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님의하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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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5.11. 애광원 나들이, 창원희망강연

nbsp nbsp nbsp 오늘은 거제 애광원 장애우들과 봄나들이가 있는 날입니다. 이번 봄나들이는 애광원 장애우들 중 거동이 어느 정도 가능한 경증 장애우와 함께 진주, 사천 일원으로 떠나게 되었습니다. 어제 문경수련원에서 특강, SBS 촬영, 수행대중법회를 하신 후 스님께서는 문경수련원에서 주무시고 오늘 새벽 대중과 함께 예불, 기도 후 5시 30분에 바로 진주로 향했습니다. 가다가 칠곡 휴게소에서 간단한 아침식사를 한 후 오전 9시반경에 진주성에 도착하니 마산, 거제, 내서, 함안 정토법당 봉사자들이 먼저 와서 애광원 원생들을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이윽고 진주성 북문에 애광원 원생을 태운 버스가 도착하자 봉사자들이 줄을 지어 따뜻이 환영하였습니다. 법륜스님께서 김임순 애광원 원장님을 반갑게 맞이해주셨습니다. 차에서 내리는 원생들 한 명씩에게 오늘 하루 동안 단짝이 되어 함께 할 봉사자 한 명씩을 맺어주고 본 일정에 들어갔습니다. nbsp nbsp 먼저 임진왜란 때 진주성대첩을 이끌었던 김시민장군 동상 앞에서 다함께 기념사진을 찍었습니다. 임진왜란 3대 대첩 중의 하나인 1차 진주성전투를 이끌었던 김시민장군은 셀 수조차 없는 화살을 쏘느라 엄지와 식지가 잘라져나갈 정도로 항전하여 승리를 거두었다고 합니다. 그리고 2차 진주성전투에서 성이 함락되어 7만여명의 군인과 백성이 학살당했던 처절한 역사를 전해들으면서 장애우나 봉사자 모두 숙연한 마음을 금할 수 없었습니다. nbsp nbsp 그리고 바로 옆 우리나라 3대 누각으로 손꼽히는 촉석루와 논개를 모시는 사당인 의기사를 들러 아름다운 남강의 정취를 보며 논개의 충절을 다시금 되새기는 시간도 가졌습니다. 스님께서는 논개가 왜장과 함께 남강에 몸을 던졌던 의암까지 내려가서 잠시 합장하며 의암에 서린 호국의 얼을 기리기도 하셨습니다. nbsp nbsp 진주성 안에는 국립진주박물관이 있지만 월요일에는 휴관일이라 애광원 원생들과 봉사자들은 진주성의 성곽을 따라 걸으며 진주성을 관람하였습니다. nbsp 스님께선 진주성전투에서 전사한 분들을 따로 모시는 사당인 창열사를 참배하고 바로 옆의 호국사에 들렀습니다. 호국사는 원래 내성사란 이름의 절이었으나, 2차 진주성전투에서 성과 함께 운명을 같이한 승병들의 넋을 기리기 위해 숙종 때 호국사란 이름으로 재건하였다고 합니다. nbsp 스님께서 호국사에서 부처님 전에 삼배를 올리고 나오자 애광원 원생들과 봉사자들은 잔디밭에서 한참 레크리에이션을 즐기고 있었습니다. nbsp nbsp 원래 레크리에이션 프로그램을 알차게 준비했지만, 일부만 계획대로 진행하였습니다. 그럼에도 예상치 못했던 다채로운 프로그램으로 모두가 함께 되는 즐거운 시간이 되었습니다. 애광원 원생들은 워낙 적극적으로 자신들이 갈고 닦은 노래와 춤을 자랑하였고 봉사자들 역시 함께 흥에 겨워 즐겼습니다. 몇몇 원생들은 스님과의 재회가 기쁜 나머지 스님께 거리낌없이 애정 표현을 하여 모두 박장대소 하였습니다. 원생들은 멍석만 깔아주면 사회자가 연이어 “줄을 서시오”를 외쳐야할 만큼 잘하고 못하고를 상관하지 않고 마음껏 노래하고 춤췄습니다. nbsp nbsp 정말 신나고 즐거웠던 레크리에이션은 점심시간에 걸려 아쉽게도 중단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점심은 진주성에서 20분 정도 이동하여 사천의 원산면옥에서 맛있는 갈비탕을 먹었습니다. 오전에 진주성을 둘러보느라 제법 걷고 또 흥겹게 놀았던 탓에 모두 시장기를 느껴 너무나 맛있게 식사를 할 수 있었습니다. 장애우들과 봉사자들도 대부분 스스럼없이 친해져 다정하게 손잡고 다니고, 식사도 함께 챙겨주는 모습이 무척 아름다웠습니다. nbsp 점심식사 후 예정대로 사천의 항공우주박물관을 관람하였습니다. 이 박물관은 사천공항 인근에 조성된 항공우주산업단지 가운데 위치하여 우리나라 항공산업의 수준과 전망을 보여주었습니다. 박물관 야외에는 과거 우리나라 대통령 전용기를 비롯하여 한국전쟁 때의 B29폭격기부터, 수송기, 전투기 등이 넓은 정원에 빼곡하게 전시되어 있었습니다. 큰 비행기는 내부에 직접 들어가볼 수 있어 호기심 많은 장애우들이 무척 즐거워하였습니다. nbsp nbsp 실내전시관에 들어오니 사천의 항공우주산업단지의 자부심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실내전시관은 항공산업과 우주산업, 그리고 한국전쟁의 3가지 전시관으로 이루어져 있었습니다. 딱딱한 지식 중심의 해설은 짧게 마무리하고 박물관 정원에서 종이비행기 만들기와 날리기 시합을 하였습니다. 자신이 만든 종이비행기를 가운데 표적까지 날리느라 여념이 없었는데, 법륜스님께서 만든 종이비행기는 제트기처럼 잘 날아 모두가 감탄하였습니다. 애광원 원장님께서도 의욕적으로 날렸지만 그만 발 아래로 곤두박질해 우리에게 큰 웃음을 주셨습니다. nbsp nbsp 종이비행기 날리기가 마무리될 때쯤 본격적으로 비가 내리기 시작해, 박물관 매점 앞에서 애광원 인솔교사님 주도하에 다시 레크리에이션 시간을 가졌습니다. 오전에는 노래가 중심이었다면, 오후에는 그야말로 본격적으로 춤 솜씨를 자랑하는 시간이었습니다. 애광원 원생들은 마치 이날을 위해 평소 연습이나 한 것처럼 모두 조금도 주저하지 않고 음악에 맞춰 율동을 뽐냈고, 짝을 이룬 봉사자들도 손에 이끌려 모두 광란의 도가니가 되었습니다. 매점 사장님이 계속 웃으며 지켜보더니 아이스크림을 박스째로 찬조하셨습니다. nbsp nbsp 그리고 하시는 말씀이 그동안 박물관에 여러 장애인학교나 단체에서 관람오면 봉사자들이 장애우에게 함부로 대해서 실망스러울때가 많았는데, 오늘 JTS 봉사자들의 헌신성을 보고 무척 감동했다고 합니다. 오전에 진주성에서도 레크리에이션을 지켜보던 중년 신사분이 너무 보기 좋다며 후원방법을 물어봐서 JTS 활동을 설명드리고 홈페이지를 가르줬습니다. 자원봉사자들의 마음이 있는 그대로 전달되는 것 같아 무척 기분 좋았습니다. nbsp nbsp 흥겨운 여흥을 마무리하고 모두 들뜬 마음으로 다시 저녁식사를 위해 진주 남강변으로 자리를 옮겼습니다. 식사 전 애광원 김임순원장님께서 법륜스님께 감사의 표시로 원생들의 정성이 담긴 선물을 증정하였고, 스님께선 애광원 인솔교사분들에게 스님의 책을 선물하였습니다. 김임순원장님은 인사말에서 “애광원의 교사 1명이 원생 6명을 담당하는 구조여서 평소 원생들을 먹이고 씻기는 일만해도 일손이 부족해 이렇게 나들이하는 일은 엄두를 못냅니다. 매년 두 번씩이나 정토회에서 이렇게 순수한 사랑으로 하루종일 밝게 원생들의 손을 잡고 함께해주시니 무어라 감사의 표현을 하기에도 벅찹니다. 원생들에게는 너무나 좋은 경험이자 소중한 시간이 되고 있습니다”며 거듭 스님과 봉사자들에게 감사인사를 전해 듣는 우리들이 송구스러울 정도였습니다. nbsp 스님께서는 “원생들의 건강 때문에 멀리 나들이하는 것을 어려워했는데 다음부터는 좀더 새롭고 의미있는 곳으로 가는 것도 생각해봤으면 좋겠습니다. 너무 즐거운 시간을 함께하여 우리도 큰 힘을 얻게 되었습니다”며 늘 행복하고 건강한 모습으로 다시 뵐 것을 당부하셨습니다. nbsp nbsp 뒤이어 오늘 행사 사진을 즉석에서 일부 편집해 동영상으로 감상하며 너무나 유쾌, 상쾌, 통쾌했던 시간을 돌아보았습니다. 저녁식사 후 원생들과 봉사자들은 석별의 인사를 나누었습니다. 짧은 한나절의 추억에 불과하지만 함께 두손 꼭 잡고 걸었던 길과 나누었던 웃음들이 있기에 아쉬운 마음은 결코 작지 않았습니다. 몇번 애광원 나들이를 함께 한 사람도 이 시간이면 항상 느끼는 그 짠한 마음, 그 마음을 있는 그대로 담아 다음 나들이를 기약하며 애광원 친구들을 빗속에 배웅하였습니다. nbsp 스님께선 창원 강연 때문에 바쁜 걸음을 옮기셔야 했고, 봉사자들은 많이 느끼고 배운 시간을 나누며 보람있고 행복했던 하루 일과를 정리할 수 있었습니다. nbsp 스님께서 강의하실 창원은 강연 시간이 가까워지면서 태풍 노을의 영향으로 하늘이 어두워지기 시작하였습니다. 강연을 준비한 봉사자들 가운에 몇분은 비바람 때문에 대중들이 많이 오지 않을까 걱정하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스님 강연을 들으려는 사람들은 이제 날씨에는 영향을 받지 않는 것 같습니다. 다섯 시 즈음 되니 접수대에 많은 사람들이 모여 스님 강의를 기다렸고, 질문자 접수도 금방 마감되었습니다. 오늘 강연은 청소년을 위한 문화공간인 늘푸른 전당에서 열렸습니다. 강당은 1,2층 합하여 648석이고 참가자 수는 723명이었습니다. nbsp nbsp 스님께선 강연 전에 장유분들이 주축이 되어 봉사하는 반야회와 다담을 가지셨고 반야회에서는 그동안 모은 돈을 스님께 좋은 일에 써 달라고 하셨는데, 스님께서는 이번 네팔지진피해지역 지원에 사용하겠다고 하셨습니다. nbsp 무대에 오르신 스님께서는 “비가 오는데도 많이들 오셨네요. 전 비가 와서 많이 안올 줄 알았습니다.”로 인사말씀을 하시면서 반가움을 표하셨습니다. 오늘 낮에 거제도 애광원 식구들과 진주 촉성루와 사천 우주 박물관에 다녀오신 이야기를 잠깐 들려주셨고, 지적 장애인들이 거주하는 애광원에 대한 소개도 잠시 해주셨습니다. nbsp nbsp 그리고 창원에 있는 봉림사지터에 대한 이야기를 해주셨습니다. “보통 사람들은 한국 불교의 역사를 고구려에 처음 불교가 전해진 AD 372년을 기준으로 잡아 1,600년으로 보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러나 사실은 인도의 한 왕국이었던 아유다국의 왕녀 허황옥과 왕족출신 장유화상이 지금의 마산인 합포에 도착하여 가야에 불교를 처음 접한 AD 48년을 기준으로 잡아서 불교역사는 2,000년이 됩니다. 지금도 인도에는 아요이다라는 지명이 있고, 가야시대의 탑으로 알려진 파사이 탑은 우리 나라에서 나지 않는 돌로 만들어져 있습니다. 허황옥은 김수로왕과 결혼하여 아들 열 명을 낳았는데, 한 명은 김해 김씨를, 또 두 명은 김해 허씨를 이었습니다. 그리고 나머지 일곱명은 출가하여 스님이 되었는데, 칠불암의 유래가 거기서 시작되었습니다. 그리고 봉림은 봉황이 알을 낳는 모양의 숲이라는 뜻인데, 가야시대 최초의 절인 ‘가야정사’가 있었고, 나중에 신라 말에 구산선문 가운데 하나인 봉림사가 지어졌습니다. 골짜기가 작아 보이지만 한때는 그곳에서 500여명의 스님들이 수행하였습니다. 부산, 마산, 김해 지역의 불심이 높은 이유도 그런 인연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김해시에는 지금도 장유면과 장유폭포가 있는데 장유화상의 이름에서 유래되었습니다.” nbsp 장유지역에 사는 분들이 주축이 되어 스님들을 후원하는 반야회라는 모임이 있는데, 오늘은 그분들이 지진이 난 네팔을 돕는데 써달라고 보시해주셨다는 말씀도 전해주셨습니다. 그분들의 보시에 관중들이 박수를 보냈습니다. nbsp nbsp 그리고 질문을 받기에 앞서 즉문즉설은 성경이든 불경이든 경전의 진리를 먼저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라 일상의 내 이야기를 먼저 한 후, 그 이야기를 바탕으로 깨달음에 이르도록 도와주는 길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자기 의심이나 자기 괴로움을 이야기 하는 것이지 주변 사람들의 괴로움이나 책에 적혀있는 것에 대해서 이야기 하는 것은 아니라고 안내해 주셨습니다. 질문은 결혼생활 27년중 20년간 늘 아프기만 한 남편을 둔 분, 수행에 관심이 있으나 죽음에 대한 두려움이 있는 부산 청년, 주인으로 살지 못하고 눈치만 보고 살아서 고민인 결혼 9년차 주부, 9년간 한 우물을 파다가 이제 다른 우물을 팔려고 준비하고 있고 후회하지 않는 삶을 살고 싶은 20대 청년, 칭찬만 듣고 싶은 아가씨, 스님은 사후세계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는지가 궁금한 청년, 나의 행복을 넘어 친구들의 행복까지 챙기고 싶은 30대 후반, 선택을 잘 하지 못하는 공무원 준비생인 2년차 젊은이 등 모두 여덟 분이 하셨습니다. nbsp 첫 번째 질문자의 내용입니다. “스님 남편은 늘 아프다는 말을 합니다. 결혼 생활 27년인데 20년간 그렇게 살고 있습니다. 1년에 너 댓 번, 한 달에 20일 정도 아프다고 합니다. 안 가본 병원이 없고, 천도제, 구병시식, 굿 등 안 해본 것이 없습니다. 병원에 가도 뚜렷한 병명이 없고, 자신은 열이 난다고 하는데 검사를 하면 정상으로 나와요. 아플 때마다 병원가면 똑같은 일이 벌어지니까 이제 병원에서도 오지 말라고 해요. 그리고 간호사들이 안와도 되는데 자꾸 온다면서 자기들끼리 수군거리는 것을 보면 제가 남편에게 화가 나요. 어떤 스님은 남편이 스님이 될 사주인데 스님이 안 되어서 아프다하여 스님이 되라고 해도 혼자서는 안 간다고 하고, 어떻게 마음을 가져야 할지요?” nbsp nbsp “남편이 아프기는 하지만, 일을 하면서 밥벌이, 용돈, 병원비를 자신이 번다면 별로 손해나는 일은 아니네요. 결혼을 했으면 남편 덕을 보고 싶은 것이 인지상정인데, 그 덕을 못 보는 것이 조금 아쉽기는 하지만, 손해를 끼치는 것은 아니잖아요? 아이들한테는 아빠가 있는 것이 좋고, 질문자에게도 남편이 없는 것보다는 있는 것이 좋지요. 그리고 아프다고 하지만 죽지는 않았잖아요? 그리고 20여 년간 그렇게 살아왔으니, 앞으로도 그 증상 때문에 갑자기 죽거나 하지는 않을 거니까 너무 걱정하지 마세요. nbsp 현대의학이 장기를 이식하고, 줄기세포를 이용하는 등 아주 발달된 부분도 있지만 아직 질병의 원인을 발견하지 못해 치료하지 못하는 것도 많아요. 입 돌아가는 것도 침 맞으면 바로 해결되지만 현대의학으로는 안되잖아요? 남편의 경우 육체적으로든 정신적으로든 아프니까 아프다고 하는 거예요. 지금까지 노력한 것을 보면 현대의학으로는 밝혀지지도 않고, 완치도 안되는 질환 같으니 밝히려고도 또 완치하려고도 애쓰지 않는 것이 좋아요. 죽을 병도 아니고, 돈이 많이 드는 것도 아니고, 그리고 자기가 병원비를 벌고 있으니, 너무 걱정 마세요. 남편이 아프다고 말하면 남편이 병원가자고 하기 전에 먼저 질문자가 병원에 데리고 가서 링거 맞고 돌아오도록 하세요. 현대의학으로 밝혀지지 않아도 남편은 통증이 있으니까 그렇게 하는 거예요. 억지로 일부러 20년간을 그렇게 할 수는 없는 거예요. 남편이‘병원 안가겠다’‘가봤자 소용없잖아?’라고 말하더라도 ‘이번에 가면 병명이 나올 수 있잖아?’하면서 좀더 적극적으로 남편의 아픔을 받아주세요. 남편의 병이 질문자를 괴롭힌 것이 아니라 남편이 아프다는 것을 핑계로 본인이 괴로워하는 거예요. nbsp nbsp 남편이 매일 술 먹어서 괴로운 게 나을까요? 아니면 1년에 대 여섯번씩 머리 아픈게 나을까요? 더 좋아지기를 바라지도 말고, 완치되기를 바라지도 말고 또 남편이 꾀병 부린다고 생각도 하지 마세요. 아픈 와중에도 살아갈 수 있게, 아프다고 하면 먼저 병원에 데려가세요. 이것이 성경을 빌어서 말하면‘5리를 가자면 10리를 가주라’‘겉옷을 달라면 속옷도 주어라’‘왼뺨을 때리면 오른뺨도 대줘라’정신이 아닐까요? 불교에서 말하면 ‘수처작주’가 되겠지요. 처하는 곳마다 주인으로 사는 것이지요. 성경이든, 불경이든, 과학이든 받아들일 수 있는 것은 무엇이든 받아들여 행복하게 살 수 있도록 하세요. 남편이 아프다하면 바로 병원가고, 대신 이제는 안수기도나 굿은 하지 않도록 하세요.” nbsp “네, 스님 고맙습니다. 그런 비용을 앞으로는 JTS에 기부하겠습니다”로 질문을 마무리하여 관중석에서 많은 박수를 받았습니다. nbsp nbsp 스님은 나머지 질문자들의 질문에 대해서도 정성스럽게 답변을 해주셨습니다. 사후세계에 대해서 이야기를 하는 것은 우리가 죽음에 대한 두려움이 있기 때문이고, 선택을 하지 못하는 것은 그 선택에 대한 책임을 지지 않으려는 자세 때문이라고 말씀해 주셨습니다. 좋은 사람, 착한 사람이 되려고 하는 것은 결국 칭찬받고 싶은 욕심에서 나오는 것이라고 말씀하시면서 내 원하는 대로 다 될 수 없듯이 우리는 다른 사람이 원하는 것도 다 해줄 수 없다는 현실을 직시하여야 한다고 하셨습니다. 할 수 있는 만큼 도와주고 힘이 미치지 못하면 미안하다고 이야기 하고 섭섭한 마음을 가진 상대로부터 욕 먹을 각오를 하여야 한다고 하셨습니다. 열심히 해보고 그리 해도 안되면 다른 우물을 팔 수도 있는 것이라고, 한 우물만 판다는 것에 매일 필요가 없다고 하셨습니다. 후회하지 않고 살 수 있는 방법은 나와 인연된 모든 것들을 좋게 생각하면 후회하지 않는다고 하셨습니다. 또 다른 질문인 “북한 동포돕기를 위한 단식을 하시다가 70일하고 그만두신 것은 죽음이 두려워서 그러신 것 아닌가요?”라는 질문에 대한 스님의 답변을 소개합니다. nbsp nbsp “내가 단식을 시작할 때 죽으려고 한 것이 아니라, 이 일을 하다가 죽음이 온다하더라도 이 일을 하겠다는 각오로 한 것입니다. 죽음이 두려워서 이 일을 그만두지는 않겠다는 각오였습니다. 그러니까‘죽어도 좋다’와‘죽겠다’는 다른 것입니다. 수행자는 단식해서 배가 고파도 괴롭지 않고 그 일이 이루어지지 않아도 괴롭지 않습니다. 부처님은 깨달음 전후로 최대 98일 최소 91일을 단식하셨습니다. 나도 부처님 제자니까 90일이나 100일 정도는 단식할 수 있지 않겠나 생각했지요. 49일간은 단식하면서 정부와 협상도 하면서 최선을 다했어요. 그 이후에는 문경에서 명상하면서 단식을 이어갔지요. 부처님 시절에 밥을 빌러갈 때는 일곱 집 이내에만 가야했어요. 일곱 집을 다가도 밥을 하나도 얻지 못하면 두 가지 경우예요. 수행자로서 부족한 것이 있어서 그들이 밥을 주지 않는 경우이거나, 아니면 그들도 먹을 것이 없는 경우예요. 첫 번째 경우는 수행자로서 부족함이 없는가 살펴야 해요. 저 같은 경우는 두 번째와 비슷했지요. 북한 동포에게 밥은 줄 수 없고 또 그들이 굶고 있으니 나도 같이 굶었던 거예요. 그들이 굶어 죽는데 내가 어떻게 밥을 먹겠나 해서 였지요. 제가 단식을 푼 결정적인 계기는 제 주변분 가운데 한 분이, ‘다른 사람들이 스님의 순수한 동기까지도 의심해서 스님이 단식을 하는 것이 아니라 몰래 무엇인가를 드신다고 오해할 수도 있으니 단식을 푸는 것이 어떻겠냐?’고 해서 풀게 되었어요. 북한 동포 돕기는 이미 힘든 상황이라 놓아버린 상태였으니까요.” nbsp nbsp 접수된 질문자외에도 스님께 질문하고 싶다고 손을 들었던 예비 질문자도 많이 있었습니다. 즉문즉설이 거의 9시 40분경에 끝나서 질문하고 싶었던 사람들이 많이 섭섭해 했습니다. 다음 기회를 또 기다려야겠습니다. 강연이 끝난 뒤 싸인회를 가졌습니다. 그리고 자원 봉사자들과 사진촬영을 마치고 스님께서 봄불대생 손들어 보라고 하시면서 봉사에 참여한 봄불대생들에게 감사의 인사를 전하셨습니다.nbsp nbsp 강연을 마친 다음에는 바람이 아주 강하게 불었습니다. 바람 때문에 배와 비행기가 움직일 수 있을지 걱정이 됩니다. 내일 제주도 강연이 계획대로 잘 되길 기원합니다.

