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합검색
원하시는 검색어를 입력해 주세요
2014.10.3 세계 100회 강연(40) 코네티컷
안녕하세요. 오늘은 세계 100회 강연 중 40번째 강연이 코네티컷주 뉴헤이븐에서 열리는 날입니다.코네티컷주는 14,357 km2 면적에 357만명이 거주하여 미국에서 세번째로 작은 주이며, 네번째로 높은 인구밀도를 기록하고 있습니다. 한국인 수는 강연장이 있는 뉴헤이븐에 2,634명를 비롯하여 Fairfield County에 2,341명, Hartford County에 2,371명 등 총 8개 카운티에 nbsp8,700명이 거주하며, 언급한 3개 카운티에 약 85가 거주하고 있다고 합니다. nbspnbsp한편 오늘 강연이 열리는 뉴헤이븐은 1638년에 런던에서 온 청교도들에 의해서 건설되었으며, 코네티컷 주 중남부, 롱아일랜드 해협의 북쪽 연안에 위치하고 있습니다. 미국에서는 역사가 깊은 도시로, 영국 식민지 시절에 건설된 오래된 항구도시로서 롱아일랜드 수로의 입구에 위치하며, 코네티컷 주 중남부의 상업 중심지입니다. 그리고 세계적인 명문대학인 예일대학교가 이 도시에 있어, 교육, 문화의 중심지이기도 하며, 수목과 공원이 많은 아름다운 도시입니다.nbspnbsplt오늘 강연이 열리는 도시, 뉴헤이븐gtnbsp작년 9월에는 예일대학교에서 박사과정을 하고 있는 선준 스님이 스님을 초청하여 예일대학교에서 외국인을 위한 즉문즉설 강연을 진행한 바 있습니다. 예일대학교 캠퍼스와 오늘 강연이 열리는 Best Western North Haven Hotel 과는 차로 5분 거리에 있으니 작년에 이어서 스님께서는 올해도 뉴헤이븐을 방문하게 되었습니다.nbsp스님께서는 오전 8시에 아침식사를 하고 휴식을 가지기로 하고 스텝진들도 개인 업무를 보았습니다.nbsp오후 2시에 맨하튼에 있는 Huffington Post 의 Arianna Huffington 회장 및 편집인들과의 미팅이 있어서 1시에 숙소를 나와 맨하튼으로 3일째 이동을 하였습니다. 허핑턴포스트는 최근에 뉴욕타임즈의 방문자수를 능가하면서 세계 최고의 인터넷 언론사가 된 회사입니다. 얼마전 온라인 회사인 AOL과 합병하여 본사 사무실이 AOL에 있었습니다. 프론트 데스크에 도착하니 한 미국인 여성 두 분이 어느 나라 스님인지 이름이 누구인지 물었습니다. 그래서 구글로 검색하여 이름을 가르쳐 주니 “멋지다”고 하면서 “오늘 아리아나 허핑턴 회장과 미팅이 있다”고 하니 놀라워합니다. 스님과 함께 사진을 찍고 싶다고 해서 함께 사진을 찍었습니다. 스님께서 이제 외국인 팬들도 생기기 시작하네요.lt프론트 데스크에서 만난 외국인 여성gtnbsp미팅 담담자가 스님을 모시러 나와서 미팅룸에 가니 35명의 편집인들이 모여서 스님을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우리는 편집인 34명과 아리아나 회장과의 미팅인 줄 알았는데 부사장님도 참가하여 한 시간 동안 자유롭게 대화를 하면서 미팅을 하였습니다.nbspnbsp허핑턴 회장님은 스님께서는 한국에서 아주 영향력이 있고, 인기도 많은 분이라고 직원들에게 소개하였습니다. 허핑턴포스트의 편집자들 중에 11명이 스님께 궁금한 점을 물었습니다. 지금 세계 100회 강연을 다니시는 이유, 한국 불교가 가진 특성과 다른 종교와의 어떤 교류를 하고 있으신지, 미국에서 강연을 할 때 받은 질문 중에 특별히 기억나는 질문이 무엇인지, 불교적 입장에서 답변하는 것이 불교에 대한 배경 없이 답변하는 것과 어떤 차이가 있는지, 학생들이 취업에 대해 고민하면 어떤 대답을 들려주시는지, nbsp스님이 하시는 불교는 어떤 불교인지 묻는 분, 북한 정부에 반대하는 것과 북한 사람들을 돕는 것은 다른 문제라고 말씀하셨는데 그 이유는 무엇인지 묻는 분, 명상이 일상생활에서 감정을 다스리는 데 도움이 되는지, 처음 명상을 시작할 때는 어떻게 해야 하는지 묻는 분, 사회가 점차 기술에 의존적이 되어 가는데 어떻게 하면 기술과 공존하는 깨달음의 사회로 갈 수 있는지 묻는 분 등 다양한 질문에 대해 스님께서는 짧고 간명하게 답을 해주셨습니다. 제이슨 림의 빠른 통역 덕분에 마치 한국인과 대화하듯이 빠르게 대화를 나눌 수 있었습니다.nbsp그 중에서 스님의 북한 인도적지원 활동과 수행의 연관성에 대해 질문한 내용과 스님의 답변을 소개합니다.nbsp“스님께서는 인도주의적 활동을 하시며 수많은 고통을 만나는 가운데에도 어떻게 스스로를 상하지 않고 지속적인 활동을 하실 수 있습니까?”nbsp“물론 힘들 때도 있습니다. 특히 북한 정부는 분배의 투명성에 관한 우리의 요구를 받아들이지 않고 있습니다. 그리고 간부들이 늘 우리의 활동을 감시합니다. 그들은 우리가 가난한 사람을 돕는데 보다는 그들이 필요한 것을 지원해주기를 바랍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들만 보면 돕고 싶지 않을 때도 있습니다. 그러나 도움이 필요한 사람은 이 사람들이 아니라 이 사람들 뒤에 있는 사람들입니다. 그러나 이 사람들을 통하지 않고서는 그 뒤로 갈 수가 없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감정적으로 대응하면 중단될 수밖에 없습니다. 저와 함께 일했던 많은 사람들이 지원활동을 중단했습니다. 그들이 한국에만 있을 때는 계속 활동을 했는데, 오히려 북한을 방문하게 되면서 활동을 중단했습니다. 그리고 북한을 비난하기 시작했습니다.nbsp그래서 지원할 때는 감정 조절을 잘 해야 합니다. 우리는 눈앞에 대화하는 이 사람들을 위해서 지원하는 것이 아닙니다. 이들을 통하지 않고는 그 뒤의 가난한 사람들을 도울 수 없으니까 대화할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저도 처음에는 많이 울고 다녔습니다. 그들의 삶이 너무 비참했기 때문에. 또 한국에서는 그 얘기를 믿어주지 않았습니다. 왜냐하면 그들의 고통을 보지 못했기 때문에. 저희가 난민을 도울 때 국경 강가에서 많은 시체를 보게 될 때도 있었습니다. 중국에 넘어온 난민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많은 사람들이 죽어가는 것을 알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것을 밖에 전할 때는 보지 못한 사람들은 쉽게 받아들이지 않았습니다.nbspnbsp제가 워싱턴DC에 와서 큰 빌딩 속에 있는 사람들에게 사람이 굶어죽는 이야기를 어떻게 설명할지 막막했습니다. 그러나 강가에서 만난 난민들, 죽어가는 사람들, 이것이 지속적인 행동을 하는 힘이 되었습니다.nbsp그리고 명상이 필요합니다. 자기감정을 조절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때로는 화가 나고, 때로는 너무 슬픔에 빠지기도 합니다. 그러나, 내가 슬픔에 빠진 것은 그들에게 아무 도움이 되지 않습니다. 더 많은 사람들에게 알리고 더 많은 모금활동을 하는 게 중요하지요. 저도 다른 사람과 비슷한 감정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러나 저는 조금 더 감정을 조절할 수 있었기 때문에 지속해온 것 같습니다.”nbsp허핑턴포스트 편집자들은 스님의 지혜를 듣고 다들 놀라워하기도 하며, 기뻐하기도 하면서 박수갈채로 감사의 마음을 전하였습니다.nbsplt미팅 후 Huffington Post의 아리아나 허핑턴 회장과 함께gt미팅후에 허핑턴 회장은 다시 한번 스님께 “이렇게 찾아주셔서 감사하다”고 인사를 한 후에 직원에게 회사를 소개시켜 주라고 부탁하였습니다. 근무환경이 특이하였습니다. 사과나 간식을 자유롭게 먹을 수 있는 곳, 탁구대가 있어서 직원들이 자유롭게 운동을 하고 있거나, 곳곳에 소파와 휴게실 등이 있어서 직원들이 자유롭게 휴식을 취할 수 있었으며, 중견간부 사무실은 모두 통유리로 되어 있어서 안에서 무엇을 하는지 환하게 볼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책상과 책상 사이에 칸막이가 없이 모두 탁트여 있었습니다.nbsp두 개의 층을 사용하고 있는데 윗층에는 직원이 300명이 있고 아래층에 80명, 그리고 테크니션 50명 등이 함께 근무하고 있다고 하였습니다. 그리고 전 세계적으로 약 800명의 직원이 있고, 허핑턴포스트 코리아를 포함해서 세계적으로 10개의 지부를 가지고 있다고 했습니다. 아래층으로도 내려가서 회사를 구경했는데 수면방도 있었습니다. 아무튼 자유로운 분위기 속에서 젊은 사람들이 근무하고 있는 환경이었습니다. 그리고 한쪽 스튜디오에는 한창 라이브로 방송을 하고 있었고, 그 옆으로는 편집실이 있었습니다. 블로그 사이트에서 세계적인 영향력을 미치는 미디어로 발전하게 된 원동력은 결국 SNS혁명에 의한 것이었습니다.nbsp맨하튼에서 3시 30분에 오늘 40번째 강연이 있는 코네티컷 뉴헤븐으로 출발했습니다. 교통 체층이 없을 때는 2시간 30분 정도를 예상했으나 교통체증과 교통사고 등으로 고속도로가 정체되고 있었습니다.nbspnbsp스님께서는 행사장으로 가는 도중에 차안에서 최말순 보살님이 준비해 온 도시락으로 간단히 저녁식사를 하였습니다. 3시간 30분이 걸려서야 겨우 행사장에 도착하여 강연은 10분 늦게 시작되었습니다. 오늘 코네티컷 강연에는 총 100명이 참석하였습니다. 또한 코네티컷 한인회장님께서 스님께서 이곳을 방문해주심에 감사드린다고 화환을 보내주셨습니다.nbsp“안녕하세요. 오시는데 길은 안 막혔나요? 저는 3시간 30분이 걸려서 겨우 도착했습니다. 15번 도로로 오면 덜 막힐 줄 알았는데 여기도 막혔습니다. 그래도 늦지않게 와서 정말 다행입니다. 매년 늘 뉴욕만 와서 강연을 하고 갔는데 그때는 여러분들이 뉴욕까지 2시간 30분을 왕복으로 오시느라 수고가 많았지요. 이번에는 뉴욕, LA 등 큰 도시뿐만 아니라 교민이 적은 도시에서도 대화를 해보고자 해서 이렇게 찾아 다니게 되었습니다. 우리 인생에 일어나는 모든 문제에 대해 주제 상관없이 대화 하면서 함께 오늘 강연을 만들어 가보았으면 합니다.”오늘은 총 8명이 스님께 질문을 했습니다. 2년 전에 아들이 심장 이식 수술을 한 이후 항상 불안한 마음으로 살고 있는데 어떻게 편안한 마음을 가질 수 있는지 묻는 분, 미국에서 만나는 사람들의 십중팔구는 다 크리스천인데 이런 분위기에서 불자로서 어떤 종교관을 갖고 살아야 하는지 묻는 분, 엄마로서 대학생 딸에게 어른으로 대접하며 정을 끊고 경제적으로 독립시키고 싶으나 그것이 잘 되지 않아 고민인 분, 30대 중반의 직장인데 유학생활과 직장생활을 하며 결혼시기를 놓쳤는데 어떻게 하면 외롭지 않고 마음을 잘 다스리며 지낼 수 있는지, 부모님과 각별한 관계를 유지해왔는데 오랜 외국 생활을 하는 동안 부모님이 외로워지셔서 자신이 귀국하기를 원하는데 어찌하면 좋을지 묻는 분...nbsp정토회 ‘나눔의 장’ 수련을 통해 남편을 이해하게 되어 이혼 위기까지 넘길 수 있었는데 요즘 다시 남편이 하는 일이 자꾸 마음에 걸리고 남편이 달라졌으면 하는 마음이 드는데 어떻게 하면 좋을지 묻는 분, 여러 국가를 다니며 외국 생활을 오랫동안 했는데 외국에서 성공해서 부모님을 만족시키는 것과 부모님 곁을 지키는 것 중에 어떤 것이 효도인지 궁금한 분, 많은 사람들을 만나는 중에 어떤 느낌이 들었을 때 딱 내 마음에 드는 상대라고 판단할 수 있는지 묻는 분, 미국에서 3년간 환경 관련 공부를 하고 최근 환경 다큐 만드는 일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는데 경제적 보장이 되지 않고 주변 사람도 만류하고 나이도 부모님께 의지할 나이가 아니여서 망설여진다는 분 등 다양한 질문에 대해 스님께서는 정성껏 답변해 주셨습니다.nbsp오늘은 그 중에서 느낌이나 생각을 잘 표현하지 못해 고민인 분의 질문과 스님의 답변을 여러분께 소개합니다. nbsp“저는 속 마음에 있는 느끼는 점이나 생각하는 것을 표현하는 게 너무 어렵습니다. 특히 말다툼을 할 때 근거 없는 주장을 한다는 말을 자주 듣습니다. 한마디로 말이 많이 딸리는 편입니다. 어떻게 하면 속마음을 잘 표현할 수 있을까요?”nbsp“첫째, 말다툼을 해서 이기려고 생각하지 마세요. 그거 이겨봤자 아무 이득도 없어요. ”아이고, 너 말이 옳다“ 하고 넘어가면 됩니다. 이겨봐야 아무 도움이 안되니까요.nbsp둘째, 마음을 잘 표현하지 못하는 것은 정토회의 ‘나눔의장’ 같은 수련을 통해서 자신의 밑마음에 어떤 것이 있는지를 알아야 합니다. 우리는 자신의 마음을 잘 몰라요. ‘나도 내 마음을 잘 모르겠다’ 이럴 때가 많잖아요. 진짜 나의 밑마음을 내가 모를 때가 있거든요. 이런 것은 연습을 해야 되요. 그것을 알아차려야 해요. 알아차리는 방법은 깊은 명상을 해서 자신의 무의식 세계를 알아차리는 방법이 있고, 동료들과 ‘나눔의장’ 수련을 하면서 마음 내어놓기를 하는 방법이 있습니다.nbsp‘나눔의장’ 수련에서 마음 내어놓기를 하면 이틀이 지날 때까지는 자꾸 생각을 이야기하지 마음을 이야기하지 못합니다. 그런데 한 사흘 정도 지나면 마음과 생각을 구분할 줄 알고 자신의 마음이 어떤 상태인지 알게 됩니다. 대부분 우리가 대화하는 내용은 마음이 아니라 생각입니다. 90는 자신의 생각을 이야기합니다. 그러나 마음과 생각은 다릅니다. 생각은 의식이고 마음은 무의식에 뿌리를 두고 있습니다. 그런데 잘 구분이 안 될때가 많습니다. ‘생각이 복잡하다’는 말을 쓰죠? 그리고 ‘마음이 복잡하다’는 말도 쓰죠? 그러니 이것은 구분이 잘 안 됩니다. 그런데 ‘생각이 많다’ 이런 말은 쓰지만 ‘마음이 많다’ 이런 말은 안 씁니다. 그러니 생각과 마음은 다릅니다. ‘마음이 괴롭다’는 말은 쓰지만 ‘생각이 괴롭다’는 말은 안 씁니다. 그러니까 감정적인 것들은 마음에 속하고 이성적인 것들은 생각에 더 가까워요. 잘 구분이 안 되는 것도 있지만, 이쪽 저쪽 끝은 마음과 생각이 분명히 구분이 됩니다.nbsp생각도 바뀌어야 되지만 사실은 삶의 행동이 바뀌려면 마음이 바뀌어야 합니다. 그런데 마음은 무의식에 뿌리를 두고 있기 때문에 바꾸기가 좀 어려워요. 우선 자신의 상태를 먼저 자기가 알아야 합니다. 그 다음에 그것을 가볍게 내어놓는 연습을 해야 됩니다. 정토회에서는 ‘마음나누기’라고 하는데, 자신의 느낌을 자꾸 드러내는 연습을 해야 되요. 서양 사람들은 연습을 안 해도 자신의 감정 표현을 굉장히 잘하는데, 한국 사람들은 어릴 때부터 감정표현을 하면 쪼잔한 것으로 받아들여서 감정을 꽉 누르고 삽니다. 그래서 점잔을 뺍니다. 그런데 속은 꾹 눌려서 부글부글 끓고 있습니다. 그러다가 한번씩 뻥 터지죠. 그래서 성질 더럽다는 소리를 듣는 것입니다. 평소에 자기 감정을 못 드러내고 눌리고 있다가 뻥 터집니다.nbsp한국 사람들은 자꾸 어릴 때부터 부모나 선생님이 야단을 쳐서 자기 마음을 자연스럽게 잘 표현을 못합니다. 심리가 늘 억압이 되어 있죠. 그래서 자꾸 자기 표현을 하는 연습을 해야 되요. 생각을 드러내기보다 마음을 드러내야 합니다. 슬프면 슬프다, 괴로우면 괴롭다 이렇게. 그런데 우리는 아직도 누가 “사랑한다” 말하면 간지럽잖아요. 그래서 경상도 남자들은 뭐라 그럽니까? “보면 알지. 뭘?” 이렇게 얘기하잖아요.nbsp자신의 마음을 표현하는 연습을 자꾸 해야 돼요. 그냥 저절로 되는 것이 아니고 연습이 필요합니다. 저희 정토회는 종교모임이 아니고 마음공부를 하는 모임이니까, 법문을 같이 듣거나 오늘처럼 이런 행사를 하고 나서 끝나면 반드시 “오늘 마음이 어땠습니까?” 이렇게 마음 나누기를 합니다. 그래서 자기의 밑마음을 편안하게 표현하는 연습을 해야 돼요. 부부지간에도 이 마음나누기가 잘 되면 아무 문제가 없습니다. 대부분 이것을 억누르고 있으니까 겉으로는 안 싸워도 서로 마음이 불편합니다. 자연스럽게 표현해야 됩니다.nbspnbsp오늘 강의를 듣고 나서도 끝날 때 “어땠는지?” 물어보면 “저는 조금 지루하게 느꼈습니다” 이렇게 가볍게 표현할 수 있어야 하거든요. 그런데 “스님 강의는 지루했어요” 이렇게 표현을 하면 책임이 누구한테 있어요? 스님한테 있지요. 그러면 듣는 사람은 기분이 나빠집니다. 그런데 “스님의 강의를 듣고 저는 지루하게 느꼈습니다. 저는 기쁘게 느꼈습니다” 이렇게 말하면 그 감정은 누구 것이에요? 자기 것이잖아요. 스님이 잘했다 잘못했다는 얘기가 아니게 되잖아요. 그렇게 표현하면 상대가 아무런 적대감을 안 느끼게 됩니다. 이렇게 자기 감정을 표현하는 것입니다.nbsp그런데 우리는 이 감정표현을 할 줄 몰라서 “니가 그렇게 해서 내가 괴로웠다” 이렇게 말하니까 상대가 기분 나쁜 것입니다. 그렇지 않으면 상대를 기분 나쁘게 하지 않으려고 아예 말을 안 하게 됩니다. “너의 책임이 아니라 이 상황에서 나는 이렇게 느꼈다” 라고 말해야 합니다. 그러면 ‘아, 오늘 강의를 저 사람은 지루하게 느꼈구나’ 알게 되고 다음 강의부터는 조정을 할 수 있겠죠. 내가 잘못했다는 것이 아니라 그들이 그렇게 느꼈다고 하는 것이니까 시비할 일이 아니게 되잖아요. 본인들은 그렇게 느꼈다는 것이니까요.nbsp그렇게 자꾸 표현을 하는 연습을 하셔야 해요. 말싸움해서 이기는 건 더 이상 하지 말고요. 그런 건 져도 괜찮습니다. 그러나 감정 표현을 잘 못하면 앞으로 결혼 생활도 어렵습니다. 서로가 하루 이틀 살 것도 아니고 평생 같이 살 것이니까 편안하게 마음을 내어놓을 수 있으면 스트레스가 안 쌓이고 남이 볼 때는 약간 갈등하는 것 같아도 굉장히 서로 편안합니다. 반면에 일류 대학을 나오고 이성적이고 교양 있는 부부 중에는 옆에서 봤을 때는 평생 안 싸우는 것 같은데 서로 냉냉한 사람들이 많습니다. 서로 감정을 억누르고, 감정 표현을 하는 것 자체도 자기의 자존심이 상하는 것으로 생각하고 살면 서로 편안하게 살지 못합니다. 약간 자그락 자그락 해도 편하게 사는 것이 좋습니다. 대신 남 탓을 하면 안돼요. 그러나 자기 감정을 표현할 줄은 알아야 합니다. 한국 사람들은, 특히 경상도 남자들은 쉽지가 않기 때문에 연습을 좀 많이 해야 합니다. 늘 감정을 억누르고 살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질문자는 의도적으로도 자꾸 연습을 하셔야 돼요. 표현하기 연습을 자꾸 해보세요.”nbspnbsp“마음 나누기를 할 때 제 마음을 모를 때는 어떻게 해야 하나요?”nbsp“마음이 어떤지를 모른다는 것은 여러가지가 뒤섞여 복잡하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불편한 것도 있고 화나는 것도 있고 해서 질문자가 그것을 꼭 집어서 한마디로 표현하지 못하면 그 중에 하나만 표현하면 돼요. 너무 100 전달하려고 하지 말고, 그 중에 약간 화도 났고 약간 불편도 했다 하면 그냥 “저는 약간 화가 났습니다”, ”저는 약간 불편했습니다” 이렇게 표현하면 돼요. 미묘한 것을 다 표현하려고 하지 말고요. 얘기를 하다가 ‘이건 아닌데“ 싶으면 또 “그런 것도 있었지만, 이런 것도 있었어요” 이러다 보면 정확하게 표현하는 훈련이 됩니다. 마음을 정확하게 못 읽기 때문에 마음이 정확하게 표현이 안 되거든요. 그러나 자꾸 마음을 드러내다 보면 자기 마음을 자기가 알게 돼요. 알게 되면 표현 방법은 그렇게 어려운 문제는 아니에요. 그러니 대충 마음의 절반이라도 표현을 해보면 됩니다.nbsp이럴 때 질문자는 ‘내 심리가 억압되어 있구나’ 하고 알아야 됩니다. 심리가 억압된 원인을 찾아보면, 어릴 때 자기가 말을 하는데 부모가 야단을 치거나 선생님이 야단을 쳐서 말문이 탁 막혔던 경험이 있었을 겁니다. 말문이 막히면 표현이 잘 안됩니다. 술만 먹으면 말이 많아지는 사람들이 있잖아요. 대부분 다 말문이 막혀서 그렇습니다. 술을 먹어서 약간 취하면 의식이 마비되니까 무의식에서 하고 싶은 얘기가 바로 튀어나오거든요. 그래서 사랑을 고백할 때도 그냥 못하고 꼭 술을 한잔 먹고 와서 고백을 한다면 ‘이 남자는 나중에 술주정이 있겠구나’ 알아야 합니다. 술주정이 나쁘다는 것이 아니라, 자기 하고 싶은 얘기가 말문이 막혀서 안 나오니 술을 한잔 먹어야 술술 얘기가 나온다는 겁니다. 옛날에 억압된 심리가 같이 나오니까 했던 말 또 하고 했던 말 또 하게 됩니다.nbsp그럴 때 듣기 싫다고 내치면 다시 마음이 억압이 되잖아요. 옛날에 어릴 때는 어른이 억압하니까 받아들였는데, 아내나 친구가 억압을 하면 반발을 하게 됩니다. 그래서 싸움을 하고 때려 부수는 일이 생기는 겁니다. 그럴 때는 심리 치료적인 입장에서 들어줘야 합니다. 등을 두드려주고 ‘아이고, 그랬구나’ 자꾸 해주면 폭발하는 것을 막을 수 있습니다. 그런데 대부분 아내나 친구들은 자기 살기도 힘든데 남이 심리적으로 억압된 것까지 들어줄 여가가 없잖아요. 그래서 내치니까 충돌이 일어나는 겁니다.nbsp그래서 자기 치료를 자기가 해야 해요. 누구도 이 세상에 나를 위해서 헌신적인 사람은 없습니다. 부모도 자식에게 그렇게 안 합니다. 자식이 자기 성질대로 안 되면 악을 쓰게 되죠. 그래서 자기가 자기를 치료하지 않으면 누가 나를 안아주고 감싸줄 사람은 이 세상에 아무도 없어요. 그런데 우리는 상대에게 다 그렇게 해주길 바라거든요. 부처님이나 예수님 같은 성인이 아닌 이상 자기 살기도 힘들어요. 자기 고민 들어달라고 하지, 남의 고민 들어줄 여력이 없어요. 그래서 계속 충돌이 일어나거든요.nbsp첫째, 자기 치료를 할 것. 둘째, 자기 치료가 끝나면 다른 사람의 이야기를 들어줄 여유를 가져 보세요. 그러면 상대도 치료해 줄 수 있고 사회 전체적으로도 좋아집니다. 그래서 우선 자기 치료를 먼저 하셔야 돼요. 그렇지 않으면 나중에 연애를 해도 결혼을 해도 자꾸 오해가 생겨요. 나는 항상 내 감정을 제대로 표현하지 못해 아쉬워요. ‘내가 그 말을 못해서...’ 늘 이런 문제가 생기거든요. 죽을 때까지 이런 문제가 생겨요. 아무리 얘기를 해도 얘기를 덜 한 것 같고, 제대로 표현하지 못한 것 같은 아쉬움이 남거든요. 그래서 자기 표현을 자꾸 하는 연습을 하셔야 됩다.”nbsp질문자는 “감사합니다” 하며 밝게 웃으며 자리에 앉았습니다. 감정을 잘 표현하지 못하게 된 원인과 극복 방법을 자세히 일러주셨는데, 정도의 차이만 있을 뿐 비슷한 고민을 하시는 분들이 많을 테니 이 글을 읽으시는 분들도 작은 도움이 되었길 바랍니다.nbsp스님께서는 2시간 동안 강연을 하고 9시 10분에 강연을 마쳤습니다. 그리고 이렇게 참석한 모든 분들의 행복을 축원하며 이렇게 닫는 말씀을 해주셨습니다.nbsp“미국에 온다고 행복해지는 것도 아니고, 나이 든다고, 결혼한다고, 애 놓는다고, 애 다 키운다고 행복해지는 것이 아닙니다. 어떻게 하면 행복해진다 이런 것은 없습니다. 지금 이대로 살아 있는 것만으로도 행복하다고 생각하시면 좋겠습니다. 인생은 성공하기 위해서 산다고 하는데 살아있는 그것이 가장 큰 성공입니다. 아침에 눈 뜰 때마다 눈뜨자마자 ‘아이고 살았네’ 3번만 하면 좋은 에너지가 나오고, 어떤 기도보다도 좋은 기도입니다. 일상 속에서 행복을 찾아야 합니다.nbspnbsp언제나 내일 죽어도 괜찮은 삶이 되어야 합니다. ‘천당 가면 행복할거야’ 하지 마시고, 지금 행복한 마음을 내면 여기가 천당입니다. 지금 천당에서 살아야 죽어서도 천당에 가고 다음 생에도 천당에 갑니다. 억지로라도 내가 행복하다고 생각하시길 바랍니다. 내가 행복해진만큼 조금이라도 다른 사람과 행복을 나누면 인생이 보람 있어지고 가치 있어집니다. 도움을 받는 사람은 부담을 느끼게 되지만 도움을 주는 사람은 존재의 가치가 있게 됩니다. 받으면 심리적으로 위축되고 베풀 때는 심리적으로 자존감이 생깁니다. 도움 받으려 하지 말고 도움 주는 사람이 되고, 사랑 받으려 하지 말고 사랑하는 사람이 되고, 이해 받으려 하지 말고 이해하는 사람이 되시길 바랍니다. 나날이 행복해지시길 바랍니다.”nbspnbsp금요일 트래픽이 있어서 많이 참가하지 못할 것이라 생각했는데 100명이라는 많은 분들이 참석해 주셨습니다. 코네티컷에서는 처음 열리는 강연이었는데 비교적 잘 진행되었던 것 같습니다. 강연을 마치고 스님께서는 책사인회가 마련된 곳으로 자리를 옮겨서 줄을 서서 기다리고 있는 분들에게 사인을 해주고 함께 기념촬영도 하였습니다. 그리고 나서 자원봉사자들과 함께 기념촬영을 하였습니다.nbspnbsp오늘 코네티컷 강연은 뉴저지법당에서 주관하였기 때문에 뉴저지에서 자원봉사자들이 와서 강연을 준비하였습니다. 그래서 내일 뉴저지 강연도 오늘 자원봉사한 분들이 다시 자원봉사를 하기 때문에 뉴저지로 돌아가는 길도 바빠서 마음나누기도 내일 뉴저지 강연이 끝난 후에 한꺼번에 하기로 하였습니다.nbsp스님께서는 내일 강연이 두번이나 있고, 또 건강이 완전히 회복되지 않아 곧바로 자원봉사자들에게 “수고했다”고 인사를 하고 숙소로 출발하여 1시간 30분이 걸려 11시에 도착하였습니다. 간단하게 늦은 저녁식사를 하고, 잠깐 내일 일정에 대해서 얘기를 나눈 후 저는 제 숙소로 올라와서 스님의 하루를 작성하고 제업무를 보았습니다.nbspnbsp이렇게 오늘도 많은 분들의 정성과 자원봉사로 40번째 코네티컷 뉴헤이븐 강연이 잘 진행되었습니다. 내일 41번째 강연은 오전 11시에 롱아일랜드에 열립니다. 그리고 42번째 강연이 연이어서 뉴저지에서 저녁에 열립니다. 그럼 내일 뵙도록 하겠습니다.nbsp ▼nbsp법륜 스님의 세계 100회 강연, 지난 날짜 소식 보기
