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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12.4 세계 100회 강연(102) 미얀마 양곤 Yangon
nbsp안녕하세요. 오늘은 세계 100회 강연 중 102번째 강연이 미얀마 양곤에서 열리는 날입니다.nbspnbsp미얀마는 1989년 이전에는 ‘버마’라고 불렸습니다. 미얀마의 군사 정권이 버마족 외에 다른 소수 민족도 아우른다는 차원에서 미얀마로 국호를 변경하였다고 합니다. 현재도 민주화 운동을 하는 활동가들은 군사 정권에서 붙인 국명인 미얀마와 현 국기를 거부하고, 버마라는 호칭과 옛 국기를 고집하고 있기도 하다고 합니다. 1962년, 네윈 장군의 쿠데타로 군사 정권이 집권하였고, 네윈은 거의 26년간 버마식 사회주의를 추구하며 버마를 통치하였습니다. 1990년 자유 선거에서 아웅산 수치가 이끄는 야당세력이 압승하자 군부는 선거무효를 선언하고 아웅산 수치를 무기한 가택연금하기도 했습니다. 2010년 11월 7일 미얀마 군사 정권은 총선을 통해 민간에 정권을 이양했지만, 군부의 지원을 받는 통합단결발전당이 압승으로 끝났고, 2010년 총선은 관제 야당들을 들러리로 내세운 사실상 관제선거였다는 비판이 많았습니다. 인구는 5600만명 정도이고, 전 국민의 대다수가 불교 신자이기 때문에 승려들은 국민들로부터 사회적 영향력이 상당히 강력한 편입니다.nbspnbsp▲nbsp미얀마 양곤nbspYangonnbsp양곤은 미얀마에서 가장 큰 도시이자 옛 수도입니다. 원래의 이름은 랑군이었으나 국호를 버마에서 미얀마로 바꾸면서 랑군의 명칭을 양곤으로 바꾸었습니다. 2008년 5월에 사이클론 나르기스가 양곤을 강타했고, 도시의 사상자는 별로 없었지만, 양곤의 도시기반시설의 4분의 3이 파괴되거나 피해를 입었고 피해액은 8억 달러에 이르렀습니다. 2005년 11월에 군사 정부는 양곤에서 북쪽으로 322km 떨어진 네피도로 행정 수도를 이전하였지만, 어쨌든 양곤은 지금도 미얀마에서 가장 크고 가장 중요한 상업 중심지로 남아있습니다. 최근 양곤은 토지 가격이 치솟고 있다고 합니다. 현지 교민 분의 이야기에 따르면 작년 보다 올해 집값이 10배 이상 오른 곳도 있다고 하니 변화의 물결이 실감나기도 했습니다. 미얀마 사회에 불어닥칠 변화의 물결은 아마 한국이 20년 동안 변화해온 과정을 2년 안에 모두 경험하게 되는 것이라고 보면 된다고 합니다.nbspnbsp콰알라룸푸르에서 윤금주 한인회 부회장님 댁에서 하룻밤을 묵고 아침6시30분에 부회장님이 정성껏 차려주신 아침을 먹고 7시에 공항으로 출발했습니다. 공항에 도착하니 어제 강연을 정성껏 준비해주신 반야원 회장님을 비롯한 신도님들이 스님을 배웅하러 나와 있었습니다. 짐을 부칠 때까지 시간 여유가 생겨서 스님께서는 반야원 신도님들과 잠시 담소를 나누셨습니다.nbspnbsp▲nbsp공항 배웅을 나온 반야원 신도님들nbsp게이트를 통과하고 나서 대기하고 있는데 비행기가 25분 연착되었다고 해서 스님께서는 명상을 하시며 시간을 더 보내셨습니다. 콰알라룸푸르 공항을 오전 11시에 출발한 비행기는 현지 시간으로 1200에 미얀마 공항에 도착했습니다.nbspnbsp입국 수속을 밟고 나오니 미얀마 강연준비 총괄을 맡은 아쿠아랜드 한윤복 대표님과 한승국님, 강연준비 봉사자 강영애님과 김진동님, 현지인 우멍주윈님이 스님 일행을 반갑게 맞이해 주었습니다. 비자를 전산 처리하는 과정에서 문제가 조금 생겼지만, 미얀마 현지 분들의 발빠른 대응으로 무사히 공항을 통과할 수 있었습니다.nbspnbsp▲ 미얀마 공항에 마중을 나온 분들. 왼쪽부터 한윤복 대표님, 강영애님, 김진동님, 현지인 우멍주윈님nbspnbsp공항에서 곧바로 오늘 숙소인 Pearl Condo로 이동했습니다. 숙소에 도착하여 미얀마 강연 준비팀 봉사자들이 스님께 삼배로 인사를 올렸습니다.nbspnbspnbsp그리고 김근영님과 이근숙님이 점심식사를 준비해 주셨는데 구수한 된장국부터 손수 만드신 반찬들을 보며 많은 정성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nbspnbsp스님께서는 약간의 편두통이 있으시고 감기 기운이 있으셔서 오후에는 숙소에서 잠깐의 휴식을 취하신 후 원고 교정 업무를 보시다가 오후5시 30분 무렵 강연장으로 출발하셨습니다. nbspnbsp오늘 강연이 열리는 곳은 양곤 북부 Inya 호수가에 위치한 Inyalake Hotel입니다. 호텔에 도착하니 고요하고 평화로운 호수가가 보였습니다.nbspnbsp▲nbsp호텔에서 바라본 인야 호수 전경nbsp강연을 준비하기 위해 십여명의 봉사자들이 일찍부터 곳곳에 안내 포스터와 현수막을 장식하고, 마이크를 테스트하고 의자를 배치하고, 책 판매대를 꾸미는 등 분주하게 움직이고 있었습니다.nbspnbsp오후6시 무렵 강연장에 도착한 스님께서는 대기실에서 지역 인사 분들과 차담을 나누셨습니다. 코트라 안재용 과장님을 비롯하여 권성혜님, 강영애님과 민주평통에서 유진 사장님, 최용석님, 대사관에서 정병배 참사님, 김평회 소장님, 정분자 회장님 등 많은 분들이 자리해 차담을 나누며 스님과 짧은 이야기를 나누셨습니다. 스님께서는 함께해주신 분들게 직접 사인한 책을 선물로 드렸습니다.nbspnbspnbsp저녁7시가 되자 소개 영상에 이어서 큰 박수를 받으며 스님께서 무대에 오르셨습니다. 오늘 강연은 120명 정도가 참석하여 유익한 시간이 되었습니다. 현지 교민 분의 설명에 따르면 미얀마 전체에 한국 교민이 2천명 산다고 하니 120명이면 그 중에 5 정도나 온 것이니 많은 분들이 참석한 것이라고 합니다.nbspnbsp먼저 강연에 앞서 오늘 강연 준비 총괄을 맡아주신 한윤복 대표님의 인사말씀이 있었습니다. 대표님은 스님의 설법을 듣고 좀 더 행복해지는 길을 찾아가는 소중한 시간이 되길 바란다 며 참석해 주신 분들께 감사의 마음을 전했습니다.nbspnbsp▲ 인사말씀을 하고 있는 한윤복 대표님nbspnbspnbsp스님께서는 미얀마에 부는 변화의 바람에 대해 이야기하시며 오늘 강연을 시작하셨습니다.nbspnbspnbsp“안녕하세요. 길이 많이 막힌다고 주최하신 분들이 걱정이 많으셨는데, 다들 시간 맞춰서 잘 오셨네요. 미얀마에서 다들 잘 살고 계세요? 연세 드신 분들은 한국의 70년대와 80년대에 한참 변화를 가져왔던 그런 기분을 느끼실텐데 그런 기분 느끼세요? 우리도 이런 사회적인 변화를 거쳤다는 것을 젊은 사람들은 잘 모를 거예요. 아까 전에 여기 오다보니까 트럭에 사람들이 콩나물 시루처럼 타고 옆에는 사람이 조롱조롱 메달려서 가는 걸 봤습니다. 70년대에 한참 농촌이 붕괴되고 도시 변두리로 빈민들이 모여들고 할 때 우리나라 버스들도 정말로 김밥 옆구리 터지듯이 차가 가득 찼어요. 그래서 버스 기사가 사람이 많아서 더 이상 안 들어가면, 마대에 물건 담을 때 흔들면 더 들어가듯이 버스를 커브길에서 오른쪽으로 한번 기울게 하고 왼쪽으로 한번 기울게 해서 사람을 더 태우고 그랬어요. 여기 상황을 보니까 그 때 생각이 났습니다.nbspnbsp저는 이곳 미얀마에 99년도에 구호활동을 하기 위해 답사를 하러 한번 왔었구요. 4,5년 전에는 태풍으로 많은 피해를 입어서 저희 JTS가 들어와서 무너진 다리를 놓고 학교를 복원하는 일을 했었어요. 그래서 준공식 하러 몇 번 왔었어요. 그러다가 한윤복 사장님을 만나서 작년에는 강연도 했었습니다.nbspnbsp즉문즉설은 강연을 하는 것이 아니고 여러분들과 대화를 하는 자리입니다. 자신이 궁금한 걸 물으면 그걸 갖고 대화를 하는 겁니다.nbspnbspnbsp보통 설교나 설법은 경전에 있는 얘기를 먼저 하고 해석해 주고 생활에 적용하고 즉 하늘에 있는 얘기를 땅으로 끌어내리는 방식인데, 오늘 우리는 우리의 고뇌나 의문 등 사람 얘기를, 즉 땅의 얘기를 먼저 하고, 대화를 하다보면 결국 하늘로 올라가서 진리에 대한 얘기로 귀결될 수가 있다는 겁니다. 그래서 우리들의 얘기를 먼저 시작해 봅시다. 이렇게 우리는 진리로 나아가는 방식이 좀 다릅니다. 전제를 먼저 하고 그것을 우리에게 끌어맞추는 것이 아니라, 우리 얘기를 먼저 해보고, 그리고 그 좋은 길을 찾아 가다보면 예수님의 가르침에도 도달하고 부처님의 가르침에도 도달하고 즉 행복과 자유의 길로 한발 한발 갈 수가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니 여러분들의 고뇌가 곧 진리로 가는 문이예요. 이것을 불교에서는 ‘번뇌 즉 보리’ 라고 부릅니다. 번뇌가 곧 깨달음이다는 말입니다. 그런 자리를 오늘 만들어보자는 것입니다. 자, 그럼 누구든지 질문이 있는 사람은 시작해보세요.“nbspnbsp그러면서 질문을 받기 시작했습니다. 총 7명이 스님께 질문을 했습니다.nbspnbsp“꿈이 제벌 2세인데 부모님이 안 따라 줍니다. 어떻게 할까요?”nbspnbspnbsp어린 학생의 당돌한 질문에 모두가 크게 웃으며 강연이 시작되었습니다.nbspnbsp“스님 책을 읽었는데 건전한 인간관계를 가지려면 기대하는 마음을 가지지 말라고 하셨는데 사람이 살다보면 어떻게 기대감을 가지지 않고 사람 관계를 맺을수 있는지 알고 싶습니다.”nbsp“처음 사회생활을 시작하면서 많은 부조리들을 보고 있는데 과연 이 문제들을 지나쳐야 하는지 저런 부조리를 먼저 지적을 해야 하는건지 알고 싶습니다. 자기 자신의 불이익을 떠나서 nbsp남을 위한 지적도 필요한지 알고 싶습니다.”nbspnbspnbsp“스님 말씀을 듣고 깨우친 점도 많지만 혼란스러운 점도 많습니다. 항상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에 대한 질문을 가지고 살지만, 어쩌면 길들여져서 살아가는 건 아닌가 싶어요.”nbspnbsp“나이가 들다보니 사람의 인관관계에 대해서 고민이 생깁니다. 어릴 때는 사람들을 더 알아간다는 즐거움이 있었는데, 슬슬 관리를 벗어나는 대인관계를 만나면서 스스로가 점점 대외적으로 나빠지는 이미지를 얻게 되는 것 같아요. 그렇기 때문에 더 이상 누구를 더 알아가기도 좀 겁이 나기도 합니다. 하지만 회사 생활을 하면서 인간관계를 계속 관리를 해야 하는데, 어떻게 해야 할까요?”nbspnbsp“미얀마 학생들과 함께하는 시간이 많은데, 이곳 아이들은 항상 꿈이나 비전없이 경직된 경우가 많습니다. 어떻게 하면 아이들에게 꿈과 희망을 심어 줄수 있을까요?”nbspnbsp이렇게 다양한 질문에 대해 스님께서는 지혜로운 말씀을 들려주셨습니다. 오늘은 그 중에서 미얀마 사람들을 인격적으로 대하지 않는 한국 사람들을 보면 속상하다며 아이들을 위해 어떤 교육을 해워야 하는지 묻는 여성 분의 질문과 스님의 답변을 소개합니다.nbspnbsp“외국에서 한국인으로 살아가는 것에 대해서 여쭙고 싶습니다. 이곳이 아직 문화적으로 미흡한 곳이다 보니 미얀마인을 인격적으로 대하지 않는 한국인을 많이 보게 됩니다. 그래서 한국인으로서의 자긍심을 많이 잃고 있습니다. 어린 딸 아이에게도 한국인으로서 어떠한 자긍심을 심어줘야 할까요? 그리고 미안먀 뿐만 아니라 캄보디아와 중국에서 산 적이 있었는데요. 그런 분들을 보면서 많이 속상했었습니다. 한국인으로서 가끔씩 창피할 때도 있었고요. 자라는 아이들에게 제가 어떻게 얘기를 하고 한국인으로 어떻게 살아가는 것이 좋을지에 대해서 궁금합니다.”nbspnbsp“외국에 나와서 한국인으로 어떻게 사느냐? 이런 생각 너무 할 필요가 없어요. 인간이 사는데 무슨 한국인과 미얀마인이 다르겠어요? 그러니 한국인으로서 어떻게 해야 되는 것이 아니고 사람으로서 어떻게 할 것이냐 이렇게 보편화 시켜야 해요. 자꾸 특수화시키지 말고요.nbspnbsp사람으로서 진실에 근접하려면 생태계를 기준으로 놓고 보면 됩니다. 개가 강아지를 낳았는데 새끼가 까만 것도 있고 흰 것도 있고 노란 것도 있을 때가 있잖아요. 그런데 그 어미개가 까만 것, 노란 것, 흰 것을 차별합니까? 안 합니까? 안합니다. 사람들도 개털 색깔이 다른 것을 가지고 차별해요? 안해요? 안하지요. 그런데 개도 차별을 안하면서 인간이 피부가 까맣고 노랗고 하얗다고 nbsp왜 차별을 해요? 이것은 한국인이고 아니고에 관계없이 진실이 아니다 이렇게 말할 수 있어요. 그러나 고양이나 개를 봤을 때 질문자가 흰털이 좋다, 까만털이 좋다, 노란털이 좋다. 이것은 질문자의 취향이잖아요. 그러니깐 나는 백인이 좋다, 나는 흑인이 좋다, 나는 황인이 좋다 하는 이것을 차별이라고 보면 안 돼요. 이것은 그의 기호이기 때문이예요. 이것은 인종차별하고는 성격이 다릅니다.nbspnbspnbspnbsp내가 백인을 좋아하는 것은 괜찮은데 흑인이라고 괄시해서는 안 되죠. 그러니까 우리가 미얀마에 살면서 미얀마인을 괄시하는 것은 안 되지요. 이것은 잘못된 거예요. 사람이 서로 태어난 나라가 다르거나 인종이 다르거나 종교가 다르다고 해서 차별을 하면 안된다는 거죠. 무슬림이다 하면 벌써 ‘저 사람은 위험하다’ 이런 식으로 보면 안된다는 거죠. 또 여자라고 차별해서도 안되고, 신체장애라고 차별해서도 안되고, 더 나아가서는 성적 지향이 다르다고 차별해서도 안되고, 그 태어남에 의해서 주어진 것을 가지고 차별해서는 안된다는 거죠. 그러니까 아이들에게 이것을 가르쳐야죠.nbspnbsp그런데 지금까지 기독교인들은 기독교인들끼리만 살아왔고, 한국사람들은 한국사람들끼리만 살아왔고, 일본사람은 일본사람끼리만 살아왔고, 서양사람은 서양사람끼리만 살아왔습니다. 그러다 보니 자기만 옳다, 자기들이 우월하다는 것을 너무나 당연히 생각하고 있지요. 이렇게 살아온 환경의 영향이 큽니다. 한국사람들은 인종이 다른 사람, 민족이 다른 사람과 같이 살아 본 경험이 없어요. 경험이 없다 보니 한국사람이 아닌 것은 다 이상하게 생각하는 것 같아요. 그런데 여기에 2가지가 있어요.nbsp우리가 서양문화를 모방하고 있다보니까 서양사람에 대해서는 무조건 열등감을 가지게 되었어요. 이것은 모방하다보니깐 형성된 거요. 그다음에 우리가 조금 동남아시아에있는 사람들 보다는 잘사니까 자기도 모르게 목에 자꾸 힘을 주게 되는거요. 좀 낮춰보고 있습니다. 그런데 내가 서양사람들에게 열등감을 가질 필요가 없듯이 동양사람에 대해서도 우월감을 가질 필요가 없습니다. 열등감을 가지면 우월감이 생기고, 우월감을 가져도 열등감이 생겨요.nbspnbsp예를 들면, 돈은 그냥 돈일 뿐이지요. 돈을 그리 중요시 안 하면 나보다 돈 많다고 해서 내가 열등의식을 가질 필요가 없고, 나보다 돈이 적다고 해서 내가 멸시할 필요도 없어요. 그런데 내가 돈에 대한 집착을 하게 되면 나보다 돈많은 사람한테는 기가 팍 죽고, 나보다 돈 적은 사람한테는 나도 모르게 목에 힘을 주게 되요. 내가 지위에 집착하면 nbsp나보다 지위가 높으면 그냥 자기도 모르게 기가 죽고, 나보다 지위가 낮으면 자기도 모르게 반말이 나와요.nbspnbspnbsp그러니까 이런 것들은 첫째 자기 열등 의식의 발로예요. 두 번째는 경험이 없어서 자기도 모르게 하는 행동이예요. 그러니 여기 나와 있는 한국 사람의 대다수는 이 두 가지가 섞여 있어요. 하나는 서양에 대한 열등 의식을 가지고 있고, 다른 하나는 동남아에 대한 우월 의식을 가지고 있습니다. 옛날부터 때리는 시어머니보다 말리는 시누이가 더 밉다 이런 말이 있잖아요. 서양 사람이나 미국 사람 한테는 굽신거리면서 여기와서는 한국이 경제적으로 좀 잘 산다고 큰소리 치니까 동남아 사람들은 우리가 더 얄미운 거예요. ‘너가 언제부터 잘 살았다고?’ 하는 이런 생각이 드는 거예요. 그 다음에 두 번째는 이런 것보다는 한국 사람이 외국인하고 살아 본 경험이 없기 때문입니다. 한국식으로 살고 있는데 외국 사람이 느낄 때는 굉장히 차별의식을 느끼는 거예요.nbspnbsp조선족들은 상담을 해보면 이런 얘기를 하는 것이 참 많거든요. 한국의 노가다 판에 가보면 한국 사람끼리도 주고 받는 언어가 욕설이 절반이예요. 그런데 중국에 있는 우리 조선족들이 한국에서 20년 전부터 일하기 시작했잖아요. 옛날에 한국에 오는 사람은 전부 중국에서는 괜찮은 사람들이였어요. 학교 선생님하다가 오거나, 판사하다가 오거나, 공무원하다가 오거나, 보통사람들은 올 수가 없으니까 주로 이런 사람들이 오는데요. 그런데 한국에 오면 다 하는 일이 노가다 일을 해요. 그런데 거기서 쓰는 언어가 모두 쌍소리예요. 지식인이다 보니 모두 다 엄청난 모멸감을 느끼는 거예요. 그래서 막 사고가 나는 거예요. 그럼 이럴 때 이 사람들이 차별을 하려고 한 것이 아니고 그냥 자기 습관대로 살았는데 상대가 누구냐에 따라서 차별감을 느끼게 되는 거죠. 그래서 이것은 우리의 무의식적인 오류가 되는 것입니다. 이런 오류가 여기에도 있을 거예요.nbspnbsp그러니까 한국에서도 조금 더 지식인이고 배운 사람들이 차별을 덜 하고요. 한국의 시골에서 초등학교, 중학교만 나와서 시골에서 유지하는 사람들이 더 심한 편입니다. 이런 사람들이 모여서 동남아로 여행을 오면, 자기도 고생을 했으니까 여기 사람들을 더 존경해야 하는데 그렇게 안되고 오히려 더 식당이나 술집에 가서 행패를 피우고 그래요. 자기도 모르게 그렇게 해요. 의도적인 것이 아니예요. 그런 사람들이 그런 행동을 할 때 너무 나쁘게만 보면 안되요. 업식이기 때문에요. 그것을 불교에서는 카르마라고 그래요. 그래서 나는 그러지 않겠다 하는 생각을 가져야 하지만, 남이 그러면 그런 점은 이해를 해야 해요. 그러나 이해하는 것 하고 그것이 옳은 것 하고는 다른 것입니다. 화가 난다는 것은 이해가 안 된다는 거예요. 이해는 하지만 개선은 해야 할 일이예요. 그래서 스님이 ‘화 내지마라, 화를 내는 것은 내 문제다’ 라고 하는 거예요.nbspnbspnbsp한국 분들이 이렇게 함으로해서 국가의 위신을 떨어뜨리고 한국 사람에 대해 저항감을 가져오게 됩니다. 그래서 여행을 하거나 사업을 할 때 좀 유의를 해야 해요. 한국에도 중소기업을 하시는 분들이 사정이 어려워서 그렇긴 한데 동남아시아에서 한국에 돈 벌러온 노동자들에게 일 시키고 월급 안 주고, 여러가지 문제가 생기잖아요. 여성 노동자들에 대해서 성추행이 있고요. 요즘 한국 여성 분들에게 그랬다가는 신문에 나고 난리가 나잖아요. 외국에서 온 노동자들에 대해서는 그런 게 더 심하단 말이예요. 또 한국에 결혼하러 온 베트남 여성 분들이 시골에서 인격적으로, 인권적으로 받는 모욕감이 굉장하거든요. 한국은 앞으로 이것이 큰 문제예요. 이것은 한국 국민이 나빠서가 아니라 첫째 역사적으로 남과 살아본 경험이 없고, 두 번째는 가난한 나라 사람들을 데려올 때 대부분 돈을 좀 지불하고 데려오거든요. 말이 결혼이지 좀 지원을 하고 데려오니까 부인이라고 받아들이기 보다는 조금 우월의식을 갖고 마치 하녀처럼 취급하는 이런 개념이 있어요. 그래서 인권침해가 상당히 많습니다. 그러나 개인이 나빠서 그런 것은 꼭 아니예요. 이것은 무지로부터 오는 건데, 자기도 잘 인식을 못하고 행동을 한다는 겁니다.nbspnbsp그래서 앞으로 대사관 같은 곳에서나 또는 학교 교육에서 우리 한국의 어린 아이들에게 굉장히 새로운 교육을 해줘야 합니다. 우리가 자랄 때에는 이런 교육을 못 받았는데요. 요즘 학교에는 혼혈아가 많아졌잖아요. 다문화 가정이라고 해서 학교에서는 아이들이 다 경험하고 있거든요. 어릴 때부터 교육도 시켜야 되고, 종교가 다른 사람들과 공동체로 생활하는 것에 대한 훈련도 많이 받아야 해요. nbspnbspnbsp이런 것은 시간이 좀 걸려요. 우리가 노력도 해야 되지만, 시간이 걸리는 문제이므로 기다려 주어야 해요. 금방 될 수 있는 일은 아닙니다. 그래서 첫째는 이해하는 것이 필요하고, 두번째는 그러나 개선되어야 할 일이기 때문에 계획을 세워서 학교에서는 어떻게 교육하고, 시민사회에서는 이런 문제를 어떻게 풀지 차분하게 준비해나가는 것이 필요해요. 왜냐하면 이런 것이 개선되지 않으면 우리에게 불이익이 돌아올 수 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그런 관점에서 같이 노력을 해나갑시다.nbspnbsp이제는 우리가 새로운 시대에 돌입해 있다는 것입니다. 여기서 가장 중요한 이슈가 창조입니다. 창조를 하기 위해서는 융합할 수 있어야 해요. 문호를 활짝 열고 정말 내가 갖고 있는 문제, 우리가 해결해야 할 인류적 과제에 있어서 그것이 기독교적 아이디어든, 불교적인 아이디어든, 과학적인 아이디어든, 그것을 받아들이는데 제한을 두면 결국은 창조성이 안나옵니다. 그런데 여러분들은 신앙에 갇혀 있고, 민족에 갇혀 있고, 관습에 갇혀 있잖아요. 그런 것을 무시하라는 것이 아니라 갇혀 있지 마라는 거예요. 그래야 여러분들이 새로운 시대의 주인이 될 수 있다는 거예요.nbspnbsp왜 스님이 서양에 가서 통역해서 강의하는데 서양 사람들하고 대화가 되느냐 하면, 새로운 시대를 이야기 하기 때문이예요. 여기에 오면 이 나라 문화를 존중해야 돼요. 내 문화를 존중하듯이 이 나라의 문화를 존중해줘야 해요. 그러나 우리는 그 장벽을 넘어서서 다음 세계로 나아가야 될 과제를 안고 있습니다. 그래서 남의 문화를 무시하면 그것은 아까 얘기한대로 현대인이 되기 어려운 거예요. 현대인이라는 것은 모든 것을 다 용인하고 용납하고 수용하는 거예요. 그리고 그것을 넘어서서 우리는 새로운 세계로 나아가자 이것이 이제 세계 평화의 길이예요.”nbsp“감사합니다.”nbspnbsp질문자는 스님의 답변에 크게 공감하면서 감사 인사를 했습니다. 강연을 마치고 질문한 분에게 찾아가 소감을 물어보았더니 “너무 공감이 가서 감동을 받았다”고 하였습니다.nbspnbspnbspnbsp마지막으로 스님께서는 강연을 마무리하면서 존중은 상대에 대한 이해라고 강조해 주시면서 이렇게 닫는 말씀을 해주셨습니다.nbspnbspnbspnbsp“딱 내 마음에 드는 사람은 이 세상에 없습니다. 70억 인구 중에 한명도 없어요. 나와 DNA가 같은 사람이 한명도 없듯이요. 그러니까 우리는 서로 맞춰 가야 합니다. 공통점이 많지만 똑같아 질려고 하니까 거기에 맞는 사람은 한명도 없게 되는 겁니다. 나와 다른 사람의 인식을 존중해야 합니다. 존중은 그 사람의 의견을 다 들어줘야 한다는 것이 아닙니다. 존중은 나와 다른 상대를 인정하는 것입니다. 두 번째는 이해하는 것입니다. ‘그 사람 입장에서는 그럴 수 있겠다’ 이렇게 이해하는 것을 존중이라고 합니다. 이렇게 이해해 나간다면 지금보다는 조금 더 행복하게 살 수가 있지 않겠나 이렇게 생각합니다. 감사합니다.”nbspnbsp마무리 말씀을 마치자 청중들은 2시간 40분 동안 열강을 해주신 스님께 큰 박수를 보내주었습니다.nbspnbspnbsp스님께서는 2시간이 넘어가자 조금 무리를 하셨는지 목소리가 갈라지고 하셨지만 한분이라도 더 고민이 있으면 도움을 주시려고 추가 질문을 2명 더 받으셨습니다.nbspnbsp강연을 모두 마치고 스님께서는 로비로 이동해서 스님의 사인을 받고자 길게 줄을 선 청중들에게 사인을 해주시며 반갑게 인사를 하셨습니다.nbspnbspnbsp미얀마 현지에서 사업을 하시는 40대 50대 남자 분들도 많이 참석했는데, 한 분은 스님께 사인을 받으면서 “질문을 정말 하고 싶었는데 차마 용기를 못냈었다”고 하면서 “내년에 오시면 꼭 질문을 하겠다” 고 해서 스님께서도 고개를 끄덕이며 웃으셨습니다. 오늘 강연은 개인의 구체적인 고민이 담긴 질문이 많이 나오지 않아 조금 아쉬웠는데, 이곳 미얀마의 교민사회는 규모가 작아서 개인 고민을 질문하기에는 조금 꺼려지는 부분도 있었던 것 같습니다.nbspnbsp이어서 강연장 곳곳에서 소임을 맡아 수고해준 봉사자들과 함께 기념 사진을 촬영했습니다.nbspnbspnbsp그리고 봉사자들 모두에게는 스님께서 직접 한국에서 가져 온 단주를 손목에 걸어주셨습니다.nbspnbspnbspnbspnbsp특히 미얀마 강연 전체를 총괄하여 주신 한윤복 아쿠아랜드 대표님에게도 스님께서 직접 사인한 책을 선물로 드리고 기념 사진을 찍었습니다.nbspnbsp뒷정리를 모두 마치고 자원봉사자들은 묘덕 법사님과 함께 마음나누기를 하였습니다. 사회자 소임을 맡은 분은 “행사는 준비가 70이고 행사는 30이라고 생각하는데 준비 과정에서의 노력들을 보고 많은 감동을 받았다” 고 하고, 강연 실무를 맡은 김진동씨는 “작년 스님 강연 때는 참석자였는데, 올해는 자원봉사자로 참여해서 더 많은 것을 배울 수 있었다”고 합니다. 강연 실무 전반을 총괄한 한승국씨는 ”미얀마는 온라인이 활성화되어 있지 않아서 한인들이 모이는 곳에 직접 발로 뛰어서 홍보했다“ 면서 ”처음에는 능력이 부족해서 잘해보려고 욕심을 부렸는데, 일을 하나씩 내려놓고 다른 사람들에게 일을 부탁하는 연습을 해보는 경험을 가질 수 있어 참 좋았다”고 합니다. 봉사자 한 분은 “미얀마의 교민사회가 좁기 때문에 자기 고민을 공개적으로 이야기하는 게 쉽지 않은데, 질문하는 방식에 대해 더 연구하면 좋았을 것 같다”고 아쉬움을 말하기도 했습니다. 또 다른 봉사자 한 분은 “이번 스님 강연을 계기로 앞으로도 미얀마에서 봉사활동을 계속 이어나가는 모임을 새로 만들어야겠다는 뜻을 가져 보았다”고 하여 함께한 봉사자들 모두의 큰 호응을 얻었습니다.nbspnbsp▲nbsp묘덕 법사님과 함께 마음나누기nbsp또 한분은 “미얀마 교민사회는 생업으로 바쁘신 분들이 많은데 주말이 아니라 평일에 강연 시간을 잡아서 오고 싶지만 못 오신 분들도 많았던 것 같다”면서 “다음에 강연을 하게 되면 주말에 꼭 강연 시간을 잡아주면 좋겠다”고 바램을 이야기하는 분도 있었습니다. 오늘 강연 전체를 총괄한 한윤복 대표님은 “우리가 한 노력에 비해서 사람들이 많이 온 것 같지 않아 섭섭한 점도 있었지만, 준비 과정에서 모든 기쁨을 누렸다” 면서 밝게 웃었습니다. 그리고 “의외로 교회와 성당에 다니시는 분들도 많이 오셔서 무척 놀랐다”고 했습니다. 묘덕 법사님은 봉사자들의 이야기를 모두 듣고 마음나누기를 마치면서 “홍보를 적극적으로 했던 과정이 중요한 것이지 참여 숫자에는 신경쓰지 않으시면 좋겠다”고 당부하면서 수고한 봉사자 모두에게 격려와 감사의 마음을 표하셨습니다. nbspnbsp스님께서는 숙소로 이동하셔서 간단히 내일 일정에 대해 의논한 후 밤12시가 넘어서 일과를 모두 마치셨습니다.nbspnbsp오늘도 이렇게 많은 분들의 자원봉사와 정성으로 102번째 미얀마 강연을 잘 마쳤습니다. 내일은 미얀마 양곤에서 태국 방콕에서 강연이 열립니다. 내일은 방콕에서 또 생생한 소식 전해드리겠습니다.nbspnbsp ▼nbsp법륜 스님의 세계 100회 강연, 지난 날짜 소식 보기
2014.12.3 세계 100회 강연(101) 말레이시아 콰알라룸푸르 Kuala Lump
