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합검색
원하시는 검색어를 입력해 주세요
2015.1.10 인도성지순례 4일째 가야산, 전정각산
nbsp안녕하세요. 오늘은 부처님의 발자취를 따라 성지순례를 출발한지 4일째 되는 날입니다. 곳곳에 흩어져있는 바라나시 숙소의 각자 방에서 새벽 4시에 기상한 순례단은 짐을 챙겨 나와서 버스에 올라타 일제히 5시 정각에 출발을 했습니다. 오늘은 가야산을 거처 수자타아카데미와 전정각산을 오르는 일정입니다.nbspnbsp이번 순례는 500명의 대중이 함께하기 때문에 숙소가 차량별로 총 6곳으로 나뉘어져 배치가 되었습니다. 수루비 호텔, 로터스 인, 쉬밤 게스트하우스, 바즈라 비드야 하우스, 라즈 산티 게스트 하우스, 미얀마 절 등 곳곳에 흩어져 하룻밤을 묵었습니다.nbspnbsp오늘은 부처님이 다섯 비구와 야사 등 60명의 대중을 사르나트에서 교화하고 전법선언을 하신 후 가섭 형제를 교화하기 위해 다시 우루벨라 마을로 향하신 그 길을 따라 갑니다. 바라나시에서 가야까지 부처님이 전법을 위해 걸어가셨던 그 마음을 느껴보며 무려 250km에 달하는 머나먼 길을 버스를 타고 7시간 동안 달려가 봅니다.nbsp이동하는 도중 잠깐 차를 세우고 화장실 가는 시간을 가지기도 했습니다. 인도는 도로가에 화장실이라는 것이 없고, 모든 곳이 다 화장실입니다. 화장실 위치에 대해 “여자는 왼쪽, 남자는 오른쪽” 하고 송수신기에서 공지가 나가자 일제히 버스에서 내려 밀밭에 숨어 앉거나, 키 높이의 나무 뒤에 나란히 앉거나 해서 볼일을 해결했습니다. 혹시나 누가 볼까봐 저 멀리까지 가신 분이 있었는데 나중에 확인해 보니 똥을 밟았다고 하면서 차량에 타면 냄새가 날까봐 봉지를 신발에 싸고 있었습니다. 아무튼 인도에서 경험할 수 있는 재미난 풍경이었습니다. nbspnbspnbsp▲ 버스에서 내려 볼일을 보러 가는 모습nbspnbsp오전 10시 무렵에는 이동하는 도중 고속도로 옆 평탄한 공터 위에서 어제 저녁 밥솥에 해둔 밥과 한국에서 준비해 온 반찬으로 아침 겸 점심을 먹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집안 냉장고만 열면 볼 수 있는 흔한 반찬들이었지만 모두들 탄성을 자아내며 맛있게 식사를 마쳤습니다. 스님께서도 조에 들어가셔서 순례객들이 싸온 반찬으로 함께 식사를 하셨습니다.nbspnbsp▲ 어제밤 전기밥솥으로 해둔 밥으로 점심 식사nbsp다시 버스를 타고 달리며 차창 밖으로 펼쳐지는 인도의 모습에 법사님들의 자세한 설명이 더 해지니 이곳 상황을 이해하는데 훨씬 도움이 되었습니다. 최근에 만들어졌다는 다리 아래로 물이 말라 하얗게 강바닥의 모래가 드러나 있었습니다. 인도는 6월 말에서 9,10월까지는 우기이고 나머지 계절은 건기라고 합니다. 빨래를 하려는 듯이 여인들이 빨래 감과 양동이 같은 것을 들고 강을 지나거나 삼삼오오 쪼그려 앉아 있었는데 겉으로 보기에는 물이 말라보이지만 모래를 파면 물이 나와 그것으로 빨래를 할 수 있다고 합니다.nbspnbsp벽돌을 쌓아 집을 짓기 위해 담을 만드는 모습을 많이 볼 수 있었는데 인도에서는 벽돌도 항아리처럼 흙으로 빗어서 만든다고 합니다. 벽돌 공장도 볼 수 있었습니다.nbspnbsp그리고 버스 안에서 서로 소개하는 시간도 가졌습니다. 어디에서 왔고 어떻게 정토회를 만나고 스님을 만나게 되었는지, 어제와 그제 성지순례을 하며 느낀 소감 등을 함께 나누며 서로 친해지는 시간도 가졌습니다.nbspnbspnbsp한 시간 정도를 더 달려 가야산에 도착해 산을 오르니 구걸하는 아이들이 따라 붙기 시작했습니다. 처음에는 좀 부담스럽기도 했는데 이목구비가 뚜렷하고 구걸하는 사람이 대부분 어린 아이들이어서인지 일행들은 잡힌 손을 쉽사리 뿌리치지 못했습니다.nbsp가야산 정상에 올라 부처님께서 수행하시던 곳에 모여 앉아 스님의 설명을 들었습니다.nbspnbsp“저희들이 도착한 이곳이 가야산입니다. 우리 나라 역사에 가야라는 나라가 있죠. 그 이름이 여기 가야에서 온 말이예요. 가야시는 부처님 당시부터 있었던 아주 오래된 도시입니다. 이 산은 가야에 있다고 가야산이라고 불리었는데, 현재는 저 산꼭대기에 브라만 신을 모셔놓았기 때문에 ‘브람조니’라고 부르고 있어요. 그리고 멀리서 보면 꼭 코끼리 머리 같이 생겨서 한문으로는 ‘상두산’이라고 부르기도 해요. 그래서 경전을 읽을 때 상두산이라고 적혀있으면 가야산을 말하는 것이라고 아시면 돼요.nbspnbspnbsp부처님이 카필라바스투에서 출가를 하셔서 왕사성으로 오셔서 두 분의 스승 아래에서 공부를 했고 그 스승의 경지에 이르렀는데도 그것은 완전한 깨달음이 아니였습니다. 그래서 더 이상 내가 배울 사람은 없으니 그 다음 단계는 스스로 증득하는 수밖에 없다고 생각하시고 용맹정진하러 가야 쪽으로 오셨습니다. 그래서 부처님이 이 산위에 올라가서 사방을 주욱 둘러보고 강의 동편 전정각산이 좋겠다 싶어 그곳으로 가서 6년 고행을 하셨습니다. 저 쪽을 한번 보세요. 저곳이 니련선하, 네이란자라강입니다. 저 네이란자라강 동편이 둥게스와리입니다. 둥게스와리는 부정한 곳이라고 해서 사람들이 가지를 않았습니다. 그래서 수행하기에는 아주 좋아보이셨나봐요. 그곳으로 가서 거기서 6년간 용맹 정진을 하셨습니다. 저희들은 이 가야산을 내려가면 이제 둥게스와리로 가게 됩니다.nbspnbsp경전의 기록에는 이 산 위에 올라가서 주위를 둘러보면서 세상 사람들은 욕망을 쫓아서 그것을 충족시켜서 만족을 얻는 쾌락을 추구하고, 또 고행을 한다고 하더라도 궁극적으로는 욕망을 충족시키기 위해서 지금 고행을 하는, 이런 수행을 하고 있다고 보시고 진정으로 욕망으로부터 자유로워지는 해탈을 구하기 위해서 정진하겠다는 결심을 이 산 위에서 하십니다.nbspnbsp그리고 보드가야에서 깨달음을 얻으신 뒤에 바라나시 녹야원에서 야사 등 60명을 교화하고 다시 이곳 가야 근교의 우루벨라 촌으로 오셔서 우루벨라 가섭, 나디 가섭, 가야 가섭 등 가섭 삼형제가 거느리고 있던 1000명의 제자들을 교화를 하게 됩니다. 그 1000명의 비구가 이 자리에 앉아서 부처님의 설법을 들었습니다. 우리가 지금 500명이 앉아 있는데 저 뒤의 남아 있는 공간을 보니 1000명이 다 앉아질까요? 충분히 앉아지겠죠. 이제 증명이 되었어요. nbspnbspnbsp그리고 여기는 그 1000명의 제자들에게 불의 설법을 한 곳으로 유명합니다. ‘마음 속에 질투심이 있고 탐진치 삼독이 있는 한 해탈을 못한다’, ‘외부적으로 제사를 지내는 것으로는 성불할 수 없다’ 고 하면서 부처님은 그들을 깨우쳐 주었어요. 그래서 불을 섬기는 제사 도구를 다 강물에 버리고 1000명의 제자들이 이 산에 모여서 부처님의 불의 설법을 들었어요. “너희들은 밖의 불은 껐다. 그러나 아직 마음 속에 있는 탐진치 삼독의 불은 꺼지지 않았다. 부지런히 수행정진해서 마음 속에 있는 탐진치 삼독의 불을 꺼라” 하는 유명한 설법을 한 곳이 바로 이곳입니다. 자, 이제는 다시 차를 타고 부처님이 6년 고행을 하셨다는 저 강 건너 동편의 언덕 전정각산으로 가도록 하겠습니다.”nbsp설명하시는 스님 곁에 산 아래에서부터 스님을 환영하며 따라오고 또 눈을 반짝이며 스님 옆에 앉아있던 인도 남성분이 계셨는데 이 분이 갑자기 등장하셔서 스님께서 이 분을 소개해 주셨습니다.nbspnbsp“여기 저를 환영하고 따라와서 앉아 계신 이 분은 제가 1991년 인도에 처음 왔을 때 만난 분이세요. 그 때 저는 전정각산을 찾아간다고 갔는데 이곳이었습니다. 그래서 전정각산 다녀왔다고 자랑을 했는데 저녁에 태국절 스님이 제 얘기를 듣더니 “거기는 브람조니이다” 그래요. 그래서 다시 지도를 봤더니 가야산에 갔다 온 거였어요. 그 때 왔을 때 저를 봤다고 지금 아는 체를 하네요. 인도 사람들이 기억력이 참 좋아요.” nbspnbsp스님과 인연이 있는 인도 남성분에게 순례객들 모두 큰 박수를 쳐주었습니다. 법문을 들은 바위보다 약간 아래쪽에 부처님이 앉으셨던 자리라고 해서 네모 모양으로 약간 움푹 패인 바위가 있었습니다. 스님께서는 “부처님이 무슨 철근도 아닌데 이렇게 움푹 패였어요” 하면서 웃자, 순례객들도 삼삼오오 그곳에 가서 앉아도 보고 사진도 찍고 주위를 빙 둘러본 후 산에서 내려왔습니다.nbspnbsp▲ 저 뒤에 바위 위에 순례객이 앉아 있는 곳이 부처님이 앉았다는 움푹 패인 곳.nbspnbsp가야시에서 수자타아카데미가 있는 둥게스와리까지는 11km 정도 떨어져 있습니다. 둥게스와리는 불가촉 천민이 주로 사는 지역이고 여러 가지로 환경이 매우 열악했습니다. 스님께서도 처음에는 이곳을 못 찾아 엉뚱한 마을에 가져갔던 옷가지 등을 나눠주고 오실 정도로 외진 지역인데, 오늘은 아주 잘 포장된 길을 만났습니다. 불과 몇 년 전까지만 해도 도로 사정이 매우 좋지 않았다며 몇 년 전 이곳에 근무했던 장영주 행자님은 무척 놀라워 했습니다. 스님께서는 구걸하며 따라 붙는 아이들에게 돈을 줘 보기도하고 이런 저런 시행착오를 거치시다가 아이들이 구걸하지 않고 지낼 수 있는 방법으로 학교를 지어야겠다고 결심하셨다고 합니다.nbspnbspnbsp가야산에서 내려오는 길에도 구걸하는 사람들이 많았는데, 산 위에서부터 아래까지 끈질기게 따라오며 구걸하는 아이들을 보며 스님께서 왜 둥게스와리에 수자타아카데미를 세우셨는지 그 큰 뜻을 다시 헤아려 보기도 했습니다.nbspnbsp수자타아카데미에 도착하자 순례단 일행을 맞이하기 위해 꽃 목걸이를 손에 들고 길 양 옆으로 학생들이 서서 뜨거운 환영을 해주었습니다. 가장 먼저 스님께서 걸어가자 선생님과 아이들 여러명이 꽃목걸이를 스님께 걸어주고, 맨 앞에 코끼리를 탄 아이는 스님의 머리 위로 꽃잎을 흩뿌리고, 인도 전통악기를 연주하는 학생들은 풍악을 연주하며 환영해 주었습니다.nbspnbspnbsp학생들은 500명의 순례단 모두에게 꽃 목걸이를 걸어주었고, 순례단 모두가 꽃목걸이를 걸어 준 아이들의 손을 각각 잡고 수자타아카데미 교문으로 들어오는데, 그냥 가슴이 뭉클해지고 감동이 절로 일어났습니다. 구걸하던 아이들이 스님께서 세우신 학교를 통해 새로운 삶을 살게 되었고, 이제는 예쁜 교복을 차려입고 이렇게 순례단을 반갑게 환영해주고 있으니 이것이야말로 기적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nbspnbspnbsp학교 안으로 들어와서는 고 설성봉 거사님의 추모비에 아이들로부터 받은 꽃목걸이를 헌화하고 참배를 하였습니다. 이곳 학교 건물을 짓는 봉사활동을 하시다가 도적대가 침입해 쏜 총을 맞고 운명을 달리하신 설성봉 거사님의 뜻을 기리며 삼배를 하면서 지금의 수자타아카데미가 있기까지 수고하신 많은 분들의 노고를 가슴에 깊이 새겨보았습니다. nbspnbspnbsp학교 건물 마당 안으로 들어오니 학교 안은 마치 운동회 날인 듯 꾸며져 있었습니다. 학교의 상급생들은 장시간 달려 온 순례단을 배려해서 짜이와 쿠키를 정성껏 대접해 주었습니다. 순례단을 맞이하는 학생들의 정성을 학교 곳곳에서 느낄 수 있었습니다.nbspnbspnbsp스님께서는 짜이를 마시며 잠시 여유를 갖은 순례단을 위해 수자타아카데미 학교 건물을 각각 소개하고, 오늘 오후 일정과 전정각산에서의 부처님의 행적에 대해서 잠깐 소개해 주셨습니다. 스님의 안내를 듣고 곧바로 전정각산에 올라 유영굴 앞의 넓은 공터에서 예불을 했습니다. 500명의 대중이 가사를 수하고 유영굴을 향해 “지심귀명례”를 우렁차게 부르며 머리 숙여 절을 하니 가슴이 뭉클해지기도 했습니다.nbspnbspnbsp스님께서는 부처님께서 6년 간 고행하실 때의 얘기를 들려 주셨습니다.nbspnbspnbsp“이곳이 부처님이 6년간 고행하셨다고 하는 전정각산입니다. 저기 보이는 흰 건물에 제1유영굴이 있고요. 잠시 후 산에 올라가다보면 오른쪽에 제2유영굴이 있고요. 저 높은 봉우리 밑에 제3유영굴이 있습니다.nbspnbsp부처님은 이곳에서 용맹정진을 하셨는데 대단한 결심을 하셨어요. 경전에 기록에 보면 음식도 나중에 가서는 하루에 대추 한알을 먹다가 3일에 한알을 먹다가 이렇게까지 했어요. 대추 얘기가 많이 나오는데 마을에 가면 자연산으로 풍부한 것은 대추 밖에 없습니다. 제가 여기서 학교를 지을 때도 마을 사람들이 저에게 공양 올리는 것은 대추였어요. 아마 그래서 대추를 드신 것 같아요. 그래서 거의 야생동물처럼 사셨는데, 음식도 제대로 안 먹고 추위도 피하지 않고 더위도 피하지 않고 그렇게 고행을 했어요. 