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합검색
원하시는 검색어를 입력해 주세요
2013년 2월 20일 법륜스님의 하루(진주, 목포, 광주)
오늘은 서부경남인 진주에서 오전에 법회를 하고, 오후 3시에 목포, 저녁 7시 30분에 광주에서 법회가 있었습니다. 진주에서 3년 산 적이 있어서 진주법당은 위치가 어디쯤일까? 어떻게 꾸며져 있을까? 관심이 갔었는데,nbsp 오늘 가 보니 생각보다 넓었습니다. 부엌도 넓고 방도 넓고 공간도 환해서 좋았습니다. 부엌에서는 점심 공양을 준비를 하고 있고, 오늘 오실 분들을 맞이하기 위해서 전체가 다 분주했습니다. 법회를 시작하면서 뒤에 올 사람들을 생각하며 앞으로 바짝 당겨 앉았습니다. nbsp 첫 질문자는 음식물 남기는 것에 대해 너무 예민해서, 남김없이 먹다보면 위가 찢어질 것 같다고 했습니다. 위가 찢어져서 일찍 죽을 것 같다며 남긴 음식물에 대해서 어떤 입장을 가져야 하는지 물었습니다. “내가 채식하는 일은 좋은 일이지만 남에게 강요해서는 안 됩니다. 내가 술을 안 먹는 것은 참 좋은 일이지만 남이 술먹는 것을 비난해서는 안 됩니다. 술을 마시지 말라고 권유할 수는 있습니다. 내가 불교를 믿는 것은 좋은 일입니다. 그러나 남에게 강요해서는 안 됩니다. 내가 이렇게 한다고 그렇게 하지 않는 다른 사람을 비난해서는 안 됩니다. 내가 음식물 남기지 않는다고, 음식물 남기는 남을 비난할 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권유는 할 수 있습니다. 짜증이 있거나 원망하거나 남을 미워하면 안 됩니다. 처음부터 이 운동은 적게 만들고 적게 먹자는 운동이었습니다. 많이 만들어서 다 먹자는 운동은 아닙니다. 그러나 남기지 않기 위해서 과식을 하면 안 됩니다. 남긴 것을 싸와서 나중에 집에서 먹으면 됩니다. 건강을 위해서는 소식이 좋습니다. 일단, 음식을 적게 만들어야 합니다. 옛날에는 배가 고프니까 많이 해서 남아야 좋은 잔치였습니다.요즘은 음식이 넘치기 때문에 단체로 할 때 소식을 시켜줘야 합니다. 100명이면 80명 먹을 정도로 해서 부족하도록 하는 문화를 만들어 봅시다. 지금은 과영양 때문에 몸이 안 좋습니다. 배고플 때의 문화가 배 부를 때의 문화로 연결되고 있습니다. 그리고 채식을 할수록 환경에도 좋고 건강에도 좋습니다. 고기를 안 먹어도 외식을 하기 때문에 어디에 들어있어도 동물성 단백질이나 지방이 들어 있습니다. 일부러 고기를 안 먹어도 됩니다. 음식을 적게 만들고 덜어 와서는 남기지 않고 먹으면, 자원도 아끼고 재정적으로도 좋고, 환경적으로도 좋습니다. 쓰레기 대란도 해결이 됩니다. 그러나 이것이 좋다고 안 하는 사람은 나쁜 사람이라고 생각하면 안됩니다. 수행이라는 것은 남을 보는 것이 아니라 자기를 보는 것입니다. 정토회에서는 그렇게 하기로 한 사람들이 모였으니까 하면 되고, 밖에는 알림은 할 수 있지만, 왜 많이 시키고 왜 남기느냐고 화를 내면 안 됩니다. 문화는 쉽게 안 바뀝니다. 꾸준히 노력해 가야 합니다.” 음식물 남기지 않는다고 짜장면집 간장까지 다 마셔서 속이 탈이나 병원에 갔던 후배 생각이 나면서, 상황이 여의치 않아 안 남기기 위해서 과식을 하거나, 어쩔 수 없이 남겨서 마음이 찝찝했던 많은 경험들이 떠올랐습니다. 스님 말씀 들으면서 빈그릇운동 한참 할 때에 비해서 나도 많이 해이해져 있구나 하며 돌아봐지는 시간이 되었습니다. 마지막 질문으로 60대 아주머니 한 분이 일어나서 질문을 했습니다. “집 고칠 때 화장실을 함부로 고치는 것이 아니라던데예.” “함부로 고치지 말고 정성껏 고치세요.” “어떻게예?” “함부로 고치지 말고, 정성껏 고치면 됩니다.” “예. 알겠습니더.” 사람들이 다같이 웃었습니다. 여태껏 문답 중 가장 짧은 문답이었던 것 같습니다. 다음 법회가 목포라서 일찍 마쳐야 되는데 계속 질문자가 있어서 12시쯤에 마쳤습니다. 점심먹을 시간이 없어서, 법회 마치자마자 바로 출발했습니다. 스님 오신다고 점심식사를 정성껏 준비했는데, 스님께서 드시지 못하고 바로 출발을 해서 진주법당 신도님들께는 정말 죄송했습니다. 점심은 목포 가는 길에 휴게소에서 간단하게 우동 한 그릇 후딱 먹고 이동했습니다. 목포법당은 인테리어는 다른 법당들과 비슷한데, 정면 바탕색깔만 다른 것 같았습니다. 목포에도 사람이 꽉 찼습니다. 경상도는 불교인이 많지만 전라도는 적기 때문에 목포에도 많은 사람이 올 것이라 생각지 못했는데, 법당에 사람들이 가득 찼습니다. 어제까지는 영남지역 국장님과 담당자들이 같이 다녔는데, 오늘은 중부권 국장님과 담당자들이 함께 자리를 하고 있어서, 지역이 바뀌었구나 싶었습니다. nbsp 목포는 법에 대한 질문보다는 불교 일반에 대한 질문이 더 많았습니다. 목포에서도 오지에 살고 있다는 아주머니는 그 곳에서 혼자 불교를 믿고 있는데, 기독교는 농사도 잘 되게 해주고 모든 것을 다 이뤄준다는데 불교는 마음만 닦아라고 한다면서, 혼자 108배도 하고 관세음보살 보문품 강독도 많이 하는데 잘 안된다며 스님께 투정하듯이 이야기했습니다. 어떤 여자분이 일어나서 불교의 신관에 대해서 알고 싶다면서 죽음 후의 내세관에 대해서, 증산도의 후천 개벽에 대해서 스님은 어떻게 생각하는지 물었습니다.아이 세 명이 있는 엄마는 아이를 어떻게 해야 잘 키울 수 있는지 물었고, 또 한 분은 친정할아버지와 친정할머니의 제사를 합해도 되는지 물었습니다. nbsp 사람들이 순박해 보였습니다. 스님께서 말씀하시는 하나 하나를 조용히 귀담아 들으며 수긍을 해 나갔습니다. 스님께서도 질문한 분의 근기에 맞게 자세하고 자상하게 말씀을 해 주셨습니다. 때론 다같이 웃기도 하고, 때론 조용히 귀를 기울이기도 했습니다. 그래서 법회 분위기가 전체적으로 진지하면서도 가벼운 분위기였습니다. 목포에서 법회를 마치자마자 바로 광주로 향했습니다. 전에도 퇴근시간에 광주에 들어갔다가 차가 밀려서 혼난 적이 있어서 서둘렀습니다. 또 중간에 스님께서 만날 분이 있어서 잠시 만나고 법당으로 갔습니다. 저녁법회 때는 직장인들을 위해서 저녁식사 준비를 하는 곳이 많은데, 광주에 와보면 언제나 푸짐한 느낌입니다. 오늘도 과일과 떡과 두툼하게 직접 만 김밥과 반찬들이 사람들을 즐겁게 해 주고 있었습니다. 스님 식사상에도 연초록 머위잎이 올라와 있어 봄내음이 물씬 풍겼습니다. 제가 광주법당은 워낙 여러 번 왔었는데, 와본 중에 오늘 사람들이 제일 많이 온 것 같았습니다. 광주법당이 넓은 편인데, 법당 가득 사람이 와서 총무님도 기분이 좋은지 내내 싱글벙글 하였습니다. 스님께 청법가와 청법 삼배를 올리고 법회를 시작했습니다. nbsp 질문자도 많았습니다. 처음 시작할 때 질문할 사람 손들어서 7명만 질문하는 것으로 하고 시작했습니다. 화가 나면 억제가 되지 않아 지금은 아내와 7개월째 별거를 하고 있다는 분은 뭔가 바꾸고자하는 의지가 옆에서도 느껴졌습니다. 아내도 같이 와서 스님께서 각각 기도문을 주고 기도하는 방법을 알려주셨습니다. 기도 열심히 해서 화목한 가정을 이룰 수 있기를 기대해 봅니다. 기도가 꾸준히 되지 않는다는 분의 질문과 스님 말씀을 옮겨 봅니다. “스승의 은혜 감사합니다. 6차 천일결사 중 9차 백일기도 때부터 입재를 했지만 거의 백일을 채워본 적이 없습니다. 그리고 식탐이 많습니다. 먹어도 먹고 싶고, 허기가 찹니다. 보시할 때는 처음에 마음 먹었던 수준의 13로 내려갑니다. 교만한 생각이 많고 남을 가르치려는 마음이 많습니다. 기도문을 받고 싶어서 일어섰습니다.” “그냥 그렇게 사세요. 돌고 돌면서 살면 돼요. 먹고 싶다고 자꾸 먹으면 자꾸 살이 찌는 것이고, 기도 빼먹고 안하면 자기 까르마가 늘 돌고 도는 것이고.” “법륜스님 제자로 있을 때 변해야 하지 않을까요?” “제자라고 하는 사람들 90는 안 변해요.” “저는 그래도 3년 전보다 많이 변했습니다.”사람들이 와하며 많이 웃었습니다. “그럼 우선 밥 먹는 것 하나를 하든지, 기도를 하나 하든지 한 개만 시도해 봐요. 하나라도 변화한 경험이 있으면 다른 것도 다 가능해져요. 한꺼번에 다 하면 힘드니까요. 아침기도를 하기로 했으면, 새벽 5시에 일어나서 1시간 기도하겠다고 결심을 했으면 몸이 아픈 날도 하고, 손님이 오는 날도 하고, 초상난 날도 하고, 하고 싶은 날도 하고, 하기 싫은 날도 하고. 이것을 안 바꿔야 됩니다. 회사는 빼먹더라도 기도는 안 빼먹는 겁니다. 하기로 한 것은 하는 거예요. 그러면 그 과정에 못할 일이 수도 없이 일어납니다. 몸이 아프다든지, ‘손님 왔는데 기도한다면 욕 듣지 않을까?’ ‘초상났는데 무슨 기도인가?’ 하며 못할 핑계가 자꾸 일어나는데 이것을 마장이라고 합니다. 보통 그 때 그만두게 됩니다. 새벽기도를 하기로 했으면 그냥 하는 겁니다. 결심하고 각오할 것도 없이 하는 것입니다. ‘밥을 안 먹더라도, 잠을 안 자더라도 기도는 한다.’ 이렇게 정해서 하면 엄청난 저항이 오더라도 업이 못 이깁니다. 업을 제압하는 겁니다. 마왕을 제압하는 겁니다. 마왕이 밖에 있는 것이 아니라 내 안에 있기 때문입니다. 저녁을 안 먹기로 했으면 안 먹는 거예요. 기도하기보다 이것이 더 어려울 겁니다. 딱 정해서 하면, 나중에는 친구들이 이해합니다. 다 해결이 되게 되어 있습니다. 수요일날 무조건 절에 온다,회사에서 잘리더라도 온다고 정해서 절에 다니면 나중에는 주위 사람들이 다 조정해줍니다. 먼저 자기가 극복을 해야 바깥 세상이 바뀝니다. 기도문은 ‘하기로 했으면 그냥한다.’입니다. 이것이 해탈로 가는 출발입니다. 하나만 극복하면 다른 것은 극복하기 쉽습니다.” nbsp 8차 백일기도 시작한 지 며칠 밖에 지나지 않았습니다. 이번 백일기도 동안은 스님 말씀따라 그냥, 무조건 한 번 해 보면 좋을 것 같습니다. 오늘은 경상도와 전라도를 돌아 늦은 밤에 서울에 도착했습니다. 내일은 청주, 제천, 원주에서 법회가 있을 예정입니다. 감사합니다.
