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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2.1 가가후만_필리핀JTS 사업장 방문 5일째
▲ JTS가 가가후만에 세운 학교nbspnbspnbsp안녕하세요. 필리핀JTS 민다나오 사업장을 방문한지 5일째 되는 날입니다. 스님께서는 오늘 마놀로폴티치주 길랑길랑면의 가가후만 마을을 방문하셨습니다.nbspnbsp가가후만 마을은 필리핀JTS가 민다나오에 구호활동을 시작하면서 많은 감동을 준 곳입니다. 해발 1200미터의 높은 산봉우리 위에 있는 이 마을에 가기 위해서는 깊게 우거진 정글을 3시간 동안 땀범벅이가 되어 올라가야 다다를 수 있는 인적이 드문 마을입니다. 예전에는 NPA 지역이 되어 정부와 잦은 충돌로 싸움이 벌어지기도 한 곳입니다. 이렇게 아무도 관심을 가져주지 않았던 이곳 부족 사람들에게 조상 대대로 내려오는 간절한 소망은 부족을 상징하는 큰 건물과 아이들이 학교를 다니는 것이었다고 합니다. 그런데 지난 2003년 JTS는 이들의 소망을 이루기 위해 마을 사람들과 힘을 합해 학교를 지었습니다. 가가후만 사람들은 건축자재를 머리에 이고 등에 지고 산비탈을 수없이 오르고 내리며 어렵게 학교를 완공시켰습니다.nbspnbsp새벽4시에 도량석 소리에 일어나 108배와 명상을 한 뒤 최말순, 한금화, 김명옥님이 정성껏 준비해주신 떡국으로 아침 식사를 한 후 스님 일행은 5시50분에 JTS 센터를 출발했습니다. 마놀로폴티치 무니시팔리티 홀에서 함께 동행할 지역개발 담당자 Glenn 씨를 차에 태우고 가가후만 마을에 비교적 가까운 길랑길랑면으로 향했습니다.nbspnbsp오전 9시 무렵 길랑길랑면에 도착하여 산행을 도와줄 이곳 현지인 청년 2명을 다시 차에 태우고 끼하나이 마을에 도착했습니다. 여기서부터는 더 이상 차량이 가지 못해서 걸어서 이동했습니다.nbspnbsp끼하나이 마을에는 주민들의 요청으로 올해 JTS가 학교를 짓기로 한 마을입니다. 스님께서는 학교를 지을 부지를 답사하면서 흙을 어떻게 파서 교실을 어떤 방향으로 지을지 이원주 필리핀JTS 대표님과 의논하셨습니다.nbspnbsp▲ 끼하나이 마을에 새로 지을 학교 부지 답사nbspnbspnbsp그리고 마을 리더들과 간단히 인사를 한후 다함께 기념사진을 찍었습니다. 이곳에 학교가 들어서면 정말 아름다운 공간이 될 것 같다는 상상을 잠시 해보았습니다.nbspnbsp▲ 끼하나이 학교 부지에서 마을 주민들과 함께nbspnbsp이제 여기서부터 3시간 동안 정글을 지나 산을 넘고 계곡을 넘는 등 고강도의 극기 훈련이 기대되는 가운데, 스님을 선두로 산행이 시작되었습니다. 시작부터 저 멀리 반대편 산을 보니 이원주 대표님이 “저기 저 산 꼭대기에 있는 것이 가가후만 마을이예요” 라며 오늘 우리가 갈 목적지를 알려주십니다.nbspnbsp▲ 오늘 스님 일행이 걸어가야 할 산꼭대기 위 가가후만 마을을 가르키는 이원주 대표님nbsp저곳까지 과연 오늘 안에 다녀올 수 있을지 그냥 까마득해 보이기만 한 채 앞사람의 뒷꿈치를 보며 걷고 또 걸었습니다. 아니나 다를까 시작부터 무지개가 짠 하고 생기면서 스님 일행을 반갑게 맞이해 줍니다.nbspnbsp▲ 가가후만 마을로 가는 길, 스님 일행을 반겨주는 무지개.nbsp형형색깔의 무지개를 발 아래로 보며 산 아래로 내려오니 드디어 본격적인 정글이 시작되었습니다. 밟는 곳마다 질퍽질퍽한 습기가 가득하고 몇백년은 되어 봄직한 큰 나무들도 보였습니다.nbspnbsp어느 정도 언덕을 올라가니 콘솔라시온 마을이 나왔습니다. 필리핀JTS 활동가 김희자님은 이곳 마을 언덕에도 학교를 하나 지어줄 계획이라고 하시면서 학교 건축 부지를 알려주었습니다. 이곳에 학교가 들어서면 정말 아름다울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nbspnbsp▲ 콘솔라시온 학교 건축 부지nbsp한참을 가니 계곡이 나타나고 물 흐르는 소리가 귀를 깨끗이 씻어 줍니다. 계곡을 건너기 위해 신발을 벗어야 하나 망설이고 있는데 스님께서 “다섯 번이나 계곡을 건너야 하니 신발을 신은 채로 그냥 건너라” 고 하시면서 먼저 물 속으로 당당히 들어가셨습니다.nbspnbsp▲ 다섯번 건너야 할 계곡 중 첫번째 계곡을 건너시고 계신 스님nbsp물살이 강해서 조금만 발을 헛딛어도 1미터씩 뒤로 밀렸습니다. 돌을 잘못 딛어서 넘어지기라도 하면 어깨에 멘 카메라가 순식간에 못 쓰게 되는 위험천만한 상황이라 가까스로 계곡을 건넜습니다. 한참을 가니 또 계곡이 나타나 물살을 가로질러 넘고, 또 한참을 가니 다시 계곡이 나타나 잠시도 긴장을 늦출 수가 없었습니다.nbspnbsp▲ 계곡을 건너기 위해 나뭇가지를 지고 나르시는 스님nbsp▲ 마지막 다섯번째 계곡을 건너며nbsp이렇게 다섯 번 계곡을 넘으니 이제 본격적으로 오르막 길이 시작되었습니다. 가가후만 마을로 올라가는 오르막 길은 완만한 경사가 없이 오직 정상까지 가파른 기울기를 끝까지 유지한다는 점입니다. 스님께서는 “꼴딱 고개가 나타났다” 고 하시면서 각오를 단단히 하고 오를 수 있도록 알려주셨습니다.nbspnbsp▲ 가파른 길을 1시간 넘게 계속 올라가야 하는 깔딱고개를 앞에 두고nbsp가파른 산길을 쉬지 않고 계속 올라가는데 숨이 차서 너무 힘든 나머지 ‘왜 이 마을 사람들은 이렇게 고생하면서 저 산꼭대기에 올라가서 살까?’ 하는 의문이 들어 일행을 안내해주는 이곳 가가후만 마을 청년에게 물어보았습니다. 청년은 망설임 없이 “가가후만 보다 더 아름다운 마을을 아직 발견하지 못했기 때문” 이라고 대답했습니다.nbspnbsp1천미터 고지까지 다 올라와서 이제 가가후만 마을이 보일랑 말랑 하는 시기가 되었는데, 스님께서 갑자기 “이제 늙었는지 현기증이 나네” 라고 하셨습니다. 조금 쉬었다가 다시 걷기를 반복하면서 마침내 3시간이 걸려 낮 12시 무렵 가가후만 마을에 도착했습니다.nbspnbsp▲ 가가후만 학교 난간에 서서 마을을 내려다보시는 스님nbspJTS가 세운 가가후만 학교 건물로 다가가 물에 젖은 양말과 신발을 벗고 바위에 올려 마르게 한 뒤 시원한 산 바람을 맞으며 잠시 휴식을 취했습니다. 사방으로 시원한 바람이 불고 앞에는 탁 트인 멋진 풍경을 보니 감탄사가 절로 나왔습니다. nbspnbspnbsp온 몸이 땀에 젖어 신발과 양말을 말리고 계시던 필리핀JTS 이원주 대표님은 “가가후만 마을은 스님께서도 특별히 애정을 갖고 계신 마을이며 필리핀JTS에게 큰 감동을 준 마을” 이라고 하시면서 지난 2007년 당시 학교 준공식이 열리던 날을 이야기해 주셨습니다.nbspnbsp▲ 가가후만 학교 앞에서 필리핀JTS 이원주 대표님, 법륜 스님, 한국JTS 현희련 국장님nbsp이 마을의 다투은 준공식 당시 학교를 짓게 해준 JTS에게 이렇게 감사 인사를 했다고 합니다. nbspnbsp“우리는 이 깊은 산 속에서 세상에 그 존재를 잃어버린 채 그렇게 살아왔습니다. 아무도 세상에 우리가 있는 것을 알지 못했고, 아무도 우리에게 관심을 가지지 않았습니다. 아이들은 책이 아닌 총을 가지고 놀았습니다. 그런데 JTS의 법륜 스님이 처음으로 마을을 방문하여 아이들을 위해 학교를 만들자는 이야기를 했습니다. 나의 할아버지도 학교를 다니지 못했고, 아버지도, 나도 학교를 다니지 못했습니다. 나의 아이들이 학교를 다니는 것은 나의, 아니 조상 대대로의 꿈이었습니다. 그런데 JTS가 그 꿈을 실현시켜 주었습니다.nbsp마을 주민들은 모두 이 꿈을 이루기 위해 아침부터 자재를 등에 싣고 산을 오르고, 계곡을 넘었습니다. 그리고 이 소중한 학교를 우리 아이들이 또 그의 아들들이 공부할 수 있도록 100년이 지나도 잘 보존될 수 있도록 튼튼하게 만들었습니다. 이 고마움은 세상의 그 어떤 고마움보다 큽니다. 세상에 있는 모든 것을 다 넣을 수 있는 큰 바구니가 있다 해도 오늘의 이 고마움을 다 채워 넣을 수 없을 것입니다.”nbsp이원주 대표님을 비롯해 준공식에 참여한 JTS 멤버들은 다투의 감사 인사를 듣고 눈물을 펑펑 흘렸던 기억을 모두 갖고 있었습니다.nbspnbsp그런데 가가후만 마을의 다투가 교통사고로 죽게 되고, 이 마을에 다시 NPA이 다시 활동하기 시작하면서 마을의 치안이 불안정해져서 안전 문제 때문에 JTS의 접근이 통제되었다고 합니다. 그래서 학교가 운영되지 못하다가 최근에 안전 문제가 해결되면서 지역 군청에서 자원봉사 선생님이 파견되어 44명의 아이들이 수업을 받고 데이케어센터를 통해서 30명이 돌봄을 받을 수 있게 되었다고 합니다.nbspnbsp이렇게 조금씩 활기를 찾는 가운데 오늘 스님께서 방문하게 되었는데, 스님의 방문을 계기로 가가후만 마을에 다시 한번 새로운 희망의 싹을 틔울 수 있기를 기원해 보았습니다.nbspnbsp학교를 배경으로 간단히 기념 사진을 찍은 후 조금 있으니 이 학교에서 자원봉사로 파견되어 있는 선생님 한 분과 마을 리더인 다뚜가 함께 학교로 찾아왔습니다. 스님께서는 선생님, 다뚜와 함께 학교 안 교실로 들어가 무엇이 더 필요한지 이것저것 꼼꼼히 물어보시면서 체크를 하셨습니다.nbspnbsp▲ 자원봉사 선생님, 다투와 함께 학교 운영에 대해 논의하는 모습nbsp“이 학교에 아이들 몇 명이 수업을 들어요?nbspnbsp“44명이 수업을 듣고 있습니다.”nbspnbsp“이곳을 졸업하고 중학교에 가는 아이들이 있어요?”nbsp“지금은 없고, 이전에는 있었습니다.”nbspnbsp“학년 구분 없이 한 선생님이 모두 가르치면 중학교에 갈 수 있는 자격이 없지 않아요?”nbspnbsp“이 학교는 아직 정부의 허가를 얻지 못한 상황입니다. 가르치는 아이들을 1,2,3학년 혼합했고 이곳 부족들이 사용하는 히가호논어를 주로 가르치고 있습니다. 이 책걸상은 근래에 저희가 만든 것입니다.”nbsp스님께서는 산을 오르시며 “교실 앞과 뒤의 난간에 드러 누우면 극락이 따로 없다”고 그러셨는데, 막상 올라와보니 오래되고 낡은 나무들이 부서져 있어서 밟으면 삐걱거리고 아이들이 다니기에 무척 위험해 보였습니다. 그래서 다투에게 난간을 수리할 수 있는지 물어보셨습니다.nbspnbsp▲ 아이들이 다니기에 무척 위험해 보인 부서진 난간의 모습.nbsp“난간이 많이 부서졌는데 저희가 자재를 제공해 드리면 수리를 할 수 있어요?”nbspnbsp“나무를 자르고 할 때 가솔린을 제공해 주시고, 그 동안에 음식도 제공해 주시면 좋겠습니다.”nbspnbsp그리고 다시 선생님에게 교실에서 더 고쳐야 할 것들을 물어보셨습니다.nbspnbsp“그 외에 교실에 더 고쳐야 할 것이 무엇이 있나요?”nbsp“창문이 부서졌고요. 천장에서 물이 샙니다.”nbspnbsp“책걸상은 여러분들이 더 만들 수 있죠? 가솔린과 식량만 주면 책걸상도 만들고 난간도 다 수리할 수 있겠어요? 벽도 새로 칠해야 겠네요.”nbspnbsp“네, 그렇게 하겠습니다.”nbspnbspnbsp“선생님께서는 아이들의 이름과 나이 명단을 정확하게 조사해서 만들어주세요. 그러면 거기에 맞게 노트와 학용품을 지원해 드릴게요. 그리고 여기 아줌마들도 글자를 배우고 싶은 사람이 있으면 다섯명이든 여섯명이든 모아서 잘 가르쳐 주세요.”nbsp“대나무를 연결해서 물을 끌어오고 있는데, 인구가 늘어나니까 물이 부족합니다.”nbsp“그러면 호수를 사다 줄테니까 물을 더 많이 끌어올 수 있게 해보세요.”nbspnbsp이렇게 아이들의 교육을 위해 필요한 것들과 주민들이 원하는 것들을 체크하신 후 스님께서는 아이들을 모두 교실 안으로 불러 모으셨습니다. 차례대로 앉아 있는 아이들에게 사탕을 한움큼씩 나눠주면서 학교 열심히 다니라고 하시면서 아이들을 격려해 주셨습니다. 사탕을 하나씩 입에 문 아이들은 싱글벙글 웃으면서 좋아했습니다.nbspnbsp▲ 아이들에게 사탕을 나눠주시는 스님nbsp시간을 더 지체하면 내려가는 도중에 곧 비가 쏟아질 것 같아 서둘러서 바위에 말려놓은 양말과 신발을 신고 산을 내려갈 채비를 했습니다. 마을 주민들과 아이들에게 손을 흔들며 인사를 하고 오후 1시 무렵 산을 내려가기 시작했습니다.nbspnbspnbsp한참을 내려와 첫 번째 계곡을 넘은 후 가방에 넣어 온 주먹밥과 가가후만 마을 주민들이 정성껏 준비해준 고구마로 점심 식사를 했습니다. 땀을 흠뻑 흘린 채 먹는 주먹밥과 고구마는 언제나 꿀맛입니다. 너무 더워서 몇몇 분들은 그냥 훌러덩 물 속에 잠수를 합니다. 더위가 가시고 ‘이곳이 극락이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nbspnbspnbsp▲ 가가후만 마을 사람들이 정성껏 싸준 고구마nbsp물 속에 신발을 다섯 차례나 첨벙첨벙 빠트려가며 계곡을 모두 건너니 신발에 물이 차서 발이 퉁퉁 불었습니다. 하지만 갈 길이 바쁘기에 퉁퉁 붓고 있는 발을 모른채 하고 3시간을 계속 걸어 오후 4시가 되어서야 겨우 차를 주차한 끼하나이 마을에 도착했습니다.nbspnbsp▲ 산을 다 내려와 훌쩍 계곡을 뛰어넘으시는 스님nbsp마을 인근에 다다르자 비가 막 쏟아지기 시작했습니다. 스님께서도 법복이 다 비에 젖어서 온몸이 흥건해지셨습니다. 젖은 몸을 그대로 차에 싣고 인원 파악을 한 후 마을을 빠져나왔습니다.nbspnbsp그런데 아니나 다를까 가가후만은 스님 일행을 쉽게 보내주지 않았습니다. 역시 가가후만이구나 하는 것을 느낄 수 있게 비로 진흙탕이 된 언덕길에 자동차의 바퀴가 빠져서 꼼짝도 하지가 않았습니다. 오르막길인데다가 커브길이여서 차를 빼기가 여간 쉽지 않았습니다. 힘이 더 센 JTS 4륜구동 차를 앞세워 진흙에 바퀴가 빠진 차를 줄로 연결하여 앞에서 당기고, 남자들은 모두 차에서 내려 “으샤 으샤” 하면서 뒤에서 밀고 하는 가운데 겨우 차를 진흙에서 빼낼 수 있었습니다. nbspnbsp▲ 진흙 구덩이에 빠진 차를 빼니기 위해 온 힘을 쏟고 있는 이재곤님과 이규초님nbsp▲ 앞에서 차를 당기고 있는 이원주 대표님과 스님 일행nbsp바퀴가 헛돌면서 진흙이 사방으로 튀어서 온 몸이 진흙 범벅이가 된 가운데 다시 차량에 탑승하여 산길을 간신히 빠져 나왔습니다. 진흙 더미에서 1시간 동안 실갱이를 한 가운데 출발이 늦어져서 해가 지고 컴컴해졌지만 아직 비포장길이 계속 되었습니다.nbspnbsp▲ 무사히 진흙 길을 빠져나온 차량nbsp스님 일행은 모두 저녁 8시가 되어서야 JTS 센터에 무사히 도착했습니다. 온 몸이 비에 젖은 가운데 벌벌 떨면서 센터에 도착한 일행은 따뜻한 물이 제대로 나오지 않아 찬물에 다시 샤워를 하고 겨우 새옷을 갈아 입었습니다.nbspnbsp저녁 9시에 식당에 모여 스님으로부터 내일 일정에 대해 간단히 공유를 받은 후 저녁식사를 하고 오늘 일정을 모두 마쳤습니다. 돌아보니 고생은 많이 했지만 가슴 속에 뿌듯한 추억이 가득 담긴 하루였던 것 같습니다. 오늘 가가후만을 방문한 인연으로 가가후만 마을 사람들이 다시 활기를 되찾고 아이들이 보다 더 즐겁게 공부할 수 있게 되길 기원해 봅니다.nbspnbsp내일은 새벽 6시에 센터를 출발하여 까미긴으로 갑니다. 까민긴에서 필리핀JTS 사업에 대해서 전체적으로 회의도 하고 수련도 함께할 예정입니다. 내일 또 소식 전해드리겠습니다.nbspnbsp
2015.1.31 까나안 & 토니 대주교님 미팅_필리핀JTS 사업장 방문 4일째