안녕하세요. 오늘은 세계 100회 강연 중 101회째 강연이 말레이시아 콰알라룸푸르에서 열리는 날입니다.nbsp말레이시아는 인구가 약 2,500만 명으로 다민족 국가입니다. 여러 종교를 축으로 각각의 국민성을 지니고 있으며, 인구의 약 50는 말레이인인데 이들의 대부분은 이슬람교에 기반을 둔 계율을 따릅니다. 약 25는 말레이시아 화교, 중국계 말레이인 등으로 불리는 화교들입니다.대부분은 불교에 기반을 둔 계율을 따르며 광동어 등의 중국어 방언을 씁니다. 또다른 집단은 인구의 약 8를 차지하는 인도계로 대부분은 힌두교에 기반을 둔 계율을 따릅니다. 다민족 국가인 말레이시아에서 각각의 지역 사회를 형성하고 있으면서도 말레이시아만의 조화로운 공존을 보여주고 있습니다.nbsp▲ 말레이시아 콰알라룸푸르nbsp콰알라룸푸르는 말레이시아 연방의 최대 도시이자 수도입니다. 제2차 세계 대전 당시 1942년 1월 11일에 일본군이 쿠알라룸푸르를 점령하여 44개월 동안 통치하기도 했습니다. 쿠알라룸푸르는 1990년대 아시아 경제 성장 붐을 타고 연 10 대의 성장을 했습니다. 활기 없던 식민지 도시였던 쿠알라룸푸르에는 고층 건물이 세워지기 시작했고, 동남아시아에서 가장 활기차고, 진보한 도시로 거듭났습니다. 발전 계획 없이 커진 도심의 대부분의 도로는 비좁고, 복잡하며, 정체가 매우 심한 것 같았습니다. 한국 교민은 말레이시아 전체에 약 1만 5천명 정도가 살고 있다고 합니다.nbsp▲ 콰알라룸푸르의 상징인 페트로나스 트윈 타워, 세계에서 가장 높은 쌍둥이 건물이자 세 번째로 높은 건물입니다. 강연을 마치고 숙소로 가는 길에 지나갔습니다.nbsp오전7시 싱가포르 YMCA 숙소에 한인여성회 회장님을 비롯한 회원 분들과 박기태 영사님이 도시락을 들고 찾아와 숙소 로비에서 간단히 아침식사를 한 후, 8시 무렵 싱가포르 국제공항으로 출발했습니다. 한인여성회와 박기태 영사님은 공항까지 무사히 스님 일행을 배웅해 주셔서 공항에서 함께 기념사진을 찍고 감사의 마음을 전했습니다.nbsp오전10시 싱가포르를 출발한 비행기는 오전11시30분 말레이시아 콰알라룸푸르에 도착했습니다.nbsp입국 수속을 밟고 나왔지만 게이트에 아무도 마중을 나온 분이 없어 스님 일행은 잠시 당황했습니다. 게이트에서 터미널 출입문까지 왕복하며 마중 나오기로 한 분을 찾아보았지만 찾지 못했습니다. 다시 최초에 스님 일행이 나왔던 출구 앞으로 가서 1시간 정도를 기다리며 강연 담당자와 연락을 시도하고, 희망세상만들기 주황색 티셔츠를 들고 스님과 함께 공항에 서 있으면서 강연 담당자가 우리를 빨리 발견하기를 기다렸습니다.nbsp▲nbsp희망세상 티셔츠를 들고 강연 준비 담당자를 기다리는 스님 일행오늘 공항 마중을 나오기로 한 분들은 강연 주관 단체인 반야원 회원분들인데, 연락이 닿게 되어 원인을 알아보니 비행기 편명을 착각해 다른 공항 터미널에 가 계셨던 것입니다. 결국 공항 대기 1시간 만에 반야원 회원분들과 감격의 조회를 했습니다. 정은강 회장님을 비롯한 반야원 회원 분들은 스님을 뵙자마자 거듭 머리를 숙이며 “기다리게 해서 죄송합니다.” 라며 몸둘 바를 몰라 했습니다. 스님께서는 “괜찮다” 며 마음을 계속 달래주셨지만, 모두들 너무나 미안한 마음에 다들 식은 땀을 흘렸습니다.nbsp이렇게 한바탕 소동을 치르고 오후2시 무렵 공항에서 무사히 한국 사찰인 ‘반야원’에 도착한 스님께서는 법당의 부처님을 향해 삼배를 한 후 반야원 회원들과도 삼배로 인사를 나누었습니다. 스님께서는 “이렇게 식사 초대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라고 하신 후 함께 식사를 하셨습니다.nbsp연일 비행기를 타고 이동하다 보니 에어컨 바람을 많이 쐬었는지 스님께서는 감기 기운이 심해져 반야원 법당 한쪽 방에서 휴식을 취하셨습니다. 오후 5시 30분에 반야원을 출발해 오늘 강연이 열리는 한국 대사관으로 향했습니다.nbsp6시 20분부터는 주 콰알라룸푸르 대사관의 조병제 대사님이 다담 초대를 하셔서 대사관 관저에서 지역 인사 분들과 간단한 다담 및 환담을 나누셨습니다.nbsp▲nbsp스님을 반갑해 맞이해 주신 대사님대사님은 “인터넷으로 스님의 세계 100회 강연 소식을 많이 읽어보았다”고 하시면서 스님께 세계 100회 강연을 다니게 된 계기와 미국에서 외국인 강연도 많이 하셨는데 외국인들은 주로 어떤 질문을 하는지 등을 물어보셨습니다. 스님께서는 이번 세계 100회 강연을 다니며 일어났던 다양한 에피소드들을 말씀해 주셔서 모두들 관심있게 경청했습니다. 대사님은 스님의 115회 연속 강연에 대해 무척 놀라워하시면서 스님께서 마지막까지 무사히 강연을 마칠 수 있기를 기원해 주셨습니다.nbsp대사님 부부를 비롯하여 함께 자리한 유선규 한인회장님, 윤금주 부회장님, 한국국제학교 권병화 이사장님, 말레이시아 관광청 이진복 고문님, 대사관 윤창렬 공사님, 최용규 영사님, 그리고 반야원에서 정은강 회장님께 인생수업 책과 새로운 백년 책을 사인해서 선물해 드리고, 대사관 입구에서 다함께 기념촬영을 한 후 오늘 강연이 열리는 대사관 강당으로 대사님과 함께 이동하셨습니다.nbsp▲nbsp오늘 강연장, 주 콰알라룸푸르 한국 대사관 강당nbsp7시가 되자 오늘이 101번째 강연임을 알리는 사회자의 안내가 나가고, 조병제 대사님과 권병화 한국국제학교 이사장님의 환영 인사말씀이 있은 후 스님께서 무대에 오르셨습니다.nbsp오늘 콰알라룸푸르 강연에는 300여명이 자리해 빈 자리 없이 꽉 찼고, 강연장 뒤편에서 서서 강연을 들으셔야 하는 분들도 있었습니다.nbsp스님께서는 먼저 이른 저녁에 강연을 시작한 관계로 저녁을 드시고 오셨는지 청중들에게 물어보시며 강연을 시작하셨습니다.nbsp“안녕하세요. 저는 콰알라룸푸르에 오늘 처음 왔습니다. 다들 잘 살고 계세요? 저는 어제 저녁에 싱가포르에서 강연을 하고 오늘 낮에 콰알라룸푸르에 도착했고요. 조금 전에 대사님과 얘기 나누면서 김밥을 먹었습니다. 저녁 식사는 다들 하시고 오셨어요? 여러분들은 아직 저녁을 못 드신 분들도 있는 것 같은데요. 육신을 위한 식사는 그동안 많이 했으니까 오늘은 우리들의 정신, 마음, 영혼을 위한 양식을 먹어보도록 합시다.“ nbspnbsp강연 전에 손을 들어보라고 하면서 확인해 본 결과, 대부분 유튜브와 팟캐스트로 스님의 즉문즉설 강연을 매일 접하고 있으신 분들이 많아 즉문즉설에 대한 설명은 짧게 하고 곧바로 질문을 받기 시작했습니다. 총 6명이 스님께 질문을 했습니다.nbsp“저희가 살아가는 존재의 이유에 대해 여쭙고 싶습니다.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지 고민입니다. 길을 갈 때도 목적지가 분명하다면 혹은 우리가 가는 궁극적 길을 알 때 앞으로 계속 나아갈 수 있습니다. 우리가 가야할 목적지와 존재의 이유는 무엇인가요?”nbsp“어떻게 하면 불교를 전할 수 있을까요? 나는 불교가 좋은데, 이것을 다른 사람들에게도 전하고 싶습니다. 어떻게 하면 좋을까요?”nbsp“기독교 신자입니다. 우연히 스님을 알게되고, 불교에 대해 관심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스님 말씀을 통해 인생관과 신앙관에도 변화를 겪게 되었습니다. 스님 말씀에 자녀가 스무 살이 넘어가면 독립된 인격체이니 정을 떼라 하시는데, 구체적 문제 앞에 서면, 좋게 조언하려는 것이 나중에는 싸움으로 끝납니다. 예전에는 제가 윽박질러서 결국 이겼는데, 지금은 제가 울면서 끝이 납니다. 조언과 간섭 사이에서, 조언을 하고 싶으나 결국은 간섭인 것 같습니다. 중도를 어떻게 찾아야 하나요?”“기독교에도 진리가 너희를 자유케하리라 라는 말이 있습니다. 불교를 철학적으로 접근해 왔는데, 불법을 좀 더 공부할 수 있는 방법을 소개해 주실 수 있을까요?”“20대 때는 힘들어도, 열정을 가지고 하고 싶은 일을 하기 위해 최선을 다했는데, 30대에는 스트레스도 없고 사는 것은 편안한데, 하고 싶은 일에 대한 열정이 사라진 것 같습니다. 어떻게 하면 열정을 다시 찾을 수 있을까요? 저는 글을 쓰는 작가가 되고 싶습니다.”이렇게 다양한 질문에 대해서 스님께서는 2시간 30분 동안 정성껏 답변해 주셨습니다. 오늘은 그 중에서 자아실현과 가정의 행복 사이에서 고민하는 남성 분의 질문과 스님의 답변을 소개합니다. 남편 분과의 문답에 이어서 아내와의 문답이 이어지고 마지막에는 청중들의 의견까지 수렴하는 배심원 판결까지 갔고, 최종적으로 스님께서 생각하시는 조언도 들려주셨습니다. 이쪽 저쪽 상대편의 입장까지 모두 고려해보는 즉문즉설의 생동감을 그대로 느낄 수 있는 시간이 되었습니다.nbsp“일만 하며 살다가, 5년 전에 아이가 많이 아팠던 것을 계기로 쿠알라룸푸르에 와서 살게 되었습니다. 여기 와서는 제 일이나 개인적인 자아실현 등을 모두 포기하고, 아이만 돌보며 살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얼마 전에 제가 하고 싶은 일에 대한 제안을 받았습니다. 그런데, 그 일을 하려면 한국으로 가야 합니다. 쿠알라룸푸르에서 편하게 애들 잘 키우고 싶어 왔고, 아직 10년은 아이들을 더 키우고 아버지로서 살아야하는데, 개인적인 자아실현 등을 이유로 몇 년간 가족과 떨어져 살면서 제가 원하는 일을 하는게 맞는지, 지혜를 구하고 싶습니다.”“스님의 경우를 가지고 얘기해 보겠습니다. 질문자의 경우를 가지고 얘기하면 잘 못 알아 들을 수도 있으니까요. 남의 경우를 듣고 얘기를 해보면 판단이 빠르잖아요. 그죠? 그러면 스님이 지금까지 승려생활 사십 몇년을 해왔는데 갑자기 예쁜 여자가 나타나서 결혼을 요청했어요. 나도 마음이 움직여서 ’죽기 전에 결혼을 한번 해볼까?’ 그래도 이제까지 승려생활을 해왔는데 ‘지금 늙어가지고 무슨 짓인가?’ 이러면서 스님이 이 두 가지를 가지고 고민할 때 어떻게 하면 좋을까요? 질문자에게 상의하면 질문자는 어떻게 할래요? nbsp그냥 스님이 질문자에게 상담한다고 생각하고 본인 생각대로 한번 얘기해봐요.”nbspnbsp“둘 중에 저질렀을 때 나중에 후회가 덜할 것을 골라서 하라고 말씀을 드리고 싶습니다.”nbsp“본인이 볼 때 어느 것이 후회를 덜 할 것 같아요?”nbsp“결혼하는거요.” nbsp“질문자는 40년 승려생활을 안했으니깐 답이 금방 나왔는데요. 40년 이상 승려생활을 한 사람한테는 그렇게 답이 금방 나오기가 굉장히 어려워요. 그리고 만약에 이런 문제를 가지고 혼자서 고민할 때 여기 청중들한테 조언을 구해봅시다. ‘결혼 한 번 해보세요. 승려생활 40년 그거 뭐 중요해요?’ 하고 생각하는 사람 손 한번 들어봐요. ‘그냥 마 참으세요’ 하는 분 손 들어봐요. 자, 이것 봐요. 차이가 나지요. 나중에 손 든 사람은 주로 불교신자일 거예요. nbsp그러면 또 이런 경우를 한 번 생각해봐요. 스님이 승려생활을 30년 했는데 저희 부모님이 ‘너 결혼해라’ 이렇게 얘기해요. 그럴 때 제가 안하겠다고 하니까 ‘그럼 너 나 죽는꼴 보고싶니? 만약에 너 안나오면 나 그냥 약 먹고 죽겠다’ 이렇게 저한테 문제제기를 했어요. 이렇게 할 때 내가 어떤 선택을 해야 할까요? 승려생활을 하면 부모가 돌아가실 것 같고, 부모 돌아가신다고 해서 결혼을 해버리면 내가 추구하던 꿈이 다 없어질 것 같아요. 이럴 때 질문자는 어떤 결정을 했으면 좋겠어요? 이것은 굉장한 딜레마예요. 여러분들은 세속적인 딜레마가 있지만 우리도 딜레마가 있어요. 어떨까요? 질문자 얘기 한번 해봐요.”nbsp“몰래 결혼을 하고 승려생활을 하겠습니다.” nbspnbsp“양다리 걸쳐라 그말이네요. 자 이런 얘기를 들어보면, 스님들 중에 비공식적으로 결혼해서 사는 소위 은처승이라는 사람이 있다는 얘기 들었죠? 그런 분들 이해되요? 안되요? 여러분들 앞으로 이런 스님을 욕하지 마세요. 질문자 얘기처럼 어머니는 안 돌아가시게 해야하고, 승려생활도 해야하고 하니까, 그럼 비공식적으로 결혼을 해서 부모님부터 우선 살려놓고 보자 이런 아이디어를 내잖아요. 그러니 그런 은처승 중에는 이런 문제가 있는지도 모른다 이런 얘기예요. 또 아까 앞의 경우처럼 한번 결혼해봐야겠다 한다면 유명한 스님이 속퇴해서 결혼했다 할 때 함부로 욕하면 안되요. 그 사람도 또 그런 고뇌가 있었을 수도 있기 때문이에요. 그런데 사람이 자유롭게 살기 위해서 그리고 솔직하게 살기 위해서 출가해서 사는데, 그 은처승은 숨어서 들통날까봐 늘 조마조마하면서 살아야 되잖아요. 그러면 그렇게 조마조마하게 살면서 승려 생활을 할 필요가 뭐가 있어요? 우리가 종교를 갖는다는 것은 좀 더 자유롭고 행복하기 위해서인데, 남으로부터 훌륭한 스님이라는 소리도 듣고 부모님도 모시고 살지만, 결혼했다는 것이 폭로가 되면 내 인생 망신 사잖아요? 그렇게 불안, 초조하게 살 필요가 있느냐 하는 거예요. 이런 삶이 앞에서 솔직하게 승복 벗고 나가서 결혼하는 것보다 사실은 더 불행을 자초할 가능성이 있잖아요.nbsp그런데 질문자가 결론 내리는 것을 보면 nbsp지금 본인 문제를 nbsp결론내릴 때도 좀 어렵겠어요. 스님이 왜 물어봤느냐 하면 질문자가 어떤 생각을 하느냐 하는 문제이거든요. 그러니까 질문자는 나이도 얼마 안되는데 아이가 아프다고 은퇴를 왜 하느냐? 이것부터 잘못 선택한 거예요. 아이한테 시간을 좀 더 많이 투자하면 되지, 은퇴를 해가지고 완전히 인간 관계를 끊고 가정일에만 집중하겠다 이런 선택은 너무 치우쳤다는 거죠. 그 전에는 너무 일에 치우쳐 가지고 가정이고 뭐고 그저 돈버는 데만 집중하다가 아이가 덜컹 아프다고 하니 ‘아이고 내가 헛살았구나’ 해가지고 이번에는 일을 확 버리고 아이하고 같이 산다고 여기와서 아이 하고만 붙어 있잖아요. 돈 버는게 극단이면 여기 온 이 선택도 극단이 되는 거예요. 또 이렇게 살다보니 질문자는 아직 나이도 젊은데 세상하고 완전히 단절하고 사니깐 어떤 생각이 드나요? 자식이나 아내를 위해서 나를 완전히 희생하는 것 같잖아요. 그런데 나도 내 인생이 있잖아요. 그러니까 기회가 오니까 또 저쪽으로 갈려고 그러잖아요. 그럼 그렇게 해서 자기 일을 성취하다가 아이가 덜렁 죽어버리거나 아내가 ‘당신은 약속을 안 지킨다’고 하면서 이혼을 요청하면 질문자는 어떻게 할래요?”nbspnbsp“지금 저의 집사람이 여기에 와 있어요.”nbspnbsp“어떻게 할래요? 집사람 여기 있는 것 따지지 말고요. ‘나는 이 길을 가야하니 이혼해 달라고 해도 할 수 없다’ 이렇게 딱 결심이 섰어요?”nbspnbsp“아니요.”nbsp“그런데 그렇게 요구하면 어떻게 할래요? 그러니까 이것도 너무 극단적으로 생각을 해요. 둘 중에 하나를 선택해야 된다고 자꾸 이렇게 생각할 필요가 없어요. 중도라는 것은 극단에 치우쳐서 이것 아니면 저것, 저것 아니면 이것, 이렇게 하지 않는 것입니다. 조금 전의 질문자도 간섭을 해야 하느냐 외면을 해야 하느냐 이렇게 하는 것이 극단이란 말이예요. 간섭도 하지말고 외면도 하지말고. 집착을 안하면 이 두 모습이 다 극복이 돼요. 간섭도 안하고 외면도 안하게 돼요. 간섭하고 외면하는 것은 정반대인데 사실은 같은 거예요. 그래서 속박을 받는 거에요. 이것하면 저게 문제이고 저거하면 이게 문제이고요. 그러니까 질문자는 사업에도 한번 집중해 보았고 가정에도 집중해 보았는데 이것은 이것대로 문제고, 저건 저것대로 문제인 거예요. 사업에만 집중할 때는 내 인생은 되는데 가정의 가치를 훼손하고, 가정에만 집중하니까 가정의 가치는 되는데 내 인생이 훼손되고요. 그러니 이 둘 다가 아니구나. 그러면 여기서 조화를 이루는 방법은 뭘까? 자기 일도 하고 가정에도 충실한 그런 일을 해야 되겠지요. 사고가 너무 극단적으로 치우치면 안 돼요. 지금 사고가 너무 극단적이라는 거예요.nbsp아까처럼 은처승, 결혼도 하고 승려생활도 하고, 이런 방식을 욕심이라고 해요. 이것은 중도가 아니고 욕심이예요. 둘 다를 잡을려고 하기 때문에 이런 문제가 생기는 거예요. 그러니 질문자가 내 인생을 실현해야 되겠다 딱 결정을 하게 되면, 아내가 이혼하겠다 해도 이 길을 갈 것이다, 아이가 죽어도 어쩔 수 없다, 이렇게 결심을 해야 돼요. 즉 내가 승려생활을 할려면 부모님이 돌아가신다 해도 어쩔 수 없다, 돌아가시면 장례는 치뤄드려야지, 이 정도로 생각해야 돼요. 굉장히 독하죠? 이렇게 해야 이 길을 갈 수 있어요.nbsp그 다음에 내가 결혼을 하겠다고 결론을 내면 그 사십년 동안 승려생활을 하면서의 명예 이런 것들은 다 포기를 해야 해요. 움켜쥘려면 안되요. ‘신도여러분, 그동안 저를 지지해줘서 감사합니다. 그런데 제 수준이 여기까지 입니다. 저도 이 길로 갈 수 밖에 없습니다. 혹시 제가 승려생활을 하면서 시건방을 떨었다면 죄송합니다.’ 이렇게 하고 그냥 결혼생활로 돌아가서 그냥 평범한 신자로 돌아가주면 됩니다. 그렇게 질문자가 선택을 해야 돼요. 그러면 신자로 돌아가도 승려로서 내가 가진 경험을 승려로서가 아닌 신자로서 주위에 전하면 승려못지 않은 역할을 할 수가 있어요. 또 승려생활을 포기하지 않으면 어머니가 돌아가셔도 내가 어머니를 위해서 천도재도 지낼수 있고 장례도 치뤄줄 수 있고 할 게 많이 있잖아요. 그러니까 자기가 회사 일을 결정하면 가족의 문제에 대해서 포기해야 돼요. 두 개를 다 움켜쥘려면 은처승의 길을 가게 되죠. 그러면 양쪽 다 망해요. 그러니까 가족하고 의논해서 하는 것이 제일 좋지요. 그런데 지금 그 일을 할려면 가족을 여기에 두고 가야해요? 데리고 가야해요?“nbspnbsp“가족을 여기 두고 가야 합니다.”nbsp“그러면 그것은 올바른 선택이 아니예요. 그건 곧 후회할 일이예요. 가족하고 같이 안 살려면 자기가 이혼을 해서 부인이 좋은 남자를 만날 수 있도록 길을 열어 주어야지요. 무슨 그런 해괴한 생각을 해요? . 그러니까 돌아갈려면 부인하고 의논해서 아이들을 다 데리고 한국으로 들어가야 돼요. 아이들은 여기 남아있고 나만 들어가는 것은 아까 은처승 길처럼 양쪽을 다 쥘려는 거예요. 그러니까 부인하고 의논해서 아이들 같이 데리고 한국에 들어가서 내 기회를 잡되 지금까지처럼 집을 버리는 행동을 하지 말고 항상 가정을 중요시하면서 회사 일을 하는 기회를 잡고, 내가 그렇게 하는 것을 아이나 가족이 동의하지 않으면 그 기회는 내 것이 아니예요.nbspnbsp그러니까 제일 좋은 것은 부인하고, 아이들하고 의논하는 거예요. 그런데 ‘너는 여기 있고 나는 가고’ 이런 선택을 하면 안 돼요. 이것은 양쪽을 다 쥘려는 욕심이예요. 그러니까 ‘이런 기회가 왔는데 어때요?’, ‘아, 여보, 당신 한번 해보세요. 우리 같이 살면서 한번 해보자’ 그러면 돌아가고, ‘여보, 아무리 좋아도 우린 그렇게 못해요’ 하면 그것은 내 것이 아니예요. 제안이왔다고 내 것이라고 생각하면 안 돼요. 거기에는 아무 미련을 갖지말고 버리고 나중에라도 부인한테 ‘그 좋은 기회가 왔는데 너희들 때문에 내가 못했다’ 이런 생각을 하면 안되요. 그것은 내 것이 아니예요. 그것은 낚시밥이고 쥐약이예요. 그것은 버리고, 여기 있으면서 사람하고 인간관계를 단절하고 살지말고 여기서 가정을 이루면서 여기 나름대로 직업을 가지고 직장을 가지고 이렇게 한인회 활동도 하고 이렇게 생활을 하면 돼요.nbspnbsp부인이 여기에 왔다니까 한번 얘기를 들어보죠. 그냥 얘기해봐요. 괜찮아요. 창피하게 생각하지 말고요.” nbsp“네. 저희 신랑이 그 얘기를 처음 했을 때, 저는 아이들과 남고 신랑 혼자 가라고 했거든요. nbsp그런데 스님 말씀을 들어보니까 다시 한번 진지하게 저희 신랑이랑 얘기해보고 결정을 하겠습니다.”nbsp“그런데 이거는 안 돼요. 신랑은 가고 나는 여기에 있는 거요. 남편이 군대를 갔다. 남편이 전쟁에 나갔다. 남편이 한 30년 전에 사우디아라비아에 갔다. 그런데 거기에는 동행하기가 불가능하잖아요. 그죠? 이럴 때는 떨어져서 사는 것도 어쩔수 없기 때문에 선택할 수 밖에 없는 방법인데, 돈벌이가 더 잘된다고 아내 남겨놓고 간다든지, 돈벌이가 더 잘 된다고 남편보고 가서 돈 좀 벌어오라고 하는 이것은 인생의 제일의 가치가 돈이 되기 때문에 이것은 돈의 노예가 되는 거예요. 그렇게 하면 가정은 불행을 자초합니다. 우리는 결혼을 했으니까 함께 살아야 된다, 이게 딱 첫째 원칙이고, 그런데 내가 여기 살아야 되고, 자녀가 이런 문제가 있다면 남편은 나한테 온 기회라고 다 기회라고 생각하면 안 돼요. 스님한테 예쁜 여자에게서 청혼이 들어왔다면 그것이 기회가 아니고 쥐약일 수 있다는 거예요. 그러니까 본인은 지금 어때요? ‘남편에게 좋은 기회가 주어졌으니까 내가 한국에 따라가서 살면서 한번 같이 해보자’ 이런 생각이 있어요?”nbspnbsp“없어요. 우리 신랑은 한국에 가서 좋은 일 하고 저는 여기서 아이들 잘 키우고 한달에 한번씩 만나는 것도 나쁘지 않겠다 생각해요.”nbspnbsp“별로 같이 살고 싶지가 않군요. ‘너는 돈이나 벌어 다 주면 된다, 너 할일이 뭐고? 돈이나 벌어다 주면 되지’ 이 얘기네요. ‘나 여기서 생활할 돈만 보내주면 너 같은 것은 없어도 된다’ 지금 이 얘기네요. 솔직하게 얘기해봐요. ‘그래요. 저 인간은 돈만 벌어다 주면 돼요. 심심한데 한달에 한번씩 와서 그냥 나를 외롭지 않게만 해주면 된다’ 이 얘기 맞죠? 아니예요?”nbsp“같이 살면 가장 좋은 방법이기는 하지만 저희 신랑이 지금까지 여기서 살면서 많이 힘들어 하는 부분도 제가 알기 때문에 서로 각자 있는 것도 좋을 것 같아요. 그런데 신랑이 저희랑 같이 여기서 생활하는 것이 가장 좋은 방법이죠.”nbspnbsp“그래요. 그러면 신랑이 큰 돈 안 벌어도 되고 작은 돈 벌어도 되고, 내가 예를 들어 신랑이 한국에 가면 한달에 천만원 벌고, 여기 있으면 한 달에 이백만원 밖에 못번다고 하면, ‘너 천만원 벌어서 나한테 팔백만원 보내주고 너하고 떨어져 살아도 좋다.’ 이런 가치를 취할 것인가? 아니면 ‘같이 살면서 이백만원 밖에 못 벌면 집이 조금 작아도 괜찮고 먹는게 좀 작아도 괜찮으니 우리 같이 사는 게 좋겠다’ 이런 생각이예요?”nbsp“남편이랑 같이 살고 싶습니다.”nbsp“그러면 ‘너는 가라’ 이런 소리는 하면 안되지요. nbsp‘너는 가라’ 이 소리는 ‘너 돈이나 벌어 오너라’ 이 소리와 똑같아요. 그러니 솔직해야 돼요. 그러니 ‘여보, 당신이 가서 출세하고 돈 많이 버는 것도 좋은데 그게 나한테는 행복은 아니예요. 당신한테 행복이라고 당신이 선택하면 어쩔 수 없지만은 나한테는 행복이 아니예요. 돈을 조금 적게 벌어도 내가 감내 할께요. 그러니까 우리 여기서 같이 살았으면 좋겠어요’, 아니면 기꺼이 한국으로 돌아가서 남편에게 이런 기회가 왔으니까 ‘여보, 여기도 좋지만은 돌아가서 당신 이상을 한번 실현해봐요. 내가 가서 살겠어요.’ 이렇게 딱 자발적 포기를 하든지요. 안 그러면 내 의사를 좀 더 분명히 얘기해요. 이렇게 어중간하게 타협하면 안되요. 지금처럼 ‘당신 좋다니 당신 좋은대로 살고 나는 나 좋은대로 살고’ 이렇게 할 때는 이미 결혼 생활의 절반은 금이 간 거예요.nbsp그러면 남자가 한국 가서 돈 벌고 지위도 높아지고, 그러다가 외로우면 여자가 생길까요? 안생길까요? 남자가 바람핀다는 그런 뜻이 아니라. 부인과 같이 오밀조밀 재미있게 살 때는 여자가 오더라도 한 눈이 안팔아지는데, 이렇게 떨어져서 오래 살고 있는데 외로우면 사람 생각이 바뀐다는 거요. 자기도 옆에서 이 사람 저 사람 지나가면서 눈독 들이는 사람이 생길까요? 안생길까요? nbsp따로 살면 반드시 파탄난다는 얘기를 하는 것이 아니라 같이 살 때 보다는 일단 확률이 높아요. 그러니까 그것을 분명히 해서 본인이 선택을 해야해요. 남편의 꿈을 조금 키워주고 자기도 같이 살려면 자기가 여기 생활을 포기하고 한국으로 돌아가야 하고, 자기가 여기 생활과 아이들이 더 중요하다면 남편에게 그것을 확실하게 얘기를 하세요. ‘갈려면 가라’ 이렇게 얘기를 하지 말고요.nbsp각자가 모두 나는 여기 죽어도 있어야 되고, 죽어도 가야 되고 이럴 때는 위험이 높아진다는 거예요. 헤어질 위험이 높아질 각오를 해야 됩니다. 오늘 집에 가서 한번 협의해 보시겠어요? 오늘 스님하고 얘기하면서 어떤 생각이 들었어요? 소감을 한번 얘기해봐요.”nbspnbsp“오늘 밤에 다시 한번 좀 더 깊이 생각을 해보고요. 좀 더 진중하게 생각을 해볼께요. 저도 신랑이랑 가족이랑 같이 말레시아에서 생활을 했으면 하는 바램이 가장 크구요. 잘 알겠습니다.”nbsp“어떤 선택이 좋으냐 이런 것은 없습니다. 선택은 3가지가 있는데, 그 3가지 선택에 따르는 각각의 결과가 이미 눈에 보입니다. 나중에 후회하면 안된다는 거예요. nbsp감수해줘야 합니다. 그러니까 그 감수를 안할려고 하니 어느 것이 나을까 자꾸 고민을 하게 돼요. 고민을 할 필요는 없어요. 침을 딱 튀겨서 아무거나 선택해도 돼요. 돈을 빌리면 갚아야 되고, 갚기 싫으면 빌리지 말아야 되는 것처럼 선택이 지금 3가지가 있어요.nbspnbsp하나는 여기 사는 것, 그랬을 때 결과는 이런 결과가 나와요. 여기 사는 선택을 하면 남편이 계속 살면서 자기 기회를 잃었다고 이런 생각을 하겠지요. 그러면 자기가 그런 것을 조금 감수하고 그럴 때는 ‘여보 미안해요. 나 때문에 당신 꿈을 실현 못해서 미안해’ 이렇게 등 두드려 줘야 해요. 남편은 ‘그게 아내 탓이 아니고, 그건 본래 내 것이 아니다’ 라는 것을 알고 버려줘야 해요. 그런데 남편은 ‘거기에 갈 걸’ 하고 꽁해 가지고 있고, 아내는 ‘당신이 쓸데없는 생각을 하고 있다’ 이렇게 하고 있으면 이제 같이 있어도 갈등이 더 생기게 돼요.nbspnbsp그 다음에 한국으로 따라가면 이제 아내가 불평을 해요. ‘내가 당신 때문에 여기에 따라와서 이 고생을 한다. 애도 문제다.’ 이렇게 자꾸 투덜거리면 남편이 이 때는 ‘여보 미안해요. 나 때문에 당신이 고생해요’ 이러고 다독거려서 가면 되는데, 본인 일에 빠져가지고 아내가 어떤 고민을 하는지 생각을 안하면 갈등이 더 생길 수가 있어요. 그다음 둘이서 ‘나는 여기에 있고 싶으니 여기 있고, 당신은 가고 싶어 하니 가거라’ 이렇게 되면 또 그에 따르는 제 3의 결과가 나타날 소지가 있어요. 그래서 그것은 어느 것이 좋으냐가 아니고, 각자 3가지의 선택에 대한 결과가 있는 것을 미리 알고 자기가 선택을 해야지, 그냥 선택하면 좋아지겠거니 이렇게 생각하면 나중에 불행을 자초하게 됩니다. 자, 그러면 마이크를 본래대로 남편에게 얼른 가져다 주세요. 결론은 질문자가 내면 되는데 질문자는 여기에서 있었던 대화를 가지고 어떤 생각을 하세요?”nbsp“생각해야 할 것들이 명확해진 것 같습니다. 그런데 그 중에서 어떤 결정을 해야 할 지는 좀 더 얘기를 해봐야 알 것 같습니다.”nbspnbsp“제가 지금 두 사람 얘기를 들어보면 두 사람 다, 한 사람은 여기 있고 싶다는 것을 포기 안하고 끝까지 생각해보겠다고 하고 있고요. 질문자도 가겠다는 것을 딱 포기 안해버리고 생각해보겠다고 하고 있네요. 미련을 둘 다 가지고 있는데, 있고 싶다는 미련과 가고 싶다는 미련을 못 버리고 있다는 얘기예요. 그러니 집에 가서 의논을 해봐야 결론이 잘 안날 것 같네요. nbsp왜냐하면 진실이라는 것은 명확하기 때문에 금방 얘기를 듣는 순간에 ‘아 내가 잘못 생각했구나’하고 탁 교통정리가 되어야지, 지금 그것이 안되고 있다는 것은 각자 있고 싶은 것과 가고 싶은 것에 너무 사로잡혀 있기 때문에 이렇게 결론이 안나는 거예요. 그럼 현재 상태에서 스님이 볼 때는 어떤 결론이 날 확률이 높냐면 따로 따로 갈 확률이 제일 높아요.nbsp그렇다면 여기 청중들하고 다시 얘기해봐요. 도움이 될 겁니다. 세 가지 결정이 있어요. 하나는 남편이 자기의 이상을 잃더라도 여기 있는게 낫겠다 하는 것 하고, 하나는 아내가 따라가는 것이 낫겠다. 또 하나는 각자 한번 있어보는 게 낫겠다. 셋 중에 투표를 한번 해봐요. 배심원이라고 생각하고 재판을 한번 해줘요.1번, 남편이 가고 아내도 따라가는 것이 좋겠다고 생각하는 사람 손들어 보세요. 내리세요.2번, 아내가 여기 있는데 남편이 가능하면 아내와 같이 이곳에 있는게 낫겠다 생각하는 사람 손들어봐요.nbsp3번, 따로따로 가는 게 좋겠다. 생각하는 사람 손들어봐요.nbspnbsp남자편을 많이 드네요. 왜 그럴까요? 판정이 부인한테 좀 불리하게 되었어요. 그런데 이것은 다수결로 할 수 없는 거예요. 아시겠어요? 저도 주위사람이 스님 되지 말라고 했어요. 내 주위에 있는 모든 분, 가족도, 친구도, 선생님도 반대했지만 그래도 결정을 해서 이렇게 살잖아요. 그러니 이것은 다수결로 할 수 있는 것은 아니예요. 두 사람이 협의를 잘 해보세요. 스님이 마지막으로 조언을 해준다면, 배심원과 판사의 판결이 균형을 맞추어야 하니 아내 뜻을 더 깊이 진지하게 고려해봤으면 좋겠다 이렇게 말씀을 드립니다.”nbsp“네, 감사합니다. 스님.” nbspnbsp처음에 남편의 이야기만 들었을 때와 그 다음에 아내의 입장을 들었을 때를 함께 비교해보니 조금 더 시야가 넓어지고 미처 고려하지 못했던 요소들을 생각하게 되는 경험을 가졌던 것 같습니다. 스님께서는 한쪽 측면에서만 보던 질문자의 시각을 반대편에서도 보게 하고 위에서도 보게 하고 아래에서도 보게 하는 등 다양한 측면을 보게해서 균형잡힌 생각을 하도록 이끌어주고 계셨습니다. 그 모습에 잔잔한 감동이 있었습니다.nbsp6명의 질문에 모두 답을 마친 후 마지막으로 스님께서는 나도 좋고, 남도 좋고, 지금도 좋고, 나중도 좋은 것이 진리라고 하시면서 이렇게 닫는 말씀을 해주셨습니다.nbsp“오늘 우리가 이렇게 인생의 고뇌를 얘기했는데, 그래도 재미있잖아요? 어제는 자살하겠다는 사람하고 스님이 대화하는데 사람들이 배꼽을 잡고 재미있어 했어요. 그러니 우리 인생이 한쪽에 마음이 사로잡히면 꼭 죽어야 될 것 같고 괴로울 수 밖에 없는데, 관점을 바꿔놓고 보니까 별 일 아니지요? ‘아, 내가 너무 좁게 생각했구나’, ‘크게 생각해보니 사실 별 것 아니구나’ 라는 것을 알게 됩니다. 결혼해서 살아보니 어때요? 꼭 이 남자 아니면 안되었을 것 같아요? 다른 남자와 살아도 별 문제 없었을 것 같아요? 사실은 다른 남자, 다른 여자와 살아도 큰 문제 없어요. 내 마음에 꼭 맞아야 된다고 생각하면 천하에 어떤 사람을 만나도 거기에 맞는 사람은 없고, 내가 적당히 맞춰서 살겠다고 하면 길 가는 아무하고나 살아도 괜찮아요. 그런데 여러분들은 내 마음에 꼭 드는 사람을 찾으려고 하니까 힘든 거예요.nbsp하지만 이만한 남편, 이만한 아내가 이 세상에 없어요. 지금 귀한 줄 알고 살아야 합니다. 그러다가 갑자기 사고가 나서 죽으면 또 다른 남자, 다른 여자와 같이 살면 됩니다. 같이 살 때는 ‘너만이 나의 행복’이라고 생각하고 살고, 돌아가거나 헤어지면 ‘너 없어도 나는 잘 산다’ 이렇게 되어야 인생이 행복해질 수가 있습니다. 혼자 있으면 자유로워서 좋고, 같이 있으면 같이 있어서 좋고 그래야 합니다. 그런데 우리는 혼자 있으면 외로워서 못 살겠고, 같이 있으면 귀찮아서 못 살겠고 이럽니다. 인생을 그렇게 힘들게 살 필요가 없어요. 오늘 우리가 이렇게 괴로운 문제를 웃으면서 얘기했다는 이 말은 인생살이가 원래 이렇게 괜찮은 것이라는 뜻입니다.nbsp나도 좋고 남도 좋아야 이 행복이 오래 지속될 수 있습니다. 즉 일시적 기쁨을 ‘즐거움’이라고 하고 지속적 기쁨을 ‘행복’이라고 합니다. 순간의 기쁨은 행복이 아닙니다. 기쁨이 지속가능할 때 우리가 행복이라고 부릅니다. 행복하기 위해서는 너도 좋고 남도 좋은 지금도 좋고 나중도 좋은 길을 가야 합니다. 그런 면에서 남을 위해서 나를 희생해도 안되고, 나의 이익을 위해서 남을 손해끼쳐도 안됩니다. 지금 행복해야 합니다. 행복하시기 바랍니다.”청중들의 우레와 같은 박수갈채가 쏟아집니다. 어느덧 강연을 시작할 때보다 마음이 가벼워져 있고 기쁨이 생겨납니다. 스님께 감사한 마음이 올라옵니다. 오늘따라 청중들의 박수갈채가 떠 크고 길게 들려오는 것 같습니다.nbsp강연을 모두 마치고 무대 위에서 곧바로 책 사인회가 진행되었습니다. 강연 내용이 너무 좋았는지 책은 완판이 되고, 없어서 못 산 분들이 너무 많았습니다.nbsp그리고 강연장 곳곳에서 역할을 맡아 수고해준 봉사자들 모두가 모여서 기념촬영을 하였습니다.nbsp먼저 인터넷과 SNS를 통해 스님의 말레이시아 강연 소식을 듣고 자원봉사를 신청한 분들이 많았습니다. 그 중에서는 학생들이 많았는데, 함께 마음나누기를 하지는 못했지만, 기념사진을 같이 찍었습니다.nbsp이어서 오늘 행사를 주관한 반야원 신도님들이 스님과 함께 사진을 찍었습니다.nbsp봉사해주신 모든 분들에게는 한국에서 가지고 온 단주를 스님께서 손목에 직접 끼워주셨습니다. nbsp특히 강연 준비를 애써주신 네 분은 스님과 함께 별도로 더 사진을 찍었습니다.nbsp▲오늘 강연을 준비해 주신 반야원 임원진 분들.nbsp최민숙님,nbsp박연희님,nbsp정은강님,nbsp최정숙님행사장 뒷정리를 모두 마친 봉사자들은 다함께 모여서 묘덕법사님과 마음나누기를 하였습니다. 한 분은 “스님께서 매일 고생하시며 돌아다니시는 것이 저희들에게는 큰 힘이 되는 것 같다”며 감사한 마음을 전했고, 또 한 분은 “정토회가 굉장히 기획력도 좋고 조직적이라는 것을 많이 배웠다”고 하였고, 또 “반야원은 10년 되었지만 부족했는데 법륜 스님을 보고 지도자에 대한 갈구를 느끼게 되었다” 고 얘기하신 분도 있었습니다. 또한 “스님이 오신 덕분에 반야원이 단합하는 계기가 된 것 같다”고 하였습니다.nbsp강연 책임을 맡은 최정숙님은 “콰알라룸푸르 교민들을 대상으로 한 이런 강연을 통해 반야원도 좋은 일에 함께 동참해서 기뻤다”고 합니다. 그리고 “모니터와 사진으로만 뵙던 스님을 직접 뵈었다는 것만으로도 너무 감동적이고 기뻤다” 고 합니다. 학생 봉사자들 운영을 맡으신 분은 “학생들이다보니 조금 우왕좌왕했지만 각자 역할에서 다들 보람을 느끼는 모습을 보면서 흐뭇했다” 고 합니다. 한 분은 “오늘 예배가 있는 교회도 많았는데 종교를 넘어서서 이렇게 많은 분들이 모인 것은 너무 흡족한 일이다” 고 하며 보람있어 했습니다. 한 분은 “2년 전에 싱가폴에서 뵈었을 때보다 많이 야위워서 스님의 건강이 걱정되었다”고 하면서 “그럼에도 불구하고 2시간 넘게 강의해 주신 것에 큰 감동을 받았다”고 하였습니다.nbsp스님께서는 곧바로 오늘 숙소인 윤금주 한인회 부회장님 댁으로 이동하셨습니다. 윤금주님은 외국인 남편 피터씨와 함께 살고 계셨는데, 피터씨도 스님을 반갑게 환영해 주었습니다. 스님 일행을 위해 정성껏 다과를 준비해 주시고 내일 새벽에는 식사도 제공해주실 예정입니다.nbsp▲nbsp숙소를 제공해주신 윤금주님 한인회 부회장님과 남편 피터씨스님께서는 다과 후 원고 교정을 늦게까지 보시다가 휴식을 취하셨습니다.nbsp오늘도 이렇게 많은 분들의 정성 덕분에 101번째 콰알라룸푸르 강연도 잘 마쳤습니다. 내일은 다시 비행기를 타고 미얀마로 갑니다. 미얀마에서 또 소식 전해드리겠습니다.nbsp▼nbsp법륜 스님의 세계 100회 강연, 지난 날짜 소식 보기nbsp
