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합검색
원하시는 검색어를 입력해 주세요
2015.9.8 광주 청춘콘서트
nbsp안녕하세요. 오늘 스님은 광주 조선대학교 해오름관에서 열린 청춘콘서트에 참석해 청년들을 위해 즉문즉설 강연을 했습니다.nbspnbsp새벽 4시에 일어난 스님은 대중들보다 일찍 법당에 내려와 새벽 예불과 기도를 마친 후 하루를 시작했습니다.nbspnbspnbsp아침 10시에 군산에서 초청법회가 있어 6시 30분에 서울을 출발했습니다. 군산으로 가는 길에 휴게소에 잠깐 아침을 먹고 10시가 다 되어 군산 흥천사에 도착했습니다. 군산 흥천사는 군산 지역 불교 포교의 중심 거점이 되는 비구니 사찰입니다.nbspnbsp▲ 군산 흥천사nbsp오늘 군산 흥천사에서 초청법회가 열린 까닭은 흥천사 주지 법희 스님의 간절한 요청 때문입니다. 법희 스님은 몇 해 전 인도성지순례에 참가했던 것을 계기로 스님과 인연을 맺어오고 있는데 오늘은 법희 스님의 속가 아버님의 49재 날을 맞아 어렵게 스님을 초청했습니다. 스님은 정토회 회원들을 위해서도 49재 법문을 해오지 않았는데 지역의 어려운 환경 속에서도 비구니 사찰을 성심껏 운영해온 것을 격려하고자 초청법회에 응하게 되었습니다.nbspnbsp흥청사에 도착하자 일주문에서부터 회주 스님인 지환 스님이 반갑게 스님을 맞이해 주었습니다.nbspnbsp▲ 일주문에서부터 스님을 반갑게 맞이해준 흥천사 회주 지환 스님nbspnbsp스님은 법희 스님과 담소를 나누다가 10시 30분부터 영가 천도 기도를 하는 의미에 대해 법문을 해주었습니다. 법희 스님의 가족들은 스님의 법문을 듣고 마음이 많이 편안해졌다며 감사해 했습니다.nbspnbsp▲ 스님께 영가 천도 법문을 요청한 법희 스님nbsp먼저 스님은 49재를 맞이하여 영가 천도를 위해 법문을 하였습니다.nbspnbsp“이와 같이 법사를 청하여 영가의 왕생극락을 기원하는 법문을 청하였기에 오늘 이 법문이 영가가 지은 다겁생래의 업장이 소멸되고 저 아미타 부처님이 계시는 극락 세계에 왕생하시어 아미타 부처님을 뵙고 법문을 듣고 깨달음을 얻어 해탈과 열반을 증득하기를 발원합니다.nbspnbspnbsp우리가 이 세상에 태어나서 아무리 부귀 영화를 누린다고 하더라도, 즉 재물을 태산같이 가지고, 그 지위가 하늘 높은 줄 모르게 높고, 그 인기가 하늘을 치솟듯이 하고, 온갖 것이 다 뜻대로 된다고 하더라도 그 부귀 영화는 길어야 100년을 넘지 못합니다. 인간 세상에서 100년이라 하면 긴 세월 같지만 저 천상에서 내려다보면 100년은 1년도 아니고 하루도 아니고 눈 깜짝할 찰나에 불과합니다. 사람의 눈으로 보면 하루살이의 수명이 보잘 것 없듯이 우리 인생의 부귀 공명이란 것도 조금만 떨어져서 큰 눈으로 보면 하루살이의 일생처럼 부질없는 것입니다.nbspnbsp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천년 만년 살 것 같이 온갖 재물을 모으기에 급급하고 출세하기에 급급하고 조그마한 인기에 연연해서 목에 힘을 주고 기고만장 합니다. 그래봐야 100년을 넘지 못합니다. 그래서 부처님께서는 이런 것들이 정말 부질없는 줄을 알게 되면 목숨이 마칠 때 친한 이와의 이별을 아쉬워할 것도 없고, 원수진 이와의 원한을 간직할 것도 없다고 하셨습니다. 원수졌다고 한들 결국 한 마음 일으켜서 사로잡힌 생각에 불과하고, 자식이니 형제니 아내니 남편이니 하면서 사랑한다 한들 그것도 다 한 생각에 불과한 것입니다. 이 도리를 알아서 원한에 맺힌 것도 일순간에 떨쳐 버리고, 애절한 사랑도 일순간에 떨쳐 버린다면, 비록 세상에 살면서 어떤 악업을 지었다 하더라도 그 죄업이 일순간에 소멸될 것입니다. 그래서 해탈과 열반을 성취하는 길로 나아가게 될 것입니다. nbspnbspnbsp그러나 이 도리를 알지 못하고 작은 애욕에 끌려 헤어진다고 눈물 짓고, 그 정을 끊지 못하고 작은 원한과 미움에 사로잡혀서 외면하는 마음을 놓지 못한다면, 비록 이 세상에 살면서 아무리 큰 복을 짓고 선행을 많이 했다 하더라도 육도윤회에서 벗어나기가 어렵습니다.nbspnbsp그러니 오늘 49재 재일을 맞이하여 영가는 살아 생전에는 눈에 보이는 것에 집착하고, 귀에 들리는 것에 집착하고, 냄새에 집착하고, 맛에 집착하고, 감촉에 집착하고, 알음알이에 집착해서 나로 삼고, 내 것으로 삼고, 내 주장으로 삼았다 하더라도, 오늘 이 자리에서는 무엇이 참으로 나인가? 지금까지는 보는 것으로 나를 삼았는데 보지 못하는 지금에 이르러서는 무엇이 참으로 나인가? 듣지 못할 때, 냄새 맡지 못할 때, 감촉하지 못할 때, 생각하지 못할 때인 지금에 이르러서 무엇이 나라고 할 수 있는 것인가? 무엇으로 내 것이라고 할 수 있겠는가? 무엇으로 옳다 그르다 할 수 있겠는가?nbspnbspnbsp만약에 영가가 이 도리를 확연히 깨닫는다면, 비록 살아 생전에 살생한 죄업이 두껍고, 도둑질한 죄업이 두껍고, 사음한 죄가 많고, 거짓말한 죄가 많고, 술먹고 취한 죄가 많다 하더라도 마치 그것이 한 여름 밤의 꿈처럼 깨고나면 흔적도 없어지듯이, 마른 풀이 불태워져 사라지듯이, 다생 겁래의 모든 죄업이 일순간에 사라지고 해탈 열반을 성취할 것입니다.nbspnbsp그러니 영가님은 이 법사의 법문을 잘 듣고 일순간에 해탈 열반을 증득하시기 바랍니다. 영가는 영식을 오롯이 하여 이 법사의 묻는 말에 일순간에 깨침을 얻기 바랍니다.”nbsp이어서 재주들을 위해서는 영가 천도의 진정한 의미에 대해 법문을 해주었습니다. 우선 재는 베푸는 의미가 있다고 하면서 가난한 이들을 위해 베풀어서 그 공덕으로 영가가 천도되도록 해야 한다고 하면서 우란분경과 열반경에 나온 부처님의 말씀을 들려주었습니다. 그리고 재주들이 어떤 마음이 되어야 진정으로 영가가 천도되는 것인지 설명했습니다.nbspnbsp“불법은 ‘일체유심조’입니다. ‘일체가 다 마음이 짓는다’라고 해서 일체가 마음 밖에 따로 있는 것이 아니고 마음 안에 있습니다. 그러니 영가도 내 마음 안에 있어요. 그래서 재주들이 깨달으면 영가도 깨닫게 되어 있어요. 일체가 유심조이기 때문입니다. 재주들이 깨닫지 못하면 영가도 깨닫지 못하게 됩니다. 이 도리를 알고 집착을 딱 놓아버리면 영가도 바로 천도가 됩니다. 집착을 놓지 못하고 울고불고 하거나 미워하는 마음을 갖고 있으면 늘 영가는 내 마음 속에 남아있게 됩니다.nbspnbspnbsp그러니 오늘 49재를 지내는 이 순간에 영가를 보내드려야 돼요. 관무량수경에 49일 만에 극락세계에 가게 된다고 했으니까 극락세계는 이 세상보다 좋은 곳이잖아요. 좋은 곳이니까 어서 가시라고 해야겠죠. ‘안녕히 가세요’ 하면서 마음에서 집착을 놓아주어야 천도가 되는 겁니다. 그런데 좋아서 그리워하든지 미워서 원망하든지 하는 것은 내가 마음 속에서 잡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면 천도가 되지 않습니다.nbspnbsp그런데 중생은 이것이 잘 되지 않기 때문에 힘드는 것입니다. 그래서 부처님은 단박에 천도하는 도리와 아울러 그렇게 안 되는 사람들을 위해 다시 세세하게 일러서 우선 극락세계에 가도록 해서 거기서 해탈 열반을 성취할 수 있게 과정을 설정해 주신 겁니다. 그러니 부처님의 이 근본 도리를 알아서 단박에 해탈을 하든지, 그렇게 못하면 이런 부처님의 방편 도리를 알아서 재를 베풀고 법문을 잘 들어서 이제는 영가를 놓아드려야 합니다.nbspnbsp재주들은 이 얘기를 잘 들으시고 이제 아버지가 좋은 곳에 가셨으니까 기쁜 마음으로 ‘안녕히 가십시오’ 이렇게 인사를 하고 다시 편안하게 생활을 하시기 바랍니다.nbspnbspnbsp살아있을 때는 함께하는 것에 기뻐하고, 또 살아있을 때는 죽을려고 하지 않고 마음껏 살고, 때가 되어 죽을 때가 되면 나는 기꺼이 죽어주고, 또 상대와 헤어질 때는 기꺼이 집착없이 헤어져 줄 때, 살아서도 행복이고 죽어서도 행복이고, 같이 있어도 행복이고 헤어져서도 행복인 이런 도리가 해탈과 열반의 도리입니다. 우리는 이 위대한 부처님의 도리를 따르는 사람들이니까 세속 사람들처럼 괴로워하지 말고 비록 중생의 몸을 갖고 있더라도 부처의 길로 나아가는 수행을 하시기 바랍니다.”nbsp이어서 스님은 영가와 재주들 모두를 위해 축원과 발원을 해주었습니다. 재주들은 합장을 하고 함께 기도했습니다.nbspnbspnbsp법회가 끝나고 스님은 재주들의 손을 꼭 잡아주면서 다시 한번 격려를 해준 후 법당을 나왔습니다.nbspnbspnbsp▲ 법희 스님과 재주 가족들nbsp흥천사에서 마련해준 점심 공양을 감사한 마음으로 먹은 후 군산을 출발했습니다. 청춘콘서트가 저녁에 광주에서 있기 때문에 광주로 가야 하는데, 아침 일찍 서울에서 내려온 덕분에 오후에 여유가 생겨서 새만금 방조제를 보고 가기로 했습니다.nbspnbsp새만금 방조제는 군산시 비응도부터 고군산군도의 신시도를 거쳐 부안군 변산면 대항리까지 총 33.9km에 이르는 세계에서 가장 긴 방조제라고 합니다. 사업 시행 당시 방대한 영역의 갯벌과 해양 생태계가 파괴될 것을 우려해 환경단체의 반대가 격렬했지만 결국 방조제는 완공되었습니다.nbspnbspnbsp▲ 새만금 방조제nbsp새만금 방조제를 지나 변산반도의 아름다운 해안선을 지나며 햇살에 반짝이는 은빛 서해 바다를 차창 밖으로 내다보았습니다. 스님은 강연을 다니기에 바빠서 풍경 구경을 할 시간이 거의 없는데 오늘은 잠시나마 여유를 느끼며 서해를 바라볼 수 있었습니다.nbspnbsp▲ 서해nbsp변산반도에서 광주로 오는 길에는 덜컹거리는 차 안에서 계속 원고 교정 업무를 보았습니다. 저녁 7시가 다 되어 청춘콘서트가 열리는 조선대학교 해오름관에 도착했습니다.nbspnbsp▲ 청춘콘서트가 열린 조선대학교 해오름관nbsp해오금관 앞에는 7시가 되었지만 자리가 매진이 되어서 아직도 강연장 안으로 들어가지 못하고 발을 동동 구르며 혹시나 하고 차례를 기다리는 줄이 끝이 보이지 않았습니다. 청춘콘서트에 대한 관심이 얼마나 높은지 알 수 있었습니다.nbspnbsp▲ 좌석이 매진되어 입장을 못하고 있는 청년들nbsp강연장 안으로 들어서자 1000석이 모두 들어찼을 뿐만 아니라 계단 복도와 무대 앞에도 발디딜 틈 없이 청중들이 1400여명이나 빼곡이 앉아 있었습니다. 요술당나귀의 신나는 노래 공연에 이어 사회자가 법륜 스님을 소개하자 큰 함성과 박수갈채를 받으며 스님이 무대 위에 올랐습니다.nbspnbspnbsp스님은 먼저 개인의 수행과 사회의 변화를 함께 추구해 나가야 한다고 강조하면서 말문을 열었습니다.nbspnbsp“제도 개혁만 갖고 모든 것을 다 해결할 수는 없어요. 반대로 수행을 통해서도 모든 것을 해결할 수 없어요. 이 둘을 함께 해나가야 합니다. 제도 개혁은 시간이 많이 걸리고 많은 사람들이 힘을 합해야 가능한 일이고, 기득권층의 저항이 따릅니다. 그래서 때로는 좌절할 때가 많습니다. 반면에 개인 수행은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든 내가 관점을 바꾸면 바로 마음의 안정을 찾을 수 있는 좋은 점이 있는 반면에 그 혜택이 그 한 사람에게만 일어나고 지속가능하지도 않습니다.nbspnbspnbsp그런데서 첫째, 괴로워하면 나만 손해이니까 불만이 많지만 그래도 관점을 바꾸어서 ‘그래도 중국이나 베트남보다는 낫다’ 이렇게 긍정적 생각을 해서 불만을 좀 낮춰야 합니다. 둘째, 그러면 대한민국에 아무런 문제 없나요? 문제가 많아요. 그렇기 때문에 사회 변화를 위한 운동이 nbsp필요합니다. 그래서 한쪽은 수행을 통해서 한쪽은 사회 변화를 통해서 우리의 행복도를 높여나가야 합니다.nbspnbsp이 두가지 과제를 함께 극복해 가자고 청춘콘서트를 열었습니다. 개인들의 답답함은 제가 수행을 통해서 처방을 하고, 사회적인 변화에 대해서는 여러분들이 좋아하는 김제동씨가 나와서 이야기를 해주고, 또 앞으로 더 많은 사람들이 나와서 함께 의논을 해나가면서 우리에게 주어진 과제를 하나님이나 부처님이나 대통령에게 맡기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해결해 나가고자 하는 것입니다.nbspnbspnbsp그런데 여러분들은 첫째,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 모르고 있는 경우가 하나 있고, 둘째, 여러분들은 늘 부모가 해주는 대로 살아왔기 때문에 갑자기 너 스스로 해결하라고 하니까 당황스러운 문제도 있습니다. 오늘은 이런 문제들에 대해서 자유롭게 대화를 해보려고 해요. 자, 그럼 누구든지 손을 들고 질문하세요.”nbsp스님의 이야기가 끝나기 무섭게 여기저기서 질문을 하고자 손을 들었습니다. 총 4명이 스님에게 질문을 했습니다.nbspnbspnbsp대학교 4학년이라고 밝힌 한 청년은 스님 말씀을 듣고 나니 이미 타성에 젖어 있는 사람들이 바뀔 수 있다고 생각하시는지, 바뀔 수 있다면 어떻게 바뀔 수 있는지 물었습니다. 또 다른 청년은 스님은 바쁜 시간을 쪼개서 청년들을 위해 무료로 강연을 하시는데 그 이유가 무엇인지, 스스로는 이런 활동을 하면서 행복하다고 느끼시는지 물었습니다. 마지막으로 한 청년은 스님이 쓰신 새로운 100년 책을 읽고 청년들의 미래가 통일에 달렸다는 것을 알게 되었지만 막상 내가 친구들에게 통일의 중요성을 설명하려면 막막하고, 또 통일이 경제적인 성장 뿐만 아니라 상대적인 빈곤감도 해결하는데 도움이 될 수 있는지 물었습니다.nbspnbsp오늘은 그 중에서 대학 졸업을 앞두고 있는 진로에 대해 고민하고 있는 여학생의 질문과 스님의 답변을 소개합니다.nbspnbsp“제가 전공을 한 분야에서 자연스럽게 취업을 해야 하는지, 새롭게 관심을 갖는 분야가 있는데 그 분야에 도전하기에는 경제적 부담과 시간적 노력이 필요합니다. 원래 가던 길과 새로운 길 사이에서 어떤 선택을 해야 하는지 고민입니다.”nbspnbsp“질문자의 고민이 너무 두루뭉실 하잖아요. 가고자 하는 새로운 길이 어떤 길인지, 돈이 얼마나 드는지, 자기 능력이 어느정도 되는지, 이렇게 구체적으로 얘기를 해줘야 제가 조언을 해줄 수 있지요.”nbspnbsp“사회복지 학과를 전공해서 자연스럽게 노인 분야 쪽으로 갔어요. 그런데 최근에 정신 분야에 관심이 생겼어요. 정신 분야를 전공하려면 1년을 수료해야 하는데 돈도 천만원 정도 들어요. 부모님 도움을 받아야 하는데 취업이 잘 되려면 나이 때문에 어려울 수도 있어서 부모님께 선뜻 말하기가 어려워요. 아직 정신 분야에 대해 확신이 없거든요. 제가 관심있는 정신 분야 쪽으로 가야할지 조언을 듣고 싶어요.”nbspnbsp“첫째, 관심있는 분야로 가고 싶은데 돈이 좀 든다면 부모님께 얘기를 해보면 되지요. 무조건 가겠다고 하면 안 돼요. 그건 돈 내놓아라 하는 소리가 되잖아요. 그건 칼만 안 들었지 강도 수준이에요. 그렇게 하지 말고 ‘지금 졸업해서 노인 분야로 가면 바로 취직이 되고, 그런데 앞으로 전망을 보니까 정신 분야 쪽이 더 전망이 나은 것 같아요. 그래서 1년 간 더 공부하려면 돈이 천만원 더 드는데 부모님께서 투자를 좀 해주실 수 있을까요?’ 이렇게 여쭤보면 좋지요.nbspnbspnbsp이것은 그냥 돈을 달라는 것이 아니라 빌려달라는 것입니다. 학자금 신청을 하거나 은행에서 빌려도 되는데 그래도 태어나서 아는 사람이라곤 부모 밖에 없으니 부모님에게 얘기해서 융자를 받을 수 있는지 얘기해 보면 되죠. 이자는 너무 높게는 못 드리고, 은행 이율로 한 34 정도로 해주시면 좋겠다고 말씀드리고, 갚는 것은 공부가 끝나고 난 뒤에 ‘2년 거치 5년 상환’ 이렇게 하면 되죠. 왜냐하면 졸업하자마자 바로 갚을 수는 없으니까요. 빌려쓰지만 올해는 못 갚고, 첫해도 취직이 확실히 보장이 안 되어서 못 갚으니까, 2년은 거치해주고, 그 다음에 1년에 200만원씩 5년 간 갚겠다고 하는 등 구체적인 계획서를 세워서 부모님과 의논을 하면 되지요.nbspnbspnbsp그래서 부모님이 허락하면 그 길로 가면 됩니다. 그러나 부모님이 허락하지 않으면 아무리 가고 싶어도 현실적으로 갈 형편이 안 되니까 우선 졸업하자마자 지금까지 해 온 길을 가서 12년 일을 하면서 천만원이 모아지면 1년 휴직을 해서 다시 새로운 길에 도전을 해보면 됩니다.”nbsp청중들도 스님의 해법에 ‘오호’ 하면서 고개를 끄덕였습니다.nbspnbspnbsp“감사합니다. 큰 도움이 되었습니다.”nbsp질문자도 환하게 웃으며 감사 인사를 하고 자리에 앉았습니다. 많은 청년들이 진로에 대해 고민을 하는데 스님의 간명한 해법에 청년들도 공감이 되었는지 큰 박수를 보냈습니다.nbspnbsp이어서 스님은 통일의 필요성에 대해 질문한 청년의 답변에 많은 시간을 할애하며 통일만이 지금의 대한민국을 한단계 더 도약시킬 수 있음을 강조해 주었습니다. 예정된 70분의 강연 시간이 마무리되자 스님은 무대 뒤로 들어갔고, 이번에는 열렬한 환호와 박수를 받으며 김제동씨가 걸어나왔습니다.nbspnbspnbsp김제동씨는 오늘 청년들의 다양한 질문을 받기 위해 무대 아래로 내려가는 등 더 가까이에서 호흡하는 모습을 보여주었습니다. nbspnbspnbsp김제동씨는 현재 우리 사회가 안고 있는 많은 문제들에 대해 아주 재미있게 풍자를 해서 청년들이 70분 내내 배꼽을 잡고 웃게 만들었습니다. 무엇보다 “지금의 10대 20대들이야말로 통일을 이뤄낸 세대라는 자부심을 가질 수 있지 않느냐”며 통일이 청년들에게 가져다 줄 희망에 대해 열정적으로 이야기해 주어 많은 공감을 자아내었습니다.nbspnbsp마지막으로 스님과 김제동씨가 함께 무대 위로 다시 올라와 오늘 콘서트를 마무리하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사회자가 먼저 스님에게 “마지막으로 청년들에게 들려주고 싶은 말씀은 무엇인까요?” 라고 물었습니다.nbspnbspnbsp스님은 우리는 평생 부러워하면서 살고 있다고 하면서 지금이 좋은 줄 아는 것이 행복이라고 강조했습니다.nbspnbsp“여러분들은 젊어서 참 좋겠어요. 여러분들도 한번 늙어보세요. 20대 때도 늦은 것 같고, 30대 때도 늦은 것 같고, 40대 때도 늦은 것 같은데, 60대가 한번 되어 보면 40대도 한참 빠를 때라고 느껴져요. 얼마 전에 80세가 넘은 선배를 만나서 ‘올해 스님은 나이가 몇이요?’ 물어서 ‘올해 63세입니다’ 그랬더니 ‘아이고, 한창이군요’ 그럽디다. 저는 지금 나이 육십이 넘어서 은퇴하려고 생각하고 있는데 그 분은 저보고 ‘한창 일할 때다’ 라고 얘기한 겁니다. 그래서 늦었다고 생각할 때가 가장 빠를 때입니다.nbspnbspnbsp여러분들도 초등학교 때는 중학교 다니는 선배가 부러웠죠. 중고등학교 때는 대학 다니는 선배가 부러웠죠. 대학 다닐 때는 취직한 선배가 부러웠죠. 취직을 하면 결혼해서 사는 선배가 부럽죠. 결혼한 사람은 아기 낳은 선배가 부럽죠. 아기 낳아 키우는 사람은 아이들 다 키운 선배가 또 부럽죠. 그래서 이 부러움은 끝이 없어요.nbspnbsp부럽다는 건 나이가 들어갈수록 좋아져야 한다는 얘기잖아요. 그런데 나이가 들면 또 어때요? 지금 와서 초등학생 때를 생각하면 또 그 때가 그립죠. 어릴 때는 어른이 부럽고, 어른이 되면 어릴 때가 부럽고, 좀 이상하지 않아요?nbspnbspnbsp그러니 도라는 것은 어릴 때는 어릴 때가 좋은 줄 아는 거예요. 청소년 때는 청소년 때가 좋은 줄 아는 거예요. 대학생 때는 대학생 때가 좋은 줄 알고, 청년 때는 청년 때가, 신혼 때는 신혼 때가 좋은 줄 아는 거예요. 여러분들은 지금 공부하느라 힘들다고 아우성인데, 밥만 먹고 공부만 해도 아무도 뭐라 하지 않는 때가 인생에서 얼마나 될까요? 지금 잠깐 밖에 없습니다. 제가 지금 밥만 먹고 공부만 하면 욕 얻어 먹어요. 봄에는 잎이 피는 것이고, 여름에는 잎이 무성한 것이고, 가을에는 낙옆이 지는 거예요. 그 시절에는 그것이 가장 좋은 거예요.nbspnbsp그런데 사람들은 자기가 처한 그 상황에서는 늘 빨리 지나갔으면 좋겠다고 원하고, 또 지나놓고 나서는 그 때가 좋았다고 하면서 인생을 낭비합니다. 그러니 학생 여러분들은 지금 공부하는 이 시기가 좋다, 처녀 총각일 때도 지금이 좋다고 여겨야 합니다. 처녀 총각일 때는 결혼한 사람이 얼마나 부럽냐 하면, 두 남녀가 공원을 산책하면서 서로 이혼하려고 의논하고 있는 모습도 멀리서 보면 부러워요. ‘아이고, 너희는 둘이여서 좋겠다’ 그래요.nbspnbspnbsp그래서 지금 여기가 좋은 줄을 아는 것이 진정한 행복으로 가는 길입니다. 그렇다고 안주하라는 얘기가 아니예요. 지금이 좋은 줄을 먼저 알고, 그리고 더 가고 싶으면 가면 됩니다. 그런 자세로 여러분들이 살아간다면 눈에 생기가 돌고 얼굴도 밝아지고, 그러면서 우리의 과제도 즐겁게 해결해갈 수 있지 않겠나 생각합니다.”nbsp지금이 좋은 줄 아는 것이 행복으로 가는 길이라는 말씀에 청년들도 기쁜 마음이 되었습니다. 더불어 2시간이 넘도록 청년들의 고민을 들어주고 새로운 희망에 대해 열정적인 강연을 해준 스님과 김제동씨에게 큰 박수갈채를 보냈습니다.nbspnbspnbsp그리고 스님은 청춘콘서트는 출연하는 스님과 김제동씨부터 시작해서 많은 자원봉사자들의 무보수 재능기부로 운영되고 있다고 소개하면서 청춘콘서트와 같은 무료 강연이 더 많은 청년들을 찾아갈 수 있도록 나가는 길에 십시일반 작은 정성을 모아줄 것을 당부했습니다. 그러면서“통일이라는 큰 목표도 작은 것부터 책임지려고 하고 우리의 힘으로 만들어나가려고 하는 이런 자세에서 시작된다”고 강조했습니다. nbspnbsp이어서 인디밴드 요술당나귀와 함께 오늘 강연을 위해 수고한 서포터즈들이 무대 위로 올라와 스님과 김제동씨와 손을 맞잡고 ‘행복가’라는 노래를 힘차게 불렀습니다. 후렴구가 신나게 울려퍼지자 청중들 모두가 두 손을 번쩍 들고 양쪽으로 흔드는 장엄한 풍경이 펼쳐졌습니다. 노래 가사처럼 정말로 청년들이 마음껏 꿈꾸고 웃고 사랑할 수 있는 세상을 기원해 봅니다.nbspnbspnbsp콘서트가 끝나고 김제동씨는 저녁을 먹지 못해 대기실에서 간단히 저녁을 먹었고, 그동안 스님은 강연장 입구 로비에서 책 사인회 시간을 가졌습니다. 청년들은 소중한 가르침을 들려준 스님에게 거듭 감사 인사를 했고, 스님은 한 명 한 명과 눈을 마주치며 환한 웃음을 선물했습니다.nbspnbspnbsp이어서 오늘 강연장 곳곳에서 역할을 맡아 자원봉사를 했고, 또 한달 전부터 사전 모임을 가지며 오늘 강연을 준비한 서포터즈들과 함께 기념사진을 찍었습니다. “화이팅”을 외치는 우렁찬 목소리 속에서 밝고 늠름한 기상이 느껴졌습니다.nbspnbspnbsp그리고 광주 서포터즈들은 특별히 오늘을 자축하는 케익까지 준비해서 김제동씨와 청년들이 다함께 노래를 부르며 ‘후’하고 촛불을 끄는 등 마지막까지 축제 같은 분위기가 되었습니다.nbspnbspnbsp김제동씨는 수고한 청년들이 너무나 고마웠는지 애정을 듬뿍 담아 한 명 한 명을 꼭 안아주었습니다. 가슴이 짠해지는 풍경이었습니다.nbspnbspnbsp그리고 뒤늦게 윤장현 광주 시장님이 행사장에 도착했습니다. 스님은 얼마 전 광주 유니버시아드 대회를 무사히 치러내느라 수고가 많았던 시장님에게 “큰 일 하셨다”며 격려해 주었습니다. 그리고 시정 활동을 하면서 겪는 어려움에 대해 담소를 나눈 후 11월에도 광주에서 강연이 또 있으니 그 때는 더 많은 시간을 내어서 얘기를 나누자고 하고 돌아섰습니다.nbspnbsp▲ 윤장현 광주 시장님nbsp스님은 밤 10시 30분 무렵에 광주를 출발하여 새벽 2시에 서울 정토회관에 도착한 후 오늘 일정을 모두 마쳤습니다.nbspnbsp내일은 아침부터 평화재단에서 여러 차례 미팅을 가진 후 오후에는 강릉으로 가서 저녁 7시부터 ‘즉문즉설과 통일 이야기’를 주제로 강릉 시민들을 위해 강연을 할 예정입니다.nbspnbsp ※ 법륜 스님과 김제동이 함께하는 2015 청춘콘서트가 9월부터 11월까지 전국 곳곳에서 열립니다. 참가를 원하는 분들은 티켓을 사전 신청해 주시기 바랍니다.nbsplt티켓 사전 신청하기gtnbspnbspnbsp우리 지역 콘서트 일정을 nbsp확인하시고 가족, 이웃, 친구와 함께 오세요.nbsp
2015.9.7 수원 통일의병 강연
nbsp안녕하세요. 오늘 스님은 수원 시민들을 위해 “즉문즉설과 통일 이야기”를 주제로 강연을 했습니다.nbspnbsp새벽 4시 30분에 두북 정토수련원 법당에서 법사단과 함께 새벽 예불을 올린 스님은 법사단과 함께 아침 공양을 했습니다.nbspnbsp▲ 두북 정토수련원nbsp공양을 마치고 나서는 스님이 직접 텃밭에서 기른 수박을 잘라서 법사단에게 나눠주었습니다. 수박이 속 깊이 익어서 달고 맛있었습니다. 수박을 먹으며 어제 법사단 회의 결과와 관련하여 몇가지 의논을 한 후 아침 7시 30분에 서울로 출발했습니다.nbspnbsp▲ 법사단에게 직접 키운 수박을 잘라주고 있는 스님nbsp연이어 강연이 계속되면서 목이 많이 아프다고 하셨는데 12시 쯤 서울에 도착해 곧바로 이비인후과로 가서 진료를 받았습니다. 점심도 드실 시간도 없이 서울 정토회관에 들러 세수만 한 후 곧바로 여의도 국회의사당으로 향했습니다.nbspnbsp1시 30분부터는 국회의사당 내에 위치한 국회의원 회관에서 열린 정의화 국회의장님의 사진전에 참석했습니다. 스님은 일정상 사진전 같은 데는 가 볼 수 있는 기회가 거의 없는데 의장님이 종교계를 대표해서 스님이 꼭 오셔서 축사를 해달라고 요청을 해서 참석하게 되었습니다.nbspnbspnbsp정 의장님은 대학 시절 사진 동호회에서 활동하면서 첫 개인사진전을 열어본 후 43년 만인 오늘에서야 두 번째 사진전을 열게 되었다고 합니다.nbspnbsp▲ 정의화 국회의장의 사진전nbsp의장님이 종교계를 대표해서 스님께 축사를 요청하자 스님은 간단히 사진전을 본 소감과 부탁의 말씀을 해주었습니다. nbspnbsp“제가 스님인데 왜 사진전에 와서 축사까지 하게 되었냐면, 저도 고등학교 때 과학을 좋아해서 과학실에 있으면서 사진에 대해 관심을 갖게 되었어요. 그런데 의장님과 사진에 대해서 이야기를 하다가 마침 오늘 사진전이 있으니 축사를 꼭 해달라고 해서 참석하게 되었습니다.nbspnbspnbsp정의화 의장님의 사진을 보면서 사진에 대한 저의 생각을 말씀드리면 첫째는 사진은 그림과 달리 사실대로 나타낸다는 점입니다. 그림은 그리는 사람의 주관이 많이 개입되는데 사진은 현실을 사실대로 나타냅니다. 둘째는 사실대로 나타냄에도 불구하고 어떤 때는 인도에서 굉장히 초라한 아주머니의 옷을 찍었는데 사진으로 보면 굉장히 아름다워 보일 때가 있어요. 의장님의 사진에서도 인디언 여성들이 옷을 벗은 사진을 보았는데 사실은 야한데도 불구하고 사진으로 찍어놓으니 성스러워 보이잖아요. 사진은 더러운 것도 깨끗하게 보이게 하고 속된 것도 성스럽게 보이게 하는 힘을 갖고 있는 것 같아요.nbspnbspnbsp이런데서 저는 의장님도 정치를 사진처럼 했으면 좋겠다 싶어요. 정말 국민의 뜻이 사진처럼 사실대로 구현되는 그런 정치를 해주시면 좋겠어요. 그러나 세상이란 것은 또한 속된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속된 것에 너무 빠지지 말고 속된 것이 성스럽게 보일 수 있는, 야한 것이 아름다워 보일 수 있는, 더러운 것이 깨끗하게 보일 수 있는, 그런 사진 같은 정치를 해주십사 하는 부탁 말씀을 드립니다.”nbsp사진과 같은 정치를 하면 좋겠다는 말씀에 정 의장님을 비롯해 함께 자리한 많은 분들의 큰 박수로 공감을 표현했습니다.nbspnbspnbsp의장님은 시간을 내어준 스님에게 거듭 감사 인사를 했고, 함께 자리한 몇몇 국회의원들과 인사를 나눈 후 다시 정토회관으로 돌아왔습니다.nbspnbsp집무실에서 원고 교정 업무를 보다가 오후 6시에 정토회관을 출발해 저녁 6시 40분에 오늘 강연이 열리는 경기중소기업센터 경기홀에 도착했습니다. nbspnbspnbsp▲ 오늘 강연이 열린 경기중소기업센터 경기홀nbsp저녁 7시가 되자 통일의병 소개 영상에 이어서 스님 소개 영상이 나간 후 큰 박수를 받으며 스님이 무대 위로 올라갔습니다. 먼저 스님은 이번 강연은 ‘통일의병’이라는 단체에서 주관했다고 하면서 인생 고민도 좋지만 사회 문제나 통일 문제에 대해서도 많이 질문해 달라고 부탁하면서 강연을 시작했습니다.nbspnbsp“오늘의 강연은 조금 특별합니다. 주로 정토회에서 주최해서 즉문즉설을 하지만, 오늘은 한반도의 평화와 통일을 위해서 활동하는 민간단체인 ‘통일의병’에서 이 강연회를 주최했습니다. 사람이 살다 보면 힘이 드는 것이 마련이니까 개인적인 질문도 받긴 하겠습니다. 그래도 통일에 관련된 질문을 되도록 많이 해주시면 좋겠어요. 통일의병 측에서 어렵사리 강연 준비를 했는데 통일 이야기는 하나도 묻지 않고 개인적인 이야기만 물으면 주최 단체가 실망하잖아요.” nbspnbspnbsp이어서 스님은 이 땅에 다시는 전쟁이 없어야 한다는 점과 분단된 상태로는 더 이상 지속적 성장을 담보할 수 없다는 점을 강조했습니다. nbspnbsp“오늘 강연에서는 개인의 삶의 문제를 해결하는 수행도 좋지만 우리가 살아가는 삶의 전체적인 문제, 즉 공동체적인 문제에도 내가 관심을 좀 가졌으면 좋겠습니다. 한반도에 전쟁이 일어난다면 수행자도 기독교인도 부자도 다 위험에 처하지 않습니까? 지난 50년간 우리가 피땀 흘려 이루어낸 산업화의 결실과 우리의 소중한 인명을 결코 훼손해서는 안 됩니다. 그러니 이 땅에 다시는 전쟁은 없어야 합니다. 최근에도 마치 당장에라도 전쟁을 할 것 같은 위기에 처했잖습니까? ‘저놈들 까짓 거 한 달만 전쟁하면 이긴다.’ 이런 건 굉장히 위험한 생각입니다. 누가 이기고 지느냐가 문제가 아니라, 현재 남북한이 보유한 화력을 고려할 때 전쟁은 엄청난 피해를 가져올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다시는 이 땅에 전쟁이 없는 항구적인 평화를 우리가 추구해야 합니다.nbspnbspnbsp또 전쟁이 없는 평화만 유지하면 되느냐? 그렇지 않습니다. 지난 50여 년간은 분단된 상태로도 우리는 어느 정도 발전할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최근 10여 년간은 거의 발전이 안 되고 정체 국면에 머물러 있었어요. 성장이 둔화되고 있잖아요. 어떤 정치인이 이렇게 성장이 안 되는 게 노동자들이 쇠파이프 들고 시위하기 때문이라는 이야기를 했는데, 그건 좀 편견인 것 같아요. 또 반대하는 쪽에서는 재벌 개혁을 못 해서 그렇다고 하는데 그것도 편견입니다. 이런 문제들도 포함해서 우리 사회가 안고 있는 모든 문제를 살펴보면 이제는 정체 국면에 들어섰다고 볼 수 있어요. 