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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8.5 동북아 역사기행 4일째, 백두산 그리고 발해
nbsp안녕하세요. 오늘 스님은 동북아 역사기행 4일째를 맞이하여 민족의 성산인 백두산 천지에 올랐고, 오후에는 발해의 첫 수도 동모산을 본 후 발해의 역사에 대해 강연했습니다.nbspnbsp오늘은 백두산 천지에 오르는 날입니다. 새벽에 눈을 뜨자 창 밖으로 붉은 태양이 이글거리며 모습을 드러내었습니다. ‘아, 오늘 천지를 볼 수 있겠구나’ 약간 기쁜 마음과 함께 하루를 시작했습니다.nbspnbsp▲ 일출 모습nbspnbsp스님은 새벽 일찍 천일결사 기도를 한 후 대중들이 숙소에서 다 나오기를 기다렸다가 5시 정각에 버스에 탑승했습니다.nbspnbsp이도백하를 출발한 버스는 백두산 북편산문까지 약 40분 가량 자작나무와 각종 침엽수림으로 우거진 원시림을 통과했습니다. 해발고도가 점점 높아질수록 공기는 차갑고 싸늘한 기운마저 느껴졌습니다. 기행단은 사람들이 붐비지 않은 이른 시간에 가장 먼저 백두산에 오르려고 6시 정각에 매표소 앞에 줄을 섰습니다. 그러나 이미 많은 중국인 관광객들이 매표소 앞을 가득 메웠고, 6시 30분에 매표소 문이 열리자 많은 인파가 순식간에 셔틀 버스를 향해 달려가는 모습을 보며 순간 놀라기도 했습니다.nbsp▲ 매표소 앞nbsp이 모습을 보며 아직 중국은 공중 도덕에 대한 시민 의식이 부족한 것 같다는 얘기들이 오가기도 했습니다. 지난 3일 동안 비가 계속 와서 천지를 못 봤는데 오늘 해가 뜨자 갑자기 사람들이 몰렸다고 합니다.nbspnbsp미묘한 긴장감 속에 덩달아 우리 대중들도 종종 걸음을 걷게 되었는데 스님께서는 “서두르지 말고 천천히 오세요”라고 여러 차례 수신기로 알려주며 마음의 평정심을 유지하도록 도와주었습니다.nbspnbsp백두산 천지로 올라가기 위해 셔틀 버스와 승합차 두 번을 갈아탔습니다. 승합차에 타니 운전 기사는 신나는 리듬의 가요를 틀어주면서 마치 놀이 공원의 롤러코스터를 타듯이 가파른 고개를 요리조리 꺾어가며 아찔한 운전을 했습니다. 짜릿한 즐거움과 두려움을 함께 느끼며 15분을 달려 천지에 도착했습니다. 정상 부위에는 벌써 많은 사람들이 바글 바글 모여 있었습니다.nbspnbspnbsp▲ 백두산 천지로 올라가는 길nbsp드디어 백두산 천지가 눈 앞에 펼쳐졌습니다. 바람이 불지 않아 천지의 호수 물도 아주 잔잔했습니다. 산과 하늘을 그대로 투명하게 비추며 ‘아’ 하는 탄성을 자아내었습니다. 짙푸른 천지 호수와 웅장한 바위산들의 위용에 왜 백두산을 민족의 성산이라고 부르는지 온 몸으로 느낄 수 있었습니다.nbspnbsp▲ 백두산 천지nbsp발 디딜 틈도 없이 사람들이 모여 있어 사진 한 장 찍는 것도 쉽지 않았지만, 스님은 분주히 이곳 저곳을 살펴보며 조별 사진을 찍을 수 있는 적당한 곳을 찾았습니다. 스님은 중국인 관광객들에게 피해를 주지 않는 범위에서 적당히 틈을 보며 연이어 조별 사진을 함께 찍어 주었습니다.nbspnbspnbspnbsp롤러코스터 같은 승합차를 다시 타고 천지에서 내려왔습니다. 꼬불꼬불한 길이 산 아래 마을로 이어져 있는 모습이 무척 아름다웠습니다.nbspnbsp▲ 백두산 천지에서 내려가는 길nbsp다음은 비룡 폭포로 향했습니다. 셔틀 버스에서 내려 나무 계단을 따라 1.2km를 걸어가니 군데 군데 김이 모락 모락 피어나는 온천 물이 보이고, 저 멀리 회색 빛깔의 화산 지형 사이로 새하얀 물줄기가 힘차게 떨어져 내리는 비룡 폭포가 보였습니다. 여름 햇살이 따가웠지만 스님은 비룡 폭포를 배경으로 참가자 전체에게 개별로 기념 사진을 함께 찍어 주었습니다.nbspnbsp▲ 비룡폭포nbsp그리고 비룡 폭포에 대해 간단한 설명을 해주었습니다. nbspnbspnbsp“수량의 70 가까이가 지하수이고, 경사면에서 떨어지는 계곡물과 하늘에서 떨어지는 빗물로 구성되어 있어서 폭포의 양은 연중 큰 차이가 없다고 합니다. 하늘에서 떨어지는 빗물이 큰 비중을 차지하지 않으니까 홍수는 물양에 큰 영향을 주지 않고요. 오히려 눈이 녹아 내리는 초여름에 확실히 물양이 좀 많아지는 편입니다. 1.25km를 하얗게 흐르다가 큰 바위 앞에서 양쪽으로 갈라서 떨어지는데 두 폭의 비단을 편 것 같다고도 하고, 또는 용이 승천하는 것 같다고 해서 비룡 폭포라고 부르기도 합니다. 폭포의 높이는 약 68미터입니다. 이렇게 흘러 내려가서 이도백하를 통해 송하강으로 합류해서 흑룡강으로 들어가게 됩니다. 우리 나라의 폭포 중에서는 가장 웅장한 폭포라고 할 수 있죠.”nbsp울창한 원시림 사이로 난 나무 계단을 따라 내려와 다시 셔틀 버스를 타고 소천지에 도착했습니다. 소천지는 작은 화산호인데 모양은 둥글고 아담하며, 주변에 빡빡하게 둘러 있는 나무들과 하늘에 떠 있는 구름들이 수면 위에 영롱하게 비춰진 모습이 어제 비가 많이 와서 평소보다 잔잔한 것은 아니라고 했지만 여전히 감탄을 자아내었습니다. 스님은 일찍 도착해 소천지를 한바퀴 돈 후 대중들이 모두 도착하자 간단히 소천지에 대해 설명을 해주었습니다.nbspnbspnbsp▲ 소천지nbsp“물이 깨끗하죠? 입구로 들어오는 물은 골짜기 물이지만 빠져나가는 곳이 따로 없고 지하로 스며서 나가고 있습니다. 은환호라고 해서 둥근 은거울 같다고 하는 이름이 붙어 있어요. 바닥이 검어서 거울 역할을 합니다. 모든 것이 그대로 비칩니다. 비가 오지 않고 유입되는 물이 소량이 되면 잔잔해서 호수가 완전히 거울 같이 됩니다.” nbspnbsp소천지를 나와 녹연담으로 향했습니다. 녹연담은 원래 옥색의 맑은 물인데 어제 비가 많이 와서 황색으로 변해 있었습니다. 녹연담이 아니고 황연담이라면 대중들도 모두 웃었습니다.nbspnbsp▲ 녹연담nbsp녹연담을 나와 다시 셔틀 버스를 타고 지하삼림으로 향했습니다. 지하삼림은 말처럼 땅 속에 숲이 있는 것이 아니고 화산 활동의 영향으로 함몰된 넓은 면적의 땅에 숲이 형성된 것을 말합니다. 숲의 주변을 둘러싸고 절벽이 솟아 있어 마치 땅 아래에 숲이 형성된 것처럼 보입니다. 김홍신 작가님은 ‘대발해’라는 소설을 쓸 때 지하삼림을 보고 발해 군인들의 훈련장으로 묘사했다고 합니다.nbspnbspnbspnbsp대부분의 나무들은 바위 위에 붙어 있었는데 바위와 함께 툭 쓰러져 있는 나무들도 많아서 참 신기했습니다. 용암이 갈라진 틈 사이로는 깊고 좁은 계곡이 세찬 물살을 일으키며 흘러가고 있었습니다.nbspnbspnbspnbsp백두산에서 내려오는 길, 스님은 “백두산 보고 왔으니 백두산 노래를 다시 불러보자” 합니다. 올라갈 때 불렀던 노래보다 내려오면서 부르는 노래는 더욱 우렁찼습니다.nbspnbsp“백두산으로 찾아가자 ♬ 만주벌판 말을 달리던. 전사들의 투쟁의 고향 ♬ 살아쉬는 백두산으로”nbsp스님은 대중들의 우렁찬 노래 소리를 듣고 “백두산을 다녀오니 점심도 안 먹었는데 노래가 어제보다 훨씬 우렁차다” 며 칭찬을 해주었습니다.nbspnbsp이도백하에 도착해 늦은 점심 식사를 했습니다. 오전 내내 걸음을 걸었더니 다들 허기가 졌는지 밥맛이 꿀맛이라며 허겁지겁 먹는 모습입니다. 서로 먹을 것을 챙겨주며 조별로 친목도 한층 다져진 느낌입니다. 이렇게 해서 압록강과 백두산 일정을 모두 마쳤습니다.nbspnbsp오후에는 발해의 역사가 살아 숨쉬는 중원 대륙의 깊숙한 한복판을 향해 달려 갔습니다. 고구려 영토보다 2배나 넓은 광활한 영토를 갖고 중원을 누볐던 발해인들의 기상을 상상해보며 발해의 첫 수도였던 돈화에 위치한 동모산을 향했습니다.nbspnbsp버스 차창 밖으로 이도백하에만 있는 소나무인 ‘미인송’을 잠깐 볼 수 있었습니다. 미인송을 끝으로 노근한 몸을 이기지 못하고 모두들 하나둘씩 잠이 들기 시작했습니다.nbspnbsp이도백하에서 돈화까지 3시간 정도가 흐른 후 스님의 “동모산에 도착했다”는 알림 메시지에 잠에서 깨어 버스 밖으로 나왔습니다. 큰 평지에 삿갓을 덮어놓은 듯한 모양새의 낮은 산이 덩그러니 있었습니다. 성을 쌓기에는 좀 밋밋해 보이는 산 같았습니다. 그러나 큰 평지 위에 있어서 저 정도만 올라가도 주변이 훤히 보일 수 있을 것 같기는 했습니다.nbspnbsp동모산은 아직 발굴 중이라 출입을 금지하고 있었습니다. 직접 올라가 보지 못하고 먼 발치서 보기만 해야 해서 고구려의 산성 위에 올라가 봤을 때 보다 감흥은 조금 떨어지는 느낌이였습니다. 대중들의 이런 의구심을 읽었는지 스님이 간략히 설명을 해주었습니다.nbspnbsp▲ 동모산nbsp“아무리 봐도 저기에 어떻게 성을 쌓았나 싶죠? 저도 제일 처음에 왔을 때 그런 느낌이였어요. 성이 어떻게 쌓여져 있냐 하면요. 이게 대석하라는 강이예요. 지금은 물이 많이 말라 있는데 강물이 많이 흘렀다고 보시면 여기가 자연 해자가 되는 것입니다. 숲이 우거져서 그런데 가까이 가서 보면 약간의 절벽이 있습니다. 저기 능선이를 따라 성벽이 주욱 올라갑니다.nbspnbsp정상을 가운데에 두고 성벽이 뒤로 갑니다. 가까이 가보면 허물어진 성벽 위로 주욱 걸을 수 있습니다. 그런데 중국에서 접근도 못하게 하고 있죠. 앞에 길을 닦고 하는 것을 보니까 조만간 관광지로 열려고 하든지 무슨 수가 날 것 같기는 하네요.“nbsp스님의 자세한 설명을 듣고 나서야 ‘아, 그렇구나’ 하며 그제서야 모두 고개를 끄덕였습니다. 스님은 설명을 덧붙였습니다.nbspnbspnbsp“여기는 고구려 때 북쪽 국경 지대였습니다. 대조영이 고구려의 북쪽 국경 지대까지 도망을 온 것이죠. 그래서 이 성은 마치 발해에 있어서 고구려의 오녀산성과 같아요. 적이 공격하면 여기로 들어와서 은거한다는 것이죠.nbspnbsp그렇다면 평지성은 어디에 있었을까요? 저쪽 넓은 들판에 영승유지라는 곳이 있어요. 거기가 평지성이라고 추정하고 있습니다. 거기서 북쪽으로 23km 떨어진 육정산에서 정혜공주묘가 발견되면서 발해의 왕실 귀족 공동묘지가 발견된 것이죠. 보통 공동 묘지가 궁성으로부터 35km 떨어져 있거든요. 그런데 아직 확정을 못하는 이유가 유물은 나왔지만 성벽이 분명하게 남아 있지 않습니다. 항상 처음 나라를 세울 때는 산성을 쌓는 것에서 시작합니다. 방어가 중요하니까요. 그래서 동모산성을 첫 수도라고 하는 것입니다.”nbspnbsp이렇게 설명하면서 스님은 예전에 역사기행을 처음 시작한 초창기 때의 이야기를 들려주었습니다. 역사기행 초창기에는 발해 유적지 답사가 주를 이루었다고 합니다. 그런데 중국의 감시가 심해지면서 지금은 많은 곳이 접근조차 허용되지 않고 있어 지금은 예전보다 방문지가 많이 줄어들었다고 합니다. 조금은 씁쓸한 느낌을 간직한 채 다함께 기념 사진을 찍고 뒤돌아서 나왔습니다.nbspnbspnbsp현장 방문이 허용되지는 않지만 스님은 조금이라도 더 보여주시려는 듯 버스를 서행시키면서 설명을 이어갑니다.nbspnbsp▲ 버스 창 밖으로 본 육정산nbsp“저기 동그란 봉우리가 6개 보이죠? 저곳이 육정산입니다. 발해의 3대 문왕의 세 번째 딸의 무덤인 정혜공주묘가 저곳에서 발견되었습니다. 그래서 발해인이 스스로 쓴 역사 기록이 하나도 없었는데 그 무덤 속에서 기록이 나오면서 발해 역사 연구에 획기적인 변화를 가져 왔죠. 지금은 접근을 못하게 하고 있지만 영승유지는 육정산에서 오른쪽으로 더 가면 그 가까이에 있습니다. 여기 흐르는 강은 목단강입니다. 목단강 옆에 영승유지가 있습니다. 영승유지에서 동모산까지는 22.5km가 되기 때문에 유사시에는 동모산성으로 피난도 할 수 있었겠죠.”nbsp다음은 오늘의 마지막 방문 유적지인 강동 24개석을 찾아가 보았습니다. 돈화 시내의 지하로 들어가는 도로 옆에 철책으로 둘러처진 채 잡초가 무성하게 자란 채 덩그러니 있는 모습이 왠지 방치되고만 있는 것 같아 조금 안타깝게 다가왔습니다.nbspnbsp▲ 강동 24개석nbsp스님은 24개의 돌이 무엇으로 쓰였는지는 아직 수수께끼로 남아 있다고 알려주었습니다. 그리고 누군가 이 수수께끼를 푼다면 아마 박사 학위는 따논 당상이라고 웃으면서 말씀 했습니다. nbspnbspnbsp이렇게 기나긴 오늘 일정을 마치고 숙소에서 맛있게 저녁 식사를 한 후 8시부터는 발해의 역사에 대한 스님의 강연이 이어졌습니다.nbspnbsp돈화시는 작은 도시라 큰 규모의 식당이 거의 없다고 합니다. 가까스로 이 식당을 잡았는데 마침 식당의 에어컨이 고장나서 식사를 마치고 강연이 시작될 무렵 강연장은 찜통이 되었습니다. 찜통 더위를 대중들이 무척 힘들어하자 스님은 “사우나 하면 얼마나 시원해요? 기왕에 땀 흘린 거 흠뻑 흘립시다” 고 하며 대중들의 더위를 한방에 싹 날려주었습니다.nbspnbspnbsp스님은 고구려의 패망 과정과 발해의 건국 과정을 한편의 영화를 보듯이 재미있게 들려주었습니다. 그리고 발해와 신라와의 서먹했던 관계에 대해, 또 순식간에 대제국을 건설한 발해가 패망하는 과정에 대해 많은 이야기들을 들려주었습니다.nbspnbsp“발해인들은 자신들의 나라를 발해라고 부르지 않았습니다. 그것은 당나라가 발해와 국교를 정상화 하면서 그렇게 부른 것입니다. 발해는 자신들을 ‘진국’ 또는 ‘대진국’이라고 불렀습니다.nbsp발해는 3대 문왕 이후 왕위가 짧게 짧게 바뀌어 오다가 10대 선왕에 와서 해동 성국이라고 불릴 정도로 대제국의 형태를 갖추게 되었습니다. 행정구역으로는 5경 15부 62주가 될 정도로 번성을 했습니다.nbspnbspnbsp그러나 발해는 신라와는 앙숙이었습니다. 발해는 당나라와도 잘 지냈고, 거란족과도 잘 지냈고, 일본과도 잘 지냈는데 신라와는 전쟁을 하지는 않았지만 그렇다고 밀접한 관계도 없었습니다. 신라의 기록에도 발해와의 밀접한 교류에 대한 기록이 없습니다. 다만 강동 24개석 같은 것이 남경남해부 쪽으로 가는 길에 있고, 신라로가 있었다는 것을 보면 교류는 있었던 것 같은데 관계가 긴밀했다는 역사 기록은 없어요.nbspnbsp거기에는 자신들의 선조인 고구려를 멸망시켰다는 발해인들의 섭섭함이 있었을 것이고, 또한 신라는 발해에 대해 아쉬울 것이 별로 없었습니다. 우리도 지금 미국 하고만 친하면 되지 북한한테 별로 아쉬운 것이 없듯이 신라도 모든 면에서 당나라가 더 앞섰지 발해한테서 배울 것이 많이 있는 게 아니였죠. 더군다나 신라가 그렇게 역사 의식이 있었던 것도 아니죠. 발해 입장에서도 신라와의 교류보다는 일본과의 교류, 거란과의 교류, 당나라와의 교류가 더 중요했죠. 그렇게 남북 관계를 유지해 간 것 같아요.nbspnbsp그래서 당나라에서 황제가 외국 대사들과 회의를 할 때 신라와 발해는 항상 자리 다툼을 했다고 해요. 당시 당나라의 제일 친선국은 신라였죠. 그러나 발해는 대국이기 때문에 무시할 수가 없었죠. ‘서로 얼마나 친하냐’, ‘누가 더 대국이냐’ 이런 이유로 ‘신라가 상석에 앉아야 한다’, ‘발해가 상석에 앉아야 된다’ 해서 경쟁이 골치 아팠다 할 정도였던 것 같아요. 우리도 지금 미국이 일본과 더 친하냐, 한국과 더 친하냐 하는 얘기가 자주 나오잖아요. 그래서 한 번은 신라 대사를 옆에 앉히고, 한 번은 발해 대사를 옆에 앉히고 했다고 할 만큼 신라와 발해는 경쟁 관계에 놓여 있었던 것 같습니다.nbspnbsp800년대 말부터 900년대 초로 넘어오면서 당나라의 힘이 약해지면서 요서 지역이 비어 있는 상태에서 거란족이 일어나서 각기 흩어져 있던 거란족들을 야훌라보기가 통합해 요를 건국하게 됩니다. 그 힘을 빌어서 제일 먼저 공격한 것이 발해입니다. 상경용천부로 가는 길목인 부여성을 먼저 침공해서 함락이 되었고, 그러자 금방 상경용천부도 함락되어서 발해는 멸망하게 됩니다. 그 후 발해도 부흥군들이 일어나서 싸웠는데 결국 성공하지는 못하고 일부 지역에서 거의 100년 이상 독자성을 갖고 싸웠다고 해요.nbspnbspnbsp발해가 망하던 그 시기는 중국에서는 당나라가 망한 후 5대의 혼란 시기이고, 신라 말에는 후삼국이 쟁패하는데 특히 신라는 거의 쇠약해졌고 견훤과 왕건이 서로 격돌하는 시기였습니다. 이런 시기이다 보니까 발해가 망할 때 아무도 여기에 관여할 여가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발해의 유민 일부가 남쪽으로 내려와서 고려로 유입되는 그런 정도였습니다. 만약 고려가 강성했으면 발해의 역사를 좀 더 계승했겠죠. 현재 동북아의 역사 속에서 대제국을 건설했음에도 불구하고 역사적인 자료가 가장 빈약한 것이 발해입니다.”nbsp이어서 스님은 발해의 흥망성쇠와 밀접한 관련이 있었던 말갈족, 거란족, 여진족, 몽골족, 일본의 이야기를 하면서 발해는 이런 동북아의 소수 민족들이 중원을 한벅씩 지배해 보도록 하는 기폭제 역할을 했다는 점을 강조했습니다.nbspnbsp“발해의 역사에서 중요한 것은 인구 구성 상 말갈족이 많았던 데다가 나라를 세울 때 처음부터 고구려족의 산하에만 있었던 것이 아니라 거의 둘이 힘을 합해서 나라를 세우다시피 한 점입니다. 그래서 고구려와는 다릅니다. 고구려 때 말갈족은 저 밑에서 자치권 정도 갖고 있는 수준이여서 중앙 정부에는 말갈 귀족이 진출할 수 없었습니다. 그러나 발해는 중앙 정부까지 말갈 귀족의 대신들이 참여할 정도가 되었습니다. 그래서 말갈족은 국가 경영에 대해 큰 경험을 하게 됩니다. 그로 인해 발해가 망하니까 말갈족이 볼 때는 자신들이 고구려 때처럼 지배를 받는 민족이 아니였으니 발해는 자기들 나라라는 개념이 있었던 겁니다. 그런데 발해가 거란한테 망하게 되니까 자기들이 새로운 나라를 건설하는 꿈을 꾸게 된 것입니다. 그것이 금나라입니다.nbspnbsp그래서 금나라가 일어나자마자 맨 먼저 한 것은 철저하게 거란족을 없애는 것이였습니다. 여세를 몰아서 송나라를 압박을 했죠. 송나라가 요나라에게 시달리다가 이번에는 금나라에게 시달리다가 못 견뎌서 남쪽으로 내려간 것을 남송이라고 말합니다. 요나라와 고려가 부딪힌 것은 서희의 담판에 의해 화친을 했고, 금나라는 원래 고구려의 일부이기 때문에 서로 크게 부딪힐 염려가 없었고, 금나라는 고려를 가장 가까운 형제국으로 인식했기 때문에 큰 전쟁은 없었습니다.nbspnbsp그런데 이번에는 몽골족이 일어났습니다. 몽골족의 원나라가 일어나서 금나라를 쳐부스고, 그 힘으로 밀어 붙여서 남송까지 멸망시켜서 유라시아에 대제국을 건설했죠. 원나라가 망하고 명나라가 들어서면서 만주가 제대로 관리 안 되니까 말갈족인 여진족이 다시 후금을 세웠습니다. 거기다가 임진왜란으로 명나라와 조선이 피폐해진 약한 고리를 타고 여진족이 이곳 백두산에서 일어나 지금의 심양에 수도를 정하고 처음에는 후금으로 불리우다가 청이라 칭하면서 조선부터 항복 받고 명나라를 없애고 청나라를 건국했습니다.nbspnbsp청나라 입장에서는 몽골이 금나라를 멸망시켰으니까 철천지 원수잖아요. 그래서 청나라는 어떻게 했냐 하면, 몽골을 내몽고와 외몽고를 구분해서 통치를 했습니다. 내몽고는 직할 통치를 하고 외몽고는 자치권을 주고 간접 통치를 한 겁니다.nbspnbsp그런데 청나라가 망하니까 직할 통치했던 내몽고는 중국 땅이 되고, 외몽고는 러시아의 도움을 얻어 독립을 하게 됩니다. 몽고족이 전체 1100만명 정도 되는데 현재 독립국가인 몽고에는 300만명 밖에 살지 않고 내몽고에 한 700만명이 있습니다. 훨씬 더 많은 수가 중국에 소속되어 있죠. 그 다음에 러시아쪽에 있는 자치공화국에 100만 정도가 있습니다. 그래서 몽골에 가면 몽골 공화국이 있고, 1100만의 몽골인들이 독립해야 된다고 하는 대몽고 공화국 운동이 있습니다. nbspnbspnbspnbsp동북아의 여러 민족은 고대로 우리 민족의 아래에 같이 있던 소수 민족이였는데 그러다 결국 발해가 멸망하니까 종주자가 없어졌죠. 그래서 고조선이 약하니까 선비족이 제일 먼저 일어났고, 고구려가 멸망한 후 일어난 것이 거란족이고, 그 다음에 여진족이죠. 그 다음에 몽골족이 일어났고, 그 다음에 일본이 또 일어나서 만주를 점령했죠. 이런 전체 역사 속에서 발해를 봐야 합니다. 발해를 어떻게 계승했느냐 하는데 꼭 발해를 우리 민족의 역사만이라고 보지 말고 발해는 동북아의 소수 민족들이 중원을 지배하도록 하는 대변혁의 기폭제 역할을 했다고 볼 수도 있습니다. 이런 점을 이해하고 내일 상경용천부를 같이 보면 좋을 것 같습니다.” nbspnbspnbsp스님의 역사관 속에는 꼭 우리 민족 만을 보는 것이 아니라 우리 이웃의 주변 민족까지 함께 보는 시각이 늘 함께하는 것 같아 다시 한 번 그 깊이에 감명을 받게 됩니다.nbspnbsp오늘 아침 백두산 천지를 보았다는 기쁨도 잠시 어느새 피곤해진 몸을 이끌고 모두들 숙소로 돌아갔습니다.nbspnbsp내일은 발해의 중심이였던 상경용천부의 성터를 둘러보고, 주작대로를 따라 외성터 내에 위치한 흥륜사를 방문한 후 두만강 유역으로 이동해 주요한 독립운동 유적지인 봉오동 전투터를 보면서 이제 독립운동에 대한 공부로 넘어가게 됩니다. 또 소식 전해드리겠습니다. nbsp
2015.8.4 동북아 역사기행 3일째, 압록강과 북한