nbsp▲ 까나안 학교로 향하는 길nbsp안녕하세요. 오늘은 필리핀JTS 사업장을 방문한지 4일째 되는 날입니다. 스님께서는 오전에 JTS의 지원으로 세워진 까나안 학교 현장을 방문하고, 오후에는 장애인 학교 시설인 SPED를 방문한 후, 저녁에는 토니 대주교님과의 만남을 가지셨습니다. nbspnbspnbsp송코 마을의 PEACE HALL에서 하룻밤을 묵은 스님 일행은 아침에 일어나 타투 가족이 정성껏 차려준 아침 식사를 맛있게 먹고 PEACE HALL 앞에서 함께 기념사진을 찍었습니다.nbspnbspnbsp▲ 송코 마을 사람들과 작별 인사nbspnbsp스님께서는 타투에게 스님의 영문 번역책 ‘기도’를 선물하면서 타투의 이름인 ‘미끼다이’를 한글로 적어 선물했는데 타투는 무척 좋아했습니다.nbspnbspnbsp아침 6시45분에 송코 마을을 출발한 스님 일행은 비포장 도로와 포장된 도로를 번갈아 가며 3시간을 열심히 달려 9시 40분에 티가손 마을에 도착했습니다. 티가손 마을 입구에 차를 주차해 놓고 JTS가 세운 까나안 마을의 학교로 걸어 갔습니다.nbspnbspnbsp▲ 티가손 마을에서 까나안 마을로 들어가는 길nbsp햇빛이 쨍쨍 내리쬐는 가운데 가끔씩 선선한 바람이 불어오고 날씨는 아주 좋았습니다. 엊그제 알라원 마을을 방문하면서 워낙 고생을 많이 해서 그런지 까나안 마을로 향하는 길은 평평한 평지에 가끔 진흙이 나타날 뿐 아주 가벼운 걸음이었습니다. 70분 정도를 걸은 후 10시 50분이 되자 드디어 까나안 학교가 나타났습니다.nbspnbsp▲ 까나안 학교 도착nbsp까나안 학교에 도착하니 마을 리더와 학부모들은 예정된 것과는 달리 함께 모여있지 않았고, 예전에 마을 리더였던 써니 보이의 아내 앨리스씨만 스님 일행을 학교에서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사연인 즉, 스님 일행을 마중 나오기로 한 리지아씨가 스님 일행이 내일 학교를 방문하는 것으로 착각을 했다고 합니다. 그래서 마을 주민들을 미리 불러놓지 못해서 주민들의 의견을 수렴하는 시간은 갖지 못하고 앨리스씨로부터 학교 운영현황와 마을 주민들의 상황을 들었습니다.nbspnbsp▲ 앨리스와 함께 까나안 학교 운영 방안에 대해 논의 중nbsp앨리스씨는 자신의 집에 스님 일행을 초대해 식사 접대를 해주었고, 스님 일행은 앨리스씨의 집에서 학교 운영 전반에 대해 함께 의논하는 시간을 가질 수 있었습니다. 이 마을 리더였던 써니 보이는 MNLF라고 하는 모로민족해방전선 소속의 전사였는데 여기에 살고 있는 기독교 출신의 앨리스씨와 결혼하면서 이 마을의 리더가 되었다고 합니다. 그래서 스님과 만나 함께 호흡을 맞추며 열심히 이곳에 학교를 지었는데, 아내인 앨리스씨가 다른 도시로 가게 되면서 써니 보이도 이곳을 함께 떠나게 되었습니다. 써니 보이가 마을을 떠나면서 무슬림 자치주인 라나오 델수르주의 분바란 지역 사람들이 그동안 써니 보이 때문에 주장하지 못했던 땅의 소유를 주장하고 나오면서 분쟁이 일어나 사람들이 죽는 등 이 분쟁으로 인해 선생님들이 신변의 위험을 느끼고 학교에 오지 않게 되고, 딸라각 교육부도 선생님의 파견을 중단하게 되었다고 합니다. 그래서 2013년까지는 학교가 잘 운영되었는데 2014년부터 운영이 멈추게 되었답니다.nbspnbsp스님께서는 앨리스씨에게 몇가지 질문을 하며 대화를 나누셨습니다.nbspnbsp▲ 앨리스네 집에서 준비해주신 점심 식사nbsp“학생들이 7km 정도 떨어진 아랫 마을인 타가손에 있는 학교에는 얼마나 갑니까?”nbspnbsp“학생들은 타가손을 비롯해 바깥으로 나가 공부를 하고 있습니다. 지금은 정확히 파악하지 못하고 있고요. 얼마나 다른 학교에 가고 얼마나 학업을 중단하고 있는지 자세한 조사가 필요합니다.”nbspnbsp“지금 학생들이 다른 곳으로 가서 학교에 다니고 있다면 이 학교는 운영하지 않는 것이 나아요? 어쨌든 학교를 운영하도록 교육청과 의논하는 게 나아요? 앨리스의 의견은 어때요?”nbspnbsp“저는 학교가 운영이 되면 좋겠습니다. 저희 부부가 갖고 있던 리더십을 리지아씨에게 넘겨 주고 이사를 갔는데, 처음에는 잘 했는데 깔리가난이라는 지역의 경찰 한 사람이 리지아씨로부터 이 마을 사람들을 깔리가난으로 등록을 해서 선거하도록 조정을 해서 일부 사람들은 깔리가난으로 가고, 일부 사람들은 티가손으로 가서 지금 마을 주민들이 갈라져 있습니다. 그래서 깔리가난으로 따라가지 않고 이곳에 남은 주민들에게는 리지아씨가 전혀 리더십이 없습니다.”nbsp“지금 이 학교가 딸라각과 라나우 델수르주의 분바란 지역과 경계 지점에 있어요?”nbspnbsp“네. 땅은 딸라각에 소속되어 있지 않지만 실제 학교 운영은 딸라각의 교육부에서 운영을 했습니다. 땅은 원래 딸라각 사람들의 땅이 아니고 라나우 델수르주의 분바란 사람들의 땅이었는데 딸라각 사람들이 와서 개간을 해서 살고 있는데 지금에 와서 분바란 사람들이 땅을 달라고 요구하면서 분쟁이 생겼습니다. 사실은 국가 땅이여서 개간하는 사람들이 주인이였는데 지금 와서 다시 협박을 해서 마을 사람들을 떠나게 해 분바란 사람들이 차지하려고 하는 겁니다. 마을 총회를 열어서 새로운 리더를 뽑으라고 했지만 주민들은 아직 그렇게 하지 않고 있습니다.nbspnbsp분쟁이 한번 일어났고 또 일어날 것이라는 소문이 계속 나니까 선생님들이 더욱 더 안오려고 하는 상황이고요. 선생님들이 왔다가 안왔다가 불성실 했던 이유도 이런 분쟁에 대한 소문 때문이였습니다. 이 분쟁 문제가 해결이 되어야 교육부에서도 학교 운영을 허락하지 않을까 합니다. 이 문제를 누군가가 해결해 주어야 합니다.”nbspnbsp“네, 알겠습니다. 마을 사람들을 모아 놓고 의논을 해서 결론을 내면 거기에 맞춰서 JTS에서는 지원을 해주겠습니다. 만약 학교를 오픈하기를 희망하면 거기에 필요한 모든 지원을 해주겠습니다.”nbspnbsp앨리스씨와 대화가 길어져서 다음 일정이 촉박해진 스님 일행은 거의 뛰다 싶이 마을을 내려왔습니다.nbspnbspnbsp▲ 분쟁이 있는 지역이여서 스님 일행을 에스코트해 주는 군인nbsp▲ 중간에 길을 잃어버려 정신이 아찔했다는 한금화님과 김명옥님.nbspnbsp차를 타고 이동을 하면서 필리핀 JTS이원주 대표님에게 “분쟁이 있든 어떻든 아이들은 우선 공부를 해야 하잖아요. 어떻게 초등학교 1학년 아이들이 7km를 걸어서 학교를 다닐 수 있어요? 5,6학년은 티가손까지 걸어다니더라도 14학년 정도는 까나안 학교를 최대한 빨리 오픈하는 것이 좋겠습니다. 교사 수급은 JTS가 교육부와 접촉해서 최대한 빨리 파견되도록 하면 좋겠습니다. 우선 딸라각에서 시작해서 나중에 깔리가난이나 분바란으로 넘기든지 하더라도 그건 나중에 해야 할 일이고요.” 라고 하시면서 신속히 학교가 다시 시작될 수 있게 해줄 것을 당부하셨습니다.nbspnbsp오후1시30분에 티가손을 출발한 스님 일행은 오후3시30분에 딸라각에 도착했습니다. 딸라각에는 JTS가 지원해서 세운 장애인 교육 시설 SPED에 도착했습니다. 이 학교 선생님 2명이 도착해서 스님 일행을 반갑게 맞이해 주었고, 교실로 들어가서 학교 운영 현황에 대해 이야기 듣고 점검하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nbspnbspnbsp특히 기숙사 시설이 많이 열악해 보였습니다. 이 건물은 2004년에 JTS가 지은 건물인데 아직 10년 밖에 되지 않았지만 그동안 학교에서 아무런 보수가 없어서 곳곳에 낡거나 부서진 것이 많았습니다. 스님께서는 무엇이 당장 필요한지 선생님들에게 물어보셨습니다.nbspnbsp“눈이 안보이는 사람이라든지 장애별로 각각 몇 명이 학교에 다니고 있어요?”nbspnbsp“청각 장애인이 11명, 정신지체아 12명, 다운증후군 3명, 학습지진아 6명, 시각 장애인이 1명, 이렇게 총 33명이 학교에 다니고 있습니다.”nbspnbsp“눈이 안보이는 사람이 1명 밖에 없네요. 제가 처음에 이 학교를 지을 때는 눈 안보이는 사람들이 많았거든요. 이렇게 갑자기 줄은 이유가 무엇인가요? 옆에 기숙사를 지은 이유도 시각장애인들이 많다고 해서 지어준 것이거든요. 눈이 안보이면 학교를 다니기가 힘드니까요.”nbspnbsp“시각 장애는 다중 장애인데 이 다중 장애를 보살펴줄 사람이 없습니다. 3년 전까지는 기숙사에서 같이 생활해주는 선생님이 있었는데, 그 선생님이 그만둔 이후에는 다른 지원이 없어서 보살펴주기가 어려워졌습니다. 그리고, 지난 12월에 시각장애인 2명이 딸라각으로 오는 과정에서 교통사고로 죽는 사고도 있었습니다.”nbspnbsp“돌보지 못해서 입학이 더 없는 거예요? 아니면 장애를 가진 사람이 점점 줄고 있는 거예요?”nbspnbsp“이 학교에 지원하는 장애인 학생은 많은데 예산이 없어서 더 입학을 허용하지 못하는 것이고요. 가가얀데오르나 다른 도시에서도 여기로 보내고 싶어하는 수요가 있는데, 선생님들은 가정이 있어서 기숙사에서 아이들을 함께 돌봐주기가 어려우니 부모 입장에서는 여기로 보낼 수가 없고요.” nbspnbspnbsp“어떤 시설이 가장 필요해요?”nbspnbsp“미끄럼 방지 기능을 하는 깔개가 필요합니다. 아이들이 자주 넘어져서요. 그리고 기숙사 안 부엌에 물이 안빠져 나가서 수리가 필요합니다. 방충망도 다 찢어져서 모기가 들어오는데 새로 바꾸야 합니다. 그리고 교실 천장이 부서진 곳이 있어서 보완을 해야 합니다. 또 창문이 나무로 되어 있는데 철망을 쳐서 도둑이 못 들어오게 해주면 좋겠습니다.nbsp그리고 시각장애인들이 기숙사에 살게 하려면 돌봐주는 사람이 가장 필요하고요. 또 음식을 만들어주는 사람이 필요합니다. 교육부에서는 이런 지원이 없습니다.”nbsp“건물 짓는 것은 JTS에서 해주었지만 수리는 교육청이나 정부에서는 안해줍니까?”nbspnbsp“학교 수리에 대해서는 예산이 없고 교구들에 대해서만 예산이 책정되어 있습니다.”nbspnbsp“이 학교를 졸업한 이후에는 학생들이 어디로 갑니까?”nbspnbsp“고등학교에 진학 못한 초등학교 아이들은 부모님들이 더 이상 학교에 안보내고, 고등학교를 졸업한 시각 장애 아이들은 마사지를 배워서 자기 밥벌이를 하고, 청각 장애 아이들은 요리와 제빵을 배워서 먹고 살고 있습니다.”nbspnbsp“어려운 조건에서 아이들 돌보느라 수고가 많으셨습니다. 건물만 지어주면 교육청에서 나머지는 다 알아서 할 것이라고 했는데... 우선 건물부터 다시 수리합시다.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자세히 적어주시면 수리해 드릴게요.”nbspnbsp이렇게 선생님들과의 대화를 마치고 학교 건물과 기숙사 건물을 둘러보았습니다. 오늘이 토요일이라 기숙사는 문이 닫겨 있어서 안에 들어가보지는 못했지만, 창문에 방충망이 구멍난 것이 많고, 방치되어 있는 느낌이 들어 안타까운 마음이 들었습니다. 건물을 지어주는 것도 힘든 일이지만 잘 유지되도록 관리하는 일은 더욱더 많은 정성과 노력이 들어가는 일인 것 같습니다.nbsp▲ SPED 기숙사 창문nbspnbsp필리핀JTS 이원주 대표님은 “조만간 다시 이곳을 방문해서 최대한 빨리 수리 보완을 하겠다”고 선생님들께 약속을 하셨습니다.nbspnbsp스님께서는 선생님들에게 사인한 영문책을 선물하고 함께 기념사진을 찍고, 오후 4시30분경 다음 일정을 향해 출발했습니다. nbspnbsp▲ 장애인 교육시설 SPED 선생님들과 함께nbsp비포장 도로를 한참 달리고 나니 드디어 가가얀데오르가 가까워졌는지 말끔히 포장된 도로가 나타났습니다. 5시 50분에 토니 주교님이 머무시는 성당에 도착했습니다. 6시부터는 토니 주교님과의 저녁식사가 예정되어 있습니다. 토니 주교님은 스님께서 2002년 막사이사이상 평화와 국제이해 부문 수상을 받으실 때 스님을 영접해 주셨던 인연으로 스님께서 이곳 민다나오에서 구호활동을 할 수 있게 가교 역할을 해주신 분입니다.nbspnbsp성당에 도착하니 주교님이 직접 나오셔서 스님과 포옹을 하며 반갑게 환영을 해주셨습니다. 주교님의 안내에 따라 성당으로 들어가 저녁식사를 함께 했습니다. 수녀님들이 나오셔서 정성껏 음식을 차려주셔서 스님 일행은 아주 맛있게 식사를 할 수 있었습니다.nbspnbsp▲ 토니 대주교님과 함께nbsp그리고 반가운 손님이 더 찾아왔습니다. 필리핀JTS 사업을 처음 시작할 때 많은 도움을 주신 도동과 트렐 부부가 와서 스님께 인사를 했습니다. 도동과 트렐 부부는 함께 저녁식사를 하면서 필리핀 JTS 사업에 대해서 스님과 몇가지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nbspnbspnbsp먼저 주교님이 JTS 센터가 어떻게 운영이 되고 있는지 스님께 물어보셨습니다. 스님께서는 이번에 민다나오를 방문한 이유가 JTS 사업을 전체적으로 다시 점검하기 위함이라고 알려주시면서 주교님과 도동과 트렐 부부에게 다시한번 JTS 사업에 대한 관심과 지원을 부탁하셨습니다.nbspnbsp“JTS 센터는 운영이 잘 되고 있습니까?”nbspnbsp“문맹 퇴치를 위한 학교 짓기를 그동안 확대만 했는데 제대로 운영되고 있는지 이번에 열흘 정도 시간을 내어서 점검을 하고 있습니다. 준공식에 와주셨던 SPED 학교에도 가보았는데 운영이 많이 부실했어요. 교육청에서도 별로 관심을 안 두는 것 같았습니다. 시설이 10년 되었는데 많이 낡아서 수리도 해야 할 것 같아요. 또 기숙사 운영에 어려움도 있습니다. 알라원 같은 경우는 선생님이 왔다가 자꾸 가버려서 운영이 스톱되었어요. 정부 차원에서는 해결이 안될 것 같아요.nbspnbsp이제 JTS가 민다나오에 구호활동을 시작한지 10년이 넘었는데요. 지금까지는 주로 문맹 퇴치를 위해 학교 짓는 일을 많이 했는데, 다시 사업장을 돌아보면서는 그런 일들도 해나가야 하지만 선생님들 훈련이나 주민들과 마을 리더들의 훈련이나 학생들 교육 등 내실을 기하는데 더 집중해서 일해야 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앞으로는 센터를 더 효율적으로 사용하고자 합니다. 주교님께서 센터가 잘 활용될 수 있도록 많은 도움을 주십시오.nbspnbsp특히 트렐은 교수님이시니까 다시 많은 도움을 주시고요. 손자만 보고 있으면 안됩니다.” nbspnbsp스님의 설명을 듣고 트렐씨는 JTS와 비슷한 고민을 하고 있는 NGO를 소개해 주기도 했습니다.nbspnbsp▲ 도동과 트렐nbsp“‘시너리어’라고 하는 NGO가 있는데 그곳도 선생님의 퀄리티를 어떻게 올려서 아이들을 잘 가르칠 수 있는지 다양한 아이디어를 갖고 일을 하고 있어요. 12개 지역의 시장과 협력해서 일하고 있는데, 이 단체와 연계해서 JTS가 사업을 해도 좋을 것 같아요. 일하는 방식도 JTS와 많이 흡사합니다. 돈을 주는 것은 전혀 없고 주민들이 필요한 물건이나 자재를 지원해 줍니다. 지역사회에서 어떤 역할을 하도록 주민들을 유도하는 모습이 JTS와 비슷해서 같이 협력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nbspnbsp그리고 스님께서는 알라원 학교에 선생님을 어떻게 확보하면 좋을지 도동과 트렐 부부에게 조언을 구했습니다.nbspnbsp“알라원 같이 선생님들이 잘 가지 않으려는 지역에는 어떻게 선생님을 파견할 수 있을까요?”nbspnbsp“우선 안전 문제가 해결이 되어야 하고요. 선생님들이 위협을 느끼거든요. 알라원의 안전 문제가 해결되려면 시간이 필요하고 기다려야 할 것 같습니다.”nbsp알라원의 학교 문제를 명확히 해결할 수 있는 대답을 듣지는 못했는데, 이것은 JTS가 계속해서 더 고민해야 할 문제인 것 같습니다. 그리고, 트렐씨가 소개해준 NGO와 함께 협력해보는 것도 새로운 돌파구가 될 수 있겠다는 생각도 들었습니다.nbspnbsp스님께서는 마지막으로 토니 주교님에게 “이렇게 식사 초대해주셔서 감사합니다. 바쁘신데 시간까지 내어주시고, 음악회도 초청해주셔서 감사합니다.” 라고 말씀하시면서 주교님께 스님의 영문 번역책과 작은 선물을 함께 드렸습니다.nbspnbspnbspnbsp그리고 도동과 트렐 부부에게도 필리핀JTS 사업의 초기부터 많은 도움을 준 은혜에 감사한 마음을 담아 스님의 영문 번역책과 작은 선물을 드렸습니다.nbspnbspnbspnbsp그리고 성당에서 주교님과 함께 다같이 기념사진을 찍었습니다.nbspnbspnbspnbsp▲ 토니 대주교님과 함께nbsp이어서 주교님이 운전해주시는 차를 타고 성당 측에서 마련한 음악 콘서트에 함께 참석했습니다. 신학대학에 다니고 있는 학생들이 준비한 콘서트인데 많은 신자들이 참석하여 도네이션도 하고 아름다운 노래도 함께 듣는 멋진 콘서트였습니다. 스님께서는 콘서트에 끝까지 자리하셔서 콘서트가 마치고 나서 주교님에게 축하의 마음을 전하셨습니다. nbspnbsp▲ 토니 대주교님이 초청한 음악 콘서트nbspnbsp그리고 스님께서는 콘서트 중간에 잠시 시간을 내셔서 오늘 오후에 까나안 마을에서 만나지 못했던 써니 보이를 만나셨습니다. 써니 보이는 추위에 노출되면 피부병이 일어나서 햇?을 계속 쬐야 하고, 밤마다 잠을 못자고 있어서 우울증 약을 매일 먹어야 잘 수 있는 상태라고 합니다. 그래서 병원도 다니고 있는데, 스님께서는 써니 보이의 딱한 사정을 듣고 병원 치료비에 쓰라고 지원비를 주셨습니다. 그리고 써니 보이는 “까나안 학교가 운영되고 있지 않아서 걱정”이라면서 “그것 때문에 잠이 더 오질 않는다”고 해서 스님께서는 “걱정하지 마라. 스님이 다 해결할 테니까 신경쓰지 말고 푹 쉬어라” 고 말하시며 써니 보이의 어깨를 토닥여 주셨습니다.nbspnbsp▲ 까나안 학교를 함께 만든nbsp써니 보이와 앨리스nbsp써니 보이는 “정말 감사하다”고 말하며 스님께 고마운 마음을 전했습니다. 그리고 부인인 앨리스도 옆에서 통역을 하면서 갑자기 스님께 너무 고마운 마음이 든 나머지 눈물을 펑펑 흘리며 스님께 “고맙다”고 했습니다.nbspnbsp스님께서는 필리핀JTS가 구호활동을 시작하면서 어려운 시기에 도움을 주었던 그 인연을 잊지 않으시고 먼 이국 땅의 한 청년을 이렇게 알뜰히 챙기셨습니다. 이 모습을 보니 가슴이 뭉클해졌습니다. 사람과 사람이 만나서 함께 한다는 것은 이런 것이구나 하는 것을 몸으로 느끼는 순간이었습니다.nbspnbsp이렇게 가가얀데오르에서의 일정을 모두 마치고 스님께서는 밤10시 무렵 출발하여 실리폰에 있는 JTS 센터에 밤 11시30분에 도착해 오늘 일정을 모두 마쳤습니다. nbspnbsp내일은 마놀로폴티치 군의 길랑길랑 면을 지나서 콘솔라시온 마을의 새로운 사업장을 보시고, 가가후만 마을을 방문하여 학교운영 실태를 살펴 보신 후 다시 JTS 센터로 돌아올 예정입니다. 내일 또 소식 전하겠습니다. nbsp nbsp nbsp
2015.1.30 다물록 & 송코_필리핀JTS 사업장 방문 3일째
