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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년 3월 13일 법륜스님의 하루(팍세 교육현장 답사)
간밤엔 따엥 지역 전체에 에어컨을 빵빵하게 켜 놓은 듯 시원해서 잘 잤습니다. 오늘은 팍세를 향하여 6시에 출발했습니다. 7반 쯤 또 쌀국수로 요기를 하고 팍세주교육청에 도착했습니다. 팍세주교육청장과 다른 한분의 공무원이 별도의 차로 우리를 안내하였습니다. 스님께서는 10시 10분쯤 구 교육청에 도착해서 구 교육청장과 JTS의 설립 취지와 사업지원 원칙에 대하여 구체적으로 설명하셨습니다. 스님께서 팍세주교육청장이 있는 자리에서 주민들과 협력하여 학교를 신축하면 교사를 보내주겠냐고 물으시자 교육청장은 학교가 있으면 교사를 보낸다고 확답을 하였습니다. 스님께서 필리핀에 학교를 지었는데 정부에서 교사를 파견하지 않았던 경험을 말씀하시자 교육청장은 우선 학교가 급하다고 다시 한번 교사파견을 약속하였습니다. 오늘은 교육청에서는 주로 짓다가 만 학교를 보여주었습니다. 농팡아이라는 학교는 1,2,3학년 41명이 건물을 빌려 교실 하나로 공부를 하고 있고, 조금 떨어진 곳 기둥 일부와 함석지붕만 해놓은 채로 공사가 중단된 학교 현장에 갔습니다. 기둥 하나는 주춧돌이 빠져나가 덜렁덜렁하고, 다른 기둥은 윗부분이 부식이 돼서 곧 부러질 것만 같아 그 상태에다가 자재를 지원하는 것이 오히려 무모하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습니다. nbsp 마을 사람들이 따라왔습니다. 마을 사람들은 매우 적극적이었습니다. 스님께서 주민들을 모아놓고 JTS의 사업원칙을 설명하시고 자재를 지원하면 주민들이 지을 건지를 물었습니다. 주민 315명이 6개월이면 짓는다고 하면서 지붕도 다시 해야 하고 교실 4개가 필요하다며 도와달라고 했습니다. 스님께서 기왕 지으려면 지금 있는 것 철거하고 다른 학교처럼 잘 지어야 하는데 일이 많아지면 주민들이 할 수 있겠냐고 하자 주민들이 모두 서명해서 새로 짓겠다고 주민들 모두 입을 모아 의욕의 보였습니다.nbspnbsp 오늘도 3개 학교를 돌아보았습니다. 오늘은 다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짓다가 만 현장들이었습니다. 도저히 학교를 짓는 건물이라고 보기에 어려운 곳도 어제 돌아보았던 아타푸주의 학교들보다 훨씬 심각하였습니다. 열악한 건물도 건물이려니와 학교 운동장에 나무 한그루 없는 현실이 참으로 답답하고 안타까웠습니다. 돌아오는 길에 정 대표님의 건의로 크메르 왕국시대에 건립하였다는 힌두사원 왓 푸에 들러 모처럼 여유로운 시간을 가졌습니다. 왓푸는 작은 앙코르왓트라고도 불리며 유네스코에서 지정한 인류문화유산이라고 하는데, 일반 사람들에게는 많이 알려져 있지 않다고 합니다. 입장 마감시간 30분을 남겨두고 입장하여 편안하게 사원을 둘러보았습니다. 사원은 건립시기가 오래된 것을 증명하듯 파손이 심했습니다. 더욱이나 딱한 것은 허물어진 석축위에 난 잡초를 제거한다고 불을 질러 연기가 나고 있는 장면이었습니다. 내일은 다시 국경을 넘어 프놈펜으로 갑니다.
