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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6.8 평화리더십아카데미, 여성리더십아카데미 경주역사기행
오늘 스님께서는 새벽부터 쉴틈없이 바삐 움직였습니다. 텃밭의 열무도 뽑고, 텃밭의 풀도 뽑고, 아침에 먹을 상추도 뜯었습니다.nbspnbsp 상추쌈으로 아침을 먹고 난 후 다시 텃밭으로 나갔습니다. 호박이 넝쿨을 잘 올리게 하기 위해 대나무 줄을 만들었습니다. 그동안 비가 오지 않아서 말라 가고 있는 텃밭과 마당에 물을 주고 나서야 오전 일을 마무리 하고 원고 점검등 업무를 하셨습니다.nbsp 오후 1시부터는 평화리더십아카데미, 여성리더십아카데미의 졸업기행이 경주에서 진행되었습니다.nbsp ‘신라의 삼국통일로 본 통일 코리아의 전망’이라는 주제로 역사기행과 강연이 있었습니다. nbsp 법흥왕릉에서 모여서 신라의 국가초석을 마련한 법흥왕에 대한 안내를 해주셨습니다. 신라 법흥왕때 율령을 선포하고 불교를 공인하는 등 개방개혁정책을 폈으며 가야와 합병을 했습니다. 신라와 가야의 통합은 서로 합의에 의한 통합이었고 그것은 우리가 이루어 내야 할 통일의 모델을 잘 보여주고 있다고 하셨습니다.nbspnbsp 태종무열왕릉에서는 무열왕인 김춘추의 활동, 역할. 에피소드등에 대한 설명을 해주셨습니다. 태종무열왕릉을 둘러보고 나오는데, 지나가던 한 초등학생이 스님을 보더니 ‘법륜스님인 줄 알았다’라고 하길래 스님께서 ‘법륜스님인데’하며 인사를 나눴습니다. 그 초등학생은 엄마가 스님의 즉문즉설 영상을 열심히 본다고 그래서 알고 있다고 하며 기념사진도 찍었습니다. nbsp 김유신 장군묘에서는 가야의 왕족으로 신라의 군사책임을 맡으며 삼국통일에 기여한 내용, 김유신에 얽힌 설화등에 대한 설명을 들었습니다.nbspnbsp 능지탑은 죽어서도 나라를 지키겠다는 문무대왕을 화장한 터를 기리며 쌓은 탑입니다. 능지탑을 지나 선덕여왕릉으로 이동하면서 선덕여왕에 대한 설명을 들었습니다. 우리나라 최초의 여왕으로 대중들을 이끄는 리더십이기 보다는 능력있는 사람들을 세워서 이끌고 가는 리더십을 지녔으며, 또 선덕여왕에 얽힌 이야기도 함께 해주셨습니다. nbsp 선덕여왕릉을 거처 호국불교의 상징인 사천왕사지를 거처 동양최대 규모를 자랑하는 황룡사지로 이동했습니다.nbsp 백고자 법회가 진행되었던 황룡사지의 강당터에서 우리는 천년이 지난 지금 이 자리에서 원효스님의 이야기를 스님을 통해서 들으면서 오늘 경주역사기행을 마무리 했습니다. nbsp 저녁식사를 마치고 7시 30분부터 ‘신라의 삼국통일로 본 통일코리아의 전망’이라는 주제로 오늘 하루 경주역사기행을 정리하는 강연이 있었습니다.nbspnbsp “신라는 동쪽에 치우친 작은 부족국가로 우리 민족의 주류가 아니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신라가 통일의 주역이 되어 역사의 주인공으로 등장하게 된 원인은 무엇인가? 또 역사의식이 부족한 신라가 통일의 주역이 됨으로 해서 우리 민족에게는 어떤 긍정적 요소와 어떤 부정적 요소가 있는가? 이것을 살펴보는 것이 오늘의 경주기행의 목적이었습니다.nbsp 첫째, 신라가 주인공으로 등장하는 데는 150년의 시간이 걸렸습니다. 신라는 가장 후발주자로 출발했지만, 법흥왕 때 개혁개방정책을 취했습니다. 그리고 가야와 합병을 할 때 합의통합을 했기에 가야의 인적자원을 신라에 모두 유입하게 되었습니다. 11이 2를 넘어서 3이 되고 5가 되는 상승효과을 가져왔습니다. 신라가 나중에 쇠퇴했을 때 무력으로 통합한 백제는 후백제, 고구려도 후고구려를 건국했지만, 가야는 후가야를 건국했다는 말은 없습니다. 가야가 신라의 백성으로서 지도자로서 융화되었고 신라인으로 자부심을 가졌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신라가 통일은 했지만 역사의식 부재로 민족 전체로 볼 때는 영토의 축소를 가져왔습니다. 발해사를 우리 역사에서 제외시킴으로 우리 역사계승의 문제가 있는 것이고, 그래서 신라를 비판하는 것입니다. 당시는 명백하게 신라와 발해라는 2국 시대였고 신라가 그런 민족의식을 가지고 있었다면 신라가 영토를 축소시켰다는 평가를 받지 않았을 것입니다. 신라는 인문학에 있어 중국을 능가할 정도로 뛰어난 사상가를 배출하고 기술 분야에 있어서도 뛰어났고, 신라의 뛰어난 문물이 당나라에 전래되어 당에 신라풍,신라방이라는 신라인들이 집단적으로 거주하는 지역이 있었습니다. nbsp 문제는 발해가 멸망하고 후삼국이 고려에 의해서 계승되면서 영토면에서는 신라의 영토와 신라의 국민, 신라의 문화 즉 신라를 그대로 고려로 계승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고려는 역사의식을 가졌기 때문에 고구려를 계승한다고 하며 발해유민의 10퍼센트가 고려로 유입되었습니다. 고려는 역사의식이 있었기에 그 이후 거란·여진·몽골의 침입으로 세 민족과 거의 500년을 싸우면서 역사가 이루어졌는데 거기서 고구려의 기상을 그대로 보여줬습니다.nbspnbsp 발해가 망하고 혼란기에 고려는 신속하게 북진정책을 써서 평양성 이남의 신라영토에서 평안북도까지 점령해서 영토를 압록강유역까지 확대를 했습니다.그러자 발해를 멸망시킨 요나라는 발해의 옛 땅은 요나라 땅이라며 30만 대군을 몰고 고려를 침략했는데, 이때 서희가 가서 담판을 했어요. 그때 소손녕이 ‘우리는 발해를 계승한 나라다.왜 너희들이 불법 점령하느냐’고 하자 서희가 ‘만약 너희 말이 그렇다면 우리는 고구려를 계승한 나라이기 때문에 고구려의 옛 땅은 절반은 우리 땅이다’라고 하여 단판을 지었습니다. 만약 고려가 고려라는 이름을 짓지 않았다면 역사의식이 없었다면 담판은 불가능했겠죠.이것이 우리 외교사의 최대의 성과로 보는 서희의 담판입니다.nbspnbsp 우리는 발해의 역사를 잊어버렸기 때문에 신라중심의 역사관을 가지고 있습니다. 실학이 들어오면서 발해의 역사를 조금씩 받아들이며 이제는 발해의 역사가 민족사에 들어오고 있습니다. 그 당시가 남북국시대다 이렇게 말하는 것이 더 정확한 표현이 되지 않겠나 싶습니다.nbsp 이런 면에서 보면 결국 환웅천왕께서 이 땅에 신시를 세우고 나라가 시작된 것이 6000년 전, 4300년 전 단군왕검에 의해 조선이 되고, 해모수에 의해 부여가 되고,거기서 부여의 전통을 계승한 게 고구려고 그 고구려를 계승한 발해가 역사의 정통성을 계승했다 할 수 있습니다.영토와 사람과 문화는 신라를 계승하고 역사의식은 고구려, 발해를 계승한 나라가 고려라고 할 수 있습니다.nbspnbsp 그러나 조선에 들어 유생들이 자진 사대의식. 고려는 저항하다 힘에 부쳐 사대를 했지만, 조선은 자발적 사대를 했기에 우리 역사로 본다면 역사의식의 왜곡이 가장 심하다 볼 수 있습니다.우리가 일제침략기와 분단시기를 거치고 그 어려운 상황속에서도 대한민국은 세계 최강대국 미국의 지원으로 분단된 상황에서도 전쟁의 폐해를 딛고 세계 14위 국가가 될 정도로 발전 해왔습니다. nbsp 그러나 대한민국은 통일에 대한 확실한 입장이 부족하고, 민족사의 정통성에 대한 입장도 약하고, 민족문화에 대해서도 취약합니다.그러므로 새로운 대한민국을 만들려면 우리가 가진 장점들개혁적,개방적 입장,민주화, 인권신장, 경제성장등 이런 장점들을 살려가면서 역사의식,통일에 대한 확고한 입장,미래에 대해 국가의 위상을 어떻게 잡을 것인지에 대해 분명한 입장을 가진다면 대한민국이 고구려 멸망이후 천년 만에 동북아에서 위상을 가질 수 있습니다. 지금 그 분기점에 놓여 있습니다.nbsp 우리가 역사를 배우는 것은 단순히 역사적 지식을 쌓으려는 게 아니라, 미래를 향해서 나아가기 위해서 거기에 필요한 아이디어나 이런 경험을 얻고자 해서 과거 역사를 돌아보는 것입니다. 우리가 우리 안에 있는 신라역사를 돌아보면서 신라가 국력을 키운 이유를 들여다보는 게 중요하고, 민족사의 정통성에 있어서는 고구려, 발해의 역사유적을 돌아보면서 우리가 공부를 한다면 지금 대한민국이 처한 현실에서 어떻게 통일을 할 것인지가 나올 것입니다.nbspnbsp 이제 우리가 처한 현실이 어떤가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지금 중국의 급격한 부상에 따라서 세계는 미중의 패권이 경쟁하는 시대로 나아가고 있습니다.지금 이 시간에 시진핑과 오바마가 앉아서 세계문제를 논의하고 있습니다. 미중은 경쟁적이면서 협력하는 관계로 거기에 한국문제도 중요한 이슈 가운데 하나로 논의되고 있습니다. nbsp 제가 말하는 통일은 통일지상주의가 아니라 우리가 어떻게 문명의 중심으로 들어설 수 있느냐는 것입니다. 문제는 당사자인 남북한은 전혀 자신의 이익과 권리에 대해 크게 관심 없다는 것입니다. 기회가 왔는데도 기회를 스스로 포기한다면 그걸 누가 어떻게 해볼 수 있겠어요? 우리가 여기에서 만약 남북한이 조금만 감정적인 경쟁이 아니라 민족전체의 이익을 위하는 입장에서 서로가 생각한다면 그리고 미국이 북핵이라는 단기적 이해가 아니라 장기적 이해를 생각해본다면 남북관계를 개선하고 북미관계를 개선한다면 미국의 영향이 큰 상태에서 통일한국을 꿈꿔볼 수도 있습니다.nbsp 북한이 중국이 영향권에 들어가기 전에만 빠른 시간 내에 통일이 가능하고. 만약 영향권에 들어가서 친중 정권이 들어선다면 과거 한국정부가 미국영향권 내에 들어선 것과 같아 통일은 상당기간 어렵다고 볼 수 있습니다nbsp 지난 50년 간 아쉽지만 역사를 돌아보면 역학적으로 통일이 될 수 없는 시기였습니다. 그때 북한이 힘이 세서 밀어붙여 통일을 하려했지만 미국이 용납을 안했잖아요.