2015.05.13. 20,850 읽음 댓글 17개

2015.5.10. 불교대 특강수련 법문, 문경공동체 즉문즉설 법회

nbsp nbsp nbsp 오늘 스님께서는 불교대학 특강을 위해 문경 수련원에 밤 12시 40분경에 도착하셨습니다. 잠시 주무신 후 새벽 4시 30분 대웅전에서 문경공동체 수행자들과 함께 새벽예불과 기도로 하루를 시작하셨습니다. 이어 자비당에서 대중들과 함께 발우공양을 하셨습니다. 발우공양 후 대중들에게 수행자로서 살아가야 할 여섯가지 지침을 주셨습니다. nbsp “여기 백일출가생, 행자대학원생, 봉사하러 들어오신 분들도 있는데, 여러분들이 여기서 배운 것을 사회에 나가면 잘 써야 합니다. 여기 있을 때만 여법하게 하고 사회에 돌아가면 한 때의 추억이 돼서는 안 됩니다. nbsp 첫째, 제일 중요한 것은 수행자는 몸이 이곳에 있든, 세속에 나가든 남을 핑계잡고 자기를 괴롭혀서는 안 됩니다. 남편 때문에 괴롭다, 아내 때문에 괴롭다, 자식 때문에 괴롭다, 누구 때문에 괴롭다 이렇게 남을 탓하면서 자기 괴로움을 합리화해서는 안 됩니다. 어떤 상황에 처하든 나도 모르게 잠시 경계에 빠져서 괴로울 수는 있지만 금방 ‘아, 내가 경계에 사로잡혔구나.’, ‘내가 내 업식에 놀아났구나.’ 이렇게 알아차리고 바로 돌아와서 늘 자기를 괴롭지 않은 상태로, 행복한 상태로 유지해야 됩니다. 그렇게 해야 행복한 사람, 자기 인생의 주인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즉 수행자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nbsp nbsp 둘째, 수행자는 내가 돈이 아무리 많아도 검소하게 살아야 합니다. ‘어, 그 사람 부자라고 알았는데, 인기인이라던데, 유명하다고 알았는데 참 소박하게 살구나’ 이런 인상을 줘야 수행자입니다. nbsp 셋째, 수행자는 겸손하게 살아야 됩니다. 여러분들이 나가서 국회의원이 되고 도지사가 되고 시장이 되고 이런 높은 지위에 가더라도 사람이 목에 힘을 주고 뻣뻣하게 해서 잘난 척하고, 거만해서는 안 됩니다. 항상 겸손해야 합니다. nbsp 넷째, 수행자는 성실해야 합니다. 어떤 일이든지, 맡은 일이나 주어진 일이 있으면 꾸준히 해야 합니다. 그래서 여러분들이 어느 가게에서 일을 하든, 직장에서 일을 하든, 무슨 국회의원 보좌관을 하든 ‘아이고, 정토행자들은 참 성실하다.’ 이래야 됩니다. nbsp 다섯째, 수행자는 신뢰할 수 있는 사람이 돼야 합니다. 수행자가 참선하는 것이 중요한 게 아니라 사람 됨됨이가 먼저 돼야 합니다. nbsp 여섯째, 수행자는 꾸준히 정진하는 사람이 돼야 합니다. 아침에 일어나서 예불하고 108배를 한다든지, 30분 명상 등 한 가지는 꾸준하게 정진하는, 인생의 기둥이 있어야 됩니다. nbsp 인생의 기둥이 분명히 있으면 정신질환이나 뇌졸중이 훨씬 적어집니다. 그렇다고 안 걸린다는 건 아니에요. 그런 질환에 걸릴 확률이 확 떨어집니다. 아무리 수행해도 뇌졸중에 걸리는 이유는 그 사람의 체질이거나, 또는 집안의 체질 때문에 나이 들면 걸릴 수 있습니다. 그건 수행과 관계없이 있을 수 있습니다. 그래서 여러분들이 정신적, 육체적 건강을 위해서도 한 가지를 꾸준히 정진하는 삶을 살아야 됩니다. 하루하고 포기하고, 기분나면 하고, 기분 안 나면 안하고, 이랬다 저랬다 하는 불안정한 삶이 아니라 꾸준히 정진하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부모가 한 가지를 꾸준히 하면 자녀들이 그것을 보고 심리가 안정됩니다. nbsp nbsp 그래서 여러분들이 그 연습을 하는 건데, 정진을 여기서만 하고 나가서는 안하면 안됩니다. 학교 다닐 때 시험치기 위해서 공부하고, 시험치면 지식을 다 쓰레기통에 갖다 버리기 때문에 학벌만 높지 물어보면 아는 게 아무것도 없습니다. 이런 비효율적인 학습이 우리 사회의 문제라고 할 수 있습니다. 절에서도 남에게 보이기 위해서만 그럴 듯하게 행동하지, 실제로 일상사에서 그것이 적용 안되는 삶을 살면 이 백일출가기간이 낭비일 뿐입니다. nbsp 여기서 이렇게 백일 연습하여 나가서 꾸준히 정진하며 생활한다면 여러분들의 인생이 행복해지고, 가정이 화목해지고, 우리 사회가 여러분들로 인해서 정화됩니다. 새로운 문명은 누가 연구해서 오는 게 아니라, 우리가 이런 삶을 지향하면 환경은 저절로 보호되고, 세계는 평화로워지고, 인생은 행복해지고, 사회적 갈등은 줄어들게 되고, 과소비는 줄어들어 저절로 세상이 바뀌면서 더불어 사는 삶이 됩니다. nbsp 우선 나부터 그런 삶을 살아야 됩니다. 그걸 연습하는 거니까 걸레를 빨든, 빨래를 하든, 풀을 베든, 이렇게 배우는 자세로 해야 됩니다. 여기서 배운 것이 다 인생에 유용하게 쓰일 수 있습니다. 여기서 시키니까 어쩔 수 없이 억지로 참고 견디다가 끝나면 ‘아이고, 살았다’ 고 하며 가버리는 낭비적인 인생을 살지 않길 바랍니다. 그런 연습을 하는게 여기 백일출가고 행자교육입니다. 정진 꾸준히 잘 해나가시길 바랍니다.” nbsp 70일이 넘어가 후반기로 접어든 백일출가생들에게 오늘 법문이 다시 한번 마음을 다잡게 하는 좋은 계기가 되었는지, 다들 새로운 열기가 얼굴에 돕니다. 힘찬 해탈주와 함께 발우공양이 끝났습니다. nbsp nbsp 오전 8시 30분부터는 봄불대 특강수련에서 즉문즉설 법문을 해주셨습니다. 이번 봄불대 특강수련에는 대구경북지역과 대전충청지역 불대생들이 스탭 포함해 총 320여 명이나 참석했습니다. 불대생 중에는 불교를 처음 접하거나, 교회나 성당에 다니다 온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렇다보니 불대에 입학한지 어느덧 두 달이 흘렀지만 여전히 모르는 것도 많고, 낯설기도 합니다. 더더군다나 이번엔 소속법당을 떠나 또 처음으로 문경수련원에 온 분들도 많았습니다. 전혀 낯선 사람들과 같이 모여 밥을 먹고, 잠자고 토론하는 일이 쉽지만은 않을 텐데, 그래도 하룻밤 자고나니 어느새 많이 친해진 분위기입니다. nbsp 녹음이 우거진 문경수련원은 나날이 초록빛으로 짙어만 가는데, 여전히 새벽공기는 차갑기만 합니다. 그래도 오늘 참가하신 분들은 지도법사님을 만나 그동안 배운 내용과 수행하면서 들었던 궁금증을 여쭤볼 수 있다는 사실이 마냥 설레어 하는 모습이었습니다. 영상으로만 뵙던 스님을 직접 만나다니 꿈만 같다는 참가자들이 많았습니다. 질문하고 싶은 사람들도 너무 많아서, 스탭들은 미리 질문지를 받아두었습니다. 중복되는 질문들을 간추리고 간추려서 스님께는 약 십여 명의 질문지가 올라갔습니다. 질문지를 써냈던 학생들은 과연 내 질문에 스님께서 답변해주실지 두근두근 좀 더 설레는 모습입니다. 질문 내용을 보면 “상대가 잘못한 것 같은데, 내가 왜 참회를 해야 하는지 잘 모르겠습니다”, “공수래공수거라는데, 사람은 이름을 남겨야 한다는 얘기와 모순입니다. 어떤 게 맞는지요?”, “제행무상 제법무아에 대해 자세히 알고 싶습니다”, “저는 웃음치료사입니다. 할머니, 할아버지 치매예방을 위해 율동을 가르치고 있습니다. 재능봉사를 하며 잘 쓰이고 싶은데 가무를 하지 말라는 법문이 마음에 걸립니다. 이것을 하면 안 되는지요?” 등등 다양한 질문이 나왔습니다. nbsp 그 중에 “다른 사람의 잘못이 눈에 보여도, 그 사람에게 얘기를 안 하고 그저 내 잘못을 돌이키면 좋은지요? 그런데 그게 그 사람에게 고통이 된다면 이야기를 해주어야 하지 않을까요? 물론 말을 해줘도 돌이키지 못하는 사람도 있지만, 나에게 직접적으로 해가 된다면 말해도 되지 않을까요?”라는 질문에 대한 스님 말씀을 좀 길게 소개해보겠습니다. “굉장히 정제된 질문을 했네요. 누가 질문했는지 손들어보세요. 스님한테 혼 안 나려고 머리를 많이 굴렸는데 허점이 있어요. ‘나에게 직접적 해가 된다면 이야기해도 되나요?’ 이게 허점이에요. 결국 지적해주고 싶은 마음이 그 사람을 위한 것인지, 내가 꼴 보기 싫어서 그런 것인지가 이 말에 드러나 있어요. 아시겠어요? nbsp 상대방이 무슨 이야기를 할 때 내가 불편하면 누구 문제다? 네, 내 문제라는 겁니다. 화나거나 괴롭거나 섭섭하거나 미워지거나 짜증날 때는 내 문제라는 거죠. 상대가 잘못 했다 안 했다 논하는 게 아니고, 괴로우면 내 문제라는 겁니다. nbsp nbsp 동산에 달이 두둥실 뜬걸 보고 눈물이 핑 돈다. 그래서 시구를 ‘오늘은 달마저도 나를 슬프게 하는구나’라고 써요. 달을 보지 않았으면 눈물이 나지 않았을 텐데, 그렇다면 눈물이 난 게 달이 원인입니까? 그렇지 않다는 거죠. 달을 보고 입가에 웃음을 띠면 달이 나를 웃긴 것인가요? 달은 다만 떴을 뿐이에요. 그것을 보고 내가 울고 웃는 것이기 때문에 내 문제라 이겁니다. 달이라고 하는 경계에 부닥쳐서 일어나는 내 마음의 문제라는 것이죠. nbsp 괴로움을 합리화해서는 안 됩니다. 이 괴로움은 밖으로부터 오는 것이 아니라 안으로부터 오는 것입니다. 이것은 상대가 잘했다는 말인가요? 그렇지는 않아요. 어린 아이가 하는 행동을 보면 아이가 아직 어리석어서 그러는 것이기 때문에 기분이 하나도 안 나쁘죠. 그렇지만 아이를 위하는 마음이 든다면, 아이에게 그 행동은 잘못된 것이라고 얘기를 해주면 됩니다. nbsp 내 기분이 안 나쁜 상태에서 그 사람한테 얘기하면 보살행이 되는 것이에요. 그 사람이 알아듣고 못 알아듣고는 상관없어요. 그 사람을 위해 하면 되는데 그 사람의 감정을 고려하지 않으면 시비를 일으키는 게 됩니다. 그 사람의 처지를 이해해서 이야기 해주면 자비심이라고 하죠. ‘자자’라고 하는 것은 도반과 둘러앉아서 서로 상대방이 계율을 어긴 잘못을 지적해주는 것입니다. . nbsp nbsp 수행이 덜 된 사람은 ‘내가 뭐라고 다른 사람을 지적하나’ 꺼려지는 마음이 듭니다. 반대로 받는 사람이 수행이 덜 되면, ‘네가 뭔데 나를 지적하냐? 네 차례 되면 두고 보자’고 하며 마음에 상처를 입게 되고 논쟁이 됩니다. 이렇게 되면 ‘자자’할 수준이 안 됩니다. 자자는 수행자의 범주 안에 들어오는 사람이라야 가능합니다. 자자는 ‘내가 스스로 허물을 지적해 달라고 청하는 것’입니다. 혹시 계율을 어긴 게 없는지, 저를 위해서 지적해 달라고 청하면 상대방이 편안하게 이야기하고, 그에 감사하고 잘 받아서 고치겠다는 이야기를 하는 겁니다. 그러나 무조건 고친다는 건 아니예요. 상대가 지적한 게 오해일 수도 있으니까, 그때는 해명을 할 수도 있습니다. 변명이 아니고요. 수행자는 자자 시간이 아닌 경우에는 상대방의 허물을 지적을 하지 않도록 되어 있습니다. nbsp nbsp ‘지금부터 자자 시간이다. 도반을 위해 허물을 이야기 해주자’고 할 때가 아닌 평상시엔 하면 안 된다는 겁니다. 시비가 되기 때문이에요. 자기 분별심 따라 도반을 위한다고 착각하는 거죠. 내가 상대방에게 마음이 불편한 상태에서 얘기하면 시비가 되기 쉽고, 참았다가 이야기 하면 나가는 이야기에 창이 들어가기 때문에 푹 찌르게 됩니다. 신경질적으로 말하기 때문에 상대방을 다시 자극하게 됩니다. 그래서 내 마음에 불편함이 있을 때는 지적하지 않는 게 좋습니다. nbsp 그런데 보통 어때요? 내 마음이 불편한 상태에서 내 맘에 안 드니까 상대에게 지적하죠. 마치 상대를 위하는 것으로 착각하지만. 아이들을 야단치는 엄마들을 보세요. 자기 기분이 나빠서 애들을 때리고 야단치고 그럽니다. 선생님들도 그렇고요. 아이가 잘못한 점이 있으면, 정말 아이가 개선됐으면 좋겠다는 엄마의 염원이 담겨있어야 합니다. 그러면 ‘너를 잘못 키운 내 죄가 크다. 네가 엄마를 때려라’ 이렇게 됩니다. 그래서 수행할 때는 타인의 허물을 말하지 않고 가능하면 자기의 허물로 돌려야 합니다.” nbsp nbsp 내가 스스로 내 허물을 도반들에게 지적해주길 청한다는 ‘자자’ 말씀을 들으니, 그 옛날 부처님 당시의 승가공동체가 얼마나 평화롭고 청정하게 유지됐을지 새삼 깨닫게 됩니다. 내가 다른 이의 허물을 말해주는 것도 쉽지 않고, 다른 사람이 내 허물을 지적하는 것도 듣기가 불편한 데, 진심으로 내가 모르는 내 허물을 지적받아 고쳐나간다는 점이 정말 대단하기도 하고, 희망이 되기도 합니다. 선지식들의 그 길을 우리 역시 걷고 있다는 생각 때문입니다. 아직은 첫걸음이지만, 이렇게 스승님의 자상한 안내를 받으며, 안되도 해보고 다시 해보다보면 어느덧 수행자의 범위에 들어가게 되지 않을까요? nbsp nbsp 스님께서는 이외에도 많은 질문들에 아주 세세하게 답변해주시면서, “정토불교대학에 온 것을 자랑스럽게 여기고, 자긍심을 갖고 살아가기 바랍니다”라는 격려말씀을 끝으로 3시간에 걸친 특강수련 법문을 마무리하셨습니다. nbsp 스님께서는 불교대학 특강수련이 끝난 후 간단히 점심 공양을 드시고 SBS 스페셜 팀과 촬영을 위한 인터뷰가 3시간이나 있었습니다. SBS 촬영팀은 스님과의 인터뷰가 끝나자 오늘이 마지막 촬영이라며 아쉬워 하면서 스님께 인사를 드리고 문경을 떠났습니다. nbsp nbsp SBS 촬영을 마친 스님께서는 오늘 깨장, 나장 수련이 끝난 수련생 약 80여명에게 간단히 법문을 해주셨습니다. 수련하면서 혹시 해소하지 못한 질문들이 있으면 해보라는 스님의 말씀에 몇분이 손을 들고 스님께 질문을 했습니다. nbsp nbsp 정치적인 문제에 부딪힐때마다 수행자로서 어떤 자세를 가져야 하는지 묻는 분, 윤회에 대해 궁금해 하시는 분, 목숨을 내놓고 수행한다는 것이 가능한지 등에 대해서 묻고 스님의 가르침을 받았습니다. nbsp nbsp 법회를 마치고 오늘 수련을 통해 새로 태어난 분들과 함께 기념촬영을 한 후 스님께서는 원고교정등의 업무를 보신 후 저녁 7시 저녁예불을 대중들과 함께 드린 후 문경공동체의 상주대중들과 백일출가, 행자대학원 행자님과 함께하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nbsp 법회를 시작하자마자 따뜻하고 평화로웠던 봄날의 날씨는 어느새 흐린 하늘에 거센 바람이 부는 날씨로 바뀌었습니다. nbsp 스님께서는 “이렇게 인생에서도 평온하던 나날이 갑자기 거센 바람이 불고 고통이 닥칠 수 있습니다. 이때 거센 바람으로부터 우리를 보호하는 안전한 집과 같은 것이 ‘계율’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이런 계율을 우리를 지켜주는 것이라고 생각하기보다는, 우리를 속박하는 감옥처럼 여기기 쉽습니다. 마치 태풍이 불지 않는 날은 집의 소중함을 모르고 감옥처럼 여기는데, 계율 역시 큰 어려움이 없다고 지키지 않고 살면 세속의 거센 물길에 휩쓸려 다니기 쉽습니다.” nbsp nbsp 이번 상단법문의 주제는 ‘참회수행’이었습니다. ‘참회’를 하려면 ‘계율’이 있어야 한다고 하시면서, 참회수행에 대한 이야기를 하려면 계율에 대한 이야기를 해야 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nbsp “불자란 무엇인가요? 불법승 삼보에 귀의하고 계정혜 삼학을 닦는 자입니다. 불법승 삼보에 귀의하는 이유는 해탈과 열반, 참자유와 참행복의 증득이라는 수행의 목표를 분명히 하기 위해서 입니다. nbsp 먼저 참자유에 대해 이야기해봅시다. 참자유란 무엇일까요? 우리는 어떤 것을 하고 싶어서 할 수 있는 상황, 하고 싶지만 못하는 상황, 하고 싶지 않은 것을 하지 않아도 되는 상황, 하고 싶지 않아도 해야 되는 상황, 이렇게 4가지 경우을 만나게 됩니다. 만일 자유라는 것을 ‘하고 싶을 때 하는 것과 하기 싫을 때 안하는 것’만이라고 생각한다면 우리는 늘 자유와 속박을 윤회하게 됩니다. 그러나 하고 싶을 때 하지 않을 자유, 하고 싶지 않을 때 능히 할 자유를 갖게 되면 어느 상황에도 속박받지 않는 완전한 자유, 참자유라고 할 수 있습니다. nbsp nbsp 행복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입니다. 흔히 우리가 생각하는 행복은 원하는 대로 이루어져 만족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원하는 것이 충족되지 않았을 때의 불만족, 기분 나쁨을 괴로움이라 여깁니다. 그래서 우리의 삶은 늘 즐거움과 괴로움이 반복되는 윤회를 겪습니다. 우리는 여기서 즐거움만 떼어내서 갖고 괴로움은 버리려고 하는데 그것은 불가능합니다. 고락은 동전의 양면처럼 함께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 즐거움과 괴로움이 돌고 도는 윤회가 되풀이되지 않는 것이 불교에서 말하는 열반, 즉 참행복입니다. nbsp 이런 참자유와 참행복의 경지를 누리는 사람이 붓다입니다. 그리고 불법승에 귀의한다는 의미를 좀더 말씀드리면 첫째, 부처님께 귀의한다는 것은 이 경지에 최초로 도달하신 석가모니 부처님께 귀의한다는 뜻입니다. 더 넓혀서 보면 나도 부처가 되겠다는 목표를 분명히 하는 것입니다. 둘째, 법에 귀의한다는 것은 우리가 그 경지에 이를 수 있도록 안내한 길, 즉 담마에 귀의하는 것입니다. 또한 석가모니 부처님의 가르침을 중심에 놓되, 석가모니 부처님의 가르침이 아니더라도 그 이치와 진리에 합당한 것은 모두 법으로 본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셋째, 승에 귀의한다는 것은 그 길을 따라 정진해서 실제로 열반과 해탈의 경지에 도달한 사람들에게 귀의한다는 뜻입니다. 진실에 입각해서 해탈의 길과 열반의 길로 가는 사람은 꼭 불교 신자가 아니라도 누구나 나의 스승이고 도반입니다. nbsp nbsp 이 중 어떤 입장을 갖든지, 결국 목표는 해탈과 열반을 증득하는 것입니다. 그 모델을 석가모니 부처님으로 하고, 그 과정을 석가모니 부처님의 담마에 의존해서 가고, 이 과정으로 가는 사람들은 다 내가 믿고 의지하는 나의 분신들로 여긴다는 것을 분명히 해야 합니다. nbsp 그러면 불법승 삼보에 귀의한 사람은 어떻게 해야 해탈과 열반의 길로 갈 수 있을까요? 그 길로 나아가는 데 도움이 되는 일들은 가능한 행하고, 그 길로 나아가는 데 장애가 되는 일들은 가능한 행하지 않는 것, 즉 마땅히 행해야 될 일을 마땅히 행하고 마땅히 행하지 않을 일은 행하지 않는 것입니다. 즉 계율을 지키는 것입니다. nbsp 그러나 우리가 지금껏 살아오면서 쌓인 습관들이 찰나에 깨어있지 못해서 습관적으로 나오는 것, 알아차림이 없는 상태에서 무의식적으로 나오는 것들이 바로 참회의 대상입니다. 내가 놓친 것을 지나고 나서라도 알아차리고 원래 자리로 돌아오는 것, 그것이 참회입니다. 만일 놓친 것이 아니라 알면서도 어긴 것이라면 그것은 수행자로서 계율을 받아들인 태도가 아니기 때문에 참회의 대상조차 될 수 없습니다. nbsp 따라서 먼저 계율에 대한 이해가 분명해야 합니다. 그러자면 우리 삶의 목표의식, 괴로움이 없고 자유로운 상태로 가겠다는 불자로서의 분명한 삶의 목표의식이 있어야 합니다. nbsp 이런 참회에는 세가지 방식이 있습니다. 일반 첫 번째로는 스스로 자신의 허물을 알아차리고 다시는 되풀이하지 않겠다고 다짐하는 것, 두 번째로는 대중들과 다 함께 있는 자리에서 자신의 허물을 드러내어 밝히고 참회하는 포살, 세 번째로는 내가 내 허물을 알지 못할 때, 도반에게 나의 허물을 지적해줄 것을 요청하여 내 허물을 알고 참회하는 자자가 있습니다.” nbsp 스님께서는 문경대중들에게 수행자로서 분명한 목표의식을 가지고 계율을 지키는 삶을 살아가는 것이 진정한 행복으로 가는 길임을 설명해주셨습니다. 그리고 뒤이어 상주대중들이 수행하면서 궁금했던 것을 질문하는 즉문즉설의 시간을 가졌습니다. nbsp nbsp 첫 번째 질문자는 법사님이었습니다. “유수스님은 대중들로부터 호위를 받는게 자연스럽고 편안하세요. 그런데 저는 그것을 보는 것이 어색하고 불편합니다. 그걸 넘어서서 행자님들이 스님을 거들어 주면 오히려 시비가 일어납니다. 저는 인색하다는 기도문을 받았습니다. 제가 어릴 때 어머니가 굉장히 헌신적이셨는데 저는 그걸 보면서 마음이 편안하지 않았던 것 같아요. 중간에 결혼을 안한 이유도 어머니처럼 살 것 같고 남자 시중들면서 살아가는 것에 대한 굉장한 저항감이 있더라고요. 남자일 때 거부감이 드는 것은 뿌리와 같은 시비심이라서, 도리어 더 발심하고 마음내서 시키지 않아도 받들고 보좌하면 극복이 될지 헷갈려서 가르침을 듣고 싶습니다.” nbsp 스님께서 두 가지 면을 모두 짚어주셨습니다. nbsp “내가 그 사람이 좋아서 그 사람에게 서비스를 하고 받드는 건 자유에요. 자기가 좋아서 하는데 어떻게 하겠어요. 그런데 남자는 존중받아야 한다는 생각은 과거 문화가 그렇다 하더라도 앞으로 개선해야 할 문제입니다. nbsp 또 자기가 존경하는 마음때문에 존경하는 건 괜찮은데, 스님이기 때문에 존경한다는 건 정토회에서 개선되어야 할 점입니다. 일반 절에서는 스님은 밭드는게 예의에 속하지만 정토회에서는 아닙니다. 부처님 당시에 지금 스님과 같은 사제직분에 있었던 사람이 브라만이에요. 그러면 브라만이 부처님 제자가 되면 크샤트리아나 바이샤, 수드라가 상가 안에서 브라만을 받들어야 하잖아요. 그런데 부처님은 그렇게 못하게 하셨습니다. 정토회는 수행자 모임입니다. 그래서 정토회 안에서 스님이라고 존경해야 한다면 그것은 정토회 원칙이 아닙니다. 그가 머리를 길렀든, 장가를 갔든 관계없이 존경받을 만하다 하면 존경합니다. nbsp 여기는 수행자 집단입니다. 사제도 없고 신도도 없습니다. 그래서 신도라는 말 안 쓰고, 회원 아니면 행자라는 말을 쓰는 거에요. 정토회 어디에도 공식적으로 신도라는 말은 없습니다. 그래도 사람들의 선호는 있어요. 이건 어쩔 수 없어요. 우리가 남녀 평등을 주장해도 남자법사님은 법사님 같고 여자법사님은 별로 법사님 같지 않다고 여깁니다. 그것은 우리가 남자를 높이는 유교문화에 태어나서 자랐기 때문에 무의식 세계에 남아있습니다. 하지만 이것은 바람직하지 못하며 개선되어야 합니다. 그처럼 스님이라고 특별히 생각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것은 종교적 관습입니다. 그러나 여기에서는 스님이라고 특별히 예우를 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수자타아카데미에 누가 봉사한다고 하면 승복 벗고 승려 대우 포기하고 오라고 합니다. 그러면 아무도 오지 않습니다. 너무 쉬운 거 아니에요? 근데 못해요. nbsp 여러분들이 정토회 원칙을 모르니까 늘 이런 부분을 판단하기 어렵죠. 앞서 말했듯이 존중받을만 해서 존중하는 건 개인의 자유이니 괜찮습니다. 그러나 그것이 불편하다면 내 까르마의 문제에요. 내가 불편할 때는 문제제기하면 안되고 오히려 내가 극복해야 합니다. 그러나 정토회에 개선되어야 할 문제라고 여겨지면 개선될 수 있도록 제안을 해야 합니다. ‘스님을 시비하는 것처럼 느껴지지 않을까?’ 이렇게 생각하면 그것 또한 수행자의 자세가 아니에요. 언제든지 문제제기를 하는게 수행자입니다. 언제든지 돌아보고 이런 것은 개선하는 게 좋겠다고 가볍게 말하고, 내가 문제제기를 잘못했으면 내가 문제제기를 잘못했구나 깨우치는 그런 관점을 가지면 됩니다.” nbsp nbsp 뒤 이어, 행자대학원 1학년 2학기 과정을 밝고 있는 행자님의 질문이 이어졌습니다. nbsp “2살 아래 남동생이 있는데 2년 전에 결혼을 했어요. 6월 말에 출산을 한다고 하는데 아이를 낳는다고 하면 축하해야 할 일인지, 아닌지 모르겠어요. 그래서 진심으로 축하한다는 말이 안 나옵니다. 행자대학원에 온 후 부모님에 대해선 입장정리됐다고 생각했는데 동생에 대해서는 관심이 없었고, 입장정리가 안된 기분인거에요. 축하는 해줘야 될 것 같고 형으로서 뭔가 해줘야될 것 같은데 현재 입장에서 해줄 것이 없네요. 동생에 대해서 어떻게 마음을 가져야 할까요?” nbsp “자기 하고 싶은대로 하면 돼요. 그냥 축하하고 싶은 마음이 없으면 축하 안하면 되고, 하기 싫어도 축하해야 될 상황이면 문자메세지 보내면 됩니다. 별로 어려운 일이 아닙니다. 축하한다는 말이 꼭 안 나오면 애기 선물이라도 사서 축하한다는 말 빼고 선물을 보내세요. nbsp 20살 넘은 성년들끼리는 어떤 의무도 없습니다. 어떤 것도 부모에게 요구할 권리가 없고, 부모 말을 들어야 할 어떤 의무도 없습니다. 동생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자연 생태계가 그렇게 돌아가고 있습니다. 동생을 챙겨야 한다는 생각은 집착이지 그렇게 하지 못한다고 해도 아무런 죄가 안됩니다. 스무살이 넘었는데 출가하는 건 아무런 죄가 안돼요. 그게 죄가 되면 부처님도 죄인이 되고 불교 자체가 잘못된 것이 됩니다. nbsp 출가자는 세속의 끈을 놓고 살아야 합니다. 거기에 메일 필요 없어요. 그렇다고 인색한 것하고 다른 겁니다. 그에 대해 사랑하지만 내가 그 인생에 대해서 특별히 간섭할 필요도 없고 연연할 필요도 없어요. nbsp 이제 마지막으로 정리해서 말하면 첫째는 여러분들이 분별심을 내더라도 여기서 사는 것만으로도 장합니다. 왜냐하면 이렇게 사는 사람 이 세상에 별로 없기 때문에 그런 면에서 격려합니다. 두 번째는 여기서 산다고 수행이 되는 건 아니에요. 목표를 세우고 연습을 해야 되는 겁니다. 억지로 하는게 아니라 내가 분별심 일어날 때 마음을 돌아보면서 ‘또 분별심 내는구나’, ‘또 분별심 내는구나’하면 재미있잖아요. ‘업이 끈질구나. 내가 나를 봐도 가관인데 남이 보면 진짜 가관이겠다.’ 이렇게 마음을 돌아보면 됩니다. 마치 자전거 못타는 애가 자전거에 빠져서 매일 붙어 있듯이 이걸 극복해보려고 이렇게도 해보고 저렇게도 해보고 거기에 재미를 붙이면 됩니다. 이 세상에서 자기 마음 일어나는걸 보면서 극복하는 것 보다 더 재미있는건 없어요. 그러면 친구가 지적해주는 것 도 고맙죠. 지적해줘야 기분 나쁜게 일어나고 내 까르마를 볼 수 있습니다. 억지로 타성에 젖어서 하지 말고 자기 개선을 위해서 자발적으로 접근해야 여기 사는 것도 재미있어요. 남이 보기엔 저렇게 자전거 타도 되나라고 해도 자기는 어쨌든 타보려고 애를 쓰잖아요. 그래서 남의 비아냥 마저도 괜찮아요. 그거 신경 쓸 여력 없어요. 남이 보기에 웃기든지 말든지 나는 어찌됐든 자전거를 타볼 거다 이렇게 몰두를 해야 돼요. 그래야 얼굴이 펴져요. 안 그러면 얼굴이 늘 우울해져요. 그렇게 부지런히 연습해서 어떻게 수행해야 된다는 건 터득해서 나가야해요. 여기서 기본 틀을 배워 나가서 살면 여기 살았던 것이 자기 인생에서 최고로 소중한 인생이 됩니다.” nbsp 이제 갓 들어온 상근자도 1년이 넘은 상근자도 모두가 공감할 수 있는 질문 속에 의미 깊은 시간을 보냈습니다. nbsp nbsp 법회를 마친 뒤 문경공동체에서는 스님과 자주 만날 수 없기 때문에 조금 이르긴 하지만 스승의 날을 맞이해서 스님께 꽃다발을 증정하였고, 스님께서는 다시 그 꽃다발을 자행스님께 바쳤습니다. 또, 2명의 행자님들이 스님께 편지를 썼습니다. 모두들 이곳에 와서 살아가면서 느낀 감사함을 담아서 스승님께 감사의 뜻을 전하는 모습이 감동스러웠습니다. nbsp nbsp nbsp nbsp 내일은 애광원 거주인들과 진주성과 사천 항공우주박물관 나들이를 가지고 창원 강연이 예정되어 있습니다.