▲ 송코 마을의 타투nbsp안녕하세요. 필리핀JTS 사업장을 방문하는 3일째 날입니다. 오늘은 다물록 시를 방문해 시장님을 찾아 뵙고 그동안 JTS와 다물록시가 협력해서 완성한 프로젝트인 보건소와 고등학교 운영 현황을 점검하고, 술탄 주로 넘어가 반군의 MILF 대표자를 만나 민다나오 지역의 평화 문제에 대해 의논한 후, 저녁에는 송코의 PEACE HALL을 방문하여 이 지역 추장인 타투가 준비한 문화 행사에 함께하는 일정입니다. nbspnbsp새벽5시에 일어나 각자의 숙소에서 기도와 명상을 마친 JTS 일행은 6시에 일제히 마라막을 출발하여 다물록 시로 향했습니다. 아침 7시 무렵 다물록 시의 티옹코 시장님 집에 도착했는데, 티옹코 시장님은 스님께 뜨거운 포옹과 악수를 건내며 반갑게 환영해 주셨습니다.nbspnbsp▲ 다물록 시의 티옹코 시장님nbsp시장님 댁에서 정성껏 차려주신 아침식사를 감사히 먹으며 스님께서는 안부를 주고 받으셨습니다.nbspnbspnbsp아침 8시, 시장님과 함께 JTS와 다물록 시가 함께 협력해서 건축한 보건소를 방문했습니다. 시장님께서 현재 보건소의 운영 현황에 대해 간략해 설명을 해주셨습니다.nbspnbsp▲ JTS와 다물록 시가 함께 협력해서 지은 보건소nbsp간호사와 조산사가 3명 정도 근무하면서 가벼운 진료만 이뤄지고 있고, 작년 12월에 의사 선생님이 가정사 문제로 그만두고 현재는 새로운 의사 선생님을 찾고 있다고 합니다. 그러나 의사 선생님의 월급이 시장님 월급보다 훨씬 높지만 이곳은 시골이여서 의사 선생님을 구하기가 많이 어려운 실정이라고 해서 안타까운 마음이 들었습니다.nbspnbsp▲ 보건소 운영 현황에 대해 설명해 주고 있는 다물록 시장님nbsp스님께서는 “좋은 치과 기계를 지원했는데 사용이 되고 있지 않은 것 같다” 면서 “만약 한국에서 치과 의사가 봉사오면 이 기계들을 사용할 수 있는지?” 여쭈어 보셨습니다. 시장님은 “아무 문제가 없다” 며 “한국에서 의사들이 이곳에 와주면 정말 고맙겠다”고 대답을 하셨습니다. nbsp nbspnbsp다음은 JTS와 다물록 시가 함께 협력해서 건축한 고등학교를 방문했습니다. 교실은 5칸짜리 2동으로 모두 10칸인데 운영이 잘 되고 있어 교실마다 많은 학생들이 수업을 듣고 있었습니다.nbspnbsp▲ JTS와 다물록 시가 함께 협력해서 지은 고등학교nbsp교장 선생님의 설명에 따르면 7학년이 2개 교실이 운영되며 83명이고, 8학년이 76명, 9학년이 59명, 11학년이 53명, 총 271명이 수업을 듣고 있다고 합니다. 7,8,9학년은 학교가 새로 건립된 이후 입학한 학생들이고 새로 바뀐 6년제의 학제를 적용 받고, 11학년은 그 전에 있던 학생들이여서 예전 4년제의 학제를 적용 받아 올해 모두 졸업을 하게 된다고 합니다. 그리고 집이 멀어서 학교 근처에서 자취하는 학생들의 비율이 2025 정도 된다고 합니다. 대부분의 학생들이 집이 가난하기 때문에 대학에 합격하더라도 장학금을 주면 갈 수 있지만 그렇지 않으면 못가는 경우도 많다고 합니다.nbspnbsp▲ 고등학교 운영 현황에 대해 설명해주고 있는 교장선생님nbsp스님께서는 학교 운영에 대해 교장선생님에게 몇가지 질문을 하며 현황을 파악하고 큰 틀의 방향에 있어서 스님의 의견을 이야기해 주셨습니다.nbspnbsp“지금 학교 운영하실 때 어떤 어려운 점이 있어요?”nbspnbsp“새 학교여서 교육청으로부터 여러 가지 지원을 아직 못받아 어려움이 있습니다. 교사도 다른 학교에서 빌려서 오는 경우도 있습니다. 그래도 시장님이 도와주셔서 인근 지역의 아이들이 많이 몰려와서 학생 수는 많이 늘었습니다. 현재 271명의 학생이 다니고 있습니다.”nbsp“선생님은 현재 몇 명이예요?”nbspnbsp“정식 교사가 5명, 임시 교사가 2명, 교장선생님까지 총 8명이 있습니다.”nbsp“중고등학교는 과목이 많아서 선생님 숫자가 더 많아야 하지 않아요?”nbspnbsp“주요 5개 과목은 교사들이 다 커버하고 있고, 사회, 미술, 컴퓨터, 체육 같은 사이드 과목은 부족하지만 대체를 하고 있습니다.”nbspnbsp“내년이 되면 학생들이 더 늘어날텐데 선생님을 23명 더 확보해 놓았습니까?”nbspnbsp“학생 수와 예산에 따라서 부키논 교육청에서 몇 명을 더 보내줄 것인지를 결정해줄 것 같습니다.”nbsp“올해는 학생 수가 몇 명 더 늘 것 같아요? 현재는 7학년이 83명이라고 했는데 내년에는 더 많이 들어오지 않겠어요? 올해 졸업하는 학생은 없잖아요?”nbspnbsp“90명 정도 입학할 것 같습니다. 전학을 오는 학생까지 포함하면 100명이 넘어갈 것 같아요. 현재는 고등학교가 4년제인데 내년부터 6년제로 바뀝니다. 현재 11학년은 올해 졸업시키지만 9학년은 6년제로 연장됩니다.”nbspnbspnbsp“여학생이 더 많은 이유가 무엇이예요?”nbspnbsp“평균적으로 여자를 더 많이 출산합니다. 옛날에는 남자를 학교에 더 많이 보냈는데 요즘 들어서는 여자들도 나이가 되면 다 보냅니다.”nbsp“대학 가는 공부 말고 직업 교육 같은 것은 수요가 없어요?”nbsp“학생들 케이스마다 다 다른데, 대학에 장학금을 받고 가는 쪽으로 유도하고 있습니다.”nbspnbsp“6년제가 되면 7,8,9학년은 기본과목으로 공부하고, 10,11,12학년은 대학 갈 사람은 인문계 공부하지만 직업 학교를 선택할 사람은 기술과목을 선택할 수 있는 시스템을 갖출 필요가 있지 않나요? 즉 이 학교를 인문계 학교로 키울 생각인지, 인문계와 실업계로 나누어 키울 생각인지, 그렇지 아니면 장기적으로 중학교는 일반적으로 운영하고 고등학교는 실업계로 운영하는 것이 더 이 지역 실정에 맞지 않나요?”nbsp“4년제 학교일 때는 4년 동안 기본 과정을 배우고 이후에 직업학교를 선택해 가도록 하는 시스템이였는데, 6년제로 바뀌게 되면 졸업 후에 다시 직업학교 2년을 스스로 선택할 수 있도록 해야 할 것 같습니다. 학교에서 컴퓨터 같은 사무 업무를 미리 가르쳐주면 회사에서 따로 교육을 할 필요가 없어지기 때문에 회사에서도 6년제에서 그렇게 교육시켜 주는 것을 더 선호합니다.”nbsp“6년을 다녀서 대학 갈 사람은 가고, 그렇지 않은 경우 다시 직업 학교를 가서 취직을 하는 것은 교육 기간이 너무 긴 것 같아요. 초등학교 6년, 중학교 3년 합해서 9년만 학습을 하고, 대학갈 사람은 인문계 고등학교를 3년 하고 대학 4년을 배우면 되는데 이 경우 16년을 공부해야 하잖아요. 그런데 9년만 공부하고 나머지 3년은 처음부터 전문 기술을 가르치는 직업 고등학교를 다니게 하면 더 좋지 않아요? 우리나라도 공고와 상고 출신들이 국가 발전에 중요한 역할을 했거든요.”nbsp“현재 중학교 3학년까지 정규 코스로 배우고, 중학교 4학년부터는 다른 코스도 신청할 수 있는데 신청 수가 일정 규모 이상이여야 코스를 열어줄 수 있습니다. 제빵, 용접 등 다섯가지 코스가 있고, 그 중에 하나가 자동차 정비하는 코스인데 이 코스를 오픈할 수 있을지 지금 검토하고 있습니다.”nbsp많은 이야기가 오고 갔지만 오늘 일정이 바빠서 더 자세한 논의는 이후에 다시 하자고 한 후 교장선생님과의 미팅을 마치고 학교를 빠져나왔습니다.nbspnbsp▲ 교장선생님과 함께nbsp학교를 나와서 차를 타고 이동하면서 스님께서는 필리핀JTS 이원주 대표님에게 “70명 졸업하면 10명만 인문계 대학에 갈텐데, 이런 시골 마을은 학생들을 인문계 대학에 모두 보내려고 하지 말고 기술훈련 학교 형식으로 전환을 해서 모두가 기술 하나씩은 가질 수 있게 전문기술을 배우게 하면 좋겠다”고 제안해 주셨습니다. 그리고 학생들에게 장학금을 지급할지 여부는 나중에 더 면밀하게 검토해 볼 것을 말씀하셨습니다.nbspnbsp차를 타고 한참을 달리다가 12시가 되어 도로가에 있는 식당 안에 들어가 간단히 점심 식사를 함께 했는데 1인당 한국 돈으로 1,200원 정도 밖에 하지 않아서 이곳 물가가 정말 낮다는 것을 실감할 수 있었습니다. nbspnbsp▲ 도로가 식당에서 점심식사nbsp차창 밖으로는 코코넛 나무, 바나나 나무, 망고 나무, 포멜로 나무 등 야자수가 끝없이 펼쳐지며 풍성함을 더했습니다. 차량으로 3시간을 달린 끝에 노스 코타바토 인근에서 반군의 MILF Vice President 측으로부터 약속 장소에 대한 변경을 통보 받았습니다. nbspnbsp약속 장소는 몇 차례 변경이 되었는데, 아마도 반군 지도자이다 보니 보안 문제 때문에 그런 것 같았습니다. 오후1시20분이 되어서야 MILF Vice President와의 최종 약속 장소인 마긴다나오 농장 안에 도착할 수 있었습니다.nbspnbsp▲ MILF Vice President nbsp스님 일행이 이곳에 오기 며칠 전에 민다나오에는 정부군과 반군 사이에 큰 분쟁이 있었다고 합니다. 정부군이 이곳 무슬림 반군 지역에 사전 통보 없이 들어오는 바람에 반군 쪽에서 정부군 46명을 총으로 싸죽이는 사건이 일어나서 많은 국민들이 지금 분노하고 있다고 합니다.nbspnbsp▲ 미팅이 진행되고 있는 건물에 삼엄한 경계가 이뤄지고 있는 모습nbsp그래서 스님께서는 반군쪽 지도자인 MILF Vice President에게 몇 가지 질문을 주고 받으시면서 민다나오 지역의 평화를 위해 당부의 말씀을 전하셨습니다.nbspnbsp“정부와 평화협정 문제는 진척이 조금 있어요? 지금 쟁점이 무엇입니까?”nbspnbsp“아직은 지켜봐야 합니다. 우리가 원하는 것은 땅을 소유하게 해달라는 것이고, 독립을 하겠다는 것이 아니라 자치구로 인정해 달라는 것인데, 이것을 안해주니까 싸우게 되었습니다. 6개 자치주와 코토바토 시티를 비롯한 몇 개의 시티가 저희가 커버하고자 하는 지역입니다.”nbspnbspnbsp“이번에 일어난 사건이 협상에 많이 장애가 됩니까? 이번 사건에 두가지 의문이 있는데, 첫째, 왜 정부군이 이 지역에 들어오면서 통보를 안하고 들어왔습니까?” nbspnbsp“협상은 스톱하지 않지만 문제는 될 것 같습니다. 정부 쪽에서 우리를 불신임을 해서 그렇게 한 것 같습니다.”nbspnbsp“둘째, 경찰들이 총에 맞아 죽었는데도 불구하고 다시 총을 싸서 신체가 많이 파괴되었다고 해서 많은 사람들이 분노하고 있는데 그게 사실이예요? 왜 그렇게 되었는지요?”nbspnbsp“시체가 많이 파손된 것은 일부러 그런 것이 아니고 요즘 총기가 강력하게 개발되어서 거기에 맞으면 얼굴을 알아볼 수가 없을 정도로 많이 파손되기 때문인 것 같습니다. 우리들은 그런 강력한 총을 갖고 있습니다.”nbspnbsp“그렇다면 정부가 사전에 연락을 안하고 들어온 것은 잘못되었지만, 잘잘못을 떠나서 일반 국민들이 보기에는 신체가 많이 파손됨으로 인한 분노가 있기 때문에 여기에 대해서는 사과를 해줘야 평화가 이뤄질 것 같습니다.”nbspnbsp“일반 시민들이 우리를 그렇게 보는 것을 우리도 원하지 않습니다. 그렇지만 우리가 보기에는 국회의원들이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실질적 조치를 취하지 않고 반대를 위한 정치 쇼처럼 하고 있기 때문에 우리도 그들을 잘 믿지 못하겠습니다.”nbsp“제가 이렇게 질문한 이유는 지금 어려운 국면에 있지만 어쨌든 잘 협상해서 평화체제를 가져오기를 간절히 바라기 때문입니다.”nbsp“민다나오에는 지하자원이 굉장히 많은데 우리가 자치구로 하려고 하는 지역이 모두 니켈, 석회석, 금, 기름, 가스가 많이 나옵니다. 이런 지하자원을 갖으려는 것이 분쟁의 한 원인이 되고 있습니다.”nbsp“그럼에도 불구하고 첫번째는 민다나오에 평화가 오도록 노력해 주시고, 두 번째는 가난한 이곳의 주민들을 도와주는 역할을 작지만 JTS도 하고 싶습니다. 어떤 일을 도와주길 원합니까?”nbspnbsp“환영합니다. 가난한 사람들을 도와주는 것도 좋고, 태양력 에너지를 사용하는 한국의 기술력이 좋은데 그런 기술력이 우리에게 많은 도움이 될 것 같습니다.”nbspnbsp“오늘 시간이 부족해서 많은 얘기를 나누지는 못하고요. 여기 시장님이 있으시니까 시장님과 얘기가 되면 우리가 할 수 있는 역할을 하겠습니다. 오늘 우리가 만난 기념으로 무엇이든지 제안해 주시면 저희가 하나 실행하겠습니다. 아이들 교육을 위한 학교이든, 주민들의 건강을 위한 보건소이든, 무엇이든지 하나 시범으로 시작해봅시다.”nbsp“현재로는 이 앞에 땅이 하나 있는데 여기에 학교를 지어주시면, 이곳에 사는 농장 사람들의 아이들이 공부를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nbsp nbspnbsp“저희들은 주민들의 전통문화를 존종합니다. 종교적인 목적이나 정치적인 목적은 절대 없습니다. 저도 지금 북한을 지원하고 있다고 한국 안에서도 반대자들이 많습니다. 그러나 정치적 갈등이 있다 하더라도 서로 교류협력을 계속 해야 합니다. 감사합니다” nbspnbspMILF Vice President는 스님의 제안에 환하게 웃으며 고마워했습니다. 이를 지켜보던 다물록 시장님도 함께 기뻐하면서 자신의 소망을 함께 이야기해 주었습니다.nbspnbsp“스님과 알토비숍이 막사이사이상을 받을 때 알토비숍이 스님을 민다나오의 평화를 위해 기여해 달라면서 초대를 했는데, 그 혜택을 제가 가장 많이 받았습니다. 사실은 제가 알토비숍의 학교 친구입니다. 그런데 이번에는 제가 다시 연결고리가 되어서 스님께서 무슬림 쪽에 어떤 긍정적인 역할을 할 수 있게 한다면, 처음에 알토비숍이 스님을 민다나오로 오게 한 동기가 더욱더 살아나게 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nbspnbspMILF Vice President도 다물록 시장님의 말씀에 전적으로 공감하면서 스님의 제안을 더욱 흔쾌하게 받아들일 뜻을 내비쳤습니다. 스님께서는 “꼭 평화협정이 빨리 성사되기를 바랍니다. 그러면 저희가 이곳에서 더 큰 활동을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라고 하시면서 MILF Vice President의 건강을 기원하는 의미로 한국에서 가져온 홍삼차를 선물로 드리고 함께 기념사진을 찍었습니다.nbspnbspnbsp미팅을 마치고 차를 타고 나오면서 스님께서는 필리핀JTS 이원주 대표님에게 “우선 시범적으로 이곳에 학교를 깔끔하게 하나 지어주면 좋겠다” 고 하셨습니다. 그리고 “평화협정이 맺어지려면 공식적으로 군대를 무장해제해야 할 겁니다. 무장은 경찰로 하면 되거든요. 경찰은 독립해서 지방 경찰을 둘 수 있으니까요. 외교와 국방만 딱 내어놓으면 협상이 그렇게 어렵지는 않을텐데 현재 쉽지는 않나봐요” 라고 하시면서 길게 보고 JTS의 사업이 이 지역의 평화를 위한 초석이 될 수 있게 하자고 말씀하셨습니다.nbspnbsp▲ 마긴다나오 농장의 팜 트리에서 따온 열매nbspnbsp2시30분에 미팅 장소를 빠져나온 스님 일행은 다시 차를 타고 5시간을 달려 저녁 7시30분에 송코에 도착했습니다. 송코는 JTS가 PEACE HALL이라는 2층 건물을 지어주어서 이곳 원주민들의 전통문화가 잘 보존되도록 도와준 마을입니다. 지금까지 JTS는 생존의 문제를 해결하는 활동을 주로 해왔는데, 송코 마을의 경우에는 사라져가는 전통문화를 보존하는 역할을 한 경우입니다.nbspnbsp▲ 송코 마을에 JTS가 세운 PEACE HALLnbsp송코의 PEACE HALL에 도착하니 마을 주민들이 전통악기를 연주하며 스님 일행을 반갑게 환영해 주었습니다. 특히 이 마을 촌장인 타투는 오랜만에 이곳에 오신 스님을 너무나 반가워하는 표정으로 스님과 악수를 나누었습니다.nbspnbsp▲ 송코 마을, 딸랑딩 부족의 타투nbsp타투는 스님의 질문에 이곳 원주민들에 대해 자세히 설명을 해주었습니다. 필리핀 전체에는 110개의 부족이 있고 이곳 부키논에는 7개의 부족이 있다고 합니다. 그리고 이 동네에는 마노보 부족과 딸랑딩 부족이 있는데 송코 주민들은 딸랑딩 부족이며, 무슬림과도 교류를 많이 하고 있다고 합니다. 스님께서는 타투의 설명을 다 듣고 나서, 타투와 마을 주민들에게 전통문화를 보존하는 것이 얼마나 소중한 일인지 강조하시면서 몇가지 대화를 나누셨습니다. nbspnbspnbsp“개미 한 마리 벌레 하나도 역사를 따지면 수억년을 거슬러 올라가거든요. 그런데 현대에 와서 생물종이 많이 없어지고 있잖아요. 그런 것처럼 인류 문화도 조그만 부족이 옷 입는 것 하나 말하는 것 하나도 인류 역사를 보면 적어도 몇천년간 내려온 것이거든요. 그런데 현대 사회에 오면서 전통문화가 급속도로 없어지고 있습니다. 이것은 인류 문명에 있어서 큰 손실이예요. 그래서 이런 전통문화를 보존하는 것도 JTS의 정신에 들어가기 때문에 저희가 이곳을 대표적으로 지원한 것입니다.nbsp현대사회가 하나의 문명으로 획일화 되어 가잖아요. 언어든 문자든 노래든 춤이든 옷이든 이 문명은 한번 잃어버리면 다시 복원하는 건 어렵습니다. 그런 면에서 원주민들의 문화를 보존하는 것은 우리 인류 문화 발전을 위해서도 굉장히 소중한 일입니다.” nbspnbsp“제가 죽기 전에 10명 정도의 후계자가 계승하도록 해놓고 죽어야지 그러지 않으면 딸랑딩 부족이 없어지게 됩니다. 그래서 후계자 양성에 혼신의 힘을 기울이고 있습니다.”nbspnbsp“전통문화를 보존한다고 하면서 외국 관광객에게 보여주기 위해서 형식적으로 하는 경우가 많은데, 이곳은 그런 곳이 아니여서 정말 소중한 곳입니다. 누군가에게 보여주기 위해서 하면 안되고 자기를 위해서 해야 합니다.”nbsp타투는 스님의 당부에 전적으로 동의하면서 자신이 스님 말씀처럼 전통문화를 살려나가기 위해 아이들 교육은 어떻게 하고 있는지 등 자신의 인생관을 자세히 들려주었습니다.nbspnbsp드디어 저녁 식사가 모두 준비가 되어 다함께 둘러앉아 마을 주민들이 정성껏 만들어준 음식을 먹었습니다. 옥수수와 쌀을 갈아서 만든 죽을 비롯하여 주로 옥수수로 만든 요리가 많았는데 정말 맛있었습니다.nbspnbspnbspnbsp▲ 식사 전 송코 마을의 타투가 기도를 해주고 있는 모습nbspnbspnbsp▲ 송코 마을 주민들이 정성껏 차려준 요리nbsp식사가 시작되자 무대 위에서는 아름다운 선율의 피리 소리와 북소리를 함께 들려주며 한껏 운치를 더했습니다. nbspnbspnbspnbspnbsp식사를 마치자 드디어 전통악기의 연주에 맞춰 전통옷을 입고 아이들이 하나둘씩 등장해 멋진 춤을 보여주었습니다. 남자 아이들 여러명이 개구리를 흉내내는 듯 추는 춤이 등장하고, 여자 아이들은 전통옷을 곱게 차려입고 매가 나는 듯한 자세로 아름다운 율동을 보여주었습니다.nbspnbspnbspnbspnbspnbsp아이들의 춤 솜씨를 시작으로 여학생들의 춤이 시작되고, 한껏 흥이 달아오를 무렵 드디어 어른들이 등장하여 아주 요염한 자태를 뽐내며 멋진 춤사위를 보여주었습니다.nbspnbspnbsp다시 또 아이들이 가세하고 분위기는 점점 더 달아올라 마지막에는 앉아서 구경만 하고 있던 JTS 일행들도 모두 일으켜 세워서 다함께 어깨를 들썩이며 하나가 되는 시간이 되었습니다. 