힘으로 밀어붙이는 통일은 불가능하고 평화적 통일은 북한이 자주성을 잃어버리지 않을 때 가능합니다. 우리는 북한이 중국말을 덜 듣도록 해야 하는데 북한이 중국에 고개 숙이도록 우리정부가 말하고 있으니 중국정부로서는 어부지리로 얻게 되는 것입니다.nbsp 통일의 기회가 십년정도인데 한국이 아직도 미국의 영향권 아래 있지만 지금은 조금 자유롭습니다. 지금 이 시기가 강대국의 세력이 교차되는 세력교체기에 잘하면 통일할 수 있지 않겠냐는 것입니다. 지난 5년 기회를 잃어버렸고 앞으로도 또 잃어버린다면 통일의 기회를 잡기 어렵습니다.이 정부는 어떻게 해서든지 통일의 기회를 잡아야 합니다.nbsp 이것은 통일로 끝나는 게 아닙니다.새로운 백년의 출발이라는 것입니다. 지금 문명은 유럽에서 아시아로 옮겨오고 있습니다. 문명의 중심은 군사력이나 경제력만 갖고 되는 게 아닙니다. 소비에트가 세계의 중심이 되 지 못한 것은 인권, 철학 등이 빈약해서입니다.nbspnbsp 동아시아 시대를 이야기 하지만 현재의 동아시아 각국의 수준으로는 어렵습니다. 일본의 경우 철학이나 도덕성, 역사의식등이 부족하잖아요. 경제만 발달해있고 규모만 크지 일본정치인들의 수준은 반문명적이고 역사를 후퇴시키는 수준입니다.nbsp 중국은 민주주의, 인권, 소수자에 대한 그들의 태도를 보면 문명의 중심국이 되기는 어렵습니다. 중국이 세계문명의 중심이었을때는 당나라 시기인데, 당나라는 주변국에 대해 굉장히 개방적이었고, 사상도 중국 전통사상과 인도불교가 융합했고, 신라, 발해, 베트남 서역까지 당나라와는 굉장한 우호관계를 형성하며 각국의 인종, 문화 , 기독교문화까지 들어와 있었습니다. 그럴 때 문명의 중심이 될 수 있습니다.그러나 현재 중국은 그렇지 않습니다.nbsp 한국은 어떠냐면 개성공단만 봐도 한쪽에선 노동자 빼고, 이쪽에선 기업주 빼고, 저쪽에서 이것 하자고 하니 저것하자고 하고 이렇게 일곱 번을 왔다갔다 하는데 트집을 잡고 상대방의 요구를 받아들이지 않는 수준입니다. 이 수준을 갖고 어떻게 세계문명의 중심이 될 수 있겠어요? 그래서 동아시아의 시대가 온다고 하지만 현실적으로 실효성이 별로 없습니다. nbsp 그러나 남북한이 통일한다는 것은 철천지 원수가 화해하고 용서한다는 것입니다. 서로의 국립묘지를 합한다면 나를 죽인 원수에게 가서 참배를 한다는 것입니다. 통일이란 이런 것을 말하는 것입니다. 지금까지 우리들의 미워하고 증오하고 적대하는 것을 넘어선다는 것입니다. 그걸 이룬다는 것은 원수를 사랑하라는 수준으로 넘어가는 것입니다. 이것은 굉장한 도덕성이고 이러한 통일국가를 건설한다면 전쟁으로 인한 아픔도 치유할 뿐 아니라 완전한 자주독립을 이룰 수 있습니다. 그리고 통일한국에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동아시아 공동체를 이끌어갈 힘을 가질 수 있습니다.nbsp 한국 사람은 작지만 갖고 있는 역동성이 굉장합니다. 문명의 중심으로 갈 수 있는 가능성이 큽니다. 대중문화나 스포츠에서는 벌써 일어나고 있고, 사상, 학문, 기술의 측면에서도 몇 가지를 넘어가면서 통일한국의 새로운 가능성을 열어갈 수 있습니다. 이것이 우리가 꿈꾸는 새로운 백년입니다.”라며 리더십 아카데미도 이런 방향으로 나아갈 수 있기를 바란다며 오늘 하루를 정리해주셨습니다.nbspnbsp 내일은 문경에서 2012 중부권 경전반 특강과 2013 봄 불교대 특강수련이 있고 저녁에는 부산 동아대학교에서 북콘서트가 있습니다.
2013.6.7. 김해시청강연, 대구 경북대 북콘서트
오늘 김해시청 강연전에 김해시장님과 차담이 있었습니다. 김해의 경전철 문제에 대한 이야기, 김해가 처음 불교가 전해진 불교도시라는 것, 김해의 현 행정에 대한 이야기등을 나누었습니다. nbsp 김해시청 대강당으로 들어서는 입구에서 오늘 봉사자들이 박수를 치며 환호하며 스님을 반갑게 맞았습니다. 강당에서 모임 대중들도 스님을 박수로 맞이 했습니다. 김해시청은 450석의 의자가 깔렸는데, 약 670여 명이 참석해서 무대위, 무대앞, 복도에도 앉고, 뒤에 서서 듣기도 했습니다. 딸과 싸움을 많이 해서 고민인 엄마, 돈에 대해 집착하는 자신이 세속에서도 어떻게 해야 할지 고민인 젊은 분, 딸이 이혼을 했는데, 손자가 고1인데, 딸이 사위와 같이 살아라고 108배 기도를 하고 있는데, 어떻게 해야 할지, 올케가 가출을 하고 엄마가 조카들을 키웠는데, 조카가 엄마에게 공손하지 못한데 어떻게 해야 할지, 나혼자 수행하다 가는 것은 나자신만을 위한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으로 고민인 분, 아들이 발달장애인데, 내가 죽고 나면 어떻게 될지 걱정인 엄마, 스님께서는 절에만 있어도 되는데, 왜이렇게 돌아다니면서 법문을 하는지등에 대한 질문들이 있었습니다.nbsp 두딸을 키우고 있는 한 여성분은 큰딸과의 갈등 때문에 고민이라면서 질문을 하셨습니다. “큰딸을 낳아서 열과 성을 다해서 빡세게 키웠습니다. 기대치에 부흥해 줄 것이라는 기대가 컸었는데, 고1이 되면서 생활자체가 전쟁이 되었습니다. 매일매일 싸우고 있습니다. 처음에 작은 싸움이 계속 가다보니 방문을 부순 적도 있고, 손찌검도 했습니다. 큰 딸은 그날 엄마한테 맞았던 상처가 응어리가 되어 지워지지 않는다고 합니다. 내가 큰 잘못을 했구나 하고 마음을 비워야겠다고 다짐을 했는데도 잘 안됩니다. 어떻게 하면 욕심을 내려놓고 친구같은 엄마가 될 수 있는지 알고 싶습니다. 제가 화를 다스리기 위해 108배를 하고 있는데, 108배를 하면서 어떤 기도를 해야 되는지도 알고 싶습니다.” nbsp 딸과 매일 싸우는 엄마에게 스님께서는 “하얀 종이를 빨간물에 집어넣으면 빨갛게 되요? 노랗게 되요? 그럼, 노란 물에 넣으면? 그러면 그것이 종이잘못이예요? 집어 넣은사람 잘못이에요? 그러니까 흰종이를 빨간물에 집어 넣으면서 노랗게 되라 하면 그렇게 될 수가 없습니다. 엄마가 행복하게 살면 아이도 따라 행복해집니다. .엄마가 불안하게 살면 아이도 따라서 불안해집니다. 왜냐면 아이라는 것은 태어나면서 종이와 같고, 엄마는 잉크와 같아서 그대로 닮습니다. 엄마가 아이를 악착같이 키워서 아이도 악착같이 엄마와 싸우는 것입니다. 너무나 당연한 것입니다. 그러니까 질문자가 남편과 싸우면서 안질려고 하면 거기서 자란 아이도 엄마와 싸우면서 안질려고 악착같이 싸우게 됩니다. 처음에는 아빠와 싸우며 엄마를 도와주지만, 나중에 아빠가 없으면 엄마와 싸우게 됩니다.nbspnbsp 엄마가 행복하면 아이도 행복해지고, 엄가 웃으면 아이가 편해지고, 엄마가 슬프면 아이도 우울해지고, 엄마가 독기를 품으면 아이도 독기를 품게 됩니다. 흰종이가 물감에 물드는 것과 같습니다. nbsp 하인,양반이니 하는것은 인간 존재가 그런 것이 있는 것이 아니라 어떻게 물들이느냐에 따라 정해집니다. 평등하게 교육시키면 평등하게 되고, 부모가 사물을 긍정적으로 보면 자식도 사물을 긍정적으로 보게 됩니다. 아이가 그런것은 다 엄마를 닮아서 그런것입니다. 그렇기에 질문자가 남편이 뭐라 하면 ‘예예’하면 아이도 엄마에게 ‘예예’하게 되고, 남편에게 ‘그런게 아니야’ 라고 대들면 아이도 엄마에게 ‘그건 그런게 아니야’하면서 대들게 됩니다.nbspnbsp 자기 성질을 닮아서 그대로 형성되는데, 그 두성질이 만났으니까 보통일이 아닙니다. 어릴때부터 강압해서 공부를 시키면 공부는 좀 할지 몰라도 스트레스가 계속 쌓이게 됩니다. 엄마가 강압을 세게 하면 할수록 저항도 강해집니다. 때리면 처음에는 겁내지만 시간이 지나면 그것도 겁내지 않습니다.nbsp 벌을 주더라도 이해를 시키면 교육효과가 있지만, 일방적이면 효과가 없습니다. 아이도 시간이 지날수록 저항이 커집니다. 아이를 자기가 이루지 못한 것을 성취시키는 수단으로 생각해서는 안됩니다. 그 아이가 행복해 질수 있도록 도와주는 것이 엄마입니다.nbspnbsp 질문자가 반성을 해야 합니다. 아이에게 잘못한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내가 어리석었다는 반성을 해야 합니다. 부부관계가 안 좋죠? 왜 이렇게 묻냐면 부부관계가 좋으면 자기의 에너지의 팔십프로는 남편을 쳐다보는데 쓰게 됩니다. 관계가 안좋으면 관심의 팔십프로를 아이를 쳐다보는데 쓰게 됩니다. 그러나 앞으로 남편이 마음에 안들면 다른 남자를 쳐다봐요. 애를 괴롭히지 말고....nbsp 옛날부터 아버지 없는 아이들이 문제라고 하는 것은 아버지가 없어서가 아니라 엄마가 모든 관심을 아들에게 두게 되기 때문입니다. 이 남자는 여자가 둘이게 됩니다. 결혼하고 보면 뒤에 늙은 여자가 하나 더 있어요. 아버지가 없다고 성격적으로 문제가 있는 것이 아니라 엄마가 아이에게 지나치게 집착하고 키우기 때문입니다. 그런것처럼 사춘기가 넘어가면 아이에게 쏟는 정성을 줄여 나가야 합니다.nbsp 우리아이의 지금을 봐야 합니다. 학교는 다니고 있어요? 다니는 것만으로도 엄청나게 고마운 줄 알아야 합니다. 자꾸 그러면 애가 학교도 안가게 됩니다. 공부도 중간은 하는 것을 고맙게 생각해야 됩니다. 엄마가 자기자식을 긍정적으로 봐줘야 자식이 자존감이 있습니다. 엄마로부터 계속 문제라고 들으면 자존감이 없어지고 어려운 일이 생기면 에라 모르겠다고 자포자기하게 됩니다. 자기인생을 엄마꺼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사고를 쳐서 엄마를 괴롭히고 싶어합니다. 여러분도 남편에게 구박받고 화가 나면 내가 없어봐야 내가 귀한 줄 알지 하는 생각이 들어요? 안들어요? 내가 죽어야 니가 내 고마운 줄을 알지하는 마음으로 자살하는 경우도 있습니다.nbsp 여러분들이 계속 자녀에게 그러면 자존감이 없어서도 그렇지만, 보복심리 때문에 자살하기도 합니다. 