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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9.18 세계 100회 강연(24) 그리스 아테네
안녕하세요. 오늘은 법륜 스님의 세계 100회 강연 중 24번째 강연이 그리스 아테네에서 열리는 날입니다.nbsp새벽6시에 윤혜숙님, 김연옥님이 정성껏 차려주신 아침식사를 하고, 신중애, 에르한씨 부부가 운전해주는 차를 타고 6시30분에 이스탄불 공항으로 출발했습니다. 김연옥님과 신중애님 부부는 새벽녘에 공항까지 손수 나오셔서 스님 일행이 무사히 출국절차를 밟을 때까지 도움을 주셨습니다.nbsp▲ 이스탄불의 윤혜숙님 민박집에서 차려주신 아침식사 nbsp스님께서는 어제 이스탄불 강연에서 질문하는 사람이 너무 많아 무려 3시간 동안 열강을 하시는 바람에 아예 목이 잠기셨습니다. 그저께부터 목에서 피가 나오기도 해서 독일 뒤셀도르프에서 의사선생님이 주신 항생제를 계속 복용하고 계셨는데, 어제 강연으로 목에 더 무리가 간 것 같습니다. 목소리가 안 나와서 과연 오늘 강연을 제대로 하실 수 있을지 많이 걱정이 되었습니다.nbsp에게 항공을 타고 오전9시30분에 출발하여 11시30분에 그리스 아테네 공항에 도착하였습니다.nbsp곧바로 오늘 강연 장소이면서 숙박 장소이기도 한 Fenix 호텔을 찾아갔습니다. 짐을 풀고 잠깐 휴식을 취한 후, 오후1시부터는 주 그리스 한국대사님이 점심 식사 초대를 하셔서 함께 식사를 하며 대화를 나누셨습니다.nbsp▲ 왼쪽부터 주 그리스 한국대사관 김유철 참사관님, 신길수 대사님, 정효민 영사님대사님은 교민들의 현황과 그리스의 현재에 대해 설명을 해주셨습니다. 현재 그리스 아테네에는 교민들이 350명 정도 거주하고 있는데, 주로 관광 업종이나 여행사, 여행 가이드, 식당업을 하고 계신 분들이며 절반 이상이 20년 이상 거주하신 분들이라고 합니다. 최근에는 삼성, LG를 비롯하여 해운업도 진출해서 주재원들도 나와 있다고 합니다.대사님은 스님께서 115회 연속으로 하루 1개 도시를 방문하는 강연 스케쥴을 보시며 스님의 건강을 많이 염려했습니다. 그리고 참사관님이 “한국 사회가 한 단계 더 도약하기 위한 해법”에 대해 스님께 질문을 했는데, 스님께서는 “통일이 해법”이라며 한반도 주변 정세와 통일이 가져올 긍정적 변화에 대해 자세하게 말씀해 주셨습니다. 특히 대사님이 “유럽사회 모델과 미국사회 모델을 반면 교사로 삼아서 더 나은 모델을 만들어나가야 한다”고 말씀하시자, 스님께서도 전적으로 공감을 표하시면서 “유럽은 여기까지 오는데 400년이나 걸렸습니다. 수없는 실패와 반성을 통해 지금의 복지사회를 이뤘는데, 한국은 시간이 아직 짧고, 제도를 넘어서서 관습까지 바뀌는 데는 많은 시간이 필요합니다” 라며 너무 조급하게 바라보면 안된다고 말씀하셨습니다.nbsp또, 스님께서는 최근 세월호를 비롯한 한국사회의 갈등 문제에 대해서도 “옳고 그름이 아니라 서로의 요구를 어떻게 조율하고 타협을 하느냐”가 중요함을 강조하셨는데, 대사님도 공감을 표하셨습니다. 스님께서는 이렇게 1시간 30분 동안 그리스 사회와 한국 사회에 대해 대사님과 많은 대화를 나누셨습니다.nbsp오후3시에는 크렘을 타고 도심으로 가서 고대 유적지인 ‘아크로폴리스’를 둘러보았습니다. 이곳은 미케네 시대에 아테네 여신을 기리기 위해 건립된 최초의 사원입니다. BC 6세기 후반까지 아크로폴리스에는 사람들이 살았지만, BC 510년에는 이곳이 신들만이 존재하는 지역이라는 델피 신약이 공포되어 사람이 살지 않게 되었다고 합니다. BC 480년 살라미나 전투 직전에 페르시아인들은 이곳의 모든 건물들을 불태워 버렸는데, 페리클레스가 순수한 신전의 도시로 재건했다고 합니다.nbsp▲ 헤로데스 아티쿠스 음악당입구를 지나니 BC 2세기에 세워진 헤로데스 아티쿠스 음악당이 보였습니다. 로마 집정관 헤로데스 아티쿠스가 세운 이 극장은 정치가이며 대부호였던 그가 죽은 아내 레기나를 기념하여 BC 161년 아테네 시민에게 기증했는데, 5천명의 관객을 수용할 수 있고 7월9월에는 그리스 고전극과 콘서트, 오페라 등의 음악회도 열린다고 합니다.▲ 파르테논 신전아크로폴리스 위에 우뚝 서있는 파르테논 신전은 고대 그리스의 영광을 가장 잘 드러내 주는 기념비적 건축물입니다. BC 438년 완성된 이 건축물은 무척이나 우아하고 조화로운 모습을 갖추고 있는데, 특히 기둥은 완벽한 조형미를 갖추도록 하기 위해 위로 올라갈수록 약간씩 좁아지고 있고, 하단부는 끝으로 갈수록 약간 위를 향해 휘어져 있어 마치 직선으로 보이도록 만들어졌습니다. 기둥 위에도 장식들이 많이 남아 있었는데,nbsp1687년 터키인과 싸우던 베네치아 군대가 아크로폴리스에 폭격을 퍼부으면서 파르테논 신전은 바닥과 기둥, 지붕 일부만 남아 지금의 모습이 되었답니다.▲ 멀리서 바라본 파르테논 신전.nbsp파르테논은 아테네의 위대한 신상들을 모시기 위해 지어졌고, 새로운 보물들의 보관 창고 역할을 했습니다. AD 426년에는 약 12m 높이의 도금된 동상이 콘스탄티노플로 수탈되어 갔고, 결국 거기서 사라져버렸다고 합니다.nbsp파르테논 신전에서 저 밑을 내려다보니 원형이 비교적 잘 보존된 헤파이스토스 신전이 보였습니다. 헤파이스토스는 대장장이·장인·공예가·조각가·금속·야금·불의 신인데, 특히 아테네에서는 제조, 산업 종사자들에게 많이 숭배되었다고 합니다. 발굴 당시 대장장이에 관련된 물건들이 발견되어 헤파이스토스라는 이름이 붙여졌다고 합니다.nbsp▲ 헤파이스토스 신전.nbsp언덕에서 내려다 보니 올림피아 제우스 신전이 보였습니다. 시간이 없어 직접 가보지는 못하고 먼발치에서 바라보았습니다. 제우스 신에게 봉헌된 이 신전은 BC 515년에 착공했으나 BC 124년경 로마황제 하드리아누스에 의해 완성됩니다. 파르테논 신전보다 규모가 훨씬 더 컸던 17m 높이에 104개의 기둥이 받치고 있던 이 거대한 신전은 4세기 고트족에게 파괴당하고 지금 15개의 코린트식 기둥들만 남아 있습니다. 신전 안에는 황금과 상아로 만든 제우스상이 있었다고 합니다. 제우스는 그리스 최고의 신이었지만 아테네 시민들은 수호신으로 아테나 여신을 선택한 것 같습니다. 그래서 제우스는 아크로폴리스에 자리 잡지 못했는데, 대신 아테네 시민들은 제우스 신전을 더 크게 지어 바침으로 대접을 해준 것이 아닌가 싶습니다.nbsp▲ 올림피아 제우스 신전스님께서는 아크로폴리스를 모두 둘러보신 후 “예전부터 한번 와보고 싶었던 곳” 이라며 오늘 이렇게 둘러볼 수 있게 된 것을 기쁘게 여기셨습니다. 강연 시간이 거의 다 되어 택시를 타고 강연장으로 돌아왔습니다.nbsp오늘 강연은 아테네 도심에서 약간 외곽의 바닷가에 위치한 Best Western Fenix Hotel에서 열렸습니다.nbsp▲ 강연 담당자인 한종엽 선생님이 직접 제작하셨다는 포스터입니다. 멋있죠?nbsp현지 교민수가 많지 않다보니 많은 분들이 참석할 것이라 예상하지 않았는데, 그래도 22명이 참석하여 조촐하게 강연이 진행되었습니다.nbsp이차돈의 피가 정말 하얗다고 생각하는지 묻는 분, 사리가 구상인지 비구상인지, 화를 다스리는 방법을 묻는 분, 아직 결혼하지 않고 아테네에 계속 살고 있는 것이 부모님에게는 불효로 느껴지는 것 같은데 어떻게 해야 하는지 묻는 분, 주위에서 받은 사랑에 대해 감사하다는 표현이 서툴러 고민인 분, 템플스테이에서 고민을 적어서 의식을 한 후 불에 태우는 의식을 했는데 심리 치료에 효과가 있는지 묻는 분 등 다양한 질문이 있었습니다.nbsp오늘은 그 중에서 생활 속에서 화를 다스리는 방법을 묻는 남성분의 질문과 스님의 답변을 소개합니다.nbsp“스트레스를 안 받는 사람들이 없는 것 같고, 예상치 않은 일로 갑작스럽게 화를 내는 경우가 많습니다. 화를 내고 나서는 후회를 하고요. 평상시에 생활 속에서 쉽게 화를 절제할 수 있는 방법이 궁금합니다. 예를 들어 차를 타고 오다가 신호등을 안 지키는 모습을 볼 때 화가 많이 납니다.nbsp“매일 아침에 108배 절을 하면서 “화 낼 일이 없습니다” 이렇게 절을 하면 도움이 됩니다. 이 세상에 일어나는 일은 그냥 일어나는 일이지 화낼 일은 아니거든요. 내가 화를 내는 것이지요.nbsp화 낼 일이 없는데 내가 화를 내는 것이니까 정신적으로는 약간 미친 증상이지요. ‘너 또 미치고 있다’ 이렇게 자기에게 암시를 주면 도움이 됩니다. 화는 미친 증상이기 때문에 정상적인 상태에서 일어나는 것과 정반대의 행동이 일어납니다. 보통은 사람이 칼을 들고 찌르겠다고 협박하면 도망을 가는데, 화가 나면 미쳐버리기 때문에 오히려 더 다가가서 옷을 걷어 올려 배를 내놓고 ”찔러라, 찔러” 이렇게 나오거든요. 제 정신이 아닌 것입니다.nbsp첫째, 화가 난다고 화를 다 내어버리면 상대도 덩달아 화를 내기 때문에 화를 확대 생산하게 되니까 이 방법은 제일 하수가 됩니다. 둘째, 화를 참는 것은 확대 생산은 안하는데 자기가 병이 드니까 역시 하수에 속합니다. 참으면 화병이 됩니다.nbsp예전에 어머니 세대는 여자들이 주로 참기 때문에 대부분 화병을 가지고 있었죠. 화를 참아서 화병이 난 사람의 경우는 응급치료를 위해서 화를 내도록 치료를 하기도 합니다. 압력이 너무 세기 때문에 오히려 화를 참지 말고 감정 표현을 하라고 인도를 해줍니다. 그러면 압력이 좀 줄어드니까 병이 좀 낫습니다. 예를 들면, 남편 때문에 화가 나는데 늘 참아서 화병 수준까지 갔다면, 헝겊으로 인형을 만들어서 남편 사진을 붙여 놓고 막 욕하면서 두들겨 패면 스트레스가 조금 풀릴 수 있습니다. 조선 시대에 여성들의 화병을 치료하는 데는 빨래터가 중요한 역할을 했습니다. 젊은 여자들끼리 마주 앉아서 시어머니와 남편 욕을 하면서 빨래를 두드리면 심리적으로 스트레스 해소가 됩니다. 그러나 이것은 근본 치료책은 아닙니다. 응급치료책입니다. 물이 끓어 넘칠 때 찬물을 한 바가지씩 붓는 것과 같습니다. 당장 끓는 것은 막을 수 있지만 조금 있으면 또 끓어 넘칩니다.nbsp참는 사람은 화를 안내니까 윤리적으로는 훌륭한 사람이 됩니다. 그러나 이것은 괴로움에서 벗어나는 것은 아닙니다. 괴롭지 않아야 수행이라고 합니다. 수행은 ‘화를 냈냐, 안냈냐’ 이것이 기준이 아니고 ‘너가 괴롭냐, 안괴롭냐’ 이것이 기준입니다. 참을 것이 없는 것이 불교에서 말하는 인욕바라밀입니다.nbsp그래서 그 다음 단계는 화내는 자신을 알아차리는 것입니다. ‘너 또 화나는 구나’, ‘너 또 미치는 구나’ 이렇게 알아차립니다. 왜 미쳤다고 하느냐? 사람은 서로 생각이 다르고 행위도 다릅니다. 옳고 그름이 없고 서로 다릅니다. 그러나 사람은 무의식적으로 다 자기를 기준으로 판단하게 되어 있어요. 인간은 항상 자기를 중심에 놓고 세상을 인식합니다. 자기와 다른데 자기를 기준으로 잡아버리니까 자기와 다른 것은 잘못된 것이 되어 버립니다. 그래서 나와 다를 뿐인 것이 ‘나는 옳고 너는 그르다’가 되어 버립니다. ‘그르다’는 것은 고쳐야 하잖아요. 그런데 그 사람은 그런 줄 모르기 때문에 안 고칩니다. 그래서 미치는 겁니다.nbsp이치적으로는 본래 옳고 그름이 없는 줄을 깨달아야 합니다. 다만 다를 뿐이지, 옳고 그름이 없는 줄을 알아야 합니다. 더 나아가서는 나와 다른 상대를 인정하고 이해하면 화날 일이 없어집니다.nbsp그러나 우리는 무의식적으로 자기도 모르게 자기를 중심에 둡니다. 그 때 ‘너 또 너 중심으로 생각하는 구나’ 이렇게 지적하거나 ‘너 또 미친다’ 이렇게 자신의 화 난 상태를 직시해야 합니다. 억누르는 것이 아니라 알아차림을 통해서 고쳐가는 것입니다. 호흡을 가다듬고 ‘너 또 미친다’, ‘너 또 니 성질 부린다’, ‘너 또 니가 옳다고 주장하는구나’ 이렇게 자기를 자각시켜 보세요. 이것이 되면 화가 완전히 없어지는 것은 아니지만 하루에 열번 내던 화를 아홉번만 내게 되고, 아홉번 내다가 일곱번 내고 이렇게 줄어듭니다. 화가 일어났을 때 전에는 그것을 움켜쥐고 있으니까 분이 한 시간씩 간다면, ‘아, 내가 또 미쳤구나’ 자각하면 10분 만에 제 정신으로 돌아오게 됩니다. 이렇게 해서 빠르게 개선이 될 수 있습니다.nbsp화가 날 때마다 ‘너 또 미치는구나’, ‘너 또 너가 옳다고 주장하는구나’ 이렇게 자기에게 주의를 주세요. 밖을 보지 말고 자기를 직시해야 합니다. 그래서 명상을 하면 도움이 됩니다. 명상은 자기 상태에 자기가 깨어있는 훈련을 하는 겁니다.”질문한 거사님은 한국에 가려는 일정도 취소하고 오늘 스님의 답변을 듣고자 이곳에 왔다고 합니다. 간절한 마음으로 질문한 만큼 스님의 지혜로운 답변을 듣고 무척 기뻐했습니다.nbsp마지막으로 강연을 마무리하며 스님께서는 종교를 넘어서서 어떻게 하면 좀 더 행복해질 것인지 다시 한 번 강조해 주셨습니다.nbsp“삶의 변화가 와야 그 가르침의 전파력이 생깁니다. 절에는 열심히 다니고 신앙이 깊다고 해도 자기 삶에 아무런 변화가 없고 고지식하면 전파력이 전혀 없습니다. 불법을 전하려고 애쓰지 않아도 됩니다. 이제 그런 시대는 지났습니다. 어떻게 내가 행복할거냐, 내가 좀 더 자유로워질거냐, 그게 이뤄지면 자연스럽게 “이거 한번 해보니까 괜찮더라” 이런 얘기를 할 수 있게 되고 그러면 전파력이 생기는 겁니다.nbsp교회를 다니느냐, 절에 다니느냐를 넘어서는 문제입니다. 인종, 민족, 종교를 넘어서서 어떻게 하면 좀 더 행복해질거냐 하는 문제에 관심을 가지시기 바랍니다. 이런 곳에 멀리 온다고 해결되는 것이 아닙니다. 파랑새를 찾으러 온 천지를 찾아 다녔지만 집에 돌아오니 처마 밑에 있더라 이런 얘기가 있죠. 행복은 아무리 밖을 찾아 헤매어도 찾기 쉽지 않습니다. 안으로 돌이켜보면 행복은 바로 여기에 있어요.nbsp부처님의 말씀입니다. “행복도 내가 만드는 것이네, 불행도 내가 만드는 것이네, 진실로 그 행복과 불행, 다른 사람이 만드는 것 아니네.”nbsp여러분들이 행복하고 불행한 것은 누구 책임인가요? 자기 책임입니다. 누구 탓할 것 없습니다. 환경은 안 바꾸어도 된다 이런 얘기가 아닙니다. 주어진 환경에서 나는 행복할 권리가 있다 이런 얘기입니다. 환경의 개선이 필요하면 고쳐야 합니다. 그러나 그것마저도 남 탓하고 욕하기만 하기 보다는 나의 주체적인 자세가 필요하다는 것입니다.”스님께서는 목이 아파 목소리가 제대로 나오지 않는데도 불구하고 2시간 20분 동안 열강을 해주셨습니다. 스님의 건강이 많이 염려되었지만, 참석자들은 스님의 지혜로운 말씀을 듣고 모두들 한층 밝아진 얼굴이 되었습니다.nbsp스님께서는 책 사인회를 하며 참석한 22명 모두에게 인사를 건넸습니다. 오늘은 봉사자가 담당자 한분 밖에 없어 참석자들이 다함께 기념촬영을 하였습니다.nbsp오늘 강연을 담당해 주신 분은 아테네에서 무역업을 하고 계신 한종엽 사장님입니다. 스님께서 연일 계속된 강행군으로 편찮으시다는 소식을 듣고 피로회복에 좋은 올리브 오일을 선물해 주셨습니다.nbsp▲ 오늘 아테네 강연 책임을 맡아주신 현지 교민 한종엽 사장님그리고 여행사를 하고 계신 김리자 선생님께서는 오늘 강연장과 스님 일행이 머무를 숙소 예약에 도움을 주셨습니다. 내일 새벽에 공항으로 갈 때는 한종엽 사장님과 아테네 한글학교 교장선생님이신 김근찬 선생님이 차량 지원을 해주실 예정입니다. 이렇게 아무런 인연이 없었던 아테네에서도 여러 교민 분들의 도움을 받아 강연을 잘 마칠 수 있었습니다. 스님께서는 도움 주신 한분 한분과 기념사진을 찍고 책을 선물해 드리면서 감사 인사를 전하셨습니다.▲ 오늘 강연장 섭외와 숙소 예약에 도움을 주신 김리자 선생님nbsp내일은 스페인 마드리드에서 세계 100회 강연 중 25회째 강연이 열립니다. 내일 또 소식 전해드리겠습니다. nbsp ▼nbsp법륜 스님의 세계 100회 강연, 지난 날짜 소식 보기
2014.9.17 세계 100회 강연 (23) 터키 이스탄불
▲ 이스탄불의 성 소피아 대성당안녕하세요. 오늘은 법륜 스님의 세계 100회 강연 중 23번째 강연이 터키 이스탄불에서 열리는 날입니다.nbsp어제는 뒤셀도르프에서 강연을 마치고, 새벽2시 비행기로 독일 쾰른 공항을 출발하여 새벽6시에 터키 이스탄불 공항에 도착했습니다. 비행기 안에서 잠깐 눈을 붙이고 다시 오늘 일정을 시작합니다.nbsp공항에 도착하니, 신중애님과 남편 되시는 에르한, 그리고 박남희씨 부부가 공항에 마중을 나와주셨습니다. 모두 스님의 세계 100회 강연 소식을 접하고 자원봉사를 해주시기로 한 분들입니다. 스님께서는 감사 인사를 하고 이분들이 렌트해 주신 차를 타고 오늘 숙소인 윤혜숙님이 운영하는 민박집 ‘다온’에 도착했습니다.nbsp▲ 공항에 마중을 나와 주신 박남희씨 부부민박집 ‘다온’은 큰 아파트를 민박처럼 운영하는 곳인데 윤혜숙님이 오늘 스님 일행을 위해서 손님도 받지 않고 특별히 공간을 제공해 주었습니다. 오전 8시, 윤혜숙님이 아침 식사를 맛있게 차려주셔서 감사히 먹고, 밤새 비행기를 타고 온 피로를 풀기 위해 11시30분까지 휴식 시간을 가졌습니다.nbsp▲ 오늘 강연 준비와 유적지 안내를 도와주실 봉사자 분들. 왼쪽부터 김연옥님, 윤혜숙님, 신중애님, 에르한씨.nbsp12시부터 이스탄불의 주요 유적지를 둘러보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이스탄불에 온지 11년이 되었고 현지에서 여행 가이드를 하고 계신 윤혜숙님의 안내로 터키의 역사와 문화에 대해 풍부한 설명과 안내를 받을 수 있었습니다.nbsp터키는 우리와 같은 우랄 알타이족입니다. 그래서 어순도 같고, 왠지 모를 친근감이 가는 나라이기도 합니다. ‘동양과 서양이 만나는 곳’이라는 말처럼 이스탄불은 아시아와 유럽 양 대륙에 걸쳐져 있습니다. 북쪽의 흑해와 남쪽의 마르마라해가 연결된 보스포러스 해협은 아시아와 유럽 양 대륙의 경계입니다. 이스탄불은 AD 330년 콘스탄티누스 황제가 로마의 수도를 이 도시로 옮겨와 ‘콘스탄티노플리스’ 라 칭해졌었습니다. 로마는 동서로 분열하여 서로마는 멸망하였으나 동쪽은 번영하여 1000년 이상에 걸쳐 존속하였습니다. 이것이 현재 ‘비잔틴’ 혹은 ‘동로마’ 라 불리는 제국입니다. 비잔틴 제국은 6세기에 아프리카의 지중해 연안과 이탈리아 반도까지 영토를 회복하여 최고의 전성기를 누렸습니다. 이스탄불의 구시가에 있는 성 소피아 대성당, 지하 저수지, 테오도시우스 성벽 등은 모두 이 시대의 구조물입니다.nbsp1204년 제4차 십자군이 콘스탄티노플을 점거하면서 도시는 황폐화되었다가, 셀주크 투르크에 이어 아나톨리아를 지배했던 오스만 투르크의 메흐멧 2세가 이 도시를 포위하면서 비잔틴의 영토는 현재의 이스탄불 구시가와 성벽 내의 아주 미미한 주변지 밖에 남지 않았다고 합니다. 1453년 간절히 원하던 콘스탄티노플을 빼앗은 메흐멧 2세는 수도를 이곳으로 옮겨 ‘이스탄불’ 이라 불렀습니다. 오스만 투르크가 제1차 세계대전에 패한 후인 1923년에 수립된 터키 공화국의 새로운 수도를 앙카라로 옮기기 전까지 이스탄불은 1000년 이상 이곳의 수도로 존립했습니다. 