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님의하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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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5.7.해외정토회 사무국 활동가 거제도 나들이

nbsp nbsp 오늘 아침 스님과 해외 정토회 사무국 활동가들은 다함께 새벽예불, 기도를 함께 한 후 학동몽돌해수욕장으로 산책을 나섰습니다. 해외정토회 사무국 활동가들은 지난해 세계 100강을 준비하면서 수고가 너무나 많았습니다. 스님께서는 아름다운 거제도를 이분들에게 보여주기 위해 특별히 일정을 조정해서 안내하셨습니다. nbsp nbsp 거제도는 몇 개의 몽돌해변이 있는데, 아침에는 숙소에서 가까운 학동몽돌해수욕장까지 산책을 했습니다. 몽돌해변은 모래가 아니라 돌들로 이루어져 있는데, 이 돌들이 파도에 깎여서 동글해져 있다는 것입니다. 학동몽돌해변까지 가는 산책로를 따라 가면서 멀리 주변경관에 대한 설명도 들었습니다. 저 멀리 거제 8경 중의 하나인 바람의 언덕도 보였습니다. nbsp nbsp 스님께서는 학동몽돌해변의 몽돌이 생각보다 예쁘지 않다면서 나중에 다른 지역 몽돌해변도 가보자고 하셨습니다. nbsp 학동 몽돌해변을 거닐며 스님께서는 수재비뜨기를 하면서 어릴 때 했던 것은 잘 잊어버리지 않는다며 과연 몇 번이나 뜨는지 세어보며 하셨습니다. nbsp 숙소로 돌아와서 아침을 먹고 난 후 거제도 해금강과 외도로 가기 위해 선착장으로 향했습니다. nbsp nbsp 배를 타고 해금강의 절경을 둘러보며 감탄사를 연발하기도 하였습니다. nbsp nbsp 배는 다시 외도로 향했습니다. 외도는 개인 소유의 작은 섬을 꽃과 나무로 이루어진 공원으로 만들어서 지금은 유명한 관광지로 되었습니다. nbsp nbsp 이국땅에 온 느낌의 외도는 평소 잘 보지 못하는 꽃과 나무들로 장식되어 있었고, 산책길을 따라 섬을 둘러보게 되어 있었습니다. 외도에서 바라보이는 바다의 모습도 이국적이고 아름다웠으며 한려해상 수도의 아름다움을 만끽할 수 있었습니다. nbsp nbsp nbsp 외도를 나와 다시 거제도 바람의 언덕이 있는 선착장으로 돌아와서 해금강 선착장으로 가보았습니다. 원래는 해금강 선착장이 더 관광지로 유명한 곳이었는데, 오늘 가보니 그곳은 사람들이 거의 없고 가게들도 장사를 하지 않는 곳이 더 많았습니다. 해금강이 바로 가까이에 바라다 보이는 곳에 위치한 곳의 주변 바닷가를 산책하기도 했습니다. nbsp nbsp 해금강 선착장을 나와서 다시 해변도로를 따라 이동했습니다. 해변도로를 따라 가는 길은 아름다웠습니다. 가다가 여차몽돌해수욕장을 들렀습니다. 스님께서는 아침에 본 학동몽돌보다는 이곳 여차몽돌이 더 좋다고 하시면서 해변을 잠시 거닐었습니다. 여차몽돌해수욕장의 해변은 크고 작은 몽돌들이 조화를 이루며 큰 몽돌들이 점점 작아져 바닷가에는 아주 작은 몽돌들이 있었습니다. nbsp nbsp 이곳에서 스님께서는 가만히 명상을 해볼 것을 제안하셨습니다. 다들 명상을 하고 난 후 스님께서는 어떤 소리가 들렸냐고 물었고 한분은 차르르 하는 돌 구르는 소리라고 했고 다시 한번 그 소리를 잘 들어보라고 해주셨습니다. 이곳은 모래가 아니라 아주 작은 돌로 이루어져 있다보니 파도가 밀려왔다가 밀려갈 때 작은 돌들이 파도에 함께 굴러 내려가면서 몽돌끼리 부딪히는 소리가 차르르 들려왔습니다. nbsp nbsp 스님께서는 여기서도 수재비뜨기를 하면서 돌이 몇 번이나 튕기는지 헤아려 보기도 했고, 또 다른 한분은 바닷물이 너무 깨끗하고 좋다고 바닷물에 들어가기도 했습니다. 아직 물이 차가운데도 너무 좋다면서 잠시 수영을 하다가 나와 옷이 마를때까지 해변에 있다가 다시 이동했습니다. 햇볕이 좋아 옷은 금방 말랐습니다. nbsp nbsp 주변 경관을 보면서 숙소로 돌아오는 길에 간단히 점심을 먹었습니다. 늦은 점심을 먹은 후 숙소에 잠시 들렀다가 거제에서도 유명한 구조라 해수욕장을 보지 못한 분들이 많아서 다시 구조라 해수욕장으로 이동했습니다. 구조라 해수욕장으로 가는 길에 망치 몽돌 해수욕장에 들러서 지금까지 본 몽돌해수욕장중 어디가 나은지 이야기 나누기도 했습니다. 대부분은 여차몽돌해수욕장이 가장 몽돌스럽고 좋다고 했습니다. 이곳 망치 몽돌해수욕장은 아주 큰 몽돌들이 자리를 잡고 있다보니 파도가 와도 몽돌 구르는 소리는 들리지 않았습니다. nbsp nbsp 다시 구조라 해수욕장으로 이동했는데, 이곳은 모래사장으로 되어 있었는데, 해파리들이 모래사장까지 나와서 군데군데 보이기도 했습니다. 또 해초류까지 밀려와서 약간은 지저분해 보이기도 했습니다. nbsp 모래사장을 한바퀴 돌아서 옛날의 거제에서 가장 큰 도시였던 장승포와 대우조선이 있는 옥포를 들러 거제를 한바퀴 돌아서 다시 숙소로 왔습니다. nbsp nbsp 숙소에 도착해서 잠시 휴식을 한 후 저녁 공양을 맛잇게 먹었습니다. 스님께서는 낮에 빵을 먹었는데, 체기가 있다고 하시면서 함께 저녁 식당에 있다가 일찍 방으로 가셔서 휴식을 취하셨습니다.

2015.05.08. 18,480 읽음 댓글 12개

2015.5.6. 농사일, 해외정토회 사무국 활동가들과 함께

nbsp nbsp 새벽 4시 40분, 스님께서는 서울을 출발해서 두북으로 향했습니다. nbsp 먼저 두북수련원에 들러서 수련준비중인 보수법사님, 화광법사님의 인사를 받은 후 수련장을 둘러보면서 강당겸 숙소로 쓸 수 있는 건물이 더 필요한데, 수련원내에 더 지을 수 있는지, 어디가 적당한지 등을 둘러보았습니다. nbsp 지금 있는 수련원의 강당은 100여명이 들어가면 꽉 차버려서 약 200여명이 수련할때는 장소가 마땅치 않아서 식당옆에 지을 수 있는지를 함께 점검해 보셨습니다. nbsp nbsp 또, 지난주에 가져다 단지에 담아 놓은 꽃들을 보시면서 시들은 꽃은 빼고 아직 싱싱하게 남은 꽃들을 좀 더 여러곳으로 나누어서 마당이곳저곳에 놓아두었습니다. nbsp 또, 지난주에 씨앗을 뿌리려다 다리를 다쳐 하지 못했던, 상추, 쑥갓, 고소등의 씨를 작은 텃밭에 뿌렸습니다. 그리고 유기질 거름을 주고 물도 듬뿍 주었습니다. 아마도 다음주에 오면 싹이 제법 자라나 있지 않을까 합니다. nbsp 그리고 앞마당의 꽃이나 텃밭에 심어논 작물들에도 물을 주었습니다. nbsp 화단정리와 농사일을 마무리 하시고는 지난번 해외정토회 지도자 수련때 오셨다가 아직 돌아가시지 않은 해외정토회 사무국 활동가들과 함께 시간을 보내기 위해서 거제로 향했습니다. nbsp 스님께서는 해외에서 고생하시고 수고하신다며 좀 더 시간을 내어 격려해 주시기 위해 일부러 시간을 내었습니다. nbsp 저녁 9시가 되어서 거제에 도착해서 저녁을 먹으면서 그동안 교육을 잘 받았는지, 한국에 있는 동안 어떠했는지등 이야기들을 나누었습니다. 해외정토회 김순영 사무국장님등 사무국 활동가들과 ‘해외 전법을 위해 어떻게 할 것인지’를 논의하면서 9월에 있을 명상수련과 미주행자대회 진행에 대한 이야기들을 나누었습니다. nbsp

2015.05.07. 18,755 읽음 댓글 18개

2015.5.5 기획위, 통일의병 모임, 서울시장공관 방문

nbsp nbsp 스님께서 오늘 아침에도 서울공동체에서 어김없이 새벽예불, 천일결사 기도와 발우공양을 하시고 대중공사때 대중생활과 업무에 대해 먼저 몇가지 짚어주셨습니다. nbsp 오늘 숭늉 보리차의 색깔이 강해서 발우를 씻으면 물이 맑지 못하고 뿌엿다고 하시면서 발우를 씻고 난 퇴수물의 색깔이 맑을 수 있도록 보리차는 묽게 끓여야 하며, 혹시 보리차가 강하면 발우를 씻을 때 청수를 한 숟가락 떠서 마지막에 발우를 헹구도록 말씀해주셨습니다. nbsp nbsp 또, 업무적으로는 청년정토회에 청춘캠프 장소와 강사섭외 현황을 점검하셨고, 평화재단에서 저녁예불을 할 장소와 시간을 정했는지 확인하시면서 저녁 6시에 예불에 모두가 참석할 수 있도록 6시전후에는 모든 일정을 비우도록 하셨습니다. 스님의 약속도 6시라고 해도 비서실에서는 6시 15분으로 알아듣고 일정을 잡아 달라고 하시면서 스님께서도 불가피한 일이 아니면 평화재단에서 6시 저녁예불을 같이 하시겠다고 하셨습니다. nbsp 어제 통일의병 통일시민학교 강의때 촬영 준비가 안된 이유에 대해서도 부서간에 어디서 착오가 생겼는지 확인하시고, 영상편집시 주의해야 할 점을 일러주셨습니다. nbsp nbsp 서두에 이와 같이 간단히 점검하신 후, 대중들에게 수행자로 일을 해 나감에 있어서 도반들과 어떤 마음으로 함께 할 것인지에 대해 말씀해주셨습니다. nbsp “우리가 수행생활 할 때 최소한의 해야 할 것과 여기서 더 나아가 해야 할 것들이 있습니다. 어떤 일이 있어도 이것 이하는 하면 안된다는 것이 있는데, 최소한 이것만 지킨다고 해서 모두 수행자라고 할 수는 없습니다. 최소한의 것도 하지 않으면 수행자가 아니지만, 수행자라면 최소한의 지켜야 할 것 이상을 실천해야 합니다. 수행자는 계율만 지킨다고 해서 해탈하는 건 아니지만, 최소한의 지켜야 할 것이 계율이기 때문에 꼭 지켜야 하는 것입니다. nbsp 한편, 수행자가 더 나아가 해야할 것들을 행동하면 훌륭하지만, 그것을 하지 않는다고 비난 받을 일은 아닙니다. 수행자는 적어도 남에게 도움은 못 줘도 피해는 안 줘야 하며, 남을 즐겁게 해주지는 못해도 괴롭히지는 말아야 하며, 남에게 이익은 못 줄지언정 손해 끼치지 않도록 해야 합니다. nbsp 수행자가 되려면 남한테 덕 보려는 마음은 버려야 합니다. 덕 보려는 마음은 중생의 마음입니다. 우리에게 그런 욕구가 있는 것은 현실이지만 그것을 극복해야 합니다. 적어도 다른 사람에게 손해나고 해치는 행동은 하지 말아야 합니다. 이것이 계율이며, 우리가 지켜야 할 덕목입니다.” 라며 수행자는 최소한의 계율을 지켜나가야 한다고 말씀해주셨습니다. nbsp nbsp “개인의 덕목에 대해 철저하게 자각하는 것이 소승불교입니다. 그래서 소승불교는 최소한의 인격이 있습니다. 대승불교는 통일을 하겠다든지, 정토를 건설하겠다든지와 같은 원을 향해서 나아가는 것을 말합니다. 소승은 자신들이 쳐놓은 울타리 밖으로 안 나가는 것에 초점을 둔다면, 대승은 세상을 구제하겠다는 것을 목표로 두고 있습니다. 소승을 기반으로 한 대승이 되어야 합니다. 자기를 구제한 전제 위에서 남을 돕는 것입니다. 즉, 반드시 남에게 피해를 주지 않는 최소한의 청정한 인격을 기초로 해서, 남을 보살피는 삶으로 전환하는 것이 수행자입니다. nbsp 그렇게 하기 위해서는 남에게 적어도 손해는 안 줘야 하며, 거기서 더 나아가 남에게 이익을 나눠 주어야 합니다.” nbsp 스님께서는 수행자로서 자기구제 뿐만 아니라 남에게 도움이 되는 삶을 살아야 한다고 말씀하시며, 이러한 자세가 도반과 함께 할 때도 그대로 적용되어야 한다는 말씀을 강조하셨습니다. nbsp “함께 일하는 도반과의 성격차이 등으로 인한 갈등은 충분히 있을 수 있습니다. 사랑하는 부부 사이도 갈등이 일어나는데, 하물며 낯선 사람이 만났는데 갈등이 일어나는 건 당연합니다. nbsp 그런데 수행자라면 어떠해야 할까요? 여기 공동체에 있는 우리는 목표를 같이 하는 원을 세운 사람이 모인 것입니다. 나 혼자서는 목표를 도저히 달성하기 어렵지만, 이 사람들이 함께 하기 때문에 목표 달성이 가능한 것입니다. 도반을 볼 때 내 마음에 안 드는 것은 있을 수 있지만, 사실 그들은 내 원을 성취시켜주는 고마운 사람입니다. 모든 것이 제 마음에 들 수는 없습니다. 내 마음에 안 들어서 기분 나쁜 것은 이해하지만, 우리의 원을 성취하고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서는 다양한 사람이 모여야 가능합니다. 이 원이 분명하면 모든 도반들이 고마운 사람이 됩니다. 나하고는 다르지만 한 사람, 한 사람 소중한 사람입니다. 도반 없이 내 원을 성취할 수 없다는 게 분명하면, 이 사람들을 포용하는 것이 가능합니다. 소승은 자기 까르마가 극복되어야 타인에 대한 포용이 가능하지만, 대승은 자기 업식을 그대로 두고도 타인을 포용하는 것이 가능합니다. 왜냐하면 원이 있기 때문입니다. nbsp nbsp 일하는 방식의 차이로 다른 사람과 갈등이 된다면 둘 중에 하나입니다. 내가 계율을 안 지키고 있든지 아니면 원이 간절하지 않든지 입니다. 지금 같은 어려운 조건에서 한반도가 통일이 되려면 티끌이라도 하나 더 보태야 합니다. 누구든지 필요합니다. 그런데 그 목표가 간절하지 않으면 너는 이래서 안되고, 너는 저래서 안된다고 배척하게 됩니다. nbsp 우리는 내 성질에 사로잡혀서 원을 놓치고 있습니다. 그래서 상대가 미운 사람이 되고, 적이 됩니다. 여러분들은 늘 자기 마음의 작용에 깨어있어서 화, 짜증을 냈다가도 알아차리고 다시 평안한 마음으로 돌아와야 합니다. 나도 모르게 짜증냈다고 해도 마음이 본래의 자리로 돌아온다면 갈등이 생기겠어요? 상대에 대해 마음이 꽁 해 있으니 갈등이 생기지요. nbsp 낯선 사람이 모였으니 갈등이 생기는 건 당연하고, 마음이 불편한 것 역시 당연합니다. 그러나 우리는 같은 목표를 가지고 모였기 때문에 그것을 뛰어 넘어야 합니다. 그런데도 갈등이 일어난다는 것은, 원이나 수행을 놓쳤기 때문입니다. nbsp 수행의 기반 위에 세상 일을 하는 것임을 정토행자는 놓치면 안됩니다. 그리고 우리는 일상사에서 항상 원을 가지고 있어야 합니다. 그 원을 성취하기 위해서 출판 일을 하고, 밥을 하고, 교육원 일을 합니다. 우리가 일을 할 때 어떤 사람이라도 도움이 되는 사람은 손잡고 끌어가서 함께 해야 합니다. 이렇게 공동체에 들어와서 전화라도 받아주는 사람이 얼마나 있겠어요. 그리고 우리 사회에서 봉사하는 사람이 많지 않은데, 그 중에 정토 공동체에 들어와서 봉사하는 사람은 더 소수입니다. 그런데 그 귀한 사람을 내 취향에 안 맞다고 버린다면 뭘 모아서 재산을 만들 수 있겠어요? 불편함을 가지고 살지 말고 불편함을 알아차리면서 원을 바라보고 살아야 합니다. 여러 사람을 포용하는 사람이 되면 대인이 되는 것 아니겠어요? 그런 마음으로 수행 생활을 하면 부족한 사람들끼리 모여 살아도 화목합니다. 여기 먹는 것도, 자는 것도 신통찮고 하는 일도 힘들잖아요. 그래도 마음은 편안해야지요. 그래야 남이 볼 때는 지옥 같아도 우리 스스로는 극락에서 산다는 자부심을 가지고 살 수 있습니다.” nbsp 우리가 흔히 고민하고 부딪히는 도반과의 관계에 대한 스님의 말씀을 듣고 공동체 성원들은 다시 한번 도반의 소중함과 감사함을 느낄 수 있는 시간이었습니다. 그동안 원을 잊고 내 불편함만 크게 생각하며 수행자로서의 자세를 놓치고 살아온 건 아닌가 하는 돌아봄이 있었습니다. nbsp 발우공양을 마친 스님께서는 평화재단으로 와서 기획위 회의에 참석하셨습니다. 기획위 회의는 아침 7시 30분부터 13시까지 점심을 먹으면서 5시간 30분이나 계속 되었습니다. 통일코리아를 향한 우리사회의 각 부분에 대한 문제점을 진단하였습니다. 13시에는 최열 환경재단 대표님과의 만남이 있었고, 14시부터는 통일의병 활동가들과 만남이 있었습니다. nbsp 통일의병 백왕순 사무총장님을 비롯하여 몇몇 의병들과 자리를 함께 하면서 통일한국을 만들어가는데 헌신하고자 통일의병을 발의했던 만큼, 통일의병들이 의병정신을 잃지말고 중심을 잘 잡고 일을 해나가야 한다고 당부하셨습니다. “의병은 자발적 참여자이므로 민주적으로 의견을 수렴하여 운영해야 하며, 또한 의병이므로 관병보다 더한 통일의지를 가지고 일사분란한 실천력을 가져야 한다.”고 당부하시며 “목표지향적이되 포용성이 있어야 한다.”고 하셨습니다. nbsp nbsp “통일의병이 평소에는 뭐하는지 모르겠다고 문제제기도 하지만, 대한민국 제일의 국가목표를 통일에 두는 정부, 즉 통일지향적 정부를 만들어가는데 일조한다는 목표를 잃지 않고 있으면 흔들리지 않는다”고 하시면서, “의병은 두 가지입니다. 일반국민들이 일상생활을 하다가 나라가 위기에 처했을 때 갑자기 의병으로 모였기 때문에 오합지졸이어서 단번에 깨질 수도 있고, 의병으로 일어선만큼 다른 누구보다도 자발적이고 헌신적이기때문에 관군보다 더 용맹스러워 싸움에 이길 수도 있습니다. 임진왜란때 승병들이 수행만하다가 의병이 되었어도, 이미 죽음을 초월한 사람들이다보니 어느 누구보다도 용맹스럽게 싸울 수 있었던 것입니다. 그러니 민주적인 운영과 함께 결정되면 일사분란하게 실천 할 수 있어야 하고 민폐를 끼치면 안되고 일정한 규율과 절제를 갖추어야 합니다. 통일의병은 호연지기를 기르면서도 절제가 있는 분위기, 한다면 하는 분위기, 신라의 화랑과 같아야 합니다”고 하시면서 통일의병 개개인이 가져야 할 자세, 통일의병이 가져야 할 분위기 신념등에 대해 말씀해주셨습니다. nbsp 더불어서 “평화 아카데미동문회는 다양한 사람들을 포용해서 가고, 통일의병은 중심을 잡고 전국적으로 확산하는데 주력해주기 바랍니다. 6월달부터 5회 잡혀있는 통일의병 주최의 통일콘서트를 해보면서, 필요하다면 하반기에는 시간을 더 내보겠습니다”라며 격려를 아끼지 않으면서 스님께서도 적극적으로 통일의병활동 지원을 하시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nbsp 통일의병들과의 만남의 마친 뒤 정토회관으로 이동하셔서 원고교정업무등을 보시다가 저녁 7시에는 서울시장공관으로 가서 박원순 시장님 부부, 윤여준 원장님 부부, 이정근 원장님 부부, 김홍신 작가님과 함께 저녁 식사에 참가하셨습니다. nbsp nbsp 오늘 모임은 박원순 시장님이 기존에 사용하시던 공관을 서울 성곽보존 때문에 새로 옮기게 되면서 스님일행을 초대해주셔서 이루어졌습니다. 식사는 스님께서 계신지라 채식으로 조촐하게 잘 준비해 주셨습니다. nbsp 서울시장공관에서 주변의 경관을 둘러본 후, 응접실에서 그동안 서울시에서 추진해왔던 서울성곽보존 사업이나 하남 위례성등 우리 역사적 유물들을 보존하기 위한 활동들, 또 시민들을 위한 여러 가지 생활기반시설에 대한 개·보수 사업, 서울시 경전철등 교통상황에 대한 이야기들이 오갔습니다. 박원순 시장님께서는 시정에 아주 밝으시고, 시민의 생활에 관계되는 보이지 않는 작은 일들에도 정성을 쏟고 있음을 알게 되었습니다. 스님께서는 “상수관, 하수관, 지항수, 유물등 주로 땅속에 있는 일들을 하다보니 시민들이 시장님의 노고를 잘 모르는 것 아닌가요?”라며 웃으시면 격려해주셨습니다. nbsp nbsp 오늘 함께 하신 분들은 서울시의 사업이 시민들의 생활에 관련된 일이라 눈에 보이지는 않지만, 아주 중요한 일인데도 시민들에게 잘 알려지지 않고 있음을 모두 안타까워 하셨습니다. nbsp 또, 김홍신 작가님은 이번에 새로 출간하게 된 ‘단 한번의 사랑’이라는 책에 대한 이야기들도 함께 해주셨습니다. nbsp nbsp 정토회관으로 돌아오신 스님께서는 오늘밤에 경주로 이동하려던 계획을 변경해서 내일 새벽에 경주로 이동하기로 했습니다.

