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님의하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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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년 3월 24일 법륜스님의 하루(평화연구원 워크샵)

오늘은 오전 9시 40분부터 하루종일 평화연구원 워크샵이 수유리에 있는 아카데미하우스에서 진행되었습니다. 스님을 모시고 9시가 조금 넘어서 도착했더니, 벌써 와 계신 분들도 몇 분이 있었습니다. 평화재단은 크게 세 파트로 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초기부터 꾸준히 진행되었던 통일을 위한 정책 연구파트인 평화연구원, 통일을 위한 인재교육을 담당하는 교육파트인 평화교육원, 그리고 실제 통일운동을 진행해 나가는 운동파트인데, 초기에는 연구파트를 중심으로 활발하게 활동이 진행되다가 그 다음은 교육파트, 작년 같은 경우 통일온동 파트가 활발하게 활동을 했습니다. 연구, 교육, 운동파트가 서로 영향을 주면서 유기적으로 잘 운영되는 것이 평화재단의 하나의 목표이기도 한 것 같습니다. 현재 평화연구원은 5개의 콜로키움이 진행되고 있습니다. 평상시에는 각 주제별로 모임이 진행이 되고 있는데 오늘은 5개 모임 구성원들이 모두 같이 모여서 토론도 하고 서로 인사도 나누는 친목의 시간을 갖기로 했습니다. 일요일인데도 전체 구성원의 반 이상이 참가해 주셔서, 풍부하게 이야기가 진행될 수 있었습니다. 오늘은 제 17회 남북화해와 평화네트워크 워크숍으로 ‘북핵 이슈를 넘어 평화와 통일의 한반도로’라는 큰 주제로 세 개의 마당이 펼쳐졌습니다. 첫 번째 마당은 ‘한반도 통일시계, 어디까지 와 있는가?라는 큰 주제 아래 ‘동북아정세와 한반도 안보환경의 변화’, ‘2013년 북한 내부 정세 진단과 김정은 정권의 향방’, ‘박근혜 정부의 한반도 신뢰프로세스와 신뢰외교가 나아갈 길’에 대해서 연구원들이 발표를 하고, 토론자 3명과 함께 오늘 참가한 분들이 다같이 의견을 내는 식으로 진행이 되었습니다. 진지하게 토론이 진행되었습니다. 첫 마당으로 오전 타임을 마치고 점심식사를 한 후 두 번째, 세 번째 마당이 이어졌습니다. 두 번째 마당은 쉬어가는 마당으로 준비가 되었는데 현재의 평화연구원에 대해서 의견을 나누는 시간이었습니다. ‘평화연구원의 역할 모색’이라는 주제를 다뤘는데 평화연구원장이신 김형기 원장님이 직접 진행하셨습니다. ‘평화연구원 2012년 사업보고 및 2013년 사업방향’, ‘통일관련 연구기관의 동향과 평화연구원의 역할’에 대해서 먼저 발표를 하고, 평화연구원이 현재 부족한 점과 개선할 점, 한국사회에서 어떤 역할들을 해 나갈 것인가에 대해서 이야기를 나누었는데 소중한 의견들이 많이 나왔습니다. 이어서 세 번째 마당이 펼쳐졌습니다. ‘북핵 이슈를 넘어 평화와 통일의 한반도로’라는 큰 주제 아래‘북한 핵실험과 주변국의 이해와 전략’, ‘북핵이슈를 넘어 교류와 협력의 남북관계를 모색한다’, ‘통일한국의 사회통합을 어떻게 준비할 것인가’라는 내용으로 세 분이 주제발표를 하고 세 분의 토론자와 함께 참가한 분들의 토론으로 진행이 되었는데, 열띤 토론이 진행되었습니다. 현재 남북간의 전쟁 분위기 고조와 그 속에서 향후 박근혜 정부의 한반도 신뢰프로세스가 어떻게 작용을 해 나갈 것인가? 그 속에서 연구원의 활동은 어떤 방향을 잡고 나가야 하는가 등에 대한 많은 이야기들이 진행되었습니다. 스님께서는 하루종일 앉아서 전문가들의 의견을 들으셨습니다. 그리고 전체 토론이 끝나자 스님의 의견을 말씀해 주셨습니다. “수고하셨습니다. 첫 번째 소감은 발표문들이 너무 좋습니다. 우리끼리 듣기에 아깝습니다. 이야기를 들으면서 오늘 발표한 한 분 한 분에게 통일교육 강사로 요청을 드리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그리고 원장님께 드리는 부탁은 분기별로 전체 모임을 진행해서 서로 공통점도 발견하고 친목도 되는 시간을 만들어 주시길 부탁드립니다.” 각 전문가 모임 구성원끼리만 모여서 토론을 하다가 오늘 전체 연구원들이 한 자리에 같이 모여서 토론을 하니, 정보 교류도 되고, 서로 활동들에 대한 격려도 되고 경책도 되는 것 같았습니다. 스님께서 오늘 워크숍 전체를 마치면서 정리 말씀을 해 주셨습니다. 오늘 발표하고 토론한 분들도통일연구 파트에서 전문가들인데, 스님께선 워낙 오랫동안 통일에 대해서 몸으로 직접 뛰면서 수많은 경험들을 가지고 있다보니, 그 누구보다도 통일에 대해 바라보는 시각이 넓고 깊어서 어디서나 균형추의 역할과 함께 국가적인 차원에서 통일의 방향을 제시해 나가는 역할을 하시는 것 같습니다. “오늘 많은 토론을 해 주셨습니다. 이제 우리는 분권과 통일이 같이 가야 합니다. 대한민국의 민주주의는 지도자를 뽑는 민주주의만 있습니다. 뽑힌 지도자가 민주적인 리더쉽을 발휘하는 것이 아니라 통치를 합니다. 그러므로 아직까지는 일상생활 속에서의 시민의 권리가 행사될 수 있는 민주주의가 정착되지 않았기 때문에 앞으로 중앙권력이 지방으로 더 이양되어야 합니다. 주민 자치, 지방분권이 이뤄져야 합니다. 이런 분권이 이루어진 지방정부가 하나의 국가로 통일되는 시스템을 갖추어야 통일을 대비한 준비를 갖춘다고 할 수 있습니다. 즉, 우리 사회가 북한을 받아들일 준비를 해 놓고 있어야 합니다. 이것이 독일 통일에서 배울 것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북한의 붕괴라고 하는 것은 정권의 붕괴는 몰라도 북한이라는 국가가 붕괴되는 것을 말하지 않습니다. 북한 붕괴라는 말의 의미를 새로 생각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북한의 향후 전망을, 소위 말하는 권력을 유지하면서도 개혁에 성공하겠는가? 북한 자체적으로는 성공 가능성이 낮지만 배후에 중국이라는지원국이 있기 때문에 이 문제를 고려해야 합니다. 때문에 박근혜 정부라도 하루빨리 국가연합이라는 형식을 갖춰놔야 만약 북한의 제도적인 붕괴가 일어나더라도 외세가 간섭할 수 없는 국내문제가 될 수 있습니다. 우리가 참여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집니다. 그런데 지금은 북한이 붕괴되면 바로 친중정권이 들어설 수밖에 없습니다. 국가적인 차원에서 깊이 생각해야 합니다. 북한이 리모델링 된다면 통일은 천천히 가도 되는데, 형식상의 통일은 좀 빨리 서둘러야 할 문제입니다. 그런 문제에 대한 연구와 정책이 필요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박근혜정부가 어떤 정부든 상관없이 이 5년의 시기가 그냥 간다면 민족사에서 돌이키기 어려운 과오를 남기게 될 것입니다. 박근혜정부가 올바른 통일정책을 실현해 나갈 수 있도록 평화재단이 좀더 적극적으로 활동을 펼쳐서 통일에 기여할 수 있었으면 합니다.” 저는 하루종일 앉아서 토론하는 연구원들의 모습을 보면서 참 대단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스님께서 가시는 곳에는 참 소중한 사람들이 많이 모이는구나 싶었습니다. 통일연구 파트에서는 이름있는 분들이 자기의 재능과 에너지를 이렇게 기부하고 활동할 수 있는 장을 만들어 준 것도 대단하고, 이런 활동들이 진행되고 있다는 것도 참 대단한 일이다 싶었습니다. 이렇게 연구하는 사람이 있고, 통일을 위해 실제 대중들과 사회지도층을 교육하는 사람이 있고, 거기서 머무르는 것이 아니라 통일을 위해 대중운동을 펼쳐 나갈 사람이 필요하단 생각이 같이 들었습니다. 앞으로 해야 할 일들이 참 무궁무진하구 싶었습니다. 오늘도 참 보람된 하루였습니다. 내일은 충주와 청주에서 희망세상 100강이 있는 날입니다. 내일은 충주와 청주에서 뵙겠습니다. 감사합니다.

2013.03.25. 16,040 읽음 댓글 5개

2013년 3월 23일 법륜스님의 하루(평화리더쉽, 인보성체수도회, 청년토크콘서트)