그러니까 학교 다니는 것만으로도 고맙다고 생각해야 합니다.nbsp 애가 공부에 연연해 해도 엄마는 성적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고 말해야 합니다. 엄마는 뭘 좀 못해도 껴안아 줘야 엄마입니다. 그러니 엄마로 돌아가야 합니다. 그래서 기도를 할 때 남편에게 참회기도를 해야 합니다. 애가 자기에게 대드니까 힘들어요? 안힘들어요? 아마 남편도 힘들었을 것입니다. nbsp 남편에게는 참회를 하고 아이에게는 ‘내가 성질 부린것에 비하면 그만하기 다행이다. 조금만 닮아서 다행이다. 고맙다’고 해야 합니다. 아이에게 잘하라는 것이 아닙니다. 엄마는 엄마다워야 합니다. 아이가 나쁜짓하면 그건 안돼하고 단호히 얘기해야 하고 아이의 성질은 나 때문에 니가 고생한다는 마음이어야 합니다. 그래야 자신도 편하고 아이도 한이 없어집니다.”nbsp 스님의 답을 들은 질문자는 환한 목소리로 “감사합니다”라며 인사를 드렸습니다.nbsp 저녁에는 대구 경북대학교에서 북콘서트가 있었습니다. 조금 일찍 경북대학교에 도착하신 스님께서는 오연호 대표와 차담을 나눈 후 강연장에 들어갔습니다. 약350여명이 참석한 가운데 통일을 주제로 강의가 진행되었습니다.nbsp 요즘 청년들에게 통일이 주 관심사는 아닌가 봅니다. 강연장에는 청년들뿐만 아니라 일반인들도 많이 참석하셨습니다.nbsp 청년들은 주로 우리나라가 역사의 주인공으로 가기에는 현 정치의 문제점이 많은 것에 대한 질문, 진보와 보수를 가르는 기준과 의미는 무엇인지, 대한민국이 아시아의 중심으로 나서면 그 이후에는 어떻게 되는지, 고등학생에게 역사의식을 어떻게 심어줄수 있을지 고민하는 고등학교 선생님등 통일에 대한 다양한 질문들이 있었습니다.nbsp 스님께서는 오늘 북콘서트를 정리하시면서 “세상이 우리 원하는 대로 되면 얼마나 좋겠어요? 그러나 우리 마음대로 되지 않아요. 기도하면 다 된다는 것도 옳지 않습니다. 첫째, 우리가 원하는 건 다 될 수가 없고, 두번째, 된다고 반드시 좋다고 말할수도 없어요. 그러면 이 사실을 안다면, 안되었을 때, 훨씬 우리가 여유가 있지 않을까요? 그래서 안되었다고 낙담하지 마세요. 젊은이들이 어떤 일에 최선을 다하되, 실패하는 것에 대해 너무 두려워하지 말아라는 것입니다. 그것을 통해서 성숙해 갈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제가 이런저런 세상일에 대해 좀더 폭넓게 볼 수 있다면, 그것은 이런저런 험한 경험을 많이 했기 때문입니다. 그런 경험을 했기 때문에 오히려 더 소외된 자, 소수자 이런사람에 대해서 훨씬 이해도가 높고, 불교계에서 왕따를 당함으로서 친구를 신부, 목사와 함께하다 보니까, 결국 종교간에 폭넓은 사람이 되었고, 한국에서 소외되니까 다른나라에서 놀다보니, 국제 평화상도 받았어요. 나쁜 결과가 결과적으로는 더 좋았다는 얘기에요. 이것이 전화위복입니다. 그러니까 젊은이들이 일부러 실패할 필요는 없어요. 최선을 다하되 실패해도 괜찮다는 것입니다. 실패해서 도전할 수 있고 역량을 높일 수 있어요. nbsp 우리 민족이 지금의 난관을 극복하고 통일이 된다면, 동아시아 공동체의 중심이 되고 세계문명의 중심이 될 수 있어요. 극복하면 그만큼 성숙했다는 것이고. 우리가 계백장군과 김유신장군묘에 가서 인사하잖아요. 우리 형제를 죽인, 원수의 무덤에 가서 인사할 수 있다면 이것은 종교를 넘어설 만큼 큰 변화입니다. 이것은 문명사적으로 세계의 갈등을 해소할 수 있는 단초가 되는것입니다. 단지 이것들을 힘들어 하지 말고, 이 어려움을 극복해서 대한민국의 통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동아시아 공동체를 형성하여 세계문명의 중심이 될 수 있다는 것입니다. 문명사를 공부해보면 우리에게 희망이 있습니다. 지난 1000년의 주변소국의 서러움을 풀 수 있습니다. 한을 뛰어넘어 승화시키고, 통일하고, 용서하고 가해자를 포용하면, 이것은 젊은이들이 이런 시대에 살 수 있다는 가능성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너무 움츠러 들지 말고, 희망을 가지고 도전적으로 살아가길 바랍니다.” 라며 청년들에게 격려의 메시지를 남기며 오늘 하루를 마무리 했습니다. 내일은 평화리더십 아카데미, 여성리더십아카데미 소속 분들과 경주역사기행이 있습니다.
2013.6.6 새터민과 함께 한 경주역사기행
오늘은 새터민과 함께 하는 경주역사기행이 있었습니다. 올 상반기만도 몇번의 경주역사기행이 있었지만 오늘은 우리가 하려는 통일의 당사자라서 더욱 더 뜻 깊었던 것 같습니다.nbsp 아침 8시 50분에 무열왕릉에 도착하자 새터민들이 뛰어 와서 인사를 했습니다. 특히 어린이들도 스님을 아는지 뛰어 와서 인사를 하고 꽃을 바치는 아이도 있었습니다. nbsp 새터민 약 350여명과 봉사자 약 150여명 모두 약 500여명이 오늘 역사기행을 함께 했습니다. 서울, 대전을 제외한 지역이 아직 도착을 하지 않았지만, 모여서 태종무열왕릉에서부터 역사기행이 시작되었습니다. 먼저 스님께서는 우리는 과거역사를 거울삼아 현재의 문제를 해결해 나가기 위해 역사공부를 해야 하다고 하시면서 오늘의 경주역사기행이 왜 하게 되었는지부터 설명을 했습니다.nbsp 스님께서는 신라의 건국부터 삼국 통일까지의 과정, 특히, 가야와 신라의 통합을 통해 현 남북이 처한 상황과 대비해서 설명해주시니 지금 우리가 어떻게 해야 하는지가 더 선명해지는 것 같습니다. nbsp 삼국통일의 기초를 닦은 태종무열왕릉을 한바퀴 돌아서 김유신 장군묘로 이동했습니다.nbspnbsp 김유신 장군은 가야사람으로 가야와 신라가 통합한 후 신라의 군대를 책임지며 삼 국통일의 초석을 마련했습니다. 여기서는 김유신 장군에 얽힌 일화들무열왕과 동생 문희의 만남, 천관에 얽힌 이야기도 함께 설명해 주셨습니다.호국불교의 상징인 사천왕사를 둘러보고 선덕여왕릉에 도착해서 점심부터 먹었습니다. 오늘 오전에는 계속 수신기가 혼선이 되는 문제가 발생해서 고장난 수신기를 찾느라 스님께서 설명도 제대로 하지 못하고 일정도 많이 늦어졌습니다.nbspnbsp 점심을 먹고 난 후 간단한 노래 자랑이 있었습니다. 노래를 하는 사람은 어디에서 온 누구인지 소개하고 노래를 했습니다. 사이숲에서 온 아이들도 함께 노래를 불러 보기도 했습니다. nbsp 점심을 먹고 난 후 선덕여왕릉에서 선덕여왕의 업적, 선덕여왕에 얽힌 설화등에 대한 이야기들을 들었습니다. 간단한 오락시간으로 시작했는데, 노래를 하시겠다는 분들이 많아서 시간이 좀 늦어졌습니다.nbsp바로 문무대왕릉으로 이동해서 죽어서도나라를 지키겠다고 하시며 바다 한가운데에 묻힌 문무대왕릉을 참배하고 동국대 강연장으로 이동했습니다. nbsp 오늘은 새터민과의 즉문즉설이었습니다. 한국에 와서 살면서 어려운 점등 고민이 있으면 누가 들을까 어려워 말고 함께 내어놓고 답을 구해보고자 했습니다.nbsp그러나 오늘은 개인적인 질문보다는 대부분이 통일에 대한 질문이었습니다. 한 새터민은 “남한이 고향인 아버지가 북한으로 와서 북한에서 돌아가셨습니다. 형제가 8남매인데 6명이 북한군의 주요직에 있습니다. 남한의 조카들도 장교를 하고 있습니다. 북한이 계속 분열을 할 때 조카들이 서로 싸움을 한다고 생각하니 가슴이 아픕니다. 이곳에 와서 일자리에 대한 고민보다 조카들의 운명을 생각하니 마음이 아픕니다. 현재의 정전협정이 평화협정으로 바뀌게 되면 군사적 문제 풀 수 있지 않을까요? 평화협정에 대해 말씀 좀 해주십시오.”라며 남북이 대척했을 때 서로 싸우게 될 형제, 친척간의 운명이 고민이 되어 스님의 답을 구했습니다. nbsp 스님께서는 “북한이 평화협정을 하자고 먼저 제안했기 때문에 남한이 받아들일 지 모르겠어요. 남한이 받아들이면 남한은 지는 것 같은 느낌이 들고 북한의 의도에 말려든다고 생각해요. 북한도 똑같습니다. 남한이 먼저 제안하면 잘 안받아들여요. 그래서 용어를 바꿔야 해요. 그래서 정전협정을 평화협정으로 하자는 것을 말을 바꾸어 정전체제를 평화체제로 하자고 하면 아마도 합의가 가능할 것입니다.nbsp 평화체제로 가기 위해서는 우선 전쟁을 끝내자는 종전선언을 해야 합니다. 그러나 최대 관건은 미군철수문제입니다. 북한의 주장은 전쟁이 끝났으니 미군이 나가야 한다는 것입니다. 한국의 입장에서 주한미군을 철수하는 것은 한국 정서에는 맞지 않습니다. 그래서 북한은 주한미군의 주둔을 양해해야 합니다. 미군을 평화를 감시하는 부대로 생각하고 현재의 시스템을 평화적으로 바꾸는 것이 필요합니다.nbspnbsp 평화체제를 구축하는 데는 한국, 미국, 북한, 중국이 함께해야 합니다. 평화협정은 남북간에 하고 미, 중은 보증을 하는 식으로 해야 통일을 앞당길 수 있습니다. 그래야지 남북문제가 국내문제로 됩니다. 그것을 북한에게 우리는 설득해야 합니다. nbsp 우리가 화해와 협력의 기초로 남북관계를 설정한다면 설령 북한이 도발을 할 때 단호히 대응을 해도 전쟁이 일어나지 않습니다. 그러나 남북긴장 국면에서는 도발에 대한 응징이 전쟁으로 이어지기 쉽습니다. 만약 전쟁이 일어나면 남북한의 큰 손해입니다. 또한 전쟁이 일어나면 이것을 복구하려면 시간과 돈이 필요하며 그 사이에 중국이 우리를 추월해 나갈 수 있습니다. 그러나 지금 북한이 당국간 회담을 제의했고 남한이 받아들이고 있어서 8.15 되기 전까지 남북문제가 풀릴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됩니다. 그러니 전쟁이 날까봐 너무 걱정하지 마세요.”라며 질문자에 답해주셨습니다.nbsp 내일은 김해시청강연과 경북대에서 북콘서트가 있습니다.