2014.12.2 세계 100회 강연(100) 싱가포르 Singapore
nbsp안녕하세요. 오늘은 세계 100회 강연 중 100번째 강연이 싱가포르에서 열리는 날입니다. 지난 8월26일 프랑크푸르트에서 시작한 강연이 오늘 12월2일 드디어 100회째를 맞이하였습니다.nbspnbsp스님께서는 매일 1개 도시를 쉼없이 달려왔습니다. 어떤 날은 2번의 강연이 있는 날도 있었고, 어떤 날은 차를 타고 1000km를 달린 날도 있었고, 어떤 날은 비행기가 연착되어 강연장에 늦게 도착한 날도 있었습니다. 무엇보다 유럽 강연을 마치면서는 스님의 건강이 악화되어 세계 100회 강연이 중단될 위험에 놓이기도 했습니다. 온갖 고생 끝에 오늘 100회에 이르렀다고 생각하니 감회가 새롭고 가슴이 벅차오르기도 합니다.nbspnbsp그러함에도 불구하고 오늘 싱가포르에서 열린 100회 째 강연은 평소와 다름 없이, 여느 강연 때와 마찬가지로, 소박하게 진행되었습니다. 마치 금강경에 나오는 부처님의 탁발 모습이 그 모습 그대로 이듯이 말이죠.nbspnbsp오전7시 자카르타 강연 준비 담당자인 김지영님이 정성껏 차려주신 음식을 감사히 먹고, 7시30분에 숙소를 나왔습니다. 9시 무렵 공항에 도착하여 출국 수속을 밟고 11시 25분에 싱가포르로 가는 비행기에 몸을 실었습니다. 저가 항공사여서 그런지 의자가 뒤로 넘어가지도 않고 앞사람과의 간격도 좁아서 불편하긴 했지만, 스님께서는 비행기 안에서 잠깐의 휴식을 편안히 취하셨습니다.nbspnbspnbsp비행기는 오후1시에 싱가폴 공항에 도착했습니다. 공항에는 오늘 싱가포르 강연을 주관한 한인여성회 유현숙 회장님을 비롯한 여성회 회원분들과 천종후님, 주 싱가포르 한국대사관에서 박기태 영사님이 함께 마중을 나와 스님을 반갑게 맞이해 주셨습니다.nbspnbsp▲ 공항 마중을 나와 주신 싱가포르 한인여성회 분들과 박기태 영사님, 천종후님.nbspnbspnbsp공항에서 곧바로 오늘 강연이 있는 YMCA 건물로 이동했습니다. 이동하는 차 안에서 박기태 영사님은 스님과 싱가포르 전반에 대한 대화를 나누셨습니다. 영사님은 싱가포르의 정치, 경제, 인구, 문화적인 면에서 포괄적인 안내를 해주셨습니다. nbspnbsp싱가포르는 동남아시아, 말레이 반도의 끝에 위치한 섬나라이자 도시 국가입니다. 1963년에 말레이시아 연방의 일원으로 영국으로부터 독립하였으며, 1965년에 말레이시아 연방 정부와의 다툼 끝에 결국 연방을 탈퇴하여 독립국가가 되었습니다. 내년은 독립 40주년이 되어서 도시 곳곳에서 큰 행사가 열릴 예정이라고 합니다.nbspnbspnbspnbsp1990년까지 리콴유 수상의 장기 집권 기간 동안 놀라운 경제성장을 이루어 홍콩에 버금가는 경제력을 가지게 되었고, 1990년에 고촉통이 수상직을 승계하였으며, 2004년에는 리콴유 전수상의 큰아들인 리셴룽이 3대 수상으로 집권하고 있습니다. 1959년부터 현재까지 리콴유가 이끄는 보수주의 정당인 인민행동당이 집권하고 있고, 야당이 존재하기는 하지만 여당의 장기집권과 강력한 정권의 힘으로 존재가 미미한 편이라고 합니다. 이 때문에 공산주의 국가나 사회주의 국가보다 더 강력한 독재국가로 보는 시각도 있습니다.nbsp▲nbsp싱가포르의 다운타운nbsp중국계가 전체 인구의 77를 차지하며, 말레이인이 14로 두번째로 많다고 합니다. 그 밖에 영연방 출신인 인도인 등의 여러 민족이 거주하고 있습니다. 지속적인 경제성장을 위해서 국가에서 이민을 장려하고 있으며, 한 해에 태어나는 싱가포르의 아기보다 이민으로 유입되는 새로운 시민의 숫자가 더 많습니다. 외국인을 위한 우대 정책이 잘 되어 있는 반면에 내국인들의 이에 대한 반발감도 큰 편이라고 합니다. 그야말로 다민족 다문화 특징을 잘 보여주는 곳인 것 같습니다. 그러나 경쟁 교육과정이 심해 학교 생활에서의 스트레스 정도가 매우 높은데, 마치 카스트제도처럼 초등학교 성적이 평생을 좌우하게 될 정도라고 합니다.nbspnbsp▲nbsp오늘 강연장 YMCAnbspYMCA 건물 1층 대강당이 오늘 강연이 열리는 장소이고, 건물 7층이 오늘 스님 일행이 머물 숙소입니다. 특히 오늘 강연을 주관한 한인여성회에서는 100회째 강연을 이어오신 스님께서 어떻게 하면 최대한 여행의 피로를 푸실 수 있을까 배려해서 모든 준비를 하였다고 합니다. 숙소와 강연장이 한 곳에 있어서 오후에는 스텝진들도 휴식을 취하고, 스님께서도 어제와 오늘 에어컨 바람을 씌었더니 감기 기운이 있으셔서 짧은 휴식을 취하셨습니다.nbsp오후6시30분이 되어 스님께서는 오늘 강연에 참석하는 지역 인사 분들과 차담을 나누셨습니다. 김완중 공사님, 정건진 한인회장님, 봉세종 민주평통 지회장님, 이현경 상공회의소 회장님, 박기태 영사님, 이미경 생명의전화 원장님 등과 함께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시시다가 다함께 기념촬영을 한 후, 강연장으로 이동하였습니다.nbspnbspnbsp싱가포르 강연은 다른 지역 강연과는 달리 선착순 입장이 아니라 사전 예약을 받았습니다. 공공건물에 250석이 마련되어 있는데 너무 많은 인원이 몰릴 경우 소방법에 저촉이 되는 엄격한 법 적용을 받기 때문에 부득이하게 사전 예약을 받았다고 합니다. 강연 한달 전부터 250석이 모두 예약이 끝났고, 강연이 열리는 오늘까지도 참석 문의가 들어와서 대기자 명단을 계속 조정했다고 합니다. 스님의 강연을 듣고 싶어하는 한명 한명의 사연을 듣고 강연 담당자인 유현숙님은 많은 감동을 받았다고 합니다.nbspnbsp오늘 강연은 싱가폴 한인 여성회가 중심이 되어 봉사자를 모집하여 진행되었습니다. 강연에 앞서 유현숙 한인여성회 회장님이 나오셔서 강연에 도움 주신 봉사자들과 참석한 내빈들을 함께 소개해 주셨습니다. 봉사자들 중에선 한인 여성회 뿐만 아니라 오늘 강연을 위해 휴가를 내었다는 일반 봉사자들도 있었습니다. 회장님은 인사말씀에서 “질문자들의 질문을 통해 나를 돌아보고 스님의 답변을 통해 문제가 해결되고, 우리 모두 행복해지는 특별한 시간, 귀한 시간이 되길 바란다” 라고 하시며 강연을 열어주셨습니다.nbspnbsp▲nbsp행사를 주관해 주신 한인여성회 유현숙 회장님nbsp싱가포르는 스님께서 작년에도 오셔서 올해가 두 번째라고 합니다. 특히 오늘이 딱 100번째 강연이어서 봉사자들과 내빈들도 100번째 강연을 싱가포르에서 맞이하게 된 것을 무척 뜻깊게 여기고 있었습니다.nbspnbsp저녁 7시가 되자 스님께서 연단에 오르셨습니다. 강연장은 250석이 반자리 없이 꽉 찼고, 뒤에서 서서 들으시는 분도 생기고 옆에서 바닥에 앉아서 듣는 분들도 많았습니다.nbspnbspnbsp먼저 스님께서는 좌석을 꽉 채운 교민들에게 반가운 마음을 전하며 강연을 시작하셨습니다.nbspnbsp“시작하자마자 제가 사과말씀부터 드릴게요. 오늘 강연이 사전 예약을 받았다는 얘기를 듣고 250명 신청 받았으면 오늘 180명 밖에 안온다며 조금 더 신청을 더 받았어야 하지 않냐고 제가 그랬거든요. 그러자 준비하신 분이 싱가포르는 다르다고 했어요. 예약을 받으면 보통 70정도 오면 많이 오는 것이거든요. 그런데 빈자리 없이 다들 오셨네요? 아까 저랑 얘기하신 분한테 미안해요. 왜 다들 오셔서 제가 사과하게 만들어요? 싱가포르는 역시 다른 나라이군요. nbspnbsp이렇게 바쁜 시간을 내어서 왔으니까 오기 전보다는 여기 잘왔다 하는 생각이 들 수 있게 한번 대화를 나눠봅시다. 즉문즉설은 답을 이야기해주는 것이 아니고, 같이 대화를 나누면서 인생의 어떤 문제를 같이 해결해나가는 것을 말합니다. 여러분들이 살아가면서 겪는 인생의 고뇌나 의문에 대해서 질문을 하시면 저와 같이 대화를 하면서 해결의 실마리를 찾아간다고 할 수 있어요. 자, 그럼 뭐든지 마음껏 이야기를 나눠봅시다.”nbsp그러면서 질문을 받기 시작했습니다. 오늘은 총 6명이 스님께 질문을 했습니다.nbspnbsp“힘든 시기에 법륜스님의 “주례사”라는 책을 읽고 어려운 시기를 잘 이겨냈습니다. 참선이라는 것에 대해 많은 것을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참선이란 어디서 오는 것이고 진정한 화두란 어떤 것이고, 어떻게 깨달음에 이룰 수 있는지에 대해 알고 싶습니다.”nbspnbsp“어머니가 병원에서 5년정도 입원해 계시다가 작년에 돌아가셨습니다. 아직도 마음이 많이 아프고 한국에 돌아가기가 힘듭니다. 이 슬픔을 어떻게 극복할 수 있을까요?”nbspnbsp“병원에서 사람들의 업무를 평가하고 그에 따른 보상 책정을 결정하는 일을 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제가 새로 옮긴 병원에서는 이런 평가제도가 옳은 것인가에 대한 의문으로 평가제를 폐지했습니다. 그리고 나서 이 평가제 폐지가 맞는 선택이었는지, 그렇다면 사람들의 업무를 어떻게 평가하고 어떻게 보상책정을 결정해야하는지에 대해 알고 싶습니다. 또한 병원에서 추구해야 하는 가장 중요한 가치는 무엇일까요?”nbsp“3년 전에 싱가포르에 와서 직장생활을 하고 있습니다. 한국에 비해 조금 여유롭고 편안한 직장 생활에 이곳에서 사는 것에 만족하고 있습니다. 단 한가지 한국에 노부모님이 계시다 보니 그것이 마음에 걸립니다. 또한 부모님도 3년간 외국 생활을 했으니 이제 돌아와도 되지 않으냐 제안하십니다. 이렇게 싱가포르에서 부모님과 떨어져 생활하는 것이 옳은 것인지, 너무 이기적인 행동은 아닌지, 나중에 후회하게 되지는 않을 런지 고민입니다.”nbspnbspnbsp“해외에 살고 있는 한국인들이 한국의 남북 통일을 위해 할수 있는 일들이 어떤 것이 있는지 스님의 생각을 말씀해주세요.”nbspnbsp이렇게 다양한 질문에 대해 스님께서는 정성껏 답변을 해주셨습니다. 오늘은 그 중에서 우울증을 앓고 있는 청년의 고민과 스님이 얘기해 주시는 치료 방법에 대한 말씀을 소개해 드립니다. 현대인들이 많이 앓고 있는 우울증에 대해 어떻게 접근해야 하는지 배울 수 있는 소중한 가르침을 얻을 수 있었습니다.nbspnbspnbsp“안녕하세요, 싱가폴에 와주셔서 감사합니다. 제가 여쭤보고 싶은 것은 우울증과 불안함에 대해서 입니다. 제가 영국에서 대학원을 다니는 동안 극심한 우울증으로 인해 약물치료와 상담치료를 받고 생활을 하다가 영국에서 대학원을 마치고 이제 싱가폴로 잠시 오게 되었습니다. 이따금씩 우울증과 불안함으로 인하여 자살에 대해 끊임없이 부정적인 생각이 계속되고 있습니다. 긍정적인 생각을 해서 이 상황을 타개하고 싶지만 그 상황 안에 있을 때는 너무나 괴롭고 아무 것도 생각이 안듭니다. 그래서 심각할 때는 약을 먹으면서 진정을 하려고 하지만, 장기적으로는 약물을 먹으면서 생활을 하기에는 좀 문제가 있는것 같고 그래서 어떻게 이 상황을 타개해야 할지 여쭈어 보고 싶습니다.”nbsp“현재까지 우울증에 대해서 의학적으로 완치할 만한 특별한 약은 없는 것 같아요. 그렇다고 상담치료를 한다고 해도 확실하지는 않고요. 다만 조기 발견을 해서 치료를 하면 크게 문제되는 것은 아니예요. 그러나 이게 조금 만성화되면 치료가 좀 어렵고 대부분 자살로 종결이 되고 있는 것 같아요.”nbspnbsp“지금 부모님이 계시는데 자살을 하는 것은 아닌 것 같구요.” nbsp“그런 생각을 계속 갖고 있으면 좋은데, 병이 확 돌면 그런 생각은 온데 간데 없고 딱 죽어야만 된다는 생각에 사로잡히게 되거든요. 그러니 자기도 어떻게 못하는 거예요. 그러니 병이 확 엄습할 때 그 때 정신을 딱 차려야 하는데 그게 잘 안되지요. 그래서 약을 가지고 다녀야 돼요. 심하면 조금 멍해지는 한이 있더라도 약을 먹어야 해요. 죽는 것 보다는 낫잖아요.nbsp여러분들은 자꾸 완치를 생각하거든요. 다리가 하나 없으면 좀 불편하지 열등한 것은 아니예요. 다리가 하나 없으면 없는 만큼 조금만 활동하면 돼요. 다른 사람이 100을 활동하면 자기는 80만 활동하면 되거든요. 그런데 자꾸 100을 목표로 잡으니까 자꾸 열등해지는 거예요. 그러니까 우울증이 있다면 우울증을 하나의 내 상태로 받아들여야 돼요. 이것을 완치한다 그러니 완치가 잘 안되니까 우울증을 더 가중시키게 되는 거예요.nbspnbsp그러니까 제일 중요한 것은 내가 우울증이 있다는 것을 첫째 인정을 해야 되요. 그리고 둘째 우울증이라고 하는 것은 현재 완치시킬 수 있는 약은 없다는 것입니다. 세 번째, 우울증은 확 사로잡히면 대부분 자살로 종결이 된다는 것입니다. 이 세가지를 인정해야 돼요. 이걸 먼저 질문자가 자각을 해야 돼요.nbspnbsp그런데 부모님도 계실 뿐만 아니라 죽으면 안되잖아요. 지금 병이 심하지 않을 때는 죽어서는 안 된다는 생각이 들죠? 그런데 병이 들면 자기 정신이 자기 마음대로 안되니까 문제이지요. 그래서 비상약을 딱 가지고 있어야 해요. 자살하고 싶다든지 어떤 충동이 일어나거나 하면 무조건 약을 먹어야 해요. 그래야 자살이 예방되는 거예요.nbsp왜냐하면, 병이 확 도졌을 때는 죽어야 된다는 생각 하나 밖에 안들고 아무 생각도 안들기 때문에 평소에 아무리 결심을 해놓았다고 하더라도 의미가 없어요. 생각 자체가 바뀌어 버리기 때문에 그래요. 그래서 항상 비상약을 준비해서 ‘심각해지면 약을 먹는다’ 이렇게 계속 자기에게 암시를 줘야 돼요. 낫고 안 낫고의 문제가 아니예요. ‘이것 먹는다고 낫느냐?’ 이런 생각하면 안돼요. 일단 약을 먹으면 자살하려는 충동은 진정이 돼요. 비상약이예요. 그래서 언제든지 비상약을 가지고 있어야 돼요. 이것만 딱 질문자가 목표를 세우고 그렇게 하면 죽는 것은 면할 수 있어요. 그러니까 죽고 싶을 때 그 생각이 들자마자 끌려가지 말고 일단 약부터 찾아서 입에 넣어야 돼요. 그러면 사로잡힌 것이 조금 진정되면서 위기는 넘어갈 수 있거든요.nbspnbsp두번째는 의사 선생님과 상담을 해보고 우울증이 심하다고 할 때는 약을 계속 먹어야 돼요. 만약 1년 정도 먹고 이 위기가 극복이 된다고 하면, 그 다음에는 계속해서는 안먹더라도 항상 약을 갖고 있어야 돼요. 그리고 계절이 바뀌는 환절기에는 충동이 더 자주 일어나요. 그런데 그냥 몸이 이상해서 충동이 일어나면 내가 감지할 수 있는데, 항상 어떤 사람을 시비하면서 일어나요. 이 병은 그런 병이예요. 어머니하고 갈등이 생긴다든지, 애인하고 갈등이 생긴다든지, 어떤 시비거리가 생기면서 일어나기 때문에 자기가 이것을 우울증이라고 인정을 안 해요. 그 때 옆에서 약 먹으라든지 병원에 가라고 하면, 성질을 내면서 ‘왜 나를 정신병자 취급을 하냐?’ 이렇게 나오기 때문에 치료가 굉장히 어려워요.nbspnbsp그래서 이 병의 핵심은 자기가 우울증이라는 것을 자각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질문자는 지금 본인이 우울증이라는 것을 알고 있잖아요?”nbspnbsp“네.”nbsp“그런데 우울증 환자들의 80는 본인이 우울증인 것을 인정을 안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자살이 많은 거예요. 내가 우울증이라는 것을 딱 자각을 하고 본인이 인정을 해버리면 얼마든지 치료가 가능해요. 그런데 대부분은 자기가 인정을 안해요. 정신병 취급한다고 펄쩍펄쩍 뛰거든요. 질문자도 그런 적 있어요?nbsp“네.”nbspnbsp“아이고, 잘 되었어요. 지금 질문자가 ‘우울증입니다’ 라고 인정을 하니까 제가 이렇게 말을 솔직하게 하는 거예요. 보통은 자신이 우울증이라고 말을 안하고 질문을 해요. 제가 이런 식으로 말하면 ‘저 스님이 내 고민을 얘기하는데 나를 정신병 취급한다’ 고 막 펄쩍펄쩍 뛰고, 인터넷에 스님이 말을 함부로 한다고 하면서 글을 막 올리고 그러거든요. 그래서 저도 몇 번 당해봤기 때문에 말할 때 조심스러워요. nbspnbspnbsp그런데 오늘 제가 이렇게 탁 깨놓고 ‘그러면 죽는다’ 라고까지 얘기하는 것은 질문자가 처음부터 스스로 ‘제가 우울증을 앓았습니다’ 얘기를 했기 때문에 ‘아, 그러면 얘기하기 쉽겠구나. 상처를 덜 입겠구나’ 이렇게 보고 얘기해 주는 거예요. 그러니까 어떤 경우에도 고치기 이전에 아는 것이 굉장히 중요해요. 그래서 질문자는 우울증이라는 것을 알았기 때문에 그 위험이훨씬 적어지는 거예요. 이렇게 되면 의사 선생님하고 상담을 하면서 치료하는 것이 제일 좋아요. 그런데 이 병을 잘 모를 때는 귀신이 들었다 해서 구병시식을 한다, 무슨 안수기도를 한다며 난리를 피우는데요. 그것도 옛날에는 도움이 되었지만 지금은 그래도 제가 볼 때는 양의가 가장 도움이 되요. 그리고 이건 호르몬 분비와도 연관이 있데요. 그렇기 때문에 약물 치료도 필요하고, 상담 치료도 필요한 거예요. 이렇게 우선적으로 치료해 보시고요.nbspnbsp보조적으로 도움을 드릴 수 있는 것은 질문자가 정신을 딱 차리는 훈련을 계속 하는 겁니다. 그런데 보통 이것을 해도 효과가 크게 없는 것은 우울증이 일어날 때 마음이 확 도는 것은 무의식에서 일어나는 일이기 때문입니다. 내가 ‘아, 정신차려야지’ 하는 것은 의식에서 일어나는 일이기 때문에 무의식이 의식을 항상 앞섭니다. 그래서 아무리 결심해도 소용이 없어요. 그래서 의식적 암시를 지속적으로 하면 의식이 무의식화 됩니다. 그러면 우울증이 일어날 때 본인이 자각하는 계기가 됩니다.nbspnbsp그래서 종교와 상관없이 절을 하루에 108배씩 해보세요. 절은 육체를 가지고 하는 단순한 전신 운동이고, 정신적으로 따지면 자기가 옳다는 생각을 내려놓은 방법이지, 무슨 우상숭배하고는 아무 관계가 없는 거예요. 아침에 일어나서 매일 해야 합니다. 아프거나 안아프거나 비가 오나 눈이 오나 하기 싫거나 하기 좋거나 매일 108배 절을 하면서 세 개의 문장을 외우셔야 돼요.nbspnbsp‘저는 편안합니다.’nbsp‘살아있음에 감사드립니다.’nbsp‘저는 잘 살 겁니다.’ nbspnbsp이 세가지를 계속 본인한테 암시를 줘야 해요. 한번 해보세요. 기독교 신자라면 ‘주님, 저는 편안합니다. 살아있음에 주님께 감사드립니다. 주님의 은혜 속에 저는 잘 살 겁니다.’ 이렇게 하면 됩니다. 불교 신자라면 ‘부처님, 저는 편안합니다’ 이렇게 하는 거예요. 심리적으로는 다 똑같은 거예요. 이렇게 계속 매일 108배 절을 하면서 자기 암시를 줘야 돼요. 그러면 조금 도움이 될 거예요.nbsp그러나 증상이 심하면 이런 것도 필요 없어요. 왜냐하면 당뇨병 환자가 당분기가 떨어지면 그냥 딱 기절해버리듯이 그때는 결심한다고 안돼요. 효과가 없어요. 여러분들 내시경 검사할 때 전신 마취하죠? 그때 ‘나 정신차려야지’ 이렇게 결심하고 있어봐요, 정신이 차려지는지... . 어느 순간에 딱 가버리죠. 그래서 우리가 정신도 중요하지만 이 물질적인 것도 굉장히 중요합니다. 몸에 이상이 있는 것은 물질적으로, 즉 약물을 넣든 이렇게 치료를 해야 하고, 프로그램상 이상이 있는 것은 정신적인 치료를 받아야 됩니다. 그런데 이것이 밀접하게 서로 연관이 되어 있어요. 근본 원인이 어느 쪽에 있느냐를 보고 치료를 해야 되거든요. 몸의 작용과 정신의 작용은 상호작용을 해요. 그래서 약물치료와 같이 겸하셔야 해요. ‘죽을 때까지 어떻게 약을 먹나?’ 이렇게 생각을 하면 안돼요. 질문자는 죽을 때까지 밥을 먹어야 돼요? 안 먹어도 돼요?”nbsp“밥은 먹어야 돼죠.”nbsp“죽을 때까지 하루 세번 밥 먹는 것이 더 귀찮지, 약 조그만한 것 하나 딱 먹는 것 그게 뭐가 귀찮아요? nbspnbspnbsp죽을 때까지 먹어도 아무 문제가 없어요. 밥은 이따만한 걸 하루 세 번 먹으면서 약은 요만한 것 하나 넘겨버리면 되는데 그게 뭐가 힘들어요? 그런 생각하지 말고, 약을 지속적으로 먹어야 되면 먹으세요. 약 먹는 것을 너무 거부하면 안돼요. 약이란 것은 먹으면 약간 좀 맹해지잖아요. 맹해지면 안된다 그런 생각을 하면 안 되고, 맹해지더라도 죽는거 보다는 사는게 낫다 이렇게 생각해야 돼요.nbspnbsp그러나 약을 먹으면 완치된다는 이런 생각을 하면 안돼요. 약을 먹어서는 완치가 안되요. 그러나 위기는 극복할 수가 있어요. 응급치료약으로 위기를 극복한 위에 기도를 꾸준히 하면 나중에 약을 안먹어도 되는 그런 단계로 갈 수 있어요.”nbsp“부모님은 제가 지금 우울증을 겪는 것을 모르시는데 걱정을 끼쳐드리는 것도 좀 불효인 것 같고 이것을 부모님께 알리는게 상책인지요?”nbspnbsp“알려야지요. 팔이 하나 없는데 계속 있다고 속이고 다닐 수는 없잖아요? ‘제가 우울증이 좀 있습니다. 심각하게 우울증이 있어서 치료도 받고 기도를 합니다.’ 이렇게 주위에서도 알도록 해줘야 해요. 주위에서 알아야 딱 발병을 할 때 도와줄 수 있거든요.nbspnbsp안그러면 신경질 내고 짜증 내면 옆에서 맞대응을 한다 말이예요. 맞대응을 하면 오히려 더 폭발하기 때문에 딱 발병할 때 옆에서 알면 도와줄 수 있죠. 본인이 자각하는 것이 제일 좋고, 주변에서도 아는 것이 좋아요. 그러면 발병할 때 협력해 줄 수가 있거든요. 나에 대해 시비하지 않고, 정상적인 사람처럼 맞대응을 안 하고 약간 협력을 해줄 수가 있기 때문에 훨씬 도움이 돼요.”nbspnbsp“네, 그리고 상담치료를 하면서 느꼈던 점은 제가 우울증이 발병한 원인 중의 하나가 내가 없어져도 슬퍼할 사람도 별로 없을 거라는 생각이 계속되면서부터입니다.”nbspnbsp“맞아요. 나 하나 죽어도 슬퍼할 사람도 없고 죽어도 아무도 신경 안써요. 질문자만 그러냐? 저도 그래요. 우리가 산에 있는 토끼 한마리 죽었다고 누가 슬퍼하며, 산에 있는 나무잎 하나 떨어졌다고 누가 신경써요? 아무도 신경 안 써요. 그런 생각을 하면서 우울증이 걸린 것이 아니라 우울증이 걸렸기 때문에 그런 생각을 하는 거예요.nbspnbsp깨달음이라는 것은 ‘나는 하나의 티끌 같은 존재이고, 풀벌레 같은 존재이고, 개미같은 존재라는 것을 깨닫는 것입니다. 그걸 탁 깨달아 버리면 남이 나를 어떻게 보든 신경 안쓰고, 남의 인생에 간섭 안하고 그렇게 돼요. 인생이란 것을 뭐 굉장한 것 같이 여기는 이런 자만심이 우리를 괴롭게 만드는 겁니다. 질문자가 그런 생각을 하니 우울증에 걸린 것이 아니고 우울증 증상이 있으니까 그런 게 죽는 핑계로 작용하는 거예요. nbspnbspnbsp산에 있는 다람쥐한테 새끼가 태어났든지 말든지 우리가 신경 안 쓴다고 다람쥐가 다 자살해요? nbspnbspnbsp그러니깐 그런 것은 질문자가 자살 할 핑계거리를 그렇게 찾는 거예요. 그게 다 병이요. 정신이 건강한 사람은 그것을 자각하면 오히려 행복해지고 고뇌가 사라지는데, 질문자는 약간 병들었으니까 똑같은 문제를 자각하는데 죽는 쪽으로 그 문제의 해결책을 생각하고 ‘아 내가 없어져도 이 세상은 아무 문제가 없으니 나는 죽겠다’ 이렇게 생각이 되는 겁니다. 질문자가 왜 세상에 도움이 되어야 돼요? 그게 자만이지요. 그런 생각이 자만이예요. 그래서 이 자만이 오히려 병을 가져오는 거예요.”nbspnbsp“존재의 의미가 없다면 살아가는데 이유가 없잖아요?”nbsp“존재라는 게 본래 의미가 없어요. 의미는 우리가 만드는 거예요. 이걸 접시라고 이름을 붙이고, 값을 정하고 하는데, 본래는 의미가 없어요. 그냥 하나의 존재일 뿐이예요. 그러니까 깨달음은 의미가 본래 없다는 것을 깨닫는 것 그게 깨달음이예요. 의미는 우리의 의식이 만들어 낸 거예요. 값이 있다 없다, 선하다 악하다, 잘한다 잘못한다, 이런 것은 다 인간의 의식이 만든거예요. 천당이다 지옥이다, 부처다 하늘이다 신이다 뭐 이런 것은 다 인간의 의식이 만든거예요. 인간은 가만히 못 있고 뭘 만들어 놓고 거기에다 매달리어 살고 그런거요. 괜히 복잡하게 사는 거죠.”nbspnbsp“의미가 없다는 것이 너무 슬프지 않나요?”nbsp“의미가 없으니 좋지요. 신경 안써도 되고. 의미가 없는데 왜 슬프지요? 의미가 있으니까 슬픈 것 아닌가요? 슬퍼할 이유도 없는데 뭐가 슬퍼요? 존재가 먼저일까요? 의미가먼저일까요? 의미 이전에 존재가 있었는데 존재에 무슨 의미가 있어요? 존재가 먼저 있고, 거기에 인간의 소유라든지 의미를 부여한 거예요.nbsp그런데 우리는 후에 의미를 부여한 것을 가지고 존재를 규명할려고 그래요. 그게 잘못된 거요. 그래서 ‘왜 사는가?’ 하는 이것을 추구하면 딱 자살하게 되어 있어요. 왜 그럴까요? 삶이 먼저 있고 왜 라는 사고를 하는데, 왜 라는 사고를 가지고 삶의 의미를 찾으니까 끝까지 찾아보면 없다 이렇게 나오거든요. 그러면 죽어야 되겠네 이렇게 되는 거요. 왜 사는가가 아니라 이미 존재는 던져진 것이고 이미 있는 거예요. 그러면 이왕지 사는데 괴롭게 사는 사람도 있고 즐겁게 사는 사람도 있고 행복하게 사는 사람도 있고 불행하게 사는 사람도 있고 자유롭게 사는 사람도 있고 속박받고 사는 사람도 있으니 너는 어떻게 살래? 이 ‘어떻게’가 우리에게 주어진 화두이지 ‘왜’는 화두가 아니예요. ‘왜 살지?’ 이거는 죽고 싶다 이 말이예요.nbspnbsp생각하는 것마다 죽을 꾀를 내고 있네요. 산에 가면 다람쥐가 도토리 구하기 어렵다고 자살하는 다람쥐 봤어요? 못봤어요? 질문자가 만약에 자살을 하면 다람쥐보다 못해요. 질문자는 인간 존재의 값어치를 모르는거예요. 그러니까 의미가 있어서 사는 것이 아니예요. 의미는 우리가 사는 동안 만드는 거예요. 내가 아무 의미 없어도 살아 있어요. 이왕지 사는데 어떤 의미를 만들어 살면 더 재밌냐 해가지고 사는 거요. 의미는 우리들이 계속 만들어 나가는 거요. 그러니까 의미가 필요없다는 것이 아니라 본래는 의미가 없는 존재인데 의미라는 것은 우리의 의식이, 정신 작용이 의미를 만들고 그 의미를 통해서 보람을 느끼고 기쁨을 느끼고 이렇게 하는 거요.”nbspnbsp“감사합니다.”nbspnbsp질문자는 스님의 자상한 문답에 깊은 감명을 받고 밝게 웃었습니다. 문답을 통해 질문자 스스로 많은 위안과 치유를 받고 있음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질문자에게 조금이라도 도움을 주려는 스님의 마음이 느껴져서 더욱 잔잔한 감동이 일었던 순간이었습니다.nbspnbsp마지막 질문은 한반도의 평화와 통일에 대한 질문이었는데, 그 답변의 연장선 상에서 스님께서는 마지막 닫는 말씀으로 긍정의 토대 위에 자긍심을 갖고 새로운 창조를 해나가자며 이렇게 닫는 말씀을 해주셨습니다.nbspnbspnbsp“인류 역사를 보면 선진 문명이 있고, 선진 문명에서 너무 떨어져 있으면 기술력이 없고, 그 중심에 있으면 창조력이 없고, 항상 그 바로 변두리인 충돌 지점에서 창조력이 생깁니다. 그래서 서구 문명을 보면 이집트 문명은 그 변두리인 에게해로, 에게해는 그 변두리인 그리스로, 그리스는 그 변두리인 로마로, 로마는 그 변두리인 게르만, 즉 오늘날 서유럽으로, 유럽은 그 변방인 미국으로, 미국 문명은 그 변방인 동아시아로 올 가능성이 있다고 하잖아요. 그런데 경제력이나 군사력 등의 조건을 보면 동아시아가 한 100년 후에 문명의 중심이 될 가능성이 있는데, 내용적으로 보면 아직 문명의 중심은 될 수 없어요. 인권, 민주주의, 기술개발, 창조성, 문화, 모든 것에 있어서 아직 전근대적 수준입니다.nbspnbsp이걸 뛰어넘어야 해요. 통일은 그럴 수 있는 가능성을 보여줍니다. 통일이 되면 북한의 열사능을 국립묘지에 편입하게 되겠죠? 그러기 때문에 통일을 하게 되면 우리는 6.25전쟁 때 싸웠던 북한의 장군한테도 훌륭한 장군이라고 부르게 되겠죠. 이것은 바로 원수를 사랑하라는 예수님의 가르침이 현실 속에서 이뤄지는 것 아닙니까? 그러니 통일은 정치 경제적인 것을 넘어서서 완전히 새로운 사고를 갖게 만듭니다. 모든 장벽을 허물어버려요.nbspnbsp그래서 한국의 통일은 세계의 모델이 될 수 있어요. 팔레스타인과 이스라엘 갈등 해결의 모델이 될 수도 있고, 각각의 충돌 지점에서 새로운 가능성을 열어주게 되죠. 한국이 갖는 어떤 새로운 것이 세계에 미치는 영향이 굉장히 커집니다. 이런 가치를 우리 국민들이 아직 잘 모르고 있죠. 왜냐하면 미래 문명을 안 보고 당장 눈 앞에 이익만 보고 있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통일 한국은 한중일 삼국의 공동체를 만들어가는 견인 역할을 할 수 있어요. 그래서 동북아의 새로운 협력관계가 유지되면 세계 문명의 중심이 21세기 말에는 동아시아로 옮겨올 수도 있고, 그 동아시아 문명의 핵심이 한국이 될 수도 있습니다. 배타적 민족주의가 아니라 세계와 하나되면서 새로운 문명을 끌고 가는 역할을 해낼 수가 있습니다. 어쩌면 이것은 2천년 만에 우리에게 주어진 하나의 기회입니다. 아무리 적게 잡아도 발해 멸망 이후 천년의 꿈이 실현되는 것이 됩니다. 이런 희망을 갖고 자신의 삶을 한평생 바친다면 얼마나 재미있을까요? 이런 가능성을 열어나가는데 우리가 집중한다면 삶의 에너지가 팍팍 솟아납니다. 이런 새로운 시대를 만들어나가는데 여러분들이 역할을 해주시기 바랍니다. nbspnbspnbsp여기 싱가포르는 동서양이 교차하는 곳이잖아요. ‘혼란스럽다’ 이러지 말고 혼란은 새로운 질서를 만드는 가장 좋은 소재입니다. 기존 질서가 딱 짜여 있으면 창조와 새로운 것을 못 만듭니다. 그게 무너지고 뒤죽박죽 혼란이 오면, 비창조적인 인간에게는 혼란이 고통이지만, 창조적인 인간은 혼란이야말로 새 질서를 만들 수 있는 절호의 기회입니다. 이렇게 우리의 장점을 봐야 합니다. 대한민국은 부정적인 것이 굉장히 많아요. 하지만 제가 볼 때는 좋은 점이 와 로 따지면 하나라도 좋은 점이 더 많다고 생각합니다. 그런 가능성을 갖고 부족한 것을 개선해나간다 이렇게 생각을 해나간다면 자긍심이 생기지 않을까 싶습니다. 감사합니다.”nbspnbsp2시간 50분 동안의 열강이 끝나자 청중들도 우레와 같은 박수 갈채를 보내줍니다. 이어서 강연장 옆쪽 통로에서 책 사인회가 열렸습니다. 스님께서는 한분 한분 반갑게 인사를 나누며 사인을 해주셨습니다.nbspnbspnbsp그리고 행사장 곳곳에서 소임을 맡아 수고해준 봉사자들과 단체 사진을 찍었습니다.nbspnbspnbsp봉사자들에게는 스님께서 직접 단주를 손목에 끼워주며 감사의 마음을 전했습니다.nbspnbspnbsp특히 오늘 강연 책임을 맡아주신 한인여성회 윤현숙 회장님께서는 스님의 사인한 책을 직접 선물해 드리고 단독으로 기념사진을 촬영하였습니다.nbspnbsp▲ 오늘 강연을 총괄해준 한인여성회 회장 유현숙님 부부nbspnbsp행사장 뒷정리까지 모두 마치고 자원봉사자들은 묘덕 법사님과 함께 마음나누기를 하였습니다. 유현숙 한인여성회 회장님은 강연 준비과정을 이야기해 주셨는데, 싱가포르는 다문화, 다종교가 공존하며 다름을 인정하는 분위기가 많아서 종교에 대한 배척이 없었고 그래서 강연장을 섭외하거나 준비하는 데에 별로 어려움이 없었다고 합니다. 지난 7월부터 한인들이 많이 접속하는 사이트를 중심으로 인터넷 홍보를 시작했고, 많은 분들이 이미 카카오스토리 희망편지와 유튜브 즉문즉설을 통해 이미 스님의 세계 100회 강연 소식을 접하고 있어 홍보하기가 수월했다고 합니다. 그리고 한국인이 주로 가는 식당, 상점 곳곳에 포스터를 붙이러 다녔는데 오늘 강연이 있기까지 많은 노고가 있었음을 알 수 있었습니다.nbspnbsp▲nbsp묘덕 법사님과 마음나누기nbsp한인여성회의 한 분은 “참석자들의 대다수가 20대 30대 젊은 사람들이었던 것이 감동이었다”고 합니다. “시내 중심가에서 저녁 시간에 강연이 열린 덕분에 퇴근길에 젊은 사람들이 쉽게 강연장을 찾을 수 있었던 것 같다”며 앞서 우울증에 대해 질문한 청년을 예로 들며 “스님의 강연을 정신적으로 힘들어하는 젊은이들이 많이 들을 수 있게 된 것이 무척 기쁘다” 고 하였습니다. 스님의 법문이 서로 다름을 인정하는 개방성을 많이 이야기하다 보니 종교가 비록 다르지만 타 종교인들도 많이 참석했는데, 특히 봉사자들도 대부분 성당에 나가시는 분들이었습니다. 그리고 또 한분은 “스님께서 한명이라도 더 치유해주고자 하는 그 마음이 느껴져서 가슴이 뭉클했다” 고 합니다.nbspnbspnbsp▲nbsp오늘 행사를 준비해 주신 주 싱가폴 한인여성회 분들nbsp이렇게 많은 분들의 정성 덕분에 100번째 강연도 싱가포르에서 잘 마칠 수 있었습니다. 내일은 다시 비행기를 타고 북쪽으로 이동해 말레이시아의 수도 콰알라룸푸르로 갑니다. 콰알라룸프르에서 또 소식 전해드리겠습니다.nbspnbsp ▼nbsp법륜 스님의 세계 100회 강연, 지난 날짜 소식 보기