2015.05.06. 18,957 읽음 댓글 14개

2015.5.4. '어린이가 행복한 나라, 아이를 때리지 말라' 원탁 대 토론회, 통일학교

nbsp nbsp nbsp 서울공동체에서 오늘 새벽예불과 기도, 발우공양을 하시고 대중공사시간에는 업무적으로 몇가지를 논의하셨습니다. nbsp 책출판과 관련해서 스님께서 계속 원고교정업무를 보시는데 시간이 많이 걸린다고 하시면서 출판예정일이 언제인지, 또 출판계획이 된 것은 어떤것인지등을 논의하셨습니다. nbsp nbsp 또, 통일학교 강의교재 관련해서 5강까지 정리된 것을 전체 다 한번 보자고 하셨습니다. nbsp 대중공사를 마치자마자 바로 평화재단으로 오셔서 ‘민족의 화해와 평화를 위한 종교인 모임’에 참석하셨습니다. 종교인모임에서는 오늘 오후에 있을 “어린이가 행복한 나라 아이를 때리지말라 원탁 대토론회”에 대한 전반적인 최종브리핑과 행사 마지막에 발표할 선언문에 대한 문안을 검토하여 수정하였습니다. ‘어린이가 행복한 나라’ 운동을 지속적으로 펼쳐나가자는 문구를 집어넣어 뜻을 함께 하자 했습니다. 이와 함께 광복 70년, 분단 70년인 올해 광복절 행사에 대해서 종교인모임은 어떻게 할지에 대해서도 논의하였습니다. nbsp nbsp 종교인 모임 이후 외부인사와 2번의 만남을 가진 후 천도교 수운회관으로 이동하셔서 1시 30분부터 어린이날을 맞아 ‘민족의 화해와 평화를 위한 종교인모임’이 주최하고 천도교에서 주관한 ‘어린이가 행복한 나라, 아이를 때리지 말라’ 원탁 대토론회에 참여하셨습니다. nbsp 3.1 독립운동의 정신이 깃든 터전이자, 방정환 선생이 처음으로 어린이날을 제정, 선포했던 역사적 장소인 천도교 중앙대교당은 400여명이 넘는 많은 사람들로 꽉 채워졌습니다. 식전행사로 진행된 뮤지컬 공연은 1923년 5월 1일 소파 방정환 선생이 일제의 탄압에도 불구하고 우리나라에서 처음으로 어린이운동을 시작했던 모습을 담았습니다. 어린이날의 의미를 되새길 수 있는 시간이었으며. ‘우리가 꿈꾸는 세상은 어린이가 행복한 세상’ 이란 메시지가 아름다운 노랫소리에 담겨 전해졌습니다. nbsp nbsp 박남수 천도교 교령님의 환영인사, 김명혁 한국복음주의협의회 회장님의 인사말, 정의화 국회의장님, 김종덕 문화체육관광부 장관님 등의 축사에 이어 역사음악연구소 어린이합창단의 공연이 있었습니다. nbsp nbsp 2부는 방송인 김여진씨의 사회로 열렸으며, 법륜스님께서 여는 말씀을 맡아주셨습니다. nbsp “사실 제가 아이를 낳지도 키우지도 않아 이렇게 나서서 말하는 것을 좀 망설였습니다. 하지만 장기판에 장기 두는 사람보다 훈수 두는 사람이 더 아는 척하지 않습니까. 그래서 간단히 말씀드립니다. nbsp 사람은 생물종으로서의 인간이자, 인류로서의 인간입니다. 생물종으로서의 인간은 유전자의 정해진 시스템에 따라 작동합니다. 그런데 생물학적인 인간종으로 태어났다고 해서 우리가 흔히 말하는 사람이 되지는 않습니다. 사람속에서 길러져야 인류로서 인간이 됩니다. 인류로서 사람이 된다는 것은 인류가 살면서 수없이 축적해 온 경험인 정신작용을 전수받아야 합니다. 100여년 전 인도에서 짐승들과 같이 살고 있는 아이 2명을 발견하였습니다. 두 아이는 10년 넘게 교육받았지만 결국 인간사회에 적응하지 못해 사람으로 돌아오지 못하고 죽었습니다. nbsp nbsp 그런데, 타잔은 다시 사람으로 돌아올 수 있었습니다. 그럴 수 있었던 것은 4살때까지 엄마품에 자라면서 사람으로서 기본 정신 프로그램을 전수받은 후 동물속에 살았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사람이 되려면 생물학적으로 인간종이라는 하드웨어가 갖춰져야 하고, 그 바탕위에 인류로서의 정신작용인 소프트웨어가 깔려야 하는 것입니다. nbsp 아이가 엄마 뱃속에 있을 때 엄마와 아이는 한 몸입니다. 이때 엄마가 독성 있는 음식을 먹으면 아이가 탈이 납니다. 그래서 아이를 잉태한 엄마는 담배 등의 해로운 음식을 먹으면 안됩니다. 그리고 엄마가 스테레스 받으면 아이는 심리적 불안이 생깁니다. 가장 중요한 태교는 엄마가 음식을 가려 먹고 심리적으로 안정되어야 합니다. 옛부터 아이를 잉태한 엄마를 장례식에 못가게 하는 것은 엄마가 슬프면 아이가 나쁜 영향을 받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좋은 것만 보고 듣게 하는 것입니다. nbsp 사람의 자아는 세살때까지 형성됩니다. 그래서 옛날부터 세살 버릇 여든까지 간다는 말이 있습니다. 세살 때까지 형성된 것은 아이에게 강하게 각인됩니다. 한국에서 태어나서 자라면 자동으로 한국어를 하고 김치를 좋아하는 것처럼 말입니다. 그리고 이 자아형성기에 정신적으로도 그대로 엄마의 영향을 받습니다. 엄마가 우울하면 아이도 우울하고, 엄마가 정신분열이 있으면 아이도 그렇게 될 가능성이 큽니다. 어릴때 심리불안이 형성되면 죽을때까지 고쳐지지 않고 계속됩니다.nbspnbsp nbsp nbsp nbsp nbsp 그래서 세살까지는 엄마가 아이를 잘 돌봐야 합니다. 생모가 키우는 것이 가장 좋습니다. 만약 엄마가 있는데 할머니가 돌보면 아이에게 정신적 혼란이 올 수 있습니다. 할머니가 키우면 아이의 심리적 모체는 할머니가 되어 할머니가 엄마인데, 의식은 젊은 여자를 엄마라고 인식하므로 의식과 무의식 사이에 혼란이 일어나는 것입니다. 엄마가 없어서 할머니가 아이를 키우면 괜찮습니다. 아이들에게는 낳은 사람이 엄마가 아니라 키운 사람이 엄마가 됩니다. 흑인인 아이를 백인이 키우면 백인의 사고방식을 가진 아이가 됩니다. nbsp 생물학적으로는 엄마, 아빠를 절반씩 닮지만 심리적으로는 대부분 엄마를 닮습니다. 모든 아이들은 엄마로부터 사랑받을 권리가 있습니다. 오늘날 엄마들이 가정형편이 어렵다, 직장다닌다는 이유로 아이들을 제대로 돌보지 않아 아이들이 정신적인 장애를 많이 겪습니다. 그런데, 한국의 부모들은 정성스레 돌봐야 할 어릴때는 제대로 돌보지 않고 아이가 자율적으로 생활을 해야 할 시기인 청소년기에는 돌본다며 지나치게 과잉보호해서 아이들이 육체적으로는 성인이지만 정신적으로 자립하지 못하게 합니다. nbsp 엄마는 세살까지는 아이를 100 돌봐야 합니다. 그러나 유치원, 초등학생이 되면 학습하는 시기이므로 부모가 하는 행동을 그대로 따라 하기 때문에 부모가 모범을 보여야 합니다. 아버지가 술주정하면 아이도 자라면 똑같이 따라 합니다. 부부가 자주 싸우는 집에서 자란 아이가 나중에 커서 결혼하면 더 심한 부부갈등이 일어납니다. 인간의 행동은 대부분 어릴 때 형성된 무의식으로 움직입니다. nbsp 아이들에게 좋은 음식을 먹이고 좋은 물건을 사주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부모가 화목하게 살아가는 것입니다. 아이에게 좋은 물건을 사주는 것은 사실은 엄마의 만족일 뿐입니다. 어릴때부터 야단을 치면 마음에 상처로 남습니다. 아이가 커서 야단을 치면 알아듣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거꾸로 큰 애는 야단을 안치고, 작은 애는 야단을 칩니다. 그리고 아이들 앞에서 부부싸움을 하고 아이들을 함부로 대합니다. 아이들이 커서 이성이 생기면 판단할 수 있는 자율권이 생기지만 아이가 어릴수록 작은 일에도 말없이 영향을 크게 받습니다. nbsp nbsp nbsp nbsp nbsp nbsp 그래서 초등학생까지는 70 돌보고, 중학생은 50 돌보고, 고등학생은 30 돌보고, 대학생이 되면 완전히 독립시켜야 합니다. nbsp 정부의 정책 변화도 필요합니다. 지금의 유아정책의 가장 큰 문제는 아이를 위한 정책이 아니라 엄마를 위한 정책이라는 점입니다. 무료보육은 언뜻보면 좋은 것 같지만, 아이를 아주 어렸을때부터 보육원에 보내게 해서 아이를 엄마로부터 분리시키는 결과를 만들고 있습니다. 모든 어린아이는 제 엄마로부터 사랑받을 권리가 있습니다. 엄마가 아이를 키울 수 있도록 3년 유급휴가를 주는 것 같은 특별지원책이 필요합니다. nbsp 아이를 어떻게 키울까 걱정할 필요가 없습니다. 엄마가 행복하게 살면 아이는 저절로 행복해집니다. 남편이 아이의 성장에 어떻게 하면 도움이 될까 고민한다면 남편이 아기 엄마를 편안하게 해주면 됩니다. 할머니 역시 며느리에게 잘해주는 것이 손자가 잘되는 길입니다. nbsp 정부는 엄마가 아이를 잘 키울 수 있는 정책을 펴야 아이들의 심리적 불안을 해결할 수 있습니다. 이는 지금 사회적으로 문제되고 있는 자살이나 정서적 불안, 학교폭력을 해결할 수 있는 근원적 해결책입니다. 그리고 다문화 가정에 대해서도 관심을 가져야 합니다. 다문화 가정의 엄마는 한국사회에 적응하는데 힘들어하고 한국어도 잘 못해 심리불안 상태에서 아이를 임신하고 키웁니다. 아이들도 유치원에 가면 피부색 등으로 친구들로부터 놀림을 당하여 상처가 큽니다. 이렇게 성장한 다문화 가정의 아이들이 20년 후 한국사회에 심각한 사회문제로 대두될 것입니다. 다문화 가정의 엄마가 행복할 수 있도록 아기 엄마의 평화와 안전을 보장하는 것이 미래 우리사회를 행복하게 하는 것입니다.” nbsp 스님께서 늘 엄마들에게 해주신 이 말씀은 어린이날 더 의미있게 다가왔습니다. 토론회에 참여한 패널과 방청객들은 스님의 말씀에 고개를 끄덕이며 동감하였습니다. 스님의 말씀이 끝나고 12명의 패널과 종교인 모임 7명의 종교인들의 말씀이 이어졌습니다. 패널들은 짧은 시간이었지만 어린이들이 처한 현실을 나누고 이를 해결할 대응방안에 대한 다양한 이야기를 나눴습니다. nbsp nbsp nbsp nbsp 아동학대의 84가 가정에서 생기기 때문에 아동학대의 모든 책임을 어린이집으로 돌리는 것은 적절하지 못하며 아동학대를 막기 위해서는 국가, 부모, 학교, 보육기관 등 모두가 함께 책임지는 것이 필요하다고 하였습니다. 이제는 가정에서도 어떠한 폭력도 인정되지 않도록 법제화하고, 이를 신고할 수 있는 의무감을 가질 수 있도록 교육되어져야 한다고 하였습니다. 또한 아동학대를 담당하는 관련시설을 확충하는 것 역시 과제로 제안되었습니다. 아동학대로 인해 죽어가는 아이들이 점점 늘어나고 학대당한 아이들이 정신적 후유증으로 청소년 폭력, 어른이 되면 가정폭력으로 이어지는 악순환을 끊기 위해서는 정신적 치료를 제도화하는 것이 필요하다는 의견도 나왔습니다. 그리고 어른이 행복해야 아이가 행복할 수 있다는 말에 많은 사람들이 공감하며, 긍정적이고 성숙한 어른이 되기 위한 인성교육의 필요성이 이야기 되었습니다. 지금 학교교육에서 지식만 가르치고 삶의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지혜에 대한 교육이 없으므로, 앞으로 지혜에 대한 교육과 인간의 존엄성을 존중하는 종교적 교육이 제도화되는 것이 필요하다는 제안도 있었습니다. 한 패널은 부모교육자격증이 필요하며, 이를 법제화 해달라는 요청도 있었습니다. nbsp nbsp nbsp nbsp ‘꽃으로도 어린이를 때리지 말라’라는 말처럼 어린이에게 어떠한 폭력도 정당화될 수 없으며, 여전히 우리사회에 깔려 있는 폭력적인 문화를 우리 어른들이 함께 각계 각층에서 바꿔나가는 노력이 필요하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던 시간이었습니다. 방정환 선생님께서 어려운 시대에 어린이운동을 시작해주심에 감사하고, 그 정신을 잘 계승해나가야겠다고 다시금 다짐해봅니다. nbsp 저녁 7시 반부터는 평화재단에서 통일의병 통일시민학교 수강생을 대상으로 “통일시대, 무엇을 할 것인가?”에 대한 강의를 하셨습니다. 평화재단 내에서 활동하는 시민단체인 ‘새로운 100년을 여는 통일의병’ 주최로 벌써 3기째 개설된 통일시민학교는 통일에 관심 있는 일반 시민들이 참여하여 통일에 대한 열망을 키우고 있습니다. 오늘은 법륜스님의 강의라서인지 수강생 뿐 아니라 기존 의병들도 여러분 참석하고, 진행 스탭들도 맡은 일을 서둘러 마무리 하고 들어와 강의장이 꽉 찼습니다. nbsp nbsp nbsp 스님께서는 산업화와 민주화의 성과를 이룬 남한이 왜 지금 통일을 해야 하는지에 대해 내적외적 필요성으로 나누어 설명해 주셨습니다. nbsp 우선 현재 대한민국은 위기로 접어들었으며, 그 근본 원인에 대해 짚어주셨습니다. 한국이 세계적으로 가장 짧은 시간동안 급속히 발전할 수 있었던 원동력은 가장 앞선 문명을 가장 빨리 모방하는 시스템을 갖추었기 때문이라고 하시며, 이제는 이 모방 시스템이 한계에 이르러 성장이 정체되기 시작했다고 진단하였습니다. 