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님의하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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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5.16. 청년리더십아카데미 경주역사기행

nbsp nbsp nbsp 어제밤 10시에 인천에서 출발해서 경주로 오다가 운전자가 졸려 선산휴게소에서 2시간 정도 자고 오느라 오늘 새벽 4시 30분에 두북에 도착한 스님께서는 잠시 쉬셨다가 아침공양을 드신 후 어제 스승의 날에 각 강연장에서 받은 꽃다발을 정리하셨습니다. 모두 풀어서 다시 나누어 여러 꽃병에 나누어 꽂았습니다. nbsp nbsp 그리고 아침기도를 하신 후 지난주에 클로버를 제거한다고 했는데도 또 다시 여기저기 클로버가 보여서 스님께서는 다시 호미를 들고 마당 여기저기에 남아있는 클로버를 제거하였습니다. nbsp nbsp 10시 청년리더십아카데미 경주역사기행에 앞서 잠시 경주터미털 앞에서 지역인사와 잠깐의 미팅을 가진 후 법흥왕릉으로 향했습니다. 예정시간 보다 조금 늦게 도착했지만 법흥왕릉에 먼저 도착한 60여명의 청년들의 명랑한 인사를 받으며 경주역사기행을 시작하였습니다. nbsp nbsp 스님께서는 우리가 통일 문제를 풀기 위해서는 지금 우리 이웃 경험과 과거 우리의 경험을 참고할 필요가 있다며, 그러기 위해서는 첫째, 이웃경험을 참고하기 위해 독일탐방을 다녀오고, 둘째로 우리민족사의 전통성을 계승한 고구려8729발해를 알기 위해 동북아 역사대장정을 다녀오고, 셋째, 과거의 우리 역사적 경험을 배우기 위해 신라통일에 대한 경주역사기행에 다녀 와야 한다고 말씀하시며 오늘 강의를 하게 된 배경을 설명하였습니다. nbsp nbsp “신라의 삼국통일에서 우리는 두 가지를 살펴봐야 합니다. 첫째, 신라는 동쪽에 치우친 작은 부족국가였는데 어떻게 급성장하게 되었는지? 둘째, 한국사의 비주류인 신라가 어떻게 민족사의 주체로 등장할 수 있었는지? 입니다. nbsp AD400년경에만 해도 가야와 왜 연합군이 신라를 침공하게 되는데, 신라는 광개토대왕에게 사신을 보내 신하의 예를 취하고 고구려의 도움을 받아 가야8729왜 연합군을 격파하게 됩니다. 그만큼 신라가 작은 나라였어요. 그런 신라가 부흥하기 시작한 것은 법흥왕때 인데, 이때 신라는 개혁개방 정책을 취했어요. 개혁정책으로 율령을 반포해 국가체제를 제대로 갖추고, 개방정책으로 가야와 통합하기 위해 150년 동안 금지해온 불교를 공인했습니다. nbsp 신라가 내부 개혁을 통해 가야인들이 특별히 손실을 보지 않도록 법으로 정한 겁니다. 마치 남북이 통일된 후 남한에서 민족화해법이란 것을 만들어서 북한 관료들 책임을 묻지 않겠다, 공무원 시험 볼 때 불이익 주지 않겠다와 같은 내용을 법으로 보장해 준 것입니다. 그리고 가야의 신앙을 인정해 주기 위해 불교를 공인하고, 가야의 왕족을 신라의 왕족으로 인정해 줍니다. 강자가 약자한테 양보하면 포용이고, 약자가 강자한테 양보하면 굴복입니다. 신라가 가야를 굴복시킨 게 아니고 신라가 가야를 포용합니다. 강자가 이렇게 포용하기 쉽지 않습니다. 또 약자는 강자에게 저항하고 싶지 포용당하고 싶지 않아요. 그러니까 신라가 억지로 가야를 굴복시키려 했으면 가야가 저항했을 텐데, 신라가 포용하니까 가야가 합의한 겁니다. 신라와 가야는 이렇게 합의통일을 한 것입니다. 이게 신라가 비약적으로 성장한 핵심적인 요인입니다.” nbsp nbsp 스님 말씀을 들으며, 세계적으로 유례를 찾기 어려운 평화적 합의 통일의 역사를 우리 조상에서 발견할 수 있다는 것에 긍지가 느껴지고, 조상의 지혜를 살려 우리의 남북통일문제를 풀 수 있겠다는 생각에 희망이 생겼습니다. nbsp 이어서 진흥왕릉으로 이동하였습니다. 진흥왕릉에 도착하자 스님의 설명은 계속 이어졌습니다. nbsp “진흥왕은 함경남도 함흥을 넘어 황초령과 마운령의 순수비를 세우고, 한강유역에는 북한산 순수비를 세우고, 대가야를 복속시켜 창령 순수비를 세웠습니다. 신라는 지금의 경상남도와 전라남도 일부 여수 순천 남원까지, 경기도 전부, 충청북도, 황해도 일부, 함경남도 일부까지 영토가 확대됩니다. 그래서 왕호가 영토를 확장했다고 해서 진흥입니다. 신라를 크게 나누면 초기 부족국가 시기가 있고, 그 다음 신라의 중흥기와 통인신라시기 세 개로 나뉩니다. 신라의 중기는 영토가 확장된 법흥진흥왕 시기 50여년, 유지 관리한 진지진평왕 시기 50여년, 통일로 나아가는 시기인 선덕여왕진덕여왕태종무열왕문무대왕 50여년으로 나뉩니다. 이렇게 150년 만에 대업을 완성한 거예요. 이런 통일의 기초를 닦은 게 법흥, 진흥왕입니다.” nbsp nbsp 누구의 무덤인지 밝혀지지 않은 4개 무덤을 지나 지금까지 본 무덤 중에 가장 큰 태종무열왕릉에 도착하게 되었습니다. nbsp “선덕여왕이 아버지를 뒤이어 대당외교를 강화했어요. 이때 당나라 왕이 당태종이에요. 당나라 입장에서는 고구려에 대응하려면 작지만 신라가 필요했습니다. 미국이 마치 아시아에서 한국이 필요한 것처럼 말이죠. 이때 외교를 주도한 사람이 후에 태종무열왕이 된 김춘추입니다. nbsp 김춘추가 대당외교 등 정치적 치적이 있었고, 또 김유신이 총사령관이 되면서, 정과 군이 결탁 되어 김춘추가 왕위에 오를 수 있었으며 또한 신라 국정을 안정시킬 수 있었습니다. nbsp 신라가 통일할 수 있었던 것은 선대로 내려오는 탄탄한 국력과 정치적 안정도 있었지만 결정적인 것은 외교였습니다. 외교문제에 신라는 눈을 떴던 것입니다. 근데 백제, 고구려는 외교에 눈을 못 떴어요. 정세변화를 감지하지 못했어요. 고구려는 중국이 분열되어 있다 통일된 것을 초기 한나라 때만 경험해서 중국을 잘몰랐으나, 분열된 중국이 수나라 당나라로 통일되면서 지난 400년 가까이 경험해보지 못한 일을 겪게 됩니다. 자기들 살아온 데로 당나라에 저항만 했지, 당나라와 일정한 전략적 외교관계를 맺어 당면한 문제를 풀지 못했습니다. 지금의 한국도 똑같습니다. 지난 50년간 성장만 해왔어요. 외교적으로도 지난 50년간 세계 제일 패권국인 미국하고만 관계 맺으면 안전했어요. 이것이 우리의 무의식을 지배해서 사실상 지금 현실이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앞으로도 계속 경제성장할 것이다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동안 해왔던 것과 같은 미국 일변도의 외교는 앞으로 굉장한 위험을 초래합니다. 세계 판도가 바뀌어 가고 있기 때문이죠. 그러니까 우리는 과거의 경험이 굉장히 중요하면서도 과거의 경험 때문에 망하게 되기도 합니다.” nbsp nbsp 우리가 그동안 미처 알지 못했던 신라의 역사를 재밌게 듣다 보니 어느덧 점심시간이 되었습니다. 청년들은 조별로 김유신 장군묘가 있는 흥무공원에서 식사하였습니다. 그리고 식사 후 김유신 장군묘 앞에서 스님의 열정적인 강의는 계속되었습니다. nbsp 스님께서는 백제와 고구려가 멸망한 후, 신라는 고구려와 백제의 옛 땅에 주둔한 당나라를 상대로 8년간 전쟁을 했고, 이를 통해 자주성을 지켜 삼국통일을 이룩한다는 말씀을 하였습니다. 또한 이렇게 신라가 자주성을 지키는 데에는 김유신 장군의 흔들리지 않는 신념이 있었다고 말씀하였습니다. nbsp nbsp “우리는 김유신이 외세 끌어들여서 고구려, 백제를 멸망시켰다는 부정적인 것만 보는데, 사실 신라는 자기들 살길 찾아서 외교적 승리로 통일을 이루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신라는 광활한 영토를 잃어서 고구려의 역사를 모두 계승하지 못하고 민족사의 축소를 가져왔습니다. 그러나 신라는 지금 우리와 비교해볼 때 자주성이 매우 높았어요. 삼국통일이 필요해서 당나라 군대와 협력했지만, 당나라에 완전히 예속된 것은 아니었습니다. 당나라와 8년 전쟁으로 자기들 이상을 실현할 만큼 자주적인 국가였습니다. nbsp 우리가 처해진 상황과 비교해서 봅시다. 예를 들어 북한에 내분이 일어나 한미 연합군이 북한을 점령했어요. 그래서 우리는 바로 통일될 줄 알았더니, 중국이 개입해서 북한을 남한에 넘기지 않고 미중이 공동관리하거나 미국이 미군정을 실시했을 때, 한국군이 주한미군을 몰아낼까요? 미국에서 20만 대군을 파병하면 한국군대가 끝까지 미군하고 싸울까요? 이것은 굉장히 중요한 문제에요. 북한에 문제가 생기면 미국은 북한에 힘으로 밀어붙여 개입할 것이며, 중국은 조중동맹으로 개입할 텐데, 우리는 국제법적으로 개입할 명분이 없어요. 근데 남북이 각자 독립국가를 유지하면서도, 국가연합 수준으로라도 되어 있으면 북한이 붕괴 되더라도 남한이 우선적으로 개입할 수 있어요. 남북이 적대적 관계에서 북한이 붕괴하면 남한이 개입할 여지가 없어요. 북한이 쉽게 붕괴되지도 않지만 지금 정책으로는 붕괴 되어도 닭 쫓던 개 지붕 쳐다보는 꼴이 될 것 입니다.” nbsp nbsp 신라의 자주성에 대한 말씀을 들으면서 그동안 역사에서 배우지 못했던 신라의 다른 면을 발견함과 동시에 우리가 그 기상을 배워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 다음 일정인 사천왕사지로 향하자, 사천왕사가 있었던 터에는 녹음만 무성하고 건물의 흔적으로 찾아볼 수 있는 것은 건물을 받쳐주는 돌들 뿐이었습니다. nbsp 사천왕사는 당나라 군대가 고구려 침공 후 신라까지 침공하려고 하자, 문무왕이 불교의 힘을 빌려 당의 침입을 막기 위해 세운 호국 사찰이라고 합니다. 신비한 옛 이야기를 들으며 신라시대 선조들이 위기에 처한 나라를 지키기 위해 가졌던 간절한 마음이 느껴져 마음이 뭉클해지기도 했습니다. nbsp nbsp 신라는 이러한 호국정신을 가졌기에 676년 당나라의 침략을 막아내고 종전 후 국교를 수립하게 되었으며, 우리는 삼국통일의 해로 고구려, 백제의 멸망시기가 아닌 당나라 군사가 한반도에서 철군한 이때로 잡습니다. nbsp 다음은 사천왕사 뒤편에 있는 낭산 중턱에 오르니, 우리나라 최초의 여왕의 능인 선덕여왕능이 나왔습니다. nbsp nbsp 스님께서는 삼국유사에 기록된 선덕여왕의 예지력을 엿볼 수 있는 세 가지 사례를 말씀해 주셨고, 그 말씀속에서 선덕여왕은 여성이라는 편견을 넘어 미래를 예견했던 현명한 리더였음을 엿볼 수 있었습니다. 선덕여왕의 치적으로는 후에 삼국통일의 주역이 된 인재들을 양성하였고, 첨성대, 분황사, 황룡사 9층 석탑 등 역사에 남을 유적을 건설하였음을 알 수 있었습니다. nbsp nbsp 이어서 문무대왕의 화장터인 능지탑을 지나 버스를 타고 이동하여 이번 기행의 마지막 유적지인 황룡사지에 도착했습니다. nbsp 30여 년째 발굴 중인 황룡사지 터에서 강의는 이어졌습니다. 신라 최대의 절인 황룡사지가 몽고의 침략으로 불태워 졌다는 말씀을 듣고, 안타까운 마음에 한 청년이 “몽골사람들이 왜 불태웠나요?”하고 물으니, 스님께서는 이렇게 답하셨습니다. nbsp nbsp “우리나라 절은 세 번 유실 됐습니다. 첫째, 몽골란때 유실되었습니다. 고려시대 몽고 침략 당시 임금이 강화군에 피난 후 항복을 안 하니, 몽고인들이 육지로 다니면서 계속 노략질 하면서 태운 것이죠. 그 이후로 복원되었지만 조선시대 임진왜란 때 다시 불탔어요. 이유는 전쟁 중이기도 했지만 전쟁에 참여한 승병 때문에 일본인들이 산에 있는 절을 싹 태웠어요. 조선시대에는 불교를 탄압하니까 옛날처럼 국가의 지원이 없어 다시 복원을 제대로 못했어요. 그나마 복원한 것은 6.25때 미군 폭격에 의해 소실됐습니다. 절이 대부분 산에 있으니까 당시 빨치산들의 근거지를 없애기 위해 태웠습니다. 우리 건물은 목조건물이니까 3대 전쟁에 의해 다 소멸된 것이죠. 일본은 외세 침략이 없기 때문에 목조건물이 많이 남아 있고 중국은 벽돌건물이니까 남아 있어요. 우리나라는 전쟁으로 인해 문화재 유실이 많았습니다.” nbsp nbsp 황룡사지 근처에 있는 분황사 앞을 지나 버스에 오르며 오늘의 유적지 탐방을 마치게 되었습니다. nbsp 이어서 숙소로 돌아와 저녁식사를 한 후 오후 7시부터 lt통일 신라 역사를 통해 배우는 리더십gt이라는 주제로 스님의 강의가 진행되었습니다. 청년들은 낮에 빠듯한 프로그램을 따라 다니느라 피곤한 기색이 역력했지만, 하루 종일 강연하신 후 저녁식사도 거르시고 서서 저녁강의를 이어가는 스님의 모습에 감동이라도 받은 듯 2시간 30분에 걸친 강의 시간 내내 스님말씀에 집중하여 귀를 기울였습니다. nbsp “오늘 경주 다니면서 신라를 통해 우리는 새롭게 알 수 있는 사실이 있습니다. 한 시대안에 사는 사람들이 조금만 좋은 방향으로 노력했을 때 30년 정도 지나면 사회전체가 바뀐다는 것을요. 작은 신라가 그런 노력으로 큰 신라로 바뀌었습니다. 고구려처럼 아무리 부강한 나라더라도 서로 시기 질투하고 남의 것 뺏고 싸우면 30년 만에 망해버려요. 하루나 일주일 공부 바짝해서 성적이 좋아지는 게 아니라, 일년 꾸준히 해야 성적이 오르는 것과 같습니다. 인생을 짧게 보니 ‘좋은 일 해도 좋은 결과 없네’ 라고 생각합니다. 길게 보면 지은 인연의 과보는 다 받게 되어 있습니다. 돈을 빌렸으면 갚아야 되고, 꾸준히 저축하면 목돈을 받게 됩니다. nbsp nbsp 그래서 여러분도 인생을 길게 봐야 합니다. 그리고 세상과 나라도 조금 길게 보면 어떨까요? 우리가 50년 정도 앞을 봅시다. 중국이 지금보다 더 규모가 커질까요? 작아질까요? 인도는 후퇴 할까요? 커질까요? 그럼 미국은 세계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줄어들까요? 늘어날까요? 근데 앞으로 50년 동안 계속 그런 것은 아니에요. 미국의 성장이 감소하다가 증가하기도 하고, 중국이 늘어가다가 성장이 둔화될 수도 있는 것이죠. 그러나 크게 역사를 보면 미국은 지는 해에 속합니다. 금방 질까요? 아니에요. 미국은 성장잠재력이 많고, 창조력이 제일 많은 나라에요. 앞으로 새로운 게 만들어진다면 미국에서 가능합니다. nbsp 하지만 삼성의 경우 남의 것 베껴서 계속 덩치를 키워가는 형식인데. 그래서 사회적으로 저항을 받잖아요. 삼성이 남이 만든 것 보고 금방 더 잘 만들 수는 있지만 창조력을 보인 것이 있어요? 없지요. 20년 전에 일본 소니가 삼성처럼 그랬어요. 그 당시 일본이 급속하게 성장해서 미국에게 이길 것이다고 예측했지요. 못이긴 이유는 일본은 모방하기 때문입니다. 미국에 아무리 근접해도 이기지 못하는 것은 창조력이 없으니 더 이상 성장할 수 없는 것이죠. 일본은 이 덫에 20년간 걸렸습니다. 20년 전 일본처럼 이제는 우리가 걸렸 습니다. nbsp nbsp 미국은 처음엔 유럽 영국을 모방했습니다. 그래서 고성장 했지만 중간에 덫에 걸려 고생했어요. 근데 미국은 서부 개척이라는 성장 동력으로 규모를 키워 위기를 극복하면서 창조력을 갖기 시작했습니다. 그래서 자동차, 비행기 같은 발명품이 미국에서 나왔습니다. 미국은 아직 창조력을 갖고 있기 때문에 괜찮지만 규모면에서 점점 적어집니다. 미국의 창조력이라는 것도 이 문명 안에서 창조력이지, 이 문명 밖에 있는 것은 못 봅니다. 그래서 미국은 인류 문화사적으로 일정한 기간이 지나면 내리막길로 간다고 봐요. 중국은 규모면에서 앞으로 훨씬 커집니다. 앞으로 중국이 제일 커지고, 미국이 2위, 인도가 3위, 일본도 3위에서 4위로 밀릴 것이에요. 근데 중국이 창조력 있어요? 중국도 없어요. 중국도 서양문명을 모방하는 것입니다. 앞으로 중국이 덫에 걸려 저성장으로 가고 내부 분열이 와 몰락으로 갈지 아니면 그것을 뛰어넘을지 모릅니다. nbsp 그래서 지금의 문명이 한계에 도달 할 때는 변두리 문명에서 새로운 창조력이 생기게 될 것입니다. 단순 모방하면 100 실패해요. 지금은 모방하지만 모방을 통해 습득하고, 자기들의 고유한 문명으로 새로운 것을 만들어내면 문명은 확대됩니다. 중국과 인도는 자기 고유의 문명적 자부심을 갖고 있기 때문에 가능성이 있는 편입니다. 근데 한국은 모방의 기술은 뛰어나지만 자기 정체성, 자기 고유의 특징을 가지고 대응하면 이게 작용해 창조력이 생길 텐데요. 현재는 크게 가능성이 없습니다. 한국에서 서양을 모방하다가 독자적 창조성으로 전환한 부분은 오로지 대중예술입니다. 인류 문명은 모방에서 창조가 나왔습니다. 서양 것을 그대로 모방하고, 한국 것을 그대로 전통 유지 하다가 나중에 섞어버리면, 이것도 아니고 저것도 아니잖아 라고 평가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역사가 오래 지나면 이것도 창조가 됩니다. 능지탑처럼 말이죠. 능도 아니고 탑도 아닌데, 오직 하나밖에 없는 창조물이 됩니다. nbsp nbsp 우리는 지금 이 저 성장 덫에 걸려 있어요. 우리는 50년 동안 분단 상태로도 계속 성장해 왔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계속 성장할 거라고 생각 하는데, 사실 다른 나라에서는 3만 성장해도 잘 하는 겁니다. 우리는 늘 고성장만 해 왔기 때문에 지금의 저성장을 답답해하는 것이죠. 모방의 한계에 왔기 때문에 저성장으로 갈 수밖에 없고 저성장에 적응해야 합니다. 이걸 뛰어넘으려면 창조력을 가져야 하고 창조력을 키우려면 시간이 걸립니다. 근데 이렇게 얘기하는 정치인은 한 명도 없습니다. 우리가 현실을 직시하고 받아들여서 그것에 맞게 살던지, 극복해야 한다면 그 대안을 찾아 실행하던지 둘 중 하나는 선택해야 합니다. 그러나 대안도 제시 안하고, 그렇다고 현실 적응도 안하면서 욕망만 갖고 있습니다. nbsp 이러한 상황의 해결책은 창조력을 키우는 것입니다. 시간이 많이 걸립니다. 지금의 아이들부터 20년, 30년 준비해야 하는데, 아이를 키우는 어른들이 이에 대한 이해를 못하니까 악순환이 반복되는 것입니다. 겨우 선생 이해시켜 놓으면 교육공무원이나 정치인이 알아듣지 못합니다. 이들을 이해시켜 놔도 학부형이 또 모릅니다. 학부형들은 자기가 살아온 경험에 의해서 ‘의사가 최고다. 돈 되는 것은 이것밖에 없다.’라는 식의 사고를 고집하게 됩니다. 그러니까 바꾸기 굉장히 어렵습니다. 과제는 아는데 해결책이 없습니다. 해결책이 있다 해도 실행방법이 없습니다. 지금부터 시도한다 하더라도 10년, 20년, 30년 걸릴 일인데, 그동안 저성장 장벽, 정체 장벽 앞에서 사회가 혼란에 빠지고 갈등이 심화될 것입니다. nbsp 그러면 이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성장 동력을 키우는 것부터 시작해야 하는데, 그럴러면 양을 확대하는 수 밖에 없습니다. 그동안 수출을 통해서 양을 확대하는 정책을 해 왔습니다. 옛날에는 미국이 우리한테 지원해 줄 수 있었습니다. 근데 지금 미국이 경제적으로 어려워 오히려 우리 덕을 보려고 난리입니다. 그래서 수출을 통한 발전은 한계에 이르렀습니다. nbsp 이 위기를 극복할 수 있는 유일한 길은 통일입니다. 지금 북한이 저개발 상태입니다. 북한과 통일하면 북한에 도로 깔고, 건물 짓고, 나무도 심게 됩니다. 돈 많이 드는 일이지만 이것은 소비가 아니라 미래를 위한 투자입니다. 이것은 마치 미국이 서부 개척으로 규모를 확대해서 성장동력을 만든 후 창조력을 키울 수 있는 시간을 벌었듯이, 우리도 북한개발을 통해 시간을 벌개 해 줄 것입니다. 그러니 통일 문제는 민족, 애국을 떠나서도 우리가 이 위기를 극복할 수 있는 유일한 해결책이기도 합니다. nbsp 근데 지금 남북한이 통일 한다고 할 때 남한도 문제가 많긴 하지만 기본 모델은 남한이 되어야 합니다. 북한 사람들은 통일한국의 기본 모델을 남한으로 두는 것을 쉽게 받아들이지 않을 것입니다. 북한주민들은 환호할지 모르지만 지배층은 받아들이지 못합니다. 결국 이 문제를 풀려면 북한 지배층에게 그들이 원하는 것을 줘야 합니다. 먼저 그들의 신분을 보장해 줘야 하고, 다음은 과거를 묻지 않겠다고 해야 합니다. 이렇게 해 줘야 통일 한번 해 볼 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그 안에서도 반대와 찬성이 나올 수 있는데, 다수가 찬성해야 해결될 수 있습니다. 북한 시스템이 민주주의면 주민의 51만 찬성해도 되지만, 현 체제에서는 90가 찬성해도 지배계층인 10가 반대하면 안됩니다. 우리가 지배층 10를 설득해야 합니다. nbsp 남한 중심으로 통일이 된다 하면 종북주의는 아니지요. 그러나 북한을 포용해야 합니다. 남한 중심으로 통일 된다 하면 북한도 반대할 것이고, 북한을 포용해야 한다하면 남한안에서도 북한 지배층 손 봐야 한다는 사람들 입장에서는 이를 종북 좌파라고 욕할 수 있습니다. 극단적인 사람들을 배제하고 실용적 관점에서 중도적으로 이 문제를 풀어야 합니다. 이것이 새로운 위기를 극복하고 민족 공동체 전체 이익을 추동하는 것입니다. nbsp nbsp 신라와 가야의 통합에서 우리는 배울 것이 많습니다. 근데 문제는 남북 문제를 우리 둘이 의논하고 해결하면 되는데, 우리의 처지가 그럴 수 없습니다. 미국이 유일하게 세계최강국일때는 북한이 아무리 난동 피워도 한국이 미국에 붙어 있으면 끄떡없었습니다. 근데 이제 미국과 중국의 G2체제 입니다. 미국은 세계패권국으로서 자기 영향력을 계속 누리고 싶어 하고, 중국은 자기 영향력을 더 가지고 싶어 합니다. 둘이 충돌할까요? 안할까요? 충돌하겠지요. 과거 역사 속에서는 전쟁으로 결판이 났습니다. 지금은 전쟁이 쉽사리 일어나기 어렵습니다. 미국은 지금도 월등히 힘이 세지만 중국의 팽창을 막기 위해서는 자기만 갖고는 벅찹니다. 일본을 끌어들여 재정부담을 지우게 합니다. 일본은 2차 대전에서 미국과의 전쟁에서 져 종속국으로 그동안 미국 눈치만 보고 살았는데, 미국이 어려움에 처하니까 이 기회를 이용해서 패전국에서 정상국으로 전환하려고 합니다. 그래서 패전국에 따라 만든 평화헌법도 바꾸려고 합니다. 미국은 일본을 견제해왔지만 중국이라는 더 큰 적이 등장하니 일본을 풀어주는 것입니다. 일본이 과거 역사에 대한 반성없이 세게 나가는 것은 미국을 믿고 그러는 것입니다. nbsp nbsp 미국은 패권유지를 위해 한국, 일본을 끌어들이고, 중국은 자기 능력에 걸 맞는 영향력을 끼치기 위해 한국에게 잘해 줍니다. 한국이 미일동맹에 들어가면 중국입장에서 불리하니까 한국이 들어가지 않도록 북한의 반발을 사면서 까지도 마치 한국 편이 더 될 것처럼 연막을 피우면서 한국에게 잘 해 줍니다. 한국이 이런 상황에 놓여있기 때문에 섣불리 미국한테 붙으면 중국에게 보복을 받고, 또 섣불리 중국에게 붙으면 미국의 보복을 받을 수 있습니다. nbsp 대한민국은 이런 혼란스런 동북아 판세 속에서 무엇을 목표로 해야 할까요? 바로 통일입니다. 정치, 외교, 안보, 경제 모두 통일을 목표로 맞추고 통일에 유리한 방향으로 나아가야 합니다. 그러나 현재의 우리는 국가의 지향이 없이 우왕좌왕 하고 있습니다. nbsp 마지막으로 하나만 더 얘기하면, 통일만 하면 되느냐 그것은 아닙니다. 우리는 세계인류국가가 될 꿈을 안고 창조력을 키워야 합니다. 일단 통일해서 시간을 벌어야 합니다. 통일을 하면 영토 크기가 이탈리아와 영국 수준이고, 인구가 7,500만 명으로 프랑스 수준을 넘게 됩니다. 그러면 규모면에서 세계 G7과 경쟁할 만합니다. 그리고 통일 후 자본을 투자하여 북한개발을 잘하면 북한은 연 100씩 성장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통일 한국은 미국과 중국 사이에서 균형자 역할을 할 수 있습니다. 왜 가능성이 있을까? 우리 경제가 10이고, 미국의 경제가 100, 중국의 경제가 50이라면 우리가 균형자 역할을 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중국 경제가 49, 미국 경제가 51, 우리가 10이면 균형자 역할을 할 수 있습니다. 우리가 중국으로 붙으면 59로 이기고, 미국으로 붙으면 61로 되면, 미국과 중국이 우리를 마음대로 못하고 오히려 우리가 캐스팅 보트를 쥘 수 있는 시기가 옵니다. 이는 통일만 된다고 주어지는 게 아니라 우리 역량이 10이 되고 미중 세력 균형이 오는 시점에 목표를 둘 수 있습니다. 그렇게 되면 우리가 통일을 통해 한반도의 평화만을 가져오는 게 아니라, 동아시아에 평화를 가져올 수 있습니다. 우리가 균형을 잡음으로 해서 한중일 경제 협력을 가져올 수 있습니다. 그러니 우리가 평화를 먼저 확보하고 통일이 된다면 우리의 위험을 방지할 뿐 아니라 오히려 동아시아 번영을 이룰 수 있습니다. 규모면에서는 중국 일본 경제가 뒷받침해줘야 NAFTA와 맞먹는 경제가 됩니다. nbsp nbsp 한중일 중에 규모가 커지면 창조가 일어날 가능성이 높은 나라가 그래도 통일한국입니다. 경제, 대중 예술 뿐 아니라 한국의 평화 경험이 전 세계로 나가게 될 것입니다. 한국이 창조력을 가지면, 일본과 중국의 경제 규모에 창조적 통일한국이 결합하여 동아시아 문명이 세계문명의 중심이 될 수 있습니다. nbsp 지금부터 100년 뒤를 봐야 합니다. 국가 비전을 세울 때 21세기 초반인 2020년까지 통일을 이루고, 2050까지 동아시아 공동체를 이루고, 2100년까지 세계문명의 중심이 되는 것을 꿈꿀 수 있습니다. 이런 꿈을 그려볼 수 있습니다. 꼭 이렇게 된다가 아니라 될수 있는 가능성이 열려 있다는 것입니다. 어려운 여건에서도 산업화와 민주화를 성공한 이 종자돈을 잘 살리면 가능성이 열립니다. nbsp 할 일이 태산같이 많습니다. 왜 공무원만 하려고 합니까? 새롭게 나아갈 일이 엄청나게 많습니다. 그런 꿈을 여러분들이 가져야 합니다. 개인의 꿈도 되고, 우리세대가 가질 수 있는 꿈도 됩니다. 할아버지 세대는 산업화를 이루고, 아버지 세대는 민주화를 이루었으니, 여러분들 세대는 통일을 이뤄 세대적 자부심을 가져야 합니다. nbsp nbsp 이제는 새로운 시대를 생각해야 합니다. 눈앞에 보이는 약간의 이익보다 훨씬 더 중요한 문제입니다. 사람이 아무리 어려워도 희망이 있으면 좋습니다. 근데 미래의 희망이 없으면 심리적으로 엄청나게 힘듭니다. 아버지 할아버지 세대는 현실은 억압되고 가난했지만 그들은 희망이 있었죠. 근데 여러분들은 거기에 비해 훨씬 살기 좋아졌어요. 먹고 살만하고 민주화도 이뤘는데, 목표나 희망이 없는 거예요. 무언가를 향해서 토론하고 협력해 나아가는 것이 없잖아요. 그러니까 답답해진 거예요. 여러분들은 미래 지향적 이어야 합니다. 왜냐하면 여러분이 앞으로 살아가야 할 세상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여러분들이 우리사회에 대해 좀 더 책임의식 갖는 것이 필요합니다.” nbsp nbsp 통일한국을 넘어, 동아시아 공동체, 그리고 인류문명의 중심이 되는 통일한국의 비전에 대한 스님의 강의에 가슴이 벅차오릅니다. 청년들은 하루 종일 아낌없는 가르침을 주신 법륜스님께 뜨거운 박수로 화답하고 경주역사기행 일정을 마쳤습니다. nbsp 스님께서는 잠시 원고교정을 보신 후 내일 문경에서 불대 특강이 있기 때문에 밤 10시 넘어서 문경으로 향했습니다.