2014.12.1 세계 100회 강연(99) 인도네시아 자카르타 Jakarta
nbsp안녕하세요. 오늘은 세계 100회 강연 중 99번째 강연이 인도네시아 자카르타에서 열리는 날입니다. 지난 8월26일 시작한 100회 강연이 오늘로써 99번째에 이르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오늘 인도네시아 자카르타 강연은 아시아 지역에서 열리는 첫 번째 강연입니다. 유럽, 북미주, 중남미, 오세아니아를 돌아 이제 아시아로 왔습니다. 아시아에서는 또 어떤 이야기들이 펼쳐질까요? 두근거리는 기대감을 안고 스님과 함께하는 마음 공부 세계 여행을 시작해 봅니다.nbspnbsp스님께서는 어제밤 시드니에서의 98번째 강연을 마치고, 아침 비행기로 자카르타로 출발했습니다. 비행기가 중간에 인도네시아 발리를 경유했는데,nbsp스님께서는 발리 도착이 늦어져 자카르타행 비행기로 갈아타는데 많은 애를 먹었다고 합니다. 짧은 시간에 입국 수속을 밟고, 짐을 찾고 다시 부치는데 짐이 늦게 나와서 비행기를 못탈까봐 스님만 먼저 국내선 쪽으로 이동하고 스텝 분들은 짐을 찾아 이동을 했는데 모두들 땀을 뻘뻘 흘리며 뛰었다고 합니다. 다행이 국내선 출발 비행기도 늦게 되어 다같이 자카르타에 함께 도착할 수 있었습니다.nbspnbsp자카르타 공항에는 어제밤 미리 도착한 동남아 강연 총괄자이신 홍정혜님과 오늘부터 동남아 강연 소식을 스님의 하루를 통해 전해줄 희망플래너 이준길님을 비롯하여 이번 자카르타 강연을 함께 준비해주신 홍권표, 민경석님이 각각 차량 한 대씩을 가지고 나와서 마중을 해주셨습니다.nbspnbsp▲nbsp공항 마중을 나와주신 홍권표님과 민경석님nbsp자카르타의 수카르노 하타 공항에 도착하고 나니 오후 4시가 넘었는데 강연 시간까지는 조금 촉박했습니다. 그래서 스텝들은 남아서 짐을 찾아서 나가기로 하고, 스님만 먼저 게이트를 나가셨습니다. 자카르타는 출퇴근 시간에 악명 높은 교통 체증으로 유명한 곳인데, 마침 자카르타 강연 준비팀에서는 이런 상황을 예측하고 미리 경찰 측에 에스코트를 요청해 놓았다고 합니다. 공항을 나오니 기다리고 있던 경찰의 호위를 받아 싸이렌 소리를 울려가며 퇴근길 트래픽이 심한 도심을 무사히 통과할 수 있었고, 다행히 강연 시간 30분 전에 도착하여 스님께서는 저녁 식사를 하고 강연을 할 수 있었습니다. nbspnbsp▲nbsp강연 시간에 맞춰 도착하기 위해 에스코트 해주는 자카르타 경찰nbsp세계문화유산과 세계자연유산을 골고루 갖춘 인도네시아는 다민족, 다문화, 다인종 국가로 ‘모두를 가진 나라’ 라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동서 길이가 약 5,110km에 달하는 넓은 국토를 가진 나라로 2시간의 시차가 있으며, 동서의 길이가 우리나라에서 인도네시아까지 거리에 버금 갑니다. 적도에 걸쳐 있는 더운 곳이지만, 고지대도 많아 지역마다 다양한 식생과 기후를 만날 수 있으며, 세계 최대의 신도 수를 가진 이슬람 국가이자 2억 4천만의 세계 제 4위의 인구 수를 가진 대국입니다. 게다가 350년 간 네덜란드의 식민지였고, 역사적으로 힌두교, 불교, 이슬람 등 동서양의 다양한 종교의 영향을 받았고, 게다가 독립의 역사와 공산주의 영향을 받은 모습까지 정말 천의 얼굴을 가진 나라이기도 합니다. 자원 부국이자 산유국인 인도네시아는 지리적으로는 중동에서 우리나라, 중국, 일본으로 향하는 원유 이동의 길목을 점하고 있어 여러모로 관심을 가져야 할 중요한 나라 중에 하나입니다.nbspnbsp▲nbsp인도네시아 자카르타 Jakartanbsp스님께서 설립한 구호단체 JTS는 지난 3년 간 인도네시아 수마뜨라 중부의 빠당 지역에서 지진 피해 구호활동을 전개해 유치원과 학교 건물을 복원해준 인연이 있는 곳이기도 합니다.nbspnbsp강연 준비를 해주신 자카르타 교민 홍권표님의 설명에 따르면, 자카르타에 살고 있는 한국 교민들은 약 6만명 정도 된다고 합니다. 대부분 개인 이민이 아니고 70년대 중반부터 합판, 원목등 투자 진출 회사들이 오면서, 그리고 90년대 초까지 봉제 신발 등 노동집약산업이 오면서 교민 수가 늘어났다고 합니다. 개수로는 400500여개 기업이 진출해 있다고 하고, 한국 기업에서 고용한 현지인들이 약 100만명에 이른다고 합니다. 중국이 개방되기 전에 노동집약산업을 찾아 한국 기업들이 본격적으로 진출하기 시작한 것이 이곳 인도네시아 자카르타라고 합니다. 그래서 교민들의 생활 및 소득 수준이 높고, 사업으로 성공한 사람들도 꽤 많은 편이라고 합니다.nbspnbsp▲nbsp오늘 강연장, 자카르타 롯데쇼핑 에버뉴nbspnbsp오늘 강연장은 자카르타 도심 한가운데에 위치한 롯데쇼핑 애버뉴 4층 ICE PLACE입니다. 이곳은 한국 기업인 롯데가 인도네시아 자카르타에 진출해 크게 성공한 백화점이라고 합니다. 이번 세계 100회 강연은 성당, 교회, 대학, 문화원 등에서 많이 열렸는데, 이렇게 화려한 백화점 건물에서 열리는 것은 처음입니다.nbspnbsp강연장에 도착하니 주황생 티셔츠를 입은 많은 봉사자들이 스님을 반갑게 맞이해 주었고, 대기실에서는 신기엽 한인회장님, 박상민 공사님, 하연수 사장님, 박동희 평통 동남아 협의회장님이 찾아오셔서 스님과 잠시 환담을 나누셨습니다. nbspnbspnbsp이번 자카르타 강연의 가장 큰 특징은 성당이나 교회에서 주관한 것도 아니고, 한인회에서 주관한 것도 아니고, 대사관이나 불교단체에서 주관한 것도 아닌, 현지 교민 다섯 분이 주축이 되어 강연 준비가 이뤄진 점입니다.nbspnbsp한 분씩 소개를 해드리면, 자카르타 현지에서 스포츠화 사업을 하고 계신 홍권표님이 강연 준비 책임을 지시고, 현지에서 건축업을 하고 계신 이동균님, 자카르타 한국경제신문의 김희년님이 협력해서 준비하시고, 실무 총괄은 7년 전 방콕에서 정토불교대학을 졸업하고 현재는 남편의 사업을 따라 자카르타에서 살고 있는 김지영님과 김지영님의 소개로 강연 실무를 맡게 된 임양진님, 이렇게 다섯 분이 주축이 되어 오늘 강연이 열리게 되었습니다. 강연 후 스님께서는 다섯분 모두에게 친필 사인을 해서 스님의 책을 선물하면서 감사의 마음을 전했습니다.nbspnbsp▲nbsp자카르타 강연을 준비해 많은 정성을 기울여주신 분들, 왼쪽부터 차례대로 홍권표님, 홍정혜님, 이동균님, 김희년님, 김지영님nbspnbsp이 외에도 김지영님의 인연으로 한국국제학교에 다니고 있는 엄마들과 같은 아파트 교민들, 인터넷을 보고 자원봉사 신청을 하신 분 등 15명의 봉사자들이 함께 강연을 준비해 주셨습니다. nbspnbsp저녁 7시가 되자 “오늘이 99번째 강연입니다.” 라는 사회자 이동균님의 우렁찬 목소리와 함께 강연이 시작되었습니다. 스님 소개 영상이 끝나자 스님께서 무대 위에 오르셨습니다.nbspnbsp강연을 준비한 봉사자들은 “어제까지 토네이도가 와서 폭우가 쏟아졌는데 오늘 스님이 오신다고 하니 갑자기 날씨가 좋아졌다” 하면서 날씨 덕분에 오늘 많은 분들이 강연장을 찾을 것이란 기대를 가졌습니다. 또 한편으로 참석자들에게 사전 예약을 받았는데, 강연 장소가 퇴근길 트래픽이 극도로 심한 지역이라 그 이유로 예약만 하고 안오는 분들이 많아지면 어떡할까 걱정을 하기도 했습니다.nbspnbspnbsp하지만 350여명의 청중들이 자리를 가득 메워 먼 곳에서 오신 스님을 열렬히 환영해 주었습니다. 스님께서는 먼저 강연 시간에 늦지 않으려고 헐레벌떡 달려온 사연을 이야기해 주시면서 자카르타 교민들을 만난 반가운 마음을 전하며 강연을 시작하셨습니다. nbspnbsp“안녕하세요. 이런 좋은 곳에서 만나서 반갑습니다. 주관하시는 분이 겁도 없이 이런 비싼 백화점에 강연장을 빌리셨네요. 저희들은 경비를 최소화해서 하다보니 제일 좋은 곳이 천주교 성당에서 무료로 많이 강연을 했어요. 그 다음에 외국인 교회, 가끔 학교 강당 이런 곳을 빌려서 했는데, 이런 백화점에서 한 건 처음이예요. 여러분들 나갈 때 자기 자리값을 좀 내주셔야 겠어요.nbspnbsp저는 아침에 시드니에서 왔는데, 직항이 없어서 발리에서 비행기를 갈아타고 온다고 헐레벌떡 왔습니다. 주최하시는 분이 스님이 강연장에 제 시간에 못 올까 싶어 경찰에 요청해서 에스코트를 해준 덕분에 조금 일찍 도착해서 저녁도 먹을 수 있게 되었어요. 저와 같이 온 일행들은 아직 도착을 안 했습니다. 그래서 무대에 현수막이 없어요. 몸만 먼저 왔어요. 퇴근 시간에 길이 막혀 늦을 뻔 했는데 다행히 제 시간에 강연을 시작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nbspnbspnbsp저희들이 세운 국제구호단체 JTS가 수마트라 빠당이라는 곳에 지진이 났을 때 3년 간 구호활동을 했었어요. 허물어진 유치원과 학교를 복원하고 올해 초봄에 철수 했어요. 지난 번에 JTS 일로 왔다가 강연 요청이 있어서 갔는데 그 때는 비행기가 제 시간에 안 와서 강연장에 늦게 간 기억이 있어요.nbspnbsp오늘은 우리가 인생을 살면서 겪는 그 어떤 문제든, 그것이 고뇌이든 의문이든, 자기 주장이든, 일어나서 얘기를 하면 돼요. 자, 그럼 시작해 보겠습니다.“nbspnbsp그러면서 질문을 받았습니다. 총 9명이 스님께 질문을 했습니다.nbspnbsp“누군가와 같이 있을 때 행복을 느끼고 나름 열심히 살아왔는데 배우자도 아직 만나지 못했고 다른 사람은 나보다 더 행복해 보여요. 지난날을 생각해보면 연애할때가 제일 행복했었는데 기회가 없습니다. 어떻게 하면 행복 할 수 있을까요?” nbspnbsp“스님은 중년의 삶을 어떻게 사셨고 저는 중년의 삶을 어떻게 준비해야 할까요?”nbspnbsp“7년 간의 외국생활하면서 교민들과 부딪히는 문제들 때문에 친분을 갖고 싶지 않아요. 모임에 가도 나이가 어려서 막내이기 때문에 저의 이야기를 안들어 주고 속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친구가 없어요. 어떻게 해야 외국생활을 즐겁게 보낼 수 있을까요?”nbsp“부모님이 따로 사시고 저는 어렸을때부터 엄마와 함께 살았습니다. 그런데 아버지가 암에 걸리셔서 저를 보고 싶어 하십니다. nbsp아버지를 보러가자니 엄마의 눈치가 보입니다. 아버지한테 안가도 되나요?”nbspnbsp“인도네시아 3년차 몇 번의 실패를 거쳐서 원하는 직장에 취직이 되었는데 타부서의 과장님께서 일을 너무 많이 시킵니다. 계속 쌓여가는 일로 화가나면 남편에게 화풀이를 하게 됩니다. 직장상사와의 관계에서 갈등은 어떻게 풀어나가면 될까요?”nbspnbspnbsp“한국학교에서 근무하면서 학생들에게 통일한국에 대하여 이야기를 해주는데 만약 통일 한국이 된다면 제가 어떤 역할을 하면 되는지요? 또 한가지는 그곳에서 어떻게 돈을 벌 수 있을까요?”nbsp“제가 넘어졌는데 옆에 친구들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아무도 도와주지를 않아요. 그래서 저는 친구가 무엇인지 잘 모르겠어요?”nbsp이 질문은 17살 된 고등학생의 질문이었는데, 울먹이던 학생은 스님과의 대화 끝에 밝게 웃음을 띠었습니다.nbspnbspnbsp“시어머님은 불교신자이시고 저는 기독교신자입니다. 올 초에 시아버님께서 한 집안에 종교가 2개이면 안좋으니 개종을 권유하십니다. 그래서 마음이 너무 불편하여 시부모님에 대한 마음이 예전과 달리 느껴지는데 어떻게 하면 될까요?”nbspnbsp“인도네시아에 온지 7개월이 되었습니다. 일 때문에 인도네시아에 와 있는데 nbsp아내와 같이 인도네시아에 오고 싶은데 아내는 한국에 있기를 원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그부분을 받아들이고 혼자 인도네시아에서 생활하는데 아무도 없는 집에 오면 마음이 공허합니다. 이 상황을 계속 이어가야 하는지요?”nbspnbsp이렇게 다양한 질문에 대해 스님께서는 지혜로운 말씀을 들려주었습니다. 오늘은 그 중에서 직장상사가 너무 많은 일을 부탁하고 고맙다는 얘기도 제대로 안해줘서 화가 난다는 여성 분의 질문과 스님의 답변을 소개합니다. 문답이 계속 오가면서 질문자의 표정이 밝아져가는 모습에 잔잔한 감동이 일었습니다.nbspnbsp“직장 상사 얘기를 할려고 하는데요. 살짝 돌아보니 회사 사람들이 너무 많은 거예요. 그래서 손을 들까 말까 고민을 많이 했는데요.nbsp“얘기해 버려요. 내 인생의 고민을 풀기 위해서 얘기하는 것이지 직장상사를 나무라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내가 그렇게 힘들다’ 이런 것을 얘기하는 것이기 때문에 괜찮아요. 편안하게 얘기해요.” nbspnbsp“이민 온 지 3년차 되었구요. 여기에 터를 잡으려고 누구보다도 열심히 했고 직장을 잡으려고많은 노력을 했습니다. 지금은 원하는 직장을 찾아서 일을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지금 타부서에 과장님이 주재로 오셨는데요. 직접 상사도 아닌데 저한테 일을 너무 과하게 주시는 거예요. 저는 거절을 잘하지 못하는 성격이라서 처음에는 ‘예, 알겠습니다. 최선을 다해 보겠습니다’ 하고 일을 받아서 하다보니 쌓이고 쌓여서 화가 나는 거예요. ‘내 직접 상사도 아닌데 내 일도 아닌데 왜 나한테 일을 시키냐’ 이런 생각도 들고요. 매일 아침 출근하면서 마음을 다스리는데 도저히 마음이 잡히지 않아요. 퇴근하고 집에 와서 그 사람과 문제가 있었으면 남편에게 화풀이를 하고 있는 거예요. 스님께서는 만약에 사람과의 갈등이나 문제가 있으면 갈등을 어떻게 해결하고 마음을 어떻게 다스리시는지요?”nbsp nbspnbsp“일을 하는 것이 부담스러우면, 또 그 일이 하기 싫으면, 일을 맡길 때 엉터리로 해주면 되지요. 그러면 일을 안 맡깁니다. 일을 잘하면 잘 할수록 일을 많이 주는 것은 자연의 법칙이예요.”nbspnbspnbspnbsp“처음에는 일을 주셨을 때 다른 일을 제쳐 두고라도 그것을 먼저 해드렸어요.”nbsp“그러니까 일을 더 주지요.”nbspnbsp“그래서 방법을 찾아보다가 일을 미뤄보자고해서 나중에 하자 그랬어요. 그래서 저의 일을 먼저 하게 되었어요. ”제가 지금 바쁘니 나중에 해드리겠습니다“ 그랬습니다. 그 이후에는 몇시까지 해달라고 시간을 주시는 거예요.”nbspnbsp“잘못했네요. ‘저의 일 끝내고 나서 해주겠습니다’ 라고 하면 상사가 기분이 나쁘지요. 제가 보기에는 자기가 바보 같네요. 자기 일 제쳐두고 그 사람 일해주는 것이 가장 바보고, 그 다음에 ‘내 일 끝내놓고 해드리겠습니다’ 라고 해서 그 사람을 기분 나쁘게 하는 것은 그 다음 바보고요. 그럴 때는 하겠다고 하고 나서 ‘왜 아직 일 다 못 끝냈나?’고 하면 ‘제 실력이 없어서 아무리 해도 안되네요’ 하고 말을 해야지요.”nbsp“한 번은 제가 여기 온 지 얼마 안 되었는데 번역 일을 한 번 맡겼었어요. nbspA4용지로 80장 정도 되는 것을 맡기셨는데 제가 ‘이것을 하는 것은 시간이 어마어마하게 걸리는 일이다’ 라고 하니 시간을 일주일을 주셨어요. ‘일주일 안에 못 끝냅니다. 이것은 전문번역사한테 맡기는 것이 좋겠습니다’ 라고 얘기를 했더니, ‘시간을 얼마나 더 주면 되겠냐, 2주 주면 되겠니? 3주를 더 주면 되겠니?’ 이렇게 말씀을 하세요.”nbsp“그럴 때는 ‘일주일 안에 끝내도록 한번 해보겠습니다’ 라고 받아가지고 두 페이지만 일주일 안에 해서 갖다주는 거에요. ‘왜 이것 밖에 못했니?‘ 하면 ‘내 실력으로는 도저히 안되겠는데요’, nbsp‘얼마나 더 시간을 주면 하겠니?’ 라고 하면 ‘글쎄요? 시간을 제가 모르겠습니다. 해봐야알겠습니다’ 라고 해서 다음에 한 장 더해서 갖다주고 그것도 많이 틀리게 해서 갖다줘 봐요.nbspnbspnbsp자기가 그 사람에게 잘 보일려고 일도 깔끔하게 하고, 밤에 밤잠을 안자고 일하고, 남편에게 신경질을 내가면서 일해주니, 자기가 바보 같은 짓을 하고 있는 것이지요. 앞으로는 전혀 신경쓰지 말고 그 사람을 미워도 하지 말고 미워해봐야 자기 스트레스만 받지요. 항상 ‘아이고, 반갑습니다’ 하고 nbsp깍듯이 인사해 드리고, ‘일주일 안에 해드리겠습니다’ 라고 하고 틀리게 해주든지 안해주든지요. 그러면 그 사람이 신경질을 내게 되지 내가 신경질 낼 필요가 없어지지요.”nbsp“‘예, 알겠습니다’ 라고만 하는 것도 문제인 것 같아요. 제가 ‘예 알겠습니다‘ 하고 거절을 하지 않으니 나중에는 너무 개인적인 일까지도 맡기고, 제가 본인의 개인비서인 것처럼 생각을 하는 것 같아요.nbsp“자기가 잘 해주니 그렇지요. ‘알겠습니다’ 하고 해주지 말라니까요. 그런데 그 사람이 부탁하는 것을 힘들어도 깔끔하게 딱딱 해주면 사실은 자기에게 복이 되는 일이예요. 지금 자기는 공덕을 쌓고 있는 거예요. 그런데 자기는 ‘지금 저 사람은 내 상사도 아닌데 나한테 nbsp부탁하냐’ 하고 이렇게 자꾸 미워하잖아요.nbspnbspnbsp그런데 그 사람이 내 상사도 아니고 내 부서 사람도 아닌데 나한테 이런 저런 일을 부탁할 때는 반반입니다. 하나는 나를 좋게 봐서 그렇고요. 어떻게 일을 하나 시켜보는 거예요. 그래서 재수가 좋으면 그게 축적이 되어 있다가 나중에 그 사람이 지사장으로 오거나 그 사람이 인도네시아에서 사업을 하거나 할 때 픽업될 가능성이 있어요. 그런 공덕을 짓고 있어요. 두번째는 그 사람이 그냥 질문자가 순진해 보이고 똘똘해 보이니 일을 시켰다면 그래도 괜찮아요. 우리가 주식을 살 때는 은행 이자보다 높지만 대신에 돈을 잃을 확률도 있잖아요. 은행은 안전하지만 이율이 적잖아요. 사람이 투자를 할 때는 약간의 손실을 감수해야 돼요. 그러니깐 자기가 부탁을 들어주는 김에 조금 힘들어도 주식을 사서 묻어 두듯이 그 사람이 질문자를 주시할지 안 할지는 질문자가 알수는 없는 일이지만, 재능되는 대로 해주지 그걸 가지고 너무 이해관계를 따지지는 마세요.“nbspnbsp“처음부터 그런 것은 아니였어요. 저도 ‘다 나한테 도움되는 것이다’ 라고 생각하고 받아들였어요. 그런데 현지인 직원들 한테는 안 그런 거예요. 현지인 직원들 한테는 전화만 받아줘도, 메모만 남겨줘도 ”땡큐“라고 하는데 저한테는 어떤 업무를 해드려도 저한테는 안 그런 거예요. ‘부탁한 일 여기 있습니다‘ 라고 갖다드리면 그냥 ‘네’ 하고 마는 거예요.”nbsp“예를 들어 아내가 밥을 해주면 남편이 아내에게 고맙다고 해요? 안하지요. 가정부가 밥을 해주면 고맙다고 하지요. 식당에서 밥을 먹고 나면 고맙다고 하지요. 식당에 돈을 주고 먹는 밥도 서빙하는 사람한테, 그리고 주방 아주머니한테도 ‘밥 잘 먹었습니다. 감사합니다’ 이렇게 얘기하는데 자기 마누라한테 밥 먹고 나서 ‘여보 오늘 아침 잘 먹었어요. 고마워요.’ 이런 얘기 절대로 안하잖아요. 서빙 잘했다고 팁도 주는데 자기 마누라는 그것보다 10배를 더 잘해줘도 팁도 안주잖아요. 왜 그럴까요? 가깝기 때문에 그런 거예요. 그 사람이 고맙다 소리도 안하는 것은 그 사람의 내면에서는 자기를 가깝게 생각하고 있다는 거예요. 좀 맹하네요. nbspnbspnbsp그렇다 해도 반드시 그렇다는 것은 아니예요. 첫째, 그럴 가능성이 있다는 겁니다. 예를 들어 돈을 갖고 땅을 사놓고 하는 것을 투자라고 하지요. 그런데 사람에 대해서도 투자를 할 수 있어요. nbsp사람한테도 보이지 않게 다 투자를 해요. 어려울 때 도와주고 뭐 해주고 그러면 그게 금방 돌아오는 게 아니예요.nbspnbsp해외여행을 다녀보면, 요즘은 염주나 단주 이런 것이 별 필요없지만 20년 전에는 해외에는 절이 거의 없기 때문에 염주나 단주 구하기가 어려웠어요. 예를 들어 염주 하나에 천원인데 강연장에 100명이 왔다면 구하기가 힘들다고 이익을 내고 팔수는 없고 원가로 1불씩 받고 염주를 판매하면 사람들 100명이 100개를 사가지고 가서 100불이 들어오잖아요. 그런데 제가 전부 하나씩 무료로 나눠줘요. 그러면 90여명은 그냥 가요. nbsp5명은 1불을 내놓고 가요. nbsp3명은 5불을 내놓고 가요. 그런데 꼭 1명이 100불을 내고 가요. 그러면 얼마가 되요? 120불이 되요. 그냥 하나씩 1불 주고 파는 것보다 20불을 더 벌어요. 그러다 100불이 안 들어오면 어떡하냐? 그런 걱정하면 투자를 못해요. nbspnbspnbsp그럼 이렇게 쭉 해보면 어떨 때는 20불이 될 때도 있고, 어떨 때는 60불이 될 때도 있고, 어떨 때는 100불이 될 때도 있고, 어떨 때는 120불이 될 때도 있고, 어떨 때는 100불을 내는 사람이 2명이 되어서 220불이 될 때도 있고 해서, 전체 횟수를 늘여 나가면 원가가 나오게 되어 있어요. 그래서 지금 제가 해외에 115강을 하고 있는데, 스님 혼자만 다니는 것도 아니고 저렇게 영상도 찍고 56명이 다니면 경비가 많이 들겠지요. 그리고 원래대로 할려면 장소 사용비도 많이 들겠지요. 그럼 이 돈을 다 경비로 할려면 30불씩 50불씩 티켓을 팔아야 해요. 그런데 우리는 다 무료로 강연을 하잖아요. 그리고 나갈 때는 ‘1불이든 5불이든 10불이든 도네이션을 받습니다’ 하고 안내가 나오잖아요. 그렇게 공지를 해도 거의 대부분은 그냥 나가요. 이게 돈이 든다라고 생각을 아무도 안 하고 그냥 듣고만 가버려요. 가끔씩 ‘스님, 고마워요. 다음에 또 오세요’라고 해요. 그래서 그럴 때 제가 가끔 농담을 해요. ‘비행기 값도 안 주고 맨입으로 오라고?’ 그래요.nbspnbsp강연 마치고 나갈 때 nbsp대다수가 그냥 가는데 어떤 사람은 1불 내고, 어떤 사람은 10불 내고 나가는데 어떤 사람은 꼭 100불 짜리를 내는 사람이 있어요. 어제도 얘기 들으니 봉투에 천불이 들어있었다고 해요. 그래서 무료로 많이 나눠주면 손해라고만 생각하면 안 되요. 인생을 너무 그렇게 계산하면 안되요.nbspnbsp아이를 키울 때도 너 키울 때 뭐는 얼마 들었고 뭐 할 때는 얼마 들었으니 나중에 커서 얼마 갚으라 이렇게 계산하는 사람이 어디 있어요? 못할 수도 있고 못 갚는 사람도 있잖아요. 아들이 못하면 손자가 잘하는 경우도 있고 그래요. 질문자는 너무 인생을 계산적으로 살아요. 그런 것을 너무 생각하지 말고 그냥 해봐요. 그러면 10명한테 해준 것 중에 9명은 몰라라 하고 없어지지만 그 중에 어쩌다가 1명이 자기 은혜를 갚는 경우가 있어요.nbspnbsp옛날에 학생들이 어려울 때 제가 장학금을 줘 봤어요. 대다수의 경우 nbsp10명에 9명은 장학금 줄 때 그 때만 고마워하지 뒤에 후배들에게 주라고 장학금을 돌려주거나 하는 사람은 없어요. 그런데 열명에 한명 쯤은 그 모든 돈에 해당되는 것을 다 후원하는 경우가 있어요. 그러니깐꼭 1대1 이렇게 계산하면 안되요. 그러면 질문자는 엄마가 자기 키워줬는데 엄마한테 다 갚는 것은 아니잖아요? 그런데 질문자는 엄마한테 빚지고 나서 투자는 나중에 누구한테 해요? 자기 아이 낳으면 애한테 할 거잖아요. 그렇게 서로 다 달라요. 그러니 사람에 대한 투자야말로 땅이나 부동산이나 주식투자 이런 것보다 훨씬 성공 확률이 높아요. 그래서 작은 이익을 너무따지지 마세요.nbsp질문자 보다 더 직급이 높은 사람이 질문자를 이뻐하고 일을 시키는 이런 것은 투자 가치가 굉장히 높은 거예요. 바보가 아닌 이상 이런 투자처를 꼭 잡아야지요. 그런데 이런 것은 너무단기효과를 생각하면 실망을 합니다. 투자했다가 그 사람이 아무런 보상을 안해준다고 ‘속았네’ 하지 말고 다음 생을 생각하세요. 아시겠어요? ‘이 생에 나를 이렇게 많이 부려 먹으니깐 다음 생에는 내가 타는 말이 되든지 소가 되든지 할거다’ 하고 크게 생각하고요. nbspnbspnbsp이렇게 생각하세요. 첫째, 주어지는 일은 기꺼이 따지지 말고 해줘라. 그런 공덕을 쌓아야 다음에 아기를 낳아도 보살의 마음으로 아기를 보살필 수 있고 아기가 보살 같은 사람이 되어요. 그러니 그 사람을 수행의 방편으로 삼으세요. 두번째, 부탁하는 일을 안해줘도 괜찮다. 그것으로 화를 내고 짜증을 내고 싸우면 질문자가 아이를 가지면 아이한테 굉장히 좋지 않아요. 이해 관계를 따지는 인간한테 태어나는 아이가 훌륭한 아이가 태어날 수 없어요. 너무 따지지도 말고 스트레스도 받지 마세요. 안해줘도 되요. 그런데 안해줄 수 없다면 자기가 자기의 아집과 자존심을 버려야 해요. 똑똑하다는 것을 버려야 해요. 자꾸 틀리게 해주고 늦게 해주고 나면 틀림없이 자기가 그 상사에게 이미지가 나빠지겠지요. ‘저 사람은 일도 못하고 약속도 안 지킨다’ 그런 소리 들으면 어때요? 그런 소리를 듣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으면 되요. 그래서 해주기 싫으면 안해주면 됩니다. 그런데 ‘안됩니다’ 이렇게 얘기하지 말고 항상 부드럽게 ‘예, nbsp알았어요’ 하고 비단같이 대답하는 거예요. 그리고 나서 ‘왜 안했니?’ 그러면 ‘아이고 제 실력이 안되네요. 과장님께서 저를 잘 봐주셨는데 제가 능력이 안되어 미안합니다. 과장님이 너무 잘 봐주셔서 그렇지 실제로는 제 수준이 안됩니다’ 그러면서 항상 좋게 얘기하면 되요. 아이디어를 좀 얻었어요? 느낀 소감을 한번 얘기해봐요.nbsp“순간 순간 올라오는 마음들이 많은데 다음 생을 위하여 참겠습니다.” nbspnbsp“참으면 독이 되요. nbsp참는 것은 선행이 아니예요. 참으면 내가 스트레스를 받게 되고, 어느 순간에 폭발하면 더 안 좋아요. nbsp참는 것보다는 아예 안하는 것이 나아요. 참는 것보다는 안 하는 것이 그 사람을 위해서도 나를 위해서도 훨씬 좋아요. 참으면 더 미워져요. 참는 것은 좋은 방법이 아니예요. 숫제 그 사람한테 화를 내고 물건을 막 집어던지고 ‘내가 너 하수인이냐, 내가 너 비서냐’ 하고 싸우는 것이 더 낫지 참는 것은 바보 같은 짓이예요. 나를 위해서도 그렇고요. 특히 질문자는 아기를 가질 것인데, 엄마가 참는다는 것은 굉장한 스트레스가 됩니다. 그러니까 참을 것이 없든지, 아니면 그 사람한테 거짓말 하라는 것이 아니라 나의 능력 없다는 것을 보여줘서 그 사람을 포기하게 하든지요. 그것은 비록 내게 손실을 가져온다 할지라도요.nbsp예를 들면 어느 것이 어려울까요? 막 틀리게 한다든지 시간을 늦게 한다든지 해서 ‘능력 없다, 성질 더럽다’ 이런 소리를 듣도록 하는 것이 쉬울까요? ‘일 잘한다’는 소리 듣기 위해서 밤 세워 일해서 다 해주는 것이 쉬울까요? 밤샘해서 일해주는 것이 더 쉬워요. 나쁘게 보여서 그 사람을 고치게 하는 것을 역행이라고 해요. 역행은 자기를 굉장히 나쁘게 만들어서 다른 사람을 고치는 것이예요. 역행은 우리에게 쉽지 않습니다. 그렇지만 자기도 역행을 한번 해보든지요? 자기가 자꾸 틀리고, 신용이 없어서 번역할 줄 모른다는 소리를 들으면 되요. 그런 소리 듣는다 하더라도 내 번역 실력이 없어지는 것이 아니니 그런 소리 들어도 손해날 것은 아니잖아요. 