2014.10.2 세계 100회 강연(39) 유니온 신학대학(외국인 강연)
안녕하세요. 오늘은 세계 100회 강연 중 39번째 강연이 뉴욕 맨하튼의 유니온 신학대학에서 외국인을 대상으로 강연이 열리는 날입니다.nbsp스님께서는 앞으로 강의가 매일 2개씩 진행되거나 정토불교대학 졸업식, 수계식, 미국무성 방문등 여러 일정이 많이 있기 때문에 건강을 빨리 회복해야 하므로 최대한 휴식을 취하기로 하였습니다. 어제부터 일요일까지 숙소는 뉴욕정토회 김명호유정희 부부의 집을 사용하기로 하였으며, 스텝진들은 오전 8시에 아침 식사를 하고 각자 밀린 빨래와 개인업무를 보았습니다.nbsp오후에는 영문 출판과 관련하여 맨하튼 시내에 있는 Trident Media Group 에서 스님과 미팅을 요청하였기 때문에 3시 15분에 맨하튼으로 출발하기로 하였습니다. 우리가 묵는 숙소가 퀸즈에 있기 때문에 퀸즈에서 맨하튼 쪽으로 넘어가니 맨하튼의 마천루가 눈앞에 나타났습니다.nbspnbspTrident Media Group 은 매디슨스퀘어 광장 바로 옆에 위치한 빌딩의 36층에 위치하고 있었습니다. Trident 사에 도착해 스님과 미팅을 요청한 담당자와 함께 컨퍼런스룸에서 회의를 했습니다. 맨하튼의 동쪽에 위치한 이스트강과 함께 브루크린, 퀸즈, 브롱스가 한 눈에 들어와 맨하튼 동쪽을 한눈에 볼 수 있었습니다.nbsp오늘 미팅을 요청한 Trident Media Group 은 출판 에이젼시로서 작년에 한국에서 출판한 스님의 ‘인생수업’ 책을 접하고 나서 스님을 미국 사회와 국제 사회에 소개하고 싶다고 하여 미팅이 이루어지게 되었습니다. 정토출판을 통해 출판된 영문책은 이미 읽었고, 스님의 뉴욕타임지 인터뷰 기사 및 영문 홈페이지를 통해서 이미 스님에 대해서 나름 공부를 많이 한 상태였습니다. 또한 자신들이 번역하여 한국어로 출판된 책들을 스님께 보여주기도 하였는데 그 중에 “천 개의 파도”라는 책도 있었습니다.nbspnbsp스님과 담당자는 어떤 책을 미국에서 출판하는 것이 좋을지 등에 대해서 1시간 정도 미팅을 하였는데 앞으로 정토회 해외사무국의 번역팀 일이 많이 늘어날 것 같습니다. 미팅 후에는 회사 투어를 시켜주었는데 이 회사에 소속된 천명 이상의 저자가 있다고 하면서 그들이 쓴 수많은 책들을 전시해 놓았습니다. 곳곳에 이곳 소속 작가의 작품이 영화로 만들어진 포스터도 붙어 있었습니다.nbsplt잠깐 사장실에 들러 담당자와 스님께서 기념사진을 찍었습니다gtTrident 에서 1시간의 미팅 후에 유니온 신학대학교로 출발하였습니다. 유니온 신학대학교에 도착하니 자원봉사자들이 스님께 반갑게 인사하면서 달려옵니다. 유니온 신학대학교는 맨하튼 법당과 한 블럭 떨어져 있는데 오늘 행사도 어제와 마찬가지로 맨하튼 법당의 청년들이 자원봉사를 하고 있었습니다. 스님께서 도착하니 오늘 행사를 주관하는 정현경 교수님이 나와 학교 내에 있는 정현경 교수님 사택으로 스님을 모셨습니다. 스님께서는 최말순 보살님께서 준비해온 죽으로 간단히 요기를 하시고 정현경 교수님과 잠깐 대화를 하시다가 시간이 되어서 행사장으로 자리를 옮겼습니다. 스님께서는 정현경교수님께 초청해 주신 것에 대해 감사의 인사를 드리고 ‘인생수업’을 선물로 드렸습니다.nbsp오늘 강연이 이루어지는 유니온 신학대학교는 초교파적인 신학교로서 1836년에 설립되었는데, 본래는 장로교파에서 설립했지만 오늘날은 종파를 초월한 세계 최고의 기독교계 지성들의 집합체로 인식되고 있으며, 세계에서 가장 진보적인 신학대학교라고 널리 알려져 있습니다. 그리고 바로 옆에는 콜럼비아 대학교가 위치하고 있어, 콜럼비아 대학교와 학점을 공유하며 서로 수업을 들을 수 있다고 합니다.nbsplt유니온 신학대학교 전경gt오늘 강연장은 유니온 신학대학교 내의 James Memorial Chapel 인데, 이곳은 작년에 스님께서 불교와 기독교인의 대화에 초정을 받아 컨퍼런스에 참가한 300명의 학자, 활동가, 학생들에게 1시간 정도 즉문즉설을 했던 장소라 더 반갑기도 하였습니다.nbspnbsp오늘 유니온 신학대학교의 강연에는 약 80명이 참석하였습니다. 정토회 해외지부 사무국에서 특별 제작한 영어 자막의 스님 소개 영상이 상영되고, 이어서 정현경 교수님께서 스님을 “락스타”와 같다고 하면서 소개했습니다. 스님께서는 유니온 신학대학교 학생 및 참가자들의 뜨거운 박수갈채를 받으며 연단에 오르셔서nbsp다음과 같이 서두를 여셨습니다. nbspnbsp“안녕하세요. 이렇게 저녁 늦게 참석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오늘 우리가 만난 것은 대화를 해보고자 하는 것입니다. 자신이 불교인이든 기독교인이든 어떤 종교를 갖고 있든 관계없이 ‘과연 진실은 무엇일까?’ 이 문제만 갖고 대화를 했으면 합니다. 또 우리가 살아가는 인생의 고뇌에 대해서 대화해 보고 싶습니다. 대화의 주제는 여러분들이 던지는 대로 함께 해나겠습니다. 누구든지 먼저 주제를 던져 보십시오.”nbsp이렇게 가볍게 여는 말씀을 하시며 학생들로부터 질문을 받았습니다. 즉문즉설은 제이슨 림의 빠르고 정확한 동시통역으로 속도감 있게 진행되었습니다. 거의 한국인들과 대화하는 수준으로 스님의 말을 바로 뒤따라서 제이슨 림의 통역이 발 빠르게 이어졌습니다. 주거니 받거니 리듬을 타며 물 흐르듯이 통역이 이뤄졌습니다.nbspnbsp총 12명의 외국인들이 스님께 질문을 했습니다. 6년 전에 많이 아팠지만 지금은 점점 좋아지고 있는데 다음 단계로 어떻게 나아가야 하는지 조언을 구하는 분, 원했던 전공으로 졸업을 못했고 꿈꾸던 직장도 구하지 못했는데 어떻게 마음을 다스려야할지 묻는 분, 빈부격차가 커지고 미래가 부정적일 것 같은데 세상에 대해 어떻게 긍정적인 마음을 유지할 수 있는지 묻는 분, 건망증이 심한데 연구원을 계속 해도 될지 의문이 든다는 분, 중국 불교는 개인 수행에 관심이 많고 한국 불교는 본인의 경험을 나누는데 관심이 많은 것 같은데 중국 불교와 한국 불교는 차이점이 무엇인지 묻는 분, 스트레스가 많은데 어떻게 대학을 졸업하고 직장을 구해야 할지 조언을 구하는 분, 오빠가 우울증으로 앓고 있는데 어떻게 도움을 줄 수 있는지 묻는 분, 박사 학위를 공부하는 중에 남한과 북한의 통일 문제가 너무 고민이 된다는 분, 행복할 땐 너무 행복하고 우울할 땐 너무 우울한데 어떻게 마음을 다스려야 하는지 묻는 분, 젊은이들에게 해주고 싶은 조언을 부탁하는 분, 싫은 것을 거절하지 못하는 성격인데 어떻게 해야 할지 고민인 분 등 다양한 질문에 대해 스님께서는 짧고 핵심을 담아서 명쾌한 지혜를 들려주셨습니다.nbsp오늘은 그 중에서 어릴 때 엄마가 집을 나가 깊은 상처를 갖고 있으며 지금은 인생의 목적이 없어 고민인 외국인 학생의 질문과 스님의 답변을 소개합니다.nbspnbsp“My mom left me. My sister came to America from Vietnam. At age of 12 I lived with my cousin. I stay with my sister until 18. I support myself since I was 18. I try to confront her. She is 75 years old, I don’t know she is telling me the truth. I cannot forgive her. There is no purpose in life. I think there is purpose in life. I cannot figure it out. I am trying to pursue actress. I have a goal compliment, I have no sense of purpose.”nbsp“저는 두 가지 질문을 드리고 싶습니다. 엄마가 저를 두고 떠났습니다. 언니가 베트남에서 미국으로 건너왔습니다. 저는 12살까지 사촌과 함께 살았습니다. 저는 18살까지 언니와 함께 살고 그 이후에는 독립해서 제 힘으로 살아왔습니다. nbsp저는 엄마를 만나서 따졌습니다. 현재 엄마는 75세입니다. 엄마가 저에게 진실을 말하고 있는지 도무지 알수가 없습니다. 엄마를 용서할 수가 없습니다. 그리고 저는 인생의 목적이 없습니다. 인생에 목적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그것을 nbsp알아낼 수가 없습니다. 저는 배우가 되고자 합니다. 목표는 세웠는데 목적의식이 없습니다.질문한 여학생은 눈물을 글썽이며 자신의 아픔을 스님께 하소연 하였습니다. 스님께서는 여학생의 아픔에 대해 이렇게 답변해 주셨습니다.nbsp“마음을 조금 진정하시기 바랍니다. 지금은 아무 일도 없습니다. 그렇죠?”nbspnbsp“네, 그렇습니다.”nbspnbspnbsp“그런데 옛날에 어릴 때의 생각을 하니까 눈물이 납니다. 그리고 괴로워집니다. 지금 누군가가 자기를 버린 것이 아니잖아요? 옛날에 버려졌다는 기억이 나를 지금 슬프게 하는 것입니다. 당신이 괴로워하는 것은 전부 옛날 얘기예요. 지금 일이 아니에요. 당신은 지금 살아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당신의 머리 속은 옛날 기억에 가득차 있는 것입니다. 마치 극장에 가서 영화를 보고 있는 사람과 같은 것입니다. 거기서 죽는 사람을 보면 슬프잖아요? 그러나 스크린을 끄면 아무도 없어요. 그것처럼 당신의 머리 속에서 지금 스크린이 돌아가고 있는 겁니다. 옛날 어릴 때의 기억이 비디오로 돌아가는 겁니다. 당신이 거기에 지금 집중되어 있는 겁니다. 그래서 영화를 볼 때 슬픈 것처럼 갑자기 눈물이 나는 겁니다.nbsp그러나 지금 눈물이 멎은 것은 지금으로 돌아오기 때문입니다. 항상 현재에 깨어 있어야 합니다. 과거의 비디오를 보면 과거의 고통이 되살아납니다. 계속 과거의 비디오만 보고 살 거예요? 아무 일도 안 하고 계속 비디오만 볼 거예요? 그러니 지금 깨어 있어야 합니다. 지금 자신의 주위를 둘러보세요. 나에겐 아무 일도 없습니다. 난 지금 살아 있습니다. 건강합니다. 내가 행복하지 못할 아무런 이유가 없습니다. 그러나 당신 머리 속에 있는 그 비디오를 틀면 당신은 괴로워집니다. 괴롭고 싶습니까? 그러면 비디오를 계속 트십시오. 괴롭고 싶지 않으면 그 비디오 보지 마세요. 그 테이프 버리세요.nbsp그런데 문제는 버리려고 해도 잘 버려지지가 않아요. 자동으로 자꾸 켜져요. 그래서 자꾸 슬픔에 빠지는 거예요. 그래서 조금의 노력이 필요합니다. 생각이 과거로 빠질 때 빨리 현재로 돌아와야 합니다. 과거의 생각으로 머리가 돌아갈 때는 빨리 마음을 코끝에 집중하십시오. 그러면 숨이 들어오고 숨이 나오면서 내가 숨 쉬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숨이 들어가고 숨이 나오는 이것이 현재입니다. 그래서 현재에 깨어 있으면 괴로움은 없습니다.nbsp내가 태어나서 피부 빛깔이 어떻든, 내가 남자든 여자든, 내가 건강한 사람이든 신체 장애든, 내가 어떤 민족이든, 종교가 어떤 것이든 그것 때문에 내가 괴로울 이유는 없습니다. 태어난 사람은 누구나 행복할 수가 있습니다. 내가 어릴 때 어떤 경험을 했든 어머니로부터 버려졌든 성추행을 당했든 이것은 다 지나간 과거입니다. 과거의 비디오만 보지 않으면 즉 현재에만 깨어 있다면 당신은 항상 행복할 수가 있습니다. 문제는 당신의 선택입니다. 옛날 비디오를 틀면서 슬퍼할 건지 지금 현재에 깨어서 행복하게 살 건지 그것은 당신이 결정하는 겁니다.nbspnbsp엄마의 문제가 아닙니다. 엄마는 당신을 낳아 주었습니다. 엄마가 당신을 낳지 않았다면 당신은 이 세상에 없습니다. 당신도 나중에 아이를 낳아보면 엄마가 자식을 버릴 때는 얼마나 가슴 아픈지 알게 됩니다. 어쩔 수 없는 상황이 있었을 겁니다. 자식을 버린 엄마의 아픔은 우리가 상상하기도 어렵습니다. 어릴 때는 엄마의 마음을 몰랐다 하더라도 이제 당신도 엄마가 될 수 있는 나이가 되었으니까 자식을 버릴 수밖에 없었던 그 엄마의 마음을 이해하셔야 합니다. 그래서 이렇게 기도해야 합니다.nbsp‘엄마, 저를 낳아 주셔서 감사합니다.’nbsp오직 이렇게 감사 기도만 해야 합니다. 그러면 미래에는 저절로 밝아집니다. 다른 생각을 하시면 자신을 초라하게 만듭니다. 오지 않은 미래를 자꾸 생각하면 마음이 불안하고 초조해집니다. 근심과 걱정이 생깁니다. 오지 않은 미래에 대해서 너무 생각하지 마세요. 항상 지금에 깨어 있어야 합니다.nbsp또 당신의 경험이 당신에게 꼭 나쁜 것만은 아닙니다. 배우 하신다고 했죠? 그럴 때 당신이 만약에 어릴 때 버려진 아이 역을 맡는다면 얼마나 잘하겠어요? 어떤 사람도 잘 할 수 없는 배역을 해낼 수 있습니다. 당신이 과거에 겪었던 모든 것들은 당신의 미래에 굉장한 자산이 됩니다. 그것을 나에게 상처로 간직하고 괴로움의 원인으로 삼을 것인지, 그것을 경험으로 살려서 나에게 자산으로 만들 것인지 그것도 당신이 지금 결정할 수 있습니다. 상처로 간직하고 계시겠어요? 경험으로 살려서 자산으로 삼으시겠어요?”nbsp울먹이던 여학생은 금세 얼굴이 밝아져 활짝 웃었습니다. “더 질문이 있는지?” 물으니 미소를 띄며 “No” 라고 대답합니다. 스님의 지혜로운 설법에 청중들의 뜨거운 박수갈채가 쏟아집니다. 아마도 울먹이며 힘들어 하던 질문자의 환한 모습과 스님의 지혜로운 말씀에 대한 감사의 박수인 것 같았습니다. 이렇게 12명의 질문에 대해 명쾌한 답변이 이어지다보니 벌써 2시간이 훌쩍 흘렀습니다.nbsp스님께서는 강연을 마치며 “빠르게 통역해주신 제이슨 림에게 뜨거운 박수를 부탁드린다”며 제이슨 림에게 감사의 마음을 표현했습니다. 그리고 끝까지 강연을 들어준 유니온 신학대학 학생들에게 “행복”을 축원해 주셨습니다.nbspnbsp“이 세상에 태어난 사람은 누구나 다 행복할 권리가 있습니다. 과거에 어떤 경험이 있었던 행복할 권리가 있습니다. 이것을 붓다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모든 사람이 부처가 될 수 있다.’ 예수님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모든 사람은 다 사랑하는 하나님의 아들이다.’ 그러니 자신의 소중함을 알아야 하고 행복하게 살아야 합니다. 물론 본인이 선택해서 괴롭고 싶으면 괴로워도 괜찮습니다.미국에 사시는 여러분이 불행하면 본인만 불행한 것이 아니라 우리 인류에게 절망을 가져옵니다. 왜냐하면 모든 세계 사람들이 ‘미국에 가면 좋을 것’이라고 미국을 동경합니다. 그런데 여기 사람들도 괴롭다면 그 사람들은 과연 어디로 가야 합니까? 인류에게 절망을 주는 겁니다. 인류에게 절망을 주지 않기 위해서라도 적어도 여러분들은 행복하셔야 합니다. 행복하게 사시기 바랍니다.”스님의 건강이 완전히 회복되지 못한 관계로 강연을 시작하고 1시간 30분이 지나니 스님 목소리가 갈라지고 탁해지기 시작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9시까지 질문자 한 사람 한 사람에게 성심껏 답변해주신 스님께 다시 한 번 청중들의 뜨거운 박수갈채가 쏟아집니다.nbsp다시 정현경 교수님이 “강연을 해준 법륜 스님과 통역을 해준 제이슨 림, 이 행사를 마련한 정토회 봉사자들을 위해 박수를 부탁드린다”고 하니, 또 다시 뜨거운 박수갈채가 쏟아집니다. 오늘은 계속되는 박수갈채 소리에서 아련한 감동이 전해지는 것 같습니다.nbsp오늘 강연에는 특히 한국 비구니 스님 10명이 앞자리를 채워주셨습니다. 이분들은 조계종 국제학교 소속 스님들로서 국제포교를 위해서 공부를 하고 있는데 졸업 무렵에 미국 연수가 있어 이번 영어 강연에 참가하려고 일정을 맞추어 오늘 새벽에 뉴욕에 오셨다고 합니다.nbspnbspnbsp오늘 강연은 대중과 스님의 호흡이 잘 맞았고, 집중력도 높고, 질문에 대한 반응과 대답에 대한 반응도 아주 좋았던 강연이었습니다. 강연을 들으면서 주위를 둘러보니 스님께서 답변을 하실때 외국인들이 고개를 끄덕이면서 함께 호응하는 모습을 보여주었습니다. 끝까지 집중된 분위기 속에서 자리를 뜨는 사람 없이 질문자와 청중들의 높은 호응을 이끌어낸 강연이었습니다.nbsp강연이 끝나고 스님께서는 참석한 분들과 인사를 나누셨습니다. 질문자들도 스님께 다가와서 인사를 하였습니다.nbsp▲nbsp특히 맨하튼에 거주하고 있는 임선희님이 외국인 남편, 아들과 함께 참석하여 스님께 가족을 인사시켰습니다. 임선희님은 “가족이 모두 스님을 친견하고 또 스님 강연을 듣게 된 것이 무엇보다도 기쁘다”고 하였습니다.nbspnbsp참가한 외국인 분들에게 오늘 강연이 어땠는지 질문하니 모두들 “많은 도움이 되었다”고 합니다. 또 “질문을 하지는 않았지만 다른 사람의 질문과 대답을 통해서 자기 삶에 도움을 많이 받았다”고 합니다. 또 어떤 내용이 좋냐고 물으니 “첫번째 질문과 두번째 질문이 너무 좋았다”고 하기도 했습니다.nbspnbsp스님께서는 참가자들이 스님과 사진촬영을 원해서 잠깐 사진 촬영에 응해주기도 하고, 책에 사인도 해주기도 하였습니다. 오늘은 행사 후에 바로 강연장을 정리하고 나가야 하기 때문에 스님께서는 행사 전에 강연장에 도착하여 준비를 하고 있던 자원봉사자들과 미리 기념촬영을 해두었습니다.nbspnbsp그리고, 어제 맨하튼 한국인 강연을 맡았던 김재원님, 오늘 영어 강연을 맡은 윤혜준님, 맨하튼 법당의 양영주 총무님께 수고하였다고 ‘새로운 백년’ 책에 사인을 하여 선물로 주고 기념촬영을 하였습니다.nbsplt왼쪽부터 김재원님, 윤혜준님, 양영주님gt행사 이후에는 한국에서 온 비구니 스님들께서 잠시 스님과 미팅을 하고 싶다고 요청을 하여 정현경 교수님 사택으로 자리를 옮겨 잠깐 미팅 시간을 가졌습니다. 스님들께서는 사택에 도착하자마자 스님께 인사를 드렸습니다. 스님들은 지금 21일간 미동부 지역에 연수를 다니고 있다고 합니다. 스님께서는 비구니 스님들이 방문하게 될 지역 및 단체, 타종교 기관 등에 대해서 자세히 물으셨습니다. 비구니 스님들께서도 “오늘 강연을 아주 인상적으로 보았다”고 하면서 “제이슨의 통역과 스님의 현명한 답변에 새삼 감탄하였다”고 하면서 본인들도 더 열심히 노력해야겠다고 하였습니다. 유럽부터 시작한 스님의 빡빡한 세계 100강 일정을 들으시고는 “스님께서 쉬셔야 하겠다”고 하면서 서둘러 자리를 파하였습니다.nbspnbsp스님께서는 오늘 이렇게 강연을 할 수 있도록 해주신 유니온 신학대학교의 정현경 교수님께 다시 한번 감사인사를 하고, 학교를 떠나기 위해서 교문 쪽으로 나오니 아직 봉사자들이 뒷정리를 하고 있었습니다.nbsp오늘 일과를 마치고 숙소로 돌아오니 10시 40분이 되었습니다. 스님일행의 식사를 담당하고 있는 김숙현님과 유정희님이 저녁식사를 준비해놓고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덕분에 저희들은 늦은 시간에 저녁 식사를 할 수 있었습니다.nbsp묘덕법사님과의 나누기에 참가한 자원봉사자는 12명 중 9명이었는데, 외국인 강연 홍보는 처음인데다 2주 전부터 본격적인 홍보를 시작하게 되어 다들 처음에는 어떻게 홍보를 해야할 지 몰라 조금 당황스러웠다고 합니다.nbsp그리고 한국계 2세나 1.5세가 참가해도 좋은지를 잘 몰라서 조금 어려웠다고 합니다. 그러나 행사 준비 자체는 재미있고 좋았으며 함께 강연장에서 질문과 대답을 듣는 그 자체가 힐링의 시간이 된 것 같아서 좋았다고 하였습니다. 처음 강연장에 입장하는 사람들이 한국계와 아시아인들이 많아서 처음에는 초조하였고, 또 홍보가 부족해서 사람들이 많이 올지 걱정이 되었으나, 시간이 지나자 자리도 차고 분위기도 차분하고 질문 내용도 좋고 스님의 답변도 좋아서 준비를 한 입장에서는 만족스러웠다고 하였습니다. 한국계 2세와 아시아계의 질문이 많아서 그 부분이 조금 아쉬웠으나, 한국계 1.5세와 2세들은 스님 강연에서는 질문을 하고 싶어도 한국어를 제대로 이해하기 힘든데 이렇게 영어 강연이 있어서 참 좋았던 것 같다고 하였습니다.이렇게 많은 분들의 정성과 자원봉사로 오늘 39번째 맨하튼 유니온 신학대학교 외국인 강연도 잘 마쳤습니다. 내일은 40번째 강연이 코네티컷에서 열립니다. 내일은 코네티컷에서 뵙도록 하겠습니다.nbsp ▼nbsp법륜 스님의 세계 100회 강연, 지난 날짜 소식 보기
2014.10.1 세계 100회 강연(38) 뉴욕 맨하튼
