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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7.19. 9박10일 명상수련 회향
오늘은 9박 10일 명상수련 마지막날입니다. 스님께서는 9박10일 명상을 시작하기에 앞서 하루 전날부터 단식을 하셔서 오늘로 단식 11일째입니다. nbspnbspnbspnbspnbsp9박10일 동안 약 200여명의 명상 수련생들을 지도해 주시면서 함께 명상하시고, 저녁시간에는 단식 중이신 데도 불구하고 잘 나오지 않는 목소리로 수련생들에게 하루하루의 수행점검을 해주시면서 좌절하고 포기하려는 마음이 생긴 수련생들을 다시 발심할 수 있게 가르침을 주셨습니다.nbspnbspnbspnbspnbsp오늘 스님께서는 명상수련을 마무리 하며 수련생들에게 계정혜 삼학을 강조하시면서 이렇게 회향법문을 해주셨습니다. nbspnbspnbspnbsp “불자는 삼보에 귀의하고 계정혜 삼학을 닦는 자입니다. nbspnbspnbspnbspnbsp첫째는 계율을 청정히 지켜야합니다. 계율은 수행자를 해탈과 열반으로 인도하는 바른 길입니다. 우리가 계율을 어기면 고통이 따르고 청정히 지키면 고통이 사라지게 됩니다. 그리고 계율을 어기게 되면 깊이 참회해야 합니다. 이렇게 공동체를 항상 청정히 유지해야 합니다. nbspnbspnbspnbspnbsp둘째는 마음을 닦아야 합니다. 바로 선정을 닦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선정을 닦는 방법이 팔정도 중에서는 고요한 가운데 집중할 것, 깨어 있을 것, 그리고 꾸준히 쉼 없이 정진해 나가야 하는 것입니다. 그렇게 하기 위한 방법으로 사념처관이 있습니다. 몸을 있는 그대로 관하고, 느낌을 있는 그대로 관하고, 마음을 있는 그대로 관하고, 법을 있는 그대로 관한다는 것입니다. 이 네가지 알아차림을 통해서 마음을 컨트롤 할 수 있게 됩니다. nbspnbspnbspnbsp셋째, 이것을 기초로 해서 법의 실체, 존재의 법칙인 무상, 무아, 고를 확연히 깨달아야 합니다. 이렇게 지혜를 증득해야 합니다. 그렇게 해야 우리는 고통과 두려움, 근심과 걱정, 초조와 불안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습니다. nbspnbspnbspnbspnbsp이런 부처님의 가르침을 실천해 나감으로 인해 우리가 살고 있는 공동체도 행복하고 자유로운 세상으로 만들어갈 수 있습니다. 이것이 정말 좋은 길이라면 나만 갈 것이 아니라 나의 이웃과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도 함께 갈 수 있게 하는 것이 필요합니다.”nbspnbspnbspnbspnbsp라고 하시면서 괴로움이 없는 사람, 자유로운 사람이 되기 위해 부지런히 수행정진해서 나도 행복하고 너도 행복하고 모든 세상들도 행복하게 하는 정토행자가 되기를 당부하셨습니다.nbspnbsp65279nbspnbspnbspnbsp65279lt명상수련nbsp돕는이들과 함께gtnbsp65279nbsp9박 10일간의 명상수련을 마치고 바로 이어서 오후3시부터는 안거 수련에 입재하는 법사단, 실무자, 상근자 약 50여명에게 수행지도를 해주셨습니다. 한명 한명이 돌아가면서 명상수련의 소감문을 읽으면서 함께 나누었습니다. 그리고 나누기 중간에 그동안 팽목항에서 활동하고 계셨던 유애경 보살님이 오셔서 팽목항 이야기를 나누어 주셨습니다. 유애경 보살님은 유가족들을 위한 식당에서 봉사하시면서 기도하고 계시다면서 그동안 팽목항에서 했던 일들, 상황들을 함께 나누어 주셨습니다.nbspnbspnbspnbspnbspnbsp스님께서는 법사단, 실무자, 상근자들의 소감을 다 들으시고는 스님께서는 명상기간동안 어떻게 지내셨는지 알려주시면서 실무자, 상근자들이 전반적으로 자신을 알아가고 있다고 하시면서 “자기에 대한 이해가 넓어지면 타인에 대한 이해의 폭도 넓어집니다. 좀 더 정진을 하게 되면 상대도 어쩔 수 없어서 그러는 것이라고 이해하게 됩니다. 공동체를 이룰 때는 나는 항상 내 업식을 보고 내가 나를 치유하는 자세를 취해야 하고, 타인에 대해서는 그 어떤 것도 이해하고 받아들이는 자세를 가지면 같이 살기가 참 좋습니다. 자기는 자기 문제를 직시하고 자기를 해탈시키는 수행을 해야 하고, 그때 되는 자기를 보면 자기에 대한 희망을 또 누구나 다 될 수 있다는 희망을 가지게 되고, 안되는 자기를 보면 안되는 다른 사람에 대한 이해, 즉 세상을 넓게 이해할 수 있어 그것도 희망이 됩니다. nbspnbspnbsp 수행자들의 모임일수록 개인의 자율성과 자발성이 높아지고 전체는 통합성이 높아지는데, 수행이 안되면 통합을 위해 강제성이 되니까 개인이 억압이 되고, 그래서 억압을 놓으면 개인주의화 되어 속화되는 쪽으로 흘러가버려서 우리가 원래 가고자 하는 목표를 향해서 못가게 됩니다. 실무자들의 수행이 대중들이 존경할 만하게 수행 수준이 더 높아져야 합니다. 능력이 부족하더라도 수행은 잘 되어 있든지, 수행이 부족하면 헌신성이 더 뛰어나다든지 이렇게 해야 실무자로서 대중의 마음의 지지를 받을 수 있습니다. 그게 대중에게도 힘이 됩니다.”라며 앞으로 더 수행정진해 나갈 것을 당부하셨습니다.nbspnbspnbspnbspnbsp그리고 또, 정토회가 나아가야 할 방향에 대해서도 “개인에 대해서도 그냥 지금까지는 불법의 이치를 설명하는 것에만 초점을 두었는데 이제는 계율에 대한 실천력이 필요합니다. 정토회가 앞으로 부처님의 정법을 구현하는 쪽으로 가려면 계율의 실천적 측면이 강화되어야 합니다. 적어도 불살생이라고 하면 사람을 때리거나 죽여서는 안된다는 것. 내가 평상시에는 그럴 일이 없지 않겠어요. 화가 나서 홱 돌아도 그런 일이 있어서는 안됩니다. 또, 아무리 욕망이 솟구치더라도 성추행은 안된다는 것입니다. 만약 계율을 어기게 되면nbspnbsp깊이 참회해야 합니다.nbspnbspnbspnbspnbsp앞으로 ‘정토회 발심행자다’라고 하면 ‘이 사람은 성추행이나 사람 때릴 사람은 아니다’ 하는 것으로 도덕성을 가져줘야 사회에서 영향력이 생기게 됩니다. 어떤 사람을 선발해도 딱 정토회 사람이라면 회계를 맡길 정도로 보증수표가 되어야 합니다. nbspnbspnbspnbspnbsp지금 정토회는 양날을 쥐고 있습니다. 조금만 사회적으로 가면 외적인 기대가 커지고 외적인 공격도 강해집니다. 그리고 수행만 강조하게 되면 수행집단으로만 갈 수가 있습니다. 사회쪽에 관심이 많은 사람은 정토회가 너무 종교적이라고 하고, 수행에 관심이 많은 사람은 정토회가 너무 사회적이지 않냐고 합니다. 상구보리 하화중생의 균형을 잘 맞추는 중도의 길을 걸어야 합니다. 확산이 되어가는 것도 어려운데 확산을 질 적으로 담보할 내실을 어떻게 할 것이냐가 더 문제입니다. 내실을 기하지 못하면 확산해 나가는 것이 도리어 붕괴될 소지가 있습니다. 그래서 계율의 실천력을 강화해 나가야 합니다.”라며 정토행자라면 누구라도 대중이 신뢰할 수 있도록 자기를 행복하게 하는 수행위에 계율을 청정히 지켜나가야 함을 강조해 주셨습니다.nbspnbspnbspnbspnbsp내일은 가을 불교대학 졸업식이 충주 호암체육관에서 있습니다.
