에 앞서 기조 발제를 맡은 박형준 국회사무총장님을 만나 담소를 나누었습니다. 박형준 사무총장님은 평소 스님이 강조하는 통일 문제 해법에 대해 많은 공감을 표하면서 스님과 반갑게 대화를 나눈 후 스님과 함께 심포지엄에 자리했습니다.nbspnbsp▲ 박형준 국회사무총장님nbsp오늘 심포지엄에는 총 350여명이 참석해 높은 열기를 보여주었습니다. 먼저 박형준 국회사무총장님이 ‘한반도 평화의 우선성과 유연한 상호주의’에 대해 발표를 해주었습니다. 이어서 고려대 임혁백 교수님이 ‘한반도 평화체제와 동아시아 평화공동체 구상’에 대해 방대한 연구 결과를 압축해서 잘 설명해 주었고, 이에 대해 김흥규 아주대 중국정책연구소장님, 김준형 한동대 국제지역학과 교수님, 남기정 서울대 일본연구소 교수님이 토론 발표를 해주었습니다. 그리고 청중석에서도 질문지를 쓸 수 있도록 해서 전문가들에게 답변을 들어보는 시간도 가졌습니다.nbspnbsp▲ 발표1 주제인 ‘통일코리아의 평화외교 전략’에 대해 토론하고 있는 전문가들nbsp잠시 휴식 시간을 갖고 ‘평화공동체를 위한 한국 사회의 혁신’을 주제로 정치 개혁과 민주주의를 어떻게 해나갈지 박동천 전북대 교수님의 발표를 들었습니다.nbspnbsp▲ 발표2 주제인 ‘평화공동체를 위한 한국 사회의 혁신’에 대해 토론하고 있는 전문가들nbsp이에 대해 최태욱 한림국제대학원대학교 교수님, 국회의원 천정배, 이현우 서강대 교수님이 열정적인 토론을 이어 나갔습니다.nbspnbspnbsp스님은 발표자들의 발표 내용과 토론 내용에 오롯이 집중하고 있다가 사회자가 닫는 말씀을 청하자 단상에 올라 오늘 발표된 두 주제에 대한 각각의 요약과 함께 스님의 소감을 함께 나누어 주었습니다.nbspnbsp“첫 번째 발표와 토론에서 나온 얘기들을 요악하면 이런 것 같아요. ‘우리 주위의 국제 질서가 지금까지와는 다르게 빠르게 바뀌고 있다. 그런데 우리는 그런 변화에 능동적으로 대응을 못하고 있다. 그래서 우리는 지금 외교적으로 위기에 처해 가고 있다. 여기에 능동적으로 대응하려면 남북관계를 개선해서 통일로 가야 한다. 그렇게 할 수 있는 키는 결국 대한민국이다.’ 이런 결론처럼 들렸습니다. 제일 못하는 국가가 북한인 줄 알고 비판했더니 북한도 우리 보고 ‘너나 잘 해라’ 한다는 얘기까지 나왔습니다.nbspnbspnbsp결국은 대한민국이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서 한반도에 평화도 유지할 수 있고, 통일도 할 수 있고, 동아시아의 평화와 번영을 위한 공동체도 만들어 나갈 수 있고, 어떻게 보면 굉장히 위기이고, 어떻게 보면 굉장히 좋은 기회인 상황에 지금 우리가 서 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nbspnbsp두 번째 발표와 토론에서 느낀 점은 우리 나라는 대한제국이 아니라 대한민국이니까 국민이 이 나라의 주인이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대한민국에 사는 것이 아니라 대한제국에 살고 있는 것 같아요. 시민이 아니고 신민이 되어서 ‘그냥 따라가면 되는 것 아닌가’ 생각하고 있고, 또 마음에 안 들면 욕만 하는 이런 수준이죠. 대한민국의 주권이 국민에게 있고 모든 권력이 국민으로부터 나온다는 것을 안다면 이제는 신민이 아닌 나라의 주인으로서 행동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대통령을 욕하거나 정치인을 욕하거나 이렇게 누구를 욕만 할 것이 아니라 우리가 주인임에도 불구하고 하인 노릇을 하고 있는 것이 아닌지 자각이 먼저 필요합니다.nbspnbsp그런 면에서 민주주의를 발전시키거나 경제적인 불평등을 해소하는 것, 남북의 화해와 평화를 가져오는 것, 통일지향적인 정책을 추진하는 것 등 우리가 선택한 정부가 이런 정책을 만들어나가면 지지해 주지만, 그렇게 안 하면 다음에는 교체를 하고, 교체 시기가 멀었으면 그렇게 가도록 독려를 해야 할 책임이 우리에게 있습니다. 그런데 마치 우리는 아무 책임이 없는 것처럼 정부를 욕하고만 있는 것이 아닌가 싶어요. 국민이 나라의 주인입니다.nbspnbspnbsp또 동아시아에 있어서 거센 파도를 헤쳐 나가는 것도 우리가 해야지 북한이 해줄 것이 아니지 않습니까. 그런 면에서 결국 키는 대한민국이고, 대한민국의 키는 정치 행위를 하는 주체인 정부입니다. 그러니 여러분들께서 그런 정부가 되도록 활동하는 정치인들을 선출해야 합니다. 이제는 진보와 보수라는 이념의 틀에 갇히거나, 지역주의의 틀에 갇히거나, 계급의 틀에 갇히지 말고, 국가 공동체의 발전을 위하고 그 구성원인 국민들이 행복해지도록 하는 그런 정부를 우리가 구성해야 합니다. 즉 통일 지향적이면서도 또 국민을 행복하게 하는 그런 정부를 구성하기 위해 이제는 시민이 행동을 할 때가 되지 않았나 싶어요.nbspnbsp우리 사회를 보면 왼쪽이나 오른쪽으로 치우친 사람들은 사고가 경직되어 있는 반면 굉장히 적극적으로 행동한다는 것입니다. 집회도 하고 돈도 내고 댓글도 달고요. 그런데 중도적인 사람들은 굉장히 신사예요. 사고가 합리적이고요. 하지만 아무런 행동을 안 합니다. 그래서 늘 극단주의자들이 사회를 주도하고 합리적인 사람들은 앉아서 불평만 늘어놓기 일쑤입니다. 구체적으로 행동하지는 않는다는 것이죠.nbspnbspnbsp그런 면에서 오늘 이 자리에 참여하신 분들은 고명하신 분들의 발표를 잘 들었으니 이제는 행동하는 시민이 되어야 합니다. 극단적인 방식이 아니라 합리적이고 평화적이고 미래 문명을 지향하는 세계시민다운 품위있는 행동을 할 줄 알아야 합니다. 필요하면 돈도 내고 필요한 행동을 해야만 세상이 바뀌지 욕한다고 세상이 바뀌지는 않지 않습니까. 우리 함께 그 길을 갔으면 좋겠습니다.”nbsp행동하는 시민이 되어야 한다는 말씀에 참석한 대중들 모두가 우레와 같은 박수로 공감을 표현해 주었습니다.nbspnbspnbsp평소 스님은 대중들에게 아주 쉽게 통일 문제와 국제 정세에 대해 이야기를 해주었는데, 오늘은 비슷한 내용을 전문가들의 입을 통해 그 근거와 논리를 다시 들으니 훨씬 더 자신감이 생기는 듯 했습니다.nbspnbsp▲ 심포지엄 발표자들과 함께nbsp심포지엄을 마치고 나서는 오늘 발표를 해준 전문가들에게 저녁 식사 접대를 해드린 후 스님은 곧바로 평화재단으로 이동했습니다.nbspnbsp저녁 8시부터 평화재단에서는 통일의병 임명장 수여식이 열렸습니다. 스님이 강당에 들어서자 열다섯 명 남짓한 사람들이 스님으로부터 의병 메달을 받기 위해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스님은 조촐하게 앉아 있는 대중들을 보며 “저는 한 천명쯤 임명장을 주는 줄 알았어요. 일인당 백 명이라고 생각하고 드릴 게요” 라며 웃음을 머금으며 신입 의병들에게 임명장과 통일의병 메달을 nbsp각각 수여했습니다.nbspnbsp▲ 통일의병 임명장 수여식nbsp임명장과 통일의병 메달을 받아든 통일의병들은 함박웃음을 웃으며 스님과 일대일 기념촬영도 함께 하였습니다. 모두들 일당백이 되어 통일한국의 초석이 되어주길 기원해 봅니다.nbspnbspnbsp임명장 수여식을 마친 후 스님은 ‘통일의병의 마음자세’에 대해 격려 말씀을 해주었습니다. 먼저 의병은 관군, 반군과 어떤 차이가 있는지 설명해 준 후 과거의 의병과 지금 우리가 하고자 하는 통일의병은 어떤 차이가 있는지 재미있게 설명해 주었습니다.nbspnbsp“의병은 관군에 반대되는 말이에요. 국가에서 지위도 주고, 녹봉도 주고, 무기도 주고, 훈련도 시켜서 상시적으로 국가와 국민을 보호하는 것이 관군입니다. 이와 반대되는 말이 의병입니다. 의병은 국가를 지킬 아무런 의무가 없는 사람인데 나라가 위기에 처했을 때 자기 돈 내고, 자기 옷 입고, 자기 무기 가져와서, 자기 목숨 바쳐서 나라를 지키는 사람을 말합니다. 또 다른 하나는 반군입니다. 나라가 잘못할 때 관군과 싸우는 것이 반군입니다. 그러나 의병은 관군과 싸우는 것이 아니고 관군이 힘이 부족할 때 관군을 지원하면서 나라를 보호하는 사람입니다. 그래서 의병은 관군도 아니지만 반군도 아닙니다. 여러분들도 관군도 아니지만 반군도 아닙니다.nbspnbspnbsp우리나라 최초의 의병은 다물군입니다. 고조선이 망하고 우리 민족의 후예들이 고조선의 옛 땅을 되찾자고 일으킨 것이 다물군입니다. 중국의 침입을 받아서 전쟁에 지고 정규군은 다 도망가고 항복했는데 아무런 의무가 없는 민이 일어나서 나라를 지키자고 한 것이 다물군입니다. 후에 여기에 참여한 사람이 고주몽이고 그래서 고구려의 건국이념이 다물 사상이 되었습니다. 조선의 옛 땅을 되찾겠다, 우리 선조의 고토를 회복하겠다, 이런 정신으로 일종의 독립군 같은 역할을 했다고 볼 수 있습니다.nbspnbsp역사를 보면 고구려가 망하고 고구려 부흥군이 있었고, 백제가 망하고 백제 부흥군도 있었고, 발해가 망하고 발해 부흥군도 있었고, 고려 때는 조금 성격이 다른 사병 집단이긴 했지만 항몽 전쟁을 한 삼별초도 있었습니다. 가장 대표적인 의병은 임진왜란 때 나라를 지키고 백성을 보호하기 위해 일어난 의병입니다. 진주성의 김성일, 김시민, 곽재우 이런 분들이 가장 대표적인 의병이라고 말할 수 있죠. 민이 혼연 일체가 되어서 왜적을 막아내었습니다.nbspnbsp최근 들어와서는 일본의 침략에 반대해서 조선조 말에 1차 의병, 2차 의병이 일어났었고, 이 의병 정신을 계승한 것이 독립군이었습니다. 또 조금 성격이 다르지만 독재 정권에 항의해서 싸웠던 민주화 운동도 외부의 적과 싸운 것은 아니지만 의병과 비슷한 성격이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nbspnbsp나라를 되찾기 위해서 독립운동을 할 때는 총을 들고 싸웠고 잘못하면 목숨을 잃었습니다. 민주화 운동을 할 때는 돌멩이 들고 화염병 들고 싸웠고 잘못하면 감옥에 갔습니다. 이제 통일 운동을 하는 의병은 총도 안 들고 돌멩이도 안 들고 손가락만 들고 싸우면 돼요. 손가락 들고 투표만 잘 하면 됩니다. 이것은 잘못해도 죽을 일도 없고 감옥 갈 일도 없습니다. 그러나 사실은 이것이 가장 중요한 운동입니다.” nbspnbspnbsp손가락만 들고 싸우면 된다는 말에 모두들 웃음을 터뜨렸습니다. 스님은 그 이유를 설명해 주었습니다.nbspnbsp“왜 손가락만 갖고 싸워도 될까요? 옛날에 대한제국일 때는 나라의 주인이 왕이었고 백성은 신민이었어요. 그 때는 왕이 하는 대로 따라 하거나, 그렇지 않으면 왕을 갈아치우는데 그러면 반군이 됩니다. 그런데 지금 대한민국의 주인은 국민입니다. 헌법 1조에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고 되어 있잖아요. 그런데 우리를 대신해서 뽑아 놓은 머슴들이 지금 직무유기를 하고 있어요.nbspnbspnbsp첫째, 우리가 지난 50년 간 일궈온 재산과 인명을 지키기 위해서는 절대로 한반도에 전쟁은 없어야 합니다. 즉 평화를 유지해야 합니다. 둘째, 지속적으로 발전을 하려면 반드시 통일을 해야 합니다. 이런 국가 발전과 국민 행복을 위해서는 이제 통일이 우리에게 지상 과제가 되었습니다. 그리고 헌법 전문에 대통령의 임무이자 대한민국의 국가 지표로 민주사회를 발전시키는 것과 평화통일을 달성해야 한다는 것이 명시되어 있어요.nbspnbsp이렇게 헌법에 명시된 국가의 목표를 방기하고 있기 때문에 이것은 대통령과 정치권력의 직무유기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러분들은 자꾸 머슴한테 눈치를 보고 있어요. 그러나 CEO가 회사를 잘 운영 못하면 주주총회를 열어서 CEO를 바꾸는 수밖에 없습니다. 그런 것처럼 우선 국가를 발전시키도록 압력을 넣어야 하고, 그래도 말을 안 들으면 바꾸는 수밖에 없습니다.nbsp이제 우리는 더 이상 야당이냐 여당이냐 진보냐 보수냐를 논할 필요가 없습니다. 우리는 ‘누가 가장 통일지향적 자세를 갖고 있느냐?’ 이것을 가장 중요시해야 합니다. 그래서 다른 사람들은 ‘복지를 얼마나 할 거냐?’, ‘경제를 얼마나 성장시킬 거냐?’ 이런 것을 가지고 투표 행위를 결정하지만, 통일의병은 그런 것도 보지만 가장 중요하게 보아야 할 것은 ‘얼마나 통일지향적이냐?’ 입니다.nbspnbsp오늘 의병 임명장을 받았으니까 내년 총선에서는 국회의원 중에서 그런 사람을 뽑아야 하고, 대통령 선거에서도 그런 대통령을 뽑아야 합니다. 이것이 가장 중요한 일이라는 것을 주위 사람들에게 설득해서 알려야 합니다. 이렇게 구체적으로 행동을 해야 어떤 변화를 가져올 수 있지 그냥 ‘우리의 소원은 통일’을 만 번 불러봐야 아무런 영향력이 없습니다.nbspnbsp그래서 여러분들이 이런 힘을 딱 보여주면 정치인들도 당선되기 위해서 공약을 통일로 내걸고 그렇게 하겠다고 약속을 합니다. 정치색을 너무 따질 필요도 없어요. 통일은 진보가 집권하지 않아서 안 된 것도 아니고, 보수가 집권하지 않아서 안 된 것도 아니에요. 양쪽에서 다 집권해 봤지만 그것 갖고는 못해냈잖아요.nbspnbspnbsp여러분들은 국내 정치에 관심이 많지만 실제로는 지금 외교가 가장 위기입니다. 역사를 전환시키고 통일을 이룰 세력은 북한이 아니에요. 남한이 중심이 되어서 갈 수 밖에 없어요. 그러니 우리가 통일을 목표로 갖고 거기에 돈이 필요하면 돈을 내고, 행동이 필요하면 행동을 해야 합니다.”nbspnbsp그러면서 스님은 앞으로 배지를 하나씩 나눠주겠다고 하면서 우리가 하는 이 일은 국민의 정당한 권리를 행사하는 일임을 강조하면서 자신감을 갖고 활동해 나갈 것을 당부했습니다.nbspnbsp“앞으로 배지를 하나 만들어서 나눠드릴 거예요. 세월호 추모하듯이 통일의병 배지를 하나 달면 ‘나는 한반도의 통일을 원한다’는 뜻이 되고, 이런 행동을 하는 사람들의 물결이 백만 명이 되고 2백만 명이 되면 정치인들도 통일 문제에 신경 쓰게 되겠죠?nbspnbsp배지 하나 달았다고 회사에서 쫓겨나겠어요? 공무원 그만두라고 하겠어요? 주변 사람들에게 ‘너도 통일을 원하니?’ 물어보고 ‘그렇다’고 하면 배지를 나눠주고 통일기금을 받으세요. 이렇게 확산을 시켜야 됩니다.nbspnbspnbsp우리 선배들이 한국 사회를 민주화시켜 놓았기 때문에 우리가 이런 일을 할 수 있는 겁니다. 또 우리 선배들이 산업화를 이뤄놓았기 때문에 이런 일을 할 수 있는 겁니다. 경제가 어느 정도 성장되었으니까 민주화가 된 것이고, 민주화를 해놓으니까 우리가 이런 운동을 할 수 있죠. 민주화가 안 된 북한에서 태어났다면 이런 운동을 할 수도 없어요. 그러니 우리가 대한민국에 태어난 것은 중국이나 북한에 태어난 것보다 훨씬 좋은 거예요. 대한민국을 자랑스럽게 여겨야 합니다. 그러나 여기에 머물러서는 안 되고 우리는 통일을 달성해야 합니다. 그런 데서 여러분들이 확고부동한 생각을 가질 필요가 있습니다.nbspnbsp여기 참여하겠다는 사람들에게 더 이상 과거는 따질 필요가 없어요. 과거에 진보에 있었든 보수에 있었든 지금 본인만 통일 지향에 동의하면 남녀노소, 과거의 전역을 묻지 않습니다. 이런 열린 자세를 갖고 활동했으면 좋겠습니다.nbspnbsp통일은 지금도 조금 어려워졌어요. 미국과 중국의 경쟁 틀이 거의 짜여 가고 있고, 우리는 그 하위 변수로 배치가 되어가고 있어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금부터 우리가 한일 관계를 잘 풀고, 남북 관계를 잘 풀면, 아직은 희망이 있습니다. 일본이 감정적으로는 밉지만 이 문제를 풀기 위해서는 한일 관계도 잘 풀어야 됩니다. 남북 관계도 잘 풀어야 하고요. 한미 동맹은 굉장히 중요하지만 미국이 시키는 대로만 해서는 이 문제를 못 풉니다. 중국이 경제적으로 굉장히 중요하지만 중국 눈치만 봐서는 안 됩니다. 중국과의 관계도 중요시하고 미국과의 관계도 중요시해야 하지만, 거기에 안주하고 있어서는 우리의 운명에 아무런 도움이 안 됩니다.nbspnbsp우리가 지금 할 수 있는 일은 남북 관계와 한일 관계를 잘 풀고, 이 작은 힘을 키워서 큰 힘에 영향을 줄 수 있도록 해야 합니다. 이것은 국민이 할 수 있는 일이 아니고 정부가 해야 할 일입니다. 외교정책과 통일정책이라고 할 수 있겠죠. 그 역할을 잘 할 수 있도록 국민이 압력을 넣어줘야 합니다. 이것을 확실하게 알고 의병이 되어야지 그냥 의병이 되면 안 됩니다. 죽을 일은 없지만 이런 활동을 죽을 각오로 하셔야 합니다. nbspnbspnbsp짧은 기간에 성과를 내려고 하지 말고 ‘나라만 잘 된다면 나는 무엇이 되어도 좋다’ 이런 관점에서 해나가셨으면 좋겠습니다. 이 일은 먹을 것 다 먹고, 입을 것 다 입고, 화장도 다 하고, 자기 할 일을 다 하면서 해도 되는 일이에요. 왜냐하면 세상이 그만큼 좋아졌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나라의 주인이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정당한 권리를 행사하는 것이지 부당한 권리를 행사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런 자신감을 갖고 활동하시길 바랍니다.”nbsp스님이 이렇게 용기를 북돋워 주자 신입 통일의병들은 기뻐하면서 큰 박수로 스님께 감사의 마음을 전했습니다. 그리고 ‘통일의병 파이팅’을 외치며 스님과 함께 기념사진을 촬영했습니다.nbspnbspnbsp스님께서는 통일의병 임명장 수여식을 마치고 이어서 손님이 찾아와 미팅을 더 가진 후 오늘 일정을 마쳤습니다.nbspnbsp내일은 청년정토회에서 주관한 즉문즉설 강연이 대전정토회에서 있을 예정입니다. 내일 또 소식 전해드리겠습니다.nbsp
2015.6.15~17 중국 방문 후 귀국, 행정처 회의
nbsp안녕하세요. 스님은 지난 6월15일부터 17일까지 중국을 방문하여 단둥, 도문, 용정, 연길 등 지역을 둘러보며 중국 동포들과 북한 동포들을 어떻게 도울 수 있는지, 오는 8월에 있을 동북아 역사기행을 어떻게 준비할지 등에 대해 답사를 하고 왔습니다.nbspnbsp▲ 인천공항 출국nbsp6월15일에는 먼저 단둥에 도착해 시내 주변을 본 후, 단둥을 출발해 통화를 거쳐서 길림을 통해 연길까지 갔습니다. 예상보다 일찍 새벽2시에 도착해서 다음날인 16일 오전에는 도문시 일광산에 새로 짓고 있는 화엄사를 방문하고, 공사가 어느정도 진척되었는지 둘러보았습니다.nbspnbsp오후에는 중국 동포들의 자녀가 다니는 조선족 학교가 자꾸 폐교가 된다고 해서 이에 대한 지원 대책을 세우기 위해 답사를 하려고 했습니다. 그런데 이미 대부분의 학교들이 통폐합이 되었기 때문에 굳이 현장에 갈 필요가 없다고 해서 직접 둘러보지는 않고 그 현황만 자세히 들어보고 무엇을 도울 것인지 의논을 하였습니다. nbspnbsp현재는 향·진에 학교 하나씩만 남기고, 리 단위의 학교는 거의 다 없어진 상황이라고 합니다. 통폐합된 학교도 인원이 100명 내지 200명 밖에 되지 않고, 100명 중에서도 70명 정도가 한족이고 조선족은 30명 정도로 편성이 되어 있다고 합니다. 그러나 용정시나 도문시 등 시내에는 조선족 학교가 아직 그대로 남아 있다고 하였습니다.nbspnbsp그리고 오는 8월에 있을 동북아 역사기행을 담당하고 있는 조선생님을 연길에서 만나 역사기행 일정과 숙소, 식사 문제 등을 의논했습니다. 또 저녁에는 평생 동안 발해 역사를 연구하신 방학봉 교수님과 조선생님 등 그동안 스님을 도와준 사람들에게 수고했다고 저녁을 대접했습니다.nbspnbsp그리고 용정시에 정토복지협회를 공식적으로 꾸려서 중국 동포들과 북한 동포들을 돕는 활동을 하고 있는데, 17일 오전에는 옥수수 국수를 연변 조선족 자치주 내에 있는 양로원과 고아원 등 가난한 곳에 지원하는 행사를 하였습니다. 옥수수 국수를 배분하는 것을 둘러본 후 한국으로 돌아왔습니다.nbspnbsp▲ 연변 조선족 자치주 내 양로원, 고아원 등에 옥수수 국수 지원nbsp그리고 스님은 중국을 방문하면서 들었던 짧은 소회를 함께 나누어 주었습니다.nbspnbsp“북한 쪽도 경계가 삼엄하고 중국 쪽도 철조망을 다 치는 등 경계가 삼엄한데도 탈북자들이 넘어오는 일이 자주 있는 것 같아요. 중국에서는 못 넘어오도록 총까지 쏘아서 사망하는 사람들도 발생하고 있고요. 북한의 지방 쪽은 굉장히 어려운 것 같습니다. 평양은 다녀온 사람들 얘기를 들오보면 조금 좋아졌다고 하는데 지방 사정은 그렇지가 않은 것 같아요. 특히 100년 만에 닥친 큰 가뭄으로 모내기를 제대로 못한 논이 많고, 또 모내기를 했다 하더라도 가뭄으로 논바닥이 갈라져 벼가 말라죽는 피해가 많다고 하네요. 지금 남북관계가 나쁘더라도 이럴 때는 양수기를 지원하면 좋겠는데 서로 주겠다고도 달라고도 하지 않아서 안타깝기 그지 없네요.nbspnbsp그리고 중국은 지금 북한에 대해서 굉장히 연구를 하고 있다고 해요. 이런 것을 보면 북한 사회의 내부 변화에 대해서는 남한보다도 중국 쪽이 훨씬 더 많은 정보를 가지고 있고, 장기적으로는 더 적절하게 대응을 하고 있지 않나 싶습니다. 중국은 북한 자체가 붕괴되는 것을 원하는 것이 아니라 북한에 친중 정권이 들어서서 비핵화를 하고 개혁 개방하는 것을 원하기 때문에, 이것이 어떤 면에서는 좋은 점이 있지만 어떤 점에서는 통일에 큰 장애가 될 소지가 있을 것 같았습니다.nbspnbsp현재 북한 내부의 정세는 정권이 교체되었니까 지도 인력을 일부 교체할 수 밖에 없겠지만 갑자기 지도 인력을 교체함으로 해서 간부들은 좀 불안해 하는 것 같아요. 인민들의 생활이 개선된 것은 없고, 간부들은 신변 안전에 대한 불안을 느끼고 있어 겉으로는 체재가 안정되어 있어 보이는데 내부적으로는 불안정한 상태인 것 같았어요.nbspnbsp도문에는 큰 산업단지가 꾸려져서 북한 노동자들이 많이 와서 일을 하고 있었어요. 밖에서는 괜찮아보이는데 안에 시설이 너무 열악하다고 하네요. 그래서 좋은 소식들 보다는 안 좋은 소식들이 더 많았습니다.”nbspnbsp스님은 여러 가지 소식을 이야기해 주면서 무척 가슴 아파하는 모습이었습니다.nbspnbsp17일 오후에 인천공항으로 귀국한 스님은 곧바로 정토회관에서 여러차례 미팅을 이어 갔습니다. 정토회 행정처 집행부와 미팅을 가지면서는 메르스로 인해 전국적으로 대중들이 모이는 행사 중 이번주 내의 행사를 전부 취소하고, 지역 행사라도 방역 등 예방에 최선을 다하도록 당부하였습니다. 그 외에 미팅을 더 가진 후 오늘 일정을 모두 마쳤습니다.nbspnbsp▲ 정토회 행정처와 미팅nbsp내일은 광복 70주년을 맞이하여 ‘한반도 평화공동체 건설을 위한 실천 전략의 모색’을 주제로 평화재단 심포지엄이 프레스센터 20층 국제회의장에서 열리고, 저녁에는 통일의병 임명장 수여식이 있을 예정입니다. 내일 또 소식 전해드리겠습니다.