2013년 2월 19일 법륜스님의 하루(마산, 거제, 통영, 창원)
오늘은 마산, 거제, 통영, 창원정토법당에서 스님 법문이 있었습니다. 하루에 4군데 법회를 할 때는 법문만 마치면 바로 나가야 하고, 밥도 바쁘게 먹고 얼른 다음 장소로이동을 해야 합니다. 마산정토회는 마산 어시장 주변 큰 길가 3층에 있습니다. 스님을 모시고 들어가니 자원봉사자들이스님을 반가이 맞이했습니다. 30여분 일찍 도착했더니, 스님께서 쉴 수 있도록 방을 따뜻하게 데워놓고 과일과 떡과 차를 준비해 주었습니다. 스님께서는 이번 주말에 있을 행사와 이사회 등 점검할 업무가 많아서 계속 서울과 통화하느라 바쁘셨습니다. 법문을 시작할 때는 뒷자리가 좀 비었더니, 꾸준히 사람들이 왔습니다. 어제 법문을 했던 밀양, 김해에서도 활동가들이 와서 참가를 했습니다. 정토회를 잘 모르는 사람들이 아니라, 정진하고, 불교대학 다니고, 정토회 자원봉사를 하는 자원봉사자들이 개인적인 문제, 활동을 하면서 생기는 문제들을 질문했습니다. nbsp 백일출가를 한 후 지금도 저녁반 자원봉사를 하고 있는 한 분은 어떤 직장을 다녀야 할지 물으면서옳다, 그르다는 분별이 많고 현실을 외면하면서 어려울 때 도망치는 업식을 이야기하며 어떻게 기도해야 할지 물었습니다. 작년에 불교대학을 졸업하고 주간에 자원봉사를 하고 있는 분은 시부모님이 계신 집에 들어가기 싫어서 해가 뉘엿뉘엿 져야만 집으로 들어간다고 했습니다. 우울증이 오고, 사춘기 아들과의 관계가 힘들 때 정토회를 만나 천일결사와 불교대학에 다니고 있는데, 매일 108배는 하지만 정토회 기도순서대로도 기도하기가 어렵다, 아들이 스마트폰으로 놀 때 지혜롭게 그만 두게 할 수 있는 방법이 있는지 스님께 여쭈었습니다. 50중반의 한 여자분은 아직 활동할 에너지가 남았는데 인생의 목표를 어디에 두고 이 에너지를 어디에 써나가야 할지 묻는 분, 올 해 79세라는 할머니는 죽을 때가 다 되었는데 아직 빚이 남아있어 다 못 갚고 갈 때는 어떤 마음으로 가야하는지 물었습니다. 마산은 질문자들이 천일결사자들이 많아 스님께서 길을 안내해 주시면서 제대로 하지 못하고 있는 부분에 대해서는 꾸지람을 하셨는데, 질문자들은 오히려 시원하고 정신이 차려지는 것 같다며 좋아했습니다. 작은 법당이든, 큰 법당이든 질문자 수는 비슷한 것 같습니다. 오늘도 가는 법당마다 질문자들이 많아 다 받지 못하고 다음 법당으로 향하곤 했습니다. 요즘 가는 법당마다 스님께 감사하다며 꽃다발을 선물합니다. 마산에서도 질문했던 보살님이 나와스님께 꽃다발을 드렸습니다. nbsp 질문이 많아, 다 받지 못하고 저녁에 창원으로 오라고 하고는 바로 거제정토법당으로 출발했습니다. 거제대교를 지나 거제에 들어서자 거제 앞바다가 눈에 시원하게 들어왔습니다. 거제법당도 작지만아담하게 잘 꾸며져 있었습니다. 거제총무님이 긴장된 표정이라 살며시 다가갔더니, 괜히 긴장되고 떨린다며 살며시 웃었습니다. 작은 법당에 사람들이 꽉 찼습니다. 가는 법당마다 법당크기만큼 사람들이 가득 차는 것이 재미있습니다. 법회가 시작되었습니다. 스님께서 신해행증에 대해서 말씀하시면서 올 해는 불교 공부를 해서 자기 행복도를 높일 수 있도록 해라는 말씀이 기억에 남습니다. 첫 질문자는 6년전 불교를 인지한 상태에서 우연히 스님 법문을 듣게 되었는데 불교가 진리의 가르침이라면 알아볼만 하겠다 해서 깨달음의 장도 다녀오고 3년동안 공부를 했는데, 지금은 마음공부 하는 것이무섭고 두렵다고 했습니다. 다음 분은 처음 왔다고 하면서 질문을 시작하면서부터 말을 잇지 못하고 울어서 무슨 큰 일인가 보다 하며 모두들 조용히 귀를 기울였습니다. 아들이 둘이 있는데 작은 아들은 장가를 가고, 박사 과정에 있는 큰 아들이 여자를 사귀는데, 가족들이 여자가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하는데도 계속 사귄다며 너무 힘들다고울었습니다. 본인은 심각한데, 이야기를 들은 대중들은 다같이 한바탕 웃었습니다. 이 분은 스님께 심보가 고약하다고 한 말씀 들었는데, 마칠 때는 환하게 웃었습니다. nbsp 남편과 관계가 안 좋다가 스님 책을 보고, 불교대학에 입학해서 공부하게 되면서 지금은 잘 지내는데, 이제는 남편을 닮은 딸과 갈등이 생긴다며 어떻게 해야 할지 묻는 분은 딸이 죽음이 두렵다고 이야기한다며 이 때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 지 물었습니다. 스님께서 “딸이 몇 살이예요?” “8살요.” 딸이 8살이라는nbsp말에 사람들이 또 한 번 소리내어 웃었습니다. 남편에게 참회기도하면서 엄마가 행복해지면 자연스레 아이도 행복해진다는 말씀에 다같이 마음도 가벼워지는 느낌이었습니다. 거제는 법회가 2시고, 통영은 법회가 4시라, 법문을 마치자마자 차를 타러 건물 입구로 내려왔습니다. 거제 보살님들이 입구까지 따라 오셔서 새 쑥으로 만든 떡이며, 딸기, 쿠키, 피자까지 싸주셨습니다. 한 아름 선물을 받고 통영법당으로 향했습니다. 통영법당은 정말 작았습니다. 10평 정도 된다고 합니다. 여태껏 다닌 법당 중에 제일 작은 법당이었습니다. 그런데도 36명이 참가해서 꽉 채워 앉았습니다. nbsp 스님께서 “작은 법당에 옹기종기 모여 앉으니 좋으네요.”하고 웃으시며 법문을 시작하셨습니다. 오온개공이라 했는데, 유주무주고혼이라 하며 영가가 있다고 하고 이를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 궁금하다는 남자분, 배우자가 정말 고집이 센데 그런 배우자에게 어떻게 대처해야 현명한 아내가 될 수 있는 지 묻는 분, 사람과의 인연에도 유효기간이 있는 지 묻는 분, 스님도 고민이 있는지 묻는 분 등 통영에서도 이런저런 재미있는 질문들이 많았습니다. 법문을 마치자마자 또 바로 창원으로 이동했습니다. 퇴근 시간과 겹쳐져서 차가 막힐 수 있어서 지체하지 않고바로 출발했습니다. 통영에서도 충무김밥과 꿀빵을 싸 주셨습니다. 전국으로 다니니까 각 법당들마다 과일이며, 좋은 것들을 스님께 드리고 싶어 보따리 보따라 싸주십니다. 덕분에 저희들이 잘 먹고 있습니다. 감사드립니다. 다행히 차가 많이 막히지 않아 일찍 창원에 도착할 수 있었습니다. 창원정토법당도 자그마한 법당이라 따로 방이 없어서, 사무실 한 켠에 파티션을 치고, 스님께서 30분정도 앉아서 업무를 보다가 법회에 들어가셨습니다. 창원법당에도 한 사람도 더 비집고 앉을 수 없을 정도로 빽빽하게 앉아서 법문을 들었습니다. 질문이 정말 많았습니다. 밤 10시가 다 되어가는데도 계속 질문이 있어서, 오늘은 더 이상은 안된다며 자르고 왔습니다. 처음 손들 때는 6명정도 손을 들었는데, 법회가 진행되어 갈수록 질문자는 계속 늘어나는 것 같습니다. 질문 9개까지 받고 마무리를 했습니다. 질문들도 워낙 구체적인 생활 속의 문제들이라 재미있었습니다. nbsp 학교에서 아이들을 때리는 아이를 어떻게 가르쳐야 하는 지 묻는 초등학교 교사, 부모님이 남긴 땅 때문에 형제간의 우애가 상해질 수 있는 상황에서 어떻게 땅을 처리하는 것이 좋겠는지 묻는 분, 노인요양원에 투자를 했는데 지금 포기를 해야 할지, 계속 투자를 해야 할지 어려움에 놓여 있다는 분, 잘 때 이가는 아이를 어떻게 하는 것이 좋겠는지 묻는 분, 고집불통인 남편과 계속 살아야 할지 묻는 분 등 질문도 가지가지였습니다. 25년만에 처음으로 숨겨두었던 남편에 대한 속내를 꺼낸 분은 아마 오늘 오신 분들 중 제일 시원했을 것 같습니다. 그 분 이야기를 옮겨 봅니다. “스님께서 의식의 지평을 넓히라고 하셨는데, 개인적인 이야기를 해서 송구스럽습니다. 저는 제 남편이 밉다는 것도 있지만 한심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상대를 한심하게 생각하는 것이 저 자신을 사랑하지 못해서 그렇다는 것은 아는데요...” “남편이 하는 한심한 행동이 구체적으로 어떤 거예요? 우리가 수행차원으로 이야기하는 것이니까 이야기 한 번 해 보세요.” “저도 이런 이야기하기가 좀 뭣해서 다른 동네가서 질문할까 하다가 불교대 도반들이 용기를 줘서질문합니다. 저희 남편은 소위 말하는 마마보이거든요. 제가 정토회 와서 수행하고 조금 변하니까 엄마에게 물어보던 것을 이제는 저에게 다 물어봅니다. 남편이 대기업의 부장이거든요.” “좀 더 구체적으로 이야기해 봐요. 제일 한심할 때가 언제예요?” “어느 모임이나 상가집에 갈 때 자기 엄마에게 전화해서 옷 뭐 입고 갈까? 묻습니다. 그런데 지금은 저에게 묻습니다.” “물으면 가르쳐 주면 되잖아요. 이것 입고 가라는데 저것 입고 가는 것보다 훨씬 낫지 않아요? 상가집에 가니까 실례 될까 해서 엄마에게 물어볼 수 있지요. 이야기 들어볼수록 자기가 문제네요. 멀쩡한 남자를 못난 남자 만드네. 그것은 문제가 안돼요.” “지금도 제가 이해가 안 되고 미운 것이 하나 있거든요. 저는 중매결혼을 했어요. 저하고 결혼하기 전에 서울에 근무하는 여직원과 사겼는데, 서울 여자 깍쟁이라고 엄마가 반대를 했나봐요. 그래서 저와 선을 봐서 결혼을 했는데, 두 사람이 정리가 안 됐었는지, 서울 출장가면 제가 속옷을 챙겨준 것을 그대로 가져와요. 여자는 감으로 알거든요. 한심한 것은 엄마가 하지 말라고 한다고 자기 사랑하는 여자를 못 지켰을까? 하는 생각이 들어요.” “부모가 반대해서 결혼하지 못한 경우가 일반적으로 50는 돼요. 남편이 엄마 말 들어서 자기랑 결혼했잖아요. 시어머니에게 ‘감사합니다. 그 여자에게서 아들을 뺏어서 나에게 줘서 감사합니다’ 하고 기도하세요. 그리고 탁 털어 버리세요.” “결혼한지 25년 되었는데, 제가 고상해지고 싶어서 오늘 이 이야기 처음 했습니다.” “감정적으로 기분 나쁜 것은 이해가 됩니다. 그러나 그런 정도는 조금만 생각해보면 이해할 수 있는 일이예요. 탁 털어 버리세요. 내가 남편 보고 마마보이라고 하면 자기 자식도 마마보이가 돼요. 제 자식이 엄마에게 하나 하나 다 묻고 이러면 얼마나 귀여운데요?” “예. 좋아요. 저도 아들 낳고 키우면서 시어머니가 이해되는 면이 커졌어요.” “남편이 자기 엄마에게 잘 하는 것은 욕하면 안 됩니다. 그러면 벌 받아요. 그리고 자식 부부가 사이 좋은 것을 질투하는 엄마도 벌 받습니다. ‘우리 남편은 참 효자구나’ 하고 좋게 생각하세요. 남편도 이제 엄마가 늙으니까 마누라에게 물어보는 것이니 가르쳐주면 됩니다. 나이 50이 넘어가면 남자들 기가 꺾여요. 이 때는 잘 다독거려 주면서 잘 하고 있다고 기를 살려 주세요.” 재미있었습니다. 사람들이 어렵게 질문하신 분에게 큰 박수를 보냈습니다. 불교대학 다니고, 천일기도를 하는 사람들이라 자기 문제를 조금씩 알고 있고, 스님의 말씀에 대해서 그대로 받아들일 수 있는 힘이 있어 보였습니다. nbsp 오늘 정말 열심히 달렸습니다. 각 법당들의 분위기도 다르고, 질문들도 다르고, 사람들도 달라서 한 군데, 한 군데가 다 새로운 느낌이었습니다. 내일은 진주, 목포, 광주로 갑니다. 내일 뵙겠습니다. 감사합니다.