그러니 이렇게 하는 방법이 있어요.nbspnbsp그리고 다 착실히 잘해서 잘한다는 평가를 받는 방법도 있어요. 착실하면 고생을 좀 해야해요. 고생을 많이 하는 것은 착한 소리 듣고 싶어서 그런 거예요. 그런데 나쁜 소리 듣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으면 고생은 안 해도 되요. 그런데 자기는 고생도 안하고 나쁜 소리도 듣기 싫고 심보가 그렇네요. 그런 것을 욕심이라고 해요. 그러니깐 고생을 안 할려고 하면 나쁜 소리듣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아야 되고, 좋은 소리 들을려면 고생을 좀 해야하고 노력을 해야 해요. 이것 둘 중에 하나를 선택해야 해요. 돈은 빌리고 돈은 안 갚고 그런 길은 없어요. 빌렸으면 갚아야 하고, 갚기 싫으면 안 빌려야 하고요.”nbsp“감사합니다.”nbspnbsp직장 동료들도 함께 온 가운데 어려운 질문을 해준 질문자에게 청중들도 뜨거운 격려의 박수를 보내주었습니다. 질문자도 다양한 비유를 들어가며 긴 시간 답변을 해준 스님께 감사 인사를 했습니다.nbspnbsp7시에 시작한 강연은 9명과 문답을 주고 받고 나니 10시가 다 되었습니다. 마지막으로 스님께서는 자기 행복은 자기가 만들어가야 함을 강조하시면서 이렇게 마무리 말씀을 해주셨습니다.nbspnbsp“조금 마음의 여유를 갖고 사물을 긍정적으로 보세요. 제일 긍정적으로 보는 게 뭔지 알아요?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아이고 살았네“ 하는 겁니다. 하루에 세 번만 해보세요. 그러면 스트레스가 싹 사라집니다. 살아있는 것만 해도 기뻐하는데 무슨 스트레스가 있겠어요? 기독교 신자에게도 이 마음이 가장 좋은 신앙심입니다. 살아있는 것은 다 하나님 덕이니까 ‘하나님 감사합니다. 오늘도 저를 살아있게 해주셔서’ 이렇게 됩니다. 그런데 하나님이 이것도 해주고 저것도 해준다고 생각하면, 돈이 안벌려도 하나님 욕하고, 자기 뜻대로 안되면 ‘믿어도 소용없다’ 이렇게 늘 원망만 하잖아요.nbspnbspnbsp‘뭘 달라’ 하는 마음이 되면 원망하게 됩니다. 항상 주어진 것에 기뻐할 때 진짜 신앙이 됩니다. 죽어야 되는데 오늘 살았으니까 덤으로 사는 거잖아요. 그러니까 오늘은 기쁜 마음으로 좋은 일을 좀 하는 거예요. 회사 가서 종업원들에게도 잘 해주고 가게에 손님들에게도 좀 잘해주고요. 왜? 살았다는 기념으로요. 그러면 사업도 결과적으로 잘 돼요. 수행을 하면 결과적으로 잘 된다는 얘기이지 기도하면 사업이 잘 된다는 마음은 욕심이예요. 그래서 항상 기쁘게 생각하고 사셔야 해요. 행복을 위해 노력하지 마시고 지금 주어진 것이 다 행복이예요. 살아 있는 것도 행복이고, 눈이 보이는 것도 행복이고, 걸어다니는 것도 행복이예요. 그렇게 항상 긍정적으로 생각할 때 행복해집니다. 외국에 와서 산다고 행복해지는 게 아니예요. 항상 자기 행복을 자기가 만들어가야 합니다.”nbsp긴 시간 동안의 문답 과정을 지켜보며 점점 마음이 가볍고 밝아진 청중들은 스님께 감사의 마음을 담아 큰 박수를 보내주었습니다.nbspnbsp이어서 강연장 입구 로비에서 책사인회가 열렸습니다. 스님께 사인 한 줄을 받고자 많은 참석자들을 길게 줄을 섰습니다.nbspnbspnbsp사인회를 마치고 한 분이 찾아와 스님께서 하고 있는 북한인권사업을 돕고 싶다며 좋은벗들 후원금을 스님께 전하기도 했습니다.nbspnbsp이어서 자리를 이동해 강연장 곳곳에서 무대, 책판매, 영상, 질문자 마이크, 사회자, 안내 등의 소임을 맡아 수고해준 봉사자들이 모두 모여 기념사진을 찍었습니다.nbspnbspnbsp스님께서는 봉사자 한분 한분에게 한국에서 가져온 단주를 손목에 걸어주시며 감사의 마음을 전했습니다.nbspnbspnbsp특히 강연 준비를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여 주신 홍권표님, 이동균님, 김지영님, 김희년님께서는 인생수업과 새로운 백년 책을 각각 선물해 주었습니다. nbspnbsp스님께서는 봉사자들에게 묘덕법사님과 마음나누기를 진솔하게 할 것을 권유하시고, 곧바로 숙소로 이동하셨습니다. 오늘 숙소는 김지영님이 자신이 살고 있는 아파트 단지 내의 빈집을 대여해서 마련해 주었습니다. 스님께서는 봉사자들과 마음나누기를 마치고 숙소로 찾아온 김지영님, 임양진님, 그리고 동남아 강연 총괄자 홍정혜님과 오늘 강연에 대한 평가 회의 겸 담소를 나누시고 내일 일정에 대해 의논한 후 오늘 일정을 모두 마치셨습니다. 그리고 한 두시간 정도 휴식을 취하신 후 새벽에는 원고 교정을 보셨습니다. nbspnbspnbsp봉사자들 대부분이 성당 다니시는 분들이 있어 마음나누기를 어떻게 할지 강연 총괄자인 김지영님은 걱정이 앞섰는데, 묘덕 법사님의 안내로 차분히 마음나누기가 진행되어 진솔한 이야기들을 함께 나눌 수 있었습니다. 봉사자들 대부분이 직장 여성이 아닌 주부들이다 보니 실무 준비가 쉽지 않았고, 또 강연장에서 두 시간씩 떨어진 곳에서 사는 분들이고 아이들도 돌봐야 해서 강연 준비를 함께 하기가 쉽지 않은데 다들 흔쾌히 마음을 모아 주었습니다. nbspnbsp▲nbsp오늘 자카르타 강연 준비 실무를 맡아주신 김지영님과 nbsp임양진님nbsp이렇게 오늘도 많은 분들의 정성으로 99번째 자카르타 강연을 성공적으로 마칠 수 있었습니다. 오늘 자카르타에서 숙박을 하고 내일은 100번째 강연을 위해 싱가폴로 갑니다. 내일은 싱가폴에서 또 소식 전해드리겠습니다. nbsp nbspnbspnbsp▼nbsp법륜 스님의 세계 100회 강연, 지난 날짜 소식 보기
2014.11.30 세계 100회 강연(98) 호주 시드니 Sydney
nbsp안녕하세요. 오늘은 세계 100회 강연 중 98번째 강연이 호주 시드니에서 열리는 날입니다.nbspnbsp시드니 대도시권은 서쪽 블루 마운틴스, 북쪽 혹스베리강, 남쪽 보타니베이까지 뻗어 있으며 중생대의 사암층의 대지와, 해발고도 1,000m 전후의 블루 마운틴스가 남북으로 뻗어 있습니다.nbspnbsp시드니가 속해 있는 뉴사우스웨일즈주는 호주에서 가장 오래 되고 인구가 많은 주로 호주 전체 인구 중 13 이상이 거주하며 주도인 시드니는 호주를 비롯해 오세아니아 지역에서 가장 큰 도시이고, 가장 인구가 많은 도시이며, 가장 다문화적인 사회를 이루고 있는 도시입니다. 전체 인구는 460만명으로 한국 교민 수는 약 8만2,500여명이고, 전체 15만명의 교민들 중 55가 시드니 메트로폴리탄 지역에 거주하고 있습니다.nbspnbsp스님의 시드니 방문은 올해가 세번째로 이전에는 별도의 초청 행사가 있을 때 오셔서 강연을 해 주셨다면 이번에는 호주 동남부 지역을 순회하며 강연을 하셨습니다.nbsp브리즈번에서 새벽 3시에 이동성 엄성현 부부 댁에서 나와 5시30분 비행기로 시드니로 출발했습니다. 이동성님과 안건우님은 공항까지 오셔서 환송을 해 주었습니다.nbspnbsp일요일 아침 8시에 시드니에 도착하니 시드니 정토회의 정귀수님과 손수일님이 공항에 마중나오셔서 스님을 반갑게 맞이해 주었습니다.nbspnbspnbsp스님께서는 공항을 나가자 마자 바로 숙소로 오셔서 잠시 업무를 보신 후, 총영사관에서 초청한 오찬에 참석하기 전에 이스트우드에 있는 시드니 정토회 법당을 잠시 둘러보셨습니다. nbspnbspnbspnbsp지난 2009년 9월 유영진님 댁에서 시작해, 2014년 3월 시드니 정토회로 승격되고 지금 현재는 61명의 천일결사자와 매주 3040여명이 수행법회에 참석하고 있습니다. 또한 호주 전역에 있는 정토회 모임들, 즉 멜번, 브리스번, 아들레이드, 퍼스, 캔버라 지역의 열린법회, 불교대학, 천일결사의 기타 행정적인 역할을 관리하고 담당하고 있는 곳입니다. nbspnbspnbsp이후 시드니 총영사관저로 향했습니다.nbspnbspnbsp오찬에는 시드니 총영사님과 부인, 그리고 시드니 한국문화원장님이 함께 배석하셨습니다. nbsp총영사님 사모님께서 “평소 스님의 유튜브 강의를 자주 본다”고 하시며 115회 강연에 대해 높은 관심을 표했습니다. 특히 한국문화원장님은 본인을 불자라고 소개하시면서 불교 안에서 불법과 한국의 불교문화를 어떻게 이해해야 하는지, 종교가 교민 사회에 어떤 영향을 줄 수 있는지, 좀 더 나은 교민 리더십에 대해 스님께 질문했고 상당히 진중한 대화가 오고 갔습니다.nbspnbspnbsp오찬을 마치고 서둘러 나와 오늘의 강연장인 시드니 대학교에 있는 Footbridge Theatre 로 향했습니다.nbspnbspnbspnbsp자원활동가들과 참석자들이 이미 많이 도착해 강연장을 가득 메우고 있었고, 특히 많은 봉사자들이 안내를 맡아 상당히 질서 정연하게 움직이고 있었습니다. 판매했던 도서들도 지난 오클랜드, 멜번, 브리스번 지역과 같이 완판 되었습니다. 이번 호주 뉴질랜드 강연에서는 4회 모두 책들이 완전히 판매 되어 참 좋았습니다. nbspnbspnbspnbsp또 한가지 기록은 96회 시드니 강연에는 620명이 참석하여 지금까지 진행된 세계 100회 강연 중에서 가장 많은 인원이 참가한 기록을 보여주었습니다.nbspnbspnbsp스님께서는 자원활동가들에게 “수고했습니다” 라며 인사를 나누시고, 가볍게 사전 책 사인회를 잠시 한 후, 이어서 3시에 강연회가 시작되었습니다. 먼저 스님께서는 지난 4일 동안 호주 강연에서 만끽한 화창한 날씨 이야기를 하시며 여는 말씀을 해주셨습니다.nbspnbsp“안녕하세요, 날씨가 아주 좋죠? 주말인데 놀러 안 갔다 오셨어요? 오늘은 일요일인데 교회나 성당, 절에 잘 다녀오셨어요? 여러분들이 예배, 미사 다 드리고 오시라고 3시에 강연을 잡은 거예요. 저도 오늘 날씨가 너무너무 좋았어요. 오늘까지가 봄이고 내일부터 여름이라죠? 한국에서는 오늘까지가 가을이고 내일부터가 겨울입니다. 저는 유럽으로 해서 미국, 남미, 뉴질랜드를 거쳐서 호주로 왔습니다. 그렇게 남쪽으로 오니까 완전히 계절이 바뀌어서 좀 어리둥절하네요. 어제는 브리즈번에서 강연을 했고, 그제는 멜버른에서 강연을 했는데 양쪽 다 날씨가 참 좋았습니다. 왜 이 먼 호주까지 와서 사나 했는데, 날씨 때문인가 하는 생각도 들었어요. 기후 때문에 그래요? 그건 아니고요? 뉴질랜드는 정말 공기가 맑았습니다.nbspnbspnbsp오늘은 ’우리가 어떻게 마음을 가지면 행복할까’가 주제가 될 것 같아요. 그렇다고 제가 그런 것에 대한 강연을 하려는 게 아니에요. 여러분들이 고민하는 것, 여러분이 의문이 나는 것을 질문을 하면 그것을 가지고 저와 대화를 하면서 결과적으로 좀 더 자유로워지고 행복해지는 길을 찾아가게 된다는 것입니다.nbspnbsp호주 출신 중에 두 팔도 없고 두 다리도 없는 분이 행복을 전도하시는 분 계시죠? 아세요? 힐링캠프에도 나오셨잖아요? 두 팔이 없고 두 다리가 없어도 마음이 맑으니까 다른 사람들에게 오히려 기쁨을 전해 주잖아요. 그런데 우리는 사지육신이 멀쩡한데도 괴로워 죽는다고 아우성 치잖아요. 요즘 한국에서는 하루에 자살하는 사람이 46명이나 된답니다. 하루에 매일 자기가 자기 목숨을 끊는 사람이 20대와 30대, 40대에서는 사망 원인의 1위가 자살이랍니다. 그리고 20대 사망자 중에는 자살이 사망 원인의 51예요. 이미 절반을 넘어섰어요. 그러니까 이제는 교통사고나 병이 가장 큰 사망원인이 아니고, 스스로 자기 목숨을 끊는 것이 가장 큰 병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마음을 어떻게 가지는지가 매우 중요한 문제예요. 오늘 여러분들이 마음관리를 잘 못해서 힘든 분이 계시면 그걸 드러내놓고 얘기해주시면 제가 어디가 잘못되었는지 조금 조언을 해드릴 수 있습니다. 운동선수가 운동하는 것을 보고 “자세가 조금 잘못됐다“고 자세 교정을 해주는 것 같이, 마음을 어떻게 잘못 썼기 때문에 괴로움이 생기는지에 대해 얘기해볼 수 있습니다. nbspnbsp오늘 여기에 와서 알게 되었는데, 우리나라 분 중에, 손에 장애를 갖고 계시는데도 피아노를 치시면서 통일을 홍보하고, 많은 사람들에게 기쁨을 주는 이희아씨가 공연을 하신다는 얘기 들어 보셨어요? 이희아씨가 오늘 행사에 참여해주셨습니다. 한번 인사말을 들어보겠습니다.“ nbspnbsp▲ 손에 장애를 갖고 있지만 피아노 연주로 많은 사람들에게 감동을 주고 있는 이희아씨nbspnbspnbsp이어서 북한에 농아 축구단을 지도하면서 호주를 방문한 이민교 목사님을 소개해 준 후 오늘 강연이 시작되었습니다.nbspnbsp▲ 북한에서 농아 축구단을 지도하며 호주를 방문한 이민교 목사님을 소개하며 악수nbspnbspnbsp그리고 질문을 받았습니다. 오늘은 총 9명이 스님께 질문을 했습니다.nbspnbsp“저는 애를 낳아서 혼자 키우고 공부하고 있습니다. 대학에서 공부가 끝나는 대로 다시 취업을 할 거구요. 공부를 할 때는 제가 무엇을 해야될지를 잘 알겠는데 특히 남녀관계에서는 어떤 사람을 만나야 할지 잘 모르겠습니다. 그리고 사람들이 말하는 그 인연이라는 것을 기다려야 된다고 하는데 솔직히 저는 잘 모르겠거든요.”nbspnbsp“저는 27살입니다. 행복하게 사는 방법을 좀 알고 싶어서요. 행복하게 사는 방법은 책 같은 걸 읽어보면 다 욕심을 버리고 긍정적인 마음으로 자기가 처한 상황에 만족하라는 얘기인데요. 결국 행복은 자기합리화나 자기 최면이 아닌가 그런 생각을 하게 됐어요. 스님이 생각하시는 행복은 무엇인지 궁금합니다.” nbspnbspnbsp“지금 대학교에서 복수 전공을 하고 있는데요. 하나는 부모님이 가라고 하셔서 간 학과이고 하나는 제가 하고 싶어서 시작한 학과인데 해가 갈수록 제가 원래 하고 싶었던 전공은 재미는 있지만 제가 재능이 없다는 생각이 점점 들고, 오히려 부모님이 원했던 전공은 제가 들이는 노력에 비해 결과는 좋지만 정말 재미가 없다는 생각이 들거든요. 미래가 불확실해도 제가 하고 싶었던 일을 계속 하는게 좋을지, 아니면 조금이라도 미래가 보장된 일을 하다가 제가 하고 싶은 일을 다시 하는 게 나을지 모르겠어요.”nbspnbsp“아이 둘을 키우고 있는 34살 엄마입니다. 저는 어려서부터 굉장히 무서움을 많이 느끼고 굉장히 특이한 성격이었는데요. 이런 제 모습을 알면서도 엄마가 된 지금까지 고치지 못하고 있습니다. 최근에 딸아이가 다니던 유치원을 이제 그만 보낸다고 하였다가 그 원장님으로부터 협박을 당했는데요. 계속 그때가 생각나고 그때 그날의 악몽에 시달립니다. 이렇게 긴장하고 무서워하는 제 마음을 내려놓으려면 어떻게 수행해야 하는지 조언을 부탁드립니다.”nbspnbsp“저희 큰 딸이 만나고 있는 남자 친구가 인간적인 면으로 볼 때는 좋은 직장에 사람도 볼품도 좋고 모든 것이 아주 괜찮은 사람인데, 조금 이상한 사이비 종교 수장의 아들입니다. 저는 천주교 신자인데 그 종교는 기가 막힌 소리들을 하고 있거든요.”nbspnbspnbsp“8개월 된 딸아이를 둔 엄마인데요. 소승불교와 대승불교에 대해서 배울 때 소승불교 스님들께서 여성의 출가와 성불을 인정치 않으신다는 말씀을 듣고 상당히 놀랐어요. 또 저 개인적으로는 깨달음의장에 가고 싶은데 4박5일 동안 아기를 며칠 떨어뜨려 놓기가 마음에 걸립니다.”nbspnbsp“스님이 통일운동 하시는 거 굉장히 적극적으로 지지하고 지켜보고 있는데요. 통일은 대박이다 뭐 이런 얘기하는데 우리가 개인도 대박을 하려면 투자를 하잖아요. 그런데 우리가 통일을 하기 위해서 투자라는 표현이 좀 우습지만 통일로 가기 위해서 특히 해외에 사는 교포들이 할수 있는 일이 무엇인지 구체적으로 말씀해 주시면 좋겠습니다.”nbspnbsp“저번에 구글에서 강연하시는 것을 잘 봤고 그걸 궁금해하는 사람들이 많아요. 특히 2세대 3세대 중에는 한국말이 잘 안되는 사람들이 많은데 스님의 가르침이 세계 사람들한테 알려지기위해서 스님이 특별히 계획하시는 일이 있는지요?”nbspnbsp오늘은 그 중에서 아기 키우는 걸 어머니가 하루씩 봐주고 있는데 아이를 키우는 방식에 대해 어머니와 갈등이라는 분의 질문과 스님의 답변을 소개합니다. 아이를 키우는 엄마는 어떤 마음자세를 가져야 하는지 소중한 가르침을 배울 수 있었습니다.nbspnbsp“반갑습니다. 저는 애기를 안고 스님 법문을 많이 들었고요. 회사에서도 이어폰을 끼고 스님 법문을 많이 듣고 그랬습니다. 만나서 정말 반갑습니다. 저는 호주 남자와 결혼해서 살고 있는데, 시어머니랑 저랑 아기 키우는 방식 때문에 문제가 있습니다, 사실은 제가 회사를 안가고 애기를 봐야 되는데 하루를 시어머니께 맡기고 제가 회사를 가거든요. 저는 애기를 낳을 때도 무통 분만을 안 하고 그냥 무조건 자연적으로 낳는다든지 이런 걸 좋아하는 타입인데 저희 어머니는 약사이시다 보니까 약을 사랑하세요. 그래서 애기가 조금만 아파도 스테로이드제를 발라서 오시는데, 제가 ”바르면 안 된다“ 말씀드리면 의사가 처방해줬다고 문서로 보여주시니까 저는 대항을 못합니다. 어머니를 고치려고 하면 안 되는데, 그런 부분은 아기한테 너무 나쁘다는 생각이 들어서요, 어떻게 어머니께 제 의견을 표현할 수 있을까요?“nbsp“자기가 아기를 키우면 되지요. 아기를 어머니께 하루라도 맡겼으면 어머니가 하시는 대로 놔두세요. 둘이 가서 싸우는 게 아기한테 더 나빠요. 어머니한테 가 있는 동안은 어머니가 하시는 대로 두고, 어머니 하시는 게 마음에 안 들면 직장을 그만두고 자기가 아기를 키워야 합니다. 어쩔 수 없이 직장을 갈 수밖에 없으면 어머니한테 맡기세요. 기르는 자가 엄마예요. 할머니가 키우면 할머니가 그 순간에는 엄마이기 때문에 자기가 간섭하면 안 됩니다. 엄마라는 것이 정해져 있는 것이 아니라 기르는 자가 엄마예요. 낳은 자가 엄마라는 것은 생물학적인 것이고, 인류학적으로는 기르는 자가 엄마입니다. 생물학적으로는 유전인자가 엄마를 닮고, 정신적으로는 기르는 자를 닮습니다. 자기가 키우면 자기 아이가 되고, 어머니가 키우면 어머니의 아이가 되는 거예요.nbspnbspnbsp앞으로는 낳는 것은 별로 중요하지 않습니다. 옛날에는 낳아서 전부 엄마가 젖을 먹였는데 요즘에는 소젖 먹이고 다 키우잖아요. 너무 자연스럽잖아요. 그런 것처럼, 원래는 불임을 해결하려고 나온 방법인데, 여자가 아이를 못 낳으니까 남자와 여자의 수정란을 제3자인 여자의 자궁에 넣어서 키우는 방법이 있습니다. 그런데 요즈음은 미국에 있는 여자분들 중에는 아기는 낳기 싫고, 아기는 갖고 싶으니까 인도 여자를 대리모로 해서 아기를 낳게 해요. 그래서 지금 낳은 사람의 아이냐, 주문한 사람의 아이냐가 논쟁이 되고 있는데, 지금은 미국이 세계의 우위에 있기 때문에 주문한 자가 아기의 주인이 돼요. 그럼 조금만 더 있으면, 이 상황이 어떻게 바뀔까요? 이 대리모 산업이 지금 굉장히 빠른 속도로 늘어났는데, 앞으로는 인공자궁을 만들어서 인공수정을 해서 인공자궁에 넣고 9개월 후에 와서 아이를 찾아가는 시대가 도래할 것입니다. 그럼 이 때에는 낳는 것은 아무 의미가 없어져요. 그럼 결국은 누가 키우느냐의 문제입니다. 이게 좋다, 나쁘다가 아니라 이렇게 갈 수 있다는 말입니다. 이런 시대로 바뀌어가는 시대이기 때문에 엄마라는 것은 이제 기른 자가 엄마입니다. 그러니까 내가 낳았어도 입양을 시켰으면 기르는 자가 엄마예요.nbspnbsp한국출신 입양아가 프랑스에서 장관이 됐다면 그 사람은 한국 사람과 아무 상관이 없어요. 혈통만 한국이지, 머리에 깔린 사고 프로그램은 완전히 프랑스 사람입니다. 예를 들어, 오바마 대통령이 흑인인데 어떻게 저렇게 똑똑하냐고 하는데, 어머니가 백인 교사이기 때문에 미국 중상층 지식인의 프로그램이 깔려있기 때문에 그런 것입니다. 피부가 검고 흰 것은 하드웨어의 색상과 같아 성능에는 아무 차이가 없어요. 인간 두뇌의 차이는 프로그램을 뭘 깔았냐의 차이입니다. 아기에게 원시인의 프로그램을 깔면 원시인이 되고, 현대의 프로그램을 깔면 현대인이 되는 거예요. 그래서 생물학적으로는 엄마, 아빠의 절반을 닮지만, 정신적으로는 거의 다 엄마를 닮아요. 엄마가 깔끔하면 아이도 깔끔합니다. 엄마가 불안하면 아이도 불안하고요. 그렇기 때문에 할머니가 키울 때에는 할머니의 아이입니다.”nbsp“어머니가 다 키우시는 건 아니고 하루씩 번갈아가면서...”nbsp“그러니까 할머니가 키우는 날은 할머니의 아이이고, 내가 키우는 날은 내 아이란 말입니다. 그러니까 지 엄마가 하는 대로 놔둬야 해요. 그 날은 자기는 엄마가 아니고 회사 직원이고요.” nbsp“연고 바른 것은 제가 좀 닦아내도 되겠습니까?” nbsp“그거야, 자기가 데리고 와서 닦으면 되는 거죠. 할머니가 보는 게 아니잖아요. 그걸 나한테 물을 이유가 뭐가 있어요? 데리고 오면 내 아이인데 내 마음대로 하면 됩니다. 할머니가 볼 때에는 할머니 아이니까 놔두고요. 왜 이웃집 아이에게 간섭을 하려고 해요?” nbsp“스님 말씀 들으니까 맞는 말씀인 것 같습니다. 그리고 한 가지만 더 여쭤볼게요.”nbsp“공짜라고 자꾸 묻는 거예요?” nbspnbspnbsp“사실 결혼해서부터 지금까지 동서와 관계가 계속 안 좋거든요. 저를 별로 안 좋아한다고 해서 저도 거기에 시샘 낼 필요도 없다 하면서 마음을 먹고 있습니다. 그런데 불편한 제 마음을 어떻게 할 수가 없어요. 저는 조카를 예뻐해서 아기를 안아주고 하는데, 저희 동서는 저희 아기를 안아준 적도 없습니다.“nbsp“아기를 안아주면 엄마가 셋이 되고 하니까 안 안아주는 것이 아기한텐 좋습니다. 생각을 잘못 하니까 자꾸 문제가 생기는 거예요. ‘안 안아줄수록 좋다’ 이렇게 생각해버리면 아무 문제가 안 돼요. 내 애를 동서가 왜 자꾸 안아요? 아기를 동네 아이 만들려고 합니까? 자기 아이를 자기가 딱 안고 키워야지 왜 남이 안아주는 것을 좋아해요? 자기 아이는 자기가 안고 자기가 예뻐하면 되지, 이웃사람이 예뻐해 주든지 말든지 신경 쓰지 마세요.”nbsp“감사합니다.” nbspnbsp스님의 꾸지람을 듣고 질문자는 정신이 번쩍 들었는지 한층 밝아진 표정으로 스님께 감사 인사를 했습니다. 마지막으로 스님께서는 부부관계와 통일 문제를 함께 비유하면서 지금은 비록 적대관계에 있지만 통일의 희망을 갖고 살자며 이렇게 닫는 말씀을 해주셨습니다.nbspnbsp“우리가 새로운 세계에 놓여있다는 시각을 가지고 남북문제도 봐야 합니다. 북한과 우리는 전쟁까지 치룬 적대국가가 맞아요, 그런데 통일을 하려고 하면 일본과 통일할 수도 없고, 미국과 통일할 수도 없습니다. 한다면 북한하고만 가능합니다. 즉 제일 철천지 원수도 북한이고, 제일 한 형제가 될 것도 북한입니다. 부부도 똑같아요. 세상에서 제일 미운 놈도 남편이고, 그래도 한 이불 밑에서 자야 하는 것도 남편인 것과 같습니다. 그러니까 ‘북한은 우리 형제다’ 이 얘기만 하면 이상주의자고, ‘북한은 철전지 원수다’ 이 얘기만 하면 현실안주자입니다. 현실에서는 적대관계에 있지만, 그러나 우리가 함께할 유일한 집단입니다. 이 두 가지 모순을 극복해내는 것이 통일이에요. 따라서 어느 한 쪽에 치우치지 말고, 현실에서는 적대관계이니까 안보를 튼튼히 하지만, 그러나 함께 가야될 형제이니까 북한을 미워하거나 시비하지 말고 껴안고 포용하는 자세를 가져야 통일의 기회가 주어진다는 것입니다.nbspnbspnbsp그리고 중국이 부상하는 미중의 경쟁시대에 통일 없이 우리 민족의 진로는 비전이 없어요. 통일은 이제 과거를 청산하자는 의미를 넘어서서 미래의 새로운 비전을 만드는 유일한 길입니다. ‘지금 당장 구체적으로 무엇을 할거다‘ 보다, 이런 관점을 우리가 갖는다면, 대한민국의 통일은 이제 대한민국의 이익만을 위해서가 아니라 동아시아의 평화를 가져오고, 동아시아가 서로 협력하는 동아시아 경제 공동체로 가는 첫 발이 됩니다. 동아시아 공동체가 형성되면, 세계 문명의 중심이 서유럽에서 미국으로, 미국에서 동아시아로 올 가능성도 있어요. 문명은 이동하니까요. 이렇게 비전을 가지고 살아야 합니다. ’그렇게 된다‘는 점쟁이 같은 생각이 아니라, ’그렇게 될 가능성이 있다‘는 가능성을 보고 그것을 성취해나가는 것을 희망이라고 해요. 희망을 가지면 지금은 조금 힘들어도 삶이 재미가 있습니다. 얼굴에 미소가 돋고요. 그런 행복한 삶을 사시길 바랍니다. 감사합니다.“nbsp청중들의 큰 박수로 강연을 마치니 어느덧 2시간 50분이 지나가고 있었습니다. 청중들은 긴 시간 동안 열강을 해주신 스님께 다시한번 큰 박수를 보내줍니다.nbspnbspnbsp강연을 모두 마치고 이어진 본 사인회에는 청중들이 모두 스님을 에워쌀 정도로 인산인해를 이루었습니다. 모두들 강연 내용에 큰 감동을 받고 유익한 시간을 보냈다며 기뻐하는 분위기였습니다. 스님께서는 책에 사인을 해주며 청중들 한명 한명과 인사를 나누셨습니다.nbspnbspnbspnbsp뒷정리를 하고 있는 자원활동가들과 사진촬영까지 모두 마치고 이번 강연을 위해 애쓴 모든 활동가들에게 한국에서 가져온 단주를 선물하며 감사와 격려를 해주셨습니다.nbspnbspnbspnbsp특히 지난 4일 동안 스님과 동행하며 호주 뉴질랜드 강연 전체를 총괄한, 시드니 정토회 총무를 맡고 있는 정은지님의 노고에 많은 격려를 해주셨습니다.nbspnbspnbspnbsp이후 봉사자들은 묘덕법사님과 마음나누기를 하고, 스님은 숙소로 가셔서 업무를 보셨습니다.nbspnbspnbspnbsp묘덕법사님과의 마음나누기에서는 봉사자들이 서로의 마음을 드러낼 수 있는 좋은 계기가 되었습니다. 이번 강연에 자원봉사를 하면서 평소보다 더 많은 일을 했다는 분, 스님의 nbsp법문이 진행되면서 청중들의 표정이 동시에 환해지는 것을 보았던 봉사자들의 희열감까지 다양한 소감을 나누어주었습니다. 특히 “오늘 같은 주말에 아침부터 저녁까지 열심히 일을 하니 정말 기쁘다” 라고 본인의 환희심을 표현하신 분이 가장 인상에 남습니다.nbspnbsp스님은 식사 후 잠시 시드니정토회 총무님, 유영진 보살님, 묘덕법사님과 함께 호주 지역 관련 전법 활동과 앞으로의 방향에 대해 잠시 의견을 나누고 주무셨습니다.nbspnbsp▲ 시드니에서 숙소와 식사를 준비해 주신 박정연 박재원 부부nbsp스님께서는 밤늦게까지 업무관련 통화, 원고 수정을 차례대로 처리하시면서 짧았던 호주 뉴질랜드 일정을 모두 마치셨습니다.nbspnbsp▲ 직장에서 휴가를 내고 스님과 동행하며 호주 뉴질랜드 지역의 스님의 하루를 매일 작성해준 강여경님nbspnbsp내일부터는 세계 100회 강연 중 아시아 강연이 시작됩니다. 내일은 아시아 강연 첫 순서인 인도네시아 자카르타에서 희망플래너 이준길님이 소식을 전해드리겠습니다. nbsp
2014.11.29 세계100회 강연(97) 호주 브리스번 Brisbane
