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님의하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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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6.28 발우공양 및 깨달음의장 수련생들과의 만남

nbsp안녕하세요. 오늘 스님은 문경 정토수련원의 발우공양에 참석해 ‘부모님에게 참회 기도를 해야 하는 이유’에 대해 법문하고, 깨달음의장 수련생들과 만나 ‘생활 속에서 수행을 해나가는 방법’에 대해 법문했습니다.nbspnbsp새벽 4시에 도량석 소리와 함께 일어난 스님은 문경 정토수련원 대웅전에서 공동체 상주대중과 함께 새벽 예불 및 108배와 명상을 하며 하루를 시작했습니다.nbspnbspnbsp기도를 마치고 나서는 발우공양에 참석해 음식을 먹고 발우를 깨끗이 씻은 후 백일출가 행자들을 위해 법문을 해주었습니다.nbspnbsp▲ 발우공양nbsp스님은 먼저 발우공양 때 음식을 먹고 나서 그릇을 씻은 청숫물이 탁한 점을 지적하면서 이것은 발우공양의 청결 정신과 굶주리는 사람을 생각하는 정신에 어긋나는 것임을 설명해 주었습니다.nbspnbsp▲ 발우를 씻고 난 청수물nbsp특히 “청숫물을 깨끗하게 해야 하는 이유는 전통적으로 청정한 수행으로 남긴 깨끗한 물만 아귀가 먹을 수 있기 때문” 이라고 하면서 이것을 현대적으로 해석하면 어떤 의미인지 이야기해 주었습니다.nbspnbspnbsp“밥 한 톨을 버리거나 음식을 버리는 것은 결국 배고픈 자를 더 배고프게 합니다. 우리나라의 식량 소비량은 연간 1800만 톤 되는데 생산량은 500만 톤이고 나머지 1300만 톤은 수입해서 씁니다. 자급률이 30가 채 안 되지요. 그래서 음식을 버리게 되면 그만큼 수입을 많이 해야 되고, 수입을 많이 하게 되면 세계 식량 가격이 오르게 되고, 세계 식량 가격이 오르게 되면 식량을 수입해야 하는 가난한 나라는 그만큼 식량을 적게 수입할 수밖에 없게 되기 때문에 식량 부족 현상이 일어나게 되고, 그렇게 되면 많은 이들이 굶주리게 됩니다. 그러므로 여기서 내가 밥 한 톨 버리는 것은 지구 저편의 가난한 사람들을 굶주리게 하는 것과 직결되어 있습니다. 내 눈에 안 보일 뿐이지요.”nbsp스님의 자상한 설명에 발우공양을 할 때도 자신의 행동에 깨어 있어야 함을 다시 한번 자각할 수 있었습니다.nbspnbsp그리고 스님은 행자들이 절할 때의 자세가 바르지 못함을 얘기하면서 “절을 할 때는 정성을 기울여서 온 몸이 땅에 붙도록 머리를 조아리고 엉덩이를 들지 말고 발에 붙이고 등을 펴도록 하면 좋겠다”고 조언해 주었습니다. 또 행자들의 염불 소리가 작은 것을 얘기하면서 “초심자들은 낮은 목소리로 염불을 하면 자꾸 졸게 되요. 전체적으로 고성으로 염불을 하면 좋겠다”고 조언해 주었습니다. nbspnbsp그리고 “지금 백일출가 수련생들이 부모님께 참회 기도를 21일 동안 하고 있다고 들었다”고 하면서 왜 부모님께 참회를 해야 되는지, 어떻게 참회를 해야 하는지에 대해 조금 더 자세하게 법문을 해주었습니다. 먼저 출가와 가출의 차이를 이야기하면서 진정한 출가란 무엇인지 설명해 주었습니다. nbspnbsp“우리가 사는 집은 우리를 안온하게 보호해주는 동시에 우리를 속박하는 굴레입니다. 집에 사는 동안에는 집이 자꾸 속박으로 느껴지기 때문에 자꾸 집을 나가려고 하게 되죠. 그러나 집을 나가서 살아보면 안온함이 없기 때문에 다시 집이 그리워집니다. 이렇게 집은 ‘안온처’와 ‘굴레’라는 두 가지 성질을 갖고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굴레’라는 성질 때문에 집을 뛰쳐나오고, 집을 나오면 ‘안온함’이 그리워서 다시 집으로 돌아가고, 또 속박을 받으면 집을 뛰쳐나오는 것을 반복합니다. 이렇게 집을 나오는 것을 ‘가출’이라고 합니다.nbspnbsp속박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는 집을 불살라 버려야 합니다. 즉, 굴레를 없애기 위해서는 안온함도 같이 버려야 합니다. 이것을 ‘출가’라고 합니다. 여러분들은 백일출가를 했다고 하지만 엄격하게는 출가가 아니고 가출을 한 것입니다. 세상 사는 것이 힘들어서 피해 온 것이죠. 여기 와서 살아보니 집이 그립죠? nbspnbsp백일출가 한번 해보기 위해서 부모님 승낙 받기도 어려웠고, 회사 휴직하기도 어려웠고, 애인한테 허락받기도 어려웠고, 출가 한번 해보는 것이 꿈이었고, 출가만 하면 뭔가 될 것 같았는데, 막상 출가해서 살아보니 다시 집이 그리워집니다. 그래서 부처님도 출가하기를 십수 년간 원하다가 막상 출가를 하고 나서 일주일도 지나지 않아 성 안이 그리워졌던 경험이 있었습니다. 그 때 부처님은 그런 자신의 모습을 보고 깜짝 놀라면서 ‘내가 지난 세월 얼마나 출가하기를 원했던가. 그런데 7일도 지나지 않아서 이게 무슨 짓인가’ 이렇게 크게 자각을 하고 발심해서 다시 수행의 여행을 떠났습니다.nbspnbsp여러분들도 이제 20일 정도 되었다고 하는데 벌써 집이 그리워지는 사람들이 있을 거예요. 이제 여러분들도 초심으로 돌아가서 ‘내가 백일출가를 얼마나 원했던가’ 이렇게 자각을 해야 합니다. 얼마나 원했으면 만 배까지 하고 왔겠어요? 그런데 자꾸 집을 그리워하고 연연해 하면 백일이 무의미한 생활이 되고 괴로움의 생활이 됩니다. 그래서 다시 초심으로 돌아가서 ‘아, 내가 백일출가 하기를 얼마나 원했던가’ 를 생각하고 하루하루를 수행 생활에 맞게 지내겠다고 발심을 해보시기 바랍니다.” nbspnbsp이어서 부모의 안온함과 속박은 집의 안온함과 속박과 같은 의미라고 하면서 이렇게 설명해 주었습니다.nbspnbsp“집처럼 부모는 우리를 보호해주는 안온한 곳입니다. 우리가 의지할 수 있는 곳이죠. 그러나 동시에 부모는 우리를 속박합니다. 이 세상에서 나를 가장 잘 보호해주는 것도 부모이고, 이 세상에서 가장 나를 속박하는 것도 부모입니다. 아주 작은 일에도 신경 써서 나를 보살펴주기도 하지만 아주 작은 것까지도 일일이 간섭하는 것이 부모입니다.nbspnbspnbsp어릴 때는 스스로 살 수 없기 때문에 부모로부터 보살핌을 받아야 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부모님에게 감사해야 합니다. 그런데 만 18살이 넘으면 자립을 해야 합니다. 자립을 하기 위해서는 더 이상 부모에게 의지하지 않아야 합니다. 동시에 어른이 된다는 것은 더 이상 남의 간섭을 받지 않는 것을 말합니다. 그것이 부모라 하더라도 더 이상 간섭을 받지 않고, 이제는 자기가 자기 인생을 살아야 어른입니다.nbspnbsp자연생태계에도 다 그렇게 되어 있습니다. 어릴 때는 새끼가 어미로부터 보호를 받다가 일정하게 성장하면 자기 생명은 자기가 보호합니다. 새끼가 보호해달라고 어미를 따라다니지도 않고 어미가 새끼를 보호한다고 따라다니지도 않습니다. 그래서 어미와 새끼 사이에는 아무런 원한 관계도 없고, 아무런 부담도 없습니다.nbspnbsp그러나 인간은 이런 자연스러운 관계 설정이 어긋나서 부모는 스무 살이 넘은 자식을 보살핀다고 무거운 짐을 져야 하고, 자식은 스무 살이 넘었는데도 부모의 간섭을 벗어나지 못하고 잔소리를 듣고 반항을 하는 일이 발생합니다. 이것은 반드시 필연적으로 그렇게 되는 것이 아니라 부모와 자식 사이의 관계가 자연스럽지 못하기 때문에 그렇게 되는 것입니다.nbspnbsp이성적으로 생각해보면 부모가 나한테 해를 끼친 것은 아무것도 없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늘 ‘부모는 나를 보살펴줘야 한다’는 생각이 어릴 때부터 무의식 세계에 있습니다. 어릴 때부터 보살핌을 받아왔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그래서 여러분들이 갖고 있는 대부분의 원망은 부모가 무엇을 안 해주었다는 거예요. ‘유학을 안 보내주었다’, ‘원하는 것을 안 사주었다’ 이런 것들이 마음의 근저에 대부분 깔려 있습니다.nbspnbsp그래서 여러분들은 아버지의 억압과 어머니의 잔소리로부터 탈출하려는 욕구가 있는 반면에 또한 여러분들은 어릴 때부터 보호를 받고 살았기 때문에 나이가 스물이 넘어도 늘 부모로부터 도움을 받으려고 합니다. 지금도 살기 어려워지면 결국 의지할 곳이 부모님밖에 없다는 생각이 들잖아요. 이렇게 의지처를 갖고자 하는 습관이 우리에게 남아 있습니다. 집을 그리워하듯이 늘 부모님에 대한 그리움이 우리에게 있습니다. 그래서 여러분들은 부모에게 저항을 하면서도 한편으로는 부모의 노예입니다. 부모가 싫어서 여기 와 있으면서도 부모가 걱정이 되고, 부모에게 도움을 받으려고 하고, 이렇게 심리적으로는 아직도 부모의 어린 아이입니다.nbspnbsp붓다가 되기 위해서는 모든 미움과 원망도 버려야 하지만, 이런 의지처와 속박으로부터도 벗어나야 해요. 출가를 하기 위해 집을 불살라 버리듯이 부모에 대한 미움과 원망만 버려야 되는 것이 아니라 부모에 대한 의지심과 사랑도 다 버려야 합니다. 그래야 이제 내가 내 인생을 살 수 있습니다. 여러분들은 덩치만 크고 나이만 들었지 자기 인생을 살고 있지 못해요. 엄격하게 말하면 아직도 부모의 어린 아이, 부모의 노예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습니다.nbspnbspnbsp부모에게 저항하는 사람일수록 이렇게 집을 나와 있으면 부모에게 불효하는 것 같고, 죄를 지은 것 같은 생각이 더 듭니다. 한쪽은 그리워하고, 한쪽은 원망하고, 그러면서 부모가 돌아가셨다고 하면 울고불고 하면서 불효했다고 자책합니다.”nbsp백일출가 수련생들은 고개를 끄덕이며 스님의 법문에 공감했습니다. 집의 속박으로부터 벗어나려면 집이 갖는 안온함도 버려야 하듯이 부모의 속박으로부터 벗어나려면 부모가 주는 안온함도 함께 버려야 한다는 이치가 명쾌하게 다가왔습니다.nbspnbsp이어서 스님은 부모님에게 감사한 마음을 가져야 하는 동시에 부모님에게 연연해서도 안 된다고 이야기해 주었습니다. 그리고 미워하거나 원망하지 않아야 할 뿐만 아니라 의지하지도 말아야 한다고 강조했습니다.nbspnbsp“부모에게 감사 기도를 하라는 것은 부모로부터 독립하라는 얘기입니다. 이제 여러분들은 더 이상 부모의 어린 아이가 아닙니다. 스무 살이 넘었기 때문에 이제 성인입니다. 부모를 원망하는 것도 어린 아이 같은 짓이고, 부모를 그리워하는 것도 어린 아이 같은 짓이고, 부모에게 의지하는 것도 어린 아이 같은 짓입니다. 노예의 습성이 배어서 그런 것입니다.nbspnbspnbsp‘저를 낳고 키워주셔서 감사합니다. 제가 어리석어서 해달라는 것 안 해준다고 미워하고 원망했는데, 또 엄마 아빠가 싸운다고 원망했는데, 이제 어른이 되어 생각해보니, 나도 결혼해서 살면 부부 간에 갈등을 일으키고 살 수 밖에 없겠구나. 서로 싸울 수도 있겠구나’ 이렇게 이해하고 감사 기도를 하세요.nbspnbsp그래도 자기들끼리는 싸우더라도 나를 위해서는 같이 살아주었고, 나를 위해서는 보살펴 주었잖아요. 둘이서 싸우는 것은 내가 관여할 일이 아니에요. 부부 싸움에도 불구하고 나를 버리지 않고 키워주었다는 것은 감사해야 할 일이지요. 길 가는 사람도 미워하지 않는데 나를 낳고 키워준 부모를 원망하면 안 되지요. 내가 원하는 만큼 해주지 않았다고 해서 원망하는 마음을 갖는다면 그것은 아직도 어린 아이 같은 짓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 미움과 원망, 섭섭함에서 벗어나지 못하면 여러분들은 부모로부터 자유로워질 수가 없습니다. 부모가 싫어서 집을 뛰쳐나온 사람은 해탈하기가 어렵습니다. 그런 사람은 나중에 다시 부모를 그리워하거나 부모 때문에 다시 돌아가는 경우가 많기 때문입니다.nbspnbsp그리고 더 이상 부모에 연연해서도 안 됩니다. 미워하고 원망하는 것도 버려야 하지만 ‘부모에게 효도를 해야 한다’, ‘내가 없으면 부모가 못 산다’ 이런 생각도 버려야 합니다.nbspnbsp여러분들은 이 두 가지가 같이 섞여 있습니다. 이 두 가지의 고리를 끊어야 한 사람의 독립된 인간, 자유로운 사람이 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일차적으로 부모를 원망하고 미워한 것에 대해 참회를 해야 합니다. ‘제가 어리석어서 원망을 했습니다. 다시 생각해보니 낳고 키워주신 은혜를 많이 입었습니다’ 이렇게 감사 인사를 하게 되면 부모로부터 오히려 자유로워집니다.nbspnbsp예로부터 부모가 죽으면 불효자가 더 많이 운다고 하잖아요. 효자는 부모님에게 할 만큼 다 했기 때문에 돌아가셔도 울 필요가 없는데, 불효자는 살아계실 때는 저항하면서 시간 보내고, 돌아가신 뒤에는 후회한다고 시간을 보냅니다. 부모에 대한 모든 원망과 미움을 버리고 은혜 입은 것에 대해 충분히 감사 기도를 해버리면 부모에 대한 의무감으로부터도 벗어나게 됩니다. 그래서 부모로부터 자유로워집니다.nbspnbsp부모가 나에게 이런 저런 요구를 하는 것은 부모의 요구에 불과해요. 부모의 요구는 나의 삶과 일치하지 않습니다. 자식이 독립운동 한다고 하면 모든 부모가 다 말립니다. 그러나 부모가 말린다고 그 말을 따르면 이 세상에 애국자는 나올 수도 없고, 스님도 나올 수가 없고, 어떤 위대한 사람도 나올 수가 없습니다. 그러니 여러분들은 더 이상 부모의 어린 아이가 되어서는 안 됩니다. 부모의 어린 아이로부터 벗어나서 이제는 내 인생의 주인이 내가 되어야 합니다.nbspnbsp여러분들이 어른이라면 부모에 대한 의지심에서도 벗어나야 되지만 어릴 때 부모를 원망한 것으로부터도 벗어나야 합니다. 어린 아이 같은 생각에서 미워하고 원망한 것입니다. 해탈을 하기 위해서는 무의식 세계에 뿌리박고 있는 부모에 대한 원망과 의지심에서 자유로워져야 합니다.nbspnbsp21일 동안 부모님에게 깊이 참회 기도를 해서 가장 큰 고리인 부모의 굴레를 끊어야 해탈의 길로 갈 수 있습니다. 이제 어른으로 돌아와서 어리석어서 부모님을 미워하고 원망한 것을 깊이 참회하고, 부모의 은혜에 감사하고, 동시에 부모의 모든 속박에서 벗어나야 합니다. 출가한 수행자는 집에 가더라도 어리광 피우고 엄마가 해주는 밥을 먹기만 하는 그런 존재가 되면 안 되고, 나는 자유인이고 어른이기 때문에 오히려 내가 부모님께 밥을 차려 드리고, 방청소도 해드려야 합니다. 그럴 때 부모도 ‘아, 내 자식이 다 컸구나’ 하면서 과거의 미련은 있지만 점점 그 미련이 줄어듭니다.nbspnbsp여기서 수행한다고 해놓고는 명절 때 집에 가서 늦잠 자고, 해주는 밥을 걸신들린 듯이 먹고 하면, 부모가 볼 때 한편으로는 ‘아이고, 불쌍하다. 안 됐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저게 미쳤나. 왜 저렇게 살지?’ 이런 마음이 들어서 부모의 걱정이 끝이 없게 됩니다. 부모가 자식을 자꾸 결혼시켜려고 하는 이유는 부모가 자식으로부터 독립하고 싶어서 그런 것입니다. 자식이라는 무거운 짐을 덜고 싶은 것입니다. nbspnbsp결혼을 시키면 ‘이제 짐을 덜었다’ 이렇게 생각하게 되거든요. 그것처럼 여러분들은 출가를 함으로해써 부모의 무거운 짐을 덜어주어야 합니다. ‘이제 저는 어린 아이가 아닙니다. 부처의 길을 가는 수행자입니다’ 이런 자세가 분명해야 합니다. 이것이 안 되면 부모에게 늘 걱정을 끼치는 존재가 됩니다. 이런 원리를 잘 알아서 부모님을 원망하는 마음이 있으면 참회를 하고, 은혜를 입은 것에 대해서는 다 감사를 해버려서, 이제는 부모의 노예로부터 벗어나 한 사람의 독립된 인간이 되어야 합니다. 그렇게 정진하시기 바랍니다.”nbsp대중들은 부모는 자식의 무거운 짐을 덜고 싶어 한다는 얘기에 모두들 공감이 갔는지 웃음을 터뜨렸습니다. 출가한 것이 부모님의 무거운 짐을 덜어주는 것이 되어야 한다는 얘기에 모두 고개를 끄덕였습니다. 그리고 부모님에 대해 감사한 마음을 갖게 되면 오히려 부모님으로부터 더욱 자유로워진다는 이치도 명쾌하게 다가왔습니다. 모두들 21일 동안 부모님에 대해 참회 기도를 열심히 할 것을 다짐하며 발우공양을 마쳤습니다.nbspnbsp발우공양을 마치고 나서는 지난 일주일 동안 해외 일정을 무사히 마치고 돌아온 스님에게 공동체 대중들 모두가 삼배로 인사를 올렸습니다. 스님도 맞절을 하며 반갑게 안부 인사를 했습니다.nbspnbspnbsp이어서 8시 30분에는 봉화 정토수련원으로 향했습니다. 10시 30분에 봉화 정토수련원에 도착하자 이곳 담당을 맡고 있는 희광 법사님과 봉사자들이 스님을 반갑게 맞이해 주었습니다.nbspnbsp▲ 봉화 정토수련원 보수 공사를 도와주고 있는 봉사자들nbsp많은 봉사자들의 손길로 보수 공사가 한창 진행 중이었는데, 스님은 어떤 시설을 더 보완해야 하는지, 대중들이 이용하기에 부족한 점은 무엇인지 전체적으로 살펴보았습니다.nbspnbsp▲ 봉화 정토수련원nbsp12시에 봉화 정토수련원을 출발하여 잠시 점촌에 들러 4000원짜리 칼국수로 점심을 먹은 후 2시 30분에 다시 문경 정토수련원으로 돌아왔습니다.nbspnbsp대웅전 앞마당에는 스님과의 모임을 갖기 위해 벌써부터 많은 수련생들이 북적거렸습니다. 다들 스님과의 만남에 설레어 하는 모습이었습니다. 스님은 수련생들과 함께 차수별로 기념사진을 한 장씩 함께 찍었습니다.nbspnbsp▲ 스님과 기념사진을 찍는 깨달음의장 수련생들nbsp오후 3시부터는 방금 깨달음의장 수련을 마친 수련생들을 위해 격려 말씀과 더불어 혹시 수련하면서 의문 나는 점이 있는지 묻고 그에 답하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깨달음의장 수련을 갓 마친 분들이어서 그런지 대웅전에 모인 수련생들은 스님의 법문을 듣는 내내 얼굴에 환한 웃음이 가득했습니다.nbspnbsp▲ 깨달음의장을 마친 수련생들과의 만남nbsp스님이 “무엇을 깨달았어요?”라고 묻자, 여기저기서 “나는 아무것도 아니다”, “이제 출가할 수 있습니다”, “저는 아무것도 모릅니다” 등등의 대답이 나왔습니다. 스님은 “다 좋아요. 그런데, 괴로울 일이 없구나 이것을 깨달아야지요” 하고 환하게 웃으면서 법문을 시작했습니다.nbspnbsp“괴로울 일이 없는데 괜히 혼자 미쳐서 날뛴 것임을 알면 이제부터는 행복하게 살 수 있죠. 그동안 얼마나 별일 아닌 것 같고 몸부림치면서 살았어요? 이제 내려가시면 괴로울 일 없이 사세요. 자기가 가진 에너지를 자기를 괴롭히는 데 더 이상 쓰지 말고, 세상 사람들의 괴로움을 덜어주는 데에 쓰세요.nbspnbspnbsp그런데 우리는 대부분 자신의 에너지를 자신을 괴롭히는 데 쓰잖아요. 어떤 사람이 나한테 오물을 한 봉지 주었어요. 그걸 애지중지하면서 평생 안고 사는 것이 인간이라는 말이 있어요. 무슨 뜻이냐면 어떤 사람이 나한테 욕을 하면 ‘그 놈이 나한테 욕을 했어’ 이렇게 평생 붙들고 산다는 것입니다. 욕이라는 것은 오물이지요. 그 놈이 나한테 오물을 주고 갔는데 나는 그 오물을 딱 움켜쥐고 평생 귀중하게 여기고 삽니다. 그래서 우리가 괴로운 것입니다. 그것이 오물이면 그가 나에게 주었든 말든 받자마자 던져 버려야 하는데, 우리는 그것을 움켜쥐고 살잖아요. 자기는 잘한다고 하는데 돌아보면 바보 같은 짓을 우리는 많이 하고 살아요.nbspnbsp이제 더 이상 자기가 자기를 괴롭히는 일은 그만하세요. 밥 먹는 것은 자연의 무수한 노고를 우리가 흡수하는 것이잖아요. 그 소중한 것을 먹고 생긴 에너지를 남을 때리고 욕하고 손해 끼치는 데 쓰지 말고, 자기 괴롭히는 데에 쓰지 말고, 괴로운 사람의 괴로움을 덜어주는 데에, 어려운 사람을 도와주는 데에, 죽어가는 생명을 살려주는 데에 쓰세요. 나도 좋고 남도 좋은 일을 하는 데에 에너지를 쓰고 사세요. nbspnbsp그런데 그렇게 살지 못하는 것은 특별히 무슨 죄가 있어서 그런 것이 아니에요. 어리석어서 그렇습니다. 몰라서 그렇습니다. 미쳐서 그렇습니다. 수련하면서 자신의 미친 모습들 많이 봤죠? 이제 놓아버리고 편안하게 사시기 바랍니다.nbspnbsp집으로 가면 하루 만에 헷가닥 해서 본래대로 돌아가는 사람이 있고, 일주일 만에 돌아가는 사람이 있고, 한달 만에 돌아가는 사람이 있고 그래요. 깨달았다는 것은 햇볕이 전혀 없는 깜깜한 곳에 살다가 바늘구멍이 하나 뚫린 것과 같아요. 바늘구멍만 하다고 하더라도 깜깜한 곳에서는 밝지요. 그래서 여러분들도 지금 다 깨달은 것처럼 환하게 느껴져요. 그런데 바늘구멍 만큼 작기 때문에 금방 막혀 버려요. 먼지가 많은 곳에서 살면 금방 막혀 버립니다. 금방 물들어서 원래 습관대로 돌아가 버립니다.nbspnbsp그러니 이제부터 그 작은 구멍을 자꾸 넓혀야 돼요. 구멍을 자꾸 넓혀서 어떤 경우에도 구멍이 막히지 않도록 하는 것을 연습해야 합니다. 여기서 겨우 한 것은 바늘 구멍만한 크기를 뚫은 정도입니다. 그런데 대다수가 구멍을 넓히지 않고 금방 막아버리는 것 같아요.nbspnbspnbsp꿈속에 살다가 여기 와서 잠깐 꿈을 깨 놓고서는 다시 꿈속에 살면서 마치 여기서 깨달은 것이 꿈 같이 느껴져요. ‘내가 언제 그런 꿈을 꿔 봤었나?’ 하면서 평생을 꿈속에서 살거든요. 사실 지금이 여러분들이 깨어있는 상태이고, 집으로 가서 다시 헤매게 되는 것이 꿈이에요. 꿈이라는 것은 자기 생각 속에 사로잡혀 있는 상태를 말합니다. 더 이상 꿈속에 살지 마시고 항상 실재의 사실을 볼 수 있게 눈을 뜨고 사시기 바랍니다.”nbsp그리고 “수련하면서 아직도 미진한 것이 있다는 분이 있으면 질문해 보세요” 라고 물었습니다. 3명이 손을 들고 질문을 했습니다. 한 분은 “친구에게 큰 배신을 당하고 그 사실을 잊으려고 하는데 자꾸 욕이 나와서 어떻게 해야 할지” 물었고, 또 다른 한 분은 “스님은 70일 단식을 하신 적이 있고, 지금도 자주 단식을 하시는데, 단식을 하는 이유와 그 방법이 궁금하다”고 물었습니다. 마지막으로는 “상대 때문에 화가 나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이 아직도 잘 이해가 가지 않는다”고 물었고, 스님은 각각에 대해 다양한 비유를 들어가며 명쾌한 답변을 들려주었습니다. nbsp nbspnbspnbsp모임을 마치면서는 지식 쌓기가 아닌 직접 삶 속에서 연습하는 것이 중요함을 강조하면서 지금 여기 깨어있는 삶을 살 것을 당부했습니다.nbspnbsp“지식은 다 바깥을 향한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의 괴로움은 자기로부터 일어나는 것입니다. 자기로 향했을 때만 자유로워질 수 있습니다. 그러니 집으로 돌아가서도 공부 열심히 하세요. 공부는 책 보고 지식 쌓는 것을 말하는 것이 아니에요. 법륜스님 즉문즉설 유튜브 동영상을 1000편 봤다고 하는 사람은 지식을 쌓은 것이에요. 부모는 자식에게 어떻게 해야 되고, 자식은 부모에게 어떻게 해야 되고, 이런 식으로 논리를 만드는 것은 지식을 쌓는 것에 불과합니다. 한 두 편만 보더라도 어떤 원리를 깨우쳐서 자기에게 적용하는 연습을 해야 됩니다. 그래야 자유로움에 이를 수 있습니다.nbspnbspnbsp자유로워진 상태에서는 무엇을 해도 좋습니다. 결혼해도 좋고, 혼자 살아도 좋고, 정치를 해도 좋고, 장사를 해도 좋아요. 그런데 장사를 하면 괴롭고, 절에 오면 행복한 것은 수행이 아니에요. 아침에 일어나서 염불할 시간이 주어지면 염불하고, 풀 뽑을 일 있으면 풀을 뽑고, 밥할 일이 있으면 밥을 하고, 손님이 오면 만나서 얘기를 나누면 됩니다.nbspnbsp삶이 그대로 수행입니다. 직장을 나가든, 정치를 하든, 농사를 짓든, 법문을 하든, 집에 있든, 다 똑같은 겁니다. 그냥 경계 따라 일어나는 일을 할 뿐이지요. 같은 일을 열 번 해도 지루하지 않고, 열 가지 다른 일이 주어져도 복잡하지 않아야 돼요. 어차피 산다는 건 이 일이든 저 일이든 해야 하잖아요. 그것 때문에 스트레스 받는다 하는 것은 자기에게 깨어있지 못하다는 것을 말합니다.nbspnbsp이제 ‘괴로워 할 일이 없구나’ 하고 탁 깨쳤죠. 그러나 원리는 괴로워할 일이 없는데 현실은 괴로워할 일이 생깁니다. 그래서 나도 모르게 화를 냈다고 하더라도 금방 웃을 수 있는 쪽으로 나아가는 연습을 해야 합니다. 꾸준히 연습하면 작은 구멍이 점점 커져서 이제는 어떤 경계에 부딪혀도 웃을 수 있습니다.nbspnbsp병원에 가서 암이라고 진단을 받아도 버젓이 웃으면서 ‘아이고, 의사 선생님. 암 찾는다고 수고하셨어요. 발견하셔서 기쁘시겠어요’ 라고 말할 수 있어야 합니다. 의사가 찾는다고 고생했잖아요. 이왕지사 돈 들여서 검사했으면 못 찾는 것보다는 찾는 게 좋잖아요. 오늘 찾았다는 것은 있던 것을 찾았어요? 없던 것을 새로 만들었어요? 있던 것을 찾은 것이니까 좋은 일이잖아요. 이렇게 얘기할 수 있는 수준으로 나아가야 합니다. nbspnbspnbsp암이라고 울고불고 하는 것은 자신의 인생을 낭비하는 것입니다. 1년 후에 죽는다고 해서 슬픈 것이 아니에요. 1년 후에 죽는다는 생각을 1년 내내 하기 때문에 슬픈 것입니다. 지금 우리들 중에서도 열흘 만에 죽을 사람이 있을 수 있지요. 그러나 그 사람은 죽는다는 생각을 안 하니까 안 슬픈 겁니다. 1년 후에 죽는다, 10년 후에 죽는다, 이런 건 중요하지 않아요. 지금 깨어있는 것이 중요합니다.”nbspnbsp수련을 방금 마친 사람들이어서 그런지 스님의 법문이 귀에 쏙쏙 들어왔나 봅니다. 모두들 환한 미소와 큰 박수로 스님에게 감사의 마음을 전했습니다.nbspnbspnbsp어떤 분은 “우리는 복도 많지. 깨달음의장 끝나자마자 법륜 스님의 법문을 직접 듣나니. 세상에” 라며 감탄을 연발했습니다. 지식 쌓기가 아닌 실천을 강조하는 스님의 호소에 다시 한번 정신이 번쩍 들었던 시간이었습니다.nbspnbsp1시간 30분 동안의 법문을 마치고, 오후 4시30분에 스님은 곧바로 서울로 향했습니다.nbspnbsp저녁 7시30분에 서울에 도착한 스님은 평화재단 평화연구원에서 자원봉사로 참여하고 있는 전문가들과 만나 저녁식사를 대접하며 앞으로 더욱더 왕성한 연구활동을 해줄 것을 당부한 후 서울 정토회관으로 들어왔습니다. 집무실에서 원고 교정과 몇 가지 업무들을 처리한 후 오늘 일정을 마쳤습니다.nbspnbsp내일은 오전에 정토회 법사단과 회의를 가진 후 오후에는 문화사업부와 홍보 관련 업무 논의를 하고, 저녁에는 7시부터 서울대 문예회관에서 열리는 김제동씨와 함께하는 ‘2015 청춘콘서트’에 참석해 청년들을 위해 강연을 할 예정입니다.