2013년 2월 18일 법륜스님의 하루(밀양, 김해, 동래)
두북엔 밤새 비가 내렸습니다. 새벽에 일어났을 때도 비가 조금씩 내리고 있었습니다. 처마에서 봄비 떨어지는 소리가 좋아, 마루에 앉아 이른 새벽의 약간 차가운 봄을 잠시 느껴 봤습니다. 오늘은 밀양정토법당, 김해정토법당, 동래정토회에서 법회가 있었습니다. 밀양과 김해는 최근에 생긴 법당이고, 동래정토회는 20여년이 된 오래된 법당입니다. 작년에는 전국 시군구 지자체를 돌아서 전국 안 가본 곳 없이 다 다녀본 행운을 얻었었는데, 요즘은 정토회 전국 법당을 돌아다니며 최근에 생긴 법당까지 다 가보게 되는 행운을 얻어서 즐겁습니다. 작은 정토법당들은 불상을 모시지 않고 서울정토회관 불상 사진을 액자로 해서 모시고 있습니다. 인테리어도 최근의 법당은 다 비슷한데도 걸어놓은 현수막이나 동참하고 있는 보살님들의 분위기들이 달라서 그런지 각각 다 다른 느낌들이라 방문하는 재미가 있습니다. 두북에서 밀양이 멀지 않아 오늘 아침은 좀 여유가 있었습니다. 스님께서는 일찍 아침 식사를 하시고, 저희들은 천천히 아침밥을 먹고, 오전 9시 30분경 밀양으로 출발했습니다. 얼음골 사과가 유명한 밀양은 인구 10만의 자그마한 도시입니다. 시내에 사는 인구가 5만정도 되고,시 외곽에 사는 인구가 5만정도 된다고 합니다. 법당이 위치한 곳이 밀양 시내 중심지에서 약간 외곽인 것 같았습니다. 밀양정토법당에 도착하니 1층에서부터 자원봉사자들이 스님을 반갑게 맞이했습니다. 환한 얼굴로 스님께 수줍게 인사하는 보살님들의 모습이 참 예뻤습니다. 밀양정토법당도 잘 가꾸어져 있었습니다. 자원봉사자들도 젊고 수수한 보살님들이었습니다. 자그마한 법당에 사람들이 가득 찼습니다. 분위기가 밝고 가벼웠습니다. 총무님이 스님의 법당 방문을 축하하며 꽃다발을 전달하고 법회가 시작되었습니다. nbsp 오늘은 밀양, 김해, 동래 세 군데 모두 질문자들이 스님께 대부분 감사하다는 인사를 먼저 하고 질문을 했습니다. 밀양에서의 첫 번째 질문자는, 남편과 사별하고 11살 딸을 키우고 있는데 남편 사별한 직후에 스님 법문을 만나게 되어 어려운 시기를 잘 극복하게 되었다면서 스님께서 밀양에 오셔서 너무 감사하고 좋다고 했습니다. 그 분은 이제 나이가 39살밖에 되지 않아 올해는 남자를 만나볼까 생각하고 있는데 사춘기가 시작되는 딸아이에게 어떻게 이 문제를 받아들이게 하는 것이 좋을지, 여태껏 어려운 시기에 스님께서 손을 잡아주셨으니 이 문제에 대해서도 손을 잡아달라는 여자분의 이야기가 진솔하면서도 밝고 가벼워서 재미있게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습니다. 또 다른 한 분은 자식의 왕따 문제에 대해서 질문을 했는데, 요즘 매일 질문으로 나오는 문제입니다. 갈수록 청소년들의 불안 증세가 심해질 수밖에 없다든 스님의 말씀이 생각나는 질문들이 각 법당마다 질문으로 나와서 요즘 정신 불안의 자식으로 인해 많은 부모들이 힘들어 하고 있구나 싶었습니다. “저는 아들 하나, 딸 하나를 키우고 있는데요, 딸은 뭐든지 알아서 잘 하는데, 아들은 어릴 때부터학교에서 괴롭힘을 많이 당했습니다. 그래서 울산에서 밀양으로 이사왔습니다. 시골의 작은 중학교로 가면 도움이 될까 했는데 거기서도 놀림을 당하고 괴로움을 당했어요. 아들은 고등학교 내내도 학교 생활이 온전치 않았던 것 같습니다. 이제 20살이 되었어요. 공부를 못해서 대학도 안 갔습니다. 그런데 착해서 하라는 대로 다 하는데 뭘 하고 싶은지도 모르겠고, 아들에 대해서 아는 것이 하나도 없는 것 같애요. 20살이 되었으니까 의무교육이 끝났다고 해도 아이가 자생력이 없어서 앞으로 자기 진로를 선택하지 못하는 것 같습니다. 길을 잃은 것 같습니다. 어떻게 해야 할까요?” “아들이 우리 젊은이들의 평균수준에 비해서 지적으로 조금 부족합니다. 약간 부족한 것이 아이들 사이에서 놀림이 되는 것이거든요. 자식이 부족하면 부족한 것에 맞는 요구를 해야하는데, 엄마의 어리석음은 자기 자식이 부족하다고 하면서도 정상적인 아이에 맞는 요구를 계속 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아이는 늘 엄마가 볼 때는 골칫거리가 되는 것입니다. 부모가 아이가 부족하다는 것을 간파하고 요구를 낮게 하면 어떻게 될까요? 학교를 다녀주는 것만 해도 괜찮다, 보통은 뭘 안하겠다고 행패를 피우는데 엄마가 하라는대로 따라라도 하는 것은 좋은 점입니다. 이렇게 긍정적으로 봐야 합니다. 정상적인 기준으로 아들을 쳐다보면 늘 문제투성이로 보입니다. 자기가 자기 아들에 대해서 긍정적으로 봐야 하는데, 그렇지 못하다보면 아들은 엄마에게 짐만 됩니다. 무거운 짐으로 생각하면 종착역은 자살밖에 없어요. 세상 사람들은 부족하다고 이야기하더라도 엄마는 그 아이에게 있어야 할 존재, 필요한 존재로 인식되어야 합니다. 그런 기본 자세가 필요합니다. 우리 아이가 부족한 아이라는 것을 자각해야 합니다. 그것을 인정한 상태에서, 아이를 봐야 합니다. 이것은 아이의 문제가 아니라 엄마의 문제입니다. 엄마가 엎드려서 기도를 많이 해야 합니다. 아이가 태중에 있을 때, 아이를 키울 때 성질낸 것을 생각하면 참회를 해야 합니다. 자기가 바뀌어야 아이가 기를 펼 수 있습니다. 안 그러면 아이가 기를 못 폅니다. 20살이 넘어도 장애가 있거나 도움이 필요하면 나이와 관계없이 엄마가 도와야 합니다. 절반은 도와줘야 하고, 절반은 자기가 살아가야 하니까 도와서 자기 자리를 잡을 수 있도록 해야 합니다. ” “스님 말씀 들으면서, 여태껏 내 아들이 부족하다는 생각을 한 번도 못했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세상이 잘못되었다고만 생각했습니다. 그것을 깨달았습니다.” “육체적 장애는 사회적으로 시스템이 거의 다 갖춰졌어요. 가장 심각한 것은 정신적인 장애입니다.아이가 육체적으론 멀쩡하더라도 정신적으로 장애가 있거나 부족함이 있다면 환자로 봐야 합니다.그래서 부족한 부분이나 현재의 정신 상태를 극복할 수 있는 훈련을 시켜주든지, 안되면 그 장애를 인정하고 관계를 만들어가도록 하는 일이 엄마가 할 일이고 선생님이 할 일입니다.” 아이엄마와 스님의 대화를 들으면서 가까이에서 자식에게 집착하고 있으면 자식의 장애도, 아픔도볼 수가 없겠다 싶었습니다. 밀양법당에서 법회를 마치고 점심식사를 했습니다. 비빔밥이 준비되어 있었습니다. 법당이 생긴 이래로 오늘 제일 많은 밥을 준비했을 것 같습니다. 스님 식사 후에 다음 법회가 있는 김해로 향했습니다. 김해법당도 생각했던 것보다 넓었습니다. 그리고 공간도 많고 깔끔하고 환했습니다. 아래 위 법복을 갖춰 입은 보살님들이 부지런하게 움직이고 있었습니다. 귤과 인절미가 먹음직스럽게 준비되어 있었습니다. 밀양법당보다 법당도 크고, 복도와 사무실 공간도 더 넓었습니다. 보살님들도 그렇고, 법당 분위기도 달서법당과 비슷한 느낌이 들었습니다. 김해법당에도 사람들이 꽉 찼습니다. 법당에서 법회를 해서 그런지 처음 온 사람들도 질문이 구체적이고 생활에서 직접 겪는 어려움을 이야기해서 그런지 법회 시간이 금방 지나갑니다. nbsp 올 해 38살이라는 여자분은 32살에 결혼해서 아기를 가지기 위해서 직장을 그만두었는데 유산을 해서 아직 아이 인연을 못 만났는데, 아이 인연을 만나기 위해서는 어떻게 기도를 해야 하는 지 물었습니다. 30대 후반, 40대 초반으로 보이는 남자분은 108배만 하면 학교 다닐 때 학교 폭력에 시달렸던 기억들이 떠올라 눈물이 나고, 큰 아이가 자기를 닮아서 혹시 학교 폭력에 시달리지 않을까 염려가 되는데 어떻게 해야 하는지 물었습니다. 다음 달에 출산인 임산부는 자기도 모르게 자기 잘못을 합리화 시킬 때가 있다, 천일결사비도 한 번쯤은 안 내도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 기도비를 내라는 남편과 오기가 생겨서 싸우게 되었다는 경험을 이야기하며 합리화시키는 자신의 모습에 대해 어떻게 하는 것이 좋은지 물었습니다. 꿈에 부처님을 만나고 한 노파를 만났는데 보시하라는 이야기를 들었다며 정말 보시해야 하는지 묻는 분, 조카가 대학 졸업하고 취직이 안 되어서 그런지 밤에 잠을 자면 영가를 만나고, 혼자 대화하고, 자고 일어나면 식은 땀을 흘리며 자신감이 없어서 숨으려고 하는데 형은 이런 아이를 인정하지 못해서 윽박지르는데 어떻게 하는 것이 좋겠는지 묻는 분도 있었습니다. nbsp 김해에서 법회를 마치고 동래로 가는 길에 사회봉사활동을 하는 ‘미소원’이라고 하는 봉사 단체에nbsp들렀습니다. 미소원에서nbsp스님께 지나가는 길에 잠시 들러달라고 부탁해서 잠시 들러서 격려를 해 주셨습니다. 미소원은 재가 신도가 중심이 되어서 교도소, 결핵요양원, 독거노인 등에 봉사하는 단체인데 회원들이 매주 스님 법문도 듣고, 천일결사도 하고, JTS에도 후원을 많이 하는 단체입니다. 스님께서nbsp격려도 해 주시고, 기념사진도 찍었습니다. nbsp 동래정토회에 도착하니 꼭 잔치집 같았습니다. 밥도 하고 국수도 해서 직장 마치고 오는 사람들이먹을 수 있도록 해 놓고, 법당 입구에는 귤과 옛날 과자, 떡을 준비해서 누구나 오가며 시장기를 달랠 수 있도록 준비가 되어 있었습니다. 사람도 북적북적했습니다. 스님께서는 저녁식사를 하신 후, 한 시간가량휴식을 하셨습니다. 법회 시간이 가까워져 오자 사람들이 몰려오기 시작했습니다. 크지 않은 법당에 바짝바짝 붙어 앉았습니다. 4층 법당에만 200명이 넘게 앉은 것 같았습니다. 5층 법당에도 사람들이 꽉 찼는데 영상이 제대로 되지 않아 방송만 들었다고 합니다. 요즘은 법회에 가면 지난 300강 때 질문했던 사람들이 나름대로 기도를 하고 점검차 스님께 질문을 하는 경우도 종종 있습니다. 부산 벡스코에서 부산 마지막 강연을 할 때 부인이 다단계에 빠져 있는데 어떻게 해야 되는지 묻었던 남자분은 스님이 시킨대로 3개월 동안 기도하면서 부인입장에서 이해하고 도왔더니 더 이상재산도 축나지 않고, 부부관계도 좋아졌는데 아직도 아내만 보면 속에서 확화가 올라올 때가 많다면서 어떻게 해야 하는 지 물었습니다. 꾸준히 정진해서 자유로워지고 행복해졌다는 남자분은 자기가 지적을 받으면 바로 친구를 되받아칠 때가 있어 주변에서 상처를 입는 경우들이 있는데 어떻게 하는 것이 좋은지 물었습니다. 스님을 가까이서 모시고 싶다는 남자분도 있었고, 20살이 넘은 딸들과의 마찰에 대해서 질문하신 분, 갑자기 죽은 남편을 놓지 못해 멍한 얼굴로 질문하는 할머니 등 질문이 많았습니다. nbsp 스님께서 자세히 혹은 간결하고 명확하게 하나 하나 답을 해 주셨습니다. 자녀에 대한 질문에는 당연히 여자의 권리보다 엄마의 역할이 중요함을 강조하셨고, 돌아가신 분에 대해서는 ‘안녕, 잘 가’하며 집착을 놓을 수 있도록 할머니에게 쉽게 설명을 하셨습니다. 아내가 다단계를 해서 힘들다는 남편에게 스님께서 하신 말씀이 인상적이었습니다. “아내를 인정하면 됩니다. 그런데 사실은 아내를 자기 마음대로 하고 싶은 생각이 있는 거예요. ‘네가 내 아내니까 내 말 들어야 한다.’하며 아내를 내 소유물로 삼고 싶은 생각이 있기 때문에 쉽게 문제가 안풀리는 거예요. ‘아내와 나는 다른 사람입니다.’ 이렇게 기도하세요.” 법회를 마치고 나오신 스님의 흰색 티가 다 젖었습니다. 사람이 많고 또 앞쪽인데가 법상위에 앉아서 더운 공기가 스님쪽으로 다 간 것 같습니다. 감기 걸리지 않도록 채비를 하시고, 두북으로 돌아왔습니다. 내일은 바쁜 날입니다. 마산, 거제, 통양, 창원에서 법회가 있습니다. 내일 뵙겠습니다.
