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님의하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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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4.19 경주남산순례, 경주 희망세상 만들기 강연

nbsp nbsp 오늘은 4.19 혁명 기념일이자 전국 정토불교대학의 경주 남산 순례가 있는 날입니다. 스님께서는 새벽예불을 한 후 경주남산순례에 나섰습니다. nbsp 전국의 가을불교대학 학생들은 스님과 함께하는 즐거운 봄나들이를 기대하며 설레는 마음으로 경주로 왔습니다. 어제 저녁부터 비가 많이 내려 걱정스러웠지만 스님께서 ‘비 맞고 농사도 짓는데 비 맞고 노는 게 무슨 문제겠어요.’ 하시던 말씀이 떠올라 든든해졌습니다. nbsp 순례길은 용장골, 삼릉골, 포석골, 부처골, 봉화골로 이루어진 5개 코스로 나누어서 법사님들의 안내를 받으며 산행을 했습니다. 빗줄기가 제법 굵어지는데도 도반들과 함께 산을 오르면서 다리도 아프고 땀도 많이 나서 힘들다는 분도 계시고 가볍게 잘 걸으시는 분도 계십니다. nbsp nbsp 스님께서는 불대생들이 모두 산행을 시작한 후 포석정으로 길을 잡으셨습니다. 막 준비하고 시작하려는데, 보수법사님이 이끄시는 팀들과 만났지만, 스님께서는 조용히 홀로 산으로 오르기 시작하셨습니다. 스님께서 조용히 대중들 곁을 지나가셨지만 모두들 법사님 말씀과 산을 오르는데 집중하느라 스님을 몰라보고 그냥 지나가기도 했습니다. nbsp 길을 걸으면서 잠시 오렌지를 먹었는데, 그 껍질이 땅에 떨어져 있는 것을 보고 그냥 숲 속에 던지면 된다고 하니 스님께서는 안된다고 하시면서 오렌지 껍질에 묻은 농약 성분 때문에 산에 사는 동물들에게 해롭다고 하십니다. 환경을 위해 작은 것 하나라도 실천하시는 스님께 또 하나 배웁니다. nbsp 통일암 소나무 숲속에 도착하니 제일 먼저 유수스님과 함께 칠불암으로 올랐던 서울·제주팀들이 도착했습니다. 그 팀들은 칠불암을 거쳐 산을 넘어 온 것이 아니라 신선암까지 갔다가 비가 많이 와서 되돌아 왔다고 합니다. nbsp nbsp 비가 약하게 내리자 숲속에서 점심을 먹기로 했습니다. 비 오는 날 산행을 하고 비 내리는 숲속에서 점심을 먹는 일은 정토회 행사가 아니면 경험하기 힘들 것 같습니다. 다들 별 다른 의견없이 처음 도착한 팀들이 자리를 깔고 점심공양을 하기 시작하니 그 다음 도착하는 팀들은 묻지도 않고 자연스럽게 자리를 깔고 점심을 먹기 시작했습니다. 스님께서도 직접 도시락을 가져오셔서 자리를 깔고 드셨습니다. nbsp nbsp 절반정도가 점심 공양을 마친 후 스님께서는 아직도 도착하지 않는 팀들을 기다리며 마이크를 잡으시면서 “품위 있게 생긴 연한 색의 연달래가 지금 산에 화창하게 피고 있다.”고 하시면서 좀 더 짙은 색의 진달래는 꽃이 먼저 피고 잎이 나중에 피는데, 연달래는 잎과 꽃이 같이 핀다고 하시면서 어릴때는 진달래는 먹을 수 있는 꽃이고 연달래는 먹을 수 없는 꽃으로 그 가치를 규정했다고 하면서 간단히 꽃 이야기를 해주시니 불대생들은 모두 ‘아 ’하고 이해하면서 좋아 했습니다. nbsp nbsp 스님께서는 남을 즐겁게 하는 것도 보라고 하시면서 노래할 사람 나오라고 하니 여기저기서 소양강처녀, 산토끼, 봄비 등 노래를 부르면서 참가자들은 함께 어울려서 즐거운 시간을 보냈습니다. nbsp 스님께서는 특별히 해외 정토회에서 오신 활동가들을 소개 해주셨습니다. 멀리 미국, 호주, 독일, 캐나다 등에서 오신 분들에게 참가자들은 박수를 아끼지 않았습니다. nbsp nbsp 스님께서도 이슬비 동요 가락에 맞추어 개사를 해서 대중들에게 노래를 선사 하셨습니다. ‘이슬비 내리는 이른 아침에 정토 행자 나란히 걸어갑니다. 진달래꽃, 연달래꽃, 산벚꽃들이 만발한 남산길을 올라갑니다.’ nbsp 마지막 팀이 도착해서 공양을 시작했을 즈음에 먼저 와서 기다리던 대중들은 염불사지로 이동했습니다. 계속 내리는 비속을 우산을 쓰고 스님과 함께 걸으며 설명도 듣고 색다른 경험이었습니다. 염불사지에 도착해서 바로 석가모니불을 염불했습니다. nbsp nbsp 내리는 비속에서도 780여명의 대중들은 마음을 모아 석가모니불을 불렀습니다. 스님께서는 ‘나라와 민족을 위해 희생하신 순국선열과, 4·19를 맞아 민주주의를 위해 목숨을 잃으신 민주열사들의 명복을 빌며, 세월호 사고로 목숨을 잃은 희생자 등 수많은 사람들을 위한 묵념’을 한 후 모든 영가들의 극락왕생을 빌며 해탈주 삼독을 하였습니다. nbsp nbsp 대중들은 마음을 담아 영가들을 위한 극락왕생을 빌었습니다. 가슴이 뭉클한 순간이었고 오래도록 기억에 남을 감동이 느껴졌습니다. nbsp 염불사지를 떠나 남산사지 3층 석탑을 둘러본 후 통일전 주차장으로 가서 다시 버스를 타고 서라벌 문화회관으로 이동했습니다. 주차장으로 가는 좁은 길에서 스님 뒤를 계속 놓치지 않고 졸졸 따라가는 보살님들은 인기 연예인의 뒤를 쫓아가는 모습이 10대 소녀들 같았고 그 마음이 이해됩니다. 스님을 가까이서 자주 뵙고 불법을 배우고 싶은 마음들일 것입니다. nbsp nbsp 오늘 비가 오기 때문에 스님과 함께하는 즉문즉설은 서라벌 문화회관에서 하기로 했습니다. 서라벌 문화회관은 오늘 저녁 경주지역 희망강연을 위해 이미 빌려져 있었기에 좀 더 이른시간부터 연장해서 대여하기에 큰 불편함이 없었습니다. nbsp 불대생들은 다음과 같은 궁금한 점들을 스님께 물었습니다. nbsp nbsp ‘작년에 결혼했는데 자녀를 가져야 할지 말아야 할지 고민되신다는 분, 어릴 적 엄마에게 받은 상처로 눈치를 많이 보고 주눅이 드는 자신을 자책하게 된다는 분, 경주 남산을 순례지로 선택하신 이유가 궁금하시다는 분, 다른 절에서 많은 도움을 받았는데 정토회에서 봉사하느라 그 절에 봉사를 못해 죄책감이 드신다는 보살님, 동물은 살생하지 말라고 하면서 식물은 함부로 죽여도 되는지가 궁금하신 분, 새벽에 기도하는 것이 힘든데 저녁에 하면 안되냐고 물으시는 분, 스님은 어디에서 그 많은 에너지가 나오시는지 궁금해 하시는 분’까지 모두 일곱 분의 질문이 있었습니다. nbsp 그 중 한 분의 즉문즉설을 소개해 드리겠습니다. nbsp nbsp “스님께서는 축지법을 쓰시면서 해외 특강을 하시는 것 같고 인간이 아니신 것 같습니다. 어디에서 그런 에너지가 나오는지 궁금합니다. 수행이 잘 안되고 신장이 하나밖에 없어 몸이 피곤한 사람은 어떻게 수행을 해야 하나요?”라며 스님의 건강을 걱정하면서도 몸이 허약한 사람들은 어떻게 하면 되는지, 어떻게 하면 그렇게 열정적으로 할 수 있는지를 궁금해 하는 질문이었습니다. nbsp 스님께서는 “몸이 피곤한 사람은 몸에 맞추는 것이 좋아요. 근데 몸이 말을 안듣는 것일까요? 마음이 말을 안듣는 것일까요? 몸이 피곤해서 못 일어날 때, 누가 총으로 죽인다고 하면 벌떡 일어날까요? 못 일어날까요? nbsp 절을 하기 싫은 마음 때문에 ‘다리가 아파 이러다 병신 되는 건 아닐까?’ 하는 분들이 있어요. 죽을 것 같은 그 순간을 넘는 경험을 해봐야 두려움이 사라져요. 스님도 단식을 하면 배가 고프지만 그 순간을 넘어 본 경험이 있기 때문에 죽지 않는다는 것을 아니까 두려움이 없지만 여러분들은 경험하지 않아서 두려워하는 거예요. 음식 먹는것도 자기 마음대로 못하면서 어떻게 성불하겠어요? 음식을 먹고 싶은 마음을 참지 못하는 사람은 굶어 보는 것입니다. 그러면 ‘굶기도 하는데 더 먹고 싶은 마음쯤이야’하는 마음이 생깁니다. 108배하는 것이 힘들다 하시는 분은 3000배를 해 보세요. 그러면 ‘108배 쯤이야.’하는 마음이 생깁니다. 남산을 오르는 것이 힘들다는 분은 설악산을 3번만 다녀와 봐요. 남산은 동네 산으로 보입니다. 다 마음이 중요한 것입니다. nbsp 자기를 극복해 봐야 두려움이 없어집니다. 해외 강연 다니는 일은 농사짓는 일보다 쉬워요. 공항에서 7시간 자는 것이 뭐가 힘들겠어요? 별 일 아니에요. 스님도 특별한 인간이 아니예요.”라며 마음에서 나오는 두려움을 극복해 보면 크게 어려운 일이 아님을 알려주셨습니다. nbsp nbsp 질문자는 또, “수행도 해야 하고 봉사도 해야 하기 때문에 힘들어서 직장생활이 어려운데 직장에서 짤려도 되나요?”라고 물으니 nbsp 스님께서는 “수행도 하고 봉사도 하고 직장에서도 짤리지 말아야 합니다. 그냥 해 버리면 아무 문제가 없어요. 하기 싫은 마음에 매여 있으니 힘든 것입니다. ”라며 가볍게 해보라고 조언해 주셨습니다. nbsp 스님께서는 사물의 이치, 원리를 이해하기 위해 불교대학 강의를 듣고 또, 내 것으로 만들기 위해 나누기도 하고, 봉사를 하면서 수행 잘하라고 당부하시면서 명쾌하고 시원한 즉문즉설을 마치셨습니다. nbsp nbsp 오늘 참가한 불대생들은 처음에는 비가 와서 어쩌나하는 불편한 마음이 있었지만, 비를 맞으면서도 산에서 바라보는 멋진 운무와 아름다운 경치를 온전히 느낄 수 있었고, 또, 들뜬 마음도 차분히 가라앉히며 나를 더 잘 볼 수 있는 감사한 하루였다고들 합니다. 하루 종일 가슴 벅찬 법비를 맞으며 ‘정토회는 하기로 한 일은 비가 와도 한다. 그리고 더 감동적이다’라는 것을 온몸으로 체험한 소중한 시간이었습니다. nbsp 가을 불대생들의 경주남산순례를 모두 마치신 스님께서는 오늘 하루종일 비를 맞으며 젖은 몸을 씻기 위해 목욕탕을 다녀오셨습니다. nbsp 6시가 넘어 다시 강연장에 도착하신 스님께서는 고향이 경주이시다 보니 경주지역에 사는 동문들이 찾아와서 인사를 하기도 했습니다. 스님께서 불교학생회 활동을 하실 때 함께 하셨던 분들이라고 합니다. 오랜만에 옛 동문 선후배분들을 만난 스님의 활짝 웃으시며 반가운 모습에서 경주가 고향인 것이 느껴졌습니다. nbsp nbsp 오늘 오후 희망강연에는 비가 오고 흐린 날씨로 준비된 좌석보다는 적은 약320여명 정도의 대중들이 강연장을 찾았습니다. nbsp 스님께서는 먼저 오늘 오전에 비를 맞으며 약 780여명의 불대생들과 함께 경주남산순례를 다녀온 이야기를 해주시면서 지금 경주남산에 꽃들이 만발해 있으니 여러분들도 남산을 다녀오시라면서 강연을 시작하셨습니다. nbsp nbsp 모두 8분이 질문을 하셨는데, 사십년만에 다시 스님을 뵙게 되어 질문한다는 첫 번째 질문자를 시작으로 너무 외로워서 결혼을 했다가 이혼을 했지만 여전히 남편과 미련이 남아서 만나지만 계속 싸우게 되어서 괴롭다는 질문, 25년 다니던 직장을 부하직원과 회사간의 갈등조율이 힘든 중간관리자로 스트레스를 받고 상처를 입어 퇴직하셨다는 질문자, 어린시절 엄마와 감정소통이 안되어 여전히 미움과 원망이 있다는 질문자, 엄마와의 갈등을 질문하는 대학생의 질문과 30대 초반 가장의 지금 행복하지만 더 강력한 행복을 찾아 ?아 가는것에 대한 질문, 탐진치 삼독과 어리석음에 대한 질문, 사후에 지옥과 천당이 있는지 궁금하다는 질문등이었습니다. nbsp nbsp 그 중 25년 다니던 직장을 퇴직하신 중간관리자의 질문을 옮겨 보았습니다. nbsp “회사정책을 보완하는 중간자 역할 못하면서 갈등상태에 있었습니다. 스님 법문 들으면서 내가 행복해져야겠다 싶어 쉬면서 공부도 했습니다. 최근에 5개월 쉬고 다시 직장생활 시작했는데 회사 정책에 반하는 것들, 불합리한 것들이 여기서는 안 일어날거라고 생각했는데 이 회사도 사장님과 직원들의 갈등이 힘들어서 내일부터 안다닌다고 보고를 했습니다. 지금 가만히 생각해보면 진짜 갈등이 되어서 그런건지 하기 싫어서 그런건지, 내 마음을 잘 모르겠습니다. 스님의 조언을 부탁드립니다.”라며 직장생활을 하며 힘든 것을 내어놓고 스님께 길을 구했습니다. nbsp “현재 질문자는 환자입니다. 환자가 되면 어디를 가도 그런 현상이 나타납니다. 처음 회사는 갈등 때문에 병이 생겼지만, 두 번째 회사에서의 문제는 내 병 때문에 일어난 문제입니다. 직장을 다녀야 된다면 치료를 먼저 해야 합니다. 회사문제는 아닙니다. 회사를 다니면서 치료 하든지, 직장을 그만두고 치료를 하든지 아무튼 병원에 다니면서 상담도 하고 약물치료도 받아야 합니다. 마음에 상처가 있어서 그럴 수도 있고, 호르몬 분비 문제일 수도 있습니다. 정신적으로 상처를 입으면 호르몬이 이상분비 되기도 합니다. 발병하면 두 개가 다같이 작용합니다. 응급으로 먼저 약물치료하고, 호르몬 이상분비만 있으면 약만 먹어도 되는데 마음의 상처가 있으면 정신과 의사와 상담을 해서 치유하는 방법이 있고, 수행처에 가서 치료하기도 하고, 그림 그려서 치료하는 방법도 있고, 여러 가지 심리치료 방법이 있습니다. 깨장에 가서 고뇌했던 문제를 직시해서 깨뜨리면 되는데 심리 불안상태에서는 어렵습니다. 수련 중간에 도망갈 가능성이 있습니다.”라며 질문자의 문제는 단순히 외부의 문제가 아니라 자신의 심리적 상태와 관련이 있음을 말씀해 주셨습니다. nbsp nbsp “심리치료를 가면 어릴 때 무슨 일이 있었는지 자꾸 생각해보라는데 잘 모르겠습니다” nbsp “어릴 때 받은 상처가 근거가 되어 그것이 회사에서의 갈등으로 발병했다고 볼 수 있습니다. 그래서 의사 선생님이 어릴 때 받은 상처를 찾을려고 그러는 것입니다. 그리고 회사갈등 문제는 제가 군대에 가서 받은 장병의 질문을 예로 살펴보겠습니다. nbsp 군대에서 나무 심을 때, 어떤 상관은 심어라 하는데, 또 다른 상관은 왜 심느냐고 합니다. 그럴 때 ‘이래라, 저래라 나보고 어떻게 해라는 말이냐.’ 하게 되면 그것은 자기가 두 상사를 고치겠다는 생각을 하는 것과 같습니다. 이럴때는 아무 생각할 필요가 없습니다. 심으라 하면 심고, 심지마라하면 안 심고 이러면 됩니다. 그런 구조적인 모순에 끼여서 고민할 필요가 없고 머리 아플 일도 없습니다. 절을 하면서 ‘내가 아무 능력도 없는데 세상을 내 마음대로 하려고 하다보니 힘들었습니다.’ 이렇게 참회기도를 자꾸 하면 자기 치유가 됩니다. 일단 불안증세가 심하면 약물치료부터 먼저 받아야 합니다”라며 우선 질문자가 먼저 치료를 받아서 안정이 되도록 말씀해 주시니 질문자는 nbsp “네 감사합니다.”라며 스님의 말씀을 새겼습니다. nbsp nbsp 다음은 7번째로 질문하신 30대 초반의 어린 아이들을 키우고 있는 젊은 가장의 질문을 옮겨봅니다. “최근에 ‘행복을 찾기 위해 로또 사야 되는거 아닌가’하는 마음과 ‘내가 로또에 당첨되면 복이 다하는 것은 아닌가’하는 걱정이 되기도 합니다. 주말에 집사람이 일을 하는데 주말에 애를 보니까 기쁨이 있습니다. 아이에게 좋은 아버지는 어떻게 하는 것인지 궁금합니다. 좋은 아버지 되고 싶습니다” nbsp “인간은 모두 요행을 바랍니다. 욕망의 성격은 시간이 지나 살펴보면 중독증상이 있습니다. 마약 1그램 맞을 때 쾌감이 100이라면, 맞을수록 점점 쾌감은 떨어집니다. 그래서 투여량을 점점 늘리게 되고 결국 건강을 해치게 됩니다. 우리 욕망도 여기까지만 되면 바랄게 없다하지만 욕망도 마약과 성격이 같습니다. 기쁨의 효과가 갈수록 감소하게 되고 그래서 더 큰 욕망을 불러일으키기 때문에 욕망을 따라가면 끝이 없습니다. nbsp nbsp 그래서 욕망은 억압하지만 그러면 긴장과 스트레스가 따르게 됩니다. 부처님은 두 길의 모순을 알차리고 욕망을 따라가지도 않고 욕망을 억압도 않고 다만 욕망을 욕망인 줄 알아차리기만 하는 중도의 길을 제시하신 것입니다. nbsp 질문자도 이런 욕망을 따라가면 안됩니다. 욕망이 끊임없이 일어나지만 따라가지도 말고, 나쁘다고 억압하지도 말고 다만 알아차리기만 하여도 일정 시간이 지나면 자유로워집니다. 행복이라는 것은 내가 원하는 일이 이루어졌을 때의 만족감을 행복으로 삼는데 그렇게 되면 고락이 윤회하게 됩니다. 윤회는 고락이 끊임없이 돌고 도는 것을 말합니다. 사람이 개가 되고, 돼지가 되는 것이 윤회가 아닙니다. 욕구 충족을 행복으로 삼으면 고락이 되풀이 됩니다. 그 윤회의 고리를 끊는 것이 해탈입니다. 현실 삶속의 잔잔한 일상생활에 만족하는 것이 행복으로 가는 지름길입니다. nbsp nbsp 두 번째, 아이는 엄마의 영향을 받고 자라니까 엄마 심리 상태가 안정이 되어야 됩니다. 뭘 먹이고 입히는 것이 아이한테 중요하지 않고, 편안한 상태에서 엄마의 관심과 사랑이 중요합니다. 엄마가 그런 심리상태를 유지할 수 있도록 남편이 도와주는 것이 필요합니다. 아이가 나가서 동네 형이랑 사귀면서 사회성을 배우는데 부모가 대신 할 필요 없습니다. 옛날에 형제가 많을 때는 가족관계속에서 사회성을 배웠는데 지금은 오직 어른하고만 관계를 맺으니까 사회성이 부족해서 자기 마음대로 안되는 것에 대한 불만이 많습니다. 아버지는 아이와 함께 있어주는 시간을 많이 해 주면 좋습니다. nbsp 아버지는 아이가 친구들하고 싸우고 왔을 때 ‘너 싸웠니? 아이고 그랬니?’하며 안아주면 아이의 심리가 저절로 안정이 됩니다. 부모가 의젓함으로 안정된 심리가 형성됩니다. 그런데 지금은 부모가 더 난리를 피웁니다. 이런 것이 아이를 모르고 하는 잘못된 행동들입니다. 어릴때는 역사 이야기나 단군신화같이 가능하면 자기 정체성을 가질 수 있는 얘기를 해주면 좋습니다. 아빠가 그런 역할 해 주면 좋은데, 아빠하면 기억 나는 게 ‘돈 주는 사람이다.’라고만 기억되어 있기 때문에 아빠가 물질이 아닌 아이와 같이 놀아주고 얘기해주는 역할을 하면 됩니다. 기계적으로 프로그램 짜서 하는 것은 부작용이 나타납니다” nbsp nbsp 이번 강연의 질문자 4분정도는 스님께서 정신과에서 치료를 받도록 권유를 했습니다. 이것을 보면 물질은 풍부하지만 우리의 정신이 얼마나 병들어 있는지를 잘 알 수 있었습니다. nbsp 강연을 마치고 사인회를 한 후 기념촬영을 하며 하루를 마무리하였습니다. nbsp nbsp 내일은 ‘해외정토회 지도자 수련’이 있습니다.