nbsp안녕하세요. 프린스턴 대학에서의 외국인 대상 즉문즉설 강연에 이어 저녁에는 뉴욕 맨하튼에서 한국 교민들을 대상으로 법륜스님의 세계 100회 강연 중 38번째 강연이 열렸습니다.nbsp2시에 프린스턴 외국인 대상 첫번째 즉문즉설 강연을 마치고 바로 뉴욕 맨하튼으로 이동 하였습니다. 뉴욕정토회 대표님과 총무님이 준비해 온 음식으로 프린스턴에서 맨하튼으로 이동하는 중간에 잠깐 휴게소에 들러 차안에서 요기를 하고 서둘러 길을 떠났습니다.맨하튼은 59.5 km2 의 작은 면적에 약 160만명이 거주하여 인구 밀도가 세계 최고수준이고 유동인구는 약 390만명으로 추정하고 있으며 이중 한국인은 약 2만명 정도 거주 하고 있는 것으로 조사되고 있습니다. 32번가에는 한국 식당이 있고 대형 한국 베이커리가 곳곳에 진출해 있습니다. 또한 맨하튼은 세계 금융, 경제와 문화의 중심지로서 유엔 본부가 소재하고 있어 ‘세계의 수도’로 불리워지며 유엔 북한대표부가 있는 곳이기도 합니다. 또한 미국에서 거주 비용이 가장 높은 동시에 빈부 격차도 가장 심한 도시입니다.nbsp처음 길을 잘못 들어 브루클린으로 가는 바람에 넉넉하게 행사장에 도착할 줄 알았는데 다시 길을 바로 잡아 오는 관계로 강연 30분 전에야 행사장에 도착할 수 있었습니다. 오늘 맨하튼 강연이 열리는 장소는 엠파이어 스테이트 빌딩과 바로 한블럭 정도 떨어져 있는 Community Church of New York 입니다.nbsplt엠파이어 스테이트 빌딩gt행사장에 들어서니 많은 자원봉사자들이 스님께 반갑게 인사를 하였습니다. 스님도 수고가 많다고 격려를 해주시니 강연장은 한바탕 축제처럼 즐거운 분위기가 되어가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LA정토회 이경택님이 뉴욕에 출장와 있던 차에 맨하튼 강연장을 찾아 스님과 반갑게 인사를 하였습니다. 그리고 차효순 대표님, 이정인 총무님, 그리고 뉴욕정토회의 많은 봉사자들이 강연장을 찾는 분들께 반갑게 인사를 하고 있었습니다.nbspnbsp화기애애한 가운데 스님 소개영상이 나오고 큰 박수와 함께 스님께서는 무대에 오르셨습니다.nbsp“오늘 강연이 열리는 이곳은 모든 종교가 함께 쓸 수 있도록 만든 교회라고 하니 참 좋습니다. 맨하튼에 이런 곳이 있다니 과연 여러 민족, 여러 종교가 섞여 살고 있는 맨하튼 답습니다.nbsp우리 인생의 고뇌는 욕심에서 온다고 합니다. 목표를 너무 높게 설정하면 목표에 못미치는 결과로 인해 괴로워지고, 이렇게 우리는 늘 욕심 때문에 작아집니다. 아내나 남편에게 지나친 기대를 하기 때문에 아내나 남편이 자기 기대에 못미치는 것 같아 갈등이 생깁니다. 그런데 기대치를 좀 낮추고 살아보면 ‘생각보다 괜찮네’ 라며 만족도가 높아집니다.nbsp오늘은 아무런 주제의 제약 없이 여러분과 함께 대화를 해보겠습니다. 인생에는 정답이 없습니다. 사람은 제 좋은대로 살면 됩니다. 결혼을 할 때는 행복할려고, 자식을 낳을 때도 더 행복할려고 했고, 유학을 올 때도 더 행복할려고 왔는데, 자기의 의도와 결과가 맞지 않기 때문에 후회하고 괴로워합니다. 그런 모순들을 잘 살펴본다면 지금보다는 조금 더 나은길, 행복한 길을 찾을 수 있을 것입니다.”nbsp이렇게 간단히 인사말씀을 하시고 바로 질문을 받았습니다.nbsp맨하튼 강연에서는 총 13명이 스님께 질문을 했습니다. 주위에서는 상대가 나쁜 사람이라고 하지만 내가 괜찮으면 괜찮은 것인지, 살면서 정말 피해야 하는 사람이 있는 것인지 궁금한 분, 독실한 기독교 집안에서 태어나 모태 신앙을 갖고 있는데 결혼하려는 남자 집에서 불교로의 개종을 요구하고 있어서 어떻게 현명하게 극복할 수 있을지 묻는 분, 지금 금전적으로 많이 어려운 상황인데 결혼을 생각하는 상대편은 이 사실을 모르고 있어서 고민인 분, 미국인 남편과 결혼한 지 6개월 된 주부인데 미국이 너무 싫고 한국으로 돌아가고 싶어서 고민인 분, 뉴욕 사람들은 대부분 딱딱하고 무표정한데 스님은 큰일도 많이 하심에도 불구하고 어떻게 항상 웃으실 수 있는지, 큰 딸이 좋은 직장에 다님에도 불구하고 비전 없고 못 배운 남자와 결혼하려고 해서 고민인 분, 스님은 젊은이들에게 도전을 강조하시는데 실패해서 상대적 박탈감을 맛보지 않으려면 어떻게 균형점을 찾아야 할지 궁금한 분...nbsp세계 100회 강연을 하시며 강행군 중이신데 무모하게 보일 수도 있는 이번 100강에 대해 스님은 어떤 의미를 갖고 계신지 묻는 분, 연로하신 부모님이 이곳 미국에서 치료를 받고 계신데 한국으로 돌아가고 싶어 하셔서 함께 따라가야 할지 고민인 분, 의대 입학시험에 두 번 낙방한 딸이 있는데 세 번째도 떨어지면 그만두게 해야할지 그래도 계속 도전하게 해야할지, 고등학교 때부터 마리화나를 하고 있는 25살 아들이 있는데 집에서 쫓아내어야 할지 고민인 분, 불자가 아니지만 얼마 전 우연히 공안 화두를 들었다며 ‘돈오점수 돈오돈수’의 의미에 대해 묻는 분, 뉴욕에서 인턴을 하고 있는 23살 의대생인데 ‘인간은 왜 살아야 하는지?’ 하는 생각을 떨쳐낼 수가 없다며 어떻게 하면 좋을지 묻는 분, 예측하지 못한 실패를 겪고 나서 이제는 하고 싶은 것도 없고 인생이 허무하게 느껴지는데 어떻게 해야 하는지 묻는 분 등 다양한 질문에 대해 스님께서는 지혜로운 말씀을 들려주셨습니다. nbsp그 중에서 삶의 목표에 대해, 그리고 어떻게 사는 것이 잘 사는 것이지 되새겨볼 수 있는 직장인 여성의 질문과 스님의 답변을 소개합니다. 질문한 분은 눈물을 글썽이며 스님께 간절한 마음으로 답을 구했습니다.nbspnbsp“저는 40대 초반의 직장인 여성입니다. 어렸을 때는 항상 도달해야 하는 목표가 있었고, 커서는 대학원에 가는 것이 목표였고, 직장에서는 건축설계를 했는데 자격증 시험을 목표로 공부했고, 회사생활을 하면서 이만하면 나름 괜찮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30대 중반이 되면서부터 ‘내가 뭘 위해 정신없이 이렇게 달려왔나’ 하는 생각이 들어서 3년 전 다니던 회사를 그만두고 2년 동안 일본에서 하고 싶은 일 하며 놀면서 스트레스 없이 지내다가 지금은 미국으로 돌아와 월급은 적지만 스트레스 없는 직업을 선택하여 마음 편하게 지내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렇게 특별한 목표도 없이 아무 생각도 없이 살아도 되는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어떤 것이 잘 사는 것인지 궁금합니다.”nbsp“네, 아무 걱정 없이 사는 게 잘 사는 것입니다. 옛날처럼 또 그렇게 미친 듯이 살고 싶으면 그렇게 살면 되잖아요. 그런 삶이 문제가 있다고 생각해서 놓아 버렸으면 이제 편하게 살면 되죠. 그렇게 살아도 되는지 물으시니 저는 “그렇게 살아도 된다”고 말씀드리는 것입니다. 아무 문제 없어요. 지구를 생각해도 문제 없고, 미국을 생각해도 문제 없고, 질문자 개인을 생각해도 아무 문제가 없어요.”nbsp“그런데 지금 마음이 허한 이유는 무엇일까요?”nbsp“그것은 미친 듯이 살아가던 그 관성, 중독성이 아직 덜 빠져서 그렇습니다. 그 습성이 아직 무의식 세계에 남아 있어서 가만히 있으면 뒤처지는 것 같고 허송세월 하는 것 같은 심리적 불안이 일어나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어떤 사람이 담배에 중독이 되었다면 더 좋은 담배를 피우려고 하는 것과 같습니다. 술에 중독이 되었다면 더 좋은 술을 먹으려고 하는 것과 같습니다. 그러나 아무리 좋은 담배를 피운다고 해도 안 피우는 것 보다는 못하고, 아무리 좋은 술을 먹는다고 해도 안 먹는 것 보다는 못해요. 탁 내려놓고 안 먹는 쪽으로 가버리면 아무 일도 안 해도 되는데, 확연히 깨닫지 않으면 좋은 술과 담배를 보면 마음이 끄달리게 됩니다.nbsp친구들이 좋은 술과 담배를 먹는 모습을 보고 ‘왜 나만 세상에 뒤쳐져서 손해를 보나’ 이런 의식이 든다면 아직도 옛날의 중독성의 잔재가 나한테 남아 있는 것입니다. 술담배를 안하는 사람 입장에서 보면 더 좋은 술, 더 좋은 담배가 무슨 의미가 있습니까. 그런 것처럼 아무리 사람들이 미친 듯이 살아가고 돈을 태산 같이 쌓고 지위를 높여가도 그것이 내가 가야할 행복의 길이 아니라고 생각하면 그것을 쳐다보고 불안해할 아무런 이유가 없어요. 아무리 사람들이 다름질치며 쫓아가더라도 그 끝이 낭떠러지라면 거기에 내가 휩쓸려 따라갈 필요가 없어요. 그런 것처럼 질문자는 지금 그 잔재가 남아 있어서 그런 것입니다.nbsp어떤 것이든 병을 치료할 때는 그 후유증이 있습니다. 우리의 까르마는 관성의 법칙이 있어서 그렇습니다. 과거에 살아온 습성에 의해서 우리는 살아갑니다. 습성이 남아 있기 때문에 생각으로는 아무리 ‘안되겠다’고 해도 무의식 세계에서는 계속 작용을 해서 심리가 불안한 것입니다. 조금 더 놀면서 기다리면 괜찮아집니다.”nbsp“예전에는 너무 욕심으로 살았던 것 같고, 지금은 너무 아무 생각 없이 하루하루 사는 것 같아요.”nbsp“아무 생각 없이 하루하루 살면 안 되지요. 시간을 많이 낼 수 있다면, 뉴욕에도 밥을 못 먹어서 굶는 사람이 많다고 하는데 식사를 제공하는 봉사단체에 가서 봉사를 해도 되지요. 주위를 둘러보면 할 일이 굉장히 많습니다. 왜 방안에만 가만히 있으려고 해요? 명상을 해도 되고 요가를 해도 되고 봉사를 해도 되고 할 일은 늘 있습니다.nbsp‘내가 재벌이 되겠다’ 하는 것이 욕심이 아닙니다. 욕심은 내가 세운 목표와 나의 노력이 서로 맞지 않을 때 욕심이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좋은 대학을 가고 싶은데 공부는 하기 싫다, 실력은 안 되는데 성적은 잘 나오고 싶다, 이런 것이 욕심입니다. 목표를 세우고 그 목표를 향해 노력하는 것은 욕심이 아닙니다. 욕심인지 욕심이 아닌지의 기준은 간단합니다. 그 목표가 달성되지 않았을 때 좌절하고 절망하면 그것은 욕심입니다. 그러나 안 되었을 때 ‘이래서 안되네. 저렇게 해볼까?’, ‘어, 이것도 안되네. 요렇게 해볼까?’ 이렇게 탐구하면 아무리 큰 목표를 세워도 그것은 욕심이 아닙니다.nbsp여러분들이 스트레스를 받는 이유는 욕심 때문입니다. 학생들도 공부하면서 스트레스를 받는 이유는 자기 실력 이상으로 평가되기 바라기 때문입니다. 회사에서도 자기 실력 이상으로 능력을 발휘하려고 하니까 스트레스를 받죠. 그냥 자기 실력껏 하면 됩니다. 대충 하라는 얘기가 아닙니다. 최선을 다해서 노력하되 평가에 너무 연연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일은 사람이 하고 뜻은 하늘이 이룬다’ 이런 말이 있습니다. 이 말은 하늘이 전부 조정한다는 뜻이 아니라 나는 최선을 다하되 결과에 연연하지 말라는 뜻입니다. 그렇게 하면 삶이 훨씬 더 편안해지고 행복해집니다.nbspnbsp자신의 재능을 갖고 최선을 다할 뿐입니다. 평가는 내가 하는 것이 아니고 세상 사람들이 하는 것입니다. 그러니 세상 사람들의 평가에 연연할 필요가 없어요. 오늘 강연을 들은 사람들 중에도 ‘정말 좋았다’는 사람도 있을 것이고, ‘별것 아니네’ 이렇게 평가하는 사람도 있을 수 있습니다. 그것은 각자 자기의 평가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칭찬에도 들뜨지 말고 비난에도 연연하지 말아야 합니다. 사람들은 각각 사물을 보는 관점이 다르기 때문에 그들 나름대로 생각하고 평가하는 것입니다. 거기에 내가 들뜨게 되면 내 인생이 없어지는 것입니다. 그래서 질문자는 자신의 인생 목표를 세우고 그냥 꾸준히 해나가시면 됩니다. 일을 게으르게 하는 것이 편안한 것이 아닙니다. 일을 할 때는 열심히 해야지 왜 게으르게 합니까? 청소를 하려면 깨끗하고 깔끔하게 잘 해야지요. 그러나 그 평가에 연연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평가에만 연연하지 않으면 어떤 일을 해도 무거운 짐을 지게 되지 않습니다.nbsp내 삶이 어떤 목표를 달성하기 위한 수단이 되면 스트레스를 받게 됩니다. 사는 것이 이대로 목표여야 해요. 과정이 그냥 즐거워야 해요. 과정은 고행이고 결과는 행복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인생이 피곤해지는 것입니다.”nbsp“그럼 그냥 큰 목표 없이 지금 다니는 직장 편안하게 다니면 되겠네요.”nbsp“다람쥐는 무슨 목표를 향해 살고 있다고 생각하세요? 그런 목표가 있는지 다람쥐한테 한번 물어보세요.nbsp원래 인생에는 그런 뚜렷한 목표란 것이 없습니다. 그냥 밥 먹고 사는 겁니다. 밥 먹고 살면서 여유가 있으면 나쁜 일 보다는 좋은 일을 하는 쪽으로 살면 더 좋다는 것입니다. 인생을 너무 과대평가하기 때문에 인생살이가 짐승보다 못해지는 것입니다. 얼마나 사람의 삶이 하찮으면 나는 새를 부러워합니까? 그만큼 인생이 고달프다는 얘기지요. 그것은 인생에서 너무 과다한 목표를 정해서 그래요. 가볍게 살아야 합니다. 경제적으로 여유가 생기면 타인에게 보시도 하고, 시간적 여유가 생기면 가난한 사람을 위해서 봉사활동도 하고, 이렇게 살아가면 저절로 내 재능을 어디에 쓸 건지 목표가 생겨납니다. 지금처럼 돈 번다는 개념이 아닌 쪽으로 목표가 저절로 생겨납니다. 그러니 지금 걱정할 필요가 없어요. 지금은 과거의 중독성이 더 빠져야 하니 그동안 약간 방황을 좀 하겠죠. 그러나 이렇게 자기 삶의 여유를 갖고 편안한 상태에서 봉사도 하고 보시도 하면서 살면 자기도 행복하고 남에게도 도움이 됩니다.”nbspnbsp슬프고 답답한 마음이 해결되지 않아 거듭 질문을 계속 했던 여성분은 스님의 자상한 설명에 어느덧 그 뜻이 이해가 되었는지 활짝 웃었습니다. 마음이 무거워 스님과의 대화 도중 내내 손수건으로 눈물을 닦던 질문자에게 청중들도 뜨거운 박수로 응원을 보내주었습니다.nbsp맨하튼 강연은 230명이 참석하여 5시 55분에 시작하였는데 시간관계상 더이상 질문을 받지 못하고 8시 5분에 정확하게 맞쳤습니다. 뉴욕정토회에는 3개의 법당이 있는데 맨하튼 법당은 청년, 대학생 및 유학생들이 중심이 되어 있기 때문에 가장 젊은 정토법당입니다. 그래서 그런지 행사를 진행하는 청년들 모두 잔칫날처럼 흥겨운 분위기였습니다.nbsp스님께서는 바로 사인회를 할 수 있는 곳으로 자리를 옮겨서 길게 줄서 기다리고 있는 분들에게 사인을 해주시고 또 기념촬영도 해주셨습니다.nbsp그리고 뉴욕정토회는 LA정토회와 더불어 스님께서 처음 해외포교를 하고 해외순회강연을 하였던 곳이어서 오랜만에 보는 신도님들을 많이 찾아와 반갑게 인사를 하였습니다. 또 자원봉사자 18명과 함께 기념촬영을 한 후 한명 한명에게 단주를 끼워주면서 감사의 인사를 하였습니다.nbsp저는 2002년 9월 스님 해외순회강연 때 처음으로 스님을 만나뵈러 맨하튼에 왔었습니다. 그때는 맨하튼 한인회관에서 법회를 가졌는데 나이든 교민들이 중심이었고 지금과는 분위기가 사뭇 달랐습니다.nbsp오늘은 그때 총무를 하신 이연순님, JTS 총무였던 최경숙님 등을 비롯하여 오랫동안 뉴욕정토회를 지켰던 많은 분들이 오셨고, 또 뉴저지법당과 뉴욕법당에서 봉사자들이 지원을 나와 행사를 도와주셨고, 또 뉴욕법당의 청년들이 주축이 되어 행사장 뒷정리까지 함께 하니 저도 덩달아 신이 났습니다. 이번 뉴욕 맨하튼 강연은 맨하튼 정토법당의 양영주 총무와 김도원 팀장이 주축이 되어서 행사를 준비하였는데 어느지역 강연장보다도 활기찬 모습이 특히 인상적이었습니다.nbspnbsplt오른쪽 끝이 행사를 주관한 맨하튼 법당의 양영주 총무gt스님께서는 건강이 좋지 못한 관계로 휴식을 취하기 위해 봉사자들에게 양해를 구하고 먼저 행사장을 떠나셨습니다. 자원봉사자들은 묘덕법사님과 양영주 총무와 함께 마음나누기를 하였습니다. 한 봉사자는 작년에 뉴욕 강연에 참가하고 좋아서 현재 보스턴에 살고 있지만 오늘은 봉사를 한번 해보려고 왔다며 보람 있어 했습니다. 그리고 이번에 함께 한 청년 자원봉사자들은 오랜만에 서로 보는 얼굴들이 많았는데 함께 할 수 있어서 반가웠다고 하였습니다. 그리고 양영주 총무는 정말 이런 행사는 혼자 할 수가 없는 것을 느꼈고 한사람 한사람이 다 소중하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고 하였습니다. 묘덕법사님은 오랜만에 함께 얼굴을 보고 활동을 하는 것도 좋지만 정기적으로 스님의 법문을 듣고 수행하고 나누기를 하면 행복해질 수 있다며 같이 마음공부를 꾸준히 하라고 당부도 해주셨습니다.nbsp이렇게 많은 분들의 정성과 자원봉사로 오늘 37번째 프린스턴 대학교 외국인 강연과 38번째 미국 맨하튼 강연도 잘 진행되었습니다. 내일은 39번째 강연이 다시 맨하튼 유니온 신학대학교에서 외국인을 대상으로 열립니다. 내일 다시 맨하튼에서 뵙도록 하겠습니다.nbsp ▼nbsp법륜 스님의 세계 100회 강연, 지난 날짜 소식 보기
2014.10.1 세계 100회 강연(37) 프린스턴 대학 :: 외국인 강연
안녕하세요. 오늘은 오후에 법륜 스님의 세계 100회 강연 중 37번째 강연이 외국인을 대상으로 프린스턴 대학에서 열리고, 저녁에는 38번째 강연이 뉴욕 맨하튼에서 한국인을 대상으로 열리는 날입니다.nbsp먼저 외국인을 대상으로 동시통역을 통해 진행된 프린스턴 대학에서의 강연 소식을 전합니다.nbsp스님께서는 미국에서는 북한관련 전문가로 알려져 있습니다. 1990년대 중반 북한의 고난의 행군 시절부터 워싱턴DC를 방문하기 시작하여 북한 난민의 상황, 북한의 식량난 사정을 알리며 국제 사회에 대대적인 북한의 인도적 지원을 호소하였습니다. 이후 북한난민문제와 식량문제가 단순한 지원의 문제만이 아니라 북핵 문제를 비롯한 한반도 평화 와 관련한 정치적인 사안들과 얽혀 있음을 보시고, 우선 국제사회에 북한을 제대로 알려야 한다는 생각에 2004년부터 북한 소식지인 ‘오늘의 북한소식’ 도 발행하셨습니다. 그런 배경으로 북한 전문가로 많이 알려져 있습니다.nbsp아울러 2012년에는 스님께서 지금까지 해오신 한반도 평화와 통일, 북한인도적지원, 난민지원사업 등에 대해서 뉴욕타임즈에 인터뷰 기사가 소개 되기도 했습니다. 그래서 프린스턴 대학교에서는 2013년 9월 스님을 초청하여 북한 관련 강연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 인연으로 올해 첫 외국인 강연의 테이프를 이곳 프린스턴 대학교에서 하게 되었습니다.nbsplt프린스턴 대학교gt프린스턴 대학교는 미감리교재단에서 설립한 학교로서 뉴저지주 남부 프린스턴이라고 하는 전원 도시에 위치해 있으며, 아이비리그 대학 중 하나이며 프린스턴시는 뉴욕과 필라델피아 중간에 위치해 있습니다. 또한 하버드 대학, 윌리엄 앤 메리 대학, 예일 대학 다음으로 미국에서 네번째 가는 고등교육기관입니다.nbsp오늘은 이동시간이 5시간 이상이 되고 12시부터 미팅과 강연이 있기 때문에 오전 4시에 기상하여 5시에 시라큐스에서 프린스턴대학교로 출발하였습니다. 어제 행사전체를 맡고, 숙소를 제공한 이희승법우님께 감사의 인사를 하고 다음에 또 보자고 하며 저희는 서둘러 길을 떠났습니다. 프린스턴으로 가는 도중에 최말순 보살님께서 아침을 지어오신 것을 가지고 차안에서 간단히 아침공양을 하였습니다. 5시간을 예상하였으나 6시간 걸려서 11시경에 프린스턴에 도착하여 스님께서는 원고를 검토하였습니다. 조금 있으니 뉴욕정토회의 차효순대표님과 이정인 총무님께서 스님께 올릴 점심식사를 준비해오셔서 스님께서는 간단히 강연전에 식사를 하였습니다.nbsp이어서 워싱턴 미주정토회관에서 오늘 프린스턴대학교 강연의 총책임을 맡은 김지현님과 민덕홍님이 오셔서 반갑게 스님께 인사를 하고 스님께서는 차효순대표님, 이정인 총무님, 김지현님과 프린스턴 대학교 앞에서 사진 촬영을 하였습니다.nbsplt김지현님, 차효순 대표님, 이정인 총무님gt조금 시간이 있어서 스님께서는 학교안으로 걸어가자고 하셔서 학교쪽으로 걸어가니 오늘 스님 통역을 맡은 제이슨 림이 워싱턴디시에서 도착하여 기다리고 있었습니다.nbsplt자원봉사로 동시 통역을 맡아준 Jason Limgt함께 오늘 미팅 장소로 걸어가니 스님을 초청한 Matt Weigner 박사가 반갑게 나와서 인사를 하였고, 작년에 이어 올해도 프린스턴을 방문해 주셔서 감사드린다고 인사를 하며 동료교수를 스님께 소개하였습니다.nbsp외국인 대상 즉문즉설 강연을 시작하기에 앞서 Matt 박사가 소규모 미팅을 주선하였는데, 하버드 대학과 예일 대학학생들과 함께 참여불교 국제 컨퍼런스를 준비하는 청년들이라고 하였습니다. Matt 박사는 “스님께서 하시는 활동이 어떤 참여불교 학자보다도 많은 일을 하고 있기 때문에 스님의 활동과 경험을 이들 학생들에게 들려주고 격려하는 시간을 가지면 좋겠다”고 스님께 부탁했습니다. 6명의 학생들과 약 25분 동안 짧은 미팅을 하였는데 스님께서 8월26일부터 매일 한 도시를 이동하면서 강연을 하고 유럽을 거쳐 북미에 와서 오늘이 38번째의 도시에서 nbsp강연하는 날이라고 하니 다들 매우 놀라워하였습니다. 비행기를 자주 타고 다닐텐데 비행기를 타면서 어떻게 마음의 평정심을 유지하시는지에 대해 가볍게 물어보기도 하였습니다.nbsp학생들은 어떤 사람들이 스님의 강연에 주로 참여하고 있는지, 고대 철학이 불교 사상과 비슷한 면이 많은데 고대철학을 강연할 때 인용하는지, 고통 속에 있는 모든 것에 대해 자비를 베풀면서도 우리 자신도 상처를 입지 않을 방법이 있는지, 승려로서 민주화 운동에도 참여하셨는데 어떤 믿음과 철학을 가지고 참여 하셨는지, 불교 수행에서는 모든 것을 내려놓아야 한다고 배웠는데 가족 관계를 어떻게 놓을 수 있는지, 자신에게 집중하다보면 주변에 소홀하게 되고 주변의 고통을 덜어주다 보면 자기 자신에게 소홀하게 되는데 이 둘을 어떻게 조화시킬 수 있는지, 지금 하시는 일이 평생 동안 결실을 못 볼 수도 있는데 이렇게 불확실한 것에 대해서 지속적으로 일을 할 수 있는 원동력이 무엇인지 등 7가지 질문을 하였습니다. 스님께서는 간단 명료하게 핵심만 짚어서 답변을 해주셨습니다.Matt 박사와 학생들은 스님께서 이렇게 시간을 내어주심에 감사해 하면서 기념촬영을 하였고, 스님께 작은 선물을 드리는 것으로 그들의 감사함을 표하였습니다. Matt 박사는 즉문즉설 보다는 이 미팅에 더 관심이 많은 것 같았습니다. 이렇게 짧은 미팅을 하고 그 옆 건물에 마련된 강연장으로 이동하였습니다.nbsp12시가 되어서 행사장에 도착하니 뉴저지 정토법당의 이영숙 총무님과 신도님들이 오늘 행사에 자원봉사를 하기 위해 와 계셔서 반갑게 스님일행에게 인사를 했습니다. 영문으로 된 스님의 소개 영상이 나오고 12시 45분부터 강연이 시작되었습니다. 스님께서는 외국인들을 대상으로 이렇게 인사를 전하며 강연을 시작하셨습니다.nbsp“안녕하세요. 이렇게 만나 뵙게 되어 반갑습니다. 점심시간인데 식사는 하셨는지요? 우리 몸을 위해서는 매일 이렇게 세끼 밥을 먹어줘야 합니다. 그러나 우리의 행복을 위해서는 어떤 일을 합니까? 오늘은 우리 마음의 행복을 위한 식사를 하도록 합시다. 주제에 제한 없이 nbsp어떤 문제든지 개인 문제든 사회 문제든 종교 문제든 과학 문제든 인간 문제든 자연 문제든 그냥 자유롭게 대화를 합시다. 누구든지 나와서 먼저 주제를 던져주세요. 그 주제에 따라 얘기를 나누겠습니다.”nbsp작년에는 외국인들의 관심사가 북한 문제에 많이 쏠려 있어 북한 문제에 대한 말씀을 많이 하셨는데, 오늘은 또 어떤 문제에 대해 외국인들이 궁금해 할지 기대가 되었습니다.nbsp작년에는 작은 공간에 70여명의 학생들이 참여하여 장소가 좁았던 관계로 올해는 비교적 넓은 장소로 강연장을 정했는데 점심 시간이라 작년에 비해서 적은 숫자인 30명이 참석한 가운데 1시간 15분 동안 강연이 진행되었습니다. 제이슨씨의 정확하고 빠른 통역 덕분에 아주 속도감 있게 영문판 즉문즉설이 이뤄졌습니다. nbspnbspnbspnbsp총 12명의 외국인 학생들이 스님께 질문을 했습니다. 종교는 사람들을 화합시켜야 한다고 생각하는데 많은 종교들이 오히려 사람들을 분열시키는 것 같다며 스님의 생각을 묻는 분, 환경 위기를 겪고 있는 서구 사회에 불교는 소중한 가르침이 될 수 있을 것 같다며 스님의 환경 실천 활동에 대한 생각을 묻는 분, 많은 사람들에게 해를 끼치는 사회구조가 분명히 존재하는데 여기에서 연기법이 어떤 의미를 가지는 지 궁금해 하는 분, 스님은 왜 스님이 되셨는지 묻는 분, nbsp세상에는 우리가 선택하지 못하는 많은 것들이 있는데 어떻게 하면 좋은 선택을 할 수 있는 지혜를 얻을 수 있는지 묻는 분, 선문답을 인용하며 한 손으로 박수를 치면 무슨 소리가 나는지 묻는 분, 세월호 nbsp사건의 근본 문제가 무엇이라고 생각하시는지, 여기서 언론은 어떤 역할을 했다고 보시는지 묻는 분, 세월호 유가족에 대해 부정적으로 이야기 하고 이것이 단순한 교통사고라고 이야기하는 언론들의 의도는 무엇이라고 생각하는지 묻는 분, nbsp홍콩에서 일어나는 저항 운동에 대해 그들이 옳은지, 또 성공할 것이라고 생각하시는지 묻는 분, 불교에서는 존재의 이유가 깨달음이라고 하는데 nbsp왜 깨달음이 우리 삶의 목표인지 궁금한 분 등 다양한 질문에 대해 스님께서는 지혜로운 말씀을 들려주셨습니다.nbsp그 중에서 명상이 평화운동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물었던 내용과 지금 여기 깨어있음에 대해 물었던 내용, 두 가지 질문에 대한 스님의 답변을 소개합니다. 모두 동시 통역으로 진행되었습니다.nbspnbsp“평화 운동도 하고 있으시고 명상도 하고 있으신데, 명상이 스님께서 평화 운동을 하시는 데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요? 