2013년 2월 17일 법륜스님의 하루(제 8차 백일기도 입재식)
오늘은 제 7차 천일결사 중 제 8차 백일기도 입재식이 있었습니다. 새벽에 일어나 천일결사기도를 하고 6시 40분에 정토회관에서 오늘 행사가 있는 충추로 출발했습니다. 스님께서는 어제 중국갔다가 새벽 1시에 돌아와 피곤하셔서 충주로 가는동안 곤히 주무셨습니다. 1시간 30분밖에 걸리지 않아 약간 아쉽기까지 했습니다. 9시 40분, 행사 시작을 알리는 묘당법사님의 종성소리가 장내에 조용히 울려퍼졌습니다. 이어서 유수스님의 염불과 무변심법사님의 집전으로 예불이 시작되고, 전국에서 온 정토행자님들이 한 목소리로 간절히 부처님께 예불을 올렸습니다. nbsp 예불 후 행사의 첫 순서로 정토회 대표이신 이기혜 님이 언제나와 같은 밝고 환한 표정으로 오늘 오신 정토행자님들을 열렬히 환영한다는 인사말을 해 주었습니다. 이어서 전국 각 지역 참가자 소개가 있었는데, 저는 제주도에서 행사 참가차 오신 분들이 언제나 참 고맙단 생각이 들었습니다.작년 한 해 청년회 활동이 활발하더니, 오늘 전국에서 청년대학생들이 124명이나 참가했습니다. 전국에 자그마한 법당들과 아직 법당은 아니지만 법회들도 많아서 갈수록 지역의 분포는 조금씩 넓어져 가고 있는 것 같았습니다. 스님께서는 자리에서 일어나 대중들을 바라보고 서서, 지역이 호명되어 정토행자님들이 일어나 인사를 할 때마다 환한 웃음으로 맞이해 주셨습니다. 오늘은 총 2,135명의 정토행자님들이 참가해서 즐거운 하루를 보냈습니다. 지난 백일간의 실천과제 달성율은 상당히 저조했습니다. 스님 300강까지 온 몸으로 활동하고, 지난 100일간은 우리 정토행자님들도 실천과제는 좀 휴식을 취한 느낌이었습니다. 지난 100일간의 발자취를 영상으로 살펴보고 김해정토회 이지영 님의 음성공양을 들은 후 두 사람의 수행담이 이어졌는데 정말 감동적이었습니다. 대전정토회 김종년 님과 진주정토회 정순점 님이 그 주인공이었습니다. 두 분의 이야기를 들으면서많은 사람들이 눈시울을 붉히고, 손수건으로 눈물을 닦았습니다. 어머니에 대한 분노, 미움, 원망은 커져만 가는데, 이혼으로 인해 자기의 두 아이를 키워주시는 어머니를 떠날 수도 없고, 이럴 수도 없고 저럴 수도 없어, 더 이상 괴로워서 어쩔 수 없는 상황에서 법륜스님의 법문을 만나게 되었다고 합니다. 혼자 108배를 시작했고, 108배가 하기 싫은 마음이 일어나면, 108배 하기 싫을 때 오히려 500배를 해버리면 그 마음이 사리진다는 스님의 법문을 떠올리며, 삼칠일동안 1000배를 하고, 또 하기 싫은 마음이 올라오면 삼칠일 1000배 하기를 몇 번을 해서 아예 108배 하기 싫은 마음의 씨를 없애버릴 정도로 정진을 했다고 합니다. 지금은 그렇게 싫고 힘들었던 어머니와도, 아버지를 멀리하던 아이들과도 그 어느 집보다 화목하고 단란하게 생활을 하고 있다는 수행담은 굵직한 남자의 목소리에 섞여 있는 울음 때문에 더 사람들의 마음을 적셨습니다. 진주정토법당 정순점 님은 67세의 할머니십니다. 나이 39살에, 5남매를 남겨두고 남편이 세상을 떠났다고 합니다. 돈없는 설움에 베갯잇을 적시며 농사일, 식당일, 밥장사를 하며 어렵게 어렵게 혼자 힘으로 아이들을 키웠다고 합니다. 막내아들이 결혼한 뒤 남편처럼 의지했던 남동생이 세상을 떠났자 슬품과 충격에 너무 괴로워하고 있을 때 불교TV에서 법륜스님의 법문을 만나 새로운 삶을 살게 되었다고 합니다. 그래서 자기처럼 힘든 사람 한 명에게라도 스님의 법문을 전하고 싶어, 인연을 맺어주고 싶어 정말 열심히 포스터를 붙이며 전법을 했다고 합니다. “지금은 그래도 다행인 것은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있다는 것입니다. 공양간도 돌보고, 청소도 할 수 있고, 사시예불도 하고, 거리모금도 같이 나갑니다. 내 나이 67세. 평생 안 바뀔 것 같던 제가 달라졌습니다. 스스로 복 없는 여자라 자책하며, 항상 자신없고, 할 말 못하고 살았는데 이제는 나를 사랑합니다.내가 행복해지니 모든 것이 아름답게 보입니다.” 스님께서 7차 백일기도 회향법문 중에 두 분의 수행담을 들으시고, 진정한 기적에 대해서, 진정한 자유와 행복에 대해서 말씀을 해 주셨습니다. nbsp “앞의 두 분이 발표한 수행담을 들으면서 웃기도 하고 또 눈시울을 적시기도 했습니다. 이 세상에서 어떤 것이 기적인가? 태산을 옮기는 것이 기적인가? 물 위를 걷는 것이 기적인가? 아닙니다. 괴로움에 헤매던 사람이 스스로 그 괴로움에서 벗어나고, 어둠 속에 헤매던 사람이 스스로 밝은 곳으로 나아가고, 온갖 속박 속에서 몸부림치던 사람이 자유를 만끽하고, 좌절과 절망에 빠져있던 사람이 희망을 얻는 것, 이것보다 더한 가피와 기적은 없습니다. 바로 부처님의 가르침은그런 기적을 불러옵니다. 그런 기적은 누가 주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그런 기적을 만듭니다. 바로 부처님의 가르침을 바르게 이해하고 실천할 때, 그런 기적이 일어나게 되는 것이다. 저는 많은 정토행자님들의 수행이야기를 듣습니다. 그들의 사회적 지위나 경제적 환경이 우리 주위의 사람들과 하나도 차이가 없습니다. 어쩌면 더 못할 수도 있습니다. 그들이 수행을 했다고 갑자기 돈을 벌거나지위가 높아지거나 인기가 높아지는 것이 아닙니다. 그러나 가장 첫 번째 나타나는 현상은 좀더 행복해졌다는 것, 두 번째는 삶의 희망을 좀더 가지게 되었다는 것, 그리고 자기의 재능을, 가진 작은 재산을 자기만이 아니라 다른 사람을 위해서 쓰기 시작한다는 것,그래서 자기 삶의 보람을 갖게 된다는 것, 아직도 화를 내지만 그것을 조금씩 극복해 가고 있다는 것, 아직도 욕심을 내고 있지만, 그것을 조금씩 버리며 가고 있다는 것, 아직도 갈등을 빚고 있지만 조금씩 갈등이 해소되어 가고 있다는 것, 자기밖에 볼 줄 모르던 사람이 남편을, 아내를, 부모를, 자식을 볼 줄 알고, 자기 가족밖에 볼 줄 모르던 사람이 이웃에 관심을 갖고, 사람밖에 못 보던 사람이 자연환경에 관심을 갖고, 자기나라밖에 못 보던 사람이 남의 나라를 조금씩 보게 되면서 의식의 지평이 넓어져 가고 있다는 것, 이런 현상이 분명히 일어나고 있습니다. 저는 이것보다 더한 기적은 없다고 생각합니다. 이것이 바로 중생이 깨우쳐 부처로 가는 길입니다.” 스님의 말씀이 격려가 되어 힘이 났습니다. 함께 살아가고, 함께 활동하고 있는 정토행자님들의 모습 속에서 스님께서 말씀하시는, 부족하지만 조금씩 변하고 있는 모습을 언제나 발견하게 됩니다. 그렇게 정토세상을 우리는 만들어가고 있는 것 같습니다. nbsp 스님께서 7차 회향법문을 해 주시면서, 지난 정토회 역사 속에서 정말 온 몸으로 열심히 했던 97년 북한동포돕기 백만인 서명운동, 한반도 평화와 통일을 위한 천일 릴레이 기도, 3년간 매주 진행했던 통일대화마당, 빈그릇 백만인 서명운동, 2008년도의 스님의 70여일 단식과 북한동포돕기 백만인서명운동, 그리고 2012년에 진행되었던 희망세상만들기 시군구 300강연에 대해서 하나 하나 짚어주시면서 역사적인 의미에 대해서도 말씀해 주셨습니다. 스님의 말씀을 들으면서 우리가 작은 힘이지만 역사의 발전을 위해서 정말 노력해 왔구나 싶어서, 정토행자됨이 참으로 자랑스러웠습니다. 스님의 7차 백일기도 회향법문을 마치고 바로 지난 100일 기도를 돌아보며 포살을 했습니다. 포살은 우리 천일결사자들이 지키기로 한 것에 대해서 스스로 발로참회하는 것을 말합니다. 오늘 참회를 하면서, 스님께서 항상 불교의 이치를 알고, 이를 행하고, 체험하면 굳건한 믿음이 생긴다고 말씀하시면서, 그 중 행함은 바로 계율을 지키고 선행을 닦는 것이라 했는데, 오늘 포살을 하면서10개의 계율 중 몇 개를 지키지 못해 일어나 참회를 했습니다. 다음 백일기도 때는 열 개의 계율을다 지킬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할 것 같습니다. 오전 시간이 금방 지나갔습니다. 드디어, 점심시간이 되었습니다. 실내에서 식사를 할 수 없어, 바깥의 약간 싸늘한 날씨 때문에 모두 타고온 차량에서 식사해 달라는 공지가 있었는데, 체육관을 나오니 삼삼오오 햇살 따뜻한 곳에 앉아 점심을 먹고 있었습니다. 밥 먹는 시간은 언제나 즐겁습니다. 점심식사를 마치고 오후 프로그램이 시작되었습니다. 오후 첫 순서는 합창대회였습니다. 정말 신나게 박수도 많이 치고 많이 웃었습니다. 분당 공연은 분당 천일결사자가 다 나온 것 같았습니다. 너무 촌스러워 보는 사람이 민망스러워 할 것을 컨셉으로 잡은 듯 했습니다.nbsp재미있었습니다. 정말 지칠 줄 모르고 연습하며 제대로 된 합창을 위해서 노력하는 대구정토회 합창단, 경전반 가운을 입고 나와서 합창이란 이름을 붙이고 노래를 하신 것 같은 대전정토회, 상큼발랄한 율동으로 분위기를 압도하였으나 연습되지 않은 싱어들 노래 실력을 한껏 보여주었던 청년정토회. 이렇게 4팀이 2천여명의 대중들을 즐겁게 해 주었습니다. 참 재미있었습니다. 우리는 잘 하면 잘 해서 좋고, 못 하면 못하는대로 또 즐겁습니다. nbsp 합창대회를 이어 신규입재자 결의식이 진행되었습니다. 스님을 법사로, 유수스님이 인례자가 되어347명이 새로이 입재를 했습니다. 스님께서 처음으로 기도에 입재하는 신규자들에게 왜 기도를 하는 지에 대해서 쉽게, 그러나 명확하게 말씀해 주셨습니다. “우리가 왜 기도를 하느냐? 복은 짓지 않아 놓고 복 달라는 그런 기도를 하는 것이 아닙니다. 내가 죄를 지어놓고 벌 안 받게 해 달라는 그런 기도가 아닙니다. 우리가 하는 기도는 어떻게 좀더내가 자유로울 수 있는가? 어떻게 좀더 내가 행복할 수 있는가? 하는 해탈과 열반이 목표입니다. 그래서 내가 내 인생의 주인이 되는 것이 목표입니다. 누구를 탓하고 원망하며 사는 것이 아니라,어떤 조건과 환경에서도 나는 내 삶의 주인으로, 나를 사랑하고 나를 소중히 생각해서 좀더 행복하게, 좀더 자유롭게 희망을 가지고 살아가기 위해서 수행 정진하는 것입니다.” 스님 말씀을 자세히 듣고 있으면 모든 것이 확연해지고 시원해지는 느낌입니다. 오늘 신규입재하신 분들이 열심히 정진하셔서 다음 입재식 때 모두 만날 수 있기를 기대해 봅니다. nbsp 신규자 결의식에 이어, 2012년 정토행자상 시상식이 있었습니다. 저는 괜히 계속 눈물이 났습니다.정토행자상 후보자 발표를 하는데, 상받은 사람과 상관없이 한 사람 한 사람이 정말 열심히 했던 분들이라, 참 고맙고 백 배 만 배 축하를 해 드리고 싶었습니다. 환경상은 서울정토회 환경팀, 통일상은 대구정토회 전병찬 님, 복지상은 광주정토회 이병호 님, 정진상은 마산정토회 안병주 님,보시상은 일산정토회 정희윤 님, 포교상은 경북지부 장금옥 님, 특별상은 방송인 김제동 님, 진주정토법당 임연희 님, 울산정토회가 받았고, 대망의 정토행자 대상은 9년째 서울정토회 공양을 담당하고 있는 구언년 님이 받았습니다. nbsp 마지막으로 8차 백일기도 입재법문이 있었는데 스님께서 정토행자상을 받으신 분들에게 축하의 말씀을 전하며, 우리 모두가 정토행자로서 열심히, 모범적으로 살았다며 저희 전체에게도 격려의 말씀을 해 주셨습니다. 그리고 8차 백일기도 명심문 ‘나는 법을 전하는 수행자입니다.’를 주시면서 앞으로 백일동안의 우리들의 목표에 대해서 말씀해 주셨습니다. “8차 백일기도에서는 내 주위 사람들에게 부처님 법의 인연을 맺어 줍시다. 그래서 명심문이 ‘나는 법을 전하는 수행자입니다.’입니다. 올 해는 좋은 법을 널리 전법하는데 집중합시다. 작년에 300군데 씨앗뿌리는데 집중했다면, 올 해는 인구 30만 이상 도시에 법당을 하나 내도록 해 봅시다. 그래서 스님이 상반기 50군데, 하반기 50군데 강의 가고, 그곳에 작지만 수행공간을 만들자는 목표를 가지고 있습니다. 그래서 불교대학 인연, 법회 인연, 깨장 인연 맺어주고, 희망 앱 보게 하고, 팟케스트 등스님 영상 보게 하는 것이 우리가 전법을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부터 참 불자 되기 운동, 정토행자 되기운동을 한 번 해 봅시다. 작은 실천부터 할 때우리가 전법을 더 열성적으로 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8차 정진으로 각 자 하나씩 정해 보세요. 나는 음식물 쓰레기를 확실히 줄이겠다, 보시를 평균수준보다 많이 하겠다, 봉사하는 것을 더 늘이겠다, 나는 경상도, 전라도 지역 감정을 넘어서겠다, 성질난다고 아이를 때리거나 하지 않겠다 등 내가 불자로서 자긍심이 있는 그런 참불자가 되어 봅시다.” 스님 8차 입재법문을 듣고, 모두들 ‘8차 백일기도 때는 기도도 빠지지 말고, 작은 실천 한 가지도 해 보고, 주변 지인들 한 사람이라도 전법을 해야겠다.’며 다짐을 했을 것 같습니다. 사홍서원과 산회가를 끝으로, 제 7차 천일결사 제 8차 백일기도 입재식을 모두 마쳤습니다. 체육관 입구에서 집으로 돌아가는 정토행자님들에게 스님께서 인사를 하며 배웅을 하셨습니다. 오늘은 입재식에 못 오신 분들을 생각하며 프로그램 하나 하나까지 다 스케치를 하다보니, 글의 분량이 너무 많아졌습니다. 해외에 계신 분들까지 입재식 분위기가 전해져서, 8차 백일기도 정진을 열심히 할 수 있기를 기원해 봅니다. 감사합니다.