2014.7.8. 세월호 서명 명부 전달식 및 토론회
스님께서는 통일의병팀 역사기행에서 돌아오자마자 여독을 채 풀지도 않은 상태에서 또 강행군을 이어나가고 있습니다. nbspnbspnbspnbspnbsp오늘은 최근 북한동향과 한반도 정세를 파악하는 북한현실모임 조찬으로 하루를 시작하셨습니다. 스님께서 지난 주에 중국에 계시는 동안, 중국 시진핑 주석이 방한했습니다. 이번 한중정상회담의 성과에 대해 집중적으로 말씀을 나눴습니다.nbspnbspnbspnbspnbsp모이신 분들은 중국과 일본, 미국, 심지어 북한조차 자국의 장기 계획에 따라 냉철하게 전략을 짜고 임하는데, 우리나라만 전략이 없다는 것에 인식을 같이 했습니다. 특히 한 전문가는 축구에 비유를 했는데 아주 인상적이었습니다.nbspnbspnbspnbspnbsp축구를 좋아하던 한 영국 아이가 한국에 와서 축구를 하는데 너무 재미가 없다고 했답니다. 이유가 뭐냐니까, 한국 아이들은 축구를 할 때 사람을 보고 공을 주더라는 겁니다. 영국에서는 빈 공간에 공을 찬다고 합니다. 그러면 자기 생각을 읽은 동료가 그 공간에 뛰어들어가 공을 이어받아 넣는 거죠. 처음에는 헤매지만, 자기 동료가 자기 생각을 읽고 공간으로 파고들어서 골을 넣을 때의 쾌감은 말할 수 없다고 합니다. nbspnbspnbspnbspnbsp외교도 마찬가지라고 합니다. 최근들어 미국은 동아시아에서 공간을 열어준 거고, 그 공간을 읽고 일본도 들어가고 북한도 들어가는 건데, 우리만 상대만 쳐다보며 단순 대응을 한다는 겁니다. 스님께서는 리더십의 경쟁에서 우리나라가 밀리는 것 같다며 매우 안타까워하셨습니다. 말씀들을 들으면서, 지금부터라도 미래 5년, 10년 후를 내다보고 좋은 정치지도자를 양성하는 일이 정말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nbspnbspnbspnbspnbsp오후 1시 30분부터는 서울 정동 성프란치스코 성당에서 그동안 정토회에서 진행해 온 세월호 관련 서명 용지를 유가족들에게 전달하는 전달식이 있었습니다.nbsp유가족이 진행하는 천만인 서명 운동 가운데 정토회에서는 100만인을 목표로 약 보름 간 전국에서 서명을 진행했습니다. 전달식에서 법륜스님께서는 총 141만3139명이 서명한 용지를 김병권 세월호 유가족 대책위원장에게 전달했습니다. 서명용지를 전달한 후 스님께서는 작은 정성이지만 조금이라도 위로가 되고 싶었다면서 세월호 희생자 가족들의 손을 꼭 잡았습니다. 이 자리에는 세월호 참사 희생자 가족 60명과 지난 6일 직접 서명운동에 나섰던 방송인 김제동씨도 함께 자리했습니다.nbsp스님께서는 유가족들은 왜 우리 아들이 죽었는지 알고 싶다는 절규를 하고 있다면서 죽음 앞에 우리가 진실하지 못할 이유가 뭐가 있습니까?라고 되물었습니다. 이어 지금은 유가족만의 일이지만 진상이 제대로 규명되지 못하고, 재발방지를 위한 제도적인 장치를 마련하지 못하면 결국 우리 모두의 일이 된다라고 강조하셨습니다. nbspnbspnbspnbspnbsp이어 ‘민족의 평화와 화해를 위한 종교인 모임’에서 진행된 토론회에서는 사회를 맡은 박종화 경동교회 당회장과 유가족, 청년, 종교인, 사회 인사, 전문가, 정치인 등 각계 분야의 발표자들이 참석했습니다.nbspnbspnbspnbspnbsp가장 먼저 발표해주신 분은 전명선 세월호 참사 가족 대책위 부위원장이었습니다. 한 가정의 가장이자 아버지였던 평범한 삶이 한 순간 나락으로 떨어진 심정을 눈물 한 방울 보이지 않은 채 담담히 말씀하시는 모습에 모두가 숨을 죽였습니다.전명선 부위원장님은 “저희가 바라는 것은 딱 하나입니다. 특별법을 제정해 우리사회가 좀 바뀌었으면 합니다. 한 아이의 부모, 힘없는 국민인 저희는 안전한 나라를 만들 때까지 계속 노력할 것입니다. 아이들의 영혼을 저버리지 않고 대한민국이 안전한 나라가 될 수 있도록 생을 살아갈 것입니다.” 라고 말씀하셨습니다.nbsp1부와 2부로 나눠진 발표 시간에는 각 분야의 발표자들이 발표를 해주셨습니다. 청년은 청년이 꿈꾸는 사회를, 종교인은 종교인이 짊어져야 할 몫에 대해 이야기했습니다. 전 소방방재청장, 전 NSC 위기관리 비서관을 지낸 두 전문가는 각각 그 분야의 전문가로서 보는 국가의 위기와 안전에 대해 짚어주셨습니다.nbspnbspnbspnbspnbsp정치인을 대표해서는 주호영 새누리당 정책위원장과 우윤근 새정치민주연합 정책위원장이 참석해 각각 정당에서 추진중인 방안에 대해 이야기했습니다. 또한 각 전문가들의 의견을 듣고 반영할 것을 약속했습니다.nbspnbspnbspnbspnbsp정치인 대표 발표 때는 항의의 목소리도 들렸습니다. 세월호에 대한 국민적 슬픔과 분노가 크다는 것을 다시금 실감할 수 있었습니다.nbsp발표가 모두 끝난 뒤 마지막으로 스님께서 닫는 말씀을 해주셨습니다.nbspnbspnbspnbspnbsp“세 시간 반이나 앉아서 집중적 관심을 가져주신 여러분께 감사 말씀드립니다. 유가족 여러분께도 감사 말씀드립니다. 전문가 분들이 이 문제를 공개적으로 말씀하시는 걸 어려워하셨는데 이렇게 나와 주셔서 감사드립니다. 특히 여야 정당의 정책위원장님들께서 정책위원장을 맡은 지 얼마 안 되시는데 나와 주셔서 장시간 비판도 받아주고 토론도 함께 해주셔서 정말 감사 말씀 드립니다.nbspnbspnbspnbspnbsp지난 50여 년간 우리에게는 오직 돈이 되면 뭐든지 다 한다, 위험도 무릅쓰고 한다는 인식이 있었습니다. 사우디아라비아에도 가고 월남전쟁에도 가고 위험만 무릅쓴 게 아니라 때로는 비도덕적 행동도 불사했습니다. 그로 인해 현재 후유증이 많이 발생하고 있습니다. 물론 우리가 그렇게 위험을 무릅쓰고 열심히 일했기 때문에 이만큼의 성과를 낸 것도 사실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먹고 살기가 힘들 때는 살기 위해서 위험도 무릅썼지만 지금은 먹고 살기 어려운 처지를 넘어서서 살만한 시대에 이르렀습니다. 그런데도 여전히 어려울 때 잘 살아보자고 몸부림쳤던 그런 관행이 남아 있기 때문에 우리에게 큰 위험 요소, 장애 요소로 나타나고 있습니다.nbspnbspnbspnbspnbsp지금까지는 이렇게 살아왔다 하더라도 이제는 바꿔야 할 때가 왔습니다. 전기가 없을 때는 방사능 위험이 있다해도 우선 전력을 확보하는 것이 중요해서 핵발전소를 건설했지만, 이제 이 정도 살만해진 때는 전기값이 좀 싼 것 보다는 만에 하나 사고가 일어났을 때 미치는 위험에 대비하고 안전을 더욱 중요시해야 합니다. 후쿠시마 원자력 사고 같은 걸 보면 잘 알 수 있죠.nbspnbspnbspnbspnbsp경제적 효율보다는 우리의 생명과 안전을 더 중요시하고 행복을 중요시하는 쪽으로 이제는 의식이 바뀌어야 합니다. 정계에서는 이것을 제도적으로 보완해주는 것이 중요하고, 종교계에서는 의식, 가치관을 바꿔주는 것이 우리 국민이 해야 할 국민운동이 아니겠는가 생각합니다.” 스님께서는 현재 우리 사회에 필요한 것은 무엇보다 생명과 안전을 우선시하는 가치관의 전환임을 강조하셨습니다.nbspnbspnbspnbspnbsp“오늘 여러분들께서 분노가 있으니까 마음에 들면 환호하고 마음에 안 들면 큰소리도 치고 하는데 충분히 이해가 됩니다. 하지만 이제 우리는 머리를 맞대고 반대 의견을 수용하고 토론할 수 있는 쪽으로 나아가야 되지 않겠는가 싶습니다. 어려움에 부딪혔을 때 두 가지 경우가 있습니다. 평소에는 싸우다가 큰 위기가 닥치면 똘똘 뭉쳐서 위기에 대응하는 경우는 위기가 기회가 됩니다. 그런데 오히려 그런 상황에 더 싸워서 아예 풍비박산 되는 경우는 위기가 위기가 됩니다. 이 위기를 기회로 삼기 위해선 함께 마음을 모아야 합니다.nbspnbspnbspnbspnbsp세월호라는 위기에 직면해서 진보, 보수, 여야, 기독교, 불교 이런 걸 넘어서 마음을 하나로 모아서 앞으로는 다른 세상을 만들어가야겠다는 의견을 모아 간다면 우리에게 큰 복이 될 것이고 세월호 희생자들은 정말 민족을 위해서 큰 공헌을 세운 사람들이 될 겁니다. 가족들에게는 그것이 슬픔을 극복할 수 있는 방법이 아니겠나 싶습니다. nbsp그런데 우리가 서로 책임을 전가하면서 분열이 더 가중된다면 그 분들의 희생은 쓸모없는 죽음에 그치고 맙니다. 그래서 우리가 분노는 가질 수 있지만 그 감정을 조금 승화시키면 좋겠습니다. 여당과 정부는 책임 당사자로서 비판받아야 합니다. 하지만 이 문제를 해결하고 바꾸려면 정부와 여당이 힘을 써야 합니다. 북한 정부가 인권 침해의 당사자이지만 그 문제를 개선하려면 북한 정부와 대화를 해야 합니다. 협력 없이는 문제를 못 풉니다. 비난을 하는 건 감정 해소는 될지 몰라도 문제 해결에는 크게 도움이 안 됩니다. 국가 전체를 생각하고 더 나은 세상을 만들기 위해서는 정부와 여당의 협력도 필요하기 때문에 함께 손잡고 문제를 푸는 통합적 가치를 만들면 좋겠습니다. 감사합니다.”nbspnbspnbspnbspnbsp분노하고 슬퍼하고 비판하는 것이 현실이지만 이제는 한 발 더 나아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함께 대화하고 문제를 풀어나가야 하는 것임을 일러주셨습니다.nbspnbsp모든 행사를 마치고 스님께서는 국민통합회의의 멤버이신 정의화 국회의장님의 초청으로 국회의장 공간에서 국민통합회의 모임이 있었습니다. 이 자리에 모이신 분들은 정의화 국회의장님의 의장 되심을 축하하면서 여러 가지 국내외 문제들에 대한 의견을 서로 나누기도 하셨습니다.모임을 마치고 회관으로 돌아오셔서는 다시 세월호 관련하여 문제들을 어떻게 풀것인지에 대해 논의도 하시고 업무도 보셨습니다.nbspnbspnbspnbspnbsp내일은 7월 10일부터 진행되는 명상수련을 위해 문경으로 이동하실 예정입니다. 내일부터 명상수련이 끝나는 날까지 스님의 하루는 쉬겠습니다.
2014.7.7. 회의 및 업무
스님께서는 오늘 오전에는 정토회관에서 내일 있을 세월호 관련 심포지엄의 원고 교정을 보시면서 휴식을 취했습니다.nbspnbspnbspnbspnbsp이른 점심을 드시고는 여권 재발급을 위해 서초구청을 다녀오셨습니다. 10일부터 명상수련에 들어가시면 중국역사기행을 가시는 8월 3일까지는 시간이 없어서 오늘 여권 재발급을 하셨습니다.nbspnbspnbspnbspnbsp오후 3시부터는 좋은벗들과 8월 3일부터 있을 중국역사기행의 일정에 대한 논의가 있었습니다. 스님께서 이번 동북아 역사 누비길을 다녀오시면서 몇가지 보완해야 되거나 수정해야 될 부분이 있어서 실무진과 함께 논의하는 시간을 가졌습니다.nbspnbspnbspnbspnbsp이어 3시 30분부터는 JTS의 해외사업, 북한사업등 업무 전반에 대한 논의가 있었습니다.nbspnbspnbsp 5시 30분 필리핀 JTS 이원주 대표님과 한금화 보살님과의 만남이 있기 전에 과테말라에서 희망강연을 준비하고 계신분이 평화재단을 방문하셔서 함께 인사를 나누시면서 격려의 말씀을 하시기도 하셨습니다.nbspnbspnbspnbspnbsp이어서 이원주 대표님과 한금화 보살님과 함께 저녁공양을 하시면서 필리핀 사업에 대한 논의가 있었습니다.nbspnbspnbsp 7시부터는 기획위 회의가 있었습니다. 10시가 넘어 기획위 회의를 마치고도 내일 있을 행사와 중국역사기행에 대한 논의를 좀 더 하신 후 12시가 되어서야 정토회관으로 돌아오셨습니다.nbspnbspnbspnbspnbsp내일은 조찬을 하며 북한 전문가 모임을 하신 후 그동안 정토회에서 진행한 세월호 관련한 100만인 서명의 명부를 유가족에게 전달하는 전달식과 ‘세월호 이후, 우리사회가 어떻게 거듭날 것인가?’에 대한 심포지엄이 있습니다.