그렇게 극심한 고행을 해서 여러분들이 고행상에서 보듯이 뱃가죽이 등허리에 붙어 있는 지경에 이르게 된 것입니다. 그렇게 6년이나 했는데도 깨닫지를 못했습니다.nbspnbsp그래서 자신의 수행을 다시 되돌아보았습니다. 욕구를 따라가는 것만 욕망을 따르는 것이 아니라 욕구를 억압하는 것도 욕망에 반응하는 것이기 때문에 결국 정반대이지만 근본적으로는 욕구에 대응하는 거였어요. 이것을 발견하시자 밥을 안먹는다든지 잠을 안잔다든지 하는 극단적인 것이 해탈에 도움이 안된다고 보시고 그것을 버리셨어요. 욕구를 따라가는 것도 아니고 욕구를 참는 것도 아니고 욕구를 알아차리고 욕구를 지켜보는 제 3의 길인 ‘중도’를 발견하시고 이 산을 내려가셨어요.”nbsp그리고 부처님의 고행 당시의 정황이 잘 기록된 경전을 함께 독송하고, 또 고행하시던 그 모습을 떠올리며 잠시 명상하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오백명의 대중이 전정각산에서 명상하는 모습이 또한번 장관을 이루었습니다.nbspnbspnbsp8호차부터 13호차까지는 산 중턱에 위치한 유영굴에 참배를 하고 곧바로 숙소로 돌아왔고, 1호차부터 7호차까지는 스님을 따라 전정각산의 능선 위로 올라 둥게스와리 마을 전체의 전경을 조망해보며 해질녘 풍경을 만끽하고 내려왔습니다.nbspnbspnbsp수자타아카데미로 내려온 순례단은 한국에서 준비해 온 반찬과 학교에서 제공해 준 밥과 된장국으로 저녁 식사를 했습니다. 밥과 된장국이 너무 꿀맛이여서 500여명이 먹을 밥을 하느라 수고해준 인도JTS 현지 스탭 분들에 대한 감사를 표현하는 얘기들이 여기저기서 들려왔습니다.nbspnbsp저녁 7시 쁘락보디 홀 대강당에서 저녁 예불을 한 후 지이바카 병원 2층의 컬쳐홀에 모여 개교 21주년을 맞은 수자타아카데미 소개 영상을 보고 현재 이곳에서 생활하며 봉사하고 있는 행자님들을 소개하는 시간이 있었습니다. 모두 20대와 30대 젊은 청년들이었는데, 이 먼곳까지 와서 뜻깊은 일을 하고 있는 모습이 정말 의젓해 보여서 순례객 모두 뜨거운 박수 갈채로 격려를 해주었습니다.nbspnbspnbsp그리고 스님으로부터 수자타아카데미를 세울 당시에 있었던 에피소드와 오늘에 이르기까지의 살아있는 역사들을 듣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nbspnbsp“1994년 1월에 학교가 처음 개교했습니다. 1993년 12월에 제가 이 지역을 처음 방문했고요. 성지순례를 시작하기 전에 먼저 답사를 하러 왔었어요. 강 건너 편에 차를 세우고 여기까지 걸어와서 유영굴 참배를 갔는데, 거기에 많은 사람들이 구걸하고 있었고 특히 아이들이 많았어요. 그래서 아이들이 왜 학교를 가지 않고 아침부터 구걸을 하느냐 물었더니 학교가 없다는 거예요. 학교가 있는데 가난해서 학교를 못가는 것은 이해가 되는데, 이렇게 아이들이 많은데 학교가 없다는 것이 말이 되느냐 싶었어요. 그래서 참배하고 내려와서 밑에 있는 두르가푸르 마을 사람들과 대화를 나누었더니 학교가 있었으면 좋겠다고 그러는 거였어요.nbspnbspnbspnbsp그래서 제가 “내 나라도 아니고 너희 나라이고 내 아이들도 아니고 너희 아이들이니 너희가 땅을 좀 내어놓아라” 그랬어요. 저는 가난한 사람들한테도 보시를 잘 받아요. 여기는 토지 문서를 보면 알지만 폭이 좁고 길쭉하게 땅이 갈라져 있어요. 산쪽에서 아래쪽으로 길게 짤라야 공평하게 쓰이거든요. 왜냐하면 산쪽은 건조하고 내려갈수록 농사를 지을 수 있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그래서 1인당 1가타씩 10명이 보시를 하게 되었습니다. 1가타는 약 45평 정도 됩니다. 그것이 지금 초등학교가 세워진 그 부지입니다.nbspnbsp두 번째는 “건축 재료는 내가 사지만 일은 너희가 해야 될 것 아니냐” 그랬어요. 그래서 학교 지을 때 월급을 안 주었어요. 학부형들이 와서 일하면 식량을 제공해주는 방식으로 봉사를 하자고 제안했어요. 건물을 다 짓고 나서 나중에 공덕비를 세울 때 ‘누가 얼마 돈을 내었다’가 아니라 ‘누가 몇 일을 일했다’ 이렇게 적어주자고 했어요. nbspnbspnbsp이렇게 학교 공사가 시작되었어요. 공사가 진행되는 중에 아이들을 모아서 나무 밑에서 수업을 시작했습니다. 그때는 제가 여기와서 살았습니다. 이 마을에 초등학교 나온 사람이 딱 두 사람 있어서 그 사람을 선생을 시키고, 그 선생 집에 제가 들어가서 살았습니다. 갔더니 염소가 있는 방이 있었는데 염소를 몰고 나가면서 거기에서 저보고 자라고 하더라구요. 나중에 염소는 자기 방에 데려갔어요. nbspnbspnbsp짚 위에 침낭을 깔고 살았는데 몸이 좀 가려와서 침낭을 햇볕에 말릴려고 풀어보니까 안에 회색 벌레가 스무마리가 들어있는 거예요. 그렇게 생활을 했었어요. 그리고 밥 먹을 시간이 되었는데 아빠 가랑이 밑으로 애들이 3명씩 4명씩 들어와 있는 거예요. 서른명 밥을 해서 같이 먹으려고 있는데 밥은 입에 데지도 못하게 되었어요. 가만히 생각해보니까 제가 어릴 때랑 상황이 흡사한 거예요. 그래서 그 날 하루 밥을 세 번인가 네 번인가 했어요. 밥 하다가 하루가 다 갔어요. 그러면서 주민들과 친구가 되었어요. 이렇게 수자타아카데미가 시작된 겁니다.”nbsp스님께서는 이 외에도 교육, 의료, 마을개발 등 각 사업이 시작하게 된 사연과 지금까지의 변화과정을 자세하게 이야기해 주셨습니다.nbspnbsp2시간의 강의를 마치고 어느덧 밤이 깊어 오늘 일정을 모두 마쳤습니다. 선주 법사님의 내일 일정에 대한 공지를 듣고 수자타 아카데미 교실과 기숙사 건물 곳곳으로 흩어져서 잠자리에 들었습니다.nbspnbsp내일은 새벽4시에 기상해서 강당에서 예불을 한 후 새벽5시에 출발해서 보드가야까지 걸어서 이동할 예정입니다. 둥게스와리의 새벽 달빛 아래에 마을을 가로질러 걸으며 부처님이 고행을 마치고 깨달음을 얻기 위해 보리수 나무로 향해 걸으셨던 그 길을 따라 걷습니다. 내일 또 소식을 전해드리겠습니다. nbspnbsp
2015.1.9 인도성지순례 3일째 바라나시
▲ 초전법륜 성지 사르나트nbsp안녕하세요. 오늘은 부처님의 발자취를 따라 성지순례를 출발한지 3일째 되는 날입니다.nbspnbsp덜컹거리는 기차 안에서 한참을 자고 새벽 4시30분에 눈을 떴습니다. 눈을 뜨니 찬바람도 많이 들어오고 바깥은 껌껌한 가운데 안개가 자욱한 느낌이고, 마치 완행 열차를 탄 것처럼 기차는 가다 서다를 반복했고, 역에 설 때 마다 가끔씩 인도 사람들 목소리가 웅성이며 들리곤 했습니다.nbspnbsp▲ 달리는 기차 안에서의 천일결사 기도.nbspnbsp새벽5시 무변심 법사님의 집전으로 송수신기를 통해 천일결사 기도를 시작했습니다. 달리는 새벽 기차 안에서 도반들과 함께 기도하는 느낌은 무척 인상적이였습니다. 기도 중 예불문에서 “오백성” 이라는 문구가 나올 때 스님께서 첫날 오리엔테이션에서 말씀하셨듯 오백 아라한 중 한명이 된 것 같아 가슴이 벅차고 앞으로의 일정에 대한 설레임이 들었습니다.nbspnbspnbsp새벽 예불이 끝나갈 무렵 예상보다 일찍 바라나시 근교의 무갈사라이 역에 도착을 하였습니다. 30분 일찍 도착했다고 합니다. 새벽 5시50분 무렵 사홍서원까지 다하지 못하고 성급하게 짐을 싸서 기차에게 내리기 시작했습니다. 헤드랜턴을 끼고 어깨와 양손에 배낭과 캐리어를 둘러메고 철로 위로 난 육교를 오르락 내리락 하며 땀 범벅이가 되어 겨우 무갈사라이역 밖으로 나올 수 있었습니다. 육교를 오를 때는 짐이 무거워서 곳곳에서 신음소리가 들려왔습니다. 그래도 다행히 바라나시로 들어오는 팀들을 통해 성지순례 물품들은 미리 이동되었기 때문에 예년보다 공용짐이 많이 줄어들어서 비교적 짧은 시간에 짐운반을 모두 마칠 수 있었습니다.nbspnbsp▲ 정토회 성지순례단이 보름 동안 타고 다닐 버스. 총 13대가 줄을 지어 이동합니다. nbspnbsp무갈사라이역을 빠져나오니 큼직한 버스들이 순례단 일행을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버스에 모두 짐을 싣고 6시40분경 바라나시의 강가강으로 향했습니다. 이동 중에 창밖을 보니 소똥을 말리는 시골 풍경도 보이고 캘커타와는 또다른 느낌이었고, 새벽이지만 사람들의 모습은 무척 활기차 보였습니다. 산스크리트 유니버시티 앞에서 하차하여 2인 1조씩 짝을 이루어 30루피 50루피씩 가격 흥정을 하면서 자전거 릭샤를 타고 강가강으로 이동하였습니다. 자전거, 릭샤, 오토바이, 자동차, 소, 개까지 길거리를 지나가고, 차들은 쉴새없이 빵빵 경적을 울렸습니다.nbspnbsp▲ 자전거 릭샤를 타고 강가강으로 향하는 순례객들nbsp스님께서는 오토릭샤를 타고 가장 먼저 강가강에 도착해 순례단이 배를 타는데 문제가 없는지 점검을 하시고 어느 정도 다 왔을 때 스님께서도 순례단과 함께 배를 타셨습니다. 아침녘 노를 젓는 배를 타니 한층 운치가 더했습니다.nbspnbsp▲ 스님의 안내를 송수신기로 들으며 배를 타고 강가강을 느껴봅니다.nbspnbsp스님께서는 강가강을 성스럽게 생각하는 힌두교인들의 문화에 대해 설명을 해주셨습니다. 부처님 당시에도 강가강에서 목욕을 하면 업이 사라진다고 믿었던 사람들이 많았는데, 부처님께서 “만약 그렇다면 강가강에 살고 있는 물고기가 가장 먼저 해탈할 것”이라는 비유를 들려주어 사람들의 무지를 일깨워준 일화를 들려주시기도 했습니다. 그리고 강 반대편에 보이는 모래벌이 우기가 되면 다 물에 잠긴다고 설명해 주셨는데, 정말 바다처럼 보일 것 같았습니다. 왜 인도 사람들이 고통 받는 세상에서 희망의 세상으로 넘어가는 과정을 강을 건넌다는 표현으로 사용했는지 이해가 되었습니다.nbspnbsp▲ 강가강 화장터. 시체를 둘러쌌던 노란색 황금색 천조각들.nbspnbsp배를 타고 화장장이 있는 곳으로 가보았습니다. 아침 일찍이여서 그런지 화장이 이뤄지는 모습은 보지 못했고, 대신 시체가 거의 다 타고 시신을 둘러쌌던 노란색, 황금색 천들이 연기가 자욱한 장작 더미 위로 흩어져 있는 모습을 볼 수 있었습니다. 호화로운 왕궁에서 사셨던 부처님께서 깨달음을 얻은 이후에는 시체를 둘러쌌던 저 노란색 황금색 천을 입고 평생을 사셨다는 말씀을 들으니 고개가 절로 숙여졌습니다. 스님께서 “화장장을 향해 두 손을 모으고 돌아가신 영가의 왕생극락을 위해 해탈주를 하자”고 하셔서 배 위에서 다함께 해탈주 삼독을 하였습니다. 순례객들 중에는 나뭇잎 위에 꽃잎과 촛불을 담아 강 위에 띄우며 소원을 비는 분들도 있었습니다. nbspnbspnbsp배에서 내려 다시 자전거릭샤, 오토릭샤를 삼삼오오 모여서 타고 산스크리트 유니버시티에 앞에 정차한 버스 주변에 도착했습니다. 버스는 오늘 머물 숙소로 각각 향했고, 11시 무렵 숙소에 도착해 어제 바라나시에 먼저 도착한 팀들이 해준 밥에 반찬을 곁들여 조별로 점심식사를 했습니다. 밤새 기차를 타고 달려와서 아침을 제대로 못 먹어서 그런지 밥이 꿀맛이였습니다. 급하게 밥을 먹고 ‘사르나트’로 향했습니다.nbspnbsp사르나트는 부처님께서 다섯 비구에서 처음으로 설법을 하셨던 곳입니다. 불교인들에게는 참으로 역사적인 장소가 아닐 수 없습니다. 부처님이 있었고, 설한 법이 있었고, 법을 전해받은 다섯 비구가 있었기에 그 법이 2600여년이 지난 오늘까지 우리에게 법이 전해진 것입니다.nbspnbsp▲ 스님을 따라 석가모니불 정근을 하며 사르나트 성지로 입장하는 오백 대중nbsp사르나트에 도착한 500여명의 순례단은 성지 입구에서부터 맨 앞에 서 계신 스님을 따라 2줄씩 줄을 맞춰 석가모니불 정근을 하며 일제히 입장하기 시작했습니다. 정근을 하며 탑을 세바퀴 돌고 탑이 잘 보이는 곳에 앉아 간절한 마음으로 사시예불을 올렸습니다. 사시예불 후 스님께서는 순례단 전체를 위해 축원을 해주시고, 이곳 사르나트에서의 부처님의 행적에 대해 자세한 설명을 해주셨습니다. 특히 스님께서 “여기 앉아 계시는 여러분들이 5백성 중 한명이였을지 모릅니다” 라고 하셔서 대중들 모두가 함께 웃었습니다.nbspnbsp“우리가 앉아 있는 이곳이 부처님의 8대 성지 가운데 하나인 또 4대 성지 가운데 하나인 초전법륜 성지입니다. 부처님께서 처음 법 바퀴를 굴리신 곳인 사르나트, 녹야원입니다. 바로 우리가 있는 이곳에서 최초로 부처님의 설법을 듣고 깨달은 다섯 아라한이 출현했습니다. 바로 여기에서 삼보가 성립되었습니다. 