2015.05.12. 23,260 읽음 댓글 17개

2015.5.9 평화리더십아카데미 경주 역사기행

nbsp안녕하세요. 오늘 스님께서는 ‘역사의 전환기, 통일 신라의 리더십을 배운다’는 주제로 제12기 평화리더십아카데미 수강생들을 위해 경주 역사기행 안내를 해주셨습니다, 법흥왕릉을 시작으로 진흥왕릉, 태종무열왕릉, 김유신장군묘, 사천왕사지, 선덕여왕릉, 능지탑, 황룡사지를 차례대로 둘러보면서 작은 나라에 불과했던 신라가 어떻게 삼국 통일을 이루었으며, 그 한계는 무엇이었는지 스님께서는 깊이있게 설명해 주셨습니다.nbspnbspnbsp어제 두북에서 하룻밤을 머무신 스님께서는 오전11시 무렵 법흥왕릉에 먼저 도착해 평화리더십아카데미 수강생들을 환한 미소로 맞이해 주셨습니다. 지난 4월에는 정토불교대학, 경전반, 청년정토회 등 최소 300여명이 넘는 대중들에게 매주 경주 역사기행을 안내하셨는데, 오늘은 조촐하게 23명을 대상으로 안내를 하는 날입니다. 비록 인원은 적었지만 스님의 설명은 한결같이 정성과 열정이 깃들어 있었습니다.nbspnbsp▲ 법흥왕릉nbspnbsp법흥왕릉 앞에 모두 서서 삼배로 참배를 한 후, 스님께서는 오늘 역사기행을 하는 취지와 함께 삼국 통일의 기틀을 닦은 법흥왕의 업적에 대해 설명을 해주셨습니다.nbspnbsp“경주역사기행에서 설명하는 삼국 통일에 대한 초점은 두가지예요. 첫째, 동쪽에 치우친 작은 부족 국가였던 신라가, 즉 비주류였던 신라가 어떻게 민족사의 주역으로 등장했는가? 그것을 가능하게 했던 신라의 내적 동력은 무엇이였는지 살펴보는 것입니다. 둘째, 신라는 민족사에서는 비주류였기 때문에 역사 의식이 부재했죠. 역사의식이 부재한 세력이 통일의 주역이 되다보니까 잃어버린 것이 있습니다. 어떤 것을 잃어버렸는가? 이 두가지 주제입니다. 먼저 신라가 어떻게 비약적 성장을 하게 되었는가에 초점을 맞춰서 말씀을 드리겠습니다.nbspnbspnbsp삼국사기나 삼국유사의 기록에 보면 신라는 AD 57년 지금으로부터 2100년 전 쯤에 처음으로 나라가 시작되었습니다. 경주 분지 주위에 6개의 씨족이 살고 있었는데 이들 6부 촌장들이 모여서 ‘우리도 나라를 만들자’고 하면서 임금을 선출했다고 합니다. 인류문화사적으로 보면 씨족이 모여서 만든 것이 부족이지 않습니까? 기록에는 신라가 고대 국가를 세웠다고 하지만 사실은 하나의 부족 국가가 형성된 것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이 때 신라는 동쪽에 치우친 작은 부족 국가이니까 외부와 문명의 교류가 별로 없었습니다. 그래서 ‘왕’이라는 칭호도 없었고, ‘거서간’, ‘차차웅’, ‘이사금’, ‘마립간’ 이라는 칭호를 쓰다가 22대 지증왕대에 와서야 ‘왕’이라는 칭호를 처음 썼습니다. 지증왕이 즉위한 때가 AD 500년이니까 557년 동안이나 아직 고대 왕국이 되지 못했다고 볼 수 있죠.nbspnbspAD 400년 경의 역사를 보면 낙동강 유역의 가야·왜 연맹군이 신라를 침공했는데 신라는 거의 나라가 망할 지경이 되었습니다. 그래서 신라는 고구려에 조공을 바치고 원병을 청했어요. 그 때 광개토대왕이 신라에 5만 군대를 보내서 가야·왜 연맹군을 격파하고 신라를 구원했다는 기록이 있습니다. 이렇게 고구려의 원군을 받아서 나라를 유지할 만큼 신라는 가야보다도 약했습니다. nbspnbsp그런 나라가 어떻게 갑자기 부강하게 되었느냐? 하나는 내부 개혁을 했고, 하나는 외부 개방을 했습니다. 지금 우리는 법흥왕릉 앞에 와 있는데, AD 514년에 법흥왕이 즉위를 하게 되면서 이때부터 개혁 개방 정책을 쓰게 됩니다. 개혁 정책이라는 것은 율령을 반포한 것을 말합니다. 즉 법제를 정비했습니다. 개방 정책이라는 것은 불교를 공인한 것을 말합니다. 즉 외래 사상의 유입을 받아들인 것이죠.nbspnbspnbsp이렇게 내적인 준비가 된 후에 신라는 가야와 통합을 하게 됩니다. 100년 전에는 가야가 신라를 침공해서 신라가 위기에 처했기 때문에 신라 입장에서는 가야가 철천지 원수였어요. 가야 입장에서는 신라를 내리깔보는 입장이였죠. 그런데 거꾸로 이제는 신라가 국력이 강해지고 가야가 국력이 약해졌어요. 이럴 때 보통 신라는 무력으로 가야를 복속시키고, 가야는 끝까지 저항하다가 멸망하는 것이 역사인데, 특이하게도 신라와 가야는 합의 통합을 했습니다. 가야는 나라를 세울 때부터 불교 국가였지만 신라는 불교를 철저히 탄압하는 국가였습니다. 그러나 신라는 개방을 해서 불교를 공인했죠. 요즘 말하면 남한은 철저하게 공산주의를 반대하는 국가이고 북한은 공산주의 국가인데, 남한이 북한과 통합하기 위해서 공산주의 활동을 허용한 것과 같은 포용 정책을 쓴 것입니다.nbspnbsp그리고 가야의 귀족을 신라의 귀족으로 받아들였습니다. 특히 가야의 왕족들은 신라의 진골로 받아들였습니다. 이것은 북한의 군장성들을 통합하는 과정에서 남한의 군장성으로 임명하고, 북한의 관리들을 통합된 나라에서도 역할을 할 수 있도록 허용한 것과 같습니다. 이런 경우는 통일의 역사에서 극히 드문 일입니다. 대부분 무력으로 진압해서 합병을 하지요. 합의 통일을 한 경우는 많지 않습니다. 그러나 가야와 신라는 합의 통일을 했습니다. 지금의 강자인 신라는 옛 원한을 생각하지 않고 가야를 포용했고, 반대로 가야는 끝까지 저항을 하지 않고 통합의 제안을 받아들인 것입니다.nbspnbsp이를 통해 신라는 법흥왕 이후로 급격하게 성장을 하게 됩니다. 특히 신라는 가야로부터 굉장히 많은 인재를 확보할 수 있었습니다. 통합을 통해 풍부한 인재와 물량을 갖고 영토 확장을 했기 때문에 진흥왕 때는 영토 확장을 3배 가까이 하게 됩니다. 이것이 신라가 성장한 비결입니다. 그러나 역사에서 아무도 여기에 주목하지는 않는 것 같아요.nbspnbspnbsp우리가 통일을 연구할 때 자꾸 외국의 사례만 찾는데, 지금 시대에서는 독일 통일의 사례를 통해 많은 교훈을 얻을 수 있지만 우리 역사 속에서는 신라와 가야의 통합이 어떤 시너지 효과를 가져왔는가 이 부분을 유의해서 살펴볼 필요가 있습니다. 이렇게 합의 통일을 했기 때문에 나중에 신라가 약해져도 ‘후가야’라는 나라가 등장하질 않았어요. 백제와 고구려는 무력으로 통일했기 때문에 200년 후에 후백제, 후고구려가 다시 나타나게 됩니다. 강자가 포용을 해서 합의 통일을 하게 되면 완전한 통합이 되지만, 약자가 힘에 밀려서 굴복해서 통일하게 되면 반드시 다시 재기를 하게 되는 역사의 반복을 볼 수 있죠.”nbsp스님께서는 동쪽에 치우친 작은 나라인 신라가 어떻게 민족사의 주역으로 등장할 수 있었는지 가야와의 합의 통일이 갖는 의미를 중점적으로 이야기해 주셨습니다. 지금의 남북 관계만 살펴보아도 포용 정책을 펴기란 쉽지 않은데, 당시에 그런 과감한 정책을 폈다니 신라인들의 지혜에 절로 감탄이 되었습니다.nbspnbsp다음은 진흥왕릉으로 향했습니다. 태종 무열왕릉을 지나 선도산을 향해 걸어올라오니 산 중턱에 진흥왕, 진지왕의 무덤이 함께 있었습니다. 무덤을 향해 참배를 한 후 신라가 어떻게 영토를 확장하고 급격한 성장을 하게 되었는지 스님께서는 진흥왕의 업적을 중심으로 이야기를 해주셨습니다. 특히 한반도에서 가장 비옥한 낙동강 유역과 한강 유역을 점령하면서 영토 뿐만 아니라 생산 물량까지 확충하는 과정, 백제와 고구려의 협공을 받고 위기에 처하자 당시 강대국인 당나라와 외교를 하면서 국제 관계를 통해 통일의 유리한 국면을 만들어간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습니다.nbspnbsp▲ 진흥왕릉nbspnbsp진흥왕릉에서 내려오니 거대한 무덤 4개가 있고 그 밑에 태종 무열왕릉이 있었습니다. 스님께서는 태종 무열왕릉 위에 위치한 거대한 무덤 4개를 가르키며 “이 무덤들은 누구의 무덤일까요?” 라며 깜짝 퀴즈를 내어 주셨습니다. 아무도 대답을 하지 못하자 스님께서는 이렇게 답변해 주셨습니다.nbspnbsp▲ 태종 무열왕릉 위에 자리잡은 4개의 큰 무덤nbspnbsp“무덤을 파봐야 알겠지만 전해내려오는 이야기 속에는 누구의 무덤이라는 기록이 전혀 없어요. 상식적으로 생각해보면 태종 무열왕이 성골이 아니고 진골이잖아요. 즉 아버지가 왕이 아니란 말이예요. 그러니 아버지를 왕으로 추대해서 무덤을 하나 만들었을 수 있겠죠. 그런데 무덤이 한 개쯤 있으면 그렇게 추정할 수 있는데, 무덤이 4개나 되기 때문에 그렇게만 추정하기는 좀 어려운 측면이 있습니다.”nbspnbsp그러자 수강생 중에 한명이 “혹시 진짜 무덤을 보호하기 위해 가짜 무덤을 만든 것은 아닐까요?”라고 대답하자 스님께서는 웃으시며 “타지마할에 가면 관광객이 구경하는 관은 가짜이고 진짜 관은 지하에 있거든요. 옛날에는 비석을 안 만든다든지 하는 방식의 가묘를 많이 했죠” 라며 일리가 있다고 말씀하셨습니다.nbspnbspnbsp아무튼 역사 속 수수께끼를 뒤로 한 채 태종 무열왕릉을 참배하고 이어서 스님의 설명을 계속 들었습니다. 태종 무열왕릉 앞에서 스님께서는 태종 무열왕의 업적 뿐만 아니라 신라의 삼국 통일이 갖는 한계에 대해서도 함께 이야기해 주셨습니다.nbspnbsp“태종 무열왕은 선덕여왕때 주로 당나라와의 외교를 담당하면서 외교부 장관 같은 역할을 한 분입니다. 당시에는 당나라의 협조를 못 얻으면 나라를 존립시키기 어려웠거든요. 특히 백제는 의자왕이 즉위 초기에 정치를 잘하는 바람에 신라가 40여개의 성을 빼앗겼어요. 태종 무열왕은 당 태종과 대화하면서 ‘만약에 고구려가 멸망하면 대동강 이남은 신라에게 주겠다’는 언지를 받을 정도로 친분이 있었다고 해요. 그렇게 외교를 발전시켜서 나중에는 당나라와 신라가 협공을 해서 백제를 660년에 멸망시키게 됩니다. 태종 무열왕릉은 661년에 죽었습니다.nbsp▲ 태종 무열왕릉nbsp그러나 이 전쟁을 통해서 신라에서는 굉장한 실망이 있었습니다. 당나라는 백제를 멸망시키자 그 영토를 신라에게 통합해주는 것이 아니고 자기들이 통치했습니다. 신라는 엄청난 군대와 군량미를 지원했는데 전쟁의 성과가 아무것도 없었습니다. 그래서 당나라는 이 여세를 몰아서 고구려를 침공하려 했지만, 신라 안에서는 김유신 등 강경한 세력들이 여기에 소극적으로 대응했습니다. 마침 이 때 당나라 군대가 연개소문에게 참패를 당해서 소강 상태에 이르렀다가 연개소문이 죽자 고구려에 내분이 일어나면서 고구려도 나·당 연합군의 협공에 패하고 당의 직할 통치로 들어갑니다. 이 때 민족주의자인 김유신의 영향을 받은 문무대왕은 대당 전쟁을 선포하고 당나라가 세운 안동도호부를 습격해 버립니다.nbspnbsp이것은 요즘으로 비유하면 한미 연합군이 북한을 점령해서 우리는 당연히 통일이 될 것이라고 예상했는데, 그렇게 하지 않고 미국이 북한에 미군정을 실시하니까 여기에 반발해서 우리가 주한미군을 습격한 것과 같습니다. 이렇게 되니 미국 본토에서 20만 대군을 한국에 파견해서 한·미전쟁이 일어난 것으로 볼 수 있죠. 그것처럼 당나라 황제가 화가 나서 20만 대군으로 신라를 침공해 왔는데 이것이 나당 전쟁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고구려가 멸망한 668년을 삼국 통일의 해라고 말하지 않고, 당나라 군대를 한반도에서 몰아낸 676년을 삼국통일의 원년으로 삼습니다.nbspnbsp여기서는 두 가지 비판이 있습니다. 하나는 신라가 외세와 결합해서 제 민족 국가를 제압했다는 비판이 있는데, 이것은 당시에 나라와 나라 사이에 과연 오늘 같은 민족의식이 있었느냐 하는 것이 재검토 되어야겠죠. 다른 하나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신라의 자주성이 당나라를 몰아낼 만큼은 있었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신라의 한계를 비난하지만 그렇다고 지금 남한이 신라만큼의 자주성을 갖고 있느냐 하는 것이죠. 만약 한·미 연합군이 북한을 점령했는데 미국이 북한에 들어가서 미군정을 실시하면서 합법적인 정부를 들어서게 한다는 핑계로 북한을 관할한다고 하면 한국이 주한미군을 공격할 수 있을까요? 어떨 것 같아요?nbspnbspnbsp아무튼 신라는 그런 정도의 자주성은 있었다는 것입니다. 다만 정통의 민족사적인 역사의식이 부재했기 때문에 광할한 고구려의 영토를 회복해야겠다는 생각을 못했습니다. 신라가 만약 역사 의식이 있었다면 고구려의 옛 영토까지도 사실은 회복을 해야되지요. 그러나 신라는 그런 역사 의식이 없었기 때문에 자신들의 영토가 23배가 된 것에 감격하고 말았죠. 이것은 민족사의 정통성을 계승하지 못했을 때 일어나는 하나의 위험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우리가 통일 문제를 다룰 때는 앞서 얘기한 가야와의 통합과 더불어 역사 의식의 부재가 가져오는 폐해도 함께 고려해야 합니다. 그러니 앞으로 한반도의 통일 문제도 한반도로만 그쳐선 안되고 동북아 공동체라고 하는 더 큰 꿈을 갖고 통일 문제를 다뤄야 합니다.”nbspnbsp역사 의식의 부재가 불러온 결과를 듣고 나니 동북아 공동체를 향한 꿈은커녕 분단에 대해서도 무관심한 우리들의 현실이 떠올랐고, 당시 신라가 가졌던 한계가 21세기 지금에도 더 나아진 것이 없다는 생각에 부끄러운 마음이 들었습니다. 또 당나라 군대를 한반도에서 몰아낸 신라인들의 자주성 측면에서 볼 때도 오늘날 우리들은 여전히 부끄러운 것 같습니다.nbspnbsp이렇게 부끄러움을 뒤로하고 태종 무열왕릉을 나와 무열왕의 둘째 아들로서 아버지의 대당 외교술을 잘 계승해 태대각간이라는 칭호를 받았다고 하는 김인문묘를 살펴보고 다음 장소로 이동했습니다.nbspnbsp다음으로 도착한 곳은 김유신 장군묘입니다. 스님께서는 김유신묘가 왜 왕릉처럼 가꿔지게 되었는지, 김유신의 인간 됨됨이는 어떠했는지 재미난 일화도 들려주셨고, 또 김유신은 신라의 삼국통일에 어떤 기여를 했고 그 한계는 무엇인지 신라와 오늘날 한국의 공통점에 대해 짚어주시면서 흥미진진한 이야기를 해주셨습니다.nbspnbsp▲ 김유신 장군 묘nbsp“이 묘는 둘러싼 석축으로 봤을 때 왕릉에 해당하는 것입니다. 김유신은 패망한 가야의 후손임에도 불구하고 신라에 와서 대성공을 한 케이스입니다. 왕이 아닌 사람으로서 오를 수 있는 최고의 지위에 올랐습니다. 신라에서는 국회의장에 해당하는 것이 ‘상대등’이고 행정부의 수장인 총리가 ‘각간’입니다. 그런데 김유신은 ‘대각간’의 지위에 올랐죠. 죽고 나서는 ‘태대각간’이라는 극존칭을 받았습니다. 후대에 가서는 ‘흥무왕’이라는 존칭까지 주었습니다. 그래서 이 무덤은 흥무왕이라는 칭호를 받고나서 왕의 무덤에 준하게 개보수를 했다고 본다면 크게 이의를 제기할 것은 없을 것 같아요.nbspnbsp김유신은 당시 신라의 왕권을 안정시켰습니다. 왕위 쟁탈전으로 혼란이 계속 있었는데 김유신이 무력으로 뒷받침을 해서 태종 무열왕을 등극시킴으로서 정치안정을 시켰죠. 국내 정치가 안정이 되어야 통일의 큰 위엄을 달성할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왕은 아니였지만 내분이 일어나지 않도록 태종무열왕과 문무왕을 앞세워서 국정을 안정시킨 역할을 했습니다.nbspnbspnbsp그러나 김유신의 영향력이 크다고 하더라도 역시 가야의 왕손이다보니 민족사의 전통을 계승한 것은 아니였습니다. 민족사의 정통은 배달나라, 조선나라, 부여, 부여를 계승한 백제와 고구려, 동부여, 이런 나라들인데 비해 가야와 신라는 민족사의 정통에 속하지는 않습니다. 신라가 굉장히 융성해서 통일의 중심 역할을 했다고 하더라도 역사 의식이 부재했던 이유는 이런 태생적인 한계가 있었던 것입니다.nbspnbsp신라를 가만히 보면 우리 한국이 신라를 닮은 것이 굉장히 많아요. 역사 의식이 부재한 것도 그렇고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금 굉장히 강성해 있죠. 또 외세의 줄을 잘 잡은 것도 그렇고요. 신라가 개방적으로 당나라의 문물을 받아들여서 당나라에 버금갈만한 문화예술을 발달시켰듯이 우리도 지금 서구 문명을 받아들이되 서구 문명에 버금갈만한 문명을 지금 만들어가고 있잖아요. nbspnbsp이런 장점이 많음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지금 역사 의식과 민족사의 정통을 계승한다는 자부심이 부족해서 주어진 기회를 못 살리고 있죠. 통일을 할 수 있는 역량이 되지만 역할을 못하는 것은 역량 부족에서 오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의식의 부족에서 오는 것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설령 역량으로 인해 통일을 하더라도 의식이 부재하면 신라가 통일을 한 후에 민족사의 약화를 가져왔듯이 우리의 통일도 어쩌면 민족사에서 오히려 더 나쁜 결과를 가져올 수도 있습니다. 어떻게 통일을 하느냐에 달려 있죠. 그래서 어떤 기본 자세를 가져야 하는지 우리는 과거 역사 속에서 배울 수 있습니다.”nbsp스님의 설명을 계속 듣다보니 어느덧 신라 시대의 한복판으로 수욱 들어간 느낌입니다.nbspnbsp다음은 사천왕사지로 이동했습니다. 사천왕사는 나당 전쟁으로 인한 당나라의 침공으로부터 나라를 지키기 위해 지은 호국 사찰입니다. 우연인지 모르겠지만 사천왕사에서 문두루 비법을 행했더니 마침 그때 태풍이 불었는지 당나라 군대가 서해 바다에 수장이 되어버렸다고 합니다. 요즘 식으로 말하면 신앙의 힘으로 나라의 위기를 이겨내었다고 신라인들은 믿은 것입니다. 이후 매소성 전투와 기벌포 전투를 통해 신라는 당나라 군대를 한반도에서 완전히 몰아내게 됩니다.nbspnbsp▲ 사천왕사지nbsp이렇게 호국의 의미가 담긴 곳이 이곳 사천왕사이기 때문에 스님께서는 한반도가 통일이 되려면 사천왕사를 잘 복원해야 한다고 강조하셨습니다. 그리고 “우리도 신라처럼 혹시나 미국과 중국 같은 강대국과 싸우게 될지 모르기 때문에 대비를 해야 할 것 아니예요?” 라면서 웃음을 보이셨습니다. 그리고 사실인지 모르겠지만 일본 사람들이 신령스러운 사천왕사의 지맥을 끊기 위해 대웅전과 강당 사이에 철도를 놓았다는 얘기가 전해내려 온다고 합니다. 마침 스님께서 이 말씀을 하시는 찰나에 기차가 사천왕사지를 막 가로질러 가자, 스님께서 “왜 저렇게 지맥을 끊는거야” 라고 말씀하셔서 모두들 크게 웃었습니다.nbspnbsp▲ 문두루 비법이 행해졌다고 하는 절터nbsp그리고 사천왕사지에서는 일반 절에서 볼 수 없는 특이한 모습을 볼 수 있었는데, 10cm 크기의 구멍이 뚫린 주춧돌이 12개가 박혀 이었습니다. 문두루 비법을 열두명의 법사가 행했다고 하는데 그래서 주춧돌이 12개인 것 같습니다. 원래 이 땅은 그냥 밭으로 쓰이던 곳이였는데 스님의 스승이신 불심 도문 큰스님이 이 땅을 구입하고 문화재청에 기증해서 발굴을 하도록 하셨다고 합니다. 스님의 역사 의식은 어릴적부터 이런 스승으로부터 영향을 받은 것이 아닌가 싶습니다.nbspnbsp사천왕사지에서 시원한 솔숲길을 산책하듯이 걸어 올라가니 선덕여왕릉이 나타났습니다. 오르막길로 인해 가쁜 숨을 몰아쉬며 자리에 앉으니 스님께서 선덕여왕과 관련된 이야기들을 재미있게 들려주셨습니다.nbspnbsp▲ 선더여왕릉nbsp“삼국 통일의 주역들이 대부분 선덕여왕 때 발굴이 되었습니다. 선덕여왕 당대에는 통일을 못했지만 선덕여왕 때 외교적인 기초와 인재 양성 등 통일을 위한 대부분의 기초가 닦여졌습니다. 그래서 선덕여왕의 리더십은 연구해 볼만 하다고 생각합니다.nbspnbsp여러 가지 이유로 선덕여왕이 왕위에 오르긴 했지만, 어쨌든 여자가 왕이 되었다는 것에 대해 인정을 하지 않고 반란을 일으키는 세력이 많았습니다. 또 중국이나 주변 나라들이 여왕을 우습게 여기는 어려움도 겪었습니다. 황룡사 9층탑을 쌓은 이유도 자장 율사가 나라를 걱정하니까 어떤 신선이 나타나서 ‘너희 나라 임금은 지혜는 있는데, 여자라서 세상 사람들이 다 얕본다. 이를 보강하기 위해서는 큰 위용을 보여야 한다’ 라고 말했기 때문이라고 합니다.”nbsp그러면서 스님께서는 선덕여왕이 보여준 세 가지 신비한 기적을 이야기해 주셨습니다. 그리고 이와 더불어 한미 동맹에 대한 올바른 태도에 대해 함께 말씀해 주셨습니다. nbspnbspnbsp“세번째 기적은, 선덕여왕이 아무 날 아무 시에 죽을 것이라고 얘기하면서 ‘나를 도리천에 묻어 달라’고 했다고 합니다. 신하들 입장에서는 건강함에도 불구하고 언제 죽는다고 하니 이것도 믿어지지 않았지만, 도대체 도리천에 어떻게 묻을 수 있을지 난감해 했습니다. 그러자 선덕여왕은 ‘낭산 남쪽 봉우리에 묻어라’고 말했습니다. 그런데 진짜 그날 그 시간에 갑자기 여왕이 돌아가셨고, 신하들은 그 유언을 생각해서 이곳에 여왕을 묻었습니다.nbspnbsp그러나 신하들은 묻어 놓고도 여기가 왜 도리천인지 이해를 못했습니다. 그런데 20여년이 지난 후 이 밑에 사천왕사가 지어졌습니다. 사천왕사를 지어놓고 보니까 불교의 세계관에서는 수미산 중턱에 사천왕 세계가 있고 그 꼭대기에 도리천이 있잖아요. 그래서 이 낭산을 수미산이라고 한다면 저 아래에 사천왕사가 지어졌으니 여기가 선덕여왕의 유언대로 도리천이 되어버린 것입니다. 이 얘기는 선덕여왕이 이미 20여년 후에 통일의 기운이 있을 것이라고 짐작했다고 볼 수 있고, 사천왕사가 당나라와의 갈등으로 지어진 절이니까 현재는 당나라와 굉장히 친하지만 마지막에 가서는 당나라와 갈등이 있을 것이라고 선덕여왕은 예측을 했다고 볼 수 있죠.nbspnbsp우리도 앞으로 미국 없이는 통일을 이루지 못하지만 통일에 있어서 마지막 최대의 장애가 미국이 될 수도 있습니다. 이런 것을 예측하면서 국정을 살펴야 합니다. 중국에 대해서도 마찬가지겠죠. 한미 동맹은 굉장히 필요하지만, 지금의 동북아 정세에서 미국의 이익과 한국의 이익이 딱 일치하는 것은 아닙니다. 특히 통일 문제는 일치한다고 볼 수 없어요. 북한이 패망하고 한국이 북한까지 흡수하는 통일을 하고, 그 통일된 한국이 친미 세력이 된다면, 미국은 통일을 적극적으로 지지하겠죠. 그러나 그것을 보장할 수가 없잖아요. 