스님께서는 그 두 가지가 어떻게 통합이 된다고 보십니까? 우리 삶에서는 어떻게 명상을 통해 평화로 한 걸음 더 나아갈 수 있을까요?”nbsp“자신의 마음속에 화가 나 있다면 다른 것들에 대해서 미워하게 됩니다. 그러면 행위가 파괴적으로 나오게 됩니다. 그러므로 화를 내서 평화 문제를 얘기하면 안 됩니다. 그래서 먼저 자기 마음을 평화롭게 해야 합니다. 마음이 평화로운 상태 하에서 비판적 의식을 갖게 되면 이것은 개선하는 에너지가 됩니다.nbsp마음을 평화롭게 갖는 것이 명상의 핵심입니다. 명상에는 3가지 요건이 갖춰져야 합니다. 첫째, 어떤 긴장도 하지 않고 먼저 마음을 편안하게 갖는 것입니다. 두 번째는 마음을 한 곳에 집중해야 합니다. 자신의 호흡에 집중한다든지, 자신의 감각에 집중한다든지, 어떤 것이든 좋습니다. 세 번째는 집중된 그 상태에 깨어 있어야 합니다. 즉 알아차림이 유지되어야 합니다.nbspnbsp예를 들어서 설명하면, 호흡을 갖고 명상을 한다고 할 때 먼저 몸과 마음의 모든 긴장을 풉니다. 편안한 상태에서 마음을 코끝에 집중해서 자기가 호흡하고 있는 줄을 먼저 알아차립니다. 우리는 매 순간 호흡을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호흡을 하고 있는지도 잊고 지냅니다. 조금만 집중하면 ‘아, 내가 호흡하고 있구나’ 하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숨이 들어갈 때는 ‘들어가구나’ 하고 알아차리고, 숨이 나올 때는 ‘숨이 나오는구나’ 하고 알아차리고, 숨이 가쁘면 ‘숨이 가쁘구나’ 하고 알아차리고, 숨이 부드러우면 ‘숨이 부드럽구나’ 하고 알아차립니다. 어떻게 호흡하느냐가 아니고 다만 자연 상태의 호흡을 그 상태를 있는 그대로 뚜렷이 알아차리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것이 말처럼 쉽지는 않습니다. 왜냐하면 자꾸 머리속에서 지나간 과거의 생각이 떠오르고, 아니면 미래의 어떤 구상이 자꾸 떠오릅니다. 그래서 마음을 그리로 뺏겨 버리면 호흡을 놓쳐 버립니다.nbsp그래서 지나간 과거에도 연연하지 말고, 오지 않는 미래도 내려놓고, 오직 지금 여기, ‘호흡’에 집중해서 호흡의 상태를 알아차립니다. 그렇게 하면 마음이 안정이 되고, 마음이 안정이 되면 호흡이 더 부드러워집니다. 호흡이 부드러워지면 알아차림을 놓치게 됩니다. 그러면 다른 온갖 생각들이 떠오르게 되죠. 그러기 때문에 더 집중해서 호흡을 알아차려야 합니다. 그러면 마음이 더 안정이 되고, 그러면 다시 호흡을 놓칠 위험이 있습니다. 그러기 때문에 더 호흡에 집중을 해야 합니다. 이렇게 상승작용으로 계속 나아가면 호흡이 아주 부드러운 상태가 되고, 그러면 숨이 들어가고 숨이 나올 때의 온도 차이도 느껴지고, 숨이 들어가고 나오면서 흔드는 코털의 감각까지 느껴집니다. 그래서 이 모든 미세한 상태에 대해 뚜렷하게 깨어있음이 이루어집니다. 이런 마음의 평정심을 유지한 상태일 때 평화운동은 평화적으로 될 수 있습니다. 그런데 마음에 화를 내어서 평화운동을 하면 평화란 이름으로 싸우게 됩니다.”nbsp질문한 외국인 학생은 명쾌하게 이해가 되었다는 듯 “Thank you” 하며 밝게 웃었습니다. 그리고 이어서 한 외국인은 “지금 여기 깨어있음”에 대해 질문했습니다.nbsp“지금, 여기에 깨어있어야 한다고 말씀하셨는데요. 어떤 사람이 지금, 여기에 고통과 스트레스로 가득 차 있다면 그 사람은 어떻게 “지금, 여기”에 깨어있을 수 있나요?”“육체적 고통 말고는 현재의 고는 없습니다. 괴롭다 할 때는 이미 자신의 의식이 어떤 과거의 기억으로 흘러갔기 때문입니다. 근심과 걱정이 되고 불안할 때는 자신의 의식이 미래로 흘러갔기 때문입니다. 현재의 상태에 깨어 있으면 고가 생겨나지 않습니다. 그러나 육체적 통증은 그대로 있습니다. 육체적 통증은 생물학적인 것이기 때문에 그것은 정신적으로 치료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그러나 육체적 통증이 우리의 정신에 영향을 줍니다. 통증이 곧 정신적 괴로움이 된다든지, 그것 때문에 분노한다든지, 후회한다든지, 이런 것은 다 정신적인 문제입니다.nbsp그러나 이 정신적인 문제는 현재에 집중하면 다 사라집니다. 육체적 통증까지 사라진다는 얘기는 아닙니다. 그러나 현재에 집중하면 육체적 통증을 통증으로만 자각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통증을 싫어하기 때문에 정신적 고통이 생겨납니다. 그래서 현재에 집중하면 좋아하고 싫어하기 이전의 상태로, 다만 통증으로만 느낄 수 있습니다.” nbspnbsp점심 시간이라는 짧은 시간을 활용하여 통역으로 강연을 하다 보니 한국인을 대상으로 한 강연보다는 자기 고민에 대한 간절함 측면에서는 조금 비교가 되었지만, 1시간 25분동안 12명의 학생들이 자신의 궁금함을 해결하고 기쁨을 느끼고 갔습니다. 특히 인상적이었던 것은 오늘 질문자들 대부분이 주로 불교 교리나 불교 실천 등에 대해서 질문했다는 점과 한국계 2세처럼 보인 학생들은 세월호 문제에 대해서도 질문을 했다는 점, 중국계로 보이는 학생은 홍콩에서 일어난 저항운동에 대해서도 질문한 점이었습니다. 이민계들은 그들의 조국에서 일어나고 있는 사안에 대해서 결코 무관심하지 않고 지켜보고 있음을 새삼 알 수 있었습니다.nbsp마지막 답변이 끝나고 스님께서는 우리가 살아온 삶의 방식에 대한 진지한 성찰을 주문하며 이렇게 정리말씀을 해주셨습니다.nbsp“괜찮은 시간이었습니까? 아직은 불교에 대해서 그냥 하나의 동양 종교로만 이해하시는 것 같습니다. 약간 신비주의적으로 접근하는 것 같기도 하고요. 원래 불교는 그런 것이 아닙니다. 우리가 깨어서 세상을 있는 그대로 보자는 것입니다. 종교라는 울타리를 벗어나 있습니다. 그런 측면에서 여러분들이 불교에 대해 관심을 가졌으면 좋겠습니다. 크리스챤이면서도 불교 공부를 할 수 있습니다. 불교를 믿는다고 다 깨닫는 게 아닙니다.nbsp예수님은 ‘모든 사람은 하나님의 사랑하는 자녀다’, ‘진리가 너희를 자유케 하리라’라고 했습니다. 유대 민족만이 믿었던 배타된 하나님을 인류의 보편적인 하나님으로 바꾸신 분입니다. 내 말을 안 들으면 징벌을 하는 하나님에서 용서하고 사랑하는 하나님으로 변화시킨 것입니다. 거기에는 깨달음이 있습니다. 전통적인 사고로서는 그렇게 뛰어넘을 수가 없습니다.nbspnbsp우리도 이제 우리가 살아온 삶의 방식에 대해서 다시 의문을 가져야 합니다. 많이 생산해서 많이 소비하는 것이 과연 잘 사는 것이냐? 전 인류가 이런 방식으로 살아가면 지구의 종말은 멀지 않았습니다. 이 소비주의는 지속 가능한 문명이 아닙니다. 이제 변화가 필요합니다. 무엇이 행복인가. 진지한 질문이 던져야 합니다. 감사합니다.”nbspnbsp강연이 끝나고 6시에 맨하튼에서 다음 강연이 있어서 서둘러 인사를 하고 다음 강연장으로 출발하려고 하니 질문한 학생들이 스님께 다가와 질문에 답해 주셔서 감사하다고 인사를 했습니다. 그리고 초청한 매튜 박사는 스님과의 질의응답이 너무 좋았다고 하면서 내년에 다시 스님을 초대하고 싶다고 하였습니다. 교정에는 가을이 흠뻑 젖어 있는 가운데 10월말에 이 학교에 달라이 라마가 초청된다는 포스터가 곳곳에 붙어 있었습니다. 매튜 박사가 달라이 라마 성하도 10월말에 초청하였다고 하였습니다.nbspnbsp이번 스님 세계 100회 강연중 외국인 대상 즉문즉설 강연은 총 8회 진행되는데 외국인 즉문즉설 강연의 전체 총괄은 워싱턴의 김지현님이 하게 됩니다. 해당학교와 단체와 같이 지역총괄을 맡아서 지역별로 진행하는 담당자가 있지만 프린스턴 강연은 작년에 이어 올해에도 Matt 박사가 스님을 초청하였고, 또한 워싱턴에서 3시간 거리에 있기 때문에 김지현님과 민덕홍님이 직접 운전을 하고 프린스턴으로 와서 Matt 박사와 함께 행사를 진행하였습니다. 강연을 끝내고 다시 워싱턴 미주 정토회관으로 돌아가는 김지현님과 민덕홍님께 다음주 월요일에 워싱턴에서 만나자고 인사를 하고, 서둘러 맨하튼 강연장으로 출발했습니다. nbspnbsplt프린스턴 대학교 교정에 붙어있는 스님 강연 포스터를 보고 반가워하는 김지현님gt오늘 저녁에는 뉴욕 맨하튼에서 한국인을 대상으로 한 38번째 강연이 열립니다. 오늘 강연은 낮에는 외국인을 대상으로 저녁에는 한국인을 대상으로 연속으로 진행되니 각각 나누어서 소식을 전해 드리겠습니다. 저녁에 또 소식 전하겠습니다. ▼nbsp법륜 스님의 세계 100회 강연, 지난 날짜 소식 보기
2014.9.30 세계 100회 강연(36) 시라큐스 대학교
안녕하세요. 오늘은 법륜 스님의 세계 100회 강연 중 36번째 강연이 미국의 뉴욕주인 시라큐스 대학교에서 열리는 날입니다.nbsp오늘 강연이 있는 시라큐스는 미국의 북동부에 위치한 조그만 대학 도시입니다. 시라큐스 대학교를 중심으로 구성되어 있는 이 도시는 아시안 이민자 12,000명, 세계 119개국에서 와 있는 20,000명의 유학생들, 그리고 북한 및 아시안, 아프리칸 난민들의 정착지이라고 합니다. 시라큐스의 중심이 되는 시라큐스 대학교는 감리교 재단에서 운영하는 사립대학교로서 미국내 50개주와 전세계 119개 나라에서 유학을 와 공부하고 있는 다인종 학교이며 연구 중심대학입니다 .nbsp오전 7시 15분, 최말순 보살님과 유정희님이nbsp어제 로체스터 손정애 보살님이 준비해준 음식으로 아침 식사를 준비하여, 스님께서는 성당 식당에서nbsp신부님과 함께 아침 식사를 하셨습니다. 신부님은 혼자 이곳에 계시기 때문에 저희와 함게 아침 식사를 하였습니다.nbspnbsp아침 식사 후에 각자 사용한 숙소를 깨끗이 청소하고 다른 사람이 와서 이용할 수 있도록 정리를 하였고, 식당도 처음 있던 자리 그대로 정리를 하고, 저희는 9시에 신부님께 감사 인사를 드리고 버팔로 한인 성당을 출발하여 시라큐스로 출발하였습니다.뉴욕주의 북쪽을 ‘업스테이트’라고 하는데 업스테이트에서 큰 도시가 왼쪽부터 버팔로, 로체스터, 시라큐스, 그리고 뉴욕주의 수도인 알바니가 있습니다. 그 중에서 이번 36번째 강연은 시라큐스 대학교에서 열립니다. 시라큐스로 가는 길에 온타리오 호수와는 다르게 남북으로 나란히 5개의 호수가 병렬로 서 있는 Finger Lakes 의 중지에 해당하는 Ceneca Lake를 잠깐 들러서 잠시 풍경을 바라보았습니다. 뉴욕과 캐나다는 호수와 강으로 유명한데 특히 미국은 전세계 담수의 60를 보유하고 있다고 합니다. 향후 물 부족으로 세계가 고통에 빠질 것인데 물이 많은 미국이 부럽기도 하였습니다.nbsp다시 길을 들어 1시에 오늘 강연의 총 책임을 맡고 있는 이희승님의 집에 도착하니 이희승님이 반갑게 인사를 하였습니다. 이희승님은 2008년 석사과정에 재학중일때 좋은벗들 미국지부에서 인턴을 하여 정토회와 인연을 맺었는데, 그 후 시라큐스 대학교에서 박사과정을 하고 있습니다. 이제 곧 박사학위를 받을 준비를 하고 있는데 그 와중에 이번 법륜스님의 희망세상만들기 세계 100회 강연 중 시라큐스 대학교의 강연 준비를 맡게 되었습니다. 박사학위 마지막이라 아주 바쁜 가운데도 불구하고 많은 자원봉사자를 모아서 행사를 준비하고 있었습니다.nbspnbsp스님 일행은nbsp한국의 조선경님께서 정성스럽게 보내준 밑반찬과 장아찌로 점심 식사를 하고 각자 업무를 보았습니다. 스님께서는 한국에서 온 원고 및 워싱턴DC에서 있을 전문가 포럼에서 사용할 원고 등을 검토하고 휴식을 취하셨습니다. 간단히 저녁 식사를 하고 강연장에 도착하니 자원봉사자들이 스님을 반갑게 맞아주었고 스님도 자원봉사자들의 수고를 격려하였습니다.nbsp휴게실에서 잠시 휴식을 취한 다음에 스님께서 7시에 연단에 오르니 참석자들이 큰 박수로 시라큐스 대학교 방문을 환영하였습니다.nbsp지금 스님께서 방문하고 있는 지역은 예년에 비해 아주 따뜻하여 더운 여름날씨 같습니다. 그러다 보니 오늘 학교 강연장에 에어컨이 너무 세게 나오는 것 같아서 스님 목소리가 괜찮을지 걱정이 되었습니다. 스님 목소리가 조금 나아지고 있는 중인데 다시 목이 다치실까 염려되었습니다.nbsp“안녕하세요. 만나서 반갑습니다. 오늘 강연을 학교에서nbsp하다보니 대부분이 학생이겠네요. 보통 해외 강연을 할 때 뉴욕 주변은 맨하튼, 퀸즈, 뉴저지를 방문하는데 뉴욕 북쪽에는 한 번도 강연을 안해서 버팔로와 시라큐스를 이번에 처음으로 잡았습니다. 그래서 이렇게 여러분의 얼굴을 보게 되었습니다. 만나서 반갑습니다. 시라큐스 대학교에는 한반도문제연구소가 있어서 북한에서는 현직 관료가 오고 미국은 전직 관료가 와서 북핵 문제와 한반도 평화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시라큐스 대학교에서 많은 노력하고 있다고 알고 있습니다. 몇 년 전에는 북한에서 온 유학생들도 있다는 얘기를 들었습니다. 자, 그럼 관심가는 주제를 말해 보세요. 함께 얘기를 한번 해봅시다”nbsp이렇게 인사말을 하신 후 곧바로 청중들로부터 인생 고민에 대해 질문을 받았습니다.nbspnbsp처음에는 사람이 많이 오지않을 것이라 예상해 자원봉사자가 18명이여서 한명씩 데려오기 하여 36명을 예상했는데 그 2배인 76명이 왔습니다.nbsp오늘은 총 8명이 스님께 질문을 했습니다. 부모님은 돈이나 명예를 한번 잡아보라고 하시는데 자신은 행복이 중요한 것 같아 고민인 21살 청년, 세계 곳곳을 다니면서 많은 사람들을 위로 하고 계시는데 스님은 어떤 걱정이 있고 힘든 일이 있을 때는 어떻게 극복하시는지 묻는 분, 역사학 박사과정을 공부하면서 미국과 한국의 차이를 많이 느낀 후 한국사회는 창조력을 가질 수 있는 희망이 있는지 궁금해 하는 분, 감리교에서 은퇴한 목사인데 기독교에서 하나님의 나라와 천국을 강조하는 것과 같이 불교에서의 극락정토가 갖는 위상이 궁금하다는 분, 로스쿨을 다니고 있는데 졸업 후 한국으로 돌아가서 대기업으로부터 고액연봉을 받으며 일할지 미국에서 적은 연봉을 받고 마음 편하게 사는 것이 좋을지 고민인 분, 본인도 박사과정이고 아내도 박서과정이다 보니 서로 자존심이 강하고 다툼이 많은데 행복한 결혼생활을 위한 조언을 구하는 분 등 다양한 질문에 대해 스님께서는 정성껏 답변해 주셨습니다.nbspnbsp오늘은 그 중에서 박사과정을 공부하면서 공부를 하면 할수록 마음이 불안하다는 분의 질문과 스님의 답변을 소개합니다. 공부를 할 때는 어떤 마음가짐이여야 하는지 명확한 관점을 잡아 주셨습니다.nbsp“박사과정에 있습니다. 고등학교 이후로 공부를 한지 15년이 되었습니다. 공부를 하면 할수록 불안해지고 가족이 있으니까 마음도 급해지는데, 이렇게 불안한 청년들에게 조언을 좀 해주시면 좋겠습니다.”nbsp“욕심을 내기 때문에 그렇지 않느냐 싶어요. 시험 같은 것 안치고 그냥 자기가 궁금해서 역사책을 막 읽는다든지, 우주에 관심이 있어서 천문학 책을 열심히 읽는다든지, 생명의 현상에 대해서 너무 너무 관심이 있어서 생명의 시작이 어떻게 이루어졌으며 생명의 기본단위는 어떤 작용을 하는지가 궁금해서 이 책도 보고 저 책도 보고 한다면 전혀 불안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몰두되어 있고, 공부할 때 심리가 가장 안정되어 있습니다.nbsp그런데 좋은 직장을 갖기 위해서라든지 공부가 목적이 아니고 공부가 하나의 수단이 되어 공부를 어쩔 수 없이 하는 것이 되니까 마음이 불안하게 됩니다. 빨리 끝내야 하는데 뜻대로는 안되어서 일어나는 현상입니다. 가장 좋은 방법은 하기 싫으면 안 하는 겁니다. 뽀족한 수가 없어요. 공부하기 싫은데 무엇 때문에 공부를 해요?nbsp질문자의 입장에서 들으면 깜깜한 얘기일지 모르지만 공부는 하기 싫으면 안 하면 되지 무엇 때문에 합니까? 공부를 해야 할 이유가 어디 있어요? 부모가 자식을 낳으면 싫어도 키워야 합니다. 그것은 생명의 현상입니다. 이런 것은 싫어도 해야 합니다. 그런데 공부라는 것은 싫으면 안 하면 됩니다. 그런데 그것을 억지로 하니까 이런 문제가 발생하는 것입니다.nbspnbsp만약 박사학위 논문을 쓴다 할 때 자기가 아는 수준으로만 쓰겠다고 하면 글쓰는 것이 하나도 어렵지 않아요. 그런데 자신이 아는 것이 100인데 150의 논문을 쓸려면 논문 쓰는 것이 굉장히 힘들죠. 늘 첫 페이지를 못 넘기게 됩니다. 썼다가 또 지우고, 썼다가 또 지우고를 반복합니다. 여러분들도 지금까지 시험을 주욱 쳐봤잖아요? 실제로 내가 가진 실력이 100이라고 할 때 테스트를 해보면 80이 나오면 많이 나오는 겁니다. 그런데 우리는 자기 실력이 100인데 120을 바랍니다. 그래서 여러분들이 평생 시험을 쳐도 시험 잘 쳤다고 느낄 때는 별로 없잖아요. 이번에는 또 이거 실수하고, 이번에는 또 저거 실수했다고 생각하는데 그렇지 않습니다. 이것은 늘 있는 일이에요. 우리의 실력이 100인데 개개인은 다 120씩 나오기를 바라고, 실제로는 사람의 실력이 100이면 80만 나와도 잘 나오는 것이기 때문에, 100이라는 점수를 따야 합격한다면 자기 실력을 120으로 만들어야 합니다. 그래서 논문을 쓸 때도 아는 만큼 그냥 쓴다고 생각해야 합니다. 일단 아는 만큼 끝까지 써놓고, 읽어보면서 다시 개선을 해야 합니다.nbsp첫째, 원하지 않는 것을 해서 생긴 문제이고, 둘째는 욕심입니다. 능력이상의 성과를 벌려고 하니까 심리적 압박도 받고 가슴이 조마조마해지게 되는 것입니다.nbsp옛날에는 미국이나 유럽의 문명 수준이 한국보다 100년 정도 앞섰습니다. 그럴 때는 여기 유학 와서 몇 년 공부해서 학위 받아 한국에 돌아가면 죽을 때까지 그 노트 갖고 써먹을 수 있었어요. 그런데 점점 문명의 격차가 좁아져서 지금은 거의 동격에 와 있는 것도 있고 대부분 23년 차이 밖에 안 나는 상황입니다. 그러면 여기서 배워 가서 한국에서 그대로 써먹을 수 있는 것은 많아야 23년이고, 아예 써먹지를 못할 수도 있어요.nbsp여기는 선진 문명이고 우리는 후진 문명이라, 그래서 우리는 선진 문명을 따라가는 모방 시스템이었습니다. 모방을 할 때는 외우면 됩니다. 그래서 우리의 학교 교육은 대부분 암기식이었습니다. 그리고 이것은 독려를 하면 기간 단축이 가능합니다. 그래서 우리는 압축 성장을 할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제 이 격차가 거의 근접했어요. 이것을 뚫고 넘어가야 하는데, 우리는 뚫고 넘어갈 수 있는 사회 시스템이 전혀 준비되어 있지 않습니다. 그래서 정체가 되는 것입니다. 일본은 20년 전에 이미 도달했다가 지금까지 정체되어 있잖아요. 정체되면서 사회가 답답해지니까 우경화로 갑니다. 한국 사회도 아마 이 상태가 몇 년 더 지속되면 아마 극우적 성향이 많이 나타날 거예요.nbsp이제 한국 사회에 필요한 것은 실질적으로 어떤 과제를 해결하는 능력, 즉 창조력입니다. 남의 것을 베껴 서 와서 써먹는 것은 거의 막바지에 이르렀습니다. 사회 분위기도 바뀌어야 합니다. 모방이라는 것은 열 개를 그대로 베끼면 아홉개는 맞고 한개 틀릴수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 사회는 틀리는 것이 용납이 안됩니다. 그런데 새로운 것을 창조하는 실험에 있어서는 100개 중에 1개 성공하기도 어렵습니다. 99개는 실패합니다. 실패가 너무나 당연한 것이 되어야 창조가 나옵니다. 창조적 사고를 할뿐만 아니라 사회 분위기도 실패를 받아내 줘야 합니다. 시행착오를 거듭해야 창조가 나오기 때문입니다. 이것을 뚫고 나가면 한국이 문명의 선두 주자로 나올 것이고, 이것을 못 뚫고 나가면 저성장에서 정체되다가 후퇴로 갈 것입니다.nbsp한국과 미국 사이에 격차가 많은 분야일수록 학위를 따서 한국에 돌아오면 유효기간이 조금 길 것이고, 한국와 미국의 격차가 거의 나지 않는 것은 거의 쓸모가 없을 겁니다. 창조성은 자발성에 근거해야 창조가 나오지 억지로 하는 것은 모방은 가능하지만 창조는 안됩니다. 아무리 기술 수준이 우수해도 새로운 것을 만들기는 어렵습니다. 어떤 것을 모방하여 6개월 안에 그것보다 더 잘 만드는 것은 지금 가능합니다. 그러나 회사의 구조와 시스템이 모방을 위한 시스템이기 때문에 창조를 할수 없어 지금 어려움에 봉착해 있습니다.nbsp문명의 중심에서는 창조력이 없어집니다. 그래서 문명이 늘 흥망성쇠가 있는 겁니다. 그러면 문명의 중심에서 너무 변두리가 아닌 문명의 중심 바로 곁에 있던 곳에서 창조력이 생깁니다. 선진 문명을 모방하고 자신의 고유 것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인류 역사에서 보더라도 이집트 문명이 쇠락하면서 에게해로, 에게 문명이 쇠락하면서 그리스로, 그리스 문명이 쇠락하면서 로마 문명으로 갔습니다. 로마 문명이 쇠락하면서 오늘날 유럽 문명으로까지 발전하지 않았습니까. 그런 면에서 지금 한국은 문명의 일류가 아니고 일류 옆에 붙어서 모방하고 있는데 nbsp다음 문명을 만들 수 있는 굉장히 좋은 위치에 있다고 봅니다. 불교와 기독교가 충돌하고 전통과 현대가 동양과 서양이 충돌하는 위치에 있으니까요. 그런데 아직 우리에게 창조가 안 나오는 이유는 모방에 급급하기 때문입니다. 이제 모방은 시효가 거의 끝났습니다.nbsp그래서 여러분들이 연구할 때도 정말 그 분야에 관심 있어서 연구를 집중하는 그런 자세일 때만이 연구를 통한 자기 진로가 열릴수 있습니다. 그렇지 않으면 빨리 그만두는 게 낫습니다. 왜냐하면 시간 낭비하고 국가적으로도 손실입니다. 현재 자기가 연구하는 분야를 억지로 하지 말고, 마음을 새롭게 가지고 굉장히 신기해하고 재미있어 하고 연구하는 그런 자세로 해보세요. 점수에 연연하지 말고 연구에 재미를 부쳐야 합니다.nbsp그런데 한국에서는 돈을 벌기 위해서 의사가 되기 때문에 의사가 되어도 돈을 더 많이 벌 수 있는 성형외과로 공부 잘하는 학생들이 몰립니다. 수입을 많이 얻으려니까 의료사고, 과잉진료, 보험사기 이런 것들이 끝도 없이 계속 됩니다. 이것은 의사가 돈을 잘 버는 수단이 되어버렸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너무 지나치게 돈 중심으로 가기 때문에 이런 일이 벌어지는 것입니다. 그래서 학문을 하는 사람은 학문 그 자체에 관심이 있는 쪽으로 학문을 하셔야지 그게 아니라 억지 공부는 심리적으로 너무 압박을 받게 됩니다. 또 박사 학위를 따더라도 한국에 돌아왔을 때 실제로는 대학 강사 자리도 하나 마련하기 어려운 것이 현실입니다. 제 말은 그만두라는 것이 핵심이 아니라, 억지로 시작을 했다고 하더라도 이제는 내 일이니까 적극적인 마음으로 전환을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nbspnbsp성경의 말씀을 빌리면 “5리를 가자면 10리를 가주라” 이런 말씀입니다. 내가 여기 올 때는 부모님이 보내서 주인이 아닌 종의 마음으로 왔다고 하더라도, 오늘 이 강연을 듣는 순간부터는 이 공부가 내것이 되어야 합니다. 내가 궁금해서 내가 필요해서 학문을 하는 것으로 전환을 해야 학습효과도 나고 머리도 창조적으로 돌아가고 심리적인 불안감도 극복할 수 있습니다. 억지로 하게 되면 누구나 정신적으로 병들게 되어 있습니다. 억지 공부를 해서 효과가 나는 시대는 지났습니다. 그래서 다시 마음을 딱 바꾸어서 자기 공부화 시켜서 내가 궁금하고 내가 재미있는 마음을 내어서 공부를 하면 조금 달라질 수 있을 것입니다. 명상을 하거나 절을 하는 방법을 가르쳐주지 않는 이유는 그것은 임시 처방입니다. 굉장히 심리가 불안해서 임시 처방이 필요할 때는 절을 하거나 명상을 해야 합니다. 그러나 여러분들이 논문에 대한 부담감을 갖고 있는 상태에서는 어떤 처방도 일시적 효과 밖에 안 납니다. 치료가 되려면 내가 거기에 재미를 붙이고 내가 궁금해 하고 그래야 합니다. 