2015.6.14 백일출가 행자들을 위한 입재 법문
nbsp안녕하세요. 오늘 스님께서는 백일출가에 입재하여 만배 기도를 마친 행자들을 위해 출가자의 마음 자세에 대해 법문해 주셨습니다.nbspnbsp새벽 4시30분, 스님께서는 문경정토수련원 대웅전에서 새벽 예불 및 천일결사 기도로 하루를 시작하셨습니다.nbspnbsp▲ 문경정토수련원 대웅전nbsp기도를 마친 후에는 공동체 대중들이 참석하는 발우공양에 함께 하셨습니다.nbspnbspnbsp▲ 발우공양nbsp발우공양을 마치고 나서 스님께서는 먼저 “어제와 오늘 불교대학 특강수련이 메르스 때문에 취소가 되었다”면서 “그렇지만 원래 잡혀 있었던 일정이었기 때문에 새벽 예불과 발우공양에 참석했습니다” 하고 인사를 했습니다.nbspnbsp그리고 발우공양에 참석한 대중들을 살펴보시더니 어제 입재 만배를 마친 25기 백일출가 행자님들을 보고선 환영 인사와 함께 출가자의 마음 자세에 대해 법문을 해주셨습니다. 먼저 ‘출가’와 ‘가출’의 차이에 대해 얘기해 주셨습니다.nbspnbspnbsp“백일출가에 입재한 여러분 모두 환영합니다. 출가라고 하는 것은 글자 그대로 해석하면 ‘집을 떠난다’ 이렇게 해석이 됩니다. 왜 집을 떠나는가? 집은 우리를 안온하게 하는 측면도 있지만 우리를 속박하는 측면도 있습니다. 그 속박으로부터 벗어나 자유롭기 위해서 집을 떠나는 것이죠. 대다수 사람들은 집을 속박으로 느끼기 때문에 집을 떠나고 싶어하지만 집을 나가면 속박에서는 벗어나는데 안온함도 같이 사라지니까 집을 다시 그리워하게 됩니다. 집을 그리워하는 이유는 집이 안온한 보호처가 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다시 집을 찾게 됩니다.nbspnbsp그래서 집으로 들어오면 또 속박을 느끼고, 나가면 외로움을 느끼고, 그래서 다시 안온한 곳을 찾아서 들어오게 되고, 또 얼마 있으면 속박을 느낍니다. 그래서 우리는 속박은 없고 안온함만 있는 그런 집을 원합니다. 새로 결혼을 하면 그런 집이 될까, 외국으로 가면 그런 집이 있을까, 절에 가면 그런 집이 있을까, 이렇게 속박은 없고 안온함만 있는 그런 집을 찾아가는데 가보면 또 속박을 느끼고, 나오면 또 외로워지고, 이렇게 방황하는 것이 우리 인생입니다. 이것을 ‘가출’이라고 부릅니다. 집을 나오긴 나왔는데 더 좋은 집을 찾아 나왔기 때문에 새로운 집에 들어가면 또 속박을 느끼게 됩니다. 이렇게 들락날락하는 것은 가출입니다.nbspnbsp그러면 출가란 것은 무엇이냐? 집은 안온함과 속박 이 두 가지가 같이 있다고 아는 것입니다. 이 둘은 분리시킬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속박에서 벗어나 자유롭기 위해서는 이 안온함도 같이 버려야 합니다. 이 안온함마저도 버려야 출가가 됩니다. 즉 집을 불살라 버려서 돌아갈 집이 없는 것이 ‘출가’입니다.nbspnbsp여러분들은 직장을 다니다가 직장에서 속박받고, 가정을 이루고 살다가 가정에서 속박받고, 부모의 보호를 받고 살다가 부모에 속박이 되고, 그래서 늘 속박을 느껴서 ‘이제는 좀 자유롭게 살아보자’ 해서 이곳에 왔습니다. 그러나 집의 속박으로부터 벗어났다는 자유로움은 잠시일 뿐 몇일만 살면 집의 안온함이 그리워집니다. 그래서 떠나온 곳을 자꾸 돌아보게 됩니다. ‘괜히 왔다’, ‘이 고생 안해도 될텐데’ 이렇게 시작도 하기 전에 집으로 돌아가려는 마음이 자꾸 커집니다. 그렇게 되면 이것은 출가가 아니고 가출이 됩니다.”nbsp이어서 왜 백일출가를 시작하기 전에 만배를 시키는지 그 이유를 얘기해 주셨습니다.nbspnbsp“그래서 그런 마음이 일어나는 것을 조금이라도 해소하려고 만배를 하는 겁니다. nbsp집이 그리운 사람은 만배를 하는 중에 빨리 집으로 돌아가라 이런 얘기입니다. 사람이 어려움에 처하면 의지처를 찾게 됩니다. 만배는 일상 생활을 하는 사람들이 볼 때는 굉장히 어려운 일입니다. 절을 하다보면 온갖 생각이 일어나게 됩니다. ‘괜히 왔다’, ‘집에 있는 게 나았을 걸’, ‘어떻게 오자마자 만배부터 시키냐?’, ‘다리 다치면 어떡하냐?’nbspnbsp그래서 만배하는 중에 자신의 까르마에 사로잡혀서 집으로 돌아가게 됩니다. 그럼 만배를 끝내면 괜찮아지느냐? 그런 뜻은 아니에요. 만배 중에 일어나는 자신의 분별심 때문에 그만두는 사람은 여기와서 살아도 백일 안에 그만두게 됩니다. 그러니 그 자신을 위해서도 시간 낭비입니다. 출가를 해서 좋은 소득을 얻는 것이 아니고 괴롭게 보내다가 불교를 부정적으로 보게 됩니다. 뿐만 아니라, 그만두고 가게 되면 다시 여기 찾아오는 것도 어려워집니다. 중간에 그만두었기 때문에 여기 오는 것을 마음에서 피하고 싶어지고, 백일출가 하다가 중간에 나갔다는 말도 듣기 싫어집니다. 좋은 마음을 내었는데 결과적으로는 원수가 됩니다. 여기 오지 않았으면 원수가 안 될텐데 와서 원수가 됩니다. 그래서 원수가 되지 않으려면 먼저 집으로 돌아갈 사람은 갈 수 있는 기회를 주는 것이 만배입니다.”nbspnbsp다행이 오늘 발우공양에 참석한 분들은 모두 만배의 관문을 통과한 사람들이였습니다. 그래서 만배의 관문을 통과한 후 다음 과제는 무엇인지 말씀해 주셨습니다. 어려울수록 의지하는 마음이 많이 드는데 이제는 스스로 일어설 수 있는 힘을 키워야 한다고 강조해 주셨습니다.nbspnbsp“이제 여러분들은 이 만배의 관문을 통과했습니다. 만배의 관문을 통과하면 수행이 저절로 되느냐? 아닙니다. 어떻게 다겁생래로 지은 무명 업식이 만배 한다고 없어지겠어요? 다만 하나의 관문을 넘은 것입니다. 즉 여기서 백일 정도 살 힘을 키웠다고 볼 수 있습니다. 어쨌든 이것도 자랑스러운 일이죠.nbspnbsp수행의 목표는 모든 속박으로부터 벗어나서 자유로운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모든 괴로움으로부터 벗어나서 행복한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지금 우리는 자유롭지도 못하고 행복하지도 못합니다. 우리의 목표는 자유롭고 행복한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그런 목표를 향해서 한발 한발 나아가는 사람을 ‘수행자’, 즉 ‘보디사트바’라고 말합니다. 괴로움에서 벗어난 사람을 이름하여 ‘붓다’라고 합니다. nbspnbsp그런데 우리는 어려움이 닥쳤을 때 그 어려움을 극복하려고 하기 보다는 항상 누군가의 도움을 받아서 안온함에 들어가려고 합니다. 이것이 종교의 큰 목적 중에 하나입니다. 어려움에 처할 때 더 힘 있는 자에게 의지해서 안온함을 추구하려는 인간의 심리, 이것이 종교입니다.nbsp그런데 불교는 이런 의미의 종교가 아닙니다. 어려울 때 의지하고 싶은 중생의 이 까르마를 극복하는 것이 불교입니다. 신의 노예가 되는 것이 아니라 신의 스승이 되는, 즉 자기 인생의 주인이 되도록 하는 것이 원래 불교의 가르침입니다. 어려울수록 의지하고 싶은 마음이 일어나는 것은 중생의 업식이고, 어려울 때 의지하고 싶은 그 마음을 극복해내는 것, 그래서 괴로움이 없는 사람이 되는 것, 그게 수행의 목표입니다.nbspnbsp여러분들도 이곳에 수행하러 들어왔지만 자기도 모르게 점점 신자가 되기 쉽습니다. 자꾸 의지하려고 합니다. 부처님께 의지하려고 하는 것은 말할 것도 없고, 법사님께 의지하고, 스님께 의지하려고 합니다. 즉, 잘 보일려고 합니다. 이런 생각을 버려야 합니다. 이제는 그분들을 안내자로 삼아서 내가 그 길을 가야 합니다. 그럴려면 자발성이 있어야 됩니다. 자발적이지 않으면 그렇게 되기 어렵습니다.”nbspnbsp▲ 백일출가 입재자들nbsp수행은 자발적으로 해야 한다는 것에 모두 고개를 끄덕이자 다음은 선배들을 문제삼지 말아야 한다고 얘기해 주셨습니다. 남들이야 계율을 어기든 말든 나는 나대로 갈 수 있어야 한다고 강조해 주셨습니다.nbspnbsp“그런데 오리엔테이션도 받고 수행의 원칙을 잡아서 몇일 열심히 하다보면, 선배들도 원칙대로 안 하고 동료들도 원칙대로 안 하는 모습을 보게 됩니다. 그러면 ‘안해도 되네’ 이렇게 되기가 쉽습니다. 세상에 나가서 살면 세상에 물듭니다. 거짓말 하는 사람과 같이 살게 되면 거짓말을 하게 되고, 욕하는 사람과 같이 살면 욕하게 되고, 술 먹는 사람과 같이 살게 되면 술을 먹게 되는데, 이렇게 물드는 존재가 범부중생입니다. 그러나 수행자는 물들지 않는 자입니다. 옆에 사람이 술을 먹으면 그건 그 사람의 식성이고, 옆에 사람이 욕을 하면 그건 그 사람의 성질이고 말버릇입니다. 그건 그의 문제이고, 그것이 옳지 않다면 남이 다 먹어도 나는 먹지 않고, 남이 다 욕해도 나는 욕하지 않고, 남은 다 늦잠 자도 나는 일찍 일어나서 내 할 일을 하는 겁니다.nbspnbsp그런데 우리는 남이 안 하면 나도 따라서 안 하는 사람이거나 내가 한다고 안 하는 사람을 미워하거나 비판하는 사람이 되기 쉽습니다. 내가 한다고 남이 안 하는 걸 비판해도 안되고, 남이 안 한다고 나도 따라서 안 하면 안된다는 겁니다. 그 사람이 안 하는 것은 그 사람의 인생이고, 그것이 옳다면 나는 내 인생의 길을 가야 합니다.nbspnbsp이제 오늘부터 ‘때 아닌 때 먹지 않는다’, ‘비닐에 쌓인 음식은 먹지 않는다’ 이런 계율을 받게 됩니다. 만약 ‘늦게까지 일해서 피곤하니 내일 아침 예불은 좀 늦게 해도 됩니다’ 이렇게 공지가 나가더라도 대중들이 다 늦게 해도 그건 그들의 일이고 나는 정해진 시간에 일어나서 혼자라도 한다, 간식을 줘도 먹는 것은 그들의 일이고 나는 안 먹기로 했으니까 나는 안먹는다, 술을 한잔 하라고 해도 먹는 것은 그들의 일이고 안 먹는 것은 나의 일이다, 이런 자세가 되어야 합니다. 원칙을 정했으면 선배가 어떻게 하더라, 스님이 어떻게 하더라, 동료가 어떻게 하더라, 이런 얘기는 할 필요가 없어요.nbspnbsp자발적이라야 이런 태도를 갖지 자발적이지 않으면 ‘스님이 쉬라고 했는데’ 이렇게 되기가 쉽습니다. 자기가 자기 힘을 키우려면 거기에 구애받지 말아야 합니다. ‘안 먹기로 했으니 나는 안먹는다’ 이런 정도의 자세가 되어야 해탈로 갈 수 있습니다.nbspnbsp대중이 안 먹는데 혼자서 몰래 먹는 것은 계율을 어기는 것입니다. 먹어도 된다고 해도 안 먹는 자발성이 있어야 합니다. 그렇게 할 수 있겠어요? 잘 안될 겁니다. 안 먹기로 했는데 혼자서 몰래 먹는 수준이겠지요. nbspnbspnbsp안 먹기로 했는데 혼자서 몰래 먹는 것은 계율을 어긴 범부중생이고, 먹어라고 해서 먹는 것은 보통 사람이고, 먹어라고 해도 안 먹는 것은 자기 인생의 주인이 자기가 되어서 살아가는 사람입니다. 밖에 있을 때는 늘 이것저것 먹고 싶을 때 먹었기 때문에 먹는 것에 대해서는 별로 안 끄달릴 것 같은데, 때 아닌 때에 안 먹는 생활을 해보면 내가 얼마나 먹는 것에 끄달리는지 알 수 있습니다. 같이 살 때는 속박만 느끼고 집이 얼마나 좋은지 모르는데, 집을 떠나보면 집이 좋은 줄 아는 것처럼 자신의 까르마를 멈춰봐야 내가 거기에 얼마나 중독이 되어 있는지 알 수 있습니다.nbspnbsp그래서 먼저 점검을 해야 합니다. 내가 어떤 것에 끄달리는지 점검을 해야 합니다. 다음은 거기로부터 자유로워지려면 자기 수행의 원칙이 딱 있어야 합니다. 자기 혼자서 마음대로 원칙을 정하면 안돼요. 정해진 계율에 따라 지켜야 합니다. 그런데 공동 생활을 하기 때문에 대중이 다 하니까 나도 따라서 하기가 쉬워요. 세속에서 혼자서는 못하지만 대중이 같이 하니까 할 수 있게 됩니다.nbspnbsp그러나 가끔 필요에 따라서 원칙을 유예시킬 때가 있습니다. 그럴 때 자기 중심을 잡고 갈 필요가 있습니다. 그것이 되면 수행자 소질이 있고, 그게 안되면 좋은 환경에 있으면 좋은 환경에 물들고, 나쁜 환경에 있으면 나쁜 환경에 물드는 수준입니다. 좋은 환경에서 좋은 것에 물드는 것이나 나쁜 환경에서 나쁜 것에 물드는 것이나 오십보 백보입니다. 그러니 남이 하고 안하고 따질 필요가 없습니다. 좋은 일은 남이 안해도 하고, 나쁜 일은 남이 해도 안하는 자세가 필요합니다.nbspnbsp여기 백일출가 행자님들은 딱 새로운 마음으로 결심하고 들어왔기 때문에 자신만 마음을 먹으면 변화가 가능합니다. 그런데 여기 오래 산 사람들은 잘 안돼요. 이미 포기해 버렸기 때문이에요. nbspnbspnbsp좋은 것에 물이 들어서 아침에 깨우면 벌떡 일어나서 잘 해요. 그러나 ‘이래도 된다’ 이렇게 유예를 주면 좋아서 어쩔 줄을 모릅니다. 마치 학교 선생님이 오늘 수업 없다고 얘기하면 학생들이 펄쩍 펄쩍 뛰면서 좋아하는 것과 똑같습니다. 자발성이 없이 하기 때문에 이렇게 됩니다. 자발성 없이 좋은 일을 하면 착한 사람일 뿐이지 수행자는 아닙니다. 해탈과 열반을 추구하는 수행자는 세상이 함께 해주면 좋지만, 세상이 함께 해주지 않아도 자기 갈 길을 갑니다. 그래서 붓다의 가르침은 세상을 거스른다고 말합니다.”nbsp그리고 수행자는 항의하고 싸우는 방식이 아닌 정말 개선을 원한다면 어떤 자세를 가져야 하는지 말씀해 주셨습니다.nbspnbsp“초발심이 중요합니다. 이제 시작이니 오늘부터 원칙을 정해놓고 한번 해봐요. 그래서 정토수련원의 분위기를 여러분들이 확 바꿔보세요. 그렇지 않고 ‘선배들도 제대로 못하는데 뭐’ 이렇게 되면 안됩니다. 남을 따라 가면 안됩니다. 나쁜 행동은 금방 따라하기 쉽습니다. 아무리 교육을 해도 안바뀌는 이유는 윗물이 흐리기 때문입니다. 이럴 때 ‘선배들이 문제다’ 라고 얘기하는데, 원인은 맞지만 이렇게만 생각하면 개선할 길이 없어요. 선배들이 그렇든지 말든지 그것이 부처님 법이 아니면 안 따라가면 됩니다. 그것이 바른 길이 아니면 안 해야지요. 이런 자세로 해나가면 세월이 흐르면 개혁이 되어 버립니다. 기존 선배들은 제대로 못하더라도 새로 들어온 사람들부터 딱 바로 하면 수행 분위기가 바뀌는데 새로 들어온 사람 대부분이 그렇게 할 역량이 안되는 겁니다. 즉 그만큼 발심이 안 되어 있습니다.nbspnbsp이렇게 자발적인 수행자가 자꾸 자꾸 들어오면 정토회가 좀 문제가 있어도 시간이 흐르면 확 개선이 되어버립니다. 막 항의하고 싸워서 개선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러나 일반적으로는 윗물이 맑아도 밑으로 내려가면 흐려져서 시간이 흐르면 못해지는 쪽으로 가기 쉽습니다.”nbsp그러면서 백일출가를 한 행자님들에게 질문을 던졌습니다.nbspnbsp“누가 뭐라든 주어진 계율대로 할 수 있겠어요?”nbsp“네”nbspnbsp“대답이 신통찮네요.nbsp평생 하라는 것이 아니고 백일만 해보세요. 백일만 해보고 좋으면 계속 하고, 안 좋으면 그만두면 됩니다. 때 아닌 때에 먹지 않는다, 이거 백일 동안 할 수 있을까요? 이거 한 개라도 백일 동안만 딱 해봐요.”nbsp“네”nbspnbspnbsp백일 만큼은 해볼 수 있겠는지 묻는 질문에는 우렁찬 대답이 터져나왔습니다. 한 개라도 꼭 지켜보라는 말씀에 조금 마음이 가벼워졌나 봅니다. 마지막으로 스님께서는 거센 세속의 물결을 거스르는 것이 불교라고 하면서 남이 아닌 오직 나를 돌아볼 수 있어야 함을 강조했습니다.nbspnbsp“수행의 원칙이 이렇다는 겁니다. 선배가 해탈 안한다고 나도 해탈 안할 거에요? 선배가 중생놀음 한다고 나도 중생놀음 할 거예요? 내가 해탈하고 부처되려고 들어왔지 선배 본받으려고 들어온 것 아니지 않아요? 같이 해주면 좋은 일이지만 안해주면 나 혼자라도 가야 합니다.nbsp만배 하는 게 쉬워요? 때 아닌 때 안 먹는 게 쉬워요? 만배도 했는데 때 아닌 때 안 먹는 걸 왜 못해요? 그런데 만배는 이를 악 다물고 해놓고 간식은 그 유혹을 못 이겨요. 그래서 예로부터 협박보다 유혹이 더 어렵다고 한 겁니다. 협박을 하면 이를 악 다물고 저항을 하거나 참는데, 유혹을 하면 금방 넘어가 버립니다. 만약 새벽 2시에 들어와서 4시 예불에는 참석 안 해도 된다고 공지하더라도 자기는 그냥 4시에 일어나서 예불을 하는 겁니다. 아무도 안해도 나 혼자 하는 겁니다. 그렇게 할 수 있으면 해탈로 나아갈 수 있습니다. 거센 세속의 물결을 거슬러 갈 수 있습니다. 이 세상이 전부 소비주의에 물들어 있다 해도 나는 거기에 물들지 않는 겁니다. 그래야 세상 속으로 들어가 살아도 흔들림이 없습니다.nbspnbspnbsp그렇지 않으면 여기처럼 격리된 공간에서 물을 좀 빼고 나가면 또 물이 들어서 들어오고 또 나가고 이렇게 됩니다. 그것도 안 하는 것보다는 나아요. 그러나 우리는 세상에 물들지 않는 자를 넘어서서 세상을 정화하는 자가 되어야 합니다. 그러니 여러분들은 우선 세상에 물들지 않는 자가 되기 위해서 지금 격리 수용되어 있는 거에요. 이렇게 격리 수용되어 있는데도 몰래 혼자서 물들고 그러잖아요.nbspnbsp그러니 여기에서 세상 속으로 나갈 것을 대비해서 법이 아닌 것은 따르지 않아야 합니다. 남이 하는지 안 하는지는 얘기할 필요가 없어요. 그 누구도 볼 필요가 없어요. 내가 되나 안 되나, 내가 짜증이 나나 안 나나, 오직 나를 봐야 합니다. ‘그 사람은 화를 내던데’ 이렇게 보면 안됩니다. 도반이 어떻게 하든, 선배가 어떻게 하든, 법사님이 어떻게 하든, 그건 볼 필요가 없어요. 내가 되나 안 되나, 오직 이것만 보고 정진을 해야 주인이 될 수 있습니다.nbspnbsp오늘 처음 들어왔다고 하니까 이런 얘기를 해주는 겁니다. 벌써 오래된 사람들은 이런 얘기가 귀에 들어오지도 않아요. 명심하시기 바랍니다.”nbsp스님께서는 오늘 백일출가를 처음 시작하는 분들을 위해 조금이라도 수행적 관점을 분명하게 잡아주고자 정성껏 말씀을 해주셨습니다. 특히 ‘남 볼 필요 없이 오직 나만 보라’는 말씀은 큰 울림으로 다가왔습니다.nbspnbsp스님의 법문을 듣고 백일출가 행자님들은 기쁨의 미소를 지었습니다. 오늘부터 백일출가 생활을 시작하게 되는데 스님 법문이 큰 선물이 된 것 같습니다.nbspnbspnbsp발우공양을 마치고 스님께서는 곧바로 서울로 이동하셨습니다. 원래 오늘은 문경정토수련원에서 정토불교대학 특강수련 법문을 해주기로 시간을 비워 놓으셨는데 메르스 때문에 취소가 되는 바람에 오랜만에 여유가 생겼습니다. 아침 10시30분에 서울 정토회관에 도착한 스님께서는 하루 종일 집무실에서 업무를 보셨습니다.nbspnbsp내일부터 3일 동안은 중국을 방문하여 폐교 위기에 놓인 조선족 학교들을 어떻게 지원할 것인지 답사를 하실 예정입니다.