nbsp안녕하세요. 오늘 스님은 동북아 역사기행 3일째를 맞이하여 압록강을 따라 이동하면서 강 건너편 북한 땅을 보면서 ‘북한의 현실’에 대해 많은 이야기들을 들려주었습니다.nbspnbsp오늘도 스님은 새벽 3시에 일어나 기도를 한 후 4시 30분부터 숙소를 나오는 대중들을 반갑게 맞이하며 역사기행 3일째 일정을 시작하였습니다.nbspnbsp5시에 집안을 출발한 버스는 4시간 30분 후 림강을 지났고, 다시 림강에서 압록강 상류를 향해 4시간을 올라가는 여정을 가졌습니다. 림강에서 백두산 최상류까지 올라가면서 많은 계곡 물들이 압록강으로 합류하게 되는데 특히 중국 쪽에서 흘러드는 계곡 물은 차례대로 번호를 붙여 24도구로 구분하고 있다고 합니다. 6도구, 8도구 지나갈 때마다 스님이 알려주어서 현재 기행단이 어디쯤 가고 있는지를 대략 파악할 수 있었습니다.nbspnbspnbsp압록강 너머의 북한 땅을 바라보니 산이 온통 뙈기밭으로 개간되어 있었습니다. 사람이 서 있기도 힘든 가파른 곳에 옥수수, 콩 등 작물을 심었고, 산에 있어야 할 나무들은 혁명 전적 유적지를 제외하고는 거의 보이지 않아 중국의 울창한 산림과 너무나 대비가 되었습니다.nbspnbsp▲ 압록강 너머로 보이는 북한의 뙈기밭nbsp많은 북한 주민들이 출근하기 전이나 퇴근 후에 뙈기밭을 열심히 일군다고 합니다. 직장 일에 집중하기 보다는 각자의 뙈기밭에 연명해 식량을 마련하다고 하니 안타깝기만 합니다. 스님도 ‘문전옥답에 인력이 효과적으로 쓰여야 할텐데, 산비탈에 가서 농사를 지으니 생산량이 거의 없지요. 먹고 살기 위한 몸부림은 이해가 되지만 소중한 인력이 얼마나 낭비되고 있습니까’ 라며 안타까워 했습니다.nbspnbsp간혹 보이는 집들은 아주 낡아 보여서 한눈에도 남루함이 느껴졌습니다. 날씨가 맑으면 빨래하는 주민들, 물놀이 하러 나온 아이들을 많이 목격할 수 있는데, 오늘은 비가 내리고 있어서 북한 주민들은 거의 보이지 않았습니다.nbspnbsp▲ 버스 창문으로 보이는 북한 혜산시의 모습nbsp스님은 안타까운 눈빛으로 멍하니 북한 땅을 바라보고 있는 대중들에게 북한이 왜 이렇게 어렵게 되었는지, 스님이 북한 동포 돕기 활동을 시작하게 된 동기와 과정에 대해 이야기를 들려주었습니다.nbspnbsp“94년과 95년 대홍수가 있었고, 95년에 이곳에 역사기행을 왔을 때 북한이 많이 어렵다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96년에 왔을 때는 중국 친구가 저를 압록강으로 데려가서 영양 실조 상태의 북한 아이들을 직접 보여줘서 그때부터 북한동포돕기에 본격적으로 나서기 시작했습니다. 정토회관 건립 불사를 하기 위해 7층 건물 짓는다고 땅도 구해놓고 설계도까지 다 만들어놓고 공사를 시작하려는 순간 이 소식을 접했어요. 그래서 제가 ‘사람이 죽어가는데 무슨 불사는 불사냐? 건물은 지금 못 지으면 10년 후에 지으면 되지’ 하고는 건물을 포기하고 북한동포돕기를 시작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반대했는데 심지어 어떤 신도는 ‘스님 평생에 서울 시내에 이 땅 팔아먹고 다시 땅을 사서 절을 짓게 되면 내 손가락에 장을 지지겠다’ 고 하기도 했어요. 이렇게 해서 96년 겨울부터 97년, 98년, 99년, 2000년 겨울까지 매일 울고 다니며 인도적 지원을 호소했습니다.nbspnbspnbsp97년에는 전국을 돌아다니며 울고 불고 하면서 죽어가는 북한 동포를 살리자고 강의를 하고 다녔는데 그 해에 대통령 선거가 있었어요. 선거가 시작되니까 북한 동포 돕기는 뒷전이 되었지요. 한국에서는 도저히 안 되니까 그해 가을부터는 미국으로 가서 호소를 했고, 그 때 미국에서 한반도 문제 관련해서 영향력 있는 사람들도 만나게 되었어요. 그 사람들을 통해서 대북 인도적 지원을 하도록 요청했고, 마침 다음 해에 김대중 정부가 들어서면서 한국 내의 분위기도 바뀌고 이렇게 해서 98년부터 대북 인도적 지원이 시작되면서 1999년에 대량 아사가 멈추었습니다. 저희들이 낸 통계에 의하면 95년 8월부터 98년 8월까지 만 3년 동안 300만명이 아사한 것으로 파악되었습니다.nbspnbsp그러면 왜 이렇게 북한이 대량 아사가 일어날 정도로 경제가 붕괴하게 되었는가? 1989년 동유럽이 붕괴되고 중국이 시장 경제를 도입해서 실물 거래를 하게 되어 북한은 외환 확보를 못했고, 결국 그로 인해 에너지 난을 겪었고, 에너지 난으로 모든 공장이 멈추었고, 농자재를 생산하지 못하니까 농업 생산량이 급격하게 떨어졌고, 노동자들에게 배급을 주지 못해서 함경북도의 노동자들이 먼저 대량 아사를 하게 되고, 시간이 지나니까 농업 생산량이 더 떨어져서 노동자 뿐만 농민도 굶어죽게 되었습니다. 즉 노동자에서 농민으로, 동부에서 서부로, 평민에서 당원으로 이렇게 확대가 되면서 군인들까지 굶어죽는 일이 벌어지게 된 거예요. 북한은 이 시기를 고난의 행군 시기라고 부릅니다. 어쨌든 일단 국제적인 지원과 함께 죽을 만큼 다 죽고 난 뒤에야 대량 아사는 멈추게 된 것입니다.nbspnbsp그렇게 사회의 기초가 무너지니까 장마당에서 장사해서 먹고 사는 사람들이 생기고, 북한 정부는 이를 단속하고, 굶어죽으니까 다시 풀고, 이렇게 국가 정책에 의해서 시장화가 이뤄진 것이 아니라 생존을 위한 민중들의 투쟁이 시장화를 가져오게 되었고, 뙤기밭도 가져오게 된 것입니다. 허가 받고 다니는 것도 거의 없어지고, 북한 사회 안의 정보도 유출되면서 북한은 많은 변화를 겪게 되었습니다. 세계에서 가장 열악한 생존 조건이 되었고, 그래서 주민들의 이탈을 막으려고 하다 보니까 세계에서 가장 열악한 인권 침해 상황에 놓인 것입니다.nbspnbsp국가 안보의 취약함을 보완할려고 핵 개발을 시도했는데 미국과의 합의로 그 핵을 동결시키면서 미국에서 유류 지원을 했죠. 그러나 부시 정부가 들어서면서 이것을 중단시키니까 북한은 핵개발에 더욱 박차를 가하게 되었고, 이 핵문제는 지금까지도 아무런 진척 없이 북한은 핵보유국을 선언하고 이에 대해 미국은 봉쇄를 강화해서 대치 국면에 계속 놓여 있는 상태입니다.nbspnbsp북한은 처음부터 저렇게 가난했던 것이 아니라 60년대에는 대동강의 기적을 이루었다 할 만큼 제3세계 가운데에서는 잘 사는 축에 들어갔습니다. 그러나 미소의 분쟁과 그 사이에서 살아남기 위해 주체 사상을 내세운 독재 체재의 강화, 이런 것들로 기술 보다는 이념을 강조하면서 정체되기 시작했습니다. 미국이나 서유럽이 급격히 혁신 기술들을 개발했는데 이와 차단되면서 기술 혁신이 뒤지게 되었습니다. 여기에 동유럽의 붕괴와 중국도 시장 경제로 가면서 배후를 잃어버리게 되었고, 미국의 경제 봉쇄로 국제사회에 나올 수 없게 되면서 경제가 급격하게 붕괴가 되었습니다. 그래서 첫째 외환 위기, 둘째가 에너지 난, 그로 인한 모든 공업의 붕괴, 이것이 농업의 붕괴로 이어지면서 사회 붕괴로까지 가게 되었습니다.nbspnbsp그러나 정치와 군대라고 하는 상부 구조는 유지하고 있습니다. 하부 구조만 보면 내일 망할지도 모를 정도로 허약하지만 상부 구조는 내일이라도 한국을 제압할지도 모르는 극과 극의 상황이 벌어지고 있습니다. 장기적으로 보면 북한 정권은 불안정합니다. 그러나 단기적으로는 그렇게 쉽게 붕괴될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이 두가지 측면을 동시에 봐야 합니다. 그러면서 북한만 볼 것이 아니라 국제 사회가 바뀌고 있기 때문에 이런 북한을 어떻게 포용을 해서 북한 주민들의 생존권과 인권을 보장하고, 우리들도 더 성장할 수 있는 해답을 찾아내느냐. 이것이 통일의 과제입니다. 통일로 어떻게 나아가야 하며 통일 이후에 어떤 세상을 만들 것이냐. 이것이 이 땅에 살고 있는 우리들의 과제입니다. 여기에 대한 답을 얻기 위해서 우리가 이곳에 온 것이예요.nbspnbsp북한을 무조건 적대하는 일부 우파도 바른 관점이 아니고, 북한에 대해서 동조하거나 동경하는 일부 좌파도 바른 관점이 아닙니다. 이런 것을 글로 배우는 것이 아니라 현장에 와서 보고 아픔도 느끼고 그들의 모순도 보고 이 속에서 공부하고자 하는 것입니다.”nbsp단순히 뙈기밭을 구경하고 가슴 아파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지금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을 찾고 행동하기 위해서 역사기행을 온 것이라고 거듭 강조하시는 것 같았습니다. 다행이 이번 기행단은 그 일을 하기 위해서 모인 통일의병들이 주축이 되어 있어서 그런지 스님의 간절한 호소에 더욱더 큰 공감을 보여주었습니다.nbspnbsp긴 시간을 달려 버스는 어느덧 장백현에 도착했습니다. 장백에는 발해 시대의 탑 중에서 유일하게 남아있는 영광탑이 있습니다. 비가 오는 와중에 끝이 보이지 않은 계단을 쉼없이 올라가니 정상 부위에 높은 탑이 하나 보였습니다.nbspnbsp▲ 영광탑으로 올라가는 계단nbsp스님은 “발해 시대의 사람들은 대부분 불교인이였고 옛 법도에 따라서 참배를 하려고 한다” 면서 “불교식으로 예참 공양을 함께 올리자”고 했습니다.nbspnbsp▲ 발해 시대에 세워진 영광탑nbsp정성껏 예참 공양을 올린 후 곧바로 평화와 통일에 대한 발원을 스님께서 해주었습니다.nbspnbsp“오늘 저희 한국에서 온 고구려 발해 역사기행 참가자 140여명은 발해 시대에 건립한 장백현 영광탑 앞에서 지난 1100년 동안 이 탑을 참배하고 공양 올리지 못한 잘못을 참회 드리옵고, 늦게 나마 이렇게 시간이 되어 저희 대중이 다시 찾아와 옛과 다름 없이 공양 올리노니 저희의 이 간절한 소원을 성취시켜 주시옵소서.nbspnbspnbsp저희 한민족은 하느님을 받들고 대대로 이 땅에 강과 산을 지켜왔는데 인연이 다했는지 저희의 공덕이 모자랐는지 저희가 살던 고향을 잃어버리고 반도에 갇혀 1100년 동안 살아왔습니다. 그런데 근래에 이르러 그 강토 마저 일제의 침략을 받아 지배 당하고 또 해방이 되자 마자 외세에 의해 분단이 되어 올해로 분단 70년이 되도록 남북 간에 갈등이 잠들지 않고 곧 전쟁이라도 날 것처럼 갈등이 격화되고 있습니다. 지난 50년 동안 저희가 피땀 흘려 쌓아온 재산과 인명이 전쟁의 참화로 잿더미가 되지 않도록 다시는 이 땅에 전쟁이 없는 항구적 평화를 발원하옵니다.nbspnbsp더 나아가 북쪽은 생존의 위기에 내몰리고 있고, 남쪽은 성장이 둔화되고 정체와 후퇴의 기로에 서 있습니다. 이 민족사의 위기를 극복하려면 통일만이 유일한 길이오니 남북이 화해하고 협력하여 평화를 지키고 통일을 성취할 수 있도록 제불 보살님과 천룡팔부 신중님들은 옹호하여 주시옵고, 환인, 환웅, 단군 삼신님과 역대 조상 영가님들은 저희의 이 발원이 곧 성취될 수 있도록 저희에게 온갖 힘을 불어넣어 주옵소서.nbspnbsp저희의 통일은 저희만의 이익을 위해서가 아니고 이웃과 더불어 사이좋게 서로 도우며 살아갈 새로운 문명, 새로운 세상으로의 출발로 통일을 발원하옵나니 통일의 첫발을 딛고 동아시아의 평화 공동체를 형성하고 인류의 평화와 복리와 번영을 발원하오니 저희의 이 평화와 통일에 대한 발원을 증명하여 주옵시고, 또한 보살펴 주옵소서.nbspnbsp또한 이렇게 고단한 몸을 이끌고 이곳 혜산과 장백에 이르고 탑산에 올라와 간절히 발원하옵나니 순례 대중 일동들 건강하고 다생겁래 모든 업장 소멸되고 세세생생 보살도를 행하여 자유와 행복을 만끽하는 삶을 살 수 있도록 옹호하여 주옵소서.”nbspnbsp대중들도 스님의 간절한 발원을 가슴에 새기며 광활한 만주 벌판을 누빈 발해인들의 기상을 이어받아 새로운 통일 코리아를 열어갈 것을 함께 다짐했습니다.nbspnbsp발원 기도 후 스님은 “발해 시대의 탑이 다 없어졌는데 이 탑 만이라도 웅장한 모습으로 산 정상에 있다는 것은 우리들에게 큰 복이다” 라고 하면서 올라온 김에 함께 기념 사진을 찍자고 했습니다. 카메라가 찰칵 하자 모두들 ‘통일 의병’을 외치며 환하게 웃었습니다.nbspnbspnbsp그리고 양강도의 수도인 혜산을 내다보며 이곳에서 좋은벗들이 북한 난민 돕기를 했던 이야기를 듣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독립운동 할 때 만큼이나 위협을 무릅쓰고 춥고 배고픈 난민들을 도왔던 이야기에 눈시울이 붉어졌습니다.nbspnbspnbsp버스는 드디어 점점 백두산에 가까워지기 시작했습니다. 압록강 상류로 갈수록 강폭은 좁아지고 나중에는 작은 냇가처럼 좁아졌습니다. 폭짝 몇 발자욱만 건너 뛰면 곧 넘어갈 수 있는 거리가 되었습니다.nbspnbsp버스 안에서의 시간이 길어지자 스님이 “자기 소개 시간을 갖자”고 했습니다. 한명씩 앞으로 나와 어떻게 역사기행에 참가하게 되었으며 3일을 함께 보낸 소감이 어떤지 속깊은 나누기를 하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역사기행에 참가하기 위해 2년 전부터 적금을 들었다는 분, 남편의 반대가 심해 참가신청 한달 전부터 남편에게 고분고분 숙였다는 분, 전생에 독립운동가였는지 이곳에 오니 매일 매일 가슴이 뛴다는 분 등 다양한 사연과 이야기를 들으며 버스 안은 웃음이 넘쳐 흘렀습니다.nbspnbspnbsp어떤 분은 통일 노래를 힘차게 부르기도 하고, 마음나누기가 일찍 끝난 버스는 자료집에 있는 통일 노래를 함께 배워보는 시간도 가졌습니다.nbspnbspnbsp오후가 되자 저 멀리 구름 사이로 붉은 해가 모습을 비추었습니다. 중국에 온 지 3일이 지나가고 있지만 아직 햇살 한번 구경하지 못했는데 갑자기 모습을 드러낸 해를 보고 대중들은 기쁨의 탄성을 내질렀습니다. 내일 백두산 천지에 올라가는데 천지를 선명하게 볼 수 있겠다는 기대감에 모두 흥분을 감추지 못했습니다. 스님도 “너무 오랜만에 해를 봐서 그런지 저녁에 지는 해인데도 마치 아침에 뜨는 해 같다”며 웃음을 내비쳤습니다.nbspnbspnbspnbsp백두산의 깊은 산속으로 들어와 서쪽 문 밖 송강하 지역에 도착해 저녁 식사를 했습니다. 저녁식사 후에는 이번 기행의 실무를 맡고 있는 조춘호 선생님이 기행단 전체를 위해 통화 포도주를 보시해서 다함께 건배를 했습니다.nbspnbspnbsp이어서 장기자랑 시간을 가졌습니다. 각 지역별로 노래 부르고 싶은 사람들이 나와서 노래 한자락씩을 뽐내었습니다. 온갖 노래들이 이어지면서 후끈 열기가 달아올랐습니다.nbspnbsp장기 자랑을 마치고 스님은 내일 오르게 될 백두산에 대해 설명을 해준 후 오늘은 하루 종일 북한 땅을 보면서 왔는데 북한을 어떻게 바라봐야 하는지, 북한 주민들의 생존권과 인권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무엇을 해야 하는지에 대해 강연을 해주었습니다.nbspnbspnbsp“오늘은 안개가 많이 껴서 북한의 모습을 그렇게 선명하게 보지 못하여 아프게 다가오지는 않았을 거예요. 정말 가슴 아픈 것은 뙈기밭입니다. 안 죽고 살려고 발버둥친 인간의 처절한 노력 같아서 너무 가슴 아프거든요. 이념을 떠나서 저렇게까지 살려고 발버둥을 치는데... 식량 버리는 게 엄청난 죄라는 것을 아시겠죠?nbspnbsp식량 정도 주는 것은 북한 정부하고는 아무 관계가 없는 거예요. 현재 유엔에서 말한 인도적 지원이라는 것은 사상과 이념, 종교, 체제, 남녀, 모든 것을 떠나서 인간은 굶어죽으면 먹여살려야 되고 병들면 치료해야 된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왜 북한 주민만 유엔이 정한 인간으로서의 당연한 권리를 외면하느냐 말입니다. 이게 증오심이에요. 남북한의 증오심이 문제지요.nbspnbspnbsp북한에 끌려 가라든지 북한을 좋게 보라는 얘기가 아니라 그들이 정치를 잘못하고 그들이 나쁜 짓을 한 것과 인도적 지원은 관계가 없다는 것입니다. 굶어죽으면 일단 살려야 돼요. 극악한 범죄자도 최종적으로 판결이 나서 죽일 때 죽이더라도 살아있을 때까지는 보살펴야 되는 거예요. 북한 정권에 대해서도 나중에 심판을 할 때 하더라도 주민들은 살려야 하잖아요. 더구나 주민들은 범죄자도 아니잖아요. 그런 면에서 인도적 지원의 문제는 반드시 해야 되는 거예요. 저렇게까지 살고 싶어 하잖아요. 내가 북한 체제를 반대하는 것과 인도적 지원은 별개로 생각해야 되는데 우리가 사람을 미워하면 이런 일이 생겨나는 겁니다. nbspnbsp예를 들어 친일배를 미워한다고 친일배의 후손까지 미워하면 안 됩니다. 당사자를 미워하는 것은 친일을 했기 때문에 그럴 수 있지만 그 자식은 친일에 대해 알고 태어난 것이 아니잖아요. 그걸 가지고 차별하는 것은 올바르지 않습니다. 일본의 군국주의를 미워하고 비판하고 경계하는 것은 좋지만 일본 사람을 미워하는 것은 올바른 것이 아니예요. 그들이 저지른 침략의 범죄는 그들의 조상이 한 것이지 지금 태어난 아이들이 한 건 아니잖아요. 막연히 일본놈이라고 해서 미워하는 것은 옳지가 않습니다. 그런데 북한 주민들은 북한 정부로부터도 피해를 입는 사람들인데 이중적 피해를 준다는 것은 맞지 않아요. 이것을 너무 이념적으로 접근하면 안 돼요. 북한 체제의 유지와 붕괴에 관계없이 굶어죽는 사람은 구제해야 한다는 게 기본적인 관점이 되어야 합니다.nbspnbsp그리고 통일은 우리 남한의 미래의 비전을 위해서도 필요하지만 북한 주민들의 생존권이 해결되는 길이기도 합니다. 북한이 개혁 개방이 되어서 생존권이 보장되고 인권이 개선되려면 시간이 많이 걸릴 것이고 또한 그것은 쉽지도 않습니다. 긴장이 조성되면 어떤 나라든 체제를 유지한다는 명목 하에서는 사람이 굶어죽는 것도 외면하고 인권 침해도 외면할 수 밖에 없습니다.nbspnbsp그렇기 때문에 남북 관계의 긴장을 완화시키고 통일로 가는 것이 북한 주민들의 생존권을 제일 빨리 보장하고 인권 개선을 가장 빨리 하는 길입니다. 그러니까 우리의 미래 이익을 위해서나 북한 주민들의 이익을 위해서나 평화와 통일은 우리 전체의 이익을 위해서 가장 필요한 일이라는 것입니다.nbspnbsp남한은 지금 경제가 정체되어 있는데 정체 국면을 돌파하려면 통일 만이 살 길이라고 하듯이 북한 주민의 생존권과 인권을 보장하기 위해서도 통일만이 가장 빠른 길입니다. 한쪽의 이익을 위해서 한쪽을 해치는 것이 아니라 양자를 위해서 다 필요한 거예요. 그런 의미에서 지금의 통일 문제는 같은 민족이니까 통일하자고 하는 것과 같은 옛날 운동권적인 통일과는 차원이 다른 얘기입니다. 좌니 우니 옛날에 잘했니 못했니 같은 얘기는 더 이상 불필요해요. 우리들의 현재 이익을 훼손하지 않고 미래의 이익을 위해서도 통일만이, 이념적 통일이 아니라 현실적으로 통일만이 우리의 미래에 희망을 가져올 수 있는 일입니다. 그런 것들을 현장에서 보는 게 필요하다 싶습니다.”nbspnbsp남한과 북한 모두에게 통일은 큰 희망이 될 수 있다는 말씀에 대중들도 우레와 같은 박수 갈채를 보냈습니다.nbspnbspnbsp마지막으로 스님은 내일 올라갈 백두산과 관련해 잘못 이해하는 것이 있는 것 같다며 간략히 설명하면서 강연을 마쳤습니다.nbspnbspnbsp“내일 백두산에 올라가서 그 기상을 느껴볼 텐데요. 왜 환웅 천왕님이 태백산 아래에 신시를 건설했을까요. 한국적으로 산을 생각하니까 태백산 아래라고 하면 자꾸 골짜기 같은 것을 생각하는데 백두산은 동북아 대륙인 몽골과 만주, 중원 북부 지역 전체에서 제일 높은 산이에요. 만주벌의 어디에 나라를 세워도 다 백두산 아래에 세운 것이 됩니다. 백두산이 머리 부분이에요. 그래서 이름이 ‘백두’이잖아요. 인도나 양자강 이남 어디에 세웠다는 뜻이 아닙니다. 동북아 대륙, 한반도와 만주, 이 지역에서 가장 높고 웅장한 산이 백두산입니다. 백두산에 대한 그런 이해를 하면서 내일 백두산 천지에 올라가 보도록 하겠습니다.”nbsp동북아 대륙에서 가장 높고 웅장한 산이 백두산이라는 말에 선조들도 자연적으로 백두산을 향한 마음이 남다를 수 밖에 없었겠구나 하는 생각이 절로 들었습니다. 식당에서 간단히 강연을 마치고 숙소가 있는 이도백하로 향했습니다. 밤하늘에는 별도 보였습니다. 왠지 내일 백두산 천지가 맑게 개인 모습을 보여줄 것 같은 기대감과 함께 잠자리에 듭니다.nbspnbspnbsp내일은 이도백하에서 백두산 북편으로 올라 천지를 봅니다. 또 비룡 폭포와 소천지, 지하삼림을 본 후 발해의 땅으로 넘어 갑니다. 동모산, 강동 24개석을 본 후 돈화로 들어가는 일정입니다. 내일 또 소식 전해드리겠습니다.nbsp
2015.8.3 동북아 역사기행 2일째, 집안 고구려 유적지