스스로 깨달은 이를 ‘붓다’라고 하고, 깨달은 이가 깨닫지 못한 이를 깨닫게 하기 위한 가르침을 ‘담마’라 하고, 깨닫지 못한 이가 깨달은 이의 가르침을 듣고 깨달은 사람을 아라한이라고 하는데 이 분들은 혼자가 아니고 여러명이기 때문에 복수의 의미를 써서 ‘상가’라고 합니다. 이곳에서 붓다, 담마, 상가가 성립했기 때문에 가장 성스럽게 여기는 곳입니다.nbspnbspnbsp우리가 부처님이 태어났다 하지만 사실은 나중에 부처를 이루었기 때문에 부처가 태어났다고 말하지 부처를 이루지 못했으면 태어난 것만으로는 부처가 아니지요. 부처님이 도를 이룬 곳이 보드가야인데 거기야 말로 부처님이 태어난 곳이죠. 그러나 부처님이 설법을 안했으면 우리가 부처님을 모르잖아요. 그러니 중생의 입장에서 부처가 출현한 곳은 어디입니까? 바로 이곳, 사르나트입니다. 우리가 법문을 듣고 우리가 깨달아봐야 붓다를 알 수 있지 않습니까? 그래서 이곳이 불법승 삼보가 성립된 곳이기 때문에 예로부터 성스럽게 여긴 것입니다.nbspnbsp부처님이 열반에 드시고 200년이 지난 후에 인도에서 제일 위대한 성군이였던 아쇼카 왕이 출현했는데, 그분은 인도의 크고 작은 나라들을 통일하고 불법에 귀의를 했습니다. 통일하는 과정에서 수많은 사람들을 죽인 것을 크게 참회하고 불법에 귀의하고나서 부처님의 발자취를 따라가면서 기념탑을 쌓았어요. 이곳에는 부처님이 처음으로 설법한 곳이라고 해서 기념탑을 쌓고 아쇼카 석주를 세웠습니다. 그러나 13세기 이후에는 인도 불교가 다 망해버리고 600년이 지나니까 이곳이 다 정글이 되어버렸어요. 그래서 지금으로부터 130여년 전에 영국 사람이 이 아쇼카 석주를 발견하고 이곳이 부처님이 처음으로 설법한 곳임이 다시 밝혀지고 성지가 복원되기 시작했습니다.nbspnbsp그리고 이곳은 재가신자가 처음으로 출현한 곳이기도 합니다. 그래서 그 뜻을 담아서 여러분들이 이곳에서 계를 받고 가사를 받아서 사미, 즉 예비승이 되는 겁니다. 오늘부터 계를 받으면 이제 여러분들은 ‘꼼짝 마라’ 가 되는 겁니다. nbspnbspnbsp예비승이 되었으니 이제 예불할 때마다 늘 가사를 수하고 수행자로서 8대 성지를 다 순례하고 상카시아에 가서 회향을 하게 되는데, 계속 수행할 사람은 정토회에 남아서 계속 수행을 하면 되고요. 집에 갈 사람은 가사를 반납하고 돌아가면 됩니다. 원래 계율에는 들어오고 나가고를 특별한 범죄만 저지르지 않으면 일곱 번을 할 수 있어요. 그러니까 여러분들은 이제 첫 번째로 한번 들어왔다가 나가는 겁니다. 자, 그런 의미가 있으니까 경전 독송하고 수계식을 하겠습니다.”nbsp그리고 부처님의 초전법륜을 생각하며 숨을 들이쉬고, 내쉬면서 다같이 명상하는 시간도 가졌습니다. 부처님이 머무셨던 이곳에 앉아서 부처님이 처음으로 설법하시던 그 모습을 떠올리니 그냥 눈물이 나올 것만 같기도 했습니다. 또 경전독송을 하면서 이곳에서 있었던 일을 경전을 통해 다시 만나보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이곳 성지에서 경전을 읽으니 마치 부처님이 살아서 다시 우리 곁에 오신 것 같은 느낌도 들었습니다.nbspnbsp그리고 이곳은 처음으로 구리가 장자가 삼귀의 오계 수계를 받은 곳입니다. 그래서 순례단도 그와 같이 이곳에서 삼귀의 오계를 수계 받아 단순한 여행객이 아니라 수행자로써 부처님의 성지를 순례해 가자는 의미를 담아 수계식을 거행하였습니다.nbspnbsp▲ 호궤합장을 하고 보수 법사님 등 법사님들께 연비를 받는 순례객들nbsp법륜 스님을 수계법사로 모시고 호궤합장을 한 채, 향으로 연비를 함으로써 성지순례 참가자들 모두가 부처님의 제자로서 삼귀의 오계를 받았습니다. 참회게를 하며 연비를 받을 때는 그동안 지은 죄를 참회하며 마음이 한결 가벼워지고, 새롭게 태어나는 기분이 들어 많은 분들이 눈시울을 붉히기도 했습니다.nbspnbsp▲ 유수 스님을 비롯한 법사님들께 가사를 받는 순례객들nbsp그리고 노란 가사까지 받아서 수행자로서의 위의까지 잘 갖추었습니다. 가사를 걸친 순례단은 모두들 기뻐하면서 기념사진을 서로 찍어주며 밝게 웃었습니다. 혜초스님께서 부처님의 성지를 순례하기 위해 1년 간이나 배를 타고 인도에 와서 부처님의 성지를 순례했던 그 간절한 마음을 떠올리며 우리도 성지순례기간 동안 수행자로서 하루 하루 생활할 것을 다짐하는 시간이 되었습니다.nbspnbsp수계식을 모두 마치고 가사를 걸친 채 진정으로 수행자의 마음이 되어 석가모니불 정근을 하며 다시 사르나트 탑을 세바퀴 돌았습니다. 노란 가사를 걸친 오백 대중이 줄지어 탑을 도는 모습은 정말 장관이었습니다.nbspnbsp▲ 스님을 따라 부처님이 처음으로 설법한 성지를 거닐어 봅니다.nbsp그리고 사르나트 탑을 배경으로 순례단 오백 대중이 다함께 기념 사진을 찍었습니다. 수행자로 거듭난 순례단의 얼굴에 모두 웃음꽃이 활짝 피었습니다.nbspnbsp▲ 오백 대중이 초전법륜 성지 사르나트 앞에 모였습니다.nbspnbsp그리고 차량별로도 단체 사진을 찍은 후 스님과 함께하는 시간을 모두 마쳤습니다. 이후 신물간다 쿠티와 영불탑 참배는 차량별로 법사님의 안내를 따라 각각 진행되었습니다. 법사님들은 각 차량별로 밀착해서 자세한 설명과 안내를 순례단에게 해주었습니다. 신물간간다 쿠티는 쇠퇴해버린 인도 불교 부흥을 위해 헌신하신 다르마팔라 스님의 사리와 동상이 모셔져 있는 곳인데, 순례객들은 다르마팔라 스님께 존경의 마음을 표하고 나왔습니다. 그리고 영불탑은 다섯 비구가 부처님을 맞이했던 곳에 탑을 세운 것입니다. 굉장히 큰 규모의 탑에 다들 놀랐습니다.nbspnbsp▲ 다섯 비구가 부처님을 맞이했던 곳을 기념해 세운 영불탑nbsp다섯 비구에게 법을 전해주기 위해 먼길을 왔던 부처님은 어떤 마음이었을까 떠올려보며 법사님의 축원을 듣고 우리들도 법을 전하는 역할을 해나가자는 발원도 하면서 영불탑 참배를 마쳤습니다.nbspnbsp오후6시부터는 수라비 호텔 강당에 모여 저녁 만찬을 함께 했습니다. 500여명의 대중이 한자리에 모일 수 있는 식당이 이곳 바라나시에는 없었다고 합니다. 그래서 공사 중인 강당을 한 곳 빌려서 만찬장으로 사용하였습니다.nbspnbsp만찬을 마치고 순례단 전체가 서로 소개하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먼저 가장 먼 곳에서 오신 해외에서 참가한 분들을 스님께서 소개해주셨습니다. 그리고 각 지역별 정토회 참가자들이 각각 자리에서 일어나 소개를 했습니다. 전국 곳곳에서, 그리고 전세계에서 모였음을 서로 얼굴을 보며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nbspnbspnbsp특히 이번 15일 동안 순례단을 안전하게 모셔줄 운전 기사 분들과 조수들을 소개했습니다. 운전 기사 분들을 소개할 때는 정말 강당이 떠나갈 정도의 응원 함성이 터져나왔습니다. 스님과 각 차량 법사님들은 순례단을 안전하게 모셔 주십사 운전기사 분들에게 선물과 수고비를 각각 선물했습니다.nbspnbspnbsp그리고 이번 15일 동안 성지순례를 위해 곳곳에서 수고해줄 스탭들 소개가 있었습니다. 순례단 모두 스탭들에게도 열렬한 박수를 보내주었습니다.nbspnbsp그리고 각 지부별 장기자랑이 이어졌습니다. 지부별로 한명씩 노래를 잘 부르는 사람들이 나와서 마음껏 끼를 발산하고 함께 어우러지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2시간 남짓한 시간이어지만 500명의 순례단 전체가 금새 한 식구가 된 듯이 가까워진 느낌이었습니다.nbspnbsp내일은 부처님이 사르나트에서 전법선언을 하신 후 우루벨라 가섭 등 천이백 대중을 교화하기 위해 가야를 향해 떠나신 그 길을 따라 이동합니다. 새벽부터 버스를 타고 5시간을 이동해 가야산을 비롯해 스님께서 21년 전에 세우신 보드가야 근교의 수자타 아카데미로 가서 부처님이 6년간 고행하신 전정각산 위에도 올라가볼 에정입니다. 내일 또 소식 전하겠습니다. nbspnbsp
2014.1.8 인도성지순례 2일째 캘커타
nbsp안녕하세요. 오늘은 부처님의 발자취를 따라 성지순례를 출발한지 2일째 되는 날입니다. 새벽 5시, 순례단 일행이 머물고 있는 캘커타 세바켄드라 건물의 이방 저방 방마다에서 조그마한 소리로 기도 소리가 울려 나오기 시작합니다. 인도성지순례자들의 아름다운 기도 하모니입니다. 어제 밤 새벽2시에 잠자리에 들어 무척 피곤함에도 인도성지순례자들은 새벽기도로 하루를 시작하였습니다. 어제 방콕에서, 싱가폴에서 자유시간 동안 공항에서 여기저기 바닥에 조그만 깔개를 깔고 기도하던 모습만큼이나 감동입니다.nbsp숙소에는 나무 침대만 덩그러니 놓여 있었는데 순례참가자들은 스님의 오리엔테이션을 듣고 각오를 하고 와서인지 숙소에 대한 만족도가 아주 높았고 의외로 편안한 취침을 하였다고 고마워했습니다. nbspnbsp새벽부터 쁘리앙카를 비롯한 JTS 봉사자들 덕분에 계란후라이가 들어간 샌드위치와 바나나 한조각으로 간단히 아침 요기를 하고, 아침 8시부터 일부 순례단부터 캘커타 칼리사원을 향해 출발했습니다. 또 어제 법륜 스님과 함께 이동하지 못해 방콕 공항에서 스님의 OT를 듣지 못한 분들을 위해 숙소 2층 홀에서는 인도성지순례 OT가 진행되었습니다. 스님께서는 어제 방콕 공항에서 소음이 많은 곳에서 목청껏 2시간 동안이나 열강을 하셔서 무리가 되셨음에도 오늘도 1시간 반 동안 ‘성지순례자의 마음과 자세’에 대해 열정적으로 법문을 해주셨습니다.nbspnbsp▲ 성지순례에 임하는 마음자세에 대해 OT를 해주시고 계신 스님nbspnbsp숙소에서 깔리사원으로 향하면서는 인도에서 세번째로 큰 도시이며 도시 빈민들이 가장 많이 거주하는 캘커타 시를 창밖으로 바라볼 수 있었습니다. 처음 대하게 되는 인도인들의 생활모습과 도시광경을 보면서, 어제 스님께서 던져주신 화두 ‘부처님이 출가하게 된 문제의식’ 부처님의 사문유관을 느껴보았습니다.순례객들은 또한 인도인들의 생활모습을 보면서, ‘왜 사람들은 모두 함께 행복하지 못한 것일까?’ 를 생각해보고 캘커타 방문 목적의 의미를 새겼습니다.nbspnbsp오전9시, 깔리사원에 속해 있는 ‘죽음을 기다리는 집’에 도착했습니다. 이 곳은 마더테레사 수녀님이 예수님의 고통을 잊지않도록 그 정신을 이어받아 인간답게 존중받고 죽음을 맞이할 수 있도록 마련한 보호시설입니다. 1954년 길거리에서 죽어가던 한 여성을 만난 테레사 수녀가 자기 집으로 데려가 침대를 제공한 것이 시초가 되었는데, 지금은 수용인원이 많이 없다고 합니다. 아쉽게도 오늘은 휴일이라 직접 들어가지는 못하고 순례객들의 정성을 모아 보시금만 전하고 ‘감사합니다, 저희들이 이어가겠습니다’ 하는 마음으로 삼배를 올리고 돌아나왔습니다.nbsp이어서 버스탑승 후 순례객들은 국립인도박물관으로 향했습니다. 스님께서는 순례객들보다 30분 일찍 9시30분에 인디안박물관에 도착하셨습니다. 10시부터 입장권 판매가 시작되는데 시간 여유가 있어서 박물관 옆 골목으로 가셔서 쁘리앙카가 사주는 짜이 한잔을 드시면서 쁘리앙카와 인도 사업을 어떻게 할 것인지 가볍게 이야기를 나누셨습니다. 짜이 한잔이 10루피를 했는데, 스님께서는 “20년 전에 처음 왔을 때는 1루피였다”고 하시면서 “한 10년 넘도록 물가가 크게 오르지 않았는데, 최근에 갑자기 껑충 껑충 오른다” 고 이야기 하시니 급변하는 인도사회를 실감할 수 있을 것 같았습니다.nbspnbsp▲ 인도전통차 짜이를 드시며nbspnbsp200년의 역사를 가진 인도박물관에서는 스님께서 직접 불상에 대한 설명을 하셨습니다. 모두들 스님을 다시 만난 반가움에 설명을 하나라도 놓칠세라 귀기울여 들었습니다.nbspnbsp스님께서는 오전 10시부터 순례단을 3팀으로 나뉘어서 30분씩 3차례에 걸쳐 박물관 안내를 해주셨습니다. 불상에 대해 하나하나 상세하고 자상하게 설명해주시는 목소리엔 어제보단 훨씬 힘이 느껴졌습니다.nbspnbsp“지금 보시는 이 석주들은 산치 대탑 같은 큰 수투파를 둘러싼 울타리로 세워져 있었던 것입니다. 여러 가지 문양을 넣어 장식한 조각들이 많지요. 이 조각들은 모두 부처님의 전생 이야기이거나 부처님의 일생에 관계되는 이야기를 표현하고 있습니다. 부처님의 전생 이야기는 547가지가 있습니다. 그러니 이 조각만 보고 우리가 어떤 이야기를 조각한 것이라고 알기가 쉽지 않습니다. 그러나 부처님의 일생에 대한 조각은 금방 알 수 있어요. 