분단된 상태에서 남한만 가지고는 더 이상 지속적 성장은 담보되기 어렵습니다.”nbsp그리고 6000년 전의 배달나라로부터 면면히 이어져 온 우리의 민족사를 강조하면서 통일 한국은 이를 계승하여 우리 민족이 새롭게 도약하는 계기를 마련해줄 수 있다고 이야기해 주었습니다.nbspnbsp“우리는 지난 1000년 동안 자주적인 독립국가로서의 역할을 제대로 해본 적이 없습니다. 그러다 보니 우리 마음 속에 ‘우리는 약소국가다,’ ‘우리 국민성은 사대주의 성향이 있다’ 이렇게 좀 자학하는 성향이 깃들게 되었어요. 그러나 실제의 우리 민족은 그렇지 않습니다. 6000년 전에 배달나라가 건국되었을 때에는 세계 최고의 문명국가였습니다. 배달나라를 계승한 조선나라도 청동기 문명이 고도로 발달한 국가였습니다. 이 고조선의 일파가 중국으로 가서 중원을 지배한 것이 은나라예요.nbspnbspnbsp그런데 청동기 문명에서 철기 문명으로 바뀔 때 중국의 철기 문명이 앞서가고, 우리는 청동기 문명에 안주하다가 주도권을 놓치게 되었어요. 그래도 부여가 동북방에서 강대했고, 부여를 계승한 고구려는 잃어버린 고조선의 옛 땅을 되찾겠다는 다물 정신으로 나라를 건국했기 때문에 동북아에서 강대한 국가를 형성했습니다. 이때 한나라의 침공을 막겠다고 만들어진 다물군이 최초의 의병이었어요. 고구려가 패망하자 고구려를 계승한 발해가 또 동북아 대륙에 큰 제국을 이루고 활약했습니다.nbsp이렇게 우리의 역사를 돌아보면 한때는 세계 최고의 문명을 이루었고 이후에도 동북아시아에서 주도적 역할을 했습니다. 그러나 발해 멸망 이후에는 고구려와 발해에 속해 있던 토착세력인 제 부족들이 일어나 독립했지요. 거란족이 요나라를 세우고, 여진족이 금나라를 세우고, 몽골족이 원나라를 세우고, 만주족이 청나라를 세우고, 왜가 대일본제국을 만들고, 이렇게 우리 아래에 있던 민족들이 다 한 번씩 대륙을 재패했습니다. 이런 천 년을 지나다 보니까 우리는 우리 민족의 웅대함이나 영광스러움을 다 잃어버리고, 원래부터 동북아 대륙의 한반도에 사는 작은 약소국인 양 잘못 생각하게 되었습니다.nbspnbsp그런데 우리는 최근 5060년 사이에 산업화와 민주화에 성공했잖아요. 지금은 세계 13위의 경제대국이며 선진국에 들어섰다고들 말해요. 약소국가가 노력한다고 이렇게 된 예는 찾아보기 어렵습니다. 우리들의 몸과 마음, DNA 속에 고대의 웅대한 민족사가 있었기 때문에 기회를 맞았을 때 그게 발현되어 빠른 시일 내에 발전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그런데 여기서 주저앉는다는 것은 좀 아깝지 않느냐는 말씀을 드리고 싶어요.nbspnbspnbsp만약 우리가 여기서 조금만 더 노력해서 남북 간 평화를 유지하고 통일을 만들어낸다면 단순히 통일하는 데서 그치지 않고 더 나아갈 수 있어요. 요즘은 이웃 나라와 싸워 이겨서 우리만 잘 되는 것은 세계의 추세가 아닙니다. 이웃 나라와 손잡고 공동 번영을 추구하는 게 오늘날의 세계 추세입니다. 먼저 남북한이 협력해서 통일을 하고, 통일된 한국이 그 다음으로 일본 및 중국과 협력해서 동아시아 공동체를 만들고, 또 우리가 세계 평화에 이바지한다면 앞으로 50년 쯤 지나면 문명의 중심이 아시아로 옮겨올 것입니다.”nbsp스님의 가슴 뛰는 통일 이야기에 시작부터 가슴이 두근 거리기 시작했습니다. 이어서 질문을 하라고 하자 여기저기서 손을 들고 질문을 했습니다.nbspnbsp총 4명이 스님에게 질문을 했습니다. 한 여성분은 야속하기는 하지만 남편도 행복할 권리를 주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는데 남편이 얼마나 바뀔 수 있는 가능성을 어느 정도로 보고 노력하며 살아야 하는지 물었고, 이어서 또 같은 분은 회사에서도 못마땅한 상사가 있는데 항상 맞추며 살아야 하는지 물었습니다. 한 여성분은 의식주를 해결하지 못하는 아이의 친구 오남매와 인연이 되었지만 모두 정신불열증, 지적 장애, 자살 시도, 대인기피증 등으로 방황하고 있어서 어떻게 도움을 주어야 할지 모르겠다고 물었고, 마지막으로 한 남성분은 교회나 절에 가면 종교인들이 항상 통일을 외치지만 말 뿐이고 종교인의 3분 2가 팬티만 입고 삼보일배를 하면서 휴전선을 넘어가면 통일을 할 수 있을 것이라며 스님의 의견을 물었습니다. 각각의 질문에 대해 스님은 명쾌한 답변을 들려주었습니다.nbspnbsp오늘은 그 중에서 평범한 시민이 통일을 위해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인지 물었던 내용과 스님의 답변을 소개합니다.nbspnbsp“저는 두 아이를 둔 엄마입니다. 저는 대통령도 아니면서 나라 걱정이 좀 많습니다. 얼마 전에는 스님의 책 ‘새로운 100년’을 읽었습니다. 특히 민족의 뿌리를 찾아가는 과정이 무척 감명 깊었습니다. 뿌리를 알게 되니까 가슴이 정말 후련해졌어요. 그리고 통일의 필요성과 당위성을 알게 되니까 가슴이 뛰었습니다. 하지만 요즘 주변 정세를 보면 마치 100년 전으로 돌아간 것처럼 불안하고, 지뢰 사건으로 인해서 전쟁 직전까지 치닫는 등 정치적 환경은 통일과 멀어지는 것 같아서 마음이 조급해집니다. 저처럼 이제 통일 문제에 대해 막 눈을 뜬 사람들이 통일을 위해서 할 수 있는 일은 어떤 것이 있을까요? 통일을 바라는 평범한 주부로서 작은 힘이라도 보태고 싶습니다.”nbspnbspnbsp스님은 먼저 우리의 역사를 제대로 알아야 지금 우리가 갖고 있는 민족적 열등의식도 치유할 수 있다고 다양한 예를 들어가며 설명을 해준 후 평범한 시민들이 통일을 위해 할 수 있는 역할에 대해 쉽고 간명한 답변을 들려주었습니다.nbspnbsp“이렇게 중요한 문제인 통일을 누가 해야 할까요? 미국이 해줄까요? 미국은 지금 중국 봉쇄에 관심이 있을까요? 한국을 통일하는 데 관심이 있을까요? 중국은 미국의 봉쇄를 뚫고 나가는데 관심이 있을까요? 한국을 통일하는 데 관심이 있을까요? 일본은 지금 부상하는 중국에 대응하는 데 관심이 있을까요? 한국의 통일에 관심이 있을까요? 러시아가 한국 통일에 지대한 관심을 보일까요?nbspnbspnbsp북한은 지금 자기 체제 지키기에 급급할까요? 통일에 전심전력을 쏟으려 할까요? 말은 통일은 해야 한다고 이야기 하지만 상식적으로 생각해보면 자기 체제 지키기에 급급합니다. 우리도 약할 때는 우리를 지키는 데 급급했어요. 박정희 대통령이 5.16 쿠데타를 일으킨 뒤 내세운 혁명공약 1번이 ‘반공을 국시의 제일로 삼고...’ 이렇게 시작합니다. 그건 우리 체제를 지키는 게 국가의 제1목적이었다는 뜻이에요. 그것처럼 지금 북한은 자기 체제를 지키는 게 제1목적입니다.nbspnbsp통일을 하려면 할 수 있는 주체가 되는 것은 대한민국 밖에 없어요. 그런데 대한민국은 경제적으로나 군사적으로나 능력 면에서는 통일을 주도할 만한 조건이 되지만 통일을 할 의지가 별로 없어요. 그래서 통일이 안 되고 있는 거예요. 제가 볼 때는 통일을 하지 못하면 90는 여기서 가라앉는 쪽으로 갈 거라고 봐요. 100라고 하면 차라리 아무 노력을 안 할 텐데, 그래도 10는 가능성이 있어요.nbspnbsp그러면 탁월한 정치 지도자가 나타나서 이 문제를 풀어나갈까요? 정치인들을 아무리 봐도 그럴 의지도 능력도 별로 없어 보여요. 우리나라 재벌들이 이 문제를 풀어나갈까요? 노동 조직들이 이 문제를 풀어나갈까요? 아니에요. 그러니 마지막 기대를 걸 수 있는 것은 국민 밖에 없습니다. 국민이 통일을 강력하게 요구한다면 통일은 가능합니다.nbspnbsp그런데 우리가 통일 노래를 부른다고 통일이 됩니까? 안 됩니다. 통일은 군사적, 정치적, 외교적, 경제적인 문제입니다. 이건 다 정부가 나서서 풀어야 하는 거예요. 북한 같은 경우, 정부가 하지 않는다면 국민은 아무것도 할 수가 없어요. 그런데 우리는 다릅니다. 헌법 전문에 대한민국의 주권은 국민에게 있다고 되어 있잖아요. 통일에 우리의 운명이 걸렸다고 하면 우리가 통일을 강력하게 추진할 정부를 세우면 되겠지요. 현 정부가 통일 대박론까지 주장하고 있으니까 통일을 강력하게 추진하도록 압력을 더 넣고요.nbspnbspnbsp그런데 통일을 위해서는 전쟁도 불사한다는 통일 지상주의가 되면 안 돼요. 그렇게 하면 이겨서 통일을 할지는 몰라도 나라가 풍비박산 나요. 반대로 평화 지상주의, 즉 평화만 유지되면 된다고 하면 분단 고착화로 갈 위험이 있어요. 우리는 평화도 필요하고 통일도 필요합니다. 그러니 평화적 방법으로 통일을 해야 합니다.nbspnbsp그 중에서도 평화가 우선이에요. 통일이란 미래에 더 큰 이익을 얻기 위해 통일하자는 거예요. 평화는 지금까지 우리가 이루어놓은 것을 파괴하지 말고 지켜내자는 것입니다. 그러나 여기에 안주하면 미래가 없어요. 미래에 더 큰 이익을 얻으려면 통일을 해야 하는데, 미래의 이익을 보고 지금의 것을 모두 날려버리는 모험 투자를 할 수는 없잖아요. 그래서 현재를 지키면서 안전하게 미래의 이익을 추구하기 위해서는 평화적 통일을 해야 한다는 겁니다.nbspnbsp평화적 통일이라는 말은 북한과 서로 협의해야 한다는 뜻이에요, 우리 식대로 하면 안 되고 협의를 해야 해요. 그러니까 우리가 책임자답게 주인이 되어서 통일을 추진해야 하고, 그런 가운데 어느 정도 북한과 협의를 해야 한다는 겁니다. 협의를 한다는 것은 상대의 요구도 좀 받아줘야 한다는 뜻입니다. 받아주는 게 바로 포용이에요. 강자가 약자의 요구를 좀 받아주면 포용이라고 하고, 약자가 강자에게 눌려서 양보하면 비굴이라고 해요. 그렇게 해야 우리 손으로 통일의 길을 열 수 있습니다.nbsp질문자가 한 이야기의 핵심은 ‘내가 뭘 할 수 있느냐’는 것이었지요? 질문자가 할 수 있는 제일 중요하고 쉬운 방법은 투표를 잘 하는 것입니다. 질문자는 투표권을 가지고 있잖아요. 그러니 내년 4월 총선에 국회의원을 뽑을 때 내 친구, 내 동창, 인물 잘 생긴 사람 이런 것들을 보지 말고, 여기에 공장을 세워준다 이런 것도 보지 말고, 투표의 핵심 기준을 통일에 대해 비전을 가진 사람인지를 놓고 비교해봐서 찍어주면 돼요.nbspnbspnbsp그리고 대통령 선거 때 경제를 성장시킨다거나 복지를 한다는 공약도 중요하지만 우리는 통일정책을 제일 중요시해야 합니다. 입으로만 말하고 말 사람인지, 진정으로 추진할 사람인지, 북쪽에서 무력시위를 하더라도 적당히 다독이고 구슬려서 함께 갈 사람인지, 미국이 간섭해도 우리의 이익을 지키면서 미국과 동맹관계를 유지할 사람인지, 중국이 뭐라고 해도 넘어가지 않고 우리의 이익인 평화와 통일에 딱 중심을 잡고 추진할 지도자인지를 보세요. 이걸 가장 중요하게 보고 투표하면 됩니다.nbspnbsp그런데 질문자는 주식으로 치자면 소액주주니까 혼자 찍어봐야 큰 효과가 없어요. 주주총회할 때 결정권을 행사하려면 51가 넘어야 합니다. 그러니 질문자가 10명이든 20명이든 100명이든 뜻을 같이하는 사람을 데려가서 투표하도록 해야 합니다.nbspnbsp독립 운동을 할 때는 총 들고 싸우다가 지면 죽었어요. 민주화 투쟁할 때는 돌멩이 들고 싸우다가 잡히면 감옥 갔어요. 그런데 투표는 국민의 권리기 때문에 손가락만 들고 가면 돼요. 그리고 설령 잘못된다 하더라도 아무 피해가 없어요. 너무너무 쉬워요. 이래서 무슨 운동이 되겠나 싶지요? 아닙니다. 이렇게 될 수 있도록 우리 선배들이 목숨 걸고 싸워서 나라를 독립시켜줬고 민주투사들이 싸워서 민주화를 이루어줬잖아요. 그 덕분에 우리는 선배들 같은 모험을 하지 않고도 세상을 바꿀 수 있어요. 그런데 문제는 우리가 이것마저도 안 하려 든다는 겁니다. 이것조차 안 하려는 사람에게 비전이 있을까요? 없어요. 그러면 가라앉는 수밖에 없습니다.nbspnbsp질문자는 뭘 해야 되느냐고 물었는데, 지금 말씀드린 것만 하면 돼요. 가만히 있다가 투표날에 가서 ‘이렇게 하면 된다’고 시키면 누가 말을 듣겠어요? 그러니 지금부터 계를 모으든지 해서 100명이든 1000명이든 뜻을 같이 하는 사람을 모아 질문자가 투표장으로 데려가세요. nbspnbspnbsp그럴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우선 배우자에게 잘 해줘야 해요. 남편이 뭐라고 하든지 그저 ‘예, 예’ 하면서 잘 해주다가 나중에 ‘여보, 나한테 소원이 하나 있는데 들어줄래?’ 이렇게 말해서 ‘뭔데?’ 하면 ‘이 사람 좀 찍어줄래?’ 이렇게 하세요. 정말로 통일에 열의가 있으면 마음에 안 드는 회사 직원한테도 잘해 주세요. ‘나는 당신한테 뭐 해 주지?’ 이러면 ‘아이고, 됐어요. 나도 부탁 있을 때 이야기할게요.’ 이러고 마냥 잘 해주세요. 그러다가 나중에 ‘부탁이 있는데요, 이 사람만 꼭 좀 찍어줄래요?’ 이렇게 해보세요.nbspnbsp진짜로 통일에 열의가 있으면 그렇게 해야 해요. 그럴 정도로 우리가 열의가 있으면 나라를 바꿀 수 있습니다. 너무너무 쉬워요. 너무 쉬워서 오히려 안 되는지도 몰라요. ‘다 버리고 나와라. 총 들고 싸우자’ 이러면 올 사람이 좀 있을 텐데 뭐 그런 걸 가지고 운동이라고 하느냐고들 하는데 그렇지 않아요. 우리가 진정한 주인의식을 가져야 합니다. 그 방법은 너무너무 쉬워요. 결혼생활을 해도 되고 직장을 다녀도 되고 밥 먹어도 되고 화장을 해도 돼요. 스님이 되려고 하면 그런 거 하지 말라고 하지만 이 일은 그런 거 다 해도 돼요. 자기 생활 그대로 유지하면서 엄지손가락만 갖고 잘 하면 되잖아요. 요즘은 손가락 지문 찍는 것도 아니니 더 쉬워요.nbspnbspnbsp나라를 위해서 나에게 주어진 권리를 올바르게 행사하겠다는 의지가 있어야 해요. 그리고 그 전에 시간이 남으면 북한 돕기에 좀 보태주세요. 북한에 굶어죽는 아이들이 영양실조라도 면하도록 보시도 좀 하고, 북한에 나무 심는다 하면 좀 보태고요. 통일되기 전에 나무를 미리 심어놓아야 해요. 아이들은 어때요? 지금 영양실조인 아이들을 나중에 통일 되고 나서 지원하려면 사회 보장기금이 엄청나게 듭니다. 지금 조금 도와줘서 영양실조를 면하게만 해줘도 통일 후에 지원하는 비용이 훨씬 적게 들어요. 이런 걸 선투자라고 해요. 지금 미리 나무 심어두면 나무가 자라는 데 30년쯤 걸리니까 좋잖아요. 나무가 총이 되어 돌아오는 건 아니잖아요. 하기야 제가 예전에 북한 사람들 굶어죽는다고 지원하자 하니까 이런 플래카드를 붙이는 사람이 있긴 했어요. ‘우리가 지원한 쌀, 총알 되어 돌아온다’. 그래도 ‘우리가 심은 나무, 총알 되어 돌아온다’ 이런 플래카드는 안 붙을 것 같아요. 이제는 인식들이 좀 바뀌었으니까요. 20년 전에는 그랬어요. 그래서 돕자는 이야기 꺼내는 것만도 굉장히 어려웠어요. 돕자는 말만 꺼내도 북한 편드는 양 취급들을 했거든요. 그러나 지금은 통일 운동을 아주 쉽게 할 수 있게 되었어요.nbspnbsp그래서 여러분들에게 제안합니다. 첫째, 역사 공부를 좀 하세요. 시험 치려고 공부하는 것 말고 우리 역사에 대해 공부를 좀 해서 민족적 자부심을 가지자는 겁니다. 둘째, 현재의 대한민국에 대해서 자긍심을 가지세요. 우리가 분단이 되고 전쟁까지 치렀지만 그래도 지난 50년 간 노력해서 산업화도 이루었고, 민주화도 이루었다는 것은 굉장히 자랑스러운 일이에요. 그러니 대한민국에 대한 자부심을 가지세요.nbspnbsp그러나 앞으로도 계속 잘 되지는 않을 겁니다. 지금 이 상태에서는 절대로 잘 될 수가 없어요. 경제는 장기불황에 빠지고 안보도 미중의 경쟁 속에서 불안이 계속될 겁니다. 전에는 미국이 세계 최강국이었으니 미국 옆에만 붙어 있으면 됐지만 이제는 미국 옆에 붙어 있어도 보장이 안 됩니다. 미일 동맹에 우리가 붙어버려서 중국과 갈등이 생기면 경제가 하루아침에 굉장히 어려워져요. 옛 친구도 중요하지만 이제는 새 친구도 중요하고, 그 가운데서 내 중심을 잡아야 하는 새로운 시대가 도래했습니다. 이 위기를 극복하는 방법이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그 중 최고의 방법, 가장 쉽고 가장 효과적인 방법은 통일입니다. 이걸 딱 생각해야 합니다.nbspnbspnbsp그런데 지금 통일을 주도할 나라가 아무도 없고 대한민국뿐이에요. 대한민국이 통일을 주도하려면 강력한 통일지향적 정부를 우리가 세워야 해요. 현재의 대한민국 정부도 마침 통일을 추진하겠다고 말하니 더욱 강력하게 적극적으로 추진하도록 우리가 독려를 합시다. 말만 하고 행동은 안 한다면 다음에는 정부를 바꾸어야 되겠죠. 지금까지는 투표를 할 때 야당, 여당, 경상도, 전라도, 진보, 보수 이런 게 판단기준이었는데 이제 더 이상 그건 기준이 안 됩니다. 보수라도 통일만 강력히 추진한다면 밀어주자, 진보라도 통일만 강력히 추진한다면 밀어주자, 이런 식으로 지금까지의 평가기준을 확 바꿔야 합니다. 통일이 우리에게 정말로 가장 중요한 문제라면 기준이 이렇게 바뀌어야 해요. 그런 자세로 임하면 되지 않을까 싶어요.”nbsp“예, 말씀 잘 들었습니다.”nbsp통일을 분명한 기준으로 해서 투표만 제대로 하면 된다는 아주 간단한 방법을 일러 주어서 가슴이 시원해지는 기분이 들었습니다. 질문자도 청중들도 큰 박수로 스님의 답변에 공감을 표했습니다.nbspnbsp모든 질문에 대해 답변을 마치자 2시간이 훌쩍 넘었습니다. 아직 질문하려고 대기하던 사람이 2명 더 남았지만 시간이 부족해 답변을 하지 못해서 다음 강연 장소에 찾아와서 질문하라고 양해를 구한 후 마지막 정리 말씀을 해주었습니다.nbspnbsp스님은 통일을 위해서 우리가 해야 할 쉽고 간단한 행동을 다시 한번 강조했습니다.nbspnbspnbsp“통일을 위해서 우리가 해야 할 행동은 간단합니다. 손가락만 잘 누르면 됩니다. 손가락을 이리 놀리느냐 저리 놀리느냐에 따라서 나라의 운명이 달라져요. 그런데 혼자 오면 안 되고 다른 사람을 데려와야 해요. 그래서 지금부터 100명을 모으겠다고 목표를 세우세요. 그러면 통일의병 1만 명만 있으면 100만 명을 움직일 수 있습니다. 100만 표만 좌우해도 당락에 영향을 좀 줄 수 있습니다.nbspnbsp‘이렇게 통일을 추진해 줄 사람 없나? 그렇게 해주면 우리의 100만 표를 주겠다’ 라고 하면 여야가 팽팽하게 맞설수록 그 표를 얻기 위해 서로 다투어 통일 정책을 바꾸겠지요. 우리가 마음에 안 든다고 하면 다시 바꿔오고, 마음에 안 든다고 하면 또 바꿔오고, 이렇게 선거날까지 딱 중심을 잡고 있으면 양측이 표를 얻으려고 우리가 원하는 통일 방안을 내어놓을 거예요. 그러면 누가 되든 상관이 없어져요. 어차피 둘 다 정책이 비슷하게 되었기 때문에 누가 되든 똑같아요. nbspnbspnbsp한쪽이 되고 한쪽이 떨어지면 승패가 되잖아요. 그런데 표를 쥐고 ‘우리가 300만 표 갖고 있다’ 이러면 그 표 잡으려고 계속 정책을 바꾸다가 결국에는 양 진영이 비슷해질 거 아니에요. ‘비슷해지면 누굴 찍어요?’ 이렇게 걱정하는 사람이 있어요. 그걸 왜 걱정해요? 어차피 비슷하면 누굴 찍어도 아무 상관이 없는데요. nbspnbsp이런 정도의 자세만 갖는다면 우리가 나라의 운명을 바꿀 수 있어요. 밥 굶던 시절, 우리도 한번 잘 살아보자며 열심히 일했던 그 시절에 우리가 지금처럼 잘 살게 되리라고 꿈에라도 생각했어요? 그런데 그게 이루어졌어요. 대학생들이 민주화 운동을 할 당시에는 이 정도까지 올 거라고 생각 못 했잖아요. 그것처럼 통일도 우리 국민들이 딱 마음먹고 시작하면 과거처럼 희생하지 않고도 이룰 수 있습니다.nbspnbsp그러니 통일시민학교에 등록을 하셔서 3주 교육 받고, 통일을 원한다면 저처럼 이렇게 뺏지도 다세요. 행동은 다만 투표만 잘 하면 됩니다. 갈 때 혼자 가지 말고 지금부터 조금씩 사람을 모으세요. 누굴 찍으라고 하면 선거운동 한다고 하니까 그러지 말고 평소에 잘 해주세요. 커피도 사주고 술도 사주며 잘 해주다가 상대가 ‘답례로 뭐 해줄까’ 하면 투표만 잘해 달라고 하면 돼요. 정치 이야기는 한마디도 안 하고 할 수 있는 방법이 있다는 거예요. 많은 시민들이 이렇게 각성을 해야 하니까 통일시민학교에 주위 사람들을 많이 참여시키는 운동을 함께 해봅시다. 우리 손으로 나라의 운명을 바꿔봅시다.”nbsp우리 손으로 나라의 운명을 바꾸어보자는 스님의 호소에 청중들은 다시 한 번 큰 박수로 화답했습니다.nbspnbspnbsp강연은 다함께 노래를 부르는 것으로 마무리가 되었습니다. 오늘 강연을 준비한 스텝들이 모두 무대 위로 올라오고 청중들도 기립을 한 채 서로 손을 잡고 ‘우리의 소원은 통일’ 노래를 함께 불렀습니다. 노래를 시작하려는 찰나 뒤늦게 수원 시장님이 도착해 스님께 꽃다발을 건냈고, 시장님도 스님과 함께 손을 잡고 노래를 불렀습니다.nbspnbsp▲ 강연 후 스님에게 꽃다발을 건낸 수원 시장님nbsp▲ 손을 맞잡고 우리의 소원은 통일 노래nbsp마지막으로 사회자가 나와서 방금 스님이 언급해 준 통일시민학교에 대해 안내를 해주었습니다. 수원에서는 9월 11일과 19일 2일에 걸쳐 통일시민학교가 열릴 예정이라고 합니다.nbspnbsp▲ 수원 통일시민학교 일정과 참가방법nbsp강연장 입구 로비에서는 책 사인회가 열렸습니다. 오늘 강연을 들었던 수원 시민들은 사인을 받으며 “스님, 소중한 말씀 들려주셔서 감사합니다. 건강하세요” 하며 인사를 했고, 스님은 한명 한명과 눈을 마주치며 환한 웃음을 머금었습니다.nbspnbspnbsp사인을 받는 사람 중에 초등학교 여학생 한 명이 보이자 스님은 “오늘 지루해서 힘들었지?” 라고 물어보면서 “너가 질문했으면 오늘 강연이 더 재미있었을텐데...” 하면서 웃음을 띠었습니다.nbspnbspnbsp마지막으로 오늘 강연 준비를 위해 곳곳에서 소임을 맡아 수고해준 통일의병 자원봉사자들과 함께 기념 사진을 찍었습니다. “통일 의병 의병 의병”를 씩씩하게 외치는 모습에서 통일을 향한 열정이 느껴졌습니다.nbspnbspnbsp사진 촬영 후 다시 대기실로 가서 늦게 도착한 수원 시장님과 담소를 나누었습니다. 시장님은 시정 활동의 어려운 점에 대해 이야기를 했고 스님은 애정을 담아서 조언을 해주었습니다.nbspnbspnbsp강연장을 빠져나오닌 밤 10시가 넘었습니다. 스님은 수원을 출발하여 다시 서울 정토회관에 도착한 후 밤늦게까지 원고 교정을 업무를 보다가 오늘 일정을 모두 마쳤습니다. 내일은 광주에서 김제동씨와 함께하는 청춘콘서트가 있을 예정입니다.nbspnbsp ※ 9월부터 11월까지 전국 방방곡곡에서 nbsp2015 법륜 스님의 즉문즉설과 통일 이야기를 주제로 강연이 펼쳐집니다. 우리 동네 강연 일정을 확인하시고 많은 참여 바랍니다. 아래 배너를 누르고 사전 신청을 하세요.nbsplt사전 신청하기gtnbspnbsp
2015.9.6 (오후) 제1차 통일의병대회 제2부
nbsp식사를 마치고 다시 행군을 계속해서 오후 1시에 통일암 너른 터에 도착했습니다. 통일암에서는 통일의병대회 2부 행사가 진행되었습니다. 먼저 통일의병대회를 시작하기에 앞서 지난 통일의병학교 졸업 기념으로 각 지부에서 준비한 축하 공연이 연이어 신나게 펼쳐졌습니다.nbspnbsp▲ 성동 법당의 ‘백두산’ 노래nbsp▲ 마산 법당의 ‘통일의병가’nbsp▲ 울산 법당의 ‘통일의 불꽃’ 공연nbsp▲ 대구법당과 남산법당 합동팀의 ‘아리랑’ 공연nbsp공연을 보니 의병들의 통일에 대한 간절한 염원이 느껴져서 행사장은 순식간에 통일에 대한 열기로 다시 한 번 후끈 달아올랐습니다.nbspnbsp모두가 하나 되는 신명나는 시간에 이어서 서로를 부정하고 반목하는 역사를 넘어 이제 새로운 희망의 역사를 써나갈 것을 발원하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정토회 통일의병이 어떻게 만들어졌는지 김은숙 행정처장님의 경과 보고가 있은 후 정토회 이기혜 대표님이 대회사를 해주고, 또 통일의병 대표인 김홍신 작가님이 축사를 해주었습니다.nbspnbsp이어서 지난 3월부터 진행된 1차 교육과 2차 교육을 모두 수료한 1510명의 통일의병들에게 임명장과 배지를 수여했습니다. 법륜 스님이 먼저 법사단에 임명장과 배지를 수여했습니다.nbspnbsp▲ 통일의병 임명장 수여식nbsp임명장과 배지를 수여 받고 법사단을 대표해서 묘수 법사님이 그 소감을 말했습니다.nbspnbsp“굉장히 감격스럽습니다. 새로운 100년이 시작되는 날이 바로 오늘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여러분과 함께 이 자리에 있다는 것이 너무 고맙고 감사합니다.”nbspnbsp묘수 법사님은 끝내 눈물을 보였습니다.nbspnbsp▲ 법사단에 통일의병 뺏지를 달아주고 있는 법륜 스님nbsp법사단에게 배지를 모두 달아주고 나서 스님도 통일의병 0번으로써 배지를 달았습니다.nbspnbsp▲ 법륜 스님이 단 통일의병 뺏지nbsp다시 법사님들이 각 지부별로 임명장과 배지를 전달했습니다. 통일의병들은 배지를 받아서 가슴에 달면서 모두들 기쁜 마음을 감추지 못했습니다. 일제 시대 때 독립운동을 했던 선조들도 이런 기분이었을까 짐작해 봅니다.nbsp▲ 통일의병 뺏지를 달고 기뻐하는 통일의병들nbsp이어서 통일 돼지 저금통을 통일의병 모두에게 분양했습니다. 일제 시대 때 독립운동 군자금을 모았듯이 통일의병들은 점심 도시락을 싸서 다니며 절약된 돈을 차곡차곡 모아서 돼지 저금통에 모두 넣어 오기로 약속했습니다. 저금통을 양손에 든 통일의병들의 얼굴에는 웃음꽃이 활짝 피었습니다. 통일의병들이 마음을 모아 저금통을 뒤로 전달하는 모습은 정말 그 자체로 감동이었습니다.nbspnbspnbsp▲ 통일 돼지저금통 분양nbsp임명장과 배지 수여, 돼지 저금통 분양을 모두 마치고 다소 고무된 분위기 속에서 통일의병들은 법륜 스님에게 청법가와 삼배로 법을 청했습니다. 스님은 통일의병의 자세와 역할에 대해 법문을 해주었습니다.nbspnbsp스님은 왜 지금 통일이 중요한지 지금 대한민국이 놓인 위치를 재조명하고 통일 한국이 되었을 때 우리가 꿈꿀 수 있는 희망에 대해 이야기해 주었습니다.nbspnbsp“현재에도 먹고 살 만하고 과거에도 큰 문제가 없었다 하더라도 미래에 아무런 희망이 없으면 사람은 생기가 없어집니다. 과거도 중요하고 현재도 중요하지만 역시 사람에게는 미래가 중요합니다. 그래서 사람은 꿈을 먹고 산다는 말이 있어요. 가능성과 희망이 있다면 인간은 현재의 어려움을 능히 극복해낼 수 있다는 것입니다.nbspnbspnbsp그래서 오늘 큰스님께서도 우리가 비록 지금은 중생이지만 나도 부처님 같이 될 수 있다고 믿고 노력한다면 부처님이 될 수 있다고 말씀하셨습니다. 부처님 같이, 조사님 같이, 우리 각자에게도 그런 좋은 성품이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부지런히 수행정진 한다면 우리도 그 분들처럼 될 수 있습니다. 희망이라는 것은 가능성입니다. 반드시 된다면 노력할 필요가 없고 아무리 해봐야 안 된다면 역시 노력할 필요가 없겠죠. 나도 될 수 있다는 희망이 있을 때 사람은 노력을 하게 됩니다.nbsp지난 100년을 돌아보면 나라가 기울어져 갈 때 그걸 바로 세우려 많은 노력을 했지만 결국 실패하고 나라를 잃어버렸습니다. 그래서 다시 나라를 찾으려고 많은 희생을 했지만 우리 힘으로 되찾지는 못했어요. 그러다 일본이 패망하면서 해방은 되었지만 우리가 해방정국의 주인이 되지는 못했습니다. 우리 스스로 해방을 쟁취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일본을 패망시킨 주 세력인 미국과 소비에트 연방에게 우리 운명이 달리게 되었고, 그들의 이해관계 때문에 남북이 38선으로 분단되었어요.nbspnbsp왜 분단이 되고, 왜 자주적인 정부가 들어설 수 없었을까요? 독립을 우리 힘으로 못 했기 때문입니다. 꿈에도 그리던 해방은 이루어졌지만, 결국은 일제를 패망시킨 국가들이 주역이 되고 우리는 종속변수가 되었어요. 분단이 된 데다 종속변수가 되어 소위 그들의 하수인을 벗어날 수 없었습니다.nbspnbsp20세기 전반기는 이런 어려움의 연속이었습니다. 나라를 빼앗기는 시기, 일제로부터 탄압을 받고 희생되는 시기, 나라를 되찾았지만 분단되는 시기, 동족상잔의 비극인 전쟁까지 치르는 시기... 정말 혼란기였습니다.nbspnbsp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런 가운데에서도 북쪽은 북쪽대로 60년대에는 대동강의 기적이라 할 만큼 재건을 했고, 남쪽은 10년쯤 뒤에 한발 늦게 출발했지만 70년대 들어 북한을 따라잡았고 80년대 들어와서는 한강의 기적을 일으키며 북한을 앞질렀습니다. 남북은 갈등관계에 있었지만 이때는 서로 잘 살려고 경쟁했기에 우리는 분단된 상태에서도 성장을 할 수 있었어요. 남북은 서로를 적대했지만 다른 편에서는 서로 우위를 점하기 위한 경쟁을 한 측면도 있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절대빈곤국가에서 소위 중진국 대열에 들어섰고, 지금은 선진국 대열에 들어설 만큼 경제적으로는 성공을 거두었습니다. 그리고 민주화 투쟁이 있었고 수많은 젊은이들의 희생을 통해 어렵사리 민주사회를 이루었습니다. 이 또한 제3세계 나라 가운데 몇 안 되는 성공 사례입니다. 이렇게 우리는 어려움 가운데에서도 산업화와 민주화라는 이 두 가지에 성공했다는 자부심을 가지고 있습니다.nbspnbspnbsp그런데 오늘 우리 국민들은 어렵사리 여기까지는 왔지만 여기서 더 나아가지 못하고 있습니다. 턱을 넘어서지 못하고 지난 10여 년 동안 거의 꼼짝도 하지 못하고 있어요. 앞으로 10년, 20년 동안 계속 이런 정체 국면에 있을 수밖에 없는 구조적 조건에 놓여 있습니다. 그런 데다가 우리가 많은 성공사례를 갖고 있고 경제적으로 성공했다고는 하지만, 그러면 국민이 행복해야 하는데 행복지수로 따지면 세계 100위보다도 한참 아래인 117위라고 합니다. 최하위권이에요. 절대빈곤은 해소되었지만 상대적 빈곤이 해소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즉 빈부격차가 너무 심해서 생긴 문제입니다.nbspnbsp거기다 성장도 더 이상은 어렵습니다. 정치적으로도 우리가 직접 대통령을 뽑고 국회의원도 뽑는 선거민주주의는 쟁취했지만 뽑힌 사람이 권력을 행사하는 일상에서의 민주주의는 아직 전혀 진척이 없습니다. 지난 10년 동안에는 경제가 정체되고 민주화는 오히려 후퇴했어요. 그래서 우리가 지금 답답한 거예요.nbspnbsp게다가 전쟁이 일어날지 모른다는 불안, 금융위기가 도래할지 모른다는 불안이 옛날보다 오히려 더 커지고 있고 직장도 확실하게 보장되지 않습니다. 불확실한 미래에 대한 불안이 점점 가중되고 있어요. 