nbsp안녕하세요. 오늘 스님은 동북아 역사기행 2일째를 맞이하여 집안에 위치한 고구려 유적들을 안내하며 고구려인들의 기상과 생활 모습, 그 의미에 대해 안내했습니다.nbspnbsp새벽 3시에 일어나 기도를 한 후 4시 30분부터는 버스 앞에 서서 환한 웃음으로 숙소에서 나오는 기행단을 맞이해 주었습니다. “편안히 잘 주무셨어요?” 라고 스님이 묻자, 대중들은 “네” 라고 흔쾌히 대답하며 기쁜 마음이 되었습니다.nbspnbsp버스가 출발하자 먼저 스님은 오늘 일정을 간략히 브리핑해 주었습니다. 오늘은 전체 역사기행 일정 중에 유적지를 가장 많이 보는 날입니다. 고구려의 첫 수도인 홀본성을 출발해서 고구려의 두 번째 수도인 국내성으로 가는 일정이고 총 7개의 유적지를 둘러볼 예정입니다.nbspnbsp가장 먼저 국동대혈을 시작으로 여정을 시작하였습니다. 국동대혈로 가는 길에 보이는 압록강변의 북한은 손에 잡힐 듯 가까이 보였습니다. 가파른 산 전체를 둘러싼 뙤기밭을 보면서는 굶주린 북한 주민들이 얼마나 생존을 위해 몸부림을 쳤는지 느낄 수 있었습니다.nbspnbsp▲ 버스 차창 밖으로 보이는 북한의 뙤기밭. 압록강도 북한 쪽은 흙탕물인 반면 중국 쪽은 물이 맑습니다. 아마도 나무가 없는 북한의 민둥산에서 쓸려내려온 토사가 원인인 듯 합니다. nbspnbsp또 강가에서 물놀이를 하는 북한 아이들의 모습은 통일이 빨리 되어 저 아이들이 더 이상 배를 굶지 않았으면 하는 마음으로 번져 가기도 했습니다.nbspnbsp어느덧 버스는 국동대혈이 있는 산 아래에 도착했습니다. 국동대혈은 국내성의 동쪽에 있는 큰 동굴을 의미하며 고구려의 왕이 하늘에 제사를 지내던 곳입니다.nbspnbsp버스에서 내리자 빗줄기는 더 굵어지고 비옷 속에 땀을 뻘뻘 흘렸지만 기행단은 준비한 제물을 가지고 정성을 다해 국동대혈로 향했습니다.nbspnbspnbsp올라가는 도중 관음굴이라는 큰 동굴이 나왔고 동굴 안에 마침 불상이 있어서 스님이 잠깐 기도를 하고 가자고 하셔서 관세음보살을 염하며 잠시 우리 모두의 행복을 발하는 기도를 했습니다.nbspnbspnbsp조금 더 올라가니 ‘장상애’라고 적힌 큰 바위가 나타났습니다. 두 바위는 손을 마주잡고 입을 맞추려는 연인의 모양을 하고 있었습니다. 스님은 “고구려의 2대 유리왕에게는 권력가의 딸과 사랑하는 애첩 두 부인이 있었는데 다툼 끝에 집으로 돌아가는 애첩을 데리러 갔다가 혼자 돌아온 유리왕이 두 마리 꾀꼬리가 노니는 것을 보고 이곳에서 ‘황조가’를 불렀다는 설화가 있다”며 “두 사람의 사랑이 바위가 된 곳”이라고 알려주면서 그 설화를 아주 재미있게 이야기해 주었습니다. 바쁜 숨을 고르며 한바탕 웃는 시간을 가질 수 있어 참 좋았습니다.nbspnbsp▲ 바위 앞에서 유리왕의 황조가에 얽힌 설화를 이야기해 주고 있는 스님nbsp다시 조금 더 올라가니 드디어 앞뒤로 뻥 뚫린 국동대혈이 나타났습니다. 하늘로 통한다고 하여 ‘통천동’이라고 불리기도 한다고 합니다. 정성스레 제단을 차리고 한나라 환인 하느님, 배달 나라 환웅 천왕님, 조선을 건국한 단군 왕검님, 부여를 창건한 해모수님, 그리고 고구려를 건국한 동명성왕님 이렇게 다섯 분의 위패를 모신 후 다함께 천제를 지냈습니다. 안개가 자욱해서 그런지 신령스러운 기운이 감돌았습니다.nbspnbsp▲ 국동대혈nbsp기행단 138명을 대표하여 이번 역사기행 참가자 중에 한명인 김두관 전 지사님이, 통일의병을 대표하여 해군 장군 출신인 이병록님, 정토회 통일의병을 대표하여 박금주 의병, 이렇게 3명이 앞에 서서 술잔을 올렸습니다.nbspnbsp스님은 고구려의 후예로써 1300여년 만에야 이렇게 찾아온 것을 참회하면서 한반도의 평화통일과 동아시아 공동체 건설을 천지신명께 간절히 발원하였습니다.nbspnbspnbsp“인류 최초의 문명을 이루신 한나라의 환인님,nbsp우리 민족 최초 국가 배달 나라를 건국하신 환웅 천왕님,nbsp신시를 새롭게 하여 조선 나라를 건국하신 단군 왕검님,nbsp조선 나라를 계승하여 부여를 건국하신 해모수님,nbsp조선의 잃어버린 옛땅을 되찾고자 다물군을 이끌고 새로운 나라를 건국하신 고주몽님,nbsp백제의 온조 대왕님, 신라의 박혁거세 대왕님, 가야의 김수로 대왕님,nbsp고구려를 계승한 발해의 대조영 대왕님, nbsp고구려의 정신을 계승하고자 고려 나라를 세우신 왕건 대왕님,nbsp고려를 계승한 조선 나라의 태조 대왕님,nbsp대한제국의 고종 황제님,nbsp대한민국 초대 이승만 대통령님,nbsp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김일성 주석님,모든 천신과 조상님들께 두손 모아 합장하오며 발원하옵니다.nbspnbsp한반도에 영원한 평화가 이루어지고 우리 민족이 통일되어 번영하는 통일코리아를 발원하옵나니 저희의 이 발원이 성취될 수 있도록 굽어살펴 주시옵소서. 고구려 패망 이후 1300여년이 지나도록 천신님들과 조상님들을 찾아뵙지 못한 저희의 잘못을 너그러이 용서해 주시고, 대한민국은 백성이 나라의 주인이기 때문에 대한민국을 대표하여 이렇게 저희 대중 일동과 통일을 발원하는 통일의병들이 이곳에 왔습니다.nbspnbspnbsp천제님께 발원하오며 조상님들께 발원하옵나니 저희들의 이 통일 발원이 성취될 수 있도록 온갖 가피를 내려주시옵소서. 한 핏줄로 태어나 함께 피를 나눈 형제인 북한 동포들 수백만이 굶어 죽어가는 데도 외면한 저희들의 잘못을 너그러이 용서하여 주옵시고 저희들이 다시는 이런 어리석음을 범하지 않고 함께 공존하고 함께 번영하는 새로운 길을 열어가겠사오니 저희들의 이 발원이 성취될 수 있도록 굽어살펴 주시옵소서.nbspnbsp저희들의 이 원이 성취된다면 과거 고구려 때처럼 나라의 최고 지도자가 매년 이곳에 와서 천신님들과 조상님들께 감사의 제사를 지낼 것을 약속하오니 저희에게 그런 날이 돌아올 수 있도록 저희들을 옹호하여 주옵소서. 오늘 이 자리에 참여한 통일의병 각각이 나라의 주인으로서 나라의 평화와 통일의 역군이 될 것을 발원하오니 이들의 건강과 안전을 지켜주시옵소서. 다시한번 환인, 환웅, 단군 삼신님과 해모수, 고주몽, 대조영 등 민족의 정통성을 계승한 조상님들께 저희들이 그 정신을 길이 이어갈 것을 발원하옵나니 저희들의 이 발원이 성취될 수 있도록 굽어살펴 주시옵소서. 삼배로써 발원을 하옵나니 저희들의 이 발원이 성취될 수 있도록 옹호하여 주옵소서.”nbspnbsp스님의 발원에 따라 대중들도 삼배를 했습니다. 많은 대중들이 눈시울을 붉혔습니다. 제물로 올렸던 음식과 술로 음복을 한 후 둥글게 서서 손을 맞잡고 남북한이 하나 되기를 간절히 기원하며 ‘우리의 소원은 통일’ 노래를 함께 불렀습니다. 기행단은 점점 통일에 대한 열기로 한껏 달아올랐습니다.nbspnbspnbsp국동대혈에서 일찍 내려온 사람들은 압록강에 손을 담궈보기도 했습니다. 압록강변을 따라 가다보니 건너편에 북한의 만포시가 보입니다. 이곳과 만포시 사이에는 하루에 한번씩 기차가 다니고 있다 합니다. 하루빨리 통일이 되어 만포에서 평양을 거쳐 서울로 갈 수 있는 날이 오길 기도해 봅니다.nbspnbsp이어서 400년이 넘도록 고구려의 수도로 사용된 국내성과 집안시 곳곳을 꼼꼼하게 돌아보았습니다. 장군총, 광개토대왕릉, 5회분5호묘 벽화, 환도산성, 산성하무덤떼, 국내성, 그리고 압록강까지 집안시를 모두 하루 동안 둘러보았는데, 누군가가 “여기가 우리 집안이네” 라는 농담을 던져 다함께 웃기도 했습니다. 바로 여기에서 우리 민족이 살았구나. 중원의 문화와는 다른 배달 문명의 역사를 이어 받은 선조들의 무대는 바로 이곳이였구나. 두발로 걷고 눈으로 보니 가슴이 벅찼습니다. nbspnbsp그러나 한편으론 중국의 동북공정에 대한 이야기, 우리의 역사가 그들의 역사관으로 해석되고 알려지고 있고, 중국 역사의 한 부분으로 편입하고 있는 모습을 보면서 우리가 왜 역사 의식을 가져야 하는지 우리 스스로 올바른 사관을 가지는 것의 중요성을 머리가 아닌 가슴으로 느끼는 시간이었습니다.nbspnbsp먼저 장군총은 이제껏 몰랐던 고구려의 무덤 축조 기술에 대한 놀라움을 느끼게 해주었습니다. 왜 우리는 이렇게 위대하고 자랑스러운 우리 민족의 역사를 이제껏 모르고 살았을까요. 이집트의 피라미드에 대해 감탄할 줄만 알았지 이런 역사를 제대로 배워본 적 없는 것이 안타깝기도 했습니다. nbspnbsp▲ 장군총nbsp이어서 광개토대왕비와 광개토대왕릉을 보았습니다. 광개토대왕비는 장수왕 때 만든 것으로 높이가 6.39m나 되는 웅장한 비석입니다. 장수왕은 그의 아버지가 이룬 역사를 기록하고 건국부터의 역사를 이 비석에 기록했습니다. 그 당시에 어떻게 이 어마어마한 돌을 옮겨서 이렇게 다듬었는지 놀랍기만 했습니다.nbspnbsp▲ 광개토대왕비nbsp광개토대왕비 앞에서 지역별로 기념촬영을 한 후 바로 옆에 위치한 광개토대왕릉으로 이동했습니다. 18세에 왕위에 즉위하여 39세에 죽을 때까지 광활한 영토를 확장했던 광개토대왕은 그 업적에 걸맞게 무덤의 크기가 장군총에 비해 훨씬 컸습니다. 장군총의 한 변이 32m라면 광개토대왕릉은 65m나 되었고 기단을 받추고 있는 호석도 장군총은 한변에 3개인 반면 광개토대왕릉은 5개나 되었습니다. 그러나 급히 쌓다 보니 강돌이 아닌 산돌까지 넣고 쌓아서 상당 부분 무너져 내려서 돌무더기처럼 변해 있었습니다. 제대로 된 보존 작업이 시급해 보였지만 남의 나라 땅이여서 어찌할 수 없는 점이 안타깝기만 했습니다.nbspnbsp▲ 광개토대왕릉nbsp가까운 식당에 가서 점심을 먹은 후 오후에는 5회분 5호묘 무덤에 도착해 무덤 속에 그려진 벽화를 보았습니다. 이곳에서는 여러 가지 고구려의 신앙과 생활 모습 등을 살펴볼 수 있었습니다.nbspnbspnbsp스님은 특히 여러 가지 생활 모습이 담긴 벽화를 가르키며 이 벽화 속에는 단군 신화가 그려져 있다고 알려주었습니다.nbspnbsp“이것은 종합생활도인데 여기 보시면 신단수가 보이시죠? 신단수 아래에 동굴이 하나 보이죠. 이 동굴 속을 가만히 보면 곰이 한 마리 앉아 있습니다. 보입니까? 잘 안 보이는 사람은 업장이 두터워서 안 보이는 겁니다. nbspnbspnbsp호랑이는 동굴 밖에 있는데 화살을 맞고 있죠. 이것은 단군 신화를 표현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 벽화는 5세기 그림이고 일연이 삼국유사를 쓴 시기는 12세기입니다. 그러니 삼국유사에 소개된 단군 신화는 일연이 지어낸 이야기가 아니라 고대로부터 전해내려 온 이야기였음을 알 수 있습니다. 김부식이 삼국사기에서 빼버렸기 때문에 일연은 삼국유사에 추가를 한 것이거든요.”nbspnbsp단군 신화를 벽화 속에서 실물로 만나고 나니 삼국유사의 이야기가 결코 근거 없는 얘기가 아님을 다시 한 번 실감할 수 있었습니다.nbspnbsp그리고 1500년의 시간을 고스란히 담아내고 있는 벽화에 놀라움이 일었습니다. 어떻게 돌에 색깔을 넣어 지금껏 남아 있게 했을까요. 궁금함과 더불어 무덤에서 벽화를 그리고 있었을 선조들을 상상해보기도 했습니다.nbsp다음은 환도산성을 찾아가 보았습니다. 통구하라고 하는 강을 건너니 깊숙한 산 속에 큰 성벽으로 둘러쳐진 천연의 요새가 보였습니다. 환도산성으로 들어가는 남문 앞에 서서 다함께 기념사진을 촬영했습니다.nbspnbspnbsp스님은 환도산성에 대해 간단히 설명을 해주었습니다.nbspnbsp“여기가 환도산성 남문이예요. 옹성형 성벽이죠. 여기는 비상시에 잠시 피신하는 행궁만이 아니고 임금이 한 때는 완전히 이곳으로 수도를 옮겨와서 상시로 산 적이 있는 있는 곳입니다. 궁궐을 지었든 큰 초석들이 지금도 남아 있습니다. 전체 지형으로 봐서 처음에 이곳으로 먼저 수도를 옮긴 것이 아닌가 싶어요. 여기 터가 넓고 저 아래에 물도 있고 곡식도 재배할 수 있으니까요. 그런데 나라가 점점 커지면서 저 아래에 평지성인 국내성을 쌓게 되고 이곳을 산성으로 삼았겠죠. 국내성에는 서쪽으로 문이 2개, 동쪽으로 문이 2개, 남쪽으로 1개, 북쪽으로 1개 이렇게 6개의 문이 있는 줄 알았는데 발굴을 해보니까 북쪽에 문이 1개 더 나왔습니다. 그것은 환도산성으로 비상시에 피하기 위한 가장 빠른 문이 아니었나 싶거든요.nbspnbsp수도를 이곳으로 옮기고 평양으로 천도할 때 까지 425년 동안 국내성은 세 번 함락이 되었습니다. 초기에는 요동 태수에게, 3세기에는 위나라 관구검의 침입, 4세기에는 모용왕의 침입을 받았습니다. 이곳 환도산성은 두 번 함락이 되었습니다. 요동 태수가 침입했을 때는 환도산성은 함락되지 않았습니다. 잉어 작전이라고 해서 적이 환도산성을 포위해서 이곳에 물이 마르고 양식이 떨어지기를 기다렸는데 을두지 장군이 여기서 잡은 싱싱한 잉어를 요동 태수에게 선물로 줘서 물이 풍부함을 보여주어서 스스로 물러나게 했습니다. 그래서 국내성은 함락되었지만 환도산성은 함락되지 않았습니다.nbspnbsp이렇게 고구려는 산속 깊숙한 곳에 본거지를 마련해 놓고 주된 활동은 요동벌에 가서 했습니다. 그러니 적이 침입하기가 굉장히 어렵죠. 공격을 하면 자기들이 이겨보았자 변방 밖에 점령하지 못하잖아요. 다 산속에 숨어버리니까 따라 들어가면 첩첩산중이여서 추적을 할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물러나면 또 벌떼처럼 나타나서 공격을 했죠. 이렇게 고구려는 자신들의 본거지를 안전하게 유지하면서 대륙을 경영했습니다.nbspnbspnbsp평양으로 수도를 옮긴 이유는 중원과 늘 갈등이 있다가 중원에 북위라는 왕조가 들어섰어요. 북위의 왕후가 고구려 사람이 되었어요. 그래서 그 이후의 황제는 다 고구려의 외손이 되잖아요. 그래서 평화 시대가 도래한 것입니다. 북방의 외침이 잦아드니 남으로 백제를 치고 수도를 평양으로 옮겼지요. 좀 더 넓고 기후가 따뜻한 곳으로 온 것이죠. 그러나 고구려가 가장 왕성할 때는 바로 국내성에 수도가 있을 때죠. 고구려에 관련된 많은 이야기들은 대부분 이곳에서 일어난 일들입니다.” nbspnbspnbsp▲ 산능성이를 따라 길게 이어진 환도산성 성벽nbsp환도산성을 내려와서 해질녘에는 산성하 무덤떼 사이를 걸어 보았습니다. 많은 무덤들이 무리를 지어 늘어서 있는데, 이곳이 바로 고구려의 중심지였음을 절감할 수 있었습니다. 안타깝게도 대부분의 무덤들이 도굴되어 무덤 안에 있는 유물들은 흔적을 찾아보기 어렵다고 합니다.nbspnbsp▲ 산성하 무덤떼nbsp이어서 국내성을 둘러보았습니다. 국내성은 다 보지는 못하고 반바퀴 정도만 둘러보았습니다. 북쪽과 동쪽 성벽의 모서리 지점에서 순례를 시작하면서 국내성에 대해서 스님이 간략히 설명해 주었습니다.nbspnbsp▲ 국내성nbsp“저희들이 도착한 이곳이 그 유명한 국내성입니다. 국내성의 서쪽 성벽에는 통구하라고 하는 자연 해자가 흐르고, 남쪽 성벽에는 압록강이 흐릅니다. 동쪽과 북쪽 성벽에는 바깥에 땅을 파서 인공 해자를 만들었습니다. 일제 시대 때만 하더라도 높이가 6미터 이상인 성벽들이 그대로 남아 있었다고 합니다. 현재는 3미터도 채 안되는 상태로 남아 있는데 원래 성벽의 높이는 1012미터 정도 된다고 합니다. 저기 보이는 아파트의 5층 정도의 높이였다고 보시면 됩니다.nbsp성벽의 안정성을 위해서 바닥에서부터는 피라미드식으로 쌓고 그 위에 일직선으로 쌓았는데, 피라미드식으로 쌓은 부분은 안전해서 지금도 남아있는데 그 위에 일직선으로 쌓은 부분은 많이 무너졌습니다.nbspnbsp▲ 모서리 부분을 둥글게 한 고구려의 국내성nbsp그리고 모서리가 각진 부분이 방어하기가 좀 위험합니다. 그래서 고구려 사람들은 지혜가 있어서 모서리 각을 없애버렸습니다. 동그랗게 만들면 방어할 수 있는 면히 훨씬 넓어지죠. 여기에 툭 튀어나온 치를 만들어 여기서도 공격할 수 있게 했어요. 둥글게 한 것은 각을 보호하기 위한 것이고, 양쪽에 치를 만든 것은 각루를 지키는데에도 효과가 있었던 것입니다. 이렇게 지혜롭게 성벽을 쌓았습니다.”nbsp뛰어난 성벽 축조 기술과 방어 체계에 대한 이야기를 들으니 선조들의 지혜에 더욱더 감탄하게 됩니다. 어쩌면 우리의 두뇌는 예전보다 퇴화가 되어버린게 아닌가 싶을 정도로 자연을 적절히 이용하여 방어하고 활용하는 지혜는 우리가 한민족임을 자랑스럽게 생각하게 해주었습니다.nbspnbsp이어서 국내성의 북편을 따라 걷다가 다시 서편으로 난 강둑 길을 따라 걸었습니다. 서편에는 통구하라는 강이 흐르고 있었고, 국내성의 남편이 시작되는 지점에서 다시 압록강과 합해지는 장구한 모습이 펼쳐졌습니다. 이렇게 국내성은 자연 강을 해자로 해서 아주 절묘하게 위치하고 있었습니다.nbspnbsp▲ 서쪽 성벽에 만들어져 있는 ‘치’의 기능에 대해 설명하고 있는 스님nbsp강이 있는 성벽에도 치가 툭 튀어나온 부분들이 있었는데 이것은 적의 공격 뿐만 아니라 홍수가 났을 때 강물로부터 성벽을 보호해주는 역할을 했다고 합니다. nbspnbsp압록강을 옆에 끼고 걸으면서 스님은 이곳 국경변에서 처음으로 북한의 식량난을 접하게 된 사연을 들려주었습니다. 오늘처럼 역사기행을 안내하러 왔다가 북한에서 많은 사람들이 굶어 죽고 있다는 소식을 접했지만 처음에는 믿지를 않았다고 하면서 영양 실조 상태의 깡 마른 아이들을 보고 나서 대북 인도적 지원을 호소하는 일을 시작하게 된 사연을 자세히 들을 수 있었습니다.nbspnbsp스님의 얘기를 듣고 있는데 갑자기 강 건너 북한 땅과 이쪽편 중국 땅이 크게 비교가 되었습니다. 해가 지고 어둑해졌음에도 강 건너 북한에는 아무런 전기불이 켜지지 않고 있었고, 이쪽편 중국은 현란한 광고판과 조명등이 번쩍이며 빛을 발하는 모습이 비교되면서 무척 안타까운 마음이 들었습니다.nbspnbsp▲ 강 건너 북한의 모습nbsp nbsp nbsp nbsp nbsp nbspnbspnbsp▲ 중국 쪽의 화려한 조명들nbsp압록강변에서 저녁식사를 한 후 숙소로 들어왔습니다. 일정이 많이 늦어져서 가방만 숙소에 올린 후 곧바로 강의장에 모여서 스님의 저녁 강연을 들었습니다. 스님은 역사기행 2일째 저녁을 맞이하여 어제의 ‘민족의 시원’에 대한 강연에 이어 오늘은 ‘고구려의 역사’에 대한 정리 강연을 해주었습니다.nbspnbspnbsp먼저 일제 시대 때 실증주의 사학으로 인해 우리의 상고사는 실증을 삼을 만한 사료가 없다는 이유로 단군 설화를 신화처럼 치부했다며 이에 대한 문제점을 지적해 주었습니다. 그러면서 이런 상고사를 통해 정체성과 자기 긍정성을 회복하는 것이 필요함을 강조했습니다. 또한 우리 민족과 함께했던 여진, 몽골, 거란, 왜, 선비 등 이웃 민족의 역사 속에서도 우리의 역사를 찾아내며 역사관을 더욱 넓혀가는 것의 중요성을 이야기해 주었습니다. nbspnbsp“광개토대왕비를 보면 첫머리가 이렇게 시작하죠. ‘우리 할아버지 추모왕은 북부여를 창건한 해모수의 아들이다’. 이것이 고구려의 정통성이죠. 그런데 우리 남한은 이런 부분에서 좀 부족한 것 같아요. 없는 것을 가짜로 만들어서 과대하는 것도 문제이지만, 이미 역사 속에 있는 것임에도 신화라거나 전설로 치부하는 경우가 많아요. 독립기념관을 가봐도 상고사에 대한 아무런 내용이 없습니다. 박물관도 민족사의 기본 정신이 없고 그냥 유물만 보여주는 식입니다. 정체성을 갖고 자기 긍정성을 회복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유대인들은 언어가 아니라 유대의 역사를 가르칩니다.nbspnbspnbsp전해져 내려오는 이야기에 대해 우선 진위를 가려야 하겠죠. 중국에서 유물 유적이 대량으로 발견되면 그것을 연구해서 진위를 가릴 수 있을 겁니다. 그리고 더 나아가 언어에 대한 연구를 엄청나게 해야 합니다. 우리 밑에 있었던 몽골족, 여진족, 거란족, 왜, 선비족 등 이들의 역사와 언어에 대해 연구해야 합니다. 이렇게 우리들의 사촌 민족들의 역사와 언어를 연구하면 이들이 모두 우리 아래에 있었던 사람들이기 때문에 그 속에 우리들의 역사가 남아있을 겁니다. 예를 들어 ‘해모수’라고 했을 때 한문으로는 아무리 해석해도 무슨 뜻인지 모르는데, ‘해를 모시는 제일 높은 사람’이라고 우리말로 쉽게 해석을 하듯이, 몽골어, 거란어, 여진어, 일본어 중에서도 우리말을 통째로 전해내려가는 언어가 있을 겁니다. 그 언어를 연구해 보면 많은 것을 발견할 수 있을 겁니다.nbspnbspnbsp‘신묘장구대다라니’라는 경전도 한문으로는 아무리 해석해도 뜻이 안 나오는데, 산스크리트어로 해석하면 바로 뜻이 나오듯이 이렇게 국가적 차원에서 언어에 대해 연구해 볼 수 있습니다. 공부 잘 하는 아이들을 무조건 의사, 변호사만 시키려고 하지 말고 이렇게 역사에 대해 국가가 정책적으로 연구를 시킬 수가 있습니다.”nbsp그리고 고려 시대 때는 발해사를 우리 민족사 안으로 인식했다는 점과 서희의 담판이 우리에게 주는 교훈 등에 대해 강조를 해주었고, 마지막으로는 고구려가 어떻게 멸망하게 되었는지 그 마지막 여로에 대해서도 정리 말씀 해주었습니다.nbspnbsp“7세기로 들어오면서는 고구려 안에서도 왕의 역할이 유명무실해지고 대대로, 대막리지 같은 사람들이 독재를 하는 등 권력 투쟁이 심해졌는데, 왕은 가능하면 당나라와 타협해서 넘어가려고 했으나 연개소문 등은 이에 반대를 했습니다. 그런데 중앙 귀족들이 당나라와 화해하는 쪽으로 가니까 연개 소문이 쿠데타를 일으켜서 왕을 죽여버리고 새 왕을 세웁니다. 당태종은 ‘어떻게 신하가 왕을 죽일 수 있냐’ 하는 것을 핑계 잡아서 고구려를 공격했는데, 양만춘이 지키는 안시성은 함락하지 못하고 결국 당태종이 물러나게 됩니다.nbspnbspnbspnbsp이런 과정을 거치다가 결국 연개소문의 독재는 계속 강경정책으로 이어지게 되고, 그로 인해 국민들의 생활이 어려워지게 됩니다. 전쟁을 계속 준비하니까 생활이 핍박해지고 지금의 북한과 비슷한 모습이 되어 갔습니다. 당 고종 때 백제가 취약한 틈을 타서 나당 연합군이 백제를 멸망시켰는데 신라는 백제 땅이 당연히 자기 땅이 될 줄 알았는데 당나라가 독자적으로 관리를 하려고 해서 신라는 완전히 닭 쫓던 개 지붕 쳐다보는 격이 되었습니다. 당나라는 그 여세를 몰아서 고구려도 침략했지만 신라는 여기에 소극적으로 대응했고 결국 당나라가 연개소문에게 패하게 되죠.nbspnbsp그런데 연개소문이 병환으로 죽고 세 아들이 서로 대막리지가 되려고 싸우게 되었습니다. 첫째 아들인 남건이 대막리지가 된 후 지방 시찰을 간 사이 동생인 남생이 쿠데타를 일으켜서 다시 그가 대막리지가 됩니다. 쫓겨난 남건은 당나라로 가서 당나라 대군을 끌고 고구려를 침공합니다. 이렇게 내분이 일어나서 서로 싸우는 것이니까 백성들도 당나라와 싸울 명분이 없어지잖아요. 그래서 그 강력했던 고구려가 순신간에 무너지게 됩니다.nbspnbsp그런데 당나라는 고구려 마저도 안동도호부를 설치해서 직할하려고 했습니다. 여기에 신라가 화가 나서 문제 제기를 하니까 신라에도 계림도독부를 설치해 버립니다. 또 문무왕이 저항을 하니까 그 동생인 김인문을 신라의 왕으로 임명해 버립니다. 그러자 신라도 외세를 끌여들이긴 했지만 나라의 자주권을 지켜내야 겠기에 신라는 당나라 군대를 공격해서 물리쳐 버립니다. 그러자 당나라도 화가 나서 20만 대군으로 공격합니다. 그러나 신라는 여기에 대해 사람의 힘으로는 이기기 어렵다고 보고 사천왕사에서 기도를 해서 신불의 도움을 받아 당나라 대군들은 서해 바다에 수장시켜 버립니다. 그래서 8년 동안 당나라와 전쟁을 하다가 매소성 전투와 기벌포 전투에서 이김으로 해서 당나라를 완전히 물리치게 됩니다. 나중에 나당 관계는 다시 회복이 되게 됩니다.nbspnbspnbsp결국 고구려는 이렇게 멸망하게 되고, 고구려의 왕실은 항복했지만 지방 성주들은 거의 항복하지 않고 끝까지 싸웠습니다. 몇 년이 지나면서 하나씩 하나씩 항복해 들어갔는데 고구려 부흥군들은 신라군들과 협력을 해서 대당 전쟁을 함께 했습니다. 신라군들만 갖고는 당나라를 이길 수가 없었기 때문입니다. 원래는 같은 민족이라도 서로 싸우고 나면 철천지 원수가 되는데 당나라와의 관계에서는 고구려도 철천지 원수였고, 신라도 대당 전쟁을 하고 있었기 때문에 둘은 서로 협력해서 안동도호부를 몰아내는 일을 해내게 됩니다. nbspnbsp고구려가 멸망한 후 고구려 유민들 중 전체의 5가 유배를 당하게 됩니다. 고위 간부들은 다 중국의 내주로 데려가고 중간 이하 간부는 요서 지역인 영주에 유배를 시켰는데 대조영은 거기에 유배되어 있다가 탈출하면서 당나라 추격군을 물리치고 결국 발해를 건국하게 됩니다. 이렇게 해서 고구려는 짧게는 700년의 역사, 길게는 부여와 고구려가 같은 역사라고 보면 민족사의 주체로써 900년의 역사를 마감하게 되고, 그 유산을 발해로 넘겨주게 됩니다.nbspnbspnbsp우리가 제대로 고구려사를 공부하기 위해서는 어디로 가야 할까요? 평양으로 가야 돼요. 그래서 평양 천도 이후에 200여년간 이룬 고구려의 웅장한 문화를 봐야 합니다. 그러나 아쉽게도 가보질 못하고 있죠. 다음에는 집안에서 기차를 타고 평양으로 가서 평양의 고구려 성들과 벽화들을 보면서 고구려의 정신을 새겨볼 수 있는 기회를 가질 수 있기를 바랍니다.”nbsp열정적으로 강연을 해준 스님께 모두들 큰 박수로 감사의 마음을 전했습니다. 오늘은 하루 종일 걸어서 많이 피곤했을 법 한데 기행단은 마지막까지 스님의 강연에 열심히 집중하는 모습을 보여주었습니다. 강연을 마친 후 밤 10시가 넘어서 다들 숙소로 향했습니다.nbspnbspnbsp내일은 전체 일정 중에 버스를 가장 오래 타는 일정입니다. 집안을 출발하여 압록강을 따라 달리며 북한 국경변을 계속 만나게 됩니다. 장백에 이르러 영광탑을 참배하고 북한의 혜산시를 내려다 보고 백두산 아래 동네인 이도백하까지 가는 일정입니다. 또 소식 전해드리겠습니다.