2015.05.18. 21,215 읽음 댓글 13개

2015.5.15 스승의날, 수원 및 인천강연

nbsp nbspnbsp 대구에서 새벽 2시경 서울 정토회관에 도착한 법륜스님께서는 잠시 눈만 붙이시고 오전 4시 30분에 일어나 서울공동체 상주대중들과 함께 기도하고 발우공양에 참여하였습니다. 마침 백일출가 행자님들이 서울 NGO 탐방으로 문경에서 올라와 있어 함께 했습니다. 발우공양 후 대중공사시간 스님께서 백일출가 행자님들에게 수행자로서 어떤 마음가짐으로 서울에서 공부할지에 대해 말씀해 주셨습니다. nbsp nbsp nbsp “백일출가 수행자들이 서울에 실습 온 건가요? 탐방 온 건가요? 여기에 뭐 볼 게 있다고 탐방왔나요? 세상을 살아가는 사람에게는 네 종류의 사람이 있습니다. 첫 번째, 범부중생, 즉 더러움에 물드는 사람입니다. 두 번째, 현명한 사람입니다. 더러움에 물들지 않기 위해서 더러운 것에 가까이 가지 않는 사람입니다. 세 번째, 지혜로운 사람, 즉 성인입니다. 더러운 가운데서도 더러움에 물들지 않는 사람입니다. 네 번째, 더러움을 오히려 닦아내는, 더러움을 없애는 사람, 즉 붓다입니다. 그러니까 여러분들이 세상에 살 때는 더러움에 물드는 사람, 범부중생이었습니다. 게으른 사람과 같이 있으면 게을러지고, 사치하거나 교만한 사람과 같이 있으면 사치하거나 교만해지고, 쾌락을 즐기고 과소비 하고 욕망에 껄떡거리면 범부중생입니다.nbspnbsp nbsp 여러분들은 소비주의 사회에서 더러움에 물드는 것으로부터 벗어나기 위해 문경공동체로 들어왔습니다. 그리고 지금은 사회 생활할 때의 눈으로 보고, 귀로 듣고, 코로 냄새맡고, 입으로 맛보고, 손으로 만지는 모든 것으로부터 격리되었습니다. 아침에 일찍 일어나 예불하고, 기도하고, 청소하고, 부지런한 사람과 같이 있어서 부지런해지고, 계율을 청정히 지키는 사람과 같이 있어서 청정해지고 수행하는 사람과 같이 있어서 수행하고 있습니다. 더러움으로부터 멀리 떠나 있기 때문에 더러움에 물들지 않고, 좋은 사람과 같이 있기 때문에 좋음에 물듭니다. 여기에는 두가지 관점이 있습니다. 세속을 떠난다는 게 하나 있고, 하나는 좋은 도반들, 즉 대중과 함께 있다는 것입니다. nbsp nbsp nbsp 그런데 여러분들은 세속을 떠나 대중과 함께 있으면서 완전히 청정해졌습니까? 그것을 알려면 소비주의 중독에서 완전히 벗어났는지 테스트를 해봐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다시 세속 사회로 돌아와야 합니다. 게으른 사람과 있으면서도 나는 부지런하고, 다른 사람이 자더라도 나는 기도하고, 상대가 욕설해도 나는 부드럽게 말하고, 상대가 거짓말해도 나는 진실을 말하고, 모두 술 먹고, 마약하고, 담배를 피워도, 나는 술도 안 먹고, 담배도 안 피우고, 마약을 하지 않아야 합니다. 이렇게 세속에 있어도 물들지 않는 진흙속의 연꽃 같은 사람을 성인 또는 보디사트바라고 합니다. nbsp 지금 여러분들은 범부중생으로 있다가, 이래서는 안되겠다 해서 문경공동체로 들어와 더러움에 물들지 않고 좋음에 물들기 위해 대중과 같이 삽니다. 그러다 다시 지금 NGO탐방을 위해서 서울 저자속으로 들어와 있습니다. 회관에서 한 발만 나가면 술집과 슈퍼가 있고, 저녁에는 술 먹고 와글와글 소리지르고, 고기 먹는 사람, 데이트하는 사람들 등이 있습니다. 여러분들은 이와 같은 것들이 눈에 보이고, 귀에 들리고, 냄새가 나는 속에 있으면서도, 내가 그것에 물들지 않는 사람인지 한번 실험해보세요. 수행자는 서울 와서 살아보고 세속에 물이 들면, 또 다시 문경에 가서 정진하며 살아야 합니다. 물들지 않을 정도가 되었을 때 세상으로 나와야 합니다. 여기 오래 산 사람들은 세상에 크게 물들지 않습니다. nbsp nbsp nbsp 여기서 한 단계 더 나아가야 합니다. 사치하는 사람이 우리와 살다가 사치를 덜하게 되고, 부자인데도 검소하게 살게 되고, 교만한 사람이 겸손해지고, 우리로 인해 주위가 점점 정화되어야 합니다. 바깥이 우리 속으로 점점 들어와 흰 것이 검어지는 것이 아니라, 흰 영역이 넒어져서 주위가 조금씩 맑아지는, 이게 우리가 세운 원, 정토 건설입니다. 모든 사람들이 일회용품 쓰고, 비닐 쓰고, 간식 먹는 이런 혼탁한 속에 있더라도, 여러분들이 거기에 물들지 않을 때, 진정 자기 인생의 주인이 된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nbsp nbsp 주변에 따라할 수 밖에 없다고 하는 사람은 세상에 물드는 사람입니다. 그래서 우선 물들지 않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여기 서울 와서 살아도 주위가 어떻든, 남이 어떻든 상관없이 정해진 내 수행생활을 그대로 유지하며 살아가기 바랍니다.”라고 애정 어리면서도 따뜻한 말씀을 해주셨습니다. nbsp nbsp nbsp 이어서 오늘 스승의 날을 기념하여 조촐한 행사를 가졌습니다. 회관에 살고 있는 청년붓다 49일 입재한 7명 행자들의 재미있고 유쾌한 꽁트와 꽃다발 증정이 있었고, 이어서 다함께 법륜스님께 감사의 삼배를 드렸습니다. 그리고 모두 손을 잡고 이렇게 우리를 지도해주시는 스승님이 있다는 것에 고맙고 감사한 마음을 담아‘스승의 은혜’노래를 불렀습니다. nbsp nbsp nbspnbsp 스승의 날 기념행사 후 스님께서 공동체 대중들에게 다음과 같이 당부해주셨습니다. nbsp “우리의 유일한 스승은 고타마 붓다, 석가모니 부처님 한 분이십니다. 제가 여러분보다 나이가 많고 여러분보다 불문에 들어온 시간이 앞서기 때문에 현실적으로 스승 노릇을 하고 있지만 부족함이 많습니다. 여러분들이 저를 볼 것이 아니라 부처님을 보고 부처님의 제자로서 부끄럽지 않은 삶을 살아가시기 바랍니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 말씀을 들으니 언젠가 스님께서 ‘누구를 추종하면 안 된다, 법륜스님도 추종하면 안 되고, 우리는 오로지 부처님께서 살아오신 삶을 따라 부처님처럼 살아야 한다’고 하셨던 말씀이 생각나면서 다시 한번 스님의 가르침을 되새길 수 있었습니다.nbspnbsp nbsp nbspnbsp 오전 9시 25분 희망강연이 있는 수원시청으로 출발해 10시경에 강연장에 도착하였습니다. 염태영 수원시장님은 부서별 국장님들과 함께 잠깐 시간내어 스님께 인사하러 오셨습니다. 스님께서는 시장님께 행정의 어려움은 없는지, 2번째 임기를 시작했는데 1기와는 어떻게 다른지 등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셨습니다. 그리고 시장님은 오늘 스승의 날을 기념하여 스님께 꽃다발을 드리고, 스님 가슴에 카네이션 꽃을 달아드렸습니다. 스님께서도 시장님께 사인한‘지금여기 깨어있기’책을 선물로 드렸습니다. nbsp nbsp nbspnbsp 스님께서 자리를 옮겨 수원시에서 운영하는 수원시방송과 짧은 인터뷰를 하였습니다. 스님께서 그동안 많은 즉문즉설하시면서 어떠하셨는지 등을 묻는 내용이었습니다. nbsp nbsp 이어 강연장에 도착하니 좌석이 모두 차서 돌아가는 사람들이 많다는 소식이 들렸습니다. 자원봉사자들의 말에 따르면 이른 시간부터 사람들이 와서 줄을 서 있다, 문이 열리고 입장이 시작되자 곧 1,2층 좌석을 모두 메우고 로비까지 가득해서 총 1,300여 명이 함께 강연에 참가하였다고 하였습니다. 강연장에서는 일사분란하게 자원봉사자들이 접수와 안내를 진행해 1,300여명임에도 아주 원활하게 강연을 할 수 있었습니다. 스님 소개 영상이 끝나자 관중속의 큰 박수와 함께 스님께서 입장하였습니다. 스님께서는 서두에 내가 행복할 수 있는 존재라는 자긍심을 가지라고 당부하며, 각자 갖고 있는 삶의 고뇌를 꺼내 놓고 여러 각도에서 비추어 보면서 함께 해결의 실마리를 찾아보자고 하였습니다.nbsp nbsp nbsp 오늘은 총 10명이 스님께 질문을 하였는데, 딸과 남편이 마음대로 되지 않을 때 화와 짜증이 올라온다는 분, 자살의 형태에 따른 죄의 크기와 남녀간의 불륜은 동물적 본능인지, 인연에 의한 것인지를 묻는 분, 난치성 아이로 인해 불안과 걱정이 많다는 분, 잠들기 전 고립된 느낌으로 초조해 하는 분, 어릴적 어머니의 학대와 폭력이 용서가 안돼 가슴이 답답한 분, 학업을 중단하고 스님 법문만 듣는 딸에 대해 질문한 분, 새로운 사람을 만날 때마다 본인과 비교해서 무시하거나 열등감을 느껴 마음이 불편한 분, 안 좋은 뉴스를 접하더라도 마음을 깨끗하게 유지하는 방법을 물으신 분, 결혼 6년차인데 아이가 생기지 않아 감정기복이 심한 분, 버럭하는 성질과 주변에서 위축됐다는 얘기를 많이 듣는 20대 취업준비생 이렇게 10명의 고민이었습니다.nbsp 이 중 남녀간의 부적절한 관계와 자살에 관해 물은 질문자의 이야기를 전합니다. nbspnbsp nbsp nbsp “불륜은 동물적인 본능에 의한 것인지, 인연에 의한 것인지, 인연이라면 어떻게 끊을 수 있는 지 방법을 알고 싶습니다. 그리고 자의가 더 강한지, 인연이 더 강한 지도 궁금합니다.”nbsp “윤리나 도덕이라는 가치관은 종교마다, 나라마다 또 시대마다 달라요. 신라시대엔 완전히 연애가 자유로워 촌수를 헤아릴 수 없었어요. 그 때는 순수혈통을 중요시 해 왕의 딸이 삼촌과 결혼하곤 했어요. 아버지도 왕자고 엄마도 공주일 때 내가 순수혈통이 되는 거였기 때문이죠. 반면 조선시대는 성만 같아도 결혼하면 안된다고 했습니다. 또 천주교가 처음 조선에 유입되었을 때 그들의 종교문화로 제사를 안 지낸건데, 유교에선 조상제사도 안지내는 인간은 짐승보다도 못하다고 여겨 천주교인들을 죽여도 될 사람들이라 생각했죠. 그러니 결혼관은 시대와 지역에 따라 모두 다릅니다. nbsp nbsp65279nbsp 가치관이 충돌돼서 문제가 일어날 때는 문화가 서로 달라도 수용할 만한 비교적 공통의 가치를 새롭게 정립해야 합니다. 이때 기준은 자연 생태계입니다. 자연생태계에선 어미가 종족보호 본능으로 새끼가 성장할때까지 보호하고 어느 정도 성장하면 더 이상 돌보지 않고 새끼도 크면 늙은 어미를 보호하지 않습니다. nbsp 두 남녀가 결혼한 것은 성인끼리의 약속입니다. 약속이기 때문에 결혼을 파기 할 수도 있는 거지요. 선은 아니지만 악 또한 아니란거예요. 결혼할 때 상대와 너 외에 다른 남자, 여자를 만나지 않겠다고 서로 약속했어요. 내가 다른 남자, 여자를 만나서 그 약속을 깼다면 이혼 사유가 되요. 그런데 다른 남자, 여자를 만나는게 죄악은 아니에요. 성인이 자기가 선택한거에요. 하지만 약속을 파기했기 때문에 손해배상을 해야 됩니다. 간통죄가 폐지된 것은 형사상의 처벌죄는 아니라는 것이지요. 간통으로 있은 손해는 민사상으로 배상하라는 것입니다.nbspnbsp nbsp nbsp “불교적 관점에서 불륜이란 게 인연인가요? 전생 때문인가요?”nbsp “자기가 좋아서 만나놓고 전생을 왜 따져요. 전생을 따지는 건 무책임한거예요. 이 사람 때려놓고‘전생에 내가 맞아서 지금 너를 때리는 거야’‘사주에 이 시간에 내가 너를 때리게 되어있어’이게 다 무책임한 것입니다. 이것은 마치 ‘다 네 탓이다’하는 책임 회피에 불과합니다.”내가 인연을 지었으니 과보를 받아야 해요. “그럼 현생에 일어나는 모든 행동은 자기 의지에 따라 일어나는 일인가요?” “의지는 의식에 불과하고 의식 아래 무의식이 있습니다. 안해야 되는데 자꾸 하고 싶다, 이것을 업식이라고 해요. 과거부터 형성된 것이 업식입니다. 불교는 사고의 습관, 말의 습관, 행위의 습관이 지금의 우리를 규정한다고 봐요. 이 습관을 까르마라고 해요. 그건 정신적 습관도 있고, 육체적인 습관도 있어요. 어떤 성인 남자가 스마트폰으로 지하철에서 여자 종아리 찍다가 걸린 적이 있죠. 자기 무의식을 통제 못하는 거예요. 아무리 의지로 안해야지 해도 강제로 전자발찌를 채워 놓아도 무의식적으로 일어나기 때문에, 의지로 제어하지를 못하지요. 그러니 마음을 치료해야 되요. 지금은 처벌을 하고 있는데 이는 보복일 뿐, 근본적인 해결은 아니에요. 치료가 제일 중요합니다.” nbsp nbspnbsp “그럼, 자의에 의한 자살, 단원고 교감선생님 같은 선의의 자살, 타인에 의한 강박으로 하는 자살은 모두 죄인가요?” nbsp “자살은 정신질환에 속합니다. 우리의 생명체는 자기 생명을 자기가 끊도록 되어 있지 않습니다. 육체는 어느 정도의 수명이 다하면 쇠진하도록 되어 있지, 생존해 있는 생명을 자기가 공격한다는 것은 없습니다. 이 세상에 존재하는 건 모두 선도 아니고, 악도 아니고, 좋은 것도 아니고, 안 좋은 것도 아니고, 귀한 것도 천한 것도 아니고 다만 그것일 뿐이에요. 좋다고 인식할 때는 그 존재가 좋아서 좋은게 아니고, 머리에서 좋다고 인식할 때 그렇게 생각하는 것입니다. nbsp 한 남자가 친한 친구가 죽고 친구 부인이 살기 힘들어 호프집을 마련해 살려고 하는데, 친구 부인을 도우려 하니 자존심 상해서 안 받겠다 해요. 그래서 친구에 대한 의리를 생각해서 오며가며 술한잔씩이라도 팔아줘요. 친구 부인이 생각하기에는 고마운 사람인데, 남자의 부인이 생각하기엔‘그 사람이 네 마누라냐, 아니면 너 여동생이냐, 왜 도와주냐’이렇게 나오죠. 똑같은 사람의 행위가 어떻게 인식하느냐에 따라서 좋은 사람이 되기도 하고, 나쁜 사람이 되기도 해요. 그런데 내가 나쁘다고 생각해서 그 사람이 나쁜 사람이 아니고, 내가 좋다고 생각해서 그 사람이 좋은 사람이 아니에요. 그 사람이 좋은 사람이다 하면 좋은 사람 되어버리니 이건 착각이에요. nbspnbsp nbsp 자살의 문제는 정신질환 문제와 관계가 많아요. 본인은 자기가 굉장히 잘난 사람이라고 생각해요. 자기는 말도 잘해야 되고, 인물도 잘나고, 돈도 많고, 성질도 좋아야 된다고 생각해요. 그런데 현실의 나는 말도 더듬거리고, 신체도 별로고, 날씬해야 되는데 뚱뚱하고, 재능도 별로 없다고 생각하면 자신이 그리는 상상의 자기가 현실의 자기를 볼 때 너무 모자라죠. 스스로가 너무 부끄러운 거예요. 그래서 남을 만나지 않으려고 해요. 어느 순간 자기 같은 것은 죽는게 낫겠다 싶어 스스로 죽는 거에요. 살인도 똑같아요. 자기가 생각하는 만큼 상대가 못 미치니까, 미워하다가 저런 사람은 죽여버려야 된다고 생각합니다. 자살과 살인은 심리적으로 같은 거예요. 그런데 살인은 남을 해쳤으니까 처벌을 받는 거고 자살은 자기가 죽어버렸으니까 처벌할 당사자가 없는 거죠. 심리적으로 같은 거에요. 살인이든, 자살이든 원인을 규명해서 치료를 하면 자살율을 낮출 수 있지요. 그러나 그 어떤 것에도 죄란 본래 없습니다.”nbsp 총 10명으로 부터 질문을 받다보니 강연은 2시간 30분을 훌쩍 넘겼지만, 스님께서는 마지막에 짧게 마무리 말씀을 해주셨습니다. “긍정적 사고를 하면 얼굴에 생기가 돌게 됩니다. 삶에 대해서 자신감을 가져야 합니다. 삶을 좀 다른 각도로 보고 내 몸에 맞게 옷을 맞춰 입는 것처럼, 내 삶의 가치관을 정립해서 그냥 살면 됩니다. 자기 기분을 가지고 살아야지, 다른 사람의 얘기를 듣고 사는 것은 노예입니다. 그러니 여러분들은 행복하게 살아야 합니다. 감사합니다.” 라고 끝까지 강연장을 찾은 청중들에게 행복하게 살기를 당부하였습니다.nbspnbsp nbsp nbsp nbsp 강연이 끝난 후 로비에서 책 사인회와 사진촬영이 진행되고, 자원봉사자들과도 함께 단체 촬영을 했습니다. 그리고 수원정토회 준비로 스승의 날을 기념해 꽃과 노래를 올렸습니다. nbsp nbsp nbsp 1시 30분이 되어서야 평화재단으로 출발하였으며, 2시 평화재단에서의 약속으로 이동 중 차안에서김밥과 쥬스로 간단히 점심식사를 마쳤습니다.nbsp 재단에 도착해서 바로 스님께선 언론인 마이클 브린씨와 재미교포인 김영진님과 인터뷰를 하였습니다. 마이클 브린씨는 영국인으로 지금 한국에 살고 있으며, 30년전에 ‘한국인’이라는 책을 출판하여 외국에 소개하였습니다. 스님을 찾아오게 된 것은 이 책의 개정판 준비 중에 스님의 말씀을 듣고 싶어서라고 합니다. nbsp nbsp nbsp nbspnbsp 마이클 브린씨가 스님께 궁금했던 질문은 ‘본인이 보기에 한국인들은 경제적인 성공을 이루었음에도 불구하고 행복감을 느끼지 못하고 불행하게 보이는데 이에 대한 해결책이 있는지’였습니다. nbsp nbsp 스님께서는 “사람들이 불행하다고 느끼는 것은 첫째, 기대가 너무 크다는 것입니다. 바라는 것이 너무 크기 때문에 실망이 크고 만족이 안되는 것입니다. 해결책은 기대를 낮추는 것입니다. 그래서 제가 주로 하는 일이‘지금도 행복한 줄 알라’고 알려주는 것입니다. 1960년 국민소득이 100불이었다면 지금은 3만불 가까이 됩니다. 그러면 소득은 300배 정도 늘었는데, 우리가 300배 행복해졌느냐고 하면 아닙니다. 300배는 고사하고 30배는 행복해졌느냐? 아니면 30배는 고사하고 3배는 행복해졌느냐? 저는 앞으로 국민소득이 30만불 된다고 해도 이 문제는 해결 안된다고 봅니다. 과거의 경험으로 볼때 경제가 성장한다고 해서 행복문제가 해결되는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nbsp ‘우리가 어떻게 하면 행복해질 것이다’는 조건부 행복으로는 해결될 수 없습니다. 지금 주어진 조건속에서 우리는 행복해질 수 있어야 합니다. 저는 그런 관점에서 사람들에게 주로 당신이 얼마나 지금 행복한가를 깨우쳐 줍니다. nbsp 그리고 우리는 두 가지 성격을 가지고 있습니다. 먼저 여럿 가운데에 하나입니다. 즉 여럿이라는 것은 공동체를 말하며, 하나는 나 자신을 말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공동체가 발전해야 나도 그 속에서 더불어 행복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공동체가 발전하는 것이 반드시 나를 행복하게 하는 것은 아닙니다. 반면 개인이 행복하면 공동체 발전에 도움이 되지만 그렇다고 그것도 반드시는 아닙니다. 식민지때 일본의 경우 국가가 발전을 했어요. 그렇다고 일본 국민은 행복합니까? 당시 한국사람만 고통스러운 것이 아니라 일본사람들도 굉장히 고통스러워했습니다. 그것은 국가가 발전해도 국민이 반드시 행복하다고 말할 수 없는 것입니다.nbspnbsp nbsp 그래서 국가의 발전과 국민의 행복이 동시에 이루어져야 합니다. 국가가 발전하려면 경제적으로 성장해야 합니다. 그러나 경제가 성장하더라도 불평등이 심화되면 국민은 행복해지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불행해집니다. 국민이 행복해질려면 경제적으로 성장한 결과물이nbspnbsp다수 국민들에게 공평하게 분배되어야 합니다. 한국은 그렇지 않기 때문에 국민이 행복해지지 않는 것입니다. 경제는 성장과 분배를 동시에 봐야 하는데, 우리는 50년 전에 굉장히 가난해서 경제라고 하면 성장만 생각합니다. 정부뿐만 아니라 한국사회 전체가 그렇게 보았습니다. 생산만 경제가 아니라 생산한 것을 어떻게 나눌 것인가? 이것도 함께 생각해야 하는 것입니다. nbsp nbspnbsp 한국이 50년전에 서양을 모델로 따라 배우기 할 때 경제만 모방하고, 민주주의, 인권, 철학 등은 제대로 배우지 못했습니다. 그러다보니 한국사람은 물질주의에 집중하게 되었습니다. 지금은nbspnbsp경제성장이 주춤해져 저성장으로 들어갔습니다. 저성장과 심한 빈부격차로 국민들이 느끼는 불행감은 더 커지는 것입니다. 그동안 경제성장이 일직선으로 발전해 왔는데, 한국의 자살률도 성장률과 똑같이 평행선으로 커지고 있습니다. 경제가 성장하면 자살률이 떨어져야 하는데 일직선으로 함께 증가했다는 것은 경제성장이 사람의 행복에 크게 기여하지 못했다는 것을 말하는 것입니다. 자살은 개인적인 문제이지만, 자살률이 높다는 것은 국민들이 희망은 없고 행복하지 못하다는 것입니다. 한편 출생률은 반대로 쭉 낮아지고 있습니다. 이것은 미래가 불확실하다는 것입니다. 결과적으로 말하면 경제성장이 우리도 잘산다는 자부심을 심어준 것도 있지만 실제로 사람들의 행복에는 크게 기여하지 못했다는 것입니다.nbspnbsp nbsp 이에 대한 해결책으로는 첫째, 사회적, 국가적으로 빈부격차를 줄여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공정하게 경쟁할 수 있는 룰을 만들어야 하고, 경쟁에서 처지는 약자에게 생존권을 보장해주어야 합니다. 이것은 국가와 사회가 해야 할 일입니다. 둘째, 국민들 개개인도 해야할 일이 있습니다. 성장이 계속 지속될 수 없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지난 50년간 계속 성장한 경험만 있기 때문에 계속 성장할 것이라는 무의식적인 기대가 있습니다. 그리고 정치인들도 앞으로 계속 성장할 것이라고 주장합니다. 그러나 실제로 구조적으로 그렇게 될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국민들도 저성장으로 갈 수밖에 없다는 것을 받아들여야 합니다. 그것이 기대를 낮추는 것입니다. 그리고 더 이상 물질적인 것에서만 행복을 추구하지 말고, 가족관계, 민주주의의 발전, 인권, 평화, 환경, 명상 등 가치의 중요성을 알아야 합니다. 셋째, 정치의 변화가 필요합니다. 한국은 대통령이나 시장, 국회의원 등을 뽑을 때는 선출의 민주주의가 이루어집니다. 그러나nbspnbsp대통령, 시장이 권력을 집행할때는 민주적인 방식이 아닌 옛날의 봉건적인 왕이나 독재방식으로 합니다. 그러니 국가의 주인인 국민의 권리는 4년 중에 선거할 때 15일만이고, 나머지는 종으로 살고 있습니다. 권력자들은 선거기간에는 고개를 숙이고 잘하겠다고 하고 나서 선거 끝나면 자기 마음대로 합니다. 그래서 권력을 분산시켜야 합니다. 중앙권력을 지방으로 분산시키고, 지방자치하게 하고, 대통령의 권한도 총리, 장관에게 분산해야 합니다. 일반시민들이 일상생활속에서 자기들의 권리를 행사할 수 있어야 합니다. 이런 것이 안되니 불행의 원인이 되고 있습니다.nbsp nbsp nbspnbsp 종합적으로 말씀드리면 한국은 지난 50년을 돌아봤을때 경제적으로 산업화를 이끌어내고 성공했다는 자부심을 가질 수 있습니다. 그리고 민주화도 투쟁을 통해 어느 정도 이루었다는 면에서 성공적입니다. 이제는 이를 기초로 해서 더 깊은 민주화가 되어야 하고, 복지사회와 통일로 가는 것이 앞으로의 과제입니다. 그러나 지금은 한단계 더 나아가지 못하고 과거에 멈춰 있습니다. nbsp 산업화에 성공한 세력들은‘우리 때문에, 박정희 대통령 때문에 잘 먹고 잘 살게 되었으니 고마워해라’이렇게 과거의 성과를 가지고 권력을 유지하려고 합니다. 민주화를 이루어 낸 세력은‘우리 때문에 민주화가 되었다’고 합니다. 그래서 김대중 대통령, 노무현 대통령 얘기를 자꾸 합니다. 우리가 미래를 향해서 어떻게 할 것인가를 고민하기 보다 과거에 머물러 있으니 해결책이 없습니다. 그런 점에서 한국문제가 풀어질려면 산업화, 민주화의 성과를 함께 인정하고 그 공로를 치하하면서 다음 단계로 어떻게 할 것인가에 대한 미래 과제를 가지고 정치인들이 경쟁해야, 싸우더라도 좋은 방향으로 가게 됩니다. nbspnbsp 제가 볼 때 정치인들 중에서 개인적으로는 이런 생각을 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그러나 현재 양당구조속에서, 여기에 속한 엘리트층의 정치의식이 부족해서 생기는 문제입니다. 그래서 국민들은 제3의 길로 가는 것을 지지하지만, 여기에 동의하는 정치인들은 기존의 질서에서 나와 새롭게 개척하기에는 힘이 부족한 것 같습니다. 그래서 국민들은 선택의 여지가 없어서 한번은 이쪽을 지지하고, 한번은 저쪽을 지지하게 되는 것 같습니다. nbsp 그래서 한국도 유럽처럼 다당제로 가는 것이 필요합니다. 국민들이 다양한 정당 중에 하나를 선택할 수 있도록 선택의 폭이 넓어져야 하고, 필요에 따라 두개, 세 개의 정당이 협력하는 시스템이 구축되어야 합니다. 지금은 양당구조이다 보니 협력이 안 되고 죽으라고 싸우고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협력의 정치를 만들어야 합니다. 이제 국민들의 요구가 자본가, 노동자 양쪽으로만 나눌 수가 없습니다. 노동자안에 정규직, 비정규직 사이에도 엄청난 차이가 있고, 자본가도 재벌과 중소기업은 하늘과 땅 차이입니다. 그래서 여러 개의 정당이 각 계층의 이익을 대변해주어야 하는데, 한 정당이 국민의 여러 요구를 다 들어준다고 하니 아무것도 들어주는 것이 없게 됩니다. 이런 문제도 한국 국민들이 희망을 갖지 못하므로 불행의 원인이 되고 있습니다. 희망이 있으면 행복도가 높아지는데 지금은 그럴 수 없는 조건에 있습니다.” 라고 말씀하시며 왜 국민들이 불행한가에 대해 한국사회가 가지고 있는 총체적인 문제속에서 조명해주셨습니다. nbsp nbsp nbsp 미팅이 끝난 후에 스님께서는 마이클 브린씨와 김영진님께 영문 기도책을 선물로 주고, 통역을 한 정수진님께는 미혼이라고 하여 스님의 주례사를 전달했습니다. 이후 스님께서는 다음 강연 전까지 원고교정 등의 업무를 보신 후 차가 막힐 것을 고려하여 5시에 저녁 강연이 열리는 인천대학교로 출발하였습니다. 인천강연에 앞서 인천대 총장실에서 총장님, 교수불자회 교수님 5분과 차담이 있었습니다. 스님께서는 불교가 지식이나 기술로 접근하기보다는 해탈과 열반을 목표로 나아가야 한다고 하시면서 스님께서 대중들에게 즉문즉설을 하는 것에 대해 이야기 나누었습니다. 그리고 현재 우리나라의 전반적인 문제들, 특히 교육부분에 대한 이야기들을 나누었습니다. nbsp nbsp nbsp 이후 강연장으로 자리를 옮겼습니다. 강연 전 청년 불대에서 수화공연을 펼쳤는데 어떤 공연보다 감동적이고 아름다웠습니다. 인천대 교수 불자회에서 스님께 환영의 꽃다발을 전하였습니다. 1천여 좌석이 넘는 인천대학교 대강연장을 꽉 메운 인천시민들은 우레와 같은 박수로 스님을 맞이하였습니다. nbsp nbsp 총 8명의 질문자들이 삶의 고뇌를 스님과 함께 나눴습니다. 외동딸로 엄마의 과잉보호와 집착으로 힘들다는 대학생, 부모님의 잦은 불화로 감정조절이 어렵고 돈에 대한 과도한 집착이 있으며 수면장애로 정신과를 다니고 있는데 부모님에 대한 증오를 어떻게 풀어야 할지 고민하는 분, 공부에 대한 집중력을 키우는 방법을 묻는 분, 아버지와 남동생 그리고 자신의 건강에 대해 이것저것 많은 질문을 하신 분, 남편의 갑작스런 사망으로 인해 큰 슬픔에 빠진 분, 베트남 아내와 갈등으로 이혼위기에 처한 분, 폭력적 아버지와 어머니 사이에서 이 문제를 해결하고 싶다는 분 다양한 질문이 있었습니다.nbspnbsp nbsp 이 중 한 중년 남자분의 질문을 소개해 드립니다.nbsp 저는 마음이 몹시 불안하고 무기력증에 빠져 있습니다. 어린 시절 너무도 가난하여 배고픈 시절을 보냈고, 20대에는 노동운동을 하다 구속되기도 하였습니다. 30대 넘어서 안정된 생활을 하다 퇴사하여 조그만 사업을 시작하였는데 상황이 나빠져 폐업 위기에 처해 있습니다. 다시 예전의 곤궁한 상태로 돌아갈까 너무도 불안합니다. 이 두려움을 극복하고 굳건한 마음을 가지는 방법을 알고 싶습니다.”nbsp nbsp nbsp “어릴 때 굶은 경험은 2가지 현상으로 나타납니다. 첫째, 굶은 것이 내게 좋은 경험으로 승화되면 내가 굶고 살아봤기 때문에, 나중에 그런 상황에 또다시 처하게 되어도 겁나지 않습니다. 굶어도 죽지 않는다는 것을 압니다. 그래서 크게 두려움이 없습니다. 둘째, 굶은 것이 상처로 있으면 그때의 이미지가 떠올라 두려움이 생기게 됩니다. 질문자는 그때의 경험이 상처로 남은 거예요. 그래서 같은 경험을 가지고도 스님은 좋게 작용되어 자산이 되었는데, 본인은 나쁘게 작용되어 두려움이 생기게 된 것입니다. 어릴 때 굶어도 봤고, 감옥도 가봤는데 세상에 겁날게 뭐가 있어요?”nbsp nbsp“저 혼자면 괜찮은데 처자식이 걱정이 돼서 그렇습니다.”nbsp nbsp “자기 없으면 아내와 자식이 못살 것 같지만 다 본인의 생각일 뿐입니다. 다들 또 그 상황에 맞춰 살아가게 되어있어요. 무기력증에 빠져 매일 널부려져 있으면 어떤 도움이 될까요? 걱정을 내려놓고 청소도 하고 설거지도 해주면서 방법을 모색해야지, 쓸데없는 생각에 빠져 아무 도움도 안 되는 일만 하고 있어요.”nbsp nbsp “어떻게 이 불안한 마음을 놓을 수 있겠습니까?” nbsp “그런 방법은 없어요. 그냥 놓는 겁니다. 뜨거우면 놓으면 되지 “어떻게 놔요?”가 없어요. 방법을 몰라 못 놓는 게 아니라 놓기 싫어 놓지 못하는 거예요.” nbsp nbsp nbspnbsp 이렇게 질문자의 사연에 내 삶을 적용시키며 웃고 울고 하면서 유익하고도 재밌는 시간을 가졌습니다.nbsp 스님께서 마무리 말씀을 해주셨습니다. “우리에게 주어진 조건은 좋은 것도 아니고, 나쁜 것도 아닙니다. 다만 이 조건을 우리가 어떻게 보느냐의 문제입니다. 긍정적으로 보면 행복의 조건이 되는 것이고, 부정적으로 보면 불행의 조건이 되는 것입니다. 일체유심조一切唯心造, 즉 다 마음에 달려 있다는 말입니다. 진리는 다른 게 아닙니다. 바로 지금이 좋은 줄 아는 것입니다. 우리의 삶에 성공과 실패가 따로 있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가 긍정적으로 생각하면 지금 순간이 성공인 겁니다.” nbsp 스님께서 모든 일정을 마치신 후 스승의 날을 맞이하여 전 봉사자들이 스승의 노래를 불렸습니다. 스님께서는 우리는 모두는 삼계대도사三界大導師이신 부처님의 제자로서 부처님의 가르침에 따라 열심히 수행정진 해 나가자고 말씀하셨습니다. nbsp 인천강의가 끝나자 바로 경주로 출발하였습니다. 내일 아침부터 청년리더십아카데미 수강생들의 통일역사기행을 안내하기로 하였기 때문입니다. 내일 뵙겠습니다.