2014.7.6. 동북아 역사 누비길 여섯째날
오늘은 통일의병 동북아누비길 마지막 날입니다.오후 4시 반 비행기를 타기 전에 심양 시내에 있는 요녕성 박물관을 구경하기 위해 어젯밤 일정을 마친 뒤 밤 10시에 도문을 출발하여 밤새 심양을 향해 달려왔습니다. 중국에서는 버스가 새벽 2시부터 5시까지 고속도로를 운행하는 것이 금지되어 있어 길림 부근의 고속도로 휴게소에 차를 세워놓고 모두 호텔 대신 버스 의자 위에서 휴식을 취했습니다. 졸음운전을 방지하기 위한 것으로 보이는데 세월호 사건 이후 우리나라에도 요구되는 안전한 나라를 만들기 위해 배울만한 좋은 제도가 아닌가 싶습니다.nbspnbspnbspnbspnbsp누비길 참가자들을 태운 버스는 새벽 5시에 다시 달리기 시작하여 오전 10시가 다 되어서 심양 부근 휴게소에 내려 시내로 들어가기 전 마지막 휴식을 가졌습니다. 스님은 화장실 앞에 있는 지도를 보시더니 모두 모이라 하시고는 등산용 스틱으로 첫날부터 오늘 아침까지 우리가 다녔던 길과 곧 보러 갈 요하문명의 배경이 되는 요서지역을 스틱으로 가리켜가며 자세히 설명해 주셨습니다. nbsp심양 시내로 들어가서는 바로 아침점심 겸용으로 북한 식당에서 평양냉면을 먹고 간단한 공연을 볼 수 있었습니다. 노래를 부르거나 기타 연주하는 것도 좋았지만 특히 한복을 곱게 입고 화관을 쓴 두 처녀가 ‘고향의 봄‘ 노래에 춤을 추는 모습은 참 정감 있고 예뻤습니다. 또한 북한의 아가씨들을 가까이에서 직접 만나고 함께 노래 부르니 여기저기서 눈물 흘리는 분들이 많았습니다. 특히 마지막에 부른 ‘다시 만나요’ 노래는 가사도 좋고, 가슴에 감동이 바로 전해옵니다.nbspnbspnbspnbspnbsp백두에서 한라로 우리는 하나의 겨레헤어져서 얼마나 눈물 또한 얼마였던가 잘 있으라 다시 만나요. 잘 가시라 다시 만나요.목메어 소리칩니다. 안녕히 다시 만나요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부모 형제 애타게 서로 찾고 부르며 통일아 오너라 불러 또한 몇해였던가 nbspnbspnbspnbspnbsp꿈과 같이 만났다 우리 헤어져가도해와 달이 찬란한 통일의 날 다시 만나자 nbsp시간이 얼마나 지났는지도 모르게 넋을 잃고 공연을 보고는 서둘러 박물관에 가기 위해 버스에 탑승했습니다. 오늘도 한 분이 식사 후 개인행동으로 버스 탑승을 제 시간에 안 하셔서 걱정했는데 결국 늦게라도 스태프와 만나게 되어 함께 탑승할 수 있었습니다. 시골에서도 문제지만 도시에서는 사람을 찾기가 어려워 이런 상황이 벌어지면 스님과 스탭들이 매우 긴장하는 것 같습니다.nbsp요녕성 박물관 3층에서 전시되고 있는 요하문명전은 중국의 시대 구분에 따라 요녕성 지방에 있는 유물들을 전시하고 있는데 제1관 문명서광을 시작으로 해서 5관까지 전시 중이었습니다.우리의 배달문명이라 할 수 있는 홍산 문명의 유적에서 이번에 우리가 보고 온 고구려 산성의 특징과 같은, 그리고 고구려 적석총의 모습을 그대로 볼 수 있다고 합니다. 모든 전시 관람을 마치고 스님께서는 요하문명 즉, 배달문명은 역사나 국토의 관점이 아니라 문명사적 관점을 가지고 보는 것이 좋겠다고 마무리 하셨습니다.nbsp 이렇게 해서 5박 6일의 동북아 통일누비길이 모두 끝이 났습니다. 처음엔 잠시도 쉬기 어려운nbspnbsp빡빡한 일정 때문에 힘들었지만 하루 이틀 지나자 백두산의 정기를 받은 것처럼 기운이 더 나는 것 같고 천지에서나 국동대혈에서 느꼈던 진한 감동으로 통일의병으로서 어떤 일을 할지 생각해 보는 소중한 시간이었습니다. nbsp심양에서 인천공항에 도착하자 스님께서는 참가자들과 일일이 악수를 하시며 인사를 나누고 정토회관으로 들어가셨습니다.
2014.7.5. 동북아역사누비길 다섯째날
오늘은 통일의병 동북아누비길 다섯째 날, 항일독립운동 유적지를 가는 날입니다. 아침 일찍 눈을 부비며, 청산리 항일전적지인 백운평으로 출발했습니다. 차에서 내려 2km정도 걸어서 올라가야 하는데, 첫 번째 난관을 만났습니다. 다리가 끊어지고, 무릎까지 차는 차갑고 거센 개울물이 우리의 앞길을 막았습니다. nbsp어떻게 할까, 우왕좌왕하다가 법륜 스님이 바지를 걷지도 않고 신발 신으신 채로 강물을 가르고 건너셨습니다. 스님의 모습을 본 참가자들도 망설임 없이 양말을 벗고 바지를 걷고 건너기 시작했습니다. 이때 일행중에서 “역시 스님은 의병장답다”며 감탄했습니다. 그리고 스탭과 많은 의병들이 차가운 개울물에 들어가 건너는 의병들의 손을 잡아주는 것도 감동을 주었습니다. nbsp당시 전투가 치열하게 벌어졌던nbspnbsp직소택까지 걸어가 전투중에 희생된 독립군과 양민들의 영혼을 추모했습니다. 뿐만 아니라 이역만리 타국에 와서 죽은 일본 젊은 군인들까지도 그 영혼을 천도하여 다시는 이런 불행이 일어나지 않도록 기원하였습니다.nbspnbspnbspnbspnbsp스님께서는 “청산리 전투는 1920년 10월 21일부터 26일까지 10여차례 전투가 있었으며, 일제의 야만적인 ‘경신년 대토벌’에 항거하여 일어난 조선민족 무장대결의 첫 장거이며, 또 반일투쟁의 최고봉”이라고 설명해 주셨습니다. 청산리전투에서 패배한 일본군들은 백운평 마을 주민들을 모두 학살하고, 마을 전체를 소각하는 만행을 저질렀다고 합니다. 백운평 마을 터에는 이름 모를 들꽃과 풀들이 우거져 우리를 슬프게 했습니다. nbspnbspnbspnbspnbsp이날 중국공안 2명이 직소택까지 따라와 우리를 감시하기도 했습니다. 지금까지는 공안이 물 건너는 곳까지만 따라 왔는데, 끝까지 쫓아온 것은 이번이 처음이라고 합니다.nbspnbspnbspnbspnbsp우리는 청산리 전투현장을 가슴에 담고, 화룡시 청호리 길가에 있는 대종교 창시자인 나철 선생, 서일 선생, 김교헌 선생 등 ‘대종교 3인묘’를 찾았습니다. 그곳에서 우리는 제사를 지내고, 일제에 항거한 3인의 의미를 되새겼습니다.nbsp스님께서는 “나철 선생께서는 죽을 때, 자기 시체를 나라 안에 두지 말고 백두산 밑에 안장해 달라고 유언하였던 바, 그의 죽은 몸이 이곳까지 오게 된 것”이라고 설명해 주셨습니다. 비록 묘소는 초라할지라도 이 세 사람의 묘가 있는 청호리는 만주 지방 대종교의 발상지가 되었습니다. nbspnbspnbspnbspnbsp대종교 3인 묘를 떠나 버스에 오른 우리는 한참을 달려 차를 멈추고, 차창 밖으로 발해의 두 번째 수도였던 서고성을 바라보며 발해의 기상을 새겼습니다. 서고성은 ‘서쪽에 있는 오래된 성’을 뜻하며, 중경 현덕부가 자리 잡은 이곳은 평원지대로 땅이 비옥하고 수원이 충족하며, 기후가 비교적 따뜻하여 농업 생산발전에 매우 유리한 지역이라고 합니다.nbspnbspnbspnbspnbsp다시 차를 달려 용정의 일송정으로 향했습니다. 기념탑을 지나 일송정에 오르니, 멀리 용정과 해란강이 한눈에 들어왔습니다. 이곳에서 망국의 한을 달래고, 독립을 꿈꾸었을 독립 운동가들의 모습이 떠올랐습니다. nbsp스님께서는 “‘일송정’이라는 이름은 비암산 벼랑의 바위 위에 소나무 한 그루가 푸름을 자랑하며 우뚝 솟아 있었는데, 그 모양이 마치 정자 같았다는 데에서 유래했습니다”고 설명해 주셨습니다. 그 옛날 소나무는 사라지고 지금은 자그마한 소나무가 한그루 자리 잡고 있었습니다. 그동안 소나무를 많이 심었는데 계속 죽자, 백두산에서 가져온 소나무가 죽지 않고 잘 자라고 있다고 합니다. “일송정 푸른 솔은 ”. “나의 살던 고향은 ” 일행은 선구자와 고향의 봄을 목 놓아 부르며, 통일의 의지를 다졌습니다.nbsp65279nbsp일송정을 내려갈 때 어느 청년이 용정 시내를 바라보며 무언가 입속으로 빌며 삼배를 하고 있었습니다. 아마도 먼 이국땅에서 조국의 독립을 위해 애쓰며 외로이 사라져간 독립투사들에게 감사하는 마음과 선구자가 이루어놓은 대한 독립의 완성을 위해서 통일을 이루겠다고 맹세하는 것이 아니었을까요?nbspnbspnbspnbspnbsp일송정에서 내려온 우리는 점심식사를 연변식 냉면으로 하였습니다. 