2015.8.2 동북아 역사기행 1일째, 홀본산성
nbsp안녕하세요. 드디어 오늘부터 21년째를 맞이하는 동북아 역사기행 7박8일 간의 여정이 시작되었습니다. 이번 역사기행은 법륜 스님의 안내로 총 138명이 참가하여 버스 3대에 몸을 싣고 선조들의 숨결이 묻어 있는 역사적 현장을 찾아 동북아 지역 일대를 신나게 달려가 볼 예정입니다.nbspnbsp역사기행 1일째를 맞이하여 스님은 고구려의 첫 수도였던 홀본산성에 올라가 고구려를 건국한 고주몽에 관련된 설화를 이야기해 주었습니다. 또 저녁에는 우리 민족의 시원인 배달 문명에 대해 많은 이야기를 들려주었습니다.nbspnbsp아침 6시, 인천국제공항은 이른 시간에도 불구하고 휴가철을 맞아 해외로 나가는 여행객들로 북새통을 이루었습니다. 138명의 기행단은 질서정연하게 출국 수속을 밟고 심양으로 향했습니다.nbspnbsp▲ 인천공항 출발nbsp심양공항에 도착하자 해마다 한결 같이 기행단을 반갑게 맞이해주고 있는 조춘호 선생님이 열띤 환영을 해 줍니다.nbspnbsp▲ 심양공항 도착nbsp기행단이 처음으로 도착한 곳은 고구려의 첫 수도였던 홀본산성입니다. 홀본산성으로 가는 버스 안에서 스님은 수신기를 통해 인사를 하며 우리가 왜 이곳까지 역사를 공부하러 왔는지 그 의미를 이야기해 주었습니다.nbspnbsp“안녕하세요. 기분이 괜찮아요? 아침은 제대로 먹었어요? 오늘은 점심도 없어요. 고난의 행군이 시작되었어요. nbspnbspnbsp먼저 만주에 오신 것을 환영하고요. 그리고 귀한 시간을 내어서 역사기행에 참여해 주신 것에 감사드립니다. 이번 여행의 목적은 우리의 뿌리에 대해서, 그리고 우리가 지금 이러한 시기 이러한 조건에서 왜 이렇게 행동할 수 밖에 없는가 하는 것에 대해서 그 원인을 찾아가기 위함입니다. 어떤 사람이 제대로 상황 대처를 못하게 되면 처음에는 많이 나무라죠. 그러다가 나중에 그 사람의 성장 배경과 부모님, 가정환경을 알게 되면 ‘아, 그 사람은 그렇게 행동할 수 밖에 없구나’ 하는 것을 이해하게 됩니다. 먼저 그것을 이해해야 조정이 필요하다면 조정을 할 수 있죠.nbspnbsp그것처럼 현재 우리 대한민국이 국제 여건 속에서 정치든 경제든 교육이든 이렇게 할 수 밖에 없는 것에 대해 아쉬움이 많은데 우리 민족이 여기까지 온 역사를 살펴보면 그것이 좋은 것이든 나쁜 것이든 현재 이렇게 된 것은 과거의 결과물이란 것을 알게 되고, 우리 스스로에 대해 너무 과대망상이거나 부정적이였던 것을 치료할 수가 있습니다.nbspnbsp그렇다면 우리는 어떻게 대응해야 하느냐 하는 것도 배울 수 있습니다. 과거의 경험 속에서 어느 시대에 어떻게 대응해서 어떤 불안을 겪었느냐 하는 것을 보면, 100년 후에 우리가 현 시점을 돌아보면 ‘아, 그렇게 했었으면 좋았을텐데...’ 하는 것을 지금 살면서 그것을 알 수가 있습니다. 즉 미래 100년 후로 가서 지금을 돌아보듯이 과거 역사를 주욱 살펴보면 지금에 대해서 더욱 자세히 알 수 있습니다. 결국 역사 공부는 과거의 사실을 아는 데에 목적이 있는 것이 아닙니다. 지금 우리가 어떻게 바르게 대응할 것이냐 하는 것에 대한 답을 찾기 위해서 과거의 역사적 경험을 다시 살펴보는 것입니다.nbspnbsp역사기행이라는 이름으로 우리가 여기에 온 것은 우리 민족의 현재와 미래의 진로를 어떻게 잡아갈 것인가 하는 것에 대한 그 답을 찾기 위해서 온 것입니다. 그래서 놀러가기 위한 여행이 아닙니다. 지금 우리가 가는 이 곳이 현재는 중국 땅이지만 과거에는 우리 민족의 주된 활동 공간이였습니다. 즉 우리의 고향이 바로 이곳입니다. 그 사람의 성장 배경을 알려면 그 사람의 고향 마을을 살펴봐야 하는 것처럼 우리의 과거 역사를 알려면 그 때 살았던 그곳에 가서 유적도 보고 산천도 보면서 ‘아, 이런 환경에서 이런 방식으로 살았구나. 그 경험이 우리 민족에게 내재되어 있구나’ 하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 때 있었던 것 중에서 잃어버린 것도 있을 것이고, 또 그 때 없던 것이 새로 생겨난 것도 있겠지만, 기본 줄기는 맥을 이어서 흐르고 있습니다.nbspnbsp오늘과 내일 이틀은 고구려 유적지를 찾아 갑니다. 고구려의 역사를 공부하면서 고구려가 책 속에 전설 속에만 있는 역사가 아니고 손으로 만지고 눈으로 보고 발로 밟을 수 있는 역사적 사실임을 알게 됩니다. 고구려의 유물과 유적, 문화의 특징이 무엇인지, 주변의 나라들과는 어떤 차이가 있었느냐, 이것을 우리가 발견하게 됩니다. 그리고 고구려의 뿌리는 무엇이었느냐, 이렇게 찾아감으로 해서 결국 우리 민족사의 출발로 거슬러 올라가 공부를 하게 됩니다. 그렇다면 고구려가 멸망하고 나서는 그것이 어디로 계승이 되었느냐? 그것은 발해로 연결되게 됩니다. 고구려를 중심으로 놓고 위 아래를 살펴서 우리가 잃어버렸던 역사를 되찾아 보려고 합니다.nbspnbsp그리고 현재 우리나라의 국경이 압록강과 두만강인데, 압록강을 따라 올라가면서 예전에는 하나의 땅이였는데 지금은 중국과 북한으로 나뉜 모습을 보고, 또 동북아 지역에서 가장 높은 산이 백두산인데 이곳에서 환웅 천황께서 신시를 여셨기 때문에 민족의 성산으로의 백두산과 거기서 흘러내리는 압록강과 두만강을 살펴보게 됩니다.nbspnbsp▲ 버스 안에서 점심 식사 대신 옥수수를 맛있게 먹는 참가자들nbsp또 고구려를 계승한 발해의 유물과 유적을 살펴보게 되고요. 그리고 두만강 유역으로 가서는 조선조 말엽에 나라를 잃고 이곳 이국 땅에 와서 이민 생활을 하던 동포들의 이야기, 또 나라를 되찾기 위한 독립운동이 전개된 역사를 살펴봄으로 해서 지금 우리가 해결해야 할 과제가 무엇인지 찾아보는 시간을 가져보려 합니다.”nbspnbsp스님의 얘기를 들으며 왜 우리가 이곳에 역사기행을 하러 왔는지 그 목적을 분명히 할 수 있었습니다. 특별히 올해는 우리 민족의 숙원이라고 할 수 있는 통일에 대해 많은 관심과 열정을 가지고 있는 통일의병들이 대다수 주축이 되어 참여를 했기에 이번 역사기행이 더욱더 기대가 되었습니다.nbspnbsp그리고 스님은 새벽 5시부터 시작되는 빡빡한 일정 속에서도 하루 종일 운전해서 우리들을 유적지까지 안전하게 데려다 줄 기사 분들에게 큰 박수를 치며 감사의 마음을 표현할 것을 부탁했습니다. 또 20여년 넘게 애정을 갖고 역사기행의 전체 일정을 준비해 주고 계신 조춘호 선생님과 그 딸인 조신 양에게도 열렬한 환영의 박수를 부탁했습니다. 대중들은 열렬한 환호를 함께 박수를 보냈습니다.nbspnbsp오후 1시 30분 무렵 홀본산성 입구에 도착했습니다. 입구에 기념관이 마련되어 있어서 스님의 설명을 들으며 홀본산성의 지형과 유물에 대해 개략적인 설명을 들었습니다. 특히 고구려인들의 특유한 축성 기술에 대해 자세히 듣고 나니 자긍심도 생기고 실제 가까이서 보면 어떨까 두근거리는 마음도 들었습니다.nbspnbsp▲ 홀본산성 기념관nbsp산성으로 올라가는 셔틀버스를 타고 굽이굽이 산모퉁이를 돌아서 올라가니 입구에 오녀산성비가 보였습니다.nbspnbsp▲ 셔틀버스를 타고 올라가며 멀리서 본 홀본산성nbsp비문이 잘 보이도록 서서 도착하는 대로 기념사진을 찍은 후 좁고도 가파른 계단을 오르기 시작했습니다.nbspnbspnbsp스님은 돌계단을 오르며 이 홀본산성을 처음 답사할 때의 재미있는 사연을 들려 주었습니다. 스님이 들려주는 이야기를 웃으며 듣고 있다보니 별로 힘들지도 않게 어느덧 정상 가까이에 도착했습니다.nbspnbsp▲ 홀본산성 올라가는 길nbsp아래 마을이 훤히 내려다 보이는 평평한 곳에 대중들을 오밀조밀 앉히고 스님은 주몽의 탄생과 고구려가 부여의 정통성을 계승한 나라임을 일깨워주는 이야기를 들려주었습니다.nbspnbsp“고구려는 부여를 계승했어요. 부여를 처음 세운 사람이 해모수예요. 주몽의 아버지도 해모수이거든요. 그럴려면 해모수가 200년을 살아야 하잖아요. 그런데 단군도 마찬가지입니다. 단군은 임금의 직위 이름입니다. 환웅도 마찬가지이죠. 그러나 우리는 단군을 마치 한 사람을 지칭하는 것으로 생각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해모수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 말로는 ‘해를 모시는 우두머리’ 라는 뜻입니다. 즉 천제라는 뜻이죠. 반면 주몽의 어머니인 유화 부인은 수신을 섬기는 토착 세력의 족장 딸이였습니다. 즉 민족사의 정통을 계승한 천손의 왕족과 토착 세력인 족장의 딸이 낳은 아들이 주몽이였다고 보시면 됩니다.nbspnbspnbsp어느날 유화 부인이 동생과 함께 봄에 나물을 따러 산에 갔는데 바퀴 다섯 개가 달린 오륜거를 타고 영감이 나타나서 ‘나는 천제인 해모수다’ 하면서 하룻밤 자자고 하니까 거절을 못했습니다. 영감은 사랑을 나누고 나서 너를 곧 데리러 오겠다고 하고 가버렸습니다. 집에 와서 아버지에게는 말도 못하고 있었고, 결혼할 나이가 되었는데도 결혼을 절대로 안 하겠다고 계속 하였습니다. 결국 동생이 아버지에게 자초지종을 다 얘기해 주게 됩니다. 그러자 아버지는 노발대발 했고 유화를 집에서 쫓아내 산속에 유배를 했습니다. 그러나 쫓겨나 유배 생활을 하면서도 반성은 안 하고 산 속에서 움막 치고 살았습니다.nbspnbsp묘하게도 동부여의 금화왕이 사냥을 나왔다가 산 속에서 유화와 만납니다. 자초지종을 듣고 나서는 궁궐로 데려온 겁니다. 즉 역사적으로는 동부여 왕의 두 번째 부인이 된 겁니다. 결국 궁궐에서 애를 낳게 되었는데, 당연히 왕의 입장에서는 남의 자식이니까 갖다 버리려고 한 겁니다. 그러나 유화 부인이 끝까지 그럴 수 없다고 하니 결국 할 수 없이 돌려준 겁니다. 즉 두 번째 부인의 아들이니까 서자가 된 것입니다. 아무튼 그로 인해서 밖으로는 왕자라고 대우 받았지만 안에서는 굉장한 차별을 받았겠죠. 결국 신분이 위험해지니까 북부여로 도망을 가게 된 겁니다.nbspnbspnbsp도망을 가서 내려오다가 물을 건널 수 없었는데 ‘나는 천자의 아들이고 화백의 외손자다. 나에게 길을 열어라’ 하니 물고기와 자라들이 돌다리를 놓아주었다고 하죠. 이것은 달리 생각하면 도망을 가면서 어머니 고향 쪽으로 도망을 가게 되었다고 볼 수 있고, 어머니의 고향 사람들이 힘을 합해 피신을 시켜 주었다고 볼 수 있겠죠.nbspnbsp그래서 주몽은 동부여에서 도망을 나와서 이곳 졸본 부여 왕의 딸인 소서노와 결혼을 했습니다. 졸본 부여는 북부여의 후예들입니다. 즉 동부여에서 도망을 나와서 북부여로 온 겁니다. 소서노는 주몽보다 8살이 나이가 많았습니다. 즉 사위가 되어서 졸본 부여의 왕이 된 것입니다. 졸본 부여를 계승한 것은 엄격하게 말하면 주몽의 아버지가 왕이 아니라 사위로 들어와서 계승한 것이니까 주몽의 후예들이 볼 때는 정통성에서 동부여에게 밀리게 되잖아요. 동부여는 해모수로부터 직계에 해당하고, 주몽은 동부여에서 도망을 나와서 북부여의 사위가 되어 계승한 것이니까 그래서 후대에 주몽으로부터 새로운 나라가 시작한 것으로 한 것 같아요. 아버지가 불분명하니 천제 해모수라고 한 것이지요. 인류 문화사를 연구해보면 아버지가 없거나 불분명한 경우는 대부분 자수 성가한 경우입니다.nbspnbspnbsp이렇게 볼 때 신분적으로 말하면 사실 가장 정통성이 없는 것이 고구려입니다. 그러나 주몽이 워낙 똑똑하니까 주도권을 잡은 것이고, 역사가 그를 중심으로 만들어지다 보니 이런 설화가 조성되었지 않았을까 싶어요. 북부여에서는 다물군을 일으킨 고두막이 동명성왕입니다. 주몽도 이 다물군에 참여를 했었거든요. 그래서 고구려의 건국 이념도 다물 사상입니다. 다물 사상은 잃어버린 고조선의 옛땅을 되찾자는 것입니다. 우리 나라 최초의 의병이 이 다물군입니다.”nbspnbsp스님의 얘기를 듣고 있노라면 무엇보다 설화나 전설 같은 이야기들을 인류 문화사적 입장이나 역사적 사실로서 실제는 어떠했겠는지 재해석해 준다는 점이 늘 새롭습니다.nbspnbsp다음은 서문 자리에 가서 성문에 대해 설명을 들었습니다. 개이빨식으로 튼튼하게 쌓은 성벽이 무엇보다 기억에 크게 남았습니다.nbspnbsp▲ 서문 앞에서 고구려인들의 축성법에 대해 설명을 듣고 있는 대중들nbsp조금 더 걸어가 보니 평평한 가운데 천지가 나타났습니다. 이 우물은 일년 내내 마르지가 않는다고 합니다. 전쟁 중에 이곳 산성에 오를 경우 무엇보다 물이 가장 소중했을 터인데 주위에 병풍처럼 우뚝 솟은 절벽도 그렇지만 우물까지 갖춘 모습을 보니 과연 천연 요새이구나 싶은 생각이 들었습니다.nbspnbsp▲ 홀본산성 안 천지nbsp그리고 거주지라고 표시된 곳에는 온돌 문화의 흔적을 발견할 수 있었습니다. 온돌을 사용한 역사가 참 오래되었다는 것을 실감할 수 있었습니다.nbspnbsp▲ 온돌을 사용한 주거지nbsp어쨌거나 홀본산성은 산성에서 가장 중요한 물, 곡식, 잠자리의 세 박자를 모두 갖춘 천연 요새임에는 틀림 없어 보였습니다.nbspnbsp▲ 홀본산성에서 바라 본 혼강nbsp조금 더 가니 점장대가 나왔습니다. 점장대는 적군의 동정을 살피는 곳인데 시원한 바람이 불고 정말 경치가 좋았습니다.nbspnbsp▲ 주위가 훤히 보이는 점장대nbsp내려올 때는 동편으로 가파른 길을 따라 내려와 동쪽 성벽과 공자형 동문 자리를 보고 남문을 지나 버스 승차장으로 내려 왔습니다.nbspnbsp▲ 동문 자리nbsp3시간 30분 간의 도보 기행을 마치고 다시 셔틀버스에 오르자 그제서야 비가 막 쏟아집니다. 하늘도 우리 기행단을 돕고 있는 것만 같습니다. 환인시에서 저녁 식사를 하면서는 참가자 중에서 특별히 소개하면 좋은 사람들을 소개해 주었습니다.nbspnbsp▲ 인사하는 연제식 신부님nbsp특히 연제식 신부님은 “8년 전에 인도성지순례도 다녀왔다”고 하면서 “초파일에는 제가 정토회로 가고, 크리스마스에서는 정토회 식구들이 우리 성당에 오고 한 지가 10여년이 되었다”며 “이번에 역사기행도 함께해서 무척 기쁘다”고 소감을 나눠주었습니다.nbspnbsp맛있게 저녁 식사를 한 후 오후 6시 무렵 숙소에 도착했습니다. 첫째날 저녁 강의는 저녁 7시에 시작되었습니다. 스님은 우리 민족의 시원에 대해 긴 역사를 꿰뚫으며 열정적으로 강연을 해주었습니다. nbspnbsp“홀본산성에 올라가보니 경치가 참 좋죠? 오늘 강의는 우리 민족의 시원에 대한 것입니다. 지금으로부터 추적해서 올라가 보겠습니다.nbspnbsp대한민국이라는 나라 이름은 어디에서 왔을까요? 상해임시정부에서 정했습니다. 대한민국은 대한제국에서 왔습니다. 용성 스님이 왕이 주인인 대한제국 부흥 운동이 아니라 백성이 주인이 되는 대한민국 수립 운동을 해야 한다고 한데서 대한민국이라는 이름이 처음에는 나왔습니다. 그럼 대한제국은 어디에서 왔을까요? 청의 속국인 상태에서 자주 독립임을 선포할 때 조선왕조를 대한제국으로 바꾼 것입니다. 그럼 조선왕조는 어디에서 왔을까요? 나라를 새로 세운 것이 아니라 역성 혁명, 즉 왕의 성만 바뀐 것입니다. 다만 고려에서 조선으로 개명을 한 것입니다.nbspnbspnbsp그럼 고려는 어디에서 왔을까요? 고려를 창건한 세력들은 ‘우리는 고구려를 계승한다’는 점을 분명히 하고 건국을 했습니다. 여기에는 다물군과 같은 부흥하려고 하는 정신이 있었습니다. 그럼 고구려는 어떤가요? 고구려를 창시한 주몽이 자신은 해모수의 아들이라고 한 점을 보면 부여를 계승한 것입니다. 이것은 광개토대왕비에도 기록이 남아 있습니다. 해모수는 ‘나는 단군을 계승한다, 단군의 아들이다’ 라고 했습니다. 해모수는 단군의 이름이 바뀐 것 뿐입니다. 단군 조선은 자신이 환웅의 아들이라고 했습니다. 환웅은 ‘나는 환인의 아들이다’ 라고 했습니다. 그럼 환인은 뭐라고 했을까요? 그 위로는 없습니다. 이것이 우리 민족의 시작입니다.nbspnbsp그래서 우리 민족의 시원은 한나라이고, 임금의 이름은 환인입니다. 그 다음은 배달 나라이고, 임금의 이름은 환웅입니다. 그 다음은 조선 나라이고, 임금의 이름은 단군입니다. 이렇게 해서 여기까지 오게 되었습니다.nbspnbspnbsp그러나 우리 나라의 시작을 한나라 라고 하기에는 조금 애매모호합니다. 왜냐하면 가장 문명이 발달한 한나라 라는 나라가 있었는데, 한나라의 아들 중에 하나가 이주를 해와서 토착세력과 결합해서 세운 나라가 배달 나라입니다. 그래서 한나라는 우리나라라고 말할 수도 없고, 또한 우리나라가 아니라고 말할 수도 없습니다. 우리나라의 첫 번째 뿌리인 원시조는 환인의 한나라 라고 말할 수 있어요. 그러나 거기서 3천명이 내려와서 토착세력과 어울러가면서 세운 나라가 배달나라입니다. 이것이 신시, 즉 개천이죠. 이것은 확실히 우리나라라고 말할 수 있어요. 그래서 배달나라가 우리나라의 첫 번째 나라라고 볼 수 있고 그 뿌리가 한나라라고 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주해 온 세력과 토착 세력이 결혼해서 낳은 단군이 왕위에 오르면서는 이것은 확실하게 우리 모두의 조상이라고 말할 수 있게 된 것이죠. 그러나 우리나라의 시작은 배달나라이고, 그 연원은 한나라입니다.nbspnbsp그런데 최근 요녕성의 서쪽과 내몽고 자치구의 남쪽 요하강 상류 지역에 초원 지대가 있는데 여기서 엄청난 유물이 발견되고 있습니다. 황하문명보다 천년 내지 2천년 앞선 유물이 나오니까 중국이 지금 크게 놀라고 있습니다. 그래서 중국 문명의 기원은 황하문명이라는 단일 기원설에서 중국 문명의 기원은 황하 문명과 요하 문명이고 이 두 문명은 상호 교류를 했다, 이렇게 공식적으로 정리를 했습니다. 이것이 동북공정입니다.nbspnbsp그런데 중국에는 어떤 역사 기록에도 6천년 된 기록이 없습니다. 그런데 만약 우리가 갖고 있는 6천년 전의 배달 나라의 역사 기록과 요하에서 발견된 이 유물이 같이 연구된다면 굉장한 일이 될 텐데, 중국은 유물만 있고 기록이 없고, 우리는 기록만 있고 유물이 없으니 뜬구름 잡는 소리처럼 된 것입니다.nbspnbspnbsp그런데 이 요하 지역에서 출토된 유물들 중에는 9천년 된 신석기 유물도 있습니다. 한 군데가 아니라 여러 군데에서 발견되었습니다. 황하 문명보다 훨씬 앞선 문명이었습니다. 요하 문명에서 황하 문명으로 문명이 흘러갔다고 보는 것이 사실에 가깝습니다. 고대 문명은 동시에 오간 것이 거의 없습니다. 대부분 앞선 문명에서 흘러가게 됩니다. 그런 의미에서 환웅의 배달 나라는 유물만 보더라도 터무니 없는 얘기는 아닙니다. 이 지역이 우리 민족이 이주해서 살게 된 첫 본거지라고 짐작해 볼 수 있습니다. 이제 고구려 발해 역사기행을 마치면 다음은 배달 문명을 찾아서 요하 지역도 기행을 가봐야 하는데 아직 논쟁이 많고 한참 발굴 중에 있어서 단체 기행은 하지 못하고 있습니다.”nbspnbsp요하 지역에서 출토된 유물들에 대해 많은 이야기를 듣고 나니 배달 문명이 다만 전설 속의 얘기가 아니라는 것이 크게 다가왔습니다. 그리고 황하 문명보다 훨씬 앞선 문명을 갖고 있었다는 얘기에 무한한 자긍심도 느껴졌습니다.nbspnbsp이어서 스님은 홍익인간 재세이화의 건국 이념의 의미에 대해 들려주며 우리 선조들은 6천년 전에 벌써 이런 높은 사상을 갖고 있었음을 알려주었습니다. nbspnbspnbsp“환웅이 3천의 무리를 이끌고 내려오니 여기에는 이미 살고 있던 원주민들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홍익인간 재세이화’라는 건국 이념을 문명사적으로 해석하면 이렇습니다. 이주민들이 토착 세력을 무력으로 정복해서 노예로 부리는 것이 대부분의 인류 역사입니다. 그러나 홍익 인간이라는 건국 이념을 내세웠다는 것은 원주민들에게 고급 문명을 전해서 원주민들을 이롭도록 하겠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신시 개천의 건국 이념입니다. 저의 경우에도 지금 인도에 가서 학교 짓고 병원 세우고 하면서 그들을 착취하는 것이 아니고 돕지 않습니까. 이런 것과 같은 행위가 6천년 전에 있었던 겁니다. 선진 문명의 사람들이 후진 문명으로 이동하면서 그들을 억압하고 착취한 게 아니라 그들에게도 이 선진 문명을 전해서 그들에게도 이익이 되도록 해주겠다고 한 것이 ‘홍익인간’입니다.nbspnbspnbsp‘재세이화’는 하늘의 이치를 이 세상에 실현하겠다는 뜻입니다. 기독교의 주기도문에 나오는 ‘뜻이 하늘에서 이루어진 것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리라’ 하는 이것을 한문으로 고치면 ‘재세이화’가 됩니다. 후진 지역도 선진 지역과 같은 문명 사회가 되기를 원했던 것입니다. 이것은 청교도인들이 아메리카로 가서 꿈을 실현해보고자 했던 것과 같은 일이죠. 그러나 그들도 막상 가서는 원주민들을 학살하고 학대하고 그랬죠. 그래서 홍익인간 재세이화는 국가 이념으로도 이보다 더 좋은 이념이 있을 수 없고, 종교 이념으로도 이만한 종교 이념을 가진 종교가 없습니다. nbsp그것도 6천년 전에 이런 사상을 갖기는 쉬운 일이 아닙니다. 이것은 불교든 기독교든 유교든 그 어떤 외래에서 들어온 종교보다도 모자라지 않은 사상이였습니다.nbspnbsp이렇게 해석할 때 호랑이는 동굴에서 뛰쳐나가 버리고, 곰은 사람으로 변했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할까요? 자기들 나름대로는 선정을 베푼다고 했지만 토착 세력의 입장에서는 좋게 생각하는 사람도 많았지만 나쁘게 생각하는 사람도 있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즉 호랑이족 입장에서는 선진 이주민에 대해 저항을 했고, 곰족은 협력을 했다고 볼 수 있는 겁니다. 곰족은 협력을 하니까 곰족 하고는 혼혈이 생긴 겁니다. 즉 천손 세력이 곰족의 추장 딸과 결혼해서 낳은 자식이 단군인 것입니다.nbspnbspnbsp천부인 3가지는 청동 거울, 청동 방울, 청동 검입니다. 즉 이것은 환인의 한나라에서 이주해서 내려올 때 청동기 문명을 가지고 왔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렇다면 6천년 전에 벌써 청동기를 사용했다는 것이 됩니다. 이 흔적은 지금도 남아서 무당이 굿을 할 때는 방울을 흔들고 칼을 휘두르는 것을 볼 수 있죠.nbspnbsp그렇다면 개천절은 어떤 날일까요? 단군으로 이해하면 안 됩니다. 환웅 천황이 이 땅에 와서 나라를 처음 연 날이 개천절입니다. 그 도시 이름이 신시이고, 나라 이름이 배달이고, 수도가 아사달이였습니다. ‘아시’는 ‘첫’이라는 뜻입니다. 그래서 ‘아사달’은 ‘처음으로 새운 도시’라는 의미가 되죠.nbspnbsp최근에 유물이 많이 발견되었는데 BC 4500년 BC 3000년 경 유물은 정교한 옥기들이 엄청나게 나왔습니다. 이것도 배달 나라의 기록과 이 유물들이 거의 근접합니다. 또 5천년 전에 쌓아진 산성도 발굴되었습니다. 그리고 치가 있는 성도 발견되었습니다. 그 다음에 피라미드형 무덤도 나왔습니다. 크기가 광개토대왕릉 만합니다. 이와 같은 무덤 양식을 같고 있는 민족이 이 주위에는 아무도 없습니다. 거란족도 없고, 여진족도 없고, 몽골족도 없고, 한족은 더더둑 없습니다. 그래서 이 유물이 발견되기 전까지는 고구려가 이 세상 어느 곳에도 없던 것을 창조했다고 생각했는데, 그와 비슷한 무덤과 축성법이 고구려보다 3천년 앞서 나온 것입니다. 이것은 고구려가 배달 문명을 계승한 사람들이였다는 것을 의미합니다.nbspnbspnbsp이것이 ‘홍산 문화’입니다. 처음 홍산 지역에서 발견되었기 때문에. 또 중국에서는 요하강 상류 지역에서 발견되었다고 해서 ‘요하 문명’이라고 부릅니다. 이것을 우리 이름을 붙인다면 ‘배달 문명’입니다. 이것은 세계에서 최고로 앞선 문명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배달 문명을 전설로만 생각해서는 안 됩니다.nbspnbsp패배의식이나 열등의식은 극복해야 하겠지만 그렇다고 우월의식을 가져서도 안 됩니다. 그러나 이 정도의 역사의식을 가지면 전 세계 어디를 가서 어떤 문명을 봐도 열등의식은 갖지 않을 수 있습니다. 그래서 여러분들이 미국을 가든 유럽을 가든 위축될 필요는 없는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외국에 가면 기가 죽고 위축이 됩니다. 왜냐하면 우리 마음에 민족사에 대한 당당함이 없기 때문입니다. 상고사는 잘 몰라서 그렇고, 독립운동사는 일본에게 패배해서 그렇고, 현대사는 서구 문명으로부터 모방을 해서 살기 때문입니다. 이 세가지 부분에서 열등 의식이 있습니다.nbspnbspnbsp이것을 극복하려면 고대사는 사실대로 아는 것이 필요하고, 일제 침략사는 독립운동사를 좌우로 나누지 말고 실제로 어떻게 싸웠는지 복원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서구 문명에 대한 열등의식은 우리가 창조성을 키울 때 극복할 수 있습니다. 이런 것을 염두에 두고 자긍심을 좀 갖고 사셨으면 합니다.”nbspnbsp홍익인간 재세이화의 건국 이념에 대한 해석은 정말 큰 감동이였습니다. 이렇게 높고 깊은 사상으로 나라를 건국했다고 생각하니 선조들에 대해 무한한 감사함과 더불어 자긍심이 생겼습니다.nbspnbsp그리고 상고사와 독립운동사, 현대사에 대한 왜곡을 바로잡아야 한다는 점과 스님이 제시해 준 그 극복 방법에 대해 모두들 공감하며 고개를 끄덕였습니다. 그리고 오랜 단식 끝에도 불구하고 2시간이 넘도록 열정적인 강의를 해준 스님께 기행단 모두 큰 박수로 감사의 마음을 표했습니다.nbspnbsp저녁 강연이 끝나니 밤 9시가 넘어 있었습니다. 1일째 일정을 모두 마친 기행단은 피곤한 몸을 이끌고 숙소로 향했습니다. 하지만 선조들에 대한 감사함과 자긍심으로 가슴은 점점 뜨거워지고 있었습니다.nbspnbsp내일은 고구려의 두 번째 수도인 집안으로 가서 국동대혈, 장군총, 광개토대왕릉, 5회분 5호묘, 환도산성, 산성하무덤떼, 국내성을 둘러보며 고구려인들의 숨결을 느껴보는 시간을 가질 예정입니다. 또 소식 전해드리겠습니다. nbsp
2015.8.1 평화와 통일을 위한 종교인 선언 관련 불교계 만남