2015.04.20. 20,934 읽음 댓글 14개

2015.4.18. 경주남산 비파골 답사, 탑곡 산책

nbsp nbsp 오늘 새벽 2시 30분경에 두북에 도착하신 스님께서는 휴식을 취하신 후 아침 햇살을 받은 꽃이 너무 예쁘다고 하시며 여기 저기 만발한 꽃들의 사진을 찍으셨습니다. nbsp652796527965279 오전 10시경이 되어서는 답사를 하려고 했던 경주 남산의 비파골 답사를 비가 온다는 소식이 있어 오늘 답사를 나섰습니다. 비파골은 경주 남산중에서 아직까지 스님께서 가보지 못한 코스로 오늘 답사에 나섰습니다. nbsp nbsp 비파골로 오르는 길은 연달래가 활짝 피어나고 있었습니다. 진달래는 어느새 점차 잎들만 무성했고, 연달래는 흰빛깔, 연분홍 빛깔, 짙은 분홍 빛깔등으로 비슷한 듯 다른 색을 가지고 자태를 뽐내고 있었습니다. 스님께서는 연달래를 보며 어릴때는 먹을수 있는지, 못 먹는지를 가지고 꽃을 평가했기 때문에 진달래가 더 좋고 예뻤는데, 지금보니 연달래가 훨씬 더 화려하고 꽃도 크고 멋있다고 하시면서 여기저기 피어있는 연달래를 보며 감탄을 하시며 다음주 해외지도자 수련때 보여 줄 수 있을지를 생각하시면서 산을 오르셨습니다. nbsp nbsp 스님께서는 또, 내일·모레까지 계속 되는 비 소식에 내일 있을 경주남산순례와 모레 있을 해외정토회 지도자들 경주 남산순례에 대해서 어떻게 할지 전화로 계속 담당자와 의논하셨습니다. nbsp nbsp 만약 취소를 한다면 버스의 위약금이 얼마나 되는지? 비가 얼마나 많이 오는지? 대중들의 의견은 어떤지? 비가 올 때 밥은 어떻게 먹을 것인지? 다함께 모이는 것은 어디로 할 것인지?등에 대해서 담당하시는 분과 계속 통화를 하시면서 산을 오르셨습니다. nbsp 그래서 비가 많이 온다면 취소하기보다는 경주남산 대신 평지 사찰순례를 하자고 제안하셨습니다. nbsp 또, 해외정토회 지도자 수련때는 월요일에 계획했던 경주 남산 순례와 수요일에 예정된 수련을 바꾸어서 할 수 있는지등에 대해서도 담당하시는 분들과 계속적으로 통화로 일정을 조율하셨습니다. nbsp 스님께서는 비가 올 경우를 대비해서 참가자들은 비옷과 여벌의 옷을 꼭 챙겨오도록 당부를 하셨고, 또 비가 많이 올 경우 하게 될 평지 사찰순례 답사도 대구 전병찬 대표님과 함께 다녀오셨습니다. nbsp ‘비가 적게 올 경우 기존의 일정대로 남산을 순례한다. 출발할 때 많이 올 경우 각 코스별로 제일 가까이에 있는 불상을 참배하고 사천왕사로 모여서 함께 평지사찰순례를 한다. 산행을 하게 될 경우 통일암에 다 모였을 때 비가 와서 밥을 먹기가 어렵다면 각자의 차안에서 밥을 먹고 다함께 모이는 장소는 서라벌문화회관으로 한다. 이럴 때 버스는 서라벌 문화회관에 세우고 주차는 버스터미널 지나 강변에 주차한다. 통일암에서 밥을 먹는 것이 가능하다면 통일암에서 밥을 먹고 모임을 한다.’ 등 갖가지 일어날 수 있는 경우의 수에 대해 다 점검하셨습니다. nbsp 경주 남산 답사를 다녀와서 늦은 점심을 드신 후 다시 탑곡으로 산책을 나섰습니다. 먼저 탑곡 수련원에 들러 수련원에 나 있는 두릅을 딴 후 ‘가매달’로 산책을 가셨습니다. ‘가매달’ 주위의 저수지는 그동안 내린 비로 물이 가득 차 있었고, 주위 산들도 연둣빛을 드러내고 있었습니다. nbsp 저녁에는 지난 3월 1일 법사수계를 받았던 신규법사님 10분과 기존 상임법사님들이 처음으로 함께 모여 회의가 있었습니다. 저녁식사를 한 직후 스님께서는 화단에 화사하게 핀 꽃들을 둘러보며 직접 설명을 해주셨습니다. 작년 봄에 심었던 진달래, 해당화, 사과나무, 복사꽃들이 저마다의 색체를 뛰며 다소곳한 자태는 보는 이 마음을 기쁘게 했습니다. nbsp 7시에 저녁예불을 드린 후 7시 30분부터 법사단 논의를 했습니다. 원래 회의를 하려고 했는데 대중교육으로 참여하지 못하는 법사님들이 계셔서 오늘은 가볍게 논의를 하는 것으로 했습니다. 먼저 내일 남산순례를 하는데 비가 온다는 일기 예보가 있기 때문에 비가 많이 온다면 어떻게 해야 할지에 대해 논의했습니다. 오전에 비가 많이 오면 남산의 한자락이라도 대중들에게 보여주는 것이 좋기 때문에 각 팀마다 위험한 코스는 가지 않고 갈 수 있는 적절한 코스를 순례한 후 모두 사천왕사에 모여서 평지사찰순례를 하기로 했습니다. nbsp 그다음 논의한 것은 해외에서 33명의 총무님들이 참여하는 해외총무단 일정을 어떻게 해야 할지에 대한 논의를 했습니다. 이미 기존에 계획된 일정이 있었지만 비 예보가 있어 효율적인 일정에 대해 이야기했습니다. 그리고 신규법사님들의 역할에 대한 심도 깊은 논의를 했습니다. 먼저 스님께서는 “법사는 이제 누구의 지도를 받지 않고도 정토회가 설립한 이념에 맞게 혼자 각 사업을 충실히 이끌고 가야한다. 그렇게 하기 위해서는 각자 자기 재능과 능력을 살려서 잘 할 수 있는 것을 중심으로 각각 역할을 해 나가야 한다. 대중법사는 원래 법당에서 가장 주인된 자세로 어려운 신도님들은 상담해주고, 뒤에서 지원도 해주어야 한다.”라고 말씀하시면서 5분의 대중법사님들이 가장 잘 쓰일 수 있는 역할이 무엇일까에 대하여 다른 법사님들의 의견을 듣고 해당 법사님들의 의견을 들으면서 점차 의견을 좁혀갔습니다. nbsp 그 다음 전문법사님들은 수련팀과 교육팀에 배정하여 각각 맡은 일을 해나가는데 특별히 문제가 없는지 확인하고 역시 각 법사님들의 의견을 물으셨습니다. 또한 각 법사님들의 소속과 행사참석 소속 법당 등에 대한 정리와 함께 다음 법사단 회의 일정을 정한 후 밤 11시 쯤 되어서 회의를 마쳤습니다. nbsp 오늘 스님의 하루는 올해 중 사전에 계획된 일정이 없는 날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바빴습니다. nbsp 내일은 불교대학 경주 남산순례가 있는 날입니다.