2013년 2월 15일 법륜스님의 하루(해운대, 사하, 울산)
오늘은 오전에 해운대정토회, 오후 3시 부산 사하법당, 오후 7시 30분 울산정토회에서 법문이 있었습니다. 어제 숨가쁘게 4군데를 다니다가 오늘 3군데를 다니니까 괜히 여유있는 느낌마저 들었습니다. 오늘은 스님 누님께서 아침 식사를 준비해 주셨습니다. 솜씨가 워낙 좋으신데다 시골음식들, 전통 음식들이라 아침부터 맛있게 식사를 하고 해운대정토회로 향했습니다. 해운대정토회는 손님맞이하는 잔치집처럼 공양간이 북적북적하고 입구에서 오시는 분들을 맞이하여 차도 대접하며 안내를 하고 있었습니다. 넓은 법당에 많은 사람들이 모여들었습니다. 11시에 법회를 시작했습니다. 스님께서 먼저 신년 맞이 법문을 해 주시고, 질문자들로부터 질문을 받았습니다. 2시간을 넘게 했는데도 질문자가 너무 많아서 질문을 다 받지 못했습니다. nbsp 2000여년전 예수님이나 부처님이 태어날 때보다 지금은 훨씬 더 많은 과학적 데이터와 정보들이 있는데 왜 성인이 출현하지 않는 지 묻는 남자분, 3년정도 수행정진했는데 전보다는 나아졌지만 아직 행복한 가정만들기가 잘 안 되고 남편과 소통하기가 어렵다는 여자분, 작년 KBS에서 스님께 질문했을 때 백일기도한 후 다시 질문하라고 해서 백일기도하고 질문드린다면서 69세인 남편이 다른 여자와 좋아하고 재산도 자꾸 줄어드는 것 같아서 이제는 더는 못참고 이혼을 해야겠다는 64세 여자분, 47세에 늦둥이를 낳았는데 아이를 잘 키울 자신이 자꾸 없어진다는 여자분 등 많은 질문들이 이어졌습니다. 법문 후에는 정토불교대학생들이 불교대학 홍보를 위해 합창을 준비해서 노래 2곡을 선보였습니다.각 법당들마다 불교대학생들을 모집하기 위해서 참 많은 노력을 하고 있구나 싶었습니다. nbsp 스님께서는 2시간 20분가량의 법문을 마친 후, 공양을 하시고, 미리 정해져 있던 상담이 있어서 상담을 하신 후 바로 사하법당으로 향했습니다. 작은 법당들은 간판이 작아서 주소를 입력해서 가는데도 찾기가 쉽지 않습니다. 사하법당 가까이 가서 눈을 두리번거리며 법당을 찾았습니다. 법당 입구에 몇 명의 자원봉사자들이 나와서 스님과 사람들을 맞이할 준비를 하고 있었습니다. 환한 얼굴로, 기쁨이 넘치는 얼굴로 스님을 맞이했습니다. 작은 법당들은 스님의 방문을 특히 더 좋아하는 것 같습니다. 자그마한 법당에 사람들이 꽉 찼습니다. 여태껏 본 법당 중엔 제일 인테리어가 안 되어 있는 편이었지만, 스님께서 법문 중에 다른 말씀을 하시다가 “처음 온 사람들이 보기에는 이 곳이 자그맣고 부족해 보이는 법당이지만, 시장통에서 법회하다가 이 곳으로 이사온 초기멤버들은 이 공간만으로도 얼마나 풍족하고 고마운지 모릅니다.” 하시자, 뒤에 앉은 자원봉사자들이 박수를 치며 좋아했습니다. 스님께서 자신들의 마음을 알아주니 즐거운 것 같았습니다. 사하법당에서는 스님께서 법문 시작하실 즈음에 몸이 좀 안좋으셨습니다. 그랬더니 질문자 중에 환하게 웃는 스님 얼굴을 기대하고 왔다가 웃지 않고 있는 스님 얼굴을 보자실망을 했다는 분도 있어서 다같이 웃었습니다. 질문이 많았습니다. 해운대정토회에서 질문을 다 받지 못하다보니, 질문자들이 사하법당으로 와서 질문을 해서 사하법당에서 원래 1시간으로 계획했던 법문시간이 2시간으로 늘어났습니다. 딸이 중학교 2학년이 되면서 아빠 말도 잘 안 듣고 학교도 잘 안 가서 딸을 보기만 하면 성질이 난다는 남자분, 참회진언인 ‘옴 아르늑게 사바하’가 무슨 뜻인지 궁금하다는 분, 사회성이 부족한 고2 아들이 왕따를 당하고 있는 것 같은데 어떻게 대처를 해야 하는 지 묻는 여자분 등 많은 질문들이 이어졌습니다. nbsp 첫 질문자의 이야기를 옮겨 봅니다. “딸이 애를 먹여서 스님께 상담을 좀 해보려고 왔습니다. 저의 힘으로는 해결이 안 되어서요. 중학교 1학년까지는 아빠말도 잘 들었어요. 2학년이 되고는 제가 수술한다고 없는동안 학교에도 많이 안 가고 3개월 정도 학교에 가더니 학교가 안 맞다고 학교를 안가요. 뭐라고 해도 안 됩니다. 쳐다보면 성질이 납니다.” “엄마는 어디 갔어요?” “일찍 헤어졌습니다.” “엄마한테 보내지 그랬어요?” “엄마가 처음부터 애들 안 키운다고 해서 제가 딸과 아들을 다 키우고 있습니다.” “엄마가 아빠하고 살면서 행복했을까요, 행복하지 않았을까요?” “행복하지 않았을 것 같습니다. 제가 몸도 안 좋고. 부인이 불만이 있어서 갔겠어요, 불만없이 갔겠어요?” “불만이 있어서요.” “아기를 가진 엄마가 애기를 키울 때 불만이 많고 행복하지 못하고 남편을 미워하는 그런 상태에서아기를 낳고 키우면, 아이가 세상을 부정적으로 보는 의식이 형성되어 있어서 그렇게 될 수밖에 없습니다. 일찍 불법을 알아서 부인에게 참회기도를 많이 했어야 했습니다. 마음을 풀어줬으면 괜찮은데 그렇지 않았기 때문에 당연한 과보입니다. 그러니까 지금 아이가 그렇게 있다 하더라도 짜증내고야단치는 것보다는 혼자서 절을 하고 기도하면서 아이 엄마에게 ‘여보 미안해요. 우리 아이를 보니까 내가 당신에게 얼마나 애를 먹였는지 알겠습니다. 미안합니다.’ 하면서 아이는 그대로 놔두고 부인에게 참회기도 하세요. 아이한테도 마음으로 ‘미안하다, 내가 잘 못 살아서 너에게 미안하구나.’이렇게 기도해야 해요. 아이에게 이렇게 해라, 저렇게 해라 하지 마세요. 참는다고, 아이를 때린다고 해결이 안 됩니다. ‘이만하기 다행이다.’ 하면서 아이들에게 고맙다고 생각하세요. 내 지은 인연으로 봤을 때는 지금이 참 고마운 거예요. 부인에게 지극한 마음으로 참회하세요.” “딸은 계속 두고 봐야 하는지요?” “달리 방법이 없어요. 아이는 그대로 두고 기도를 계속 하세요.” 혼자 자식을 키우는 아버지가 마음고생을 많이 하는 것 같았습니다. 어제 대구에서 왜 남자가 잘못했는데 여자가 참회를 해야 하느냐며 스님께 질문하던 남자분이 생각났습니다. 남자든 여자든 엄마 역할을 하는 사람에게는 똑같은 처방이 내려지는 것 같습니다. 다음 일정이 있어서 법회가 끝나기 전에 법당에서 나오니 스님께 드리기 위해 준비해 두었던 꽃다발을 얼른 스님께 안겼습니다. 스님을 환영하는 마음이 그대로 느껴졌습니다. 사하법당에서 나와 울산정토회로 향했습니다. 울산정토회에도 스님께 공양올리기 위해 정성껏 식사준비를 해 놓고 있었습니다. 정말 스님 덕분에 저희들도 송구스러울 정도의 대접을 잘 받으며 다니고 있습니다. 감사드립니다. 울산정토회도 법당에 사람들이 가득 찼습니다. 7시 30분에 바로 법회가 시작되었습니다. 울산에서는 즉문즉설에서 대부분이 자녀 문제였습니다. 사춘기 자녀를 키우기가 어렵긴 어려운가 봅니다. nbsp 사춘기 아이들 때문에 힘들어하는 두 여자분 질문이 끝나자 올 해 고 3이 되는 학생이 아빠와의 관계 때문에 질문을 했습니다. 부모의 입장과 자식의 입장을 나란히 두고 같이 토론할 수 있는 장이 만들어졌습니다. “저는 고등학교 3학년 올라가는 학생입니다. 저는 아빠와의 관계 때문에 질문을 드립니다. 저는 감정 기복이 심해서 학교도 가다가 한 번씩 방에 박혀서 며칠간 학교에 안가기도 합니다. 아빠는 그런 제가 마음에 안 들어 1년에 23번은 구석에 밀어넣고 따귀도 때리고 심하게 구타를 합니다. 아빠는 감정적으로 저를 때리면서 화를 푸는 것 같습니다. 최근에도 이런 일이 있었습니다. 고3이 되는데 아빠만 보면 불안하고 불편합니다. 1년동안 열심히 공부하고 싶은데 어떻게 공부해야 할까요?” “엄마 왔어요?” “예.” 질문한 학생의 엄마가 대중들 속에서 일어났다 앉았습니다. “학생 이야기 들어보니 어때요? 자기는 잘못한 것이 없는데 아빠가 때린다고 이야기하잖아요? 아빠가 만약 이 상황을 이야기하면 학생이 아빠 말도 안 듣고 사람 속을 뒤집는다고 하겠죠? 이렇게 서로 다릅니다. 엄마들이 청소년 자식들때문에 고생한 이야기 들었죠? 학생은 엄마들이 이해가 돼요? 아니면 엄마들이 우리 마음 모른다는 생각이 들어요?” “이해되는 것도 있고, 우리도 그럴만한 이유가 있다는 생각도 들었어요.” “아빠 입장에서는 딸이 일주일간 방에 쳐박혀 있으면 미치겠다고 난리잖아요? 계속 이렇게 가면 끝이 없어요. 자기가 이 문제에서 벗어나려면 아빠에 대해서 고마운 줄을 알아야 됩니다. 따져보면 아빠가 고마워요, 안 고마워요?” “고마워요.” “아빠가 낳아줘서 살고 있잖아요. 그리고 키워줬죠? 따지고 보면 학생이 살아갈 수 있는 모든 것을부모가 다 해주고 있잖아요. 항상 고맙다는 기도를 해야 해요. 사람들이 뭘 해주면 댓가를 원하는 심리가 있죠? 이 아이가 커서 공부라도 잘 했으면 좋겠다는 기대가 아빠에게 있을까요, 없을까요? “있어요.” “학생이 막 미워서 두들겨 팰까요? 자기도 감정에 치우쳐서 두들겨 팰까요?” “감정에 치우쳐서요.” “1년 내내 미워할까요, 그 때만 미워할까요?” “그 때만요.” “너무 좋아해서 미워한다는 말이 있어요. 학생에게 기대가 커서 그렇습니다. 아빠에게 ‘감사합니다’ 하고 기도하세요. 그리고 실제 내 능력과 아빠가 기대하는 것이 달라요. 나는 100의 능력이 있는데 아빠는 내가 150의 능력이 있다고 생각해요. 그래서 아빠에게 ‘죄송합니다.’하면 됩니다. 아빠 성격이 욱하는 성질이니까, 성질이 올라올 때는 바짝 엎드려서 ‘죄송합니다.’해야 됩니다. 두가지를 기도해야 합니다. ‘엄마, 아빠. 감사합니다.’ 그리고 ‘엄마, 아빠에게 죄송합니다.’ 노력해서 맞추려고 하지마세요. 야단치면 ‘어떻게 맨날 공부만 해요?’ 하지말고,nbsp말은 항상 ‘죄송합니다.’해야 됩니다. 그렇게 기도하면 편안해질거예요. 공부는 할만큼만 하세요. 지금 좀더 열심히 한다고 더 좋은데 가고 그런 것 아니예요. 학생이 지금 더 열심히 한다고 능력이 얼마나 더 커지겠어요? 그러니까 힘 닿는데까지 하면 됩니다.그리고 1년 후에 20살이 넘으면 독립할 수 있죠? 20살이 딱 넘으면 독립해 버리세요. 항상 ‘고맙습니다’ 하고 나무라시면 ‘죄송합니다’ 하면서 지내세요. 공부는 죽기 살기로 해야 되나요, 대강하면 되나요? 대강하면 됩니다.” 질문한 학생은 처음보다 훨씬 가벼워졌을 것 같았습니다. 그리고 스님께서는 학생 엄마에게도 참회기도를 해야 한다며 기도할 때의 마음가짐에 대해서 자상하게 안내를 해 주셨습니다. nbsp 울산에서 강연을 마치고 서울로 바로 올라가고 있습니다. 스님께서는 곤하게 주무시고 계십니다.서울로 올라가는nbsp차 안에서 글을 쓰고 있습니다. 네비게이션이 새벽 2시 15분 서울 도착을 알려줍니다. 감사합니다.nbsp