여기 있는 조각 같으면 여인이 누워있고 코끼리가 그려져 있는데 마야 부인이 부처님을 잉태하는 태몽을 상징하는 것입니다.nbspnbsp또 이 조각은 수다타 장자가 기원정사를 창건하던 모습입니다. 금괴를 바닦에 깔고 있잖아요.nbspnbsp그리고 초기에는 불상을 그리지 않았어요. 이 조각은 BC 2세기의 작품인데, 불상이 조각되기 시작한 것은 AD 1세기 경이였어요. 알렉산더 대왕이 인도까지 원정을 오게 되면서 그 영향으로 그리스의 조각이 인도로 전해져 AD 1세기 경에 부처님을 아주 사실적으로 묘사하는 조각이 나오기 시작했습니다. 그 전에는 부처님을 사람 모양으로 그리지 않았습니다. 부처님의 발바닥 모양이나 보리수로 부처님을 상징했어요. 자, 여기를 보세요.nbspnbsp▲ 부처님을 상징하는 보리수 문양nbsp이렇게 보리수가 가운데 있고 사람들이 절을 하고 있으면 이것은 부처님을 상징하는 것이라고 이해하시면 돼요.nbsp여기 원숭이가 나무 위를 기어다니는 조각도 있는데 이것은 부처님의 전생이야기입니다. 부처님이 전생에 원숭이 왕으로 태어났을 때 피난을 가야 하는데 나무와 나무 사이가 너무 멀어서 원숭이 왕이 자기 몸으로 나무를 연결해줘서 자기를 밟고 지나가도록 하는 이야기를 조각한 것입니다.nbspnbspnbsp이 불상을 보면 머리가 툭 튀어 올라와 있죠. 한국에서는 수행을 해서 깨달음을 얻으면 정수리가 툭 튀어나온다는 이야기가 있는데 다 이 조각을 보고 만든 얘기예요. 왜 부처님은 보통 사람들과 머리 모양이 다른지 그 원형이 되는 불상이 이 불상입니다.nbspnbspnbsp부처님이 출가하기 전에는 머리를 묶어서 장식을 했거든요. 머리에 장식이 있으면 출가하기 전의 모습을 담은 조각이예요. 그러다가 출가하실 때 왼손으로 머리를 잡고 오른손에 칼을 들고 머리를 잘라버렸어요. 그래서 머리를 묶은 매듭과 머리 위에 잘려진 부위를 조각한 겁니다. 그러다가 매듭을 지은 부위가 조금씩 잘 안보이게 조각이 되다가 나중에는 곱슬머리처럼 동글동글하게 문양을 넣어서 조각을 합니다. 처음에 불상은 이런 모습이였어요.nbspnbspnbsp그리고 부처님의 모습이 굉장히 당당하죠. 우리나라 불상처럼 쭈그러고 앉아 있는 게 아니라 아주 활동적인 모습입니다. 여기 있는 대부분의 불상들이 굉장히 활동적인 모습입니다. 또 밑에서 부처님의 법문을 듣는 모습도 굉장히 호응하는 모습이죠. 초기 불교인들의 이런 당당함과 적극성이 이제는 복원이 되어야 합니다. 시간이 흐르면서 복을 구하는 힌두교와 결합하고 한국에서는 탄압을 받으면서 쭈그리고 있는 모습이 되어간 것입니다.” nbspnbspnbsp스님께서는 이렇게 불상 하나 하나마다 자세한 설명을 해주셨습니다. 초기의 불상은 당당함과 적극성이 있었다고 하니 스님께서도 가만히 앉아 있기만 한 것이 아니라 전세계를 다니시며 종횡무진 하시는 이유가 어렴풋이 헤아려지기도 했습니다. 한시간 정도의 설명 이후 첫 번째 팀은 자유 관람을 하였고, 이어서 두 번째, 세 번째 팀이 박물관 안으로 들어오자 스님께서는 다시 열정적인 설명을 다시 되풀이 하셨습니다. 한팀에 대한 설명이 끝나면 목이 아프셔서 목에 약을 뿌리고, 다시 또 다른 한팀에 대한 설명을 시작하셨습니다. 전혀 지친 기색 없이 처음 설명하듯이 매번 정성껏 하시는 모습을 보니 잔잔한 감동이 일었습니다. nbspnbspnbspnbsp관람을 마치고 박물관을 나와 조별로 자유시간을 가지며 시장 곳곳을 돌아다니며 인도인의 삶 속으로 들어가 재미이고 신기한 체험들을 하였습니다.nbspnbspnbsp스님께서는 박물관 근처 식당에 머무시며 스탭들과 실무를 점검하고 체크하셨습니다. 그리고 쁘리앙카와 함께 시장을 한바퀴 둘러보신 후 하우라역으로 가는 버스에 탑승하셨습니다.nbspnbsp순례객들 또한 부처님께서 깨달음을 얻으신 후 첫 교화를 하신 사르나트로 가기 위해 박물관 앞에서 버스에 탑승하여 하우라 역으로 향했습니다. 박물관 앞에 모인 많은 인원의 순례객들을 태우려다 보니, 거리에는 크락숀 소리가 유난히 더 커지기도 하였습니다.nbsp하우라역은 델리콜카타 선의 출발역인데, 규모와 사람, 복잡함이 어마어마했습니다. 버스 중 한 대에 짐을 실은 뒷문이 열리지 않아 출발시간을 놓칠까봐 걱정되는 상황이 생겼지만, 워낙 인도는 여러 가지 변수가 작용하는 곳이라는 교육을 받아서인지, 아님 여행이 아닌 순례자로서의 마음가짐 덕분인지 어느 누구하나 불평하지 않고 잘 기다려주는 가운데 해결이 되었습니다.nbspnbsp하우라역 안은 기차를 타려는 승객들이 북새통을 이루고 있습니다. 그 가운데 순례객들은 이어폰으로 소통하며. 조 깃발을 따라 놓치지않고 땀을 뻘뻘 흘려가며 차량별로 짐을 모은 후, 짐을 빙 둘러 앉아 오늘 여정에 대한 나누기를 하는 광경 속에서 정토회 순례단이 아니고서는 찾아볼 수 없는 여여함과 부처님 발자취를 따라가는 제자로서의 의젓함을 느껴지기도 했습니다.nbspnbspnbspnbsp수자타 아카데미로 향하는 공용짐이 많아서 남자 순례객들과 청년들이 중심이 되어 미리 기차가 도착하는 플랫폼 위치로 공용짐을 옮겨 놓았습니다. 모두들 땀을 뻘뻘 흘리며 합심해서 하니 한결 수월하게 공용 짐을 모두 옮길 수 있었습니다. 박스 속에는 대부분 수자타아카데미 아이들이 사용할 학용품과 마을주민 지원 사업에 쓰일 생필품들이 담겨 있습니다. 이렇게 순례객들이 수고스럽지만 직접 운반해 줌으로 인해 운송 경비를 절약하게 되고, 그 절약된 경비로 천민마을 아이들에게 더 많은 지원을 해줄 수 있게 됩니다. 그래서 25년 전 처음 성지순례를 시작할 때부터 스님께서는 매년 이렇게 많은 짐들을 순례객들과 함께 가져오고 계십니다.nbspnbsp▲ 바나라시로 가는 도중 가야역에 내릴 수자타아카데미 학교 지원 물품들nbsp짐에 대한 걱정을 덜어서인지 본인의 무거운 짐을 들고 뛰어오는 것도 힘들었을 텐데 표정들이 한층 밝아 보였습니다. 스님께서는 그 복잡한 가운데 기차를 기다리시는 동안 역사 안에서 또 철로 옆에서 쉼없이 원고를 읽고 교정하셨는데, 그 모습을 본 순레단들은 늘 시간을 헛되이 보내시지 않는 그 모습에 한층 고개가 숙여졌습니다.nbspnbsp▲ 기차를 기다리며 원고 교정을 보고 계신 스님nbsp오후 7시30분 기차는 신기하게도 정각에 나타났습니다. 워낙 인도는 기차 출발 예정시간이 자유롭다는 선입견이 있어서인지 순례단들은 환성을 지르며 정각에 나타난 기차를 보고 고마워 했습니다.nbspnbspnbsp기차를 탄 순례객들은 조원들끼리 저녁을 챙겨먹으며 마음나누기를 했는데, 도란도란 하루의 일정을 마무리하는 웃음소리가 기차칸 곳곳으로 번져나갑니다.nbspnbsp▲ 기차를 타고 옹기종기 모여 앉아 마음나누기를 하는 순례객들nbsp내일은 선주 법사님과 함께 델리를 경유하여 바라나시로 오는 팀, 덕생 법사님과 함께 방콕에서 바라니시로 바로 들어오는 팀까지 포함하여 드디어 500명의 순레단이 모두 바라나시에 모이는 날입니다. 초전 법륜성지 사르나트에서 수계식을 하고, 이제 진정으로 부처님의 제자가 되어 부처님의 발자취를 따라 순례의 길을 떠나게 됩니다. 내일은 바라나시에서 또 소식 전해드리겠습니다.nbsp
2015.1.7 인도성지순례 1일째 한국 출발
nbspnbsp안녕하세요. 오늘은 부처님의 발자취를 따라 인도성지순례를 떠나는 첫째날입니다. 법륜 스님과 함께하는 인도성지순례에 참여하기 위해 전국에서 500여명의 대중이 인천공항으로 새벽부터 모이기 시작했습니다.nbspnbsp인도성지순례 스탭들은 새벽 4시에 인도 수자타아카데미에 가지고 갈 짐을 트럭에 싣고 영하 8도의 살을 에는 추위 속에서 인천 국제공항으로 향했습니다. 새벽 5시부터 수하물로 붙일 공용짐을 카운터 앞에 차례로 열을 맞추어 세워두고, 순례객들에게 나눠줄 자료집, 조끼, 송수신기, 여권, 항공권 등을 셋팅했습니다.nbspnbsp오전 6시30분이 되자 많은 순례객들이 인천공항에 도착해 하늘색 JTS조끼로 갈아입고 벌써부터 인도로 가는 설레임에 들뜨기 시작했습니다. 조별로 모여서 조장의 안내를 받고, 조장은 다시 차량 담당 법사님에게 안내를 받으며 조금씩 호흡을 맞춰가기 시작했습니다. nbspnbsp스님께서는 7시 무렵 인천공항에 도착해 출국 수속을 밟고 순례객들과 함께 게이트 안으로 들어가셨습니다. 모두들 “스님이 오셨다” 며 스님을 무척 반겼습니다. 작년부터 정토불교대학생들이 급격히 늘어나면서 성지순례를 가고자 하는 대중들의 수요도 급격히 늘었습니다. 그래서 이번 성지순례는 무려 500여명의 대중들이 함께하게 되었습니다. 대부분 정토불교대학을 다니거나 졸업한 분들이 많이 참석했습니다. 26년 전 처음으로 성지순례를 시작한 이래 가장 많은 인원이 오늘 성지순례를 출발합니다. 500여명의 대중이 함께 한다고 생각하니 부처님께서 열반하시고 오백 대중이 모여서 경전을 결집했다고 하는 모습도 떠오르고, 예불문에 나오는 “영산당시 수불부촉 십대제자 십육성 오백성...” 할 때 “오백성”처럼 오백 아라한이 떠오르기도 합니다. nbspnbsp인원이 500명이다보니 비행기도 한 비행기에 다 타지 못하고 5개의 비행기로 분산해서 인도로 입국하게 되었습니다. 오전9시에는 74명의 순례객이 싱가폴 항공을 타고 캘커타를 향해 출발했고, 오전9시35분에는 170명의 순례객이 타이 항공을 타고 캘커타를 향해 출발했습니다. 오후3시15분에는 케세이퍼시픽 항공을 타고 77명이 캘커타를 향해 출발했습니다. 이렇게 321명은 모두 캘커타로 집결을 했습니다. 또 오후1시50분에는 에어인디아 항공을 타고 113명의 순례객이 델리를 경유해서 바라나시로 들어오고, 밤9시25분에는 타이 항공을 타고 43명의 순례객이 바라나시로 들어옵니다. 인원이 많다 보니 이렇게 분산해서 각각 인도로 입국해서 결국 모레 아침에 바라나시에서 전체 인원이 모두 집결하게 됩니다.nbspnbspnbsp스님께서는 가장 많은 인원이 탑승한 9시35분에 출발하는 타이항공을 함께 타고 순례객들과 함께 하셨습니다. 스님과 함께 타이항공에 탑승한 순례객들은 현지 시간으로 오후1시30분 무렵 방콕 공항에 도착해 캘커타로 가는 비행기를 갈아타기 위해 공항에 머물렀습니다.nbspnbspnbsp방콕 공항에 모인 순례객들을 위해 스님께서는 인도성지순례 일정 전반에 대해 안내하고 순례 기간 동안 지녀야 할 마음 자세에 대해 법문을 해주시는 등 OT 시간을 함께해 주셨습니다. 먼저 삼귀의 반야심경 봉독을 하며 성지순례를 시작하는 첫마음을 청정하게 하는 시간을 가졌습니다.nbspnbspnbsp스님께서는 “안녕하세요. 성지순례 함께 하게 된 것을 진심으로 축하합니다.” 라고 순례객들을 환영해 주셨습니다. 그리고 이번 인도성지순례를 하면서 밖으로는 부처님의 발자취를 따라 성지를 순례하고, 안으로는 생활 속에서 일어나는 마음을 관찰하며 자기를 알아가는 시간이 될 것을 강조하시면서 15박16일 동안 꼭 명심해야 할 내용들을 법문해 주셨습니다.nbspnbsp“지금으로부터 1500년 전 신라시대에 혜초 스님은 불교를 배우러 중국까지 갔다가 거기서 만족하지 못하고 인도의 유명한 나란다 대학까지 가서 공부를 하셨어요. 그 때 쓴 기행문이 왕오천축국전입니다. 그분들이 가셨던 길을 생각해보면 지금 우리가 다니는 것이 힘든다 하지만 힘든 축에도 안들어 갑니다. 3년 걸려서 가야 될 거리를 하루 만에 비행기를 타고 가게 되는 것이고, 인도 안에 도착해서도 정글 속을 걸어다니며 병 걸려 죽고 강도를 만나 죽고 엄청난 희생을 치루어야 할 것을 기차 타고 버스 타고 가게 되는 것입니다. 당시에는 인도 성지순례 가서 안죽고 돌아가는 것은 요행에 속하는 것이였어요. 성지순례는 곧 죽음을 각오한 여행이였습니다.nbspnbspnbsp그래서 여러분들이 순례자의 자세가 되어주셨으면 해요. 여행이 아닙니다. 부처님의 10대 성지순례를 가는 것이기 때문에 고생하러 가는 겁니다. 여행이 아니라고 그렇게 사전설명회에서 얘기해도 자기 혼자 속으로는 여행을 가는 사람이 많아요. nbspnbsp고생을 할 각오를 하고 가면 ‘그래도 이만하면 괜찮네’ 하게 되는데, 여행왔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나중에 후회가 막심해지는 겁니다. 우리가 아무리 못 먹어도 부처님이 하루 한끼 먹은 것보다는 많이 먹죠? 아무리 못 입어도 다 떨어진 옷 입고 맨발로 걸어다니신 부처님보다는 좋은 옷 입고 있죠? 아무리 잠자리가 나빠도 부처님은 나무 밑이나 동굴에서 잤다고 하잖아요. 그래도 우리는 동굴에서는 안재우잖아요. 저도 처음에 성지순례 다닐 때는 침낭 가지고 처마 밑에서 자면서 다녔어요. 