nbsp안녕하세요. 오늘은 세계 100회 강연 중 97번째 강연이 호주 브리스번에서 열리는 날입니다.nbspnbspnbsp어제밤 스님께서 머무신 속소는nbsp시드니에 이어 올해 3월부터 멜버른에 이사 와 살면서 열린법회를 연 유영진님 댁입니다.nbsp멜버른을 떠나기 전, nbsp스님 일행을 공항에 배웅하기 위해 이른 새벽부터 두 부부가 유영진님 댁으로 찾아왔습니다.nbsp이번 멜버른 강연회 총괄팀장 이현숙님 부부와 열린법회 실무와 이번 강연회 내부를 담당했던 안진님 부부입니다.nbspnbspnbsp▲ nbsp멜버른 열린법회를 함께 하며 어제 강연의 내부 프로그램을 담당한 안진님 부부nbsp▲ 어제 멜버른 강연을 총괄해준 이현숙님 부부nbsp멜버른 열린법회는 2014년 3월에 시작된 열린법회인데도 자원활동가들의 활동이 활발하고 게다가 이번 강연회도 잘 치뤄서 스님께서도 칭찬을 아끼지 않았습니다. 스님께서는 감사 인사와 더불어 스님의 책을 선물로 드렸습니다. 특히 유영진님은 ‘열혈청춘’ 책을 사인해 받으시고는 “더 열정적으로 움직이시겠다”고 환히 웃으며 좋아하셨습니다.nbsp▲ 올해 3월에 멜버른에 이사와 열린법회를 여신 유영진님nbspnbspnbsp브리스번에 도착하니 완벽한 여름 날씨에 아주 화창했습니다. 특히 열린법회 사람들이 함께 나와서 스님을 환영해준 것이 참 인상적이었습니다. 공항에서는 이동성님과 박일님이 ‘환영’이라는 깜찍한 푯말을 들고 나와서 모두를 참 재미있게 했습니다.nbspnbsp▲ 환영 푯말을 들고 공항 마중을 나오신 두 거사님nbspnbsp공항에서 나와 바로 이동성님 댁으로 이동했는데, 가족들 모두가 스님께 삼배로 인사를 하고 함께 기념사진을 찍었습니다.nbspnbspnbsp식사와 원고 교정을 하신 후 바로 강연장이 있는 그리피스대학교 Griffith 내이단 캠퍼스 Nathan Campus에 도착했습니다.nbspnbsp강연 전, nbsp퀸스랜드와 브리스번 인근의 지역 인사들과 간단한 차담을 나누셨습니다. 모두들 스님께 “왜 이제서야 브리스번을 오셨냐?” 면서, 특히 골드코스트 한인회에서는 “스님께서 골드코스트도 방문해야 한다”고 강하게 어필하기도 했습니다. 그 외에는 즉문즉설 강의에 대한 내용과 115회의 강의를 115개의 도시에서 115일에 걸쳐 진행하고 있다는 사실에 참석하신 많은 분들이 놀라워 했습니다.nbspnbspnbspnbsp차담에 함께한 지역 인사 분들은 연꽃선원 주지스님, 퀸스랜드 한인회, 골드코스트 한인회, 서림교회 담임목사님, 그리피스 대학 교수님입니다. nbspnbsp오늘 강연이 열리는 브리스번은 전체 면적 5,950㎢ 에 인구 수가 220만명으로, 그 중 한국 교민은 2만6천명 정도이며, 그 중 시민권자는 7,135명, 영주권자는 10,557명, 유학생이 3,130명이고, 워킹 홀리데이 등 일반 체류자들도 많아 규모가 매우 큰 교민 사회를 형성하고 있습니다.nbspnbsp브리스번 강연을 찾은 대중들은 이번 오세아니아 강연 중 가장 연령대가 낮고 젊은 사람들이 많았습니다.nbsp낮 시간이었는데도 불구하고nbsp400명의nbsp청중들아 참석했습니다. 집중도가 아주 높았던 열띤 강연이었고, 젊은이들이 많아서 더욱 활기가 느껴졌습니다. nbspnbsp즉문즉설에 앞서 먼저 스님께서는 항상 시드니만 가고 브리스번에는 안 왔다고 항의를 받았다고 하시면서 반가운 마음과 함께 이렇게 여는 말씀을 해주셨습니다. nbspnbsp“여러분, 반갑습니다. 저는 이곳에 처음인데, 이렇게 열렬히 환영해주셔서 감사합니다. 브리즈번에서 이런 행사가 있도록 준비해주신 자원봉사자분들께 감사드립니다. 오늘 바쁘신 중에서도 브리즈번 한인회 회장님, 부회장님, 골든코스트 한인회 회장님, 부회장님도 이렇게 참여해주셔서 감사합니다. 그리고 세월호 가족들의 아픔을 치유하고자 몸부림쳤던 우리 목사님, 그리고 지정스님 참여해주셔서 감사합니다.nbsp저는 지금 교민들이 사는 세계 곳곳을 찾아가서 대화하고 있습니다. 유럽, 북미주, 중남미를 돌아서 이제 오세아니아 여기에 왔습니다. 앞으로 남은 일정은 동남아시아, 일본으로 해서 끝이 나게 됩니다.nbspnbsp오늘 여기에 와서 “브리즈번이 얼마나 좋은 도시인데 스님은 그걸 잘 모르고 항상 시드니만 왔다 가느냐”며 브리즈번을 홀대했다고 야단을 좀 맞았습니다. nbspnbsp그리고 “골든코스트가 얼마나 좋은 곳인데 보지도 않고 가세요?“ 하셔서, 제가 ”뭐가 좋아요? 해변은 nbsp여기저기 많잖아요“ 했더니, ‘백문이 불여일견’ 이라 눈으로 보아야지 말로는 안 된다고 하시면서 꼭 오시라는 초청을 이미 받아 놓았습니다. 이렇게 인사 드리고요. nbsp자, 그럼 누구든지 얘기해보세요.”nbspnbsp그러면서 질문을 받았습니다. 총 12명이 스님께 질문을 했습니다.nbspnbsp“짚신도 짝이 있다고 하는데 내게도 그런 날이 올까 싶습니다. 결혼하고 싶어요.” nbspnbsp“저는 자영업을 하는데, 사고가 나서 척추가 부러졌습니다. 어쨌든 의사가 걷지 못할 것이라고 했는데 걸었어요. 문제는 남자들이 자꾸만 다가와요. 난 좋은 친구로 지내고 싶었는데 친절한 것도 죄인가요?nbsp“과거를 생각하면 자주 공허해집니다. 하고 싶은데, 하지 못했던 것이 있어 그런 것 같습니다. 호주에 온 지 10개월 되었습니다.nbspnbsp“3년 전에 호주에 왔다가 여러가지 상처를 받아 한국으로 들어가 쉬다가 다시 여기 왔습니다. 꼭 여기서 이루어내겠다는 생각으로요.”nbspnbsp“한국은 유교적 수직 구조가 많은 해를 끼치는 것 같습니다. 한국의 정책들을 보면 많은 사람들에게 그렇고 때로는 나에게도 그런 것 같아요.”nbspnbspnbsp“아들이 졸업하고 학교에서 강의를 하던 차, nbsp유명한 회사에 입사 시험을 봤는데 마지막 관문도 모두 통과해서 개인 서명만 하면 회사에 들어갈수 있는데 아들이 하지 않고 있습니다. 너무 너무 아까워서 지금 서로 신경전 중입니다.”nbspnbsp그리고 12세 어린이이가 스님께 물었습니다.nbsp“죽음이 두렵습니다. 죽은 다음에는 어디로 가는 걸까요?”nbsp“저는 통일운동에 관심이 많습니다. 그러나 한국 사회에서는 통일에 관심이 없고 뜻이 있는 사람들도 움직이지 않는 것 같습니다.”nbspnbsp“9월에 정토회의 깨달음의장 수련을 다녀와서 잘 살고 있습니다. 문제는 이 행복에 유효기간이 있을까 하는 걱정이 됩니다. 큰 불행이 다가오지는 않을까 하는 불안감이 가장 큽니다.”nbsp“지난 4년간 집안에 어르신인 할아버지가 돌아가시고, 1년 후 어머니가 돌아가시고, 올해는 고모가 돌아가시고 그리고 아버지는 지금 암이 재발하셨습니다.”nbspnbsp“아들을 온 정성을 다해 키웠습니다. 최선을 다해 키웠지만, 하는 행동을 보면 화가 많이 납니다.”nbspnbsp이렇게 다양한 질문에 대해 스님께서는 지혜로운 답변을 해주셨습니다. 오늘은 이 중에서 아들이 스무살이 넘었지만 집에서 독립을 하지 nbsp않아서 고민이라는 아버지의 질문과 스님의 답변을 소개합니다. 문답 속에서 nbsp아이들을 어떻게 독립시킬 수 있는지 구체적인 지혜를 많이 배울 수 있었습니다.nbspnbspnbsp“저는 스님의 유튜브 즉문즉설 강연을 총 1015회까지 다 봤습니다. 스님의 모습을 직접 뵙게 되어서 너무 반갑습니다. 저는 스물다섯 살, 스물두 살의 아들을 둔 아버지이자 가장입니다. 아들 중 한 명은 대학을 마쳤고, 한 명은 대학에 다니고 있습니다. 첫째 아들이 올해 졸업을 했기 때문에 제가 ”돈을 벌기 시작하면 집세를 내라, 아니면 나가 살아라“ 농담은 아니지만 농담 섞어 얘기 했습니다. 스님 말씀을 듣고 그래야 되는 게 정상인 줄 알고 저도 그 전부터 꾸준히 얘기를 했는데 아들이 안 나갑니다. nbspnbsp지금은 여자친구가 생겨서 반은 왔다가 반은 나갔다가 하는데, 그러니까 있는 것도 아니고 없는 것도 아니고 집세도 안 내고 그러고 있습니다. 그렇다고 스님이 말씀하신 것처럼 애들이 나가고 나서 키를 바꿔놓는 것은 조금 그렇고요. 좋게 부드럽게 내보낼 수 있는 방법이 있는지 모르겠어요.nbsp“아들 문제는 조금 강하게 충격을 줘서 해결하는 방법이 있고, 시간을 조금 길게 갖고 해결하는 방법이 있습니다. 조금 강하게 nbsp충격을 주어 빨리 해결하는 방법은 아이들한테 ”너희도 이제 성인이 됐으니까 생활비의 일부를 내라“ 얘기를 하고, ”한 달 우리 집 생활비가 총 2,000달러 나간다, 엄마 아빠가 그 중에 1,000달러를 내고, 너희들도 500달러씩 내라“고 하는 겁니다. 작은 아들이 수입이 적다면, 정부도 수입이 적으면 정부 보조도 있잖아요. ”가난하니까 엄마, 아빠가 200달러 보조해 줄 테니까 300달러 내라” 하면서 계약서를 딱 써 놓고 그렇게 하자고 얘기해보세요.nbspnbsp계약서에 서명을 해 놓고도 안 지키면, 아들 앞에서 1인 피켓시위를 할 수 있습니다. 그렇게 좀 특이한 아이디어를 내야 돼요. 그걸 가지고 싸우지 마시고요. 아이가 출근할 때, 퇴근할 때 집 앞에서 1인 시위를 하면 효과가 있어요. nbspnbsp애가 아침에 일어나서 직장 나갈 때 창피를 줘야 하니까 대문 앞에서 1인 시위를 하고, 또 저녁에 퇴근해서 오면 또 나가서 1인 시위를 하세요. 그리고 집에 플랜카드를 붙이세요. 아들이라고 쓰지 말고, OO과 XXX는nbsp나이가 OO살이라고 써놓고, 성년이 됐는데도 집에 살면서 집세도 안 낸다. 빨리 집세를 내라” 하세요. 이렇게 아버지가 재밌게 자꾸 하면 좀 자극이 돼요. 속도감 있게 진행하려면 아이디어를 자꾸 내서 이렇게 해보는 것도 괜찮습니다.nbsp그 다음에 두 번째 방법은, 부인이 이것에 대해 동의하실지는 모르겠는데, 일체 간섭을 안 하는 방법입니다. 간섭 안할 뿐만 아니라, 청소고 뭐고 일체 건드리지 말고, 부부 방만 치우고, 밥도 부부만 딱 해 먹으세요. “너희들 알아서 살아라. 집세를 안 낸다고 아버지가 너희를 고발할 수는 없고, 너희는 너희가 먹고 살아라. 우리는 우리가 먹고 살겠다” 하고 상관 안 하면 한 집에 살아도 독립되게 살 수 있어요.nbsp“열여덟살부터 간섭을 거의 안 했고요.”nbsp“잘 하셨어요.nbsp자기만 그랬어요? 부인도 그랬어요?”nbsp“아직 아내는 아들을 챙기지요”nbsp“그러면 생각을 해보세요. 세상에 방세도 안 내는데, 빨래도 해 주지, 밥도 해 주는데 왜 나가겠어요?” nbspnbsp“그렇게 해 보겠습니다.”nbsp“그런데 엄마는 자꾸 애들 옷도 빨아주고, 방 청소도 해주고 그럴 거 아니에요?”nbsp“그게 문제입니다.”nbsp“그러니까 부인과 합의를 해야 합니다. 내가 혼자 살면 내가 딱 하면 되는데, 부인도 자기 아들이니까 권리의 반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부인에게 애들을 자립시키기 위해서는, 부모 자식 간에 우리가 애들을 쫓아내지는 못하지만, 대신 자기들이 알아서 살도록 방 청소든, 빨래든 일체 해주지 말자 고 얘기해보세요.“nbsp“방 청소는 열다섯, 열여덟살부터 손을 안 댔습니다. 그러면 가끔 자기들이 치우기도 하고요.”nbsp“잘 됐네요. 청소를 해야 하는 일요일에는 시간을 정해서 ”대청소 하는 날이다“ 하고 깨워서 ”너는 이거 해라, 너는 풀 깎아라“ 하면서 조금 귀찮게 해야 집을 나갈 거 아니에요? 불편해야 나가는데, 편안하면 나가기 어려워져요. 그런데 선생님이 그렇게 하고 계신다니까 금방 나갈 것 같습니다. 한 몇 년 놔두면 되겠어요. 너무 빨리 쫓아내려고 하지 말고 기다리는게 좋겠네요.”nbsp“좀 기다려볼까요?”nbsp“쫓아내는 것이 원칙인데, 강제로 쫓아내는 것 보다는 피켓시위하는 그런 방법도 있고, 안 그러면 한 3년 놔두세요. 애들이 미워서가 아니라 자립을 시키기 위해서, 부인과 상의해서 일체 생활의 간섭도 안 할 뿐만 아니라 도움도 주지 말자 이렇게 하는 방식으로 하면 큰 문제 없을 것 같습니다.”nbsp“예, 알겠습니다. 감사합니다.”nbsp질문이 한 가지 더 있습니다. 와이프에게 심각한 문제가 있어요. 와이프에 대한 책임을 도대체 어디까지 가져야 되는지요?nbsp사실 결혼하면서 이렇게 오랫동안 살게 될 줄 몰랐어요. 결혼을 하게 될 때 선서 하지 않습니까, ‘머리가 파 뿌리 될 때까지 살겠습니다’ 선서 했는데 이렇게 까지 오래 살게 될 줄은 몰랐습니다.nbsp그리고 내가 해보고 싶은 일을 하고 싶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그걸 어떻게 해야 하는 것인지, 이렇게 생각만 하다가 끝이 나는 건지요?“자기 머리는 이미 파 뿌리가 됐는데요. 윤리, 도덕을 떠나서 솔직하게 얘기하면 돼요. 성년과 성년이 약속한 거잖아요. 그러니까 서로 합의해서 약속을 깨면 됩니다. 그런데 문제는 자식이 있으면 자식이 스무 살 때까지는 자녀를 위해서 자기 권리를 유보시켜야 됩니다. 그런데 지금 자식이 스무 살이 넘었잖아요. 그러니까 이제 둘이 서로 얘기 해봐요. ”우리 이렇게 똑같은 사람하고만 살아야 되겠니? 너도 좋은 남자하고 살아 보고, 나도 좋은 여자하고 살아보고, 각각 따로 한 번 살아볼까?“ 물어보면 됩니다. 물어보고 동의가 되면 그렇게 하면 되고, 동의가 안 되면 계약을 파기하기 위해서는 상대방의 동의를 얻기 위해 조건을 더 좋게 제시해줘야죠. 재산을 다 준다던지요. nbspnbsp이렇게 합의를 해야 돼요. 항상 우리가 합의를 해서 약속을 했기 때문에 약속을 해지할 때도 합의를 해야 합니다. 한 쪽이 파기를 안 하려고 하면, 그 사람이 합의할 만한 조건을 제시해 줘야죠. 그런데 생각해보니까 이렇게 재산을 주고 나면 합의를 깨는 게 나에게 더 손해라고 생각된다면 해약을 안 해야 합니다. 더 행복하기 위해서는 괜찮아요. 그런데 자기는 지금 부부 사이에 불만이 있는 것이 아니고, 자기가 뭘 하나 해 보고 싶은 건데 그걸 해 보려고 하니까 부인이 반대를 하는 거겠죠? 그럼 솔직하게 한 번 말해보세요. 젊은 여자랑 한 번 살아보고 싶은 거예요?” nbsp“전혀 아닙니다.”nbsp“그럼 뭔데요?”nbsp“법 공부를 한 번 해보고 싶어서요.”nbsp“지금 하고 있는 일을 그만 두고 공부를 하려고 해요? 아니면 일을 하면서 공부를 하려고 해요?”nbsp저는 그런 것에 대한 걱정 없이 공부만 하고 싶어요.nbsp알겠어요. 그럼 만약 제가 중이 된지가 40년이 넘었는데, 세상 사람 다 해보는 결혼 한 번 해보고 죽어야 하지 않겠냐고 하면서 자기한테 상담을 하면 자기는 뭐라고 하시겠어요? nbspnbsp“하지 말라고 하겠어요.”nbsp“환갑이라는 말이 있잖아요? 환갑의 뜻이 인생은 nbsp60년을 돌면 끝난 거라는 겁니다.”nbsp“그런 것 같습니다.”nbsp“그러니까 자기는 이제 끝났어요. 죽어야 돼요. 죽어야 되는데 자기가 지금 요행이 안 죽었잖아요. 현대사회에 산 덕으로 죽을 걸 살았잖아요. 저도 마찬가지고요. 이제 끝났습니다. 그러면 죽을까요? 살아있는 것을 일부러 죽이는 것도 일이에요. 약 사러 가야 하고, 천장에 밧줄을 달아 매고 하려면 귀찮잖아요. 그러니까 살아있을 때에는 그냥 살고, 때가 돼서 죽을 때에도 산소호흡기를 달고 안 죽으려고 발버둥치지 말고, 죽을 때가 되면 기꺼이 죽어주고 살아있을 때에는 열심히 살아야 합니다.nbspnbspnbsp그럼 지금 60이 넘었을 때 어떤 생각을 해야 할까요? 아무것도 안하고 그만두고 놀아야 된다는 것이 아니라, ‘덤이다’라고 생각해야 합니다. 덤이기 때문에, 덤으로 주어진 오늘 하루, 아니면 이틀이 갈지 열흘을 갈지 10년이 갈지 그건 알 수가 없는데, 덤으로 사는 인생에 너무 설계가 복잡하면 안 돼요. 간단해야 합니다. ‘내일 죽어도 그만이다’ 하는 정도의 생각을 갖고 살아야 해요. 그래서 60이 넘으면 인생을 정리를 해야 합니다. 뭘 자꾸 벌이지 말고요.nbspnbsp덤이라고 한다고 무책임하게 사는 것이 아니에요. 열심히 살지만 내일 죽는다고 해서 ‘벌여놓은 일이 있는데 내가 죽으면 안 되지’ 하는 생각은 없어야 합니다. 그래서 자기는 무슨 10년 계획을 세워서 뭘 하려고 하면 안 되고, 덤으로 사는데 법률공부를 하고 싶다면 하셔도 됩니다. 그런데 자기가 80까지 살 계획을 세워놨는데 만약 3년 안에 죽는다면 실패한 것이 되잖아요. 그래서 그렇게 계획 세우시면 안 됩니다. 덤으로 사는 것이니까요.“nbsp“스님 말씀처럼 덤으로 산다는 생각을 가지고 살고 있습니다. 그런데 제가 해보고 싶었던 것이 있었는데요...”nbsp“부인하고 의논해서 하면 됩니다. ”여보, 나 이거 죽기 전에 한번 꼭 해보고 싶어. 나는 내 연금만 받아서 살게“ 라고 말하세요. 부인과 의논해서 하는 것은 뭘 해도 문제가 없어요. 그런데 의논 없이 혼자 일방적으로 하는 것은 안 됩니다. 약속을 지켜야죠. 의논해서 하세요. 저는 찬성입니다. 그런데 부인과 의논 없이 하는 것은 안 돼요. 아이들과는 의논하지 않아도 됩니다.“nbsp“의논해도 감정적으로는 좋지 않습니다. 아내는 ”해봐“ 하는 식이에요”nbsp“그럼 해버리면 되죠. ”nbsp“감사합니다.”nbsp“정말 부부가 서로 사랑한다면, 상대가 한 번 해보고 싶다고 하는 것이 정말 터무니없는 것이라면 말려야 되겠지만, 그렇지 않다면 한 번 해보도록 하는 것도 좋아요. 그리고 또 해보고 싶은 것을 인간이 어떻게 다 하고 삽니까? 그러니까 해보고 싶은 것도 상대가 반대하면 놓아야 돼요. 수행이라는 것은 욕심을 놓는 것이니까요. 부인하고 의논을 하고 부인이 동의를 안 하면 동의할 수 있도록 서비스를 잘 하면 됩니다. 서비스를 잘 해서 동의를 얻으면 돼요.”nbspnbsp스님의 명쾌한 답변에 청중들의 우레와 같은 박수가 쏟아집니다.nbsp마지막으로 강연을 마무리하며 스님께서는 살아있는 것만으로도 큰 복임을 알아야 한다 하시면서 이렇게 닫는 말씀을 해주셨습니다.nbspnbsp“이렇게 해서 오늘 우리가 괴로운 얘기를 좀 했는데 그래도 재밌죠? 인생이란 것은 이렇게 재미있어요. 사는 것 그 자체가 재미예요. 산에 가봐요. 다람쥐가 재미있게 사는 것 같죠? 그런데 다람쥐는 자신이 재미있다는 생각을 안해요. 우리가 볼 때 재미있어 보이는 것이지요. 그러니까 재미있는 것은 인간이 갖는 특권입니다. 동물에게는 재미있다는 것이 없어요. 대신에 동물은 괴롭다는 것도 별로 없어요. 인간은 괴롭다는 점이 동물보다 못한 점이예요. 그래서 부처님은 즐거워라 이렇게 안 가르치셨어요. 괴롭지는 마라 라고 하셨습니다. 위대하지 않아도 좋으니 최소한 다름쥐는 되어라는 것입니다. 괴로움이 없는 상태가 바로 열반입니다. 이런 관점을 갖고 인생을 사셨으면 해요.nbspnbsp호주 온다고 행복해지는 게 아니예요. 장소 옮긴다고 행복해 질 것 같아요? 그렇지 않습니다. 지금 여러분들은 호주에 살면서도 힘들죠? 그러니 여기 온다고 행복해지는 게 아니잖아요. 인생은 지금 행복해야 돼요. 행복하기 위해서 노력하면 안되고 지금 행복해야 돼요. 눈으로 보는 것 이것만 해도 큰 복이예요. 말할 수 있는 것도 큰 복이예요. 삶이 그대로 복인 줄 알아야 돼요. 그런데 우리는 늘 복이 복인줄 모르고 복을 구하고 있잖아요. 학생은 공부하는 게 복이다 생각하시고요. 밥 먹고 공부만 해도 칭찬듣는 때는 학생 때 밖에 없어요. 이게 얼마나 큰 복인데요. 그러니 공부를 재미있게 하셔야 돼요. 일도 재미있게 하시고요. 결혼을 하셨으면 스님이 부러워할 정도로 재미있게 한번 살아보세요. 그렇게 행복하게 사시기 바랍니다.”nbspnbsp긴 시간 열강을 해주신 스님께 큰 박수가 쏟아졌습니다. 스님께서는 2시간 50분 동안 강연을 해주셨습니다.nbsp낮 시간이었는데도 불구하고 청중들의 집중도가 아주 높았던 열띤 강연이었고, 젊은이들이 많아서 더욱 활기가 느껴졌습니다.nbspnbsp강연 준비를 돕겠다고 브리스번 열린법회로 많은 분들이 자원봉사 신청을 하고 함께해 주었는데, 강연이 모두 끝나고 묘덕법사님과 함께 마음나누기를 했습니다. 어떤 분은 사람들이 변하는 모습이 정말 신기했다 하면서 강연장에 들어올 때는 먼저 인사를 건내도 아는 척도 안 하던 사람들이 강연장을 나가면서는 표정이 바뀌고, 후원도 하는 것이 정말 신기했다 고 소감을 나누어 주었습니다. nbsp또 한분은 브리스번의 행사에서 이렇게 많이 모인 적이 없다면서 대규모 한인행사에서도 200명 모이면 정말 많이 모인 것인데 그것의 2배가 모이다니... 하시며 놀라워 했습니다. nbspnbspnbsp강연을 마치고 행사장 곳곳에서 소임을 맡아 함께해준 자원봉사자들과 함께 기념사진을 찍었습니다.nbspnbspnbsp더욱이 정토회 공동체에서 실무자로 함께 일했던 박효진님과 그 남편이 함께 와서 열심히 봉사하는 모습이 참 좋았습니다.nbsp▲ 정토회에서 실무자로 일했었고, 지금은 호주 브리즈번에서 결혼해 살고 있는 박효진 부부nbspnbspnbsp강연이 끝나고 집으로 가는 길에 Mount Cootha 전망대에 올라가서 브리스번 전경을 보았습니다. 참 오밀조밀하고 아름다운 풍경이었습니다.nbspnbspnbsp스님은 이후 몸이 안 좋으셔서 오늘 숙소인 이동성님 댁으로 돌아오셔서 일찍 휴식을 취하셨습니다. 내일도 새벽 비행기로 브리즈번에서 시드니로 내려가게 됩니다. 내일은 시드니에서 또 소식 전해드리겠습니다. ▼nbsp법륜 스님의 세계 100회 강연, 지난 날짜 소식 보기
2014.11.28 세계 100회강연(96) 호주 멜번 Melbourne
nbsp안녕하세요. 오늘은 세계 100회 강연 중 96번째 강연이 호주nbsp멜번에서 열리는 날입니다.nbspnbsp새벽 첫 비행기로 오클랜드 공항을 떠나려는데 어제 오클랜드 강연을 주관했던 남국정사의 동진스님께서 스님을 배웅하시려고 찾아 오셨습니다. 동진스님께서는 감사 인사와 더불어 스님의 세계 100회 강연의 남은 일정도 원만히 진행되길 바란다고 전하시며 남국정사를 대표하여 정성을 담아 스님께 보시도 해주셨습니다. nbspnbsp▲nbsp오클랜드 공항까지 배웅을 나와 주신 남국정사 주지스님과 신도님들nbsp오스트레일리아는 연방국가로 6개의 주와 2개의 자치 테리토리로 구성되어 있으며, 세계에서 6번째로 면적이 넓은 나라 입니다. 이는 한반도의 35배나 됩니다. 북쪽에는 인도네시아와 동티모르, 파푸아뉴기니, 북동쪽에는 솔로몬 제도와 바누아투, 뉴칼레도니아, 그리고 남동쪽에는 뉴질랜드가 있습니다. 국토 면적이 넓어 열대부터 온대까지 다양한 기후가 나타나며 국토의 60 이상이 연강수량 50㎜ 이하인 사막 지대이며 그 중 나머지 10만이 연강수량 100㎜ 정도인 반건조 기후를 띱니다. 대부분 온화한 온대 지역인 해안 지역에 주거지가 형성되는데, 해안 도시들은 여름에 덥지 않고 겨울에 영하로 내려가는 일이 거의 없어 세계에서 가장 살기 좋은 도시로 많이 거론되는 곳입니다. 인구는 2,368만만명이며 인구의 민족적 분포도는 대체로 92가 유럽민족계로 추산되며 아시안 민족 계열은 약 12, 원주민 및 기타는 약 2로 추산됩니다. 한국 교민 수는 15만명으로 전체 호주 인구의 0.3 정도이고 유학생과 워킹홀리데이 프로그램 참여자가1015로 교포사회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높은 편입니다.nbspnbsp▲ 멜번 Melbournenbsp오늘 강연이 열리는nbsp멜번은 호주 대륙의 남동부에 위치하고 있으며 대륙에서는 최남단에 위치한 빅토리아의 주도입니다. 인구는 417만명에 달하는 곳입니다.nbspnbsp멜번nbsp강연회를 준비하는 팀들이 일찍부터 공항에 나와 스님 일행을 마중해 주셨습니다. 공항에서 곧바로nbsp멜번nbsp열린법회를 진행하는 유영진 보살님 댁으로 향했습니다.nbsp멜번nbsp열린법회 회원들도 모두 자리해 다함께 삼배로 스님께 인사를 올렸습니다. 그리고 회원들과 잠시 이야기 나누는 시간을 가지셨습니다.nbspnbspnbspnbspnbsp이어서 주nbsp멜번nbsp대사관 정성섭 총영사님과의 오찬에 참석하여 환담을 가졌습니다.nbsp▲nbsp주nbsp멜번nbsp한국대사관 정성섭 총영사님nbsp이 후 잠시 멜린 열린법회 장소에 머무르며 휴식을 하시고, 오후 6시에 오늘 강연이 있는 The Holy Family Chuch 성가정 교회로 향하셨습니다.nbspnbspnbsp▲nbsp오늘 강연장, The Holy Family Catholic Church 한인성당nbsp도착하시자 마자 본교구 신부님이 스님을 반갑게 맞이해 주셨습니다. 신부님은 필리핀 출신인 분이신데, 신부님의 친근한 외모에 “한국인 같다”고 하시며 “이렇게 행사를 치룰 수 있게 배려해주셔서 감사하다”고 인사를 하셨습니다.nbspnbspnbsp▲nbsp스님을 반갑게 맞이해주신 신부님nbsp이 후 지역 인사들과의 강연 전 차담에서는nbsp멜번nbsp한인성당의 담당 신부님, 사목회장님과 멜번 총영사님과 한인회 회장님이 함께하여 환담을 나누셨습니다. 그런 후 강연장으로 향했습니다.nbspnbspnbsp▲nbsp신부님, 사목회장님 , 총영사님 등 지역 인사 분들과의 차담nbsp300여명의 대중이 참석할 것을 기대했는데 강연 한 시간 전부터 인원을 초과해 의자를 더 마련하느라 분주했습니다. 결국 총 참여인원은 480여명이 되어 자리에 앉지 못하는 사람도 많이 생겼습니다. 하지만 모두들 강연이 끝날 때까지 움직이지도 않고 뜨거운 열기로 스님의 강연에 집중했습니다.nbspnbspnbsp▲nbsp강연장을 가득 메운 480여명의 청중들nbsp환영 영상과 소개 영상이 끝나고, 멜번 교민들의 뜨거운 환영을 받으며 스님께서 연단에 오르셨습니다. 먼저 스님께서는 “즉문즉설은 살아가면서 겪는 고뇌와 의문에 대해 대화를 하는 자립니다. 어떤 주제든 상관 없습니다” 라고 하시면서 즉문즉설의 취지에 대해 자세히 설명해 주신 후 청중들의 마음을 열게 하고 그런 후 질문을 받기 시작했습니다.nbspnbspnbspnbsp총 7명이 스님께 질문을 했습니다.nbspnbsp“외국인 남편과 결혼한 7년차 주부입니다. 머리로는 잘 받아들여 지는데 가슴으로는 잘 받아들여지질 않습니다. 조언을 부탁드립니다.” nbspnbsp“하나를 선택하면 다른 하나를 포기해야 한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지혜로운 선택은 어떻게 하는 것인가요?”nbspnbsp“행복하기 위해 버려야 하는 것은 무엇인가요?”nbspnbspnbspnbsp“아는 분이 강하게 교회를 가라고 권유를 하고 있습니다. 저는 별로 가고 싶지 않는데 어떡하죠?”nbspnbsp“34세의 여성입니다. 결혼하고 싶습니다. 사람들이 내게 눈이 높다고 하는데 사실은 타이밍이 문제인 것 같아요.”nbspnbspnbsp“단멸론에 대해 궁금합니다”nbspnbsp이렇게 다양한 질문에 대해 스님께서는 정성껏 답변을 해주셨습니다. 오늘은 그 중에서 악착같이 경쟁하며 살다가 스님 법문을 듣고 나누는 삶을 살고 싶은데 잘 되지 않는다는 분의 질문과 스님의 답변을 소개합니다. 욕심을 내려놓는 것도 욕심을 내어서 하면 안된다는 소중한 깨우침을 얻을 수 있었습니다.nbspnbspnbsp“스님, 저는 스님을 7월부터 유튜브를 통해서 뵀습니다.”nbsp“7월부터요? 얼마 안 됐네요?”nbsp“얼마 안 됐습니다. 그렇지만 저는 스님의 열렬한 팬입니다. 그 뿐만 아니라 저는 여러 사람들한테 스님을 제 스승이라고 말하면서, 스님께서 가르치시는 말씀을 따르려고 노력합니다.”nbsp“곧 원수 되겠네요.” nbsp“그렇죠. 될 지 안 될지는 두고 봐야 되겠죠.”nbsp“될 가능성이 높다고요. 왜냐하면, 좋아하는 마음이 강하면 원수 될 확률이 높다는 말입니다. 꼭 원수가 된다는 것은 아닙니다. 그러니까 조금 진정해야 돼요. 너무 열렬하면 안 됩니다.” nbspnbsp“그건 저도 마음으로 느끼고 있었습니다. 스님을 너무 신격화시키는 것이 아닌가 하는 걱정도 하고 있었습니다. 다름이 아니라 저는 호주에서 12년을 살면서, 그리고 그 전에도 외국인과 살면서 산전수전, 그리고 오늘에서야 공중전이 있다는 것을 배웠습니다. 제가 보기에 항상 상대적으로 가난하고 항상 상대적으로 부족해서 열등감도 많았고, 질투도 많았고, 분노도 많았고, 남을 미워해서 저주도 많이 했습니다. 그런데 스님을 뵈면서 ‘아, 인생 정말 잘못 살았구나’ 했습니다. 저는 부자는 아니지만 이제는 밥은 먹을 수 있거든요. 이제부터는 잘 살고 싶습니다. 그런데 여태껏 너무나 호주생활에서 외국인들과 경쟁을 하며 공부를 했고, 직장생활을 하면서 남이 죽지 않으면 제가 그 자리를 뺏을 수 없다는 생각에 굉장히 죄를 많이 지었고, 받으면 받을수록 더 받고 싶은 욕심에 견딜 수가 없어요. 그런데 이제부터는 조금 주면서 살고 싶은데, 스님 말씀이 제 머리로는 이해가 되는데 가슴으로는 아직도 움켜쥐고 싶고 ‘내가 이걸 어떻게 벌었는데, 넌 놀 때 난 잠 안자고 일해서 번 건데’ 하면서 주기가 참 아깝습니다. 좀 도와주십시오.”nbsp“좀 더 가지고 계세요. 벌 때도 너무 욕심을 내서 벌려고 하고, 줄 때도 또 너무 빨리 욕심내서 주려고 하는 거예요. 들어오고 나가는 것만 다르지 욕심내는 것은 똑같다는 것입니다. 밖에서 ‘돈을 많이 벌어야 겠다’, ‘출세해야겠다’ 욕심을 내는 사람은 그게 뜻대로 안 되면 인생에 허무함을 느끼고 ‘부처님 법 만나서 진짜 도를 깨쳐야지’ 하고 절에 들어와서 또 도를 빨리 얻어야 된다는 욕심을 부리거든요, 크게 깨치고 절에 들어온 것이 아니라 심리는 똑같고 대상만 돈에서 도로 ‘ㄴ’ 글자가 떨어졌을 뿐이에요. nbspnbspnbsp그러니까 심리는 같다는 것입니다. 돈을 악착같이 벌다가 이게 반성이 됐다고 해서 이걸 또 빨리 놓으려고 서두를 필요가 없습니다. 벌려고 악착같이 했던 것만 조금 내려놓고 편안하게 살면서, 있는 것을 빨리 주려고 하지 말고 천천히 조금씩 주세요. 줘버리면 또 허전해지면서 벌려는 욕심이 다시 생길 수 있으니까 그냥 두고 만족하면서 살다가, 주는 것은 천천히 조금씩 조금씩 줘도 괜찮아요. 한꺼번에 많이 주려고 하지 마시고요. 버는 속도만 조금 줄이고, 주는 것은 아직 놔두고 조금 씩 주면서 주는 연습을 자꾸 하면 돼요. 연습하는 방법은, 길거리에 거지한테라도 전에는 안 줬다면 한꺼번에 100달러씩 줘버리지 말고, 50센트를 주거나 30센트를 주는 연습을 하고, 전에는 절에 다녀도 돈이 아까워서 10달러 정도 냈다면 이제는 20달러 정도 내고 한꺼번에 많이 내려고 하지 마세요.nbspnbsp돈을 내는 것도 조금 천천히 내면서 항상 자기가 행복한 것을 가장 중요시해야 합니다. 그래서 지금은 진정을 하는 것이 가장 필요해요. 스님 법문을 듣고 스님이 너무 좋다고 전 재산을 다 갖다 줘버리면 안 됩니다. 왜냐하면, 전 재산을 다 갖다 주는 것까지는 좋은데, 그 다음에 기대가 크니까 실망이 커지면서 ‘그 때 내가 미쳤다’고 하면서 갖다 준 것을 후회하게 돼요. 그러니까 마음을 진정시켜서 주는 것도 천천히 해야 합니다. 법문을 듣는 것도 크게 깨쳤다고 하더라도 좋아하는 마음을 진정하고, 보시도 진정을 해서 하세요. 7월부터면 아직 몇 달 안 됐잖아요. 지금 다 주겠다고 결정해 버리면 나중에 또 후회하게 돼요. 그러니까 큰 돈을 주고 싶더라도 3년 후에 줘요. nbspnbspnbsp항상 어떤 행위에 대해 후회를 안 해야 되거든요. 내가 좋더라도 거기에 대해 후회를 안 해야 되는데, 후회를 하게 되는 것은 너무 조급하기 때문입니다. 조금 진정을 하면서 정진을 해 나가고, 막 악착같이 하던 것을 이제 속도를 좀 줄이세요. 주는 것까지는 아직 서두르지 마시고요. 마음이 지금 좀 흥분되어 있잖아요. 흥분된 것이 편안하게 진정이 될 때 보시를 하더라도 하는 것이 좋겠다 싶습니다.”nbsp“그리고 스님, 한 가지만 더요. 저 기도문 하나만 주십시오.”nbsp“절을 하면서 ‘그동안에 너무 욕심내고 살았습니다. 욕심이 나를 해치는 것을 알았습니다. 이제는 살아있는 것만으로도 감사하며 살겠습니다’ 하고 마음을 내어 보세요.”nbsp“감사합니다.”nbsp질문자의 흥분된 상태를 편안하게 해주는 스님의 답변에 ‘아하, 그렇구나’ 하며 마음이 밝아짐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이렇게 3시간 10분 동안의 열정적인 강연을 마치면서 마지막으로 스님께서는 틀에 묶여 있었던 사고를 풀어서 새로운 시대에 조응해가자고 말씀해 주시면서 이렇게 정리 말씀을 해주셨습니다.nbspnbsp“이제 시대가 바뀌었습니다. 옛날에는 불가능하다고 말했던 것이 지금은 다 가능하게 되어가고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가 세상을 보는 인식틀도 바뀌어야 합니다. 지금 여러분들이 세상이 혼란스럽다고 느끼는 것은, 세상이 혼란스러운 것이 아니라, 내가 10년 전, 30년 전, 100년 전에 갖고 있었던 인식의 틀로 지금의 세상을 보기 때문이에요. 그래서 세상이 이해가 안 되니까 세상이 혼란스러워 보이는 것입니다. 세상은 계속 변해가는 것일 뿐, 더 혼란스럽거나 한 것이 아니에요. 내 인식의 틀이 과거의 것이기 때문에 지금의 세상을 이해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코닥이나 후지가 최근 10년 만에 회사가 없어질 것이라는 것을 누가 상상이나 하셨어요? 이렇게 세계가 빠르게 변해가고 있습니다. 국제 정세도 그렇고요.nbspnbspnbspnbspnbsp옛날 같으면 다 외워서 시험치러 가야 되잖아요, 앞으로는 지식을 시험보는 것은 다 없어집니다, 어떤 문제를 딱 내놓고 ‘이 문제를 어떻게 해결하면 좋겠니?’ 해서 필요한 지식은 아이패드를 앞에 놓고 눌러서 뽑아 쓰면 돼요. 저 어릴 때에는 암산 대회, 주산 대회를 하고 그랬는데, 요즘 그런 게 어디 있어요? 그냥 전자계산기를 갖다 놓고 꾹꾹 눌러서 얼른 계산하잖아요. 옛날에는 수학을 잘 하려면 셈본을 잘 해야 되었잖아요. 그런데 지금 셈본이 뭐가 필요해요? 단추만 누르면 되는데요. 그동안 공부를 잘한다고 하는 것은 지식을 많이 아는 것이였지만 이제 지식은 필요 없어요. 아이패드에 검색만 하면 됩니다. 내가 그동안 소중히 여겼던 지식도 아주 쓸모가 없어지고, 내가 전에 쓸모없다고 했던 것이 쓸모있어질 수도 있어요. 그래서 지금 필요한 것은 지식이 아니라 지혜와 창조입니다. 즉, 어떤 것을 해결 할 능력입니다. 그런 쪽으로 시대가 바뀌어가고 있으니까 한국 사람들이 이 새로운 시대에 창조력을 발휘한다면 얼마나 좋겠어요?nbsp무조건 변화하라는 것이 아니라, 두 발은 현실에 딛고 있되, 사고는 멀리 봐야 한다는 것입니다. 열린 공간에서 살아야 해요. 무엇 때문에 남이 만들어 놓은 카테고리 안에서 갖혀서 삽니까? nbsp여기 이 물건을 보고 우리는 어떤 생각을 할 수 있죠? 예술가는 ‘이것은 누가 만들었지?’ 하고, 또 과학자는 ‘저것은 뭘로 만들었지?’하며 소재를 생각하는 사람이 있어요, ‘저걸 뭘로 써먹지? 물컵으로 할까 커피잔으로 할까?’ 하는 실용주의자가 있고, ‘저건 어떻게 움직이지?’ 하고 원리를 연구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이걸 다 봐야 종합적으로 볼 수 있는데 ‘이걸 누가 만들었지?’ 하나만 옳다고 합니다. 그래서 자주 묻는 게 “불교에서는 이 세상을 누가 창조했습니까?” 오직 이 한 생각밖에 생각할 줄 몰라요. 그것은 하나의 생각일 뿐입니다. ‘누가 만들었지?’ 라고 생각할 수도 있고, ‘어떻게 움직이지?’ 라고 생각 할 수도 있고, ‘뭘로 만들어졌지?’, ‘뭘로 써먹지?’ 라고 생각할 수도 있는데 이 중 하나만 생각해요. 사고가 경직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딱 틀에 묶여있는데 이것을 풀어야 해요. 아이들이 내 말을 잘 들으면 내 만큼 밖에 성장을 못해요. 아이들이 내 말을 안 들어야 부처님도 될 수 있고 예수님도 될 수 있는 것입니다. 부처님과 예수님이 부모 말을 다 들었어요? 안 들었지요. 아이가 내 말을 안 들으면 ‘저게 부처가 되려고 그러나’ 하고 좋게 생각하세요. nbspnbspnbsp너무 갇힌 공간에서 자기의 좁은 소견과 경험을 가지고 세상을 재단하려고 하니까 세상이 이해가 안 되는 것입니다. 조금 넓은 생각을 하시기 바랍니다.nbspnbsp행복을 위해 노력하면 안 돼요. 지금 여러분들은 행복한 겁니다. 행복하려고 노력하다가 내일 죽어버리면 얼마나 불행해요? 오늘까지 행복을 만끽하고, 내일 죽으면 ‘아, 잘 살았다’ 이렇게 해야 합니다. 어디 간다고 행복한 것이 아니라 지금 행복해야 합니다. 학생은 공부하는 것이 행복하고, 결혼한 사람은 결혼생활이 행복하고, 혼자 사는 사람은 혼자 사는 것이 행복하고, 이렇게 지금 행복한 줄 알아야 합니다. 알았죠? 감사합니다.”nbsp긴 시간 스님의 말씀을 경청한 청중들이 뜨거운 박수 갈채를 보내줍니다.nbspnbsp이후 책사인회를 하며 참석한 청중들과 눈을 맞추며 인사도 나누고 사인도 해주셨습니다. nbspTV나 유튜브로만 스님의 강연을 듣다가 이렇게 가까이서 스님의 얼굴을 뵈니 다들 너무나 좋아했습니다. nbspnbspnbsp그리고 곳곳에서 소임을 맡아서 행사를 준비해준 봉사자들과 기념 사진을 찍었습니다.nbspnbspnbspnbspnbsp봉사자들은 400개가 넘는 의자들을 깨끗이 치우고 강연장을 원래 대로 청소까지 하면서 늦은 시간까지 많은 수고를 해주었습니다.nbspnbspnbsp스님께서는 nbsp한명 한명에게 감사 인사를 하고 숙소로 돌아왔습니다. nbspnbsp내일은 새벽 6시30분에 호주 브리즈번으로 이동하는 일정이라 새벽 4시에 숙소에서 공항으로 출발하기로 하고, 스님께서는 늦은 시간까지 원고 교정 후 일과를 마치셨습니다.nbsp이렇게 오늘도 많은 분들의 정성과 자원봉사로 96번째 호주 멜번 강연을 성황리에 모두 잘 마쳤습니다. 내일은 97번째 강연이 호주 브리스번에서 열립니다. 그럼 내일은 브리스번에서 또 소식 전해 드리겠습니다.nbsp ▼nbsp법륜 스님의 세계 100회 강연, 지난 날짜 소식 보기