그리고 이에 대한 해결책을 제시해 주셨습니다. nbsp “지금의 위기를 극복할 수 있는 길은 두가지입니다. 본질적으로는 모방에서 벗어나 창조력을 키우는 거예요. 박근혜대통령이 창조경제를 얘기하는 것은 굉장한 아이디어입니다. 하지만 창조는 모방처럼 그렇게 간단히 단시간 내에 될 수가 없어요. 자율적 환경속에서 많은 실패를 거쳐 창조가 이루어집니다. 미국의 발전사를 보면 미국 동부가 유럽을 모방해서 발전하다가 모방의 덫에 걸려 사회가 정체되었습니다. 하지만 미국이 이를 극복하고 유럽을 능가할 수 있었던 것은 서부 개척의 기회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서부개척이라는 새로운 성장 돌파구를 통해서 일정한 경제력 규모를 유지할 수 있었고, 그 사이 창조력을 갖추어 사회정체를 뛰어 넘을 수 있었던 겁니다. nbsp nbsp nbsp 반면 과거 유럽은 정체 국면때마다 이를 극복하기 위해, 영토 확장을 위한 전쟁으로 엄청난 에너지를 소모했지만 미국은 그럴 필요가 없었던 거죠. 물론 미국도 영토 확장을 위한 전쟁을 했지만 전면전보다는 가볍게 이길 수 있었던 맥시코와의 전쟁으로 영토를 확장했습니다. 미국은 이렇게 서부개척으로 위기를 극복하면서 창조할 수 있는 시간을 벌었습니다. 즉, 양적팽창과 질적 창조를 통해 세계 문명의 중심국으로 올라설 수 있었던 거죠. 일본도 19세기 말부터 미국을 모방해서 성장을 시작했는데, 한계에 부딪치자 한반도와 만주를 점령해서 영토확대를 통해 위기를 극복하려고 했지만 결국 태평양전쟁에서 패했지 않습니까? 일본은 지금 두 번째 정체국면에 빠졌는데, 예전과 같이 전쟁을 통해 양적 확대를 할 여건이 안 되니 일본사회가 장기간 계속 정체되는 겁니다. nbsp 그런 면에서 볼 때 한반도 분단은 우리에게 엄청난 고통을 주기도 하지만 현재 정체국면에 있는 대한민국 입장에서는 좋은 기회를 제공해 주고 있습니다. 통일을 하게 되면 일단 양적 확대가 가능합니다. 다시 말하면 북한 개발이라고 하는 새로운 양적 확대의 기회가 주어지게 됩니다. 통일은 전 민족적 이익을 위해서가 아니더라도 현 대한민국의 정체 문제를 극복할 수 있는 유일한 길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nbsp nbsp nbsp nbsp 그럼 통일하면 다 해결 되느냐? 그렇지는 않습니다. 통일은 일단 한민족이 재도약을 위한 하나의 계기가 되는 것입니다. 지속적인 성장을 하려면 당연히 창조력을 키워야 됩니다. 근데 창조력을 키우기 위해서는 시간이 필요합니다. 그래서 두 가지 전략이 필요합니다. 하나는 양적 확대를 통해 시간을 벌고, 두 번째는 그 기간에 전반적으로 창조력을 키우는 쪽으로 사회를 개혁하면 지속적 성장이 가능합니다. 이것이 내적 돌파구입니다. 다시 말해 한국 내부에 창조력을 키울 수 있는 개혁이 있어야 하고, 외부적으로는 일단 통일을 해서 규모를 키울 수 있는 기회를 가져야 합니다. 이것이 가장 절실한 통일의 내적 필요성입니다.” nbsp 스님께서는 덧붙여 남북한이 분단 이후 미국과 소련이라는 두 축을 각각 우방으로 해서 발전해온 역사를 설명해주셨습니다. 그리고 현재 미중의 세력 교체기에 통일의 기회가 오고 있고, 통일한국이 주변 4국의 충돌에 균형자 역할을 함으로써 동아시아의 세력변화를 가져올 수 있다는 외적 필요성을 말씀하셨습니다. nbsp nbsp nbsp nbsp “지난 1000년의 우리역사를 돌아보면 우리는 한번도 세계의 중심은 커녕, 동아시아에서도 중심 역할을 하지 못하고 동아시아의 변방으로 전락되어 있었습니다. 동아시아에서의 중심은 중국이었고 가끔 일본이 도전을 했습니다. 몽골이나 만주족도 도전했지만, 우리는 발해 멸망 이후로는 동아시아의 중심에 서본 적이 없습니다. nbsp 그런데 통일한국이 되면 그런 희망을 가질 수 있습니다. 통일한국만 해도 발해 멸망이후 천년만에 동아시아에서 자주적 주권국가가 될 수 있습니다. 고조선 멸망이후 지난 2천년 동안 중국으로부터 줄곧 문명을 수입하였는데, 지금은 규모는 적지만 중국에 우리의 문명을 수출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우리가 중국에 우리의 문명을 수출하는 것은 2천년안에서는 처음 있는 일입니다. 하지만 앞으로 10년 안에 이 물결의 흐름은 정지되고, 반대로 중국의 문명이 또다시 우리에게 흘러 들어올 가능성이 있습니다. 그러나 통일한국이 되면 많은 부분에서 중국으로의 문명 수출을 지속적으로 더 할 수 있습니다. 통일한국이 동아시아 공동제의 견인해 내어 세계 최대 규모의 경제 공동체를 만든다면 세계적 경쟁에서 유리하게 되기 때문에, 규모와 상관없이 통일한국이 중심역할을 할 수 있어 창조적 문명을 생산하는 국가발전계획을 가질 수 있다는 것입니다. nbsp nbsp nbsp 이런 가능성을 생각해 볼 수 있는 것은 고조선 중기 이후 3천년만에 온 기회입니다. 우리가 살다가 언제 죽을지 몰라도 이런 가능성을 가진 나라에 산다는 것만으로도 자긍심을 가질 수 있습니다. 이것을 안다면 여러분들이 고민하는 개인적인 문제는 그렇게 중요한 것이 아닙니다. 이 남자냐, 저 남자냐, 이 회사냐, 저 회사냐 하는 문제는 사실은 큰 문제가 아닙니다. 더 큰 국가비젼과 가능성을 볼 수 있다면, 북한과 작은 일로 티격태격할 필요가 없습니다. 통일이라는 국가 목표가 정해지고 그 속에서 미래 이익이 보장된다면 지금 북한이 요구하는 작은 것들을 수용해도 별 문제가 안 됩니다. 미래 목표가 불분명하기 때문에 현재의 작은 일로 갈등이 생기는 겁니다. 독도 문제도 통일한국만 이룩된다면 일본이 우리를 우습게 볼 수 없기 때문에 해결이 어렵지 않습니다. 그런 면에서 아직 통일의 기회가 있으니까 우리가 도전해 볼만하다고 봅니다.” nbsp 동북아의 중심으로서 통일한국의 가슴 뛰는 비젼을 제시해 주시며, 통일을 어떻게 이룰 것인지와 통일의병의 할 일에 대해 말씀하셨습니다. 통일의병의 역할로 통일을 지향하는 정부가 나오도록 제대로 투표하는 것임을 강조하셨습니다. nbsp “한국을 둘러싼 주변 강대국은 지금 모두 자기 국가 이익을 극대화시키는 것에 몰두하고 있습니다. 미국은 중국을 어떻게 견제할 것인가, 중국은 미국의 견제를 뚫고 자기 능력에 걸맞는 영향력을 어떻게 행사할 것인가, 일본은 중국이 커지는 것에 대해 우려하면서 미국의 힘을 끌어들여서 어떻게든 중국을 견제하는데 집중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일본은 패전국가에서 정상국가로 가는 것에 힘을 집중하고, 북한은 자기 체제유지에 치중하여 세계적 규제에도 불구하고 핵을 개발하고 있습니다. nbsp nbsp nbsp nbsp 그러니 주변의 어떤 나라도 한반도 통일을 주도할 나라는 없습니다. 통일에 대한 필요성이 절실한 나라는 한국뿐입니다. 한국만이 어려움 속에서도 이뤄온 산업화와 민주화의 자산으로 통일을 이룰 수 있습니다. 더 나아가 동아시아 공동체를 견인할 수 있으며, 동아시아가 세계문명의 중심이 되도록 만들 가능성도 있습니다. nbsp 그런데 문제는 한국내에 통일을 이룰 주체 역량이 없습니다. 국민들은 다 자기 살기 바쁘고, 국가 지도자는 통일에 대한 국가비젼을 제시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과거에는 지도자가 가져야 할 덕목은 우리 체제를 어떻게 지키고 발전할 것인가였습니다. 그러나, 지금 남한지도자가 가져야 할 덕목은 북한까지 포함한 전 민족의 이익을 어떻게 지켜낼 것이냐, 그리고 동아시아의 공동체를 어떻게 구성하고 우리가 세계문명의 중심을 어떻게 형성할 것이냐입니다. 이러한 비젼을 가진 정치지도자를 발굴하고, 정치 세력을 형성해야 합니다. nbsp 이렇게 한국 정부가 통일에 대한 목표를 분명히 할때만 통일이 가능합니다. 그래야 북한이 설령 어긋난 행동을 해도 설득할 수 있고 미국과도 종속적인 한미동맹에서 벗어나 자주적 한미동맹으로 전환시킬 수 있습니다. 정부가 남북관계를 풀기 시작하면 민간에서도 할 일이 많아집니다. 그러니 통일을 하려면 우선 통일지향적 정부가 반드시 들어서야 합니다. nbsp 국가 최고 지도자가 통일에 대한 의지가 없으면 국민들은 정부를 비판할 수 있어야 합니다. 대한민국의 주인은 국민이니까 누구든 국가의 이익을 훼손하면 비판을 해야 합니다. 이처럼 통일지향적인 정부가 필요하다면 이와 같은 생각을 가진 사람들이 정치세력화 할 수 있도록 뒷받침 해주어야 합니다. 최선이 없으면 차선이라도 선택하고 차선도 없으면 최악은 막아야 합니다. 일제시대 때 독립하려면 목숨을 걸어야 했고 민주화시대에는 감옥에 갈 각오를 했습니다. 하지만 지금은 목숨 걸 일도 없고, 감옥 갈 일도 없습니다. 통일의병이 해야 할 일은 통일지향적인 정부가 들어설 수 있도록 국민이 주권을 제대로 행사하도록 하는 것 입니다. nbsp 정부가 국민에게 이런 국가비젼을 보여주면 청년들이 희망을 가지게 됩니다. 북한 개발이 시작되면 청년들의 일자리도 많아질 것입니다. 개발에 필요한 높은 기술력은 대부분 남한사람들이 맡을 수 밖에 없습니다. 노동은 북한사람들이 하면 됩니다. nbsp nbsp nbsp 다른 나라는 모두 자기 나라의 목표를 위해 달려갑니다. 통일 외에 대한민국의 국가 비젼은 없습니다. 이제 국민들이 이러한 의식을 분명히 가지고 통일의병활동을 해야 합니다. 이제 과거의 일은 따질 필요가 없습니다. 나라의 독립을 위해서는 상놈이나 양반이나 차별이 없었던 것처럼 지나간 얘기는 그만하고 미래를 위해 결집하자는 목표를 가지면 국민통합을 이룰 수 있습니다. 이런 일은 자식 있는 여러분들이 해야 합니다. 여러분들의 자식들이 희망이 있는 나라에 살기 위해서는 통일을 꼭 이루어야 합니다.” 이렇게 예비 의병들의 가슴을 뛰게 하면서도, 마음은 가볍게 할 수 있도록 강의 마무리를 해주셨습니다. 수강생들은 시종일관 진지한 표정으로 경청하다가 때론 심각하게 때론 폭소를 터트리며 강의에 집중하는 모습이었습니다. 예정보다 강의가 길어져 질문은 하나만 받았는데 그 질문과 스님의 답변을 소개합니다. nbsp nbsp nbsp nbsp “가슴이 뭉클합니다. 저는 조그만 사업을 하는데 정말 우리 사회에 비젼이 없습니다. 통일이 유일한 길이라고 생각하는데 너무 몰라서 와서 배우고 있습니다. 스님께서 말씀하시는 비젼을 가진 정치세력이 나올 수 있을까요? 지금의 기득권 세력을 봐서는 불가능할 것 같습니다. 두 번째는 일반 시민들이 무엇을 해야 하는지 너무 막연합니다. 환경하면 쓰레기를 줄이면 되고 제3세계 구호라고 하면 후원을 하면 되는데 통일은 뭘 해야 할지 막연합니다.” nbsp “통일문제는 옛날로 하면 정치적, 군사적인 문제입니다. 그래서 왕이 뜻이 없으면 어떻게 할 수가 없었습니다. 하지만 지금은 지도자를 뽑을 수 있는 권리가 국민에게 있기 때문에 우리가 통일지향적 지도자를 뽑으면 됩니다. 정치인들 중에는 이런 뚜렷한 사명을 가진 사람들이 몇명 안됩니다. 대부분 선거에 당선되는 것에만 목표가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이렇게 하면 네가 당선된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 필요합니다. 한 개인으로 지지하는 것이 아니라 통일지향적 정치세력에 힘을 실어줘야 합니다. 우리는 기회가 와도 우리가 노력을 안 하면 안 되고, 우리가 노력을 해도 기회가 안 오면 안 됩니다. 기회가 올 때를 기다려서 결정적인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도록 준비를 해놓고 기다려야 합니다. 정치가 중 자기를 희생해서 통일을 하겠다는 사람은 별로 없습니다. 그러나 자기 이익을 보장해주면 하겠다는 사람은 많습니다. 그러므로 그들이 큰 부담을 느끼지 않고 통일지향적 정치를 할 수 있게 우리가 도와줘야 합니다. 돈이 없어도 열의를 가지고 움직이는 세력이 있다면 영향력을 줄 수 있습니다. ‘아 이거 정말 해볼만한 일이다. 자손에게 물려줄 만한 일이다. 이게 희망이다.’ 라는 생각을 하면 해볼 만 한 것입니다. 자랑스런 통일코리아를 건설하기 위해 정당한 국민의 권리를 행사하자는 겁니다.” nbsp nbsp nbsp 질의 응답 후 스님과의 단체촬영이 예정되어 있었으나, 사진을 찍고 나서 조별 토론을 하게 되면 흐름이 깨질 것을 염려하시어 먼저 조별토론을 진행하도록 배려해 주셨습니다. 스님께서는 사진 촬영을 기다리면서 생긴 자투리 시간에도 원고 교정을 하시다가, 토론이 끝날 즈음 다시 강당으로 오셔서 함께 단체사진 촬영에 임해주셨습니다.