커다란 그릇에 양이 우리의 한배 반에서 두 배. 시원하게 한 그릇 먹고, 독립운동가의 산실인 ‘대성중학교’로 향했습니다. nbspnbspnbspnbspnbsp대성중학교는 현재 용정중학교로 이름이 바뀌어 있었습니다. 1921년 용정에는 천도교 계통의 동흥중학교와 유교 계통의 대성중학교가 설립되었습니다. 당시 이 두 학교는 300여 명의 학생이 재학하였으며, 학생들은 이곳에서 민족해방교육을 받았습니다. 1927년 10월 교사들이 체포되는 등 일제의 탄압에도 불구하고, 이들 학교에서는 ‘애국가’, ‘권학가’, ‘학도가’ 등 가곡과 조선 역사, 조선 지리를 열심히 가르쳤다고 합니다. 용정 출신의 대표적 인물은 윤동주 시인을 비롯해 문익환, 송몽규 등입니다.nbsp그 사이 스님은 ‘JTS’에서 투자한 중국 현지 옥수수 국수공장과 양로원을 방문하셨습니다. nbsp65279nbspnbsp65279한국에서 북한에 대한 지원이 막히자 스님은 중국현지에 옥수수 국수 공장을 만들어 중국에서 북한 주민을 지원할 수 있도록 만드셨다고 합니다.nbspnbspnbspnbspnbspnbsp대성중학교를 나온 우리는 봉오동 항일전적지로 향했습니다. 봉오동 전적지 기념탑에서 일행은 먼저 가신 독립운동가들을 추모하는 행사를 가졌습니다. 일행은 다시 버스로 한반도 최북단인 온성군을 향해 두만강 하류를 달렸습니다. 차창 밖으로 펼쳐지는 북한의 산하 모습은 비슷했습니다. 뙤기 밭에 띄엄띄엄 있는 가옥들. 그리고 한참을 달려 저 멀리 온성군이 보였습니다. 높은 건물도 보였습니다. 바로 이곳이 한반도 최북단입니다. nbspnbspnbspnbspnbsp달리는 버스안에서는 2가지의 두만강 노래가 흘렀습니다. 각각 아버지 세대와 아들 세대의 두만강 노래로 제목이 ‘두만강’과 ‘라구요?’입니다. 하나는 분단 전의 한을 노래한 것이고 다른 하나는 분단 후 고향에 대한 그리움으로 한 맺힌 노래입니다. 스님은 “우리는 왜 이렇게 한이 많을까? 이 모든 한풀이가 뭐라고?” “통일”통일이 천년의 역사 속에 쌓여있는 우리 민족의 한을 일시에 풀어줄 것입니다.nbspnbspnbspnbspnbsp우리는 온성군을 뒤로한 채 ‘조중우호’ 다리가 있는 도문으로 향했습니다. 청년들은 한 의병님이 조8226중 다리 입장권을 다 사주겠다고 하여 조8226중 다리 중간 경계까지 가고, 나머지 일행은 스님과 함께 다리 아래 길을 산책했습니다. 바로 강 건너에 북한 땅이 그야말로 손에 잡힐 듯합니다. 중간에 있는 섬에는 사람이 물을 기르기 위해 내려오는 모습도 보입니다. nbspnbspnbspnbspnbsp스님께서는 “이렇게 직접 와 봐서 북한 주민이 내 눈 앞에 사람으로 보이기 시작할 때, 인도적 지원의 필요성도 간절하게 느낄 수 있습니다. 추위와 배고픔으로부터 견딜 수 있도록 의복과 식량 지원 필요하다고 하는데 실제 북한 주민에게 갈 수 있도록 하는 노력이 있어야 합니다.”라고 스님께서 인도적 지원의 필요성을 강조하셨습니다. nbspnbspnbspnbspnbsp북한 땅과 주민을 뒤로한 채 일행은 저녁식사를 위해 식당으로 향했고, 조별로 식사를 마치고 스님의 마지막 강의를 듣기 위해 모였습니다. 이날 강의는 스님이 짧게 강연하시고, 질의응답으로 이어졌습니다. nbspnbspnbspnbspnbsp청년포럼 출신의 한 청년은 “북한은 가난한데, 중국과 우리나라는 풍족하고 음식도 남아돈다. 이런 상황에서 국가가 뭔지 민족이 뭔지 회의가 든다”며 스님에게 국가와 민족이 의미를 물었습니다. nbspnbspnbspnbspnbsp스님께서는 “국가와 민족이라는 것은 기본적으로 공동체입니다. 서로 이익을 주는 사람들이 다수로 모인 공동체가 국가입니다. 가장 기본적인 공동체를 가족이라고 합니다. 국가는 이익공동체의 성향이 더 강합니다. 가족의 경우는 이익공동체의 속성도 있지만 그 정도가 약합니다. 민족은 가족과 같은 성격이 있습니다. 경제적 이익이 부족해도 해야 할 일은 해야 합니다. 예를 들어 이산 가족상봉 같은 경우, 경제적 이익은 없지만, 해야 합니다”라고 답변하셨습니다.nbspnbspnbsp두 번째 질문은 한 의병이 “평화재단에서 북한주민들을 위한 지원을 어떻게 하는지 궁금하다”고 물었습니다. 스님께서는 “옛날에는 나진선봉의 모든 탁아소의 모든 아이들에게 유아식을 지원했습니다. 하다 보니, 나진 선봉도 어렵지만 북한에서는 그래도 상황이 좀 더 나은 지역이라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그래서 평양과 자강도 제외한 북한 전역의 53개 지역의 고아원와 양로원, 장애시설에 지원하는 계약을 했었는데 정권이 바뀌면서 지원이 끊기게 되었습니다. 올해 강원도 감자가 수천 톤이 썩을 지경이라 해서, 1주일 내에 개성으로 보낼 계획을 세웠습니다. 강원도주민도 좋고, 북한주민도 좋은 일이었습니다. 정치권에서도 좋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정부가 허락하지 않아 보내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중국에 복지법인을 설립해서 중국에서 지원이 되도록 한 것입니다. 중국 조선족의 가난한 이들, 장애인, 양로원을 지원하면서, 북한에 지원을 함께 하는 것입니다. 묘목을 보냈더니 반응이 좋았습니다. 그쪽에서 반응이 좋아서 다시한번 더 보냈습니다”라고 대답해 주셨습니다. nbspnbspnbspnbspnbsp세 번째 질문은 또 다른 의병이 “통일운동의 로드맵, 거기에서 통일의병에게 기대하는 것이 어떤 것인지 구체적으로 듣고 싶다”고 말했습니다. 스님께서는 “김정은이나 박근혜를 설득하는 게 가장 좋은 방법입니다. 그리고 정치인들을 설득하는 게 좋은 방법입니다. 지금 여러분이 하고 있는 통일의병 운동은 굉장히 비효율적이고 효과가 적을 수는 있지만, 없어지지는 않는 일입니다. 효율은 떨어지지만 한만큼 효과를 볼 수 있습니다. 국민의식이 바뀌지 않는 이상 통일지향의 정당, 통일지향의 지도자를 뽑을 수 없습니다. 우리는 통일을 지향하니까 민간외교도 하고 내가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해야 합니다. 외교에 관계되는 일도하고 여러분들을 교육하고 훈련하는 것도 티끌모아 태산식으로 해야 합니다. 정치인들에게도 의식을 심어주는 노력도 해야 합니다. 핵심은 공공성입니다. 인간이 개인의 욕망을 갖는 것은 이해하지만 최소한 10라도 공공성을 가져야 합니다. 그런 것 때문에 우리가 여기 모여 있는 것입니다. 공동체로 살아간다는 것은 공공성이 있어야 합니다. 우리나라 사람은 개인적인 의식은 높은데 공공성이 떨어집니다. nbspnbspnbspnbspnbsp여러분의 지향이 분명하려면 과거 역사속에서도 보고, 북한 주민들 입장에서도 보고, 종합적으로 바라보고 통일이 가장 중요한 것이라는 관점이 잡혀야 합니다. 그리고 정치의식이 있어야 합니다. 정치의식이 있고 정치적 행동을 할 줄 알아야 합니다. 변화를 일으키려면 정치적 변화 없이는 안됩니다. 행동으로 표현할 줄 알아야 합니다. 새로운 대한민국을 위해서 함께 노력합시다”라고 강조하셨습니다. 스님의 통일의 대한 절절함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nbspnbspnbspnbspnbsp스님 강연이 끝나고, 조별 소감문 작성과 나누기를 하였습니다. 각조별로 대표를 뽑아 한명씩 발표를 들었습니다. 대부분 스님의 열정과 노고에 감사했고, 살아있는 역사현장과 백두산 천지의 모습을 가슴에 담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통일의 열정으로 가득찼습니다.nbspnbspnbspnbspnbsp저녁 10시에 일정을 마무리한 일행은 밤새 심양으로 가기 위해 버스에 올랐습니다.