2013년 2월 14일 법륜스님의 하루(대구, 구미, 상주, 달서)
오늘은 서울에서 새벽 5시에 출발해서 대구로 내려왔습니다. 대구정토회에 도착해서 잠시 휴식을 하고 아침 식사를 했습니다. 8시 30분이 되니 법당에서 정초기도 회향 300배 정진을 하고, 이어 10시에 법회가 시작되었습니다. 스님께서 먼저 한 시간 가량 새해에 대해서, 불자로서의 역할에 대해서 말씀을 해 주셨습니다. “불자는 먼저 불법을 올바르게 이해해야 합니다. 불교대학이나 경전반을 다니면서 불법을 올바로 이해합니다. 두 번째, 불법을 이해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행해야 합니다. 세 번째, 이해하고 행한 것을 경험하고체험해야 합니다. 해탈과 열반의 기쁨을 증득해야 합니다. 자기가 체험하면 믿음이 굳건해 집니다.”신해행증에 대해서 설명하시면서 이치를 제대로 알고 행하는 불자로서 역할을 거듭 강조하셨습니다. nbsp 질문을 한 사람이 많았습니다. 30년간 어려운 결혼생활을 한 한 아주머니의 질문을 들으면서 어려운 속에서도 자식때문에 모질게 살아온 모습이 안타깝기도 했습니다. “스님을 뵈니까 갑자기 눈물이 납니다. 이번 주 일요일 있는 백일기도 입재식 신청도 해 놨고, 다음 주에 깨달음의 장 신청도 해 놨는데, 마음이 복잡해져서 갈 마음이 사라졌습니다. 남편이 술을 너무 좋아해서 8번째 음주운전에 걸려서 500만원 벌금을 물게 되었습니다.” “그러니까 깨달음의 장에 가야죠. 깨달음의 장에 갔다오면 ‘우리 남편, 8번이나 음주 운전했는데도안 죽고, 큰 사고 안 나서 다행입니다’ 이렇게 마음이 일어납니다.” “술만 먹으면 욕하죠, 시어머니한테 늙으면 죽어야지, 자식이 먼저 죽는 것 봐야겠냐며 소리지르죠.저는 그런 남편 말 안 들은 것으로 하려고 mp3를 켜서 귀에 꽂고, 한 쪽에 앉아 있으면 가스 불 켜고, 칼 꺼내서 죽자고 합니다.” “여태껏 칼 몇 번 꺼냈어요?” “수도 없이 많아요.” “칼을 쓰진 않았죠?” “그렇지만 30년을 그렇게 살았습니다. 막내아들 20살까지만 살자 했는데 아들이 20살이 되었어요.” “아들이 20살이 되었으니 자식에 대한 책임은 끝났어요. 남편이 돈은 벌어 왔요?” “남편은 돈도 안 벌어요. 제가 먹여 살렸어요. 남편이 회사를 450군데는 옮겼어요. 한 회사에 3개월 이상 못 다녀요.” “3개월동안 450군데를 다녔으면 계산 한 번 해 보세요. 어쨌든 일을 하려고 계속 노력은 했다는 거네요?” “스님” 질문하신 분이 스님께 투정부리듯 스님을 부르는 소리에 사람들이 다같이 웃었습니다. 심각하고 어려운 상황을 이야기해서 약간 분위기도 가라앉았었는데 스님과 대화가 오가면서 자연스럽게 전체 분위기도 가벼워지고 질문하신 분도 가벼워졌습니다. “깨달음의 장 갔다 오면 괜찮아질겁니다. 갔다와서 이혼하든지 하고싶은대로 하세요. 남편 술 먹는 것과 깨달음의 장 가는 것이 무슨 상관이 있다고 남편 술 먹었다고 안 가겠다는 거예요? 그런 남편과 사는 여자도 행복할 권리가 있어요, 없어요?” “있어요. 잘 알겠습니다. 깨달음의 장 다녀오겠습니다.” 대구답게 시원시원한 질문과 대답이 많았습니다. 법문 후, 점심 식사를 하고, 다음 강연장인 구미법당으로 향했습니다. 구미법당을 처음 구할 때 한 번 가 본적이 있었는데, 공사를 해서 단장을 하고 나니까 딴 얼굴이 되어 깨끗하게 정리되어 있었습니다. 오전과 저녁 사이에 있는 법당들에는 1시간정도의 법문만 하시고, 바로 이동을 해야 다음 강연장에 갈 수 있어서, 구미에서도 한 시간 강연을 하셨는데 조금은 아쉬웠습니다. 첫 질문자가 대학생 부부인 며느리가 아이를 가졌는데, 아이 보육원에 맡겨놓고 공부를 계속하면 안되느냐고 스님께 질문을 드렸습니다. 그래서 스님께서 공부가 아이보다 더 중요하냐 그렇게 아이를 키워서는안된다고 하시면서 야단을 치셨습니다. 스님께서는 자기의 권리를 말할 수 없는 3살 이하의 어린 아이들과 북한 동포들에 대해서는 그들의 권리를 대신해서 강하게 말씀하십니다. 깊은 애정이 느껴졌습니다.우울증이 있는 아들의 마음을 제대로 이해해주지 못해서 죄책감으로 아들의 눈치를 보며 산다는 엄마에게도 왜 엄마가 아이에게 눈치를 보며 사느냐고 야단을 치셨습니다.nbsp “부모가 자식에게 비굴하게 굴지 마세요. 자식을 키워줬는데 비굴하게 굴 필요가 뭐가 있어요? 그 아이가 건강하게 성장하는데 도움을 제대로 못 줬기 때문에 아들이 안 죽고 살아준 것만으로도참 고맙다, 대학 가준 것만으로도 고맙다 하셔야 됩니다. 기대를 낮춰줘야 합니다. 참회는 남편에게 하고 아이한테는 엄마가 당당해야 합니다. 엄마가 당당해야 나중에 아이도 당당할 수 있습니다. 아이를 내치지도 말고 항상 진실하게 대해야 합니다. 자식이 못 받아들이면, 진실하게 받아들이는 훈련이 필요합니다. 내가 자식을 이해하는 것만으로는 안됩니다. 자식도 부모를 이해하는 것이 훈련이 되어야 합니다.” 오늘 구미에서는 자녀 보육관련해서 질문한 사람들에게 스님께서 따끔하게 말씀해 주시는 부분들이 좋았습니다. 어떻게 손자를 키워야 하는지, 어떻게 아이에게 엄마로서 다가가야 하는지에 대해서정확하게 정리를 해 주셔서, 듣는 저희들도 시원해지는 느낌이었습니다. 구미에서 법문이 끝나자마자 바로 상주로 향했습니다. 오후 4시에 거의 정확하게 도착할 수 있었습니다. 바로 법회가 시작되었습니다. 1월 29일날 개원을 한 상주법당은 올 해 순회하는 법당 중 가장 최근에 생긴 법당입니다. 깔끔하게 인테리어가 되어 있고, 생각보다 넓어서 많은 사람들이 참가할 수 있는 공간이었습니다. 법당을 담당하신 분은 법당이 생겨서 좋기도 하고, 또 법당에 사람 채워야 해서 조금 부담스럽기도할 것 같았습니다. 시간이 많지 않아 작은 법당들에서는 질문을 34개씩 받았습니다. 상주에서는 그래도 짧은 시간에여러 명의 사람들이 질문을 해서 자기 고민을 해결해 갔습니다. 남편보다 잘난 마음에 잘 숙여지지 않는다는 분, 물질 중심의 사회 속에서 어떻게 중용의 삶을 살 수 있는지 묻는 남자분, 20년전에 왕따를 당해서 생긴 분한 마음이 지금도 생각하면 그 느낌 그대로 올라와서 어떻게 하면마음을 풀 수 있는 지 묻는 분, 여동생이 다운증후군의 아들을 낳아서 평생 고생하며 살 것이 너무 걱정스럽다며, 아버지에 대한 깊은 미움으로 아버지 때문에 조카가 비정상으로 태어난 것 같다며 흐느끼며 질문하는 여자분도 있었습니다. nbsp 법문을 마치자마자 바로 대구 달서법당으로 이동했습니다. 중간에 차가 조금 막히긴 했지만 30분정도를 남겨놓은 시간에 여유있게 들어갈 수 있었습니다. 각 층마다 한 사람씩 자원봉사자들이 서서 안내를 하고 있었습니다. 달서법당 자원봉사자들은 대구법당보다 조금 더 젊고 발랄한 분위기였습니다. 법당도 생각보다 컸습니다. 자원봉사자들이 한 사람이 하나씩 반찬 준비를 해 와서 참 맛있게 저녁 식사를 하고 법회에 들어갔습니다. 대구지역 직장인들과 청년회 회원들이 많이 참석을 했습니다. 이 곳에서도 기도를 이제 시작하거나정토불교대학에 다니는 초심자들의 질문이 많았습니다. 60대 초반 아주머니는 정말 성실하고 책임감 강한 남편인데 술버릇이 좋지 않아 주변에 신세를 많이 지게 되어서 괴롭다며 질문을 했습니다. “술 마시고 제 정신을 잃는다는 것은 어릴 때 어떤 이유로 심리가 굉장히 억압을 받았다는 것입니다. 그럴 때 야단을 치지 말고 등을 두드려주고, ‘아이고. 그랬어요, 그랬어요’ 하면서 동조를 해 줘야 합니다. 그런 이야기들은 무의식 저 깊숙이 상처가 자리잡고 있기 때문에 술이 취해 의식을 잃었을 때 저절로 나오는 것입니다. 불쌍히 여기고 이야기를 들어줘야 합니다. 똑같은 이야기를 300번이라도들어줘야 합니다. 동조를 해 줘야 합니다.” 질문들이 구체적이고 생활 속에서 겪는 어려움들이라 쉬 공감이 되었습니다. 또한 시원시원하게 묻고 답하는 분들의 이야기는 전체 대중들이 박장대소하며 이야기를 들을 수 있어서 더 재미있었습니다. nbsp 달서법당까지 강연을 무사히 잘 마쳤습니다. 오늘은 4군데 법당을 돌며 스님께서 법문을 하셨습니다. 다들 구체적인 질문들, 삶 속에서 일어나는 생활적인 질문들이 많아서 전체적으로 분위기도 좋았던 것 같습니다. 법문을 마치자마자 오늘의 숙소인 두북으로 들어왔습니다. 두북으로 오는 길에 스님께서 “한국에서 미국으로 가면 시차적응이 금방 되는데, 미국에서 한국 오면 시차적응이 잘 안 되어서 힘드네.”하셨습니다. 워낙 바쁘게 하루를 움직이고, 바로 바로 이어서 법문이 있어서, 스님께서 힘드신 지옆에서도 전혀 알 수가 없었습니다. 모두들 자고 있는 깊은 밤입니다. 스님께서도 옆 방에서 주무시고 계십니다. 푹 주무시고 빨리 시차적응이 되셨으면 좋겠다는 작은 바람을 가져 봅니다. 내일은 오전에 해운대, 오후 3시에 부산 사하법당, 오후 7시 30분에 울산에서 법문이 있습니다. 울산 법문 후 바로 서울로 이동하는 일정입니다. 내일 부산과 울산에서 뵙겠습니다. 감사합니다.
