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님의하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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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5.20. 경주역사기행 코스 답사 및 농사일

nbsp nbsp nbsp 오늘 새벽기도를 마친 후 아침 공양을 드신 스님께서는 경주 답사에 나섰습니다. 오는 6월 13일에 있을 통일의병대회에 약 1천여명이 참여할 계획인데, 이때를 대비하여 답사를 하셨습니다. nbsp nbsp 보통 경주역사기행은 법흥왕릉진흥왕릉무열왕릉김유신장군묘사천왕사지선덕여왕릉능지탑황룡사로 이어졌는데, 1천여명이 함께 할때는 주차가 어렵기 때문에 차량을 약 20대 정도 주차할 수 있는 곳을 중심으로 어떻게 이동할 것인지 답사를 하셨습니다. nbsp nbsp 먼저 법흥왕릉을 가기 위해 큰 길에 주차를 하고 법흥왕릉gt진흥왕릉gt김유신 장군묘까지 걸어가면서 몇 km나 되는지, 시간은 얼마나 걸리는지를 확인하면서 이동하셨습니다. nbsp 큰길에서 법흥왕릉을 거쳐 김유신 장군묘까지는 약 9.6km, 걸어서 약 2시간 정도 걸렸습니다. nbsp nbsp nbsp 스님께서는 김유신 장군묘에 도착해서도 쉬지 않고 바로 차량으로 분황사로 가서 분황사부터 사천왕사지까지 다시 걸으면서 답사를 하셨습니다. 3.6km, 약 50분이 걸렸습니다. nbsp nbsp nbsp 스님께서는 답사를 하시는 내내 거리와 시간을 점검하시면서도 각 길마다 들어가는 길, 나오는 길을 따로 분류하시면서 몇 줄로 해야 왕복이 될지, 어떻게 돌아나올지등을 점검하시면서 많은 사람들이 움직이면서 불편하지 않도록 고려를 하시면서 답사를 하셨습니다. nbsp nbsp nbsp 사천왕사지에서 통일전까지 차로 이동해서 통일전에서 다시 통일암으로 걸어서 이동하였습니다. 통일암에서 다함께 모여서 점심을 먹고 통일의병대회를 하기 위해서 다시 장소를 점검하셨습니다. nbsp nbsp nbsp 통일암은 예전에 스님께서 경주에서 활동하실 때 불교계를 지도하시던 분의 소유인데, 스님께서 당분간 관리하면서 사용하기로 하였습니다. 통일암 나무숲에는 대나무 죽순이 여기저기 자라나 있어서 그것을 따오기도 했습니다. nbsp nbsp nbsp 통일암에서 염불사지로 다시 걸어가서 점검을 하신 후 차량으로 두북으로 돌아왔습니다. 오늘 걸은 거리가 약 15km 정도였고 시간으로는 약 3시간 20분 정도였습니다. nbsp nbsp 스님께서는 모든 답사를 마치고 돌아와서 점심공양을 드신 후 잠시 휴식을 하시다가 다시 해가 약간 기울어지는 4시 무렵부터 농사일을 하시기 시작하셨습니다. 장독대위에 있던 독을 치우고 황토흙을 채워 넣고 비료와 모래를 함께 섞어서 작물을 키울 수 있게 밭을 만들었습니다. nbsp nbsp 주변 잔디밭도 정비를 해서 잔디가 부족한 곳을 다시 심고 잡초도 제거했습니다. nbsp 오늘은 흙을 날라다 메우는 일들이 많아서 인지 스님께서도 힘들다고 하셨습니다. 스님께서는 내년부터는 우리가 먹을 농작물은 직접 키워 먹어야겠다고 하면서 우선 당장 주변의 공간중 밭으로 활용할 수 있는 것부터 작업을 하여 여러 가지 작물 모종을 사와서 심기도 하셨습니다. nbsp nbsp 농사일 이후에 다시 스님께서는 원고교정업무등을 보신 후 내일 새벽 3시에 서울로 이동해야 하기 때문에 일찍 하루를 마무리 하셨습니다. nbsp 내일은 서울에서 7시부터 기획위 회의와 지역과 해외를 위한 초파일 법문 녹화등이 있습니다.

2015.05.21. 18,397 읽음 댓글 14개

2015.5.19 진주 희망강연, 경남지부 소속 각 지역 활동가 모임, 행대생들과 함께

nbsp nbsp 오늘은 대전법당에서 새벽예불과 기도후 원고교정업무를 보시느라 예정보다 조금 늦게 아침공양을 한 후 진주 강연이 있는 경남과기대로 출발했습니다. 10시 강연이라 서둘러서 왔는데, 도착하고 보니 강연이 10시 30분이라고 해서 조금 여유가 있었습니다.nbsp nbsp 대기실에서 경남지부장님과 이야기를 하다가 오늘 경남지부 소속 활동가들과 점심 식사를 겸한 모임을 가지기로 했는데, 식사 장소가 한정식 집이라는 말을 듣고 스님께서는 취소하는게 어떻겠냐하시니 예약이 되어 재료가 준비되어서 취소는 어렵다는 말을 듣고 그러면 스님께서는 그런자리에 가기가 어렵다고 활동가들만 가도록 조정했습니다. nbsp nbsp 스님과 경남지부 활동가들과의 모임을 대기실에서 강연이 끝난 후 하기로 하고 모임을 끝낸 후 활동가들은 식사를 하러 가기로 했습니다. nbsp 스님께서는 ““내가 한끼 먹는 것은 상관이 없지만, 한번하게 되면 다음에 또 하게 되고 다른 지역도 또 본받게 됩니다. 또 내려가면서는 법사님들께도 그렇게 하게 되면서 점점 부담이 될 수 있습니다. 오늘 식당은 취소할 수 없다고 하니 모임 후에 활동가들이 가서 먹고 나는 행자들과 함께 가다가 먹겠습니다.”라고 하시면서 정토회 활동가가 스님을 모실 때 유의해야 할 것에 대해 말씀해주셨습니다. nbsp 오늘 강연에는 일반인 807명과 자원봉사자 68명으로 총 875명의 인원이 참가하였습니다. 예전보다 젊은 층의 관객들이 많아진 것을 확연히 느낄 수 있었고 입장하시는 분들의 표정이 밝고 환했습니다. nbsp 스님께선 즉문즉설 시작하기 앞서 최근 근황에 대한 소개와 함께 서두에 지혜의 중요성에 대해 강조하셨습니다. nbsp nbsp “오늘 이 자리에서 여러분들은 자기 인생에서 겪는 고뇌, 의문에 대해 마음껏 대화하면서 좀더 진리에 접근해가면 고뇌가 사라지고 의문이 풀립니다. 괴로움을 없애겠다고 해서 없어지는 게 아니라 지혜가 생기면 저절로 사라집니다. 방안에 어둠이 있을 때 불을 밝히면 바로 어둠이 없어지는 것과 같습니다. 아무리 괴로워도 지혜로워지면 바로 밝아지고, 아무리 지혜로운 자도 한 순간 자기 생각에 사로잡히면 바로 괴로워져요. 그래서 육조 혜능대사는 중생이 깨달으면 부처가 되고, 부처가 어리석으면 중생이 된다 이렇게 말씀하셨어요. 그러니까 우리의 고뇌가 얼마나 크냐 하는 건 별로 중요하지 않아요. 지혜가 생겨나면 바로 고뇌가 사라지는 것입니다.” nbsp nbsp 이어 본격적인 즉문즉설에 들어갔는데, 총 7명이 질문하였습니다. 업무가 본인에게 몰려서 힘든데 귄위적인 상사를 싫어하니 부하직원에게 권위를 세울 수도 없고, 친절하면 오히려 주위에서 지나친 요구를 해서 불편하다는 여성, 농담으로 말하는데도 지인들이나 남편이 진심으로 받아들여서 싸움이 된다는 여성, 두 종류의 미운 사람이 있는데 어떻게 해야 될지를 묻는 청년, 스님 법문 듣고 그동안 욕심과 이기심을 내며 잘못 살았던 것에 대해 고뇌가 생긴다는 여성, 8차부터 입재해서 기도하는데 제법이 공하다, 옳고 그름이 없다 등의 말씀이 그동안 가치관과 상충되어 분별심이 일어난다는 불대생, 땅에 대한 욕심이 많아 빈 땅만 보면 농사를 지으려고 하는데 욕심이 과해서 그런지 묻는 여성, 종교에 대해 비판적이었지만 스님 법문을 듣고 전율이 느껴질 정도의 공감이 있었는데 살생에 대한 기준을 어디로 잡아야 하는지와 경전 구절에 대한 이해를 구하는 남성, 이렇게 다양한 사연들을 나누었습니다. nbsp nbsp 특히 농담으로 말을 하는데 다른 사람들이 진담으로 받아들여 싸움을 하게 된다는 여성 분과의 대화에서는 시종일관 개그 콘서트장처럼 웃음바다가 되었습니다. 스님께서는 질문자가 청중들에게 큰 웃음과 힐링의 기회를 주었으니 나갈 때 질문자에게 보시하라고 말씀하셔서 청중석은 또 다시 웃음이 터졌습니다. nbsp 오늘은 나이 드신 분과의 대화내용을 자세히 소개하겠습니다. nbsp “저는 69살입니다. 스님의 책과 동영상을 통해 저를 돌아보니 그동안 ‘잘못 살았구나, 살려고 욕심과 이기심을 부렸구나’싶어 마음이 괴롭습니다. 스님을 알고부터 참회를 하고 있습니다만, 어떻게 참회를 해야 마음의 고뇌를 줄일 수 있을까요? 기독교에서는 예수가 십자가에 못 박혀 모든 죄를 회개만 하면 즉석에서 사한다고 합니다. 그런데 스님께선 불교에서는 내가 지은 모든 업보는 피해갈 수 없다, 산 속이나 바다 속에 아무리 숨어도 피해갈 수가 없다 라고 하던데요. 참회를 할수록 죄 아닌 것이 없습니다. 제가 70이 다 됐는데 얼마나 참회를 해야 이 마음의 괴로움을 놓을 수 있을까요? 문의드립니다.” nbsp “질문자의 앞뒤 말이 좀 안 맞습니다. 부처님의 말씀은 괴로운 자의 무거움을 내려놓게 하고 괴로움에서 벗어나게 하는 것, 그러니까 괴로워하는 중생을 열반으로 인도하는 것이에요. 우리가 현실에서는 윤리, 도덕, 법률 등 온갖 것에 속박받고 삽니다. 부처님의 말씀은 이 모든 속박의 그물을 끊어버리고 저 자유로운 세계, 해탈의 세계로 인도하는 가르침입니다. 질문자가 스님의 법문을 들었으면 괴롭던 게 덜 괴로워지고, 이 눈치 저 눈치 보다가 사는 게 가벼워져야 효과가 있는 것인데, 지금 보면 법륜스님 법문을 듣고 더 괴로워졌단 말입니다.. 이것은 법문을 거꾸로 들었거나 잘못 들어서 생긴 문제이지 법문을 들어서 생긴 문제는 아니에요. 뭘 어떻게 들어서 괴로운지 구체적으로 얘기하면 어디가 잘못됐는지 지적해 드릴게요. nbsp “아니요, 법륜스님 말씀 듣고 모든 사람은 적든, 크든 고통받고 산다는 것을 알게 되었고, 그동안 많이 배워서 마음의 평화에도 도움을 받았습니다.” nbsp nbsp “나만 괴로운 줄 알았는데, 스님 법문을 듣고 다른 사람도 괴롭구나하니 위로가 되었어요?” nbsp “스님말씀이 명쾌하구나, 왜 빨리 스님을 만나지 못했을까를 많이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nbsp “왜 늦게 만났나, 이것 때문에 괴로운 거예요?. 스님을 지금이라도 만난 게 낫지 않아요?” nbsp “지금이라도 만난 게 감사하지요.” nbsp “그럼 안 만났을 때보다 좋아져야지요. 너무 늦게 만나 괴로워졌으면 안 만나는 게 더 낫죠.” nbsp “그런 건 아닌데, 스님 만나고 많이 밝아지고 좋아졌는데 제가 말을 좀 잘못한 거 같습니다.” nbsp “보통 좋아졌다라고 하면 악하다가 선해지고, 고집이 있다가 고집이 약해지는 건데, 더 괴로워졌다면 주위사람에게는 덕이 되고 나에게는 손해가 난 것이에요. 근데 부처님 가르침은 나부터 좋고 남도 좋아야 되는 것입니다. 남은 좋은데 나는 괴로워졌다면 세상에서는 훌륭한 사람인데 수행에서는 수행이 된 사람이 아니에요.” nbsp “스님 말씀을 통해 나빠진 건 전혀 없고 배우고 도움이 되는데, 명쾌하게 내려놓고 이만하면 됐다는 마음보다는 죄의식이 많이 남아있어요.” nbsp nbsp “구체적으로 얘기해 봐요.” nbsp “뚜렷한 건 없지만 아이들한테 정서적으로 돌봐주지 못하고, 살려고 욕심을 부렸습니다.” nbsp “자기가 젊을 때 살기 힘들어서 애들한테 악을 좀 썼다는 거죠? 그럼‘미안하다’하면 되죠” nbsp “미안하다고 했습니다.” nbsp “‘지나고 보니 별거 아닌데 왜 내가 너희 어릴 때 너희들에게 악다구니를 썼는지 그때 내가 참 어리석었구나’라고 그 정도만 해도 좋아요. 대부분 엄마들은 아이들이‘엄마 왜 어릴 때 야단쳤어?’ 하면 ‘너도 애 키워봐라.’라고 오히려 자기 변명하기 일쑤입니다. 질문자가 중생이다 보니 자식들에게 악다구니 쓴 것뿐이지, 잘못된 것 아닙니다. 정신병원 실려 간 아이 있어요? 그럼 됐어요. 내가 판단해줄테니까, 죄를 낱낱이 고해 봐요. 남편한테는 뭘 잘못했어요?” nbsp “남편한테는 싸우고 대들고 순종하지 않은 적이 많았고, 간섭도 많이 하고, 시어머니한테 불효하고 제 생각을 많이 얘기한 것 같고, 일일이 꼬집을 수는 없습니다.” nbsp “그럼 죄를 지었다 치자, 죄값을 받아야 될까요? 빚을 져 놓고 부처님한테 대신 갚아달라고 해야 될까요?” nbsp “빚 갚으려고 하고, 참회를 해도 마음이 맑아지지 않습니다.” nbsp “마음이 맑아지지 않는 것은 공짜로 먹으려고 해서 그래요. 아들이 아무리 행패를 부리고 남편이 뭐라고 해도‘공짜가 없구나, 예전에 내가 그랬으니 이렇게 돌아오는 구나’라고 마음을 내야 합니다. 부처님께서 이런 이치를 가르쳐 주는 것만 해도 고마운데, 빚까지 갚아달라고 해서 되겠어요? 우리 아들 능력 없는데 좋은 직장 갖게 해 달라고 비는 것처럼 결혼, 사업, 공부도 부처님께 빌어 부처님이 다 해 주시면 자기는 뭐할 겁니까? 얼마나 공짜를 바라면 그런 게 귀에 들어오겠어요. 예전에 약 팔때 이 약 하나만 먹으면 모든 병이 낫는다고 하니 사람들이 솔깃하잖아요? 그런데 이제는 예전보다 좀더 지혜로워지니까 그런 이야기를 그냥 재미로 듣잖아요. 죄는 지으면 벌을 받고 돈을 빌렸으면 갚아야 합니다. 복을 지어야 복을 받습니다. 죄 짓고 저승에 가면 저승에 가서라도 갚아야할 것 아닙니까? 이승에서 빚을 청산하고 가는 게 낫겠어요? 저승에까지 갖고 가는 게 낫겠어요?” nbsp nbsp “청산해야겠지요.” nbsp “근데 무엇이 겁 납니까? 지은 죄는 감해지지 않고, 지은 복은 없어지지 않습니다. 부처님 가르침은 인생의 주인이 되라고 하셨지, 종이 되라고 하신 게 아니에요. 자식이 무조건 부모 시킨 대로만 하면 부모 입장에서는 효자지만, 자식 입장에서는 노예입니다. 스님 시킨 대로 다하면 스님이 보면 신앙심이 깊은 사람이지만, 여러분 입장에선 노예입니다. 스님의 말이니까 따르는 게 아니라 내가 봐도 올바르니까 따르는 겁니다. 부모님 말씀이면 다 따르는 게 아니라 듣고 보니 맞다 싶으니까 따르는 거예요. 자식이 20살 넘으면 부모님께 의지해도 안 되고 노예가 되도 안 돼요. 그동안 남편한테 심하게 했으면 앞으로는 안 그래야겠다, 시어머니한테 심했으면 앞으로 내 며느리가 나에게 그렇게 대해도 당연하다라고 생각하면 됩니다. nbsp 질문자는 부처님 법 듣고, 깨친 게 아니고 후회하는 쪽으로 가버린 거예요. 심리적으로 분석하면 후회는 참회가 아니에요.‘어, 틀렸네.’하고 바로 고쳐버리는 게 참회고, 후회는 땅바닥에 앉아서‘내가 왜 잘못 했는고’하고 우는 거예요. 무슨 말이냐면 나는 잘 해야 되는 존재인데 잘못한 나를 용서 못하는 거지요.‘내가 이거밖에 안 되나’하면서 자기를 학대하는 겁니다. 후회는 수행이 아니에요. 참회는‘어, 잘못했네. 틀렸네.’하면서 고치면서 가는 거예요. 못 고치면 또 틀렸네 하면서 자꾸 일어서는 게 수행이에요. 옛날에는 남편, 부모, 아들 원망했다면 이제는 자기를 원망하는 거니, 옛날이랑 별 다른 게 없어요. 남편도 원망 받을 일이 아니지만 자기도 원망 받을 일이 아니에요. 지금까지 잘 살았어요. 그 정도면 됐어요. 앞으로 안 그러면 돼요. 계속 앞으로 나아 가야지, 자기를 한탄하는 것은 수행이 아닙니다.” nbsp nbsp “잘 알겠습니다.” nbsp 긴 문답을 통해 가벼워진 질문자의 대답을 듣고 모두 큰 박수를 쳤습니다. 그리고 그 외 다른 질문에 대한 답을 간단히 소개드립니다. nbsp 업무가 몰리고, 친절해서 주위에서 지나친 요구를 한다는 질문자에겐 과대망상과 피해망상이 있다고 하시면서 ‘내가 너무 예민하게 반응하는구나’라고 살펴봐야 된다고 말씀하셨으며, 두 종류의 미운사람이 있는데 어떻게 해야 되는 지와 자기 몸을 지키기 위해 남을 해쳐야 하는 경우에도 자비를 행해야 되는지에 대해 묻는 청년의 질문에는 이유 없이 미운 것은 정신작용에 문제가 있어서 그렇다는 말씀과 성인의 길을 가르치는 부처님의 말씀을 범부 중생의 잣대로 받아들이는 것의 모순됨에 대해 긴 문답을 통해 밝혀주셨고, 봄 불대생의 질문에는 사는 데는 이유가 없고, 왜 살아야지 연구해도 결론이 없으며, 태어난 존재이기에 모두 존엄하다는 말씀과 함께 심리불안에 대해 짚어주셨습니다. 지금 이런 상태임을 알아차리고, 알아차리다 보면 개선의 길로 들어선다는 말씀으로 힘을 주셨습니다. 빈 땅만 보면 농사욕심이 생긴다는 분의 질문에는 그 정도는 욕심이라기보다 습관 때문이라고 할 수 있지만 주변 사람들이 불편해하면 습관을 고치든지, 과보를 감수해야 됨을 말씀해 주셨습니다. 금강경의 구절에 대한 의문과 살생의 범위를 어디까지로 봐야하는지를 묻는 분께는 자세한 비유를 들어 보이시며 공의 개념을 설명해주셨고, 살생의 문제는 우선 사람부터 해치지 않기, 그게 되면 포유류, 조류 이렇게 나가는 것으로 하면 된다고 말씀해주셨습니다. nbsp nbsp 각 질문마다 혼신의 정성으로 묻고 깨우쳐주는 스님과 함께 웃고 감동하는 사이 2시간 20여분의 시간이 훌쩍 지났습니다. 스님께서는 마지막으로 정리 말씀을 해주셨습니다. nbsp “부부지간에 싸우지 말아야 되지만 현실에서는 싸웁니다. 싸우는 것은 나쁘지만 싸울 수밖에 없는 존재가 우리 중생입니다. 그런데 그런 존재의 바탕이 본질적으로 우리를 괴롭게 만들어요. 그래서 우리의 목표는 싸움이 없는 세계, 괴로움이 없는 세계로 나아가는 거예요. 그런데 불교를 믿고, 부처님 법을 만나면 단박에 깨우쳐서 괴로움이 없는 세계, 싸움이 없는 세계로 가게 될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그렇다고 여전히 싸우네, 그러니 수행이 필요 없네 라고 하면 극단으로 치우치는 거예요. 반면 싸우긴 싸워도 덜 싸우면 ‘옛날보다 많이 나아졌잖아’라고 하며 스님도 아닌데 이 정도면 됐지 하고 안주하는 것도 안됩니다. nbsp 좌절은 욕심 때문에 생기고, 안주는 교만 때문에 생기는 거예요. 좌절할 땐 뒤를 돌아보고 앞으로 많이 왔다는 거에 희망을 가져야 되고, 안주하는 마음이 들 때는 앞을 보면서 아직 목표에 이르지 못했으니 좀더 계속 가면 목표까지 갈 수 있다는 마음을 내야 합니다. 인생은 꾸준히 가는 것이며, 가는 과정 자체가 인생이에요. 근데 여러분들은 항상 주저앉아서 괴롭다고 아우성치거나, 왜 빨리 도착 못하냐고 원망합니다. 삶이라는 것은 과정인데 늘 과정은 무시하고 목표만 얘기하거나 현실만 주장하게 되는 거예요. 우리의 현실은 욕심내고 갈등하는 것이지만 그것을 벗어나려면 늘 다른 사람을 이해해야 되요. 내가 안 되는 것을 보고 남을 이해하고, 내가 되는 것을 보고 세상에 희망을 가져야 합니다.‘내가 되는 것 보니 우리 아이들도 되겠구나’이렇게 믿음을 가지되, 내가 된다고 무조건 남도 되라고 강요해선 안 되며, 먼저 자기부터 해야 됩니다.” nbsp 질문을 통해 환하게 밝고 가벼워지고, 오늘 강연내용을 통해 지혜를 얻고 힘을 낼 수 있겠다는 참가자의 소감을 들으며, 희망강연을 통해 밝음과 행복, 평화가 퍼져나가는 파동이 느껴졌습니다. nbsp nbsp 스님께선 강연을 마치고 책 사인회와 봉사자들과 기념촬영을 하였습니다. 봉사자들은 기념촬영 후, 스승님에 대한 감사와 존경의 마음을 담아 모두 함께‘스승의 은혜’와‘우리의 소원은 통일’노래를 불렀는데 목이 메이고 눈시울이 뜨거워지는 것을 느꼈습니다. 많은 참가자와 봉사자들의 힘으로 진주 희망강연이 성황리에 마무리 될 수 있었습니다. 강연일정이 모두 끝난 후 경남지부 소속의 활동가들 약 10명과 모임이 있었습니다. 진주를 중심으로 경남지역에 속하는 사천, 남해, 하동, 거창, 산청, 함양등 6개 법당을 책임지고 있는 분들이 자리를 함께 해서 각자가 속한 지역의 특징들, 법당 현황을 소개하였습니다. 각 법당 활동가들의 이야기를 들으신 스님께서는 인구가 많지 않은 시골지역에서 개척할 때 어떤 마음으로 해야 하고 또 어떤 방식으로 해야 할지에 대해 말씀해주셨습니다. nbsp nbsp “농촌은 농촌의 특성에 맞춰서 연구가 좀 되어야 합니다. 지금까지는 전국적으로 현재 해 온 방식으로 진행해왔고 또 이 방식이 통했는데, 지금 해 보니까 군단위에서는 딱 맞지는 않는 것 같습니다. 지금 하고 있는 모델이 진주까지는 가능한데, 그 아래 군 단위에는 잘 맞지 않는다면 군단위로 개척해 들어갈 때는 방식을 조금 더 연구를 해야할 것 같습니다. 현재 우리 기도하는 방식도 2차 만일에 들어가서 외국인을 대상으로 외포교를 한다면 지금처럼 해서는 안되고 좀 더 외국인들의 특성에 맞게 개선되어야 합니다. nbsp 군 단위를 가지고 있는 지부에서는 운영방식도 그렇지만 무엇이 현실과 맞지 않는지, 어떤 어려움이 있는지등을 검토해서 중앙으로 올려야 합니다. 우리가 보편적으로 접근해야 하는데 나도 내가 태어나서 자란 곳이 한국이고 만난 사람이 한국사람들이 많고 그러다 보면 보편적으로 접근한다고 했지만, 그 속에서 또 놓치는 오류들이 있을 수 있습니다. nbsp nbsp 그저께 북한 사람들과 함께 했는데, 이 사람들도 다 받아들일 수 있는 보편적인게 어떤 것인지가 고민이 됩니다. 또, 이주노동자들에게는 어떨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연령적 세대문제, 생활환경이 달라서 오는 문제등에 따라 기도법이나 내용들이 조정이 필요할 수 도 있습니다. nbsp 군단위 이하에서는 부담을 갖지 말고 성과를 내기보다는 실험을 해 본다는 마음으로 해 나가면 어떨까요? 심리적 부담을 가지게 되면 미안해서 못나오기도 하고 또 나오려면 뭔가를 해야만 하는 강요를 받게 되면서 사람이 떨어질 수도 있으니 부담 갖지 말고 자신이 할 수 있는 선에서 하는게 좋습니다.”라고 하시며 어떤 일을 하든지 부담을 갖지 말고 가볍게 해 나가기를 당부하셨습니다. 스님과 7기 행자대학원 졸업수련생들은 강연장을 떠나 두북으로 오는 길에 함안 휴게소에서 늦은 점심을 먹었습니다. 점심을 먹고 난 후 행자들은 수행하면서 미진했던 부분에 대해 스님께 질문을 하였고 스님께서는 질문에 대해 하나하나 지도해 주셨습니다. nbsp nbsp 수행자로서, 정토행자로서 사는 것은 좋으나 공동체 삶이 힘들다고 하는 행자에게 스님께서는 업대로 살려면 밖에서 대중부 활동을 하면 되고, 업을 고치겠다고 생각하면 밖에 나갈 필요가 없다고 하셨습니다. 특히 사람에 대한 상처가 있으면 어디를 가도 똑같이 부딪히기 때문에 업식을 바꾸려면 지금 이 자리, 공동체에 살면서 고쳐야 한다고 하셨습니다. 어떤 인생을 살것인지는 자신의 선택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nbsp 또 다른 행자님은 그동안 수행정진하면서 자신을 좀더 깊이 알게 된 것을 편하게 이야기하였습니다. nbsp “저의 과제는 의지심을 극복하는 것입니다. 행자대학원 공부하면서 확실히 불안한 마음이 많이 줄고 스스로 느낄 때 안정되었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런데 제가 빈틈을 잘 만듭니다. 일을 빨리 끝내고 사람 찾아서 놀고, 음악도 가끔 들어요. 그 정도 욕구는 뭐 어때라는 생각이 있었습니다. 그러다가 한번은 욕구따라 가는 줄도 모르고 이 정도는 괜찮네 하다가 엄청 크게 하기 싫은 마음이 올라온 적이 있었습니다. 모든게 하기 싫고 시비가 되었습니다. 그때서야 스님께서 하신 말씀에 대해 깊게 생각해보게 되더라구요. 그러고 나서는 업무에 집중도 되고, 일을 책임지고 했을 때 더 재미있구나라는 걸 알게 되었습니다. 지금은 마음이 많이 나서 나의 업식도 알아가고, 강점도 개발해 가면서 재밌게 하고 있습니다.” nbsp nbspnbsp “집의 잔디밭에 클로버 씨가 떨어지더니 쫙 번져있어요. 근데 그냥 뽑아서는 막아지지 않아요. 그래서 지난번에 완전 파 뒤집었어요. 클로버를 뽑으려면 잔디까지 죽일 정도로 파헤쳐서 제압을 했는데도 또 보면 이쪽과 저쪽에 있어요. 욕망이라는것도 이와 같아요. 예를 들어 먹고 싶은 욕망이 있으면, 먹고 싶은 것에만 작용하면 되는데 그게 나중에 결혼하고 싶은 욕망으로, 직장가고 싶은 것으로 금방 번집니다. 그래서 자신의 마음을 늘 관찰해야 됩니다. 일 끝내고 책보고, 영화보는게 무슨 문제가 있겠어요. 그리고 잠깐 모임에서 술 한잔 먹는게 무슨 문제겠어요. 그런데 이런 건 중독성이 있어서 한번 하면 계속 할 가능성이 있어요. 그리고 욕망은 어떤 상황에 부딪치면 확 번져나가기 때문에 항상 자기를 관찰하고 알아차려야 합니다. 그래서 가능하면 계율을 잘 지키고 원칙을 지키며 사는게 좋습니다. nbsp 의지하는 것에 대해 이야기했는데, 사람은 누구나 의지하고 싶어해요. 그러나 좀 심한 사람이 있습니다. 의지한다는 것은 좋게 말하면 상대를 신뢰한다는 것이고, 나쁘게 말하면 노예 근성이 있다는 겁니다. 자기가 자기 인생을 안 보고 누군가에게 의탁해서 문제를 해결하려는 건데, 이것은 또 나쁘게 말하면 공짜로 먹으려고 하는 겁니다. 나에게 닥치는 문제를 스스로 노력하고 애를 쓰고, 그래도 부족한 것은 스승한테 물어 해결해야 합니다.” nbsp 스님께서는 행자들이 현실적으로 부딪히는 질문에 자상하게 구체적으로 답변을 해주시면서 마지막으로 공부하는 자세에 대해서 이야기해 주셨습니다. nbsp nbsp “행자대학원 다닌다고 다 공부가 되는건 아닙니다. 이때는 기본을 공부하는 거고, 진짜 공부는 업무에 배치되면서부터 시작됩니다. 일에 대한 책임을 맡고 잘하려다 보니 갈등이 생기기도 하고, 업무에 배치되면 자신의 능력에 한계를 느낍니다. 수행은 능력과 관계없지만 다른 사람한테 잘보이고 싶으니까 성과가 안 나면 힘들어집니다. 학습은 학습대로 정리를 하고 이제 업무에 배치되어서 하다가 안되면 그만둘 수도 있습니다. 이미 기수에서 절반이 그만뒀잖아요. 결혼해서 아이 낳으면 책임이 따르기 때문에 신중해야 하지만 그 외의 일은 하다가도 그만둘 수 있습니다. 그러니 너무 심리적으로 부담을 가질 필요 없습니다.” nbsp 그리고 스님께서는 또 한번 지도자로서의 삶의 자세를 말씀하시면서 스승 열명 모시고 사는 것보다 한명 제자 두고 사는 게 더 어렵다 하셨습니다. 제자는 스승이 윗사람이기 때문에 모든 것을 다 따라 본받습니다. 그래서 윗 사람은 원칙대로 살아줘야 한다 하시며, 밑에 사람이 잘못하면 그 사람의 문제지만, 위가 흐트러지면 나중에 가풍이 되어 내려가므로 전체가 무너진다고 가르침을 주셨습니다. nbsp 휴게소에서 스님과 함께 한 후 행대생들은 봉화로 스님께서는 두북으로 이동하셨습니다. 오는 도중에 스님께서는 옥수수, 참외, 수박등의 종자를 구입해서 두북에 도착하자마자 바로 삽을 들고 오셔서 땅을 파고 작물들을 심었습니다. nbsp nbsp 간단한 농사일을 끝난 후 원고교정 업무를 하신 후 일과를 마무리 하셨습니다. nbsp 내일은 통일의병 경주역사기행을 위한 답사와 농사일을 하실 예정입니다. nbsp