오늘은 새벽 5시 두북에서 용인으로 출발했습니다. 용인의 현대인재개발연구원에서 평화리더쉽아카데미 8기 입학 워크샵이 어제부터 1박 2일로 진행되고 있었는데 오전 9시에 ‘진정한 성공이란 무엇인가?’라는 주제로 스님 강의가 잡혀 있었습니다. 8시 30분경에 도착해서 어제 먹다 남은 김밥과 컵라면으로 간단하게 요기를 하시고 강의에 들어가셨습니다. 윤여준 원장님께서 맨 앞자리에 앉아서 자리를 지켜 주고 계셨습니다. 스님께서 진정한 행복이 무엇인지에 대해서 2시간 동안 말씀을 해 주셨습니다. 스님은 오늘도 역시 통일의 필요성에 대해서 역설하셨습니다. 스님의 말씀을 줄여서 정리해 봅니다. “일반적으로 돈을 많이 벌거나 지위가 올라가거나 인기가 많아지면 성공했다고 말합니다. 하지만 진정한 성공은 공동체의 이익과 개인의 이익이 일치했을 때입니다. 공동체 이익을 알기 위해서는 역사의식이 있어야 하고, 시대정신을 알아야 합니다. 일제 강점기 때 공부를 잘 해서 사법고시에 합격해 검사가 되었지만 당시의 시대정신인 독립운동에 기여하지 않았다면 이것은 진정한 성공이 아닙니다. 지금 우리는 문명사적 전환기에 있습니다. 이제 우리의 기술 수준이 서양과 거의 동등해졌기 때문에 모방의 시대는 끝나가고 창조의 시대가 도래했습니다. 하지만 우리는 모방단계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기 때문에 새로운 성장동력을 가질 수 없었습니다. 현재 남한만 보면 시대정신은 산업화, 민주화 과정을 거쳐복지사회로 가는 것입니다. 그리고 중앙에 집중된 권력을 분산하는 지방분권이 시대적 과제입니다. 그러나 전민족적 관점에서는 통일이 시대적 과제입니다. 그리고 통일이 되어 북한을 개발하는 것이새로운 성장동력입니다. 개인이 성실하게 윤리적으로 사는 것보다 시대적 과제를 아는 것이 중요합니다. 통일이라는 시대정신을 꿰뚫어보고, 커든 작든 통일운동에 기여하는 것이 진정한 성공의 의미입니다. 2030년을 내다보고 손자에게 재산보다 통일운동에 기여한 공덕을 물려줘야 합니다.” nbsp 스님 말씀을 들으니 얼마 전 평화리더쉽아카데미 입학식날, 한 분이 인사하면서 했던 말이 기억났습니다. “제가 군대갈 때 내 아들은 군대가지 않도록 하리라 했었는데, 오늘 둘째 아들을 군대에 입대시키고 왔습니다. 통일이 되어서 내 손자녀석은 군대에 가지 않는 날을 만들어야겠습니다.” 정말 통일된 세상에서 파란 하늘 바라보며 꾸밈없이 웃는 청소년들의 얼굴을 그려봅니다. 스님 말씀 이후 질문을 받았는데, 다음 일정이 있어서 길게 받지는 못했습니다. 강연을 마치자마자 단체사진을 찍고, 바로 용인 인보성체수도회로 향했습니다. 12시부터 3시까지‘사회복지 사도직안에서의 다양성’이라는 주제로 사회복지 활동을 하고 계시는 수녀님들과의 시간이 잡혀 있었습니다. 11시 40분경에 도착을 하니 입구에서 수녀님들이 반갑게 맞이해 주셨습니다. 강의가 있는 곳은 양로원이었습니다. 수녀님들이 운영하는 곳이라 그런지 깔끔하고 정리정돈이 잘 되어 있었습니다.양로원 2층 다과실에 준비되어 있는 과일과 수정과를 간단하게 먹고 12시부터 수녀님들과 대화의 시간을 가졌습니다. 처음 강연을 시작하면서 진정한 신앙심에 대해서 말씀을 먼저 해 주셨습니다. “우리 기도는 원하는대로 해 달라는 기도입니다. 원하는대로 되면 주님께서 은총을 주셨다고 하고,원하는대로 되지 않으면 은총을 주시지 않았다고 합니다. 이것은 신앙심이 부족한 것입니다. 주님께서 보시고 이뤄지는 것이 좋으면 이뤄지게 하시는 것이고, 이뤄지는 것이 좋지 않으면 이뤄지지 않게 하시는 것입니다. 그래서 진정한 신앙심이라는 것은 이뤄져도 감사하고, 이뤄지지 않아도 감사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이뤄지면 감사하고, 이뤄지지 않으면 감사하지 않습니다. 이것은 자기 뜻대로 되면 좋고, 자기 뜻대로 되지 않으면 싫어하기 때문에 올바른 신앙이 아닙니다. 자기 생각으로 신앙생활을 하는 것입니다.주변에 나의 삶을 맡기면, 그 마음만 내려놔 버리면 무엇을 하든 힘든 일이 크게 없어요.” nbsp 스님께서 예수님의 삶을 예로 들면서, 일반인들에게 강의하실 때보다 좀더 근본적인 부분을 짚으시며 말씀해 주셨습니다. 이어서 수녀님들의 질문을 받았는데 실제 사회복지 현장에서 활동하시는 분들이라 복지활동에서의 어려움에 대한 질문들을 많이 하셨습니다. “저희 집은 어르신들이 80분 살고 계세요. 남자분이 15분, 여자분이 65분입니다. 개원한지 15년이 되었습니다. 개원하고부터 살고 계신 분은 30명 정도 계십니다. 처음 들어오셨을 때 건강하셨던 분이 이제는 치매로 넘어가는 과도기의 분들이 많습니다. ‘오늘은 죽 먹겠다’ 해서 죽 끓여 드리면 ‘밥 먹겠다’고 합니다.밥을 해서 가면 ‘이것도 밥이라고 가져왔냐?’ 하세요. 인간적으로 얄미울 때도 있고, 당신 며느리에게 죽 한 그릇도 못 얻어 먹고 와서 왜 그러시나? 하는 갈등들이 끊임없습니다. 그러니까 모시고 살아야 하고 그러니까 사랑이다 하지만, 순간순간 미워질 때도 있고 대립이 될 때도 있습니다. 저녁에 기도를 하면 돌아봐지고 참회가 됩니다. 그런 어르신을 80명이나 되다 보니, 죄를 짓고 있지는 않나 이런 생각도 듭니다. 늘 하느님의 사랑으로 감싸안는 것은 현실적으로 어렵습니다. 어떤 마음을 갖고 살면 될까요?” “저는 초등학생들과 살고 있습니다. 최근에 들어온 아이 중에 초등학교 2학년 남자애는 부모도 있습니다. 글을 쓰다가 틀렸다, 고쳐 쓰라고 하면 화가 너무 나서 악을 쓰고 발로 차고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다가, 수정을 해 주면 목 조르는 흉내까지 냅니다. 어린 아이가 왜 그리 화가 차 있는지, 그 화를 어떻게풀어줘야 하는지 모르겠습니다.” “저는 장애주간보호센터에서 일하고 있습니다. 우리 아이들은 지적 장애, 발달장애가 있는 아이들입니다. 아이 중 한 명이 발달장애아인데요, 가정의 엄마가 2 부족한 어머니시고, 아이는 우리 시설에서제일 나은 아이예요. 아침에 저희 집에 오면 전날 집에서 무슨 일이 있었는지 책상을 차고, 자기 서랍을 치고 박습니다. 집에 전화를 해서 무슨 일이 있었냐고 어머니에게 물으면 어머니는 제가 불면증이 있어서 잠을 못 자고 울어서 그런가 보다고 합니다. 그런 것이 너무 잦아요. 그 애가 정상인 애는 아니고 발달장애인데 어떻게 해 줘야 할까요?” “저는 노숙자들과 같이 있습니다. 얼마전 탈북노숙자 한 분과 같이 살게 되었습니다. 북한을 떠난 지는 15년 되었고, 한국까지 들어오는데는 8년이 걸렸다고 합니다. 이 분은 수도사가 뭔지 모르고 저희를 여자를 봅니다. 취업하러 나가면 이것 저것 다 이용해 먹습니다. 사고치면 저희 수녀회로 연락이 옵니다. 이 분은 사고를 치고 저희는 수습을 하는 것을 몇 차례 하다가 이제는 연락을 안 하고 있습니다. 이것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 스님께 여쭙고 싶습니다.” 그리고 강정마을의 문제에 대해서 스님께서 어떻게 생각하고 계신지에 대한 질문도 있었습니다. 스님께서 한 분 한 분의 질문에 대해서 함께 마음을 나누면서 해결책을 말씀을 해 주셨습니다. “워낙 편안해서 스님이 아니라 수도사님과 오래 이야기를 나눈 것 같습니다.”며 수녀님께서 스님께감사 인사를 드리며 마무리를 했습니다. nbsp 3시 10분까지 강연을 하고 다음 강연장인 조계사로 이동했습니다. 조계사 역사문화회관에서 5시부터 서울경기청년불자들이 주최한 토크콘서트 두런두런에 초청되어 청년불자들과 대화를 나누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청년 불자들이 행사를 예쁘게 준비해 놓았습니다. 작은 소품들이며 색색깔의 종이에 쓰인 질문지들 등 나름대로 준비를 많이 한 것 같았습니다. 오늘은 두런 두런 콘서트의 마지막 순서였는데 혜민스님, 정목스님에 이어 마지막으로 법륜스님께서 청년들과 대화하는 시간이었습니다. 인터넷으로 신청을 받고, 청년들로 나이 제한을 해서 1인당 1만원씩 참가비를 받고 하는 행사였습니다. 불교TV 중계차도 와서 촬영을 하고 있었습니다. nbsp 행사가 시작되었습니다. 인터넷으로 질문받은 질문지가 스님앞에 가득 쌓여 있었습니다. 스님은 화가 나실 때 어떻게 하시는지, 출가 후 부모님이 보고 싶었던 적이 있었는지, 스님은 마음이 아프고 괴로울 때어떻게 해결하시는지, 작년 희망세상만들기 300강을 통해 무엇을 느꼈는지 궁금하다 등 스님에 대한 궁금함들이 많았습니다. 이어서 방청석에서 직접 질문을 했는데 자신에 대한 불만족, 통일을 위한 청년들의 실천방법 등 여러 질문들이 있었는데, 청년들이라 역시 구체적인 삶의 애환보다는 스스로에 대한 불만족 등 삶의 자세에 대한 질문들이 많았습니다. 강연 후 청년회장이 스님께 감사함의 꽃다발을 드리고, 간단한 인터뷰까지 하고 마쳤습니다. 오늘은 아침부터 강의 3개가 바로 바로 이어져 바쁘게 다녔습니다. 그러다보니 제대로 된 식사도 할 시간이 없었습니다. 아침에는 컵라면과 식은 김밥으로, 점심은 과일 약간과 수정과만 드시고 저녁강의까지강행군을 하셨습니다. 조계사 강연을 마치고 들어오면서 “저녁이라 나는 괜찮은데 다들 배고플 것 같네. 뭐 좀 먹을까?” 하셔서, “밥심으로 사는 할매라 먹어야겠는데요?”하는 최보살님 말씀에 다같이 웃었습니다. 정토회관에 차를 주차하고 스님 모시고 칼국수집에 가서 늦은 저녁을 맛있게 먹었습니다. 내일은 하루 종일 평화연구원 워크샵이 있는 날입니다. 내일 소식 전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2013.03.24. 16,458 읽음 댓글 5개

2013년 3월 22일 법륜스님의 하루(부산 중구, 거제시)