2013년 3월 12일 법륜스님의 하루(라오스 사업 예정지 답사)
오늘은 라오스 아타푸주에서 가장 열악한 초등학교 교육 현장을 답사하기로 한 날입니다. 스님께서는 새벽 5시 40분에 팍세의 숙소를 출발하였습니다. 라오스도 우리나라 1970년대처럼 개발 바람이 불기 시작했는지 여기저기에 도로 공사와 건축 공사가 한창이었습니다. 우리가 가려고 한 큰길이 막혀 있어서 아직 어둑한 새벽이라 옆으로 난 작은 길로 들어섰더니 아주 큰 농산물 도매시장으로 통하는 길이었고 농산물을 가득 실은 차들이 비좁은 도로를 가득 메우고 있었습니다. 길이 막히는 바람에 갈 길은 바쁘고 멀지만 한참 열기가 오르는 아침 시장구경을 덤으로 했습니다. 호박, 무, 양배추같이 우리나라에도 나는 야채는 물론 우리나라에는 없는 바나나꽃봉오리 같은 식품재료들이 커다란 바구니에 수북수북 쌓여있고 상인들은 활기가 넘쳐 보였습니다. 2시간 쯤 차를 달려 따엥이라는 곳에서 쌀국수로 아침식사를 하였습니다. 그곳은 긴팔을 입어야 할 만큼 서늘해서 좋았습니다. 우리가 간 식당의 쌀국수 한 그릇 값은 라오스 화폐로 15,000키프이고, 해물쌀국수와 돼지고기쌀국수가 있는데 둘 다 시원하고 단백한 맛이 그런대로 괜찮았습니다. 10시 20분에 아따포교육청에 도착하여 2층에 마련된 자그마한 회의실로 안내를 받았습니다. 교육청 공무원 네 분이 나와 아타푸교육청 관내 각급 학교 현황을 설명하였습니다. 우리가 관심을 가지고 있는 초등학교는 87개에 학생 수는 22,306명이라고 했습니다. 스님께서는 ‘관내에 학교가 없는 마을이 있는지, 학교가 없거나 낡아서 새로 이을 필요가 있는 학교가 있는지, 학교가 낡은 이유는 무엇인지를 물으시고, JTS의 설립취지와 지원하는 방식에 대하여 설명하셨습니다. nbsp ‘우리 단체의 이름 JTS는 Join Together Society의 약자인데 학교를 그냥 100 지원하는 것이 아니고 주민과 정부와 JTS가 함께 일하는 것이라는 것, JTS가 건축자재 및 책상 칠판 등 교육자재를 제공하고 정부는 기술자를 제공하고, 마을사람은 노동력을 제공하는 것으로 총 소요되는 비용을 비율로 얘기하면 JTS가 70, 정부가 10, 주민이 20라는 것, 주민이 참여하여 주민의 자녀가 공부할 학교를 함께 지으면 교육열도 높아지고 학교에 대한 애정이 있다는 것, 주민들은 돈을 내는 것이 아니고 마을 전체가 의논해서 열흘정도 노동력을 제공하는 것이라는 것, 이렇게 학교를 지어서 아이들이 어릴 때 공부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 주자는 것, 상황이 열악할수록 우선순위를 둔다는 원칙을 가지고 사업지를 선정한다는 것, JTS는 이런 방식으로 필리핀 민다나오에서 9년 동안 40개 학교를 짓고, 캄보디아 라타나끼리에서 3년 동안 9개 학교를 완성하고 3개 학교를 신축 중이라는 것, 이러한 JTS의 취지를 이해해서 몇 군데 학교를 방문할 수 있도록 안내해 달라’고 요청하니 공무원들도 충분히 수긍한 듯 표정이 밝아졌습니다. 스님께서는 점심식사를 마치고 초등교육을 담당한다는 여자 공무원과 함께 두 군데 학교와 분교를 돌아보았습니다. 