2015.04.19. 19,835 읽음 댓글 12개

2015.4.17 은평문화예술회관, 성남시청 희망세상만들기 강연

nbsp 법륜스님께서는 어제에 이어 오늘도 서울공동체 성원들과 함께 아침 5시에 기도하고 발우공양을 하는 것으로 하루를 시작하셨습니다. 대중공사시간에 스님께서는 대중들에게 우리가 불자라고 하면 부처의 길을 가는 사람들이라고 말할 수 있다고 하며 불자들이 가야할 방향에 대해서 말씀해주셨습니다. nbsp “불자는 불법승 삼보에 귀의하고 계정혜 삼학을 닦는 사람입니다. 불자들은 계율을 청정히 지켜야 합니다. 계율은 말과 행동을 바르게 한다는 것입니다. 바르게 한다는 개념에 대해 좀 더 구체적으로 설명을 드리자면 세상에는 세 종류의 사람이 있습니다. 꼭 있어야 할 사람, 있어도 그만 없어도 그만인 사람, 없으면 좋은 사람이 있습니다. nbsp 첫째, 없으면 좋을 사람은 남에게 손해를 끼치는 사람, 남을 해치는 사람, 남을 괴롭히는 사람입니다. 가족뿐만 아니라 수행공동체, 나아가 사회에서도 이런 사람은 없는 게 좋고, 이런 사람을 악한 사람이라고 합니다. nbsp nbsp 둘째, 있어도 그만, 없어도 그만인 사람은 남에게 특별히 이익도 안 주고 손해도 안 끼칩니다. 그리고 남을 즐겁게 하지도 않고 괴롭게 하지도 않으며, 남을 해치지도 않고 살리지도 않습니다. nbsp 셋째, 꼭 있어야 할 사람은 남을 이롭게 하는 사람, 남을 즐겁게 하는 사람, 남을 살리는 사람입니다. 이런 사람을 착한 사람, 선한 사람이라고 합니다. nbsp 수행자는 악한 사람이 되어서는 안됩니다. 악한 사람은 비난받는 사람입니다. 수행자는 있으나 마나 한 사람 그 이상이어야 합니다. 수행자는 꼭 있어야 할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nbsp 수행자는 수학적으로 말하면, 자연상태를 제로라고 한다면, 적어도 플러스 알파 역할을 해야 합니다. nbsp 간혹 여러분들이 오해를 할 수 있습니다. 다른 사람을 평가할 때, 남에게 이익을 주지 않는다고 비난을 하거나 남에게 손해를 끼치지 않는다고 칭찬하거나 하면 평가가 잘못된 것입니다. nbsp 나쁜 일을 하지 않는 것은 의무이고, 선한 일을 하는 것은 권장사항에 들어갑니다.” nbsp nbsp nbsp 스님께서는 세상에 존재하는 세가지 유형의 사람에 대해서 이렇게 자세히 말씀해주셨습니다. 그리고 수행자는 남에게 도움이 되는 착한 사람이 되는 것이라고 당부하시면서 여기서만 머물러서는 안된다고 덧붙이셨습니다. 착한 사람은 자칫 자신의 욕망을 참고, 화를 참기 때문에 심리가 억압되어 있을 수 있습니다. 이렇게 참으면 남에게는 피해를 안 주지만 자기는 괴롭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스님께서는 세상에서는 선한 사람, 착한 사람이 칭찬받지만, 수행자는 자기를 행복하게 해야 한다고 말씀해 주셨습니다. nbsp “자기를 행복하게 하려면 심리를 억압하거나 불안하면 안됩니다. 감정이 격해지는 것은 모두 우리 까르마, 업식이 자동으로 반응하는 것입니다. 늘 자기 마음을 살펴서 마음이 긴장되지 않도록, 편안하도록 만들어야 합니다. 이것이 선정입니다. 감정이 요동치는 것을 잔잔해지도록 조율해가면서 편안하고 행복하게 살아야 합니다. 선정을 닦아야 수행자입니다.” nbsp 스님께서는 이와 같이 ‘수행자는 첫째 착해야 한다, 둘째 행복해야 한다.’를 말씀하신 후 마지막으로 지혜로운 사람이 되라고 하셨습니다. 이 세가지를 이룰 때 수행자로서의 길이 완성된다는 말씀이셨습니다. nbsp nbsp “지혜로운 사람이란 사물의 이치를 관통하고 있어야 합니다. 이 세상의 사물에는 작용하는 원리, 이치가 있습니다. 마음 작용, 생명 현상, 물질의 움직임에도 원리, 이치가 있습니다. 그 이치를 알아서 효율적이고 유용하며 지혜롭게 대응해야 합니다. 마치 바다에 비유한다면, 파도가 심하게 쳐서 파도가 사람을 해친다면 이것은 계율을 어기는 일에 해당됩니다. 적어도 그 파도가 남을 해치지 말아야 합니다. 둘째, 해치지는 않지만 파도가 요동을 치면 불안합니다. 그래서 파도가 잔잔해야 합니다. 더 나아가서는 그 바닷속에 수많은 보배가 있는데 그 보배를 간직하고 사용할 줄 알아야 합니다. 이것이 수행자의 길입니다.” nbsp nbsp 수행자가 나아가야 할 3가지 길을 바다에 비유해서 설명을 해주시니 더욱 명쾌하게 이해되어 고개가 절로 끄덕여졌습니다. 스님께서는 법당에서 목탁치고 기도하든, 불사를 하거나 사회적인 일을 하든, 일의 종류에 관계없이 이 세 가지를 늘 살펴서 실천할 수 있도록 말씀하셨습니다. 그리고 수행자는 나는 무엇때문에 불안하다, 나는 무엇때문에 괴롭다, 나는 무엇때문에 일을 이치에 맞게 하지 못했다 등의 변명을 하면 안된다고도 말씀해주셨습니다. 수행자는 어떤 일을 해도, 설사 전쟁에 나가더라도 이런 원칙을 가지고 싸움을 해야 한다고 다시 한번 강조하셨습니다. nbsp 특히 최근 49일 동안 직장생활하면서 법당에 상주하는 청년들을 향해서는 편안하게 살지만, 질서있게 살도록 말씀하셨습니다. 직장 다니는 사람들도 수행의 원칙을 가지고 살면 여기 들어온 이후 몸은 조금 힘들지만 직장 생활이 더 쉬워졌다고 해야 수행이라고 하셨습니다. 덧붙여 힘든 것을 쉽도록 하는 것이 수행이지, 삶을 힘들게 하는 것이 수행이 아니다라는 말씀도 해주셨습니다. nbsp 오늘 오전 10시 30분부터는 서울 은평구에 위치한 은평문화예술회관에서 희망세상만들기 강연이 있었습니다. 강연장은 어제 내린 비로 한층 푸르러진 나무와 수줍게 피어나는 꽃들이 주위를 감싸 안은 곳이었습니다. 쌀쌀한 기운이 가시지는 않았지만 따사로운 햇살에 푸른 하늘이 훤히 보이는 포근한 봄날이었습니다. nbsp 어르신들이 2시간 전부터 오셔서 기다리는 것을 보니 스님의 희망세상만들기의 인기를 실감할 수 있었습니다. 강연장을 꽉 메운 방청객들은 스님께서 무대에 들어서자 열화와 같은 박수로 맞이하였습니다. 스님께서는 오늘 날씨가 좋은데 이런 좋은 봄날 놀러 안가고 이 곳에 왔느냐며 감사하다고 하셨습니다. 전국을 다녀보면 꽃이 피는 순서가 있다고 하시며 활짝 핀 꽃소식을 전하셨습니다. 일을 놀이 삼아 하라고 하셨고, 봄에는 건강에도 좋으니 농사를 지어보라고 하셨습니다. nbsp nbsp 오늘 강연에서는 총 12분이 질문하려 했는데, 제한 된 시간으로 인해 총 9분이 스님께 직접 여쭈어 지혜를 얻었습니다. 질문 내용은 남들도 부러워하고 긍정적인 자세로 살고 있는데 삶이 만족스럽지 않고 행복하지도 않아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묻는 여자분, 20대 초반에 공무원이 되어 8년을 근무하다 퇴직하고 다시 공부를 시작했는데 즐기면서도 가르침을 얻을 수 있는지 묻는 남자 분, 불교 신자들의 활동이 저조해 신자가 자꾸 줄어드는 것이 안타깝다고 한 여자분, 24개월인 첫 아이가 있고 둘째 아이를 임신 중인데 작은 아이를 낳으면 큰 아이를 어린이집에 맡겨야 하는지 묻는 분, 조카를 입양해서 키우고 있는데 하교 후 게임만 하고 점점 폭력적이 되어서 고민이라고 하신 분, 보기만 해도 불편하고 짜증나는 시어머니와 손찌검을 하는 남편과의 갈등에 대해 묻는 분, 사회가 각박하고 사람들에게 인성이 필요한데 인성에 대한 스님의 혜안을 듣고 싶다고 하신 남자 분, 일본이 독도의 영유권을 주장하는 것에 대해 묻는 남자 분, 이혼을 고민 중이라고 하신 분 등의 다양한 질문자가 있었습니다. nbsp nbsp 질문 중 불교 신자가 줄어드는 것이 안타깝다고 하신 분을 소개하겠습니다. “스님, 안녕하세요? 우리 동네에 와주셔서 감사합니다. 저는 스님을 뵙기 전에 조계사에 가서 1인 시위를 할까했습니다. ‘스님 지금 뭐하세요? 불교인이 줄어들고 있습니다. 나아가서는 불교신자가 씨가 마르게 생겼습니다.’이런 내용으로 시위를 하고 싶었습니다. 큰 교회에는 어린이집이 있고, 유치원이 있습니다. 우리 동네의 가장 큰 절에는 어린이집이 없습니다. 넓은 터에 쌀도 많고 시간 많은 보살님도 많은데 예쁜 어린이들이 와서 공부하고 놀면 나중에 어른이 돼서 똑똑한 불교 신자가 되지 않을까 하고 어리석은 불교신자로서 그런 생각을 합니다. 또 안타까운 것은 천주교신자나 기독교 신자들은 봉사활동으로 2인 1조가 되어 병실마다 찾아다니며‘카톨릭 신자 안계세요?’ ‘교회 다니시는 분 없으세요?’라며 아주 신심을 다해서 기도해주십니다. 우리 불교신자는 아무도 없습니다. 제가 안타까워서 조계종 포교원에 전화했는데 답장이 없습니다. 아는 분이 췌장암에 걸려서 죽음 직전에 개종을 하셨어요. 그 분 말씀이 ‘우리 절에서 어느 한 분이라도 자기에게 전화를 했더라면 개종을 안했을 것입니다.’ 이런 현실이 안타깝고 가슴이 아픕니다. 스님”라며 스님께 지금의 불교가 사회적 활동이 미비한 것에 대해 안타까워 하시며 물었습니다. nbsp “질문하신 분 불교신자죠?” nbsp “네” nbsp “그러면 부처님은 자기 것을 남에게 주라고 했습니까? 남의 것을 빼앗아 오라고 했습니까?” nbsp “내 것 줘야 합니다” nbsp “그래요. 그래서 불교신자를 카톨릭에도 보내고, 교회에도 보내는 겁니다. 그런데 무엇이 불만이예요?” nbsp nbsp “그런데 스님, 그러면 이 나라 사찰은 누가 지킵니까? 미얀마나 스페인에 가보면 신앙심이 없이는 어마어마한 성당이나 절을 지킬 수가 없습니다. 그것은 신앙심이 밑바탕에 깔려야 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우리나라 불교도 그렇습니다” nbsp “부처님의 가르침이 절을 크게 세우고, 탑을 크게 세우는 것이라고 생각하나요? 그것은 불교하고는 아무 관계가 없는 중생들의 욕심으로 교회를 크게 세우고 절을 크게 세우는 세속적인 일입니다.” nbsp “저는 신도가 줄어드는 것이 안타깝습니다.” nbsp “신도는 안 줄어듭니다. 통계로는 늘었습니다. 그 동안 줄어든 것은 맞지만 계속 줄다가 바닥을 쳐서 갈 사람 다 가고 이제 더 이상 다른 종교로 갈 사람이 없습니다. 이제부터는 서서히 오르기 시작합니다. 개신교는 계속 올라가다가 지금 정체가 되어 약간 줄고 있습니다. 다른 종교에서 데리고 올 사람이 없습니다. 불교는 스님들이 애 안써도 균형점에 이르렀습니다. 카톨릭이 아직 계속 더 성장하고 있지만 나머지는 균형점에 도달해 있습니다. nbsp nbsp 시간이 지나면 카톨릭도 줄 것이고, 불교도 줄 것이고, 개신교도 줄 것인데 왜 그럴까요? 교회에서 주일학교 해도 대학에 가면 교회에 안 다닙니다. 불교 대학생회만 안 되는 것이 아니고 카톨릭 대학생회, 기독교 대학생회에 가보면 개신교만 조금 나을 뿐이지 모두 안 되고 있습니다. 제가 고등학교 다닐 때는 불교 학생회에 아무런 지원이 없고 스님이 안 계셔도 굉장히 많았습니다. 대학생 지도할 때만 해도 대불련 대회하면 12천 명씩 모였는데, 지금은 온갖 지원을 해줘도 전국적으로 3백명도 안됩니다. nbsp 종교 뿐 아니고 민주당이나 새누리당 정당에도 청년조직이 없습니다. 지금은 말이 청년이지 5060대가 청년입니다. 시골에 가면 청년회 회장이 60대 입니다. 전체적인 사회의 변화이기 때문에 오히려 관심을 갖는다면 스님, 목사님, 신부님, 교무님이 서로 경쟁하기 보다는 젊은이들을 두고 무종교와 경쟁을 해야 합니다. 어디에 가든 상관없습니다. 젊은이들을 어떻게 정신적으로 풍요롭게 할 것인지 서로 머리를 맞대고 의논을 해도 갈수록 줄겁니다. nbsp 지난 해에 유럽에 29개 도시를 다녔는데, 유럽에도 나라마다 우리 라 절처럼 큰 성당이 있지만, 이런 어마 어마한 성당 안에 주일 예배에 200300명이 앉아 있습니다. 수도원에도 할머니 수녀님만 계셨습니다. 수도원이 운영이 안돼서 여행자 숙소로 바꿨습니다. 이것이 세계적인 추세입니다. 미얀마, 스리랑카, 남미 등은 아직 돈 맛을 덜봐서 천주교, 개신교, 불교 등의 신자가 많습니다. 돈에 덜 물든 곳은 아직 괜찮습니다. 유럽도 그런데 한국에도 스님이 되겠다고 하는 사람이 없습니다. 외국인 노동자를 데려와야 하듯이 신부나 스님 될 사람들도 데려와야 할 처지입니다. 그러니 너무 걱정하지 말고 집착하지 마십시오. 그러면 불교신자가 아니고 욕심쟁이입니다. 교회나 성당에 신자가 부족하다고 하면 좀 보내줘야 합니다. nbsp nbsp 그리고 불교신자가 병문안 가서 환자를 위로 해주는 것이 맞지만 교회에서는 와서 위로해주는데, 절에서는 안 온다고 개신교로 개종을 했다면 그 사람은 개신교로 개종하는 것이 낫습니다. 불교에 대해서 전혀 모르는 겁니다. 불법을 공부해서 수행을 하여, 죽음에 대한 두려움이 없는 해탈과 열반은 추구 안하고 아들 대학에 붙게 해달라고 하고, 출세나 복만 빌다가 나이 들어 병석에 누워있는데 누가 와서 위로해 주니까 따라가는 겁니다. nbsp 이런 기복적인 신앙은 부처님 법에 맞지 않습니다. 세상이 살기가 좋아지면 복을 비는 것으로는 안됩니다. 대학생 청춘 캠프에 1천명이 모이는데 그 곳에 가서는 종교 이야기는 안하고, 인생 이야기만 합니다. 불교인은 다른 나라나 다른 종교에 대해서도 일체중생을 어여삐 여기는 통 큰 마음을 가져 보세요.” nbsp “네, 알겠습니다.” nbsp nbsp 이와 같이 종교에 대한 폭넓은 견해를 들을 수 있었습니다. 참여하신 많은 분들의 뜨거운 성원으로 강연은 대략 2시간 가까이 진행되었습니다. 스님께서는 사인회를 하신 후, 자원활동가들과 기념 촬영을 하시면서 은평구 강연을 마치셨습니다. nbsp nbsp 은평구 강연을 마치고 점심공양을 하신 후 2시 50분경에는 국제한민족 재단 이사장이신 이창주 박사님과 실무자 4명이 방문해서 스님과 시간을 가졌습니다. 올해로 한러 수교 25주년 되는데, 국제한민족대회에서 준비하는 행사에 대한 안내와 일제강점기에 러시아 연해주의 블라디보스톡에 자리잡고 있었던 독립운동 성지인 신한촌 성지화에 대해 말씀을 나누셨습니다. nbsp nbsp 오후 4시에는 만다라 미술심리연구소 김영옥 원장님께서 스님을 만나뵙고 그동안 좋은벗들과 함께 새터민들의 심리치료를 해온 과정들을 설명하면서 그림을 통해 개인들의 상처가 풀리고 자기 긍정성을 찾아가는 과정들에 대해 설명해주셨습니다. nbsp nbsp 김영옥 원장님은 올해는 서울시 25개 구청과 경기도 15개 시군구를 중심으로 온국민 치유 프로그램을 준비하고 있는데 스님께서 서울시와 경기도에 심리치료의 중요성을 이야기 해 줄 것을 요청하였습니다. nbsp 2번의 만남이후 7시에는 성남시청에서 희망강연이 있었습니다. 그 전 6시 30분에는 성남시장님과 차담이 있었습니다. nbsp nbsp 성남시청에 도착하신 스님께서는 성남시청에 마련된 세월호 참사 1주기를 맞아 세월호가 침몰하는 모습을 만든 조형물에 참배를 한 후 시장실로 가서 이재명 성남시장님과 차담을 하신 후 7시부터 강연에 들어가셨습니다. nbsp nbsp 강연장인 온누리 홀에는 6시부터 입장을 시작하자 미리 강연장 입구에 줄을 서 있던 청중들로 금새 강연장이 채워지기 시작하더니, 7시가 다 되어서는 601개의 좌석이 가득차고 통로에까지 앉을 곳이 없을 정도가 되었습니다. 강연 시작 전에는 분당정토회 불대생들이 뭉게구름 노래에 맞추어 청중들과 함께 할 수 있는 율동으로 편안한 분위기를 만들어 주었습니다. 스님께서 도착하시자 박수가 쏟아지고, 바로 환한 웃음으로 강연을 시작하십니다. 스님께서는 청중들에게 봄날에는 농촌이든 산이든 자연 속에서 심신을 부드럽게 가져보라고 하시며 바로 즉문즉설로 들어가셨습니다. nbsp nbsp 즉문즉설이 시작되자 역시 많은 분들의 다양한 질문들이 쏟아졌습니다. 고등학교를 중퇴해서 못다한 대학을 졸업해 사회에 보탬되는 일을 하고 싶은 45세인 일곱살 아이 엄마, 아버지의 성격과 행동방식을 그대로 닮은 것이 싫고 아버지가 밉다는 스물 여섯 살 딸, 남편이 사업실패로 빚을 지고 계속해서 돈을 구해오라고 술주정해서 하루하루가 지옥같다는 아내, 자기가 누구인지 알고 싶고 어떻게 알 수 있을까를 묻는 이십대의 청년, 특별히 하고 싶은 것, 되고 싶은 것이 없어 고민이라는 중학생, 주식투자 실패 이후 불면증에 시달리고 모든 일에 짜증을 주체할 수 없다는 60대의 남자분, 일에 대한 병적인 집착이 주폭을 일삼던 아버지로 부터 비롯된 것임을 알고 그것을 몰랐던 이전보다 더 괴로운 상태가 되어 버린 직장인, 좋은 직장과 인물 좋은 배우자를 구하고 싶은 바램을 가진 서른 살의 취업 준비생의 질문 등이 있었습니다. nbsp nbsp 그 중 오늘 소개하고 싶은 질문은 “스님, 일본 지도층 인사들의 엇나간 발언들을 보면서 대한민국 국민으로서 좌절감이 듭니다. 자신들의 식민지배 역사를 인정하지 않고 오히려 그것을 정당화하거나 미화하는 발언을 하는 지도층 인사들이 있습니다. 심지어 한국사회의 지도층 인사중에도 일제 강점을 미화하고 대한민국의 정통성을 부인하는 발언들을 합니다. 그런데 현재 정부를 보고 있으면 그것을 바로 잡을 의지가 있는지 의구심이 듭니다. 우리 사회가 후진화하고 있다는 생각마저 듭니다. 매일 보던 아침 신문을 이제는 아예 덮어 둡니다. 이러한 고민을 누구한테 하소연 해야 하는지, 대한민국은 어디로 가고 있는지, 대한민국의 미래가 어떠해야 하는지 묻고 싶습니다. nbsp “대한민국의 주인은 누구입니까? 대통령입니까 아니면 국회의원입니까?” nbsp “국민입니다.” nbsp “대한민국에는 언론의 자유가 있습니다. 그렇다면 그들의 발언도 자유민주주의 사회에서 가능한 것이 아닙니까? 진보든 보수든 양쪽 모두 대한민국의 국민입니다. nbsp “아무리 그렇더라도 사회 지도층이 국가의 정통성을 부인하는 발언은 옳은 것인가요?” nbsp nbsp “이렇게 흘러가는 것이 옳다 그르다 말할 수 없습니다. 예전에는 왕이 주인이니 그러한 비판이 가능했지만, 지금은 국민이 주인입니다. 일제치하에서 독립운동을 할 때 두 가지 주장이 있었습니다. 대한제국 부흥 운동과 대한민국 수립 운동이었는데, 용성 스님께선 후자를 주장하셨습니다. 나라를 되찾겠다고 했을 때 처음에는 나라의 주인인 왕의 후손들이나 나라의 녹을 먹고 사는 관리들이 나서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6년 동안 그들을 찾아다니며 호소하셨지만, 아무런 의지가 없다는 것을 알게 되셨습니다. 그러다가 오히려 나라에서 도움은커녕 억압과 착취를 당하고 살던 백성들이 의병을 일으키고 독립운동을 하는 것을 보시고는 이제 나라의 주인이 국민이다고 생각하셔서 대한민국 수립 운동으로 방향을 잡으셨습니다. 지금 우리는 상해임시정부의 법통을 계승해서 대한민국이 되었습니다. 그러니 여러분들이 나라의 주인입니다. 불만만 토로한다고 해서 되는 것이 아닙니다. 지금의 정치제도는 국민이 직접 나서는 것이 아니라, 정치인들에게 위탁하는 제도입니다. 지금 불만이 있다면, 다음에 위탁할 때 사람을 바꾸면 됩니다. 자신이 주인된 마음으로 나라를 올바르게 이끌어 갈 사람을 선택하면 됩니다. 이것은 이제는 왕이 아니라 국민이 주인이기 때문입니다.” nbsp “5년에 한번 돌아오는 선거밖에 방법이 없나요?” nbsp nbsp “모두 자기 살기 바빠서 관심이 없습니다. 여러분들이 잘 선택해야 하는데, 평소엔 실컷 불만을 터트려 놓고는 선거때가 되면 같은 지역이라는 이유로, 담뱃값 받았다는 이유로 쉽게 지지해 주고는 또 후회합니다. 정으로 투표하는 것은 민주주의의 근간을 훼손하는 행동입니다. 그런 사람들은 국민 자격이 없는 사람들입니다. 질문자는 꼭 자기는 주인 아닌 것처럼 말하고 있습니다. 불안해하거나 한탄만 하지 말고, 주인으로서의 권리를 어떻게 행사할 것인가를 생각해야 합니다. 문제를 해결할때는 폭력이 아닌 평화적인 방법을 찾아야 합니다. nbsp 만약 나에게 누군가를 변화시킬 능력이 있다면 제일 먼저 일본 총리를 바꾸고 싶어요. 그 다음에는 북한의 누군가를 바꾸고 싶고요. 그리고 또, 대한민국의 누군가도 좀 바꾸고 싶어요. 그런데 우리에게는 일본이나 북한의 누군가를 바꿀 권리는 없지만, 우리나라의 지도자들을 바꿀 권리는 있습니다. 우리가 누군가를 뽑을때도 만약에 최선이 없다면 차선을, 차선도 없다면 최악을 피해 차악이라도 선택해야 합니다. 아예 투표를 하러 가지 않는 것은 주인이기를 포기하는 겁니다. 이것은 공업, 즉 우리 모두의 업입니다. 다수가 결정하도록 하는 제도 안에서, 우리가 닥친 위기를 우리가 다 같이 안고 넘어갈 수 밖에 없습니다. nbsp nbsp 대한민국을 안에서 보면 문제가 많습니다. 하지만 북한이나 중국, 베트남, 필리핀과 비교하면 그래도 대한민국이 낫습니다. 그리고 50년, 30년 전과 비교하면 경제적, 정치적으로 조금 더 좋아졌습니다. 긍정적인 입장에서 비판을 하면 건설적 에너지인 혁신이 되고, 부정적 입장에서 비판하면 파괴적 에너지가 됩니다. 지금 우리는 파괴적 에너지로 혁명을 하는 것이 아니라 긍정적인 에너지로 혁신이 필요한 상황입니다. 여기서 안주하지 말고 긍정적으로 어떻게 개선할 것인가 합의점을 찾아야 합니다. 지금은 나만 옳고 너는 틀렸다는 부정적 입장이 강하기 때문에 갈등만 하고 있습니다. 이제 우리는 의견이 다르지만 타협의 중심을 찾는 현명한 선택을 해야 하며, 이것이 민주주의 사회입니다. 지나간 것만 시비하지 말고, 앞으로 미래에는 이런 실수를 되풀이 하지 않도록 해야합니다. 그러면 대한민국에 좀더 희망이 있을 거라 생각합니다. nbsp 아홉명의 질문자의 질문을 모두 받으니 예정된 두시간을 훨씬 넘어 세시간이 다 되어 갑니다. 그래도 웃으며 마지막 질문을 받으시고, 오늘의 질문들을 아우르는 마무리 말씀을 해 주셨습니다. nbsp “올바른 관점을 가지고 지혜롭게 사는 길을 가야 합니다. 지혜로우면 삶이 가볍고 자유로와집니다. 봄꽃도 예쁘지만, 낙엽도 예쁩니다. 봄꽃은 일주일도 못가지만 낙엽은 책갈피에 끼워놓으면 오래 갑니다. 결론적으로 말하면 행복하게 사셔야 합니다. 눈이 안 보이고, 다리가 없고, 암에 걸렸어도 행복하지 못할 이유가 없습니다. 보통 어제까지 암인줄 몰랐다가 오늘 알면 오늘부터 불행해 합니다. 그런데 어제와 달리 오늘 바뀐 건 암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는 것 밖에 없습니다. 알게 된 것은 좋은일입니다. 주어진 조건이 아니라 나의 자세에 따라 주인 되는 삶을 살 수 있습니다. nbsp 모든 질문에 일관되게 스님이 강조하신 말씀은, 어떠한 상황에 있든지 행복할 수 있는 길을 찾아야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자기를 바꾸는 수행은 외줄타기 연습과도 같이 어려운 것이지만 불가능한 것은 아니며, 자신의 상태를 자각하는 것만으로도 괴로운 병이 절반은 치유가 된다고 하셨습니다. 누가 들어도 무겁고 힘든 상황을 가지고 온 질문자에게 자신의 상황을 가볍게 받아들이고 행복하게 사는 길을 열어 보여주시는 스님의 법문에 고개가 절로 끄덕여지고, 그렇구나 감탄사가 이어집니다. 불평불만만 할 것이 아니라 선택에 책임을 지고 자기 삶의 주인이 되는 길이 지금 여기에 있음을 열어 보여 주시는 말씀에 마지막까지 강연장은 환한 열기로 가득합니다. nbsp nbsp 강연이 끝나고 스님께서는 청중들과 함께 강연장을 걸어 나오셔서 곧바로 책 사인회를 시작하셨습니다. 마지막으로는 봉사자들과의 사진 촬영이 있었습니다. 사진 촬영 중에는 늦은 시간까지 이어진 강연 일정에도 피곤한 기색도 없으신 스님의 농담에 와 하고 봉사자들의 웃음이 터집니다. 스님의 강연과 봉사자들의 활동을 통해, 봄날처럼 따뜻한 웃음과 마음이 더 많은 사람들에게 퍼져 나갔으면 하는 바램입니다. nbsp nbsp 스님께서는 모든 일정을 마치고 바로 두북으로 이동하셨습니다.