지금도 미국은 한국을 미국으로 끌어들이려는데 한국이 중국의 눈치를 보고 잘 안 움직이기 때문에 미국은 지금 한국을 굉장히 의심하고 있거든요. 반대로 중국은 통일된 한국이 중국 편은 아니지만 중립이라도 지켜준다는 보장이 없잖아요.nbspnbspnbsp그러니 현안적으로 두 강대국이 제일 안심하는 것은 남북을 짤라서 중국은 북한이라도 자기들 편으로 남겨두는 것이 낫고, 미국은 한국을 한미일 삼각동맹체제의 일원으로 넣는 것이 손에 잡히는 이익이라고 볼 수 있죠. 그런 의미에서 통일을 위해서는 북한을 설득할 뿐만 아니라 미국과 중국까지 어떻게 설득하느냐 하는 외교가 굉장히 중요합니다. 종속적 한미 관계에서는 이 문제를 풀기가 어렵습니다. 미국을 최고의 우방으로 두는 것은 맞지만 그것은 자주적인 동맹이여야 합니다. 이것이 바로 신라와 당나라 사이에서 선조들이 겪었던 고뇌를 통해 오늘날 우리들이 배울 수 있는 점입니다.”nbsp과거 역사 속에서 오늘날 외교 관계의 교훈을 얻을 수 있다니 스님의 지혜에 또한번 감탄하게 됩니다. 다음은 문무대왕의 화장터에 세워진 ‘능지탑’으로 이동했습니다. 능지탑을 참배한 후 스님께서는 문무대왕이 얼마나 나라를 위해 솔선수범하는 자세를 가졌는지 이야기해 주셨습니다.nbspnbsp▲ 능지탑nbspnbsp“문무대왕이 돌아가실 때는 고구려가 망하고, 백제가 망하고, 가야도 망했을 때니까 이제 신라에는 적이 없잖아요. 당나라와는 화친 관계를 맺었으니까요. 그런데 아닙니다. 바다 건너 왜가 아직 남아 있었습니다. 신라에게 유일한 안보 상의 위협은 이제 왜만 남은 것입니다. 그래서 문무대왕은 ‘왜는 바다 건너 있으니까 내가 죽어서 동해 바다 용이 되어 왜의 침공을 막겠다’고 유언을 했습니다. 이때 한 스님이 ‘아무리 용이 힘이 있다고 해도 축생이지 않소. 인간보다는 더 올라가야지’ 하니까 문무대왕은 ‘축생이면 어떠냐? 나라만 지킬 수 있다면’ 이렇게 말했다고 합니다. 이것을 보면 신라 고위층들의 이런 솔선수범이 있었기 때문에 국론이 통합될 수 있지 않았나 생각해 볼 수 있죠.nbspnbspnbsp그래서 왕의 시신을 이곳 낭산에서 화장을 한 후 유골을 수습해서 동해 바다로 가져가 바위에 물길이 십자로 퍼지도록 해서 유골을 안치해 용이 되도록 했습니다. 그리고 근처에 감은사라는 절을 지어서 용이 항상 부처님의 설법을 들을 수 있도록 대웅전까지 수로를 연결했다고 합니다. 화장한 이곳에는 재를 모아서 탑을 세웠는데 이것을 ‘능지탑’이라고 합니다.”nbsp축생이 되어서라도 나라를 지키겠다는 문무대왕의 마음에 절로 고개가 숙여졌습니다. 스님께서는 문무대왕의 애국심을 소개하면서 김구 선생님이 “나라가 독립이 된다면 문지기라도 되겠다”고 얘기한 것을 상기시켜 주시기도 하셨습니다. 어째든 지도자들의 솔선수범의 중요성을 다시한번 되새겨 봅니다. 이곳 능지탑 역시 스님의 스승이신 도문 큰스님께서 땅을 구입하여 복원하신 것이라고 합니다.nbspnbsp다음은 오늘의 마지막 코스인 황룡사지로 향했습니다. 황룡사지는 지금은 터만 횡그러니 남아 있지만 동양 최대의 절인 9층탑이 자리했던 만큼 그 터는 넓은 면적을 차지하고 있었습니다. 스님께서는 넓은 터의 가장 남쪽에 위치한 남문 위에 자리를 잡고 앉으신 후 황룡사의 유래와 각각의 건물 위치와 용도를 함께 설명해 주셨습니다.nbspnbsp▲ 황룡사지nbsp“지금 우리가 앉아 있는 이곳은 남문입니다. 그 다음에 있는 것이 중문이고, 그 다음에 9층탑이 있고, 그 뒤에 동금당, 중금당, 서금당 3개가 있고, 그 뒤에 강당이 있습니다. 이 건물들이 모두 일직선상에 있습니다. 가장 대표적인 절의 원형이 이 황룡사입니다.nbspnbspnbsp제가 고등학교 때 여기서 황룡사의 복원을 서원했는데, 살아있는 동안 할 수 있을지 모르겠어요. 황룡사를 복원하는 것은 단순히 옛날 절을 복원하는 문제가 아니라 한반도 통일의 꿈을 성취하는 마음을 모으는 것이 될 수 있습니다.nbspnbsp여기가 금당터입니다. 장육존불이 모셔진 곳이예요. 워낙 불상이 크니까 마루에 얹으면 마루가 내려앉을 것 아니예요? 이렇게 큰 돌을 파서 좌대로 만들고 이 위에 불상을 고정시킨 겁니다. 이 장육존불을 금방 복원하는 방법이 있어요. 스님 3명이 여기 좌대 위에 나란히 앉아서 사진을 찍으면 돼요.” nbspnbsp▲ 장육존불이 모셔져 있었다고 하는 금당 터nbsp스님께서 알려주신 장육존불의 간단한 복원 방법에 모두들 웃었는데, 문제는 이 자리에 스님이 한분 밖에 안계셔서 그 간단한 복원법을 실행에 옮길 수가 없어서 또한번 크게 웃었습니다.nbspnbsp이어서 황룡사 맞은 편에 위치한 분황사로 들어가서 원효 스님의 일화를 들려주려고 하셨으나 수강생들의 얼굴에 조금 피곤한 기색이 보였는지 스님께서는 버스를 타고 숙소로 들어가는 도중에 원효 스님의 이야기를 들려주셨습니다.nbspnbsp▲ 버스 안에서 원효 스님의 이야기를 들려주시는 스님nbspnbsp대안 대사와 방울 스님과 관련된 원효 스님에 대한 이야기는 정말 언제 들어도 생생하고 재미있었습니다.nbspnbsp숙소로 돌아와서는 간단히 세면을 한 후 저녁을 먹고 7시부터 곧바로 저녁 강의가 시작되었습니다. 스님께서는 ‘신라의 삼국통일로 본 통일코리아의 전망’이라는 주제로 왜 통일을 해야 하는지 그 필요성에 대해 열정적인 강의를 해주셨습니다. 단순히 같은 민족이기 때문에 통일해야 한다는 내용이 아니라 통일이 우리 민족에게 가져다 줄 희망과 비전에 대해 구체적인 그림을 그려주셨습니다.nbspnbsp“오늘 저희들은 신라의 성장과 삼국 통일에 관련된 유적지를 살펴보았습니다. 우리가 과거 역사를 보는 것은 과거를 기억하기 위함이 아니라 현재 우리에게 닥친 문제를 어떻게 풀어낼 것인가 하는데에 있어서 과거의 경험을 교훈으로 삼는 것에 초점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신라의 통일 과정과 그 역사를 살펴보았는데 그럼 지금 우리는 어떤 위치에 놓여 있는가 살펴보겠습니다.nbspnbspnbsp남북이 분단이 된 것은 우리의 자발적인 의지가 아니었습니다. 우리를 지배하던 일본 제국주의를 우리 힘으로 격퇴하지 못하고 미소를 중심으로 한 연합국이 승리하면서 타의에 의해 해방을 맞게 되었습니다. 그것의 대가로 우리가 받은 과보는 일본의 식민지 지배 못지 않게 혹독했습니다. 즉 남북 분단이라는 결과를 빚게 되었습니다.nbspnbsp이제는 남북이 합의를 통해 통일을 이루어야 합니다. 여기서 남북이 서로 누가 잘했는지 따지고 티격태격 하기만 하면 앞으로 통일이 되기는 어렵습니다. 결국 통일의 책임의식을 누가 가지는가 하는 문제이거든요. 지금까지는 어떻게 하면 대한민국을 안보적으로 잘 보호하고 nbsp발전시키느냐 하는 것이 남한 지도자의 최고 덕목이였습니다. 그러나 앞으로 남한의 지도자는 남한 체제를 보존하고 발전시키는 것은 말할 것도 없고 북한까지 포함한 전 민족의 이익을 어떻게 보장할 것이냐 하는 의식까지 가져주어야 합니다. 전 민족적인 책임의식을 가지려면 역사 의식이 있어야 합니다. 남북의 적대관계만 보지 말고, 적대 관계를 넘어서서 전민족적인 이익이 무엇인지를 보는 눈이 필요합니다. nbspnbsp통일의 필요성은 두가지입니다. 하나는 민족적인 문제이기 때문에 꼭 돈으로만 따질 수가 없는 문제라는 것이고요. 즉 통일의 당위성이라고 말할 수 있겠죠. 그러나 젊은 사람들은 이것만으로는 설득이 안된다는 데에 문제가 있어요. 젊은 사람들은 이익이 되느냐를 따집니다. 가난한 북한과 합쳐서 덕이 되는 것이 무엇이 있느냐 하거든요. 그래서 통일은 경제적으로도 이익이다 하는 것을 밝혀야 합니다.nbspnbsp현재 대한민국은 지난 50년간 고도 성장을 해왔습니다. 그러나 이제는 저성장, 마이너스 성장으로 갈 위기에 놓여 있습니다. 이것은 첫째, 모방 경제가 갖고 있는 한계입니다. 서구 문명과 우리의 경제력 차이가 50년 정도 된다면 고도 성장이 가능합니다. 그러나 그 간격이 점점 줄어들게 되면 성장 속도가 느려질 수 밖에 없습니다.nbspnbsp두 번째는 지금까지는 성장이 중요했는데 이제는 분배가 중요한 사회적 과제가 되었습니다. 그래서 복지비 지출이 자꾸 늘어나는 겁니다. 세 번째는 인구 구성이 급격히 고령화가 되면서 젊은 사람이 먹여 살려야 할 노인 인구가 많아지면서 성장 동력이 급격하게 떨어져가고 있습니다. 거기다가 출산율도 저하되고 있고요.nbspnbsp그러니까 지금 한국 경제가 안고 있는 조건은 더 이상 고도 성장이 가능하지 않습니다. 이것을 근본적으로 해결하는 길은 창조력을 키우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런 창조력 키우기는 단기간에 간단히 할 수 있는 일이 아닙니다.nbspnbspnbsp다른 방법으로는 임시 해결책이 있습니다. 양적 팽창을 하는 것입니다. 미국의 동부 지역은 유럽을 모방해서 빠른 속도로 성장을 했지만 유럽의 수준에 이르니까 정체 국면에 들어가게 됩니다. 그러다가 서부 개척이라는 새로운 바람이 불었습니다. 창조를 못하고 정체되어 있을 때 서부 개척이라는 새로운 돌파구가 열린 것입니다. 서부 개척이라는 양적 확대를 하는 동안에 전체 사회 분위기가 창조로 바뀌기 시작한 것입니다. 이 두가지를 병행해야 합니다. 이것은 산업화를 해나간 모든 나라들이 겪었던 문제입니다.nbspnbsp그런 의미에서 지금까지 분단은 우리에게 큰 고통이였는데, 이제는 남한의 정체 국면을 극복하는 데에 분단은 큰 선물이 될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통일이라고 하는 양적 확대를 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해주기 때문입니다. 즉 통일을 통해 북한 개발을 하게 되면, 있는 자본과 기술만 갖고도 앞으로 10년은 양적 확대를 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한국 경제의 성장 돌파구는 통일 밖에 없습니다.nbspnbsp그러나 통일만 되면 다 된다고 생각해서도 안됩니다. 통일의 효과는 한 10년15년 정도 밖에 안 갑니다. 이 기간 동안 전체 사회 분위기를 창조력 쪽으로 변화시켜줘야 합니다. 그러나 통일이라는 출구 없이 창조력 쪽으로 바꾼다고 하면, 창조도 안 되고 사회도 불만 속에 정체가 됩니다. 그럼 통일이라는 출구만 열어놓으면 될까요? 아닙니다. 그러면 10년 뒤에 또 똑같은 일이 반복됩니다. 그래서 두 가지를 함께 해나가야 하는데, 먼저 북한 개발이라고 하는 통일 정책을 우선적으로 해나가야 합니다. 그런 의미에서 통일 문제는 단순히 민족적인 문제를 넘어서서 우리에게 현안이 되어 있습니다.nbspnbsp안보 문제에 있어서도 통일된 대한민국은 미중 사이에서 균형을 잡을 수 있습니다. 분단된 한국은 북한에 대한 위협 때문에 어쩔 수 없이 미일 군사동맹체제에 들어가게 되고, 그렇게 되면 중국으로부터 경제적 보복을 받게 됩니다. 미일 군사동맹체제에 안 들어가게 되면 미국으로부터 보복을 받게 되고요. 그래서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합니다. 여기서 북한도 개혁개방을 하면서 중국의 안보 우산을 받아들이게 되면 남북 통일도 물건너 갈 뿐만 아니라 결국 양 대국의 충돌 지점이 한반도가 되어서 2차 세계대전이 끝났을 때의 상황과 거의 비슷한 상황이 될 겁니다. 통일은 고사하고 평화도 위협받게 되죠. 그러나 통일을 하게 되면 우리의 평화만 담보되는 것이 아니고 동아시아의 평화도 이룰 수 있습니다. 그것은 미중이 49대 51로 비슷한 상황이 될 때 한국이 어느 쪽으로 가느냐에 따라서 동아시아의 정세가 달라지기 때문입니다. 즉 캐스팅 보드를 쥘 수 있게 됩니다. 그렇게 될 때 한국은 자주성도 유지할 수 있고, 한국의 평화 뿐만 아니라 한국이 중심이 되어 아시아의 평화도 가져올 수 있습니다. 또 한국이 중심이 되어서 한중일 경제공동체를 구성한다면 아시아 시대가 도래할 수도 있습니다.nbspnbspnbsp한중일 경제공동체가 되면 양적인 규모가 세계 최대가 되는데, 그 위에 창조성을 갖게 되면 문명의 중심이 될 수도 있습니다. 그렇다면 아시아 지역에서 창조성을 가진 나라는 어느 나라일까요? 중국은 양적 팽창은 가능하지만 창조성은 없어요. 일본도 모방 쪽이지 창조성이 결여되어 있어요. 한국도 비슷한데 창조성이 돋보이는 영역이 있어요. 대중예술 분야입니다. 왜냐하면 대중예술 분야에는 아무런 억압된 권위가 없거든요. 창조력이 생기기 위해서는 빨갱이니 종북이니 하는 제단이 없어서 생각을 자유롭게 할 수 있어야 해요. 아마 통일이 된다면 노벨문학상도 나올 수 있을 거예요. 왜냐하면 이 분단의 아픔 속에서 표현하지 못했던 것들이 적나라하게 표현될 수가 있기 때문에요. 그런데서 통일은 단순한 경제적인 성과나 외교적인 자주를 넘어서서 우리에게 완전히 새로운 세상을 맛보게 하는 것이 됩니다. 한국이 갖는 창조성과 중국, 일본이 갖는 경제력이 결합된다면 적어도 21세기 말에는 동아시아 시대가 도래할 수 있습니다.nbspnbsp우선 통일만 갖고도 우리는 일제 침략 이후 100년의 한을 풀 수가 있게 되고, 또 통일을 한 후 동아시아 공동체의 중심 국가가 된다면 이것은 천년의 꿈을 실현하는 게 됩니다. 발해 멸망 이후 우리는 동아시아의 변방으로 전락해 있었습니다.nbspnbsp조금 더 나가면, 고조선 멸망 이후에 우리 문명이 중국 쪽으로 흘러간 역사가 있었습니까? 배달 시대에는 우리의 높은 문명이 중국 쪽으로 흘러갔습니다. 그런데 철기 시대가 되면서 우리는 청동기 문명에 매몰되어 있다가 중국으로부터 밀리기 시작했습니다. 고조선 말기에는 한사군이 설치되는 등 중국의 침략까지 받게 되는 수모를 겪었습니다. 그것을 회복하고자 주몽이 다물 사상으로 고구려를 건국한 것이죠. 문명이 중국으로 흘러가던 것이 멈추고, 반대로 중국으로부터 문명이 우리 쪽으로 흘러온 역사가 지금까지 3천년 간 지속해오고 있기 때문에 우리는 중국에 대해 근본적으로 열등의식을 갖고 있습니다.nbspnbsp그런데 묘하게도 지금 우리의 기술과 문명이 중국 쪽으로 흘러가는 최근의 현상은 3천년 만에 처음 있는 일이라는 것을 생각 안해보셨죠? 우리가 세계 최고 문명에 중국보다 빨리 근접했기 때문에 이렇게 된 것입니다. 그런데 중국과 우리의 이 격차가 점점 좁혀지고 있어요. 그러나 만약에 통일을 하게 되어서 낭비적인 요소를 잠재우고 창조력에 에너지를 쏟는다면 앞으로도 상당기간 중국에 문명을 전수해주는 입장을 유지해 갈 수 있어요. 다시 말하면, 아시아 전체 문명의 핵심은 한국에 있고, 규모로는 중국과 일본의 경제가 동아시아 공동체를 세계 최대 규모로 만들어주되 핵심키는 한국이 가지고 있는 상상을 해볼 수 있습니다. 이런 비전이 없기 때문에 한국 사람들이 자신감이 없는 것입니다.nbspnbspnbsp통일은 첫 스텝이지 전부가 아닙니다. 그러나 통일이라는 첫발을 내딛으면 그렇게 갈 수 있는 가능성이 열리는데, 통일이라는 첫발을 못 내딛게 되면 아무런 가능성도 없어집니다. 남한만 갖고는 세계 정세나 안보 상황이나 경제적 조건을 고려했을 때 불가능합니다. 이제 통일 문제는 과거의 소극적인 자세를 넘어서서 세계 문명의 중심 국가로 나아가기 위한 첫발로서의 과제가 되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좌파든 우파든 과거의 통일 운동 세력이 이 운동의 중심이 되어서는 안됩니다. 우리는 미래를 보는 통일 운동을 하고자 하는 것입니다.nbspnbsp신라도 작은 나라였지만 원효대사의 사상이 중국에 유행하고, 신라의 기술 일부가 당나라로 전래되어서 산둥반도에 신라방이 형성되고 하지 않았습니까. 그런 저력은 신라가 단순히 열심히 해서 그런 것이 아닙니다. 그것은 우리의 DNA가 배달 문명의 후예이기 때문에, 세계 최고 문명을 가졌던 우리 역사가 있었기 때문에 그런 기회가 주어진 것이라고도 볼 수 있어요. 그러니 개인의 성공을 넘어서서 집단 지성으로 국가의 발전 계획을 세우고, 국민들에게 희망을 줄 수 있는 쪽으로 우리의 역할을 해보자는 것입니다. 돈이 있다면 이런 활동에 돈을 써야 하고, 자신이 갖고 있는 재능이 있다면 이런 활동에 쓸 때 죽어도 웃으면서 죽을 수 있지요. 겨우 돈 벌어서 골프 치러 다니고 술 마시러 다니고 집 좀 큰 것 사는 것으로 목에 힘주고 다니면, 죽을 때 되어서 하나도 자랑할 만한 것이 못돼요. 그냥 낙옆 하나 떨어지는 것과 똑같지요.nbspnbsp이제는 여러분들이 개인적 삶에서 공적인 삶으로 전환을 해야하는 시기가 되었습니다. 우리가 어릴 때 꿈꿨던 이상이 하나의 이상으로만 끝나는 것이 아니라 이제야말로 우리에게 현실로 다가오는 시기가 되었습니다. 우리는 그걸 능히 해결할 힘이 있습니다. 조금 더 자신감을 갖고 임해주시면 좋겠습니다.”nbsp스님의 강의는 2시간 30분 동안 계속 되었습니다. 스님의 목소리에는 간절함이 묻어났습니다. ‘통일 한국’, ‘동아시아 경제공동체’, ‘세계 문명의 중심’이라는 단어를 들으니 가슴이 콩닥 콩닥 뛰었습니다. 통일 한국을 이루고 동아시아 문명의 꽃을 피우는 모습을 상상해 보며 한국인으로서의 자긍심을 느껴봅니다. 이렇게 우리가 나아가야 할 방향을 분명하게 그려주시는 스님이 계셔서 너무나 감사한 마음이 들었습니다.nbspnbspnbsp열강을 해주신 스님께 큰 박수가 터져나왔고, 이어서 질의응답 시간이 계속 되었습니다. 이후 프로그램이 있어서 긴 시간 답변을 하지 못하고 두 명의 질문에 대해서만 답변을 해주셨습니다.nbspnbsp한 분은 “앞으로 통일을 대비해서 북한 주민들을 어떻게 바라봐야 하고, 북한 지도부를 어떻게 봐야 하는지요?”라고 물었고, 한 분은 “스님은 경제, 문화, 역사에서 깊이 있는 식견을 갖고 계신데, 스님의 생각을 남한의 지식인들과 어느정도 공유하고 계신지? 또 북한에서도 스님과 같은 생각을 가진 분들이 있는지 궁금합니다”라고 질문을 했습니다.nbspnbspnbsp스님께서는 두 분의 질문에 답변을 한 후 오늘 강연을 마무리는 말씀을 해주셨습니다. 우리부터 열린 마음을 가지면서 사회 통합을 향해 나아가자고 당부해 주셨습니다.nbspnbsp“앞으로 우리가 발전하려면 통일이 첫단계이고, 다음이 동아시아 공동체이고, 그 다음은 세계 문명의 중심이 되는 것을 목표로 세우고 추진해 나가야 합니다. 그 중에서 통일로 가는 첫발은 정부가 확실하게 통일을 목표로 하고 통일 지향적 외교, 통일 중심의 경제, 통일 중심의 안보 정책을 취하는 것입니다. 왕조 시대에는 어쩔 수 없었지만 지금은 국민이 나라의 주인이잖아요. 정부는 국민의 명을 받아서 집행하는 머슴이잖아요. 그렇다면 우리는 머슴을 교체해서 통일 지향적인 정부를 구성해야 합니다. 그런데 아무리 찾아봐도 심부름을 잘 해줄 머슴이 없다면 그 중에 좀 더 나은 사람이라도 선택해야 합니다. 그리고 한 사람의 개인은 별 의미가 없어요. 통일지향적인 정치 세력이 구성되어야 하고, 여러분들은 통일지향적인 정치 세력을 후원하는 사람이 될 수 있습니다. 이런 분위기가 국민적으로 형성되면 통일을 지향하는 정치 세력이 나타나게 되어 있습니다.nbspnbspnbsp여러분들에게 정치를 하라는 얘기가 아니예요. 이런 활동을 밀어주는 역할을 여러분들이 해주면, 그 역할을 하겠다는 사람들은 있습니다. 그러니 우리들의 마음 속에 ‘나라가 제대로 되려면 통일을 해야 되고, 통일을 하려면 북쪽은 주도를 못하고 남쪽이 중심이 되어서 할 수 밖에 없다. 그렇다면 남쪽이 중심이 되어 북한을 포용할 수 있는 통일지향적 정부를 구성해야 된다’ 그런 목표 하에 판세를 봐가면서 여러분들이 행동하면 됩니다. 여기에는 진보여야 한다고 고집할 필요도 없고, 보수여야 한다고 고집할 필요도 없이 이 통일 문제에 중심이 딱 잡힌 사람에게 투표한다고 생각하면 됩니다.nbspnbsp이미 기회는 조금 기울어져 버렸습니다. 지금 상황은 한국 안에서 여당과 야당의 갈등을 푸는 것이 남북 간의 갈등을 푸는 것보다 더 어렵고, 남북 간의 갈등을 푸는 것이 일본과의 갈등을 푸는 것보다 더 어렵습니다. 희한한 일이죠. 여야 문제는 풀기 쉬워도 남북 문제는 풀기가 어려워야 하고, 남북 문제는 풀기 쉬워도 일본과의 갈등은 풀기가 어려워야 하는데, 지금 거꾸로 되어 있어요. 한일 갈등은 풀어도 남북 문제는 못 풀고, 남북 문제는 풀어도 한국 안에서 여야 갈등은 못 풀고, 여야 갈등은 풀어도 야당 안에 내부 갈등은 못 풉니다.nbspnbsp진보 세력은 왜 분열이 심할까요? 내가 옳다는 생각이 너무 강하기 때문입니다. 보수는 옳고 그름을 안 따지고 그저 이익만 되면 서로 힘을 합하니까 결과적으로 분열이 덜 되는데, 진보는 자기 주장을 갖고 서로 싸우니까 분열이 더 많이 되는 겁니다. 국민이 볼 때는 분열을 더 싫어하니까 진보 쪽에 표를 안 주는 것이죠.nbspnbspnbsp그래서 우리가 극복해야 될 것은 생각이 진보적인 것 뿐만 아니라 실제로 사람을 포용하는 힘을 가져야 합니다. 큰 목표가 있으면 작은 것을 수용할 수가 있습니다. 과거를 갖고 논쟁을 하면 끝이 안납니다. 미래의 이익과 희망을 보고 과거는 서로 조금 봐주는 관점을 가져야 우리는 힘을 합해 나갈 수 있어요. 사람은 이런 주장도 할 수 있고, 저런 주장도 할 수 있습니다. 그런 열린 관점에서 포용력을 가져야 우리는 사상의 자유를 가질 수 있어요. 그래서 우리들부터 조금 열린 마음을 가져봅시다. 대화를 할 때 견해 차이를 너무 따지지 말고 ‘아, 저렇게 생각할 수도 있구나’ 해보세요. 사유의 자유를 가져야 창조력이 나옵니다. 자기 잣대를 너무 고집하지 말아야 합니다. 통일로 가기 위해서는 우리부터 조금 열려야 합니다. 이런 연습을 해야 우리 사회가 조금씩 통합되어 가지 않겠나 생각합니다.”nbspnbsp다시 한번 뜨거운 박수 갈채가 쏟아지면서 오늘 강의가 마무리 되었습니다. 스님의 간곡한 호소에 평리아 수강생들은 오늘 밤 통일 한국에 대한 희망에 대해 밤새 이야기를 이어갈 것 같습니다.nbspnbsp▲ 오늘 스님께서 해주신 말씀이 민들레 홀씨 되어 많은 분들에게 희망으로 전해지길 기원해 봅니다.nbsp스님께서는 강연을 마치고 두북으로 이동하셨고, 평리아 수강생들은 10시30분부터 늦은 시간까지 통일 한국을 향한 우리의 역할에 대해 토론하며 친교의 시간을 함께 가졌습니다.nbsp