그렇게 전환을 하면 심리도 안정이 되고 학습 효과도 오릅니다. 그래서 공부하는 것을 조금 달리 생각했으면 합니다. 여러분들에게 밥만 먹고 공부만 해도 되는 시기가 이제 얼마 안 남았습니다. 이런 기회를 좋게 활용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힘들어하지 말고 심기일전해서 재미있어 하면서 보내세요.“질문자의 불안한 표정이 환한 웃음으로 바뀌었습니다. 스님의 답변에 마음이 많이 가벼워진 것 같았습니다. 청중들도 질문자에게 격려의 박수를 보내줍니다.nbsp그리고 강연을 마치면서 스님께서는 ‘이민 생활의 스트레스’를 언급하며 이렇게 정리 말씀을 해주셨습니다.nbsp“자기 존재의 소중함을 알아야 합니다. 행복은 어려운 것이 아닙니다. 사물을 긍정적으로 보면 행복해져요. 넘어져도 다시 일어나는 자세가 필요합니다. 어떤 재앙이 닥쳐도 그것을 긍정적으로 받아들이면 재앙이 바로 복이 되어 버립니다. 한국 생활에 비해서 이민 생활은 무의식적인 스트레스를 받게 됩니다. 따지면 별로 스트레스 받을 일이 없어요. 그런데 심리적 불안이 무의식적으로 있습니다. 언어가 다르고 문화가 다르고 일가친척이 없고 이런 것들이 늘 심리적으로 불안을 야기합니다. 그래서 여러분들은 믿을 것이 돈 밖에 없어집니다. 그래서 돈에 대한 집착이 더 강해집니다. 그런 것들을 심리적인 치료를 해가면서 안정을 시켜 나가야 합니다. 그래야 건강하게 살 수 있습니다. 미국에 왔다고 행복해질 수 없습니다. 나이 든다고 행복해지는 것이 아니고, 결혼했다고 행복해지는 것이 아닙니다. 주변의 상황을 변화시켜서 행복해지려고 하지 말고, 현재 상태로 놔두고 조금 더 행복할 수 있는 길은 있으니 우리는 그 길을 찾아나가자는 것입니다. 공부하는 학생들은 공부하는 것이 행복해야 합니다. 이 기회에 공부를 마음껏 해보자 이런 자세를 가져야 합니다. 억압적으로 공부하지 마세요. 재미를 내어서 집중했으면 합니다.”nbsp목소리가 갈라지고 탁한 가운데 스님께서는 2시간 20분 동안 강연을 하셨습니다. 강연 후에 사인회가 마련된 장소로 이동하여 청중들에게 사인을 해주고 사진촬영도 함께 하였습니다.nbsplt왼쪽이 홍재민님, 오른쪽이 이희승님gt사진 촬영 후에는 이번 행사에 자원봉사를 한 봉사자들 18명과 함께 기념촬영을 하였습니다. 또한 봉사자 한명 한명에게 단주를 끼워주면서 감사의 인사를 하였습니다. 이번 시라큐스 대학교 강연은 대학원 한인학생회와 공동 주관으로 진행하여 홍재민 학생회장이 많은 수고를 해주었습니다. 그래서 스님께서는 감사의 선물로 사인을 한 책을 선물로 전달하고, 이희승님과 함께 기념사진을 촬영하였습니다.nbspnbsp스님께서는 내일 강연을 위하여 먼저 자리를 떠나시고, 묘덕 법사님과 임금이 지구장님이 봉사자들과 마음나누기를 하였습니다. 봉사자들은 모두들 “청중들이 내가 갖고 있는 고민을 대신 질문을 해주는 것 같아 마치 내가 질문한 것처럼 좋았다”고 합니다. 특히 유학 생활의 어려움, 졸업 후의 진로에 대해서 불안감이 많았는데 스님의 답변 속에서 길을 찾은 것 같다고 하였습니다. 중간고사 기간임에도 불구하고 총 18명의 학생들이 자원봉사로 참여하였고, 시라큐스에서 1시간이나 떨어진 코넬 대학교에서도 스님께 질문하기 위해 왔다고 합니다. 이번에 자원봉사를 한 학생들은 “공부하기 힘들고 어렵다고 생각했는데 이번 강연준비를 하면서 공부가 가장 쉬운 일인 것을 알았다”고 하였습니다. 그리고 “서로 바빠서 얼굴보기도 힘든데 이번 강연을 준비하면서 서로 모이고 함께 할 수 있어서 좋았다”고 하였습니다.nbspnbsp이렇게 오늘도 많은 분들의 정성과 자원봉사로 36번째 시라큐스 강연도 잘 진행되었습니다.nbsp내일 37번째 강연은 뉴저지 프린스턴 대학교에서 외국인을 대상으로 열립니다. 동시 통역으로 외국인과 스님의 즉문즉설이 펼쳐집니다. 외국인들은 또 스님께 어떤 질문을 할 것이며 스님은 외국인들에게 어떤 말씀을 들려줄까요? 내일 이야기를 기대해 주세요. 그리고 38번째 강연이 연이어 저녁에 뉴욕 맨하튼에서 열립니다. 내일 뵙도록 하겠습니다.nbsp
2014.9.29 세계 100회 강연(35) 미국 버팔로
안녕하세요. 오늘은 법륜 스님의 세계 100회 강연 중 35번째 강연이 미국의 뉴욕주인 버팔로에서 열리는 날입니다.nbsp어제 스님께서는 캐나다쪽 나이아가라폴에 도착하여 오전까지 휴식을 취하셨습니다. 오전 7시경에 녹두죽으로 간단히 요기를 하고, 저희들은 각자의 업무를 보다가 오전 11시에 미국으로 넘어가기 위하여 숙소를 나왔습니다. 미국으로 넘어가기 전에 차에서 내려 미국쪽 폭포와 캐나다쪽 폭포를 잠깐 보고 국경을 넘어 버팔로 시로 들어왔습니다. 나이아가라 폭포를 기준으로 동북부에는 온이타리오 호수가 있고 서남부에는 이리호가 있는데 이둘은 규모도 거의 비슷한것 같습니다. 국경을 넘어 버팔로 시로 들어오니 이리호가 시작되는지 오른쪽편으로 호수가 보이기 시작하였습니다.nbsp버팔로 시내로 들어와서 한국식당을 찾아서 점심식사를 하러 갔습니다. 입구에 스님의 버팔로 강연 포스터가 문 앞에 붙어 있어 더 반가웠습니다. 식사를 하고 계산을 하고자 하였더니 사장님이 “스님 식사는 공양으로 올리는 것입니다”고 하면서 식사비를 받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사장님은 저녁에도 성당으로 스님 강연을 들으러 갈 것이라며 저녁에 뵙겠다고 인사를 하였습니다. 점심 식사 후 오후 2시에 오늘 강연이 열리는 버팔로 성김대건 성당에 도착하였습니다.nbsplt버팔로 성김대건 성당gt도착하니 미주동북부캐나다동부 지구장인 임금이님과 이곳 자원봉사자들이 나와서 반갑게 스님일행을 맞아 주었습니다. 오늘 숙소는 이곳 성당 부속으로 있는 기숙사에서 하룻밤을 묵기로 하였고, 임금이 지구장님은 오늘 행사를 총괄하기 위해서 어제 뉴욕에서 유정희님과 함께 올라와 미리 사전 준비를 하고 있었습니다.nbspnbsplt미주동북부캐나다북부 임금이 지구장님gt강연이 오후 7시에 있기 때문에 시간 여유가 있어 스님께서도 숙소에서 업무와 휴식을 하고, 저희도 각자 개인시간을 갖기로 하였습니다.nbsp버팔로는 이리호에 면하여 화학공업이 발달한 도시였으나 이리호 인근 도시인 디트로이트, 클리버랜드와 마찬가지로 미국에서 화학공업이 쇠퇴하면서 도시가 점점 쇠락의 길을 걷고 있는 곳 입니다. 그래도 근처에 나이아가라 폭포가 있어서 관광사업을 하고 있으나 캐나다 쪽 보다는 훨씬 뒤쳐져 있는 느낌입니다. SUNY Buffalo 뉴욕주립버팔로대학교가 있어서 한국 유학생 약 700명을 포함하면 전체 버팔로에 거주하는 한인들은 약 1,500명2,000명을 예상한다고 합니다.nbsp스님께서는 6시에 SUNY 버팔로 대학교의 Mark Nathan nbsp미국인 교수와 김욱수 교수와 잠깐 미팅을 하였습니다. Social Work를 가르치는 김욱수 교수님은 이번 행사에서 홍보 등을 적극적으로 지원하였다고 합니다. 그리고 Mark Nathan 교수는 한국 역사와 동아사아 불교를 버팔로 대학교에서 가르치고 있는데 이전에 고려대학교에서 1년간 공부할 때에 정토회를 방문한 적이 있었다고 하였습니다. 그래서 스님께서 이곳을 방문하신다는 소식을 듣고 미팅 요청을 하였다고 하시면서 한국에서의 포교와 스님의 활동에 대해서 질문을 하셨습니다. 또 스님께서는 지난해 유니온 신학대학교의 초청으로 ‘기독교와 불교와의 대화’라는 컨퍼런스 참가하여 즉문즉설을 하셨던 얘기를 들려주셨습니다. 김욱수 교수와 Mark Nathan 교수는 한국말이 유창하여 스님의 즉문즉설 강연을 끝까지 참가하여 듣고 갔습니다. 스님께서는 김욱수 교수님께 새로운 백년 책에 사인을 하여 선물로 드렸고 Mark Nathan 교수에게는 최근에 번역한 영문 기도 책을 선물로 드렸습니다. nbspnbsp스님께서는 강연 전 로체스터에 살고있는 손정애님께서 준비해오신 저녁 식사를 한 후, 버팔로 성김대건 성당의 김영수 시몬 신부님과 반갑게 인사를 했습니다. 이어서 바로 1층 강연장으로 내려와서 자원봉사자들과 참가자들과 반갑게 인사를 나누었습니다. 이곳 버팔로에서 강연이 이루어질 수 있도록 강연장을 내어주시고 후원해주신 버팔로 성김대건 김영수 시몬 신부님의 환영사에 이어서 스님께서는 6시 50분에 큰 박수와 함께 연단으로 오르셨습니다.nbsp“만나서 반갑습니다. 학생들 손들어 보세요. 절반이나 되네요. 모두 버팔로 대학에 다니는가봐요. 이렇게 좋은 장소와 좋은 숙소를 제공해주신 김영수 시몬 신부님께 감사드립니다. 이번 100회 강연에는 성당에서 강연을 많이 하게 되었는데 작은 도시는 저희 활동가도 적고 인연도 없고 해서 남미나 소도시는 성당에서 많이 협력해주셔서 이렇게 강연이 진행될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다시 한번 장소를 제공해주신 김영수 시몬 신부님께 감사 말씀드립니다.”nbspnbsp이렇게 인사말을 하신 후 곧바로 청중들로부터 인생고민에 대해 질문을 받았습니다. 오전부터 스님께서는 몸상태도 좋지 않고 목소리도 많이 가라앉아 있었는데 사전 미팅때부터 목소리가 갈라지기 시작해서 행사를 시작하자 목소리가 더 안좋으셨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온 정성을 다해 질문에 답해 주셨습니다.nbsp오늘 강연에는 총 11명이 스님께 질문을 했습니다. 성당근처에 SUNY 버팔로 대학교가 있어서 학생들의 참여가 높았고 질문도 많았습니다. 말법 시대에 부처님이 나타나면 부처님의 말씀을 믿고 알수 있을텐데 왜 부처님은 기간을 정해놓고 지금 나타나지 않는지 묻는 분, 성당에 사람들을 더 많이오게 하고 싶은데 어떻게 하면 사람들이 더 많이 오게 할 수 있는지 방법을 묻는 분, 작은 생물이라도 소중하게 여겨야 한다고 배웠는데 최근에 실험을 하다가 쥐를 죽여서 충격을 먹었다며 이를 어떻게 바라봐야할지 묻는 분, 남들과 비교를 많이 해서 스스로도 힘들고 자기 자신이 더 싫어지는 것 같은데 어떻게 마음을 다스려야 할지 묻는 분, 대학생 때 불상에 “오직 예수” 라는 빨간 라카칠을 하는 종교인들을 보고 충격을 받아서 그들의 종교에 대해서는 일절 대화를 끊고 있는데 앞으로 교수가 되어서도 이런 태도를 견지해야 하는건지 고민인 분, 막연한 불안감이 밀려올 때 세상을 비관적으로 바라보게 되는데 어떻게 대처하는게 좋은지 알고 싶은 분, 외출할 때마다 문이 잠겼는지 매번 확인해야 하는 등 강박증을 앓고 있는데 어떻게 치료할 수 있는지 묻는 분, 나눔을 실천할 때 행복을 느끼는데 남의 시선이 불편할 때가 있어서 어떤 마음가짐으로 나눔을 실천해야 하는지 묻는 분, 다른 사람을 판단할 때 어떻게 판단해야 하는지 묻는 분, 현실에서 최고는 아니더라도 최선의 결과를 도출해낼 수 있는 방법이 궁금한 분 등 다양한 질문에 대해 스님께서는 정성껏 답변해 주셨습니다.nbspnbsp오늘은 그 중에서 이기심과 이타심의 차이에 대해 질문한 내용과 스님의 답변을 소개합니다. 무엇이 진정으로 남을 돕는 길인지 성찰해 볼 수 있는 명쾌한 답변이었습니다.nbsp“이기심과 이타심이 헷갈립니다. 내가 조금 불편하더라도 봉사는 더불어 잘 살 수 있는 길이고, 불편하더라도 내가 괴롭지 않으면 불편함을 감수할 수도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달라이라마 스님은 내적 갈등이 있어도 행을 함에 있어서는 나를 우선에 두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기심과 이타심 사이에서 이 말이 무슨 뜻인지 헷갈립니다. 나를 존중하는 것과 이기적인 마음을 명확하게 구분할 수 있는 기준은 무엇인가요?”nbsp“원시 시대에 내가 혼자서 사냥을 하면 토끼 한 마리를 잡을 수 있습니다. 그런데 둘이서 협력을 하면 세 마리를 잡을 수 있습니다. 각각 하는 것보다 협력하는 것이 이익이라고 다들 생각을 하죠. 협력을 했을 때 생산량이 늘어나는 것은 맞습니다. 그러나, 협력하는 것이 이익이라고 말할 수는 없습니다. 협력했을 때는 분배가 문제가 됩니다. 내가 세 마리를 다 갖고 싶어집니다. 내가 세 마리를 다 가지면 상대편은 한 마리도 못 갖게 되잖아요. 그러면 상대는 손해를 보게 됩니다. 손해를 봤기 때문에 이 사람은 다음부터는 협력을 안 하게 됩니다. 그럴 때 내가 세 마리를 갖는 것은 오늘은 이익인데 내일도 지속적으로 이익을 유지할 수가 없어요. 오늘 하루로써 끝나버리는 것입니다.nbspnbsp그러면 이 분배를 어떻게 해야 하느냐? 최소한으로 너 한 마리 나 한 마리는 가지고 증산된 한 마리를 갖고 어떻게 나눌 것이냐의 문제입니다. 내가 가질 수 있는 최소는 한 마리이고, 최대는 세 마리가 아니고 두 마리라는 것입니다. 이럴 때 ‘내가 한 마리를 갖겠다’ 하는 것은 욕심이 아닙니다. 이것은 기본 권리에 속합니다. 내가 한 마리 이상 두 마리 이하를 갖겠다고 하는 것은 욕망이라고 합니다. 내가 두 마리 이상 세 마리를 갖겠다고 하는 것은 과욕이라고 합니다. 이 과욕을 부리게 되면 상대에게도 손실이지만 나에게도 곧 손실입니다. 그래서 과욕은 버려야 합니다. 사회제도적으로는 과욕을 못 부리게 규제를 해야 합니다. 한 마리를 갖겠다고 하는 기본적인 욕구는 제도적으로 보장을 해줘야 합니다. 기본 권리는 보장해주고 과욕은 제재를 가해야 합니다. 지금 한국 사회가 혼란스러운 이유는 기본 권리는 보장해 주지 않고 과욕은 규제를 안해주기 때문입니다. 이 과욕을 규제 안해주면 다른 사람에게 해만 되는 것이 아니라 장기적으로는 본인한테도 해가 됩니다. 즉, 이익이 지속적으로 보장이 안 됩니다.nbsp환경적으로도 지속가능한 성장을 말하잖아요. 오늘날 우리 문명은 지구 생태계에 비하면 과욕에 속하는 것입니다. 만약에 이렇게 우리가 성장을 계속하면 우리 인류 문명은 곧 종말에 다다르게 됩니다. 그래서 지속적인 우리의 발전을 유지하려면 과욕은 규제를 해줘야 합니다. 그러니까 한 마리와 두 마리 사이에서 어떻게 나눌 것이냐를 놓고 너와 내가 경쟁을 해야 합니다. 이상적인 것은 1.5마리를 갖는 것이지만, 이것이 꼭 현실은 아닙니다. 왜냐하면 오늘 토끼를 잡는데 너는 게을렀고, 나는 열심히 일했는데 똑같이 나눈다면 기분이 나쁘고, 좀 섭섭하고 불평이 생깁니다. 그래서 이 분배는 1.2대 1.8이 될 수도 있고, 1.7대 1.3이 될 수도 있습니다. 이상적인 것은 1.5이지만 현실은 1.5가 되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는 1.5를 향해서 분배를 해 나가야 합니다.nbsp여기서 세 마리를 갖겠다고 하는 것은 과욕이고 이기심입니다. 이것은 버려야 합니다. 한 마리 이상 두 마리 이하를 갖겠다고 하는 인간의 욕심은 절제를 해야지 비난할 일은 아닙니다. 서로 절제를 해야 1.3대 1.7로 나누던지 1.4대 1.6으로 나눌 수 있습니다. 혼자서 두 마리를 다 갖겠다고 하면 싸움만 일어납니다.nbspnbsp여기서 이타심은 무엇일까요? 한 마리를 갖는 것과 두 마리를 갖는 것 사이에서 이타심이 나옵니다. 나의 기본 권리도 못 찾아 먹는 것은 바보이지 이타심이 아닙니다. 그래서 제도적으로 기본 권리는 보장해줘야 하고, 또 기본 권리의 보장을 위해서 우리가 노력해야 합니다. 그러나 내 기본 권리마저도 스스로 포기하고 타인을 위해서 희생하면 “이타”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한 마리 갖는 것과 두 마리 갖는 것 사이에서 자기 욕망을 절제하는 것도 “이타”에 속합니다. 이타심과 이기심은 완전히 다릅니다.nbsp여기 거지가 한 사람 있다고 합시다. 내가 도와주려니 돈은 없고, 안 도와주고 가려니 마음이 불편합니다. 이럴 때 어느 것을 우선으로 해야 할까요? 자기 마음 다스리는 것을 우선으로 해야 합니다. 이것은 이기심이라고 하겠지만 그렇지 않습니다. 스스로가 행복하다는 것은 이기심이 아닙니다. 자기를 행복하게 하는 것이 우선적으로 해야 할 일입니다. 즉 내가 행복해야 남을 실제로 도울 수 있습니다. 내가 행복하지 않는데 남을 돕는다는 것은 희생의 대가를 바라는 행동이 되기 쉽습니다. 그래서 너부터 먼저 행복하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내가 짊어진 짐이 너무 무거우면 옆에 사람의 무거운 짐을 들어줄 생각조차도 할 수 없습니다. 옆 사람이 무거운 짐을 들고 있는지 보이지도 않습니다. 설령 내가 옆 사람이 무거운 짐을 들고 있다는 것을 알아도 도와줄 수 있는 능력도 안 됩니다. 그러나 나의 무거운 짐을 탁 내려놓아버리면 옆에 사람이 무거운 짐을 지고 있는 것이 보입니다. 또한 들어줄 여력도 있게 됩니다. 그래서 자기가 먼저 행복해야 합니다. 이것은 이기심이 아니라 이타심의 전제가 되는 것입니다.nbsp세속에서 말하는 “이타심”과 수행에서 말하는 “이타심”은 서로 다릅니다. 세속에서 말하는 이타심은 자기도 무거운 짐을 지면서도 남의 무거운 짐을 들어준다는 것인데, 이것은 남을 위해서 자기가 희생을 하는 것입니다. 세상에서는 이것을 “이타심”이라고 말하지만, 이것은 반드시 나중에 원망하는 마음을 내게 됩니다. ‘내가 이 고생을 하며 너를 도와주었는데 너가 그 은혜를 모르는구나’ 하면서 서로 원수가 됩니다. 그래서 이것은 수행 차원에서는 좋은 것이 아닙니다. 수행 차원에서는 ‘내가 너를 돕는 것이 나한테 좋다’ 이런 마음이여야 합니다. 자기 희생이라는 생각을 넘어서서 남을 도울 때 이것을 수행에서는 “자리이타”라고 부릅니다. 자기를 이롭게 하는 “자리”와 남을 이롭게 하는 “이타”가 둘이 아니라는 뜻입니다.”nbsp질문자는 “도움이 많이 되었다”며 감사 인사를 했고, 스님의 대답에 청중들도 큰 박수로 환호해줍니다. 스님께서는 11명의 질문에 모두 답해 주신 후 이렇게 정리 말씀을 해주셨습니다.nbsp“재미있었어요? 유익했어요? 진리의 길은 재미도 있고 유익하기도 해야 합니다. 재미만 있고 유익하지 못하면 끝나고 나면 허전해지고요, 유익하긴 한데 재미가 없으면 지루해집니다. 그래서 여러분들이 종교를 지루하게 생각하는데 그렇지 않습니다. 예수님의 가르침의 본질에 근접해야 여러분의 삶에 기쁨이 일어납니다. 그런데 세속적으로 돈을 많이 벌게 해주고, 원하는 것을 해주는 이런 식으로 신앙을 갖기 때문에 여러분의 신앙이 흔들리고 있습니다. 인생을 조금 더 가벼운 마음으로 살아야 합니다. 너무 인간을 위대한 존재로 규정해서 자기가 쪼그러 들어 있어요. 자기가 규정한 그 수준이 안되기 때문에 위축감을 같고 살고 있습니다.nbsp산에 있는 다람쥐나 토끼 한마리와 같이 우리 인간들도 그냥 나고 죽습니다. 다람쥐도 토끼도 괴롭다고 하면서 살고 있지 않는데 인간이 더 괴롭다고 하는 것은 잘못된 것입니다. 얼마나 속박을 받았으면 날고 있는 새를 부러워 하겠어요. 자기의 아상에 지나치게 집착하거나 자기를 지나치게 우월하게 여기기 때문에 생기는 문제입니다. 삶이란 단순하게 생각해야 합니다. 그래야 훨씬 행복하게 됩니다. 세상은 내 뜻대로 되지 않습니다. 두번 세번 해보고 안되면 그만두고 다른 일을 해보면 됩니다. 이렇게 가볍게 생각하면 행복하게 살 수 있습니다. 자신의 주어진 상황을 긍적적으로 받아들이면 행복해집니다. 그러면 하나님이 보시기에도 좋아보일 것입니다. 그렇게 가볍고 기쁘게 살아가시길 바랍니다.”nbspnbsp처음부터 목이 갈라져서 걱정을 많이 했는데 목이 아픈대도 불구하고 2시간 20분동안의 강연을 마치니 참석자들이 스님께 큰 박수로 감사함을 표했습니다. 법륜스님 강연의 주제는 언제나 행복과 자유입니다. 스님께서는 우리가 어떤 경우에도 행복하고 자유로와야 한다고 말씀하시는데 오늘도 132명이 스님과 함께 하여 행복과 자유에 관하여 즐겁고 행복한 시간이 되었습니다.행사를 마치고 나서 바로 스님께서는 책 사인을 할 자리로 옮겨서 길게 줄을 서서 기다리고 있던 분들께 한사람 한사람 사인을 해주시고 기념 사진촬영도 해주셨습니다. 줄을 서서 기다리는 동안 사인을 받는 분들께 오늘 강연이 어떠했냐고 물어보니 다들 너무 좋았다고 특히 뭐가 더 좋았냐고 하니 전부 다 좋았고 많은 깨달음이 있었다고 하였습니다. 참석한 많은 분들이 유학생이었는데 공부하는데 많은 도움이 될 것 같다고 하였습니다.nbspnbsp그리고 스님께서는 이번 행사의 총 책임을 맡은 버팔로 대학교 대학원에서 공부하는 최지혜님과 스님 일행의 식사를 준비한 로체스터에 계시는 손정애님께 사인을 하여 책을 선물로 드렸습니다. 손정애님은 스님께 공양 올리기 위하여 1시간 30분 정도 떨어진 로체스터에서 음식을 준비해오셨습니다. 그리고 자원봉사자 7명과 함께 사진촬영을 하고 김영수 시몬 신부님께도 감사함을 담아 사인을 하여 새로운 백년 책을 선물하고 기념촬영을 하였습니다.nbsp버팔로는 김영수 시몬 신부님께서 흔쾌히 강연장과 숙소를 제공해주셨으며, 또 성당 청년들이 자원봉사를 할 수 있도록 임금이 지구장에게 소개시켜주셔서 오늘 행사가 성공적으로 끝날 수 있도록 물심양면으로 지원을 해주셨다고 하였습니다.nbspnbsplt스님 왼쪽이 식사를 준비해주신 손정애님, 오른쪽이 강연을 준비해주신 최지혜님gt스님께서는 내일 강연을 위하여 숙소로 올라와 업무를 보고 휴식을 취하셨습니다. 수요일부터는 매일 하루 2번 이상의 강연 혹은 미팅이 있기 때문에 내일까지는 충분히 휴식을 취하여야 합니다. 그리고 숙소에서 저는 스님과 잠깐 내일 일정에 대해서 의논을 하고 제 숙소로 돌아와서 스님의 하루를 정리하고 저의 업무를 보았습니다.nbsplt성김대건 성당의 김영수 시몬 신부님gtnbsp버팔로 강연은 한인성당이 후원하지 않았으면 행사자체가 어려웠다고 합니다. 많은 분들이 버팔로에서 강연 포스터가 보이지 않은 곳이 없었다고 할 정도로 버팔로 대학교 및 한인 식당, 상가 등 구석구석에 자원봉사자들이 포스터를 붙이고 홍보를 해주었다고 합니다. 버팔로 대학교의 김욱수 교수님은 도대체 누가 자원봉사를 했느냐고 궁금하기도 하였다고 합니다. 중간고사와 겹쳐서 학생들이 바쁜 가운데 정말 열심히 홍보를 하고, 행사 당일날 자원봉사도 해주어서 감사했습니다. 봉사했던 학생들도 이곳까지 스님께서 오셔서 강연을 해주시고 또 강연 자체가 많은 깨달음을 갖게 해주었다며 즐겁고 좋아했습니다. nbsp이렇게 많은 분들의 정성과 자원봉사로 오늘 35번째 미국 버팔로 강연도 잘 진행되었습니다. 내일은 36번째 강연이 미국 시라큐스 대학교에서 열립니다. 내일은 시라큐스에서 뵙도록 하겠습니다. ▼nbsp법륜 스님의 세계 100회 강연, 지난 날짜 소식 보기
2014.9.28 세계 100회 강연(34) 캐나다런던