2015.06.29. 55,637 읽음 댓글 39개

2015.6.26~27 세계한민족포럼 3일째 및 한국 귀국

▲ 파리에서 한국으로 오는 길. 공항에서 명상을 하고 있는 스님nbsp안녕하세요. 오늘 스님은 세계한민족포럼 3일째를 맞이하여 프랑스 파리에서 열린 “남북관계”를 주제로 한 토론에 참석한 후 카타르 도하를 경유하여 16시간의 비행을 한 후 한국으로 귀국했습니다.nbspnbsp어젯밤 세계한민족포럼 참가단과 함께 프랑스 파리에 도착한 스님은 오늘 새벽 숙소에서 기도와 명상으로 하루를 시작했습니다. 오전 9시30분부터는 세계한민족포럼의 6번째 Session이 ‘남북관계’를 주제로 열렸습니다.nbspnbsp▲ 세계한민족포럼 6번째 Session ‘남북관계’nbsp‘동북아 국제정세와 남북관계 전망’을 주제로 박영호 통일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의 기조발제가 있은 후, 권영경 통일교육원 교수가 ‘북한의 경제개발구 추진과 남북경제협력의 과제’에 대해 발표하고, 지영해 옥스퍼드대학교 동양학부 교수가 ‘성 아우구스티누스의 정치신학적 관점에서 본 한반도 통일과 정부의 안정성 문제’에 대해 발표했습니다. 이어서 스테파니 기랜 폴린트유럽국제네트워크 연구원과 남문헌 뉴시스 기자, 바투르 자미얀 몽골국립대 교수의 패널 토론이 이어졌습니다. 스님은 전문가들의 발표 내용을 경청했습니다.nbspnbsp▲ 전문가들의 발표를 경청하는 법륜 스님nbsp특히 기조발제를 한 박영호 연구위원은 “한국 정부는 북한이 먼저 변하지 않으면 관계를 개선하지 않겠다는 강경 정책을 고수하고 있고, 북한도 대남 강경 정책을 고수하고 있어서 서로 충돌하는 상황이고, 그리고 최근 미국이 일본의 역할 강화를 허용하는 미일 안보동맹의 강화 조치를 취함으로서 이제 일본 정부는 한일 관계가 나빠진 상황에서 한국 정부가 원하는 대로 자세 변화를 하지는 않을 것 같다” 고 하면서 “올해 광복 70주년을 남북관계의 중요한 발전의 계기로 삼고자 하는 기대감이 높지만 많이 회의적인 상황” 이라고 말했습니다.nbspnbsp그러나 정영태 박사는 “한국 정부가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서 남북관계는 얼마든지 희망적으로 바뀔 수 있다”고 하면서 긍정적으로 내다봤습니다. 또 권영경 교수는 “북한이 다자적인 경제협력 프로젝트에 편입되도록 해서 체제 위협 요인이 사라지게 하면 북한의 강경한 자세가 많이 완화될 수 있으므로 이에 대한 방안을 모색해야 한다”고 강조했습니다. 그리고 외국인 전문가들은 “한국이 경제력 등 모든 면에서 훨씬 우위를 점하고 있는데 왜 남북관계를 리드하지 못하고 주변국에 끌려다니고 있는지 잘 모르겠다”고 의문을 말하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많은 토론 끝에 전문가들 모두 한국 정부가 통일지향적인 자세를 명확하게 갖고 변화를 이끌어내는 것이 중요하다는 데 결론을 모았습니다.nbspnbsp12시 무렵 Session6이 모두 끝나자 스님은 이번 세계한민족대회를 주관하였고 국제한민족재단 상임의장을 맡고 있는 이창주 교수님에게 초대해준 것에 대한 감사 인사를 하고 행사장을 나왔습니다. 이창주 교수님도 기조발제를 해준 스님에게 감사 인사를 하고 다음 포럼에도 꼭 참석해줄 것을 부탁했습니다.nbspnbsp▲ 이번 세계한민족대회를 주관한 이창주 상트페테르부르그국립대학 석좌교수nbsp스님이 행사장을 나오자 파리 정토열린법회 회원들이 스님에게 인사를 하러 찾아왔습니다. 스님은 반가운 얼굴로 파리 정토열린법회 회원들과 악수를 나누고 직접 사인한 ‘지금 여기 깨어있기’ 책을 선물한 후 기념사진도 함께 찍었습니다.nbspnbsp▲ 파리 정토열린법회 회원들과 함께nbsp그리고 파리열린법회 회원인 주정심 안영수씨 부부가 직접 차를 가져와서 스님 일행을 공항까지 무사히 데려다 주었습니다. 스님은 운전을 해준 부부에게 직접 사인한 책을 선물하며 감사의 마음을 전했습니다. nbspnbsp▲ 공항 배웅을 나와준 주정심 안영수씨 부부nbsp그리고 이번 3박4일 동안 스님의 런던과 파리 방문 일정 관련된 속소 예약, 강연 준비 등의 실무를 맡아 준 정토회 유럽지구장 김선희님에게 감사의 마음을 전하고 다음 유럽 방문 때 다시 만날 것을 기약하며 인사를 나누었습니다.nbspnbsp▲ 스님의 런던, 파리 방문 일정 실무를 맡은 정토회 유럽지구장 김선희님nbsp보안 심사대와 출국 심사대를 통과한 스님은 게이트 앞에서 원고 교정 업무를 보다가 오후4시 비행기로 파리 공항을 출발해 카타르 도하를 경유하여 27일 오후4시에 인천공항에 도착했습니다.nbspnbspnbsp카타르 도하 공항에서는 현지 시간으로 밤 12시 30분에 도착했는데, 마침 한국 시간으로 새벽 5시인 천일결사 기도 시간이 되어 스님은 공항에서 기도와 명상을 했습니다.nbspnbsp▲ 카타르 도하 공항nbsp스님은 늘 경비를 절약하기 위해 저가 항공을 타고 다니는데 그러다 보니 이번에는 16시간 동안의 긴 비행 끝에 한국에 도착할 수 있었습니다.nbspnbsp귀국 후 스님은 곧바로 서울 정토회관에 잠시 들러 업무 처리를 하고, 카타르 도하 공항에서 다하지 못한 108배를 한 후 저녁 예불을 올렸습니다.nbspnbsp▲ 서울 정토회관 저녁 예불nbsp예불 후에는 일주일 동안 해외 방문 일정을 마치고 돌아온 스님에게 공동체 상주대중 모두 삼배로 인사를 올렸고, 스님도 맞절을 하며 무사히 해외 일정을 마친 안부를 전했습니다.nbspnbsp▲ 스님에게 삼배로 인사를 올리는 공동체 상주대중nbsp그리고 저녁 7시 30분에 서울 정토회관을 출발하여 밤 10시 무렵 문경 정토수련원에 도착했습니다. 내일은 문경 정토수련원의 발우공양에 참석해 공동체 상주대중들을 위한 법문과 깨달음의장 수련생들과의 수행법회를 가진 후 다시 서울로 올라와 평화재단 평화연구원 전문가들과의 미팅을 가질 예정입니다.nbsp

2015.06.27. 33,399 읽음 댓글 71개

2015.6.25 세계한민족포럼 2일째 (런던과 파리)

▲ 에펠탑nbsp안녕하세요. 오늘 스님은 세계한민족포럼 2일째를 맞이하여 오전에 ‘역사적 과오와 성찰’에 대한 토론에 참석한 후 오후에는 포럼 참가단의 안내로 런던 역사 문화 탐방을 한 후 파리로 이동했습니다.nbspnbsp세계한민족포럼이 열리고 있는 런던의 숙소에서 새벽4시에 일어난 스님은 주변을 산책한 후 오늘이 6.25전쟁 기념일이여서 전쟁 희생자들의 넋을 기리는 기도와 한반도 통일에 대한 기도를 했습니다. 5시에는 숙소로 돌아와 108배와 명상을 한 후 6시부터 아침식사를 했습니다.nbspnbsp식사 후 원고 교정 업무를 보다가 9시30분부터 세계한민족포럼에 참석했는데, 오늘 오전은 nbspSession 4번째 시간으로 ‘역사적 과오와 성찰’을 주제로 각 전문가들의 기조발제와 발표들이 있었습니다. “복제된 제국주의와 동아시아의 역사적 비극”에 대해 김성민 건국대 철학과 교수가 기조 발제를 했고, “일본과 한국의 역사분쟁 매카니즘”에 대해 기무라 간 고베대학교 교수가 발표하고, “신라의 통일의식과 삼국통합정책”에 대해 연민수 동북아역사재단 실장이 발표했습니다. 오늘 토론에서는 주로 일본의 역사 문제 반성에 대해 열띤 토론이 있었습니다.nbspnbsp▲ 세계한민족포럼 2일째 토론 ‘역사적 과오와 성찰’nbsp오전 세션을 모두 마치고 포럼 참가단 전체가 런던 역사 문화 탐방을 떠났습니다. 가장 먼저 도착한 곳은 영국 여왕이 거주하고 있는 버킹엄 궁전입니다.nbspnbsp▲ 버킹엄 궁전 앞 원형광장nbsp궁전 앞을 보러 걸어가는 길에 스님에게 “버킹엄 궁전에 와 보신 적 있으세요?” 라고 물어보았습니다. 스님은 “남의 집 봐서 뭐하려고?”라고 하면서 웃었습니다. 사실 스님은 작년 9월에 세계 100회 강연을 하면서 이곳 런던을 방문한 적이 있는데 그 때는 몸이 너무 아파서 교민들이 준비한 역사 탐방에 참여하지 못했습니다. 스님은 “이렇게 여유있게 유적지를 둘러볼 때도 다 있네” 라고 하면서 가벼운 발걸음으로 포럼 참가단과 함께 했습니다.nbspnbsp▲ 영국 런던 버킹엄 궁전. 세계한민족포럼 한국 참가단과 함께.nbsp버킹엄 궁전은 1703년 버킹엄 공작 존 셰필드의 저택으로 세워진 것을 현재 영국 왕의 공식적인 사무실 및 주거지로 쓰고 있는 곳입니다. 영국을 상징하는 대표적인 건물이지요.nbspnbsp연간 초대객은 4천 명이나 된다고 하는데, 마침 오늘은 사회 곳곳에서 헌신적으로 일하고 있는 환경미화원, 학생들을 위한 교통 안내원 등을 초대한 날이였습니다. 궁전의 내외 호위를 담당하는 왕실 근위병 교대식은 매일 오전 11시45분에 열리는데 포럼 참가단이 방문했을 당시는 이미 교대식이 끝난 시간이었습니다.nbspnbsp▲ 빅토리아 기념비nbsp궁전 앞의 원형광장에는 빅토리아 기념비가 세워져 있었습니다. nbspnbsp▲ 말을 타고 가는 경찰관.nbspnbsp다음은 현재 국회의사당으로 사용되고 있는 웨스트민스트 궁전을 먼 발치서 보았습니다. 웨스트민스터 궁전의 빅토리아 탑에는 200만 건이 넘는 서류가 보관되어 있다고 하며 높이 106m의 세인트스티븐 탑에는 ‘빅벤’이라 불리는 대형 시계탑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가이드의 설명에 따르면 ‘빅벤’이라는 명칭은 시계탑이 아닌 시계탑에 딸린 큰 종의 이름이라고 합니다. 시계탑의 정식 명칭은 ‘엘리자베스 타워’라고 알려주었습니다. nbspnbsp▲ 국회의사당과 빅벤nbspnbsp그리고 특이했던 점은 지금도 국회의사당 안에는 감옥이 있다는 점이었습니다. 국회의원이 의정 활동을 방해한다든지 욕을 한다든지 하면 국회의장 권한으로 국회의원을 1시간2시간 감옥에 가둘 수 있다고 합니다. 그러자 포럼 참가단 중에 한명이 “우리 여의도에도 그런 감옥이 있으면 좋겠네요” 해서 모두들 크게 웃기도 했습니다.nbspnbsp영국에는 국회의원이 650명이 있는데 인구가 6500만명이니까 국회의원 1명당 10만명의 유권자가 있다고 합니다. 게다가 공식 투표권자만 계산하면 국회의원 1인당 56만명이 되고, 당선이 되려면 2만5천명 정도의 표만 있으면 되니까, 즉 국회의원 1인당 유권자수가 적어서 유권자 한명 한명의 의견을 소중히 여기는 문화가 있다고 합니다. 그래서 잘 해결되지 않는 민원을 국회의원에게 부탁하면 거의 다 수렴을 해준다고 합니다. 민의를 잘 수렴해주는 영국의 정치제도가 많이 부러웠습니다. 그리고 수상이 근무하는 관저인 다우닝가 10번지를 둘러본 후 웨스트민스트 대성당을 보고 다음 장소로 이동했습니다.nbspnbsp다음은 트라팔가 광장을 지나쳤습니다. 트라팔가 광장은 1805년 트라팔가 해전을 기념하여 만든 곳인데 정치연설을 하는 사람들이 많은 것으로도 유명하여, 주말에는 여러 가지 집회가 이루어지는 경우가 많다고 합니다. 분수대 근처에는 넬슨 제독의 기념비가 있었는데 거대한 4마리의 사자 상이 떠받치고 있는 형상으로 건축되어 있었습니다.nbspnbsp▲ 트라팔가 광장nbsp마지막으로 타워브릿지를 둘러보았습니다. 타워브릿지는 영국 런던 시내를 흐르는 템즈 강 위에 도개교와 현수교를 결합한 구조로 지은 다리입니다. 런던 탑 근처에 있기 때문에 이러한 이름이 붙여졌다고 합니다.nbspnbsp▲ 타워브릿지nbsp1886년에 착공을 시작하여 1894년에 완성한 이 다리는 오늘날에는 런던의 대표적인 상징물 가운데 하나가 된 곳입니다. 큰 배가 지나갈 때는 다리가 위로 들어올려지는데 완공된 첫 달에만 655번이나 다리가 들어올려졌고, 현재는 1년에 약 500번 정도 다리가 들어올려진다고 합니다. 처음에는 수력을 이용해 개폐했지만 오늘날에는 전력을 이용하고 있다고 합니다.nbspnbsp그리고 타워브릿지 앞에는 한국전쟁 때 맥아더 장군의 인천상륙작전에 참전했다고 하는 벨파스트 전함이 세워져 있었습니다. 마침 오늘이 6.25 기념일이라 전함의 모습이 새삼 더 의미있게 다가오기도 했습니다.nbspnbsp▲ 한국 전쟁 때 인천상륙작전에 참가했다고 하는 벨파스트 전함. 뒤에 세모나게 높이 솟은 건물은 현재 유럽에서 가장 높은 건물인 ‘The Shard’.nbsp포럼 참가단을 안내해준 가이드 권석하씨는 법륜 스님을 직접 만나 너무나 영광이라며 스님과 기념사진을 찍었습니다. 스님도 정성껏 안내를 해준 것에 대한 감사의 마음을 담아 스님의 책을 사인해서 선물했습니다.nbspnbsp▲ 가이드를 해 준 권석하씨와 함께 런던 탑 앞을 걸으며.nbspnbsp원래는 대영박물관을 더 둘러볼 예정이였으나 예약한 기차 시간이 다 되어 곧바로 기차역으로 이동했습니다.nbspnbsp5시30분에 런던 세인트 판크라스 역에 도착한 포럼 참가단은 6시까지 유로스타에 탑승해야 했는데 보안심사대와 출국심사대를 통과하는 절차가 마치 비행기 타듯이 엄격해서 간신히 출발 시간에 맞춰 기차에 탑승할 수 있었습니다.nbspnbsp▲ 유로스타를 타고 런던에서 파리로.nbsp유로 스타는 도버 해협을 지나갔는데, 바다 밑을 기차가 지나간다니 정말 신기했습니다. 혹시 해저 터널을 지날 때 바다 속이 모두 보였을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는 분들은 없으시겠죠?nbspnbsp런던과 파리를 잇는 도버 해협을 지나며 스님은 한반도 통일이 가져올 희망에 대해 다시 한번 이야기했습니다.nbspnbsp▲ 유로스타 기차 안nbsp“나라는 서로 다르지만 이렇게 자유롭게 다닐 수 있으니 얼마나 좋아. 영·불은 과거 30년 전쟁, 백년 전쟁 등 서로 앙숙이었지. 유럽에서만 싸운게 아니라 전 세계에서 서로 싸운 나라잖아. 그런데도 지금은 이렇게 하나의 EU로 협력해 가고 있지.nbspnbsp그런데 같은 민족이면서도 남북이 서로 물고 차고 싸우는 거 보면 무척 안타깝지. 영토나 인구 면에서 볼 때 남북이 통일하면 최소한 영국이나 이탈리아 정도는 능히 추월할 수 있을거야. 독일과 프랑스는 독일과 프랑스의 꿈을 넘어 유럽의 꿈이라는 더 큰 꿈으로 승화시켜 가고 있잖아. 그것처럼 한국도 남북 통일을 넘어서 한중일 경제공동체를 만들면 더 큰 아시아의 희망을 만들어나갈 수도 있지.”nbspnbsp스님은 서로 힘을 합치지 못하는 남북의 현실에 대해 아쉬운 마음을 내비쳤습니다.nbsp6시에 런던을 출발한 유로스타 기차는 도버 해협을 지나 3시간을 달려 프랑스 현지 시간으로 10시에 파리 노드 역에 도착했습니다. 원래 2시간 30분이 걸리지만 선로에 문제가 생겨 23분이 연착되었다고 합니다. nbspnbsp파리에 도착해 숙소에 짐을 풀고 나니 마침 숙소 앞에 세느강이 흐르고 있었습니다. 근처에 자유의 여신상과 에펠탑도 보인다고 해서 잠시 산책을 나갔습니다.nbspnbsp▲ 세느강과 에펠탑nbsp세느강은 생각보다 강폭이 무척 좁아 보였습니다. 그리고 세느강 한 가운데에 밤섬이라는 작은 섬이 있었는데, 이곳은 산책을 할 수 있게 잘 가꾸어져 있었습니다. 밤섬의 한쪽 끝에는 크기는 작지만 뉴욕에 있는 것과 똑같이 생긴 ‘자유의 여신상’이 있었습니다. nbspnbsp▲ 파리의 세느강에 있는 자유의 여신상nbsp파리에 살고 있는 미국의 상공인협회에서 독립 100주년 기념으로 파리시에 기증한 것이라고 하는데 뉴욕의 것과 서로 마주보고 있다고 합니다.nbspnbsp자유의여신상에서 밤섬에 난 산책길을 따라 계속 걸으니 에펠탑이 나타났습니다. 에펠탑은 nbsp1889년 파리 마르스 광장에 지어진 탑인데, 다들 아시겠지만 프랑스의 대표 건축물이죠. 1889년 프랑스 혁명 100주년 기념 세계 박람회의 출입 관문으로 건축되었는데, 그 높이가 324m이며, 이는 81층 높이의 건물과 맞먹는 높이라고 합니다.nbspnbsp스님은 산책을 마치고 밤12시가 넘어 오늘 일정을 모두 마쳤습니다. 내일은 세계한민족포럼 3일째 발표와 토론이 진행되는데 스님은 오전 세션만 참가한 후 한국으로 귀국할 예정입니다.nbsp

2015.06.26. 29,156 읽음 댓글 36개

2015.6.24 세계한민족포럼 1일째 (런던)