그 때는 가스 버너로 밥해 먹는다고 시간을 많이 소비했는데, 지금은 전기 밥솥을 들고 다니면서 밥해 먹는 방식을 개발해서 시간이 많이 절약 되잖아요. 그러니까 ‘순례이다’ 하는 것을 꼭 생각하시고 오늘 출발하셔야 됩니다. nbspnbsp바깥을 보는 풍경보다 더 재미있는 것은 다양한 경계에 부딪힐 때 일어나는 자기 마음을 보는 것입니다. ‘내 성질이 이렇게 더러웠나?’ 하고 처음으로 알게 될 겁니다. 온갖 경계에 들끓는 자기 마음을 구경할 수 있으면 여러분들 입가에 미소가 일거예요. 성질 내면서 웃을 거예요. 그래서 성지순례가 끝나면 ‘이것이 수행이구나’ 하는 것을 알 수 있을 겁니다. 그런데 자기 마음을 놓치고 밖을 시비하기만 하면 성지순례 마치고 한국으로 돌아가면 불교대학을 아마 안 나올 겁니다. nbspnbspnbsp이처럼 밖을 향한 성지순례와 안을 향한 성지순례가 있습니다. 바깥도 다양해서 볼 것이 참 많지만, 그 바깥 경계에 부딪힐 때마다 일어나는 자기 마음의 무궁무진한 변화를 한번 구경해보세요. 그러면 자기를 알게되는 큰 변화를 경험하게 될 것입니다.nbspnbsp순례를 하면서 하나 하나 불평하기 시작하면 끝이 없어요. 길거리에서 밥 먹고, 똥 옆에서 밥 먹고, 아무데서나 자고, 차 타고, 씻지도 제대로 못하고, 불편을 생각하면 끝이 없어요. 그런데 이것을 재미로 생각하면 굉장히 재미있어요. 일생에서 가장 추억에 남을 온갖 에피소드가 생기고 한권의 책이 될만한 재미있는 여행이 돼요. 그리고 자기 마음 속을 잘 들여다보면 ‘내가 이것 밖에 안되나’ 할 정도로 온갖 까르마가 다 일어납니다. 다녀보면 재미있어요. 겉으로는 예의 바른 것 같은데, 같이 지내다보면 밥할 때 밥숟가락만 얹고 가는 사람도 있어서 밉상입니다. 몇일 지나보면 밥하는 사람은 내내 밥만 하고, 밥솥 들고 다니는 사람은 누가 월급 주는 것도 아닌데 혼자서 밥솥만 들고 다닙니다. 숟가락 들고 밥만 먹고 가는 사람은 내내 밥만 먹고 가고요. 이런 모습들을 보면 분별심이 생기겠죠? 이럴 때 이 문제를 짜증을 안내고 어떻게 해결할까, 이것은 중요한 과제가 됩니다. 그렇다고 성질을 내면 성질이 더럽다는 소릴 듣고, 그렇다고 내버려두면 세상이 불공평해지고요. 이런 것이 다 공부거리가 됩니다.nbspnbsp그러니까 여러분들이 여행을 하면서 스님 법문 듣고 경전 독송하고 성지를 순례하는 ‘밖’을 보는 여행이 하나 있고요. 다른 한쪽은 내면에서 일어나는 마음을 관찰하는 ‘안’을 보는 여행이 있습니다. 도반들과 생활하면서 맨날 같은 차 타고 같이 밥 해먹고 다니니까 한 식구와 다름 없습니다. 가족들 빼고는 보름 동안 이렇게 한방에서 같이 자고 밥해 먹고 다닌 적은 없었을 거예요. 싸우는 것도 원래 가족들과 많이 싸우잖아요. 그래서 같은 조 안에서 밉상인 사람이 생깁니다. nbspnbspnbsp이런 문제들을 어떻게 함께 해결해 나갈 것인가? 이것도 우리의 중요한 수행 과제 중의 하나입니다. 그래서 좋은 성지순례는 안팎으로 다 하는 겁니다. 밖으로만 성지순례를 하시면 안됩니다. 볼펜으로 열심히 받아적기만 하지 마시고, 항상 자기 마음을 알아차리고 도반들과의 관계를 바라보면서 역할을 함께 나눠서 해나가는 것이 필요합니다.”nbsp밖을 보는 순레도 좋지만 안을 보는 순례도 해야 한다는 말씀에 앞으로 어떤 마음으로 순례에 임해야 할지 확실히 정리가 되는 느낌이었습니다. ‘보름 동안 정말 즐거운 공부가 되겠구나’ 하고 긍정적인 마음이 되니까 성지순례를 시작하는 마음이 한층 더 가벼워진 느낌입니다.nbspnbsp이어서 인도의 역사와 기후, 사회 문화 환경 등 인도 전반에 대해 지도를 짚어 가시며 자세히 설명을 해주셨습니다. 그런 후 부처님의 생애와 순례객이 찾아갈 10대 성지에 대해서도 개괄적인 안내를 해주셨습니다. 덧붙여 인도는 북쪽으로 올라갈수록 점점 추워지고 또 건기여서 먼지가 많아 감기에 잘 걸리게 되는데, 감기에 걸리지 않게 꼭 조심할 것을 당부해 주셨습니다.nbspnbspnbsp스님께서는 연초부터 무리한 미팅 일정으로 목젖이 많이 부어 있으심에도 불구하고 2시간 동안이나 순례객들을 위해 열강을 해주셨습니다. 참가한 분들도 오랫동안 앉아 있기가 쉽지 않았을텐데 스님과 함께하는 순례여서 그런지 자료집에 열심히 메모를 하며 눈을 반짝이면서 스님의 법문을 경청했습니다.nbspnbsp스님의 법문을 통해 마음이 풍성해진 순례객들은 조별로 모여서 한국에서 싸온 도시락을 같이 나눠먹으며 공항에서 정겨운 시간을 보냈습니다. 서로 자기 소개도 하고 마음 나누기도 하면서 조금씩 마음을 열고 한 식구가 되어갔습니다.nbspnbspnbspnbsp▲ 한국에서 싸온 도시락으로 조별로 저녁식사를 하는 순례객들nbsp이어서 자유시간을 갖고 저녁8시40분에 탑승구에 모여 비행기를 탄 후 밤12시에 캘커타 공항에 도착했습니다. 공항에 내리자마자 매연의 매케한 냄새가 나면서 ‘이곳이 인도이구나’ 하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공항에는 인도JTS의 현지 활동가 최동호, 권도영, 김정준님이 트럭과 버스를 준비해서 마중을 나와 공용짐은 트럭에 싣고, 버스에는 개인짐을 실어서 숙소로 향했습니다.nbsp▲ 순례객들을 마중나온 현지 스탭 최동호님과 김정준님nbsp한편 싱가폴을 경유하여 캘커타로 온 11,13호차 순례단 70여명은 유수스님, 일륜광 행자님이 안내하였습니다. 전체 순례자들 중 가장 빨리 인도에 입국한 이 그룹은 싱가폴 공항에서 유수스님을 모시고 인도순례일정 및 순례 목적에 대한 오리엔테이션 시간을 가졌습니다. 유수스님은 “순례 중에 일어나는 마음을 잘 살펴 자기와의 여행을 하는 것이 가장 핵심”이라 하시며 특히 “13호차가 뒤에 쳐지는 사람들을 챙기는 역할을 맡게 되어 다른 어느 조보다 입이 많이 나올 것”이라며 “그러나 누군가는 해야할 일이니 불편함을 감수하자” 하셨습니다. 그리고 수신기 착용을 강조하시며 “법륜스님은 이어폰을 타고 우리에게 오신다”고 농담을 하시자 모두들 크게 웃었습니다. 일행은 캘커타에서 법륜 스님과 함께 타이 항공을 타고 온 본대와 합류해 인도에서의 첫 밤을 함께 보냈습니다. nbspnbsp또 한편, 순례단 80여명은 묘덕법사님과 불국화 행자님의 안내로 홍콩을 경유하여 캘커타 공항에 본대보다 조금 늦게 도착해서 함께 합류했습니다.nbspnbsp▲ 캘커타 공항에 도착한 성지순례객들nbsp오늘 캘커타에 도착한 321명의 순례객이 머물 숙소는 천주교에서 운영하는 교육 시설 ‘세바 켄드라’입니다. 숙소에 도착하니 새벽 1시가 되었습니다. 먼 길을 달려온 여로를 풀고 잠자리에 듭니다.nbspnbsp▲ 인도성지순례 첫날 숙소, 세바 켄드라nbsp내일은 캘커타에서 깔리가트 사원과 죽음을 기다리는 집을 보고 인디안 박물관을 관람한 후 하우라역에서 기차를 타고 밤새 바라나시 근교의 무갈사라이 역으로 이동할 계획입니다. 캘커타의 도심 속을 이동하면서 과거와 현재가 공존하는 인도를 느껴보는 시간이 될 것 같습니다. 내일 또 소식 전해드리겠습니다.nbsp
2015.1.5~6 평화재단 미팅 및 성지순례 점검회의
nbsp안녕하세요. 어제와 오늘 소식을 함께 전해 드립니다. 어제 스님께서는 두북에서 하룻밤을 주무시고 오전에는 원고 교정을 보시며 휴식을 하셨습니다. 연초부터 미팅을 연이어 하시고 지역으로 장거리 이동을 하시느라 몸이 많이 지치셔서 목이 붓고 온몸에 몸살 기운이 있으셨습니다. 오전에는 두북에서 휴식을 취하시고, 오전10시30분에 두북을 출발하셔서 서울에 오후3시에 도착하셨습니다. 서울에 도착하시자마자 건강이 계속 안좋으셔서 곧바로 이비인후과에 가셔서 진료를 받으시고 의사선생님의 배려로 영양제를 맞으셨습니다. 진료 후에는 서울 정토회관에 머무시면서 휴식 겸 원고 교정과 업무를 보셨습니다.nbspnbsp오늘은 평화재단에서 하루종일 찾아오시는 손님들과 미팅을 하시고, 인도성지순례 출국 전 업무를 점검하는 회의를 실무자들과 함께 하셨습니다.nbsp오전 10시에는 법사단 및 인도성지순례 스텝들과 성지순례 실무 준비사항 중 다시 점검해야 할 사항들을 함께 체크하시고 의논하는 시간을 가지셨습니다. 특히 법사단은 성지순례 중 서로 어떻게 역할 배분을 하며 전체를 진행해갈지 꼼꼼히 큐시트를 함께 점검하는 시간을 가졌고, 스님께서는 큰 틀에서 우려되는 점들을 한번 더 점검해 주셨습니다.nbspnbsp▲ 인도성지순례 준비 점검회의nbspnbsp12시에는 참여연대 이태호 사무처장님과 우리민족서로돕기 강영식 사무총장님이 스님께 새해 인사를 하러 찾아오셨습니다. 스님께서는 최근 시민사회 운동이 어떻게 진행되고 있는지 이야기를 들으시고 시민사회 운동이 더 발전하기 위해서 새해에는 어떤 일을 하면 좋을지 조언을 해주셨습니다. 또 대북 인도적 지원 현황을 들으시고는 새해에는 지원이 원활이 이루어지도록 ‘민족의 화해와 평화를 위한 종교인 모임’에서 함께 노력하기로 했다면서 격려를 해주셨습니다.nbspnbsp▲ 참여연대 이태호 사무처장 미팅nbsp2시에는 도문시 전임 종교국 국장이셨고 현재는 도문시 두만강문화발전촉진회 회장을 맡고 계신 김학길 선생님이 오셔서 한국에 들어오셔서 스님을 찾아와 새해 인사를 하고 안부를 나누셨습니다. 김학길 선생님은 스님께서 매년 8월에 동북아 역사기행을 가실 때 숙소와 식당을 손수 예약해주시고, 스님 일행을 항상 정성껏 맞이해 주고 계신 분입니다. 특히 조선족 사람들의 문화와 전통을 보존하기 위한 다양한 활동을 지역 사회에서 하고 계십니다.nbspnbsp▲ 김학길 도문시 두만강문화발전촉진회 회장님 방문nbsp오후 3시30분에는 법사단과 다시 미팅을 갖고 인도성지순례 실무 준비 관련해서 미진한 부분을 더 점검하시고, 정토회 사업 전반에 대해서도 의논하고 회의하는 시간을 가지셨습니다.nbspnbsp▲ 정토회 법사단 회의nbsp오후 4시30분에는 평화재단 실무자들과 함께 2015년 평화재단 사업계획과 인사 이동에 대해 점검하고 의논하는 시간을 가지셨습니다.nbspnbsp이 외에도 이렇게 오늘 스님께서는 여러차례 미팅을 하시면서 바쁜 하루를 보내셨습니다. 인도성지순례를 내일 떠나시면 장기간 해외에 체류하시기 때문에 미리 의논하고 처리해야 할 일이 많아서 정토회관에 들어오셔서도 밤늦게까지 업무를 더 보시고, 인도성지순례에 챙겨갈 짐을 싸신 후 오늘 일정을 마치셨습니다.nbsp내일부터는 인도성지순례가 시작됩니다. 500여명의 대중들이 부처님의 가신 길을 따라 인도 전역을 14박15일 동안 순례를 하게 됩니다. 인천공항을 출발하는 순간부터 순례가 끝나는 순간까지 생생한 소식을 매일 전해 드리겠습니다. 부처님께서 태어나시고, 도를 이루시고, 전법을 하시고, 열반하신 인도로 가서 다시 찾아뵙겠습니다.nbsp
2015.1.4 지역 일정 및 김제동 콘서트 관람