여러 면에서 뚜렷이 ‘저러면 되겠다’라고 하는 희망의 빛을 보지 못하고 있습니다.nbsp이런 데서 우리 국민들의 답답함을 풀어주려면 첫째, 수행이 필요합니다. ‘계속 성장할 거라는 욕심을 버려라. 남을 쳐다보고 상대적 빈곤에 헐떡거리지 말고 밥 먹고 살면 되었다’라고 자기만족하고 자기 마음을 다스릴 줄 아는 수행을 해야 합니다. 경제를 발전시킨다 뭘 한다 해서만은 더 이상 해결이 될 수가 없기 때문입니다.nbspnbsp동시에, 모든 것을 다 이런 수행만을 통해서 해결할 수는 없습니다. 사람들이 수행하고 기도한다고 한반도의 평화가 보장되는 게 아닙니다. 어떤 사회적, 제도적인 조건들에 갇혀서 답답해하는 문제들을 조금 개선한다면 훨씬 더 희망을 갖고 더 나아갈 수 있습니다. 수행은 혼자 할 수 있지만 사회 변화는 혼자서는 할 수 없어요. 서로가 협력해서 함께 나가야 합니다.nbspnbspnbsp경제적으로는 성장의 한계라는 문제, 정치적으로는 제왕적 대통령제의 문제, 남북 간에 전쟁이 일어날지도 모른다는 안보 불안 문제 등 이런 모든 문제의 원인은 돌아보면 어디에 있을까요? 나라가 분단된 데 원인이 있어요. 현재 한반도를 둘러싼 주위 정세를 볼 때 중국이 부상하고 미·중이 경쟁에 들어가면서 분단이 고착화될 가능성이 점점 높아지고 있고, 남북 갈등이 심각해지고 있습니다.nbspnbsp그래서 젊은이들에게 희망을 만들어주기 위해서도, 또 한 발 더 나아가서는 국가의 발전을 위해서도 이제는 통일 없이는 어렵습니다. 전에는 그나마 통일 없이도 성장이 가능했는데 이제는 통일 없이는 성장도 어렵고, 평화 유지도 어렵고, 나라를 발전시키기에는 한계점에 이르렀습니다. 그래서 통일의 문제는 지금 우리의 답답한 문제를 극복하는, 어쩌면 유일한 출구라 할 수 있을 만큼 중요한 변수가 되었습니다.nbspnbsp적대 관계에 있던 북한과 합의를 해서 공생의 길을 찾을 수 있다면 나아가 중국과도 공생의 길을 찾을 수 있고, 일본과도 공생의 길을 찾을 수 있습니다. 통일 한국에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동아시아 공동체의 중심 역할을 할 수 있다는 말입니다. 큰스님은 옛날식으로 용성 큰스님이 쓰셨던 말씀을 쓰신 거고, 저는 요즘의 정치사회학적인 언어를 써서 말씀드리는 겁니다. 바로 여기에 대한민국의 미래가 걸려 있어요. 21세기 초반에 우리가 사실상의 통일을 이룬다면 21세기 중반에는 동아시아 공동체를 이룰 수 있고 21세기 후반부에 가면 세계 문명의 중심으로 등장할 수가 있습니다. 우리에게 이런 가능성이 열려 있다는 것입니다. 그렇게 된다는 게 아니라, 될 수 있는 씨앗이 지금 우리에게 있다는 거예요. 이걸 우리가 한번 해보면 어떻겠어요?nbspnbsp통일을 해야 하는 첫 번째 이유는 그것이 우리 미래의 희망이기 때문입니다. 두 번째 이유는 통일을 해야만 과거의 한을 풀 수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일본의 지배를 받으며 엄청난 고통을 겪었어요. 지금도 상처가 많아요. 학도병으로 20만 명이 끌려갔고, 위안부로도 20만 명이 끌려갔고, 징용으로는 100만 명이 끌려갔어요. 맺힌 한을 다 꺼내면 끝이 없습니다. 한국전쟁 때도 엄청나게 많이 죽고 한 마을이 몰살당했고, 그 뒤로도 남북 갈등 때문에 북한에서도 수많은 사람들이 계속 숙청당하고 남쪽에서도 인혁당이니 뭐니 해서 빨갱이로 몰려 온갖 고통을 겪었잖아요. 말을 안 하고 다 못 드러내서 그렇지, 드러낸다면 사람마다 집집마다 쌓인 한이 태산 같이 많아요.nbspnbspnbsp또 이산가족은 어때요? 북쪽에서 내려온 500만 이북 도민은 나이 들어 죽어가는 지금도 고향에 가고 싶어 하죠. 요즘 새로 온 탈북자들 이야기를 들어보면 한 사람 당 소설이 한 권 나올 만큼 사연이 많고, 북쪽에서 굶어 죽어가는 사람들의 고통도 이루 말할 수 없어요. 역사를 조금 더 올라가보면 동학 혁명, 좀 더 올라가보면 병자호란이며 임진왜란 때 어때요, 고통을 겪고 억울하게 죽은 사람들 많지요? 조공물로 처녀들을 뽑아 바치고... 이렇게 한이 서려 있기 때문에 우리가 사분오열 되는 거예요.nbspnbsp통일을 하면 이런 한을 좀 풀 수 있습니다, 과거의 한을 좀 씻어낼 수 있다는 것입니다. 독립운동 했던 사람들도 나라를 위해 죽었지만 누구는 공산주의 물이 있다 해서 남쪽에서 인정 안 하고, 누구는 북한 정부 세울 때 협력하지 않았다 해서 북한에서 인정 안 했어요. 얼마나 많은 애국지사들이 이쪽에서도 저쪽에서도 인정을 못 받았습니까. 나라의 독립을 위해서 자기를 희생했지만 나라가 독립한 뒤에도 제대로 평가받지 못하는 분들 역시 남북이 화해하고 통일만 되면 우리가 다 복원해드릴 수 있습니다. 그가 공산주의 활동을 했든, 사회주의 활동을 했든, 모택동 밑에서 했든, 러시아 가서 했든, 장개석 밑에서 했든, 미국 가서 했든, 국내에서 했든 그게 뭐가 중요해요? 나라의 독립을 위해 일제와 싸운 사람들을 우리는 모두 다 평가해줘야 합니다. 이런 복원 작업도 통일되기 전까지는 어려워요.nbspnbsp우리 속에 묻혀 있는 이런 갖가지 한들은 무슨 한풀이 춤을 춘다고 해결되는 것도 아니고, 영가 천도재 지낸다고 해결될 것도 아니고, 오직 통일을 해야 해결돼요. 통일을 통해 이런 한을 풀면 자라나는 우리 아이들은 정말로 자존심과 자신감을 가지면서도 이웃 나라와 함께 어깨동무 할 수 있는 세계인으로 키울 수 있습니다.nbspnbspnbsp이런 가능성이 지금 우리에게 열려 있어요. 여기서 우리가 평화와 통일의 기회를 못 잡으면 전쟁과 후퇴의 국면으로 전락할 위험이 있고, 여기서 기회를 잡으면 오히려 성장과 통일과 새로운 문명의 희망을 가질 수도 있는 분기점에 섰다는 뜻입니다. 20년, 30년 전에는 통일이 되면 좋긴 하지만 안 되어도 그런 대로 살 수 있었다면, 지금은 살 만하긴 하지만 시대적 과제인 통일을 이루지 못하면 몰락하는 쪽으로 가고, 극복하면 비약적으로 발전하는 분기점에 서 있습니다. 그래서 통일을 위해 노력해보자고 오늘 모인 겁니다.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 대한민국의 주권은 국민에게 있고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고 헌법에 명시되어 있습니다. 우리가 주인이기 때문에, 정말 주인으로서 나라를 걱정하고 나의 행복도 공동체와 함께 찾아가는 주인 된 자세를 한번 가져보자고 하여 오늘 통일의병 발대식을 하게 된 겁니다.”nbspnbsp스님이 이야기를 들으니 정말 가슴이 뛰었습니다. 이렇게 큰 뜻과 서원을 갖고 오늘 이 자리가 마련되었음을 알게 되자 큰 감동의 물결이 밀려왔습니다.nbspnbsp마지막으로 스님은 오늘 하루 종일 정성껏 기도를 한 이유에 대해 다시 정리 말씀을 해주었습니다.nbspnbsp“오늘 이렇게 기도를 한 것은, 사람의 힘으로 부족한 것은 큰스님과 조상님들과 천지신명과 불보살이 알아서 해달라고 청하는 뜻입니다. 역할을 나눈 겁니다. 사람이 할 수 있는 것,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은 우리가 해야지 이걸 해달라고 하면 안 돼요. 우리가 못 하는 것을 도와달라고 기도해야지요. 그래서 우선 불보살에게는 ‘증명해 달라’, 그 다음으로 화엄성중, 제석천왕, 사대천왕, 팔부신장, 호국 선신들에게는 ‘우리를 적극적으로 옹호해 달라’, 그 다음으로 환인, 환웅, 단군 이하 온갖 조상신들에게는 ‘우리를 보호해 달라’ 하는 뜻으로 오늘 재를 지낸 거예요. 재를 지낸 의미를 이해하시겠지요? 이렇게 오늘 통일의병대회 첫 출발을 했습니다.nbspnbspnbsp향후 1000일이 중요하다고 이야기했지요? 그래서 3년, 천일기도에 들어간 거예요. 성불하려면 좀 더 길게 해야 하지만 이런 정도의 세상일은 3년 노력해서 기회를 마련해보자, 3년 안에 통일이 된다는 게 아니라 통일되는 쪽으로 물꼬를 터놓자는 거예요. 지금 분단 쪽으로 갈지 통일 쪽으로 갈지 분기점에 있으니 통일 쪽으로 방향을 틀어놓자는 겁니다. 통일이 완성되는 게 언제일지는 별로 중요하지 않아요. 일단 분단이 고착화되는 쪽으로 가는 것을 막고 통일 쪽으로 가도록 물꼬를 트는 것은 우리가 3년을 바짝 노력한다면 충분히 가능합니다. 지금은 삽으로 막을 게 3년 지나면 포크레인으로도 막기가 어려워집니다. 그러니 한번 전력투구해서 우리의 운명을 정말로 우리가 한번 개척해보자는 의미로 오늘 발대식을 했습니다.nbspnbsp오늘 우리는 황룡사지에서 통일 발원 기도를 했어요. 통일 과정에서 일어날 여러 장애를 극복하기 위해서 사천왕사지에서 통일 성취 기도를 했고요. 그런데 여기 오니 또 절 이름이 통일암이에요. 통일암이 다 지어져 있으면 좋겠지만 이 통일암은 터만 있어요. 앞으로 통일을 제대로 하라는 말이겠지요. 통일도 하고, 통일암도 짓고요. 오늘 우리는 이런 야외에서 미완성의 역사를 계승했습니다. 이런 미완성에서 시작해서 앞으로 새로운 미래는 우리 손으로 완성하자는 이야기입니다.nbspnbspnbsp이 영광스러운 자리에 함께 했다는 사실을 정말 자랑스럽게 여기고 가문의 영광으로 간직하셔도 좋겠습니다. 여러분 모두에게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오늘의 이 기쁨, 오늘의 이 결의를 잊지 말고 1000일 후에는 통일의 길로 대한민국이 들어섰다는 기쁨을 한번 만끽해봅시다.”nbspnbsp오늘의 결의를 잊지 말자는 스님의 호소에 통일의병들도 굳게 마음을 다졌습니다.nbspnbspnbsp이어서 스님은 오늘 행사를 위해 수고한 많은 분들을 하나하나 열거하며 격려를 해주었습니다. 행사를 할 수 있게 통일암 솔밭을 깔끔하게 정리해 준 대구경북지부와 부산울산지부 거사님들, 밤새 행사를 준비한 행정처 자원활동가들, 곳곳에 배치되어 안내를 맡아 준 대구경북지부 자원활동가들, 천지신명에게 기도하려고 큰스님의 뜻에 따라 공양물을 준비해 준 부산정토회 활동가들, 내부 진행을 맡은 울산정토회 활동가들, 큰스님 일행의 공양 준비를 맡은 경주법당 활동가들을 비롯해 오늘 공양물을 보시해준 분, 5천만 남한 동포를 위해 5천만원을 모아서 보시해준 분들, 또 2천만 북한 동포들을 위해 오늘 보시해 준 분들, 깃발을 든 행자님들 등 모든 분들에 대해 자세히 언급해 주면서 대중들 모두에게 감사의 박수를 부탁했습니다.nbspnbspnbsp정말 보이지 않게 수고한 많은 분들의 정성 덕분에 오늘 행사가 이뤄질 수 있음을 절실히 느낄 수 있었습니다.nbspnbsp스님의 법문에 이어서 오늘 이 자리에 모인 통일의병 모두의 의지를 모아 ‘통일의병 선언문’을 낭독했습니다. 정토회 이기혜 대표님이 선창을 하면 모두가 함께 따라했습니다.nbspnbsp▲ 통일의병 선언문 낭독nbsp“1. 우리는 한반도에 다시는 전쟁이 없는 평화체제를 구축한다.nbsp2. 우리는 미래 100년을 결정하는 통일시대를 연다.nbsp3. 우리는 주변국과 상생하는 동아시아공동체를 지향한다.nbsp4. 우리는 대한민국을 통일국가의 모델로 발전시킨다.nbsp5. 우리는 기존의 남북한 간 당국의 합의를 존중한다.nbsp6. 우리는 진영논리를 뛰어넘는 새로운 통일운동을 펼친다.nbsp7. 우리는 민족구성원 중심의 ‘화해상생’의 통일방안을 추구한다.nbsp8. 우리는 남한이 적극적으로 준비하고 북한과 합의하는 통일을 추진한다.nbsp9. 우리는 생명존중, 평화, 인권, 민주주의, 환경보호의 정신과 가치를 수호한다.nbsp10. 우리는 백의종군, 공공성, 자발성, 헌신성의 의병정신을 계승한다.”nbspnbspnbsp대표님이 선언문 낭독이 끝나자 사회자가 “이제 정토회 통일의병의 출범을 만천하에 선포합니다.” 라고 공표했습니다. 통일의병들은 뜨거운 박수와 환호로 함께 기뻐했습니다. 이로써 1510명의 통일의병이 대한민국에 새롭게 탄생한 것입니다.nbspnbsp이를 축하하며 법륜 스님이 축원 및 발원 기도를 해주었고, 이어서 통일의병 모두를 대표하여 서울제주지부 백기순님의 발원문 낭독이 이어졌습니다.nbspnbsp▲ 통일 발원문을 낭독하는 백기순님nbsp백기순님은 “지금까지는 내 앞만 보고 살아왔지만 이제는 나라의 자주독립과 민주화, 통일을 위해 모든 것을 바친 순국 선열과 민주열사의 뜻을 계승해 통일코리아를 이루는데 기여하겠다”고 하면서 “그 길에 밥을 해야 하면 밥을 하고, 기도가 필요하면 기도를 하겠습니다”고 덧붙이며 눈에 보이지 않는 작은 일도 기꺼이 하겠다는 다짐을 말해 통일의병들의 큰 박수갈채를 받았습니다.nbspnbsp다음으로는 통일자유발언대 시간이 주어졌습니다. 사회자가 1510명의 통일의병을 대표하여 오늘의 소감을 생생하게 말해 볼 사람은 마음껏 이야기해 보라고 하자 울산법당에서 통일의병이 된 한 청년이 뛰어나왔습니다. 청년은 “오늘만큼 기쁘고 뜻깊은 일은 없었습니다. 정토회는 항상 저를 놀라게 했지만 오늘 가장 많이 놀랐습니다.”고 하면서 “오늘의 이 기쁨을 노래로 표현하겠다”며 100년 전 선배 의병이었던 독립군들이 불렀던 독립군가를 오리지날 버전으로 불렀습니다.nbspnbspnbsp“신대한국 독립군의 백만용사야 ♬ 조국의 부르심을 네가 아느냐 ♬ 삼천리 삼천만의 우리 동포들 건질 이 너와 나로다...”nbsp청년의 우렁찬 독립군가 노래 덕분에 통일의병들의 굳은 결의는 하늘을 울리고 땅을 울리는 듯 했습니다. 이 기세를 몰아서 이제는 지부별로 의병 구호를 만들어 온 것을 외쳐보는 시간을 가졌습니다.nbspnbsp강원경기동부지부는 “백두와 한라가 하나 되는 그날까지 통일의병 앞으로”를 외쳤고, 인천경기서부지부는 독립군가 반주에 맞춰 “가자 가자 통일로 가자 경의선에 철마가 달릴 때까지 통일로 나가세. 얍” 하고 외쳤습니다. 대전충청지부는 “뜻 모아 힘 모아 대전충청 통일의병 얍” 하고 외쳤고, 전라광주지부는 “호남이 있어 통일이 있다”고 외쳤습니다.nbspnbspnbsp부산울산지부는 “백두에서 한라까지 통일의병 물결쳐라. 우리가 통일의병이다”고 외쳤고, 공동체는 “위, 아래, 위, 아래, 통일 오오오옥 통일” 이라고 외쳤으며, 청년정토회는 “통일세상 마음껏 누릴 희망 청년 통일은 청년이 만든다” 고 외쳐서 큰 박수를 받았습니다. 특히 대구경북지부는 “마, 통일하자 됐나? 됐다 됐나? 됐다” 고 해서 가장 큰 호응을 얻었습니다.nbspnbsp마지막으로 오늘의 이 함성을 노래로 모아보았습니다. 먼저 용성조사님이 작사하신 ‘온 겨레의 노래’를 선창으로, ‘터’를 힘차게 부른 후 마지막으로 ‘우리의 소원’ 노래를 다함께 손에 손을 맞잡고 불렀습니다. 가슴이 뜨거워지는 순간이었습니다.nbspnbspnbsp노래를 마치니 많은 대중들의 눈시울이 붉어져 있었습니다. 하루 빨리 통일이 되어서 북녘 동포들과도 어깨동무하고 함께 노래 부를 수 있는 날이 오길 간절히 기원해 봅니다.nbspnbspnbsp사홍서원을 끝으로 제1차 통일의병대회를 모두 마친 후 버스가 주차되어 있는 통일전으로 내려왔습니다. 통일전 주차장에서는 지부별로 스님과 함께 기념사진을 촬영했습니다. 각 지부별로 특색 있는 구호를 외치며 즐겁게 사진을 촬영했습니다. 의병들이여서 그런지 금방 줄을 맞춰 서서 순식간에 모든 지부가 사진 촬영을 마쳤습니다.nbspnbspnbspnbsp스님은 각 지역별로 돌아가는 대중들에게 “수고했어요” 라며 반갑게 배웅을 해주었습니다. 대중들이 모두 돌아가자 행사를 준비한 행정처 자원활동가들을 데리고 인근 식당에 가서 칼국수 한 그릇씩을 사준 후 두북으로 돌아와서 오늘 일정을 모두 마쳤습니다.nbspnbsp내일은 두북을 출발하여 서울로 올라간 후 저녁에는 수원에서 ‘즉문즉설과 통일이야기’를 주제로 강연이 있을 예정입니다.nbsp
2015.9.6 (오전) 제1차 통일의병대회 제1부
nbsp안녕하세요. 오늘 스님은 정토회 제1차 통일의병대회에 참석해 불심 도문 큰스님을 모시고 한반도의 평화와 통일을 위해 간절히 기도했습니다.nbspnbsp새벽 6시, 황룡사지에 스님이 도착하자 이미 전국에서 많은 통일의병들이 도착해 버스에서 내리고 있었습니다. 서울에서는 어젯밤 10시에 법당에 모여 함께 300배 정진을 한 후 12시에 출발해 밤새 고속도로를 달려왔다고 합니다.nbspnbsp▲ 전국에서 밤새도록 버스를 타고 황룡사지 앞 주차장에 도착한 통일의병들nbsp그 사이 빗줄기가 강해져서 오늘 행사를 무사히 할 수 있을까 모두가 걱정했지만 행사 시작 30분 전이 되자 언제 그랬느냐는 듯 비가 뚝 그쳐 신령스러운 기분마저 들었습니다. nbspnbsp비옷을 입고 해드랜턴을 낀 채 현수막을 설치하고, 법상을 옮기고, 매트를 깔고, 공양물을 차리는 등 밤을 꼬박 지샌 사람들도 많이 보였습니다. 지성이면 감천이라고 하죠. 수백 명이 한 마음이 되어 온 정성을 기울여 행사를 준비하는 모습을 보니 천지신명도 감응을 해서 도움을 주겠구나 하는 생각이 절로 들었습니다.nbspnbspnbsp▲ 시설물을 설치하기 위해 밤을 샌 통일의병들nbsp6시 20분이 되자 전국에서 1510명의 통일의병들이 황룡사지로 모두 집결하였고 드디어 제1차 통일의병대회가 시작되었습니다. 삼귀의 반야심경을 봉독한 후 각 지부별 참가자 소개 시간을 가졌습니다. 서울제주, 인천경기서부, 대전충청, 광주전라, 부산울산, 경남, 청년대학생, 공동체 순서로 차례대로 소개가 되자 각 지부는 큰 함성과 구호로 통일의병대회의 열기를 후끈 달아오르게 했습니다.nbspnbspnbspnbsp이어서 법륜 스님이 앞으로 나와 오늘 통일의병대회를 시작하는 의미에 대해 설명을 해주었습니다. 스님은 먼저 신라와 가야의 합의 통일 속에 지금의 남북 갈등을 푸는 해법이 있음을 강조하면서 그 이유를 자세히 설명해 주었습니다.nbspnbsp“저희들이 도착한 이곳은 황룡사입니다. 진흥왕 때 이곳에 왕궁을 지으려고 터를 닦는데 큰 황룡이 나왔대요. 그걸 보고 이곳은 사람이 살 곳이 아니라 부처님이 사실 곳이다 하여 궁터를 절로 바꿨기 때문에 터가 엄청나게 넓습니다. 절터의 규모로는 동양에서 가장 큰 절터라고 해요. 이렇게 신라 최대, 동양 최대의 절인 황룡사 터에 우리가 지금 앉아 있습니다.nbsp왜 우리가 지금 이곳에 이렇게 모였느냐? 남북의 긴장이 완화되고 갈등이 해소되어 서로 화해 협력해서 평화를 유지하자는 평화 발원 기도를 하기 위해 모였습니다. 나아가 평화를 넘어서서 남북이 통일을 하자는 통일 발원 기도를 하기 위해 이곳에 모였습니다. 다시 말하면 평화와 통일을 기원하고자 우리가 이곳에 모인 것입니다.nbspnbsp6세기 전까지 신라는 한반도의 동남쪽에 치우친 작은 부족국가였어요. 그런 작은 나라였는데 신라의 국력이 갑자기 비약적으로 증대된 것은 신라와 가야가 통합을 한 덕분입니다. 통합을 어떻게 했느냐 하면 합의 통합을 했습니다. 둘이 서로 의논해서 통합했다는 거예요. 그런데 신라와 가야는 이웃 나라지만 친하기는커녕 원래 철천지원수였습니다. 서로 경쟁하는 적대 관계였고 통합 100여년 전에는 가야가 신라를 침공해서 신라가 멸망할 뻔한 것을 고구려 광개토대왕이 구원병을 보내 겨우 살아난 원한이 있는 역사를 갖고 있었어요. 그런데 신라의 국력이 점점 커지고 가야의 국력이 약해졌을 때 신라가 가야를 침공했다면 가야는 죽기살기로 저항했을 것이고, 결국 가야를 무력으로 복속시켜 신라가 영토는 넓어졌을지는 몰라도 통일을 통해 이득을 얻기보다는 그 과정에서 인명과 재산의 큰 손실을 보았을 것입니다. 그 후에도 또 가야 부흥운동을 한다고 반란을 일으키면 굉장히 사회가 혼란스럽지 않았겠습니까?nbspnbsp그런데 신라는 가야와 합의 통일을 했어요. 합의 통일이라는 게 말은 좋지만 쉽지 않습니다. 합의 통일을 할 때 신라가 강하고 가야가 약하니까 신라가 중심이 되어 가야를 흡수 통일 할 수 있겠죠. 이러면 가야가 끝까지 저항을 하겠지요? 저항을 하지 않도록 하려면 신라 쪽에서 가야에게 엄청난 양보를 해야 합니다. 이렇게 강자가 양보하는 것을 포용이라고 말합니다.nbspnbspnbsp어떻게 포용을 했느냐? 두 가지 어려운 결단을 내렸습니다. 첫째, 가야는 나라가 생길 때부터 불교국가였어요. 그러나 신라는 불교를 철저히 탄압하는 국가였어요. 요즘 말로 하면 북한은 공산 국가이고 남한은 반공 국가라는 이야기예요. 그런데 신라가 불교를 공인했습니다. 우리가 국가보안법을 철폐하고 공산당 활동을 합법화해준 셈입니다. 이건 독일의 예도 그래요. 통일하기 전에 이미 서독은 공산당 활동을 합법화시켜 주었습니다. 그래서 서독 안에서 공산당이 합법적으로 의회에 진출해 있었어요. 이렇게 해서 가야 사람들에게 통일 이후에도 자신의 신앙과 사상을 지킬 수 있도록 허용해 준 것이 첫 번째 큰 결단입니다.nbspnbsp두 번째로는 가야의 귀족을 신라의 귀족으로 그대로 받아들여 주었습니다. 당시는 신분사회니까 전쟁에 지면 왕이라 해도 노예로 팔려가요. 그런데 가야의 왕족을 신라의 왕족으로, 가야의 귀족을 신라의 귀족으로 신분을 그대로 인정해주었습니다. 요즘 식으로 설명하면 북한에서 별 두 개짜리 사단장이면 통일코리아 안에서도 북한 장군이 통일 한국 군대의 장군이 되고, 북한 출신도 자기만 똑똑하면 장관도 대통령도 될 수 있도록 다 열어준 거예요. 지금 서독의 메르켈 수상도 동독 출신이에요. 정치적으로 아무런 불이익을 받지 않도록 인정해준 겁니다. 가야의 왕족을 신라의 왕족으로, 가야의 귀족을 신라의 귀족으로 아무런 차이 없이 인정해준 신분 보장 정책을 취한 겁니다.nbspnbsp이럴 때 신라 안에서도 반대가 많았어요. 신라 안의 기득권 세력이 엄청나게 반대했습니다. 그런데 신라의 젊은이들이 ‘아니다. 가야와 통합하려면 가야의 신앙을 인정하고 우리가 먼저 문을 열어야 한다.’ 이렇게 불교를 공인해야 한다고 주장했어요. 보수 세력은 ‘무슨 소리냐, 150년이나 금지해온 불교를 어찌 공인할 수 있느냐?’ 고 맞섰어요. 그러는 중에 젊은이들이 흥륜사라고 하는 절을 지었어요. 법으로는 아직 금지되어 있고 논쟁이 되고 있는 중에 절을 지으니까, 이 사건이 계기가 되어 보수세력들이 전부 일어나서 ‘왕이 국법을 제대로 지키지 않고 저런 사태를 방치한다’고 난리가 났어요. 그 사건에 주범으로 지목된 사람이 이차돈이었습니다. 이차돈은 당시 왕궁의 서기관이었습니다. 요즘으로 치면 청와대 행정관 정도 되는, 왕의 비서였습니다.nbspnbsp왕은 지금이라도 앞으로 불교를 믿지 않겠다고 하면 죄를 묻지 않겠노라 했는데 이차돈은 ‘나라와 백성을 위해 부처님의 가르침이 꼭 필요하다, 이를 공인하지 않으면 신라의 발전은 없다’고 왕을 설득했어요. 왕은 그 말을 이해했지만 대신들이 정치적으로 엄청난 반대를 했기 때문에 그걸 수용할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결국은 법대로 이차돈을 사형에 처하게 되었어요. 그때 흰 피가 솟구치고 이차돈의 목이 하늘로 날아가서 저기 보이는 소금강산에 떨어졌다고 해요. 그 자리에 가보면 백률사라는 절이 있습니다. 이 사건을 계기로 신라 안의 여론이 뒤집혔어요. 그래서 보수세력이 후퇴하고 불교를 공인하자는 젊은이들의 주장이 받아들여졌어요. 이차돈이 527년에 죽고 1년이 지난 528년에 신라가 불교를 공인했어요. 그리고 4년 후인 532년에 가야와 통합을 이루었습니다. 신라가 가야를 포용할 준비가 된 것이 확인되니까 가야가 신라와의 통합을 승인한 거예요.nbsp이때 가야 안에서도 반대가 있었습니다. 앞으로 우리가 북한을 포용하자고 하면 남쪽에서도 반대가 있겠지만 거꾸로 북쪽의 지도층 중에도 자기 체제를 지키려 하는 강력한 반대 세력이 있겠죠. 그런 세력이 있기 때문에 이 결정을 찬성한 가야의 마지막 왕인 구형왕의 무덤을 여기 쓰지 않고 산청에 썼대요. 신라에 귀순했으면 죽어서 무덤도 이곳 경주에 써야 하는데 그리 하지 않았어요. 그리고 그 무덤에는 잔디가 안 산대요. 이것은 정치적으로는 좋은 결정을 했을지 몰라도 조상님에게는 면목이 없다 하여 그렇답니다. 찬성한 사람도 이렇게 어려움이 있었어요. 신라가 고려에 통합될 때도 경순왕이 통합을 승인했지만 마의 태자는 끝까지 반대하지 않습니까? 그런데 한쪽은 절대로 통합은 안 된다고 하고, 또 다른 한쪽은 절대로 저들을 포용할 수 없다고 서로 맞서면 결국은 전쟁밖에 길이 없잖아요. 그런데 신라는 가야를 포용했고 가야는 그것을 받아들여서 합의 통일을 했습니다.nbsp이렇게 되면 1 더하기 1이 2가 되는 통일이 아니라 5가 되고 10이 되는 통일이 되지요. 이 통합 이후 신라가 비약적으로 발전했어요. 그래서 법흥왕 다음인 진흥왕 때는 한강 유역을 차지하고 동해로 올라가서 함경남도 지역을 차지하고 그 다음에 대가야를 복속시켜서 낙동강 유역을 차지하여 큰 국가로 등장했습니다. 그게 합의 통일의 시너지 효과입니다.nbspnbsp이런 우리 역사의 경험을 우리는 북한과 통일을 할 때 참고해야 합니다. 현재의 국력이나 조건으로 볼 때 북한 중심으로 통일을 해야겠어요? 남한 중심으로 해야겠어요? 반반씩 섞어야 할 것 같아요? 그래도 남한에 산다고 남한 중심으로 되면 좋겠어요? 하하하. nbspnbsp그러려면 신라가 가야를 포용했듯이 남한 중심으로 하려면 우리가 그만큼 자신감이 있어야 해요. 그래서 북한에게 그만한 포용력을 베풀어야 합니다. 신분을 보장해주고 정치활동까지 다 보장해줄 정도의 자세가 되어 있어야 하는데 지금 보면 북한은 자기를 지키겠다는 게 강하고 남쪽은 북한을 포용할 의향이 없기 때문에 갈등이 심한 거예요. 우리는 이 신라와 가야의 통합 경험을 우선 본받아야 합니다.”nbsp그러면서 스님은 원래 이 이야기를 법흥왕릉에 가서 들려주고 싶었는데 인원이 1510여명이나 되다 보니 법흥왕릉에 다 앉을 수가 없어서 이곳 황룡사지에서 바로 설명을 시작하게 되었다고 알려주었습니다.nbspnbsp이어서 황룡사지가 갖는 역사적 의미에 대해 설명을 해주었습니다.nbspnbsp“이렇게 법흥왕, 진흥왕을 거치면서 신라가 비약적으로 성장하고 진흥왕 때 바로 이곳에 황룡사를 짓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이 황룡사를 지을 때도 묘한 일이 일어납니다. 울산 앞바다에 배가 한 척 왔는데 글과 함께 철이며 황철 같은 것들이 많이 실려 있는 거예요. 글을 보니 인도의 아육왕, 즉 아쇼카왕이 불상을 조성하려 했는데 도저히 조성이 되질 않아서 인연이 없나 보다 생각하고 인연 있는 나라에서 불상을 조성해주길 빌며 배를 띄워 보냈는데 수백 년을 바다를 떠내려오면서 어느 나라에서도 불상 조성을 못 했다는 거예요. 이제 여기 이르렀는데 그 재료를 가지고 신라가 불상 조성에 성공해서 지금 저기 금당 터에 장육존불을 모셨습니다. 부처님의 키가 1장 6척, 약 5미터 정도 되었다는 뜻입니다. 5미터면 지금도 큰 편이죠? 그 옛날에는 5미터짜리 불상을 주조한다는 것 자체가 거의 불가능에 가깝게 힘들었는데 그 불상을 만들어서 금당에 모셨습니다.nbspnbspnbsp이렇게 신라는 넓어진 영토를 안정시켜나가면서 부강해졌습니다. 우리 남한도 옛날엔 가난했지만 지금 부강해졌지요? 그런데 세상사에는 다 장단점이 있어요. 신라가 강해지니까 부작용도 나타났습니다. 한강 유역은 원래 백제 땅이었어요. 장수왕이 빼앗아서 고구려 땅으로 삼았어요. 이후에 고구려가 약해진 틈을 타서 백제가 신라와 힘을 합쳐 다시 찾았는데, 신라가 다시 이것을 빼앗아버렸어요. 그러니 신라와 백제가 원수가 되었겠죠? 고구려와도 원수가 됐어요. 부강해진 건 좋았는데 백제와 고구려 모두와 원수가 되니까 백제도 힘을 추슬러서 성왕, 의자왕에 이르면서 다시 부흥을 이루었을 때 신라를 공격했어요. 고구려도 마찬가지예요.nbspnbsp이제 신라는 나라가 위기에 처하게 되었어요. 북쪽에는 고구려, 서쪽에는 백제, 남동쪽으로는 일본이 위협하니까요. 그러니 이제 신라는 완전히 고립당한 처지가 되었어요. 이웃 나라들과 원한을 샀기 때문에 자칫하면 나라가 망할 위기에 처한 겁니다. 그래서 신라가 바다를 건너서 중국의 수나라에 도움을 요청한 겁니다. 그런데 수나라가 고구려를 쳤으나 실패해서 멸망하자 당나라가 천하를 통일했지요. 그래서 다시 당나라에 도움을 요청했습니다. 이때 신라의 왕은 진평왕의 뒤를 이은 선덕여왕이었고 이때 외교부 장관은 선덕여왕의 조카인 김춘추였어요. 김춘추가 당나라 왕인 당태종과 밀약을 맺지요. 두 나라가 힘을 합쳐 백제와 고구려를 멸망시키면 대동강 이남은 신라가 가진다고 서로 합의한 겁니다. 그래서 당태종이 645년에 고구려를 침공했는데 양만춘과의 안시성 전투에서 패하고 결국은 침공에 실패합니다. 당나라의 고구려 침공이 실패로 끝나니까 백제와 고구려는 더욱 더 태도가 강경해져서 신라를 침공했어요.nbspnbspnbsp이런 위기에 신라는 이 국난을 사람의 힘으로는 극복하기 어려우니 부처님의 도움으로 극복해야 한다 해서 황룡사 9층탑을 쌓았습니다. 1층은 왜, 2층은 중화... 6층은 말갈... 이런 식으로 층마다 신라를 위협하는 나라들을 정해서 불보살의 가피로 나라를 지키고자 하는 신앙심으로 저 탑을 쌓았습니다. 나라를 지키기 위해 그리 했겠지요. 더 나아가 통일이 되면 완전한 평화가 올 수 있겠다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한편으로는 국난의 위기를 극복하겠다는 의미의 기도를 하고 또 다른 한편으로는 여기에서 더 나아가 통일을 하겠다고 원을 세워 저 탑을 세웠습니다. 즉 황룡사 탑은 국난 극복 기도를 하는 탑이자 통일을 발원하는 탑이었습니다.nbspnbsp이때부터 신라는 한쪽으로는 내부적으로 국가 개혁을 계속하며 국력을 기르고 한쪽으로는 당나라와의 외교 관계를 돈독히 해서 드디어 660년에 백제를 멸망시키고 668년에 고구려가 멸망하면서 삼국 통일의 원을 이루었습니다.”nbsp이어서 다음 이동 장소인 사천왕사지에서 기도를 하는 이유도 함께 설명해 주었습니다.nbspnbsp“그러나 신라가 제 힘으로 통일을 한 게 아니라 외세의 도움을 얻어 통일을 했기 때문에, 그것도 신라보다 강한 당나라와 협력했기 때문에 백제와 고구려를 멸망시키는 데에는 도움이 되었지만 두 나라가 멸망하자 당나라가 그 땅에서 물러나지 않고 백제와 고구려를 다 차지한 거예요. 백제 땅에는 웅진도독부를 세워서 자기들이 통치하고, 고구려 땅에도 안동도호부를 설치하고 자기들이 통치했습니다. 신라는 당나라가 약속을 안 지킨다 해서 여러 번 항의했지만 당나라는 오히려 계림도독부를 설치하고 김인문을 신라왕으로 임명하면서 신라까지 위협했습니다. 이렇게 되자 신라는 고구려 부흥군과 손을 잡고 대당 선전포고를 하고 당나라와 전쟁을 하게 됩니다.nbspnbsp신라를 한국이라 치면 당나라는 오늘날의 미국보다 더 큰 나라였어요. 한국이 아무리 지금 좀 잘 산다 해도 미국과 전쟁하면 이길 수가 없겠죠. 그런데 신라는 결국 당나라와 전쟁을 하게 되어 당나라의 침공을 받게 됩니다. 