안녕하세요. 오늘은 법륜 스님의 세계 100회 강연 중 34번째 강연이 캐나다의 온타리오주인 런던에서 열리는 날입니다.nbsp스님께서는 미국에 도착하신 이래로 건강을 회복하여 강연에 집중하기 위해 계속 휴식을 취하고 계십니다. 그래서 오늘도 오전에는 충분히 휴식을 취한 다음에 행사장으로 이동하셨습니다. 저희는 아침 식사를 하고, 휴식 및 빨래 등 개인 업무를 보고 난 다음에 점심 식사를 하고 행사장으로 출발하였습니다. 스님은 캐나다 런던으로 떠나기에 앞서 작년에 이어 올해도 숙소를 제공하고 스님 일행에게 식사를 준비해주신 정연희님께 스님 사인을 한 인생수업 책을 선물로 드리면서 감사의 인사를 한 후에 둘째 아드님과 기념 촬영을 한 후 12시에 런던으로 출발하였습니다. nbspnbsplt정연희님과 둘째 아드님gt캐나다 런던은 인구가 약 43만명인 비교적 작은 도시이나 인근에 유명한 워털루 대학이 있고, 미국 국경과 가까워서 그런지 한인들이 오타와 보다 많은 약 4천명 정도가 거주한다고 합니다. 어제 묵은 숙소에서 런던 행사장까지 2시간 정도 걸려서 도착하였습니다. 런던으로 오는 길은 한국의 가을 걷이를 끝내고 있는 어느 농촌 마을의 평화로운 풍경처럼 마음이 평화로워졌습니다.nbsp오늘 캐나다런던 강연장은 조그만 호텔 의 Conference Room을 예약하여 장소를 마련하였습니다. 그래서 스님께서는 행사장에 도착하여 행사팀에서 마련한 휴게실에 휴식을 취하셨습니다. 행사를 진행하는 자원봉사 두 분이 스님께서 이곳 런던을 방문해 주심에 감사드린다고 휴게실에서 삼배로 스님께 인사를 올렸습니다.nbsp“캐나다 런던에서 이런 행사가 열린 것 자체가 처음있는 일”이라며 행사장에서 총괄하는 책임자는 “한 50명정도 오지 않겠냐”고 하였습니다. 그러나 행사를 시작하자 계속 사람들의 입장이 이어져서 의자를 계속 셋팅하고도 의자가 모자라 바닥에도 앉게 되어 최종적으로 약 160명의 사람들이 참석하였습니다. 스님께서는 환영 영상과 소개 영상이 나오자 2시 50분에 무대위로 올라가셨습니다. nbspnbsp“안녕하세요 반갑습니다. 오늘 일요일인데 놀러 안가시고 이곳에 오셨네요. 교회는 다녀오셨어요? 교회 다녀오신 후에 강연 오시라고 오후 3시에 강연을 마련했습니다. 이곳에 절은 없지요? 절에 다녀오신 분은 없을 것이고요. 저도 이번에 강의를 잡으면서 캐나다에 런던이 있는 줄 처음 알았습니다. 런던에서 한다고 하니 영국 런던 강연과 얼마 떨어지지 않아서 강연이 또 있으니 잘못되었다고 고치라는 문의가 많이 왔고, 영국 런던과 헷갈려 하시는 분들이 많았습니다. 런던에 사는 소감이 어때요?”nbsp“아주 좋아요” nbspnbsp오늘 제가 여러분들께 특별히 전달할 메세지가 있는 것은 아니예요. 인생은 자기 좋을대로 살면 된다는 것이 저의 생각입니다. 혹시 인생을 살아가면서 힘든 것이 있다면 대화를 통해서 조금 더 나은 길을 찾아보자고 말씀드리고 싶어요. ‘인생에는 정답이 없다’ 이런 얘기입니다. 그런데도 세상은 인생은 이렇게 살아야 된다, 저렇게 살아야 된다는 너무 많은 주장이 있어서 오히려 인생살이가 헷갈리기도 합니다. 그래서 인생은 그냥 자기 좋을대로 살면 됩니다. 다만 몇가지 제한이 있는데 같이 살기 때문에 이것은 어쩔수 없는 것 같아요. 사람은 다 누구나 자기가 살 방도를 마련할 수가 있지만 남을 헤칠 자유는 없어요. 사람은 누구나 다 자기 이익을 추구할 권리가 있지만, 남의 이익을 침해할 권리는 없어요. 사람은 누구나 다 행복하고 사랑할 권리가 있지만 남을 괴롭힐 권리는 없어요. 사람은 누구나 다 마음껏 말할 자유가 있지만 남을 속일 자유는 없어요. 이런 정도의 한계를 제외하고는 사람은 좋은대로 살면 됩니다.nbsp그런데 쥐가 쥐약을 먹듯이 쥐는 살려고 먹는데 결과적으로 죽습니다. 그런데 이런 경우는 나쁜게 아니라 어리석은 것으로 자기가 자기를 손해끼치고, 자기가 자기를 해치고, 자기가 자기를 괴롭히고, 자기가 자기를 속이는 사람입니다. 이런 어리석은 것은 깨우쳐야 합니다. 어린이들은 어리석기 때문에 인생을 잘 살도록 어른들이 깨우쳐 주어야 합니다. 그런데 가끔 어른이 되었는데도 자기가 자기를 해치는 분이 의외로 많은 것 같아요. 더 행복할려고 한 행동이 더 나쁜 결과를 가져온다면 이럴 때는 조정을 해보고, 원인 규명을 해보면 좀 더 나은 결과로 나아갈 수 있습니다. 그래서 오늘 저하고 여러분들이 제기하는 문제, 그것이 개인 문제든, 사회 문제든, 종교 문제든, 과학 문제든, 인간역사 문제든, 자연 문제든, 환경 문제든 주제에는 전혀 구애받지 말고 자기가 평소에 의문이 있거나 얘기하고 싶은 고뇌가 있으면 자유롭게 얘기해보도록 합시다. 대화방식도 제한이 없고, 주제도 없고, 그냥 대화하듯이 두서없이 얘기해도 됩니다. 자, 누구든지 시작해보겠습니다.”nbsp이렇게 말하시면서 3시부터 바로 질문을 받았습니다.오늘은 총 9명이 스님께 질문을 했습니다. 스님의 영문저서 True Freedom을 읽었는데 한국의 예가 아닌 중국의 맹모삼천지교의 예를 들어서 섭섭하다는 분, 고집과 믿음의 다른 점이 무엇인지 알고 싶은 분, 요즘 시대는 돈이 없으면 살기가 어려운데 어떻게 무소유를 실천할 수 있는지 묻는 분, 지금 하고 있는 일과 꿈꾸는 일이 반대일 때 현실을 생각해야 할지 꿈을 따라가야 할지 고민인 분, 대학을 지원할 때 하고 싶은 게 많아서 결정을 내리지 못해 고민인 분, 언니가 피해망상증으로 보호시설에 있는데 언니를 사회에 맡겨야 할지 어느 정도 도와줘야 할지 고민인 분, 선행을 할 때 보상을 바라고 자만심이 생기는데 이것을 극복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묻는 분, 세월호 사고가 난지 6개월이 지났지만 특별법 제정이 안되고 있는데 국민들은 어떻게 해야 하는지 묻는 분 등 다양한 질문에 대해 스님께서는 정성껏 답변해 주셨습니다.nbspnbsp오늘은 그 중에서 기독교의 적극적인 전도 사상으로 인해 친구 관계에서 갈등이 생긴 기독교인의 고민과 스님의 답변을 소개합니다.nbsp“저는 기독교입니다. 가족들도 다 기독교입니다. 제 친구들 중에 절친한 중국 친구도 불교인데요. 제가 기독교인으로서 신앙이 부족해서 그런지 모르지만 친구들을 기독교로 전도를 못했어요. 그 대신 저는 캐나다에서 어려서부터 생활해 왔으니까 불교, 힌두교 등 다른 종교를 가진 친구들은 각자의 믿음이 있으니까 그것을 존중해줘야겠다는 마인드를 갖고 있어요. 그런데 기독교는 ‘무조건 전도해야한다’ 고 강조하니까 거기서 갈등이 생겨요. 한국 신문을 보니까 신부님, 목사님, 스님이 함께 토론회를 하던데, 불교에서는 기독교의 적극적인 전도를 어떻게 생각하시는지요? 종교 때문에 전쟁도 나고 하잖아요.”“종교 때문에 전쟁이 일어나는 것이 아니고, 사실은 세속적 이익 때문에 전쟁이 일어나는 것입니다. 세족적 이익을 추구하는데 종교를 이용하죠. 예를 든다면 ‘하나님을 믿으면 복 받는다’, ‘헌금 많이 하면 복 받는다’ 하는 건 돈을 많이 벌기 위해서 하는 소리이지 예수님이 그렇게 가르치지 않았거든요. ‘절에 와서 기도하면 좋은 일이 생긴다’ 이것도 부처님이 한 번도 그렇게 얘기한 적이 없어요. 세속적 이익을 추구하는 건 신앙의 본질에서 벗어난 것입니다. 그것은 깨달은 성인이 출현하기 전에 일어났던 현상으로, 원시 종교의 맥락에 있는 것입니다. 종교가 갖는 배타성도 무지에 기반을 둔 원시적인 종교 신앙에서 형성된 것입니다.nbspnbsp크리스트교의 핵심은 예수님의 가르침을 따르는 것 아닙니까? 구약을 따르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의 말씀을 따르는 것이죠. 구약의 하나님은 하나님의 말을 안 들었다고 징벌을 하잖아요. 그러나 예수님 이후의 하나님은 징벌의 하나님이 아니라 사랑의 하나님입니다.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은 사람, 창을 갖고 오른쪽 옆구리를 찔러 피흘리게 한 사람, 그 사람을 향해서 예수님은 어떻게 말했나요? 만약에 구약의 하나님 같으면 “주여, 저 두 놈을 지옥에 보내주세요” 이렇게 얘기해야 되잖아요. 그런데 “주여 저들을 용서하소서. 저들은 자기 지은 죄를 모르옵니다.” 이랬단 말입니다. 교회 안 가는 정도가 아니고 자기를 죽인 사람에 대해서도 그렇게 얘기했단 말입니다. 여기에는 이 두 사람에 대한 예수님의 온전한 이해가 있어요. 그 두 사람은 요즘 같으면 그냥 교도소의 공무원이었어요. 판결이 나면 그냥 형을 집행하는 사람이었어요. 늘 아침에 출근해서 사형장에 사람이 나오면 십자가에 못 박고 하는데 빨리 죽어야 새로운 사람을 또 매달을 수 있으니까 빨리 안 죽으면 창으로 찔러서 죽이고 했던 그런 사람이었습니다. 오늘날 도실장에 근무하는 사람, 생선가게에 근무하는 사람을 지옥에 보낸다고 하면 자기들 입장에서는 좀 억울할 것 아니겠어요. 그것은 직업이니까. 예수님은 그들을 온전하게 이해했기 때문에, 그들이 나쁜 놈이지만 용서해주라는 것이 아니라 ‘저들은 자기 지은 죄를 모르옵니다’ 이렇게 말했단 말입니다. 이것은 사랑의 하나님입니다. 하나님의 성격이 이렇게 전혀 다른데 오늘날 기독교의 대부분은 구약의 하나님으로 다 되돌아가 있습니다. 사랑의 하나님이라면 어떻게 어떤 사람이 스님이 되었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지옥에 보낼 수가 있겠습니까. 교회 안 오면 지옥에 간다 이런 논리 자체가 성립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nbspnbsp유대교에서는 구원의 기준이 유대 민족이여야 한다는 점입니다. 유대 민족이면 구원을 받고 유대 민족이 아닌 모든 민족은 이방인이라고 하죠. 이방인에게는 구원이 없다는 것이 유대교의 전통입니다. 그러니 유대교는 유대인 말고는 아무도 안 믿잖아요. 유대인이 아니면 구원을 못 받으니까요. 그런데 예수님께서는 유대교의 특수성을 보편화시킨 분입니다. “이방인에게도 구원이 있습니까?” 라고 예수님께 물으니까 예수님께서 “이방인에게도 구원이 있다” 말씀하셨습니다. 그런데 이 얘기를 이방인을 앞에 두고 얘기했으면 하나도 이상하지 않은데, 유대인을 앞에 두고 이방인에게도 구원이 있다고 얘기하니까 유대인의 전통에서 볼 때는 말도 안 되는 소리가 된 것입니다. 오늘날 “이교도에게도 구원이 있다”고 얘기하면 기독교에서 쫓겨나겠죠? 그러니 당연히 예수님은 전통 종교로부터 배척 받을 수밖에 없었습니다.nbsp그래서 사람들이 물었어요. “이방인에게 어떻게 구원이 있습니까”. 그러니 예수님께서 이렇게 말했어요. “여기 중환자가 하나 있다. 바리새 교도와 율법 학자는 지나가면서 돌보지 않았는데, 사마리아인은 그를 불쌍히 여겨 잘 돌봐주었다. 그리고 자기 갈 길이 바쁘니까 다른 사람에게 부탁해서 돌봐달라고 하고 돌아와서 또 돌봐주었다. 이럴 때 하나님이 보시기에 누가 더 좋아 보이시겠느냐?” 그러자 청중들이 다같이 “사마리아인이요” 이렇게 말했습니다. 이것이 선한 사마리아인의 얘기이고, 이방인에게도 구원이 있다는 반증입니다. 구원의 기준이 민족과 인종에서 보편적으로 변한 것입니다. 어느 민족이냐 어느 인종이냐가 중요한 것이 아니고 이 작은 자 한 사람에게 어떤 마음을 내고 어떤 행동을 했느냐가 구원의 기준이라는 것입니다. 구원의 기준이 완전히 바뀌어 버렸어요.nbspnbsp마태복음 25장에 “최후의 심판 날 왕께서 오셔서 산 자와 죽은 자를 다 일으켜 세워서 양 때와 이리 때를 나누듯이 둘로 나누고 한편에 앉은 자들에게 ‘너희는 지옥의 불구덩이에 떨어지리라’ 하니, ‘주여, 왜 우리가 지옥에 떨어져야 하니까?’ 하니까 ‘너희들은 내가 주릴 때에 먹을 것을 주지 아니하였고 목마를 때에 마시게 하지 아니하였고 나그네 되었을 때에 영접하지 아니하였고 벗었을 때에 옷 입히지 아니하였고 병들었을 때와 옥에 갇혔을 때에 돌아보지 아니하였느니라’ 하시니, ‘주여, 주가 언제 그런 적이 있었습니까’ 하니 이 세상에서 ‘지극히 작은 자 하나에게 하지 아니한 것이 곧 내게 하지 아니한 것이니라’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구원의 기준이 아주 명백합니다. 유대인이라고 구원 받는다든지, 교회 다닌다고 구원받는다든지 이렇게 안되어 있어요. 이 세상에서 가장 작은 자 하나에게 너가 어떻게 했느냐, 이것이 구원의 기준입니다.nbsp예수님의 가르침에 의한다면 오늘날 제3세계에서 굶어죽는 사람들을 돕고, 병든 사람을 치료하고, 물 없는 마을에 가서 식수를 파주고, 국제 난민들을 돕고, 억울하게 감옥에 갇힌 자들을 구제하는 것이 천국으로 가는 길이지 다른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러니 불교가 더 나으냐, 기독교가 더 나으냐, 하는 질문은 무의미합니다. 불교 신자들도 부처님과는 아무런 관계없는 것을 믿고 있는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사람이 욕심을 부리면 죽어서 돼지가 되고, 미련하면 소가 되고 이런 것은 대부분 힌두교적인 사고입니다. 성인과는 관계가 없다는 것입니다. 불교냐 기독교냐가 중요한 것이 아니고 각각 본래 성인의 가르침으로 돌아가는 것이 중요합니다. 본래 가르침으로 돌아간다는 관점만 갖는다면 서로 대화가 가능해집니다. 공통점이 굉장히 많아집니다.nbsp불교에서 “내 인생의 주인이 되라”는 얘기가 성경에도 다 있습니다. 성경에 “5리를 가자면 10리를 가주라. 겉옷을 달라 하면 속옥까지 내어주라. 왼뺨을 때리면 오른뺨을 대주라” 이런 말은 주어진 상황에서 주인으로 살아라는 가르침입니다. 선한 사마리아인의 이야기는 불교적으로 보면 인연과보를 설명하는 것입니다. 너가 어떤 인연을 짓느냐에 따라서 과보가 생긴다는 얘기거든요. 용어는 중요한 게 아니에요. 용어만 다르지 그 핵심 내용은 일맥상통해 있습니다. 그런 측면에서 불교냐 기독교냐 하는 논쟁이 아니라 진리의 길로 되돌아가는 것이 필요합니다. 거기에는 불교적인 지혜도 필요하고, 기독교적인 지혜도nbsp필요하고, 과학적인 지혜도 필요하고, 인류가 지금까지 발견한 많은 지혜들을 모아서 우리가 어떻게 더 자유롭고 행복한 세계로 나아갈 것인가가 연구되어야 합니다.nbsp예수님은 “진리가 너희를 자유케 하리라” 그랬잖아요. 유대인들은 편협되어 있었기 때문에 이방인에게도 구원이 있는 줄 알지 못했는데, 예수님은 그 편협함을 깨어버렸기 때문에 진리를 인류 보편적으로 적용하신 것입니다. 내가 교회를 다니기 전에는 불교나 힌두교를 잘 이해하지 못했는데, 내가 기독교 신앙을 가지면서 다른 신앙을 이해하게 되었다고 해야 자유의 폭이 넓어진 것 아니겠어요? 그런데 오늘날은 멀쩡하던 사람이 불교나 기독교를 믿으면 더 폐쇄적이 되고 배타적이 된다면 그것은 원래의 가르침에서 벗어나는 것입니다. 그런 면에서 질문자가 진실로 기독교 신자라면 ‘예수님의 가르침을 내가 실천하지 못한 것을 어떻게 실천할까?’ 여기에 삶의 초점이 맞춰져 있어야 됩니다. 그렇게 신앙을 갖고 살아갈 때 옆에 있는 친구들이 감화를 받습니다. 놀러가도 휴지를 줍고, 청소도 하고, 허드렛일은 다 하고, 그래서 감동이 되어서 ‘나도 교회에 한번 가볼까?’ 이렇게 되는 것이 전도이고 선교입니다. 배고픈 사람한테 가서 빵을 딱 내어놓고 기독교 믿으면 주고 안 믿으면 안 준다 하는 것은 전도가 아닙니다.nbsp그러나 요즘 개신교의 지나친 배타성은 국민적 저항을 불러오잖아요. 우리가 평화를 유지하려면 개신교가 각성을 하는 것도 방법이지만, 각성은 자기 스스로 하는 것이지 옆에서 강제로 시키는 것이 아니잖아요. 그래서 저는 그런 개신교의 배타성도 인정하자는 것입니다. 배타성마저도 포용해줘야 평화가 온다는 것입니다. 평화로 가는데 이익을 논해서는 안 되거든요. 남북 간에 대화를 하려면 우리는 북한의 배타성을 인정해줘야 해요. 북한의 처지를 이해하고 대화를 해야 대화가 되지 “내 한번 갔으니, 너도 한번 와라” 이렇게 하면 대화가 안 됩니다.nbsp그런데 저는 목사님과 북한동포돕기를 같이하면서 친해져서 매년 크리스마스 때마다 찾아가서 찬송가도 부르고, 목사님도 절에 와서 설교를 해주시고, 초파일 날에는 성당에서 성가대가 와서 노래를 불러주고 합니다. 그리고 이번 세계 100강을 할 때도 성당에서 강연하는 것이 열 번이 넘습니다. 또 강연 주선을 목사님이 많이 해주셨어요. 이렇게 교류를 하고 있는데, 친구를 자꾸 종교로 접근해서 끌어들이려고 하는 것은 올바른 자세는 아닙니다. 친구는 그냥 친구로서 지내야 합니다. 불교든 힌두교든 무슬림이든 인종이나 민족을 차별하지 말고 친구는 평등하게 대하라는 것이 예수님의 가르침입니다.nbsp그런데 친구 중에 자기가 행동하고 말하는 것을 보고 ‘나도 한번 교회에 가고 싶다’ 할 때는 굳이 “오지 말라” 할 필요도 없습니다. 그런 면에서 신앙은 자기 행복이 더 우선되는 것이 중요합니다. 이번에 유럽에서 강연을 할 때도 부인이 스님의 유튜브 법문을 듣고 삶의 자세가 바뀌는 것을 보고 감동을 한 외국인 남편들이 강연 준비를 많이 도와주었거든요. 유럽의 어떤 가족은 아내가 짜증을 내면 남편이 “법륜 스님 법문, 법문...” 그런다고 합니다. 이렇게 삶의 자세가 바뀌면 그 어떤 것도 필요 없이 관심이 생겨서 찾아가게 되거든요. 신앙의 핵심은 삶의 행동입니다. 시어머니가 아무리 독실한 불교신자라고 하더라도 고집이 세고 아집이 강하면 며느리는 시어머니가 싫어서 불교도 싫어집니다. 선교는 삶의 모범을 보여주는 것입니다.nbsp그리고 강제는 안되지만 알림은 필요합니다. 몰라서 그 길을 못갈 수 있잖아요. ‘여기 교회가 있습니다’, ‘여기 이런 공부가 있습니다’ 이렇게 알릴 뿐이지 오고 안 오고는 그 사람의 문제입니다. 숫자를 채우기 위해서 사람을 끌고 오는 방식은 상업적인 호객행위와 같습니다.nbsp이렇게 하여 스님께서는 5시 10분에 질문자의 모든 질문에 답변을 마치고 다음과 같이 정리말씀을 해주셨습니다.“우리 인생살이는 너무 무거우면 안됩니다. 가볍게 살아야 합니다. 신부님, 목사님, 스님들이 일반 재가 신자들보다는 평균적으로는 욕심이 적습니다. 그런데 신자들이 행복할까요? 신부나 스님들이 행복할까요? . 왜그럴까요? 그것은 바로 신부님이나 스님들은 굉장한 사명감을 가지고 있어요. 인생을 무겁게 산다는 거에요. 무거우면 행복해질 수 없어요. 어깨가 너무 무겁기 때문이에요. 그래서 부모님들이 자식들에게 특히 엄마가 너무 잘해 주면 자식들은 부모에게 효도해야 하는 무거운 짐을 지고 있기 때문에 인생이 무거워집니다. 자기 인생를 살지 못합니다. 부모가 볼 때는 효도한다고 하지만 사실은 부모의 노예입니다. 자유인이이 아니예요. 누구도 노예가 되어서는 안되고 자유인이 되어야 합니다. 스님, 신부님들은 사명감이 크기 때문에 무거워요. 스님은 깨달아야 한다, 목사님은 선교해야 한다는 사명감을 크게 가지고 있기 때문에 행복도도 떨어지고 웃음이 적어요. 늘 긴장되어 있고 늘 어깨에 무거운 짐을 지고 있어 무겁게 보입니다. 스님이 된다고 신부님이 된다고 행복해지는 것은 아니예요. 인간은 다 똑같아요.nbspnbsp살아있는 모든 인간은 행복할 권리가 있습니다. 피부색이 검고, 희고, 남자도, 여자도, 기독교도, 불교도, 무슬림도, 장애자도, 비장애자도, 성적취향이 동성애자도, 이성애자도, 그 무엇이든 살아있는 모든 존재는 어떤 경우에도 행복할 권리가 있어요. 이것이 부처님 말씀이예요. 이것은 일체 중생은 다 부처다라는 말입니다. 모든 것에 불성이 있다는 것이예요. 그래서 우리는 어떤 경우에도 자기 인생의 주인이 되어야 하고 행복하게 살아야 합니다. 그런데 그 자유와 행복이라는 것이 우리는 늘 밖으로 구하기 때문에 늘 행복하게 살지 못하고 종속적으로 살게 됩니다. 그것이 자기로부터 일어난다는 것을 알게 되면 자기인생의 주인이 될 수 있고 스스로 행복을 만들어 갈 수 있어요. 행복은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만들어 가는 것이라는 것을 알게 되요. 결혼한다고 이민 온다고 행복해지는 것이 아니라 행복은 자기 하기 나름이예요.nbsp지금 연세드신 분들은 고국이 그립지요? 그런데 한국에 돌아가면 또 살기 어렵습니다. 어떤 분들은 여기서도 이방인 저기서도 이방인이라고 하는데 남한테 자꾸 견주어서 자기 정체성을 쌓기 때문에 그래요. ‘캐나다 사람 중에 나는 한국을 가장 잘 알고, 나는 한국 사람 중에 캐나다를 가장 잘 알고, 나는 두 개 다 안다.’ 이것을 정체성으로 삼아야 합니다. 이렇게 해서 행복하게 사시기 바랍니다. 감사합니다.”nbsp이렇게 말씀하고 강연을 마무리 하니 건강도 좋지 않는데 2시간 25분 동안 강연을 해주신 스님께 청중들은 큰 박수로 감사를 표하였습니다. 오늘 강연에서는 젊은 학생에 대한 따뜻한 격려의 말씀, 그리고 스님의 애정어린 답변이 끝날때 마다 참석자들이 큰 박수로 스님께 화답을 해주어서 보는 내내 집중된 분위기 속에서 화기애애하고 행복한 시간이 되었습니다.nbspnbsp행사를 마치고 바로 스님께서는 책 사인을 할 자리로 옮겨서 길게 줄을 서서 기다리고 있던 많은 분들 한사람 한사람 사인을 해주시고 기념 사진촬영도 함께 해주셨습니다.nbsp어제 캐나다 토론토 강연장에서 밖에서 자원봉사하느라 스님 강연을 듣지 못했던 토론토 자원봉사자들은 오늘은 강연장이 아주 작고 소박한 덕분에 강연장 안에서 함께 안내하면서 스님의 강연을 들었는데, 소감을 들어보니 모두들 너무 좋고, 특히 스님께서 젊은 학생의 눈물어린 질문에 상세하고 자상한 답변을 해주시는 모습에 큰 감동을 받았다고 하였습니다.nbsp그리고 스님께서는 자원봉사자들과 단체사진 촬영을 한 다음에 자원봉사자 모두들에게 단주를 선물로 손목에 끼워주셨습니다.nbsp그리고 런던강연을 맡아 행사진행한 워털루열린법회의 김재명법우님과, 캐나다런던 지역에서 행사를 할 수 있도록 물심양면으로 준비해주신 정정완님과 최용구 한인회장님께 사인을 한 책을 선물로 드렸습니다.nbspnbsplt정정완님gt스님께서는 자원봉사자들에게 몸이 좋지 않아 함께 나누기도 못하고 먼저 숙소로 들어가니 묘덕법사님, 김정란 총무님과 함께 나누기를 하면 좋겠다고 하시면서 자원봉사자들을 격려한 후 오늘 숙소가 있는 캐나다 나이아가라 폴로 6시에 출발을 하였습니다. 내일 미국으로 넘어가기 쉽도록 하기 위해서 바로 미국캐나다 국경 지역인 나이아가라 폴로 2시간 정도 운전해 갔습니다.nbspnbsp오늘 하루 밤을 묵게 될 Inn에 도착하여 짐정리를 한 후에 스님께서는 간단히 죽으로 요기를 하고 휴식을 취하셨습니다. 짐정리를 하고 보니 거의 10시가 다 되었는데, 호텔에서 오늘 밤 10시에 불꽃놀이가 있다고 하여 스님을 모시고 폭포 근처로 가니 5분만에 싱겁게 불꽃놀이가 끝나서 숙소로 돌아왔습니다. 스님께서는 내일 강연을 위하여 충분히 휴식을 하여야 하기 때문에 저는 스님과 잠깐 내일 일정에 대해서 의논을 하고 제 숙소로 돌아와서 스님의 하루를 정리하고 저의 업무를 보았습니다.nbspnbsp오늘 런던 자원봉사자들은 18명 정도 되었는데 마음나누기에 10명 정도 참석하였습니다. 스님의 즉문즉설 유튜브를 본다는 젊은 커플과 가족들이 참가하였는데, 이분들은 런던에서 이런 행사를 하게 되고, 또 함께 자원봉사를 해서 좋았다고 하였습니다. 그리고 행사를 준비함에 있어서 함께 마음을 맞추어서 하는 곳이 잘 없는데 이번에는 이렇게 마음을 맞추어서 행사가 잘 끝나서 기분이 굉장히 좋다고 하였습니다. 그리고 모녀지간에 참석하신 분은 가족들이 다 자원봉사에 참가하고 싶었는데 남편이 미국 출장으로 함께하지 못해 아쉽다고 하였습니다. 그리고 런던에도 모임이 생겨서 함께 마음공부를 할 수 있으면 좋겠다고 하였습니다.nbspnbsplt왼쪽 제일 끝이 런던 강연 총책임을 맡은 워털루열린법회 담당자 김재명님gt이렇게 많은 분들의 정성과 자원봉사로 오늘 34번째 캐나다 런던 강연도 성황리에 잘 마무리 되었습니다. 내일은 35번째 강연이 미국 뉴욕주의 버팔로에 열립니다. 내일은 미국 버팔로에서 뵙도록 하겠습니다.nbsp ▼nbsp법륜 스님의 세계 100회 강연, 지난 날짜 소식 보기
2014.9.27 세계 100회 강연(33) 캐나다 토론토