2015.04.19. 21,488 읽음 댓글 16개

2015.4.16. 세월호 참사 1주기 분향소 조문, 각종 회의등

nbsp nbsp 스님께서는 지난 주에 계속 지역일정을 보시다가 거의 일주일만에 서울 공동체 대중들과 함께 기도하고 발우공양을 하셨습니다. nbsp 대중공사시간에 스님께서는 그동안 인도에서 활동하다가 그저께 한국으로 들어온 최동호법우님에게 수고했다고 격려해주셨고, 지난주에 49일 입재한 젊은 청년들이 발우공양을 할 때 소란스럽다고 말씀하시면서 발우공양을 잘하라고 일러주셨고, 또 한명한명에게 다들 무엇을 하다 왔는지 관심을 가지고 묻기도 하셨습니다. nbsp nbsp 오늘 스님께서는 정토회원들의 환경실천과제중 ‘비닐사용하지 않기’에 대해서 현재 비닐은 전혀 사용하지 않는 것은 여러 가지 어려움이 있어 우선 정토회관 안에서만이라도, 그것도 군것질용에 해당하는 과자, 사탕, 빵 종류의 비닐은 반입하지 않고 먹지도 않는다고 정해서 실험해 보고 있는데, 일반대중들에게 아예 못쓰게 하면서 대중들의 불편과 불만이 있다는 얘기를 들었다고 하시면서 우리 공동체 대중들이 먼저 실험적으로 해보자고 정한 것들이 너무 경직되게 아래로 내려가는 문제에 대해 말씀해주시면서 “지난주에 공동체 대중들이 탑곡 밭에 비닐 씌운 것을 보고 일부 대중들이 비닐을 안 쓰기로 했는데 왜 쓰냐는 비판이 있다고 합니다. 농사 짓는데 사용하는 비닐은 문제점도 많지만 토사유실을 막아주고 지기를 보호해주는 장점도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너무 경직되게 절대로 사용해서는 안된다는 식으로 강제되어서는 안됩니다. nbsp 그리고 비닐을 사용하지 않는 문제도 정토회관안에는 반입과 사용이 안된다는 것이고 밖에서는 자발적으로 사용을 줄이자는 것입니다. 그리고 가능하면 장바구니를 쓰자는 것입니다. nbspnbsp nbsp 또, 커피도 권장사항입니다. 중독성 음식물을 섭취하지 말자는 측면에서 가능한 커피를 마시지 말자는 것이지 아예 마시면 안된다는 것은 아닙니다. 그런데 이런 것들이 대중부로 내려 가면서는 아예 안된다로 경직되게 적용되고 있습니다. 법당에 처음 나오는 초심자에게 너무 경직되게 적용하니까 법당에 다니기 불편하다는 이야기가 나오고 있는 것입니다. nbsp 계율은 내가 지키는 것은 좋지만 남에게 강요하지 않습니다. 원칙도 지키고 유연해져야 합니다. 그럴려면 나는 지키고 남이 지키지 못하는 것은 지켜봐 줄 수 있어야 합니다. 교육팀에서는 실제로 대중들에게 어떻게 공지되고 실행되는지 점검하는 것이 필요합니다”라고 하시며 권장사항이었던 것이 경직되게 적용되는 문제들에 대해서 다시 한번 살펴보라고 하셨습니다. nbsp 그리고 대중부는 오히려 공동체 대중들이 원칙을 잘 안지킨다는 인식이 있는데 이것은 장기적으로 좋지 않다고 하시며 공동체 대중들이 대중부와 함께 하는 행사나 법회등에는 특히 원칙을 잘 지켜나가도록 당부 말씀을 해주셨습니다. nbsp nbsp 또, 공동체 대중들이 참회하는 내용중 저녁예불을 못해서 참회하는 것에 대해서 “평화재단에서 예불을 할 수 있는 시스템을 마련하는 것이 좋겠습니다. 예불시간은 7시이지만, 평화재단의 행사나 모임 시간을 피한 6시나 6시 30분정도로 하고 돗자리를 준비해서 정해진 시간이 되면 다함께 예불을 할 수 있도록 하시기 바랍니다.”며 같은 참회가 반복되는 것에 대해 해결방안을 마련하자고 하셨습니다. nbsp 그리고 이달 말에 초청하는 필리핀 송코 사람들의 숙소에 대해서 어느 방을 사용할 것인지, 몇 명씩 자는지등에 대해 논의 하시면서 송코 사람들이 불편하지 않게 준비를 하도록 당부하셨습니다. nbsp 대중공사가 끝난 후 최동호법우님은 스님께 삼배를 드리며 귀국인사를 하였습니다. 스님께서는 다시한번 수고했다고 격려해주셨습니다. nbsp nbsp 이후 아침 9시에는 곽수종 박사님께서 손님 2분을 모시고 와서 스님께 인사드렸습니다. 오늘 처음 온 2분은 쌍둥이 자매로 ‘뚜띠’ 라는 이름의 트롯트 가수로 활동하고 있다고 합니다. 이분들은 기독교인이지만 유튜브를 통해 스님의 강의를 듣고 지금 즐겁게 살고 있다고 인사를 드렸습니다. nbsp nbsp 10시 30분에는 평화리더십 출신인 하정렬 전 장군님께서 직접 그린 독도그림을 가지고 와서 스님께 선물로 드리며 스님과 차담을 나누셨습니다. nbsp nbsp 스님께서는 2번의 만남을 평화재단에서 가진 후 세월호 사건 1주기를 맞이하여 안산 분향소를 찾아 분향하셨습니다. 분향소 현장이 현정부와의 갈등으로 어수선하고 추모식도 취소되어서 스님께서는 조용히 분향만 하시고 오셨습니다. 나오시는 길에 분향소에서 봉사하고 있는 월광 유애경법사님을 비롯하여 인천경기서부지부 활동가들과 인사를 하며 격려해주셨습니다. nbsp nbsp 이후 평화재단에서 캐나다에서 오신 김상환목사님과의 만남이 있었고 저녁 7시 30분에는 평화리더십 아카데미에 윤여준 전 교육원장님의 강의가 있어서 스님께서 직접 강사를 소개해 주셨습니다. 스님께서는 “윤여준 전 교육원장의 다양한 국정경험을 그냥 묻어두기에는 너무 아깝다고 하시면서 우리가 직접 경험해 볼 수 없는 윤 원장님께서 가진 그런 경험들을 듣고 그것을 토대로 우리가 이 사회에 공헌을 했으면 한다.”시며 소개를 해주셨습니다. nbsp nbsp nbsp 그리고 스님께서는 바로 평화재단 기획위 회의에 참석하셔서 밤늦게까지 논의하셨습니다. nbsp 내일은 은평문화예술회관과 성남시청에서 희망강연이 있습니다.

2015.04.17. 20,776 읽음 댓글 15개

2015.4.15. 서암큰스님 12주기 열반일, 국회 사무처 강연

nbsp nbsp 오늘은 서암 큰스님 12주기 열반일입니다. 스님께서는 새벽기도 후에 문경 봉암사로 출발하셨습니다. 봉암사에 도착한 스님께서는 먼저 서암 큰스님의 부도탑에 미리 준비해 간 꽃다발을 올리고 참배했습니다. nbsp nbsp 부도탑을 참배한 후 대웅전으로 가서 부처님께 삼배를 올리고 서암큰스님의 영정이 모셔져 있는 영단에 다시 삼배를 올렸습니다. 대웅전을 나서서 다시 조사당을 찾아 참배하셨습니다. 조사당에는 봉암사를 창건한 이래 역대 조사님들의 영정이 모셔져 있고 서암큰스님의 영정도 모셔져 있었습니다. nbsp 재가 시작되기 전까지 스님께서는 봉암사 수좌큰스님께 인사드린 후 주지스님과 차담을 하시고 사시예불과 서암큰스님 12주기 재에 참석하셨습니다. 재에는 많은 스님들과 신도님들이 참석하셔서 서암큰스님의 뜻을 다시한번 기리는 시간이 되었습니다. 재를 마치고 재에 참석한 여러 스님들과 점심공양을 드신 후 3시 30분부터는 평화재단에서 일정이 있으셔서 봉암사를 떠나 서울로 향하셨습니다. nbsp nbsp 3시 30분에는 인도 델리 한인회장을 역임한 현동화 회장님을 만나서 인도 불적지에 있는 한국사찰의 건립과 향후 발전계획에 대해서 말씀을 나누었습니다. nbsp 저녁 7시에는 국회 사무처 관계자분들을 대상으로 강연이 있었습니다. 그 전 6시에는 정의화 국회의장님과 간단한 다과를 겸한 대담이 있었습니다. nbsp nbsp 국회사무처 직원 강연에는 예상보다 많은 분들이 참석하여 준비된 좌석외에도 의자를 더 놓아서 강연을 함께 하였습니다. nbsp 남편이 주식을 해서 갈등이 있으신 분, 종교에 헌신하면 좀 더 나아지는지 묻는 분, 요즘 우리사회에 분노를 조절 못해서 생기는 많은 사고들이 있는데 이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하는 지 묻는 분, 안락사에 대해 어떻게 해야 할지 묻는 분, 세월호 1주기를 맞이해서 아직도 가슴이 아픈 분, 불교의 공과 생명에 대해 궁금해 하시는 분, 국회출입기자로 국회가 너무 예측불허인데 어떻게 바라봐야 하는지 등에 대한 질문들이 있었습니다. nbsp 그 중에서 내일이면 세월호 1주기를 맞이하게 되는데, 관련한 질문을 함께 공유해 봅니다. nbsp 질문 내일이면 세월호 참사 1주년입니다. 여러 가지 소식도 많이 들리고 있는데, 마음이 좀 불안하고 오락가락하고, 화도 났다가 슬프기도 했다가 마음이 안 잡히는 증상이 있습니다. 우리 국민들 대다수가 그렇게 생각할 것 같아요. 작년 이맘때 한 달 동안 마음 다스리기가 힘들었는데 1주기가 되다보니 또 그런 증상이 생겼습니다. 마음 다스리는 측면에서 해주실 수 있는 말씀과 세월호 참사에 대해서 말씀 부탁드립니다. nbsp 스님께서는 “마음 아픈 일이고, 일어나지 않아야 하는 일이 일어나서 사람들이 슬펐고, 가슴이 아팠고, 분노하고, 일종의 좌절한 측면도 있습니다. 거기다가 ‘우리가 이것밖에 안되나?’하는 자괴감을 들었습니다. 그동안 우리가 선진국 대열에 들어섰다며 스스로 굉장하다고 자부했는데 이 사건이 나고 보니깐 사건의 일어난 원인, 수습하는 과정이 모두 후진국 수준이었습니다. 그래서 심리가 슬픔, 분노, 자괴감이 뒤섞여 좀 복합적인 것 같습니다. nbsp 제가 작년 가을에 세계 115개 도시를 다녀보니 대만과 태국등에서는 의외로 고소해하는 사람들이 있습디다. 한국 사람들이 좀 잘산다고 까불더니 별것도 아닌 것들이 하는 이런 마음들이 있었어요. 그것은 마치 일본에 원전사고 났을 때 우리나라에서 유명한 어느 종교 지도자가 ‘천벌을 받았다’고 말했는데 그것을 ‘나쁜 놈들 잘됐다.’는 그런 약간의 반감이 있는 것이지요. nbsp 우리는 지난 반세기동안 잘 산다는 기준이 오직 물량 중심으로만 계산해왔다는 게 드러난 겁니다. 인간이 살아가는데 꼭 필요한 도덕적인 문제나 연대, 협력의 문제, 안전의 문제는 방치했지요. 돈이 된다면 뭐든지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다 했으니까요. 그런 삶의 결과로 나타난 현상입니다. nbsp nbsp 크게 보면 세월호 사건은 우리의 삶을 진지하게 한번 되돌아보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사람의 생명, 안전, 평화, 삶의 질이 소중하다는 자각을 우리사회에 던졌지 않았습니까? 우리가 이를 계기로 사회의 변화가 일어났다면 불행 중 다행이고, 전화위복으로 이 사건을 계기로 한국사회가 질적 변화에 들어설 수 있었습니다. nbsp 그런데 어떻습니까? 결국 갈등의 골은 더 깊어졌고, 사회적 혼란을 더 가중시킨다면 나중에 더 큰 사고로 이어질 수밖에 없게 됩니다. 두더지게임이라고 알아요? ‘때려주세요’ 하고 한쪽으 ㄹ때리면 다른쪽에서 고개를 쑥 내미는 거하고 똑같습니다. 결국 덮으면 덮을수록 여기저기서 계속 터질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nbsp 이 사건은 우리에게 큰 비극이고 아픔이지만, 우리 사회에 질적 변화를 가져오는 계기가 되었으면 불행이 축복이 되는데, 현재 돌아가는 모습을 보면 이 불행으로 더 큰 불행을 야기하는 상황에 있는 것 같습니다. nbsp nbsp 지금 가족들의 진실규명의 간절한 마음은 너무도 당연하지만, 6872925 전쟁에서 애꿎은 사람들이 학살당했을 때 몇십년이 지나 나중에야 명예회복이 되기도 하는 걸 보면, 진실이라고 다 금방 밝혀지기가 어렵다는 걸 알 수 있습니다. 오랜 시간을 두고 밝혀지는 것도 있습니다. 지난 1년의 과정을 돌이켜보면 진상이 단박에 밝혀질 것 같지는 않습니다. 그런데 바로 밝혀지지 않는다고 화를 내면 갈등이 더 심해집니다. nbsp 우리는 진실을 피해자가 100 밝힐 것을 요구하지만 현정부가 그것을 받아들이지 않으면 아쉽지만 80 정도 밝히는 선에서 합의하고, 나머지는 다음 정부에서 밝힌다고 생각해야 합니다. ‘우리는 선이고, 너희는 절대 악’이라고 생각하고 타협을 나쁘게만 생각하는 경향이 있는데, 인간사회라는 것이 그렇게 선악으로 분명히 가를 수만 없습니다. nbsp 한 인간의 전체 면모를 놓고 봤을 때, 한 60 정도가 선하면 성인으로 포장이 되지만, 그 사람도 한 40 정도는 안 좋은 면이 있기 마련입니다. 그러다 그 사람의 안 좋은 면이 드러나면 성인이 갑자기 사기꾼이 됩니다. 그러나 그 사람은 원래 두 요소가 다 있었어요. 우리 현실의 삶을 선악 개념의 잣대로만 재면 안 됩니다. 이 문제가 흘러온 지난 1년의 과정을 보면, 쉽게 밝혀지기가 어려운 것 같습니다. 그러면 밝혀질때까지 끝까지 싸우자고 할 수도 있고, 또 이 정부에서 밝히기는 어려울 것 같으면, 다음 정부에서 나머지를 밝히자고 전략을 수정할 수도 있습니다. nbsp 진실을 규명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면, 혼자 마음 아파하면서 분노하는데 에너지를 쓰면 안 됩니다. 좌절과 절망, 분노심만 더 커지고, 그러면 과잉행동으로 나가기 쉬워요. 그러면 오히려 반대편에서 그 행동을 문제삼아 초점을 흐리면서 반격의 기회로 삼습니다. 진실 규명을 하고자 한다면, 이성적으로 가는 것이 필요합니다. 내 마음을 다스리기도 어려운데, 내가 누구를 바꾸기는 더더욱 어렵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위로의 말씀을 드리지 못해서 미안합니다. 질문자가 진실을 밝히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한다면, 길게 갈 것을 염두에 두고 꾸준히 그러나 적극적으로 행동하면서 마음을 추스르는 것이 좋을 것 같습니다.”라며 세월호의 아픔을 분노, 좌절, 절망으로 끝내지 말고 유가족에게, 그리고 사회에 도움이 되는쪽으로 자신의 에너지를 끌어내자고 격려해 주셨습니다. nbsp 강의를 마치고 끝까지 강의를 들으신 정의화 의장님의 배웅을 받으며 스님께서는 정토회관으로 돌아와서 저녁 10시에 다시 내부회의를 하신 후에 하루일과를 마무리 하셨습니다. nbsp 내일은 평화재단에서 4번의 미팅과 세월호 1주기 분향소에 참석할 예정입니다.