돌아본 학교마다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교실 상태가 열악했습니다. 땅바닥에 벽이 없는 학교도 있고, 교과서를 가지고 있는 학생이 한 명도 없을 정도였습니다. 교사에게 제일 필요한 것이 무엇이냐고 물으니 교사용 교재를 요청하기도 했습니다. nbsp 마을 이장이 오셨는데 JTS의 사업방식을 얘기하자 주민들의 협조를 받기가 어렵다고 하면서 지난 번에도 주민들의 협조가 필요할 때 단합이 잘 안 되었다고 했습니다. 교사도 학부형을 설득할 의욕이 없는 듯 했습니다. 어떤 학교에서는 마을주민 29가구가 떨어져 살기 때문에 힘을 모으기가 어렵다고 했습니다. 스님께서는 여러 학교를 돌아보면서 가장 시급한 문제는 학교 건물이 낡고 교실이 부족한 것도 문제지만 그보다는 학생들에게 교과서가 지급되지 않는다는 점을 가장 걱정하셨습니다. 교사들도 교재가 제공되지 않고 돈을 주고도 살 수가 없는 상황을 시원하게 설명하지 못했습니다. 학교 현장을 답사하고 돌아오는 마음이 무거웠습니다. 스님께서 오늘 저녁에는 어제 밤 머물렀던 팍세까지 가지 말고 오늘 아침식사를 했던 따엥의 게스트하우스에서 쉬자고 하셨습니다. 팍세는 너무 습하고 더웠기 때문입니다. 9시 30분에 모여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스님께서는 오늘 돌아본 학교 지원의 문제점을 분석하고 평가하시는 중 주민참여에 대하여 ‘시간이 흐를수록 주민참여 문제가 난관이다, 주민참여는 단순히 경비절약의 문제가 아니다. 오히려 비효율적일 수도 있다, 가난할수록 자기 살기 바빠 공익적인 마음을 내기가 어렵기 때문에 공공성을 유도하기 위한 목적이 있다, 참여했던 주민이 학교를 준공할 때 기쁨의 눈물을 흘린다, 주민이 참여했을 때 자기일이 되고 아이들 학교 보내는 데 적극적이 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또 주민참여가 적극적으로 이루어지려면 주민들과의 대화가 중요하다고 하셨습니다. 그리고 파견 봉사자들의 생활 원칙, 사업의 원칙에 대해서도 말씀하셨습니다. “학교 건물 하나 덩그렇게 짓는 것이 목표가 아닙니다. 이를 통하여 공공의식, 참여, 정리하는 습관을 가르치는 교육이 됩니다. JTS사람들이 까다롭긴 하지만 성공한다는 믿음을 심어 줍니다. 내 삶의 일부를 어려운 사람과 함께하여 내 일생의 새로운 목표로 정하고 경험합니다. 현지 물가에 맞고, 주민들의 생활에 맞게, 검소하게 주민의 수준으로 살아보고 수행자의 자세로 살 때 소득이 훨씬 많습니다.” 오늘 저녁 스님께서 해외봉사자들에 하신 생활원칙은 일상을 사는 우리들도 지니고 지키면 삶이 한 층 달라질 법문이었습니다. 내일은 팍세주교육청을 방문하고 그 곳 교육현장을 답사할 예정입니다.
2013년 3월 11일 법륜스님의 하루(라오스 방문)