2015.05.05. 22,010 읽음 댓글 13개

2015.5.3 경전반 특강수련

nbsp nbsp 오늘 문경에서 문경공동체 대중들과 새벽예불과 기도를 함께 하였습니다. 그러나 어제 다리를 다쳐 절을 하지 못하고 명상을 하셨습니다. 그러다 보니 오늘 발우공양후 대중공사 시간에 스님께서도 108배를 하지 못해서 대중앞에 참회하셨습니다. 그리고 스님께서는 문경 수련원의 특성상 매일 매일 많은 분들이 오가며 입재와 회향을 하는데 우리가 어떤 마음으로 살아야 하는지를 말씀해주셨습니다. nbsp “이곳 수련원은 많은 분들이 오기도 하고, 가기도 합니다. 입재하기도 하고, 회향하기도 하고요. 똑같은 날인데도 하루를 정해서 오늘을 한 해의 첫 해이다, 설날이다, 초하루다 등 이렇게 정해서 특별하게 합니다. 그러나 크게 보면 첫 날도 없고, 끝 날도 없고, 초하루도 없고 그믐도 없습니다. 매일 같은 날 입니다. 다만 마음을 새롭게 한다는 차이입니다. nbsp nbsp 여기 오신 분들이 오늘 들어왔다고 새로운 마음을 가지는 건 좋은데, 오늘 집에 간다고 헤이한 마음을 가진다면 그것은 수행자가 아닙니다. 수행자는 오늘 군대 가면 아침 먹고, 일상생활처럼 군대 가고, 군대 가서는 책을 보던 것을 훈련 한다던지 하는 주어진 조건과 업무만 바뀌었을 뿐입니다. 군대를 제대하면 그날로 돌아와서 또다시 업무가 바뀐 것을 맡아서 하면 됩니다. 그러니까 밖에 있다 들어와도, 안에 있다 나가도 마음이 한결 같아야 합니다. 한결같지 않은 마음이 중생심이고, 한결같은 마음이 부처의 마음입니다. nbsp 그러나 우리 현실은 한결같지 않습니다. 태어나는 날이나 죽는 날이나 다 같은 날인데 태어나는 날은 기쁘고, 죽는 날은 슬프고 그래서 고락이 늘 윤회합니다. 그러나 조금 더 크게 보면 그 날이 그 날이고, 그 모습이 그 모습입니다. 낙엽이 떨어져야 움이 트고, 움이 트야 낙엽이 떨어지는 것입니다. 우리의 목표는 한결같은 것이고, 우리 현실은 한결같지 못한 것입니다. 한결같지 못한 현실에서 한결같은 마음을 가지는 것을 목표로 우리는 연습하고 있고 노력하는 이것이 수행입니다. nbsp 잘 안 되는 것이 현실이지만 안 되는 것을 합리화 해서는 안 됩니다. 그러니 오늘 이곳을 나가는 분들은 여기 살 때와 같은 마음으로 일상생활을 해야 합니다. 공양하는 방식이 발우공양이면 경건히 하고, 상공양이면 함부로 하는게 아니라 방식이 바뀌었을 뿐이지 상을 펴고 공양을 해도 발우공양 하는 마음가짐으로 해야 합니다.” nbsp nbsp 수행자는 한결같은 마음을 내어야 하고 그것이 안되는 것이 현실이기 때문에 한결같은 마음을 내는 것을 수행의 목표로 정진해야 함을 일러주셨습니다. nbsp “여기는 수행도량이니 목소리를 가능하면 낮춰야 합니다. 멀리 가는 사람을 부르려고 ‘아무개야’라고 큰소리로 부르며 희희낙락하는데, 즐거운 마음을 같지 말라는 것이 아니라 거기에 빠져서 목소리가 올라가는지 내려가지는지도 모르고 떠들면 안된다는 것입니다. 마음을 편안하게 하되 항상 마음작용과 동작에 깨어있는 연습을 하는 곳이 수행처입니다. 그러니 그것을 놓쳤을 때 공양시간에 참회하게 되는데 참회 따로, 행동 따로 이러지 말고 항상 주시해서 놓치지 않도록 하되 나도 모르게 과거 업식 때문에 놓쳤을 때는 ‘아이고, 놓쳤구나’하고 알아차리며 참회해야 하고, 그리고 대중 앞에 드러내는 발로참회, 또 자자 시간에는 대중으로부터 지적받아서 늦게라도 알아차리는 참회를 해야 합니다. 이렇게 참회는 죄를 지어서가 아니라 내가 가야 하는 목표를 나도 모르게 놓쳐버렸다 그것을 알아차리는 것이고, 다시 그 목표를 향해 나아가는 다짐을 하는 것을 발원이라고 합니다. nbsp 수행자라 하면 이 목표를 분명히 간직하고 그 목표를 향해 나아가야 합니다. 목표로 나아가는데 도움되는 것은 행하고, 도움되지 않는 것은 행하지 않는 것입니다. 그 목표로 나아가는데 놓쳤을 때 놓친 줄 알고 다시는 놓치지 않겠다 다짐하는 것이 참회 발원입니다. nbsp nbsp 여기 사람들이 100명이 산다면 하루 1020명 들락날락 해도 마치 샘가의 물이 새로 들어오고 흘러나가면서도 샘물이 한결같듯이 정토수련원 수행자의 분위기는 한결같아야 합니다. 새사람이 들어오면 웅성거리고, 일부 빠지면 허전한 것이 아니라 1명이 있어도 수행도량, 100명 들어와도 수행도량이에요. nbsp 그런 자세로 누군가가 들어오면 마음이 편안하도록 도와 주고, 전체 대중들도 그런 마음으로 생활해야 합니다. 그런 자세를 오늘 나가시는 분들도 가져야 합니다. 여기서는 음식을 쥐꼬리만큼 먹다가 나가자마자 자장면 곱빼기 시켜 먹기도 합니다. 이렇게 기분따라 풀어지면 원래대로 돌아가버리는 것입니다. 자기 까르마대로 돌아가기 때문에 그러면 늘 제자리에서 돌고도는 것입니다. 앞으로 간 것 같지만 또 제자리로 돌아 가게 됩니다. nbsp 한번 배운 것을 꾸준히 노력 한다면 돌아가더라도 50쯤 해서 멈추고, 또 150 갔다가 100에서 멈추고 그래서 오고가고 하면서 조금씩 조금씩 향상되어져야 합니다. 그런데 100으로 갔다가 100으로 돌아오면 노력은 하는데 아무런 진전이 없습니다.” nbsp 수행자는 항상 마음에 깨어 있어서 알아차림이 있어야 하고 또, 그렇지 못할 때는 참회를 하고 참회발원을 통해 앞으로 나아가야 한다고 말씀해주셨습니다. nbsp “우리가 인생을 살면 늘 실패할 수 있습니다. 여기서 수행생활 하며 늘 놓치고, 실패하는 그것이 연습입니다. 그러나 목표를 가지고 정진을 하면 매번 실패하는데 시간 지나면 어느덧 성공의 반열에 서 있습니다. 늘 안 되는데 시간이 지나면 어느 순간 되는 경지에 되어 있다는 이런 얘기예요. 그것이 저축하는 삶입니다. nbsp nbsp 순간순간 실패해도 이 실패는 성공을 향해 나아가는 과정이고 이걸 보는 사람은 실패에 연연하지 않습니다. 실패가 성공의 어머니다 하는 건 실패가 성공이 된다는 것이 아니라 목표가 분명하면, 목표로 나아가는 하나의 과정으로 실패를 받아들이게 되면, 실패에 연연하지 않게 되고, 실패를 통해서 ‘이것때문에 실패했구나, 이걸 놓쳤구나’하면서 점점 더 좋은 방법을 찾아가는 계기가 된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될 때 ‘실패가 성공의 어머니다’라고 말합니다.” nbsp 비록 순간순간에는 실패를 하더라도 목표를 놓치지 않고 하다보면 실패가 쌓여서 성공의 길로 접어들 수 있음을 다시한번 새기게 됩니다. nbsp “우리는 실수하고 실패하는것이 단순한 반복이면 중생살이고, 알아차림으로 인해 개선하는 쪽으로 나아가게 되면 그것은 성불의 길이라고 볼 수 있어요. 어제도 계율을 어기고, 오늘도 어기며 참회를 하는데 열흘 지나고, 한달 지나고 보면 전에는 많이 놓쳤다면 지금은 적게 놓치게 된다면 출발점보다 개선 되어가고 있는 것입니다. nbsp 그러나 한달 전이나 지금이나, 어제나 오늘이나 똑같은 행동을 똑같이 반복하고 있다면 그건 본인이 수행 관점을 놓치고 있다는 이야기입니다. 누구도 자기를 점검해줄 수 없습니다. 자기 스스로 점검하면서 정진해 나가야 합니다. 여기 들어온다고 정진되는 것도 아니고, 옷 갈아입는다고 정진이 되는 것도 아니고 3000배 한다고 정진 되는 것이 아니고, 어떤 마음으로 하느냐, 어떤 관점을 가지고 하느냐는 것이 중요합니다. 바른 관점, 바른 도를 알고 연습해야 합니다. 목표점 없이 연습하면 수고가 많고, 목표점은 있는데 아무런 노력을 안하면 제자리에 있게 됩니다. 부족한 우리들이 꾸준히 성불의 길을 향해서 연습 해나가는 것이 수행자이고 수행자가 모인 수행자 집단이 상가입니다. 다들 부지런히 정진해 나가시기 바랍니다.” nbsp 수행자는 목표를 가지고 스스로 점검하면서 부지런히 정진해나가야 함을 당부하셨습니다. nbsp nbsp 이어서 8시 30분부터는 경전반 특강수련에서 법문이 있었습니다. 경전반 공부를 하면서 궁금하거나 의문이 든 점을 스님께 묻고 질문하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nbsp 스님께서는 지역별 참가자를 확인 후 문경에 처음 온 사람, 깨달음의 장 아직 안한 사람, 천일결사 입재 안한 사람을 물어보시고, 손드는 사람을 보자‘별종이다’하셨습니다. 이 말씀에 참가자들은 한바탕 웃었습니다. 스님께서 명상수련, 나눔의 장 참가 등 몇가지를 더 확인 하신 후 이번 강의는 인생에 대한 즉문즉설이 아니라 경전반 공부하면서 궁금했던 것을 함께 이야기하는 시간임을 알려주셨습니다. nbsp 스님께서는 먼저 불교대학과 경전반 교과과정에 대한 설명으로 강의를 시작하셨습니다. nbsp “지금은 불교대학 1년과 경전반 1년으로 나뉘어 진행되지만 원래 정토불교대학은 2년제였습니다. 보통 4년제 대학교의 경우 2년은 교양, 2년은 전문과정부로 나뉘는데, 대학의 교양과정부에 해당하는 것이 불교대학이며, 전문과정부에 해당하는 것이 경전반입니다. 원래 둘을 모두 합한 것이 불교대학 교과과정이었으므로, 경전반까지 졸업을 해야 불교대학을 졸업한 것입니다. nbsp nbsp 교양과정에서 다루는 것은 총 4과목으로, 첫번째 ‘불교란 무엇인가’입니다. 가장 핵심적인 내용으로 만들어진 과정이며, 불교의 아이덴티티를 정리한 것입니다. 핵심은 삼귀의오계인데, 불자가 되기 위해서는 삼보에 귀의하고 오계를 받아야 합니다. 두번째는 ‘부처님의 일생’입니다. 부처님은 누구시며 어떤 분이신가 하는 부처님의 일생을 배웁니다. 세번째는 ‘부처님의 근본 가르침’입니다. 역사적으로 소승불교, 대승불교, 밀교 이렇게 3종류가 있는데, 우리가 배우는 부처님의 가르침은 근본불교로써, 가장 초기 원형의 불교입니다. 네 번째는‘ 불교 변천사’입니다. 초기 불교가 시간과 공간이 확대되면서 어떻게 변해갔는가. 나쁘게 변질된 것도 있고 좋게 발전한 것도 있는데 불교의 역사를 배우는 과정입니다. 수행자로서 예불할때는 어떤 마음가짐을 가져야 하느냐, 일상의 삶을 어떤 자세로 살아야 하느냐, 밥 먹을 때 어떤 마음으로 먹어야 하느냐를 기본적으로 요약한 예불문과 소심경 과목이 있습니다. nbsp 전문과정으로 들어오면 부처님이 말씀하신 실제 경전을 가지고 공부하게 되는데, 우리가 공부해야 할 경전은 소승불교인 아함경, 대승불교인 대승경전, 선불교인 선어록 이 세가지입니다. 태국 불교신자라면 아함경만 공부하면 되고, 대승불교 지역이라면 아함경 대승경전을 공부하면 됩니다. 역사적으로 소승불교를 거쳐 대승불교가 됐기 때문에 소승불교는 소승경전만 공부하면 되지만 대승불교는 소승불교가 변화, 발전되어 온 것이기 때문에 반드시 소승불교를 공부하고 대승불교를 공부해야 합니다. 그러나 지금 불교현실은 대승이 소승을 공부하지 않기 때문에, 서로간에 배타적입니다. nbsp nbsp 우리 한국불교는 대승불교 안에 교종과 선종이 있는데, 대한불교 조계종은 선종에 속합니다. 그래서 우리의 아이덴티티가 선종이기 때문에, 선에 대한 공부를 해야 합니다. 선은 교를 바탕으로 성립됩니다. 대승과 소승을 공부하지 않고 선불교만 공부하면 기존 불교를 부정하게 됩니다. 선종은 대승에 속해 있고, 대승은 소승을 기초로 한 것입니다. 즉 소승불교가 변화 발전한 것이 대승불교이며, 대승불교가 변화 발전한 것이 선불교입니다. 종파를 바꿔 소승불교로 가겠다고 하면 대승불교와 선불교를 안 배워도 되지만, 선종에 속해 있으면 소승경전, 대승경전 다시 그 둘을 변화 발전시킨 선어록도 공부해야 합니다. nbsp 우리는 부처님의 일생도 알아야 하고, 소승불교, 대승불교, 선도 알아야 하며, 다른 종파에 대해서도 배타적이면 안됩니다. 그런데 자기 정체성을 가지고 포용하면 좋은데, 자칫 이것도 저것도 아니어서 자기 정체성이 없어지거나, 잘못 공부해서‘선만 최고고 다른 건 필요 없다’이렇게 배타성을 나타낼 수 있습니다. 우리가 배운 불교는 모든 것들을 포용하는 종교인데, 흔히 사람들은‘대승만 옳고 소승은 수준이 낮다’이런 교만을 갖게 됩니다. 종교를 잘못 배우면 배타성을 갖게 되는데, 배타적인 것을 극복하는데 진리, 즉 종교가 필요합니다. 유대교가 유대민족만 구원을 받을 수 있다는 배타성을 가지고 있었지만 예수님은 다른 이방인들에게도 구원이 있다고 넓혀 놓았습니다. 하지만 오늘날의 일부 기독교인들은 유대교의 사고방식을 그대로 가지고 있습니다. 우리나라 불교는 소승보다는 대승이, 대승보다는 선이 더 보편화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소승을 공부하고 소승을 뛰어넘어 대승을 공부하고, 대승을 뛰어넘어서 선을 공부하고, 선을 공부하되 뛰어넘어서 진리로 나아가야 합니다. 기독교냐 불교냐, 종교냐 과학이냐를 뛰어 넘어서 무엇이 진리인가를 규명해 가는 자세가 참다운 선수행자고, 참다운 대승이고, 참다운 불자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자기 정체성을 갖되 세상에 대해서 열린 마음을 가져야 합니다. 생활 속에서 적용해 보면 결혼했는데 포용성을 가진다고 이 남자, 저 남자에게 똑같이 잘 대해야 하나요? 내 남자, 내 아내는 기본적으로 챙기되, 내 가족만 챙길 게 아니라 이웃 남자나 여자 라도 어려움에 처하면 내 가족처럼 보살펴야 하는 것입니다. nbsp nbsp 그렇다면 경전반에서 소승경전, 즉 아함경 공부를 왜 안하는지 의문을 제기할 수 있을 겁니다. 아함경은 제가 즉문즉설 하듯이 부처님께서 평이한 일상 언어로 대화했습니다. 그 당시에 종교 언어를 쓰지 않고 일상어로 썼기 때문에 한국어로 번역하면 굳이 설명해주지 않아도 이해할 수 있습니다. 즉문즉설을 따로 해설하지 않아도 이해할 수 있듯이, 아함경은 강의없이도 여러분이 독송하면 되기 때문에, 천일결사 경전으로 매일 조금씩 읽고 있습니다. 불교방송에서 아함경을 설법한 내용을 책으로 엮은 것이‘붓다에게 물들다’‘붓다 나를 흔들다’이므로 읽어보시면 됩니다. nbsp 금강경, 반야심경, 화엄경, 법화경, 육조단경, 류마경 등 많은 대승경전이 있지만 우리는 금강경, 반야심경과 화엄경을 요약한 법성게, 육조 혜능대사의 어록인 육조단경을 공부하고 있습니다. 정토회는 부처님이 구현하셨던 근본정신을 다시 이 세상에 구현해보고자 하는 것이 목표기 때문에, 근본교설의 정신에 투철한 경전을 배우고 있습니다. 나머지 경전을 더 공부하고 싶은 사람은 지금까지 공부한 것을 기초로 틈틈이 시간내서 따로 하면 됩니다. 실제로 생활 속에서 자기가 체득하는 게 중요하지 알음알이로 공부하는 건 이 정도로 충분합니다. 경전반은 몸과 마음으로, 경험적으로 체득하는데 더 많은 비중을 둬야 합니다. 그럴려면 수련도 해야 하고 마음나누기도 깊이 해야 하고 보시, 봉사, 인욕, 참회하고 경험도 해야 합니다.” nbsp nbsp 스님께서는 이렇게 불교대학과 경전반 교과를 정리해주시면서 참가자들에게 착실하게 수행할 것을 주문하셨습니다. 그리고 참가자들이 기다리던 즉문즉설을 시작하셨고 총10분의 질문이 있었습니다. nbsp 마땅히 머무는 바 없이 마음을 내라 하는 구절이 잘 이해가 안된다며, 어떤 것도 바라는 것 없이 어떻게 마음을 낼 수 있는지 궁금한 분과 스님들 공성을 몸으로 체득하는 깨달음을 체험하고 싶다며, 이법계를 확실히 보려면 어떻게 수행해야 하는지 묻는 분, 집착에서 벗어난 중도의 기준을 어떻게 잡아야 하는지 묻는 분, 남편과 딸의 요구사항을 맞춰주면서 살아왔는데 숙이는 것과 맞추는 것의 구분이 어렵다는 분, 청소년 시절부터 궁금했던건데 여기 이 시간 이 사람들과 왜 함께 있을까 인연법에 대해서 자세히 알고 싶다는 분, 불교에서는 인간의 본성을 성선설이나 성악설 중 어떻게 보는지 묻는 분, 원효스님의 화쟁사상을 좀 더 쉽게 알고 싶다는 분, 돈이 사람의 인격이 되고, 권력이 되어 비굴해지는 느낌인데 어떤 마음으로 돈을 벌어야 지혜로운지, 어떻게 돈거래를 해야 현명한 수행자인지 묻는 분, 어린이법회는 내용이 따로 정해지지 않아서, 선생님과 논의해서 하는데 어떤 마음가짐으로 진행할지를 묻는 분, 경전말씀에서 궁금했던 내용부터 생활속의 고민까지 다양한 질문들이 이어졌습니다. nbsp 이 중 한 질문에 대해 소개드립니다. nbsp “정토회에서 통일의병학교 강의를 듣고 있는데, 통일의 중요성과 필요성은 충분히 공감하지만 지금같이 어려운 현실에서 통일이 될 수 있을지 의심이 듭니다. 어떻게 통일을 염원하고 기여할 수 있을지 궁금합니다.” nbsp “일제시대 때 일본 사람들이 우리를 지배했었죠. 그 때 일본이 주위에 있는 청나라하고 싸워서 이기고, 러시아하고 싸워서 이기고 세계 최강국인 영국하고 동맹을 맺어서 우리를 지배하였습니다. 그때 다른 나라가 우리를 도와줬습니까? 아니오. 우리는 일본에 꼼짝을 할 수 없었어요. 독립운동도 처음에 하다가 나중에 포기하기도 했어요. 그 당시 일본이 패망하고 우리가 독립을 한다는 것이 쉬웠을까요? 지금 미국과 중국 사이에서 우리가 통일을 할 가능성이 더 높을까요? 지금이요. nbsp nbsp 그런 일제시대 때 독립운동을 한 사람도 있는데 우리가 왜 통일운동을 못하겠어요? 그 당시 사람들도 독립이 불가능하다고 생각했었어요. 일본은 1937년 중국을 침공하고, 1941년 태평양 전쟁을 일으켜서 하와이, 사이판, 괌, 필리핀을 점령하고, 베트남에서 미얀마, 인도네시아까지 점령을 하는 등 당시 세계 최강국이었어요. 그래서 그 당시 독립운동을 했던 사람들이 많이 변절했습니다. 그 전에는 어떻게든 독립이 되겠지 하는 희망이 있었는데 일본이 세계를 제패하여 독립이 불가능하다고 보였어요. 그래서 일본천황만세를 부르고, 이 전쟁에서 일본하고 협력하는 것이 낫겠다 싶어서 학도병으로 군대가는 것을 3.1 독립선언할 때 서명했던 사람들까지 나서 권유하고, 일부 신문들도 절판 했는데, 어느 날 갑자기 독립이 되었어요. 우리가 독립이 될 거라고는 꿈에도 생각을 못했기 때문에 독립에 대한 준비를 못해서 독립 후 극심한 혼란을 겪었지요. 그런 암울한 시대에도 독립의 희망이 있는데, 지금은 우리가 경제력도 있고, 민주화도 됐고, 교육도 많이 받아 통일의 기초가 있으므로 통일의 가능성이 있습니다. 중국이 커지고 미일동맹이 강화되는 등 판세가 어려워지는 건 사실입니다. 가능성이 10나 있을까요? 그러나 일제시대 때 독립 가능성보다는 높나요? 낮나요? 높아요. 10 가능성은 높은 거에요. 1 가능성만 있어도 도전해 볼만 하지요. 중생이 부처되는 게 1의 가능성이 있나요? 없나요? 중생이 부처가 되겠다고 원을 세웠는데, 통일이 불가능하면 여러분들이 부처되는 건 아예 불가능해요. 우리는 지금 중생이 부처된다는 꿈을 가지고 모였는데 통일이 불가능하다고 하는 그런 말을 하면 안됩니다. 통일은 어렵지만 가능은 합니다. 연습을 많이 해야 합니다. 옛날엔 총 들고 싸워서 투쟁해야 했지만, 지금은 총 들고 안 싸워도 되고 투표만 잘해도 됩니다. 선거에서 통일을 지향하는 정부를 선택하면 통일에 도움이 될 수 있습니다, 한국 정부가 통일정책을 확실하게 가지고 추진해야 합니다. 미국과는 종속적 한미동맹이 아니라 자주적 한미동맹을 굳건히 맺어야 합니다. 종속적 동맹하에서는 우리의 이익이 미국의 이익에 종속되기 때문에, 우리의 이익인 통일을 확실하게 담보하기가 어렵습니다. nbsp nbsp 미국이 나쁜 나라여서가 아니라, 모든 나라는 다 자기나라 이익을 추구할 권리가 있습니다. 일본, 중국, 미국, 북한은 각자의 국가 이익에 따라 목표가 분명히 있습니다. 우리나라도 정신을 차리고 통일을 목표로 국가정책이 추진되어야 합니다. 이 정도 우리의 발전에 만족하고 쇠락의 길을 가도 좋다고 한다면 모르겠지만, 여기까지 발전된 이 좋은 기반을 가지고 조금 더 업그레이드를 생각한다면 통일을 해야 합니다. 지금까지 이뤄놓은 성과에 손실을 안 끼치려면 한반도에 반드시 평화를 유지해야 합니다. 남북간에 소소한 것으로 싸우면 안됩니다. 남북간에 갈등을 일으키면 다른 나라에 어부지리로 이익을 주게 됩니다. 평화를 이루고 통일을 하면 남북한 서로에게 도움이 됩니다. nbsp 통일한국은 동아시아의 갈등을 화합시키는 역할을 해서, 동아시아 평화와 협력을 가져 와서 동아시아 시대를 열 수 있습니다. 즉 문명의 중심이 동아시아로 넘어오게 되며, 동아시아의 중심이 한국이 되면, 발해 멸망 이후 천년만에 꿈이 이루어집니다. 고조선이 멸망한 이후 2천년 이상 중국으로부터 문명이 흘러왔는데, 잘 살펴보면 지금 우리 문화가 중국으로 흘러가고 있습니다. 이 현상이 몇십년 있으면 멈출 거에요. 하지만 한반도가 통일되면 한류를 비롯한 우리의 인권, 민주적 제도 등의 문명을 지속적으로 중국 쪽으로 흘려보낼 수 있어요. 물량은 중국이 크지만 문명의 꽃인 기술과 문화를 창조하고 생산할 능력이 한국에 있습니다. 삼천년의 꿈이 이루어지는 겁니다. 그런 가능성이 열려 있는데, 한국 사람으로 태어났으면, 젊은이라면 이런 가능성을 향해서 나갈 수 있지 않을까요? 중생이 부처되겠다는 가능성을 열고 수행하는 사람이 그 정도에요? 중생이 부처되겠다는 가능성 보다, 정토세상을 건설하겠다는 가능성보다는 통일한국 건설이 훨씬 가능성이 더 높습니다. 해볼만 하고 투자할 만한 가치가 있습니다. nbsp nbsp 첫 단계는 통일을 추구하는 한국정부가 먼저 들어서야 합니다. 통일을 지향하는 주체세력과 국민운동이 형성되어야 합니다. 우리는 현실 속에서 최선이 아니면 차선이라도 선택해야 합니다. 차선이 없으면 최악을 막기 위해 차악이라도 선택해야 합니다. 그렇게 해서 풀어 가면 됩니다. 뭐 그리 어렵다고 생각하세요? 50년 전에 우리가 다른 나라에서 얻어먹고 살 때, 이렇게 성장 할 것을 누가 상상이나 했나요. 그 암울한 독재시대에 민주화가 될 거라고 누가 상상이나 했나요? 계란으로 바위치기라는 생각들을 했었죠. 이런 성공의 경험을 가진 우리들이 패배의 이야기를 해야 되겠어요? 통일운동한다고 감옥을 가나요? 죽기를 하나요? 원이 없고 목표가 없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인생의 목표가 분명하면 소소한 일은 중요한 게 아닙니다. 국가적인 목표에 이익을 두면서 개인의 이익을 추구할 수는 있지만, 정치의 목표는 공공의 이익입니다. 이 나라의 주권이 국민한테 있는데 주인이 비실비실해서 지역주의에 빠지고 자기 권리를 제대로 행사 못하면 나라가 어렵습니다. 대한민국의 주인도 못되는 사람들이 부처가 되겠다는 어림도 없는 소리를 하고 있어요. 자세가 확 달라져야 합니다. 우리가 양보를 하는 것은 더 큰 꿈을 이루기 위해서 동아시아의 큰 이익을 위한 것입니다. 우리가 꿈이 없기 때문에 그런 소심한 생각을 하는 것입니다.” nbsp 중생이 부처될 수 있는 1의 가능성에도 부처가 되겠다고 우리가 원을 세우듯이, 10의 가능성이 있는 통일은 원을 세우면 어떤 조건에서도 가능하다는 스님의 말씀을 다시 되새겨 봅니다. 그리고 통일을 위해 어떤 역할이든지 해보겠다는 원을 세워 봅니다. 어제 낫에 찔려 아픈 다리로 세 시간을 꿈쩍 않고 법상을 지키는 스님의 법문앞에서 경전반 학생들의 표정은 웃다가 울다가 감동의 시간이었습니다. nbsp nbsp 점심공양을 드시고 원고점검등의 업무를 보시다가 법사님들이 수련이 끝나는 시간에 맞춰 산책을 가려고 했으나 새벽부터 내린비가 계속 내려서 법사님들에게 공양을 사드리면서 여러 가지 이야기들을 나누었습니다. nbsp 법사님들과의 시간을 마친 후 스님께서는 내일 조찬회의가 있으셔서 서울로 향하셨습니다. 9시 30분경 서울에 도착하셔서 원고 점검등의 업무를 보시면서 하루를 마무리 하셨습니다.