2014.11.27 세계 100회 강연(95) 뉴질랜드 오크랜드 Auckland
nbsp안녕하세요. 오늘은 세계 100회 강연 중 95번째 강연이 뉴질랜드의 오클랜드에서 열리는 날입니다. nbsp오늘부터 4일간 오세아니아 지역에서 열리는 4회의 강연은 시드니 정토회 강여경님이 현지 소식을 전하겠습니다. nbspnbsp뉴질랜드는 원주민인 마오리 언어 로 길고 흰 구름의 땅이라는 뜻인 아오테아로아라고 불립니다. 남태평양 오스트레일리아 대륙에서 남동쪽으로 약 2000km 떨어져 있고, 본토는 태즈먼해 Tasman Sea와 남태평양을 사이에 두고 위치한 북섬과 남섬으로 이루어지며, 남쪽으로 스튜어트섬·캠벨섬·오클랜드 제도, 동쪽의 채텀 제도 등 부속 도서와 북쪽으로 케르매덱·쿡 제도, 니우에섬, 라울섬, 토켈라우 제도, 남극 대륙에 있는 로스 속령 등도 포함됩니다. 오스트레일리아·미크로네시아·피지·통가 등 15개 국가와 함께 태평양제도포럼을 형성하고 있습니다.nbspnbsp▲ 뉴질랜드nbsp뉴질랜드의 면적은 27만㎢이고, 인구는 약 424만명이며, 민족적 배경은 유럽계, 마오리계, 아시아계, 폴리네시아인으로 분포되어 있으며, 한국 교민은 약 3만여명 정도 살고, 이는 뉴질랜드 내 아시안 인구 중 중국과 인도에 이어 세 번째로 많은 것이며 전체 인구의 약 0.7를 차지하는 비율입니다.nbspnbsp뉴질랜드는 UN 세계인간개발지수 세계 5위, 부패인식지수 1위, 삶의 만족도 11위를 차지할 정도로 삶의 질이 높으며 청렴도와 준법, 질서의식이 높은 곳으로, 세계 최초로 여성참정권을 부여하고 2013년 동성 결혼을 허용한 진보적 성향의 국가이며, 평등주의, 인권, 개인 사생활 보호 등에 높은 가치를 부여하는 나라로 잘 알려져 있습니다.nbspnbsp▲ 오클랜드nbspnbsp오늘 강연이 열리는 오클랜드는 북섬 북단에 자리 잡고 있고, 인구는 122만명의 뉴질랜드 최대 도시로, 전체 인구의 30 이상이 오클랜드에 거주하고 있다. 오클랜드의 마오리 이름은 T257makimakaurau 로, 많은 사람의 사랑을 받는다는 뜻입니다. 예로부터 많은 부족이 탐내며 서로 침략했던 지역이기 때문에 이런 이름이 붙여졌다고 합니다. 1865년까지 뉴질랜드의 수도였고, 현재도 상공업의 중심지입니다.nbsp뉴질랜드에서는 강연이 처음이고 특히 이번 세계 100회 강연 중에 불교 단체가 주관을 맡아준 곳으로는 유일한 곳입니다. 오클랜드의 한국절인 남국정사에서 모든 실무와 전체 운영을 해 주셨습니다. nbsp여기에 시드니 정토회에서 실무 지원을 하기 위해 정은지 총무님과 강여경님이 합류했습니다. 먼 칠레 산티아고에서 14시간 비행을 하고 오시는 법륜스님을 환영하기 위해 남국정사 신도님들은 새벽 4시에 꽃다발까지 준비해 공항 마중을 나와주셨습니다.nbspnbspnbspnbspnbsp스님은 남국정사 신도님들에게 감사의 인사를 전한 후, 남국정사에 대한 소개와 함께, 뉴질랜드의 현황과 교민 사회에 대해 잠시 관심있게 담소를 나눈 후 긴 비행의 여독을 풀기 위해 오전에는 잠시 휴식을 취했습니다.nbspnbsp그리고 12시에 이번 행사를 주관해주신 남국정사의 주지스님이신 동진스님께서 스님을 초청하셔서 점심식사를 하기 위해 오클랜드 북부지역 Kumeu에 자리한 남국정사를 방문하였습니다.nbspnbspnbspnbsp신도님들께서 손수 준비하신 정성스런 다과와 정통사찰공양에 모두 놀라움과 감사의 마음을 감출 수가 없었습니다.nbspnbsp식사를 준비해 주신 보현심 보살님이 스님께 인사드리며 “스님께서 몸이 편찮으시다는 소식을 듣고 공양 준비에 고민이 많았다”고 이야기 하자, 스님께서는 “유럽에서는 많이 아팠는데 걱정해주셔서 고맙다”고 하시면서, “맛나게 먹어 잘 낫겠다”는 말씀과 함께 참 수고 많았다고 감사의 표현을 하셨습니다.nbspnbspnbspnbsp식사 이후에 남국정사의 터를 한바퀴 둘러 본 후 내년부터 법당 불사를 하신다는 소식을 듣고 보시도 하시고 정성껏 불사원만성취를 기도해 주셨습니다. 남국정사 방문 후에는 로즈 가든과 한국전쟁 참전 용사들의 기념비 탑을 참배하시고 숙소로 돌아오셨다가 nbsp오늘의 강연장인 QBE Stadium으로 향했습니다.nbspnbsp▲nbsp로즈 가든nbsp▲nbsp한국 전쟁 참전 용사들의 기념탑 참배nbsp▲nbsp운전을 지원해 주신 도언태 거사님, 청봉거사님, 황경호 전 신도회장님 외nbspnbspnbsp▲nbsp오후 6시에는 강연장 QBE Stadium에 도착해서 강연전 남국정사의 동진스님, 환희정사의 동인스님과 혜담스님, 원불교의 안정명 교무님과, 오클랜드한인회장, 민주평통회장, 영사관 및 여성회 등의 지역인사들과의 환담을 가졌습니다.nbsp▲nbsp오늘 강연장, QBE Stadiumnbsp원래 300여명이 참석할 것을 예상했던 강연인데 참석 인원이 nbsp480여명이 넘게 와서 양해를 얻어 추가로 돗자리를 깔아 바닥에 앉았지만, 그래도 늦게 오는 분들은 돌아갈 수 밖에 없는 아쉬움이 있었습니다.nbspnbspnbspnbsp3시간 내내 서서 강연을 들어야 하는 청중들이 많았는데, 모두들 스님의 강연에 흠뻑 집중된 모습이었습니다.nbspnbspnbspnbsp이번 강연을 주관해 주신 남국정사 주지 동진스님의 인사말에 이어 큰 박수와 함께 스님께서 연단에 오르셨습니다. 먼저 스님께서는 세계 100강 중에서 처음으로 불교에서 강연 장소를 제공해주었다고 하시면서 남국정사 주지스님과 봉사자들에게 감사의 마음을 전하면서 강연을 시작하셨습니다.nbspnbsp“이렇게 많이 참여해 주셔서 감사드립니다. 저는 뉴질랜드에는 처음 왔습니다. 여러분들 정말 좋은 곳에 사시네요. 이렇게 좋은 곳인줄 알았으면 제가 일찍 올 걸 그랬어요. nbspnbsp저는 강의를 많이 해서 그런지 기관지가 안 좋습니다. 그래서 공기가 굉장히 건강을 좌우해요. 여기 도착하니까 숨이 목구멍으로 술술 넘어가는 것 같아요. 술이 아니고 숨이요. nbspnbsp지금 세계 115개 도시를 115일간 다니고 있습니다. 아무리 멀어도 무조건 하루에 한강좌를 하고 있어요. 어제 칠레에서 출발해서 오늘 아침에 여기 도착했는데 14시간 걸렸어요. 그런데 하루가 없어져 버렸어요. 그러면 날짜에 맞춰서 매일 강의를 못하지 않느냐 하시는데, 그런 날이 생기면 그 전에 하루에 두 강을 합니다. 그렇게 해서 115일 동안 115강을 하고 있습니다. 그 중에서 교회에서도 준비하고 성당에서도 많이 준비해 주었는데, 불교에서는 이번에 처음으로 오늘 남국정사에서 준비하게 되었습니다. 남국정사 주지 스님과 자원봉사자들에게 큰 박수를 부탁드립니다.”nbspnbsp그러면서 질문을 받기 시작했습니다. 오늘은 총 10명이 스님께 질문을 했습니다.nbspnbsp“눈물을 흘리고 싶은데 눈물이 메말랐는지 나오질 않아요. 가끔씩 울고 싶을 때가 있는데 감정이 메말랐는지 눈물이 나오지 않아요. 중학교 때부터 하고 싶은 일과 부모님이 원하는 일 사이에서 많이 갈등했습니다. 아버지께 말하고 싶은데 대화가 안 됩니다.nbspnbspnbspnbspnbsp“스님께서는 인생을 살면서 가장 힘들었던 순간이 언제였습니까? 그리고 어떤 방법으로 극복하셨나요? 미래가 불안하고 아득하게만 느껴집니다.nbspnbsp“기독교인이지만 항상 불교에 관심을 두었습니다. 부처님께 드리는 예불은 경배인가요? 아니면 깨우친 선각자에 대한 존경의 표시인가요? 의식의 의미는 무엇인가요? 경배할 때 꼭 절을 해야하나요?”nbspnbspnbspnbspnbsp“물질적인 것 보다 정신적인 불법을 믿습니다. 저는 환생을 믿습니다. 스님께서는 윤회설을 어떻게 생각하시는지요?”nbspnbsp“가정사에 대해 질문하고 싶어요. 평범한 가정주부 생활만 36년, 그동안 우여곡절은 있었지만 잘 살아왔습니다. 그런데 말 못할 고민에 빠진 남편이 그 ‘고민’을 가족들이 알게 되자 갑자기 집을 나간지 5개월째가 되었습니다. 오늘 이 곳에 와 5개월만에 처음으로 대면했습니다. 오늘 nbsp강연이 ‘희망세상만들기’여서 나에게도 희망을 만들고 싶습니다. 남편을 받아드리고 싶어요.”nbspnbsp“유학생인데 혼자 있으면 극도로 불안하고 외롭습니다. 공부에도 집중이 되지 않습니다. 어떻게 하면 좋지요?”nbspnbsp“요즘 한국뉴스를 보면 참 답답하고 가만히 있는 한국인들이 참 이해가 가지 않습니다. 나는 울분에 넘쳐 뭐라도 해야겠다고 생각하는데 정작 한국 국민들은 가만히 있고 잠잠합니다. 한국 국민들의 사고가 요즘 어떤지요? 정말 답답합니다.”nbspnbspnbspnbsp“몸이 아프던 남편이 세상을 떠난지 이미 2년이 넘었습니다. 나머지 가족들은 모두 남편의 죽음을 90세 노모에게 차라리 숨기고 말을 하지 말라고 합니다. 난 솔직히 이야기하고 싶은데 어떻게 하면 좋을지요?”8232nbspnbsp“남편이 과거에 집을 잘 못 팔아 경제적으로 타격이 많았습니다. 문제는 몇 년 전 이야기를 아직까지 끌어안고 밤에도 잠을 못자고 끙끙 앓을 정도로 집착이 심합니다. 나약한 남편이 못나 보이고, 마음에 들지 않습니다.”nbspnbsp이렇게 다양한 질문에 대해 스님께서는 지혜로운 답변을 해주셨습니다. 오늘은 그 중에서 집안의 독자로서 결혼을 해야 하는 의무와 그렇지 않은 자신의 마음 사이에서 고민하는 한 청년의 질문과 스님의 답변을 소개합니다.nbspnbspnbspnbsp“저는 제 가치관과 의무 사이에서 고민이 많습니다. 제가 올해로 나이가 서른 nbsp둘입니다. 저한테는 누나 두명이 있어요, 제가 막내이고요. 작년에 노처녀인 저희 누나가 품절녀가 됨으로써 모든 포커스가 저한테 맞춰진 불편한 상황입니다. 이제 제가 나이도 있고 하니까 “장가 언제 가냐?” 하시는데, 저는 결혼에 대한 생각을 해본 적이 없어요. 해봤어도 ‘굳이 해야 되나?’ 했었고, 2세에 대해서도 그렇고요. 저는 혼자 사는 것에 익숙해져 있고 그런 쪽으로는 생각을 안 하고 있는데, 집에서는 난리가 나신 거죠. 제가 독자이고 아버지도 독자이신데, 제가 장가를 안 가면 대가 끊기거든요. 그래서 제가 좋든 싫든 의무로써 결혼을 해야 한다고 하시는데, 고쳐보려고 노력했는데 안 고쳐지더라고요. ’결혼 싫다, 2세 생각 없다’ 하는 생각이 너무 센 듯해서 “저 결혼하면 이혼할 것 같습니다, 자신 없습니다“ 하고 아버지께 말씀드렸더니, “그래도 한 번은 해라, 한 번은 봐줄게. 그런데 안 한다고는 하지 마라“ 말씀하십니다. 제 의무를 생각하면 결혼을 해야 하지만 저는 그게 안 와닿습니다, 너무 힘들 것 같고요.”nbsp“첫째, 스무 살이 넘으면 스님이 되든지, 신부가 되든지, 혼자 살든 뭘 하든 자기 인생은 자기가 결정하는 거예요. 대신 부모님은 나에게 애정을 가지신 분이기 때문에 조언으로 받아들이되, 결정은 내가 하는 겁니다. 그러니 자기 인생이니까 자기 뜻대로 살면 돼요. 그 때 ”전 결혼 안 합니다. 아버지가 왜 간섭합니까?“ 하면 안 돼요. ”아버지 알겠습니다“ 해야 합니다. 그걸 바라는 마음은 부모의 심정이니까요. 그렇게 말하고 ”언제 가니?“ 하고 물으시면 ”네, 지금 찾고 있는 중입니다. 잘 없네요“ 하고 지나가면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질문자는 여자에 대해 호기심이 별로 없어요?”nbsp“그건 아니고요.”nbsp“여기 어른들이 계시니까 말씀드립니다. 사람은 네 가지 성향이 있습니다. 남자인데 여자에게 호기심이 있는 사람, 여자인데 남자에게 호기심이 있는 사람이 있습니다. 이것을 이성애라고 해요. 그리고 남자인데 여자에게는 호기심이 없고 남자에게 호기심이 있고, 여자인데 여자에게 호기심이 있는 사람을 동성애라고 합니다. 남자에게도 호기심이 있고 여자에게도 호기심이 있는 것을 양성애라고 해요. 남자에게도 호기심이 없고 여자에게도 호기심이 없는 사람을 무성애자라고 합니다. 실제로 조사를 해봤더니 네 가지 종류가 나왔어요. 만약 이 중에 무성애자가 출가해서 스님이 되거나 신부가 되면 어떻겠어요? 끝내줍니다. nbspnbsp출가해서 30년간 도를 닦은 사람도 이성에 대해서 아직 집착을 잘 못 끊는데, 이 사람은 머리 깎자마자 벌거벗은 여성을 수도 없이 봐도 아무렇지도 않은 거예요. 그러나, 이런 걸 가지고 도라고 하면 안 맞겠죠.. 이런 사람이 승려나 신부가 되면 굉장히 좋은데, 이런 사람이 결혼을 하면 어떻게 될까요? 가정 파탄이 일어납니다. 여자가 남편한테 호기심을 보이는데 남편은 나무토막 같이 아무 관심이 없으면, 억지로 부부관계를 할 수는 있지만, 그것도 한 두 번이지, 자존심이 상하잖아요. 그러면 ‘ 혹시 딴 여자 있나’ 하고 의심하게 됩니다, 몸뚱이는 멀쩡하니까요.nbspnbspnbspnbspnbsp그렇기 때문이 우리는 사람을 잘 살펴야 합니다. 저는 수많은 사람을 상담하잖아요. 남자가 동성애자인데 억누르고 결혼을 해서 애를 둘까지 낳았는데 커밍아웃을 했어요. 그러니까 부모와 부인이 너무 힘들어 하는 겁니다. 그래서 저는 인간은 누구나 다 행복할 권리가 있다. 그도 행복할 권리가 있다. 의무보다 행복할 권리가 더 앞서니까, 이걸 서로 의논해라. 그래서 결혼을 그만두고 자기 길을 가게 하든지, 아니면 결혼은 유지하고 이런 성향은 인정하고 서로 이해하든지 그런 걸 우리가 알아야 하는데 자꾸 껍데기만 가지고 얘기를 하기가 쉽습니다.nbspnbsp그러니까 이 청년은 그런 케이스가 아니라고 하더라도 본인이 ‘나는 결혼에 별 흥미가 없다’고 했으니, 그냥 그렇게 살아도 돼요. 결혼에 별 흥미 없는 사람을 결혼시켜서 1년 있다가 이혼을 하면, 아버지는 자기 아들이니까 “이혼을 하더라도 한 번 해봐라“ 하지만 남의 딸은 어떻게 하라는 겁니까? nbspnbsp결혼을 하려면 최소한도 자기 권리의 절반을 포기해야 합니다. 즉 상대방에게 맞춰야 된다는 말이에요. 100 포기하면 100 성공하고, 절반 포기하면 절반을 성공하고요. 결혼하려면 50 이상 좋을확률이 나와야 할 거 아니에요? 그런데 질문자는 자기 성향을 중요시하잖아요. 그러면 결혼하면 안 됩니다. 그러니까 그런 것은 자기가 결정하면 돼요. 지금 32세의 성인이니까요.nbspnbsp그러나 부모님의 그러한 마음에 대해 서로 이해해야 돼요. ‘아버님 입장에서는 그럴 수도 있겠다’ 하고요. 그렇다고 그것이 내 가치를 버리라는 것은 아닙니다. 스무 살 이전에는 부모님이 나를 도와주는 훌륭한 분이셨지만, 스무 살을 넘어서면 때로는 부모가 최대의 장애 역할을 해요. 부처님이 출가할 때 부모님이 반대를 했을까요? 안 했을까요? 부모님 말을 들었으면 부처가 됐을까요? 못 됐겠죠. 예수님도 어머님이 얼마나 가슴 아프셨겠어요? 서른세살에 죽은 아들을 무릎 위에 앉힌 엄마의 심정이 어떠했겠어요? 한 번 상상해봐요. 우리는 예수님이 훌륭하다고 하지만 그 부모에게는 억장이 무너지는 일입니다. 그러니 우리는 자기의 길을 자기가 선택해서 가면 돼요. 그건 절대로 불효가 아닙니다 ‘부모님 말을 들어보니 일리가 있다‘ 하면 그렇게 하면 되고요. 그러나 ’부모님이 저렇게 원하시니 내가 소원 들어 드린다‘ 해서는 안 됩니다. 그렇게 하면 나중에 책임을 부모님한테 떠 넘기기 때문에 부모 자식 간에 원수가 돼요.”nbsp“감사합니다, 가슴이 뚫렸습니다.” nbsp근심 가득했던 청년의 얼굴에 환한 웃음꽃이 피었습니다. 청중들도 뜨거운 박수를 보내줍니다. 스님께서는 또 “이런 얘기 하면 부모님들은 제가 좀 밉죠? 애들한테 저런 얘기 한다고요. 그래서 저는 미움을 받을 각오를 하고 얘기를 합니다” 라고 하시면서 부모들의 심정도 함께 이야기해 주셨습니다.nbspnbsp“행복하기 위해서 노력하면 안돼요. 행복하기 위해서 노력한다는 것은 지금 행복하지 않다는 얘기예요. 그러니까 지금 행복해야 돼요. 지금 40세이면 40이라서 좋고, 지금 50세이라면 50이라서 좋고, 결혼했으면 결혼해서 좋고, 남편이 죽었으면 혼자 있어서 좋아야 해요. 혼자 있으면 얼마나 좋은줄 알아요? 혼자 살아도 되고, 결혼 한번 더 해도 되고 얼마나 좋은 장점이예요? nbspnbsp같이 백년 해로하면 해로해서 좋고, 먼저 돌아가시면 먼저 돌아가셔서 좋습니다. 먼저 돌아가시면 ‘아이고, 여보. 그동안 행복했어요. 먼저 가세요. 내가 늙어서라도 혼자 좀 자유롭게 살아보라고 이렇게 먼저 가주셔서 감사합니다’ 요렇게 인사를 하면서 탁 놓아야 천도라고 말하는 겁니다. 놓아야 천도가 되지, 돈을 아무리 줘도 놓지 못 하면 천도가 안돼요. ‘안녕히 가세요’ 하고 웃으면서 놓아주어야 합니다.nbspnbsp뉴질랜드에 온다고 행복이 보장돼요? 안돼지요. 지역을 옮긴다고 행복이 보장된다면 얼마나 좋겠어요? 한국에서는 뉴질랜드 가면 행복할 것이라고 생각하고 왔는데 해결 안되는 문제가 생기죠? nbsp그걸보면 천국 간다고 해결이 안돼요. 항상 지금 좋아야 합니다. 늙어도 좋아요. 눈이 침침해져서 보이지 않으니까 분별심이 안 생겨요. 다리가 잘 안 움직이니까 점잖게 걷게 되고요. 공부할 일이 있나, 아이 키울 일이 있나, 직장 다닐 일이 있나, 늙은 것보다 더 좋은 게 어디 있어요? 그래서 늙는 건 좋은 거예요. 늙은 사람이 젊은 사람을 흉내내려고 할 때 한탄이 생기는 겁니다. 늙음을 만끽할 수가 있어야 합니다.nbspnbsp지금 우리는 행복합니다. 지금 우리는 행복한데 여러분들이, 태산 같은 행복은 눈에 안 들어오고, 티끌 같은 불만을 갖고 죽니 사니 하는 거예요. 그러면 여러분들에게 지금 행복하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서 하나님이 재앙을 주는 겁니다. 지금은 불행하니 어쩌니 하지만 병이 들거나 눈이 안보이거나 하면 ‘옛날이 좋았다’ 이렇게 되죠. 그래서 지금을 불행하게 여기는 사람은 재앙을 자초한다고 합니다. 그래서 항상 지금이 좋은 줄을 알아야 돼요. 설령 계단을 내려가다가 한쪽 다리가 부러졌다 하더라도 안 부러진 다리를 탁 잡고 ‘아이고, 하나님 감사합니다. 그래도 이 다리는 안 부러졌습니다’ 이런 정도로 이미 일어나버린 일에 대해서는 긍정적으로 생각해야 됩니다. 그런데 여러분들은 ‘기도하고 나오는데 다리가 왜 부러지노? 하나님이 없나?’ 요렇게 방정맞은 생각을 하잖아요. 그럴 때 ‘아이고, 오늘 교회 다녀왔더니 한쪽 다리는 안 부러졌다’ 이렇게 긍정적으로 생각해야 합니다. 이렇게 긍정적으로 생각하면 몸과 마음에서 굉장히 좋은 에너지가 나옵니다. 그래서 아침에 눈 뜰 때 세 번 소리쳐 보세요. 한번 따라해 보세요.nbspnbsp“아이고, 오늘도 살았네”nbspnbsp기분 좋아요? 안 좋아요?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이렇게 세 번 외치면 굉장히 좋은 에너지가 나와요. 살아있는 것만으로도 행복해야해요. 그러니까 여러분들 이렇게 행복하게 사시기 바랍니다. 감사합니다.”nbsp청중들 모두 “오늘도 살았네” 따라 하면서 기뻐했습니다. 그러면서 무려 3시간 10분이라는 긴 시간 동안 열정적인 강연을 해주신 스님께 뜨거운 박수를 다시 한번 보내주었습니다. nbspnbsp▲nbsp강연에 이어서 책 사인회가 열렸습니다.nbsp▲nbsp이후에는 자원활동을 해주신 봉사자들과 함께 마음나누기와 사진촬영도 했습니다.nbspnbspnbsp▲nbsp그리고 오늘 행사를 전체 총괄하신 수운 거사님께 감사인사와 사인한 책을 선물로 드렸습니다.nbsp▲nbsp또한, 이틀 동안 저희 일행을 물심양면으로 지원하고 숙소를 제공해 주신 박정진 보살님께도 감사 인사와 사인한 책을 선물로 주셨습니다.이후 행사를 주관하는데 애써 주신 남국정사 신도님들, 주지스님과 담소를 나누시고 숙소로 돌아오셨습니다. 내일은 새벽 6시30분에 호주 멜번으로 이동하는 일정이라 새벽 4시에 공항으로 출발하기로 하고, 원고 교정 후 일과를 마치셨습니다.nbspnbsp이렇게 오늘도 많은 분들의 정성과 자원봉사로 95번째 뉴질랜드 오클랜드 강연을 성황리에 모두 잘 마쳤습니다. 내일은 96번째 강연이 호주 멜번에서 열립니다. 그럼 내일은 멜번에서 또 소식 전해드리겠습니다.nbspnbsp▼nbsp법륜 스님의 세계 100회 강연, 지난 날짜 소식 보기
2014.11.25 세계 100회 강연(94) 칠레 산티아고 Santiago
nbsp안녕하세요. 오늘은 세계 100회 강연 중 94번째 강연이 칠레 산티아고에서 열리는 날입니다. 중남미 대륙에서 총 6개 도시에서 강연이 열리는데 오늘은 그 마지막 강연입니다.nbspnbsp오늘 강연이 열리는 칠레는 면적이 756,950km² 이고 인구는 약 1,750만명 정도이며 이 중에서 한국 교민은 약 2,000여명 정도 살고 있는데 거의 대부분이 수도인 산티아고에 거주하고 있습니다. 인종은 메스티조 66, 백인계 29, 원주민 5 정도로 이루어져 있습니다.nbspnbsp칠레는 태평양과 남아메리카의 안데스 산맥 사이에 남북으로 긴 영토를 가진 나라로서 남북으로 영토의 길이가 가장 긴 국가이며, 서쪽 해안은 태평양으로 그 길이는 6,435km에 이릅니다. 북쪽에는 페루, 국토 최남단에는 드레이크 해협이 있으며, 특이한 국토 형태로 말미암아 매우 다양한 기후를 보이는데, 북쪽에는 세계에서 가장 건조한 사막인 아타카마 사막이 있고, 국토 중앙부에는 지중해성 기후를 보이며, 남쪽에는 눈이 많고 피오르, 빙하, 호수가 있는 서안 해양성 기후를 보입니다.nbspnbsp▲ 칠레nbsp16세기 스페인인이 오기 전부터 칠레 북부는 잉카 제국이 지배했으며, 토착 마푸체인들이 칠레 중앙부와 남부에 살고 있었습니다. 오늘날 칠레는 남아메리카에서 상당히 안정적이고 번영하는 국가로서, 1인당 국내총생산, 국가 경쟁력, 삶의 질, 정치적 안정, 세계화, 경제 자유, 낮은 수준의 부패, 극히 낮은 빈곤율 면에서 라틴 아메리카에서 선도적인 위치에 있습니다. 현재 메르코수르의 협력 회원국으로 미국과 2004년 자유 무역 협정을 맺고 유럽 연합과도 협의가 진행되는 등 경제 활동이 남미에서 가장 활발합니다.nbsp오늘 강연이 열리는 산티아고는 칠레의 수도로서 1541년에 처음으로 세워졌으며 중부 계곡에 위치해 있습니다. 산티아고 근교를 포함한 광역 산티아고의 인구는 약 천만명으로 남미 유수의 세계적인 도시입니다. 강수는 겨울에 집중되고 산티아고 시내에서도 눈이 내리기도 하며 주변의 산들은 풍부한 적설량을 자랑하는 남반구 최대의 스키 리조트가 있습니다. 상파울루와 부에노스아이레스와 더불어 남미 3대 경제 중심지 중 하나이며, ECLAC 같은 국제 기구도 산티아고에 본부를 두고 있습니다.nbspnbsp▲ 칠레 산티아고 전경nbspnbsp칠레 거주 교민들은 주로 산티아고 시내 파트로나토 지역에서 의류 및 잡화 소도매업에 종사하고 있으며, 무역, 인쇄, 자동차부품판매, 수산물가공, 제조업 분야에도 종사하면서 현지 사회 내에서 비교적 안정된 생활을 영위하고 있다고 합니다. 그리고 칠레는 대한민국과 가장 먼저 FTA를 체결한 국가이며, 아시아 국가로서는 대한민국과 가장 먼저 FTA협정을 맺었습니다. 2004년 4월 한칠레 FTA 발효 이후 건설, 건설 자재, 호텔, 학교 분야 등으로 신규 이민이 조금씩 늘어나고 있고 한국기업의 진출이 늘어나면서 현재는 200여개의 기업이 진출해 있습니다.nbsp스님께서는 밤을 꼬박세우고 숙소에서 3시에 공항으로 이동하였습니다. 부에노스아이레스 강연의 총괄을 맡아 주신 김란님과 강연 준비를 함께해 주신 김윤신 화가님, 그리고 한인성당의 류한성 사목회장님과 함께 짐을 싣고 부에노스아이레스 공항으로 출발했습니다. 공항에 도착하여 세분께 다시한번 감사인사를 드렸습니다. 그리고 신도회장님께는 성당을 강연 장소로 제공해주시고 많은 도움을 주신 것에 대해 감사한 마음을 담아 보시하였습니다. 세분께 인사를 하고 출국 수속을 마치고 Gate로 들어왔습니다.nbspnbsp새벽 5시55분에 nbsp아르헨티나 부에노스아이레스 국제공항을 출발하여 오전 8시10분에 칠레 산티아고 국제공항에 착륙하였습니다. 모든 수속을 마치고 공항 입구로 나오니 오늘 강연을 총괄해 주실 모다끄레아의 홍지언 사장님이 마중을 나와 계셨습니다. 칠레 산티아고 강연의 경우에는 아르헨티나 부에노스아이레스 강연을 맡아주신 김란님이 홍지언 사장님을 소개해 주었고, 홍지언 사장님은 흔쾌히 강연을 준비해주셨습니다. 그리고 칠레 한인회와 모다끄레아는 강연 준비에 차질이 없도록 든든한 후원자가 되어 주셨습니다.nbspnbspnbspnbsp▲ 공항까지 마중을 나와주신 칠레 산티아고 강연 담당자 홍지언 사장님nbspnbsp모다끄레아 칠레 지사장을 맡고 있는 홍지언 사장님과 반갑게 인사를 하고 오늘 강연이 열리는 칠레 한인회 사무실로 이동했습니다. 강연장에 도착하니 오늘 강연을 후원하고 준비하여 주신 칠레 한인회의 김지용 회장님, 이강우 부회장님, 신대호 총무님이 스님을 기다리고 있다가 반갑게 환영을 해주셨습니다. 강연에 필요한 사항 등을 점검하고 가지고 온 물품을 전달하였습니다. 스님께서는 세면을 하신 후 한인회 임원진과 잠시 환담을 나누었으며, 회장님, 부회장님, 총무님, 그리고 오늘 강연 준비를 총괄한 홍지언 사장님께 감사의 마음을 담아 사인한 인생수업 책과 새로운 백년 책을 선물했습니다.nbspnbsp▲ 한인회로부터 선물로 받은 칠레의 구리로 만든 쟁반nbspnbsp칠레는 구리가 특산품이며 세계 1위의 구리 수출국인데, 한인회에서는 스님께서 칠레 산티아고를 방문해 주심을 환영하면서 칠레 구리로 만든 아름다운 쟁반을 스님께 선물했습니다. 스님께서도 감사히 받으시고 이분들과 함께 기념촬영을 하였습니다.nbspnbspnbspnbspnbsp이어서 홍지언 사장님이 “이곳 칠레의 유지은 대사님과의 미팅이 예정되어 있다”고 하여 잠시 시내를 둘러 보고 대사관저로 이동했습니다. 산티아고 동북쪽에 위치하며 산티에고 시내 전경을 한눈에 내려다 볼 수 있는 산 크리스토발 언덕으로 이동하기로 했으나 오늘 파업을 하는 관계로 입장을 할 수가 없었습니다. 대한민국 칠레 대사관 관저는 소박하고 아름다웠습니다. 관저에 도착하니 영사님께서 마중을 나와 기다리고 있었으며, 유지은 대사님과 홍석화 공사님도 스님께서 이곳에 오심을 진심으로 환영해주었습니다.nbspnbspnbsp▲ 유지은 주 칠레 대사님nbsp스님께서는 칠레 대사관 관저에서 1시간 정도 환담을 나누시면서 중남미 지역을 방문한 소감 등을 말씀하시기도 하고, 또 자연스레 우리민족의 비젼과 통일에 대해서도 얘기를 나누셨습니다. 