안녕하세요. 오늘은 법륜 스님의 세계 100회 강연 중 서른 세번째 강연이 캐나다의 온타리오주 토론토에서 열리는 날입니다.nbsp노향숙님과 친구분들이 오셔서 어제 저녁 및 오늘 아침 식사를 준비해주어서 스님 일행은 오전 7시에 아침 식사를 하였습니다. 노향숙님은 오타와에서 스님 강연이 열린다고 하길래 정말 기쁜 마음으로 숙소와 식사 대접을 하고 싶다고 행사준비팀에 먼저 연락을 주셨습니다. 스님께서는 숙소와 식사준비를 해주신 노향숙님께 인생수업 책에 사인을 하여 선물로 드리고 함께 기념촬영을 하고 하룻밤 편안하게 숙박하고 식사까지 대접해주셔서 감사드린다 고 인사를 하셨습니다. 그리고, 오전 7시 30분에 토론토로 출발하였습니다. nbspnbsplt노향숙님gt캐나다 수도인 오타와와 캐나다 동부 최대의 도시인 토론토가 속해있는 온타리오주는 호수와 강의 땅입니다. 오타와에서 토론토로 가는 길은 온타리오 호수 북쪽편을 끼고 달리는데 이 길은 Thousand Islands Parkway로 세인트 로렌스 강을 따라가는 고속도로 입니다. 온타리오 호수에 있는 천개의 섬을 천섬이라고 하는데 이 천섬은 온타리오 호수 내에 있는 유명한 관광 명소입니다. 온타리오 호수는 남쪽으로는 미국의 뉴욕주와 북쪽으로는 캐나다 온타리오주가 둘러싸고 있는데 미국쪽에는 로체스터에서 천개의 섬으로 들어가는 유람선이 있고, 캐나다 쪽에서는 킹스톤에서 천섬으로 가는 유람선이 있습니다. 저희는 천섬을 둘러보지는 못하지만 고속도로를 따라 가는 길에 잠깐 화장실도 들를겸 호수를 구경하기로 하고 잠시 호수쪽으로 들어갔습니다.nbsp호수인지 바다인지도 모를 정도로 넓은 온타리오 호수를 잠시 감상하고, 토론토로 오는 길에 마지막 휴게소에 들렀는데 어떤 분이 법륜 스님께 인사를 하면서 천주교 신자인데 스님의 즉문즉설을 듣고 있다고 하면서 반갑게 인사를 하였습니다. 다시 길을 들어 1시쯤에 토론토의 정연희님 댁에 도착하였습니다. 정연희님 댁에 와서야 저희도 스님께 아직 인사를 못드린 것이 생각나서 정연희님과 함께 스님께 삼배로 인사를 드리고 정연희님이 준비해놓은 음식으로 점심 식사를 하고는 휴식과 각자의 업무를 한 후 행사장으로 출발하였습니다.nbsp오늘 한인회에서는 마라톤 대회를 개최하여 한인회관 주변에 도로를 막아두고 있었기 때문에 강연 준비를 하던 자원봉사자들은 청중들이 적게 올까봐 걱정을 하였다고 하였습니다. 토론토 한인회관은 2012년, 2013년에 이어서 3번째로 같은 장소에서 강연을 하게 되었습니다. 행사장으로 들어서니 벌써 많은 자원봉사자들이 안내를 하고 있었는데 이번 강연은 지난 6월에 개원한 토론토 법당의 불교대학생들이 중심이 되어서 준비를 하였다고 합니다.nbsp스님께서는 강연장에 도착하신 후 책 사인을 위해 줄을 서 있던 분들께 책사인회를 해주시고 강연장에 오신 분들과 인사를 하였습니다. 이어 스님소개 영상이 나온 후 5시에 무대에 오르니 큰 박수로 참가자들이 스님을 반갑게 맞이해 주었습니다. 토론토는 약 550만명의 인구가 살고 있으며 이중에서 한인들은 약 65,000명 정도 거주한다고 합니다. 그런데 오늘 강연에는 450여명이 함께 하여 많은 분들이 주말임에도 불구하고 행사장을 찾아주었습니다.nbspnbsp스님께서는 먼저 “안녕하세요. 주말인데 놀러도 안가고 여기에 오셨어요? 다들 놀러가고 아무도 안올 줄 알았습니다. 유럽 순회강연을 하고 미주로 오는 관계로 조금 목을 다쳤습니다. 감기 몸살에 목이 쉬었으니 목소리가 듣기 싫더라고 좀 참아주세요. 그리고 무대가 너무 높아서 서서 하면 높아지니 앉아서 하겠습니다” 라고 양해를 구하시면서 처음으로 자리에 앉아서 강연을 시작하셨습니다.nbsp그리고 자원봉사자 분들과 한인회 관계자들께 감사인사를 하셨습니다.nbsp매년 토론토는 한인회의 좋은 공간에서 편안하게 강연을 하고 있습니다. 2012년, 2013년에 이어서 올해도 이렇게 좋은 공간에서 강연을 할 수 있도록 해주신 토론토 한인회장님 이하 관계자 여러분들께 진심으로 감사를 드립니다. 그리고 오늘 이 행사에 자원봉사를 하고 있는 분들께도 진심으로 감사를 드립니다. 저의 이 강연은 완전 무료로 진행됩니다. 자원봉사하는 분들이 장소도 정하고 포스터도 붙이고 홍보를 해서 강연이 이루게 지게 된 것입니다. 이분들의 수고를 위해서 감사드립니다.” nbsp그리고, 유튜브를 통해서 즉문즉설을 보신 분들을 손들라고 하니 약 23 정도가 손을 들었습니다. 해외에서는 유튜브의 열기가 뜨겁다는 것을 과연 실감할 수가 있었고, 많은 분들이 유튜브를 통해서 삶이 바뀌었다고 하고, 한 분은 외국인 분인데 자기 와이프가 매일 컴퓨터 앞에서 스님을 매일매일 보고 있다고 하면서 즐거워하였습니다.nbsp스님께서는 “즉문즉설 강연은 어떤 특정한 메세지를 전달하기 위해서 하는 것이 아니라 인생의 여러 문제를 대화를 통해서 해결하는 방식입니다. 그러니 nbsp어떤 주제도 좋습니다. 종교 얘기, 사회 얘기, 정치, 과학, 인생 등 주제는 제한이 없고, 얘기하는 방식에도 제한이 없습니다. 어떤 애기를 어떤 방식으로 해도 좋습니다. 자 시작해 볼까요?” 라면서 바로 질문을 받으셨습니다.nbspnbsp오늘 강연에서는 총 10명이 질문을 했습니다. 두려움, 슬픔, 분노가 많은데 순간순간 자신을 다스리는 방법에 대해서 알고 싶다는 분, 큰집에서 시부모님 제사를 지내고 있는데 자신도 따라 제사를 지내도 되는지 묻는 분, 심리 상담사인데 상담자들의 상처가 자꾸 생각나서 마음이 무겁고 상담을 잘했는지 죄책감도 드는데 어떻게 마음을 다스려야 하는지 묻는 분, 우울증이 와서 휴학을 반복하고 있는데 자신을 극복하는 방법을 묻는 분, 친정어머니가 돌아가실 때 장례식에 가지 못해 마음이 너무 불편하다는 분, 인간이 이기적이라는 사실을 알고 인간관계가 편해졌는데 뭔가 허전한 마음이 들어 고민인 분, 전생에 지어진 운명이 있는 것인지 궁금한 분, 박사과정 5개월만에 이 길이 내 길이 아니란 생각이 들어 고민인 분, 캐나다의 이혼율이 40라고 하는데 결혼해서 잘 살려고 하면 어떤 마음으로 살아야 하는지, 그리고 천생연분이란 것이 정말로 있는지 궁금한 분 등 다양한 질문에 대해 스님께서는 정성껏 답변해 주셨습니다.nbsp오늘은 그 중에서 마지막 열번째 질문인 한국 문화와 캐나다 문화 사이에서 고통받는 친구들을 어떻게 도와주어야 할지 고민인 캐나다 교포 1.5세 친구의 질문과 스님의 답변을 소개합니다.nbspnbsp“저는 캐나다에 11살 때 온 교포 1.5세입니다. 어렸을 때는 한국에서 자랐고 커서는 캐나다에서도 자랐고 그래서 한국과 캐나다의 문화를 함께 접했기 때문에 두 문화를 잘 이해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한국 사람들과 있을 때와 캐나다 사람들과 있을 때 서로 간의 문화 차이를 많이 느껴요. 주변에 있는 사람이 고통을 받고 있는 것을 보며 ‘내가 접한 문화에서는 이렇게 해서 쉽게 해결하는데’ 하는 순간들을 양쪽에서 많이 느끼게 됩니다. 저는 그 상황에서 해결하는 방법들을 알아서 마음이 편할 수 있는데, 고통 받는 사람들을 볼 때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그 사람을 위한다면 그냥 그 사람이 가는 길을 놔두어야 할지, 옆에서 내가 참견을 해야 할지 판단이 안될 때가 많습니다. 어떤 태도를 가져야 세상에 도움이 되는 사람이 될까요?”nbsp“질문자가 좋을 대로 하시면 됩니다. 하고 싶으면 하고, 하기 싫으면 안하면 됩니다. 하고 싶어서 말을 했더니 내 말 안 들으면 그만 두면 되고요. 그러나 내 말 안 듣는다고 내가 스트레스 받으면 안 됩니다. 나를 위해서 말한 것이 아니라 그 사람을 위해서 말했기 때문에 그 사람이 말을 안 들으면 그만이지 내가 스트레스 받으면 안 된다는 것입니다. 내가 스트레스를 받는다는 것은 그를 위해서 한다고 착각했지 사실은 내 식대로 하려고 했던 것입니다. 이것을 알아야 됩니다.nbsp그래서 질문자가 스트레스를 안 받으면 말을 해주면 되고, 스트레스를 받으면 말을 안 하면 됩니다. 왜냐하면 스트레스를 받는다는 것은 나를 위해서 한 것이기 때문에 내가 안 하면 되고, 스트레스를 안받는다는 것은 그를 위해서 했기 때문에 하면 됩니다. 해야 된다, 하지 말아야 된다고 정해진 법이 없어요. 그래서 제가 즉문즉설을 하는 이유도 인생에 정답이 없기 때문입니다. 어떻게 살든 자기가 알아서 살면 되는데 물으니까 대답을 하는 것이거든요. 제 말을 받아들여서 하면 좋고, 안 해도 그만이에요. 그건 그들의 자유입니다. 안 받아들이는 것이 기분 나쁘면 제가 스트레스를 받아서 강연을 하기 싫어지겠죠. ‘묻기만 하고 얘기해줘 봐야 소용 없더라’ 이렇게 되잖아요. 묻기 때문에 그냥 저의 관점을 말하는 것이고, 그들이 그것을 듣고 동의가 되면 그렇게 하면 되고, 동의가 안되면 안해도 되고, 그것은 그들의 자유입니다. 저는 다만 할 뿐이거든요. 그래야 저도 스트레스를 안 받고 계속 강연을 할 수가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물을 것이 없으면 강연은 그냥 끝나는 것이고, 물을 것이 있으면 더 하는 것입니다.”nbsp“그 사람이 고통 받는 모습을 보면 불쌍함을 느낄 때가 있는데...”nbsp“그것은 질문자의 기분입니다. 산에 가다가 큰 나무 밑에 작은 나무가 있는 것을 보고 작은 나무를 불쌍하게 느끼면 그것은 질문자의 기분이지 작은 나무의 문제는 아닙니다. ‘내가 저 사람이 불쌍하게 느껴지는구나’ 이러고 가면 되지요. 길거리에 앉아서 구걸하는 사람을 불쌍하게 느끼는 것은 내 문제이지 그 사람의 문제는 아닙니다. 거기 앉아 있는 사람 중에는 하나도 안 불쌍한 사람도 있어요. 수행 방법에 구걸하는 것이 있거든요. 제가 수행 삼아서 다 떨어진 옷 입고 길거리에 딱 앉아 있으면 실제로 불쌍한 사람이에요? 불쌍한 사람이 아니지요. 그러나 지나가는 사람들은 다 불쌍하게 여기지요. 그러니 다 자기 문제라는 것입니다.nbsp그러니 내가 주고 싶으면 주고, 주기 싫으면 안 주면 됩니다. 왜 너는 구걸하느냐고 나무랠 필요도 없고, 내가 한푼 준다고 그 사람이 고마워할 것이라고 생각할 필요도 없고, 주는 것은 내 문제이고, 고마워하는 것은 그의 문제입니다. 항상 자기 문제라고 봐야 합니다. 그래서 내가 그 사람에게 도움이 되겠다는 마음이 들면 도움을 주면 됩니다. 밥이 필요하다고 하면 밥을 주면 되고, 돈이 필요하다고 하면 돈을 주면 되고, 필요 없다고 하면 안 주면 됩니다. 예전에 알렌산더 대왕이 작은 통 속에 살고 있는 디오게네스를 찾아가서 “도움이 필요하냐? 너가 원하는 것은 무엇이든지 다 들어주겠다”고 하니까 “비켜라. 햇빛 가리지 마라” 이렇게 얘기 했다고 하잖아요. 그런 것처럼 우리가 남을 도울 때 ‘그 사람이 불쌍하다’는 생각은 좋은 생각이 아니에요. 그러기 때문에 자기가 다시 상처를 입게 되거든요. 제가 인도에 구호활동을 가기 전에도 인도의 아이들은 다 잘 살았어요. 그런데 제가 가서 초등학교 공부를 시키니까 중학교를 가고 싶다는 생각을 낸 것입니다. 제가 만약에 초등학교 공부를 안시켰으면 그 아이들이 중학교에 갈 생각은 안냈겠죠. 중학교에 가고 싶은데 안보내주면 섭섭하죠. 고등학교 졸업했는데 대학에 안보내주면 섭섭하죠. 섭섭하니까 원수가 되어요. 우리가 도와주면 나중에 과보는 원수가 되는 것입니다. 그것이 은혜로 돌아온다고 생각하면 잘못된 생각이에요. 그래서 자선사업을 하는 사람들이 나중에 다 노후가 힘들거든요. ‘내가 도와주었다’ 이 생각을 하기 때문에 그래요. 도와주면 원수 되기가 쉬워요. 물에 빠진 사람을 건져주면 “내 보따리 내놔라” 이렇게 하기가 쉽다 이말입니다. 그런대도 왜 돕느냐? 아이들은 공부가 필요해요. 비록 원수가 된다고 하더라도 도울 것은 도와야 합니다. “내 보따리 내놔라” 하더라도 죽어가는 생명은 건져야 합니다. 칭찬받으려고 어떤 일을 하면 안 됩니다.nbspnbsp우리가 길 가는 사람과 원수되는 일은 극히 드뭅니다. 다 좋은 관계들이 원수가 되는 이유는 기대 심리 때문에 그렇습니다. 이 기대 심리를 버리는 것을 ‘무주상’이라고 합니다. 기대 심리를 갖는 것을 ‘상을 갖는다’고 하고, 기대 심리 없이 베푸는 것을 상이 없이 베푼다고 해서 ‘무주상보시’라고 합니다. 그러니까 우리가 좋은 일을 한다고 반드시 좋은 과보가 돌아온다는 것은 잘못된 생각이에요. 내가 남을 돕고도 기대가 크면 실망이 커지는 법입니다. 내가 결혼해서 만난 남자가 훌륭해서 잘 산다 이런 것이 아닙니다. 예를 들어 상대 남자의 능력이 100인데 200을 기대하고 만나면 결혼하면 실망하고, 50을 기대하고 만나면 결혼하면 만족하는 것입니다. ‘어, 생각보다 사람이 괜찮더라’ 이렇게 됩니다. 내가 기대가 크면 ‘어, 살아보니 생각보다 사람이 모자라더라’ 이렇게 됩니다. 상대의 문제가 아니라 다 나의 문제입니다. 그래서 나의 기대를 낮추면 행복도가 높아지고, 기대가 높아지면 행복도가 낮아지는 것입니다.nbsp대한민국이 경제적으로는 50년 전에 비해 260배 더 잘 살아졌지만 과연 대한민국 국민이 더 행복해졌나요? 그렇지 않습니다. 어떤 기대를 인간이 갖고 있느냐의 문제입니다. 그래서 마음공부를 해야 자신의 행복도를 높일 수 있습니다.”“그런데, 상대방이 한 행동이 정말 나쁜 행동이여서 도저히 용납이 안 될 때는 어떻게 해야 하나요?”nbsp“자기 마음에 안 들면 마음에 안 든다고 얘기하면 되지요. 마음에 안 드는 것을 마음에 든다고 거짓말 할 수는 없잖아요. 마음에 안 들면 안 든다고 얘기하면 되지 화낼 필요는 없다는 것입니다. 이 세상 모든 사람들이 다 자기 마음에 맞도록 태어나서 사는 건 아니잖아요? 사람들은 다 자기 생각대로 행동하는데 그것을 다 내 생각에 맞춰서 사람을 바꾸려고 하면 내가 힘들어지죠. 한국 사람과 캐나다 사람을 나눌 수도 없어요. 한국 사람 중에도 캐나다 사람 기질을 가진 사람이 있고, 캐나다 사람 중에도 한국 사람 같은 기질을 가진 사람이 있어요. 그러나 다수를 보면 캐나다에서는 자식이 스무살이 넘으면 과잉보호를 안하죠. 그러니 부모가 늙어서 자식 때문에 부담이 덜 되고, 자식들도 부모의 무거운 짐을 안지죠. 그런데 우리는 자식이 스무살이 넘었는데도 과잉보호 한다고 부모가 힘들고, 자식들은 부모의 무거운 짐을 지고 살아야 해서 힘들죠. 이런 것은 캐나다의 문화가 오히려 더 나아 보인다고 볼 수 있습니다. 그러나 다른 것은 한국식 문화가 더 나은 것도 있습니다. 한국은 공동체적인 성격이 많고, 캐나다는 개별적인 성격이 많다는 점에서는 캐나다 쪽이 오히려 늙으면 더 외롭죠. 이런 장단점이 있습니다. 그러나 이 장단점이라는 것도 누가 보느냐에 따라 또 달라져요. 그러니 장단점이라고 말할 수 없고 문화가 서로 다른 것입니다. 중간에서 보기에 내 취향에 이거는 캐나다가 낫고 이거는 한국이 낫다는 그 판단마저도 내가 하는 것이지 캐나다 문화와 한국 문화로 이렇게 나눌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그러니 내 견해를 상대에게 얘기할 수는 있지만 그것은 내 견해일 뿐이지 그것을 상대가 꼭 들어야 하는 것은 아닙니다. ”내가 보기에는 당신이 이런 문제가 있는 것 같은데 어떻게 생각하느냐?“ 물어보고 상대가 수용하면 다행이고, 수용하지 않으면 그만입니다. 왜냐하면 그것은 내 견해이기 때문에 그렇습니다.nbspnbsp“그렇게 되면 내 취향과 가까운 사람과는 가까워지지만 내 취향과 먼 사람과는 멀어지게 되잖아요. 나랑 맞지 않는 사람들과는 아예 만나지 않게 될 것 같은데...”nbsp“그러면 질문자만 손해이지요. 질문자의 인생살이가 그만큼 좁아지게 되는 것이죠. 질문자의 선택입니다. 취향에 맞는 사람끼리만 살려고 하면 폭이 좁아지고, 폭이 넓어지려면 취향이 다른 사람을 인정하고 살아야 합니다. 취향은 취향일 뿐이니까요. 나는 술 먹는 게 싫다면 술 안먹는 사람끼리 모여야 하고, 나는 술을 안 먹지만 술 먹는 사람들과 같이 지내려면 술집에 같이 가서 술도 따라주고 해야 합니다. 나는 담배를 안 피우지만 담배 피우는 사람들과 어울려 지내는 겁니다. 나는 불교를 믿지만 기독교인들과도 같이 어울리는 것이고, 기독교인이랑 어울린다고 꼭 기독교 신앙을 가져야 될 이유는 없잖아요. 불교를 믿는다고 기독교 신앙을 배척할 필요도 없고요. 그렇게 인생은 자기 선택입니다.nbsp자기 취향을 고집하면 인생의 폭이 좁아집니다. 또 폭을 넓히려면 자기 취향에 너무 사로잡히지 말아야 합니다. 나는 채식을 하지만 고기 먹는 사람들과 같이 식사를 할 수 있어야 여러 사람들과 같이 밥을 먹지요. ‘나는 채식만 하겠다’고 고집해서 상도 따로 차려줘야 하면 늘 혼자 밥을 먹어야 합니다. 그러나 내가 안 먹을 뿐이지 먹는 것에 대해 시비를 안 하면 사람들과 어울려 살 수 있습니다. 그러니 이것은 나의 선택입니다. 자기 가치관을 고집할것인가, 그렇지 않으면 자기 가치관을 지키되 다른 사람의 가치관도 용납할것인가에 따라서 교류의 폭이 좁아지기도 하고 넓어지기도 합니다. 넓어지는 것이 꼭 좋다 이렇게 생각해도 안 됩니다. 이렇게 해도 되고, 저렇게 해도 되고, 그것 자체는 자기 선택입니다. 인생은 자기가 선택하고, 그 선택에 대한 책임을 져야 합니다. 선택에는 좋고 나쁜 것이 없습니다. 그러나 선택을 망설이는 이유는 책임을 안 질려고 하기 때문입니다.nbsp예수님이나 부처님은 이런 원리를 가르치신 분입니다. 우리는 어리석어서 그 원리를 모르다가 그 얘기를 듣고 ‘아, 원리가 이렇구나’, ‘악하게 살면 앞으로 재앙을 받겠구나’ 이렇게 자기가 스스로 원리를 터득해서 사는 것이지 지옥 간다니까 겁을 내거나 천당 간다니까 혹해서 하는 것은 어린 아이와 같은 행동입니다.”nbsp스님께서는 청중들과 웃음과 함께 호흡하며 즐거운 시간을 갖는 가운데 벌써 2시간이 지나갔습니다. 스님께서는 오늘도 목이 많이 아픈 것 같았습니다. 처음부터 목소리가 가라앉아 있고 갈라지셨습니다. 질문에 모두 답변해 주신 후 “끝까지 들어줘서 감사하다” 하시며 “자신의 삶을 긍정적으로 받아들일 것”을 당부하면서 지금까지 나온 질문들을 정리하며 다음과 같이 닫는 말씀을 해주셨습니다.nbsp“이 세상에 태어난 사람은 그 사람이 어떤 사람이든 태어남에 의해서 주어진 것은 주어진 대로 존중받아야 합니다. 그 모든 사람은 행복할 권리가 있습니다. 태어난 아이가 성스러운 것이지, 태어나는 방식에 의해서 성스럽고 추하고가 정해지는 것은 없습니다. 어릴 때 어떤 상처가 있었든 지금 여러분들이 살아 있다면 여러분들은 지금 행복할 권리가 있습니다. 다만 여러분들은 과거에 사로잡히기 때문에, 오지도 않은 미래를 자꾸 걱정하기 때문에, 여러분들이삶이 괴롭고 근심걱정이 많은 것입니다. 그러니 지나간 과거에 연연하지 말고 오지도 않은 미래에 연연하지 말고 지금 깨어 있으세요.nbsp나는 행복할 권리가 있고 행복할 수가 있습니다. 이 말이 ”일체 중생이 다 부처다”라는 뜻입니다. 여러분들이 지금 깨어 있으면 지금 행복할 수가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이 행복과 불행이 남이 준다고 생각합니다. 하늘이 주든 전생이 주든 남편이 주든 아내가 주든 남이 준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우리는 늘 헐떡거리고 살아야 됩니다. 또 누구를 미워해야 합니다. ‘너만 아니라면, 당신만 아니라면 나는 행복할텐데’ 라고 생각하지만 그렇지 않습니다. 주어진 조건 속에서 자신은 항상 행복할 수가 있습니다. 이것을 자각하셔서 여러분의 인생이 행복해야 합니다.nbsp캐나다에 온다고 행복해지는 것이 아니에요. 한국에서 캐나다에 오면 다 행복해질 줄 알았는데 현실은 그렇지 않죠. 그러니 자기가 좋아야 천당이 됩니다. 이것을 ‘유심정토’라고 말합니다. 자기가 좋으면 천당입니다. 한국이 좋으면 한국이 천당이고, 캐나다가 좋으면 캐나다가 천당입니다. 지장보살에게는 지옥이 극락입니다. 왜 그럴까요? 남을 돕는 일은 지옥에 가야 많을까요? 천당에 가야 많을까요? 내가 선택해서 가서 그곳에 할 일이 많으면 그곳이 천당입니다. 그런 것처럼 우리가 지나치게 물질에만 연연하면 안 됩니다. 물질이 필요는 한데, 그것이 우리를 진정으로 행복하게 해주는 것은 아닙니다. 전 지구적으로 200여개의 나라 중에 캐나다 정도면 물질적으로도 풍요롭고 제도적으로도 좋은 편이에요. 여기에 살면서도 불행하다면 그것은 개인 문제라고 봐야지 세상을 탓해서는 안 됩니다. 어떻게 생각하느냐에 따라서 좋은 일이 되기도 하고 나쁜 일이 되기도 합니다. 그러니 자기 삶을 긍정적으로 받아들일 때 여러분들의 삶은 어제보다는 오늘이 더 행복해질 수 있습니다. 행복하게 사시기 바랍니다. 감사합니다.”nbsp이렇게 말씀하고 강연을 마무리 하니 목소리가 크게 나오지도 않고 갈라지는 가운데 2시간 10분 동안이나 강연을 해주신 스님께 청중들은 큰 박수로 감사를 표하였습니다.nbsp오늘 토론토에서는 주말이라 큰 마라톤 대회가 2시까지 있어서 도로 곳곳에 교통을 막아놓아 사람들이 많이 오지 못할 것이라는 예상을 뒤엎고 450여명이 참석하여 끝까지 자리를 지키며 스님과 함께 즐겁고 유익한 시간을 보냈습니다. 옆에 앉아서 시종일관 스님의 말씀에 웃음을 보이던 젊은 커플과 1.5세로 보이는 커플에게 오늘 강연이 어땠는지 물으니 정말 유익하고 재밌는 시간이었다고 합니다. 행사를 마치고 바로 연단 아래에 마련된 책상에서 책사인회가 열리자 많은 분들이 길게 줄을 서서 기다렸습니다. 스님께서는 한사람 한사람 사인을 해주시고 기념 사진촬영도 함께 해주셨습니다.nbspnbsp또한 스님께서는 항상 이렇게 훌륭한 토론토 한인회관에서 행사를 할 수 있도록 도움을 주고 장소를 내어주는 한인회장님과 한인회에 감사의 표시로 최근에 나온 책 3권을 사인하여 한인회관 도서실에 기증하였습니다.nbsp그리고 스님께서는 자원봉사자들과 단체사진 촬영을 한 다음에 자원봉사자 모두에게 선물로 단주를 손목에 끼워주셨습니다. 오늘 자원봉사자들은 거의 대부분이 불교대학생들로써 처음으로 자원봉사를 하는 분들이었지만 어느 지역보다도 편안하고 능숙한 모습으로 열심히 해주셨고, 자원봉사자는 모두 20명이나 되었습니다. 토론토 정토법당은 올 6월에 개원한 법당으로서 작년과 올해 2번의 행사는 열린법회를 개척한 김정란 총무님이 맡아서 진행하였습니다. 김정란 총무님은 이번에 캐나다 동부 4개 지역을 스님과 함께 다니면서 행사 총괄을 하고 있는데, 스님께서는 감사의 마음을 담아 책을 사인하여 선물로 드렸습니다. 또한 행사책임을 맡았던 김미셀님 및 스탭들에게도 책을 사인하여 선물로 주고, 자원봉사자들이 모두 감사의 큰 박수를 보내는 가운데 기념사진을 함께 촬영하였습니다.nbspnbsplt왼쪽부터 김민석님, 김미셀님, 김종원님, 김정란 총무님, 장호님gt스님께서는 자원봉사자들에게 몸이 좋지 않아 함께 나누기도 못하고 먼저 숙소로 들어가니 묘덕법사님, 김정란 총무님과 함께 나누기를 하면 좋겠다고 하시면서 자원봉사자들에게 정말 수고가 많았고 인사를 하고 저녁 8시에 숙소로 돌아오셨습니다. 스님께서는 정연희님과 일본식당을 운영하는 한승진님께서 준비해온 음식으로 저녁 식사를 하시고 휴식을 취하셨습니다. 이후 저는 스님과 내일 일정에 대해서 의논을 하고 제 숙소로 내려와서 스님의 하루를 정리하고 저의 업무를 보았습니다.nbspnbspnbsp오늘 자원봉사자들은 홍보하는데 많이 참여하지 못해서 미안했는데 이렇게 오늘 즐거운 마음으로 자원봉사를 했고, 많은 분들이 함께하여 행복해 하는 모습을 보니 뿌듯하고 보람된다고 하였습니다. 특히 처음 행사를 총괄했던 김미셀님은 이전 두 번의 행사 때는 그냥 김정란 총무님을 도와서 시키는 일만 했었는데 막상 총무님이 캐나다 동부지역을 총괄하게 되어 본인이 전적으로 토론토 강연을 책임지게 되니 마음의 부담이 많았는데 준비를 하면서보니 꼼꼼히 김정란 총무님이 잘 챙겨놓고 가서 쉬운 점도 있었고, 또 의외로 준비하고 점검해야 할 것이 많아서 그동안 김정란 총무님 혼자서 참 수고가 많았다는 것도 알게 되어서 좋았다고 하였습니다.nbsp그리고 작년에는 강연장에 청중으로 왔었는데 올해는 봉사자로 참가를 해보니, 스님 강연이 이루어지기 위해서 많은 사람들이 봉사를 하고 있다는 것이 놀랍고 또 보람이 된다고 하였습니다.nbsp봉사자들은 지난 6월 토론토 법당 개원때 만났던 분들이라서 저도 더 반가웠습니다. 이분들은 거의 대부분이 내일 캐나다런던 강연의 봉사를 위해서 캐나다런던으로 가실 것이라고 합니다. 또한 작년에 한국에서 불교대학을 졸업하고 워털루에서 아내, 애기와 함께 왔던 김재명님은 이번에는 강연 봉사자로 다시 만나니 더 기뻤습니다.nbspnbspnbsp이렇게 한 분 한 분의 정성과 자원봉사로 오늘 33번째 토론토 강연도 성황리에 잘 마무리 되었습니다. 내일은 34번째 강연이 캐나다런던에서 열립니다. 캐나다런던에서 뵙도록 하겠습니다.