2015.05.04. 22,549 읽음 댓글 17개

2015.5.2 농사일과 산행

nbsp nbsp nbsp 오늘은 스님께서 가장 좋아하시는 농사일만 하는 하루였습니다. 어제 밤 노원 강연후 경주로 이동한 스님께서는 오는 도중에 고속도로에 사고가 나 있어서 평소보다 더 늦은 오늘 새벽 3시경 경주에 도착하셨습니다. nbsp nbsp nbsp 도착하니 새벽기도 시간이 가까워서 먼저 새벽예불과 기도를 하고 잠시 휴식을 취하신 후 날이 밝자 스님께서는 어제 노원 강연장에서 청중이 주신 꽃다발 10개를 정리해서 단지에 꽂았습니다. 그리고 6시에 아침 공양을 드신 후 곧바로 마당정비 작업을 하셨습니다. nbsp nbsp nbsp 잔디와 함께 깊이 자리잡고 있는 세잎클로버등 잡초도 뽑고, 화단도 정리하셨습니다. 3시간 정도 작업을 하신 후 산행에 나섰습니다. nbsp nbsp 산행을 가는 길에 부모님 산소에 들러 주변정비도 하셨습니다. nbsp 산소주변에 무성해진 풀과 나무와 칡덩굴들을 제거하다가 낫에 다리를 찍혀 피를 많이 흘리셨습니다. nbsp nbsp 오늘은 다른 일정없이 농사 일과 산행을 하시기로 하셨는데, 다리를 다치는 바람에 산행은 포기하고 되돌아오셔서 간단히 치료를 한 후 경주 정토회 전 대표님이신 김성순 보살님께 연락을 해서 목 치료를 받으셨습니다. 지난 가을 세계 100강중 목이 많이 아파 스님께서 고생을 하셨다는 소식을 듣고 자신이 알고 있는 치료법이 있는데 한번 치료해 보시겠다고 여러번 요청이 있었는데 오늘 마치 여유시간이 생기는 바람에 연락을 하여 치료를 받았습니다. nbsp nbsp nbsp 그리고 내일 아침에 경전반 특강수련에 법문이 있어서 저녁 무렵 문경으로 이동하셨습니다. 문경 수련원에 밤 10시경에 도착하신 후 다친 다리에 통증이 있어 다시 간단히 치료를 한 후 바로 취침에 드셨습니다. nbsp

2015.05.03. 20,398 읽음 댓글 66개

2015.5.1 노원 희망강연

nbsp nbsp 오늘은 스님과 대중들이 새벽예불과 발우공양하는 모습을 시간에는 송코 탈란딕 부족도 함께 자리하며 서울 공동체가 살아가는 모습을 직접 지켜보았습니다. nbsp 스님께서는 이분들에게 불교 전통문화를 가지고 있는 “지금 우리가 예불하고 발우공양하는 방식은 밥먹는 방식은 불교 전통방식입니다. 그러나 지금은 대부분 없어져가고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이런 불교의 전통을 지키고 있습니다. 새벽에는 다 함께 모여서 예불하고 청소하고 밥도 같이 모여 먹습니다. 다만 낮동안에는 일을 해야 하기 때문에 아침 한끼는 무슨 일이 있어도 전통적 방식인 발우공양을 하고 있습니다. 또 아침을 먹고 난 후 오늘 하루 각자는 무슨 일을 했는지, 무슨 일을 할 것인지 서로 공유를 합니다. nbsp nbsp 누구든지 여기 와서 하루라도 자게 되면 예불하고 청소하고 발우공양을 해야 합니다. 특별히 여러분들만 이번에 예외였습니다. 다음 방문때는 함께 해야 합니다. nbsp 우리는 밥과 반찬도 간소하게 먹고 생활을 검소하게 하고 있습니다. 이곳은 이 문만 나가면 유흥가 골목입니다. 그런데 산속에서가 아니라 이런 번다한 시내속에서 우리의 전통을 지키고 살고 있습니다. 여기 사는 사람들은 모두 보수를 받지 않고 자원봉사를 하고 있습니다. 어제 저녁처럼 절에 와서 연주하고, 노래를 부르든, 춤을 추든, 밥 하든, 일을 하든 일체 임금을을 지불하지 않습니다. 우리는 어떤 일을 하고 돈을 주고 받는 경우는 거의 없습니다. nbsp 우리에게 필요한 일, 자기가 할 수 있는 일을 하고 있습니다. 노래할 수 있으면 노래하고, 촬영할 수 있으면 촬영하고 각기 자기 재능을 여기서 발휘하고 있는 것입니다.”라며 우리가 사는 생활방식을 소개해 드리면서 오늘이면 한국을 떠나는 그분들에게 환송의 박수를 보내드렸습니다. nbsp nbsp 미키타이 추장님은 “한국에 초청해 해주셔서 감사하고, 배려해주시고 환영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여기 와서 배운게 많은데, 특히 절제가 필요하다는 것을 배웠습니다.”라고 하시면서 그동안 편안하게 잘 지내다 간다며 감사하다는 말씀을 다시 한번 전하셨습니다. nbsp 스님께서는 7시 30분 외부인사와 만남을 가진 후 다시 법당으로 오셔서 송코 탈란딕 부족과 함께 시간을 가지면서 그동안 한국에 머물면서 궁금했던 질문들을 받아 함께 이야기를 나눴습니다. 특히 정토회와 송코마을에 주어진 공통과제인 현대문명속에서 공동체의 정체성을 어떻게 지킬 것인지에 대한 고민을 함께 나누기도 했습니다. nbsp nbsp “송코가 좋아요? 한국이 좋아요?” “송코가 좋습니다.” “변호사가 되면 송코에서 못사는데 어떻게 하지요?” “나는 우리 부족의 변호사가 될 것입니다.” “전통문화를 지키면서도 현대교육을 받아 세상에 대한 상식을 알아야 합니다. 부족의 문화와 자연환경을 지키는 변호사가 되기를 바랍니다.” nbsp “담마가 무엇입니까?” “부처님의 말씀인 진리를 말합니다. 부처님 말씀뿐만 아니라 진리이면 모두 담마입니다.” nbsp nbsp “정토회는 파괴되어 가는 자연환경을 보호하는 일, 가난한 이들을 돕는 일, 갈등을 조절해서 평화롭게 사는 일, 사람의 마음을 편안하게 하는 일 등을 하고 있습니다. 정토회 공동체는 현대문명속에 살고 있지만 소비중심의 문화가 아닌 미래문명의 대안적인 삶을 지향하고 있습니다. 오늘 아침에 여러분들이 지켜본 예불하고 발우공양하는 사람들은 이곳에 20년, 25년 산 사람들도 있고, 온지 한두달 된 사람들도 있습니다. 아침에도 이야기했듯이 공동체에 사는 사람들은 검소한 생활을 삽니다. 옷장은 개인당 한 개만 쓸 수 있으며, 숙소는 개인방 없이 여러명이 공동으로 생활합니다. 어쩌면 정토회 공동체가 여러분 보다 더 가난하게 살고 있을 겁니다. 개인 삶을 포기해야 여기서 살 수 있습니다. 여기 살 수 있겠어요? ” nbsp “우리 부부도 집이 없습니다. 작은 방 하나 있고 모두 마을 공동체를 위해 쓰여집니다.” nbsp nbsp “송코는 친척 공동체이지만 우리는 잘 모르는 사람들의 관계여서 더 쉽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바깥세상은 물질적으로 풍요롭고, 구성원들의 가족들도 여기서 사는 것을 반대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nbsp “송코마을의 고민은 구성원들에게 공동체를 지키라고 해도 젊은이들이 돈을 벌기 위해 밖으로 나갈려고 하는 사람들이 계속 생깁니다.” nbsp “젊은이들이 공동체를 떠나려고 하는 것은 전통을 지키는 것에 보상이 없기 때문입니다. 보상이라고 하면 유일하게 자기 정체성을 지킬 수 있다는 것 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쉽지 않은 일입니다. 정토회도 마찬가지입니다. 저는 강연이나 법문하고 돈을 받지 않습니다. 참가한 사람들이 강연이 끝나면 스스로 후원하고 갑니다. 유명한 가수도 여기서 공연하면 돈 받지 않고 자원봉사로 합니다. 우리는 돈을 벌지 않는 대신에 절약해서 삽니다. 절약하는 것이 가장 돈을 잘 버는 것입니다. 현대 문명이 고도로 발전한 한국에서는 우리민족의 전통문화를 지키는 것이 쉽지 않아 전통문화가 50년 전부터 빠르게 소멸되기 시작했습니다. 저는 여러분들만큼은 꼭 전통문화를 지켜내기 바랍니다. 송코마을이 물질문명의 영향으로 많은 것이 변화되어 간다고 해도 여러분들이 자기 정체성을 가지려면 전통문화를 꼭 지켜야 합니다. 저는 여러분들이 전통을 얼마나 잘 지키는지 계속 지켜볼 것입니다.” nbsp nbsp 스님께서는 젊은 원주민 청년들의 손을 꼭 잡고 송코마을의 아름다운 전통을 잘 지켜나가기를 신신당부하셨습니다. 그리고 이제 곧 이별하는 원주민들에게 선물을 주고 싶은데 무엇을 줘야 할지 모르시겠다며, 시장에 가서 필요한 것을 사라고 용돈을 챙겨 주셨습니다. 원주민들은 한국에 초청해줘서 많은 것을 경험할 수 있게 해준 스님께 감사한 마음을 전했으며, 이별의 아쉬움을 표하였습니다. 스님과의 시간을 마무리하고 송코마을 원주민들은 마지막으로 동대문시장을 방문하여 쇼핑한 후 필리핀으로 돌아갔습니다. 오전 10시에는 역사학자이신 이이화선생님과 한성대 전 총장인 윤경로선생님, 민족문제연구소 조세열사무총장님이 실무자들과 함께 스님을 방문해서 해방 70년을 맞이하여 준비한 국제학술심포지엄과 식민지역사박물관 건립에 대해서 의논하고 조언을 구하는 자리를 가졌습니다. nbsp 12시에는 북한문제 전문가와 최근의 북한 동향, 남북관계에 대해서 깊이 있는 대화를 나누셨습니다. 2시에 약속한 인도에서 오신 현동화 회장님께서 지방에 가셨다가 약속시간에 오실 수 없다고 하셔서 스님께서는 모처럼 시간을 내어 밀린 원고 교정업무를 보셨습니다. nbsp nbsp 저녁 7시에는 노원 구민회관에서 법륜스님의 즉문즉설이 있었습니다. 갑자기 날씨가 한여름처럼 무더워지고 근로자의 날로 황금연휴임에도 불구하고, 800석의 좌석이 청중들로 가득차고 넘쳐 일부 대중들은 복도에 앉기도 하였습니다. 대중들은 6시부터 입장이 가능함에도 오랫만에 노원을 찾은 스님을 뵙기 위해서 일찌감치 줄을 서서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nbsp nbsp nbsp 스님께서는 강연전에 김성환 노원구청장님과 잠시 만나 인사를 나누었고 김성환 노원구청장님께서는 오늘 저녁 7시에 있는 연등측제에 참석해야 해서 시작 10분전에 구청장님의 인사말씀이 먼저 있고 곧바로 강연을 시작하였습니다. nbsp nbsp 스님께서는 강의 시작 전에 최근 스님의 근황에 대해 가볍게 나누셨습니다. 1월 인도, 라오스 등을 방문하면서, 그 나라 스님들은 낮 12시가 넘으면 밥을 먹지 않기 때문에 동남아 지역에 있는 동안 스님께서도 저녁을 드시지 않았는데, 그 이후로 계속해서 저녁을 먹지 않고 계신다고 합니다. 그리고 청중들에게 말씀하시기를 “오늘은 몸을 위한 저녁보다는 우리들의 마음을 위해 법문으로 저녁을 배부르게 드세요”라며 유쾌하게 말씀하셨습니다. nbsp nbsp 오늘도 역시 많은 청중들이 스님께 삶의 어려운 고민들을 나누었습니다. 총 8명이 질문하였습니다. 남편과의 결혼생활을 저울 달아보니 손해 본 것 같은데, 어떻게 하면 친구같은 남편으로 대할 수 있는지 묻는 분, 본인은 어렸을때 인간관계가 어려웠는데 아이는 어린이집에 보내야 할지, 집에서 키워야 할지 고민인 분, 폭식하는 습관이 있는데, 단식도 해 보고 108배도 해 봤지만 잘 고쳐지지 않는다는 분, 남자친구와의 결혼 문제로 어머니와 갈등이 있으신 분, 어려서부터 심장이 좋지 않고 뇌경색 등으로 건강이 안 좋아져 걱정이 많고 극도로 불안하다는 분, 세 아이를 키우며 겪었던 어려운 일들을 글로 쓰고 싶은데 유명한 작가가 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묻는 분, 남편과 두 딸에게 막말하는 아내와 이혼하고 싶은데 아이들 때문에 어떻게 해야 할 지 고민이라는 남성분, 아이 둘을 키우면서 파트타임으로 일하는데, 열등감으로 정규직이 되고 싶어 준비중이며 어떻게 하면 즐겁게 할 수 있는지 묻는 분,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은데 무기력하게 사는 것이 맞는지 묻는 분까지, 각자의 고민들을 스님과 허심탄회하게 나누고 해법을 찾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nbsp 그 중 한 질문자에 대한 스님의 말씀을 전합니다. nbsp nbsp “그저께 안양에서 스님을 뵈었으나, 질문을 못 드려 여기까지 오게 되었습니다. 저와 두 딸에게 막말하는 아내 때문에 이혼을 결심 중입니다. 중1, 고1의 두 딸이 있는데 이혼할 마음을 먹었으나, 딸들이 아직 어려 이혼절차를 언제 진행하는 게 좋을지 여쭤봅니다.” nbsp “막내가 중1이면 몇 살이죠?” nbsp “14살요.” nbsp “6년 후에 하세요.” nbsp “그런데 아내가 저뿐만 아니라 아이들에게도 똑같이 막말을 합니다.” nbsp “엄마가 자기 딸에게 그러는 건 간섭하지 말고 그냥 두세요.” nbsp nbsp “제 딸이기도 합니다. 스님께서는 늘 자녀가 성인이 될 때까지는 부모가 책임져야 한다고 하셨습니다. 애들이 엄마한테 상처를 받는 걸 보면서 이게 제대로 된 양육인지 의문이 듭니다. 아이들이 상처받는 걸 보면서도 기다려야 되는 것인지 잘 모르겠습니다. ” nbsp “애들한테 물어보세요. 엄마가 막말하는 데 아빠가 가만히 있는 것이 좋은지? 아니면 엄마가 막말할 때 그렇게 못하게 한다고 엄마랑 아빠랑 싸우는 게 좋은지? 아니면 엄마가 막말한다고 엄마, 아빠가 이혼하는 게 좋은지?” “물어봤으나 애들이 엄마한테 잡혀 있어서 자기 의사표현을 잘하지 못합니다.” nbsp nbsp “아이들이 의사가 없다는 건 다른 선택보다는 그래도 지금 상황이 낫다는 거예요. 일본이 한국침략에 대회 사과하지 않는다고 외교 관계도 끊고, 교류도 단절하는 게 좋아요? 비록 그렇게 하더라도 외교관계를 맺고, 교류하는 게 좋아요? 일본이 바뀌지 않는 것이 현실이라면, 그런 일본하고라도 외교 관계를 맺는 게 낫기 때문에 이 정도 유지되는 것입니다. nbsp 엄마가 막말하는 게 아이들에게는 물론 좋지 않죠. 하지만 이게 현실이고 아내를 고칠 수 없으니 선택해야 해요. 아내를 고치면 좋지만 현실적으로 고칠 방법이 없습니다. nbsp 그런데 선택하라고 하면 ‘그래 못살겠다. 이혼한다.’ 이렇게 선택하는데, 그러면 나는 좋을지 모르지만 아이들 입장에서는 그렇지 않습니다. 엄마에게 욕 좀 먹는 게 나은지, 이혼한 엄마와 사는 게 나은지, 아빠가 욕 못하게 하다가 부부 싸움하는 게 좋은지를 아이들에게 선택하라고 하면 아이들은 부모가 이혼하는 것 보다는 아버지는 좀 가만히 있고, 엄마 혼자 떠들도록 놔두는 게 낫다고 생각할거예요. 그런데 아이들이 ‘아빠, 이런 엄마랑 살지 말고 이혼해요.’ 하면 20살이 안되었더라도 이혼해도 됩니다. 지금도 이혼할 수는 있지만 그럴 경우 아이들을 방치하는 게 됩니다. 질문자가 선택할 문제입니다. 이혼하면 아이들도 포기해야 합니다.” nbsp nbsp “잘 알겠습니다. 애들 때문에 이혼하려는 건 아니었습니다. 아내가 막말하는 것이 싫어서 차라리 죽는게 낫다는 생각까지 들자, 이혼이라도 해야겠다는 고민이 들었습니다.” nbsp “그건 이해됩니다. 하지만 질문자가 지금 도망가야겠어요? 아니면 자식을 보호해야겠어요? 엄마가 아이들에게 막말하면 질문자는 신경 쓰지 마세요. 간섭하면 오히려 싸움이 커져요. 엄마에게도 아이들에 대한 권리가 있어요. nbsp 만약 엄마가 폭력을 쓰면 경찰에 신고하면 됩니다. 제 자식이라도, 제 아내라도 때리면 안 됩니다. 때리는 것은 형법의 문제입니다. ‘아내가 아이들 때린다.’ 고 경찰에 신고하세요. 이때, 애들이 엄마를 용서해 주라고 빈다고 봐주면 안됩니다. 가족문제를 넘어서서 사회정의의 문제이기 때문입니다. 아이들이 학교에서 친구들에게 폭력을 쓰는 일이 발생할 때도 엄마가 봐주면 안됩니다. 선생님이 말리더라도 경찰에 신고해야 합니다. nbsp 사람이 막말할 때 듣기는 힘들지만 그 사람 입장에서는 이해됩니다. 스트레스가 있거나, 어렸을 적 마음에 상처가 있기 때문일 것입니다. 그런데 질문자가 6년을 억지로 참으면서 살면 스트레스 받아 죽을 수도 있어요. 그러니 이렇게 기도하세요. nbsp nbsp ‘여보 얼마나 답답하면 제 자식, 제 남편한테 막말을 할까.’ 하고 아내를 위해 기도해줘야 합니다. 아내도 막말을 하고 싶어서 하는 것이 아니라 자기 자신이 컨트롤 안돼서 그런것입니다. 아내의 아픔을 조금이라도 이해한다면 ‘부처님, 저 여자 가슴이 얼마나 답답하면 저럴까요.’라고 기도하면 앞으로 6년을 편안하게 살 수 있고, 이혼하더라도 편안하게 살 수 있습니다. 그런데 얼굴 표정을 보니 이렇게 기도할 것 같지 않네요. 지금 얘기대로 기도해야 명대로 살 수 있어요.” nbsp 스님께서는 마지막으로 행복의 이르는 길에 대한 말씀으로 강의를 마무리해주셨습니다. “진리로 가는 길을 너무 어렵게 생각하면 안됩니다. 괴로움이 해결되려면 지혜가 있어야 합니다. 우리가 지금 이렇게 모여서 함께 고민을 나누는 것은 지혜를 증득하는 것입니다. 지혜가 증득되면 고민이 해소됩니다. 그런 관점을 가지고 모두 행복하시기 바랍니다. 감사합니다.” nbsp 스님의 답변을 통해서 우리의 삶이 늘 내 입장에서만 바라보는 욕심에서 비롯됨을 다시금 깨닫는 시간이었습니다. 이렇게 오늘도 스님의 즉문즉설은 웃음과 공감, 지혜로 꽉 찬 시간이었습니다. nbsp nbsp 강연 후 사인회를 가진 후 노원구에 소속된 4개 법당의 자원활동가들과 기념촬영을 한 후 스님께서는 경주로 이동하셨습니다.