2015.05.20. 21,974 읽음 댓글 14개

2015.5.18. 청주, 전주 희망강연

nbsp nbsp nbsp 어제 대전법당에서 주무신 스님께서는 새벽예불과 기도를 대전법당 신도님들과 함께 하신 후 아침 공양을 하시고 청주강연이 열리는 CJB미디어센터로 향했습니다. 강연장으로 가는 길에 잠시 새로 이전한 청주법당에 들렀습니다. 오늘 청주강연이 열리는 날이다 보니 법당문이 잠겨 있어서 비밀번호를 확인한 후 들어가셔서 법당을 둘러보았습니다. nbsp nbsp 법당을 나와서 근처에 있는 CJB미디어센터로 향했습니다. 강연장에는 평일 오전임에도 불구하고 많은 사람들이 9시부터 줄을 서서 입장준비를 하고 있었습니다. 본 강연에 들어가기 전 귀여운 사진으로 강연안내영상이 나오고 추가열의 행복해요로 다 함께 노래와 율동을 따라하며 가볍게 몸을 풀었습니다. 흥을 돋우는 동안 하나, 둘 빈자리가 차면서 어느새 1,000석의 청중석이 꽉 찼습니다. 스님께서 입장하시자 공연의 절정에서 들을 수 있을 법한 우레와 같은 박수와 함성이 쏟아졌습니다. nbsp nbsp “왜 안하던 일을 하고 그래요? 사람들이 좀 변한 것 같아요. 충청도 사람들이 반응이 느린 편인데 오늘은 반응이 참 좋네요. 여기 다 외지인들 아니에요? 열렬하게 환호해줘서 감사합니다.” 웃음과 훈훈한 분위기로 강연은 시작되었습니다. 스님은 질문자들의 질문을 받기에 앞서 현재 우리나라의 전반적인 경제, 사회 상황과 이로 인한 현대인의 심리상태에 대한 개괄적인 설명을 해 주셨습니다. 그리고 우리가 행복하기 위해서 욕망을 쫓아 살고 있는데, 이제는 욕망과 기대하는 마음을 내려놓고 현실의 나를 긍정하면서 사는 것이 필요하다고 말씀하셨습니다. nbsp “조선시대의 여자들은 결혼하면 죽는 줄 알고 시집을 갔습니다. 그래서 시집갈 때 딸도 울고 엄마도 울었어요. 시집갈 때 5년간 귀 막고, 입 막고, 눈 감고 못본 척 하라고 교육 받았어요. 남자에 대해 전혀 모르고 그냥 시집을 갔습니다. 그런데 아무런 기대를 안 하고 갔으므로 생각보다 좀 낫다, 살만하다고 생각하게 됩니다. 게다가 아이를 낳으면 대우를 해주므로 마음이 괜찮아집니다. 그런데 요즘은 결혼하면 천국에 가는 줄 알죠. 결혼하면 모든 문제가 해결된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결혼해서 살아보면 생각만큼 좋지 않아요. 복권 당첨되듯이 득 보고 싶은데, 실망하게 되니 갈등이 생겨 괴롭고 아이가 생기면 스트레스가 더 커지므로, 부모의 스트레스로 아이들의 불안증이 더 커집니다. 초등학생 10명 중에 2명이 정신이 불안하고 대학생 10명 중에 23명이 우울함을 겪고 있습니다. 자살이 조금 더 나가면 나 혼자 죽기는 억울하다 해서 무차별 학살이 나타나게 됩니다. 실제로 이런 질환들이 굉장히 많습니다.” nbsp nbsp 스님께서 자신이 겪고 있는 고민을 허심탄회하게 이 자리에서 이야기해보라며 질문을 받았습니다. 김포에서 강연 때 스님께 질문을 못해서 청주까지 쫓아왔다는 김포 불대생까지 총 6분이 질문하였습니다. nbsp 현재 아들 둘을 키우고 있는데 나중에 외로워지고 싶지 않아 딸을 낳고 싶다는 40대 여성, 친오빠가 자립하지 못하고 가족들에게 의존해 걱정이라는 여성, 한 가지 일을 꾸준히 하지 못해 고민인 청년, 언니에게 불법을 전하고 싶은데 언니가 귀찮아해 고민하는 중년여성, 악세사리 도매점을 시작하려고 하는데 망설여진다는 여성, 부인의 구박으로 사는 게 고되다는 70대 노인의 질문까지 다양한 연령의 다양한 질문이 쏟아졌습니다. 모든 질문에 스님께서 정성껏 답해주셨지만, 불안증으로 사회 적응이 힘들다는 청년의 질문에 많은 시간을 할애해 다양한 예를 들어 애정이 담뿍 담긴 답을 해주었습니다.nbspnbsp “두 가지 문제의 습관이 있습니다. 첫째는, 새로운 일을 할 때 망설이는 것이고 둘째는, 한 가지 일을 꾸준히 하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대학졸업 후에 사회생활을 하는데 문제가 있습니다. 작년 8월에 다니던 회사를 그만두고 자격증 시험을 공부했고 취직을 했습니다. 올 1월부터 구직을 했는데 세 개의 회사에 입사통지를 받았습니다. 그런데 출근 첫날부터 내가 이 일을 잘 할 수 있는지, 이 회사의 재정을 생각했을 때 내가 오래 다닐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어 회사를 그만두었습니다. 다시 직장을 구하더라도 이런 마음이 또 올라와 회사를 그만둘 것 같습니다. 건강한 사회인으로 사는 방법은 무엇일까요?” nbsp “첫 번째는 심리가 불안해서 이랬다 저랬다 하기도 하고요. 두 번째는 욕심이 많기 때문입니다. 씨앗을 심고 빨리 수확하고 싶어서 가을까지 기다리지 못하거나, 이거는 안되나 싶어 씨앗을 이곳 저곳, 여러 군데 옮기며 심게 됩니다. 조급함이 있고 욕심이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자기는 문제아는 아닙니다. 조급함이 커서 문제가 되었다면 학교를 다니지 못했을 것입니다. 직장도 여기 저기 다녔지만 자격증을 땄다는 것은 꾸준함이 있다는 것이에요. 자신이 불안함이 있지만 병이라고 할 정도로 심한 것은 아닙니다. 또 자기의 상태를 자각하고 있으므로 문제는 아니죠. 술 마시고 취한 줄 모르면 사고를 낼 확률이 커지지만 자신의 취기를 자각하면 사고는 치지 않습니다. 정상인에 비해 좀 문제가 있지만 병원에 갈 정도는 아닙니다. 증상이 그 정도고 자신이 자각하고 있으면 됩니다. nbsp nbsp 첫째, 심리가 불안한 문제를 해결하려면 자신이 자각해야 합니다. 그러나 이것은 태생적이므로 쉽게 고쳐지지 않아요. 불안을 없애려고 하는데 안 되니까 자신이 부족하다는 자학을 하게 됩니다. 그러나 자학을 하면 안돼요. 기도문을‘나에게 불안증이 있지만 이 정도는 괜찮아.’이렇게 정진해 보세요. nbsp 둘째, 꾸준히 하지 못하는 문제를 고치고 싶다면 취직을 해서 고치면 됩니다. 이번에 취직이 되면 돈을 주든지 안주든지, 회사가 망하더라도, 무조건 사장과 함께 3년간 다니는 것입니다. 이번에 취직하면 수행 1,000일 기도를 들어간 것입니다. 직장을 다니는 것으로 천일기도를 하는 것이죠. 회사가 망한다고 생각하는 것은 나의 수행의 경계일 뿐입니다. 천일기도를 하려면 비가 오든 말든, 어떤 경우든 해야 하죠. 직장을 구할 때도 아무 곳에나 원서를 내서 처음 구해진 곳에 다닙니다. 첫 직장이 삼백주고, 두 번째 구한 직장이 오백 줘도 첫 번째 삼백주는 직장으로 무조건 들어갑니다. 사장이 아무리 성격이 더러워도 1,000일 다니는 것을 수행으로 삼으면 병이 상당히 치유됩니다. nbsp nbsp 여자문제도 마찬가지에요. 외로워서 여자를 사귀다가도 여자가 결혼하자고 하면 겁이 나서 도망가게 됩니다. 회사만 그런 것이 아닙니다. 자기 불안이 병이에요. 이대로도 괜찮아요. 하지만 개선하고자 하면 직장을 구해서 천일을 절대 어떤 경우라도 핑계대지 않고 끝까지 다니는 것으로 수행 삼아야 합니다. 할 수 있을까요? nbsp “네 할 수 있습니다.” nbsp “예전에 굉장히 머리가 똑똑하고 재능이 있는데 불안증이 있는 사람이 나를 찾아왔어요. 머리를 탁 깎고 와서‘스님의 제자가 되겠습니다.’하는 겁니다. 그래서 그 사람을 보니 오랫동안 못 붙어있을 사람이에요. 다른 절에 가보라고 했더니 이미 송광사도 3개월 있어 보고, 해인사도 행자생활 1년 하다가 나왔고, 그러다가 법륜스님이 자기에게 딱 맞는 스승이라 찾아왔다는 거예요. nbsp nbsp 스승과 제자가 된다는 것은 네 생각을 버려야 한다고 했더니 그 정도는 하겠습니다라고 해요. 제자가 되면 스승이 하자는 대로 해야 한다고 했습니다. 그가 삼배를 정성스럽게 하고 나서‘무엇을 할까요?’라고 묻기에, 문경에 가면 내가 잘 아는 스님이 있는데 그 분에게 가서 3년만 살다 와라고 했습니다. 그랬더니 그 사람이 ‘제가 스님 제자가 되려고 왔지, 다른 사람의 제자가 되려고 온 것이 아닙니다.’하고 싫다는 겁니다. 제가 다시 ‘제자가 되는 것은 자기의 생각을 버리는 것이라고 하지 않았느냐?’하며 스님이 시키는 대로 해야 한다고 했더니 이해를 못해 몇 번의 실랑이를 했어요. 그렇게 고집 피우려거든 제자 하지 말고 나가라고 했더니 그제야 문경에 가겠다고 하는 거예요. 그래서 그 스님이 뭐라고 하든 3년간 꼭 붙어있어야 한다고 다짐을 받고 보냈지요. nbsp 그런데 이튿날 아침에 바랑을 메고 털레털레 오는 겁니다.‘너 무슨 일이 있어도 삼년은 붙어 있으라고 했더니 왜 왔니?’하고 물으니,‘자기도 안 오려고 버텼는데 오늘 아침에 대중공사를 붙여서 가라고 해서 왔다’는 겁니다.‘어떤 일이 있어도 버티고 있으라고 했지 않느냐? 이렇게 고집을 피우면 나의 말을 안 들으니 나의 제자가 아니다.’라고 하니,‘스승이 스님만 있는 줄 아세요?’하며 나갔어요. 질문자는 내 말 알아듣겠어요?” nbsp “네, 알아들었습니다. 절대 그만두지 않겠습니다.” nbsp nbsp “어느 절이든, 회사든, 여자든. 남자든, 이것이 중요한 것은 아닙니다. 회사에 부도가 나도 사장은 부도 처리한다고 회사 다닐까요? 안다닐까요?” nbsp “다닙니다.” nbsp “그러면 자기도 사장처럼 다니는 거예요. 먹고 사는 건 사장이 주던, 자기가 사먹던, 저 동생 같은 사람이 사주던 어떻게든 해결되요. nbsp 그러니 지식과 기술을 배우는 것이 수행이 아닙니다. 중요한 것은 자기 카르마를 바꾸는 거예요. 카르마를 바꾼다는 것은 매우 어렵지만 불가능한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원칙을 세우면 대결정심을 내서 해봐야 고쳐지죠. 돈 버는 액수가 중요한 게 아니라 이 업식을 없애는 게 중요합니다. nbsp 질문한 청년을 위해 또 하나 얘기하면 화엄사에 가면 각황전이라는 큰 법당이 있어요. 임진왜란 때 불이 나서 없어졌어요. 절을 복원해야 하는데 돈이 없어서 절의 주지스님이 천일기도를 들어갔어요. 기도가 끝나는 날 꿈을 꿨는데 오늘 처음으로 만나는 사람이 시주자라는 거예요. 그 사람한테 끝까지 부탁하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밖으로 나와 귀부인이나 대관고작을 만날 줄 알았는데 제일 첫 번째 만난 사람이 거지였습니다. 자기 먹을 것도 없는 거지에게 시주라니 택도 없는 일이라 외면하고 가려다 현몽을 꾼지라 거지에게 시주를 부탁해 보았어요. 거지가 내 먹고 살기도 어려운데 내가 어떻게 절을 지을 수 있겠느냐며 화를 내도 계속 절을 지어달라고 했어요. 스님이 계속 따라다녀 거지가 거절하면서 뒷걸음질 하다가 그만 우물에 빠져 죽어버린 겁니다. 천일기도의 공덕이 좋게 나타난 게 아니라 사람을 죽게 한 거죠. nbsp nbsp 그런데 중국의 어린 황제가 즉위를 했는데 밤마다 스님이 꿈에 나타나서 시주를 하라고 따라다니는 겁니다. 괴로워서 고승을 불러서 물어봤더니 옷차림새를 물어보니 조선사람이라는 겁니다. 거지가 죽어서 중국 황제로 태어난 거였죠. 결국 이 사람의 도움으로 절을 지었어요. 그래서 그 건물 이름이 각황전입니다. 그러니 믿음은 이렇게 굳건해야 합니다. 내 눈에 보이는 것이 전부가 아니고 들리는 것이 전부가 아닙니다. 우리가 들리지 않고 보이지 않아도 이런 것을 봐야 진실이라 할 수 있습니다. 그렇게 카르마가 바뀌면 어머니로부터 타고난 불안증이 오히려 복이 될 수 있어요. 방황하다가 이 법을 만났고, 병을 극복하고 치료하게 되면 인생의 지혜를 얻게 되는 것입니다.” lt241gt 스님의 지혜롭고 명쾌한 답변과 번뜩이는 재치로 청중들이 즐겁게 웃는 소리가 강연 내내 멈추지 않았습니다. 너무 즐거웠던 탓인지 시간이 매우 빠르게 지나갔습니다. 시간관계상 2명의 질문을 못 받았는데, 질문을 못한 두 사람에게 천안 강연 때 오면 우선 질문권을 드리겠노라고 사과말씀을 정중히 하고 강연을 마치게 되었습니다. nbsp 짧은 강연의 아쉬움을 달래기 위해 많은 분들이 줄을 서 스님께 싸인을 받고 사진을 찍었습니다. 팔십명이 넘는 스텝들이 마지막까지 수고를 아끼지 않았습니다. 스님과 단체사진을 찍고 활기찬 월요일 오전 강연이 마무리 되었습니다. nbsp nbsp 오후 2시부터는 전국 총무단, 법사단, 공동체 실무자들이 참여하여 약 3시간동안 회의가 있었습니다. 오늘 회의는 정토회 전체 사업중에서 만일결사를 결산하고 또 세계전법을 위한 제 2차 만일결사를 준비하는 과정중에서 무엇보다도 필요한 본부불사에 대한 마음을 모으는 자리였습니다. nbsp 먼저 김은숙처장님께서는 이렇게 바쁜 가운대 회의를 잡아 미안하지만 공동체실무자, 대표님, 법사님등 소중한 분들이 자리를 해서 함께 모였으니 지도법사님과 함께 귀한 시간이 되면 좋겠다고 하였습니다. nbsp nbsp 이어서 스님께서는 “부처님의 말씀중에 이런 말씀이 있어요. ‘비구들이여, 너희들은 법의 상속자가 될 지언정 재물의 상속자는 되지마라.’ 재물의 상속자라고 하는 것은 물질적인 것, 사회적 지위, 명예 이런것도 다 재물에 속한다고 볼 수 있습니다. 수행자는 마땅히 법의 상속자가 되어야 합니다. 여기서 법의 요체는 해탈과 열반입니다. 해탈은 완전한 자유, 참자유이고, 열반은 완전한 행복, 참행복입니다. 참자유, 참행복은 자유와 속박이 되풀이 되고, 즐거움과 괴로움이 되풀이 되는 그런 것이 아니고, 자유와 즐거움이 지속되어야 하고 그런 행복을 열반, 그런 자유를 해탈이라고 합니다. 그런 길로 나아가도록 하는 모든 가르침, 수련을 법이라고 한다. 그러니 수행자라고 하면 높은 지위, 많은 재산, 높은 인기에 연연하지 않고, 어떻게 우리가 좀 더 행복해지고 자유로워질까? 그길로 나아가는데 우리가 어떻게 해야 하는가? 이것을 우리가 계승을 해야 합니다. nbsp nbsp 그런면에서 정토행자는 재물의 상속자가 아닌 법의 상속자로서 우리가 어떻게 나아갈 것인가 하고 늘 생각하고 연구하면서 살아가야 합니다. 천일결사의 첫번째 목표가 ’괴로움이 없는 사람 자유로운 사람이 되어 이웃과 세상에 잘 쓰인다’ 입니다. 괴로움이 없는 것이 열반이고, 자유로운 사람이 해탈입니다. 대승불교는 상구보리 하화중생인데 상구보리가 괴로움이 없는 사람, 자유로운 사람이고 하와중생이 이웃과 세상에 잘 쓰이는 것입니다. 우리는 수행자로서 이 첫번째 목표를 반드시 실천해야 합니다. nbsp 두번째 항목이 ‘대중이 주인되어 청정화합의 수행공동체를 만든다’입니다. 수행자들이 모인 공동체는 청정하고 화합해야 합니다. 그래서 문경공동체든 서울공동체든 해외 공동체든 대중공동체든 수행자들이 모인 공동체는 청정하고 화합해야 합니다. 청정해야 한다는 것은 수행자로서 원칙을 지켜야 한다는 것입니다. 거기에다가 검소하고 살아야 하고 겸손하게 살아야 하고, 성실하게 살아야 합니다. 수행자들이 사는데 지나치게 사치해도 안되고, 다른 사람이 보기에 거만해도 안됩니다. 또한 수행자들운 게을러도 안되고 수행자들이 남의 도움을 얻어서 받는자가 되서도 안됩니다. 서울과 문경 공동체 뿐만 아니라 사업을 하든 장사를 하든 대중공동체도 그렇게 가야 합니다. 그런데서 청정성이라는 것은 걸식의 정신과 검소함을 말하는 것이고, 화합은 갈등이 없는 그런 뜻이에요. 즉 상가의 가장핵심은 청정과 화합이에요. nbsp nbsp 대승불교의 원은 사홍서원에 있는데 일체 중생을 괴로움에서 벗어나게 하는 것이예요. 따라서 법을 확산시켜야 합니다. 법을 확산시키기 위해서는 질을 유지하면서 규모를 키우는 것이지, 질을 포기하고 키우면 안됩니다. 수행공동체의 질을 훼손하는 지원은 주어도 받으면 안됩니다. 아무리 어떤 보시나 정부로 부터 혹은 권력자로 부터 지원을 해준다 해도 질을 훼손하는 지원받아서는 안됩니다. 질이 담보되는 범위 안에서 확산을 해야 합니다. 확산을 하려면 세속에 물드는게 아니라 세속을 활용을 해야 한다. 많은 사람이 모이려면 건물이 있어야 되고 건물이 있으려면 돈이 있어야 합니다. 그래서 세속적인 기술이나 세속적인 재물을 좋은 법을 확산시키는데 활용해야 합니다. 다음으로 지금 현재 우리의 목표는 정토세상을 실현할 정토행자를 양성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시군구 읍면동에 정토법당을 만든다. 정토행자운동을 지원할 본부와 연수원을 건립한다. 해외정토행자운동의 기반을 마련한다. 한반도의 평화와 통일을 이끌어 갈 통일의병을 양성한다. 굶주림과 질병으로 고통받는 세계어린이를 돕는다. 지구를 살리는 쓰레기제로운동과 환경운동을 생활화한다. 국내외 여러단체와 함께 미래사회의 대안을 만든다입니다. nbsp nbsp 법을 계승하기 위해서 질을 유지한다는 전제하에 양을 확대합니다. 양을 확대하는 데 있어서 가장 중요한 것은 사람입니다. 그래서 사람에 대한 교육과 수련을 위해서는 물적토대가 필요합니다. 향후 10년 20년을 바라볼때 서울에 큰 규모의 불사가 필요합니다. 그래서 본부와 중앙연수원이 건립이 필요합니다. 우선 현재 우리는 본부 건물을 위한 불사가 필요합니다. 그래서 우리가 힘을 합쳐서 불사를 원만히 할 수 있도록 기도정진하고 힘을 모으면 좋겠습니다.” 라고 본부건물을 위한 불사가 필요하다는 말씀을 해주셨습니다. nbsp 그리고 정토회가 1988년 창립해서 1999년 이사오기 까지 1단계는 홍제동시절, 그리고 1999년 정토회관 건립후 2단계는 서초동 시대를 열었습니다. 이제 다시 본부불사를 하여 3단계시대를 열어갈 수 있을 것입니다. 8차에 본부불사를 완공해서 9차, 10차에서 1차 만일결사를 성취할 수 있도록 물적토대를 마련하는 것이므로 부지런히 불사에 함께 동참해서 원만히 진행될 수 있도록 해주시면 좋겠습니다. 그런 다음에 2차만일결사를 위한 토대가 되도록 하면 좋겠습니다. nbsp nbsp 본부건물이 신속하게 건립이 되면 정토회의 본부뿐만 아니라 한국사회의 중요한 장소가 될 것입니다. 현재 평화재단에서 하고 있는 한국사회의 종교인 모임, 사회정치적인 모임, 시민단체모임등 중요한 모임의 중심이 될 것입니다. 또한 주요발표도 프레스센타가 아니라 이곳에서 하고, 국제회의도 하면 자연적으로 우리사회에서 NGO차원의 중요한 운동의 중심으로 가게 될 것입니다. 제가 20대때는 이런 활동의 기반이 명동성당과 종로5가의 기독교 회관이었습니다. 스님도 젊었을때는 늘 명동성당과 기독교 회관에서 중요 모임을 가졌습니다. 이제 정토회관이 정토회뿐만 아니라 우리 사회에서 미래를 지향하는 세대, 청년세대에 있어서 중요한 활동이 될 것입니다. 그리고 정토회가 가장 취약한 부분이 문화예술분야인데, 이곳에서 공연장도 만들어서 문화예술분야도 함께 갈 수 있도록 하면 좋겠습니다. nbsp nbsp 그래서 지금과는 다른 정토회로 되고, 수행과 활동뿐만 아니라 품위를 갖춰주게되면 정토회의 전법활동이 더 빠른 속도로 확산될 수도 있습니다. 그러면 국민운동으로 새로운 문명운동으로 나아갈 것입니다. 그러면 여기에 방송시설까지 갖추어서 종합적으로 해나가야 합니다. 정토회의 양적확대와 동시에 질적변화를 가져오는 제1차 만일결사를 마무리하고 다음 제2차 만일결사를 준비하는 기초와 토대가 될 것입니다. 그래서 조용히 들뜨지 않되 확신을가지고 본부불사를 하면 좋겠습니다. 총무님들이 중심을 잡고가야 불사가 흔들림없이 진행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라고 하시면서 어떤마음으로 본부 불사를 준비해야하는지, 그리고 본부불사에 대한 향후 비젼을 공유해 주시면서 본부불사를 원만히 진행해보자고 하셨습니다. nbsp 대전에서 회의를 마치고 잠시 휴식하신 스님께서는 전주강연이 열리는 전북도청으로 이동하셨습니다. nbsp 스님의 강연소식을 듣고 설레는 마음으로 기다리던 전주와 익산, 군산, 정읍, 남원, 무주, 진안, 장수 등의 지역에서 공연장 3층, 4층 객석을 꽉 채운 890명의 청중과 봉사자 60여명, 총950여명이 참석하여 성황리에 진행되었습니다. nbsp nbsp 스님께서는 청중들의 큰 박수를 받으며 연단에 올라 서두를 시작하였습니다. 즉문즉설 시간동안 우리가 어떤 마음으로 듣는 것이 필요한지에 대해 정리해주셨습니다. nbsp “우리는 눈에 보이는 것만 가지고 이야기할 때가 많습니다. 하지만 눈에 보이는 게 전부가 아니고 귀에 들리는 게 전부가 아닙니다. 오늘 우리는 지금까지 내가 봐왔던 것이 아닌 다른 것을 보고, 지금까지 들어온 것이 아닌 다른 것을 듣고, 지금까지 내가 만져본 것이 아닌 다른 것을 만져봅니다. 그럴 때 여러분들의 인식이 달라지고, ‘우리의 괴로움도 꼭 괴로울 일이 아니구나’ 라고 생각이 바뀌게 됩니다. nbsp 우리는 늘 누군가를 내 마음에 들도록 고쳐서 문제를 해결하려고 해요. 그런데 조금만 살아보면 세상은 내 뜻대로 안 된다는 것을 알 수 있는데 어리석은 사람은 죽을 때까지 마치 세상이 내 뜻대로 되는 줄 알고 착각합니다. 그래서 내 뜻대로 안 되면 괴로워해요. 그런데 ‘내 뜻대로 안 되는 게 세상이다’ 이렇게 알면 괴로워 할 일은 없잖아요? 내 뜻대로 되면 다행이고 안 되어도 그만입니다. 그리고 남이 나한테 원하는 걸 내가 다 못해준다고 괴로워 하는 경우도 있어요. 세상이 내 뜻대로 안 되듯이 남이 원하는 걸 내가 다 해줄 수 없어요. 해줄 수 있으면 다행이고 해줄 수 없으면 ‘죄송합니다.’ 이렇게 하면 됩니다.” nbsp nbsp 오늘 질문자는 모두 일곱 명으로, 어릴 때 부모의 불화로 여전히 가슴속에 원망과 분노가 사라지지 않아 자살 시도 등 우울증으로 힘든 34세 주부, 이혼하면 세 아이의 양육이 걱정되면서도 이미 이혼소송이 시작되어 혼란과 슬픔으로 힘든 40대 엄마, 어머니의 정신분열로 부모가 이혼 후 의지하고 돌봐주던 할머니도 돌아가시고 경제력 없는 아버지와 폭력적인 오빠를 일생 부양해야 한다는 부담감으로 힘든 20대 젊은 여성, 나이 들어 점점 초췌해지고 멋이 없어지는데 어떻게 하면 좋은 아버지, 좋은 남편이 될지 궁금해 하는 50대 남자, 직장에서 성과를 내고 승진하기 위해 남과 경쟁해야 하는 현실이 괴롭다는 젊은 직장인, 뭔가를 하고자 할 때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고 또 남들의 시선을 신경 쓰지 않는 굳은 마음을 가지고 싶다는 여자 고등학생, 남편이 1년 넘게 집에 들어오지 않고, 채권자들에게 크게 시달림 당하고, 돈 앞에서 알고 지내던 사람들의 변화에 실망과 미움으로 대인 기피증까지 생겨 새롭게 살아갈 힘을 얻고 싶다는 여자, 삶의 애환이 담긴 질문들이 이어졌습니다. nbsp 이 중에서 중년 남자분에게 해주신 스님말씀을 전합니다. nbsp “저는 한 가정의 아빠이고 남편입니다. 그런데 갈수록 뭔가 초췌해지고 별로 멋이 없어지는 거 같은데 어떻게 하면 멋있게 좋은 아빠, 좋은 남편이 될 수 있을지 스님께 질문 드리고 싶습니다.” nbsp nbsp “지금까지 돈을 조금 벌었나 봐요?” nbsp “조금은 벌었는데 다 까먹고 거지 돼버렸습니다.” “질문자가 생각하는 훌륭한 남편과 아빠의 기준은 ‘돈을 제대로 버는 사람이다’ 라는 인식이 머릿속에 굳어있어요. 우리 사회가 대부분 이렇게 생각하고 있어서 남자들이 돈을 못 벌면 기가 죽는 거예요. 그리고 남자들이 돈 좀 벌면 기고만장해요. 그래서 바람을 피우거나 집에 늦게 들어와도, ‘내가 돈을 못 벌었나’ ‘내가 너한테 돈을 안줬나’ 이렇게 얘기해요. 그러니까 돈만 주면 놀러 다니던, 술을 늦게까지 먹던, 무얼 해도 내 할일 다 했다고 생각합니다. 다시 말하면 돈 잘 버는 게 훌륭한 아빠, 멋진 남편이다 이렇게 규정하고 있어요. 그래서 돈 벌때는 고개를 세우고 살았는데 돈을 벌지 못하는 지금은 자신이 존재 가치가 없는 것 같은 거예요. 애들을 봐도 미안하고 부인을 봐도 미안한 거죠. 그런데 돈 버는 남자가 좋은 남편도 아니고, 돈 버는 아빠가 좋은 아빠도 아니에요. 이 전제가 잘못됐기 때문에 치유할 방법이 없어요. 그런 사람은 기가 살려면 돈을 많이 벌어야 해요. 그런데 늘 그럴 순 없잖아요. 사회적으로도 돈의 기준에 따라 잘나고 못나고 기준이 되기 때문에 내가 똑똑한 척을 해도, 내가 돈이 없다는 걸 알면 내 주위에 사람이 없어요. nbsp nbsp 이것은 우리 사회가 자본주의 사회이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자본주의는 자본이 주인인 사회입니다. 교회마저도 자본주의에 물들어서, 목사가 성공했다, 교회가 성공했다의 기준이 신도가 많아야 되고, 교회가 커야 되고, 돈이 많아야 됩니다. 그러면 하나님의 은총이 충만한 교회가 되는 거예요. 스님들도 훌륭한 스님, 성공한 스님의 기준은 신도가 따라야 되고, 절이 커야 됩니다. 그런데 성당이나 절은 똑같이 자본주의에 물들었지만 개신교보다는 덜해요. 불교와 천주교는 이미 있는 절과 성당을 가지고 먹고 살고 있고 그 안에서 경쟁합니다. 그런데 교회는 목사가 개척하기 때문에 사업체를 새로 내는 것과도 같습니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종교도 신이 중심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은총이 재물로 표현됩니다. 목사가 아무리 성경에 밝고 착실해도 교회가 없으면 실패한 목사예요. 스님이 아무리 훌륭해도 절의 주지 못하고, 신도도 없으면 실패한 수행자에요. 다만 불교는 자본주의에 물들긴 했지만 조금 덜한 편입니다. 선방에 앉아 있기만 해도 훌륭하다고 평가 받기도 합니다. nbsp 자본주의 사회는 모든 것을 돈으로 평가하기 때문입니다. 돈이 곧 능력입니다. 결혼을 할 때도 옛날처럼 신분 따지지 않고 돈만 따집니다. 결혼 생활할 때 성격이 엄청 작용하는데도 거의 고려하지 않습니다. 그러다 보니 돈만 많으면 남에게는 괜찮아 보이지만 개인은 굉장히 불행해요. nbsp nbsp 그러니 세상이 돈중심으로 가고, 모든 사람들이 그렇게 산다고 해도 그건 올바른 게 아니에요. 질문자는 거기로부터 자유로워야 돼요. 질문자가 돈 벌수 있게 해주는 능력은 나한테 없어요. 다만 내가 도와줄 수 있는 건 현재의 자신의 조건에서도 행복하게 살 수 있는 길을 알려주는 거에요. 자신 스스로 좋은 남편의 기준을 돈 버는 남자로 규정하지 마세요. 가족들에게 위축되지도 말고, 부엌 일도 좀 해주고, 방청소도 하면 좋습니다. 그런데 집안 일을 돈이 없어서 비굴하게 한다고 하면 더 위축 됩니다. 여성분들에게 물어봅시다. ‘여보, 내가 이제 은퇴했으니까 청소와 설거지 내가 할게, 내가 직접해보니 네가 그동안 고생 참 많이 했다.’ 이렇게 얘기하면 좀 부족하더라도 괜찮아요, 안 괜찮아요? nbsp “괜찮아요.” nbsp “근데 애들도 돈 버는 아버지가 익숙하니까 그래요. 그러나 사실대로 얘기 하면 위축될 것 없어요. 빚이 많아도 괜찮아요. 돈이 없어서 못 갚는 거는 죄가 안돼요.” nbsp “돈도 없지, 빚 있지, 정신까지 제대로 안됩니다.” nbsp “정신까지 제대로 안되면 빚이 늘까요, 줄까요?” nbsp “사람이 뭔가 폐허가 되는 거 같아요.” nbsp nbsp “이번에 총리하다가 떨어진 사람 패배감이 들까요, 안 들까요? 절세 미인과 못생긴 사람이 얼굴에 화상 입으면 누가 충격이 더 클까요? 잘 생긴 사람이 충격이 더 크겠죠? 그러니 세상은 공평한 거예요. 보통남자들은 돈을 기준으로 사람을 평가하는데 집착이 너무 강해요. 술값 안내면 어때요? 술값 못 낸다고 기분 나빠할 일도 없고, 술값 낸다고 목에 힘줄 이유도 없어요. 술 사주면 얻어먹고, 주위에서 얻어먹기만 하고 사주지 않는다고 뭐라 하면 경제가 쪼들려서 그렇다고 말하고, 그 말도 하기 싫으면 그 자리에 안 나가면 됩니다.” nbsp “문제는 그게 아니고 돈에 따라 서열이 나뉘어지는 거예요.” “다른 사람 밑에 가기 싫다 이거 아니에요.” nbsp “좀 열 받을 때 있죠.” nbsp “사람들이 보기에 돈 없는 사람이 위에 있으면 더 불만일거 아니에요? 다른 사람 밑에 좀 가주면 어때요?. 어떻게 사람이 위에만 서요? 밑에도 서고 위에도 서고, 서열도 왔다 갔다하는 거죠. 이것을 개천에서 용 나는 사회다라고 말하죠. 근데 요즘 우리나라 개천에서 용 나는 사회가 아니잖아요. 질문자가 그럼 솔선수범해야지요. 친구들 간에도 내 서열을 좀 낮춰주고, 집에서도 마누라를 위로 올려주고, 부자간에도 애를 좀 올려주고 자기부터 솔선수범 하면 얼마나 좋아요. 이렇게 다른 사람을 올려주는 사람을 겸손하다고 해요. 그런데 다른 사람 세워주는 것을 하기 싫은데 억지로 하면 비굴해집니다. 비굴하게 안하려고 하면 허세를 부린다고 해요. 허세를 부리며 살래요? 비굴하게 살래요? 아니면 겸손하게 살래요?” nbsp “자리에 앉겠습니다.” nbsp nbsp “이 분 얘기 참 가슴 아프죠? 여자들도 다 잘하는 거 아니고 피해자도 아니에요. 여자들은 남자를 돈 버는 수단으로 생각해요. 이게 문제예요. 돈 못 벌면 사람 취급 안 해요. 은퇴해서 오면 그날부터 ‘돈도 못 버는 게’ 이래요. 등 두드려 주면서 ‘당신 그동안 고생했다, 이제 좀 쉬라’고 하세요. 그동안에 한 것만 해도 많이 고생했어요. 남편이 앞으로 ‘뭐 먹고 사노?’라고 걱정하면 ‘내가 나가서 좀 벌게 쉬세요, 가방 메고 등산도 좀 가고 쉬세요’ 이렇게 하세요. 남편에게 격려해주면 기가 살아요. 바깥에 가서도 마누라만 옆에 딱 붙어서 격려해주면 기가 안 죽어요. nbsp 특히 돈을 벌다가 못 버는 사람, 지위가 있다가 망한 사람, 은퇴한 사람은 격려가 필요해요. 남자가 돈을 벌면 집안일에 소홀 합니까? 자상합니까?‘여보, 커피 한잔 줘 아침 신문 왔어? 창문 좀 열어라’이런 남편 많죠? 여자들은 아니꼽지만 돈을 벌어오니까 참고 사니 심리가 억압되어 있어요. 남편이 명퇴를 한 후 빈둥빈둥 놀고, 기존에 해오던 습관은 안 바껴서 ‘커피 한 잔 줘, 창문 열어’이렇게 하면 여자들은 남편이 돈도 못 벌어오면서 큰 소리 뻥뻥 친다고‘너는 손이 없냐, 발이 없냐’라고 하는 겁니다. 남편은 돈이 없어서 친구도 못 만나고, 사람들이 자기 보는 눈이 영 이상하고 돈 없이 인간행세도 못하네라고 느끼는데 아내까지 무시하니까 팍 성질내는 거예요. 그러면 아내가 보기에는 남편은 참회를 해도 신통치 않은데 더 날뜁니다. 그래서 황혼이혼도 늘어나는 겁니다. 그러니 여자는 남편 등을 좀 두드려 줘야 하고, 남자는 알아서 여자에게 기어줘야 되요. 어차피 결혼한 것이니 이렇게 바꿔서 살면 안되나요? 여러분들은 결혼을 선택했으니 수행을 하면서 바꿔야 합니다. 수행을 안 하면 같이 사는 아내와 남편, 자식을 괴롭히고 나쁜 영향을 줍니다. 수행하기 싫은 사람은 머리 깎고 스님이 되세요. 수행은 스님들의 전유물이 아닙니다. 여러분이 수행을 해야 합니다.” nbsp 스님께선 일곱 사람의 일곱 가지 고민에 대해 질문자가 해결의 실마리를 발견하고 침울했던 얼굴을 펼 때까지 갖가지 질문을 던져 자신의 문제를 바로 볼 수 있을 때까지 이야기를 끌어가셨습니다. 그러다 보니 2시간 30분은 금방 흘러가버렸습니다. nbsp nbsp nbsp 강연이 끝난 후에는 스님의 책 사인회가 진행되었고, 스님과 봉사자들의 단체 촬영을 끝으로 오늘 행사는 마무리되었습니다. 봉사자들도 흐뭇한 마음으로 뒷정리와 마음 나누기를 하고 참석해주신 관객들의 해탈을 마음속으로 기원하며 집으로 귀가하였습니다. nbsp 스님께서는 다시 대전법당으로 이동하셔서 하루를 마무리 하셨습니다. 내일은 진주에서 강연이 있습니다.