▲ 영국 런던nbspnbsp안녕하세요. 오늘 스님은 ‘한반도가 통일로 가는 길’을 주제로 영국 런던에서 열린 세계한민족포럼에 참석해 ‘한반도 통일의 과제와 전망’에 대해 기조 발제를 했습니다.nbspnbsp숙소에서 새벽 예불과 천일결사 기도를 마친 스님은 6시에 식사를 한 후 원고 교정 업무를 보다가 9시30분부터 세계한민족포럼에 참석했습니다.nbsp국제한민족재단이 이어오고 있는 ‘세계한민족 포럼’은 모국과 해외동포사회, 국제사회의 석학, 오피니언 리더, 전문가들이 중심축을 이루어 한반도의 평화와 통일에 대해 연구하고 토론하는 연례 글로벌 학술회의입니다. 작년에는 몽골에서 개최되었는데 이번에는 전쟁과 갈등을 극복하고 통합의 역사를 만들어낸 유럽의 중심인 런던과 파리에서 3일 동안 개최됩니다.nbspnbsp▲ 한반도가 통일로 가는 길을 주제로 열리고 있는 2015 세계한민족포럼.nbsp그 첫 번째 시간인 Session1에서는 ‘한반도의 빛과 그림자 70년’을 주제로 한 기조 연설과 질의응답이 있었습니다. 먼저 국제한민족재단의 상임의장인 이창주 상트페테르부르크국립대학교 석좌교수가 ‘70년 분단극복으로 한반도 광복을 완성하자’는 개회사를 했습니다. 이어서 이인제 새누리당 최고위원이 ‘한반도 통일은 위대한 혁명이다’라는 내용으로 개막 연설을 했습니다. 또 니클라스 스반스트륌 스웨덴 안보개발정책연구소 소장의 ‘남북관계와 통일과제 비정부기구의 관점’ 이라는 기조연설이 이어졌습니다.nbspnbsp오전 내내 긴 시간 발표와 연설을 들을 수 있었는데 무엇보다 외국에서 한국에 대해 연구하고 있는 전문가들의 발표를 들을 수 있다는 점은 더욱 의미있게 다가왔습니다. 법륜 스님은 Session1의 마지막 순서로 나와 ‘한반도 통일의 과제와 전망’을 주제로 기조연설을 했습니다.nbspnbsp“앞에서 발표하신 분이 지금 한반도에 평화를 가져오고 통일을 가져올 수 있는 주체적인 역할을 누군가가 해야 하는데 그런 역할을 제대로 하는 곳이 없다고 지적하셨습니다. 그런 역할을 할 수 있는 나라는 현재 상황으로 볼 때 대한민국 밖에 없지 않느냐 생각합니다. 물론 통일의 당사자로서 북한도 할 수는 있지만 제가 아는 현재 북한은 자기 체제를 유지하기에도 급급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한반도와 동아시아 전체의 평화를 어떻게 유지할거냐 하는 생각을 할 여유가 없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그런데 우리는 자꾸 북한이 전향적으로 나와주었으면 좋겠다 하는데, 물론 그렇게 해주면 좋지만 그럴 형편이 지금 못 되지 않느냐는 것이죠. 반면에 남한은 능력 면에서나 여러 측면에서 그런 역할을 충분히 할 수 있는데 못하고 있습니다. 그런 면에서 한국에 살고 있는 저로서도 매우 안타깝게 생각하고 있습니다.nbspnbsp▲ 한반도 통일의 과제와 전망을 주제로 기조 발제를 하고 있는 법륜 스님nbsp그럼 주변국들은 어떤가요? 주변국들은 한반도의 통일을 꼭 이뤄내야겠다고 생각할 이유가 별로 없는 것 같아요. 각자 자기 나라의 이익을 생각해야 되니까요. 현재의 분단 상태 하에서는 각자가 갖는 이익이 분명하지만, 통일된 한국이 앞으로 어떤 태도를 취할지 좀 불확실하잖아요. 그렇기 때문에 미국이든 중국이든 일본이든 한국의 통일이 자신들에게 더 큰 이익이라면 당연히 지지하겠지만 그것이 불확실하기 때문에 현상 유지를 더 선호하는 것 아닌가 싶어요.nbspnbsp이렇게 보면 이 현상을 타파할, 즉 분단을 통일로 현상을 변화시킬 수 있는 키워드는 한국 정부에 있다고 생각합니다. 문제는 한국 정부도 말로는 저도 동의할 만한 얘기를 많이 하지만 실제 행동은 말을 따라가지 못한다는 점이죠. 그러나 남북한의 조건을 비교해 볼 때 여러 측면에서 한국이 좀 더 유리한 국면에 있기 때문에 통일은 북한이 중심이 되어 할 수가 없을 것이고, 대등하게 통일하기도 어려울 것이고, 현실적으로 봤을 때 남한이 중심이 된 통일이 가능한 것 아닌가 싶어요.nbspnbspnbsp그런데 통일을 하려면 그 상대가 있으니까 전쟁을 해서 통일하려는 것이 아니라면 상대의 처지나 요구를 어느 정도 수용을 해야 합니다. 그런데 남한은 통일만 얘기하지 북한을 포용할 준비나 자세가 안 되어 있습니다. 그러면서 통일을 하겠다고 하는 것은 말로는 통일하자고 하면서 실제로는 할 생각이 없거나 아니면 힘으로 밀어붙여서 굴복시켜 통일하자는 목표를 갖고 있거나 둘 중에 하나입니다. 하는 행동을 보면 제가 보기에는 후자처럼 보이는데 그것은 현실 가능하지도 않고 또 굉장한 손실을 감수해야 합니다. 그리고 이것은 이미 65년 전에 북한이 더 강할 때 6.25 전쟁으로 한번 시도를 해봤던 것 아닙니까? 성공가능할 것 같았지만 국제 사회의 관계를 봤을 때 결국 실패하게 되었고 그것이 남북한 두 국민에게 엄청난 인명적 재산적 손실을 가져 왔고, 그것이 분단 70년이 유지되는데 하나의 큰 원인 제공을 했다고 보여집니다. 이것은 북쪽이 유리한 조건을 오판해서 실패한 것인데 현재 남쪽이 똑같이 반복하려고 하는 것은 우리가 역사를 통해서 배우는 것이 없지 않느냐 싶습니다.”nbsp우선 현재 상황에서는 남한이 통일을 주도할 수밖에 없고, 남한이 주도하기위해서는 북한을 포용해낼 준비를 해야 한다는 말에 모두 고개를 끄덕이며 공감을 표현했습니다. 그러나 그런 준비가 되어있지 않은 현재의 남한 정부를 생각하니 약간의 답답함도 생기는 것 같았습니다.nbspnbsp덧붙여 스님은 과거 우리의 역사 속에서 이미 상대를 포용해서 통합함으로써 시너지 효과를 낸 사례가 있다고 하면서 신라와 가야의 통합 이야기를 들려주었습니다.nbspnbsp“이렇게 본다면 지금은 조금 다른 방식으로 접근을 해야 합니다. 물론 우리가 통일에 대해서 같은 시기의 독일에서 많은 것을 배워야 하지만 그것은 여러분들도 다 잘 아실 것이라고 봅니다. 과거 한국의 과거 역사 속에서 통일이 상승효과를 가져온 한 예는 신라와 가야의 통합입니다.nbspnbspnbspAD 400년 경에 가야가 신라보다 훨씬 강해서 가야가 신라를 침공해서 신라가 멸망 위기에 처했습니다. 그 때 신라는 고구려에 원병을 청해서 광개토대왕의 5만 군대의 지원을 받아서 가야·왜 연합군을 격파했습니다. 이 전쟁은 신라가 오히려 가야보다 우위에 서는 역사적 계기를 마련했습니다. 그러고 100년이 지나자 이번에는 신라가 강해지고 가야가 약해졌습니다. 일반적으로 보면 강해진 신라가 무력으로 가야를 침공해서 통합을 하려고 할 것이고, 가야는 옛날에 자기들이 더 강했던 역사적 경험이 있기 때문에 끝까지 저항을 하는 것이 보편적입니다. 그런데 신라와 가야는 합의 통합을 했습니다. 나라 이름은 신라로 하는 대신에 신라는 가야인들의 신분을 보장하고 사상을 보장해주었다는 것이죠.nbspnbsp가야는 전통적인 불교국가이고, 신라는 150년 간 불교를 철저히 금지한 국가인데, 통합하기 전에 신라가 불교를 먼저 공인을 해서 가야의 모든 사상적인 것을 수용해주었습니다. 그리고 가야의 지배세력을 신라의 왕족으로 수용해줌으로해서 신분 보장을 해주었습니다. 이렇게 신라와 가야는 평화적으로 통합을 했고, 그 통합은 신라와 가야의 통합으로만 끝난 것이 아니고, 즉 11이 2가 된 것이 아니고, 그 통합이 신라를 급격하게 부강하게 만들었습니다. 즉 법흥왕 다음에 진흥왕 때, 통합하고 나서 30년이 지나지 않아서 신라는 자기 영토를 3배 정도 확대하는, 그래서 고구려와 백제에 버금가는 강국으로 부상을 했고, 그 힘이 바로 삼국 통일의 주역으로 나타난 것입니다. 가야에 양보한 것이 손실이 아니라 가야를 통합함으로해서 더 큰 이익을 얻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김유신을 비롯한 가야의 후손들이 신라가 삼국 통일을 하는데 혁격한 공로를 세울 수 있었습니다.nbspnbsp이것을 현 시대에 우리가 적용해 본다면, 남한이 중심이 되어서 북한을 포용하려면 남한이 북한과 통합하기 전에 북한의 공산당 활동을 전면적으로 허용을 해서 북한에게 통합한 이후에도 아무런 탄압이 없다는 것을 보여줘야 합니다. 또 남한도 연방 수준의 지방자치제로 강화하는 헌법 개정을 함으로해서 북한도 남한에 흡수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지역적 자치권을 가지고 연방 속으로 통합을 하는 대책을 내어놓는다면 북한은 남한에 복속된 나라가 되지 않고 통합을 할 수 있습니다.nbspnbspnbsp다시 말해서 남한이 중심이 되려고 한다면 북한의 처지를 충분히 고려해서 그들의 신분을 보장하고 그들에게 따로 사는 것보다는 통일이 훨씬 더 이익이라고 비전을 제시해줘야 합니다. 그런데 문제는 한국이 그 정도로 통일에 대한 비전과 국가 목표를 갖고 있느냐 하는 점입니다.”nbspnbsp신라와 가야의 통합처럼 지금 남한은 북한을 어느정도 포용할 수 있을까. 쉽지 않겠다는 생각이 먼저 앞서는 것 같았습니다. 하지만 스님의 발표를 듣고 포럼에 참석한 외국인들은 모두 수긍하는 분위기였습니다. 이런 스님의 주장은 다른 발표자들에게도 좋은 영감을 주어서 이후 계속된 발표에서도 스님의 주장이 졸곧 회자되곤 했습니다.nbspnbsp여기서 더 나아가 스님은 한반도를 둘러싼 국제 관계에 대해서도 말을 이어갔습니다. 통일 한국이 주위 나라에게도 도움이 될 수 있도록 해야 한다는 적극적인 자세를 강조했습니다. 특히 한일 군사 협력 문제가 가져올 부작용에 대해서는 강한 우려를 표했습니다.nbspnbsp“동시에 통일이 한국의 이익만을 가져오고 중국이나 일본에 손해가 되는 그런 통일을 한다면 주변국에서 다 우려를 할텐데, 바로 한반도의 평화가 동아시아의 평화를 가져오고, 한국의 통일이 한국의 이익만이 아니라 일본, 중국과 협력하는 동아시아 공동체를 구성한다는 큰 틀 위에서 한반도의 통일을 추구해 나가면서 주변국의 번영을 함께 모색한다면 한반도의 통일을 위해 주변국의 협력도 얻을 수 있지 않느냐 생각합니다. 이런 적극적은 통일 정책이 필요합니다.nbspnbspnbsp그런데 현재 정부가 이런 적극적인 통일 정책을 계속 추진하지 않는다면 한국 국민들은 대통령이나 정부가 나라의 주인이 아니라 국민이 나라의 주인이기 때문에 통일지향적 정부를 세우려고 하는 강력한 통일 운동을 일으켜야 합니다. 그래야 어떤 희망을 가질 수 있습니다. nbspnbsp저는 현재의 남북 관계 갈등은 단순히 남북에게만 책임이 있는 것이 아니라 미국의 동아시아 정책과 굉장히 관계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미국은 급격하게 부상하는 중국을 동아시아 지역에서 일정하게 견제를 해야 하고, 그러기 위해서는 일본과의 동맹을 강화해야 하고, 한국도 동맹 속으로 집어넣어서 한미일 삼각 군사동맹체제를 갖는 것이 미국의 국가 이익에 맞다고 보는 것 같아요. 중국은 그런 미국의 견제를 뚫고 나가려면 적어도 한국이 일본과 군사 동맹을 맺는 것은 견제를 해야 하니까 한국과의 관계를 긴밀히 하려고 합니다. 그러다보니 북한은 중국에 대해서 실망을 해서 조중 간에도 약간의 갈등이 생길 수 밖에 없는 이런 현재의 구조입니다.nbspnbsp한국이 미국의 동아시아 안보 전략에 협력을 하려고 할 때 한국으로서는 딜레마가 있습니다. 안보는 미국과 협력이 되지만 경제는 이미 중국과 너무 깊은 관계가 되어 있는데, 미국의 안보 협력에만 의존해서 중국과의 관계가 틀어진다면 한국의 발전에 굉장한 장애가 발생하게 되고, 이것이 지금 한국 정부와 미국 정부 사이에 보이지 않는 어려움인 것 같습니다.nbspnbsp이런 측면에서 남북 관계의 긴장이 고조가 되어야 미국은 북한을 핑계로 한국의 안보를 중요하게 거론하면서 일본과의 군사협력도 필요하다는 여론을 확산시킬 수 있고, 한반도에 사드 배치의 필요성도 강조할 수가 있습니다. 그러나 남북 간에 협력이 강화되고 평화로워진다면 한일 간의 군사협력을 요구할 수 있는 명분이 거의 없어지고, 한반도에 사드를 배치해야 할 이유도 약해지기 때문에 한반도에 전쟁에 버금갈만한 긴장관계가 유지되는 것이 미국의 전략에 있어서 당분간 나쁘다고 할 수가 없습니다.nbspnbsp이런 면에서 미국은 북한에 대해서 강경한 입장을 취하고, 북한도 미국에 대해서 강경한 입장을 취함으로해서 한국은 어려운 상태에 놓여 있다고 봅니다. 그러나 이것은 소극적인 자세이고, 이렇기 때문에 오히려 한국은 북한의 행위를 비난만 하지 말고 그런 북한을 포용하여 남북 관계를 풀어내는 것이 평화와 국가 이익, 통일에 유리합니다.nbspnbsp그 전에 한국은 또 일본과의 관계도 풀어야 합니다. 한일 간의 비군사적인 협력을 강화시킴으로해서 한일 관계를 견고히 하되 군사적인 관계는 오히려 맺지 않는 것이 한국의 장래에 유리하지 않느냐 싶습니다. 이렇게 한일 간의 관계를 비군사적으로 풀어나가면 중국과의 관계도 크게 염려가 없어집니다. 그런 면에서 한국이 미국과의 동맹은 강화하되 지금처럼 종속적인 입장에서의 동맹이 아니고 자주적인 입장에서의 동맹을 견고히 하는 태도가 필요합니다.nbspnbspnbsp이렇게 풀려면 결국 한국 정부가 한반도의 평화와 통일에 대한 자신감이 있어야 되는데, 현재 한국 정부가 북한의 하나 하나 행동에 대해서 시비하는 모습을 보면 그 수준이 비슷하지 않느냐 이렇게 생각합니다. 딱 우위에 서 있다고 생각하면 그런 행위들을 다 용인하고도 어떻게 풀거냐 이것이 정치이지 ‘너가 그러니까 나도 어쩔 수 없다’ 이런 것은 정치라고 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 그런 모든 조건을 감안하고 그것이 국가에 이익이 되고 동아시아에 평화를 가져오도록 할려면 어떻게 문제를 풀 것이냐 하는 적극적인 자세를 가져주면 해결의 실마리를 찾을 수 있지 않겠나 생각합니다.”nbsp스님의 진단과 전망에 대해 참석한 전문가들 모두 큰 박수를 보내주었습니다. 무엇이 국익인지 내다보고 정말로 통일을 지향하는 국가라면 북한을 포용하는 정책을 추진해야 하고, 한반도의 긴장 요인으로 국제 관계는 지금 어떻게 돌아가고 있는지 명쾌하게 정리가 된 느낌입니다.nbspnbsp스님의 기조 발제가 끝나고 이어서 질의응답 시간을 가졌습니다. 스님의 예리하고 명쾌한 진단 때문인지 여러 발표자들 중에서도 스님에게 가장 많은 질문이 쏠렸습니다.nbspnbsp▲ 외국인 전문가들의 다양한 질문에 답변하고 있는 법륜 스님nbsp어떤 분은 “주변 강대국들 간의 외부적인 이해 관계 때문에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상황이라고 하신 말씀에 공감이 갔고, 차라리 남북 양측이 스위스처럼 중립을 선언하면서 나가면 강대국들을 잘 설득할 수 있지 않을지?” 라고 물었습니다. 스님은 이렇게 답했습니다.nbspnbsp“그렇게 할 수 있으면 제일 좋은데 현실은 그렇게 되기 어렵지 않느냐 생각합니다. 왜냐하면 한미 간의 군사동맹이 견고하게 맺어져 있는데 미국이 이것을 포기할 이유가 없잖아요. 그것은 우리가 우리 입장만 생각하지 미국의 입장을 고려하지 않는 것입니다. 중국은 지금 북한과 군사협력 관계가 그렇게 긴밀하지는 않기 때문에 그런 경우에 중국은 동의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만 미국의 이해를 얻기가 쉽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현실적으로 미국의 이해를 어느정도 충족시키지 않고는 주변국의 문제를 풀기가 좀 어렵지 않느냐 싶어요.nbspnbspnbsp결국 통일된 한국이 미국의 요구대로 한다면 그것은 중국의 이해에 어긋나게 됩니다. 800km나 되는 국경을 미군이 주둔하는 국가와 마주하고 있다는 것을 중국으로서는 용인하기가 어렵습니다. 현실로 본다면 한국과 미국은 이미 군사동맹 관계에 놓여있고, 그것을 중국은 이미 현실로 받아들이고 있습니다. 중국이 지금 한국에 대해 우려하고 있는 것은 한국이 일본과 군사 협력을 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한국이 조금만 현명하다면 아무리 미국이 요구한다고 하더라도 일본과는 비군사적인 분야에서는 협력을 견고히 하더라도 군사적인 문제로는 일본과의 협력을 자제하는 것이 좋다고 생각합니다. 우리가 중국에 대해서 조금 더 깊이 고려를 한다면 말이죠.nbspnbsp미국이 지금 한일 간의 군사 협력을 하도록 요구하고 있음에도 지금 한국 정부가 버티고 있는데, 결국 못 버티고 넘어가지 않느냐 싶거든요. 그렇게 되면 중국은 북한과의 관계를 다시 더 긴밀하게 풀 수 밖에 없어집니다. 그래서 한미일 군사협력과 북중러 군사협력 관계로 대립하게 된다면 한반도는 다시 미중의 하위 변수가 되어서 1940년대의 해방 전후처럼 다시 긴장이 고조될 수 밖에 없지 않느냐 싶어요. 이것은 한국인들에게 굉장히 큰 불행이라고 생각합니다.nbspnbsp문제는 이것을 우리가 어떻게 극복해나갈 것인가입니다. 미국과의 관계를 돈독히 하는 것을 부정해서는 안 됩니다. 그것은 현실적으로 어렵기 때문이에요. 그러나 하자는 대로 한다는 종속적인 한미동맹에서 자주적인 한미동맹으로는 전환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즉 미일 간의 협력이 지금까지는 종속적이였다면 최근 일본이 조금 더 자주적인 입장으로 발전한 것처럼 한미 간에도 한국이 좀 더 자주적인 입장이 되도록 한미동맹을 견고히 하고, 특히 남북 문제는 한국이 주도하고 미국이 협력하도록 해야 합니다. 대신에 미국의 국제적인 활동에 대해서 한국이 협력하지만 적어도 북한 문제에 있어서는 한국이 주도하고 미국은 지원하는 입장을 분명히 하는 한미 관계로 설정해야 되지 않느냐 싶어요. 그러나, 한국이 현재 그 정도의 자신감이나 자주적인 입장이 못 되고 있어서 지금 혼란스럽게 되어가고 있다고 생각합니다.nbspnbsp그런 면에서 우리가 미국이라는 과거의 친구도 섭섭하지 않게 잘 이끌어가야 하지만 새로운 친구인 중국과도 관계를 잘 풀어야 되기 때문에, 이것은 분단된 상태로는 방법을 찾기가 현실적으로는 매우 어렵다고 생각합니다. 그런 면에서 통일된 한국은 중립이라는 개념보다는 양자 간의 동맹관계를 포함한 다자간 안보협력체제로 발전시키면서 동아시아의 평화를 구축해나가는 관점을 갖는다면 해결책은 있다고 생각합니다.nbspnbsp박근혜 대통령이 얘기한 한반도 신뢰 프로세스는 매우 중요합니다. 그러나 항상 말씀은 획기적인 말씀을 하는데 말씀과 실천이 전혀 안 맞는 것이 저는 가장 큰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아까 전에 헬싱키 프로세스 얘기도 나왔지만 안보 문제에 있어서는 우리가 우려하는 북한의 핵개발을 폐기는 아니더라도 중지라도 해달라고 하고, 대신에 북한이 우려하는 대단위 군사 훈련에 대해서는 약화시키겠다고 하는 이런 안보에 대한 조금씩의 양보가 서로 간에 필요합니다. 북한이 요구하는 경제 지원은 해주되 그것이 군사용으로 전용되지 않는 인도적 지원과 개발 원조 수준으로 제한을 한다든지 할 수가 있습니다.nbspnbsp인권 문제의 경우도 지금처럼 다 고쳐라 하지 말고, 북한 헌법에 보장된 인권도 지금 보장되지 않는 경우가 많거든요. 너희 나라 법에 보장된 인권이라도 제대로 보장하라고 하는 1단계적인 요구가 필요하고, 2단계적으로는 북한의 법이 유엔의 기본인권헌장에 어긋난다면 그 법의 몇가지 조문을 개선해라고 하고, 정치범 수용소도 한꺼번에 해체하라고 하지 말고 범법 행위를 한 사람과 그 가족이 같이 격리되어 있으니까 행위자는 놓아두고 가족은 우선 격리를 해제하라고 하는 이런 단계적인 조치를 밟아 나가야 합니다. 북한도 자기 체제를 유지하는 것이 크게 우려가 안 되는 이런 순서들을 마련해서 서로의 우려를 불식시키고 서로의 요구를 조금씩 들어주는 식으로 해나가는 것이 신뢰 프로세스입니다. 이렇게 조금씩 신뢰를 쌓으면서 얼마든지 더 큰 단계로 나아갈 수 있습니다. nbspnbspnbsp문제는 혼자만 다 먹으려고 한다는 것입니다. ‘내가 요구하는 것을 다 들어달라, 그렇지 않으면 너와 말하지 않겠다’ 이런 방식은 제가 볼 때 현실성이 없습니다. 이렇게 상대를 고려하지 않고 현실성이 없이 접근하기 때문에 아무것도 안 되고 있는 상황이 아닌가 생각합니다.”nbsp또 한분은 “일반 시민들이나 민간 차원에서도 북한을 수용하고 포용하도록 하는 구체적인 방법이 어떤 것이 있는지?” 물었습니다. 스님은 이렇게 답했습니다.nbspnbsp“첫번째, 저는 자세가 굉장히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즉 남북이 대등한 입장에서 상호 합의해서 통일로 간다면 일대일로 관계를 맺어야 된다고 생각합니다. 너가 하나 양보하면 나도 하나 양보하는 식으로요. 그러나 현재의 남북관계로 봤을 때는 대등한 관계는 이미 지난 것 같아요. 남한이 북한보다 조금 더 우위에 있는 조건이라면 통일은 반반씩 섞는 대등한 방식이 아니라 남한이 통일 국가의 주모델이 될 수 밖에 없다고 생각합니다. 이렇게 하면 북한이 굉장히 기분 나빠할 겁니다.nbspnbspnbsp그러므로 남한은 중심이 된다는 유리한 조건을 취했기 때문에 대신에 우려를 하는 상대편에게 그만한 우려 불식을 위한 조치를 취해주어야 합니다. 즉, 북한에서 주장하는 사상이나 정치적 행위에 대해서 용인을 먼저 해줘야 합니다. 통일된 국가에서도 자신들의 권한이 그렇게 한꺼번에 없어지지 않는다고 말이죠.nbspnbsp두 번째는 경제적으로 이득을 볼 수 있다는 것을 명백하게 제시해줘야 합니다. 그런데 ‘우리도 살기 어려운데 왜 저들을 주느냐?“ 이것은 통일하지 말자는 얘기이지요. 통일 이후의 더 큰 이익을 생각하면 이것은 작은 투자에 불과하다는 것을 정치 지도자가 남한 국민들에게 분명히 제시해줘야 합니다. 자녀들 공부시키는데 돈이 많이 들지만 그 이후에 큰 이익이 있기 때문에 자식을 공부시키는 것처럼 이것을 포용하는데 드는 경비는 통일 이후에 동아시아 협력 체제를 가지면서 더 큰 이익으로 만들어나갈 수 있다는 것을 국민들에게 설득해야 합니다. 이렇게 되면 국민들은 충분히 수용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다만 정치적인 갈등이 있다보니 국민들이 그 밑에 덩달아서 갈등을 하는 것 아니겠어요?nbspnbsp그리고 젊은이들은 통일하려면 돈이 많이 든다고 생각하는데 저는 통일 비용은 소비 비용이 아니고 투자 비용이기 때문에 부족하면 외자를 유치해서 투자를 하고 나중에 갚으면 된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통일 비용을 투자 비용으로 생각해야 하는데 이것을 자꾸 소비 비용으로 확대 해석해서 사람들에게 주입하기 때문에 젊은이들이 좀 거부 반응을 갖는 것 같아요.nbspnbsp대등하게 통일하려면 일대일로 주고 받아야 하지만, 이미 한쪽으로 기울어진 통일을 하려고 할 때는 약자에 대한 포용이 전제되어야 합니다. 이것을 자기 중심으로만 생각하고 모든 이익을 자기가 보겠다고 하면 상대방에게 굴복하라는 얘기가 되는데, 북한의 처지가 굴북을 할만한 조건은 아니라는 것입니다. 오히려 저항을 하지요. 또 그것을 무력으로 통일하려고 한다면 이것은 그 배후에 있는 중국이 용납하지 않을 것입니다. 이것은 이미 65년 전에 경험한 일인데 아직도 그런 생각을 하고 있다면 비현실적이라고 봅니다. 남한이 중심이 된 북한의 포용이 우리가 생각해볼 수 있는 가장 현실 가능한 방안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nbspnbspnbsp이어서 탈북자 출신인 최승철 재영한민족협회 회장은 “국제 사회에서 북한 인권문제가 많이 이슈화되고 있는데, 너무 지나치게 북한을 압박하는 수단으로 인권 문제가 활용되는 것 같습니다. 이런 것들이 앞으로 남북 통일을 하는데 어떤 영향을 미칠까요?” 라고 스님에게 질문했습니다. 스님이 답했습니다.nbspnbsp▲ 법륜 스님에게 질문하고 있는nbsp최승철 재영한민족협회 회장nbsp“저는 전세계에서 북한 인권 상황이 가장 열악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개선되어야 한다고 생각하고요. 그런데 북한을 비난한다고 현실적으로 개선되느냐 하는 문제입니다. 그런 면에서는 저는 북한을 비난한다고 이 문제가 개선되지 않는다고 생각합니다. 북한 정부는 인권을 탄압하는 가장 중요한 당사자이지만 반대로 북한 인권을 개선하려면 북한 정부를 설득하는 것이 가장 중요한 문제가 됩니다. nbspnbsp그래서 첫째, 북한 인권의 열악한 현실을 정확하게 이해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그러나 그 열악함을 가지고 북한 체제를 붕괴시키거나 압박하는 수단으로 쓰는 것은 옳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북한 인권을 개선하려면 북한의 처지를 어느정도 수용하면서 경제적인 지원이든 다른 안보적인 지원을 제공하면서 인권 문제를 개선할 수 있도록 하는 현실적인 접근을 해나가야 합니다.nbspnbsp그리고 북한의 인권 개선을 위해서 지금 우리가 노력하지 않으면 통일의 기회가 왔을 때 북한 안에서 억압되었던 민중들이 북한의 지배 세력에 대해서 반드시 보복을 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럴 때 그것을 막기가 굉장히 어렵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북한 인권 문제를 개선하는데 협력함으로해서 통일의 막바지에 북한 지배자들에게 들이닥칠 보복을 우리가 좀 자제하도록 북한 민중들에게 요구해야 합니다. 왜냐하면 보복을 하게 되면 신분 보장이 안되니까 권력층이 권력을 내놓지 않으려고 할 겁니다.nbspnbsp그런 면에서 통일을 위해서도 인권 개선은 꼭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정말로 사람을 생각하고 평화를 생각하는 인권 개선을 해야지 상대를 비난하거나 상대를 해치려는 목적으로 인권 문제를 거론하는 것에 대해서는 옳지 않다고 생각합니다.”nbsp스님의 명쾌한 답변이 이어지자 질문이 계속 이어졌습니다. 마지막으로 스님은 북한이 왜 체제 유지에 급급하고 안보에 대해 굉장히 불안해 할 수 밖에 없는지 정확한 이해가 필요하다는 점을 강조했습니다.nbspnbsp“한국은 세계 최강국인 미국과 군사동맹을 맺고 있고, 거기다가 주한 미군이 주둔해 있는 상태인데, 여기에 중국이나 러시아와 군사동맹을 맺고 있지 않은 상태에 있는 북한이 안보 문제에 있어서 얼마나 불안해할 수 있을지 이해가 필요합니다. 우리는 군사 훈련을 한다고 하지만 북한 입장에서는 굉장한 위기로 느껴질 수 밖에 없습니다. 이것에 대한 현실적인 이해를 우리가 조금만 한다면 어떤 해결점을 찾을 수 있지 않을까 싶어요. 그런데 이것을 전혀 고려하지 않고 ‘왜 국민들은 굶어죽는데 너희는 군사비에만 돈을 쓰냐?’ 이렇게만 접근을 한다면 이 문제를 풀기가 굉장히 어렵다고 생각합니다. 풀어지더라도 굉장히 비극적으로 풀어질 수 밖에 없지 않겠느냐 싶어요.nbspnbspnbsp그런 측면에서 북한이 잘했다가 아니라 그렇게 행동할 수 밖에 없는 상대에 대한 조금의 이해를 기반으로 하고 이 문제를 우리가 풀어나간다면 그래도 작은 해결책은 찾을 수 있지 않을까 싶습니다. 이것은 상대에게 동조하자는 것이 아니라 어떤 해결책을 찾으려면 상대에 대한 충분한 이해 위에서 작은 진전을 이뤄야 하지 않느냐는 것입니다.”nbsp이렇게 Session1을 잘 마쳤습니다. 시작부터 아주 중요한 내용들이 많이 회자되면서 세계한민족포럼은 후끈 열기를 더했습니다.nbsp점심 시간을 갖기 전 다함께 기념 사진을 찍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모두들 한반도의 통일을 염원하는 마음을 모아서 ‘화이팅’을 외쳤습니다.nbspnbsp▲ 참가자들 모두 다함께 기념사진 촬영nbsp점심 시간에는 스님과 평화재단에서 마련한 오찬 시간이 이어졌습니다. 식사를 하면서도 참가자들은 한반도 통일 문제에 대한 논의를 계속 이어가는 높은 열정을 보여주었습니다.nbspnbsp오후1시부터는 Session2가 시작되었습니다. 스님은 오후 내내 발표자들의 발표 내용을 경청했습니다.nbspnbsp먼저 “분쟁 통합 통일의 세계 역사”를 주제로 다양한 주제 발표가 있었습니다. 췐성 자오 아메리칸대학교 국제학부 교수는 ‘중국의 진화하는 한반도 정책’에 대해 발표했고, 임반석 청주대학교 교수는 ‘경제 영토와 안보망 경쟁의 의미와 문제’에 대해 발표했고, 이수경 도쿄 가쿠게이대학교 교수는 ‘버트랜드 러셀과 클라르테운동’에 대해 발표했습니다. 제이크 린치 시드니대학교 언론학과 교수는 ‘평화 저널리즘’에 대해 구체적인 사례를 들어가며 흥미로운 발표를 들려주었습니다.nbspnbsp▲ 전문가들의 발표 내용을 경청하고 있는 법륜 스님nbsp잠시 휴식 시간을 갖고, 오후 3시45분부터는 Session3이 시작되었고, “한반도 분단과 재통일”을 주제로 다양한 발표들이 있었습니다. 김주현 통일준비위원회 경제분과위원장은 ‘한반도 통일의 경제적 이익’에 대해 발표했고, 장혜지 길림대 동북아연구원 부원장은 ‘대북정책에 대한 중미 양국간 경쟁과 협력’에 대해 발표했고, 최승철 재영한민족협회 회장은 ‘북한인의 관점에서 본 남한의 통일논의와 북한사회의 변화’에 대해 발표했습니다. 이외에도 많은 패널 분들이 토론에 참가해 논의를 풍성하게 해주었습니다.nbspnbspnbsp이어서 저녁 만찬 시간을 가진 후 오늘 일정은 모두 마쳤습니다. 저녁에는 내일이 정토회 천일결사 백일 기도 60일째 날인데 천일결사자들에게 격려의 메시지를 영상으로 촬영하여 보내주기 위해 런던 시내로 나가 보았습니다. 웨스트민스트 사원과 빅벤이 함께 있는 국회의사당 건물 가까이에 도착하니 템즈강에 조명이 반사되어 아주 멋진 풍경을 보여주었습니다. 여기서 촬영을 하기로 하고, 국회의사당과 템즈강을 배경으로 서서 스님은 천일결사자들에게 격려의 말씀을 해주었습니다. nbspnbspnbsp영상 촬영을 마치고 다시 숙소로 돌아오니 밤10시가 넘었습니다. 스님은 하루 종일 빠뜻한 일정에 많이 피곤했는지 곧바로 휴식을 취하며 오늘 일정을 마쳤습니다.nbspnbsp내일은 세계한민족포럼 ‘한반도 통일로 가는 길’ 2일째 일정이 계속될 예정입니다. 저녁에는 바다를 건너 이동해 파리에서 포럼이 계속됩니다.nbsp