그때 신라 사람들은 이 당나라를 사람의 힘으로, 즉 현실의 국력으로 이기기는 도저히 불가능하다고 보았습니다. 그래서 항복하자는 사람도 많았지만 끝까지 싸워서 우리의 자주권을 지켜야 한다는 사람들이 더 많았어요. 사람의 힘으로는 안 되니까 신의 힘을 빌리자고 해서 사천왕사지를 건립했어요. 그 사천왕사에서 신의 힘을 빌어서, 다시 말해 제석천과 사천왕의 힘을 빌어 당나라군을 물리치자고 한 것이 문두루 비법입니다. 그래서 사천왕사에서 문두루 비법을 행해서 당나라의 20만 군대가 서해에서 폭풍을 만나 전멸함으로써 위기를 극복했다고 합니다. 2년 뒤에 당나라는 다시 10만 군대를 이끌고 침공을 해왔는데 이 때에도 역시 폭풍을 만나서 파선함으로써 신라는 위기를 극복했다고 합니다.nbspnbsp그 뒤로도 당나라는 크고 작은 침공을 계속 했지만 결정적으로는 육지전에서는 매소성 전투에서, 바다에서는 기벌포 전투에서 신라가 승리함으로써 해서 당나라는 신라 침공의 야욕을 포기하게 됩니다. 그래서 결국 676년에 안동도호부를 평양에서 요동으로 옮기고 당나라와 신라는 다시 화친을 하게 되었습니다.nbsp이렇듯 660년에 백제가 망하고 668년에 고구려가 망했으면 668년을 삼국통일의 해라고 불러야 하는데 그렇게 하지 않는 이유는 이 땅을 당나라 군대가 지배했지 신라가 통일한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대당 전쟁을 8 년간 벌여서 676년에 당나라가 평양에 설치한 안동도호부를 요동으로 옮기면서야 결국 신라가 삼국을 통일했다고 할 수 있었습니다.nbspnbsp그 기도를 한 것이 사천왕사이기 때문에 오늘 우리는 큰스님을 모시고 황룡사에서 남북통일 발원 기도를 하고 사천왕사에서 통일 성취 기도를 하겠습니다. 그렇게 온 힘을 모아서 통일의 문을 열어야 합니다.nbspnbsp그런데 그 통일의 과정에서 우리는 우리와 동맹 관계에 섰던 나라와도 갈등이 생길 가능성이 있습니다. 진정한 친구인 줄 알았는데 나중에 원수가 되는 일이 생길 수 있기 때문에 미연에 예방하거나 아니면 이런 일이 생겼을 때 대비하기 위해서 기도를 합니다. 그래서 사천왕사지에서는 통일의 과정 중 통일이 성취될 수 있도록 우리가 기도를 하는 것입니다. 이게 오늘 오전은 통일 기도 장정입니다. 여기 황룡사지에서는 통일을 기원하는 발원 기도를 하고 사천왕사지에서는 통일을 성취시키고자 하는 통일 성취 기도를 하게 됩니다.nbspnbspnbsp또 가는 도중에 당나라와 싸워 이긴 문무대왕의 화장터를 참배할 예정입니다. 문무대왕은 화장을 하고 뼈를 동해바다에 묻었어요. 그 화장한 자리에 능탑을 세웠어요. 이 능지탑을 참배하고 다음으로는 통일 발원을 한 선덕여왕릉을 참배하고 사천왕사지에 가서 다시 현대판 문두루 비법 기도를 하겠습니다. 이곳 황룡사지에서는 마하 비로자나 여래불 총귀다라니를 하고, 사천왕사지에서는 제석천 제구예진언을 하게 되는데 이것이 바로 문두루 비법입니다. 그러니 오늘 정성을 다해서 기도를 함께 합시다.”nbsp마지막으로 스님은 오늘 간절한 마음으로 기도를 해서 통일의 길을 함께 열어보자고 호소했습니다.nbspnbsp“2012년에는 제가 전국의 시군구를 다 찾아다니며 법회를 하면서 남한 국민들의 정성을 모았습니다. 그 다음에는 북한의 시군구를 다 다니면서 옥수수 100톤씩 전해주려고 했어요. 배고픈 사람에게 음식을 베풀어서 이 공덕으로 통일을 하자는 마음이었습니다. 그리고 교포들이 사는 해외 100개 도시를 다니면서 강의를 해서 그 공덕으로 통일을 하자고 했습니다. 국내와 해외는 했는데 아직 북한 방문을 못했어요. 그래서 남북관계가 조금만 개선되면 북한의 모든 시군구에 가서 옥수수 100톤씩, 북한의 시군구가 210개라니까 21,000 톤을 전해주고 이렇게 하면 아마 천지신명도 감동하지 않겠는가 생각합니다.nbspnbspnbsp그러니 오늘 여러분들이 기도로도 천지신명이 감동하고, 공덕을 지어서도 천지신명이 감동할 만큼이 되어야겠습니다. 그렇다고 마냥 이렇게 기도만 하고 있으면 되느냐? 아닙니다. 이것은 우리 정성의 징표일 뿐입니다. 실패했던 독립운동, 그 선배들의 뜻을 이어받아서 우리가 온 힘을 다해서 통일만큼은 우리의 힘으로 우리가 중심이 되어 이루어야 통일된 국가가 자주적인 독립 국가가 될 수 있습니다.nbspnbsp용성진종조사님께서 나라의 독립을 위해 애쓰다가 독립을 보지 못하고 돌아가셨어요. 그래서 공덕이 부족하다, 공덕을 쌓아라 해서 10가지 유훈을 남기셨어요. 이 공덕을 쌓게 되면 앞으로 800년간 대한민국이 번영할 거라고 했습니다. 나라 이름도 정해주셨어요. 신라, 고구려, 백제 모두의 뜻을 하나로 모아야 된다고 해서 나제려 대국이에요. 공덕을 쌓으면 앞으로 나제려 대국이 800년간 번영할 거라는 예언을 하셨어요.nbspnbsp오늘 불심 도문 큰스님을 법사로 모신 이유가 저의 스승님이셔서 그런 것만은 아니에요. 바로 이 10가지 유훈을 평생을 바쳐 실현해 오셨기 때문에 그 공덕이 기반으로 해야 우리가 이 통일 대원을 성취할 수가 있으니까 우리가 큰스님께 통일을 위해 기도의 공덕을 계승하려면 전 국민이 1인당 1원이라도 보시해야 하지 않겠는가 합니다.nbspnbsp다음으로, 저 앞에 보이는 절이 분황사입니다. 큰스님께서 저곳에 와 계실 때, 제가 고등학교 1학년 말에 큰스님께 귀의해 저곳에서 살았습니다. 그래서 통일 발원뿐만 아니라 황룡사 복원도 발원했습니다. 그런데 40년도 더 지났지만 아직도 못 이루었어요. 이번에 우리가 힘을 모아서 첫째는 황룡사 복원보다 더 중요한 통일, 그 다음으로는 황룡사 복원, 즉 황룡사를 복원해서 그 힘으로 통일을 하든지 통일을 해서 그 황룡사를 복원하든지 그렇게 기도해 봅시다. 큰스님께서 예시를 해주시고 제가 작은 씨앗이 되어 시작했는데 이제 여러분과 함께하면서 드디어 이렇게 가능성 있는 길이 열렸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온 힘을 기울여서 우선 불보살님께 기도를 하고, 다음으로는 한 3년 1000일 간 온 힘을 기울여서 노력한다면 통일의 길이 열릴 겁니다.nbsp그래서 우리가 여기에 온 거예요. 오늘 비가 좀 오더라도 맞고 할 만하지요? 비가 오는 건 좋은 거예요. 이 정도 난관도 극복 못하고 벌써 비 온다고 안 온 사람들은 통일의병 자격이 없어요, 하하하. nbspnbspnbsp또 신라는 호국 용이 나라를 보살폈어요. 서해 바다에 폭풍이 일어났다, 이런 건 다 비가 왔다는 거예요. 그러니 오늘 당연히 비가 와야 하는 겁니다. 비가 와야 기도의 영험이 있는 거예요. 비가 올수록 더 좋다는 마음을 가지세요.”nbspnbsp비가 하루 종일 내린다는 일기 예보가 있어 다들 걱정을 하고 있었는데 비가 와야 기도의 영험이 더 크다는 말씀에 모두들 활짝 웃으며 큰 박수로 공감을 표현했습니다.nbspnbspnbsp스님의 설명이 끝나자 저 뒤편에서 도문 큰스님이 주장자를 들고 뚜벅 뚜벅 걸어 나왔습니다. 큰스님은 석가여래부촉계대법 77세, 조선불교증흥율 제8조이며 백용성조사 탄생성지 장수 죽림정사 조실이며 대한불교조계종 원로회의 의원 대종사입니다. 대중들은 모두 자리에서 일어나 청법가와 삼배로 법을 청했습니다.nbspnbsp불심 도문 큰스님은 연기화엄부의 게송, 소승아함부의 게송, 대승방등부의 게송, 공해반야부의 게송, 실상법화부의 게송, 원적열반부의 게송을 각각 하나씩 읊고 해설해주고 또 대중들이 큰 목소리로 따라하게 하면서 통일의병들이 어떤 마음으로 통일운동에 임해야 하는지 경전에 근거하여 법문을 설해주었습니다. 연세가 80이 넘으셨음에도 불구하고 그 목소리가 황룡사 빈 절터에 쩌렁쩌렁하게 울려 퍼져서 대중들 모두가 깜짝 놀랄 정도였습니다.nbspnbspnbsp“만약 인간계에서 삼세일체 부처님을 요달하고자 함을 알진데 마땅히 십법계의 성품을 관할지어다. 일체가 오직 마음으로 지은 바 이니라...nbsp무릇 상이 있는 바는 다 허망함이니 만일 모든 상이 상이 아님을 보면 곧 여래를 보리라...nbspnbsp원효대사님께서 금강삼매경을 설한 법회를 이곳에서 하셨습니다. 원효대사님은 삼국 통일의 후유증을 이 금강삼매경의 사구게를 설해서 해결하셨습니다. 그렇듯이 우리는 이 게송을 읊음으로서 호법선신이 옹호해서 남북통일 성취의 씨앗을 뿌리고자 합니다. 그 씨앗을 뿌리는 주인공이 누구이십니까?” nbspnbspnbsp“통일의병입니다.”nbspnbsp“통일의병들이시여, 공이 무엇입니까? 집착만 놓으면 공입니다. 지혜가 무엇입니까? 어리석음의 굴레를 벗어버리면 지혜입니다. 이 민족이 집착을 놓도록 이 민족이 어리석음의 굴레를 벗어버리도록 우리는 해야 합니다.nbspnbspnbsp우리는 희망이 있습니다. 남북 문제를 미국이나 중국이나 러시아나 일본에게 맡기고 뒷짐 지고 시키는 대로 하는 것이 아니고 남북 문제는 우리의 문제라, 저 매헌 윤봉길 의사가 대한의사군이 되었듯이 우리도 통일의사군이 되어서 한번 해보자는 것입니다. 실패하고 성공하는 것은 둘째 문제이고 하느냐 안 하느냐가 중요한 문제 아니겠습니까. nbspnbspnbsp아쇼카 대왕이 부처님께 모래 공양을 올려서 그 공덕으로 서역 인도를 통일했듯이 법륜 스님은 고등학생 때 이미 고철을 주어서 황룡사 대종 불사를 발원하고, 황룡사 빈터의 기와조각을 온 국민에게 보내면서 조상의 얼을 상기시킨 공덕을 지었기에 오늘 우리는 이 대 공덕주를 모시고 남북 통일 불사를 발원하는 것입니다.nbspnbsp성공이냐 실패냐 장사하는 사람들처럼 이해를 따지지 말고 해보자, 이 말이오. 하면 된다. 하지 않아서 안 되었다 이 말이오.nbsp그리하여 여러분들은 나라가 편안하고 남북 통일을 성취할 수 있는 줄기가 되어야 합니다. 역대조사는 나무가 자랄 수 있는 뿌리가 되어주셨고, 용성조사님께서는 그 씨앗이 나오도록 만들어 주셨고, 도문 법사는 몸통이 나올 수 있도록 해주었고, 이제 그 몸통이 법륜 스님이 되었습니다. 몸통에서는 줄기가 나오지요. 그럼 여러분은 누구입니까?”nbspnbsp“줄기입니다.”nbspnbsp“그 다음에 1510명만 갖고 통일이 되겠습니까? 만 명이 되고, 백만 명이 되고, 2백만 명이 되고, 3백만 명이 되고, 5백만 명이 되어야 이 나라를 잡아 흔들어서 들썩 들썩 진동시킬 수 있지 않겠습니까. 그렇게 할 수 있는 줄기는 누구입니까?”nbsp“통일의병입니다.” nbspnbsp“줄기에서는 가지가 나옵니다. 그 가지는 뜻있는 대한민국 국민입니다. 그래서 몸통에서 줄기가 나오고, 줄기에서 가지가 뻗고, 그 가지에서 잎이 피고, 꽃이 피고, 열매를 맺게 된다 이 말입니다.”nbsp큰스님의 하면 된다는 말씀에 통일의병들도 열렬한 환호와 박수로 그 의지를 표현했습니다.nbspnbspnbsp그리고 도문 큰스님은 “동학교주 수운 최제우 대신사는 100년을 바라보는 안목을 가졌지만 그대는 1000년을 바라보는 안목을 가져라. 이것이 도문법사와 법륜스님의 인연입니다.”라고 하면서 1000년을 보는 안목을 가진 법륜 스님을 스승으로 모시고 한반도 통일의 길을 향해 힘차게 나아가라고 용기를 북돋워 주웠습니다.nbspnbsp통일의병들의 열렬한 환호와 박수가 계속되자 큰스님은 어깨를 들썩이며 노래를 한 자락 불렀습니다.nbspnbsp“역대전등 제대조사와 용성, 동헌, 불심 3대 대사는 이제 썩고 희생을 다했다. 아무도 모르게 살았다. 거기에서 지광 법륜 스님은 이 겨레의 몸통이 되었다. 오호라. 1510명의 통일의병은 그 줄기가 되었다. 여기에서 만명, 백만명, 2백만명, 3백만명, 5백만명의 가지가 뻗어서 여기에서 잎이 핀다. 꽃이 핀다. 열매를 맺는다.”nbspnbsp다시 박수갈채가 이어지고, 마지막으로 큰 스님은 “이 공양 올린 공덕으로 만사가 여의하고, 만복이 운운하고, 대한민국 전 국민의 자손이 창성하고, 부귀와 공명과 행복과 영화가 대대승승하고, 만대에 번창이 되어지고, 이 덕화가 온 겨레, 전 인류, 만 중생에게까지 미치어지이다.” 라고 하면서 대원성취 진언을 외우며 법문을 마쳤습니다.nbspnbsp이어서 법륜 스님은 대한민국 국민 5천만 명의 통일 기원의 뜻을 담아 대중들이 보시한 5천만원을 불심 도문 큰스님께 통일발원 공양으로 올렸습니다. 큰 스님은 그 뜻을 받아 지극 정성을 다해 한반도 통일을 발원하는 기도를 해주었습니다.nbspnbspnbsp통일의병 1510명도 함께 발원하는 마음을 모아 두 손을 합장하고 온 정성을 다해 기도했습니다. 큰스님의 염불 소리에 맞춰 통일의병들은 마하 비로자나 여래불 총귀다라니를 염했습니다.nbspnbsp“나무 마하 비로자나 여래불 총귀다라니. 나무 이바이바제 구하구하제 다라니제 니하라제 비니마니제 사바하”nbspnbspnbsp정성을 다해 기도를 마친 후 드디어 민족의 역사와 의병의 역사를 상징하는 28개의 깃발들을 앞세우고 nbsp장대한 행진이 시작되었습니다.nbspnbsp먼저 맨 앞에는 청룡과 황룡이 앞장을 섰습니다. 그 다음 14개의 깃발을 통해 한나라로부터 시작해 배달나라, 단군 조선, 부여, 고구려, 백제, 신라, 가야, 발해, 고려, 조선, 대한민국, 북한을 모두 계승하는 마음을 담아 통일코리아 깃발을 그 마지막에 세웠고, 다음 14개의 깃발은 다물군, 고구려 부흥군, 백제 부흥군, 고려 항몽의병, 임진의병, 병자의병, 동학혁명군, 을미의병, 정미의병, 독립군, 순국열사, 산업역군, 민주투사를 모두 계승하는 마음을 담아 통일의병 깃발을 그 마지막에 세웠습니다. nbspnbspnbsp30명의 청년들이 깃발을 곧추 세우고 천천히 걷기 시작하자 스님을 맨 앞으로 해서 통일의병들도 그 뒤를 따라 나섰습니다.nbspnbsp앉아있던 백고좌 강당터를 출발해 금당지를 지나 황룡사 9층 목탑이 있던 자리를 탑돌이 하며 기도를 한 후, 그대로 대열을 유지하며 도보로 능지탑과 선덕여왕릉을 향해 행진했습니다.nbspnbspnbsp“나무 도량교주 관세음보살, 나무 도량교주 관세음보살...”nbspnbsp1510명이 모두 탑돌이를 마칠 때까지 염불은 계속 되었습니다. 황룡사지에서 선덕여왕릉으로 걷는 길에서는 송수신기를 통해 한명씩 나와서 자신이 생각하는 통일은 무엇인지 말한 후 통일 노래를 불렀습니다. 준비된 통일 노래도 사이사이에 흘러나오는 등 작은 라디오 방송을 듣는 것 같았습니다.nbspnbsp빗줄기가 점점 굵어지고, 땅은 질퍽하고, 신발도 젖고, 옷도 점점 더 젖어갔지만, 통일의병들은 이에 아랑곳하지 않고 신나게 노래를 부르며 행진을 이어갔습니다.nbspnbspnbsp즐겁게 노래를 부르다보니 어느새 능지탑에 다다랐습니다. 탑을 한 바퀴 휘이 돌고 선덕여왕릉으로 향했습니다. 선두는 선덕여왕릉을 지나 낭산 아래 자락에 이르고, 후미는 능지탑에 막 도달해서, 행진 대열의 중간 지점이 선덕여왕릉에 이르렀을 무렵 잠시 휴식 시간을 가졌습니다.nbspnbsp▲ 신라의 삼국통일을 이룬 문무대왕의 화장터에 세워진 능지탑nbspnbsp▲ 선덕여왕릉nbsp휴식을 하면서 스님으로부터 송수신기를 통해 능지탑과 선덕여왕릉, 사천왕사지를 순례하는 의미에 대해 설명을 들은 후 다시 출발해 사천왕사지에 도착했습니다.nbspnbsp사천왕사지에 도착하자 행군을 할 때 내렸던 비가 갑자기 멈추고 잠시 소강 상태를 보였습니다. 모두들 하늘을 바라보며 신기해했습니다. 큰스님이 법문을 할 때만 비가 그쳤기 때문입니다.nbspnbsp사천왕사지에는 불상이 없기 때문에 대신에 삼존불 탱화를 모셨습니다. 가운데에는 부처님께 공양물을 올렸고, 왼쪽으로는 환웅 천왕님과 단군 왕검님 등 조상신들을 위해 영단을 차렸고, 오른쪽에는 제석천왕과 사대천왕, 화엄성중 등 신단을 차려서 남북 통일을 성취하기 위한 염원 기도를 했습니다.nbspnbspnbsp큰스님은 사천왕사지에서 신라 시대 당시에 이곳에서 행해진 문두루 비법인 3밀가지 수행법에 대해 알려주면서 통일의병들이 함께 기도를 하도록 안내해 주었습니다. 양 손가락을 펴고 오므리고 접으면서 지, 수, 화, 풍, 공의 5대 요소의 인연 가합상을 새기고 심념으로 발원하는 의식을 하며 진언 다리니를 외웠습니다.nbspnbspnbsp마지막으로 큰스님은 “사천왕님이시여 옹호하여 주옵소서. 도리천 33천, 제석천왕, 환인 천주 하느님이시여, 보호하여 주옵소서. 욕계 6천, 색계 18천, 무색계 4천의 하느님이시여, 이 민족 과 국가를 항상 보호하여 주옵소서.” 라고 하면서 설법을 마쳤습니다.nbspnbspnbsp큰스님의 설법을 듣다 보니 정말 애국가에 나오는 “하느님이 보우하사 우리나라 만세” 라는 구절이 절로 생각이 났습니다. 이어서 통일의병들은 큰스님을 따라 제석천왕 제구예진언을 함께 염했습니다.nbspnbsp“나무 제석천왕 제구예진언. 아지부 뎨리나 아지부 뎨리나 미아 뎨리나 오소 뎨리나 아부다 뎨리나 구소 뎨리나 사바하”nbspnbsp이렇게 기도를 마쳤는데 갑자기 해가 떴습니다. 그러자 큰스님은 “태양을 보라” 하면서 기뻐하시면서 “통일의병대회를 했으니까 이제 통일은 자연적으로 될 것이고, 그것만 갖고는 안 됩니다. 오대양 육대주 사바세계 남섬부주 전 인류가 성불 인연을 맺도록 해야 합니다. 우선 여러분들은 전 국민을 통일의병으로 만드세요” 라고 하며 목소리를 높였습니다.nbspnbspnbsp법문을 마치고 법좌에서 내려오면서는 “남북 통일 만세”를 삼창하며 마지막까지 통일의병들에게 기운을 넣어주었습니다. 통일의병들도 두 손을 번쩍 들고 “만세”를 따라 외쳤습니다. nbsp또 큰스님은 더 기운이 나셨는지 어깨를 들썩이며 “하느님이 보우하고, 천룡팔부님이 옹호해서, 남북통일 성취한 뒤에 한국, 일본, 중국이 삼형제가 되어서 세계만방이 하나 되자. 만만세” 라고 노래를 불렀고, 통일의병들도 덩달아 어깨를 들썩이며 박수를 쳤습니다.nbspnbspnbsp이렇게 통일성취기도를 모두 마친 후 마지막 장소인 통일암으로 다시 행진을 시작했습니다. 사천왕사지에서 통일암으로 향하는 2차선 도로는 통일의병들의 행진으로 길게 장엄이 되었고, 다시 빗줄기가 강해지면서 부슬 부슬 비가 내리기 시작했습니다.nbspnbspnbspnbspnbsp비를 맞으며 30여분을 걸어 통일전 주차장에 도착했습니다. 빗줄기가 너무 거세어져서 잠시 비를 피해 모두 버스에 탑승해서 준비해 온 도시락으로 점심 식사를 했습니다.nbsp다음 이야기에 계속됩니다...
2015.9.5 고향 마을 석문암 초청법회
nbsp안녕하세요. 오늘 스님은 고향 마을인 울주군에 위치한 석문암 초청법회에 참석해 고향 사람들을 위해 법문을 했습니다.nbspnbsp새벽 4시에 일어나 예불과 천일결사 정진을 하며 하루를 시작한 스님은 아직 해가 뜨지 않아 어둑어둑한 5시부터 작업복으로 갈아입고 농사일을 시작했습니다.nbspnbspnbsp여름 한철 명상수련과 동북아 역사기행을 다녀오느라 텃밭을 방치해 두었더니 풀이 무성하게 자라 있었습니다. 어제는 나무를 쳐내고 풀을 베어냈다면 오늘은 삽으로 땅을 고르고 가을 국화와 배추, 무를 새로 심었습니다.nbspnbspnbsp땅을 고르는 작업은 바닥이 단단해서 힘이 많이 들어갔는데 스님은 땀을 뻘뻘 흘리며 삽질을 했습니다. 동트기 전 새벽부터 부지런히 일하다가 잠깐 쉬면서 아침 공양은 텃밭에서 딴 가지와 호박으로 반찬을 해서 드신 후 다시 마당으로 나와 일을 시작했습니다.nbspnbspnbsp스님은 땅을 파고 가을 국화를 심고 다시 땅을 북돋워주는 동작 하나 하나에 온 정성을 기울였습니다. 잘 심어진 국화를 보면서는 “예쁘지?” 하면서 함박 웃음을 머금었습니다. 시간이 어떻게 가는 줄도 모르고 일을 하고 있는데 법회 시간이 다 되었다고 연락이 계속 와서 급히 법복과 가사를 수하고 석문암으로 향했습니다.nbspnbsp▲ 석문암nbsp석문암은 스님이 졸업한 두북 초등학교 뒤편의 나지막한 산 아래에 자리잡은 작은 암자입니다. 스님의 고향 마을 어르신들이 다니는 사찰인데 오래전부터 스님을 초청하여 법회를 열고 싶다는 요청이 있었으나 들어주지 못했는데 오늘에서야 법회가 열리게 되었습니다. nbspnbsp법회 시간 보다 30분 일찍 석문암에 도착한 스님은 석문암 주지 스님을 비롯해 신도회 분들, 두북초등학교 동기 분들 등과 반갑게 인사를 나눈 후 차를 마시며 담소를 나누었습니다. 특히 스님은 이곳 주위에 산들이 많이 있는데 모두 다 올라가보았는지 물어보면서 어릴적 추억들을 얘기했는데 모두들 옛날 생각에 환한 웃음을 띠었습니다.nbspnbspnbsp오전 10시가 되자 석문암 신도회장님의 인사말씀과 함께 법회가 시작되었습니다. 오늘 법회는 그야말로 ‘야단법석’이 되었습니다. 암자가 작아서 많은 대중이 들어갈 수가 없어 법당 마당에서 법회가 열린 것입니다. 좁은 마당에 250여명이 참석하여 발디딜 틈 없이 빼곡이 자리를 메웠습니다.nbspnbsp▲ 석문암 법륜 스님 초청법회nbsp먼저 스님은 고향 사람들을 위해 법회를 하게 되니 느껴지는 소회를 말하면서 법문을 시작했습니다.nbspnbsp“고향에 와서 여러분들을 뵈니까 편안하기도 하고 약간 부담스럽기도 해요. 왜냐하면 여기 계신 어르신들 중에는 제 친구 부모님들도 많이 계세요. 또 두북 초등학교 선배님들도 많이 계시고요. 또 제 초등학교 동기들도 많이 왔어요. 저희 누님도 오셨어요. 또 조금 젊으신 분들은 대부분 후배 되시는 분들이고요. 스님과 불교 신자로서의 만남이라기 보다는 동네 어르신들, 선배님들, 친구들, 후배들을 만나서 같이 얘기 나누는 시간이 되지 않겠나 싶어요.nbspnbspnbsp제가 초등학교 1학년 때부터 이곳 석문암에 소풍을 많이 왔는데 올해로부터 꼭 55년 전부터 다녔던 곳이에요. 여러분들은 여기 사니까 여기가 좋은 줄 모르시는데 자세히 둘러보시면 참 좋은 곳이예요. 저도 나이가 드니까 회귀본능이 생기는지 자꾸 고향이 좋아져요. 저는 젊었을 때부터 전세계로 늘 다녔기 때문에 한국에 돌아가고 싶다는 생각이 별로 없었어요. 그런데 최근 몇 년 전부터는 한국에 오면 여기가 제일 좋은 것 같아요. 나이가 들수록 고향 쪽으로 자꾸 오게 되요.nbspnbspnbsp이곳은 특히 물이 굉장히 맑습니다. 냇가에 흐르는 물도 그렇고 우물도 그렇고 바닥이 다 보일 정도입니다. 경주만 가도 우물 바닥이 잘 안 보이거든요. 이렇게 물이 맑은 곳이 많지 않습니다. 여러분들이 대부분 건강한 이유가 첫째 물이 좋아서인 것 같아요. 둘째는 공기가 맑아서 그런 것 같아요. 그래서 도시로 나가서 사는 것도 좋지만 고향을 아끼고 사랑하는 것도 아주 중요합니다. 자, 그러면 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으면 무엇이든지 같이 대화를 나눠보면 좋겠습니다.”nbspnbsp법회를 들으러 오신 분들이 모두 고향 선배님들과 친구들이여 약간의 부담이 느껴진다고 솔직한 마음을 표현하자 청중들도 공감을 하며 웃음을 보였습니다.nbspnbspnbsp질문하고 싶은 사람은 손을 들어라고 하자 모두들 머뭇거렸습니다. 그래서 스님이 “동네가 좁아 소문날까 싶어서 질문을 못하겠어요?”라고 하면서 웃자, 그제서야 청중들도 웃음을 띠며 여기저기서 질문을 했습니다. nbspnbspnbsp총 6명이 스님에게 질문을 했습니다. 한 남성분은 보통 스님들은 통가사를 많이 하는데 스님은 반가사를 주로 하고 계신 이유가 무엇인지 물었고, 한 여성분은 그동안 이뭐꼬를 화두 삼아서 참선 수행을 해오다가 최근에는 새로 비파사나 명상법을 배웠는데 그 방법을 자세히 알고 싶다고 물었고, 한 거사님은 스님이 자신의 고향 선배라는 사실을 영광스럽게 생각한다고 하면서 15년을 목표로 매주 토요일마다 철야기도를 해오고 있는데 올해 12년이 되었고 앞으로 회향을 하게 되더라도 계속 기도를 해야 하는지 물었고, 또 다른 거사님은 스님과 같은 고향 출신인데 스님은 고향에 올 때마다 특별한 감흥을 느끼는 것이 있는지 물었고, 마지막으로 한 거사님은 치술령 자락에서 그림을 그리고 있는데 어떤 생각으로 그림을 그리면 좋을지 물었습니다.nbspnbsp오늘은 그 중에서 언니가 항암 치료를 받고 있는데 아무것도 해줄 수 있는 것이 없는 것 같아 답답한 마음이 든다는 질문과 스님의 답변을 소개합니다.nbspnbsp“언니가 항암 치료를 받고 있습니다. 동생인 제가 해줄 수 있는 것이 아무것도 없는 것이 너무 답답하고 힘이 듭니다.”nbspnbsp질문자는 울먹이면서 스님에게 질문을 했습니다. 스님은 이렇게 답해주었습니다.nbspnbsp“동생인 자기만 아무것도 해줄 수 없는 것이 아니고, 자식도 해줄 수 없고, 남편도 해줄 수 없고, 부모도 해줄 수가 없어요. 남의 인생을 위해 내가 해줄 수 있는 것이 별로 없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인생 살이에서 두 가지 착각을 하고 있어요. 첫째, 남이 원하는 것을 내가 다 해줄 수가 있다고 생각하는 겁니다. 남이 원하는 것을 내가 다 해줄 수가 없습니다. 그런데 다 해줄 수 없는 것을 다 해줄 수 있다고 착각을 하면 내가 못해준 것에 대해 자꾸 죄책감을 느끼게 돼요.nbspnbspnbsp스님이 된 사람 중에 이런 사람이 많아요. 스님이 되면 부모님이 자꾸 장가가라고 얘기하겠죠. 이 때 ‘부모 마음도 하나 편안하게 해주지 못하면서 무슨 중생을 구제하느냐’고 고리를 걸면서 덤빕니다. 이럴 때 대부분 속아 넘어갑니다. 법을 아는 사람은 ‘어차피 내가 세상 사람들이 원하는 것을 다 못해준다’는 사실을 압니다. 그러니 못해 주는 것으로 죄책감을 가질 필요가 없습니다. 인생은 늘 이것과 저것 사이에 선택을 해야될 때가 있는데 그 선택에 따른 책임만 질 줄 알면 됩니다.nbspnbsp제가 제자들을 두고 있으니 가끔 부모들이 절에 찾아와서 주로 하는 얘기가 “절에서 나와라. 안 나오면 내가 죽겠다. 내 죽는 꼬라지 볼래?”입니다. 이렇게 걸면 대부분 넘어갑니다. 그러나 그렇게 부모가 죽겠다고 해도 출가한 사람은 집으로 돌아가지 않습니다. 설사 부모님이 돌아가신다 해도 돌아가시면 장래를 치뤄드리면 됩니다. 돌아가시는 건 그 부모의 결정이고 나는 내 길을 가야 합니다. 내가 부모를 괴롭히는 것이 아니라 아무리 부모라 하더라도 자식의 인생을 제 마음대로 할 수가 없는 것이고, 부모가 원하는 대로만 살면 그것이 어떻게 내 인생이라고 할 수 있겠어요? 부모의 노예이지요. 그래서 남이 원하는 요구를 못해준다고 죄책감을 갖는 것은 아무에게도 도움이 안 됩니다.nbspnbsp둘째, 사람들은 자기가 원하는 대로 안 이루어진다고 괴로워 하잖아요. 아이가 결혼을 안 했다고 괴로워하고, 돈 많이 못 번다고 괴로워하고, 시험에 떨어졌다고 괴로워합니다. 그러나 내가 원하는 모든 것이 다 이루어질 수가 없습니다. 다 이루어질 수 없는데 마치 다 이루어질 수 있다고 착각을 하기 때문에 이루어지지 않는다고 괴로워하는 겁니다. 이루어지면 다행이고 안 이루어지면 그만두면 됩니다. 그래도 아쉬우면 또 도전하면 되고요. 그래도 안 되면 그만두면 되고요. 그래도 아쉬우면 또 하면 될 뿐이지 괴로워할 일은 아닙니다. 그런데 우리는 자기가 원하는 것이 안 이루어졌다고 괴로워하는데 이것은 어리석은 행동입니다.nbspnbspnbsp또 우리가 원하는 것이 다 이루어진다고 반드시 좋을까요? 예쁜 여자 한명이 있는데 백명의 남자가 그 여자와 결혼하고 싶다는 소원을 다 이루면 한 여자가 백명의 남자와 살아야 되는 일이 벌어져야 하는 겁니다. 국회의원 선거에 나온 열명의 소원이 다 이뤄져서 한 지역에 국회의원 열명이 당선되면 되겠어요? 그렇게 되면 세상은 엉망진창이 되어 버립니다. 조금만 잘 생각해 보면 우리가 원하는 일이 다 안 이루어지기 때문에 그나마 요만큼이라도 세상이 유지되고 있는 겁니다. 그래서 우리가 원하는 것이 이루어진다고 반드시 좋다고 할 수도 없고, 또한 다 이루어질 수도 없는 것입니다.nbspnbsp제가 대학생들을 지도할 때의 일입니다. 4학년 학생이 데모를 했어요. 경찰에 잡혀 가서 구치소를 가게 되었는데 그 어머니가 매일 같이 찾아와서 부처님께 제발 좀 우리 아들 빨리 나오게 해달라고 기도를 했어요. 그런데 3개월 후에 아들이 재판을 받아서 집행유예로 나왔어어요. 그래서 어머니가 저를 붙잡고 부처님 가피를 입었다고 좋아했어요. 그런데 그 아들이 3개월 만에 교통사고가 나서 죽었어요. 그래서 다시 어머니가 저를 붙잡고 ‘내가 아들을 죽인 것이다’ 하면서 울었어요. 이 액난을 피할려고 감옥에 들어간 것을 억지로 끄집어 내었으니 결국 자기가 죽였다는 것이죠. 이렇게 우리는 한치 앞을 볼 줄 몰라요. 지금 벌어진 일이 좋은 일인지 나쁜 일인지 알 수가 없잖아요. 이것을 인생지사 새옹지마라고 하죠.nbspnbsp그런데 우리는 자기 마음대로 되면 좋다고 난리를 피우고, 조금만 자기 마음대로 안 되면 괴롭다고 난리를 피웁니다. 이래서 우리 인생사는 늘 희로애락에 젖어서 괴롭습니다. 그래서 진짜 니쁜 일인지 좋은 일인지는 조금 더 두고 볼 일입니다. nbspnbspnbsp시골에 노름할 때도 초장 끗발 개끗발이란 말이 있잖아요. 초장에 끗발이 오른다고 좋다고 할 수 없어요. 좀 더 길게 봐야 하는데 그걸 못하니까 우리 인생이 늘 괴로운 거예요. 그래서 남이 원하는 걸 내가 다 해줄 수도 없고 내가 원하는 것도 다 이루어질 수 없다, 이 두 가지만 안다면 바라는 대로 되면 좋고, 안 되면 그만이고, 그래도 되길 원하면 더 해보면 되고, 그래도 안 되면 그만두면 되고, 그래도 또 더해보고 싶으면 더 하면 돼요. 꼭 그만둬야 한다는 법은 없습니다. 또 내가 다른 사람이 원하는 것을 다 이루어줄 수도 없어요.nbspnbsp언니가 암치료를 받고 있다고 했지요. 내가 원하는 게 뭐예요? 언니의 암이 낫길 바라지요? 그런데 그게 내가 원한다고 낫고, 원하지 않는다고 안 낫는 게 아니에요. 아베 총리가 일본에서 자꾸 망언하니까 빨리 죽었으면 좋겠다고 바라는 사람들이 많아요. 그런다고 안 죽어요. 내가 사랑하는 부모는 오래 살면 좋겠죠? 그렇다고 오래 사는 게 아니에요. 그건 내가 원한다고 되고 안 원한다고 안 되는 게 아니에요. 그렇기에 특히 수명과 관계된 것은 내가 관여할 일이 아닌데 첫째, 내가 자꾸 관여하려고 하는 거예요. 마치 내가 뭘 하면 어떻게 될 것 같이 생각해요. 두 번째, 남편이든 부모든 아내든 자식이든 사람이 평소에는 내 말을 잘 듣다가도 자기가 다급할 때는 남의 말을 들어요? 자기 마음대로 해요? 자기 마음대로 하죠. 인간 성질이 그래요.nbspnbsp암 치료를 받는 중이라는 것은 목숨이 달린 문제잖아요. 급한 문제라 해도 목숨이 달린 문제보다 더 급한 문제는 없겠죠. 그러니 옆에서 뭐라고 권해도 잘 안 들어요. 이런 성질을 알아야 해요. 내 말대로만 하면 잘 들을 것 같은데 왜 그러냐고 하지만 그것은 성질 자체가 원래 잘 안 듣게 되어 있어요.nbsp그러기 때문에 내가 원하는 대로 언니가 약을 먹든 치료를 받든, 낫도록 하겠다는 것은 언니를 위한 것 같지만 사실은 나를 위한 거예요. 