2015.05.19. 24,245 읽음 댓글 7개

2015.5.17 불교대학 특강수련 및 전국 새터민 백제문화 가족나들이

6527965279nbsp nbsp 65279 오늘 새벽 1시가 되어 문경 수련원에 도착하신 스님께서는 새벽에 몸이 좀 불편하다고 하시면서 방에서 기도를 하신 후 6시부터 불대 특강수련 법문을 하셨습니다. 이번 수련에는 서울제주지부와 광주전라지부 불교대학생 380명과 봉사자 80여명 등 총 460여명이 참가했습니다. 불교대학생들은 그동안 영상으로만 접해왔던 스님을 직접 뵙고 그동안 공부하면서 풀리지 않던 의문을 풀 수 있는 즉문즉설 시간을 가졌습니다. nbsp “우리가 사는 이 세상은 감정을 기준으로 할 때 “하고 싶다”와 “하기 싫다” 의 두 가지가 있습니다. 그리고 내가 사는 환경의 조건은 “해도 되는 것”과 “해서는 안되는 것” 두 가지가 있습니다. 이 감정과 환경의 조건들을 결합하면 경우의 수는 4개가 생깁니다. 첫째, 하고 싶은데 해도 되는 것, 둘째, 하고 싶은데 해서는 안되는 것, 셋째, 하기 싫은데 해야 하는 것, 넷째, 하기 싫은데 하지 않아도 되는 것입니다. nbsp 65279 하고 싶은데 해도 되는 조건이 만날 때는 하고 싶은 데로 하면 되고, 하기 싫은데 하지 않아도 되는 조건을 만나면 안해도 되니 문제가 안됩니다. 그런데 하고 싶은데 하지 말아야 하는 조건을 만날 수 있습니다. 우리는 ‘하고 싶은 것을 왜 못하게 하느냐’고 난리입니다. 그런데 쥐가 배가 고파서 쓰레기장을 뒤지다가 접시에 맛있는 고구마가 놓여있는 것을 보고 너무 좋아서 먹으려고 하니 쥐약이 들어있다고 합니다. 이럴 때 먹어야 하나요? 안 먹어야 하나요? 이때 쥐가 ‘배고픈데 어떻게 안 먹어요?’ 하면 먹지 말라고 할까요? 먹고 죽어라고 할까요? 이처럼 아무리 하고 싶어도 그것을 했을 때 큰 손해가 난다면 하지 말아야 합니다. nbsp 하고 싶은 걸 하는 게 자유라고 하면, 자유는 네 가지 경우 중에 ‘하고 싶은 것을 하는 것과 하고 싶지 않을 때 하지 않는’ 이 두 가지밖에 없게 됩니다. 그러니 인생의 절반만 자유이고 절반은 속박이 되는 거예요. 그래서 필연적으로 자유와 속박이 되풀이 될 수밖에 없어요. 이것이 윤회이며, 우리는 윤회에서 벗어날 수 없습니다. nbsp 65279 완전한 자유, 즉 고가 발생하지 않으려면, 절반의 속박을 해결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이는 ‘하고 싶은데 안 할 자유가 있고, 하기 싫을 때 할 자유가 있다면’ 가능합니다. 어떤 조건이 와도 나의 자유가 속박되지 않을 때 참자유, 즉 해탈이라고 합니다. 여러분이 생각하는 자유는 반쪽 자유, 즉 윤회입니다. nbsp 우리가 해탈, 참자유로 나아가기 위해서는 연습을 많이 해야 합니다. 하고 싶을 때 멈추는 연습, 하기 싫을 때 해버리는 연습입니다. 오늘 아침 일어나기 싫을 때 일어나는 자유, 혼자 자고 싶을 때 여럿이 자는 자유를 누리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어디를 가나 자기가 하고 싶은 것을 하는 것에 메어 삽니다. 이런 상태에서는 죽을 때까지 자유와 행복을 추구해도 오지 않을 것입니다. nbsp 우리가 여기서 공부하는 목적은 기술이나 지식을 습득하는 것이 목적이 아니라 바로 이 문제를 풀려는 겁니다. 여러분들은 “스님, 기도, 명상 어떻게 합니까?” “절을 어떻게 합니까?”, “목탁을 어떻게 칩니까?” “공이 뭡니까?”, “무아가 뭡니까?”이렇게 기술 습득과 지식에 대해 질문합니다. 기술과 지식은 모르면 물어볼 수는 있으나 이런 것은 행복으로 가는 방법이 전혀 아니예요. nbsp 진정으로 자유롭고 행복해지려면 지혜로워야 합니다. 그런데 우리 삶은 왜 지혜롭게 안될까요? 결혼할 때는 행복하려고 합니다. 결혼 해보니 나아졌어요? 여러분은 매일 돈이 많으면, 승진을 하면, 애가 있으면 지금보다 더 나아질까 해서 이렇게 몸부림을 치고 살고 있어요. 그런데 결과는 나아진 게 없잖아요. 그런데 깨달음의 장에 다녀오거나 즉문즉설 듣고 수행하면서 전보다 조금 더 행복해진 사람은 예전보다 조금 더 지혜로워져서 그렇습니다. nbsp 지혜에는 세 가지가 있어요. 문혜, 사혜, 수혜가 있는데, 이것은 지혜가 어떤 것인지에 대한 지식에 불과합니다. 불교로 박사 학위를 받아도 행복해지지 않습니다. 즉문즉설 1,000개를 듣고 분류해서 ‘즉문즉설의 원리가 무엇이다’라고해서 박사학위를 받으면 행복해질까요? 이것은 지식적으로 많이 아는 것 뿐입니다. nbsp 65279 그러니 여러분들이 문경에 와서 무엇을 얼마나 더 배우는 지보다 더 중요한 것은 화장실 가서 약간 불편할 때 그 원인이 무엇인지 아는 것입니다. 화장실 가서 불편할 때는 화장실 자체의 문제가 아니라 모든 것이 내 습관의 문제입니다. 지금 계절에 화장실이 크게 불편하지 않지만 겨울에 화장실에 가면 밑에서 찬바람이 쏴악 불고, 냄새가 나면 여러분들은 당장 화장실 문제라고 여기죠. 그러나 이때 ‘화장실 문제가 아니고 내 습관의 문제다’로 돌이킬 수 있으면, 해탈로 가는 길입니다. 그런데 여러분들은 ‘화장실이 문제다. 세수도 못하고...’ 이렇게 궁시렁하다가 스님께 ‘공이 뭡니까’ 이렇게 질문합니다. 공부는 지금 이 순간해야 하는데, ‘지금’은 늘 놓치고 ‘생각’만 가지고 질문합니다. 여러분들의 습관으로부터 자유로워지는 것, 이것이 참자유, 참행복으로 가는 길입니다. 문경에 와서 불편을 느껴야 ‘내가 이런 습관을 가지고 있구나’ 하고 알 수 있습니다. 불편을 안 느끼면 내가 다 잘하는 줄 알게 됩니다. nbsp 그리고 관점이 확실히 바뀌어야 합니다. 원효가 해골바가지인 줄 모르고 물을 마셨을 때에는 불편하지 않았는데, 해골바가지인줄 알고는 구역질을 하며 토했습니다. 그때 ‘똑같은 바가지이고 똑같은 물인데 왜 불편할까?’ 생각하다가 더럽고 깨끗함이 물이나 바가지에 있는 것이 아니고 내 마음에 있다는 것을 깨달았어요. ‘똑같이 잠을 자고 화장실 쓰는데, 왜 나는 불편할까?. 조건이 문제면 모두가 불편해야 하는데 좋았다는 사람도 있잖아.’ 이것을 자각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조건부 자유, 조건부 행복이 아니라, 무조건 이래도 좋고 저래도 괜찮은, 자기가 하고 싶은 것으로부터의 자유를 지향해야 합니다. 하고 싶은 것은 무조건 해야 한다는 것은 쾌락주의예요. 무조건 안한다고 하는 것은 고행주의입니다. 그런데 불교는 이 둘의 양극단을 떠난 중도주의입니다. nbsp nbsp 여러분들이 공부할 때 목표점이 없으면, 1년을 공부해도 발전이 없고 2년을 공부해도 변화가 없습니다. 목표가 분명하면 ‘놓쳤구나’ 이러면 실패가 연습이 되는 거예요. 그러면 어느 순간 될 때가 있는 것입니다. 내가 할 일은 여러분들에게 관점을 바로 잡아주는 것이고, 연습은 여러분들 자신이 스스로 해야 합니다. ” nbsp 스님께서는 시종일관 애정어린 마음으로 이제 갓 한 학기를 마친 불교대학생들이 수행자의 관점에서 어떤 마음가짐으로 수행정진해야 하는지에 대해 상세히 말씀해주셨습니다. 이어서 스님께서는 불교대학생으로부터 사전에 받은 질문내용을 하나씩 소개하면서 질문에 대해 답변해 주셨습니다. 여러 질문 중 대표적인 것 한 가지만 소개합니다. nbsp “의무와 봉사의 차이점은 무엇인가요? 절에서나 가정에서 우리 모두가 해야 하는 의무 아닌가요? 너무 무거워 봉사로 포장하는 것 아닌지요?” nbsp 65279 위의 질문에 대해서 스님께서는 다음과 같이 말씀해주셨습니다. “의무는 하기 싫은 것을 억지로 하는 것, 봉사는 하기 싫은 것을 능히 하는 것이예요. 어떤 일을 하고 돈을 받는 것을 노동이라고 합니다. 장사가 주고 받는 것이라면, 봉사는 주고 받는 것이 아니라 그냥 내가 필요에 의해 하는 것입니다. 죽어라 일을 시키고 돈을 안준다고 하면 강제 노역, 노예라고 해요. 돈을 받으면 노동이라고 하고, 아무 조건 없이 내일처럼 하면 자원봉사라고 해요. 그러니까 결론을 내리면 자원봉사는 사랑과 같습니다. nbsp 여러분은 실제로 사랑을 나누고 삽니다. 부부관계는 사랑이지요. 부부관계를 했다고 계산을 하나요? 안하잖아요. 아이들 옷 갈아입히고 빨래해서 입히는 것을 계산하나요? 안하잖아요. 그러니까 사랑을 나누고 사는 거예요. 정토회에서 일을 하고 돈을 받으면 노동이 되며, 돈을 조금 받으면 저임금이고, 그러면 내가 악덕기업주가 되는 것이예요. 그런데 여러분들이 정토회에서 돈을 안받고 일하면 봉사고, 봉사는 사랑이예요. 스님은 좋은 기업주도, 악덕기업주도 되고 싫지 않아요. 여러분들과 사랑을 나누고 싶은거예요. nbsp 노동의 진정한 해방은 노동이 놀이가 되는 것입니다. 놀이는 사랑입니다. 우리의 재능을 마음껏 나누고, 거래를 없애는 것이 사랑입니다. 일을 안하는 것이 아니라 사고 파는 거래가 없어지는 것입니다. nbsp nbsp 우리가 크게 생각하면 수행은 내가 주인이 되는 것이고 사랑을 나누는 일이며, 조건 없이 베푸는 것이예요. 조건은 거래입니다. ‘부부는 사랑이다’ 하지만 실제로 부부지간에도 거래하고 있잖아요. ‘살아보니 손해다’라고 생각해서 살까 말까 고민하며 머리가 아픈 것은 거래하기 때문이예요. 애들한테 까지도 그래요. ‘내가 너 키운다고 얼마나 고생했는데’ 라고 생각해요. 친구지간에도 매일 거래 하는 거예요. ‘술을 3번 샀는데’, ‘이사 갔을 때 도와줬는데’라고 생각하며 섭섭해 하는 것은 장사하고 있는 거예요. 태어나서 장사만 하고 사니까, 머리가 자동적으로 그렇게 돌아가는 거예요. 장사를 하고 있는데 어떻게 진정한 친구예요. 사랑을 해서 괴로운 게 아니고, 장사를 해서 괴로운 거예요. nbsp 그래서 ‘봉사하고 보시해라’라고 하는 거예요. ‘주인되는 연습을 해라’ 하는 것은 사랑하는 것을 연습하는 것이예요. 이렇게 보시를 자꾸 하다 보면 내 남편에게도 할까요? 안할까요? 저절로 됩니다. 집에서만 하는 것은 밖에서 안하게 됩니다. 남의 자식에게 잘하라고 하면 자기 아이는 지가 알아서 하게 됩니다.” nbsp 라고 위의 질문에 대한 답변을 해주시고, 다음과 같이 마무리 말씀도 해주셨습니다. “공부하는 기본 원리를 터득하셨어요? 우리가 공부하는 목표는 해탈과 열반이며, 이것으로 가는 길은 기술과 지식이 아니라 지혜입니다. 지혜로운 것은 이치에 밝은 것이예요. 심리와 마음, 몸뚱이의 작용, 세상 사람들, 사회가 어떻게 작용하는지 등 이것을 이해하면 문제를 푸는데 도움이 됩니다. 이해를 못하면 욕만 나오고, 미친 놈, 죽일 놈, 하면서 미움만 생깁니다. 그러면 내가 괴롭습니다. 이해를 하게 되면 여러분들이 좀 더 밝아지고 가벼워집니다. 그러면 화장을 덜 해도 되고, 안 해도 됩니다. 자연스레 얼굴에 생기가 돕니다. 녹슨 철판에 페인트를 칠하면 자꾸 벗겨지고 지저분해져요. 여러분들이 마음이 더러운데 화장만 자꾸하면 덕지덕지 되어요. 그래서 여러분들은 저녁에 지우고 아침에 다시 화장해요. 마음이 행복하면 화장 안해도 좋아요. 행복이 영원한 화장입니다. nbsp 이제 수행도 기분 좋게 할 수 있겠지요?. 밥을 늦게 줘도, 안 줘도 불만이 없어야 합니다. 이것을 긍정적 사고라고 해요. 긍정적인 사고위에 개선할 것이 있으면 개선을 하면 좋아요. 불만으로 하지 말고요. 앞으로 더 나아가기 위한 개선을 해야 합니다. ‘불편은 내 문제다’ 하는 것을 먼저 알아야 합니다. 상대가 하고 안하고는 그 사람의 문제입니다. 이게 말이 쉽지, 쉬울까요 안 쉬울까요? 안쉽겠지요. 그래서 연습이 필요합니다. 이런 연습이 수행입니다. 열심히 연습해보세요.” nbsp 라고 하시면서 스님께서는 3시간 동안 꼼짝도 하지 않으시고 봄불교대 학생들에게 해탈과 열반의 길을 자상하게 일러주셨습니다. 학생들의 표정도 문경 정토수련원의 맑은 공기만큼이나 밝고 가벼워 보였습니다. nbsp 65279 불대 특강후 스님께서는 바로 새터민 가족 나들이가 있는 부여로 향했습니다. 도착하니 점심시간이어서 점심공양을 먼저 하셨습니다. 좋은벗들이 새터민 지원할 때 처음 지원했었던 김홍익 거사님이 오랜만에 오셔서 스님께 인사를 드렸고 함께 공양을 하시면서 그간에 있었던 이야기들 아들 이야기, 직장이야기, 현재 북한의 상황등 을 나누었습니다. nbsp nbsp 이어진 새터민 노래자랑을 신나게 들으신 후, 궁남지로 이동해서 먼저 화지산에 세운 백제오천결사대출정식 계백장군동상을 둘러보셨고, 길을 따라서 다시 서동과 선화공주의 사랑이야기를 담은 서동공원의 궁남지와 포룡정을 둘러 본 후 오늘 강연이 있는 부여 박물관으로 이동했습니다. 조금 시간이 있어 부여박물관을 잠깐 관람했습니다. nbsp nbsp 관람을 마친 새터민들이 하나 둘 스님과의 즉문즉설을 위해 들어오기 시작했습니다. 자리가 3분의 2 가량 찼을 때 스님께서 무대 위로 올라가 아까 노래자랑이 성에 덜 차지 않았냐고 말씀을 꺼내십니다. 야외라 제대로 집중이 안 되고, 춤과 노래를 좋아하는 새터민들이 마음껏 놀지 못한 것을 염두에 두셨던 듯합니다. 아니나 다를까 아까 못한 사람 지금 노래하라고 하니 여기저기서 손을 번쩍 듭니다. 공연장 안에서 들리는 노래소리에 다른 새터민들도 속속 들어와 어깨를 들썩입니다. 노래를 마친 한 새터민이 스님도 한 곡 하셔야 한다고 마이크를 넘겨서 스님의 선창으로 다같이 ‘고향의 봄’을 불렀습니다. nbsp nbsp 예정된 시각을 조금 넘기기는 했지만 강연은 어느 때보다 화기애애한 분위기에서 시작되었습니다. 상대에 따라 달리 설법하는 것이 즉문즉설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오늘은 중국에서 카톨릭 세례를 받았으나 한국에서 인정이 안 되어 고민인 여성, 기도하면 소원이 이루어지는지 묻는 어린이, 우리 대에 통일이 될지, 또 통일인 된다면 새터민들은 어떻게 해야 할지 묻는 여성, 고향의 가족을 생각하면 늘 죄책감에 마음이 아프다는 여성, 자신의 정체성이 고민된다는 남성 등의 질문이 있었습니다. 이 중 몇 가지를 전하겠습니다. nbsp nbsp “저는 중국에 오래 살다가 한국에 왔습니다. 중국에 살 때는 쫓겨 다니느라 생각을 못했는데 여기 오니 고향 생각, 가족 생각이 너무 많이 납니다. 우리 대에 통일이 되겠습니까?” nbsp “통일의 가능성은 매우 높아졌습니다. 또 정치적으로 꼭 통일이 안 되더라도 남북한이 자유롭게 왔다갔다 할 수 있어 사는데 크게 지장이 없는 상황은 조만간 올 것입니다. 지금 북한은 현재의 체재를 유지하기가 어려울 정도로 경제나 사회구조 같은 하부구조가 거의 붕괴됐습니다. 그런데 주체사상, 정치, 군대 같은 상부구조는 아직도 탄탄하지요. 하지만 하부구조가 약하기 때문에 상부구조 역시 자생력을 갖기가 어렵습니다. 개선을 해서 살아남든지 개선을 못하면 붕괴가 되든지 두 가지 방법이 있는데 개선을 한다는 것은 내부에서 개혁개방 정책을 취한다든지 해서 서서히 변화 되는 것이고 붕괴된다는 것은 갑자기 폭발적으로 변화가 오는 거겠죠. nbsp nbsp 북한은 이름은 공화국이지만 현실은 왕조와 같습니다. 결정권이 왕한테 다 있기 때문에 인민들이 아무리 반발을 해도 쉽게 안 무너집니다. 또 정권이 무너져도 북한이라는 국가는 유지가 되는 거지, 나라가 없어지는 게 아닙니다. 만약 북한에 변고가 생기더라도 중국은 조중동맹을 근거로 개입할 수 있고, 미국은 힘으로 밀어붙여 개입하겠지만 현재와 같이 남북이 적대 상태에서는 우리가 개입할 수 있는 국제법상의 근거가 없습니다. nbsp 남북한의 교류협력이 잘 되어 국가 연합의 형식을 취해 놓으면 만일의 사태에 가장 먼저 개입할 수 있는 법적 권한이 우리에게 있고, 국제적으로도 저건 korea 내부문제라고 쉽게 받아들이겠지만 지금은 그렇지가 않습니다. 따라서 남한 정부가 통일 정책을 좀 더 적극적으로 펴나가야 하는 겁니다. 물고기 잡으려면 미끼를 줘서 통 속으로 들어오게 해야 하잖아요. 국민들도 그렇고 자꾸 감정적으로 대응하니까 지금 상황이 안 좋은데, 이성적으로 대응하면 여러분들의 아픔도 좀 더 짧아지고 남북한 모두의 미래에 큰 이익이 됩니다. nbsp 여러분들도 여기 있으면 북한에서보다는 잘 살지만 남한 사람만큼 성공하기는 현실적으로 힘들잖아요. 장기적으로 인생의 목표를 통일조국이 건설될 때 내가 내 고향을 건설하는 역할을 하겠다고 하면 여러분에게 더 희망이 있습니다. 통일이 되면 체제나 경제나 구조가 남한 중심으로 통일이 될 거기 때문에 여러분이 불이익을 받을 일이 없습니다. 그러니 이성적으로 생각하면 여러분이 통일에 앞장서야 합니다. 한일 관계가 나빠지면 일본에 사는 한국 사람이 힘들 듯이 남북관계가 나빠지면 여러분도 힘들고 북쪽 가족들도 더 고통을 받습니다. 지금 힘들어도 통일을 지향하면 여러분들이 여기서 배운 앞선 기술이나 모아놓은 자본을 가지고 고향에서 성공하고 통일 조국 건설에도 크게 기여할 수 있습니다. 여러분들에게도 쨍하고 볕들 날이 있을 테니 지금 처지를 비관하지 말고 희망을 가지고 사십시오.” nbsp nbsp 스님의 말씀에 새터민들은 가슴이 다 트이는지 크게 박수를 쳤습니다. 다음은 두고 온 가족생각에 괴롭다는 여성의 질문이었습니다. “고향을 떠난 지 20년이 되고, 한국 온지는 5년 되었는데 마음이 많이 괴롭습니다. 아침마다 스님 즉문즉설을 들으려고 매일 유투브를 찾아 듣습니다. 얼마 전에 동생과 20년 만에 통화를 했는데 그러니까 조금 나은 것 같습니다. 두고 온 형제들에게 늘 미안하고 죄스러운 마음인데 어떻게 하면 좋을까요?” nbsp “지금 여기서 매일매일 울면서 걱정한다고 동생들의 처지가 좋아지나요? 그러면 내 인생은? 그런데 내 인생에도 도움이 안 되고, 동생도 안 좋은 일을 왜 해요? 차라리 어디 가서 즐거운 마음으로 일을 더 하든지요. 잠 못 들고 우는 시간에 일을 더 하지. 아무리 못해도 최저 임금이 시간당 5천원이잖아요. 그 시간에 일을 더 하면 한 달에 12만원 되잖아요. 그러면 100달러죠. 그러면 동생한테 매월 100달러를 보내주는 게 더 도움이 되지 않을까요? 아니면 여기서 매일 우는 게 도움이 될까? 북쪽에 있는 동생은 남쪽에 있는 언니가 매일 우는 게 좋을까, 즐겁게 사는 게 좋을까요? nbsp 괴로운 마음과 감정은 백분 이해를 하지만 그러나 그것은 어리석은 거예요. 나라도 하나 넘어 왔으니 지금 도와주려면 도와줄 수 있잖아요. 어차피 둘 다 못 살 때는 나 혼자라도 살아야지요. 나만 살자는 게 아니라, 나 혼자라도 살아야 한다는 거예요. 내 가족이 죽는데 어떻게 나만 살 수가 있나, 감정적으로는 이렇게 느끼지만 이성적으로 생각해보면 그렇지가 않습니다. 여기 와 혼자 잘 산다고 죄의식을 가질 필요가 없어요. 나라도 여기 와서 가족을 도와줄 수 있으니 얼마나 좋으냐, 이렇게 생각을 바꿔야 합니다. nbsp nbsp 여러분들이 여기 오느라 가족들이 감옥에 가고 중국에서도 이리 저리 팔려가고 온갖 아픔이 있었지요. 그런데 남한에서도 이런 고통은 있었습니다. 독재시대 때 시위하다가 많이 감옥가고 죽었습니다. 북쪽에 가족이 반동분자로 몰려서 죽은 경우 많았죠? 남한에도 빨갱이로 몰려서 몰살당한 경우가 많습니다. 제주에서 4.3 사건으로 3만 명이나 희생당하는 등 아예 한 마을이 통째로 몰살당한 경우도 있습니다. 우리가 이런 아픔을 안고 살고 있으니 내 후손들은 다시는 이런 아픔을 갖지 않도록 해야 합니다. 그러려면 첫째 한반도에 다시는 전쟁이 있어서는 안 됩니다. 또 미래의 이익을 위해서 통일로 나아가야 합니다. 아침에 일어나면 ‘오늘도 살았네’ 하고 기분 좋게 생각하세요. 과거의 불행을 자꾸 생각하면 미래의 불행을 만드는 겁니다. 웃으면서 사세요.” nbsp ‘웃으면서 살겠습니다’ 한번 크게 해보라는 스님 말씀에도 질문자는 쉽사리 울음기를 거두지 못합니다. 오늘날에도 반복되는 민족의 고통에 듣는 이들도 가슴이 찡해옵니다. 스님은 이어 부여에 왔으니 부여의 역사에 대해 좀 알고 가야 한다며 우리 민족의 기원과 부여에 대한 짧은 역사 강의를 하셨습니다. nbsp “우리 민족의 역사는 길게 보면 9천년이 넘습니다. 우리 민족이 맨 처음 세운 나라는 환인의 한나라입니다. 한은 아주 크다는 뜻으로 한나라는 약 3천 년간 지속되었습니다. 그러다 그중 3천여 명 가량이 동북아시아로 이주하여 나라를 세웠는데 그것이 신시, 즉 배달나라입니다. 우리의 개천절은 배달나라를 연 날에서 기원합니다. 배달나라의 임금은 환웅이라 불렀고 천 오백여년간 나라가 유지됩니다. 후에 임금의 아들과 토착민의 딸이 결혼하여 낳은 아들이 새롭게 왕이 되어 나라를 세우니 그것이 단군의 조선나라입니다. nbsp nbsp 조선은 청동기문명이 대단히 발전한 나라였는데 청동기문명에 안주하다보니 철기의 발달이 늦어지고 중국의 한나라에 밀려 많은 영토를 잃게 됩니다. 조선을 이어 받아 건국된 나라가 부여인데 부여는 다시 동부여, 졸본부여, 남부여로 나뉩니다. 졸본부여는 고구려로 이어지고 남부여가 바로 백제입니다. 백제가 수도를 옮기면서 이곳의 지명을 부여로 바꾼 데는 부여를 계승하는 나라라는 뜻이 있습니다. 나중에는 신라가 통일을 했지만 백제의 문화와 기술은 상당히 우수하고 앞선 것이어서 통일 후 신라의 문화발전에 큰 영향을 끼쳤습니다.” nbsp 역사 이야기가 흥미로운지 ‘재미있냐’고 묻는 스님 말씀에 새터민들은 ‘네’하고 크게 답합니다. 이번에는 젊은 남성의 질문이 이어졌습니다. “대한민국에서 살아가면서 ‘열심히’라는 기준을 잘 모르겠습니다. 한국 사람인 것 같은데 아니고. 제가 누구인지 잘 모르겠습니다.” nbsp “제가 작년에 전 세계를 다니면서 강연을 했는데, 그들의 질문이 자기 질문하고 똑같아요. 40년을 독일에서 독일남자랑 살았는데 독일 사람도 아니고, 한국에 돌아가도 한국 사람도 아니고 내가 도대체 누구요? 합니다. 남의 기준을 적용하지 말고 내 기준을 만들어야 합니다. 질문자는 북한에서도 살아보고 남한에서도 살아봤지요. 이런 사람은 희귀합니다. 거기에 대해 당당하고 자부심을 가져야 합니다. nbsp 남한에서 차별받는다 생각하지 말고, 내가 북한에서 태어나 그동안 북한에 충성했는데 남한에서 받아주고 시민권도 주고 집도 주니 고맙다고 생각하면 나쁘게 여길 일이 없습니다. 그래도 내가 북에서 왔으니까 오자마자 시민권도 주고 하지, 중국이나 베트남에서 왔으면 아무리 오래 살아도 시민권을 쉽게 얻을 수 없습니다. 제도적으로 차별하는 것은 개선해야지만, 사람들 사이에 일어나는 관습적인 차별은 시간이 필요하니까 감수하고 그나마 이렇게 시민권도 주고 집도 주니 감사하다고 마음을 바꾸면 좋겠어요.” nbsp 질문자는 씩씩한 목소리로 알겠다고 대답을 합니다. 모든 질문자의 질문이 끝난 후 다시 한 번 노래가 이어집니다. 어떤 여성은 고향을 떠나온 마음을 시로 낭송하여 공감을 자아내기도 하였습니다. 남쪽에서도 답가를 하라 하여 대전에서 온 한 봉사자가 나가 ‘찔레꽃’을 흐드러지게 불러 흥을 더욱 돋우었습니다. 마지막으로 옆 사람과 손에 손을 잡고 ‘우리의 소원은 통일’을 부르는 것으로 강연을 마쳤습니다. 새터민들의 얼굴을 보니 묵은 체증이 내린 듯 시원하다는 표정들이었습니다. 이렇게 오늘 서로 고통을 이해하고 화합하듯 통일이 이루어지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nbsp nbsp 모든 강연을 마치고 많은 새터민들이 스님께 와서 인사를 하고 사진을 찍었습니다. 그중에 ‘기도를 열심히 하면 소원이 이루어지는지’ 물었던 초등학교 여학생이 와서 스님께 귀속말로 소곤소곤하고는 환하게 웃었습니다. 나중에 스님께서 그 아이가 와서 한 이야기를 들려주셨는데, “스님 소원이 이루어지도록 열심히 기도할께요. 제 소원은 통일이예요” 라고 했답니다. 초등학생이 그런 생각을 하는 것이 기특하기도 했지만, 비록 한 사람이지만, 우리의 미래가 환해지는 느낌이었습니다. 이 어린이가 잘 자라서 통일일꾼이 되었으면 하는 바램을 가져봅니다. nbsp nbsp 새터민과의 일정을 마치고 대전법당으로 오는 길에 백제 왕릉원이 있는 능산리 고분군을 둘러보셨습니다. 능산리 고분군에는 백제의 왕족 무덤 5개가 있었고, 그 옆으로 가다보면 의자왕 단비와 태자 융의 비가 있었습니다. 의자왕은 백제 마지막 왕으로 당에 볼모로 가 있어서 유해를 찾을 수 없었던 것을 백제의 후예들이 중국 낙양에 있는 무덤을 찾아 흙을 가져와서 단을 꾸미고 의자왕을 기리기 위해 마련한 것입니다. nbsp nbsp 저녁에 대전법당에 도착해서는 원고교정과 영상점검등을 하신 후 하루일과를 마무리 하셨습니다. 내일은 청주, 전주 희망강연이 있는 날입니다. nbs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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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5.16. 청년리더십아카데미 경주역사기행