새벽 1시 30분경 두북에 도착했습니다. 잠을 자고 5시에 일어나 새벽기도를 하고 아침 식사를 한 후 오늘 오전 강연이 있는 부산 중구청으로 향했습니다. 오랜만에 부산에 와서 부산공기를 마시니 기분이 좋았습니다. 차담이 있어 중구청장실에 들어가니 떠들썩했습니다. 스님께서 들어가니 모든 사람들이 일어나 스님께 인사를 했습니다. 중구청장님이 오늘 스님 강연이 있다고 부산지역 여고 동창회장님들 전체 모임을 했다고 합니다. 구청장님이 여장부처럼 성격이 시원시원해 보였습니다. “강연장이 크질 않습니다. 그래서 우리 직원들은 모두 모니터로 시청할 수 있도록 했습니다. 그리고1층엔 따로 모니터를 설치해 두었습니다. 오늘 우리 구에 큰스님이 오셔서 정말 영광입니다.”하며따뜻하게 맞이해 주셨습니다. nbsp 300석 강연장에는 오늘도 사람들이 가득 차서 무대 위, 복도에까지 앉아 강연을 들었습니다. 구청장님과 부산지역 여고 동창회장님들도 끝까지 강연에 참석했습니다. 강연장이 그리 크지 않아서 오히려 오붓한 맛이 있었습니다. 오늘 질문하신 분들 중 한 아저씨의 이야기를 나눠 봅니다. “스님. 저는 55살이고 경주에 살고 있습니다. 많은 대중 앞에서 사생활을 공개하기가 부끄럽지만 용기를 내어 질문합니다. 고등학교 졸업 후 군 의무를 마치고 와서 경주에서 옷 가게 하다가 문을 닫게 되었습니다. 그 후 큰 슈퍼를 인수하여 5년을 했는데 또 문을 닫게 되었고, 그 다음으로 식품 대리점도 했는데 5년만에 문을 닫았습니다. 이어서 운수업을 했습니다. 그것도 5년 하다가 잘 안되어서 양계농장을 인수했는데 태풍 때문에 쫄딱 망해서 2억 5천만원을 빚졌습니다. 가족이 모두 월세집으로 이사 와서 일당직 운수업을 했는데 그것마저 그만두게 되었습니다. 저는 정직과 성실을 기본으로 살아왔습니다. 본인의 양심을 벗어나는 것을 하지 않고 열심히 살아왔다고 자부합니다. 깨달음의 장, 나눔의 장, 명상수련도 다 하고 경전반에 입학하여 정진하고 있습니다. 스님. 저는 왜 하는 일마다 56년이 되면 실패를 하는 걸까요? 하기 싫어서 그만 두는 것이 아니라왜 그만 둘 수밖에 없는 상황이 되는지, 저에게는 왜 이런 일이 반복되는지, 왜 하는 일마다 실패가 반복되는지 스님의 말씀을 듣고 싶습니다.” “몇 살이예요?” “55살입니다.” “건강은요?” “이루 말할 수 없이 건강합니다.” “아이들은요?” “1남 2녀입니다. 큰 애는 홍대 미대 다니다가 사업에 실패하는 바람에 3학년에서 그만 뒀습니다. 둘째는 대구에서 대학교에 다니고 있고, 셋째는 자기가 알아서 살겠다고 하사계급 따서 군대에 있습니다.” “자, 한 번 보세요. 이 분은 하는 일마다 조그마한 구멍가게를 했어요, 큰 가게를 했어요? 대형 슈퍼 하다가 양계장도 큰 것을 해서 2억 5천만원이나 빚졌죠? 그것을 하다가 중단하고 중간에몇 번 바꿨다는 것 빼고는 그만 그만한 사업을 계속 해 왔고, 아이들도 다 컸죠? 이 정도면 한국 사회에서 평균 이상은 되죠? 아이들은 이미 스무살이 넘었잖아요? 자기 할 일 다 했어요. 저는 고등학교 다니다가 그만 뒀는데 큰 아이는 대학 다니다가 그만 뒀잖아요. 걱정 안 해도 됩니다. 따져 보면 큰 걱정이 아니예요. 둘째도 아르바이트 해서 학교 다니면 되고, 셋째는 그렇게 살면 되고, 자기 건강하고. 그렇게 생각하면 큰 문제 아니죠?” “제가 제일 고민하는 것이 집 한 칸 없이 월세 산다는 것이 부담이 됩니다.” “월세 얼마 줘요?” “월 30만원 나갑니다.” “월 100만원 벌면 월세 30만원 주면 되잖아요. 부인이 불만이예요?” “그렇지 않습니다.” “운전 잘 해요?” “베테랑입니다.” “자기는 아무 문제도 없어요. 잘 살았고 성실하게 살았어요. 자기가 자기 자신을 거름이라 보지 않고 오물이라고 보니까 문제가 있는 것입니다. ‘부처님. 저는 전생에 무슨 죄를 지어서 맨날 실패합니까?’ 이렇게 하지 말고 ‘부처님. 감사합니다. 제가 지은 공덕이 없는데 부처님 믿은 공덕으로 몸 건강하고, 결혼생활 원만하고, 아이들 다 잘 키웠습니다. 재능이 부족한데 잘 살도록 해 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하면서 기도를 하면 상황이 바뀔 거예요.” “예. 알겠습니다.” nbsp 오전 강연을 마친 후, 지방분권에 관심을 가지고 꾸준히 활동을하고 계시는 부산대학교 황한식 교수님과 점심 식사를 하셨습니다. 평소에는 식사 초대를 받거나 따로 식사를 하시지 않는데 이번에 교수님이 퇴임을 하게 되었는데 찾아 뵙지를 못해서 죄송하시다며 교수님과 따로 식사 약속을 잡으셨습니다.그런데 식당 사장님이 스님께서 본인의 식당에 와 주셔서 정말 감사하다며 저희들 식사비까지 일체를 다 보시해 주셨습니다. 스님께 말씀을 드렸더니, 오늘 아이를 낳았다는 사장님의 딸에게 ‘엄마 수업’ 책을 사인해서 선물을 드렸습니다. 부산에서 거제로 가는 길에 잠시 을숙도에 들렀습니다. 남쪽이라 가는 길에 동백꽃이 허드러지고,노란 개나리꽃이 한창이었습니다. 아직 3월인데도 벚꽃이 핀 곳도 있고 꽃 필 준비에 바쁜 모습이었습니다.nbsp 을숙도 공원 길을 천천히 걸었습니다. 햇볕만 나면 따뜻하고, 햇볕이 숨으면 아직 쌀쌀했습니다. nbsp 을숙도를 잠시 들린 후 거가대교를 지나 거제도로 향했습니다. 점심을 외식을 해서 배가 고프지 않다 하시며 스님께선 저녁 식사를 안 하시고 강의에 들어가셨습니다. 강연장이 404석인데 500여명이 와서 복도에도 사람들이 앉았습니다. 거제는 삼성, 대우 중공업 등이 있어서 작업복을 입은 사람들과 아기를 안은 젊은 엄마들도 많이 참가했습니다. 거제 강연장은 9시면 공간을 비워줘야 해서, 강연을 시작하면서 바로 질문을 받으셨습니다. 마지막에 질문한 딸과 아버지의 갈등에 대한 이야기를 나눠 봅니다. “얼마 전에 스님 책을 보고 스님을 알게 되었습니다. 저의 아버지는 보수적입니다. 제가 이제 나이가 들어 가니까 아버지 뜻대로 살 수가 없습니다. 주말에 집에 가면 아버지와 조금씩 부딪히다가 얼마 전에는 크게 싸우고 집에서 쫓겨 났습니다.” “아버지가 자기에게 요구하는 것 중 가장 큰 것이 뭐예요?” “아버지가 자꾸 ‘너를 어떻게 키웠는데’ 합니다. 해서는 안 되는 말이었지만 참다 참다가 ‘제가 태어나서 저 줄려고 밥을 한 게 아니라 아버지, 어머니 밥상에 제 숟가락 하나 더 놓은 것이지 않냐? 아빠가 해 준 것이 뭐가 있냐?’고 해 버렸습니다. 아버지보다 어머니가 너무 고생을 많이 하셨습니다. 포장마차도 하시고, 계란 장사도 하셨습니다. 아버지가 가장이긴 하지만 아버지는 아버지가 벌어서 아버지 인생을 즐기세요. 금전적으로 아버지가 해 준 것이 없는데, 요즘 ‘아빠가 해 준 것이 얼만데?’ 하면 화가 납니다. 효라는 것이 뭔가요?” “몇 살이예요? 직장 있어요?” “24살요. 직장 있어요. 대학 다닐 때부터 부모님께 의지하지 않고 있어요.” “아버지가 없었으면 세상에 태어났어요, 안 태어났어요? 이 세상에 태어나게 해 주셔서 감사하죠? 엄마는 아버지를 원수로 여겨요, 어때요?” “원수로 여겼다가 잘 지내다가 왔다갔다 하세요.” “엄마가 아버지를 미워했기 때문에 자기가 아버지를 안 미워하려고 해도 저항감이 있는 거예요. 어쨌든 두 분이 싸우면서도 살잖아요. 엄마는 해 주고 아버지는 안 해줬다고 나누면 안 됩니다. 아버지께 고맙다고 100일간 108배를 해 보세요. 아버지가 무슨 말을 하셔도 ‘감사합니다, 아버지 때문에 잘 자랐습니다’ 하고 억지로라도 해 보세요.” “월급 얼마나 받아요?” “세금 떼고 140, 150만원 정도 됩니다.” “그러면 기독교에서 십일조 하듯이 매월 월급의 110을 부모님께 드리세요. 그러면 해결될 거예요. 정말 고마운 마음으로 드리세요. 지금이 부모님께 드릴 수 있는 유일한 기회예요. 결혼하고 나면 못 드릴 수도 있어요. 적은 가운데 지금 자기의 처지에서 나눠 쓰는 것이 좋아요. 한꺼번에 드리지 말고 정기적으로 드리세요. 그렇게 해 보세요. 부모님이 봉투를 집어던지고 화를 내도 두고 오세요. 대문 밖으로 버리면 주워오고. 금방 해결이 될 거예요. 스님이 시킨대로 한 번 해 보세요. 하루 기도 108배하고, ‘아버지 감사합니다’ 하며 기도하고, 용돈도 드리고. 아셨죠? 이렇게 안 하면 나중에 남자를 만나면 아버지 같은 남자와 만납니다. 그러면 부모와 똑같이 되풀이 됩니다. 아버지에게 받은 상처가 있을 때는 남편에게 그런 문제가 생길 때 격렬하게 내가 반응하게 됩니다.갈등이 증폭됩니다. 어릴 때 받은 상처가 결혼생활에 큰 장애가 됩니다. 아버지 문제를 푸는 것은아버지 관계를 넘어서서 내 결혼생활과 내 아이를 키우는 것과 연결이 됩니다. 지금 베풀어야 합니다. 아버지에게 베풀고 참회기도 해야 자기 속의 상처가 치유되어 남편 만났을 때 재발이 안됩니다. 아셨죠?” “예. 알겠습니다.” 질문을 하는 사람들은 스님과 대화를 함으로써 자신의 모습을 있는 그대로 바라보게 되는 것 같습니다. 그 작은 깨달음으로 다시 스스로가 주인으로 설 수 있는 힘을, 방향을 잡게 되는 것 같습니다. 그리고 강연장에 참가한 사람들도 스님과의 대화를 들으면서 함께 웃고 함께 눈물도 흘리면서 자기 문제를해결해 나가는 것 같습니다. nbsp 날이 많이 추웠습니다. 꽃샘 추위가 마지막으로 기승을 부리고 있는 것 같습니다. 강연장 안에서도 발이 시렸는데, 스님께서는 언제나와 마찬가지로 열강을 하셨습니다. 강연을 마치고 사인회를 하는데, 스님 손을 잡는 사람, 사진 찍고 싶어 왔다갔다 부산한 사람, 고맙다고 크게 인사하며 웃는 아줌마, 7개월된 애기를 안고질문한 남편과 스님을 사진찍기 위해 애써는 사람 등 스님 주변으로 사람들이 우루루 몰려 들어 분위기가 붕붕 떠 있었습니다. 스님과 같은 공간에 함께 있는 것만으로도 즐거워하는 사람들의 분위기가 그대로 느껴졌습니다. nbsp 거제도에서 밤을 달려 두북으로 돌아왔습니다. 내일은 오전 9시, 용인에서 평화리더쉽아카데미 입학 워크삽에 강의가 있고, 12시에 용인인보성체수도회에서 수녀님들을 대상으로 강의가 있습니다. 그리고 오후 5시에는 조계사내 한국불교역사문화기념관에서 서울경기지역불자청년회 초청 두런두런콘서트가 있습니다. 내일도 바쁜 하루가 될 것 같습니다. 내일 뵙겠습니다.