2015.05.02. 22,123 읽음 댓글 11개

2015.4.30. 새터민과의 즉문즉설. 평화리더십아카데미 강의

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스님께서는 아침 기도 후 서울공동체 대중들과 함께 발우공양을 하시면서 그동안 문경행자반장과 인도에서 활동하다가 이번에 회향하는 최동호법우님의 노고를 치하해주시면서 수행자의 자세에 대해 말씀해주셨습니다.nbspnbspnbspnbspnbspnbsp“오늘 회향한다, 군대 간다, 외국 간다, 오늘 입국했다 그러면 사람은 늘 특별한 날로 생각해서 마음이 긴장되거나 해이해집니다. 그러나 우리는 늘 똑같은 날을 살고 있습니다. 그때그때 의미를 부여해 부를 뿐, 매일 같은 날입니다. 최동호 법우님이 오늘 회향 한다해서 특별한 날이 아니라 한결같은 마음이어야 합니다. 회향이라는 이름이 붙든, 머리를 깎든, 한국에 살든, 인도에 살든 마음이 한결같아야 합니다. 세상사람들이 볼 때 머리 모양이 바뀌어서 ‘속퇴했구나, 입재했구나, 들어갔구나, 나왔구나’ 하는 것은 남이 보는 것이고 수행자는 그런것에 구애받지 않고 한결같아야 합니다. nbspnbsp행자님들도 오늘 아침에 농사지어라 하면 수행의 대상이 농사이고, 오늘 밥해라 하면 수행의 대상이 밥하는 거고, 밖에 가서 봉사해라하면 수행의 대상이 봉사하는 것이지요. 이때 ‘내가 밥하는 사람이가? 내가 농사꾼이가?’ 하는 그런 마음은 수행자가 아닙니다.nbspnbspnbspnbspnbspnbsp그러나 실제는 마음이 한결같지가 않습니다. 그러니 한결같은 쪽으로 나아가야 합니다. 수행자는 늘 일상이 수행이어야 합니다. 특별한 날이 아닙니다. 법문을 해야 하는 쪽이 되면 하는 거고 들어야 하는 쪽이 되면 들으면 됩니다.nbspnbspnbspnbspnbsp그런데 우리는 그렇지 않지요. 이런 일하면 수행이라고 하고, 저런 일하면 수행이 아니라 하지요. ‘마음에 분별심이 일어나면 중생이고, 분별심이 가라앉으면 보살이다.’는 관점으로 정진해야 합니다. 사람들은 천당가려고 하는데, 천당이 따로 정해진 것이 아니라 마음이 한결같으면 그 곳이 천당입니다. 그런 관점으로 정진해야 합니다.”라며 수행자는 일상에서 주어진 일이나 상황에 한결같이 나아가야 한다고 말씀해주셨습니다.nbspnbspnbspnbspnbsp“정해진 계율을 다수가 반복적으로 지키지 않을 때는 타성화 되어서 그런것인지, 제도적인 문제인지를 살펴보고 바로 잡아서 고치도록 개선해야 합니다. 만성화되면 고치기가 어렵습니다. 또, 환경이나, 제도등으로 인해 개선하기 어렵다면 제도를 바꿔줘야 합니다. 평화재단 활동가들이 정토법당에 와서 저녁 예불하고 가면 업무에 효율적이지 않습니다. 제도를 바꿔서라도 가능하면 주어진 계율을 지킬 수 있도록 해야 합니다. 또, 다수가 제대로 지키지 못하는 계율이 사실은 중요한 것이 아니라면 과감하게 없애도록 해야 합니다. 꼭 지켜야 할 것이라면 다른 일을 포기하더라도 모두가 지킬수 있도록 주변 여건을 마련해줘야 합니다. 이런 것들을 검토해서 대중대표는 제도 개선을 할 수 있도록 논의해 주시기 바랍니다.”라며 계율이 형식적으로 있지 않고 우리 스스로 지킬 수 있도록 제도 등을 보완하는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고 말씀해주셨습니다.nbspnbspnbspnbspnbsp그리고 스님께서 요즘 서울 정토회관, 신관, 별관, 평화재단등을 보시면서 “전반적으로 공간을 너무 넓게 쓰고 있는 것 같아요. 우리도 자본주의가 갖는 소비주의를 계속 추종해서 따라가고 있거든요. 한 번 넓게 쓰면 좁히는 게 어렵습니다. 공간을 과감하게 좁혀서 수행장소로 쓰도록 해야합니다. nbspnbspnbspnbspnbsp 원칙을 정해서 검소하고 아껴쓰고 효율적으로 쓰도록 스님 당대에 바뀌지 않으면 스님이 없으면 겉으로만 수행자로 남을 수 있습니다. 정토회가 규모가 커지면서 사무실등을 넓혀 나가는 경우가 있습니다. 일부러 좁게 지저분하게 하라는 것이 아니라 제가 볼 때 이렇게 점점 넓혀 나가기 시작하면 앞으로 바로 잡기 어렵습니다.nbspnbspnbspnbspnbsp대중의 의견은 세속적 욕망을 가지고 요구하기 때문에 이걸 들어주기 시작하면 수행의 문이 무너지기 시작합니다. 자본주의에 살아도 자본주의에 물들지 않고, 소비주의에 살아도 소비주의에 물들지 않는다는 것은 거창한 주장인데 실제로는 그렇지 않다면 원칙을 점검해서 바로잡았으면 좋겠습니다.”라며 우리도 소비주의에 대해 점점 헤이해지고 있는 점을 바로 잡아주셨습니다.nbspnbspnbspnbspnbsp스님께서는 오늘 저녁 법당에서 송코 탈란딕 부족과 정토회원들이 준비하는 놀이 한마당에 대해서 송코 탈란딕 부족에게 우리의 전통적인 것들을 많이 보여줄 수 있도록 다시한번 당부하셨습니다.nbspnbspnbspnbspnbsp발우공양을 마치자마자 스님께서는 바로 평화재단으로 이동하셔서 기획위 회의에 참석하셨습니다. 11시까지 진행된 기획위 회의를 마치고 12시에 찾아온 손님과 점심을 겸한 만남이 있었습니다.nbspnbspnbspnbspnbspnbsp이어 2시부터는 서초법당에서 수도권 지역 새터민을 위한 즉문즉설이 있었습니다.nbspnbspnbspnbspnbsp새터민을 대상으로 법당에서 즉문즉설이 진행되기는 이번이 처음입니다. 즉문즉설에는 새터민 36명과 봉사자 20여명, 일반 정토행자 30명 등 총 90여명이 참여했습니다. nbspnbspnbspnbspnbsp법륜스님과의 즉문즉설 외에도 다양한 부대행사가 준비되었습니다. 엄마를 따라온 유아 20여명을 대상으로 lt사이숲 유아교실gt이 신관 3층에서 열렸고, 즉문즉설 직후에는 그림 심리치료인 lt마그마 힐링 체험gt과 풍성한 lt새터민 100냥 장터gt가 이어졌습니다.nbspnbspnbspnbspnbspnbspnbsp법륜스님께서는 행사 시작 전“서로 가까이 앉아 눈을 마주 보며 이야기 할 수 있도록” 자리 배치를 새롭게 하시고 새터민들에게“여기는 절이라서 불교 의식이 있는데, 불편하면 따라하지 않아도 된다”고 하시며 편안하게 참여할 수 있도록 배려해주셨습니다. 그리고 즉문즉설을 처음 접하는 분들을 위해 용어부터 친절하게 정리해 주셨습니다. nbspnbsp65279nbsp “즉문즉설은 여러분들에게 인생의 정답을 주는 게 아니라 자유와 행복으로 인도하는 진리의 말씀입니다. 여러분들이 살면서 생긴 큰 어려움을 여기에서 함께 나누다 보면 답답하던 마음이 풀려버립니다. 둘이서 얘기하듯이 이 자리에서 의문점을 얘기하면, 그 의문점을 해결할 수 있는 길을 찾아가는 것을 즉문즉설이라고 합니다.nbspnbspnbspnbspnbspnbspnbsp‘남편이 술을 많이 먹어요’하면 남편이 술을 안먹도록 해주는 법을 알려주는 게 아니예요. 남편이 술을 먹어도 내가 괴롭지 않은 법이 있어요. 그것은 그 사람의 인생이고, 내가 그 사람 때문에 괴로울 필요가 없어요. 그 사람 때문에 내가 괴롭지 않은 것, 그것이 진리로 가는 길이예요. 천당이나 지옥 가는 얘기가 아니고, 지금 내가 겪고 있는 고뇌와 의문이 해소되는 길이예요. nbspnbspnbspnbspnbsp 북쪽에서 살다가 남쪽에 오신 분, 지금 행복해요? 지금 더 행복한 사람 손들어 보세요. 북쪽에서 더 행복했다는 사람 손 들어보세요. 그럼 북쪽보다 남쪽이 행복한 조건을 많이 갖추었다는 거예요. 그러면 남쪽에 사는 사람은 다 행복할까요? 그렇지 않지요. 그렇다고 북쪽에 사는 사람은 다 괴로울까요? 남쪽에 사는 사람도 괴로운 사람이 있고, 북쪽에 살아도 행복한 사람이 있어요. nbspnbspnbspnbspnbsp제가 어떤 한 분에게 10만원 주면서 ‘저녁 사드세요’ 하면 기분이 좋겠지요? 스님 참 좋은 사람이지요? 그런데 그 옆 사람한테 100만원을 주면, 10만원 받았던 사람은 갑자기 기분이 나빠져요. 손해를 본게 없는데도 기분이 나빠져요. 왜 그럴까요? 이게 상대적 빈곤때문이예요. 북쪽은 지금 절대적 빈곤에 처해 있어서 양식, 약, 옷을 주면 빈곤문제가 해결됩니다. 그런데 상대적 빈곤 문제는 많이 준다고 해결이 안돼요. 차등을 좁혀야 해요. nbspnbspnbspnbspnbsp북쪽에 있을 때는 남한에 있는 사람들에게‘니가 괴로울 일이 뭐가 있노?’하는데, 그렇지 않아요. 남한에 사는 사람들도 괴로운 사람 많아요. 처음엔 한국 왔을 때는 천국 같았을 겁니다. 하지만 살아보니까 그 지옥이나 이 지옥이나 비슷하죠?. 그래서 새터민들이 또 천국을 찾아 한국을 떠나 영국이나 캐나다로 가는 겁니다. nbspnbspnbspnbspnbspnbsp중국 장백 국경변에서 북한 혜산에서 넘어온 여자 분을 두 번 만나 지원해준 적이 있는데, 그 뒤로 만나지 못하다가 대전에서 만났어요. 보자 마자 스님을 껴안고 우는 거예요. 그러다 또 못봤는데 캐나다 토론토에서 강의하는데 거기와 있는 거예요. 그래서 어떻게 된 거냐고 하니까 애 공부시키려고 왔대요. 의지의 한국인이죠. 미국이나 캐나다 가면 북한에서 왔다고 차별 안받죠. 당분간은 편해요. 그런데 조금 살아보면 또 힘들어요. 스위스에 30년 살아도 스위스 사람이 아니고, 한국 돌아오면 한국 사람도 아니고 영원한 이방인이예요. 작년 여름부터 넉달간 해외 다녀왔는데 교민의 심리가 불안해요. 문화가 다르니까 심리가 불안하고 돈에 대한 집착이 강해져요. 아는 사람이 없으니까 믿을 건 돈밖에 없어요. 그러니 물건에 대한 집착이 굉장히 강합니다.nbspnbspnbspnbspnbspnbspnbsp그렇다고 고향에 산다고 다 좋냐면 그것도 아니예요. 고향은 안온한 반면 감옥이예요. 온갖 잔소리하는 사람이 많아요. 타향에 가면 자유로운 반면 외로워요. 그래서 한국에서 외국 가면 처음엔 좋은데 좀 있으면 외로워지고 그래서 다시 한국으로 돌아오면 구속하는 게 많아서 또 외국으로 가게 됩니다. 절대적 빈곤은 부족한 것을 채우면 해결되는데, 마음의 행복은 환경이 바뀐다고 해결되지 않습니다. 그래서 조금 다른 차원의 공부를 해야 됩니다.”nbspnbspnbspnbspnbspnbspnbsp스님께서는 새터민들의 이해를 돕고 편안하게 질문할 수 있도록 이렇게 상세하게 설명을 해주셨습니다. 스님의 설명 후 바로 질문으로 이어졌습니다. 질문자들은 모두 젊은 여성이었는데, 씩씩하고 진솔하게 어려움을 털어놓았습니다. nbspnbspnbspnbspnbsp“3살 난 딸을 가진 엄마로 사회생활을 하고 싶은데, 시부모님은 딸이 6살이나 7살 될 때까지 하지 말라고 합니다. 고부간에 갈등 없이 하고 싶은 것 하며, 편하게 사는 법은 없을까요?”nbspnbspnbspnbspnbspnbspnbsp“사람은 입장에 따라 생각이 조금씩 달라요 그래서 고부간이나 부부간에 갈등이 없다는 것은 불가능해요. 그러나 다르다는 것을 인정하면 갈등이 적어져요. 내 생각대로 하면 갈등이 없을 수는nbspnbsp없습니다. 직장을 못 다녀서 좀 불만인 것 같은데, 요즘 결혼해서 집에 있어도 되는 집은 열 집에 한 집도 안돼요. 다른 사람들은 자기가 애를 키우고 싶어도 직장 때문에 못하는 경우가 많은데 자기는 직장을 못나가서 걱정이네요. nbspnbspnbspnbspnbsp아이는 세 살 때까지는 엄마가 돌봐야 해요. 요즘 아이를 보육원에 맡기면 학대한다는 말이 많죠. 엄마도 자기 자식이 말 안들으면 때리죠. 그런데 결혼도 안한 선생님이 아이들 9명씩이나 키우면nbspnbsp실제 제대로 키우기 어렵고, 그런 곳에서 받는 심리적 상처가 큽니다. 어릴 때 받은 상처는 치유할 수 없어요. 그래서 3살 때까지는 엄마가 키워야 해요.‘세 살 버릇 여든까지 간다’이 얘기 들어봤죠?nbspnbspnbspnbspnbsp모든 어린 아이는 엄마로부터 돌봄을 받아야 합니다. 엄마가 그 책임을 안 지려면 아기를 안 낳아야 해요. 대부분 한국의 직장 다니는 여성은 그렇게 할 조건이 안돼요. 이 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하려면 국가가 엄마들이 아이를 키울수 있도록 유급휴가를 줘야 합니다. 그래야 아이들의 불안한 심리에서 오는 정신질환을 막을 수 있습니다. 지금 대학생들 20가 정신질환이예요. 엄마가 아이가nbspnbsp어릴 때는 안 돌보고, 아이가 다 성장해서 과잉보호를 하기 때문에 그래요. nbspnbspnbspnbspnbsp최소 3살 때까지는 엄마가 직접 키우고, 초등학교 들어갈 때까지도 키우면 좋지만 반드시 그런 것은 아녜요. 4살 때부터는 떨어져도 상처가 덜 해요. 초등학생때는 70정도 돌보고, 중학생은 50, 고등학생은 30 돌보고, 대학 들어가면 집에서 쫓아내야 해요. 이게 제일 건강한 방식이예요. 이게 잘 안되어 문제가 많습니다. nbspnbspnbspnbspnbsp질문자는 시집을 굉장히 잘 갔어요. 다들 돈 벌어 오라고 내보내는데, 이런 질문은 한국에서 처음 받아봤어요. 그래서 감사기도를 해야 합니다. 1년 후에 엄마가 직장 다니고 싶으면 아이를 유치원에 보내면 돼요. 초등학교 보내고 나면 직장 다녀도 됩니다. 한국 사람은 거꾸로 해요. 어릴 때는 남한테 맡겨 놓고, 아이가 커서 문제 생기면 직장 그만두고 돌본다고 아이랑 매일 싸워요. 나중에 자식 돌본다고 애쓰지 말고 지금 잘 돌보고 나중에 일하세요. 시어머니가 직장가지 말고 아이나 돌봐라고 하면 ‘아이고 어머니 감사해요. 놀기가 미안해서 그랬는데 봐주시니까nbspnbsp정말 고맙습니다’하면 됩니다.”nbspnbspnbspnbspnbspnbsp두번째 질문자는 중국인과 결혼해 17살, 13살, 3살 아이를 둔 엄마입니다. 남편과 큰 아이 둘이 중국에 있는데 이중국적자입니다. 둘째 아이가 비자 없이 중국을 가는 바람에, 엄마를 보고 싶어 도 한국에 돌아오지 못해 속이 탄다고 합니다.nbspnbspnbspnbspnbspnbspnbsp스님은 여러 차례 질문을 주고받으신 후에 두 개의 국적 중 하나를 포기하고 교통정리 하던가, 두 쪽 다 살려놓고 양다리 걸치는 방법이 있는데, 전문적인 것은 좋은벗들과 얘기해서 국적관련 변호사에게 상담해보라”고 조언해 주셨습니다. nbspnbspnbspnbspnbsp세 번재 질문자는 한국에 온지 7년 된 여성으로 “한국에 와서 북한의 가족들과 연락이 닿았는데, 가족들이 계속 돈을 보내라고 합니다. 처음에는 보내줬는데, 계속 돈을 요구하니까 부담스럽고 여기에서 벗어나고 싶은데 어떻게 했으면 좋겠습니까”라고 질문했습니다.nbspnbsp nbspnbspnbspnbspnbsp“계속 좀더 보내줘야죠. 질문자도 북쪽에 살아봤잖아요. 그곳이 얼마나 살기 어렵고 돈이 필요한지. 사람들의 심리라는 것이 초창기에는 한달에 100불만 있어도 살만하잖아요. 그런데 200불, 300불 점점 더 많이 보내면 북쪽 가족들은 거기에 맞춰서 소비를 하게 되요. 거기서는 한국에는 돈이 공짜로 생기는 줄 알아요. nbspnbspnbspnbspnbsp처음에 길을 잘못 들인거예요. 여기도 살기 어렵다고 100불만 보내줬으면 부담이 안되는데, 질문자 얘기 들어보니 가족들에게 마음이 많이 아파서 왕창 보내준거 같네요. 그렇게 돈 받아서 목에 힘주고 주위에 자랑하고 살아왔는데 지금 새삼스럽게 줄이려니까 어렵죠. 아무리 돈 없다고 해도 북쪽 가족들은 안 믿을거예요.nbspnbspnbspnbspnbsp방법은 두 가지입니다. 첫 번째, 적절한 금액을 정해서 더 달라고 해도 정기적으로 그 금액만 보내는 방법이 있고, 두 번째, 6개월 정도 연락 안하고 끊었다가 그 다음에 100불 정도 주면 굉장히 고맙게 여겨요. 형편이 되면 좀더 주면 좋아요. 형편이 안 되면 고민할 필요 없이 형편되는 만큼만 주면 됩니다. 그것으로 가슴 아파하면 죽을 때까지 가족에 매어 살게 됩니다. nbspnbspnbspnbspnbspnbsp내가 낳은 자식을 돌보지 않으면 나쁜 사람이예요. 어린 자식이 북한에 있어서 돌보지 않으면 나쁜 사람이지만 그것도 20살이 넘으면 안 도와줘도 돼요. 가족을 적당히 도와주는 건 좋은데, 부담이 되면 도와주지 않아도 됩니다.”라며 스님께서 방법을 알려주니 질문자는 마음으로 결정했는지 ‘감사합니다’고 인사를 하면서 앉았습니다. nbspnbspnbspnbspnbsp네번째 질문자는 한족 남편과 함께 한국에 온지 2년 되었고 5살 얘기가 있는 여성으로 “남편은 한국말도 모르고 적응을 못해 직장생활을 못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제가 일을 하고 있는데, 일을 나가면 남편이 불안해하며 전화를 자주 합니다. 그렇게 1년을 살았는데 배려조차 없어서 이혼을 결심했습니다. 이혼을 안해 주어 좋은벗들에서 변호사 소개받아 이혼소송을 하고 있습니다. 남편에게 집을 나가라고 해도 나가지 않아, 제가 아이를 데리고 1달 반 동안 나와서 생활하다 어제 집으로 들어갔습니다.”며 어떻게 해야 할지 물었습니다. “질문자가 북쪽에서 중국으로 갔을 때는 그 사람이 유리한 조건이었고 내가 불리했잖아요. 그는 자기 나라 말도 되고 직장도 구할 수 있고, 그가 유리할 때는 자신감이 있는 거예요. 그런데 한국에 오니까 질문자가 유리해지고, 남편은 말도 안 통하고 불리해진거예요. 그러니 남자로서 열등의식이 생기는 거예요. nbspnbspnbspnbspnbsp중국에 있을 때는 남편 처지에서 결혼하기 어려웠는데, 질문자가 북쪽에서 와서 갈 곳이 없으니nbspnbsp쉽게 결혼할 수 있었어요. 