언니와는 아무 관계가 없는 자기 만족이에요. 어머니가 일하면서 자꾸 아프다고 ‘아야 아야’ 하니까 그게 듣기 싫어서 일하지 말라고 하는 것이지 부모에게 관심이 있어서 그러는 게 아니에요. 그러니까 ‘일하려면 아프다 소리 하지 말아요’라고 하잖아요. 이건 다 내 문제예요. 진정으로 부모를 생각한다면 부모가 일을 하려 하면 호미를 찾아드리고, 부모가 아프다 하면 주물러드리고, 그냥 그대로 도와줄 수 있으면 도와주고, 그게 듣기 싫으면 조용히 어디 가 버리면 돼요. ‘엄마, 나 바쁜 일이 있어요’ 하고 어디 가버리면 되지, 이래라 저래라 하면 갈등밖에 안 일어납니다.nbspnbsp혼자 일하시는 게 좀 안쓰러우면 주말에 와서 거들어줄 수 있으면 거들어주고 못 거들어주겠으면 주말에 안 오면 돼요. 그런데 안 오려니 불효 같고, 와서 거들려니 힘들죠. 그러니 일을 안 했으면 좋겠다, 농사 안 지었으면 좋겠다고 하는 거예요. 이게 다 자기 필요 때문에 생기는 문제예요. 제 말 이해하셨어요?nbspnbsp굉장히 효자 같지만 아니에요. 질문자도 언니를 굉장히 걱정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아니에요. 그게 다 내가 원하는 대로 언니가 이러저러하게 되었으면 좋겠다는 내 욕구란 뜻이에요. 이렇게 이야기하면 기분 나빠요? nbspnbsp아픈 사람은 내가 아니라 언니잖아요. 언니를 생각하면 나는 첫째, 아무 것도 해줄 수 없다는 걸 알아야 해요. 그나마 조금이라도 해줄 수 있다면 언니가 원하는 것을 해주면 돼요. 이야기나누고 싶다 하면 이야기 나누면 되고, 그저 밥 한 끼 같이 먹고 싶다면 같이 먹으면 되고, 병원비가 조금 부족하니 조금 보태줬으면 좋겠다고 하면 병원비를 보태주는데, 100만원을 부탁했는데 내 형편이 안 되면 50만원 주면 되고 50만원도 어렵다 하면 30만원만 주면 돼요. 원하는 만큼 못 줄 때는 ‘언니야, 미안하다’ 라고 주면서 이렇게 말하면 됩니다. ‘주면서 미안할 게 뭐 있나, 내가 인사받아야지’ 라고 생각할 게 아니에요. 언니가 원하는 만큼 못 줬으니까 ‘아이고, 미안하다’ 이러고 그냥 주면 돼요. 원하는 대로 다 해줄 수 없기 때문에 내가 할 수 있는 만큼만 해주면 돼요.nbspnbsp오라고 해도 갈 수 있으면 가고, 못 가면 ‘아이고, 언니야 미안하다’ 이러고 안 가면 돼요. 갈 수 있으면 가면 되지 그걸 가지고 부담을 느낄 필요도 없고 또 내 식대로 하려 들어도 안 됩니다. 그러니 언니 하시는 대로 하세요.nbspnbsp그리고 병은 의사가 치료하지 내가 치료할 수 있는 게 아니잖아요. 치료비가 필요하다면 내가 치료비 다 대겠다고 나설 것도 없어요. 그냥 어려워 보이면 내 형편 안에서 돕고, 말벗이 없어 보이면 가서 말 좀 나눠주면 되고, 가끔 밥 한번씩 같이 먹으면 돼요.nbspnbspnbsp밥도 내가 먹고 싶어서 사면 안 돼요. 언니가 먹고 싶을 때 사야 돼요. 이 말은 신도님들도 잘 들으셔야 해요. 봉암사 선방에 있어 보면 냉면을 좋아하는 신도는 선방에서 공부하는 스님들이 여름철에 냉면을 한번 먹어야 한다고 여러 사람을 동원해가며 야단을 떨면서 냉면 공양하러 올라옵니다. 자기가 수박을 좋아하면 수박을 한 트럭 들고 와요. 자기가 빵을 좋아하면 어디 유명한 빵집에서 빵을 사와요. 생각해보세요. 여러분이 선물을 사갈 때 누가 좋아하는 걸 사 가요?nbspnbsp이렇게 인간 자체가 전부 자기 식으로 생각하고 행동해요. 그렇다고 나쁘다는 건 아니에요. 자기가 밥을 먹고 싶으면 괜히 붙잡고 ‘아픈데 밥을 챙겨 먹어야지’ 이러면서 아픈 사람 끌고 밥 먹으러 가고, 자기가 이야기 나누고 싶으면 또 가서 이야기를 한다는 거예요. 이렇게 나를 중심으로 하는 것은 언니에게 도움이 안 돼요.nbspnbspnbsp언니가 원하는 걸 해주는 게 내가 할 수 있는 최고로 좋은 도움입니다. 언니가 아무것도 원하지 않으면 아무것도 안 해주는 게 언니를 최고로 위하는 길이란 말이에요. 우리가 남을 위한다지만 자세히 보면 다 자기 얘기일 뿐입니다. 그러니 편안히 사세요. 언니가 전화 와서 뭐라고 하면 가서 해주시고요.”nbspnbsp무거운 표정으로 질문을 시작한 여성 분은 스님의 답변을 듣고 나서 환한 표정이 되어 “감사합니다” 하고 인사를 하면서 자리에 앉았습니다.nbspnbsp모든 질문에 대한 답변을 마치니 2시간이 훌쩍 지났습니다. 마지막으로 스님은 이 말씀을 꼭 드리고 싶다면서 오늘 법회를 마무리하는 말씀을 해주었습니다.nbspnbsp“만약에 버스 대절을 해서 같이 가다가 교통사고가 나서 버스가 넘어졌어요. 깨어나 보니 나는 팔만 하나 부러져 있었고 주위를 둘러보니 모두 다 죽고 자기 혼자 살아남았어요. 팔이 하나 부러졌지만 재수가 참 좋구나 하고 느껴지죠. 산다는 것은 이렇게 늘 재수가 좋은 거예요. 우리의 인생은 이렇게 재수가 좋은 기적이 매일 매일 일어나고 있어요. 그게 언제인가요? 아침에 눈을 뜨니 살아있을 때입니다. 밤에 눈을 감았는데 아침에 눈을 못 뜨면 죽은 거예요. 그래서 아침에 눈 뜰 때 이렇게 외쳐보세요.nbspnbspnbsp‘아이고, 오늘도 살았네’nbspnbsp이렇게 매일 아침 감사한 마음으로 하루를 시작하면 다른 소소한 일은 별로 중요하지 않아요. 살았다는 기적 앞에서 돈 몇푼 벌거나 잃었거나 하는 것이 뭐가 그리 중요하겠어요? 이렇게 기도하는 것이 부처님 관세음보살님 찾는 것보다 더 영험이 있어요. 아침에 일어나서 눈 뜨자마다 세수하기 전에 ‘아이고, 오늘도 살았네 감사합니다’ 하고 기분좋게 하루를 시작해 보세요. 그렇지 않고 일어날 때 온갖 인상을 쓰고 하루를 시작하니까 예쁜 얼굴에도 자꾸 주름살만 지는 겁니다.nbspnbsp항상 첫 시작이 중요합니다. 하루의 첫 시작을 항상 ‘오늘도 살았네 감사합니다’ 하고 기분좋게 시작을 하면 여러분들의 인생에 아주 좋은 부처님의 가피가 내릴 것입니다. 꼭 명심하세요.”nbsp대중들은 ‘아이고, 살았네 하고 따라하면서 기쁜 표정을 지었습니다. 그리고 2시간이 넘도록 긴 시간 동안 정성을 다해 법문을 해준 스님에게 감사한 마음을 담아 큰 박수를 보냈습니다.nbspnbspnbsp이어서 스님은 법회를 들은 두북초등학교 동기들, 선후배들과 함께 악수를 하면서 오랜만에 만난 기쁨을 표현하면서 반갑게 인사를 나누었습니다. 고향 분들은 모두들 스님에게 “좋은 일 많이 하고 있는 모습을 멀리서나마 열심히 응원하고 있다”고 하면서 뿌듯해 했습니다.nbspnbspnbsp그리고 오랜만에 만난 기념으로 다함께 기념 사진을 찍었습니다. 주름진 얼굴과 흰 머리를 보니 55년의 세월이 고스란히 느껴져서 묘한 기분이 들었습니다.nbspnbsp▲ 초등학교 동기들과 함께nbsp스님은 오늘 초청법회를 주관한 석문암 주지 스님인 석봉 스님에게 다시 한 번 감사의 마음을 전한 후 오후 1시가 다 되어 다시 두북 정토수련원으로 돌아왔습니다.nbspnbsp오후 4시에는 황룡사터로 가서nbsp행정처 간부들과 함께nbsp내일 이곳에서 열릴 통일의병대회 준비 상황을 nbsp점검했습니다. nbspnbspnbsp이후 다시 두북으로 돌아와 오늘 일정을 모두 마쳤습니다.nbsp내일은 전국에서 통일의병 1600여명이 참석한 가운데 제1차 정토회 통일의병대회가 황룡사와 능지탑, 선덕여왕릉, 사천왕사지, 통일암 일대를 순례하며 진행될 예정입니다.nbsp
2015.9.4 포항 청춘콘서트
nbsp안녕하세요. 오늘 스님은 포항에서 열린 청춘콘서트에 참석해 청년들의 고민에 대해 대화를 나누는 즉문즉설 강연을 했습니다. nbspnbsp새벽 4시에 일어나 새벽 예불과 천일결사 정진을 마친 스님은 아침부터 농사 일을 시작했습니다. 마당에 잔디를 깎고 화단에 있는 잡초들을 제거하고 웃자란 나뭇가지들을 치는 등 오전 내내 구슬 땀을 흘렸습니다.nbspnbsp▲ 텃밭에 심어 놓은 배와 수박과 참외nbspnbsp오후에는 원고 교정 업무를 보았고, 4시가 되어 오늘 청춘콘서트가 열리는 포항으로 향했습니다. 포항으로 가는 길에 경주에 잠깐 들러 손님과 미팅을 한 후 포항에는 6시 50분이 다 되어 도착했습니다. nbspnbsp포항 청춘콘서트가 열린 경북 학생문화회관은 저녁 7시가 되자 1200여명이 자리를 가득 메운 가운데 좌석이 부족해 계단과 복도에도 앉아야 할 정도로 높은 관심과 열기를 보여주었습니다.nbspnbsp▲ 포항시 경북 학생문화회관을 가득 메운 1200여명의 청년들nbsp스님은 청년들이 요즘 많이 힘들다는 것을 알고 있다고 공감을 한 후 나를 행복하게 하는 수행과 사회를 변화시키는 일을 함께 해나가는 것이 필요함을 강조했습니다.nbspnbsp“요즘 젊은이들이 이런 저런 일로 좀 힘들다는 이야기를 많이 듣고 있어요. 첫째, 직장 구하기가 어렵다. 둘째, 연애와 결혼도 쉽지가 않다. 셋째, 아이 낳아 키우기도 쉽지가 않다. 이런 이야기를 듣고 있는데 정말 그래요?nbspnbsp그런데 직장 구하기가 쉽지 않은 것은 이해가 되는데 연애하기가 쉽지 않은 것은 좀 이해가 안 돼요. 그리고 연애하기가 쉽지 않은 것이 왜 고민이 되는지 그 이유를 저는 잘 모르겠어요. 연애 안 하면 되잖아요. nbspnbspnbsp결혼도 안 하면 되잖아요. 아이도 안 낳으면 되잖아요. 이런 고민이 있는 사람들은 앞으로 저한테 오시면 되겠습니다. 저는 이 나이가 되도록 연애나 결혼을 안 하고도 행복하게 살고 있으니 저한테 물으면 ‘그걸 갖고 왜 괴로움이라고 그래요?’ 하는 소리를 듣겠죠?nbspnbsp그래서 비교를 어떻게 하느냐가 참 중요해요. 돈을 천만원 가진 사람이 1억 가진 사람과 비교하면 가난한 사람이 되고, 백만원 가진 사람과 비교하면 부자가 되잖아요. 그래서 여러분들이 힘들 때는 꼭 저한테 오세요. ‘그래도 스님보다는 낫다’는 생각이 들 수 있어요. nbspnbspnbsp이것은 심리적인 처방이예요. 개인은 이렇게 심리적인 처방을 스스로 할 줄 알아야 돼요. 왜냐하면 사회 제도를 바꾸고 다른 사람들을 바꾸는 것은 첫째, 시간이 많이 걸리고, 둘째, 될지 안 될지 불확실해요. 마냥 기다릴 수는 없잖아요. 그래서 우선 내 인생은 행복하게 살아야 되니까 이런 심리적 처방을 통해서 내가 먼저 행복해지고, 그런 후에 행복한 마음으로 사회적 변화도 마련해야 합니다. 청년 일자리를 늘일 수 있는 사회를 만들어야 되고, 연애하고 결혼하고 아기 낳기가 쉬운 사회적인 제도와 문화도 만들어야 합니다. 모든 것을 다 개인의 문제로만 돌릴 수는 없어요.nbspnbsp그래서 오늘 여러분들은 이 두 가지 문제에 대해 다 질문해도 좋습니다. 세상은 그렇다 치고 우선 나부터 행복해질 수 있는 길이 있다는 것은 심리적 처방이예요. 그럼 세상을 이렇게 내버려두어도 됩니까? 안 되지요. 세상도 변화시켜야 합니다. 그러나 세상을 변화시키는 것은 혼자서는 못 합니다. 힘을 합해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서로 공감대를 가져야 합니다.nbspnbsp농사를 짓기 위해 콩이든 배추든 상추든 심을 때 잘 자라게 하려면 두 가지 요소가 갖춰져야 해요. 첫째, 씨앗이 좋아야 합니다. 씨앗이 안 좋으면 아무리 땅이 좋아도 신통치 않아요. 그래서 종자 개량을 하거나 좋은 씨앗을 선택해야 해요. 둘째, 아무리 씨앗이 좋아도 땅이 안 좋으면 잘 못자라요. 셋째, 잘 돌보지 않으면 벌레가 먹든지 거름이 부족하든지 물이 부족해서 잘 못자랄 수 있습니다. 그래서 좋은 땅에 거름도 주고 물도 주고 병충해도 막아주는 보살핌이 있어야 합니다.nbspnbsp수행은 이 씨앗을 개량하는 것과 같습니다. 주위 환경을 그대로 두고도 여러분들이 조금 더 수행을 하면 행복도가 높아져요. 땅은 그대로 두고 좋은 종자를 심으면 소출이 좀 늘고, 같은 종자라도 땅을 잘 가꾸면 역시 소출이 늡니다. 그런데 두 가지 다 하면 더 좋겠죠. 그래서 우리는 개인적으로 자신을 아름답게 가꾸어 나가는 수행도 하고, 우리가 사는 세상을 좀 더 좋은 세상으로 만드는 사회 변혁 운동도 같이 하는 것이 좋습니다.nbspnbspnbsp이것을 불교에서는 상구보리하고 하화중생한다고 합니다. 위로는 깨달음을 구하고 아래로는 중생을 구제한다는 뜻입니다. 어떤 경우에도 자신을 행복하게 하는 것을 ‘성불’이라고 하고, 우리가 사는 이 세상을 전쟁이 없도록 굶어죽는 사람이 없도록 병든 사람이 없도록 아름답게 가꾸는 것을 ‘정토’라고 합니다. 이 성불과 정토를 동시에 추구합니다. 또 다른 말로는 ‘자리이타’라고 합니다. 나도 이롭고 남도 이롭다는 뜻입니다. 자, 그러면 이 두 가지 종류의 문제에 대해서 마음껏 질문하세요.”nbsp마음껏 질문하라는 스님의 말씀에 여기저기서 손을 들었습니다. 총 3명이 스님에게 질문을 했습니다.nbspnbspnbsp한 여학생은 나보다 못한 사람들을 보면서 위안을 얻을 수도 있지만 나보다 잘난 사람도 늘 보고 살아야 해서 마음이 흔들리게 되는데 이럴 땐 어떻게 수행을 해야 하는지 물었고, 한 남학생은 요즘 통일에 관심이 많아서 주변에 얘기를 꺼내면 ‘니 밥그릇이나 잘 챙겨먹어라’고 해서 어떻게 하면 주변 사람들이 통일에 관심을 갖도록 할 수 있는지 물었습니다. 각각에 대해 스님은 명쾌한 답변을 들려주어 유익하면서도 웃음이 넘치는 시간이 되었습니다.nbspnbsp오늘은 그 중에서 4년 전 어머니가 돌아가시고 나서 공허함 때문에 힘들다는 한 여학생의 질문과 스님의 답변을 소개합니다. 슬픔에 못 이겨서 울먹이며 질문을 시작한 여학생은 스님의 답변을 듣고 환하게 웃으며 자리에 앉았습니다.nbspnbsp“저는 어머니가 돌아가셨는데 그걸로 인해서 마음이 공허해져서 어떻게 해야할지 모르겠습니다. 이 마음을 저에게 도움이 되는 방향으로 바꿀 수 있는 방법을 알고 싶어요. 어머니가 돌아가시고 난 뒤에 공허함이 자꾸 커지다 보니까 이걸 제가 감당을 못 하겠어요.”nbspnbsp“몇 살이에요?”nbsp“스물여섯살이요.”nbsp“스물여섯살이면 어머니가 돌아가셔도 고아는 아니에요. 스무살 미만에 어머니가 돌아가셨을 때에만 남의 도움이 필요하고 스무살이 넘으면 어머니가 살아계셔도 어머니로부터 독립해야 해요. 그런데 질문자는 아직 어린애 같은 생각을 하고 있어요. 어머니가 돌아가셔서 슬프다는 건 이해합니다. 제가 나이 예순이 넘어도 부모님이 돌아가시면 슬픔이 있겠죠. 나이 예순에 아흔이 된 부모님이 돌아가시는 게 슬플까요? 마흔일 때 일흔인 부모님이 돌아가시는 게 슬플까요? 스무 살일 때 쉰이 된 부모님이 돌아가시는 게 슬플까요? 열 살에 마흔인 부모님이 돌아가시는 게 슬플까요? 언제 돌아가셔도 슬픔은 있습니다. 그러나 어릴 때 일수록 슬픔이 더 크겠지요.nbspnbsp제가 만원 짜리 시계를 15년째 차고 다니다가 얼마전 중국에서 잃어버렸어요. 식당에서 강의할 때 시계 본다고 벗어놓고 강의했는데 잊고 안 가져왔어요. 이튿날 아침에 시계가 없어서 얘기하니까 식당에서는 못 봤대요. 지금도 아니고 15년 전에 만원 주고 사서 쓴 물건이면 본전 다 뽑았지요? 그런데도 섭섭해요. 남이 들으면 그런 고물 시계 가지고 뭐가 섭섭하냐 하지만 이런 시계도 오래 가지고 있던 것이 사라지면 섭섭하단 말이에요. 그래서 만원 주고 시계를 새로 샀어요. 그런데 이걸 오늘 또 잃어버린다면 15년 전에 산 시계와 산 지 일주일도 안 된 시계 중 어느 것을 잃어버린 게 더 섭섭할까요?”nbspnbsp“15년 전에 산 시계요.”nbsp“왜 그럴까요?”nbspnbsp“추억이 있으니까요.”nbsp“값어치 얼마 안 되는 시계도 15년 갖고 있다 잃어버렸다 해서 이렇게 섭섭한데 나를 낳아서 길러주신 부모님이 돌아가셨는데 슬프지 않은 사람이 누가 있을까요? 누구나 다 슬픕니다.nbspnbsp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이야기를 해본다면, 시계 잃어버렸다고 계속 시계 타령을 하는 게 좋을까요? 좀 섭섭하지만 한번 가서 물어보고 두 번 물어봐도 못 봤다 하고 전화까지 해봤는데도 못 봤다 하면 포기하고 새로 시계를 사야 돼요, 한국에도 오지 말고 중국 그 식당에 붙어살면서 찾아야 돼요? nbspnbspnbsp섭섭하지 않아서나 필요없어서가 아니라, 필요하지만 다른 대안이 없단 말이에요. 다들 못봤다 모른다 하는데 방법이 없지 않습니까. 그러면 아깝지만 다른 시계를 사서 대신할 수밖에 없듯이, 부모님이 돌아가신 것은 나에게 큰 슬픔이지만 이걸 내가 섭섭해하고 공허해한다고 돌이킬 수 있어요?”nbsp“없어요.”nbsp“돌이킬 수 있다면 한 달이라도 울겠지만 되돌려지지 않는 문제란 거예요. 부처님에게 빌어도 방법이 없어요. 좋은 데로 가는 건 부처님이 도와줄 수 있어요. 하나님에게 빌면 천당에 간다, 부처님에게 빌면 극락에 간다, 이런 건 도울 수 있지만 이리로 돌아오는 것은 하나님도 부처님도 못 도와요. 만약 돌아올 수 있다면 좋은 데 간다는 이야기 자체가 나올 수 없습니다. 못 돌아오니까 차선책으로 좋은 데 갔다고 대안을 내놓은 거예요. 헤어지는 건 어쩔 수 없지만 그래도 헤어진 후 좋은 데 가 계신다 말하는 게 좋아요? 나쁜 데 가 계신다 하는 게 좋아요?”nbsp“좋은 데요.”nbsp“이럴 때 진짜 천당이 있냐, 극락이 있냐 묻는 사람은 어리석은 사람이에요. 그건 따질 필요가 없어요. 좋은 데 갔다는 것 자체가 나에게 위안이 되니까 이것은 진실 게임이 아니라 현실적으로 효능이 있다는 겁니다. 그래서 믿음이 중요해요. 어머니가 좋은 데 가 계신다고 믿으면 내가 마음이 편해져요. 어머니를 자꾸 그리워하고 보고 싶어하면 첫째, 그래도 돌아올 수가 없고, 두 번째, 만약에 올 수 있다고 누가 이야기한다고 해도 문제가 돼요. 어머니가 좋은 곳에 가서 잘 지내시다가 질문자의 욕심 때문에 나쁜 이곳으로 돌아와야 하잖아요. 사실은 오시겠다고 해도 좋은 곳에 그냥 계시라고 해야 하잖아요.nbspnbsp게다가 설령 돌아온다 하더라도 돌아올 방법이 없어요. 그래서 너무 슬프게 울면 돌아오는 것을 옛날에는 이렇게 표현했어요. 돌아올 수 있는 몸이 없으니까 남의 몸에 끼어들어와요. 다른 사람의 몸에 영혼이 끼어들어오면 그 사람은 정신분열을 일으켜 정신질환자가 돼요. 이걸 옛날에는 귀신 들었다고 표현했고 현대의학에서는 정신분열 혹은 이중인격이라고 표현해요. 그러니까 너무 슬퍼해서 어머니가 질문자 속으로 들어오면 질문자에게 정신분열이 일어나고, nbsp내 주위에 있는 사람에게 오면 그 사람에게 정신질환이 일어나요.nbsp그러니 공허한 것은 이해가 됩니다. 간절히 바라는데 그 뜻이 이루어지지 않으니 공허하지요. 그런데 그렇게 해도 이루어질 수 없기 때문에 내가 괴롭고, 너무 간절해서 이루어져도 주위에 이런 일이 벌어져서 불행을 자초하게 됩니다.nbspnbspnbsp그러면 어떻게 하면 이 공허함이 좀 덜어지느냐? ‘아이고, 어머니 이 세상에 사실 때 고생 많이 하셨어요. 우리도 키워주시고 아버지와도 여러 문제로 고생하셨는데 이제 편안한 데 가셔서 행복하게 사세요. 어머니, 안녕히 가세요. 행복하게 사세요.’ 이렇게 인사를 해주면 어머니가 굉장히 좋아하실 거예요.”nbspnbsp“그냥 받아들이라고 말씀하시는 거죠?”nbsp“아니요. 인사하라고요. 가셨는데 질문자가 아직 인사를 안 해서 생긴 문제예요.”nbsp“보고 싶을 때마다 계속 인사를 몇 번이나 했어요. 돌아오기를 바라지 않아요. 저도 그게 말이 안 되는 줄은 당연히 알죠. 그런데 스님은 시계를 잃어버리고 새 시계를 사셨지만 저는 대체할 게 없잖아요.”nbsp“대체할 게 있어요. 딴 남자를 만나면 되죠.” nbspnbsp“어머니를 잃었는데 새로운 남자를 만나서 그걸 대체하라고요?”nbsp“아니요. 어머니를 잃은 대신에 남자친구를 만나면 된다는 거예요. 남자를 만나서 아기를 낳으면 질문자가 다시 엄마가 되거든요. nbspnbsp세상은 이렇게 내려가는 거예요. 여기 있는 사람 중 누구도 영원히 엄마의 딸로만 살 수는 없어요. 어릴 때는 엄마의 딸로 살다가 딸을 낳고 다시 엄마가 되는 거예요. 그러니 엄마와 아빠에게 의지하고 관계 맺던 것을 결혼해서 다른 사람을 만나면서 대체하거나 나처럼 완전히 독립을 하면 돼요. 어느 쪽이 좋아요?”nbsp“둘 다 그다지 마음에 와 닿진 않아요.” nbsp“그건 내가 남자친구를 너무 좋아하다가 헤어졌을 때 어떤 남자도 눈에 안 들어오는 것과 똑같아요. 그런데 그건 그 남자를 사랑해서가 아니에요. 지금은 다른 남자가 눈에 안 들어와서 본인은 영원히 다른 남자를 안 볼 것처럼 이야기하죠. 그렇지만 우리처럼 오래 산 사람은 세월이 약인 줄 압니다. nbspnbspnbsp그러니 지금은 해결이 안 되지만 시간이 지나면 해결이 돼요. 돌아가신지 몇 년 되었어요?”nbsp“4년이요.”nbsp“그러면 10년 되면 지금보다 나을까요, 못 할까요?”nbspnbsp“잘 모르겠어요.”nbspnbsp“그러면 20년 지나면 지금보다 나을까요, 못 할까요?”nbsp“그것도 잘 모르겠어요.”nbsp“30년 지나면요?”nbsp“그것도 잘 모르겠어요.”nbsp“그렇게 거짓말하면 안 돼요. 지금은 그렇게 슬프지만 그래도 10년, 20년 지나면 지금보다는 조금 낫지 않을까 하는 짐작이 안 돼요?”nbsp“그런데 4년이 지났는데도 계속 이러니까요. 그 시간의 두 배가 8년이잖아요. 그렇다고 과연 괜찮아질까 싶어요. 처음에는 저도 시간이 흐르면 괜찮아지겠지 했지만 시간이 지나도 나아지는 게 없이...”nbsp“시간이 지나도 나아지지 않으면 그걸 보통 정신질환이라 해요. 시간이 지나도 남자를 잊지 못하면 상사병이라 하죠. 어떤 하나를 좋아했는데 나중에도 놓지 못하고 계속 집착하는 걸 편집증이라고 합니다. 질문자가 어머니와의 추억이 좋아서 생긴 것이겠지만 거기에 대해 편집증이 있는 거예요. 이 편집증을 안 고치면 나중에 어떤 남자를 좋아했다가 헤어질 수도 있는데 그럴 때 다시 편집증이 생겨서 그 남자를 못 잊고 또 몇 년씩 시간을 보냅니다. 자식을 낳아 기른 뒤 시집 장가보낼 때도 또 편집증이 생겨서 떠나보내질 못해요.nbspnbsp그래서 지금이 그 편집증을 고칠 수 있는 중요한 기회예요. 어머니를 떠나보낼 수 있으면 질문자는 나중에 남자친구를 사귀어도 혹시나 헤어질 때 그 헤어짐을 받아들일 수 있고, 자녀를 낳아서 키울 때도 아이가 커서 독립할 때 편안하게 받아들일 수 있어요. 그러니 지금 이것은 공부거리로는 아주 좋습니다.nbspnbspnbsp그러니 ‘어머니, 안녕히 가세요. 잘 가세요’ 하고 인사를 하세요. 그리고 ‘어머니 걱정 안 끼치고 저도 잘 살겠습니다.’ 이렇게 절을 하면서 기도하면 지금보다는 훨씬 좋아져요.nbsp어머니가 좋은 곳으로 가셨는데 자기 옆에 오라고 계속 잡아당겨야 되겠어요? ‘엄마, 내 나이가 스물여섯인데 이제 안 와도 돼. 그러니 거기서 살아.’ 이렇게 인사하고 놓아드려야 되겠어요? ‘엄마, 안녕’ 하고 영원히 인사할 자신이 있어요?”nbsp“아직은 좀 자신이 없어요.”nbsp“어차피 인사 못 하고 계속 울어도 어머니가 돌아오실 수 있어요?”nbspnbsp“아니요, 안 돌아오시죠.”nbsp“그러면 어차피 안 돌아오실 거면 인사를 확실히 해버리는 게 낫지 않아요?”nbsp“나을 것 같긴 한데...”nbsp“그럼 지금 이 자리에서 한번 해봐요. ‘엄마, 안녕. 잘가’ 이렇게 한번 해봐요.” nbspnbsp“말이 안 나와요.”nbsp“그게 편집증이란 거예요. 다른 사람이 볼 때는 너무 쉽지만 본인은 심리적인 이유로 입이 안 떨어지는 거잖아요. 헤어짐을 아직 못 받아들이고 있다는 거니까, 억지로라도 한번 따라 해봐요. 엄마, 안녕, 잘 가”nbspnbsp“엄마, 안녕. 잘 가.” nbsp“박수치면 안 돼요. 이건 ‘엄마, 안녕. 잘 가’ 라고 말하면서 동시에 ‘가면 안 돼’ 하고 붙잡는 거예요. 그건 헤어지는 게 아니에요. 나처럼 상쾌하게 ‘엄마, 안녕. 잘가’ 하고 뒤끝이 올라가야 돼요. 그렇게 한번 해봐요.”nbspnbsp“엄마, 안녕. 잘 가” nbspnbsp“지금도 감정이 실려서 ‘엄마, 안녕. 잘 가’ 하고 소리를 질러요. 이것도 안 돼요. 하나는 가지 말라고 붙들고 하나는 ‘못 올 바엔 꼴도 보기 싫어. 가’ 이러는 거예요. 아까보다는 낫지만 둘 다 안 돼요. 입 앙 다물고 각오하지 말고 편안하게 다시 말해봐요. ‘엄마, 안녕. 잘가’ 이렇게.”nbsp“엄마, 안녕. 잘 가...”nbsp“아직 안 돼요. 악 쓰지 말고 좀 더 편안하게.nbsp그 소리 듣고 엄마가 어떻게 가겠어요? 여기 나이드신 분들에게 물어볼까요? 저 소리 듣고 갈 수 있어요? 못 가요. 다시 해봐요. ‘엄마, 안녕. 잘 가’ 이렇게. 마음을 탁 내려놓고.”nbsp“엄마, 안녕. 잘 가”nbsp“거의 다 됐어요. 50점은 됐어요. 한번 더 해봐요.”nbspnbsp“엄마, 안녕. 잘 가”nbsp“100점은 아니지만 봐 줄게요. 박수쳐 주세요.”nbspnbspnbsp청중들이 큰 박수와 함께 응원의 마음을 담아 환호를 보내주었습니다. 스님은 밝아진 질문자의 얼굴을 보고선 안도의 한숨을 쉬면서 세월호 희생자들의 아픔에 대해서도 함께 이야기해 주었습니다.nbspnbsp“인간 세상이라는 게...참... 부모 자식이 만나서 부모가 먼저 돌아가면 자식이 울고, 자식이 먼저 돌아가면 부모는 더 웁니다. 부모가 돌아가셔서 4년을 저리 못 잊는 사람도 있는데 세월호를 생각하면 고등학교 아이들을 잃은 엄마들은 스님이 잊어라 한다고 잊어질까요? 안녕 하라 한다고 안녕이 될까요? 부모가 죽으면 땅에 묻고 자식이 죽으면 부모의 가슴에 묻는다고 하죠. 정치인들이 이걸 알면, 물론 시신을 찾는다고 살아오는 것도 아니지만 그래도 이러저러한 원인으로 이럴 수밖에 없었고 구조에 이러저러한 문제가 있었다고 밝히고 죄송하다고 사과도 해주면 좋지 않겠어요?nbspnbsp그러니 우선 진상을 규명해주고, 책임자들은 책임을 좀 더 깊이 지고, 다시는 이런 일이 안 생기도록 하겠다고 재발방지 약속도 해줘야 해요. 그래도 또 이런 일이 생기겠어요, 안 생기겠어요? 또 생기더라도 이렇게 해주면 한이 좀 풀린다는 이야기에요. 그렇게 좀 해주면 좋을 텐데 다들 황소고집이라서 이렇게 아프게 하잖아요. 저 젊은이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어머니 돌아가신 것도 저렇게 가슴에서 못 놓잖아요.nbspnbspnbsp질문자도 이제 어머니를 좀 내려놓고 좋은 데 가셨다 믿고 행복하게 사세요. 엄마가 위에서 내려다본다면 웃는 모습을 보는 걸 좋아할까요? 우는 모습 보는 걸 좋아할까요? 웃는 걸 보기 좋아하겠죠. 그러니 질문자는 살아서도 불효하고 죽어서도 불효하는 셈이에요. 그러니 지금이라도 웃어주는 것이 어머니에게 효도하는 길이라 생각하고, 웃으며 ‘안녕히 가시라’고 인사하고 이제 자기 인생 살아야 해요. 어렵지만 그렇게 해야 해요.”nbsp청중들은 다시 한번 뜨거운 박수로 격려와 응원의 마음을 보내주었습니다. 스님은 답변을 잘 알아듣지 못하는 질문자를 위해 여러차례 기다려주며 다시 묻기를 반복했습니다. 그 모습을 보니 가슴이 뭉클해지기도 했습니다. 상대의 아픈 마음을 이해하게 되면 이렇게 기다려줄 수 있는 것이나구 싶었습니다. 또 질문자가 마지막에는 환한 웃음을 보이자 강연장은 순식간에 감동의 물결이 되었습니다. nbspnbsp이어서 다른 질문들이 이어졌고 특히 통일의 필요성에 대해 주변 사람들을 어떻게 설득해야 하는지 묻는 질문에 스님은 다양한 비유를 들어가며 통일한국이 청년들에게 가져다 줄 희망에 대해 가슴 뛰는 이야기를 들려주었습니다.nbspnbsp시간이 부족해 3명의 질문에 대한 답변을 마치자 주어진 70분이 모두 지나갔습니다. 이어서 김제동씨가 큰 박수와 환호를 받으며 나왔습니다.nbspnbspnbsp김제동씨는 최근 전쟁 위기에까지 치다른 남북의 행태를 재미있게 풍자하면서 통일이 되면 청년들이 어떤 세상에서 살 수 있는지에 대해 열정적인 이야기를 들려주어 많은 감동을 주었습니다.nbspnbsp김제동씨와 함께한 70분 간의 행복 공청회가 끝나고 다시 스님과 김제동씨가 함께 무대 위로 올라와 마무리 이야기를 들려주었습니다.nbspnbspnbsp사회자 오청춘씨가 “많은 청년들이 오늘 행복의 나라에 놀러와서 행복한 시간을 보내고 가게 되어 참 기쁜데요. 하지만 청년들은 오늘 강연장 밖으로 나가면 또다시 대한민국의 팍팍한 현실로 돌아가야 합니다” 라고 하면서 행복의 나라가 다시 그리워질 청년들에게 마지막으로 한 말씀을 부탁했습니다. 먼저 김제동씨가 말문을 열었습니다.nbspnbspnbsp“제가 대구경북지역에서 태어나 이런 직업을 가질 수 있게 해주신 시민 여러분들에게 정말 고맙습니다. 마이크의 존재 이유를 사람들은 대부분 사회자에게 있다고 생각하지만 사실은 마이크의 진짜 존재 이유는 듣는 여러분들을 위해 있는 것입니다. 그러니 제 직업은 여러분들의 기반 위에 서 있는 것이고, 여러분들의 은혜 위에 서 있는 것이기 때문에 앞으로도 이런 은혜를 갚는 일을 계속 할 것입니다.nbspnbsp20대 청년들에게는 통일이라는 세대적 자부심을 가지고 힘들지만 함께 나가자고 말씀드리고 싶어요. 아프니까 청춘이다 하는 이따위 말은 믿지 마세요. 아프면 중년입니다.” nbspnbspnbsp청년들은 큰 웃음과 박수로 공감을 표현했습니다. 그러자 옆에 있던 스님은 김제동씨를 바라보며 “눈이 작아도 참 멋있죠” 한 후 “눈이 작아도 눈 수술하지 마세요” 라고 농담을 하면서 스님의 이야기를 들려주었습니다.nbspnbsp스님은 사물을 어떻게 보느냐에 따라서 행복해질 수 있다고 강조하면서 살아있음에 대해 감사하는 마음을 가질 것, 사회 변화를 위한 작은 책임의식이라도 가져보는 자세를 함께 이야기해 주었습니다.nbspnbsp“사물을 어떻게 보느냐에 따라서 단점이 장점이 되기도 하고 장점이 단점이 되기도 합니다. 여러분들은 자기를 어떻게 변화시켜야 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즉 노력을 해서 단점을 장점으로 바꿔야 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인생이 피곤해요. 성공할 수도 있고 못 할 수도 있고, 또 그 과정도 너무 힘들어요. 그런데 관점을 바꾸면 노력할 것도 없고 지금 이대로 바로 좋아집니다. 제가 볼 때 여러분들은 인생을 너무 피곤하게 사는 것 같아요. 노력해서 뭔가를 이루어야 한다는 생각을 항상 갖고 살잖아요. 관점을 바꾸면 이대로 좋다는 이야기를 오늘 말씀드리고 싶습니다.nbspnbspnbsp도라는 것은 지금 좋은 줄 아는 거예요. 어릴 때는 어릴 때가 가장 좋고, 중고등학교 때는 중고등학교 때가 가장 좋고, 대학 때는 대학 때가 제일 좋아요. 중고등학교나 대학 때는 밥 먹고 공부만 해도 칭찬 받아요. 나이 들어서 밥 먹고 아무 일도 안 하고 공부만 하면 욕을 먹잖아요. 그러니 지금 이 시기가 가장 소중한 거예요. 