nbsp안녕하세요. 오늘 스님은 평화와 통일을 위한 종교인 선언을 하기 위해 이웃 종교인들과 회의를 하였습니다.nbspnbsp어제밤 봉화에서 출발해 새벽 1시에 서울에 도착한 스님은 잠시 눈을 붙인 후 새벽 4시에 일어나 서울 공동체 대중들과 함께 새벽 예불과 천일결사 기도를 하며 하루를 시작했습니다.nbspnbspnbsp기도 후에는 발우공양에 참석해 어제부로 안거를 마친 공동체 대중들을 위해 이제 일상 속에서 어떻게 수행해 나가야 하는지 법문해 주었습니다.nbspnbspnbsp먼저 스님은 “안거를 마치고 이제 일상 생활로 돌아왔습니다. 다들 안거 때 가졌던 마음가짐으로 일상 속에서도 평정심을 가지고 잘 정진해 나가시기 바랍니다” 라고 당부하면서 일상 속에서도 평정심을 유지하기 위해 보림을 해볼 것을 제안했습니다.nbspnbsp“우리 의식의 저 밑바닥에 있는 까르마는 아주 교묘해서 ‘야, 안거 끝났다. 이제 현실에 맞게 살아’ 이렇게 자꾸 속삭입니다. 마치 마구니가 유혹하듯이 ‘수행 꼭 안 해도 돼’ 하면서 저 밑에서 속삭입니다. nbspnbsp그래서 거기에 휘둘리지 않도록 늘 살펴야 합니다. 몸이 힘들다면 ‘정말 몸이 힘든 것인가’ 살펴서 정말 몸이 힘든 것이라면 쉬어줘야 하고요. 그게 아니라 마음이 힘들다면 마음이 어디에 사로잡혀 있는지 살펴야 합니다. ‘아, 내가 지금 이것을 싫어해서 그러는구나’, ‘아, 내가 좋아하는 것을 하지 못해서 지금 기분이 다운되는구나’ 이렇게 살펴서 거기로부터 벗어나 자유로워져야 합니다.nbspnbsp진짜 수행은 일상 생활 속에서 하는 것입니다. 경계에 부딪히면 깊이 숨겨져 있던 업식이 교묘하게 들어납니다. 경계에 부딪히면서 오히려 안 되는 것을 발견할 수 있는 계기가 됩니다. 수련원에서 살 때는 아예 ‘여기는 수련원이니까 너 까불지 마’ 이렇게 딱 제어를 하게 되기 때문에 깊숙이 숨겨진 것들은 잘 안 드러나요. 아무리 긴장을 풀어도 ‘여기는 수련원이야’ 하는 인식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여기는 마음대로 행동을 해도 되는 것으로 생각해서 발버둥을 치기 때문에 어떻게 보면 현실에서는 더 안 된다고 볼 수도 있고, 또 잘 보면 업식이 드러남으로 잘 볼 수 있는 조건이기 때문에 수행이 더 잘 되고 있는 것이라고 볼 수도 있어요.nbspnbspnbsp이번 안거를 통해 훨씬 더 자기를 투명하게 보고 그것을 끊임없이 내어 놓으면서 여기까지 온 것이니까 이것을 일상 속에서도 가능하도록 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이것을 선에서는 ‘보림’이라고 부릅니다. 딱 본질을 꿰뚤어 본 것을 ‘초견성’이라고 한다면 견성을 한 후에는 보림을 해야 합니다. 보림은 5년이 걸릴 수도 있고, 10년이 걸릴 수도 있고, 20년이 걸릴 수도 있습니다. 보림은 작은 깨달음의 불빛이 어떤 장애가 와도 꺼지지 않도록 온전시키는 것입니다. 그럴려면 이런 경우에도 부딪혀 보고, 저런 경우에도 부딪혀 보고, 밥을 해먹어 보기도 하고, 얻어 먹어 보기도 하고, 남의 집 머슴살이도 해보고, 시장통에서 장사도 해보고, 이렇게 주욱 해보면서 늘 평정심이 유지되는지 점검해 보는 것이 필요합니다. 그래서 보림 기간은 늘 장애 속에서 사는 기간입니다. 큰 장애 속에서도 잘 되는지 점검이 되어야 일상 생활 속에서도 큰 문제가 없어지게 됩니다.nbspnbsp세상 만사가 내 뜻대로 안 되고, 상대는 요구가 많고, 상호 모순이고, 이것이 우리가 사는 현실입니다. 이 현실 속에서 알아차림을 유지하면서 정진을 해나갔으면 좋겠습니다.”nbsp진짜 수행은 현실 속에서 하는 것이며 알아차림을 잘 유지해서 경계에 휘둘리지 않도록 해보는 연습을 꾸준히 해보라는 말씀이였습니다.nbspnbsp이어서 요즘 아침마다 읽고 있는 경전 독송의 내용은 우리가 꼭 유념해야 하는 내용이 들어있다며 그 의미를 설명해 주었습니다.nbspnbsp“어제부터 시작된 경전 독송을 조금 더 유의해서 읽어보시기 바랍니다. 재가 수행자는 8계를 지켜야 하는데 그 8계에 대한 포살 내용이 들어가 있습니다. 삼보에 귀의하고 나서 8계를 지키는 것이니까 삼보에 귀의한다는 것이 무엇인지, 부처님이 어떤 분인가를 제대로 알면 마음이 청정해진다, 부처님의 가르침이 어떤 것인지를 알면 마음이 청정해진다, 승가 공동체가 어떤 것인지를 알면 마음이 지극히 귀의가 되고, 귀의가 되면 마음이 청정해진다, 이렇게 되어 있는데 이것은 수행의 목표가 무엇인지를 분명히 알도록 해주고 있습니다.nbspnbspnbsp8계는 5계에다가 3가지 계율을 더한 것입니다. 하루 한 끼만 먹고, 오후 불식하고, 때 아닌 때에 먹지 않는 음식에 대한 계율과 머리에 장식하지 않고, 화려한 옷을 입지 않고, 패물을 차지 않고, 술 먹고 노래하고 춤추는 곳에 가지 않는다는 옷에 관련된 계율과 높은 침대에 자지 않고 좋은 집에 살지 않는 집에 대한 것 등 의식주에 대한 3가지 계율이 추가됩니다. 재가 수행자는 계율을 매일 지키지는 못해도 적어도 6재일 또는 10재일이라고 해서 재일이 있는 10일 간은 스님과 똑같은 마음가짐으로 생활을 합니다. 그 날은 절에 와서 스님과 똑같이 생활하는 날이기 때문에 신자가 아니라 재가 수행자인 것입니다.nbspnbsp이번 100일 동안의 경전 독송 중에서 가장 중요한 내용은 탐진치 삼독이 얼마나 해악이 있느냐, 그것으로부터 떠나는 것이 얼마나 공덕이 있느냐 하는 부분입니다.nbspnbsp그리고 중간에 나온 내용 중에는 마을 사람들이 와서 ‘어떤 사람이 자기 주장만 하고 남의 주장은 틀렸다고 할 때 우리는 이것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는지?’ 부처님께 물었더니 ‘과거로부터 전승된 윤리나 도덕, 관습이나 습관, 경전이나 계율, 이런 것에 의해서 진리는 검증되지 않는다. 정말 그것이 현실에서 바른가. 정말 양식 있는 사람이 봤을 때 합리적인가?’ 이런 조건을 갖춰야 한다고 나와 있는 부분이 있습니다. 이것을 보면서 우리는 진실에 근거하도록 부처님이 얼마나 세세하고 명확하게 이야기했는지 다시 한 번 각인을 해야 합니다.nbspnbspnbsp많은 종교인들과 사상가들이 그저 옛날부터 전해내려 왔다고, 우리 스승이 한 말이라고 하면서 아무런 근거 없는 믿음으로 근거 없는 해석들을 하고 있지 않습니까. 거기에 우리는 현혹되지 않아야 합니다. 부처님의 가르침은 요즘 읽어도 굉장한데 그 당시에는 얼마나 굉장했겠어요? 그래서 경전의 문장을 항상 외울 수 있을 정도로 각인이 되어 있어야 합니다. 그리고 포살 계본도 꼭 명심했으면 좋겠습니다.”nbsp부처님은 맹목적 믿음이 아니라 항상 진실에 근거하도록 가르침을 주었다는 말씀이 깊이 있게 다가왔습니다. 그리고 재가 수행자가 지켜야 할 8재계의 의미에 대해서도 곱씹어 보는 시간이 되었습니다.nbspnbsp이어서 스님은 곧바로 평화재단으로 이동해 아침 7시 30분부터 민족의 화해와 평화를 위한 종교인 모임에 참석했습니다. 오늘 종교인 모임은 평화와 통일을 위한 종교인 선언을 준비하기 위한 실무 논의에 주안점을 두고 진행되었습니다.nbspnbspnbsp각 종교계 별로 선언 만이 아니라 구체적인 실행 계획을 세울 수 있을지, 계획을 세운다면 어떤 내용이 될지에 대해 서로의 현황을 파악하고 의견을 모았습니다. 그리고 10시부터는 정토회 본부 불사 추진위원들과 본부 건물이 어떠해야 하는지에 대한 진지한 의견 교환이 있었습니다.nbspnbsp이어서 오후 1시에는 조계종 화쟁위원장을 맡고 있는 도법 스님을 찾아가 평화와 통일을 위한 종교인 선언과 관련해 불교계의 참여에 대해 의견을 나누고 적극적인 참여를 부탁했습니다. 조계종 화쟁위원실에 들어가니 위원장인 도법 스님과 민족공동체추진본부 본부장인 지홍 스님, 정웅기 붓다로 살자 편집장이 함께 자리해 평화와 통일에 대한 불교계의 역할에 대해 의견을 나누었습니다.nbspnbspnbsp스님은 도법 스님과 지홍 스님, 정욱기 위원장님에게 왜 지금 시기에 평화와 통일을 위한 기도가 필요한지 설명해 주면서 불교계 쪽의 적극적인 동참을 부탁했습니다.nbspnbsp“이 선언문을 발표한 후 불교, 천주교, 기독교, 원불교, 천도교 등 5대 종교에서 각 교단별로 251개 지역씩 1000여곳에서 1000일 동안 민족의 평화와 통일을 위해 통일 기도를 하자는 제안도 있었습니다. 매주 한 번씩 오늘은 조계사에서 하고, 내일은 불광사에서 하고, 이렇게 돌아가면서 통일에 대한 강연회를 전문가들을 불러서 계속 열어나가 볼 수도 있을 것 같아요. nbspnbspnbsp통일 기도를 하겠다고 서명한 각 사찰에서는 아침 기도에 공동 발원문을 낭독해 볼 수 있을 것 같아요. 통일을 정부에 맡겨 놓고만 있기에는 국가적 위기가 점점 심화되고 있습니다. 사드 배치까지 이뤄지면 나중에 굉장히 어려워집니다. 중국과의 관계도 나빠지고 미국이 짠 판에 거의 종속적으로 들어가게 됩니다. 미국에 대해서는 한미 동맹을 굳건히 해야 한다는 것에는 동의를 하되 종속적 한미 동맹에서 자주적 한미 동맹으로 나아가야 합니다.nbspnbspnbsp한반도의 통일 문제에 있어서는 우리의 이익을 우선하고 미국이 돕도록 하고, 나머지 세계 문제는 우리가 미국의 이익을 돕겠다, 이렇게 되어야 한반도 문제가 풀리는데 지금은 한반도 문제가 미국의 대 중국 봉쇄 정책의 일환으로 규정을 받고 있어서 우리의 이익을 해치는 동맹 관계로 내몰릴 위험이 있거든요.”nbspnbsp종교인 모임에서는 작년부터 한달에 한 두 번씩 모여서 내내 걱정만 하다가 이번에는 선언문까지 내기로 이야기가 되었고, 불교계 스님들의 동참도 거듭 호소하게 된 것입니다. 또 스님은 신라와 가야의 통합 과정을 예로 들며 통일을 하기 위해서는 북한을 어떻게 포용해야 하는지, 불교는 통일 문제에 있어서 타 종교에 비해 역사적으로도 긴밀함이 높다는 점을 이야기했습니다.nbspnbsp“우리 역사 속에서 찾아보면 신라와 가야의 통합 과정에서 많은 교훈을 얻을 수 있습니다. 신라와 가야는 원수 지간이였지만 신라로 나라를 통일하는 대신에 신라는 가야의 국교인 불교를 공인해 주고, 가야의 지배 계층을 신라의 왕족으로 포용해 주면서 신라는 비약적으로 성장하는 계기를 마련했습니다. 이렇게 강자가 약자를 포용해줘야 하는데 우리 정부는 상대를 굴복시키려고 하고 있으니 상대는 끝까지 저항하게 됩니다. nbspnbspnbsp불교는 통일 문제에 있어서 단순히 한 종교로서 참여하기 보다는 이런 역사성과 결합해서 nbsp참여할 수 있는 폭이 민주화 운동이나 다른 운동에 비해서 훨씬 큰 것 같아요. 평화와 통일은 역사 속에서 얼마든지 많은 교훈을 찾아나갈 수 있습니다. 그런 면에서 딱 두 가지 운동만 열심히 해도 불교의 위상이 높아질 수 있을 것 같아요. 통일 운동과 환경 운동입니다. 이 두 가지는 정말 우리 불교가 잘 할 수 있고 우리 사회에서도 정말 미래지향적인 운동입니다. 종단 차원에서 좀 많이 참여해 주시면 좋겠습니다.nbspnbsp저희도 매일 기도할 예정입니다. 지금은 사실 국난 상황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경제도 어렵고, 안보도 위기입니다. 종단에서 나서주면 저희들 NGO 수준에서라도 적극적으로 지원하겠습니다.nbspnbspnbsp다른 종교나 단체들은 통일 관련해서 휴전선 기행 밖에 못하는데 우리 불교계는 역사 속에서 삼국통일, 의병 등 여러 가지 소재가 많잖아요. 또 임진왜란 때는 승병이 있었지 않습니까. 승병 본부였던 중흥사를 순례해 볼 수도 있고요. 우리 불교인은 사회 의식이 부족해도 이런 역사성과 신앙성이 결합하면 오히려 활동하기 좋은 측면이 있습니다.”nbsp도법 스님과 지홍 스님, 정웅기 편집장은 스님의 이런 생각에 적극 공감하면서 고개를 끄덕였습니다. 전국 사찰에 민족공동체추진본부과 화쟁위원회 이름으로 동참할 스님들을 모아보기로 약속했고, 스님은 이에 대해 감사의 마음을 표현한 후 조계사를 나왔습니다.nbspnbsp평화재단에 도착한 스님은 집무실에서 원고 교정 업무를 보았고, 이어서 찾아온 손님들과 4차례 미팅을 더 가진 후 정토회관으로 들어왔습니다. 내일부터 역사기행이 시작되기 때문에 관련해서 자료를 찾아보고 준비사항을 점검하는 등 업무를 더 보시다가 오늘 일정을 마쳤습니다.nbspnbsp내일부터는 고구려 발해 백두산 역사기행이 8월 2일부터 16일까지 1차와 2차 두 차례에 걸쳐 진행됩니다. 스님은 역사기행을 통해 천손의 나라 배달 나라로부터 조선에 이르기까지 그리고 일제 식민지배에서 나라를 되찾기 위해 목숨 바친 독립운동의 현장, 분단의 아픔을 느낄 수 있는 북한 국경변을 안내하며 대중들에게 통일 한국의 희망에 대해 이야기해 주실 예정입니다. 생생한 소식 계속 전해드리겠습니다. nbsp
2015.7.31 공동체 안거 회향 수련 2일째
nbsp안녕하세요. 오늘 스님은 공동체 안거 회향 수련 2일째를 맞이하여 지난 22일 동안 근면하고 성실하게 정진해온 정토회 실무자들을 격려하고 회향 법문을 해주었습니다.nbspnbsp새벽 4시, 봉화 정토수련원의 맑고 청아한 종소리와 함께 공동체 안거의 마지막 22일째 아침이 밝았습니다. 스님은 가사를 수하고 안거 중인 공동체 대중들과 함께 정성껏 예불을 올렸습니다.nbspnbsp▲ 봉화 정토수련원 새벽 예불nbsp예불과 기도를 마치고 6시 30분부터 산책을 나섰습니다. 이곳 봉화 정토수련원은 바른 불교의 확산과 한반도의 통일을 위해 청춘을 바쳐 일한 정토회 실무자들이 노후에 이곳에 내려와 농사를 짓기 위해 마련한 공간입니다. 스님은 산책길을 따라 걸으며 어디서 어떤 농사를 지으면 좋을지 살펴보며 지팡이로 이곳 저곳을 가르켜 주었습니다.nbspnbspnbspnbsp스님의 오랜 꿈이 은퇴 후에 농사를 지으며 사는 것인데 어쩌면 그 꿈이 이곳 봉화에서 실현될 수도 있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nbspnbspnbsp이른 아침이라 풀잎에는 맑은 이슬이 가득 맺혀 있었습니다. 스님을 따라 걸으며 대중들은 그동안 수련에 집중하면서 못다한 이야기를 나누느라 얼굴에 웃음꽃이 활짝 피어 있었습니다.nbspnbsp8시부터 시작된 수련에서는 어제에 이어서 지난 22일 동안 정진하면서 미진했던 점에 대해 스님께 더 물어보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두 사람이 질문을 했습니다. 한 사람은 가끔씩 대중들 사이에 있다보면 자꾸 혼자만 마음이 가라앉는 기분이 든다며 이 마음을 어떻게 다스려야 하는지 물었습니다. 이번에는 스님이 바로 답변해 주는 것이 아니라 그동안 질문자를 가까이서 지켜봐 온 법사님들이 먼저 이야기를 해주고, 이어서 스님의 생각을 들려주었습니다. 질문자의 고민을 바라보는 다양한 시각을 들으면서 문제의 본질이 무엇인지 더욱 명료하게 다가왔고, 마지막 스님의 답변은 화룡점정이 되어 큰 깨우침을 주었습니다.nbspnbspnbsp또 한 사람은 정토회 활동가 간의 내부 소통을 위해 어떤 방식을 도입하면 좋을지 제안을 했고 이에 대한 대중들의 열띤 토론이 이어졌습니다.nbspnbspnbsp이렇게 오전 수련을 모두 마치고 나서 12시부터는 지난 22일 동안의 안거 수련을 마치며 소감문을 작성하는 시간을 가졌습니다.nbspnbsp대중들은 이번 안거 기간 동안 자신이 느끼고 깨달은 바에 대해 정성껏 글을 써내려 갔고, 스님이 함께 자리한 가운데 자신이 쓴 소감문을 한 명씩 발표하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한 명 한 명의 소감문은 그 자체로 각기 다양한 감동을 주었습니다. 자기를 알아가기 위해 또 도반들의 깨달음을 위해 모두 얼마나 열심히 노력을 했는지 알 수 있었습니다.nbspnbsp▲ 지난 22일 동안의 안거 수련 소감문을 읽고 있는 정토회 실무자들nbsp스님은 소감문 발표를 모두 경청한 후 근면하고 성실하게 안거에 임한 대중들을 크게 칭찬하면서 이렇게 회향 법문을 해주었습니다.nbspnbsp“부처님께서 ‘선재 선재라. 참으로 착하고 착하구나’ 라고 제자들을 칭찬한 말씀이 생각날 만큼 여러분들의 수행 소감은 아주 감동적이였습니다. 듣는 저도 매우 기뻤고요. 여러분들이 이제 상가에 귀의한다는 것의 의미를 분명히 알았구나 느낄 수 있었습니다.nbspnbspnbsp지금까지 여러분들은 ‘부처님께 귀의합니다’, ‘부처님의 가르침에 귀의합니다’ 하는 것까지는 충분히 이해가 되었는데 ‘상가에 귀의합니다’ 하는 것은 듣기만 들었지 잘 받아들여지지는 않았을 겁니다. 그런데 오늘 여러분들은 한 사람도 빠짐없이 ‘도반들에게 정말 감사하다’, ‘도반들이 바르게 정진해가는 것을 보는 것이 좋았고, 그것을 보고 나도 깨달음을 얻어가고 있다’는 얘기를 했습니다. 이것은 바로 ‘도반이 수행의 전부이다’ 라고 말한 부처님의 말씀을 지식으로만 아는 것이 아니고 여러분들이 스스로 체험하고 깨달은 것입니다. 아난 존자가 ‘도반이 이렇게 소중하니 적어도 수행의 절반은 되지 않겠습니까?’ 물었을 때 부처님은 ‘아난다여, 그렇지 않다. 도반은 수행의 전부이니라’ 이렇게 말씀하셨는데, 여러분들은 오늘 그것을 경험 속에서 알게 된 것입니다.nbspnbsp더 나아가 ‘도반이라고 하는 개인을 넘어서서 우리가 모여 있는 이 공동체가 얼마나 소중한가’ 이런 얘기를 많이 하셨는데 이것이 바로 ‘상가에 귀의합니다’ 하는 것이 됩니다. ‘해탈과 열반을 향해서 나아가는 수행자들의 모임인 이 청정한 공동체에 지성귀의 하옵니다’ 하는 것을 여러분들 모두가 오늘 스스로 발했습니다. 누군가가 하라고 해서 한 것이 아니라 여러분들의 소감 속에 그것이 다 발해져 있었습니다. 여러분들이 이제야 말로 참으로 불법승 삼보에 귀의했구나 하는 것을 알 수 있었습니다. 지금까지는 ‘불’과 ‘법’에만 귀의했지 ‘승’에는 귀의하지 않았다면 오늘 드디어 ‘승’에 까지 귀의함으로 해서 여러분은 이제 불법승 삼보에 귀의한 불자가 되었습니다.nbspnbsp해탈과 열반을 향해 나아가는 불자는 반드시 불법승 삼보에 귀의하고 계정혜 삼학을 닦아야 합니다. 여러분들이 지금 스스로 돌아보고 뉘우치고 있다는 것은 계율을 소중하게 여기고 있다는 것이고, 자기 알아차림을 끊임없이 유지하고 있다는 것은 선정의 소중함을 알게 되었다는 것이고, 여러가지 마음 작용의 원리를 조금씩 알아가고 있다는 것은 지혜를 조금씩 터득해 가고 있다는 것을 말합니다. 그래서 이제 여러분들은 계정혜 삼학을 닦는 진정한 수행자가 되었습니다. 밖으로부터 복을 빌거나 누구에게 의지하는 것이 아니고 아직도 그런 습성이 좀 남아 있기는 하지만 ‘이제는 정말로 내가 내 인생의 주인이 되어야겠다’ 하는 자각을 분명히 하였습니다. 그렇다면 이제 여러분들은 진정한 수행자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nbspnbspnbsp지금까지는 여러분들이 저의 안내에 따라서 수행하는 관계였다면 이제는 여러분들끼리 진정으로 하나의 공동체를 형성한 것입니다. 10여년 전에는 제가 문경 수련원에 내려와서 중심 역할을 해야 수행 공동체가 형성되지 그렇지 않으면 어렵다고 보는 사람들이 많았습니다. 그러나 제가 문경으로 내려올 형편이 못 되니까 ‘죽이 되든 밥이 되든 너희들이 내려가서 공동체를 한번 구성해봐라’ 이렇게 해서 법사님들이 일체 행정 업무를 그만두고 문경에 내려온지 이제 12년이 되었습니다. 그 전에는 같은 부서에서 일하지 않고 따로 따로 일했기 때문에 하나가 되기 어려웠습니다. 그래서 처음 3년 간은 많은 어려움을 겪었습니다. 그러나 10여년이 지나서 이제는 수행 공동체가 형성되었고, 법사님들과 실무자들 사이에도 그동안 간극이 있었는데 이제는 법사다 실무자다 하는 간격도 거의 없어졌고 이제 우리는 하나의 수행 공동체 구성원이 되었습니다.nbspnbsp우리들의 첫 번째 목표는 ‘괴로움이 없는 사람 자유로운 사람이 되어 이웃과 세상에 잘 쓰인다’ 하는 것입니다. 이제 수행자로서의 이 과제는 분명해졌습니다. 이제 두 번째 목표인 ‘청정과 화합의 수행 공동체를 만든다’ 하는 것도 시작이 되었다고 말할 수 있겠습니다. 예전에는 항상 안거 대중 중에 몇몇은 수행 대중 그룹에 들어올 수 없는 상태였다면 이번에는 거의 다 수행자로서의 방향은 잡았다고 보여집니다. 아직 자기 업식이 남아서 조금 흔들린다 하더라도 이제 방향은 확실하게 잡았다고 볼 수 있겠습니다.nbspnbsp큰 법당이 지어지는 것이 축하해야 할 일이 아니고, 정토회 회원이 많아지는 것이 축하해야 할 일이 아닙니다. 오늘 같이 이렇게 수행 공동체인 상가가 구성된 것이야말로 정토회의 역사에서 가장 중요한 날이고 축하해야 할 일입니다.nbspnbsp이제 제가 없더라도 여러분들이 함께 의논해 나가면 이 순수성을 계속 유지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아직 개인적으로 한 사람 한 사람은 독립적으로 떨어지면 이 좋음을 계속 유지해 갈 수가 있겠느냐. 아직은 좀 부족하다고 생각해요. 그래서 함께 그리고 다시 홀로 더 정진을 하시고, 이제는 억지로 하거나 의지해서 하는 것이 아니라 자발적으로 하셔야 합니다. 그래서 마음 속에 ‘아, 이 길 만이 행복과 자유로 가는 길이다’ 라고 분명해지면 여러분들 한 사람 한 사람이 모두 상가가 되는 것이예요.nbspnbsp아직 여러분들 한 명 한 명은 상가로서 존경할 만한 정도가 못 되지만 어울러서 힘을 합한 상태에서는 상가의 역할을 해낼 수 있게 되었습니다. 앞으로 여러분들 한 명 한 명이 그 정도가 되어야 합니다. 부처님께서도 전법의 길을 떠나라고 말할 때 ‘홀로 가라’ 라고 하셨는데 그것은 제자들에게 ‘너 하나도 이미 온전하기 때문에 세속에 물들 염려가 없다’ 하는 확신이 드셨기 때문에 그렇게 말씀하신 것입니다.nbspnbsp그러니 내일이라도 전 세계 어디에라도 파견되면 거기서부터 씨앗을 심어서 뿌리내릴 줄 알아야 합니다. 현재 만들어진 정토회의 기반 위에서만 일할 줄 아는 것이 아니고 전 세계 어느 곳이든 아무 것도 없는 곳에 떨어져도 내 삶이 평온하고, 비록 내가 생계는 그들의 도움을 받지만 정신적으로는 그들에게 연민을 갖고 도와주는 역할을 해나가면 그곳 사람들도 이 법에 대해서 관심을 갖고 귀의하는 사람이 생깁니다. 생계를 해결하기 위해 가게에 취직을 한다면 내가 모시고 있는 사장님이 이 법에 귀의해서 수행자가 되고, 내 가게에 오는 손님이 수행자가 되고, 이렇게 해서 똑같은 정토회 복제품이 전 세계에 만들어질 수 있습니다. 인도에 떨어지면 인도의 토양에 맞게 이런 모델이 만들어지고, 북한에 떨어지면 북한에 맞게, 중국에 떨어지면 중국에 맞게 이루어져 갈 수 있습니다. 여러분들이 이 정도가 될 때까지 개인 정진이 더 나아져야 되고, 그래서 부처님이 처음에 이루고자 하셨던 그 길이 여러분들에게 더욱 분명히 심어져야 합니다.nbspnbspnbsp이제야 말로 그 출발점에 들어섰습니다. 성인의 대열에 발을 딛어 놓고 방향은 잡았습니다. 앞으로는 수없이 넘어지더라도 이제는 한발 들여놓았다 이렇게 스스로 자부심을 가지고 업에 끌려가면서도 다시 돌아오는 정진을 꾸준히 해나가시기 바랍니다. 다시 한 번 여러분들 정진하신 것에 대해 감사드리고 축하드립니다. 여러분들의 이런 수행의 증득은 모든 정토회 대중들과 모든 살아있는 생명들에게 큰 복이 되고 큰 기쁨이 될 것입니다.”nbspnbsp공동체 대중들이 성인의 대열에 한 발을 내딛기 시작했다는 칭찬과 격려의 말씀이였습니다. 그리고 ‘상가에 귀의합니다’ 하는 마음까지 발하면서 드디어 불법승 삼보에 귀의한 불자가 되었다는 말씀이였습니다. 개개인을 보면 아직 부족한 점이 있지만 공동체가 조금씩 완성되어 가고 있다는 말씀에 공동체 안거 대중들도 기쁨을 느꼈고, 이렇게 될 수 있게 지도해 준 스님께도 깊은 감사의 마음을 느꼈습니다.nbspnbsp스님은 이렇게 회향 법문을 한 후 이어서 공동체 대중 중 한 명이 수련 중 질문을 하지 못해 미진한 점이 있었다며 휴식 시간에 스님께 개인적으로 찾아와 이런 질문을 했다고 공유해 주면서 인간 관계를 맺어가는데 있어서 부처님의 가르침인 ‘중도’는 어떻게 적용될 수 있는지 깊이 있는 가르침을 주었습니다.nbspnbsp“자신이 맡고 있던 업무를 새로운 담당자에게 맡기고 물러나게 되었는데 새로운 담당자가 실무는 잘 하지만 사람 관리를 부담스러워 하고 업무를 겁내는 것 같아서 자신 때문에 새로운 담당자가 정착을 못하는구나 싶어서 자신이 빨리 물러나 주는 것이 좋겠다고 총장님에게 건의를 했다고 해요. 그런데 총장님은 새로운 담당자가 아직 부족하니까 조금 더 도와주라고 했고, 그래서 조금 더 일을 도와주었다고 합니다. 그러나 결과적으로는 자신이 새로운 담당자에게 잔소리를 많이 한 것으로 평가가 되어서 ‘도대체 내가 어떻게 해야 하느냐. 도와주라고 해서 도와주었을 뿐인데 결과적으로는 간섭한 것이 되었다’ 하는 질문이였습니다. 그래서 제가 답해 준 이야기는 이렇습니다.nbspnbspnbsp너의 얘기를 가만히 들어보니 총장님이 도와주라고 해서 도와주었는데 지금은 간섭했다고 평가하니까 섭섭해 하는 것 같다. 너의 입장에서는 ‘총장님이 왜 평가가 왔다갔다 하느냐. 이중 잣대를 들이대느냐’ 이렇게 볼 수도 있는데, 다시 총장님의 입장에서 보면 처음에는 너가 그만두겠다고 하니까 ‘어, 아직 인수가 덜 되었는데... 더 도와주어야 하지 않냐’ 해서 도와주라고 한 것이고, 그러나 나중에 평가를 해보니 새로운 담당자가 많이 부담스러웠다고 이야기를 하니까 ‘너가 간섭을 너무 많이 한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 얘기를 한 것이죠. 얼핏 보면 모순 같은데 총장님 입장에서는 처음에는 자기 생각에 도움이 필요한 것 같아서 도와주라고 한 것이고, 나중에 평가 하면서는 새로운 담당자가 부담스러웠다고 하니까 간섭을 한 것 같은 생각이 들어서 얘기를 한 것입니다. 앞에는 이런 생각이 들어서 이렇게 했고, 뒤에는 저런 생각이 들어서 저렇게 한 것이죠.nbspnbsp저도 이 집이 지어진 것을 보고 처음에는 ‘잘못 지었다’ 고 해놓고, 살아보고 나서는 ‘잘 지었다’고 또 얘기하지 않습니까. nbspnbspnbsp왜 이랬다 저랬다 할까요? 그 때는 그런 모습을 보고 그렇다고 이야기 한 것이고, 이번에는 이런 모습을 보고 이렇다고 이야기 한 것입니다. 사람은 늘 이렇습니다. 내가 어떻게 해야 간섭하는 것도 되지 않고, 외면하는 것도 되지 않을 수 있을까요? 그것이 바로 중도입니다. 그러나 내가 어떻게 한다고 되는 것이 아닙니다. 객관적인 평가는 나는 도와주었지만 상대가 간섭으로 느끼면 간섭이 되고, 나는 상대가 잘 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 떠났는데 상대가 그것을 섭섭하게 느끼면 외면이 됩니다. 이것을 내가 맞춘다는 것은 불가능합니다.nbspnbsp그럼 이것은 상대의 문제일까요? 아닙니다. 이것은 내 마음 속에 내 뜻대로 하려고 하는 욕구 때문에 일어나는 현상입니다. 총장님이 도와주라고 하면 도와주고, 간섭이라고 하면 조금 물러나고, 외면한다고 하면 조금 더 접근해 보고, 또 간섭이라고 하면 조금 물러나고, 이렇게 이래저래 해보면 간섭한다는 소리도 조금 덜 듣고, 외면한다는 소리도 조금 덜 듣는 쪽으로 가게 됩니다. 