2015.05.16. 22,700 읽음 댓글 16개

2015.5.14 대구 청년강연

nbsp오늘 오전 4시에 기상하여 4시30분 기도 후 5시 35분에 제주공항으로 출발하였습니다. 어제는 아주 화창한 날씨였으나 오늘은 구름이 잔뜩 끼여 있었습니다. 어제는 차도 많고 길이 막혀 시간이 많이 걸렸는데 오늘은 새벽이라 비교적 빨리 공항에 도착하였습니다. 제주정토회 총무이신 강제연 보살님, 고진수 거사님, 그리고 차를 섭외하여 주신 정연심보살님께서 공항에 스님 배웅을 나와 계셨습니다. 스님께서는 총무님을 비롯한 배웅나오신 분들께 어제 강연장 분위기도 좋았고 수고많았다고 격려하셨습니다.nbspnbsp nbspnbsp nbsp 그리고 차량 섭외 해주신 정연심 보살님께도 감사의 인사로 사인한 ‘지금여기 깨어있기’ 책을 선물로 드렸습니다. 수속을 마치고 출발하는 게이트로 이동하여 총무보살님께서 준비해주신 찐빵과 과일 등으로 간단히 아침 요기 하였습니다. 오전 7시 15분 비행기를 타고 김포공항에 도착한 다음 바로 평화재단으로 이동하였습니다.nbspnbspnbsp nbsp 출근길이 막혀 예상보다 늦게 평화재단에 도착 한 후 바로 기획위원회 회의에 참석하였습니다. 기획위원회 회의를 마치고 나서 스님께서는 간단히 점심식사를 하였습니다. nbsp nbsp 점심 식사 후 노옥재 총장님의 어머니와 언니가 재단을 방문해서 잠시 스님께 인사드리고 이야기를 나누기도 하셨습니다. 그리고 바로 정토회 행정처 처장님과 국장님들과 함께 오후 1230분부터 1시간 가량 회의를 하였습니다. 가장 중요한 안건으로 6월 13일에 있을 전국 통일의병대회 장소와 프로그램 등에 대해 의논하였습니다. 전국 1,100여명의 통일의병이 한꺼번에 모여서 의미를 다져갈 수 있는 곳으로 여러 장소가 추천되었지만, 역사적 의미와 미래지향적 의의를 가져갈 수 있는 곳을 위해서 어느 곳이 적합한지 함께 의논하였습니다. 스님께서는 장소를 한 곳 선택하더라도 꼼꼼하게 과거, 현재, 그리고 미래지향적 측면을 살펴서 통합적으로 살펴 보시는 것을 보면서 일을 어떤 관점으로 바라 볼 것인지 배울 수 있었습니다. 그 외에도 몇가지 기타안건에 대해 논의를 하고 회의를 마쳤습니다.nbsp nbspnbsp 대중부 회의가 끝나자 마자 바로 연달아 이어서 문화사업부 임혜진 법우님, 이상옥 보살님과 함께 문화출판사업부 및 정토회 전체 미디어사업부에 대해서 스님의 조언을 들을 수 있었습니다. 특히 출판, 홍보, SNS, 방송, 인터넷, 기술지원 등에 대해 문화출판부에서 전반적인 검토를 해볼 것을 조언해주셨습니다. 회의를 마치고 바로 스님께서는 3시에 오늘 강연이 있는 대구로 출발하였습니다. 오늘 대구 강연은 7시 30분에 대구수성대학교에서 청년정토회 주최로 청년대학생들을 위한 스님의 즉문즉설 강연이 진행되었습니다. 스님께서는 조금 일찍 강연장에 도착하셔서 대기실에서 밀린 원고 교정작업을 하셨습니다. nbsp nbsp nbsp 강연장에 도착하니 젊은 청년들이 희망세상만들기 티셔츠를 입고, 교정 곳곳 및 주차장에 서 안내를 하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강연장 앞에 안내부스에서도 밝은 표정으로 즐겁고 행복하게 청중들을 위해 안내하고 있어서 참 흐뭇하였습니다. nbsp 무더운 날씨에도 불구하고 강연장에 400여명의 청중과 46명의 봉사자를 포함하여 총 450여명의 청중이 강연장 1, 2층을 가득 메웠습니다. 청년들의 분위기가 밝고 좋았습니다. 스님의 소개 영상과 더불어서 청년들의 큰 박수와 환호속에 스님께서 무대위로 올라오셨습니다. nbsp nbsp 스nbsp님께서는 청년 강연인 만큼 직장인들을 고려하여 늦게 시작하였다고 말문을 여셨습니다. 청중들에게 저녁 식사 여부를 물으신 스님께서는 대중들에게 질문하셨습니다.nbspnbspnbsp nbsp “스님의 즉문즉설 한번이라도 들어본 사람 손들어 보세요. 거의 들어보신 분들이 모이셨네요. 손 안 들으신 분은 왜 따라 왔어요? 요즘 남의 말만 듣고 따라 다니면 안돼요. 위험한 세상이에요.” nbsp 스님께선 대중의 긴장감을 풀어주시고 곧바로 강연을 시작하였습니다. 8명의 질문 예약자와 3명의 추가 질문자를 합하여 총 11명의 청춘 남녀가 질문하였습니다. nbspnbspnbspnbspnbsp 운명같은 사랑을 꿈꾸며 6년째 상대를 기다리고 있다는 20대 여성, 전문직 시험을 준비하고 있다는 30대 남성, 남자친구가 부모님과 사이가 좋지 않아 걱정이라는 30대 여성, 올해 입학한 대학 전공이 적성에 맞는지 고민이라는 20대 여성, 곧 대학을 졸업하는데 아직 꿈을 찾지 못해 힘들어하는 20대 남성, 어떻게 살아야 후회하지 않는 삶을 살 수 있는지 궁금해 하는 20대 남성, 어떤 일이든 결정을 내리기 힘들다는 30대 여성, 감정기복이 심하여 속마음을 드러내기 두렵다는 20대 남성, 어떻게 하면 좋은 상대방을 만날 수 있는지 궁금해 하는 30대 여성, 마지막으로 세월호 사건 후 직장을 다닐 수 없을 만큼 우울하다는 여성, 스님을 만나 뵙게 되어 영광이라며 큰절을 올린 남성까지 총 11분이 질문을 해주셨습니다.nbsp nbsp nbsp 그 중 저희에게 가장 큰 공감과 웃음을 주었던 첫 번째 질문자의 내용입니다.nbsp nbsp “덜덜 떨지 마시고 친구에게 애기하듯 편하게 해보세요” nbsp “저는 18살 때부터 지금까지 운명적인 사랑을 꿈꾸고 있습니다.” nbspnbsp “지금 몇 살이에요?” nbspnbsp “24살이에요. 6년을 기다렸어요. 그런데 아무리 기다려도 안 나타나요.” nbsp “누구를 기다려요?” nbspnbspnbspnbsp “정말 소중한 사람이요. 운명같은 사랑을, 진짜 진짜 사랑하는 사람, 도장처럼 가슴에 콱 박히는 사람을요.” “그러니까 백마탄 왕자를 기다린다는 말이에요?” nbspnbsp “조건은 아닌데요, 너무 너무 사랑해서 같이 아침에 눈뜨고 잠들 때까지 감동적인 사람이요.” nbsp “그런 사람 없어요. 꿈 깨세요. 어린아이들 동화처럼 환상을 갖고 있네요.” nbspnbsp “엄마가 그런 감격적인 사랑은 없다고 했는데 정말 없는 걸까요?”nbsp nbsp nbsp nbsp “그런 사람 없어요. 그런데 만에 하나 있다면 뭘까요? 쥐약이예요. 스님 나이가 63살인데 아주 젊고 예쁘고 교양 있고 누가 봐도 공주 같은 사람이 나타나면 그게 뭘까요? 운명적 사랑일까요? 꽃뱀일까요? 그건 꽃뱀이에요. 그러니까 자기에게 그런 사람이 안 나타나는게 불행이 아니라 다행이예요. 혹시라도 나타나면 오히려 그게 큰 불행의 원인이 되요. 설령 나타나더라도 쥐약이예요. 제비에요.” nbsp “가슴이 아파요. 있을거에요. 영화에서 보면 있잖아요.” nbsp “그건 영화, 소설, 동화에 있는 얘기에요. 스님은 괴로워 죽겠다고 하는 사람한테, 희망을 주기 위해서‘힘내세요, 괜찮아요, 희망을 갖으세요’라고 이야기하는 사람입니다. 그런데 희망을 갖고 있는 사람에게 ‘꿈 깨라’라고 할 때는 너무 터무니없어서 그렇게 말하는 겁니다. 이런 애기해서 미안해요. 너무 안타까워서 그래요.” nbsp “그럼 아무나 만나요?”nbsp nbsp nbsp “아니지요. 왜 아무나 만나요. 마음에 드는 사람을 만나야지요. 그런데 질문자가 원하대로nbspnbsp 마음에 꼭 드는 사람을 만날 수도 있고, 이게 마음에 들면 다른 게 마음에 안드는 사람을 만날 수도 있어요. 완벽하게 마음에 드는 사람이 아니더라도 적당히 만나서, 사귀면서 맞추어 가면 되요. 그런데 질문자가 생각하는 꿈같은 사람이 나타나기를 원하면 좀 많이 기다려야 해요. 한 80년쯤. 그래도 쉽지 않아요. 상상으로 결혼하면 100 실패해요. nbsp 실제로 인생살이가 그렇지 않아요. 조선시대는 남자 얼굴도 모르고 결혼했잖아요. 시집가면 죽는다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시집갈 때 울고불고 그랬어요. 그래서 딸에게 이렇게 교육시켰어요. 3년은 눈감고 살아라. 봐도 본 게 아니다. 3년은 귀 막고 살아라. 어떤 말을 들어도 들은 척 하지 말아라. 3년은 입 막고 살아라. 절대로 하고 싶은 말 하지 말고 살아라. 그렇게 9년을 죽어 살면 행복이 온다고 교육했어요.nbspnbsp 요즘은 결혼 준비하다가 파혼하기도 하고, 신혼여행 갔다가 한달만에 이혼하기도 해요. 10쌍중 1쌍은 3년안에 헤어져요. 이렇게 되는 건 결혼에 대해 환상을 갖고 있어서 그래요. 질문자는 마음에 드는 사람 만날 것이라는 것에 대해 기대치가 없어야 해요. 매일 아침 절을 하면서‘이 세상에 내 마음에 꼭 드는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죽어살겠습니다’이렇게 기도하세요.” nbsp 스님께서 명쾌한 답변으로 질문자의 오랜 고민을 간단히 해결해주시는 것 같아 함께 듣고 있던 청중들도 마음이 가벼워졌습니다. nbsp nbsp 다음은 두 번째 질문자와 스님과의 대화를 소개합니다. nbsp nbsp “저는 올해 서른인 남성입니다. 직장이 적성에 맞지 않고 비젼이 불투명하여 퇴사 후 세무사 자격증을 준비하려고 합니다. 3년 정도 시험 준비만 해야 할지, 세무 관련 회사에 취업하여 공부와 병행해야 할지 고민입니다.” nbspnbsplt “고등고시 시험을 합격할 수 있으면 하는게 좋아요? 안하는게 좋아요?” nbsp “하는게 좋습니다.” nbsp “다들 좋은지 몰라서 안하고 있을까요? 합격하는게 쉽지 않아서 시험준비를 안하겠죠. 처음 대학교 갓 졸업하자 마자 시험준비 하면 도전 해볼 수도 있어요. 그런데 지금 나이가 30살이에요. 갑자기 공부를 시작해서 3년 동안 하게 되면 나이가 들수록 학습 효과가 떨어져요. 대학 졸업 직후 공부하는 것보다 합격확률이 적어요. 그러다 보니 실패했을 때의 불안이 높아요. 나이가 30살이나 50살이 되어도 공부 잘 하는 사람이나, 시험 잘 보는 사람은 해볼만해요. 현재 질문자의 조건과 처지에서는 일반 회사 세무 분야에 취업해서 직장생활하며, 장기간 공부를 병행하고 시험에 80정도 합격할 수준이 되면 휴직하고 시험 준비 하세요. 그럼 시험에 합격하지 못해도 다시 회사로 돌아갈 수 있잖아요.” nbsp 간단한 답변속에서도 삶을 살아가는 지혜를 배울 수 있는 시간이었습니다. nbspnbsp nbsp 스nbsp님께서는 세월호 때문에 우울하다는 마지막 질문자의 답변후에 다음과 같이 마무리 말씀하셨습니다.nbspnbsp “세월호 사건은 참 가슴아픈 얘기입니다. 저희들도 진상규명을 위해서 146만인 서명을 받기도 했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죽기살기로 싸우자고 하지도 않습니다. 저도 사실 정부가 진상규명을 못할 이유가 뭔지 잘 모르겠어요. 대통령이 배를 침몰하라고 한 것이 아니니 사고 후에 신속하게 대응하지 못한 것에 대해 진솔하게 사과하고, 진상은 사실적으로 규명을 해버리면 되는데 이것이 제대로 안되니 국민의 갈등이 심해지고 있는 것 같습니다. 정부가 진상규명을 소극적으로 하니 국민들은 딴이유가 있나 이런 생각이 들고 그래서 유언비어가 나오는 것입니다. 처음 사고가 났을 때는 정말 모두가 가슴 아파했습니다. 그때는 여야 가릴 것 없이 모든 사람이 가슴 아파하고 빨리 해결할려고 했는데 지금은 이 문제가 더 국민갈등의 원인이 되고 있습니다. 사고 후 처음에는 우리가 그동안 살아왔던 삶을 돌아보는 시간이었습니다. 즉 성장 중심, 물질중심의 사고와 생명이나 안전에는 별로 신경을 안썼던 우리의 모습을 진솔하게 반성했습니다. 그래서 사고후에는 우리사회 전체가 생명을 중요시하고 안전을 중요시하는 쪽으로 가야 하는데 오히려 싸움을 하는 쪽으로 가고 있습니다. 수많은 생명을 앗아간 세월호가 우리에게 주는 교훈을 못 살리고 있습니다. 세월호 이전과 이후로 대한민국이 바뀌었다고 해야 그들의 죽음이 헛되지 않는데, 한국사회의 본질적인 문제는 개선 안되고 갈등은 더 나빠지고 있으니, 이 분들의 죽음이 개죽음이 되고 있습니다. 이 분들의 죽음이 헛된 죽음이 되느냐, 교훈이 되느냐 하는 것은 모두 살아있는 우리들의 몫입니다. 그러니 지속적인 관심을 가지고 변화를 도모해야 합니다. 그런면에서 대한민국 국민으로서 좀더 성숙해져야 합니다. nbsp nbspnbsp 무엇을 가지고 대한민국의 정체성을 가질 수 있을까요? 우리의 정체성을 기독교 국가도 아니고, 진보적인 국가라고도 하기 어렵습니다. 대한민국 사람의 공통적인 것은 대한민국의 헌법입니다. 헌법에 주권이 국민에게 있다는 것을 알고 우리는 주인의식이 투철해야 합니다. 대통령, 국회의원을 욕하는 것만으로는 무책임하며, 우리가 주인으로서 역할을 분명히 해야 합니다. 우리가 선거에서 선택한 것에 대해서 책임을 지고, 다음에는 선택을 잘해야 합니다. nbsp nbspnbsp 이렇게 반성을 해야 하는데 우리가 주인의식, 시민의식이 없이 제국의 신민으로서 살고 있으니 늘 이런 선택이 반복되고 있습니다. 우리는 신민이 아니라 시민입니다. 욕한다고 해결되지 않으니 자꾸 욕하지 말고 다음에는 좀더 유의해서 선택해야 합니다. 이런 자세를 견지하여 적극적인 자세를 가지면 시간이 갈수록 통합이 될 텐데, 우리는 시간이 갈수록 갈등과 분열이 깊어지고 있습니다. 부족한 것은 우리가 해결해야 합니다. nbspnbsp 산업화로 인해 성장은 되었지만 부의 분배가 잘 안되었기 때문에 복지는 우리가 해야 합니다. 민주화도 많은 진척이 있었지만 아직 제대로 안되고 있습니다. 지방분권도 우리가 해야하고 통일도 우리가 해야 합니다. 선배들이 이 만큼 한 것은 고맙지만, 더 민주적인 사회를 만들고 복지사회, 지방자치시대, 통일을 이루는 것은 우리세대가 할일입니다. 이렇게 선배들의 긍적적인 면을 인정하고 다음에 우리가 해야할 일을 잡아간다면 훨씬 더 통합을 일궈내고 역량을 집결시킬수 있습니다. nbsp nbspnbsp 과거의 공덕은 서로 인정해주되 우리는 과거를 먹고 살지 말고, 우리가 어떻게 앞으로의 대한민국을 위해서 개선하고자 하는지에 대한 희망을 갖고 살아가시길 바랍니다. ‘내가 내 인생의 희망이 되어 행복하게 살겠습니다.’‘내가 우리 사회의 희망이 되어 행복사회 만들겠습니다.’이런 자세가 필요합니다.nbspnbsp누가 먼저 해주기를 바라지 말고 매사에 감사해하면서 나의 부족한 것은 스스로 해결해나가야 합니다. 행복하시길 바랍니다. 감사합니다.” 라고 하시면서 마무리 말씀을 해주셨습니다. nbsp 오늘 강연장에서는 한 젊은이가 ‘저는 궁금한것은 없고 대신에 나름대로 사는 것이 참 많이 괴로웠는데 스님께서 TV에 나온 후 인터넷 동영상으로 즉문즉설을 다 보았습니다. 그래서 삶이 너무 즐겁고 새로 태어난 것 같아 스님께 감사드리고 싶어서 큰 절을 드릴려고 마이크를 잡았습니다’라고 하면서 무대위로 올라와 스님께 감사의 큰절을 하였습니다. 청중들이 모두 함께 큰 박수를 보냈습니다. 어제에 이어 매 강연장에서 스님의 즉문즉설으로 본인이 변화되어 행복해졌다는 것을 보게 되니 우리 사회가 얼마나 힐링이 필요한지 잘 알 수 있었습니다. 스님께서 마지막으로 “내 인생의 희망이 되어 행복하게 살겠습니다. 이 사회의 희망이 되어 행복사회 만들겠습니다” 라고 하신 말씀이 얼마나 소중한지 느낄 수 있었습니다. nbspnbsp 강연이 끝나자마자 스님께서는 바로 로비로 이동하여 사인을 받기 위해 기다리고 있는 청년들께 사인을 해주시고 함께 사진촬영도 해주었습니다. 그리고 나서 봉사자들과 단체사진촬영 한 다음에 수고많았다고 격려해 주셨습니다. 곧이어 대기실로 자리를 옮겨 강연장에 참석하여 끝까지 자리를 함께 한 김부겸 전 의원님과 잠깐 만나 인사를 나누었습니다. nbsp nbsp 10시 45분경에는 오늘 행사를 총괄한 이효상 법우님과 대구청년정토회 활동가들에게 수고많았다고 격려 하신 후 6월 청년캠프때 보자고 하시면서 서울로 출발였습니다. 서울 정토회관에 도착하니 새벽 2시가 되었습니다. 내일은 오전에는 수원에서 오후에는 인천에서 강연이 있습니다. nbsp nbsp