특히 대사관의 여성 서기관님은 “불자이면서 스님의 팬”이라고 하시면서 칠레 대사관을 대표하여 칠레산 허브차 등을 준비했다고 하시면서 작은 선물을 주었습니다. 스님께서도 감사의 마음을 담아 유지은 대사님께는 사인한 새로운 백년 책을 홍석화 공사님께는 인생수업 책을 선물했습니다. 대사관에서는 스님의 책을 서로 돌려보시겠다고 하면서 다들 좋아 하셨습니다.nbspnbspnbspnbsp▲ 대사관 관계자 분들과 함께nbspnbsp이어 스님께서는 한인회 사무실과 한인들의 가게가 많은 다운타운 근처에 있는 한국식당 ‘한소반’으로 자리를 옮겨서 그곳에서 미리와 기다리고 있던 한인회 임원분들과 점심식사를 하시면서 환담을 나누셨습니다. 스님의 경주고등학교 후배라고 하신 골프협회 회장님도 계셔서 스님께서도 많이 반가워 하셨습니다. 식사 후에 한인회 사무실로 자리를 옮기기 전에 한국식당 한소반 앞에서 다들 스님과 함께 기념사진 촬영을 하였습니다.nbspnbspnbspnbspnbsp식사 후에 스님께서는 오늘 강연이 열리는 칠레 한인회 사무실로 돌아와 강연 전까지 1시간 정도 휴식을 가지셨습니다. 강연 전에 이곳 산티아고 원불교 유영수 교무님과 일행 분들이 오셔서 스님께 인사를 하였습니다. nbspnbspnbspnbsp▲ 원불교 식구들nbsp오늘 강연은 칠레 한인회 사무실에서 열렸습니다. 칠레 한인회 사무실이 있는 곳은 한인들이 운영을 주도하고 있는 브라질 다운타운 패션거리처럼 많은 패션 가게들이 즐비해 있고 동대문 상가처럼 옷 판매를 하고 있는데 거의 한인들이 점유하고 있었습니다.nbspnbspnbspnbspnbsp이 패션타운 내에 있는 건물의 4층에 칠레 한인회의 사무실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이 건물의 1층에는 패션 상가들이 있었습니다.nbspnbspnbspnbsp▲ 한인들이 점유하고 있는 산티아고 패션상가. 상가 유리문에 스님의 강연 포스터가 눈에 띄었습니다.nbspnbsp스님께서 오늘밤 10시40분 비행기로 뉴질랜드 오클랜드로 출발하시기 때문에 오늘 강연은 부득이하게 낮시간인 오후 3시로 잡았습니다. 오후 3시가 가까워오자 많은 분들이 한인회 사무실로 모이기 시작했습니다. nbsp2시 55분부터 사회자의 인사말과 함께 강연이 시작되자 환영 영상과 함께 내빈 소개가 있었습니다. 박세익 중남미 연합회장님, 이영우 골프협회 회장님, 이순덕, 김병남 전 한인회장님, 주하영 한인회 노인회장님, 원불교 유영수 교무님, 조영명 교무님등이 참여해 주셨습니다. 이분들을 대표하여 오늘 강연을 후원하고 준비해주신 칠레 한인회의 김지용 회장님이 인사말씀을 해주셨습니다. nbspnbspnbspnbspnbsp“한국 교민들이 이곳 한인회 사무실에 이렇게 많이 모이기는 처음인 것 같습니다. 많이 와서 진심으로 기쁩니다. 바쁜 가운데 법륜 스님께서 이 곳 칠레까지 오셨는데 오늘 이 시간이 좋은 시간이 되길 바랍니다.”nbspnbsp시작부터 강연장은 먼곳에서 오신 스님을 환영해주는 분위기가 가득했습니다. 이어 스님 소개영상과 더불어 큰 박수와 함께 스님께서 연단에 오르셨습니다.nbspnbspnbsp오늘 칠레 산티아고 강연에는 125명이 참가했습니다. 먼저 스님께서는 낮 시간임에도 많은 분들이 와주셨음에 대해 감사 인사를 하면서 강연을 시작하셨습니다.nbspnbsp“안녕하세요, 반갑습니다. 낮 시간인데 이렇게 많이 와주셔서 감사합니다. 다들 잘 지내고 계세요? 낮에 일하셔야 하는데 시간을 어중간하게 잡아서 대단히 죄송합니다. 원래 저녁시간에 잡아야 하는데 제가 뉴질랜드에 가야 하는데, 내일 아침 비행기가 없고 오늘 저녁 10시 40분 비행기 밖에 없어서 어쩔 수 없이 이렇게 잡았습니다. 양해해 주시길 바랍니다. 그래서30명 정도 오시면 많이 오시겠다 생각했는데, 이렇게 의자가 부족하도록 와주셔서 감사합니다. 뒤에 서 계셔서 불편하셔서 어떻게 합니까? 대신 저도 서 있겠습니다.nbspnbspnbspnbspnbsp오늘 이런 좋은 자리를 마련해주신 한인회 회장 및 임원 여러분께 진심으로 감사말씀 드립니다. 그리고 특별히 참여해 주신 원불교 교무님께도 진심으로 감사말씀 드립니다. 길지 않은 시간이고 여러분들 귀한 시간 내서 오셨으니까 바로 시작하겠습니다. 자, 그럼 시작해보죠. 누구든지 질문이나 고뇌가 있으면 마이크를 들고 얘기하시면 됩니다.”nbsp그러면서 질문을 받았습니다. 오늘은 총 7명이 질문을 했습니다. 첫번째 질문부터 다소 무겁게 시작하나 싶었지만 스님의 답변 속에서 웃음이 나오면서 가벼워지기 시작했고, 스님께서는 모든 질문자의 질문에 대해서 정성껏 답변을 해주셨습니다.nbspnbsp답변이 끝날 때마다 시종일관 웃음이 넘치고 큰 박수가 쏟아져 나왔습니다. 어제는 밤을 꼬박 세우고 비행기를 탔고 칠레에 도착한 후에도 대사님과의 미팅, 한인회 관계자들과의 미팅이 계속 되었기 때문에 강연이 1시간 30분을 넘어가니 스님의 목소리가 갈라지고 탁해졌습니다. 태평양, 아시아 지역으로 넘어가셔서 또 아프시면 어쩌나 약간 걱정이 되었습니다.nbspnbsp“이역만리까지 방문해주셔서 감사드리고, 스님을 뵙게 되어서 영광스럽습니다. 45년생이고 카톨릭 신자입니다. 애들 아빠랑 6년 전에 사별했습니다. 먼저 간 애들 아빠가 원망스러웠습니다. 불교에서는 옷깃만 스쳐도 인연이 있다고 하는데 저는 어떤 인연이 있어서 애들 아빠와 짧은 세상을 살고 또 내 나라도 아닌 이역만리에서 남편을 먼저 죽게 한 것인지 알고 싶습니다. 주님과 남편이 원망스럽지만 제가 따라갈 용기가 없어서 지금 살아가고 있습니다.” nbspnbspnbsp질문자는 스님의 답변을 듣고 “마음이 편해지는 것 같습니다” 하며 밝은 미소를 지었습니다. nbspnbsp“이민 온 지 38년이 되었고 이민 오자마자 교회에 나가기는 했는데 신앙적으로는 빙빙 겉돌고 있습니다. 무조건 믿으라고 하는 것이 가슴에 와 닿지 않습니다. 교회에서 집사 직분도 가지고 있는데 믿음이 안 생겨요. 스님께서는 제가 어떻게 했으면 좋겠는지요?”nbspnbspnbsp“한국에서 공부를 하다가 스트레스 때문에 건강 문제가 생겨서 친구 초대로 군복무 후에 여기에 왔습니다. 6개월이 지나고 나니 앞날에 대해 고민이 됩니다. 복학을 해야 하는지 스님의 좋은 조언을 부탁드립니다.”nbspnbspnbspnbsp“남편이 미워서 오랜 시간 동안 하나님께 기도하면서 미워하는 마음을 다스려 왔습니다. 하나님을 섬기듯이 남편을 섬기면 어떨까 하는 마음으로 지내다 보니 편안해졌는데 요즘은 다시 불편해져서 섬기던 하늘을 뒤집어 엎어 버리고 싶습니다. 이 불편한 마음을 어떻게 다스려야 하나요?”nbspnbspnbspnbsp“불교에서는 지은 인연에 따라서 인간계 축생계 지옥계 등으로 윤회한다고 들었습니다. 불교에서 말하는 윤회의 법칙은 어떤 것인지 알고 싶습니다. 많은 종교가 세상에 존재하는데 신이라는 존재가 어떤 모습으로 존재하고 있는지도 궁금합니다.”nbsp“칠레 동포입니다. 스님께서 희망세상만들기라는 타이틀을 가지고 지구 끝 칠레까지 오신 것을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94번째로 칠레를 방문하셨는데 혹시 북한을 방문할 계획은 있는지요? 그리고 우리민족의 갈등에 대해서 스님의 소견을 듣고 싶습니다.”nbspnbspnbspnbsp이렇게 다양한 질문에 대해서 스님께서는 지혜로운 말씀을 들려주셨습니다. 오늘은 그 중에서 같이 일하던 젊은 직장동료가 일을 그만두어서 많이 슬프다는 한 분의 질문과 스님의 답변을 소개합니다. 질문자는 스님과 문답을 계속 주고 받으며 점점 자신의 무지를 깨우쳐 갔습니다. 그 모습에 잔잔한 감동이 있었습니다.nbspnbsp“오늘 1시에 같이 일하던 젊은이가 그만두고 갔는데, 제가 눈물이 멎지를 않습니다.”nbsp“일하던 젊은이가 한국 사람이에요? 이 나라 사람이에요?”nbsp“한국 사람이에요.”nbsp“왜 갔어요? 말 안하고 그냥 가버렸습니까?”nbsp“사장님하고 얘기를 하고 갔는데, 갈 때는 몰랐고 나중에 간 것을 알았어요. 그 친구가 일은 기가 막히게 하는데, 성질이 조금 있어요. 자기 성질을 못 이겨서 갔는지는 모르겠는데, 하나하나 해놓은 것들이 너무 눈에 밟히고, 제가 막 눈물을 감추기 위해서 이렇게 아픈 것은 제 평생에 처음입니다. 그런데 스님 말씀 들으면서, ‘아, 인연이 여기까지 밖에 없었구나’해서 많이 가라앉았습니다.”nbspnbspnbspnbsp“사람이 다 갖출 수가 없어요. 사람이 다 갖추려고 하는 것은 욕심이에요. 칼이 아주 날카로우면 부엌에서 일하기에 좋죠, 그런데 손을 베일 위험이 있어요. 그리고 잘못 쓰면 흉기가 되잖아요. 날카로운 것은 좋은데 흉기가 될 수 있어요. 항상 이런 면이 있습니다. 또 솜은 부드러워서 좋죠. 그런데 이 속에 강함이 없어요. 또 결혼해서 살아 보셔서 아실 거예요. 학교에 다닐 때 남자가 참 리더십도 있고 카리스마도 있어서 ‘아, 이 남자 좋다’ 해서 살아 보면 배우자 말을 절대 안 듣습니다. 자기 마음대로 하지요. 또 아버지가 너무 권위주의여서 남자친구 중에 친구처럼 얘기해주고 다정다감해서 결혼해놓고 보면 이 인간은 줏대가 하나도 없어요. 남자답지가 않아요.nbspnbsp그럼 이것이 문제일까요? 이것은 장점이고 이것은 단점일까요? 아니에요. 부드러워서 좋다고 솜을 선택해 놓고, 솜보고 자꾸 “왜 안 강하니?” 하고 따지고, 날카로워서 좋다고 칼을 선택해 놓고 “왜 부드럽지 않니?” 하고 따지는 것 자체가 우리의 욕심이라는 말입니다.nbspnbsp이 나라 사람을 고용해서 일하면 한국 사람만큼 똑똑하게 합니까? 안 합니까? 속 터지죠. 그런데 그게 좋은 거예요. 왜 그럴까요? 그 사람들이 한국 사람들처럼 똑똑하면 여러분 밑에서 오래 있을까요? 안 있겠죠. 한 23년 일하고 딱 배워서 그대로 자기도 사업을 차릴 거예요. 한국 사람은 그렇게 하지요. 한국 사람들을 종업원으로 고용해 놓으면 종업원으로 3년 이상 있는 사람이 있어요? 없어요. 몇 년 딱 일하다가 업무를 다 파악하면 나와서 자기 가게를 차리지, 무엇 때문에 남 밑에서 일하겠어요. 그래서 여러분들은 한국 사람이 똑똑해서 데려와 놓고는, 나가서 가게를 차리면 배신당했다고 난리고, 여기 칠레 사람들은10년 간 붙어 있기는한데 속 터진다고 난리예요. nbspnbspnbspnbspnbsp그러니까 이게 그 사람 잘못이 아니고 나의 욕심입니다. 이 사람들은 조금 부족하니까 내 밑에 10년, 20년 붙어 있는 거예요. 이 사람들이 다 똑똑하면 여러분들이 여기에 이민 와서 설 자리가 없어요. 조금 부족하니까 여러분들이 지금 여기에 와서 사장 노릇을 하면서 사는 것 아니에요? 그러니까 이 사람들을 좋게 생각해야 합니다.nbspnbsp그리고 똑똑하면 항상 한 성질 합니다. 똑똑하면서 한 성질 안 하는 사람은 100명에 한 명도 안 돼요. 사람이 참 순둥이처럼 착한데 일머리가 똑똑한 경우는 거의 없어요. 그러니까 자기는 사장이 아니니까 자기와는 부딪칠 일이 없었죠. 일만 잘 해주면 되지요. 그런데 사장이 볼 때에는 똑똑하기는 한데 부딪힌단 말이에요.nbspnbsp내 입장에서는 ‘참 일을 잘한다‘ 그것만 보이니까 ‘참 좋다. 부엌칼이 참 음식 자르는 데 좋다’고 하지만, 날카로워서 손을 베이는 것 같이 한 성질 하면 사람 마음을 자꾸 다치게 하잖아요. 부딪치니까 자기 성질을 못 이기고 갔을 수도 있어요. 그러니까 너무 아쉬워 하지 마시고, 그런 것을 보면서 ‘아, 세상은 공평하구나’ 그런 것을 생각하셔야 합니다.nbspnbsp사람이 똑똑하기도 하고, 부드럽기도 하고, 착하기도 하고, 리더십도 있고 하면 얼마나 좋겠어요? 그런데 여러분은 남편이나 아내에게 전부 그런 걸 원해요. 부인에게는 정숙도 해야 하고, 밤에는 아주 야성적으로 섹시해야 하고, 밖에 나갈 때에는 우아해야 되고, 아이들을 키울 때에는 아이를 잘 키우는 현모양처가 되어야 하고, 부엌일도 잘해주길 원하죠. 그런 사람은 없어요. 그런데 우리는 그걸 다 욕심으로 원하니까 늘 상대가 부족하게 보이는 것입니다. “왜 너는 이것도 못하니?” 하고요. 여자들이 밖에 가서 장사도 잘 하고 사업도 잘하면 가정살림도 잘 해요? 못 해요? 못하죠. 그러면 살림 가지고 시비하면 안 돼요. 그건 남자라도 내가 해주던지 하고 “너는 밖에 가서 일해라” 이래야 합니다. 역할분담을 해야 해요. 그런데 우리는 어떻습니까? 한국 사람들 만병통치약 좋아합니다. 옛날에 시장에 가면 뱀이랑 갖다 놓고 막 설명하면서 “이것만 먹으면 만가지 병이 다 낫는다”고 하면 우르르 모여서 삽니다. 하나 먹고 다 낫는 그런 병은 없습니다. 그런데도 우리는 욕심 때문에 그게 눈에 확 들어오는 거예요.nbspnbsp이런 것을 생각하세요. 그 분은 그 분대로 애로가 있으셨고, 사장님은 사장님대로 애로가 있으셨을 거예요. 인연이 다해서 간 것입니다. 죽고도 사는데 다른 데 간 것을 가지고 슬퍼하면 죽은 사람은 어떻게 합니까? nbspnbspnbspnbspnbsp다른 사람들 얘기 들으면서 ‘그래, 남편 죽고 아내 죽고도 사는데, 자식도 아니고 직장에 같이 있다 헤어진 것인데 그것을 가지고 내가 이렇게 슬퍼하는 것을 보니 내가 집착이 강하구나’ 생각하셔야 해요. 집착을 조금 놓으셔야 합니다.”nbsp“네. 스님 말씀 고맙습니다.”nbspnbsp질문 할 때는 울먹이던 질문자가 스님의 답변을 듣고 나니 환하게 밝아져 있습니다. 감동의 순간입니다. 스님의 답변은 청중들 모두에게도 각자의 경험과 결합되어 소중한 일깨움을 줍니다. 마음이 가벼워진 청중들이 큰 박수 갈채를 보내줍니다.nbspnbsp마지막으로 스님께서는 강연을 마무리하면서 오늘 이 자리가 중남미 6회 강연을 마무리하는 자리이다보니 지난 중남미 강연을 다니시며 느꼈던 소회를 함께 말씀해 주셨습니다.nbspnbsp“백문이 불여일견이라고, 칠레라고 했을 때, ‘우리나라와 FTA를 했다, 길쭉하고, 남미 중에는 상당히 빠른 속도로 발전하고 있는 나라다’ 하고 생각했었는데, 와서 시내를 쭉 돌아보니까 생각보다 좋았습니다. 그래서 여러분들이 일찍부터 여기 와서 살고 있었구나 했어요.nbspnbsp저는 문명사를 많이 연구합니다. 인류 문명이 어떻게 될까 연구를 많이 해요. 서구 문명의 중심이 미국으로 옮겨지고, 미국의 문명이 쇠락하면서 동아시아로 옮겨진다는 말이 있죠? 동아시아가 어떻게 하면 문명의 중심이 될 수 있을까요? 또 동아시아 다음에는 어디로 갈까요? 인도로 가겠죠. 또 베트남도 가보면 성장 가능성이 있습니다. 문명이 성장하기 위한 두 가지 요인이 있어요. 하나가 자기 정체성이 있어야 합니다. 필리핀은 자기 정체성이 부족해요. 베트남은 자기 정체성이 분명합니다. 그런데 북한처럼 정체성은 있는데 폐쇄적이면 성장하기 어렵습니다. 정체성이 있고 개방적이어야 해요. 종교 중에도 천주교가 자기 정체성도 있고 개방적이잖아요. 개신교는 폐쇄적이어서 지금 이런 상태로는 오래 못 갑니다. 정체성을 가지고 개방적이어야 합니다.nbspnbspnbspnbspnbsp우리나라를 보면 남한은 정체성이 조금 부족한데 개방성은 있고, 북한은 정체성은 있는데 개방성이 없어요. 그래서 남북이 통일이 되어 정체성을 갖고 개방성을 가지면 굉장히 발전하고 창조적일 수 있어요. 남미는 발전은 하겠지만, 여기 와서 가만히 지켜보면서 며칠 동안 계속 사람들한테 물어보는데 이 나라 사람들이 정체성이 있는지, 즉 마야문명이나 잉카문명의 계승자로서의 인디오의 정체성과 서구 문명을 받아들인 스페니시나 포르투칼의 것이 융합되었잖아요. 물론 그 관계는 불행했지만요. 융합한 제3의 자기 정체성을 갖고 있느냐가 문제입니다. 정체성을 갖고 있다면 남미가 세계 문명의 중심으로 갈 수 있는데, 이 정체성이 없다면 그냥 이 정도로 발전하고 그저 뒤따라 가다가 맙니다. 여러분들이 보기에 정체성이 있는 것 같아요?”nbsp“아닌 것 같아요” nbspnbsp“그래서 자원은 많고 인구는 적고 해서 아직은 더 발전할 가능성은 있는데, 문명의 중심이 되기 위해서는 이 문제가 해결되어야 합니다. 정체성이 있어야 창조성이 나오거든요.nbspnbsp그리고 문명의 중심에 서면 모든 게 잘 갖춰져서 빠르게 발전하지만, 한 번 정체되기 시작하면 해답이 안 나옵니다. 그래서 항상 이 문명이 변방, 너무 멀리 떨어져 있으면 안 되고, 이 문명이 충돌하는 변방에서 다음 문명이 일어나요. 그래서 이집트 문명의 변방인 에게해가 다음 문명이 되었고, 에게해의 변방인 그리스가 다음 문명이 되었고, 그리스의 변방인 로마가 다음 문명, 로마의 변방인 게르만 이하 즉 오늘날 서유럽이 다음 문명, 유럽의 변방인 미국이 다음 문명이 되었고, 미국의 변방인 아시아가 다음 문명이 될 가능성이 높습니다. 일본, 중국, 한국, 대만 같은 동아시아가 다음 문명의 중심이 될 가능성이 있죠.nbspnbspnbspnbspnbsp그러면 인도는 어떨까요? 인도는 굉장히 혼란스러운 것 같지만 자기 정체성을 가지고 있어요. 그리고 그동안 폐쇄적이었지만 지금은 개방성을 갖습니다. 그러면 발전합니다. 베트남은 자기 정체성을 갖고 있는데 미국에 대해서도 굉장히 개방적입니다. 그리고 자기 정체성을 분명히 갖고 있습니다. 중국 밑에 붙어 있으면서도 조금도 중국에 굴복하지 않아요. 지금 대한민국은 그런 정체성이 조금 부족합니다. 그래서 지금 북한이 있기 때문에 어쩔 수 없다고 하지만, 군 통솔권 같은 것도 인수받으면 되는데 그걸 자꾸 남한테 맡겨 놓으려고 하잖아요. 그런 것부터 해서 딱 자기 정체성이 없고 조금 힘센 데에 붙으려는 성격을 갖고 있습니다. 자주성을 가지고 한미 동맹을 굳건히 해야 정체성이 있다고 볼 수 있어요. 남미에 와서 보니까 미국에 기는 안 죽던데, 그런 게 있어요?”nbspnbsp“예, 그런 게 있어요. 기는 안 죽어요.”nbspnbsp“저쪽 미국에서 비자 받는 걸 까다롭게 하니까, 여기서도 까다롭게 해버리고, 저기서 돈 받으니까 여기서도 돈 받아버리고 그러더라구요. 반미 감정 때문이 아니라, 자기 자존심은 있구나 하는 것을 느껴요. 그런데 그것보다 중요한 것이, 브라질은 조금 다른데 페루나 멕시코는 메스티소가 많잖아요, 그게 잘못하면 열등의식을 갖거나 배타적이 될 수 있는데, 과거의 침략을 어떻게 수용할 것인지, 어떻게 자기 정체성을 가질 거냐가 중요합니다. 한을 품어 버리면 완전히 미워하게 되고, 자기 정체성이 없으면 식민지 근성이 되거든요. 이 둘을 어떻게 조화를 이룰까 하는 것이 철학의 문제입니다. 여러분들은 철학, 사상이 별로 중요하지 않다고 생각하는데 그렇지 않습니다. 여러분들의 자녀들에게는 이게 큰 문제예요. 여러분들의 자녀들은 잘못하면 정체성이 없어질 수 있습니다. 그런데 정체성이라고 해서 무조건 한국에 데려가서 한국 사람을 만들면 안 돼요. 그냥 한국인으로서의 정체성에 칠레의 개방성을 갖도록 자녀를 키우면 세계적인 인물이 될 수 있는데, 너무 정체성만 강조하면 폐쇄적으로 가고, 너무 개방성에만 중점을 두면 자기 정체성이 없어질 수 있습니다. 그러면 자기가 누군지도 모르는 수준이 될 수 있어요.nbspnbspnbspnbspnbsp이런 점들을 고려해보면 앞으로 우리가 잘하면 대한민국이 문명의 중심이 될 가능성이 있습니다. 왜냐하면 종교도 여러 가지가 충돌하고 섞여있고, 동양과 서양이, 미국과 중국이, 신흥국과 과거의 강대국이 충돌하고, 남북이 충돌하고, 제도가 충돌합니다. 그래서 한국은 눈만 뜨면 새로운 사건이 벌어지잖아요. 잘못 하면 죽도 밥도 안 되지만, 잘 하면 굉장한 창조성이 일어날 수 있습니다. 아이돌을 보세요. 한국의 대중예술분야가 지금 창조성을 발휘하기 시작했거든요. 여기서도 아이돌이 전혀 엉뚱하게 국위선양 하잖아요. 이런 것이 창조성입니다. 요즘 KPOP이나 대중예술 분야는 어디 미국 것을 본받아서 하는 것도 아니고, 완전히 과거의 것만 하는 것도 아니고요. 주몽 같이 옛날 것을 가지고 하는 연극을 보세요. 옛날을 소재로 현대인을 감안해 만들어서 동남아에 획기적인 바람을 일으키잖아요. 이런 것이 창조성입니다. 그러니 여러분들도 여기에서 답습만 하지 말고, 현지에서 얻을 수 있는 것과 우리의 장점을 살려서 창조적인 아이디어를 내야 성공합니다. 지금 이렇게 옷가게를 한다고 가만히 있으면 이 자리를 금방 중국 사람들이 매우고 밀려나게 됩니다. 이걸 고수하지 말고, 값싼 것은 중국으로 넘겨주고 변화를 주든지, 안 그러면 집단적으로 대응을 하든지 해서 새로운 변화를 가져와야 해요. 그렇지 않으면 금방 몰락하게 됩니다. 여러분들 코닥과 후지필름이 몰락하는 것을 보셨죠? 딱 10년 만에 회사가 없어져버렸죠. 그런 것처럼, 뉴욕에 한 번 가보세요. 맨하탄, 브로드웨이를 한국 사람이 다 잡고 있었는데 지금은 중국 사람이 싹 다 잡고 있습니다. 그렇다고 한국인들이 몰락한 것은 아니에요.nbspnbsp그러니까 쫓겨나면 안 되고, 우리가 한 발 딛고 넘겨줄 건 넘겨주고, 다음 단계로 가야 합니다. 이걸 항상 연구해야 됩니다. 연구를 머리 아프게 생각하면 안 돼요. 저도 불교만 딱 고집하는 것이 아니라 기독교도 받아들이고, 다 받아들여서 이걸 융합해서 우리 인간의 삶에 어떻게 도움이 될까 연구합니다. 여러분들이 여기에 사는 것에 대해서 ‘나이 들면 한국에 가겠다’ 이런 생각만 하지 마시고, 가도 괜찮지만 뿌리 내리고 살아도 괜찮아요. 어차피 우리나라 사람이 전 세계로 나가고, 전 세계 사람들이 한국으로 들어와서 2030년이 있으면 인구의 10가 외국인이 됩니다. 그리고 지금 벌써 외국인과 결혼해서 낳은 자녀들이 군대에 1년에 1천 명씩 들어온다고 합니다. 34년이 지나면 1만 명이 된다고 해요.nbspnbspnbspnbspnbsp이제는 우리가 완전히 다른 시대에 접하게 되어 있어요. 혼란스럽다고 생각하지 마시고, 옛날의 사고를 조금 버리시고 변화의 시대에 놓여있다고 생각하세요. 긍정적으로 자기 삶을 생각하고 nbsp행복해야 합니다.nbspnbsp행복하기 위해서 노력하면 안 돼요. 그러다 죽어 버리면 억울해요. 지금 행복해야 합니다. 살아있는 것만 가지고도 행복해야 돼요. 그런 마음을 가지시고 조금 더 행복하시기를 진심으로 바랍니다. 감사합니다.” nbsp즐겁고 유쾌하고 즐거운 대화 속에 어느덧 2시간 15분이 흘렀습니다. 긴 시간 지혜로운 말씀을 해주신 스님께 청중들이 다시 한번 뜨거운 박수 갈채를 보내줍니다.nbspnbspnbspnbspnbsp특히 인류 문명을 어떻게 봐야 하는지 말씀해 주신 부분을 들으면서는 통일의 비전과 희망이 느껴져서 가슴이 설레이기도 하였습니다.nbspnbsp스님께서는 책사인회가 마련된 곳으로 자리를 옮겨서 참석한 많은 분들에게 사인을 해주시며 인사를 나누셨습니다. 오늘 강연에서는 준비한 모든 책들이 판매되어버려서 책을 구입하지 못한 분들이 생겨 많이 미안하였습니다. 다들 스님과 사진을 찍고 싶어하였기 때문에 스님께서는 일일히 응하지는 못하시지만 사진을 찍을 수 있도록 최대한 배려해 주셨습니다.nbspnbspnbsp강연을 마치고 돌아가시는 분들께 오늘 강연이 어땠는지 물어보았습니다. 한 분은 “지금 관광중에 있는데 우연히 스님의 강연 소식을 듣고 강연에 참가했는데 정말 좋았다”고 하면서 무척 기뻐하였습니다. 그리고 한 분은 “유튜브로만 보다가 스님을 직접 이곳 칠레에서 뵈니 정말 더 좋았고, 질문을 하고 싶었는데 가족과 이웃들이 있어서 못했지만 오늘 위로도 많이 받았고 마음을 돌이키니 얼굴에 웃음도 되찾을 수 있었다”고 하면서 고마워 했습니다. 그리고 한 분은 “어렵겠지만 다음에도 스님께서 이곳을 다시 찾아주면 좋겠다”는 바램도 나누어 주었습니다.nbspnbsp뒷정리를 하면서 자원봉사를 한 분들에게도 소감을 물어보았습니다. 오늘 책판매를 담당했던 분은 “많은 분들이 한꺼번에 오니 조금 힘들었던 것도 있었지만 스님을 이곳에 모실 수 있는 것 자체가 큰 기쁨이고 즐거움이었다” 며 소감을 나누어주었습니다. 행사를 총괄한 홍지언님은 “한달 동안은 생업보다는 강연 준비에 전력을 투자했다” 고 하면서 “문의 전화 중에 평일 낮시간이라서 가게를 하는 분들이 참여하기가 힘들었다”며 아쉬운 마음을 나눠주었습니다.nbspnbspnbspnbsp▲ 강연 후 뒷정리를 하는 동안 스님께서는 유영수, 조영명 원불교 교무님 및 한인회장님, 골프협회 회장님과 잠시 환담을 나누셨습니다.nbspnbspnbspnbsp▲ 그리고 현재 칠레 한인회에서 한인회관 건물 마련을 위해서 모금운동이 진행 중이라는 소식을 듣고서 오늘 강연 후에 모인 보시금 500불을 김지용 한인회장님께 전액 전달하셨습니다.nbspnbspnbspnbspnbsp▲ 주중 낮 강연이라 자원봉사자들도 강연 후 급히 일터로 돌아갔기 때문에 스님께서는 소수의 남아있던 자원봉사자들과 기념촬영을 하였고, 한국에서 선물로 가지고 온 단주를 손목에 끼워주시면서 감사의 마음을 표하였습니다.nbspnbspnbspnbsp▲ 그리고 형제가 모두 경주고등학교 후배라고 하신 골프협회 이영우 회장님과 한인회 이강우 부회장님과 함께 산티아고 방문을 기념하여 사진촬영을 하였습니다.nbspnbsp뒷정리를 모두 마치고 두 분의 원불교 교무님이 꼭 스님께 저녁식사를 대접하고 싶다고 요청하여 스님께서는 남아있던 한인회 분들과 함께 한식당 한소반으로 자리를 옮겨 저녁식사를 하고 공항으로 출발하기로 하였습니다.nbspnbsp식사 후에 모두들 스님의 너무나 짧은 산티아고 방문을 아쉬워 하면서 다음에는 꼭 다시 한번 산티아고를 방문해 달라고 요청을 하시면서 아쉬운 작별을 하였습니다. 스님께서도 비행 일정으로 인하여 하룻밤 묵지도 못하고 바로 뉴질랜드로 떠나는 것에 대해 미안해 하셨고, 이번에 한인회에서 수고를 많이 해주셔서 정말 감사하다고 관계자들께 인사를 하고 홍지언님과 함께 바로 산티아고 국제공항으로 출발하였습니다.nbspnbsp공항에서 스님의 팬이라면서 홍기언님의 친구 분이 급히 뛰어와서 행사장에서 구입한 책에 사인을 요청하여 잠시 사인을 해주셨습니다. 아내 허지윤님이 오늘 한국으로 간다고 배웅을 나왔는데 스님께서 공항에 있는 것을 알고 왔다고 하면서 아내가 스님의 유튜브 동영상을 보고 많이 편안해졌으며 가족 모두가 스님의 팬이라고 했습니다. 허지윤님은 중국에 출장을 갔다가 12월말부터 1월말까지 한국에 머물게 된다고 하시면서 깨달음의 장과 정토회 수행에 관하여 질문해서 자세히 안내를 해주었습니다. nbspnbsp공항에서 뉴질랜드 오클랜드행 비행기 수속을 하는데 아주 싼가격의 비행기표를 구매했기 때문에 수속하는데 약간 차질이 빚어졌습니다. 스님의 짐을 오클랜드가 아닌 시드니에서 찾아야 해서 공항에서 다시 스님의 짐을 정리하는 시간을 가지셨습니다.nbspnbspnbspnbsp▲ 출국 수속까지 모두 마치고 Gate에 도착해서는 급히 보셔야 할 원고를 비행기 탑승 직전까지 보시고 수정하셨습니다.nbspnbsp그리고 11월 20일부터 중남미 강연에 합류하여 수고해 주신 뉴욕정토회의 김명호님과 9월24일 미주지역 보스턴 강연부터 오늘 칠레 산티아고 강연까지 아메리카 대륙에서 이루어진 총 65회의 강연에 함께 동행하여 행사를 총괄한 해외지부 김순영 사무국장과 함께 작별 인사를 하였습니다.nbspnbsp스님께서는 오늘 밤을 칠레에서 같이 보내지 못해 북미주와 중남미의 총 65회 강연을 마쳤음에도 제대로 자축도 하지 못하고 급히 뉴질랜드로 떠나게 되어 미안하다고 하시면서 그동안 수고 많았다고 격려해 주셨습니다. 그리고 시봉을 하고 계시는 최말순 보살님과 함께 밤 10시40분 비행기를 타고 뉴질랜드 오클랜드로 출발하셨습니다. 이어서 1시간 뒤에 김명호님과 김순영 사무국장은 각각 미국 뉴욕과 워싱턴DC로 돌아갔습니다.nbspnbsp▲ 중남미 6개 도시 강연을 모두 마치고 뉴질랜드로 떠나시는 스님nbspnbsp스님께서는 13시간의 비행을 마치고 뉴질랜드 오클랜드 현지 시간으로 11월27일 오전4시에 오클랜드 국제공항에 도착할 예정입니다.nbspnbsp이렇게 오늘도 많은 분들의 정성과 자원봉사로 94번째 칠레 산티아고 강연도 모두 잘 마쳤습니다. 내일 26일은 시차로 인하여 강연 없이 하루를 건너뛰고 95번째 강연은 11월 27일에 뉴질랜드 오클랜드에서 열립니다. 뉴질랜드 및 호주 강연은 그쪽 강연준비팀에서 또 소식 전해드리겠습니다.nbspnbsp마지막으로 아메리카 대륙에서 이루어진 총 65회 강연에 스님과 함께 하면서 느낀 짧은 소감을 함께 나누고 싶습니다.nbspnbsp자원봉사자들의 자발적이고 헌신적인 봉사가 없었다면 세계 100회 강연이 이루어질 수 없었음을 가는 곳마다 절절히 느낄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전세계에 살고 있는 교민 분들이 스님의 유튜브 동영상, 팟캐스트, 카카오스토리, 희망편지를 통해 얼굴 한 번 보지 못했지만 스님의 법문으로 이미 한가족처럼 서로 공감하면서 가까워져 있었음을 알 수 있었습니다. 특히 중남미 지역에서는 오로지 인테넷과 SNS로 소통하면서 아주 성공적으로 스님의 강연을 준비할 수 있었습니다. 헌신적으로 자원봉사를 해주신 모든 분들께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nbspnbsp그리고 만나는 많은 분들이 “누가 이 말도 안되는 살인적인 스케쥴을 짰냐”고 하시며 특히 중남미에서는 “매일 매일 국가를 건너뛰는 이 일정은 도저히 상상할 수 없다”고 하시는데, 스님께서는 그 일정을 다 소화하시면서 가시는 곳곳에서 교민들의 마음도 어루만져 주시고, 지금 여기서 행복할 수 있어야 한다 하시면서 깨우침의 말씀을 주시고, 질문 하나 하나에 정성을 담아서 답변을 해주시니, 그 자체를 보는 것 만으로도 큰 감동이었습니다.nbspnbsp오클랜드를 시작으로 세계 100회 강연 중 태평양, 아시아 지역에서의 21회 강연이 11월27일부터 이어지는데 태평양, 아시아 지역에서 새롭게 만나는 다양한 사람들의 인생 고민과 스님의 법문이 더욱더 다채롭게 펼쳐지길 기원합니다. 스님의 건강과 세계 100회 강연을 응원해 주세요.nbsp▼nbsp법륜 스님의 세계 100회 강연, 지난 날짜 소식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