2015.05.10. 30,025 읽음 댓글 14개

2015.5.8.불심도문 큰스님 생신, (사)독립운동가 백용성조사기념사업회 이사회

nbsp nbsp 오늘은 어버이날입니다. 법륜스님께는 스승이신 도문 큰스님의 생신날이기도 해서 스승님을 찾아 뵙고 인사를 드렸습니다. nbsp 새벽예불, 기도를 함께 한 후 해외정토회 김순영 사무국장님은 스님께 “해외사무국에서 활동하시는 분들은 혼자서 일을 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컴퓨터와 일을 하는 것이 대부분입니다. 이럴 때 해외정토회 활동가들은 어떤 마음으로 하는 것이 좋을까요?”라며 그동안 해외에서 활동하다보니 넓은 지역에서 혼자 활동을 해야 하는 경우가 많았는데, 그럴 때 어떻게 수행적 관점을 가지고 일해야 하는지를 물었습니다. nbsp nbsp 스님께서는 그동안 해외에서 활동하느라 수고했다고 격려하시면서 “주어진 조건은 최선도 아니고 최악도 아닙니다. 중요한 것은 수행자로서 가지는 ‘원’입니다. 우리가 전 세계에 불법을 전하기 위해서는 함께 모여 있는 것보다는 오히려 전 세계에 흩어져 있는 것이 낫습니다. 주어진 조건은 좋고 나쁨이 없지만 어떻게 받아들이느냐에 따라 좋은 조건이 되기도 하고 나쁜 조건이 되기도 합니다. 우리는 현재의 우리의 조건을 유리한 것으로 만들어야 합니다. nbsp 현재 해외지부는 사무국의 역할이 중요합니다. 그것은 아직 각지구나 지회가 알아서 할 수준이 안되기 때문입니다. 가능한 두달에 한번이라도 만나서 얼굴도 보고 회의하는등 부족한 것은 이렇게라도 메우고, 나머지는 인터넷상으로 할 수 밖에 없습니다. 당분간은 재정이 부족해서 개인부담하더라도 해외사무국 재정이 어느정도 준비되면 절반은 공적으로 지원하고, 절반은 개인이 부담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또 임원이 교육이나 회의, 행사에 참가할 때는 앞으로는 공금에서 제공하는 것도 이제는 고려할 때가 되었습니다. nbsp nbsp 열악한 조건을 극복하는 것은 별다른 방법이 없습니다. 지금 해외 정토회가 어려운 조건에 놓여 있지만, 국내에서 정토회를 맨처음 시작할 때의 상황과 비슷합니다. 정토회도 처음 시작할때 막연했어요. 또, 지방도 알아서 해라 할 때 막연했어요. 지금 해외는 그와 같이 막연한 상태입니다. 그러나 조금만 더 해 나가면 힘이 생길 것입니다.” 라고 하시며 처음 정토회가 시작할 때처럼 해외도 그렇지만 조금만 더 해가면 점점 힘이 생길 것이라고 격려해주셨습니다. nbsp 간단히 해외정토회 사무국 활동가들과 이야기를 나눈 후 어제 시애틀 신수지 보살님이 통영에서 사다 준 충무김밥으로 아침을 먹고 난 후 해외정토회 사무국 활동가들은 부산, 대구, 서울로 향하였고 스님께서는 장수 죽림정사로 향했습니다. nbsp nbsp 오늘 도문 큰스님 생신을 축하하기 위해 동국대 총장 보광스님등 문중의 스님들 약 15여명이 함께 자리를 했습니다. 큰스님을 모시는 정광법우님은 근래에 이렇게 많은 제자들이 모이기도 오랜만이라고 합니다. 원래는 큰 스님의 생신은 내일이지만, 오늘은 큰스님의 어머님 기재사이고 또 내일이 생신이라서 이렇게 전날 모인다고 합니다. nbsp 스님께서는 도문 큰스님께 인사를 드리고 나서 법당에서 도문 큰스님의 어머님 재에 참석하셨습니다. 재를 모두 마치고 점심공양을 하신 후 다함께 기념 촬영을 한 후 큰스님께 다시한번 생신축하인사를 드렸습니다. nbsp nbsp 기념촬영 후 ‘ 독립운동가 백용성조사 기념사업회’의 이사회가 열렸습니다. 이사회에는 모두 13분이 참석하셨습니다. 이사회의 주요 안건은 ‘백용성조사 기념관을 활성화하는 방안, 백용성 조사님이 출가하신 곳이자 스승이시 혜월선사가 머무셨던 곳이고 천도교 교주이신 최제우 선생이 은거했던 곳인 덕밀암 복원에 대한 건, 네팔 룸비니 대성석가사 지원’ 등이었습니다. nbsp nbsp 그리고 이사님들이 다 모인 가운데 백용성조사 유훈 실현을 위해 죽림정사를 활성화하고 기념사업회의 활동을 활성화 하는 방안에 대한 논의들도 있었습니다. nbsp 또, 민족문제 연구소에서 ‘일본 제국주의의 아시안 홀로코스트’라는 주제로 광복 70주년 기념 국제학술 심포지엄을 하는데 독립운동가 백용성조사 기념사업회와 함께 하자는 제안을 받아 함께 하기로 결의를 했습니다. nbsp nbsp 그리고 스님께서는 죽림정사에서는 1년에 큰 행사가 4개 있는데, 3·1절 기념식, 용성조사 탄생일, 오도일, 열반일이니까 이사님들은 미리 시간을 비워두고 꼭 참석 해달라고 요청드렸습니다. nbsp nbsp 회의를 모두 마치고 스님께서는 큰 스님께 인사를 드리고 스님께서는 다시 두북으로 이동해서 9시경에 도착했습니다. 스님께서는 지난번 다친 이후 상처는 덧나지 않았는데, 몸의 컨디션이 좋지 않아 며칠간 힘들어 하셨는데 어제그제는 계속 체하셔서 경주정토회의 김성순 대표님이 체기를 따드린다고 오셔서 간단히 치료를 받고 바로 주무셨습니다. 내일은 평화리더십 아카데미 경주역사기행이 있는 날입니다.

2015.05.09. 21,612 읽음 댓글 19개

2015.5.7.해외정토회 사무국 활동가 거제도 나들이

nbsp nbsp 오늘 아침 스님과 해외 정토회 사무국 활동가들은 다함께 새벽예불, 기도를 함께 한 후 학동몽돌해수욕장으로 산책을 나섰습니다. 해외정토회 사무국 활동가들은 지난해 세계 100강을 준비하면서 수고가 너무나 많았습니다. 스님께서는 아름다운 거제도를 이분들에게 보여주기 위해 특별히 일정을 조정해서 안내하셨습니다. nbsp nbsp 거제도는 몇 개의 몽돌해변이 있는데, 아침에는 숙소에서 가까운 학동몽돌해수욕장까지 산책을 했습니다. 몽돌해변은 모래가 아니라 돌들로 이루어져 있는데, 이 돌들이 파도에 깎여서 동글해져 있다는 것입니다. 학동몽돌해변까지 가는 산책로를 따라 가면서 멀리 주변경관에 대한 설명도 들었습니다. 저 멀리 거제 8경 중의 하나인 바람의 언덕도 보였습니다. nbsp nbsp 스님께서는 학동몽돌해변의 몽돌이 생각보다 예쁘지 않다면서 나중에 다른 지역 몽돌해변도 가보자고 하셨습니다. nbsp 학동 몽돌해변을 거닐며 스님께서는 수재비뜨기를 하면서 어릴 때 했던 것은 잘 잊어버리지 않는다며 과연 몇 번이나 뜨는지 세어보며 하셨습니다. nbsp 숙소로 돌아와서 아침을 먹고 난 후 거제도 해금강과 외도로 가기 위해 선착장으로 향했습니다. nbsp nbsp 배를 타고 해금강의 절경을 둘러보며 감탄사를 연발하기도 하였습니다. nbsp nbsp 배는 다시 외도로 향했습니다. 외도는 개인 소유의 작은 섬을 꽃과 나무로 이루어진 공원으로 만들어서 지금은 유명한 관광지로 되었습니다. nbsp nbsp 이국땅에 온 느낌의 외도는 평소 잘 보지 못하는 꽃과 나무들로 장식되어 있었고, 산책길을 따라 섬을 둘러보게 되어 있었습니다. 외도에서 바라보이는 바다의 모습도 이국적이고 아름다웠으며 한려해상 수도의 아름다움을 만끽할 수 있었습니다. nbsp nbsp nbsp 외도를 나와 다시 거제도 바람의 언덕이 있는 선착장으로 돌아와서 해금강 선착장으로 가보았습니다. 원래는 해금강 선착장이 더 관광지로 유명한 곳이었는데, 오늘 가보니 그곳은 사람들이 거의 없고 가게들도 장사를 하지 않는 곳이 더 많았습니다. 해금강이 바로 가까이에 바라다 보이는 곳에 위치한 곳의 주변 바닷가를 산책하기도 했습니다. nbsp nbsp 해금강 선착장을 나와서 다시 해변도로를 따라 이동했습니다. 해변도로를 따라 가는 길은 아름다웠습니다. 가다가 여차몽돌해수욕장을 들렀습니다. 스님께서는 아침에 본 학동몽돌보다는 이곳 여차몽돌이 더 좋다고 하시면서 해변을 잠시 거닐었습니다. 여차몽돌해수욕장의 해변은 크고 작은 몽돌들이 조화를 이루며 큰 몽돌들이 점점 작아져 바닷가에는 아주 작은 몽돌들이 있었습니다. nbsp nbsp 이곳에서 스님께서는 가만히 명상을 해볼 것을 제안하셨습니다. 다들 명상을 하고 난 후 스님께서는 어떤 소리가 들렸냐고 물었고 한분은 차르르 하는 돌 구르는 소리라고 했고 다시 한번 그 소리를 잘 들어보라고 해주셨습니다. 이곳은 모래가 아니라 아주 작은 돌로 이루어져 있다보니 파도가 밀려왔다가 밀려갈 때 작은 돌들이 파도에 함께 굴러 내려가면서 몽돌끼리 부딪히는 소리가 차르르 들려왔습니다. nbsp nbsp 스님께서는 여기서도 수재비뜨기를 하면서 돌이 몇 번이나 튕기는지 헤아려 보기도 했고, 또 다른 한분은 바닷물이 너무 깨끗하고 좋다고 바닷물에 들어가기도 했습니다. 아직 물이 차가운데도 너무 좋다면서 잠시 수영을 하다가 나와 옷이 마를때까지 해변에 있다가 다시 이동했습니다. 햇볕이 좋아 옷은 금방 말랐습니다. nbsp nbsp 주변 경관을 보면서 숙소로 돌아오는 길에 간단히 점심을 먹었습니다. 늦은 점심을 먹은 후 숙소에 잠시 들렀다가 거제에서도 유명한 구조라 해수욕장을 보지 못한 분들이 많아서 다시 구조라 해수욕장으로 이동했습니다. 구조라 해수욕장으로 가는 길에 망치 몽돌 해수욕장에 들러서 지금까지 본 몽돌해수욕장중 어디가 나은지 이야기 나누기도 했습니다. 대부분은 여차몽돌해수욕장이 가장 몽돌스럽고 좋다고 했습니다. 이곳 망치 몽돌해수욕장은 아주 큰 몽돌들이 자리를 잡고 있다보니 파도가 와도 몽돌 구르는 소리는 들리지 않았습니다. nbsp nbsp 다시 구조라 해수욕장으로 이동했는데, 이곳은 모래사장으로 되어 있었는데, 해파리들이 모래사장까지 나와서 군데군데 보이기도 했습니다. 또 해초류까지 밀려와서 약간은 지저분해 보이기도 했습니다. nbsp 모래사장을 한바퀴 돌아서 옛날의 거제에서 가장 큰 도시였던 장승포와 대우조선이 있는 옥포를 들러 거제를 한바퀴 돌아서 다시 숙소로 왔습니다. nbsp nbsp 숙소에 도착해서 잠시 휴식을 한 후 저녁 공양을 맛잇게 먹었습니다. 스님께서는 낮에 빵을 먹었는데, 체기가 있다고 하시면서 함께 저녁 식당에 있다가 일찍 방으로 가셔서 휴식을 취하셨습니다.