2015.05.15. 20,491 읽음 댓글 17개

2015.5.13 힐링캠프 촬영 및 제주강연

nbsp 스승의 날을 맞아 어제밤에 갑자기 찾아온 김제동씨와 오늘 새벽까지 얘기를 하시다 늦게 주무셔서 숙소에서 6시에 기도를 하신 후에, 7시 김제동씨와 함께 최말순보살님이 준비해주신 죽으로 간단히 아침식사를 하고 김제동씨와 함께 아침 산책을 할 돌문화공원으로 출발을 했습니다. 돌문화공원은 제주시 조천읍 교천리에 위치하고 있어 서귀포에서 한라산 국립공원지역을 통과하는 길을 이용하여 제주시로 이동하였는데 자연풍광이 너무나 아름답고 좋은 숲길이었습니다. 거기다가 날씨가 얼마나 화창하고 좋은지 한라산이 손에 닿을슷 가깝게 한눈에 들어왔습니다. 이렇게 좋은 날씨덕분에 제주의 아름다운 바다와 한라산을 한눈에 담을 수 있었습니다. nbsp nbsp nbsp 제주시 조천읍에 위치한 돌문화 공원은 돌의 고장 제주에 있는 돌문화를 종합적이고 체계적으로 보여주는 박물관이자 생태공원으로. 2020년까지 전체공원이 조성되며, 제1단계로 제주돌박물관, 제주돌문화전시관, 제주의 전통초가 등의 전시관이 완공되어 공사가 시작된지 7년 만인 2006년 6월 3일 문을 열었다고 합니다. 돌문화 공원은 제주만의 독특한 자연유산인 오름 앞에 자리잡고 있으며, 돌을 쌓아 만들어 놓은 성곽의 형태를 따라 나지막한 오르막길을 올라가면 주변 전망이 시원한 돌문화공원 입구에 다다르게 됩니다. nbsp nbsp 9시 15분쯤에 돌문화공원에 도착하니 원장님께서 스님일행이 오신다는 얘기를 듣고 직접 마중을 나오셨습니다. 스님께서도 환하게 웃으시면 인사를 하니 원장님께서 이곳까지 방문해주신 스님께 감사인사를 드렸습니다. 원장님께서 안내도를 보시면서 돌문화공원을 일행들께 소개를 해주셨는데 원장님께서 40년동안 모은 것들로 전시해놓았다고 하시면서 아직 공원을 절반도 완성하지 못했다고 하였습니다. nbsp nbsp 스님께서는 원장님의 얘기를 들으면서 중국인들이 제주도에 많이 방문을 하고 있으니 제주도가 중국인들에게 정신적인 고향같은 곳이 될 수 있도록, 돌문화센터안에 중국인들이 좋아하는 기수련 할 수 있는 명상센터를 지으면 좋겠다고 제안하셨습니다. 그래서 물질적으로 빠르게 성장하고 있는 중국인들이 언제든지 제주도를 찾아 정신적인 힐링을 하고 마음을 정화시켜 돌아갈 수 있도록 만들면 좋겠다고 하셨습니다. 그러자 원장님께서도 이곳에 땅이 넓으니 스님의 제안을 검토해서 한번 해 볼 수 있도록 하겠다고 동의 해주셔서 이곳이 참 좋은 힐링의 장소가 될 수도 있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nbsp nbsp 스님께서는 이렇게 돌문화공원을 자세히 안내해주신 원장님께 감사의 인사로 사인한 ‘지금 여기 깨어있기’ 책을 선물로 드렸습니다. 스님께서는 천천히 공원을 걸어가면서 김제동씨와 함께 12시 45분까지 가벼운 신상얘기부터 통일얘기까지 여러가지 주제로 이야기를 나누면서 스승의날 특집 SBS 힐링캠프 촬영을 마쳤습니다. 촬영을 마치고 나서는 공원의 이곳 저곳을 구경도 하시고 천천히 공원을 돌아보시다가 초가마을앞 원두막에서 간식으로 준비해 온 제주도 특산 오메기떡, 귤, 옥수수 등으로 일행들과 함께 간단히 요기를 하셨습니다. nbsp 오후 2시가 넘어서 돌문화공원 근처에 있는 국수집으로 이동하여 김제동씨와 촬영스탭들과 함께 국수로 점심식사를 하면서 스님께서는 작년에 이루어졌던 세계 100회 강연 이야기 등을 하셨습니다. 특히 중남미 지역을 방문한 이야기를 하시다가 K팝의 영향력이 생각보다 더 커서 놀랍다고 하면서 지금이 시기적으로 우리민족의 역량을 한층 더 업그레이드 할 수 있는 참 좋은 시기인데 정치적인 역량이 부족하여 그러지 못하고 있음이 참으로 안타깝다고 하셨습니다. 땅이 너무 커도 그렇고, 인구가 너무 작아도 그런데, 우리가 통일을 이루어내어 남북한이 합쳐지면 인구도 7,500만 정도로 되어서 그동안 우리가 축적한 역량만으로도 영국,프랑스,이태리 정도에는 충분히 견주어 볼 만하고, 잘하면 미국, 중국, 인도, 러시아, 브라질, 일본, 독일에 이어서 세계 8위 정도의 국력을 가질 수 있는 그런 역량이 충분한데 정치만 제대로 받쳐주지 못해서 안타깝다는 얘기를 하셨습니다. 현재 우리는 여러분야에서 창조성이 특히 부족한데, 그래도 문화, 대중예술분야에서 만큼은 창조성이 뛰어나서 한류가 세계적으로 인정을 받고 뻗어나가고 있는데 그나마 이명박정부 시절에 한일관계가 나빠지면서 일본에서 급격하게 한류가 타격을 입으면서 다른 지역까지도 조금 주춤한 면은 있지만 그래도 여전히 중남미, 동남아 지역에서 대중예술분야에 대한 인기가 높음을 보았다고 말씀해주셨습니다. nbsp nbsp nbsp 늦은 점심식사 후에 김제동씨와 촬영스탭들은 공항으로 떠나고 스님께서는 바로 근처에 숲길이 좋은 곳이 있다고 하시면서 잠깐 산책을 하자고 하셨습니다.‘한국의 가장 아름다운 도로’로 선정된 사려니숲길이 돌문화공원 바로 인근에 있었습니다. 그래서 약 30분 정도 산책길을 따라 걸었는데 여린 연초록잎들이 싱그런 생명력을 뽐내면서 나무에 매달려 있는 것들이 참으로 예뻤습니다. 스님께서는 새로 나오는 여린 연초록잎들을 보고‘초록 꽃이 만발한다’라고 표현을 하셨는데 연초록의 이파리들이 정말 꽃처럼 예쁘고 어린 아이들의 피부처럼 연하고 부드러웠습니다. nbsp nbsp 산책후인 4시경에 서귀포에 있는 숙소로 출발하였지만 제주시에서 서귀포까지 1시간이 넘게 걸려 도착해서 잠깐 세수만 하고 바로 5시 45분에 오늘 강연장이 있는 제주문화예술회관으로 출발하였습니다. 그러나 저녁 퇴근시간과 맞불려서 강연장 근처에 와서는 차가 움직이지를 않자 스님께서는 걸어가는 것이 좋겠다고 하시면서 차에서 내려서 강연장으로 걸어갔습니다. 강연장에 도착하자마자, 대기실로 가서 오늘 강연에 도움을 주신 분들께 선물로 드릴 책에 사인을 하고는 바로 강연을 시작하였습니다. nbsp 오늘 제주의 강연은 월요일 태풍 노을의 영향으로 어제까지 쏟아지던 비가 그치고 하늘에 해가 쨍쨍 비추는 아주 맑은 날이었습니다. 법륜스님의 강연을 들을 기회가 많지 않은 제주도민들은 모처럼의 강연에 많이 모여 스님의 강연을 경청하셨습니다. 오늘 강연장에는 총 715명이 참석하여 1층 강연장 전체를 가득메우고 2층의 좌석도 절반 이상이 찼던 것 같았습니다. nbsp nbsp 스님의 즉문즉설 강연은 ‘질레’라는 팀의 음악 공연으로 시작되었습니다. 여러 곡 중에서 작지도 크지도 않은 꼭 맞는 자신의 집을 지니고 사는 제주도의 앞바다에 사는 소라게를 노래하는 것이 꼭 스님의 마음처럼 만족하는 삶을 이야기하는 듯 했습니다. ‘질레’의 공연이 끝나자 마자 바로 스님께서는 바로 무대위로 올라갔습니다. 스님께서 무대위에 올라서자 강연장을 가득채운 많은 분들이 큰 박수로 스님을 환영해주었습니다. nbsp 스님께서는 “안녕하세요. 공연 잘보셨습니까? 저는 오늘 두번째 공연자로 나왔습니다” 라고 환하게 웃으시면서 오늘강연을 시작하셨습니다. “저녁은 드셨어요? 저도 못먹었습니다. 오늘은 마음의 양식을 드시는 날이라고 생각을 해봐요. nbsp nbsp 저는 오늘 아주 좋은 데 갔습니다. 제주도에서 제일 좋은 돌문화공원에 가봤습니다. 아직도 한번도 안가본사람도 있나요? 제주도에서 아름다운 한라산, 중문단지, 성산일출봉, 섭지코지, 용두암, 모두 다 가봤지만 돌문화공원에 가서는 저는 인간승리를 보았습니다. 어떻게 한 사람이 이렇게 많은 돌을 모을 수 있을까 싶었어요. 외국에서 귀한 손님이 오면 저는 조용히 이곳으로 안내를 하거나 한번 가보도록 권유를 합니다. 저는 어제 광주 강연 끝나고 밤에 늦게 제주에 도착했는데요, 김제동씨가 스승의 날이라고 스님께 인사한다고 숙소로 찾아 와서 오늘 돌문화공원을 함께 산책했습니다. , 그래서 SBS 힐링캠프 촬영팀에서 저와 김제동씨가 만나는 것을 스승의 날 기념으로 방영을 한답니다. 힐링캠프에 관여하는 분들이 각자 자기 스승님들을 찾아가서 만나는 것을 찍는 것인데 돌문화공원의 원장님이 나와서 안내를 잘해주어서 참 좋았습니다. 그런데 한가지 안타까운 것은 제가 갈 때마다 관광객이 별로 없는데요, 이유가 뭔 것 같애요? 관광객이 없는 이유가 너무 넓어서 라구요. 저는 방문할 때마다 왜 이렇게 좋은곳에 사람이 안올까 그런 의문이 많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원장님한데 이렇게 좋은 곳에 사람들이 왜 이렇게 적으냐고 질문을 하니, 원장님께서 ‘이런 좋은 곳은 사람이 적게 와서 조용해야 되잖아요’라고 말했어요. 조용하면 저한테는 좋지만, 운영은 어렵잖아요. 그래서 사람이 너무 많아 바글 바글해도 안되지만 그렇게 좋은 곳을 안가보니까 조금 안타까웠습니다. nbsp nbsp 사람들이 만들어 볼려고 해도 만들 수 없는 그런 자연의 돌들과 제주도민들의 생활, 돌문화들을 다 모아놓은 것을 보면서 산업화라는 이름으로, 그리고 개발이라는 미명으로 파헤쳐져서 자연도 파괴되고 생활문화도 파괴되었는데, 그래도 그곳에서 그만큼이라도 보존되어있다는 것은 제주도의 자랑처럼 느껴졌습니다. 여러분들은 제주도에 늘 사니까 당연한 것처럼 생각되나 봐요. 그러나 저는 참 좋았습니다. 저는 전통문화 보존과 자연보존에 관심이 참 많아요. nbsp 필리핀 만다니오에 제가 학교도 지어주고, 여러가지 시설도 지어주고 하지만 그중에서 저는 원주민들이 자기 전통 문화를 보존하는 것을 보면 굉장히 값어치 있게 생각을 하고 지원을 해주고 있어요. 산속에 있는 한 원주민들이 전통문화를 아주 잘 보존하는 부족이 있어요. 그래서 이번에 산속에 사는 소수민족 20여명을 서울로 초청을 했는데 산속에 사는 사람들한테는 서울이 별천지였겠지요. 그사람들에게 제주도를 보여주었으면 참 친숙했을 것 같애요. 그분들이 한국의 전통문화는 어떤지 궁금해하고 보고 싶어하는데 이제 서울은 민속촌을 빼고는 보여줄게 거의 없고 시골에서도 생활속에서는 이제 남은게 거의 없어요. 자기의 전통문화를 보존한다는 것은 자기의 정체성을 지키는 것이예요. 전통이 없다면 자기의 정체성과 자존감이 없는 거예요. 일본과 한국은 생긴 것에서는 큰 차이가 없지만 어떤 문화적 전통을 가지고 있는가? 이것이 자기의 정체성을 가져오는 원인이 됩니다.그래서 제주도에 살고 있는 여러분들이 조금 더 전통문화를 소중하게 여기면 좋겠습니다.” 라고 오늘 돌문화 공원을 다녀오신 얘기로 서두를 여셨습니다. 스님의 인사 말씀속에 우리의 전통문화를 소중히 여기는 마음뿐만 아니라 다른 소수민족의 전통문화까지 계승시키고 보존시킬려는 애뜻한 마음을 엿볼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지난번에 보았던 필리핀 송코마을 사람들의 공연이 생각나면서 마음이 참 많이 따뜻했졌습니다. nbsp 스님께서는 유튜브에서 스님의 즉문즉설을 보신 분은 손을 들어보라고 하니 대다수가 손을 들었습니다. 그래서 스님께서는 크게 즉문즉설에 대해서 설명을 안해도 되겠다고 하시면서 무엇이든, 그리고 각자 가지고 있는 자기 고뇌에 대해서 마음껏 질문하고 대화를 해보자고 하시면서 “우리가 진리라고 하면 무겁게 생각하지만 결코 무거운게 아니라 생활 속에서 놀이하듯이 이렇게 접근해갈 수 있다”는 말씀과 함께 질문을 받기 시작했습니다. nbsp 오늘은 총 9분이 질문을 하셨는데, 부모님이 돌아가실 때 스님의 인생수업이라는 책으로 큰 위안을 얻었다는 한 분은 도움을 주는 데 있어서 감사한 줄 모르는 사람에 대한 태도를 어떻게 해야 하는 지를 질문하였고, 지병 때문에 식사에도 문제가 있어서 고민인 분, 이혼한 후에 딸과의 관계에 대해 고민이신 분, 직장 생활 중 직원과의 마찰이 고민이신 분, 그리고 ‘버릇없는 아이들’이 없어지는 세상이 올 것인가에 대해 이야기를 들어보고 싶다고 하신 분, 초등학교에서 근무하시는 선생님으로서 한 단계 성장하고 싶으시다는 분, 또 변하지 않는 자신의 모습을 고치고 싶다던 분, 스님의 강연을 듣고 깨달음을 얻었는데 어떻게 하면 본인이 깨달은 것을 다른 사람들에게 가르칠 수 있는지 묻는 분 등 정말 다양하고 많은 분들이 자신의 고민들을 허심탄회하게 스님께 털어놓으셨습니다. nbsp 그 중 인생을 살아가는 좋은 길도 즐겁게 함께 해 나갈 수 있다며 진리는 무거운 것이 아니라던 처음 강연의 시작의 말씀처럼 무거워 보이지만 결코 무겁게만 느껴지지 않았던, 그리고 많은 이들의 공감을 이끌어 낸 질문과 스님의 답변을 소개해드리겠습니다. nbsp “저는 변화하고 싶지만 저의 한심한 습관을 끊을 수가 없고, 바뀌고 싶지만 바꾸지 않는 저의 모습을 자책하는 제 자신이 싫은데 어떻게 해야 할까요?”라고 고민이라는 젊은 분이 있었습니다. nbsp nbsp 스님은 그 질문에 이렇게 답변하셨습니다. “지금 질문자는 약간 강박관념이 있는 것 같습니다. 나를 변화시켜야 한다는 강박관념을 버리세요. ‘나는 이대로 좋다, 나는 이대로도 괜찮다’ 이렇게 생각하세요. 종교가 특별히 없는 무교신자라고 하니 108배 절을 하면서 ‘저는 이대로 좋습니다. 저는 이대로 괜찮은 사람입니다.’ 이렇게 자기에게 암시를 줘야 합니다. 변화해야 한다는 강박관념에서 벗어나야 해요. 쉽지는 않지만 절을 하면서 ‘이대로 좋다’ 이렇게 하면 돼요. 우리가 원하는 것은 될 수도 있고 안 될 수도 있어요. 안된다고 괴로운 것이 아니에요. 그래도 되고 싶으면 더 열심히 하면 되는 것이죠. 그것과 자기 열등한 것은 관계가 없어요. 질문자는 전기자격증을 따서 더 좋은 직장에 취직해서 부모님께도 효도하고 싶다고 했는데 천원 있는 사람은 이천원 벌고 싶고, 십억 있는 사람은 천억 벌고 싶어 해요. 내가 자격증이 없어도 얼마든지 잘 살 수 있어요. 내가 돈을 많이 벌어서 위로 올라간다고 해도 그 위에 또 더 돈 많은 사람이 있어서 아무리 올라가도 끝이 없어요. 그런 것은 이루지 못해도 살아가는데 아무런 지장이 없어요. 이대로도 좋습니다. 만약 눈이 안보이면 자격증이랑 눈 보이는 것 중에 뭘 더 하고 싶을까요? 당연히 눈이 보이는 것이죠. 자격증이 무슨 소용이 있겠어요. 더 좋은 것을 가지고 있으면서 자격증 없는 것 때문에 불행하다면 인생을 얼마나 헛되게 사는 것입니까. 그러니 이렇게 사는 것으로도 만족스럽다 생각해야 합니다. 이렇게 자기가 자기에 대해 긍정적이어야 합니다.” nbsp 그러시면서 스님의 앞에 있는 컵과 마이크 그리고 뚜껑으로 예를 들어서 말씀을 하셨습니다. “컵이 뚜껑하고 비교해서 크다, 마이크와 비교해서 작다 하잖아요. 자기를 마이크랑 비교해서 자꾸 작다고 생각하는 거예요. 그런데 컵은 이대로 좋은 거예요. 본래 큰 것도 작은 것도 없어요. 모든 세상의 존재는 이대로 좋은 존재입니다. 거기서 출발을 해야 합니다. 이대로도 좋지만 자격증 따볼까? 생각해서 자격증을 따면 좋고 안 따도 좋아야 합니다”라고 하시면서 자신에 대한 긍정적 사고의 중요성을 일깨워주셨습니다. nbsp nbsp 모든 세상의 존재는 이대로 좋다고 하시면서 우리는 자기에 대해서 긍정적이어야 하고, 사물을 긍정적으로 보면 몸에서 긍정적인 에너지가 나와서 얼굴이 좋아지고 내부로부터 좋은 에너지가 나온다고 하시면서 스님께서 따뜻한 격려를 해주시니 그 마음이 질문자에게도 전해졌는지 질문자도 밝은 모습으로 감사의 인사를 하면서 자리에 앉으니 청중들이 큰 박수로 격려를 해주었습니다. nbsp nbsp 스님께서는 마지막으로 “내가 좋으면 좋게 행복하게 살면 된다.”고 하시며 “약 같은 경우도 아무리 선전을 해도 내가 관심이 없으면 보이지 않다가도 내가 그것을 먹고 나았다고 하면 남이 아플 때 엄청 권유를 하잖아요. 내가 먹어보니 좋더라. 이렇게 하는 것이 가장 강한 선전이예요. 여러분들이 먼저 자기가 자기를 치유하고 행복해져야 해요. 그럴 때 사람들이 물으면 이래서 좋더라 하고 말하면 되는 거예요. 그런데 내가 나았다고 그 사람이 반드시 낫는 건 아니에요. 나는 좋았지만 다른 사람은 별로 일 수 있어요. 그래서 기분 나빠할 필요도 없고, 사람은 다 다르니까 다른 사람은 그럴 수 있구나 하고 생각하면 내가 행복해져요. 상대방이 미울 때 세속적으로 보복하는 방법은 내가 행복하게 사는 것입니다. 그것이 현명한 거예요. 그런데 내가 가장 행복한 길은 남에게 베푸는 것입니다. 그렇게 행복하게 사시길 바랍니다.” 라는 말을 끝으로 결국 남에게 베푸는 길이 내가 행복한 길임을 언급하시며 내 스스로가 행복하게 사는 법을 일깨워주셨습니다. nbsp 이렇게 스님께서는 행복하게 사시길 바란다는 말씀으로 마무리 인사를 하고 9시15분에 제주도의 희망세상만들기 강연을 마쳤습니다. 오늘 첫질문에서 젊은 청년이 엄마가 돌아가셨는데 스님의 법문을 통해서 엄마와 쌀과자와 같은 바싹바싹한 이별을 하고 엄마 돌아가신 것을 잘 이겨낼 수 있었다고 하면서 울먹거리면서 스님께 감사의 인사를 하면서 질문을 하니 청중들이 큰 박수로 격려를 해주었는데, 스님께서 이렇게 대중과 만나는 이 희망세상만들기 강연이 얼마나 소중한 시간인지 잘 알 수 있었습니다. nbsp nbsp 강연후에 스님께서는 로비로 이동하여 스님책에 사인을 받기를 원하는 분들을 위해 정성껏 사인을 해주시고 함께 사진촬영도 해주었습니다. 로비에는 사인줄이 아주 길게 늘어서 있고, 책판매대 앞에도 스님책을 사시고자 많은 분들이 있었습니다. 정말 많은 분들이 강연장을 찾아주셨고, 강연장에는 어린아이에서 부터 남녀노소, 그리고 가족단위로 오신분들이 많아서 오늘 강연장이 이곳 제주도에서 축제의 시간처럼 보였습니다. 그리고 하얀지팡이를 짚고서 강연장을 찾은 눈이 안보이는 장애인들도 보았는데, 많은 분들이 스님의 즉문즉설강연으로 기뻐하고 얼굴이 환해지고 환호하는 모습들이 참으로 좋았습니다. 9시 30분에는 강연을 준비한 활동가들과 사진촬영을 하고, 이어서 스님께서 스님 강연전에 문화공연을 해준 공연팀들께도 감사의 인사를 하면서 함께 기념사진을 촬영하였습니다. 그리고 감사의 인사로 멤버들에게 스님께서 사인한 책을 선물로 드리고, 그분들도 스님께 감사의 선물을 주셨습니다. nbsp nbsp 이후 스님께서는 옆방으로 이동하여 오늘 강연장에서 봉사를 한 활동가들과 잠깐 인사를 하였는데 봉사자 75명중 약 50여명이 참가였습니다. 스님께서 봄불대생, 가을불대생, 주간반, 야간반, 경전반, 경전반 졸업하신분등 다양하게 참가자들의 경로를 살펴보시면서, 준비하는데 어려움은 없었는지, 예술공연을 잘 했는데 앞으로는 어떻게 해보면 좋겠는지 등을 얘기하시면서 제주정토회의 봉사자 및 활동가들과 아주 즐거운 시간을 가졌습니다. 불대생들과 경전반, 그리고 제주정토회의 회원들이 똘똘 뭉쳐 합심하여 축제같은 분위기로 훌륭하게 강연을 준비하고 치루어낸 것 같아 참으로 기뻤습니다. 그리고 스님께서 불대생들에게 특강수련 및 육지에서 하는 행사에 잘 참가하기가 힘든데 어떠냐고 물으니 이번 주말에 있는 불대특강수련에 다들 참가한다고 하면서 좋아들하는 모습이 참 인상적이었습니다. nbsp 제주법당은 작년 4월 29일에 개원하였기 때문에 스님께서는 개원전 3월에 와보시고, 개원후인 5월에 강좌를 하여 개원후에 제주 법당을 방문해보았다고 하시면서 불대생들이 주축이 되어서 참 좋다고 하셨습니다. 어제 밤에 내려와서 오늘 돌문화공원에서 김제동씨와 함께 스승의날 기념 특집 촬영을 하느라 이렇게 강연 직전에 참가하게 되었다고 양해를 구하였습니다. 그런 가운데에서도 새로 부임하신 원희룡지사님에 대한 도민들의 의견은 어떤지도 들어보시고 또 말씀도 해주셨습니다. nbsp 오늘 강연 봉사자중 어떤 거사님께서는 집사람으로 인하여 작년 가을불대에 입학하게 되었다고 하시면서 제주 문예회관 대강당은 좌석이 23도 차기가 아주 힘든데, 오늘은 1층은 좌석이 다 찾고, 2층도 거의 다 찬 것에 대해서 너무 감동을 받았고, 또 스님의 말씀도 불교대학 공부하면서 이치에 맞아 너무 감동을 많이 받았다고 감사하다고 인사를 전하였습니다. 그런데 회사에서 종교문제로 상사와 갈등을 겪고 있다고 하면서 상사는 기독교인인데 제가 불교인이라는 것을 알게된 이후로 너무 불이익도 주고 힘들게 하여 갈등이 있는데 어떻게 하면 좋을지에 대해서 여쭈었습니다. nbsp nbsp 스님께서는 “우리나라 기독교인들은 약간 편협된 면이 있으므로 감수해야 한다고 하셨습니다. 원래 불교를 믿어서 불이익을 당하는데도 믿는 것이 진정한 불교인입니다. 신앙을 믿어 이익을 본다면 그것은 진정한 신앙이 아닙니다. 초기 기독교신앙도 이렇게 순수했기에 파워가 있었습니다. 기독교인들이 로마 귀족의 하녀로 들어가서 부인을 교화했는데 이것은 아래로부터 교화를 한 사례입니다. 부부가 싸워서 괴로울 때 하녀가 엄마처럼 보살펴 주었기 때문에 하녀에게 의지를 하게 되니 기독교를 받아들이게 된 것입니다. 그리고 남자들도 권력투쟁으로 힘들어할 때 부인에게 의지하니 남편이 기독교를 받아들이게 되었고, 결국 로마도 밀라노 칙령으로 기독교를 공인하게 되고 결국에는 로마의 국교가 되었습니다. 초기 기독교는 권력과 세속적인 힘이 아니었습니다. 신앙은 약간 손해를 보는 것입니다. 손해를 보면서도 이것을 지킬 필요가 있다고 하면 이것은 신앙이고, 이익을 볼려고 한다면 이것은 신앙이 아닙니다. 사장이 불교인인데 나도 같은 불교인라서 이익을 본다면 이것은 신앙이 아닙니다. 불교인들은 절대로 다른 종교인들에게 기죽을 필요가 없습니다. 제주도민 전체가 기독교인이고 나혼자 불교인이라도 괜찮습니다. 20년전 시민운동단체에는 불교가 없었고 거의 99퍼센트가 기독교인이었습니다. 그래서 절에 초대해서도‘목사님 기도해주세요’라고 식사기도 해달라고 합니다. 이렇게 먼저 열어버리고 평등하게 하면 목사, 신부, 스님 이 191에서 이제 차례로 목사, 신부, 스님 이렇게 31이 됩니다. 그러니 기죽지 말고, 그렇다고 불교인이라고 표시를 너무 낼 필요가 없습니다. 열심히 수행정진 하시길 바랍니다” 라고 말씀 해주셨습니다. 그리고 자리를 마칠려고 하니, 활동가 보살님께서 스승의날 기념 카네이션 화분을 자녀와 함께 가지고 와서 스님께 감사의 인사로 드리고, 활동가 모두 스승의 날 기념 노래를 부르니 가슴이 뭉클하였습니다. nbsp nbsp 그렇게 해서 10시경에 강연장을 떠나 숙소로 도착하니 11시가 되었습니다. 스님께서는 내일 4시30분에 함께 기도하고 바로 공항으로 출발하자고 하시면서 밤에 모든 짐을 정리하자고 하셔서 함께 뒷정리를 하고 휴식을 취하였습니다. 이렇게 오늘도 아침부터 많은 일정을 소화하셨지만 함께 해서 더 행복하고 소중한 시간이었습니다. 내일은 저녁에 대구에서 청년대학생을 대상으로 한 즉문즉설이 있습니다. nbsp

2015.05.14. 23,749 읽음 댓글 30개

2015.5.12. 광주 시각장애인연합회 강연, 고 해관 장두석 선생님 49재를 맞이하여

nbsp nbsp nbsp 어제 창원강연이후 마산법당에서 주무신 스님께서는 새벽예불과 기도를 마산법당 대중 약 15여명과 함께 하였습니다. 기도후 대중들은 스님께 삼배를 올렸고, 스님께서는 새벽예불에 매일 나오는 사람을 확인한 후 “기도든 운동이든 매일 정기적으로 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매일 하루도 빠지지 않고 하다 보면 주위의 혼란스러움들이 빨리 잠잠해집니다. 기도를 놓아버리면 나중에 더 혼란스러워 집니다.”라며 기도를 빠지지 않고 매일 정진하라고 하시면서 광주로 이동하셨습니다. nbsp nbsp nbsp 광주로 이동하는 중간에 휴게소에서 간단히 아침을 먹고 오늘 강의가 있는 ‘시각장애인연합회’사무실로 향했습니다. 오전 10시 30분쯤 광주 남구에 위치한 lt광주 시각장애인연합회gt에 도착하신 후 회장님과 간단히 차담을 나누시고 11시부터 강연을 시작하셨습니다. nbsp nbsp 강연전에 lt광주 시각장애인연합회gt 회장님등 지역 인사분들과 간단히 차담을 나눈 후 강연장에 들어가셨습니다. 100여석이 넘는 강연장은 각계각층 인사들과 시각장애인, 봉사자들로 입추의 여지없이 만석을 이루었습니다. nbsp 강연에 앞서 lt광주 시각장애인연합회gt에서는 스님께서 많은 희망과 가르침을 주셨다고 감사패와 선물을 증정한 후 강연을 시작하였습니다. nbsp nbsp 앞을 보지 못하는 시각장애인들이지만 스님의 강연을 마음으로 듣고자 모인 그들을 보며 가슴 뭉클한 감동이 전해졌습니다. nbsp “이 세상의 진실은 눈에 보이는 것이 다가 아닙니다. 눈에 보이지 않는 것을 볼 수 있을 때 진짜 보는 것입니다. 진실을 볼 수 있는 눈이 있다면 다른 사람보다 더 행복해질 수 있습니다. 마음의 눈을 어떻게 뜰 것이냐 하는 이야기를 하고자 합니다.”라고 말문을 여신 후 시각장애인들에게 희망의 메세지를 전달하셨습니다. nbsp “이 세상에 타고난 그 어떤 것도 죄가 아닙니다. 장애는 약간 불편할 뿐 열등한 것이 아닙니다. 그것은 팔자 탓도, 전생의 죄 탓도, 하느님의 징벌도 아닌 그냥 하나의 조건인 것입니다. 우리에게 주어진 조건에 만족하고 그것을 긍정적으로 활용할 수 있어야 합니다. 있는 것은 있어서 좋고, 없는 것은 없어서 좋다고 생각하며 긍정적으로 받아들일 때 행복을 느낄 수 있는 것입니다. 마음의 열등의식을 없애고 내 자신이 자랑스러울 때 바로 행복으로 가는 지름길이 열리는 것입니다. 가장 중요한 것은 바로 “마음”인 것입니다.” nbsp nbsp 스님의 긍정에너지를 받은 시각장애인 청중들의 즉문즉설 시간이 이어졌습니다. 2명의 시각장애인과 2명의 일반인이 질문하였습니다. 그 중 기독교인 시각장애인의 즉문즉설을 소개하겠습니다. nbsp “예수를 믿는 시각장애인입니다. 인간은 모두 태어날 때 선량하게 태어나는데 살아가다 보면 9개 가진 자가 1개 가진 사람의 것을 빼앗아 10개를 채우려는 욕심이 생기고, 경쟁을 하게 되고, 고민에 빠지게 됩니다. 지금 저와 경쟁중인 사람을 용서해야 하는데 잘 되지 않고 번민에 쌓여 있습니다. 어떻게 해야 할까요?” nbsp “용서하는건 쉽지 않습니다. 마음속에 저 사람은 나쁘다고 생각하는데 어떻게 용서가 되겠습니까? 현실적으로는 불가능합니다. 기독교 신자라고 하니 예수님의 가르침 속에서 답을 찾아보겠습니다. 예수님은 ‘그 사람이 나쁜 짓을 했지만 용서해 주라.’고 가르치지 않았습니다. ‘그 사람은 나쁜 사람이 아니다.’ 라고 하는 것이 바로 용서인 것입니다. 상대를 세 번은 봐주는데 네 번은 안 봐주는 것은 참는 것이지 용서가 아닙니다. 예수님은 돌아가실 때 십자가에 자신을 못박은 자들에게 ‘주여, 저들을 용서 하소서.’ 라고 하셨는데, 반드시 그 뒷구절을 보면 ‘저들은 자기 지은 죄를 모르옵니다.’라고 되어 있습니다. 이 부분을 잘 봐야 됩니다. nbsp nbsp 예수님을 못박은 그 두 사람은 지금의 교도관입니다. 자기의 직업이므로 그들은 죄의식이 없습니다. 횟집에서 회를 뜨는 사람이 죄의식이 있을까요? 도살업자들이 죄의식이 있을까요? 그들은 그저 직업일 뿐입니다. 그들을 가장 잘 이해한 사람이 예수님입니다. 상대편의 처지를 올바르게 이해하신 분입니다. 그들이 죄가 없다는 것을 아는 것이 진정한 용서입니다. 우리는 용서했다가도 분에 못 이겨서 자다가도 벌떡 일어납니다. nbsp 돈을 빌려 주었는데 못 받았다면 상대방에게 ‘왜 갚지 않느냐?’고 한번 물어 보세요. 그러면 그 사람은 ‘지금 돈이 없어서 못 갚은 것을 어떡하냐?’고 할 것입니다. 내 입장에서는 물론 아니지만 그 사람 입장에서는 그럴 수도 있겠구나라고 생각하며 기도하세요. 그러다 보면 저절로 용서가 됩니다. 예수님은 자기를 죽인 사람도 용서하는데 돈 떼먹은 사람도 용서 못한다면 내가 어찌 크리스천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까? 돈 떼먹거나, 나를 욕한 사람 정도는 용서할 수 있어야 지금 보다 더 나은 삶을 살 수 있지 않을까요. nbsp nbsp 본래 ‘네가 옳다, 내가 옳다.’라고 할 것이 없습니다. 다 자기 생각대로 사는 것입니다. 죄는 실컷 지어놓고 예수 믿으면 천당 간다는 것은 이치에 맞지 않습니다. 예수님께서 내 죄를 대신 받아 준다고 하셔도 ‘제 죄는 제가 받겠습니다.’ 라고 해야 맞는 것입니다. 여러분들이 기복신앙으로 예수님, 부처님을 믿는 것은 이제 뛰어 넘어서야 합니다. 우리들의 어리석은 생각을 깨우쳐주는 것이 바로 진정한 종교입니다. 이제 우리는 어리석은 잘못된 신앙을 버리고 ‘진실’에 접근해야 합니다. nbsp 사랑이라는 것은 그 처지를 이해하는 것입니다. 최소한 미워하지는 말아야 합니다. 이것이 성인의 가르침입니다. 용서를 못하면 내가 괴롭고, 용서를 하면 내가 행복합니다. 그 사람 때문에 내가 괴로울 이유가 없고, 괴로우면 나만 손해인 것입니다. 용서를 하려면 이해해야 하고, 생각을 바꿔야 합니다.” nbsp nbsp 스님으로부터 ‘용서’의 진정한 의미에 대해 들은 많은 사람들이 큰 박수로 스님의 법문에 답하였습니다. 오후 12시가 훨씬 넘어서까지 이어진 즉문즉설을 마치고, 스님께선 참석한 시각장애인들과 일일이 악수를 나누시며 오전 일정을 마무리 하셨습니다. nbsp nbsp 그리고 여느 때처럼 바쁜 일정으로 간단히 점심식사를 마치신 후 오후 일정이 있는 전남 화순으로 향하셨습니다. nbsp 전남 화순군 이서면 ‘민족생활관’에서는 스님과 개인적인 친분이 두터우셨던 해관 장두석 선생의 49재 추모행사가 열렸습니다. 장두석 선생은 ‘한민족생활문화연구회’ 이사장으로서 통일운동과 민족생활의학 전파에 힘쓰셨던 분으로 지난 3월 25일 별세하셨습니다. 양현당 앞마당에 차려진 추모행사장에는 유가족들과 지역 인사들, 스님의 즉문즉설을 듣기 위해 자리한 일반인들 등 모두가 선생을 추모하는 마음으로 한자리에 모였습니다. nbsp nbsp 특히 선생의 뜻을 기리는 이애주 서울대 명예교수의 추모의 춤이 한껏 분위기를 고조시켜 모두가 하나 되어 진심으로 고인의 극락왕생을 기원하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이어서 스님의 추모사가 있었습니다. nbsp “오늘 장두석 선생님 49재에 많은 분들이 참석해 주셔서 대단히 감사드립니다. 불교에는 ‘불생불멸’, ‘불래불거’라는 말이 있습니다. 태어남도 없고 죽음도 없다. 온nbsp 것도 없고 가는 것도 없다는 뜻이지요. 그러니 태어난다고 기뻐할 것도, 죽는다고 슬퍼할 것도 없고, 또한 온다고 좋다 할 것도 없고 간다고 싫어할 것도 없다는 의미입니다. 늘 평정심을 유지하라는 말씀입니다. 파도를 보면 늘 생기고 사라집니다. 그러나 바다 전체를 보면 사실은 파도는 사라지는 것도 생기는 것도 아닌 그냥 출렁거리는 것뿐입니다. 장두석 선생께서는 출렁이는 바다처럼 죽음에 대한 두려움이 없으셨기 때문에 흔들림이 없으셨던 것 같습니다. 죽음에 대한 두려움이 없다면, 죽어서 좋은데 가거나 나쁜데 간다는 게 없습니다. 우리에게 다만 남은 것은 선생께서 남기신 뜻을 함께 추진해나가야 한다는 것입니다. 오늘 49재를 지냈으니 슬퍼하지 말고, 선생이 하시고자 하셨던 일, 즉 민족통일과 남에게 건강을 의지하지 말고 자기 스스로 몸을 잘 챙겨서 건강하게 사는 삶을 살아가야 합니다. 또한, 마음을 맑고 발고, 가볍게 가져서 행복하게 살아야 합니다. nbsp nbsp nbsp 우리는 아픔을 경험해야 건강의 소중함을 알 수 있습니다. 아픈 환자보다 귀한 의사는 없습니다. 아파봐야 앞으로 건강할 길을 찾게 됩니다. 환자 자신이 가장 큰 의사인 것입니다. 그리고 중생 없이 부처 없다는 말처럼 괴로움에 물들지 않을 때 진정한 해탈을 할 수 있습니다. 아픔에 여여할 때 그것이 진짜 해탈인 것입니다. 그래서 선생께서는 아픔마저도 사랑하라고 가르치신 것 같습니다. 선생께서 ‘병도 우리 몸의 한 부분이다.’는 관점에서 우리에게 몸이 아프지 않는 삶을 살도록 추구하셨다면, 저는 마음이 괴롭지 않는 삶을 살 수 있는 것을 추구하고 있습니다.” nbsp 스님께서는 아픔과 죽음앞에서도 진정 행복할 수 있는 길을 말씀해주셨습니다. nbsp 그리고 이어진 즉문즉설에서는 4명의 질문자가 세월호 문제에서부터 통일문제, 개인적인 문제까지 다양하게 질문하였는데, 그 중 두 가지 질문을 소개하겠습니다. nbsp “대학원을 다니고 있습니다. 세월호 집회를 참여하고 있는데, 요즘 들어 가장 화가 나는 것은 진실이 아직 해결되지 않은 상태에서 일부 국민들은 벌써 ‘지겹다.’ ‘이젠 그만하자.’ ‘그들로 인해 교통이 막힌다.’는 등의 반응들을 보이고 있습니다. 이에 너무 분노가 일고, 심지어 그들이 금수로 보이며 이해가 가지 않습니다. 이 상황을 어떻게 이해해야 합니까?” nbsp nbsp “피장파장입니다. 그 사람이 세월로 진상규명 집회를 보고 지겨워 하는 것이나 당신이 그 지겨워 하는 사람을 보고 분노하는 것이나 다 마찬가지입니다. 원래 사람은 그렇습니다. 너무 기대하면 안됩니다. 사람은 때론 짐승보다도 못하기도 하고 어쩔 때는 나을 때도 있습니다. 짐승은 자기 새끼를 끝까지 보호하지만 사람은 그렇지 않기도 합니다. 하지만 인간이 부모를 모시는 것을 보면 짐승보다 나은 면도 있습니다. 자연상태가 제로 베이스라면 짐승보다 나으면 선이고 , 짐승보다 못하면 악이라고 합니다.” nbsp “그럼 인간에 대한 기대를 낮춰야 합니까?” nbsp “동물보다는 나아야 된다고 생각합니다. 동물 정도만 되어도 이 세상은 이렇게 시끄럽지 않을 것입니다. 동물은 자기가 먹을 먹잇감만 죽이지만, 사람은 무슨 이념이니 신념이니 외치며서 수백만 사람들을 죽이는 것을 당연시 합니다. 기대가 크면 실망이 크고, 기대가 작으면 만족이 큽니다. 질문자는 인간에 대한 기대가 너무 큰 것 같습니다. 그래서 실망하지요. 저는 인간을 한갓 짐승으로 보기 때문에 사람들이 다 괜찮아 보입니다. nbsp 그리고 기분 나쁜 얘기도 들을 줄 알아야 합니다. 당연히 진상규명 해야 되는 건 알지만 그들이 안하겠다는걸 어떻게 할 것입니까? 세월호가 발생하게 된 원인에 무슨 문제가 있으니까 정부는 진상을 밝히지 않으려고 하는 것 아니겠어요? 그들이 밝히지 않으려고 하는 것을 그냥 당연하게 받아들이고, 그런 위에서 우리 스스로가 밝히도록 노력해야 됩니다. 세월호 진상규명에 일부 국민들이 나서지 않는 것은 어쩔 수 없습니다. 그들을 욕해봤자 본인 에너지만 낭비됩니다. 울분을 토하는 감정은 이해되지만 올바른 해결책은 아닙니다. 도저히 안되면 이번 정부에서는 이 정도까지 밝히고, 못 밝힌 것은 다음 정부에서 밝힐 수 있도록 에너지를 비축하는 것도 좋은 방법입니다. 세상은 우리가 원하는 대로, 또는 순리대로 다 되지 않습니다. 어리석지 않고 현명하게 대응해야 합니다. 생각이 다른 이들을 포용하고 시간을 두고 효과적으로 해결해 나가야 할 것입니다.” nbsp nbsp 스님 말씀을 들으면서 비단 세월호 문제만 국한된 것이 아니라, 어떤 일이든지 인간의 마음작용을 이해하고 상대를 포용하는 것이 바람직함을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nbsp “매사 좌와 우, 남과 북, 보수와 진보로 갈라져 있는 현 시대 상황에서 일반인들은 통일에 대해 어떤 관점을 가지고 살아야 하며, 물질적 지원 부분은 무엇이 있을까요?” nbsp “통일에는 두 가지 길이 있습니다. 우선 눈 앞의 이익을 떠나 민족공동체 차원에서 생각해야 합니다. 예를 들어 노모가 병 들어 수술비가 천만원 든다면 가족들이 수술 여부를 결정할 때, 노모가 앞으로 살아계시면서 천만원 이상 벌 수 있을까라고 계산하지 않고 그냥 살아 계시는 것만으로 만족하며 치료합니다. 가족은 경제적 이익을 따지지 않습니다. 경제문제를 떠나 이산가족의 한을 풀고, 민족의 한을 풀며 민족정기를 되찾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첫 번째로는 경제적 측면을 넘어서는 자세를 가져야 됩니다. nbsp 그러나 가족공동체가 붕괴되어 가고, 물질 만능주의가 팽배해진 현 시대에서 경제적 문제를 외면할 수만은 없습니다. 특히 통일을 반대하거나 무관심한 사람들에게 통일의 중요성을 강조하기 위해서 경제적 이익이나 발전을 설명하고 설득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민족적 문제를 경제적으로 접근해서는 안되지만 젊은이들에게는 통일이 경제적으로 이익된다는 것을 설명해줘야 할 필요성이 있습니다. nbsp nbsp 우리나라는 지난 50년간 경제적으로 급속하게 성장했기 때문에, 사람들은 앞으로도 계속 성장할 것이라고 믿고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나라는 지난 수 십년간 미국과 일본이라는 모델을 정해 놓고 그야말로 충실하게 따라 하기 식의 모방방식을 취해왔습니다. 그래서 어느 정도 압축성장은 가능하였으나 이제는 더 이상 성장 동력이 고갈되고 소진하여 갈수록 저성장률을 거쳐 어느 순간 정체 되고 마이너스 상태까지 이르는, 일본의 전철을 답습하게 될 것입니다. nbsp 모방경제의 덫에 걸려있는 사회 전반적인 시스템을 창조경제로 바꾸어 가야 할 것입니다. 그러나 말처럼 창조경제가 쉬운 것은 결코 아닙니다. 이미 모방과 순종에 길들여진 사회 전체의 분위기에 이름뿐인 창조를 억지로 가미한다고 진정한 창조가 되는 것은 결코 아닙니다. 창조란 교육, 사회 전반적인 부분에서의 대대적인 변화가 필요하며 거기에 따르는 시간과 비용은 감수하여야 합니다. nbsp 이런 상황에서 우리나라의 현재 한계점을 극복할 만한 기회이자 수단은 바로 한반도 통일 뿐입니다. 하루빨리 통일을 실현하여 북한에 투자하고 개발, 발전시키면 10여년 이상은 경제를 활성화 시키고 다방면에서 창조경제를 가능케 할 수 있습니다. 한반도를 한번 더 업그레이드 시키기 위해서는 통일문제를 해결하지 않고서는 답을 찾을 수 없습니다. 통일과 더불어 창조는 그 잠재력을 발현 시킬 수 있는 중요한 요소인 것입니다. 다양한 대중문화를 발전시키고, 흑백 논리에서 벗어나 다양성이 인정되는 교육과 사회 전반적인 시스템이 갖춰져야 할 것입니다. nbsp 그리고 한반도의 분단으로는 동아시아의 평화가 이뤄질 수 없습니다. 통일 한국은 남북통일 그 자체로만 머무는 것이 아니라, 한국이 주축되어 한, 중, 일 동아시아의 평화와 이익까지 챙길 수 있는 좋은 기회인 것입니다. 한국이 동아시아의 중심국가로 서게 되면 천년의 영광을 재현할 수 있습니다. 우리 조상들이 청동기 문명에 안주할 때 중국은 철기문명을 고도로 발달시켰습니다. 우리는 철기문명을 외면해서 한나라 때 고조선이 멸망하였고, 그 후에 중국 문명이 계속 우리에게로 흘러들어왔습니다. 그래서 문명적 열등의식이 있었지만, 최근 3040년 동안은 우리 문화가 중국으로 계속 흘러 들어가고 있습니다. 문명의 역전현상이 일어나고 있습니다. 문명의 중심이 되기 위해서는 기술은 물론이며 물량과 더불어 가장 중요한 것이 바로 창조성인 것입니다. 창조성에 대한 태도를 봤을 때 중국은 멀었지만, 통일이 된다면 한국은 창조성을 가질 확률이 높습니다. 그리고 통일이 되기 위해서는 통일 지향적 정부를 구성하는 것이 가장 좋은 방법입니다. 정부의 정책이 통일에 도움 되도록 재설정하는 것이 급선무입니다.” nbsp nbsp 스님의 명쾌한 통일에 대한 당위성과 방법론을 듣고 나니 한층 더 통일이 실감나고 간절해지는 순간이었습니다. 자리하신 모든 이들이 통일의 염원으로 한 마음, 한 뜻이 된 것 같았습니다. 그리고 참석자 모든 분들이 민요를 합창하며 밝은 분위기속에서 추모행사를 마무리 하였습니다. nbsp 스님께선 광주일정을 마치시고 제주도로 출발하기 위해 서둘러 공항으로 발걸음을 옮기셨습니다. 저녁 7시 50분 광주공항을 출발하여 밤 9시 40분경 제주공항에 도착하였습니다. nbsp nbsp 도착해서 제주정토회 활동가들과 인사한 후 바로 제주도 원희룡지사님을 만나러 갔습니다. 제주강연때문에 제주에 온다는 소식을 들은 원희룡지사님은 스님께 인사를 드려야 한다면서 스님을 뵈었습니다. 스님께서 원지사님이 제주지사가 되고 나서 처음 만나는 자리여서 도정을 운영하면서 어려움은 없는지 등을 물으셨고 원지사님도 어려운 점 만이 아니라 재밌는 이야기들도 함께 나누었습니다. nbsp 밤 11시 30분에 미팅일정을 마치시고 오늘 묵을 숙소로 이동하기 위해서 공관을 나오시니 사모님께서 숙소에서 드시라고 제주도 명물 오메기떡 등 기타 먹거리를 주셨습니다. 스님께서는 원지사님 부부에게 인사하고 서둘러 오늘 숙소가 있는 서귀포시 안덕면 대평리를 향해서 출발하였습니다. 네비게이션으로 검색해보니 약 50분정도 소요되는 것으로 나왔으나 초행길이고 밤길이라 한시간 정도 걸려서 숙소에 도착했습니다. nbsp nbsp 숙소에는 김제동씨가 힐링캠프 촬영팀들과 함께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김제동씨는 스님을 스승님으로 모시고 계셔, 스승의 날 기념으로 방문한 것입니다. 스님께서는 김제동씨와 반갑게 인사하며, 힐링캠프에서 어떻게 스승의 날 특집으로 신부님, 목사님도 많은데 나를 찾아왔냐고 말씀하시며 웃으셨습니다. 스님과 김제동씨의 이야기가 시작되자, 두 사람의 첫 만남부터 구정날 스님께서 손수 방의 불을 때어서 김제동씨 잠을 재운 이야기, 아침을 준비해서 총각 둘이서 함께 먹고, 슬리퍼 신고 10km 산행한 이야기 등을 하면서 훈훈한 시간을 가졌습니다. 김제동씨는 이야기 도중에 얼떨결에 스님께 인사를 하지 못했다고 하면서, 정성스레 삼배로 인사를 올렸습니다. 워낙 스님께서 늦게 도착해서 1시가 넘어서야 마무리 하고 촬영팀은 제주시로 돌아가고 김제동씨만 남아서 함께 숙박하였습니다. nbsp nbsp 오늘 숙소를 제공해주신 보살님께서도 스님께 삼배로 인사 올렸습니다. 보살님은 그동안 비어있던 집이라 청소하고, 집 문도 열어준다고 서울에서 직접 내려오셨습니다. 그래서 스님께서는 보살님께 감사하다고 하시면서 책을 선물해주셨습니다. 보살님은 내일 아침 직장때문에 새벽 비행기로 다시 서울가야 해서, 늦은 밤에 제주시로 나가시면서 스님께 편안히 지내시다 가라고 인사하셨습니다. 스님께서는 촬영팀들과 제주시로 나가는 모든 사람들을 배웅하셨습니다. 그리고 집주변을 둘러보시고 집으로 다시 들어와 김제동씨와 그간의 얘기를 하셨습니다. 스님의 컨디션이 조금 좋지 않아서 내일 애기를 더 하기로 하고 두시가 넘어서 스님께서는 방으로 들어가셔서 휴식을 취하였습니다. 내일은 제주에서 희망강연이 있습니다.