2015.04.16. 21,344 읽음 댓글 12개

2015.4.14. 꽃심기 등

nbsp nbsp 오늘도 새벽예불을 드린 후 아침공양을 하는 동안 그제부터 계속 내리던 비가 멎었습니다. nbsp nbsp 원래 씨앗을 심고 모종을 옮기는 농사일을 하려고 하루 일정을 잡았는데 하루종일 비가 온다고 해서 그렇다면 세계 100강 원고가 급하니 원고를 보면서 하루를 휴식하자고 했는데, 비가 멎는 순간 변경되었습니다. nbsp nbsp nbspnbsp nbsp 비는 멎었지만 땅이 질어 씨앗을 심기에는 마땅치가 앉아 꽃모종을 심고, 그동안 관리하지 못했던 마당의 잡초를 제거하는 일을 하였습니다. nbsp nbsp nbsp nbsp 며칠동안 계속 내리던 비가 그치니 거짓말처럼 노란 민들레 꽃이 활짝 피어 마당을 장식하였습니다. nbsp nbsp nbsp 비가 그치니 그동안 심고 가꾸었던 꽃들도 더욱더 색을 선명하게 드러나고 활짝 피어났습니다. nbsp nbspnbsp nbspnbsp스님께서는 오늘 하루종일 마당의 풀을 뽑고 꽃을 심고 산에 가서 두릅을 따는등 노동하면서 봄날을 만끽하며 하루를 보내셨습니다. nbsp nbsp nbsp nbsp저녁에는 원고 교정작업을 하시더니 피곤하신지 일찍 취침하셨습니다. 내일은 문경 봉암사에서 서암큰스님 12주기 열반일에 참석하고 국회 사무처 직원들을 위한 강연이 있습니다.