이런 결혼생활이 중국에서는 유지가 되었지만, 다른 나라에 오면 북쪽에서 온 여자가 중국의 남편보다는 수준이 높아요. 북한에서 오는 여성은 주로 배우고 똑똑한 데, 중국에서 북한 여자와 결혼하는 남자는 중국내에서도 좀 모자라는 남자가 대부분입니다. 서로 격이 좀 안 맞아요. 그러니 한국에 와서는 남편이 질문자에게 잘 해줘도 데리고 살까 말까한 거죠. 그러니 남자는 자존심이 상해서 자꾸 어긋나는 거예요. 남편을 이해해야 합니다.nbspnbspnbspnbspnbsp지금 이 사람을 쫓아내면 당장 살기는 좋지만, 아이 아빠잖아요. 나중에 아이한테 할 말이 없어져요.‘내 어려울 때 당신 만나서 참 도움 많이 받았습니다’하고 감사기도를 하세요. 이혼신청 한 것은 그대로 진행하고, 그러나 아침마다 늘 감사기도를 하고 잘 해줘야 합니다. 빚 갚는다고 생각해야 합니다. 내가 처음 중국에 와서 어려울 때 그 사람이 도와줬잖아요. 그러니 조건을 따지지 말고 남편이 2년간 아무것도 안해도, 밥을 해 먹인다는 마음으로 빚을 다 갚아야 후회가 없어요. 그래야 나중에 아이한테도 죄의식이 안 들어요. 자꾸 고맙다고 해야 아이가 나중에 물어도 할 말이 있어요. 아빠가 나쁜 사람이라고 하면 아이가 자긍심이 없어져요. 그러면 아이가 나빠지게 됩니다. nbspnbspnbspnbspnbsp그 사람도 얼마나 힘들겠어요? 보살펴주는 게 필요해요. 그 사람도 나빠서 그런 게 아니예요. 불안해서 그런거예요. 아이 아빠라는 이유만으로라도 잘 해 줄 이유가 됩니다.nbspnbspnbspnbspnbsp그리고 이혼소송은 그대로 진행하고 남편이 비자 연장해달라고 하면 ‘예 알았어요’ 하면 돼요.nbspnbsp나중에 비자 연장할 때가 되어서 남편 하는 것을 보고 결정하면 됩니다. 잘 해주되 냉정해야 합니다. 도망다니면서 남편을 두려워할 필요는 없습니다. 꼭 기도를 해야 합니다.‘고맙습니다. 감사합니다. 당신이 있어서 여기까지 왔어요’하면서 남편을 잘 보살펴 주세요. 옛날 도움 받았던 생각을 하면서 남편에게 고맙다고 기도해야 내 맘의 상처를 치유할 수 있어요.”라며 스님께서 방법을 알려주셨습니다.nbspnbspnbspnbspnbsp다섯 번째 질문자는 북한 남편과 9개월 아이가 있는 25세 주부입니다. 임신 중인데 남편이 집안일을 도와주지 않아 너무 힘들다고 했습니다. 남한 남자는 집안 일을 도와주는데, 어떻게 하면 도움을 받을 수 있는지 물었습니다. nbspnbspnbspnbspnbsp“질문자는 지금 미국 남자하고 결혼해 놓고‘왜 한국말 못하느냐?’하는 것과 같아요. 그 남자 문제가 아니예요. 남편이 안 도와준다고 자꾸 미워하면, 남편은 안 바뀌고 아내는 심리가 불안해서 나중에 아이가 우울증에 걸려요. 그러니까 항상 고맙게 생각해야 해요. 그래야 내 심리가 안정이 돼요. 그래도 오늘 안 죽고 들어왔잖아요. 엄마 심리가 편안해야 아이가 정신적으로 안정이 돼요. nbspnbspnbspnbspnbsp남편에게 도와달라는 것을 포기해야 해요. 남편이 다른 좋은 점도 있잖아요? 좋은 점을 찾아서 고마워 해야 해요. 남편이 바뀌려면 30년쯤 지나야 해요. 남자는 자기가 여자 말을 들으면 진다고 생각해요. 머리로는 도와줘야 된다고 생각해도 행동은 잘 안돼요. 제가 북한 남자들에게 물어봤더니 도와줄 마음이 전혀 없는 건 아니에요. 부끄러워서 못 도와준다고 해요. 그래서 남이 볼까봐 아무도 없을 때 조금 도와주고 그런다고 합니다. 우리 어릴 때 시골에서도 그랬어요. 공처가라고 소문날까봐 잘 못 도와줬어요. 그러니까 가사 일에 대한 남편 도움은 포기해야 돼요. nbspnbspnbspnbspnbsp지금 남편을 바꾸려면 질문자가 이야기해서는 안바껴요. ‘깨달음의장’수련에 가면 남자들이 조금 바껴요.”nbspnbspnbspnbspnbspnbsp마지막 질문자는 “남편은 북한사람으로 한국에 온지 10년 된 30대 중반입니다. 남편은 밥도 잘 하고 집안 일 잘합니다. 남편과 갈등이 생길 때 나 때문이라고 생각하려고 하는데, 그게 실제로는 잘 안되고 화를 억눌려서 분노로 표출됩니다. 그리고 스님의 책을 읽고 아이에게 좋은 엄마가 되고 싶습니다”고 했습니다. nbspnbspnbspnbspnbsp“우리가 서로 다르다는 것을 인정해야 해요. 저 사람 입장에서는 그럴 수도 있겠다는 이해가 있어야 해요. 그러면 화가 일어나지 않습니다. 이것은 이성적으로는 되는데 무의식적으로는 화가 팍 올라와요. 이때는 참지 말고‘또 내가 옳다고 주장하는구나’,‘내가 내 관점에 집착하는구나’ 하며 그 상태를 자각하는 거예요. 참회를 한다는 것은 내가 잘못 했고 네가 잘 했다는 것이 아닙니다. 본래 잘잘못이 없고 각자 다르기만 할 뿐인데, 내가 옳고 상대가 잘못됐다고 생각한 것에 대한 참회입니다.nbspnbspnbspnbspnbsp이렇게 자각을 하면 당장 해결은 안되더라도 시간이 지나면 점점 화나는 것이 약해져요. 참으면 나중에 폭발합니다. 참으면 세상에서는 좋은 거지만 수행은 아닙니다. 참지 말고‘내가 내 기준에 사로 잡혀있구나’하고 자각해야 합니다.‘화내면 안돼’라고 하지 말고,‘화가 나네’라고 자각합니다. 그러면 점점 옅어지게 됩니다.”nbspnbspnbspnbspnbsp이어서 스님은 좋은 엄마가 되고 싶다는 두 번째 질문에 대해 답을 하셨습니다. nbspnbspnbspnbspnbsp“부부가 싸우면 아이가 왜 불안증이 되냐면, 엄마가 아빠를 욕하면 아이한테는 엄마 말이니까 아빠가 진짜 나쁜 사람이 되고, 아이는 나쁜 사람의 아이가 되어 자긍심이 없어지게 됩니다. 그리고 아빠가 나쁜 사람이 아니면 엄마가 거짓말을 한 것이 됩니다. 그러면 아이가 정신분열이 되어버립니다. 그래서 아이를 더 사랑하는 엄마가 희생을 할 수 밖에 없어요. 남편이 뭐라 하면 ‘네 알겠습니다. 네네’해야 해요. 남자에게 숙이라는 것이 아니라 아이 엄마로서 아이 아빠에게 숙이라는 것입니다. 이렇게 자기가 행복하게 살면 애는 저절로 행복해지게 됩니다.nbspnbspnbspnbspnbsp25개월된 아이를 어린이집에 맡겨두었다고 하는데, 직장을 그만둘 수 없는 경우는 끝나자 마자 애를 보살피고, 애한테 미안한 마음으로 행동하고, 항상 애가 가장 중요하다는 것을 새기고 있어야 합니다. 애기는 엄마로부터 첫 번째가 되기를 원할까요?. 동생한테 밀려나도 화가 나는데 돈 때문에 밀려나면 아이한테 사랑고파병이 생깁니다. 잠시 맡기고 금방 돌아오는 마음으로 갔다 오면 심리가 안정이 됩니다. 36개월까지는 그렇게 하세요”nbspnbspnbspnbspnbsp모든 질문에 대해 스님께서 길을 알려주시고는 참가한 청중들에게 “재밌었어요?” 하니까 청중들은 일제히 “네”하고 대답합니다. “어려웠어요?” 하니까 “아니요”라고 대답합니다. 이어서 스님은‘한국에서 사는 게 힘들고 힘들다보면 마음 깊이 무의식에 상처가 생긴다’면서 그림으로 심리치료를 하는 마그마 힐링 프로그램에 꼭 참석하시라고 다음 프로그램 소개하십니다.nbspnbsp 4시 30분에 즉문즉설을 마치고 단체사진 촬영이 있었습니다. 새터민 중의 상당수는 단체사진 촬영을 하지 않았습니다. 사진을 외부로 공개하지 않는다고 했지만, 그 동안의 상처로 인해 꺼려지기 때문입니다. 단체사진 촬영 후에는 스님과 함께 삼삼오오 자유롭게 사진촬영이 이어졌습니다. 어떤 분은 스님의 책을 준비해 와 사인을 부탁하기도 했습니다. nbspnbspnbspnbspnbsp이렇게 새터민 즉문즉설이 마무리 되었습니다. 새터민들의 표정은 한결 가벼워졌고, 봉사자들의 마음은 감동으로 물결칩니다. 앞으로 많은 새터민들이 스님의 가르침을 받기를 기원해 봅니다.nbspnbspnbspnbspnbsp스님께서는 6시 평화재단에서 여영학 변호사님과 만남을 가진 후 다시 7시 저녁예불과 송코 탈란딕 부족의 놀이 한마당에서 인사말을 해주셨습니다.nbspnbspnbspnbspnbspnbsp저녁 7시 30분부터는 평화재단 제12기 평화리더십아카데미에서 “갈등의 한국사회, 사회통합을 향한 길”이라는 주제로 강연이 있었습니다. 강의 6주차에 접어들면서 수강생들은 한층 더 편안하고 밝은 분위속에서 강의에 집중하였습니다. 강연 시작에 앞서 스님께서 사회통합과 관련해서 수강생 10여명에게 자신의 생각 또는 질문을 먼저 받았습니다. 수강생들의 질문을 통해 사회통합이 우리 사회에 얼마나 중요한 과제인지 알 수 있었으며, 다양한 문제의식들이 녹아져 있었습니다. 스님께서는 마지막 수강생의 질문에 대한 답변으로 강의를 시작하였습니다. nbspnbspnbspnbspnbsp그럼 먼저 수강생의 질문을 소개합니다. “우리사회에는 노사갈등, 빈부격차, 배운 사람과 배우지 못한 사람간의 갈등 등 다양한 갈등 있으며, 원인은 정의감 상실때문이라고 봅니다. 정의가 지켜지지 않는 이유는, 정의에 따라 살면 내가 손해 본다는 생각이 보편화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갈등을 줄이기 위해서는 개인이 희생하더라도 정의를 지키는 사람이 많아져야 하고, 우리부터라도 나와 다른 사람의 다양성을 인정하고, 나아가 자라나는 아이들에게 서로 다름을 인정할 수 있는 교육을 해야 할 것 같습니다. 스님 의견은 어떠십니까?”nbspnbspnbspnbspnbsp“그럼‘정의란 무엇인가’에 대해서 먼저 이야기 해봅시다. 정의는 보편적 가치에 토대를 두는 것입니다. 그러나 불교, 기독교, 유교, 자본주의, 공산주의 등의 가치는 특정 시간과 공간 그리고 집단 등에 제한되므로 특수가치라고 할 수 있습니다. 반면 보편적 가치란 나라가 다르거나 종교가 달라도 함께 공유할 수 있는 가치, 즉 인류보편적 가치라고 말합니다. ‘사람을 죽이거나 때리면 안 된다. 남의 물건을 뺏거나 훔치는 것은 안 된다. 상대방을 성추행하거나 성폭행하면 안 된다. 말로 남을 속이는 것은 안 된다. 술을 마시고 취해서 남에게 주정하면 안 된다.’와 같은 내용은 누구나 다 수용할 수 있고, 누구나 들어서 합당한 것으로 이러한 것들이 보편적 가치에 해당합니다. 정의는 누구나 동의할 수 있는 보편적 가치이기 때문에, 일정한 합의가 가능합니다. nbspnbspnbspnbspnbsp 그럼 보편적 가치를 추구할 때 그 기초를 무엇으로 둬야 할까요? 자연현상, 즉 생태윤리를 기준으로 해야 합니다. 자연 현상에는 없지만 인간의 행위가 좋아 보이면 그건 선이라고 말할 수 있고, 자연 현상에는 있는데 인간의 행위가 그 만큼 못 미칠 때, 즉 짐승보다도 못하다고 하면 그건 악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예를 들면 짐승은 새끼를 놓으면 종족보존의 본능이 있어 어미는 목숨을 걸고서라도 새끼를 보호합니다. 이것이 자연현상입니다. 하지만 엄마들 중 아이를 낳고 직장을 다닌다고 돌보지 않거나, 자식을 유기한다거나 하면 이는 자연현상에 어긋나기 때문에 악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그리고 짐승은 어미가 늙었다고 돌봐주지 않습니다. 그래서 자식이 늙은 부모를 돌보는 것은 선행이라고 할 수는 있지만 부모를 돌보지 않는다고 악한 것은 아닙니다. 이를 악행으로 보는 것은 유교윤리에 의한 것입니다. 또 짐승들은 색깔과 모양이 다르다고 해서 차별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인간이 피부색 다르다고 해서 차별하는 것은 자연현상과 맞지 않습니다. 그동안 우리가 말해왔던 정의 중에는 특수상황을 일반화시킨 경우가 많은데 그것은 정의라고 할 수가 없습니다. 우리가 주장하는 정의가 우리사회의 보편성을 가지려면 이렇게 생태원리를 기초해서 판단해야 합니다. nbspnbspnbspnbspnbsp그럼 갈등을 해결하고 통합으로 가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첫째, 진실에 근접해서 문제를 바라봐야 합니다. 둘째, 사람들은 서로 다르다는 걸 인정해야 합니다. 우리 무의식은 항상 같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길에 있는 사람과는 다르다는 걸 인정하기 때문에 갈등하지 않지만, 부부끼리는 자기 기준에서 서로 같아야 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갈등하는 겁니다. 그리고 상대방의 입장에 서서 그럴 수도 있겠다고 이해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서로 다름을 인정하고 이해하는 바탕 위에서 대화를 하면 서로 합의해서 절충점을 찾을 수 있습니다. nbspnbspnbspnbspnbsp예를 들어 A는 빨간색 안경, B는 파란색 안경을 꼈어요. 흰 벽면을 보면서 A는 빨갛다고 하고, B는 파랗다라고 서로 주장하면 갈등이 생깁니다. 이 문제는 자기 안경을 벗으면 쉽게 문제가 해결됩니다. 즉 진실에 근접하면 갈등이 해소되는 것입니다. 설령 진실에 근접하지 못한다 하더라도 갈등을 해소할 수 있습니다. ‘서로 다르게 보이는 구나, 진실은 뭘까’이렇게 규명의 자세가 되거나, 최소한 서로 안경이 다르니까 달리 보이는구나라고 인정하면 갈등이 해소됩니다.nbspnbspnbspnbspnbspnbspnbsp 갈등을 해결할 때 약한 자가 강한 자에게 힘에 밀려 양보하면 비굴하게 됩니다. 즉 복종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인간은 의식구조상 복종하면 그 힘의 역학관계가 역전되었을 때 다시 저항이 일어나면서 갈등이 생기게 됩니다. 오히려 강한 자가 약한 자를 포용해서 통합하면 부작용이 없고 통합의 시너지가 납니다. 신라는 힘이 약하고 관계가 좋지 않았던 가야를 포용해서 통합했습니다. 통합 후 신라의 국력은 폭발적으로 성장하게 되고 이 힘으로 삼국을 통일하게 됩니다. 이것이 바로 통합의 시너지 효과라고 볼 수 있습니다. 반면 신라가 삼국 통일할 때는 백제와 고구려를 침공해서 힘으로 눌러서 통합했습니다. 그러자 200년이 지나 신라가 힘이 약해지니 후고구려, 후백제가 일어나면서 분열되었습니다. 이런 역사적 경험에 비추어 볼 때 지금의 남북갈등을 해소하기 위해서는 힘의 우세에 있는 남한이 약세에 있는 북한을 포용하면서 통합할 때 남북통일로 인한 시너지 효과를 확대할 수 있습니다. nbspnbspnbspnbspnbsp 우리사회 갈등의 근본원인은 남북갈등입니다. 하지만 해결책은 남남갈등에서 풀어야 합니다. 남북문제는 남한에 있는 우리가 주체적으로 풀어야 하는데 남한안에서 생각이 일치 하지 않으면 풀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남한내 사회통합이 먼저 이루어져야 합니다. 국민통합이 되려면 강자가 먼저 양보해 주고, 약자도 자기 요구를 100 해결하려고 하면 안됩니다. nbspnbspnbspnbspnbspnbsp이제 시대가 바뀌어서 사회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타협이 필요합니다. 대표적으로 세월호를 봅시다. 세월호 진실 규명이 지금 가장 큰 이슈입니다. 유가족들은 진실규명을 요구하지만 진실을 밝히지 않겠다는 세력의 힘이 더 강하니까 안 풀리는 것입니다. 그럼 이 문제를 해결하려면 그들보다 힘을 더 키워서 밝히든지, 아니면 진실 규명을 80만 밝히고 나머지 20는 유보했다가 다음 정권에서 밝히는 차선책을 선택하든지 해야 합니다. 100 요구하며 상대에게 저항할 수는 있으나 문제가 해결되지 않습니다. 분노한다고 해결이 안됩니다.nbspnbspnbspnbspnbsp남북 갈등을 해결하는 것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민족의 통합을 하나의 큰 가치로 봐야 합니다. 남한에 사는 사람이 지금 남북갈등으로 남북 모두에게 손해가 되고 오히려 다른 엉뚱한 쪽에서 이익을 본다는 것을 알고, 우리의 이익을 위해서라도 북한을 포용하는 게 낫다고 자각한다면 남한이 양보해서 통합이 가능합니다. 남북문제는 동북아시아의 공동체를 구성하면서 우리가 더 큰 세계로 나아갈 수 있는 기회라는 것까지 내다보면 당장 풀어질 수 있는 문제인데, 미래를 보지 않고 과거를 보니 해결되지 않습니다. 분단갈등이 해소되지 않으면 다른 사회갈등도 해소될 수 없습니다. 아무리 사회갈등이 첨예하더라도 우리가 미래의 과제를 어떻게 해결할 것인가 하는 입장을 가지면 금방 타협점이 나옵니다. 산업화의 성과도, 민주화의 성과도 인정해주면서 우리 사회가 안고 있는 다음 과제인 남북통일, 복지사회 등을 해결하기 위해서 우리가 지금 어떻게 해야 되겠느냐하는 이런 미래지향적 관점을 가지는 것이 필요합니다.” nbspnbspnbspnbspnbsp스님께서는 수강생 10명의 질문에 대한 해법을 최대한 담아서 열정적으로 강의해주셨습니다. 사회통합에 대한 해법을 찾기 위해 정의란 무엇인가라는 철학적인 질문에서부터 시작하여, 우리 사회가 가지고 있는 갈등의 원인, 어떻게 갈등을 풀어갈 것인가 등 다양한 모색을 할 수 있는 시간이었습니다. 평화리더십아카데미에 참여한 수강생들은 우리 사회를 이끌어가고 있는 전문가 집단인 만큼 스님의 말씀이 보다 더 책임감있게 와 닿았습니다. nbspnbspnbspnbspnbspnbsp