스님께서도 마을 아이들이 함께 춤을 추자고 내미는 손을 잡고 일어서서 함께 덩실덩실 춤을 추며 하나가 되었습니다. nbspnbsp▲ 송코 마을 원주민들의 춤사위를 덩실덩실 따라하시는 스님nbsp지칠 줄 모르고 계속 이어지는 춤으로 인해 PEACE HALL 2층은 점점 더 열기가 고조되었습니다. 이마에 땀이 송글송글 맺힐 때 쯤이 되어서야 음악이 멈췄고, 음악이 멈추자 모두 큰 박수를 치면서 서로 격려해주고 즐거워했습니다. nbspnbspnbsp▲ 아름다운 춤사위를 보여준 여학생들nbspnbsp▲ 순박하고 천진난만한 표정의 송코 마을 아이들nbsp특이한 점은 아이들이 춤을 추러 나올 때 한국처럼 줄을 세우거나 야단치는 일이 전혀 없다는 것이였습니다. 춤을 추고 싶으면 자연스럽게 나와서 추고, 흥이 나지 않으면 앉아 있어도 되고, 누구 하나 아이들을 제제하고 통제하려 하는 모습이 전혀 없다는 점입니다. 자연스럽게 어울리는 모습이 참 편하게 느껴지는 시간이였습니다.nbspnbsp공연을 모두 마치고, 스님께서는 타투의 후계자인 아들에게 몇가지 당부의 말씀을 하셨습니다.nbspnbspnbspnbsp“지금 대학 다녀요?”nbspnbsp“졸업했어요.”nbsp“현대 교육을 받고나니 전통 교육과 갈등은 없어요?”nbspnbsp“갈등은 없습니다. 내가 어디서 왔는지 그 뿌리를 정확히 알면 거기에 서양의 교육을 추가시키는 개념이니까 별 문제가 없습니다.nbspnbsp아들의 대답을 듣고 타투가 덧붙여 설명했습니다.nbspnbsp“서양 교육은 밖을 보는 것이지만 우리의 전통교육은 자신을 돌아보게 하는 것입니다. 안으로 살펴야 지혜가 생겨서 더 큰 것을 볼 수 있는데 서양 교육은 하나만 갖고 이야기하기 때문에 작은 지식 밖에 안됩니다.”nbspnbsp스님께서는 다시 타투의 아들을 향해 정체성을 갖는 것의 중요성을 다시 한번 강조하셨습니다.nbspnbsp“전통문화를 잃어버린 채 자신의 정체성을 잃어버리면 세계의 수많은 사람 중에 하나로 흡수되어 버립니다. 반대로 자기 정체성을 찾는다고 다른 문화를 배타적으로 대하면 고립이 됩니다. 자기 정체성을 가지되 다른 문화에 대해서는 개방성이 있어야 합니다. 이 사이에서 내부적으로 갈등이 없어야 합니다. 그래야 전통문화를 더욱 발전시킬 수 있습니다. 돈도 마찬가지입니다. 생활하는데 필요하니까 돈을 벌지만, 돈이 있어도 거기에 물들면 안됩니다. 돈의 노예가 되면 안됩니다.” nbsp nbspnbsp돈의 노예가 되면 안된다고 거듭 강조하시는 스님의 말씀 속에 송코 원주민들에 대한 스님의 애정이 가득히 느껴졌습니다. 스님께서는 타투에게 “타투의 건강을 소망한다”고 하시면서 한국에서 가져온 홍삼액과 후원금을 선물했습니다.nbspnbspnbspnbspnbsp밤10시가 넘어서 문화행사를 모두 마치고 원주민들은 각자의 집으로 돌아가고, 스님 일행은 PEACE HALL 1층으로 내려와 잠자리에 들었습니다. nbspnbspnbspnbsp▲ 송코 마을 원주민이 그린 그림nbsp오늘은 참 많은 것을 보고 듣는 하루였습니다. 다물록 시장님, 고등학교 교장선생님, 말로만 듣던 MILF의 지도자, 송코의 촌장님까지 JTS는 이런 좋은 분들의 도움 덕택에 여기까지 왔구나 싶어 잔잔한 감동이 느껴졌습니다.nbspnbsp내일은 까나안과 딸라각을 방문하고 가가얀데오르에서 토니 대주교님을 만나 뵙고 다시 JTS센터로 돌아오는 일정입니다. 내일 또 소식 전해드리겠습니다.nbspnbsp
2015.1.29 알라원_필리핀JTS 사업장 방문 2일째
▲ 필리핀JTS가 알라원 마을에 세운 학교nbsp안녕하세요. 오늘은 필리핀JTS의 구호활동이 펼쳐지고 있는 사업장 중에 하나인 알라원 마을을 방문하는 날입니다. 알라원 마을은 해발 1800미터 고지의 산속 깊숙한 곳에 위치해 있어 차량으로 이동할 수 없고 JTS 센터에서 왕복 6시간 동안 산행을 해야 다녀올 수 있는 곳입니다. 어제 스님께서 “알라원 마을로 가는 길은 민다나오 전체 사업장 중에서 가장 힘든 코스 중에 하나”라고 얘기하셔서 살짝 긴장감을 가진 채 오늘 하루를 시작했습니다. nbspnbsp새벽4시 JTS 센터 3층 강당에 모인 일행은 108배와 명상을 하며 어제 하루를 돌이켜보고 자신의 마음을 살펴보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nbspnbspnbsp기도를 마치고 재빨리 나와 간단히 세수만 하고 새벽 5시20분에 알라원 마을을 향해 출발했습니다. 아직 해가 뜨지 않아 조심히 발을 딛으며 30분 정도 새벽길을 걷다보니 저 멀리 산 위로 붉은 기운이 꿈틀거리기 시작했습니다. nbspnbspnbsp큰 길을 조금 걷다가 본격적인 산길이 시작되었는데, 산길로 들어서니 울창한 나무와 식물들이 빼곡한 원시 자연 그대로의 정글을 만날 수 있었습니다. 새벽녘이여서 그런지 물기가 촉촉해 바위가 미끌미끌 했습니다. 오르막과 내리막이 반복되는 가운데 행여 미끄러질까봐 온 신경을 발에 집중하며 한발 한발 걷고 걸었습니다. 1시간 정도 걷고 나니 벌써 온몸이 땀에 젖고 얼굴에도 쉼없이 땀이 흘러 내렸습니다. 비가 자주 온다고 하길래 옷이 젖을 각오는 했지만 이미 온몸은 땀으로 흥건해져 버렸습니다. 스님께서는 진흙탕에 신발이 푹푹 빠지는 일행의 모습을 보시며 “이런 곳을 정글이라고 한다”고 하시며 웃으셨습니다. nbspnbspnbsp nbspnbsp땀을 비오듯이 흘리며 한참을 걷고 있는데, 스님께서 “오늘 같은 날은 다리가 얼마나 소중한 줄 알 수 있지?” 하시며 “다리야, 고맙다” 라고 하셨습니다. 그래서 뒤돌아보니 “여기 내 다리 좀 봐라” 하셨습니다. 신발과 행건에 진흙이 가득 묻어 있었지만, 스님의 얼굴은 어느 때보다 해맑게 웃고 계셨습니다. nbspnbsp▲ 진흙 범벅이가 된 스님의 신발과 행건nbsp한참을 걷고 나니 물소리가 가까이에서 들리고 금새 계곡이 나타났습니다.nbspnbspnbsp시원한 계곡에 손을 담궈 세수도 하고 땀도 식힌 후 가방에 넣어 온 주먹밥을 아침식사로 맛있게 먹었습니다. 땀을 흠뻑 흘리고 난 후 먹는 주먹밥이여서 그런지 꿀맛이었습니다. nbspnbsp▲ 나뭇잎을 접시로 삼아 주먹밥으로 아침 식사를 하고 계신 스님nbsp주먹밥을 먹은 후 다시 산행은 계속 되었고, 한참을 다시 걸어가니 커피 나무가 곳곳에 군락을 이루고 있는 모습이 보였습니다. 붉은 색으로 변해 바닥에 떨어져 있는 커피 열매도 보이고, 나뭇가지 마다 커피 열매가 주렁 주렁 매달려 있는 모습도 보았습니다. nbspnbsp▲ 길쭉한 나무들이 모두 커피 열매가 열리는 나무들nbspnbsp다시 한참을 걸어가니 작은 다리 하나가 나왔습니다. 중간에 발판으로 삼은 대나무가 조금 깨어진 것을 제외하고는 너무나 잘 지어져 사용되고 있었습니다. 이곳 다리 공사를 총괄한 필리핀JTS 자원활동가 이재곤님은 “이 다리를 짓기 위해 마을 주민들은 이렇게 거칠고 먼 길을 매일 같이 왕복하며 건축 자재들을 손수 다 들고 날랐다” 고 알려 주었습니다. 그러자 스님 일행 모두 감탄사를 연발했습니다. 빈손으로 걷기만 하는데도 이렇게 힘든데 건축 자재들을 다 손으로 들고 날라서 다리를 지었다니 모두들 놀라움을 금치 못했습니다.nbspnbsp▲ JTS에서 마을 주민들을 위해 놓아준 다리.nbspnbsp▲ 다리 공사를 맡았던 필리핀JTS 활동가 이재곤님.nbspnbsp다리를 지나니 이제 알라원 마을이 점점 가까워져 옴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산행을 시작한지 벌써 2시간30분이 넘어가고 있었고, 앞으로 30분만 더 가면 마을이 나온다는 얘기가 일행 사이에서 들려오기 시작했습니다. 드디어 산행을 시작한지 3시간째인 8시20분 경에 알라원 마을 전경이 한눈에 펼쳐졌습니다.nbspnbsp▲ 알라원 마을 학교 전경.nbsp알라원 마을에 도착한 스님께서는 제일 먼저 아이들과 악수를 나누고 함께 사진을 찍으셨습니다.nbspnbspnbsp그러자 마을 리더인 아넬이 이 모습을 보고 맨발로 뛰쳐 나와 스님을 끌어 안으며 너무가 기뻐했습니다.nbspnbsp▲ 알라원 마을의 리더인 ‘아넬’nbsp아이들은 오랜만에 이곳에 오신 스님을 기쁜 마음으로 반겼습니다. 순박한 웃음을 띠며 스님을 바라보는 모습이 너무나 천진난만하기만 했습니다.nbspnbspnbsp마을 주민들은 고구마와 따뜻한 커피를 준비해 와서 스님 일행을 정성껏 접대해 주었습니다. 스님께서는 고구마와 커피를 맛있게 드시고 교실 안으로 들어가셔서 마을 주민들과 학교 운영 방안에 대해 회의를 하셨습니다.nbspnbsp▲ 마을 주민들과 학교 운영에 대해 논의하시는 모습nbsp현재 알라원 마을에 세워진 학교는 운영이 되지 못하고 있습니다. 마을 주민들 모두 이 학교를 짓느라 정말 고생을 많이 했지만, 정작 아이들을 가르칠 수 있는 선생님들이 오랫동안 근무하지 못하고 다 가버려서 현재는 학교가 열리지 않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스님께서는 아이들의 등교 현황과 연령대 등을 두루 살펴보시고, 학교에 선생님을 데려올 수 있는 방법에 대해 주민들과 같이 이야기를 나누셨습니다.nbspnbsp“제가 온지가 3년이나 4년 정도가 되었지요? 지금 학교 운영이 안된다면서요? 지금 아이들은 어떻게 하고 있어요? 저 아래 실리폰에 내려보내서 공부 시키는 아이가 몇 명 정도 돼요?”nbspnbsp“14명 정도 됩니다.”nbspnbsp“그럼 여섯 살부터 열두살까지는 학교를 다녀야 하는데 학교를 못 다니는 아이들이 동네에 몇 명 정도 돼요?”nbspnbsp“30명 정도 있습니다.”nbspnbsp“학교를 운영하면 다닐 수 있는 아이가 30명 정도 되네요. 마을 젊은이들 중에서 아이들을 가르칠 수 있는 사람이 없어요?”nbspnbsp“고등학교 졸업한 친구가 딱 한명 있는데 실리폰에 살고 있습니다.”nbspnbsp“실리폰에서 학교를 다니고 있는 아이들은 어떻게 다니고 있어요?”nbspnbsp“실리폰에 있는 친척집에 머무면서 주말에만 이곳 알라원으로 왔다 갔다 하고 있습니다.”nbspnbsp“실리폰에 있는 학교를 다니는 14명 중에 혹시 1학년부터 6학년까지 각 학년별로 몇 명이 있어요?” nbspnbsp“2학년에 4명, 3학년에 6명, 4학년에 4명 총 14명입니다.”nbspnbspnbsp“지금 1학년은 없고 2,3,4학년만 있는 것은 알라원에 학교가 운영될 때는 여기서 다니다가 학교가 문을 닫으니 실리폰으로 내려보낸 것 같네요. 1학년은 학교가 문을 닫으니 아예 없는 것이고요. 5,6학년이 없는 이유는 그 때는 알라원에서도 학교가 없을 때였기 때문이고요. 학교가 없을 때는 아이들을 아예 공부시킬 생각을 안했는데, 학교가 있다가 스톱이 되니까 아이들이 계속 학교를 가고 싶어해서 부모가 실리폰으로 아이들을 보냈다는 얘기거든요.”nbsp“지금 제 아이는 실리폰에서 학교를 다니고 있지만 너무 멀어서 힘들어요. 이곳에 학교가 다시 운영되면 이곳에 아이를 보내고 싶어요.”nbspnbsp“그럼 실리폰에 있는 학교에도 못 보내고 여기 학교도 못가고 집에만 있는 아이들은 누구인지 손을 한번 들어보세요.”nbspnbsp“30명입니다.”nbspnbspnbsp“자, 그럼 30명의 이름을 부를테니 몇 살인지 알려주세요. 라에다? 전에는 학교에 다녔는데 지금은 못 가고 있어요? 어머니는 누구예요? 바리겔리또? 몇 살? 여기 학교에 다닌 적은 있었어요? 부모는 누구예요?”nbspnbsp이렇게 스님께서는 30명의 아이들 한명 한명의 이름을 호명하며 일일이 다 확인하고 나이도 체크하고 부모가 누구인지 점검을 하셨습니다. 스님의 몇가지 질문으로 인해 순식간에 마을 아이들의 상황이 한눈에 파악이 되었습니다.nbspnbsp▲ 아이들의 이름과 나이, 부모를 꼼꼼히 체크하시는 스님nbsp이곳 알라원 마을에 선생님들이 안오는 이유는 첫째, 이곳까지 오는 게 너무 힘들고, 둘째 여기서 살면 젊은 선생님들은 많이 외로워한다고 합니다. 게다가 이곳 학교는 정부 학교로 등록이 안되어 있어서 정부에서 파견을 받을 수가 없는 어려운 점도 있는 상황입니다. 정부의 정책이 이곳 주민들이 여기에 못살도록 이주시키는 것이 목표이기 때문이라고 합니다.nbspnbsp스님께서는 다시 JTS 스텝들을 모아놓고 마을 주민들의 의견을 들은 후 스님의 의견을 공유해 주셨습니다.nbspnbsp“제가 생각할 때는 1,2,3,4학년까지는 여기서 문맹 퇴치 정도만 가르치고, 5,6학년이 되어서 선생님이 혼자서 도저히 못가르치는 것은 실리폰으로 내려보내서 거기에 작은 방을 마련해주고 JTS에서 급식을 지원해주든가 하면서 거기서 배울 수 있도록 하는 방식을 고려하는 게 필요할 것 같아요.nbspnbsp그런데 이것도 아이들을 위해 정말 잘하는 것인지 아직 몰라요. 공부를 안 하면 이 동네에서 계속 살 수 있는데, 배웠다 하면 이 동네에서 못 살고 나갈 궁리를 하게 되거든요. 배우면 막노동은 안하게 되고 직장은 쉽게 못 구하고 소비 수준은 높아져서 핸드폰을 구하고 싶어하고, 집안에서 골칫거리가 되거든요. 문맹 퇴치라는 측면에서는 좋은데 딱 문맹만 퇴치하고 포기해버리면 되는데 중학교, 고등학교까지 가르쳐주다보면 아이들이 겉멋이 들어서 안좋게 되는 경우도 생기더라구요.”nbspnbsp아이들을 계속 공부시켜주는 것이 진정으로 이 아이들을 위해 잘하는 것인지 아직은 잘 모른다는 말씀에 공감이 갔습니다. 스님께서는 아이들의 문맹을 퇴치하면서 가난한 부모의 삶도 존중하는 어른으로 아이들을 키우기 위해 어떤 교육 환경을 마련해주면 좋을지 다각도로 고민하고 계셨습니다. 이어서 스님께서는 학교에 선생님을 데려오는 방안, 학교 외에 주민들의 경제적 자립을 위해 할 수 있는 일 등에 대해 계속 의견을 수렴해 나가셨습니다.nbspnbspnbsp“학교 선생님이 여기 파견되었는데 여러분들이 생각하기에는 왜 여기 오래 못 있고 그냥 가버리는 것 같아요?”nbspnbsp“여기까지 오는 것이 너무 힘듭니다. 길이 험합니다. 그리고 외로워합니다. 저녁이 되면 할 것이 없어서 외로워합니다. 그게 가장 힘든 점입니다.”nbsp“그래도 누군가는 이 아이들이 글을 쓰고 읽을 수 있게는 가르쳐야 하지 않겠어요? 정식 학교가 아니더라도 말이죠. 또 더하기 빼기 곱하기 나누기는 할 수 있어야 하지 않겠어요? 정부에 가서 요청했을 때 왜 선생님 파견을 안해준다고 해요?”nbspnbsp“그 이유를 모르겠어요.”nbspnbsp“그러면 여러분들은 이 학교가 운영되기를 원하세요?”nbspnbsp“ 간절히 원합니다.”nbspnbsp“여러분들이 이 학교를 지을 때 정말 고생을 해서 지었습니다. 그것은 이 아이들을 공부시키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지금 학교가 운영되지 않으니까 여러분들이 한 노력이 성과가 무용지물이 되고 있습니다. 그때 스님이 여러분께 ”교육청에 가서 우리는 선생님을 원한다고 간절히 요청해 보라“고 얘기한 적이 있습니다. 그런데 여러분들이 그렇게 노력했음에도 불구하고 선생님이 있다가 없다가 하기 때문에, 앞으로 요청해도 안 될 것 같아요?”nbspnbsp“같은 문제가 되풀이 될 것 같습니다.”nbspnbsp“그러면 제가 선생님이 파견될 수 있도록 노력하겠습니다. 대신 선생님이 여기 오면 여러분들이 좀 잘 보호해줘야 합니다. 어쨌든 선생님을 3개월 안에는 파견하도록 노력해 보겠습니다.nbspnbsp“감사합니다.” nbspnbspnbsp“그 외에 마을에 필요한 것은 무엇이 있어요?”nbspnbsp“다리가 대나무로 되어 있어서 위험합니다. 소가 다닐 수 있게 바닥만 좀 교체해 주세요. 가능하면 철판으로 깔았으면 좋겠습니다.”nbsp“철판으로 까는 것은 다리 무게 때문에 어렵습니다. 더 의논해서 무게가 가능한지 기술적으로 검토한 후에 진행하겠습니다. 철근이 안된다면 대나무가 아닌 통나무로 한다든지 방법을 연구해 보겠습니다.nbsp커피는 1년에 얼마가 생산이 돼요?”nbspnbsp“예전에 3000kg까지 생산한 적이 있는데 지금은 500kg 정도 생산합니다. 시장에서는 1kg에 80페소 정도 합니다.”nbsp“시장에서 kg당 얼마쯤 받아야 수입이 좀 돼요?”nbspnbsp“100페소 정도 받으면 여유가 좀 생길 것 같아요.”nbspnbsp“그런데 커피 나무가 너무 늙어보이던데 커피 나무를 새로 심으면 안돼요?”nbspnbsp“지금 하고 있습니다.”nbspnbsp“그러면 현금 수입이 될 수 있는 것이 커피 말고 다른 것은 무엇이 있어요?”nbspnbsp“카사바나 고구마가 있는데 무거워서 갖고 내려가기가 힘듭니다. 시장에 내다 팔기 가장 좋은 것은 들기 가벼운 커피와 아바카입니다. 바구니를 만드는 라탄도 수입에 도움이 됩니다. 그런데 라탄을 채취해 가는 것을 정부가 못하게 합니다.”nbsp“자, 그럼, 첫 번째는 학교 운영이고 두 번째는 다리 보완, 이렇게 해서 시작해 봅시다. 다른 것들은 이 두 가지를 먼저 해결한 후에 다시 얘기합시다.” nbspnbsp주민들은 스님의 대답을 듣고 너무나 기뻐하면서 박수를 쳤습니다. 주민들이 기뻐하는 모습을 보니 가슴이 짠해지고 울컥한 마음이 들었습니다.nbspnbspnbspnbsp이어서 스님께서는 마을 주민들과의 미팅을 모두 마치고 손수건 한 장씩을 주민들에게 선물하고, 아이들에게는 사탕을 선물했습니다.nbspnbsp▲ 주민들에게 손수건을 나눠주시는 스님nbsp주민들은 스님께서 나눠준 손수건을 받아들고 너무나 기쁜 나머지 손수건을 들고 그 자리에서 덩실덩실 춤을 추었습니다. 