2015.04.15. 20,377 읽음 댓글 19개

2015.4.13. 두북 어르신 봄 나들이 / 대구 수성대 희망강연

nbsp nbsp 오늘은 법륜스님께서 두북 어르신들을 모시고 봄나들이를 하시는 날입니다. 스님께서는 두북 수련원에서 법사님들과 함께 새벽기도를 한 후 경주남산 답사 때문에 두북수련원에 와 있는 신규법사님들의 만행 후 첫 인사를 받았습니다. 그리고 오는 19일에 있을 경주남산 순례에 대해 누가 어느 코스로 갈 것인지, 어떤 것을 답사해야 할 것인지에 대해 의견을 주고 받았습니다. nbsp nbsp 오전 7시에는 두북 어르신들을 모시고 봄나들이에 나섰습니다. 올해는 경북 영주에 있는 부석사에 사찰순례를 하고, 부석사 인근에 있는 소수서원과 선비촌도 함께 둘러보기로 하였습니다. 며칠 전부터 일기예보에서 비가 올 것이라고 해서 행사준비를 담당한 해운대정토회 봉사자들의 걱정이 많았습니다. 아니나 다를까 전날 밤부터 부산전역에 제법 많은 양의 봄비가 내리기 시작하여 봉사자들이 정토수련원에 집결한 새벽 6시경까지도 그칠 줄을 모르고 추적주적 내렸습니다. 오늘의 나들이행사를 위하여 전날 두북에서 주무신 법륜스님께서도 비가 오는데 어르신들이 괜찮을지 염려하셨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준비해 온대로 행사를 진행하기로 결정하고, 그저 최선을 다해 할 일을 할뿐, 결과에 연연하지 않는다는 마음으로 모두들 각자의 위치에서 맡은 바 소임을 묵묵히 수행하는 모습은 참으로 감동적이었습니다. 우리의 걱정과는 달리 마을 어르신들께서도 대부분 시간에 맞춰 나오셨고, ‘우리는 비를 예사로 맞는다’시면서 조금도 개의치 않으시는 모습들을 보니 우리가 너무 소심했던 게 아닌가 하는 생각에 오히려 부끄러워졌습니다. nbsp nbsp 스님께서는 네 대의 버스에 일일이 오르셔서 비가 오는데도 이른 새벽부터 나오시느라고 수고하셨다는 인사 말씀을 하셨습니다. 한편 “비 맞고 농사도 지었는데 비 맞고 노는게 뭐가 문제겠어요?” 하시며 기운찬 덕담도 해 주셨습니다. 이렇게 해서 어르신 129명과 봉사자 21명, 법륜스님과 화광법사님까지 모두 152명의 인원이 질서 있게 두북을 출발하였습니다. nbsp 봉사자들은 차 안에서 어르신들께 수신기와 간식 등을 나누어드려서 간단한 아침식사 겸 요기를 하시도록 하고, 건천휴게소와 안동휴게소에서 잠시 화장실을 다녀오시게 한 후 오전 10시 25분에 부석사 주차장에 도착하였습니다. 다행스럽게도 남쪽에서 출발한 버스가 북쪽으로 이동하면서 차창을 때리던 빗발은 점점 가늘어지더니 차에서 내릴 즈음엔 흐리고 쌀쌀할 뿐 비는 오지 않았습니다. 대신에 남녘에서는 이미 지고 있는 벚꽃, 개나리, 목련과 진달래 들이 부석사를 향해 오르는 길목에서 한껏 아름다운 자태를 뽐내고 있었습니다. nbsp nbsp 매표소를 지나 일주문 앞에 다다르자 스님께서는 먼저 도착하신 어르신들을 잠시 대기시키시고 부석사에 대해서 그리고 일주문의 의미 등에 대해서 설명해주셨습니다. “부석사는 신라시대에 가장 유명하신 스님인 원효, 의상, 자장 중에서 의상조사께서 지으신 절입니다. 676년에 지었으니 1,300년 이상 되었습니다. 의상조사께서 중국 유학을 다녀오신 후 화엄종 본찰로 삼아 지으셨습니다. 일주문이라는 의미는 사바세계와 부처의 세계가 둘이 아니라 하나라는 뜻으로 불이문이라고도 합니다. 부석사 바로 뒤에 보이는 산은 봉황산이라고 합니다. 천천히 올라가시면서 봄꽃 구경도 많이 하시기 바랍니다.” nbsp nbsp 일주문을 지나 약간 오르막길을 오르시면서 스님께서는 영주시는 예전에 영풍군 또는 풍기군이라고 하여 영주와 풍기를 포함하는 이름이었고 풍기는 원래 인삼으로 유명했는데 요즘에는 기후가 따뜻해지면서 사과가 더 유명해지고 있다고 하셨습니다. nbsp 천왕문을 바라보며 오르는 왼편 길가에는 당간지주라고 하는 두 개의 기다란 돌기둥이 세워져 있었습니다. 스님께서는 “기둥 사이에 큰 깃발을 꽂아 ‘여기가 화엄종찰이다’라는 표시를 하였다.” 설명해주셨습니다. 네 분의 사천왕들을 모신 천왕문에 들어 서시면서는 ‘사천왕은 동서남북의 하늘을 맡아 악귀로부터 지켜내는 천신들’이라고 설명해주셨습니다. 부석사 경내로 들어서자 가파른 계단들이 계속 이어집니다. nbsp nbsp 스님께서는 어르신들이 따라 오르시기에 힘이 들 것을 염려하시어 “빨리 오르지 마시고 천천히 오르세요. 이래서 부석사는 조금이라도 젊을 때 와야 합니다.”라고 하십니다. 그리고 “부석사에 오면 저 축대들을 잘 봐 두어야 합니다. 다듬지 않은 자연석들을 가지고 이처럼 안정적이고 아름답게 축대를 쌓았다는 것은 무척 놀라운 일입니다. 그래서 지금도 축대를 쌓으려는 사람들이 여기에 와서 연구해 가곤 합니다.”라고 하셔서 어르신들도 모두 고개를 끄덕이며 감탄하셨습니다. nbsp nbsp 흰색과 자색의 아름다운 목련이 부석사 경내의 곳곳에서 수줍게 우리를 맞아주는 가운데 가장 오래된 국보급 건축물들이 들어선 경관은 신라고찰로서의 중후한 풍모를 고스란히 보여주었습니다. 스님께서는 어르신들과 함께 잠시 쉴 자리를 찾아보시다가 아담한 잔디밭에 모두 앉게 하신 후 부석사에 대한 여러 가지 흥미진진한 이야기들을 본격적으로 들려 주셨습니다. nbsp “부석사라는 이름은 뜰 부, 돌 석, 즉 돌이 공중에 떠 있는 듯하다는 데서 이름이 붙여졌습니다. 신라시대의 의상스님은 원효스님과 함께 당나라에 유학을 가기 위해 길을 떠나셨다가 밤이 되어 비가 많이 내리자 비를 피해 잠을 청하려고 굴속에 들어갔습니다. 이때 원효스님께서 한밤중에 목이 말라 주위를 더듬어보니 웬 바가지 안에 물이 있어서 그 물을 달게 마시고 주무셨다고 합니다. 그런데 날이 밝아 눈을 떠 보니 지난밤에 자신이 마신 물은 해골 속에 고여 있던 썩은 물이었던 겁니다. 순간 구역질이 올라와서 간밤에 마신 물을 모두 토해내셨다고 합니다. 그러고 나자 더럽고 깨끗한 게 모두 마음 가운데 있음을 깨달아 ‘일체유심조’의 원리를 증득하심으로써 유학을 가려던 발걸음을 돌리셨습니다. nbsp 그러나 의상스님은 유학의 뜻을 굽히지 않고 배를 타고 당나라에 도착하셨습니다. 그런데 이곳에서 신도 집에 하룻밤 머물었는데 신도 딸인 선묘낭자라고 하는 여인이 의상스님의 기상에 반해서 연정을 품게 되었다고 합니다. 그러나 의상스님께서는 여인을 잘 감화시키셨고, 선묘낭자는 의상스님의 평생 제자가 되기로 원을 세웠습니다. 의상스님은 화엄종의 3대 교조인 지엄화상아래에서 공부를 하게 되었습니다. nbsp nbsp 그 무렵, 신라와 당나라가 힘을 합해 멸망시킨 고구려, 백제 땅을 모두 당나라가 다 차지하려고 하자, 신라와 당나라의 사이에 전쟁이 일어나 당나라가 큰 군사를 보내 신라를 치려고 한다는 사실을 알게 된 의상스님께서 이를 급히 신라에 알리기 위해 당나라를 떠나게 되었습니다. 황급히 떠나시는 스님을 배웅하지 못한 선묘낭자는 스님이 타신 배를 향해 바다로 뛰어들면서 스님께 드리려고 마련해두었던 법복 선물을 힘껏 던져서 선물만은 스님의 배에 가 닿았으나 몸은 바다에 빠져서 죽었다고 합니다. 이 선묘낭자가 죽어서도 의상스님을 지켜드리기 위해 큰 용이 되었다고 합니다. nbsp 이후 나당전쟁에서 승리하고 삼국을 통일한 신라의 문무대왕이 의상스님의 공적을 기려 큰 절을 지어드리고자 의상스님으로부터 직접 터를 잡아보라고 하셨습니다. 의상스님께서는 이곳 부석사의 터를 고르셨는데 문제는 이곳에 500명의 도적떼가 차지하고 있으면서 자리를 내어주지 않는 것이었습니다. 이 때 용이 된 선묘낭자가 커다란 돌을 공중에 뜨게 하니 도적들이 깜짝 놀라 모두 도망을 가는 바람에 비로소 이 절을 지을 수 있었고 절 이름이 부석사가 되었다고 합니다. 그리고 그 용의 머리 부분은 무량수전의 부처님 앉으신 자리 부분에, 꼬리부분은 무량수전 앞마당의 석등 부분에 위치해 있다고 합니다.” nbsp 둘러앉으신 어르신들은 스님의 재미나는 이야기에 빠져들어 올라오는 동안 힘들었던 것도 잊으시는 듯 했습니다. 이어서 스님께서는 부석사에는 국보가 다섯 개나 있다고 하시면서 우리나라에서 국보가 일곱 개 있는 불국사 다음으로 가장 많은 절이라고 할 수 있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우리나라 최고의 목조건물인 무량수전과 그 안의 소조아미타여래상, 무량수전 앞마당에 있는 신라시대의 석등, 조사님들의 영정을 모신 조사당과 그 안의 벽화 등 다섯 가지가 모두 국보로 지정되어 있다고 설명해주셨습니다. 또 부석사의 대웅전인 무량수전은 아미타부처님을 모시는 곳이므로 극락전이라고도 할 수 있으며, 아미타는 인도말이고 한문으로 번역하면 ‘무량수’ 또는 ‘무량광’ 이라고 한다는 설명도 덧붙여주셨습니다. nbsp 또한 스님께서는 두북 정토수련원의 모든 살림살이를 살뜰히 돌보시면서 마을 어르신들과도 가족처럼 친근하신 법성행 보살님께서 최근에 법사수계를 받아 ‘화광법사’님이 되셨다면서 소개해주시자 어르신들께서는 따뜻한 박수로 축하해주셨습니다. nbsp 이어서 어르신들과 함께 ‘안양문’이라고 쓰인 문을 향해 오르시면서 안양문이란 ‘극락 가는 문’이라는 뜻이라고 말씀해주셨습니다. 가파른 계단을 올라 안양문을 통과하자 고색찬연한 무량수전과 석등을 볼 수 있었습니다. 다시 돌아서 안양문을 보니 안양루 라고 되어 있었습니다. 들어올때는 극락으로 가는 문이었고, 극락에 들어와서 보면 노니는 누각이란 것 같습니다. nbsp 무량수전에는 고요히 선정에 드신듯한 웅장한 아미타부처님이 동쪽을 향해 앉아계셨습니다. 스님께서는 어르신들이 참배를 올리시는 동안 무량수전 왼편 마당에 있는 ‘부석’을 보여주셨습니다. 과연 공중에 떠 있는 듯한 묘한 형상이었습니다. nbsp nbsp 무량수전 앞에서 단체 사진촬영을 한 후, 보물로 지정된 삼층석탑을 지나 조사당으로 향하는 오르막길을 오르시면서 예전에는 이 길이 좁다란 오솔길이어서 저 위에 보이는 조사당이 훨씬 더 크게 보였는데, 길이 넓어지니 조사당이 너무 작아 보인다며 아쉬워하셨습니다. 조사당에 오르니 건물 모양이 작고 심플해서 옛 선사들의 소박함이 물씬 풍기는 듯했습니다. 이 조사당 건물도 800년 전의 것으로 국보라고 다시 말씀해주셨습니다. 조사당 안에는 진품은 아니지만 국보로 지정된 벽화가 있습니다. 또 조사당 앞에는 의상조사가 심었다는 ‘선비화’라는 나무도 있었습니다. nbsp nbsp 내려오시는 길에 일반 관광객들의 이런저런 질문에도 정성껏 답해주시는 스님의 모습이 참 따뜻했습니다. 법륜스님임을 알아보고 반가워하시는 분들도 많았습니다. 절에서 내려오신 스님께서는 미리 음식을 준비해 둔 식당에서 함께 점심식사를 하셨습니다. 추적추적 내리던 봄비에도 불구하고 이른 새벽부터 서둘러 참석하시느라, 또 가파른 부석사 순례 길을 따라오시느라 힘드셨을 어르신들도 된장찌개와 생선구이 등으로 차려진 점심을 맛있게 드셨습니다. 모든 분들이 식사를 마치자 스님께서는 모처럼의 나들이 길에 오르신 어르신들의 여흥을 돋우어 주시기 위해 노래자랑을 하셨습니다. 어르신들께서는 신이 나서 흥겨운 노래잔치를 벌이셨습니다. 주름진 얼굴들이 모두 시름을 잠시 잊고 어깨춤을 들썩여가며 초롱초롱 빛이 나는 것 같았습니다. 어르신들께서는 매해 이렇게 잊지 않고 나들이 행사를 마련해주시는 법륜스님께 진심으로 감사하는 마음을 전했습니다. nbsp nbsp 이제 다시 버스에 올라 소수서원을 향했습니다. 스님께서는 창밖 풍경을 보시며 밭에 심어진 거뭇거뭇한 것들은 거의 다 인삼이고 벌판과 언덕에 심어진 과수원의 나무들은 거의가 다 사과나무라고 설명해주셨습니다. 요즘에는 풍기인삼보다 금산인삼이 더 유명하지만 아직 풍기에도 인삼밭이 많다고 말씀해주셨습니다. nbsp nbsp 버스를 타고 15분 정도 가니 나란히 이어진 선비촌과 소수서원 주차장에 당도했습니다. 소수서원은 원래는 절터였는데 조선시대에 불교가 탄압되면서 풍기군수로 오게 된 주세붕이 절을 허물고 서원 즉, 사립학교를 건립했다고 합니다. 소수서원의 소는 이을 소, 수는 닦을 수로 ‘옛 선현의 바른 가르침을 이어서 닦자’는 뜻이라고 설명하셨습니다. 원래는 안향이라는 유학자를 기리는 백운동서원이었는데, 이황이 군수로 오면서 국왕으로부터 인정받는 사액서원이 되었고 명칭도 소수서원으로 바뀌었다고 합니다. 소수서원의 입구로 들어서자 오른편 길가에 부석사의 일주문 지나서 보았던 당간지주와 똑같이 생긴 돌기둥 두 개가 있어서 깜짝 놀랐는데 이것이 바로 이곳이 절터였음을 말해주는 증표라고 말씀해주셨습니다. 불교탄압의 역사적 현장을 목격하는 듯해서 마음이 아팠습니다. nbsp 소수서원의 오른쪽 담장을 따라서는 아름다운 풍광의 개천이 흐르고 있었고 주변은 아담하게 잘 가꾸어진 모습이었습니다. 학교 건물인 본관은 수리 중이어서 천막이 둘러져있었고 뒤쪽에 기숙사와 장서각, 영정각, 사료관 등이 있었습니다. nbsp nbsp 소수서원의 후문을 나오니 주변이 잘 조성된 공원이었고 여기서 조금 걸으니 바로 선비촌으로 들어가는 입구로 연결되었습니다. 이곳은 옛날 고택들의 모습을 잘 보존하고 있는 일종의 민속촌이었습니다. 스님께서는 해우당 고택, 두암 고택 등으로 이름 붙여진 기와집들을 둘러보시며 정말 큰 부자들이 살던 집이라고 하시며, 보통의 시골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큰 규모라고 하셨습니다. 스님께서는 이런 집들의 문간채 정도밖에 안 되는 집에서 사셨다고 하니 어르신들께서 여기저기서 공감을 표합니다. nbsp nbsp 고택들 안에는 여러 가지 옛날 살림살이들이 전시되어 있었는데 스님을 따라다니시는 어르신들과 함께 베틀이니 기름틀이니 도리깨니 하는 옛 살림살이에 쓰시던 물건들에 대해 함께 회상하시며 공감을 나누시는 모습이 참 친근하고 훈훈했습니다. nbsp 선비촌의 관람을 마치고 이제 스님과 이별을 해야 할 시간이 되었습니다. 스님께서는 어르신들께 마지막 인사를 하시면서 당부의 말씀을 하셨습니다. “어르신들, 제가 누누이 말씀드리지만 이제 농사일은 놀이삼아 하세요. 죽기 살기로 하지 마시고 재미삼아 하시면서 무엇보다 건강을 잘 돌보셔야 합니다. 그리고 또 하나, 아들 딸 손자 위한다고 땅문서 집문서 내어주지 마세요. 논도 나누어주시더라도 먹고 살 만큼은 꼭 남겨두셔야 합니다. 무엇보다 스스로 건강하고 행복하게 사셔야 합니다. 안녕히들 돌아가세요.” 가벼운 발걸음으로 돌아서시면서 스님께서는 우리 봉사자들에게도 한 말씀 하십니다. “차 안에서 꼭 음악 틀어드리세요.” 네, 스님... 어르신들을 극진히 생각하시는 스님의 말씀대로 하겠습니다. nbsp 스님과 함께 어르신 봄나들이를 잘 마치게 되어서 너무도 감사한 하루였습니다. nbsp 스님께서는 부석사를 떠나 올해 첫 희망강연이 있는 대구로 향했습니다. 강연시간까지 여유가 있어 대구법당에 들러서 원고교정등 업무를 보신 후 강연인 대구 수성대학으로 향했습니다. nbsp 대강당 입구에 들어서니 봉사자들의 따뜻한 웃음이 시샘 많은 봄추위를 다 녹일 듯합니다 저녁 여섯시부터 하나둘 메워지던 자리는 어느덧 강연시간인 7시가 되자 700여명으로 꽉 찼습니다. 계단에도 사람들이 자리를 빼곡하게 차지하고 앉았습니다. nbsp nbsp 스님께서 무대로 나오시자 봇물 터지듯 박수와 환호성으로 대강당이 떠나갈 듯합니다. 스님께서는 먼저 비가 오는데도 많이 참석해주셨다고 하시면서 오늘 노인분들 모시고 부석사 다녀온 이야기, 다니면서 꽃구경 한 이야기등 하시면서 무리하게 놀고 있다고 하니 참가하신 대중분들이 모두 크게 웃으시며 긴장을 푼 것 같습니다. nbsp 올해 첫 희망강연이라 그런지 스님께서는 질문자가 어떻게 해야 하는지를 다시 설명해주시면서 질문을 받으셨습니다. nbsp nbsp 오늘은 늦은 시간까지 아홉분이 질문을 하셨습니다. 스님께서는 명쾌한 길을 제시하시며 우선 질문자들의 마음을 가볍게 해 주시고 듣는 이들의 태도가 어떠해야 하는지도 넌지시 일러주십니다. 질문자의 답답하고 안타까운 마음을 헤아리며 대화를 듣다보면 어느 순간 질문자와 청중이 함께 “네 알겠습니다” 하며 환하게 웃을 수 있습니다. nbsp 외국에서 10년정도 살다가 외국인 남편을 만나 한국에 들어와 사는데 친정 엄마와 남편의 사이가 좋지 않아 전전긍긍하는 아내, 육남매의 맏이로서 부모님 모시고 동생들 거두며 살았는데 자꾸만 행패를 부리는 둘째 동생을 보며 억울하고 답답한 마음을 내려놓고 싶다는 환갑이 넘은 남자분, nbsp nbsp 다친 오빠를 간호하고 있는데 자꾸만 오빠가 짜증을 내서 참고 참다가 화를 내고 후회한다는 여린 마음의 39살 여동생, nbsp 그리고 39살 된 아들이 건강이 좋지 않아 수술까지 했는데도 친구들과 어울려 술을 마시고 빌린 돈을 갚지 못해 괴로워하는 걸 보고 갚아주면 다시 또 술을 마시고 돈을 빌리는 악순환이 계속되어 답답하다는 어머니, nbsp 정신분열증과 우울증으로 환청과 환시에 시달리는데 어떻게 하면 여기에서 벗어날 수 있는 지 방법을 알고 싶고, 노모한테서도 독립하고 싶다는 부산에서 온 45세 남자분, nbsp 우울증으로 아파트 6층에서 투신해 자살을 시도했다가 우여곡절 끝에 새 삶을 얻어 티벳불교를 접하였다가 힐링캠프에 나온 스님을 뵈러 한국에 왔는데 직업이 횟집 주방장이어서 살생을 하는 것 같다며 어찌해야 하는 지를 묻는 중국 교포, nbsp 폭언과 폭행을 일삼던 남편이 사업이 망해 시장에서 장사를 하는 모습을 보며 안스러워 남편과 아들과 함께 잘 살고 싶은데, 고등학교를 자퇴한 아이 때문에 괴로워 하는 48세의 엄마, nbsp nbsp 어린 자녀들에게 어떻게 하면 좋은 아빠가 될 수 있을지 묻는 젊은 아빠, nbsp 그리고 청송에 내려와서 함께 농사를 짓겠다는 29살의 아들이 미덥지 못한 엄마의 유쾌한 질문등이 있었습니다. 그 중에서도 마지막으로 질문한 분과 스님과의 대화를 옮겨봅니다. nbsp “저는 청송에서 사과농사를 짓고 있습니다. 29살된 아들이 직장을 1년 정도 다니다가 사과농사를 같이 짓고 싶다고 합니다. 같이 살면 많이 부딪힐 것 같은데 제가 어떻게 아들을 봐야할지, 수익이 생기면 어떻게 배분해야 할지, 좀 있으면 결혼을 할 것 같은데 같이 살아야 할지, 아니면 제가 따로 나가서 살지 모르겠습니다.”라고 물었습니다. nbsp “농사일이 할 만 합니까?” 라며 스님께서는 질문을 듣고 몇가지를 다시 물었습니다. nbsp “딸 둘은 각각 외국과 서울에서 잘 살고 있고 남편은 작년에 교통사고로 세상을 떠났습니다. 스님의 말씀을 듣고 현재 행복하게 잘 살고 있습니다.” nbsp nbsp “아들이 농사에 대해서 잘 알아요?” nbsp “제가 농사를 30년 지었는데 저보다 더 잘 알고 있는 것 같이 말합니다. 친구나 지인들한테서 정보를 얻고 있습니다. 앞으로 어떻게 아들을 봐야할지 모르겠습니다.” nbsp “엄마는 사장이고, 너는 종업원이다는 것을 정확하게 인식시키고 네가 3년 간 종업원으로서 성실히 하면 진급도 시켜주고, 대우도 해주겠다. 계산은 종업원으로 월급으로 주겠다. 3년간 너를 지켜본 뒤에 어떻게 할지 결정하겠다고 하시면 됩니다. 한번 종업원으로 채용해 보고, 괜찮으면 계속 같이 하고 아니면 내보내면 됩니다.” nbsp nbsp “아들은 자신이 가장이라고 생각합니다.” “그건 아들 생각이지요.” nbsp “제게 가게가 하나 있는데 이것도 해 보고 싶어 하는데 아들에게 줄까요?” 라고 다시 질문합니다. nbsp “계약서를 쓰세요. 그래도 약간 아는 사람이니까 조금 싸게 해서 계약서를 쓰고 임대해 주세요. 20살이 넘었기 때문에 엄마, 자식이라는 관계로 넘겨주게 되면 원수가 됩니다. 사장종업원간에 계약서를 쓰면 사장종업원끼리는 원수가 되어도 이해관계이므로 감정이 상하지 않는데, 그게 정에 끌려서 잘 안 될 것 같으면 아예 남에게 과수원을 맡기거나 파는 게 낫습니다. 이렇게 하면 절대 부모자식 간에 원수관계가 안 됩니다. 엄격하게 해야 합니다. 이 회사를 넘보지 말고, 이 회사 내에서는 엄마자식이 아닌 임대를 하는 관계로 해야 합니다. 나는 너를 키워준 것으로 내 할 일은 다 했다고 하시면 됩니다.”라고 하시며 스님께서는 오늘 강연을 전체적으로 정리해주셨습니다. nbsp “자식을 보살피는 것도 부모고, 자식을 망치는 것도 부모입니다. 자신을 안온하게 하는 것도 집이고, 자신을 속박하는 것도 집입니다. nbsp 자식을 보살피는 것은 3살 때까지는 100, 초등학교 때는 70, 중학교는 50, 고등학교는 30, 대학을 들어가면 완벽하게 독립을 시켜야 합니다. 다른 동물들은 다 이렇게 해요. nbsp 그런데, 요즘은 아이들을 보살펴야 할 때 보살피지 않고, 자립시켜야 할 때 그렇게 하지 않아 자식을 망칩니다. nbsp 자식이 부모를 괴롭히는 것이 남편에게서 괴로움 받는 것보다 10배는 더 힘듭니다. 전생의 원수가 부모·자식이 된다는 헛된 말을 믿지 말고, 자식은 부모를 고맙게 생각하고 부모는 자식을 소중하게 생각해야 합니다. nbsp 우리가 낚시를 할 때 맛있는 것을 미끼로 하지요. 쥐약도 쥐가 좋아하는 음식에 놓지요. 그러므로 좋아 보이는 게 사실은 굉장히 위험해요. 쥐가 접시에 맛있는 것이 딱 놓여있으면 ‘이것이 내 것이 아닌데’ 라고 생각해야 하는데, 이게 웬 떡이냐 싶어 덥석 물으면 어떻게 될까요? nbsp nbsp 그래서 부처님께서 ‘교만하지 말고 겸손해라, 비굴하지 말고 당당해라’ 라고 말씀하셨어요. 우리는 부처이기 때문에 천하 누구에게도 비굴할 필요가 없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어리석어서 당당하라 그러면 교만하고, 겸손하라 그러면 비굴해집니다. 겸손하되 당당해야 합니다. 무엇이든 알이 차야 고개를 숙이고 고개를 숙인 벼는 알이 찬 법입니다. nbsp 어떤 상황에 처하더라도 나만 정신 차리면 행복할 수 있습니다. 자기가 자기를 행복하게 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지 다른 게 중요한 것이 아닙니다. 행복하게 사십시오.” nbsp 스님께서는 한분한분 질문하신 분들이 놓치고 있는 점을 다시 상기시키면서 우리가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를 알려주셨습니다. 다른 무엇보다도 나 자신이 행복해야 함을 다시 한번 새기게 됩니다. nbsp 강연이 끝난 후 스님의 책에 사인을 받으려고 길게 줄을 선 사람들을 보며 많은 이들이 스님의 가르침에 목말라 하고 있음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nbsp nbsp 사인회를 마치고 스님께서는 봉사자들과 기념사진을 찍으시고는 다시 두북으로 이동하셨습니다.