2013.6.5. 춘천강연, 울산 북콘서트
아침 7시부터 통일운동에 뜻을 모은 분들과 함께 어떤 방식으로 어떤 활동을 해나갈것인지에 대해서 논의하는 조찬모임이 있었습니다. 회의를 마치자마자 춘천으로 이동했습니다.nbsp 강연시간에 맞춰 춘천교육문화관에 도착했습니다.nbspnbsp 좋았던 관계도 시간이 지날수록 관계가 어려워지는 경향이 있어 사람과의 관계 때문에 고민인 분, 직업 때문에 엄마와 갈등이 있는 분, 임신중인데 이전에 유산한 경험이 있어서 불안한 분, 스님과 같은 강사의 꿈을 가지고 있는데 어떻게 해야 하는지 방법을 묻는 분, 자신이 집안에서 핵폭탄 같은 느낌인데 어떻게 해야 할지 고민인 분, 엄마와 남동생은 필리핀에 있는데 가족이 함께 모여 살았으면 좋겠다고 이야기 하는 분, 물부족 국가, 전기 부족한데, 원자력 발전에 반대하는 사람들이 세상에 잘 전달될 수 있을까하고 고민하는 분, 초등학교3, 5학년을 둔 엄마인데 초등학교를 졸업하면 아이들을 홈스쿨링을 시키려하는데 불안감도 있는데 어떻게 해야 할지등 다양한 질문들이 있었습니다. nbsp 서른두살의 한 여자분은 부모님과 의견차이 때문에 갈등이 있어서 어떻게 하면 좋은지 스님께 물었습니다.nbspnbsp 스님께서는 질문자에게 “질문자는 엄마 집에서 살아요? 아니면 엄마가 자기 집에서 살아요? 생활비는 누가 내요? 그럼, 이것은 생각할 것도 없어요. 질문자는 얹혀서 사니까 돈 생각을 안해도 되지만 엄마는 살림을 살아야 하기 때문에 돈을 생각해야 합니다. 자기가 얹혀서 살면서 돈 안벌고 밥값도 안내고 있는데, 엄마니까 그정도지 딴사람이면 벌써 내보냈을 것입니다.nbspnbsp 서른 두 살이나 되면서 아직도 집에서 부모에게 얹혀 살면서 자기 하고싶은대로 하고 살면 질문자가 잘못하고 있는 것입니다. 엄마문제가 아닙니다. 생존은 남에게 의지하고 자기는 취미생활하듯이 하면 그건 기생생활입니다. nbsp 해결방법은 내일 보따리싸고 집을 나오는 것입니다. 원룸얻고 집에 손 안내밀면 됩니다. 얹혀살려면 어머니가 어떤 말을 해도 죄송합니다 감사합니다라고만 해야 합니다. 두가지 마음을 가지고 거기 살아야 합니다. 어머니가 아니고 후원자라고 생각하면 됩니다. 두가지중 어느쪽을 택할래요?nbsp .어머니께 죄송합니다 해야 합니다. 어머니가 뭐라 해도 항상 ‘죄송합니다’ 기도할때는 ‘죄송합니다 감사합니다’ 그렇게 살다 가능한 한 돈을 벌어 자립해야 합니다.” 이렇게 부모에게 의지하고 사는 것이 당연하다는 듯한 젊은층에게 스님께서는 독립하기를 당부하셨습니다. nbsp 춘천에서 마치자 마자 바로 울산으로 이동하였습니다. 이동 중에 간단히 점심을 먹었습니다.nbsp 오늘 저녁 강연은 7시부터 울산 현대자동차문화회관에서 북콘서트 시즌3 ‘가슴뛰는 상상 새로운 백년’ 북콘서트가 진행되었습니다. 오늘은 청년들을 대상으로 한 북콘서트였으나, 울산대학이 강연장소를 취소하는 바람에 강연장이 대학과는 거리가 먼곳에 위치하다보니 중장년층이 더 많이 참석한 것 같았습니다.nbsp 오늘은 오연호 대표가 아닌 남경림 ETC 기업문화 연구원 대표의 사회로 진행되었습니다. nbsp 개인적인 고민보다는 사회적 고민, 통일에 대한 고민들을 함께 나누는 자리였습니다. 스님께서 먼저 처음 통일운동을 하게 된 이유, 현재 남북의 상황, 가장 최근의 라오스에서 북한 청소년들이 북송된 사건등을 중심으로 이야기를 풀었습니다.nbsp 여러 질문들이 있었지만, 한 남자분은 통일에 대해 “참 답답합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통일도 좋고 다 좋은데 사실 우리 주위에 보면 젊으신 분들이나 중장년층을 보면 통일에 대한 의식이 없습니다. 통일을 원하고 있는가하는 자괴감도 듭니다. 개인적으로 우리나라가 독립국이 아니라는 생각이 듭니다. 우리 손으로 직접 광복을 이룬 것도 아니고 우리가 독립된 나라라고 느낄 뿐 살펴보면 우리 손으로 직접 이뤄낸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선거 같은 것을 보면 과연 우리 젊은 친구들이 그런면에서 의식이 부족하지 않은가하는 생각이 들고 당장 그런 부분에서 어떤 마음을 가져야 할지 질문드립니다.”라며 답답한 마음을 토로했습니다.nbsp 스님께서는 “질문자는 자기손으로 통일을 못할 바에는 식민지 지배를 받는 것이 낫다고 생각하나요? 그것은 극단적인 사고입니다. 자기 자본과 기술로 독자적인 영업망을 가진 자기 사업을 하면 더 좋지만, 자본, 기술, 영업망이 부족하여 큰회사의 하청을 받아서 운영하는 기업이라 하더라도 기업은 기업입니다.nbspnbsp 예를 들어 현대자동차에서 하청을 받아 운영하는 기업이라도 그 기업의 CEO는 현대자동차의 임원하고는 다르잖아요? 자신의 능력에 따라 회사가 잘되기도 하고 못되기도 합니다. 우리는 우리 힘으로 독립을 이루지 못했더라도 독립국이 된 것은 사실입니다. 아직도 강대국의 영향권 안에 있어 완전히 독립된 것이 아니라는 것이지요. 남한은 아직 미국의 영향권에 있지만 옛날보다는 영향을 덜 받고 있고, 북한은 남한보다는 자주권을 가지고 독립적으로 운영되었지만, 지금 회사가 부도나기 직전인 상태입니다. nbsp 이것은 어느 것이 좋다나쁘다가 아니라 북한은 지금 아무리 자주적이라도 길게 보면 부도가나서 중국의 하청업체로 전락할 위험이 있고, 남한은 하청업체의 성격도 있지만, 지금은 재무상태가 튼튼한 회사인것과 같습니다.nbspnbsp 그런데, 북한은 아직 하청업체로 전락되기전 이고 우리는 점점 힘을 가져 독립기업으로 되어가는 상황입니다. 이 틈새 십년 좌우의 시기가 통일의가능성이 가장 높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5년을 이미 까먹어버렸고 남은 5년을 잘 해 나가야 하는데, 지금 상태로 보면 상당히 힘들 것 같습니다. 지금 기회를 놓쳐버리면 앞으로 이런 절호의 기회는 쉽게 오지 않습니다. 불가능한 것은 아니지만 쉽지 않다는 것입니다.nbsp 그래서 이책을 쓴 이유도 이 절호의 기회가 왔을 때 통일을 해보자는 것입니다. 질문자가 말한대로 우리 국민이 통일할 의지가 없으면 설령 기회가 왔더라도 기회를 놓치는 것이므로 스스로 포기할때는 달리 방법은 없습니다. 다만 지금 통일의 기회가 주어졌다는 것이고 통일의 가능성이 있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남한이 분단상황에서도 산업화, 민주화를 이정도로 이루어 냈기 때문에 가능성이 있는 것입니다.nbspnbsp 아직까지는 이 기회를 제대로 잡지 못하고 있는데, 이 기회를 잡아서 통일을 하게 되면 대한민국은 다시 한번 크게 도약하게 될 것이고 이것은 단순히 통일이 되는 것만이 아니라 우리의 새로운 백년이 열리게 되는 것입니다. 과거 찬란했던 배달문명을 천년만에 회복하는 것입니다. 그런데도 그럴 기회를 놓치고 있는 것을 지켜보는 나로서는 마음이 안타까울 뿐입니다.nbspnbsp 며칠후에 미중정상회담이 열리는데, 아마 제3의 카스라테프트 협약이 되지 않을까 염려가 됩니다. 제1은 미일이 합의한 것으로 미국은 일본의 한국 지배권을 인정하고, 일본은 미국은 필리핀 지배권을 인정한 것, 제2는 미소가 합의한 것으로 미국은 남한의 지배권을 가지고 소련이 북한의 지배권을 가지는 것이었습니다. 제3은 미중이 북핵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미국이 남한을, 중국이 북한을 각각 자기 관할내로 두는 것을 서로 인정하되 자기 관할권하의 남북한에 비핵화를 책임지는 것입니다. 그러면 북핵문제는 해결될지 몰라도 통일은 상당기간 멀어질 수 밖에 없습니다.nbspnbsp 그래서 국민들이 통일에 관심을 가져야 합니다. 지금 제가 할 수 있는 일은 개인들의 고민을 들어주고 해결해주면서 그들에게 통일에 대해 관심을 가지게 하는 것입니다.” 이렇게 스님께서는 통일을 위해 불철주야로 뛰고 있음을 보여주었습니다.nbspnbsp 내일은 새터민과 함께 하는 경주역사기행이 있습니다.