2014.9.26 세계 100회 강연(32) 캐나다 오타와
안녕하세요. 오늘은 법륜 스님의 세계 100회 강연 중 서른 두번째 강연이 캐나다의 수도인 오타와에서 열리는 날입니다.nbsp nbsp 김해숙님과 친구분이 오셔서 아침식사를 준비해주셔서 저희들은 7시 30분에 아침 식사를 하였습니다. 이분들은 2012년에는 뉴욕 스님 희망콘서트에도 참여하셨고, 또 2013년 토론토 희망세상만들기 강연회에도 오셨던 분들이라 반갑게 인사를 나눌 수 있었습니다. 스님께서 몬트리얼에 오신다는 소식을 듣고 꼭 식사와 숙소를 제공하고 싶다고 하여서 이렇게 하룻밤 묵게 되었습니다.nbsp nbspnbsp 원래 일정은 오전 7시에 몬트리얼 시내를 둘러보고 갈 예정이었지만 스님께서 휴식이 필요할 것 같아 오전 일정을 취소하고 각자 맡겨진 업무를 보기로 하였습니다. 스님께서는 숙소와 식사준비를 해주신 전민락님과 김해숙님께 반야심경 이야기 책을 선물로 드리고 아드님과 함께 기념촬영을 하였습니다.nbsp nbsp lt전민락, 김해숙님 가족gt nbsp 두 분은 스님께서 이곳까지 방문하셨다 가시니 스님께 삼배로 인사를 드리겠다고 하여 삼배를 드렸습니다. 스님께서는 따뜻한 환대에 감사드린다고 인사를 하고 박지나 대표님의 언니인 박소영님 댁으로 출발하였습니다.nbsp 10시 30분에 박소영님 댁에 도착하여 휴식을 취하고 공양을 한 후에 12시 30분에 오타와로 출발하였습니다.nbsp 스님께서는 출발하기 전에 오늘 점심공양 준비를 해주신 박소영님께 사인한 책을 선물로 드리고 박지나 JTS 대표님과 함께 기념사진 촬영을 하였습니다. 박소영님은 스님께서 몬트리얼에 오시게 되어 이렇게 박지나 대표님도 만나고 스님 공양 대접을 할 수 있게 되어 무엇보다도 너무 기쁘다고 하였습니다. 박소영님은 현재 몬트리얼의 한글학교 교장선생님입니다. nbsp nbsplt박소영님gtnbsp 그리고 아침에 일찍 오셔서 어제 행사 자원활동을 하고 오늘 함께 박소영님과 식사준비를 해주신 권남수님은 13년 전에 한국에서 깨달음의 장과 나눔의 장을 하고 캐나다인과 결혼하여 현재 이곳에 거주하고 있는데 한글 학교 교감선생님으로 재직하고 있다고 합니다. 이번 몬트리올 법륜스님의 희망세상만들기 강연 덕분에 스님과 정토회 식구들을 만나게 되었다고 너무 기뻐하면서 이곳에 정토회 모임이 생길 수 있도록 해보겠다고 하였습니다. 이번 행사도 즐거운 마음으로 준비했다고 합니다. 스님께서는 권남수님께도 사인한 책을 선물로 드리고 기념촬영을 하였습니다.nbsp nbsplt권남수님gt 몬트리얼은 캐나다 최대주이며 불어를 사용하는 퀘백주에 있으므로 교통도로 표지판이 온통 불어로 되어 있어 표지판을 보는 것이 익숙하지가 않아 운전하는데 조금 불편할 것 같았습니다. 그러나 김명호 거사님의 운전 덕분으로 편안하게 오후 4시에 오늘의 숙소인 오타와의 노향숙 보살님 댁에 도착했습니다. nbsp숙소는 퀘백주인 Gatineau시에 있었고, 아름다운 호수를 끼고 호수변에 집이 있었습니다. 오타와는 캐나다의 수도이며, 온타리오주에 위치하여 영어를 사용하지만 리도우나 강을 사이에 두고 퀘백주와 마주보고 있기 때문에 영어와 함게 불어도 사용하고 있었습니다. 리도우나 강에는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되어 있는 UNESCO Rideau Canal 이 있으며 캐나다의 아름다운 관광지 중의 하나인 천섬까지 연결된다고 하였습니다. nbsp 스님께서는 휴식을 취한 다음에 죽으로 간단히 공양을 하신 후 6시에 32번째 강연이 열리는 Dominion Chalmers United Church로 출발하였습니다. 오타와도 몬트리얼과 마찬가지로 정토 열린법회도 없고 정토회와 인연이 없는 곳이지만 세계 100회 강연을 기획한 다음에 홈페이지에 자원봉사자를 찾는다는 홍보를 하여 임신효씨를 중심으로 하여 자원봉사자들이 서로 협력하여 행사를 준비하였다고 합니다. 오늘 행사를 진행한 교회도 아주 큰 외국인 교회였는데 강연은 교육관에서 하도록 준비되어 있었습니다.nbsp nbsplt행사장인 Dominion Chalmers United Churchgt 오타와는 캐나다의 수도로서 인구는 약 121만명 정도이며 외교부 통계자료에 따르며 한인들은 약 2,700여명 거주한다고 하였습니다. 그래서 오늘 강연에는 한 100명 정도 오지 않겠느냐고 예상했습니다. 6시 25분경에 스님께서 강연장에 도착하니 길가와 주차장에서 부터 안내를 하고 있는 자원봉사자들을 만났습니다. 오늘 자원봉사자들은 대부분 젊은 청년들이었고, 행사 총괄을 맡은 임신효씨도 곧 결혼을 앞둔 청년이었습니다.nbsp 스님께서는 6시 50분에 강연을 시작하였습니다. 오늘 오타와 강연에는 150개의 의자를 마련했는데 약 180명이 참석하여 행사장을 가뜩 채웠고, 자원봉사자들은 강연이 시작되자 행사장으로 들어와서 모두 바닥에 앉아 강연을 들었으며, 나중에 오신 분들은 모두 뒤에 서거나 옆에 서서 강연을 들었습니다.nbsp nbsp 스님께서는 “안녕하세요”라고 인사를 하니 청중들도 반갑게 “안녕하세요”라고 인사합니다. 그러자 스님께서 만나서 반갑습니다. 제가 유럽을 순회강연을 하는 중 감기몸살로 목을 다쳐서 목소리가 거북하니 양해를 해주시면 좋겠습니다. 토론토는 여러번 왔다 갔는데, 이곳 오타와에 오기는 처음입니다. 오타와에 도착하면 바로 시내를 한바퀴 둘러보기로 했는데 nbsp건강이 안좋아서 보지 못했습니다. 내일 아침에 나으면 둘러볼 계획입니다. 라고 서두를 시작했습니다.nbsp 그리고 최근에 한국 사회에서 일어난 세월호 사고 등 가슴 아픈 사건사고들을 어떻게 바라봐야 하는지 여는 말씀을 해주셨습니다.nbsp “같은 북미주에 있어 미국하고 캐나다는 그냥 일반적으로 시스템상으로는 구분이 안되는 것 같지만 캐나다는 유럽 쪽의 사회민주주의 개념이 강하고 미국은 신자유주의 경향이 강한 것 같습니다. 그러니 젊은이는 세금을 내기 싫어 미국으로 갈려고 하고, 나이드신 분들은 국가가 아들보다 효자라고 생각하고 이곳 캐나다에서 산다고 들었습니다. 한국사회는 그동안은 주로 미국을 벤치마킹해서 압축성장을 했지만, 앞으로 성숙할려면 유럽과 캐나다의 시스템을 받아들여야 하지 않겠냐 싶습니다. 그래서 이곳에 사는 여러분들의 경험이 한국사회를 발전시키는데 많은 역할을 해주면 좋겠습니다.nbsp 이번에 유럽을 다니면서 느낀 점은 교민들이 이국 땅에서 자기 살기도 바쁘지만 한국에서 발생한 세월호 사건 등으로인해 비통함에 젖어 있었고, 아직까지도 이 문제가 갈등구조로 있는 것을 보고 가슴이 아프고 국적을 바꿔버리고 싶다고도 하였습니다. 또한 윤일병 사건 등을 보면서 아들의 국적을 바꿔서라도 군대를 안보내고 싶다고 하엿습니다. 한국에 살고 있는 사람으로서 그리고 종교인으로서 교민들에게 자랑스러운 대한민국을 보여주지 못하고, 이국 땅에서 사는 것도 힘든데 조국까지 자랑스럽지 못하게 해서 미안했습니다. 여러분들도 그런 아픔을 가지고 있지 않겠냐 싶습니다. 그러나 종합적으로 보면 한국사회가 문제점도 많지만 좋은 점도 굉장히 많습니다.nbsp 한국사회에 대한 긍적적 토대위에서 건설적인 대안을 가지고 비판을 해야합니다. 긍정적인 시각위에 개선점을 제안하고 비판해야 혁신의 에너지가 나옵니다. 그러나 부정적인 시각에서 비판을 하게 되면 파괴의 에너지가 나옵니다. 일련의 사건 사고 속에서 감정이 부정적으로 흐른다는 것은 이해가 되지만 자기 조국에 대해서 사랑하는 마음을 가지고 많은 비판을 해주시면 좋겠습니다.”nbsp 그러면서 자유롭게 얘기를 해보자고 하시며 청중들의 질문을 받았습니다. nbsp nbsp 오늘은 8명이 질문을 하였고, 시간관계상 1명은 질문하러 나왔지만 질문을 하지못했습니다. 대학에서 종교학을 전공하는데 인문학을 공부하다 보니 현실적으로 먹고 사는 것과 정토세상을 건설하고 싶다는 본인의 희망사이의 고민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 묻는분, 오타와에서 북한학을 전공하고 있는 박사과정의 학생으로서 좌파적이고 진보적인 본인의 신념을 유지하면서 북한학을 공부할 수 있는지에 대해서 묻는 분, 마음한번 고쳐먹으면 극락이라고 하는데 어떻게 마음을 고쳐야 현실속에서 실천할 수 있겠는지 묻는 분, 공인의 모습이 아니라 개인의 모습으로 볼때 스님을 제일 잘 연상시킬수 있는 물건이나 사물이 무엇인지 스님께 묻는 분, 다음스토리볼에서 스님을 많이 보았는데 이렇게 세계 여러나라를 다니면서 강연한 내용을 모아서 책으로 출판할 생각이 있는지 묻는분, 한국군대에 있을때 왕따를 당한 경험이 있어 마음의 벽을 쌓고 다른 사람들에게 다가기가 힘들고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다는 분, 일베같은 극우보수적인 사람들을 이해하기 힘든데 어떻게 해야 하는지, 그리고 세월호 같은 사건이 일어났을때 불교적인 관점에서는 이것을 어떻게 생각하는지 궁금하다고 하는 분들의 질문이 있었습니다. nbsp 그중에서 오늘은 원증회고의 불교 교리에 대해 궁금해 한 분의 질문과 스님의 답변을 소개합니다.nbsp “저는 어렸을 때부터 예수님의 제자로서 부활의 증인으로 살아가고자 하는 크리스찬입니다. 그리고 불교에 대한 이해를 하고 싶어서 불교 교리 공부를 독학으로 시작했습니다. 사성제 중에서 고성제가 있는데, 고성제의 팔고 중에서 원증회고가 개인적으로 마음에 많이 와 닿습니다. 체험도 많이 하고 있고요. 혹시 스님께서도 원증회고의 고통을 겪어보신 경험이 있으시면 어떻게 극복하셨는지 말씀해 주시면 많은 도움이 될 것 같습니다.”nbsp “원증회고는 미운 사람과 함께하는 고통입니다. 이것은 여러분들도 다 경험했죠? 제일 심한 것이 부부지간입니다. 회사에 가면 상사와의 관계가 그렇고, 어디를 가도 미운 사람과 같이 살아야 되는 것은 참 힘든 일입니다. 남일 때는 쉬워요. 미우면 안 보면 되니까요. 그런데 미움에도 불구하고 안 볼 수가 없기 때문에 고통이 됩니다.nbsp 이것과 또 하나 있는 것이 애별리고입니다. 사랑하는 사람과 이별하는 고통입니다.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있고 싶은데 헤어져야 하는 겁니다. 그것이 부모 자식 간이든 형제 간이든 남북이산가족도 그렇고 연애뿐만 아니라 뭐든지 자기가 좋아하는 것을 못하는 것이 ‘애별리고’입니다. 하고 싶은 것을 못하는 것이 ‘애별리고’라면, 하기 싫은데 해야 하는 것이 ‘원증회고’입니다. 사람만 꼭 미운 사람과 함께 살아야 하는 것이 아니라, 하기 싫은데 해야 되는 것도 ‘원증회고’입니다. 이것은 저 뿐만 아니라 모든 인간이 겪습니다.nbsp 사랑하면 꼭 헤어져야 하고 미운 사람과는 꼭 같이 살아야 되느냐? 그런 의미로 받아들이면 안 됩니다. 근본은 내가 어떤 사물과 사람을 좋아하고 싫어하는 데에 있습니다.nbsp 이 분과 저하고 둘이 있다고 합시다. 내가 이 분을 좋아할 수도 있고 싫어할 수도 있죠. 그런데 또 상황은 어떠냐? 우리 둘은 만날 수도 있고 헤어질 수도 있어요. 나의 주관은 좋아하고 미워하는 두 가지가 있고, 우리 둘 사이에 주어진 객관적 상황은 함께 있는 것과 헤어지는 것 두 가지가 있습니다. 내가 좋아하는데 만나는 인연일 때는 아무런 고가 안 됩니다. 그런데 내가 좋아하는데 헤어지는 인연이 되면 고가 발생합니다. 이 고를 ‘애별리고’ 라고 합니다. 그러나 내가 저 사람을 미워하는데 헤어지는 인연이 되면 고가 발생하지 않습니다. 내가 미워하는데 만날 인연이 되면 고가 발생합니다. 이것이 ‘원증회고’입니다.nbsp nbsp 객관적인 주어진 상황, 즉 우리가 만날 인연인지 헤어질 인연인지는 내가 선택하는 것이 아닙니다. 상황이 그렇게 주어진다는 것입니다. 만나는 상황이 주어질 때 나의 주관으로 보면 좋아할 수도 있고 싫어할 수도 있고, 헤어지는 상황에서도 내가 그것을 좋아하고 싫어할 수도 있는 것입니다. 또는 내가 좋아할 때도 객관적인 상황은 만나기도 하고 헤어질 수도 있고, 내가 싫어할 때도 만나기도 하고 헤어질 수도 있는 인연이라는 것입니다.nbsp 그러면 사람은 사랑하면 괴로워지고 미워해도 괴로워지느냐? 그런 것은 아닙니다. 사랑할 때 헤어지는 인연은 괴로움이 되지만 사랑할 때 만나는 인연은 괴로움이 안 되고, 미워할 때 만나는 인연은 괴로움이 되지만 미워할 때 헤어지는 인연은 괴로움이 안되니까, 네 가지 경우 중에 두 가지는 아무런 문제가 안 된다는 것입니다. 고가 발생하지 않습니다. 네 가지 중에 두 가지가 고가 발생합니다. 좋아하는데 헤어지는 인연이 되면 고가 발생하고, 미워하는데 만나는 인연이 되면 고가 발생합니다. 그런데 만나는 인연과 헤어지는 인연은 내 마음대로 할 수 있는 게 아니기 때문에 이 문제를 극복하려면 내가 어떻게 하느냐에 달려 있습니다. 사랑하는 마음과 미워하는 마음으로부터 내가 자유로울 수 있으면 나는 고로부터 벗어날 수 있습니다.nbsp nbsp 그래서 신심명의 제일 첫구절이 “至道無難이요 唯嫌揀擇이니, 지극한 도는 어렵지 않다, 다만 사랑하고 미워하지만 않으면 된다” 이렇게 되어 있습니다. 여기서 사랑하고 미워한다는 용어를 남녀관계로 해석하시면 안됩니다. 여기서 ‘사랑하고 미워하지 않으면’의 뜻은 좋아하고 싫어하지 않으면 된다는 뜻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좋아하고 싫어하는 감정이 있어요. 좋아하면 가져야 되고 싫어하면 버려야 되는데, 주어진 객관적 상황은 좋아하는데 가져지지가 않고 싫어하는데 버려지지가 않기 때문에 고가 발생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내가 좋아하고 싫어하는 것은 변화를 안 시키고 그대로 놔두고 바깥 상황을 잡아 당겨 와서 갖거나 있는 것을 밀어내서 버리려고 하는데 이게 뜻대로 안되니까 지금 괴로운 것입니다. 그래서 수행은 바깥 상황은 그대로 두고, 만날 인연일 때는 미워하면 고가 발생하니까 만날 인연일 때는 미워함에 구애를 받지 말고, 헤어질 인연일 때는 사랑하는 마음이 있기 때문에 고가 발생하니까 사랑하는 마음에 구애를 받지 마라, 이런 얘기입니다.nbsp 우리는 정반대로 항상 자기 주관을 중심으로 해서 바깥을 변화시키려고 합니다. 그런데 바깥이 내 뜻대로 변하지 않으니까 힘든 것입니다. 그러나 수행은 주어진 상황은 그냥 받아들여라는 것입니다. 너의 감정, 즉 ‘갖고 싶다’, ‘버리고 싶다’ 하는 그것을 놓아버려라. 감정은 내 까르마, 업식, 습관으로부터 일어나는데, 그것을 놓아버리게 되면 자유로워집니다. 이것이 해탈, 완전한 자유입니다. 우리가 흔히 말하는 “자유가 아니면 죽음을 달라”는 내 마음대로 하는 자유를 말하거든요. 내가 내 마음대로 하려고 할 때는 객관 상황이 될 때도 있고 안 될 때도 있으니까 늘 반쪽 자유입니다. 그러나 내가 내 마음대로 하려고 하는 생각을 놓아버리면 완전한 자유가 됩니다. 이것을 ‘해탈’이라고 말합니다. 그래서 자기로부터의 자유, 즉 자기 까르마, 자기 업식으로부터의 자유, 자기 욕구로부터의 자유, 이것이야말로 완전한 자유입니다. “밖의 백만 대군을 이기는 것보다 자기가 자기를 이기는 자가 더 큰 장부다” 이런 말에서도 자기가 자기를 이긴다고 할 때 그 “자기”는 자기 업식, 자기 감정, 자기 까르마를 말합니다. 여기로부터 우리가 자유로워질 수 있느냐, 이것이 수행의 과제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nbsp nbsp 제가 오늘 여기서 몸이 안 좋으면 감정은 ‘몸이 아프니까 강의 안했으면’ 이런 욕구가 일어납니다. 그러면 강의를 안 할 수도 있죠. 그러나 상황이 강의를 해야 할 상황일 때는 ‘강의 안했으면’ 하는 이것을 빨리 놓아버리고 기꺼이 하는 쪽으로 전환을 해야 합니다. 그래야 내가 이 상황에서 자유를 얻게 됩니다. 그러나 그렇게 하기가 쉽지가 않죠. 여러분들도 부부가 결혼해서 살면서 ‘남편이 싫다’ 할 때 남편을 버리기가 쉽지 싫은 자기 감정을 버리기가 쉬워요? nbsp 그래서 자기로부터 자기가 자유로워져야 됩니다. 좋고 싫고는 절대적인 것이 아니고 자기 습관이에요. 여러분들이 만약에 ‘된장찌게는 맛이 있다’, ‘버터는 맛이 없다’ 할 때 그것은 된장이나 버터에 있는 것이 아니예요. 자기가 습관이 들어있으면 맛있음이 일어나고, 습관이 안들어 있으면 구역질나게 느껴지는 겁니다. 여러분들이 어릴 때부터 교회를 다녀서 기독교 문화에 젖어 있으면 법당에 들어가면 뭔가 거부 반응이 생기는 겁니다. 하나님이 작동해서 거부 반응이 일어나는 것이 아니라 자기의 무의식 세계가 거부 반응을 일으키는 것입니다. 어릴 때부터 절에 다닌 사람들은 조용한 것을 좋아하는데 교회에 가서 찬송가 부르고 통성 기도 하는 것을 보면 뭔가 안 어울리는 느낌이 듭니다. 그러면 그것은 교회가 문제가 있어서 그런 것이 아닙니다. 자기의 까르마에 맞지 않는 것입니다.nbsp 이 까르마는 무의식이라 할 수 있고, 습관이라고 할 수 있고, 무지라고 할 수 있습니다. 나도 모르게 화를 벌컥 내어 놓고 말을 세 가지로 하지요. 첫째, 나도 모르게 화를 냈다. 이것은 그 상태에서 의식에 깨어있지 못했다는 것입니다. 둘째, 습관적으로 냈다. 셋째, 무의식적으로 냈다고 합니다. 이것은 다 습관화 되어 있는 업식을 말합니다. 마치 마약 중독, 담배 중독처럼 습관화되어 있는 것입니다. 그것이 우리의 감정을 불러일으키는 바탕입니다. 여러분들의 감정이 굉장한 것 같지만 그렇게 형성되어진 것으로부터 반응하는 것입니다. 그 감정이 여러분들 자신이 아니예요. 어릴 때 어떤 습관을 들이느냐에 따라서 그 아이의 감정도 그에 따라서 나오는 겁니다. 그런데 우리는 자기 감정을 자기가 절대화시켜서 자기 감정에 맞춰서 세상을 바꾸려고 하니까 힘들죠. 감정을 없애라는 얘기가 아닙니다. 이런 이치를 알고 거기로부터 자기가 구애받지 않을 때 자유의 길로 나아가는 것입니다.nbsp 저도 80년대에 고문을 받으면서 정말 많은 것을 배울 수 있었습니다. 그 순간은 고통이지만 지나놓고 보면 밖에서 참선을 하고 명상을 했던 것보다 그 짧은 기간 동안 깨치고 반성했던 것이 훨씬 더 수행에는 도움이 되었다고 볼 수 있습니다. 그래서 어떤 복이 꼭 행운으로만 오는 것이 아닙니다. 재앙으로 복이 올 수도 있습니다. 우리가 인생에서 재앙을 복으로 볼 줄 아는 안목이 있다면 ‘그 어떤 것도 복이 아닌 것이 없다’ 이렇게 볼 수 있죠. 성경 구절에 “주여 뜻대로 하옵서소”는 굉장히 중요한 말입니다. 우리는 “우리 아들 대학시험 걸리게 해주세요” 이렇게 기도하잖아요. 대학시험에 걸리게 해주면 주님의 은총을 받았다, 걸리게 안해주면 은총을 못받았다 이렇게 하는 것은 진정한 신앙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대학 시험에 걸리는 것이 좋은지 나쁜지는 무지한 내 눈으로는 알 수가 없잖아요. 그런데 우리는 내 뜻대로 되면 가피를 입었다고 하고 내 뜻대로 안되면 은총이 없다고 합니다. 그러니까 우리가 무지하고 그분께서 전지전능하다는 것을 정말 받아들인다면 그분께서 알아서 하실 일이라는 것입니다. 떨어지는 게 좋으면 떨어지게 하실 것이고, 걸리는 게 좋으면 걸리게 하실 것입니다. 그러면 수행이란 ‘주님께서 좋으실 대로 하옵소서’ 이렇게 맡길 수 있는 것입니다. 이것을 불교 용어로 하면 ’자기 생각을 내려 놓는다‘, ‘인연따라 이루어진다’ 는 것입니다.” 대기하고 있던 한사람은 질문을 하지못하였지만 마지막 질문자의 질문과 대답이 끝나자 9시 10분이 되었고, 마지막 강연자의 질문에 대한 스님의 답변이 끝나자 참석자들이 큰 박수를 스님께 보냈습니다. 오늘 강연을 마무리하며 스님께서는 이렇게 정리 말씀을 해주셨습니다.nbsp “오늘 강연 분위기가 좀 무거웠습니까? 우리가 사는 세상은 개인적인 것도 필요하고 사회적인 것도 필요합니다. 많은 수확을 거둘려면 밭도 좋아야 하고 씨앗도 좋아야 합니다. 그러니 nbsp개인은 씨앗과 같고 우리 사회, 이 세상이라고 하는 것은 밭과 같은 것입니다. 같은 밭에서는 씨앗에 따라 수확량이 달라지고, 같은 씨앗을 여러 밭에 뿌렸을 때는 밭의 상태에 따라서 수확량이 달라집니다. 이렇게 볼때 좋은 씨앗, 즉 개인은 인이라 하고, 좋은 밭, 즉 사회는 연이라고 합니다. 인과 연이 만나서 결과를 만듭니다. 그래서 인연과보라고 합니다. 결과를 위해서 인을 개선하는 것을 수행이라고 하고, 연을 잘 가꾸어가는 것을 정토건설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세상을 아름답게 만드는 것은 이 두가지를 하는 것이고, 이 두가지를 동시에 하는자를 보디사트바, 보살이라고 합니다. 즉 상구보리 자기 인격을 닦는 수행과 하화중생 사회를 좋게 만드는 것, 성불과 정토건설을 동시에 하고, 개인 수행과 이상 세계를 만들어가는 것을 하나로 보는 자를 보살이라고 하는데, 수행자는 이 두 가지를 동시에 합니다.nbsp 자기 깨달음에만 치중하면 소승이라고 합니다. 주로 종교는 개인문제로 책임을 돌리는데 이것이 종교의 한계입니다. 사회운동은 너무 사회문제로만 책임을 돌립니다. 만약 내가 인도에 태어났다면 카스트 제도를 없애도록 하는 것으로 세상을 바꾸는데 더 신경을 써야 합니다. 그러나 캐나다는 세상을 바꾸는 것 보다 개인 수행에 더 많이 정성을 쏟아야 합니다. nbsp 한국사회는 이 두 가지가 비슷합니다. 먹고 살만 하고 민주화도 어느정도 되었기 때문에 이제 개인의 변화도 매우 필요합니다. 그러나 아직 사회적인 변화도 가져와야 할 요소가 많습니다. 정치는 사회를 변화시키는 아주 중요한 요소이므로 정치적 무관심은 사회변화를 더디게 가도록 합니다. 그러니 정치에 실망했다고 정치에 무관심해지면 안됩니다. 금방 안된다고 분노하고 국적을 바꾼다고 해결되는 것이 아닙니다. 꾸준한 노력을 통해서 해결될 수 있습니다. 20년만에 광주 폭동을 민주 혁명으로 바꾸지 않았습니까?nbsp 세월호 사건도 이번에 특별법이 안 만들어진다고 실망하지 말고 꾸준히 물량중심, 속도중심에서 안전중심, 생명중심으로 후진국에서 선진국으로 질적변화를 이루어 나갈 수 있도록 우리 모두가 관심을 가지고 변화를 추구해야 합니다. 후세에 세월호 사건 이후로 한국사회가 질적으로 달라졌다고 한다면 304인의 죽음이 헛된 죽음이 안됩니다. 이것은 살아 있는 우리의 몫으로 가지고 가야 합니다. 저항을 지속적으로 지혜롭게 해나가야 합니다. 슬픔에만 젖어있고 분노만 한다고 해결되지 않습니다. 어떤 조건에서 태어났던 모든 존재는 행복할 권리가 있습니다. 행복도 내가 만드는 것이고, 불행도 내가 만드는 것입니다. 진실로 그 행복과 불행은 다른 사람이 만드는 것이 아닙니다. 행복하시길 바랍니다.”nbsp 건강이 좋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2시간 30분 동안 질문 하나하나에 애정을 담아 답변을 하니 청중들은 뜨거운 박수로 스님께 화답했습니다.nbsp nbsp 행사를 마치고 스님께서는 한사람 한사람에게 사인을 해주시고 기념촬영을 해주셨습니다.nbsp 그리고 자원봉사자들과 단체사진 촬영을 한다음에 자원봉사자 모두들에게 단주를 선물로 손목에 끼워주셨습니다. 그리고 오늘 행사 전체를 총괄한 임신효씨에게는 결혼을 앞두고 있다고 하여 스님의 주례사에 사인을 하여 선물했습니다.nbsp nbsplt임신효님gt 또한 늦은 시간까지 교회건물을 쓸 수 있도록 한 교회 스텝인 찰쓰씨에게 영문 기도책을 사인하여 선물로 주었습니다.nbsp nbsplt찰스씨gt 그리고 스님께서는 자원봉사자들에게 몸이 좋지 않아 함께 나누기도 못하고 먼저 숙소로 들어가니 묘덕법사님과 토론토법당의 김정란 총무님과 함께 나누기를 하면 좋겠다고 하시면서 자원봉사자들에게 정말 수고가 많았고 고맙다고 인사를 하고 숙소로 돌아오셨습니다. 10시 10분이 되어 저는 스님과 내일 일정에 대해서 잠깐 의논을 하고 제 숙소로 내려와서 스님의 하루를 정리하고 저의 업무를 보았습니다.nbsp nbsp 오늘 자원봉사자들은 거의 대부분이 젊은이였으며, 청년 직장인 2명과 교수님 1분, 그리고 대학생 1명, 고등학생 1명 등 총 12명 정도였습니다. 오늘 참가한 자원봉사자들은 법륜 스님도 잘 모르는 상태에서 자원봉사를 시작했는데 준비과정은 즐겁고 재미있었고, 또한 여기 살면서 한국사람들을 이렇게 많이 본 것은 처음이라고 하였습니다.nbsp 그리고 오늘 스님 강연에 참가하여 강연을 들으면서 왜 사람들이 법륜스님, 법륜스님 하는지를 알게 되었다고 하였습니다. 그리고 자원봉사자 한 명은 학교행사를 많이 하는데 이번 강연은 자기가 너무 하고 싶어서 참가를 하게되었다며 공부하고 아르바이트 하면서 아주 바쁜 가운데 즐겁고 재미있게 자원봉사를 했다고 하였습니다. 그리고 봉사자들은 내년에도 오타와에서 강연이 있으면 좋겠고, 정 안되면 몬트리올이라도 스님께서 오셔서 강연을 해주면 좋겠다고 하였습니다. 토론토는 가기에 너무 멀고, 몬트리얼은 정기버스가 있기 때문에 참가할 수가 있다고 하였습니다.nbsp 또한 행사를 준비한 임신효씨는 내년에 오타와에서 또 강연이 있으면 즐거운 마음으로 다시 행사를 준비해보겠다고 하였습니다. 또한 김정란 총무님께서는 오타와 강연에서는 외국인의 영어 강연 요청이 많았고 내년에는 영어 강연을 했으면 좋겠다는 문의가 많았다고 합니다. 그래서 그런지 오늘 강연에도 외국인들이 한국분들과 함께 온 경우가 많았습니다.nbsp 이렇게 이번 32번째 오타와 강연도 자원봉사자들의 아름다운 봉사활동으로 성황리에 행사가 마쳤습니다. 우리는 모두 모자이크 붓다라는 스님의 말씀이 다시 생각납니다. 내일은 33번째 강연이 토론토에서 있으니 토론토에서 뵙도록 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