2015.06.25. 70,967 읽음 댓글 41개

2015.6.23 런던 교민들을 위한 즉문즉설 강연

nbsp안녕하세요. 오늘 스님은 런던에 도착해 현지 교민들과 즉문즉설 시간을 가졌습니다.nbspnbsp어제 끄리빠사란 상 수상식을 마치고 캘커타 공항에서 새벽4시에 출발한 비행기는 장장 12시간을 비행하여 카타르 도하를 경유하여 오후1시20분에 런던 히드로 공항에 도착했습니다. 히드로 공항 터미널로 나오니 정토회 유럽지구장 김선희님과 런던 교민 두 분이 스님을 반갑게 맞이해 주었습니다.nbspnbspnbsp내일부터 3일 동안 런던과 파리에서 세계한민족포럼이 개최되는데 스님은 행사에서 한반도 통일에 관한 기조발제를 할 예정입니다. 런던에 하루 일찍 도착한 스님은 런던을 방문한 김에 런던에 살고 있는 한국 교민들을 위해 즉문즉설 강연을 하였습니다.nbspnbsp▲ 런던시 한복판을 가로질러 흐르는 템즈강nbsp런던 히드로 공항을 나와 숙소에 잠깐 드러 짐을 푼 후 곧바로 강연장으로 이동했습니다. 런던 시내 중심가의 Bookshop Theatre 안에 위치한 작은 공연장에는 스님의 즉문즉설 강연을 듣기 위해 35명의 교민들이 꽉차 있었습니다. 큰 장소는 급하게 구할 수가 없어서 일반 교민에게는 연락하지 않고 기획 법회에 참석한 몇몇 분들에게만 연락하였다고 합니다.nbspnbsp▲ 즉문즉설 강연이 열린 런던 시내 중심가 Bookshop Theatrenbspnbsp스님은 법문을 직접 들을 수 있는 기회를 거의 갖지 못하는 교민들을 향해 깊은 애정을 보이며 3시간30분 동안 즉문즉설 강연을 해주었습니다. 오후 3시30분에 시작한 강연은 저녁7시가 되어서야 마쳤습니다.nbspnbsp먼저 스님은 “다들 어디에서 왔어요?” 라며 인사를 건냈습니다. 멀리서는 파리, 암스테르담, 스코틀랜드에서 온 분들이 있었고, 샌디에고에서 다른 용무로 왔다가 들른 분도 있었습니다. 나머지는 모두 런던에서 살고 있는 분들인데, 대부분 작년 스님의 세계 100회 강연 중 런던 강연을 인연으로 올해 2월부터 스님의 영상 강좌로 모임을 해왔던 분들이였습니다. 7월부터는 정토회로부터 열린법회로 승인을 받아서 이제는 정기적인 모임으로 이어갈 예정이라고 합니다.nbspnbsp▲ 런던 교민들과 함께한 즉문즉설 강연nbsp스님의 인사말에 이어서 교민들은 어제 벵갈 불교를 일으킨 끄리빠사란 스님의 150주년을 기념하여 끄리빠사란 상을 수상한 스님에 대해 축하의 박수를 보내주면서 강연이 시작되었습니다. 스님이 “어떤 고민이든 편안하게 함께 이야기해 봅시다”고 하자 여러명이 손을 들고 질문을 했습니다.nbspnbsp아이를 갖지 못하자 자신과 이혼을 하고 다른 여자와 결혼을 한 남편을 보는 것이 너무 힘이 든다는 여성 분, 회장 딸이 나이도 어린데 상사가 되어 많은 업무 지시를 해서 못마땅하게 여겨진다는 분, 고양이를 보는 것이 너무 힘들어서 일상 생활이 힘들다는 분, 아버지가 가장으로서 역할을 잘 못해서 많이 미워했는데 나중에 돌아가시면 후회가 될 것 같아 고민인 분 등 총 5명이 스님에게 질문을 했습니다. 스님은 다양한 비유를 들려주며 쉽고 명쾌한 답변을 해주었습니다.nbspnbspnbsp그 중에서 곧 한국으로 돌아가게 되는데 어떻게 수행을 하면 좋을지 묻는 여성 분의 질문과 스님의 대답을 소개합니다. 유튜브나 인터넷을 통해 많은 분들이 스님의 법문을 듣고 불교 공부를 시작하지만 대부분 지식적으로 접근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오늘 스님의 답변은 일상 속에서 어떤 자세로 수행해야 하는지 소중한 가르침을 주었습니다. nbspnbspnbsp“런던에서 한국어를 가르치고 있습니다. 이곳 생활을 다 정리하고 좀 자유로워지면 다음달에 한국으로 돌아가서 풀타임으로 마음 공부를 좀 해보고 싶습니다. 어떻게 수행을 하면 좋을까요?”nbsp“마음 공부를 학교 공부처럼 생각하시면 안돼요. 자꾸 지식적이거나 기술적인 것으로 접근을 하지 마세요. 한국어 배울 때처럼 가나다라 순서대로 배우면 된다 이런 것은 지식이거든요. 기술이나 지식은 단계를 밟아서 순차적으로 배워가면 되는데, 마음 공부는 그 이치를 알고 나서 자기 스스로 꾸준히 연습을 해야 됩니다. 연습이라는 것이 어떤 수련에 참가해서 단계를 밟아나가는 것이 아니고 자기가 일상 생활 속에서 계속 연습해야 하는 것입니다.nbspnbsp한국에 오시면 우선 정토회의 깨달음의장 수련에 참가하셔서 마음의 이치를 먼저 이해하셔야 해요. 고양이를 싫어하는 사람들은 고양이 자체가 부정한 동물이라는 의식이 무의식에 베어 있거든요. 그런데 고양이 자체가 부정한 동물이 아니라 내가 고양이를 부정하게 보는 것이라는 지적 무지를 먼저 깨우쳐야 해요. 그리고 지적 무지만 있는 것이 아니라 무의식적으로 거부 반응이 있습니다. 나의 무의식으로부터 거부 반응이 일어나는 것이지 고양이 자체에서 거부 반응이 오는 것이 아니거든요. 이런 이치를 먼저 이해해야 해요. 이론적으로 설명하면 ‘제법이 공하다’ 하는 것인데, 이것을 수련에서는 경험적으로 받아들일 수 있게 해주는 겁니다.nbspnbspnbsp두 번째는 그 이치가 충분히 납득이 되었다 하더라도 현실에 딱 부딪히면 원래의 까르마대로 반응을 합니다. 이것을 ‘찰나 무지’라고 합니다. 반응을 하더라도 ‘아, 내가 또 거부반응을 하구나’ 알아차려서 다시 원래대로 돌아가고, 다시 원래대로 돌아가고 해야 합니다. 고양이를 보면 딱 싫은 마음이 일어나지만 ‘아, 이건 내 까르마이지 고양이 문제는 아니야’ 알아차리고 다시 고양이를 안아보고 내려놓고, 그리고 시간이 흐른 후 어느 순간 또 갑자기 고양이를 보면 거부 반응이 일어납니다. 그 찰나에는 알아차림이 없어서 무의식 세계가 자동으로 먼저 거부반응을 을이켜 버리거든요. 그러나 이 이치를 아는 사람은 그렇게 반응이 일어났다 하더라도 ‘어 내가 또 까르마에 자동으로 반응을 했구나’ 그러면서 다시 평정심을 회복하는 연습을 일상 속에서 꾸준히 해나가야 합니다.nbspnbsp절에 들어와서 살면 조금 도움이 되는 것은 첫째, 나쁜 경계에 부딪힐 확률이 적다는 것이죠. 그러나 절에 들어와서 산다고 수행이 되는 것은 아니에요. 나쁜 경계에 덜 부딪히니까 마치 수행이 된 것처럼 착각을 일으키지 밖에 나가면 똑같은 일이 반복됩니다. 그래서 상처가 심한 사람은 가능한 상처에 부딪히지 않도록 해야 하기 때문에 초심자는 절에 와서 살거나 수련을 많이 하는 것이 좀 도움이 됩니다. 그리고 절에서 살면 매일 아침 일어나서 참회를 하게 되니까 ‘어, 내가 또 어제 미쳐서 지냈구나’ 이렇게 되돌이킬 수 있는 조건이 항상 있어서 도움이 되죠. 그러나 타성에 젖어 버리면 아무리 절에 오래 살아도 도움이 안돼요.nbspnbsp그래서 집에서 수행하는 사람이 오히려 더 수행을 잘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그러나 집에서 할 때의 문제점은 3일 이상 잘 못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꾸준히 할 수 있으면 집에서 하는 것이 더욱 도움이 됩니다. 집에서 수행하는 것은 남을 의식하고 하는 것이 아니라 자기가 자기 힘으로 하는 것이고, 절에서 수행하는 것은 전체 분위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자기도 굴러가게 되는 것이거든요. 그래서 절에 사는 사람들은 자신이 수행에 대해 자발적인지 점검하려면 집에 가 있거나 혼자 여행을 갔을 때도 되는지 안 되는지를 보면 됩니다. 대부분 절 밖으로 나가면 잘 못합니다. 그만큼 자발성이 떨어지는 것이죠.nbspnbsp한국에 오시면 깨달음의장, 나눔의장, 명상수련 등 스스로 자각하는 프로그램이 있으니까 거기에 우선 참여해 보시되 그 프로그램을 마치고 나서는 혼자서 해봐야 합니다. 혼자서 하는 것이 잘 안 된다면 절에 들어와서 해야 합니다. 그러나 혼자서도 잘 되면 굳이 절에 들어와야 할 이유는 없어요. 대부분 혼자서 잘 안 되죠. 그러면 백일 출가를 해본다든지 절에서 공동체 생활을 해본다든지 하면 혼자서도 공부할 수 있는 연습이 좀 되죠.nbspnbsp그러나 여러분들은 자꾸 수행을 기술적으로 접근하기 때문에 즉 ‘티벳 불교를 하면 더 잘 될까’, ‘위빠사나를 하면 더 잘 될까’, ‘참선하면 더 잘 될까’, ‘염불하면 더 잘 될까’ 자꾸 이렇게 접근합니다. 이 마음 속에는 벌써 노력은 적게 하고 효과는 빨리 보겠다는 욕심이 숨어 있잖아요. 욕심으로 접근하면 장애가 생길 때 ‘달라이라마한테 가서 배워야 하는데 여기서 배워서 그런건가?’, ‘티벳 불교를 해서 업장을 먼저 녹여야 하는데 화두를 들어서 그런건가?’ 하면서 자기 내부에 도망갈 핑계 거리를 자꾸 만들게 됩니다.nbspnbspnbspnbsp이론을 많이 아는 사람들은 실제로 수행이 더 안 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전혀 사전 지식이 없는 사람이 오히려 공부가 빨리 될 때가 있어요. 그것은 사전 지식이 많은 사람은 공부를 하다가 잘 안 되면 자꾸 방법을 바꾸려고 하거든요. ‘이 방식이 안 되면 저 방식으로 하면 잘 될까?’ 이렇게 까르마에 저항이 올 때 까르마에 끌려 회피를 하게 됩니다. 고양이가 두려운 사람은 한달이든 두달이든 꾸준히 고양이를 안아 보면서 두려워하지 않는 연습을 해서 극복을 해야 하는데, ‘최면을 걸면 잘 될까?’, ‘참회 기도를 안 해서 그런건가?’ 이렇게 핑계를 대어서 장애가 올 때 자꾸 도망가는 마음을 냅니다. 도망갈 때가 없어야 됩니다. 죽으나 사나 여기서 극복을 해야 합니다.nbspnbsp방법은 여러 가지가 있습니다. 이것을 하나 저것을 하나 다 마찬가지입니다. 그러나 여러 가지 방법을 알고 있으면 자꾸 도망갈 핑계를 만들게 됩니다. 까르마는 절대로 죽지 않으려고 하기 때문에 어떤 수단을 써서라도 살아남으려고 합니다. 때로는 우리의 의식까지 바꿔버립니다. 그래서 자기가 자기한테 속게 됩니다. 이걸 차단해야 하는데, 그래서 옛날부터 스승이 필요하다는 말이 있는 겁니다. 스승이 대신해 준다는 것이 아니라 핑계를 대고 도망가려는 것을 스승이 막아주기 때문입니다.”nbspnbsp이렇게 답변을 한 후 스님은 다시 질문자에게 물었습니다.nbspnbspnbsp“그런데 런던에서 한국으로 오는 것이 왜 자유로워지는 거에요?”nbspnbsp그러자 질문자가 대답했습니다.nbspnbsp“그동안 런던에서 많은 것을 이루었지만 제 자신에 대해서 그리고 가족에 대해서는 이루지 못한 것이 많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어요. 그래서 다시 한국으로 가서 부딪혀 보고 싶어요.”nbsp스님은 질문자가 수행에 대해 잘못 알고 있음을 지적한 후 무엇이 수행인지 구체적으로 이야기해 주었습니다. nbspnbsp“그것은 수행이 아니에요. 그렇게 한국으로 가서 참선을 했다거나 명상을 했다고 해서 그것이 수행이 되는 것은 아니에요. 수행은 주어진 시간에 한글을 가르칠 형편이 되면 한글을 가르치고, 아기를 돌볼 형편이 되면 아기를 돌보고, 주어진 형편이 업무를 해야 되면 업무를 하고, 주어진 형편이 명상을 해야 하면 명상을 하는 것입니다. 명상을 하고 싶어서 명상을 하고, 법문을 하고 싶어서 법문을 하고, 한국말을 가르치고 싶어서 한국말을 가르치는 것은 그냥 하나의 욕구에 불과한 것이에요.nbspnbsp이 욕구로부터 자유로워져야 해탈인데 우리는 수행도 욕구로 합니다. 나는 명상하고 싶다 해서 명상하고, 나는 염불하고 싶다 해서 염불하는 것은 욕구를 따라가는 것이기 때문에 자유로워지지는 않습니다. 욕구를 채우는 것이지요. 영국에 오고 싶다고 해서 영국에 오고, 티벳 가고 싶다 해서 티벳 가고, 미얀마에 가고 싶다 해서 미얀마에 가는 것은 수행은 아니에요. 돈을 벌고 싶다고 해서 돈을 버는 것이나, 수행하고 싶다고 해서 수행하는 것이나, 노래하고 싶다고 해서 노래할 때는 그 대상이 돈, 수행, 노래이냐의 차이만 있지 수행은 아니에요. 수행은 하고 싶어 하는 욕구로부터 자유로워지는 것이에요. 하고 싶어서 하는 것은 욕구 충족에 불과한 것이에요. 여기에 수행에 대한 큰 오해가 있습니다.nbspnbsp경전을 읽으니 참 재미가 있다고 해서 경전을 읽는 것은 그냥 소설을 읽고 싶어서 읽는 것과 마찬가지로 하나의 욕구 충족에 불과한 것입니다. 단지 욕구 충족이 좀 건강하다고 할까요. nbspnbspnbsp경전을 읽고 싶은데 못 읽는 조건이 되어서 답답하고 불안하다면 먹고 싶은 욕구가 있는데 못 먹어서 불안하다는 것과 똑같은 것이거든요. 늘 명상을 하다가 명상할 수 없는 조건이 되니까 명상을 못해서 죽겠다고 하면 그것은 욕구에 불과한 것입니다. 진정한 명상은 앉아서 명상할 수 있으면 앉아서 명상을 하고, 강의를 할 수 있으면 강의를 하고, 밭일이 있으면 밭일을 하고, 한국에 갈 일이 있으면 한국에 가고, 미국에 갈 일이 있으면 미국에 가는 것입니다. 이렇게 주어진 조건의 대상이 다를 뿐이지 이것 하면 좋고 저것 하면 싫고 하는 것은 그만큼 자신이 부자연스럽다는 반증이거든요.nbspnbsp만약 영국에서 지내는 것이 갑갑하다고 할 때는 영국에서 지내는 중에 왜 갑갑한지 원인을 밝혀서 육체적으로 무리한 것이 원인이라면 업무를 약간 조정할 줄 알고, 집착을 하는 것이 원인이라면 여기서 집착을 놓을 줄 아는 것이 수행입니다. 즉 결혼해 있는 상태에서 자유로워져야 하고, 혼자 있는 상태에서 자유로워져야 하고, 회사에 다니고 있는 그 상태에서 자유로워져야 하고, 영국에 살고 있는 그 상태로 자유로워져야 합니다. 그리고 나서 이혼해도 되고, 결혼해도 되고, 회사를 그만둬도 되고, 한국에 가도 됩니다. 그러면 여기서도 자유롭고 한국 가서도 자유로운데, 여기서는 속박이지만 한국 가면 자유롭다고 한다면 그것은 일시적 자유로움입니다. 지금 우리나라에서의 수행은 대부분 이런 욕구를 따라 수행을 하기 때문에 붓다가 말한 해탈의 경지로 나아가는 것이 되지 못합니다. 욕구의 대상이 바뀐 것 밖에 안 됩니다. 이것을 수행이라고 생각하면 큰 오해입니다.nbspnbsp대부분의 수행 지도가 욕구로부터 자유로워지도록 가르치지 않고 욕구를 쫓아가도록 가르칩니다. 다만 그 대상을 ‘돈’에서 ‘도’로 바꾼 것 밖에 안 됩니다. 그래서 돈을 많이 벌고 적게 벌고가 있듯이 도에도 높고 낮음이 있다는 말이 나오는 겁니다. ‘위빠사나는 높은 단계의 수행이고, 명상은 낮은 단계의 수행이다’ 라고 하는 이런 말들은 ‘저건 지위가 높고 이건 지위가 낮다’ 하는 개념과 동일한 개념입니다. 이런 것 자체는 분별심에 속합니다. 분별심을 떠나야 ‘도’인데 우리는 욕구의 대상으로 ‘도’를 찾고 있다는 것입니다.nbspnbsp그래서 이렇게 구하는 마음으로 공부하시면 한국에 가도 해결이 안 되고, 불교에 귀의해도 해결이 안 되고, 정토회에 와도 해결이 안 됩니다. 금방 지치게 됩니다. 처음에는 내가 하고 싶은 욕구가 충족되기 때문에 정토회에 오면 굉장히 좋겠죠. 정토회가 천국 같고 법륜 스님이 부처님 같고 그런데 시간이 흐르면 새로운 욕구가 또 올라와서 덜 채워지기 때문에 회의가 들고 마음이 멀어지고 다른 욕구를 찾아서 또 다른 곳으로 가게 됩니다. 그래서 제가 늘 강조하는 것은 언제나 자기가 선 자리에서 해탈해야 한다는 것입니다.nbspnbsp가장 중요한 것은 ‘지금 여기’입니다. 지금 여기 무엇이 문제인가를 봐야 합니다. ‘지금 뭐가 문제인데?’ 이걸 알아차려서 ‘아무런 문제가 아니었네’ 이렇게 가야 합니다. 지금 여기에서 자유로워져야 언제 어디서든 자유로워질 수가 있는 것입니다. 고양이를 두려워하는 이 문제로부터 자유로워지면 다른 인간 관계의 문제에도 영향을 줍니다. 미워하는 사람에 대한 거부 반응이 고양이보다는 덜할 것 아니겠어요? 불가능할 것 같았던 고양이와도 잘 지내는데 다른 사람과 같이 못 지낼 이유가 없잖아요. 이렇게 연관해서 모든 문제에 적용되기 때문에 고양이에 대한 두려움을 해결하면 그것이 고양이에만 그치는 것이 아니라 자기 삶의 자유로움의 폭도 함께 넓어지는 겁니다.nbspnbsp자기 분별심으로 부정하거나 그렇지 않으면 집착하거나 늘 이 두 가지 경우입니다. 뜻대로 되면 집착하게 되고, 뜻대로 안 되면 외면합니다. 이렇게 되는 바탕은 욕구입니다. 이 양자를 다 경계해야 합니다. 그냥 꾸준히 할 뿐이어야 합니다. 상대가 마음에 안 들면 ‘내 업이 상대에게 안 맞나 보다’ 해야지 상대가 문제라고 보면 안 됩니다. 그런 것처럼 정토회의 수련법이 좋으면 ‘정토회는 나의 업식과 좀 맞나 보다’ 이렇게 받아들여야지 ‘정토회가 최고다’ 이렇게 접근하면 안 됩니다.nbspnbsp수행은 자기 생각을 내려놓는 것입니다. 자신의 욕구를 탁 접어봐야 합니다. 이혼하려고 할 때 ‘길 가는 사람과도 같이 지내는데 10년 같이 산 너와 못 살겠냐’ 이렇게 탁 내려놓고 한번 살아보는 겁니다. 그런데 자기가 생각하는 잣대를 끝까지 움켜쥐고 가려고 하니까 해결이 잘 안돼요. 고양이가 두렵다면 오늘 집에 가는 길에 바로 고양이 한마리를 사가지고 키워봐요. nbspnbspnbsp그것이 백척간두 진일보에요. 천길 낭떠러지에서 죽음을 불사하고 한발 더 나가 버리는 겁니다. 제일 싫어하는 남자를 탁 붙잡고 한번 좋아해보는 겁니다. nbspnbsp내가 제일 싫어하는 고양이를 다른 사람은 좋아하잖아요? 그러니 싫어하는 것도 내 문제이고 좋아하는 것도 내 문제이고 고양이에게 문제가 있는 것이 아니거든요. 고양이는 그냥 그렇게 생겼을 뿐이에요. 나에게 고양이를 거부하는 까르마가 있는 겁니다.nbspnbspnbsp이 컵은 좋은 것도 아니고 나쁜 것도 아니고 다만 그것일 뿐입니다. 하나의 존재일 뿐입니다. 그것을 ‘공’이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이 컵이 큰 것이 되고 작은 것이 되고, 좋은 것이 되고 나쁜 것이 되는 것은 다 우리들의 마음에서 일어나는 것입니다. 그 마음이라는 것이 바로 까르마입니다. 무의식에서 형성된 대로 그냥 반응할 뿐인 것입니다. 호흡관을 한다면 다만 호흡에만 집중하지 반응하는 것에 끌려가지 않는 것입니다. 우리는 반응하는대로 놀아나는데 가만히 호흡에만 집중하지 반응하는 데에 놀아나지 않는 것입니다. 그렇게 꾸준히 하면 반응이 점점 약해집니다. 무엇을 깨닫는 것이 아니라 ‘아, 이렇게 반응하는구나’ 하면서 자기가 자기를 알아가기 시작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한국 가는 것에 대해 너무 기대하지 마세요.” nbspnbsp질문자는 환한 웃음을 띠며 스님에게 “감사합니다” 하고 자리에 앉았습니다. 청중들도 큰 박수를 보내주었습니다.nbspnbspnbsp수행하는 것도 학교 공부하듯이 지식을 습득하는 정도로 받아들인 것이 아닌지 깊이 되돌아보는 시간이 되었던 것 같습니다. 강연을 마치고 돌아가는 길에 많은 분들이 “수행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 명확하게 알게 되어서 너무 좋았다”는 이야기하는 모습을 볼 수 있었습니다.nbspnbsp질문에 모두 답하고 난 뒤 스님은 오늘 강연을 마무리하면서 다시 한번 지식이 아닌 실천과 연습의 중요성을 강조했습니다. 이제 스님이 떠나고 나면 열린법회 회원들끼리 영상으로 강연을 들으면서 스스로 마음공부를 해나가야 하는데 어떻게 관점을 잡아야 하는지 정신이 번쩍 차려졌습니다.nbspnbsp“이제 여기서 열린법회 하면서 스님 법문을 매주 듣게 되는데 첫째, 듣기라도 많이 들어야 해요. 그러나 유튜브로 즉문즉설 법문을 1000개나 들었다 이럴 필요까지는 없어요. 듣는 것이 지식이 되어서 ‘이런 건 이래야 된다’, ‘저런 건 저래야 된다’ 이렇게 논리를 만들면 안돼요. nbsp그러면 수행이 다시 지식화 되는 것입니다. 그냥 듣고 말아야 됩니다. 굳이 기억할 필요가 없어요. ‘아, 마음을 저렇게 써야 되는구나’ 이렇게 하고 끝내야지 지식으로 가면 안돼요.nbspnbspnbsp둘째, 많이 듣는 것도 좋지만 그 중에 하나라도 집에 가서 실천을 꼭 해봐야 합니다. 그런데 실천이 잘 안돼요. 안되기 때문에 연습을 하는 것이죠. 잘 되면 왜 연습을 하겠어요? 잘 안된다는 것을 전제로 하고 해야지 ‘안 되는데요?’ 이런 말은 할 필요가 없어요. 될 때까지 꾸준히 연습해서 하나라도 극복을 해봐야 합니다. 그래서 자신이 어려움을 겪고 있는 구체적인 과제로부터 자유로워진 상태에서 경전을 읽어야지, 불교 지식만 자꾸 늘면 삶에는 아무런 도움이 안 됩니다. 불교의 궁극적인 목표는 해탈과 열반입니다. 괴로움과 속박으로부터 얼마나 자유로워지느냐 이것이 목표입니다. 여러분들은 죽어서 어디 가는지에 관심을 갖는데 죽음의 두려움으로부터 자유러워져버리면 죽는 것이 뭐가 문제가 되겠어요? 죽음이 두려우니까 죽으면 어떻게 되는지가 문제가 되는 것이지요.nbspnbsp가장 중요한 것은 자기가 자유로워지는 것이지 스님을 만나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에요. 제가 여러분들에게 해줄 수 있는 것은 아무 것도 없어요. 과식하는 문제는 자기가 해결해야지 제가 어떻게 과식을 안 하게 해줄 수 있어요? 그런 것처럼 어떤 것도 제가 대신해 줄 수 있는 것이 없어요. 자신이 실천해봐서 삶이 자유로워진다는 것을 알면 자가 발전이 생겨요. 그러면 스스로 자꾸 더 하게 돼요. 그러면 직상 생활도 편해지고, 가정 생활도 편해지고, 마음이 편해지면 건강도 좋아져요. 요즘 현대인들의 병은 대부분이 스트레스에서 옵니다. 정신적으로 가벼워지면 건강도 좀 좋아집니다.nbspnbsp‘영국에 와서 힘들다’ 이런 생각을 하면 안돼요. 세월이 많이 좋아졌으니까 영국까지 와서 한번 살아보는 것 아니에요? ‘외국인이랑 같이 사는 게 너무 힘들다’ 이렇게 생각하지 말고요. 요즘 세상에 태어났으니까 외국인이랑 한번 살아보지 조선 시대에 태어났으면 외국인이랑 살아볼 수 있었겠어요? 애를 낳은 김에 한번 키워도 보는 것이고, 애가 없으면 애가 없는 것이 좋은 줄을 알면 되고요. 항상 주어진 조건에서 행복해지는 공부를 해나가야지 자꾸 요구를 하면 인생의 괴로움은 끝이 없어요. 오늘처럼 스님도 이런 질문을 하면 이런 대답을 하고, 저런 질문을 하면 저런 대답을 하는 것처럼 이 일 주어지면 이 일을 하고, 저 일 주어지면 저 일을 하면 됩니다. ‘나는 이 일을 하고 싶은데 왜 저 일을 하라고 해?’ 이렇게 생각하면 안돼요. 스님도 ‘나는 이런 질문을 받고 싶은데 왜 저런 질문을 하지?’ 이렇게 안 하듯이요.” nbspnbsp마무리 말씀까지 웃음이 빵빵 터졌습니다. 긴 시간 법문이 계속 되었지만 자신들의 고민을 함께 이야기하는 것이기에 조금도 지루함이 없었던 것 같습니다. 마이크도 없이 긴 시간 열정적으로 법문을 해준 스님에게 모두들 뜨거운 박수갈채를 다시 한번 보내주었습니다.nbsp이어서 청중들 모두 무대 위로 올라와 스님과 함께 기념 사진을 찍었습니다. 모두들 “지금은 비록 조촐한 열린법회로 시작하지만 앞으로 런던에도 곧 정토법당이 생길 것 같다”고 하면서 설레여 하는 표정이였습니다.nbspnbsp▲ 런던 열린법회 회원들과 함께nbsp▲ 런던 열린법회는 매월 2주, 4주차 일요일 3시에 열린다고 합니다.nbspnbsp몇 분이 정성껏 샐러드와 과일을 준비해 오셔서 30분 정도 다과 시간을 가지면서 문답이 더 오갔습니다. 특히 한반도 통일의 희망과 국민들이 주인의식을 갖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에 대한 스님의 이야기를 들을 수 있어서 참 좋았습니다.nbspnbsp런던 열린법회 회원들은 강연장에 남아서 마음 나누기를 하였고, 스님은 바로 숙소로 돌아왔습니다. 그런데 마음나누기를 마친 런던 열린법회들이 스님에게 인사를 올리고 싶다며 다시 숙소로 찾아와서 숙소에서는 또 한번 대화의 장이 열렸습니다.nbspnbspnbspnbsp모두들 작년에 왜 스님이 세계 115회 강연을 했는지에 대해 많이 궁금해 했는데, 스님의 한반도 통일에 대한 염원이 담겨 있었다는 얘기를 듣고 나서 큰 감동을 받는 모습이었습니다. 스님에게 삼배로 인사를 올리고 모두들 집으로 돌아갔고, 몇몇 분들은 내일부터 시작되는 세계한민족포럼에도 참석하겠다고 합니다.nbspnbsp스님은 내일부터 ‘세계한민족포럼’에 참석해 ‘한반도 통일의 과제와 전망’을 주제로 기조 발제를 한 후 세계 각국에서 한반도 통일을 연구하는 전문가들과의 토론에 참석할 예정입니다. 내일 또 소식 전해드리겠습니다.