nbsp nbsp nbsp 어제밤 10시에 인천에서 출발해서 경주로 오다가 운전자가 졸려 선산휴게소에서 2시간 정도 자고 오느라 오늘 새벽 4시 30분에 두북에 도착한 스님께서는 잠시 쉬셨다가 아침공양을 드신 후 어제 스승의 날에 각 강연장에서 받은 꽃다발을 정리하셨습니다. 모두 풀어서 다시 나누어 여러 꽃병에 나누어 꽂았습니다. nbsp nbsp 그리고 아침기도를 하신 후 지난주에 클로버를 제거한다고 했는데도 또 다시 여기저기 클로버가 보여서 스님께서는 다시 호미를 들고 마당 여기저기에 남아있는 클로버를 제거하였습니다. nbsp nbsp 10시 청년리더십아카데미 경주역사기행에 앞서 잠시 경주터미털 앞에서 지역인사와 잠깐의 미팅을 가진 후 법흥왕릉으로 향했습니다. 예정시간 보다 조금 늦게 도착했지만 법흥왕릉에 먼저 도착한 60여명의 청년들의 명랑한 인사를 받으며 경주역사기행을 시작하였습니다. nbsp nbsp 스님께서는 우리가 통일 문제를 풀기 위해서는 지금 우리 이웃 경험과 과거 우리의 경험을 참고할 필요가 있다며, 그러기 위해서는 첫째, 이웃경험을 참고하기 위해 독일탐방을 다녀오고, 둘째로 우리민족사의 전통성을 계승한 고구려8729발해를 알기 위해 동북아 역사대장정을 다녀오고, 셋째, 과거의 우리 역사적 경험을 배우기 위해 신라통일에 대한 경주역사기행에 다녀 와야 한다고 말씀하시며 오늘 강의를 하게 된 배경을 설명하였습니다. nbsp nbsp “신라의 삼국통일에서 우리는 두 가지를 살펴봐야 합니다. 첫째, 신라는 동쪽에 치우친 작은 부족국가였는데 어떻게 급성장하게 되었는지? 둘째, 한국사의 비주류인 신라가 어떻게 민족사의 주체로 등장할 수 있었는지? 입니다. nbsp AD400년경에만 해도 가야와 왜 연합군이 신라를 침공하게 되는데, 신라는 광개토대왕에게 사신을 보내 신하의 예를 취하고 고구려의 도움을 받아 가야8729왜 연합군을 격파하게 됩니다. 그만큼 신라가 작은 나라였어요. 그런 신라가 부흥하기 시작한 것은 법흥왕때 인데, 이때 신라는 개혁개방 정책을 취했어요. 개혁정책으로 율령을 반포해 국가체제를 제대로 갖추고, 개방정책으로 가야와 통합하기 위해 150년 동안 금지해온 불교를 공인했습니다. nbsp 신라가 내부 개혁을 통해 가야인들이 특별히 손실을 보지 않도록 법으로 정한 겁니다. 마치 남북이 통일된 후 남한에서 민족화해법이란 것을 만들어서 북한 관료들 책임을 묻지 않겠다, 공무원 시험 볼 때 불이익 주지 않겠다와 같은 내용을 법으로 보장해 준 것입니다. 그리고 가야의 신앙을 인정해 주기 위해 불교를 공인하고, 가야의 왕족을 신라의 왕족으로 인정해 줍니다. 강자가 약자한테 양보하면 포용이고, 약자가 강자한테 양보하면 굴복입니다. 신라가 가야를 굴복시킨 게 아니고 신라가 가야를 포용합니다. 강자가 이렇게 포용하기 쉽지 않습니다. 또 약자는 강자에게 저항하고 싶지 포용당하고 싶지 않아요. 그러니까 신라가 억지로 가야를 굴복시키려 했으면 가야가 저항했을 텐데, 신라가 포용하니까 가야가 합의한 겁니다. 신라와 가야는 이렇게 합의통일을 한 것입니다. 이게 신라가 비약적으로 성장한 핵심적인 요인입니다.” nbsp nbsp 스님 말씀을 들으며, 세계적으로 유례를 찾기 어려운 평화적 합의 통일의 역사를 우리 조상에서 발견할 수 있다는 것에 긍지가 느껴지고, 조상의 지혜를 살려 우리의 남북통일문제를 풀 수 있겠다는 생각에 희망이 생겼습니다. nbsp 이어서 진흥왕릉으로 이동하였습니다. 진흥왕릉에 도착하자 스님의 설명은 계속 이어졌습니다. nbsp “진흥왕은 함경남도 함흥을 넘어 황초령과 마운령의 순수비를 세우고, 한강유역에는 북한산 순수비를 세우고, 대가야를 복속시켜 창령 순수비를 세웠습니다. 신라는 지금의 경상남도와 전라남도 일부 여수 순천 남원까지, 경기도 전부, 충청북도, 황해도 일부, 함경남도 일부까지 영토가 확대됩니다. 그래서 왕호가 영토를 확장했다고 해서 진흥입니다. 신라를 크게 나누면 초기 부족국가 시기가 있고, 그 다음 신라의 중흥기와 통인신라시기 세 개로 나뉩니다. 신라의 중기는 영토가 확장된 법흥진흥왕 시기 50여년, 유지 관리한 진지진평왕 시기 50여년, 통일로 나아가는 시기인 선덕여왕진덕여왕태종무열왕문무대왕 50여년으로 나뉩니다. 이렇게 150년 만에 대업을 완성한 거예요. 이런 통일의 기초를 닦은 게 법흥, 진흥왕입니다.” nbsp nbsp 누구의 무덤인지 밝혀지지 않은 4개 무덤을 지나 지금까지 본 무덤 중에 가장 큰 태종무열왕릉에 도착하게 되었습니다. nbsp “선덕여왕이 아버지를 뒤이어 대당외교를 강화했어요. 이때 당나라 왕이 당태종이에요. 당나라 입장에서는 고구려에 대응하려면 작지만 신라가 필요했습니다. 미국이 마치 아시아에서 한국이 필요한 것처럼 말이죠. 이때 외교를 주도한 사람이 후에 태종무열왕이 된 김춘추입니다. nbsp 김춘추가 대당외교 등 정치적 치적이 있었고, 또 김유신이 총사령관이 되면서, 정과 군이 결탁 되어 김춘추가 왕위에 오를 수 있었으며 또한 신라 국정을 안정시킬 수 있었습니다. nbsp 신라가 통일할 수 있었던 것은 선대로 내려오는 탄탄한 국력과 정치적 안정도 있었지만 결정적인 것은 외교였습니다. 외교문제에 신라는 눈을 떴던 것입니다. 근데 백제, 고구려는 외교에 눈을 못 떴어요. 정세변화를 감지하지 못했어요. 고구려는 중국이 분열되어 있다 통일된 것을 초기 한나라 때만 경험해서 중국을 잘몰랐으나, 분열된 중국이 수나라 당나라로 통일되면서 지난 400년 가까이 경험해보지 못한 일을 겪게 됩니다. 자기들 살아온 데로 당나라에 저항만 했지, 당나라와 일정한 전략적 외교관계를 맺어 당면한 문제를 풀지 못했습니다. 지금의 한국도 똑같습니다. 지난 50년간 성장만 해왔어요. 외교적으로도 지난 50년간 세계 제일 패권국인 미국하고만 관계 맺으면 안전했어요. 이것이 우리의 무의식을 지배해서 사실상 지금 현실이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앞으로도 계속 경제성장할 것이다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동안 해왔던 것과 같은 미국 일변도의 외교는 앞으로 굉장한 위험을 초래합니다. 세계 판도가 바뀌어 가고 있기 때문이죠. 그러니까 우리는 과거의 경험이 굉장히 중요하면서도 과거의 경험 때문에 망하게 되기도 합니다.” nbsp nbsp 우리가 그동안 미처 알지 못했던 신라의 역사를 재밌게 듣다 보니 어느덧 점심시간이 되었습니다. 청년들은 조별로 김유신 장군묘가 있는 흥무공원에서 식사하였습니다. 그리고 식사 후 김유신 장군묘 앞에서 스님의 열정적인 강의는 계속되었습니다. nbsp 스님께서는 백제와 고구려가 멸망한 후, 신라는 고구려와 백제의 옛 땅에 주둔한 당나라를 상대로 8년간 전쟁을 했고, 이를 통해 자주성을 지켜 삼국통일을 이룩한다는 말씀을 하였습니다. 또한 이렇게 신라가 자주성을 지키는 데에는 김유신 장군의 흔들리지 않는 신념이 있었다고 말씀하였습니다. nbsp nbsp “우리는 김유신이 외세 끌어들여서 고구려, 백제를 멸망시켰다는 부정적인 것만 보는데, 사실 신라는 자기들 살길 찾아서 외교적 승리로 통일을 이루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신라는 광활한 영토를 잃어서 고구려의 역사를 모두 계승하지 못하고 민족사의 축소를 가져왔습니다. 그러나 신라는 지금 우리와 비교해볼 때 자주성이 매우 높았어요. 삼국통일이 필요해서 당나라 군대와 협력했지만, 당나라에 완전히 예속된 것은 아니었습니다. 당나라와 8년 전쟁으로 자기들 이상을 실현할 만큼 자주적인 국가였습니다. nbsp 우리가 처해진 상황과 비교해서 봅시다. 예를 들어 북한에 내분이 일어나 한미 연합군이 북한을 점령했어요. 그래서 우리는 바로 통일될 줄 알았더니, 중국이 개입해서 북한을 남한에 넘기지 않고 미중이 공동관리하거나 미국이 미군정을 실시했을 때, 한국군이 주한미군을 몰아낼까요? 미국에서 20만 대군을 파병하면 한국군대가 끝까지 미군하고 싸울까요? 이것은 굉장히 중요한 문제에요. 북한에 문제가 생기면 미국은 북한에 힘으로 밀어붙여 개입할 것이며, 중국은 조중동맹으로 개입할 텐데, 우리는 국제법적으로 개입할 명분이 없어요. 근데 남북이 각자 독립국가를 유지하면서도, 국가연합 수준으로라도 되어 있으면 북한이 붕괴 되더라도 남한이 우선적으로 개입할 수 있어요. 남북이 적대적 관계에서 북한이 붕괴하면 남한이 개입할 여지가 없어요. 북한이 쉽게 붕괴되지도 않지만 지금 정책으로는 붕괴 되어도 닭 쫓던 개 지붕 쳐다보는 꼴이 될 것 입니다.” nbsp nbsp 신라의 자주성에 대한 말씀을 들으면서 그동안 역사에서 배우지 못했던 신라의 다른 면을 발견함과 동시에 우리가 그 기상을 배워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 다음 일정인 사천왕사지로 향하자, 사천왕사가 있었던 터에는 녹음만 무성하고 건물의 흔적으로 찾아볼 수 있는 것은 건물을 받쳐주는 돌들 뿐이었습니다. nbsp 사천왕사는 당나라 군대가 고구려 침공 후 신라까지 침공하려고 하자, 문무왕이 불교의 힘을 빌려 당의 침입을 막기 위해 세운 호국 사찰이라고 합니다. 신비한 옛 이야기를 들으며 신라시대 선조들이 위기에 처한 나라를 지키기 위해 가졌던 간절한 마음이 느껴져 마음이 뭉클해지기도 했습니다. nbsp nbsp 신라는 이러한 호국정신을 가졌기에 676년 당나라의 침략을 막아내고 종전 후 국교를 수립하게 되었으며, 우리는 삼국통일의 해로 고구려, 백제의 멸망시기가 아닌 당나라 군사가 한반도에서 철군한 이때로 잡습니다. nbsp 다음은 사천왕사 뒤편에 있는 낭산 중턱에 오르니, 우리나라 최초의 여왕의 능인 선덕여왕능이 나왔습니다. nbsp nbsp 스님께서는 삼국유사에 기록된 선덕여왕의 예지력을 엿볼 수 있는 세 가지 사례를 말씀해 주셨고, 그 말씀속에서 선덕여왕은 여성이라는 편견을 넘어 미래를 예견했던 현명한 리더였음을 엿볼 수 있었습니다. 선덕여왕의 치적으로는 후에 삼국통일의 주역이 된 인재들을 양성하였고, 첨성대, 분황사, 황룡사 9층 석탑 등 역사에 남을 유적을 건설하였음을 알 수 있었습니다. nbsp nbsp 이어서 문무대왕의 화장터인 능지탑을 지나 버스를 타고 이동하여 이번 기행의 마지막 유적지인 황룡사지에 도착했습니다. nbsp 30여 년째 발굴 중인 황룡사지 터에서 강의는 이어졌습니다. 신라 최대의 절인 황룡사지가 몽고의 침략으로 불태워 졌다는 말씀을 듣고, 안타까운 마음에 한 청년이 “몽골사람들이 왜 불태웠나요?”하고 물으니, 스님께서는 이렇게 답하셨습니다. nbsp nbsp “우리나라 절은 세 번 유실 됐습니다. 첫째, 몽골란때 유실되었습니다. 고려시대 몽고 침략 당시 임금이 강화군에 피난 후 항복을 안 하니, 몽고인들이 육지로 다니면서 계속 노략질 하면서 태운 것이죠. 그 이후로 복원되었지만 조선시대 임진왜란 때 다시 불탔어요. 이유는 전쟁 중이기도 했지만 전쟁에 참여한 승병 때문에 일본인들이 산에 있는 절을 싹 태웠어요. 조선시대에는 불교를 탄압하니까 옛날처럼 국가의 지원이 없어 다시 복원을 제대로 못했어요. 그나마 복원한 것은 6.25때 미군 폭격에 의해 소실됐습니다. 절이 대부분 산에 있으니까 당시 빨치산들의 근거지를 없애기 위해 태웠습니다. 우리 건물은 목조건물이니까 3대 전쟁에 의해 다 소멸된 것이죠. 일본은 외세 침략이 없기 때문에 목조건물이 많이 남아 있고 중국은 벽돌건물이니까 남아 있어요. 우리나라는 전쟁으로 인해 문화재 유실이 많았습니다.” nbsp nbsp 황룡사지 근처에 있는 분황사 앞을 지나 버스에 오르며 오늘의 유적지 탐방을 마치게 되었습니다. nbsp 이어서 숙소로 돌아와 저녁식사를 한 후 오후 7시부터 lt통일 신라 역사를 통해 배우는 리더십gt이라는 주제로 스님의 강의가 진행되었습니다. 청년들은 낮에 빠듯한 프로그램을 따라 다니느라 피곤한 기색이 역력했지만, 하루 종일 강연하신 후 저녁식사도 거르시고 서서 저녁강의를 이어가는 스님의 모습에 감동이라도 받은 듯 2시간 30분에 걸친 강의 시간 내내 스님말씀에 집중하여 귀를 기울였습니다. nbsp “오늘 경주 다니면서 신라를 통해 우리는 새롭게 알 수 있는 사실이 있습니다. 한 시대안에 사는 사람들이 조금만 좋은 방향으로 노력했을 때 30년 정도 지나면 사회전체가 바뀐다는 것을요. 작은 신라가 그런 노력으로 큰 신라로 바뀌었습니다. 고구려처럼 아무리 부강한 나라더라도 서로 시기 질투하고 남의 것 뺏고 싸우면 30년 만에 망해버려요. 하루나 일주일 공부 바짝해서 성적이 좋아지는 게 아니라, 일년 꾸준히 해야 성적이 오르는 것과 같습니다. 인생을 짧게 보니 ‘좋은 일 해도 좋은 결과 없네’ 라고 생각합니다. 길게 보면 지은 인연의 과보는 다 받게 되어 있습니다. 돈을 빌렸으면 갚아야 되고, 꾸준히 저축하면 목돈을 받게 됩니다. nbsp nbsp 그래서 여러분도 인생을 길게 봐야 합니다. 그리고 세상과 나라도 조금 길게 보면 어떨까요? 우리가 50년 정도 앞을 봅시다. 중국이 지금보다 더 규모가 커질까요? 작아질까요? 인도는 후퇴 할까요? 커질까요? 그럼 미국은 세계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줄어들까요? 늘어날까요? 근데 앞으로 50년 동안 계속 그런 것은 아니에요. 미국의 성장이 감소하다가 증가하기도 하고, 중국이 늘어가다가 성장이 둔화될 수도 있는 것이죠. 그러나 크게 역사를 보면 미국은 지는 해에 속합니다. 금방 질까요? 아니에요. 미국은 성장잠재력이 많고, 창조력이 제일 많은 나라에요. 앞으로 새로운 게 만들어진다면 미국에서 가능합니다. nbsp 하지만 삼성의 경우 남의 것 베껴서 계속 덩치를 키워가는 형식인데. 그래서 사회적으로 저항을 받잖아요. 삼성이 남이 만든 것 보고 금방 더 잘 만들 수는 있지만 창조력을 보인 것이 있어요? 없지요. 20년 전에 일본 소니가 삼성처럼 그랬어요. 그 당시 일본이 급속하게 성장해서 미국에게 이길 것이다고 예측했지요. 못이긴 이유는 일본은 모방하기 때문입니다. 미국에 아무리 근접해도 이기지 못하는 것은 창조력이 없으니 더 이상 성장할 수 없는 것이죠. 일본은 이 덫에 20년간 걸렸습니다. 20년 전 일본처럼 이제는 우리가 걸렸 습니다. nbsp nbsp 미국은 처음엔 유럽 영국을 모방했습니다. 그래서 고성장 했지만 중간에 덫에 걸려 고생했어요. 근데 미국은 서부 개척이라는 성장 동력으로 규모를 키워 위기를 극복하면서 창조력을 갖기 시작했습니다. 그래서 자동차, 비행기 같은 발명품이 미국에서 나왔습니다. 미국은 아직 창조력을 갖고 있기 때문에 괜찮지만 규모면에서 점점 적어집니다. 미국의 창조력이라는 것도 이 문명 안에서 창조력이지, 이 문명 밖에 있는 것은 못 봅니다. 그래서 미국은 인류 문화사적으로 일정한 기간이 지나면 내리막길로 간다고 봐요. 중국은 규모면에서 앞으로 훨씬 커집니다. 앞으로 중국이 제일 커지고, 미국이 2위, 인도가 3위, 일본도 3위에서 4위로 밀릴 것이에요. 근데 중국이 창조력 있어요? 중국도 없어요. 중국도 서양문명을 모방하는 것입니다. 앞으로 중국이 덫에 걸려 저성장으로 가고 내부 분열이 와 몰락으로 갈지 아니면 그것을 뛰어넘을지 모릅니다. nbsp 그래서 지금의 문명이 한계에 도달 할 때는 변두리 문명에서 새로운 창조력이 생기게 될 것입니다. 단순 모방하면 100 실패해요. 지금은 모방하지만 모방을 통해 습득하고, 자기들의 고유한 문명으로 새로운 것을 만들어내면 문명은 확대됩니다. 중국과 인도는 자기 고유의 문명적 자부심을 갖고 있기 때문에 가능성이 있는 편입니다. 근데 한국은 모방의 기술은 뛰어나지만 자기 정체성, 자기 고유의 특징을 가지고 대응하면 이게 작용해 창조력이 생길 텐데요. 현재는 크게 가능성이 없습니다. 한국에서 서양을 모방하다가 독자적 창조성으로 전환한 부분은 오로지 대중예술입니다. 인류 문명은 모방에서 창조가 나왔습니다. 서양 것을 그대로 모방하고, 한국 것을 그대로 전통 유지 하다가 나중에 섞어버리면, 이것도 아니고 저것도 아니잖아 라고 평가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역사가 오래 지나면 이것도 창조가 됩니다. 능지탑처럼 말이죠. 능도 아니고 탑도 아닌데, 오직 하나밖에 없는 창조물이 됩니다. nbsp nbsp 우리는 지금 이 저 성장 덫에 걸려 있어요. 우리는 50년 동안 분단 상태로도 계속 성장해 왔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계속 성장할 거라고 생각 하는데, 사실 다른 나라에서는 3만 성장해도 잘 하는 겁니다. 우리는 늘 고성장만 해 왔기 때문에 지금의 저성장을 답답해하는 것이죠. 모방의 한계에 왔기 때문에 저성장으로 갈 수밖에 없고 저성장에 적응해야 합니다. 이걸 뛰어넘으려면 창조력을 가져야 하고 창조력을 키우려면 시간이 걸립니다. 근데 이렇게 얘기하는 정치인은 한 명도 없습니다. 우리가 현실을 직시하고 받아들여서 그것에 맞게 살던지, 극복해야 한다면 그 대안을 찾아 실행하던지 둘 중 하나는 선택해야 합니다. 그러나 대안도 제시 안하고, 그렇다고 현실 적응도 안하면서 욕망만 갖고 있습니다. nbsp 이러한 상황의 해결책은 창조력을 키우는 것입니다. 시간이 많이 걸립니다. 지금의 아이들부터 20년, 30년 준비해야 하는데, 아이를 키우는 어른들이 이에 대한 이해를 못하니까 악순환이 반복되는 것입니다. 겨우 선생 이해시켜 놓으면 교육공무원이나 정치인이 알아듣지 못합니다. 이들을 이해시켜 놔도 학부형이 또 모릅니다. 학부형들은 자기가 살아온 경험에 의해서 ‘의사가 최고다. 돈 되는 것은 이것밖에 없다.’라는 식의 사고를 고집하게 됩니다. 그러니까 바꾸기 굉장히 어렵습니다. 과제는 아는데 해결책이 없습니다. 해결책이 있다 해도 실행방법이 없습니다. 지금부터 시도한다 하더라도 10년, 20년, 30년 걸릴 일인데, 그동안 저성장 장벽, 정체 장벽 앞에서 사회가 혼란에 빠지고 갈등이 심화될 것입니다. nbsp 그러면 이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성장 동력을 키우는 것부터 시작해야 하는데, 그럴러면 양을 확대하는 수 밖에 없습니다. 그동안 수출을 통해서 양을 확대하는 정책을 해 왔습니다. 옛날에는 미국이 우리한테 지원해 줄 수 있었습니다. 근데 지금 미국이 경제적으로 어려워 오히려 우리 덕을 보려고 난리입니다. 그래서 수출을 통한 발전은 한계에 이르렀습니다. nbsp 이 위기를 극복할 수 있는 유일한 길은 통일입니다. 지금 북한이 저개발 상태입니다. 북한과 통일하면 북한에 도로 깔고, 건물 짓고, 나무도 심게 됩니다. 돈 많이 드는 일이지만 이것은 소비가 아니라 미래를 위한 투자입니다. 이것은 마치 미국이 서부 개척으로 규모를 확대해서 성장동력을 만든 후 창조력을 키울 수 있는 시간을 벌었듯이, 우리도 북한개발을 통해 시간을 벌개 해 줄 것입니다. 그러니 통일 문제는 민족, 애국을 떠나서도 우리가 이 위기를 극복할 수 있는 유일한 해결책이기도 합니다. nbsp 근데 지금 남북한이 통일 한다고 할 때 남한도 문제가 많긴 하지만 기본 모델은 남한이 되어야 합니다. 북한 사람들은 통일한국의 기본 모델을 남한으로 두는 것을 쉽게 받아들이지 않을 것입니다. 북한주민들은 환호할지 모르지만 지배층은 받아들이지 못합니다. 결국 이 문제를 풀려면 북한 지배층에게 그들이 원하는 것을 줘야 합니다. 먼저 그들의 신분을 보장해 줘야 하고, 다음은 과거를 묻지 않겠다고 해야 합니다. 이렇게 해 줘야 통일 한번 해 볼 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그 안에서도 반대와 찬성이 나올 수 있는데, 다수가 찬성해야 해결될 수 있습니다. 북한 시스템이 민주주의면 주민의 51만 찬성해도 되지만, 현 체제에서는 90가 찬성해도 지배계층인 10가 반대하면 안됩니다. 우리가 지배층 10를 설득해야 합니다. nbsp 남한 중심으로 통일이 된다 하면 종북주의는 아니지요. 그러나 북한을 포용해야 합니다. 남한 중심으로 통일 된다 하면 북한도 반대할 것이고, 북한을 포용해야 한다하면 남한안에서도 북한 지배층 손 봐야 한다는 사람들 입장에서는 이를 종북 좌파라고 욕할 수 있습니다. 극단적인 사람들을 배제하고 실용적 관점에서 중도적으로 이 문제를 풀어야 합니다. 이것이 새로운 위기를 극복하고 민족 공동체 전체 이익을 추동하는 것입니다. nbsp nbsp 신라와 가야의 통합에서 우리는 배울 것이 많습니다. 근데 문제는 남북 문제를 우리 둘이 의논하고 해결하면 되는데, 우리의 처지가 그럴 수 없습니다. 미국이 유일하게 세계최강국일때는 북한이 아무리 난동 피워도 한국이 미국에 붙어 있으면 끄떡없었습니다. 근데 이제 미국과 중국의 G2체제 입니다. 미국은 세계패권국으로서 자기 영향력을 계속 누리고 싶어 하고, 중국은 자기 영향력을 더 가지고 싶어 합니다. 둘이 충돌할까요? 안할까요? 충돌하겠지요. 과거 역사 속에서는 전쟁으로 결판이 났습니다. 지금은 전쟁이 쉽사리 일어나기 어렵습니다. 미국은 지금도 월등히 힘이 세지만 중국의 팽창을 막기 위해서는 자기만 갖고는 벅찹니다. 일본을 끌어들여 재정부담을 지우게 합니다. 일본은 2차 대전에서 미국과의 전쟁에서 져 종속국으로 그동안 미국 눈치만 보고 살았는데, 미국이 어려움에 처하니까 이 기회를 이용해서 패전국에서 정상국으로 전환하려고 합니다. 그래서 패전국에 따라 만든 평화헌법도 바꾸려고 합니다. 미국은 일본을 견제해왔지만 중국이라는 더 큰 적이 등장하니 일본을 풀어주는 것입니다. 일본이 과거 역사에 대한 반성없이 세게 나가는 것은 미국을 믿고 그러는 것입니다. nbsp nbsp 미국은 패권유지를 위해 한국, 일본을 끌어들이고, 중국은 자기 능력에 걸 맞는 영향력을 끼치기 위해 한국에게 잘해 줍니다. 한국이 미일동맹에 들어가면 중국입장에서 불리하니까 한국이 들어가지 않도록 북한의 반발을 사면서 까지도 마치 한국 편이 더 될 것처럼 연막을 피우면서 한국에게 잘 해 줍니다. 한국이 이런 상황에 놓여있기 때문에 섣불리 미국한테 붙으면 중국에게 보복을 받고, 또 섣불리 중국에게 붙으면 미국의 보복을 받을 수 있습니다. nbsp 대한민국은 이런 혼란스런 동북아 판세 속에서 무엇을 목표로 해야 할까요? 바로 통일입니다. 정치, 외교, 안보, 경제 모두 통일을 목표로 맞추고 통일에 유리한 방향으로 나아가야 합니다. 그러나 현재의 우리는 국가의 지향이 없이 우왕좌왕 하고 있습니다. nbsp 마지막으로 하나만 더 얘기하면, 통일만 하면 되느냐 그것은 아닙니다. 우리는 세계인류국가가 될 꿈을 안고 창조력을 키워야 합니다. 일단 통일해서 시간을 벌어야 합니다. 통일을 하면 영토 크기가 이탈리아와 영국 수준이고, 인구가 7,500만 명으로 프랑스 수준을 넘게 됩니다. 그러면 규모면에서 세계 G7과 경쟁할 만합니다. 그리고 통일 후 자본을 투자하여 북한개발을 잘하면 북한은 연 100씩 성장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통일 한국은 미국과 중국 사이에서 균형자 역할을 할 수 있습니다. 왜 가능성이 있을까? 우리 경제가 10이고, 미국의 경제가 100, 중국의 경제가 50이라면 우리가 균형자 역할을 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중국 경제가 49, 미국 경제가 51, 우리가 10이면 균형자 역할을 할 수 있습니다. 우리가 중국으로 붙으면 59로 이기고, 미국으로 붙으면 61로 되면, 미국과 중국이 우리를 마음대로 못하고 오히려 우리가 캐스팅 보트를 쥘 수 있는 시기가 옵니다. 이는 통일만 된다고 주어지는 게 아니라 우리 역량이 10이 되고 미중 세력 균형이 오는 시점에 목표를 둘 수 있습니다. 그렇게 되면 우리가 통일을 통해 한반도의 평화만을 가져오는 게 아니라, 동아시아에 평화를 가져올 수 있습니다. 우리가 균형을 잡음으로 해서 한중일 경제 협력을 가져올 수 있습니다. 그러니 우리가 평화를 먼저 확보하고 통일이 된다면 우리의 위험을 방지할 뿐 아니라 오히려 동아시아 번영을 이룰 수 있습니다. 규모면에서는 중국 일본 경제가 뒷받침해줘야 NAFTA와 맞먹는 경제가 됩니다. nbsp nbsp 한중일 중에 규모가 커지면 창조가 일어날 가능성이 높은 나라가 그래도 통일한국입니다. 경제, 대중 예술 뿐 아니라 한국의 평화 경험이 전 세계로 나가게 될 것입니다. 한국이 창조력을 가지면, 일본과 중국의 경제 규모에 창조적 통일한국이 결합하여 동아시아 문명이 세계문명의 중심이 될 수 있습니다. nbsp 지금부터 100년 뒤를 봐야 합니다. 국가 비전을 세울 때 21세기 초반인 2020년까지 통일을 이루고, 2050까지 동아시아 공동체를 이루고, 2100년까지 세계문명의 중심이 되는 것을 꿈꿀 수 있습니다. 이런 꿈을 그려볼 수 있습니다. 꼭 이렇게 된다가 아니라 될수 있는 가능성이 열려 있다는 것입니다. 어려운 여건에서도 산업화와 민주화를 성공한 이 종자돈을 잘 살리면 가능성이 열립니다. nbsp 할 일이 태산같이 많습니다. 왜 공무원만 하려고 합니까? 새롭게 나아갈 일이 엄청나게 많습니다. 그런 꿈을 여러분들이 가져야 합니다. 개인의 꿈도 되고, 우리세대가 가질 수 있는 꿈도 됩니다. 할아버지 세대는 산업화를 이루고, 아버지 세대는 민주화를 이루었으니, 여러분들 세대는 통일을 이뤄 세대적 자부심을 가져야 합니다. nbsp nbsp 이제는 새로운 시대를 생각해야 합니다. 눈앞에 보이는 약간의 이익보다 훨씬 더 중요한 문제입니다. 사람이 아무리 어려워도 희망이 있으면 좋습니다. 근데 미래의 희망이 없으면 심리적으로 엄청나게 힘듭니다. 아버지 할아버지 세대는 현실은 억압되고 가난했지만 그들은 희망이 있었죠. 근데 여러분들은 거기에 비해 훨씬 살기 좋아졌어요. 먹고 살만하고 민주화도 이뤘는데, 목표나 희망이 없는 거예요. 무언가를 향해서 토론하고 협력해 나아가는 것이 없잖아요. 그러니까 답답해진 거예요. 여러분들은 미래 지향적 이어야 합니다. 왜냐하면 여러분이 앞으로 살아가야 할 세상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여러분들이 우리사회에 대해 좀 더 책임의식 갖는 것이 필요합니다.” nbsp nbsp 통일한국을 넘어, 동아시아 공동체, 그리고 인류문명의 중심이 되는 통일한국의 비전에 대한 스님의 강의에 가슴이 벅차오릅니다. 청년들은 하루 종일 아낌없는 가르침을 주신 법륜스님께 뜨거운 박수로 화답하고 경주역사기행 일정을 마쳤습니다. nbsp 스님께서는 잠시 원고교정을 보신 후 내일 문경에서 불대 특강이 있기 때문에 밤 10시 넘어서 문경으로 향했습니다.