2013년 2월 13일 법륜스님의 하루(서초, 노원)
서울정토회관에서 아침을 맞이했습니다. 스님께서는 아침 일찍부터 평화재단에서 모임이 있었습니다. 북한이 핵실험을 해서 평화재단 전문가들이 스님과 모여서 한반도 평화문제에 대해서 서로 대화를 나눴습니다. 이어서 서울정토회관 오전 법회에 참석하셨습니다. 서울에서도 스님께서 직강하시는 날이 많지 않아 많은 분들이 스님 법문을 듣기 위해 모였습니다. 그런데 오전에는 천일기도를 하거나 정토불교대학을 듣는 사람이 아니라 일반인들의 질문이 대부분이었습니다. 아마 자기 문제 해결이 급했던 분들이 많았나 봅니다. 첫 번째 질문하신 분은 우울증이 심해서 정신적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 사람이었는데 스님과의 문답을 보면서 조금은 지루하기도 하고, 한편으로는 안타까운 마음도 같이 일었습니다. 끝까지 마음으로 보살펴 주시는 스님의 모습을 보며 배움도 있었습니다. 아들 둘이 장가를 안 가서 어떻게 해야 할지 스님께 여쭙는다는 분의 질문을 들으면서는 사람들이 다같이 파안대소를 하였습니다. 미국에서 영화공부를 하고 무작정 한국으로 와서 영화찍는 사람들에게 무대포로 연락을 하고 있는데 연결이 잘 안 된다는 젊은 여자분은 어쩌다가 보게된 스님 법문 때문에 지금은영화는 뒷전이고 스님 영상법문을 더 열심히 듣고 있다고 했습니다. 스님과의 대화도 밝고 재미있었습니다. 마지막 질문자는 우울하고 무기력해서 어렵게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대학에 합격해도 가지 않고 집에 박혀 있는 아들을 위해 엄마로서 어떻게 기도해야 하는지 묻는 질문이었는데, 안타까운 마음이 많이 일었습니다. nbsp 마지막 질문자에 대한 스님의 말씀을 간략하게 옮겨 봅니다. “아이가 정신적으로 장애가 있다면, 정상인으로 바라보는 내 관점을 버려야 해요. 이것이 수행이예요. 아이가 정상이 아니라고 하면서 대학도 가고, 장가도 가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이것이 부모가 과욕을 부리는 거예요. 그래서 세상이 복잡해지는 거예요. 내가 내 자식을 살펴보니까, 아이가 정신적으로 장애가 있어요. 그러나 지체부자유아에 비해서는자유롭습니다. 그런 아이를 가진 부모에 비해서는 훨씬 가볍습니다. 우리 아이가 그래도 괜찮다는 사랑과 우리 아이는 장애이기 때문에 정상인과 같은 모습을 바라지 않는 욕심을 버려야 이 문제를 풀 수 있습니다. 아이를 늘 무거운 짐으로 보기 때문에 이것은 사랑이 아닙니다. 그 다음, 아이에 대한 요구가 많기 때문에 아이는 치유가 어렵습니다. 자기 공부가 우선되어야 합니다. 기도가 먼저 되어야 합니다. 아이의 이런 것은 8090가 엄마의 마음 때문입니다. 먼저 남편이든 시댁에 참회기도를 해야 합니다. 내가 휘둘리면 아이에게영향을 주기 때문에 아이 엄마로서는 참회를 해야 합니다. 내가 아이에게 참회하는 것이 아니라 나로 인해 상처를 입은 대상에게 참회를 해야 합니다. 참회라는 것은 치유되는 것을 이야기하고, 내가 치유됨으로서 장애가 있는 아이에 대해서 과다한 요구를 하지 않게 됩니다. 먼저 참회 기도를 하고, 아이에게도 ‘미안하다. 나 때문에 네가 고생이 많구나. 이렇게라도 학교에 다니고 살아준 것만으로도 고맙다.’ 하세요. 무거운 짐이라고 생각하면 결국 자살을 해야 무거운 짐을 덜게 되니까, 자살을 강요하게 되는 것이 됩니다. 다른 데 가서는 존재감이 없어도 엄마에게 가서는 존재감이 있고, 다른 데서는 안 받아줘도 엄마는 받아줘야 아이가 치유될 수 있습니다.” 법문을 마치자마자 식사를 간단하게 하시고 바로 다음 약속장소로 이동했습니다. 인수위 국민통합위원회 초청을 받아서 어떻게 새정부가 국민통합을 해 나가야 하는지에 대한 말씀을 하셨습니다. 사회적인 갈등을 화쟁적인 입장에서 갈등을 어떻게 줄이고 해소하고 국민의 마음을 통합해 나갈 것인가에 대한 말씀이 있었습니다. 통합위에서의 일정을 마치고 바로 노원정토법당으로 향했습니다. 그런데 차가 많이 막혀서 제시간에 도착하지 못하고 20분 가량 늦었습니다. 노원정토법당은 1층에 자그맣게 꾸려져 있었습니다. 열심히 활동하는 활동가들의 모습이 많이 보였습니다. 원래 작은 법당들에는 스님께서 방문해서 인사만 하는 것으로 잡았다가 다시 법문을 하는 것으로 바뀌었다고 합니다. 어쨌든 일정이 많아 법문까지 하시니까 잠시의 틈도 없이 바쁘게 움직여야만 다음 일정을 소화할 수 있었습니다. 그래도 스님께서 작은 법당에까지 찾아가니, 사람들은 기뻐했습니다. nbsp 노원법당에서는 기도를 시작한 초심자들의 질문이 많았는데 가볍고 밝은 분위기였습니다. 좁은 공간에 빈 틈없이 앉아 하하 호호 하며 법문을 듣는 분위기가 참 좋았습니다. 1시간동안 법문이 진행된 뒤, 다시 서초정토회관으로 이동했습니다. 노원법당에서 준비해 주신 도시락으로 돌아오는 길에 저녁 식사를 했습니다. 서초정토회관에 돌아와 7시 30분부터 저녁법회가 이어졌습니다. 저녁에는 청년, 대학생들도 많이 참가했습니다. 질문자들은 대부분 기도를 시작한 초심자들이나 정토불교대학생들이 많았는데, 질문들이 가볍고 재미있었습니다. 25살 늦깎이 대학생이라는 여자분은 백일출가를 가기로 했는데 어머니의 반대가 심해서 어떻게 해야 할 지를 물었습니다. 젊은 남자분은 외로움이 많고 화가 많아서 백일출가 후 인도갔다가 군대에 가고 싶다며 백일출가가 어떤 곳인지 물었습니다. 한 여자분은 남편에게 지은 죄가 많아서 작년 4월부터 참회기도를 했는데 이제는 남편과 잘 지내고 있어서 남편에게 하는 참회기도를 그만해도 될 것 같다고 해서대중들이 박장대소를 하며 웃었습니다. 그리고 그 분은 두 아들과 깨달음이 가장 큰 관심이라고 했습니다. “제 관심은 오로지 자식과 깨닫는 것에 있습니다. 깨달으려면 보시도 하고 봉사도 해야 하잖아요?nbsp어떻게 해야 할까요?” “첫째, 두 아들을 버리세요. 마음에서 탁 놔 버려야 합니다. 아들이 몇 살이예요?” “28살, 27살입니다.” “아들이 직장을 안 구했든 구했든 버려야 합니다.” “제가 못 버리는 것이 아들 밥해 주는 것이거든요.” “밥 안 해줘도 돼요. 깨달음의 단계로 가는 첫 단계입니다. 아들을 놔 줘야 합니다.” “정신적으로 많이 놨다고 생각하는데 실제적으로는 아니더라구요.” “못해도 아는 것만으로도 굉장한 것입니다. 고치지는 못해도 상황을 아는 것이 첫 시작이예요. 시작은 됐어요. 깨달음을 얻으려면 두 아들을 놔야 합니다. 아들이 스무살이 넘으면 아들을 놔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안 풀려요. 내가 죽어도 남편도 잘 살아요. 아이들도 엄마없어도 조금 아쉽지만 잘 살아요. 다 살게 되어 있는 거예요. 가장 중요한 것은 내 자식이 스스로 살아갈 수 있도록 길을 열어주는 것입니다.” 나가 있는 아이는 자기집에 못 오게 해요.” 밍“안가는 것이 장가보내는 거예요. 무관심한 것과는 다른 거예요. ‘에이, 나는 모르겠다. 니 알아서 살아라’ 하는 것은 내치는 거예요. 그것이 아니라 사랑으로 정을 끊어야 해요. 놔 줘야 돼요.” “남편에게 참회기도를 더 해야 하나요?” “지금 보니까 남편이 그만 하라고 싹싹 빌 때까지 더 해야 되겠어요.” “예. 알겠습니다.” 스님과 여자분의 대화가 진행되는 중에 참 많이 웃었습니다. 이야기들이 참 밝고 가벼워서 사람들에게 웃음을 많이 선물해 주었습니다. nbsp 그 외에도 여러 질문들이 많았습니다. 마지막에는 북한 핵 실험에 대해서 어떻게 봐야 하는지 물어서 북한을 어떻게 바라볼 것인지의 관점에 대해서 정리해 주셨습니다. 최선이 아니면 차선, 차선이 아니면 차악을 선택할 수 있는 지혜를 가져야 한다는 말씀으로 마지막 정리를 해 주셨습니다. 저녁 법회 때는 많이 웃었습니다. 재미있었습니다. 2시간을 훌쩍 넘기고 법문이 끝났습니다. 스님께서는 법회 후에 또 평화포럼 관련한 회의가 있어서, 늦게까지 회의를 하셨습니다. 오늘은 바쁘게 뛰어다닌 하루였습니다. 내일도 4개 지역에서 법문이 있어서 오늘처럼 바쁘게 달려야 할 것 같네요. 내일은 오전에 대구, 오후에 구미, 상주, 달서가 차례로 잡혀 있습니다. 내일은 대구nbsp에서 인사드리겠습니다. 감사합니다.
2013년 2월 12일 법륜스님의 하루(정초법문-대전, 정읍, 부사)
오늘은 정월 초사흘입니다. 전국 정토법당에서 정초기도를 시작했고, 또한 스님께서 전국으로 순회하면서 정초기도 법문을 시작하신 날입니다. 매년 정초가 되면 스님께서 전국 정토법당을 한 번씩 돌아보시고 법문을 해 주셨는데, 갈수록 법당들이 많이 생기면서 큰 법당 중심으로만 돌다보니, 작은 법당들에서도 꼭 스님을 한 번 모시고 싶다는 바람이 많아져서, 올 해는 자그마한 법당을 포함해서 전국 법당을다 돌아보기로 했습니다. 그러다보니 스님께서 하루에 세 군데, 이번 주에는 이틀을 하루 네 군데에서 법문을 하셔야 일정내에 전국을 다 돌 수 있어서, 또 강행군을 하게 되었습니다. 스님께서는 1월 3일 인도로 출발하셔서 성지순례 후 인도JTS, 인도정토회 사업을 점검하시고, 1월 27일 방콕에서 불교대학 졸업식과 수계식을 하신 후, 바로 필리핀으로 가셨습니다. 필리핀에서 고등학교 준공식과 보건소 준공식에 참석하시고, 한국으로 들어와 2월 3일, 1200여명의nbsp불교대학, 경전반 졸업식과 수계식을 해 주시고 바로 미국으로 출국하셨습니다. 미국 워싱턴에서미국 여러 기관 사람들과 만나 북한 지원 업무를 논의하시고, 다시 LA로 가셔서 해외정토행자대회를 하신 후 오늘 새벽 5시 30분경 인천공항에 도착하셨습니다. 미국에서 필리핀 학교에 지원할 그림책을 많이 들고 오셔서 정토회관에 짐만 내리고 바로 오늘 정초법회가 있는 대전으로 출발하셨습니다. 2월 28일까지 하루 세 군데씩 전국 정토법당 스님 법문이 잡혀 있습니다. 새해부터 스님 일정이 작년보다 더 빡빡하게 돌아갑니다. 대전정토회에 도착해서, 준비해 주신 아침 식사를 맛있게 먹었습니다. 법당 입구에 부처님과 주리반특의 그림이 붙여져 있어서 뭔가 하고 살펴보니, 먼지를 털고 때를 닦아서 깨달음을 얻은 주리반특처럼, 우리도 열심히 법당을 청소해서 깨닫자며, 법당 청소모임 이름을 주리반특으로 짓고 가입을 권하고 있었습니다. 살며시 입가에 미소가 지어졌습니다. 스님께서는 10시에 바로 법회에 참가하셨습니다. 법문이 시작되자 스님께서는 먼저 그간의 스님 근황을 설명해 주시고, 정초기도에 대해서 간단하게 말씀해 주셨습니다. 이어서 사람들이 스님께 질문을 하기 시작했습니다. 제일 먼저 한 거사님이 일어났습니다. 3년전 스님을 알게 되어 어려운 일들을 잘 극복했고, 딸도 같이 왔는데 딸도 스님께서 기도하라는대로 해서 좋아지고 이번에 대학 합격까지 했다며 감사함을 전하고 싶어서 일어났다고 했습니다. 옆에 앉은 딸도 스님께 같이 인사를 했습니다. 벌써 마음이 훈훈해졌습니다. 스님께 고마움을 전하고 싶은 이런 분들이 정말 많을 것 같습니다. nbsp 많은 질문들이 있었는데 그 중 초심자 한 분의 질문을 옮겨 봅니다. “저는 아직 천일결사 기도나 이런 것은 안하고 있구요, 청년회에서 수행맛보기를 하고 있습니다.108배나 명상을 하면서 제 감정을 알아채는 귀한 생활을 하고 있는데, 제가 느끼는 감정을 상대에게알리고 싶은 마음이 있어요. 내 감정이 상대에게 온전하게 잘 전달이 안 되는 것 같아요. 가족들에게 설날 감사하다는 말을 하고 싶었는데 잘 안됐어요. 친구들에게도 제 감정을 온전하게 전달하고 싶은데 어떻게 해야 하나요?” “‘온전하게 내 감정을 전달한다’는 말은 마치 전달방법에 대한 것 같은데 아니예요. 내가 눈만 깜박해도 상대가 내 원하는 것을 해 주면 전달이 된 것이고, 백마디를 해도 상대가 내 원하는 것을 안 해주면 전달이 안 된 것입니다. 세상은 내가 원하는대로 되지 않습니다. 내 원하는대로 하고싶은 것을 욕심이라고 합니다. 이뤄질 수 없는 것을 꿈꾸는 거예요. 대통령은 이뤄질 수 있지만 지금 이야기한 것은 이뤄질 수가 없어요. 내가 전달력이 부족해서 생기는 문제가 아니라 상대에게 ‘내 원하는대로 되어라’는 말을 하고 있는 거예요. 그것은 내가 지나친 것을 원하고 있는 것입니다. 인생을 살아가면서 감사하면 감사하다고 표현을 하면 됩니다. 그것을 받아주고 안받아주는 것은 상대의 몫입니다. ‘나는 당신이 좋아요’하고 사랑하는 마음을 내는 것은 내 몫이고, 그것을 받고 안 받고는 그 사람의 몫입니다. 내가 어떻게 전달을 잘 하느냐의 문제같지만 아니예요. 상대를 내 마음대로 하려고 하는 마음에서 일어난 마음입니다. 