그런 역사 깊은 도시를 오늘 둘러보게 되었습니다. nbspnbspnbsp가장 먼저 찾아간 곳은 ‘테오도시우스의 성벽’입니다. 413년 비잔틴 황제인 테오도시우스 2세에 의해 그 당시까지의 성벽을 새로 늘리면서 지어진 성벽인데, 높이10m, 두께5m의 3중으로 지어져 난공불락을 자랑했습니다.nbsp▲ 난공불락의 요새, 테오도시우스의 성벽비슷한 시기의 우리나라 고구려 성벽의 특징인 ‘치’의 모양도 그대로 갖추고 있어서 조금 놀랐습니다. ‘치’는 고구려 성벽만의 고유한 특징인줄 알았는데 말이죠. 실제로 이 성벽은 78세기의 페르시아군과 아랍군, 9세기의 불가리아군과 러시아군의 공격을 견뎌내었다고 합니다. 1600년 전에 만들어진 성벽 치고는 보존상태가 굉장히 양호해서 놀라웠습니다. nbsp다음은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건축물 중에 하나인 ‘성 소피아 성당’을 찾았습니다. 이곳은 스님께서도 꼭 한번 가보고 싶었던 곳이라고 합니다. 성 소피아 성당은 그리스 정교회의 총본산이었던 곳입니다. 360년 비잔틴의 콘스탄티누스 2세에 의해 세워졌으나 그후 심한 화재를 입었고, 532년에는 ‘니카의 난’으로 테오도시우스 2세가 세운 성당이 불타 무너져 유스티아누스 황제가 바로 재건에 착수했다고 합니다. 이후 5년 만에 제국 각지에서 운반해 온 석재로 어마어마한 인력을 동원하여 537년에 비잔틴 미술의 최대 규모로 꼽히는 대성당을 완성합니다. 바티칸 시국의 성 베드로 성당은 성 소피아 성당보다 크지만 지어진 시기는 약 천년의 차이가 납니다.nbsp▲ 성 소피아 대성당성당 내의 녹색 기둥은 세계 7대 불가사의 중에 하나인 에페스의 아르테미스 신전에서, 붉은 얼룩이 있는 기둥은 레바논에 있는 바르베크의 아폴론 신전에서 가져온 것이라고 합니다. 거대한 돔은 높이가 54m나 된다고 합니다.nbsp▲ 54m 높이의 돔.nbsp오스만투르크의 정복으로 한때는 모스크가 되었고, 화려한 모자이크 성화들이 모두 회칠이 되어 가려졌고, 건물과 가운데 제대의 방향이 약간 틀어져 있는데, 이는 원래 예루살렘 방향으로 세워진 제대를 모스크로 개조하면서 메카 방향으로 바꾸었기 때문이라고 합니다.nbsp▲ 가운데 제대의 방향이 오른쪽으로 약간 틀어져 있습니다. nbsp입구의 왼쪽 안에 있는 나선 통로를 올라가니 2층에 테라스가 나왔습니다. 이곳에서는 아름다운 모자이크 화를 볼 수 있었습니다. 모자이크 화는 예수를 중심으로 한 황제상, 성모자상 등으로 상당 부분 손상이 됐지만 그래서 오히려 아름다움을 느끼게 하기도 했습니다.nbsp▲ 성 소피아 성당의 모자이크 화.nbsp이 모자이크 화의 특징은 어느 방향에서 보더라도 예수님의 눈동자가 나를 바라보고 있는 것처럼 느껴진다는 점입니다.nbsp9세기 초에 콘스탄티노플에서 성상 파괴가 행해져 성 소피아 성당의 모자이크 화도 모두 없어졌기 때문에 현재 남아 있는 모자이크는 9세기 중반 이후의 작품들이라고 합니다.nbsp성 소피아 성당을 관람한 후에는 대부분 ‘블루 모스크’를 방문합니다. 그러나 스님께서는 “이곳 터키 땅은 세계 최고의 신석기 문명의 발상지인 곳”이라며 ‘고고학 박물관’을 가자고 하셔서 그곳으로 이동했습니다. 일반 관광객들과는 다른 역사에 대한 스님의 높은 관심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nbsp고고학 박물관은 3개의 관으로 구성되어 있었습니다. 먼저 고대 오리엔트 관에서는 초기 아나톨리아 문명의 유물과 이집트, 메소포타미아 문명에 관한 유물을 볼 수 있었습니다. 특히 이곳에는 히타이트의 수도 핫투샤에서 출토된 히타이트와 이집트 간의 평화조약을 기록한 타블렛이 전시되어 있었는데, 이것은 세계 최초의 평화조약으로 최근에도 몇 가지 조약들의 문항 작성에 많은 참고가 되는 유물이라고 합니다.nbsp▲ 히타이트와 이집트 간의 평화조약을 기록한 타블렛, Kadesh Treatynbsp고고학 관에서는 그리스 로마 시대의 조각상, 묘비, 석관 등 광대한 수집품을 볼 수 있었습니다. 특히 거대한 대리석으로 만들어진 석관이 인상적이었는데, 안내하시는 유혜숙 보살님이 “자신의 무덤을 이렇게 파헤쳐 전시해 놓은 걸 알면 마음이 어떨까” 라고 하니, 스님께서는 “관을 이렇게 화려하게 해 놓으니 파헤쳐 지는 것”이라며 “다 자기들이 지은 과보로 생긴 일” 이라며 권력자들의 사치에 대해 일갈을 해주셨습니다.nbsp도자기 관에서는 12세기부터 20세기에 이르기까지 셀주크, 오스만 투르크의 도자기가 연대순으로 정렬되어 있었습니다.nbsp강연 시간이 거의 다 되어 마지막으로 이스탄불 시내의 전체 조망이 한눈에 보이는 갈라탑으로 향했습니다.nbsp▲ 갈라타 탑1348년에 지어진 이 탑은 제노바인들이 거주하던 요새라고 합니다. 수차례의 지진에도 무너지지 않았고 19세기 중반 제노바의 성벽을 모두 철거할 때도 살아남았다고 합니다. 사방이 탁 트인 발코니에 서니 시원한 전망이 눈 앞에 펼쳐졌습니다. 저 멀리 성소피아 성당과 블루 모스크도 보였습니다.nbsp▲ 저 멀리 보이는 것이 보스포루스 해협▲ 저 멀리 성 소피아 성당과 블루 모스크가 있는 구시가지가 보입니다.nbsp이스탄불의 조망을 보고 내려와, 거리를 달리는 전차로 유명한 이스틱클랄 거리를 따라 내려오니 바로 오늘의 강연장이 나왔습니다. 오늘 강연은 Convento Santa Maria Draperis 라는 수도원에서 열렸습니다.nbsp▲ 오늘 강연장인 Convento Santa Maria Draperis 수도원. 이스탄불의 메인 스트리트인 이스틱클랄 거리에 있었습니다. nbsp오늘 강연 장소는 주 이스탄불 한인공동체의 도미니코 신부님께서 섭외해 주셨는데, 신부님께서는 지난 5월에 한국으로 귀국하셔서 오늘 강연에는 참석하시지 못하셨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신부님께서는 사전에 한인 분들에게 많은 홍보를 해주셔서 오늘 강연에는 한인 성당에서 많은 분들이 참석해 주셨습니다.nbsp수도원에 도착하니 수도원장님이신 루벤 신부님이 스님 일행을 반갑게 맞이해 주셨습니다. 루벤 원장님이 직접 수도원 전체를 안내해주시기까지 하셨습니다. 스님께서는 먼저 예배당에서 정성껏 기도를 한 후 루벤 원장님의 안내를 받아 수도원을 둘러보셨습니다. 루벤 원장님은 종교를 뛰어넘어 대중들의 고민을 해결하는 스님의 활동에 대해 “매우 가치 있는 일”이라며 칭찬을 아끼지 않으셨습니다. 스님께서도 오늘 강연이 가능하도록 도움을 주신 루벤 수도원장님께 The Freedom 이라는 스님의 영문 번역 책을 선물로 드렸습니다.nbsp▲ 스님을 정성껏 맞이해준 마르셀로 신부님과 루벤 수도원장님 nbsp오늘 이스탄불 강연은 총 100명이 참석하여 대성황을 이루었습니다. 강연준비팀에서는 50명 정도 올 것이라 예상하고 장소를 좁은 공간을 빌렸는데, 100명이 넘게 오는 바람에 앉을 의자가 부족해 앞부분 무대 쪽에 쪼그려 앉거나 뒤쪽에 서서 강연을 들어야 하는 분들이 많았습니다. 스님께서는 미리 참석인원을 예상하지 못해 죄송하다며 양해를 구하고 강연을 시작하였습니다.nbsp총 7명이 스님께 질문을 하였습니다. 결혼을 할 때 좋은 남자를 만나는 방법을 묻는 분, 뜻대로 안될 때 좌절감이 드는데 어떻게 마음을 다스려야 하는지 묻는 분, 종교가 카톨릭인데 종교가 점점 세속화되어 갈 때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하는지 묻는 분, 불교는 어떤 세계관을 갖고 있는지 묻는 분, 이곳 이스탄불에서 이뤄낸 성과들과 외로워서 한국으로 돌아가고픈 마음 사이에서 고민하고 있는데 어떻게 하면 좋을지 묻는 분, 어머니에게 상처주는 말을 했는데 어떻게 어머니와 화해를 할 수 있는지 묻는 분, 아이에게 자주 화를 내게 되는데 어떻게 고칠 수 있는지 묻는 분 등 다양한 질문에 대해 스님께서는 지혜로운 말씀을 들려주었습니다.nbsp오늘은 그 중에서 어머니에게 상처주는 말을 하고 난 뒤 어떻게 관계를 풀어야 할지 고민인 여성 분의 질문과 스님의 답변을 소개합니다.nbsp“이스탄불에 살고 있습니다. 지금까지 저는 하고 싶은 것만 하고 후회 없이 살았습니다. 딱 한 가지 후회되는 것이 어머니가 사업으로 힘드실 때 상처 되는 말씀을 드린 것입니다. 제가 어머니께 어떤 분을 믿지 말라고 했는데 그 분을 믿어서 사업에 실패해서 “다시는 엄마를 보지 않겠다” 고 막말을 했습니다. 어머니가 지금도 상처가 분명히 있으실 텐데... 그 상처를 회복시켜드리고 싶은데 어떻게 해야 될지 모르겠습니다.”“제가 보기에는 어머니의 상처가 문제가 아니고 질문자의 상처가 문제입니다. 그런데 왜 괜히 어머니 핑계를 댑니까? 자기라는 존재는 완벽한 존재여야 하는데 그런 미숙한 행위를 한 자기를 지금 자기가 용서를 못하고 있는 것입니다. 자기는 다 잘났는데 그것 하나만 인생의 오점이 생긴 겁니다. 어머니와는 아무 관계가 없어요.nbsp질문자 스스로가 이런 오점이 있는 존재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내가 완벽한 존재가 아닙니다. 무오류성에 집착하는 것이 문제입니다. 종교의 무오류성, 교황의 무오류성, 공산당의 무오류성, 수령님의 무오류성, 이것이 모든 세상의 악을 만드는 원인입니다. 우리는 늘 부족한 존재입니다. 질문자도 부족한 존재이니까 질문자의 수준에서는 그런 말을 충분히 할 수 있는 것입니다. 질문자가 뭐 그리 대단하다고 그럽니까. 질문자는 엄마가 자기 말 안 들으면 성질이 나서 “엄마 안 본다” 하는 수준 밖에 안 되는 사람이에요.nbsp그러니까 앞으로 이것을 계기로 해서 ‘항상 나는 부족하다’는 것을 자각해 보세요. 질문자의 성질은 앞으로 결혼을 해서도 내 마음에 안들면 남편한테 “너하고 다시는 안 산다” 이럴 수 있는 성질입니다. 나중에 아이도 말 안 들으면 “모자 관계를 끊자” 이렇게 말할 성질이고, 회사 다니다가도 마음에 안 들면 사표를 확 던지면서 “다시는 안보겠다” 이럴 수 있는 성질입니다. 엄마한테도 그렇게 독한 말을 했는데 누구한테 못하겠어요?nbsp그러니까 ‘아, 나한테도 이런 미숙함이 있구나’ 이것을 내가 발견한 것입니다. 나의 부족함을 내가 알게 된 것입니다. 부족함을 알게 된 것이 부끄러운 것이 아닙니다. 천하가 다 내 부족함을 아는데 나만 그 부족함을 모르고 있으면 얼마나 웃음거리입니까? 아직 세상 사람들은 나의 부족함을 잘 눈치 채지 못하는데 나는 이것을 미리 알게 된 것입니다. 사람들이 나를 보고 착하다고 해도 속으로는 ‘아니야, 나도 독한 구석이 있어’ 할 수 있게 되었고, 사람들이 성질 좋다고 해도 ‘아니야, 나는 성질 안 좋은 사람이야’ 이렇게 할 수 있게 된 것입니다. ‘만약 앞으로도 내 성질대로 계속 하면 더 많은 사람들의 마음에 상처를 줄 수 있겠구나. 어머니 한 분으로 족하다’ 이렇게 학습비라고 생각하셔야 돼요.nbsp그래도 어머니한테 그렇게 했으니까 부작용이 적지, 남한테 그렇게 했으면 부작용이 아주 많았을 겁니다. 그러니까 이것을 변화의 계기로 삼아야 합니다. ‘나한테 이런 부족함이 있구나’, ‘내가 성질이 받칠 때는 좀 유의를 해야겠구나’, ‘내가 옳다는 생각에 사로잡혔을 때는 좀 유의를 해야겠구나’, ‘화가 날 때는 호흡을 한 번 더 가다듬고 생각을 해보자’, ‘절대로 극단적인 단정은 내리지 말자’ 이렇게 생각할 수 있는 계기가 된 것입니다.nbsp그래서 엄마한테 절하면서 “엄마, 감사합니다. 저의 이런 부족한 점을 발견하는 계기를 마련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이렇게 절을 하면 자기 상처가 치유가 됩니다. 어머니와는 아무런 관계가 없습니다. 자기가 자기의 상처를 붙들고 헤매고 있는 겁니다. 자기의 무오류성에 흠집이 생겨서 자기가 지금 못 견뎌 하는 것입니다. 하얗고 깨끗한 옷을 입으면 흙탕물이 한 방물만 튀겨도 옷 버렸다 이렇게 되는데, 검은 옷을 입고 가면 열 방울을 떨어뜨려도 표시가 별로 안 납니다. 그것처럼 너무 깨끗한 척 하면 세상 살기가 어렵습니다. 자신이 부족한 줄 알아야 합니다.nbsp벌써 “나는 내가 원하는 대로 살아왔다” 이런 얘기를 할 정도면 얌전하게 생겼어도 질문자는 보통 사람은 아닙니다. 그렇기 때문에 항상 ‘내가 부족하구나’ 자각해야 합니다. 겉으로는 착실해도 속으로는 ‘부족하구나’ 자각하는 계기를 마련했기 때문에, 이것을 발견하게 해준 어머니에게 감사해야 합니다. ‘어머니의 판단이 옳았다’ 이러지도 말고, 또 ‘내가 잘못했다’ 이러지도 말고, 그 사건을 계기로 해서 내 속에 있는 극단성을 발견한 것입니다. 그러니 어머니께 “앞으로 화를 자초할 것을 미리 발견하게 해줘서 감사합니다” 이렇게 얘기를 하세요.nbsp어머니에게 “어머니 그 때 제가 막말을 해서 미안해요” 말하고, 어머니가 ”괜찮다” 그러면 ”어머니, 그때 제가 나이가 너무 어려서 막말이 나왔는데, 저는 오히려 그 사건을 통해서 제가 독한 면이 있다는 것을 발견하게 되어 어머니에게 늘 감사하며 지냅니다” 이렇게 이야기를 해보세요.nbsp어머니가 “그래, 너가 그래서 엄마가 상처를 입었다” 이렇게 얘기를 하면, “엄마가 상처를 입었지만 그래도 딸이 좋아졌다니까 엄마 용서해 주세요” 이렇게 풀어야 합니다. “엄마, 죽을 죄를 지었어” 자꾸 이러면 오히려 안 풀려요. 딸이 자꾸 잘못했다고 하면 오히려 엄마는 자신의 속심을 안 내어놓습니다. “엄마, 고마워요. 엄마 덕분에 나를 발견하는 계기가 되었어요” 이렇게 얘기를 하면, 엄마가 “아이고, 내가 너를 낳았지만 너 진짜 독하더라. 어째 내 자식이 저렇게 독한 줄은 몰랐다” 이렇게 속심을 내어놓게 됩니다. 속심을 내어놓는 것이 엄마의 상처가 치유되는 과정입니다. 엄마가 “괜찮다, 괜찮다” 이렇게 말하는 것은 치유되는 것이 아닙니다. nbsp nbsp nbsp그렇게 얘기했는데도 엄마가 “그런 일이 있었냐? 나는 다 잊었다” 할 수 있습니다. 엄마란 원래 그렇습니다. 그러면 ‘아, 엄마가 그 때 상처가 안 되었구나’ 알 수 있어요. 만약 엄마가 상처가 되었다면 “미안해” 그러지 말고 대화를 걸면, 엄마는 “내가 상처를 입었지만, 너가 좋아졌다니까 엄마는 괜찮다” 그럽니다. 부모란 그렇습니다. 질문자도 자식 낳아 키워보면 부모 심정이 어떤지 알 수 있습니다. nbsp그러니 엄마의 상처는 질문자가 신경 쓸 필요가 없습니다. 자기가 나중에 자식을 낳아서 그런 말을 했다면 자기가 책임을 져야 합니다. 그러나 엄마는 엄마의 인생입니다. 엄마는 자식을 감싸 안고 살아야 하니까 엄마는 신경 쓸 필요가 없습니다. 질문자는 꽁 하고 있지 말고 ‘내 결벽증에 내가 지금 못 견뎌 하는 구나’ 이렇게 자기를 봐야 합니다. 그래서 자기가 부족한 줄 알아야 합니다. 스님이 이렇게 안 꼬집어 줘도 자기가 자기를 알아야 합니다.nbsp모든 상처는 나에게 있는 것입니다. 내 상처를 먼저 치유해야 남의 상처도 치유할 수 있는 겁니다. 예수님이 화가 나서 “주여, 저 두 놈은 지옥에 확 처넣어 버리세요” 했다면, 예수님이 아무리 좋은 얘기를 해도 우리의 죄를 대신 짊어질 수가 없지요. 그분은 자신에게는 아무런 상처가 없었던 겁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 모두를 위로할 수가 있었던 것입니다. 항상 자기 상처를 먼저 치유해야 합니다. 이기적이라고 보면 안 됩니다. 내 상처를 먼저 치유해야 우리는 타인에게 너그러울 수 있고, 타인의 상처를 감싸 안을 수 있습니다. 이 문제는 엄마 문제가 아니고 자기 문제라는 것을 자각했으면 좋겠습니다.”nbsp질문한 여성분의 얼굴에 활짝 웃음꽃이 피었습니다. 강연을 마치고 질문자에게 스님의 답변을 듣고 난 소감을 물어보았습니다. 질문자는 “스님 말씀대로 엄마 문제가 아니라 내 문제였구나 알게 되어 개운한 느낌입니다” 라며 밝게 웃었습니다. nbsp오늘 강연은 무려 3시간 동안 열기있게 진행되었습니다. 스님께서는 오늘 강연을 마무리하면서, 살아있음에 늘 감사하는 마음을 강조하며 이렇게 정리 말씀을 해주셨습니다.nbsp“삶이 길거리에 핀 풀 한포기와 같다고 생각하면 사는 것이 걱정할 게 없습니다. 아침에 눈을 뜨면 ‘오늘도 살았네’ 한 번씩만 외쳐 보세요. 살았다는 것보다 인간에게 더 좋은 에너지를 주는 것은 없습니다. 살았다는 것에 감사하는 마음을 내면 나머지는 별로 중요하지 않아요. 인생에 너무 많은 의미를 두지 마세요. 항상 현재에 살아야 합니다. 현재에 가장 중요한 것은 지금 살아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명상을 할 때 호흡관을 하는 이유도 숨 쉬고 있다는 것에 깨어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살아있는 것이 늘 행복해야 합니다. 혼자 살아도 행복하고, 둘이 살아도 행복하고, 자식이 있어도 행복한 것이고, 이혼을 해도 결혼 한 번 더 할 수 있으니까 행복한 것이고, 신체 장애라도 살아있는 것은 행복한 것입니다.nbsp그런데 여러분들은 나는 이래서 불행하다며 불행한 이유들을 자기가 만들어서 확고부동하게 움켜쥐고 있어요. 그것을 놓아버리세요. 나이가 들면 들어서 좋고, 젊으면 젊어서 좋고, 혼자라면 혼자여서 좋고, 결혼했으면 결혼해서 좋고, 터키에 살면 터키에 살아서 좋고, 한국에 가면 한국에 가서 좋고, 이렇게 긍정적으로 봐야 합니다. 그럴 때 여러분들의 삶이 가벼워지고 밝아집니다. 그런 마음으로 친구를 사귀고 장사를 하면 조금 더 나아져요. 그러면 모든 것이 좋아질 확률이 높아집니다. 그렇게 살아가시길 바랍니다. 감사합니다.”nbsp스님께서는 책 사인회를 하며 참석한 한분 한분과 인사를 나누셨습니다.nbsp오늘 강연은 김연옥 보살님이 주축이 되어 담당해 주셨습니다. 93년 모스크바에 유학을 오셨다가 터키인 남편을 만나서 2004년부터 이곳 이스탄불에서 의사를 하고 있는 남편과 살면서 딸도 낳고 행복하게 살고 계셨습니다. 오늘 강연 준비를 위해 가족 모두가 나와서 함께 봉사를 했습니다.nbsp▲ 오늘 강연 담당을 맡아주신 김연옥님 가족nbsp그리고 윤혜숙님은 오늘 하루 종일 유적지 안내를 명품 가이드 수준으로 해주시고, 식사와 숙소도 준비해 주셨습니다.nbsp신중애님은 남편인 에르한씨와 함께 공항 마중을 나오셔서 운전도 해주시고, 스님 일행이 시내로 이동할 때와 돌아올 때 하루 종일 운전 지원과 점심 도시락 준비를 해주셨습니다. 강연 준비도 함께 해주셨고요.nbsp이 외에도 파카유로 온형일 이사님이 강연 준비와 스님 일행을 맞이하는 준비를 할 수 있도록 후원금을 보시해 주셨고, 한인회 회장님께서는 스님을 환영하는 꽃바구니를 보내주셨습니다.nbsp또 오늘 강연을 함께 준비해준 많은 봉사자들이 있었습니다. 스님께서는 봉사자들과 기념사진을 함께 찍고 단주를 선물해 주었습니다. 그리고 “진심으로 고맙습니다” 라며 감사 인사도 함께 해주셨습니다.nbsp스님께서는 봉사자들과 기념사진을 함께 찍고 단주를 선물해 주었습니다. 그리고 “진심으로 고맙습니다” 라며 감사 인사도 함께 해주셨습니다.nbsp강연장 뒷정리를 마치고 오늘 숙소인 윤혜숙님이 운영하는 ‘다온’ 민박집으로 다시 돌아오니 밤10시반이 다 되었습니다. 스님과 스텝진 모두 강연을 준비하느라 저녁식사를 하지 못했는데, 보살님께서 정성껏 차려준 저녁 식사를 감사히 먹고 오늘 일정을 마무리합니다. nbsp내일은 오전에 비행기를 타고 아테네로 갑니다. 아테네에서 또 소식 전해드리겠습니다. ▼nbsp법륜 스님의 세계 100회 강연, 지난 날짜 소식 보기 nbsp