2015.05.18. 21,508 읽음 댓글 13개

2015.5.15 스승의날, 수원 및 인천강연

nbsp nbspnbsp 대구에서 새벽 2시경 서울 정토회관에 도착한 법륜스님께서는 잠시 눈만 붙이시고 오전 4시 30분에 일어나 서울공동체 상주대중들과 함께 기도하고 발우공양에 참여하였습니다. 마침 백일출가 행자님들이 서울 NGO 탐방으로 문경에서 올라와 있어 함께 했습니다. 발우공양 후 대중공사시간 스님께서 백일출가 행자님들에게 수행자로서 어떤 마음가짐으로 서울에서 공부할지에 대해 말씀해 주셨습니다. nbsp nbsp nbsp “백일출가 수행자들이 서울에 실습 온 건가요? 탐방 온 건가요? 여기에 뭐 볼 게 있다고 탐방왔나요? 세상을 살아가는 사람에게는 네 종류의 사람이 있습니다. 첫 번째, 범부중생, 즉 더러움에 물드는 사람입니다. 두 번째, 현명한 사람입니다. 더러움에 물들지 않기 위해서 더러운 것에 가까이 가지 않는 사람입니다. 세 번째, 지혜로운 사람, 즉 성인입니다. 더러운 가운데서도 더러움에 물들지 않는 사람입니다. 네 번째, 더러움을 오히려 닦아내는, 더러움을 없애는 사람, 즉 붓다입니다. 그러니까 여러분들이 세상에 살 때는 더러움에 물드는 사람, 범부중생이었습니다. 게으른 사람과 같이 있으면 게을러지고, 사치하거나 교만한 사람과 같이 있으면 사치하거나 교만해지고, 쾌락을 즐기고 과소비 하고 욕망에 껄떡거리면 범부중생입니다.nbspnbsp nbsp 여러분들은 소비주의 사회에서 더러움에 물드는 것으로부터 벗어나기 위해 문경공동체로 들어왔습니다. 그리고 지금은 사회 생활할 때의 눈으로 보고, 귀로 듣고, 코로 냄새맡고, 입으로 맛보고, 손으로 만지는 모든 것으로부터 격리되었습니다. 아침에 일찍 일어나 예불하고, 기도하고, 청소하고, 부지런한 사람과 같이 있어서 부지런해지고, 계율을 청정히 지키는 사람과 같이 있어서 청정해지고 수행하는 사람과 같이 있어서 수행하고 있습니다. 더러움으로부터 멀리 떠나 있기 때문에 더러움에 물들지 않고, 좋은 사람과 같이 있기 때문에 좋음에 물듭니다. 여기에는 두가지 관점이 있습니다. 세속을 떠난다는 게 하나 있고, 하나는 좋은 도반들, 즉 대중과 함께 있다는 것입니다. nbsp nbsp nbsp 그런데 여러분들은 세속을 떠나 대중과 함께 있으면서 완전히 청정해졌습니까? 그것을 알려면 소비주의 중독에서 완전히 벗어났는지 테스트를 해봐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다시 세속 사회로 돌아와야 합니다. 게으른 사람과 있으면서도 나는 부지런하고, 다른 사람이 자더라도 나는 기도하고, 상대가 욕설해도 나는 부드럽게 말하고, 상대가 거짓말해도 나는 진실을 말하고, 모두 술 먹고, 마약하고, 담배를 피워도, 나는 술도 안 먹고, 담배도 안 피우고, 마약을 하지 않아야 합니다. 이렇게 세속에 있어도 물들지 않는 진흙속의 연꽃 같은 사람을 성인 또는 보디사트바라고 합니다. nbsp 지금 여러분들은 범부중생으로 있다가, 이래서는 안되겠다 해서 문경공동체로 들어와 더러움에 물들지 않고 좋음에 물들기 위해 대중과 같이 삽니다. 그러다 다시 지금 NGO탐방을 위해서 서울 저자속으로 들어와 있습니다. 회관에서 한 발만 나가면 술집과 슈퍼가 있고, 저녁에는 술 먹고 와글와글 소리지르고, 고기 먹는 사람, 데이트하는 사람들 등이 있습니다. 여러분들은 이와 같은 것들이 눈에 보이고, 귀에 들리고, 냄새가 나는 속에 있으면서도, 내가 그것에 물들지 않는 사람인지 한번 실험해보세요. 수행자는 서울 와서 살아보고 세속에 물이 들면, 또 다시 문경에 가서 정진하며 살아야 합니다. 물들지 않을 정도가 되었을 때 세상으로 나와야 합니다. 여기 오래 산 사람들은 세상에 크게 물들지 않습니다. nbsp nbsp nbsp 여기서 한 단계 더 나아가야 합니다. 사치하는 사람이 우리와 살다가 사치를 덜하게 되고, 부자인데도 검소하게 살게 되고, 교만한 사람이 겸손해지고, 우리로 인해 주위가 점점 정화되어야 합니다. 바깥이 우리 속으로 점점 들어와 흰 것이 검어지는 것이 아니라, 흰 영역이 넒어져서 주위가 조금씩 맑아지는, 이게 우리가 세운 원, 정토 건설입니다. 모든 사람들이 일회용품 쓰고, 비닐 쓰고, 간식 먹는 이런 혼탁한 속에 있더라도, 여러분들이 거기에 물들지 않을 때, 진정 자기 인생의 주인이 된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nbsp nbsp 주변에 따라할 수 밖에 없다고 하는 사람은 세상에 물드는 사람입니다. 그래서 우선 물들지 않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여기 서울 와서 살아도 주위가 어떻든, 남이 어떻든 상관없이 정해진 내 수행생활을 그대로 유지하며 살아가기 바랍니다.”라고 애정 어리면서도 따뜻한 말씀을 해주셨습니다. nbsp nbsp nbsp 이어서 오늘 스승의 날을 기념하여 조촐한 행사를 가졌습니다. 회관에 살고 있는 청년붓다 49일 입재한 7명 행자들의 재미있고 유쾌한 꽁트와 꽃다발 증정이 있었고, 이어서 다함께 법륜스님께 감사의 삼배를 드렸습니다. 그리고 모두 손을 잡고 이렇게 우리를 지도해주시는 스승님이 있다는 것에 고맙고 감사한 마음을 담아‘스승의 은혜’노래를 불렀습니다. nbsp nbsp nbspnbsp 스승의 날 기념행사 후 스님께서 공동체 대중들에게 다음과 같이 당부해주셨습니다. nbsp “우리의 유일한 스승은 고타마 붓다, 석가모니 부처님 한 분이십니다. 제가 여러분보다 나이가 많고 여러분보다 불문에 들어온 시간이 앞서기 때문에 현실적으로 스승 노릇을 하고 있지만 부족함이 많습니다. 여러분들이 저를 볼 것이 아니라 부처님을 보고 부처님의 제자로서 부끄럽지 않은 삶을 살아가시기 바랍니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 말씀을 들으니 언젠가 스님께서 ‘누구를 추종하면 안 된다, 법륜스님도 추종하면 안 되고, 우리는 오로지 부처님께서 살아오신 삶을 따라 부처님처럼 살아야 한다’고 하셨던 말씀이 생각나면서 다시 한번 스님의 가르침을 되새길 수 있었습니다.nbspnbsp nbsp nbspnbsp 오전 9시 25분 희망강연이 있는 수원시청으로 출발해 10시경에 강연장에 도착하였습니다. 염태영 수원시장님은 부서별 국장님들과 함께 잠깐 시간내어 스님께 인사하러 오셨습니다. 스님께서는 시장님께 행정의 어려움은 없는지, 2번째 임기를 시작했는데 1기와는 어떻게 다른지 등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셨습니다. 그리고 시장님은 오늘 스승의 날을 기념하여 스님께 꽃다발을 드리고, 스님 가슴에 카네이션 꽃을 달아드렸습니다. 스님께서도 시장님께 사인한‘지금여기 깨어있기’책을 선물로 드렸습니다. nbsp nbsp nbspnbsp 스님께서 자리를 옮겨 수원시에서 운영하는 수원시방송과 짧은 인터뷰를 하였습니다. 스님께서 그동안 많은 즉문즉설하시면서 어떠하셨는지 등을 묻는 내용이었습니다. nbsp nbsp 이어 강연장에 도착하니 좌석이 모두 차서 돌아가는 사람들이 많다는 소식이 들렸습니다. 자원봉사자들의 말에 따르면 이른 시간부터 사람들이 와서 줄을 서 있다, 문이 열리고 입장이 시작되자 곧 1,2층 좌석을 모두 메우고 로비까지 가득해서 총 1,300여 명이 함께 강연에 참가하였다고 하였습니다. 강연장에서는 일사분란하게 자원봉사자들이 접수와 안내를 진행해 1,300여명임에도 아주 원활하게 강연을 할 수 있었습니다. 스님 소개 영상이 끝나자 관중속의 큰 박수와 함께 스님께서 입장하였습니다. 스님께서는 서두에 내가 행복할 수 있는 존재라는 자긍심을 가지라고 당부하며, 각자 갖고 있는 삶의 고뇌를 꺼내 놓고 여러 각도에서 비추어 보면서 함께 해결의 실마리를 찾아보자고 하였습니다.nbsp nbsp nbsp 오늘은 총 10명이 스님께 질문을 하였는데, 딸과 남편이 마음대로 되지 않을 때 화와 짜증이 올라온다는 분, 자살의 형태에 따른 죄의 크기와 남녀간의 불륜은 동물적 본능인지, 인연에 의한 것인지를 묻는 분, 난치성 아이로 인해 불안과 걱정이 많다는 분, 잠들기 전 고립된 느낌으로 초조해 하는 분, 어릴적 어머니의 학대와 폭력이 용서가 안돼 가슴이 답답한 분, 학업을 중단하고 스님 법문만 듣는 딸에 대해 질문한 분, 새로운 사람을 만날 때마다 본인과 비교해서 무시하거나 열등감을 느껴 마음이 불편한 분, 안 좋은 뉴스를 접하더라도 마음을 깨끗하게 유지하는 방법을 물으신 분, 결혼 6년차인데 아이가 생기지 않아 감정기복이 심한 분, 버럭하는 성질과 주변에서 위축됐다는 얘기를 많이 듣는 20대 취업준비생 이렇게 10명의 고민이었습니다.nbsp 이 중 남녀간의 부적절한 관계와 자살에 관해 물은 질문자의 이야기를 전합니다. nbspnbsp nbsp nbsp “불륜은 동물적인 본능에 의한 것인지, 인연에 의한 것인지, 인연이라면 어떻게 끊을 수 있는 지 방법을 알고 싶습니다. 그리고 자의가 더 강한지, 인연이 더 강한 지도 궁금합니다.”nbsp “윤리나 도덕이라는 가치관은 종교마다, 나라마다 또 시대마다 달라요. 신라시대엔 완전히 연애가 자유로워 촌수를 헤아릴 수 없었어요. 그 때는 순수혈통을 중요시 해 왕의 딸이 삼촌과 결혼하곤 했어요. 아버지도 왕자고 엄마도 공주일 때 내가 순수혈통이 되는 거였기 때문이죠. 반면 조선시대는 성만 같아도 결혼하면 안된다고 했습니다. 또 천주교가 처음 조선에 유입되었을 때 그들의 종교문화로 제사를 안 지낸건데, 유교에선 조상제사도 안지내는 인간은 짐승보다도 못하다고 여겨 천주교인들을 죽여도 될 사람들이라 생각했죠. 그러니 결혼관은 시대와 지역에 따라 모두 다릅니다. nbsp nbsp65279nbsp 가치관이 충돌돼서 문제가 일어날 때는 문화가 서로 달라도 수용할 만한 비교적 공통의 가치를 새롭게 정립해야 합니다. 이때 기준은 자연 생태계입니다. 자연생태계에선 어미가 종족보호 본능으로 새끼가 성장할때까지 보호하고 어느 정도 성장하면 더 이상 돌보지 않고 새끼도 크면 늙은 어미를 보호하지 않습니다. nbsp 두 남녀가 결혼한 것은 성인끼리의 약속입니다. 약속이기 때문에 결혼을 파기 할 수도 있는 거지요. 선은 아니지만 악 또한 아니란거예요. 결혼할 때 상대와 너 외에 다른 남자, 여자를 만나지 않겠다고 서로 약속했어요. 내가 다른 남자, 여자를 만나서 그 약속을 깼다면 이혼 사유가 되요. 그런데 다른 남자, 여자를 만나는게 죄악은 아니에요. 성인이 자기가 선택한거에요. 하지만 약속을 파기했기 때문에 손해배상을 해야 됩니다. 간통죄가 폐지된 것은 형사상의 처벌죄는 아니라는 것이지요. 간통으로 있은 손해는 민사상으로 배상하라는 것입니다.nbspnbsp nbsp nbsp “불교적 관점에서 불륜이란 게 인연인가요? 전생 때문인가요?”nbsp “자기가 좋아서 만나놓고 전생을 왜 따져요. 전생을 따지는 건 무책임한거예요. 이 사람 때려놓고‘전생에 내가 맞아서 지금 너를 때리는 거야’‘사주에 이 시간에 내가 너를 때리게 되어있어’이게 다 무책임한 것입니다. 이것은 마치 ‘다 네 탓이다’하는 책임 회피에 불과합니다.”내가 인연을 지었으니 과보를 받아야 해요. “그럼 현생에 일어나는 모든 행동은 자기 의지에 따라 일어나는 일인가요?” “의지는 의식에 불과하고 의식 아래 무의식이 있습니다. 안해야 되는데 자꾸 하고 싶다, 이것을 업식이라고 해요. 과거부터 형성된 것이 업식입니다. 불교는 사고의 습관, 말의 습관, 행위의 습관이 지금의 우리를 규정한다고 봐요. 이 습관을 까르마라고 해요. 그건 정신적 습관도 있고, 육체적인 습관도 있어요. 어떤 성인 남자가 스마트폰으로 지하철에서 여자 종아리 찍다가 걸린 적이 있죠. 자기 무의식을 통제 못하는 거예요. 아무리 의지로 안해야지 해도 강제로 전자발찌를 채워 놓아도 무의식적으로 일어나기 때문에, 의지로 제어하지를 못하지요. 그러니 마음을 치료해야 되요. 지금은 처벌을 하고 있는데 이는 보복일 뿐, 근본적인 해결은 아니에요. 치료가 제일 중요합니다.” nbsp nbspnbsp “그럼, 자의에 의한 자살, 단원고 교감선생님 같은 선의의 자살, 타인에 의한 강박으로 하는 자살은 모두 죄인가요?” nbsp “자살은 정신질환에 속합니다. 우리의 생명체는 자기 생명을 자기가 끊도록 되어 있지 않습니다. 육체는 어느 정도의 수명이 다하면 쇠진하도록 되어 있지, 생존해 있는 생명을 자기가 공격한다는 것은 없습니다. 이 세상에 존재하는 건 모두 선도 아니고, 악도 아니고, 좋은 것도 아니고, 안 좋은 것도 아니고, 귀한 것도 천한 것도 아니고 다만 그것일 뿐이에요. 좋다고 인식할 때는 그 존재가 좋아서 좋은게 아니고, 머리에서 좋다고 인식할 때 그렇게 생각하는 것입니다. nbsp 한 남자가 친한 친구가 죽고 친구 부인이 살기 힘들어 호프집을 마련해 살려고 하는데, 친구 부인을 도우려 하니 자존심 상해서 안 받겠다 해요. 그래서 친구에 대한 의리를 생각해서 오며가며 술한잔씩이라도 팔아줘요. 친구 부인이 생각하기에는 고마운 사람인데, 남자의 부인이 생각하기엔‘그 사람이 네 마누라냐, 아니면 너 여동생이냐, 왜 도와주냐’이렇게 나오죠. 똑같은 사람의 행위가 어떻게 인식하느냐에 따라서 좋은 사람이 되기도 하고, 나쁜 사람이 되기도 해요. 그런데 내가 나쁘다고 생각해서 그 사람이 나쁜 사람이 아니고, 내가 좋다고 생각해서 그 사람이 좋은 사람이 아니에요. 그 사람이 좋은 사람이다 하면 좋은 사람 되어버리니 이건 착각이에요. nbspnbsp nbsp 자살의 문제는 정신질환 문제와 관계가 많아요. 본인은 자기가 굉장히 잘난 사람이라고 생각해요. 자기는 말도 잘해야 되고, 인물도 잘나고, 돈도 많고, 성질도 좋아야 된다고 생각해요. 그런데 현실의 나는 말도 더듬거리고, 신체도 별로고, 날씬해야 되는데 뚱뚱하고, 재능도 별로 없다고 생각하면 자신이 그리는 상상의 자기가 현실의 자기를 볼 때 너무 모자라죠. 스스로가 너무 부끄러운 거예요. 그래서 남을 만나지 않으려고 해요. 어느 순간 자기 같은 것은 죽는게 낫겠다 싶어 스스로 죽는 거에요. 살인도 똑같아요. 자기가 생각하는 만큼 상대가 못 미치니까, 미워하다가 저런 사람은 죽여버려야 된다고 생각합니다. 자살과 살인은 심리적으로 같은 거예요. 그런데 살인은 남을 해쳤으니까 처벌을 받는 거고 자살은 자기가 죽어버렸으니까 처벌할 당사자가 없는 거죠. 심리적으로 같은 거에요. 살인이든, 자살이든 원인을 규명해서 치료를 하면 자살율을 낮출 수 있지요. 그러나 그 어떤 것에도 죄란 본래 없습니다.”nbsp 총 10명으로 부터 질문을 받다보니 강연은 2시간 30분을 훌쩍 넘겼지만, 스님께서는 마지막에 짧게 마무리 말씀을 해주셨습니다. “긍정적 사고를 하면 얼굴에 생기가 돌게 됩니다. 삶에 대해서 자신감을 가져야 합니다. 삶을 좀 다른 각도로 보고 내 몸에 맞게 옷을 맞춰 입는 것처럼, 내 삶의 가치관을 정립해서 그냥 살면 됩니다. 자기 기분을 가지고 살아야지, 다른 사람의 얘기를 듣고 사는 것은 노예입니다. 그러니 여러분들은 행복하게 살아야 합니다. 감사합니다.” 라고 끝까지 강연장을 찾은 청중들에게 행복하게 살기를 당부하였습니다.nbspnbsp nbsp nbsp nbsp 강연이 끝난 후 로비에서 책 사인회와 사진촬영이 진행되고, 자원봉사자들과도 함께 단체 촬영을 했습니다. 그리고 수원정토회 준비로 스승의 날을 기념해 꽃과 노래를 올렸습니다. nbsp nbsp nbsp 1시 30분이 되어서야 평화재단으로 출발하였으며, 2시 평화재단에서의 약속으로 이동 중 차안에서김밥과 쥬스로 간단히 점심식사를 마쳤습니다.nbsp 재단에 도착해서 바로 스님께선 언론인 마이클 브린씨와 재미교포인 김영진님과 인터뷰를 하였습니다. 마이클 브린씨는 영국인으로 지금 한국에 살고 있으며, 30년전에 ‘한국인’이라는 책을 출판하여 외국에 소개하였습니다. 스님을 찾아오게 된 것은 이 책의 개정판 준비 중에 스님의 말씀을 듣고 싶어서라고 합니다. nbsp nbsp nbsp nbspnbsp 마이클 브린씨가 스님께 궁금했던 질문은 ‘본인이 보기에 한국인들은 경제적인 성공을 이루었음에도 불구하고 행복감을 느끼지 못하고 불행하게 보이는데 이에 대한 해결책이 있는지’였습니다. nbsp nbsp 스님께서는 “사람들이 불행하다고 느끼는 것은 첫째, 기대가 너무 크다는 것입니다. 바라는 것이 너무 크기 때문에 실망이 크고 만족이 안되는 것입니다. 해결책은 기대를 낮추는 것입니다. 그래서 제가 주로 하는 일이‘지금도 행복한 줄 알라’고 알려주는 것입니다. 1960년 국민소득이 100불이었다면 지금은 3만불 가까이 됩니다. 그러면 소득은 300배 정도 늘었는데, 우리가 300배 행복해졌느냐고 하면 아닙니다. 300배는 고사하고 30배는 행복해졌느냐? 아니면 30배는 고사하고 3배는 행복해졌느냐? 저는 앞으로 국민소득이 30만불 된다고 해도 이 문제는 해결 안된다고 봅니다. 과거의 경험으로 볼때 경제가 성장한다고 해서 행복문제가 해결되는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nbsp ‘우리가 어떻게 하면 행복해질 것이다’는 조건부 행복으로는 해결될 수 없습니다. 지금 주어진 조건속에서 우리는 행복해질 수 있어야 합니다. 저는 그런 관점에서 사람들에게 주로 당신이 얼마나 지금 행복한가를 깨우쳐 줍니다. nbsp 그리고 우리는 두 가지 성격을 가지고 있습니다. 먼저 여럿 가운데에 하나입니다. 즉 여럿이라는 것은 공동체를 말하며, 하나는 나 자신을 말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공동체가 발전해야 나도 그 속에서 더불어 행복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공동체가 발전하는 것이 반드시 나를 행복하게 하는 것은 아닙니다. 반면 개인이 행복하면 공동체 발전에 도움이 되지만 그렇다고 그것도 반드시는 아닙니다. 식민지때 일본의 경우 국가가 발전을 했어요. 그렇다고 일본 국민은 행복합니까? 당시 한국사람만 고통스러운 것이 아니라 일본사람들도 굉장히 고통스러워했습니다. 그것은 국가가 발전해도 국민이 반드시 행복하다고 말할 수 없는 것입니다.nbspnbsp nbsp 그래서 국가의 발전과 국민의 행복이 동시에 이루어져야 합니다. 국가가 발전하려면 경제적으로 성장해야 합니다. 그러나 경제가 성장하더라도 불평등이 심화되면 국민은 행복해지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불행해집니다. 국민이 행복해질려면 경제적으로 성장한 결과물이nbspnbsp다수 국민들에게 공평하게 분배되어야 합니다. 한국은 그렇지 않기 때문에 국민이 행복해지지 않는 것입니다. 경제는 성장과 분배를 동시에 봐야 하는데, 우리는 50년 전에 굉장히 가난해서 경제라고 하면 성장만 생각합니다. 정부뿐만 아니라 한국사회 전체가 그렇게 보았습니다. 생산만 경제가 아니라 생산한 것을 어떻게 나눌 것인가? 이것도 함께 생각해야 하는 것입니다. nbsp nbspnbsp 한국이 50년전에 서양을 모델로 따라 배우기 할 때 경제만 모방하고, 민주주의, 인권, 철학 등은 제대로 배우지 못했습니다. 그러다보니 한국사람은 물질주의에 집중하게 되었습니다. 지금은nbspnbsp경제성장이 주춤해져 저성장으로 들어갔습니다. 저성장과 심한 빈부격차로 국민들이 느끼는 불행감은 더 커지는 것입니다. 그동안 경제성장이 일직선으로 발전해 왔는데, 한국의 자살률도 성장률과 똑같이 평행선으로 커지고 있습니다. 경제가 성장하면 자살률이 떨어져야 하는데 일직선으로 함께 증가했다는 것은 경제성장이 사람의 행복에 크게 기여하지 못했다는 것을 말하는 것입니다. 자살은 개인적인 문제이지만, 자살률이 높다는 것은 국민들이 희망은 없고 행복하지 못하다는 것입니다. 한편 출생률은 반대로 쭉 낮아지고 있습니다. 이것은 미래가 불확실하다는 것입니다. 결과적으로 말하면 경제성장이 우리도 잘산다는 자부심을 심어준 것도 있지만 실제로 사람들의 행복에는 크게 기여하지 못했다는 것입니다.nbspnbsp nbsp 이에 대한 해결책으로는 첫째, 사회적, 국가적으로 빈부격차를 줄여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공정하게 경쟁할 수 있는 룰을 만들어야 하고, 경쟁에서 처지는 약자에게 생존권을 보장해주어야 합니다. 이것은 국가와 사회가 해야 할 일입니다. 둘째, 국민들 개개인도 해야할 일이 있습니다. 성장이 계속 지속될 수 없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지난 50년간 계속 성장한 경험만 있기 때문에 계속 성장할 것이라는 무의식적인 기대가 있습니다. 그리고 정치인들도 앞으로 계속 성장할 것이라고 주장합니다. 그러나 실제로 구조적으로 그렇게 될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국민들도 저성장으로 갈 수밖에 없다는 것을 받아들여야 합니다. 그것이 기대를 낮추는 것입니다. 그리고 더 이상 물질적인 것에서만 행복을 추구하지 말고, 가족관계, 민주주의의 발전, 인권, 평화, 환경, 명상 등 가치의 중요성을 알아야 합니다. 셋째, 정치의 변화가 필요합니다. 한국은 대통령이나 시장, 국회의원 등을 뽑을 때는 선출의 민주주의가 이루어집니다. 그러나nbspnbsp대통령, 시장이 권력을 집행할때는 민주적인 방식이 아닌 옛날의 봉건적인 왕이나 독재방식으로 합니다. 그러니 국가의 주인인 국민의 권리는 4년 중에 선거할 때 15일만이고, 나머지는 종으로 살고 있습니다. 권력자들은 선거기간에는 고개를 숙이고 잘하겠다고 하고 나서 선거 끝나면 자기 마음대로 합니다. 그래서 권력을 분산시켜야 합니다. 중앙권력을 지방으로 분산시키고, 지방자치하게 하고, 대통령의 권한도 총리, 장관에게 분산해야 합니다. 일반시민들이 일상생활속에서 자기들의 권리를 행사할 수 있어야 합니다. 이런 것이 안되니 불행의 원인이 되고 있습니다.nbsp nbsp nbspnbsp 종합적으로 말씀드리면 한국은 지난 50년을 돌아봤을때 경제적으로 산업화를 이끌어내고 성공했다는 자부심을 가질 수 있습니다. 그리고 민주화도 투쟁을 통해 어느 정도 이루었다는 면에서 성공적입니다. 이제는 이를 기초로 해서 더 깊은 민주화가 되어야 하고, 복지사회와 통일로 가는 것이 앞으로의 과제입니다. 그러나 지금은 한단계 더 나아가지 못하고 과거에 멈춰 있습니다. nbsp 산업화에 성공한 세력들은‘우리 때문에, 박정희 대통령 때문에 잘 먹고 잘 살게 되었으니 고마워해라’이렇게 과거의 성과를 가지고 권력을 유지하려고 합니다. 민주화를 이루어 낸 세력은‘우리 때문에 민주화가 되었다’고 합니다. 그래서 김대중 대통령, 노무현 대통령 얘기를 자꾸 합니다. 우리가 미래를 향해서 어떻게 할 것인가를 고민하기 보다 과거에 머물러 있으니 해결책이 없습니다. 