2015.06.24. 58,771 읽음 댓글 46개

2015.6.22 (오후) 법륜 스님 끄리빠사란(Kripasaran) 상 수상

nbsp안녕하세요. 오늘 스님은 인도 불교의 부흥을 위해 헌신한 끄리빠사란 스님의 탄신 150주년을 기념하여 벵갈 부디스트 어소시에이션에서 수여하는 끄리빠사란 상을 수상하였습니다.nbspnbsp▲ 끄리빠사란 상 수상식이 열린 벵갈 부디스트 어소시에이션nbspnbsp▲ 벵갈 절 입구에 세워진 끄리빠사란 스님의 동상nbsp점심 식사 후 스님은 인도의 ‘Business Economics’ 라는 언론사와 인터뷰를 했습니다. 언론사 기자는 현대 사회에서 불교의 중요성은 무엇인지, 막사이사이상 수상의 근거가 되는 경험이 무엇인지 등에 대해 스님에게 질문했고, 스님은 쁘리앙카님의 통역을 통해 자상한 답변을 들려 주었습니다. 인터뷰를 마치고 스님은 기자에게 스님의 영문 번역책 ‘기도’를 선물했습니다.nbspnbsp▲ Business Economics와 인터뷰nbspnbsp40도가 넘는 무더위를 피해가기 위해 행사는 잠시 휴식 시간을 가진 후 오후 4시부터 끄리빠사란 상 수상식이 거행되었습니다.nbspnbsp▲ 끄리빠사란 상 수상식nbsp벵갈 부디스트 어소시에이션의 주지인 보디팔라 스님은 법륜 스님을 수상자로 선정한 이유를 발표하면서 스님을 무대 앞으로 모셨습니다.nbspnbsp▲ 끄리빠사란 상의 수상자로 법륜 스님을 선정한 이유를 말하고 있는 보디팔라 스님. 40도가 넘는 무더위에 땀을 뻘뻘 흘렸습니다.nbspnbsp“벵갈 부디스트 어소시에이션의 창립자 ‘까르마요기 크리빠사란 마하스타비르 스님’의 탄신일 150주년을 맞이하여 ‘우수 사회 활동을 기리는 까르마요기 끄리빠사란 상’ 수상자로 인류의 화합과 형제애를 이뤄나가며 우리를 하나로 뭉치게 만드는 모범적인 역할을 수행해 온 법륜 스님을 선정했습니다.nbspnbsp법륜 스님은 정토회의 지도법사이며 대중들에게 붓다 담마를 가르쳐주는 스승일 뿐만 아니라 환경 운동, 인권 운동, 평화 운동, 기아·질병·문맹 퇴치 운동을 해나가는 사회 활동가이며 인류의 문명 전환을 이끄는 사상가입니다. 그는 한반도의 평화와 통일을 위해 평화재단을 설립하여 많은 활동을 해오고 있으며, JTS를 설립하여 아시아의 빈곤 퇴치에 앞장서고 있고, 좋은벗들을 설립하여 북한 인권을 개선하기 위한 운동을 하고 있으며, 에코붓다를 설립하여 쓰레기 제로 운동을 통해 지속가능한 지구환경을 만들기 위해 노력하고 있습니다. 또한 그의 쉽고 명쾌한 즉문즉설은 부처님의 가르침에 기초하여 많은 대중들을 행복으로 이끌고 있습니다. 법륜 스님을 모시겠습니다. 큰 박수 부탁드립니다.”nbsp청중들의 박수를 받으며 무대 앞에 선 스님에게 벵갈 부디스트 어소시에이션은 2015년 끄리빠사란 상을 수여했습니다.nbspnbspnbsp▲ 끄리빠사란 상을 수상한 법륜 스님nbsp법륜 스님은 상을 받고 나서 기념 사진을 촬영한 후 수상 소감과 더불어 인도 불교의 부흥을 위한 격려의 말을 함께 전했습니다. 스님은 특히 어려운 시기에 불교 부흥의 싹을 틔운 끄리빠사란 스님에게 존경의 마음을 표한 뒤 불교는 단순히 종교가 아니라 현대 문명의 한계를 극복하는 대안이 될 수 있음을 강조했습니다.nbspnbspnbsp“나무 붓다, 나무 담마, 나무 상가. 안녕하세요. 여러분들 만나서 반갑습니다. 끄리빠사란 스님의 탄생 150주년을 맞아서 이런 좋은 행사에 초대받게 되어서 기쁘게 생각합니다. 또 저에게 이렇게 좋은 상까지 주셔서 깊은 감사를 드립니다.nbspnbsp1800년대 후반은 세계적으로 매우 어려운 시기였습니다. 특히 아시아의 민중들은 서구 열강의 침략을 받고 식민지배의 고통을 받은 시기입니다. 한국과 중국, 베트남, 인도 등 모든 나라들의 민중들이 고통을 겪었습니다. 그런 어려움 속에서도 그 어려움을 극복하고 새로운 희망을 만든 분들이 있습니다. 마치 진흙탕 속에서 한송이 연꽃이 피듯이 어두운 밤에 횟불을 밝힌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런 분 중에 한분이 끄리빠사란 스님이십니다.nbspnbspnbsp인도에 불교가 사라지고 600여년이 지난 어려운 시기에 치타공에서 탄생하시고 이곳 캘커타에 오셔서 불교를 새롭게 일으키셨습니다. 또 스리랑카 출신이면서 인도의 폐허된 불교 성지를 가꾼 담마팔라 스님과 함께 일했다고 알고 있습니다. 그분들이 활동하던 시기는 매우 어려운 시기였습니다. 그러나 그런 어려움에 굴하지 않고 마치 밭에 씨앗을 뿌리듯이 인도 민중들의 마음에 불심을 심었습니다. 그분들의 노력이 이제 100년이 지나고 조금씩 싹이 트고 자라고 있습니다.nbspnbsp전해내려온 얘기에 이런 얘기가 있습니다. 불교는 인도에서 시작해서 전 세계로 나갔다가 2500년이 지나면 다시 인도로 돌아와서 꽃이 핀다는 얘기입니다. 옛날 말씀에 의하지 않고도 이제 인도에 다시 불교가 시작되고 있습니다. 인도는 지난 300년 동안 많은 어려움을 겪었습니다. 그러나 이제 인도는 점점 성장하고 있습니다. 앞으로 30년만 지나면 세계 3대 강국으로 성장할 것입니다. 중국이 많은 고통을 겪고 일어난 것처럼 인도도 중국에 이어서 세계 강국으로 일어날 것입니다.nbspnbspnbsp이렇게 물질적으로 풍요로움이 일어난 것은 좋은 일이지만 물질만으로 인간은 행복해질 수 없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인도에는 부처님의 가르침이 새롭게 요구될 것입니다. 우리는 거기에 대응하는 준비를 해야 합니다. 담마팔라 스님과 끄리빠사란 스님이 심어 놓은 불심의 씨앗을 우리는 잘 가꾸어서 꽃 피워야 합니다. 우리 함께 그 일을 합시다.nbspnbsp단순히 과거를 복원하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시대에 요구되는 것을 만들어내야 합니다. 오늘날 인류는 그 어느 때보다도 물질 문명의 풍요를 누리고 있습니다. 그러나 사람들에게 ‘과연 행복한가?’ 질문해 보면 그렇지 않습니다. 어떻게 해야 행복에 도달할 수 있는가. 이것이 지금 큰 과제입니다.nbspnbspnbsp여기에서 우리가 희망을 가질 수 있는 것은 이제 붓다 담마입니다. 유럽이나 아메리카에서 불교가 많이 번창해 가고 있는 이유도 이것입니다. 지금 중국에서도 불교가 폐허로 되어 있다가 빠르게 복원되고 있습니다. 우리는 물질 문명이 갖는 한계를 극복하는데 불교가 대안이 된다고 생각합니다. 물론 힌두이즘도 아주 훌륭하지만 인도 안에서만 대중의 지지를 받을 수 있지 전 세계 사람들을 위해서는 부족합니다. 불교는 전 세계 사람들에게 인도의 위대함을 알릴 수 있습니다.nbspnbsp인도의 모리 총리가 인도의 자존심을 위해서 지금 요가를 세계적으로 전파하려고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요가보다 훨씬 더 위대한 것이 붓다 담마입니다. 여러분들은 붓다 담마에 대해서 자신감을 가져야 합니다. 붓다 담마는 인도를 넘어서서 전 세계의 모든 사람들에게 진리로 받아들여지고 있습니다. 종교로서만 머물러서는 안 됩니다. 오늘 우리 인류가 당면한 모든 문제들에 대해서 우리는 관심을 가져야 합니다. 가장 큰 문제가 환경 문제입니다. 우리는 그동안 자연을 정복의 대상으로 삼았습니다. 그러나 자연은 이제 더 이상 인간의 정복 대상이 아니라 우리 삶의 토대입니다. 사람과 자연, 세상 만물이 서로 연관되어 있다는 붓다의 연기적 가르침이 지금 새로운 세계관으로 받아들여져야 합니다. 지구 환경의 문제를 해결하려면 붓다의 가르침에 귀의해야 합니다.nbspnbspnbsp또 부처님은 모든 인간의 차별을 부정하셨습니다. 인종의 차별, 종교의 차별, 계급의 차별, 남녀의 차별 등 인간의 모든 차별을 부정하셨습니다. 인간의 존엄을 선언하신 것입니다. 이제 하나의 세계 속에 살아가는 우리들에게 이 붓다의 가르침이야 말로 가장 인간의 존엄을 선언한 것임을 알아야 합니다. 우리는 자기 종교, 자기 민족, 자기 국가라는 것을 넘어서서 세계 사람들을 하나로 보는 눈이 필요합니다.nbspnbsp또 현대 사회에서는 많은 사람들이 자아를 상실하고 있습니다. 물질적으로 풍요로운 나라일수록 자살율이 아주 높습니다. 또 마약, 도박, 알코올 중독 등이 점점 심해지고 있습니다. 이것은 바로 자아가 상실되어 가고 있음을 보여줍니다. 내가 이 세상에서 가장 소중한 존재라는 것을 자각해야 합니다. 우리 각자가 다 붓다라는 것을 자각해야 합니다. 우리는 누구나 다 행복할 수가 있습니다. 우리 모두가 행복해질 수 있는 길을 붓다는 ‘니르바나’라는 이름으로 제시했습니다.nbspnbspnbsp이제 불교는 종교를 넘어서서 현대 사회가 안고 있는 많은 문제들을 해결하는 하나의 희망으로 받아들여져야 합니다. 현대 문명의 한계를 극복하는 대안으로 받아들여져야 합니다. 불교의 사회적인 실천을 당연하게 받아들여야 합니다. 이제 테라바타인지 마하야냐인지 이런 문제보다는 얼마나 붓다의 가르침에 충실하고, 얼마나 붓다의 삶을 따라가느냐가 중요합니다. 여러분 그렇게 함께 손잡고 나아갑시다.”nbsp불교는 자아 상실, 자연환경 파괴 등 현대 문명의 한계에 새로운 대안이 된다는 이야기에 모두들 자부심이 느껴졌는지 고개를 끄덕이며 큰 박수갈채를 보냈습니다.nbspnbspnbsp이 외에 참석한 많은 내빈들의 축사가 이어지면서 오후 4시에 시작한 행사는 저녁8시가 되어서야 끝마쳤습니다. 40도가 넘는 무더운 날씨였음에도 불구하고 많은 청중들이 자리를 지키며 스님들의 축사와 법문에 귀를 기울였습니다.nbspnbsp수상식을 마치고 저녁에는 끄리빠사란 스님의 행적을 다큐로 제작한 영상물이 상영 되었습니다. 스님은 영상물 시청까지 마치고 참석한 스님들과 인사를 나눈 뒤 숙소로 올라왔습니다.nbspnbsp▲ 끄리빠사란 스님의 일생을 그린 다큐 영화 상영nbsp무덥고 습한 날씨로 땀을 흠뻑 흘렸는지 스님은 곧바로 찬물로 목욕을 한 후 원고 교정 업무를 보았습니다. 이어서 인도JTS에서 온 보광 법사님, 쁘리앙카님과 함께 인도JTS 사업에 대한 회의를 늦은 시간까지 하였습니다.nbspnbsp밤11시30분에 벵갈 부디스트 어소시에이션을 출발하여 캘커타 공항에 도착한 스님은 23일 새벽 3시30분에 런던으로 가는 비행기에 올라탔습니다. 내일부터는 스님은 3박4일 동안 런던과 파리에서 열리는 세계 한민족 포럼에 참석해 ‘한반도 통일의 과제와 전망’에 대해 기조 발제를 할 예정입니다. 내일 또 소식 전해드리겠습니다.nbsp