2015.6.13 통일의병대회
nbspnbsp안녕하세요. 오늘 스님께서는 메르스로 인해 정토회의 통일의병대회가 취소되었지만 원래 진행하기로 했던 순례 코스를 스님 혼자서 걸으며 통일 기도를 하셨습니다.nbspnbsp오늘도 새벽 4시30분 두북 정토수련원에서 새벽 예불 및 천일결사 기도로 하루를 시작했습니다.nbspnbsp▲ 두북정토수련원nbsp기도를 마치고 스님께서는 “통일의병대회를 메르스 때문에 대중이 못하니까 나 혼자라도 해야겠다” 고 하시며 오늘 원래 통일의병들이 집결하기로 한 “법흥왕릉으로 가자”고 하셨습니다. nbsp그러면서 이렇게 말씀해 주셨습니다.nbspnbsp“통일이라고 하는 민족의 염원은 남이 안 한다고 나까지 안 할 수가 없는 일이야. 다른 사람이 같이 하면 고마운 일이고, 다른 사람이 안 해도 나 혼자라도 해야 하는 일이야. 그러니 염원이라고 하지. 용성 조사님께서 다른 스님들이 독립운동 안 한다고 안 하신게 아니잖아. 다른 스님들이 친일한다고 따라하지 않았잖아. 수행자는 그것이 해야 할 일이면 남이 하든 안 하든 나는 하는 사람이야.”nbspnbsp6시 무렵 법흥왕릉에 도착하니 새벽녘 인적이 드문 곳이라 아주 고요한 기운이 감돌았습니다.nbspnbspnbsp스님께서는 가사를 수하고 삼귀의 반야심경을 하면서 혼자 통일의병대회 입재식을 시작하셨습니다. 그리고 통일을 염원하는 기도를 정성껏 하셨습니다.nbspnbsp▲ 법흥왕릉nbsp기도를 마친 후 스님께서 “오늘 통일의병대회 입재식을 잘 했다. 뒤에 통일의병 900명 서 있는 거 안 보였어?”라고 하셔서 멀뚱히 스님을 바라보니 “눈에 안 보이는 통일의병들이야”라고 하시며 웃으셨습니다.nbspnbsp법흥왕릉을 내려오는 길에는 함께 동행한 묘덕법사님과 김신아님에게 법흥왕릉에서 통일의병대회를 시작하려고 했던 의미에 대해서 설명해 주셨습니다.nbspnbspnbsp“법흥왕의 가장 큰 업적은 신라와 가야의 합의통일을 이루어낸 점이야. 신라가 가야와 합병한 이후에 국호를 신라로 했다는 것은 우선 자기 아이덴티티를 가졌다는 것을 의미하거든. 그만큼 자기중심성이 있었던 반면에 상대에 대해서는 포용을 해야 되니까 상대의 정신적인 이념인 불교를 공인해서 그들의 신앙이나 사상을 존중해 주었지. 그리고 상대의 신분을 보장해 주었어. 즉 가야 왕족을 신라의 진골로 모두 받아들여 준 거야. 이렇게 포용을 했다는 것이지. 그러니 우리도 통일을 하려고 할 때 대한민국을 중심으로 통일을 하겠다는 것이 분명하면 북한을 포용해줘야 한다는 거야. 이런 이야기를 해주려고 법흥왕릉에서 통일의병대회를 시작하려고 했던 거야. 자, 그럼 다음 순례 장소로 가보자.”nbspnbsp스님의 짧은 설명을 듣고 나서 ‘과연 한국은 북한을 포용할 준비가 얼마나 되어있는지’ 돌아보았습니다. 신라가 불교 국가인 가야의 신앙을 공인해 주었듯이 과연 남한이 북한의 공산당 이념을 허용해 줄 수 있을지 생각만 해도 고개가 절로 저어졌습니다.nbspnbsp다시 황룡사지로 가는 길. “가야를 포용한 법흥왕이 참 대단하다”고 이야기하자 스님께서는 “처음부터 그랬던 것은 아니야”라고 하면서 덧붙여 말씀해 주셨습니다. nbspnbspnbsp“법흥왕도 처음부터 포용 정책을 편 것이 아니야. 처음에는 보수 기득권 세력의 강력한 반발에 부딪혔어. 젊은 이차돈이 순교를 한 이후에야 불교를 공인했거든. 왕도 보수세력의 포로가 되어서 공인을 못해주고 있었는데 이차돈이 527년에 순교하면서 전세가 뒤집어져서 528년에 불교가 공인이 되었어.”nbspnbsp그때서야 이차돈의 순교가 생각이 났습니다. 포용 정책에는 많은 반발이 따를 수 있고 그것을 감내할 수 있어야 함을 알 수 있었습니다.nbspnbsp곧이어 황룡사지에 도착했습니다. 분황사를 지나 시원한 바람을 맞으며 신라 당시 최고의 고승들이 설법을 했다고 하는 백고좌 강당터를 지나 대웅전인 금당터에 올라섰습니다. 스님께서는 삼존불을 모셨던 자리 앞에 서서 목탁을 손에 드시고 기도를 하셨습니다.nbspnbspnbsp▲ 황룡사지 금당터nbsp그리고 돌아서서 9층탑이 세워졌었던 터를 향해 잠시 기도를 한 후 탑돌이를 시작했습니다. 탑돌이를 마친 후 스님께서는 황룡사지를 참배하면서는 어떤 이야기를 해주고 싶었는지 말씀해 주셨습니다.nbspnbsp▲ 황룡사 9층탑 주위를 돌며nbsp“황룡사는 진흥왕이 신라의 국력이 한창 신장되고 있을 때 지은 절이야. 그러나 9층탑은 선덕여왕 때 외적의 침입을 막고 삼국 통일을 발원하면서 쌓은 것이고. 여기서는 대중들에게 한반도의 통일을 발원하는 얘기를 하고 통일의병들과 함께 통일 발원 기도를 하려고 했지.”nbsp설명을 듣고 나니 만약 오늘 900여명의 대중들이 와서 함께 통일 발원 기도를 했었으면 장관이었을 것 같습니다. 황룡사지의 넓은 터에 가만히 서 있으니 흐린 날씨에 시원한 바람이 불었는데 스님께서는 “오늘 통일의병대회 했으면 날씨가 기가 막힐 정도로 좋을 뻔 했다”며 아쉬움을 내비쳤습니다.nbspnbsp황룡사지를 출발하여 낭산까지 걸어서 이동하기로 한 도로를 따라 걸었습니다. 스님께서는 이 도로는 신호가 걸릴 때 대중들이 한꺼번에 길을 건너면 된다고 이야기해 주셨습니다.nbspnbsp▲ 황룡사지에서 낭산으로 향하는 길nbsp중간에 나지막한 언덕에 최치원 선생이 집필 활동을 했다고 하는 독서당이 보였습니다. 스님께서는 “이곳을 지날 때마다 늘 먼발치서 바라보기만 했는데 오늘 한번 가보자” 하시면서 앞장섰습니다. 독서당 안으로 들어가니 이른 아침인데도 문이 열려 있어서 마당 안까지 들어가 볼 수 있었습니다. 스님께서는 최치원 선생에 대해서 간략히 이야기를 해주셨습니다.nbspnbsp▲ 최치원 선생의 독서당nbsp“최치원은 신라 말의 대문장가였어. 한국에서보다 중국에서 더 유명했지. 중국 유학을 마치고 한국에 와서 개혁정책을 내놓았는데 신라는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어. 낡은 왕조가 개혁정책을 안 받아주니까 결국 은둔 생활을 하다가 죽었어. 말하자면 당나라에서 대문장가로 출세를 하고 자신의 뜻을 펼쳐보려고 신라에 들어왔는데 신분적 한계가 있었던 거야. 신라는 왕족인 진골이여야 출세를 할 수 있는데 최치원 선생은 6두품이었거든. 원효스님, 최제우 선생과 더불어서 한국이 낳은 3대 역사적 인물 중에 한 분이라고 볼 수 있지.”nbsp스님의 설명을 들으니 해외에서는 그 능력을 인정받았지만 국내로 들어오면 기득권 세력에게 밀릴 수 있는 사람들이 오늘날에도 많이 있을 수 있겠구나 싶은 생각이 들었습니다.nbspnbsp기차 철로를 지나 낭산을 올라가는 입구에서 조금 더 올라가니 능지탑이 자리하고 있었습니다. 스님께서는 능지탑 앞에서도 간절히 통일을 염원하는 기도를 하셨습니다. 기도를 마치고 능지탑이 갖는 의미에 대해 이야기해 주셨습니다.nbspnbsp▲ 능지탑nbsp“능지탑은 통일 이후 신라의 진로를 보여주는 곳이야. 삼국통일을 이룬 문무대왕의 화장터에 세운 탑이거든. 문무대왕은 마지막 남은 적인 왜를 방어하기 위해서 자기가 죽어서 동해 바다의 용이 되겠다고 원을 세웠어.”nbsp여기서는 지도자가 나라를 생각하는 마음은 어떠해야하는지 배울 수 있었습니다. 김구 선생이 우리나라가 독립국이 된다면 문지기라도 하겠다고 얘기한 대목이 떠오르기도 했습니다.nbspnbsp이어서 선덕여왕릉으로 걸어 올라갔습니다. 선덕여왕릉으로 올라가는 길에는 소나무 숲길이 길게 나 있었는데, 스님께서는 그 거리를 재어보라고 하셨습니다. 거리 측정을 해보니 시원한 그늘을 이루고 있는 숲길이 총 450m가 되었습니다. 스님께서는 “1m당 2명씩 앉으면 2줄로 900명이 앉아지니까 충분하네. 내가 가운데 지점에서 법문을 하면 양쪽으로 225m 되니까 송수신기로도 들을 수 있고, 법문 끝나면 그늘 아래서 간식도 먹을 수 있고” 하시면서 예상이 맞았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셨습니다.nbspnbsp▲ 선덕여왕릉nbsp“왜냐하면 능지탑이나 사천왕사지는 그늘이 없어서 6월이면 햇볕이 뜨겁거든. 그래서 선덕여왕릉까지 올라갔다 내려오는 이 숲길에 일렬로 주욱 앉아서 설명을 듣고 사천왕사지에서는 기도만 하고 가려고 했지.”nbsp많은 대중들이 6월의 뙤약볕 아래에서 법문을 들으려면 힘들다는 것을 아시고 그 대책을 마련하느라 많은 연구를 하셨음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nbspnbsp그리고 선덕여왕릉을 통일의병대회의 순례 코스로 잡은 이유를 이야기해 주셨습니다.nbspnbspnbsp“선덕여왕은 삼국 통일을 준비한 사람이야. 황룡사 9층탑도 쌓았고, 김유신과 김춘추를 시켜서 통일을 준비하게 했어. 김춘추는 고구려에 먼저 가서 고구려와 협력을 하려고 했거든. 그런데 연개소문이 김춘추를 잡아서 죽이려고 했어. 그래서 할 수 없이 김춘추는 당나라로 가서 당태종과 합의해서 나당 동맹을 견고하게 하는 역할을 했는데, 그 때가 선덕여왕 때야. 선덕여왕은 김춘추와 김유신을 키워낸 사람이고 통일을 준비한 사람이라고 볼 수 있지.”nbsp통일을 준비한 지도자였다는 말씀에 뭔가 깊은 울림이 남았습니다. 본인이 통일의 과업을 달성하지 못하더라도 통일될 나라를 내다보고 미리 준비를 했다니 ‘우리에게도 그런 지도자가 있다면 참 좋을 텐데’ 하는 찰나에 ‘아, 우리에게는 스님이 계시는구나’ 하는 생각이 퍼뜩 들었습니다.nbspnbsp사천왕사지에 도착하니 전체가 깨끗하게 벌초가 되어 있었습니다. 누군가의 수고로움으로 잘 정돈된 사천왕사지를 보니 오늘 통일의병대회를 했으면 좋았을 텐데 하는 아쉬움이 다시 한번 느껴졌습니다.nbsp▲ 사천왕사지nbsp스님께서는 사천왕사지에서 불상을 모셨다고 하는 법당 터를 바라보고 다시 한번 간절히 통일 염원 기도를 하셨습니다. 기도 후에는 왜 이곳에 통일의병을 데리고 와서 기도를 하려고 했는지 그 이유를 알려주셨습니다.nbspnbspnbsp“신라가 자주적인 통일국가를 건설하기 위해서는 그동안 우방이었던 당나라와도 전쟁을 할 수 밖에 없었는데 사천왕사지는 그 마지막 승리를 위해 신·불의 도움을 청하려고 기도했던 곳이야.nbsp사천왕사지에서는 언제 기도를 해야 하느냐 하면, 남북 간에는 합의가 되어서 통일하려고 하는데 그 때 미국이나 중국이 반대를 할 수 있거든. 그 때는 여기 와서 기도를 해야 돼.”nbsp스님의 설명을 들으니 우리 역사 속에는 이미 선조들이 국난을 극복해낸 경험이 있다는 사실이 새삼 크게 다가왔습니다. 선조들의 경험 속에서 교훈을 잘 얻는다면, 또 그 힘을 빌린다면 많은 도움이 될 수 있겠구나 싶었습니다.nbspnbsp그러면서 스님께서는 명랑법사가 12명의 스님들과 함께 문두루비법을 행해 당군을 수장시켰다고 하는 곳을 안내해 주셨습니다.nbspnbsp“당나라와의 전쟁 승리를 기원하면서 문두루 비법을 행한 곳이 여기 법당 뒷쪽에 있어. 이쪽에 12개의 기초석 위에는 법사님 12명이 올라서고, 저쪽에 12개의 기초석 위에는 대중부 대표 12명이 올라서서 그 때 당시처럼 문두루 비법을 해보려고 그랬어.” nbspnbsp옆에서 묘덕법사님이 “문두루 비법 주문은 무엇으로 해요?” 라고 묻자 스님께서도 웃으셨습니다.nbspnbsp다음은 통일암으로 향했습니다. ‘통일암’ 이라고 해서 이름이 참 마음에 들었는데, 도착하고 보니 작은 암자였습니다. 그러나 작은 암자 뒤에는 대나무와 소나무가 시원한 그늘을 드리운 넓은 공터가 자리하고 있어서 900명의 대중이 능히 앉을 만했습니다.nbspnbsp통일암에서 걸어서 내려오니 염불사라고 하는 작은 절이 나타났습니다. 염불사 앞마당에는 큰 탑 2개가 나란히 서 있었는데, 스님께서는 이곳에서 회향식을 하려고 했다 하시면서 탑 앞에 서서 다시 한번 간절히 통일 염원 기도를 하셨습니다.nbspnbsp▲ 염불사nbsp“여기서는 통일의병의 실천 과제로 ‘통일지향적 정부를 구성해야 한다’는 얘기를 해주고, 그러기 위해서 실천 사항을 이야기하고, 다함께 통일 발원 기도를 하려고 했지.”nbsp이렇게 얘기하신 후 스님께서는 “그럼 오늘 통일의병대회는 이것으로 다 한 거다” 라고 하시면서 웃으셨습니다.nbspnbspnbsp스님 혼자서 진행한 통일의병대회 순례 코스는 대중들과 함께 할 때보다 훨씬 시간이 단축되었습니다. 아침 6시에 시작한 순례는 입재식부터 회향식까지 3시간 30분이 걸려 9시30분 무렵에 마쳤습니다. nbspnbsp순례를 마치고 돌아오는 길에 스님께 “스님의 통일 강의를 많이 들은 사람들은 스님의 통일 비전이 너무 좋지만 막상 개인이 실천할 수 있는 것은 없는 것 같다고 많이 얘기한다” 고 하면서 스님의 생각을 여쭤 보았습니다. 항상 이 부분이 답답할 때가 많았기 때문입니다. 스님께서는 간단하게 답변해 주셨습니다.nbspnbsp“그렇게 생각하면 안 되지. 그래서 스님이 대안을 제시한 거야. 통일지향적 정부를 구성하는 것이라고. 통일지향적인 정부를 구성해야 한다는 것에 동의하는 사람들을 지금부터 2년 간 계속 확대해 나가야지. 다른 건 의미가 크지 않아. 그러니까 하반기에는 통일을 원하는 국민들이 이렇게 많다는 것을 보여주는 일을 해나가야지. 그게 통일의병이야.nbsp가령 이런 노래를 만들면 어떨까.nbspnbsp‘우리는 통일을 원해 ♬ 대한민국이 통일의 중심이 되어야 해. 통일에 대한 자신감을 가져야 해. 그러려면 상대편을 이해해야 해 북한을 포용해야 해. 통일 한국은 동방의 등불이야nbsp♬nbsp이제 등불을 켤 때가 되었어.’nbspnbsp이런 짧은 가사로 노래를 만들어서 불러야지. 요즘 젊은이들 노래가 이런 식이잖아. 또 이런 가사도 만들어 볼 수 있잖아.nbspnbsp‘밥 먹자. 배고플 때는 혼자 먹어도 괜찮아 ♬ 그런데 배부를 때는 혼자 밥 먹으면 재미없어. 배부를 때는 같이 밥을 먹어야해 ♬ 이제 우리 북한 아이들과 같이 밥을 먹자.’nbspnbsp이렇게 해학적이고 재미있게 노래를 만들어 보면 좋겠어.”nbsp스님 말씀을 듣고 갑자기 랩퍼가 되어 스님의 얘기한 가사를 따라 불러 봅니다. 우리들이 부르기엔 영 어색했습니다. 음악에 재능이 있는 누군가가 스님의 아이디어를 받아서 통일을 주제로 한 재미있는 노래를 만들어주면 좋겠다 싶은 바람이 들었습니다. 조만간 그런 날이 오겠지요.nbspnbsp이렇게 나홀로 통일의병대회를 마치고 나서는 원래 오늘 강의를 해주기로 약속했던 경주고등학교에 잠깐 들르셨습니다.nbspnbsp▲ 경주고등학교nbsp경주고등학교 강연도 메르스 때문에 취소가 되었는데, 스님께서는 “경주고등학교 안에 6.25전쟁 전몰 학도병 추념비가 있는데 거기를 참배하고 와야겠다” 하시면서 학교로 향했습니다. 이른 시간이라 학교는 텅 비어 있었지만 추념비는 의젓하게 자리하고 있었습니다.nbspnbsp▲ 6.25전쟁 전몰학도병 추념비nbsp6.25전쟁 때 경주고등학교 학생 320명이 안강 전투에 출정하여 전사한 이가 39명이고 실종된 이가 100명이 되었다고 합니다. 이것을 기려 추념비를 세웠는데, 비석 앞에 서서 분단의 아픔이 어린 학생들에게도 미쳤음을 생각하니 가슴이 저려왔습니다. 스님께서는 전몰학도병들의 넋을 기리며 해탈주 삼독을 해주셨습니다.nbspnbsp두북으로 돌아온 스님께서는 도착하자마자 작업복으로 갈아입고 밭일을 하기 시작했습니다. nbsp마당에 심어 놓은 갖가지 채소들을 뜯고 물을 준 후 중간 중간에 잡초가 난 것을 제거하는 일을 하셨습니다. 그리고 인도에서 8년 동안의 봉사활동을 마치고 귀국한 김신아님과도 밭일을 하며 이런 저런 많은 이야기를 나누셨습니다.nbspnbsp점심을 먹고 오후에는 예초기와 낫, 톱을 들고 부모님 산소를 찾으셨습니다. 산소에 무성하게 자란 풀을 모처럼 시간이 난 김에 벌초하고 깨끗이 정돈하셨습니다. 형체가 잘 보이지 않을 정도로 풀이 무성했던 산소는 스님께서 예초기를 돌리기 시작한지 2시간 만에 아주 깔끔하게 변했습니다.nbspnbsp▲ 작업 전nbspnbsp▲ 작업 후nbsp벌초를 마치고 돌아와서는 씻고 간단히 저녁을 먹은 후 문경정토수련원으로 이동하셨습니다. 문경정토수련원으로 이동하는 동안에는 어제에 이어서 BTN에서 스님께서 꼭 보셔야 한다고 전해 준 ‘붓다’ 드라마 3회, 4회를 시청하셨습니다.nbspnbsp원래는 문경정토수련원에서 내일 오전에 불교대학 특강수련 법문을 해주기로 약속을 해놓으셨는데 메르스 때문에 최소가 되었습니다. 그러나 스님께서는 “취소된 건 그들의 사정이고, 나는 약속을 지켜야지” 하시며 내일 새벽 예불과 발우공양을 문경에서 하고 서울로 이동하기로 하셨습니다. 내일 또 소식 전해드리겠습니다. nbsp
2015.6.12 INEB 환송 및 두북 이동
▲ INEBnbsp스텝 봉사자들과 대화nbsp안녕하세요. 오늘 스님께서는 INEB 동남아 스님들과 함께 발우공양을 하며 환송 인사를 하고, INEB 스텝 봉사자들과 점심 식사를 한후, 오후에는 두북으로 이동하셨습니다.nbspnbsp새벽4시30분에 일어나 서울 공동체 대중들과 함께 새벽 예불과 천일결사 기도를 한 후 발우공양을 함께 하셨습니다.nbspnbspnbspnbsp발우공양을 마치고 나서는 먼저 메르스로 인해 주말에 예정된 정토회 행사가 모두 취소되었음을 알려주셨습니다.nbspnbsp“메르스 확산 때문에 통일의병대회와 불교대학 특강수련, 대전에서 있는 청년 불교대학 특강수련이 모두 취소되었습니다. 특별히 위험해서라기 보다는 대통령도 미국 방문 일정을 연기하고 메르스 확산 방지를 위해서 전국민이 협력하는데 전체적으로 같이 협력하면 좋겠다는 의견이 많아서 이번주 행사는 모두 최소했습니다. 여러분들도 그렇게 아시고 함께 유의해 주시기 바랍니다.nbspnbspnbsp혹시 여러분들 중에서도 병원에 갈 때는 주의를 좀 해주세요. 병원에 입원한 환자를 방문했거나 또는 집에 있는 환자를 방문한 사람은 당분간 상주 대중생활을 하지 않도록 해주세요. 어제 법광 법사님은 딸이 메르스 환자와 가까이 있었던 처지로 격리 대상자임에도 불구하고 딸을 방문하고 왔기 때문에 열흘간 법당을 출입하지 않도록 했습니다. 그래서 여러분들도 환자를 방문할 때는 검토를 해보고 종합적으로 판단해서 방문하시기 바랍니다.nbspnbsp현재까지는 대부분 병원에서 전염되고 있습니다. 병문안 갔다가 전염되고, 입원했다가 전염되고, 응급실에 갔다가 전염되고 있습니다. 현재까지 일반인에게 전염된 예는 크게 없는 것 같군요. 현재까지는 모두 병원에서 전염되었기 때문에 병원을 방문할 때는 모두 유의해 주시기 바랍니다.nbspnbsp우리도 겨울이 되면 독감 환자가 생기면 같은 방에 사는 사람은 다 전염되잖아요. 올 겨울부터는 독감 환자가 생기면 무조건 독방을 쓸 수 있도록 하고, 같은 대중방을 사용하지 않도록 해주세요. 올해부터는 꼭 지켜주시기 바랍니다. 매년 독감에 대해서 예방을 못해 거의 한달을 고생하잖아요. 그래서 누구든지 독감 환자가 생기면 대중과 분리시켜서 함께 생활하지 않도록 해주세요. 그리고 독감 환자는 마스크를 착용하도록 조치를 취해주시기 바랍니다.”nbspnbsp그리고 INEB 동남아 스님들이 모두 출국을 하게 되는데 스텝 봉사자들은 공항 배웅을 다녀오면 함께 점심 식사를 하자고 하셨습니다. 밥이라도 한끼 먹으면서 그동안 고생이 많았는데 함께 소감이라도 나누는 시간을 갖고자 하셨습니다. nbspnbsp그리고 내일 열릴 예정이던 통일의병대회가 취소되어서 대신에 그동안 경주고등학교에서 학생들을 위한 강의를 해달라고 요청이 많았는데 못해주다가 내일 해주기로 했다고 하셨습니다. 