2014.9.16 세계 100회 강연(22) 뒤셀도르프
▲ 뒤셀도르프 즉문즉설 강연nbsp안녕하세요. 오늘은 법륜 스님의 세계 100회 강연 중 22번째 강연이 독일 뒤셀도르프에서 열리는 날입니다.nbsp어제는 밤12시에 프랑스 파리를 출발하여 밤새 차를 타고 새벽5시30분에 독일 아헨의 김선희 법우님 집에 도착했습니다. 밤새 차를 타고 오느라 휴식을 취하지 못해 6시부터 스텝진 모두 휴식하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오전9시에 최말순 보살님이 차려주신 아침을 먹고, 10시에 아헨을 출발했습니다. 차를 타고 2시간을 달려 12시에 뒤셀도르프의 박삼순 보살님 집에 도착해 보살님께서 정성껏 마련해 주신 점심을 먹었습니다.nbsp▲ 스님께 삼배를 올리는 독일정토회 회원 분들.nbsp스님께서는 연일 계속된 강행군으로 목이 많이 편찮으시고 온몸에 근육통이 있으셔서 도착하시자마자 휴식을 취하셨습니다.nbsp오후 1시부터는 독일정토회 이사회와 총회가 열렸습니다. 현재 독일에서는 푸랑크푸르트, 베를린, 뒤셀도르프 3곳에서 정토법회가 열리고 있고, 뮌헨, 함부르크 2곳에서 열린법회가 열리고 있습니다. 이 전체를 아우르는 것이 독일정토회인데, 이제는 독일정토회도 회원들이 많아지기 때문에 총회를 통해 이사를 뽑고, 선출된 이사회에서 이사장을 뽑고, 1년 한번 회계 감사도 하고, 이사회의 회의 결과도 회원들에게 보고하는 형식을 갖춘 법인을 운영하기로 하였습니다. 그래서 오늘 총회를 소집해 이와 같은 내용들을 논의하여 결정하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nbspnbsp▲ 독일정토회 총회 모습. nbsp먼저 총회 구성원 28명을 확정하고, 이사회의 이사로 송임덕 보살님을 대표로하는 임원 7명을 선출했습니다. 이사장으로 법륜스님을, 행정업무를 보는 총무로 이희정 보살님을, 회계 담당자로 김선희 보살님을 선출하였습니다. 그리고 법회 홍보를 위한 신문 광고료 지불 여부, 인도성지순례 참가자 모집 방법 등 몇 가지 안건들을 함께 논의하였습니다. nbspnbsp▲ 독일정토회를 만들어가는 사람들.nbsp정토회의 1차 만일결사는 국내 활동을 중심으로 이뤄지지만, 2차 만일결사는 해외활동이 중심이 될 것이기 때문에 스님께서는 해외 정토회의 사업 내용과 회계가 항상 투명하게 진행되도록 해줄 것을 당부하셨습니다.nbsp총회를 마치고 잠깐 시간을 내어 독일 교민 역사의 산 증인이신 이상호 거사님을 만나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이상호 거사님은 1965년 33살의 젊은 나이에 광부로 독일에 오셨습니다. 독일 교민의 역사에서 가장 초창기에 오신 분입니다. 최근에는 ‘독일 광부 30년사’를 직접 책으로 집필하기도 하셨다고 합니다. 거사님의 사모님도 남편을 따라 1966년에 간호사로 오셨는데, 두 분은 이곳 독일에서 무려 49년을 살아오신 셈입니다. 거사님께 그동안의 독일에서 살아온 삶이 어떠했는지 물어보니 이렇게 답변해 주십니다.nbsp▲ 독일 교민 역사의 산 증인이신 이상호 거사님과 박삼순 보살님 부부.nbsp“사실 독일이나 한국이나 삶에 있어서 부딪치는 어려움은 같습니다. 어떤 마음을 갖느냐에 따라 한국에서도 똑같은 어려움에 처할 것입니다. 독일 사회는 외국인에 대한 차별이 거의 없었어요. 그리고 직업에 대한 귀천 의식도 크지 않았습니다. 한국처럼 광부라 하면 천한 직업이 아니었어요. 그래서 광산에서, 제철공장에서 일하면서 보람되게 잘 지냈습니다. 다만 이제 돌아갈 날이 얼마 남지 않아서 몸은 고향 땅에 묻히고 싶은 바램이 있습니다.” nbsp낯선 나라에서 어려움이 많으셨을 텐데, “어려운 점은 없으셨냐?”는 질문에 그냥 웃기만 하시는 얼굴의 주름살을 보며 마음 한켠이 숙연해졌습니다.nbsp오후 4시에는 스님께서 건강이 계속 안 좋으셔서 원래 예정된 일정을 취소하고 병원에 가기로 했습니다. 스님께서는 북유럽에서 강연을 하는 동안 마이크 시설 없이 휴대용 스피커로 강연을 하셨는데, 목을 무리하게 사용한 것이 원인인 것 같습니다. 편도선이 붓고 목에서 피가 나오고 온몸에 근육통이 있으셔서, 배길야 보살님의 소개로 뒤셀도르프 근교에 있는 박영옥 선생님의 개인 병원으로 가서 진료를 받으셨습니다.nbsp▲ 병원 진료를 해주신 박영옥 선생님nbsp박영옥 선생님은 “오늘도 강연이 있으시냐?” 며 스님의 계속된 강행군을 많이 염려했습니다. 항생제 처방을 받고, 인근 약국에서 항생제를 구입해 드시고 곧장 강연장으로 향했습니다.nbsp오늘 강연은 Freizeitstatte Garath 라고 불리우는 문화센터에서 열렸습니다. 총 120명이 참석하여 강연장을 가득 메웠습니다.nbsp▲ 오늘 뒤셀도르프 강연이 열린 Freizeitstatte Garathnbsp총 6명이 다양한 질문을 했습니다. 부모 형제들에게 협박하고 자신의 이익만 추구하는 친오빠를 미워하고 증오해서 고민인 분, 불교에서는 도대체 무엇을 믿어야 하는 것인지 궁금한 분, 50년 전에 노동자로 독일에 왔지만 차별을 받아본 적이 없었는데 요즘 우리나라에는 외국인 노동자들이 많은 차별을 받는 것이 우리나라 국민성 때문인지 압축 성장으로 인한 것인지 스님의 견해를 묻는 분, 20대에는 서른이 되면 더 의젓해지겠지 기대했는데 막상 서른이 되니 달라진 것은 없고 좌절이 된다는 분, 결혼한지 5년이 되었지만 아내와 종교가 달라 지금까지 고민이라는 분, 스님 법문을 들을 때는 참 좋은데 회사에 출근하면 10번 중에 1번 꼭 걸려서 스트레스가 쌓인다는 분 등 각각이 질문에 스님께서는 명쾌한 답변을 들려주셨습니다.nbsp오늘은 그 중에서 아내와 종교가 달라 갈등인 남성 분의 질문과 스님의 답변을 소개합니다.nbsp“저는 기독교를 믿고 있고요. 아내는 어렸을 때부터 불교 집안에서 자라서 불교를 믿고 있습니다. 저는 성경학교를 다녔다면 아내는 불교학교를 다녔습니다. 결혼할 때는 종교는 개인적인 문제라 제가 이해하고 받아들이면 괜찮겠지 했는데, 제 가족들도 모두 기독교여서 아내가 혼자 외롭게 떠다니는 섬처럼 되고 있어요. 저는 종교를 바꾸라고 말하지는 않았지만 주변 분위기가 교회에 나가야 하는 것으로 압박이 되고 있습니다. 저도 말로는 아내에게 자신의 종교를 지키면 된다고 하지만, 마음 깊숙한 곳에는 아내가 종교를 바꿔주기를 바라고 있는 것 같습니다. 시간이 지나면 자연스럽게 해결이 될 줄 알았는데, 결혼 한지 5년이 되었지만 갈등은 늘 제자리입니다. 이 문제를 어떻게 풀어야 할까요?”nbsp“아이들이 있어요?”nbsp“네, 있습니다.”nbsp“남편과 아내, 두 사람의 문제는 평등합니다. 이 문제를 갖고 각각 고집해도 상관없어요. 그러나 아이를 가지면 부모로서 아이에게 어떻게 할 것인가의 문제가 있습니다. 사회제도가 아이는 주로 엄마 품에 많이 있게 되지요. 엄마라는 말은 ‘기룬 자’라는 뜻이에요. 주로 여자가 아이를 기루니까 주로 여자가 엄마가 되는데, 만약에 아빠가 아이를 기루면 아빠가 엄마가 됩니다. 아이는 육체적으로는 엄마와 아빠를 반반씩 닮는데, 정신적으로는 품에 안아서 기룬 자를 80 이상 닮습니다. 엄마의 심리적 프로그램을 아이가 다운 받는 것과 같습니다. 그래서 질문자의 아이가 심리적으로 안정되고 스트레스도 덜 받고 건강하려면 내가 아이에게 잘해준다고 되는 것이 아니고 엄마가 스트레스를 안 받아야 합니다. 엄마가 편안하고 심리가 좋아야 아이도 좋아집니다.nbsp시어머니가 손자를 건강하게 자라게 하려면 ‘아기 엄마’인 며느리에게 잘해주어야 하고, 아빠가 아이를 건강하게 자라게 하려면 ‘아기 엄마’인 아내에게 잘해주어야 합니다. 남편과 아내라는 입장에서 아내에게 잘해주라든지 시어머니와 며느리라는 입장에서 며느리에게 잘해주라는 개념이 아닙니다. 성인끼리는 둘이서 싸우든 말든 자기들 문제인데, 아기가 있을 때는 다르다는 것입니다.nbsp종교적인 문제로 아기 엄마에게 갈등이 있으면 부부 지간에는 괜찮지만 아기에게는 나쁘다는 것을 질문자가 알고 있어야 합니다. 특히 아기가 세 살 때까지는 100 영향을 줍니다. 유치원 때는 70, 초등학교까지는 50, 사춘기 때는 30 정도 영향을 주고, 성인이 되면 거의 영향을 안 줍니다. 그래서 질문자는 아기 엄마의 마음을 편안하게 해줘야 합니다. 종교 문제로 갈등을 일으키면 바보 같은 행동을 하는 것입니다. 불교가 좋냐 기독교가 좋냐 하는 문제와는 아무런 관계가 없는 문제입니다.nbsp그렇다고 가족들에게 “그러지 마라” 자꾸 그러면 질문자가 가족들과 또 갈등이 생기거든요. 특히 기독교는 가족들을 전도하지 못하면 교회에서 체면이 안섭니다. “너 가족도 전도하지 못하니?” 이렇게 되기 때문에. 권사나 집사가 되려면 가족을 전도해야 올라갈 수 있거든요. 기독교 집안에 시집을 왔기 때문에 가족들이 그러는 것은 어쩔 수가 없어요. 그래서 질문자는 아내가 아기를 키우는 동안에는 거기에 구애를 받지 않도록 해주어야 합니다. 질문자가 아기 엄마를 편안하게 하는 방법은 질문자만이라도 항상 아내에게 “아이고 여보, 종교 문제 때문에 힘들었지? 괜찮아” 이렇게 위로해 주고 오히려 자기 신앙을 지킬 수 있도록 도와주세요. nbspnbsp남편이 좋으면 남편의 종교도 좋게 보이고, 남편과 갈등이 생기면 남편 갖고 시비를 못하고 자기 정체성으로 종교를 지키려고 합니다. ‘기독교로 바꾸는 것은 내가 남편에게 굴복하는 거다’ 이렇게 해서 더 불교를 움켜쥐게 됩니다. 왜냐하면 ‘종교의 자유’라는 핑계를 댈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것을 종교로 건드리면 해결하기 어렵습니다. 질문자가 아내를 기독교로 개종시키려고 하더라도 종교로 접근하면 절대로 승산이 없습니다. 아이들한테도 나쁜 영향을 주고요.nbsp오히려 질문자가 아내에게 잘해주고 최선을 다해주고 아내에게 존경받는 사람이 되어주는 것이 더 효과적입니다. 그렇게 되기 위해서는 질문자가 수행을 많이 해야 됩니다. 그렇게 해서 남편이 신뢰가 되고 좋아지면 종교는 부차적으로 따라옵니다. 그때는 가만히 놓아두어도 아내가 교회로 따라오게 됩니다. 사람이 변하면 부정적인 것은 다 상쇄돼요.nbsp아이들을 기독교 신자로 만들고 싶으면, 엄마 아빠가 다투는데 아이들이 듣기에 엄마가 더 합리적이다 싶으면 아이들이 엄마 쪽 종교를 선택합니다. 엄마가 좀 문제고 아빠가 더 낫다 싶으면 아빠 쪽 종교를 선택합니다. 그러니까 기독교를 믿어라 하는 방식의 선교는 효과적이지 못합니다. 이제는 사람들이 스스로 선택할 수 있도록 우리가 어떻게 살아가느냐 이게 중요합니다. nbsp첫째, 아이의 심리적 안정을 위해서도 질문자가 아내를 잘 보살펴주어야 하고, 둘째, 아내를 장기적으로 기독교로 오게 하기 위해서도 질문자가 아내에게 신뢰를 얻는 것이 중요하고, 셋째, 자녀들이 기독교로 오도록 하는 데에도 질문자의 삶이 얼마나 사랑으로 바뀌느냐가 중요합니다. 교회로 강제로 오게 하는 것은 쉽지가 않아요. 시어머니가 아무리 절에 열심히 다녀도 집안에서는 며느리한테 고지식하게 대하고 자기 고집이 세서 며느리한테 신뢰를 못 얻으면 며느리는 절대로 불교 신앙을 안 가집니다. 형식적으로만 따라가지 교회로 갈 확률이 높아요. 시어머니가 싫으니까 시어머니가 믿는 종교도 싫어지는 것입니다.nbsp그래서 질문자는 종교는 잊어버리고 우선 ‘아이의 엄마를 편안하게 해줘야 되겠다’ 이렇게 생각하고 아내에게 사랑받는 남편이 먼저 되세요. 외로움 속에서 남편 하나 믿고 시집을 왔는데 남편이라도 방패막이가 딱 되어 주어야 합니다. 가족들과 갈등이 있더라도 오히려 위로해주세요. 그렇게 해줘야 아내가 남편을 신뢰할 수 있게 됩니다.”nbsp질문한 남성분은 활짝 웃으며 “예, 감사합니다” 하고 자리에 앉았습니다. 스님께서는 목이 많이 아프심에도 불구하고 2시간 20분 동안 쉬지 않고 열강을 해주셨습니다. 강연을 마무리하면서는 긍정적인 사고를 강조하시면서 함께 행복한 삶을 기원해 주셨습니다. nbsp“아직 안 죽고 살아 있는 것만 해도 인생은 대성공입니다. 남의 집에 가서 구걸하지 않고 사는 것만이라도 됐다. 이렇게 긍정적으로 자기를 바라보면 아직은 살만한 세상에 우리가 살고 있습니다. 대한민국에 대해 걱정들도 많이 하시는데, 대한민국도 이런저런 문제가 많지만 지금까지 잘 굴러왔고 앞으로도 잘 굴러갈 거예요. 그런 긍정 위에서 그래도 더 잘 되려면 ‘내가 힘을 좀 보태야겠다’ 이렇게 해서 긍정적인 측면에서 비판도 좀 해주시기 바랍니다. 그렇게 하면 같이 행복하게 살 수가 있습니다.”강연을 마치고 책 사인회를 하는데 많은 분들이 스님의 건강이 염려되었는지 “스님, 건강하세요”, “100회 강연, 무사히 잘 마치세요” 하며 인사를 건냈습니다.nbsp오늘 뒤셀도르프 강연은 최순진 총무님을 중심으로 뒤셀도르프 정토법회 회원들의 자원봉사로 진행될 수 있었습니다. 특히 최순진 총무님의 아들 동찬군도 함께 자원봉사를 해서 모자 지간의 훈훈한 모습을 보여주었습니다.nbsp▲ 뒈쉘도르프 정토법회 최순진 총무님과 아들 동찬군.nbsp수고한 봉사자들과 기념 촬영을 한 후 오늘 강연을 마무리하였습니다.nbsp▲ 오늘 뒤셀도르프 강연을 함께 준비해준 봉사자분들.nbsp스님께서는 몸이 많이 편찮으셔서 봉사자들과의 소감나누기는 함께 하지 못하시고 곧바로 휴식을 취하셨습니다.nbsp독일 쾰른 공항에서 새벽 2시에 비행기를 타고 밤새 이동해 터키 이스탄불에는 아침 6시에 도착할 예정입니다. 내일은 터키에서 또 소식 전해드리겠습니다.nbsp▼nbsp법륜 스님의 세계 100회 강연, 지난 날짜 소식 보기
2014.9.15 세계 100회 강연(21) 프랑스 파리
nbsp안녕하세요. 오늘은 법륜 스님의 세계 100회 강연 중 21번째 강연이 프랑스 파리에서 열리는 날입니다. 역사적인 건축물, 장엄한 갤러리, 풍부한 문화재들로 가득한 도시 ‘파리’를 향해 달려갑니다.nbsp독일 아헨에서 프랑스 파리까지 519km를 달려가야 해서 오늘은 출발을 서둘렀습니다. 새벽 4시30분에 아헨의 김선희 법우님 집에서 출발해 6시30분 무렵 성벽으로 둘러싸인 도시로 유명한 룩셈부르크를 경유하여 6시간30분 만인 오전 11시에 파리에 도착했습니다. 최말순 보살님이 어제 브뤼셀에서 신인숙 보살님이 싸주신 남은 김밥으로 맛있는 볶음밥을 만들어 도시락으로 싸주셔서, 휴게소에 들러 아침 겸 점심으로 먹었습니다.nbsp센느강을 가로 질러 가장 먼저 찾아간 곳은 베르사유 궁전입니다. 17세기 중반 루이 14세가 아버지의 사냥 별장을 20년 간 공들여 궁전으로 증축해 지은 베르사유 궁전은 프랑스에서 가장 유명하고 웅장한 왕궁입니다.nbsp▲ 베르사유 궁전1682년 완공 이후 프랑스 혁명으로 왕실 측근들이 학살당하고, 루이 16세와 마리 앙트와네트가 파리로 끌려와 단두대에서 처형을 당하던 1789년까지 궁정의 기능을 수행했던 곳입니다. ‘태양왕’ 루이 14세는 당대 최고의 예술가들과 장인들을 고용해 역사상 가장 사치스런 왕궁을 건설했습니다.nbsp▲ 베르사유 궁전의 정원궁전 내부 관람은 오늘이 휴간일이라 들어가 보지 못하고, 궁전 앞의 정원을 산책하는 시간을 가졌습니다.nbsp정원의 규모가 너무나 커서 대부분 전기자동차를 이용해서 다니는데, 스님께서 “운동 삼아 걷자” 고 하셔서 스님 일행은 걸으면서 잠시나마 평온한 시간을 가졌습니다. 정원의 규모를 보니 건물은 따라 지을 수 있어도 정원만큼은 세계 어디에서도 흉내낼 수가 없겠구나 싶었습니다.nbsp▲ 베르사유 궁전의 정원베르사유 궁전을 나와 파리의 상징물인 에펠탑으로 향했습니다. 에펠탑은 프랑스 혁명 100주년을 기념하여 개최된 1889년 파리 만국박람회를 위해 세워졌습니다. 당시 에펠탑은 파리의 예술 및 문화계 엘리트들의 어마어마한 반대에 부딪쳤고, 일부 파리 시민들에게 ‘금속 아스파라거스’라는 불명예스러운 이름으로 불리면서 1909년 허물어질 위기에 처했지만, 무선전신이라는 최신식 과학에 필요한 안테나 전송에 이상적인 플랫폼으로 증명되어 간신히 철거 위기를 모면했다고 합니다. 에펠탑 전경이 가장 잘 보인다고 하는 사이요 궁 앞에 올라가니 전체 전경을 한눈에 바라볼 수 있었습니다.nbsp▲ 파리 에펠탑다음은 에펠탑에 필적할 만한 파리의 상징물인 ‘개선문’을 보았습니다. 1805년 나폴레옹 황제가 아우스터리츠 전투의 승리를 기념하기 위해 1836년에 제작한 이 개선문은 높이 50m의 꼭대기 전망대에 오르면 아치에서 퍼져 나가는 12개의 대로가 한눈에 들어온다고 합니다. 아치 아래에는 제1차 세계대전에서 전사한 130만 명의 프랑스 군인들을 추모하기 위한 무명 용사의 묘가 있으며, 매일 630pm이면 영원히 꺼지지 않는 횃불이 되살아난다고 합니다. 차에서 내려 잠깐 둘러본 후, 전쟁으로 희생된 무명용사들을 천도하기 위해 잠시 기도해 보았습니다.▲ 파리의 개선문다음은 몽마르뜨 언덕에 올라가 보았습니다. 몽마르뜨 언덕 위에는 1876년에 짓기 시작해 1919년에야 축성된 사크레 쾨르 대성당이 우뚝 솟아 있었습니다.nbsp▲ 사크레 쾨르 대성당nbsp대성당 앞 계단에서 보니 파리 시내의 전경이 훤히 내려다 보였습니다.nbsp▲ 몽마르뜨 언덕 위에서nbsp마침 대성당 앞에서 오늘 스님 강연을 듣기 위해 파리로 왔다는 여성 두 명을 만났습니다. 한분은 휠체어를 타고 계셨고, 한분은 함께 오신 분이었습니다. 두 분은 스님을 보자 너무나 반가워하며 좋아했습니다. 스님께서 인사를 건네니, 강연장에서 전달하려고 미리 써왔다는 카드를 건냈습니다. 휠체어를 타신 분은 “힘든 순간이 많았는데 유튜브로 스님의 즉문즉설을 보면서 많은 힘을 얻었다”고 하며 스님께 감사의 마음을 전했습니다. 두 분은 저녁 강의 때 다시 반갑게 만날 수 있었습니다. nbspnbsp▲ 몽마르뜨 언덕에서 만난 스님 강연에 참가하기 위해 파리에 왔다는 분어느덧 시간이 3시가 다 되어갔습니다. 루브르 박물관을 관람하는 것을 마지막으로 유적지 관람을 마무리하기로 했습니다. 루브르 박물관은 수십 개의 전시실과 계단이 3개의 전시관과 4개 층에 복잡하게 얽혀있어 어떤 순서로 어떻게 관람해야 전체를 다 볼 수 있을지 한 눈에 파악하기가 쉽지 않았습니다. 스님께서는 고대 오리엔트, 이집트, 그리스, 로마 순서로 조각, 회화 등의 작품들을 아주 빠른 걸음으로 살펴보셨습니다.nbsp▲ 고대 바빌로니아의 함무라비 법전. “눈에는 눈, 이에는 이” 라는 원칙으로 유명한 법전.nbsp▲ 고대 그리스의 대표적인 조각상 ‘비너스’. 그리스 신화에서 사랑과 미를 관장하는 여신인 아프로디테를 묘사.nbsp▲ 16세기 르네상스 시대에 레오나르도 다 빈치가 그린 초상화. 황금비율인 11.618의 비율이 상당히 많이 들어가 있어 균형잡힌 느낌을 주는 것으로 유명합니다.nbsp오후 5시에는 강연장으로 이동해야 해서 정말 초스피드로 전체를 둘러보았음에도 불구하고 2층까지만 관람을 하셨고 3층은 둘러보지 못하셨습니다. 스님께서는 이집트 유물을 보시면서 “이집트 사람들이 이곳에서 이 유물을 본다면 마음이 어떨까?” 