스님께서도 마을 주민들과 금새 동화가 되어 같이 어깨를 들썩이며 덩싱덩실 춤을 추셨습니다. nbspnbspnbspnbsp학교를 나와서 알라원 마을 주민들과 작별인사를 하면서 다함께 기념사진을 찍었습니다.nbspnbspnbsp원래 9시30분에 알라원에서 출발하려고 했으나 주민들과의 대화가 길어져서 10시20분이 되어 산에서 내려오기 시작했습니다. 시간이 많이 지체되어서 이후 일정에 차질이 생길 것을 염려한 스님께서는 거의 뛰어가다시피 하면서 산을 내려가셨습니다. 그래서 올라갈 때는 3시간이 걸렸는데, 내려올 때는 2시간 10분만에 내려올 수 있었습니다.nbspnbsp알라원 마을에서 JTS 센터로 내려가는 길에는 유독 대나무가 많이 보였습니다. 여러 대나무들이 옹기종기 모여서 하늘 높이 솟아올린 모습을 보니 절로 입이 벌어지기도 했습니다. nbspnbsp▲ 대나무 숲nbsp내려가는 길 역시 올라가는 길 못지 않게 만만치 않게 땀이 비오듯이 흘러 내렸습니다. 스님께서는 지난 6개월 동안 세계 100회 강연을 다니시며 운동을 거의 하지 못했는데, 이번에 왕복 6시간이라는 무리한 산행을 하셨는지 거의 다 내려와서 다리에 쥐가 나신다며 조금씩 천천히 걷기 시작하셨습니다.nbspnbspnbsp산을 내려오는 도중 해가 뜨면서 정글 속은 조금씩 열기로 채워지고 다시한번 땀이 비오듯이 쏟아졌습니다. 스님께서는 수건으로 땀을 닦으시며 “부자거나 지위가 높은 사람들은 이렇게 좋은 경험을 못해보겠지?” 라고 하시면서 원시 자연의 아름다움을 만끽하셨습니다.nbspnbspnbsp드디어 12시30분에 JTS센터에 도착하신 스님께서는 흙이 가득 묻은 신발과 행건, 양말을 벗으셨는데, 양말을 뚫고 거머리가 들어와서 스님의 피를 빨아먹은 것을 발견하기도 하셨습니다. 스님 뿐만 아니라 현희련 JTS 사무국장님은 거머리 6마리에게 물려서 다리에 피가 흥건했고, 카메라 촬영을 하는 이준길 법우도 거머리에 물려 피를 보았는데, 스님께서는 “한국에서 온 사람들만 거머리가 물은 것 같다” 며 “절에 사는 우리는 고기 맛도 안날텐데 왜 물었을까?” 하시며 농담을 하셨습니다. 그리고 황순태 한국국제학교 교장선생님은 3번이나 넘어져서 엉덩방아를 찍었다고 하고, 문경수련원에서 오신 안병주님도 바위 위에 크게 엉덩방아를 찍는 등 많은 분들이 산행을 하는 동안 온갖 고초를 겪었다며 일화를 들려주었습니다.nbspnbsp▲ 신발을 벗고 거머리를 떼어내고 계신 스님nbspnbsp그리고 1시간 뒤에 맨 마지막 일행이 JTS센터로 들어오자 스님께서는 “모두들 수고 많았다”고 격려해 주시면서, 식당에 모인 일행들과 다함께 점심 식사를 하셨습니다.nbspnbsp식사 후에는 원래 JTS 센터 기숙사 준공식이 예정되어 있었으나 스님께서 건물이 잘 지어졌는지 꼼꼼히 답사를 해 보시더니 “아직 건물이 완공되지 않은 부분이 많이 있다”고 하시면서 “완공을 한 다음에 준공식을 하자”고 하셔서 준공식은 다음으로 연기가 되었습니다.nbspnbsp▲ JTS 센터 기숙사nbspnbsp준공식이 연기가 되는 아쉬움을 뒤로 하고 오후 3시20분에 센터를 출발해 마라막으로 향했습니다. 스님께서는 센터를 출발하기 전 민다나오 활동가 3명에게 “정말 수고가 많다”고 격려하시면서 함께 기념 사진을 찍고 새책 lt지금여기 깨어있기gt를 각각 사인해서 선물하셨습니다.nbspnbsp▲ JTS센터 앞에서 민다나오 활동가 3명과 함께. 왼쪽부터 박영일, 이재곤, 김희자.nbspnbsp센터를 나와 마라막으로 향하는 길에 델몬트에서 운영하고 있는 거대한 규모의 파인애플 농장을 구경할 수 있었습니다. 파인애플 농장은 끝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광범위하게 펼쳐져 있었습니다. 그리고 길가에 옥수수 밭을 보니 어떤 곳은 추수를 끝냈는데, 어떤 곳은 새로 심어서 자라고 있는 등 일년 내내 농사를 지을 수 있을 정도의 풍요로운 땅임을 눈으로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nbspnbsp▲ 델몬트에서 운영하고 있는 거대한 규모의 파인애플 농장nbsp센터를 출발한 스님 일행은 오후 4시 무렵 마놀로폴티치를 경유하고, 오후 5시 20분 무렵 말라이발라이를 경유하여 저녁 7시에 오늘 하룻밤 머무를 숙소가 있는 마라막에 도착했습니다. 마라막으로 오는 길에 스님께서는 알라원 학교 운영과 마을 주민 지원 사업에 대해 이원주 대표님, 김희자님과 함께 한번 더 의견을 나누셨습니다. 스님께서는 “알라원 학교 운영을 위해 선생님을 구하는 방법은 첫째, 민다나오의 인근 대학에서 대학생들이 봉사활동 프로그램의 일환으로 교사를 하도록 하는 방법이 있는데 이것은 문맹퇴치만 할 수 있지 정식 학교교육으로 인정을 받지는 못한다는 단점이 있고, 둘째, 알라원 마을 주민 중에 고등학교를 나온 한 명의 친구가 교사 역할을 하는 방법이 있는데 이 경우는 아이들이 선생님을 얕보는 단점이 있다” 라고 하시면서 조금 더 고민을 해볼 것을 제안하셨습니다.nbspnbsp그리고 스님께서는 “마을 주민들의 소득 향상을 위해서는 환금성 작물로 커피 나무를 집집마다 심도록 지원해주어서 최소 100페소를 보장해 주고 시장가격이 100페소 이상이면 시장가격보다 10페소 정도 더 높게 JTS에서 구입해줘서 소득을 보장해주면 좋겠다”고 제안해 주셨습니다. 특히 “커피의 경우 가벼워서 알라원과 같은 산간마을에서 운반이 편리하고, 또 한국에서도 커피는 수요가 많아서 정토회에서 공정 무역이라는 형식으로 구매를 연결시켜 주면 소비가 될 수 있을 것” 이라고 하시면서 커피 나무를 지원해주는 방안을 적극 검토해 볼 것을 이야기해 주셨습니다. nbspnbsp▲ 말라이발라이nbspnbsp저녁7시30분부터 마라막 숙소에 있는 식당에서 필리핀JTS 이원주 대표님이 사주신 저녁식사를 맛있게 먹은 후 오늘 일정을 모두 마쳤습니다. 스님께서는 계속 오후 불식을 하고 계셔서 저녁식사는 하지 않으시고 간단히 물과 음료만 드셨습니다.nbspnbsp스님께서는 9시 무렵 숙소로 오셔서 한국에서 보내온 이메일을 체크하시고, 전화를 통화를 하시면서 여러가지 업무들을 처리하시다가 오늘 일과를 모두 마치셨습니다.nbspnbsp내일은 오전6시에 다물록으로 출발하여 JTS가 신축한 보건소와 고등학교의 운영실태를 둘러보신 후 정부 반군인nbsp무슬림해방전선의 본거지nbsp마긴다나오에서 vice president와 미팅 및 식사를 하시고, 저녁에는 송코에 도착해서 추장인 타투와 미팅을 가지실 예정입니다. 내일 또 생생한 소식을 전해드리겠습니다.nbspnbsp
2015.1.28 민다나오 센터 도착_필리핀JTS 사업장 방문 1일째
▲ 민다나오 라긴딩안 공항에 도착nbsp안녕하세요. 오늘부터 2월6일까지 9박10일 동안 스님께서는 필리핀JTS 사업장을 직접 방문하고 둘러보실 예정입니다. 오늘은 하루 종일 비행기를 타고 한국에서 민다나오의 JTS 센터까지 들어가는 일정입니다.nbspnbspJTS는 스님께서 1991년 인도성지순례를 하시다가 가난한 나라의 열악한 현실을 보시고 국제 기아 질병 문맹 퇴치를 서원하고 1993년에 설립하신 구호단체입니다. 그 중 필리핀JTS는 2002년 스님께서 아시아의 노벨평화상이라고 불리우는 막사이사이상 평화와 국제이해 부문을 수상한 인연으로 그 뜻에 보답하기 위해 필리핀 지역에서 가장 열악하며 분쟁이 빈번한 민다나오 지역에서 구호활동을 시작하면서 설립되었습니다.nbspnbsp필리핀 사업장에 구호물품으로 가져갈 짐을 이민 가방에 가득 담아 차량에 싣고, 새벽 5시에 서울 정토회관을 출발한 스님께서는 인천공항에서 출국 수속을 밟으신 후 아침 8시10분 비행기로 필리핀 마닐라로 출발했습니다. 4시간의 비행 끝에 시차 1시간을 포함하여 현지 시간으로 11시10분에 마닐라 공항에 도착했습니다. 짐을 찾아 나오는 과정이 조금 오래 걸려서 12시10분이 되어서야 공항을 간신히 나오니 필리핀JTS 이원주 대표님과 필리핀정토회 윤경숙 총무님이 반갑게 스님 일행을 맞이해 주셨습니다. nbspnbsp오후2시20분에 가가얀데오로로 향하는 비행기를 타야 해서 시간이 조금 빠뜻한 듯 했지만 필리핀정토회 한금화 대표님이 국수를 정성껏 준비해 주셔서 대표님 댁에 들러 식사를 하고 공항으로 출발했습니다. 그런데 공항 바로 앞에서 주차장을 방불케 할 정도로 차가 막혀 비행기를 놓치지 않을까 노심초사 했는데, 1시50분이 넘어서 간신히 공항에 들어갈 수 있었습니다.nbspnbsp▲ JTS 민다나오 사업장으로 가져갈 짐을 부치는 스님 일행nbsp마닐라 공항에는 필리핀 정토회의 이규초님, 김명옥님과 필리핀JTS에 책걸상을 지원해 주신 한국국제학교 황순태 교장선생님이 미리 도착해 스님 일행과 함께하기 위해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nbspnbspnbsp민다나오 구호물자로 가져가야 하는 짐이 이민가방 5개, 박스 5개나 되어서 수하물을 부치는데 시간이 조금 걸렸지만 2시 20분에 출발한 가가얀데오로행 비행기에는 무사히 탑승할 수 있었습니다. 스님께서는 늘 그러시듯이 비용을 절약하기 위해 저가항공을 타고 이동하시는데, 혹시나 해서 생수 한병을 달라고 스튜어디스에게 부탁했더니 50페소를 내어야 한다는 대답이 돌아왔습니다.nbspnbsp▲ 비행기 창문 밖으로 보이는 것이 민다나오 섬nbsp스님께서는 공항에서 대기하며 비행기를 타신 후에도 틈틈이 아이패드로 한국에서 보내온 메일을 점검하시거나 바랑에 챙겨오신 문서들을 읽으시며 업무를 보셨습니다.nbspnbsp▲ 비행기 안에서 업무를 보고 계신 스님nbsp1시간 30분의 비행 끝에 민다나오 섬의 라긴딩안 공항에는 조금 연착하여 오후4시10분에 도착했습니다.nbspnbsp▲ 민다나오 라긴딩안 공항에 도착한 스님 일행nbsp짐을 모두 찾아 나오며 이번 9박10일 동안 필리핀 사업장 방문을 함께 동행할 일행 모두가 함께 기념사진을 찍었습니다.nbspnbsp▲ 왼쪽부터 한국JTS 현희련 국장님, 황순태 한국국제학교 교장선생님, 문경정토수련원 산림팀장 안병주님, 필리핀정토회 김명옥님, 한금화님, 법륜 스님, 이규초님, 필리핀JTS 이원주 대표님, 최말순님. nbspnbsp리긴딩안 공항을 나오니 필리핀JTS 활동가 김희자님이 차량을 대절하고 나와 스님 일행을 반갑게 맞이해 주었습니다. 스님께서는 김희자님에게 “수고가 많다”며 악수를 건내고 격려도 해주셨습니다.nbspnbsp▲ 필리핀JTS 김희자님 nbspnbsp차량에 짐을 싣고 가는데 JTS가 운행하는 차량에는 뒤에 JTS 로고가 박힌 현수막을 붙이고 있어서 참 재미있어 보였습니다.nbspnbspnbsp짐을 모두 싣고 가가얀데오로를 경유하여 2시간30분을 달렸습니다. 해가 지고 컴컴한 산길을 덜컹거리며 한참을 지나 저녁 7시에 필리핀 JTS 민다나오 센터에 도착했습니다. 담장이 쳐져 있는 넓은 공터로 들어오니 전기 불빛이 들어오는 3층 건물이 모습을 드러내었습니다.nbspnbsp▲ 필리핀JTS 민다나오 센터nbsp일행 모두 배정된 숙소에 짐을 풀고 1층 식당에 모여 저녁식사를 함께한 후 필리핀JTS 김희자님으로부터 민다나오에서의 전체 일정에 대해 브리핑을 받았습니다. 산행을 힘들게 해야 하는 일정들이 있어서 체력이 약하신 분들은 산행을 할 때는 JTS센터에 쉬기로 하고, 이동 중에 도시락은 어떻게 준비해서 갈지 등 세부 사항들을 의논한 후 9시 무렵 오늘 일정을 마쳤습니다.nbspnbsp▲ 민다나오에서의 일정을 브리핑해 주고 있는 김희자님nbsp스님께서는 식당 한쪽 구석에 놓인 원두 커피를 보시곤 알라원 마을의 커피 생산 현황에 대해 김희자님에게 물어보셨습니다. 김희자님은 “알라원 마을에서는 연간 많게는 1000kg, 적게는 300kg 정도의 커피가 생산되는데, 최근 외국계 커피 회사가 농장을 구입하여 kg당 60페소에 원두를 구입해 가고 있다”고 알려주었습니다.nbspnbsp▲ 필리핀JTS에서 구매한 알라원 마을의 원두 커피nbsp스님께서는 “JTS에서 마을 주민들을 위해 외국 회사보다 조금 높게 커피를 구입해 주면 좋겠다”고 제안을 해주셨는데, 김희자님은 “얼마 전에 마을 주민들로부터 60페소 보다 많은 80페소에 원두를 구입했다” 고 대답해 스님께서도 고개를 끄덕이셨습니다. 그러면서 스님께서는 “집집마다 커피 나무를 재배하도록 하면 어떤지?” 의견을 물어보시기도 하셨는데, 마을 주민들의 경제적 자립을 위해 많은 고민을 하고 계심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특히 알라원에서 생산되는 원두는 이곳 사람들이 농약을 살 돈이 없어 무공해로 원두가 생산되고 있는데, 청정한 원료를 찾는 분들이나 공정 무역에 관심 있는 분들을 위해 한국에서도 수요가 많이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nbspnbsp오늘은 이렇게 하루 종일 한국에서 민다나오 JTS 센터까지 이동하면서 길에서 시간을 보냈습니다. 내일은 새벽 5시10분부터 센터에서 알라원 마을까지 왕복 6시간 동안 산행을 해야 하고, 또 먼 길을 달려온 터라 여독을 풀기 위해 모두들 일찍 휴식을 취했습니다. 스님께서도 업무를 더 보시다가 원고 교정을 보신 후 잠자리에 드셨습니다.nbspnbsp내일은 오전에 알라원 마을을 방문하고, 오후에는 JTS 농업기술훈련센터 기숙사 준공식을 한 후 마라막으로 이동할 예정입니다. 내일 또 생생한 소식 전해드리겠습니다. nbspnbsp
2015.1.27 성도재일 기념법회
nbsp안녕하세요. 오늘은 부처님께서 출가하신 후 전정각산에서 6년의 고행 끝에 마침내 깨달음을 얻으신 것을 기념하는 성도재일 법회가 있는 날입니다.nbspnbsp전국의 정토법당에서는 어젯밤 9시30분부터 오늘 새벽 6시까지 많은 분들이 철야 정진을 했습니다. 영상으로 스님의 법문을 들으며 밤새 정진을 하신 분들은 유미죽을 간단히 먹고 새벽 5시에 천일결사 정진을 마친 후 부처님처럼 동쪽 하늘에 뜬 샛별을 보며 각자의 집으로 귀가하였습니다.nbspnbsp그리고 스님께서 머무시고 계신 서울 정토회관에서는 오늘 아침 9시부터 10시까지 50여명의 정토행자들이 1시간 동안 300배 정진을 하는 등 성도 재일의 의미를 자신의 수행을 돌아보는 계기로 삼고자 하는 열기가 가득했습니다.nbspnbsp▲ 스님의 법문을 듣기에 앞서 300배 정진을 하고 있는 서울정토회 대중들nbspnbsp300배 정진의 후끈한 열기가 다 빠져나가기 전에 곧바로 이어서 10시부터 삼귀의 반야심경을 시작으로 성도재일 기념법회가 시작되었습니다. 오랜만에 스님의 직강을 듣기 위해 서울 정토회관에는 300여명의 대중들이 자리를 가득 메워 부처님 성도의 뜻을 가슴에 새겨보고자 귀를 쫑긋 세우고 스님의 법문을 경청했습니다.nbspnbsp스님께서는 부처님께서 출가하여 6년 간 고행 끝에 마침내 성도에 이르는 과정을 경전의 기록을 근거로 자세하고 구체적으로 들려 주신 뒤 부처님의 삶을 통해 우리들은 무엇을 배울 수 있는지 법문을 해주셨습니다.nbspnbsp“오늘은 부처님께서 6년 고행 후 마침내 깨달음을 얻고 부처님이 되셨다고 하는 성도재일입니다. 올해가 불기 2559년, 부처님이 성도 후 45년에 열반에 드셨으니 지금으로부터 2604년 전의 일입니다.nbspnbsp부처님은 룸비니에서 태어나 29살 되던 해에 인간의 참자유과 참행복 즉, 모든 속박에서 벗어난 해탈과 모든 괴로움이 사라진 경지인 열반을 얻기 위해 왕위를 버리고 출가하셨습니다. 부처님은 당시 인도 대륙에서 가장 큰 나라, 마가다국의 수도인 왕사성으로 가셔서 두 분의 스승을 만나 부지런히 정진하여 스승의 경지에까지 이르렀지만 그것은 완전한 해탈이 아님을 깨닫고 스승의 곁을 떠나 ‘가야’라고 하는 곳에 이르렀습니다. 당시 시체를 버리는 곳이었던 가야 근교의 시타림인 전정각산 아래에서 목숨을 걸고 정진을 하셨습니다. 더위와 추위, 벌레 등에 아랑곳 하지 않고 식음도 전폐하다시피 해서 갈비뼈가 드러나고 뱃가죽이 등허리에 달라붙어 얼핏 보면 죽은 사람 같았습니다. 천민 아이들이 숲속에서 부처님을 보고 ‘저 사람이 살았나, 죽었나’ 하며 막대기로 때리고 찌르고 할 정도였습니다. 죽음이 눈앞에 어른거릴 정도로 그렇게 무려 6년이나 고행을 했지만 깨달음을 얻지 못했습니다.nbspnbsp6년이 지난 뒤 가만히 자신의 지난 삶을 돌아보니 12살 때 새가 벌레를 잡아 먹는 것을 보고 ‘왜 하나가 살려면 하나가 죽어야 하는가’ 하며 염부수 아래에서 사색할 때 보다도 오히려 지금의 선정이 더 못한 수준인 것 같았습니다. 그래서 자신의 수행을 자세히 점검해보니 세속에 살 땐 욕망을 좇아서, 먹고 싶으면 먹고, 자고 싶으면 자고, 그러면 기분이 좋아지는 그것을 행복으로 삼았습니다. 우리들도 기분 좋은 걸 추구하며 그것을 행복이라고 생각하고 있지요. 그러나 욕망이 채워지면 그 만족감이 지속되지 않고 욕망이 계속 커집니다. ‘1억만 있음 좋겠다’ 생각했는데 1억이 들어오면 ‘아이고, 저 사람은 10억이 있네’ 하면서 그렇게 크던 1억이 이제 별것 아니게 돼요. 이렇게 또 욕구가 일어나고 번뇌가 따릅니다. 그래서 즐거움을 행복으로 삼을 때 그 행복은 지속이 안돼요. 하나를 만족시키면 또 다른 괴로움이 생겨요. 그래서 욕망을 따라가면 완전한 행복에 이를 수 없습니다. 만족했다 불만족 했다가 이렇게 고락이 반복됩니다. 그것을 윤회라고 해요. 고락이 되풀이 된다는 것이지요. 