또 다음주에는 폐교 위기에 처한 조선족 학교들을 방문하려고 하는데 학용품을 전달할 수 있도록 준비해 줄 것을 JTS 담당자에게 요청하셨습니다.nbspnbsp그리고 지난주에 49일 출가 수행프로그램을 회향하고 밖에서 살고 있지만 일주일마다 하루씩 법당에 다시 들어와 정진을 이어나가기로 한 청년들을 보고선 세상 속에 살면서 어떻게 수행을 해나가야 하는지 한번 더 강조해 주셨습니다.nbspnbspnbsp“밖에 가서 일주일 살아보니 어때요?”nbspnbsp“다시 들어오고 싶어요.”nbsp“역시 밖이 좋더나?”nbsp“아니요. 안에 사는 게 더 좋습니다.”nbsp“여기 사는 게 좋아요? 말이라도 그렇게 해주니 고마워요. 그러면 아예 직장 그만두고 들어오는 게 더 낫지 않아요? 그러기에는 좀 어려워요? 여기서 출퇴근하면 잠을 제대로 못자서 피곤했잖아요.”nbsp“그건 감수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nbspnbsp“또 들어오고 싶다는 얘기네요. 수행이라는 것은 일상 속에서 늘 이뤄져야 하니까 절에 있으면 수행이 되고 밖에 나가면 금방 물들면 아직 수준이 안되는 것이거든요. 지금은 물드는 존재이지만 여기서 연습을 해서 이제 물 안드는 존재로 가야 되잖아요. 물 안드는 존재는 두 가지가 있어요. 까마귀 노는 곳에 백로야 가지 마라는 말처럼 물 안들 수 있는 조건을 만들어서 물이 안 드는 방법이 있고, 물들 수 있는 세상 속에서도 물이 안드는 방법이 있어요. 소승은 세속을 경계해서 세속을 멀리하고, 대승은 세속에 있으면서도 세속에 물이 안드는 수행을 합니다. 그래서 여러분들이 여기 들어와서 수행하는 것과 같이 회사에서도 화를 안내고, 짜증도 안내고, 먹는 것에 욕심 안내고, 승진에도 욕심 안내고, 야단을 쳐도 새소리처럼 듣고 이렇게 되는지, 그게 안되면 여기 와서 다시 기도하고, 또 직장에 가서 되는지 검토하고, 그래서 그 속에서 되어야 합니다.nbspnbsp이것을 매일 점검하고 한주에 한번씩 와서 정화시키고 또 나가서 살면서 물 좀 들면 또 정화하고 또 나가고 이렇게 해야 합니다. 그래서 여기서 49일 한 것은 물 안드는 격리 조건에서 연습한 것이고, 이번에는 다시 나가서 왔다갔다 하면서 해보는 것입니다. 그렇게 해서 물 안드는 수준이 되는지 검토해 보고, 그게 되면 나가 살아도 되고, 그게 안되면 아예 회사 사표를 내고 들어와야 해요. nbspnbspnbsp그런데 여러분들은 세속에 살 수준이 안되는가 봐요. 여기 사는 사람들도 세속에 살 수준이 안되어서 지금 이렇게 살고 있는거에요. nbspnbsp결혼해서 애기 낳고 사는 사람들은 수준이 상당히 높은 사람들이에요. 그런데 보통 수준이 안되는 사람이 멋도 모르고 결혼해서 살다가 괴롭다고 아우성치고 난리잖아요. 그래서 스님이 늘 얘기하잖아요. ‘나도 수준이 안되지만 그래도 나는 안되는 줄을 알아서 이렇게 혼자 사는데, 너희는 안되는 수준인데도 되는 줄 착각해서 일이 이렇게 복잡하게 되었다’ 하고요. nbspnbsp자기가 결혼하고 자기가 애 낳고 자기가 직장다니고 이렇게 자기가 선택해놓고 자기가 괴롭다고 아우성치는 건 좀 모순이잖아요. 밖에 나가 살다가 후회가 되면 다시 들어오면 됩니다. 그런데 그 수준에서 들어오면 여기서 살아도 또 괴롭다고 아우성을 쳐요. 여기 살면서도 괴롭다고 아우성치는 사람들이 많이 있거든요. 그러니 장소에 구애받지 말고 연습을 해보세요. 늘 여여하게 되는 연습을 꾸준히 해나가시기 바랍니다.”nbsp스님의 법문을 듣고 청년들은 다시 용기를 내어 봅니다. 49일 수행을 마치고 직장으로 돌아가니 힘든 점이 여전히 많았나 봅니다. 다시 들어오고 싶어하는 마음이 간절히 느껴졌지만 역시나 스님께서는 힘들어하는 바로 그곳에서 자유로워지는 연습을 해야함을 다시 일깨워 주셔서 모두들 다시 수행 자세를 가다듬는 시간이 되었습니다.nbspnbsp발우공양을 마치며 스님께서는 오늘 고국으로 돌아가는 INEB 동남아 스님들께 다같이 삼배로 인사를 드리자고 하셨습니다. 삼배를 한 후 ‘다음에 다시 만나요’라고 할 때 태국말로는 무엇이라고 하는지 물어보니 ‘폽깐마이’라고 하자 공동체 대중들과 다함께 ‘폽깐마이’를 외치며 인사를 하였습니다.nbspnbsp▲ 고국으로 떠나는 동남아 스님들께 삼배로 인사를 하는 정토회 상주 대중들nbspnbsp이어서 다같이 사진 촬영을 하면서 ‘폽깐마이’를 외치니 동남아 스님들 모두 너무나 행복한 표정을 지었습니다.nbspnbspnbsp스님께서는 “공항에 배웅을 나가야 하는데 아침부터 미팅이 있어서 나가지 못한다”며 양해를 구했고, 동남아 스님들은 마지막으로 스님께 삼배로 인사를 올렸습니다. 스님께서도 맞절을 하면서 “다음에 태국을 방문하겠다”고 인사를 하였습니다. nbsp nbspnbsp▲ INEB 동남아 스님들과 서울 공동체 상주 대중들이 다함께nbsp오전에는 평화재단에서 찾아온 손님들과 계속 미팅을 하셨고, 점심 때는 동남아 스님들 공항 배웅을 마치고 온 INEB 스텝 봉사자들과 함께 식사를 함께 했습니다. 최말순 보살님을 비롯하여 평화재단 봉사자들이 차려준 음식에는 정성이 가득 담겨 있었습니다.nbspnbsp▲ INEB 스텝 봉사자들과 점심 식사nbsp식사를 하면서 스님께서는 “동남아 스님들은 어떤 점이 좋았다고 하더냐?”고 물어보았고 스텝 봉사자들은 “동남아 스님들 모두 법륜 스님과 함께 얘기할 수 있는 시간이 많아서 가장 좋았다고 얘기하셨다”, “정토회의 수련 프로그램과 원리에 대해 설명해준 것이 좋았다고 한분도 많았다” 등을 말해주었습니다. 메르스 때문에 행사들이 연이어 취소되는 바람에 대중들과 함께하는 모습을 많이 보여주진 못했지만 덕분에 동남아 스님들은 스님과 얘기할 수 있는 시간이 많게 되어서 오히려 더 좋아했음을 알 수 있었습니다.nbspnbspnbsp이 외에 스텝들은 동남아 스님들이 말한 다양한 건의 사항을 얘기해 주었습니다. “참가자들끼리 소감을 나누는 시간을 저녁마다 가질 수 있으면 좋겠다”, “정토법당 화장실이 좁아서 불편했다”, “도착한 첫날 바로 오리엔테이션을 시작해서 힘들었다” 등 각각의 개선 방안에 대해 의견을 나누기도 했습니다. 그리고 스님께서는 가장 의견이 많이 나온 첫째날 일정에 대해서는 “다음에는 공항에 도착한 후 바로 문경으로 가서 쉬면서 수련에 대해 먼저 보여주고, 마지막에 서울에서 사회활동에 대해 보여주면 좋겠다”고 얘기해 주셨습니다.nbspnbsp평가 겸 소감 나누기 형식으로 많은 대화를 나눈 후 스님께서는 수고한 봉사자들 모두에게 직접 사인한 책을 선물했습니다. 봉사자들도 그동안의 수고가 녹아나는 듯 무척 즐거워 했습니다. nbspnbsp식사를 마치고 곧바로 두북으로 이동하셨습니다. 내일 경주에서 진행될 예정이였던 통일의병대회가 메르스로 인해 최소되긴 했지만 대신에 경주고등학교에서 강연을 해주기로 했기 때문입니다. 경주고등학교는 스님의 모교인데 오래 전부터 강의를 해달라는 요청이 있었으나 시간이 나지 않아 응해주지 못하다가 마침 시간이 생겨서 강의를 하게 되었습니다.nbspnbsp저녁6시 정도에 두북에 도착한 스님께서는 짐을 풀자 말자 작업복으로 갈아입고 마당 구석 구석의 텃밭에 시원하게 물을 주었습니다. 요즘 가뭄이 심하고 햇볕이 뜨거워서 마당의 텃밭 작물들이 타들어가서 걱정이 많으셨는지 물을 주면서 안도하시는 것 같았습니다. 농작물들도 스님이 준 물을 흠뻑 머금으며 행복한 비명을 지르는 것 같았습니다.nbspnbspnbsp▲ 잘 자란 마디호박nbsp그리고 인도에서 8년 동안의 봉사활동을 마치고 귀국한 김신아님도 두북으로 와서 스님과 함께 시간을 보냈습니다. 스님께서는 8년 동안 인도에 살면서 몸이 삐쩍 마른 김신아님에게 “소도 팔 때가 되면 잘 먹여서 살을 찌워야 값이 오르는데, 신아도 잘 먹여서 세상에 보내야지” 라고 농담을 하시며 특별한 저녁상을 준비해 주었습니다. 오랜만에 푸짐하게 식사를 하며 그동안 수고한 김신아님을 격려도 해주셨습니다.nbspnbsp▲ 달래꽃nbspnbsp그런데 저녁에 경주고등학교 강의가 메르스 때문에 최소가 되었다는 연락이 왔습니다. 스님께서는 연락을 받고 나서 “메르스 때문에 잡힌 강연이 메르스 때문에 취소가 되네” 하시며 웃으셨습니다. 늘 바쁜 스님께 이렇게라도 쉴 수 있는 시간이 생겨서 다행이다 싶은 마음도 들었지만 스님의 법문을 원했던 사람들을 생각하면 아쉽기도 했습니다. nbspnbsp아쉬움을 뒤로 하고 저녁에는 BTN에서 스님께 전해준 ‘붓다’ 드라마 영상물을 함께 보았습니다. 최근 인도에서 ‘붓다’라는 드라마가 제작되었는데 이번에 동남아에서 온 스님들이 이 드라마 얘기를 많이 해서 스님께서도 관심을 갖고 보셨습니다. 밤이 늦어서 드라마는 1회와 2회만 시청을 하고, 스님께서는 방에 들어가셔서 업무를 보시다가 오늘 일정을 마쳤습니다.nbspnbsp메르스 방지 대책으로 인해 연달아 일정들이 모두 취소가 되는 바람에 내일 일정은 아직 미정입니다. 내일 또 소식 전해드리겠습니다. nbsp
2015.6.11 INEB 간담회 및 평화리더십아카데미 수료식
nbsp안녕하세요. 오늘 스님께서는 INEB 동남아 스님들과 일주일 동안의 정토회 방문을 마무리하는 간담회를 가진 후 저녁에는 평화리더십아카데미 수료식에 참석해 격려 말씀을 해주었습니다.nbspnbsp오늘도 스님께서는 서초동 정토회관에서 새벽4시30분 도량석 소리와 함께 일어나 새벽 예불 및 천일결사 기도를 하며 하루를 시작했습니다.nbspnbsp▲ 새벽 예불nbsp기도를 마치고 발우공양 시간에는 지난 일주일 동안의 정토회 방문 프로그램을 무사히 마친 INEB 스님들의 소개와 간단한 소감을 듣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한분 한분의 소개를 듣다보니 오늘 고국으로 돌아가시는 분들도 있는데 더 깊이 있는 교감을 나누지 못한 점이 아쉽기만 합니다. 이번 인연을 시작으로 앞으로 더 많은 교류가 일어나길 간절히 기원해 보았습니다.nbspnbsp▲ 발우공양nbspINEB 동남아 스님들은 강남구 수서동에 위치한 전국 비구니 회관을 둘러보러 이동했고, 스님께서는 평화재단으로 이동해 아침 7시30분부터 점심 때까지 민족의 화해와 평화를 위한 종교인 모임을 시작으로 몇 번의 미팅을 가지셨습니다.nbspnbsp그리고 오후2시부터는 전국 비구니 회관을 둘러보고 온 INEB 스님들과 함께 다시 대화를 이어 나가셨습니다. 특히 이번 시간은 INEB 동남아 스님들과 함께하는 마지막 간담회입니다. ㄱ래서 각자 자신의 나라에서 하고 있는 활동들을 구체적으로 소개하고, 활동을 하면서 무엇이 어려운지 얘기하고 스님의 조언을 듣는 시간을 가졌습니다.nbspnbsp▲ INEB 동남아 스님들과의 마지막 간담회nbsp먼저 태국의 두사디 스님은 센터를 지어서 학생들을 가르치는 일을 하고 있는 분인데 “학생을 가르칠 스님이 부족하고, 수련 후 돌아가서 어떻게 수행하는지 체크할 수가 없고, 지역사회와 학교, 절이 함께 참여하는 제대로 된 교과 과정이 부족하다”고 얘기했습니다. nbsp또, 태국의 콩신 스님은 계를 받기 이전의 사람들을 위한 학교를 운영하고 있는데 마찬가지로 “가르치는 스님의 숫자가 절대적으로 부족하고, 특히 요즘은 아무도 스님 되려는 것에 관심이 없고, 계를 받아도 지속되지 않고 나중에 환속하게 된다”고 고민을 얘기했습니다. 그리고 미얀마의 헤이마 비구니 스님은 청년들을 위한 교육, 훈련, 사회활동 시설을 운영하고 있는 분인데 역시 갈수록 청년들의 참여가 줄어들고 있는 점을 걱정하고 있었습니다. nbspnbspnbsp이렇게 이번에 오신 분들 대부분이 교육이나 트레이닝에 관계된 사람들이 많았고, 대부분 교과 과정이 완전하지 않고, 팀웍이 안되니깐 교육에 치중할 힘이 부족하고, 그것을 꾸려갈 인력과 재정이 부족함을 호소했습니다. nbspnbsp이에 대해 스님께서도 “한국도 불교대학이 많이 개설되어 있는데 지식은 많은데 믿음이나 계율, 실천이 안되고 있고, 지식 중심으로 커리큘럼이 개발되어 있다”며 한국 불교의 한계에 대해서 이야기해 주셨습니다. 이에 대해 태국의 지라삭 스님은 “우리는 윤리에 대해서 강조하기 때문에 교리보다는 윤리 중심으로 가게 되는 한계가 있다”고 얘기 했습니다. 또 태국의 아노샤 스님은 “출가한지 10년이 지났지만 사회를 위해 뭔가 하고 싶어도 할 수 있는 게 없다”면서 사회적 실천 활동이 부족한 남방 불교의 한계를 얘기해 주었습니다.nbspnbspnbsp그러면서 듀사디 스님이 “지금 태국 불교는 중앙 집권적이여서 진보적인 스님들은 민중으로부터 시작하는 방식으로 함께 교육하는 허브를 만들고 싶어 한다”고 이야기하자 스님께서는 INEB가 만들어진 취지를 설명해주시면서 부처님의 법을 어떻게 현대사회에 맞게 전할 것인지 자세한 설명을 해주셨습니다.nbspnbsp“새로운 것을 하는 건 어려운 일입니다. 제가 30년 전에 민주화 운동에 참여할 때 그건 불교가 아니라 정치 활동이라고 평가가 되어서 사회 실천을 하기가 굉장히 어려웠습니다. 감옥에 갔을 때도 교단으로부터 전혀 보호를 받지 못하고 오히려 교회로부터 보호를 받았습니다. 그리고 스님 중심이 아닌 재가자나 청년들 중심으로 활동을 시작할 때도 기존의 스님들이 보기에는 쓸데없는 짓을 한다고 보여졌습니다. 신도는 담마를 알 필요가 없고 그저 복만 빌면 되지 공부는 스님들만 하면 된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많이 바뀌어서 불교 교리를 신자들에게도 가르칩니다.nbspnbspnbsp그러니 새로운 불교 운동을 할려면 목표를 한 30년 정도 잡고 미래를 보고 해나가야 합니다. 그동안 사이비 취급도 받고 왕따도 당하는 과정을 거쳐야 합니다. 저의 경우엔 불교에서 먼저 인정받기 보다 사회에서 인정받고 나서 나중에 불교에서 인정받았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어려움을 각오하셔야 합니다.nbspnbsp아까전에 윤리 이야기를 하셨는데 불교와 윤리를 동일시하게 되면 젊은이들이 싫어하게 됩니다. 예를 들어 두 사람이 이혼을 하겠다고 할 때 ‘결혼했기 때문에 이혼하지 말라’고 얘기하는 것이 윤리입니다. 그러나 저는 ‘이혼하는 건 너의 선택인데, 지금 이혼하는 게 과연 올바른 결정인지 너 자신을 살펴보라’고 얘기해 줍니다.nbspnbsp‘결혼할 때는 이 사람이 좋아서 결혼한 거 아니냐? 그런데 지금 살아보니깐 안 좋지 않으냐? 그러면 너가 그 때 판단을 잘못한 거 아니냐? 그리고 지금은 헤어지는게 좋겠다고 판단하지 않느냐? 그럼 또 일정하게 지나면 이 결정이 잘못되었다고 생각할 가능성이 있지 않느냐? 첫 번째 한번 잘못 했으면 두 번째는 좀 신중해라. 그리고 우리가 좋아서 한 것이 결과도 반드시 좋은 것은 아니지 않느냐. 또 싫다고 안 하면 그것이 또 반드시 좋은 결론이라고 할 수 있겠느냐. 그래서 붓다가 말씀하시길 좋다 싫다에 끌려가서는 안된다고 하셨다. 이 괴로움과 즐거움이 돌고 도는 것이 윤회다. 지금 너가 먼저 해야할 것은 헤어지는 것이 아니라 이 사람과 같이 있어도 괴롭지 않은 것을 먼저 달성하고, 그러고도 헤어지고 싶으면 그때가서 헤어져도 된다. 지금 해야할 일은 헤어지는 것이 아니고 싫은 것과도 함께할 수 있는 그런 수행을 먼저 해야 된다.’nbspnbsp이렇게 이혼 문제로 제기했지만 이것을 수행의 문제로 바라보고 수행의 과제로 삼도록 안내합니다. 젊은이들은 ‘그러면 안된다’ 이렇게 하기 보다는 ‘나를 위해서 안 하는게 좋겠다’ 이렇게 자기 선택이 될 수 있게 접근해야 합니다. 그래서 계율과 윤리는 다릅니다. 윤리는 선악의 개념이고 계율은 내가 이 괴로움에서 벗어날 수 있는냐 없느냐의 문제이기 때문에 성격이 다릅니다. 그래서 계율은 모든 사람이 지켜야 합니다. 그것은 나를 속박하는 것이 아니라 나를 보호해주는 것입니다.nbspnbspnbsp그리고 계율에 대해서 막연하게 이야기하기 보다는 그 사람을 위해서 구체적으로 이야기해주는 것이 필요합니다. 불살생 계율의 경우를 보면, 한국에서는 ‘모기를 죽여도 되는가’ 이런 질문을 끊임없이 하면서도 자기 자식은 마구 때리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래서 계율을 줄 때 첫 번째로 어떤 경우에도 사람을 죽이거나 때리지 말라고 가르칩니다. 그것이 되면 그 다음에 짐승도 함부로 죽이지 말라고 가르칩니다. 그것이 되면 어류도 죽이지 말라고 하고요. 그래서 최소한 사람을 죽이거나 때리지 않는 것만이라도 확실하게 하도록 기초를 잡아 줍니다.nbspnbsp술 먹지 말라는 계율도 술을 안먹으면 제일 좋습니다. 그러나 친구들과 어울려 술을 먹는 일이 생긴다면 음료수 먹는 수준까지만 먹어라고 얘기합니다. 그런데 어울리다 보니 조금 더 먹었다면 정신적으로 취하는 증상이 없을 정도까지만 먹어라고 얘기합니다. 적어도 불자라면 술을 먹고 취했다, 이러면 절대로 안됩니다. 그래서 불자라면 적어도 인격자가 되도록 해야 합니. 우리 선생님이 불교 신자라면 ‘아, 맞을 일은 없겠다’고 학생들이 생각할 수 있게 해줘야 합니다. 그래서 재가 신자들에게도 ‘불자는 다르다’는 인식을 줄 수 있는 인격자가 되도록 가르쳐야 합니다. 지금 한국에서 기독교 신자와 불교 신자는 이름만 다르지 그 행동은 아무 차이가 없습니다.nbspnbspnbsp그래서 우리가 이 사회에서 조금 더 앞서가는 길을 열어야 합니다. 정토회는 이런 것을 계속 실험해 가는 것이지 완성된 것이 아닙니다. 그래서 저도 여러분들이 활동하는 곳에 직접 가보고 어떤 좋은 아이디어를 얻을 수 있을지 배우려고 합니다. 아비 달마에 대해서 저도 확실하지 않은 것이 몇가지 있습니다. 그래서 나중에 물어보고 싶어요. 그것이 무슨 뜻인지 모른다는 것이 아니라 그것이 실제 생활에 적용이 될 때 어떤 의미인지 정확히 알고 싶기 때문입니다. 정확하지 않으면 가르침의 내용이 어려워지고 말이 많아집니다. 가르침이 굉장히 쉽고 재미있을려면 자기가 그 의미를 정확하게 알아야 하고 자기가 경험을 해봐야 합니다. 그래서 다음에 제가 가서 여러분들에게 물어볼 게 많아요. 준비를 좀 해주세요.” nbspnbsp이번에는 스님께서 한국 불교와 정토회의 활동에 대해 자세히 안내를 해주었으니 다음에는 동남아 스님들이 스님께 자신의 활동을 보여줄 차례라는 이야기에 모두들 고개를 끄덕이며 언제든지 스님께서 방문해 주시면 성의껏 안내해 주겠다고 얘기했습니다. 앞으로 정토회의 활동과 nbsp남방 불교 간에 더욱더 활발한 교류가 일어나서 부처님의 가르침이 더욱더 현대사회에 맞게 자리매김하게 되길 간절히 기원해 봅니다.nbspnbsp간담회를 마치고 동남아 스님들은 일주일 동안 많은 가르침을 준 스님께 각자 자기 나라에서 가져온 선물을 전달했습니다. 어떤 분은 꿀을 선물하기도 하고, 어떤 분은 야자수에 글자를 세긴 펜을 선물하기도 했습니다. 스님께서는 감사히 선물을 받고 고마움을 전했습니다.nbspnbspnbspnbsp미얀마에서 오신 비구니 스님은 그 자리에서 바로 스님께 절을 하며 공경의 예를 올리기도 했습니다.nbspnbspnbsp이렇게 아쉬운 마음을 뒤로 하고 동남아 스님들은 인사동으로 가서 한국의 전통문화가 깃든 상품들을 구경하거나 쇼핑을 하며 자유 시간을 보냈고, 스님께서는 잠시 시간을 내어 김윤신 작가님의 전시회에 다녀오셨습니다.nbspnbsp김윤신 작가님은 지난 세계 100회 강연 때 아르헨티나 강연을 준비해주셨던 분입니다. 현재 서울에 와 계시면서 그림 전시회를 하고 계신데 스님께서 꼭 참석했으면 좋겠다고 초대장을 보내서 잠깐 방문해서 축하를 해주었습니다.nbspnbsp▲ 김윤신 작가님의 전시회nbsp다시 평화재단으로 돌아오셔서 찾아온 손님과 미팅을 가진 후 저녁 7시30분부터는 평화교육원의 제12기 평화리더십아카데미 수료식에 참석했습니다. 