그렇게 조금씩 중도에 접근해 가는 것입니다. 중도는 이렇게 하면 되는 것이라고 딱 정해진 것이 아닙니다. 왜냐하면 나 혼자 하는 일도 이렇게도 치우치고 저렇게도 치우쳐서 중도를 맞추기 어려운데 사람과의 관계는 내가 중도에 맞춰 놓아도 상대가 ‘너는 고행하고 있다’고 하면 고행한 것으로 평가가 되고, 상대가 ‘너는 쾌락에 빠져있다’고 하면 쾌락으로 평가가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중도에 딱 맞춰야겠다는 생각 자체가 잘못된 것입니다. 그것도 내 생각대로 하려고 하는 것에 해당합니다.nbspnbsp상대가 빨리 가자고 하면 빨리 걷다가 너무 빠르다 하면 천천히 걷다가 또 너무 늦다고 하면 좀 빨리 걷고, 이런 것을 대수롭지 않게 받아들여야 합니다. 처음에는 총장님이 도와주라고 해서 도와준 것이고, 평가는 간섭한다고 나오니까 조금 떨어져 있다가, 또 새로운 담당자가 ‘왜 안 도와주십니까’ 하면 다시 조금 도와주다가, 또 ‘그만둔 지가 언제인데 아직도 간섭하고 있냐’ 고 하면 ‘저 사람은 간섭한다고 느끼는구나’ 알면 됩니다. 이렇게 편하게 받아들여야 합니다. 간섭하는지 의지하는지 하는 문제가 아니고 이 사람은 이렇게 느끼고 저 사람은 저렇게 느끼는 것에 대해서 거기에 모두 맞추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것입니다. 이랬다 저랬다 한다고 분별심을 내어서도 안 되고, ‘도대체 어떻게 하란 말이냐’ 해서도 안 되고, 그냥 ‘이렇게 느끼시구나’, ‘저렇게 느끼시구나’ 파악하고 거기에 맞춰서 이렇게 조금 조절하고 저렇게 조금 조절하면 시간이 흐르면 간섭한다는 소리도 예전보다 덜 듣게 되고, 외면한다는 소리도 예전보다 덜 듣게 됩니다. 이것이 중도로 가는 길입니다.nbspnbspnbsp사람들은 칭찬해 줄 때도 있고, 칭찬 안 해줄 때도 있고, 간섭한다고 할 때도 있고, 못한다고 할 때도 있는데, 그 뜻을 존중해서 ‘아, 그래요?’ 하면서 조금씩 움직여 가면서 적절함을 찾아가는 것이 중도입니다. 여러분들은 이것이 잘 안 되는 것 같아요. 왜냐하면 자기 생각이 있어서 그렇습니다. 다 자기 식대로 하려는 것이 있기 때문입니다. 중도는 그 상황에 맞는 적절함인데 중도라는 것도 자기가 정해놓은 식으로 중도를 고집하니까 상대가 볼 때는 또 다른 극단이 됩니다.nbspnbsp도반들의 얘기나 법사님들의 얘기나 후배들의 지적이나 선배들의 지적에 너무 민감하게 대응하지 말고, ‘아, 저 사람은 저렇게 느끼는구나’ 이렇게 좀 편안하게 받아들이는 자세를 가져 보세요. 너무 무시하지도 말고 거기에 너무 놀아나지도 말아야 합니다. 이것은 명상할 때 다리를 펴지도 말고 참지도 말라는 얘기와 같은 것입니다. 지적을 받아들이면서 적절히 조정하면서 몇 번 시행착오를 거치면 처음보다는 경직성이 완화가 되어 갑니다. 명상을 할 때도 처음에는 마음을 편안하게 가진 것 같았는데 더 편해져서 보면 ‘아, 조금 전에는 경직되어 있었구나’ 이런 것을 알 수 있잖아요. 그것처럼 중도라는 것은 딱 이것이다 하고 단정적으로 말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nbspnbsp여기 모인 40명 사이에서의 중도는 40명 각자의 뜻을 적절히 조정하는 것입니다. 귀가 얇아서 한 사람 한 사람의 말에 다 끌려가면 치우치게 되고, 경계에 끄달리지 않는다고 누구의 말도 안 듣고 자기 혼자의 뜻대로 나가면 그것도 치우치게 됩니다. 그래서 중도는 40명의 생각이 바뀔 때 마다 조금씩 조금씩 바뀌는 것입니다. 40명의 견해가 하나로 딱 뭉쳐지지 않습니다. 이 40명도 아침에 생각이 다르고 저녁에 생각이 다릅니다. 시간과 공간이 시시때때로 바뀌어 나가고, 같은 사람도 시간이 흐르면 생각이 바뀌고, 같은 장소에서도 누가 말하느냐에 따라 다르고, 이렇게 요소가 바뀌면 그만큼 달라질 수 밖에 없는 것이 인연의 도리입니다. 본래는 정해진 것이 없지만 시공간에 따라서 정해지는 것입니다. 시간이 바뀌면 또 바뀌고, 공간이 바뀌어도 또 바뀝니다. 이렇게 이치적으로도 분명히 알아야 하고, 또한 실천적으로도 경험이 되어져야 중도에 대한 이해가 더욱 깊어질 수 있습니다.nbspnbsp적절함, 과하지도 않고 모자라지도 않고 이러지도 않고 저러지도 않고, 얼마나 말이 애매합니까. 경험하지 않고 논리로 설명해서는 이해하기 어려운 것입니다. 경험되어진 만큼 유연해지는 것입니다.nbspnbspnbsp공부가 끝이 없는 이유는 까르마가 끝이 없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상황이 매번 바뀌기 때문입니다. ‘아, 이것은 이렇게 하면 되겠구나’ 정하는 즉시 상황이 바뀌어 버리기 때문에 또 안 맞게 됩니다. 답을 찾아 놓아도 상황이 바뀌어 버리면 또 안 되게 됩니다. 그래서 늘 깨어있어야 됩니다. 중도란 것은 사람처럼 늘 살아 움직이는 것입니다. 탁 깨치면 그 이후로는 그대로만 하면 된다 하는 것은 없어요. 이것이 수행에 있어서 큰 모순입니다. ‘아’가 없다고 늘 이론으로 배우지만 이것 자체가 아적인 사고 방식입니다. 일체가 변하지 않는 것이 없다고 했는데 또 진리는 변하지 않는다고 생각하는 것과 같습니다. 변하는 것과 변하지 않는 것이 늘 유동성 있게 작용하는 것이 진리라고 볼 수 있습니다. 이렇게 저렇게 변하는 것이 진리일 수도 없고, 변하지 않는 것이 진리일 수도 없고, 변화 속에 변하지 않음이 있고, 변하지 않는 것 속에 변화가 있는 것이 존재의 본질이라는 것입니다.”nbspnbsp중도란 살아움직이는 것이라는 말씀이 크게 와 닿았습니다. 그러면서 스님은 과학적 측면, 집을 짓는 것, 혜능 대사의 법문 등 다양한 예를 보여주며 중도가 무엇인지 더욱 쉽게 설명해 주었습니다.nbspnbsp“이것을 현재 밝혀진 과학으로 설명하면, 화학 변화에서는 물질은 변하지만 원자는 변하지 않는다, 핵 변화에서는 원자는 변하지만 소립자는 변하지 않는다, 상태의 변화에서는 상태는 변하지만 물질은 변하지 않는다, 이렇게 변하는 것 속에 변하지 않는 현상을 관찰할 수 있는데, 그 변하지 않는다는 것도 또 변하고, 그렇다면 변하기만 하느냐 하면 그 속에 변화의 주체는 또 변하지 않은 것이 중심이 되어 있고, 변하지 않는 것 속에는 또 변화가 중심이 되어 있습니다. 이것을 한마디로 요약해서 말한 것이 ‘색불이공 공불이색’입니다. 이것은 이론으로 만들기 위해 나온 표현이 아니라 자연의 원리와 우리들의 삶이 늘 이렇다는 것을 표현한 것입니다.nbspnbspnbsp그렇기 때문에 어제 좋은 사람이 오늘도 반드시 좋을 수가 없는 것입니다. 대신 어제 좋았던 사람은 오늘도 좋을 확률이 높은 것이죠. 왜냐하면 연속성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어제 좋았던 사람이 오늘도 반드시 좋다고 말할 수 없고, 오늘 좋다고 내일도 반드시 좋다고 말할 수 없는 것입니다. 유리로 집을 지어놓으면 겨울에는 ‘진짜 따뜻하고 좋구나’라고 평가했지만, 여름이 되면 ‘유리로 해놓으니 도저히 더워서 못 살겠다’ 이렇게 다시 평가가 됩니다. 그래서 적절함이라는 것은 상황이 바뀌는 대로 계속 바뀌는 것이기 때문에 거기에 맞게 유동성 있게 대응해야 합니다. 여름에 100 맞을 수도 없고 겨울에 100 맞을 수도 없지만 약간 창문을 조정하면 여름에도 시원하고, 약간 가리개를 열면 겨울에도 따뜻하고, 이렇게 집에 살면서 수리를 해나가야 하는 것입니다. 여름에 더운 문제는 무엇을 조정하면 될까, 겨울에 추운 문제는 무엇을 조정하면 개선할 수 있을까, 이렇게 완전히 더위와 추위를 없앨 수는 없지만 현재 온도보다 2,3도 낮추고 높이는 것은 조금만 손을 보면 가능합니다. 이렇게 유동성 있게 적용하는 것이 중도입니다.nbspnbsp이것을 혜능 대사는 ‘중생이 깨달으면 부처이고, 부처가 미혹하면 중생이다’ 이렇게 적나라하게 표현했습니다. 즉 깨달음은 항상성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항상 살아 움직이는 것입니다. 그래서 찰나에 깨어있어야지 한번 깨달으면 영원히 밝아진다는 것은 없는데 모든 수행이 거기에 너무 집착되어 있습니다. 늘 유동적이기 때문에 항상 지금의 조건 속에서 깨어있어야 합니다. 그렇지 않고 우리는 늘 자기 감정이나 상대나 세상을 자꾸 고정화 시키려고 합니다. 그래서 제가 보기에는 공부를 잘 해나가고 있는데 본인은 공부가 늘 뜻대로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오르락 내리락 하면서 가는 것입니다. 일부러 잘못한 것이 아니라면 잘못한 것을 통해 ‘나에게 이런 욕망이 있었구나’, ‘이런 어리석음이 있었구나’ 하는 것을 발견하면 그것 또한 큰 소득을 얻은 것입니다. 그래서 나날이 수행입니다.nbspnbspnbsp이런 관점만 딱 잡고 있으면 엎어져도 수행이고 자빠져도 수행이예요. 이 관점을 놓쳤을 때 수행자가 아니라고 평가해야지 이 관점을 잡고 있는 한 자빠지고 넘어진 것을 기준으로 수행이 잘 되고 안 되고를 평가해서는 안 됩니다.”nbspnbsp수행의 관점만 잘 잡고 있다면 넘어져도 수행이고 자빠져도 수행이라는 말씀에 대중들도 모두 고개를 끄덕이며 공감했습니다. 이어서 스님은 경전에 나오는 수다원이 무슨 뜻인지 설명해 주면서 안거를 마치고 내일부터 일상으로 돌아가면 어떤 자세로 계속 수행을 해나가야 하는지 이야기해 주었습니다. nbspnbsp“여기서 수행이 잘 된 것은 분위기가 좋아서 잘 되는 것 같았던 겁니다. 착각하면 안 돼요. 일상 속에서도 이대로 유지되면 좋겠다 하는 것은 꿈도 꾸지 마세요. nbspnbspnbsp여기서는 분위기가 좋으니까 덩달아서 다 된 것 같은데 일상으로 돌아가서 옆 사람이 또 짜증내고 성질내면 금방 휘둘리게 됩니다. 다만 좋아졌다면 돌이키는 힘이 좀 생겨서 ‘어, 내가 또 경계에 휩쓸리는구나’ 이렇게 알아차릴 수 있게 된 것입니다. 이렇게 나아진 것을 기반으로 해서 다시 이런 시간을 가지면 또 더 깊어지고, 더 깊어져서 가면 다시 휘둘리더라도 더 나아지고, 이렇게 주욱 나아져 가고 있는 것입니다. 일상으로 돌아가서도 이대로 계속 잘 되면 바로 부처가 되겠지요.nbspnbsp그래서 ‘수다원’을 증득했다는 표현이 있는 것입니다. ‘수다원’은 성인의 류에 발을 들여놓은 것이지 성인이 아닙니다. 앞으로 성인이 되기 위해서 몇 번 엎어지고 넘어질지는 모르지만 일단 관점은 잡았다는 것이죠. 그러다가 이번에 넘어지면서는 이제 한번만 더 넘어지면 다시는 넘어지지 않을 수 있을 것 같은 수준이 되면 ‘사다함’이고, 이제 넘어지는 것은 이번으로 끝이다 하는 수준이 되면 ‘아나함’이고, 이제 더 이상 넘어지지 않은 경지로 가면 ‘아라한’이라고 부르는 것입니다. 그렇다고 ‘아라한’은 더 이상 넘어지지 않는다고 또 정하면 안 돼요.nbspnbsp가장 중요한 것은 길을 찾았다는 것입니다. 길을 찾은 다음에는 목적지에 도달하고 안 하고가 뭐 그리 중요해요? 꾸준히 발걸음을 내딛기만 하면 되지요. 빨리 가면 뭐하고 늦게 가면 뭐해요? 놀지 않고 꾸준히만 가면 된단 말이예요. 그렇게 공부를 해나가시기 바랍니다. ‘일상으로 돌아가면 잘 될까 안 될까’ 하는 것도 다 놓아버리고 그냥 편안하게 가십시오.”nbsp길을 찾았다는 것이 중요하고 이제 남은 것은 꾸준히 가는 것이라는 말씀에 대중들의 마음은 환하게 밝아졌고, 이렇게 소중한 가르침을 준 스승님에 대한 큰 박수도 터져나왔습니다.nbspnbspnbsp이렇게 7월9일 명상 수련부터 시작된 공동체 안거는 일체의 장과 정일사 수련을 거쳐 오늘 22일째를 맞이하여 스님의 회향 법문을 끝으로 원만히 회향하게 되었습니다. 이렇게 수행 정진한 공덕이 고통받는 많은 대중들에게 널리 베풀어지기를 간절히 발원해 봅니다.nbspnbsp비쩍 마른 몸에 힘없는 목소리에도 불구하고 아낌 없는 애정을 담아 바른 길을 지도해 준 스님께 공동체 성원들은 삼배로 감사 인사를 올렸습니다.nbspnbsp8월2일부터 고구려 발해 백두산 역사기행이 시작되기 때문에 실무를 준비하는 스텝들은 수련이 끝나자 곧바로 서울로 올라갔고, 스님은 봉화 정토수련원에 밤 늦게까지 머물면서 세계 100강 출판 원고 교정 업무를 다 마친 후 새벽 1시에 서울로 올라왔습니다. 스님은 무거운 원고를 늘 들고만 다녔지 교정을 제대로 못 봐서 짐이 되었는데 역사기행을 가기 전에 무사이 원고 교정을 다 마쳐서 아주 가벼워 했습니다. 좋은 책이 나오기를 고대해 봅니다.nbspnbspnbsp내일은 아침 7시부터 민족의 화해와 평화를 위한 종교인 모임을 시작으로 저녁 늦게까지 연이어 회의와 미팅이 있을 예정입니다. 또 소식 전해드리겠습니다.
2015.7.30 공동체 안거 회향 수련 1일째
nbsp안녕하세요. 오늘 스님은 정토회 실무자들의 안거를 마무리하는 회향 수련에 참가해 ‘수행의 자세’에 대해 법문한 후 정토회의 각 단위 사업에 대해 논의하는 시간을 가졌습니다.nbspnbsp7월 9일부터 29일까지 단식을 하며 1차, 2차, 3차 명상수련 안내를 모두 마친 스님은 어제 봉화 정토수련원에 도착해 세계 100강 출판 원고를 교정한 후 오늘부터는 공동체 안거를 하고 있는 실무자들과 안거 회향 수련을 함께 했습니다.nbspnbsp▲ 7월 20일7월 24일까지 진행된 2차 명상수련을 마치고 나서 대중들과 함께nbsp▲ 7월 25일7월 29일까지 진행된 3차 명상수련을 마치고 나서 대중들과 함께nbsp새벽 4시에 기상해 예불과 108배, 40분 명상, 경전 독송을 한 후 7시부터 공동체 안거 회향 수련이 시작되었습니다. nbspnbsp▲ 새벽 예불과 명상nbsp먼저 스님은 안거 회향 수련을 시작하며 여는 말씀을 해주었습니다. 과학자의 연구 자세를 예로 들며 ‘수행의 자세’는 어떠해야 하는지 소중한 가르침을 주었습니다. nbspnbspnbsp“여러분들은 명상을 10일 동안 하고, 일체의장 수련도 하고, 정일사 수련도 하면서 20여일의 시간을 보냈습니다. 수행의 자세는 기본적으로 과학자가 물질이나 생명, 우주에 대해 탐구하는 자세와 같습니다. 선불교에서는 화두를 참구한다고 표현합니다. 참구라는 것은 그것의 본질이 무엇인지 연구하는 것을 말합니다. 부처님께서도 ‘왜 하나가 살기 위해서는 다른 하나가 죽어야 할까? 함께 사는 길은 없을까?’ 이런 과제를 갖고 연구를 했습니다.nbspnbsp과학자들이 ‘천체는 왜 저렇게 돌고 있을까? 계속 돌면 원심력에 의해서 점점 멀어져야 하는데 왜 계속 같은 거리를 유지하며 도는 것일까?’ 이런 의문을 갖고 관측도 하고 실험도 하다가 도저히 답을 못 얻고 있었는데 뉴턴이 사과가 땅에 떨어지는 것을 보고 물질에는 인력이 있다는 것을 발견했다고 하잖아요. 그것은 마치 화두를 참구하다가 바람 부는 소리를 듣고 깨달았다고 하는 선사들의 이야기와 같은 것입니다. 깊이 연구하다가 어떤 계기를 만나서 막힌 것이 뚫리게 되는 이치입니다. 고무 풍선이 빵빵해져야 바늘로 약간만 건드려도 펑 터집니다. 그래서 창조력이 생기려면 연구하는 자세가 기본적으로 있어야 합니다.nbspnbspnbsp연구를 하려면 하지 말아야 될 일도 있겠지만 이것저것 다 해봐야 합니다. 그런데서 여러분들은 가만히 앉아서 명상도 해보고, 일하면서 수행도 해보고, 나누기도 해보고, 여러 가지 일을 해보았습니다. 이런 일들을 하면서 마음이 어떻게 작동하는지 살펴볼 수 있었습니다. 마음이란 것이 가만히 두니까 어떻게 작동하는지, 경계에 임하니 어떻게 작동하는지, 이렇게 늘 연구를 해야 합니다. 그렇게 해야 마음이 작용하는 어떤 원리를 찾을 수 있습니다.nbspnbsp자기가 경험을 하고 자기가 그 원리를 찾아야 자기 것이 됩니다. 그것을 자신이 스스로 찾지 못하면 늘 ‘믿어야 되는데’ 하면서 믿어지지는 않고, ‘해야 되는데’ 하면서 행해지지는 않고, ‘좋은 줄은 아는데’ 하면서 행동하지는 않게 됩니다. 알긴 아는데 행해지지가 않으니까 심적으로 부담이 됩니다. 또 행동을 해도 힘이 들게 됩니다. 그래서 수행이 자신을 행복하게 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스트레스를 주게 됩니다.”nbsp자기가 직접 연구하고 경험해야 자기 것이 된다는 말씀이였습니다. 공동체 대중들도 지난 21일 동안의 수련이 모두 스스로 연구하고 경험하는 과정이었다는 사실에 공감하며 고개를 끄덕였습니다. 그러면서 스님은 자발성이 있어야 한다는 점과 자기화 하는 공부를 해야 함을 강조했습니다. nbspnbsp“옛날에는 공부를 하고 싶었기 때문에 공부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지면 그것에 대해서 엄청나게 기뻐하고 자랑스러워 하고, 미국까지 가서 접시 닦고 심부름 하고 노예처럼 생활하면서도 유학 공부를 했습니다. 그런데 요즘은 취직이나 출세를 하기 위해서 억지로 공부를 시키니까 부모가 온갖 것을 다 지원해 주어도 공부하는 것을 너무 힘들어 해서 거의 정신병자가 될 수준의 부담을 안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하면 좋은 줄은 알지만 자기화 되어 있지 않기 때문입니다. 출발이 자발적이지 못해서 남이 볼 때는 좋은 조건에 있지만 본인에게는 엄청난 부담이 됩니다.nbspnbspnbsp앉아 있을 때만 수행이고, 입재를 해야지만 수행이 시작되는 것은 아닙니다. 늘 마음이 어떻게 작용하는지 실험하고 연구하는 자세가 되어야 공부에도 진척이 생깁니다. 어떤 것이든 항상 연구를 해야 합니다. 잘 안 되는 나를 보면서는 세상 사람들을 이해해야 하고, 극복하는 나를 보면서는 내가 어떻게 자유로워지고 있는지를 살펴서 자기화 해야 합니다. ‘명상을 해보니 나의 까르마가 이렇게 형성되어 있구나’, ‘작년보다 올해는 이런 문제가 조금 더 편해지고 있구나’, ‘일체의 장을 해보니 앉아서 정신을 딱 차릴 때는 잘 되는데 일상으로 가니까 내 까르마가 그대로 작동하는구나’.nbspnbsp우리들의 삶은 제한된 구역 안에서만 있지 않고 늘 경계 따라 움직이게 되니까 현실에서 잘 안 된다면 ‘제한된 구역에서의 연습을 조금 더 해야겠다, 지금까지는 명상수련을 1년에 여름과 겨울 2번 정도 해왔는데 나는 대중들에게 양해를 구해서 봄과 가을에도 명상수련을 더 해서 조금 더 나를 점검해가면서 생활을 꾸려나가야겠다’ 이렇게 자기를 살피면서 체크를 하고 거기에 맞게끔 삶을 설계하고 대중들의 양해도 구해야 합니다. 이렇게 자신의 특질에 맞게 체크를 해서 극복해야 할 것과 살려야 할 것을 자신이 알아가야 합니다. 이렇게 자기화 해나가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수련할 때는 억지로 참고 하고, 풀어주면 일상으로 돌아가 버리게 됩니다.nbspnbspnbsp지금은 안 되지만 조금씩 발전해가고 있다는 희망을 갖고 꾸준히 해나가는 것과 이랬다 저랬다 하는 것과는 성격이 많이 다릅니다. 그런데서 이번 안거를 통해 자기 점검을 하면서 몇 가지 생활 속 과제를 정해 본다든지, 꼭 지켜야 할 계율을 한두개 선정해 본다든지, 이런 건 도반들의 도움을 얻는다든지, 이렇게 자기 설계를 해보시기 바랍니다. 한꺼번에 많이 하려고 하지 말고 조금씩 편안한 마음으로 해나가면 좋겠습니다.”nbspnbsp이어서 스님은 긴장하기 보다는 편안한 상태에서 꾸준히 해나가는 자세를 강조하면서 인사 배치를 할 때는 어떤 태도를 가져야 하는지 말씀해 주었습니다. nbspnbspnbsp“긴장해서 살고 있다는 것은 임시로 살고 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언제든지 나갈 수 있다고 생각하고 임시로 살기 때문에 ‘그냥 입 다물고 살면 되지’ 이렇게 되는데, 그럴수록 사실은 불안정해집니다.nbspnbsp긴장을 풀고 편안해져야 영원히 살아라고 해도 살 수 있게 됩니다. 그래서 긴장하기 보다는 편안한 상태에서 꾸준히 해나가는 것이 필요합니다. 건강이 안 좋은 사람은 과로하지 않는 선에서 꾸준히 해나갈 수 있게 해야 합니다. 그러나 내 취향대로 하고 싶어서 자꾸 안 하게 되는지는 자기를 잘 봐야 합니다. 이런 심리가 있으면 자꾸 남의 눈치를 보게 됩니다. 그러면 다른 사람들도 ‘저 사람은 꾀를 낸다’고 생각할 소지가 생기게 됩니다. 이렇게 자신의 과제를 자꾸 극복해 나가야 합니다.nbspnbspnbsp그렇지 않고 ‘나는 누구와는 죽어도 같이 일을 못하겠다’, ‘그 인간 하고는 한 부서에 편재시키지 마라’ 이런 마음을 갖고 있다면, 수행자는 이것을 합리화 해서는 안 됩니다. 이런 것들이 극복이 되어야 업무를 배치할 때도 훨씬 효율적으로 할 수 있습니다. 두 사람이 같이 일하는 것이 효과적인데 인간 관계 때문에 따로 배치해야 된다면 굉장히 비효율적이 됩니다. 물론 배치하는 사람은 사람들의 특성을 잘 살펴서 배치하는 것이 필요해요. 그러나 여러분들 각자는 수행을 통해서 자신의 과제를 극복해가는 입장을 가져주어야 합니다. 그래야 조화를 이룰 수 있습니다. 배치하는 사람은 자꾸 수행적 관점에서 배치를 하고, 개인은 자신의 취향과 성격을 주장해 버리면 굉장한 불협화음이 생기고 분위기가 억압적이게 됩니다.”nbspnbsp마지막으로 스님은 마음도 편안하면서 업무도 효율이 나게 해야 미래 사회의 대안이 될 수 있다고 강조하면서 방향도 옳지만 방식도 좋아야 함을 이야기해 주었습니다.nbspnbsp“수행 공동체는 사람들이 행복하기도 하지만 업무도 또한 효율적이여야 합니다. 기업에서는 업무는 효율적이지만 거기서 일하는 사람들은 굉장히 힘들어 합니다. 반대로 사람들은 편안한데 업무 효율은 전혀 없는 단체도 많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사람들이 편안하고 행복하면서도 어떤 세속적인 단체보다 업무 효율이 있어야 합니다. 이것이 미래 사회의 대안입니다. 편안하기만 하고 효율이 없으면 세상에서 수용되기가 어렵습니다. 좋기는 하지만 늘 소수로 남게 됩니다. 반면에 효율은 있지만 편안하지 못하면 일시적 성장은 가능하지만 오래 가지 못합니다. 이런 두 가지 측면에서 모범을 만들어 낼 때 우리가 문명적 비전을 가질 수 있습니다. 우리가 가야 할 방향은 편안함이라고 볼 수 있지만 세속의 대안이 되려면 효율적인 측면도 있어줘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경쟁력이 없기 때문에 사람들이 받아들이지 않습니다. 그래서 편안하게 하되 효율도 더 있어야 합니다.nbspnbspnbsp우리가 하는 일이 세상에 좋은 일이라는 것은 이미 세상에서도 다 압니다. 그러나 그 좋은 일을 하기 위한 운영 방식도 좋다고 받아들여질 수 있어야 합니다. 정토회가 여러가지 민주적인 제도를 시도하는 이유는 방향도 옳아야 하지만 방식도 좋아야 하기 때문입니다.nbspnbsp그리고 이렇게 회의를 통해서 어떻게 일을 효율적으로 할 것인지 논의하는 것도 필요하지만, 여러분들 개개인이 이 방향에 얼마나 행복하게 임하느냐가 전체 성과의 절반에 해당합니다. 그렇게 되어야 지속성이 있습니다. 내가 봐도 좋은 일이면 스님도 없고 혼자 남게 되더라도 계속 그런 방향으로 살아가고 활동하게 됩니다.nbspnbsp실수한 것 마저도 모두 돌이켜서 교훈으로 삼을 수가 있습니다. 교훈으로 삼기 위해서 실수하자는 것이 아니라 실패한 후에 어떤 자세를 갖느냐에 따라 실패한 이후를 더 좋게 만들 수가 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서 여러분들이 지난 20일간 해 온 수행 생활이 자신의 인생에 좋은 교훈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nbsp어떻게 일과 수행의 통일을 해나갈 수 있는지 관점을 잡을 수 있는 소중한 시간이였습니다. 스님의 여는 말씀 덕분에 공동체 대중들도 모두 마음이 활짝 열렸습니다.nbspnbsp이어서 스님은 “지난 안거 기간 동안 수행하면서 들었던 의문이나 자신이 깨달은 내용에 대해 함께 이야기해 보자” 며 공동체 성원들의 질문을 받기 시작했습니다. 지난 20일 동안의 수련으로 이미 많은 고민들이 해결되었지만 아직 미진한 부분이 남아 있는 대중들은 스님께 질문을 하기 시작했습니다.nbspnbspnbspnbsp과거에 실패했던 경험 때문에 다음 사업에 대해 조바심이 나고, 일에 너무 집착되어 있는 것은 아닌지 스님께 점검을 받고 싶다는 사람, 일에 집착을 하지는 않지만 방관하거나 남의 시선을 의식해 몰입을 덜 하는 것 같아 스스로에 대해서도 만족감이 떨어진다는 사람, 생활 소임을 우선으로 하고 지낼 때 업무에 대한 안정감도 생기는 것 같다며 본인의 사례를 들려주는 사람, 문제가 일어날 것을 회피하고 외면하는 태도를 어떻게 개선할 수 있을지, 같이 일하는 상대와 갈등이 심했고 이번 안거를 통해 많이 해소되었지만 여전히 상대로부터 이해받고 싶은 마음이 남아 있는 것 같아서 어떻게 마음을 다스려야 할지 묻는 사람, 경제적으로 자립하지 못하고 상근 봉사활동을 계속 이어가고 있는 것이 고민인 사람 등 다양한 고민에 대해 스님은 자상하게 답변을 들려주었습니다. nbspnbspnbsp오전에는 이렇게 개인 수행에 대해 질의응답을 한 후 점심 식사 이후에는 대중부를 책임지고 있는 간부들이 서울에서 봉화 수련원으로 내려와 대중부와 관련된 사업에 대해 함께 의논하는 시간을 가졌습니다.nbspnbsp▲ 사업 논의를 하기 위해 참석한 대중부 자원활동가들nbspnbsp2015년 하반기 강연 일정 조정, 9월6일로 예정된 통일의병대회 프로그램 점검, 이웃 종교인들과 함께하는 남북의 평화와 통일을 위한 천일 기도 준비 방안, 대한민국의 정치, 경제, 통일 방안이 담긴 통일의병 교재 기획, 정토불교대학의 졸업률을 높이기 위한 수강생 관리 방안, 정토불교대학 교과 내용 개선을 위한 모니터링 요원 모집, 안산 다문화 센터 개원 및 안산 다문화 센터가 지역사회에서 해야 할 역할, 두북, 봉화, 문경 정토수련원을 농산물 생산지로 가꾸어 나가기 위한 방안 및 유통 구조 마련, 연수원 공간 마련 방안, 문경 정토수련원의 이후 불사 계획과 정토회의 본부 마련 계획 등 각각에 대해 대중부와 실무자들의 의견을 수렴한 후 스님의 생각도 함께 이야기해 주었습니다. 무엇보다 스님은 “정토회의 발전 속도에 비해 그에 따른 시설들이 못 따라가고 있다”고 짚어 주었습니다. nbspnbspnbspnbsp이 외에도 정토회의 전체 방향 수립을 위한 주요 간부들 간의 회의체 구성 검토, 이번 6차 백일기도 입재식 실천과제를 무엇으로 할지, 2016 인도 성지순례 운영 방안, 봉화 정토수련원의 활용 방안, 자원봉사 활성화를 위한 온라인 플랫폼 제작, 천일결사 기도집의 전체 내용을 스마트폰에서 볼 수 있게 하는 모바일 페이지 제작 등 다양한 아이디어들이 제기 되었고, 대중부는 실무자들이 내어 놓은 다양한 의견들을 적극 수렴하면서 구체적인 실행 방안을 마련해 보기로 했습니다. nbspnbsp▲ 봉화 정토수련원nbsp많은 사안들에 대해 열띤 토론을 마치고 나니 벌써 저녁 시간이 되었습니다. 대중부 간부들은 회의를 마치고 곧바로 집으로 돌아갔고, 공동체 대중들은 이어서 저녁 8시부터 대중부 사업 외에 함께 의논해야 할 내용들에 대해 의논하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출판, 영상, SNS 등 흩어져 있던 컨텐츠 관련 담당자들을 컨텐츠사업국으로 통합하기로 결정하였고, 또한 고구려 발해 백두산 역사기행 실무 준비 사항을 점검한 후 오늘 수련을 모두 마쳤습니다.nbspnbsp스님은 24일째 단식 중임에도 불구하고 정토회의 각 부서가 어떤 목표와 방향을 갖고 나아가야 하는지 다소 힘없는 목소리였지만 아낌 없는 조언을 해주었습니다.nbspnbsp▲ 법사단과 내일 수련 일정에 대해 논의하는 모습nbsp내일은 공동체 안거 회향 수련 2일째 프로그램이 계속될 예정입니다. 또 소식 전해드리겠습니다.nbsp