하시기도 했는데, 관람을 마치고 저녁 강연 중에 짧게 소회를 말씀하기도 하셨습니다. nbsp“서구의 이런 물질적 풍요는 아시아 아프리카 라틴아메리카의 엄청난 착취 위에 이뤄진 것이에요. 사람들은 웅장한 건물 앞에서 ‘우와’ 탄성을 지르지만, 역사를 알고 있는 저로서는 마음 속으로 얼마나 많은 사람들의 희생이 있었는가를 생각해 봅니다.”▲ 루브르 박물관nbsp루브르 박물관 관람을 5시에 마치고 5시30분에 오늘 강연이 열릴 MAS Paris 건물에 도착했습니다. 입구에서부터 흰색 브라우스에 주황색 어깨띠를 깔끔하게 맞춰 입은 봉사자들이 스님을 반갑게 맞이해 주었습니다. nbsp▲ 오늘 강연장인 MAS Parisnbsp파리 강연은 봉사자들이 튼튼하게 역할분담이 잘 되어 있는 것이 특징이었습니다. 사전에 봉사자 모임을 통해 ‘봉사자의 자세’에 대한 스님 법문도 함께 보고 계획도 함께 세우는 준비과정이 잘 이루어졌다고 합니다. 오늘은 26명의 봉사자들이 참여하여 로비팀, 외부안내팀, 강당내부팀 3팀으로 나뉘어져 일사 분란한 진행이 이뤄질 수 있었습니다.nbsp오후6시30분, 총 200명이 참석한 가운데 스님께서 무대에 나타나시자 뜨거운 환호와 박수 속에서 강연이 시작되었습니다. 스님께서는 “오늘 하루종일 걸음을 많이 걸었더니 다리에 무리가 간 것 같다” 하시며 청중들께 양해를 구하고 의자에 앉아서 강연을 하셨습니다. 총 10명이 스님께 다양한 질문을 하였습니다.nbsp저는 불자이고 아버지도 불자로 돌아가셨는데 동생들이 다 교회를 다니고 어머니까지 전도해서 어머니와 동생들이 불편해졌는데 어떻게 대해야 할지 묻는 분, 최근 세월호에 대해서 많은 사람이 아파하고 있는데 기도만 한다고 해서 이 문제가 해결이 되겠는지 묻는 분, 북한에서는 장애인을 어떻게 대하고 있는지 궁금하신 분, 스님 강연을 듣고 불살생 계율을 지켜보고자 육식을 안 하고 있는데 주위로부터 안 좋은 시선을 받아 고민인 분, 프랑스에서 요리사를 하고 있는데 스님 말씀 중에 “뜨거우면 손을 놓아라”는 법문의 의미가 궁금한 분, 한국 친구들은 파리에 사는걸 부러워하는데 자신은 그렇지 않다며 어떻게 하면 마음의 평안을 얻을 수 있는지 묻는 분, 4대강 사업을 한 이명박 정부를 욕하면서 자신은 농약 치는 골프장에서 골프를 즐기는 게 모순처럼 느껴진다는 분, 강물은 흘러서 바다로 가는데 강물처럼 살아야 할지 바다처럼 살아야 할지 인생을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묻는 분, 친구와의 관계에서 진정한 배려란 무엇인지 묻는 분, 미술을 하는데 돈을 벌어야 해서 속박 받는 생활 패턴에 살게 되었는데 어떻게 마음을 다스려야 하는지 묻는 분 등 다양한 질문에 대한 스님의 답변이 있었습니다. nbsp오늘은 그 중에서 친구와의 관계에서 진정한 배려에 대해 물었던 여성분의 질문과 스님의 답변을 소개합니다.nbsp“저는 살면서 어렵다고 느끼는 것이 다른 사람의 이야기를 들어주는 것입니다. 이성적으로 공감이 안 가도 그 사람의 기분에 맞춰서 ‘그랬구나’ 계속 공감해주면, 상대는 좋아하는데 남탓하는 습관이라든지 늦는 습관이라든지 이런 자신의 잘못된 습관을 합리화하는 문제가 불거지더라구요. 그래서 ‘나는 정말 이 사람을 배려했는가’ 의문이 듭니다. 그렇다고 만약 공감해주지 않았다면 그 친구는 정말 상처를 받았을 것 같거든요. 그런데 공감을 해주었기 때문에 그 친구가 더 나쁜 길로 간 것 같기도 합니다. 진정한 배려는 무엇일까요?”nbsp“진정한 배려는 없습니다. 들어도 줘보고 비판도 해보고 이래저래 해보고 방법을 찾아야 합니다. 경험상 이 친구는 약간 비판해주는 것이 긍정적 효과가 나는지, 이 친구는 비판해주면 고치기는커녕 오히려 상처가 더 심해져서 부정적 효과가 생기는지, 거기에 맞춰서 해주면 됩니다. 스님도 여러분이 질문하면 어떤 질문은 다른 사람보다 더 많이 수용해주기도 하고, 어떤 질문은 눈에 눈물이 나도록 야단치고 그러잖아요. 그러면 다 효과가 있느냐? 아니에요. 부작용도 생기고 그럽니다. 그러면 욕 좀 얻어먹으면 되는 겁니다.nbsp그래서 저는 강의하고 돈을 안 받습니다. 돈 받고 하면 돈 때문에 내 할 말도 못하고 효과가 반감됩니다. 돈을 안 받고 하면 효과가 안 난 것은 그만이고, 효과가 난 것은 ‘와, 좋더라’ 하면서 주위에 선전도 많이 해주고 그러거든요. 돈만 조금 양보하면 됩니다. 돈을 받기 때문에 문제입니다. 그래서 상담하는 사람은 손님 떨어질까 겁을 내서 더 조심하니까 상담이 잘 안 되지요. 저는 때로는 위로도 해주고 달래주기도 하지만 때로는 야단도 칩니다. 그러면 다 좋아졌느냐? 아니에요. 상처 입은 사람도 있는데, 공짜로 해서 좋아진 사람은 선전을 많이 하고, 공짜로 해서 효과가 없는 사람은 말이 없고, 그래서 효과가 있는 것처럼 보이지요. 그런데 돈을 받고 하면 어떠냐? 효과가 난 사람은 별로 말이 없고, 효과가 안 난 사람은 말이 많고, 그래서 악명이 높아지는 겁니다.친구 지간에 관계는 이래도 해보고 저래도 해보는 겁니다. 이 사람한테는 이렇게 하는 게 딱 효과적인데, 옆 사람한테 똑같이 하면 부작용이 날 때가 있습니다. 이번에는 이렇게 하는 게 효과적인데, 다음번에 그렇게 하면 부작용이 나올 때가 있죠. 그것을 적절하게 하기가 어렵습니다. 수도 없이 실험을 해보면서 확률을 높여가는 겁니다. ‘100 정확하다’ 그런 것은 없습니다. 무오류성을 주장하면 안 됩니다.nbsp그러나 오랜 경험이 쌓이면 어떠냐? 날카롭게 꼬집어 줘야 할 경우, 자비롭게 쓰다듬어 주어야 할 경우, 이런 것들이 자연스럽게 이뤄집니다. 확률이 처음에는 절반 타작도 안 되다가 시간이 지나면서 도움이 될 확률이 40에서 60, 70, 90로 점점 올라갑니다. 딱 정해진 방법이 없습니다. 사람마다 다르고, 그 사람도 시기에 따라 다르고, 또 그 사안에 따라 다르기 때문에 어떻게 해야 된다고 정할 수가 없습니다. ‘간을 어떻게 맞춰야 된다’ 이런 것이 없듯이, 사람 입맛 따라 다르고, 음식 따라 다르고, 음식도 짠 것이 맛있는 사람도 있지만 싱거운 것이 맛있는 사람도 있고, 술안주로 먹을 때 다르고, 밥반찬으로 먹을 때 다르고, 그냥 먹을 때 다르고, 간 하나만 갖고도 수십 가지 방법이 유동적인데, 간을 어떻게 맞춰야 된다 이런 것은 없다는 것입니다.nbsp질문자는 그 친구에 대해서 실험을 계속 해보세요. 그 친구에 대한 애정을 갖고 있다면, 이래도 해보고 저래도 해보고 꾸준히 해보세요. 한번 부작용 났다고 안 하지 말고요. 시기가 안 맞을 수도 있으니까요. 끝없는 실험을 통해서 효과가 높은 쪽으로 방법을 찾아가는 것입니다. 어떤 약도 100 낫는 약은 없어요. 치료율을 높여주는 약이지요. 그렇게 꾸준히 해나가는 것이 필요합니다.”nbsp질문자는 고민이 해결된 듯 활짝 웃으며 “예, 알겠습니다” 대답하며 자리에 앉았습니다. 청중들도 격려의 박수를 함께 보내주었습니다. 2시간 10분 동안의 강연을 마무리하며 스님께서는 청중들 모두 행복하게 사시기를 기원해 주셨습니다.nbsp“인생을 너무 고귀하게 생각하면 저급한 인생을 살게 됩니다. ‘인생은 그냥 풀 한포기가 나서 사는 것과 같다’ 이렇게 가볍게 생각하면 삶이 훨씬 더 활기가 있고 삶의 보람이 있습니다. 그렇게 행복하게 사시기 바랍니다.”nbsp강연을 마치고 스님께서는 책 사인회를 하며 참석한 청중들 한분 한분과 인사를 나눈 후, 수고한 봉사자들과 기념촬영을 하셨습니다. nbsp그리고 26명의 봉사자들과 함께 강연을 준비하면서 들었던 마음 나누기를 하였습니다. 봉사자 중에서 어떤 분은 “대인기피증과 우울증으로 힘들게 보내는 날이 많은데, 오늘 스님 말씀을 들으며 활짝 웃을 수 있어서 행복했다”며 강연을 들은 소감을 나눠주었고, 어떤 분은 “해외에 살면서 힘들 때마다 유튜브로 즉문즉설을 들으며 많은 도움을 받았는데, 오늘 봉사를 하면서 스님께 진 빚을 조금이라도 갚은 것 같다” 며 봉사를 통해 느낀 기쁨을 나누기도 했습니다.nbsp스님께서는 봉사자들의 이야기를 모두 들으시고 이렇게 격려 말씀을 해주셨습니다.nbsp“봉사하는 것이 즐거움이 되었으면 합니다. 봉사 시간이 많아지는 것이 자유로 나아가는 징표입니다. 꼭 정토회 일이 아니더라도 사회 곳곳에서 봉사를 많이 하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습관을 바꾸려면 꾸준히 해야 합니다. 의식이 무의식을 컨트롤하려면 꾸준히 해서 고비를 넘겨야 합니다. 그리고 충격요법으로 깨달음의장 같은 4박5일 수련을 하셔야 합니다. 유튜브로 법문만 들으면 알음알이만 늘어날 수 있습니다. 정진을 꼭 함께 하시기 바랍니다.”nbsp오늘 강연은 평화재단에서 오랫동안 일하다가 파리에 오신 박지현 보살님이 총괄을 하여 모든 과정이 원만히 준비될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파리에서는 매월 1회 열린법회를 꾸준히 열고 있다고 합니다. 정토불교대학도 개설하여 진행되고 있을 정도로 유럽에서는 왕성한 활동이 이뤄지는 곳 중에 하나입니다. 아마 그런 기반 위에 있었기 때문에 오늘 강연도 많은 봉사자들과 함께 안정적으로 잘 진행될 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nbsp그리고, 강연 시작 전에 고영자 보살님이 나물 비빔밥을 스님의 저녁 도식락으로 싸오셨습니다. 그리고 강연팀에서 스텝진들과 봉사자들을 위해 바게뜨 샐러드를 준비해 주셔서 감사히 먹었습니다. nbsp▲ 오늘 강연 총괄을 맡으신 박지현 보살님과 저녁 도시락을 준비해주신 고영자 보살님.그리고 강창진 거사님이 스님 일행을 위해 오늘 파리 시내 유적지 안내를 준비하셨는데, 안내를 받으며 여유 있게 둘러볼 시간이 나지 않아 거사님의 정성을 받지 못했습니다. 또 거사님이 강당 임대료 중 300유로를 보시하시고 이사빈 한국불란서교류협회 회장님이 도움을 주셔서 강당 임대를 저렴하게 할 수 있었다고 합니다. 그리고 앙굴렘에 사시는 이금자 보살님은 한번도 뵙지 못했는데, 연락을 주셔서 작년에 이어서 올해도 한위클리에 스님의 강연 광고를 후원해 주셨습니다. 그리고 이영애 보살님도 후원을 해주셨다고 합니다.nbsp스님께서는 도움 주신 거사님과 회장님을 비롯하여 모든 분들께 합장을 하며 감사의 마음을 전하셨습니다.nbsp▲ 강당 임대하는 것을 도와주신 강창진 거사님nbsp모든 일정이 끝나고 스님 일행은 박지현 보살님 집으로 가서 두어시간 차담을 나누며 휴식을 취한 후 밤12시에 아헨의 김선희 법우님 집으로 출발하였습니다. 스님께서는 목이 많이 아프셔서 차담 시간에도 쉬시고 밤새 오는 차량 안에서도 계속 휴식을 취하셨습니다.nbsp밤새 차를 타고 이동하면 새벽 6시 무렵에 아헨에 도착할 것 같습니다. 내일은 독일 뒤셀도르프에서 세계 100회 강연 중 22번째 강연이 열립니다. 내일 또 소식 전해드리겠습니다.nbspnbsp ▼nbsp법륜 스님의 세계 100회 강연, 지난 날짜 소식 보기
2014.9.14 세계 100회 강연(20) 벨기에 브뤼셀
▲ 생캉트네르. 벨기에 독립 50주년 개선문.nbsp안녕하세요. 오늘은 법륜 스님의 세계 100회 강연 중 20번째 강연이 벨기에 브뤼쉘에서 열리는 날입니다.nbsp그동안 하루 1개 도시를 찾아가는 강행군을 계속 해왔는데, 오늘은 오전에 잠시 휴식하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스텝진들도 휴식을 취한 후 8시에 아침식사를 하고, 9시에 오늘 강연이 있는 브뤼셀로 향했습니다.nbsp브뤼셀 도심에 들어서서 스님께서 아이패드로 지도를 보시다가 도심 한가운데에 매우 큰 건물을 발견하셔서 차를 돌려 찾아가 보았습니다. 샤크레쾨르 대성당이라고 불리우는 이곳은 그 규모가 지금까지 유럽 일정에서 본 성당 중에서 가장 큰 규모였습니다. 세계에서 네 번째로 큰 성당이라고 합니다.nbsp▲ 벨기에 브뤼셀의 샤크레쾨르 대성당마침 일요일 오전이라 미사가 진행 중이여서 스님께서도 잠깐이나마 미사에 참석해 기도하는 시간을 가지셨습니다. 워낙 웅장한 규모의 건물이라 파이프오르간을 타고 은은하게 울려 퍼지는 성가 소리에 저절로 마음이 숙연해졌습니다. nbsp다음은 벨기에 왕궁을 찾아가 보았습니다. 이 왕궁은 벨기에 왕의 집무실이지만 왕실 일가는 더 이상 이곳에 살고 있지는 않다고 합니다. 광장 앞 공원에는 조깅을 할 수 있는 숲이 조성되어 있어 마음의 여유를 갖고 산책하는 마음으로 편안하게 걸을 수 있었습니다.nbsp▲ 벨기에 왕궁과 루아얄 광장.nbsp다음은 브르쉘의 상징이 되어버린 오줌싸개 소년 동상에 가 보았습니다. 골목의 한 귀퉁이에 있어서 찾기가 쉽지 않았습니다. 지나가는 현지인들에게 묻고 물어서 한참을 걸어 겨우 찾을 수 있었습니다. 벨기에의 상징물이라고 해서 너무 기대가 컸었는지 예상보다 작은 크기의 장난기 어린 동상을 보고서는 그냥 웃음만 나왔습니다.nbsp▲ 오줌싸개 소년 동상하지만 많은 관광객들이 작은 동상 앞에 모여서 사진을 찍느라 인사인해를 이루고 있었습니다. 스님께서도 그냥 웃기만 하셨습니다. nbsp이번에도 역시 스님께서 아이패드로 지도를 검색하시다가 굉장히 큰 건물을 발견해 차에서 내려 들어가 보았습니다. ‘아르카드 뒤 생캉트네르’라고 불리우는 이건물은 벨기에 독립 50주년을 기념하기 위해 제작된 개선문이었습니다. 독일 베를린에서 보았던 브란덴부르크 보다 더 크고 웅장하게 지어져 있었습니다.nbspnbsp벨기에는 굉장히 작은 나라인데, 왜 이렇게 웅장하고 큰 건물들을 만들었는지 궁금하기도 했습니다.nbsp몇 곳을 둘러보고 나니 벌써 강연 시작 시간이 다 되었습니다. 오늘 강연은 오후2시부터 브뤼셀 도서박물관 강의실에서 진행되었습니다.nbsp▲ 오늘 강연이 열린nbsp브뤼셀 도서박물관 강의실도서박물관 앞에 도착하자 이번 브뤼셀 강연을 담당해주신 신인숙 보살님이 스님을 너무나 반갑게 맞이해 주었습니다. 평소 유튜브로 즉문즉설 강연을 들으며 힘든 삶에서 벗어나는데 많은 도움을 받으셨다고 합니다.nbsp비좁은 공간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총 39명이 참석하여 스님의 말씀을 깊이 경청하고 큰 감화를 받았습니다. 스님께서 “질문할 사람은 미리 손을 들어 예약을 하라”고 하자 총 5명이 스님께 손을 들었습니다. nbsp화가 나도 표현하지 못하는 성격이고 생각이 많고 실천하기를 두려워하는 편인데 어떻게 마음을 다스려야 하는지 묻는 분, 술을 폭음하지는 않는데 적은 양을 매일 규칙적으로 마시면서 죄책감을 가져서 고민인 분, 불교는 종교가 아니라 철학이라고 생각하는데 스님의 견해는 어떤지 묻는 분, 유학을 와서 공부하고 있는데 어떤 마음으로 공부를 해야 하는지 묻는 분 등 다양한 질문들에 대해 스님께서는 열성을 다해 답해 주셨습니다.nbsp오늘은 그 중에서 유학을 온 학생이 어떤 공부를 해야하는지 묻는 질문과 스님의 답변 내용을 소개합니다.nbsp“저는 브뤼셀에서 조금 떨어져 있는 루벤이라는 대학에서 공부하고 있는 학생입니다. 저희 같은 젊은 학생들이 어떠한 생각으로 공부를 하게 되면 집중도 잘되고 깨달음을 얻을 수 있을까요?”nbsp“공부를 할 때는 두 가지 목적이 있습니다. 하나는 출세하기 위해서이고, 하나는 정말 궁금해 해서 그 공부를 하고 싶어서입니다. 그런데 출세하고 싶어 하는 공부에 대한 조언은 저의 영역이 아닙니다. 저는 남을 출세시켜주기 위해서 저의 재능을 쏟고 싶지는 않으니까요. 돈을 벌고 싶거나 출세하고 싶다면 저는 ”각자가 알아서 해라“고 말합니다. 그래서 여러분들이 세속 생활에서 돈을 많이 벌고 부자가 되는 것은 여러분들이 알아서 하시면 됩니다. 저는 여러분들이 괴롭다고 하면 그것을 도와줄 수 있는 역할을 할 수 있고, 또 자신의 재능을 공익에 쓰겠다고 할 때는 아이디어를 제공해 줄 수 있습니다.nbsp한국은 100년 전부터 우리는 후진이고 서구는 선진이라는 가치관을 갖고 있었습니다. 그래서서구를 따라 배워야 했습니다. 이것은 모방 문화입니다. 모방 문화는 빨리 그대로 베끼면 되니까 노력하면 속도를 빨리 낼 수 있었어요. 그래서 지난 100년 동안 한국의 학교 시스템 자체는 모방 훈련이었습니다. 모방 훈련을 하니까 암기를 중심으로 했죠. 테스트를 해서 모방이 잘 되었는지 안 되었는지 평가도 가능했습니다.nbsp그런데 지금은 서구의 기술과 문화 수준에 우리의 기술력과 학문체계가 거의 근접했습니다. nbsp어떤 경우는 같이 가는 경우도 많습니다. 한국의 대기업 같은 경우는 세계 어떤 기업도 따라갈 수 없는 수준에 왔습니다. 그런데 모방이 기본이기 때문에 전혀 없던 물건을 새로 만들어내지는 못하고 있습니다. 외국 기업이 없던 것을 만들면 6개월 안에 그것을 더 좋도록 만드는 능력은 있습니다. 지금 이 정도 왔다는 겁니다. 그러니까 여러분들이 공부를 할 때는 분야에 따라서 5년 차이가 나는 것이 있고 3년 차이가 나는 것이 있고 아예 막 따라가고 있는 것도 있습니다. 굉장히 근접해 있기 때문에 여러분들이 무엇을 배워서 한국에 와서 써 먹으려고 하면 옛날에는 30년 차이가 날 때는 여기서 베낀 노트를 가져와서 한국 대학에서 30년 동안 써먹어도 되는데, 이것이 3년 차이 밖에 나지 않으면 가지고 와서 써먹으려면 1년 써먹으면 써먹을 내용이 없어집니다. 금새 다 거기에 따라와 버리기 때문에.nbsp그래서 지속적인 자기 노력을 안 하면 존립할 수가 없어요. 그래서 수없는 박사 학위를 딴 사람들이 한국에 와서 일자리도 구하기 어려워지고 있습니다. 일본은 20년 전에 여기에 도달했습니다. 그래서 일본이 미국에 근접할 때는 미국을 앞설 것이라고 난리가 났었습니다. 그런데 거기에 탁 걸려서 지난 20년 간 정체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가 지금 그 문턱에 거의 와 있는 것입니다. 경제 성장 속도가 급속도로 저하가 되고 정체 국면이 시작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더 이상 남의 것을 베껴 와서 한국에 써먹는 것은 효용성이 굉장히 떨어집니다. 아직은 권위 때문에 효용성이 조금 남아 있지 실질적인 효용성은 거의 소진되었다 이렇게 볼 수 있습니다.nbsp그러면 이제 앞으로 여기서 공부를 하려면 어떻게 해야 되느냐? 우리사회는 산업화도 이루고 민주화를 이루었습니다. 그런데 경제가 성장을 하기 전까지는 성장을 국가가 견인해야 하지만, 경제가 어느 정도 성장하면 분배가 국가가 해야 할 일입니다. 성장은 기업이 알아서 하는 겁니다. 기업이 어떻게 성장하느냐를 정부가 가르쳐 줄 수 없습니다. 기업이 더 잘 압니다. 그러나 그 부를 어떻게 분배할 것이냐는 국가가 관장하지 않으면 재벌 기업이 국가 권력을 휘두르게 됩니다. 이 배분 체계를 조절하는 것이 국가가 해야 할 역할인데, 한국 정부가 그런 역할을 못하기 때문에 지금 빈부격차가 극심해지고 사회적인 충돌이 심화됩니다.nbsp정치 민주화도 독재에서 대통령을 국민이 뽑는 방식으로 바꾸어 내는 것은 우리가 이뤄냈는데 뽑은 권력자가 권력을 행사하는 것은 독재시대와 다를 바 없는 상황입니다. 