제12기 평화리더십아카데미는 지난 3월26일 개강하여 6월11일까지 총 12주 동안 우리사회 각계 각층의 리더들을 모시고 강연도 듣고 토론도 하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무엇보다 갈등의 한국 사회를 어떻게 통합할 것인지, 통일 한국의 비전을 만들어가기 위해서 어떤 역할을 해나갈 것인지에 대해서 많은 공부를 해왔습니다.nbspnbsp스님께서는 오늘 수료하는 분들이 졸업과 동시에 어떤 마음 자세를 갖고 살아가면 좋을지 격려의 말씀을 해주셨습니다.nbspnbsp▲ 제12기 평화리더십아카데미 수료식nbsp먼저 스님께서 “축하합니다. 3개월 동안 고생 많이 하셨어요. 재미있었어요?”라고 묻자 모두들 큰 목소리로 “네” 하고 대답했습니다. 그리고 “12주 동안 강의도 듣고 경주도 다녀오고 하면서 자신이 변한 게 뭐가 있어요?”라고 묻자, 남자분 중에 한 분은 “통일에 대한 생각이 선택에서 필수로 바뀌었고요. 필수로 가도록 하기 위해 내가 어떤 역할을 할지 고민을 시작하게 된 점입니다.”라고 말했고, 여자분 중에 한분은 “사회를 보는 눈이 넓어졌어요.”라고 말했습니다.nbspnbsp그러자 스님께서는 비록 나이가 사십, 오십이 되었지만 다시 한번 가슴 뛰는 꿈을 꾸어보자고 하시면서 이렇게 말씀을 해주셨습니다. 개인의 꿈을 공동의 꿈, 민족의 꿈, 아시아의 꿈, 인류의 꿈으로 확대해 나가 보자는 말씀에 정말로 가슴이 설레였습니다.nbspnbsp“아직 만족은 못하실 것 같아요. 인생은 죽을 때까지 만족할 수가 없는 것이기도 하고요. 그러나 옆에서 제가 볼 때는 개인적으로는 이 정도 됐으면 된 것 아니냐 싶어요. 이 말은 여기서 끝내라는 것이 아니에요. 첫째, 이제 나이가 벌써 40대, 50대가 되었잖아요. 키가 더 클 것도 아니고 이제 꺽이기 시작한다 이말이예요. 둘째, 결혼해서 자식도 낳았잖아요. 의사가 되었든 변호사가 되었든 이제 자신의 전문 직종을 가졌잖아요. 여기서 갑자기 생각도 못한 인생으로 바뀐다는 것은 1의 확률도 안됩니다. 지금 하고 있는 여기서 조금 더 올라갈 뿐이지 청소년이나 대학생처럼 생각도 못한 변화가 있는 경우는 거의 없어요.nbspnbspnbsp이런 말씀을 드리는 이유는 여러분들은 인생의 진로가 거의 정해졌다는 얘기입니다. 이제 큰 변화는 없습니다. 이 중에 한두명은 또 변화가 생길지 모르지만요. 그러나 개인적으로는 대충 삶의 방향이 잡혀있는 상태라고 볼 수 있죠.nbspnbsp우리가 같이 살고 있는 공동체인 사회는 어떤가요? 우리 사회도 어렵게 살다가 이제 먹고 살만하게 되었고, 자유없이 살다가 자유롭게 되었고, 옛날보다 좋아졌어요. 한국 사회가 아무리 문제가 있다 하지만 옛날에 비하면 좋아진 것은 사실이에요. 그런데 문제는 우리 사회도 계속 성장하고 좋아질거다 이렇게 생각하는데 나무와 풀도 7,8월이 지나면 더 이상 성장이 안되듯이 우리 사회도 거의 정체 국면에 들어가고 있다는 겁니다. 저성장하고 정체되다가 시간이 흐르면 다시 쇠퇴로 가는 것이 이미 보입니다. 노인 인구가 늘어난다든지, 출산율이 낮아진다든지, 사회적인 복지 요구가 높아진다든지 이런 전반적인 상황과 우리 주위의 국제 정세를 보면 더 이상의 성장은 어렵게 되어 있어요. 이런 상태에서 자연의 질서에 맞게 늙고 죽는 과정을 거부할 수는 없겠지요.nbspnbsp그런데 개인은 대충 방향이 잡혔지만 우리 공동체에 대해서 저는 약간 아쉬움이 있습니다. 우리가 조금만 더 힘을 합하면 한번 더 업그레이드 할 수 있는 가능성이 제 눈에는 보여요. 제가 볼 때는 지난 천년 동안의 역사 속에서 지금이 가장 나을 때라는 생각이 드니까 이런 시대에 살았다는 것만 해도 괜찮은데 여기서 멈추기에는 조금 아깝지 않나 싶어요. 여기서 조금만 잘하면 3천년 만에 올 수 있는 기회를 잡을 수도 있습니다. 즉, 동아시아의 중심 국가로서 자기 역할을 할 수 있고, 우리 전체가 조금 더 성장하고 조금 더 변화를 가져올 수 있는 기회가 있지 않느냐. 그 첫발이 통일이 될 수 있습니다.nbspnbspnbsp국가가 조금 더 발전하기 위해서는 통일의 길로 가지 않고서는 달리 그 기회가 없고, 국민이 좀 더 행복하기 위해서는 지금 우리 사회가 안고 있는 민주화의 심화, 즉 분권이 이뤄져야 하고, 경제민주화, 즉 빈부격차가 좀 해소가 되어야 하는 몇가지 과제들이 있습니다. 국가가 더 발전하고 국민이 더 행복해지는 그런 사회를 우리가 조금만 더 힘을 합하면 만들어 갈 수 있습니다.nbspnbsp세월호 사고나 메르스 대책을 보면 양이 커진 것에 비해서는 질이 너무 떨어져서 좀 챙피하거든요. 옛날에는 이 정도 수준이여도 별로 안 챙피했어요. 왜냐하면 그 때는 우리가 별 볼일 없었으니까요. 그런데 요즘은 우리가 굉장히 괜찮은 줄 알고 있는데 실제 속을 들여다보면 좀 신통치 않잖아요. 그래서 이제는 양적 팽창보다는 질적 심화도 좀 가져와야 합니다. 우리가 조금만 더 목표의식을 갖고 힘을 모으면 한단계 나아갈 수 있는 기회를 가질 수 있습니다. 그 첫단계가 통일입니다.nbspnbsp지난 50년 간 우리가 이룬 것을 보존하기 위해서는 평화가 유지되어야 하고, 여기서 한단계 더 발전하기 위해서는 통일을 도모해야 합니다. 통일은 통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통일된 대한민국은 일본과 중국까지 포용해야 합니다. 즉 일본은 과거사를 진솔하게 반성하기로 하고 우리는 좀 용서해주고, 중국에 대해서는 중국의 발전을 용인하되 어느 정도 경계할 것은 경계하면서 협력을 모색하면, 한국의 발전 뿐만 아니라 동아시아의 발전을 도모할 수 있고, 이것이 조금 더 지속이 되면 아시아 시대를 우리가 꿈꿔볼 수 있습니다.nbspnbsp그러면 타고르가 얘기했던 동방의 등불을 우리가 만들 수 있습니다. 타고르는 이것을 생각하고 동방의 등불이라고 얘기한 게 아니고 생각도 못했던 3.1운동이 일어나서 그 3.1운동의 영향이 중국의 5.4운동에 영향을 주고, 5.4운동의 영향이 바로 인도의 반영 독립 운동에 영향을 주었기 때문에 그 때 타고르가 한국에 대해 찬미를 한 것입니다. 그로부터 100년이 지나고 200년이 지났으면 이제는 그것을 넘어서는 세계 문명의 꽃을 피우는 나라를 우리가 만들 수 있습니다. 그런 가능성으로써 우리가 통일을 생각해볼 수 있고, 통일 없이는 그 가능성을 아예 생각도 못할 뿐만 아니라 현상 유지하는 것도 사실은 쉽지가 않게 되었습니다. nbspnbsp그런데서 통일은 이제 좌우의 문제도 아니고, 여야의 문제도 아니고, 민족의 비전과 관계되는 문제이기 때문에 꿈이 있는 사람에게는 매우 중요합니다. 이 정도만 살고 말겠다는 사람에게는 복잡한 문제로 느껴지겠지만, 약간 꿈을 갖고 뭔가를 달성해보겠다는 사람에게는 이 통일이 굉장한 메리트가 됩니다. 저는 여러분들이 이런 꿈을 좀 가벼봤으면 좋겠습니다. 마치 청소년기에 ‘나는 무엇이 되겠다’ 고 꿈 꾸었던 것처럼 지금 나이 사십, 오십이 되어서도 이런 꿈을 꿀 수가 있다면 인생이 행복하지 않을까요?nbspnbspnbsp물론 꿈을 갖고 도전을 하면 고생스럽지요. 그건 어쩔 수 없어요. 산꼭대기에 올라갈 때도 힘이 들 듯이요. 그러나 거기에는 기쁨과 보람이 있습니다. 저도 승려이기 때문에 제3세계 구호활동이나 환경운동이나 사람들의 수행 지도나, 그래도 조금은 이 땅에 태어난 인연으로 남북의 평화나 북한의 인도적 지원이나 이런 활동들을 하려고 했는데, 제가 지난 20년 동안 미국을 다니며 민간 외교를 해봐도 현재 상태에서 통일 문제는 결국 한국 정부가 어떤 자세를 갖고 임하느냐에 달려 있습니다.nbspnbsp미국이 아무리 뭐라 그래도 ‘북한은 우리 나라다. 우리 문제니까 우리가 책임지고 할테니 너희가 나서지 말고 우리를 좀 도와라. 핵문제는 통일하면 우리가 해결할테니 너무 그것 갖고 설치지 마라’ 이렇게 딱 책임지는 자세로 민족의 주인으로서 입장을 갖고 대응을 하면 되거든요. 그렇지 못하니까 억지로 끌려가서 하수인 노릇을 해야 합니다. 반미를 하자는 것이 아니라 자기 중심을 딱 잡고 한미동맹을 해야 된다는 것입니다.nbspnbsp그런 면에서 통일 지향적인 정부가 들어서야 됩니다. 이제 2017년이라는 기회를 놓치면 두 가지 측면에서 통일이 어려워집니다. 첫째는 미국과 중국의 세력이 비등해지기 때문에 어렵습니다. 둘째는 북한이 중국의 영향을 받지 않고 버텨줘야 협상도 하고 중국의 개입도 막을 수가 있습니다. 그런데 북한에 친중 정부가 들어서 버리면 우리도 지금 미국 때문에 자주적으로 결정을 못하듯이 북한도 이제 중국 때문에 자주적으로 결정을 못하게 되어서 통일은 더 어려워집니다.nbspnbsp통일의 기회는 언제든지 오는 게 아니에요. 제일 좋기는 이명박 정부 때 잘했으면 가장 좋았고, 박근혜 정부 들어설 때만 해도 기회가 있었는데 지금은 매우 어려워졌어요. 벌써 미일 동맹이 굳어져버렸고, 우리는 이제 하위 변수이지 대등한 변수가 안돼요. 여기에 사드 배치까지 다 되고나서는 정권이 새로 들어서든 어떻게 되겠어요? 미국과 약속해 놓은 것을 다 번복하는 것은 외교적으로 쉬운 게 아니에요. 그래서 사실은 분단 쪽으로 이미 기울어졌어요. 그러나 저는 아직은 한번 더 기회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그 뒤에는 제가 보기에 어렵습니다. 미중 간의 세력 균형, 북한 권력이 자주성을 유지할 수 있는 한계, 그리고 판이 이미 짜여져 버린 상황을 고려했을 때 통일은 매우 어려워집니다. 우리가 통일하고 싶다고 쉽게 되는 게 아니거든요.nbspnbspnbsp그런데서 여러분들은 더 이상 통일 문제를 진보니 보수니 좌니 우니 여니 야니 지방이 어떠니 이런 식으로 접근해서는 안됩니다. 나라의 미래와 국민의 행복을 위해서 통일이 이 시점에서 가장 중요한 시대적 과제임을 알고, 그 쪽을 향해서 모든 국가적 역량을 투입할 수 있는 그런 사람과 세력이 통일지향적 정부를 구성할 수 있겠느냐, 이것을 봐야 합니다. 우리가 나라의 주인이니까 ‘우리는 이런 정부를 원한다’ 이렇게 우리가 내세운 방향에 누구든지 가장 동의하는 사람과 세력을 지지하는 관점만 분명히 가지면 됩니다.nbspnbsp그래서 여러분들도 오늘 졸업이 끝이라고 생각하지 마시고, 시야가 좀 넓어졌으니까 이제는 개인의 꿈을 공동의 꿈으로, 개인의 꿈을 민족의 꿈으로, 마치 독일 사람들과 프랑스 사람들이 독일과 프랑스의 꿈을 유럽의 꿈으로 승화시켰듯이 우리는 지금 개인의 꿈을 우리 민족의 꿈으로 승화시키는 것이 필요합니다. 여기서 한발 더 나아가서 한국의 꿈을 아시아의 꿈으로 만들어나가야 합니다. 다시 아시아의 꿈을 인류의 꿈으로 더 나아가게 해야 합니다.nbspnbsp그런데 우리는 약소국으로 너무 오래 살아서 그런지 우리가 인류 문명의 미래에 대한 책임을 진다는 생각을 별로 안하는 것 같아요. 인류는 고사하고 아시아의 미래를 책임진다는 생각도 안하고, 우리 민족의 미래에 대한 책임도 생각 안하고, 한국 정도의 책임도 별로 생각 안하고, 자기 가문의 꿈도 별로 생각 안하는 것 같아요. 겨우 개인의 꿈이나 가족의 꿈 정도만 생각하지요. 조금 더 우리의 꿈을 확대해 나갔으면 좋겠습니다. 그래서 다시 한번 꿈을 꿔 봅시다.” nbspnbsp스님의 열정이 담긴 간곡한 말씀에 우레와 같은 박수와 함성이 터져나왔습니다. 스님께서는 매번 반복하시는 말씀이지만 정말 들을 때마다 새롭고 들을 때 마다 우리들의 가슴을 뛰게 하는 것 같습니다. 그만큼 스님께서 진정을 다해 말씀하시기 때문일 겁니다.nbspnbsp스님께서는 이렇게 인사 말씀을 한 후 오늘 수료하는 한분 한분에게 수료장과 개근상, 정근상을 각각 나눠 주셨습니다. 환한 웃음으로 ‘함께 통일한국을 향해 나아가자’는 무언의 말씀을 하시듯 꼭 잡은 손으로 악수까지 해주셨습니다.nbspnbsp그리고 다함께 기념사진을 촬영하며 “통일코리아”를 외쳐 보았습니다. 모두들 변호사, 의사, 기업가 등 각 분야에서 많은 활동을 하고 계신 분들인데 이번 12주 동안의 아카데미 과정을 통해 이제는 남북의 평화와 통일을 위해서는 무슨 일이든지 함께할 자세가 되어있는 통일의병이 된 것 같습니다.nbspnbspnbsp그리고 12기 평화리더십아카데미 수료생 일동은 스님께서 한반도 통일을 위해 더 많은 활동을 해달라는 뜻으로 등산화 한 켤레를 선물해 주었습니다. 스님께서는 “감사합니다. 잘 신을게요”라고 고마워 하셨습니다.nbspnbspnbsp기념사진 촬영을 마친 후 스님께서는 정토회관으로 가셔서 늦은 밤까지 업무를 보시다가 오늘 일정을 마치셨습니다.nbspnbsp내일은 발우공양 시간에 nbspINEB 동남아 스님들과 환송 인사를 하고, 평화재단에서 회의를 한 후 오후에는 경주로 이동하실 예정입니다. 내일 또 소식 전해드리겠습니다. nbsp
2015.6.10 SBS스페셜팀 미팅 및 INEB 간담회, 수행법회
▲nbspnbsp서울정토회 수행법회nbsp안녕하세요. 오늘 스님께서는 SBS스페셜팀과 점심식사 및 INEB 동남아 스님들과 간담회를 한 후 저녁에는 서울정토회 수행법회에서 즉문즉설을 하였습니다. nbsp 오늘도 새벽4시30분에 도량석 소리와 함께 일어난 스님은 INEB 동남아 스님들과 함께 새벽 예불 및 천일결사 기도를 하며 하루를 시작했습니다. 발우공양 후에는 각 부서별로 실무적으로 점검할 일들을 체크 하신 후 평화재단으로 이동했습니다. nbsp ▲nbspnbsp서울 정토회관 새벽 예불nbsp 아침7시30부터 점심 때까지 연이어 손님들과 미팅을 가진 후 12시에는 지난 5월24일 부처님오신날 특집 다큐 ‘법륜스님’편을 제작한 SBS스페셜팀과 점심 식사를 함께 했습니다. SBS스페셜팀은 3월부터 5월까지 2개월 동안 스님의 쫓아 다니며 촬영하고 편집하느라 고생이 많았는데 스님께서는 그동안의 수고에 대해 격려해주고, 또 방송 후 반응이 어땠는지 편안하게 얘기도 나누었습니다. nbsp ▲nbspnbspSBS스페셜 제작팀 미팅nbsp nbsp 먼저 SBS스페셜팀이 스님께 “스님은 방송을 어떻게 보셨는지요?” 묻자 스님께서는 “이렇게 물어보는 것 보니가 더 잘 만들 수 있는데 자기들이 덜 만들었구나” 라며 웃었습니다. 그러면서 “무엇을 덜 만든 것 같아요?” 라고 되묻자 PD님은 “통일 관련된 활동 내용을 많이 담지 못한 것 같고요. 스님의 내면과 철학과 사상을 깊숙이 들여다보려고 했는데 그러지 못한 것 같습니다”라고 말했습니다. 스님께서는 “철학과 사상은 화면으로 표현하기가 어렵지”라며 고개를 끄덕이셨습니다. nbsp 또 작가님은 “저는 방송 나가고 나면 제 작품이 부끄러워서 다시 보지를 않는데, 스님 편 방송은 괴로울 때마다 계속 TV 다시 보기를 하게 되더라구요. 사람들이 빠진 내용들을 많이 얘기하지만 모든 것을 다 담으려고 했다면 아무것도 살려지지 못했을 겁니다. 그나마 즉문즉설에 집중해서 표현했기 때문에 사람들의 기억에 남은 것 같아요”라고 말했습니다. nbsp nbsp nbsp특히 스님께서 “방송 후 사람들이 가장 기억에 남는 장면이 뭐라고 해요?”라고 묻자 PD님은 “누구나 행복할 수 있다고 말씀하신 부분과 깨달음을 금의 순도와 비교해주신 부분을 많이 이야기하더라고요. 스님 말씀을 듣고 치유받고 싶은 사람이 많았던 것 같습니다” 라고 말했습니다. 반면 작가님은 “아무래도 즉문즉설 현장을 생생하게 보여준 부분인 것 같다”고 말했습니다. 또 “즉문즉설 중에서 ‘남의 일기장은 보는 것이 아닙니다’라고 답변한 부분이 뇌리에 강하게 남았습니다” 라고 덧붙여 주었습니다. nbsp nbsp SBS스페셜팀은 동성애에 대한 스님의 생각을 묻기도 하고, 스님처럼 본질을 통찰하는 능력을 가질려면 어떤 노력을 해야 하는지, 사회 혼란의 시기에 원로가 없는 것 같은데 스님께서 역할을 해주었으면 하는 바램, 통일 한국이 갖는 비전 등에 대해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특히 스님께서 통일 한국에 대한 비전을 자세히 이야기해 주자 PD님과 작가님 모두 가슴 설레여 하면서 각자 자기 위치에서 어떤 기여를 할 수 있을지 고민하는 모습을 보여주기도 했습니다. PD님은 “스님께서 북한에 가실 때 저희를 꼭 기억해 주세요” 라고 말하기도 했습니다. nbsp 이렇게 2시간 동안의 미팅을 마치고, 스님께서는 수고한 SBS스페셜팀에서 직접 사인한 책을 선물하고 함께 기념사진을 찍은 후 반갑게 배웅도 해주었습니다. nbsp 원고 교정 업무를 보시다가 오후 4시부터는 INEB 동남아 스님들과 함께 대화의 시간을 가졌습니다. 어제 저녁 정토회의 사회적 실천활동에 대한 설명에 이어서 오늘은 정토회의 수련과 교육 프로그램에 대해 설명을 해주셨습니다. ▲nbspnbspINEB 동남아 승가방문단과 미팅nbspnbsp먼저 정토회는 깨달음의장, 나눔의장, 일체의장, 명상수련 4가지 수련이 있음을 소개하고 각각의 수련이 갖고 있는 불교적 원리에 대해 설명해 주셨습니다. 또 백일출가 프로그램, 행자대학원 과정, 정토회의 천일결사 기도법, 예불문의 내용과 의미, 발우공양의 내용과 의미, 정토불교대학의 교과과정, 정토회의 조직구조, 행정처와 대의원회, 법사단이 갖는 각각의 역할 등에 대해 자세히 설명하고 동남아 스님들이 궁금한 점에 대해 답변도 해주셨습니다. nbsp이어서 저녁7시30분부터는 서울정토회 회원들이 참여하는 수행법회 시간에 앞서 INEB 동남아 스님들을 위한 환송회 시간을 가졌습니다. INEB 동남아 스님들은 지난 일주일 간의 정토회 견학을 마치고 내일 고국으로 돌아가게 되는데, 그동안의 소감도 듣고 환영의 마음을 담아 선물도 전달하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nbsp ▲nbspnbspINEB 동남아 승가방문단 환송 법회nbsp 먼저 스님께서 16명의 INEB 동남아 승가방문단 한분 한분을 일일이 소개해 주었습니다. 소개될 때마다 큰 박수가 터져나왔습니다. 이어서 두사디 스님께서 INEB 방문단을 대표해서 인사 말씀을 해주었습니다. nbsp ▲ nbsp지난 일주일 동안의 정토회 방문 소감을 이야기하고 있는 태국의 두사디 스님nbspnbsp“10년 전에 한국을 방문한 적이 있는데 그 당시에는 1년에 5만명이 자살을 한다는 이야기를 듣고 한국이 많이 힘들구나 느꼈습니다. 이번에 두 번째로 방문해서 정토회와 법륜 스님의 사회활동을 보고 나서는 참 흐뭇했습니다. 이렇게 많은 분들이 모여서 스님의 가르침을 받는 것을 보니 기뻤습니다. 여러분은 훌륭한 지도자를 갖고 계시기 때문에 더 많이 배워야 되고, 저희 태국에서도 스님의 활동을 많이 배워야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법륜 스님은 좋은 가르침을 주면서 수행도 함께 하시고 사회 활동도 하시는 모습을 보았습니다. 앞으로 태국 불교와 정토회가 함께 협력해서 세상을 위해서 불교 방식으로 봉사를 많이 할 수 있도록 노력하겠습니다.” nbsp 그리고 nbsp비구니 스님을 대표해서 태국의 추자이 스님이 인사를 해주셨습니다. nbsp ▲ 여성 수행자를 대표해서 소감을 이야기하고 있는 태국의 추자이 스님nbsp “비구와 비구니가 함께 참가한 건 처음이였는데 많이 배웠습니다. 여러분들은 참 운이 좋다고 생각합니다. 훌륭하신 법륜 스님을 지도자로 모시고 계시기 때문입니다. 법륜 스님은 항상 알아차리면서 행복하게 살도록 가르침을 주시니까요.” nbsp이어서 스님께서는 대중들로부터 INEB 방문단에 대해 특별히 궁금한 점이 있는지 질문을 받았습니다. 먼저 한 분이 “서로 나라가 다른데 어떻게 이런 네트워크를 만들게 되었는지?” 질문하자nbspINEB 사무국장인 무씨가 답변했습니다. nbsp ▲nbspINEB의 활동에 대해 소개하고 있는nbsp무nbsp사무총장nbspnbsp “개인의 고뇌도 있지만 사회적으로도 고뇌가 있기 때문에 이런 사회적 고뇌들을 해결하기 위해 INEB 라는 네트워크를 만들었습니다. 