2014.7.4 동북아 역사 누비길 넷째날
오늘은 백두산의 날입니다. 북문으로 백두산에 올라 천지를 보고 소천지, 녹연담, 지하삼림을 구경하기 위해 오늘도 일찌감치 출발했는데 하늘에 구름이 끼어있어 다소 걱정스러웠습니다.nbspnbsp장백의 숙소에서 백두산 천지로 가는 길은 압록강을 따라 상류 지역으로 올라가게 됩니다. 국경지역이라 민간인 집보다는 군인들의 초소 및 군인가족의 집들이 가까이 보이는데 어제 압록강변에서 보았던 모습보다 왠지 마을도 집도 정리가 잘 되어 있는 듯이 보입니다. 이번엔 지붕에 비닐을 덮은 온실이 처음 등장했습니다. 비록 텃밭 수준이지만 온실 덕에 수확량이 늘어 배고프지 않기를 바래봅니다.nbsp버스로 달리면서 북한 측에 새로운 초소나 사람이 보이거나 하면 스님께서는 “야 저 봐라. 초소를 새로 지었네 저기 할머니도 보인다. 비닐을 우리가 주지 않았는데 누가 줬노, 이제 우리를 별로 필요로 하지 않겠네” 하고 마치 아이처럼 신기해하십니다. 이번으로 33번째 역사기행을 안내하시면서도 아직 새롭게 느껴지고 감동이 있으신지 질문을 받으시고는 이렇게 대답하셨습니다. “이 길도 작년의 그 길이 아니고, 나뭇잎도 매번 다른 나뭇잎이에요.”우문현답이었습니다. nbspnbspnbspnbspnbsp그 대답을 들으니 언젠가 말씀하신 스님의 발원문인 ‘난 길가에 핀 한포기 풀과 같은 존재이다’와 ‘오늘 처음 시작한다’가 생각났습니다. 웬만한 사람들은 몇 년 동안 같은 걸 하게 되면 매너리즘에 빠지고 지루해하는데 스님께서는 이 발원문과 같이 매번 처음 시작하는 것처럼 호기심을 가지고 사시는 것 같습니다. 두 번, 세 번 와놓고는 전에 봤던 거라고 잘 보지 않거나 대충 듣는 우리들의 모습을 반성하게 됩니다.nbspnbspnbspnbspnbsp원래 남문을 통해 백두산에 오르려 했는데 폐쇄되어 있어 천지 뿐 아니라 비룡폭포나 지하삼림이 있어 더 구경할 곳이 많은 북문 쪽으로 올라가기로 해서 남문에서는 내려서 사진만 찍고 다시 서문 쪽으로 이동했습니다. 이 도로는 목숨을 걸고 압록강을 건너와 백두산 원시림 이곳저곳에 숨어 있다가 결국 만강 검문소에서 적발되어 도로 북한으로 송환되었던 수많은 북한 난민들의 ‘피 맺힌 사연이 있는 곳’이라고 소개해 주시기도 했습니다. 약 100년 전 지독한 가난에서 살아남기 위해 갈 수 밖에 없었던 피눈물 역사는 1990년대 후반에 또 한번 북한 난민의 피눈물의 역사로 반복되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nbsp서문 입구에서 아침을 먹고 거의 직선에 가까운 원시림속의 길을 따라 1시간 30분 가까이 달려 드디어 북문에 도착하여 입장권을 구입하고 백두산에 올랐습니다. 그리고 다시 산 정상에 올라가는 승차권을 구입해서 9인승 차에 나눠 타고 천문봉으로 올라가는데 길 양편에 야생화가 군데군데 봉오리 맺고 예쁜 모습을 보여주고 있었습니다. 야생화의 절정 시기라는 7.1020일 사이에 언젠가 기회가 되면 다시 와보고 싶은 마음이 들었습니다. 정상에 가까울수록 아래를 내려다보면 산이 마치 바다처럼 저 아래 펼쳐진 모습이 정말 스님의 말씀처럼 산이라는 개념이 다른 것 같습니다. 이러니 하루종일 백두산을 휘젓고 다녔는데도 마지막에 ‘근데 백두산은 어디 있냐?’는 우스개 말이 있는 것이 이해가 됩니다. nbspnbspnbsp차에서 내려 천지를 내려다 볼 수 있는 봉우리에 오르는데 구름이 있을듯하여 조마조마하는 마음으로 올라갔습니다. 다행히 천지는 활짝 열려 있었습니다. 아주 밝은 모습은 아니었지만 구름으로 가린 부분이 거의 없이 신비로운 모습을 우리 의병들에게 선사했습니다. 모두 행복한 표정으로 천지를 구경하고 사진을 찍으면서 즐거운 시간을 보냈습니다. 이렇게 2014년 통일의병 동북아누비길에서 활짝 열린 천지를 봤으니 백두산의 정기를 듬뿍 받아 앞으로 통일 운동에 더욱 박차를 가할 것을 기대해 봅니다.nbsp아쉽지만 천지 구경을 마치고는 정상을 내려와서 다른 버스를 타고 비룡폭포를 구경하러 갔습니다. 천지의 맑은 물이 북쪽 천문봉과 용문봉 사이로 떨어지면서 폭포 중간에 큰 바위가 있어 물줄기가 두 갈래로 나뉘어 떨어지는 것이 바로 비룡폭포인데 그 모습이 절경일 뿐 아니라 백두산의 강한 기상을 느끼게 합니다. 그다음에 소천지, 녹연담, 지하삼림의 순으로 구경을 했는데 소천지는 전과 달리 둘레를 돌 수 있는 길을 막아놓아 멋진 산책을 할 수 없었고 지하삼림도 일부 코스를 막아놓아 백두산이 개발이 되어갈수록 구경은 제한적이 되는 것 같습니다.nbspnbsp녹연담은 세 개의 폭포와 맑은 녹색 빛의 물이 신비로움을 주는 곳이고, 지하삼림은 지반이 함몰한 곳에 숲이 형성되어 있어 지하삼림이라고 불리는데 까마득한 아래로 숲을 내려다보는 기분도 특이하고 용암이 굳을 때 갈라진 좁은 틈 사이를 흐르는 천지물의 웅장한 소리도 가슴을 시원하게 해주었습니다.nbsp이로써 하루종일 행복했던 백두산 기행이 모두 끝났습니다. 즐거운 마음으로 내려오다 생각하니 어제, 그제 우리 선조들의 유적을 보면서 느꼈던 기쁨보다 오늘 백두산 천지가 우리에게 준 기쁨이 더 컸던 것 같습니다.nbspnbsp또한 백두산 정기를 받아 모두들 피곤하지만 환한 표정으로 저녁식사를 하고 “독립운동사”에 대한 스님 강연을 들었습니다.nbspnbspnbspnbspnbsp모두에 오늘 둘러본 백두산에 대해 다시 정리해 주신 후 19세기 중반 이후 형성된 이민의 역사와 독립운동사에 대해 상세하게 설명을 해주셨습니다. 아울러 이번에 항일독립유적지를 기행하면서 무엇을 염두에 둘 것인지와 통일운동과의 연결고리를 제시해 주셨습니다. nbspnbspnbspnbspnbsp“통일을 낙담으로만 봐서는 안 되고 가능하도록 만들어야 합니다. 대부분 통일이 언제 되는지 물어보는데 통일은 언제 오는 것이 아니라 2020년에 되도록, 또는 가능하다면 더 빨리 되도록 현실을 감안해서 우리가 만들어 내야 합니다. 통일은 주어진 환경에 따라 오기도 하고 인연이 돼야 한다고도 말할 수는 있는데 무엇보다 조건이 무르익어야 하고 그 조건을 활용할 수 있는 인간의 의지와 지혜가 있어야 합니다. nbspnbspnbspnbspnbsp그런 면에서 통일운동은 독립운동처럼 목숨을 걸어야하는 것도 아닌데 무엇 때문에 두려워하는지 모르겠어요. 통일운동 한다고 아직 칭찬은 어렵고, 나쁘면 비난받을 소지가 있지만 중차대함은 독립보다도 더 큰 일입니다. 백년의 상처 치유를 넘어 천년의 한을 풀고 미래 동아시아 문명에 초석을 다지는 일입니다. nbsp독립운동의 현장에서 정규군이 아닌 사람들을 통해서 배워야 합니다. 그들의 희생 없이 어떻게 지금의 대한민국이 있겠어요? 당장의 성공과 실패보다 훨씬 더 중요한 게 그 정신입니다. 이게 정말 바른 길이라면 승패를 넘어서서 할 수밖에 없다는 의지와 지혜가 필요하고 가능하면 현실 속에서 구현될 수 있도록 좋은 전략과 전술을 가지고 하는 지혜가 필요합니다. nbspnbspnbspnbspnbsp이제 동북아누비길 4일째의 밤이 깊었습니다. 매일 강행군이 계속되지만 하루 이틀이 지나자 몸이 적응하고 정신이 맑아지는 것이 신기할 따름입니다. 우리 조상들의 도움과 백두산의 정기가 정말 있는 것이 아닐까 싶습니다. 내일은 독립을 완성시킬 통일을 이루어야 할 의병이 꼭 가봐야 할 항일독립운동 유적지에 갑니다.
2014.7.3.동북아 역사 누비길 셋째날
오늘은 국동대혈과 압록강 유역, 그리고 발해 유적 영광탑을 돌아보는 일정이었습니다. 우리 통일의병들은 3시 20분에 기상하여 4시에 국동대혈을 향해 출발했습니다. 처음에는 의병들이 신병이라서 아침 출발 시간을 제대로 맞추지 못하는 경우도 있었는데 이제 3일째가 되자 청년들까지도 잘 일어나 시간에 맞춰 움직이는 것이 눈에 보입니다. nbspnbspnbspnbspnbsp이른 시간에 출발해서인지 대부분의 사람들이 버스 안에서 잠이 들었는데 한숨 자고 나자 국동대혈에 도착했다고 내리라고 합니다. 국동대혈로 올라가는 계곡 입구가 홍수 때문인지 전과 달리 모습이 변해 있었습니다. 스님은 옛날에는 아주 보기 좋았는데 계곡 길이 망가졌다며 안타까워하셨습니다.nbspnbspnbspnbsp신선한 공기를 마시며 길을 따라 걸어 올라가니 기분이 상쾌해지는 걸 느끼면서 관음굴에 도착했습니다. 관음굴은 국동대혈 올라가기 직전에 있는 대혈로서 그 지역의 민간신앙을 모시는 곳입니다. 유화부인의 모습일 것 같은 아름다운 여신상이 한가운데, 그 양쪽에는 각각 의신과 재신이 모셔져 있어서 3가지 복 즉, 행복, 건강, 부를 비는 곳입니다. 로마에 가면 로마법을 따르듯이 우리 의병들도 각자의 행복과 건강 그리고 부를 빌었습니다만, 아마도 우리 의병님들이라면 통일이라는 결과 뿐 아니라 통일을 하는 과정에서의 행복과 통일 운동할 수 있을 만큼의 건강. 군자금을 낼 수 있는 정도의 부를 빌지 않았을까 기대해 봅니다. nbspnbspnbspnbspnbsp관음굴에서 조금 더 올라가면 유리왕의 전설이 있는 사랑 바위가 있어 구경을 했는데 3가지 복에 사랑까지 좋은 건 다 가지겠네 하고 서로 농담을 나누었습니다. 이렇게 즐거운 마음으로 조금 더 올라가니 고구려 시대에 왕이 천제를 지내던 국동대혈에 도착했습니다. nbspnbspnbspnbspnbsp나라의 동쪽에 있는 큰 동굴의 의미로서 처음에는 어느 나라를 의미하는지 몰랐다가 국은 수도, 즉 국내성을 의미하는 것이 밝혀졌다고 합니다. 