2015.04.14. 21,899 읽음 댓글 17개

2015.4.12 용성조사 제75주기 열반일 기념법회

nbsp nbsp nbsp 오늘은 용성조사 열반 75주기 기념법회가 있는 날입니다. 스님과 서울 공동체 대중들, 그리고 SBS 촬영팀은 새벽 2시 30분에 일어나 3시에 전라북도 장수군에 있는 죽림정사로 출발했습니다. 죽림정사에는 문경공동체 행자원의 행자님들이 행사와 공양 준비로 분주한 모습이었습니다. 스님께서는 유수스님을 비롯한 법사님들과 서울 공동체 대중들, 그리고 문경공동체 행자원 대중들과 함께 6시 30분에 발우공양을 하셨습니다. 도문 큰스님께서 오셨더라면 참 흐뭇해 하셨을 텐데 함께 하지 못해 아쉬웠습니다. nbsp nbsp 스님과 법사단, 그리고 서울공동체 대중들은 9시 30분부터 교육관에서 다례재를 올렸습니다. 석가여래부촉법 제1세 마하가섭 존자로부터 인도와 중국을 거쳐 해동 법맥을 이은 역대조사들에 대한 지극정성으로 다례를 올렸습니다. 이어 기념법회가 열렸는데, 일요일인데도 기념법회에 참석하기 위해 전국에서 600여 명의 대중들이 모였습니다. nbsp 벚꽃이 만발한 화창한 일요일, 대지는 푸른 옷을 갈아입은 모습이었습니다. 생동하는 봄기운이 느껴지는 가운데, 죽림정사에는 쉼 없이 찬바람이 불어 닥쳐 자꾸 옷깃을 여며야 했습니다. 죽림정사는 백두대간의 중심에 위치한 장안산 아래에 자리 잡고 있습니다. 행정지명으로는 전라북도 장수군 번암면 죽림리입니다. 이곳은 백용성 조사님의 탄생지로 독립운동가 백용성조사 기념사업회와 백용성조사 유훈실현 후원회의 주도로 승려이자 독립운동가인 백용성조사님의 유지를 기리기 위하여 건립되었습니다. nbsp nbsp 용성조사님은 석가여래부촉법 제68세, 석가여래계대법 제75세, 조선불교중흥율 제6조이시며, 불교의 지성화·대중화·생활화운동을 전개하는 등 현대 한국 불교의 기초를 닦은 근대 한국불교의 중흥조이십니다. 또한, 용성조사님은 1919년 기미 3·1독립선언 민족대표 33인중 불교계를 대표해서 서명하셨고, 그 이후 평생을 나라의 독립을 위해 헌신하신 독립운동가이십니다. nbsp nbsp nbsp 스님께서는 오늘 용성조사님의 제75주기 열반일 기념법문을 통해, 용성조사님의 평생의 삶을 다시한번 정리해 주시면서 현재를 살아가는 우리가 배워야할 바가 무엇인지를 말씀해 주셨습니다. 스님께서는 “나라를 일본에 빼앗긴 시절에는 나라의 독립이 시대적 과제였다면, 오늘 이 시점에서 시대적 과제는 분단된 나라의 통일입니다. 발해 멸망이후 대륙을 잃고 반도에 갇혀 강대국의 변방으로 전락한지 일천여년만에 그 천년의 한을 풀고 동북아에서 자주 독립국가로서 옛 위상을 되찾기 위해서는 민족의 통일없이는 불가능합니다. 고구려가 다물사상으로 건국이념을 삼았듯이 우리는 새로운 100년의 비젼을 위해 통일을 반드시 성취하겠다는 원력보살이 되어야 합니다”라고 당부하셨습니다. nbsp nbsp 기념법회가 끝난 뒤 즉문즉설 시간이 이어졌습니다. nbsp nbsp 질문하는 사람은 6명이었습니다. 여자와 음식에 대해서는 절제가 잘 안 된다는 분, 사회운동에 관심이 많은데, 수행에서는 옳고 그름을 가리지 말라고 하셔서 사회문제를 등한시하라는 의미로 들린다는 분, IMF 이후에 남편이 주식투자에 빠져있어서 걱정이라는 분, 친정어머니에게 마음이 많이 일어난다는 분, 그리고 환경운동을 하다 보니 모든 것을 파괴하는 인간들이 혐오스러워진다는 분 등 대단히 솔직한 질문들이 많이 나왔습니다. 그중에서 세월호 관련 질문과 답변을 나눕니다. nbsp 질문자는 “광화문에서 슬퍼하는 분들과 함께 슬픔을 나누고 왔습니다. 억울함을 밝히면 원망하는 마음을 도웁게 된다는 부처님 말씀이 있는데, 사회에서는 억울한 일들이 계속 일어납니다. 이때 함께 공감하고 위로를 나누게 되면 서로가 치유가 되는 듯합니다. 억울한 일들은 밝혀야 되는 것이 아닌지요?”라고 질문했습니다. nbsp nbsp 스님께서는 “밝혀야 한다면 밝혀야지요. 그렇지만 때론 침묵이나 때를 기다려야 되는 경우도 있습니다. 내가 밝히는 것이 상대에게 억울함이 될 때도 있습니다. 예를 들어 추행당한 사람의 얘기를 들으면 그 사람의 말이 옳다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반대로 무고를 당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저도 젊었을 때는 보왕삼매론의 ‘억울함을 당해서 밝히려고 하지 말라’는 말씀이 이해가 안돼서 이건 아니지 않나 이런 생각에 빠졌던 때도 있었습니다. 그런데 나이가 들면서 여러 다양한 계층과 사례들을 접하고 상담하면서 이해하게 됐습니다. 세상에 죽을 놈이라고 손가락질 받는 사람도, 내막을 알고 보면 그 사람 입장에서는 정말 억울한 일이 많았습니다. nbsp 억울하고 분한 마음으로 진실을 밝히려고 하면, 얼마 못 가 지치게 됩니다. 우리 사회에서 사실이 규명되지 않는 것은 뭔가 이유가 있어 밝혀질 수 없는 사정이 있을 수 있습니다. 이것을 몇몇 국민의 힘으로 밝히기는 매우 어렵습니다. 오히려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바른 정부가 들어서서 국민 다수가 참여해 원인규명을 할 수 있도록, 사회를 보다 투명한 방향으로 만들어가는 것이 때로는 더 효율적일 수도 있습니다. 세상은 내가 원하는 대로 다 이뤄지지 않지 않습니까? 지금 당장 규명이 안 된다고 해서 분노하면, 그만큼 허탈해지고 냉소하다가 결국 바뀌지 않는 정치 현실에 염증을 느끼고 돌아서게 됩니다. 그러면 이 세상은 아무 것도 변하지 않습니다. 아무리 그 일이 어렵더라도, 그 누구도 도와주는 사람이 없다하더라도, 만약 꼭 해야 하는 일이라면 분노하기보다, 현실을 직시하면서 바꿀 수 있는 방법 쪽으로 힘을 모아가야 합니다. 그렇게 해야 할 일을 꾸준히 하는 것이 수행입니다.” nbsp nbsp 세상에 분노할 일이 많은데, 분노하기보다 세상을 바꿀 수 있는 방법을 연구하고 그쪽으로 꾸준히 정진하고 힘을 모아가는 일이 수행이라는 말씀이 많이 와 닿았습니다. nbsp 즉문즉설을 마친 뒤 사홍서원으로 1부 행사를 끝내고 대웅전 계단에서 단체 사진 촬영이 있었습니다. 대웅전 계단에서 스님의 당부 말씀이 이어졌습니다. nbsp nbsp “암울한 시대에 굴복하지 않으시고, 수행의 관점을 놓치지 않으시며 민족과 불교 중흥을 위해 애쓰신 백용성 조사님의 뜻 깊은 열반일을 맞아 이곳을 찾아주셔서 감사합니다. 용성조사님의 생가 터에서 면면히 흐르는 민족사와 불교사의 정수를 온 몸으로 느끼고 새기셨기를 바랍니다. 용성조사님의 뜻이 오늘 정토회 활동을 통해 이어져가는 것을 마음에 새기고, 내가 몸담은 정토회가 부처님의 정법을 계승한 곳임을 확신한다면 외부의 그릇된 소견에 흔들리지 말고 자부심을 가지고 당당히 활동하시기 바랍니다.”라고 재삼 당부하셨습니다. nbsp 간부수련과 담당자 수련 등 바쁜 일정을 소화하셔서 피곤하실법한데도, 스님께서는 여전히 힘 있고 활기찬 모습으로, 때로는 단호하고 명쾌한 답변으로 대중들의 마음을 어루만져 주셨습니다. 이런 스승님의 은덕에 힘입어 우리의 삶이 더 가벼워져서, 용성스님의 유훈을 잘 받들어갈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nbsp 오전 내내 심하게 불던 바람이 잦아지면서 경전반 학생들은 따스한 봄볕 아래 묘수법사님과 무변심법사님으로부터 사찰안내를 받았습니다. 스님께서는 사찰 경내를 다니시면서 오늘 행사를 위해 애써준 담당자들과 따스한 정담을 나누셨습니다. 오늘을 사는 우리는 스승을 통해 과거로부터 면면히 이어 내려오는 조사의 원력과 노고를 새기고, 원대한 미래를 꿈꾸는 정토행자로 거듭나리라 믿습니다. nbsp 내일은 두북어르신 봄 나들이가 있습니다.