2015.05.13. 20,513 읽음 댓글 20개

2015.5.11. 애광원 나들이, 창원희망강연

nbsp nbsp nbsp 오늘은 거제 애광원 장애우들과 봄나들이가 있는 날입니다. 이번 봄나들이는 애광원 장애우들 중 거동이 어느 정도 가능한 경증 장애우와 함께 진주, 사천 일원으로 떠나게 되었습니다. 어제 문경수련원에서 특강, SBS 촬영, 수행대중법회를 하신 후 스님께서는 문경수련원에서 주무시고 오늘 새벽 대중과 함께 예불, 기도 후 5시 30분에 바로 진주로 향했습니다. 가다가 칠곡 휴게소에서 간단한 아침식사를 한 후 오전 9시반경에 진주성에 도착하니 마산, 거제, 내서, 함안 정토법당 봉사자들이 먼저 와서 애광원 원생들을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이윽고 진주성 북문에 애광원 원생을 태운 버스가 도착하자 봉사자들이 줄을 지어 따뜻이 환영하였습니다. 법륜스님께서 김임순 애광원 원장님을 반갑게 맞이해주셨습니다. 차에서 내리는 원생들 한 명씩에게 오늘 하루 동안 단짝이 되어 함께 할 봉사자 한 명씩을 맺어주고 본 일정에 들어갔습니다. nbsp nbsp 먼저 임진왜란 때 진주성대첩을 이끌었던 김시민장군 동상 앞에서 다함께 기념사진을 찍었습니다. 임진왜란 3대 대첩 중의 하나인 1차 진주성전투를 이끌었던 김시민장군은 셀 수조차 없는 화살을 쏘느라 엄지와 식지가 잘라져나갈 정도로 항전하여 승리를 거두었다고 합니다. 그리고 2차 진주성전투에서 성이 함락되어 7만여명의 군인과 백성이 학살당했던 처절한 역사를 전해들으면서 장애우나 봉사자 모두 숙연한 마음을 금할 수 없었습니다. nbsp nbsp 그리고 바로 옆 우리나라 3대 누각으로 손꼽히는 촉석루와 논개를 모시는 사당인 의기사를 들러 아름다운 남강의 정취를 보며 논개의 충절을 다시금 되새기는 시간도 가졌습니다. 스님께서는 논개가 왜장과 함께 남강에 몸을 던졌던 의암까지 내려가서 잠시 합장하며 의암에 서린 호국의 얼을 기리기도 하셨습니다. nbsp nbsp 진주성 안에는 국립진주박물관이 있지만 월요일에는 휴관일이라 애광원 원생들과 봉사자들은 진주성의 성곽을 따라 걸으며 진주성을 관람하였습니다. nbsp 스님께선 진주성전투에서 전사한 분들을 따로 모시는 사당인 창열사를 참배하고 바로 옆의 호국사에 들렀습니다. 호국사는 원래 내성사란 이름의 절이었으나, 2차 진주성전투에서 성과 함께 운명을 같이한 승병들의 넋을 기리기 위해 숙종 때 호국사란 이름으로 재건하였다고 합니다. nbsp 스님께서 호국사에서 부처님 전에 삼배를 올리고 나오자 애광원 원생들과 봉사자들은 잔디밭에서 한참 레크리에이션을 즐기고 있었습니다. nbsp nbsp 원래 레크리에이션 프로그램을 알차게 준비했지만, 일부만 계획대로 진행하였습니다. 그럼에도 예상치 못했던 다채로운 프로그램으로 모두가 함께 되는 즐거운 시간이 되었습니다. 애광원 원생들은 워낙 적극적으로 자신들이 갈고 닦은 노래와 춤을 자랑하였고 봉사자들 역시 함께 흥에 겨워 즐겼습니다. 몇몇 원생들은 스님과의 재회가 기쁜 나머지 스님께 거리낌없이 애정 표현을 하여 모두 박장대소 하였습니다. 원생들은 멍석만 깔아주면 사회자가 연이어 “줄을 서시오”를 외쳐야할 만큼 잘하고 못하고를 상관하지 않고 마음껏 노래하고 춤췄습니다. nbsp nbsp 정말 신나고 즐거웠던 레크리에이션은 점심시간에 걸려 아쉽게도 중단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점심은 진주성에서 20분 정도 이동하여 사천의 원산면옥에서 맛있는 갈비탕을 먹었습니다. 오전에 진주성을 둘러보느라 제법 걷고 또 흥겹게 놀았던 탓에 모두 시장기를 느껴 너무나 맛있게 식사를 할 수 있었습니다. 장애우들과 봉사자들도 대부분 스스럼없이 친해져 다정하게 손잡고 다니고, 식사도 함께 챙겨주는 모습이 무척 아름다웠습니다. nbsp 점심식사 후 예정대로 사천의 항공우주박물관을 관람하였습니다. 이 박물관은 사천공항 인근에 조성된 항공우주산업단지 가운데 위치하여 우리나라 항공산업의 수준과 전망을 보여주었습니다. 박물관 야외에는 과거 우리나라 대통령 전용기를 비롯하여 한국전쟁 때의 B29폭격기부터, 수송기, 전투기 등이 넓은 정원에 빼곡하게 전시되어 있었습니다. 큰 비행기는 내부에 직접 들어가볼 수 있어 호기심 많은 장애우들이 무척 즐거워하였습니다. nbsp nbsp 실내전시관에 들어오니 사천의 항공우주산업단지의 자부심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실내전시관은 항공산업과 우주산업, 그리고 한국전쟁의 3가지 전시관으로 이루어져 있었습니다. 딱딱한 지식 중심의 해설은 짧게 마무리하고 박물관 정원에서 종이비행기 만들기와 날리기 시합을 하였습니다. 자신이 만든 종이비행기를 가운데 표적까지 날리느라 여념이 없었는데, 법륜스님께서 만든 종이비행기는 제트기처럼 잘 날아 모두가 감탄하였습니다. 애광원 원장님께서도 의욕적으로 날렸지만 그만 발 아래로 곤두박질해 우리에게 큰 웃음을 주셨습니다. nbsp nbsp 종이비행기 날리기가 마무리될 때쯤 본격적으로 비가 내리기 시작해, 박물관 매점 앞에서 애광원 인솔교사님 주도하에 다시 레크리에이션 시간을 가졌습니다. 오전에는 노래가 중심이었다면, 오후에는 그야말로 본격적으로 춤 솜씨를 자랑하는 시간이었습니다. 애광원 원생들은 마치 이날을 위해 평소 연습이나 한 것처럼 모두 조금도 주저하지 않고 음악에 맞춰 율동을 뽐냈고, 짝을 이룬 봉사자들도 손에 이끌려 모두 광란의 도가니가 되었습니다. 매점 사장님이 계속 웃으며 지켜보더니 아이스크림을 박스째로 찬조하셨습니다. nbsp nbsp 그리고 하시는 말씀이 그동안 박물관에 여러 장애인학교나 단체에서 관람오면 봉사자들이 장애우에게 함부로 대해서 실망스러울때가 많았는데, 오늘 JTS 봉사자들의 헌신성을 보고 무척 감동했다고 합니다. 오전에 진주성에서도 레크리에이션을 지켜보던 중년 신사분이 너무 보기 좋다며 후원방법을 물어봐서 JTS 활동을 설명드리고 홈페이지를 가르줬습니다. 자원봉사자들의 마음이 있는 그대로 전달되는 것 같아 무척 기분 좋았습니다. nbsp nbsp 흥겨운 여흥을 마무리하고 모두 들뜬 마음으로 다시 저녁식사를 위해 진주 남강변으로 자리를 옮겼습니다. 식사 전 애광원 김임순원장님께서 법륜스님께 감사의 표시로 원생들의 정성이 담긴 선물을 증정하였고, 스님께선 애광원 인솔교사분들에게 스님의 책을 선물하였습니다. 김임순원장님은 인사말에서 “애광원의 교사 1명이 원생 6명을 담당하는 구조여서 평소 원생들을 먹이고 씻기는 일만해도 일손이 부족해 이렇게 나들이하는 일은 엄두를 못냅니다. 매년 두 번씩이나 정토회에서 이렇게 순수한 사랑으로 하루종일 밝게 원생들의 손을 잡고 함께해주시니 무어라 감사의 표현을 하기에도 벅찹니다. 원생들에게는 너무나 좋은 경험이자 소중한 시간이 되고 있습니다”며 거듭 스님과 봉사자들에게 감사인사를 전해 듣는 우리들이 송구스러울 정도였습니다. nbsp 스님께서는 “원생들의 건강 때문에 멀리 나들이하는 것을 어려워했는데 다음부터는 좀더 새롭고 의미있는 곳으로 가는 것도 생각해봤으면 좋겠습니다. 너무 즐거운 시간을 함께하여 우리도 큰 힘을 얻게 되었습니다”며 늘 행복하고 건강한 모습으로 다시 뵐 것을 당부하셨습니다. nbsp nbsp 뒤이어 오늘 행사 사진을 즉석에서 일부 편집해 동영상으로 감상하며 너무나 유쾌, 상쾌, 통쾌했던 시간을 돌아보았습니다. 저녁식사 후 원생들과 봉사자들은 석별의 인사를 나누었습니다. 짧은 한나절의 추억에 불과하지만 함께 두손 꼭 잡고 걸었던 길과 나누었던 웃음들이 있기에 아쉬운 마음은 결코 작지 않았습니다. 몇번 애광원 나들이를 함께 한 사람도 이 시간이면 항상 느끼는 그 짠한 마음, 그 마음을 있는 그대로 담아 다음 나들이를 기약하며 애광원 친구들을 빗속에 배웅하였습니다. nbsp 스님께선 창원 강연 때문에 바쁜 걸음을 옮기셔야 했고, 봉사자들은 많이 느끼고 배운 시간을 나누며 보람있고 행복했던 하루 일과를 정리할 수 있었습니다. nbsp 스님께서 강의하실 창원은 강연 시간이 가까워지면서 태풍 노을의 영향으로 하늘이 어두워지기 시작하였습니다. 강연을 준비한 봉사자들 가운에 몇분은 비바람 때문에 대중들이 많이 오지 않을까 걱정하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스님 강연을 들으려는 사람들은 이제 날씨에는 영향을 받지 않는 것 같습니다. 다섯 시 즈음 되니 접수대에 많은 사람들이 모여 스님 강의를 기다렸고, 질문자 접수도 금방 마감되었습니다. 오늘 강연은 청소년을 위한 문화공간인 늘푸른 전당에서 열렸습니다. 강당은 1,2층 합하여 648석이고 참가자 수는 723명이었습니다. nbsp nbsp 스님께선 강연 전에 장유분들이 주축이 되어 봉사하는 반야회와 다담을 가지셨고 반야회에서는 그동안 모은 돈을 스님께 좋은 일에 써 달라고 하셨는데, 스님께서는 이번 네팔지진피해지역 지원에 사용하겠다고 하셨습니다. nbsp 무대에 오르신 스님께서는 “비가 오는데도 많이들 오셨네요. 전 비가 와서 많이 안올 줄 알았습니다.”로 인사말씀을 하시면서 반가움을 표하셨습니다. 오늘 낮에 거제도 애광원 식구들과 진주 촉성루와 사천 우주 박물관에 다녀오신 이야기를 잠깐 들려주셨고, 지적 장애인들이 거주하는 애광원에 대한 소개도 잠시 해주셨습니다. nbsp nbsp 그리고 창원에 있는 봉림사지터에 대한 이야기를 해주셨습니다. “보통 사람들은 한국 불교의 역사를 고구려에 처음 불교가 전해진 AD 372년을 기준으로 잡아 1,600년으로 보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러나 사실은 인도의 한 왕국이었던 아유다국의 왕녀 허황옥과 왕족출신 장유화상이 지금의 마산인 합포에 도착하여 가야에 불교를 처음 접한 AD 48년을 기준으로 잡아서 불교역사는 2,000년이 됩니다. 지금도 인도에는 아요이다라는 지명이 있고, 가야시대의 탑으로 알려진 파사이 탑은 우리 나라에서 나지 않는 돌로 만들어져 있습니다. 허황옥은 김수로왕과 결혼하여 아들 열 명을 낳았는데, 한 명은 김해 김씨를, 또 두 명은 김해 허씨를 이었습니다. 그리고 나머지 일곱명은 출가하여 스님이 되었는데, 칠불암의 유래가 거기서 시작되었습니다. 그리고 봉림은 봉황이 알을 낳는 모양의 숲이라는 뜻인데, 가야시대 최초의 절인 ‘가야정사’가 있었고, 나중에 신라 말에 구산선문 가운데 하나인 봉림사가 지어졌습니다. 골짜기가 작아 보이지만 한때는 그곳에서 500여명의 스님들이 수행하였습니다. 부산, 마산, 김해 지역의 불심이 높은 이유도 그런 인연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김해시에는 지금도 장유면과 장유폭포가 있는데 장유화상의 이름에서 유래되었습니다.” nbsp 장유지역에 사는 분들이 주축이 되어 스님들을 후원하는 반야회라는 모임이 있는데, 오늘은 그분들이 지진이 난 네팔을 돕는데 써달라고 보시해주셨다는 말씀도 전해주셨습니다. 그분들의 보시에 관중들이 박수를 보냈습니다. nbsp nbsp 그리고 질문을 받기에 앞서 즉문즉설은 성경이든 불경이든 경전의 진리를 먼저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라 일상의 내 이야기를 먼저 한 후, 그 이야기를 바탕으로 깨달음에 이르도록 도와주는 길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자기 의심이나 자기 괴로움을 이야기 하는 것이지 주변 사람들의 괴로움이나 책에 적혀있는 것에 대해서 이야기 하는 것은 아니라고 안내해 주셨습니다. 질문은 결혼생활 27년중 20년간 늘 아프기만 한 남편을 둔 분, 수행에 관심이 있으나 죽음에 대한 두려움이 있는 부산 청년, 주인으로 살지 못하고 눈치만 보고 살아서 고민인 결혼 9년차 주부, 9년간 한 우물을 파다가 이제 다른 우물을 팔려고 준비하고 있고 후회하지 않는 삶을 살고 싶은 20대 청년, 칭찬만 듣고 싶은 아가씨, 스님은 사후세계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는지가 궁금한 청년, 나의 행복을 넘어 친구들의 행복까지 챙기고 싶은 30대 후반, 선택을 잘 하지 못하는 공무원 준비생인 2년차 젊은이 등 모두 여덟 분이 하셨습니다. nbsp 첫 번째 질문자의 내용입니다. “스님 남편은 늘 아프다는 말을 합니다. 결혼 생활 27년인데 20년간 그렇게 살고 있습니다. 1년에 너 댓 번, 한 달에 20일 정도 아프다고 합니다. 안 가본 병원이 없고, 천도제, 구병시식, 굿 등 안 해본 것이 없습니다. 병원에 가도 뚜렷한 병명이 없고, 자신은 열이 난다고 하는데 검사를 하면 정상으로 나와요. 아플 때마다 병원가면 똑같은 일이 벌어지니까 이제 병원에서도 오지 말라고 해요. 그리고 간호사들이 안와도 되는데 자꾸 온다면서 자기들끼리 수군거리는 것을 보면 제가 남편에게 화가 나요. 어떤 스님은 남편이 스님이 될 사주인데 스님이 안 되어서 아프다하여 스님이 되라고 해도 혼자서는 안 간다고 하고, 어떻게 마음을 가져야 할지요?” nbsp nbsp “남편이 아프기는 하지만, 일을 하면서 밥벌이, 용돈, 병원비를 자신이 번다면 별로 손해나는 일은 아니네요. 결혼을 했으면 남편 덕을 보고 싶은 것이 인지상정인데, 그 덕을 못 보는 것이 조금 아쉽기는 하지만, 손해를 끼치는 것은 아니잖아요? 아이들한테는 아빠가 있는 것이 좋고, 질문자에게도 남편이 없는 것보다는 있는 것이 좋지요. 그리고 아프다고 하지만 죽지는 않았잖아요? 그리고 20여 년간 그렇게 살아왔으니, 앞으로도 그 증상 때문에 갑자기 죽거나 하지는 않을 거니까 너무 걱정하지 마세요. nbsp 현대의학이 장기를 이식하고, 줄기세포를 이용하는 등 아주 발달된 부분도 있지만 아직 질병의 원인을 발견하지 못해 치료하지 못하는 것도 많아요. 입 돌아가는 것도 침 맞으면 바로 해결되지만 현대의학으로는 안되잖아요? 남편의 경우 육체적으로든 정신적으로든 아프니까 아프다고 하는 거예요. 지금까지 노력한 것을 보면 현대의학으로는 밝혀지지도 않고, 완치도 안되는 질환 같으니 밝히려고도 또 완치하려고도 애쓰지 않는 것이 좋아요. 죽을 병도 아니고, 돈이 많이 드는 것도 아니고, 그리고 자기가 병원비를 벌고 있으니, 너무 걱정 마세요. 남편이 아프다고 말하면 남편이 병원가자고 하기 전에 먼저 질문자가 병원에 데리고 가서 링거 맞고 돌아오도록 하세요. 현대의학으로 밝혀지지 않아도 남편은 통증이 있으니까 그렇게 하는 거예요. 억지로 일부러 20년간을 그렇게 할 수는 없는 거예요. 남편이‘병원 안가겠다’‘가봤자 소용없잖아?’라고 말하더라도 ‘이번에 가면 병명이 나올 수 있잖아?’하면서 좀더 적극적으로 남편의 아픔을 받아주세요. 남편의 병이 질문자를 괴롭힌 것이 아니라 남편이 아프다는 것을 핑계로 본인이 괴로워하는 거예요. nbsp nbsp 남편이 매일 술 먹어서 괴로운 게 나을까요? 아니면 1년에 대 여섯번씩 머리 아픈게 나을까요? 더 좋아지기를 바라지도 말고, 완치되기를 바라지도 말고 또 남편이 꾀병 부린다고 생각도 하지 마세요. 아픈 와중에도 살아갈 수 있게, 아프다고 하면 먼저 병원에 데려가세요. 이것이 성경을 빌어서 말하면‘5리를 가자면 10리를 가주라’‘겉옷을 달라면 속옷도 주어라’‘왼뺨을 때리면 오른뺨도 대줘라’정신이 아닐까요? 불교에서 말하면 ‘수처작주’가 되겠지요. 처하는 곳마다 주인으로 사는 것이지요. 성경이든, 불경이든, 과학이든 받아들일 수 있는 것은 무엇이든 받아들여 행복하게 살 수 있도록 하세요. 남편이 아프다하면 바로 병원가고, 대신 이제는 안수기도나 굿은 하지 않도록 하세요.” nbsp “네, 스님 고맙습니다. 그런 비용을 앞으로는 JTS에 기부하겠습니다”로 질문을 마무리하여 관중석에서 많은 박수를 받았습니다. nbsp nbsp 스님은 나머지 질문자들의 질문에 대해서도 정성스럽게 답변을 해주셨습니다. 사후세계에 대해서 이야기를 하는 것은 우리가 죽음에 대한 두려움이 있기 때문이고, 선택을 하지 못하는 것은 그 선택에 대한 책임을 지지 않으려는 자세 때문이라고 말씀해 주셨습니다. 좋은 사람, 착한 사람이 되려고 하는 것은 결국 칭찬받고 싶은 욕심에서 나오는 것이라고 말씀하시면서 내 원하는 대로 다 될 수 없듯이 우리는 다른 사람이 원하는 것도 다 해줄 수 없다는 현실을 직시하여야 한다고 하셨습니다. 할 수 있는 만큼 도와주고 힘이 미치지 못하면 미안하다고 이야기 하고 섭섭한 마음을 가진 상대로부터 욕 먹을 각오를 하여야 한다고 하셨습니다. 열심히 해보고 그리 해도 안되면 다른 우물을 팔 수도 있는 것이라고, 한 우물만 판다는 것에 매일 필요가 없다고 하셨습니다. 후회하지 않고 살 수 있는 방법은 나와 인연된 모든 것들을 좋게 생각하면 후회하지 않는다고 하셨습니다. 또 다른 질문인 “북한 동포돕기를 위한 단식을 하시다가 70일하고 그만두신 것은 죽음이 두려워서 그러신 것 아닌가요?”라는 질문에 대한 스님의 답변을 소개합니다. nbsp nbsp “내가 단식을 시작할 때 죽으려고 한 것이 아니라, 이 일을 하다가 죽음이 온다하더라도 이 일을 하겠다는 각오로 한 것입니다. 죽음이 두려워서 이 일을 그만두지는 않겠다는 각오였습니다. 그러니까‘죽어도 좋다’와‘죽겠다’는 다른 것입니다. 수행자는 단식해서 배가 고파도 괴롭지 않고 그 일이 이루어지지 않아도 괴롭지 않습니다. 부처님은 깨달음 전후로 최대 98일 최소 91일을 단식하셨습니다. 나도 부처님 제자니까 90일이나 100일 정도는 단식할 수 있지 않겠나 생각했지요. 49일간은 단식하면서 정부와 협상도 하면서 최선을 다했어요. 그 이후에는 문경에서 명상하면서 단식을 이어갔지요. 부처님 시절에 밥을 빌러갈 때는 일곱 집 이내에만 가야했어요. 일곱 집을 다가도 밥을 하나도 얻지 못하면 두 가지 경우예요. 수행자로서 부족한 것이 있어서 그들이 밥을 주지 않는 경우이거나, 아니면 그들도 먹을 것이 없는 경우예요. 첫 번째 경우는 수행자로서 부족함이 없는가 살펴야 해요. 저 같은 경우는 두 번째와 비슷했지요. 북한 동포에게 밥은 줄 수 없고 또 그들이 굶고 있으니 나도 같이 굶었던 거예요. 그들이 굶어 죽는데 내가 어떻게 밥을 먹겠나 해서 였지요. 제가 단식을 푼 결정적인 계기는 제 주변분 가운데 한 분이, ‘다른 사람들이 스님의 순수한 동기까지도 의심해서 스님이 단식을 하는 것이 아니라 몰래 무엇인가를 드신다고 오해할 수도 있으니 단식을 푸는 것이 어떻겠냐?’고 해서 풀게 되었어요. 북한 동포 돕기는 이미 힘든 상황이라 놓아버린 상태였으니까요.” nbsp nbsp 접수된 질문자외에도 스님께 질문하고 싶다고 손을 들었던 예비 질문자도 많이 있었습니다. 즉문즉설이 거의 9시 40분경에 끝나서 질문하고 싶었던 사람들이 많이 섭섭해 했습니다. 다음 기회를 또 기다려야겠습니다. 강연이 끝난 뒤 싸인회를 가졌습니다. 그리고 자원 봉사자들과 사진촬영을 마치고 스님께서 봄불대생 손들어 보라고 하시면서 봉사에 참여한 봄불대생들에게 감사의 인사를 전하셨습니다.nbsp nbsp 강연을 마친 다음에는 바람이 아주 강하게 불었습니다. 바람 때문에 배와 비행기가 움직일 수 있을지 걱정이 됩니다. 내일 제주도 강연이 계획대로 잘 되길 기원합니다.