2015.05.08. 18,762 읽음 댓글 12개

2015.5.6. 농사일, 해외정토회 사무국 활동가들과 함께

nbsp nbsp 새벽 4시 40분, 스님께서는 서울을 출발해서 두북으로 향했습니다. nbsp 먼저 두북수련원에 들러서 수련준비중인 보수법사님, 화광법사님의 인사를 받은 후 수련장을 둘러보면서 강당겸 숙소로 쓸 수 있는 건물이 더 필요한데, 수련원내에 더 지을 수 있는지, 어디가 적당한지 등을 둘러보았습니다. nbsp 지금 있는 수련원의 강당은 100여명이 들어가면 꽉 차버려서 약 200여명이 수련할때는 장소가 마땅치 않아서 식당옆에 지을 수 있는지를 함께 점검해 보셨습니다. nbsp nbsp 또, 지난주에 가져다 단지에 담아 놓은 꽃들을 보시면서 시들은 꽃은 빼고 아직 싱싱하게 남은 꽃들을 좀 더 여러곳으로 나누어서 마당이곳저곳에 놓아두었습니다. nbsp 또, 지난주에 씨앗을 뿌리려다 다리를 다쳐 하지 못했던, 상추, 쑥갓, 고소등의 씨를 작은 텃밭에 뿌렸습니다. 그리고 유기질 거름을 주고 물도 듬뿍 주었습니다. 아마도 다음주에 오면 싹이 제법 자라나 있지 않을까 합니다. nbsp 그리고 앞마당의 꽃이나 텃밭에 심어논 작물들에도 물을 주었습니다. nbsp 화단정리와 농사일을 마무리 하시고는 지난번 해외정토회 지도자 수련때 오셨다가 아직 돌아가시지 않은 해외정토회 사무국 활동가들과 함께 시간을 보내기 위해서 거제로 향했습니다. nbsp 스님께서는 해외에서 고생하시고 수고하신다며 좀 더 시간을 내어 격려해 주시기 위해 일부러 시간을 내었습니다. nbsp 저녁 9시가 되어서 거제에 도착해서 저녁을 먹으면서 그동안 교육을 잘 받았는지, 한국에 있는 동안 어떠했는지등 이야기들을 나누었습니다. 해외정토회 김순영 사무국장님등 사무국 활동가들과 ‘해외 전법을 위해 어떻게 할 것인지’를 논의하면서 9월에 있을 명상수련과 미주행자대회 진행에 대한 이야기들을 나누었습니다. nbsp

2015.05.07. 19,040 읽음 댓글 18개

2015.5.5 기획위, 통일의병 모임, 서울시장공관 방문

nbsp nbsp 스님께서 오늘 아침에도 서울공동체에서 어김없이 새벽예불, 천일결사 기도와 발우공양을 하시고 대중공사때 대중생활과 업무에 대해 먼저 몇가지 짚어주셨습니다. nbsp 오늘 숭늉 보리차의 색깔이 강해서 발우를 씻으면 물이 맑지 못하고 뿌엿다고 하시면서 발우를 씻고 난 퇴수물의 색깔이 맑을 수 있도록 보리차는 묽게 끓여야 하며, 혹시 보리차가 강하면 발우를 씻을 때 청수를 한 숟가락 떠서 마지막에 발우를 헹구도록 말씀해주셨습니다. nbsp nbsp 또, 업무적으로는 청년정토회에 청춘캠프 장소와 강사섭외 현황을 점검하셨고, 평화재단에서 저녁예불을 할 장소와 시간을 정했는지 확인하시면서 저녁 6시에 예불에 모두가 참석할 수 있도록 6시전후에는 모든 일정을 비우도록 하셨습니다. 스님의 약속도 6시라고 해도 비서실에서는 6시 15분으로 알아듣고 일정을 잡아 달라고 하시면서 스님께서도 불가피한 일이 아니면 평화재단에서 6시 저녁예불을 같이 하시겠다고 하셨습니다. nbsp 어제 통일의병 통일시민학교 강의때 촬영 준비가 안된 이유에 대해서도 부서간에 어디서 착오가 생겼는지 확인하시고, 영상편집시 주의해야 할 점을 일러주셨습니다. nbsp nbsp 서두에 이와 같이 간단히 점검하신 후, 대중들에게 수행자로 일을 해 나감에 있어서 도반들과 어떤 마음으로 함께 할 것인지에 대해 말씀해주셨습니다. nbsp “우리가 수행생활 할 때 최소한의 해야 할 것과 여기서 더 나아가 해야 할 것들이 있습니다. 어떤 일이 있어도 이것 이하는 하면 안된다는 것이 있는데, 최소한 이것만 지킨다고 해서 모두 수행자라고 할 수는 없습니다. 최소한의 것도 하지 않으면 수행자가 아니지만, 수행자라면 최소한의 지켜야 할 것 이상을 실천해야 합니다. 수행자는 계율만 지킨다고 해서 해탈하는 건 아니지만, 최소한의 지켜야 할 것이 계율이기 때문에 꼭 지켜야 하는 것입니다. nbsp 한편, 수행자가 더 나아가 해야할 것들을 행동하면 훌륭하지만, 그것을 하지 않는다고 비난 받을 일은 아닙니다. 수행자는 적어도 남에게 도움은 못 줘도 피해는 안 줘야 하며, 남을 즐겁게 해주지는 못해도 괴롭히지는 말아야 하며, 남에게 이익은 못 줄지언정 손해 끼치지 않도록 해야 합니다. nbsp 수행자가 되려면 남한테 덕 보려는 마음은 버려야 합니다. 덕 보려는 마음은 중생의 마음입니다. 우리에게 그런 욕구가 있는 것은 현실이지만 그것을 극복해야 합니다. 적어도 다른 사람에게 손해나고 해치는 행동은 하지 말아야 합니다. 이것이 계율이며, 우리가 지켜야 할 덕목입니다.” 라며 수행자는 최소한의 계율을 지켜나가야 한다고 말씀해주셨습니다. nbsp nbsp “개인의 덕목에 대해 철저하게 자각하는 것이 소승불교입니다. 그래서 소승불교는 최소한의 인격이 있습니다. 대승불교는 통일을 하겠다든지, 정토를 건설하겠다든지와 같은 원을 향해서 나아가는 것을 말합니다. 소승은 자신들이 쳐놓은 울타리 밖으로 안 나가는 것에 초점을 둔다면, 대승은 세상을 구제하겠다는 것을 목표로 두고 있습니다. 소승을 기반으로 한 대승이 되어야 합니다. 자기를 구제한 전제 위에서 남을 돕는 것입니다. 즉, 반드시 남에게 피해를 주지 않는 최소한의 청정한 인격을 기초로 해서, 남을 보살피는 삶으로 전환하는 것이 수행자입니다. nbsp 그렇게 하기 위해서는 남에게 적어도 손해는 안 줘야 하며, 거기서 더 나아가 남에게 이익을 나눠 주어야 합니다.” nbsp 스님께서는 수행자로서 자기구제 뿐만 아니라 남에게 도움이 되는 삶을 살아야 한다고 말씀하시며, 이러한 자세가 도반과 함께 할 때도 그대로 적용되어야 한다는 말씀을 강조하셨습니다. nbsp “함께 일하는 도반과의 성격차이 등으로 인한 갈등은 충분히 있을 수 있습니다. 사랑하는 부부 사이도 갈등이 일어나는데, 하물며 낯선 사람이 만났는데 갈등이 일어나는 건 당연합니다. nbsp 그런데 수행자라면 어떠해야 할까요? 여기 공동체에 있는 우리는 목표를 같이 하는 원을 세운 사람이 모인 것입니다. 나 혼자서는 목표를 도저히 달성하기 어렵지만, 이 사람들이 함께 하기 때문에 목표 달성이 가능한 것입니다. 도반을 볼 때 내 마음에 안 드는 것은 있을 수 있지만, 사실 그들은 내 원을 성취시켜주는 고마운 사람입니다. 모든 것이 제 마음에 들 수는 없습니다. 내 마음에 안 들어서 기분 나쁜 것은 이해하지만, 우리의 원을 성취하고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서는 다양한 사람이 모여야 가능합니다. 이 원이 분명하면 모든 도반들이 고마운 사람이 됩니다. 나하고는 다르지만 한 사람, 한 사람 소중한 사람입니다. 도반 없이 내 원을 성취할 수 없다는 게 분명하면, 이 사람들을 포용하는 것이 가능합니다. 소승은 자기 까르마가 극복되어야 타인에 대한 포용이 가능하지만, 대승은 자기 업식을 그대로 두고도 타인을 포용하는 것이 가능합니다. 왜냐하면 원이 있기 때문입니다. nbsp nbsp 일하는 방식의 차이로 다른 사람과 갈등이 된다면 둘 중에 하나입니다. 내가 계율을 안 지키고 있든지 아니면 원이 간절하지 않든지 입니다. 지금 같은 어려운 조건에서 한반도가 통일이 되려면 티끌이라도 하나 더 보태야 합니다. 누구든지 필요합니다. 그런데 그 목표가 간절하지 않으면 너는 이래서 안되고, 너는 저래서 안된다고 배척하게 됩니다. nbsp 우리는 내 성질에 사로잡혀서 원을 놓치고 있습니다. 그래서 상대가 미운 사람이 되고, 적이 됩니다. 여러분들은 늘 자기 마음의 작용에 깨어있어서 화, 짜증을 냈다가도 알아차리고 다시 평안한 마음으로 돌아와야 합니다. 나도 모르게 짜증냈다고 해도 마음이 본래의 자리로 돌아온다면 갈등이 생기겠어요? 상대에 대해 마음이 꽁 해 있으니 갈등이 생기지요. nbsp 낯선 사람이 모였으니 갈등이 생기는 건 당연하고, 마음이 불편한 것 역시 당연합니다. 그러나 우리는 같은 목표를 가지고 모였기 때문에 그것을 뛰어 넘어야 합니다. 그런데도 갈등이 일어난다는 것은, 원이나 수행을 놓쳤기 때문입니다. nbsp 수행의 기반 위에 세상 일을 하는 것임을 정토행자는 놓치면 안됩니다. 그리고 우리는 일상사에서 항상 원을 가지고 있어야 합니다. 그 원을 성취하기 위해서 출판 일을 하고, 밥을 하고, 교육원 일을 합니다. 우리가 일을 할 때 어떤 사람이라도 도움이 되는 사람은 손잡고 끌어가서 함께 해야 합니다. 이렇게 공동체에 들어와서 전화라도 받아주는 사람이 얼마나 있겠어요. 그리고 우리 사회에서 봉사하는 사람이 많지 않은데, 그 중에 정토 공동체에 들어와서 봉사하는 사람은 더 소수입니다. 그런데 그 귀한 사람을 내 취향에 안 맞다고 버린다면 뭘 모아서 재산을 만들 수 있겠어요? 불편함을 가지고 살지 말고 불편함을 알아차리면서 원을 바라보고 살아야 합니다. 여러 사람을 포용하는 사람이 되면 대인이 되는 것 아니겠어요? 그런 마음으로 수행 생활을 하면 부족한 사람들끼리 모여 살아도 화목합니다. 여기 먹는 것도, 자는 것도 신통찮고 하는 일도 힘들잖아요. 그래도 마음은 편안해야지요. 그래야 남이 볼 때는 지옥 같아도 우리 스스로는 극락에서 산다는 자부심을 가지고 살 수 있습니다.” nbsp 우리가 흔히 고민하고 부딪히는 도반과의 관계에 대한 스님의 말씀을 듣고 공동체 성원들은 다시 한번 도반의 소중함과 감사함을 느낄 수 있는 시간이었습니다. 그동안 원을 잊고 내 불편함만 크게 생각하며 수행자로서의 자세를 놓치고 살아온 건 아닌가 하는 돌아봄이 있었습니다. nbsp 발우공양을 마친 스님께서는 평화재단으로 와서 기획위 회의에 참석하셨습니다. 기획위 회의는 아침 7시 30분부터 13시까지 점심을 먹으면서 5시간 30분이나 계속 되었습니다. 통일코리아를 향한 우리사회의 각 부분에 대한 문제점을 진단하였습니다. 13시에는 최열 환경재단 대표님과의 만남이 있었고, 14시부터는 통일의병 활동가들과 만남이 있었습니다. nbsp 통일의병 백왕순 사무총장님을 비롯하여 몇몇 의병들과 자리를 함께 하면서 통일한국을 만들어가는데 헌신하고자 통일의병을 발의했던 만큼, 통일의병들이 의병정신을 잃지말고 중심을 잘 잡고 일을 해나가야 한다고 당부하셨습니다. “의병은 자발적 참여자이므로 민주적으로 의견을 수렴하여 운영해야 하며, 또한 의병이므로 관병보다 더한 통일의지를 가지고 일사분란한 실천력을 가져야 한다.”고 당부하시며 “목표지향적이되 포용성이 있어야 한다.”고 하셨습니다. nbsp nbsp “통일의병이 평소에는 뭐하는지 모르겠다고 문제제기도 하지만, 대한민국 제일의 국가목표를 통일에 두는 정부, 즉 통일지향적 정부를 만들어가는데 일조한다는 목표를 잃지 않고 있으면 흔들리지 않는다”고 하시면서, “의병은 두 가지입니다. 일반국민들이 일상생활을 하다가 나라가 위기에 처했을 때 갑자기 의병으로 모였기 때문에 오합지졸이어서 단번에 깨질 수도 있고, 의병으로 일어선만큼 다른 누구보다도 자발적이고 헌신적이기때문에 관군보다 더 용맹스러워 싸움에 이길 수도 있습니다. 임진왜란때 승병들이 수행만하다가 의병이 되었어도, 이미 죽음을 초월한 사람들이다보니 어느 누구보다도 용맹스럽게 싸울 수 있었던 것입니다. 그러니 민주적인 운영과 함께 결정되면 일사분란하게 실천 할 수 있어야 하고 민폐를 끼치면 안되고 일정한 규율과 절제를 갖추어야 합니다. 통일의병은 호연지기를 기르면서도 절제가 있는 분위기, 한다면 하는 분위기, 신라의 화랑과 같아야 합니다”고 하시면서 통일의병 개개인이 가져야 할 자세, 통일의병이 가져야 할 분위기 신념등에 대해 말씀해주셨습니다. nbsp 더불어서 “평화 아카데미동문회는 다양한 사람들을 포용해서 가고, 통일의병은 중심을 잡고 전국적으로 확산하는데 주력해주기 바랍니다. 6월달부터 5회 잡혀있는 통일의병 주최의 통일콘서트를 해보면서, 필요하다면 하반기에는 시간을 더 내보겠습니다”라며 격려를 아끼지 않으면서 스님께서도 적극적으로 통일의병활동 지원을 하시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nbsp 통일의병들과의 만남의 마친 뒤 정토회관으로 이동하셔서 원고교정업무등을 보시다가 저녁 7시에는 서울시장공관으로 가서 박원순 시장님 부부, 윤여준 원장님 부부, 이정근 원장님 부부, 김홍신 작가님과 함께 저녁 식사에 참가하셨습니다. nbsp nbsp 오늘 모임은 박원순 시장님이 기존에 사용하시던 공관을 서울 성곽보존 때문에 새로 옮기게 되면서 스님일행을 초대해주셔서 이루어졌습니다. 식사는 스님께서 계신지라 채식으로 조촐하게 잘 준비해 주셨습니다. nbsp 서울시장공관에서 주변의 경관을 둘러본 후, 응접실에서 그동안 서울시에서 추진해왔던 서울성곽보존 사업이나 하남 위례성등 우리 역사적 유물들을 보존하기 위한 활동들, 또 시민들을 위한 여러 가지 생활기반시설에 대한 개·보수 사업, 서울시 경전철등 교통상황에 대한 이야기들이 오갔습니다. 박원순 시장님께서는 시정에 아주 밝으시고, 시민의 생활에 관계되는 보이지 않는 작은 일들에도 정성을 쏟고 있음을 알게 되었습니다. 스님께서는 “상수관, 하수관, 지항수, 유물등 주로 땅속에 있는 일들을 하다보니 시민들이 시장님의 노고를 잘 모르는 것 아닌가요?”라며 웃으시면 격려해주셨습니다. nbsp nbsp 오늘 함께 하신 분들은 서울시의 사업이 시민들의 생활에 관련된 일이라 눈에 보이지는 않지만, 아주 중요한 일인데도 시민들에게 잘 알려지지 않고 있음을 모두 안타까워 하셨습니다. nbsp 또, 김홍신 작가님은 이번에 새로 출간하게 된 ‘단 한번의 사랑’이라는 책에 대한 이야기들도 함께 해주셨습니다. nbsp nbsp 정토회관으로 돌아오신 스님께서는 오늘밤에 경주로 이동하려던 계획을 변경해서 내일 새벽에 경주로 이동하기로 했습니다.