앞으로는 중앙 권력이 지방으로 넘어가 지방자치가 강화되거나 주민에게로 이양되어야 하고, 즉 권력이 행사되는 것이 이제 민주화되어야 합니다. 이것을 우리가 유럽에서 배워야 합니다. 미국은 이민사회이고 유럽은 민족 공동체 사회인데, 한국 사회가 벤치마킹해야 할 것은 유럽에서 일부 벤치마킹해야지 미국에서 해야 할 것은 아닙니다.nbsp여기서 벤치마킹 할 일이 있다고 하더라도 한국 사회의 변화를 위해서 해야지 무조건 여기 것을 가져가서 이식하려고 하는 시대는 이제 끝났다는 겁니다. 가능하면 여기서 앞서나가는 것을 배워서 한국 실정에 맞도록 해야 하고, 한국에서 더 좋은 것을 개발해서 전 세계에 나눠줄 생각까지 해야 합니다.nbspnbsp이제는 창조를 어떻게 할 것인가의 문제입니다. 서양의 것을 다 벤치마킹한 위에 동양의 한국적 경험을 얹혀서 서양의 한계를 뛰어넘는 새로운 것을 만들어내야 한다. 그런 학문을 공부하려면 여기서 하고, 그게 아니면 그냥 보따리 싸서 한국에 오는 것이 낫습니다. 한국에 일자리 하나 얻어서 출세하려면 아직도 외국 학위가 유용합니다. 그러나 이런 권위주의는 곧 수명을 다합니다. 오래 못가요.nbsp이제는 창조가 생명력입니다. 여기에 한국을 살리느냐 못하느냐가 걸려 있습니다. 그런 면에서 정말 자기가 관심이 있어서 남이 뭐라 하든 인정해주든 말든 연구하고 몰두해서 나름대로 새로운 것을 만들어내야 합니다. 그런데 학문이라는 것이 지도교수가 시키는 대로 해야 박사 학위를 주지 새로운 것을 하면 잘 인정해 주지 않습니다. 이것을 뛰어넘어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새로운 창조를 할 수가 없습니다.nbsp우리는 문명의 전환을 생각해야 합니다. 종교가 종교의 울타리에서 벗어나야 하고, 불교가 불교의 울타리에서 벗어나야 됩니다. 사고 체계를 더이상 과거처럼 가져서는 안 됩니다. 이제 바뀌어야 합니다. 공부를 하려면 그런 관점을 가지고 해야 됩니다. 여기까지 와서 그저 부모가 주는 돈 받아서 끙끙대면서 남의 책 베껴서 주석 달고 논문 통과만 하는 수준에서는 취직하는 데에는 필요하지만 이제는 그런 스펙이 더 이상 먹히기 어려운 시대입니다. 공부하기 싫으면 빨리 한국으로 들어오던지 그냥 여기 직장에 다니세요. 안 되는 거 붙들고 앉아서 힘들어하지 말고요. 억지로 해서는 아무 쓸모가 없습니다. 딱 집중해서 연구하고 도전해야 합니다.nbsp그러나 다만 기존 질서에 도전해서 당장 이길 수는 없잖아요. 학위를 따려면 비위도 좀 맞춰야 합니다. 그러나 비굴하게는 맞추지 마세요. 창조적으로 하되 형식을 거기에 맞춰야 하니까 그것도 고려해서 할 수밖에 없습니다. 학문의 틀을 유지하려면 형식은 어느 정도 맞춰 주어야 논문이 통과될 겁니다. 그렇다고 너무 고지식하게 하면 내용이 쓸모가 없어지고요. 그렇게 공부를 하시면 좋겠습니다. 공부하기 싫으면 언제든지 한국에 오세요.”질문자도 고개를 끄덕이며 반갑게 웃었고, 청중들도 스님의 답변을 듣고 마음이 많이 밝아졌습니다. 강연은 무려 2시간 50분 동안 진행되었음에도 모두가 자리를 떠나지 않고 스님의 법문에 흠뻑 빠져 있었습니다. 강연을 마치자 열강을 해주신 스님께 우레와 같은 박수가 쏟아졌습니다.nbsp스님께서는 로비에서 책 사인회를 하며 어디서 오셨는지 참석한 한 분 한 분에게 물어보며 인사를 나누셨습니다. 수고한 봉사자들과는 기념사진을 함께 찍고 단주를 하나씩 선물해 주었습니다.nbsp오늘 강연은 신인숙 보살님이 주축이 되어 안정적으로 진행될 수 있었습니다. 보살님은 봉사자 분들과 십시일반으로 정성을 모아 스님께서 가시는 길에 저녁식사를 할 수 있게 김밥을 싸주셨습니다. 그리고 스님 일행이 머물 숙소까지 정성껏 마련해 주셨는데, 스텝진들의 휴식이 필요해서 유럽지구장 김선희 법우님 집으로 가게 되면서 초대에 응하지 못했습니다. 스님께서는 신인숙 보살님께 특별히 고마운 마음을 전하면서 인사를 하고 강연장을 빠져나왔습니다.nbsp숙소인 유럽지구장 김선희 법우님 댁에 도착하니 저녁 8시가 다 되었습니다. 오늘은 스텝진들 모두 일찍 휴식을 취해서 그동안의 피로를 조금이나마 푸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내일부터는 다시 기운을 얻어 활기차게 강연을 열어나갈 것입니다.nbsp내일은 프랑스 파리에서 세계 100회 강연 중 21번째 강연이 열립니다. 프랑스에서 또 소식 전해드리겠습니다.nbsp ▼nbsp법륜 스님의 세계 100회 강연 일정 바로 가기nbsp
2014.9.13 세계 100회 강연(19) 네덜란드 암스테르담
안녕하세요. 오늘은 법륜 스님의 세계 100회 강연 중 열아홉번째 강연이 네덜란드 암스테르담에서 열리는 날입니다.nbsp독일 함부르크의 이현정 보살님 댁에서 하룻밤을 묵고 새벽 4시30분에 렌트카를 타고 네덜란드를 향해 출발했습니다. 오늘은 원래 암스테르담에서 강연을 먼저 한 후에 헤이그에 들러 독립운동을 하다 순국하신 이준열사기념관에 가려고 했는데, 스님께서 “이준열사기념관에 찾아가서 열사님을 먼저 뵙고 강연을 하는 게 좋겠다”고 하셔서 이준열사기념관을 오늘의 첫 번째 방문 일정으로 조정했습니다. nbsp▲ 네덜란드 헤이그에 설립된 이준열사기념관가는 길에 휴게소에 들러 이현정 보살님께서 정성스럽게 싸준 도시락으로 아침을 먹었습니다. 함부르크에서 5시간을 달려 오전 11시 무렵 이준열사기념관에 도착할 수 있었습니다. 이곳은 이준 열사가 1907년 7월 14일 독립운동을 하다가 순국한 역사의 현장을 기념관으로 가꾼 곳입니다. 헤이그 도심 한복판에 3층 건물의 2층과 3층 전시관에 다양한 사진 자료와 유품들이 전시되어 있어 열사님의 뜻과 행적을 깊이 새겨보는 시간을 가질 수 있었습니다.nbsp열사께서는 그 당시 헤이그에서 개최 중인 제2차 만국평화회의에 이상설, 이위종 두 분과 함께 대한제국 대표로 이곳에 오셨습니다. 세 분은 그 당시 “De Jong Hotel이던 이 집에서 머무시면서 만국평화회의에 참석하여 을사늑약의 무효를 세계에 알리고 한국의 국권을 회복하려고 애쓰셨으나, 일본의 방해와 열강의 냉대로 그 뜻을 이루지 못하였습니다. 이에 의분을 못 이기신 이준열사께서는 ‘왜, 대한제국을 제외시키는가...’란 호소문을 발표하고, 이 집에서 홀연히 순국하시어 2천만 동포의 가슴에 한을 남기고 항일 독립운동에 불을 당겼습니다. 이 뜻을 기려 유럽에 하나밖에 없는 항일독립운동유적지인 이 집에 이준열사기념관을 1995년 8월5일에 개관했다고 합니다. 스님께서는 1997년 이준 열사 순국 90주년 만국평화회의에 김수환 추기경님, 강원룡 목사님과 함께 종교계 대표로 참석하셔서 이곳을 방문하신 적이 있다고 합니다. 기념관 한쪽 벽면에 그때 찍은 사진이 전시되어 있어 무척 반가웠습니다. nbsp▲ 1997년 이준열사 순국 90주년 만국평화회의에 스님께서 참석했던 모습이 담긴 사진. nbspnbsp스님께서는 이준 열사의 동상 앞에 헌화하신 후 추모 기도를 하셨습니다.nbsp그리고 방명록에 추모의 글을 남기셨습니다.nbsp“이곳에서 순국한 이준 열사님의 뜻을 이어 받아 nbsp한국의 완전한 독립인 통일 한국을 이루어 nbsp열사님의 꿈을 완성하겠습니다. nbsp고이 잠드소서” nbspnbsp기념관 원장님은 내일 스님일행이 오시는 줄 알고 휴관일임에도 불구하고 기념관을 특별히 열려고 하셨으나, 일정이 조정되어 오늘 방문하게 되는 바람에 스님께서는 원장님께 양해의 말씀을 전하고 대신 ‘새로운 100년’ 책을 선물한 후 기념관을 나왔습니다.nbsp마침 이준 열사님이 일본의 침략행위를 규탄하려고 찾아간 만국평화회의가 열렸던 국회의사당이 기념관과 가까운 곳에 있어 들렀습니다. 지금은 ‘비넨호프’라고 불리우는 궁전의 안뜰 한가운데에 세워진 이곳 의사당에서 만국평화회의가 열렸다고 합니다.nbsp▲ 이준 열사님이 찾아간 만국평화회의가 열렸던 국회의사당.nbsp열사님은 회의장 안으로 들어가지 못하고 앞에 보이는 계단에서 각국의 대표에게 일제침략의 부당함을 역설하며 알려내는 일을 하셔야 했다고 합니다. 이곳 계단에 서서 열사님의 못다 이룬 꿈을 다시 한 번 가슴에 새겨봅니다. nbsp특히 오늘은 ‘왕자의 날’이라는 기념일이여서 비넨호프 입구에서 무료로 사과와 배를 나눠주고, 의사당 안으로 들어가는 입장료도 무료여서 정말 많은 사람들이 이곳을 찾았습니다. 의사당 안으로 들어가 보려 했으나 줄이 너무 길어 그냥 주위를 둘러보고 헤이그의 도심을 빠져나왔습니다. nbsp암스테르담에 도착하니 오후 2시가 다 되었습니다. 4시에 강연이 시작하는데 3시까지 강연장에 가려면 유적지를 둘러볼 시간이 없었습니다. 그냥 차안에서 시내를 주마간산 식으로 보다가 큰 교회가 한 곳 눈에 띄어서 잠깐 들러본 후 곧바로 강연장으로 향했습니다.nbsp▲ 암스테르담 도심 한복판에 높이 세워진 성 니콜라스 성당.nbsp오늘 강연은 De Ontmoeting 라는 네덜란드 교회에서 오후 4시에 열렸습니다. 주말이라 그런지 아이들을 데리고 가족과 함께 오신 분들도 많이 눈에 띄었고, 학생들도 많이 보였습니다.nbsp▲ 오늘 강연 장소인 De Ontmoeting 네덜란드 교회nbsp스님께서는 강연을 시작하기에 앞서 주 헤이그 한국대사관의 최종호 참사님과 김진현 영사님, 서기관님이 오셔서 잠깐 담소를 나누는 시간을 가지셨습니다. 참사님과 영사님은 네덜란드 국민들이 가진 특색에 대해서 자세히 이야기해 주셨습니다. 특히 “네덜란드인들은 가정 중심적이고 실용적인 사고를 많이 하는 사람들”이며, “외국에는 홍등가가 활성화된 곳으로 알려져 있지만 네덜란드 국민들은 홍등가에 거의 가지 않는다”며 네덜란드인들의 자정 능력을 높이 평가했습니다. 스님께서도 네덜란드인들이 가진 저력에 대해 많이 공감하셨습니다.▲ 주 헤이그 한국대사관 최종호 참사님, 김진현 영사님, 서기관님오늘 강연에는 총 110명이 참석하여, 의자가 부족해 양 옆에 책상 위에도 올라앉아 강연을 들어야 할 정도로 열띤 분위기 속에서 강연이 시작되었습니다.nbsp총 6명이 질문을 했는데, 나이가 들었음에도 아직 얼굴도 동안이고 많이 헤매고 있는데 언제까지 헤매여야 할지 묻는 분, 네덜란드에 살고 있지만 한국사회 분위기 안에서 살고 있고 결혼을 아직 하지 않는 것으로 인해 부모님의 압박을 받는데 어떻게 마음을 다스려야 할지 묻는 분, 네덜란드에는 절이 없는데 생활 속에서 불교 수행을 쉽게 접할 수 있는 방법이 있는지 묻는 분, 저는 네덜란드에서도 외국 사람인 것 같고 한국에서도 외국 사람인 것 같아서 고민이라는 분, 어머니가 돌아가시고 아버지가 재혼을 하셨는데 아버지에 대한 불편한 마음 때문에 한국에 안가고 있는데 아이들이 한국에 대해 궁금해해서 고민인 분, 잡생각이 많이 일어나고 집중이 잘 안되어서 고민인 분 등 다양한 질문이 나왔고 스님께서는 성심성의껏 지혜의 말씀을 들려주셨습니다.nbsp오늘은 그 중에서 아버지와의 불편한 관계 때문에 한국에 9년 동안 가지 않은 한 분의 질문과 스님의 답변을 소개합니다. nbsp“어머니가 9년 전에 자살로 돌아가셨어요. 아버지는 굉장히 가정적인 분이신데 어머니가 돌아가시고 얼마 뒤에 다른 여자 분을 만나서 1년 만에 재혼을 하셨어요. 그런데 아버지가 결혼을 하시고 나니까 엄마한테 왠지 모르게 미안하고 아버지가 자꾸 싫어져요. 마음도 닫히면서 한국에도 가기 싫어서 9년째 안가고 있어요. 그런데 아이가 한국에 대해 많이 궁금해 해요. 아이들 때문에 한국에 가고 싶기는 한데, 아버지를 만나면 마음이 불편할까봐 가야 하나 말아야 하나 갈팡질팡 하고 있습니다.”“아이들이 한국에 가고 싶어 하면 데리고 가세요. 아버지가 만나기 싫으면 한국에 가더라도 안 만나면 되지요. 아이들을 위해서 갈 필요가 있으면 가면 되고, 가더라도 아버지에게 연락 안 하고 오면 되지요. 아이들이 엄마의 가족들을 보고 싶다고 한다면, 한번 데리고 가서 봐도 되고요. 엄마라면 아이를 위해서 싫은 사람도 좀 만날 수가 있어야죠. 엄마가 그 정도의 희생정신도 없어요? 닭도 병아리를 위해서 목숨 걸고 싸운다는데, 아버지를 만나는 일이 죽는 일도 아니고 그리 어려운 것은 아니잖아요.nbsp지난 9년 간 못 만났다면 아버지가 할 얘기가 많겠죠. 첫째, 그냥 들어주는 방법이 있습니다. 왜냐하면 노인이 되면 원래 말이 많아져요. 했던 얘기를 또 하게 되고요. 그것은 생리적인 현상입니다. 아버지만 그런 것이 아니고 대부분의 노인이 다 그래요. 부모가 그런 것은 내가 받아들여주어야 되고, 이게 안 좋다 싶으면 나는 늙어서 이렇게 안해야 되요. ‘나는 늙으면 그렇게 하지 말아야지’ 생각하지만 나도 늙으면 그렇게 하게 되요. 그래서 제가 불자들에게는 그럴 때 “염불해라” 그럽니다. 입이 간지러우면 쓸데없는 소리 하지 말고 “관세음보살, 관세음보살...” 하던지 하나님을 부르던지 염불을 해라고 말하는 겁니다.nbsp어릴 때는 뼈가 연하지만, 늙으면 뼈가 굳고 잘 부러지잖아요. 그것처럼 사유도 어릴 때는 유연합니다. 나이가 들면 점점 굳어져서 육십이 넘어가면 생각이 거의 고정됩니다. 변화가 안 일어납니다. 사유 체계가 그렇습니다. 그리고 나이가 들면 자연스럽게 회귀 본능이 생깁니다. 가령 외국에 살고 있다면 고국에 대한 그리움이 나이가 들수록 더 생겨요. 이것을 미리 딱 알고 있어야 해요. 이것을 미리 알면 나의 이런 요구를 너무 주장해도 안 되고, 상대가 그럴 때는 어느 정도 이해하고 받아들이면 얼마든지 노후를 함께 잘 보낼 수가 있습니다.nbsp한번은 나이가 칠십이 다 되어가는 여성분이 “스님, 제가 이성적으로 생각하면 부족한 것이 하나도 없어요. 경제적으로도 잘 살고, 외국인 남편도 흠 잡을 데가 하나도 없어요. 그런데 늘 마음 밑에는 허전함이 있어요. 죽기 전에 한국 영감하고 1년만 살아봤으면 좋겠어요.” 라고 고민을 털어놓은 적이 있어요. 한국 사람끼리는 조금만 이야기해도 깔깔깔 웃는 것이 가능하잖아요. 제가 지금 법문하는 것을 통역해서 외국인에게 전달하면 제대로 전달이 될까요? 안 되겠죠. 어릴 때가 아닌 커서 들어온 정보는 무의식의 세계에서 정서적으로 교감이 잘 안 일어납니다. 모든 것이 이성적으로만 전달이 되니까 심리적으로 만족이 안 일어나고 답답해집니다. 그래서 같이 못사는 것이 아니라 인간 존재가 이렇다는 것을 이해하고 접근하면 문제가 없다는 것입니다.nbsp아버지는 아버지가 살아온 시대가 있습니다. 어머니가 돌아가신 것은 아버지 때문에 돌아가신 것이 아니잖아요. 본인이 어쨌든 선택을 한 것이고, 아버지와 갈등이 있어서 돌아가셨다고 하더라도, 갈등이 있는 부부라고 다 자살하는 것은 아니잖아요. 그것은 하나의 조건에 해당합니다. 만약 어머니가 자살하셨다면 정신적으로 우울증이 있었던 것입니다. 더 심리적으로 분석하면 할머니 때부터 그런 증상이 있어서 내려오는 것입니다. 그래서 질문자도 그런 증상이 있을 가능성이 매우 높습니다. 내가 이것을 모르면 바깥 탓을 하는데, 이것을 알면 환경 탓이나 남편 탓을 하는 게 아니라 ‘이것은 내 까르마다. 또 업식이 발동하네. 정신 차려라.’ 이렇게 주의를 줘서 여기에 빠져들지 않게 할 수 있습니다.nbsp어머니는 어머니의 인생을 자기 나름대로 선택해서 가진 겁니다. “안녕히 가십시오” 하면서 어머니를 편하게 보내드려야 합니다. 이것을 안스러워한다고 어머니가 다시 살아서 돌아오는 게 아니잖아요. 안스러워하면 내 마음이 슬프고 외롭죠. 게다가 자녀가 부모를 계속 그리워하고 울면 영가가 만약 있다고 하더라도 안스러워서 갈 수가 없죠. 갈 수가 없으면 무주고혼이 됩니다. 늘 내 주위를 맴도는 귀신이 된다는 말입니다. 이것은 부모에게도 잘못된 행동입니다. 이렇게 해서 나에게 좋은 게 무엇이 있으며, 부모와 가족에게 좋은 것이 무엇이 있느냐는 것입니다. 그래서 돌아가신 분에 대해서 삼일장을 하는 이유는 삼일만 울고 끝내라는 것입니다. 49재를 하는 이유는 49일까지 좀 봐주겠으니 더 이상 울면 안 된다는 뜻입니다. nbsp그래서 질문자는 이제 어머니를 놓아주어야 합니다. 놓아주어야 나도 해탈이 되고 부모도 해탈이 되는 것입니다. 자식이 스무살이 넘으면 자식도 부모를 놓아야 하지만 부모도 자식을 놓아주어야 자식이 성인이 됩니다. nbsp아내가 돌아가면 이제 더 이상 남편이 아니잖아요. 결혼을 했을 때는 남편이지만 사별을 하면 더 이상 남편이 아닙니다. 어머니가 돌아가신 후에 아버지가 어떤 할머니를 선택하든 젊은 여자를 선택하든 누구를 선택하든 그것은 아버지의 자유입니다. 물론 나의 입장에서는 서운하겠죠. 어머니로부터 어릴 때 은혜를 입었으니까요. 그런데 아버지가 어머니를 버린 것은 아니잖아요. 아버지는 아버지의 인생을 사는 겁니다. 그런데 왜 질문자는 그것을 질투하고 시비하고 그럽니까? 이런 것을 불효라고 합니다. 질문자와 아무 상관없는 남의 일에 질문자가 지금 간섭하고 있는 것입니다.nbsp그리고 젊은 여자가 늙은 영감을 사귈 때도 늙은 영감이 돈이 좀 있으니까 사귀는 것이지 왜 사귀겠어요? 그렇다면 이것은 욕을 할 것이 아니라 인간으로서 자연스러운 것입니다. 지나치게 사람에 대해서 높이 평가하지 말고, 자기 주관으로도 평가하지 말아야 합니다. 젊은 여자가 결혼할 때도 남자의 재산을 봅니다. 그런데 늙은 영감과 사귀는데 재산도 안 본다면 무엇 때문에 사귀겠어요? 질문자는 아무 일도 아닌 것으로 혼자서 울고불고 한 것입니다. 이것과 한국이 무슨 상관이 있다고 한국을 안가겠다는 것입니까?그러니까 당장 내일이라도 아이들 데리고 한국 가시고 아버지 만나고, 아버지의 여자 친구에게도 “엄마” 라고 얘기하고 용돈도 드리고 하세요. 이렇게 털고 살면 내가 자유로워지고, 움켜쥐고 살면 내가 속박 받는 것입니다. 한국에서 질문자가 정치범도 아니고 입국 금지도 안 시켰는데 왜 못 가고 그렇게 계속 있을 겁니까.”질문한 여성분은 처음에는 굳은 표정이었지만 스님의 답변을 듣고 활짝 웃었습니다. 참석한 청중들도 격려의 박수를 보내주었습니다. 오늘 강연은 2시간 40분 동안 길게 진행되었음에도 내내 웃음이 끊이지 않았습니다. 스님께서 여러 가지 재미난 비유와 사례를 얘기해 주셔서 더욱 즐겁고 유익한 시간이 되었습니다. 법문 내용을 모두 전해드릴 수 없어 안타깝습니다.nbsp▲ 강연을 마치고 로비에서 책 사인회를 하며 참석한 분들과 인사를 나누었습니다.nbspnbsp▲ 교회 앞마당으로 나가 수고한 봉사자들과 함께 기념사진을 찍었습니다. 강연 책임을 맡아주신 권순남 보살님nbspnbsp뒷정리까지 모두 마치고 봉사자들과 함께 강연 준비과정에서 느꼈던 점에 대해 마음나누기를 하였습니다. 오늘 암스테르담 강연은 권순남 보살님이 주축이 되어 한글학교 선생님이고 식사를 준비해주신 김미경 보살님, 사회를 맡은 장회정 법우님, 출장으로 오늘 강연에 참석하진 못했지만 준비과정을 도와주신 이정민 보살님 이렇게 4명이 많은 역할을 해주셨다고 합니다. 그리고 당일 날 봉사를 해주신 분들도 많이 있었습니다. 이분들이 주축이 되어 암스테르담에도 정토회가 개원하는 날을 꿈꿔봅니다.nbsp원래 김미경 보살님 댁에서 하룻밤 머물 예정이었으나, 스텝진들의 장기간 이동 일정으로 밀린 빨래와 함께 피로가 쌓여 있어 보살님께 양해를 구하고, 네덜란드 국경에 인접해 있는 도시 아헨에 살고 있고 유럽지구장인 김선희 법우님 댁에서 짐을 풀기로 하였습니다. 이곳에서 벨기에와 뒤셀도르프 강연이 있는 모레까지 3일간 숙소로 머물 예정입니다. 덕분에 스텝들은 심적으로나마 조금 편안한 휴식을 취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nbsp내일은 벨기에 브뤼셀에서 세계 100회 강연 중 스무번째 강연이 열립니다. 벨기에서 또 소식 전해드리겠습니다. ▼nbsp법륜 스님의 세계 100회 강연 일정 바로 가기nbsp