nbsp안녕하세요. 오늘 스님께서는 오전에는 울산시 언양읍과 오후에는 광주에서 일정을 가지시기로 했습니다.nbspnbsp새벽 4시에 서울 정토회관을 출발하여 울산시 언양읍으로 부지런히 차를 타고 달려가셨습니다. 아침 8시부터 언양에 살고 계신 속가 누님의 생신에 참석하시기 위해서입니다. 누님께서는 두북 정토수련원에 자주 오셔서 농사일에 많은 도움을 주고 계시기도 합니다. 이제 연세가 많으시고 암투병을 하고 계셔서 앞으로 자주 뵐 수 없겠다 싶으셔서 스님께서는 오늘은 특별히 시간을 내셔서 함께 시간을 보내셨습니다.nbspnbsp오전 8시에 누님 집에 도착하니 형제들과 가족 분들이 오순도순 함께 모여서 아침 일찍부터 정성껏 생신상을 차리고 계셨습니다. 케익에 촛불을 켜고 축하 노래를 불러드리고 기념 사진을 함께 찍었습니다.nbspnbspnbsp누님께서는 “바쁘신 스님께서 오셨다”고 너무나 기뻐하시면서 연신 웃음을 감출 줄 몰라 하셨습니다. 스님께서는 직접 사인하신 새책 lt지금 여기 깨어있기gt와 희망편지가 담긴 lt정토회 2015년 달력gt을 함께 자리한 가족분들 모두에게 나눠주셨습니다. 그리고 오랜만에 가족 분들과 함께 아침식사도 하시고 정겹게 이야기도 나누셨습니다.nbsp어제까지 너무 무리한 일정을 소화하시고 오늘도 새벽부터 장시간 차를 타고 오셔서 몸이 많이 아프셨는데, 누님 집에서 잠깐 휴식을 취하시다가 12시에 점심식사를 하신 후 12시 30분에 광주로 출발하셨습니다.nbspnbsp언양읍을 출발하여 광주에는 오후4시에 도착했습니다. 북구 운암동에 위치한 광주문화예술회관의 내빈실에서 윤장현 광주시장님을 만나 함께 이야기 나누는 시간을 가지셨습니다. 시장님은 스님의 두 손을 꼭 잡으시면서 새해 인사와 더불어 세계 100회 강연을 무사히 마치고 오신 노고에 대해 감사의 마음을 전하셨습니다. 특히 시장님은 작년 6월에 당선이 되신 이후 열심히 시정 활동을 해오고 계신데 스님께서는 그동안 어려웠던 점을 얘기 들으시고 조언도 해주시고 격려도 해주셨습니다.nbspnbsp▲ 새해 인사를 하러 오신nbsp윤장현 광주시장님nbsp시장님 사모님께서도 함께 오셔서 내일 모레 스님께서 인도 성지순례를 떠나시는데 성지순례 다니시면서 드시라고 직접 만들어오신 생강차와 견과류를 선물해 주셨습니다. 스님께서도 새책 lt지금 여기 깨어있기gt에 사인을 하셔서 시장님 부부에게 선물하고 함께 기념사진을 찍으셨습니다.nbspnbspnbsp오후5시부터는 같은 건물인 광주문화예술회관에서 김제동 토크콘서트 ‘노브레이크 시즌6’을 함께 관람하셨습니다. 김제동씨는 매년 연말에 스님을 콘서트에 초대했는데, 작년에는 세계 100회 강연을 다니시느라 시간을 못내셨다가 새해를 맞이하여 오늘 콘서트에 오시게 되었습니다.nbspnbsp오후 5시에 시작한 공연은 무려 3시간 동안 관중들을 웃음 바다에 빠트렸습니다. 스님께서 응원 방문을 해주신 덕분에 더욱 기를 받았는지 아니면 1년 사이에 더 실력이 일취월장 했는지 아무튼 관중들이 넋을 잃을 정도로 웃음과 눈물을 넘나들며 멋진 공연을 보여주었습니다.nbspnbsp▲ 김제동 토크콘서트nbsp공연 중간에 관중들의 고민과 하소연을 미리 쪽지로 받아 놓았다가 그 고민을 상담해주는 시간이 있었는데 “법륜 스님이 이 자리에 오셔서 답변을 하기가 사실 부담이 좀 된다”고 너스레를 떨면서도 재미있고 위트있는 답변을 해주어서 관중들의 큰 공감을 자아내고 박수갈채를 받았습니다. 그리고 토크하는 시간을 마치면서 김제동씨가 즉석에서 스님께 새해 덕담을 요청해서 스님께서는 관중들에게 “새해에는 욕심내지 말고 오늘처럼 웃으면서 사세요” 라고 덕담을 해주시기도 했습니다.nbspnbsp▲ 김제동 콘서트에 오신 관중들에게 새해 덕담을 해주고 계신 스님nbspnbsp3시간 동안의 콘서트를 마치면서 마지막으로 김제동씨는 “권력의 편에 서는 마이크가 아니라 힘 없는 서민들의 목소리가 되어주는 마이크를 잡겠다” 면서 “그럴 수 있게 많이 도와달라”고 해 관중들의 뜨거운 기립박수를 받았습니다. 박수갈채는 김제동씨가 무대에서 완전히 사라질 때까지 멈추지 않고 계속되었습니다.nbspnbsp공연을 마치고 광주 트라우마 센터에서 5.18 피해자 가족분들도 공연에 함께 초대받아 오셔서 함께 인사하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가족분들은 “김제동씨 공연도 무척 감동이었고, 또 스님을 직접 뵙게 되어서 너무나 좋다”며 같이 사진을 찍자고 하셔서 함께 사진도 찍었습니다.nbspnbsp▲ 광주 트라우마 센터에서 오신 5.18 피해자 가족분들과 함께nbsp그리고 스님께서는 출연자 대기실로 가셔서 김제동씨를 응원 방문하셨습니다. 김제동씨에게 “요즘 청년들이 많이 힘들어하니까 청년들에게 희망을 줄 수 있는 콘서트를 하자”고 하셨고, 김제동씨는 “예, 함께 해야죠” 하며 흔쾌히 대답을 했습니다.nbspnbsp▲ 김제동씨 응원 방문nbsp김제동씨는 스님께 “이렇게 광주까지 와주셔서 감사하다”고 인사를 했고, 스님께서는 새책 lt지금 여기 깨어있기gt를 사인해서 선물하고 함께 기념사진을 찍으셨습니다.nbsp▲ 새책 lt지금 여기 깨어있기gt 선물nbsp저녁 8시30분에 콘서트장을 나와서 다시 두북으로 향했습니다. 부지런히 차를 타고 달려 밤12시30분에 두북에 도착했습니다. 스님께서는 건강이 점점 안좋아지셔서 목젖이 붓고 몸을 가누기 힘드실 정도로 아파 보이셨습니다. 방에 불을 데피고 일단 푹 쉬시기로 하고 오늘 일정을 모두 마치셨습니다. 곧 모레부터 인도 성지순례를 비롯하여 해외 일정이 계속 있으신데 스님의 건강이 많이 염려가 됩니다.nbspnbsp내일은 서울로 올라가셔서 인도 성지순례를 떠나시기 전에 처리해야 할 업무들을 보실 예정입니다.nbsp
2015.1.3 평화재단 사회인사 미팅
nbsp안녕하세요. 오늘 스님께서는 인도성지순례를 떠나시기 전에 평화재단에서 하루종일 사회인사들과 미팅을 갖고 대화를 나누셨습니다. 오늘 하루만 총 6건의 미팅을 연이어 하셨습니다.nbspnbsp오전 7시에는 민족의 화해와 평화를 위한 종교인 모임이 평화재단 세미나실에서 있었습니다. 김명혁 목사님, 김홍진 신부님, 박종화 목사님, 인명진 목사님과 함께 최근 한국 사회 현안에 대해 많은 이야기를 나누셨습니다. 특히 최근에는 우리 사회 곳곳에서 갈등이 깊어지고 있는데 새해에는 공론의 장을 많이 마련해서 서로의 입장을 이해하고 타협하고 조율하는 역할을 해나가는 것이 필요하다고 의견을 모으기도 했습니다.nbspnbsp▲ 민족의 화해와 평화를 위한 종교인 모임nbspnbsp오전 10시에는 평화재단 지도위원이신 윤여준 전 환경부 장관님과 세계 100회 강연을 다녀오신 소감을 나누며 새해 인사를 나누셨습니다.nbspnbsp12시에는 영화 ‘최종병기 활’과 ‘명량’ 등 역사물을 제작해 흥행을 이끌어낸 감독으로 유명한 김한민 감독님이 평화재단을 찾아와서 스님과 점심 식사를 함께 하고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김한민 감독님은 스님의 책 ‘새로운 백년’을 읽고 많은 감명을 받았다고 합니다. 앞으로도 북한 문제, 역사 문제, 통일 문제에 대한 문화예술 활동을 계속 해나가고 싶은 구상이 있는데 이 분야에 많은 지혜를 갖고 계신 스님을 꼭 찾아 뵙고 싶었다고 합니다.nbspnbsp▲ 영화 ‘명량’의 김한민 감독nbsp특히 김 감독님이 올 가을에 개봉하는 것을 목표로 봉오동 전투를 소재로 한 영화를 제작 중에 있다고 하셔서 스님께서는 독립운동의 역사에서 우리들이 간과하고 있는 점들을 짚어주시고, 앞으로 통일 한국이 되면 문화예술계에 미칠 긍정적인 영향까지 방대한 이야기를 들려주셨습니다.nbspnbsp감독님은 스님의 말씀을 경청하고 난 후 “스님의 정신적인 바이러스가 저한테까지 영향을 미쳐서 상승작용을 주고 있어 앞으로 더 좋은 영화들을 많이 만들게 될 것 같다” 면서 스님께 감사해 했습니다. 스님께서도 새로 나온 책 lt지금 여기 깨어있기gt를 김 감독님에게 선물하고 오늘 평화재단까지 찾아와 주신 것에 대해 고마운 마음을 전했습니다.nbspnbsp평화재단 실무자들 중에서도 지난 여름에 영화 ‘명량’을 보고 감독님을 좋아하게 된 분들이 많아졌는데, 스님과 미팅을 마치고 나가시는 길에 평화재단 실무자들과도 함께 기념사진을 찍었습니다. 역사에 대한 조예가 깊으시고 통일에 대한 관심도 많이 있으셔서 앞으로 평화재단과도 더 깊은 인연이 이어질 것 같다는 기대감이 들었습니다.nbspnbsp▲ 김한민 감독, 평화재단 실무자들과 함께nbspnbsp오후 2시에는 평화연구원 김형기 원장님과 평화교육원 조민 원장님, 평화재단 지도위원 윤여준 전 장관님과 함께 평화재단 2015년 사업방향에 대해 회의를 함께 하셨습니다. 올해 1년 동안 어떤 활동을 전개해서 통일을 향한 한국사회의 변화를 추동할 것인지 많은 이야기를 나누셨습니다.nbspnbsp▲ 조민 원장님, 김형기 원장님, 윤여준 전 장관님과 함께 회의nbsp오후 4시에는 국제한민족재단 상임의장이시면서 상트페테르부르그 국립대학 석좌교수인 이창주 교수님이 찾아오셔서 올해 6월24일26일 영국 런던과 프랑스 파리에서 열리는 세계 한민족포럼 행사에 스님께 기조 발제를 요청하고 행사와 관련해서 조언을 구했습니다. 그리고 올해가 한러 수교 25주년인데 10월30일 모스크바에서 있을 기념행사에 참석해 주실 것을 요청하면서 준비하고 있는 행사에 대해 함께 이야기를 나누셨습니다.nbspnbsp▲ 국제한민족재단 이창주 교수님nbsp오후 6시에는 김두관 전 경남도지사님이 스님께 새해인사를 하러 찾아오셔서 함께 저녁식사를 하면서 여러 가지 이야기들을 함께 나누셨습니다. 스님께서는 김 전 지사님에게 새책 lt지금 여기 깨어있기gt를 선물하셨습니다.nbspnbsp▲ 김두관 전 경남도지사님nbspnbsp미팅 일정을 모두 마치고 나니 밤9시30분이 넘었습니다. 오늘 하루만 총 6건의 미팅 일정을 소화하시느라 스님께서는 많이 피곤해 보이셨습니다. 명상수련 때 건강을 많이 회복하셨는데 새해 들어 연일 무리한 일정이 계속되다 보니 다시 몸에 무리가 간 것 같습니다. 그래서 정토회관으로 들어오셔서 곧바로 휴식을 취하셨습니다.nbspnbsp내일은 새벽 일찍 두북으로 내려가시는 등 모레까지 지방에서 계속 일정을 가지실 예정입니다. nbsp nbspnbsp
2015.1.2 정토회 시무식
nbsp안녕하세요. 오늘은 2015년 정토회 시무식이 있는 날입니다.nbspnbsp스님께서는 아침부터 원교 교정 업무 등을 보시다가 오전 10시부터 정토회관 1층 법당에서 진행된 2015년 정토회 시무식 행사에 참여하셨습니다. 오늘 시무식에는 정토회 행정처와 서울, 경기, 인천 지역의 자원활동가, 서울 공동체 대중 등 150여명이 참석한 가운데 8차 천일결사의 두 번째 해인 2015년의 힘찬 출발을 위한 결의를 다지는 시간이 되었습니다.nbspnbsp먼저 삼귀의 반야심경을 함께 봉독하고, 정토회 대표 이기혜님이 앞으로 나와 인사말씀을 해주었습니다. 대표님이 “2015년은 우리가 함께 힘을 모으면 정토회가 또 한번 도약하고 세상 속으로 나아가는 초석을 마련하는 해가 될 것”이라고 하자 자원활동가들 모두 힘찬 공감의 박수를 보냈습니다. nbspnbsp▲ 인사말씀을 해주시는 정토회 이기혜 대표님nbspnbsp이어서 대중들이 스님께 2015년 새해 첫 법문을 청하자, 스님께서는 새해를 어떤 마음으로 보내면 좋을지 소중한 법문을 해주셨습니다.nbspnbsp“안녕하세요. 정토행자 여러분들께 새해 인사를 드립니다. 새해에는 다들 건강하시고 행복하시기 바랍니다. 지난 2014년 한해 동안 모두들 수고 많이 하셨습니다. 감사드립니다. 그리고 2015년 새해가 시작되었습니다. 새해에도 부지런히 수행정진하셔서 행복하시기 바랍니다. 또 올해는 여러분들이 세운 서원을 성취하기 위해서 마음껏 일해보는 한해가 되길 바랍니다. 연말이 되어서 되돌아봤을 때 ‘아이고, 원없이 한번 일해봤다’ 는 자기 만족감이 들 수 있을 만큼 한껏 일해보는 한해가 되시길 바랍니다.nbspnbspnbsp정토행자들은 여러 가지 사회활동을 하지만, 항상 명심해야 될 것은 우리는 수행자라는 점입니다. 수행자들이 모여서 세상을 좀 더 아름답게 만드는 일을 한다는 점을 결코 잊어서는 안됩니다. 수행자는 자기가 행복한 사람입니다. 세상에 무슨 일이 일어나든 늘 자기 인생의 주인이 되어서 자기 삶을 오롯이 살아가야 됩니다. 그래서 내일 무슨 일이 일어난다 하더라도 자기 삶을 돌아보며 후회하는 그런 삶을 살아서는 안됩니다. 갑자기 병이 나서 병원에 갔더니 중병이라고 선고 받았을 때 얼굴이 노랗게 변하게 되고 그러면 안돼요. 빙긋이 웃어야 돼요. ‘아, 수행자는 이런 사람이구나’ 하고 의사가 놀랄 정도로요. 사고가 나서 다리가 하나 부러져도 육체적 통증 때문에는 아프더라도 ‘아이고, 그래도 다른 다리가 안부러져서 다행이다’ 이렇게 받아들일 정도가 되어야 합니다. 내일 죽는다 하더라도 빙긋이 웃으면서 죽을 수 있도록 삶이 준비되어야 합니다. 그래야 수행자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nbspnbsp욕심을 내어서 움켜쥐려고 하기 보다는 어려운 사람들과 나눠갖는 것을 더 소중히 여길 줄 알아야 되고, 자기 뜻대로 안된다고 성질을 내기 보다는 그 때 돌이켜서 자비롭게 말할 수 있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nbspnbsp사람마다 다 원하는 것이 있는데 원하는 것이 다 이루어질 수가 없는 것이 이 세상이예요. 그래서 늘 욕구 불만이 생기는 겁니다. 동시에 세상 사람들이 나에게 요구하는 것을 내가 다 해줄 수도 없는 거예요. 그래서 늘 비난이 있을 수 밖에 없습니다. 그런데 그 비난 때문에 괴로워하면 늘 괴롭게 살아야 되고, 내 욕구가 다 성취되어야 행복하다면 다 성취될 수 없기 때문에 늘 괴롭게 살 수 밖에 없습니다. 원하는 것이 이루어지면 다행이지만 원하는 것이 이뤄지지 않아도 괜찮아야 됩니다. 꼭 이루고 싶으면 더 연구하고 다시 도전해서 이루도록 하면 되고, 그것이 이뤄질 수 없는 것이라면 포기하면 됩니다. 또 다른 사람들이 나에게 원하는 것을 내가 할 수 있다면 하고, 할 수 없으면 “미안합니다” 하면 됩니다. 