2015.06.23. 42,678 읽음 댓글 60개

2015.6.22 (오전) 벵갈 부디스트 어소시에이션(BBA) 및 언론사 인터뷰

nbsp안녕하세요. 오늘 스님은 인도 불교의 부흥을 위해 헌신한 끄리빠사란 스님의 탄신 150주년을 기념하여 벵갈 부디스트 어소시에이션에서 수여하는 끄리빠사란 상을 수상하기 위해 벵갈 절에 머물면서 인도 현지 언론과 인터뷰를 하였습니다nbspnbsp어제 오후6시30분에 인천공항을 출발하는 비행기에 탑승한 스님은 방콕을 경유하여 한국 시간으로 새벽 4시, 인도 현지 시간으로는 밤12시30분에 캘커타 공항에 도착했습니다. 캘커타 공항에 도착하자 벵갈 부디스트 어소시에이션의 주지인 보디팔라 스님이 반갑게 스님을 맞이해 주었습니다. 그리고 통역과 실무를 위해 인도JTS의 보광 법사님과 쁘리앙카님도 함께 공항 마중을 나와 주었습니다.nbspnbsp▲ 캘커타 공항에 마중을 나온 보디팔라 스님과 인도JTS 활동가들nbsp캘커타 공항에서 밖으로 나오자 안경이 뿌옇게 흐려질 정도로 열기와 습기가 가득했습니다. 그런데 인도JTS 스텝들은 “스님이 오신다고 갑자기 비가 내리면서 날씨가 많이 선선해진 겁니다”라면서 행복한 표정을 지었습니다.nbspnbsp캘커타 공항에서 BBA로 가는 차안에서 스님은 보디팔라 스님과 올해 탄신 150주년을 맞는 끄리빠사란 스님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스님은 용성 조사님과 끄리빠사란 스님의 행적이 비슷한 것 같다고 하면서 말문을 열었습니다. nbspnbspnbsp▲ 캘커타 공항에서nbspBBA로 가는 차안nbsp“끄리빠사란 스님은 저의 3대 할아버지 스님인 용성 조사님과 그 행적이 비슷합니다. 용성 조사님은 1864년에 태어나셨고, 한국에서 사라져간 불교를 새로 일으키셨고, 한문으로 된 경전을 한글로 번역하셨고, 일본의 식민지 지배에 저항해서 독립운동을 하셨고, 오늘날 한국 불교를 새롭게 일으킨 분으로 추앙받는 분이에요. 용성 조사님이 새로운 불교 운동을 위해 만든 조직이 ‘대각회’인데 이것을 번역하면 담마팔라 스님이 만든 ‘마하 보디 소사이어티’가 됩니다. 담마팔라 스님은 한국을 방문했을 때 용성 조사님에게 부처님의 진신 사리를 전했어요. 그래서 용성 조사님과 같은 시기에 같은 단체 이름으로 활동했기 때문에 담마팔라 스님만 알고 있었지 담마팔라 스님과 같이 활동한 끄리빠사란 스님에 대해서는 그동안 잘 모르고 있었습니다.”nbspnbsp그러자 보디팔라 스님이 끄리빠사란 스님에 대한 이야기를 들려주었습니다.nbspnbsp“끄리빠사란 스님은 당시에는 인도 땅이였지만 지금은 방글라데시에 속해 있는 치타공에서 20살에 출가했습니다. 20살에 출가해서 21살에 캘커타로 와서 계속 캘커타에서 활동하셨습니다. 담마팔라 스님은 1891년에 ‘마하 보디 소사이어티’를 만들었는데, 끄리빠사란 스님은 1892년에 ‘벵갈 부디스트 어소시에이션’을 만들었습니다. 두 분은 많은 활동을 같이 하셨습니다.nbspnbsp담마팔라 스님과 끄리빠사란 스님의 차이는 한 가지입니다. 담마팔라 스님은 학력이 높아 의사소통이 가능해서 전세계를 돌아다니며 불교를 전했고, 끄리빠사란 스님은 기초 교육을 받지 못했고 영어를 몰라서 이곳 캘커타에서만 불교를 전하는 일을 했습니다. 하지만 교육에 대한 많은 활동을 했습니다. 부처님의 말씀이 다 팔리어로 되어 있었는데 이곳 사람들이 팔리어를 이해할 수 있도록 하는 활동을 하셨습니다. 마을마다 현지 언어로 부처님의 말씀을 전해 주셨고, 부처님의 말씀을 벵갈어로도 거의 다 번역했고, 캘커타 대학교에 팔리어학과를 개설하도록 하셨습니다.nbspnbspB.M 바루아라는 훌륭한 제자가 있었는데 그 제자를 런던에 팔리어 연구를 위해 유학시켰고, 그는 1917년에 아시아에서는 첫 번째로 런던 대학에서 문학 박사를 수여 받았습니다. 이 외에도 사람들을 교육하기 위해서 많은 활동을 하셨습니다. 방글라데시 사람들도 많이 존경하기는 하지만, 평생 캘커타에서 활동하셔서 캘커타에 많은 제자들이 있습니다. 저도 그 제자이고 끄리빠사란 스님은 저의 3대 할아버지 스승이십니다.”nbsp“용성 조사님도 저의 3대 할아버지 스승이십니다. 그래서 우리들도 지금 같이 교류를 하고 있나봐요.”nbsp스님과 보디팔라 스님은 각자 자신의 스승들이 서로 교류가 있었다는 사실에 무척 반가워하는 모습이었습니다. 보디팔라 스님은 150주년 끄리빠사란 상의 수상자로 법륜 스님을 선정한 이유도 그런 연유가 있음을 말했습니다.nbspnbsp“법륜 스님을 끄리빠사란 상의 수상자로 선정한 이유도 그렇습니다. 스님과 저희들은 서로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는데 여기 사람들이 스님을 몰라서 이렇게 초대하게 되었습니다.”nbsp곧 차는 BBA에 도착했습니다. 스님은 BBA 건물을 보자 한마디 덧붙이셨습니다.nbspnbsp“제가 1991년에 인도에 처음 왔었는데, 그 때 이곳에 벵갈 절이 있다고 해서 한번 왔었습니다. 그 다음해부터 성지순례 올 때는 매번 여기서 잤습니다. 늘 이곳에서 자면서도 끄리빠사란 스님과 관련된 그런 뜻깊은 곳인 줄을 잘 몰랐네요.”nbspnbsp차에서 내려 숙소로 올라가자 인도JTS에서 온 보광 법사님과 쁘리앙카님 교장 선생님은 인도 수자타아카데미 학생들이 직접 키워 얼마 전 수확한 망고 한 바구니를 스님에게 선물했습니다.nbspnbsp▲ 수자카아카데미 학생들이 키운 망고를 스님에게 전달하는 쁘리앙카 교장nbsp스님은 환한 웃음을 머금으며 감사히 선물을 받았습니다. 그리고 “그래도 한번 맛을 보고 자야지” 하며 망고를 한 입메 물었습니다. 단맛이 잘 배어 있어서 정말 꿀맛이었습니다.nbspnbspnbsp숙소를 제공해준 보디팔라 스님께 감사 인사를 한 후 스님은 오랜 비행으로 인한 여독을 풀기 위해 휴식을 하려고 하다가 한국 시간으로는 이미 5시가 되었기 때문에 천일결사 기도와 명상을 한 후 잠시 잠자리에 들었습니다. nbspnbsp다시 날이 밝자 보디팔라 스님이 인도 신문을 갖고 와서 오늘 행사에 대한 기사를 보여 주었습니다. 기사에는 오늘 행사의 내용과 주요 내빈 참석자, 그리고 법륜 스님의 수상 소식을 전하고 있었습니다.nbspnbsp▲ 인도의 대표적인 신문인 ‘TIMES OF INDIA’에 실린 법륜 스님의 수상식 기사.nbsp7시30분에 벵갈 부디스트 어소시에이션에서 제공한 아침 식사를 먹고 나서는 보디팔라 스님과 함께 인도 현지 언론과 인터뷰를 하였습니다.nbspnbsp▲ 인도 현지 언론과 인터뷰를 하고 있는 법륜 스님nbspnbsp보디팔라 스님은 스님에게 현대사회에서 불교가 자발적으로 일어나지 않는 이유, 아시아 전체에 불교가 전해질 수 있는 가능성, 불교의 사회활동에 대한 생각, 전 세계의 불교가 인도 불교에 미친 영향 등 네 가지 주제에 대해 스님께 질문을 했습니다. 스님은 명쾌한 답변을 들려주었습니다. 통역은 인도JTS 활동가 쁘리앙카님이 해주었습니다.nbspnbsp▲ 끄리빠사란 상 수상식이 열린 벵갈 부디스트 어소시에이션nbsp먼저 BBA의 주지인 보디팔라 스님이 “오늘 행사에 참석해 주셔서 감사드립니다”라고 인사를 했습니다. 그러자 스님께서 웃으며 답했습니다.nbspnbsp“오늘 끄리빠사란 스님의 탄생 150주년 행사에 참석하게 된 것을 큰 영광으로 생각합니다. 초대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150년 전에는 인도에 불교가 거의 없다시피한 상태였는데 벵갈 불교를 새로 일으켜주신 것에 대해서 감사를 드립니다. 그 분이 하신 일을 오늘 우리들이 더욱 계승해서 발전시켜 나가야 하겠습니다.”nbspnbspnbsp이어서 보디팔라 스님과의 문답이 시작되었습니다. 첫 번째 질문으로 “현대 사회에서 불교가 자발적으로 일어나지 않는 이유가 무엇인가요?” 라고 물었습니다. 스님이 답했습니다.nbspnbsp“첫째, 서구 문명과 기독교 문화가 전 세계를 지배하는 상태에서 아시아는 지난 1세기 동안 서구의 침략을 받고 식민지 상태에 놓이면서 굉장히 위축이 되어 있었습니다. 둘째, 자본주의가 발달하고 물질 문명이이 전 세계를 지배하게 되면서 정신 문명이 굉장히 위축되었습니다. 그러나 이제 불교는 다시 일어날 것입니다. 인도, 한국, 중국, 일본 등 아시아에서 다시 서구 문명에 버금가는 물질 문명이 일어나고 있습니다. 그런데 물질 문명이 한계에 이르러서 이제는 물질 문명만 갖고는 인간이 진정으로 행복할 수 없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정신 문명이 다시 강조되고 있습니다. 지난 12세기 동안 위축되었던 불교의 활동이 이제 새롭게 일어날 때가 왔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오늘은 중요한 날이라고 생각합니다. 우리의 스승님들께서 하신 일들이 이제 꽃필 때가 왔다고 생각합니다.”nbsp이어서 “스님께서는 인도, 스리랑카, 인도네시아, 필리핀 등 많은 나라에서 불교 활동을 하고 계시는데 어떤 생각으로 그렇게 많은 활동을 하고 계시는지요? 아시아의 사람들은 불교를 어떻게 받아들이고 있는지요?”라고 물었습니다. 스님이 답했습니다.nbspnbsp“불교에는 두 가지 특징이 있습니다. 첫째, 붓다 담마는 진리를 가르칩니다. 붓다 담마는 불교, 기독교, 무슬림 등 종교나 민족, 사상을 초월해서 모든 사람들에게 공통적으로 적용될 수 있는 것입니다. 둘째, 불교 문화는 기독교 문화, 무슬림 문화 등과 다릅니다. 문화에 대해서는 각각 다른 것을 존중해야 됩니다. 그러나 담마는 모든 것에 다 통하기 때문에 종교를 초월해야 합니다.nbspnbsp지금 아시아 지역의 많은 나라들은 아직도 물질적으로 가난한 편입니다. 아직도 병들었지만 치료받지 못하고, 아이들은 제때에 교육받지 못하는 빈곤층이 아주 많습니다. 이것은 그들이 불교인이든 기독교인들이든 무슬림이든, 그 나라가 인도이든 스리랑카이든 아프가니스탄이든 관계 없이 병든 사람은 치료해야 하고, 배우지 못한 아이들은 배울 수 있게 해야 합니다.nbspnbsp이것은 부처님께서 남기신 마지막 유훈에도 있습니다. “부처님께서 만약 열반에 드신다면 우리는 누구에게 공양을 올려야 큰 공덕을 얻을 수 있습니까?” 라고 아난다가 물었습니다. 그러자 부처님께서 아난다에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아난다여, 걱정마라. 여래가 없는 세상에서 여래에게 올리는 공양과 똑같은 공덕이 있는 것이 네 가지가 있느니라. 배고픈 자에게 먹을 것을 주어서 배부르게 하고, 병든 사람에게 약을 주어서 치료하고, 가난한 자를 돕고 외로운 자를 위로하는 것, 청정하게 수행하는 자를 잘 외호하는 것, 이 네 가지는 부처님께 올리는 공양과 똑같은 공덕이 있느니라.”nbspnbsp그렇기 때문에 우리가 가난한 사람을 돕는 것은 단순히 자선활동이 아니라 부처님께 올리는 공양의 의미를 갖습니다. 그 대상이 어느 나라 사람인지 어떤 종교인지를 가려서는 안 됩니다. 그것은 부처님의 가르침을 우리가 행하는 것입니다.nbspnbsp둘째, 동남아시아는 대다수가 불교 문화를 가지고 있습니다. 그런데 서구 기독교인들이 들어와서 그들을 도우면서 전통문화를 많이 파괴하는 면이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각 나라의 전통 문화를 잘 보존할 수 있도록, 즉 불교 국가는 불교의 전통 문화를 보전할 수 있도록 오히려 도와야 합니다.nbspnbsp셋째, 붓다 담마를 가르쳐야 합니다. 붓다 담마는 종교를 넘어서 있습니다. 그들이 어떤 종교를 믿든, 어떤 나라 사람이든, 붓다 담마를 공부하게 되면 괴로움에서 벗어날 수 있습니다. 경제 성장만으로 행복할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실제로는 그렇지 않았습니다. 물질적 풍요 속에서도 사람들은 괴로움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습니다. 바로 붓다 담마는 이 괴로움에서 벗어나게 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어느 나라 사람이든 관계 없이 전 세계로 붓다 담마를 전해야 합니다. 인도도 지금 경제가 많이 성장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제는 붓다 담마가 인도에서 발전해야 합니다. 그래서 저는 인도에 다시 불교가 일어날 것이라고 믿고 있고, 일어날 수 있도록 지금도 노력하고 있습니다.”nbspnbsp다음은 “스님께서는 부처님께서 하신 말씀을 적용해서 많은 사회적 활동들을 하고 계신데, 출가한 많은 스님들이 사회 활동을 하는 것이 정말 필요한지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라고 물었습니다. 스님이 답했습니다.nbspnbsp“수행자는 먼저 자기가 괴롭지 않아야 합니다. 왜냐하면 부처님의 가르침은 괴로움에서 벗어나게 하는 것이니까 자기가 먼저 그 가르침을 듣고 괴로움에서 벗어나야 합니다. 그러나 괴로움에서 벗어난 다음에는 무엇을 할 것인가 하는 문제입니다. 첫째, 다른 사람들도 괴로움에서 벗어날 수 있도록 붓다 담마를 전해야 합니다. 둘째, 붓다 담마를 전할 수도 없는 처지에 놓인 사람들이 있습니다. 배고픈 사람들, 병든 사람들, 어린 아이들, 노약자들은 그들이 필요로 하는 것을 먼저 지원해야 합니다. 또 인종적으로 차별받거나 종교적으로 차별받거나 성별로 차별받거나 이렇게 차별하는 것은 철폐시켜야 합니다.nbspnbsp왜냐하면 부처님께서도 카스트를 부정하셨고, 비구니 제도를 만드셨고, 사키족과 꼴리족이 로히니 강에서 다툴 때 싸움을 말리는 일을 하셨기 때문입니다. 이것은 붓다가 직접 행동을 하신 겁니다. 우리는 붓다의 그 가르침과 삶을 닮아가야 합니다. 스님들이 사회 활동에 참여한 것이 잘못된 것이 아니라 절에 갇혀서 죽은 사람을 위한 기도만 하거나 개인 기도 생활만 하는 것이 오히려 붓다의 가르침에 어긋나는 것입니다. 수행자가 어떻게 살아야 하느냐는 붓다가 어떻게 사셨는지 그리고 무엇을 가르치셨는지에 기준을 두어야 합니다. 대승이냐 소승이냐는 이제 더 이상 중요하지 않습니다. 얼마나 우리가 붓다의 가르침을 실천하려고 하고, 붓다가 살아가신 그 모습대로 닮으려고 하느냐가 중요합니다.”nbspnbsp마지막 네 번째 질문으로 “인도에서 불교가 파괴되고 나서 두 가지 운동이 일어나게 되었습니다. 첫 번째는 1891년에 담마팔라로 인해서 부흥되었고, 두 번째는 1956년에 암베드카르로 인해서 불교가 부흥되기 시작했고, 그리고 네루 수상께서 부처님오신날 행사에서 전세계의 불자들에게 ‘당신들이 모든 성지에 와서 쉬어도 된다’고 하면서 전 세계인들이 많은 성지에 절을 세웠습니다. 이런 식으로 다시 전 세계에서 불교가 인도로 들어오기 시작했다고 알고 있습니다. 스님께서는 전세계의 불교가 인도의 불교에 어떤 영향을 끼쳤다고 생각하십니까?” 라고 물었습니다. 스님이 답했습니다.nbspnbsp“인도에서 불교가 거의 사라진 시기에 외국인들이 불교를 가져와서 성지 가꾸기를 시작으로 인도 불교의 불씨를 새로 일으킨 것은 중요한 역할이었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이것은 한계가 있습니다. 첫째, 성지를 가꾼다는 것은 주로 과거를 복원하는 일입니다. 또 성지에 지은 절들이 대부분이 외국인 순례자를 위한 것이지 인도 사람들을 위한 것이 아닙니다. 지금 여기에 살아가고 있는 인도 사람들을 위해서는 이것으로는 부족합니다.nbspnbsp둘째, 암베드카르의 불교 운동은 인도에서 일어났고 민중들의 삶의 고통으로부터 시작되었다는 것은 매우 중요합니다. 그리고 계급 해방이라는 내용도 현대 사회에서 굉장히 중요한 의미를 지닙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부족한 것이 있습니다. 너무 계급 해방적 정치 투쟁으로만 치우쳐 있다는 것이 한계입니다. 계급을 초월해서 붓다 담마의 가르침으로 많은 사람들에게 감동을 주어야 하는데 그런 감동이 부족한 것 같습니다. 두 운동 모두 인도 불교를 새로 일으키는데 굉장히 중요한 역할을 했지만 그것만 갖고는 부족한 것이 있다는 것입니다.nbspnbsp그래서 외국에서 들어와서 하고 있는 활동들은 이제 자신들의 순례객들을 위하는 것을 넘어서서 인도 현지에 살아가고 있는 사람들의 어려움을 돕고 희망을 줄 수 있는 활동으로 전환해야 합니다. 즉, 인도 사람들을 위한 절로 변화되어야 합니다. 제가 둥게스와리에 수자타아카데미를 세운 것도 한국 불자들을 위한 것이 아니라 인도 사람들을 돕기 위해서 시작한 활동입니다.nbspnbsp그리고 인도는 대부분 힌두교인데 불교가 힌두교와 싸우는 방식으로 출발할 것이 아니라 그것을 넘어서서 그들마저도 포용하고 감동시킬 수 있는 방식으로 출발해야 합니다. 힌두교의 부족함을 넘어서는 더 위로 나아갈 수 있는 붓다 담마를 가르쳐야 합니다. 암베드카르 쪽에서 하고 있는 계급 해방 운동은 좋은 일이지만 힌두교와 싸우는 방식이기 때문에 장기적으로 인도에 불교를 전파하는데 장애가 되지 않겠나 싶습니다. 그러나 저는 암베드카르 운동이 인도 불교를 새로 일으키는데 아주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는 것은 인정합니다.nbspnbspnbsp앞으로 인도에 불교를 부흥시키기 위해서는 첫째, 붓다 담마를 힌두어, 벵갈어 등 현지어로 번역해서 민중들에게 다가가기 쉽도록 가르치는 것, 둘째, 실질적으로 사람들이 괴로움을 벗어나 니르바나를 증득할 수 있도록 수행을 가르치는 것, 이 두 가지가 매우 중요합니다.nbspnbsp다만 한가지 장점은 힌두교는 불교를 외래 사상이라고 생각하지 않고 자신들 사상의 하나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기독교보다 훨씬 저항을 덜 받으면서 인도 불교의 부흥을 일으킬 수 있다는 것입니다.nbspnbsp앞으로 한 30년 정도 지나면 인도가 경제적으로도 세계 중요 세력의 하나가 될 것입니다. 그때 인도는 물질 문명 뿐만 아니라 정신 문명도 세계로 수출해야 하는데, 힌두교는 인도 안에서는 통하지만 세계화 되기에는 어렵습니다. 그런 면에서 자연적으로 인도 정부도 불교를 발전시키려고 할 겁니다. 지금 인도의 총리는 불교가 아니라 요가를 알리려고 하는데 요가 갖고는 한계가 있습니다. 중국도 처음에는 자신들의 전통 종교인 유교를 공산주의가 굉장히 탄압했습니다. 그런데 중국이 발전하고 세계화가 되면서 중국이 정신적으로 세계에 수출할 것이 없다 보니까 지금은 공자를 굉장히 받들고 수출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인도도 이제 시간이 흐르면 정부가 알아서 성지도 가꾸고 불교도 부흥시키려고 할 겁니다. 그러나 정부가 주도하는데 끌려가면 형식만 커지지 내용이 없어져요. 그래서 빨리 상가에서 정부의 부흥 정책의 내용을 채울 수 있도록 준비해야 합니다.nbspnbsp그리고 인도 안에는 테라바타, 마하야나, 탄트라, 암베드카르 이 네가지의 서로 다른 불교가 있는데 이들이 어떻게 서로 협력하도록 만드느냐가 지금 중요합니다. 조건은 앞으로 점점 좋아질 겁니다. 그러나 우리들의 준비가 아직 부족합니다. 같이 준비를 잘 합시다.”nbsp스님의 명쾌한 답변에 언론사 기자는 엄지 손가락을 치켜 세우며 매우 감탄한 표정을 보였습니다. 그리고 자신은 “다질링에서 인도 사회에 불교를 전하는 일을 하고 있는데 스님을 다질링으로 꼭 한번 모시고 싶다”고 인사하면서 스님에게 다질링에서 가져온 차를 선물했습니다. 스님도 인도 기자에게 스님의 영문 번역책 “기도”를 선물했습니다.nbspnbsp이어서 동남아 각국에서 초청받아 온 스님들이 모두 도착하자 이번에 새롭게 리모델링을 한 끄리빠사란 스님 메모리얼 홀 준공식을 짧게 가졌습니다.nbspnbspnbsp컷팅식을 갖고 건물 안으로 들어가서 참석한 스님들과 기념 사진을 찍은 후 다함께 예불을 올리는 의식이 시작되었습니다.nbspnbspnbsp참석한 스님들은 모두 삼귀의 오계를 게송으로 읊고 끄리빠사란 스님의 탄생 150주년을 축하한다는 메시지를 한마디씩 들려 주었습니다.nbspnbspnbspnbsp▲ 예불 의식nbsp이어서 점심 공양 시간이 되었고, 스님은 동남아 각국에서 온 스님들과 담소를 나누며 함께 식사를 하였습니다.nbspnbsp▲ 점심 공양nbsp오후에는 인도의 ‘Business Economics’ 라는 언론사와 인터뷰를 한 후 곧바로 끄리빠사란 상 수상식이 열렸습니다. 끄리빠사란 상 수상식 소식은 곧이어 또 전해드리겠습니다.nbsp