양쪽이 트인 넓은 동굴로서 한쪽 면에는 하늘로 통하는 동굴이라는 뜻의 통천동이라고 큰 글씨로 쓰여져 있고 고구려 당시 왕의 세속적인 통치력과 천손으로서의 제사장을 겸하는 제정일치 문화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우리 통일의병도 천손의 후예로서 천 오백여년 만에 이곳 국동대혈에 찾아와서 간략하게나마 하늘에 천제를 지냈는데 여기 참여한 한 청년 의병은 천제를 지내고 나니 천손의 후예라는 것이 마음에 와 닿고 이 지역이 처음엔 낯설었는데 지금은 전부터 살던 곳처럼 친숙하게 느껴진다고 소회를 밝히기도 했습니다. 작년에는 그냥 산길이었던 곳에 계단과 난간이 만들어지고 길을 닦는 등 큰 돈을 투자하여 유원지로 개발된다는 소식에 우리의 신성한 국동대혈이 중국인들의 상술에 어떤 피해를 입게 될지 마음이 무거워졌습니다.nbspnbspnbspnbspnbsp다시 숙소로 돌아와 아침을 먹고 림강을 떠나 압록강을 따라 장백으로 향했습니다. 어제부터 보아 온 압록강 건너편 북한의 대표적인 풍경은 낡은 집과 누렇고 볼품없이 자라는 농작물, 그리고 한없이 계속되는 뙈기밭입니다. 어떻게 저렇게 가파른 곳에 올라가 농사를 지을 수 있을까도 불가사의한데 가뭄 때문인지 작물조자 제대로 되지 않는 것 같아 보는 내내 마음이 안타깝습니다. nbspnbspnbspnbsp스님 말씀대로 압록강을 따라 계속 뙈기밭이 계속되는 모습은 좋은 건 아닐지라도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될 만큼 대단한 것은 맞는 것 같습니다. 저런 걸 내셔널 지오그래픽스의 다큐멘터리물처럼 우리도 북한의 뙈기밭 풍경을 동영상으로 찍어서 “뙈기밭을 아십니까?인간의 한계를 초월한 극단의 생존 전략”같은 제목으로 유투브에 올려서 한국은 물론 전세계 여러 사람들과 공유하면 어떨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북한에는 산불이 자주 난다는데 그건 뙈기밭을 만들기 위해 불을 내다가 생긴 것이라고 합니다. 강에서 특이한 것은 여러 사람들이 강에서 허리를 숙이고 뭔가를 채취하는 것 같았는데 첨엔 고동 같은 것을 잡는 것인가 했는데 알고 보니 사금을 채취하는 것이라고 합니다.nbspnbspnbspnbspnbsp장백으로 가는 내내 압록강변을 따라 올라가는데 간간히 북한 주민들이 보이면 친척이라도 찾은 듯 모두들 반가워했습니다. 강에서 빨래를 하거나 목욕을 하는 모습이 자주 보이고 특히 여자들이 모두 벗고 목욕을 하는 장면을 목격했을 때는 다소 문화적인 충격이 있었습니다. 개인 집에는 목욕을 할 수 있는 시설이 없고 전기 사정도 안 좋아 밤에 씻을 수도 없을테니 생활고에 따라 부끄러움의 수위도 달라지는 건가 싶어 어쨌든 대한민국에 태어난 게 정말 축복이란 생각이 들었습니다. 간간히 강변에서 한가로이 풀을 뜯는 소들의 모습을 볼 수 있어서 그곳 주민들은 생활이 괜찮은가 했는데 북한의 소는 개인 소유가 아니고 협동농장 소유라서 소 관리 담당자가 있다고 합니다.nbspnbspnbspnbspnbspnbsp13도구에 들어서서 길에서 파는 수박을 사서 중간에 버스를 세우고 내려서 오랜 버스 탑승으로 지친 몸도 풀어주고 달콤한 수박을 나눠 먹으니 피로가 풀리는 것 같았습니다. nbspnbspnbspnbspnbsp압록강을 따라 계속 달리면서 건너편 북한 땅에 산사태 모습에 안타까워하고 아이들에게는 손을 흔들고 또 끝없이 펼쳐지는 뙈기밭을 보면서 스님의 설명을 듣다 보니 어느새 북한의 혜산이 훤히 건너다보이는 영광탑에 도착했습니다. 탑 앞에 간단하게 제물을 차려놓고 예불을 올렸는데 유일한 발해의 유적에서 100 여명이 예불을 올리는 소리는 아름답고도 감동적이었습니다. nbspnbspnbspnbspnbsp“영광탑은 발해시기의 탑으로 그 밑에는 무덤으로 되어 있습니다. 보통은 탑 안에 화장된 유골이 있는 것이 탑인데 발해는 매장의 전통 문화에 사리탑을 세우는 불교 문화가 결합되어 능 위에 탑이 세워져 있습니다. 이런 종류의 탑은 한국에도 하나가 더 있는데 바로 경주에 있는 문무대왕의 능지탑입니다.”nbspnbspnbspnbspnbspnbspnbsp영광탑 참배를 마친 후 통화 포도주와 함께 저녁 식사를 맛있게 하고 나서 스님께서는 독립운동사와 북한의 현실에 대해 강의를 해주셨는데 통일의병이라면 보복의 관점보다는 이웃 나라에 대한 열린 마음과 북한 체제에 대해서도 양쪽 측면을 다 고려하는 지혜를 가질 것을 당부하셨습니다. “우리가 감정에 치우쳐 있으면 손실을 불러오는 행동을 할 때가 있습니다. 그러니 앞으로 통일의병은 상대에 대해 원수를 갚겠다가 아닌, 감정보다는 이성에, 과거보다는 미래지향적으로 봐야 합니다. 민족 정체성을 분명히 하면서 이웃 민족에 대해 열린 마음을 가져줘야 한다는 거예요. 그러면 북한이라는 나라에 대해 이해할 필요가 있어요. 우리가 북한에 대해 나쁜 이미지만 갖고 있는데, 북한이 그런 집단이라면 미국이라는 나라와 겨룰 수가 없겠죠. 다른 요소가 또 있다는 이야기지요. 북한의 체제에 대해 긍정8226부정적인 면을 동시에 봐야 합니다.”nbspnbspnbspnbspnbsp 또한 1945년 독립 이후 북한의 형성 과정과 주변 강대국과의 역학 관계 속의 근현대사 과정을 자세하게 설명해 주셨습니다. 또한 일부 보수 세력이 주장하는 흡수 통일의 문제점 및 대안에 대해서도 관점을 잡아 주셨습니다.“만약 북한 사회를 즉시 해체하고 남한에 흡수시킨다면 혼란이 엄청나게 발생할 거예요. 동서독은 그전에 사전준비를 굉장히 해놓았는데도 문제가 발생했는데, 우리는 현재 이 상태로라면 엄청난 혼란이 발생하게 될 겁니다. 그래서 이 상황을 오히려 이해하고나면 서로 다른 것을 동질화 시키는 게 아니라, 다른 것을 인정하고 서로 협력해서 공존의 체제로 간다면 이질적 문제가 크고 작다는 건 문제가 안 돼요. 지금은 이질적 문제를 인정하지 않기 때문에 더 복잡한 거예요. 서로 다른 사람이 같이 살려면 서로의 성질을 인정하고, 공통점을 같이 하면 내일이라도 같이 사는 게 문제될 것이 없어요. nbspnbspnbspnbspnbsp북한은 역사적으로 봤을 때 민주화의 경험이 없잖아요. 일당독재일인독재 시스템으로 왔으니까. 그런데서 북한 주민의 아픔을 생각해야 합니다. 통일을 하려면 국토 얘기보다 젤 먼저 가장 고통 받는 북한 주민이 혜택을 입어야 합니다. 그런 면에서 인도적 지원은 도덕적으로 해야 하는 것일 뿐 아니라 통일로 가는 지름길입니다. 또한 북한의 인권문제에 대해서도 관심을 가져야 하는데 이는 체제 갈등 문제와 연관되어 있기 때문에 지혜롭게 대처해야 합니다. 통일은 수많은 상처를 치유하는 성격도 있고 미래의 동아시아 문명시대를 여는 기초가 되므로 미래를 생각하면 통일은 결코 종착점이 아닙니다. 미래의 비전을 달성하기 위해서는 통일 없이는 불가능하기 때문에 통일은 그 출발점이고 결국 통일된 대한민국이 어떤 세상을 만들고 주변국과는 어떤 관계를 만들지 구상해야 합니다.”nbspnbspnbspnbspnbsp이렇게 통일의 과정 뿐 아니라 통일한국의 비전까지 보여주시니 우리의 할 일이 많구나 하고 가슴이 설레이는 한편 어깨가 무겁기도 합니다.nbspnbspnbspnbspnbsp내일은 하루종일 백두산을 구경하는 날입니다. 제발 날씨가 맑아 천지를 볼 수 있기를 빌어봅니다.
2014.7.2. 동북아 역사 누비길 둘째날
오늘은 통일의병 동북아누비길 둘째날입니다. 4시 반 출발 예정이었으나 이런저런 사정으로 5시가 다 되어서야 출발할 수 있었습니다.고구려의 첫 수도인 환인에서 두번째 수도인 집안을 향해 약 3시간 이동하게 되는데 환인보다 따뜻하고 좀 더 살기 좋은 자연조건을 찾아간 것이기도 하겠지만 외부인인 주몽에 이어 유리왕까지 외부에서 들어오다 보니 토착 세력에 대한 왕권 강화를 위해 천도하지 않았나 추측하게 됩니다. nbspnbspnbspnbspnbsp오늘의 첫 방문지인 장군총에 가는 길에 잠시 압록강변에 들러 강 건너 북한의 뙤기밭을 함께 보고 사진을 찍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처음으로 가까이 북한의 모습을 보는 참가자들은 흥분을 감추지 못합니다. nbsp몇 년 전에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된 뒤 갈 때마다 입구나 주변 모습이 달라지는 장군총은 초기엔 광개토대왕릉으로 알려졌다가 실제 광개토대왕릉이 발견되자, 다시 장수왕릉으로 추정되고 있는 적석무덤입니다. 발견 당시의 장군총 부근엔 약 20 여호 정도의 사람들이 살고 있었는데 그들은 누구의 무덤인지 모르고 대략 어느 장군의 무덤일거라 하여 지금까지 장군총으로 불리우고 있습니다.nbspnbsp역사기행 참가자들은 시원한 그늘에 모여 가이드로부터 장군총에 대한 설명을 들었습니다. 장군총은 몇 가지 특징이 있는데 그 하나가 계단식으로 단을 쌓되, 45도 각도로 비스듬하게 쌓아 올린 것입니다. 또한 단순히 돌을 쌓은 것이 아니라 아래층 돌에 홈을 파서 윗돌을 끼워넣어 돌이 밀려가지 않도록 한 것이 두 번째 특징입니다. 그다음에 거대한 크기의 호석을 한 면에 3개씩 받쳐 밀려나오는 것을 막았습니다. 이 호석도 그냥 받쳐 놓은 것이 아니라 호석이 놓이는 바닥에 큰 돌을 박아놓고 중간에 쐐기돌을 놓아 호석도 밀리지 않도록 한 걸 보면 놀라움을 금할 수 없습니다. 또 무덤의 입구와 제단의 위치가 한족과 고구려 사이에 서로 다르다는 것을 들으니 문화의 차이가 신기했습니다. 