여기에 참여하는 나라는 30개국이 있고, 서양에서도 참여하고 있습니다. 전통 불교를 뛰어넘어서 현대사회에 어떻게 불교를 접목할 것인지 모색하고 있는데, 법륜 스님은 이에 대한 훌륭한 롤모델이 되기 때문에 이렇게 방문하게 되었습니다. 법륜 스님은 INEB의 고문으로 활동하고 계십니다.” nbsp 또 “위빠사나 수행과 대승불교 수행의 다른 점이 무엇인지 위빠사나 수행을 하고 있는 여러분들에게서 답변을 듣고 싶다”는 질문이 있었고, 태국에서 오신 두사디 스님은 “위빠사나는 주로 알아차림, 지혜를 갖고 집착하지 않는 것, 괴로움에서 벗어나 남을 돕는 것을 가르친다”고 얘기하면서 “대승불교는 자비심을 강조해서 다른 사람을 도우면서 자신의 에고를 녹여나가는 것 같다.”고 한 후 “두 가지가 수행 방법은 다르지만 목표는 괴로움을 없애고 사회를 위해 봉사하면서 자신의 에고를 녹여나간다는 점에서 같다”고 답변해 주었습니다. 그리고 무씨도 덧붙여서 “위빠사나의 알아차림과 대승불교의 자비는 새의 양 날개와 같아서 목표로 가기 위해서는 두 날개가 필요합니다” 라고 이야기해 주었습니다. nbsp이어서 스님께서 INEB 방문단 모두에게 아름다운 종소리가 나는 ‘풍경’을 하나씩 선물했습니다. 대중들은 선물을 받고 법당을 떠나는 방문단을 뜨거운 박수로 환송해 주었습니다. nbspnbsp ▲ INEB 동남아 승가방문단에 선물을 건내주고 있는 법륜 스님nbsp nbsp 그리고 스님과 함께하는 즉문즉설 법회가 시작되었습니다. 스님께서는 빈자리 없이 빼곡히 앉은 대중들을 보고 “직강이여서 더 많이 왔어요?”라고 물어보시면서 말문을 열었습니다. 그리고 “오늘 직강이 있게 된 것은 순전히 INEB에서 오신 스님들 덕분이예요” 라고 하면서 INEB 스님들의 환송회 때문에 오늘 이 자리가 마련되었다고 소개하자 대중들은 동남아 스님들께 다시한번 감사의 박수를 쳤습니다. nbsp ▲ 서울정토회 수행법회nbsp 즉문즉설 법회는 약 2시간 동안 진행되었고 7명이 스님께 질문을 했습니다. 증산도 신앙을 갖고 있으면서 정토불교대학을 다니고 있어서 두 가지 신앙 사이에서 혼돈이 있는데 어떻게 공부해야 하는지 묻는 분, 스님께서 법문할 때는 높고 낮음이 없다고 하시면서 어떨 때는 이것은 높은 가르침이라고 하셔서 헷갈린다고 묻는 분, 공황 장애를 갖고 있고 지금 가게를 운영하고 있는데 경제가 안좋아서 너무 불안하다는 분, 미국에서 살고 있는데 통금 시간과 옷차림새 등 한국의 부모님과 문화적 차이 때문에 갈등이 있어서 고민인 분, 정신 지체와 청각 장애를 가진 부모님 밑에서 외동 딸로 자랐고 우울증과 심리 불안이 심해서 사회복지 분야 일을 해나가도 괜찮을지, 또 이런 심리 불안을 갖고 있지만 결혼을 해서 아이를 낳아도 괜찮은지 묻는 분, 유학을 가서 공부를 하다가 우울증이 심해서 다시 한국으로 왔는데 학업을 끝까지 마쳐야 할지 우울증 치료에 집중해야 할지 고민인 분 등 다양한 질문에 대해 스님께서는 명쾌한 답변을 들려주었습니다. nbsp 그 중에서 늦잠 자는 습관을 고치고 싶다는 직작인 여성분의 질문과 스님의 답변을 소개해 드리겠습니다. nbsp “아침에 일찍 일어나지 못하는 고질적인 습관을 고치고 싶어요. 초등학교 입학하면서부터 고등학교 졸업할 때까지 매일 지각했고, 회사 다니면서도 지각하다가 요즘은 좀 나아지긴 했어요. 잘 수 있을 때까지 누워있다가 헐레벌떡 옷만 대충 주워 입고 나오고 한번도 여유롭게 출근을 한 적이 없어요.”nbsp nbsp nbsp “그냥 생긴 대로 사세요.” nbsp “그런 습관을 진짜 고치고 싶어요.” nbsp “뭣 때문에 고쳐요? 사는 데 아무 지장이 없잖아요. 남한테 피해주는 것도 아니고요.”nbspnbsp “여유롭게 출근하시는 분들을 보면 너무 부러워요. 왜 나는 저런 분들처럼 여유롭게 아침 밥도 먹어보질 못할까 싶고요. 나는 왜 아침마다 여유롭지 못할까 답답한데 진짜 잘 안고쳐져요.” nbsp “그러면 여기 절에 들어오세요. 청년들을 위한 49일 수행 프로그램이 있거든요. 49일 동안 공동체에 들어와서 같이 살면서 아침에 발우공양 끝나고 출근하고, 저녁에 퇴근하면 들어와서 수행하는 프로그램이에요. 절에 들어와서 살면 금방 고칠 수 있어요. 왜냐하면 4시30분에 도량석 돌 때 안일어나면 제가 죽비로 때려 버리거든요.” nbsp “그럼 49일 정도 하면 고쳐질까요?” nbsp “49일 끝나고 집에 가면 또 늦잠 자겠지요.” nbsp nbsp “저는 방도 많이 지저분하거든요. 제가 한심하다는 생각이 들어요. 나이를 서른여섯이나 먹어서 여자임에도 불구하고 방도 제대로 정리 못하는게 부끄럽다는 생각이 들거든요. 진짜 고치고 싶은 마음이 있어요.” nbsp “진짜 고치고 싶은데 안 고쳐지는 걸까요? nbsp “아직까지는 못 고치고 있어서요.” nbsp “노력도 안 하고 고쳐지는 방법이 없는지 지금 그거 묻는 거 아니에요? 자고 일어나면 딱 고쳐져 있는 방법이 없는지 그게 궁금해요?” nbsp nbsp “지금 36년 동안 그렇게 살아왔는데...” nbsp “그렇게 살아도 아무 이상 없었잖아요. 학교도 졸업했고, 직장도 다니고 있고, 결혼만 못했네요. 일찍 일어나서 밥해주는 남자하고 결혼하면 돼요.” nbsp “감사합니다.” nbsp 질문자가 환한 표정으로 웃으면서 자리에 앉자 청중들은 배꼽을 잡고 웃었습니다. 그러자 스님께서 “사람들이 자꾸 저보고 웃긴다고 애기하는데, 제가 웃기는 거에요? 질문자가 웃기는 거에요?” 라고 되물으면서 “제가 아니라 질문자가 웃기는 겁니다”라고 얘기하자 청중들은 또한번 크게 웃었습니다. 그리고 스님께서 다시 질문자에게 다시 물었습니다. nbspnbsp “몇 시에 일어나요? 알람 시계를 몇시에 맞춰요?” nbsp “6시부터 10분 간격으로 알람이 울리도록 맞춰 놓아요.” nbsp “절대로 알람 시간을 너무 많이 앞당겨 놓지 마세요. 너무 일찍 알람이 울리면 사람 심리가 알람을 눌려 놓고 또 자게 되요. 다시 자기에는 부족한 그 정도만 앞당겨서 알람을 맞추세요. 그런데 질문자는 한번 일찍 일어나볼 거라고 맨날 6시에 맞춰 놓잖아요. 그러면 안돼요. 만약 7시45분이 최대한 지각 안하고 갈 수 있는 시간이라고 한다면, 7시30분에만 알람이 울리도록 해놓으세요.” nbsp “7시30분에도 알람을 맞춰놓아도 못 일어나요.” nbsp “그러면 집에 혼자 살아요? 같이 사는 사람이 있어요?” nbsp “언니랑 같이 살아요.” nbsp “전기 충격기를 하나 사서 언니한테 주고 아침에 안 일어나면 확 지져달라고 부탁해 보세요.” nbsp “저는 저 스스로 잘하고 싶거든요. 남의 도움을 받아야만 하는 존재인가 생각하면 슬프거든요.” nbsp “스스로 잘하고 싶지만 그게 안되니까 남의 도움을 받아야지요. 그럼 자기 스스로 잘하지 왜 저한테 이렇게 물어요? 이것도 도움을 받으려는 것이잖아요. 그러니까 언니한테 ‘아침 7시가 되면 무조건 나를 전기 충격기로 지져라. 이불 걷고 바게스로 얼굴에 물을 부어 버려라’ 이렇게 오늘 가서 얘기하면 되지요. 진짜 고치고 싶으면 이렇게 하면 되는데, 그렇게까지는 하고 싶지 않지요? nbsp 36년간 살면서도 안 고쳐지던 것이 어떻게 스스로 고칠 수 있겠어요? 언니한테 도움을 받아요. 아침 7시가 되어도 안 일어나면 인정사정 없이 지져달라고 해요. 안 다치면서도 따끔한 걸로 하면 좋은데, 한꺼번에 열방씩 찔리는 부황 뜨는 침이 있어요. 그걸 언니한테 하나 사주세요. 그건 찔려도 크게 위험하지 않아요. 침 하나짜리 갖고는 못 일어날 것 같아요. 제일 효과가 좋은 건 전기충격기예요.” nbsp “습관을 바꾸는 것은 너무 어려운 것 같아요.” nbsp “습관이 바꾸기 어려운 것이 아니고 바꾸기 어려우니까 이름하여 습관이라고 하는 겁니다. 바꿔질 수 있으면 왜 습관이라고 하겠어요? 습관을 바꾸는 것은 불가능한 건 아니지만 어렵습니다. 바꾸려면 그만큼 각오를 세게 해야 합니다. 안그러면 질문자는 이 습관을 바꾸는데 돈을 얼마 정도 쓸 자신 있어요?” nbsp “500만원 정도까지는 쓸 수 있어요” nbsp “좋아요. 그러면 저한테 500만원 가져다 주고 절에 와서 50일 간 사세요. 아침마다 제가 방에 가서 침을 찔러 드릴게요. 그런데 절에서 살면 불만 켜도 일어나집니다. 왜냐하면 안일어나면 스님한테 혼이 나기 때문에 벌써 무의식 세계에서부터 탁 일어나집니다.” nbsp “50일을 살고도 집으로 돌아가서 또 못 일어나지면 어떡하죠?” nbsp “병이라는 건 수술하고 나서도 재발할 수 있어요. 재발한다고 치료비를 다시 돌려받아요? 재발하면 다음 수술비를 또 내고 치료 받잖아요. 그러니 또 500만원 내고 절에 들어오세요. 한 세 번만 그렇게 하면 치료되요.” nbspnbsp nbsp nbsp 질문자는 그제서야 수긍을 하고 “감사합니다” 하며 자리에 앉았습니다. 스님께서는 다시 정리 말씀을 해주셨습니다. nbsp “습관이라는 것은 고치기가 어려워요. 습관보다 더 고치기 어려운 것이 성질입니다. 성질은 더 밑에 있는 겁니다. 그래도 습관은 성질보다는 고치기가 쉽습니다. 그러니 남의 성질을 고치려는 생각은 아예 하지를 말아야 해요. 남편 성질 고치겠다, 아이 성질 고치겠다, 이런 건 아예 포기를 해야 합니다. 안되는 걸 고치려고 하면 내가 숨 넘어 갑니다. ‘아, 저 분은 성질이 저렇구나’ 이렇게 이해하고 거기에 맞춰서 살면, 그런 성질을 가진 사람과 살아도 편안해요. 그런데 여러분들은 고치려고 하기 때문에 힘든 겁니다. nbsp 그런데 남의 습관이나 남의 성질을 고치는 것이 어려울까요? 내 습관이나 내 성질을 고치는 것이 어려울까요요? 쉽다면 그래도 자기 것 고치는 게 더 쉬워요. 그런데 우리는 자기 것은 못고치면서 늘 남의 것을 고치려고 합니다. 이렇게 바보 같은 행동을 해서 인생이 피곤한 거에요. 남의 성질은 이해해주면 되지만 내 성질은 안고치면 누구 손해예요? 내가 손해입니다. nbspnbsp 그러니 어지간한 것은 고치지 말고 놓아 두세요. 그냥 손해를 감수하는 겁니다. 그런데 손해가 너무 심하다면 고쳐야 합니다. 고치기 어려운 줄을 알고 시작하면 각오를 세게 하게 됩니다. 쉽게 고쳐지리라고 생각하지 않으니까 시간을 길게 잡게 됩니다. 꾸준히 해야 하고 강도를 세게 줘야 합니다. 강도가 세면 시간이 좀 단축이 되고, 강도가 약하면 시간이 좀 길어져요. 처음부터 어려운 줄 알고 시작하면 작심삼일이 되지 않아요. 그런데 여러분들은 처음부터 욕심을 내어서 쉽게 고쳐지지 않는 것을 단박에 고치려고 덤비니까 삼일도 못가서 포기하게 됩니다. 몇 번 시도해보고 안되니까 ‘나는 안돼’ 하고 자학을 하게 됩니다. 그러니 자학하는 것 보다는 있는 그대로 사는 게 낫습니다. 자학하는 것은 살기는 그대로 살면서 또 괴롭기도 한 것이니까요. nbsp 그래서 ‘아이고, 지금까지도 뭐 살았는데’ 하면서 그대로 사는 방법이 있고, 꼭 고치고 싶으면 그럴 조건을 마련하고, 혼자 힘으로 안되면 남에게 부탁을 좀 해야 합니다. 고기 먹는 식성을 바꾸고 싶다면 한 20일 단식을 해버리는 방법이 있습니다. 단식을 한 후 일체 고기를 안 먹고 복식을 하면 식성이 바뀌어 버립니다. 그래서 세게 도전을 해야 합니다. 이것을 부처님 말씀으로는 ‘대결정심’이라고 합니다. 부처님도 보리수 나무 아래에서 명상하실 때 ‘내가 깨닫기 전에는 이 자리에서 죽어도 일어나지 않겠다’ 하는 이 대결정심이 있었기 때문에 마왕의 세가지 유혹을 극복할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여러분들은 이런 대결정심을 내지 않습니다. 가만히 앉아서 공짜로 고칠 수 있으면 고치려고 하지만 고치는 게 힘들면 고칠 생각을 하지 않아요. 못 고치는 건 아니에요. nbspnbsp 그래서 첫째, 생긴대로 그냥 사는 방법이 있습니다. 즉 손해를 감수하는 겁니다. 둘째, 손해가 심해서 고쳐야 되겠다면 두 가지 특성을 생각해야 합니다. 강도를 높게 할 것, 시간을 길게 잡을 것, 알았어요? 108배 하는 정도면 3년을 꾸준히 해야 되고, 시간을 좁혀서 단박에 고치려면 전기 충격기로 확 지져버리면 됩니다. nbsp 어때요? 질문자는 한번 해보겠어요? 욕심을 내면 안돼요. 노력 없이 일이 이루어질 것이라고 생각하면 안돼요.”nbsp nbsp 질문자의 환한 웃음과 함께 법회가 마무리되었습니다. 스님의 즉문즉설을 듣고 있노라면 금세 마음이 밝아져 있습니다. 법회를 마친 대중들은 즐겁게 웃으며 삼삼오오 모여서 마음나누기를 하였습니다. nbsp nbsp 스님께서는 법회를 마치고 집무실에서 업무를 더 보시다가 오늘 일정을 마쳤습니다.nbspnbsp내일은 아침 일찍부터 민족의 화해와 평화를 위한 종교인 모임을 비롯해 평화재단에서 여러번의 미팅이 있고, 오후에는 INEB 동남아 승가방문단과 지난 일주일 동안의 프로그램을 마무리하는 시간을 갖고, 저녁에는 평화리더십아카데미 수료식에 참석할 예정입니다. 내일 또 소식 전해드리겠습니다.
2015.6.9 INEB 동남아 스님들과 운문사 방문 및 청년리더십아카데미 수료식
▲ 운문사nbsp안녕하세요. 오늘 스님께서는 INEB 동남아 스님들과 함께 운문사를 방문한 후 저녁에는 평화재단 청년리더십아카데미 수료생들을 위해 격려 말씀을 해주었습니다.nbspnbsp새벽4시30분, 오늘은 해운대 정토법당에서 새벽 예불 및 천일결사 기도를 하며 하루를 시작했습니다. 기도 후에는 INEB 동남아 스님들과 함께 빵과 음료로 간단히 아침식사를 함께 했습니다.nbspnbsp▲ 해운대 정토법당nbspnbsp아침 식사 후 어제에 이어서 INEB 동남아 스님들과의 대화를 이어갔습니다. 우선 동남아 스님들이 메르스에 대해 궁금해 해서 자세히 설명해 주었고, 또 어제 부산 KBS홀에서 있었던 강연을 보고 소감이 어떠했는지 이야기해 보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인도에서 온 우파난드 스님은 “인도에서는 이렇게 많은 대중이 모여서 법문을 들으면 매우 소란스러워서 집중이 안되는데 한국 사람들은 굉장히 조용히 집중하는 모습을 보고 감명을 받았다”며 “질문들에 대해 스님이 재미있게 답변하니까 사람들이 전혀 지루해하지 않았던 것 같다”고 한 후 “이렇게 법회가 진행되면 젊은이들이 불교를 많이 찾을 것 같다”고 소감을 얘기해 주었습니다.nbspnbspnbsp그리고 스님께서는 즉문즉설은 괴로움의 원인과 그 해법을 찾아가는 ‘사성제’의 원리와 ‘아니짜’와 ‘아니따’, 즉 무상과 무아의 원리에 입각해서 답변이 이뤄지고 있음을 설명해 주셨습니다.nbspnbspnbsp그리고 INEB 동남아 승가방문단을 대표해서 태국에서 온 두사디 스님이 연일 좋은 법문을 해주고 있는 스님께 감사의 마음을 담아 태국 사람들이 가장 소중하게 여기고 있는 스투파를 조각한 모형물을 선물했습니다.nbspnbspnbsp해운대 법당을 출발한 INEB 승가 방문단은 비구니 사찰로 유명한 운문사로 향했습니다. 운문사에 도착한 후 스님께서는 “이곳은 현재 비구니 사찰입니다. 많은 건물들이 보이시죠? 비구니가 되는 대학교가 이 안에 있습니다. 학생 스님이 약 150명 정도 있고, 상주하는 스님이 50명 정도 됩니다. 매일 아침 발우공양을 하고 있고요. 예전에는 보시하는 사람이 적어서 농사를 지어서 자급자족을 했습니다.”라고 소개하고 동남아 스님들을 대웅전으로 안내했습니다.nbspnbsp▲ 운문사nbsp대웅전에 들어가 남방 불교식으로 기도를 올린 후 운문사 교무 스님인 지도 스님으로부터 환영 인사를 듣고 운문사 경내 곳곳을 둘러 보았습니다.nbspnbspnbsp마침 운문사 회주 스님이셨던 명성 스님의 회고전이 열리고 있어서 정성을 기울여 만든 다양한 작품들을 감상할 수 있었습니다.nbspnbspnbsp부엌과 식당은 어떻게 생겼고, 농기구는 어떻게 보관하고 있는지 등 비구니 스님들이 어떻게 생활하고 있는지 자세히 엿볼 수 있었습니다. 비구니 스님들의 성품 그대로 곳곳이 깔끔하게 정돈되어 있었습니다. 스님께서는 “처음 시작할 때 질서를 잘 잡아 놓으면 그것을 후배들이 그대로 배우기 때문에 깔끔한 문화가 계속 유지될 수 있다”고 이야기해 주셨습니다. 또 “여기는 남자 출입 금지 구역인데 오늘 여러분들은 예외로 들어온 것”이라고 하셔서 동남아 스님들 모두 한바탕 웃기도 했습니다.nbspnbsp지도 스님은 INEB 동남아 승가방문단 일행을 차를 마실 수 있는 다담실로 안내해 주었습니다. 다리를 건너 고요한 산책길을 따라 걷다 보니 아담한 공간에 예쁘게 가꾸어진 다담실이 나타났습니다.nbspnbspnbsp다담실에서 비구니 스님들이 정성껏 마련해준 과일과 차를 마시며 서로 궁금한 점에 대해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우선 동남아에서 온 여성 수행자 분들이 한국의 비구니 제도에 대해 높은 관심을 보였습니다. 또 비구 스님들도 자신들의 나라에는 없는 비구니 제도에 대해 많은 질문들을 쏟아 내었습니다.nbspnbspnbsp태국에서도 여성 수행자를 위한 학교를 운영하고 있는데 해마다 학생수가 떨어지고 있다고 하면서 한국은 지금 어떤지, 비구니 스님이 계를 받을 때는 비구니 스님으로부터 받는지 비구 스님도 함께 참여하는지, 비구니가 되기 위해서는 어떤 교육과정을 배우게 되는지, 한국에서는 비구 스님이 비구니 스님을 대하는 자세는 어떠한지, 비구 스님은 왜 비구니 스님으로부터 절을 받기만 하는지, 비구니 스님이 되었다가 환속한 사람들의 비율이 어떻게 되는지, 대학까지 졸업한 한국의 여성들이 왜 비구니 스님이 되는지 등 다양한 질문이 있었습니다.nbspnbsp▲ 동남아에서 온 여성 수행자 분들nbsp특히 “한국에서는 비구니가 비구보다 차별받는 것이 많이 있는지?”에 대한 질문에 대해서는 스님께서 “승려로서는 차별받는 것이 없지만 종단의 중요 직책은 비구들이 다 차지하고 있다”고 이야기해 주셨습니다.nbspnbsp그리고 한국의 비구니 스님들과 동남아의 여성 수행자들이 서로 대화하는 모습을 보며 비구 스님들은 “국제 비구니 네트워크가 오늘 만들어졌다”고 하면서 다들 흐뭇해 했습니다. 그래서 비구니 스님들끼리만 모여서 함께 기념 사진을 찍기도 했습니다.nbspnbsp▲ 한국의 비구님 스님들과 동남아의 여성 수행자들이 다함께nbsp또 비구니 스님들은 운문사를 방문해준 스님께 “정말 귀중한 분이 오셨다”고 하면서 “저희들에게도 좋은 법문을 설해달라”고 요청했습니다. 가볍게 차를 마시면서 스님께서는 어떤 자세로 수행을 해야 하는지 조언을 해주셨습니다.nbspnbspnbsp“공부는 억지로 하면 안됩니다. 깨달음이라는 것은 일종의 창조성이기 때문에 자발적이여야 합니다. 검도라든지 기수련 같이 파워를 갖기 위한 수련은 긴장을 하는 것이 필요할 수도 있지만, 해탈로 가는 길은 긴장을 하면 안되고 심리가 편안해야 돼요. 편안한 상태에서 정말 궁금해 해야 화두가 되지 궁금하지 않는 것을 억지로 잡고 있으면 화두를 드는 것이 어려워져요. 놓을래야 놓을 수 없어야 화두이지 들기가 어려운 것을 붙들고 있는 것은 화두가 아니에요.nbspnbsp그래서 심리를 좀 편안하게 가지시고 긴장하지 않는 상태에서 스스로 자꾸 의심을 일으켜야 돼요. ‘왜 그러지?’ 이런 마음으로 집중을 해야 이치를 깨칠 수 있습니다. 예전에 제가 선방에서 부목살이를 한 적이 있는데 공부를 억지로 하는 모습을 많이 볼 수 있었습니다. 억지로 하니까 자꾸 상기가 되고 불만이 생겨요. 그래서 중간에 선방이 깨지기도 했습니다. 먹는 것 때문에 불만이 막 터져나오거든요. 