2013.03.23. 17,212 읽음 댓글 7개

2013년 3월 21일 법륜스님의 하루(대중부 회의, 평화리더쉽 입학식)

오늘 오전은 서초구청장님께서 직원과 함께 방문하셔서 차담을 나누며 구정에 대한 여러 이야기를 나누셨습니다. 그 중에서 특히 ‘출산 장려를 위한 할머니 손주 보기’에 대한 이야기가 참 재미있었습니다. 그리고 오후에는 정토회 대중부 책임자들과 회의를 하셨습니다. 중앙사무처와 수도권, 중부권, 영남권 광역사무국장, 청년학생 대표자들까지 참가해서 7차 천일결사 마무리를 어떻게 할 것인가? 8차 천일결사 준비를 어떻게 할 것인가에 대해 살펴보면서 올 해 사업 전반에 대한 논의를 하였습니다. nbsp 7차 천일결사 마지막 해라 그 전 연도에 미처 달성되지 못한 목표까지 다 달성해야 해서 약간의 부담감들도 있었는데, 오늘 스님과 회의를 하고 나서는 7차 천일결사 목표를 충분히 달성할 수 있겠다는 자신감에, 스님과의 회의를 마치고도 거의 밤 10시까지 다시 회의를 하면서 신나게 일정도 잡고, 계획들도 잡았다고 합니다. 특히, 스님의 말씀에 올 해 불교대학과 경전반에 대한 애정이 많이 녹아 있어서회의를 하면서도 참으로 감동적이었다고 합니다. 그리고 중앙사무국을 비롯해 각 지역 사무국까지 어려운 일이 뭐가 있는지, 그에 대한 해결방법에대해서까지도 세밀하게 말씀을 해 주셔서 작년부터 많은 논의를 하면서도 갑갑하게 남아 있던 부분이 오늘 스님과 회의를 해고 나서는 뻥 뚫린 것 같다고들 했습니다. 그래서 모두들 환한 얼굴로 돌아갔습니다. 저녁에는 제 8차 평화리더쉽아카데미 입학식이 있었습니다. 스님과 교장선생님이신 윤여준 원장님께서 처음부터 끝까지 함께 자리해 주셨습니다. 스님께서는 입학식 축하 인사를 하시면서 통일의 중요성과 이를 위해 통일의병이 되어야 한다고 강조하셨습니다. nbsp “우리 사회에 대한 책임의식을 가진 사람이 되어 보자는 것이 이 모임의 목적입니다. 지금 우리 시대의 시대적 과제는 통일입니다. 그런데 큰 일을 이루는데 있어서는 정부가, 전문가가잘 해야 합니다. 관군이 해야 할 일입니다. 그런데 지금 관군이 역량이 조금 부족하니까 의병이 필요합니다. 의병이란 것은 지위도 없고 훈련도 안 되어 있지만 돈도 목숨도 자기가 다 내놓고 일하는 사람을 지칭합니다. 지금은 통일을 위해서, 한국사회의 발전을 위해서 의병과 같은 역할이 필요한 때입니다. 의병은 자발성, 헌신성이 중요합니다. 아무런 보상도 바라지 않는다는 것이 중요합니다. 관군은 잘하면 승진을 하지만 의병은 너무 잘해도 참수를 당합니다. 그렇기에 일이 끝나면 칭찬받거나 승진하는 것이 아니라 조용히 집으로 돌아가서 선비는 선비로, 농민은 농민 역할로 돌아가는 것이 의병입니다. 그래서 저는 의병이 시민사회의 역할을 가장 잘 표현해 주는 것이 아닌가 싶습니다. 지금 우리 사회는 누군가가 나서면 못 미더워 합니다. 무엇 때문에 저렇게 설치나, 한 자리 하려고 하나? 생각합니다.이럴 때 의병이 필요합니다. 평화리더쉽아카데미는 통일로 가는 사관학교고, 여기 출신자들은 의병들입니다. 그런 마음으로 공부하시면 좋겠습니다. 감사합니다.” 통일 의병 참 멋있는 말 같습니다. 새로운 미래를 꿈꾸는 모든 사람들이 통일 의병이 된다면 정말스님 말씀처럼 통일도 되고, 한국의 새로운 미래가 만들어질 것 같습니다. 참으로 설레는 우리들의푸른 꿈입니다. 스님의 말씀을 들으며, 끝없이, 쉼없이 통일을 향해 한 걸음 한 걸음 나아가시는 모습에 숙연해지기도 하고, 희망이 보이는 것 같아 힘이 솟기도 했습니다. 오늘 입학한 사람들이 일어나 자기 소개를 하는 시간이 있었습니다. 지인의 소개가 많았고, 스님의 책과 영상을 보고 찾아온 사람도 많았습니다. 그리고, 스님 말씀을 통해 개인적으로 많은 도움을 받았는데, 뭔가 보탬이 되어야 할 것 같아서 왔다는 분, 통일에 관심이 많아서 왔다는 분, 새로운 삶의 터닝 포인트를 만들기 위해서 왔다는 분 등 다양했습니다. 그 중에 서 군인 출신 한 분은 스님과 통일에 대해서 바라보는 관점이 같아서 왔다고 하는 말을 들으며 스님의 통일에 대한 시각이 얼마나 균형이 잡혀져 있는가에 대해 다시 한 번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변호사, 의사, 회사 대표, 국회의원, 교수, 시인, 작가, 직장인, 군인 등 다양한 사람들이 참가했는데열심히 해 보겠다고 다짐하는 모습들에서 결의가 넘쳐 보였습니다. 오늘 참가한 모든 분들이 마지막까지 열심히 하셔서 꼭 스스로 이루고자 했던 목표 달성하시길 기원합니다.nbspnbsp 내일은 부산 중구와 거제에서 강연이 있습니다. 그래서 입학식을 마치자마자 두북으로 출발했습니다. 고속도로 위에서 오늘 하루를 정리하고 있습니다. 밤이 깊었네요. 내일 뵙겠습니다. 감사합니다.

2013.03.22. 14,202 읽음 댓글 2개

2013년 3월 20일 법륜스님의 하루(서울 도봉구, 수원 장안구)