2013.6.4. 용성조사 149주기 기념 심포지엄, 대전 북콘서트 시즌3
오늘 아침 7시부터 조찬 모임이 있었습니다. 오늘 새벽에 도착해서도 스님께서는 그제 속리산에 갔다 온 후 몸이 너무 피곤해서인지 오히려 잠이 오지 않아서 잠을 거의 주무시지 못하셨다고 합니다. 몸이 불편함에도 불구하고 조찬 모임으로 이동하기 전 INEB 스님과 마지막 인사를 나눴습니다.nbsp INEB 스님들께서는 발우공양후 그동안 한국에서 법륜스님과 동행하고 다닌 소감에서 “법륜스님이 즉문즉설을 할 때 어떤 질문에도 마음의 평온을 유지하고 웃으시며 답변하는 모습이 감명 깊었습니다. 그런데 중생들은 편안하게 앉아서 듣고 스님은 계속 서서 얘기하는 풍경은 정말 낯설었어요. 저희 나라에서는 상상할 수 없는 풍경입니다. 법륜스님이 그렇게 자신을 낮추시는 모습에 감동받았습니다. 또 음식물을 남기지 않고 고추가루까지 닦아 먹는 모습에 놀랐습니다. 신구세대가 함께 하는 모습도 인상 깊었습니다. 돌아가서 정토회에서 배운 것들을 저희들 사회 전체에 전파하도록 노력하겠습니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nbsp 오전 10시부터는 한겨레 하니 TV의 촬영이 있었습니다. 지난번에 이어 2번째로 ‘곱게 늙어가는 법’이라는 주제로 진행되었습니다.nbsp 며칠전부터 계속 몸이 좀 힘들다고 하신 스님께서는 속리산 등반이 무리가 되었는지 결국 오늘은 병원에 가서 주사를 맞고 오후 2시부터 진행되는 용성스님의 탄생 149주년을 맞아 용성스님의 사상과 실천 활동을 조명해보는 심포지엄에 참여하셨습니다. 심포지엄은 ‘시대의 스승, 용성조사를 만나다’라는 주제로 천도교 박남수 교령, 불교TV 대표이사 성우스님, 정세균 민주당 국회의원 등 내외빈 인사들을 모시고 불자, 천도교, 정토회 신도 400여 명이 참석한 가운데 천도교 중앙대교당에서 열렸습니다. 정토회 중앙사무처에서 많은 분들이 행사를 위해 수고해 주셨습니다. nbsp 박남수 천도교 교령님께서는 행사전 차담에서 이 건물은 3.1독립자금을 모은 것으로 이 건물을 지었는데, 독립운동가 중 한분인 백용성 기념 심포지엄을 여기서 하게 되니 역사적인 날이라고 덕담을 해주셨습니다.nbsp 스님께서는 인사말에서 용성스님의 일생에 대해 간략히 언급하시며 오늘 행사의 취지에 대해 안내해주셨습니다.nbspnbsp “용성조사님은 젊은 시절에는 오직 깨달음을 위해서 용맹정진을 하셨고, 나라가 일본에 빼앗긴 후에는 산에서 내려오셔서 나라의 독립을 위해서 그리고 불교의 지성화와 대중화를 위해서 한평생을 몸바치셨습니다. 이렇게 탄생 149주년을 맞이해서 용성 조사님의 그 사상과 그 실천 활동을 오늘 우리시대에 다시 한 번 새겨보는 것은 어느 때보다도 중요한 의미가 있는 것 같습니다. 지난 100년 전처럼 지금도 우리를 둘러싼 국제 정세는 또한번 요동치고 있습니다. 여기서 우리가 잘 대처하면 우리의 숙원인 통일한국을 이루어서 동북아시아의 새로운 강자로 일어설 수 있지만, 여기서 우리가 잘못 대응하면 오랜 기간 분단이 더 지속되고 미중 양국의 하위 변수로 전락해 대립과 갈등을 면치 못하게 됩니다. 그런 중요한 분기점에 우리가 서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이런 시기에 조선말기에 새로운 세상을 꿈꿨던 수운 최제우 선생님의 뜻을 계승한 그리고 3.1독립운동의 골간이 되었던 천도교의 본부 이곳 수운회관에서 용성조사님의 사상과 실천활동을 새롭게 조명해 보는 것은 그 무엇보다도 뜻 깊은 일인 것 같습니다.”nbspnbsp 이어서 세 분의 학술 발표가 있었습니다. 김재영 동방불교대학 교수님은 주제발표를 통해 “지금까지 우리 불교는 입으로 거창하게 내세우는 구습에 길들여져왔다” 며 “용성스님이 그랬던 것처럼 우리 불교도도 많은 사람들이 고통 받는 삶의 현장으로 달려가는 현장 불교로 돌아가야 한다”고 강조했습니다. 임형진 경희대 교수님은 “용성스님의 불교경전 한글화 작업과 불교 대중화를 통한 독립운동은 그 시대 한국 민족주의의 전형이었다”며 “스님이 여전히 존경받고 탐구되어야할 대상인 이유도 여기에 있다”고 말했습니다. 빨리문헌연구소장 마성스님은 “일제 당시 불교지도자들의 개혁안은 오히려 승단의 세속화를 가중시켰지만, 용성스님은 승단의 청정화를 통해 조선불교의 전통을 고수하고 시대에 맞는 새로운 교화활동을 전개했다”고 평가했습니다. 특히 마성스님께서 “용성스님의 대각교당은 이후 오래 지속되지 못하였다. 제자들이 모두 떠나고, 일부 제자는 스승의 원고를 불태우기도 하고, 결국 이것은 대각교의 해체를 뜻하게 되었다 라고 안타깝게 절규하셨는데, 이 부분에서 많은 청중들이 아쉬움과 감동의 눈물을 흘렸습니다. nbsp 발표하신 분들이 다들 “시간 부족으로 발표준비가 미흡했다”고 언급하셨는데, 스님께서는 “앞으로 1년 간 시간을 더 드릴테니 150주년이 되는 내년에는 더욱더 많은 준비와 연구를 부탁드린다”고 해서 청중들 모두 크게 웃었습니다. 스님께서는 세 분의 발표를 경청해 들으시고는 닫는 말씀으로 이렇게 정리해 주셨습니다.nbspnbsp “용성조사님께서는 불교의 지성화, 불교의 대중화, 불교의 생활화 이 3가지 지침을 내리셨습니다. 조선시대 이조 5백년 동안 불교는 극심하게 탄압을 받았습니다. 스님들을 다 속퇴 시켜버리고 도시에 있는 절은 다 없애버렸어요. 승려가 되겠다 할 때는 신분을 천민으로 강등을 시켜 8번째 천민으로 스님들을 규정해 버렸어요.nbspnbsp 산속에 있는 큰 절들은 어느 것 할 것 없이 다 임진왜란 때 불탔어요. 그 이유가 임진왜란이 일어나서 마을이 왜군한테 짓밟히자 주민들이 산속으로 피난왔는데 그들을 절에서 보호해 주었어요. 더 많은 주민들이 죽는 것을 막기 위해서는 어떨 수 없이 스님들이 창칼을 들고 왜군과 싸우게 되었고, 그러다보니까 일본군들이 절을 다 불 질러 버리게 된 것입니다. 그래서 산속에 있는 절들은 다 임진왜란 때 불타게 되었습니다. 조선왕조가 그렇게 불교를 탄압했는데도 나라가 위기에 처하니까 스님들은 나라를 위해서 싸웠고 민중들을 보호했습니다.nbspnbsp 그리고 조선왕조는 승려들의 도성출입을 금지시켰는데 오히려 일본인들이 들어와서 도성출입을 해제시켜 줬습니다. 용성 스님이나 한용운 스님 같은 분들은 독립운동을 했지만, 나머지 대부분은 일본불교의 영향을 받아 7080는 거기에 휩쓸려 갔던 것이고, 그런 속에서 지조를 지키고 조국을 지키고 조선 불교를 지켰다는 것이 위대하다 이렇게 볼 수 있는 것입니다. 이런 역사 배경을 알아야 ‘불교의 지성화’ 라는 용어가 왜 나오는지를 알 수가 있어요. nbsp 누구든지 출가하게 되면 천민으로 강등될 위험이 있으니까 출세를 생각하는 사람은 아무도 불교를 못 믿었습니다. 출세와 관계없는 천민이나 평민이나 여성들만 절에 오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이분들은 다 글을 모르는 사람들이예요. 스님들은 산속에 들어가서 문자를 배워서 불법을 알았지만, 신도들은 문자를 모르니까 오직 기복적 신앙 외에는 가질 수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불법이 없는 불교를 5백년 간 지속하게 된 것입니다. 이것이 우리 한국불교가 짊어진 무거운 전통의 짐입니다.nbsp 법이 없는 불교를 하다보니까 불교가 샤머니즘이나 민속신앙과 별 차이가 없는 게 되어버린것이죠. 그래서 불법의 위대함을 다시 세워야 하는 게 바로 ‘불교의 지성화’입니다. 불법을 알아야 된다, 부처님의 근본 가르침으로 돌아가자, 이것이 우리 불교가 가지고 있는 큰 과제입니다. 이것은 빠른 속도로 회복되고 있기는 하지만 아직도 우리가 짊어진 큰 무게로 남아 있습니다. 요즘 말로 하면 정법에 귀의하자, 바른 법을 믿자, 바른 법에 귀의하자 이런 얘기입니다. nbsp 아무리 불교가 바르다 하더라도 대중이 문자를 몰라서 그 불교를 알 수 없으면 그게 무슨 소용이겠습니까. 그냥 승려들의 전유물이지요. 그래서 두 번째로 나온 것이 불교의 대중화입니다. 불교의 대중화라는 것은 진리를 대중이 쉽게 접할 수 있도록 하는 것입니다. 첫 번째가 경전의 번역이죠. 한문을 공부하지 못한 사람들이 쉽게 불법을 공부할 수 있도록 경전을 한글로 번역을 했습니다. 우리는 이것을 쉬운 불교라고 부를 수 있겠습니다. 용성스님 당시에는 번역해주는 정도만 하면 되었지만, 지금은 번역 해주는 정도 갖고는 안 됩니다. 다시 생활용어로 정리가 되어서 누구나 다 불법을 알 수 있는 이런 불교가 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세 번째는 불교의 생활화입니다. 아무리 불교의 진리가 좋고 그것을 바르게 이해할 수 있게 안내한다 하더라도 그것이 일상 삶과 유리된다면 그것은 우리 삶에 크게 도움이 되지 못할 겁니다. 밥 먹고, 똥 누고, 직장 생활하는 거기에 불법이 늘 그대로 작용해야 합니다. 이것이 용성스님이 말씀하신 불교의 생활화입니다. 오늘 우리들이 갖고 있는 삶의 고뇌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진리여야지 고뇌와 진리가 따로 있는 게 아니라는 거죠. 고뇌를 벗어나게 해주는 것, 즉 열반과 해탈이 불교의 최고 이상인데 우리는 지금 열반과 해탈을 이상으로 추구하지 않고 있습니다. 불교를 믿는 목적은 열반과 해탈이어야 된다는 것입니다. 이제는 우리들의 직장과 가정 속에서 불법을 늘 생활화하는 과제가 남아 있습니다. 용선 진종 조사의 원은 실패한 것이 아니라 씨앗을 뿌려 놓은 것입니다. 이것을 우리가 어떻게 가꾸고 어떻게 꽃피우고 어떻게 열매 맺을 것이냐 하는 것이 바로 우리들의 일입니다. 마지막으로 용성스님께서는 불법을 통해 교화하는 것만이 아니고 불법을 넘어서서 이 땅에 사는 사람들의 고통을 덜어주기 위한 활동을 하셨습니다. 당시에 이 땅의 중생을 가장 괴롭히는 것은 일제의 식민지 지배였습니다. 그래서 용성스님은 나라의 독립에 한평생을 바치셨다면, 오늘 우리에게 있어서 나라의 독립과 같은 것은 바로 분단된 나라를 통일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온전한 평화를 가져오는 방법이고 북한에 고통 받는 2천만 민중을 구제하는 방법이고, 우리들의 왜곡된 사상, 왜곡된 역사, 일제 식민지 지배의 상처를 온전하게 치유하는 길입니다. 우리 힘으로 통일했을 때만 우리가 이런 한계에서 벗어날 수 있습니다. 지금 미중의 세력 다툼 속에서 통일한국을 건설하지 않고는 우리의 어떤 국가적 비전도 만들 수가 없습니다. 용성스님께서 혼신의 힘을 다했던 독립운동이 우리에게는 통일운동으로 이어나가야 합니다.”nbsp 스님께서는 심포지엄이 끝나자 곧바로 대전으로 이동하셨습니다. 평화재단 청년포럼에서 준비한 새로운 백년 북콘서트가 대전 충남대학교 백마홀에서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퇴근시간이라 길이 막힘에도 불구하고 겨우 시간에 맞추어 도착할 수 있었습니다. 저녁은 차안에서 죽으로 해결했습니다.nbsp 오마이뉴스의 오연호 대표와 함께 진행된 오늘 북콘서트는 청년 약 500여명이 참석한 가운데 진행되었습니다.nbsp 오연호 대표는 지난 대선 후 마음의 평정을 찾기 어려웠는데, 스님은 어떠셨는지라는 질문부터 유럽의 복지가 잘된 나라들 사람들은 왜 행복할까하는 고민부터 현재 대한민국에는 전쟁의 위기가 돌았는데, 왜 그럴까, 역사문제등 질문을 던지면서 스님의 답을 구했습니다. nbsp 젊은 청춘들은 통일이 되어서 뭐하나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은데 어떻게 해야 하는지, 통일을 하려면 어떤 방식으로 어떻게 해야 하는지, 한중일의 역사인식이 다른데 어떻게 풀어가야 하는지, 통일은 112가 아니라 3또는 4가 되도록 해야하지만, 1이 될 수도 있는데, 어떻게 해야 하는지등 ‘새로운 백년’의 북콘서트라서 그런지 청년들의 질문도 주로 통일문제, 남한내의 갈등문제가 많았습니다. nbsp 대전의 북콘서트 후 스님께서는 내일도 아침 7시부터 조찬모임부터, 춘천, 울산의 강연이 있기 때문에 서울로 향했습니다.