오늘은 라오스로 가는 날입니다. 스님께서는 JTS대표들과 캄보디아 JTS 사업진행 및 재정지출이 적정한 지에 대한 현지확인과 서류를 통하여 감사를 진행한 김기진 감사님으로부터 보고를 받고 8시부터 11시 45분까지 회의를 진행하셨습니다. 점심공양 후 스님께서는 이곳 JTS에서 운전기사로 일하다가 지병인 간암이 악화되어 작년 11월 작고하신 쁘띠의 유가족을 위로하러 가셨습니다. 쁘띠의 미망인은 이 곳 시장에서 잡화상을 운영하고 있는데스님께서 가신다는 연락을 받고 잠시 집으로 왔습니다. 미망인보다는 스님께서 먼저 도착하셨는데 쁘띠의 집은 잘 정돈되어 있고 마당에 화초도 잘 가꾸어져 있었습니다. 스님께서는 생각보다 가난하지는 않은 것 같아 다행이라고 하셨습니다. 미망인이 곧 와서 쁘띠의 영정이 모셔진 대청으로 스님을 안내하자 스님께서는 쁘띠의 영정 앞에 합장하고 해탈주를 독송하신 후 미망인을 위로하고 조위금을 드렸습니다. 밝게 웃는 미망인을 뒤로 하고 돌아오는 마음이 가벼웠습니다. 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 오후 1시, 스님과 서울에서 온 일행 그리고 캄보디아 JTS 정철상 대표님과 책임자 박병수 법우, 캄보디아 JTS 실무자로 새로 파견된 문태훈 법우 이렇게 8명이 라오스를 향하여 출발하였습니다.스님께서는 온가족이 외국여행을 간다고 하셔서 우리는 한바탕 또 웃었습니다. 라오스로 가는 길은 황량하기만 했습니다. 고무나무 숲도 없고 가꾸지 않아 멋대로 자라고 쓰러진 나무와 불에 탄 나무가 뒤섞인 황무지가 지평선 끝까지 이어지는 듯 했습니다. 라오스국경에 도착한 4시 35분까지 스님께서는 서울에서 걸려온 전화를 받고 이메일로 받은 서류를 검토하시느라 잠시도 쉴 틈이 없었습니다. 캄보디아 출국수속과 라오스 입국수속, 세관 통과까지 1시간 10여분이 걸렸습니다. 국경을 지나자 도로변이 끝없이 평평한 것과 가옥 형태는 캄보디아와 별반 다르지 않은데 제법 경지정리가 된 논이 이어지는 것이 이채로웠고 캄보디아보다는 정돈된 느낌이 들었습니다. 평지에 끝이 없을 듯 직선으로 이어진 도로를 달리다보니 어느새 어둠이 내렸습니다. 얼마나 달려왔을까요? 7시 50분 쯤 차가 갑자기 속도를 줄이고 어둠속에서 한 여인이 다가와 다급한 소리로 창문을 두드리며 손가락으로 가리키는 10여m 전방에 오토바이와 사람이 나뒹굴고 사람들이 모여 있었습니다. ‘교통사고다’ 우리들은 반사적으로 몸을 일으켜 환자가 있는 곳으로 달려갔습니다. 라오스 현지인으로 보이는 몸집이 작은 한 남자가 머리와 다리에 피를 흘리며 정신을 잃은 채로 오토바이 옆에 버둥거리고 있었고, 길 건너편에 자지러지는 듯한 아이울음 소리가 나서 달려가 보니 네댓 살 되어 보이는 어린이가 머리에 피를 철철 흘리며 어떤 여인에게 안겨 울고 있었습니다. 아이의 상처가 무척 커 보였고 전문의사의 응급조치를 받지 않으면 생명이 위독해 보였습니다. 정철상 대표님이 수건을 꺼내다가상처 주변의 피를 닦다보니 두개골이 보였다고 했으니까요. 우선 병원의 위치를 알아보고 병원으로후송하는 일이 급한데 둘러서 있던 주민들과 전혀 말이 통하지 않았습니다. 캄보디아 사람인 우리 차의 기사가 주민들에게 말을 시켜보았지만 역시 서로 알아듣지를 못했습니다. 다행히 우리가 오늘밤 묵을 팍세라는 도시에 라오스의 수도 비엔티엔에서 미리 와 있는 통역사 김수연 씨와 전화 연락이 닿았습니다. 주변에 둘러섰던 한 주민과 이중 통화를 해서 겨우 병원이 20여km 정도 거리에 있는 것을 알았습니다. 정 대표께서 수건으로 아이를 감싸 안고 차에 올랐습니다. 다행히 오토바이 옆에 쓰러진 남자는 정신이 조금 들었고 생명이 위독할 정도의 중상은 아닌 듯 했습니다. 