오늘 아침 스님께선 평화재단에서 있었던 『제 69차 북한현실이해와 연구 전문가 모임』으로 하루 일정을 시작하셨습니다. 아침 모임 후, 서울 도봉구민회관으로 바로 이동을 하셨습니다. 오늘부터 ‘2013년 법륜스님의 희망세상 만들기 100강’이 시작되었습니다. 상반기에는 3월 20일 시작해서 6월 18일까지 총 49강이 계획되어 있습니다. 홈페이지를 참고하셔서 인근 강연장에 많은 분들이 동참하시면 좋을 것 같습니다. 10시 조금 넘어서 도봉구민회관에 도착했습니다. 강연 전에 도봉구청장님과 간단하게 차담을 나누었습니다. 구청장님은 지난 300강 할 때는 일이 있어 스님을 뵙지 못했다며 도봉구를 찾아와줘서 감사하다고인사를 하였습니다. nbsp 총 600석인데 10시 10분경에 좌석이 다 찼습니다. 10시 25분경에 스님과 구청장님이 차담을 마치고강연장으로 들어가다 보니까, 자리가 다 차고 들어가지를 못해서 50m 넘게 사람들이 줄을 서서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스님께서 줄 끝까지 걸어가면서 자리가 없어서 미안하다고 인사를 하고, 강연장으로 들어가셨습니다. 강연장에 온 분들이 많아 강연장 복도에도 다 앉지 못해 무대까지 가득 앉았습니다. 오랜만에 스님께서 대중강연을 하셔서 많은 사람들이 스님을 뵈러 온 것 같았습니다. nbsp 질문이 시작되었습니다. 사람들이 인생의 고민거리들을 한 보따리씩 들고 왔습니다. 37년생할머니부터 25살 총각까지 거의 모든 세대들에서 질문이 쏟아져 나왔습니다. 12개의 제사를 며느리에게 물려주기가 부담스러운데 한 날짜에 몰아서 해도 되는 지 물으시는 할머니, 민망하거나 긴장을 하면 자기도 모르게 히죽히죽 웃어서 오해도 받고 사회생활하기도 힘들다는 25살 여자분, 30년간 군생활을 한 남편이 어느날 지뢰를 밟아 장애인이 되어 너무 힘들어 하는데 어떻게 해줘야 하는 지 묻는 아주머니, 자기 자신이 마음에 들지 않아 지쳐가고 있는데 따끔하게 혼 좀 내달라는 25살 남자분, 6살 아이가 좀 늦되는데 기다려줘야 할지, 치료를 받아야 할지 궁금하다는 2살, 6살 아이를 가진 엄마 등 많은 질문이 있었습니다. 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 부모님으로부터 독립을 하고 싶은데 부모님이 서운해 한다는 청년과 스님의 대화를 들으며 사람들이 정말 많이 웃었습니다. “부모님과 함께 살고 있는 청년입니다. 첫 번째는 독립된 성인이 되고 싶어서, 부모님에게 정을 떼어 달라고 하니 안 떼어 주더라구요. 제가 정 떼는 작업을 하고 있는데 부모님이 서운해 하세요. 냉정하게 하고 있는데 이것이 옳은 건지 잘 모르겠습니다. 이제는 같이 안 놀아준다고 부모님이 서운해 하세요. 그리고 2년 전 결혼을 생각했던 여자친구와 헤어졌어요. 방황을 하면서 여러 사람을 만났는데 그 친구가 생각나서 정리가 안 되는 거예요. 결혼을 해야 할 것 같고 나눠줘야 할 여유가 생긴 것 같은데 이걸 어떻게 이겨내야 할지 잘 모르겠어요. 좀 가르쳐 주세요.” “직장 다녀요? 부모랑 같이 살아요? 자기가 번 돈으로 먹고 살 수 있어요? 그럼 일단 이사를 나오세요. 집으로부터 나와서 작지만 열 평짜리 집이라도 얻어서 일단 삶이 먼저독립되는 것이 필요해요.” “제가 집에 생활비를 내고 있고, 부모님과 외식하면 제가 다 계산해요.” “독립하고 생활비를 드리면 되죠. 엄마가 자식을 사랑하고 함께 있고 싶은 것을 나쁘다고 생각하면 안돼요. 자기가 낳고 키워왔기 때문에 늘 엄마는 걱정이 되는 거예요. 그것은 고맙게 받아들여야 해요. 그런데 고맙다고 다 받아들이면 안 돼요. 그러면 마마보이가 돼요. 마마보이가 되면 여자들이 안 와요. 여자들은 참 이상해요. 자기가 결혼하면 남편이 효자가 되는 것은 원치 않고, 자기 아들은 효자이기를 바래요. 이상하죠? 이제 자기가 자기 인생을 살아야 해요. 나이가 스무살이 넘으면 부모로부터 경제적으로도, 다른 쪽으로도 의지를 하지 말고, 인생에 대해서도 간섭을 안 받아야 해요. 요즘 청년들은 의지는 하고 간섭은 안 받으려고 하니까 갈등이 생겨요. 자기는 경제적으로 독립이 되니까 먼저 독립을 하세요. 요즘 젊은 여성들은 부모님과 같이 사는 남자, 결혼해도 부모님과 같이 살아야 하는 남자는 싫어해요.” “제가 같이 살기 싫다고 말씀드리니까 서운해 하시더라구요.” “싫다고 하니까 싫어하시죠. 그렇게 이야기하면 불효죠. 엄마에게 물어봐요. 제가 총각으로 이렇게 부모님 모시고 사는 것이 좋겠어요? 가정을 이루는 것이 좋겠어요? 하고.” “어제도 결혼하라고 하셨어요.” “요즘 여자들은 남자 뒤에 늙은 여자가 있는 것을 싫어한대요. 그래서 어머니께 ‘제가 장가갈 때까지 살림을 내서 살겠습니다.’ 이렇게 말씀드리고 먼저 살림을 조그맣게 내고 부모님께는 생활비를 좀 대어 주는 거예요. 생활비를 대어줄 때도, 이렇게 해야 돼요. 지금 100만원을 드리는데 결혼을 하면 50만원으로 줄이겠다 싶으면 조금 서운해 하시더라도 지금부터 50만원으로 줄여서 줘야 해요. 지금은 욕을 듣고, 결혼을 하면 70만원을 주면서, ‘아내가 50만원이 적다고 20만원을 더 올려 주래요.’ 이렇게 이야기해야 돼요. 결혼을 해서 부모에게 너무 효도를 하면 부인이 싫어해요. 그러면 부모와 부인 중간에 끼여서 살면자기 명이 단축돼요. 엄마로부터 딱 독립을 해야 돼요. 부모로부터 독립이 되지 않는 남자를 좋아하는 여자는 없어요. 첫째 독립을 먼저 할 것, 그 다음은 부모에게는 적절하게 재정을 지원할 것, 결혼해도 줄 수 있는 만큼 미리 줄일 것, 알겠어요? 부모가 어떤 말을 해도 ‘알겠습니다, 어머니. 걱정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이렇게 인사를 하고, 실제 하는 것은 내 하고 싶은대로 하면 돼요. 그러면 불효 아니냐? 아닙니다. ‘감사합니다’ 하는 것은 효고, 내가 하고 싶은대로 하는 것은 성인으로서 내가 사는 것입니다. ‘알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이 두 가지만 하면 됩니다. 엄마 말대로 따라해도 내가 결정한 것이고, 안 해도 엄마를 거역한 것이 아니라 내가 안 한 거예요. 엄마가 섭섭해 하면 ‘죄송합니다’ 하면 됩니다. 자기 인생이 먼저 독립되어야 합니다. 자식이 부모로부터 떨어져 나갈 때 느끼는 그 아픔은 어쩔 수 없습니다. 이렇게 해서 엄마도 적응을 해야 합니다.” 청년이 밝아서 강연장도 같이 밝아지는 느낌이었습니다. 강연을 마치고 책 사인회를 하고 단체 사진을 찍었습니다. 노원법당 불사 준비하랴, 강연 준비하랴 노원 자원봉사자분들 수고 많으셨습니다. 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 도봉구민회관 강연을 마치고, 돌아오는 차안에서 김밥으로 점심 식사를 하셨습니다. 다시 김밥의 계절이 돌아왔다며 저희들끼리 웃었습니다. 스님께서 평화재단에서 업무도 보시고, 사람도 만나셨습니다. 오후 강연은 수원 장안구민회관에서 있어서 오후 6시 재단에서 출발했습니다. 식사하실 시간이 없어서 싸간 도시락으로 차안에서 간단히 저녁 식사를 하셨습니다. 장안구민회관도 500석인데 사람이 많이 와서 중간 복도에까지 사람들이 앉아 강연을 들었습니다.강연을 시작하면서 스님께서 질문할 사람 손을 들어보라고 하니 13명이나 손을 들었습니다. 2시간 30분간이나 강연을 하셨는데도 8명밖에 하지를 못했습니다. 질문한 내용들이 모두 간단히 답을 할 수 있는 내용들이 아니었습니다. 강연을 마칠 때쯤 스님께서 “왜 이렇게 사는 것이 힘들어요?”하실 정도로 오늘은 삶이 힘들고 어려운 사람들의 이야기들이 쭉 이어졌습니다. nbsp 질문을 하는 사람들 대부분이 스님 법문이나 책을 읽었던 사람들이었습니다. 실제 자신의 문제에 스님 말씀을 적용을 해 가는 과정에서 어떻게 해 나가야 할지 몰라 질문을 하다보니, 기본적으로 스님에 대한 깊은 신뢰가 있어서 자신의 문제를 숨기지 않고 구체적으로 질문을 했습니다. 그래서인지 모두 무거운 이야기들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진지하고 재미있었습니다. 강연이 2시간 30분 동안 이어져도 강연장을 나가는 사람이 거의 없었습니다. “저는 딸아이를 키우면서 13년간 남편과 별거를 했습니다. 심한 우울증에 시달리며 살다가, 형부 친구를 소개받아서 재혼을 하려고 합니다. 다시 재혼할 남자에게는 아들이 하나 있었는데, 그 사람은 아들이 친어머니를 못 보게 했다고 합니다. 그러면서 제가 저희 딸과 만나는 관계를 불편해 합니다.전 남편과 같이 살고 있는 딸을 보면서 전 남편과 연결될까 봐 못 만나게 합니다. 그래서 결혼을 6개월 후로 보류하고 서로 다시 생각하기로 했습니다. 제가 결혼을 해도 딸아이와 만나지 않는 것은가능하지 않을 것 같습니다. 그렇다고 혼자 살기도 어렵습니다. 제 딸은 중학교 1학년입니다.” “제가 5살 때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9살 때 어머니가 재혼했습니다. 어렸을 때 가정불화가 심하고 어렸을 때 따돌림이 경험이 있고, 새아버지의 동생에게 여러 번 성추행을 당했습니다. 남들이 볼 때는 성실한데 저는 마음이 불안해서 직장을 오래 다니지 못했어요.” “‘스님의 주례사’를 요즘 봤어요. 결혼할 때 그 책을 못 본 것이 통한스럽습니다. 나는 사기 당한 것 같습니다. 모든 어른들이 이야기하는 대로 살았더니 결혼생활이 개판이 되어 버렸습니다. 결혼한 지 20년이 되었는데 대기업 다닐 때는 묻혀 살다가, 명퇴한 이후로 문제가 불거졌습니다. 집사람이 제가 부모에게 잘 하고 자기에게 잘못한 것을 도저히 용서할 수 없다고 합니다. 저에게도 그렇고 아이들에게도 심하게 합니다. 부부로서 남남이 된 지는 오래 되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저도 치료를 받아서 가족관계를 회복하고 싶습니다. 치료를 받아야 할 대상이 부인과 막낸데 저로서는 방법이 없어요.” “결혼한 지 19년 되었습니다. 남편 외도로 이혼을 하려고 했는데 이혼을 안 해주려고 합니다. 그래서 살려고 하는 것도 집착이고 안 살려고 하는 것도 집착이란 생각에 이혼 생각은 내려놨어요.둘째가 20살이 될 때까지 5년간은 더 살자고 마음을 먹었습니다. 남편과 시어머니에 대한 분노가 많아요. 시집에 대한 의무를 해라고 하면 분노가 올라와요. 시댁에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제가 맏며느린데.시어머니에 대한 분노가 많아요. 큰 애가 3살이고 둘째가 뱃속에 있을 때도 남편 외도 문제가 있었는데 시어머니가 애 떼고 큰 애 놔 두고 나가라고 했어요. 시댁은 외면하고 싶은데 외면할 수도 없고 마음이 편하지가 않아요.” 스님께서 한 사람 한 사람에게 자상하면서도 시원하게 이야기를 해 주셨습니다. 어리석어서 보지 못하는 부분을 깨우칠 수 있도록 때로는 꾸짖고 때로는 위로를 해 주셨습니다. 참 삶이 무겁고 힘든 사람들이 많구나 싶었습니다. 스님께서 마지막으로 정리 말씀을 해 주셨습니다. “자, 모두 따라 해 보세요. 기대가 크면 실망이 크고, 기대를 낮추면 만족이 크다. 지은 인연의 과보는 피할 수 없다. 깊은 산속, 깊은 바다 속에 숨는다 하더라도. 지은 인연의 공덕은 없어지지 않는다. 내가 원하는 때, 원하는 모습으로 나타나지 않는다 하더라도.” 사람들이 우렁찬 목소리로 스님 말씀을 따라 했습니다. 강연을 마치고 이어서 사인회를 했는데, 젊은 사람들이 많았습니다.nbsp스마트폰으로 스님 사진을 찍는 사람들이 많아 사인하기가 힘들 정도였습니다. 이렇게 100강의 첫 날이 저물었습니다. nbsp 내일은 평화교육원 평화리더쉽아카데미 8기 입학식이 있는 날입니다. 내일 입학식 소식 전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2013.03.21. 18,864 읽음 댓글 10개

2013년 3월 19일 법륜스님의 하루(출가기념일, 전문가 포럼, 여여회)