2015.04.13. 20,076 읽음 댓글 8개

2015.4.11. 탑곡수련원 운력, 서울 공동체 포살 및 백일 출가생 법문

nbsp nbsp 스님께서는 두북정토수련원에서 새벽예불과 기도를 드린 후 원고교정 업무와 정원 가꾸는 일을 하시다가 오전 10시 경에 서울에서 내려온 공동체 대중들과 만나 이른 점심식사를 하셨습니다. 서울공동체 대중들은 새벽 4시에 일어나 1시간 기도를 하고, 아침식사를 아주 간단히 한 뒤 6시에 출발해 두북수련원으로 내려오는 길이었습니다. nbsp nbsp 점심식사를 마치고 두북수련원에 간단히 짐을 푼 뒤, 다들 울력복장으로 갈아입었습니다. 지난주에 비가 안 왔으면 탑곡수련원에 올라가 밭이랑에 비닐을 씌우는 일을 하려고 했는데, 오늘 하게 된 것입니다. 고추 파종 시기가 다가오는데, 일이 차일피일 미뤄지면서, 탑곡수련원을 담당하는 화광법사님이 애타하는 모습이셨습니다. 대중들은 화광법사님의 까맣게 타들어가는 속을 아는지 모르는지, 재잘재잘 벚꽃구경을 하면서 탑곡으로 올랐습니다. nbsp nbsp 스님께서는 대중들이 두북수련원에 짐을 내려놓고 울력복장으로 갈아입을 동안에 울력을 마치고 어디로 가야 멋진 꽃구경을 할 수 있을지 답사를 다녀오셨습니다. 탑곡수련원에도 벚꽃나무와 탐스러운 동백꽃이 흐드러지게 피어있었습니다. 졸졸졸 내려오는 작은 골짜기 물에 햇살이 반짝이는데, 그 위에 벚꽃잎들이 흩날리는 모습이 그림처럼 예뻤습니다. nbsp nbsp 꽃구경도 잠시, 다들 울력 담당자의 설명을 들으려고 한 자리에 둥그렇게 모여들었습니다. 울력 담당자는 3인 1조로 모둠을 배정해서 한 명이 비닐을 넓고 팽팽하게 펴주는 역할을 하고, 나머지 2명이 밭이랑 좌우에서 삽으로 흙을 떠서 덮어주는 역할을 해달라고 했습니다. 공기가 안 들어가도록 팽팽하게 잘 잡아줘야 하고, 또 흙으로 비닐의 양 가장자리를 잘 다지면서, 중간 중간에도 흙덩이로 눌러주는 게 핵심이었습니다. nbsp nbsp 다들 오랜만에 하는 농사울력이라 요령을 잊어버렸지만 한 이랑을 실험삼아 해보면서 감각을 익혀가는 모습이었습니다. 스님께서도 한 조에 들어가셨습니다. 뒤늦게 SBS촬영팀이 와서 스님께서 삽을 들고 밭이랑에 비닐 씌우는 모습을 열심히 촬영했습니다. 어디서 부우우웅 벌떼들이 몰려오는 소리가 들린다 싶어 고개를 드니, 헬리캠이었습니다. nbsp nbsp 열심히 삽질을 하던 대중들은 신기해서 올려다보다가 곧 다시 일에 집중했습니다. 어떤 조는 아주 힘차고 씩씩하게 작업을 하고, 어떤 조는 자기들끼리 이렇게 하라느니, 저렇게 해야 한다느니 아웅다웅 시끌벅적 떠들기도 했습니다. 몸이 아픈 사람들이 모여 있는 조는 자기들 몸 상태에 맞게 속도를 조절하면서 일하다 쉬었다를 반복하기도 했습니다. nbsp 스님께서 SBS 촬영팀에게 “자 이제 그만 찍고 같이 일합시다”라고 하셔서 대중들은 그냥 우스개소리로 들었는데, PD님들이 진짜 교대로 들어와서 같이 일하기 시작했습니다. PD님들의 일솜씨가 아주 좋으셔서 속도가 더 붙었습니다. 대중들은 이제 PD님들과도 스스럼없이 어울리면서 웃고 떠들며 그러나 일은 부지런하고 근면하게 했습니다. 처음에는 영 서툴러서 오늘 안으로 다 하겠나 싶었는데, 다들 각자의 방식대로 개미떼처럼 일하다보니 2시간 여 만에 거의 7080를 마쳤습니다. nbsp nbsp 잠시 볼일을 보러 나갔다 오신 화광법사님께서 까만 비닐로 가지런히 정렬된 밭고랑을 보시곤 입이 저절로 귀에 걸렸습니다. 한 시름 놓으신 표정이셔서 대중들도 환하게 마주 웃었습니다. 스스로들 뿌듯해하는 모습이었습니다. nbsp 스님께서 불현 듯 “자 쉬고 하자”고 하십니다. 다들 일손을 놓고 커다란 벚꽃나무 그늘 아래로 모여들었습니다. 참을 담당한 팀이 라면을 끓여 냈는데, 다들 “세상에서 제일 맛있는 라면”이라며 칭찬을 아끼지 않았습니다. 따스하고 부드러운 봄볕 아래, 흙냄새를 맡으며 즐겁고 신나게 울력을 해서인지 기분이 좋았던 모양입니다. 또 아침 겸 점심을 먹은 뒤 적당한 노동을 하고 먹는 참이라 더더욱 맛있었겠지요. nbsp 먹으면서도 쉴 새 없이 대중들의 수다는 계속됩니다. 특히 스님과 함께 조를 이뤘던 도반들에게 유쾌한 위로를 여기저기서 건넵니다. 다른 조는 쉬엄쉬엄 속도를 조절하면서 일했는데, 스님 조는 정말 한 번도 안 쉬고 내리 2시간 가까이 일했거든요. 스님과 함께 했던 조는 거의 말도 없이 일만 하는 모습이었습니다. nbsp 안 그래도 작년에 비해 우리의 작업 속도가 엄청 빠른 것 같다는 한 도반의 얘기에, 헬리캠 덕분이라는 얘기가 나오기도 했습니다. 카메라가 찍든 말든 신경 안 쓰고 자기들 속도대로 작업한 조가 있는가 하면, 헬리캠이 자꾸 날아들어서 거의 쉬지 못한 조도 있었던 모양입니다. 공동체 대중들은 스님께서 힘든 일을 하면서도, 또 거의 안 쉬고 일을 하면서도, 전혀 힘들어 보이지 않게, 누구의 표현대로라면 ‘사부작 사부작’ 가볍게 일하는 모습을 보며 새삼 감탄했습니다. 그만큼 몸을 쓰는 일에 단련이 되신 것도 있겠지만, 몸에 집착하지 않고 그러나 일에 집착하지 않는 그런 ‘중도’의 진리가 몸에 배어난 모습이셨기 때문입니다. nbsp nbsp 그러고 보니 오늘 작업 속도가 빨랐던 건, 헬리캠을 의식한 것보다는 이렇게 몸소 본을 보여주는 스승님이 계셨기 때문이었나 봅니다. 스승님의 일하는 모습을 보면서 자연히 따라 배우게 된 것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이렇게 스승님께서는 부처님의 법문을 알기 쉽게 깨우쳐 주시는 것뿐만이 아니라, 부처님의 법을 몸소 실천하고 행하는 모습을 보여주시기 때문에 자연히 감화되는 것 같습니다. nbsp nbsp 물이 한강처럼 흥건한 라면과 약간 설익은 라면을 먹으면서도 ‘세상에서 가장 맛있는 라면’으로 먹고 나서 다시 1시간 동안 나머지 30의 공정을 마저 마쳤습니다. 비닐작업을 마친 뒤에 스님께서는 탑곡수련원 주변의 가시덤불을 제거하는 작업을 하시고, 나머지 대중들은 고추밭에 울타리를 치는 작업을 했습니다. 고라니나 멧돼지가 들어오면 곤란하니까요. 그 작업까지 마치니 얼추 3시가 되었습니다. 다들 흐르는 골짜기 물에 삽과 장갑을 씻고, 차량에 농기구를 실은 뒤 벚꽃 나무 앞에서 단체 사진을 찍었습니다. SBS 촬영팀이다, 서울 공동체 대중이다, 뭐다를 다 떠나서, 오늘은 각자 땅을 일구는 농부가 되어 신나게 일한 아주 기분 좋은 시간이었습니다. nbsp 스님께서는 저녁에도 일정이 계속 있으니까 산책할 시간은 없다며, 드라이브를 하면서 꽃구경을 하자고 하셨습니다. 미리 봐두신 곳을 향해 차량들이 줄지어 따랐습니다. ‘외와마을’의 어느 가파른 산길로 올랐는데, 오르는 길이 어찌나 험한지 차량 안에서 쿵쿵 엉덩방아를 찧었습니다. 가다보니 여기저기 연달래꽃들이 화사하게 피었습니다. 지난주까지만 해도 진달래꽃이 더 많더니, 이번엔 연달래꽃들이 더 많았습니다. 그런데 어느 지점까지 올라가니, 멀쩡한 산을 깎아 채석장으로 사용하는 곳이 나타났습니다. 볼썽사납게 파헤쳐진 모습에 잠시 눈살을 찌푸리려는 찰나, 갑자기 조수석에서 “오른쪽을 봐요. 오른쪽”하고 다급한 소리를 지릅니다. 무슨 일인가 싶어 눈을 돌리니, 연달래꽃이 산허리에 지천으로 깔려있습니다. 장관입니다. nbsp nbsp 스님께서 차량에서 나오셔서 다들 차를 세우고 스님 뒤를 따랐습니다. 스님께서는 채석장 먼지가 날아들어 꽃 색깔이 투명하지가 못하다며 아쉬워하셨습니다. 대중들은 진달래꽃 사이사이에 자리를 비집고 들어가 사진을 찍으며, 환호성을 지르고 웃고 떠들었습니다. 그 시끄러운 와중에도 SBS 촬영팀은 스님께 “꽃을 정말 좋아하시는 것 같은데 왜 좋아하시는지” 인터뷰를 합니다. 스님께서는 답변 대신 그저 빙긋이 웃으십니다. “무슨 꽃을 좋아하시냐?”는 질문에는 “분홍꽃도 좋고 보라꽃도 좋고”라고 대답하십니다. 보라꽃 좋아하신다는 얘기는 이미 거듭 거듭 확인중입니다. nbsp 누군가 저 꽃들 사이에 대중 전체가 올라가서 사진을 찍자고 해서, 비탈진 경사를 따라 하나둘 올랐습니다. 그런데 나무마다 먼지들이 수북해서 머리와 옷에 흙먼지가 자욱하게 내려앉았습니다. 꽤 높은 위치까지 올라가니, 헬리캠이 벌떼 몰고 오듯 부우우웅 소리를 내며 다가왔습니다. 다들 환호성을 지르며 힘차게 손을 흔들었습니다. 방송 방영분에선 아마도 편집이 되겠지만 그래도 재미난 추억거리가 될 장면이었습니다. nbsp 다들 기분 좋지만, 노곤한 몸을 이끌고 두북수련원으로 돌아왔습니다. 스님께서는 대중들이 씻고 저녁식사를 하는 동안 일을 또 하시다가, 저녁 예불 시간에 맞춰 오셨습니다. nbsp nbsp 오늘은 서울공동체의 정기포살일입니다. 원래대로라면 아침 9시부터 포살과 나누기가 진행되고, 오후에 울력을 하겠지만, 오늘은 두북수련원에 왔으므로 울력부터 하고 포살을 저녁에 하게 된 것입니다. 특별히 오늘은 지도법사님께서 직접 계본을 낭독해주셨습니다. 늘 녹음된 목소리로만 듣다가 스님께서 직접 법상에 앉으셔서 계본 낭독을 해주시니, 훨씬 집중이 잘 되는 것 같았습니다. nbsp 포살은 “수행자로서 부처님의 삶을 닮아가겠다는 간절한 마음으로, 40계본을 두고 스스로를 뉘우치며 대중 앞에 발로 참회하는” 승가의 전통 의식입니다. nbsp 40계본이란, 1. 살아있는 생명을 함부로 죽이지 말라. 2. 주지 않는 남의 물건을 훔치지 말라. 3. 삿된 음행을 하지 말라. 4. 거짓말을 하지 말라. 5. 술, 담배, 마약 등 중독성 물질을 섭취하지 말라 등 부처님께서 주신 계율을 정토회 수행 원칙에 맞게 현대식으로 다시 구성한 것입니다. nbsp 대중은 계를 어긴 것에 대해 3배로서 발로 참회하게 됩니다. 40계본을 다 지켜야 마땅하지만 잘 못 지키는 계율이 많다보니, 그 중에서도 ‘이번 달엔 이것만은 반드시 지켜보자’ 하는 것을 공동실천과제로 삼습니다. nbsp 평소에는 포살을 담당하는 팀에서 공동실천과제로 계본 하나를 정하는데, 오늘은 지도법사님께서 특별히 그 계본에 대한 법문을 해주셨습니다. 이번 달 집중실천과제는 ‘28번. 일에 집착하여 몸을 함부로 사용하지 않는다’입니다. 그런데 이 계본은 ‘27번 몸에 집착하여 몸을 사리지 않는다’라는 계본과 쌍을 이룹니다. 그래서 오늘 스님께서는 이 두 계본을 연관 지어 설명해주셨습니다. nbsp 27번 몸에 집착하여 몸을 사리지 않는다. 28번. 일에 집착하여 몸을 함부로 사용하지 않는다. 27번과 28번이 서로 치우치는 양극단에 속합니다. 몸에 집착해서 몸을 사리는 것이 제1의 길이라면, 일에 집착해서 몸을 함부로 사용하는 것은 제2의 길입니다. 중도는 몸에 집착해서 일을 두려워해서도 안 되고 일에 집착해서 몸을 함부로 사용해도 안 됩니다. 이것이 중도의 길입니다. 그런데 대다수 사람들은 자기 몸을 사리죠. ‘아프면 어떡하나.’하면서 꾀를 부립니다. 마음속에 이런저런 핑계가 생기면서 자꾸 몸을 사리게 되는 겁니다. 그래서 ‘몸에 너무 집착하지 마라.’고 한 것입니다. nbsp 몸에 집착한다는 것은 싫은 마음에 사로잡힌다는 뜻입니다. 수행이라는 것은 좋고 싫고를 놓아버리는 것이라고 할 수 있는데, 싫은 마음에 사로잡혀서 몸을 사리는 것이 제1의 길이라면, 좋아하는 마음으로 일에 집착해서 몸에 무리가 가도록 하는 것이 또 하나의 치우침입니다. 몸에 집착해도 치우침이고 일에 집착해도 치우침이 됩니다. 몸에 집착하면 일을 꺼리거나 두려워하게 되고, 일에 집착하면 몸을 자기도 모르게 무리하게 쓰게 됩니다. nbsp 그런데 우리가 일에 집착했는지 안했는지의 기준을 어떻게 잡을 수 있을까요? 몸을 약간 사려서 몸을 조심한 게 잘 한 건지, 아니면 약간 몸의 거부반응이 오더라도, 오히려 그것을 싫은 마음에 사로잡히지 않고 넘어버림으로 해서 자기 업식을 극복하는 방향으로 가야할지 우리는 늘 헷갈립니다. 중도라는 것은 현실 속에서 풀기가 어렵습니다. 늘 자기도 모르게 이리 치우치고 저리 치우치게 되죠. 그래서 자기가 자기를 가만히 들여다보면, 드러난 것이 핵심이 아니라, 그 뿌리가 까르마로부터 일어난 욕구, 욕망에 있다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nbsp 좋고 싫고는 나의 까르마로부터 일어나는 겁니다. 그렇기 때문에 몸은 더 써도 괜찮은데 하기 싫은 마음이 있어서 어떤 핑계를 대고, 싫은 마음에 사로잡혀서 일에서 물러난다면, 그것은 몸을 사리는 것입니다. 반대로 좋아하는 마음에 사로잡혀서 몸의 상태를 넘어서도록 일하다가 건강이 나빠진다면, 그건 몸을 함부로 사용한 것이 됩니다. nbsp 바깥으로 드러난 것으로만 보면, 도대체 어떻게 하란 말이냐, 여전히 혼란스러울 겁니다. 그러나 자기의 마음을 들여다보면 ‘내가 지금 약간 싫어하는 마음을 갖고 있구나, 그러다보니까 마음에서 자꾸 핑계를 대면서, 몸을 사리고 있구나’ 발견하게 됩니다. 표현은 몸이지만 뿌리는 마음이기 때문에 안으로 돌이켜서 살펴보면서 ‘아 싫어하고 있구나’ 알아차리게 되면, 그냥 해버리는 게 좋습니다. 이래야 까르마로부터 자유로워집니다. nbsp 어떤 좋아하는 마음이 일어나면, 우리가 음식을 먹을 때도 몸은 그만 먹으라고 하는데, 몸은 생각하지 않고 더 먹고 싶은 욕망에 따라 음식을 더 먹고 나중에 과식을 해서 힘들거나 몸에 무리가 가지 않습니까? 그럴 때 몸을 함부로 쓰는 것입니다. 꼭 일할 때만이 아니라 자기가 좋아하는 어떤 일, 해야 한다는 어떤 생각에 사로잡혀서 몸에 무리가 가도록 일하면 그렇습니다. nbsp 오늘도 일하면 몸에 무리가 가죠. 그럴 땐 또 몸에 집착해서 “내가 과했나? 괜히 했네? 이렇게 후회하는 마음으로 가면 욕망에 끄달리고 있는 것입니다. 일의 필요에 의해 몸에 무리가 가더라도 자기가 기꺼이 한 것이면, 지금 내 몸이 피로하더라도, 몸의 상태가 아픈 것을 받아들이게 되는 겁니다. 처음부터 예상한 문제이므로, 몸은 피곤하거나 아프지만 그것으로 괴로워하지는 않는다는 얘기입니다. 그럴 때는 다시 말하면 몸에 약간 무리가 가도, 몸을 함부로 사용한 것은 아닙니다. 몸을 함부로 사용했다는 것은 뭐냐면, 약간 후회하는 마음이 들 때입니다. 그것은 일에 집착해서, 그때 상황에 집착해서 함부로 사용한 것이 됩니다. nbsp 인생이라는 것은 컨디션이 좋을 때만 일하는 것이 아니잖아요. 아픈 상태에서도 일할 수 있고, 졸리는 상태에서도 일할 수 있기 때문에, 그래서 자기 상태에 대해서 잘 알고, 까르마, 욕망에 끄달려 가지 않아야 합니다. nbsp 아픈 몸을 가지고도 얼마든지 일할 수 있습니다. 아픈 게 나아야 일하는 것이 아닙니다. 아픈 게 나아야 일을 할 수 있다면 아마 저는 평생 아무 일도 못할 겁니다. 그러니까 아픈 것은 아픈 거고, 일은 일하는 건데, 아픈 것을 무시하고 일을 하면 어때요? 몸을 망쳐서 앞으로 일을 못합니다. 다 나아야 일을 하면 몸뚱이를 가지고 있는 한 안 아플 수가 없기 때문에 일을 못하게 됩니다. 그러니까 아픈 건 아픈 건데 그 아픈 것이 논다고 꼭 낫는 건 아니거든요. 일과 적절하게 배합이 되어야 합니다. 늘 심리적으로 욕망에 끄달리다보면 스트레스로 몸이 아프거든요. 그래서 그 마음을 잘 살피면 아픈 몸으로도 일을 할 수가 있습니다. nbsp 아프니까 쉬어도 되고 아프지만 일할 수도 있는 그것을 늘 자기가 주인이 돼서 아픈 것마저 삶의 일부로 받아들여서 조율해나가는 것, 그것이 우리가 27, 28번 계율, 중도에 대한 것입니다. 치우치지 말자 이런 얘기죠. 여러분들이 같이 경험도 나눠보면서, ‘아 이런데서 내가 약간 집착했구나, 그래서 문제다’가 아니라, 치우치는 자기를 보면서 적절하게 다시 해보고, 다시 해본다면, 여러분들은 건강도 회복할 수 있고 일도 할 수 있습니다. 즉 건강을 회복한다는 것이 안 아프다는 얘기가 아니에요. nbsp 다리가 없는 사람은 다리가 없이 일하고, 팔이 없는 사람은 팔 없이 일하는 거지, 팔이 있어야 일을 하는 건 아니잖아요. 아픈 거는 아픈거고 없는 거는 없는 거고, 그 안에서 일을 하는데, 팔이 하나 없는 사람이 팔이 두 개 있는 것처럼 일을 하려고 하면 열등의식이 생깁니다. 그 수준에 맞게끔 적절하게 일을 하면 돼요. 그리고 우리는 다른 사람에 대해서도 팔이 두 개 있는 사람의 잣대로 보면 안 되고, ‘저 사람이 팔이 하나 없는데도, 적절하게 저 일을 하고 있구나’ 이렇게 고맙게 받아들이는 게 필요합니다. 네 그렇게 한 번 해보면서 중도를 배워 나가 봅니다.” nbsp 몸을 사리는 것과 몸을 함부로 사용하지 않는 것의 차이를 잘 몰랐는데, 오늘 상세히 풀어주셔서 새로운 앎이 생겼습니다. 드러난 현상을 보지 말고, 자기의 마음을 들여다보라는 말씀에 절로 고개가 끄덕여집니다. 드러난 현상으로 보면 둘이 헷갈리는데, 내 마음에서 일어나는 마음이 일을 하기 싫은 마음인가, 일에 집착하는 마음인가, 싫고 좋음에 갇혀있는 것인가 아닌가. 앞으로는 좀 더 명확하게 구분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대중들은 포살이 끝난 후 조별 나누기에서 지도법사님의 법문을 통해 자기의 사례와 경험들을 나누며, “몸이나 일에 집착해서 문제라고 할 것이 아니라, 집착했다는 사실을 알고 다시 놓아버리는 연습을 가볍게 해보자”고 다짐하는 모습이었습니다. nbsp 스님께서는 공동실천과제에 대해 법문을 해주시곤 바로 옆방으로 이동하셔서 문경공동체에서 온 백일출가생들에게 법문을 해주셨습니다. 오늘은 24기 백일출가생 26명에게는 100일 중 48일째 되는 날인데, 두북수련원에서 중간 수련 기간을 보내고 있습니다. nbsp 스님께서는 백일출가생들에게 들어올 때의 마음과 생활이 어느 정도 익숙해진 후의 마음가짐이 달라지는 것을 경계해야 한다고 일러주셨습니다. nbsp nbsp “시작할 때는 자기 나름대로 백일출가에 대해 굉장한 의미를 부여하고 하루하루가 굉장히 소중하게 느껴집니다. 그런데 중간을 넘으면 익숙해져 설렘과 긴장이 사라지고 의미를 가지고 도전한 것이 약화되고 오히려 며칠 남았는지 세어보게 됩니다. 마음을 내서 스스로 도전한 건데 적극성은 어느덧 사라지고 소극적으로 변하면서, 그저 의무감으로 백일을 채우자는 생각으로 빠집니다. 그러면 점점 참고 버티는 게 됩니다. nbsp 처음에는 힘들게 시작해서 점점 좋아지는데 중간부터는 갈수록 나빠지게 되는 거죠. 처음 정토회에 온 사람들은 부처님 법을 만나서 ‘내 욕심이구나’ 하고 이게 어느 정도 돌이켜지니까 마음이 편안해집니다. 수행문을 읽으면 가슴에 와 닿고, 너무 좋아서 이대로 공부하면 나도 부처님처럼 되겠다 하고 봉사를 합니다. 그게 초발심이라 하는데 초발심이 무섭습니다. 오래 수행한 사람보다 법문도 잘 들리고 일도 열심히 하고요. nbsp nbsp 그런데 자기 카르마가 원래의 그 생각을 내려놓으면서 좋아졌다가 다시 일어나는 현상이 생깁니다. 바로 부처님 법이라는 기준을 움켜지고 주변을 판단하게 됩니다. 자기 자신에게 들이대야 할 수행의 잣대를 자기 남편과 아이들, 정토회 도반들, 그리고 주변 사람들에게 들이대면서 분별을 냅니다. 이럴 때는 스님의 법문도, 수행문도 귀에 안 들어옵니다. 부처님의 진리라는 잣대를 들이대기 때문이죠. ‘내가 옳다’고 하는 것이 아상과 아집이라 하고, ‘이게 진리다’ 움켜쥐는 것이 법상, 집착 하는 것을 법집이라고 합니다. 이런 내 모습을 보고, 부처님의 진리는 밖이 아니라 내 안으로 돌이켜서 자기를 살피고 변화시키는 기준으로만 삼아야 합니다. nbsp nbsp 100일이 갈수록 의미 있는 하루가 되어야 합니다. 회향하기 전날과 입재한 첫날이 동일한 의미 있는 하루가 될 때 백일출가입니다. 처음 입재해서 첫날과 이튿날 하루하루 배우는 것이 많았고, 일주일 지났는데 한 달 지낸 것 같잖아요. 그 하루와 끝나기 전날 하루가 같은 하룬데, 끝나기 전날 하루는 아무 의미 없이 보내게 됩니다. 여기 들어오기 전을 생각해보세요. 정말 백일출가를 해보려고 반대를 무릅쓰고 왔잖아요. 그러다 막상 여기 들어오니까 어때요? 날짜 때우기식으로 버티기만 한다면, 자기 인생을 낭비하는 게 되잖아요. nbsp 계율은 수행자를 보호해주기 위해 울타리를 쳐준 것이니, 청정하게 계율을 지키려고 해봅니다. 이렇게 여기서 배울 수 있는 것을 적극적으로 수용해서 배워가며, 그저 하루하루 최선을 다 해보는 경험을 해보면 좋겠습니다. 그래서 지금부터 내리막길의 50일이 아니고 한 계단 더 딛고 가는 50일이 되길 바랍니다.” nbsp nbsp 한 시간 여동안의 짧은 시간이었지만, 이제 막 절반의 문턱에 다다른 백일출가생들에게는 다시 초발심으로 돌아가도록 해주신 스님의 법문이 오래도록 기억에 남을 것 같습니다. 하루종일 몸 쓰는 일로 지치실법도 한데, 저녁 공동체 포살과 백일출가생 법문까지 해주신 스님께서는 다시 또 원고교정을 하셨습니다. 내일 새벽 3시에 죽림정사로 출발해야 하는데 스님께서는 오늘도 일찍 잠자리에 드시지는 않을 것 같습니다.nbsp

2015.04.12. 21,444 읽음 댓글 11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