여기 앉아 있는 것도 고락이 되풀이 돼요. ‘스님 직강이란다’ 하면 기분이 좋다가 한 시간이 넘어가면 ‘아 길다’, 두 시간 넘어가면 ‘아, 스님 말씀이 너무 많다’, 즐거움은 온데 간데 없고 괴로움만 남습니다. nbspnbsp결혼하면 행복할 것 같았는데 결혼하고 나면 결혼 때문에 괴롭고, 자식이 안 생겨서 괴롭다가 자식이 생기면 좋지만 오히려 그것이 또 괴로움이 되고... 정토회 와서도 마찬가지에요. 괴로워서 왔는데 정토회 와서 봉사하다가 괴로워진 사람이 많아요. ‘정토회만 안 나가도, 총무만 안 맡아도 살만한데...’ 이런 마음이 반복되는 겁니다. nbspnbspnbsp고락은 동전의 양면처럼 분리될 수가 없어요. 고락의 뿌리는 욕망이에요. 뿌리인 욕망으로부터 충족과 불충족이 생기고 이렇게 되풀이 돼요. 끝이 안나는데 우리는 늘 이것만 충족되면 끝날 것이라고 생각해요. ‘내 집만 마련하면 무슨 걱정이 있나’ 해도 그게 끝이 안나요.nbsp모든 고락의 원인은 욕망입니다. 욕망을 따라가면 평생 욕망의 노예가 됩니다. 그래서 욕망의 씨를 말려 용납하지 않아야 진정한 자유가 온다고 생각하고 부처님은 6년을 욕망과 싸웠습니다. 어떠한 욕망도 용납 안하는 심한 고행을 했는데 이것 또한 완전한 해탈에 이르지 못했습니다. 결국 욕망을 따라가는 것도 욕망의 노예이지만 욕망을 억압하는 것도 욕망의 노예라는 것을 깨달으신 것입니다. 욕망을 따라가는 것도 욕망에 대한 대응이고 거부하는 것도 욕망에 대한 대응입니다. 누가 손을 잡아 끌어당기면 끌려가는 것도 대응이지만 안가겠다고 버티는 것도 대응입니다. 현상은 정반대이지만 뿌리를 보면 같은 것이에요. 바로 이것을 발견한 것이 붓다의 위대함입니다. 욕구가 나쁘다고 정반대의 길로 갔는데 그 뿌리가 같다는 것을 발견한 것이 대단한 것이에요. 그 고행마저도 욕망의 대응이라는 것이지요.nbspnbsp우리는 하고 싶은 마음이 일어나면 두 가지 길 밖에 없잖아요. 하든지 아니면 참든지 말이죠. 다리가 아프면 펴든지 아니면 이를 악물고 참든지 이 두 길 밖에 없는데 이게 양 극단이에요. 이쪽 아니면 저쪽 두 길에 치우칩니다. 그러나 부처님께서 발견한 제 3의 길은 ‘알아차리는 것’입니다. 욕망을 욕망이라고 알아차리는 것. 다리에 통증이 있구나 하고 알아차리는 것. 그리고 이 알아차림을 찰나 찰나로 지속하는 것을 ‘지켜보기’라고 합니다. ‘담배가 피우고 싶다’ 하면 ‘담배 피우고 싶은 욕구가 올라오는구나’ 하고 다만 알아차릴 뿐이지 참는 것이 아닙니다. 긴장할 필요가 전혀 없어요. 이것은 고행이 아닙니다. 안한다는 면에서는 고행과 같지만 참지 않는다는 측면에서는 고행이 아닙니다. 양극단에 치우치지 않는 것을 ‘중도’라고 말은 하지만 이것을 제대로 아는 사람은 별로 없어요. 이것이 붓다가 발견한 완전히 새로운 방법이에요.nbspnbspnbsp무언가를 안한다 하는 것만으로는 수행이 아니에요. 단지 그것을 알아차리는 거에요. 붓다는 잘못된 길에 대해 반성하고 잘못된 길을 정확하게 분석해서 새로운 길을 발견한 것이지, 처음부터 쾌락주의에서 바로 중도를 발견했을까요? 아니에요. 여러번 시행착오를 거쳐서 새로운 길을 발견한 것이에요. 그것도 양쪽을 끝가지 가봤으니 알았지 중간쯤 갔으면 몰랐을 거에요.nbsp그러니 시행착오는 낭비가 아니에요. 잘못된 것을 확인했기 때문에 다시는 그 길을 갈 필요가 없어요. 아닌 것을 확인 할수록 제대로 가는 길을 발견할 확률이 높아집니다. 그런데 여러분은 이것을 낭비라고 생각합니다. 무턱대고 가는 게 아니라 최선을 다해서 갔는데도 길이 아니라는 사실을 알았다면 나쁜 게 아니에요. 큰 깨달음입니다. 우리는 아닌 것을 아닌 줄 모르는 게 대부분입니다.nbsp그렇게 온갖 번뇌와 유혹을 뛰어넘어 깨달음을 얻으신 날이 음력으로 12월 8일입니다. 여러분은 성도의 의미를 정확하게 알아야 합니다. 마음 속에서 모든 번뇌가 사라져 버렸어요. 우리는 무의식 즉, 자신의 까르마로부터 늘 영향을 받고 있어요. 그 모든 것들로부터 자유로워진 경지, 이것이 해탈과 열반의 경지입니다. 무의식에 지배를 안 받는 것은 아무런 편견이 없다는 거에요. 우리는 자유를 나 하고 싶은대로 하는 것인 줄 아는데 그게 아니라 주어진 어떤 상황에서도 두려움과 번뇌, 속박이 없는 상태가 해탈입니다.nbspnbsp부처님께서 이 좋은 법을 혼자만 간직하지 않고 우리에게 이렇게 하면 된다고 자세히 알려줬기 때문에 우리는 그 길을 가기가 무척 쉬운 겁니다. 그런데 우리는 그것도 싫다는 거에요. 부처님처럼 밥도 안먹고 잠도 안자고 옷도 안입고 들판에 혼자 있고 갈비뼈가 나오도록 그렇게 수행할 것을 요구하지 않잖아요. 먹지 말라는 것이 아니라 뭘 먹든지 그저 조금만 먹어서 배만 채우면 된다 이런 정도로 생각하면 먹는 것으로부터 자유로워집니다. 한 끼 굶었다고 괴롭지 않습니다. 시체 쌌던 옷을 주워 입으라는 것도 아니고 그냥 옷을 입으면 되지 명품에 좀 껄떡거리지 말라는 얘기입니다. 모양 색상에 껄떡거리지 마라 이거에요. 나무 밑이나 동굴에서 자라는 것이 아니라 집 평수와 모양에 껄떡거리지 마라 이런 얘기입니다. 맨발로 다니라는 것도 아니니까 그냥 발에 가시만 안 박히면 됐지 명품 구두 찾고, 구두 장사도 아닌데 집에서는 종류별 색깔별로 쫙 놔두고 그러지 말라는 거에요. 대중교통이든 자가용이든 타고 다니면 되지 더 폼잡고 타기 위해 돈 많이 들이고 하지 마라는 것입니다. nbspnbspnbsp자기 인생도 제대로 못 살아서 건강도, 돈도, 아이도, 시험도, 승진도, 이런 것들을 다 부처님에게 해달라고 하잖아요. 그러면 부처님께서 다 해주려면 여러분들이 도대체 노력하는 일은 뭐가 있어요? 동물들도 자기가 먹을 것 알아서 먹고 사는데 왜 인간이 그것을 남한테 해달라고 합니까? nbspnbspnbsp부처님의 법을 천분의 일만 알아도 ‘아 부처님은 안 먹고도 살았는데 이 정도면 됐지. 분소의를 입었다는데 이 정도면 되었지’ 하게 됩니다. 부처가 되겠다는 사람이 왜 부처님한테 해달라고 합니까? 붓다의 지혜를 조금만 살피면 얼마든지 자유롭고 행복하게 살 수 있어요.nbsp부처님의 성도는 우리에게 새로운 길을 열어놓으신 거에요. 여러분들이 조금만 어리석은 생각에서 벗어나면 삶을 만끽하며 자유롭게 그리고 세상을 유익하게 하면서 살 수 있습니다. 절에 오래 다닌다고 법문 많이 듣는다고 되는 게 아닙니다. 정말 생각이 탁 바뀌어야 합니다. 머리 안 깍아도 출가자의 마음을 내야 돼요. 그러면 세상이 혼탁한 것을 해결할 수 있어요. 그렇지 않으면 자기 생각에 빠져서 욕망의 세계에 갇혀 지옥의 불덩이 위에 사는 것과 똑같아요.nbspnbsp그러니 탁 내려놓으면 우리는 지옥으로 가도 행복을 누릴 수 있습니다. 제가 연초에 인터뷰를 하면서 ‘지옥가면 할 일도 많고 좋다. 벌 받아서 가면 고통스럽지만 지옥 중생을 불쌍히 여겨서 가는 것은 괜찮다’ 말했는데, 종교를 부정하는 것 같다고 야단들이더군요. 그러니까 덕 볼려고 하지말고 ‘내 인생 정도는 내가 알아서 살고, 내 주위에 조금이라도 도움주는 사람이 되자’ 이런 관점을 가지면 성도의 은혜, 붓다의 깨달음의 은혜를 마음껏 누릴 수 있습니다.nbspnbsp그러니 오늘 짧은 시간이라도 정진을 하세요. 복 비는 정진을 하지 마시고요. ‘나도 오늘 생각을 바꿔 살아야겠다. 까르마에 끌려 다니는 삶을 그만 살아야겠다’ 다짐 하는 기도를 하세요. 그러면 여러분의 삶에 큰 변화가 올 거에요. 성도의 은혜를 만끽하시기 바랍니다.” nbspnbsp부처님의 삶을 이야기하실 때는 부처님의 삶을 닮고자 하는 스님의 간절한 원이 느껴졌고, 껄떡거리지 말라고 누누이 강조하실 때는 대중들에 대한 진심어린 애정이 가득 느껴졌습니다.nbspnbsp스님께서는 대중들의 큰 박수를 받으며 퇴장하셨습니다. 잠시 자리를 정비하고 남은 대중들은 관세음보살 염불 소리에 맞춰 정진을 하였습니다. 정진을 하며 스님 법문을 다시 떠올려 보기도 하고, 부처님의 삶과 나의 삶을 반추하며 습관에 끌려다니지 않는 삶을 다짐하는 108배 정진을 했습니다.nbspnbsp스님께서는 오후에는 평화재단으로 가겨서 미팅을 가지신 후, 다시 정토회관으로 돌아오셔서 업무를 보셨습니다. 오후 3시30분터는 인터넷 방송 사업 준비를 위한 회의에 참석하셨습니다. 스님께서는 인터넷 방송을 어떻게 준비할 것인지, 어떤 내용을 기획할 것인지, 행정처 기획홍보국국과 평화재단 미디어팀 책임자의 아이디어를 수렴하고 역할분담을 논의 하셨습니다.nbspnbsp▲ 인터넷 방송 관련 회의nbsp회의를 마치고 5시부터는 내일 필리핀 사업장 방문을 위한 출장 준비와 출장 전 처리할 업무들을 보시며 정토회관에 머무셨습니다.nbspnbsp내일 스님께서는 오전8시 비행기로 인천공항을 출발하여 필리핀 민다나오로 가십니다. 1월28일부터 2월5일까지 약 열흘 동안 필리핀 사업장 전체를 직접 방문해 보시면서 필리핀JTS 사업을 전체적으로 점검하실 예정입니다. 내일은 필리핀에서 소식을 전해드리겠습니다. nbspnbsp
2015.1.26 평화재단, JTS, 좋은벗들, 에코붓다 이사회
nbsp안녕하세요. 오늘은 평화재단, JTS, 좋은벗들, 에코붓다 이사회가 연이어 하루 종일 열리는 날입니다.nbspnbsp스님께서는 아침부터 원고 교정 업무 등을 보신 후, 오전 8시에 법사단과의 회의를 시작으로 하루 일과를 시작하셨습니다. 법사단은 새로운 법사님을 임병하는 법사 수계식과 2월에 있을 전국 대의원대회를 앞두고 스님께 논의 사항에 대해 질문을 했고, 스님께서는 다양한 의견을 제시해 주셨습니다.nbspnbsp그리고 12시부터는 에코붓다 이사진들과 점심 식사를 함께 하신 후 정기 이사회를 가지셨습니다. 에코붓다 이사회에서는 내부의 자원활동가들부터 환경실천을 더욱 철저하게 하는 문화를 어떻게 만들 것인가에 대해 집중적인 토론이 있기도 했습니다.nbspnbspnbsp▲ 에코붓다 정기 이사회nbsp이어서 2시부터는 좋은벗들 이사진들과 함께 정기 이사회를 가지셨습니다. 동국대학교 박순성 교수님과 통일연구원 김수암 박사님, 최연 이사님 등 이번에는 이사 7명 전원이 참석해주셔서 열띤 토론을 해주셨습니다. 먼저 스님께서는 좋은벗들의 작년 한해를 돌아보며 “좋은벗들은 남북관계 경색이 오래되면서 북한 조사연구사업과 북한인권사업이 주춤한 반면, 탈북민들의 정착지원과 일반 시민들의 통일 교육 사업이 매우 활발하게 이뤄졌다”고 이사님들께 개괄적인 설명을 해주셨습니다.nbspnbsp김수암 이사님은 “탈북민들의 남한 입국 수가 점차 줄어들고 있으니 정착지원사업과 평화통일을 위한 사업을 전략적으로 조정해나가야 할 시점이 된 것 같다”고 조언해주셨습니다. 또 “우리 사회 일부 NGO들이 국제사회와 협력해서 그간 북한인권운동을 열심히 해왔는데, 이제 더 이상 할 게 없는 한계에 다다른 것 같다”고 진단하고, “진짜 북한 인권 개선을 위해 무엇을 할 것인지 실질적인 개선 전략을 짜야할 때가 된 것 같다”는 말씀도 해주셨습니다. 좋은벗들의 적극적인 역할이 필요하다는 말씀이셨습니다.nbspnbsp▲ 좋은벗들 정기 이사회nbsp스님께서는 “지금처럼 남북관계가 경색국면일 때 남북관계를 해치지 않으면서 북한 인권을 개선할 수 있는 돌파구를 뚫어야 하는데, 쉬운 일은 아닌 것 같아요” 라고 하시면서 “관련 연구자와 활동가들이 올해는 보다 이 부분에 적극적으로 논의를 모아보자”고 제안하고, 이사님들도 적극 협조해달라고 당부하셨습니다.nbspnbsp박순성 이사님도 “북한의 지난 10년 동안의 변화를 단편적으로 연구한 논문들이 많이 있지만, 종합적으로, 그리고 대중들이 알기 쉽게 풀어쓴 책은 없다”면서 좋은벗들에서 관련 연구자들을 모아 책을 펴는 것도 해보면 좋겠다고 제안해주셨습니다. 스님과 이사님들의 활발한 토의에 이사회 시간은 훌쩍 1시간 30분을 넘겨서야 끝이 났습니다.nbsp4시부터는 JTS 이사진들과 함께 정기 이사회가 열렸습니다. 지난 이사회 회의록을 다시한번 확인하고, 2014년 사업내용과 2015년 사업계획 및 예산안에 대해 점검하고 승인한 후 JTS의 발전을 위한 다양한 의견을 수렴하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지난 한해는 남북 관계가 계속 단절되어 있었기 때문에 정부의 승인을 얻지 못해 북한구호사업 예산을 전혀 사용하지 못했다는 보고가 있었는데 안타까운 마음이 많이 들었습니다.nbspnbsp▲ 한국JTS 정기 이사회nbsp특히 스님께서는 JTS의 사업이 올해를 기점으로 큰 전환을 해야 할 것이라고 하시면서 2월과 3월에 해외 사업장을 직접 다 방문해서 점검해 볼 계획임을 알려주셨습니다.nbspnbsp“인도JTS 사업장이 작년에 설립 20주년이 되었는데, 처음 설립할 때의 목표였던 문맹 퇴치와 결핵 퇴치는 거의 이루어졌습니다. 이제 지금의 기반 위에 다음 단계를 추진해야 하지 않나 생각합니다. 그래서 제가 3월 한 달 동안 인도에 가 있으면서 다음 차원의 사업을 실무자들과 의논해서 잡을 계획입니다. nbspnbspnbsp필리핀JTS 사업은 지금까지 산간 마을과 무슬림 마을에 학교 40여개를 지어주었는데, 돌아보면 인프라는 깔아 주었는데 필리핀 사정 상 활용이 잘 안되는 것 같습니다. 내일 모레부터 열흘 정도 필리핀으로 가서 모든 사업장을 다 방문하고 실제로 어떻게 유지되고 있는지 점검하려고 해요. 앞으로 학교가 없는 마을에 학교를 짓는 사업은 계속하겠지만 이것이 주 사업이 되어서는 안되고, 실제로 교육이 잘 이루어질 수 있도록 학생과 교사, 마을 리더를 데려다 교육시키는 연수 프로그램을 강화해야 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nbspnbsp긴급구호는 필리핀에 태풍 피해가 제일 많이 나니 필리핀에 긴급구호 대책반을 하나 두고, 인도에도 하나 둘 수 있을 것 같아요. 한국에서는 신속히 대응하기가 쉽지 않으니 재난상황 발생시 현지에서 바로 활동가를 파견하고 물자도 현지에서 충당하며, 한국에서는 모금을 통해 재정을 지원하는 것으로 운영하는 것이 어떨까 생각합니다.”nbsp스님께서는 모레부터 필리핀 사업장을 방문하는 것을 시작으로 라오스, 인도 등의 사업장을 두루 둘러보실 예정인데 현장에서 더욱 구체적인 방법들이 많이 찾아질 수 있을 것 같다는 기대감이 들었습니다.nbspnbsp저녁 6시30분부터는 평화재단 이사진들과 함께 정기 이사회가 열렸습니다. 윤여준 전 환경부 장관님, 김홍신 작가님을 비롯하여 많은 분들이 바쁜 시간을 내셔서 참석해 주셨습니다. 이사님들은 최근 정부가 통일 대박이라고 하면서 통일을 강조하시면 구체적 실천은 별로 없어서 국민들이 통일에 대해 지루하게 받아들이는 경향이 많아지고 있음을 우려하면서 평화재단이 이것을 보완해줄 수 있는 다양한 활동들을 2015년에는 활발히 전개해 줄 것을 요청하면서 이를 위한 여러 아이디어들을 제시하기도 했습니다.nbspnbsp▲ 평화재단 정기 이사회nbsp특히 스님께서는 갈수록 분열과 갈등이 심화되는 한국사회에서 갈등을 없애지는 못하더라도 서로 만나서 대화라도 할 수 있는 공론의 장을 마련하는 것이 필요하다는 말씀에 공감을 하시고 이를 위해 현재 평화재단에서 구상하고 있는 몇가지 계획들을 공유해 주셨습니다.nbspnbsp이사진들은 모두 만장일치로 평화재단의 2015년 사업계획과 예산안을 승인했습니다. 그리고 이사회에 함께 참여하신 모든 분들과 기념사진을 찍고 정기 이사회를 모두 마쳤습니다. nbspnbspnbspnbsp스님께서는 밤 9시가 넘어서 모든 일정을 마치시고 평화재단에서 서울 정토회관으로 귀가하셨습니다. 밤늦게까지 업무를 보시다가 오늘 일정을 마치셨습니다.nbspnbsp내일은 오전 7시부터 조찬 모임이 있으시고, 오전 10시에는 성도재일 기념법회를 하신 후 오후부터는 각종 미팅들을 이어가실 예정입니다. 내일 또 소식 전해드리겠습니다.nbspnbsp
2015.1.25 제8차 천일결사 4차 백일기도 입재식