서울에서는 정말 스님 공양하실 시간도 없을 정도로 일정이 빠듯합니다. 오늘도 역시나 시간 시간 바쁘게, 알차게 보내셨습니다. 오늘도 아침 일찍 재단에서 모임이 있었습니다. 모임 후에는 서초정토회관에서 출가일 기념 법문이 있었습니다. 오늘은 부처님 출가 기념일이고, 26일은 부처님 열반 기념일입니다. 그래서 부처님 출가열반일을 맞이 하여 매년 8일동안 특별 정진을 합니다. 매일 정진을 하고, 매일 법문을 듣습니다. 올 해는 출가 기념일과 열반 기념일은주, 야로 서초정토회관에서 스님께서 직강을 하시기로 했습니다. 오늘은 주간과 야간에 부처님 출가기념 법문을 하셨습니다. nbsp 오전, 오후 법문이 참 밝고 가벼운 분위기에서 진행되었습니다. 봄이라 그런지, 스님을 오랜만에 만나서 반가워서 그런지 더 활기차고 즐거운 분위기 속에서 법회가 진행되었습니다. 출가에 대해서 말씀해 주셨는데 재미있었습니다. 특히, 부처님께서 출가하시면서 다 버리고 떠난 지위와 권력과 재물을 지금 불자들은 절에 가서 다리 아프게 절하면서까지 달라고 기도한다는 말씀에 다들 많이 웃었습니다. 웃으면서도 한쪽 가슴엔 안타까움이 스며들었습니다. “가출은 집을 나가서 다시 다른 집을 찾아 들어가는 것이고, 출가라는 것은 집을 떠나면서 집을 불살라버리는 것, 다시는 집에 들어가지 않을 때 그것을 출가라고 합니다. 여기서 집은 무엇을 상징할까요? 집은 보금자리입니다. 집은 우리를 보호해 주는 곳이고 내가 의지할 수 있는 곳입니다. 그런데 집은 또 다른 의미가 있어요. 집은 굴레예요. 집은 속박이고 감옥이예요. 이렇게 집에는 두 가지 의미가 있어요. 보금자리의 의미가 있고, 굴레의 의미가 있어요. 여러분들이 집을 그리워하는 것은 보금자리를 그리워하는 것이고, 집을 뛰쳐 나올 때는 굴레가 싫어서 뛰쳐 나옵니다. 굴레가 싫어서 뛰쳐 나오면 보금자리가 그리워 다시 들어가고, 보금자리가 좋아서 들어가면 굴레가 싫어서 또 다시 뛰쳐 나옵니다. 그래서 영원히 가출을 하고 삽니다. 윤회의 수레바퀴를 돌리지요. 여러분들은 집이 굴레는 없고 보금자리만 있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그런 곳이 없나 해서 이 집도 가보고 저 집도 가 봅니다. 그런데 그 둘은 분리 될 수가 없습니다. 보금자리가 곧 굴레입니다. 보금자리가 굴레임을 꿰뚫어 볼 수 있어야 출가를 할 수 있습니다. 영원히 굴레에서 벗어나서, 감옥에서 벗어나서, 굴레를 불사를 때 보금자리도 함께 불살라집니다. 의지처가 집이고, 집이 의지처임을, 그것이 굴레임을 꿰뚫어 알아야 합니다. 의지처를 불살라야 굴레가 없어집니다. 그럴 때 자기 힘으로 설 수 있습니다. 붓다는 자기 인생의 주인, 자기 운명의 주인입니다. 어디에도 의지하지 않습니다. 수많은 연관을 맺고 살지만 거기에 의지해서 자기 삶의 기쁨을 누리지 않습니다. 의지처를 버리고 출가를 하셔야 합니다.” 부처님의 출가를 다시 한 번 되새겨보고, 나는 지금 출가해서 살아가고 있는가 돌아보는 시간이 되었습니다. nbsp 스님께서 오전 법문 후 점심공양을 하시자마자 오후 2시부터 있었던 평화연구원 전문가 포럼에 참가하셨습니다. 오늘은 ‘한반도 신뢰프로세스, 첫 단추가 중요하다’는 주제로 한반도 신뢰프로세스에 대한 전문가들의 깊이 있는 토론이 이어졌습니다. nbsp 스님께서 먼저 인사말씀을 하신 후 토론이 진행되었습니다. 스님 말씀 중 일부분을 올려 봅니다. “남북간에 갈등과 대립이 상존하고 있지만, 우리가 만약 남북관계를 적극적으로 개선한다면, 10년이 지나고, 20년이 지나서 되돌아본다면 지금의 한일, 한중관계보다 훨씬 더한 이익이 있을 것이라고 예측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서, 이런 이웃나라와도 어려운 관계를 개선해서 국가이익을 도모하는데, 우리가 늘 옛날 이야기, 현존하는 갈등 이야기만 하면서 남북관계를 계속 뒤로 미뤄서 되겠느냐, 이런 말씀을 드리고 싶습니다. 해방68년, 전쟁을 휴전한지 60년이 지났는데도 우리는 분단도 극복 못할 뿐 아니라 평화도 제대로 정착시키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런데서 정전60주년을 맞아서 한반도에 다시는 전쟁은 없어야 한다는 종전선언, 그리고 앞으로 전쟁이 없도록 평화체제를 공고히 하는 일이 우리에게 정말 시급합니다. 더 나아가서는 동아시아의 정세 변화, 미국과 중국의 세력 변화가 이뤄지는 시대에 통일없이 우리 민족이 어떤 비전을 가질 수 있겠는가? 주변 정세에 능동적으로 대응하려면 통일은어느 때보다도 더 절실합니다. 희망은 이런데 현실은 정반대로 되고 있습니다. 정전협정 60년동안 많은 일이 있었지만 지금이 전쟁 위험이 가장 높은 때가 아닌가 싶을 만큼 고조되고 있습니다. 이런데서 우리 국민의 염원인 통일을 가져오는 그런 어떤 희망을 만들려면 북한을 나쁘다고만 한다고 해서 해결될 수 는 없습니다. 북한이 만약 나쁘다면 어떻게 상대하고 어떻게 관리해서 북한을 껴안아서 통일국가를 만들 것인가? 이것이 가장 중요한 정책의 모토가 되어야 하지 않겠나 싶습니다.” 스님은 통일을 위해, 북한동포들의 굶주림을 해결하기 위해 온 몸으로 절규하시는 것 같습니다. 가슴이 아픕니다. 전쟁의 위험이 그 어느 때보다도 높다는 지금의 남북한 현실이 참으로 안타깝습니다. 스님께선 인사말씀 후 뒤쪽 자리에 앉아서 포럼에 참가하고 계시다가 다음 일정에 맞춰 정토회관으로 오셨습니다. 오후 4시에는 정토회관 다담실에서 불자모임인 ‘여여회’ 회원 20여명과 이야기 나누는 시간이 있었습니다. 여여회는 여여한 사람들의 모임이라는 뜻이고, 주로 참선을 하는 사람들의 모임이라고 합니다. 김홍신 작가님과 인연이 있는 분들인데, 작가님의 소개로 오늘의 자리가 마련되었습니다. 먼저 자기 소개하는 시간을 가진 후 스님께 질문하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힐링캠프, 불교TV, 책 등여러 매체를 보고 스님을 뵙고 싶었는데, 오늘 만나게 되어 정말 기쁘다면서 직장에 휴가를 내고 온 사람도 있었습니다. 나이드신 분, 젊은 분, 남자, 여자, 주부, 변호사, 연예인, 고시생, 신문기자, 방송PD, 임용고시생, 학원 강사 등 회원으로 다양한 사람들이 참가하고 있었습니다. 좋은 배우자를 만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불교에서는 인생이 고라고 하는데 그 의미는 무엇인지에 대해서 질문을 했습니다. 스님께서 질문을 가지고 많은 말씀을 해 주셨는데, 직접 스님을 만나고 싶어서 찾아온 사람들이니만큼 진지하게 스님 말씀을 경청했습니다. 2시간 넘게 이야기를 나누고 단체사진을 찍고 마무리를 했습니다. nbsp 스님께서는 저녁 공양을 하신후 저녁반 출가 기념일 법문을 하셨습니다. 신발장이 가득 차고, 현관바닥에까지 신발들이 줄줄이 놓여졌습니다. 오랜만에 법당에 찾아온 사람들도 많아 반갑게 인사를 나눴습니다.스님 법문 후, 소리높여 관음정근을 하면서 출가열반일 정진을 시작했습니다. 내일부터 올 해 100강이 시작됩니다. 서울 도봉구에서 첫 테이프를 끊게 되네요. 오전에는 도봉구민회관, 오후에는 수원 장안구민회관에서 강연이 있을 예정입니다. 내일 뵙겠습니다.

2013.03.20. 16,013 읽음 댓글 4개

2013년 3월 18일 법륜스님의 하루(LG하우시스, 협동조합, PLA 동문모임)