그런데 해주었다고 칭찬할 때 너무 들뜨면 안되고, 해주지 못해서 비난이 오더라도 그것을 갖고 가슴에 새겨서도 안됩니다. 그것으로 인해 자꾸 미안해지고 죄의식이 들면 자기 행복에 장애가 됩니다. 해줄 수 있는 만큼 해주는 것이 중요하지 해주지 못하는 것을 늘 움켜쥐고 죄의식을 가지면 현실적으로도 아무 도움이 안됩니다. 이렇게 새해에는 조금 더 소탈한 삶을 살아가시기 바라고, 겸손하되 당당한 수행자로서의 자세를 가져주시기 바랍니다. nbspnbspnbsp그리고 우리는 수행자인 동시에 이 세상 사람들에게 조금이라도 보탬이 되는 사람이 되자는 보살의 서원을 갖고 있잖아요. 이 좋은 법을 나만이 간직할 것이 아니라 주위 사람들에게 많이 전해서 그분들도 나처럼 인생을 당당하고 행복하게 살아갈 수 있도록 인연을 맺어주셔야 합니다. 법회에 동참도 시키고, 불교대학에 입학도 시키고, 깨달음의장에도 보내주고, 천일결사에도 입재 시키고, 또 요즘에는 온라인 활동이 많은 영향을 주니까 희망편지 앱도 선물하고, 카카오스토리도 보도록 소개하고, 유튜브와 팟캐스트로 즉문즉설을 시청할 수 있게 하고, 책도 읽도록 하는 일들도 해야 합니다.nbspnbsp그리고 정토회를 넘어서서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세상이 지난 한해 동안 여러 어려움들을 많이 겪었습니다. 세월호 침몰 사고로 인해서 희생된 분들은 말할 것도 없고 슬픔에 겨워하고 있는 유가족들, 이를 지켜보는 국민들까지도 침울한 한해를 보냈습니다. 사건은 어쩔 수 없었다 하더라도 진상규명이나 사후 수습이 국민 화합에 의해서 원만하게 이뤄졌으면 그 슬픔을 딛고 희망을 가졌을텐데 그것마저도 제대로 안되어서 많은 분들이 대한민국 국민이라는 것을 부끄럽게 느끼고 가슴 아파하는 모습을 보게 되었습니다. 또 남북관계도 진전이 없어서 지난 한해 동안 북한에 지원을 하나도 못했습니다. 고아원과 양로원에 의복이 없고 병이 걸려도 약이 없다는 가슴 아픈 소식이 늘 들려오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아무런 활동도 못하고 지원도 못했습니다.nbspnbsp새해에는 우리 국민들이 이런 아픔을 가지고 침울하게만 있게 하기 보다는 하나 하나 해결되어가는 희망을 우리가 만들어가야 되겠습니다. 우리 정토행자들도 뭔가 작은 기여라도 하면 좋겠습니다. 세월호 진상규명위원회가 출범하게 되는데 싸움판이 되지 말고 화합해서 밝힐 것은 밝혀 나가는, 그래서 죽은 사람을 살려내지는 못하더라도 유가족들의 한이라도 좀 풀어줄 수 있는 그런 일들이 이뤄지기를 바랍니다. 여기에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이 있다면 작은 힘이라도 보태면 좋겠습니다.nbspnbsp또 지난 한해는 남북 간에 전쟁만 안 일어나면 좋겠다고 할 정도로 갈등이 심했는데, 새해에는 남북관계도 해빙이 되어서 서로 대화도 하고 교류도 하고 지원도 하고 이산가족도 만나는 그런 새해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특히 올해는 광복 70년인 동시에 분단 70년이 됩니다. 너무 오랫동안 분단이 되어 있었습니다. 아주 어릴 때 헤어진 부모 형제를 지금껏 얼굴 한번 보지도 못하고 이제 나이가 칠십 팔십이 되어서 돌아가실 수 밖에 없는 이 현실은 이루 말할 수 없는 아픔이고 역사의 한입니다. 그래서 아직 살아있는 다만 몇 명이라도 죽기 전에 가족도 만나고 통일의 희망을 가질 수 있는 그런 일을 우리가 만들어봅시다.nbspnbsp또 북한에 있는 어려운 사람들에게도 희망을 줍시다. 남북관계가 좋아진 후에 우리가 지원을 한다면 그게 무슨 의미가 있겠어요? 서로 미워하고 적대하는 가운데서도 어려움에 처해있을 때는 돕는 것, 이것이 인간 승리라고 말할 수 있는 것 아니겠어요? 그러니 남북관계가 우리 뜻대로 풀리지 않는다 하더라도 새해에는 우리가 북한에 있는 어려운 사람들에게 작은 도움이라도 될 수 있는 그런 일을 한번 해나가봅시다.nbspnbspnbsp또 국민들이 희망을 갖지 못하고 살아가고 있습니다. 경제적으로는 먹고 살만 하지만 양극화 현상이 심해서 상대적 빈곤감이 너무 큽니다. 또 청년들이 일자리를 찾지 못해서 힘들어 하고 있고요. 20대와 30대의 사망원인 1위가 자살이라고 합니다. 어떤 병 보다도 자살해서 죽는 사람이 더 많다는 것은 정말 암울한 현실입니다. 청년들에게 희망과 용기를 줘서 스스로 절망해서 자살하는 것을 조금이라도 막을 수 있는 그런 일들을 우리가 만들어갔으면 좋겠습니다. 그리고 우리 사회가 너무 갈라져서 갈등이 심하잖아요. 문제 해결은 못하더라도 대화라도 할 수 있는 공론의 장을 마련해서 서로의 입장을 얘기하면서 타협하고 조율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해주면 좋겠습니다. 그래서 사람들의 숨통이라도 좀 트일 수 있게 우리가 작은 기여라도 해나갑시다.nbspnbsp세상이 절망한다고 우리도 따라서 절망하지 말고, 절망하는 사람들에게 희망이 되어줄 수 있는 그런 일들을 새해에는 함께 만들어가봅시다. 지난 한해 잘했든 못했든 이제 지나간 일이니까 다 내려놓고요. 새해에는 새로운 마음으로 새출발을 합시다.”nbsp우리가 희망이 되자는 스님의 간곡한 말씀에 가슴이 짠해지고, 대중들 모두 스님의 말씀을 가슴 깊이 새기고 큰 박수를 보냈습니다.nbspnbspnbsp이어서 2015년 첫 출발을 알리는 각 부서별 퍼포먼스를 발표하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지난해는 세계 100회 강연과 국내 250회 기획법회로 전법의 씨앗이 국내외적으로 널리 뿌려졌습니다. 2015년은 그 씨앗이 잘 자라서 튼튼한 나무가 될 수 있도록 돌보고, 평화통일로 나갈 수 있는 기반을 확립하는 중요한 해입니다. 이를 위해 각 부서에는 무엇을 할 수 있을지 슬로건을 재미있게 만들어와서 발표를 했습니다.nbspnbsp▲ “통일하러 왔습니다”로 각 지역별 사투리를 재미있게 사용해 슬로건을 발표한 인천경기서부지부nbsp▲ “2015년 양떼처럼”을 슬로건으로 양 모습을 하고 나타난 서울제주지부nbspnbsp▲ “뛰는 놈 위에 나는 놈”을 슬로건으로 더 멀리보고 미리 찾아가는 행정 서비스를 제공하겠다고 발표한 행정처 행정국nbspnbsp▲ 즉석 퀴즈를 통해 새해 소망을 표현한 평화재단과 JTS의 공동체 대중들 nbspnbsp올해가 을미년 양띠 해여서 수건을 머리에 감고 양머리를 하고 나와 “음매” 하면서 각자의 슬로건을 발표하는 부서들이 많았습니다. 그리고 남북관계가 계속 막혀 있었던 것이 답답했는지 모두들 ‘한반도 통일’을 슬로건으로 많이 발표했습니다. 자원활동가들이 통일에 대한 열망이 얼마나 큰지 느낄 수 있는 시간이었습니다. 각 부서에서 발표한 이 슬로건 대로 한해를 보낸다면 정말 못 해낼 일이 없을 것 같았습니다.nbspnbsp▲ 각 부서에서 준비해 온 발표를 보고 즐거워하는 대중들nbspnbsp그리고 특별히 함께 자리해주신 평화재단 평화연구원의 김형기 원장님을 모시고 새해 격려의 말씀을 청해 들었습니다. 원장님은 “세월호 침몰 사고를 안전 불감증이라고 이야기합니다만 만병의 근원은 분단된 상황입니다. 분단 불감증으로 인해서 우리는 온몸에 기력이 다 빠져서 온갖 병치레를 하고 있는 것입니다. 분단 불감증에서 빠져나오는 방법은 우리가 변하는 것 밖에 방법이 없습니다.” 면서 “양자 대립의 사회에 순환의 논리를 일깨워주는 정토행자가 되어 달라”고 당부해 주셨습니다. nbspnbspnbsp▲ 특별히 함께 자리해 새해 격려의 말씀을 들려주시는 김형기 평화교육원 원장님nbspnbsp마지막으로 순서로 김은숙 행정처장님이 나오셔서 닫는 말씀을 해주셨습니다. 처장님은 2015년은 3년 천일결사 중에 두 번째 해임을 이야기하면서 “올해는 적응하는 청소년기를 지나 완숙한 성인의 나이에 접어든 것과 같다”고 강조하고, “올해야 말로 본격적으로 희망을 만들어가자”고 하시면서 “너무 부담을 갖지 말고 내 자리를 열심히 잘 지키면 우리의 꿈은 이뤄질 것이다”며 대중들에게 용기를 북돋워 주었습니다.nbspnbsp▲ 닫는 말씀을 하고 계신 김은숙 행정처장님nbspnbsp시무식을 마치면서는 도반들과 서로 마주보고 서서 새해 인사를 나누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서로에게 삼배를 하면서 ‘도반이 있어 행복하고 올해도 서로 화합하여 함께 나아갈 것’을 다짐했습니다. 그리고 “우리의 소원은 통일” 노래를 서로 손잡고 부르면서 올해는 통일로 성큼 나아가는 한해가 되길 간절히 소원해 보았습니다.nbspnbsp▲ 함께 손잡고 부른 ‘우리의 소원은 통일’ 노래nbsp그리고 150여명의 자원활동가들 모두가 불상 앞에 모여서 “통일로 가자”를 외치며 단체 사진을 찍었습니다. 새해를 맞이하여 이렇게 마음을 함께 모으니 정말 힘이 나고 가슴이 뿌듯해졌습니다.nbspnbsp▲ “통일로 가자”를 외치며 단체 사진 촬영nbspnbsp스님께서는 단체사진 촬영을 마치고, 곧바로 법당에서 대중들과 함께 앉아 떡국을 함께 드셨습니다. 대중들은 떡국을 함께 먹으며 오순도순 정겹게 이야기를 나누고 즐거운 시간을 더 가졌습니다.nbspnbsp이어서 오후 1시30분부터는 정토회 행정처 집행위원 분들과 2015년 사업계획과 연간 행사 일정을 점검하는 회의를 하셨습니다. 지금까지 확정된 스케쥴을 확인해보니 연말까지 스님의 한해 스케쥴이 벌써부터 쉴 틈 없이 빼곡이 채워지고 있었습니다. nbspnbsp▲ 행정처 집행위원들과 회의nbsp오후 3시에는 평화재단 평화교육원의 조민 원장님이 스님께 새해 인사를 하러 찾아오셨습니다. 새해에는 통일을 위해 어떤 일을 하면 좋을지 편안하게 이야기를 나누셨습니다.nbspnbsp▲ 평화교육원 조민 원장님과 미팅nbsp저녁 7시에는 박원순 서울시장님 부부와 함께 저녁 식사를 함께 하셨습니다. 박원순 시장님은 세계 100회 강연을 마치고 돌아오신 스님께 해외 교민들을 위한 노고에 감사를 드렸고, 스님께서는 전 세계를 다니시며 느낀 소회를 함께 나누어 주셨습니다. 박 시장님도 각 도시의 지방자치와 행정시스템을 연구하기 위해 전 세계를 많이 다니셨는데, 두 분께서는 각 나라의 지방 행정의 좋은 점들에 대해서 함께 이야기 나누셨습니다. nbspnbsp▲ 박원순 서울시장님과 새해 인사 및 저녁식사nbspnbsp그리고 그동안 서울시장으로서 소임을 해오면서 느꼈던 보람과 어려웠던 점 등을 많이 이야기해 주셨는데, 스님과 대화를 다 나누시고는 “오늘 스님으로부터 정말 많은 힐링을 받았다”며 감사해 했습니다. 스님께서는 박 시장님에게 “새해에도 시민들을 위해 수고를 해달라”고 하시면서 새책 lt지금 여기 깨어있기gt를 선물했습니다.nbspnbspnbsp박원순 시장님 부부와의 식사를 마치고 정토회관으로 돌아오니 밤10시가 넘었습니다. 스님께서는 밤늦게까지 업무를 더 보시다가 오늘 일과를 마치셨습니다.nbspnbsp내일은 새벽부터 민족의 화해와 평화를 위한 종교인 모임 조찬이 있고, 새해를 맞이해서 스님께 찾아오시는 분들과의 미팅이 계속 있으실 예정입니다.nbsp
2015.1.1 쌍용차 굴뚝, 광화문 세월호 농성장 방문