2015.05.06. 19,244 읽음 댓글 14개

2015.5.4. '어린이가 행복한 나라, 아이를 때리지 말라' 원탁 대 토론회, 통일학교

nbsp nbsp nbsp 서울공동체에서 오늘 새벽예불과 기도, 발우공양을 하시고 대중공사시간에는 업무적으로 몇가지를 논의하셨습니다. nbsp 책출판과 관련해서 스님께서 계속 원고교정업무를 보시는데 시간이 많이 걸린다고 하시면서 출판예정일이 언제인지, 또 출판계획이 된 것은 어떤것인지등을 논의하셨습니다. nbsp nbsp 또, 통일학교 강의교재 관련해서 5강까지 정리된 것을 전체 다 한번 보자고 하셨습니다. nbsp 대중공사를 마치자마자 바로 평화재단으로 오셔서 ‘민족의 화해와 평화를 위한 종교인 모임’에 참석하셨습니다. 종교인모임에서는 오늘 오후에 있을 “어린이가 행복한 나라 아이를 때리지말라 원탁 대토론회”에 대한 전반적인 최종브리핑과 행사 마지막에 발표할 선언문에 대한 문안을 검토하여 수정하였습니다. ‘어린이가 행복한 나라’ 운동을 지속적으로 펼쳐나가자는 문구를 집어넣어 뜻을 함께 하자 했습니다. 이와 함께 광복 70년, 분단 70년인 올해 광복절 행사에 대해서 종교인모임은 어떻게 할지에 대해서도 논의하였습니다. nbsp nbsp 종교인 모임 이후 외부인사와 2번의 만남을 가진 후 천도교 수운회관으로 이동하셔서 1시 30분부터 어린이날을 맞아 ‘민족의 화해와 평화를 위한 종교인모임’이 주최하고 천도교에서 주관한 ‘어린이가 행복한 나라, 아이를 때리지 말라’ 원탁 대토론회에 참여하셨습니다. nbsp 3.1 독립운동의 정신이 깃든 터전이자, 방정환 선생이 처음으로 어린이날을 제정, 선포했던 역사적 장소인 천도교 중앙대교당은 400여명이 넘는 많은 사람들로 꽉 채워졌습니다. 식전행사로 진행된 뮤지컬 공연은 1923년 5월 1일 소파 방정환 선생이 일제의 탄압에도 불구하고 우리나라에서 처음으로 어린이운동을 시작했던 모습을 담았습니다. 어린이날의 의미를 되새길 수 있는 시간이었으며. ‘우리가 꿈꾸는 세상은 어린이가 행복한 세상’ 이란 메시지가 아름다운 노랫소리에 담겨 전해졌습니다. nbsp nbsp 박남수 천도교 교령님의 환영인사, 김명혁 한국복음주의협의회 회장님의 인사말, 정의화 국회의장님, 김종덕 문화체육관광부 장관님 등의 축사에 이어 역사음악연구소 어린이합창단의 공연이 있었습니다. nbsp nbsp 2부는 방송인 김여진씨의 사회로 열렸으며, 법륜스님께서 여는 말씀을 맡아주셨습니다. nbsp “사실 제가 아이를 낳지도 키우지도 않아 이렇게 나서서 말하는 것을 좀 망설였습니다. 하지만 장기판에 장기 두는 사람보다 훈수 두는 사람이 더 아는 척하지 않습니까. 그래서 간단히 말씀드립니다. nbsp 사람은 생물종으로서의 인간이자, 인류로서의 인간입니다. 생물종으로서의 인간은 유전자의 정해진 시스템에 따라 작동합니다. 그런데 생물학적인 인간종으로 태어났다고 해서 우리가 흔히 말하는 사람이 되지는 않습니다. 사람속에서 길러져야 인류로서 인간이 됩니다. 인류로서 사람이 된다는 것은 인류가 살면서 수없이 축적해 온 경험인 정신작용을 전수받아야 합니다. 100여년 전 인도에서 짐승들과 같이 살고 있는 아이 2명을 발견하였습니다. 두 아이는 10년 넘게 교육받았지만 결국 인간사회에 적응하지 못해 사람으로 돌아오지 못하고 죽었습니다. nbsp nbsp 그런데, 타잔은 다시 사람으로 돌아올 수 있었습니다. 그럴 수 있었던 것은 4살때까지 엄마품에 자라면서 사람으로서 기본 정신 프로그램을 전수받은 후 동물속에 살았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사람이 되려면 생물학적으로 인간종이라는 하드웨어가 갖춰져야 하고, 그 바탕위에 인류로서의 정신작용인 소프트웨어가 깔려야 하는 것입니다. nbsp 아이가 엄마 뱃속에 있을 때 엄마와 아이는 한 몸입니다. 이때 엄마가 독성 있는 음식을 먹으면 아이가 탈이 납니다. 그래서 아이를 잉태한 엄마는 담배 등의 해로운 음식을 먹으면 안됩니다. 그리고 엄마가 스테레스 받으면 아이는 심리적 불안이 생깁니다. 가장 중요한 태교는 엄마가 음식을 가려 먹고 심리적으로 안정되어야 합니다. 옛부터 아이를 잉태한 엄마를 장례식에 못가게 하는 것은 엄마가 슬프면 아이가 나쁜 영향을 받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좋은 것만 보고 듣게 하는 것입니다. nbsp 사람의 자아는 세살때까지 형성됩니다. 그래서 옛날부터 세살 버릇 여든까지 간다는 말이 있습니다. 세살 때까지 형성된 것은 아이에게 강하게 각인됩니다. 한국에서 태어나서 자라면 자동으로 한국어를 하고 김치를 좋아하는 것처럼 말입니다. 그리고 이 자아형성기에 정신적으로도 그대로 엄마의 영향을 받습니다. 엄마가 우울하면 아이도 우울하고, 엄마가 정신분열이 있으면 아이도 그렇게 될 가능성이 큽니다. 어릴때 심리불안이 형성되면 죽을때까지 고쳐지지 않고 계속됩니다.nbspnbsp nbsp nbsp nbsp nbsp 그래서 세살까지는 엄마가 아이를 잘 돌봐야 합니다. 생모가 키우는 것이 가장 좋습니다. 만약 엄마가 있는데 할머니가 돌보면 아이에게 정신적 혼란이 올 수 있습니다. 할머니가 키우면 아이의 심리적 모체는 할머니가 되어 할머니가 엄마인데, 의식은 젊은 여자를 엄마라고 인식하므로 의식과 무의식 사이에 혼란이 일어나는 것입니다. 엄마가 없어서 할머니가 아이를 키우면 괜찮습니다. 아이들에게는 낳은 사람이 엄마가 아니라 키운 사람이 엄마가 됩니다. 흑인인 아이를 백인이 키우면 백인의 사고방식을 가진 아이가 됩니다. nbsp 생물학적으로는 엄마, 아빠를 절반씩 닮지만 심리적으로는 대부분 엄마를 닮습니다. 모든 아이들은 엄마로부터 사랑받을 권리가 있습니다. 오늘날 엄마들이 가정형편이 어렵다, 직장다닌다는 이유로 아이들을 제대로 돌보지 않아 아이들이 정신적인 장애를 많이 겪습니다. 그런데, 한국의 부모들은 정성스레 돌봐야 할 어릴때는 제대로 돌보지 않고 아이가 자율적으로 생활을 해야 할 시기인 청소년기에는 돌본다며 지나치게 과잉보호해서 아이들이 육체적으로는 성인이지만 정신적으로 자립하지 못하게 합니다. nbsp 엄마는 세살까지는 아이를 100 돌봐야 합니다. 그러나 유치원, 초등학생이 되면 학습하는 시기이므로 부모가 하는 행동을 그대로 따라 하기 때문에 부모가 모범을 보여야 합니다. 아버지가 술주정하면 아이도 자라면 똑같이 따라 합니다. 부부가 자주 싸우는 집에서 자란 아이가 나중에 커서 결혼하면 더 심한 부부갈등이 일어납니다. 인간의 행동은 대부분 어릴 때 형성된 무의식으로 움직입니다. nbsp 아이들에게 좋은 음식을 먹이고 좋은 물건을 사주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부모가 화목하게 살아가는 것입니다. 아이에게 좋은 물건을 사주는 것은 사실은 엄마의 만족일 뿐입니다. 어릴때부터 야단을 치면 마음에 상처로 남습니다. 아이가 커서 야단을 치면 알아듣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거꾸로 큰 애는 야단을 안치고, 작은 애는 야단을 칩니다. 그리고 아이들 앞에서 부부싸움을 하고 아이들을 함부로 대합니다. 아이들이 커서 이성이 생기면 판단할 수 있는 자율권이 생기지만 아이가 어릴수록 작은 일에도 말없이 영향을 크게 받습니다. nbsp nbsp nbsp nbsp nbsp nbsp 그래서 초등학생까지는 70 돌보고, 중학생은 50 돌보고, 고등학생은 30 돌보고, 대학생이 되면 완전히 독립시켜야 합니다. nbsp 정부의 정책 변화도 필요합니다. 지금의 유아정책의 가장 큰 문제는 아이를 위한 정책이 아니라 엄마를 위한 정책이라는 점입니다. 무료보육은 언뜻보면 좋은 것 같지만, 아이를 아주 어렸을때부터 보육원에 보내게 해서 아이를 엄마로부터 분리시키는 결과를 만들고 있습니다. 모든 어린아이는 제 엄마로부터 사랑받을 권리가 있습니다. 엄마가 아이를 키울 수 있도록 3년 유급휴가를 주는 것 같은 특별지원책이 필요합니다. nbsp 아이를 어떻게 키울까 걱정할 필요가 없습니다. 엄마가 행복하게 살면 아이는 저절로 행복해집니다. 남편이 아이의 성장에 어떻게 하면 도움이 될까 고민한다면 남편이 아기 엄마를 편안하게 해주면 됩니다. 할머니 역시 며느리에게 잘해주는 것이 손자가 잘되는 길입니다. nbsp 정부는 엄마가 아이를 잘 키울 수 있는 정책을 펴야 아이들의 심리적 불안을 해결할 수 있습니다. 이는 지금 사회적으로 문제되고 있는 자살이나 정서적 불안, 학교폭력을 해결할 수 있는 근원적 해결책입니다. 그리고 다문화 가정에 대해서도 관심을 가져야 합니다. 다문화 가정의 엄마는 한국사회에 적응하는데 힘들어하고 한국어도 잘 못해 심리불안 상태에서 아이를 임신하고 키웁니다. 아이들도 유치원에 가면 피부색 등으로 친구들로부터 놀림을 당하여 상처가 큽니다. 이렇게 성장한 다문화 가정의 아이들이 20년 후 한국사회에 심각한 사회문제로 대두될 것입니다. 다문화 가정의 엄마가 행복할 수 있도록 아기 엄마의 평화와 안전을 보장하는 것이 미래 우리사회를 행복하게 하는 것입니다.” nbsp 스님께서 늘 엄마들에게 해주신 이 말씀은 어린이날 더 의미있게 다가왔습니다. 토론회에 참여한 패널과 방청객들은 스님의 말씀에 고개를 끄덕이며 동감하였습니다. 스님의 말씀이 끝나고 12명의 패널과 종교인 모임 7명의 종교인들의 말씀이 이어졌습니다. 패널들은 짧은 시간이었지만 어린이들이 처한 현실을 나누고 이를 해결할 대응방안에 대한 다양한 이야기를 나눴습니다. nbsp nbsp nbsp nbsp 아동학대의 84가 가정에서 생기기 때문에 아동학대의 모든 책임을 어린이집으로 돌리는 것은 적절하지 못하며 아동학대를 막기 위해서는 국가, 부모, 학교, 보육기관 등 모두가 함께 책임지는 것이 필요하다고 하였습니다. 이제는 가정에서도 어떠한 폭력도 인정되지 않도록 법제화하고, 이를 신고할 수 있는 의무감을 가질 수 있도록 교육되어져야 한다고 하였습니다. 또한 아동학대를 담당하는 관련시설을 확충하는 것 역시 과제로 제안되었습니다. 아동학대로 인해 죽어가는 아이들이 점점 늘어나고 학대당한 아이들이 정신적 후유증으로 청소년 폭력, 어른이 되면 가정폭력으로 이어지는 악순환을 끊기 위해서는 정신적 치료를 제도화하는 것이 필요하다는 의견도 나왔습니다. 그리고 어른이 행복해야 아이가 행복할 수 있다는 말에 많은 사람들이 공감하며, 긍정적이고 성숙한 어른이 되기 위한 인성교육의 필요성이 이야기 되었습니다. 지금 학교교육에서 지식만 가르치고 삶의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지혜에 대한 교육이 없으므로, 앞으로 지혜에 대한 교육과 인간의 존엄성을 존중하는 종교적 교육이 제도화되는 것이 필요하다는 제안도 있었습니다. 한 패널은 부모교육자격증이 필요하며, 이를 법제화 해달라는 요청도 있었습니다. nbsp nbsp nbsp nbsp ‘꽃으로도 어린이를 때리지 말라’라는 말처럼 어린이에게 어떠한 폭력도 정당화될 수 없으며, 여전히 우리사회에 깔려 있는 폭력적인 문화를 우리 어른들이 함께 각계 각층에서 바꿔나가는 노력이 필요하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던 시간이었습니다. 방정환 선생님께서 어려운 시대에 어린이운동을 시작해주심에 감사하고, 그 정신을 잘 계승해나가야겠다고 다시금 다짐해봅니다. nbsp 저녁 7시 반부터는 평화재단에서 통일의병 통일시민학교 수강생을 대상으로 “통일시대, 무엇을 할 것인가?”에 대한 강의를 하셨습니다. 평화재단 내에서 활동하는 시민단체인 ‘새로운 100년을 여는 통일의병’ 주최로 벌써 3기째 개설된 통일시민학교는 통일에 관심 있는 일반 시민들이 참여하여 통일에 대한 열망을 키우고 있습니다. 오늘은 법륜스님의 강의라서인지 수강생 뿐 아니라 기존 의병들도 여러분 참석하고, 진행 스탭들도 맡은 일을 서둘러 마무리 하고 들어와 강의장이 꽉 찼습니다. nbsp nbsp nbsp 스님께서는 산업화와 민주화의 성과를 이룬 남한이 왜 지금 통일을 해야 하는지에 대해 내적외적 필요성으로 나누어 설명해 주셨습니다. nbsp 우선 현재 대한민국은 위기로 접어들었으며, 그 근본 원인에 대해 짚어주셨습니다. 한국이 세계적으로 가장 짧은 시간동안 급속히 발전할 수 있었던 원동력은 가장 앞선 문명을 가장 빨리 모방하는 시스템을 갖추었기 때문이라고 하시며, 이제는 이 모방 시스템이 한계에 이르러 성장이 정체되기 시작했다고 진단하였습니다. 그리고 이에 대한 해결책을 제시해 주셨습니다. nbsp “지금의 위기를 극복할 수 있는 길은 두가지입니다. 본질적으로는 모방에서 벗어나 창조력을 키우는 거예요. 박근혜대통령이 창조경제를 얘기하는 것은 굉장한 아이디어입니다. 하지만 창조는 모방처럼 그렇게 간단히 단시간 내에 될 수가 없어요. 자율적 환경속에서 많은 실패를 거쳐 창조가 이루어집니다. 미국의 발전사를 보면 미국 동부가 유럽을 모방해서 발전하다가 모방의 덫에 걸려 사회가 정체되었습니다. 하지만 미국이 이를 극복하고 유럽을 능가할 수 있었던 것은 서부 개척의 기회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서부개척이라는 새로운 성장 돌파구를 통해서 일정한 경제력 규모를 유지할 수 있었고, 그 사이 창조력을 갖추어 사회정체를 뛰어 넘을 수 있었던 겁니다. nbsp nbsp nbsp 반면 과거 유럽은 정체 국면때마다 이를 극복하기 위해, 영토 확장을 위한 전쟁으로 엄청난 에너지를 소모했지만 미국은 그럴 필요가 없었던 거죠. 물론 미국도 영토 확장을 위한 전쟁을 했지만 전면전보다는 가볍게 이길 수 있었던 맥시코와의 전쟁으로 영토를 확장했습니다. 미국은 이렇게 서부개척으로 위기를 극복하면서 창조할 수 있는 시간을 벌었습니다. 즉, 양적팽창과 질적 창조를 통해 세계 문명의 중심국으로 올라설 수 있었던 거죠. 일본도 19세기 말부터 미국을 모방해서 성장을 시작했는데, 한계에 부딪치자 한반도와 만주를 점령해서 영토확대를 통해 위기를 극복하려고 했지만 결국 태평양전쟁에서 패했지 않습니까? 일본은 지금 두 번째 정체국면에 빠졌는데, 예전과 같이 전쟁을 통해 양적 확대를 할 여건이 안 되니 일본사회가 장기간 계속 정체되는 겁니다. nbsp 그런 면에서 볼 때 한반도 분단은 우리에게 엄청난 고통을 주기도 하지만 현재 정체국면에 있는 대한민국 입장에서는 좋은 기회를 제공해 주고 있습니다. 통일을 하게 되면 일단 양적 확대가 가능합니다. 다시 말하면 북한 개발이라고 하는 새로운 양적 확대의 기회가 주어지게 됩니다. 통일은 전 민족적 이익을 위해서가 아니더라도 현 대한민국의 정체 문제를 극복할 수 있는 유일한 길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nbsp nbsp nbsp nbsp 그럼 통일하면 다 해결 되느냐? 그렇지는 않습니다. 통일은 일단 한민족이 재도약을 위한 하나의 계기가 되는 것입니다. 지속적인 성장을 하려면 당연히 창조력을 키워야 됩니다. 근데 창조력을 키우기 위해서는 시간이 필요합니다. 그래서 두 가지 전략이 필요합니다. 하나는 양적 확대를 통해 시간을 벌고, 두 번째는 그 기간에 전반적으로 창조력을 키우는 쪽으로 사회를 개혁하면 지속적 성장이 가능합니다. 이것이 내적 돌파구입니다. 다시 말해 한국 내부에 창조력을 키울 수 있는 개혁이 있어야 하고, 외부적으로는 일단 통일을 해서 규모를 키울 수 있는 기회를 가져야 합니다. 이것이 가장 절실한 통일의 내적 필요성입니다.” nbsp 스님께서는 덧붙여 남북한이 분단 이후 미국과 소련이라는 두 축을 각각 우방으로 해서 발전해온 역사를 설명해주셨습니다. 그리고 현재 미중의 세력 교체기에 통일의 기회가 오고 있고, 통일한국이 주변 4국의 충돌에 균형자 역할을 함으로써 동아시아의 세력변화를 가져올 수 있다는 외적 필요성을 말씀하셨습니다. nbsp nbsp nbsp nbsp “지난 1000년의 우리역사를 돌아보면 우리는 한번도 세계의 중심은 커녕, 동아시아에서도 중심 역할을 하지 못하고 동아시아의 변방으로 전락되어 있었습니다. 동아시아에서의 중심은 중국이었고 가끔 일본이 도전을 했습니다. 몽골이나 만주족도 도전했지만, 우리는 발해 멸망 이후로는 동아시아의 중심에 서본 적이 없습니다. nbsp 그런데 통일한국이 되면 그런 희망을 가질 수 있습니다. 통일한국만 해도 발해 멸망이후 천년만에 동아시아에서 자주적 주권국가가 될 수 있습니다. 고조선 멸망이후 지난 2천년 동안 중국으로부터 줄곧 문명을 수입하였는데, 지금은 규모는 적지만 중국에 우리의 문명을 수출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우리가 중국에 우리의 문명을 수출하는 것은 2천년안에서는 처음 있는 일입니다. 하지만 앞으로 10년 안에 이 물결의 흐름은 정지되고, 반대로 중국의 문명이 또다시 우리에게 흘러 들어올 가능성이 있습니다. 그러나 통일한국이 되면 많은 부분에서 중국으로의 문명 수출을 지속적으로 더 할 수 있습니다. 통일한국이 동아시아 공동제의 견인해 내어 세계 최대 규모의 경제 공동체를 만든다면 세계적 경쟁에서 유리하게 되기 때문에, 규모와 상관없이 통일한국이 중심역할을 할 수 있어 창조적 문명을 생산하는 국가발전계획을 가질 수 있다는 것입니다. nbsp nbsp nbsp 이런 가능성을 생각해 볼 수 있는 것은 고조선 중기 이후 3천년만에 온 기회입니다. 우리가 살다가 언제 죽을지 몰라도 이런 가능성을 가진 나라에 산다는 것만으로도 자긍심을 가질 수 있습니다. 이것을 안다면 여러분들이 고민하는 개인적인 문제는 그렇게 중요한 것이 아닙니다. 이 남자냐, 저 남자냐, 이 회사냐, 저 회사냐 하는 문제는 사실은 큰 문제가 아닙니다. 더 큰 국가비젼과 가능성을 볼 수 있다면, 북한과 작은 일로 티격태격할 필요가 없습니다. 통일이라는 국가 목표가 정해지고 그 속에서 미래 이익이 보장된다면 지금 북한이 요구하는 작은 것들을 수용해도 별 문제가 안 됩니다. 미래 목표가 불분명하기 때문에 현재의 작은 일로 갈등이 생기는 겁니다. 독도 문제도 통일한국만 이룩된다면 일본이 우리를 우습게 볼 수 없기 때문에 해결이 어렵지 않습니다. 그런 면에서 아직 통일의 기회가 있으니까 우리가 도전해 볼만하다고 봅니다.” nbsp 동북아의 중심으로서 통일한국의 가슴 뛰는 비젼을 제시해 주시며, 통일을 어떻게 이룰 것인지와 통일의병의 할 일에 대해 말씀하셨습니다. 통일의병의 역할로 통일을 지향하는 정부가 나오도록 제대로 투표하는 것임을 강조하셨습니다. nbsp “한국을 둘러싼 주변 강대국은 지금 모두 자기 국가 이익을 극대화시키는 것에 몰두하고 있습니다. 미국은 중국을 어떻게 견제할 것인가, 중국은 미국의 견제를 뚫고 자기 능력에 걸맞는 영향력을 어떻게 행사할 것인가, 일본은 중국이 커지는 것에 대해 우려하면서 미국의 힘을 끌어들여서 어떻게든 중국을 견제하는데 집중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일본은 패전국가에서 정상국가로 가는 것에 힘을 집중하고, 북한은 자기 체제유지에 치중하여 세계적 규제에도 불구하고 핵을 개발하고 있습니다. nbsp nbsp nbsp nbsp 그러니 주변의 어떤 나라도 한반도 통일을 주도할 나라는 없습니다. 통일에 대한 필요성이 절실한 나라는 한국뿐입니다. 한국만이 어려움 속에서도 이뤄온 산업화와 민주화의 자산으로 통일을 이룰 수 있습니다. 더 나아가 동아시아 공동체를 견인할 수 있으며, 동아시아가 세계문명의 중심이 되도록 만들 가능성도 있습니다. nbsp 그런데 문제는 한국내에 통일을 이룰 주체 역량이 없습니다. 국민들은 다 자기 살기 바쁘고, 국가 지도자는 통일에 대한 국가비젼을 제시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과거에는 지도자가 가져야 할 덕목은 우리 체제를 어떻게 지키고 발전할 것인가였습니다. 그러나, 지금 남한지도자가 가져야 할 덕목은 북한까지 포함한 전 민족의 이익을 어떻게 지켜낼 것이냐, 그리고 동아시아의 공동체를 어떻게 구성하고 우리가 세계문명의 중심을 어떻게 형성할 것이냐입니다. 이러한 비젼을 가진 정치지도자를 발굴하고, 정치 세력을 형성해야 합니다. nbsp 이렇게 한국 정부가 통일에 대한 목표를 분명히 할때만 통일이 가능합니다. 그래야 북한이 설령 어긋난 행동을 해도 설득할 수 있고 미국과도 종속적인 한미동맹에서 벗어나 자주적 한미동맹으로 전환시킬 수 있습니다. 정부가 남북관계를 풀기 시작하면 민간에서도 할 일이 많아집니다. 그러니 통일을 하려면 우선 통일지향적 정부가 반드시 들어서야 합니다. nbsp 국가 최고 지도자가 통일에 대한 의지가 없으면 국민들은 정부를 비판할 수 있어야 합니다. 대한민국의 주인은 국민이니까 누구든 국가의 이익을 훼손하면 비판을 해야 합니다. 이처럼 통일지향적인 정부가 필요하다면 이와 같은 생각을 가진 사람들이 정치세력화 할 수 있도록 뒷받침 해주어야 합니다. 최선이 없으면 차선이라도 선택하고 차선도 없으면 최악은 막아야 합니다. 일제시대 때 독립하려면 목숨을 걸어야 했고 민주화시대에는 감옥에 갈 각오를 했습니다. 하지만 지금은 목숨 걸 일도 없고, 감옥 갈 일도 없습니다. 통일의병이 해야 할 일은 통일지향적인 정부가 들어설 수 있도록 국민이 주권을 제대로 행사하도록 하는 것 입니다. nbsp 정부가 국민에게 이런 국가비젼을 보여주면 청년들이 희망을 가지게 됩니다. 북한 개발이 시작되면 청년들의 일자리도 많아질 것입니다. 개발에 필요한 높은 기술력은 대부분 남한사람들이 맡을 수 밖에 없습니다. 노동은 북한사람들이 하면 됩니다. nbsp nbsp nbsp 다른 나라는 모두 자기 나라의 목표를 위해 달려갑니다. 통일 외에 대한민국의 국가 비젼은 없습니다. 이제 국민들이 이러한 의식을 분명히 가지고 통일의병활동을 해야 합니다. 이제 과거의 일은 따질 필요가 없습니다. 나라의 독립을 위해서는 상놈이나 양반이나 차별이 없었던 것처럼 지나간 얘기는 그만하고 미래를 위해 결집하자는 목표를 가지면 국민통합을 이룰 수 있습니다. 이런 일은 자식 있는 여러분들이 해야 합니다. 여러분들의 자식들이 희망이 있는 나라에 살기 위해서는 통일을 꼭 이루어야 합니다.” 이렇게 예비 의병들의 가슴을 뛰게 하면서도, 마음은 가볍게 할 수 있도록 강의 마무리를 해주셨습니다. 수강생들은 시종일관 진지한 표정으로 경청하다가 때론 심각하게 때론 폭소를 터트리며 강의에 집중하는 모습이었습니다. 예정보다 강의가 길어져 질문은 하나만 받았는데 그 질문과 스님의 답변을 소개합니다. nbsp nbsp nbsp nbsp “가슴이 뭉클합니다. 저는 조그만 사업을 하는데 정말 우리 사회에 비젼이 없습니다. 통일이 유일한 길이라고 생각하는데 너무 몰라서 와서 배우고 있습니다. 스님께서 말씀하시는 비젼을 가진 정치세력이 나올 수 있을까요? 지금의 기득권 세력을 봐서는 불가능할 것 같습니다. 두 번째는 일반 시민들이 무엇을 해야 하는지 너무 막연합니다. 환경하면 쓰레기를 줄이면 되고 제3세계 구호라고 하면 후원을 하면 되는데 통일은 뭘 해야 할지 막연합니다.” nbsp “통일문제는 옛날로 하면 정치적, 군사적인 문제입니다. 그래서 왕이 뜻이 없으면 어떻게 할 수가 없었습니다. 하지만 지금은 지도자를 뽑을 수 있는 권리가 국민에게 있기 때문에 우리가 통일지향적 지도자를 뽑으면 됩니다. 정치인들 중에는 이런 뚜렷한 사명을 가진 사람들이 몇명 안됩니다. 대부분 선거에 당선되는 것에만 목표가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이렇게 하면 네가 당선된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 필요합니다. 한 개인으로 지지하는 것이 아니라 통일지향적 정치세력에 힘을 실어줘야 합니다. 우리는 기회가 와도 우리가 노력을 안 하면 안 되고, 우리가 노력을 해도 기회가 안 오면 안 됩니다. 기회가 올 때를 기다려서 결정적인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도록 준비를 해놓고 기다려야 합니다. 정치가 중 자기를 희생해서 통일을 하겠다는 사람은 별로 없습니다. 그러나 자기 이익을 보장해주면 하겠다는 사람은 많습니다. 그러므로 그들이 큰 부담을 느끼지 않고 통일지향적 정치를 할 수 있게 우리가 도와줘야 합니다. 돈이 없어도 열의를 가지고 움직이는 세력이 있다면 영향력을 줄 수 있습니다. ‘아 이거 정말 해볼만한 일이다. 자손에게 물려줄 만한 일이다. 이게 희망이다.’ 라는 생각을 하면 해볼 만 한 것입니다. 자랑스런 통일코리아를 건설하기 위해 정당한 국민의 권리를 행사하자는 겁니다.” nbsp nbsp nbsp 질의 응답 후 스님과의 단체촬영이 예정되어 있었으나, 사진을 찍고 나서 조별 토론을 하게 되면 흐름이 깨질 것을 염려하시어 먼저 조별토론을 진행하도록 배려해 주셨습니다. 스님께서는 사진 촬영을 기다리면서 생긴 자투리 시간에도 원고 교정을 하시다가, 토론이 끝날 즈음 다시 강당으로 오셔서 함께 단체사진 촬영에 임해주셨습니다.