2015.06.23. 51,778 읽음 댓글 40개

2015.6.20~21 농사일 및 발우공양 중 ‘계율’에 대한 법문

nbsp안녕하세요. 오늘 스님은 메르스로 인해 평화재단 평화교육원의 힐링 동문회 행사가 취소되어 두북에서 농사일을 했고, 서울로 올라와 공동체 대중들에게 ‘계율을 지키는 의미’에 대해 법문 했습니다.nbspnbsp대전에서 청년들을 위한 즉문즉설 강연을 마치고 새벽 2시에 두북에 도착한 스님은 잠시 눈을 부친 후 다시 일어나 천일결사 기도를 마치고 이른 아침부터 농사일을 시작했습니다.nbspnbsp날이 흐리고 오후에 비가 올 것이라는 일기예보도 있었지만 스님은 가뭄으로 바짝 말라있는 작물들을 위해 조금이라도 일찍 물을 적셔주고자 호수를 들었습니다. 물을 흠뻑 머금은 작물들을 보며 스님은 기쁜 표정을 지었습니다.nbspnbspnbsp그리고 꽃밭 곳곳에 무성하게 자란 잡초들을 열심히 뽑았습니다. 텃밭에는 토마토가 영글게 익어가는 모습이 무척 탐스러워 보였습니다. 마당 한 구속에는 얼마 전 심어 놓은 고소가 막 새잎을 틔우고 있었습니다.nbspnbspnbsp화단에는 스님이 직접 심어놓은 여러가지 꽃이 피어 있었는데 특히 보라색의 청사초 꽃을 보고선 스님도 더욱 기뻐하는 모습이였습니다.nbspnbspnbsp스님은 “오후에는 비가 내릴 것 같다”면서 “비가 내리기 전에 부모님 산소에 벌초를 하다 중단했던 것을 마치고 오자”며 예초기와 낫을 들고 나갈 채비를 했습니다. 지난주에 메르스로 인해 통일의병대회가 취소되면서 산소 벌초를 할 수 있는 여유 시간이 생겼는데, 그 때 다하지 못한 구역이 있어서 한시간 정도 더 벌초를 했습니다.nbspnbspnbsp산소 벌초를 마무리 짓고 나서는 올라오는 길도 깨끗이 깎았습니다. 길인지 분간할 수 없을 정도로 풀이 무성했는데 스님이 예초기를 들고 한번 지나가고 나니 깨끗이 정돈이 되었습니다. 스님은 “머리 깎아 놓은 것처럼 깔끔해졌다” 며 흐뭇해 했습니다. nbspnbspnbsp산소에서 내려오자 갑자기 비가 우두둑 쏟아지기 시작했습니다. 스님은 “행사를 못해도 좋으니 비가 많이 왔으면 좋겠다” 며 연신 기뻐했습니다. 최근 극심한 가뭄으로 남한도 북한도 모두 농민들의 고통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는데 안도의 한숨을 쉬는 듯 했습니다.nbspnbsp오후 내내 원고 교정 업무를 보며 시간을 보내다가 밤10시 무렵 두북에서 서울로 향했습니다. 새벽2시30분에 서울 정토회관에 도착한 스님은 원고 교정 등 업무를 더 보시다가 새벽 4시30분부터 서울 공동체 대중들과 새벽 예불 및 천일결사 기도를 함께 했습니다.nbspnbspnbsp기도 후 발우공양 시간에는 공동체 대중들을 위해 ‘계율을 지키는 의미’에 대해 법문을 했습니다. 공동체 대중들은 발우공양 시간에 매일 40가지 계본을 갖고 자신이 어긴 계율에 대해 대중들에게 드러내어 참회하는 시간을 갖는데, 오늘 대중들이 참회하는 모습을 보고선 어떤 마음으로 계율을 지켜야 하는지 그 의미를 자세히 알려 주었습니다.nbspnbsp스님은 먼저 ‘자유와 권리’, ‘책임과 의무’의 차이에 대해 설명했습니다.nbspnbspnbsp“우리는 ‘자유와 권리’, ‘책임과 의무’ 이런 말을 많이 합니다. 자유에 대해서는 반드시 책임이 따릅니다. 권리에 대해서는 반드시 의무가 따릅니다. 그래서 우리에게 주어진 자유와 권리가 있고, 우리가 마땅히 해야할 책임과 의무가 있습니다.nbsp‘자유와 권리’는 선택 사항입니다. 내가 무엇을 할 자유는 있는데 그렇게 할 건지 안 할 건지는 내가 선택해도 됩니다. 그러나 ‘책임과 의무’는 선택 사항이 아닙니다. 마땅히 해야 할 일입니다. 즉, 하지 않으면 안 되는 금기 사항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그래서 계율은 이 두 가지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넓은 의미에서의 계율은 ‘자유와 권리’, ‘책임과 의무’를 다 포함합니다. 그러나 좁은 의미에서의 계율은 ‘책임과 의무’만 규정하고 있습니다.nbspnbsp부처님의 모든 가르침을 요약하면 그 첫째가 ‘모든 악은 멈추는 것’입니다. 이것은 의무 사항입니다. 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을 말합니다. 둘째는 ‘모든 선은 받들어 행하는 것’입니다. 선을 받들어 행하는 것은 자유와 권리에 해당합니다. 하면 좋은 일이지만 안 해도 괜찮습니다.nbsp악은 하면 안 되는 일이고, 선은 하면 좋은 일입니다. 악을 행하면 나쁜 행동이 되지만, 악을 행하지 않는다고 좋은 행동이 되는 것은 아닙니다. 선을 행하면 좋은 행동이 되지만, 선을 행하지 않는다고 나쁜 행동이 되는 것은 아닙니다. 그래서 악을 멈추는 것은 마땅히 행해야 할 의무에 해당하고, 선을 행하는 것은 선택의 자유 사항에 해당합니다. 선을 행하면 좋은 일입니다. 그러나 행하지 않는다고 나쁜 행동은 아닙니다. 선을 행하지 않으면 안 된다 이런 건 아닙니다. 하면 좋은 일입니다.nbspnbsp우리의 행동에 있어서 그 이하로 가서는 안 된다는 미니멈이 악을 행하지 않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무엇 무엇을 하면 좋다는 것은 어디까지 해야 한다는 맥시멈이 없습니다. 조금이라도 행하면 행하는 만큼 좋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여기서 생활할 때는 주로 좁은 의미의 계율을 중요시하죠. ‘나쁜 행동을 하면 수행자라고 할 수가 없다. 그러므로 악은 당장 멈추어야 한다’는 얘기입니다.”nbspnbsp이어서 이것을 계율에 적용해보면 어떤 의미인지 설명했습니다.nbspnbspnbsp“이것을 계율에 적용해 보면 이렇습니다. 살아있는 모든 생명은 살고자 하는 성질이 있기 때문에 나는 살 자유가 있고 권리가 있습니다. 그러나 그 권리와 자유는 다른 생명을 때리거나 죽여서는 안 된다는 범위 안에서만 누릴 수 있습니다. 즉, 다른 생명을 때리거나 죽여서는 안 된다는 것은 금기 사항이에요. 그러나 죽어가는 다른 생명을 살려주라는 것은 권장 사항이에요. 그렇게 하면 선행을 하는 것이 되고 복을 짓는 것이 됩니다.nbspnbsp나의 권리는 살 권리입니다. 그러나 나의 책임은 다른 생명을 죽여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나는 이익을 추구할 권리가 있습니다. 그러나 남에게 손해를 끼쳐서는 안 됩니다. 나는 행복할 권리가 있습니다. 그러나 다른 사람에게 괴로움을 주어서는 안 됩니다. 나는 말할 권리가 있습니다. 그러나 다른 사람을 말로 괴롭혀서는 안 됩니다. 나는 술을 먹을 권리가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이 남을 괴롭힐 정도로 취해서는 안 됩니다. 계율은 이런 내용을 담고 있습니다. 이것은 모든 사람이 이해하고 적용할 수 있는 보편적인 것에 해당합니다.nbspnbsp악은 멈추고 선을 행한다고 할 때 악을 멈춘다는 것은 반드시 지켜야 할 일이에요. 이것이 소승 계율의 기본이에요. 그런데 악을 멈추는 것으로 수행자라고 할 수는 없어요. 그것은 수행자의 미니멈이기 때문입니다. 소승은 악을 멈추는 것에만 초점을 맞추었기 때문에 대승은 ‘수행자는 앞으로 더 나아가야 된다’ 고 하면서 ‘악을 멈추고 선을 행하라’고 한 것입니다. 즉, 살아있는 생명을 죽여서는 안 되고 죽어가는 생명을 살려주어라. 죽어가는 생명을 살려주는 것은 나의 선택의 자유입니다. 그렇게 하면 복을 짓는 것이 되고, 그렇게 하지 않는다고 악을 행하는 것은 아닙니다. 내가 다른 사람을 물에 빠트리거나 죽이는 것은 악행에 해당하지만, 죽어가고 있는 것을 내가 도와주지 않는다고 해서 악행은 아닙니다. 그러나 수행자라면 마땅히 살려주어야 하겠죠.”nbspnbsp그러면서 계율을 단순히 소극적인 의미의 금기 사항로만 보지 말고 보다 적극적인 의미의 자유와 권리로서 바라볼 것을 이야기해 주었습니다.nbspnbspnbsp“자유에는 반드시 책임이 따릅니다. 권리에는 반드시 의무가 따릅니다. 그래서 계율을 단순히 금기로만 보지 마세요. 그것이 금기인 이유는 그것이 나에게 재앙을 가져오기 때문입니다. 어리석은 자라면 몰라도 지혜로운 자라면 재앙을 초래할 필요가 없습니다. 선이라는 것은 나에게 복을 가져오기 때문에 지혜로운 자라면 마땅히 행할 만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것은 의무 사항은 아닙니다. 나는 결혼할 자유가 있고 아이를 낳을 자유가 있습니다. 그러나 아이를 낳게 되면 아이를 키워야 할 책임과 의무가 있습니다. 내가 부모를 봉양할 책임과 의무는 없습니다. 같은 성인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부모를 봉양하는 것은 좋은 일입니다. 부모를 봉양하는 것은 선이지만 봉양하지 않는다고 해서 악은 아닙니다. 자식을 돌보는 것은 마땅히 해야할 일이기 때문에 자식을 돌보지 않으면 악행에 들어가지만, 자식을 돌보는 것을 선이라고 할 수는 없습니다. 그것은 마땅히 부모로서 해야할 일이기 때문입니다.nbspnbsp소극적인 의미의 계율인 금기 사항을 지킨다고 자랑할 일은 아닙니다. 그것은 마땅히 해야할 일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수행자는 금기 사항, 즉 책임과 의무를 가져야 할 것은 마땅히 행하고, 거기서 더 나아가 선을 행할 자유와 권리를 가집니다. 그것은 행하지 않는다고 나쁜 것은 아니지만 적어도 수행자는 좋은 방향으로 나아가기 위해서 수행하기 때문에 그것은 권장할 만한 일입니다.nbspnbsp우리에게는 ‘화내어 욕설하지 않는다’, ‘웃으며서 부드럽게 말한다’ 이 두가지 계율이 있습니다. ‘화내어 욕설하지 않는다’는 금기에 해당합니다. 어기면 참회를 해야 합니다. 그러나 웃으면서 부드럽게 말하지 않았다고 해서 잘못된 행동은 아닙니다. 성질을 내면 잘못된 행동에 들어가지만 웃지 않는 것은 잘못된 행동은 아닙니다. 그러나 ‘웃으면서 부드럽게 말한다’는 좋은 행동입니다. 나쁜 행동인 화내어 욕설하는 것은 하지 말아야 하고, 좋은 행동인 웃으면서 부드럽게 말하는 것은 가능하면 행하는 것이 좋습니다. 그러나 그것을 행하지 않았다고 참회해야 할 일은 아닙니다.nbspnbsp참회는 금기 사항을 어겼을 때 하는 것입니다. 물론 권장 사항을 행하지 않았을 때도 자기 스스로 ‘아, 내가 오늘 선행을 하지 못했다’ 이렇게 참회하는 것은 좋은 일입니다. 그러나 대중에게 내가 선한 행동을 하지 못했다고 참회할 필요는 없습니다. 그러나 나쁜 행동에 대해서는 스스로 참회할 뿐만 아니라 대중에게 공개해서 참회를 해야 합니다. 그런데 우리는 수행자 집단이기 때문에 행하면 좋은 행동까지도 하지 않았을 때는 스스로 자각해서 ‘제가 오늘 좋은 행동을 하나도 하지 못했습니다’ 이렇게 드러내 놓고 반성하는 모습을 갖게 되죠.nbspnbsp계율을 지킨다고 할 때 좁은 의미의 계율은 반드시 지켜야 할 사항입니다. 지키지 못할 때는 대중에게 공개해서 참회를 해야 합니다. 또 부족하면 대중에게 요청해서 지적을 받아서 참회를 해야 합니다. 선을 받들어 행하는 것은 수행자로서 좋은 인격을 닦고 복을 지어야 되기 때문에 최대한 할려고 노력을 해야 합니다.nbspnbsp그런데서 정토회의 40가지 계본에는 ‘하지 마라’는 것과 ‘하라’는 것이 있습니다. ‘하지 마라’는 것은 악을 짓지 마라는 의미이고, ‘하라’는 것은 선을 받들어 행하라는 의미입니다. 우리는 대승이기 때문에 소대승을 함께 아울러서 정진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만약 소승이라면 생명을 해치지 마라는 계율만 있겠죠. 소승의 소극적인 계율에서는 게으르지 마라는 계율만 있지 부지런하라는 계율은 필요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대승이니까 게으리지 않는 것은 말할 것도 없고 부지런하라, 죽이지 않는 것은 말할 것도 없고 살려주라, 남에게 손해끼치지 않는 것은 말할 것도 없고 남을 도와주라, 남을 괴롭히지 않는 것은 말할 것도 없고 남을 기쁘게 해주라, 이렇게 계율이 잡혀 있는 것입니다.nbspnbsp계율은 단순히 우리를 속박하는 것이 아니고 악을 막아주고 선을 행하도록 해줍니다. 계율은 불행을 막아주고 복은 받도록 인도하는 것이니까 계율을 너무 속박으로 생각하지 말고 자신을 위하는 것으로 적극적으로 받아들이는 것이 필요합니다. 즉, 대승 계율을 의무로 받아들이지 마세요. ‘나는 선을 행할 자유와 권리가 있다’ 이렇게 적극적으로 수용할 때 그것이 자신을 가볍게 해줍니다. 남을 위해서 희생하라는 것이 아니라 내 복을 짓기 위해서 내가 능동적으로 행하는 것이라는 관점을 갖는다면 정진을 하는 것이 조금 더 가볍고 밝아지지 않겠느냐 싶어요.nbspnbsp많은 수행자들이 금기 사항인 책임과 의무가 많다고 느끼기 때문에 남에게는 좋은 일을 하면서 본인은 조금 무겁거든요. 그러나 좋은 일을 행하는 것은 나에게 주어진 자유이며 권리라고 생각하면 훨씬 더 삶이 가벼워지고 적극적이 될 수 있습니다. 그렇게 정진을 잘 해나가시기 바랍니다.”nbsp계율은 금기 사항을 담고 있기도 하지만 좋은 일을 행하도록 하는 자유와 권리의 의미도 담고 있다는 말씀에 공동체 대중들 모두 고개를 끄덕이며 공감했습니다.nbspnbspnbsp그동안 계율을 생각할 때 무거운 느낌이 많이 들었는데 오늘 스님의 법문을 듣고 나니 한층 가벼워진 느낌입니다. ‘나는 선을 행할 자유와 권리가 있다’ 다시 한번 가슴에 새겨봅니다. nbspnbsp발우공양을 마치고 스님은 원고 교정 업무를 보면서 인도와 런던으로 떠날 채비를 하였습니다. 6월22일에는 인류의 화합과 형제애를 이뤄나가며 모범적인 역할을 수행해 온 공로로 인도 뱅갈불자협회에서 주는 ‘우수 사회 활동을 기리는 까르마요기 크리빠사란 상’을 스님이 수상하게 되었는데 그 시상식에 참여하기 위해 오늘 저녁 비행기를 타고 캘커타로 떠났습니다.nbsp▲ 인도로 출국 nbspnbsp 또 6월24일부터 27일까지는 3박4일 동안 세계 한민족 포럼이 런던과 파리에서 열리는데 스님은 ‘한반도 통일의 과제와 전망’을 주제로 기조 발제를 할 예정입니다. 내일 또 소식 전해드리겠습니다.