2013.6.3. 대구수성대학, 문경 강연, 운문사 방문
9시 30분에 수성대 총장님과 미팅이 있은 후 10시 30분부터 강연이 시작되었습니다. 830여명이 참석한 가운데 강연이 시작되었습니다.nbspnbsp 민원인이 술을 먹고 와서는 행패를 부리는데 어떻게 해야 하는지, 딸이 직장다니면서 아이들을 키우는데, 너무 늦게 들어오고 해서 아이들에게 영향이 있지 않을까 고민하는 할머니, 지역분할, 세대갈등등 사회적 문제, 정치적 편파에 대해 어떻게 풀어나가야 하는지, 청소년기부터 명상을 해와서 깨달음을 얻었는데, 어떻게 하면 인가를 받을 수 있는지, 서무과 일을 하는데, 사무실에서는 짜증이 없는데, 집에서 어머니가 부탁하면 짜증을 내는데 어떻게 해야 할지 고민하는 분들이 질문하고 스님께서 답하셨습니다. nbsp 오늘 한 할머니는 딸이 힘든 생활을 보내다가 지금은 정토회를 만나서 행복해 하고 있는데, 딸이 직장생활을 하고, 정토회 일도 하니까 늦게 오는 경우가 있다면서 아이들이 엄마 얼굴을 잘 못볼때가 많고 아이들은 엄마 손길이 필요한데, 제대로 잘 자랄수 있을까 고민이라고 하시면서 스님께 답을 구했습니다.nbsp 스님께서는 “아이들의 근본 성품은 세 살때까지 거의 결정이 됩니다. 이 시기에 엄마가 마음을 편안하게 하고 아이를 정성들여 잘 키우면 설령 엄마가 없어도 잘 클 수 있고, 이시기에 엄마 마음에 미움, 불안, 초조, 화, 슬픔이 있으면 아이 심리가 그렇게 형성되기 때문에 사춘기가 되면 이것이 싹이 터 오르게 됩니다. 그것은 지금 엄마가 정성을 얼마나 기울이느냐는 것도 도움이 되지만, 세 살때까지의 심성이 거의 자리잡게 됩니다. 아이를 낳을 때 엄마아빠가 얼마나 사랑하며 행복하게 살았느냐가 중요한 것입니다. 아마 행복하게 살았으면 고비없이 잘 넘어 갈 것이고, 그때 엄마가 불편하고 불안정했다면 고비를 겪을 것입니다. 그러면 고비를 좀 겪을 겁니다.nbspnbsp 엄마가 기도하고 바르게 살면 아이들이 사춘기가 되어 이런저런 분란이 일어나도 엄마가 괴로워하거나 애들하고 싸우지 않고 그런걸 다 감안해서 ‘애 어릴 때 제대로 심성 형성에 영향을 못줘서 그런가보다’라고 자기 탓으로 돌리고 분란을 좀 일으켜도 편안히 받아들이면 괜찮습니다. 아무일도 일어나지 않는다는 것이 기도가 아니고 기도를 하면 남편이 갑자기 죽더라도 그것을 감내해 내고 극복해낼 수 있는 힘이 생긴다는 것입니다. nbsp 혼자 사는 것에 대한 어려움을 느끼거나 두려워 하면 나쁜영향을 줄 수 잇고, 남편 사별하고도 자기 일에 긍정적이면 좋은 영향을 미치게 됩니다. 첫째 엄마가 자기 삶을 행복하게 해야 하고 둘째 아이에게 분란이 생겨도 엄마가 감내해 낼 수 있다는 말입니다. 우리가 생각하면 엄마가 짜증내고 신경질내면서 애들 옆에서 밥해주고 공부 가르쳐 주면 옆에서 보면 애들 잘 키운다할지 모르지만 그것이 훨씬 더 나빠요. 오히려 같이 있지는 못하더라도 늘 밝게 살고 자기가 건강하고 행복하게 자기인생을 잘 살아가는 것이 아이에게 좋은 영향을 주게되는 것입니다.”라고 하시며 딸이 바빠서 아이들을 제대로 돌보지 못하는 것에서 오는 불안감을 해소해 주셨습니다. nbsp대구 수성대학에서 강연을 마치고 바로 운문사로 향했습니다. 동남아에서 온 INEB 소속 스님들에게 한국의 비구니 제도에 대해 안내할 예정입니다. 남방불교에는 비구니 제도가 없음을 항상 안타까워 하신던 스님께서는 젊은 스님들께 비구니 사찰과 제도를 보여주며 다음에 남방에서도 비구니 제도에 대해 고민하도록 하기 위한 것입니다. nbsp 운문사에 도착하니 주지스님께서 학인스님들과 함께 법륜스님과 INEB 스님들께 인사를 하기 위해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오늘까지 방학이다 보니 일부 스님들만 자리를 했습니다. 주지스님께서는 남방스님을 환영하는 것도 있지만, 운문사 학인스님들은 법륜스님 뵙는 것이 더 영광이라며 스님의 한말씀 듣기를 원했습니다.nbspnbsp 스님께서는 불교의 대중화를 위해 노력하는 것이 필요하고, 또 여러 가지 문제가 있을 때 문제의 원인을 자신에게로 돌리는 것이 우선되어야 한다고 말씀해주셨습니다.nbsp 인사를 마친 후 종무소에서 차담을 하면서 운문사에 대한 안내를 주지스님으로부터 들었습니다. 법륜스님께서는 자국으로 돌아가면 비구니 제도를 만드는 것이 어떠냐고 하니 스님들 개인은 뜻이 있으나 제도적으로 하기가 어렵다고 합니다. 버어마의 경우 2분의 비구니 스님이 있었는데, 계율에 안되게 되어 있기 때문에 1분은 해외로 추방당했고, 1분은 감옥에 있다고 합니다. 그만큼 남방에서는 쉽지 않은가 봅니다.그래도 하는게 필요합니다. 안내를 한 후 주지스님께서는 INEB 스님들께 간단한 선물을 드렸고 INEB 스님들께서도 주지스님께 간단한 선물을 드렸습니다. nbsp 경내를 둘러보며 운문사 학인들이 기거하고 공부하는 대중방, 일과표, 운력도구, 대웅전, 400년 된 은행나무등 운문사의 생활모습을 한눈에 볼 수 있었습니다. 남방불교에서는 스님들이 계율로 일하지 않도록 되어 있는데, 운문사의 스님들은 전체 살림살이는 물론 매일 1시간씩 농사를 지어서 모든 부식은 직접 생산해서 먹는다고 남방과의 차이를 알려드렸습니다.운문사 안내를 받고 다 둘러본 후 운문사를 나와 법륜스님과 INEB 스님들은 함께 이야기 하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INEB 스님들께서는 내일 각자 나라로 돌아가시는데, 법륜스님께서는 이시간 외에는 시간이 없어서 부족하지만 함께 이번 방문 일정에 대한 이야기들을 나누었습니다.nbsp 법륜스님께서는 비구니 문제와 같은 여성운동, 환경운동, 평화운동등에 대해 본국으로 돌아가서도 함께 해보자고 했습니다. nbsp 이번에 참여하신 스님들께서는 다들 좋았다고 하시면서 새로운 경험이었고, 스님의 가르침을 많이 받았다고 합니다. 일부 스님께서는 자국의 언어로 스님의 말씀을 번역하고 싶다고 하기도 했습니다. 법륜스님께서는 다음 문경 강연시간에 맞춰 운문사를 떠났습니다.nbsp 문경예술문화회관에서 진행된 강연에는 약 480여명이 참석하여 스님께 그동안 궁금했던 것들을 질문했습니다. nbsp 아들이 축구를 하다가 지금 공부를 하는데, 지옥같다고 하면서 오토바이를 훔쳐 타기도 하는데 어떻게 해야 할지 걱정이신 분, 백일출가를 했고 대학원에 가려고 하는데, 부모님이 반대를 해서 걱정이신 분, 지금의 남북관계에서 당장 할 수 있는 것이 무엇인지, 남편은 술을 싫어하고 자신은 술을 좋아해서 고민인 분, 공부를 하고 싶은데, 집중이 잘 안되는 고등학생, 정토회에서 평생살고 싶은 생각도 있는데, 연애, 결혼에 끄달린다는 분등의 질문이 있었는데, 강연장소가 문경이다 보니 문경의 행자들도 평소 고민하던 것을 스님께 묻고 답을 얻었습니다. nbsp 강연을 마친 후 문경시장님과 차담이 있었습니다.nbspnbsp 내일은 아침 7시부터 조찬모임이 있고, 한겨레 하니 TV 촬영, 용성조사 149주기 기념 심포지엄, 대전 북콘서트가 차례로 있습니다.