어떻게 하면 상대를 내 원하는대로 할 수 있는지를 세상은 가르칩니다. 그것은 수행이 아니예요. 수행은 ‘내가 나를 어떻게 할 것이냐?’하는 거예요. 감사하면 감사하다고 표현을 하면 됩니다. 표현이 부족하다는 것은 상대가 잘 안 받아주니까 표현이 부족하다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상대가 안 받아주는 것이 아니라 내가 지나치게 바라기 때문에 그런 것입니다. 이것은 나의 문제입니다. 상대에게 내가 좋아하면 너도 나를 좋아하라는 요구가 들어 있습니다. 요구를 내려놔야 합니다. 그것 때문에 인생이 괴로운 것입니다. 가족에게 감사하면 감사한 마음을 내면 됩니다. 기술적인 문제로 접근해서는 안됩니다. 그냥 고마우면 ‘고맙습니다’ 하면 됩니다. 정말 사죄한다면 만 번을 요구해도 ‘죄송합니다’ 할 수 있어야 합니다. 표현 방법의 문제가 아니라관점의 문제입니다. 아직 수행맛보기 단계라니까 관점이 잘 못되어도 제가 봐 주는 거예요. 하하하” 스님의 말씀이 참 깊이 다가왔습니다. 시중의 많은 책들이 상대를 어떻게 하면 내 원하는대로 할 수 있는지에 대한 이야기들입니다. 그리고 사람들은 그렇게 되기 위해서 무던히도 많은 노력을 합니다. 그런 관점으로 세상을 보면 결국에는 괴로울 수밖에 없겠구나, 나의 순수한 작은 요구 속에 실제로는 큰 나의 욕심이 들어 있었구나 싶었습니다. 항상 듣는 말씀인데도, 초심자의 관점에서 정리를 해 주시니 더 쉽게 다가오는 것 같았습니다. 법회를 마치고, 새해라 모두들 스님께 감사의 마음을 담아 세배를 올렸습니다.nbsp nbsp 대전법당에서 점심식사를 하고, 정읍정토회로 향했습니다. 1시간 30분 정도가 소요되었습니다. 제가 중앙사무처에서 일할 때도 정읍법당에는 한 번도 가 보지를 못해서 어떻게 꾸며져 있을까 하는 작은 기대도 있었습니다. 이번에 새로 이전을 했다고 합니다. 이름도 정겨운 코끼리분식 2층에 아담하고 예쁘게 정읍정토회가 자리잡고 있었습니다. 이번 스님 순회법회는 정토회 가족을 위한 법회인데, 주변 지인들도 많이 온 것 같았습니다. 자그마한 법당에는 더 들어갈 수 없을만큼 사람들로 꽉 차고, 입구에는 아이를 안은 엄마들이 자리를 잡고 앉았습니다.이전을 해서 개원법회를 하지 못했다며 따뜻한 모듬 찰떡과 식혜, 귤을 준비해 놓고 정성스레 한 사람 한 사람을 맞이하고 있었습니다. 스님 맞이할 공간이 따로 없으니 법회 시작시간에 꼭 맞춰서 와 달라는 부탁말씀에 따라, 스님께서 3시 법회시작시간에 맞춰 법당으로 올라가셨습니다. 어떤 질문자는 스님께 항상 영상으로만 보다가 직접 보니까 신기하다고 해서 대중들이 다같이 웃었습니다. nbsp 정읍에서도 많은 질문이 있었습니다. 병석에 있는 아버지를 자식으로서 어떻게 바라보고 어떻게 대해야 할지 묻는 분, 군대에서 근무하다가 손을 만지는 상사 때문에 다른 부서 배정을 요청했다가 왕따를 당해서 전역을 했는데, 다시 군 복무를 하는 것이 어떠냐는 남편의 말이 서운하다는 분, 정상적이지 않은 아이의 양육에 대해서 남편과 의견이 맞지 않아 고민하는 분, 앞으로 사업에 대해서 여쭙는 분, 왜 즉문즉답이 아니라 즉문즉설인지 묻는 분의 질문을 받다보니 2시간이 훌쩍 넘어갔습니다. “스님. 저는 전에부터 궁금한 것이 있었는데요, 왜 즉문에 즉답이 아니라 즉설입니까?” “답이라는 것은 내가 준다는 것이 되잖아요? 설이라는 것은 설법이라는 것입니다. 질문을 소재로 해서 설법을 하는 것이예요. 답을 주는 것이 아니라 설법을 하는 거예요.” “설이라는 것은 뭐예요?” “설이라는 것이 대화지요. 답을 주는 것이 아니라 대화를 통해서 자기가 깨우치는 것입니다. 정답을 주는 것이 아니죠. 대화를 하다가 자기가 깨우치는 것입니다. 금강경 한 구절을 읽고 ‘응무소주 이생기심이다’하면 이것을 설명해주는 것이 설법이잖아요? 경전을 가지고 하는 것이 아니라 질문에 대해서 대화를 하면서 거기서 뭔가 자기가 깨닫는 것이죠. 내가 답을 주는 것이 아니라 자기가 스스로 답을 찾는 것입니다.” 2시간을 넘게 법문을 하시고, 또 바로 대전 부사정토법당으로 이동했습니다. 부사정토법당은 대전둔산법당을 개원하게 전에 대전의 전법을 모두 책임졌던 옛날 법당입니다. 법당에 도착하니 저녁 예불을 드리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저녁을 먹지 못하고 오는 직장인들을 위해서 주먹만큼 큰 송편같은 떡과 김밥, 사과, 따뜻한 보리차가 준비되어 있었습니다. 스님께서도 준비해주신 저녁 공양을 드시고, 바로 저녁 법문에 들어가셨습니다. nbsp 부사법당에서도 많은 질문이 있었는데, 스님께 감사함을 표하는 분의 이야기도 감동적이었습니다. “남편이 췌장암으로 투병하다가 돌아가셨어요. 많이 힘들었어요. 슬퍼서 많이 울었어요. 그런데 스님 만나 뵙고 기도하면서 ‘내가 사랑한다고 하면서 남편 마음 편히 못 가게 바지 가랑이를잡고 있었구나’하는 것이 깨달아졌어요. 그래서 스님 말씀처럼 ‘안녕, 잘 가’ 했어요. 집에 돌아가는데 저도 모르게 노래를 하고 있더라구요. 사는 게 너무 우울하고 힘들어서 노래는 생각도 못하고 살았어요. 제 스스로 놀래서 이것이 일체유심조구나 했어요. 세상이 달라보였어요. 하루 하루 고맙고, 숨쉬는 자체도 고마웠어요. 하루 사는 것이 우울했는데, 세상이 달라지니까 아이들에게도 너그러워지고. 스님, 정말 감사합니다.” 스님 법문이 끝나자, 가수 현철의 ‘사랑의 이름표’를 개사해서 스님께 바치는 노래를 만들어 신나게 불렀습니다. 신난 분위기만큼 올 한 해도 모두들 신나게 수행을 할 수 있을 것 같았습니다.nbspnbsp nbsp 내일은 서울에서 법문이 있어서 법문 마치자마자 서울정토회관으로 이동했습니다. 서울에 도착하니 11시가 넘었습니다. 미국과의 시차 때문에 스님과 함께 동행했던 분은 많이 피곤해 하시는데, 스님께서는 시차도, 힘듦도, 피곤함도 마음에서 내려놓고 지내시는 것 같습니다. 내일은 서울에서 법문이 있습니다. 오전 11시와 오후 7시 30분에는 서초정토회관, 오후 4시 30분에는 노원정토법당에서 있습니다. 그리고 법문 사이 사이에, 이른 새벽부터 스님의 일정이 꽉 차 있네요.서울에 오면 스님을 만나고자 하는 사람이 많아서, 스님께서도 조금이라도 시간이 되면 다 허락을 하셔서 스님께서 휴식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내일 서울 소식 전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nbspnbsp
2013년 2월 10일 법륜스님의 하루(해외정토행자대회 3일째)
오늘은 행자대회 3일째이면서 설날입니다. 모두들 아침예불 및 천일결사 기도를 마치고 차례 지낼 준비를 하고, 묘덕법사님의 집전으로설날 합동차례를 지냈습니다. 합동차례를 마치고 나서는 다함께 스님께 세배를 드리고 또 서로 마주보면서 서로에게도 세배를 올렸습니다. 세배를 마치고 나서 스님께서는 덕담과 함께 설날의 의미를 수행과 연결하여 다음과 같이 말씀해 주셨습니다. “새해 첫 날을 이 때로 잡은 것은 겨울을 지나 봄은 맞는 것을 새로운 해의 시작으로 여겼습니다. 그러면 3월, 5월에 새해를 시작하지 않고 2월에 새해를 잡은 것은 계절적으로 봄의 시작을추위가 없는 것이 아니라 최고 추위는 지난 시점으로 잡아 봄은 올 수밖에 없다고 한 것입니다. 이것이 입춘입니다. 아직도 봄은 아니지만 이보다 더한 추위는 없다는 것이기 때문에 봄의 시작이라는 것이지요. 입춘을 음력으로 보면 설날은 입춘 열흘 전, 혹은 열흘 뒤, 혹은 입춘날이 되는 것입니다. 우리 인생의 봄도 꽃피는 3,4월이 아니라 입춘이 봄날입니다. 수행을 하면 여러가지 어려움이 많이 있어도 이제는 견뎌낼 수 있다고 여겨지면 이것이 행복입니다. 인생의 고비가 아직도 많지만, 설날처럼 우리는 이제 능히 어려움을 감당해낼 수 있다는 것이 수행자의 설날입니다. 수행자는 나날이 설날처럼 나날이 새날이 되는 것입니다. 수행자는 이와같이 정진해 나가야 합니다. 돈이 있으면 보시하기 좋고, 가난하면 인욕하기 좋은 것입니다. 이렇게 하는 것이 해탈하는 것입니다. 특히 올해는 한국전쟁 후 정전협정 60주년이 되는 해입니다. 한반도에 항구적인 평화가 와야 합니다. 개인기도도 중요하지만, 전쟁같은 고통이 더이상 이땅에 없기를 기원해야 합니다.” 하고 설날 덕담을 해주셨습니다. 늘 스님께서는 이렇게 한반도에 평화가 오기를, 북녁 땅에 더이상 굶주림과 추위의 고통이 없고, 한반도가 통일되기를 발원하시면 가슴이 뭉클해집니다. 농장을 보시를 하시겠다는 분이 계셔서 수련원으로 사용하기에 적합한지 둘러보러 차례를 마치자마자 스님께서는 아침식사도 거른채 행사장에서 한시간 거리의 농장을 둘러보러 가셨습니다. 저희들은 아침식사 후에는 정회원 양성과 지역정토회 내실화 마련이란 제목으로 워크샵을진행하였습니다. 정회원 교육과 안내에 대한 설명, 해외사무국 구조와 업무내용 및 담당자에 대한 소개의 시간이 있었습니다. 해외지역 정토회 내실화 마련에 대한 토론에서는 한국과 해외의 차이로 인해 한국과 똑같은 규정을 적용하기에는 여러가지 어려움이 많아, 해외사무국에서는 해외에 맞게, 해외지역의 요구를 다 수용하기에는 어려움이 많았습니다. 이어서 박지나 JTS 대표님의 그동안 사업경과 발표가 있었습니다. 해외지역에서도 많은 분들이 JTS에 후원을 하고 있는데, 보낸 후원금이 얼마나 소중하게 쓰이는 줄 알게 되었고, 또한 JTS에서도 후원금을 소중하게 쓰기위해 얼마나 많은 노력들을 하고 있는지 알 수 있는시간이었습니다. 워크샵 도중에 스님께서 돌아오셨는데, 스님께서는 워크샵 정리강연에서 정회원 제도가 생겨난 배경과 그 의미에 대해 다시 한번 설명을 해주셨습니다. 불교를 많이 아는 사람, 법륜스님 법문을 좋아하는 사람은 많지만 정토회의 설립취지인 부처님의 가르침대로 살고 실천하기를 잊어 버리지 말아야 한다시면 질적 순수성을 강조하셨습니다. 예정된 시간보다 훨씬 시간이 경과하여 지도법사님과의 즉문즉설 시간을 가졌습니다. 이번 즉문즉설 시간에는 개인적인 질문외에 정토행자로 활동하면서 생기는 가족과 다른 활동가와의 갈등에 대한 질문들이 많이 있어 참가자들에게 직접적으로 많이 다가오는 내용이었습니다.좋은 환경에서 일을 하는 것은 단순한 사회봉사에 머무는 것이라면서, 어려움 속에 부처님의 가르침을 따라 이겨내는 것이 수행이고 자기극복이며, 자기해탈에 이르는 길이라고 하셨습니다. 상대가 잘해서 편하게 사는 것은 수행이 아니기에 상대는 있는 그대로 두고 내가 자유로와져야 한다고 하셨습니다. 70분의 즉문즉설이 끝났는데, 다들 즉문즉설의 시간이 너무 짧다고 아쉬워하면서 다음에는 즉문즉설 시간을 늘려달라고 하였습니다. 행사가 서서히 마무리 되면서 소감문 작성 및 발표의 시간을 가졌습니다. 각자 다른 생각과 기대로 행사참가를 하였기에 느낀 것도 서로 다름을 알 수 있었습니다. 다음 대회 진행에서 고려되었으면 좋겠다고 제안된 것들이 아주 좋은 내용이 많았습니다. 회향법문에서 스님은 혼자하는 것은 힘들지만 힘을 합해서 하면 그리 힘든 일이 아니다, 가장 바른 길로 가는 것이 가장 대중성이 있는 것이기에 자기정진이 먼저 되어야 한다고 하셨습니다. 부처님 가르침대로 사는 것에 대한 확신과 믿음을 가지는 것이 중요함을 다시 강조하셨습니다. 스님의 회향법문과 함께 제3차 정토행자대회를 마치면서 다함께 손을 잡고 산회가를 부르면서 다음 행자대회를 기약하였습니다. 뉴욕과 필리핀에서 서로 유치를 하겠다고 하여 치열한 유치전이 벌이질 것 같았습니다. 이렇게 또 제3차 해외정토행자대회가 저물어 갔습니다. nbsp 이어서 식사를 마치고 해외지역에서 오랜만에 총무님들과 해외사무국 자원활동가들이 함께 만났기 때문에 저녁 8시부터 1박2일로 저희들은 묘덕법사님과 함께 총무단 수련 진행을 계획하였습니다. 스님께서는 8시에 총무단 모임에 들어오셔서 올해 미주지역 순회강연일정과 유럽지역 강연일정을 총무들과 의논하면서 어려운 가운데 열심히 전법을 위해 활동하고 있는 총무들을 격려해주셨고, 저희들은 스님께 인사를 드렸습니다. 스님께서는 한국으로 돌아가시기 위해 9시에 짐을 꾸려서 공항으로 출발하셨습니다. 스님편으로 필리핀에 보낼 동화책가방 5개를 또 보냈습니다. 스님께서는 유니온 신학대학에서 열리는 세계참여불교와 해방신학자간이 종교대화라는 컨펀런스에 참가하기 위해 4월에 미국을 방문할 계획입니다. 저는 그 때 또 뵙도록 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