2015.7.19 정토불교대학, 경전반 졸업식 및 수계식
nbsp안녕하세요. 오늘 스님은 정토불교대학과 경전반을 수료한 졸업생 2,200여명에게 수계식 및 졸업 법문을 했습니다.nbspnbsp작년 가을에 입학해 올해 여름 정토불교대학을 수료한 졸업생 1,500여명과 경전반을 수료한 졸업생 700여명 등 총 2,200여명이 오늘 스님으로부터 수계를 받고 졸업을 하게 되었습니다. 오전에는 수계식이, 오후에는 졸업식이 진행되었습니다.nbsp▲ 졸업식이 열린 충주 호암체육관nbsp오전 9시, 졸업식이 열린 충주 호암체육관에는 1년간 무사히 불교대학과 경전반 수료를 마친 졸업생들이 전국 방방곡곡에서 모여들기 시작했습니다.nbspnbsp▲ 정토불교대학과 경전반을 졸업하고 법륜 스님으로부터 수계를 받은 2200여명의 대중들nbsp부처님 당시에 계를 받게 되면 입었던 분소의를 상징하는 가사를 어깨에 걸친 채 너도 나도 졸업을 축하하며 기념사진을 찍고 있는 졸업생들로 행사장은 활기가 돌았습니다.nbsp▲ 기념사진을 찍느라 신이 난 졸업생들nbsp예불과 반야심경 봉독에 이어 ‘부처님께 바칩니다’라는 찬불가를 부르며 수계식이 시작되었습니다. 졸업생들은 청법가를 부르며 수계 법사인 법륜 스님에게 법문을 청했습니다. 스님은 불자가 된다는 것은 그 이전과 어떤 점이 달라지게 되는 것을 의미하는지 설명해 주면서 오늘 졸업생들이 받게 되는 수계의 의미에 대해 말씀해 주었습니다.nbsp“오늘 수계 받는 대중 여러분들은 지난 1년 동안 불교대학을 다 마치고 이제 불법이 어떤 것인지, 부처님은 누군지, 부처님의 가르침은 무엇인지, 불교는 어떤 역사적 변천을 거쳐서 오늘 나에게 이르렀는지, 이런 것들을 공부를 했습니다. 그리고 나서 여러분들은 ‘정말 이 법이 좋구나. 나도 이 법을 따라 수행 정진을 해야겠구나. 그래서 부처의 길을 가야겠구나’ 이렇게 스스로 결심을 했기 때문에 오늘 이렇게 불자가 되기 위한 의식인 삼귀의, 오계를 받게 되었습니다. ‘불자가 된다는 것이 불자가 되기 이전과 어떤 다른 점이 있느냐?’, ‘불자가 된다는 것이 다른 종교의 신자가 된다는 것과 어떤 차이점이 있느냐?’ 이것을 여러분들이 먼저 알아야 합니다.nbspnbsp불교는 지금까지 이 세상에 있었던 어떤 종교와도 근본적으로 다릅니다. 원시 종교인 무속부터 시작해서 고등 종교까지 그 어떤 종교도 기본 원리는 이렇습니다. 인간의 존재는 너무나 나약하다. 그런데 저 하늘이나 어딘가에 무한한 능력을 가진 존재가 있다. 그 능력을 가진 존재에게 우리가 기도를 해야, 그들은 우리에게 도움을 준다. 이렇게 힘 있는 자의 힘을 빌려서 내가 원하는 이 일을 이룰 수가 있다. 그럴 때 어떻게 해야 하느냐. 공양물을 바치고 간절히 빌어야 한다. 이렇게 제사를 지낼 때는 혼자 빈다고 되는 게 아니니까 신과 영통하는 제사장이 필요하다. 그 제사장을 사제라 부르고, 비는 자는 신자라고 합니다. 그래서 여기엔 무한한 능력을 가진 신과 그 신을 대신하는 사제와 그리고 그 힘을 빌리기 위해서 비는 신자 이렇게 세 가지가 있습니다.nbsp그런데 부처님께서는 ‘이 세상을 창조했다거나 무한한 능력을 가지고 우리의 운명을 좌우하는nbsp 그런 존재는 없다. 그렇기 때문에 그 능력을 대신한다고 하는 제사장도 필요하지 않다. 우리 또한 빈다고 이 문제가 해결되는 것은 아니다’ 라고 하셨어요.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이 문제가 해결 될까요? 우리의 고뇌는 이 괴로움이 일어날 수밖에 없는 어떤 원인이 있습니다. 그 원인을 찾아서 소멸하면 누구나 다 괴로움이 없는 열반의 경지, 속박이 없는 해탈의 경지를 증득할 수가 있습니다. 부처님은 그것을 스스로 증득을 하셨어요. 그렇기 때문에 우리도 이 길을 따라 수행 정진하면 누구나 다 해탈 열반을 증득할 수가 있다고 하셨어요. 여기에는 신도 없고 사제도 없고 신자도 없고 오직 해탈과 열반을 증득하기 위해서 나아가는 ‘수행자’ 한 종류 밖에 없습니다. 그러면 부처님은 누구일까요? 바로 이 자유와 행복의 길로 우리를 안내해 주고 이끌어주는 위대한 스승님입니다. 즉 신이 아니고 스승님입니다.nbspnbsp지금까지 배우면서 이 입장이 정리되었나요? 이 입장이 정리되어야 불자가 될 수 있는 것이고, 그렇지 않다면 그냥 불교 신자가 됩니다.nbspnbspnbsp다른 종교는 교회나 절에 오라고 난리인데, 왜 정토회는 와서 불자가 되겠다는데도 수계를 안 주고 1년이나 기다리게 했을까요? 그것은 불교가 일반 종교와 성격이 다르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부처님의 가르침에 따라 내가 스스로 해탈과 열반을 증득하는 길로 가겠다고 원을 세우면 그가 바로 불자인 것입니다. 그런 원을 세우지 않는 사람은 불자라고 할 수가 없습니다.nbspnbsp그래서 오늘 이 계를 받는 것은 ‘나도 이 부처의 길을 가겠습니다’ 이렇게 원을 세우고 서약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럼 부처의 길을 가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첫째, 불법승 삼보에 귀의를 해야 합니다. 부처님은 신과 같은 존재가 아니고 우리를 진정한 자유와 행복의 길로 인도해 주시는nbsp위대하신nbsp스승이다 이것을 받아들이는 것이 ‘귀의불’이에요. 이것이 ‘삼계대도사 사생자부 시아본사’, 온 우리의 스승이고 모든 생명 가진 존재의 자비하신 어버이시고 나의 유일한 스승이시다는 뜻이죠.nbspnbsp그 분은 바로 그런 붓다가 되는 길을 우리들에게 가르치셨습니다. 세상의 가르침인 돈 버는 길, 출세하는 길, 천국에 가는 길과는 종류가 다릅니다. 이것은 모든 속박을 끊고 모든 괴로움의 바다를 건너서 해탈과 열반, 참 자유와 참 행복으로 가는 길입니다. 이것을 받아들이는 것이 ‘귀의법’입니다.nbspnbsp그러면 이 길을 가는 사람들은 다 수행자입니다. 그래서 ‘나도 이 길을 가는 수행자의 대열에 참여했다’, ‘이 길을 가는 사람들은 정말 청정하고 소중한 사람들이다’, ‘나는 이 공동체에 귀의한다’ 이것이 ‘귀의승’입니다.nbspnbspnbsp그래서 첫 번째로 해탈과 열반의 길을 열어주신 위대하신 나의 스승 부처님께 귀의하며, 두 번째로 이 길로 안내하는 부처님의 가르침에 귀의하며, 세 번째로 이 길을 가는 수행자 공동체에 귀의한다, 이렇게 먼저 불법승 삼보에 귀의를 해야 됩니다. 이 길에 동참하는데는 어떤 인종이든, 남자든 여자든, 신체 장애가 어떠하든, 성적 취향이 어떠하든, 어떤 나라 사람이든, 무슨 종교를 갖고 있든 관계 없습니다. 뭘 믿고 뭘 하든 그것은 그들의 문화니까요. 기독교 신자냐 불교 신자냐 하는 것은 어느 나라 사람이냐 남자냐 여자냐 하는 것처럼 개인적인 문제입니다. 다만 부처가 되겠다는 발심을 해야 합니다. ‘나는 부처의 길을 가겠다. 그러기 위해서는 석가모니 부처님을 나의 스승으로 모시고 그분의 가르침을 따라서 그 길을 가는 이 공동체에 함께 하겠다’ 이렇게 입장이 서야 돼요.nbsp이렇게 부처의 길을 가겠다고 발심을 했으면 이제 어떻게 해야 될까요? 이 길을 가는데 도움이 되는 행동은 지금부터 최선을 다해서 행하고, 이 길을 가는데 도움이 되지 않는 행동은 오늘부터 딱 멈추겠다고 해야 합니다. 이 길을 가는 것에 도움이 되는 것을 이름하여 선이라 하고 이 길을 가는 것에 도움이 되지 않는 것을 악이라고 불러서, ‘지악수선’해야 합니다. 악은 멈추고 선은 행한다. 내가 좋아도 도움이 안 된다면 딱 멈추고, 내가 싫어도 도움이 된다하면 기꺼이 행합니다. 이것을 계율이라고 합니다.nbspnbsp오늘 첫 출발은 우선 계를 받아 지키는 것으로 약속을 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이 부처의 대열에 합류하는 것이 됩니다. 아직은 부처가 아니지만은 일정한 시간이 경과해서 수행 정진하면 여러분들은 마침내 부처가 됩니다. 그러니 여러분들을 이제 더 이상 중생이라고 부를 수는 없습니다. 아직 부처가 아니라 하더라도 부처가 될 사람들이기 때문에 부처로 부르겠다는 것이 불명이에요. 불명이란 부처의 이름입니다. 그러니 오늘 여러분들이 이 계를 받아서 수행 정진하면 미래세에는 부처가 되는 거예요. 지금까지는 ‘아무개야, 이것 좀 해줘’ 부탁하면 ‘싫어’ 이렇게 말해도 되었지만, 이제 불명을 부르면서 ‘아무개 보살님, 아무개 거사님, 이것 좀 해주세요’ 하면 하기 싫어도 ‘예’ 해야 돼요. 지금 부처의 이름을 불렀잖아요. 아무개 부처님 이랬으니까요. nbspnbspnbsp그래서 오늘부터 내 삶이 달라져야 합니다. 수계 받는 이유를 알겠어요? 마음이 뿌듯해요? 겁나요? nbsp스무 살이 넘었으면 부모로부터 독립해서 내 인생은 내가 살아야 되는데 이렇게 못 살고 요즘은 스무 살이 넘어서도 부모님 밑에 붙어서 잔소리 들어가며 집을 안 나가고 있는 부모에게 의지해서 사는 경우가 많죠. 이와 같은 것이 바로 신자예요. 스무 살이 딱 되면 ‘그동안 저를 낳고 길러주셔서 감사합니다. 이제부터는 제가 제 인생을 책임지고 살겠습니다’ 하는 것, 독립해서 도움도 받지 않지만 부모님 잔소리도 듣지 않고 무엇을 하든지 내가 결정해서 하는 사람, 장부, 이것이 불자이고 수행자입니다. 여러분들도 능력있는 분에게 다 붙어있고 싶은 마음이 강하니까 지금 독립하기 싫다는 거죠? 독립해서 자기가 돈 벌어서 부모님도 좀 드리고 ‘그동안 키워주셔서 감사합니다’ 이렇게 하는 것이 진짜 효자예요. 50살, 60살이 되도록 부모님 등골 빼는 게 효자가 아니예요. 불자가 된다는 것은 바로 부처님의 가르침에 따라 수행 정진해서 해탈과 열반을 증득하려고 하는 것입니다.“nbspnbsp수계의 의미를 명확히 알게된 대중들은 큰 박수로 법을 설해준 스님께 감사의 마음을 표했습니다.nbspnbsp스님께 수계의 의미를 안내 받은 대중들은 오른손은 이마 높이로 올려서 합장 자세를 하고, 왼 팔은 팔꿈치까지 옷을 걷고 주먹을 살짝 쥔 채, 법사님들이 차례차례 연비를 하는 동안 참회 진언 “옴 살바 못자 모지 사다야 사바하”를 염하며 백겁으로 지은 죄업이 따끔한 한 찰나에 흔적조차 없어지기를 간절히 발원했습니다.nbspnbsp▲ 지난 삶을 참회하면서 법사님으로부터 연비를 받는 졸업생들nbsp이어서 스님이 계율을 하나씩 설하고 지킬 것을 물으니 수계 대중들은 ‘잘 지키겠습니다’하고 약속했습니다. 이렇게 오계를 수지한 대중들은 그 뜻을 다시 한 번 다짐하고 부처님의 가르침인 오계를 합송했습니다.nbsp“첫째, 산 목숨을 죽이지 말라 함은 생명을 존중하라는 뜻이기에 살아있는 생명을 때리거나 죽이지 않겠습니다.nbspnbsp둘째, 도둑질을 하지 말라 함은 성실하게 살라는 뜻이기에 주지 않는 남의 물건을 훔치거나 뺏지 않겠습니다.nbspnbsp셋째, 사음하지 말라 함은 청정하게 살아가라는 뜻이기에 본인의 의사에 반하는 성추행이나 성폭행을 하지 않겠습니다.nbspnbsp넷째, 거짓말을 하지 말라 함은 진실을 말하라는 뜻이기에 남을 속이거나 욕설하지 않겠습니다.nbspnbsp다섯째, 술을 먹지 말라 함은 맑은 소견을 가지라는 뜻이기에 술을 과도하게 마시거나 취하지 않겠습니다.nbspnbsp저희 수계자들은 오늘 이후부터 목숨을 마칠 때까지 아무리 어려운 일이 닥치더라도 이 서원을 성취하기 위해서, 화합하고 단결하여, 용맹 정진하겠습니다.”nbspnbsp▲ 오계를 합송하는 졸업생들nbsp이렇게 서원한 수계 대중을 위해 스님은 수계자들이 계를 잘 지키고 수행을 놓치지 않고 정진할 수 있도록 간절히 축원해 주었습니다. 그리고 오늘 수계 받는 대중을 대표해서 구미법당 이상명님에게 불명과 수계증을 주고 불명을 해석해 주었습니다.nbspnbsp“불명은 모두 부처님의 명호이기 때문에 그 부처님과 인연을 맺어주는 것이에요. 또 미래세에 부처가 되리라는 수기를 주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불명이 좋니 나쁘니 얘기하면 안 됩니다. 또 불명을 자꾸 해석하려 하지 말아요. 그냥 부르면 됩니다”nbspnbsp혹시나 불명에 대해 시비하는 대중들에 대해 주의를 주면서 이어서 졸업생들도 차례로 앞으로 나와 법사님들로부터 수계증과 염주를 받았습니다.nbsp▲ 수계증과 염주를 받고 기뻐하는 졸업생들nbsp수계식의 마지막 순서로 정토회 행정처 김은숙 처장님이 나와 “정토회는 수행, 보시, 봉사하는 공동체로서 오계를 어겼을 경우 참회해야 하고, 매일 자신의 행복을 위해 천일결사 기도를 해야 하며, 매월 삼보수호비를 납부해야 함”을 알려주었습니다. 그리고 함께하는 도반이 된 것을 환영하는 영접사와 함께 사홍서원을 끝으로 삼귀의·오계 수계식을 모두 마쳤습니다.nbspnbsp대중들이 모두 점심 식사를 하러 나간 사이 스님과 법사님들은 졸업생들과 법당별로 단체 사진을 함께 찍었습니다.nbspnbsp▲ 지역 법당별 단체 사진 촬영nbspnbsp삼삼오오 모여 점심 식사를 한 후 오후부터는 졸업식이 열렸습니다. 졸업식은 불교대학 1년 동안의 이야기를 담은 신나는 문화공연으로 시작하였습니다. 특히 원주 법당은 새빨간 양말에 검은 반바지를 입고 ‘앗 뜨거’라는 노래에 맞춰 퍼포먼스를 펼쳐 식후 졸음을 확 달아나게 하며 졸업식의 흥을 돋구었습니다.nbspnbsp▲ 원주 정토법당 졸업생들의 신나는 문화 공연nbspnbsp이어서 1년 간 불교대학생들의 이야기가 담긴 영상을 보았습니다. 서먹서먹하던 입학식부터 첫 수업을 듣던 초롱초롱한 눈망울, 법륜 스님과 함께 떠난 경주 남산 순례, 전국의 도반들을 만나고 함께 수행을 체험한 특강 수련, 거리모금을 통해 자신을 뛰어넘은 경험 등 도반들과 가까워져 가고 수행이 깊어져 간 시간들이 사진 슬라이드로 펼쳐졌습니다.nbspnbsp▲ 불교대학 1년 간의 추억을 되돌아보는 영상nbsp그리고 정토회 이기혜 대표님의 축사가 이어졌습니다. 대표님은 “이제 여러분들은 수계를 받고 내가 희망이 되고 또 내 삶의 주인이 되는 부처 클럽에 멤버십을 취득하셨습니다” 라며 축하의 마음을 표하면서 “새로운 한 걸음을 내딛을 때는 두려움이 앞서기도 합니다. 그러나 우리는 이제 혼자가 아닙니다. 우리에게는 길을 가르쳐주시는 스승님이 계시고, 넘어지면 일으켜 세워 자상하게 안내해 주시는 법사님들이 계시고, 그리고 무엇보다 함께 할 도반이 있습니다. 우리 모두 자원활동가로서 법당에서, 거리모금에서, 희망 강연에서 그리고 통일을 위한 활동 속에서 함께했으면 합니다” 라고 앞으로의 적극적인 활동을 제안했습니다. nbspnbsp이어서 졸업생을 대표해서 대구정토회 이지인님이 졸업 소감문을 발표하였습니다. 소감문에서 담겨진 수행의 감동이 많은 대중의 마음을 촉촉하게 적셔 주었습니다. 경청하며 눈물을 흘리던 대중들이 자신이 받은 감동을 큰 박수로 전달하였습니다. 소감문은 수행은 넘어지고 넘어져도 또 다시 일어나서 해보고 마침내 한 걸음 나아가는 것이라고 온 몸으로 말해주는 듯 했습니다.nbsp그리고 지난 1년간 가르침을 주신 스님께 졸업생을 대표하여 진주법당의 박순덕님이 꽃다발을 올렸습니다. 졸업생들은 진심어린 감사함을 ‘스승의 은혜’ 노래를 통해 전달하였습니다.nbspnbsp▲ 스님께 꽃다발을 건내는 졸업생nbsp스님은 졸업식에 참여한 2,200여명의 대중들을 위해 졸업 축하 법문을 해주었습니다. 졸업생들이 졸업한 이후에 나아가야 할 방향으로 수행, 보시, 봉사에 대해서 말씀해 주었습니다.nbsp“사람은 몸과 마음으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우리는 우리의 몸을 위해서는 굉장히 아끼고 위합니다. 아침에 일어나면 씻겨주고, 거기다가 화장까지 해주고, 좋은 옷으로 입히고, 맛있는 것을 먹이고, 좋은 잠자리에 재워주고 이렇게 애지중지 하는데, 정작 우리의 마음은 함부로 합니다. 악쓰고 화내고 짜증내고 원망하며 괴로원 합니다. 이렇게 엄마 아빠가 하니까 아이도 그 속에서 초조불안하게 자랍니다. 아이는 자라면서 나는 저렇게 안하겠다 하지만 자기도 또 자라면 그렇게 되는 것이 인간의 삶이에요. 그래서 행복의 원천인 이 마음을 몸처럼 좀 잘 가꾸자는 겁니다. 매일 씻어주고 화장하고 먹이고 입히고 이렇게 까지는 안 하더라도 매일 아침에 눈뜨고 일어나면 깨끗하고 청정한 마음을 가질 것을 원을 세우고, 또 어제 하루 탐진치 삼독에 물들었다면 그 마음을 살펴보고 참회해서 씻어내고, 이렇게 해서 좀 더 자유롭고 행복한 인생을 살아보자는 것이죠. 이것이 부처님 가르침의 요체입니다.nbspnbsp돈을 어떻게 벌 것이냐, 권력을 어떻게 잡을 것이냐, 어떻게 예쁜 여자와 결혼할 것이냐, 어떤 돈 많은 남자와 결혼할 것이냐, 이런 것을 가르치는 게 아니라 어떻게 하면 내가 행복해질 수가 있느냐, 주위 사람들이 어떻게 말하든 거기에 관계없이 내가 행복하게 살 수 있느냐 하는 것을 가르치는 것입니다. 그가 나에게 쓰레기 한 봉지를 주면 ‘왜 쓰레기 봉지를 나에게 줬냐’고 하면서 그 쓰레기 봉지를 가지고 계속 그 사람을 따라다니며 미워하는 이런 어리석은 삶이 아니라 그것이 쓰레기라면 그 자리에서nbsp 던져버리는 이런 자세가 필요합니다. 그런데 우리의 현실은 그렇게 되지 못해요. 상대가 나한테 준 쓰레기 봉지를 갖고 1년이고 10년이고 그 사람을 따라다녀서 결국에는 자기가 그 쓰레기 봉지를 간직하는 것과 다름이 없어요. 이런 어리석음에서 벗어나서 한 번 행복하게 살아보자는 것입니다.nbsp부처님은 ‘어떻게 하면 내가 참자유와 참 행복에 이를 수 있느냐’ 그것을 참구하시고 끝없는 실천을 하셔서 그 법을 찾아내고 그래서 본인이 먼저 자유로워지고 행복해지셨습니다. 그리고 나서 이 좋은 법을 다른 사람에게도 전해서 함께 행복한 사회를 만들어 가셨어요.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부처님의 영향을 받아서 행복해졌고 그들 또한 그 좋은 법을 다른 지역으로 멀리 멀리 또 후대에도 전해주고 전해줘서 오늘에 이르렀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그분들의 은혜를 입고 있는 겁니다. 마치 나의 육신이 있기 위해서는 부모가 있고 부모가 있기 위해서는 할아버지, 할머니, 그 위로 조상이 있었듯이 내가 이 좋은 법을 만나게 된 것은 스승이 있어서고 그 스승은 스승이 있어서고 이렇게 해서 우리는 부처님에게까지 이르게 됩니다. 오늘 여러분들은 바로 그러한 법을 만나서 맛보고 ‘아, 나도 이 길을 가야되겠다’ 이렇게 원을 세우게 된 겁니다.nbspnbsp그런데 이렇게 졸업을 하면 끝을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이것이 시작이고 출발입니다. 이렇게 출발을 했으면 어떻게 공부를 해야 될까요? 지금은 대충 이 원리가 어떻고, 어떻게 가야하는지 방향을 잡고 이해했다면, 이제 실제로 한 발 한 발 가야 됩니다. 그래서 이제 여러분들은 깨달음의 장에도 갔다 와야 돼요. 처음에는 불법을 만나서 좋았고 즉문즉설을 듣고 인연이 되었고 불교대학을 다녀서 좋았지만 경험과 실천이 안 되니까 현실에서는 도움이 안 돼요. 그런데 깨달음의 장을 다녀오면 새로운 발심을 하게 됩니다. 정말 불교대학을 졸업하려면 깨달음의 장을 갔다 와야지만 졸업이라고 할 수 있어요. 깨달음의 장은 깨달음이 어떻게 우리의 고뇌와 무지를 깨뜨리느냐 하는 경험을 하게 해줍니다. 그것만 경험하면 다 되는 것도 아니에요. 그것도 깜깜한 방에 작은 바늘 구멍만한 구멍이 뚫린 정도 밖에 안 돼요. 그러나 그것은 나에게는 획기적인 사건이죠. 내가 나를 모르다가 내가 나를 알게 된 것입니다. 깨달음의 장을 갔다오면 소크라테스가 말한 ‘네 꼬라지 네가 알라’ 정도는 될 수 있어요. 그렇다고 해서 우리가 다겁생래 지은 업식이 다 녹아나는 것은 아니에요. 이제 첫 번째 발을 내딛었다고 볼 수 있어요.nbsp그런 후에는 매일 매일 정진을 해야 됩니다. 쉼 없이 꾸준히 정진을 해나가야 합니다. 매일 수행자들이 함께 정진하는 모임이 정토회 천일결사입니다. 한 백일쯤 정진을 해보면 내 꼬라지를 조금 알 수 있어져요. 사람들이 나보고 ‘네 고집 센다’ 하면 ‘내가 왜 고집이 센데? 넌 안 쎄나? 고집 없는 사람이 어딨노?’ 하지요. ‘욕심이 좀 많다’ 하면 ‘욕심없는 사람이 어딨노? 넌 없나’ 이런 수준이었는데 이제 공부해보면 남이 아는 나를 나만 모르고 살다가 ‘아, 이래서 사람들이 나 보고 고집이 세다 그랬구나’ 이걸 알게 돼요. 그렇다고 변하는 건 없어요. 꾸준히 정진해서 천일을 하게 되면 여기에 변화가 생기기 시작해요. 그래서 같이 사는 아이들도 남편도 아내도 부모도 ‘사람이 달라진다’ 하는 것을 약간 느낄 수가 있어요. 그래서 천일결사에 참여해서 매일 아침 5시에 일어나서 부지런히 정진을 해야 합니다.nbspnbsp그리고 우리는 늘 얻으려고만 해요, 그래서 주는 연습을 해야 돼요. 작든 크든 형편 되는대로 계속 보시를 해야 합니다. 또 우리는 이해 받으려고만 해요. ‘넌 왜 나를 이해 못하니?’, ‘너가 내 처지 되어 봐라’ 늘 이렇게 부모가, 남편이, 애들이 내 마음을 이해 못해 준다고 생각해요. 이제는 이해해 주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네가 그래서 그랬구나’, ‘아이고, 엄마 아빠가 그래서 그랬구나. 엄마 아빠도 참 힘들었겠다’, ‘아이고, 남편도 요즘 회사 일이 잘 안 되고 해서 그랬구나’ 이렇게 이해하는 마음을 내어야 합니다. 우리는 도움을 받는 데서 도와주는 사람, 이해 받는데서 이해해 주는 사람으로 변해 나가야 합니다. 그렇게 함으로 해서 나의 기쁨이 조금씩 커지고 원망과 슬픔과 미움과 좌절은 조금씩 옅어져 가게 돼요.nbspnbsp이런 상태에서 이제는 내가 얻은 이 기쁨을 다른 사람에게 더 나누어야 합니다. 우리는 대승 불교이니까 우리가 부처의 길을 가는 과정에도 내가 얻은 것을 이웃에 나눠서 ‘함께 이 좋은 길을 가자’ 하는 봉사를 해야 합니다. 전에는 누가 다 준비해 준 법당에 와서 딱 앉아서 공부만 하고 갔는데 이제는 내가 10분 전에 와서 방석도 깔고 청소도 좀 하고 어떤 역할이든 하는 거예요.nbsp이렇게 해보면 또 잘 안돼요. 그러면 다시 또 정진을 해야 되요. 그래서 매일 정진하고 실천하고 정진하고 실천하고 즉 연습을 해보고 안 되면 뭐가 문제인지 밝혀서 또 연습을 해보고 또 해보는 것입니다. 명상하고 절하는 것만이 수행이 아니라 현실에 가서 부딪히고 돌이켜보고 다시 참회를 하고 또 가서 부딪혀보고 이 전체가 수행입니다.nbspnbsp정토회는 수행 공동체입니다. 수행을 이렇게 매일 정진하는 수행과 보시, 봉사로 다시 나눌 수 있습니다. 불교대학을 졸업하면 여러분들이 다음 불교대학생을 위해서 또 봉사하는 역할을 하고, 이렇게 부처님이 깨달음을 얻고 일체 중생을 위해서 이 좋은 법을 아무런 대가 없이 무료로 베풀었듯이 우리 또한 이 좋은 법을 이웃에 아무런 대가 없이 베풀어 가야 됩니다. 그리고 자기 재능껏, 작지만 조금씩 보시를 해야 합니다. 그래서 정토회는 이 봉사를 굉장히 중요시합니다. 이것은 나만이 아니라 다른 이도 이 좋은 법을 만나서 기뻐지기를 발원하기 때문입니다.nbspnbsp또 하나는 공부를 좀 더 해야 돼요. 법륜 스님이 ‘불교는 이런 거다’ 한 것을 가지고 공부했으니까 이제는 경전반에 올라가서 부처님이 말씀한 경전을 직접 가지고 공부해 봐야 합니다. 졸업이 끝이 아니라 시작이라는 마음으로 해주시면 좋겠습니다. 다시 한 번 졸업을 축하드립니다.”nbsp다시 출발하는 것이라는 말씀에 대중들은 다시 한번 실천을 다짐하며 큰 박수를 보냈습니다.nbspnbspnbsp다음은 졸업장 수여가 진행되었습니다. 졸업생들은 졸업장을 스님으로부터 직접 받고 큰 박수를 받았습니다. 특히 휠체어를 타고 나온 한 졸업생을 보며 대중들은 더욱 큰 박수와 환호를 보냈습니다.nbspnbsp경전반 수료생들은 법사님으로부터 수료증과 ‘일과 수행 아름다운 조화’ 라는 책을 선물 받았고, 스님은 무대 위로 올라온 경전반 수료생 모두에게 일일이 악수를 건내 주었습니다.nbspnbsp그리고 졸업생들의 문화공연이 펼쳐졌습니다. 특히 동래법당 불교대학 졸업생들은 1년 간 해 온 거리모금, 봉사활동, 통일 교육 속에서 들었던 마음들과 에피소드를 재미있게 꽁트로 표현하여 대중들의 큰 박수를 받았습니다.nbspnbsp▲ 꽁트를 보여주고 있는 동래 정토법당 졸업생들nbsp이어 백일출가 졸업생들의 노래가 이어졌습니다. ‘여름 안에서’라는 신나는 곡을 도반의 소중함과 수행자의 행복함을 주제로 개사하여 법복을 수한 채 합창하였고, 청명한 여름 노래에 대중들도 더위를 잠시 잊을 수 있었습니다.nbsp▲ 백일출가 수련생들의 축하 노래nbsp졸업식이 모두 끝나고 집으로 돌아가는 대중들을 향해 스님과 법사님들은 환한 웃음으로 손을 흔들며 인사를 보내 주었습니다.nbspnbspnbsp내일부터는 다시 명상수련이 연이어 있을 예정입니다. 스님은 문경 정토수련원에서 머물며 대중들의 명상을 안내하면서 단식 수행을 계속하십니다. 7월 20일부터 24일까지는 2차 명상수련, 7월25일부터 29일까지 3차 명상수련, 그리고 7월30일과 31일은 정토회 공동체 대중들과 안거 회향 수련을 함께 갖습니다. 명상수련이 모두 끝나고 7월30일에 또 소식 전해드리겠습니다.nbsp ▼ 법륜 스님의 명쾌한 강의 ‘2015년 정토불교대학’에서 신입생을 모집하고 있습니다. 8월23일에 신청 접수가 마감되오니 많은 신청 바랍니다.