그걸 보면서 공부가 잘 안 되고 있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일상사가 제대로 유지되지 않는 것이니까요. 모양만 그럴듯하게 하는 것이지요.nbspnbsp깨달음은 첫째, 마음이 편안한 상태여야 하고, 둘째, 굉장히 자발적이여야 합니다. 스스로 의문이 일어나는 쪽으로 자꾸 유도를 해야 해요. 깨달은 이후에만 편안한 것이 아니라 과정에서도 기쁨이 생겨야 되거든요. 물론 습관이라는 것이 있어서 까르마를 극복하는 것이 굉장히 어렵지만, ‘나에게 이런 습이 있구나’, ‘이런 나태심이 일어나구나’ 이것을 먼저 편안하게 알아차리는 것이 필요합니다. ‘이러면 안된다’고 자꾸 각오하면 긴장이 되잖아요. 상기가 되는 이유는 대부분 욕심으로 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편안하게 살피면서 정진하는 게 필요합니다.”nbsp스님의 이야기를 듣고 비구니 스님들도 한결 마음이 가벼워진 표정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비구니 스님들은 남방 불교에서 오신 스님들께 위빠사나는 어떤 수행인지 궁금해 했습니다. 한 비구니 스님이 “위빠사나의 기본 원리가 무엇인가요?”라고 묻자, 태국에서 온 두사디 스님이 간단히 답해 주었습니다.nbspnbspnbsp▲ 위빠사나의 기본 원리에 대해 설명해 주고 있는 두사디 스님nbsp“제일 먼저 해야될 것은 일단 생각하는 습관을 딱 멈추는 것입니다. 그리고 호흡을 알아차리든지, 몸을 움직일 때는 그 움직임을 알아차리는 겁니다. 알아차림을 유지하면 몸에 일어나는 감각도 어느 순간에 일어났다가 또 멈춘 것 같다가 또 조금 있으면 사라지는 과정을 볼 수 있습니다. 어떤 현상이 일어났을 때 그것을 판단하려고 하지 말고 평정심을 유지합니다.”nbsp이어서 스님께서 위빠사나의 원리에 대해 다시 정리해 주셨습니다.nbspnbspnbsp“위빠사나의 핵심은 첫째, 마음이 편안해야 합니다. 마음이 편안해지면 긴장이 풀리니까 졸리거나 번뇌가 생기거든요. 그래서 둘째, 또렷이 깨어 있어야 합니다. 그런데 우리는 또렷이 깨어있으려고 하면 긴장이 되기 쉽습니다. 반면에 편안해지면 산만해지기 쉽습니다. 이 둘의 모순을 극복해야 합니다. 편안한 가운데 또렷이 깨어있음을 유지해야 합니다. 몸과 마음을 편안하게 가지면 졸리거나 산만해지고, 그래서 약간 집중을 하면 다시 긴장이 됩니다. 그래서 이쪽으로 치우쳐져도 다시 돌아오고, 저쪽으로 치우쳐져도 다시 돌아오고, 편안한 가운데 뚜렷이 깨어있도록 해야 합니다. 남방 불교로 말하면 이것을 ‘사띠’, 즉 ‘알아차림’이라고 합니다. 우리에게는 이것이 ‘화두’라고 볼 수 있죠. 방법은 다르지만 원리는 거의 비슷해요.nbspnbsp‘정정’은 편안한 가운데 집중이 되는 것을 말합니다. ‘정념’은 또렷이 깨어있는 것을 말합니다. 물론 잘 안되지요. 된다 안된다에 연연하지 말고 계속 연습해야 합니다. 놓치면 다시 하고, 놓치면 다시 하고, 이것이 ‘정정진’입니다. 그래서 선정을 닦는 것을 ‘정정진’, ‘정념’, ‘정정’ 이렇게 말합니다.nbspnbsp남방 불교는 자기 몸에서 일어나는 감각과 마음의 작용에 대해서 또렷이 깨어있는 것을 하고, 우리는 화두에 또렷이 깨어있는 것을 하지요. 대상이나 방법이 조금 다르지 원리는 같습니다.”nbspnbsp다시 비구니 스님이 “남방 불교에서는 몸과 마음이 편안한 상태에서 정진을 하시나요?”라고 묻자 스님께서 다시 답해 주셨습니다.nbspnbspnbsp“한국 사람들은 기본적으로 마음이 바쁘지 않습니까. 그래서 마음이 항상 긴장되기 쉬운데, 이분들은 어릴 때부터 모든 행위를 천천히 해요. 행주좌와 어묵동정에 깨어있는 것이 수행이라고 하듯이 걸을 때는 걷는 데에 깨어있고, 먹을 때는 먹는 데에 깨어있고, 호흡할 때는 호흡에 깨어있고, 이렇게 모든 상태에 깨어있는 연습을 합니다. 좀 어렵죠. 위빠사나는 이런 수행을 하니까 한국 스님들처럼 화를 내거나 과함을 치거나 이런 건 거의 없어요.nbsp선승이라는 사람들이 화를 내거나 과함을 치고, 어떨 때는 뚜드려 맞을 때도 있잖아요. 그런데 이분들은 그런 것이 전혀 없어요. 계율과 자신의 마음을 알아차리는 것을 중요시 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인격이 비교적 원만한 편이에요.“nbsp그러자 또 다른 비구니 스님이 선배 스님들의 안 좋은 모습을 보고 실망할 때가 많다며 이럴 때 어떻게 관점을 가져야 하는지 물었습니다.nbsp“초납자들은 선배 스님들을 보면서 자신들보다 더 나은 모습을 기대하는데, 똑같이 화를 내거나 충돌할 경우가 많아요. 그런데서 많이 실망하기도 하는데, 위빠사나 수행처럼 일상 생활 속에서도 세밀하게 살필 수 있다면 자신의 변화도 가능하고, 초납자들도 선배 스님들을 보고 많이 배울 수 있지 않나 싶은데, 어떤지요?”nbspnbspnbsp스님께서는 위빠사나와 선불교의 구분을 넘어서서 수행자라면 어떤 관점을 가져야 하는지 조언을 해주셨습니다.nbspnbsp“사람은 세 종류의 사람이 있습니다. 더러움에 물드는 사람, 더러움에 물들지 않는 사람, 오히려 더러움을 닦아내는 사람입니다. 게으른 사람과 같이 살면 나도 게을러지는 것이 범부 중생입니다. 그래서 물들지 않으려고 떠나버리거나 가까이 가지 않음으로 해서 나쁜 것을 본받지 않으려고 합니다. 더러움에 물드는 것이 범부중생이라면, 물들지 않기 위해 그 더러움에서 떠나는 것이 소승이고, 더러운 가운데서도 물들지 않는 것이 대승입니다. 그러나 마지막 단계인 붓다의 길로 가는 사람들은 더러움을 닦아내는 사람들입니다. 붓다는 늘 세속에 나와 계셨지만 누군가가 붓다의 가르침을 듣고 삶이 바뀌었지 붓다가 세속에 있으면서 세속의 물이 들었다는 얘기는 없잖아요.nbspnbsp선배들이 열심히 정진해서 훌륭한 인격이 되고, 보기만 해도 존경스러워서, 그로 인해 나도 훌륭한 사람이 된다는 것은 수행자가 아니라 범부 중생에 불과합니다. 나쁜 것에 물들지 않는 대신에 좋은 것에 물드는 것입니다. 세상에서는 나쁜 것에 물드는 건 나쁜 것이고, 좋은 것에 물드는 것은 좋은 것이지만, 수행적 관점에서 보면 좋은 것에 물드나 나쁜 것에 물드나 물드는 수준에서는 같습니다.nbsp만약 내가 모시던 스승이 참 훌륭해서 같이 살았는데 그분이 돌아가시고 다른 분이 조실이 되었다고 합시다. 그런데 ‘그분 인격이 별로다. 그래서 내가 못살겠다’ 그러면 공부한 것이 하나도 없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인생의 주인이 자기가 아니라는 것을 말합니다.nbspnbsp우리는 지금 세상에서 말하는 착한 사람이 되려고 공부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 사람은 화를 내든지 짜증을 내든지 욕심을 내든지 그것은 그의 문제이고, 나는 내가 원래 목표한 바 대로 가야 합니다. 이것이 보드사트바의 길입니다. 더 나아가서는 비록 후배이지만 화를 버럭버럭 내고 욕심을 내던 선배가 나와 같이 살다보니 개선이 되는 쪽으로 나가도록 하는 것이 사실은 우리들 공부의 목적입니다.nbspnbsp적어도 수행자라면 남이 어떻게 하는지 시비하거나, ‘선배 때문에 내가 공부가 안된다’ 이런 얘기 할려면 여기 오지 말아야 합니다. 그건 세상에서 하는 얘기입니다. 세상에서는 선생이 좋으면 아이들이 좋아지고, 부모가 좋으면 아이들이 좋아집니다. 그러나 이것은 세상의 논리입니다. 적어도 수행자는 경계에 끄달리지 않아야 됩니다. 출가해서 행자로 들어왔다 할 때는 그런 경계로부터 자유로워지는 것이 목표입니다.nbspnbsp그러나 경계에 끄달리는 것이 현실이죠. 끄달리는 현실에서 경계를 탓하면 이건 수행의 관점을 놓친 것입니다. 끄달리는 현실은 인정하지만 ‘어, 내가 또 경계에 끄달렸구나’ 하고 원래대로 돌아와야 합니다. 그래서 넘어지면 또 일어나고, 넘어지면 또 일어나고, 이렇게 해서 꾸준히 나가야 합니다.nbspnbsp선배들이 졸든지, 선배들이 정진을 빼먹는다든지 그건 그들의 인생이기 때문에 ‘너는 안 지키면서 왜 나보고 지키라고 하느냐?’ 이런 얘기는 할 필요가 없습니다. 처음에 이렇게 살기로 정했으면 다른 사람이 하든지 말든지 그건 그의 인생이고 나는 그대로 해나가 보는 겁니다. 안되면 내가 안되는 것이지 ‘너도 안하니까 나도 안한다’ 하는 것은 수행적 관점이 아닙니다. 그래서 각자 자기 공부를 해야 합니다. 남이 어떻게 하는지는 신경쓸 필요가 없습니다. 외면하는 것과는 성격이 다릅니다. 거기에 내가 끄달리지 않는다는 것입니다.nbspnbsp선배를 탓할 필요가 없어요. 부처님 법을 보고 여기 들어왔지 선배 보고 들어온 것이 아니잖아요. 그분은 그분의 인생이지요. 불교 지식을 얼마나 배우고, 염불을 얼마나 잘하냐, 이런 건 굉장히 부차적인 것입니다. 내가 나를 극복할 수 있느냐가 주과제가 되어야 합니다. 선배는 선배이고 나는 나입니다. 외면하고 살자는 것이 아니라 거기에 자꾸 끄달려서 분별심을 일으키는 것을 극복해야 언제 어디서든 주인이 될 수 있습니다. 그렇게 되지 않는 현실은 인정하되 그것은 극복의 대상이 되어야 합니다.”nbsp남을 탓하지 말고 자기를 보는 공부를 하자는 말씀에 정신이 번쩍 들었습니다. 그리고 스님께서는 수행도 욕심으로 하면 안된다고 따뜸하게 짚어 주셨습니다.nbspnbspnbsp“우리는 수행도 욕심으로 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깨닫겠다고 하는 어마어마한 욕심을 갖고 시작하거든요. 그러나 수행이라는 것은 하루 하면 하루만큼, 이틀 하면 이틀만큼, 열흘 하면 열흘만큼 좋아지는 것입니다. 이치를 바르게 아는 것이 ‘견도’이고, 안되는 데서 되는 쪽으로 꾸준히 연습하는 것이 ‘수도’이고, 궁극적으로 깨달음에 도달하는 것이 ‘무학도’입니다. 그러니 꾸준히 연습해야 합니다. 너무 조급하게 해서도 안되고 게을러서도 안됩니다. 조급함과 게으름은 같이 옵니다. 욕심이 많으니까 조급해지고, 해보니 안되니까 포기하고 게을러집니다. 그냥 토끼 한 마리가 살 듯이 꾸준히 하면 됩니다. 인생에 너무 많은 의미를 부여하기 때문에 인생이 피곤해지는 겁니다.nbspnbsp다람쥐를 잘 관찰해 보세요. 나무가 높다고 성질내지 않잖아요. 높으면 높은대로 올라가고, 못 올라가면 그냥 내려오지요. 그걸 갖고 탓하지 않잖아요. 그런 것처럼 그냥 해야 합니다. 긴장해도 안되고 산만해도 안되요. 편안한 가운데 집중이 되어 있어야 합니다. 잘 안되니까 그렇게 될 때까지 꾸준히 연습하는 겁니다.”nbspnbspnbsp잠깐 동안 차를 마시며 들려준 소중한 가르침에 비구니 스님들은 너무나 기뻐했습니다. 비록 출가를 해서 승려 생활을 하고 있지만 바른 가르침에 얼마나 목말라 하고 있는지 느낄 수 있었습니다.nbspnbsp비구니 스님들은 운문사를 방문해준 스님과 INEB 동남아 승가방문단 일행에게 손수 제작한 다포 등 몇가지 기념품을 선물해 주었습니다. 그리고 비구니 스님들은 “동남아의 여성 수행자들에 대해 궁금한 점이 많지만 시간이 부족해 물어보지 못했다”며 “다음 인연을 기약한다”고 하면서 아쉬운 마음을 달랬습니다.nbsp nbspnbsp차담이 길어져서 점심 먹을 시간이 훌쩍 지나버렸습니다. 스님께서는 급하게 운문사를 내려와 동남아 스님들께 비빔밥을 대접해 드린 후 다시 못다한 대화를 이어나갔습니다.nbspnbsp오후의 대화는 ‘운문산방 더치 하우스’ 라고 하는 작은 카페에서 이뤄졌습니다. 카페 주인 아주머니는 평소 법륜 스님의 법문을 듣고 삶이 많이 행복해졌다고 하면서 커피를 모두 무료로 보시해 주었습니다.nbspnbspnbsp카페에서의 대화도 많은 질문들이 오갔습니다. 율사가 되려면 어떤 과정을 밟아야 하는지, 비구계와 비구니계를 주는 방식은 어떻게 되는지, 계를 주는 스승과 제자의 관계는 어떻게 되는지, 선불교는 대승불교는 어떤 차이가 있는지, 선불교는 어떤 수행법을 갖고 있는지 등 다양한 질문에 대해서 스님께서는 1시간30분 동안 많은 이야기를 들려주셨습니다. 특히 선불교의 수행 방법에 대해 자세히 물어보는 동남아 스님들에게 그 방법을 자세히 설명해 주면서 궁극적으로는 무엇이 중요한지 일깨워 주셨습니다.nbspnbspnbsp“선불교, 마하야나, 테라바다, 이런 구분은 중요하지 않습니다. 지금 여기 깨어있느냐가 중요합니다. 그것이 화두에 깨어있든, 호흡에 깨어있든, 걸음걸이에 깨어있든, 깨어있는 것이 중요합니다.”nbspnbsp동남아 스님들은 오롯이 스님의 법문에 집중하며 스님으로부터 자상한 설명을 들을 수 있는 것을 매우 기뻐했습니다.nbspnbsp이어서 모두 서울로 향했습니다. 저녁7시 무렵에 서울에 도착한 방문단 일행은 평화재단 세미나실에 모여서 다시 대화를 이어갔습니다. 저녁 시간에는 정토회의 사회적 실천 활동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nbspnbspnbsp이웃종교 지도자들과의 모임, 사회지도층들의 민족의 화해와 통일을 위한 국민통합회의, 평화 통일을 위한 연구활동을 하는 평화연구원, 사회지도층과 청년들을 위한 리더십아카데미 교육을 하는 평화교육원, 인도와 필리핀에서 구호활동을 하는 JTS, 환경운동을 하는 에코붓다, 북한인권 개선 운동을 하는 좋은벗들 등을 소개해 주었습니다.nbspnbsp특히 JTS 활동을 소개하면서는 지진 등 재난 시 구호활동을 할 때는 동남아 스님들과 함께 할 수 있는 일들이 많다며 적극적인 연대를 제안했습니다. 또 한국 안에 들어와 있는 외국인 노동자들을 위해 함께 할 수 있는 일들도 제안했습니다.nbspnbspnbsp“저희가 안산에 외국인 노동자들을 위한 센터를 마련할 예정입니다. 여러분들이 와서 여러분 나라의 노동자들을 위해 법문을 해주셔야 합니다. 지금 한국에 와 있는 노동자가 많은 나라는 네팔, 몽고, 스리랑카, 방글라데시, 베트남, 캄보디아, 미얀마 등입니다. 여러분들이 여기 와 있으면서 이 사람들에게 도움을 줄 수 있습니다. 대부분 한국의 기독교 단체가 이 사람들을 돕기 때문에 기독교로 종교를 바꾸는 사람들이 많습니다.”nbspnbsp그리고 “미얀마에서는 승려의 사회활동에 대한 비판이 많은데, 사회 활동을 할 때 어떤 관점을 가져야 하는지?” 묻는 질문에 대해 답하면서 이렇게 마무리 말씀을 해주셨습니다.nbspnbsp“지금은 조금 어려울지 몰라도 사회를 한 발 앞서가야 사회적 리더십을 가질 수 있습니다. 붓다가 우리에게 보여주지 않았습니까? 카스트를 부정했다든지, 비구니 제도를 인정했다든지, 이런 건 그 당시에는 상상도 못 했던 일이잖아요.nbspnbsp전쟁이 나면 내가 아무리 수행을 해도 총을 맞으면 죽습니다. 이것은 승려이기 이전에 사람이 행복하게 살아가는데 필요한 일입니다. 산속에 있는 것만이 승려가 아닙니다. 어디 있느냐가 중요한 것이 아닙니다. 많은 절들이 산속에 있지만 대부분 세속에 물들어 있습니다. 그러나 그런 비판은 유의해서 들어야 합니다. 혹시 내가 세속에 물들지는 않았는지 살펴야 합니다. 왜냐하면 우리는 아직 부족하니까 세속에 가까이 있으면 물들 위험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1년 마다 일정한 기간은 우리도 도심에서 떠나서 정진을 하는 것이 필요합니다.”nbspnbspnbsp이렇게 대화를 마친 후 스님께서는 “너무 오래 얘기해서 피곤하니까 오늘은 일찍 숙소로 가셔서 좀 쉬세요”라고 하면서 동남아 스님들을 숙소로 안내했습니다. 동남아 스님들은 정토회관으로 이동해 휴식을 취했고, 스님께서는 곧바로 평화재단 3층 강당으로 내려가셔서 청년리더십아카데미 수료식에 함께 하셨습니다.nbspnbsp지난 3개월 동안 청년리더십아카데미 수료생들은 입학 워크샵을 시작으로 우리 사회 각계 각층의 전문가들을 모시고 한국 사회의 발전 방향과 통일 한국의 비전에 대해 강의를 듣고 함께 토론하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스님께서는 오늘 수료식을 맞이하여 수료생 모두에게 수료증과 선물을 수여한 후 격려의 말씀을 해주셨습니다.nbspnbspnbsp“졸업을 축하드립니다. 입학할 때와 비교해서 조금 변화한 것이 있어요? 세상을 보는 눈이 조금 더 커졌어요? 마음이 조금 더 편해졌어요?nbspnbsp우리가 어떤 목표를 세우고 어떤 일을 하든 첫째, 자신이 행복해야 합니다. 자기가 행복하지 못하면 세상 사람들에게는 도움이 될지 몰라도 자기 인생은 실패라고 볼 수 있어요. 무엇을 하느냐에 관계없이 자기가 자기를 행복하고 자유롭게 해야 합니다.nbspnbsp둘째, 나만 행복하면 되느냐. 그것은 소극적인 자세입니다. 나만 행복한 사람을 나쁘다고 말할 수는 없어요. 그러나 다른 사람이 봤을 때는 ‘너만 좋지 우리한테는 무슨 도움이 되느냐?’ 이렇게 생각이 됩니다. 그래서 다른 사람에게도 도움이 좀 되어야 합니다. 결혼을 한다면 남편은 아내에게, 아내는 남편에게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어야 하고, 자식에게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는 부모, 부모에게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는 자식, 친구에게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는 친구가 되어야 합니다.nbspnbspnbsp그런데 우리가 사는 이 세상에는 그렇지 못한 사람이 굉장히 많죠. 자식 때문에 부모가 등꼴이 휘는 경우가 있고, 아내 때문에 남편이 힘든 사람이 있고, 친구 때문에 여러 가지 고통을 겪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런 대통령 때문에 국민이 힘든 경우도 있습니다. 적어도 이 세상에 없었으면 하는 사람이 되면 안됩니다. 있으면 좋은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nbspnbsp두 가지가 합해져야 합니다. 첫째, 내가 행복하고 자유로워야 합니다. 둘째, 이왕지 하는 일인데 그 일이 다른 사람에게도 조금 도움이 되는 일이 되면 더 좋겠지요. 그래서 항상 체크해 봐야 합니다. 지금 내가 자유롭고 행복하냐? 이것이 다른 사람들에게도 도움이 되는 일인가?nbspnbspnbsp나도 좋고 너도 좋고, 지금도 좋고 미래에도 좋은 일, 그것이 진리입니다. 이런 진리를 향해서 살아가면 좋겠다 싶습니다. 여러분들이 가진 재능들이 우리 사회의 갈등 해소와 국민 화합을 위해서, 남북의 평화와 통일을 위해서, 국민의 행복을 위해서 잘 쓰여질 수 있도록 조금 더 능동적으로 활동을 해주었으면 좋겠습니다. 졸업이 끝이 아니고 그런 일을 해나가는 첫출발이 되기를 바랍니다.”nbspnbsp나도 행복하고 남에게도 도움이 되는 일을 해나가기를 바라는 스님의 마음이 잘 전달이 되었는지 청년들은 큰 박수 갈채로 스님께 감사의 마음을 표했습니다. 그리고 스님과 함께 ‘화이팅’을 외치며 기념 사진을 촬영했습니다. 스님 말씀대로 모두들 한국 사회 곳곳에서 남북의 평화와 통일을 위해 잘 쓰이는 사람이 되기를 기원해 봅니다.nbspnbspnbspnbsp스님께서는 재단에서 업무 논의를 더 하시다가 정토회관으로 들어오셔서 오늘 일정을 마치셨습니다. 내일 동남아 스님들은 불교TV, 불교방송을 방문해 보고, 인사동에 가서 전통문화를 둘러본 후 다시 스님과 대화 시간을 가질 예정이고, 스님께서는 평화재단에서 여러차례의 미팅을 가진 후 저녁에는 서초동 정토회관에서 수행법회 직강을 해주실 예정입니다.