어젯밤 주룩주룩 내리던 비가 아침이 되니 빗살이 약해졌습니다. 어제 캐온 쑥으로 쑥국을 끓이고,냉이를 데쳐 냉이나물을 해서 봄내음을 가득 몸에 불어 넣고 서울로 향했습니다. 서울에 도착하니 점심시간이었습니다. 스님께서 정토회관 공양간에 내려 가시니, 공양 자원봉사를 하던 분들의 눈이 휘둥그레졌습니다. 전에는 자주 공양간 내려 오셔서 공양을 하셨는데 요즘은 바빠서 공양간에서 공양하실 일이 거의 없어서 반갑기도 하고 어렵기도 한 것 같았습니다. 오후 3시에는 LG하우시스 임직원 대상으로 강의가 있었습니다. 강연전에 여의도 LG본사 건물 커피숍에서 사전 만남이 간단하게 있었는데, 사장님이 소탈해 보였습니다. 스님이 한 해 선배라 그런 지 스님을 깎듯하게 대하는 모습이 재미있었습니다. 강당에 들어가니 380여명의 임직원들이 자리를 가득 채우고 있었습니다. 직원들이 많은데 강당이 커지 않아 강당 자리 수만큼 인원을 채웠다던 직원의 이야기가 생각났습니다. 건물, 차량 내장재를 주로 다룬다고 하는데 그래서 그런지 여직원보다 남자직원이 많고, 젊은 사람들이 많았습니다. nbsp “제가 동일 직종 강의는 잘 안 가려고 합니다. 그 첫 번째가 방송국 강의입니다. 방송국에서 방청객으로 앉아 있는 분들은 3만원을 받고 강의를 듣습니다. 카메라가 가면 웃고, 카메라가 안 가면 집중을 잘 안 해요. 강의하기가 제일 어렵습니다. 두 번째가 회사 교육입니다. 강제 동원해 놓고 강의해라고 하는데 대부분 잡니다. 그리고 소통이 잘 안 됩니다. 자기 이야기를 마음대로 못 꺼내놔요. 군대, 경찰은 더 어렵습니다. 강의하기 제일 좋은 것은 자발적으로 자기 돈을 내어서라도 들으러 오는 사람들, 멀리서 강의듣기 위해 차를 몇 번이고 갈아타고 오는 사람들을 대상으로 강의하는 겁니다.” 그러자 사람들이 자기들 처지를 이야기하는 줄 아는지 큰 소리로 웃었습니다. 그렇게 스님께서 강의를 시작하셨는데 2시간 30분동안 열강을 하셨습니다. 너무 길게 해서 제가 괜히 주변이 신경이 쓰였습니다. 그래서 돌아보니 사람들이 재미있어 하면서 강의를 듣고 있었습니다.조는 사람은 보이지 않고 스님께 눈을 고정시키고 열심히 듣고 있는 모습을 보면서 사람들이 스님 말씀에 참 공감을 많이 하고 있구나 싶었습니다. 스님의 강연에 이어 질문을 3명이 했는데, 아이 교육과 종교의 문제, 직장인으로서의 행복에 대한 문제였습니다. 스님께서 꾸미지 않고 직설적으로 바로 이야기를 하니사람들이 시원해 하는 것 같았습니다. 사람들이 어디서 이런 이야기를 들을 수 있겠나 싶었습니다. “노동시간의 단축과 보수의 증가로 노동 해방에 이를 수 있을까요? 진정한 노동의 해방은 노동을 놀이화 하는 것입니다. 똑같은 일을 해도 돈받고 하면 노동이고 돈내고 하면 놀이입니다. 노동이 놀이화한다는 것은 돈받고 일하는 것이아니라 돈내고 일하는 것을 말합니다. 여러분들의 직장생활이 놀이처럼 될려면 돈을 내고 직장에 다니면 됩니다. 그러니 내일부터 다 돈을 내고 다니세요. 그러면 아주 즐거워요.” nbsp 스님의 말씀을 듣고 사람들이 박장대소를 하였습니다. 노동의 변화 역사를 살펴보면, 노동해방 쪽으로 조금씩 이동해 가고 있습니다. 고대에는 일을 하고도 돈을 받지 못하는 노예들이 대부분이었습니다. 노예는 신분으로 묶어놨어요. 그런데 그 다음은 신분이 아니라 토지로 묶어 놨어요. 그것이 농노예요. 그 다음은 토지에 묶인 것을 돈을 주고 풀었어요. 그러나 오늘 날 노동자는 돈에 묶여 있어요. 옛날 노예는 주인이 사고 팔았습니다. 자기에게 아무런 결정권이 없이 팔려 다녔습니다. 오늘 날 노동자는 자기가 결정을 하죠. 그런데 여러분들은 돈에 팔려 다니고 있어요. LG에서 500만원 받고 일하다가삼성에서 700만원 준다고 하면 가죠? 돈에 팔려 가죠. 돈으로부터 자유로운 상태가 아니예요. 묶여 있다는 것입니다. 돈에 우리의 삶이 묶여 있는 거예요. 그래서 돈에 급급할 수밖에 없는 거예요. 노동 다음이 자원봉사예요. 자원봉사는 돈을 받으려고 안 해요. 내 재능을 그냥 쓰는 거예요.” “우리의 문명도 노예에서 농노로, 농노에서 노동자로, 노동자에서 자원봉사자로 가는 거예요. 여러분들이 60세까지 어쩔 수 없이 돈을 벌고 살지만, 60대 이 후에는 자원봉사를 하세요. 여러분들이 현재 자본주의 시스템에서는 자신의 재능을 팔고 살지만 앞으로는 재능을 팔지 않고 필요한 곳에 사용할 수 있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그것이 자원봉사예요. 일요일이나 저녁 시간에 자원봉사를 하든지, 직장에 다니면서도 내 번 돈을 보시하든지, 내 재능을 돈으로만 거래하지 말고 봉사를 해 보세요.” 큰 박수로 강의를 마무리 하자마자 인사할 시간도 없이 바로 뛰어 나왔습니다. 대학생 때부터 지금까지 30여년간 스님과 인연을 맺어온 김성오씨가 『우리, 협동조합 만들자』라는 책을 출판해서 출판기념회 및 한국협동조합 창업경영자원센터 출범기념식에 축사를 해 주시기로 했는데, 시간이 빠듯했습니다. 다행히 차가 많이 막히지 않아 행사진행시간에 도착할 수 있었습니다. 스님께서 그동안의 김성오씨와의 인연을 이야기하면서, 앞으로 협동조합 운동이 사람답게 사는 세상에 기여할 수 있기를 바란다며 축사를 해 주셨습니다. 행사를 마치고도 참가해 주신 분들과 인사를 하면서 사람들이 거의 다 갈 때까지 자리를 지켜주시는 모습이 꼭 아버지같단 생각이 들었습니다.nbspnbsp nbsp 뒷정리를 하는 것을 보고 평화재단으로 돌아왔습니다. 저녁에는 평화리더쉽아카데미 동문회 모임이 있었습니다. 스님께서 동문회 행사하는 것을 지켜보고 계시다가, 짧은 강의를 하셨습니다. 스님의 화두는 통일입니다. 국가의 미래 비전, 동아시아와 인류의 번영을 위해 통일을 해야 하고, 통일만이 살 길이고 통일만이 희망임을 이제는 이야기할 수 있어야 한다며 오늘도 통일 이야기를 온 몸으로 해 주셨습니다. nbsp 오늘도 바쁘게 서울 시내를 돌아다녔습니다. 스님께선 어제 흠뻑 받은 봄 기운때문인지 더 신나게 강의하시고 사람들과 만나는 것 같습니다. 오늘 하루도 즐거웠습니다. 내일 뵙겠습니다. 감사합니다.

2013.03.19. 14,958 읽음 댓글 5개

2013년 3월 17일 법륜스님의 하루(봄나들이)

어제 늦은 밤 스님께서 공항에 도착하셔서 12시가 넘어 공항을 출발해서 두북으로 왔습니다.문수팀 행자님들 5명과 함께 이동했습니다. 서울의 회색빛 시멘트 건물들 속에 살다가 시골로 내려오니 봄 기운이 그대로 느껴졌습니다. 서울에서는 다시 갑자기 추워진 날씨에 다들 두꺼운 외투를 걸치고 어깨를 움츠리고 있다보니 제대로 봄을 느끼지 못했던 것 같습니다. 스님께서도 지난 1월부터 계속 이어진 해외 일정과 전국 정초순회강연, 그리고 또 다시 이어진 해외일정으로 계속 바쁘게 생활하시다가 원래 계획되었던 중국 연변에서 가난한 아이들에게 옷을 나눠주는 행사가 취소되면서 갑작스레 오늘 하루 여유로운 시간을 보내셨습니다. 쑥이 그렇게 많이 컸는 줄 몰랐습니다. 꽃들이 벌써 그렇게 피었는지도 몰랐습니다. 오늘 저녁은 쑥국을nbsp끓여 먹자며, 칼 한 자루씩을 들고 산책길에 올랐습니다. 야산을 하나 넘고 계곡을 지나 탑곡수련장까지 가기로 했는데, 가는 길에 쑥을 만나면 앉아서 쑥을 캐고, 꽃을 만나면 꽃을 보고 감탄하며 이야기를 나누다보니, 2시간이면 충분히 다녀올 거리를 4시간이 걸려서 다녀왔습니다. “햇살 좋은 곳에는 아마 진달래가 피었을 거야.” 산책을 시작하면서 스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산에 접어들어 조금 가다가 스님께서 “저기 봐라.”하시는 소리에 다들 스님이 가리키는 쪽을 보니진달래가 예쁘게 피어 있었습니다. 다들 “와아”하면서 반가움의 함성을 질렀습니다. 그런데 가다보니 햇살 좋은 양달에는 진달래가 곳곳에 무더기 무더기 꽃을 피우고 있었습니다. 스님 어릴 때 진달래꽃 따던 이야기를 들으며, 꽃잎도 입 속에 넣어 분홍빛 꽃잎즙을 목으로 천천히 넘기며 봄을 즐겼습니다. nbsp 쑥도 많이 자라 있었습니다. “여기 쑥이 많네.”하며 앉아 쑥을 캤는데, 처음 만난 쑥이라 그 쑥이 제일 큰 줄 알고 열심히 캤습니다. 그런 후 작은 야산을 넘어 햇살 잘 드는 곳에서 아까보다 더 큰 쑥들이 의기양양하게 자라고 있는 것을 발견했습니다. “와아”하며 우리는 또 한 번 함성을 지르고는 쑥을 캐기 시작했습니다. 스님께서 “왜 ‘쑥대밭’이란 말이 생겼는 줄 알아?”하며 이런 저런 이야기를 해 주셨습니다. 스님도 앉아서 쑥을 캐셨습니다. 저희도 주변으로 둘러앉아 어느새 성큼 자란 쑥을 보며 감탄하다가, 쑥국, 쑥떡, 쑥버무리 등 쑥을 넣어 요리하는 음식들 이야기를 하며 따사로운 햇살 아래서 즐거운 시간을 보냈습니다. 작은 야산을 넘어, 마을로 들어서자 목련꽃, 매화, 개나리를 비롯해 이름 모를 수많은 풀꽃들이 아름답게 꽃을 피우고 있었습니다. “와 자목련이 벌써 꽃을 피웠네. 꽃봉우리 정말 이뻐다.” “저기 보세요. 청매화랑 홍매화가 다 피었어요.” ㅍnbsp 햇살 좋은 담장아래엔 큰개불알풀의 은은한 푸른 꽃들이 군락을 이루며 맘껏 피어있고, 밭에는 광대나물이 분홍꽃을, 보라색 제비꽃도, 흰색 냉이꽃도, 노란색 꽃다지도 서로 질새라 곳곳에 꽃을 피우고 있었습니다. 성질 급한 벚꽃도 몇 몇 꽃잎을 벌써 터뜨렸고, 천리향도 피어서 봄의 꽃잔치에 동참하고 있었습니다. 마을에서 산으로 들어가는 입구 밭엔 농부 한 분이 경운기로 밭을 갈고 있고, 옆의 매화나무들은 상관없이 꽃을 활짝 피워서 무리를 이루고 있었습니다. 청매화꽃이 하도 예뻐서 사진찍느라 일행과 잠시 떨어졌더니, 스님께서 부르시기에 얼른 뛰어갔습니다. 산 초입에 짙은 진달래가 예쁘게 피어 있었습니다. 스님은 꽃을 좋아하십니다. 특히 어릴 때 봄이면 언제라도 볼 수 있었던 진달래를 좋아하시는 것 같습니다. 진달래앞에서 다같이 사진을 찍었습니다. nbsp 산 초입에 들어서니 생강나무 노란꽃이 곳곳에서 꽃을 피우고 있었습니다. 같이 동행한 한 분이 “저 노란 꽃이 산수유 아닌가?” 하고 묻기에 생강나무 가지를 하나 꺾어 주었더니, “어? 정말 생강냄새가 나네?”하며 신기해 했습니다. 양지바른 곳에는 양지꽃이 무더기로 피어 있고,찔레꽃 넝쿨에선 제일 먼저 파릇파릇 새싹들이 돋아나 있었습니다. nbsp 스님을 따라 사람이 거의 다니지 않는 계곡으로 들어갔습니다. 올 해는 눈이 많이 와서인지 계곡에 물이 많았습니다. 경쾌한 계곡물 흐르는 소리를 들으며 갯버들도 피어 있고, 떨어진 낙옆들 사이에 원추리, 개불주머니 새 잎들이 고개를 쑥쑥 내밀고 있었습니다. 현호색도 피어 있고, 꿩의바람꽃도 피어 있고, 이름모르는 여러 꽃들도 보일 듯 말 듯 피어 있었습니다. nbsp 스님께서 갯버들 가지 하나를 꺾어서 껍질을 비틀었습니다. “아직 물이 안 올라 껍질이 안 틀어지네?”하십니다. 시골에서 살지 않은 분들은 영문을 몰라 뻔히 쳐다보고 있었습니다. “물이 올라야 이렇게 비틀면 껍질이 잘 벗겨지는데... 이걸 가지고 버들피리를 만드는 거야.” 그제야, “아”하며 고개를 끄덕였습니다. 낙엽으로 덮혀 길이 없는 계곡 옆으로 길을 만들어 가며 걸었습니다. 선녀탕 같은 물웅덩이, 작은 폭포들, 맑은 냇물들을 보며 걸었습니다. 중간에 계곡에 앉아 잠시 다리쉼을 하며 먹은 간식도 참 맛있었습니다. 산책을 마치고 돌아와서는 봄맞이 밭갈이를 했습니다. 밭의 풀들을 뽑아내고 상추씨를 뿌리고 비닐을 덮었습니다. 오늘 저녁은 두북정토마을 하우스에서 뜯은 고소잎을 생절이로 무치고, 민들레잎도 잘게 썰어서 생절이를 했습니다. 두북정토마을 담벼락 아래에서 캔 달래로 달래장도 만들어서 봄을 비벼 먹었습니다. 산에도 갔다오고 밭일도 했더니 밥맛이 꿀맛이었습니다. 스님께서는 식사 후에 원고 교정과 업무 처리할 일이 많아서 업무를 보시고, 다른 일행들은 일찍 쉬었습니다. 저녁 먹은 후에 비가 한 방울씩 떨어지더니, 지금은 주룩주룩 비가 많이 오고 있습니다. 비 떨어지는 소리가 좋은 봄날 밤이네요. 다들 다음 휴일엔 도시를 나와 봄나들이 떠나보시는 것도 좋을 것 같습니다.nbsp감사합니다.