2015.05.01. 20,714 읽음 댓글 11개

2015.4.29. 송코 탈란딕부족과 차담, 안양 희망강연

nbsp nbsp 오늘 아침 새벽예불과 발우공양을 대중들과 함께 하신 스님께서는 몇가지 생활상의 고쳐야 할 점들을 점검해주셨습니다. nbsp “기도할 때 물병을 지참하는 사림이 있는데, 환자라서 어쩔 수 없는 경우가 아니면 수행자로서 올바른 자세가 아닙니다. 명상할 때도 물병은 밖에 놔두고 휴식시간에 마시고 들어오듯이 예불시간에 목이 마르면 참아야 하고 기도시간에 목이 마르면 뒤에 배치해놓고 나가서 마시고 오든지 해야합니다. 그리고 법회 시간에도 물을 옆에 놔두고 마시는데 그러지 않는게 좋겠습니다.”라며 우리가 별 의미없이 놓치고 있는 것을 지적해주셨습니다. nbsp nbsp 또, 소심경 염불곡조가 좀 늘어지는 부분을 다시 지적해 주시면서 곡조 전체가 늦어지거나 빨라지는 것은 괜찮지만, 어느 한부분이 늘어지는 것은 유의해서 하라고 하셨습니다. nbsp 계율과 관련해서는 지난번에 얘기가 나왔던 저녁예불에 대해서 시간변경이나 장소가 어떻게 결정되었는지를 물으시면서 “저녁예불을 아예 6시로 옮기면 어떤지? 저녁 7시가 어중간하니까 자꾸 빠지게 되는 것 아니겠어요? 저녁예불을 6시에 하거나 6시 30분에 하든지 해서 자기가 조금 노력하면 모두가 예불할 수 있도록 하면 좋겠습니다. 만약 6시에 예불을 한다면 스님이 일정을 6시에 잡더라도 약속시간은 6시 15분으로 알아들으면 됩니다.”라며 이미 계율로 정해진 것은 꼭 지켜질 수 있도록 여러 가지 방법을 제안해주셨습니다. nbsp 발우공양후에 스님께서는 송코 탈란딕 부족과 짧은 만남을 가지셨습니다. 한국에 와서 다니는 동안 궁금한 것이 있는지 물으셨습니다. nbsp nbsp 탈란딕 부족은 “한국에 불교가 들어오기 전에는 어떤 종교가 있었는지, 한국은 몇 개 부족으로 되어 있고, 사용하는 언어는 몇 개인지, 북한과는 언어가 같은지? 한국 아이들이 춤추는 것은 못봤는데 춤도 추는지?”등에 한국의 문화에 대해 많이 궁금해 하면서 스님께 질문을 하였습니다. nbsp 스님께서는 각각의 질문에 대해 답을 해주셨습니다. nbsp “우리 전통신앙에는 하느님이 있고, 하느님의 아들인 환웅천왕이 땅으로 내려와 6000년전 이 땅에 새로운 나라인 ‘신시’를 세웠어요. 환웅이 인간인 웅녀과 결혼해서 태어난 아들인 단군왕검이 4300년 전 조선을 세운 첫 왕이 되었어요.”하시면서 전통신앙에 대해서도 자세히 말씀해주시면서 단기, 서기, 불기에 대해서도 함께 설명해주셨습니다. 또 “한국에는 다른 민속신앙들도 있었는데 불교가 들어오면서 민속신앙을 수용했기 때문에 절에 가면 불상이 있는 큰 법당 뒤에 산신을 모시는 산신각, 일곱별신을 모시는 칠성각들도 있다”고 덧붙여주셨습니다. nbsp nbsp 탈란딕 부족들은 한국이 1개의 민족, 1개의 언어, 1개의 글을 쓴다고 하니 놀라워 했고 특히 북한과도 같은 민족이고 같은 언어를 쓴다는 말에 더욱 더 놀라워 했습니다. 필리핀은 여러 부족들이 있고 각 부족별로 각자의 언어와 문화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 1개의 민족, 언어, 문화를 가진 한국이 신기했나 봅니다. nbsp 스님께서는 탈란딕 부족과 이야기 하시면서 이 분들에게 한국의 전통적인 것, 전통옷, 전통가옥, 전통신앙, 전통의학등을을 더 보여주도록 제안하셨습니다. 내일 서초법당에서 탈란딕 부족과 함께 하는 시간이 있는데, 이때 전통악기도 연주하고 또 한복을 입고 와서 우리의 전통 옷을 보여주도록 제안하시기도 하셨습니다. nbsp nbsp 그리고 스님께서는 다니는 동안 아이스크림도 사먹고, 한국의 음식도 사먹으라고 용돈을 주시기도 하셨습니다. 용돈을 주는 가운데, 한 꼬마가 늦게 와서 사람들이 용돈을 못 받을거라고 놀려서 서러워하는 표정이 무척이나 재밌고 귀여웠습니다. nbsp 탈란딕 부족과의 차담이후 스님께서는 정토회관 집무실에서 원고교정업무등을 보시면서 시간을 보내셨습니다. nbsp nbsp 오후 5시에는 네팔 지진 피해 지역 지원을 준비하고 있는 JTS와 현안문제들을 논의하는 시간을 가진 후 바로 강연이 있는 안양 아트센터로 향하셨습니다. nbsp 오늘 안양 아트센터에서는 법륜스님의 즉문즉설과 JTS후원의 밤 필리핀 민다나오 송코마을 원주민 초청공연이 함께 있었습니다. 오전부터 비가 와서 대중들이 강연장 오기 불편할까봐 걱정했는데 다행히 강연이 시작될 즈음 비가 그쳤습니다. 대중들은 6시부터 입장이 가능함에도 오랫만에 안양을 찾은 스님을 뵙기 위해서 일찍 감치 줄을 서서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nbsp nbsp 정토회 불교대학생들의 기타 공연으로 대중들은 입구에 들어서면서부터 즐거움을 만끽할 수 있었으며, 강연장 로비에 배치된 JTS 홍보사진과 영상은 강연 기다리는 분들에게 풍부한 볼거리를 주었습니다. 강연장에 조금 일찍 도착하신 스님께서는 책 사인을 먼저 하신 후에 강연장 주변을 돌아보시며 봉사자들과 인사를 나누셨습니다. 강연이 시작되고 JTS 활동영상과 민다나오 소개 영상을 본 후 스님께서는 대중들의 박수와 환영을 받으시면서 무대에 오르셨습니다. nbsp nbsp “오늘 비가 와서 우중충한 날씨인데도 불구하고 이렇게 많이 참여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올해는 예년에 비해서 봄꽃을 더 많이 구경했는데, 벚꽃이 피자마자 날씨가 갑자기 추워져서 꽃을 오래 볼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런 봄날 꽃구경도 좋은데 더 좋은 것은 말랑말랑한 흙을 밟고 농촌에서 일하는 것이예요. 밭을 갈고 씨앗을 뿌리고 모종을 심는 일은 상쾌하고 기분 좋은 일이며 노는 것과 비교가 안되는 일입니다.”라고 하시면서 또, 스님께서는 즉문즉설로 들어가기 전에 오늘 강의 취지와 함께 정토회 산하 기관인 JTS 활동이 왜 필요하신지에 대해 말씀해주시며, 오늘 초청된 필리핀 민다나오 송코마을 딸랑딕 원주민들에 대해서도 간단히 소개해주셨습니다. nbsp “이 세상의 문제는 크게 둘로 나눌 수 있어요. 첫째는 먹고 살기 어려워서 힘든 사람이 있습니다. 지금 인류의 20가 절대 빈곤선상에 있습니다. 절대 빈곤에 있는 사람에게 ‘마음만 잘 먹어라, 그럼 행복하다’이렇게 말하면 안됩니다. 왜냐하면 절대빈곤에 있는 사람은 짐승보다 못하게 살고 있기 때문입니다. 짐승은 특별한 사건이 아니면 영양실조 걸리거나 배고파 죽는 일은 없습니다. 그런데 절대빈곤에 있는 사람들은 우리나라 사람이든 다른 나라 사람이든, 내 자식이든 남의 자식이든, 내 부모든 남의 부모든, 내 종교든 남의 종교든 관계없이 배고픈 사람은 먹어야 하고, 병든 사람은 치료받아야 하고, 어린 아이들은 제때 배워야 합니다. nbsp nbsp nbsp 이것은 이념, 사상, 종교를 초월해서 사람으로 태어나서 누구나 기본적으로 가져야 하는 권리이므로, 우리는 배고픈 사람, 병든 사람, 못 배운 사람을 위해 인도적 지원을 해야 합니다. 인도적 지원은 북한 사람이라도 도와야 하고, 무슬림이라도 도와야 합니다. 설령 적이라 하더라도 지원을 해야 됩니다. nbsp 두번째, 먹고 살만 한데 괴로운 사람이 있습니다. 바로 여기 앉아 있는 사람들입니다. 부부간에, 또 부모자식간에 내가 옳으니 네가 옳으니 싸우고 괴롭다고 합니다. 혼자 살때는 외롭다고 하고, 둘이 살때는 귀찮아합니다. 그리고 종교가 다르다고 싸우고, 나라가 다르다고 싸웁니다. 또 밥을 너무 먹고 비만에 걸려 걱정합니다. 이런 사람은 치료법이 없습니다. 본인이 적게 먹는 수 밖에 없습니다. 영양실조 퇴치는 돈이 조금 들지만 비만 퇴치는 돈이 엄청나게 듭니다. 이것은 본인이 노력하지 않으면 안되기 때문에 해결책도 없습니다. nbsp nbsp 사실 배부른 병은 치료법이 별로 없습니다. 그런데 이 치료법을 연구하신 분이 부처님입니다. 부처님은 원래 배부른 사람이었어요. 배는 불렀지만 마음은 괴로웠습니다. 그래서 부처님은 왜 마음이 괴로운가 연구했습니다. 오랜 연구 끝에 새로운 길을 발견하게 되었습니다. 그 새로운 길은 특정한 종교나 민족과 관계없는 것입니다. 배부른 사람이 생긴 병, 즉 인간관계의 갈등, 외로움 등은 붓다의 가르침속에서 해결할 길이 있습니다. nbsp 오늘 이 자리에는 이 시대의 두 가지 문제를 모두 나눕니다. 하나는 배는 부른데 괴로운 여러분을 위해서 붓다의 가르침이 필요합니다. 다른 하나는 강의 후 필리핀 민다나오 원주민들과 함께 하는 시간을 가질 예정입니다. 이들은 배고픈 사람들로서 분쟁지역에서 전통문화를 지키며 살고 있습니다. nbsp nbsp 필리핀은 과거 스페인의 침략과 미국의 침략으로 식민지가 되면서 원주민들이 깊은 산속으로 들어가서 살고 있는데, 원주민들 중 일부는 공산 반군을 조직해서 저항하기도 하고, 무슬림은 자기 종교를 지키기 위해서 저항하다 보니 민다나오가 분쟁지역이 되었습니다. nbsp JTS는 분쟁지역에 가서 원주민 마을과 무슬림 마을에 학교를 짓고, 그들의 어려움을 도와줌으로서 그들의 저항심을 누그려 뜨려 평화를 정착시키는 평화운동을 하고 있습니다. 부족중에 자기 전통문화를 지키는 부족이 있습니다. 전통문화를 지킨다는 것은 정말 어려운 일입니다. 한국에서도 불교를 제외하면 모두 전통문화를 지키지 못하고 있습니다. nbsp nbsp 가난한 원주민들은 옷과 식량을 얻기 위해서 전통을 버리기도 하는데 오늘 여러분들에게 소개해줄 탈란딕 원주민들은 가난하지만 전통문화를 지키고 보존하며 살고 있습니다. 그래서 이 마을에는 아이들에게 전통을 계승할 수 있는 평화의 집을 지어주었습니다. 그래서 이번에 이들을 특별히 초청해서 이 부족들의 전통 옷과 연주, 노래, 춤을 여러분들께 보여주고 싶었습니다. 세계화라는 추세속에서 수없이 많은 소수민족의 문화가 없어지고 있습니다. 그래서 지구상의 소수민족의 전통을 보존하는 것도 우리 인류문화 유산을 보존하는 중요한 일 입니다. 우리는 산업화 과정에서 전통 문화를 많이 잃어서 정체성마저 잃고 있는데, 이들이 우리와 같은 시행착오를 반복하지 않도록 전통문화를 잘 지켜갈 수 있게 도와주면 좋겠습니다. nbsp nbsp 그럼 오늘 여러분들이 가지고 있는 배부른 병은 즉문즉설로 치료를 하고, 가난한 삶들이 겪고 있는 배고픈 병은 여러분들이 기부를 통해서 치유해주시길 바랍니다.” nbsp 강의 서두에 우리 인류의 주요 과제에 대한 이야기를 마무리하고 기다렸던 즉문즉설이 시작되었습니다. nbsp 총 6명이 질문하였습니다. 미국에 살고 있는 교포인데 불교 공부를 하고 싶어서 한 달간 한국에 와 계신다는 분, 임신중인데 새로운 삶을 살고 싶어서 갈구한다는 분, 24세 아들의 음주운전과 도박으로 힘들어 하는 어머니, 사업체를 운영하면서 지방을 왔다 갔다 해보니 힘들던데 스님은 어떻게 많은 스케줄을 소화하시는지 궁금해 하는 분, 10살때부터 오빠에게 맞았으며 중 3때 아빠가 자살하는 것을 목격하고 현재 일상생활이 힘들다고 하는 분까지, 살면서 힘들고 풀기 어려웠던 이야기들을 스님과 허심탄회하게 나누고 해법을 찾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nbsp nbsp 오늘은 음주운전과 도박하는 아들 때문에 힘들어하는 어머니와의 대화를 소개하겠습니다. nbsp “스님 만나뵙게 되어 영광입니다. 24살 된 아들이 있는데 사춘기에 접어들면서부터 크고 작은 문제를 일으키더니 지금은 음주운전에 도박까지 하고 있습니다. 게다가 작년 7월 대부업체에 4천 5백만원의 빚까지 졌습니다. 지금은 도박전문 상담센터에서 상담하며 치유하고 있지만, 가족들은 충격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불안해하고 있습니다. 최근 횟수만 줄였을 뿐 아직도 도박을 하고 있다는 사실을 딸에게 들었고, 딸은 동생을 집에서 내보내자고까지 합니다. 도박은 중독성이 강해서 끊기가 힘들고 평생 당뇨병 환자처럼 스스로 관리해야 한다고 합니다. 저는 현재 마음을 다스리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나마 우연히 접한 스님 책을 읽고 법문 영상을 보며 엄마인 저에게 잘못이 많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지난 25년 결혼생활을 되돌아 보니 엄마로서 중요한 역할을 못해 준 것 같아 내 자신이 안타깝고 원망스럽습니다. 지금도 늦지 않았다면 아들이 도박 중독에서 벗어날 수 있도록 엄마로서 최선을 다해 보고 싶습니다. 스님, 제가 어떻게 하면 아들에게 조금이라도 도움을 줄 수 있을까요?” nbsp nbsp “엄마로서 참 가슴 아프겠습니다. 그런데 아들이 스무살 넘었어요? 안 넘었어요? 스무살 넘었으면 엄마로서 자식에게 해줄 것이 아무것도 없습니다.” nbsp “옆에서 지켜보니 너무 고통스럽고 힘듭니다. 매일 술먹고 늦게 들어오고 안하던 행동을 해서 아들이 공포스럽습니다.” nbsp “이 세상에 도박하고 술 먹는 사람이 한 두명도 아니에요. 아들을 바꿀 수 있는 능력은 다른 곳에 가서 한번 찾아보세요. 교회 가서 기도하면 낫는다, 절에 가서 기도하면 낫는다, 굿하면 낫는다 이런 방법이 있어요. 거기 가면 낫는데 돈이 많이 들어요. 저는 아들을 바꿀 수 있는 방법을 몰라요. 모르는 정도가 아니라 나는 바꾸는 것이 불가능하다고 생각해요. 우리가 남을 고칠 수 있는 방법은 없습니다. 누구라도 남을 고치려고 하면 대부분 실패합니다.” nbsp “그럼 제가 어떻게 해야만 할까요? 스님?” nbsp nbsp “그런 아들을 바꾸지 않고도 내가 행복하게 살 것인가? 그런 아들 때문에 나는 괴롭게 살 것인가? 이건 질문자의 선택입니다. 선택은 두가지이니 여기서 선택하세요. 아들을 고쳐서 이 괴로움에서 벗어날 수 있는 방법은 제가 능력이 없어서 몰라요. 내가 그럴 정도로 능력이 있으면 꼭 고치고 싶은 사람도 있지만 능력이 없어서 못하고 있습니다. 제가 고치고 싶은 분들은 그들의 잘못된 행동으로 인한 다른사람에게 피해가 엄청납니다. 아들 도박해서 4천만원 빚지는 것과는 비교가 안될 정도의 수준이예요. 수천 수만배의 피해가 오는데도 못 고치고 있습니다. 부처님이 사람을 고쳐줄 수 있으면 그런 사람 먼저 고쳐야지 왜 아들부터 고치겠어요. 나는 누구한테 부탁하면 고쳐진다는 말 잘 안믿습니다. 다만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그런 아들을 두고도 행복하게 살 수 있는 길을 알려주는 겁니다. 그렇다고 아들의 병을 포기하기보다 고치는 노력을 할 필요는 있습니다. 그러나 내가 행복하면서 고치는 노력을 하면, 아들이 고쳐져도 그만, 안 고쳐도 그만입니다. 그런데 괴로워 하면서 고치면 안 고쳐질 확률이 높으니 평생 괴로워하다가 죽어야 합니다. 아들이 도박을 안 하면 좋지만은 하더라도 나는 행복하게 살 수 있는 길이 있습니다.” nbsp “아들에게 조금이라도 영향을 줄 수 있는 방법은 없을까요?” nbsp nbsp “그런 방법은 없습니다. 닭도 새끼를 낳으면 병아리를 돌보잖아요? 강아지도 돌보죠? 그런데 영원히 돌봅니까? 어릴때만 돌봅니다. 사람은 언제까지 돌봐야 됩니까? 원시시대는 12살까지, 농경시대는 15살까지, 지금의 이 시대는 교육 기간이 길어져서 만 18살때까지 즉한국 나이로 20살때까지 자식을 최대로 돌볼 수 있는 부모의 임무예요. 이 이상은 안 돌봐도 죄가 안됩니다. 그 이상 돌보고 싶다고 하면 사랑이 아니라 내 집착입니다. 그러니 스무살이 넘었기 때문에 나하고 아무 관계가 없습니다. 단지 과거에 내 아들이었고, 지금은 독립된 남이예요. 아침마다 일어나‘저 사람은 남입니다’이렇게 기도해야 합니다. 이렇게 하면 아들이 어떻게 하던지 상관이 없습니다. 남이기 때문에 집에서 내보내도 되고, 놔둬도 되지만 아들 일에 일체 관여를 안해야 합니다. 그러면 행복하게 살 수 있습니다.” nbsp “그렇게 하기가 정말 힘듭니다” nbsp “그게 안되면 그럼 죽을 때까지 괴롭게 살아야죠. 빌린 돈을 갚아준다고 해서 고쳐지는 것도 아니고 안 갚아 준다고 해서 고쳐지는 것도 아니예요. 도박은 중독이기 때문에 갚아주면 다음에 또 갚아줘야 합니다. 능력 있으면 갚아주고 능력이 없으면 내 일 끝났다 생각하고 거기에 관여하지 마세요. 아들의 도박 중독을 먼저 끊으려고 하기 보다 내가 아들에 대해 가지고 있는 집착의 중독을 먼저 끊으세요. 내 중독이 끊어지면 아들 중독도 끊어집니다. ‘그러면 아들이 아니다’라고 기도해야 합니다” nbsp nbsp “알겠습니다. 아들을 보고 고통스러워하지 않고...” nbsp “아들을 보면서 어떻게 어미가 고통스럽지가 않아요? 아들이 아니라니까요. ‘부처님, 저사람은 내 아들이 아닙니다. 남입니다.’이렇게 기도 하시라니까요. ‘아들 아닌데 내가 착각했구나, 내가 미쳤지, 헛것이 보이네’ 이렇게 자기를 돌아보며 아들에 대한 중독성을 완전히 끊어야 합니다. 이렇게 하는 것이 잘 안되고 어려워요. 하지만 이렇게 하면 집착을 끊을 가능성은 있습니다. 실패할 확률이 높지만 어렵다는 것을 알고 해야 계속 꾸준히 할 수 있습니다. 이렇게 해야 나도 살고 아들도 살고 내 가족이 삽니다. 어릴때는 돌봐주는게 사랑이고, 지금은 집착을 끊어 주는게 사랑입니다. 이게 진짜 아들을 위한 사랑입니다. 강원랜드 가면 도박하는 사람이 많죠. 그들이 도박을 하던 안하던 내가 상관없잖아요. 그것처럼 아들에 대해 아무 상관을 안해야 합니다. 핵심은 아들이라고 생각하지 않겠다입니다. 이건 스님이 정한게 아니고 원래 그런 것입니다.” nbsp “부처님, 아들이 아니고 남입니다” nbsp nbsp 처음에 울먹이는 목소리로 질문하던 질문자가 마지막에는 경쾌하고 밝은 목소리로 스님께 답을 하는 것을 보니 듣고 있는 청중의 마음도 한결 가벼워지는 것 같았습니다. 청중들은 우렁찬 박수로 위로와 격려해 주었습니다. nbsp 6명의 질문과 답변이 모두 끝난 후 스님께서 강연 처음에 소개해줬던 민다나오 원주민의 민속공연을 볼 수 있었습니다. 공연을 들으니 울창한 숲속에 사는 동물들과 나무들의 노래소리, 사람과 자연이 어울러져서 살아가는 모습이 그림처럼 상상되었습니다. 청중들도 함께 즐길 수 있었던 공연을 마친 후 스님께서 강연장 로비에서 다시 책사인회를 하였습니다. 사람들은 스님을 가까이서 뵙수 있다는 설레임으로 줄을 서서 기다리며 스님의 사인을 받아갔습니다. 스님께서 마지막으로 봉사자들과 단체 사진을 찍으시고 지역을 한번씩 더 챙겨서 불러주셨습니다. nbsp nbsp 오늘도 좋은 법문을 들려주신 스승님께 봉사자들은 힘찬 박수로 보답했습니다. nbsp

2015.04.30. 19,599 읽음 댓글 12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