박병수 법우와 문태훈 법우가 그 남자를 끈질기게 주무르고 남자를 부축해서 어린 아이를 안고 있는 정 대표님 옆에 태웠습니다. 연고자를 함께 태우고 가려 했지만 누가 연고자인지 알 수도 없고 아무도 나서질 않아 환자들과 우리들만 출발하였습니다. 이 남자가 차에 타자 차안에 술냄새가 진동했습니다. 정신은 조금 들었지만 축 늘어진 남자와 아이가 대화하는 것을 보니 알아들을 수는 없지만 두 사람은 부자지간이었습니다. 쯧쯧쯧, 어쩌자고…….nbsp참 할 말이 없었습니다. 아버지가 만취한 채로 어린 아들을 오토바이 뒤에 태우고 가다가 넘어지는 바람에 아이가 튕겨져 나가 도로바닥에 부딪혀 큰 상처를 입은 것 같았습니다. 아이가 잠들지 않도록 말을 걸고 달래는 정 대표님의 모습은 정말 천사 같았습니다. 남자는 아이를 부르기도 하고 물을 달라는 시늉을 하며 소리쳤습니다. 외상이 있고 아직 어디를 다쳤는지 모르는 환자가 물을 달란다고 주어야 할지 판단하기가 참 어려웠습니다. 그렇지만 물을 안 주기도 참 안타까워서 조금만 물을 주었습니다. 더 달라고 소리치던 이 남자는 고개를 문 쪽으로 돌린 채 토하기 시작했습니다. 우웩 정말로 술을 많이 마셨나 봅니다. 우리 나라에서 자동차로 20km 거리라면 지척인데, 인적도 없는 외국에서 생판 모르는 긴급 환자를 태우고 가는 밤길은 정말 어둡고 멀었습니다. 아이는 자꾸만 울고 마음은 다급한데 혹여 길을 잘못 들까봐 여러 번을 묻고 또 물었습니다. 팍세 시내 어느 큰 호텔에 들어가 영어가 조금 되는 듯한 호텔직원에게 동승을 요청해서 8시 45분 팍세병원에 도착했습니다. 통역 김수연씨가 먼저 와서 응급병상을 준비해 놓아서 아이와 남자를 눕혀 수술실로 들여보내고야 마음을 좀 놓았습니다. 이런 경우에 우리가 이 환자들을 치었다는 오해를 받기 십상이겠다고 예견은 한 일이었는데요, 환자를 병원에 내려놓자 경찰이 올 때까지 기다리라고 했습니다. 9시 10분 쯤 온 경찰은 차의 둘레와 그 남자가 토해놓은 곳까지 다 살펴본 후 웃으면서 우리에게 가도 좋다고 말하였습니다. 9시 반에야 숙소에 갈 수가 있었는데 저녁을 먹으려니 웬만한 식당은 다 문을 닫고 숙소에서 운영하는 식당에는 우리가 주문하는 음식은 다 떨어져서 식당에서 주는 대로 저녁을 때웠습니다.nbspnbsp 스님께서는 ‘오늘 우리가 복을 많이 지을 뻔 했는데 우리가 사고현장 사진을 찍어놓는 바람에 그 기회를 놓쳤다, 좋은 일을 하고도 누명을 써서 비난을 받고 감옥에 가고 벌금을 문다면 이는 지옥에 갈 죄가 소멸되는 큰 복을 갖는 것이 되는데 오늘 우리는 좋은 일을 하고 누명을 쓰지 않아서 큰 복 받을 기회를 놓쳤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 말씀 속에서 우리는 만약 오늘 같은 경우 누명을 썼다면 후회하면서 억울해했을텐데 그럴 경우에도 가볍게, 행복하게 살아갈 수 있다는 것을 다시 새기는 기회가 되었습니다.nbspnbsp 이렇게 라오스에서 첫밤이 깊어갑니다. 내일은 아타푸주 교육청을 방문하고 열악한 교육현장을 답사할 예정입니다.nbsp
2013년 3월 10일 법륜스님의 하루(베트남 사업예정지 답사)