2014.9.12 세계 100회 강연(18) 독일 함부르크
▲ 함부르크의 상징적인 명소, 시청사 앞 광장안녕하세요. 오늘은 법륜 스님의 세계 100회 강연 중 열여덟번째 강연이 독일 함부르크에서 열리는 날입니다.nbsp덴마크 코펜하겐 박혜정 법우님 집에서 하룻밤을 묵고 새벽 5시에 법우님이 정성껏 차려준 아침식사를 한 후 6시에 기차역으로 향했습니다. 7시35분에 출발하는 독일고속철도 ICE 기차였으나 연착이 되어서 8시에 역을 출발하였습니다. 인도에서만 기차가 연착되는 줄 알았는데, 선진국인 덴마크와 독일에서도 기차가 연착된다는 사실이 참 재미있었습니다.nbsp▲ 코펜하겐에서 함부르크로 가는 독일 이체 기차nbsp기차를 타고 한참을 달리다가 다들 잠이 들었는데, 깨어보니 기차가 배 안에 들어와 있었습니다. 다들 깜짝 놀라 살펴보니 배가 기차를 싣고 바다를 건너는 것이었습니다. 기차에서 내려 배의 갑판 위에 올라가 망망대해의 바다를 구경했습니다. 스님께서도 이런 경험은 처음이라고 합니다.nbsp▲ 덴마크에서 독일로 가는 중 기차가 배 안으로 들어간 후 배 위에서.nbsp배를 타고 40분간 바다를 건넌 후 기차는 다시 철로와 연결되어 독일 땅을 달리기 시작했습니다. 스님께서는 기차 안에서 원고를 교정하는 업무를 하시면서 틈틈이 휴식을 취하셨습니다. 기차는 12시30분에 독일 함부르크역에 도착했습니다.nbsp함부르크역에는 변호경 보살님과 남편인 호테 선생님이 함께 나오셔서 스님 일행을 반갑게 맞이해 주셨습니다. 변호경 보살님은 독일 선박회사에서 일하다가 호테 선생님과 결혼하게 되었다고 합니다. 독일에 오신지는 23년이 되었고, 올해 4월에 뒤셀도르프에서 깨달음의장을 한 후 현재 함부르크 열린법회 담당을 맡아 책임지고 계신 분입니다. 스텝진은 렌트카를 픽업하러 떠나고 스님께서는 지하철을 타고 오늘 숙소인 이현정 보살님 댁으로 이동하셨습니다.nbsp▲ 함부르크 열린법회 담당자인 변호경 보살님. 함께 지하철을 타고.nbsp이현정 보살님은 화가이신데, 미술공부를 하러 독일에 유학을 왔다가 독일인 남편과 결혼하고 지금까지 이곳에서 작품활동을 계속 해오고 계신 분입니다. 이현정 보살님께서 정성껏 차려주신 점심 식사를 감사히 먹고, 함부르크 열린법회 분들과 이번 유럽강연 스텝진들이 서로 소개하는 시간을 가졌습니다.nbsp▲ 함부르크 열린 법회에 함께 하고 있는 분들함부르크 열린법회는 2010년 스님 강연이 처음 열린 이후 첫모임을 시작하여, 매월 셋째주 월요일에 평균 15명 정도가 참석하여 지금까지 꾸준히 진행되고 있다고 합니다.nbsp스님께서는 원고 교정 업무를 보시다가, 오후3시부터 시내 유적지 안내를 맡아주실 이월선, 홍순남 보살님과 오늘 강연준비 봉사를 하기로 한 정호승, 김민경 부부와 함께 시내 유적지를 둘러보셨습니다. 이월선 보살님은 72년에 간호사로, 홍순남 보살님은 69년에 간호사로 독일에 와서 정착하여 살게 되셨다고 합니다. 스님의 법문을 듣고 삶이 많이 행복해졌는데, 오늘 스님과 함께 하게 됨을 무척 기쁘게 생각하시며 유적지에 대해 많은 공부를 해오셔서 정성껏 안내를 해주셨습니다. nbsp가장 먼저 찾아간 곳은 상페트리 교회입니다. 함부르크에서 가장 오래된 교회이며 이곳 근처에서 함부르크의 역사가 시작되었다고 합니다. 1195년에 지어진 이 교회는 1842년에 화재가 난 후 다시 복원했는데, 현재는 개신교의 예배 공간으로 사용되고 있다고 합니다. 스님께서는 교회 안에 들어가 잠시 기도하고 나오셨습니다.nbsp▲ 함부르크에서 가장 오래된 성페트릭 교회교회를 나와 시청으로 향했습니다. 함부르크의 시청사는 유럽 내에서도 매우 화려한 건물 중에 하나로 유명하다고 합니다. 성페트리 교회와 마찬가지로 1842년 화재 이후 새로 신축한 건물인데, 한쪽은 정부기관으로 한쪽은 의회 건물로 사용되고 있다고 합니다.nbsp▲ 함부르크 시청 앞 광장.nbsp오늘 함부르크 유적지 안내를 해주신nbsp이월선 보살님과nbsp홍순남 보살님시청에서 조금 더 걸어가니 분수가 높이 솟구쳐 오르면서 아름다운 무지개가 빛을 발하고 있었습니다. 안내하시는 보살님은 “어제까지 날씨가 별로 안 좋았는데 오늘 스님이 오셔서 갑자기 날씨가 이렇게 좋아졌다”며 무지개를 보며 즐거워 했습니다. nbsp함부르크의 가장 큰 특징은 자유스러움이라고 합니다. 이곳은 배가 들어오는 항만이 있는 곳으로, 자유 무역 지역으로 지정되어 다양한 교류가 일어났던 곳이라 예로부터 황제에게 순종하기 보다는 상인들이 자발적으로 모여서 무언가를 하는 분위기가 많았다고 합니다.nbsp다시 지하철을 타고 이동하여, 함부르크의 상징인 배가 들어오고 출발하는 선착장을 찾아가 보았습니다.nbsp구시가의 남쪽 엘베 강의 수로를 따라 선착장이 들어서 있고 그 옆에 해저터널도 만들어져 있었습니다. 해저터널은 자동차도 왕복할 수 있게 자동차가 지하로 내려갈 수 있는 엘리베이터도 설치되어 있었습니다.nbsp항구를 따라 걷다 보니 도심 쪽에 뾰족하게 솟은 미하엘 성당이 보였습니다. 배를 타고 오랜 기간 떠났던 사람들이 다시 항구로 들어오며 이 미하엘 성당을 보고 고향에 돌아왔구나 느낄 수 있었던 상징적인 건물이라고 합니다. 함부르크의 상징적인 명소이자 독일 북부 지역 최대의 바로크 양식 개신교회입니다. ‘데이 미헬’로 불리는 첨탑에 오르면 바닷가 전경을 감상할 수 있다고 합니다. 스님께서는 잠시 교회 안에 들어가 기도하는 시간을 가지셨습니다.nbsp▲ 함부르크의 상징인 미하엘 성당.nbsp미하엘 성당을 나와 부둣가로 걸으니 ‘하펜시티’라고 불리우는 유럽 최대의 도시개발 프로젝트가 진행되고 있는 신도시가 나왔습니다. 이 개발프로젝트가 완료되면 향후 20년 안에 함부르크는 도심의 40가 더 확대될 예정이라고 합니다. 하펜시티를 마지막으로 둘러보고, 지하철을 타고 오늘 강연 장소인 함부르크 민속박물관으로 돌아왔습니다.nbsp▲ 오늘 강연 장소인 함부르크 민속박물관오늘 강연에는 주 함부르크 총영사관에서 총영사님 부부가 찾아오셔서 스님과 담소를 나누신 후 강연을 듣고 가셨습니다. 영사님은 115일 동안 전 세계를 돌아다니시는 강행군으로 인한 스님의 건강을 많이 염려하셨고, 스님께서는 즐겁게 다니고 있다 하시면서 인생수업 책을 영사님 부부에게 선물했습니다.nbsp▲ 주 함부르크 영사님 부부nbsp강연장이 너무 커서 자리가 다 채워질 수 있을지 염려했는데, 저녁7시가 되자 많은 분들이 오셔서 자리를 채워주셔서 총 88명이 참석한 가운데 강연이 시작되었습니다. 작년에 함부르크에서 강연할 때는 50명 남짓 첨석했다고 하는데 그에 비하면 이번에는 정말 많은 분들이 오셨다고 합니다.nbsp스님께서는 강연을 시작하면서 행복에 대해 대화해 보자며 이렇게 여는 말씀을 해주셨습니다.nbsp“예를 들어, 제가 지금 100미터를 25초에 달리는데 올림픽 경기를 구경하다가 어떤 선수가 100미터를 9초9에 달리는 것을 보고 ‘나도 한번 해봐야지’ 해서 3년 간 죽기 살기로 연습한다고 될까요? 안되겠죠. 그렇다고 나는 능력이 없는 자인가요? ‘내가 전생에 무슨 죄를 지어서 달리기도 못 하는가’ 이렇게 한탄할 것은 아니지요. 좌절과 절망이 된다면 그것은 욕심 때문에 그렇습니다. 만약 ‘2초는 노력하면 당길 수 있겠다’ 그래서 23초를 목표로 100일 쯤 연습하면 달성할 가능성이 높겠죠. 그래서 23초까지 달성해보고 ‘나도 되네, 이제 22초까지 해보자’ 이렇게 하면 누구나 조금씩 개선해 나갈 수 있습니다. 이런 변화의 길은 우리가 함께 찾아볼 수가 있겠다는 것입니다.nbsp지금보다 조금 더 행복한 삶은 우리 모두에게 열려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욕심을 너무 내어서 완전한 행복을 목표로 덤비기 때문에 20년 동안 신앙생활을 했는데도 좌절하는 경우가 많거든요. 항상 우리는 어제보다는 오늘이 조금 낫다, 지난해보다는 올해가 조금 더 낫다, 이렇게 한발 한발 나아갈 수는 있습니다. 너무 욕심을 많이 내기 때문에 오히려 나이 들어서 젊을 때 보다 못해지는 사람이 많아요.nbsp여러분들은 한국에 살 때 보다 이곳에 오면 더 좋을 것이라고 생각하고 왔죠. 그런데 지금 여러분들은 어때요? 한국에서 살 때보다 지금이 훨씬 낫다, 이렇게 얘기할 수가 있는가요? 그렇다면 인생은 성공적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내가 한국에 있었으면 더 나았을걸’ 이렇게 생각한다면 스스로 자기 인생을 실패로 이끌어간 것입니다. 조금 더 나은 삶이란 것은 함께 대화해 보면 얼마든지 길을 찾을 수 있습니다. 살아있는 모든 존재는 행복할 권리가 있고 행복할 수가 있습니다. 그런 방향에서 같이 대화를 해봅시다.”nbsp해외에 살다보니까 최근 국내에서 계속 안 좋은 일이 일어나도 내가 할 수 있는 게 없으니 마음이 답답하다는 분, 아이가 다른 아이들에 비해 과잉행동이 심한데 어떻게 해야 하는지 묻는 분, 직장에서 불편한 사람이 있는데 어떻게 마음을 다스려야 할지 묻는 분, 세월호 사고를 보며 마음이 안타까우신 분 등 총 5명이 스님께 질문을 했습니다.nbsp오늘은 그 중에서 국내에서 일어난 안좋은 일들로 마음이 답답하셨다는 한 여성분의 질문과 스님의 답변을 소개합니다.nbsp“저는 지금 독일에서 18년째 생활하고 있습니다. 얼마 전에 한국에서 안좋은 소식들을 계속 듣고 있습니다. 항상 그럴 때마다 제 마음이 괴롭습니다. 제가 한국에 있었으면 참여도 하고 제가 생각하는 행동도 하겠는데 일단 해외에 있다 보니 몸은 이곳에 있고 마음은 그곳에 있으니 괴롭습니다. 그림을 그리고 있는데, 최근에는 하던 작업도 멈추고 멍하니 시간을 보내기도 했고 아직 회복이 안 되고 있습니다. 해외에 사는 한국인들은 대부분 비슷한 고민을 했을 것이라 보는데요. 이런 괴로움을 어떻게 해결해야 할까요?”nbsp“지난 4월에 세월호 침몰 사고로 일어난 문제로 해외에서도 많이 가슴 아프셨죠? 사건이 일어난 것뿐만 아니라 뒷마무리가 지금까지도 제대로 안 되고 있어서 여러분들이 많이 답답하신 것 같아요. 해외에서 순회강연을 다니다보니 많은 분들로부터 그 아픔을 전달 받았습니다.nbspnbsp한국에 살고 있는 종교인의 한사람으로서 국민이 화합되면서 해결되는 길을 찾을 수 있도록 제대로 안내하지 못한 것에 대해서 죄송스럽게 생각합니다. 저희들이 할 수 있었던 것은 첫째는 희생자들과 실종자들을 위한 추모였고, 둘째는 유가족들이 간절히 원하는 진상규명과 재발방지를 위한 특별법 제정을 위해 국민 서명을 받아주는 일이었습니다. 저희 정토회에서는 모든 회원들이 나서서 300만 서명 중에 140만명의 서명을 받아서 유가족들에게 전달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직 마무리가 안 되고 답보 상태에 있습니다. 여당과 정부 쪽 사람들도 나름대로 고충이 있고, 야당 쪽 사람들도 나름대로 고충이 있고, 유가족들도 나름대로 한이 있는 상태입니다. 합의점을 찾지 못하고 있는데, 그런 면에서 한국에 살고 있는 한 사람으로서 교민들에게 송구스럽게 생각합니다.nbsp세월호 침몰 사고든, 군대에서 일어난 윤일병 사건이든, 과거로 돌아가면 광주항쟁으로 인한 학살 사건이든, 4.19 의거와 3.1독립운동에 대한 사건이든, 역사적으로 보면 많은 사건이 있었습니다. 그 사건들을 다시 돌아가서 보면 그 시점에서 성공한 것도 있고 성공하지 못한 것도 있습니다. 그 당시만 보면 4.19는 성공을 못했고, 5.16은 성공을 했다고 볼 수 있죠. 그런데 역사적 평가는 다릅니다. 4.19는 실패했는데 역사적으로는 성공해서 우리의 헌법 전문에 “4.19의 숭고한 정신을 계승한다” 이렇게 되어 있고, 5.16은 성공을 했는데도 불구하고 헌법 전문에 나와 있지 않습니다. 3.1운동의 기미독립선언도 엄청난 희생을 치루고 실패를 했지만, 헌법 전문 맨 앞에 “3.1독립정신을 계승하고 상해임시정부의 법통을 계승한다”는 것이 들어 있거든요.nbsp성공과 실패를 어느 시점에서 볼 것이냐의 문제입니다. 광주항쟁 같은 경우도 폭도들에 의해 사회질서를 문란시킨 행위로 매도되었다가 어느정도 시간이 흘러 결국은 민주항쟁으로 되고 광주항쟁에 참여한 열사들의 묘역도 성역화 되는 이런 과정을 거치지 않았습니까. 역사적으로 어떻게 평가할거냐의 문제와 당장 어떻게 되느냐의 문제는 다를 때가 있습니다. 광주항쟁의 경우를 예로 들어본다면, 그렇게 희생되었던 사람들이 역사적인 진보를 만들어냈느냐, 살아있는 사람들이 역사적인 진보를 만들어냈느냐 하는 문제거든요. 그렇게 많은 사람들이 희생되고 난 뒤의 살아있는 사람들이 자신이 살아있다는 것이 너무나 죄책감이 들어서 특히 젊은이들이 자신을 희생하는 민주화 투쟁을 해서 그것을 성스러운 일로 만들어내었단 말입니다.nbsp결국 세월호 참사는 이런 문제가 일어날 수밖에 없는 지난 50년간 우리사회 압축성장의 또 다른 부작용이다 이렇게 볼 수 있습니다. 우리가 배고플 때 돈만 되면 뭐든지 다한다고 해서 사우디아라비아에 노동자로도 가고, 젊은 분들이 독일에 광부와 간호사로 오고, 또 월남전쟁에 참여해서 그 대가를 갖고 경제성장을 일구고, 돈이 되는 것이라곤 물불 안 가리고 일을 했어요. 그것이 한강의 기적을 가져오는 중요한 요인 가운데 하나였습니다. 부작용도 많았지만 그런 정신이 오늘날 한국의 경제 성장을 가져온 또 하나의 요인이었습니다.nbsp그러나 배고플 때는 위험을 무릎 쓸 수도 있는데 이제 배고픈 시대는 지났단 말이죠. 현재 OECD 가입국인 한국 사회 정도의 성장된 사회에서는 이런 것이 다 바뀌어야 합니다. 성장 보다는 안전과 분배의 투명성을 더 중요시 해야하고, 물질보다는 생명을 중시하고, 사회가 성장하면서 시스템을 바꿔야 합니다. 그런데 선진국 대열에 들어섰는데도 불구하고, 개인이든 사회든 살아가는 삶의 패턴이 바뀌지가 않았다는 겁니다.nbsp사회 시스템도 우리가 배고플 때는 산업화와 경제성장이 중요한 사회적 이슈였지만, 밥 먹고 살만 하면 그것만 갖고는 안 된단 말이에요. 그래서 80년대 들어오면서 ‘우리도 자유롭게 살아보자’는 젊은이들의 열망이 민주화 투쟁을 가져왔고 그래서 결국은 민주화를 달성했지 않았습니까. 식민지 지배를 겪은 나라 중에 산업화와 민주화를 다 이룬 나라가 몇 나라 없잖습니까. 그런 면에서 성공을 했다 말하지만, 민주화 다음에 어떤 사회로 갈 것인가 하는 문제입니다. 가난할 때는 성장이 경제의 요체이지만, 경제가 어느 정도 성장을 했을 때 국가의 역할은 분배가 핵심이에요. 이제는 기업이 알아서 다 성장을 하기 때문에 국가가 해야 할 일은 분배를 어떻게 할 것이냐 입니다. 국가가 계속 재벌기업의 성장에 특혜를 주는 시스템을 못 바꾸니까 한국은 양극화가 심화되면서 국민의 행복도도 엄청나게 떨어지고 있습니다. 빈부격차가 극심하면 행복도가 높을 수가 없습니다. 왜냐하면 행복도는 상대적 빈곤으로 일어나는 것이지 절대적 빈곤으로 일어나는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nbsp그리고 우리는 대통령이나 국회의원을 선출하는 민주주의는 어느 정도 이루었습니다. 그러나 그 권력이 행사되는 것도 민주적으로 이뤄져야 하는데 한국의 민주주의는 선출하는 민주주의만 되어 있지 시민의 권리가 일상 속에서 행사되는 민주주의는 아직 되고 있지 않습니다. 대통령의 권한을 제왕적 대통령이라고 부르잖아요. 그러니까 사회전체가 대통령 한 사람만 쳐다보게 되는 것입니다. 이런 권력 집중이 분산되어야 합니다. 중앙권력이 지방으로 분산되어서 지방 자치가 확대가 되어야 하고, 대통령의 권한이 총리나 장관, 의회 쪽으로도 분산이 되어주어야 합니다. 이렇게 다음 사회를 우리가 만들어나가지 못했다는 겁니다.nbsp유럽의 예를 본다면 우리의 다음 사회는 정치민주화와 경제민주화를 이룬 복지사회로 나아가야 하는데, 한국은 민주화를 이뤘던 세력과 산업화를 이뤘던 세력이 각자의 당을 만들어서 죽기 살기로 과거 자신들의 성과만을 주장하고 싸우잖아요. 그래서 다음 단계로 못나갔다는 것입니다. 남북관계도 옛날에는 냉전 구도 속에서 분단이 되어 싸울 수 밖에 없었다 하더라도, 세계적인 냉전이 해체가 된 지금은 적대 감정을 해소하고 협력하면서 가야 하잖아요. 우리를 36년간 지배한 일본하고도 해방 후 20년 만인 1965년에 수교를 했고, 6.25때 100만 대군을 보내서 엄청난 희생을 치루었던 중국과도 이미 20년 전에 수교를 해서 한중 교역액이 한일과 한미 교역액을 합한 것보다도 1.3배가 되는 정도의 확대를 가져왔습니다. 그런데 왜 유독 우리는 남과 북 사이에서만 이 문제를 극복하지 못하느냐는 겁니다. 그런 면에서 우리는 아직 과거에 머물러 있습니다.nbsp이제는 새로운 상황 속에서 변화를 해야 하는데 못했다는 겁니다. 세월호 사고의 전 구조과정을 봐도 상식적으로 말이 안 되는 일이 벌어졌죠. 이런 것들이 진상이 규명이 되어서 누구 한 사람을 처벌하는 것이 문제가 아니라 ‘우리 모두가 살아온 방식이 잘못되었구나. 이제 우리가 개선을 하자’ 했다면, 세월호 사건을 계기로 한국 사회가 정말 크게 질적으로 변할 수 있는 계기가 되었을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300명의 희생이 아깝지 않은 일이 될 수도 있었는데, 오늘 벌어지고 있는 일은 그것이 더욱더 정치적 쟁점으로 작용을 해서 유야무야 되니까 가슴이 아픈 것입니다. nbsp그럼에도 불구하고 저는 대한민국이 아직은 긍정적인 요소가 많이 있다고 봅니다. 이런 사건을 볼 때마다 기분이 나쁘기는 하지만, 아직 포기할 정도는 아닙니다. 그리고 한꺼번에 해결하려 하거나, 이번에 해결 안 된다고 포기하려고 하지 마세요. 지난 역사를 보면서 꾸준히 관심을 갖고 해나가야 합니다. ‘정말 이것은 우리가 개선해야 될 일’이라고 생각한다면, 설령 이번에 특별법이 제정 안 되고 유야무야 되더라도, 우리는 이것을 포기하지 말고 꾸준히 관심을 갖고 다시는 이런 사건이 재발되지 않도록 한국사회를 변화시켜야 됩니다.nbsp여기 앉아서 울고 있다고 변하는 게 없습니다. 유럽에서 질문한 사람 중에는 국적을 포기하겠다는 사람도 있었는데 제가 비겁하다고 말해주었습니다. 이미 독일 시민권을 가졌다가도 한국 국적을 회복해 들어와서 한국사회를 고쳐야 할 것 아닙니까. 어떻게 생각하세요? 그런데 국적을 포기하고 대한민국을 안 보겠다고 하고, 윤일병 사건을 보고 아들 국적을 바꾸려고 묻는 사람도 있었습니다. 우리 교민들이 참 가슴 아프고 힘들다는 것은 저도 충분히 이해가 됩니다. 그러나 우리 nbsp나라를 우리가 노력해서 변화시키지 않는다면 누가 변화시켜 줘요? 통일도 우리가 통일을 위한 노력을 안 하는데 어떻게 통일이 되겠습니까? 