2015.05.13. 20,445 읽음 댓글 17개

2015.5.10. 불교대 특강수련 법문, 문경공동체 즉문즉설 법회

nbsp nbsp nbsp 오늘 스님께서는 불교대학 특강을 위해 문경 수련원에 밤 12시 40분경에 도착하셨습니다. 잠시 주무신 후 새벽 4시 30분 대웅전에서 문경공동체 수행자들과 함께 새벽예불과 기도로 하루를 시작하셨습니다. 이어 자비당에서 대중들과 함께 발우공양을 하셨습니다. 발우공양 후 대중들에게 수행자로서 살아가야 할 여섯가지 지침을 주셨습니다. nbsp “여기 백일출가생, 행자대학원생, 봉사하러 들어오신 분들도 있는데, 여러분들이 여기서 배운 것을 사회에 나가면 잘 써야 합니다. 여기 있을 때만 여법하게 하고 사회에 돌아가면 한 때의 추억이 돼서는 안 됩니다. nbsp 첫째, 제일 중요한 것은 수행자는 몸이 이곳에 있든, 세속에 나가든 남을 핑계잡고 자기를 괴롭혀서는 안 됩니다. 남편 때문에 괴롭다, 아내 때문에 괴롭다, 자식 때문에 괴롭다, 누구 때문에 괴롭다 이렇게 남을 탓하면서 자기 괴로움을 합리화해서는 안 됩니다. 어떤 상황에 처하든 나도 모르게 잠시 경계에 빠져서 괴로울 수는 있지만 금방 ‘아, 내가 경계에 사로잡혔구나.’, ‘내가 내 업식에 놀아났구나.’ 이렇게 알아차리고 바로 돌아와서 늘 자기를 괴롭지 않은 상태로, 행복한 상태로 유지해야 됩니다. 그렇게 해야 행복한 사람, 자기 인생의 주인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즉 수행자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nbsp nbsp 둘째, 수행자는 내가 돈이 아무리 많아도 검소하게 살아야 합니다. ‘어, 그 사람 부자라고 알았는데, 인기인이라던데, 유명하다고 알았는데 참 소박하게 살구나’ 이런 인상을 줘야 수행자입니다. nbsp 셋째, 수행자는 겸손하게 살아야 됩니다. 여러분들이 나가서 국회의원이 되고 도지사가 되고 시장이 되고 이런 높은 지위에 가더라도 사람이 목에 힘을 주고 뻣뻣하게 해서 잘난 척하고, 거만해서는 안 됩니다. 항상 겸손해야 합니다. nbsp 넷째, 수행자는 성실해야 합니다. 어떤 일이든지, 맡은 일이나 주어진 일이 있으면 꾸준히 해야 합니다. 그래서 여러분들이 어느 가게에서 일을 하든, 직장에서 일을 하든, 무슨 국회의원 보좌관을 하든 ‘아이고, 정토행자들은 참 성실하다.’ 이래야 됩니다. nbsp 다섯째, 수행자는 신뢰할 수 있는 사람이 돼야 합니다. 수행자가 참선하는 것이 중요한 게 아니라 사람 됨됨이가 먼저 돼야 합니다. nbsp 여섯째, 수행자는 꾸준히 정진하는 사람이 돼야 합니다. 아침에 일어나서 예불하고 108배를 한다든지, 30분 명상 등 한 가지는 꾸준하게 정진하는, 인생의 기둥이 있어야 됩니다. nbsp 인생의 기둥이 분명히 있으면 정신질환이나 뇌졸중이 훨씬 적어집니다. 그렇다고 안 걸린다는 건 아니에요. 그런 질환에 걸릴 확률이 확 떨어집니다. 아무리 수행해도 뇌졸중에 걸리는 이유는 그 사람의 체질이거나, 또는 집안의 체질 때문에 나이 들면 걸릴 수 있습니다. 그건 수행과 관계없이 있을 수 있습니다. 그래서 여러분들이 정신적, 육체적 건강을 위해서도 한 가지를 꾸준히 정진하는 삶을 살아야 됩니다. 하루하고 포기하고, 기분나면 하고, 기분 안 나면 안하고, 이랬다 저랬다 하는 불안정한 삶이 아니라 꾸준히 정진하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부모가 한 가지를 꾸준히 하면 자녀들이 그것을 보고 심리가 안정됩니다. nbsp nbsp 그래서 여러분들이 그 연습을 하는 건데, 정진을 여기서만 하고 나가서는 안하면 안됩니다. 학교 다닐 때 시험치기 위해서 공부하고, 시험치면 지식을 다 쓰레기통에 갖다 버리기 때문에 학벌만 높지 물어보면 아는 게 아무것도 없습니다. 이런 비효율적인 학습이 우리 사회의 문제라고 할 수 있습니다. 절에서도 남에게 보이기 위해서만 그럴 듯하게 행동하지, 실제로 일상사에서 그것이 적용 안되는 삶을 살면 이 백일출가기간이 낭비일 뿐입니다. nbsp 여기서 이렇게 백일 연습하여 나가서 꾸준히 정진하며 생활한다면 여러분들의 인생이 행복해지고, 가정이 화목해지고, 우리 사회가 여러분들로 인해서 정화됩니다. 새로운 문명은 누가 연구해서 오는 게 아니라, 우리가 이런 삶을 지향하면 환경은 저절로 보호되고, 세계는 평화로워지고, 인생은 행복해지고, 사회적 갈등은 줄어들게 되고, 과소비는 줄어들어 저절로 세상이 바뀌면서 더불어 사는 삶이 됩니다. nbsp 우선 나부터 그런 삶을 살아야 됩니다. 그걸 연습하는 거니까 걸레를 빨든, 빨래를 하든, 풀을 베든, 이렇게 배우는 자세로 해야 됩니다. 여기서 배운 것이 다 인생에 유용하게 쓰일 수 있습니다. 여기서 시키니까 어쩔 수 없이 억지로 참고 견디다가 끝나면 ‘아이고, 살았다’ 고 하며 가버리는 낭비적인 인생을 살지 않길 바랍니다. 그런 연습을 하는게 여기 백일출가고 행자교육입니다. 정진 꾸준히 잘 해나가시길 바랍니다.” nbsp 70일이 넘어가 후반기로 접어든 백일출가생들에게 오늘 법문이 다시 한번 마음을 다잡게 하는 좋은 계기가 되었는지, 다들 새로운 열기가 얼굴에 돕니다. 힘찬 해탈주와 함께 발우공양이 끝났습니다. nbsp nbsp 오전 8시 30분부터는 봄불대 특강수련에서 즉문즉설 법문을 해주셨습니다. 이번 봄불대 특강수련에는 대구경북지역과 대전충청지역 불대생들이 스탭 포함해 총 320여 명이나 참석했습니다. 불대생 중에는 불교를 처음 접하거나, 교회나 성당에 다니다 온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렇다보니 불대에 입학한지 어느덧 두 달이 흘렀지만 여전히 모르는 것도 많고, 낯설기도 합니다. 더더군다나 이번엔 소속법당을 떠나 또 처음으로 문경수련원에 온 분들도 많았습니다. 전혀 낯선 사람들과 같이 모여 밥을 먹고, 잠자고 토론하는 일이 쉽지만은 않을 텐데, 그래도 하룻밤 자고나니 어느새 많이 친해진 분위기입니다. nbsp 녹음이 우거진 문경수련원은 나날이 초록빛으로 짙어만 가는데, 여전히 새벽공기는 차갑기만 합니다. 그래도 오늘 참가하신 분들은 지도법사님을 만나 그동안 배운 내용과 수행하면서 들었던 궁금증을 여쭤볼 수 있다는 사실이 마냥 설레어 하는 모습이었습니다. 영상으로만 뵙던 스님을 직접 만나다니 꿈만 같다는 참가자들이 많았습니다. 질문하고 싶은 사람들도 너무 많아서, 스탭들은 미리 질문지를 받아두었습니다. 중복되는 질문들을 간추리고 간추려서 스님께는 약 십여 명의 질문지가 올라갔습니다. 질문지를 써냈던 학생들은 과연 내 질문에 스님께서 답변해주실지 두근두근 좀 더 설레는 모습입니다. 질문 내용을 보면 “상대가 잘못한 것 같은데, 내가 왜 참회를 해야 하는지 잘 모르겠습니다”, “공수래공수거라는데, 사람은 이름을 남겨야 한다는 얘기와 모순입니다. 어떤 게 맞는지요?”, “제행무상 제법무아에 대해 자세히 알고 싶습니다”, “저는 웃음치료사입니다. 할머니, 할아버지 치매예방을 위해 율동을 가르치고 있습니다. 재능봉사를 하며 잘 쓰이고 싶은데 가무를 하지 말라는 법문이 마음에 걸립니다. 이것을 하면 안 되는지요?” 등등 다양한 질문이 나왔습니다. nbsp 그 중에 “다른 사람의 잘못이 눈에 보여도, 그 사람에게 얘기를 안 하고 그저 내 잘못을 돌이키면 좋은지요? 그런데 그게 그 사람에게 고통이 된다면 이야기를 해주어야 하지 않을까요? 물론 말을 해줘도 돌이키지 못하는 사람도 있지만, 나에게 직접적으로 해가 된다면 말해도 되지 않을까요?”라는 질문에 대한 스님 말씀을 좀 길게 소개해보겠습니다. “굉장히 정제된 질문을 했네요. 누가 질문했는지 손들어보세요. 스님한테 혼 안 나려고 머리를 많이 굴렸는데 허점이 있어요. ‘나에게 직접적 해가 된다면 이야기해도 되나요?’ 이게 허점이에요. 결국 지적해주고 싶은 마음이 그 사람을 위한 것인지, 내가 꼴 보기 싫어서 그런 것인지가 이 말에 드러나 있어요. 아시겠어요? nbsp 상대방이 무슨 이야기를 할 때 내가 불편하면 누구 문제다? 네, 내 문제라는 겁니다. 화나거나 괴롭거나 섭섭하거나 미워지거나 짜증날 때는 내 문제라는 거죠. 상대가 잘못 했다 안 했다 논하는 게 아니고, 괴로우면 내 문제라는 겁니다. nbsp nbsp 동산에 달이 두둥실 뜬걸 보고 눈물이 핑 돈다. 그래서 시구를 ‘오늘은 달마저도 나를 슬프게 하는구나’라고 써요. 달을 보지 않았으면 눈물이 나지 않았을 텐데, 그렇다면 눈물이 난 게 달이 원인입니까? 그렇지 않다는 거죠. 달을 보고 입가에 웃음을 띠면 달이 나를 웃긴 것인가요? 달은 다만 떴을 뿐이에요. 그것을 보고 내가 울고 웃는 것이기 때문에 내 문제라 이겁니다. 달이라고 하는 경계에 부닥쳐서 일어나는 내 마음의 문제라는 것이죠. nbsp 괴로움을 합리화해서는 안 됩니다. 이 괴로움은 밖으로부터 오는 것이 아니라 안으로부터 오는 것입니다. 이것은 상대가 잘했다는 말인가요? 그렇지는 않아요. 어린 아이가 하는 행동을 보면 아이가 아직 어리석어서 그러는 것이기 때문에 기분이 하나도 안 나쁘죠. 그렇지만 아이를 위하는 마음이 든다면, 아이에게 그 행동은 잘못된 것이라고 얘기를 해주면 됩니다. nbsp 내 기분이 안 나쁜 상태에서 그 사람한테 얘기하면 보살행이 되는 것이에요. 그 사람이 알아듣고 못 알아듣고는 상관없어요. 그 사람을 위해 하면 되는데 그 사람의 감정을 고려하지 않으면 시비를 일으키는 게 됩니다. 그 사람의 처지를 이해해서 이야기 해주면 자비심이라고 하죠. ‘자자’라고 하는 것은 도반과 둘러앉아서 서로 상대방이 계율을 어긴 잘못을 지적해주는 것입니다. . nbsp nbsp 수행이 덜 된 사람은 ‘내가 뭐라고 다른 사람을 지적하나’ 꺼려지는 마음이 듭니다. 반대로 받는 사람이 수행이 덜 되면, ‘네가 뭔데 나를 지적하냐? 네 차례 되면 두고 보자’고 하며 마음에 상처를 입게 되고 논쟁이 됩니다. 이렇게 되면 ‘자자’할 수준이 안 됩니다. 자자는 수행자의 범주 안에 들어오는 사람이라야 가능합니다. 자자는 ‘내가 스스로 허물을 지적해 달라고 청하는 것’입니다. 혹시 계율을 어긴 게 없는지, 저를 위해서 지적해 달라고 청하면 상대방이 편안하게 이야기하고, 그에 감사하고 잘 받아서 고치겠다는 이야기를 하는 겁니다. 그러나 무조건 고친다는 건 아니예요. 상대가 지적한 게 오해일 수도 있으니까, 그때는 해명을 할 수도 있습니다. 변명이 아니고요. 수행자는 자자 시간이 아닌 경우에는 상대방의 허물을 지적을 하지 않도록 되어 있습니다. nbsp nbsp ‘지금부터 자자 시간이다. 도반을 위해 허물을 이야기 해주자’고 할 때가 아닌 평상시엔 하면 안 된다는 겁니다. 시비가 되기 때문이에요. 자기 분별심 따라 도반을 위한다고 착각하는 거죠. 내가 상대방에게 마음이 불편한 상태에서 얘기하면 시비가 되기 쉽고, 참았다가 이야기 하면 나가는 이야기에 창이 들어가기 때문에 푹 찌르게 됩니다. 신경질적으로 말하기 때문에 상대방을 다시 자극하게 됩니다. 그래서 내 마음에 불편함이 있을 때는 지적하지 않는 게 좋습니다. nbsp 그런데 보통 어때요? 내 마음이 불편한 상태에서 내 맘에 안 드니까 상대에게 지적하죠. 마치 상대를 위하는 것으로 착각하지만. 아이들을 야단치는 엄마들을 보세요. 자기 기분이 나빠서 애들을 때리고 야단치고 그럽니다. 선생님들도 그렇고요. 아이가 잘못한 점이 있으면, 정말 아이가 개선됐으면 좋겠다는 엄마의 염원이 담겨있어야 합니다. 그러면 ‘너를 잘못 키운 내 죄가 크다. 네가 엄마를 때려라’ 이렇게 됩니다. 그래서 수행할 때는 타인의 허물을 말하지 않고 가능하면 자기의 허물로 돌려야 합니다.” nbsp nbsp 내가 스스로 내 허물을 도반들에게 지적해주길 청한다는 ‘자자’ 말씀을 들으니, 그 옛날 부처님 당시의 승가공동체가 얼마나 평화롭고 청정하게 유지됐을지 새삼 깨닫게 됩니다. 내가 다른 이의 허물을 말해주는 것도 쉽지 않고, 다른 사람이 내 허물을 지적하는 것도 듣기가 불편한 데, 진심으로 내가 모르는 내 허물을 지적받아 고쳐나간다는 점이 정말 대단하기도 하고, 희망이 되기도 합니다. 선지식들의 그 길을 우리 역시 걷고 있다는 생각 때문입니다. 아직은 첫걸음이지만, 이렇게 스승님의 자상한 안내를 받으며, 안되도 해보고 다시 해보다보면 어느덧 수행자의 범위에 들어가게 되지 않을까요? nbsp nbsp 스님께서는 이외에도 많은 질문들에 아주 세세하게 답변해주시면서, “정토불교대학에 온 것을 자랑스럽게 여기고, 자긍심을 갖고 살아가기 바랍니다”라는 격려말씀을 끝으로 3시간에 걸친 특강수련 법문을 마무리하셨습니다. nbsp 스님께서는 불교대학 특강수련이 끝난 후 간단히 점심 공양을 드시고 SBS 스페셜 팀과 촬영을 위한 인터뷰가 3시간이나 있었습니다. SBS 촬영팀은 스님과의 인터뷰가 끝나자 오늘이 마지막 촬영이라며 아쉬워 하면서 스님께 인사를 드리고 문경을 떠났습니다. nbsp nbsp SBS 촬영을 마친 스님께서는 오늘 깨장, 나장 수련이 끝난 수련생 약 80여명에게 간단히 법문을 해주셨습니다. 수련하면서 혹시 해소하지 못한 질문들이 있으면 해보라는 스님의 말씀에 몇분이 손을 들고 스님께 질문을 했습니다. nbsp nbsp 정치적인 문제에 부딪힐때마다 수행자로서 어떤 자세를 가져야 하는지 묻는 분, 윤회에 대해 궁금해 하시는 분, 목숨을 내놓고 수행한다는 것이 가능한지 등에 대해서 묻고 스님의 가르침을 받았습니다. nbsp nbsp 법회를 마치고 오늘 수련을 통해 새로 태어난 분들과 함께 기념촬영을 한 후 스님께서는 원고교정등의 업무를 보신 후 저녁 7시 저녁예불을 대중들과 함께 드린 후 문경공동체의 상주대중들과 백일출가, 행자대학원 행자님과 함께하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nbsp 법회를 시작하자마자 따뜻하고 평화로웠던 봄날의 날씨는 어느새 흐린 하늘에 거센 바람이 부는 날씨로 바뀌었습니다. nbsp 스님께서는 “이렇게 인생에서도 평온하던 나날이 갑자기 거센 바람이 불고 고통이 닥칠 수 있습니다. 이때 거센 바람으로부터 우리를 보호하는 안전한 집과 같은 것이 ‘계율’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이런 계율을 우리를 지켜주는 것이라고 생각하기보다는, 우리를 속박하는 감옥처럼 여기기 쉽습니다. 마치 태풍이 불지 않는 날은 집의 소중함을 모르고 감옥처럼 여기는데, 계율 역시 큰 어려움이 없다고 지키지 않고 살면 세속의 거센 물길에 휩쓸려 다니기 쉽습니다.” nbsp nbsp 이번 상단법문의 주제는 ‘참회수행’이었습니다. ‘참회’를 하려면 ‘계율’이 있어야 한다고 하시면서, 참회수행에 대한 이야기를 하려면 계율에 대한 이야기를 해야 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nbsp “불자란 무엇인가요? 불법승 삼보에 귀의하고 계정혜 삼학을 닦는 자입니다. 불법승 삼보에 귀의하는 이유는 해탈과 열반, 참자유와 참행복의 증득이라는 수행의 목표를 분명히 하기 위해서 입니다. nbsp 먼저 참자유에 대해 이야기해봅시다. 참자유란 무엇일까요? 우리는 어떤 것을 하고 싶어서 할 수 있는 상황, 하고 싶지만 못하는 상황, 하고 싶지 않은 것을 하지 않아도 되는 상황, 하고 싶지 않아도 해야 되는 상황, 이렇게 4가지 경우을 만나게 됩니다. 만일 자유라는 것을 ‘하고 싶을 때 하는 것과 하기 싫을 때 안하는 것’만이라고 생각한다면 우리는 늘 자유와 속박을 윤회하게 됩니다. 그러나 하고 싶을 때 하지 않을 자유, 하고 싶지 않을 때 능히 할 자유를 갖게 되면 어느 상황에도 속박받지 않는 완전한 자유, 참자유라고 할 수 있습니다. nbsp nbsp 행복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입니다. 흔히 우리가 생각하는 행복은 원하는 대로 이루어져 만족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원하는 것이 충족되지 않았을 때의 불만족, 기분 나쁨을 괴로움이라 여깁니다. 그래서 우리의 삶은 늘 즐거움과 괴로움이 반복되는 윤회를 겪습니다. 우리는 여기서 즐거움만 떼어내서 갖고 괴로움은 버리려고 하는데 그것은 불가능합니다. 고락은 동전의 양면처럼 함께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 즐거움과 괴로움이 돌고 도는 윤회가 되풀이되지 않는 것이 불교에서 말하는 열반, 즉 참행복입니다. nbsp 이런 참자유와 참행복의 경지를 누리는 사람이 붓다입니다. 그리고 불법승에 귀의한다는 의미를 좀더 말씀드리면 첫째, 부처님께 귀의한다는 것은 이 경지에 최초로 도달하신 석가모니 부처님께 귀의한다는 뜻입니다. 더 넓혀서 보면 나도 부처가 되겠다는 목표를 분명히 하는 것입니다. 둘째, 법에 귀의한다는 것은 우리가 그 경지에 이를 수 있도록 안내한 길, 즉 담마에 귀의하는 것입니다. 또한 석가모니 부처님의 가르침을 중심에 놓되, 석가모니 부처님의 가르침이 아니더라도 그 이치와 진리에 합당한 것은 모두 법으로 본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셋째, 승에 귀의한다는 것은 그 길을 따라 정진해서 실제로 열반과 해탈의 경지에 도달한 사람들에게 귀의한다는 뜻입니다. 진실에 입각해서 해탈의 길과 열반의 길로 가는 사람은 꼭 불교 신자가 아니라도 누구나 나의 스승이고 도반입니다. nbsp nbsp 이 중 어떤 입장을 갖든지, 결국 목표는 해탈과 열반을 증득하는 것입니다. 그 모델을 석가모니 부처님으로 하고, 그 과정을 석가모니 부처님의 담마에 의존해서 가고, 이 과정으로 가는 사람들은 다 내가 믿고 의지하는 나의 분신들로 여긴다는 것을 분명히 해야 합니다. nbsp 그러면 불법승 삼보에 귀의한 사람은 어떻게 해야 해탈과 열반의 길로 갈 수 있을까요? 그 길로 나아가는 데 도움이 되는 일들은 가능한 행하고, 그 길로 나아가는 데 장애가 되는 일들은 가능한 행하지 않는 것, 즉 마땅히 행해야 될 일을 마땅히 행하고 마땅히 행하지 않을 일은 행하지 않는 것입니다. 즉 계율을 지키는 것입니다. nbsp 그러나 우리가 지금껏 살아오면서 쌓인 습관들이 찰나에 깨어있지 못해서 습관적으로 나오는 것, 알아차림이 없는 상태에서 무의식적으로 나오는 것들이 바로 참회의 대상입니다. 내가 놓친 것을 지나고 나서라도 알아차리고 원래 자리로 돌아오는 것, 그것이 참회입니다. 만일 놓친 것이 아니라 알면서도 어긴 것이라면 그것은 수행자로서 계율을 받아들인 태도가 아니기 때문에 참회의 대상조차 될 수 없습니다. nbsp 따라서 먼저 계율에 대한 이해가 분명해야 합니다. 그러자면 우리 삶의 목표의식, 괴로움이 없고 자유로운 상태로 가겠다는 불자로서의 분명한 삶의 목표의식이 있어야 합니다. nbsp 이런 참회에는 세가지 방식이 있습니다. 일반 첫 번째로는 스스로 자신의 허물을 알아차리고 다시는 되풀이하지 않겠다고 다짐하는 것, 두 번째로는 대중들과 다 함께 있는 자리에서 자신의 허물을 드러내어 밝히고 참회하는 포살, 세 번째로는 내가 내 허물을 알지 못할 때, 도반에게 나의 허물을 지적해줄 것을 요청하여 내 허물을 알고 참회하는 자자가 있습니다.” nbsp 스님께서는 문경대중들에게 수행자로서 분명한 목표의식을 가지고 계율을 지키는 삶을 살아가는 것이 진정한 행복으로 가는 길임을 설명해주셨습니다. 그리고 뒤이어 상주대중들이 수행하면서 궁금했던 것을 질문하는 즉문즉설의 시간을 가졌습니다. nbsp nbsp 첫 번째 질문자는 법사님이었습니다. “유수스님은 대중들로부터 호위를 받는게 자연스럽고 편안하세요. 그런데 저는 그것을 보는 것이 어색하고 불편합니다. 그걸 넘어서서 행자님들이 스님을 거들어 주면 오히려 시비가 일어납니다. 저는 인색하다는 기도문을 받았습니다. 제가 어릴 때 어머니가 굉장히 헌신적이셨는데 저는 그걸 보면서 마음이 편안하지 않았던 것 같아요. 중간에 결혼을 안한 이유도 어머니처럼 살 것 같고 남자 시중들면서 살아가는 것에 대한 굉장한 저항감이 있더라고요. 남자일 때 거부감이 드는 것은 뿌리와 같은 시비심이라서, 도리어 더 발심하고 마음내서 시키지 않아도 받들고 보좌하면 극복이 될지 헷갈려서 가르침을 듣고 싶습니다.” nbsp 스님께서 두 가지 면을 모두 짚어주셨습니다. nbsp “내가 그 사람이 좋아서 그 사람에게 서비스를 하고 받드는 건 자유에요. 자기가 좋아서 하는데 어떻게 하겠어요. 그런데 남자는 존중받아야 한다는 생각은 과거 문화가 그렇다 하더라도 앞으로 개선해야 할 문제입니다. nbsp 또 자기가 존경하는 마음때문에 존경하는 건 괜찮은데, 스님이기 때문에 존경한다는 건 정토회에서 개선되어야 할 점입니다. 일반 절에서는 스님은 밭드는게 예의에 속하지만 정토회에서는 아닙니다. 부처님 당시에 지금 스님과 같은 사제직분에 있었던 사람이 브라만이에요. 그러면 브라만이 부처님 제자가 되면 크샤트리아나 바이샤, 수드라가 상가 안에서 브라만을 받들어야 하잖아요. 그런데 부처님은 그렇게 못하게 하셨습니다. 정토회는 수행자 모임입니다. 그래서 정토회 안에서 스님이라고 존경해야 한다면 그것은 정토회 원칙이 아닙니다. 그가 머리를 길렀든, 장가를 갔든 관계없이 존경받을 만하다 하면 존경합니다. nbsp 여기는 수행자 집단입니다. 사제도 없고 신도도 없습니다. 그래서 신도라는 말 안 쓰고, 회원 아니면 행자라는 말을 쓰는 거에요. 정토회 어디에도 공식적으로 신도라는 말은 없습니다. 그래도 사람들의 선호는 있어요. 이건 어쩔 수 없어요. 우리가 남녀 평등을 주장해도 남자법사님은 법사님 같고 여자법사님은 별로 법사님 같지 않다고 여깁니다. 그것은 우리가 남자를 높이는 유교문화에 태어나서 자랐기 때문에 무의식 세계에 남아있습니다. 하지만 이것은 바람직하지 못하며 개선되어야 합니다. 그처럼 스님이라고 특별히 생각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것은 종교적 관습입니다. 그러나 여기에서는 스님이라고 특별히 예우를 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수자타아카데미에 누가 봉사한다고 하면 승복 벗고 승려 대우 포기하고 오라고 합니다. 그러면 아무도 오지 않습니다. 너무 쉬운 거 아니에요? 근데 못해요. nbsp 여러분들이 정토회 원칙을 모르니까 늘 이런 부분을 판단하기 어렵죠. 앞서 말했듯이 존중받을만 해서 존중하는 건 개인의 자유이니 괜찮습니다. 그러나 그것이 불편하다면 내 까르마의 문제에요. 내가 불편할 때는 문제제기하면 안되고 오히려 내가 극복해야 합니다. 그러나 정토회에 개선되어야 할 문제라고 여겨지면 개선될 수 있도록 제안을 해야 합니다. ‘스님을 시비하는 것처럼 느껴지지 않을까?’ 이렇게 생각하면 그것 또한 수행자의 자세가 아니에요. 언제든지 문제제기를 하는게 수행자입니다. 언제든지 돌아보고 이런 것은 개선하는 게 좋겠다고 가볍게 말하고, 내가 문제제기를 잘못했으면 내가 문제제기를 잘못했구나 깨우치는 그런 관점을 가지면 됩니다.” nbsp nbsp 뒤 이어, 행자대학원 1학년 2학기 과정을 밝고 있는 행자님의 질문이 이어졌습니다. nbsp “2살 아래 남동생이 있는데 2년 전에 결혼을 했어요. 6월 말에 출산을 한다고 하는데 아이를 낳는다고 하면 축하해야 할 일인지, 아닌지 모르겠어요. 그래서 진심으로 축하한다는 말이 안 나옵니다. 행자대학원에 온 후 부모님에 대해선 입장정리됐다고 생각했는데 동생에 대해서는 관심이 없었고, 입장정리가 안된 기분인거에요. 축하는 해줘야 될 것 같고 형으로서 뭔가 해줘야될 것 같은데 현재 입장에서 해줄 것이 없네요. 동생에 대해서 어떻게 마음을 가져야 할까요?” nbsp “자기 하고 싶은대로 하면 돼요. 그냥 축하하고 싶은 마음이 없으면 축하 안하면 되고, 하기 싫어도 축하해야 될 상황이면 문자메세지 보내면 됩니다. 별로 어려운 일이 아닙니다. 축하한다는 말이 꼭 안 나오면 애기 선물이라도 사서 축하한다는 말 빼고 선물을 보내세요. nbsp 20살 넘은 성년들끼리는 어떤 의무도 없습니다. 어떤 것도 부모에게 요구할 권리가 없고, 부모 말을 들어야 할 어떤 의무도 없습니다. 동생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자연 생태계가 그렇게 돌아가고 있습니다. 동생을 챙겨야 한다는 생각은 집착이지 그렇게 하지 못한다고 해도 아무런 죄가 안됩니다. 스무살이 넘었는데 출가하는 건 아무런 죄가 안돼요. 그게 죄가 되면 부처님도 죄인이 되고 불교 자체가 잘못된 것이 됩니다. nbsp 출가자는 세속의 끈을 놓고 살아야 합니다. 거기에 메일 필요 없어요. 그렇다고 인색한 것하고 다른 겁니다. 그에 대해 사랑하지만 내가 그 인생에 대해서 특별히 간섭할 필요도 없고 연연할 필요도 없어요. nbsp 이제 마지막으로 정리해서 말하면 첫째는 여러분들이 분별심을 내더라도 여기서 사는 것만으로도 장합니다. 왜냐하면 이렇게 사는 사람 이 세상에 별로 없기 때문에 그런 면에서 격려합니다. 두 번째는 여기서 산다고 수행이 되는 건 아니에요. 목표를 세우고 연습을 해야 되는 겁니다. 억지로 하는게 아니라 내가 분별심 일어날 때 마음을 돌아보면서 ‘또 분별심 내는구나’, ‘또 분별심 내는구나’하면 재미있잖아요. ‘업이 끈질구나. 내가 나를 봐도 가관인데 남이 보면 진짜 가관이겠다.’ 이렇게 마음을 돌아보면 됩니다. 마치 자전거 못타는 애가 자전거에 빠져서 매일 붙어 있듯이 이걸 극복해보려고 이렇게도 해보고 저렇게도 해보고 거기에 재미를 붙이면 됩니다. 이 세상에서 자기 마음 일어나는걸 보면서 극복하는 것 보다 더 재미있는건 없어요. 그러면 친구가 지적해주는 것 도 고맙죠. 지적해줘야 기분 나쁜게 일어나고 내 까르마를 볼 수 있습니다. 억지로 타성에 젖어서 하지 말고 자기 개선을 위해서 자발적으로 접근해야 여기 사는 것도 재미있어요. 남이 보기엔 저렇게 자전거 타도 되나라고 해도 자기는 어쨌든 타보려고 애를 쓰잖아요. 그래서 남의 비아냥 마저도 괜찮아요. 그거 신경 쓸 여력 없어요. 남이 보기에 웃기든지 말든지 나는 어찌됐든 자전거를 타볼 거다 이렇게 몰두를 해야 돼요. 그래야 얼굴이 펴져요. 안 그러면 얼굴이 늘 우울해져요. 그렇게 부지런히 연습해서 어떻게 수행해야 된다는 건 터득해서 나가야해요. 여기서 기본 틀을 배워 나가서 살면 여기 살았던 것이 자기 인생에서 최고로 소중한 인생이 됩니다.” nbsp 이제 갓 들어온 상근자도 1년이 넘은 상근자도 모두가 공감할 수 있는 질문 속에 의미 깊은 시간을 보냈습니다. nbsp nbsp 법회를 마친 뒤 문경공동체에서는 스님과 자주 만날 수 없기 때문에 조금 이르긴 하지만 스승의 날을 맞이해서 스님께 꽃다발을 증정하였고, 스님께서는 다시 그 꽃다발을 자행스님께 바쳤습니다. 또, 2명의 행자님들이 스님께 편지를 썼습니다. 모두들 이곳에 와서 살아가면서 느낀 감사함을 담아서 스승님께 감사의 뜻을 전하는 모습이 감동스러웠습니다. nbsp nbsp nbsp nbsp 내일은 애광원 거주인들과 진주성과 사천 항공우주박물관 나들이를 가지고 창원 강연이 예정되어 있습니다.