오늘 스님과 함께 베트남 사업예정지를 함께 답사하실 정철상 대표님이 프놈펜에서 밤길을 달려 새벽 4시경에 이곳에 도착하셨답니다. 정 대표님은 프놈펜에서 사업을 하시면서 캄보디아 JTS 대표를 맡고 계십니다. 정 대표님은 지난 9일 부산을 출발하여 호치민을 거쳐, 9일 오후 5시경 프놈펜 공항에 도착해서 하루 먼저 온 새로운 자원활동가 문태훈 법우를 만나 이곳에 오셨는데 밤길이라 속도를 내면 위험해서 낮보다는 훨씬 시간이 많이 걸렸다고 합니다. 낮에도 8시간이 걸리는 거리이거든요. 스님께서는 정 대표님이 조금 쉬시도록 기다렸다가 8시 50분 베트남 국경을 향하여 출발하셨습니다. 국경으로 향하는 길은 포장상태가 좋아서 먼지도 덜 나고 한결 빨리 달릴 수 있었습니다. 도로 연변에는 고무농장과 캐쉬넛 농장이 끝없이 펼쳐지고 있었습니다. 참, 어제 학교신축현장 일대와 사무실로 오는 길에도 캐쉬넛 농장이 연이어 있었는데요, 이 농장들이 대부분 베트남의 자금이 들어와 운영된다고 합니다. 한 시간 가량 국경 쪽으로 달렸을 때 길 옆에 잘 정돈된 후추농장 앞에 싸론이라는 분이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싸론은 캄보디아 JTS 사업 초기에 라타나끼리의 교육청과 관련되는 업무를 하면서 JTS가 사업지를 선정하고 교육청과 협의하는 데 많은 도움을 주신 분입니다. 싸론을 추가로 태우고 조금 더 가다가 경찰서에서 전직 경찰 한 분이 우리의 안전과 통역을 위해 함께 가겠다고 탑승하였습니다. 이후 국경까지 가는 길 연변에는 어제까지는 볼 수 없었던 많은 후추농장이 있고, 후추농장을 새로 설치하는 곳도 많았습니다. 전 세계적으로 육식을 좋아하는 인구가 늘어나게 되니 후추 수요도 증가하여 일어나는 현상이 아닐까 생각했습니다. 10시 30분 국경에 도착하였습니다. 캄보디아인은 신분증만 있으면 간단한 증명서로 국경을 통과하는데 우리는 불과 3일 전에 프놈펜 공항에서 미화로 한 사람당 20달러나 들여 발급받은 비자를 반납하고 출국허가를 받았습니다. 10시 50분 도착한 베트남출입국관리소에서는 캄보디아인을 제외한 외국인은 당일로 돌아와야 한다는 것 입니다. 11시20분에 베트남 입국수속을 마칠 수 있었습니다. 스님께서는 ‘시간이 넉넉하지 않으니 오늘은 국경변 베트남 사람들의 생활정도와 교육시설이 어떠한지 둘러보기로 하자’고 하셨습니다. 베트남의 면적은 33만㎢로 우리나라 남북한 합친 면적의 1.5배 쯤이고, 인구는 2010년 통계로 8천8백5십만 명이며, 사회주의공화제를 실시하는 나라입니다. 스님께서는 아이패드가 보여주는 지도를 보시면서 출입국관리소에서 100m 쯤 들어와 왼쪽으로 난 길로 가보자고 하셨습니다. 아무래도 국경변의 교육여건이 열악하다고 생각하신 게지요. 그 길은 지도상으로는 제법 크고 좋은 길로 표시되어 있지만 들어가자마자 이내 차 한 대가 겨우 지날 정도로 좁아졌습니다. 길이라고 하기도 어려울 정도로 울퉁불퉁한 데다가 구불구불해서 그 길을 따라 국경변을 답사하기는 어렵겠다고 판단하여 돌아나와 플레이꾸시 쪽으로 방향을 잡았습니다. 베트남 영토에 들어서니 캄보디아와는 사뭇 다른 분위기가 느껴졌습니다. 우선 가옥구조부터가 눈에 띠게 달랐습니다. 