2013. 6.2 청년들과 속리산 등반
오늘은 청년들 200여명과 함께 속리산 산행이 있었습니다. 7시 45분경에 화북오송탐방센터 앞에 도착했으나 청년들은 길을 잘못들어 8시부터 시작하기로 한 산행일정이 30분 정도 더 연기되었습니다.nbsp 먼저 도착한 INEB 스님들께 스님께서 먼저 속리산 전반에 대해 설명해주셨습니다. 주로 봉우리들이 불교의 명칭이 사용되고 있다고 하시면서 한국은 전통적으로 불교와 밀접했다는 것을 알려주셨습니다. nbsp 청년들이 도착하자 스님께서 속리산 산행 전반에 대한 안내, 한국의 지형과 백두대간, 상고사부터 고대로 오면서 불교의 전래와 확산, 탄압, 임난 후 사찰의 피해와 승병활동등에 대한 설명을 해주시고 산행을 시작했습니다. nbsp 스님과 200여 청년들은 초여름 화창한 날씨를 만끽하면서 산을 올랐습니다. 스님과 함께 산을 오르는 길은 험했지만, 즐거운 마음으로 도반들과 서로 도와가면 산을 올랐습니다.nbsp INEB에서 오신 스님들도 함께 산을 올랐습니다. 힘들것이라고 하니 다들 괜찮다고 하셨습니다. 오늘의 산행 때문에 보시로 들어와 있던 운동화를 스님들께 나눠드렸습니다. 운동화를 처음 신는 스님도 있었습니다. 그 스님은 오늘은 처음 운동화 신는날이기 때문에 기념적인 날이라고 하자 법륜스님께서 그보다는 오늘 산에 갔다오면 너무 고생해서 기념적인 날이 될 것이라고 하면서 함께 웃었습니다.nbsp 문장대에 올라서니 주변 경치가 절로 환호성이 나오도록 했습니다. 보은군 일대의 모든 전경이 다보여서 잠시 둘러본 후 올라온 청년들과 기념촬영을 했습니다. 청년들도 지친 기색없이 다들 신나게 재잘거리며 환호를 했습니다. nbsp 잠시 후 INEB 스님들도 올라왔습니다. 괜찮냐고 다시 물으니 다들 괜찮다고 합니다. 이렇게 높은 산을 처음 올라오시는 분들도 계셨는데, 한분의 낙오도 없이 잘 오셨습니다.nbsp 청년들도 낙오자 없이 문장대까지 갔다온 후 점심을 먹었습니다. 점심 후 호국영령들을 위한 기념식을 가졌습니다. 이땅의 을 위해 희생해 가신 분들의 공적을 기리며 감사의 마음을 내었습니다. nbsp 스님께서는보통 산행을 할 때 오를때는 다치는 사람이 거의 없지만, 내려갈 때 발을 삐거나 다치는 경우가 많다고 하면서 내려갈때는 특히 발을 다치치 않도록 조심하라고 당부하셨습니다.nbsp 내려오는 길도 만만치는 않습니다. 힘이 들지는 않지만, 아래로 발을 옮길때마다 몸을 다칠까 조심스럽습니다. nbsp 법주사 입구까지 내려오는 산행 준비팀에서 시원한 수박을 준비 해주셔서 갈증을 해소했습니다. 이렇게 뒤에서 준비해준 진행팀이 있어서 다들 별 탈없이 산행을 마칠 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 마지막에 스님과 기념촬영도 했습니다.nbsp 스님께서는 청년들에게 법주사 경내를 돌면서 안내를 해주셨습니다. 법주사에는 불국사 다음으로 보물과 유적이 많다고 하시면서 하나하나 자세히 설명해 주셨습니다. 3천명의 국을 끓였던 철확, 당간지주, 팔상전, 원통보전,대웅전 등 산을 막 내려와서 피곤한데도 스님께서는 청년들의 눈높이에 맞춰 함께 해주셨습니다. nbsp INEB 스님들은 처음 산을 올랐고, 처음 운동화를 신은 탓인지 많이 피곤해 하셔서 법주사 경내만 돌고 문경수련원으로 가셨습니다. 법주사 경내를 다 돌아본 후 스님께서는 미륵전에서 청년들을 위한 말씀을 해주셨습니다.nbsp “돌아보면 저에게는 젊었을 때 고생한 것이 굉장한 경험이예요. 나에게 유리하고 경험이 된 것은 고생한 일입니다. 내가 감옥에 갔다왔기 때문에 법문을 더 잘할수 있어요.nbspnbsp 이렇게 어려운 일을 당했을 때 2가지가 있습니다. 연애에 실패했거나, 부모가 이혼했거나, 어렵게 살았다면 상처로 남는 경우가 있는데, 상처로 남으면 내 삶을 왜곡시키게 됩니다. 이것은 실패가 나를 더 나쁜곳으로 이끄는 경우가 됩니다. 실패가 나에게 경험이 되면 나에게 자산이 되고 능력이 됩니다. 다른 사람은 안 해본 것을 해봤기 때문에 그런 일을 다시 당했을 때 의연하게 대처할 수 있습니다. nbsp 젊을 때 고생은 사서도 합니다. 인생을 사는데 너무 조심하고 겁내지 마십시오. 함부로 덤비라는 것이 아니라 계획을 세우고 추진할 때 초조불안해 하지말고, 걱정하지 말고 일단 해보고 실패하면 조정해서 다시 해보면 됩니다. 그럴 때 우리가 혼자 해보려면 어렵습니다. 이런 경험을 서로 나누고 마음관리하고 할 때 다른 사람도 그런 경험이 있으면 위안이 되고 극복한 사례를 보면 그사람은 모범이 됩니다. 우리의 교육이 초등학교때부터 토론하고 마음 나누기를 하는 민주주의적 교육을 해야 하는데, 지금처럼 하면 대학에 와도 수평적 토론이 안됩니다.nbspnbsp 이런 모임에서는 이해관계가 없기 때문에 공부도 하고 마음나누기도 하고 호연지기를 키우면서 개인도 발전하고 인간관계를 맺는 연습도 됩니다. 우리가 원하는 세상을 아름답게 바꿔 나가는데 있어서 서로 협력하게 됩니다. 개인에게나 세상에게 좋은 일입니다.nbspnbsp 요즘은 나도 피로가 쌓여 입원하기 직전이예요. 오늘 산에는 안오고 싶었어요. 그런 마음이 슬쩍 일어났어요. 그래도 한다면 하는 성격이기 때문에 오늘 천천히 가니까 여러분이 덕 봤어요. 천천히 올라가서. 그래도 노는 것보다 하는게 좋습니다. 조심할 뿐입니다.nbspnbsp 절에 처음 왔다고 배려하고 하는데 배려하면 배우는게 없습니다. 불편해도 해야 배울수 있습니다. 할때는 불편해도 배울 수 있습니다. 많이 배워야 합니다. 오늘도 피곤한 줄 알아도 자세히 설명한 것은 이럴 때 와서 한번 들으면 나중에 두 번째 들으면 아, 그 얘기구나 할 수 있습니다. 그때 한번 설명 들은 것이 유용하게 됩니다. 100프로 다 기억 못해도 하는게 낫습니다. 이렇게 조금씩 배워가야 됩니다. 젊은 시절에는 조금 어려웠지만, 지나놓고 보면 추억이 됩니다. . 장애에 부딪히는 것이 나쁜 것이 아닙니다. 약간 무리가 되는 것이 인생에는 더 좋습니다. 우리가 약간 무리가 되더라도 그런 것들을 넘기면서 오히려 더 좋아집니다.nbspnbsp 결론적으로 말하면 실패를 두려워 하지 마라는 것입니다. 경험으로 삼으면 오히려 약이 됩니다. 조금 무리가 되는 것을 해봄으로써 경험이 되고 역량을 높일 수 있는 계기가 되고 추억으로 남게 됩니다. 늘 자산으로 생각하세요. 어려운 것을 두려워 하지 말고, 경험 쌓는다고 생각하세요. 이런 상사를 모시고, 이런 부하를 데리고, 이런 도반을 데리고 한번 해보자는 마음을 내고 해보는 것입니다. 경험 쌓는다는 생각을 가지면 가볍게 임할 수 있습니다.“nbsp 스님께서는 청년들에게 현실을 긍정적으로 보고 실패를 하더라도 도전하는 삶을 살도록 이야기 해주셨습니다. 다함께 기념촬영을 하고 오늘 하루를 마무리 했습니다. 오늘 행사를 준비해준 준비팀도 스님과 함께 기념촬영을 하면서 힘든 하루를 마무리 했습니다. nbsp 내일은 대구 수성구, 문경 강연이 있고 중간에 INEB 스님들과 운문사 방문 일정이 있습니다.
2013. 6. 1 INEB 스님들과 간담회, 청년학교 강의, 영남권 불교대학특강수련
두북수련원에서 INEB 스님들과 함께 아침공양을 했습니다. 공양준비가 조금 늦어져서 먼저 INEB스님들과 담소를 나눴습니다. 스님의 모교가 폐교가 된 것을 빌려서 노인복지사업과 구호물품 보관장소로 쓰고 있다는 것, 더불어 개발구호 사업중 학교지원사업의 폐해문제지원을 하면 나중에 한국의 시골처럼 아이들은 고향을 떠나고 학교만 남고 지원을 하지 않으면 사람은 남지만 교육의 문제가 있는 딜레마, 아시아권의 개발이 한국을 모델로 따라 가고 있다는 것등에 대해 서로 공감하면서 이야기 나눴습니다. 공양후에도 계속 이야기가 진행되었습니다. 미안마나 스리랑카의 소수민족과의 갈등문제, 타종교와의 분쟁문제, JTS의 미얀마, 캄보디아등에 대한 지원문제등에 대한 이야기들도 나누었습니다.nbspnbsp 간담회가 끝난 후 청년학교 수료식이 진행되고 있는 경북청소년수련관으로 향했습니다. 경북청소년수련관으로 가는 길에 칠곡휴게소에 들러서 점심을 먹었습니다. 점심을 먹는동안 여기저기서 스님께 인사를 하는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오늘 문경에서 진행되는 영남권 불교대 특강수련에 참석하시는 분들이 스님이 계시는 것을 보고 직접와서 인사를 드렸습니다. 1시부터 경북청소년수련관에서 진행된 청년학교 수료식에서 청년 약 120여명을 대상으로 ‘새로운 백년을 일구는 청년의 삶자기실현과 사회참여’라는 주제로 강의가 있었습니다. 청년학교는 지난 3월부터 11주간 매주 1회씩 모여서 스님의 ‘새로운 100년’, ‘쟁점을 파하다’,‘스님의 주례사’등을 244명이 함께 공부를 시작해서 153명이 수료를 하게 되었는데, 오늘은 그중에서 약 120명이 참석했습니다.nbspnbsp 스님께서는 고대문명부터 우리 역사까지 인류 문명의 흐름에 대해 정리해주신 후 세상을 보는 눈을 넓히고 인간을 보는 눈을 넓히라고 하신 후 질문을 받았습니다.nbsp nbsp 청년들은 이러한 스님의 강의 내용들을 왜 학교교육에서는 배울수 없었는지 학교교육의 문제점에 대해서 비판하기도 했고, 젊은 청년들이 가진 미숙함에 대해 아쉬워 하는 질문도 있었고, 지난번에 스님께 선물드린 통일의병이용권을 언제 쓸것인지 궁금해하는 질문들이 있었습니다.nbsp 즉문즉설이 끝난 후 스님께서는 오늘 참석한 수료자 한명한명에게 직접 수료증을 주었고, 수료한 학생들은 스님께 감사의 마음을 담아 각각 쌀을 2줌씩 십시일반하여 2포대에 담아 전달했고 각자 감사의 글을 담은 를 전달하였습니다. 마지막으로 운동장에서 우리나라 지도를 그리며 기념촬영을 한 후 문경으로 이동하였습니다.nbspnbsp nbsp 문경에서는 영남권 불교대학 특강수련이 8시부터 예정되었으나 전체 일정이 늦어져서 8시30분부터 즉문즉설이 진행되었습니다. 약350여명이 참석한 가운데 불교대학을 다니며 공부하면서 궁금한 점을 종이에 적어서 질문하였습니다. 오늘은 아쉽게도 저녁시간이 제한되어 있어서 모든 사람들의 질문에 다 답을 해주지 못했지만, 그래도 스님의 자세한 답변에 많은 부분이 담겨져 있었습니다.nbsp 불교의 가치관에서 가무를 즐기지 마라고 하는데 국악을 하는 것은 어떤지, 무아가 연기법인지, 불살생 계율에서 볼 때 자기를 때리는 것은 해당이 되는지등 공부를 하면서 이론을 실제 생활에서 적용해서 어떤지를 궁금해 하시는 분들이 많았던 것 같습니다.nbsp 스님께서는 일일이 다 답변을 못함을 양해를 구하시면서 계율의 기본정신, 무아, 무소유, 연기에 대해서 자세히 설명해 주셨습니다.nbsp 그중에서 국악이 불교의 가치관에서 계율에 어긋나는 것인지에 대해 스님께서 다음과 같이 정리해 주셨습니다.nbsp “불자가 되는 데는 다섯 가지 계율이 있습니다. 오계는 불자의 기본 계율이고 스님이 될 때는 처음에 사미십계를 받습니다. 그리고 다시 정식 스님이 되면 비구 250계를 받고 비구니는 348계를 받습니다. 그런데 스님이 되는 것은 아니지만 재가에 있으면서 스님들처럼 수행자로 살겠다고 하는 사람이 받는 계율이 8계입니다. 오계 는 사람으로서 지켜야할 기본가치. 남을 때리거나 죽이지 말라. 남을 손해끼치지말라. 남을 괴롭히지마라. 남을 속이지 마라. 이 네 개가 4바라이 즉, 네 가지 중죄입니다. 스님이 이 네 가지 계율을 범하면 스님의 자격이 없어집니다. 그러나 재가 신자는 참회하면 됩니다.nbspnbsp 그리고 하나가 더 있는데, 술을 먹고 취하지 마라. 술먹고 취하는 자체는 이 네가지 보다 약하지만 오히려 이 네가지를 다 범할 가능성이 있습니다. 그래서 첫째 술을 먹지 말아야 합니다. 술은 무조건 나쁜 건 아니고 술을 조금이라도 먹을 수밖에 없다면 음식 수준으로만 먹는다. 농부가 농사를 짓다가 참으로 먹을 때는 음식수준이기 때문에 재가자로서 계율을 어긴 게 아닙니다. 이렇게 다섯 가지만 딱 지키면 어떤 사람도 그를 신뢰할 수 있습니다. 이런 사람은 어떤 상황에서도 나에게 손해를 안 끼칩니다. 그러나 내 남편이라도 술 먹고 취해서 주정을 하고 폭력을 행사하면 가족이라도 두렵습니다. 그래서 다섯 가지 계율만 지키면 세상이 평화로워 집니다. 적어도 해탈의 길로 가고자 한다면, 열반과 깨달음으로 가고자 한다면 이 다섯가지 계율은 꼭 지켜야 하고 어긴다면 참회하고 다시 지켜야합니다. nbsp 우리는 삼귀의, 반야심경을 하는데 남방에서는 삼귀의, 오계를 합니다. 그럼 여기에다가 재가 신자이면서도 수행자로 살고 싶다고 하면 첫 번째 치장하지 말라 즉, 사치를 하지 말아야 합니다. 남에게 잘 보이려고 하는 것 잘났다 하는 건데 수행자는 남이 나를 잘 봐주거나 그런 잘난 것은 수행의 태도가 아닙니다. 수행자는 자기 마음을 살피는 것입이다. 머리 깎고 스님이 되면 당연히 안합니다. 스님은 머리가 반짝이니까 티비에 나올 때 우리가 화장 한다는 의미는 자기를 바깥에 꾸며서 보이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예를 들면 명품으로 자랑을 하려고 하는 사람은 속이 허전한 사람입니다. 허전하기 때문에 물건으로 드러내려고 하는 것이고, 다른 것으로 자기를 삼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렇게 하지마라고하는데, 그만큼 내적인 자신이 있어야 가능한 것입니다. nbsp 두 번 째 사람이 어디를 가면 어떤 행사에 가면 앞자리에 앉으려고 한다. 자기를 자기의 이름으로 삼으려고 하는 것을 버려야 합니다. 겸손하게 살아라라는 말입니다. 없어서 검소하게 살면 극빈이라고 하고 있는 사람이 검소하게 살면 청빈이라고 합니다. 그러니까 부처님께서는 나의 제자들아 수행자들아 겸손해라. 교만하지 마라. 당당해라 비굴하지 말아라고 하셨습니다. 지위가 높은사람이 평등하게 행동하면 다른 사람들은 그 사람을 겸손하다고 합니다. 이런 것이 수행자입니다.nbsp 세 번째 항목이 뭐냐하면 주색가무로 기쁨을 삼아서는 안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지마라는 것입니다. 음악이 흥분되는 마음을 고요하게 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그러니까 국악은 목적이 무엇인지 분명하면 괜찮습니다. 이 팔계를 받은 사람은 거의 법사 취급을 합니다. 신자 이지만 수용자는 중에서 중 수행자. 그러면 노래는 무조건 안 되는 게 아니라 상황에 따라 다르게 됩니다.”nbsp 내일은 청년 약 200여명과 속리산 등반과 법주사 사찰순례가 계획되어 있습니다.