그런 점에서 한국문제가 풀어질려면 산업화, 민주화의 성과를 함께 인정하고 그 공로를 치하하면서 다음 단계로 어떻게 할 것인가에 대한 미래 과제를 가지고 정치인들이 경쟁해야, 싸우더라도 좋은 방향으로 가게 됩니다. nbspnbsp 제가 볼 때 정치인들 중에서 개인적으로는 이런 생각을 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그러나 현재 양당구조속에서, 여기에 속한 엘리트층의 정치의식이 부족해서 생기는 문제입니다. 그래서 국민들은 제3의 길로 가는 것을 지지하지만, 여기에 동의하는 정치인들은 기존의 질서에서 나와 새롭게 개척하기에는 힘이 부족한 것 같습니다. 그래서 국민들은 선택의 여지가 없어서 한번은 이쪽을 지지하고, 한번은 저쪽을 지지하게 되는 것 같습니다. nbsp 그래서 한국도 유럽처럼 다당제로 가는 것이 필요합니다. 국민들이 다양한 정당 중에 하나를 선택할 수 있도록 선택의 폭이 넓어져야 하고, 필요에 따라 두개, 세 개의 정당이 협력하는 시스템이 구축되어야 합니다. 지금은 양당구조이다 보니 협력이 안 되고 죽으라고 싸우고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협력의 정치를 만들어야 합니다. 이제 국민들의 요구가 자본가, 노동자 양쪽으로만 나눌 수가 없습니다. 노동자안에 정규직, 비정규직 사이에도 엄청난 차이가 있고, 자본가도 재벌과 중소기업은 하늘과 땅 차이입니다. 그래서 여러 개의 정당이 각 계층의 이익을 대변해주어야 하는데, 한 정당이 국민의 여러 요구를 다 들어준다고 하니 아무것도 들어주는 것이 없게 됩니다. 이런 문제도 한국 국민들이 희망을 갖지 못하므로 불행의 원인이 되고 있습니다. 희망이 있으면 행복도가 높아지는데 지금은 그럴 수 없는 조건에 있습니다.” 라고 말씀하시며 왜 국민들이 불행한가에 대해 한국사회가 가지고 있는 총체적인 문제속에서 조명해주셨습니다. nbsp nbsp nbsp 미팅이 끝난 후에 스님께서는 마이클 브린씨와 김영진님께 영문 기도책을 선물로 주고, 통역을 한 정수진님께는 미혼이라고 하여 스님의 주례사를 전달했습니다. 이후 스님께서는 다음 강연 전까지 원고교정 등의 업무를 보신 후 차가 막힐 것을 고려하여 5시에 저녁 강연이 열리는 인천대학교로 출발하였습니다. 인천강연에 앞서 인천대 총장실에서 총장님, 교수불자회 교수님 5분과 차담이 있었습니다. 스님께서는 불교가 지식이나 기술로 접근하기보다는 해탈과 열반을 목표로 나아가야 한다고 하시면서 스님께서 대중들에게 즉문즉설을 하는 것에 대해 이야기 나누었습니다. 그리고 현재 우리나라의 전반적인 문제들, 특히 교육부분에 대한 이야기들을 나누었습니다. nbsp nbsp nbsp 이후 강연장으로 자리를 옮겼습니다. 강연 전 청년 불대에서 수화공연을 펼쳤는데 어떤 공연보다 감동적이고 아름다웠습니다. 인천대 교수 불자회에서 스님께 환영의 꽃다발을 전하였습니다. 1천여 좌석이 넘는 인천대학교 대강연장을 꽉 메운 인천시민들은 우레와 같은 박수로 스님을 맞이하였습니다. nbsp nbsp 총 8명의 질문자들이 삶의 고뇌를 스님과 함께 나눴습니다. 외동딸로 엄마의 과잉보호와 집착으로 힘들다는 대학생, 부모님의 잦은 불화로 감정조절이 어렵고 돈에 대한 과도한 집착이 있으며 수면장애로 정신과를 다니고 있는데 부모님에 대한 증오를 어떻게 풀어야 할지 고민하는 분, 공부에 대한 집중력을 키우는 방법을 묻는 분, 아버지와 남동생 그리고 자신의 건강에 대해 이것저것 많은 질문을 하신 분, 남편의 갑작스런 사망으로 인해 큰 슬픔에 빠진 분, 베트남 아내와 갈등으로 이혼위기에 처한 분, 폭력적 아버지와 어머니 사이에서 이 문제를 해결하고 싶다는 분 다양한 질문이 있었습니다.nbspnbsp nbsp 이 중 한 중년 남자분의 질문을 소개해 드립니다.nbsp 저는 마음이 몹시 불안하고 무기력증에 빠져 있습니다. 어린 시절 너무도 가난하여 배고픈 시절을 보냈고, 20대에는 노동운동을 하다 구속되기도 하였습니다. 30대 넘어서 안정된 생활을 하다 퇴사하여 조그만 사업을 시작하였는데 상황이 나빠져 폐업 위기에 처해 있습니다. 다시 예전의 곤궁한 상태로 돌아갈까 너무도 불안합니다. 이 두려움을 극복하고 굳건한 마음을 가지는 방법을 알고 싶습니다.”nbsp nbsp nbsp “어릴 때 굶은 경험은 2가지 현상으로 나타납니다. 첫째, 굶은 것이 내게 좋은 경험으로 승화되면 내가 굶고 살아봤기 때문에, 나중에 그런 상황에 또다시 처하게 되어도 겁나지 않습니다. 굶어도 죽지 않는다는 것을 압니다. 그래서 크게 두려움이 없습니다. 둘째, 굶은 것이 상처로 있으면 그때의 이미지가 떠올라 두려움이 생기게 됩니다. 질문자는 그때의 경험이 상처로 남은 거예요. 그래서 같은 경험을 가지고도 스님은 좋게 작용되어 자산이 되었는데, 본인은 나쁘게 작용되어 두려움이 생기게 된 것입니다. 어릴 때 굶어도 봤고, 감옥도 가봤는데 세상에 겁날게 뭐가 있어요?”nbsp nbsp“저 혼자면 괜찮은데 처자식이 걱정이 돼서 그렇습니다.”nbsp nbsp “자기 없으면 아내와 자식이 못살 것 같지만 다 본인의 생각일 뿐입니다. 다들 또 그 상황에 맞춰 살아가게 되어있어요. 무기력증에 빠져 매일 널부려져 있으면 어떤 도움이 될까요? 걱정을 내려놓고 청소도 하고 설거지도 해주면서 방법을 모색해야지, 쓸데없는 생각에 빠져 아무 도움도 안 되는 일만 하고 있어요.”nbsp nbsp “어떻게 이 불안한 마음을 놓을 수 있겠습니까?” nbsp “그런 방법은 없어요. 그냥 놓는 겁니다. 뜨거우면 놓으면 되지 “어떻게 놔요?”가 없어요. 방법을 몰라 못 놓는 게 아니라 놓기 싫어 놓지 못하는 거예요.” nbsp nbsp nbspnbsp 이렇게 질문자의 사연에 내 삶을 적용시키며 웃고 울고 하면서 유익하고도 재밌는 시간을 가졌습니다.nbsp 스님께서 마무리 말씀을 해주셨습니다. “우리에게 주어진 조건은 좋은 것도 아니고, 나쁜 것도 아닙니다. 다만 이 조건을 우리가 어떻게 보느냐의 문제입니다. 긍정적으로 보면 행복의 조건이 되는 것이고, 부정적으로 보면 불행의 조건이 되는 것입니다. 일체유심조一切唯心造, 즉 다 마음에 달려 있다는 말입니다. 진리는 다른 게 아닙니다. 바로 지금이 좋은 줄 아는 것입니다. 우리의 삶에 성공과 실패가 따로 있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가 긍정적으로 생각하면 지금 순간이 성공인 겁니다.” nbsp 스님께서 모든 일정을 마치신 후 스승의 날을 맞이하여 전 봉사자들이 스승의 노래를 불렸습니다. 스님께서는 우리는 모두는 삼계대도사三界大導師이신 부처님의 제자로서 부처님의 가르침에 따라 열심히 수행정진 해 나가자고 말씀하셨습니다. nbsp 인천강의가 끝나자 바로 경주로 출발하였습니다. 내일 아침부터 청년리더십아카데미 수강생들의 통일역사기행을 안내하기로 하였기 때문입니다. 내일 뵙겠습니다.

2015.05.16. 23,117 읽음 댓글 16개

2015.5.14 대구 청년강연

nbsp오늘 오전 4시에 기상하여 4시30분 기도 후 5시 35분에 제주공항으로 출발하였습니다. 어제는 아주 화창한 날씨였으나 오늘은 구름이 잔뜩 끼여 있었습니다. 어제는 차도 많고 길이 막혀 시간이 많이 걸렸는데 오늘은 새벽이라 비교적 빨리 공항에 도착하였습니다. 제주정토회 총무이신 강제연 보살님, 고진수 거사님, 그리고 차를 섭외하여 주신 정연심보살님께서 공항에 스님 배웅을 나와 계셨습니다. 스님께서는 총무님을 비롯한 배웅나오신 분들께 어제 강연장 분위기도 좋았고 수고많았다고 격려하셨습니다.nbspnbsp nbspnbsp nbsp 그리고 차량 섭외 해주신 정연심 보살님께도 감사의 인사로 사인한 ‘지금여기 깨어있기’ 책을 선물로 드렸습니다. 수속을 마치고 출발하는 게이트로 이동하여 총무보살님께서 준비해주신 찐빵과 과일 등으로 간단히 아침 요기 하였습니다. 오전 7시 15분 비행기를 타고 김포공항에 도착한 다음 바로 평화재단으로 이동하였습니다.nbspnbspnbsp nbsp 출근길이 막혀 예상보다 늦게 평화재단에 도착 한 후 바로 기획위원회 회의에 참석하였습니다. 기획위원회 회의를 마치고 나서 스님께서는 간단히 점심식사를 하였습니다. nbsp nbsp 점심 식사 후 노옥재 총장님의 어머니와 언니가 재단을 방문해서 잠시 스님께 인사드리고 이야기를 나누기도 하셨습니다. 그리고 바로 정토회 행정처 처장님과 국장님들과 함께 오후 1230분부터 1시간 가량 회의를 하였습니다. 가장 중요한 안건으로 6월 13일에 있을 전국 통일의병대회 장소와 프로그램 등에 대해 의논하였습니다. 전국 1,100여명의 통일의병이 한꺼번에 모여서 의미를 다져갈 수 있는 곳으로 여러 장소가 추천되었지만, 역사적 의미와 미래지향적 의의를 가져갈 수 있는 곳을 위해서 어느 곳이 적합한지 함께 의논하였습니다. 스님께서는 장소를 한 곳 선택하더라도 꼼꼼하게 과거, 현재, 그리고 미래지향적 측면을 살펴서 통합적으로 살펴 보시는 것을 보면서 일을 어떤 관점으로 바라 볼 것인지 배울 수 있었습니다. 그 외에도 몇가지 기타안건에 대해 논의를 하고 회의를 마쳤습니다.nbsp nbspnbsp 대중부 회의가 끝나자 마자 바로 연달아 이어서 문화사업부 임혜진 법우님, 이상옥 보살님과 함께 문화출판사업부 및 정토회 전체 미디어사업부에 대해서 스님의 조언을 들을 수 있었습니다. 특히 출판, 홍보, SNS, 방송, 인터넷, 기술지원 등에 대해 문화출판부에서 전반적인 검토를 해볼 것을 조언해주셨습니다. 회의를 마치고 바로 스님께서는 3시에 오늘 강연이 있는 대구로 출발하였습니다. 오늘 대구 강연은 7시 30분에 대구수성대학교에서 청년정토회 주최로 청년대학생들을 위한 스님의 즉문즉설 강연이 진행되었습니다. 스님께서는 조금 일찍 강연장에 도착하셔서 대기실에서 밀린 원고 교정작업을 하셨습니다. nbsp nbsp nbsp 강연장에 도착하니 젊은 청년들이 희망세상만들기 티셔츠를 입고, 교정 곳곳 및 주차장에 서 안내를 하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강연장 앞에 안내부스에서도 밝은 표정으로 즐겁고 행복하게 청중들을 위해 안내하고 있어서 참 흐뭇하였습니다. nbsp 무더운 날씨에도 불구하고 강연장에 400여명의 청중과 46명의 봉사자를 포함하여 총 450여명의 청중이 강연장 1, 2층을 가득 메웠습니다. 청년들의 분위기가 밝고 좋았습니다. 스님의 소개 영상과 더불어서 청년들의 큰 박수와 환호속에 스님께서 무대위로 올라오셨습니다. nbsp nbsp 스nbsp님께서는 청년 강연인 만큼 직장인들을 고려하여 늦게 시작하였다고 말문을 여셨습니다. 청중들에게 저녁 식사 여부를 물으신 스님께서는 대중들에게 질문하셨습니다.nbspnbspnbsp nbsp “스님의 즉문즉설 한번이라도 들어본 사람 손들어 보세요. 거의 들어보신 분들이 모이셨네요. 손 안 들으신 분은 왜 따라 왔어요? 요즘 남의 말만 듣고 따라 다니면 안돼요. 위험한 세상이에요.” nbsp 스님께선 대중의 긴장감을 풀어주시고 곧바로 강연을 시작하였습니다. 8명의 질문 예약자와 3명의 추가 질문자를 합하여 총 11명의 청춘 남녀가 질문하였습니다. nbspnbspnbspnbspnbsp 운명같은 사랑을 꿈꾸며 6년째 상대를 기다리고 있다는 20대 여성, 전문직 시험을 준비하고 있다는 30대 남성, 남자친구가 부모님과 사이가 좋지 않아 걱정이라는 30대 여성, 올해 입학한 대학 전공이 적성에 맞는지 고민이라는 20대 여성, 곧 대학을 졸업하는데 아직 꿈을 찾지 못해 힘들어하는 20대 남성, 어떻게 살아야 후회하지 않는 삶을 살 수 있는지 궁금해 하는 20대 남성, 어떤 일이든 결정을 내리기 힘들다는 30대 여성, 감정기복이 심하여 속마음을 드러내기 두렵다는 20대 남성, 어떻게 하면 좋은 상대방을 만날 수 있는지 궁금해 하는 30대 여성, 마지막으로 세월호 사건 후 직장을 다닐 수 없을 만큼 우울하다는 여성, 스님을 만나 뵙게 되어 영광이라며 큰절을 올린 남성까지 총 11분이 질문을 해주셨습니다.nbsp nbsp nbsp 그 중 저희에게 가장 큰 공감과 웃음을 주었던 첫 번째 질문자의 내용입니다.nbsp nbsp “덜덜 떨지 마시고 친구에게 애기하듯 편하게 해보세요” nbsp “저는 18살 때부터 지금까지 운명적인 사랑을 꿈꾸고 있습니다.” nbspnbsp “지금 몇 살이에요?” nbspnbsp “24살이에요. 6년을 기다렸어요. 그런데 아무리 기다려도 안 나타나요.” nbsp “누구를 기다려요?” nbspnbspnbspnbsp “정말 소중한 사람이요. 운명같은 사랑을, 진짜 진짜 사랑하는 사람, 도장처럼 가슴에 콱 박히는 사람을요.” “그러니까 백마탄 왕자를 기다린다는 말이에요?” nbspnbsp “조건은 아닌데요, 너무 너무 사랑해서 같이 아침에 눈뜨고 잠들 때까지 감동적인 사람이요.” nbsp “그런 사람 없어요. 꿈 깨세요. 어린아이들 동화처럼 환상을 갖고 있네요.” nbspnbsp “엄마가 그런 감격적인 사랑은 없다고 했는데 정말 없는 걸까요?”nbsp nbsp nbsp nbsp “그런 사람 없어요. 그런데 만에 하나 있다면 뭘까요? 쥐약이예요. 스님 나이가 63살인데 아주 젊고 예쁘고 교양 있고 누가 봐도 공주 같은 사람이 나타나면 그게 뭘까요? 운명적 사랑일까요? 꽃뱀일까요? 그건 꽃뱀이에요. 그러니까 자기에게 그런 사람이 안 나타나는게 불행이 아니라 다행이예요. 혹시라도 나타나면 오히려 그게 큰 불행의 원인이 되요. 설령 나타나더라도 쥐약이예요. 제비에요.” nbsp “가슴이 아파요. 있을거에요. 영화에서 보면 있잖아요.” nbsp “그건 영화, 소설, 동화에 있는 얘기에요. 스님은 괴로워 죽겠다고 하는 사람한테, 희망을 주기 위해서‘힘내세요, 괜찮아요, 희망을 갖으세요’라고 이야기하는 사람입니다. 그런데 희망을 갖고 있는 사람에게 ‘꿈 깨라’라고 할 때는 너무 터무니없어서 그렇게 말하는 겁니다. 이런 애기해서 미안해요. 너무 안타까워서 그래요.” nbsp “그럼 아무나 만나요?”nbsp nbsp nbsp “아니지요. 왜 아무나 만나요. 마음에 드는 사람을 만나야지요. 그런데 질문자가 원하대로nbspnbsp 마음에 꼭 드는 사람을 만날 수도 있고, 이게 마음에 들면 다른 게 마음에 안드는 사람을 만날 수도 있어요. 완벽하게 마음에 드는 사람이 아니더라도 적당히 만나서, 사귀면서 맞추어 가면 되요. 그런데 질문자가 생각하는 꿈같은 사람이 나타나기를 원하면 좀 많이 기다려야 해요. 한 80년쯤. 그래도 쉽지 않아요. 상상으로 결혼하면 100 실패해요. nbsp 실제로 인생살이가 그렇지 않아요. 조선시대는 남자 얼굴도 모르고 결혼했잖아요. 시집가면 죽는다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시집갈 때 울고불고 그랬어요. 그래서 딸에게 이렇게 교육시켰어요. 3년은 눈감고 살아라. 봐도 본 게 아니다. 3년은 귀 막고 살아라. 어떤 말을 들어도 들은 척 하지 말아라. 3년은 입 막고 살아라. 절대로 하고 싶은 말 하지 말고 살아라. 그렇게 9년을 죽어 살면 행복이 온다고 교육했어요.nbspnbsp 요즘은 결혼 준비하다가 파혼하기도 하고, 신혼여행 갔다가 한달만에 이혼하기도 해요. 10쌍중 1쌍은 3년안에 헤어져요. 이렇게 되는 건 결혼에 대해 환상을 갖고 있어서 그래요. 질문자는 마음에 드는 사람 만날 것이라는 것에 대해 기대치가 없어야 해요. 매일 아침 절을 하면서‘이 세상에 내 마음에 꼭 드는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죽어살겠습니다’이렇게 기도하세요.” nbsp 스님께서 명쾌한 답변으로 질문자의 오랜 고민을 간단히 해결해주시는 것 같아 함께 듣고 있던 청중들도 마음이 가벼워졌습니다. nbsp nbsp 다음은 두 번째 질문자와 스님과의 대화를 소개합니다. nbsp nbsp “저는 올해 서른인 남성입니다. 직장이 적성에 맞지 않고 비젼이 불투명하여 퇴사 후 세무사 자격증을 준비하려고 합니다. 3년 정도 시험 준비만 해야 할지, 세무 관련 회사에 취업하여 공부와 병행해야 할지 고민입니다.” nbspnbsplt “고등고시 시험을 합격할 수 있으면 하는게 좋아요? 안하는게 좋아요?” nbsp “하는게 좋습니다.” nbsp “다들 좋은지 몰라서 안하고 있을까요? 합격하는게 쉽지 않아서 시험준비를 안하겠죠. 처음 대학교 갓 졸업하자 마자 시험준비 하면 도전 해볼 수도 있어요. 그런데 지금 나이가 30살이에요. 갑자기 공부를 시작해서 3년 동안 하게 되면 나이가 들수록 학습 효과가 떨어져요. 대학 졸업 직후 공부하는 것보다 합격확률이 적어요. 그러다 보니 실패했을 때의 불안이 높아요. 나이가 30살이나 50살이 되어도 공부 잘 하는 사람이나, 시험 잘 보는 사람은 해볼만해요. 현재 질문자의 조건과 처지에서는 일반 회사 세무 분야에 취업해서 직장생활하며, 장기간 공부를 병행하고 시험에 80정도 합격할 수준이 되면 휴직하고 시험 준비 하세요. 그럼 시험에 합격하지 못해도 다시 회사로 돌아갈 수 있잖아요.” nbsp 간단한 답변속에서도 삶을 살아가는 지혜를 배울 수 있는 시간이었습니다. nbspnbsp nbsp 스nbsp님께서는 세월호 때문에 우울하다는 마지막 질문자의 답변후에 다음과 같이 마무리 말씀하셨습니다.nbspnbsp “세월호 사건은 참 가슴아픈 얘기입니다. 저희들도 진상규명을 위해서 146만인 서명을 받기도 했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죽기살기로 싸우자고 하지도 않습니다. 저도 사실 정부가 진상규명을 못할 이유가 뭔지 잘 모르겠어요. 대통령이 배를 침몰하라고 한 것이 아니니 사고 후에 신속하게 대응하지 못한 것에 대해 진솔하게 사과하고, 진상은 사실적으로 규명을 해버리면 되는데 이것이 제대로 안되니 국민의 갈등이 심해지고 있는 것 같습니다. 정부가 진상규명을 소극적으로 하니 국민들은 딴이유가 있나 이런 생각이 들고 그래서 유언비어가 나오는 것입니다. 처음 사고가 났을 때는 정말 모두가 가슴 아파했습니다. 그때는 여야 가릴 것 없이 모든 사람이 가슴 아파하고 빨리 해결할려고 했는데 지금은 이 문제가 더 국민갈등의 원인이 되고 있습니다. 사고 후 처음에는 우리가 그동안 살아왔던 삶을 돌아보는 시간이었습니다. 즉 성장 중심, 물질중심의 사고와 생명이나 안전에는 별로 신경을 안썼던 우리의 모습을 진솔하게 반성했습니다. 그래서 사고후에는 우리사회 전체가 생명을 중요시하고 안전을 중요시하는 쪽으로 가야 하는데 오히려 싸움을 하는 쪽으로 가고 있습니다. 수많은 생명을 앗아간 세월호가 우리에게 주는 교훈을 못 살리고 있습니다. 세월호 이전과 이후로 대한민국이 바뀌었다고 해야 그들의 죽음이 헛되지 않는데, 한국사회의 본질적인 문제는 개선 안되고 갈등은 더 나빠지고 있으니, 이 분들의 죽음이 개죽음이 되고 있습니다. 이 분들의 죽음이 헛된 죽음이 되느냐, 교훈이 되느냐 하는 것은 모두 살아있는 우리들의 몫입니다. 그러니 지속적인 관심을 가지고 변화를 도모해야 합니다. 그런면에서 대한민국 국민으로서 좀더 성숙해져야 합니다. nbsp nbspnbsp 무엇을 가지고 대한민국의 정체성을 가질 수 있을까요? 우리의 정체성을 기독교 국가도 아니고, 진보적인 국가라고도 하기 어렵습니다. 대한민국 사람의 공통적인 것은 대한민국의 헌법입니다. 헌법에 주권이 국민에게 있다는 것을 알고 우리는 주인의식이 투철해야 합니다. 대통령, 국회의원을 욕하는 것만으로는 무책임하며, 우리가 주인으로서 역할을 분명히 해야 합니다. 우리가 선거에서 선택한 것에 대해서 책임을 지고, 다음에는 선택을 잘해야 합니다. nbsp nbspnbsp 이렇게 반성을 해야 하는데 우리가 주인의식, 시민의식이 없이 제국의 신민으로서 살고 있으니 늘 이런 선택이 반복되고 있습니다. 우리는 신민이 아니라 시민입니다. 욕한다고 해결되지 않으니 자꾸 욕하지 말고 다음에는 좀더 유의해서 선택해야 합니다. 이런 자세를 견지하여 적극적인 자세를 가지면 시간이 갈수록 통합이 될 텐데, 우리는 시간이 갈수록 갈등과 분열이 깊어지고 있습니다. 부족한 것은 우리가 해결해야 합니다. nbspnbsp 산업화로 인해 성장은 되었지만 부의 분배가 잘 안되었기 때문에 복지는 우리가 해야 합니다. 민주화도 많은 진척이 있었지만 아직 제대로 안되고 있습니다. 지방분권도 우리가 해야하고 통일도 우리가 해야 합니다. 선배들이 이 만큼 한 것은 고맙지만, 더 민주적인 사회를 만들고 복지사회, 지방자치시대, 통일을 이루는 것은 우리세대가 할일입니다. 이렇게 선배들의 긍적적인 면을 인정하고 다음에 우리가 해야할 일을 잡아간다면 훨씬 더 통합을 일궈내고 역량을 집결시킬수 있습니다. nbsp nbspnbsp 과거의 공덕은 서로 인정해주되 우리는 과거를 먹고 살지 말고, 우리가 어떻게 앞으로의 대한민국을 위해서 개선하고자 하는지에 대한 희망을 갖고 살아가시길 바랍니다. ‘내가 내 인생의 희망이 되어 행복하게 살겠습니다.’‘내가 우리 사회의 희망이 되어 행복사회 만들겠습니다.’이런 자세가 필요합니다.nbspnbsp누가 먼저 해주기를 바라지 말고 매사에 감사해하면서 나의 부족한 것은 스스로 해결해나가야 합니다. 행복하시길 바랍니다. 감사합니다.” 라고 하시면서 마무리 말씀을 해주셨습니다. nbsp 오늘 강연장에서는 한 젊은이가 ‘저는 궁금한것은 없고 대신에 나름대로 사는 것이 참 많이 괴로웠는데 스님께서 TV에 나온 후 인터넷 동영상으로 즉문즉설을 다 보았습니다. 그래서 삶이 너무 즐겁고 새로 태어난 것 같아 스님께 감사드리고 싶어서 큰 절을 드릴려고 마이크를 잡았습니다’라고 하면서 무대위로 올라와 스님께 감사의 큰절을 하였습니다. 청중들이 모두 함께 큰 박수를 보냈습니다. 어제에 이어 매 강연장에서 스님의 즉문즉설으로 본인이 변화되어 행복해졌다는 것을 보게 되니 우리 사회가 얼마나 힐링이 필요한지 잘 알 수 있었습니다. 스님께서 마지막으로 “내 인생의 희망이 되어 행복하게 살겠습니다. 이 사회의 희망이 되어 행복사회 만들겠습니다” 라고 하신 말씀이 얼마나 소중한지 느낄 수 있었습니다. nbspnbsp 강연이 끝나자마자 스님께서는 바로 로비로 이동하여 사인을 받기 위해 기다리고 있는 청년들께 사인을 해주시고 함께 사진촬영도 해주었습니다. 그리고 나서 봉사자들과 단체사진촬영 한 다음에 수고많았다고 격려해 주셨습니다. 곧이어 대기실로 자리를 옮겨 강연장에 참석하여 끝까지 자리를 함께 한 김부겸 전 의원님과 잠깐 만나 인사를 나누었습니다. nbsp nbsp 10시 45분경에는 오늘 행사를 총괄한 이효상 법우님과 대구청년정토회 활동가들에게 수고많았다고 격려 하신 후 6월 청년캠프때 보자고 하시면서 서울로 출발였습니다. 서울 정토회관에 도착하니 새벽 2시가 되었습니다. 내일은 오전에는 수원에서 오후에는 인천에서 강연이 있습니다. nbsp nbsp