캄보디아는 우리나라의 누각처럼 일층은 비워두고 2층에 벽을 둘러 주택으로 사용하고 있는데, 이 나라는 바로 땅 위에 집을 짓고 살고 있습니다. 도로 옆으로 펼쳐지는 땅은 평지가 아니라 대부분 구릉으로 이루어져 있는데도 그 지형과 지세를 이용해서 고무농장, 후추농장, 커피농장이 끝도 없이 잘 가꾸어져 있었습니다. 그리고 캄보디아에서는 단 한 그루도 볼 수 없었던 소나무가 나타나기 시작하더니 한두 그루가 아니라 가로세로 줄을 맞춰 조성한 송림이 드넓게 펼쳐져 있었습니다. 스님께서 싸론에게 소나무를 심은 이유를 물으니 ‘자기 생각으로는 미군이 월남전 때 이곳에 고엽제를 엄청나게 살포했는데 아마도 생명력이 강한 소나무를 심은 것 같다’고 대답했습니다. 싸론의 대답을 듣기 전에는 소나무가 목재로서 가치가 있어 계획적으로 조림한 것 아닌가 혼자 생각하고 있었는데 의외의 대답을 듣고 놀랐습니다. 전쟁의 잔혹함에 진저리가 처지는 한편, 전쟁의 상흔을 딛고 그 위험한 지뢰밭을 저토록 쭉쭉 뻗은 아름다운 송림으로 가꾸어 놓은 베트남 사람들의 의지에 마음속으로 갈채를 보냈습니다.도로변에 나타나는 주택과 건물들의 형태나 농토와 숲의 모습, 사람들의 움직임, 농장과 수목의 모습으로 보아 주민들의 생활이 호화롭지는 않으나 매우 안정되어 보였습니다. 스님께서는 ‘베트남 사람들은 미국을 이겼다는 자부심이 있고, 호치민이라는 존경할 만한 지도자가 있다는 긍지가 대단해서 사회를 안정적으로 이끄는 원동력이 된다, 이 점이 존경할 만한 청렴한 지도자가 없는 우리나라와는 다른 점이다.’ 라고 말씀하셨습니다. 플레이꾸시에는 오후nbsp1시쯤 도착하였습니다. 이곳에는 10층이 넘는 고층빌딩도 많고, 꽃가게가 많은 것으로 보아 주민들의 생활이 매우 안정된 도시 같았습니다. 점심을 먹으려면 우선 환전이 필요해서 은행으로 가자 하니 싸론은 귀금속가게 앞에 차를 세웠습니다. 그곳에서 환전을 하면서 우리나라에서도 예전에 명동과 남대문시장 등지에서 달러를 바꾸던 기억이 새로웠습니다. 쌀국수집을 찾으려고 몇 바퀴 돌다가 들어간 식당에서 시원한 국물을 생각하며 해물쌀국수를 시켰는데 라면처럼 구불구불한 면을 볶아서 그 위에 새우와 함께 볶은 야채를 얹은 접시가 나와서 스님과 함께 한바탕 크게 웃었습니다. 밥은 옹기솥에 담겨 나왔는데 바닥에 눌어 있는 밥을 보신 스님께서 물을 부어 숭늉을 만들자고 하셨습니다. 종업원이 와서 보고 밥을 한 솥 더 가져왔습니다. 아마도 밥이 부족해서 그런 줄 알았나봅니다. 아까 주방에서 밥솥을 커다란 설거지통에 담근 채로 밥솥에 붙은 밥을 긁어서 그냥 설거지물에 버리는 것을 보았다고 말씀드리자 스님께서는 이 사람들에게도 누룽지 만들어 먹는 법을 알려주었으면 좋겠다고 하셔서 또 한번 웃었습니다. 밥맛도 좋았지만 아작아작 씹히는 누룽지 맛이 일품이었습니다. 2시 10분에 플레이꾸시를 출발하여 시내 서쪽의 구릉 일대를 돌아보았습니다. 멀리 갔다가 출국수속 마감 시간에 쫓길 일을 감안하여 지름길을 택했는데 능선길이었습니다. 오가는 차나 인적이 거의 없는 한산한 길이었는데도 포장도 잘 되어 있고, 농장은 농장이라 그렇다 치더라도 황무지 마저도 캄보디아와는 다르게 정돈된 느낌이 들었습니다. 3시 50분 베트남출국 수속을 무사히 마치고 4시 15분에 캄보디아 출입국관리소에 도착하여 또 20달러를 지불하고 입국비자를 새로 받았습니다. 