누구보고 욕하고 손가락질만 하지 우리는 늘 자기는 책임에서 빠져버린다는 겁니다. 내가 먼저 변화를 위한 노력을 해야 합니다. 정말 밖에서 보니까 국제 정치 하에서 통일 없이는 한국의 발전이 어렵겠다면 우리가 작은 힘이라도 통일에 보태야 합니다. 한국 사회가 이 세월호 사건을 통해 질적으로 바뀌어야 되겠다 하면 편지 한 장을 보내든 메일 하나를 보내든 댓글 하나를 달든 어떻게든 이 변화를 위해서 우리가 지속적 노력을 해야 변화가 일어나지요. 그림도 안 그리고 잠 못 잔다고 변화가 일어나는 건 아닙니다. 열심히 그림 한 장이라도 더 그리고 더 팔아서 성금이라도 보내야 변화가 일어납니다. 평소에 그림도 그리기 싫었더라도 이런 사건을 보면 벌떡 일어나서 ‘내가 이렇게 있어서 되겠냐’ 하면서 미친 듯이 그림을 그리고 팔아서 다만 100유로라도 성금을 보내세요. 이게 긍정적 사고입니다.nbsp우리가 충격을 받으면 일시적으로 좌절하거나 분노하거나 그럴 수는 있는데, 그걸 갖고는 세상의 변화는 오지 않습니다. 그러니 울고 있을 시간에 그림 한장 더 그리고 메일을 하나 더 보내고 청와대에 편지 하나 더 보내고 정치인들에게 메일 하나 더 보내고 그렇게 해야 변화가 옵니다. 그런데, 막 욕설하고 죽일 놈이라고 욕하고 이렇게 하기만 하면 이것이 또 다른 갈등을 불러일으킵니다. 침묵하라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가진 에너지를 긍정적으로 작용할 수 있도록 노력을 해주셨으면 좋겠습니다.nbsp사실 여러분들이 이곳 해외에 나와서 고생을 했는데 국가가 도와준 것은 하나도 없잖아요. 국민 개개인이 노력해서 여기까지 왔습니다. 그런데 그래도 어떡합니까? 조선조 말엽에 나라가 가렴주구 해서 보따리 싸서 압록강 두만강 건너서 만주에서 황무지를 개간해서 살았는데, 나라가 일본에 뺏기니까 또 그 자녀들이 독립운동에 참여하고 엄청난 피해를 입었잖아요. 그래서 오늘날 대한민국이 있듯이 여러분들에게 국가가 해준 것이 없지만 그래도 어떡하겠습니까? 여러분들이 대한민국에서 태어났는데. 태어난 인연이 있단 말입니다. 대한민국에 태어났으니까 태어난 나라가 잘 되도록, 한반도에 절대로 전쟁은 일어나지 않도록, 한국사회가 질적으로 변해서 통일이 되도록, 여러분들이 지원해 주었으면 합니다.nbsp제가 보기에는 교민들 중에 유럽에 사는 교민들이 가장 의식이 나을 것 같아요. 독일에 사니까 독일 통일의 경험도 있고, 한국사회가 질적으로 발전하는데에 있어서 여러분들이 유럽에서 보고 들은 경험이 얼마나 큰 도움이 되겠습니까. 이런 유럽의 경험이 한국에 매우 필요합니다. 그런 면에서 여러분들께서 조금 더 관심을 가져주시고, 가슴 아파만 하지 말고, 좀 더 긍정적으로 기여할 수 있도록 부탁드립니다.nbsp대한민국이 질적으로 좋아지고 잘되면 해외에 계시는 여러분들도 대우받게 되잖아요. 대한민국이 나아지면 자연적으로 대우를 받게 됩니다. 부정적인 측면이 있는 것도 사실이지만, 같이 힘을 합해서 개선해 나갔으면 합니다. 울거나 화내지 말고 더 적극적으로 긍정적으로 참여를 해주셨으면 합니다.”강연에 참석하신 대부분 공감한 질문이었나 봅니다. 스님의 답변에 우레와 같은 박수가 쏟아졌습니다. 세월호 사고를 보며 답답한 마음이 많았는데 스님의 답변을 듣고 교민 분들은 큰 용기와 기운을 얻을 수 있었습니다.nbsp▲nbsp강연을 마치고 책 사인회가 로비에서 열렸습니다. 많은 분들이 줄을 서서 스님께 인사하며 사인을 받아 가셨습니다.nbsp▲nbsp특히 오늘 강연에는 함부르크 대학에 유학 와 있는 금강스님과 진양스님 두 분이 참석하셔서 스님께서도 무척 반가워 하셨습니다. 같이 기념사진을 찍고 짧게 담소를 나누고 가셨습니다.nbsp수고한 봉사자들과 단체 사진을 찍고 오늘 강연을 준비하면서 어땠는지 소감 나누기를 하고 강연장을 나왔습니다. 강연 준비 책임을 맡은 변호경 보살님은 “오늘 많은 분들이 오셔서 좋았다”며 “내년에는 100명 이상 참석할 수 있게 준비하겠다” 라며 열정을 보이셨습니다.nbsp▲ 오늘 하룻밤 재워 준 이현정 보살님 부부nbsp오늘 숙소인 이현정 보살님 댁으로 돌아오니 밤11시가 넘었습니다. 스님께서는 내일 일정을 어떻게 할지 의논을 하신 후 오늘 일정을 마무리하셨습니다.nbsp내일은 네덜란드 암스테르담에서 세계 100회 강연 중 열여덟번째 강연이 열립니다. 암스테르담에 가기 전에 헤이그에 들러 이준 열사 기념관에도 들르기로 했습니다. 네덜란드에서 또 소식 전해드리겠습니다.nbsp▼nbsp법륜 스님의 세계 100회 강연 일정 바로 가기nbsp
2014.9.11 세계 100회 강연(17) 덴마크 코펜하겐
▲ 덴마크 코펜하겐의 명소 뉘하운. 배가 다니는 운하인데 주위의 파스텔톤 색상의 집들이 무척 아름답습니다. nbsp안녕하세요. 오늘은 법륜 스님의 세계 100회 강연 중 열일곱번째 강연이 덴마크 코펜하겐에서 열리는 날입니다.nbsp노르웨이 오슬로의 유스호스텔에서 하룻밤을 자고 새벽 5시에 호스텔 지하 식당에서 간단히 아침을 먹은 후 6시에 오슬로 공항으로 향했습니다. 오늘은 공항에서의 대기 시간이 길었는데, 스님께서는 명상을 하시면서 대기 시간을 보내셨습니다.nbsp9시5분에 노르웨이 오슬로를 출발하여 10시20분에 덴마크 코펜하겐 공항에 도착했습니다.nbsp▲ 북유럽에 강연을 다니면서 스님 일행이 이용하고 있는 최저가 항공 ‘노르웨이 항공’.nbsp공항에는 이번 강연 담당자인 임미숙님과 오늘 유적지 안내를 해주실 오대환 목사님이 마중을 함께 나와주셨습니다.nbsp▲ 덴마크 코펜하겐 강연 담당을 맡아주신 임미숙님과 유적지 안내를 해주신 오대환 목사님▲ 덴마크 코펜하겐은 자전거 도시란 것을 실감할 정도로 곳곳에 자전거가 많았습니다.공항에서 곧바로 지하철을 타고 도심으로 들어가 한인 식당에서 점심 식사를 함께 했습니다. 식사를 하기 전 스님께서는 “목사님이 기도를 해주세요” 라고 목사님께 nbsp식사 기도를 청하니 목사님께서는 우렁찬 목소리로 기독교식 예배를 해주셨습니다. 목사님은 평소 스님의 유튜브 즉문즉설을 들으며 많은 배움이 있었고, 최근에는 새로운 100년이라는 책을 읽고 깊은 감명을 받았다고 하시면서, 스님께서 이곳 덴마크를 방문해주심을 무척 감사해 하셨습니다. 그래서 오늘 오후 내내 코펜하겐의 주요 유적지를 안내해 주시기로 하셨습니다. 목사님은 덴마크에 오신지 24년이나 되신 분입니다. nbsp덴마크는 도시가 작아서 걸어서 모든 유적지를 둘러볼 수 있다고 합니다. 스님께서는 목사님과 함께 덴마크의 역사와 현재 상황에 대해 많은 이야기를 나누시며 걸으셨습니다. 가장 먼저 도착한 곳은 시청 앞 광장에 있는 안데르센 동상입니다. 안데르센은 미운오리새끼, 인어공주, 벌거숭이 임금님, 성냥팔이 소녀 등 주옥같은 동화작품들을 저술해 전세계 어린이들을 기쁘게 한 덴마크의 대표적인 인물인데, 그의 동상 앞에서 사진 한 장을 찍었습니다.nbsp▲ 안데르센 동상도심 한복판을 걷다가 큰 교회 앞에 도착했습니다. 교회가 크고 웅장해서 덴마크의 교회는 어떻게 생겼는지 궁금해서 요금을 지불하고 들어가 보았습니다. 4층까지 올라갔지만 예배당은 없고 현대식으로 리모델링을 해서 전시회만 열리고 있었습니다. 밖으로 나와 보니 교회 외벽에 “Im not a church 라고 크게 현수막이 걸려 있어, 스님께서도 크게 웃으셨습니다.nbsp▲ 스님을 웃게 한 교회 앞에 적힌nbsp“Im not a church 문구.nbsp아마 많은 여행객들이 비슷한 오해를 많이 했나 봅니다. 대부분의 교회나 성당이 종교의 본연의 역할보다는 관광 또는 숙박업을 위주로 하고 있는 경우가 많았는데, 이곳도 상황이 비슷했습니다.nbsp계속 걸으니 배가 들어오는 뉘하운 운하에 도착했습니다. 운하의 양쪽에는 파스텔톤 색상의 각양각색의 집들이 시선을 사로잡았습니다. 특히 상점 앞에서 지나가는 행인들에게 시식을 할 수 있게 호객을 하는 사람들이 있다는 점이 재미있었습니다. 유럽에서 이런 풍경은 처음 보는 것이어서 스님께서도 “정겹네” 하시며 웃으셨습니다.nbsp▲ 뉘하운 운하nbsp뉘하운 운하를 지나니 바닷가 부두가 나왔습니다. 건너편에는 웅장한 오페라하우스가 보였는데, 오슬로에서 본 오페라하우스가 생각나면서 서로 더 웅장해 보이려고 경쟁을 하는 둣해 보였습니다. nbsp수변 지구를 따라 조금 더 걸으니 광장을 둘러싼 네 채의 화려한 저택들로 이루어진 아말리엔보르 궁이 나타났습니다. 이 궁전은 크리스천보궁의 화재로 1794년 이래 왕실 처소로 이용되어 온 곳인데, 지금도 여왕 가족이 이곳에 머무르고 있고, 행사 때는 2층 테라스에 여왕 마르그레테 2세가 나와서 손을 흔드는데 많은 덴마크인들이 운집한다고 합니다.nbspnbsp▲ 덴마크의 여왕이 살고 있는 아말리엔보르 궁.nbsp이곳은 덴마크의 유명한 명소라 한국인 단체 관광객도 많이 있었는데, 스님을 알아보고는 많은 분들이 같이 사진을 찍어보고 싶어 했습니다.nbsp▲ 스님을 알아보고는 너무나 반가워하는 한국인 관광객들.nbsp아말리엔보르 궁 앞의 광장을 지나 프로데릭스 거리를 따라 내륙으로 가니 화려한 프로데릭스 교회가 나타났습니다. 로마의 성베드로 성당을 본 딴 듯한 웅장한 돔을 가진 이 교회는 ‘대리석 교회’ 라는 별칭으로 널리 알려진 곳이라고 합니다. 스님께서는 교회 안에 앉아 잠시 기도를 하고 나오셨습니다nbsp▲ 프로데릭스 교회nbspnbsp교회를 나와 계속 걸어 카스테릭 요새에 도착했습니다. 이 요새는 별 모양의 성벽과 해자로 이루어져 무척 독특했습니다. 성벽을 따라 천천히 걸으며 산책을 할 수 있어 좋았습니다.nbsp요새의 성벽을 따로 조금 더 걸으니 덴마크에서 가장 유명한 명소인 인어 공주 조각상이 나왔습니다. 가까이서 보니 황량하고 쓸쓸한 분위기의 이 조각상은 그 유명세와는 달리 무척 외소해 보였습니다.nbsp오대환 목사님은 덴마크의 교민 현황에 대해서도 간략히 설명해 주셨습니다. 덴마크에는 현재 약 300여명의 교민들이 살고 있는데, 과거에 낙농업을 배우러 왔거나 국제 결혼을 통해 정착하신 분이 많고, 다국적 기업에서 근무하는 남편을 따라 정착하신 분들도 있다고 합니다. 한국에서 입양되어 온 분들도 많은데 덴마크에서만 대략 8500명 정도가 있다고 합니다.nbsp교민 수가 300여명 된다고 하니, 과연 오늘 강연에 몇 명이나 올지 걱정도 조금 되었습니다. 그러나, 강연을 담당한 임미숙 보살님은 50명은 올 것이라며 자신있게 말해서 스님께서도 웃으셨습니다. nbspnbsp요새를 모두 둘러본 후, 시내로 나와 버스를 타고 오늘 강연이 열리는 곳인 헬러럽 교회에 도착했습니다. nbsp교회에 도착해서 강연 준비는 스텝들을 포함하여 스님까지 나서서 모두 함께 하였습니다. 스님께서는 봉사자들이 의자를 아무렇게 놓는 것을 보시곤 뒷사람의 시야가 앞사람의 머리에 가리지 않도록 배려하시며 정성껏 의자를 다시 배치하셨습니다. nbsp저녁 6시, 강연 시간이 되자 많은 분들이 오셨습니다. 20명 정도 올까 예상했는데 65명이나 와서 빈자리 없이 자리를 빼곡이 채웠습니다. 그동안 한인 행사를 오랫동안 해왔지만 30명 모이기가 힘들었는데, 덴마크 교민사회에서 스님에 대한 관심이 무척 높았음을 알 수 있었습니다. nbsp▲ 덴마크 코펜하겐 강연이 열린 Hellerup 교회 강당.nbsp오늘 강연에는 특히 스웨덴 남부 지방에 사시는 분들이 많이 참석하였습니다. 그저께 스웨덴 스톡홀름 강연이 있었는데, 스톡홀름 보다 코펜하겐이 거리가 가까워서 오늘 오게 되었다고 합니다. nbspnbsp스님께서는 오늘 북유럽 4개국 강연을 마무리하시면서, 이렇게 여는 말씀을 해주셨습니다.nbsp“북유럽 하면 살기 좋은 곳이잖아요? 살기 좋은 곳에 살면서 힘들면 본인도 힘들지만 우리 인류 전체에도 희망이 없습니다. 왜 그럴까요? 전 세계에 있는 사람들이 살기 힘들면 북유럽에 가면 좋아지지 않겠느냐 생각하는데, 막상 여기 와보니 여기 있는 사람들도 괴롭다 하면 nbsp우리 인류에게 희망이 없어지는 거예요. 그러니 여러분들은 괴로우면 자기 문제를 넘어서서 nbsp인류를 절망으로 몰고 가는 사람들이에요. 자, 그럼에도 불구하고 궁금한 것이 있거나, 괴롭거나 힘든 게 있으면 같이 대화를 나눠봅시다.”오늘 강연에는 총 7명이 스님께 질문을 했습니다. 결혼 후 성격 차이로 남편과 많은 갈등을 겪고 도망치듯이 덴마크로 유학을 왔는데 지금 제가 할 수 있는 최선은 무엇인지 묻는 분, 한국 사회는 왜 덴마크 사회만큼 행복하지 못한지 묻는 분 등 다양한 질문들이 있었습니다.nbsp그 중에서 해외에 살다보니 통일에 대한 관심이 많아지는데, 스님께 언제쯤 통일이 될 것이라 보는지 묻는 분의 질문 내용과 스님의 답변을 소개합니다.nbsp“저는 나름대로 한국인임을 자랑스러워하면서 살고 있는데요. 그런데 외국에서는 제가 한국에서 왔다고 하면 항상 남이냐 북이냐 하고 묻습니다. 이곳에 이주하고 나서 통일에 대해 더 많은 관심을 갖게 되었습니다. 스님께서 보실 때 과연 통일은 언제 될 것이며, 통일은 과연 될 것인지, 된다면 어떤 방식이 가장 바람직하다고 보시는지 궁금합니다. 시부모님이 통일에 대해 자주 물어보시는데 제가 답변을 항상 못하고 있습니다.”“모르면 모른다고 답하면 되지요. 모르면서 아는 척 하려고 하니까 머리가 아픈 것이지요. 통일이 언제 될 것인지는 정확하게 말할 수 없지만, ”통일은 될 것입니다” 라는 것은 말할 수가 있지요.nbsp그리고, 통일이 언제 될 것인지 묻는 질문은 외부 사람들은 그렇게 물을 수 있지만, 한국인들이 언제 될 것이지 묻는 것은 무책임한 태도입니다. 통일이 되도록 하면 통일이 될 것이고, 통일이 되도록 노력하지 않으면 안 될 것입니다. 그런데 왜 언제 될 거냐고 묻기만 할까요? 통일을 누가 할 겁니까? 왜 자기는 빠져 버리고 누가 대신해 주는 것처럼 말하나요? 통일이 언제 될 것이냐는 질문은 옳지 않습니다.nbsp통일 하는 것이 좋은가, 통일 안 하는 것이 좋은가, 이것을 먼저 생각해야 합니다. 막연히 ‘통일 하는 게 좋다’ 그렇게 생각하면 통일을 위한 노력을 하나도 안하게 됩니다. 통일이 되면 좋다 하지만 통일이 되게 하기 위해서 아무도 노력을 안 한다면 그것은 그냥 뜬구름 잡는 얘기에 불과합니다.nbsp왜 통일을 해야 하는지가 먼저 잡혀야 하고, 그 다음에 그런 통일을 하려면 어떤 문제가 예상되고, 그 문제를 해결하려면 우리가 어떤 노력을 해야 하는지 살펴나가야 합니다. 현재 객관적인 조건은 예전에 비해서 우리가 통일을 하겠다고만 한다면 통일을 하기에 유리한 조건이 되어 있습니다. 한반도를 둘러싼 세력 관계가 조금 유동적이 되었습니다. 유동적이 되었다는 말은 불안정해졌다는 것인데, 불안정해지면 넘어질 수도 있지만 속도를 빨리 낼 수도 있습니다. 유동적이 되었기 때문에 통일을 하려면 하는 쪽으로 더 쉽게 갈 수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반대로 내버려두면 통일이 어려운 쪽으로 기울 수도 있습니다. 독일도 통일할 때는 그동안 있었던 양대 세력 사이에 균형이 깨어지면서 유동적이 되니까 그 기회를 잡아서 통일을 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그런 것처럼 한반도도 중국의 부상에 따라 힘의 균형이 깨어져 가고 있습니다. 이러한 한반도의 상황을 통일에 유리하도록 활용할 것이냐 말 것이냐는 우리에게 달려있는 문제입니다.nbsp외부 상황은 좋아졌지만 실제로 통일을 하려면 저절로 되는 게 아니니까 통일의 주도 세력이 필요합니다. 그러나 통일의 주도 세력이라는 측면에서는 역사적으로 가장 나빠졌다고 볼 수 있어요. 통일을 주도할 세력이 없어졌습니다. 1960년대까지는 북한이라는 집단 전체가 통일에 목을 걸 정도로 주도 세력이 있었어요. 남한에서도 이것에 동조를 하면서 통일을 주장하는 일부 세력이 있었고요. 그런데 북한이 사회경제적으로 붕괴되기 시작하면서 남북 중에 어느 한쪽이 전 민족적 관점에서 어떻게 통일을 할 것이냐 고민하는 세력이 없어져버렸어요. 남한은 분단 초기에 북한보다 열세였기 때문에 전 민족적인 관점에서 통일을 다루기에는 역량이 작았고 남한의 체제를 어떻게 유지하고 발전시킬 것이냐에 몰두해 있었습니다. 그래서 남한 안에 있는 통일지지 세력들은 남한 정부와 갈등 관계를 유지했던 것입니다.nbsp그러나 80년대에 들어와서 북한이 사회경제적으로 붕괴되면서 지배세력들의 고민이 점점 체제 유지에만 집중이 되어 갔습니다. 그러니 북한도 이제 통일 주도 세력이라고 볼 수가 없습니다. 그리고 통일의 희망을 걸고 북한을 긍정적으로 보던 남한 안의 세력들도 북한의 체제가 쇠퇴하면서 같이 몰락해 버렸습니다. 그래서 이제 남한 안에도 통일 주도 세력이 없게 되었습니다.nbsp이런 상황에서 이제는 남한의 발전을 넘어서서 북한까지 포함한 전 민족적인 관점에서 한반도를 발전시키겠다고 하는 지도자가 남한에서 나와야 합니다. 그런데 남한의 지도자들은 오랜 역사 경험에서 지금까지 이런 생각을 안 해봤다는 것이 문제입니다. 북한은 지금 자기체제 방어하기에도 급급한 상황이고요. 민족 전체적으로 통일을 주도할 만한 세력이 없습니다. 외부 환경은 좋아졌는데 주체 세력은 미비한 이것이 지금 현재 우리 민족이 처한 형국입니다. 이 문제를 극복하려면 과거와는 다른 개념에서 남한 안에 통일을 지향하는 세력이 새롭게 형성되어야 합니다.nbsp객관적으로 볼 때 우리가 남한 출신이라서 그러는 게 아니라 남북 양측의 정치경제 시스템과 다양한 측면을 비교했을 때, 남한도 아직 부족한 것이 있고 북한에도 긍정적인 요소가 있지만, 북한 중심으로 통일할 수 있는 상황은 아닌 것 같습니다. 많은 문제가 있다고 하더라도 해결책은 남한의 체제 시스템을 기본으로 깔고 이것을 조금 더 개선해서 통일의 중심 역할을 할 수 밖에 없지 않나 생각합니다. 이 방법이 옳아서가 아니라 이것이 현실이라는 것이죠. 통일 안하겠다면 모르지만 통일 하겠다고 할 때는 이 방법 외에 다른 방법이 더 있겠느냐 싶어요.nbsp50년대의 적화통일 방식도 안 되고, 70년대의 남북 연방제 방식도 현실적으로 되기가 어렵고, 결국은 남한이 중심이 되어서 통일로 갈 수 밖에 없는 것 같아요. 그런데 현재 남한의 상태로는 통일하기 어렵습니다. 적어도 통일 국가의 모델로서 현재 남한은 적절치 않습니다. 통일의 모델이 될 수 있게 현재의 남한을 바꿔야 합니다. 남한 사회를 위해서도 그렇고 통일을 대비하기 위해서도 필요합니다.nbsp두 번째, 북한 입장에서는 이 안을 수용하기가 어렵습니다. 결국 북한을 해체하고 흡수통일 하자는 것으로 받아들여질 수 있습니다. 그래서 북한의 처지에 대한 이해가 있어야 합니다. 그들의 이런 우려를 힘으로 밀어붙이지 말고 포용해 주어야 합니다. 북한 내부를 분석해보면 3개의 계층으로 나눠집니다. 생존의 위협을 받고 있는 일반 주민들에게는 생존권을 보장해 줘야 하고, 생존권을 보장해 주려면 인도적 지원을 확대해야 합니다. 먹고는 살지만 가난한 사람들인 중간층에게는 남북 간 경제협력이 되어서 통일되면 잘 살 수 있다는 희망을 주어야 합니다. 중국 제품 보다는 남한 제품이 훨씬 좋다는 것을 보여주어야 합니다. 그럴 때 통일의 중심 역할을 남한이 하는 것에 대해 동의를 할 수 있게 됩니다. 