nbsp오늘은 2015년 새해 첫날입니다. 스님께서는 문경 정토수련원 대웅전에서 대중 120여명과 함께 부처님께 정성껏 예불을 올리면서 새해를 시작하셨습니다. 그리고 쌍용차 굴뚝 농성장과 광화문 세월호 농성장을 방문하는 등 우리 사회에서 가장 고통받고 있는 사람들을 찾아가 격려해주는 것으로 새해 첫 번째 일정을 가지셨습니다.nbspnbsp문경 정토수련원 대중전, 2015년 0시가 되자 스님께서 33번의 타종 중에 첫 타종을 하시며 만중생의 해탈을 염원하는 발원을 해주셨습니다.nbspnbsp“2015년, 불기 2559년 새해가 밝았습니다. 천하는 태평하고 만중생은 행복하여지이다.”nbspnbsp스님께서 발원을 하자 모두가 큰 박수로 2015년 새해가 밝았음을 함께 기뻐했습니다.nbspnbsp▲ 불기 2559년, 서기 2015년 새해를 맞이하여 첫 예불을 올리고 있는 스님과 정토회 공동체 대중들nbspnbsp이어서 정토회의 각 부서를 대표하여 공동체 대중들이 차례대로 나와 각자의 새해 소망을 말하고 33번의 타종을 이어갔습니다. 타종을 하면서 33천의 옹호와 가피로 우리나라가 평화로워지고 통일되고 만중생이 행복해지기를 바라는 마음을 가득 담았습니다. nbspnbsp“이 세상에 모든 갈등과 미움이 사라지고 화합되고 통일된 세상이 만들어지이다” 묘수법사님“일체중생에게 회향되어지이다.” 유수스님nbsp“맑은 벗, 좋은 벗, 깨끗한 땅, 정토세상 만들어지이다.” 묘덕법사님nbsp“모든 사람이 자기를 가장 사랑하여지이다.” 보수법사님“고통받는 모든 사람이 괴로움이 없고 자유로운 사람이 되어지게 하여지이다” 덕생법사님“더불어 행복한 세상을 만들겠습니다” 무변심법사님“정토회 세계화의 토대가 마련되어지이다” 묘당법사님nbspnbsp33번의 타종을 모두 마치고, 2015년 새해에 부처님께 올리는 첫 예불을 다함께 올렸습니다. 그리고 스님께서는 새해를 맞이하는 축원 및 발원 기도를 해주셨습니다.nbspnbsp“2015년 새해 새날이 밝았습니다.nbsp새해에는 새로운 마음으로 새 출발하겠습니다.nbsp새해에는 이런 사람이 되기를 발원합니다.nbsp욕심내기보다는 나누며 살겠습니다.화내기보다는 자비롭게 살겠습니다.어리석기보다는 지혜롭게 살겠습니다.교만하기보다는 겸손하게 살겠습니다.비굴하기보다는 당당하게 살겠습니다.미워하기보다는 사랑하며 살겠습니다.사치하기보다는 검소하게 살겠습니다.의지하기보다는 의지처가 되겠습니다.절망하기보다는 희망을 만들어가겠습니다.천상에 가서 즐거움을 누리기보다는지옥에 가서 고통받는 뭇 중생을 구하겠습니다.새해에는 이런 마음으로 살아서여래의 사도로서 부끄럽지 않은 사람이 되겠습니다.”nbsp스님의 간절한 발원을 가슴에 새기면서 부처님께 올리는 불기 2559년 첫번째 새벽 예불을 마쳤습니다. 0시 45분이 되어 대중들은 모두 잠자리로 돌아갔고, 다시 새벽 4시에 모두 기상하여 1월1일 첫날 새벽 예불을 올렸습니다.nbspnbsp그리고 쌍용자동차 해고자들의 굴뚝 농성 현장과 광화문 세월호 천막 농성장을 찾아 강추위 속에서도 간곡한 외침을 하고 있는 이들을 위로하고 격려했습니다.nbspnbsp먼저 오전 11시에는 쌍용차의 2009년 대규모 정리해고를 무효로 볼 수 없다는 취지의 대법원 판결에 반발해 지난달 13일부터 굴뚝 위에 올라가 고공농성을 벌이고 있는 김정욱, 이창근씨를 찾아갔습니다. 영하 9도에 칼바람이 부는 날씨였습니다. 정토회 공동체 실무자들 20여명도 스님을 따라 함께 동행했습니다.nbspnbsp평택 농성장 사무실에 도착하니 이연옥 강원경기동부 지구장님을 비롯하여 평택과 안성, 수원의 정토법당에서 신도님들이 10여명 나오셔서 새해 아침부터 떡국을 맛있게 끓이며 바쁘게 움직이고 있었습니다. 스님께서 “새해 아침부터 고생하게 해서 미안하다”며 인사를 건내자 모두들 “새해 아침부터 복을 지을 수 있어서 보람있다”고 하며 환하게 웃었습니다.nbspnbsp▲ 해고노동자들을 위해 떡국을 정성껏 준비해주신 평택과 안성, 수원의 정토법당 신도님들nbsp굴뚝 밑에서 지원 업무를 하고 계신 분들과 사무실에서 일하시는 모든 분들에게 떡국을 나눠드리려고 새해 인사를 전했습니다.nbspnbspnbsp그리고 먼저 굴뚝 위에 올라간 두 사람을 지원하며 바쁜 하루를 지내고 계신 김득중 금속노조 쌍용차 지부 지부장님이 나오셔서 인사말과 소감을 간단히 나누어 주었습니다. nbspnbsp“때로는 포기하고 싶을 때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이렇게 찾아와주시는 분들 때문에 다시 주먹 불끈 쥐고 한발 한발 걸어온지 벌써 6년째가 되고 있습니다. 올초에는 꼭 타결이 되었으면 하는 바램을 갖고 있어요. 새해 1월1일날 법륜 스님을 뵈니까 마음이 넉넉해지고 너무 뿌듯합니다.”nbspnbsp정토회 공동체 실무자들은 김 지부장님에게 격려의 박수를 보내주었습니다. 스님께서는 “음식은 매일 올려줍니까?” 라고 물으셨고, 김 지부장님은 “이번주부터는 아침, 점심, 저녁 세 번 줄에 메여서 올려준다. 지난주까지는 하루에 한끼만 올라갔다” 고 알려주었습니다. 스님께서는 “문제가 하나씩 해결이 되어야 하는데 갈수록 문제가 더 생기니까..” 하며 안타까운 마음을 전했습니다. 그러자 김 지부장님은 현재 이곳 상황에 대해 간단히 설명을 해주었습니다.nbspnbsp▲ 굴뚝 농성의 현재 상황을 설명해 주고 있는nbsp김득중 금속노조 쌍용차 지부 지부장님nbsp“정문에서는 굴뚝이 보이지 않아요. 사실 2012년도에 3명의 동지가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이 앞 송전탑 위에 올라가 171일 동안 있었거든요. 그럼에도 해결을 못했어요. 지금 올라간 굴뚝 높이는 70m가 되고요. 저 위에 두 명의 동지가 올라가 있습니다. 이 정도 바람이면 굴뚝이 흔들려요. 그래서 지금 저 친구들이 밖으로 못나오고 있습니다. 멀미 증세도 있고, 연기가 LNG인데 직접 코로 맡게 되면 두통을 심하게 일으킵니다. 상당히 하루하루가 위험합니다. 이 투쟁은 2009년도에 시작해서 올해로 6년째가 되고 있는데요. 마지막 결단으로 저 두 친구가 올라갔어요. 저희는 대화를 하자고 요청하고 있지만 아직 대화를 못하고 있습니다.nbsp처음에는 절박한 마음에 아무런 준비없이 올라갔어요. 지금도 보온이 완벽하지 않고, 공간이 1미터 밖에 되지 않아서 다리를 쭉 펴고 누울 수가 없어요. 두 사람이 1인용 텐트에 들어가 있고 밑에 깔판으로 보온을 하고 있는 상황입니다. 상황이 굉장히 열악합니다. 빨리 내려올 수 있게 도와주세요.”nbspnbsp설명을 하고 있는 순간, 갑자기 굴뚝 위로 손을 흔드는 김정욱, 이창근씨가 보였습니다. 스님과 정토회 실무자들은 일제히 손을 흔들어 화답하면서 “힘내세요”를 크게 외쳤습니다.nbspnbsp▲ 세찬 바람에도 불구하고 굴뚝 위로 얼굴을 내민 김정욱, 이창근씨 nbspnbsp김 지부장님이 “동영상으로 스님의 격려 메시지를 찍어서 굴뚝 위의 두 사람에게 전해주겠다”고 하자 스님은 즉석에서 두 사람에게 용기를 북돋워주는 말을 해주셨습니다. nbspnbspnbsp“고생들 많으시죠? 새해인데 가족들과 함께 보내야 할 시간에 굴뚝 위에 올라가서 찬바람 맞고, 밑에 계신 분들은 지원을 하면서 추위에 고생이 많으십니다. 이 세상이 우리가 원하는 대로 되면 얼마나 좋겠어요? 그러나 이 세상은 우리가 원하는 대로 다 될 수 없는 것이 또한 현실입니다. 그런데서 여러분들이 개인적으로 생각하면 억울하고 분한 감정이 이루 말할 수가 없겠지만, 우리가 억울해한다고 이 문제가 해결되는 것은 아니잖아요? 그러나 우리가 해결해야 할 이 과제를 안고 꾸준히, 그러나 절대로 물러섬이 없이 가야 합니다.nbspnbsp과정도 소중한 우리 인생입니다. 과정 또한 의미있게 받아들여야 합니다. 꼭 해결되어야 행복해진다고 생각하기보다 해결을 향해서 온갖 노력을 하는 이 과정도 우리에게는 값진 인생입니다. 그렇게 생각하면 이 길을 조금더 가볍게 갈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저희들도 여러분들을 위해서 할 수 있는만큼 노력을 하겠습니다. 2015년 새해에는 쌍용자동차 문제가 꼭 해결되기를 바랍니다. 뿐만 아니라 우리 사회에서 아픔을 갖고 있는 사람들 모두에게 희망이 되는 한해가 되길 기원합니다.”nbspnbsp그리고 아침 저녁으로 일기예보 보는 것이 하루 일과가 되어버렸다는 김 지부장님에게 스님께서는 nbsp“저희도 기도하고 응원하겠습니다” 면서 두 손을 꼭 잡아주셨습니다.nbspnbsp다행히 김 지부장님의 표정은 밝았습니다. 그리고 “최근에는 사측에서 상당히 전향적인 자세를 보이고 있어요. 얼마전 뉴스에서 최악의 대법원 판결로 쌍용차 판결이 뽑혔어요. 저희는 대화로 문제를 풀고자 끝까지 노력할 겁니다. 잘 될 것 같아요. 그러니 힘을 모아주세요.” 라며 긍정적인 믿음을 확고하게 보여주었습니다. nbspnbspnbsp평택정토법당에서 정성껏 준비해 온 떡국을 먹고 있는 중에 굴뚝 위에 올라간 김정욱, 이창근씨와 영상 통화 연결이 되기도 했습니다. 스님께서는 영상 통화로 두 사람에게 “힘내세요” 라고 격려했고 두 사람은 “잘 지내고 있어요. 찾아와 주셔서 감사합니다” 라며 굴뚝 위 칼바람 소리와 함께 생생한 목소리와 얼굴을 보여주었습니다. 그러면서 국민들에게 전하는 메시지도 들려주었습니다. nbspnbsp“2015년 새해가 되었지만 우리 국민들 많이 힘드실 수 있을 것 같습니다. 함께 손잡고 웃으면서 좀 더 나은 삶을 만들어갔으면 좋겠습니다. 저희가 앞장 서서 서민들과 노동자들을 위해 노력하겠습니다.”nbsp▲ 굴뚝 위에 올라가 있는 김정욱, 이창근씨와 영상 nbsp통화를 하고 있는 스님nbspnbsp차가운 굴뚝 위에는 살을 에는 칼바람이 불었지만, 스님께서 불어넣어 준 온기는 굴뚝 위 두 농성자에게 환한 웃음을 선물했습니다.nbspnbsp▲nbsp김득중 금속노조 쌍용차 지부장과 한상균 민주노총 위원장과 함께nbspnbsp▲ 굴뚝 위에 올라가 있는 두 사람에게 힘내세요 라고 응원해 주고 있는 정토회 실무자들.nbspnbsp발길을 돌려 오후 3시에는 광화문의 세월호 농성장을 찾았습니다. 4.16 참사가 발생한 지 벌써 8개월이 지났지만 광화문 광장은 여전히 4월16일에 머물러 있었습니다. ‘유민 아빠’ 김영오 씨가 단식 농성을 벌이던 78월만 해도 가슴에 노란 리본을 단 시민들로 북적이던 농성장엔 이제 찬바람만 불고 있었습니다. nbspnbsp뽀얀 빛을 발하던 천막도 세월호 희생자 가족들의 타는 속내 만큼이나 시커멓게 변해 있었고, 그나마도 텅 빈 천막이 더 많았습니다. 더군다나 농성장의 새해 소망인 진상규명은 시작부터 진통을 겪고 있다는 소식이 들려옵니다. 1월부터 활동에 들어가는 세월호특별조사위원회는 출범 전부터 일부 위원들의 자격을 둘러싸고 논란이 거센 상황입니다. nbspnbsp▲ 광화문 세월호 농성장을 묵묵히 지키고 있는 영석이 아빠 오병환씨.nbspnbsp광화문 세월호 농성장에는 영석이 아빠 오병환씨가 쓸쓸이 천막을 지키고 있었습니다. 영석 아빠는 스님의 손을 꼭 잡으면서 새해에는 제대로 된 진상규명이 꼭 이뤄지도록 도와달라 고 호소했습니다. 스님께서는 영석 아빠의 손을 잡고 천막 안으로 들어가 짧게 대화를 나누었습니다. nbspnbspnbsp영석 아빠가 “불교계 쪽에서는 너무 조용한 것 같아요. 처음에만 힘을 실어주다가 시간이 지나니까 결국은 다시 유가족만 남아서 가슴 아파요” 라고 하면서 씁쓸한 표정을 짓자 스님께서는 “미안해요. 비록 미약한 힘이지만 힘을 보태고 응원하겠습니다. 힘을 내세요.” 라며 마음을 받아주면서 격려의 말씀을 해주셨습니다.nbspnbsp“힘들죠? 그래도 힘내서 해야 돼요. 쉽게 될 일이면 벌써 해결되었겠지요. 어렵다는 것을 알고 시작하면 어렵더라도 견뎌내는데, 쉽게 될 것이라고 기대하면 나중에 안되면 사람이 지치게 돼요. 길게 싸워야 될 일이니까 싸우는 일도 재미를 붙여서 해야 돼요. 쉬운 일이면 이렇게 천막치고 농성할 일이 뭐가 있겠어요? 쉽지 않다는 것을 전제하고 해나가야지요. 조금씩 시간을 내서 응원해 드리겠습니다.”nbspnbsp그리고 스님께서는 영석 아빠를 꼭 안아주고 용기를 북돋워주었습니다. 새해에는 세월호 참사 진상조사위가 발족하고 진상규명 활동이 시작되는 중요한 시점인데, 영석 아빠는 거듭 국민들의 동참이 절실하다며 반복을 해서 안타까움을 자아내기도 했습니다. nbspnbsp안타까움을 뒤로 하고 오후 4시에는 서울 정토회관으로 들어오셨습니다. 어제 저녁에 문경정토수련원에서 2015년 정토회의 사업 방향에 대해 여러 가지 논의를 하다가 시간이 부족해 미처 논의하지 못한 것들을 3층 강당에 모여서 더 논의해보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스님께서는 JTS의 해외 구호사업, 청년들의 사업 계획 등에 대해 2시간 30분 동안 실무자들의 의견을 듣고 또 앞으로의 구상에 대해 말씀해 주셨습니다.nbspnbspnbsp저녁7시에는 그동안 세계 100회 강연을 다니시며 장시간 차량과 비행기 등을 타시면서 몸의 자세가 많이 안좋아지셔서 자세 교정을 받으셨습니다. 그리고 정토회관에 들어오셔서 밤늦게까지 각종 업무들을 보시다가 오늘 일과를 모두 마치셨습니다.nbspnbsp내일은 정토회와 평화재단의 2015년 시무식 행사가 있을 예정입니다. 새해를 시작하며 다함께 마음을 모으는 시간이 될 것 같습니다. 내일 뵙겠습니다 nbspnbsp▼nbsp다음은 쌍용차 굴뚝 농성장을 격려 방문한 현장이 생생히 담긴 영상입니다.nbspnbsp nbs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