2015.05.15. 20,887 읽음 댓글 17개

2015.5.13 힐링캠프 촬영 및 제주강연

nbsp 스승의 날을 맞아 어제밤에 갑자기 찾아온 김제동씨와 오늘 새벽까지 얘기를 하시다 늦게 주무셔서 숙소에서 6시에 기도를 하신 후에, 7시 김제동씨와 함께 최말순보살님이 준비해주신 죽으로 간단히 아침식사를 하고 김제동씨와 함께 아침 산책을 할 돌문화공원으로 출발을 했습니다. 돌문화공원은 제주시 조천읍 교천리에 위치하고 있어 서귀포에서 한라산 국립공원지역을 통과하는 길을 이용하여 제주시로 이동하였는데 자연풍광이 너무나 아름답고 좋은 숲길이었습니다. 거기다가 날씨가 얼마나 화창하고 좋은지 한라산이 손에 닿을슷 가깝게 한눈에 들어왔습니다. 이렇게 좋은 날씨덕분에 제주의 아름다운 바다와 한라산을 한눈에 담을 수 있었습니다. nbsp nbsp nbsp 제주시 조천읍에 위치한 돌문화 공원은 돌의 고장 제주에 있는 돌문화를 종합적이고 체계적으로 보여주는 박물관이자 생태공원으로. 2020년까지 전체공원이 조성되며, 제1단계로 제주돌박물관, 제주돌문화전시관, 제주의 전통초가 등의 전시관이 완공되어 공사가 시작된지 7년 만인 2006년 6월 3일 문을 열었다고 합니다. 돌문화 공원은 제주만의 독특한 자연유산인 오름 앞에 자리잡고 있으며, 돌을 쌓아 만들어 놓은 성곽의 형태를 따라 나지막한 오르막길을 올라가면 주변 전망이 시원한 돌문화공원 입구에 다다르게 됩니다. nbsp nbsp 9시 15분쯤에 돌문화공원에 도착하니 원장님께서 스님일행이 오신다는 얘기를 듣고 직접 마중을 나오셨습니다. 스님께서도 환하게 웃으시면 인사를 하니 원장님께서 이곳까지 방문해주신 스님께 감사인사를 드렸습니다. 원장님께서 안내도를 보시면서 돌문화공원을 일행들께 소개를 해주셨는데 원장님께서 40년동안 모은 것들로 전시해놓았다고 하시면서 아직 공원을 절반도 완성하지 못했다고 하였습니다. nbsp nbsp 스님께서는 원장님의 얘기를 들으면서 중국인들이 제주도에 많이 방문을 하고 있으니 제주도가 중국인들에게 정신적인 고향같은 곳이 될 수 있도록, 돌문화센터안에 중국인들이 좋아하는 기수련 할 수 있는 명상센터를 지으면 좋겠다고 제안하셨습니다. 그래서 물질적으로 빠르게 성장하고 있는 중국인들이 언제든지 제주도를 찾아 정신적인 힐링을 하고 마음을 정화시켜 돌아갈 수 있도록 만들면 좋겠다고 하셨습니다. 그러자 원장님께서도 이곳에 땅이 넓으니 스님의 제안을 검토해서 한번 해 볼 수 있도록 하겠다고 동의 해주셔서 이곳이 참 좋은 힐링의 장소가 될 수도 있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nbsp nbsp 스님께서는 이렇게 돌문화공원을 자세히 안내해주신 원장님께 감사의 인사로 사인한 ‘지금 여기 깨어있기’ 책을 선물로 드렸습니다. 스님께서는 천천히 공원을 걸어가면서 김제동씨와 함께 12시 45분까지 가벼운 신상얘기부터 통일얘기까지 여러가지 주제로 이야기를 나누면서 스승의날 특집 SBS 힐링캠프 촬영을 마쳤습니다. 촬영을 마치고 나서는 공원의 이곳 저곳을 구경도 하시고 천천히 공원을 돌아보시다가 초가마을앞 원두막에서 간식으로 준비해 온 제주도 특산 오메기떡, 귤, 옥수수 등으로 일행들과 함께 간단히 요기를 하셨습니다. nbsp 오후 2시가 넘어서 돌문화공원 근처에 있는 국수집으로 이동하여 김제동씨와 촬영스탭들과 함께 국수로 점심식사를 하면서 스님께서는 작년에 이루어졌던 세계 100회 강연 이야기 등을 하셨습니다. 특히 중남미 지역을 방문한 이야기를 하시다가 K팝의 영향력이 생각보다 더 커서 놀랍다고 하면서 지금이 시기적으로 우리민족의 역량을 한층 더 업그레이드 할 수 있는 참 좋은 시기인데 정치적인 역량이 부족하여 그러지 못하고 있음이 참으로 안타깝다고 하셨습니다. 땅이 너무 커도 그렇고, 인구가 너무 작아도 그런데, 우리가 통일을 이루어내어 남북한이 합쳐지면 인구도 7,500만 정도로 되어서 그동안 우리가 축적한 역량만으로도 영국,프랑스,이태리 정도에는 충분히 견주어 볼 만하고, 잘하면 미국, 중국, 인도, 러시아, 브라질, 일본, 독일에 이어서 세계 8위 정도의 국력을 가질 수 있는 그런 역량이 충분한데 정치만 제대로 받쳐주지 못해서 안타깝다는 얘기를 하셨습니다. 현재 우리는 여러분야에서 창조성이 특히 부족한데, 그래도 문화, 대중예술분야에서 만큼은 창조성이 뛰어나서 한류가 세계적으로 인정을 받고 뻗어나가고 있는데 그나마 이명박정부 시절에 한일관계가 나빠지면서 일본에서 급격하게 한류가 타격을 입으면서 다른 지역까지도 조금 주춤한 면은 있지만 그래도 여전히 중남미, 동남아 지역에서 대중예술분야에 대한 인기가 높음을 보았다고 말씀해주셨습니다. nbsp nbsp nbsp 늦은 점심식사 후에 김제동씨와 촬영스탭들은 공항으로 떠나고 스님께서는 바로 근처에 숲길이 좋은 곳이 있다고 하시면서 잠깐 산책을 하자고 하셨습니다.‘한국의 가장 아름다운 도로’로 선정된 사려니숲길이 돌문화공원 바로 인근에 있었습니다. 그래서 약 30분 정도 산책길을 따라 걸었는데 여린 연초록잎들이 싱그런 생명력을 뽐내면서 나무에 매달려 있는 것들이 참으로 예뻤습니다. 스님께서는 새로 나오는 여린 연초록잎들을 보고‘초록 꽃이 만발한다’라고 표현을 하셨는데 연초록의 이파리들이 정말 꽃처럼 예쁘고 어린 아이들의 피부처럼 연하고 부드러웠습니다. nbsp nbsp 산책후인 4시경에 서귀포에 있는 숙소로 출발하였지만 제주시에서 서귀포까지 1시간이 넘게 걸려 도착해서 잠깐 세수만 하고 바로 5시 45분에 오늘 강연장이 있는 제주문화예술회관으로 출발하였습니다. 그러나 저녁 퇴근시간과 맞불려서 강연장 근처에 와서는 차가 움직이지를 않자 스님께서는 걸어가는 것이 좋겠다고 하시면서 차에서 내려서 강연장으로 걸어갔습니다. 강연장에 도착하자마자, 대기실로 가서 오늘 강연에 도움을 주신 분들께 선물로 드릴 책에 사인을 하고는 바로 강연을 시작하였습니다. nbsp 오늘 제주의 강연은 월요일 태풍 노을의 영향으로 어제까지 쏟아지던 비가 그치고 하늘에 해가 쨍쨍 비추는 아주 맑은 날이었습니다. 법륜스님의 강연을 들을 기회가 많지 않은 제주도민들은 모처럼의 강연에 많이 모여 스님의 강연을 경청하셨습니다. 오늘 강연장에는 총 715명이 참석하여 1층 강연장 전체를 가득메우고 2층의 좌석도 절반 이상이 찼던 것 같았습니다. nbsp nbsp 스님의 즉문즉설 강연은 ‘질레’라는 팀의 음악 공연으로 시작되었습니다. 여러 곡 중에서 작지도 크지도 않은 꼭 맞는 자신의 집을 지니고 사는 제주도의 앞바다에 사는 소라게를 노래하는 것이 꼭 스님의 마음처럼 만족하는 삶을 이야기하는 듯 했습니다. ‘질레’의 공연이 끝나자 마자 바로 스님께서는 바로 무대위로 올라갔습니다. 스님께서 무대위에 올라서자 강연장을 가득채운 많은 분들이 큰 박수로 스님을 환영해주었습니다. nbsp 스님께서는 “안녕하세요. 공연 잘보셨습니까? 저는 오늘 두번째 공연자로 나왔습니다” 라고 환하게 웃으시면서 오늘강연을 시작하셨습니다. “저녁은 드셨어요? 저도 못먹었습니다. 오늘은 마음의 양식을 드시는 날이라고 생각을 해봐요. nbsp nbsp 저는 오늘 아주 좋은 데 갔습니다. 제주도에서 제일 좋은 돌문화공원에 가봤습니다. 아직도 한번도 안가본사람도 있나요? 제주도에서 아름다운 한라산, 중문단지, 성산일출봉, 섭지코지, 용두암, 모두 다 가봤지만 돌문화공원에 가서는 저는 인간승리를 보았습니다. 어떻게 한 사람이 이렇게 많은 돌을 모을 수 있을까 싶었어요. 외국에서 귀한 손님이 오면 저는 조용히 이곳으로 안내를 하거나 한번 가보도록 권유를 합니다. 저는 어제 광주 강연 끝나고 밤에 늦게 제주에 도착했는데요, 김제동씨가 스승의 날이라고 스님께 인사한다고 숙소로 찾아 와서 오늘 돌문화공원을 함께 산책했습니다. , 그래서 SBS 힐링캠프 촬영팀에서 저와 김제동씨가 만나는 것을 스승의 날 기념으로 방영을 한답니다. 힐링캠프에 관여하는 분들이 각자 자기 스승님들을 찾아가서 만나는 것을 찍는 것인데 돌문화공원의 원장님이 나와서 안내를 잘해주어서 참 좋았습니다. 그런데 한가지 안타까운 것은 제가 갈 때마다 관광객이 별로 없는데요, 이유가 뭔 것 같애요? 관광객이 없는 이유가 너무 넓어서 라구요. 저는 방문할 때마다 왜 이렇게 좋은곳에 사람이 안올까 그런 의문이 많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원장님한데 이렇게 좋은 곳에 사람들이 왜 이렇게 적으냐고 질문을 하니, 원장님께서 ‘이런 좋은 곳은 사람이 적게 와서 조용해야 되잖아요’라고 말했어요. 조용하면 저한테는 좋지만, 운영은 어렵잖아요. 그래서 사람이 너무 많아 바글 바글해도 안되지만 그렇게 좋은 곳을 안가보니까 조금 안타까웠습니다. nbsp nbsp 사람들이 만들어 볼려고 해도 만들 수 없는 그런 자연의 돌들과 제주도민들의 생활, 돌문화들을 다 모아놓은 것을 보면서 산업화라는 이름으로, 그리고 개발이라는 미명으로 파헤쳐져서 자연도 파괴되고 생활문화도 파괴되었는데, 그래도 그곳에서 그만큼이라도 보존되어있다는 것은 제주도의 자랑처럼 느껴졌습니다. 여러분들은 제주도에 늘 사니까 당연한 것처럼 생각되나 봐요. 그러나 저는 참 좋았습니다. 저는 전통문화 보존과 자연보존에 관심이 참 많아요. nbsp 필리핀 만다니오에 제가 학교도 지어주고, 여러가지 시설도 지어주고 하지만 그중에서 저는 원주민들이 자기 전통 문화를 보존하는 것을 보면 굉장히 값어치 있게 생각을 하고 지원을 해주고 있어요. 산속에 있는 한 원주민들이 전통문화를 아주 잘 보존하는 부족이 있어요. 그래서 이번에 산속에 사는 소수민족 20여명을 서울로 초청을 했는데 산속에 사는 사람들한테는 서울이 별천지였겠지요. 그사람들에게 제주도를 보여주었으면 참 친숙했을 것 같애요. 그분들이 한국의 전통문화는 어떤지 궁금해하고 보고 싶어하는데 이제 서울은 민속촌을 빼고는 보여줄게 거의 없고 시골에서도 생활속에서는 이제 남은게 거의 없어요. 자기의 전통문화를 보존한다는 것은 자기의 정체성을 지키는 것이예요. 전통이 없다면 자기의 정체성과 자존감이 없는 거예요. 일본과 한국은 생긴 것에서는 큰 차이가 없지만 어떤 문화적 전통을 가지고 있는가? 이것이 자기의 정체성을 가져오는 원인이 됩니다.그래서 제주도에 살고 있는 여러분들이 조금 더 전통문화를 소중하게 여기면 좋겠습니다.” 라고 오늘 돌문화 공원을 다녀오신 얘기로 서두를 여셨습니다. 스님의 인사 말씀속에 우리의 전통문화를 소중히 여기는 마음뿐만 아니라 다른 소수민족의 전통문화까지 계승시키고 보존시킬려는 애뜻한 마음을 엿볼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지난번에 보았던 필리핀 송코마을 사람들의 공연이 생각나면서 마음이 참 많이 따뜻했졌습니다. nbsp 스님께서는 유튜브에서 스님의 즉문즉설을 보신 분은 손을 들어보라고 하니 대다수가 손을 들었습니다. 그래서 스님께서는 크게 즉문즉설에 대해서 설명을 안해도 되겠다고 하시면서 무엇이든, 그리고 각자 가지고 있는 자기 고뇌에 대해서 마음껏 질문하고 대화를 해보자고 하시면서 “우리가 진리라고 하면 무겁게 생각하지만 결코 무거운게 아니라 생활 속에서 놀이하듯이 이렇게 접근해갈 수 있다”는 말씀과 함께 질문을 받기 시작했습니다. nbsp 오늘은 총 9분이 질문을 하셨는데, 부모님이 돌아가실 때 스님의 인생수업이라는 책으로 큰 위안을 얻었다는 한 분은 도움을 주는 데 있어서 감사한 줄 모르는 사람에 대한 태도를 어떻게 해야 하는 지를 질문하였고, 지병 때문에 식사에도 문제가 있어서 고민인 분, 이혼한 후에 딸과의 관계에 대해 고민이신 분, 직장 생활 중 직원과의 마찰이 고민이신 분, 그리고 ‘버릇없는 아이들’이 없어지는 세상이 올 것인가에 대해 이야기를 들어보고 싶다고 하신 분, 초등학교에서 근무하시는 선생님으로서 한 단계 성장하고 싶으시다는 분, 또 변하지 않는 자신의 모습을 고치고 싶다던 분, 스님의 강연을 듣고 깨달음을 얻었는데 어떻게 하면 본인이 깨달은 것을 다른 사람들에게 가르칠 수 있는지 묻는 분 등 정말 다양하고 많은 분들이 자신의 고민들을 허심탄회하게 스님께 털어놓으셨습니다. nbsp 그 중 인생을 살아가는 좋은 길도 즐겁게 함께 해 나갈 수 있다며 진리는 무거운 것이 아니라던 처음 강연의 시작의 말씀처럼 무거워 보이지만 결코 무겁게만 느껴지지 않았던, 그리고 많은 이들의 공감을 이끌어 낸 질문과 스님의 답변을 소개해드리겠습니다. nbsp “저는 변화하고 싶지만 저의 한심한 습관을 끊을 수가 없고, 바뀌고 싶지만 바꾸지 않는 저의 모습을 자책하는 제 자신이 싫은데 어떻게 해야 할까요?”라고 고민이라는 젊은 분이 있었습니다. nbsp nbsp 스님은 그 질문에 이렇게 답변하셨습니다. “지금 질문자는 약간 강박관념이 있는 것 같습니다. 나를 변화시켜야 한다는 강박관념을 버리세요. ‘나는 이대로 좋다, 나는 이대로도 괜찮다’ 이렇게 생각하세요. 종교가 특별히 없는 무교신자라고 하니 108배 절을 하면서 ‘저는 이대로 좋습니다. 저는 이대로 괜찮은 사람입니다.’ 이렇게 자기에게 암시를 줘야 합니다. 변화해야 한다는 강박관념에서 벗어나야 해요. 쉽지는 않지만 절을 하면서 ‘이대로 좋다’ 이렇게 하면 돼요. 우리가 원하는 것은 될 수도 있고 안 될 수도 있어요. 안된다고 괴로운 것이 아니에요. 그래도 되고 싶으면 더 열심히 하면 되는 것이죠. 그것과 자기 열등한 것은 관계가 없어요. 질문자는 전기자격증을 따서 더 좋은 직장에 취직해서 부모님께도 효도하고 싶다고 했는데 천원 있는 사람은 이천원 벌고 싶고, 십억 있는 사람은 천억 벌고 싶어 해요. 내가 자격증이 없어도 얼마든지 잘 살 수 있어요. 내가 돈을 많이 벌어서 위로 올라간다고 해도 그 위에 또 더 돈 많은 사람이 있어서 아무리 올라가도 끝이 없어요. 그런 것은 이루지 못해도 살아가는데 아무런 지장이 없어요. 이대로도 좋습니다. 만약 눈이 안보이면 자격증이랑 눈 보이는 것 중에 뭘 더 하고 싶을까요? 당연히 눈이 보이는 것이죠. 자격증이 무슨 소용이 있겠어요. 더 좋은 것을 가지고 있으면서 자격증 없는 것 때문에 불행하다면 인생을 얼마나 헛되게 사는 것입니까. 그러니 이렇게 사는 것으로도 만족스럽다 생각해야 합니다. 이렇게 자기가 자기에 대해 긍정적이어야 합니다.” nbsp 그러시면서 스님의 앞에 있는 컵과 마이크 그리고 뚜껑으로 예를 들어서 말씀을 하셨습니다. “컵이 뚜껑하고 비교해서 크다, 마이크와 비교해서 작다 하잖아요. 자기를 마이크랑 비교해서 자꾸 작다고 생각하는 거예요. 그런데 컵은 이대로 좋은 거예요. 본래 큰 것도 작은 것도 없어요. 모든 세상의 존재는 이대로 좋은 존재입니다. 거기서 출발을 해야 합니다. 이대로도 좋지만 자격증 따볼까? 생각해서 자격증을 따면 좋고 안 따도 좋아야 합니다”라고 하시면서 자신에 대한 긍정적 사고의 중요성을 일깨워주셨습니다. nbsp nbsp 모든 세상의 존재는 이대로 좋다고 하시면서 우리는 자기에 대해서 긍정적이어야 하고, 사물을 긍정적으로 보면 몸에서 긍정적인 에너지가 나와서 얼굴이 좋아지고 내부로부터 좋은 에너지가 나온다고 하시면서 스님께서 따뜻한 격려를 해주시니 그 마음이 질문자에게도 전해졌는지 질문자도 밝은 모습으로 감사의 인사를 하면서 자리에 앉으니 청중들이 큰 박수로 격려를 해주었습니다. nbsp nbsp 스님께서는 마지막으로 “내가 좋으면 좋게 행복하게 살면 된다.”고 하시며 “약 같은 경우도 아무리 선전을 해도 내가 관심이 없으면 보이지 않다가도 내가 그것을 먹고 나았다고 하면 남이 아플 때 엄청 권유를 하잖아요. 내가 먹어보니 좋더라. 이렇게 하는 것이 가장 강한 선전이예요. 여러분들이 먼저 자기가 자기를 치유하고 행복해져야 해요. 그럴 때 사람들이 물으면 이래서 좋더라 하고 말하면 되는 거예요. 그런데 내가 나았다고 그 사람이 반드시 낫는 건 아니에요. 나는 좋았지만 다른 사람은 별로 일 수 있어요. 그래서 기분 나빠할 필요도 없고, 사람은 다 다르니까 다른 사람은 그럴 수 있구나 하고 생각하면 내가 행복해져요. 상대방이 미울 때 세속적으로 보복하는 방법은 내가 행복하게 사는 것입니다. 그것이 현명한 거예요. 그런데 내가 가장 행복한 길은 남에게 베푸는 것입니다. 그렇게 행복하게 사시길 바랍니다.” 라는 말을 끝으로 결국 남에게 베푸는 길이 내가 행복한 길임을 언급하시며 내 스스로가 행복하게 사는 법을 일깨워주셨습니다. nbsp 이렇게 스님께서는 행복하게 사시길 바란다는 말씀으로 마무리 인사를 하고 9시15분에 제주도의 희망세상만들기 강연을 마쳤습니다. 오늘 첫질문에서 젊은 청년이 엄마가 돌아가셨는데 스님의 법문을 통해서 엄마와 쌀과자와 같은 바싹바싹한 이별을 하고 엄마 돌아가신 것을 잘 이겨낼 수 있었다고 하면서 울먹거리면서 스님께 감사의 인사를 하면서 질문을 하니 청중들이 큰 박수로 격려를 해주었는데, 스님께서 이렇게 대중과 만나는 이 희망세상만들기 강연이 얼마나 소중한 시간인지 잘 알 수 있었습니다. nbsp nbsp 강연후에 스님께서는 로비로 이동하여 스님책에 사인을 받기를 원하는 분들을 위해 정성껏 사인을 해주시고 함께 사진촬영도 해주었습니다. 로비에는 사인줄이 아주 길게 늘어서 있고, 책판매대 앞에도 스님책을 사시고자 많은 분들이 있었습니다. 정말 많은 분들이 강연장을 찾아주셨고, 강연장에는 어린아이에서 부터 남녀노소, 그리고 가족단위로 오신분들이 많아서 오늘 강연장이 이곳 제주도에서 축제의 시간처럼 보였습니다. 그리고 하얀지팡이를 짚고서 강연장을 찾은 눈이 안보이는 장애인들도 보았는데, 많은 분들이 스님의 즉문즉설강연으로 기뻐하고 얼굴이 환해지고 환호하는 모습들이 참으로 좋았습니다. 9시 30분에는 강연을 준비한 활동가들과 사진촬영을 하고, 이어서 스님께서 스님 강연전에 문화공연을 해준 공연팀들께도 감사의 인사를 하면서 함께 기념사진을 촬영하였습니다. 그리고 감사의 인사로 멤버들에게 스님께서 사인한 책을 선물로 드리고, 그분들도 스님께 감사의 선물을 주셨습니다. nbsp nbsp 이후 스님께서는 옆방으로 이동하여 오늘 강연장에서 봉사를 한 활동가들과 잠깐 인사를 하였는데 봉사자 75명중 약 50여명이 참가였습니다. 스님께서 봄불대생, 가을불대생, 주간반, 야간반, 경전반, 경전반 졸업하신분등 다양하게 참가자들의 경로를 살펴보시면서, 준비하는데 어려움은 없었는지, 예술공연을 잘 했는데 앞으로는 어떻게 해보면 좋겠는지 등을 얘기하시면서 제주정토회의 봉사자 및 활동가들과 아주 즐거운 시간을 가졌습니다. 불대생들과 경전반, 그리고 제주정토회의 회원들이 똘똘 뭉쳐 합심하여 축제같은 분위기로 훌륭하게 강연을 준비하고 치루어낸 것 같아 참으로 기뻤습니다. 그리고 스님께서 불대생들에게 특강수련 및 육지에서 하는 행사에 잘 참가하기가 힘든데 어떠냐고 물으니 이번 주말에 있는 불대특강수련에 다들 참가한다고 하면서 좋아들하는 모습이 참 인상적이었습니다. nbsp 제주법당은 작년 4월 29일에 개원하였기 때문에 스님께서는 개원전 3월에 와보시고, 개원후인 5월에 강좌를 하여 개원후에 제주 법당을 방문해보았다고 하시면서 불대생들이 주축이 되어서 참 좋다고 하셨습니다. 어제 밤에 내려와서 오늘 돌문화공원에서 김제동씨와 함께 스승의날 기념 특집 촬영을 하느라 이렇게 강연 직전에 참가하게 되었다고 양해를 구하였습니다. 그런 가운데에서도 새로 부임하신 원희룡지사님에 대한 도민들의 의견은 어떤지도 들어보시고 또 말씀도 해주셨습니다. nbsp 오늘 강연 봉사자중 어떤 거사님께서는 집사람으로 인하여 작년 가을불대에 입학하게 되었다고 하시면서 제주 문예회관 대강당은 좌석이 23도 차기가 아주 힘든데, 오늘은 1층은 좌석이 다 찾고, 2층도 거의 다 찬 것에 대해서 너무 감동을 받았고, 또 스님의 말씀도 불교대학 공부하면서 이치에 맞아 너무 감동을 많이 받았다고 감사하다고 인사를 전하였습니다. 그런데 회사에서 종교문제로 상사와 갈등을 겪고 있다고 하면서 상사는 기독교인인데 제가 불교인이라는 것을 알게된 이후로 너무 불이익도 주고 힘들게 하여 갈등이 있는데 어떻게 하면 좋을지에 대해서 여쭈었습니다. nbsp nbsp 스님께서는 “우리나라 기독교인들은 약간 편협된 면이 있으므로 감수해야 한다고 하셨습니다. 원래 불교를 믿어서 불이익을 당하는데도 믿는 것이 진정한 불교인입니다. 신앙을 믿어 이익을 본다면 그것은 진정한 신앙이 아닙니다. 초기 기독교신앙도 이렇게 순수했기에 파워가 있었습니다. 기독교인들이 로마 귀족의 하녀로 들어가서 부인을 교화했는데 이것은 아래로부터 교화를 한 사례입니다. 부부가 싸워서 괴로울 때 하녀가 엄마처럼 보살펴 주었기 때문에 하녀에게 의지를 하게 되니 기독교를 받아들이게 된 것입니다. 그리고 남자들도 권력투쟁으로 힘들어할 때 부인에게 의지하니 남편이 기독교를 받아들이게 되었고, 결국 로마도 밀라노 칙령으로 기독교를 공인하게 되고 결국에는 로마의 국교가 되었습니다. 초기 기독교는 권력과 세속적인 힘이 아니었습니다. 신앙은 약간 손해를 보는 것입니다. 손해를 보면서도 이것을 지킬 필요가 있다고 하면 이것은 신앙이고, 이익을 볼려고 한다면 이것은 신앙이 아닙니다. 사장이 불교인인데 나도 같은 불교인라서 이익을 본다면 이것은 신앙이 아닙니다. 불교인들은 절대로 다른 종교인들에게 기죽을 필요가 없습니다. 제주도민 전체가 기독교인이고 나혼자 불교인이라도 괜찮습니다. 20년전 시민운동단체에는 불교가 없었고 거의 99퍼센트가 기독교인이었습니다. 그래서 절에 초대해서도‘목사님 기도해주세요’라고 식사기도 해달라고 합니다. 이렇게 먼저 열어버리고 평등하게 하면 목사, 신부, 스님 이 191에서 이제 차례로 목사, 신부, 스님 이렇게 31이 됩니다. 그러니 기죽지 말고, 그렇다고 불교인이라고 표시를 너무 낼 필요가 없습니다. 열심히 수행정진 하시길 바랍니다” 라고 말씀 해주셨습니다. 그리고 자리를 마칠려고 하니, 활동가 보살님께서 스승의날 기념 카네이션 화분을 자녀와 함께 가지고 와서 스님께 감사의 인사로 드리고, 활동가 모두 스승의 날 기념 노래를 부르니 가슴이 뭉클하였습니다. nbsp nbsp 그렇게 해서 10시경에 강연장을 떠나 숙소로 도착하니 11시가 되었습니다. 스님께서는 내일 4시30분에 함께 기도하고 바로 공항으로 출발하자고 하시면서 밤에 모든 짐을 정리하자고 하셔서 함께 뒷정리를 하고 휴식을 취하였습니다. 이렇게 오늘도 아침부터 많은 일정을 소화하셨지만 함께 해서 더 행복하고 소중한 시간이었습니다. 내일은 저녁에 대구에서 청년대학생을 대상으로 한 즉문즉설이 있습니다. nbsp