우리의 문화에서는 문 쪽에 머리를 두게 되고 또 제단을 망자의 발쪽에 두어서 제사를 지내면 일어나서 바로 인사를 받을 수 있게 하는 반면 한족의 경우에는 제사를 지낼 때는 망자의 머리가 제단 쪽에 둔다고 합니다. 이런 특징을 안다면 설사 무덤의 주인이 누군지 몰라도 고구려인인지는 알 수 있을 것 같습니다.nbsp가이드의 설명에 뒤이어 스님이 보완 설명을 해주셨습니다.nbspnbspnbspnbspnbsp“초기엔 천손의 상징으로 석실이 지상에 있다가 5세기 이후로는 다른 문명의 영향을 받아 지하로 들어가게 됩니다. 원효대사가 경기 지역에서 무덤에 들어가 하룻밤 자다가 해골에 든 물을 마시는 이야기가 있잖습니까? 지금 얼핏 들으면 무덤에 어떻게 들어가냐 하지만은 경기도는 부여 문명을 계승한 백제 땅이었기 때문에 지하무덤이라 할지라도 입구가 있고 들어갈 수 있는 공간이 있었습니다. 신라 사람인 원효에게는 동굴처럼 보였겠죠. 이런 특징으로 고구려 무덤은 전부 도굴당하고 신라 무덤은 도굴이 어려워 금관 같은 유물이 보존된 것으로 볼 수 있습니다.”nbspnbspnbspnbspnbsp장군총 뒤편 오른쪽으로 가면 작은 규모의 묘가 하나 더 있는데 제 2부인의 묘로 추정됩니다. 또 발굴을 해보니 처음엔 배묘로 알려진 북쪽 편의 건축유지가 실제로는 제단인 것으로 밝혀졌다고 합니다.nbspnbspnbsp “처음 왔을 때 배묘가 5개라 해서 첩이 5명이라는 설명을 들었는데 발굴을 해보니 배묘가 아니라 제단이란 게 밝혀졌습니다. 고구려 문명이 중간에 끊기고 문화를 모르는 중국인들이 이를 해석하다보니 이런 일이 생기는 겁니다. 문명을 계승하지 않으면 유적의 의미도 사실상 알 수 없게 되는 겁니다.“nbsp역사기행을 하면서 우리 선조들의 유적들이 제대로 관리되지 않는다는 인상을 받은 터에 이 말씀을 들으니 마음이 살짝 무거워집니다.nbspnbspnbspnbspnbsp다음 여정은 광개토대왕릉비와 광개토대왕릉이었습니다.nbspnbsp 광개토대왕릉비는 우리뿐만 아니라 꽤 많은 중국인들도 구경하러 오는 것을 보니 왠지 가슴이 뿌듯해지기도 했습니다. 왜구의 침략으로부터 신라에 5만의 군사를 보내 도와주는 내용을 들으면서 당시에도 동족의식이 있었나 하는 궁금증이 일어났습니다. 또 힘이 강한 패권 국가라는 것은 당대에는 위용을 자랑하지만 어떻게 처신하느냐에 따라 반드시 보복의 역사가 반복되는 것을 보면 역사에도 인연과보의 법칙이 적용되는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정복욕으로 남의 나라를 침략해도 안 되고 그렇다고 굴욕적인 항복으로 평화만을 구하는 것도 민족에게 역사의식의 상처와 열등의식이 남는다는 점에서 리더의 역할이 매우 중요한 것 같습니다. 금관가야와 신라의 합병에 의한 통일의 중요한 의미를 스님께서 왜 그리 강조하시는지 이곳 동북아에 와서 실감하게 됩니다. nbsp광개토대왕릉은 장군총보다 2배 가까이 크게 만들어졌지만 광개토대왕 즉위와 동시에 만들기 시작한 지 22년 만에 갑자기 사망했기 때문에 강돌로만 쌓지 못하고 일반 돌을 사용해서 많이 무너져 있어 장군총 같은 완전한 모습을 볼 수 없습니다. nbspnbspnbspnbspnbsp고구려 벽화를 보기 위해 찾아간 5회분 5호묘에서는 팀을 나누어 설명을 듣기 위해 지하 무덤으로 들어갔는데 32도가 넘는 무더위에 지친 참가자들은 무덤 전실에 들어서면서부터 매우 시원한 기온에 환성을 지르자 일행 중 한분이 “남의 무덤에 들어가면서 이렇게 좋아하는 사람들 첨 본다”하여 모두 웃었습니다. 그 어두운 석실 내에 가운데 남자의 관대가 있고 입구에서 봤을 때 왼쪽에 제1부인의 좀 작은 관대, 오른쪽에 제2부인의 더 작은 관대가 놓여있습니다.사방에 그려진 그림들을 손전등으로 비춰가며 자세히 설명을 해주셨습니다. 어떻게 그 안에 그림을 그렸으며, 약 천오백년이 지난 지금도 어떻게 염료의 색을 유지하고 있는지 불가사의해 보입니다. 이미 불교가 전해진 후에 그려져서 연꽃 등의 불교 문화도 엿볼 수 있었습니다.nbspnbspnbspnbspnbsp5호묘를 보고 나와서는 전시관에 전시되어 있는 4호묘의 벽화에 대해 스님으로부터 설명을 들었습니다. 일월신도, 씨름도, 수렵도, 예불도, 생활도 등 다양한 그림 가운데 옷을 입은 소가 그려진 그림 아래에 중국의 농사의 신인 신농씨라고 쓰여 있는데 실은 고구려 시대의 마가, 우가, 저가, 구가, 양가 중 농사를 관장하는 우가를 그린 것이라고 설명해주셨습니다. 장군총에서의 느꼈던 것처럼 우리의 유적이 남의 땅에 있다 보니 허술하게 관리되고 잘못 해석되는 것이 안타까웠는데 그러면 우리는 어떻게 할 것인가 생각해 보게 됩니다. 그렇다고 다시 남의 나라를 침략해서 되찾을 수는 없는 것이 현실입니다. 비록 우리 땅이 아니라 하더라도 그 유적을 연구하고 그 의미를 정확하게 널리 알리는 것이 최선이라는 생각이 듭니다.nbsp다음은 사방이 둥글게 산으로 둘러싸인 천연의 지형을 가진 환도산성으로 향했습니다.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의 AAAA 등급으로 등재된 곳으로 망루에 올라 멀리 국내성을 바라보며 현지 가이드의 설명을 들었습니다. 그 중 재밌는 것은 우리 민족이 기마 민족이라는 증거 3개를 이야기하셨는데 그 한 가지가 급한 성격입니다. 중국의 한족들은 수레 민족이기 때문에 만만디로 대부분 국도로 다니기 때문에 고속도로가 한산하다고 합니다. 두 번째 특징으로는 옷고름의 위치입니다. 옷고름이 가운데 있지 않고 한쪽 끝에 있는 것은 말을 타고 달리는 데 유리하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마지막으로는 버선코를 들었는데 말을 탔을 때 발걸이에 발을 걸고 달리다 보면 발이 빠져나오는 걸 막기 위해 버선코의 모양이 그렇게 된 것이라고 합니다. 우리가 갖고 있는 것인데도 그게 기마민족의 특징이라고는 생각지 못했는데 조선족 분들은 중국 문화와 한국 문화를 다 같이 접하기 때문에 이런 특징이 보인다고 합니다. nbspnbspnbspnbspnbsp환도산성과 짝을 이루는 평지성인 국내성은 몇 년 전부터 유네스코에 등재된 이후 해마다 더욱 정리가 되어가는 모습입니다. 아직은 아파트 단지를 싸고 있지만 곧 복원이 완성되면 얼마나 멋질까 기대가 됩니다. 성벽을 따라 걸어가면서 국내성에 대한 설명을 들었는데 특히 서문 특징에 대해 스님께서 아주 상세하게 설명을 해주셔서 이제 공자형 성문의 특징에 대해서는 확실하게 알 것 같습니다. nbspnbsp 남쪽 성벽을 따라 걸어가다 보니 아침에 잠시 들렀던 압록강변에 다시 도착했습니다. 아침엔 압록강 건너 북한땅의 뙤기밭이 뭔가 파릇파릇한 느낌이었는데 한낮의 더위가 아직 남아있어서인지 늦은 오후에 흙색으로 드러난 뙤기밭은 더욱 안쓰러움을 자아냅니다. 잠시 자유시간을 가진 뒤 근처에 있는 조선족 식당에 들러 즐거운 저녁식사를 한 다음 호텔로 들어가 스님으로부터 저녁 강의를 들었습니다. nbsp오늘은 단군조선61600부여61600고구려의 역사에 대하여 강의해 주셨습니다.“우리 역사는 크게 환단시대, 부여8226고구려8226발해시대, 고려8226조선시대 이렇게 3 시대로 나눌 수 있습니다. 환단시대는 상고사로서 이 부분이 많이 왜곡되어 있어요. 상고사 부분에 대해서 확신이 없기 때문에 중국문명의 아류 혹은 변방이라는 인식이 머릿속에 뿌리깊게 자리잡고 있는 겁니다. 이게 중국에 대한 사대 혹은 열등의식이라고 볼 수 있어요. 그리고 근대에 들어와서 일본에 대한 피해의식이 있습니다. 일본에 대한 적개심도 있지만 일본에 대한 피해의식이 있습니다. 그래서 일본에 대해 이야기 하면 감정이 먼저 앞서게 됩니다. 현대사에 대해서는 서양열강인 미국에 대한 열등의식과 고마움이 있습니다. 이렇게 우리의 역사에 대한 열등의식이 크게 세 가지가 있는데 중국에 대해서는 상고사에 대한 정확한 이해가, 일본에 대해서는 독립운동사가, 미국에 대해서는 현대 문명을 뛰어넘어 열등의식을 반드시 극복해야합니다.“ nbspnbspnbspnbspnbsp더불어 오늘 둘러보았던 유적들의 주인공인 고구려의 역사에 대해 상세히 말씀해 주시면서 이번 역사기행의 의미를 명확하게 짚어주셨습니다. nbspnbspnbspnbspnbsp“오늘 역사기행의 의미는, 고구려가 부여를 계승했고 발해에게 계승되었다 라는 것을, 직접 손으로 만지고 발로 딛고 느껴보자는 것입니다. 그리고 왜 지금하고 고구려의 기상이 다른가? 어디서부터 단절이 왔기에 이러한 현상이 생겨났는가에 대해서도 이야기해야 합니다.이러한 부분이 정립이 되어야 통일에 대해서 생각할 때, 평화라는 소극적 의미의 통일을 넘어서서 남북이 하나 되어야 하고 더 나아가서 원래의 모습을 되살려야 된다는 의식이 생길 수 있습니다. 남북이 하나 되는 것은 지난 100년의 역사를 치유하는 것이지만, 원래의 모습을 되살린 다는 것은 천년의 한을 푸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것을 넘어서서 새로운 문명을 창조해야 한다는 겁니다. 미국으로부터 전파된 문명을 대체할 새로운 문명이 동양에서 일어나야 한다고 한다면, 그 문명은 우리가 만들어야 합니다.“ nbspnbspnbspnbspnbsp어제, 오늘 기행을 강행군을 하며 다녀서 몸은 피곤하지만 스님 강의를 듣고 나니 새로운 문명을 창조해야 한다는 희망으로 가슴이 두근거리는 것 같습니다. 내일은 국동대혈에 가기 위해 새벽 4시에 출발합니다.