2013.03.18. 16,105 읽음 댓글 7개

2013년 3월 15일 법륜스님의 하루(종교인모임, 청춘학교)

스님께서는 지난 3월 7일 캄보디아, 베트남, 라오스 답사를 떠나셨는데, 오늘 아침 일찍 귀국하셨습니다. 스님과 함께 동행하셨던 분들 모두 건강하게, 무사히 잘 돌아오셨습니다. 공항에 마중나간 저희들에게 환한 웃음으로 귀국 선물을 주셨습니다. 이번에 다녀오신 답사에 대해서 저녁에 있었던 ‘청년학교’에서 말씀을 해 주셨는데, 먼저 그 내용을 올려봅니다. “저는 지난 한 주 동안에 캄보디아, 라오스, 베트남 갔다가 오늘 아침에 왔습니다. 간 목적은 캄보디아 북동쪽이고, 베트남과 라오스 국경지역에 ‘나타나끼리’라는 주가 있어요. 그 주는 산악지대로 캄보디아 사람들 중 원주민이 많이 살고 있어 캄보디아에서는 지역 개발이 가장 낮은 수준입니다. 학교가 없어서 많은 아이들이 학교를 못 다니고 있어요. 그 지역에 학교를 지어주는 일을 우리가 하고 있어요. 주 교육청 말로는 필요한 학교가 100개정도 된답니다.그래서 정부가 50개 짓고, 우리가 50개를 지어서, 일년에 10개씩을 짓는마면 5년 안에 학교문제를해결할 수 있을 것 같아 의논을 하고 있어요. 또 건축현황이나 학교 실태를 살펴봤습니다. 날짜를 길게 잡았던 것은 캄보디아 국경과 인접해 있는 라오스, 베트남 지역은 국가는 다르지만 같은 원주민들입니다. 라오스와 베트남도 캄보디아와 동일한 조건이지 않을까 싶어서 답사를 했습니다. 베트남은 생각했던 것보다 지역 개발이 많이 되어 있는 편이었어요. 문맹퇴치를 위해 학교를 짓는 일은 필요없을만큼 어느 정도 개발이 되어 있는 편이고, 라오스는 모든 마을에 학교가 있기는 있는데 그 상태가 다 열악했습니다. 나무기둥 세우고, 위에 양철지붕 하나 올리고, 대나무로 벽을 쳐서 배우는 그런 수준이 아직도 많았습니다. 아이들이 공부를 잘 할 수 있도록 교실을 제대로 만들어 주는 일이 우리가 할 일입니다. 또 이번에 돌아보니, 아이들이 대부분 교과서가 없어요. 선생님만 교과서를 가지고 있어요. 아이들에게 교과서를 지급하는 것, 연필이나 학습 교재를 공급하는 것이 필요했습니다. 선생님은 교사용 학습 참고서가 많이 필요하다고 했습니다. 여러 곳을 돌아보면서 우리가 무엇을 할 수 있나 살펴봤습니다.” 돌아오시자마자 평화재단에서의 일정이 계속 이어졌습니다. 10시 약속에 이어, 12시에는 ‘민족의 화해와 통일을 위한 종교인 모임’이 평화재단에서 있었습니다. 자주 뵈어서 이제는 저희들에게도 친근한 목사님, 신부님, 교무님, 선도사님 등 10여명이 넘는 분들이 활기차게 웃으시며 재단을 찾아 주셨습니다. 한 목사님은 빵과 오렌지를 사들고 오셨는데 꼭 다정한 할아버지 같았습니다. 재단에서 정성껏 점심식사를 드신 후, 말씀들을 나누셨습니다. 남북 관계가 워낙 살얼음 걷듯 하고, 국내정치도 만만치가 않아서 나눌 말씀들이 많았을 것 같습니다. nbsp 종교인 모임 이후에도 재단에서 계속 스님은 업무가 있으셨습니다. 사람도 만나고, 업무 점검도 하셨습니다. 그리고 저녁에는 ‘청년학교’ 개강 강연이 있었습니다. ‘청년학교’는 오늘은 서울에서, 다음 주에는 대전, 대구, 부산, 울산, 창원에 개강을 합니다. 총 11주 동안 ‘법륜스님으로부터 배우는 삶, 사랑, 시대’라는 소주제로, 스님의 저서를 가지고 이 시대의 젊은이로서 어떻게 살아야 할 지를 함께 토론하고 나누며 젊은이들이 자기 길을 찾아가는 프로그램입니다. 작년 300강을 할 때도 후반부로 가면서 특히 젊은이들의 참가가 늘어났었는데, 그래서인지 올 해 청년들을 대상으로 하는 프로그램에 젊은이들의 참가가 눈에 띄게 많은 것 같습니다. 청년들을 대상으로 하는 청춘학교, 대학생들을 대상으로 하는 붓다캠퍼스, 청년대학생을 위한 정토불교대학 등에 전국에서 많은 젊은이들이 노크를 하고 있습니다. 강당을 가득 채우고 있는 젊은이들의 모습이 든든했습니다. 스님께서는 환히 웃으시며 강단에 오르셨습니다. 스님의 책과 스님의 영상물로 인생을 공부하기 위해 모여든 청년들인만큼 스님을 향한 환호성이 대단했습니다. 스님께서도 거의 2시간동안 열강을 해 주셨습니다. nbsp 먼저 캄보디아, 라오스, 베트남 답사 다녀오신 이야기를 시작으로 이야기를 풀어가기 시작했습니다. “한국에 살면 한국내의 여러 문제가 참 크다고 느끼는데 외국에서 한국을 바라보면 사실은 별 문제가 아닙니다. 그런데 외국에서 보아도 한국이 왜 저럴까 하고 걱정되는 문제가 두 개 있습니다. 하나는 남북간의 전쟁문제이고, 또 하나는 북한 주민들의 굶어죽는 문제입니다.” “캄보디아, 라오스, 베트남 이런 나라에 가도 저에게 묻는 것이 있어요. 첫째가 남북한이 싸우는 전쟁문제입니다. 외국인들도 싸움이 걱정이 되어서 저한테 물어요. 그러니까 남북한의 평화문제는 우리나라만의 문제가 아니예요. 세계적인 이슈입니다. 두 번째가 북한의 아이들이 굶어죽는 문젠데 이것도 가난한 나라에 갔을 때 저에게 걱정이 되어서 진짜로 굶어 죽는지 거꾸로 물어봅니다. 그래서 이 두 가지 문제는 한국문제인 동시에 세계적인 문제입니다. 제가 필리핀 민다나오의 분쟁문제, 스리랑카의 분쟁문제, 평화의 문제를 이야기하다가도 한국문제에 대해서 질문을 받으면 힘이 쫙 빠져요. ‘자기나라 문제도 해결하지 못하면서 무슨 남의 나라 문제를 해결하려고 하느냐?’는 생각이 들어 자괘감이 들 때도 있습니다. 이 한반도의 평화문제와 그리고 북한주민의 문제는 우리가 같은 민족이 아니라도 우리가 마땅히 해결해야 할 인류 보편적인 문제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우리들의 문제가 무엇인지를 잊고, 개인 문제에만 빠져 있습니다. 한반도 평화와 통일은 우리문제이기도 하지만 세계 문제입니다. 그래서 이 두 가지 문제는 우리 문제인 동시에 보편적인 인류의 문제이기 때문에 이것을 잘 해결하지 못한다는 것은 인류의 보편적인 문제에 우리가 관심을 갖지 않고 있는 것이 됩니다. 그러므로 이 문제 해결없이 앞으로 대한민국 미래의 비전, 국가발전의 비전을 만들 수 있을까요?” nbsp 청년들이 진지하게 강의를 들었습니다. 시간이 늦었는데도 질문자들이 많아 3명만 한정해서 질문을 받았습니다. 다음 주부터는 먼저 스님의 책 ‘새로운 100년’을 가지고 2번에 걸쳐 세미나를 하게 됩니다. 그래서 스님께서 직접 한 명 한 명 이름까지 써주면서 사인을 해 주셨습니다. nbsp 11주 동안 이 청년들은 책으로, 영상으로, 직접 스님과 역사기행을 같이 하며 스님의 삶과 만나고,스님의 사상과 만나게 될 것입니다. 이를 통해 스님의 민족에 대한 사랑을, 역사와 인류에 대한 사랑을 느끼게 되고, 자연스럽게 보다 가슴 뜨거운 젊은이들로 거듭 나게 될 것입니다. 진정 주인된 삶으로 한 발자국 대딛는 기회가 되기를 기원합니다. 참가한 모든 청년들에게 큰 박수를 보내고 싶습니다. 감사합니다.nbspnbsp

2013.03.18. 15,848 읽음 댓글 3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