2015.05.12. 22,966 읽음 댓글 17개

2015.5.9 평화리더십아카데미 경주 역사기행

nbsp안녕하세요. 오늘 스님께서는 ‘역사의 전환기, 통일 신라의 리더십을 배운다’는 주제로 제12기 평화리더십아카데미 수강생들을 위해 경주 역사기행 안내를 해주셨습니다, 법흥왕릉을 시작으로 진흥왕릉, 태종무열왕릉, 김유신장군묘, 사천왕사지, 선덕여왕릉, 능지탑, 황룡사지를 차례대로 둘러보면서 작은 나라에 불과했던 신라가 어떻게 삼국 통일을 이루었으며, 그 한계는 무엇이었는지 스님께서는 깊이있게 설명해 주셨습니다.nbspnbspnbsp어제 두북에서 하룻밤을 머무신 스님께서는 오전11시 무렵 법흥왕릉에 먼저 도착해 평화리더십아카데미 수강생들을 환한 미소로 맞이해 주셨습니다. 지난 4월에는 정토불교대학, 경전반, 청년정토회 등 최소 300여명이 넘는 대중들에게 매주 경주 역사기행을 안내하셨는데, 오늘은 조촐하게 23명을 대상으로 안내를 하는 날입니다. 비록 인원은 적었지만 스님의 설명은 한결같이 정성과 열정이 깃들어 있었습니다.nbspnbsp▲ 법흥왕릉nbspnbsp법흥왕릉 앞에 모두 서서 삼배로 참배를 한 후, 스님께서는 오늘 역사기행을 하는 취지와 함께 삼국 통일의 기틀을 닦은 법흥왕의 업적에 대해 설명을 해주셨습니다.nbspnbsp“경주역사기행에서 설명하는 삼국 통일에 대한 초점은 두가지예요. 첫째, 동쪽에 치우친 작은 부족 국가였던 신라가, 즉 비주류였던 신라가 어떻게 민족사의 주역으로 등장했는가? 그것을 가능하게 했던 신라의 내적 동력은 무엇이였는지 살펴보는 것입니다. 둘째, 신라는 민족사에서는 비주류였기 때문에 역사 의식이 부재했죠. 역사의식이 부재한 세력이 통일의 주역이 되다보니까 잃어버린 것이 있습니다. 어떤 것을 잃어버렸는가? 이 두가지 주제입니다. 먼저 신라가 어떻게 비약적 성장을 하게 되었는가에 초점을 맞춰서 말씀을 드리겠습니다.nbspnbspnbsp삼국사기나 삼국유사의 기록에 보면 신라는 AD 57년 지금으로부터 2100년 전 쯤에 처음으로 나라가 시작되었습니다. 경주 분지 주위에 6개의 씨족이 살고 있었는데 이들 6부 촌장들이 모여서 ‘우리도 나라를 만들자’고 하면서 임금을 선출했다고 합니다. 인류문화사적으로 보면 씨족이 모여서 만든 것이 부족이지 않습니까? 기록에는 신라가 고대 국가를 세웠다고 하지만 사실은 하나의 부족 국가가 형성된 것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이 때 신라는 동쪽에 치우친 작은 부족 국가이니까 외부와 문명의 교류가 별로 없었습니다. 그래서 ‘왕’이라는 칭호도 없었고, ‘거서간’, ‘차차웅’, ‘이사금’, ‘마립간’ 이라는 칭호를 쓰다가 22대 지증왕대에 와서야 ‘왕’이라는 칭호를 처음 썼습니다. 지증왕이 즉위한 때가 AD 500년이니까 557년 동안이나 아직 고대 왕국이 되지 못했다고 볼 수 있죠.nbspnbspAD 400년 경의 역사를 보면 낙동강 유역의 가야·왜 연맹군이 신라를 침공했는데 신라는 거의 나라가 망할 지경이 되었습니다. 그래서 신라는 고구려에 조공을 바치고 원병을 청했어요. 그 때 광개토대왕이 신라에 5만 군대를 보내서 가야·왜 연맹군을 격파하고 신라를 구원했다는 기록이 있습니다. 이렇게 고구려의 원군을 받아서 나라를 유지할 만큼 신라는 가야보다도 약했습니다. nbspnbsp그런 나라가 어떻게 갑자기 부강하게 되었느냐? 하나는 내부 개혁을 했고, 하나는 외부 개방을 했습니다. 지금 우리는 법흥왕릉 앞에 와 있는데, AD 514년에 법흥왕이 즉위를 하게 되면서 이때부터 개혁 개방 정책을 쓰게 됩니다. 개혁 정책이라는 것은 율령을 반포한 것을 말합니다. 즉 법제를 정비했습니다. 개방 정책이라는 것은 불교를 공인한 것을 말합니다. 즉 외래 사상의 유입을 받아들인 것이죠.nbspnbspnbsp이렇게 내적인 준비가 된 후에 신라는 가야와 통합을 하게 됩니다. 100년 전에는 가야가 신라를 침공해서 신라가 위기에 처했기 때문에 신라 입장에서는 가야가 철천지 원수였어요. 가야 입장에서는 신라를 내리깔보는 입장이였죠. 그런데 거꾸로 이제는 신라가 국력이 강해지고 가야가 국력이 약해졌어요. 이럴 때 보통 신라는 무력으로 가야를 복속시키고, 가야는 끝까지 저항하다가 멸망하는 것이 역사인데, 특이하게도 신라와 가야는 합의 통합을 했습니다. 가야는 나라를 세울 때부터 불교 국가였지만 신라는 불교를 철저히 탄압하는 국가였습니다. 그러나 신라는 개방을 해서 불교를 공인했죠. 요즘 말하면 남한은 철저하게 공산주의를 반대하는 국가이고 북한은 공산주의 국가인데, 남한이 북한과 통합하기 위해서 공산주의 활동을 허용한 것과 같은 포용 정책을 쓴 것입니다.nbspnbsp그리고 가야의 귀족을 신라의 귀족으로 받아들였습니다. 특히 가야의 왕족들은 신라의 진골로 받아들였습니다. 이것은 북한의 군장성들을 통합하는 과정에서 남한의 군장성으로 임명하고, 북한의 관리들을 통합된 나라에서도 역할을 할 수 있도록 허용한 것과 같습니다. 이런 경우는 통일의 역사에서 극히 드문 일입니다. 대부분 무력으로 진압해서 합병을 하지요. 합의 통일을 한 경우는 많지 않습니다. 그러나 가야와 신라는 합의 통일을 했습니다. 지금의 강자인 신라는 옛 원한을 생각하지 않고 가야를 포용했고, 반대로 가야는 끝까지 저항을 하지 않고 통합의 제안을 받아들인 것입니다.nbspnbsp이를 통해 신라는 법흥왕 이후로 급격하게 성장을 하게 됩니다. 특히 신라는 가야로부터 굉장히 많은 인재를 확보할 수 있었습니다. 통합을 통해 풍부한 인재와 물량을 갖고 영토 확장을 했기 때문에 진흥왕 때는 영토 확장을 3배 가까이 하게 됩니다. 이것이 신라가 성장한 비결입니다. 그러나 역사에서 아무도 여기에 주목하지는 않는 것 같아요.nbspnbspnbsp우리가 통일을 연구할 때 자꾸 외국의 사례만 찾는데, 지금 시대에서는 독일 통일의 사례를 통해 많은 교훈을 얻을 수 있지만 우리 역사 속에서는 신라와 가야의 통합이 어떤 시너지 효과를 가져왔는가 이 부분을 유의해서 살펴볼 필요가 있습니다. 이렇게 합의 통일을 했기 때문에 나중에 신라가 약해져도 ‘후가야’라는 나라가 등장하질 않았어요. 백제와 고구려는 무력으로 통일했기 때문에 200년 후에 후백제, 후고구려가 다시 나타나게 됩니다. 강자가 포용을 해서 합의 통일을 하게 되면 완전한 통합이 되지만, 약자가 힘에 밀려서 굴복해서 통일하게 되면 반드시 다시 재기를 하게 되는 역사의 반복을 볼 수 있죠.”nbsp스님께서는 동쪽에 치우친 작은 나라인 신라가 어떻게 민족사의 주역으로 등장할 수 있었는지 가야와의 합의 통일이 갖는 의미를 중점적으로 이야기해 주셨습니다. 지금의 남북 관계만 살펴보아도 포용 정책을 펴기란 쉽지 않은데, 당시에 그런 과감한 정책을 폈다니 신라인들의 지혜에 절로 감탄이 되었습니다.nbspnbsp다음은 진흥왕릉으로 향했습니다. 태종 무열왕릉을 지나 선도산을 향해 걸어올라오니 산 중턱에 진흥왕, 진지왕의 무덤이 함께 있었습니다. 무덤을 향해 참배를 한 후 신라가 어떻게 영토를 확장하고 급격한 성장을 하게 되었는지 스님께서는 진흥왕의 업적을 중심으로 이야기를 해주셨습니다. 특히 한반도에서 가장 비옥한 낙동강 유역과 한강 유역을 점령하면서 영토 뿐만 아니라 생산 물량까지 확충하는 과정, 백제와 고구려의 협공을 받고 위기에 처하자 당시 강대국인 당나라와 외교를 하면서 국제 관계를 통해 통일의 유리한 국면을 만들어간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습니다.nbspnbsp▲ 진흥왕릉nbspnbsp진흥왕릉에서 내려오니 거대한 무덤 4개가 있고 그 밑에 태종 무열왕릉이 있었습니다. 스님께서는 태종 무열왕릉 위에 위치한 거대한 무덤 4개를 가르키며 “이 무덤들은 누구의 무덤일까요?” 라며 깜짝 퀴즈를 내어 주셨습니다. 아무도 대답을 하지 못하자 스님께서는 이렇게 답변해 주셨습니다.nbspnbsp▲ 태종 무열왕릉 위에 자리잡은 4개의 큰 무덤nbspnbsp“무덤을 파봐야 알겠지만 전해내려오는 이야기 속에는 누구의 무덤이라는 기록이 전혀 없어요. 상식적으로 생각해보면 태종 무열왕이 성골이 아니고 진골이잖아요. 즉 아버지가 왕이 아니란 말이예요. 그러니 아버지를 왕으로 추대해서 무덤을 하나 만들었을 수 있겠죠. 그런데 무덤이 한 개쯤 있으면 그렇게 추정할 수 있는데, 무덤이 4개나 되기 때문에 그렇게만 추정하기는 좀 어려운 측면이 있습니다.”nbspnbsp그러자 수강생 중에 한명이 “혹시 진짜 무덤을 보호하기 위해 가짜 무덤을 만든 것은 아닐까요?”라고 대답하자 스님께서는 웃으시며 “타지마할에 가면 관광객이 구경하는 관은 가짜이고 진짜 관은 지하에 있거든요. 옛날에는 비석을 안 만든다든지 하는 방식의 가묘를 많이 했죠” 라며 일리가 있다고 말씀하셨습니다.nbspnbspnbsp아무튼 역사 속 수수께끼를 뒤로 한 채 태종 무열왕릉을 참배하고 이어서 스님의 설명을 계속 들었습니다. 태종 무열왕릉 앞에서 스님께서는 태종 무열왕의 업적 뿐만 아니라 신라의 삼국 통일이 갖는 한계에 대해서도 함께 이야기해 주셨습니다.nbspnbsp“태종 무열왕은 선덕여왕때 주로 당나라와의 외교를 담당하면서 외교부 장관 같은 역할을 한 분입니다. 당시에는 당나라의 협조를 못 얻으면 나라를 존립시키기 어려웠거든요. 특히 백제는 의자왕이 즉위 초기에 정치를 잘하는 바람에 신라가 40여개의 성을 빼앗겼어요. 태종 무열왕은 당 태종과 대화하면서 ‘만약에 고구려가 멸망하면 대동강 이남은 신라에게 주겠다’는 언지를 받을 정도로 친분이 있었다고 해요. 그렇게 외교를 발전시켜서 나중에는 당나라와 신라가 협공을 해서 백제를 660년에 멸망시키게 됩니다. 태종 무열왕릉은 661년에 죽었습니다.nbsp▲ 태종 무열왕릉nbsp그러나 이 전쟁을 통해서 신라에서는 굉장한 실망이 있었습니다. 당나라는 백제를 멸망시키자 그 영토를 신라에게 통합해주는 것이 아니고 자기들이 통치했습니다. 신라는 엄청난 군대와 군량미를 지원했는데 전쟁의 성과가 아무것도 없었습니다. 그래서 당나라는 이 여세를 몰아서 고구려를 침공하려 했지만, 신라 안에서는 김유신 등 강경한 세력들이 여기에 소극적으로 대응했습니다. 마침 이 때 당나라 군대가 연개소문에게 참패를 당해서 소강 상태에 이르렀다가 연개소문이 죽자 고구려에 내분이 일어나면서 고구려도 나·당 연합군의 협공에 패하고 당의 직할 통치로 들어갑니다. 이 때 민족주의자인 김유신의 영향을 받은 문무대왕은 대당 전쟁을 선포하고 당나라가 세운 안동도호부를 습격해 버립니다.nbspnbsp이것은 요즘으로 비유하면 한미 연합군이 북한을 점령해서 우리는 당연히 통일이 될 것이라고 예상했는데, 그렇게 하지 않고 미국이 북한에 미군정을 실시하니까 여기에 반발해서 우리가 주한미군을 습격한 것과 같습니다. 이렇게 되니 미국 본토에서 20만 대군을 한국에 파견해서 한·미전쟁이 일어난 것으로 볼 수 있죠. 그것처럼 당나라 황제가 화가 나서 20만 대군으로 신라를 침공해 왔는데 이것이 나당 전쟁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고구려가 멸망한 668년을 삼국 통일의 해라고 말하지 않고, 당나라 군대를 한반도에서 몰아낸 676년을 삼국통일의 원년으로 삼습니다.nbspnbsp여기서는 두 가지 비판이 있습니다. 하나는 신라가 외세와 결합해서 제 민족 국가를 제압했다는 비판이 있는데, 이것은 당시에 나라와 나라 사이에 과연 오늘 같은 민족의식이 있었느냐 하는 것이 재검토 되어야겠죠. 다른 하나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신라의 자주성이 당나라를 몰아낼 만큼은 있었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신라의 한계를 비난하지만 그렇다고 지금 남한이 신라만큼의 자주성을 갖고 있느냐 하는 것이죠. 만약 한·미 연합군이 북한을 점령했는데 미국이 북한에 들어가서 미군정을 실시하면서 합법적인 정부를 들어서게 한다는 핑계로 북한을 관할한다고 하면 한국이 주한미군을 공격할 수 있을까요? 어떨 것 같아요?nbspnbspnbsp아무튼 신라는 그런 정도의 자주성은 있었다는 것입니다. 다만 정통의 민족사적인 역사의식이 부재했기 때문에 광할한 고구려의 영토를 회복해야겠다는 생각을 못했습니다. 신라가 만약 역사 의식이 있었다면 고구려의 옛 영토까지도 사실은 회복을 해야되지요. 그러나 신라는 그런 역사 의식이 없었기 때문에 자신들의 영토가 23배가 된 것에 감격하고 말았죠. 이것은 민족사의 정통성을 계승하지 못했을 때 일어나는 하나의 위험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우리가 통일 문제를 다룰 때는 앞서 얘기한 가야와의 통합과 더불어 역사 의식의 부재가 가져오는 폐해도 함께 고려해야 합니다. 그러니 앞으로 한반도의 통일 문제도 한반도로만 그쳐선 안되고 동북아 공동체라고 하는 더 큰 꿈을 갖고 통일 문제를 다뤄야 합니다.”nbspnbsp역사 의식의 부재가 불러온 결과를 듣고 나니 동북아 공동체를 향한 꿈은커녕 분단에 대해서도 무관심한 우리들의 현실이 떠올랐고, 당시 신라가 가졌던 한계가 21세기 지금에도 더 나아진 것이 없다는 생각에 부끄러운 마음이 들었습니다. 또 당나라 군대를 한반도에서 몰아낸 신라인들의 자주성 측면에서 볼 때도 오늘날 우리들은 여전히 부끄러운 것 같습니다.nbspnbsp이렇게 부끄러움을 뒤로하고 태종 무열왕릉을 나와 무열왕의 둘째 아들로서 아버지의 대당 외교술을 잘 계승해 태대각간이라는 칭호를 받았다고 하는 김인문묘를 살펴보고 다음 장소로 이동했습니다.nbspnbsp다음으로 도착한 곳은 김유신 장군묘입니다. 스님께서는 김유신묘가 왜 왕릉처럼 가꿔지게 되었는지, 김유신의 인간 됨됨이는 어떠했는지 재미난 일화도 들려주셨고, 또 김유신은 신라의 삼국통일에 어떤 기여를 했고 그 한계는 무엇인지 신라와 오늘날 한국의 공통점에 대해 짚어주시면서 흥미진진한 이야기를 해주셨습니다.nbspnbsp▲ 김유신 장군 묘nbsp“이 묘는 둘러싼 석축으로 봤을 때 왕릉에 해당하는 것입니다. 김유신은 패망한 가야의 후손임에도 불구하고 신라에 와서 대성공을 한 케이스입니다. 왕이 아닌 사람으로서 오를 수 있는 최고의 지위에 올랐습니다. 신라에서는 국회의장에 해당하는 것이 ‘상대등’이고 행정부의 수장인 총리가 ‘각간’입니다. 그런데 김유신은 ‘대각간’의 지위에 올랐죠. 죽고 나서는 ‘태대각간’이라는 극존칭을 받았습니다. 후대에 가서는 ‘흥무왕’이라는 존칭까지 주었습니다. 그래서 이 무덤은 흥무왕이라는 칭호를 받고나서 왕의 무덤에 준하게 개보수를 했다고 본다면 크게 이의를 제기할 것은 없을 것 같아요.nbspnbsp김유신은 당시 신라의 왕권을 안정시켰습니다. 왕위 쟁탈전으로 혼란이 계속 있었는데 김유신이 무력으로 뒷받침을 해서 태종 무열왕을 등극시킴으로서 정치안정을 시켰죠. 국내 정치가 안정이 되어야 통일의 큰 위엄을 달성할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왕은 아니였지만 내분이 일어나지 않도록 태종무열왕과 문무왕을 앞세워서 국정을 안정시킨 역할을 했습니다.nbspnbspnbsp그러나 김유신의 영향력이 크다고 하더라도 역시 가야의 왕손이다보니 민족사의 전통을 계승한 것은 아니였습니다. 민족사의 정통은 배달나라, 조선나라, 부여, 부여를 계승한 백제와 고구려, 동부여, 이런 나라들인데 비해 가야와 신라는 민족사의 정통에 속하지는 않습니다. 신라가 굉장히 융성해서 통일의 중심 역할을 했다고 하더라도 역사 의식이 부재했던 이유는 이런 태생적인 한계가 있었던 것입니다.nbspnbsp신라를 가만히 보면 우리 한국이 신라를 닮은 것이 굉장히 많아요. 역사 의식이 부재한 것도 그렇고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금 굉장히 강성해 있죠. 또 외세의 줄을 잘 잡은 것도 그렇고요. 신라가 개방적으로 당나라의 문물을 받아들여서 당나라에 버금갈만한 문화예술을 발달시켰듯이 우리도 지금 서구 문명을 받아들이되 서구 문명에 버금갈만한 문명을 지금 만들어가고 있잖아요. nbspnbsp이런 장점이 많음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지금 역사 의식과 민족사의 정통을 계승한다는 자부심이 부족해서 주어진 기회를 못 살리고 있죠. 통일을 할 수 있는 역량이 되지만 역할을 못하는 것은 역량 부족에서 오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의식의 부족에서 오는 것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설령 역량으로 인해 통일을 하더라도 의식이 부재하면 신라가 통일을 한 후에 민족사의 약화를 가져왔듯이 우리의 통일도 어쩌면 민족사에서 오히려 더 나쁜 결과를 가져올 수도 있습니다. 어떻게 통일을 하느냐에 달려 있죠. 그래서 어떤 기본 자세를 가져야 하는지 우리는 과거 역사 속에서 배울 수 있습니다.”nbsp스님의 설명을 계속 듣다보니 어느덧 신라 시대의 한복판으로 수욱 들어간 느낌입니다.nbspnbsp다음은 사천왕사지로 이동했습니다. 사천왕사는 나당 전쟁으로 인한 당나라의 침공으로부터 나라를 지키기 위해 지은 호국 사찰입니다. 우연인지 모르겠지만 사천왕사에서 문두루 비법을 행했더니 마침 그때 태풍이 불었는지 당나라 군대가 서해 바다에 수장이 되어버렸다고 합니다. 요즘 식으로 말하면 신앙의 힘으로 나라의 위기를 이겨내었다고 신라인들은 믿은 것입니다. 이후 매소성 전투와 기벌포 전투를 통해 신라는 당나라 군대를 한반도에서 완전히 몰아내게 됩니다.nbspnbsp▲ 사천왕사지nbsp이렇게 호국의 의미가 담긴 곳이 이곳 사천왕사이기 때문에 스님께서는 한반도가 통일이 되려면 사천왕사를 잘 복원해야 한다고 강조하셨습니다. 그리고 “우리도 신라처럼 혹시나 미국과 중국 같은 강대국과 싸우게 될지 모르기 때문에 대비를 해야 할 것 아니예요?” 라면서 웃음을 보이셨습니다. 그리고 사실인지 모르겠지만 일본 사람들이 신령스러운 사천왕사의 지맥을 끊기 위해 대웅전과 강당 사이에 철도를 놓았다는 얘기가 전해내려 온다고 합니다. 마침 스님께서 이 말씀을 하시는 찰나에 기차가 사천왕사지를 막 가로질러 가자, 스님께서 “왜 저렇게 지맥을 끊는거야” 라고 말씀하셔서 모두들 크게 웃었습니다.nbspnbsp▲ 문두루 비법이 행해졌다고 하는 절터nbsp그리고 사천왕사지에서는 일반 절에서 볼 수 없는 특이한 모습을 볼 수 있었는데, 10cm 크기의 구멍이 뚫린 주춧돌이 12개가 박혀 이었습니다. 문두루 비법을 열두명의 법사가 행했다고 하는데 그래서 주춧돌이 12개인 것 같습니다. 원래 이 땅은 그냥 밭으로 쓰이던 곳이였는데 스님의 스승이신 불심 도문 큰스님이 이 땅을 구입하고 문화재청에 기증해서 발굴을 하도록 하셨다고 합니다. 스님의 역사 의식은 어릴적부터 이런 스승으로부터 영향을 받은 것이 아닌가 싶습니다.nbspnbsp사천왕사지에서 시원한 솔숲길을 산책하듯이 걸어 올라가니 선덕여왕릉이 나타났습니다. 오르막길로 인해 가쁜 숨을 몰아쉬며 자리에 앉으니 스님께서 선덕여왕과 관련된 이야기들을 재미있게 들려주셨습니다.nbspnbsp▲ 선더여왕릉nbsp“삼국 통일의 주역들이 대부분 선덕여왕 때 발굴이 되었습니다. 선덕여왕 당대에는 통일을 못했지만 선덕여왕 때 외교적인 기초와 인재 양성 등 통일을 위한 대부분의 기초가 닦여졌습니다. 그래서 선덕여왕의 리더십은 연구해 볼만 하다고 생각합니다.nbspnbsp여러 가지 이유로 선덕여왕이 왕위에 오르긴 했지만, 어쨌든 여자가 왕이 되었다는 것에 대해 인정을 하지 않고 반란을 일으키는 세력이 많았습니다. 또 중국이나 주변 나라들이 여왕을 우습게 여기는 어려움도 겪었습니다. 황룡사 9층탑을 쌓은 이유도 자장 율사가 나라를 걱정하니까 어떤 신선이 나타나서 ‘너희 나라 임금은 지혜는 있는데, 여자라서 세상 사람들이 다 얕본다. 이를 보강하기 위해서는 큰 위용을 보여야 한다’ 라고 말했기 때문이라고 합니다.”nbsp그러면서 스님께서는 선덕여왕이 보여준 세 가지 신비한 기적을 이야기해 주셨습니다. 그리고 이와 더불어 한미 동맹에 대한 올바른 태도에 대해 함께 말씀해 주셨습니다. nbspnbspnbsp“세번째 기적은, 선덕여왕이 아무 날 아무 시에 죽을 것이라고 얘기하면서 ‘나를 도리천에 묻어 달라’고 했다고 합니다. 신하들 입장에서는 건강함에도 불구하고 언제 죽는다고 하니 이것도 믿어지지 않았지만, 도대체 도리천에 어떻게 묻을 수 있을지 난감해 했습니다. 그러자 선덕여왕은 ‘낭산 남쪽 봉우리에 묻어라’고 말했습니다. 그런데 진짜 그날 그 시간에 갑자기 여왕이 돌아가셨고, 신하들은 그 유언을 생각해서 이곳에 여왕을 묻었습니다.nbspnbsp그러나 신하들은 묻어 놓고도 여기가 왜 도리천인지 이해를 못했습니다. 그런데 20여년이 지난 후 이 밑에 사천왕사가 지어졌습니다. 사천왕사를 지어놓고 보니까 불교의 세계관에서는 수미산 중턱에 사천왕 세계가 있고 그 꼭대기에 도리천이 있잖아요. 그래서 이 낭산을 수미산이라고 한다면 저 아래에 사천왕사가 지어졌으니 여기가 선덕여왕의 유언대로 도리천이 되어버린 것입니다. 이 얘기는 선덕여왕이 이미 20여년 후에 통일의 기운이 있을 것이라고 짐작했다고 볼 수 있고, 사천왕사가 당나라와의 갈등으로 지어진 절이니까 현재는 당나라와 굉장히 친하지만 마지막에 가서는 당나라와 갈등이 있을 것이라고 선덕여왕은 예측을 했다고 볼 수 있죠.nbspnbsp우리도 앞으로 미국 없이는 통일을 이루지 못하지만 통일에 있어서 마지막 최대의 장애가 미국이 될 수도 있습니다. 이런 것을 예측하면서 국정을 살펴야 합니다. 중국에 대해서도 마찬가지겠죠. 한미 동맹은 굉장히 필요하지만, 지금의 동북아 정세에서 미국의 이익과 한국의 이익이 딱 일치하는 것은 아닙니다. 특히 통일 문제는 일치한다고 볼 수 없어요. 북한이 패망하고 한국이 북한까지 흡수하는 통일을 하고, 그 통일된 한국이 친미 세력이 된다면, 미국은 통일을 적극적으로 지지하겠죠. 그러나 그것을 보장할 수가 없잖아요. 지금도 미국은 한국을 미국으로 끌어들이려는데 한국이 중국의 눈치를 보고 잘 안 움직이기 때문에 미국은 지금 한국을 굉장히 의심하고 있거든요. 반대로 중국은 통일된 한국이 중국 편은 아니지만 중립이라도 지켜준다는 보장이 없잖아요.nbspnbspnbsp그러니 현안적으로 두 강대국이 제일 안심하는 것은 남북을 짤라서 중국은 북한이라도 자기들 편으로 남겨두는 것이 낫고, 미국은 한국을 한미일 삼각동맹체제의 일원으로 넣는 것이 손에 잡히는 이익이라고 볼 수 있죠. 그런 의미에서 통일을 위해서는 북한을 설득할 뿐만 아니라 미국과 중국까지 어떻게 설득하느냐 하는 외교가 굉장히 중요합니다. 종속적 한미 관계에서는 이 문제를 풀기가 어렵습니다. 미국을 최고의 우방으로 두는 것은 맞지만 그것은 자주적인 동맹이여야 합니다. 이것이 바로 신라와 당나라 사이에서 선조들이 겪었던 고뇌를 통해 오늘날 우리들이 배울 수 있는 점입니다.”nbsp과거 역사 속에서 오늘날 외교 관계의 교훈을 얻을 수 있다니 스님의 지혜에 또한번 감탄하게 됩니다. 다음은 문무대왕의 화장터에 세워진 ‘능지탑’으로 이동했습니다. 능지탑을 참배한 후 스님께서는 문무대왕이 얼마나 나라를 위해 솔선수범하는 자세를 가졌는지 이야기해 주셨습니다.nbspnbsp▲ 능지탑nbspnbsp“문무대왕이 돌아가실 때는 고구려가 망하고, 백제가 망하고, 가야도 망했을 때니까 이제 신라에는 적이 없잖아요. 당나라와는 화친 관계를 맺었으니까요. 그런데 아닙니다. 바다 건너 왜가 아직 남아 있었습니다. 신라에게 유일한 안보 상의 위협은 이제 왜만 남은 것입니다. 그래서 문무대왕은 ‘왜는 바다 건너 있으니까 내가 죽어서 동해 바다 용이 되어 왜의 침공을 막겠다’고 유언을 했습니다. 이때 한 스님이 ‘아무리 용이 힘이 있다고 해도 축생이지 않소. 인간보다는 더 올라가야지’ 하니까 문무대왕은 ‘축생이면 어떠냐? 나라만 지킬 수 있다면’ 이렇게 말했다고 합니다. 이것을 보면 신라 고위층들의 이런 솔선수범이 있었기 때문에 국론이 통합될 수 있지 않았나 생각해 볼 수 있죠.nbspnbspnbsp그래서 왕의 시신을 이곳 낭산에서 화장을 한 후 유골을 수습해서 동해 바다로 가져가 바위에 물길이 십자로 퍼지도록 해서 유골을 안치해 용이 되도록 했습니다. 그리고 근처에 감은사라는 절을 지어서 용이 항상 부처님의 설법을 들을 수 있도록 대웅전까지 수로를 연결했다고 합니다. 화장한 이곳에는 재를 모아서 탑을 세웠는데 이것을 ‘능지탑’이라고 합니다.”nbsp축생이 되어서라도 나라를 지키겠다는 문무대왕의 마음에 절로 고개가 숙여졌습니다. 스님께서는 문무대왕의 애국심을 소개하면서 김구 선생님이 “나라가 독립이 된다면 문지기라도 되겠다”고 얘기한 것을 상기시켜 주시기도 하셨습니다. 어째든 지도자들의 솔선수범의 중요성을 다시한번 되새겨 봅니다. 이곳 능지탑 역시 스님의 스승이신 도문 큰스님께서 땅을 구입하여 복원하신 것이라고 합니다.nbspnbsp다음은 오늘의 마지막 코스인 황룡사지로 향했습니다. 황룡사지는 지금은 터만 횡그러니 남아 있지만 동양 최대의 절인 9층탑이 자리했던 만큼 그 터는 넓은 면적을 차지하고 있었습니다. 스님께서는 넓은 터의 가장 남쪽에 위치한 남문 위에 자리를 잡고 앉으신 후 황룡사의 유래와 각각의 건물 위치와 용도를 함께 설명해 주셨습니다.nbspnbsp▲ 황룡사지nbsp“지금 우리가 앉아 있는 이곳은 남문입니다. 그 다음에 있는 것이 중문이고, 그 다음에 9층탑이 있고, 그 뒤에 동금당, 중금당, 서금당 3개가 있고, 그 뒤에 강당이 있습니다. 이 건물들이 모두 일직선상에 있습니다. 가장 대표적인 절의 원형이 이 황룡사입니다.nbspnbspnbsp제가 고등학교 때 여기서 황룡사의 복원을 서원했는데, 살아있는 동안 할 수 있을지 모르겠어요. 황룡사를 복원하는 것은 단순히 옛날 절을 복원하는 문제가 아니라 한반도 통일의 꿈을 성취하는 마음을 모으는 것이 될 수 있습니다.nbspnbsp여기가 금당터입니다. 장육존불이 모셔진 곳이예요. 워낙 불상이 크니까 마루에 얹으면 마루가 내려앉을 것 아니예요? 이렇게 큰 돌을 파서 좌대로 만들고 이 위에 불상을 고정시킨 겁니다. 이 장육존불을 금방 복원하는 방법이 있어요. 스님 3명이 여기 좌대 위에 나란히 앉아서 사진을 찍으면 돼요.” nbspnbsp▲ 장육존불이 모셔져 있었다고 하는 금당 터nbsp스님께서 알려주신 장육존불의 간단한 복원 방법에 모두들 웃었는데, 문제는 이 자리에 스님이 한분 밖에 안계셔서 그 간단한 복원법을 실행에 옮길 수가 없어서 또한번 크게 웃었습니다.nbspnbsp이어서 황룡사 맞은 편에 위치한 분황사로 들어가서 원효 스님의 일화를 들려주려고 하셨으나 수강생들의 얼굴에 조금 피곤한 기색이 보였는지 스님께서는 버스를 타고 숙소로 들어가는 도중에 원효 스님의 이야기를 들려주셨습니다.nbspnbsp▲ 버스 안에서 원효 스님의 이야기를 들려주시는 스님nbspnbsp대안 대사와 방울 스님과 관련된 원효 스님에 대한 이야기는 정말 언제 들어도 생생하고 재미있었습니다.nbspnbsp숙소로 돌아와서는 간단히 세면을 한 후 저녁을 먹고 7시부터 곧바로 저녁 강의가 시작되었습니다. 스님께서는 ‘신라의 삼국통일로 본 통일코리아의 전망’이라는 주제로 왜 통일을 해야 하는지 그 필요성에 대해 열정적인 강의를 해주셨습니다. 단순히 같은 민족이기 때문에 통일해야 한다는 내용이 아니라 통일이 우리 민족에게 가져다 줄 희망과 비전에 대해 구체적인 그림을 그려주셨습니다.nbspnbsp“오늘 저희들은 신라의 성장과 삼국 통일에 관련된 유적지를 살펴보았습니다. 우리가 과거 역사를 보는 것은 과거를 기억하기 위함이 아니라 현재 우리에게 닥친 문제를 어떻게 풀어낼 것인가 하는데에 있어서 과거의 경험을 교훈으로 삼는 것에 초점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신라의 통일 과정과 그 역사를 살펴보았는데 그럼 지금 우리는 어떤 위치에 놓여 있는가 살펴보겠습니다.nbspnbspnbsp남북이 분단이 된 것은 우리의 자발적인 의지가 아니었습니다. 우리를 지배하던 일본 제국주의를 우리 힘으로 격퇴하지 못하고 미소를 중심으로 한 연합국이 승리하면서 타의에 의해 해방을 맞게 되었습니다. 그것의 대가로 우리가 받은 과보는 일본의 식민지 지배 못지 않게 혹독했습니다. 즉 남북 분단이라는 결과를 빚게 되었습니다.nbspnbsp이제는 남북이 합의를 통해 통일을 이루어야 합니다. 여기서 남북이 서로 누가 잘했는지 따지고 티격태격 하기만 하면 앞으로 통일이 되기는 어렵습니다. 결국 통일의 책임의식을 누가 가지는가 하는 문제이거든요. 지금까지는 어떻게 하면 대한민국을 안보적으로 잘 보호하고 nbsp발전시키느냐 하는 것이 남한 지도자의 최고 덕목이였습니다. 그러나 앞으로 남한의 지도자는 남한 체제를 보존하고 발전시키는 것은 말할 것도 없고 북한까지 포함한 전 민족의 이익을 어떻게 보장할 것이냐 하는 의식까지 가져주어야 합니다. 전 민족적인 책임의식을 가지려면 역사 의식이 있어야 합니다. 남북의 적대관계만 보지 말고, 적대 관계를 넘어서서 전민족적인 이익이 무엇인지를 보는 눈이 필요합니다. nbspnbsp통일의 필요성은 두가지입니다. 하나는 민족적인 문제이기 때문에 꼭 돈으로만 따질 수가 없는 문제라는 것이고요. 즉 통일의 당위성이라고 말할 수 있겠죠. 그러나 젊은 사람들은 이것만으로는 설득이 안된다는 데에 문제가 있어요. 젊은 사람들은 이익이 되느냐를 따집니다. 가난한 북한과 합쳐서 덕이 되는 것이 무엇이 있느냐 하거든요. 그래서 통일은 경제적으로도 이익이다 하는 것을 밝혀야 합니다.nbspnbsp현재 대한민국은 지난 50년간 고도 성장을 해왔습니다. 그러나 이제는 저성장, 마이너스 성장으로 갈 위기에 놓여 있습니다. 이것은 첫째, 모방 경제가 갖고 있는 한계입니다. 서구 문명과 우리의 경제력 차이가 50년 정도 된다면 고도 성장이 가능합니다. 그러나 그 간격이 점점 줄어들게 되면 성장 속도가 느려질 수 밖에 없습니다.nbspnbsp두 번째는 지금까지는 성장이 중요했는데 이제는 분배가 중요한 사회적 과제가 되었습니다. 그래서 복지비 지출이 자꾸 늘어나는 겁니다. 세 번째는 인구 구성이 급격히 고령화가 되면서 젊은 사람이 먹여 살려야 할 노인 인구가 많아지면서 성장 동력이 급격하게 떨어져가고 있습니다. 거기다가 출산율도 저하되고 있고요.nbspnbsp그러니까 지금 한국 경제가 안고 있는 조건은 더 이상 고도 성장이 가능하지 않습니다. 이것을 근본적으로 해결하는 길은 창조력을 키우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런 창조력 키우기는 단기간에 간단히 할 수 있는 일이 아닙니다.nbspnbspnbsp다른 방법으로는 임시 해결책이 있습니다. 양적 팽창을 하는 것입니다. 미국의 동부 지역은 유럽을 모방해서 빠른 속도로 성장을 했지만 유럽의 수준에 이르니까 정체 국면에 들어가게 됩니다. 그러다가 서부 개척이라는 새로운 바람이 불었습니다. 창조를 못하고 정체되어 있을 때 서부 개척이라는 새로운 돌파구가 열린 것입니다. 서부 개척이라는 양적 확대를 하는 동안에 전체 사회 분위기가 창조로 바뀌기 시작한 것입니다. 이 두가지를 병행해야 합니다. 이것은 산업화를 해나간 모든 나라들이 겪었던 문제입니다.nbspnbsp그런 의미에서 지금까지 분단은 우리에게 큰 고통이였는데, 이제는 남한의 정체 국면을 극복하는 데에 분단은 큰 선물이 될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통일이라고 하는 양적 확대를 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해주기 때문입니다. 즉 통일을 통해 북한 개발을 하게 되면, 있는 자본과 기술만 갖고도 앞으로 10년은 양적 확대를 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한국 경제의 성장 돌파구는 통일 밖에 없습니다.nbspnbsp그러나 통일만 되면 다 된다고 생각해서도 안됩니다. 통일의 효과는 한 10년15년 정도 밖에 안 갑니다. 이 기간 동안 전체 사회 분위기를 창조력 쪽으로 변화시켜줘야 합니다. 그러나 통일이라는 출구 없이 창조력 쪽으로 바꾼다고 하면, 창조도 안 되고 사회도 불만 속에 정체가 됩니다. 그럼 통일이라는 출구만 열어놓으면 될까요? 아닙니다. 그러면 10년 뒤에 또 똑같은 일이 반복됩니다. 그래서 두 가지를 함께 해나가야 하는데, 먼저 북한 개발이라고 하는 통일 정책을 우선적으로 해나가야 합니다. 그런 의미에서 통일 문제는 단순히 민족적인 문제를 넘어서서 우리에게 현안이 되어 있습니다.nbspnbsp안보 문제에 있어서도 통일된 대한민국은 미중 사이에서 균형을 잡을 수 있습니다. 분단된 한국은 북한에 대한 위협 때문에 어쩔 수 없이 미일 군사동맹체제에 들어가게 되고, 그렇게 되면 중국으로부터 경제적 보복을 받게 됩니다. 미일 군사동맹체제에 안 들어가게 되면 미국으로부터 보복을 받게 되고요. 그래서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합니다. 여기서 북한도 개혁개방을 하면서 중국의 안보 우산을 받아들이게 되면 남북 통일도 물건너 갈 뿐만 아니라 결국 양 대국의 충돌 지점이 한반도가 되어서 2차 세계대전이 끝났을 때의 상황과 거의 비슷한 상황이 될 겁니다. 통일은 고사하고 평화도 위협받게 되죠. 그러나 통일을 하게 되면 우리의 평화만 담보되는 것이 아니고 동아시아의 평화도 이룰 수 있습니다. 그것은 미중이 49대 51로 비슷한 상황이 될 때 한국이 어느 쪽으로 가느냐에 따라서 동아시아의 정세가 달라지기 때문입니다. 즉 캐스팅 보드를 쥘 수 있게 됩니다. 그렇게 될 때 한국은 자주성도 유지할 수 있고, 한국의 평화 뿐만 아니라 한국이 중심이 되어 아시아의 평화도 가져올 수 있습니다. 또 한국이 중심이 되어서 한중일 경제공동체를 구성한다면 아시아 시대가 도래할 수도 있습니다.nbspnbspnbsp한중일 경제공동체가 되면 양적인 규모가 세계 최대가 되는데, 그 위에 창조성을 갖게 되면 문명의 중심이 될 수도 있습니다. 그렇다면 아시아 지역에서 창조성을 가진 나라는 어느 나라일까요? 중국은 양적 팽창은 가능하지만 창조성은 없어요. 일본도 모방 쪽이지 창조성이 결여되어 있어요. 한국도 비슷한데 창조성이 돋보이는 영역이 있어요. 대중예술 분야입니다. 왜냐하면 대중예술 분야에는 아무런 억압된 권위가 없거든요. 창조력이 생기기 위해서는 빨갱이니 종북이니 하는 제단이 없어서 생각을 자유롭게 할 수 있어야 해요. 아마 통일이 된다면 노벨문학상도 나올 수 있을 거예요. 왜냐하면 이 분단의 아픔 속에서 표현하지 못했던 것들이 적나라하게 표현될 수가 있기 때문에요. 그런데서 통일은 단순한 경제적인 성과나 외교적인 자주를 넘어서서 우리에게 완전히 새로운 세상을 맛보게 하는 것이 됩니다. 한국이 갖는 창조성과 중국, 일본이 갖는 경제력이 결합된다면 적어도 21세기 말에는 동아시아 시대가 도래할 수 있습니다.nbspnbsp우선 통일만 갖고도 우리는 일제 침략 이후 100년의 한을 풀 수가 있게 되고, 또 통일을 한 후 동아시아 공동체의 중심 국가가 된다면 이것은 천년의 꿈을 실현하는 게 됩니다. 발해 멸망 이후 우리는 동아시아의 변방으로 전락해 있었습니다.nbspnbsp조금 더 나가면, 고조선 멸망 이후에 우리 문명이 중국 쪽으로 흘러간 역사가 있었습니까? 배달 시대에는 우리의 높은 문명이 중국 쪽으로 흘러갔습니다. 그런데 철기 시대가 되면서 우리는 청동기 문명에 매몰되어 있다가 중국으로부터 밀리기 시작했습니다. 고조선 말기에는 한사군이 설치되는 등 중국의 침략까지 받게 되는 수모를 겪었습니다. 그것을 회복하고자 주몽이 다물 사상으로 고구려를 건국한 것이죠. 문명이 중국으로 흘러가던 것이 멈추고, 반대로 중국으로부터 문명이 우리 쪽으로 흘러온 역사가 지금까지 3천년 간 지속해오고 있기 때문에 우리는 중국에 대해 근본적으로 열등의식을 갖고 있습니다.nbspnbsp그런데 묘하게도 지금 우리의 기술과 문명이 중국 쪽으로 흘러가는 최근의 현상은 3천년 만에 처음 있는 일이라는 것을 생각 안해보셨죠? 우리가 세계 최고 문명에 중국보다 빨리 근접했기 때문에 이렇게 된 것입니다. 그런데 중국과 우리의 이 격차가 점점 좁혀지고 있어요. 그러나 만약에 통일을 하게 되어서 낭비적인 요소를 잠재우고 창조력에 에너지를 쏟는다면 앞으로도 상당기간 중국에 문명을 전수해주는 입장을 유지해 갈 수 있어요. 다시 말하면, 아시아 전체 문명의 핵심은 한국에 있고, 규모로는 중국과 일본의 경제가 동아시아 공동체를 세계 최대 규모로 만들어주되 핵심키는 한국이 가지고 있는 상상을 해볼 수 있습니다. 이런 비전이 없기 때문에 한국 사람들이 자신감이 없는 것입니다.nbspnbspnbsp통일은 첫 스텝이지 전부가 아닙니다. 그러나 통일이라는 첫발을 내딛으면 그렇게 갈 수 있는 가능성이 열리는데, 통일이라는 첫발을 못 내딛게 되면 아무런 가능성도 없어집니다. 남한만 갖고는 세계 정세나 안보 상황이나 경제적 조건을 고려했을 때 불가능합니다. 이제 통일 문제는 과거의 소극적인 자세를 넘어서서 세계 문명의 중심 국가로 나아가기 위한 첫발로서의 과제가 되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좌파든 우파든 과거의 통일 운동 세력이 이 운동의 중심이 되어서는 안됩니다. 우리는 미래를 보는 통일 운동을 하고자 하는 것입니다.nbspnbsp신라도 작은 나라였지만 원효대사의 사상이 중국에 유행하고, 신라의 기술 일부가 당나라로 전래되어서 산둥반도에 신라방이 형성되고 하지 않았습니까. 그런 저력은 신라가 단순히 열심히 해서 그런 것이 아닙니다. 그것은 우리의 DNA가 배달 문명의 후예이기 때문에, 세계 최고 문명을 가졌던 우리 역사가 있었기 때문에 그런 기회가 주어진 것이라고도 볼 수 있어요. 그러니 개인의 성공을 넘어서서 집단 지성으로 국가의 발전 계획을 세우고, 국민들에게 희망을 줄 수 있는 쪽으로 우리의 역할을 해보자는 것입니다. 돈이 있다면 이런 활동에 돈을 써야 하고, 자신이 갖고 있는 재능이 있다면 이런 활동에 쓸 때 죽어도 웃으면서 죽을 수 있지요. 겨우 돈 벌어서 골프 치러 다니고 술 마시러 다니고 집 좀 큰 것 사는 것으로 목에 힘주고 다니면, 죽을 때 되어서 하나도 자랑할 만한 것이 못돼요. 그냥 낙옆 하나 떨어지는 것과 똑같지요.nbspnbsp이제는 여러분들이 개인적 삶에서 공적인 삶으로 전환을 해야하는 시기가 되었습니다. 우리가 어릴 때 꿈꿨던 이상이 하나의 이상으로만 끝나는 것이 아니라 이제야말로 우리에게 현실로 다가오는 시기가 되었습니다. 우리는 그걸 능히 해결할 힘이 있습니다. 조금 더 자신감을 갖고 임해주시면 좋겠습니다.”nbsp스님의 강의는 2시간 30분 동안 계속 되었습니다. 스님의 목소리에는 간절함이 묻어났습니다. ‘통일 한국’, ‘동아시아 경제공동체’, ‘세계 문명의 중심’이라는 단어를 들으니 가슴이 콩닥 콩닥 뛰었습니다. 통일 한국을 이루고 동아시아 문명의 꽃을 피우는 모습을 상상해 보며 한국인으로서의 자긍심을 느껴봅니다. 이렇게 우리가 나아가야 할 방향을 분명하게 그려주시는 스님이 계셔서 너무나 감사한 마음이 들었습니다.nbspnbspnbsp열강을 해주신 스님께 큰 박수가 터져나왔고, 이어서 질의응답 시간이 계속 되었습니다. 이후 프로그램이 있어서 긴 시간 답변을 하지 못하고 두 명의 질문에 대해서만 답변을 해주셨습니다.nbspnbsp한 분은 “앞으로 통일을 대비해서 북한 주민들을 어떻게 바라봐야 하고, 북한 지도부를 어떻게 봐야 하는지요?”라고 물었고, 한 분은 “스님은 경제, 문화, 역사에서 깊이 있는 식견을 갖고 계신데, 스님의 생각을 남한의 지식인들과 어느정도 공유하고 계신지? 또 북한에서도 스님과 같은 생각을 가진 분들이 있는지 궁금합니다”라고 질문을 했습니다.nbspnbspnbsp스님께서는 두 분의 질문에 답변을 한 후 오늘 강연을 마무리는 말씀을 해주셨습니다. 우리부터 열린 마음을 가지면서 사회 통합을 향해 나아가자고 당부해 주셨습니다.nbspnbsp“앞으로 우리가 발전하려면 통일이 첫단계이고, 다음이 동아시아 공동체이고, 그 다음은 세계 문명의 중심이 되는 것을 목표로 세우고 추진해 나가야 합니다. 그 중에서 통일로 가는 첫발은 정부가 확실하게 통일을 목표로 하고 통일 지향적 외교, 통일 중심의 경제, 통일 중심의 안보 정책을 취하는 것입니다. 왕조 시대에는 어쩔 수 없었지만 지금은 국민이 나라의 주인이잖아요. 정부는 국민의 명을 받아서 집행하는 머슴이잖아요. 그렇다면 우리는 머슴을 교체해서 통일 지향적인 정부를 구성해야 합니다. 그런데 아무리 찾아봐도 심부름을 잘 해줄 머슴이 없다면 그 중에 좀 더 나은 사람이라도 선택해야 합니다. 그리고 한 사람의 개인은 별 의미가 없어요. 통일지향적인 정치 세력이 구성되어야 하고, 여러분들은 통일지향적인 정치 세력을 후원하는 사람이 될 수 있습니다. 이런 분위기가 국민적으로 형성되면 통일을 지향하는 정치 세력이 나타나게 되어 있습니다.nbspnbspnbsp여러분들에게 정치를 하라는 얘기가 아니예요. 이런 활동을 밀어주는 역할을 여러분들이 해주면, 그 역할을 하겠다는 사람들은 있습니다. 그러니 우리들의 마음 속에 ‘나라가 제대로 되려면 통일을 해야 되고, 통일을 하려면 북쪽은 주도를 못하고 남쪽이 중심이 되어서 할 수 밖에 없다. 그렇다면 남쪽이 중심이 되어 북한을 포용할 수 있는 통일지향적 정부를 구성해야 된다’ 그런 목표 하에 판세를 봐가면서 여러분들이 행동하면 됩니다. 여기에는 진보여야 한다고 고집할 필요도 없고, 보수여야 한다고 고집할 필요도 없이 이 통일 문제에 중심이 딱 잡힌 사람에게 투표한다고 생각하면 됩니다.nbspnbsp이미 기회는 조금 기울어져 버렸습니다. 지금 상황은 한국 안에서 여당과 야당의 갈등을 푸는 것이 남북 간의 갈등을 푸는 것보다 더 어렵고, 남북 간의 갈등을 푸는 것이 일본과의 갈등을 푸는 것보다 더 어렵습니다. 희한한 일이죠. 여야 문제는 풀기 쉬워도 남북 문제는 풀기가 어려워야 하고, 남북 문제는 풀기 쉬워도 일본과의 갈등은 풀기가 어려워야 하는데, 지금 거꾸로 되어 있어요. 한일 갈등은 풀어도 남북 문제는 못 풀고, 남북 문제는 풀어도 한국 안에서 여야 갈등은 못 풀고, 여야 갈등은 풀어도 야당 안에 내부 갈등은 못 풉니다.nbspnbsp진보 세력은 왜 분열이 심할까요? 내가 옳다는 생각이 너무 강하기 때문입니다. 보수는 옳고 그름을 안 따지고 그저 이익만 되면 서로 힘을 합하니까 결과적으로 분열이 덜 되는데, 진보는 자기 주장을 갖고 서로 싸우니까 분열이 더 많이 되는 겁니다. 국민이 볼 때는 분열을 더 싫어하니까 진보 쪽에 표를 안 주는 것이죠.nbspnbspnbsp그래서 우리가 극복해야 될 것은 생각이 진보적인 것 뿐만 아니라 실제로 사람을 포용하는 힘을 가져야 합니다. 큰 목표가 있으면 작은 것을 수용할 수가 있습니다. 과거를 갖고 논쟁을 하면 끝이 안납니다. 미래의 이익과 희망을 보고 과거는 서로 조금 봐주는 관점을 가져야 우리는 힘을 합해 나갈 수 있어요. 사람은 이런 주장도 할 수 있고, 저런 주장도 할 수 있습니다. 그런 열린 관점에서 포용력을 가져야 우리는 사상의 자유를 가질 수 있어요. 그래서 우리들부터 조금 열린 마음을 가져봅시다. 대화를 할 때 견해 차이를 너무 따지지 말고 ‘아, 저렇게 생각할 수도 있구나’ 해보세요. 사유의 자유를 가져야 창조력이 나옵니다. 자기 잣대를 너무 고집하지 말아야 합니다. 통일로 가기 위해서는 우리부터 조금 열려야 합니다. 이런 연습을 해야 우리 사회가 조금씩 통합되어 가지 않겠나 생각합니다.”nbspnbsp다시 한번 뜨거운 박수 갈채가 쏟아지면서 오늘 강의가 마무리 되었습니다. 스님의 간곡한 호소에 평리아 수강생들은 오늘 밤 통일 한국에 대한 희망에 대해 밤새 이야기를 이어갈 것 같습니다.nbspnbsp▲ 오늘 스님께서 해주신 말씀이 민들레 홀씨 되어 많은 분들에게 희망으로 전해지길 기원해 봅니다.nbsp스님께서는 강연을 마치고 두북으로 이동하셨고, 평리아 수강생들은 10시30분부터 늦은 시간까지 통일 한국을 향한 우리의 역할에 대해 토론하며 친교의 시간을 함께 가졌습니다.nbsp