2015.7.18 9박10일 명상수련 회향
nbsp안녕하세요. 스님은 지난 7월 9일부터 대중들과 함께 명상수련을 함께 하고 있습니다. 오늘은 9박10일 명상수련을 마친 대중들과 안거 중인 공동체 성원들을 위해 회향 법문을 했습니다.nbspnbsp지난 7월 9일에 시작한 9박10일 명상수련을 오늘 무사히 마쳤습니다. 스님은 명상수련의 시작과 함께 단식을 하며 정진에 임했습니다. 수련에 참가한 200여명의 대중들도 스님께서 단식 중임에도 정성을 다해 가르침을 준 덕분에 모두들 얼굴이 환하게 밝아졌습니다.nbspnbsp▲ 9박 10일 명상수련을 마치고 나서nbsp명상수련을 무사히 마친 대중들은 스님과 함께 솔숲에서 기념 사진을 찍었습니다. 묵언 중이여서 조용한 가운데 카메라 앞에 선 대중들은 스텝 봉사자들이 ‘김치’ 하자 환한 웃음을 내비쳤습니다. 깊은 정진의 끝자락에서 터져나오는 웃음 속에는 평안함이 느껴졌습니다.nbspnbspnbspnbsp웃다가 울다가 보니 시간 가는 줄 몰랐던 소감문 발표의 시간이 지나가고, 이어서 지난 열흘 동안 정해진 수련 프로그램에 따라 부지런히 정진에 임해준 대중들을 위해 스님은 격려의 말씀과 함께 회향 법문을 해주었습니다. 특히 지난 열흘 동안의 정진이 어떤 공덕이 있었는지를 자세히 일러주자 대중들은 모두 기쁜 마음이 일었습니다. nbspnbsp“열흘 간 수고들 많이 하셨습니다. 몸과 마음이 잘 쉬어졌기를 바랍니다. 지난 열흘 간 우리가 수행한 공덕은 이루 헤아릴 수 없이 크고 많습니다.nbspnbsp수련 중 아무 것도 얻지 못 하고 열흘 간 입을 꼭 다물고 참기만 했다고 하더라도 공덕이 있습니다. 어떤 공덕이 있을까요? 우리가 세상을 살다보면 화에 사로잡힌다든지, 자기 생각에 사로잡혀서 회사를 다니다가 순간적으로 사표를 집어던져 버린다든지, 홧김에 이혼을 한다든지, 홧김에 누구를 한 대 때린다든지, 홧김에 욕설을 한다든지, 욕심에 사로잡혀서 순간적으로 물건을 훔친다든지, 욕망에 사로잡혀서 허락 없이 남의 몸을 만진다든지, 순간적인 찰나에 자기도 모르게 획 돌아서 행동할 때가 많습니다. 지나놓고 보면 그 순간을 못 참아서 자신에게 많은 손해를 끼치는 경우가 허다하게 있습니다. 그런데 이렇게 이를 악 다물고 열흘 동안 눕고 싶은데도 못 눕고, 졸린데도 못 자고, 먹고 싶은 것도 못 먹고, 다리 아픈데도 참고, 평상시 같으면 어림도 없는 일을 수련이라는 미명 하에 대중과 함께하는 속에서 참아낼 수 있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렇게 참는 경험이 쌓이면 여러분들이 순간적으로 사표를 던져버릴 상황도 참아낼 수 있게 되고, 욕설할 것도 한 번 더 참아지고, 욕심낼 것도 한 번 더 참아지게 됩니다. ‘너는 그렇게 될 수 밖에 없다’ 하는 이런 운명에서 자기도 모르게 벗어나는, 즉 재앙과 손실을 막는 공덕을 여러분들이 지은 것입니다.nbspnbspnbsp앞으로 그럴 일은 절대 없을 것이라는 것이 아니라 그럴 수 있는 확률을 많이 낮춘 것입니다. 평상시 같으면 열 번 일어날 일이 다섯 번만 일어난다든지, 평상시 같으면 100이라는 자극에 반응하는 사람이 이제는 적어도 150이 넘어야 반응을 하게 되는 것입니다. 남이 볼 때는 그 성질을 완전히 버렸다고 할 수 없겠지만, 실제로는 성질이 많이 죽었다는 평가를 들을 수 있을 겁니다. 그러니 참기만 했어도 공덕이 있습니다.nbspnbsp또 참는 것을 넘어서서 앉아서 눈을 감고 있어도 졸리지가 않고 혼미하지도 않게 있을 수 있다는 것은 몸에 누적된 피로가 그만큼 풀린 것을 의미합니다. 여러분들의 체내 속에 깊숙이 자리잡고 있던 피로가 빠져나갔기 때문에 눈 감고 가만히 앉아 있어도 혼미해지지 않을 수 있게 된 것입니다. 그래서 몸의 건강도 아주 좋아졌습니다.nbspnbsp또 정신적으로도 눈을 감고 있는데 혼미하지 않다는 것은 그만큼 맑아졌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스트레스를 받아서 앉아 있으면 눈만 감으면 이런 저런 망상이 떠오르는데, 눈을 감고 있어도 별로 떠오르는 것이 없다면 그만큼 스트레스가 해소된 것입니다. 정신이 맑아진 것입니다. 유리에 가려 뿌옇게 보이던 것이 창문을 열고 보면 환하게 보이듯이 맑게 보이고, 남의 이야기도 더 잘 들리고, 자료를 보더라도 파악이 금방 됩니다. 평소에 우리는 자기 생각에 갇혀서 살기 때문에 사물이 뚜렷이 잘 안 보입니다. 사실은 거의 눈을 감고 귀를 막고 다니는 수준입니다. 그런데 이런 장막이 좀 사라지면 애써서 보는 것이 아니라 저절로 잘 보이고 잘 들립니다. 이렇게 조금만 정진했음에도 육체적 정신적 피로가 많이 풀린 것입니다. 이것만 해도 큰 공덕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nbspnbsp조금 더 나아가면 ‘내가 이렇게 반응하는 사람이구나’, ‘내가 욕심이 없는 사람인 줄 알았는데 욕심이 참 많구나’, ‘내가 겸손한 줄 알았는데 잘난 척 많이 하고 살았구나’ 하는 것들을 알게 되었습니다. 남들은 다 나를 알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나만 나를 못 보고 살았는데, 이제는 남들이 아는 만큼 나를 알게 되었고, 남이 모르는 나에 대해서도 알게 되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제는 어떤 실수를 했다 하더라도 후회하거나 자책하지 않고 ‘마땅히 일어날 일이 일어났다’, ‘내 까르마라면 당연히 그렇게 대응을 했을 수 밖에 없었지’ 이렇게 자기를 이해하고 받아들일 수 있게 됩니다. 이것이 나에게 손해라고 하면 다음에는 반응을 좀 덜 하도록 조정도 어느 정도 할 수 있습니다. 이렇게 자기를 알면 대응을 할 때 유리해집니다. 공연히 남을 탓하지도 않고, 공연히 자기를 탓하지도 않습니다. 이렇게 할 수 밖에 없는 내 존재를 스스로 인정하고 받아들이기 때문입니다.nbspnbsp우리 인생의 제일 큰 문제는 대부분 남을 탓하거나 자기를 탓하기 때문에 발생합니다. 일어난 일을 받아들이고 그것을 어떻게 개선할 것인지 연구하며 앞으로 가기 보다는 주저 앉아서 탓하는데 시간을 보냅니다. 길을 가다가 돌이 떨어져서 머리를 다쳤으면 먼저 병원에 가서 치료를 한 후에 어떻게 돌이 떨어졌는지 조사를 해야 되는데. ‘어떤 놈이 돌을 떨어뜨렸는지를 알기 전까지는 치료를 하지 않겠다’ 이렇게 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nbspnbsp누가 돌을 던졌든, 어떤 원인 때문에 다쳤든, 일단 치료부터 먼저 하고 나머지는 다음의 예방을 위해서 원인을 밝혀야 하는 것이죠. 원인을 밝힌다고 해서 치료가 되는 것은 아닙니다. 여러분들은 항상 앞으로 가야 합니다. 이런 사고를 앞으로 당하지 않기 위해서 과거의 경험을 검토하는 것이지 과거의 경험을 검토한다고 지금의 문제가 해결되는 것은 아닙니다. 지금까지는 항상 남을 탓하거나 자책을 했는데, 이제는 남을 탓하지도 않고 자책도 하지 않고, 일어날 수 밖에 없는 조건이기 때문에 일어났다는 것을 받아들이고, 다음에 예방하기 위해서는 어떻게 대응해야 하는지 알 수 있는 공덕이 생겼습니다.nbspnbsp여기서 조금 더 나아간 사람은 이제 평정심을 유지하고 깨어있는 연습이 좀 되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어떤 일이 벌어졌을 때 감정적 대응을 즉각적으로 하는 것으로부터 예전보다 더 자유로워졌습니다. 감정이 일어나는 것을 알아차리고 지켜봄으로 해서 예전 보다 훨씬 더 재빨리 자기 조절이 가능해졌습니다.nbspnbspnbsp이렇게 자신이 한 만큼 공덕을 얻었습니다. 아무 것도 못했다고 하더라도 공덕이 있었고요. 이것은 눈에 보이지도 않고, 계산될 수 있는 것도 아니지만, 여러분들의 삶에는 많은 변화를 가져다 줄 것입니다. 지식으로 배운 것은 마치 영화를 보고 감동을 받았지만 영화관 문을 나오면 아무런 기억이 안 나는 것과 같습니다. 그러나 이것은 여러분들이 열흘 간 몸과 마음으로 직접 경험한 것이기 때문에 이 공덕은 사라지지 않고 여러분들의 몸과 마음에 쌓여 있습니다. 그래서 여러분들의 삶에 보이지 않게 작용을 합니다. 재앙은 미연에 막아주고, 복은 짓는 쪽으로 작용할 확률이 커지고 늘어났습니다.”nbsp수련이 모두 끝나자 오히려 마음이 조금 위축된 대중들도 있었는데 자신들도 모르고 있었던 공덕에 대해 스님이 자세히 얘기해주자 많은 위안을 받은 느낌이었나 봅니다. 환한 미소 속에 눈물이 고인 대중들이 많았습니다. 중간에 포기하고 싶은 마음이 수없이 올라왔지만 모두 어려운 고비들을 잘 넘겨왔기에 스님의 법문은 더욱더 감동적으로 다가왔습니다.nbspnbsp이어서 스님은 이제 다시 일상 생활로 돌아가게 되는데, 수련을 마치고 나서는 어떻게 계속 수행을 이어나가야 하는지 자세히 말씀해 주었습니다.nbspnbsp“이제 내려가서 어떻게 해야 할까요? 제일 먼저 해야 할 일은 정진의 자세를 내려가자 마자 풀어버리지 않은 것입니다. 짜장면을 먹지 마라는 것이 아니라 일주일 좀 있다가 먹어라는 것입니다. 조금 진정을 해서 풀더라도 천천히 푸세요. 100을 쌓았는데 팍 풀어버리면 10으로 돌아가지만, 천천히 풀면 돌아가더라도 30 정도의 기본 베이스를 유지할 수 있습니다. 단식을 할 때 굶는 것 보다는 복식이 중요하듯이 금방 풀지 않도록 진정을 해주시기 바랍니다. 그러나 내려가면 조건이 안 그렇죠. 먹을 것이 자꾸 생기잖아요. 그래서 원래 까르마대로 바로 돌아갈 가능성이 있는데, 조금 평정심을 유지하고 진정을 하시기 바랍니다.nbspnbsp당장 오늘 집에 가시면 잠이 안 올 겁니다. 그리고 몸에 기운이 누적되었기 때문에 욕심을 내어 밤새 일해도 하루 정도는 아무렇지도 않습니다. 그러면 피곤이 팍 쌓이게 됩니다. 그렇게 하지 말고 저녁에 10시가 되면 무조건 자고 아침에 일찍 일어나세요. 잠이 안 오면 누워서 명상을 하세요. 그렇게 해서 이 상태를 조금 온전시키세요. 힘이 난다고 3일만에 다 써버리면 피로를 푼 것이 금방 본래대로 되어 버립니다. 이 상태를 조금 더 길게 가져가려면 푸는 속도를 늦추는 것이 필요합니다.nbspnbsp그리고 그동안 호흡 관찰을 꾸준히 했기 때문에 이제 어떤 일을 하다가 약간 마음이 흥분되거나 피곤하면 잠시 눈을 감고 호흡에 딱 집중을 해보세요. 앉으면 바로 탁 호흡으로 바로 돌아가도록 해야 합니다. 아무리 흥분이 되고 뛰었다 하더라도 호흡에 집중하면 10분 정도만 지나면 가라 앉습니다. 10분만 딱 호흡에 집중하면 어떤 흥분도 가라 앉힐 수가 있습니다. 대신 그 때 생각을 다 놓아버려야 됩니다. 그러면 다시 평정심을 유지할 수 있으니까 마음이 들뜬다 싶으면 하루에도 자주 자주 눈을 감고 호흡으로 돌아가서 숨이 가라앉듯이 마음도 같이 가라앉도록 해보시기 바랍니다.nbspnbspnbsp그리고 하루에 50분씩 명상을 하면 좋습니다. 더 나아가면 50분 명상만 하는 것 보다는 20분은 108배 절을 먼저 하고 30분 명상을 하는 것이 효과적입니다. 왜냐하면 108배 절을 하면 우선 몸이 풀어지고, 마음도 참회가 되고, 절을 한 후에 바로 앉으면 호흡이 거칠기 때문에 처음에 호흡이 잘 잡힙니다. 호흡이 가라앉는 속도 대로 마음을 딱 집중시켜서 안전하게 명상에 들어갈 수 있기 때문에 108배 절을 한 후에 명상을 해보시면 좋겠습니다.nbspnbsp그리고 매일 정해진 시간에 하는 것이 수행에 도움이 됩니다. 이것은 다시 때가 묻는 것을 방지하는 역할을 해 줍니다. 매일 1시간씩 30년 동안 명상을 한다고 해서 때가 닦여지는 것은 아닙니다. 왜냐하면 명상은 6일 위에 7일, 7일 위에 8일, 8일 위에 9일, 이렇게 나아가야 업식의 때가 닦여 나가기 때문입니다. 매일 명상을 하는 것은 지금의 상태를 90 선에서 멈추느냐, 80 선에서 멈추느냐 하는 문제이지 더 나아가지는 못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더 나아가려면 집중 명상을 하셔야 합니다. 그러니 1년에 한 차례 내지 두 차례는 집중 명상을 꼭 하시기 바랍니다. 매일 명상하는 것이 매일 샤워하는 것이라면, 집중 명상하는 것은 목욕탕에서 때를 불리는 것과 같습니다. 아무리 매일 샤워해도 목욕탕에 가면 때가 줄줄이 나오게 됩니다. 우리들의 마음에는 보이지 않는 때가 맺혀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집중적으로 명상하는 프로그램이 이곳 문경 수련원에서 격주로 있으니까 조용히 와서 참여해 보시기 바랍니다. 그래야 조금씩 조금씩 진척이 되어 나갈 수 있습니다. nbspnbsp명상을 해보니 어떤 과제가 딱 교통정리가 되는 경험을 해볼 수 있었잖아요. 그렇게 욕망, 욕구, 바램 이런 것들을 다 내려놓은 아주 청명한 상태에서 방향을 딱 잡아야 합니다. 그런 후 밀고 나가야 우선 자신에게 확신이 생깁니다. 내가 확신이 있어야 다른 사람에게도 그 뜻을 전하는 파워가 생깁니다. 내가 경험하지 못한 일을 말할 때는 목소리만 크지 전달이 잘 안 됩니다. 왜냐하면 내가 확신이 없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자신이 경험한 것은 조금 이야기해도 확실하게 이야기할 수 있습니다. 제약회사 직원이 약의 성분에 대해 아무리 설명해도 설득력이 떨어지는데 그 약을 먹어본 사람이 ‘이 약 먹으면 직빵으로 낫는다’고 하면 귀가 솔깃해지죠. 그렇듯이 자기가 경험한 것이 그만큼 파워가 있습니다.nbspnbsp세상 살이가 바쁘지만 10일 명상을 안 하고 365일 일하는 것보다 10일 명상을 하고 355일 일하는 것이 일을 하는 데에도 효과적이고, 개인도 더 행복해질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이것은 세속적으로 봐도 낭비가 아닙니다. 회사에서 명상을 안 보내준다면 사표를 내겠다는 배짱이 있어야 해요. 가게에서 하루에 수백만원 매출이 있어도 명상을 위해서는 문을 탁 닫고 나올 수 있어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죽을 때까지 가게에 연연하며 묶여 살게 됩니다. 돈을 벌기 위해서 사는 것이 아니잖아요. 부부지간에도 ‘평소에 바가지 안 긁고 잘할 테니까 대신 이건 꼭 해야 합니다’ 이렇게 해야 자기 삶이 자유로워지지 늘 아웅다웅 하고 살면 피곤한 인생이 됩니다. 이런 자기 인생의 중심을 잡고 살아갔으면 좋겠습니다.”nbspnbsp수련의 시작부터 끝까지 필요할 때 마다 매일 매일 자상한 법문을 해준 것도 큰 감동이었는데, 집으로 돌아갔을 때도 어떤 마음으로 수행해야 하는지 자상하게 일러주자, 또 한번 감사한 마음이 들었습니다. nbspnbsp마지막으로 스님은 나 뿐만 아니라 주위 사람들도 함께 행복할 수 있도록 인연을 맺워주자고 했습니다. 그리고 이렇게 좋은 일을 악을 쓰면서 할 것이 아니라 더 재미있고 기쁜 마음으로 해보자고 당부했습니다.nbspnbsp“우리가 대승 수행자라면 나를 자유롭고 행복하게 만드는 그 일에만 머무르지 말고, 다른 사람들도 행복할 수 있도록 인연을 맺어주어야 합니다. 더 나아가 우리가 사는 이 세상을 조금 더 평화롭고 정의롭도록, 환경이 보존되도록 하기 위해 내가 할 수 있는 일들을 주위와 더불어 함께 해나간다면 더더욱 좋은 일입니다.nbspnbspnbsp그러나 좋은 일은 악을 쓰고 하면 안 됩니다. 악을 쓰고 하게 되면 다시 자기를 해치게 됩니다. 효과도 안 납니다. 어떤 일을 즐겁고 재미있게 기쁨으로 해야 옆에 사람들도 좋은가 보다 싶어서 따라 옵니다. 악을 쓰고 하면 이해는 되지만 나는 그러고 싶지 않습니다. 그래서 대중성이 떨어집니다. 여러분들이 굉장히 검소하지만 그것이 힘들어 보이면 사람들이 불쌍해서 돈을 좀 주긴 해도 자신들은 그렇게 살지 않습니다. 걸식을 하더라도 떳떳하고 넉넉한 마음으로 해야 다른 사람들이 볼 때 ‘나도 한번 해볼까’ 이런 생각이 들게 됩니다. 그러니 세상의 부러움을 사야지 동정을 사면 안 됩니다. 그런데 우리는 자꾸 오무러 들어서 남으로부터 동정을 사려고 합니다. 그것은 중생의 심리입니다. 오히려 떳떳하고 넉넉하게 살아서 세상의 부러움을 사야 이 일이 자꾸 확산이 될 수 있습니다. 이것이 우리가 정토로 가는 길입니다.”nbsp수련의 마지막 순간까지 지혜와 자비로 소중한 가르침을 주고자 하는 스님에게 뜨거운 박수 갈채가 쏟아졌습니다.nbspnbsp회향 법문이 끝나고 집으로 돌아가는 대중들 모두에게 스님은 한명씩 악수를 건내며 “수고했어요”라고 격려해 주었습니다.nbsp시끌벅적 반갑게 인사를 나누던 대중들이 모두 빠져나가자 문경정토수련원은 다시 고요함이 찾아왔습니다.nbspnbsp오후 4시부터는 이번 명상수련에 이어서 안거에 들어가는 공동체 대중들과 함께하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서로 다른 소임을 맡아 흩어져 살고 있던 대중들은 오랜만에 함께 모인 것을 기념하여 스님과 함께 기념 사진을 찍었습니다.nbspnbsp▲ 공동체 안거에 참가하고 있는 상주 대중들nbsp공동체 대중들은 각자 작성한 명상수련 소감문을 모두 발표했고, 스님은 집중해서 소감문 발표를 경청했습니다.nbspnbsp▲ 명상수련을 마친 안거 공동체 상주 대중들과의 대화 시간nbsp소감문 발표가 모두 끝난 후 스님은 몇 가지 소회와 당부의 말씀을 나누어 주었습니다. 특히 명상수련을 통해 느낀 점들을 일상 생활 속에서도 한번 적용해 볼 것을 제안해 주었습니다.nbspnbsp“소감을 들어보며 느낀 점은 다들 자기 상태에 대해서 조금씩 알아가는 시간이였던 것 같아요. 남이 지적을 하면 마음도 상하고 잘 받아들여지지도 않죠. 그런데 자기 스스로 ‘아, 내가 이런 성질이 있구나’ 이렇게 자각을 하니까 마음에 상처도 없고, 원래 있던 상처도 해소가 되고, 자각한 것이니까 스스로도 잘 받아들여지죠. 그래서 되고 안 되고가 중요한 것이 아니고, 자신의 상태를 알고 그것을 수용하는 것이 중요합니다.nbspnbsp앞으로는 일을 하더라도 편안한 가운데 꾸준히 해보면 좋겠어요. 정토회의 일은 다 바쁘죠. 그런데 일을 열심히 하는 것을 멈추라는 것이 아니라 편안히 하면서 꾸준히 해나가는 것이 필요합니다. 바짝 달려갔다가 퍼져서 쉬고 또 다시 바짝 달려가는 토끼 같은 방식이 아니라 거북이 같이 꾸준히 가는 것이 좋겠다 싶어요.nbspnbsp자기를 살펴봤을 때 ‘내가 꾀를 내는가?’ 물어보고 그것이 아니라면 천천히 가는 것에 대해서 나쁘게 생각하지 않도록 하면 좋겠어요. 또한 ‘내가 일에 집착하는가?’ 물어보고 그것이 아니라면 늦게 까지 업무를 해도 괜찮습니다. 명상을 할 때 편안한 가운데 집중해 보듯이, 일상 생활 속에서도 게으름 피우는 것도 아니고, 일에 빠져서 집착하는 것도 아닌, 수행하듯이 한번 해봤으면 합니다.”nbspnbspnbsp거북이 같이 꾸준히 가보라는 말씀이 크게 다가왔습니다. 아무래도 정토회가 전체적으로 바쁘게 일하는 경향이 많은데 조금 더 여유를 갖되 꾸준히 하는 자세를 가져보라는 당부였습니다.nbspnbsp특히 소감문 발표 중에 좌절하고 싶을 때 다시 발심해서 편안한 상태가 되었다는 말을 듣고 나서는 “정토회는 수많은 실패를 통해서 조금씩 발전되어 여기까지 왔다”고 강조하면서 “우리는 욕심으로 성과만 내려고 하는데, 최선을 다하되 결과는 연습으로 받아들이는 자세를 가져보면 좋겠다”고 조언했습니다.nbspnbsp이어서 공동체에 들어와서 살고 있으면 주위 가족들이 노후 보장에 대해 걱정을 많이 하는데 경제적 측면의 노후 보장을 넘어서서 우리 스스로가 수행 정진을 통해 죽음에도 두려움이 없는 삶으로 나아가야 한다고 강조했습니다. 그리고 공동체도 서로 보살피는 시스템을 만들어 나가자는 제안도 해주었습니다.nbspnbsp이어서 명상수련 소감문에서 나온 여러 가지 내용들을 점검해 주면서, 집중력을 높이기 위해서는 어떻게 하면 도움이 되는지 자세히 말씀해 주었습니다. 체하는 것을 주의하고, 음식을 적게 먹고, 천천히 먹는 자세를 갖고, 감기에 걸리지 않도록 주의하고, 편안한 옷을 입도록 하고, 앉는 자세를 편안하게 하고, 가능한 문을 닫아서 샌 바람이 들어오지 않도록 하고, 스텝들은 수련장 주위에서 가급적 소리가 나지 않도록 할 수 있는 방안을 마련하는 것 등에 대해 스님의 경험담과 함께 구체적인 방법들을 알려주었습니다.nbspnbspnbsp또 대중을 안내하는 법사님들에게는 “너무 목적 의식을 갖고 안내하지 말고, 지적하거나 원칙을 들이밀기 보다는 대중들의 이야기를 먼저 들어주고 포용해주는 문화를 만들어가면 좋겠다”고 당부하면서 “행사 프로그램도 너무 쪼들리게 잡지 말고 여유있게 해서 서로 인사도 나누고 갈 수 있게 하고, 그렇게 해야 포용성이 있는 문화가 생겨날 수 있다”고 조언해 주었습니다.nbsp단식 중임에도 불구하고 집중해서 이야기를 경청하고, 공동체 대중들 한명 한명의 상태를 세심히 챙겨주고, 공동체의 미래를 위해 아낌 없는 조언을 해준 스님에게 대중들은 감사한 마음을 느꼈습니다. 7월31일까지 안거가 계속되는데 남은 기간 부지런히 정진할 것을 다짐하며 스님에게 삼배로 인사를 드린 후 오늘 일정을 모두 마쳤습니다.nbspnbsp▲ 스님께 삼배로 감사 인사를 올리는 공동체 대중들nbsp내일은 충주 호암체육관에서 열리는 정토불교대학 졸업식에 참가해 졸업생들을 위해 법문과 함께 수계식을 해줄 예정입니다. 내일 또 소식 전해드리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