밥만 먹고 공부만 해도 되는 시기가 인생에서 그리 길지 않아요. 처녀 총각으로 지낼 수 있는 시기가 그리 길지 않아요. 신혼 시기가 길지 않아요. 그러니 일흔이 되면 일흔이 좋고 여든이 되면 여든이 좋아요. 그 때가 가장 좋은 시기예요.nbspnbsp여든 노인도 얼마나 좋아요? 공부할 일이 있나, 애 키울 일이 있나, 취직할 일이 있나, 시험칠 일이 있나? 시비하지 말라고 눈도 침침해서 안 보이고 귀도 어두워 안 들리니 남의 말 하고 시비할 일이 없죠. 점잖게 걸으라고 하는데 다리가 아프니 저절로 점잖게 걸어져요. 얼마나 좋아요? 그런데도 노인이 젊은이를 부러워하는 것은 자기 좋은 줄 모르고 남을 부러워하는 거예요. 자기가 젊을 때는 늙은이를 부러워해놓고 나이 들면 또 거꾸로인 거예요.nbsp이렇게 해서 우리 인생의 괴로움은 어릴 때부터 늙어죽을 때까지 끝이 안 나요. 살아있을 때는 늘 죽을 궁리만 하다가 죽을 때 되면 또 살 궁리하고 안 죽겠다고 야단이에요. 경상도 말로는 ‘디비쫀다’고 해요. nbspnbspnbsp이렇게 인생을 거꾸로 디비쪼면 안 됩니다. 항상 지금이 좋은 줄을 알아야 해요. 여기서 이야기 듣는 것은 듣는 걸로 좋지만 집에 가면 집에 가는 게 좋아요. 아침에 눈뜨면 살아 있다는 건 좋은 일이죠? 그런데 아침에 눈뜨자마자 ‘에이’ 이러고 인상을 쓰니 그 인생이 행복할 리 없지요. 아침에 눈뜨자마자 ‘아이고, 오늘도 살았네’ 이렇게 시작해도 저녁이 되면 지치는데 인상쓰고 시작하면 오죽하겠어요? 그러니 아침을 제일 기분좋게 시작해야 해요. ‘오늘도 살았네’ 한번 따라해보세요.nbspnbsp‘아이고, 오늘도 살았네’nbsp차 타고 가다가 버스가 사고를 당해서 다 죽었는데 자기만 살았으면 엄청난 기적이잖아요. 그런 기적이 매일매일 일어나요. 아침에 눈뜰 때마다 그 엄청난 기적이 일어나는 거예요. 그런 소중한 인생이에요. 나의 하루의 삶은 그런 엄청난 기적의 연속입니다. 이런 소중함을 여러분이 알고 있다면 행복은 멀리 있지 않고 지금 여기에 있습니다.nbsp오늘 우리가 통일을 비롯해 온갖 이야기를 했는데, 대한민국 헌법 1조 1항이 뭐예요?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 2항은 뭐예요?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 그러면 나라의 주인은 우리예요? 대통령이나 국회의원이에요?”nbsp“우리요.”nbsp“그런데 여러분이 대통령이나 국회의원을 욕하고 기분 나쁘다며 이민 가겠다 하는 것은 주인의 자세가 아니에요. 주인이라는 게 뭐예요? 내가 주주인데 회사가 경영을 잘 못하면 주식을 팔아야 돼요? 다음 주주총회 때 사장을 바꿔야 돼요?nbspnbspnbsp지금은 다들 주식 팔고 도망가려는 꼴이에요. 회사에 대한 주인의식이 없어서 그래요. 우리가 사는 나라의 주인은 우리이기 때문에 우리가 원하는 나라, 젊은이들이 원하는 나라, 이 땅에 생명을 보전하는 평화, 우리 미래의 발전에 대해 비전을 가질 수 있는 통일 같은 여러 문제를 해결하도록 주인이 위탁한 CEO에게 ‘이렇게 해라’라고 말할 줄 알아야 해요. 두려워하면 안 됩니다. 그래도 말을 안 들으면 다음 주주총회에서 CEO를 바꿔야겠죠. 그런데 소액 주주가 CEO를 바꾸고 싶다고 혼자 나서면 바꾸기가 힘들어요. 소액 주주는 표를 많이 모아야겠지요. 그런데 늘 대주주가 지정해주는 대로 따라가요. 회사 전체를 마음대로 주무르는 재벌이 전체 주식을 가진 게 아니라 3, 5를 가지고 회사를 움직여요. 나머지는 소액주주이기 때문이에요.nbspnbsp그런 것처럼 어떤 특정 정당 말뚝만 박아놓아도 찍는다는 태도를 우리가 아직까지 유지하는 것은 우리의 표를 포기하는 거예요. 주인의 자리를 포기하는 거예요. 새누리당 찍어도 괜찮고 민주당 찍어도 괜찮아요. 선택은 자유예요. 그러나 내가 선택해서 내가 결정하는 것이여야지 말뚝 보고 찍으면 안 돼요. 그런데 지금은 결과적으로 말뚝 보고 찍잖아요. 공천만 되면 당선이 정해져요. 이것은 지역주의가 우리의 시민적 권리, 국민적 권리를 사실상 빼앗는 것과 같고 또한 우리 스스로 포기하는 것과 같다는 사실을 자각해야 합니다. 이념의 문제도 아니고 지역 감정의 문제도 아니에요. 여러분이 대한민국 국민으로서 헌법에 보장된 권리에 대해서 권리를 행사할 수 있어야 한다는 말입니다. 투표라는 이 작은 행위로부터 국가가 바로서는 길로 가는 것이지 어떤 큰 결심을 해야 국가가 바로서는 것이 아닙니다.nbspnbspnbsp‘행복이 어디서부터 시작하느냐’ 라는 질문에 다시 답하자면, 첫째, 관점을 바꿔야 합니다. 노력하는 것만으로는 안 되고 관점을 바꿔야 한다는 것입니다. 둘째, 아침에 눈뜰 때 살았다는 기적을 만끽하자는 것입니다. 셋째, 작은 책임을 지자는 것입니다. 국가의 큰 변화도 우리의 작은 투표 행위로부터 시작해요. 불평은 많이 하면서 정작 젊은이들의 투표율은 50가 안 돼요. 노인들은 90예요. 여론조사에서 우위를 점해도 실제 투표를 해보면 안 돼요. 여러분들은 그만큼 책임의식이 부족하기 때문이에요. 이 한 발을 내딛는 이 작은 행위로부터 미래의 큰 변화가 일어난다는 각성이 필요합니다.nbspnbsp그래서 행복은 멀리 있지 않고 바로 지금 여기에서 우리가 이런 작은 책임의식을 갖는다면 우리는 지금부터 행복할 수 있고 지금부터 좋은 나라를 만들어갈 수 있습니다.”nbsp행복해지기 위해 스님이 제시해준 세가지 방법에 대해 청년들은 큰 박수로 공감을 표했습니다.nbspnbspnbsp이어서 강연의 마지막을 장식할 노래와 축제의 시간이 이어졌습니다. 오늘 행사를 준비한 서포터즈들이 다함께 무대 위로 올라와 스님과 김제동씨의 손을 맞잡고 강연의 마지막을 장식하는 노래를 함께 불렀습니다.nbspnbsp인디밴드 요술당나귀가 작사작곡한 ‘행복가’의 노래 가사가 스크린 위에 비춰지자 청년들도 가사를 함께 따라 부르며 박자에 맞춰 박수를 쳤습니다.nbspnbspnbsp“마음껏 웃고 꿈꾸고 사랑하자 ♬ 작은 날개를 펴고 행복의 나라로 날아가자.”nbspnbsp노래 가사처럼 청년들이 마음껏 웃고 꿈꾸고 사랑할 수 있는 나라를 만들기 위해 작은 실천이라도 함께 해 볼 것을 다짐하는 시간이였습니다.nbspnbspnbsp강연장 입구 로비에서는 책 사인회가 열렸습니다. 많은 청년들이 길게 줄을 늘어선 채 스님의 사인을 기다렸습니다. 스님은 한 명 한 명과 눈을 마주치며 환한 웃음을 보여주었고, 청년들도 소중한 가르침을 들려준 스님께 직접 감사한 마음을 표현했습니다.nbspnbspnbspnbsp사인회를 마치고 나서는 오늘 청춘콘서트를 위해 한달 전부터 사전 모임을 비롯해 곳곳에서 수고해준 희망서포터즈 봉사자들과 함께 기념 사진을 찍었습니다. 서포터즈들은 스님과 김제동씨를 가운데로 모시고 “청춘콘서트, 파이팅”을 외치며 밝게 웃었습니다.nbspnbspnbsp강연장을 나오면서 스님은 강연을 마치고 포항에서 다시 서울로 올라가는 김제동씨에게 “와줘서 고맙다”고 감사의 마음을 전했고, 김제동씨도 “제가 오히려 더 큰 도움을 얻는다”고 하면서 인사를 했습니다.nbspnbsp포항에서 10시30분에 출발한 스님은 밤 11시가 다 되어서 두북에 도착한 후 오늘 일정을 모두 마쳤습니다.nbspnbsp내일은 아침 일찍부터 농사일을 한 후 10시부터는 두북정토수련원 뒷산에 위치한 성문암에서 법회를 하고, 2시에는 정토회 통일의병 모임과 함께하는 워크샵에 참석할 예정입니다.nbspnbsp ※ 법륜 스님과 김제동이 함께하는 2015 청춘콘서트가 9월부터 11월까지 전국 곳곳에서 열립니다. 참가를 원하는 분들은 티켓을 사전 신청해 주시기 바랍니다.nbsplt티켓 사전 신청하기gtnbspnbspnbsp우리 지역 콘서트 일정을 nbsp확인하시고 가족, 이웃, 친구와 함께 오세요.nbsp
2015.9.3 순천 통일의병 강연
nbsp안녕하세요. 오늘 스님은 순천 시민들을 위해 ‘즉문즉설과 통일이야기’를 주제로 강연했습니다.nbspnbsp새벽 4시에 일어나 새벽 예불과 천일결사 기도를 마친 스님은 서울 공동체 발우공양에 참석해 공양을 드신 후 대중들을 위해 1000일 정진과 관련해 당부의 말씀을 해주었습니다.nbspnbsp▲ 새벽 예불nbsp“지금 법당에서 1000일간 24시간 기도를 하고 있는데 법당에서 진행되고 있기 때문에 공동체 대중들도 마땅히 참여해야 합니다. 그런데 시간을 배정받아서 의무적으로 하게 되면 기도가 되기 보다는 일이 되기가 쉽습니다. 그래서 공동체에 몇 시간씩 할당하는 방식은 안 했으면 좋겠다고 얘기가 되어서 공식적으로 시간 배정은 되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우리 스스로 자발적으로 참여를 했으면 좋겠습니다.nbspnbspnbsp정토회 안에서 공동체 구성원은 관병과 같습니다. 신도들은 의병과 같고요. 공동체 구성원은 어떤 일을 하더라도 항상 자발적이라기 보다는 의무적으로 할 때가 많습니다. 다른 건 몰라도 기도 만큼은 배정 받아서 의무적으로 하기 보다는 정말로 통일과 평화를 염원하며 또 내 자신을 돌아보며 기도하는 마음을 가졌으면 좋겠습니다.nbspnbspnbsp그래서 공동체는 시간을 배정받지 말고 일주일에 한시간 정도는 대중부에 신청을 해서 기다렸다가 하는 방식으로 참여해 주셨으면 합니다. 정말 기도가 하고 싶어도 내 차례가 안 돌아와서 기다려야 하는 상황이 될 때 그래야 기도라고 할 수 있거든요. 대중부에 가능한 요일과 시간을 주욱 알려주면서 ‘저에게도 기회를 주십시오’ 라고 신청을 해서 일주일에 한번 정도는 여러분들도 기도를 하면 좋겠습니다. 도저히 일이 바빠서 안 되는 사람은 격주에 한번 정도는 기도를 해서 여기에 사는 사람부터 정성을 좀 기울여 주시면 좋겠습니다.”nbsp기도만큼은 공동체 대중들도 자발적으로 정성을 기울여 주었으면 좋겠다는 말씀이였습니다.nbspnbsp발우공양을 마친 후 스님은 오전 내내 평화재단에 머물며 찾아온 손님들과 미팅을 가졌습니다. 점심 공양을 마치고 오후 2시에 서울을 출발하여 오늘 강연이 예정된 순천으로 향했습니다.nbspnbsp순천으로 가는 길에 잠시 휴게소에 들렀는데 커피집에서 일하는 여성 분이 스님을 보고 깜짝 놀라하며 반가워 했습니다. “매일 아침마다 희망편지 읽으면서 많은 도움을 받고 있다” 며 차 한잔을 건내면서 “좋은 말씀 한 마디만 적어 달라”고 요청하자 스님은 메모지에 짧은 문구를 적어 주었습니다.nbspnbspnbsp오후 5시 40분이 되어서 오늘 강연이 열리는 순천대학교 70주년 기념관에 도착했습니다. 기념관 입구에서부터 안내 푯말을 들고 있는 사람부터 로비에서 접수를 받는 사람, 강연장 안에서 자리 안내를 하는 사람 등 곳곳에서 하늘색 조끼를 입은 통일의병들이 자원봉사를 하고 있었습니다. 스님은 통일의병 한명 한명에게 감사 인사를 했습니다.nbspnbspnbsp강연에 앞서 순천대학교 총장실로 가서 총장님과 담소를 나누었습니다. 총장님은 전국 방방곡곡을 쉬지 않고 돌아다니는 스님의 강연 일정을 보고 무척 놀라워하였고, 스님은 어떤 취지로 강연을 시작하게 되었고 어떤 강연들이 진행되고 있는지 자세히 이야기를 나눠주었습니다.nbspnbsp▲ 순천대학교 총장님과 미팅nbsp6시 30분부터는 순천 지역 통일의병들과의 간담회가 열렸습니다. 통일의병 호남본부는 창립이 된지 얼마되지 않았음에도 왕성한 활동을 해나가고 있는데 순천에서도 이미 많은 분들이 통일의병에 참여하고 있었습니다. 스님은 간담회 자리에서 왜 지금 시대에 통일의병이 필요한지에 대해 간단히 설명해 주었습니다.nbspnbspnbsp“우리가 분단된지 70년인데 70년 내내 우리는 통일을 원했습니다. 그러나 통일이 되면 좋지만 통일이 안 된다고 못 사는 것은 아니였어요. 분단된 상태로도 경제가 발전할 수 있었고, 민주화가 이뤄질 수 있었고, 안보도 유지될 수 있었습니다. 그것은 세계 최강국이고 가장 경제가 발전한 미국과 맹방 관계를 유지했기 때문에 가능했다고 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옛날에도 그랬기 때문에 지금도 조금만 더 노력하면 계속 성장하고 안보도 유지되지 않겠나 하는데 여기에 우리의 맹점이 있습니다. 왜냐하면 국제환경이 바뀌었기 때문입니다.nbspnbsp6.25 전쟁 때 세계가 미·소로 양분되었듯이 지금은 미·중이 세계 패권을 갖고 경쟁하는 시대에 돌입했기 때문에 우리를 둘러싼 정세에 힘의 변화가 일어나고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분단된 상태로는 안보를 유지하기가 굉장히 어렵습니다. 미·일 동맹에 전적으로 참여하게 되면 중국과 대립하는 쪽으로 가야 되고, 그렇지 않게 되면 미·일 동맹에서 왕따를 당해서 안보적 불안이 생길 수 밖에 없는 어려운 국면으로 접어들고 있습니다.nbspnbspnbsp경제도 더 이상 성장이 어렵습니다. 장기 불황에 돌입하게 됩니다. 20년 전 일본이 밟았던 길을 우리도 밟을 수 밖에 없습니다. 우리는 선진국을 모방해 온 경제인데 이것은 그 모방에 성공을 해서 생긴 문제입니다. 모방을 해서 따라 배우기를 해서 여기까지 왔으니까 어느 정도 근접하면 성장 속도가 늦어질 수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저성장 국면에서 이제는 정체 국면으로 갈 수 밖에 없는 것입니다. 국제 환경도 이러한데 국내적으로도 인구 구성이 저출산 고령화 사회로 가면서 복지 비용이 늘어날 수 밖에 없는 구조적인 한계에 놓여 있습니다.nbspnbsp남이 볼 때는 대한민국은 잘 사는 나라라고 하는데 우리나라 국민들의 행복지수를 조사하면 거의 세계 최하위로 나옵니다. 못 먹고 살아서 행복도가 떨어지는 문제는 절대적 빈곤으로 오는 문제이지만 먹고 살만 한데 행복도가 떨어진다는 것은 결국 상대적 빈곤이 크다는 것을 말합니다. 즉 빈부격차가 유별나게 큰 사회라는 것입니다. 양적 성장에는 어느 정도 성공했지만 질적 성장이라고 할 수 있는 분배 문제가 제대로 해결되지 않고 있습니다. 이 문제를 해결하려면 첫째, 그 경쟁이 공정해야 합니다. 둘째, 경쟁에서 탈락하거나 경쟁에 참여하지 못하는 사람에 대한 안전망을 구축해 줘서 미래에 대한 불안을 줄여주어야 합니다.nbspnbsp그러면 분배 문제만 해결되면 되느냐? 국민 전체의 여론은 성장도 계속 더 지속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더 성장할 수 있는 해법은 없습니다. 그래서 국민들이 저성장을 받아들이는 자세가 우선 있어야 하고, 두 번째는 고성장은 안 되지만 저성장을 조금 극복할 수 있는 방법이 있다면 그 유일한 길은 통일을 통한 북한 개발입니다. 세 번째는 근본적인 해결책이 되려면 모방 경제에서 창조 경제로 바뀌어야 하는데 이것은 교육 문제와 사회 제도 등 모든 것이 바뀌어야 하기 때문에 몇십년이 걸리는 사회의 대혁신을 해야 가능하지 센터 하나 만들어놓고 창조하라고 독촉한다고 해결되는 문제가 아닙니다.nbspnbsp이런 측면에서 통일 문제는 안보에 있어서나 평화에 있어서나 국가 성장에 있어서나 해결을 안 하면 안 되는 위기 지점에 이르렀다고 볼 수 있습니다. 그래서 예전처럼 통일을 해도 되고 안 해도 되는 문제가 아니라 통일을 안 하면 경제가 정체되거나 후퇴하는 것을 감수해야 합니다. 그러나 조금 더 국가가 발전하고 더 희망을 갖겠다고 할 때는 통일 없이 다른 방법을 찾는 것은 거의 한계에 다달았습니다.nbspnbspnbsp예전에는 통일 문제가 같은 민족이니까 통일해야 한다고 하는 약간의 정서적이거나 이념적인 문제였다면 지금의 통일 문제는 전혀 차원이 다른 민족 생존의 문제이기도 하고 비전의 문제이기도 하기 때문에 통일을 주도하는 세력도 바뀌어야 합니다. 계급 계층적이거나 이념적으로 접근하는 세력이 아닌 국민 다수의 지지를 받는 새로운 주체가 형성되어야 합니다. 국민 다수의 지지를 받으려면 보통 시민들도 동의할 수 있는 운동 방식이 개발되지 않으면 안 됩니다.nbspnbsp원래는 나라가 위기에 처할 때마다 관병이 그 책임을 져야 하는데 관병이 책임을 못 질 때 주로 책임이 없는 백성이 일어나서 그 역할을 했던 것이 의병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 통일의 과제도 정부 안에 담당 부서가 지금 못 풀고 있기 때문에 그냥 내버려둘 수는 없고 국민이 힘을 합해서 문제를 풀어나가기 위해 통일의병이 만들어졌습니다. 또 지금처럼 평화적이기 보다 전쟁을 통해서라도 풀어나가려고 하는 이런 분위기는 엄청난 민족적 불행을 초래할 수 있기 때문에 우리는 조금 더 평화적이고 합법적인 방식으로 민족의 공익을 위하는 방향으로 가야 합니다. 이런 비전을 갖고 함께 해나갔으면 좋겠습니다.”nbsp스님의 말씀에 순천 지역 통일의병들은 큰 박수와 함께 감사의 마음을 전했습니다.nbspnbsp시간이 부족해서 한분만 추가 질문을 받았습니다. 스님의 말씀에 대부분 공감하지만 현재의 여당은 통일의 필요성에 대한 공감대가 부족한 것 같다며 이것은 어떻게 해야 하는지 물었고, 스님은 “진보와 보수, 여당과 야당의 구분을 넘어서서 누가 가장 통일을 구체적으로 실현가능하도록 추진하느냐를 기준으로 보아야 하고, 그런 세력에게 힘을 실어줘야 한다” 고 하면서 “진보는 보수를 설득해 가면서 남북관계를 풀어나가야 하고, 보수는 남북관계를 자꾸 대결의 국면으로 끌고 가지 말고 북한을 포용해서 통일로 가는 쪽으로 나가야 한다”고 강조를 해주었습니다.nbspnbsp강연 시간이 다 되어 급히 간담회를 마치고 곧바로 강연장으로 향했습니다.nbspnbsp▲ 오늘 강연이 열린 순천대학교 70주년 기념관nbsp순천대학교 70주년 기념관은 570여명이 가득 자리를 메운 가운데 좌석이 부족해서 계단과 무대 앞에도 많은 분들이 매트를 깔고 앉아야 했습니다. 먼저 통일의병을 소개하는 영상이 상영되었고, 이어서 오늘 강연장을 사용할 수 있게 힘써준 순천대 인문예술대학 김훈호 학장님의 환영 인사와 통일의병 호남본부장 이신님이 인사 말씀이 있었습니다. 이신 본부장님은 순천 시민들을 반갑게 환영해 주었습니다. nbspnbspnbsp▲ 환영 인사를 하는 통일의병 이신 호남본부장nbsp“우리가 일제 시대에 태어났다면 과연 독립운동을 할 수 있었을까요? 70년이 지난 지금 제2의 독립운동은 바로 통일운동입니다. 오늘은 통일의 미래를 그리면서 나는 무엇을 할 것인지 다짐하는 시간입니다. 스님의 말씀을 들으면서 우리가 어떻게 우리 시대 제2의 독립운동을 펼칠 것인지 깨닫는 시간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nbspnbsp이신 본부장님의 우렁찬 목소리와 함께 스님이 무대 위로 올라오자 순천 시민들은 우레와 같은 박수 갈채와 환호를 보내주었습니다.nbspnbspnbsp스님은 먼저 강연을 시작하기에 앞서 의병의 역사에 대해 자세히 설명해 주면서 통일의병의 의미와 역할에 대해 강조했습니다.nbspnbsp“의병이라는 말 속에는 많은 의미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첫째, 관병처럼 의무가 있는 사람들이 아니고 아무런 책임이 없는 사람들이 스스로 일어나서 한다는 자발성이 필요합니다. 둘째, 자기 목숨 걸고 자기 돈 들여서 참여하는데 지면 죽고 이기면 그 성과는 관병이 다 가져갑니다. 모함을 받아서 죽는 경우도 많습니다. 그래서 헌신성이 필요합니다. 셋째, 오직 나라를 위한다는 공공성이 필요합니다. 이런 의미를 갖고 있는 것이 의병입니다. 관병은 승리하면 승진하고, 반군은 승리하면 그 자리를 차지하지만, 의병은 승리하면 다시 집으로 돌아가서 농사를 짓든지 선비로 돌아가야 합니다. 지면 죽게 되고요. 관병은 죽으면 국립묘지에 안장이 되지만 의병은 죽어도 아무도 신경쓰지 않습니다. 그러니 누가 의병을 하려고 하겠어요? 그럼에도 이 나라의 주인은 국민이였기 때문에 2천년 동안 면면히 이어온 의병의 역사가 있는 것입니다.nbspnbspnbsp그래서 지금 분단 고착화의 위기와 동시에 통일을 할 수 있는 기회가 찾아왔습니다. 이럴 때 북쪽이든 남쪽이든 관병은 자기들의 지위에 급급해서 민족의 안전과 행복을 위해 제 역할을 못하고 있기 때문에 의병이 필요한 것입니다. 그들이 나라의 주인이 아니고 바로 우리가 나라의 주인이기 때문에 이 나라의 위기를 막아내고 국민에게 새로운 희망을 심어줄 책임이 우리에게 있습니다. nbspnbsp의병이라고 하니까 군인의 이미지가 크다고 얘기하시는데, 이 일은 지금 시민단체 수준으로 해서는 목표 달성이 불가능합니다. 총을 들거나 돌멩이를 들고 싸우는 것이 아니라 평화적으로 행동하지만 그 자세는 거의 군인의 자세로 해야 하기 때문에 의병이라고 부르는 겁니다. 그리고 오늘 강연이 끝나고 순천 지역에서도 통일시민학교가 열리니까 많이 참여해 주시기 바랍니다.”nbspnbsp스님의 통일의병에 대한 소개 덕분에 많은 분들이 통일시민학교와 통일의병에 대해 높은 관심을 보였습니다.nbspnbsp이어서 ‘즉문즉설과 통일 이야기가’ 가 시작되었습니다. 스님이 “무엇이든 물어보세요” 라고 말하자 여기저기서 손을 들고 질문이 이어졌습니다. 총 4명이 질문을 했는데, 모두 개인 고민이 아닌 통일 문제에 대해 질문을 해서 오늘은 온전히 통일 강연으로 진행이 되었습니다. nbspnbspnbsp한 청년은 우리나라의 부패한 정치인들과 북한의 부패한 정치인들이 만나서 통일을 하게 되면 나라가 더욱 혼란스러워지지 않을까 걱정이 되는데, 혼란을 줄이려면 어떻게 통일을 해야하는지 물었고, 한 중학교 교사는 요즘 아이들은 북한을 아주 싫어하고 남북의 지도자들도 통일을 원하지 않은 것 같아서 자신은 평화주의자임에도 불구하고 통일을 위해서는 투쟁을 해야 할 것 같은데 어떤 투쟁을 해야 하는지 물었고, 통일을 위해서 가장 시급히 해결해야 할 과제는 남남갈등이라고 생각하고 영남권과 비영남권이 양분되어 있어서 영남권이 아니면 대권도 가지지 못하는 현실에서 남남 갈등과 지역 간 격차를 해소하기 위한 방안이 무엇이 있을지 물었습니다. 각각에 대해 스님은 다양한 비유를 들어가며 명쾌한 답변을 들려주었습니다.nbspnbsp오늘은 그 중에서 첫 번째 질문자인 평화 통일이 어려울 것 같아 걱정이라는 중학교 학생의 질문을 소개합니다.nbspnbsp“안녕하세요, 저는 매주 교육청에서 역사와 통일에 대해 배우는 중학생입니다. 매주 통일 토론을 할 때마다 통일에 대해 찬성 측에서 웅변했는데 최근 북한의 지뢰 도발 사건이나 표준시 변경 등 하는 말이나 행동을 보면 평화 통일이 힘들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요. 스님은 어떻게 생각하세요?”nbspnbsp“평화 통일이 힘들다면 질문자는 전쟁을 통해서 통일하자는 거예요?”nbsp“네, 그래야 할 것 같아요” nbspnbsp“하하하. 세네요. 힘이 세면 폭력에 대한 유혹이 있습니다. 나빠서 그런 게 아니라 인간 모두에게 있는 거예요. 엄마와 아이가 말다툼을 하다가 엄마가 말을 안 들어주면 아이는 ‘엄마를 때려버릴까’ 하는 생각을 안 해요. 그런데 엄마는 애가 말을 안 들으면 어떻게 해요? ‘이게 엄마한테 대들어’ 이러면서 때리려 들어요.nbspnbsp또 아내와 남편이 말다툼을 할 때도 말이 안 통한다고 아내가 남편을 때려버리는 경우는 별로 없어요. 그런데 말로 싸우다가 안 될 때 주로 주먹을 휘두르는 건 남자죠. 그러면 여자 입장에서는 굉장히 억울하죠. 말로 졌으면 항복을 해야 하는데 반칙을 하잖아요. 그런데 인간의 심리가 어떠냐 하면, 말로 안 되면 자기에게 있는 다른 수단인 힘을 동원해요. 그래서 남자 입장에서는 하나도 반칙이란 생각이 안 들어요. 이걸로 안 되면 저걸로라도 대응하려는 거지요. 가정사에서도 이래요. 사랑하는 부모 자식 간이나 부부 지간에도 갈등이 생겼을 때 힘이 있는 자는 힘을 가지고 제압하려는 유혹이 생겨요.nbspnbsp그런데 하물며 이 세상사는 말할 것도 없죠. 그러니 친구 지간에도 이야기하다 갈등이 생겼을 때 강한 쪽에서는 늘 물리력을 동원해서 상대를 제압하려는 유혹을 느끼게 되는 것이죠. nbspnbspnbsp남북 간에도 보면 분단이 되고 5년이 지난 1950년 당시에 남과 북 중 어느 쪽이 더 힘이 셌을까요? 당시에는 북쪽이 더 강했기 때문에 북은 통일을 힘으로 밀어붙여서 하려고 하는 유혹이 생겼어요. 남쪽은 약하기 때문에 그런 생각을 할 수가 없었어요. 그래서 남쪽은 자기 체제를 지키려는 방어적 입장이였고 북쪽은 공격적 입장이었죠. 전쟁이 시작된지 한 달 만에 부산 근교를 제외하고 모두 점령할 정도였으니 자기들은 밀어붙일만 하다고 충분히 생각했겠죠. 그런데 여기에 미국을 고려하지 않았어요. 남북만 보면 이 판단이 맞았지만 북한은 국제정세라는 걸 못 봤어요. 그러니 미국이 참여하면서 결국 세계 최강국과 싸우게 되어 밀릴 수밖에 없었잖아요.nbspnbsp그러면 38선까지 침략군을 물리쳤으면 멈춰야 하잖아요? 도둑이 집에 들어왔으면 쫓아내는 데서 끝나야 하잖아요. 그런데 힘이 강하니까 또 유혹을 느끼는 거예요. 그래서 쫓아내는 데서 끝나지 않고 밀고 올라간 거예요. 밀고 내려올 때는 적화통일이었고 밀고 올라갈 때는 승공통일 또는 북진통일이라고 그랬잖아요. 그런데 이번에는 중국이 ‘3.8선 위로 밀고 올라오지 말라. 밀고 올라오는 것은 부당하다’고 몇 번을 경고했어요. 그런데 힘이 있으니까 이 말이 귀에 안 들리죠. 그래서 압록강까지 밀고 올라가니까 중국이 백만 대군으로 개입한 거예요. 그래서 다시 밀려내려왔죠. 그러니 중국은 한국 전쟁을 뭐라고 부릅니까? 항미원조전쟁이라고 하잖아요. 자기들은 정당한 전쟁이라고 말하는 거예요. 그래서 한국전쟁에 대한 중국 측의 사과는 없어요. 중국이 개입할 때는 북쪽이 남쪽을 침략한 처음부터 개입한 게 아니에요. 남쪽이 38선을 밀고 더 위로 올라갈 때 개입했기 때문에 이것은 미국의 침략에 대항해서 원조를 한 것이다, 그러니 항미원조전쟁은 정의로운 전쟁이었다고 하는 겁니다.nbspnbsp그러니 우리는 처음에 북쪽에서 남쪽으로 밀고 내려온 것으로 6.25 전쟁을 평가하고, 북쪽은 자기들이 그런 건 빼놓고 뒤에 밀고 올라간 것만 가지고 계속 평가를 하니까 미국이 밀고 올라온 것을 막아냈다 해서 뭐라 그래요? 우리는 휴전기념일이라고 하지만 북쪽에서는 승전기념일이라고 해요. 북쪽에서는 처음에 흡수통일하려고 밀어내려온 것에 비추어 보면 이 전쟁은 실패한 거예요. 그러나 자기들의 정당성을 주장하려고 하다 보니 세계최강국인 미국의 침공을 막아냈다 해서 승전기념일이라고 말하는 거예요.nbsp힘이 있다고 해서 이렇게 오판을 하니까 결과적으로 밀고 내려온 것도 실패가 되었고, 밀고 올라간 것도 실패가 되었고, 이 전쟁 기간 동안 280만 명의 군인과 민간인이 죽었어요. 한국군, 북한군, 중국군, 미국군, 여러 나라에서 참전한 유엔군과 민간인 등 많이 죽었어요. 부상당한 사람은 이루 셀 수가 없고 이산가족은 천만 명이 되었습니다. 물론 재산피해도 이루 말할 수가 없었어요. 제대로 서 있는 건물이 하나도 없다 할 만큼 초토화되었어요. 그러면 학생은 그런 전쟁을 한번 해보자는 거예요?”nbsp“독일은 흡수통일을 했잖아요. 그렇지만 동독과 서독의 경제적 격차 보다 남과 북의 경제적 격차가 훨씬 더 크다고 하잖아요. 그렇다면 우리는 흡수통일이 힘들지 않을까 싶거든요.”nbspnbsp“지금 경제력이 남쪽이 북쪽보다 몇 배 더 큰 지 알아요? 50배예요. 군사비는 북쪽이 많이 쓸까요, 남쪽이 많이 쓸까요?”nbsp“남쪽이요.”nbsp“남쪽이죠. 게다가 북쪽은 외국과 군사동을맹 맺은 데가 없이 혼자 뿐이고, 남쪽은 세계 최강국인 미국과 군사동맹을 맺고 있죠. 그러면 군사적 위협을 북쪽이 많이 느낄까요? 남쪽이 많이 느낄까요?nbspnbsp사람이 지나가다가 뱀을 밟았어요. 그래서 뱀이 사람의 다리를 물었다고 생각해봐요. 그럴 때 뱀이 놀랐을까요? 사람이 더 놀랐을까요? 사람 생각에는 사람이 더 놀란 것 같지만 실제로는 뱀이 더 놀랐겠지요. 뱀이 사람을 문 것은 잡아먹으려고 물었을까요? 자기를 방어하려고 물었을까요?”nbspnbsp“방어하려고요.”nbsp“그러니 우리가 뱀이 나쁘다고 말하는 것은 사람의 생각이에요. 뱀은 자기를 방어하는 거예요. 벌집 근처에 갔다가 벌에게 쏘였다고 해서 벌이 나쁘다고 하는데, 벌이 사람을 더 겁낼까요? 사람이 벌을 더 겁낼까요?”nbspnbsp“벌이 사람을 더 겁내겠죠.”nbsp“그것처럼 지금은 남한이 경제력도 더 강하고, 한미동맹을 고려하면 군사력도 더 강하고, 또 정치적으로도 북한보다는 남한이 더 안정되어 있어서 6.25 전쟁이 일어날 때와 완전히 뒤바뀌어 있어요. 그래서 북한은 계속 ‘우리를 건드리지 마라. 건드리면 너희들도 같이 죽는다’고 하면서 자기 체제 방어에 초점이 맞춰져 있습니다. 이렇게 북한이 합리적이지 못한 행동을 한다고 해서 그것을 평화적 통일이 어렵다는 쪽으로 판단하는 건 너무 단편적인 시각입니다.nbspnbsp저러니까 통일을 못한다는 판단은 할 수 있어요. 질문자가 통일론자인데 평화적 통일이 어렵다고 보면 남은 길은 전쟁 통일 밖에 없어요. 그러나 전쟁 통일은 엄청난 위험을 자초하기 때문에 절대로 해서는 안 됩니다.nbspnbsp만약 질문자가 평화적 통일론자에서 후퇴하려면 전쟁 통일론으로 갈 게 아니라 통일을 하지 말자는 쪽으로 가야 합니다. 그러면 자기는 평화적 통일이 안 되면 전쟁을 해서라도 통일해야 된다는 생각이예요? 그렇지 않으면 평화적 통일이 어렵다면 통일을 하지 않는 것이 낫겠다는 생각이예요? 어느 쪽이예요?”nbspnbspnbsp“저는 전쟁을 통해서라도 통일을...nbsp데미안이라는 책을 봤는데 전쟁이나 죽음은 새로움을 탄생시킨다고 하면서 그래서 새는 알을 깨고 나오기 위해서 발버둥을 치는 것이라고 하더라고요.”nbsp그러면 자기가 먼저 실험으로 죽어 보지요. 나는 안 죽으려고 하면서 남은 죽어도 된다고 하는 그런 얘기는 옳지 않아요. 군대 지휘관이 자기가 제일 먼저 휴전선 앞에 가서 총을 들고 전쟁을 하자고 한다면 저도 동의를 하겠는데, 자기는 후방에 있으면서 남의 집 젊은 아이들 앞세워서 전쟁하자고 얘기를 하는 것이니까 저는 동의를 못하겠어요. 자기는 안 죽는 것을 전제로 하고 있으니까요. 한달만 바짝 밀어붙이면 이길 수 있다고 하는데 그 한달 동안 많은 사람이 죽는 것은 누가 책임질 건가요? 죽은 아들의 엄마가 생각할 때는 전쟁에서 이기는 것이 무슨 소용이 있겠어요?nbspnbsp적이 침공해 올 때 목숨을 걸고 막아야 한다는 것은 아주 좋아요. 그런데 지금 질문자처럼 전쟁을 해서라도 통일을 해버려야 한다는 것은 굉장히 위험한 발상이예요. 