2015.05.14. 24,043 읽음 댓글 30개

2015.5.12. 광주 시각장애인연합회 강연, 고 해관 장두석 선생님 49재를 맞이하여

nbsp nbsp nbsp 어제 창원강연이후 마산법당에서 주무신 스님께서는 새벽예불과 기도를 마산법당 대중 약 15여명과 함께 하였습니다. 기도후 대중들은 스님께 삼배를 올렸고, 스님께서는 새벽예불에 매일 나오는 사람을 확인한 후 “기도든 운동이든 매일 정기적으로 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매일 하루도 빠지지 않고 하다 보면 주위의 혼란스러움들이 빨리 잠잠해집니다. 기도를 놓아버리면 나중에 더 혼란스러워 집니다.”라며 기도를 빠지지 않고 매일 정진하라고 하시면서 광주로 이동하셨습니다. nbsp nbsp nbsp 광주로 이동하는 중간에 휴게소에서 간단히 아침을 먹고 오늘 강의가 있는 ‘시각장애인연합회’사무실로 향했습니다. 오전 10시 30분쯤 광주 남구에 위치한 lt광주 시각장애인연합회gt에 도착하신 후 회장님과 간단히 차담을 나누시고 11시부터 강연을 시작하셨습니다. nbsp nbsp 강연전에 lt광주 시각장애인연합회gt 회장님등 지역 인사분들과 간단히 차담을 나눈 후 강연장에 들어가셨습니다. 100여석이 넘는 강연장은 각계각층 인사들과 시각장애인, 봉사자들로 입추의 여지없이 만석을 이루었습니다. nbsp 강연에 앞서 lt광주 시각장애인연합회gt에서는 스님께서 많은 희망과 가르침을 주셨다고 감사패와 선물을 증정한 후 강연을 시작하였습니다. nbsp nbsp 앞을 보지 못하는 시각장애인들이지만 스님의 강연을 마음으로 듣고자 모인 그들을 보며 가슴 뭉클한 감동이 전해졌습니다. nbsp “이 세상의 진실은 눈에 보이는 것이 다가 아닙니다. 눈에 보이지 않는 것을 볼 수 있을 때 진짜 보는 것입니다. 진실을 볼 수 있는 눈이 있다면 다른 사람보다 더 행복해질 수 있습니다. 마음의 눈을 어떻게 뜰 것이냐 하는 이야기를 하고자 합니다.”라고 말문을 여신 후 시각장애인들에게 희망의 메세지를 전달하셨습니다. nbsp “이 세상에 타고난 그 어떤 것도 죄가 아닙니다. 장애는 약간 불편할 뿐 열등한 것이 아닙니다. 그것은 팔자 탓도, 전생의 죄 탓도, 하느님의 징벌도 아닌 그냥 하나의 조건인 것입니다. 우리에게 주어진 조건에 만족하고 그것을 긍정적으로 활용할 수 있어야 합니다. 있는 것은 있어서 좋고, 없는 것은 없어서 좋다고 생각하며 긍정적으로 받아들일 때 행복을 느낄 수 있는 것입니다. 마음의 열등의식을 없애고 내 자신이 자랑스러울 때 바로 행복으로 가는 지름길이 열리는 것입니다. 가장 중요한 것은 바로 “마음”인 것입니다.” nbsp nbsp 스님의 긍정에너지를 받은 시각장애인 청중들의 즉문즉설 시간이 이어졌습니다. 2명의 시각장애인과 2명의 일반인이 질문하였습니다. 그 중 기독교인 시각장애인의 즉문즉설을 소개하겠습니다. nbsp “예수를 믿는 시각장애인입니다. 인간은 모두 태어날 때 선량하게 태어나는데 살아가다 보면 9개 가진 자가 1개 가진 사람의 것을 빼앗아 10개를 채우려는 욕심이 생기고, 경쟁을 하게 되고, 고민에 빠지게 됩니다. 지금 저와 경쟁중인 사람을 용서해야 하는데 잘 되지 않고 번민에 쌓여 있습니다. 어떻게 해야 할까요?” nbsp “용서하는건 쉽지 않습니다. 마음속에 저 사람은 나쁘다고 생각하는데 어떻게 용서가 되겠습니까? 현실적으로는 불가능합니다. 기독교 신자라고 하니 예수님의 가르침 속에서 답을 찾아보겠습니다. 예수님은 ‘그 사람이 나쁜 짓을 했지만 용서해 주라.’고 가르치지 않았습니다. ‘그 사람은 나쁜 사람이 아니다.’ 라고 하는 것이 바로 용서인 것입니다. 상대를 세 번은 봐주는데 네 번은 안 봐주는 것은 참는 것이지 용서가 아닙니다. 예수님은 돌아가실 때 십자가에 자신을 못박은 자들에게 ‘주여, 저들을 용서 하소서.’ 라고 하셨는데, 반드시 그 뒷구절을 보면 ‘저들은 자기 지은 죄를 모르옵니다.’라고 되어 있습니다. 이 부분을 잘 봐야 됩니다. nbsp nbsp 예수님을 못박은 그 두 사람은 지금의 교도관입니다. 자기의 직업이므로 그들은 죄의식이 없습니다. 횟집에서 회를 뜨는 사람이 죄의식이 있을까요? 도살업자들이 죄의식이 있을까요? 그들은 그저 직업일 뿐입니다. 그들을 가장 잘 이해한 사람이 예수님입니다. 상대편의 처지를 올바르게 이해하신 분입니다. 그들이 죄가 없다는 것을 아는 것이 진정한 용서입니다. 우리는 용서했다가도 분에 못 이겨서 자다가도 벌떡 일어납니다. nbsp 돈을 빌려 주었는데 못 받았다면 상대방에게 ‘왜 갚지 않느냐?’고 한번 물어 보세요. 그러면 그 사람은 ‘지금 돈이 없어서 못 갚은 것을 어떡하냐?’고 할 것입니다. 내 입장에서는 물론 아니지만 그 사람 입장에서는 그럴 수도 있겠구나라고 생각하며 기도하세요. 그러다 보면 저절로 용서가 됩니다. 예수님은 자기를 죽인 사람도 용서하는데 돈 떼먹은 사람도 용서 못한다면 내가 어찌 크리스천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까? 돈 떼먹거나, 나를 욕한 사람 정도는 용서할 수 있어야 지금 보다 더 나은 삶을 살 수 있지 않을까요. nbsp nbsp 본래 ‘네가 옳다, 내가 옳다.’라고 할 것이 없습니다. 다 자기 생각대로 사는 것입니다. 죄는 실컷 지어놓고 예수 믿으면 천당 간다는 것은 이치에 맞지 않습니다. 예수님께서 내 죄를 대신 받아 준다고 하셔도 ‘제 죄는 제가 받겠습니다.’ 라고 해야 맞는 것입니다. 여러분들이 기복신앙으로 예수님, 부처님을 믿는 것은 이제 뛰어 넘어서야 합니다. 우리들의 어리석은 생각을 깨우쳐주는 것이 바로 진정한 종교입니다. 이제 우리는 어리석은 잘못된 신앙을 버리고 ‘진실’에 접근해야 합니다. nbsp 사랑이라는 것은 그 처지를 이해하는 것입니다. 최소한 미워하지는 말아야 합니다. 이것이 성인의 가르침입니다. 용서를 못하면 내가 괴롭고, 용서를 하면 내가 행복합니다. 그 사람 때문에 내가 괴로울 이유가 없고, 괴로우면 나만 손해인 것입니다. 용서를 하려면 이해해야 하고, 생각을 바꿔야 합니다.” nbsp nbsp 스님으로부터 ‘용서’의 진정한 의미에 대해 들은 많은 사람들이 큰 박수로 스님의 법문에 답하였습니다. 오후 12시가 훨씬 넘어서까지 이어진 즉문즉설을 마치고, 스님께선 참석한 시각장애인들과 일일이 악수를 나누시며 오전 일정을 마무리 하셨습니다. nbsp nbsp 그리고 여느 때처럼 바쁜 일정으로 간단히 점심식사를 마치신 후 오후 일정이 있는 전남 화순으로 향하셨습니다. nbsp 전남 화순군 이서면 ‘민족생활관’에서는 스님과 개인적인 친분이 두터우셨던 해관 장두석 선생의 49재 추모행사가 열렸습니다. 장두석 선생은 ‘한민족생활문화연구회’ 이사장으로서 통일운동과 민족생활의학 전파에 힘쓰셨던 분으로 지난 3월 25일 별세하셨습니다. 양현당 앞마당에 차려진 추모행사장에는 유가족들과 지역 인사들, 스님의 즉문즉설을 듣기 위해 자리한 일반인들 등 모두가 선생을 추모하는 마음으로 한자리에 모였습니다. nbsp nbsp 특히 선생의 뜻을 기리는 이애주 서울대 명예교수의 추모의 춤이 한껏 분위기를 고조시켜 모두가 하나 되어 진심으로 고인의 극락왕생을 기원하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이어서 스님의 추모사가 있었습니다. nbsp “오늘 장두석 선생님 49재에 많은 분들이 참석해 주셔서 대단히 감사드립니다. 불교에는 ‘불생불멸’, ‘불래불거’라는 말이 있습니다. 태어남도 없고 죽음도 없다. 온nbsp 것도 없고 가는 것도 없다는 뜻이지요. 그러니 태어난다고 기뻐할 것도, 죽는다고 슬퍼할 것도 없고, 또한 온다고 좋다 할 것도 없고 간다고 싫어할 것도 없다는 의미입니다. 늘 평정심을 유지하라는 말씀입니다. 파도를 보면 늘 생기고 사라집니다. 그러나 바다 전체를 보면 사실은 파도는 사라지는 것도 생기는 것도 아닌 그냥 출렁거리는 것뿐입니다. 장두석 선생께서는 출렁이는 바다처럼 죽음에 대한 두려움이 없으셨기 때문에 흔들림이 없으셨던 것 같습니다. 죽음에 대한 두려움이 없다면, 죽어서 좋은데 가거나 나쁜데 간다는 게 없습니다. 우리에게 다만 남은 것은 선생께서 남기신 뜻을 함께 추진해나가야 한다는 것입니다. 오늘 49재를 지냈으니 슬퍼하지 말고, 선생이 하시고자 하셨던 일, 즉 민족통일과 남에게 건강을 의지하지 말고 자기 스스로 몸을 잘 챙겨서 건강하게 사는 삶을 살아가야 합니다. 또한, 마음을 맑고 발고, 가볍게 가져서 행복하게 살아야 합니다. nbsp nbsp nbsp 우리는 아픔을 경험해야 건강의 소중함을 알 수 있습니다. 아픈 환자보다 귀한 의사는 없습니다. 아파봐야 앞으로 건강할 길을 찾게 됩니다. 환자 자신이 가장 큰 의사인 것입니다. 그리고 중생 없이 부처 없다는 말처럼 괴로움에 물들지 않을 때 진정한 해탈을 할 수 있습니다. 아픔에 여여할 때 그것이 진짜 해탈인 것입니다. 그래서 선생께서는 아픔마저도 사랑하라고 가르치신 것 같습니다. 선생께서 ‘병도 우리 몸의 한 부분이다.’는 관점에서 우리에게 몸이 아프지 않는 삶을 살도록 추구하셨다면, 저는 마음이 괴롭지 않는 삶을 살 수 있는 것을 추구하고 있습니다.” nbsp 스님께서는 아픔과 죽음앞에서도 진정 행복할 수 있는 길을 말씀해주셨습니다. nbsp 그리고 이어진 즉문즉설에서는 4명의 질문자가 세월호 문제에서부터 통일문제, 개인적인 문제까지 다양하게 질문하였는데, 그 중 두 가지 질문을 소개하겠습니다. nbsp “대학원을 다니고 있습니다. 세월호 집회를 참여하고 있는데, 요즘 들어 가장 화가 나는 것은 진실이 아직 해결되지 않은 상태에서 일부 국민들은 벌써 ‘지겹다.’ ‘이젠 그만하자.’ ‘그들로 인해 교통이 막힌다.’는 등의 반응들을 보이고 있습니다. 이에 너무 분노가 일고, 심지어 그들이 금수로 보이며 이해가 가지 않습니다. 이 상황을 어떻게 이해해야 합니까?” nbsp nbsp “피장파장입니다. 그 사람이 세월로 진상규명 집회를 보고 지겨워 하는 것이나 당신이 그 지겨워 하는 사람을 보고 분노하는 것이나 다 마찬가지입니다. 원래 사람은 그렇습니다. 너무 기대하면 안됩니다. 사람은 때론 짐승보다도 못하기도 하고 어쩔 때는 나을 때도 있습니다. 짐승은 자기 새끼를 끝까지 보호하지만 사람은 그렇지 않기도 합니다. 하지만 인간이 부모를 모시는 것을 보면 짐승보다 나은 면도 있습니다. 자연상태가 제로 베이스라면 짐승보다 나으면 선이고 , 짐승보다 못하면 악이라고 합니다.” nbsp “그럼 인간에 대한 기대를 낮춰야 합니까?” nbsp “동물보다는 나아야 된다고 생각합니다. 동물 정도만 되어도 이 세상은 이렇게 시끄럽지 않을 것입니다. 동물은 자기가 먹을 먹잇감만 죽이지만, 사람은 무슨 이념이니 신념이니 외치며서 수백만 사람들을 죽이는 것을 당연시 합니다. 기대가 크면 실망이 크고, 기대가 작으면 만족이 큽니다. 질문자는 인간에 대한 기대가 너무 큰 것 같습니다. 그래서 실망하지요. 저는 인간을 한갓 짐승으로 보기 때문에 사람들이 다 괜찮아 보입니다. nbsp 그리고 기분 나쁜 얘기도 들을 줄 알아야 합니다. 당연히 진상규명 해야 되는 건 알지만 그들이 안하겠다는걸 어떻게 할 것입니까? 세월호가 발생하게 된 원인에 무슨 문제가 있으니까 정부는 진상을 밝히지 않으려고 하는 것 아니겠어요? 그들이 밝히지 않으려고 하는 것을 그냥 당연하게 받아들이고, 그런 위에서 우리 스스로가 밝히도록 노력해야 됩니다. 세월호 진상규명에 일부 국민들이 나서지 않는 것은 어쩔 수 없습니다. 그들을 욕해봤자 본인 에너지만 낭비됩니다. 울분을 토하는 감정은 이해되지만 올바른 해결책은 아닙니다. 도저히 안되면 이번 정부에서는 이 정도까지 밝히고, 못 밝힌 것은 다음 정부에서 밝힐 수 있도록 에너지를 비축하는 것도 좋은 방법입니다. 세상은 우리가 원하는 대로, 또는 순리대로 다 되지 않습니다. 어리석지 않고 현명하게 대응해야 합니다. 생각이 다른 이들을 포용하고 시간을 두고 효과적으로 해결해 나가야 할 것입니다.” nbsp nbsp 스님 말씀을 들으면서 비단 세월호 문제만 국한된 것이 아니라, 어떤 일이든지 인간의 마음작용을 이해하고 상대를 포용하는 것이 바람직함을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nbsp “매사 좌와 우, 남과 북, 보수와 진보로 갈라져 있는 현 시대 상황에서 일반인들은 통일에 대해 어떤 관점을 가지고 살아야 하며, 물질적 지원 부분은 무엇이 있을까요?” nbsp “통일에는 두 가지 길이 있습니다. 우선 눈 앞의 이익을 떠나 민족공동체 차원에서 생각해야 합니다. 예를 들어 노모가 병 들어 수술비가 천만원 든다면 가족들이 수술 여부를 결정할 때, 노모가 앞으로 살아계시면서 천만원 이상 벌 수 있을까라고 계산하지 않고 그냥 살아 계시는 것만으로 만족하며 치료합니다. 가족은 경제적 이익을 따지지 않습니다. 경제문제를 떠나 이산가족의 한을 풀고, 민족의 한을 풀며 민족정기를 되찾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첫 번째로는 경제적 측면을 넘어서는 자세를 가져야 됩니다. nbsp 그러나 가족공동체가 붕괴되어 가고, 물질 만능주의가 팽배해진 현 시대에서 경제적 문제를 외면할 수만은 없습니다. 특히 통일을 반대하거나 무관심한 사람들에게 통일의 중요성을 강조하기 위해서 경제적 이익이나 발전을 설명하고 설득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민족적 문제를 경제적으로 접근해서는 안되지만 젊은이들에게는 통일이 경제적으로 이익된다는 것을 설명해줘야 할 필요성이 있습니다. nbsp nbsp 우리나라는 지난 50년간 경제적으로 급속하게 성장했기 때문에, 사람들은 앞으로도 계속 성장할 것이라고 믿고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나라는 지난 수 십년간 미국과 일본이라는 모델을 정해 놓고 그야말로 충실하게 따라 하기 식의 모방방식을 취해왔습니다. 그래서 어느 정도 압축성장은 가능하였으나 이제는 더 이상 성장 동력이 고갈되고 소진하여 갈수록 저성장률을 거쳐 어느 순간 정체 되고 마이너스 상태까지 이르는, 일본의 전철을 답습하게 될 것입니다. nbsp 모방경제의 덫에 걸려있는 사회 전반적인 시스템을 창조경제로 바꾸어 가야 할 것입니다. 그러나 말처럼 창조경제가 쉬운 것은 결코 아닙니다. 이미 모방과 순종에 길들여진 사회 전체의 분위기에 이름뿐인 창조를 억지로 가미한다고 진정한 창조가 되는 것은 결코 아닙니다. 창조란 교육, 사회 전반적인 부분에서의 대대적인 변화가 필요하며 거기에 따르는 시간과 비용은 감수하여야 합니다. nbsp 이런 상황에서 우리나라의 현재 한계점을 극복할 만한 기회이자 수단은 바로 한반도 통일 뿐입니다. 하루빨리 통일을 실현하여 북한에 투자하고 개발, 발전시키면 10여년 이상은 경제를 활성화 시키고 다방면에서 창조경제를 가능케 할 수 있습니다. 한반도를 한번 더 업그레이드 시키기 위해서는 통일문제를 해결하지 않고서는 답을 찾을 수 없습니다. 통일과 더불어 창조는 그 잠재력을 발현 시킬 수 있는 중요한 요소인 것입니다. 다양한 대중문화를 발전시키고, 흑백 논리에서 벗어나 다양성이 인정되는 교육과 사회 전반적인 시스템이 갖춰져야 할 것입니다. nbsp 그리고 한반도의 분단으로는 동아시아의 평화가 이뤄질 수 없습니다. 통일 한국은 남북통일 그 자체로만 머무는 것이 아니라, 한국이 주축되어 한, 중, 일 동아시아의 평화와 이익까지 챙길 수 있는 좋은 기회인 것입니다. 한국이 동아시아의 중심국가로 서게 되면 천년의 영광을 재현할 수 있습니다. 우리 조상들이 청동기 문명에 안주할 때 중국은 철기문명을 고도로 발달시켰습니다. 우리는 철기문명을 외면해서 한나라 때 고조선이 멸망하였고, 그 후에 중국 문명이 계속 우리에게로 흘러들어왔습니다. 그래서 문명적 열등의식이 있었지만, 최근 3040년 동안은 우리 문화가 중국으로 계속 흘러 들어가고 있습니다. 문명의 역전현상이 일어나고 있습니다. 문명의 중심이 되기 위해서는 기술은 물론이며 물량과 더불어 가장 중요한 것이 바로 창조성인 것입니다. 창조성에 대한 태도를 봤을 때 중국은 멀었지만, 통일이 된다면 한국은 창조성을 가질 확률이 높습니다. 그리고 통일이 되기 위해서는 통일 지향적 정부를 구성하는 것이 가장 좋은 방법입니다. 정부의 정책이 통일에 도움 되도록 재설정하는 것이 급선무입니다.” nbsp nbsp 스님의 명쾌한 통일에 대한 당위성과 방법론을 듣고 나니 한층 더 통일이 실감나고 간절해지는 순간이었습니다. 자리하신 모든 이들이 통일의 염원으로 한 마음, 한 뜻이 된 것 같았습니다. 그리고 참석자 모든 분들이 민요를 합창하며 밝은 분위기속에서 추모행사를 마무리 하였습니다. nbsp 스님께선 광주일정을 마치시고 제주도로 출발하기 위해 서둘러 공항으로 발걸음을 옮기셨습니다. 저녁 7시 50분 광주공항을 출발하여 밤 9시 40분경 제주공항에 도착하였습니다. nbsp nbsp 도착해서 제주정토회 활동가들과 인사한 후 바로 제주도 원희룡지사님을 만나러 갔습니다. 제주강연때문에 제주에 온다는 소식을 들은 원희룡지사님은 스님께 인사를 드려야 한다면서 스님을 뵈었습니다. 스님께서 원지사님이 제주지사가 되고 나서 처음 만나는 자리여서 도정을 운영하면서 어려움은 없는지 등을 물으셨고 원지사님도 어려운 점 만이 아니라 재밌는 이야기들도 함께 나누었습니다. nbsp 밤 11시 30분에 미팅일정을 마치시고 오늘 묵을 숙소로 이동하기 위해서 공관을 나오시니 사모님께서 숙소에서 드시라고 제주도 명물 오메기떡 등 기타 먹거리를 주셨습니다. 스님께서는 원지사님 부부에게 인사하고 서둘러 오늘 숙소가 있는 서귀포시 안덕면 대평리를 향해서 출발하였습니다. 네비게이션으로 검색해보니 약 50분정도 소요되는 것으로 나왔으나 초행길이고 밤길이라 한시간 정도 걸려서 숙소에 도착했습니다. nbsp nbsp 숙소에는 김제동씨가 힐링캠프 촬영팀들과 함께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김제동씨는 스님을 스승님으로 모시고 계셔, 스승의 날 기념으로 방문한 것입니다. 스님께서는 김제동씨와 반갑게 인사하며, 힐링캠프에서 어떻게 스승의 날 특집으로 신부님, 목사님도 많은데 나를 찾아왔냐고 말씀하시며 웃으셨습니다. 스님과 김제동씨의 이야기가 시작되자, 두 사람의 첫 만남부터 구정날 스님께서 손수 방의 불을 때어서 김제동씨 잠을 재운 이야기, 아침을 준비해서 총각 둘이서 함께 먹고, 슬리퍼 신고 10km 산행한 이야기 등을 하면서 훈훈한 시간을 가졌습니다. 김제동씨는 이야기 도중에 얼떨결에 스님께 인사를 하지 못했다고 하면서, 정성스레 삼배로 인사를 올렸습니다. 워낙 스님께서 늦게 도착해서 1시가 넘어서야 마무리 하고 촬영팀은 제주시로 돌아가고 김제동씨만 남아서 함께 숙박하였습니다. nbsp nbsp 오늘 숙소를 제공해주신 보살님께서도 스님께 삼배로 인사 올렸습니다. 보살님은 그동안 비어있던 집이라 청소하고, 집 문도 열어준다고 서울에서 직접 내려오셨습니다. 그래서 스님께서는 보살님께 감사하다고 하시면서 책을 선물해주셨습니다. 보살님은 내일 아침 직장때문에 새벽 비행기로 다시 서울가야 해서, 늦은 밤에 제주시로 나가시면서 스님께 편안히 지내시다 가라고 인사하셨습니다. 스님께서는 촬영팀들과 제주시로 나가는 모든 사람들을 배웅하셨습니다. 그리고 집주변을 둘러보시고 집으로 다시 들어와 김제동씨와 그간의 얘기를 하셨습니다. 스님의 컨디션이 조금 좋지 않아서 내일 애기를 더 하기로 하고 두시가 넘어서 스님께서는 방으로 들어가셔서 휴식을 취하였습니다. 내일은 제주에서 희망강연이 있습니다.

2015.05.13. 20,800 읽음 댓글 20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