2015.05.05. 22,426 읽음 댓글 13개

2015.5.3 경전반 특강수련

nbsp nbsp 오늘 문경에서 문경공동체 대중들과 새벽예불과 기도를 함께 하였습니다. 그러나 어제 다리를 다쳐 절을 하지 못하고 명상을 하셨습니다. 그러다 보니 오늘 발우공양후 대중공사 시간에 스님께서도 108배를 하지 못해서 대중앞에 참회하셨습니다. 그리고 스님께서는 문경 수련원의 특성상 매일 매일 많은 분들이 오가며 입재와 회향을 하는데 우리가 어떤 마음으로 살아야 하는지를 말씀해주셨습니다. nbsp “이곳 수련원은 많은 분들이 오기도 하고, 가기도 합니다. 입재하기도 하고, 회향하기도 하고요. 똑같은 날인데도 하루를 정해서 오늘을 한 해의 첫 해이다, 설날이다, 초하루다 등 이렇게 정해서 특별하게 합니다. 그러나 크게 보면 첫 날도 없고, 끝 날도 없고, 초하루도 없고 그믐도 없습니다. 매일 같은 날 입니다. 다만 마음을 새롭게 한다는 차이입니다. nbsp nbsp 여기 오신 분들이 오늘 들어왔다고 새로운 마음을 가지는 건 좋은데, 오늘 집에 간다고 헤이한 마음을 가진다면 그것은 수행자가 아닙니다. 수행자는 오늘 군대 가면 아침 먹고, 일상생활처럼 군대 가고, 군대 가서는 책을 보던 것을 훈련 한다던지 하는 주어진 조건과 업무만 바뀌었을 뿐입니다. 군대를 제대하면 그날로 돌아와서 또다시 업무가 바뀐 것을 맡아서 하면 됩니다. 그러니까 밖에 있다 들어와도, 안에 있다 나가도 마음이 한결 같아야 합니다. 한결같지 않은 마음이 중생심이고, 한결같은 마음이 부처의 마음입니다. nbsp 그러나 우리 현실은 한결같지 않습니다. 태어나는 날이나 죽는 날이나 다 같은 날인데 태어나는 날은 기쁘고, 죽는 날은 슬프고 그래서 고락이 늘 윤회합니다. 그러나 조금 더 크게 보면 그 날이 그 날이고, 그 모습이 그 모습입니다. 낙엽이 떨어져야 움이 트고, 움이 트야 낙엽이 떨어지는 것입니다. 우리의 목표는 한결같은 것이고, 우리 현실은 한결같지 못한 것입니다. 한결같지 못한 현실에서 한결같은 마음을 가지는 것을 목표로 우리는 연습하고 있고 노력하는 이것이 수행입니다. nbsp 잘 안 되는 것이 현실이지만 안 되는 것을 합리화 해서는 안 됩니다. 그러니 오늘 이곳을 나가는 분들은 여기 살 때와 같은 마음으로 일상생활을 해야 합니다. 공양하는 방식이 발우공양이면 경건히 하고, 상공양이면 함부로 하는게 아니라 방식이 바뀌었을 뿐이지 상을 펴고 공양을 해도 발우공양 하는 마음가짐으로 해야 합니다.” nbsp nbsp 수행자는 한결같은 마음을 내어야 하고 그것이 안되는 것이 현실이기 때문에 한결같은 마음을 내는 것을 수행의 목표로 정진해야 함을 일러주셨습니다. nbsp “여기는 수행도량이니 목소리를 가능하면 낮춰야 합니다. 멀리 가는 사람을 부르려고 ‘아무개야’라고 큰소리로 부르며 희희낙락하는데, 즐거운 마음을 같지 말라는 것이 아니라 거기에 빠져서 목소리가 올라가는지 내려가지는지도 모르고 떠들면 안된다는 것입니다. 마음을 편안하게 하되 항상 마음작용과 동작에 깨어있는 연습을 하는 곳이 수행처입니다. 그러니 그것을 놓쳤을 때 공양시간에 참회하게 되는데 참회 따로, 행동 따로 이러지 말고 항상 주시해서 놓치지 않도록 하되 나도 모르게 과거 업식 때문에 놓쳤을 때는 ‘아이고, 놓쳤구나’하고 알아차리며 참회해야 하고, 그리고 대중 앞에 드러내는 발로참회, 또 자자 시간에는 대중으로부터 지적받아서 늦게라도 알아차리는 참회를 해야 합니다. 이렇게 참회는 죄를 지어서가 아니라 내가 가야 하는 목표를 나도 모르게 놓쳐버렸다 그것을 알아차리는 것이고, 다시 그 목표를 향해 나아가는 다짐을 하는 것을 발원이라고 합니다. nbsp 수행자라 하면 이 목표를 분명히 간직하고 그 목표를 향해 나아가야 합니다. 목표로 나아가는데 도움되는 것은 행하고, 도움되지 않는 것은 행하지 않는 것입니다. 그 목표로 나아가는데 놓쳤을 때 놓친 줄 알고 다시는 놓치지 않겠다 다짐하는 것이 참회 발원입니다. nbsp nbsp 여기 사람들이 100명이 산다면 하루 1020명 들락날락 해도 마치 샘가의 물이 새로 들어오고 흘러나가면서도 샘물이 한결같듯이 정토수련원 수행자의 분위기는 한결같아야 합니다. 새사람이 들어오면 웅성거리고, 일부 빠지면 허전한 것이 아니라 1명이 있어도 수행도량, 100명 들어와도 수행도량이에요. nbsp 그런 자세로 누군가가 들어오면 마음이 편안하도록 도와 주고, 전체 대중들도 그런 마음으로 생활해야 합니다. 그런 자세를 오늘 나가시는 분들도 가져야 합니다. 여기서는 음식을 쥐꼬리만큼 먹다가 나가자마자 자장면 곱빼기 시켜 먹기도 합니다. 이렇게 기분따라 풀어지면 원래대로 돌아가버리는 것입니다. 자기 까르마대로 돌아가기 때문에 그러면 늘 제자리에서 돌고도는 것입니다. 앞으로 간 것 같지만 또 제자리로 돌아 가게 됩니다. nbsp 한번 배운 것을 꾸준히 노력 한다면 돌아가더라도 50쯤 해서 멈추고, 또 150 갔다가 100에서 멈추고 그래서 오고가고 하면서 조금씩 조금씩 향상되어져야 합니다. 그런데 100으로 갔다가 100으로 돌아오면 노력은 하는데 아무런 진전이 없습니다.” nbsp 수행자는 항상 마음에 깨어 있어서 알아차림이 있어야 하고 또, 그렇지 못할 때는 참회를 하고 참회발원을 통해 앞으로 나아가야 한다고 말씀해주셨습니다. nbsp “우리가 인생을 살면 늘 실패할 수 있습니다. 여기서 수행생활 하며 늘 놓치고, 실패하는 그것이 연습입니다. 그러나 목표를 가지고 정진을 하면 매번 실패하는데 시간 지나면 어느덧 성공의 반열에 서 있습니다. 늘 안 되는데 시간이 지나면 어느 순간 되는 경지에 되어 있다는 이런 얘기예요. 그것이 저축하는 삶입니다. nbsp nbsp 순간순간 실패해도 이 실패는 성공을 향해 나아가는 과정이고 이걸 보는 사람은 실패에 연연하지 않습니다. 실패가 성공의 어머니다 하는 건 실패가 성공이 된다는 것이 아니라 목표가 분명하면, 목표로 나아가는 하나의 과정으로 실패를 받아들이게 되면, 실패에 연연하지 않게 되고, 실패를 통해서 ‘이것때문에 실패했구나, 이걸 놓쳤구나’하면서 점점 더 좋은 방법을 찾아가는 계기가 된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될 때 ‘실패가 성공의 어머니다’라고 말합니다.” nbsp 비록 순간순간에는 실패를 하더라도 목표를 놓치지 않고 하다보면 실패가 쌓여서 성공의 길로 접어들 수 있음을 다시한번 새기게 됩니다. nbsp “우리는 실수하고 실패하는것이 단순한 반복이면 중생살이고, 알아차림으로 인해 개선하는 쪽으로 나아가게 되면 그것은 성불의 길이라고 볼 수 있어요. 어제도 계율을 어기고, 오늘도 어기며 참회를 하는데 열흘 지나고, 한달 지나고 보면 전에는 많이 놓쳤다면 지금은 적게 놓치게 된다면 출발점보다 개선 되어가고 있는 것입니다. nbsp 그러나 한달 전이나 지금이나, 어제나 오늘이나 똑같은 행동을 똑같이 반복하고 있다면 그건 본인이 수행 관점을 놓치고 있다는 이야기입니다. 누구도 자기를 점검해줄 수 없습니다. 자기 스스로 점검하면서 정진해 나가야 합니다. 여기 들어온다고 정진되는 것도 아니고, 옷 갈아입는다고 정진이 되는 것도 아니고 3000배 한다고 정진 되는 것이 아니고, 어떤 마음으로 하느냐, 어떤 관점을 가지고 하느냐는 것이 중요합니다. 바른 관점, 바른 도를 알고 연습해야 합니다. 목표점 없이 연습하면 수고가 많고, 목표점은 있는데 아무런 노력을 안하면 제자리에 있게 됩니다. 부족한 우리들이 꾸준히 성불의 길을 향해서 연습 해나가는 것이 수행자이고 수행자가 모인 수행자 집단이 상가입니다. 다들 부지런히 정진해 나가시기 바랍니다.” nbsp 수행자는 목표를 가지고 스스로 점검하면서 부지런히 정진해나가야 함을 당부하셨습니다. nbsp nbsp 이어서 8시 30분부터는 경전반 특강수련에서 법문이 있었습니다. 경전반 공부를 하면서 궁금하거나 의문이 든 점을 스님께 묻고 질문하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nbsp 스님께서는 지역별 참가자를 확인 후 문경에 처음 온 사람, 깨달음의 장 아직 안한 사람, 천일결사 입재 안한 사람을 물어보시고, 손드는 사람을 보자‘별종이다’하셨습니다. 이 말씀에 참가자들은 한바탕 웃었습니다. 스님께서 명상수련, 나눔의 장 참가 등 몇가지를 더 확인 하신 후 이번 강의는 인생에 대한 즉문즉설이 아니라 경전반 공부하면서 궁금했던 것을 함께 이야기하는 시간임을 알려주셨습니다. nbsp 스님께서는 먼저 불교대학과 경전반 교과과정에 대한 설명으로 강의를 시작하셨습니다. nbsp “지금은 불교대학 1년과 경전반 1년으로 나뉘어 진행되지만 원래 정토불교대학은 2년제였습니다. 보통 4년제 대학교의 경우 2년은 교양, 2년은 전문과정부로 나뉘는데, 대학의 교양과정부에 해당하는 것이 불교대학이며, 전문과정부에 해당하는 것이 경전반입니다. 원래 둘을 모두 합한 것이 불교대학 교과과정이었으므로, 경전반까지 졸업을 해야 불교대학을 졸업한 것입니다. nbsp nbsp 교양과정에서 다루는 것은 총 4과목으로, 첫번째 ‘불교란 무엇인가’입니다. 가장 핵심적인 내용으로 만들어진 과정이며, 불교의 아이덴티티를 정리한 것입니다. 핵심은 삼귀의오계인데, 불자가 되기 위해서는 삼보에 귀의하고 오계를 받아야 합니다. 두번째는 ‘부처님의 일생’입니다. 부처님은 누구시며 어떤 분이신가 하는 부처님의 일생을 배웁니다. 세번째는 ‘부처님의 근본 가르침’입니다. 역사적으로 소승불교, 대승불교, 밀교 이렇게 3종류가 있는데, 우리가 배우는 부처님의 가르침은 근본불교로써, 가장 초기 원형의 불교입니다. 네 번째는‘ 불교 변천사’입니다. 초기 불교가 시간과 공간이 확대되면서 어떻게 변해갔는가. 나쁘게 변질된 것도 있고 좋게 발전한 것도 있는데 불교의 역사를 배우는 과정입니다. 수행자로서 예불할때는 어떤 마음가짐을 가져야 하느냐, 일상의 삶을 어떤 자세로 살아야 하느냐, 밥 먹을 때 어떤 마음으로 먹어야 하느냐를 기본적으로 요약한 예불문과 소심경 과목이 있습니다. nbsp 전문과정으로 들어오면 부처님이 말씀하신 실제 경전을 가지고 공부하게 되는데, 우리가 공부해야 할 경전은 소승불교인 아함경, 대승불교인 대승경전, 선불교인 선어록 이 세가지입니다. 태국 불교신자라면 아함경만 공부하면 되고, 대승불교 지역이라면 아함경 대승경전을 공부하면 됩니다. 역사적으로 소승불교를 거쳐 대승불교가 됐기 때문에 소승불교는 소승경전만 공부하면 되지만 대승불교는 소승불교가 변화, 발전되어 온 것이기 때문에 반드시 소승불교를 공부하고 대승불교를 공부해야 합니다. 그러나 지금 불교현실은 대승이 소승을 공부하지 않기 때문에, 서로간에 배타적입니다. nbsp nbsp 우리 한국불교는 대승불교 안에 교종과 선종이 있는데, 대한불교 조계종은 선종에 속합니다. 그래서 우리의 아이덴티티가 선종이기 때문에, 선에 대한 공부를 해야 합니다. 선은 교를 바탕으로 성립됩니다. 대승과 소승을 공부하지 않고 선불교만 공부하면 기존 불교를 부정하게 됩니다. 선종은 대승에 속해 있고, 대승은 소승을 기초로 한 것입니다. 즉 소승불교가 변화 발전한 것이 대승불교이며, 대승불교가 변화 발전한 것이 선불교입니다. 종파를 바꿔 소승불교로 가겠다고 하면 대승불교와 선불교를 안 배워도 되지만, 선종에 속해 있으면 소승경전, 대승경전 다시 그 둘을 변화 발전시킨 선어록도 공부해야 합니다. nbsp 우리는 부처님의 일생도 알아야 하고, 소승불교, 대승불교, 선도 알아야 하며, 다른 종파에 대해서도 배타적이면 안됩니다. 그런데 자기 정체성을 가지고 포용하면 좋은데, 자칫 이것도 저것도 아니어서 자기 정체성이 없어지거나, 잘못 공부해서‘선만 최고고 다른 건 필요 없다’이렇게 배타성을 나타낼 수 있습니다. 우리가 배운 불교는 모든 것들을 포용하는 종교인데, 흔히 사람들은‘대승만 옳고 소승은 수준이 낮다’이런 교만을 갖게 됩니다. 종교를 잘못 배우면 배타성을 갖게 되는데, 배타적인 것을 극복하는데 진리, 즉 종교가 필요합니다. 유대교가 유대민족만 구원을 받을 수 있다는 배타성을 가지고 있었지만 예수님은 다른 이방인들에게도 구원이 있다고 넓혀 놓았습니다. 하지만 오늘날의 일부 기독교인들은 유대교의 사고방식을 그대로 가지고 있습니다. 우리나라 불교는 소승보다는 대승이, 대승보다는 선이 더 보편화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소승을 공부하고 소승을 뛰어넘어 대승을 공부하고, 대승을 뛰어넘어서 선을 공부하고, 선을 공부하되 뛰어넘어서 진리로 나아가야 합니다. 기독교냐 불교냐, 종교냐 과학이냐를 뛰어 넘어서 무엇이 진리인가를 규명해 가는 자세가 참다운 선수행자고, 참다운 대승이고, 참다운 불자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자기 정체성을 갖되 세상에 대해서 열린 마음을 가져야 합니다. 생활 속에서 적용해 보면 결혼했는데 포용성을 가진다고 이 남자, 저 남자에게 똑같이 잘 대해야 하나요? 내 남자, 내 아내는 기본적으로 챙기되, 내 가족만 챙길 게 아니라 이웃 남자나 여자 라도 어려움에 처하면 내 가족처럼 보살펴야 하는 것입니다. nbsp nbsp 그렇다면 경전반에서 소승경전, 즉 아함경 공부를 왜 안하는지 의문을 제기할 수 있을 겁니다. 아함경은 제가 즉문즉설 하듯이 부처님께서 평이한 일상 언어로 대화했습니다. 그 당시에 종교 언어를 쓰지 않고 일상어로 썼기 때문에 한국어로 번역하면 굳이 설명해주지 않아도 이해할 수 있습니다. 즉문즉설을 따로 해설하지 않아도 이해할 수 있듯이, 아함경은 강의없이도 여러분이 독송하면 되기 때문에, 천일결사 경전으로 매일 조금씩 읽고 있습니다. 불교방송에서 아함경을 설법한 내용을 책으로 엮은 것이‘붓다에게 물들다’‘붓다 나를 흔들다’이므로 읽어보시면 됩니다. nbsp 금강경, 반야심경, 화엄경, 법화경, 육조단경, 류마경 등 많은 대승경전이 있지만 우리는 금강경, 반야심경과 화엄경을 요약한 법성게, 육조 혜능대사의 어록인 육조단경을 공부하고 있습니다. 정토회는 부처님이 구현하셨던 근본정신을 다시 이 세상에 구현해보고자 하는 것이 목표기 때문에, 근본교설의 정신에 투철한 경전을 배우고 있습니다. 나머지 경전을 더 공부하고 싶은 사람은 지금까지 공부한 것을 기초로 틈틈이 시간내서 따로 하면 됩니다. 실제로 생활 속에서 자기가 체득하는 게 중요하지 알음알이로 공부하는 건 이 정도로 충분합니다. 경전반은 몸과 마음으로, 경험적으로 체득하는데 더 많은 비중을 둬야 합니다. 그럴려면 수련도 해야 하고 마음나누기도 깊이 해야 하고 보시, 봉사, 인욕, 참회하고 경험도 해야 합니다.” nbsp nbsp 스님께서는 이렇게 불교대학과 경전반 교과를 정리해주시면서 참가자들에게 착실하게 수행할 것을 주문하셨습니다. 그리고 참가자들이 기다리던 즉문즉설을 시작하셨고 총10분의 질문이 있었습니다. nbsp 마땅히 머무는 바 없이 마음을 내라 하는 구절이 잘 이해가 안된다며, 어떤 것도 바라는 것 없이 어떻게 마음을 낼 수 있는지 궁금한 분과 스님들 공성을 몸으로 체득하는 깨달음을 체험하고 싶다며, 이법계를 확실히 보려면 어떻게 수행해야 하는지 묻는 분, 집착에서 벗어난 중도의 기준을 어떻게 잡아야 하는지 묻는 분, 남편과 딸의 요구사항을 맞춰주면서 살아왔는데 숙이는 것과 맞추는 것의 구분이 어렵다는 분, 청소년 시절부터 궁금했던건데 여기 이 시간 이 사람들과 왜 함께 있을까 인연법에 대해서 자세히 알고 싶다는 분, 불교에서는 인간의 본성을 성선설이나 성악설 중 어떻게 보는지 묻는 분, 원효스님의 화쟁사상을 좀 더 쉽게 알고 싶다는 분, 돈이 사람의 인격이 되고, 권력이 되어 비굴해지는 느낌인데 어떤 마음으로 돈을 벌어야 지혜로운지, 어떻게 돈거래를 해야 현명한 수행자인지 묻는 분, 어린이법회는 내용이 따로 정해지지 않아서, 선생님과 논의해서 하는데 어떤 마음가짐으로 진행할지를 묻는 분, 경전말씀에서 궁금했던 내용부터 생활속의 고민까지 다양한 질문들이 이어졌습니다. nbsp 이 중 한 질문에 대해 소개드립니다. nbsp “정토회에서 통일의병학교 강의를 듣고 있는데, 통일의 중요성과 필요성은 충분히 공감하지만 지금같이 어려운 현실에서 통일이 될 수 있을지 의심이 듭니다. 어떻게 통일을 염원하고 기여할 수 있을지 궁금합니다.” nbsp “일제시대 때 일본 사람들이 우리를 지배했었죠. 그 때 일본이 주위에 있는 청나라하고 싸워서 이기고, 러시아하고 싸워서 이기고 세계 최강국인 영국하고 동맹을 맺어서 우리를 지배하였습니다. 그때 다른 나라가 우리를 도와줬습니까? 아니오. 우리는 일본에 꼼짝을 할 수 없었어요. 독립운동도 처음에 하다가 나중에 포기하기도 했어요. 그 당시 일본이 패망하고 우리가 독립을 한다는 것이 쉬웠을까요? 지금 미국과 중국 사이에서 우리가 통일을 할 가능성이 더 높을까요? 지금이요. nbsp nbsp 그런 일제시대 때 독립운동을 한 사람도 있는데 우리가 왜 통일운동을 못하겠어요? 그 당시 사람들도 독립이 불가능하다고 생각했었어요. 일본은 1937년 중국을 침공하고, 1941년 태평양 전쟁을 일으켜서 하와이, 사이판, 괌, 필리핀을 점령하고, 베트남에서 미얀마, 인도네시아까지 점령을 하는 등 당시 세계 최강국이었어요. 그래서 그 당시 독립운동을 했던 사람들이 많이 변절했습니다. 그 전에는 어떻게든 독립이 되겠지 하는 희망이 있었는데 일본이 세계를 제패하여 독립이 불가능하다고 보였어요. 그래서 일본천황만세를 부르고, 이 전쟁에서 일본하고 협력하는 것이 낫겠다 싶어서 학도병으로 군대가는 것을 3.1 독립선언할 때 서명했던 사람들까지 나서 권유하고, 일부 신문들도 절판 했는데, 어느 날 갑자기 독립이 되었어요. 우리가 독립이 될 거라고는 꿈에도 생각을 못했기 때문에 독립에 대한 준비를 못해서 독립 후 극심한 혼란을 겪었지요. 그런 암울한 시대에도 독립의 희망이 있는데, 지금은 우리가 경제력도 있고, 민주화도 됐고, 교육도 많이 받아 통일의 기초가 있으므로 통일의 가능성이 있습니다. 중국이 커지고 미일동맹이 강화되는 등 판세가 어려워지는 건 사실입니다. 가능성이 10나 있을까요? 그러나 일제시대 때 독립 가능성보다는 높나요? 낮나요? 높아요. 10 가능성은 높은 거에요. 1 가능성만 있어도 도전해 볼만 하지요. 중생이 부처되는 게 1의 가능성이 있나요? 없나요? 중생이 부처가 되겠다고 원을 세웠는데, 통일이 불가능하면 여러분들이 부처되는 건 아예 불가능해요. 우리는 지금 중생이 부처된다는 꿈을 가지고 모였는데 통일이 불가능하다고 하는 그런 말을 하면 안됩니다. 통일은 어렵지만 가능은 합니다. 연습을 많이 해야 합니다. 옛날엔 총 들고 싸워서 투쟁해야 했지만, 지금은 총 들고 안 싸워도 되고 투표만 잘해도 됩니다. 선거에서 통일을 지향하는 정부를 선택하면 통일에 도움이 될 수 있습니다, 한국 정부가 통일정책을 확실하게 가지고 추진해야 합니다. 미국과는 종속적 한미동맹이 아니라 자주적 한미동맹을 굳건히 맺어야 합니다. 종속적 동맹하에서는 우리의 이익이 미국의 이익에 종속되기 때문에, 우리의 이익인 통일을 확실하게 담보하기가 어렵습니다. nbsp nbsp 미국이 나쁜 나라여서가 아니라, 모든 나라는 다 자기나라 이익을 추구할 권리가 있습니다. 일본, 중국, 미국, 북한은 각자의 국가 이익에 따라 목표가 분명히 있습니다. 우리나라도 정신을 차리고 통일을 목표로 국가정책이 추진되어야 합니다. 이 정도 우리의 발전에 만족하고 쇠락의 길을 가도 좋다고 한다면 모르겠지만, 여기까지 발전된 이 좋은 기반을 가지고 조금 더 업그레이드를 생각한다면 통일을 해야 합니다. 지금까지 이뤄놓은 성과에 손실을 안 끼치려면 한반도에 반드시 평화를 유지해야 합니다. 남북간에 소소한 것으로 싸우면 안됩니다. 남북간에 갈등을 일으키면 다른 나라에 어부지리로 이익을 주게 됩니다. 평화를 이루고 통일을 하면 남북한 서로에게 도움이 됩니다. nbsp 통일한국은 동아시아의 갈등을 화합시키는 역할을 해서, 동아시아 평화와 협력을 가져 와서 동아시아 시대를 열 수 있습니다. 즉 문명의 중심이 동아시아로 넘어오게 되며, 동아시아의 중심이 한국이 되면, 발해 멸망 이후 천년만에 꿈이 이루어집니다. 고조선이 멸망한 이후 2천년 이상 중국으로부터 문명이 흘러왔는데, 잘 살펴보면 지금 우리 문화가 중국으로 흘러가고 있습니다. 이 현상이 몇십년 있으면 멈출 거에요. 하지만 한반도가 통일되면 한류를 비롯한 우리의 인권, 민주적 제도 등의 문명을 지속적으로 중국 쪽으로 흘려보낼 수 있어요. 물량은 중국이 크지만 문명의 꽃인 기술과 문화를 창조하고 생산할 능력이 한국에 있습니다. 삼천년의 꿈이 이루어지는 겁니다. 그런 가능성이 열려 있는데, 한국 사람으로 태어났으면, 젊은이라면 이런 가능성을 향해서 나갈 수 있지 않을까요? 중생이 부처되겠다는 가능성을 열고 수행하는 사람이 그 정도에요? 중생이 부처되겠다는 가능성 보다, 정토세상을 건설하겠다는 가능성보다는 통일한국 건설이 훨씬 가능성이 더 높습니다. 해볼만 하고 투자할 만한 가치가 있습니다. nbsp nbsp 첫 단계는 통일을 추구하는 한국정부가 먼저 들어서야 합니다. 통일을 지향하는 주체세력과 국민운동이 형성되어야 합니다. 우리는 현실 속에서 최선이 아니면 차선이라도 선택해야 합니다. 차선이 없으면 최악을 막기 위해 차악이라도 선택해야 합니다. 그렇게 해서 풀어 가면 됩니다. 뭐 그리 어렵다고 생각하세요? 50년 전에 우리가 다른 나라에서 얻어먹고 살 때, 이렇게 성장 할 것을 누가 상상이나 했나요. 그 암울한 독재시대에 민주화가 될 거라고 누가 상상이나 했나요? 계란으로 바위치기라는 생각들을 했었죠. 이런 성공의 경험을 가진 우리들이 패배의 이야기를 해야 되겠어요? 통일운동한다고 감옥을 가나요? 죽기를 하나요? 원이 없고 목표가 없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인생의 목표가 분명하면 소소한 일은 중요한 게 아닙니다. 국가적인 목표에 이익을 두면서 개인의 이익을 추구할 수는 있지만, 정치의 목표는 공공의 이익입니다. 이 나라의 주권이 국민한테 있는데 주인이 비실비실해서 지역주의에 빠지고 자기 권리를 제대로 행사 못하면 나라가 어렵습니다. 대한민국의 주인도 못되는 사람들이 부처가 되겠다는 어림도 없는 소리를 하고 있어요. 자세가 확 달라져야 합니다. 우리가 양보를 하는 것은 더 큰 꿈을 이루기 위해서 동아시아의 큰 이익을 위한 것입니다. 우리가 꿈이 없기 때문에 그런 소심한 생각을 하는 것입니다.” nbsp 중생이 부처될 수 있는 1의 가능성에도 부처가 되겠다고 우리가 원을 세우듯이, 10의 가능성이 있는 통일은 원을 세우면 어떤 조건에서도 가능하다는 스님의 말씀을 다시 되새겨 봅니다. 그리고 통일을 위해 어떤 역할이든지 해보겠다는 원을 세워 봅니다. 어제 낫에 찔려 아픈 다리로 세 시간을 꿈쩍 않고 법상을 지키는 스님의 법문앞에서 경전반 학생들의 표정은 웃다가 울다가 감동의 시간이었습니다. nbsp nbsp 점심공양을 드시고 원고점검등의 업무를 보시다가 법사님들이 수련이 끝나는 시간에 맞춰 산책을 가려고 했으나 새벽부터 내린비가 계속 내려서 법사님들에게 공양을 사드리면서 여러 가지 이야기들을 나누었습니다. nbsp 법사님들과의 시간을 마친 후 스님께서는 내일 조찬회의가 있으셔서 서울로 향하셨습니다. 9시 30분경 서울에 도착하셔서 원고 점검등의 업무를 보시면서 하루를 마무리 하셨습니다.

2015.05.04. 22,841 읽음 댓글 17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