2015.6.8 희망세상만들기 즉문즉설 부산 대강연
▲ 희망세상만들기 즉문즉설 부산 대강연nbsp안녕하세요. 오늘 스님께서는 INEB 동남아 스님들과 함께 두북 정토수련원에서 대화 시간을 가진 후 한국을 대표하는 사찰인 통도사를 둘러보고, 저녁에는 부산 KBS홀에서 희망세상만들기 즉문즉설 강연을 하셨습니다.nbspnbsp새벽4시30분, 오늘도 두북 정토수련원에서 새벽 예불 및 천일결사 기도로 하루를 시작했습니다. 기도 후에는 INEB 동남아 스님들을 위해 스님께서 직접 음식물 테이블 셋팅을 해주셨습니다.nbspnbsp▲ 두북 정토수련원nbsp아침 식사는 최말순 보살님과 묘광 법사님, 화광 법사님 세 분이서 어제부터 정성을 다하여 준비해 주셨습니다. 동남아 스님들은 식사를 준비해주신 세분께 감사 기도와 축언을 함께 한 후 맛있게 식사를 드셨습니다.nbspnbsp▲ 식사 전 감사 기도를 하고 있는 동남아 스님들nbsp식사 후 스님께서는 동남아 스님들께 “궁금한 것이 있으면 무엇이든 물어보세요” 하며 대화의 시간을 가지셨습니다.nbspnbsp동남아 스님들은 “어떤 사람이 정토회 회원이 될 수 있습니까?”, “수련에 참가하는 사람들은 어떤 사람들인지?”, “부모와 아이가 함께 변하도록 수련을 해야 하지 않는지?”, “부모의 습관을 바꾸기 위해서 스님은 어떤 방법을 사용하시나요?”, “예전에는 한국 사람들이 극단적이였는데 요즘은 타협하는 모습도 많이 보이는 것 같다”, “정토회는 어떻게 기복 신앙을 붓다에 대한 존경으로 바꿀 수 있었는지?”, “집착을 내려놓은 방법을 어떻게 가르치시는지?” 등 많은 질문들을 스님께 했습니다.nbspnbspnbsp그 중에서 “강연을 하면서 어떤 사회변화를 느끼시나요?”라는 질문에는 스님께서 이렇게 답변해 주셨습니다. nbspnbspnbsp“아직 사회 변화 정도까지는 안돼요. 조그만 변화가 있다면 세가지 정도가 있는 것 같아요. 첫째, 아기를 낳으면 세 살 때까지는 엄마가 정성껏 키워라. 둘째, 청소년들에게 너무 간섭을 하지 말고 스무살이 넘으면 더 이상 관여를 하지 말아라. 이렇게 강조를 계속 하니까 조금씩 변화가 있는 것 같아요. 셋째, 부부관계의 갈등을 해소하는 방법이 담긴 책이 아주 많이 팔려서 이혼하려는 사람들이나 부부 갈등으로 힘든 사람들에게 도움을 주는 것 같아요.nbspnbsp그리고 한국 불교는 복을 비는 것이 대부분인데 자기 마음을 닦아서 행복해지는 수행에 대한 요구가 많이 늘어난 것 같습니다. 그래서 깨달음의 장을 하려면 거의 10대1 정도의 경쟁률이 있을 정도입니다. 여기 못 오는 사람들이 위빠사나 수행이나 다른 프로그램으로 많이 가기 때문에 전체적으로 수련하는 사람들이 많이 늘어났어요. 어제 미얀마에서 온 시타구 사야도의 제자는 한국에서 위빠사나 수행을 하는 많은 젊은이들이 법륜 스님 법문을 듣고 자신의 수행처로 많이 온다고 하더군요. 그렇지만 아직 뚜렷하게 성과로 나타난 것은 없고 작은 변화들이 조금씩 나타나고 있습니다.”nbspnbsp또 “앞으로 정토회의 미래를 어떻게 보고 계신지?”에 대한 질문에 대해서는 이렇게 답변해 주셨습니다. nbspnbsp“정토회는 30년 단위로 목표를 세우고 일을 하고 있습니다. 현재 한국 안에서의 목표는 동네마다 수행 모임을 만드는 것입니다. 내년까지 목표는 시군구까지 확대하는 것입니다. 22년 전에 처음 시작할 때는 하나의 모임으로 시작했습니다. 그 때 목표가 남북한에 5천개의 동이 있는데 모든 동에 수행 모임을 만들자는 것이였습니다. 그런데 처음 10년 동안 겨우 10개 정도 만들었어요. 다음 10년 동안 50개 정도 만들었어요. 이번 3년 동안은 200개를 만들려고 해요. 현재 110개 정도까지 만들었어요. 앞으로 8년 남았는데 목표를 달성하기는 어려울 수도 있습니다.nbspnbsp그러나 어떻게 보면 어렵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왜냐하면, 사람들이 수행을 많이 원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전통 불교에 기반을 두지 않고 전혀 새로 시작했습니다. 전통불교의 의식은 한문으로 되어 있는데 우리는 대부분 한글로 바꾸었어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직 우리에겐 전통 의식이 많이 남아 있습니다. 아침기도와 저녁예불은 모두 전통 방식입니다. 이것이 젊은이들에게는 지금 큰 장애입니다. 다른 종교에서 오는 사람들에게도 장애입니다. 법문은 누구에게나 쉽게 전달이 되는데, 절에 오면 이 전통문화 때문에 적응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래서 다음 30년 계획에는 이것을 다 바꾸어야 합니다. 첫째, 젊은 사람들을 위해서입니다. 둘째, 종교가 없거나 다른 종교를 가진 사람들을 위해서입니다. 셋째, 외국인을 위해서입니다. 어느 나라에서든지 모두 자기식으로 수행을 할 수 있어야 합니다. 현재와 같이 관세음보살을 염하면서 절하는 것은 외국인들이 하기에는 어려움이 있습니다. 고뇌하는 사람들은 누구나 그 고뇌로부터 벗어나 자유로워질 수 있다는 목표를 달성해야 합니다. 불교의 궁극적인 목표는 해탈과 열반을 어떻게 달성하느냐입니다. 거기에 도달할 수 있는 바른 길과 쉬운 길을 어떻게 개발하느냐 입니다.nbspnbspnbsp한국 사회 안에서의 목표는 평화와 통일에 맞춰져 있습니다. 만약에 정부가 그 길로 가지 않는다면 우리는 정부가 그 길로 가도록 행동도 할 것입니다. 우리가 마음은 늘 수행을 해야 하지만 사회적 모순을 해결하기 위해서는 행동하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만약 마음의 평화만 추구하고 사회적 모순을 개선하지 않는다면 결과적으로 지배자의 이데올로기에 봉사하는 것이 됩니다.“nbsp동남아 스님들은 정토회에 대해 더 깊이있게 이해하는 시간이 되었다며 모두들 좋아했습니다. 스님께서는 이렇게 정토회 활동을 먼저 보여준 후 다시 궁금한 점에 대해 대화를 나누는 방식으로 이번 INEB 방문단을 안내하고 있습니다. nbspnbsp아침 대화 시간을 마친 후에는 평화재단 이승용 팀장의 안내로 경주 불국사로 향했습니다. 불국사를 창건한 김대성의 이야기, 청운교와 백운교, 석가탑과 다보탑 등에 대한 자세한 안내를 들으면서 동남아 스님들은 한국의 전통 불교에 대해 알아가는 시간을 가졌습니다.nbspnbspnbsp▲ 불국사nbsp다시 두북 정토수련원으로 돌아와서 점심 식사를 한 후에는 한국의 발전된 모습을 보기 위해 울산 현대중공업을 견학하였고, 이어서 한국의 대표적인 전통 사찰인 통도사를 방문했습니다.nbspnbsp▲ 통도사nbsp스님께서는 “이 절은 신라 시대에 자장율사가 당나라에 가서 부처님의 사리를 받아와서 지은 절입니다. AD 642년에 지어졌습니다.” 라고 짧게 소개한 뒤 통도사 경내 곳곳을 함께 둘러보며 자세하게 설명해 주셨습니다.nbspnbsp무엇보다 통도사는 부처님의 사리가 봉안된 곳으로 유명한데, 문이 잠겨 있었지만 마침 이곳 교무스님과 전화 연락이 닿아 사리가 봉안된 금강 계단을 참배할 수 있었습니다.nbspnbsp▲ 부처님의 사리가 봉안된 금강계단nbsp그리고 대웅전 옆에는 작은 연못이 있었는데 연못에 얽힌 설화도 스님께서 이야기해 주셨습니다.nbspnbsp▲ 구룡지연nbsp“이곳은 아홉 마리의 용이 있는 연못이라는 뜻의 ‘구룡지연’입니다. 원래 이 지역은 습지였습니다. 그것을 메웠어요. 이 습지에 아홉 마리의 용이 있었는데, 자장 율사가 그것을 다 내보냈습니다. 그런데 눈 먼 용이 한 마리가 있어서 자기는 갈 수 없다고 하면서 이 절을 지키겠다고 했어요. 그래서 그 용이 여기서 살도록 이 연못을 남겼다고 합니다. 신라시대는 나라를 용이 지켜준다는 신앙이 있었습니다.”nbspnbsp스님의 자상한 설명을 들으며 동남아 스님들은 연신 고개를 끄덕였고, 스님께서 설명해주신 곳마다 카메라를 들고 열심히 사진을 찍었습니다.nbspnbsp통도사를 모두 둘러보고 내려오는 길에 스님께서는 “통도사의 관할 아래에 큰 암자가 무려 16개나 있어요” 하시면서 “이 절은 규모 면에서 아마 정토회의 100배 정도는 될 겁니다” 라고 이야기해 주셨습니다. 스님의 이야기를 들으며 정토회가 미약한 규모에 비해 얼마나 많은 일들을 해내고 있는지 상대적으로 생각해 볼 수 있었습니다.nbspnbspnbsp통도사 방문을 마치고 곧바로 희망세상만들기 즉문즉설 강연이 열리는 부산 KBS홀로 향했습니다. 메르스의 확산과 비가 계속 내리고 있는 관계로 참가자가 적을 것이라는 우려가 많았는데, 스님께서는 “참가자가 적게 와도 괜찮으니 비가 왕창 내려서 가뭄이 좀 해결되었으면 좋겠다”고 하면서 농사가 안되어서 안절부절하는 농민들의 마음을 많이 걱정하셨습니다.nbspnbsp부산으로 가는 길에는 동남아 스님들께 광안대교를 보여주었습니다. 높고 길게 뻗은 다리 위를 생생 달리며 높은 빌딩들이 빼곡이 들어선 부산의 모습을 잠시 엿볼 수 있었습니다.nbspnbsp▲ 광안대교nbsp부산 KBS홀에는 강연 시간보다 1시간 일찍 도착해서 조금 여유가 생겼습니다. 스님께서는 여유 시간을 활용해서 다시 INEB 동남아 스님들과의 대화 시간을 이어나가셨습니다.nbspnbspnbsp부산을 포함한 한국의 가야 지역에 처음으로 불교가 전래된 이야기, 혜초 스님의 인도 방문 이야기, 타고르가 일제 식민지 시대의 한국을 동방의 등불이라고 한 이유, 일제 식민지 시대에 용성 스님의 독립운동과 불교 개혁 이야기, 테라바타와 마하야나, 탄트라, 선불교 네 가지가 함께 어우러진 한국불교의 특징 등 많은 이야기들을 1시간 동안 들려주셨습니다. nbspnbspnbsp오늘 부산 KBS홀에서 열리는 즉문즉설 강연은 동래정토회의 자원활동가들이 주관을 맡았다고 합니다. 뿐만 아니라 부산에 자리하고 있는 여러 정토회와 소속 법당 봉사자들 모두가 한 마음이 되어 홍보에 힘을 기울였는데, 기발하고 재미있는 방법으로 홍보를 하며 참여했던 봉사자들과 구경했던 시민들 모두 즐거웠다고 합니다. 봉사자들은 많은 사람들이 강연회에 와서 조금이라도 자신의 괴로움을 덜고 행복해지기를 기원하며 밤낮없이 번화가, 유원지, 주택가 등 여러 곳에서 포스트와 현수막을 붙이고 전단지를 돌린 이야기도 들을 수 있었습니다.nbspnbsp또 이른 아침부터 동래정토회 불교대와 경전반 재학생들이 중심이 된 100여명의 봉사자들이 각자 맡은 역할을 확인하며 분주하게 움직였다고 합니다. 강연회 시작 시각은 오후 7시 30분이지만, 오후 5시부터 강연장 주변으로 많은 시민들이 모여들었습니다. ‘중동호흡기증후군’의 확산과 비까지 오는 궂은 날씨로 강연회 참가자 수가 적을까봐 걱정을 했지만, 걱정과는 달리 입장하는 시민들의 수가 적지 않아 안도의 한숨을 쉬며 밝은 얼굴로 시민들을 맞이하는 봉사자들의 모습을 볼 수 있었습니다.nbspnbspnbsp또 행사를 주관한 동래정토회 측에서는 행사장에 출입하는 모든 시민들을 줄을 세워서 입장하기 전 손 세척제를 사용하도록 하고, 호흡기 질환이나 기침 환자는 출입을 통제하고, 2주 안에 서울 대형병원에 입원했거나 병문안을 다녀온 분들은 출입을 삼가하도록 안내하는 등 메르스 대책을 위해 철저히 준비하는 모습을 보여주어 참석한 시민들로 하여금 안심할 수 있게 해주었습니다.nbspnbsp7시부터는 해운대 소리 합창단과 ‘소리지’ 오카리나 봉사 공연단의 아름다운 선율을 담은 공연이 있었습니다. 강연장 3층까지 2000석이 모두 채워지고 7시30분이 되자 스님께서 무대에 오르시고 강연이 시작되었습니다.nbspnbsp nbsp▲ 부산 KBS홀nbsp스님께서 먼저 환한 얼굴로 “안녕하세요. 오늘 같은 날 겁도 없이 이렇게 많이 오셨어요?”하고 인사하셔서 청중석에서 웃음이 터졌습니다. 이어 스님께서는 “오늘 행사를 부산 시민을 위해 정토회 회원들이 많이 준비했는데 낙담을 많이 했어요. 오늘 용기를 내서 오신 만큼 유익한 시간이 되었으면 좋겠네요.”하고 말씀하시며 ‘즉문즉설’은 어떤 강연인가를 설명해주신 후 청중들의 질문을 받으셨습니다.nbspnbspnbsp오늘은 모두 11명의 질문자가 질문을 하였습니다. 스물한살 된 딸이 입시를 준비하다가 정신적인 충격을 받아서 발작을 일으켜 조울증 치료를 받는 중인데 어린 아이처럼 행동해서 어떻게 해야할지 고민이라는 분, 25년째 생활 능력도 없고 집안일도 하지 않는 천하태평 남편과 결혼생활을 하고 있는데 앞으로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 답답함을 호소하는 분, 3년 전 스님께 질문을 해 편안함을 얻었다고 하며 앞으로 직장생활을 고민하는 조현병을 앓고 있는 대학생, 태어나면서부터 팔자가 사나운데 지금까지 외롭고 힘들다고 하소연하는 분, 하나님은 모든 사람을 사랑하는지 아니면 가려서 사랑하는지 궁금해 하는 기독교인, 직장에서 상사들의 짜증 때문에 직장에 가기 힘들다는 30대 여성분, 8개월 전 남편과 사별해서 49재를 지냈는데 주위 사람들이 남편이 꿈에 나타난다고 해서 다시 천도재를 지내야 할지 고민인 분, 일에만 집중하고 사람에게는 관심없는 자신을 바꾸고 싶어하는 분, 알코올 중독을 앓고 있는 친정아버지를 돕고 싶은데 어떻게 해야 할지 고민인 분, 작년 여름에 막내 아들을 하늘 나라로 보내고 죄책감에 시달리는 어머니 등 다양한 질문에 대해 스님께서는 정성껏 답변을 해주셨습니다.nbspnbsp오늘은 그 중에서 시어머니와 시동생, 시누이를 데려와서 같이 살고 싶어하는 남편 때문에 고민인 여성 분의 질문에 대한 스님의 답변을 전해 드리겠습니다. 문답 과정도 무척 재미있었지만 문답 끝에 환하게 웃는 질문자의 모습이 훈훈한 감동을 주었습니다.nbspnbsp“저는 시댁을 좋게 생각할 수 있는 기도를 하고 싶어요. 시부모님이 저한테 거는 기대감이 높아요. 저는 아이가 넷이 있어요. 시어머니한테는 딸이 있는데 아직 결혼을 하지 않고 집에 그대로 있어요. 이분은 나이가 37살인데 정신 연령은 7살이예요. 시어머니는 자기가 죽고 나면 자기 딸의 보호자가 필요한데 그 일을 저희 부부에게 넘기려고 하세요.”nbspnbspnbsp“시어머니가 몇 살이예요?”nbspnbsp“이제 환갑 지나셨어요.”nbsp“한국인 여성의 평균 수명으로 계산하면 시어머니가 앞으로 몇 년 더 사실까요?”nbsp“한 20년 더 사시겠죠. 너무 많이 남은 것 같아요.”nbsp“죽은 뒤에 딸을 맡긴다고 했으니까 앞으로 20년 동안은 안 맡길 것 아니예요?nbsp그러니 20년 뒤의 일을 지금 걱정할 필요가 없지요.”nbsp“그런데 시어머니는 저희가 허락만 하면 언제든지 같이 사실려는 마음을 자꾸 내비치시거든요.”nbsp“그러면 같이 안 살면 되지요.” nbspnbsp“그런데 신랑은 부모님이 원하니까 그렇게 해주고 싶어 해요.”nbsp“그건 안된다고 얘기하면 되지요.”nbsp“안된다고 얘기하니까 제가 너무 미안한 거예요. 그래도 제가 좋아하는 사람의 부모이고, 좋아하는 사람의 여동생인데요.”nbsp“그래도 안된다고 얘기하면 돼요. 남편은 자기 부모와 자기 여동생을 데리고 살고 싶어 하겠지만 그것은 남편의 요구죠. 내가 어떻게 남편의 요구를 다 들어줄 수 있어요? 만약에 남편이 밖에 나가서 첩을 세 명이나 두고 싶은 요구가 있다고 하면 그런 것도 자기가 들어줄 거예요?”nbsp“그렇게 하면 안되지요.”nbsp“그 얘기나 이 얘기나 무슨 차이가 있어요?” nbsp“그런데 신랑의 남동생도 있어요. 신랑의 남동생은 한달 전에 이혼을 했어요. 저희 집에 자꾸 들어올려고 합니다.”nbsp“이제 남 얘기 그만 하고요. 안된다고 얘기하면 된다니까요. ‘내가 너하고 결혼했지 동생하고 결혼한 것도 아니고, 너 엄마하고 결혼한 것도 아니다. 너가 가서 엄마를 돌보든지, 너가 가서 너 동생을 돌보든지 하는 건 좋다. 그러나 나는 안된다’ 이렇게 얘기하면 됩니다. ”nbsp“이미 그렇게 얘기는 했어요. 그런데 얘기하고 나니까 너무 미안한 거예요.”nbsp“미안해할 필요 없어요.”nbsp“미안해 하지 않아도 될까요?”nbspnbsp“네, 미안해 하지 않아도 돼요.”nbsp“그런데 저는 미안한데요.”nbsp“미안하면 데려와서 같이 살면 돼요.” nbspnbspnbsp“길 가는 사람도 데려와서 같이 사는데, 시동생 시누이 시어머니를 데려와서 같이 못 살 이유가 없지요. 자기가 원하면 데려와서 같이 살면 돼요. 그런데 자기가 원하지 않으면 자기가 데려와서 살아야 할 의무는 없기 때문에 거절해도 괜찮아요.”nbsp“저한테 자꾸 요구하는 느낌을 받으니까 남편한테 거리를 두게 되어서요.”nbsp“남편한테는 잘해 주세요. 남편의 요구는 요구인 것이고, ‘여보, 그거는 안돼요’ 얘기하고 다른 건 또 잘해주세요. 또 그 얘기 하면 ‘여보, 그거는 안돼요’ 하고 또 다른 건 잘해주면 됩니다.”nbspnbsp“아하, 그렇네요.” nbspnbspnbsp“이제 그 방법을 알았어요?”nbspnbsp“네, 저는 그 말을 하는 게 너무 힘들었습니다.”nbsp“괜찮아요. 백번 말해도 ‘여보, 그건 안돼요’ 말하고 다른 건 잘해주세요. 남편을 미워하지 말고요. ‘내가 백번 말했는데도 또 말해요?’ 이러면 안돼요. 같이 살고 싶은 건 남편의 의견이고, 안된다는 건 내 의견이니까요. 죄송하다고 말할 필요 없어요. 이것은 내가 잘못한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남편이 어떤 얘기를 해도 ‘여보, 그건 안돼요. 나는 우리 가정의 행복을 지켜야 할 책임이 있어요’ 이렇게 말하면 됩니다.”nbsp“시부모님이 자꾸 불편함을 표시하면 어떡하죠?”nbsp“불편함을 표시하든 말든 무슨 상관이예요? 불평을 좀 들으면 되지요. 그럼 불평 좀 안 들으려고 시어머니와 같이 살다가 서로 원수 되는 게 낫겠어요? 아니면 짜증내는 소리만 좀 듣고 말래요? 질문자가 저한테 묻고자 하는 심리는 시어머니도 짜증 안내고, 남편도 싫어하지 않고, 시어머니 안 모시고도 살 수 있는, 이런 길이 없느냐 하는 거죠? 그런 길은 없어요.” nbspnbspnbsp“남편과 대화를 하면 늘 허전하고 외롭습니다. 그럴 땐 어떡하죠?”nbsp“우울한 마음으로 애기를 키우는 게 애기한테 나쁠까요? 즐겁게 애기 키우는 게 애기한테 좋을까요? 엄마가 이 남자와 사느냐, 저 남자와 사느냐는 별로 중요하지 않아요. 핵심은 애기가 볼 때 엄마가 행복한 것이 중요해요. 엄마가 행복하게 살면 아빠가 없어도 괜찮아요. 아빠가 죽었다고 울고 불고 하면 아빠가 죽어서 애기가 나쁜 것이 아니라 엄마가 울고 불고 하기 때문에 애기가 나빠집니다. 아빠가 죽고 다른 남자와 연애를 해도 엄마가 웃으면서 살면, 또 혼자 살아도 웃으면서 살면 애기는 건강하게 잘 자랍니다. 지금 질문자의 문제는 본인이 우울하다는 것입니다. 남편이 그런 요구를 자꾸 하니까 질문자가 지금 허전한 겁니다. 남편의 요구를 다 들어주지 못하니까요.nbspnbsp그러니 질문자는 입장을 분명히 하세요. 우리 가정을 지키는 것은 내가 해야 할 일이지만, 남편은 또 자기 형제를 돌봐야 할 책임이 있겠지요. 그러나 두 가지를 섞을 필요가 없어요. 남편이 그런 것은 남편의 일이고, 나는 내 자식을 돌보는 것이 내 일이니까 남편이 돈 번 것 중에 나눠줄 수 있으면 돈을 좀 포기하면 돼요. 자기 번 돈을 자기 엄마한테 주는 것은 내가 상관할 필요가 없잖아요. 자기 동생한테 주는 돈도 내가 상관할 필요가 없겠지요. 그렇게 간섭하지 않으면 괜찮아요. 그러나 ‘같이 사는 것은 안됩니다, 돈을 주는 것은 알아서 하세요.’ 이렇게 해야 합니다. 길 가는 사람한테도 보시하고 절에도 보시하는데 자기 가족한테 보시 좀 하면 어때요?nbspnbspnbsp이렇게 삶의 가닥이 분명하면 아무 문제가 안돼요. 시어머니가 좀 싫어해도 웃으면서 ‘안녕하세요’ 하고요. ‘너는 같이 사는 게 싫니?’ 물으면 ‘저는 시어머니와 같이 사는 것 보다는 우리 남편과 같이 사는 것이 훨씬 좋아요’ 이렇게 얘기하면 됩니다. 사실대로 말하면 됩니다. ‘남편은 엄마 모시고 사는 게 좋겠지만 저는 둘이 사는 게 더 좋아요’ nbsp이렇게 얘기하세요.”nbsp“시어머니 눈이 아주 부리부리 하거든요.”nbspnbsp“부리부리 하면 어때요? 부리부리 하면 지 눈 부리부리 하지 나하고 무슨 상관이예요? nbspnbspnbsp여자로 태어난 것이 큰 죄가 아니에요. 자기 중심을 딱 잡고 살면 돼요.”nbspnbsp“감사합니다.”nbspnbsp질문자가 마지막에 당당한 목소리로 ‘감사합니다’ 라고 대답하자 청중들이 뜨거운 격려의 박수를 함께 보내주었습니다. 질문자의 밝아진 표정을 보니 잔잔한 감동이 밀려왔습니다.nbspnbsp특히 오늘은 우울증을 앓고 있는 분들의 질문이 많았습니다. 우울증 환자들의 질문이 거듭되자 잠시 분위기가 무거워지기도 했는데 스님께서는 마지막에 정리말씀을 해주시며 늘 긍정적으로 삶을 바라볼 줄 알아야 행복하게 살 수 있다며 이렇게 강조를 해주셨습니다.nbspnbspnbsp“매일 아침 눈뜨면 ‘아이고 오늘도 살았네’ 하고 감사히 생각하며 살면 행복해져요. 이 세상에 태어난 어떤 사람도 행복할 권리가 있어요. 어떠한 상황에 놓여 있어도 행복하게 사시길 바랍니다.”nbsp시원하고 유쾌한 스님의 답변에 청중들은 강연 내내 웃음을 터트렸습니다. 강연이 끝나자 객석의 청중들은 2시간 30분을 고뇌로부터 벗어나게끔 도와주신 스님께 큰 박수로 환호해 주었습니다. 로비에서는 스님의 책 사인회와 더불어 자원봉사자들과의 단체사진 촬영이 진행되었습니다.nbspnbspnbsp사진 촬영 후 동래 정토회 봉사자들은 2015년 상반기 희망세상 만들기 즉문즉설 강연을 무사히 끝내신 스님께 케익과 함께 꽃다발 증정을 하며 감사를 표했습니다.nbspnbsp그리고 무대 뒤 대기실로 자리를 옮겨 수고가 많았던 팀장급 자원봉사자들과 짧은 간담회 시간을 가졌습니다. 스님께서는 오늘 행사를 주관한 동래정토회의 운영 현황과 애로사항을 경청한 후 몇가지 조언을 해주셨고, 또 여러 가지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강연을 무사히 치러낸 봉사자들에게 따뜻한 격려의 말씀을 해주셨습니다.nbspnbspnbsp“우리는 몸의 병을 치료하는 데는 온갖 검진을 하고 많은 관심을 갖는데, 정신적인 병을 치료하는 데는 눈에 보이지 않으니까 관심이 별로 없어요. 그런데서 우리가 하는 이런 일들은 보이지 않게 사회 공헌을 많이 하는 겁니다. 드러나지 않아서 그렇지요. 공덕이 되니까 지치지 말고 계속해 나갑시다. 읍면동까지 이런 수행하는 모임이 늘어나면 사회 변화도 가져올 수 있을 거예요.”nbspnbsp봉사자들은 스님의 격려를 듣고 더욱더 기운이 나는 듯 했습니다. 다함께 ‘동래정토회, 파이팅’을 외치며 기념촬영을 한 후 자리를 마무리하였습니다.nbspnbspnbsp행사가 끝나고 INEB 동남아 스님들은 곧바로 숙소로 이동했고, 스님께서는 해운대 정토법당으로 이동하신 후 오늘 일정을 마치셨습니다. 내일은 INEB 동남아 스님들과 함께 운문사를 방문하고 서울로 이동할 예정입니다. 내일 또 소식 전해드리겠습니다.nbs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