2015.05.10. 29,631 읽음 댓글 14개

2015.5.8.불심도문 큰스님 생신, (사)독립운동가 백용성조사기념사업회 이사회

nbsp nbsp 오늘은 어버이날입니다. 법륜스님께는 스승이신 도문 큰스님의 생신날이기도 해서 스승님을 찾아 뵙고 인사를 드렸습니다. nbsp 새벽예불, 기도를 함께 한 후 해외정토회 김순영 사무국장님은 스님께 “해외사무국에서 활동하시는 분들은 혼자서 일을 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컴퓨터와 일을 하는 것이 대부분입니다. 이럴 때 해외정토회 활동가들은 어떤 마음으로 하는 것이 좋을까요?”라며 그동안 해외에서 활동하다보니 넓은 지역에서 혼자 활동을 해야 하는 경우가 많았는데, 그럴 때 어떻게 수행적 관점을 가지고 일해야 하는지를 물었습니다. nbsp nbsp 스님께서는 그동안 해외에서 활동하느라 수고했다고 격려하시면서 “주어진 조건은 최선도 아니고 최악도 아닙니다. 중요한 것은 수행자로서 가지는 ‘원’입니다. 우리가 전 세계에 불법을 전하기 위해서는 함께 모여 있는 것보다는 오히려 전 세계에 흩어져 있는 것이 낫습니다. 주어진 조건은 좋고 나쁨이 없지만 어떻게 받아들이느냐에 따라 좋은 조건이 되기도 하고 나쁜 조건이 되기도 합니다. 우리는 현재의 우리의 조건을 유리한 것으로 만들어야 합니다. nbsp 현재 해외지부는 사무국의 역할이 중요합니다. 그것은 아직 각지구나 지회가 알아서 할 수준이 안되기 때문입니다. 가능한 두달에 한번이라도 만나서 얼굴도 보고 회의하는등 부족한 것은 이렇게라도 메우고, 나머지는 인터넷상으로 할 수 밖에 없습니다. 당분간은 재정이 부족해서 개인부담하더라도 해외사무국 재정이 어느정도 준비되면 절반은 공적으로 지원하고, 절반은 개인이 부담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또 임원이 교육이나 회의, 행사에 참가할 때는 앞으로는 공금에서 제공하는 것도 이제는 고려할 때가 되었습니다. nbsp nbsp 열악한 조건을 극복하는 것은 별다른 방법이 없습니다. 지금 해외 정토회가 어려운 조건에 놓여 있지만, 국내에서 정토회를 맨처음 시작할 때의 상황과 비슷합니다. 정토회도 처음 시작할때 막연했어요. 또, 지방도 알아서 해라 할 때 막연했어요. 지금 해외는 그와 같이 막연한 상태입니다. 그러나 조금만 더 해 나가면 힘이 생길 것입니다.” 라고 하시며 처음 정토회가 시작할 때처럼 해외도 그렇지만 조금만 더 해가면 점점 힘이 생길 것이라고 격려해주셨습니다. nbsp 간단히 해외정토회 사무국 활동가들과 이야기를 나눈 후 어제 시애틀 신수지 보살님이 통영에서 사다 준 충무김밥으로 아침을 먹고 난 후 해외정토회 사무국 활동가들은 부산, 대구, 서울로 향하였고 스님께서는 장수 죽림정사로 향했습니다. nbsp nbsp 오늘 도문 큰스님 생신을 축하하기 위해 동국대 총장 보광스님등 문중의 스님들 약 15여명이 함께 자리를 했습니다. 큰스님을 모시는 정광법우님은 근래에 이렇게 많은 제자들이 모이기도 오랜만이라고 합니다. 원래는 큰 스님의 생신은 내일이지만, 오늘은 큰스님의 어머님 기재사이고 또 내일이 생신이라서 이렇게 전날 모인다고 합니다. nbsp 스님께서는 도문 큰스님께 인사를 드리고 나서 법당에서 도문 큰스님의 어머님 재에 참석하셨습니다. 재를 모두 마치고 점심공양을 하신 후 다함께 기념 촬영을 한 후 큰스님께 다시한번 생신축하인사를 드렸습니다. nbsp nbsp 기념촬영 후 ‘ 독립운동가 백용성조사 기념사업회’의 이사회가 열렸습니다. 이사회에는 모두 13분이 참석하셨습니다. 이사회의 주요 안건은 ‘백용성조사 기념관을 활성화하는 방안, 백용성 조사님이 출가하신 곳이자 스승이시 혜월선사가 머무셨던 곳이고 천도교 교주이신 최제우 선생이 은거했던 곳인 덕밀암 복원에 대한 건, 네팔 룸비니 대성석가사 지원’ 등이었습니다. nbsp nbsp 그리고 이사님들이 다 모인 가운데 백용성조사 유훈 실현을 위해 죽림정사를 활성화하고 기념사업회의 활동을 활성화 하는 방안에 대한 논의들도 있었습니다. nbsp 또, 민족문제 연구소에서 ‘일본 제국주의의 아시안 홀로코스트’라는 주제로 광복 70주년 기념 국제학술 심포지엄을 하는데 독립운동가 백용성조사 기념사업회와 함께 하자는 제안을 받아 함께 하기로 결의를 했습니다. nbsp nbsp 그리고 스님께서는 죽림정사에서는 1년에 큰 행사가 4개 있는데, 3·1절 기념식, 용성조사 탄생일, 오도일, 열반일이니까 이사님들은 미리 시간을 비워두고 꼭 참석 해달라고 요청드렸습니다. nbsp nbsp 회의를 모두 마치고 스님께서는 큰 스님께 인사를 드리고 스님께서는 다시 두북으로 이동해서 9시경에 도착했습니다. 스님께서는 지난번 다친 이후 상처는 덧나지 않았는데, 몸의 컨디션이 좋지 않아 며칠간 힘들어 하셨는데 어제그제는 계속 체하셔서 경주정토회의 김성순 대표님이 체기를 따드린다고 오셔서 간단히 치료를 받고 바로 주무셨습니다. 내일은 평화리더십 아카데미 경주역사기행이 있는 날입니다.

2015.05.09. 21,331 읽음 댓글 19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