사는데 지장이 없는 상류층에게는 통일이 된 뒤의 신분 보장을 해주어야 합니다. 일정한 기간 동안 체제 보장을 해주던지, 어떠한 처벌도 하지 않는다는 신분보장을 약속해 주던지 해서 이들이 통일 지향적인 생각을 가지도록 해야 합니다. 적어도 이런 과감한 정책을 취해야 통일이 가능합니다.nbsp결국 주도하는 사람이 양보를 해야 합니다. 힘이 강한 사람이 양보하면 포용이라고 말하고, 힘이 약한 사람이 양보하면 굴복이라고 말하잖아요. 그러니 지금은 남한이 북한을 포용해 주어야 합니다. 그래야 북한 주민들과 지배세력들의 두려움이 없어지고 합의점도 만들어나갈 수 있게 됩니다. 그런데 현재 남한 정부의 정책은 무릎 꿇고 빌면 지원하겠다고 하니 한발도 못나가는 것입니다. 대화에는 전제 조건이 있으면 안 됩니다. 사과하면 대화한다, 이런 자세로는 안 됩니다. 대화를 먼저 시작하고 나서 사과하라고 요구하는 것은 가능하지만, 사과를 해야 테이블에 앉겠다는 건 불가능합니다. 이런 것들이 남북 간에 가로 놓여 있고, 이것을 둘러싼 국제 정세도 굉장히 어려운 상황입니다.nbsp미국은 중국을 견제하기 위해서 자국 힘만으로는 어려우니까 일본을 재무장시켜서 역할분담을 하려고 하는데 한국을 그 밑에 붙이려고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한국 사람들은 재무장한 일본 nbsp밑에 붙으려고 하지 않죠. 한미일 삼각 군사협력을 하자는 것이 미국의 요구인데, 한국은 일본과 함께하는 것에 대해 난색을 표하고 있습니다. 중국은 한국이 일본과 군사 협력하는 것이 중국에 대한 적대행위라고 느끼게 됩니다. 그러니 미국이 요구하는 것을 받아들이면 중국과 갈등이 생기고, 이걸 안 받아들이면 미국과 갈등이 생기게 되는 것입니다. 외교적인 측면에서는 굉장히 딜레마에 놓여 있습니다. 이것을 어떻게 균형 있게 할 것인가가 중요합니다. 아무리 미국이라고 하더라도 이제는 협력할 것은 협력하되 국가 이익을 위해 무조건 따를 수는 없는 것입니다.nbsp그런 면에서 이런 세력 변화 앞에서 통일 없이 미중 사이에 균형을 잡기는 매우 어려울 것입니다. 만약 한국은 미일 동맹체제로 편입되고, 북한은 현재까지는 잘 버티지만 내부에 정치적 변화가 일어나 중국의 체제 아래로 편입되면, 미중의 갈등 구조 속에 남북이 강대국의 하위 변수로 편재되어 지난 100년과 같은 고통을 또다시 보내야 할 위기에 놓여 있습니다.nbsp그런 고통을 막기 위해서는 지금 우리가 통일을 이뤄야 합니다. 거대한 중국 세력의 소용돌이에 휘말려 들지도 않고, 그렇다고 중국과 등지지도 않는 선택을 어떻게 할 것이냐. 거기에는 미국의 힘도 필요하고 일본의 힘도 필요합니다. 일본의 군국주의에는 반대해야 하지만, 그렇다고 일본과 싸우려고 하면 안 됩니다. 일본과 싸우면 앞으로 한국이 위기에 처할 수 있습니다. 일본의 군국주의는 철저하게 반대하고, 그것을 일본 국민과 함께하는 전략을 세워야 한일 관계를 돈독히 하면서도 일본의 군국주의를 반대할 수 있습니다. 중국과 협력을 하되 중국의 패권주의를 반대해야지 중국을 반대하면 안 됩니다. 마찬가지로 미국을 반대할 것이 아니라 미국의 군수산업의 이익을 대변하는 정책을 반대해야 합니다. 그럴려면 미국의 평화주의자들과 미국의 양심적인 사람들과 손을 잡아야 합니다. 그래야 우리가 미국의 정책을 바꿀 수 있지 우리의 힘만으로는 미국의 정책을 바꾸기는 매우 어렵습니다.nbsp그런 면에서 유럽과의 협력이 돌파구를 열고 균형을 조금 깨어주는 역할을 해줄 수 있습니다. 대한민국이 여러분들에게 해준 것은 없지만, 그래도 여러분들이 태어난 국가를 위해 국가가 처한 위기를 극복하는데 여러분들이 기여를 좀 해주셨으면 합니다. 우리 선조들은 일제시대 때 만주로 쫓겨나 힘들게 살았지만 그분들은 오히려 독립운동까지 하면서 희생을 치뤘잖아요. 사실은 국가가 그분들에게 해준 것이 하나도 없었어요. 그런데도 그분들은 민족의 독립을 위해 희생을 치뤘고, 그래서 오늘의 대한민국이 있게 된 것입니다. 그것처럼 여러분들이 해외에 나와서도 정부나 국가가 해준 것이 없다 하더라도 여러분들이 대한민국이 처한 위기를 부정적으로만 보지 말고 긍정적으로 보고 이것을 극복하는데 기여를 해주셨으면 해요. 이번 유럽 강연을 하면서 국적을 바꿔버리고 싶다는 질문을 여러 번 받았는데 이것은 도피적인 사고입니다. 한국 안에서 한국 사람들이 문제를 해결 못하면 내가 고국에 들어가서라도 해결을 해야 겠다 이렇게 보따리 싸서 들어올 생각을 해야지 도망갈 생각을 하면 안 됩니다. 들어오지는 못하더라도 여기서라도 한국이 긍정적으로 변할 수 있도록 댓글을 하나 달든, 편지를 하나 쓰든, 모금을 하든, 뭔가 한국이 긍정적으로 바뀌도록 노력해 주었으면 합니다.nbsp남북 간의 갈등에 너무 한쪽 편에 편들지 마시고, 여기서는 북한까지도 이해하면서 어떻게 지금 북한 주민들의 어려움에 우리들이 기여할 수 있느냐, 우선 인도적 지원 문제부터라도 참여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아 보셨으면 합니다.”해외에 사시는 많은 교민들의 한반도의 통일 문제에 대해 많은 관심을 갖고 있는데, 오늘 스님 답변을 들으면서 균형적이고 종합적인 시각을 갖게 된 것 같습니다. 모두들 스님의 말씀을 경청하며 공감했습니다.nbsp마이크 시설이 옆 공간과 공용으로 사용하도록 되어 있어 마이크 사용을 하지 못하고 소형 마이크를 사용하다보니, 스님께서 목소리를 많이 높여야 했습니다. 목이 불편하심에도 불구하고 스님께서는 2시간 30분 동안 열정적으로 답변을 해주셨습니다. 그래서 강연을 마치고 많은 분들이 스님께 찾아와 감사 인사를 했습니다. nbsp오늘 강연은 덴마크 한인여성회 모임에서 주축이 되어 준비해 주셨습니다. 스님께서는 실무를 맡으신 임미숙 보살님을 비롯한 여성회 모임 분들과 기념사진을 찍고 단주를 선물했습니다.nbsp▲ 오늘 강연을 위해 자원봉사 해주신 덴마크 한인여성회 모임책 사인회를 하며 참석한 한분 한분과 인사를 나눈 후, 오늘 숙소인 박혜정 법우님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박혜정 법우님은 한국에서 깨달음의장을 하고 수련 바라지 봉사와 희망세상 강연 봉사를 통해 정토회와 인연이 깊은 분입니다. 덴마크에 와서 정착한지 1년도 채 되지 않아 한참 적응해 가고 있는 시기인데, 오늘 스님 일행을 흔쾌히 받아 주었습니다. 스님께서는 하룻밤 재워준 박혜정 법우님에게 금강경 책을 선물로 주셨습니다.nbsp▲ 덴마크에서 하룻밤 머물고 갈 수 있게 해준 박혜정 법우님.nbsp이곳에서 하룻밤 묵고, 내일은 독일 함부르크로 이동합니다. 내일은 기차 타고 배를 타고 바다를 넘어 독일로 넘어가서 또 소식 전해드리겠습니다. ▼nbsp법륜 스님의 세계 100회 강연, 지난 날짜 소식 보기
2014.9.10 세계 100회 강연(16) 노르웨이 오슬로
▲ 오슬로의 오페라하우스안녕하세요. 오늘은 법륜 스님의 세계 100회 강연 중 열여섯번째 강연이 노르웨이 오슬로에서 열리는 날입니다.nbsp스웨덴 스톡홀름의 김태자 선생님 댁에서 하룻밤을 머물고 새벽5시에 콜택시를 타고 공항으로 출발했습니다. 6시반에 공항에 도착하여 출국 수속을 밟는 동안 스님께서는 원고 교정 업무를 보셨고, 출국 수속을 마친 후 어제와 그제 이동 중에 남은 빵과 약밥으로 아침 식사를 간단히 하였습니다. nbsp nbspnbsp▲ 노르웨이로 넘어가는 비행기 안아침8시35분에 스웨덴 스톡홀름을 출발하여 9시30분에 노르웨이 오슬로 공항에 도착했습니다. 오슬로에 거주하는 봉사자가 미리 예약해 준 콜택시를 타고 오슬로 도심으로 들어왔습니다. 조주형씨는 오슬로에서 아이를 키우며 직장을 다니는 분인데, 바쁜 와중에서도 혼자서 열심히 강연을 준비해주셨습니다.nbsp먼저 오늘 숙소로 사용할 호스텔에 도착하여 짐 보관실에 짐을 모두 내려놓고 곧바로 유적지를 둘러보러 도심으로 걸어 나왔습니다. 이곳 노르웨이 오슬로에는 마중을 나오거나 유적지 안내를 해주실 분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호스텔에서 나눠주는 관광 지도에 의지하여 대표적인 nbsp한두 곳만 둘러보기로 하고 거리로 나왔습니다. nbsp먼저 숙소에서 가장 가까운 거리에 있는 아케르후스 요새에 가보았습니다. 1049년 하랄 하르드라다가 설립한 오슬로는 북유럽에서 가장 오래된 수도입니다. 1299년 동쪽 스웨덴의 침략에 대비해 호콘 5세가 이곳에 흙벽을 올려 요새를 건설했다고 합니다. 도시는 1624년에 불에 타 사라져버렸는데 이후 크리스티안 4세가 보다 방어하기 쉬운 자리에 벽돌과 바위로 다시 재건했다고 합니다. 나무가 줄지어 있는 구불구불한 길을 걸어 오르니 성벽 너머로 오슬로 도심의 전경이 시원하게 펼쳐졌습니다. nbspnbsp▲ 아게르후스 요새에서 바라본 오슬로 도시 전경.nbsp아게르후스 요새에서 해안을 따라 걸으니 거대한 오페라하우스가 나타났습니다. 2008년 오픈한 이 오페라하우스는 건설하는데 약 5천억원이 소요되었다고 합니다. 마치 오슬로 앞바다에 빙하가 떠 있는 것처럼 보이게 하기 위해 건물 전체를 하얀 대리석으로 덮었다고 합니다. 건물 외관 전체를 구성하고 있는 비스듬한 외벽 때문에 독특한 기분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nbsp▲ 오슬로의 오페라하우스nbsp오페라하우스에서 10분 정도를 걸어 다시 시내로 들어가 오슬로 대성당 안에 들어가 보았습니다. 성당 안에는 에마누엘 비겔란이 만든 정교한 스테인드글라스와 천장벽화가 눈에 띄었습니다. nbsp▲ 오슬로 대성당nbsp노르웨이는 1인당 국민소득이 8만불이 넘고 물가가 전세계에서 가장 비싼 곳이라고 합니다. 그래서 점심을 어떻게 먹을지 고민했는데, 마침 오슬로 대성당 앞에 버거킹이 보였습니다. 그래도 버거킹이 가장 저렴하지 않을까 해서 들어갔는데, 햄버거 메뉴 하나가 12000원이 넘었습니다. 한국에 비해 2배 가량 비쌌습니다. 그래도 식당에 들어가는 것보다는 저렴하지 않을까 싶어 가슴이 조마조마했지만 햄버거로 점심을 해결하였습니다.nbsp오슬로 대성당을 지나 메인 스트리트인 카를 요한스 게이트에 접어드니 상점들이 늘어선 차 없는 거리가 나왔습니다. 일직선의 대로 맨 끝에 왕궁이 보였습니다.nbsp▲ 왕궁산책 겸 왕궁까지 걸어가 주변을 둘러본 후, 다시 해안가로 내려와 노벨평화센터 앞을 지났습니다. 노벨평화센터는 다이너마이트의 발명자 노벨이 창시한 노벨상의 역사를 비롯해 1901년부터 현재까지의 수상자가 안내되어 있는 곳이라고 합니다. 건물 안에 들어가보려고 했으나 입장료가 너무 비싸 들어가보지는 못하고 사진만 한 장 남기고 돌아섰습니다.nbspnbsp▲ 역대 노벨상 수상자들이 안내되어 있는 노벨평화센터.nbsp노벨평화센터 앞에는 시청사 건물이 붉은 벽돌로 지어져 우뚝 솟아 있었습니다. 이곳 오슬로 시청에서는 매년 12월 10일 노벨 평화상 시상식이 거행되는 것으로 유명합니다. 벽돌탑이 있는 건물 외관만 보면 전형적인 정부기관 건물로 보였지만, 로비 안으로 들어가면 노르웨이의 역사와 신화가 그려져 있는 벽화도 있다고 합니다. 물론 스님 일행은 로비 안으로는 들어가 보지 않고 외관만 보고 지나쳤습니다.nbsp▲ 매년 12월 10일 노벨평화상 시상식이 거행되는 오슬로 시청.nbsp오후3시 무렵, 다시 숙소인 호스텔로 돌아왔습니다. 연일 계속되는 이동과 강연 일정으로 스텝진들도 모두 피로가 누적되어 있어서, 오후5시까지 잠깐 휴식 시간을 가지기로 하였습니다. 오랜만에 주어지는 휴식 시간에 스텝진 모두 달콤하게 휴식을 가졌습니다. 오후7시부터 강연이 열리는 오슬로 문화센터 건물로 가서 강연 준비 담당자인 조주형씨를 만나 강연을 준비했습니다.nbsp▲ 노르웨이 오슬로 강연이 열린 문화센터, Litteraturhusetnbsp오늘 노르웨이 오슬로 강연은 총 55명이 참석하여 성황을 이뤘습니다. 준비한 40개의 의자가 부족해 바닥에 앉은 분들도 10명이 넘을 정도로 예상보다 많은 분들이 오셨습니다. 스님께서는 “노르웨이에는 아무런 인연이 없어서 사람들이 적게 올 줄 알고 자리를 적게 준비했다” 며 죄송한 마음을 전하면서 강연을 시작하셨습니다. nbspnbsp오늘 오슬로 강연에서는 총 7명이 스님께 질문했습니다. 미래에 대한 걱정이 많은데 어떻게 해야 현재를 살 수 있는지 묻는 분, 작년에 명상수련을 배웠는데 해외에서 스승도 없이 어떻게 명상을 해야 할지 묻는 분, 어떻게 살아야 좋고 싫음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을지 묻는 분, 아이가 수학을 잘못하고 자꾸 저항을 하는데 어떻게 해야 하는지 묻는 분, 문뜩 문뜩 외롭다는 느낌이 들 때가 많은데 어떻게 해야 하는지 묻는 분, 부모님이 건강관리를 소홀히 해서 답답한데 어떻게 해야 하는지 묻는 분, 직장도 갖고 결혼도 하고 아이도 갖고 많은 것이 이뤄졌는데도 마음 속에는 아직도 채워지지 않는 공허함이 있다고 묻는 분 등 다양한 질문들이 있었습니다.nbsp그 중에서 해외에서 생활하며 문뜩 외롭다는 생각이 들 때가 많다는 분의 질문과 스님의 답변을 소개합니다.nbsp“한국에서 20대와 30대를 보내면서는 직장생활을 하고 아이를 키우며 바쁘게 산다고 외로움을 못 느꼈습니다. 그런데 노르웨이에 와서 시간적으로 여유롭고 아이도 크고 하니까 문뜩 문뜩 외롭다는 느낌이 자주 듭니다. 가족이 있고, 친구가 있고, 형제가 있고 다 있지만 외롭다는 느낌이 들 때 지혜롭게 넘어가는 것이 어려울 때가 있습니다.”nbsp“현대인을 ‘군중 속의 고독’이라고 표현하죠. 많은 사람과 몸을 부딪치고 사는데 고독하다, 결혼해서 남편과 살을 맞대고 사는데 고독하다 하는 건 무엇을 말하는 걸까요? 심리적으로 분석하면 내가 마음의 문을 닫고 있다 이렇게 볼 수 있습니다. 산속에서 혼자 살아도 마음의 문을 닫고 있지 않으면 외롭지가 않아요. 나무 하고도 대화하고 새 하고도 대화하고 자연과도 대화를 나눌 수 있습니다. 그런데 부부가 살을 섞고 살아도 내가 마음의 문을 닫고 있으면 외롭습니다. 남편의 돌아선 등이 마치 성벽처럼 느껴집니다.nbsp한마디로 진단하면 질문자가 지금 마음의 문을 닫고 있다는 것입니다. 남편의 잘못이 아니에요. 바쁜 남편이나 가족이 볼 때는 ‘호강에 받쳐서 요강을 깬다’ 하는 소리가 나올 정도네요. 편하니까 쓸데없는 걱정을 다한다 이렇게 보이는 겁니다. 그런데 본인도 바쁘면 외로움을 못느껴요. 그런데 한가하면 느껴지게 되거든요. 눈 감고 명상을 하면 망념이 일어나는 증상과 같습니다. 보통 우리는 의지로 이것을 억압하기 때문에 자신이 굉장히 도덕적인 인간 같습니다. 그러나, 주위에 아무도 없는 상태이거나 꿈속에서는 억압된 심리가 그냥 일어나서 외간 남자도 만나게 됩니다. 그것처럼 심리가 억압이 되어 있어서 못 느겼는데 한가해지니까 이런 것이 나타나는 겁니다. 바쁘다는 것은 억압이 되어 있다는 것이거든요.nbsp그래서 자기 자신을 가만히 지켜보세요. 외롭다 하는 것은 사람이 없어서 그럴까요? 질문자가 ‘지금 좀 마음의 문을 닫고 있구나’ 자각하는 계기가 되어야 합니다. 직장을 가던지 생활을 바쁘게 해서 덮으려고 하지 말고, 명상을 통해서 하루 종일 가만히 앉아 있어도 편안할 수 있게 해보세요. 제일 중요한 것은 ‘내 까르마가 외로워하고 있구나, 내가 마음의 문을 쉽게 열지 않고 있구나’ 알아차리는 것입니다. 지금 질문자는 자기 생각에 좀 빠져 있어요. 남편과 아이들과 편안하게 대화를 하는 것이 좀 필요해요. 꼭 불만이 있어서 마음을 닫고 있는 건 아니고, 질문자가 어릴 때 이런 심성이 형성된 것입니다. 우리의 심리적인 근저는 주로 어릴 때 형성됩니다. 엄마의 성격을 닮거나 아니면 어릴 때 자란 환경이 자신의 무의식 세계를 형성하고, 이것이 평생 삶의 심리적 근저에서 작동을 하고 있거든요. 그래서 첫째, 이것을 정확하게 파악하고 나를 알아야 됩니다.nbsp둘째, 외로움이라는 것은 노르웨이에 와서 그런 것도 아니고 남편이 잘못해서 그런 것도 아니고 다만 내 까르마가 이렇게 형성되어서 그렇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래서 수행을 통해 어떻게 극복을 할 것이냐 이게 문제죠. 만약 기도를 한다면 이렇게 해야 되요. ‘저는 편안합니다’ 이렇게 자꾸 자기 암시를 주세요. 그러면 편안하다는 자기 암시와 편안하지 못한 자신의 현실 사이에서 늘 충돌이 일어날 거예요. 편안하다고 기도하는데 현실은 늘 편안하지 못하죠. 그래도 계속 절을 하면서 ‘감사합니다. 저는 편안합니다.’ 이렇게 자꾸 자기 암시를 끝없이 해보세요.”nbsp질문한 여성분은 스님 말씀대로 실천해볼 것을 다짐하면서 “감사합니다” 하며 인사를 했습니다. 스님께서는 강연을 마무리 하시면서 참석한 교민 분들에게 격려의 말씀으로 ‘긍정적인 생각’을 강조하셨습니다.nbsp“여기 와서 ‘힘든다’ 이런 생각은 가급적 하지 마세요. 100년 전에 태어났으면 노르웨이를 구경이나 한번 해봤겠어요? 구경도 하기 힘든데, 나는 구경도 하고, 여기 와서 살아도 봤고, 결혼하신 분은 외국 남자와도 살아도 봤다, 이렇게 긍정적으로 생각을 해보세요. 고국에 돌아가는 것은 언제든지 할 수 있잖아요. 항상 지금의 생활에 감사를 하면 심리가 안정이 되고 몸에서도 좋은 에너지와 호르몬이 분비가 되고 항상 얼굴이 밝고 기분이 상쾌해져요. 상쾌해지면 아이디어도 좋게 나오고 다른 사람에게도 호감이 많이 가게 됩니다. 그러면 여러분이 하는 일도 잘 됩니다. 장사를 하거나 회사에 근무하는 내 자세가 편안하고 즐겁기 때문에 결과적으로 손님이 한명이라도 더 오게 됩니다. 긍정적으로 받아들이고 행복하게 사시면 좋겠습니다.”좁은 공간에 바닥에 앉으신 분들도 많았지만, 처음부터 끝까지 집중된 분위기로 즐겁게 강연이 진행되었습니다. 모두들 강연을 듣고 나갈 때의 얼굴 표정이 환하게 밝아져 있었습니다.nbsp스님께서는 책 사인회를 하며 참석자들 한분 한분과 인사를 나누셨습니다. 봉사자들과의 단체 사진은 봉사자가 조주형씨 한분이여서 조촐하게 함께 찍었습니다.nbsp스텝진들은 뒷정리를 모두 마치고 촬영장비와 현수막 등 짐들을 들고 오슬로의 메인스트리트인 칼 요한 게이트를 20분 가량 걸어서 숙소로 이동했습니다. 숙소인 호스텔에 도착하니 밤10시가 넘었습니다.nbsp강연 전에 연락받기를 오슬로에 사시는 이민아 보살님이 점심 식사 접대를 하고 싶다는 요청이 있었으나, 초대 받은 장소가 시내 외곽 지역에 있어서 다녀올 시간이 충분하지 않아 성의에 응하지 못했는데, 보살님께서 강연장으로 직접 오셔서 라면과 김치를 보시해 주셨습니다. 강연을 준비하느라 스텝들은 저녁을 먹지 못했는데, 호스텔 지하 식당에서 이민아 보살님이 보시해주신 라면과 김치로 맛있게 저녁을 늦은 시간에 먹고 오늘 일정을 마무리하였습니다.nbsp내일은 덴마크 코펜하겐에서 세계 100회 강연 중 열일곱번째 강연이 열립니다. 덴마크로 넘어가서 또 소식 전해드리겠습니다.nbsp▼nbsp법륜 스님의 세계 100회 강연, 지난 날짜 소식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