2014.7.1 동북아 역사 누비길 첫째날
오늘은 통일의병, 평화재단의 리더십 아카데미 출신들과 함께 하는 ‘2014 동북아 역사 누비길’을 시작하는 날입니다. 이른 아침 6시에 전국 각지에서 약 90여명이 인천공항에 모여 동북아의 중심지 심양으로 출발했습니다. 심양공항에 도착 후 창밖으로 보이는 산하의 모습은 전혀 낯설게 느껴지지 않습니다. 마치 어릴 때부터 말로만 듣던 할아버지의 고향을 찾아 가는듯한 기분이 들어 설레이기도 합니다. 심양에서 첫 여정인 백암산성으로 가기 위해 2대의 버스에 나눠 타고 가면서 버스 안에서 스님으로부터 심양과 백암산성에 대해 설명을 들었습니다.nbspnbspnbsp심양은 배달문명인 요하문명의 영향권에 있었는데 고조선시대에는 고조선의 땅이었고 그 뒤로 부여, 고구려, 발해, 거란, 여진, 원, 명, 청, 만주국에 이르기까지 많은 나라가 흥망성쇠를 거듭하는 가운데 동북아시아의 중심이었다고 합니다. 심양에서 백암산성으로 가는 길은 대련으로 가는 고속도로였는데 고구려가 당나라의 침략을 막기 위해 연개소문이 천리장성이 쌓았던 길이라고 합니다. 심양 부근 일대는 또한 철광과 석탄자원이 풍부한 곳으로 제철 등 중화학 공업단지이기도 한데 자원이 달라서인지 울산의 석유화학단지와는 사뭇 다른 모습을 보여줍니다.nbspnbspnbspnbspnbsp백암산성으로 가는 버스 안에서 바라본 산과 들의 모습은 우리나라의 산하와 그리 다르지 않고 강원도의 힘이 좀 크게 느껴지는 정도일 뿐, 이국적인 느낌이 전혀 없습니다만, 사람들이 살고 있는 집의 모양만은 우리와 많이 달라 보입니다. 창밖 풍경을 보다 보니 고조선 시대, 고구려, 부여시대의 우리 조상들은 어떤 집에서 어떤 모습으로 살았을까 타임머신이 있다고 꼭 가보고 싶을 만큼 궁금해집니다.nbspnbspnbsp심양에서 출발한지 약 2시간 정도 되자 어느덧 왼쪽으로 멀리 백암산성이 보입니다. 참가자들이 모두 버스에서 내리고 스님이 앞장서서 올라가시면서 백암산성의 특징을 상세하게 설명해 주셨습니다. 고구려의 성은 평지성과 산성이 짝을 이루는 것이 특징인데 백암산성은 천혜의 조건을 이용하여 최전방에서 고구려를 지키는 역할을 했다고 합니다.nbsp65279nbsp백암산성이 뚫리면 바로 단동의 봉황성이 뚫리고 그 다음엔 압록강을 넘어 바로 평양성으로 들어갈 수 있기 때문에 백암산성은 군사상8226교통상 매우 중요한 위치에 있습니다. 백암산성의 한쪽 낭떠러지 아래 흐르는 태자하는 물이 많이 말라 곳곳이 바닥이 드러나 있지만 물살이 힘차게 느껴지는 한편 그 유유함이 든든해 보입니다. 백암산성은 고구려 산성의 특징을 잘 보여주고 있는데 성을 보호하는 덧성과 치, 그리고 독특한 축성 방식이 대표적입니다. 전엔 잘 보이지 않았지만 발굴 작업으로 드러난 남쪽 성벽에는 분명하게 덧성을 볼 수 있습니다. nbsp65279nbsp65279스님이 초기에 이곳에 오셨을 때는 고구려의 산성의 특징은 독특하며 그 유래를 찾을 수 없다고 얘기 들었지만 지금은 요하 문명의 유적이 알려져 그곳에서 고구려 산성의 특징을 엿볼 수 있어 고구려가 요하문명 즉, 배달문명을 계승했다는 걸 알 수 있다고 합니다. 이런 천혜의 요새를 찾아내고 자연 그대로의 형태를 이용하여 적절하게 성을 쌓는 고구려인들의 지혜가 감탄스럽기도 하면서 한편으로는 적의 침입을 발견했을 때의 병사의 심정이 상상이 되고 요동성이 무너졌을 때 너무도 힘없이 함락된 걸 보면 철옹성도 소용없고 지금 우리의 평화가 얼마나 중요한지 되새겨집니다.nbspnbsp백암산성이 있는 곳에서 평야지대가 끝나고 백두산까지 산악 지대가 계속되고 다음 여정인 홀본산성으로 가는 길은 고구려가 요동 정벌을 나갔던 길이기도 했고 반대로 이 길을 통해 3번의 침략을 당했다는 스님 말씀을 들으니 역사의 아이러니를 느끼게 됩니다.nbspnbspnbsp다음 도착한 곳은 고구려의 첫 수도, 홀본산성입니다. 중국에서는 다섯 여신의 전설이 내려오는 오녀산성이라 불리는 곳이기도 합니다. 길고 가파른 계단을 오르면서 약 20여년 전 스님이 북한 아사자를 돕기 위해 현장 조사하러 오셨을 때 우연히 이곳 홀본산성을 찾아오게 된 사연을 얘기해 주신 덕분에 스님은 숨이 차셨겠지만 우리들은 재밌게 올라갈 수 있었습니다. nbspnbspnbspnbsp계단을 다 올라가서 숨을 고르며 서쪽 성문의 특성에 대해 설명 듣고는 전망이 좋은 망대에 들러 사진을 찍기도 했습니다. 다시 동쪽으로 조금 내려가다 보면 전망이 기가 막힌 장소가 나옵니다. 날씨가 맑으니 멀리 내려다보이는 풍경이 마치 백두산 천지와 견줄 수 있을 만큼 멋지게 펼쳐져 있어서 스님께서는 이번에 천지를 못 볼 수도 있으니 실컷 봐두라고 농담을 하셨습니다. 정말 천지와는 사뭇 다르지만 역시 우리나라에서는 좀처럼 볼 수 없는 광활한 경관인 것은 분명한 것 같습니다. 원래 저 아래 내려다보이는 환인 지역에는 고구려의 고분들이 많았는데 댐을 건설하면서 모두 수몰되었다는 설명을 들었을 때는 속상하기도 했지만 물속에 있다고 해서 없는 것이 되는 것도 아니고 또 어쩌면 지상에 있는 것보다 더 보존이 잘 될 수도 있다고 위안해 봅니다. 하지만 중국은 유적은 있되 역사가 없고 우리는 역사는 있되, 유적이 없다는 스님 말씀에 안타까움이 이는 것은 어쩔 수 없는 것 같습니다. nbspnbspnbspnbsp좁고 매우 가파른 계단을 잔뜩 긴장하면서 내려가다 보면 말에 물을 먹였다는 음마지가 나오고 좀 더 내려가면 동문 성벽에서 공자형 성문의 모습을 만날 수 있습니다. 스님께서는 힘들게 왔는데 다 보고 가야 한다며 가파른 지형에 쌓아놓은 동문 성벽의 특징과 공자형 성문의 모습을 한 사람이라도 다 알 수 있도록 정성스럽게 설명해 주셨습니다. nbspnbspnbsp산을 내려가서는 박물관에 가서 방금 보고 온 홀본산성의 모습을 다시 설명해 주셨고 폐관 시간 때문에 서둘러 여기 저기 둘러본 후 박물관을 나오니 초생달이 우릴 반겨 주었습니다. 빠듯한 일정 때문에 빵 하나로 점심을 때운 일행은 저녁 식사를 맛있게 하고 호텔로 이동 후 바로 가방만 로비에 둔 채 강의장에 모여 스님의 강연을 들었습니다. 다들 피곤할 것을 예상하시고 사람들과 눈을 마주칠 수 없는 자리에 앉지 않으시고 맨 앞사람들 사이에 서서 사람들이 지루해 하거나 졸지 않도록 배려하시면서 강의해 주셨습니다.이번 강의는 민족의 시원에 대한 것이었습니다. nbspnbspnbspnbspnbsp“배달 문명은 동북지역의 모든 민족에 해당이 되는 거예요. 그 중 ‘민족의 주류, 가장 장자가 우리 민족이다‘라고 할 수 있어요. 우리 민족 밑에 있다가 제일 먼저 독립해서 나라를 만든 게 선비족, 연나라, 그 다음에 제나라. 연나라는 3,4세기에 후연을 만들어서 고구려와 각축을 하죠. 그 다음에 흉노, 그 다음이 돌궐, 지금의 몽고, 그리고 거란의 요나라, 여진의 금나라, 몽골의 원나라로 이어지지요. 그러나 이쪽은 초원에 살기 때문에 우리처럼 단일국가라고 보기보다는 추장의 연합체 같은 성격을 갖는다고 볼 수 있어요.”거란, 여진, 돌궐, 흉노 등의 민족은 우랄 알타이어계로 오히려 한족보다 우리에게 가까운 사촌 같은 민족이지만 미개한 오랑캐로 인식이 남아있는 것은 중국에 대한 사대주의의 영향 때문인 것 같습니다. 또한 이러한 민족과 이들의 국가를 모두 중국으로 인식하는 오류에 대해 지적해 주셨습니다. nbspnbspnbspnbsp“민족의 시원에 대해 알아야 하고 고구려와 발해의 역사에 대해서도 알아야 합니다. 우리 손에 잡히고 현재 볼 수 있는 건 고구려8226발해에요. 고구려 발해가 도대체 어디서부터 왔느냐 하면 부여에요. 부여의 뿌리는 조선이고 조선의 뿌리는 배달인데, 배달과 조선에 대해서는 아무런 유적이 없는데 지금 요하 상류에서 이런 거대한 유물과 유적이 발굴이 되어 있어 중국과 협력해서 연구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요하 문명은 중국과 우리 사이에 논쟁하기보다는 동아시아 문명의 풍요로움이라고 볼 수 있고 세계 문명가운데 가장 앞선 문명이라고 해석할 수 있어요.” nbspnbspnbspnbspnbsp우리 민족의 시원에 대해 간명하게 설명해 주시며, 국사시간에 배웠지만 잘 꿰어지지 않는 중원의 역사를 일목요연하게 정리해 주셨습니다. 지금 우리가 얼핏 계속 중국 땅이었을 거라 생각되는 동북아시아의 땅이 실제로는 중국 땅이 아닌 기간이 훨씬 많았음을 일깨워주실 때 우리도 모르게 중국이 원하는 시각으로 보고 있는 게 아닌가 해서 흠칫 놀라게 됩니다.nbspnbspnbspnbspnbsp“이 동북 땅은 원래 중국이 아니었어요. 오히려 동북지역 사람들이 중원을 점령한 게 더 많습니다. 고조선이 있었고 그 다음에 올라오면서 금나라, 원나라, 청나라 이게 다 중원의 주인이었어요. 그러나 대충 보면 북경지역을 경계로 해서 기력이 세면 내려갔다가 밀렸다가 이런 거예요. 역사기록을 할 때 동아시아 전체 역사를 알고 우리 역사를 알아야 하는데 항상 부족한 게 현재 우리 조선민족만 보고 하니까 역사가 왜소해 보이는 거예요. 크게는 문명사로 봐야 돼요. 동북민족과 남방민족이 세력을 겨루는 형세를 보고 동북민족 중에 누가 주도를 잡느냐를 봐야 합니다. 순서로 보면 다시 우리한테 기회가 온 거예요, 문명의 순환론으로 본다면.”nbspnbspnbspnbsp한국의 역사 뿐 아니라 이와 관련된 중국의 역사를 함께 설명해 주시니 훨씬 역사가 입체적으로 다가오고 더 재미있었습니다. 밤 11시가 다 되어서야 열기가 뜨거운 첫 날 일정이 모두 끝났습니다. 내일은 집안의 고구려 유적지를 돌아보기 위해 4시 반 출발이라서 모두들 서둘러 방으로 들어갔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