중학생이 벌써부터 그렇게 극단적으로 생각하면 어떡해요? nbspnbspnbsp“아, 제가 생각을 바꾸어야겠군요.” nbspnbspnbsp“아무리 통일이 좋아도 전쟁으로 통일을 해서 얻을 이익은 아무것도 없습니다. 첫째, 남북 간에 전쟁을 하면 남한이 이길 확률은 높다고 생각해요. 그러나 어느 정도 피해를 입을 거냐를 생각하면 북한이 갖고 있는 재래식 살상 무기는 우리에게 치명적 피해를 입힐 만큼의 역량을 갖고 있다는 것입니다. 즉 자폭 능력이 있다는 것입니다. 이판사판이 되면 질 때 지더라도 원자력 발전소라도 미사일로 때려버리고 질 것 아니겠어요? 그러면 이기면 뭐해요? 엄청난 손실이 생기는데요.nbspnbsp삼성전자, 현대자동차, LG전자가 다 폭격을 당하고 전쟁에서 이겼다고 할 때 그렇게 이겨서 뭐할 거예요? 지금은 우리가 중국보다 앞서 있는데 이런 산업들이 파괴가 되면 다시 복구하는 동안에 중국이 더 앞서가게 되겠죠. 그렇게 되면 북한에 대해서 이긴 것은 맞는데 주변국과 비교해 볼 때 우리는 뒤쳐져 버리게 됩니다.nbspnbspnbsp유럽의 패권을 갖기 위해 독일과 프랑스가 서로 싸웠는데 전쟁 끝나고 보니까 그 패권이 소비에트와 미국으로 가버린 겁니다. 전쟁에서 이겨봤자 아무런 의미가 없는 것이 되어버렸습니다. 그래서 철천지 원수였던 독일과 프랑스는 다시 협력을 한 겁니다. 그것이 바로 독프 석탄 철강 경제 공동체에서 베네룩스 삼국을 합쳐서 유럽 경제 공동체로 나아가서 오늘날 유럽연합으로 발전한 것이죠. 그래서 전쟁은 어리석은 행동입니다. 이기기는 이기는데 얻는 이익이 없다는 겁니다.nbspnbsp그리고 사실은 이길 가능성도 없습니다. 남북만 비교하면 위험 부담이 크긴 하지만 남한이 이길 가능성이 있어요. 그러나 중국이 볼 때는 어떨까요? 북한이 자발적으로 스스로 남한과 협의해서 통일을 해버리면 중국이 개입할 여지가 없어지지만, 남한이 군사적으로 밀어붙여서 통일을 하겠다고 하면 중국이 개입할 수 밖에 없습니다. 왜냐하면 중국이 남한이 중심이 되어서 통일하는 것을 용납하려면 한미동맹을 중단해야 합니다. 통일한국이 미·중 사이에서 완전히 중립 지대로 온다는 것만 보장이 되면 중국도 충분히 통일에 동의할 겁니다. 그런데 우리가 그렇게 될 수 있나요? 지금의 한·미 동맹을 변화시키는 건 어려워요. 그래서 한미동맹과 주한미군이 주둔하는 이 상태에서 남한이 북한을 힘으로 통일한다는 것도 중국의 동의를 얻는 게 절대로 불가능해요. 이것은 중국의 개입을 불러와서 엄청난 손실을 낼 뿐만 아니라 결국 휴전 상태로 다시 돌아가는 결과를 가져옵니다. 그러니 학생이 다시 생각해 보세요.”nbsp“제가 생각이 짧았네요. 그러면 저 같은 생각을 다른 청소년들도 하지 않도록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nbspnbsp“자기가 통일하는 것이 좋다고 생각하는 통일론자라면 만약에 평화적 통일이 안 된다면 ‘나는 평화가 우선이지 통일이 우선은 아니다’ 하는 자세를 가져야 합니다. 즉 한 발만 후퇴해야지 열 발을 후퇴하면 안 된다는 겁니다. 통일이 우선이지만 그게 안 된다면 평화라도 지켜야 하는 겁니다. 지난 50년 간 이룩해 놓은 우리의 자산과 인명을 우선 지켜낸 상태에서 앞으로 더 잘 되기 위해 통일을 해야 합니다. 더 잘 되기 위한 통일이 불가능하다면 현재라도 지켜야 하는데 현재까지 말아먹는 전쟁을 하는 것은 올바른 행동이 아닙니다. 통일은 우리에게 미래이고 희망이지만 통일 지상주의자가 되면 화를 자초할 수가 있습니다.”nbsp“제 꿈이 정치인이였는데, 어리석은 생각을 하지 않게 해주셔서 감사합니다.”nbspnbsp“항상 우리는 평화를 소중하게 여겨야 하지만 평화 지상주의자가 되면 안 됩니다. 평화 지상주의자는 평화만 유지된다면 통일이 필요없다고 생각하는 사람입니다. 그러면 분단 고착화로 가게 됩니다. 분단이 되든 어떻게 되든 평화만 유지되면 된다는 생각이죠. 북한에 친중 정권이 들어서서 모든 안보를 중국이 커버해 준다면 북한은 개혁개방을 할 수가 있어요. 그러면 북한의 인권도 좋아지고 경제도 좋아지고 남북 간의 전쟁의 위협도 없어질 겁니다. 아마 전 세계가 다 좋아할 거예요. 그러나 대한민국은 그것을 받아들이면 안 돼요. 왜냐하면 통일의 꿈이 없어지기 때문입니다. 전쟁 보다는 나은데 그러나 우리는 평화를 원하지만 나아가 통일을 추구해야 합니다.nbspnbspnbsp우리는 평화를 딛고 통일을 원하는 것이지 평화만 원하는 것이 아닙니다. 평화만 원한다면 남북 양쪽에 독립국가가 들어서서 남, 북, 미, 중이 4자 회담을 해서 평화협정을 맺어버리면 평화는 유지될 수 있어요. 그러나 통일은 안 돼요. 그래서 평화협정을 맺을 때도 남북이 당사자가 되고 반드시 미중이 보증을 서주어야 합니다. 보증을 안 서주면 남북 간의 불신 때문에 보장이 안되니까요. 그렇게 평화를 먼저 이뤄내고 그것을 딛고 통일로 나아가는 평화를 우리가 가져야 합니다. 그래서 통일 지상주의는 잘못하면 전쟁을 몰고 올 수 있고, 평화 지상주의는 분단을 고착화시킬 위험이 있기 때문에 평화는 우선적으로 중요하지만 우리는 통일을 향한 꿈을 잃으면 안 됩니다. 평화를 유지하면서 통일을 추구해 나가야 합니다. 통일이 안 된다고 통일을 포기하거나 통일을 위해서 평화를 포기하거나 하는 이런 태도는 단견이 될 수 있습니다.”nbsp스님과의 문답을 통해서 질문한 학생은 자신의 생각을 바로잡을 수 있었지만 요즘 중학생들이 전쟁의 필요성에 공감한다는 사실은 청중들 모두에게 큰 충격을 주기도 했습니다.nbspnbsp질문한 학생이 전쟁은 절대로 안 된다는 사실을 확실하게 자각하게 되자 청중들은 큰 박수로 격려를 해주었습니다.nbspnbsp모든 질문에 대해 답변을 마치니 벌써 2시간 20분이 흘렀습니다. 마칠 시간이 되자 스님은 “질문을 4개 밖에 답변을 못해줘서 미안하다”고 하면서 “9월부터 시작하는 통일시민학교에 참여하셔서 조금 더 깊이 있는 공부를 해주시고요. 국민이 각성해서 큰 변화를 가져올 수 있도록 행동해 주시기 바랍니다” 고 당부한 후 강연을 모두 마쳤습니다.nbspnbsp순천 시민들은 열정적으로 강연을 해준 스님에게 다시 한 번 큰 박수로 감사의 마음을 전했습니다.nbspnbspnbsp마지막으로 강연에 함께 참석한 사랑어린이학교 학생들이 모두 무대 위로 올라와 스님과 함께 손을 맞잡고 ‘우리의 소원은 통일’ 노래를 합창했습니다. 청중들도 모두 기립하여 함께 노래를 부르며 통일을 향한 간절한 마음을 모았습니다. 눈시울이 붉어지고 가슴이 뜨거워지는 순간이였습니다.nbspnbspnbspnbsp이어서 사회자가 9월 16일부터 시작하는 순천 통일시민학교 안내를 해주었고 강연장을 나가면서 많은 분들이 참가 신청서를 받아가고 통일의병 후원회원 가입도 많이 해주었습니다.nbspnbspnbsp로비에서는 책 사인회가 열렸고 강연을 들은 많은 분들이 ‘새로운 100년’ 책을 구입하여 스님에게 직접 사인을 받았습니다. 한분 한분이 스님과 눈을 마주치며 오늘 강연한 내용에 대해 거듭 감사 인사를 했고, 스님도 환한 웃음으로 화답했습니다.nbspnbspnbspnbsp마지막으로 오늘 강연 준비를 위해 곳곳에서 수고한 통일의병 봉사자들이 다함께 모여 기념 사진을 찍었습니다. “통일 의병 의병 의병” 하는 목소리가 로비에 쩌렁쩌렁하게 울려퍼졌습니다. 순천 지역에서도 오늘 강연이 씨앗이 되어 통일운동의 새로운 바람이 일어나기를 기원해 봅니다.nbspnbspnbsp스님은 강연장을 빠져나오면서 배웅을 나온 통일의병 호남본부 회원들에게 “수고많았다”고 격려를 해준 후 “마음껏 해보라”고 용기를 북돋워 주었습니다.nbspnbspnbspnbsp밤 10시 30분 무렵 순천을 출발한 스님을 새벽 1시가 다 되어서 두북에 도착해 오늘 일정을 모두 마쳤습니다.nbspnbsp내일은 아침부터 두북에서 농사 일을 한 후 저녁에는 포항으로 가서 저녁 7시부터 김제동씨와 함께하는 청춘콘서트에 참석할 예정입니다.nbspnbsp ※ 9월부터 11월까지 전국 방방곡곡에서 nbsp2015 법륜 스님의 즉문즉설과 통일 이야기를 주제로 강연이 펼쳐집니다. 우리 동네 강연 일정을 확인하시고 많은 참여 바랍니다. 아래 배너를 누르고 사전 신청을 하세요.nbsplt사전 신청하기gtnbspnbsp
2015.9.2 안산 통일의병 강연
nbsp안녕하세요. 오늘 스님은 ‘새로운 100년을 여는 통일의병’에서 주관한 안산 지역 주민들을 위한 즉문즉설 강연을 했습니다.nbspnbsp오늘도 새벽 4시에 일어나 예불과 천일결사 기도를 일찍 마친 스님은 오전 7시부터 하루 종일 평화재단에 머물며 연이어 회의와 미팅을 가졌습니다.nbspnbsp▲ 새벽 예불nbsp오후 5시10분에는 서울 정토회관을 출발하여 오늘 강연이 예정된 안산으로 향했습니다. 지난달 개원한 안산 JTS 다문화센터에 들러 잠시 휴식을 취한 후 6시 40분에 오늘 강연이 열리는 안산 올림픽기념관에 도착했습니다.nbspnbsp▲ 안산 올림픽기념관nbspnbsp500여명이 가득 자리를 메운 가운데 저녁 7시가 되자 사회자의 멘트와 함께 ‘통일의병’을 소개하는 영상이 상영되고 이어서 통일의병 사무총장을 맡고 있는 백왕순님이 나와서 통일의병에 대해 간단히 소개를 했습니다.nbspnbsp▲ 통일의병 백왕순 사무총장nbspnbsp“얼마전 휴전선에서 큰 일이 있었죠? 이렇게 전쟁 위협이 도사리고 있는 상황에서 대한민국의 발전은 어렵습니다. 저희 통일의병은 남북의 평화를 이루기 위해서 일반 국민들이 통일의 필요성을 느끼고 목소리를 내어야 한다는 생각으로 설립되었습니다. 지금 전국에서 통일시민학교를 열고 있는데, 안산에서도 9월 7일부터 통일시민학교를 활기차게 열어갈 예정이니 통일에 기여하고 싶은 분들의 많은 참여를 바랍니다.”nbspnbsp▲ 9월 7일부터 시작하는 안산 통일시민학교nbsp안산에서도 통일의병들이 많이 늘어나서 통일의 열기가 무르익었으면 하는 바램을 가져보았습니다.nbspnbsp이어서 법륜 스님의 통일 활동을 담은 영상이 상영되고 이어서 큰 박수와 함께 스님이 무대 위로 올라왔습니다.nbspnbspnbsp오늘 강연을 하게 된 안산 지역은 얼마 전 500일이 지난 세월호 참사로 인해 가장 큰 아픔과 고통을 겪었던 곳입니다. 그래서 스님은 강연을 시작하기에 앞서 세월호 참사 희생자들을 위해 다함께 묵념을 하자고 하였습니다. nbspnbsp“지난해 봄에 참으로 가슴 아픈 일을 당했습니다. 하지만 그 어려움을 극복하고 오늘에 이르렀습니다. 그러나 아직도 세월호 참사의 원인이 국민들이 생각하는 만큼 속시원히 밝혀지지 못함으로 인해서 희생자 가족들의 애달픔은 아직도 해결되고 있지 않습니다. 강연을 하기에 앞서 세월호 침몰 사고로 인해서 숨진 이들의 영가를 위해서 묵념을 하겠습니다. 묵념....”nbspnbsp▲ 강연에 앞서 세월호 희생자들을 위해 묵념을 하고 있는 스님nbsp강연장은 순식간에 숙연해졌습니다. 정부의 전향적인 조처로 희생자 가족들의 애달픔이 하루 빨리 누그러지기를 간절히 기도해 봅니다.nbspnbsp강연을 시작하면서 스님은 즉문즉설은 사물의 전모를 보는 통찰력으로 문제를 해결해나가는 것이라고 하면서 그 원리를 설명해 주었습니다.nbspnbsp“여러분들이 의문이 있는 것을 물어도 좋고, 괴로운 것이 있으면 얘기해도 좋고, 무엇이든지 얘기를 나누어 보겠습니다. 정답이 있는 것이 아니에요. ‘그렇게도 생각할 수 있지만 저렇게도 생각할 수 있지 않을까요?’ 이렇게 생각을 한번 바꿔보는 겁니다. 그러면 ‘어, 이렇게 생각할 때는 큰 문제였는데 저렇게 생각하니 별 일이 아니네’ 할 수도 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저와 대화를 하다가 ‘아무 일도 아니였네요’ 라고 말합니다. 왜 우리는 아무 일도 아닌 것 때문에 괴로워하고 살까요? 그것을 ‘사로잡힘’이라고 합니다.nbspnbspnbsp여러분들은 사물의 앞면만 보고 ‘문제다’ 했는데, 제가 ‘뒷면은 어때요?’ 라고 물으니 ‘뒷면은 괜찮아요’ 하는 것입니다. 또 ‘왼쪽이 문제다’ 하는 사람에게는 ‘그럼 오른쪽은 어때요?’ 라고 물으니 ‘오른쪽은 괜찮아요’ 하는 것입니다. nbsp‘아래가 문제다’ 하는 사람에게는 ‘그럼 위는 어때요?’ 라고 물으니 ‘위는 괜찮아요’ 하는 것입니다. 이런 식으로 위만 보지 말고 아래로 봐라, 왼쪽만 보지 말고 오른쪽도 봐라, 앞만 보지 말고 뒤도 봐라, 이렇게 말해주는 겁니다. 이것을 ‘총체적으로 본다’ 라고 합니다. 사물의 단면만 보는 것을 편견이라고 하고, 총체적으로 보는 것을 통찰력이라고 합니다. 이 통찰력을 지혜라고 합니다. 이렇게 통찰력을 갖게 되면 문제가 해결되어 버립니다.nbspnbsp그리고 우리는 상대에게 만병통치약이 되라는 것처럼 모든 것을 요구합니다. 한 남자와 결혼을 하면 밤에는 야성적이 되라고 하고, 짐을 나를 때는 포터가 되라고 하고, 돈이 필요할 때는 돈 잘 버는 사업가가 되라고 하고, 답답할 때는 다정한 친구가 되라고 하고, 이렇게 한 사람에게 온갖 것을 요구합니다. 그래서 여러분들은 남이 볼 때는 괜찮은 사람인데도 자기에게 필요한 것을 안 해준다고 온갖 불평을 하는 겁니다.nbspnbsp그러나 조금 다른 각도에서 바라보면 고뇌가 아닌 것이 참 많습니다. 북한을 바라볼 때도 문제가 참 많아 보이지만 다르게도 볼 수 있어요. 북한이 지금 남한 말을 잘 안 듣잖아요. 그래서 남한이 보기에는 골치가 아프죠. 그런데 북한은 남한 말만 안 듣는 것이 아니라 미국 말도 안 들어요. 미국 말만 안 듣는 것이 아니라 중국 말도 안 들어요. 어떻게 보면 진짜 골치 아픈데 그러나 통일을 하는데는 굉장히 유리합니다. 왜냐하면 북한은 누구 말도 안 듣고 자기가 자기 의사결정을 할 수 있으니까 통일을 하려고 하면 북한하고만 협상하면 끝이잖아요. 그러나 한국은 중국 말도 잘 듣고 미국 말도 잘 들으니까 한국만 설득하는 것으로는 안 됩니다. 미국이 반대하면 안 되고 중국이 반대하면 안 되니까요. 그래서 이런 각도에서 보면 문제인데 저런 각도에서 보면 좋은 점도 있는 거예요.nbspnbsp앞으로 북한이 중국 말을 잘 듣게 되면 좋은 점도 있겠지만 통일을 하기 위해서는 중국의 허락을 받아야 됩니다. 그러나 중국의 허락을 받기가 쉬울까요? 중국은 우리보고 미국으로부터 독립해서 나오라고 하기 때문에 미국이 반대하게 됩니다. 그래서 해결책이 없게 됩니다. 그러니까 어떤 문제든 이런 점이 있고 저런 점이 있고 동시에 두가지를 갖고 있습니다. nbspnbspnbsp가장 안 된다고 할 때가 가장 될 때에 근접한다는 말이 있습니다. 가장 늦었다고 할 때가 가장 빠른 때이다는 말도 있습니다. 왜 이런 일이 벌어질까요? 그것은 사물에는 이런 두가지 속성이 함께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밤이 점점 깊어질수록 새벽이 다가오는 것입니다. 이것이 사물의 이치입니다. 이런 이치는 통일 문제든 정치 문제든 인생 문제든 어디든 다 똑같이 적용됩니다. 지혜라는 것은 신통력이 아니라 이런 이치를 볼 수 있는 통찰력입니다. 통찰력은 한 면만 보지 않고 전모를 보는 것입니다.”nbsp스님은 사물의 전모를 보는 것이 통찰력이고 지혜라고 쉽게 설명해 주었지만 실제 삶 속에서 부딪한 문제를 그렇게 보기란 쉬운 일은 아닐 것입니다. 그래서 이렇게 스님께 찾아와 계속 질문을 하는 것이겠죠.nbspnbsp스님이 “자, 그럼 시작해보죠.” 라고 말하자 질문을 하기 위해 여기저기서 손을 들었습니다. 총 6명이 스님께 질문을 했습니다.nbspnbsp세 딸을 둔 엄마는 딸들이 대한한공 회항 사건처럼 죄를 짓고도 벌을 받지 않거나 세월호 희생자 가족들처럼 고통을 당했지만 이해 받지 못하는 사람들을 보면서 왜 이런 일이 벌어지는지 질문을 하는데 어떻게 대답해 주어야 하는지 물었고, 한 여성 분은 남편이 평상시에는 예쁘다는 말을 안 해주면서 TV에 나오는 연예인을 보면서는 예쁘다는 말을 자주 하는 것을 보면서 너무 섭섭한 마음이 드는데 어떡해야 하는지 물었고, 중3 남학생은 흉부외과 의사가 되어서 가난한 나라 아이들을 돕고 싶은데 수학과 과학을 싫어하고 의사가 적성이 맞을지 걱정이 되어서 고민이라며 물었고, 20대 여성 분은 세월호 사건 이후로 나라가 우리를 지켜줄 수 없다고 느끼고 애국심이 사라졌는데 어떻게 해야 대한민국이 국민을 사랑하는 나라가 될 수 있는지 물었고, 청년 한 명은 남과 자꾸 비교를 해서 불행해지는 것이라는 말은 알겠는데 머리로만 아는 것 같고 실제 삶에 적용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구체적인 얘기를 듣고 싶다고 물었습니다. 스님의 각각의 질문에 대해 명쾌한 답변을 들려주었습니다.nbspnbspnbsp오늘은 그 중에서 통일에 대해 부정적인 주위 사람들을 어떻게 설득해야 하는지 묻는 직장인의 질문과 스님의 답변을 소개해 드리겠습니다.nbspnbsp“지난 달에 전쟁이 일어날 뻔한 상황이 있었을 때 회사 직원들과 얘기를 해보니 통일이 되는 것에는 동의하지만 본인들이 살아있는 동안에는 싫다고 말하더라고요. 죽은 뒤에 나중에 통일이 되었으면 좋겠다고 했습니다. 그러나 제가 생각하기에는 지금 정세를 봤을 때 빠른 시기에 통일이 되는 것이 좋다고 봅니다. 이렇게 통일에 부정적인 사람들에게 어떻게 얘기를 해주어야 하는지 잘 모르겠습니다. 평범한 직장인인 제가 어떤 일을 해야 통일에 도움이 될 수 있을까요?”nbspnbspnbsp“질문자는 통일이 되는 것이 좋다고 생각해요?”nbspnbsp“네. 통일이 되면 일단 땅이 넓어지고요. 지금 우리나라가 섬처럼 되어 있는데 대륙으로 나아가는 위치로 부상할 수 있고요. 재정적으로 국방비에 들어가는 많은 돈들을 다른 곳에도 쓸 수 있게 되니까 나라가 안정적으로 운영될 수 있을 것 같고요. 나라가 안정이 되니까 친일파나 외세의 침략에 휘둘리지 않을 것 같습니다.”nbsp“그렇게 얘기하면 되지요. 그렇게 얘기해 주었더니 상대가 어떻게 나오는지를 얘기해 주어야 제가 더 구체적인 답변을 해줄 수 있지요.”nbspnbsp“그렇게 얘기했더니 일단 세금을 많이 내어야 한다고 그러더라구요. 또 북한 사람들이 먹고 살기 힘들어서 남한으로 많이 넘어오게 될 것이고 그러면 많이 혼란스러워지게 되고 그 틈을 타서 북한 사람들이 무슨 짓을 할지 믿을 수가 없다고 얘기했습니다.”nbsp“일리 있는 얘기네요. 통일이 되면 세금을 많이 내야 하는 것도 맞는 얘기이고요. 북한 사람들이 남한으로 많이 넘어와서 혼란스러워지는 것도 맞는 얘기예요. 맞는 얘기는 맞다고 인정을 해주어야지요. 통일 지상주의자가 되어서는 안 됩니다. 전쟁을 통해서든, 나중에 못살게 되든지 간에 무조건 통일만 하면 된다는 식의 생각을 통일 지상주의라고 합니다. 요즘 젊은이들은 현명한데 통일 지상주의로는 설득이 되지 않습니다.nbspnbsp같은 민족이니까 통일해야 된다는 주장도 아버지 세대에는 통했는데 요즘 젊은 세대에게는 안 통해요. 따로 사는 것이 더 좋으면 따로 살고, 같이 사는 것이 더 좋으면 같이 살면 된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납득이 안 되는 얘기를 하는 것은 이제 의미가 없습니다. 솔직하게 얘기해보고 상대편의 이야기가 맞으면 맞다고 인정해주면서 대화를 하는 것이 중요합니다.nbspnbsp다만 이렇게는 얘기해 볼 수 있겠죠. 아이들 공부시킬 때 돈이 많이 들죠? 그런데도 왜 공부를 시키죠? 이 때 쓰는 돈은 소비로 생각해요 투자로 생각해요? 지금 내가 돈을 안 쓰고 모아놓았다가 나중에 아이들에게 1억을 물려주는 것보다 지금 아이들 공부시키는데 1억 쓰는 것이 아이들의 미래에 더 효과적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공부를 시키는 것이잖아요. 이렇게 우리가 돈을 쓸 때는 투자로 보는 것과 소비로 보는 것이 있습니다. 예를 들어 기생이 춤을 추려고 예쁜 옷을 산 것은 소비예요? 투자예요? 그건 투자입니다. 왜냐하면 이 옷은 더 많은 돈을 얻기 위한 수단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가정 주부가 화장품을 사는 것은 소비에 가깝습니다. 내가 가진 돈을 나를 아름답게 하는 데에 그냥 쓰는 것이니까요. 물론 남편이 한눈 파는 것을 잡기 위한 투자라고 볼 수도 있겠지만요. nbspnbspnbsp마찬가지로 북한을 개발하려면 돈이 듭니다. 만약 북한에 철도를 놓는다면 이것은 소비일까요? 투자일까요?”nbspnbsp“투자입니다.”nbspnbsp“북한에 나무를 심으려면 돈이 드는데 이것은 소비일까요? 투자일까요?”nbspnbsp“투자입니다.”nbspnbsp“북한에 고속도로를 놓는 것은 어때요? 일본은 우리나라를 뺏어서 남의 나라에 신작로도 놓고 철도도 놓았죠. 이건 우리나라를 위해서가 아니라 자기들을 위해서 한 것이죠. 남의 나라를 뺏어서 나중에 다시 돌려줘야 할 나라에도 철도 놓고 도로 놓고 공장 짓고 하는데, 북한에 도로 놓고 철도 놓고 공장 짓는 것은 투자가 될까요? 소비가 될까요? 북한은 우리나라가 되니까 다시 돌려줘야 하는 것도 아니잖아요. 북한 개발 비용을 소비 비용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통일 비용이 자꾸 논란이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북한 개발 비용은 투자 비용입니다. 소비 비용은 빚을 내서 쓰면 안 됩니다. 나중에 부도가 나니까요. 그러나 투자 비용은 나중에 이익을 얻어서 갚으면 되기 때문에 우리 돈이 부족하면 외자를 빌려와서 해도 됩니다. 지금 전세계적으로 투자하려고 하는 돈은 남아돌고 있거든요. 그래서 걱정할 것이 하나도 없어요. 그러나 이것을 소비 비용으로 자꾸 계산을 하면 사람들이 겁을 먹게 됩니다. 그래서 통일 비용을 이야기 할수록 반통일적 효과를 초래하게 됩니다. 그러나 돈이 드는 것은 맞지만 그것은 투자이기 때문에 걱정할 것이 없는 문제입니다.nbsp예를 들어 무산 철광을 개발하려면 돈이 들겠죠? 그러나 남의 나라에서 사오는 것에 비해 이것은 개발 비용만 들면 원자재는 공짜잖아요. 그래서 중국은 무산 철광에 10억 달러를 투자해서 30년을 채굴권을 계약했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통일이 되면 10억 달러를 줄 필요도 없어지잖아요. 지금 북한의 지하자원은 많게 잡으면 8조 달러, 적게 잡아도 4조 달러는 된다고 해요. 남한의 30배50배 되는 양을 가지고 있어요. 일본은 총칼로 뺏어서라도 차지하려고 하는데 북한은 본래 우리 것을 다시 찾는 것이지요. 평화적으로 합의해서 통일한다는 것은 뺏는 것과는 전혀 다른 얘기잖아요. 그런데 왜 그 어마어마한 지하자원을 포기하려고 해요?nbspnbsp그리고 북한 주민 2000만명을 먹여 살려야 한다고 보면 소비가 됩니다. 그러나 지금 개성공단에서 일하는 북한 주민들에게 한달에 임금 150달러를 주고 있습니다. 중국에서도 이렇게 값싼 노동력은 없습니다. 북한 주민들의 값싼 노동력은 어마어마한 재산입니다. 만약 이 사람들이 외국에 노동자로 나간다면 중국에 가도 500달러를 받을 수 있고, 다른 나라에 가면 1000달러까지 받을 수 있습니다. 계산을 어떻게 하느냐의 문제입니다. 잘못된 계산 때문에 통일을 부담이라고 표현하는 것입니다.nbspnbsp그래서 북한 개발을 위해서는 돈이 드는데 굳이 외국 돈 빌려서 이자까지 부담할 필요 없잖아요. 우리 돈으로 쓰는 게 제일 좋은데 그럴려면 우리가 세금을 좀 더 내야지요. 세금을 내어서 개발하면 이득이 그만큼 많이 생기는 겁니다. 그러나 개인만 생각하면, 내는 세금은 10만원 늘었는데 그로 인한 이득은 금방 눈에 보이지 않죠. 그러니 저항이 있을 수 밖에 없겠죠. 그래서 이 문제는 국민과 토론을 하고 설득을 해서 국민의 부담을 어디까지 할 수 있는지를 봐야 합니다. 개인이 통일 비용으로 10년 간 얼마를 내게 되면 북한 개발로 환수되는 이익이 어느정도 돌아오는지를 계산해 보면 되죠. 10년 동안 100만원을 내었더니 나중에 500만원이 돌아온다고 하면 낼 만 하잖아요. 통일을 하겠다고 입장이 정해지면 계산을 해서 이렇게 지불하면 됩니다.nbspnbspnbsp그런데 통일을 안 하는 것이 이로운 사람들이 있어요. 다수는 통일을 하는 것이 이로운데 북한에 있는 소수의 지배 세력은 통일을 하면 손해이기 때문에 죽어도 통일을 안 하려고 할 겁니다. 남한에서도 분단으로 인해 이익을 보는 사람들은 통일의 부정적 효과를 계속 얘기하려고 할 겁니다.nbspnbsp이번에 휴전선에서 일어난 일들도 한번 보세요. 북한은 살기가 어려우니까 민심이 많이 헤이해졌는데 이번에 전쟁 놀음을 하는 바람에 국민들의 단결이 좀 되었습니다. 이런 위기 때는 충성을 안 하는 사람들은 역적으로 몰리기가 쉽겠죠. 남한에서도 대통령 지지율이 30 대로 떨어졌다가 이번엔 전쟁 바람이 부니까 지지율이 50까지 올라갔다고 하잖아요. 이런 것을 ‘적대적 공존’ 이라고 합니다. 한바탕 전쟁 소란을 피워서 서로가 이익을 얻는 것입니다. 이것이 지난 70년 동안 남북이 해온 행동입니다. 이 사이에서 결국 국민들만 손해를 보게 됩니다.nbspnbsp그래서 이것을 극복하려면 첫째, 이 땅에 다시는 전쟁이 없도록 해야 합니다. 둘째, 전쟁이 없더라도 지금 이대로 분단된 상태로 계속 가도 안 됩니다. 지난 50년은 분단된 상태로도 남북이 발전해 왔어요. 그러나 앞으로는 분단된 상태로는 더 이상의 성장이 어렵습니다. 이것은 지도자가 잘못해서 그런 것이 아니라 지금 우리가 놓인 구조가 이렇게 되어 있어요. 이런 정체 국면을 돌파하려면 과거에는 전쟁을 해서 남의 땅을 뺏어야 합니다. 그래서 100년 전 일본은 우리를 침략했던 것이죠. 그런데 지금 우리는 불행 중 다행인지 분단이 되어 있다 보니까 통일을 통해서 이 위기를 잠시 넘길 수 있는 기회가 주어졌습니다. 통일을 통해 성장을 조금 더 지속할 수 있는 가능성이 열려 있습니다. 그래서 통일은 되어도 그만 안 되어도 그만인 문제가 아니고 안 되면 장기 불황에 빠질 것이고, 되면 다시 한번 성장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지는 문제입니다.nbspnbsp그리고 미국과 중국의 외교적인 각축 속에서 지금의 분단된 상태로는 과거에 미·소 사이에 끼여서 전쟁을 했듯이 미·중 사이에 끼여서 또 남북이 이쪽 저쪽의 앞잡이가 되어 분쟁이 일어날 소지가 있습니다. 그러나 통일이 되면 미·중 사이에서 균형을 이룰 수가 있습니다. 그래서 한반도가 분쟁지대가 아니라 평화지대로 갈 수 있게 되기 때문에 안보적으로도 경제적으로도 통일이 굉장히 긴요한 시점에 지금 이르렀습니다.nbspnbspnbsp그런데 왜 남북은 그렇게 하지 않을까요? 부부가 싸워서 별거를 하고 있는데 아이들을 생각하면 서로 양보해서 같이 살면 좋겠죠. 항상 아내는 남편에게 “니가 잘못해다고 무릎 꿇고 빌면 같이 살 의향이 있지만 내가 무릎 꿇을 생각은 없다”고 말하고 남편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래서 결국 이혼을 하게 됩니다. 그것처럼 지난 과거에 남북이 쌓아온 감정 때문에 통일하는 것이 이익임을 알아도 자기 주도를 하고 싶어서 해결이 안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저는 ‘남한은 힘이 좀 있으니까 조금 포용력을 가지고 이 문제를 풀면 어떻겠나’ 생각하는데, 상처가 있는 사람들은 ‘북한 놈들을 왜 봐주냐’ 하는 감정이 섞여 있어서 합의가 좀 어려운 겁니다. 이런 사람들도 우리가 이해는 해야 합니다. 그래서 이런 강연도 하고 통일 운동도 하는 겁니다.nbspnbsp나라를 잃었을 때는 나라의 독립을 위한 의병이 있었다면, 가난할 때는 산업 역군이 있었고, 독재 시대 때는 민주 투사가 있었듯이 분단 시대에 우리는 통일을 일구는 의병이 되자는 것입니다. 국민들이 다들 지쳐 있으니까 국민들에게 새로운 희망을 주자는 것입니다. 대한민국이 지금 세계 13위14위에 턱걸이 되어 있는데 통일이 되면 10위권 안으로 진입할 수 있고, 통일이 되면 강대국으로부터 휘둘리는 것들도 많이 벗어날 수 있고, 일본과 중국을 나쁘다고 비난할 것이 아니라 통일이 되면 일본과 중국 하고도 협력하는 동아시아 공동체로 나아가야 됩니다. 그 길로 나아가는 첫 스텝이 통일입니다. 이런 희망을 우리가 갖자는 것입니다.nbspnbsp이 땅은 우리 땅이고 이 나라의 주인은 우리이니까요. 지난번처럼 분쟁이 일어나면 우리 아이들이 죽게 되잖아요. 우리 아이들을 그런 일로 죽임을 당하게 할 이유가 없잖아요. 통일을 해서 한반도를 평화지대로 만듦으로 해서 우리가 우리 아이들의 미래도 안전하게 만들자는 것입니다. 이것이 통일의병을 만든 목적입니다.nbspnbsp그래서 저도 이 취지에 적극적으로 찬성해서 고문을 맡았고, 무료 강연에도 적극적으로 나선 겁니다. 저는 주로 인생 상담이 전공인데 이 일도 하게 된 겁니다. 인생 상담은 한 명 한 명 살리는 것이지만 전쟁이 나면 한꺼번에 수십만명이 죽잖아요. 이것을 막아내면 한꺼번에 수십만명의 불행을 해결하는 것이 되니까 저도 이 일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겁니다. 그런데 통일 이야기만 하면 아무도 안 오니까 80는 인생 상담을 해주고 20만 통일 이야기를 해주려고 했는데 질문자가 지금 질문을 해줘서 고마워요. 묻지 않아도 이 얘기를 하려고 했거든요.” nbspnbspnbsp통일의 필요성을 명쾌하게 정리해준 스님의 답변에 청중들도 큰 박수를 보냈습니다. 그러자 질문자가 한가지 더 질문이 있다며 물었습니다.nbspnbsp“저는 스님 말씀처럼 통일의 필요성을 얘기하고 싶은데, 이 친구들은 통일에 관심이 없어요. 이런 얘기를 하면 시큰둥하고 나중에는 저도 눈치를 봐서 얘기도 못하게 됩니다. 말조차 꺼내기 힘든 이 상황을 어떻게 해야 할까요?” nbsp nbspnbspnbsp스님은 웃음을 머금으며 답변을 이어갔습니다.nbspnbsp“관심 없는 사람에게 뭐하러 얘기를 하려고 해요? 그것은 부모가 공부하기 싫어하는 아이를 강제로 공부시키는 것과 똑같지요. 우리가 제일 먼저 해야될 일은 통일에 관심 있는 사람을 찾는 것입니다. 여러분들 중에서도 전쟁 위협이 생기면 ‘통일이 되면 다 해결될텐데 왜 저렇게 싸우지?’ 이렇게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죠. 