nbsp안녕하세요. 오늘은 이 땅에 맑은 마음·좋은 벗·깨끗한 땅을 실현하고자 큰 서원을 세우고 시작한 정토회의 만일결사 중 제 8차 천일결사 4차 백일기도 입재식이 열리는 날입니다.nbspnbsp스님께서는 어제 방콕에서 정토불교대학 수계식 및 졸업식을 마치고 아침 6시30분에 인천공항에 도착하여 하루종일 서울 정토회관에 머무시며 평화재단, JTS, 좋은벗들, 에코붓다 이사회 자료들을 검토하시면서 업무를 보셨습니다. 그리고 오후에는 잠시 시간을 내어 이비인후과에 가서 진료를 받으셨습니다. 지난 세계 100회 강연에 이어서 연일 계속된 각종 미팅과 인도 성지순례로 인해 목소리가 회복되지 않으시고 미열이 있으십니다. 모레부터는 다시 해외 일정이 있으셔서 검진을 받으셨습니다.nbspnbsp오늘은 제8차 천일결사 4차 백일기도 입재식에 참가하기 위해 새벽 6시에 서울 정토회관을 출발하여 오전 9시에 김천 실내체육관에 도착했습니다. 행정처장님으로부터 입재식 준비사항에 관한 보고를 간단히 받으신 후 10시부터 입재식에 함께 하셨습니다.nbspnbspnbsp제8차 천일결사도 어느새 4차를 맞이한 오늘, 뒤를 돌아보니 7300일 동안이나 부지런히 달려왔음을 새삼 느끼게 됩니다. 타종, 예불, 반야심경 봉독으로 마음을 청정히 한 후 이기혜 대표님의 인사말과 함께 입재식이 시작되었습니다.nbspnbsp▲ 김천 실내체육관을 가득 메운 4000여명의 정토행자들nbsp먼저 전국에서 모인 정토행자님들을 소개하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해외에서 귀국해 참여하신 분들을 비롯해 서울, 제주, 강원, 경기동부, 인천, 경기서부, 대전, 충청, 광주, 전라, 대구, 경북, 부산, 울산, 경남, 청년대학생, 교사, 길벗, 공동체에서 총 4000여명이 참석하여 각 지역이 소개될 때마다 김천 실내체육관은 뜨거운 열기와 환호로 가득찼습니다. 특히 해외에서 오신 분들과 바다 건너 제주정토회에서 오신 분들은 더 큰 박수로 환영을 받았습니다.nbspnbspnbsp먼저 입재식 오픈 공연으로 행자대학원 9기와 11기 분들이 ‘새들처럼’, ‘함께 걸어 좋은 길’을 아름다운 선율로 합창해 분위기를 차분하게 해주었습니다.nbsp▲ 행자대학원의 합창 공연nbsp이어서 지난 백일 간 정토회에서는 어떤 일들이 있었는지 영상을 통해 돌아보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돌아보니 스님께서는 세계 115회 강연으로 전세계에 희망의 씨앗을 뿌리셨고, 정토행자들은 전국에서 1,000회 이상의 기획법회를 열어서 대한민국에 희망의 씨앗을 뿌렸음을 영상을 통해 다시 느낄 수 있었습니다. 수행, 보시, 봉사로 알차게 백일을 채워 온 정토행자님들의 모습이 참으로 자랑스럽게 다가왔습니다.nbspnbsp무엇보다 지난 2014년은 정토회의 역사에 한 획을 그은 해였습니다. 국내에서는 30개의 법당이 새롭게 문을 열어서 전국의 법당 숫자가 100개가 되는 순간을 눈 앞에 두고 있으며, 해외에서는 115회 강연이 열려 작지만 소중한 전법의 씨앗이 심어졌습니다. 이를 기념하여 힘차게 달려온 지난 2014년을 자축하는 의미로 청년대학생정토회에서 축하 공연을 보여주었습니다.nbspnbsp▲ 축하공연 중 카드섹션 ‘스님 세계 115강 전국 100개 법당 개원’nbsp통통 튀는 색깔의 다양한 개성의 옷차림으로 신나는 음악과 함께 등장한 청년들은 다양한 포즈와 율동을 보여주며 전세계로 스님의 법문이 퍼져나가는 모습을 재미있게 표현해 대중들의 큰 박수와 환호를 받았습니다.nbspnbsp이어서 3차 백일기도 실천과제 결과 발표가 있었습니다. 실천과제 중 첫 번째인 ‘우리동네 기획법회 열기’는 전국에서 475개 모둠이 총 1,107회의 기획법회를 열어 13,455명에게 스님의 법문을 듣게 해주는 성과가 있었습니다. 특히 대구경북 지부는 68개의 모둠 중에서 66개의 모둠이 기획법회 3회 열기 과제를 달성해 97의 달성율을 보여주어 더 많은 박수를 받았습니다. 실천과제 중 두 번째인 ‘사회활동 3회 참여하기’는 통일 활동에 2,498명, 환경 활동에 1,809명, 복지 활동에 3,142명이 참여하는 등 많은 참여가 있었지만 3회 이상 모두 참여한 사람은 921명에 그쳐 18의 달성율을 보여주었습니다.nbspnbsp다음은 정토세상을 만들기 위해 지난 백일을 누구보다도 열심히 수행해 온 두 분의 수행담을 들어보는 시간이 있었습니다. 안양법당 최민정님은 홀시어머니의 생활비, 친정아버지의 대장암투병으로 친정의 생계비를 감당해야 하는 힘든 시기에 기독교 신자였지만 스님의 즉문즉설 동영상을 권유받고 새로운 희망을 발견했으며, 지금은 불교대학에 입학해 봉사를 시작하면서 나뿐만 아니라 주위 사람들에게도 도움을 주는 새로운 삶을 살아가고 있는 경험담을 들려주었습니다.nbspnbsp▲ 수행담을 발표하는 달서법당 차영미님nbsp달서법당 차영미님은 천정엄마가 뇌출혈로 쓰러지고 대소변을 받아내는 간병을 하면서 자신의 건강도 악화되어 몇 달을 링거를 맞으며 누워 지닐 때 스님의 즉문즉설 테이프를 주위로부터 선물받고 ‘책임지는 인생을 살아야겠다’는 발심을 하고 새로운 인생을 살게 된 사연을 들려주었습니다. 누워서 법문을 듣고 삼배도 제대로 못하던 상태에서 매일 법당을 찾아가 예불을 하기 시작하면서 도반들의 도움으로 몇 달이 걸려 겨우 108배까지 하게 되고 지금은 총무 소임까지 맡아서 자유로운 삶을 살고 있다는 얘기를 듣고 많은 대중들이 눈시울을 붉혔습니다.nbspnbsp두 분의 감동적인 수행담에 이어 스님께서 무대로 올라오셔서 3차 백일기도 회향 법문을 해주셨습니다. 스님께서는 2600년 전 부처님의 삶이 현대인들에게 주는 희망, 세계 100회 강연을 하게 된 까닭, 지난 백일 동안 곳곳에서 헌신해준 정토행자들을 위한 격려의 말씀 등을 애정을 담아 해주셨습니다.nbspnbsp“아침부터 일찍 출발해서 이곳까지 오신다고 수고들 많이 하셨습니다. 전국에서 수행하시는 분들이 한자리에 모여서 지난 백일 동안 어떻게 수행했는지 돌아보고 다음 백일을 새로운 마음으로 정진할 것을 다짐하는 입재식을 우리가 이렇게 하고 있습니다. 사람 마음이 한번 마음 먹으면 꾸준히 지속된다면 우리가 이렇게 백일마다 모일 필요가 없을 겁니다. 그만큼 습관이란 바꾸기가 어렵습니다. 그러나 2600년 전의 고타마 싣다르타라고 하는 한 젊은이는 인생이 이렇게 살아지는 것에 대해서 큰 의문을 가졌습니다. 이것을 변화시킬 수 있는 방법은 없을까? 그 좋은 왕위도 버리고 집을 떠나 수많은 고생을 하면서 그 길을 찾으셨습니다. 욕망을 쫓아가는 것도 욕망을 따르는 것이지만 욕망을 억압하는 것도 욕망에 대한 작용임을 깨닫고 욕망을 따르지도 않고 욕망을 억압하지도 않는 다만 그 욕구를 있는 그대로 알아차리고 지켜보는 제3의 길을 발견하셨습니다. 그리고 나서 ‘이 좋은 법을 고통받고 있는 이 세상 사람들과 함께 나눌 수는 없을까?’ 하시면서 이 법을 세상에 나눠갔기 시작했습니다. 그 이후로 어리석거나 고통받는 많은 사람들이 이 붓다의 가르침에 귀기울임으로 해서 그들 또한 해탈을 증득할 수 있었습니다. 이 법은 시간적으로는 2600여년 간 면면히 이어오고, 공간적으로는 인도 대륙을 넘어서서 전세계로 퍼져나가서 우리가 사는 이 한국에도 이르게 되었고, 그래서 우리는 공간과 시간을 멀리 지나 지금 이 법을 만나게 되었습니다.nbspnbspnbsp오늘날 현대사회는 물질적으로 많이 풍요로워졌습니다. 지금 우리들의 삶은 물질적인 면에서는 옛날에 비해서 수백배 수천배 더 좋아졌습니다. 그런데 우리 인생은 행복해졌느냐? 이런 관점에서 볼 때 더 행복해졌다고 말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현재 한국에서 하루에 자살하는 사람이 46명이라고 합니다. 자살은 현재 삶에 희망이 없다는 절망의 신호입니다. 출산율은 세계 최저입니다. 왜 자식을 낳지 않느냐? 미래에 희망이 없기 때문입니다. 이 현상을 갖고 살펴본다면 국민 소득이 100불에서 3만불이 되었음에도 이런데 3만불이 아니라 10만불이 된다고 해서 우리 삶에 변화가 있기는 어렵습니다. 희망과 기쁨을 갖고 살아가려면 이제 우리는 다른 길을 찾아야 합니다.nbspnbsp그러기 위해서는 붓다의 초기 가르침에 귀기울일 필요가 있습니다. 붓다는 지금 우리와 같은 조건에 있었습니다. 사회적 지위나 경제적인 수준이 충분히 주어져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인생에 많은 번뇌가 있었기 때문에, 이 인생의 고뇌를 해결하는 길은 지위를 높이거나 소비 수준을 높인다고 해결되지 않는다는 것을 그 분은 아셨던 겁니다. 그것처럼 지금 충분히 먹고 충분히 입고 충분히 쓰고 있는데도 우리는 고뇌하고 있습니다. 문제는 이 상황에 놓였는데도 돈이 더 많으면 집을 더 크게 사면 지위가 높아지면 행복할 것이라는 환영에서 아직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이제 우리는 다른 길을 찾아야 합니다. 고타마 싣다르타가 처했던 현실과 지금 우리의 현실이 비슷하기 때문에 그가 그것을 극복한 가르침은 시간이 2600여년이 지났음에도 불구하고 인도와 한국이라는 다른 환경임에도 불구하고 우리의 고뇌를 벗어나는데 좋은 양약이 될 수 있습니다.nbspnbsp오늘 우리는 ‘키가 작기 때문에’, ‘신체가 장애이기 때문에’, ‘어릴 때 가난했기 때문에’, ‘유학을 못갔기 때문에’, ‘공부를 못했기 때문에’, ‘성추행을 당했기 때문에’, ‘어릴 때 왕따를 당했기 때문에’, 이렇게 자기에게 주어진 조건이나 자신이 겪었던 경험을 핑계로 내세우고 ‘나는 이래서 괴로울 수 밖에 없고, 나는 이래서 불행할 수 밖에 없다’ 는 수백가지 증거를 제시합니다. 왜 자기가 괴로울 수 밖에 없다는 것을 증명하려고 그렇게 애를 씁니까?nbspnbsp그러나 내가 괴로워할 이유는 아무 것도 없습니다. ‘혼자 살아서 좋다’, ‘결혼해서 좋다’, ‘직장이 있어서 좋다’, 이렇게 행복의 조건을 찾아서 ‘저는 이래서 행복합니다’ 하는 쪽으로 나아가야 합니다. 그런데 늘 자기는 불행하다는 것을 증명하려고 노력합니다. 그래서 ‘너 불행하다’는 판정을 받으면 그렇게 좋아요? nbspnbspnbsp붓다가 깨닫고 나서도 엄청난 일들이 일어났습니다. 온갖 모함도 있었고, 온갖 비난도 있었습니다. 잠은 나무 밑에서 자고, 옷은 분소의만 걸치고, 맨발로 살으셨습니다. 살아 생전에는 나라가 망하고 자신의 친족이 다 멸종하는 것을 보셨습니다. 자신이 사랑하는 제자인 사리 푸트라와 목갈리나가 먼저 죽기도 했습니다. 자신의 친족이며 아끼는 제자가 반역을 하고 교단을 분열시키는 일도 일어났습니다. 탁발을 하러 갔는데 가뭄이 들어 먹을 것이 없어 말이 먹는 밀기울을 얻기도 했습니다. 붓다를 좋아하던 여인이 자신을 특별하게 대해주지 않는다고 모함을 해서 대중이 붓다와 상가를 엄청나게 배척하는 일이 일어나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그 수많은 일 가운데서 그분은 여여했고, 자신을 늘 자유롭고 행복하게 간직했고, 고통받는 수많은 사람들에게 고통에서 벗어나는 길을 제시하고 실천하도록 격려해 주셨습니다. 숨이 넘어가는 순간까지 그렇게 사시다 가셨습니다.nbspnbsp우리는 이런 그 분의 삶에서 교훈을 얻어 나도 행복하고 자유롭게 살 수 있는 길을 발견해 갈 수 있습니다. 교통사고가 나서 장애가 되기도 하고, 살다보면 성폭행을 당하기도 하고, 직장에서 쫓겨나기도 하고, 하던 사업이 망하기도 하고, 이혼을 하기도 하고, 부모 앞에 자식이 먼저 죽기도 하고, 병원에 갔더니 갑자기 암 선고를 받기도 하고, 우리의 인생에는 온갖 일들이 벌어집니다. 그러한 가운데에서도 이 좋은 법을 만나면 우리는 내 삶의 자유와 행복을 유지할 수 있습니다. ‘내가 살아있다는 것만 해도 정말 큰 복이구나’, ‘보이는 것만 해도, 들리는 것만 해도 큰 nbsp복이구나’ 이렇게 자기에 대한 긍정성을 하나 하나 발견해 가면서 조금씩 조금씩 행복해져 갑니다. 이렇게 주어진 이대로도 이 세상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소중한 존재임을 자각해서 여러분의 삶이 먼저 행복하고 자유로워야 합니다.nbspnbsp그리고 주위를 돌아보세요. 온갖 사람들이 괴로워하며 좌절과 절망 속에서 살아가고 있습니다. 내가 이 좋은 법을 만나서 행복을 얻었다면 나 또한 그분들에게 도움이 될 수 있도록 해야 합니다. 배 고픈 사람에게는 밥 한그릇이라도 사주고, 외로운 사람에게는 대화라도 해주고, 넘어진 자는 일으켜 세워주고, 내가 할 수 없다면 인연이라도 맺어주고, 재물이 부족한 사람에게는 보시로 베풀어주고, 여러 가지 도움이 필요한 사람에게는 봉사로 베풀어주어야 합니다. 먼저 나부터 수행을 하면서, 보시와 봉사를 통해서는 이웃 사람에게도 도움이 되는 삶을 한번 살아보자, 이것이 불교인이 가야할 길이고, 이것이 정토행자의 삶입니다.nbsp그러니 먼저 이 법을 이해하기 위해서 정토불교대학을 다녀야 합니다. 정토불교대학을 다닐 수 있도록 주위 사람들에게 많이 권유해야 합니다. 내가 먼저 해보고 주위 사람들도 경험할 수 있도록 인연을 맺어주어야 합니다. 내가 즉문즉설을 듣고 기쁨을 얻었다면 많은 사람들이 이 법을 들을 수 있도록 주위에 전파해야 합니다. 내가 책을 보고 도움을 얻었다면 다른 사람들도 도움을 얻을 수 있도록 인연을 맺어주어야 합니다.nbspnbsp그러면서 행복할 때도 정진하고 마음에 괴로움이 있을 때도 정진해야 합니다. 그런데 우리는 힘들면 발등에 떨어진 불처럼 느끼고 급하게 정진하다가 조금 살만해지면 또 팽개치고 놉니다. 그러니까 불행이 닥쳐야 수행을 합니다. 불행이 그렇게 좋아요? nbspnbspnbsp좋을 때도 늘 정진해서 불행이 일어나지 않도록 막아야 합니다. 또 불행이 일어나더라도 이겨내는 힘을 키워야 합니다. 이렇게 수행을 기본으로 해야 합니다. 그런데 이렇게 결심하고도 내일 아침부터 못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렇다고 삼일마다 모일 수도 없으니, 매일 매일 정진하고 일주일마다 한번씩은 꼭 법문을 들어야 합니다. 그렇게 매일 매일 정진을 하면서 백일을 이어갈 수 있습니다. 이렇게 정진하는 힘이 있어야 보시도 하고 봉사도 할 수 있습니다. 정진하는 힘이 있으면 보시와 봉사가 정말 이웃과 나누고자 하는 보시와 봉사가 됩니다. 정진을 하지 않고 보시와 봉사를 하면 복 비는 봉사와 보시가 됩니다. 수행 정진을 하는 사람이 보시하고 봉사는 것은 도움이 필요한 이웃을 돕기 위해서 하는 것이지 내 복을 받으려고 하는 것이 아닙니다. 복은 인연의 과보로 주어지는 것입니다. 대가를 바란다면 그것은 상거래이지 수행이 아닙니다. 그래서 우리 정토행자들은 어떤 일을 하든지 수행이 바탕이 되고, 수행자로서 사회활동을 하는 것입니다.nbspnbsp세계 100회 강연을 한 것도 지금은 조금 힘든 일이지만 당장 효과를 보려는 것이 아니라 지금의 청년 세대가 전 세계로 뻗어나가 인류를 위하여 이 좋은 법을 전파할 수 있는 기초를 마련해놓자는 것이였습니다. 스님이 그런 일을 할 수 있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젊은 사람들이 가서 앞으로 일할 수 있는 터전을 마련해놓자는 것이였습니다. 먼저 전 세계로 나가 있는 교민들을 위로하고 또 그들이 이 법을 전할 수 있는 터전이 되겠기에 먼저 텃밭을 일군 겁니다. 또 이 좋은 법이 각 나라의 언어로 번역되어서 그들도 이 법을 접할 수 있는 기초를 마련해 놓고자 한 것입니다. 이것이 다음 만일을 위해 우리 장년 세대들이 해야 할 일입니다. 그동안 아무 것도 없는 것에서 개척하느라 얼마나 힘들었습니까? 우리가 조금 노력해서 발 디딜 틈이라도 마련해 놓으면 우리 젊은이들이 새로운 세상으로 나가서 활동하기가 훨씬 수월해지지 않겠습니까? 이것을 위해서 해외사무국에서 세계 100강을 준비한다고 정말 수고들 많이 하셨습니다. 박수로 감사를 표해주십시오.nbspnbsp또 국내에 계신 분들은 기획법회를 1,107회를 열어서 저보다 10배를 더 많이 하셨어요. 또 불사팀에서는 광주 법당을 옮겨서 지부 역할을 할 수 있도록 새로 내었고, 청주 법당도 옮겨서 새롭게 규모를 넓혔고, 그 외 새로운 곳에 법당을 열어서 지난 1년 동안 30개의 법당이 새롭게 개원했습니다. 수고하신 모든 분들께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그리고 오백 대중이 모여서 여법하게 성지순례도 잘 했습니다. 또 지난 1년 동안 불교대학을 공부하신 분들도 곧 졸업을 하게 되는데 이를 위해 노력해주신 모든 분들에게도 진심으로 감사 말씀을 드립니다.”nbsp스님의 법문을 들으며 지난 1년을 돌아보며 각자의 수행을 점검해보는 시간을 가질 수 있었습니다. 감로의 법문을 해주신 스님께 뜨거운 박수갈채가 쏟아졌습니다.nbspnbsp이어서 실내체육관 복도에 삼삼오오 돗자리를 펴고 앉아 집에서 싸온 도시락을 나눠먹는 점심 식사 시간을 가졌습니다. 스님께서는 식사를 하고 있는 대중들을 빙 둘러보시며 한분 한분과 눈을 맞추며 인사를 하셨습니다.nbspnbspnbsp체욱관 바깥에는 사회 단체별로 부스가 마련되어 잔치 마당처럼 다양한 이벤트가 진행되었습니다. ‘통일하자’는 깃발을 들고 둥글에 모여 힘찬 구호와 신나는 율동을 보여준 ‘좋은벗들’ 부스, 통일을 위한 다양한 사회활동을 사진으로 전시하면서 후원회원을 애타게 찾는 ‘평화재단’ 부스, 스님 책을 할인된 가격에 판매하는 이벤트를 실시한 ‘정토출판’ 부스, 환경 실천을 약속하는 스티커 설문을 하며 환경 상품을 판매하는 ‘에코붓다’ 부스, 백일출가 사진전을 하며 다음 기수를 모집하는 ‘행자원’ 부스, 108배 하는 방법을 친절히 안내해 주는 ‘천일결사’ 부스, 고등학생 교복을 입고 다니며 2015년 신입생 모집을 재미나게 알린 ‘정토불교대학’ 부스 등 다양한 풍경들이 어우러져 활기를 더했습니다.nbspnbsp▲ 정토불교대학 신입생 모집을 홍보하는 청년들nbspnbsp▲ 후원금 모집을 애타게 하고 있는 평화재단nbspnbsp▲ 스님의 새책 홍보를 열심히 하고 있는 정토출판nbsp▲ 환경상품을 판매하는 에코붓다nbspnbsp▲ 108배 하는 방법을 안내해 주는 천일결사 부스nbsp점심 식사를 마치고 1시50분부터 시작된 ‘정토행자 한마당’ 에서는 다양한 끼와 재능을 가진 분들이 올라와 신나는 무대를 보여주어서 연신 웃음을 자아내게 했습니다. 먼저 저녁부에서 ‘바라밀다 플래시몹’이라고 하면서 떼창이 아닌 떼춤을 마음껏 발산해 흥을 돋구웠습니다. 수십명이 무대 위와 아래에서 일제히 동작을 맞춰 춤을 추는 모습은 장관을 이루었습니다.nbspnbsp▲ 저녁부에 보여준 ‘바라밀다 플래시몹’nbspnbsp인천정토회 송도법당에서는 ‘다함께 춤’ 공연을 보여주었는데 복장과 춤이 너무 우스꽝스러워서 공연 내내 대중들은 배꼽을 잡고 웃었습니다.nbspnbspnbsp▲ 대중들을 포복절도하게 만든 송도법당의 ‘다함께 춤’ 공연nbsp이어서 동래정토회 강혜원님이 트로트 반주에 맞춰 ‘도로남’과 ‘잘살거야’를 불러주어 큰 박수를 받았습니다. 