2013.5.31 창원, 울산 강연, 통도사 방문
새벽 5시에 서초동에서 창원으로 길을 나섰습니다.nbsp 창원강연전에 창원 시의원 6분과 차담을 나눴습니다. 오늘 모이신 분들은 봉림사지를 복원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지 행정절차를 알아본 후 스님께 문의드리면서 봉림사지 복원에 대해 함께 힘을 모으겠다고 했고 스님께서도 이렇게 문화재 복원에 신경써주셔서 감사하다고 인사했습니다. nbsp 창원시청에서 진행된 강연에는 오늘 모두 약 900여명의 대중들이 참석하였습니다. 강연이 시작할때도 못들어가고 줄을 서서 강연장안 바닥에라도 앉기를 바라고 있었습니다. 600석 좌석에 900여명 이상이 몰리다 보니 무대위, 무대앞 바닥, 복도등에 발디딜 틈 없이 자리를 메웠습니다. 바닥에 앉으신 분들은 자리가 불편하셨겠지만 오늘 스님의 유쾌한 법문에 빠져 불편함을 느낄 사이도 없었던 것 같습니다.nbsp 스님께서는 “창원의 뿌리는 인도로부터 한국에 불교가 최초로 들어와 첫 지어진 절인 가야정사로부터 시작한다고 볼 수 있습니다. 가야정사는 이후에 가야가 신라에 통합되면서 가야왕족들이 경주로 이사가면서 절이 폐허가 되었다가 신라말 구산선문 가운데 하나인 봉림산 선문이 가야정사터에서 다시 시작되어 봉림사로 불리게 되었습니다. 역사와 문화는 종교를 초월해서 보존해야 합니다. 그래서 봉림사지를 복원해야 합니다”라는 말씀으로 오늘 강연을 시작했습니다.nbsp 고1아들이 운동을 하다가 다쳐서 자퇴를 하려고 하는데 어떻게 해야 하는지, 내가 주인되어 사는 방법과 내 까르마가 자식에게 되물림되지 않으려면 어떻게 해야 할지, 어릴때부터 허리가 아픈데, 어떻게 하면 나을수 있을지 고민하는 분, 꿈을 가지고 사는 사람들에게 좋은 좌우명 좀 알려주기를 원하는 사람, 아들이 딸이 준 자건거 카드로 자전거를 타다가 교통사고로 의식불명인데, 딸아이가 죄책감을 느끼는데 어떻게 해야 하는지, 31살 된 딸이 한동안 교회에 빠졌다가 지금은 두문불출하고 있는데 어떻게 해야 할지등에 대한 질문들이 있었습니다. 창원 강연을 마치고 INEB 소속 스님들과 통도사를 방문하였습니다. 스님께서 일주문부터 하나하나 자세하게 설명해주셨습니다. 관음전, 대웅전, 봉발탑, 사물등 통도사 경내 구석구석 설명해주셨습니다. 지나가는 관광객들이나 불자들이 스님을 알아보고 인사를 하기도 했습니다.nbsp 경내를 둘러보고 통도사 주지 스님께 인사를 드렸습니다. 스님께서는 통도사에 대해서 간략히 설명해주시고, 불교가 앞으로 이 세계의 평화를 위한 종교가 될 것이라고 하시면서 남북통일을 위해서도 불교가 역할을 많이 하고 있다고 하셨습니다. 주지스님께서는 방문한 스님들에게 차등 선물을 주셨습니다. 라오스에서 오신 스님께서는 라오스 기념품을 통도사 주지스님께 선물로 드렸습니다. 모든 경내를 다 둘러보고 난 후 INEB 스님들께서는 법륜스님께 정말 최고의 가이드였다고 하셨고, 스님께서는 스님이 되지 않았다면 가이드가 되었을 것이라고 말씀하셔서 함께 웃었습니다.nbsp 울산 강연전에 울산 법당에 들러서 INEB 스님들께 정토회의 지역법당에서의 활동과 역할에 대한 안내를 해드렸습니다.nbsp 저녁 7에는 울산 근로자 복지회관에서 청년들의 ‘방황해도 괜찮아’ 희망 강연이 있었습니다. 약 400여명이 참석해서 각자의 고민을 이야기 하고 다른 사람의 고민을 들으며 함께 나누었습니다.nbsp 어릴때부터 수능치기까지 어머니가 때리고 욕해서 엄마를 미워하고 떠나고 싶은 마음인데 부모님을 이렇게 버려도 되는지 죄책감이 드는데 어떻게 해야 할지 고민인 분, 아는 형이 계속 접근해와서 부담스러워 고민인 분, 남편이 화가 나면 이혼을 하자고 해서 힘들어 하는 젊은 부인등이 고민을 내어놓고 답을 구했습니다. , 오늘 질문자중에는 공대 졸업한 여성분이 취업준비를 하면서 면접을 여러 번 봤는데 최종면접에서 항상 들었는 말이 여잔데, 일을 잘 할수 있겠느냐, 또 엄마가 일찍 돌아가신 것을 가지고 취업이 이렵다고 해서 상처받아 자신감이 많이 떨어졌는데, 어떻게 해야 할지 질문했습니다.nbspnbsp 스님께서는 “엄마가 없으면 내가 조금 힘이 드는게 사실이에요. 그러나 미래를 보면 좋은 것도 있어요. 엄마가 없어서 더 빨리 어른이 되는 거에요. 엄마가 없으면 앞서 질문한 사람처럼 맞을 일도 없고, 요즘 엄마가 간섭을 많이 하는데, 엄마 없으니 얼마나 좋아요. 또, 엄마가 없기 때문에 어릴때부터 밥도 하고 청소도 하고 해서 훨씬 다른 사람보다 빨리 어른스러워졌어요. 그러니 엄마가 없어서 어떻게 하겠나라고 물으면 어릴 때부터 엄마노릇을 했기 때문에 훨씬 더 잘합니다. 이렇게 얘기하면 돼요. 엄마가 없으니 누가 애기를 봐줄 사람이 있겠나 하면은 저는 그런 결정 아직 안했고, 애 낳아도 잘 할거에요. 이렇게 말하면 됩니다. nbsp 한번 일단 믿고 입사 시켜보세요. 아니면 수습으로 3개월만 시켜보세요. 지켜보고 선발하시면 될거 아니에요? 이렇게 말하세요. “라고 스님께서 자상하게 어떻게 답변해야할지도 알려주셨습니다.nbsp 그 여학생은 “엄마가 없다고 질문한 회장님께서 ,아빠가 왜 재혼을 안하시는지, 철이 안들었나? 왜 재혼을 안시켰지? 그러시더라구요.”하며 다시 스님께 답을 구했습니다.nbsp 스님께서는 가볍게 “그건 우리 아버지한테 물어보세요 라고 말하면 되죠. 그런데, 그런 회사에 왜 들어가려고 해요? 그런 질문을 하는 것은 인간이 수준이 안 되는 것예요. 요즘은 개인프라이버시를 물어보는 건 못하게 되어 있어요. 그 사람이 수준이하라서 그래요. 엄마가 없는 건 아무 문제가 아니에요. 그사람이 진짜 교양이 없어서 그럴 수도 있고, 성격이 약간 괴팍해서 상대가 성질나게 콕 찔러서 어떻게 반응하나 찔러보는 걸 수도 있어요. 그럴때 웃으면서 넉넉하게 대답할 때 오히려 점수를 딸 수도 있어요. 그러니까 두가지에요. 하나는 약점을 찔러서 속을 뒤집어서 어떻게 반응하는지, 강한사람인지 보려는 것 일 수도 있어요. 그럴때는 웃으면서 대답하면 좋아요.nbspnbsp 두 번째는 그 사람이 교양이 없어서 그래요 그러면 그 회사에 다닐 필요가 없어요. 어머니가 일찍 돌아가신 것은 잘못된 인생이 아니에요. 설령 아버지가 누군지도 모르고 태어난 아이라 해도 내 출생에 대해서 털끝만치도 부족하다고 느낄 필요가 없어요. 그러니까 그것은 태어남에서 오는게 아니라 지금 내가 어떠냐에 따라서 그렇게 평가를 한다는 것입니다. 자기가 아주 단단하게 잘 하면, 어머니 없이 자라서 엄마노릇 잘 하는구나. 이렇게 평가할 수 있는 거에요. 존재자체는 어떤 존재도 좋은 것도 없고, 나쁜 것도 없어요. 내가 어떤상태에서 태어났든, 자랐든, 열등하게 생각할 필요가 없어요. 그건 모두 세상사람들의 편견입니다. nbsp 그러니까 얼마나 자기가 당당하느냐가 중요해요. 세상사람들은 늘 자기의식대로 말하는거에요. 아무리 면접이지만 그런 개인 프라이버시에 대해서 비하하는 말은 바람직한 상황은 아닌 것 같습니다. 이렇게 얘기하세요. 그런 회사는 오라고 해도 가지 않는다. 이렇게 당당해 지세요.“라고 가벼워지도록 격려해주셨습니다.nbsp 내일은 오전에는 INEB 소속 스님들과 간담회가 있고, 오후에는 청년포럼 워크샵에서 강의가 있고, 다시 저녁 8시에는 문경에서 영남권 불교대 특강수련이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