2015.06.21. 73,434 읽음 댓글 79개

2015.6.19 희망세상만들기 대전 청년 강연

nbsp안녕하세요. 오늘 스님은 정토회 서울 공동체의 발우공양에 참석해 ‘수행자의 자세’에 대해 법문한 후, 저녁에는 청년정토회에서 주관한 희망세상만들기 강연에서 청년들을 위해 즉문즉설을 했습니다.nbspnbsp오늘 스님은 평소보다 이른 시간인 새벽4시에 법당에 내려와 혼자서 108배 정진과 명상을 먼저 한 후 5시부터 대중들과 함께 새벽 예불과 천일결사 기도를 하며 하루를 시작했습니다.nbspnbspnbsp기도 후에는 집무실에서 원교 교정 업무를 보다가 발우공양 시간에 함께 했습니다.nbspnbsp▲ 스님의 발우nbsp발우공양을 마치고 나서는 수행 공동체에 들어와 상주하고 있는 대중들을 위해 ‘수행자의 자세’에 대해 짧은 법문을 해주었습니다. 여러 사람이 같이 어울려 살다보면 갈등이 많이 생길 수 있는데 어떤 관점을 가져야 갈등을 해소할 수 있는지 소중한 가르침이 되었습니다.nbspnbsp▲ 스님의 고무신nbsp“도반들과 함께 생활하다 보면 갈등이 생길 수 있습니다. 업무 등 일로 인해 갈등이 생길 수도 있고, 방청소를 제대로 안 한다, 물건을 어지럽힌다, 머리카락을 떨어뜨린다 등 생활 문제로 갈등이 생길 수도 있고, 성격으로 인해 갈등이 생길 수도 있습니다. 살다 보면 이런 갈등이 생기는데 이것을 어떻게 볼 것이냐 하는 문제입니다.nbspnbspnbsp타인에 대해서는 이해하는 마음이 필요하고, 자기에 대해서는 자각하는 마음이 필요합니다. 두 사람이 서로 죽고 못 살아서 결혼한 부부도 같이 살면 갈등이 생기는데, 우리는 그렇게 부부처럼 사랑하는 관계도 아닌데 어떻게 갈등이 생기지 않을 수가 있겠어요? 월급 받고 일하는 직장인들도 동료들 사이에 늘 갈등이 생기는데 여기서 돈도 안 받고 일하는 우리들이 어떻게 갈등이 생기지 않겠어요? 또 수행이 잘 되어 있으면 이 좋은 세상에 왜 여기 들어와서 살겠어요? 다 부족한 사람들이 이렇게 모여 사는 것 아니겠어요?nbspnbsp그렇기 때문에 타인에 대해서는 ‘화를 좀 낼 수도 있겠다’, ‘짜증을 좀 낼 수도 있겠다’, ‘업무를 좀 제대로 못할 수도 있겠다’, ‘보고를 좀 못할 수도 있겠다’ 이렇게 이해하는 마음이 필요합니다. 이해한다는 것은 수행자라는 기준으로 상대를 보지 말고 그냥 세상 사람이라고 보는 것을 말합니다. ‘세상 사람이다’ 이렇게 보면 그래도 여기 와서 수행하려고 한 것만 해도 장하고, 꾸벅 꾸벅 졸면서도 수행하려고 하는 것만 해도 장하고, 짜증내면서도 여기 같이 있어 주는 것만 해도 장합니다. 사실 세상 사람을 기준으로 보면 여기 사는 사람들은 다 장한 사람들이에요. 그런 관점에서 타인에 대해서는 이해를 해야 합니다. 즉 보통 사람이라는 관점에서 ‘그렇게 해주는 것만 해도 참 고맙다’는 관점을 가져야 합니다.nbsp이해라는 것은 그 사람의 입장, 즉 세상의 기준으로 그 사람을 보는 것입니다. ‘스님이 왜 저러냐’, ‘법사가 왜 저러냐’, ‘수행자가 왜 저러냐’ 이렇게 보지 말고 그냥 ‘세상 사람으로서 그만해도 참 장하다’ 이런 관점에서 보면 우리 마음 속에 화가 일어나거나 짜증이 일어나거나 미움이 일어나지 않습니다. 나도 모르게 ‘저 자식 왜 저러지?’ 이렇게 화가 일어나고 짜증이 일어나고 미움이 일어나더라도 금방 돌이켜서 ‘아참, 고마운 사람이지’ 이렇게 이해하는 마음을 내는 것이 필요합니다.nbspnbsp자기 자신에게는 ‘수행자’라는 자각이 필요합니다. ‘내가 부족하긴 하지만 그래도 수행하러 여기 들어와 있지 않느냐’, ‘그래도 명색이 내가 수행자가 아니냐’, ‘수행자가 질투를 한다든지, 화를 내고 짜증을 낸다든지, 욕심을 낸다든지, 게으르다든지 한다면 내가 왜 여기 들어와 살고 있느냐’ 이렇게 자기에게는 수행자라는 자각을 통해서 끊임없이 자기의 업식을 고쳐나가는 관점을 가져야 합니다.nbspnbsp이렇게 타인에 대해서는 ‘이해’ 자기에 대해서는 ‘자각’ 이 두 가지를 가지면, 우리가 부족한 상태에서 순간순간 놓치기 때문에 갈등이 생기지만 그 갈등이 지속되지 않고 그것이 미움으로까지 가지는 않습니다. 놓쳤기 때문에 그 순간만 불뚝불뚝 감정이 일어나는 것이지 꽁 하고 있지는 않게 됩니다.nbspnbspnbsp그런데 우리는 거꾸로 하기가 쉽습니다. 자기한테는 이해하는 마음을 냅니다. ‘그래도 내가 이만큼 사는 것만 해도 얼마인데’ 이렇게 하고, 타인에게는 ‘그래도 수행자인데 절에 들어온 지 10년이나 된 사람이 저렇게 해도 되나?’ 이렇게 거꾸로 적용을 합니다. 이렇게 되면 우리가 수행자들이 모여 살지만 세속과 아무 다름이 없이 갈등이 끝없이 계속 됩니다.”nbsp타인에게는 ‘이해’하는 마음을 내고, 자신에게는 수행자임을 놓치지 않는 ‘자각’을 하라는 가르침에 모두들 환한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습니다. 스님께서는 항상 이렇게 상대를 고쳐서 행복해지는 방법이 아니라 자신의 관점을 바꿈으로서 상대를 그대로 두고도 행복해질 수 있는 방법을 이야기해 줍니다. 늘 못마땅하게 여겨온 도반이 있었는데 세상 사람이라는 기준으로 이해해 본 적이 있었는지 되돌아보니 절로 미안한 마음이 일어났습니다.nbspnbsp이어서 스님은 당당하고 겸손하라고 한 부처님의 말씀을 들려주면서 비록 공동체에 들어와 살지만 마음이 어둡거나 건강이 좋지 않은 대중들이 많은데 이런 사람들은 어떤 태도를 가져야 하는지 얘기해 주었습니다.nbspnbsp“부처님께서 ‘수행자들아, 비굴하지 말고 당당하라. 교만하지 말고 겸손해라’ 이렇게 말했어요. 당당하기는 어느 정도까지 당당해야 하느냐? ‘이 세상에 제일 소중한 자가 바로 나다’, ‘금도 아니고, 돈도 아니고, 명예도 아니고, 재산도 아니고, 하늘의 신도 아니고, 바로 내가 가장 소중하다’, ‘천상천하 유아독존이다’ 이런 당당함이 있어야 합니다. 겸손하기는 어느 정도까지 겸손해야 하느냐? ‘나라는 것은 아무것도 아니다’, ‘그냥 길가에 밟히는 풀 한 포기와 같은 것이다’ 이렇게 사실은 나라는 존재는 아무것도 아님을 알아야 합니다.nbspnbspnbsp교만함을 꺾고 겸손해지기 위해서는 자신이 아무것도 아닌 줄을 알아야 하고, 비굴한 마음이 일어날 때 당당해지기 위해서는 자신이 부처라는 것을 자각해야 합니다. 그런데 우리는 이것도 거꾸로 적용합니다. 교만할 때는 유아독존이라는 말이 대표적으로 쓰이고, 비굴할 때는 풀보다도 더 비굴하게 굴잖아요. 이렇게 적용을 거꾸로 하는 것이 문제입니다. 수행을 하면서도 행복해지지 않는 이유는 늘 거꾸로 적용하기 때문입니다. 욕망에 기준을 두고, 자기에게 기준을 두고, 거꾸로 적용하기 때문에 많은 문제가 발생합니다.nbspnbsp그러니 수행자로서 정진할 때는 세상 사람들이 어떻게 하느냐, 선배들이 어떻게 하느냐, 법사가 어떻게 하느냐는 논할 필요가 없어요. ‘당신도 그러지 않느냐’ 이런 말은 할 필요가 없어요. 내가 가는 것이고, 못 가면 내가 반성하는 것이고, 내가 간다고 타인보고 가라고 할 필요도 없고, 내가 한다고 타인 보고 하라고 강요할 필요도 없고, 남이 못 한다고 나무랄 필요도 없고, 내가 한다고 자랑스러운 것도 아니고 당연한 것입니다. 나는 다만 부처님과 계율에 기준을 두고 그렇게 되려고 노력할 뿐입니다. 다른 사람도 그렇게 하면 고마운 사람들이에요.nbspnbsp이런 관점을 딱 가지면 세상이 어떻게 되든 게으른 사람들 속에서도 부지런하고, 다른 사람은 다 늦잠 자도 자기는 제 시간에 일어나서 자기 정진을 하면서 살 수가 있습니다. 그렇다고 자기가 잘한다면서 목에 힘주는 것도 아니고요. 다른 사람들이 같이 가면 앞에 갈 수 있도록 밀어주고 격려해 주면서 가면 됩니다. 남이 같이 가주면 고마운 일이고, 안 가면 나는 나대로 가면 됩니다. ‘남이 안 가도 나는 간다’ 이것이 소승이에요. 거기에 추가해서 ‘가능하면 남과 같이 간다’ 이것이 대승이에요. 남하고 같이 가고자 하는 마음이 얼마나 적극적이냐면 내가 못가는 한이 있더라도 다른 사람이 가도록 돕겠다는 것입니다. ‘너도 안 가니 나도 안 간다’ 이런 태도는 대승이 아니라 중생에 불과합니다.nbspnbsp우리가 다 부족하니까 이렇게 모여서 살지만, 그래도 그 부족한 에너지를 모아서 좋은 일에 쓰고 있잖아요. 정말 일이 많은 것이 아닌데도 늘 밤늦게까지 일하는 습관 때문에 아침에 일찍 일어나는 것이 힘들고, 이렇게 자기 습관 때문에 건강이 나쁜 것은 수행이 아니잖아요? 세상에서는 일을 열심히 한다고 평가받을지 몰라도 그것은 수행이 아니에요. 일에 집착하거나 자기 습관을 못 버리는 것이지요. 다리가 하나 없는데도 최선을 다한다, 눈이 하나 안 보이는데도 최선을 다한다, 체질적으로 건강이 나쁜데도 그 사람의 역량 안에서는 최선을 다한다, 이런 경우라면 비록 아프면서 일해도 괜찮아요. 그런데 치료를 안 하고 늘 병을 안고 골골 대고, 먹지 말라고 하는데 계속 과식해서 위 아프다고 하고, 이렇게 하는 것은 건강이 문제가 아니라 자기 까르마를 못 벗어나고 있는 것입니다.nbspnbsp몸에 집착해서 몸을 사라지 말라, 수행하기 위해서는 몸이 소중하니까 몸을 함부로 하지 말라, 이렇게 계율에 되어 있잖아요. 하지만 세상 속에서도 늘 자기 습관을 못 벗어나서 건강을 해치는 것처럼 수행 집단에 들어와 있으면서도 늘 자기 까르마를 고집하고 움켜쥐고 있어서 건강을 해치든지 성질을 내든지 합니다. 같이 살면서도 ‘저 사람은 성질이 저러니 좀 봐주자’ 이렇게 그 사람을 이해하는 것은 좋은데 본인은 그런 수준이 되면 안 된다는 것입니다. 자기가 자기를 극복해 나가야죠.nbspnbsp죽는 순간이 와도 얼음이 녹듯이 아무런 집착 없이 죽음을 받아들일 수 있는 사람이 되는 것과 몸을 함부로 해서 맨날 골골 대는 것과는 성격이 다릅니다. 업무를 좀 절도 있게 처리하고, 휴식이 필요하면 휴식을 하고, 주말이 되면 조금 산책도 하고요. 내년부터는 계획을 잡아서 노동을 많이 하려고 해요. 우리가 먹는 것은 우리가 생산하려고요. 바쁜 가운데서도 건강을 유지하고 항상 웃고 정신을 늘 맑게 가져야 합니다. 그런데 다들 지쳐서 얼굴에 웃음이 없고, 건드리면 터지기 직전이고, 화장도 안 한데다가 회색 옷까지 입고 있으니까 우중충한 모습입니다. 세상 사람들은 속이 시커매도 겉으로는 화사한 옷 입고 얼굴에 분이라도 발라서 그래도 보기에는 괜찮아 보이는데 여러분들은 안팎으로 다 어두워요. nbspnbspnbsp그래서 좀 마음을 일신해 보세요. 조금 우울해져도 다시 마음을 내어 웃고, 자꾸 자신을 가볍게 해야 합니다. 만약 스님이 밖에 가서는 온갖 고민들을 다 들어주면서 정작 본인이 괴롭고 죽겠다고 하면 남들이 웃잖아요. 그런 것처럼 정토회 안에 있는 사람들은 다 골골대고 있는데, 밖에 가서는 너희들 그렇게 살지 말라고 얘기하면 서로 안 맞잖아요. 그래서 조금 기운을 내고 자신의 상태를 환기해 가면서 생활을 했으면 좋겠습니다. 수행자는 기본적으로 자기 마음을 가볍게 갖는 것이 필요합니다.nbspnbsp그리고 다른 하나는 여러분들이 원이 없어서 그렇습니다. ‘깨달음을 얻겠다’, ‘통일을 이루겠다’ 이런 원이 있으면 좀 힘들어도 뚫고 나가는 힘이 있는데, 그런 원이 없고 억지로 하니까 자꾸 심리적으로 위축이 되고 몸이 아프게 되거든요. 그래서 아침에 절을 할 때도 억지로 하지 마세요. 예불 시간이 기쁨으로 부처님께 공양 올리는 시간이 안 되고 눈을 감고 졸아가면서 억지로 도살장에 끌려가는 소처럼 하고 있거든요. 기도를 하고 예불을 하면서 괴로운 마음이 즐거워져야 하는데 즐거운 마음이 종만 치면 괴로워져서는 안 됩니다. 조금 마음을 전환해서 밝게 생활했으면 좋겠다 싶습니다.”nbsp이렇게 스님이 기운을 북돋워주자 서울공동체 대중들은 모두 더욱더 밝아진 얼굴이 되었습니다.nbspnbsp발우공양 후 스님은 곧바로 평화재단으로 이동해 기획팀들과 ‘좋은 세상 만들기’ 운동을 위한 논의를 장시간 하였습니다.nbspnbsp오후에는 기독교계에서 통일코리아협동조합을 설립하여 열심히 통일운동을 하고 있는 배기찬 이사장이 찾아와 통일 운동에 대해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남북 분단을 두고 회개는 누가 해야 합니까. 북한은 당연히 회개할 리가 없습니다. 그렇다면 남한에 있는 우리가 해야 합니다. 분단 70년이 되었는데도 그리스도인조차도 회개하는 모습을 볼 수가 없습니다. 영적인 차원에서 이 부분이 해결되지 않으면 남북문제는 결코 풀리지 않을 것입니다.” 배기찬 이사장의 평소 주장입니다. 그리고 8월에 있을 중국 역사기행 준비팀과 함께 일정, 숙소, 강의, 차량 배치 등에 대해서 마무리 점검을 하였습니다.nbspnbsp오후 3시에는 서울에서 대전으로 이동했습니다. 저녁 7시 30분부터 청년정토회 주관으로 희망세상만들기 즉문즉설 강연이 열렸습니다. 원래는 충남대학교에서 강연이 열릴 예정이었으나 메르스 때문에 학교 측에서 행사 주관을 많이 부담스러워해 대전 정토법당에서 강연이 열리게 되었습니다.nbspnbsp대전 정토법당을 가득 메운 250여명의 청년들은 소개 영상과 함께 스님이 모습을 보이자 뜨거운 함성과 박수로 환영해 주었습니다.nbspnbsp▲ 대전 정토법당nbsp스님은 먼저 얼마 전 메르스 환자가 제주도 여행을 한 것으로 일어난 사회적 파장을 이야기하면서 “알고 짓는 죄가 큽니까? 모르고 짓는 죄가 큽니까?” 질문을 던지면서 강연을 시작했습니다. 청중들이 잘 모르겠다는 표정을 짓자 스님은 이렇게 설명해 주었습니다.nbspnbsp“얼마 전 제주도에 메르스 환자가 여기저기를 돌아다녀서 많은 사람을 두렵게 했는데 그 사람 얘기를 들어보면 자기는 알고 그랬어요? 모르고 그랬어요?”nbspnbsp“모르고 그랬어요.” nbsp“세상에서는 모르고 한 행동은 죄가 안 되는데, 사실은 모르고 한 행동이 죄가 더 큽니다. 이것은 옛날부터 중요한 질문이었어요. 밀린다 왕이 나가세나 스님에게 ‘알고 짓는 죄가 큽니까? 모르고 짓는 죄가 큽니까?’ 하고 물으니 ‘모르고 지은 죄가 더 큽니다’ 라고 대답했어요. 왕이 ‘이해가 안 된다. 왜 그런가?’하니 스님이 왕에게 다시 물었습니다. ‘알고 잡는 불덩이에 손을 더 많이 뎁니까? 모르고 잡는 불덩이에 손을 더 많이 뎁니까?’ 모르고 잡는 불덩이에 손을 더 많이 데겠죠.nbspnbspnbsp양심으로 따지면 알고 저지르는 죄가 나쁘고, 모르고 지은 죄는 어쩔 수 없다고 하지만, 상대편한테 주는 피해는 모르고 저지를 때 더 큽니다. 본인이 알면 조심을 하게 되고, 죄를 지으면서도 눈치보면서 하게 되는데, 모르면 눈치도 안 봅니다. 그래서 제주도에 여행을 다니면서 이곳저곳을 돌아다녔다고 합니다. 식당, 호텔 등 다녀간 곳은 전부 문을 닫았습니다. 알았으면 그만큼 그랬을까요? 이처럼 우리가 겪는 모든 고통의 원인도 사실은 무지입니다.nbspnbsp우리의 고통은 무지, 즉 알지 못하기 때문에 생기는 것입니다. 그러면 이 고통에서 벗어나려면 어떻게 해야 되느냐? 누구한테 용서를 빌거나 누가 대신 죄를 사해주는 것이 아니라 무지를 깨쳐야 됩니다. 즉 감은 눈을 떠야 됩니다. 죄라고 하는 것은 본래 없습니다. 죄가 있다면 그것은 무지입니다. 알지 못함에 있습니다. 죄에서 벗어나는 것이 깨달음입니다. 무지로부터 벗어나면 모든 죄업은 사라지게 됩니다. 그래서 경전에 이런 구절이 있습니다.nbspnbsp죄무자성종심기 심약멸시죄역망.nbsp죄라고 하는 것은 이것이 죄라고 하는 정해진 씨앗이 없다. 다만 어리석은 마음 따라 일어나는 것이다. 만약에 이 마음의 어리석음이 사라지면 죄업 또한 사라지게 된다.nbspnbsp죄망심멸양구공 시즉명위진참회이 어리석음도 사라지고, 이 죄업도 사라지고, 둘 다 텅 빈 그 자리가 진정한 참회다.nbspnbsp‘제가 잘못했습니다’ 이것보다 더 진실한 참회는 무지로부터 벗어나는 것입니다. 그래서 오늘 여러분과의 대화도 여러분들이 어떤 고통을 겪고 있든 어떤 의문을 갖고 있든 문제의 해결은 누구한테 용서를 빌거나 누가 대신 죄를 사해주거나 하는 데에 있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어리석음을 깨우치는 데에 있습니다.”nbsp그러면서 청중들로부터 질문을 받았습니다. 여기저기서 손을 번쩍 들었지만 총 11명이 스님께 질문할 수 있는 기회를 가졌습니다.nbspnbspnbsp욕심이 많아서 성취하지 못하면 스트레스를 많이 받는데 욕심도 줄이고 성취도 할 수 있는 방법을 묻는 청년, 5년을 사귀어서 결혼한 남편과 성격이 달라서 계속 힘든데 어떻게 편해질 수 있는지 묻는 여성, 전공을 살려서 디자인을 공부할지 지금 돈을 벌고 있는 영어 교사를 하면서 여행을 다닐지 결정을 할 수 없어 고민인 재미 교포, 스트레스를 먹는 것으로 푸는데 식탐을 줄일 수가 없어 고민인 여학생, 종합건강검진 결과 아버지가 폐암 판정을 받았는데 아버지가 덜 놀라시고 잘 치료받도록 어떻게 말씀을 드려야 하는지 묻는 청년, 우울증이 있는 어머니 때문에 늘 걱정인데 어머니와 인연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 묻는 분, 6개월 전에 갑작스럽게 원인을 알 수 없는 병이 찾아와서 음식을 소화할 수 없고 현재에 집중할 수 없어 고민인 남학생, 정신분석학자가 자꾸 자신을 미행하며 괴롭힌다고 하면서 우울증을 어떻게 치료해야할지 묻는 분, 성격이 급하고 지레짐작을 해서 잘못된 결정을 자주 하는데 현명한 결정을 내리는 방법을 묻는 여성 등 다양한 질문에 대해 스님께서는 명쾌한 답변을 주었습니다.nbspnbspnbsp그 중에서 ‘자살하겠어’, ‘짜증나’ 등 부정적인 말을 하는 습관을 바꾸고 싶다는 한 여학생의 질문과 스님의 답변을 소개합니다. 문답을 하는 과정에서 표정이 점점 밝아지다가 마침내 유쾌하게 웃는 여학생의 모습에 청중들 모두 큰 박수를 보내주었습니다.nbspnbsp“저의 고민은 자꾸 ‘자살하겠다’는 말을 쓰는 겁니다. 저희 학교는 중간고사가 두 번, 기말고사가 두 번, 또 과목별로도 시험이 정말 많아요. 시험 스트레스 때문에 한 친구가 ‘교실에서 뛰어내리겠다’ 그랬는데 교수님께서 농담으로 ‘7층에서 뛰어내려야 즉사를 할 수 있다’고 말씀하셨어요. 그 뒤로 시험만 못 보면 장난으로 ‘우리 손잡고 7층 갈까?’ 그런 식이 되었는데 장난이 반복되니까 이제는 습관적으로 ‘자살해야겠다’ 계속 말하고, ‘아, 짜증나’ 그런 말을 계속 하게 됩니다. 그런데 이건 부정적인 말이잖아요. 그래서 이런 습관은 별로 안 좋은 것 같아서 긍정적인 얘기를 해보려고 짜증노트를 쓰기 시작했어요. 그런데도 계속 부정적인 말을 계속 하게 되는 거예요. 어떻게 하면 부정적인 말을 덜 할 수 있을까요?”nbspnbspnbsp“죽으면 부정적인 말을 안 하게 되지요. 제일 완벽한 방법은 죽어버리면 겁니다. 다시는 부정적인 얘기를 안 하게 되지요. 그런데 사실은 부정적인 말을 하는 것도 다 살았으니까 할 수 있는 것이죠. 그러니 부정적인 말을 하는 것도 긍정적으로 봐야 됩니다.nbspnbspnbsp부정적인 말을 할 수 있는 것도 살아있으니까 가능한 거잖아요. 아픈 것도 살아있으니까 아프지요. 죽으면 아파요? 그러니까 제일 긍정적인 것은 여러분들이 살아있다는 것을 자각하는 것입니다. 살아있으니까 아프기도 하고 살아있으니까 헤어지기도 하고 살아있으니까 부모님 모시기도 하지요. 죽으면 아무것도 못해요. 가장 긍정적인 것은 내가 살아있다는 것을 자기가 자각하는 거예요. 그러니까 자기는 아침에 일어나서 딱 눈뜨자마자 세 번 이렇게 외쳐 봐요. ‘아이고 살았네, 오늘도 살았네, 아이고 살았네, 감사합니다.’ 그렇게 하면 조금 바뀔 거예요. 한번 따라 해 봐요.”nbspnbsp“살았네, 오늘도 살았네. 살았네” nbspnbspnbsp“말해보니까 기분이 좋아요? 기분이 나빠요?” nbspnbsp“좋아요.”nbsp“이렇게 긍정적인 마음을 가지면 내 기분도 좋아지지만 기분이 좋으면 몸의 호르몬과 여러 가지 기분 좋게 하는 물질이 분비가 돼요. 그래서 아침에 눈 뜨자마자 ‘아이고 살았네, 오늘도 살았네, 아이고 살았네, 부처님 감사합니다, 하나님 감사합니다’ 이렇게 하세요. 부처님 믿으면 부처님 감사합니다고 하고, 하나님을 믿으면 하나님 감사합니다고 하면 됩니다. 조상님을 믿으면 조상님 감사합니다고 하면 됩니다.nbspnbsp만약에 버스를 타고 가다가 버스가 전복이 되어서 다 죽고 자기 혼자 살았으면 팔이 하나 부러져도 부러진 팔을 잡고도 기분이 좋을까요, 안 좋을까요? ‘나만 살았네’ 이럴 것 아니에요, 다 죽고 자기만 살아있는 기적이 매일 매일 일어나는 게 우리 인생이에요. 아침에 눈을 뜨면 매일 매일 새롭게 태어나는 거예요. 매일 매일 살아있는 것이 이렇게 소중함에도 불구하고 여러분들은 그 소중함을 모르기 때문에 이렇게 괴롭게 사는 거예요. 내가 살았다는 것만 해도 기뻐할 수 있으면 이런 건 다 괴로움 축에 들어가는 것도 아니에요. 자기가 살아있기 때문에 늙은 부모님도 모시고, 살아있으니까 두 남자도 좋아하고 그러는 것이죠. 살아있으니까 몸이 뚱뚱하니 안 뚱뚱하니 그러죠. 죽으면 그런 것도 다 없어요. 그러면 죽으면 편안하냐. 그게 아니에요. 살았다는 것에 대한 가장 긍정적인 사고를 해야 된다는 얘기에요.nbsp내가 몸이 아프지만, 밥을 잘 못 먹지만, 그래도 살아 있잖아요. 그래서 ‘내가 지은 인연의 과보로 보면 죽어야 되지만 살아 있다는 것은 정말 큰 복이다’ 이렇게 감사해야 합니다. ‘감사합니다. 지은 인연의 과보는 기꺼이 받겠습니다. 죽을 과보를 받아야 되는데 죽지 않은 것은 큰 복입니다. 아이고, 감사합니다.’ 이런 마음을 내라는 겁니다. 그러면 몸 안의 전체 신경에서 긴장이 다 풀려요. 친구들이 죽든지 말든지 신경 쓰지 말고요. 같이 손잡고 죽는다고 같이 가는 거 아니에요. 그건 기분이에요. 아침에 눈 뜨자마자 ‘살았네’ 세 번 외치고 생활하면 돼요.” nbspnbsp“감사합니다.”nbspnbspnbsp질문자가 환한 표정으로 웃음을 머금었습니다. 그런데 고민이 한 가지 더 있다며 또 다른 질문을 했습니다. 이번엔 식탐에 대한 고민이었습니다.nbspnbsp“요즘 식욕이 늘어서 살이 좀 찐 건 괜찮은데 계속 배가 고파요. 예전에 먹어도 먹어도 배가 고프다고 했더니 어느 스님께서 아무 문제가 없다고 하셔서 계속 먹었거든요. 그런데 지금은 두 달 전부터 갑자기 또 식욕이 증가했어요. 그런데 먹어도 먹어도 배가 고픈 그 양이 보통 사람들이랑 달라요. 피자 한 판을 먹고 다른 것을 또 먹어도 배가 고픕니다.”nbspnbsp“배가 고파도 안 먹으면 되지요. 단식을 해서 음식을 아예 안 먹었을 때 배가 고픈 것이 더 배가 고플까요? 한 끼, 두 끼라도 먹었을 때 배고 고픈 게 더 고플까요?nbsp“아예, 안 먹는 것이 더 배고프죠”nbsp“그래요. 스님처럼 아무것도 안 먹고도 배고픈 것을 견딜 수 있는데 하루에 조금이라도 먹고도 그것을 왜 못 견뎌요?”nbsp“그런데 저는 약간 음식이 들어갔을 때부터 배가 고파지기 시작해요.”nbspnbsp“자기가 고프든지 말든지 그것은 육체의 증상이고, 나는 정해진 양만 딱 먹고 끊어버리면 됩니다. 나는 딱 정해놓은 그것만 먹고, 배가 고파도 더 이상 안 먹고, 먹고 싶어도 더 이상 안 먹고, 먹기 싫어도 그것만 먹고, 딱 정해놓는 겁니다. 밥 한 그릇을 정했다면 밥 한 그릇은 먹기 싫어도 꼭 먹고, 먹고 싶어도 더 이상 안 먹고, 이렇게 딱 정해놓고 하면 처음엔 미칠 거 같아도 그것만 딱 하고나면 100일만 지나가면 저절로 컨트롤 돼요. 딱 정해진 것만 먹고, 아무리 먹고 싶어도 그것만 딱 먹고 끝을 내세요. 담배 피우고 싶은 사람이 담배 끊으려면 어떻게 해야 되요? 피우고 싶다고 피워야 돼요, 피우고 싶어도 안 피워야 돼요?”nbspnbsp“안 피워야 돼요.”nbsp“그렇게 피우고 싶은데 어떻게 안 피워요?”nbsp“사탕을 대신 먹어요.” nbspnbsp“그렇게 하면 안 돼요. 담배 피우고 싶다고 사탕을 먹으면 그것은 담배 끊는데 도움이 안 돼요. 아무리 피우고 싶어도 안 피워야 돼요. 그런 것처럼 아무리 먹고 싶어도 딱 정해진 것 이상은 안 먹으면 저절로 개선이 돼요.”nbspnbsp“감사합니다.”nbsp아무리 먹고 싶어도 정해진 것 이상은 안 먹으면 된다는 명료한 답변에 질문자는 더 이상 할 말을 잃고 또다시 웃었습니다.nbspnbsp이렇게 모든 질문에 대해 답변을 마치고 나니 2시간 30분이 훌쩍 지나 있었습니다. 스님이 nbsp“벌써 2시간 반이나 됐네요. 재미있었어요?” 라고 묻자 모두들 “예”하고 크게 대답했습니다. 그러면서 스님은 이치를 깨우쳐서 자기가 자기 인생의 주인이 되어야 한다며 마무리 말씀을 해주었습니다.nbspnbsp“내가 몸이 뚱뚱해서 안 먹으려고 하는데 자꾸 먹어진다, 자꾸 이렇게 생각하면 끝이 안 나요. 먹고 싶으면 뚱뚱한 것을 받아들이는 것이고, 체중이 늘어나는 것이 나한테 안 좋다면 ‘아무리 먹고 싶더라고 마약은 안 먹듯이 이것도 안 먹어야지’ 이런 자세가 필요합니다. 자꾸 얼버무리지 말라는 거예요. ‘복은 안 지어놓고 부처님 복 좀 주세요’ 하는데 복을 안 지었는데 복이 어디서 나와요? ‘죄는 지어놓고 부처님 죄 좀 안 받게 해 주세요’ 하는데 죄를 지었으면 기꺼이 받아야지요. 복을 안 지었으면 복 받을 생각을 말아야지요. 이렇게 이치에 맞아야 된다는 겁니다.nbspnbspnbsp이런 자세를 가지면 삶이 자유로워져요. 부처님 하느님한테 매달릴 일이 없어져 버려요. 부처님은 우리에게 내가 주인이 되어서 살아가는 이치를 가르쳤지 남에게 매달리라고 가르친 게 아니에요. 종이 되라고 가르친 게 아니에요. 네가 부처가 되라고 가르쳤지요. 그러니까 스님의 종이 되려고 하면 안돼요. 스님의 얘기를 듣고 자기가 이치를 깨쳐서 자기가 주인이 되어서 살아야 돼요.nbsp어떤 경험을 가졌든 모든 사람은 다 행복할 권리가 있어요. 그 말은 모두 다 행복할 수가 있다는 뜻입니다. 그러니 행복하게 살아야 돼요. 행복하게 살 건지 안 살 건지는 자기 선택이에요. 괴롭게 살고 싶어서 괴롭게 사는 것은 자기가 선택한 것이니까 우리가 간섭할 필요가 없어요. 그래서 계속 먹고 뚱뚱해지는 것도 자기 선택이기 때문에 괜찮아요. 그러나 내가 뚱뚱한 것이 싫다면 먹고 싶어도 멈춰야 되요. 달리 방법이 없어요. 누구도 대신해 줄 수 없어요. 죽을 것 같아도 ‘음식을 먹느니 차라리 죽는 게 낫다’ 이렇게 각오를 해야 돼요. 어떤 사람은 멀쩡한데도 옥상에서 떨어져 죽는 사람이 있잖아요. 그것보다는 그래도 자신이 정한 원칙을 지켜보려고 하다가 죽는 게 더 낫잖아요. 이렇게 생각해서 하기로 했으면 ‘죽으면 죽지’ 이런 단호한 자세가 있어야 개선이 되지 안 그러면 늘 마약처럼 끌려서 살아요.nbspnbsp그러니 자기가 주인이 되어야 합니다. 부모의 노예가 되어서도 안 되고, 자식의 노예가 되어서도 안 되고, 스님의 노예가 되어서도 안 되고, 하나님의 노예가 되어서도 안 돼요. 자기가 주인이에요. 자기 행복을 스스로 찾아가야 돼요. 그런데 자기에게만 이익이 되는 길을 가면 나중에 후회가 되기 때문에 자기 행복이 훼손돼요. 그렇게 여러분 행복하게 사시기 바랍니다. 감사합니다.”nbspnbsp긴 시간 소중한 가르침을 준 스님을 향해 250여명의 청년들은 뜨거운 박수갈채를 보내 주었습니다.nbspnbspnbsp이어서 책 사인회가 열렸고, 자신의 차례를 기다리며 길게 줄을 선 청년들을 위해 스님은 정성껏 사인을 해주었습니다.nbspnbspnbsp그리고 오늘 행사를 위해 수고한 자원봉사자들과도 함께 기념 사진을 찍었습니다.nbspnbspnbsp방금 전 사인회 중에 어떤 분이 예쁜 상자에 초코렛을 가득 담아서 스님에게 선물을 했는데, 기념 사진을 찍고 나서 스님은 선물 받은 초코렛을 자원봉사자들에게 모두 나눠주었습니다. 봉사자들은 스님으로부터 직접 초코렛을 받고 기뻐서 어쩔 줄 몰라 했습니다.nbspnbspnbsp대전 정토법당을 나온 스님은 곧바로 두북으로 향했습니다. 새벽 1시가 넘어서 두북에 도착한 후 오늘 일정을 모두 마쳤습니다.nbspnbsp내일은 원래 평화재단 평화교육원에서 주관하는 평화리더십, 여성리더십, 청년리더십 아카데미 수료생들의 힐링 동문회가 예정되어 있었으나 메르스로 인해 모두 취소가 되었습니다. 그래서 스님은 두북에 머물면서 농사일을 할 계획입니다. 내일 또 소식 전해드리겠습니다.nbsp

2015.06.20. 58,078 읽음 댓글 45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