이렇게 굳이 길게 설명하지 않아도 혼자서 속으로 궁금해하고 있었는데 통일 얘기를 해주면 ‘아, 그렇네’ 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이런 사람들을 먼저 찾아내야 합니다.nbspnbsp오늘 강연장에 500명이 왔는데 이 500명을 다 설득하려고 하면 실패합니다. 여기는 통일에는 아무 관심 없고 자식 문제가 더 큰 고민인 사람이 더 많아요. nbspnbspnbsp그러나 여기 500명 중에는 스님이 얘기해서가 아니고 자기 스스로 ‘나라가 좀 통일이 되면 좋을텐데’ 하고 막연하게 생각해 온 사람들이 열명 중에 한명은 있습니다. 이런 사람들을 먼저 찾아내야 됩니다. 그러니 이 중에 50명만 방금 전 소개한 ‘통일시민학교’에 참석하면 됩니다.nbspnbsp이 50명은 평소에 관심이 있었던 사람들이니까 공부가 쉽게 되겠죠. 이 50명이 힘을 합해서 다음에 이런 강연을 한번 더하면 한 1000명쯤 모을 수 있겠죠. 이 1000명 중에 다시 열명 중 한명만 관심 있으면 100명이 되잖아요. 이렇게 노력을 해서 늘여나가야 되지 아무런 관심 없는 사람에게 다가가서 ‘통일이 중요한거야. 내 말 좀 들어’ 해놓고 말 안 듣는다고 성질내면 안 돼요. nbspnbspnbsp통일이 사실은 중요한데 왜 사람들은 통일에 관심이 없을까요? 인간 존재가 원래 그렇습니다. 나이 드신 분들은 북한을 굉장히 미워합니다. 그래도 통일에는 찬성합니다. 그러나 젊은 사람들은 태어나기를 분단된 상태에서 태어나서 지금까지 자랐기 때문에 분단된 상태가 하나도 불편하지 않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통일하자고 하니까 ‘못사는 북한과 같이 합치면 돈이 많이 들지 않을까’, ‘사회가 시끄럽지 않을까’ 이런 생각이 드는 겁니다. 이것을 당연하게 받아들여야 합니다.nbspnbsp이렇게 생각해 보세요. 같은 부모 밑에서 자란 형제 간에도 서로 싸우잖아요. 형제 간에도 싸우는데 남의 집에서 자란 사람과 결혼을 하게 되니 상식적으로 생각해도 더 싸우게 되겠지요. 이걸 고려하면 결혼을 못하지요. 대한민국에 같이 살고 있는 우리들끼리도 맨날 싸우는데 70년을 떨어져 살았던 북한과는 당연히 싸울 수 밖에 없겠죠. 그래서 통일을 안 한다는 얘기는 결혼하지 말자는 얘기가 되지요. 결혼을 하면 부부 지간에 갈등이 생기는 것이 정상입니다. 그럼에도 우리는 결혼을 하잖아요. 왜냐하면 갈등을 일으키는 손실보다 둘이 같이 사는 이익이 더 크기 때문입니다. 두 부부가 찌그럭 찌그럭 해도 헤어지지 않고 사는 이유는 뭘까요? 꼭 좋아서만 같이 사는 것이 아니고, 손실도 있지만 그래도 실익을 따지면 같이 사는 이익이 더 크기 때문입니다.nbspnbsp그러듯이 남북 간에도 당연히 통합되는 과정에서 찌그럭 찌그럭 대면서 시끄러울 겁니다. 그래도 분단되어 사는 것보다는 이익이다는 것을 알면 되지 통일이 되면 아무 문제도 없을 것이라고 생각하면 안 됩니다. 그래서 통일에 반대를 하는 사람들에게는 ‘그렇다면 너는 평생 결혼 못하겠네’ 이렇게 얘기해 주면 됩니다. nbspnbspnbsp구더기 무서워서 장 못 담그듯이 남북 간에 갈등이 생길까봐 통일 못한다는 얘기는 수학이 싫어서 의사되기 싫다는 얘기와 똑같습니다. 남북은 앞으로 당연히 갈등이 생깁니다. 그렇기 때문에 내일 당장 통일을 하자고 해도 당분간 휴전선은 놓아 두어야 합니다. 그러나 남북이 휴전선을 없애자고 아무도 동의하지 않는데 굳이 억지로 없애려고 할 이유가 뭐가 있어요? 그것은 현실적이지도 않고 실제로 없애도 별로 도움도 안 돼요. 그래서 당분간 정치적으로는 남북이 따로 가는 것이 좋아요. 그러나 완전히 이혼해서 따로 가는 것과 통일하기로 합의해 놓고 우선 이익이 되는 통일 경제 개발을 하면서 조금씩 조금씩 차이를 줄여나가는 것은 다릅니다. 그 과정에서 정치적인 공통점도 찾아갈 수 있겠죠. 통일은 현실적으로 그렇게 밖에 될 수 없습니다. 또 그렇게 되어야 돈도 적게 듭니다.nbspnbsp지금 남한에 북한 사람들을 데려와서 일을 하게되면 최저 임금으로 계산해도 일당 50달러는 줘야 하겠죠. 그런데 북한 안에서 일을 하면 하루 일당이 1달러가 채 안 됩니다. 그러니 북한에 나무를 심으려고 할 때도 통일된 뒤에 심으려면 하루에 50달러를 줘야 하지만 지금부터 나무를 심으면 하루에 1달러만 주면 됩니다. 이렇게 선투자 하는 것이 경제적으로도 효과적이라는 것입니다.nbspnbspnbspnbsp그래서 통일이란 것은 당장 휴전선을 없애고 정치적으로 하나가 되는 것만이 통일이 아니고, 같이 사는 것이 이익이라고 결정을 하는 그 순간이 통일입니다. 북한에서 영양실조 걸린 아이들을 지금 이대로 두면 나중에 사회보장비가 많이 드니까 당장 내일부터라도 통일될 것을 대비해서 영양실조를 면할 수 있게 지금 미리 영양식을 제공하는 것이 낫겠죠. 나무도 지금 미리 심는 것이 낫겠죠. 통일은 꼭 군사 회담 같은 문제만 있는 것이 아니고 이렇게 내일부터도 당장 시작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렇게 하면 미래에 큰 이익이 돌아옵니다.nbspnbsp통일을 당장 모든 장벽을 없애고 하나로 합치는 것과 같은 현실 불가능한 것으로 인식하니까 믿기지도 않을 뿐더러 혼란도 엄청나게 올 것 같은 우려가 생기는 것입니다. 그런 통일은 실제로 일어나지 않습니다. 하고 싶어도 될 수도 없고요.”nbsp통일은 당장 하나로 합치는 것이 아니라 같이 사는 것이 이익이라는 관점을 갖고 지금부터 할 수 있는 일을 해나가는 것이라는 말씀에 가슴이 뻥 뚤리는 기분이 들었습니다. 불가능하게만 여겨지던 통일이 정말 쉽고 단순하게 다가오는 순간이였습니다. 그러고보니 예전에 스님이 당신께서는 이미 통일된 세상에 살고 있다는 말씀이 생각났습니다.nbspnbsp모든 질문에 대한 답변을 마치니 어느덧 2시간 45분이 훌쩍 지나가 있었습니다. 긴 시간이였지만 강연 내용이 너무 재미있어서 시간 가는 줄도 모르고 즐겁게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습니다. 열강을 해준 스님에게 안산 시민들은 큰 박수를 보내주었습니다.nbspnbspnbsp마지막으로 스님은 오는 9월 7일부터 시작하는 통일시민학교에 많이들 참석해 나를 넘어서서 우리 모두를 생각하는 시간을 꼭 가지시길 당부하며 강연을 마쳤습니다.nbspnbsp이어서 로비에서는 책 사인회가 열렸고, 많은 분들이 스님의 통일 이야기를 담은 책 ‘새로운 100년’을 구입해서 사인을 받기 위해 길게 줄을 섰습니다. 스님은 한 명 한 명과 눈을 마주치며 오늘 강연에 온 것에 대해 고마운 마음을 전했습니다. 대중들도 직접 스님 앞에서 감사의 마음을 표현했습니다.nbspnbspnbsp그리고 오늘 강연을 준비하기 위해 곳곳에서 수고를 해준 통일의병 봉사자들과 함께 기념 사진을 찍었습니다. “통일 의병 의병 의병” 이라는 구호가 쩌렁쩌렁하게 울려퍼졌습니다.nbspnbspnbsp많은 분들이 강연장을 나가며 통일의병 가입신청서와 통일시민학교 안내지를 챙겨가는 모습을 볼 수 있었습니다. 이곳 안산 지역에서 많은 통일의병들이 생겨나길 기원해 봅니다.nbspnbsp밤 11시가 다 되어 서울 정토회관에 도착한 스님은 집무실에서 업무를 더 보다가 오늘 일정을 마쳤습니다. 긴 시간 강연 끝에 목이 조금 아파 보였습니다.nbspnbsp내일은 하루종일 평화재단에서 손님들과 미팅을 가진 후 저녁 7시에는 순천에서 ‘즉문즉설과 통일 이야기’를 주제로 강연을 할 예정입니다.nbspnbsp※ 9월부터 11월까지 전국 방방곡곡에서 nbsp2015 법륜 스님의 즉문즉설과 통일 이야기를 주제로 강연이 펼쳐집니다. 우리 동네 강연 일정을 확인하시고 많은 참여 바랍니다. 아래 배너를 누르고 사전 신청을 하세요.nbsplt사전 신청하기gtnbspnbsp
2015.9.1 서울 청춘콘서트
nbsp안녕하세요. 오늘 스님은 호주에서 귀국한 후 광운대에서 열린 청춘콘서트에 참석해 청년들의 고민을 듣고 함께 대화를 나누는 즉문즉설 강연을 했습니다. nbspnbsp새벽 1시 비행기로 마닐라 공항을 출발한 스님은 밤새 비행기를 타고 새벽 6시에 인천공항에 도착했습니다.nbspnbsp▲ 새벽 6시. 인천공항에 도착한 스님nbsp공항에서 곧바로 서울 정토회관으로 이동해 잠시 휴식을 취한 후 11시부터는 외부 인사와 미팅을 가졌고, 오후에는 행정처 간부들, 평화재단 실무자들과 이번주 주말에 예정된 통일의병대회와 내년도 인도성지순례, 동북아역사기행 프로그램에 대해 점검하고 의논했습니다.nbspnbsp오후 5시 20분에 서울 정토회관을 출발하여 6시 30분에 청춘콘서트가 열리는 광운대학교 동해문화예술관에 도착했습니다. 강연장 입구에는 많은 청년들이 줄을 서서 무료 티켓을 배부 받고 줄을 서서 입장을 기다리고 있었습니다.nbspnbsp▲ 오늘 청춘콘서트가 열린 광운대 동해문화예술관nbsp스님은 김제동씨와 주차장 입구에서 만나 함께 강연장으로 들어갔습니다. 특히 오늘 청춘콘서트는 광운대 총학생회에서 많은 협조를 해주었는데 스님과 김제동씨는 로비에서 접수를 받고 있던 총학생회 관계자들에게 감사 인사를 한 후 대기실로 항했습니다.nbspnbsp▲ 오늘 행사를 함께 주관한 광운대 총학생회nbsp저녁 7시가 되자 사회자인 오청춘씨가 나와 청춘콘서트의 시작을 알렸습니다. 1400여명의 청년들이 가득 자리를 메운 가운데 인디밴드 요술당나귀의 신나는 노래 공연과 함께 큰 박수와 환호 속에서 청춘콘서트의 막이 올랐습니다. nbspnbspnbsp먼저 등록금 부담, 취업 걱정, 육아 문제 등 청년들의 고민이 담김 영상물이 상영되었고, 이어서 사회자가 ‘이런 고민들을 해결하기 위해 행복 원로와 행복 장관 두 분을 모시고 그 해법에 대해 이야기를 나눠보자’고 하면서 행복 공청회가 시작되었습니다. 먼저 ‘행복 원로’로서 스님이 소개되자 열렬한 환호와 박수를 받으며 무대 위로 올라왔습니다.nbspnbspnbsp스님은 우리가 왜 행복하지 못한지에 대해 이야기하면서 어떻게 하면 조금 더 행복해질 수 있는지 강조하면서 말문을 열었습니다.nbspnbsp“나는 열심히, 착하게, 바르게 살았음에도 불구하고 좀처럼 내가 원하는 대로 이루어지지 않는 반면 다른 사람은 착하지도 않고 열심히 바르게 살지도 않는데 잘 되는 것 같아 보이지요. 그래서 ‘인생이란 이미 다 정해져 있나보다’ 이렇게 생각하게 됩니다. 어떻게 인생이 정해져 있느냐를 중국에서는 사주팔자, 인도에서는 전생, 다른 곳에서는 하나님을 들어 설명했어요. 그런데 정말 그럴까요?nbspnbspnbsp결론부터 말씀드리면 그렇다고 할 수 없습니다. 우리가 잘못 생각해서 그래요. 우리가 원하는 것은 다 이루어질 수 없습니다. 누구나 원하는 것이 다 이루어진다면 좋은 세상이 될까요? 한 명의 아름다운 여성과 결혼하고 싶은 남성이 10명 있는데 그 소원이 다 성취되면 어떨까요? 대통령 되고 싶은 사람이 10명 있는데 모두 하느님께 빌어서 대통령이 되었다면 나라가 어떻게 될까요? 공부는 하기 싫지만 좋은 대학에는 가고 싶은 학생들이 모두 원하는 대학에 들어간다면요? 엉망진창이 되겠죠.nbspnbsp원하는 것은 이루어질 수도 있고 이루어지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이루어지지 않는다고 해서 꼭 나쁜 것은 아니에요. 이 이치를 알게 되면 어떤 일이 이루어지지 않았다고 해서 울고불고 할 필요가 없어요. 이루어지면 다행이고, 이루어지지 않으면 다시 시도하면 되고, 그래도 안 되면 그만두면 됩니다. 그래도 하고 싶으면 또 도전하면 되고요. 이루어지지 않는다고 괴로워할 이유는 없습니다. 그런데 운명론은 자기가 원하는 것이 이루어지지 않으니까 운명 때문에 그렇다고 몰고 가지요.nbspnbsp오늘의 주제는 ‘어떻게 하면 행복해질 수 있을까’ 입니다. 우리는 원하는 것이 이루어졌을 때의 만족감을 행복으로 삼아요. 그런데 세상은 우리가 원하는 대로 다 이루어지지는 않으니까 불만족감이 생기고, 그걸 불행으로 삼다 보니 늘 행복과 불행을 오가며 돌고 돌지요. 이것을 윤회한다고 말해요.nbsp우리가 원하는 것은 원래부터 원하는 대로 다 이루어지지 않게끔 조건 지어져 있습니다. 이루어지지 않는다고 꼭 나쁜 것도 아니고, 이루어진다고 꼭 좋은 것도 아닙니다. 원하는 것이 이루어지지 않을 때 괴로워하기보다는 필요하면 한 번 더 시도하고, 필요 없으면 버리면 돼요. 이걸 알면 지금처럼 늘 괴로워하는 상태에서 벗어날 수 있습니다.nbspnbspnbsp자, 여러분들의 질문을 가지고 이야기를 나눠봅시다. 무슨 얘기든 해도 좋아요. 의문이 있으면 의문을 이야기해도 되고, 괴로움이 있으면 괴로워하는 이야기를 해도 되고, 자기 이야기를 하고 싶으면 해도 돼요. 무슨 이야기든 하면 그걸 주제삼아 대화하고 함께 소통해봅시다.”nbsp스님이 무슨 얘기든 함께 소통해 보자고 하자 여기저기서 손을 들었습니다. 총 4명이 스님에게 질문을 했습니다.nbspnbspnbsp서울에서 자취를 하고 있는 남자 대학생은 항공정비사가 되는 것이 꿈인데 이 길이 옳은 길인지 나중에 후회하게 될까봐 걱정인데 어떻게 해야 하는지 물었고, 엔터테이먼트 회사에 다니는 남자 분은 개개인들이 문제가 아니라 이들을 담고 있는 그릇인 시장경제의 자본주의 시스템을 바꾸기 위해 노력해야 된다고 생각하는데 스님도 근본 치료보다는 여드름만 자꾸 짜주는 것이 아닌지 물었고, 고등학교에서 국어를 가르치는 교사는 학생 통일 토론대회에서 찬성 쪽이 졌다고 하면서 남한도 먹고 살기 힘든데 굳이 북한과 통일해야 하는지 묻는 사람들에게 어떻게 통일의 필요성을 설득해야 하는지 물었습니다.nbspnbsp오늘은 그 중에서 성장기 때부터 어머니와 사이가 좋지 않았고, 지금은 남편과의 사이가 좋지 않아서 고민인 여성 분의 고민과 스님의 답변을 소개합니다. 현실을 인정하면서 어떻게 관계를 개선해 나갈 수 있는지 소중한 가르침을 얻을 수 있었습니다. nbspnbsp“서른 두살 주부입니다. 부모님이 중매결혼을 하셨는데 아버지가 처음부터 나가 사셔서 어머니 혼자 저희 남매를 키우셨어요. 그러면 제가 어머니랑 좀 잘 지내야 할 텐데 그렇지 못해 고민입니다. 여고로 진학해서 공부를 하고 싶었는데 어머니께서 공공근로를 하셔야 해서 주소를 옮기지 못하고 남녀공학을 가게 되었어요. 그 이유는 최근에 들었고요. 들어가서 적응을 잘 못해서 왕따를 당하고, 전학보내달라고 했는데 교사이신 큰아버지께서 좋은 학교니 옮기지 말라고 하셔서 어머니가 안 옮겨주셨어요. 어머니가 데려간 점집에서 다행히 전학을 시키라고 해서 다행히 전학을 가고 무사히 졸업은 했어요. 이런 식으로 늘 성격이 너무 많이 부딪혀서, 아이를 낳아 키우는 지금도 어머니랑 사이가 좋지 않아 고민입니다. 남편과도 둘 다 다혈질이라 많이 부딪히는데 제가 좀 더 문제인 것 같아요. 제가 어떻게 마음을 열어서 어머니, 남편과의 사이가 좋아질 수 있을지 여쭤보고 싶습니다.”nbspnbsp“사이가 좋긴 어렵겠습니다. 옛날식으로 말하면 사주가 안 맞아요. 부모님이 부부가 같이 못 살 정도의 갈등 관계를 유지했잖아요. 배우자도 수용하지 못할 정도로 강한 성격의 소유자에게서 태어나 자랐기 때문에 질문자의 성격도 다른 사람들을 수용해주면서 함께 살기가 어려운 성격이에요. 애초에 그랬기 때문에 어머니와의 관계도 좋게 되기 어렵습니다. 어머니 입장에서는 남편과도 안 맞았는데 아이와 잘 맞을 리가 없고, 질문자는 그런 어머니에게서 성격을 물려받았기 때문에 어머니와도 관계가 좋기는 어려워요. 나를 낳아 길러준 어머니와도 관계를 원만하게 풀기 힘든 성격인데 남의 집에서 자란 성인 남자와 관계를 좋게 풀기는 애초에 힘들어요. 그러니 그런 야무진 꿈을 꾸지 말고 포기하세요.” nbspnbspnbsp“어머니가 저랑 잘 지내기를 더 원하시거든요.”nbspnbsp“잘 지내고 싶지만 잘 지내지지가 않아요. 제일 잘 지내는 방법은 서로 안 보는 거예요.” nbspnbspnbsp“저는 그러고 싶지만 어머니가 손녀 보러 일주일에 한 번씩 오시는데 만나기만 하면 싸워요. 거리를 두면 좀 친해질 것 같은데 어머니는 그걸 못 견뎌하시니까요...”nbsp“다른 좋은 방법이 없어요. 이렇게 살면 그 사이에서 내 딸도 영향을 받아요. 엄마와 할머니가 싸우고 엄마와 아빠가 싸우는 가운데서 자랐기 때문에, 그 아이도 자라면 질문자의 성격처럼 질문자와도 안 맞고 남자친구와도 싸우게 될 거예요. 이건 콩 심은 데 콩 나고 팥 심은 데 팥 나는 격이에요. 달리 방법이 없어요.nbspnbsp그런데 해결할 방법이 영 없진 않습니다. 어머니와 잘 지내고 싶다는 생각을 버리면 돼요. 어머니와는 애초에 성격이 맞지 않기 때문에, 물고 차고 싸우지 않는 이 정도인 것만 해도 다행이라고 생각하세요. 이보다 더 좋기를 바라거나 개선하려 하지 말고 지금에 만족하라는 뜻입니다. ‘어머니와 싸우지 않게 해주세요’ 라고 기도하면 그 기도는 영험이 없습니다. 그런데 ‘부처님, 이만하기 다행입니다’ 하고 기도하면 어때요? 세상에는 어머니와 칼부림하며 싸우는 사람도 있는데 질문자는 그 정도는 아니잖아요. 소소한 갈등이지 철천지 원수가 되는 갈등은 아니니 다행이잖아요. 그러니 어머니하고 부딪힐 때 ‘아이고, 이만하기 다행이다. 어릴 때 같았으면 두들겨 맞았을 텐데, 우리 엄마 많이 늙으셨네. 어머니, 감사합니다.’ 하면서 좋게 생각해 보세요. 더 좋아지게 하려고 애쓰면 오히려 불만이 생기지만 이만하기 다행이라 생각하면 감사한 마음이 생겨요. 그러니 어머니한테 감사하는 마음을 내세요.nbsp남편한테도 ‘아이고, 성질 더러운 나랑 살아주는 것만 해도 고맙습니다. 세상 어느 남자가 나랑 살아주겠어요’ 이렇게 마음을 내세요. 관계를 더 개선하려 들지 말고 이렇게 부부관계를 감사히 여기세요. 부모님은 부부가 헤어졌지만, 질문자는 좀 싸우긴 해도 아직 헤어지진 않았으니 얼마나 고마운 일이에요. 헤어지지 않은 것은 내 덕분일까요, 남편 덕분일까요?”nbsp“둘 다 덕분인 것 같아요.”nbspnbsp“그렇게 생각하면 문제 해결이 안 되는데... 누구 덕분에 안 헤어지게 되었다고요?” nbspnbspnbsp“남편 덕분에요.”nbspnbsp“그래요. 힌트를 꼭 줘야 답을 찾아요? 남편 덕이라고 생각해야 문제가 해결돼요. 남편이 부처님 같다는 뜻이 아니라, 둘 다 비슷하지만 그래도 비교해보면 남편이 질문자보다 조금이나마 마음이 너그럽다는 뜻입니다. 남편이 아버지와 같은 사람이었다면 벌써 헤어졌을 텐데, 남편은 아버지보다는 훨씬 나은 사람이에요. 부처님 같은 사람 만나면 좋지만 질문자는 그렇게 만날 복은 안 돼요. 둘 다 문제가 있지만 그래도 남편이 조금 더 너그럽다 생각하고, 나랑 살아줘서 고맙다는 마음을 내세요.nbspnbsp어머니에게는 ‘어머니가 늙어서 좀 나아지셨네’ 이렇게 고맙게 생각하고, 남편에게도 ‘당신이라도 이렇게 살아주니 고맙습니다’ 이렇게 고맙게 생각하세요. 이걸 긍정적 사고라고 해요. 내가 이런 마음을 내면 남편이 어떻든 어머니가 어떻든 아이에게는 나쁜 영향이 없어요. 아이는 제 어머니를 닮거든요. 질문자가 긍정적 사고를 하면 질문자의 아이는 이런 환경에서 자라도 질문자보다 훨씬 좋은 성격으로 자라요. 다소 까칠한 구석이 있더라도 질문자보다는 훨씬 좋아져요.nbspnbsp그러니 오늘부터 어머니에게 감사기도를 하세요. 부모님이 헤어졌을 때 어머니는 그래도 아버지처럼 질문자를 버리지 않고 남아서 학교도 보내주고 공부도 시켜줬잖아요. 질문자가 원하는 만큼은 못 해주었지만 이 세상에 질문자를 키워준 것은 어머니뿐이니 고마워할 일이에요. 그런데 어머니를 미워하면 고마워해야 할 일을 원수로 갚는 거예요. 그러니 ‘돌봐주셔서 감사합니다’ 하고 어머니에게 감사기도를 하고, 남편에게도 ‘당신이라서 그래도 날 데리고 살아주니 감사합니다’ 이렇게 기도하세요. 가끔 소소한 갈등을 일으켜도 이렇게 마음을 금방 돌이켜서 감사해 하면 질문자가 원하는 대로 관계가 좋아질 겁니다. 그렇게 하지 않고 관계를 개선할 방법만 찾을려고 애쓰면 관계는 오히려 더 나빠질 거예요.”nbspnbsp“잘 알아 들었습니다. 정말 감사드립니다.”nbsp질문자가 무슨 뜻인지 명쾌하게 이해가 되었다며 환하게 웃자 청중들이 뜨거운 박수 갈채를 보냈습니다.nbspnbspnbsp질문한 여성 분의 눈에는 촉촉한 눈물이 맺혀 있었습니다. 어머니와 남편에 대해 늘 불만만 갖고 있다가 지금에서야 비로소 감사한 마음을 내게 되니 자연적으로 흘러나오는 눈물이었을 것입니다.nbspnbsp스님은 질문자의 이해를 돕기 위해 다시 한번 마음의 원리를 설명해 주었습니다.nbspnbsp“지금 이야기하는 마음의 원리를 좀 이해하시겠어요? 어머니와 좋아지는 방법, 남편과 좋아지는 방법을 찾으려 들면 관계는 도리어 악화됩니다. 그러나 지금이 좋은 줄 알고 감사할 줄 알면 개선되는 쪽으로 가요. 심리가 움직이는 이런 법칙을 모르기 때문에 잘 하려는 노력이 계속 악화시키는 결과를 불러옵니다. 그래서 수행은 첫째, 현재를 인정하고 긍정적으로 받아들이는 데서 출발해야 돼요. 우리가 아무리 멀리 보고 가더라도 내가 발을 딛고 있는 여기를 인정하고 여기서부터 출발해야 돼요. 그런데 현실을 무시한 채 좋은 남자 만나길 바라고 어머니와 좋은 관계 맺기를 바란다면 그건 꿈을 꾸는 거예요. 그러면 아무 문제도 해결할 수 없어요.nbspnbspnbsp그렇다고 ‘현실이 이렇지. 사는 게 이것밖에 더 되나’ 이렇게 안주하면 안 돼요. 현실을 인정하되 현실로부터 출발해서 우리는 미래로, 희망으로 한 발 한 발 나아가야 합니다.”nbsp스님은 시간이 부족해서 더 깊이있게 설명을 해주진 못했지만 아쉬움을 뒤로 하고 다음 질문에 대한 답변을 이어갔습니다. 특히 스님은 통일에 부정적인 사람들에게 어떻게 통일의 필요성을 설득할 수 있는지 묻는 고등학교 선생님의 질문에 많은 시간을 할애하여 명쾌한 답변을 들려주었습니다.nbspnbsp스님에게 주어진 70분의 시간을 마치는 알림 종이 울리고 이어서 ‘행복 장관’의 이름으로 김제동씨가 열렬한 환호와 박수를 받으며 무대 위로 올라왔습니다. 70분 동안 다양한 이야기로 쉴새 없이 웃음을 선사한 김제동씨는 특히 지난해 전국민을 아프게 한 세월호 문제가 500일이 지난 지금까지도 해결되지 못하고 있음을 언급하면서 끝내 눈시울을 붉혔습니다. nbspnbspnbsp“그 배에 만약 대통령과 국회의원들이 타고 있었으면 그렇게 했을 것 같습니까? 그 배에 해외 정상들이 타고 있었으면 그렇게 했을 것 같습니까? 그렇게 안했을 겁니다. 우리가 타고 있어서 그렇게 한 겁니다. 있어도 되고 없어도 되는 사람들... 그 사람들 눈에는 우리가 그렇게 밖에 안 보일 겁니다. 그러니 우리가 겁 먹지 말고 우리가 그 사람들을 겁 줘야죠. 너희들의 운명을 우리 국민들이 결정한다는 것을 알게끔 해줘야 합니다. 그래야 다시는 그런 취급을 받지 않습니다...”nbspnbspnbsp청년들도 세월호 이야기 앞에선 눈물을 머금었습니다. 청년들이 앞장 서서 우리사회 약자들의 목소리를 대신 내어주고, 선거 때는 높은 투표율을 통해 정치인들이 국민을 무서워할 줄 알게 하는 행동들이 무엇보다 필요하다는 것을 절실히 느끼는 순간이었습니다.nbsp스님은 김제동씨가 강연을 하는 동안 무대 한 켠에서 김제동씨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며 함께 웃고 공감했습니다.nbsp김제동씨와 함께한 70분의 행복 공청회 시간도 마무리되고, 다시 스님과 김제동씨가 함께 무대 위에 올라 오늘 청춘콘서트를 마무리하는 시간을 가졌습니다.nbspnbsp사회자가 오늘 소감을 묻자 김제동씨는 “이 말이 20대에 솔직하고 말하고 싶은 딱 한마디”라고 하면서 대신 욕을 좀 섞겠다며 양해를 구한 후 한마디를 남겼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좋겠다 이 새끼들아.” 청년들의 큰 웃음과 박수가 쏟아졌습니다. 청년들이 지금의 처지를 너무 비관하지 말고 그 어떤 것보다 젊음이 가장 소중함을 좀 알고 살았으면 좋겠다는 메시지겠죠.nbspnbspnbsp이어서 스님이 마무리 말씀을 해주었습니다. 행복은 먼 곳에 있지 않고 바로 오늘 지금 여기에, 지금 해결해야 할 과제들 속에 있다고 강조했습니다.nbspnbsp“여러분들은 초등학교 때 어땠어요? 중고등학교 다니는 언니 오빠들 부러웠지요? 나는 어리다고 꼼짝도 못하고 집에 있는데 언니 오빠들은 마음대로 외출도 하잖아요. 중고등학교 다닐 때는 대학교 형님들이 부러웠지요? 형님들은 술도 마시고 담배도 피우는데 나는 못 하니까요. 대학에 오니 취직한 선배들이 부럽지요? 직장 다닌다면 어떨까요? 결혼해서 아이 낳고 사는 선배가 부럽겠지요? 그런데 갓난아기 낳아서 키우다보면 이미 아이 다 키워서 초등학교 중학교 보내는 집이 또 부러워요. 자녀가 중학교 고등학교 다니는 부모들은 입시를 치른 집이 또 부럽고요. 우리는 늘 이렇게 앞을 쳐다보고 부러워합니다.nbspnbsp제가 얼마 전에 경주에 갔다가 김유신 장군 묘 앞에 있는 흥무공원에서 옛날 까만 교복을 입은 여학생들이 춤추고 노는 모습을 보았어요. 요즘도 저런 교복이 있는 게 신기해서 가까이 가봤더니 얼굴이 전부 4, 50대였어요. 추억의 수학여행이란 프로그램이 있는데 옛날 교복을 빌려입고 학창 시절에 놀던 장소에 와서 같이 노는 프로그램이래요. 남자들은 학창 시절 유행대로 모자를 비딱하게 쓰고 완장도 찼더라고요. 이게 무슨 얘기예요? 4,50대 된 사람들이 청소년 시기를 부러워한다는 거예요.nbspnbsp가끔 어린아이 보고 ‘아이고, 좋겠다’ 이러지요? 또 중고등학교 때를 부러워하고, 대학교 시절을 추억하고, 처녀 총각들을 부러워하고, 신혼 시절을 부러워해요. 좀 이상하지 않아요? 자기가 어릴 때는 어른이 부럽고, 자기가 어른이 되면 청소년이 부럽고. 자기가 결혼하기 전에는 결혼한 사람들이 부럽고, 자기가 결혼한 뒤에는 처녀 총각들이 부럽고. 현재의 자기는 늘 불만투성이입니다. 불만투성이로 살아놓고는 지나간 뒤에는 또 그때를 돌아보고 부럽다고 생각하는 거예요.nbspnbspnbsp어릴 때는 어릴 때가 좋은 줄 아는 게 도예요. 중고등학교 시절에는 중고등학교 시절이 좋다는 걸 아는 게 행복이고 도예요. 대학 때는 대학 때가 좋은 줄 알아야 돼요. 밥만 먹고 아무것도 하지 않고 공부만 해도 모두 봐주는 시기가 중고등학교 때며 대학 때잖아요. 나이 먹고 나서 아무것도 안 하고 공부만 하면 미쳤다고들 하지 않습니까? 이런 시기가 길지 않아요. 처녀 총각 시기도, 신혼 시기도 길지 않아요.nbspnbsp그래서 항상 ‘지금이 좋다, 지금이 내 인생의 황금기이다’ 라고 생각할 수 있다면 인생은 행복해 집니다. 일제시대에 태어났기 때문에 독립운동을 할 수 있었던 것이죠. 그렇지 않으면 안중근도 될 수 없었고, 이상설도 될 수 없었고, 이준도 될 수 없었고, 홍범도도 김좌진도 될 수 없었잖아요. 가난한 나라에 태어났기 때문에 산업화의 역군이 될 수 있었습니다. 독재시대에 태어났기 때문에 민주화의 투사가 될 수 있었습니다. 이렇게 지금을 좋게 생각해야 합니다.nbspnbsp날이 어둡기 때문에 촛불이 빛을 발하는 거예요. 오늘 우리가 분단되어 있기 때문에 우리는 통일을 이룬 세대라고 하는, 역사에 유례가 없고 그 어떤 선배도 하지 못한 새로운 자부심을 가지고 노력할 수 있습니다. 빈부격차가 너무 심하기 때문에 좀 더 행복한 복지국가를 이루어낼 수 있고, 권력이 너무 집중되어 있기 때문에 분권이라고 하는 좀더 나은 지방자치 시대를 여는 새로운 길을 찾을 수 있습니다. 과제가 있음으로 해서 우리의 삶이 빛을 발할 수 있습니다.nbspnbspnbsp행복은 먼 곳에 있지 않습니다. 파랑새를 찾으러 산을 넘고 물을 건너 온 들판을 다니다가 지쳐 돌아온 주인공이 마루에 누워 쳐다보니 파랑새가 바로 처마 아래에 있더라는 이야기가 있지요. 행복은 지금 여기에 있습니다. 내가 사는 오늘에, 그리고 오늘 나에게 주어진 과제에 있습니다. 이걸 어떻게 받아들이고 임하느냐에 따라서 행복이 될 수도 있고 불행이 될 수도 있어요. 불평하고 낙담하기보다 우리에게 주어진 시대적 과제를 긍정적으로 보고 적극적으로 해결하려 나선다면 이게 바로 행복입니다.”nbsp지금이 좋은 줄 알아야 하며 분단되어 있기 때문에 통일의 염원을 가질 수 있고 통일의 염원이 있기에 통일 세대라는 자부심도 가질 수 있다는 말씀에 답답했던 가슴이 뻥 뚫리는 기분이 들었습니다. 특히 과제를 해결하기 위해 한발 한발 내딛는 이 과정 자체가 행복이라는 말씀은 큰 울림으로 다가왔습니다.nbspnbsp마지막 피날레는 무대 위로 오늘 행사를 준비한 서포터즈들이 모두 올라와 스님과 김제동씨와 손을 맞잡고 ‘행복가’를 부르는 것으로 대미를 장식했습니다.nbspnbspnbsp“포기하고 싶을 땐 주위를 둘러봐요. 마음껏 웃고 꿈꾸고 사랑하자 ♬ 작은 날개를 펴고 행복의 나라로 날아가자.”nbspnbsp강연장에 울려퍼지는 행복가를 들으며 정말로 청년들이 마음껏 웃고 꿈꾸고 사랑하는 세상을 위해 나도 작은 기여를 해보겠다는 다짐을 해보았습니다. 비단 남한의 청년들 뿐만 아니라 북한의 청년들도 함께 말이죠. 그것은 남북이 하나된 통일코리아의 세상일 것입니다.nbspnbsp감동의 여운을 뒤로 하고 로비에서는 스님의 책 사인회가 열렸습니다. 길게 줄을 선 청년들은 스님과 눈을 마주치며 오늘 소중한 가르침을 전해 준 스님에게 감사 인사를 했습니다. 스님은 환한 웃음으로 그 마음을 받아주었습니다.nbspnbspnbsp힘들어하는 청년들에게 이렇게 관심을 가져주고 격려해주는 어른이 있어 무척 감사한 마음이 들었습니다.nbsp마지막으로 한달 전부터 소임별로 모여서 사전 모임을 갖고 오늘도 강연장 곳곳에서 자원봉사를 해 준 희망서포터즈들과 함께 기념 사진을 찍었습니다. “가자 행복의 나라로”를 외치는 청년들의 얼굴에 웃음이 가득했습니다.nbspnbspnbsp강연장을 나오면서 스님과 김제동씨는 수고한 서포터즈들 한명 한명에게 악수를 건내며 감사 인사를 건냈습니다. 마중을 나온 김제동씨에게 스님은 “수고했어요. 이번주 금요일 포항 청춘콘서트에서 봅시다”고 인사한 후 손을 흔들었습니다.nbspnbspnbsp스님은 서울 정토회관에 밤 11시가 다 되어 도착한 후 오늘 일정을 모두 마쳤습니다. 내일은 아침 7시부터 평화재단에서 조찬 모임을 비롯해 각종 회의를 연이어 가진 후 저녁7시부터는 안산 올림픽기념관에서 ‘통일 이야기’를 주제로 강연을 할 예정입니다.nbsp※ 법륜 스님과 김제동이 함께하는 2015 청춘콘서트가 9월부터 11월까지 전국 곳곳에서 열립니다. 참가를 원하는 분들은 티켓을 사전 신청해 주시기 바랍니다.nbsplt티켓 사전 신청하기gtnbspnbspnbsp우리 지역 콘서트 일정을 nbsp확인하시고 가족, 이웃, 친구와 함께 오세요.nbs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