정토회를 처음 만났을 때는 다들 괴로움이 많았지만 지금은 이렇게 인생이 행복해져서 도반들과 호흡을 맞춰 자신의 재능을 마음껏 발산하는 모습을 보니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감동이 밀려왔습니다.nbspnbsp신나는 무대를 뒤로 하고, 다시 명상을 하고 마음을 차분히 한 후 신규 입재자 결의식이 진행되었습니다. 스님께서는 매일 수행정진할 것을 다짐한 신규 입재자들을 위해 “다겁 생래로 지은 업장으로 인해 물러서는 마음을 낼 때마다 오늘의 이 서원과 결심이 유지되도록 제불보살님들은 옹호하여 주옵소서” 라며 간절한 발원을 해주셨습니다.nbspnbsp▲ 신규 입재자 결의식을 하는 630여명의 대중nbspnbsp그리고 “대부분 첫 백일을 넘기가 어렵습니다. 백일을 어떻게 하나 고민하지 말고 아침에 눈 뜨자마자 한번만 한다고 생각하세요. 그러면 시간이 흘러서 저절로 백일이 만들어져요. 아침에 일어나보고 살아 있으면 ‘아이고, 살았네’ 하고 살아있는 기념으로 하루에 한번씩만 기도하면 돼요.” 라고 하시면서 매일 빠지지 않고 기도할 수 있는 방법도 재미있게 알려주셨습니다.nbspnbspnbsp이어서 많은 분들이 기다리던 시간인 ‘정토행사상’ 시상식이 진행되었습니다. 한 해 동안 각 부문에서 모범적으로 활동하신 분이나 단체에게 총 여덟 개 부문에서 나누어 시상이 이뤄졌습니다.nbspnbsp‘복지상’은 제3세계 어린이를 돕기 위한 캠페인에 적극적인 활동을 하면서 분당 지역의 캠페인 정착에 크게 기여한 김복경님이 받았고, ‘환경상’은 실험과 연구를 통해 청정 법당의 발판을 만드는데 크게 기여한 동래법당이 받았습니다. ‘통일상’은 새터민정착사업과 새로운백년 읽기 모임, 통일 강좌 열기 등 적극적인 활동을 한 해운대법당 김은주님이, ‘포교상’은 진주 지역의 포교에 귀감이 된 진주정토회가, ‘정진상’은 꾸준한 정진을 통해 도반 간의 화합을 이룬 대구법당 이명숙님이, ‘보시상’은 활동 속에서도 꾸준한 보시를 통해 정토회 발전에 큰 기여를 한 노희경 작가님이 받았습니다.nbspnbspnbsp그리고 ‘특별상’은 산모, 영유아 어린이 등 취약계층 새터민에 애정을 갖고 지원을 해준 배우 신민아님이 받았는데, 신민아님은 수상 소감과 감사 인사를 영상으로 보내와서 큰 박수를 받았습니다. nbspnbspnbsp▲ 정토행자상 수상 소감을 영상으로 촬영해 보내준 배우 신민아님nbsp이렇게 일곱 개 부문에 대한 수상을 마치고, 드디어 수행, 보시, 봉사 모든 면에서 정토행자의 귀감이 되는 분에게 드리는 정토행자상 ‘대상’이 발표되었습니다.nbspnbsp영예의 대상은 헌신적인 봉사활동으로 세계 115회 강연을 성공적으로 치렀으며 정토행자의 서원을 모든 면에서 잘 실현해준 해외사무국에게 돌아갔습니다. 지난 한해는 그 어느 부서보다도 바쁜 1년을 보낸 해외사무국임을 모두가 잘 알고 있었기에 뜨거운 박수갈채가 쏟아졌습니다. 법륜 스님께서 직접 올라오셔서 해외사무국을 대신해서 무대에 올라온 시애틀 정토회 주상휴 총무님에게 수상을 해주셨습니다.nbspnbsp▲ 해외사무국을 대신해서 정토행자상 대상을 받고 있는 주상휴님nbspnbsp그리고 즉석에서 미국 워싱턴으로 전화 연결을 해서 해외사무국 국장 김순영님의 소감을 들었습니다. 김순영님은 새벽 1시이지만 성도재일 철야정진을 미리 앞당겨서 도반들과 함께 하고 있다며 밝은 목소리로 수상 소감을 이야기해 주었습니다.nbspnbsp“이 상은 지금보다 더 열심히 전 세계를 정토세상으로 만들어달라는 뜻으로 받아들이겠습니다. 2차 만일을 위한 초석을 해외에서 잘 다지도록 하겠습니다.” nbspnbsp▲ 미국 워싱턴과의 전화연결을 통해 대상 수상 소감을 말하고 있는 김순영님nbsp영예로운 정토행자상을 수상한 모든 분들은 스님과 함께 기념사진을 찍었습니다. 수상자는 물론 이를 지켜보는 모두가 함께 기뻤던 시간이었습니다. 이렇게 정토세상을 함께 만들어가는 도반이 있어 참으로 감사하다는 것을 다시한번 느껴봅니다.nbspnbsp▲ 2014년을 빛낸 영예의 정토행자상 수상자들nbsp수상식을 마치고 스님께서 제4차 백일기도 입재 법문을 해주셨습니다.nbspnbsp“오늘로써 만일결사 중 제8차 천일결사 제4차 백일기도가 시작되겠습니다. 우리는 늘 처음 하는 마음으로 해야 합니다. 대부분 사람들은 한 번 하고 두 번 하고 세 번 하면 타성에 젖습니다. 대충대충 하게 되면 변화가 없습니다. 매 순간을 항상 처음하듯이 하는 사람이 수행자입니다. 초발심이 끝까지 간다면 그것이 곧 깨달음입니다. 그래서 지금까지 어떻게 공부했든 그것은 다 버리고 오늘 처음 시작하듯이 임해봅니다.nbspnbsp어느 때나 가장 중요한 것은 매일 매일 빠지지 않고 개인 정진을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웃과 세상에 보탬이 되기 위해서 보시와 봉사를 해야 합니다. 다음으로 이번 4차 백일기도 기간 동안 가장 중요한 것은 정토불교대학 인연 맺기입니다. 우선 이 좋은 법을 공부할 수 있도록 입학을 시켜야 합니다. 그리고 입학한 사람은 공부할 수 있도록 잘 관리를 해주어야 합니다. 그래서 4차 백일 입재자들의 전체 실천 과제는 정토불교대학에 한 명 이상 인연맺어서 부처님의 좋은 법을 공부할 수 있게 하는 것입니다. 할 수 있겠어요? nbspnbspnbsp그리고 두 번째는 불교대학까지는 참여시키지 못하더라도 이 좋은 법을 듣도록 인연 맺어 주자는 것입니다. 직장마다 학교마다 동네마다 열명이 오든 스무명이 오든 기획법회를 열어서 누구나 희망의 길을 갈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해 주자는 것입니다. 힘들어하고 괴로워하던 사람들이 즉문즉설을 권유 받아 듣고 불교대학에 입학하면서 아직도 괴로움이 남아 있지만 그것을 이겨낼 수 있는 힘을 가졌다는 것은 얼마나 눈물나고 아름다운 일입니까? 저는 이런 사연을 들으면 ‘1년 노력해서 이런 사람 한 사람만 생겨도 할 만한 가치가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nbspnbsp그리고 우리 정토행자들은 매주 수요일날 수행법회에 꼭 참석하셔야 합니다. 이것을 기본으로 하면서 다른 좋은 일도 해나가자는 것입니다. 개인적으로는 불교대학에 한 사람 이상 인연을 맺고, 이 좋은 법을 주위에도 널리 알리기 위해서 모둠별로는 기획법회를 3회 이상 열어나갑시다. 특히 불교대학을 졸업한 사람들은 수행법회를 빠지지 말고 꼭 참석하면서 봉사활동을 해나가셨으면 좋겠습니다.”nbspnbsp그리고 스님께서는 정토회에서는 다른 사람들의 수행을 도와주는 법사 제도가 있음을 알려주시면서 혹독한 과정을 거쳐서 전문법사 수행을 마친 분 다섯 분과 재가자로 있으면서 꾸준히 정진해서 대중법사 수행을 마친 다섯 분을 소개해 주셨습니다. 곧 법사 수계를 하려고 하는데 이들이 헌신성과 수행적 태도에 혹시 이의가 있는 사람은 그 의견을 한달 안에 법사실로 제출해 달라고 하시면서 대중들의 동의를 구했습니다. nbspnbsp▲ 법사 수계 예정자인 열 분을 한분 한분 소개하는 시간nbsp곧 법사 수계를 받으실 분들이 무대 위에 올라 한분 한분 자세히 그 이력이 소개가 되자 큰 박수가 쏟아졌습니다. 법사 수계에 대한 공지에 이어서 스님께서는 “여러분들도 어느 정도 활동을 하시고 난 뒤에는 수행을 꾸준히 하셔서 법사가 되셔야 합니다. 자기 집을 법당으로 만들고, 자기가 법사를 하고, 자기 가족부터 회원으로 만들어서 동네마다 수행공동체인 정토법당을 만드셔야 합니다.” 라며 당부의 말씀을 덧붙이셨습니다. nbspnbsp스님의 입재 법문에 이어서 김은숙 행정처장님이 나와서 4차 백일기도 실천 과제를 발표했습니다. 첫째는 법당별 과제로써 모둠별로 3회씩 기획법회 열기이고, 둘째는 개인별 과제로써 정토불교대대학 지인 1명 이상 인연 맺기입니다. 이 실천과제를 많은 분들이 달성하게 되면 올 봄에는 더 많은 분들이 새롭게 인연을 맺어서 행복한 삶을 찾아가게 되겠구나 싶어 마음이 설레였습니다.nbspnbsp▲ 4차 백일기도 실천과제 발표nbspnbsp마지막으로 오늘 입재식을 마무리하면서 이기혜 정토회 대표님이 닫는 인사를 해주셨습니다. 대표님은 “울고 웃다 보니 마칠 시간이 되었다”면서 “자기 괴로움의 당위성을 찾아서 거기에 빠져 있지 말고 긍정의 세계로 나아가라는 스님의 간절한 말씀에 정신이 번쩍 들었다”고 덧붙인 뒤 신규 입재자들을 향해 “이 행복의 물결에 동참한 것을 다시 한번 환영한다”며 반겨주었습니다.nbspnbsp▲ 마지막 닫는 말씀을 하고 있는 이기혜 대표님nbspnbsp그리고 5차 백일기도 입재식인 4월 26일에도 한분도 빠짐없이 함께할 것을 기약하면서 스님과 법사님들이 모두 무대 위에 올라오고 산회가를 함께 손잡고 부르면서 오늘 입재식을 기쁜 마음으로 마쳤습니다. 스님께서는 집으로 돌아가는 정토행자들에게 한껏 웃으시며 손을 흔들어 주셨습니다.nbspnbspnbsp입재식을 마치고 스님께서는 체육관 안 회의실에서 곧바로 대중부 집행위원들과 2015년 대중부 사업계획 및 일정에 대해 간단히 회의를 하셨습니다. 그리고 이어서 법사단 전체와 함께 2015년 전체 일정과 엊그제 다녀온 인도성지순례 평가 및 해외 구호사업 파견자 인사 발령에 관해 회의를 하셨습니다.nbspnbsp▲ 대중부 집행위, 법사단과 회의nbspnbsp회의를 마치고 오후 6시 무렵 행사장을 출발하여 밤9시 무렵 서울 정토회관에 도착하셨습니다.nbspnbsp내일은 오전 8시부터 법사단 회의, 오후에는 평화재단, JTS, 좋은벗들, 에코붓다 이사회에 하루 종일 이어서 참가하실 예정입니다. nbspnbsp
2015.1.23 방콕 정토불교대학 졸업식 및 수계식
▲ 방콕과 프놈펜 정토불교대학 졸업식 및 수계식nbsp안녕하세요. 오늘은 방콕 정토법당에서 정토불교대학 졸업식 및 수계식이 열리는 날입니다.nbspnbsp스님께서는 밤 12시20분 비행기로 델리 공항을 출발하여 현지 시간으로 새벽 5시30분에 방콕 공항에 도착하셨습니다. 비행기 안에서 잠깐 휴식을 취하고 방콕 공항에 내리니 방콕정토회 황소연 총무님과 남동생 분이 함께 마중을 나오셔서 스님 일행을 방콕정토법당까지 무사히 운전을 해주었습니다.nbspnbsp아침 7시30분쯤 방콕 정토법당에 도착한 스님께서는 아침 일찍부터 신도님들이 정성껏 준비해주신 떡국으로 식사를 하신 후 9시20분부터 정토불교대학 졸업식 및 수계식에 함께 하셨습니다.nbspnbspnbsp오늘 졸업식 및 수계식에서는 방콕정토법당에서 불교대학을 수료하신 분 2명과 경전반을 수료하신 분 2명, 그리고 캄보디아 프놈펜에서 불교대학을 수료하신 분 2명까지 총 6명이 스님께 수계를 받았습니다. nbspnbspnbsp어제 일찍 도착한 무변심 법사님도 함께해서 수계식 인례를 맡아주셔서 여법하게 식이 진행되었습니다. 스님께서는 부처님 당시에 수계가 처음 시작된 유래와 그 의미에 대해 자세히 법문해 주신 후 호궤합장을 하고 참회게를 염하는 졸업생들에게 연비를 해주셨습니다.nbspnbsp▲ 스님께 연비를 받는 불교대학 졸업생들nbsp“이 수계식은 부처님 당시로부터 시작해서 긴 역사를 두고 2600년이 지나도록 오늘까지 이어져 오고 있습니다. 그래서 오늘 이 수계식도 그 전래를 따라 시행합니다. 부처님을 대신하여 여러분들이 삼보에 귀의하고 오계 받기를 청하기에 오늘 이렇게 수계를 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니 이 법을 잘 받아 지녀서 수평적으로는 이 법을 널리 이 세상의 많은 사람들에게 전하도록 하고, 수직적으로는 미래의 후세들에게 대를 이어서 전해서 미륵 부처님이 오실 때까지 이 바른 법을 계승해 나가야 합니다. 오늘은 그런 소중한 자리입니다.”nbsp연비를 마치고 스님께서는 졸업생 한명 한명에게 불명을 주시고, 불명의 의미에 대해 자세하게 설명해 주신 후 염주와 함께 직접 사인한 ‘기도’ 책을 선물하셨습니다. 그리고 방콕정토회 홍정혜 대표님은 졸업생들에게 정진할 때 입을 수 있는 계량한복 상의를 선물해서 졸업생 모두 기쁜 마음으로 선물을 받았습니다.nbspnbspnbsp수계식을 잘 마치고 이어서 졸업식이 진행되었습니다. 방콕정토회 황소연 총무님의 정토불교대학 경과보고에 이어서 홍정혜 대표님의 영접사를 들은 후 스님께서 졸업생들을 위해 기념 법문을 해주셨습니다. 정토불교대학을 통해 무엇을 배워야 하는지 일목요연하게 다시한번 정리해주시면서 졸업생들이 앞으로 어떻게 살면 좋을지 당부의 말씀과 더불어 격려도 해주셨습니다.nbspnbsp“불자가 된다는 것은 내 인생을 행복하게 하는 사람이 된다는 것입니다. 천상에 태어난다, 복을 받는다, 이것이 불자의 목표가 아닙니다. 불교 수행의 궁극적인 목표는 해탈과 열반입니다. 여러분들은 오늘부터 계를 받았으니 이제 붓다로 가는 첫걸음을 뗀 것입니다. 그래서 첫째, 불교란 무엇인가에 대해 공부를 하셨습니다. 둘째, 부처님은 누구인가. 어릴 때는 어떤 고민을 했고 어떤 과정을 거쳐서 수행을 했고, 깨닫고 난 이후에 그분은 어떻게 살았고 어떤 법문을 했는지 자세히 공부했습니다. 셋째, 대승불교를 하더라도 근본불교를 공부하고 그 위에 대승불교를 해야 합니다. 근본불교 없는 선불교를 하면 부처님 없는 선을 하게 돼요. 그러면 신앙의 중심이 제대로 서지 않습니다. 그래서 부처님의 근본 가르침을 먼저 알아야 됩니다. 연기법과 사성제, 팔정도, 중도, 이런 기본을 제대로 알아야 여기서부터 대승이 나오고 선이 나오게 됩니다. 넷째, 불교의 역사를 공부했습니다. 근본불교, 대승불교, 밀교, 선불교는 역사적인 변천과정에서 생겨난 것입니다. 이것을 제대로 공부해서 이름이 어떻든 불교의 근본 정신이 꿰뚫어져야 합니다. 그리고 점점 발전해온 것임을 알아야 선불교의 아이덴티티도 가지고 다른 불교를 포용할 수도 있습니다. 불교 역사 공부를 하더라도 근본 가르침이 이어져가는 그 맥을 잡고 어떻게 변화해 왔는가를 알아야 여러 불교 간에 모순이 안생깁니다. 그동안 공부한다고 수고가 많으셨고요. 이제 다음은 경전반에 입학하셔야 합니다.nbspnbsp졸업이 공부의 끝이 아니고 이제 기초가 잡혔으니 앞으로는 더욱 정진을 하셔야 합니다. ‘나’ 아닌 것으로 ‘나’를 삼으면 안됩니다. 옷이 ‘나’가 아니고 지위가 ‘나’가 아닙니다. 육신도 ‘나’가 아닌데 무엇이 ‘나’ 이겠어요? 그런 것에 정신을 팔면 죽을 때까지 헐떡거리며 살게 돼요. 그래서 항상 중심을 딱 잡고 살아야 해요. 그런 좋은 법을 우리에게 깨우쳐주신 분이 부처님이시고, 나도 이 좋은 법을 따라서 붓다처럼 자유롭고 행복한 사람이 되는 것이 바로 불자의 길입니다.”nbsp감로의 법문을 들은 졸업생들은 바른 가르침으로 인도해 주신 스님께 감사의 마음을 담아 정성껏 삼배를 하고 ‘스승의 은혜’ 노래를 함께 부르면서 꽃다발을 선물했습니다.nbspnbsp▲ ‘스승의 은혜’ 노래로 스님께 감사의 마음을 전하는 졸업생들nbsp졸업식을 모두 마치고 스님께서는 졸업생 모두와 함께 기념 사진을 찍으시고, 또 이어서 졸업생 한명 한명과도 일대일로 기념사진을 찍으셨습니다.nbspnbsp▲ 오늘 스님께 수계를 받은 방콕과 프놈펜 정토불교대학 졸업생들nbsp기념사진 촬영을 모두 마치고 나서는 모두 한 자리에 모여 비빔밥을 만들어 먹으면서 먼 길을 달려오신 스님과 오순도순 정겨운 이야기들을 나누는 시간을 다 가졌습니다.nbspnbsp스님께서는 오후에는 오랜만에 휴식을 취하셨습니다. 인도성지순례부터 시작해서 오늘까지 쉴틈 없이 바쁜 일정을 강행해 오셨고 특히 어제는 하루종일 4번의 강연을 소화하시느라 피로가 많이 누적되어 있으셨는데, 건강을 회복하시기 위해 모처럼 휴식을 취하실 수 있었습니다.nbspnbsp스님께서 휴식하시는 동안 무변심 법사님은 방콕과 프놈펜에서 오신 불교대학 졸업생들과 정토회 회원들을 위해 정토회의 사상과 운영 방침 등에 대한 직무 교육을 해주셨습니다.nbspnbsp▲ 무변심 법사님과 함께한 직무 교육nbsp그동안 해외에서 자원봉사를 하면서 정토회의 원칙과 그 취지를 잘 몰라 어려움이 많았던 분들은 법사님의 강연과 질의응답 시간을 통해 명쾌하게 궁금증이 다 해소되었다며 좋아했습니다.nbspnbsp무변심 법사님과 함께하는 직무 교육까지 모두 마치고 스님 일행은 신도님들이 정성껏 차려주신 저녁식사를 함께 먹고 저녁7시에 방콕정토법당을 나왔습니다. 신도님들은 스님께 삼배를 올리면서 부지런히 수행 정진하며 지낼 것을 다짐했습니다.nbspnbsp방콕정토회 황소연 총무님이 법당으로 이용하면 좋을 것 같다는 건물 답사를 하기 위해 잠시 들렀습니다.nbspnbspnbsp2층으로 된 주택인데 거실과 방이 넓직해서 법회와 불교대학을 진행하기에는 적절해 보였습니다. 방콕은 동남아시아에서 교통의 중심이 되는 도시여서 주변 다른 도시들에서 접근하기가 아주 좋은 위치인데, 방콕정토법당이 조금 더 규모있게 확장되어서 다양한 수련과 교육이 이곳에서 이뤄져서 동남아시아 포교가 더욱 활성화되었으면 하는 바램도 가져보았습니다.nbspnbsp방콕 공항에 저녁8시30분경에 도착해 출국 수속을 밟고 게이트로 들어오니 비행기 이륙 시간까지 2시간 정도 여유가 있었습니다. 스님께서는 라운지에서 한국에서 온 이메일 등을 체크하시며 업무를 보시다가 밤 11시20분 비행기로 한국으로 출발하셨습니다.nbspnbspnbsp내일은 오전 6시30분에 한국 인천공항에 도착하셔서 서울에서 일정을 보내신 후 모레는 정토회 4차 백일기도 입재식에 참석하실 예정입니다.nbs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