삼면에 바다가 있고 휴전선이 막혀 도로로 출입국을 할 일이 없는 우리나라에 비하면 그 나라에서는 당연한 일이 참으로 생소하고 몇 시간 만에 새로 지불하는 비용이 아깝게 여겨졌습니다. 베트남 국경근처를 돌아보신 스님께서는 ‘사람 사는 모습으로 보아 절대 빈곤은 없는 것 같고, 사회주의제도의 틀 안에서 문맹도 없는 것 같아 보인다, 캄보디아와는 다른 방향의 사업이 필요하다, 예를 들면 의료지원 사업 같은 것을 생각해 볼 수 있겠다.’며 시간을 가지고 논의해 보자고 하셨습니다. nbsp 스님께서는 저녁 10시부터 11시 반까지 오늘 베트남 사업예정지답사에 동행하지 못하고 감사를 마무리한 김기진 감사님으로부터 감사결과를 보고 받으시고 내일 아침 8시 감사결과와 사업방향에 대한 회의를 하자고 하셨습니다.nbsp
2013년 3월 9일 법륜스님의 하루(캄보디아 JTS 현장 방문)
스님께서는 오늘 3개 학교 신축현장을 돌아보기로 하셨습니다. 스님과 JTS 대표 일행이 바쁘신 중에도 여러 날을 할애하여 이곳에 오신 목적은 이곳 사업장에 파견된 실무자를 격려하시는 한편, 실무자가 사업장 관리와 재정을 적법하게 운영하고 있는지, 오지 마을에 짓고 있는 초등학교 신축공사가 원활하게 진행되고 있는지, 공사 진행률에 맞추어 경비가 적절하게 지출하였는지를 살펴보기 위해서입니다. 이곳에 체류하는 짧은 기간 동안 재정 관련 서류를 살피는 일 못지않게 현장을 보고 자재의 입고와 사용량, 추가로 필요한 부분을 먼저 현장을 확인하여 어떤 문제점이 있는지, 문제점이 있다면 어떤 대책을 세워 사업을 바로 이끌고 다른 나라에서 진행되는 사업에도 적용할 매뉴얼을 만드는중요한 계기가 되기 때문입니다. 이를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전문가의 점검이 필요하므로 이번에 김기진감사님께서 동행하시어 현장과 서류를 세세하게 점검하고 계십니다. JTS는 이 곳 라타나끼리의 오지 7개 마을주민 1,500여명의 자녀들을 위하여 작은 초등학교 세 개를 짓고 있는 중입니다. 기존의 학교가 있어도 오래되어 붕괴위험이 있거나 학교까지 거리가 멀어 다니기가 어려운 마을의 아이들을 위하여 학교를 지어주고 있습니다. 땅은 캄보디아 지방정부 교육청에서 제공하고, 자재와 기술자는 JTS가 대고, 건축공사의 단순 노동은 마을주민들의 자원봉사로 이루어집니다. 이곳은 열대몬순성기후로 건기와 우기로 나뉘어지는데 건물신축은 주로 건기에 해야 합니다. 우기에는 주민들이 농사를 짓거나 농장에 나가 삯일을 하여야 하기 때문에 마을주민 중 자원봉사자를 구하기가 어렵지만 그래도 마을사람 중에서 봉사자 구하기가 쉽고 또 건기에는 자재를 노천에 보관하면서 비를 맞히지 않고 공사를 진행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스님께서는 아침식사 후 서류를 검토하시고 일행과 함께 9시 15분 사무실을 출발하셨습니다. 시가지를 벗어나자 황토먼지가 시야를 가릴 만큼 진하게 날리는 비포장길이 나타났습니다. 먼지만 나지 않는다면 넓고 탄탄하게 닦여 있어서 황토색 포장도로 같았습니다. 자동차보다는 오토바이가 많이 다니는데 모두들 하나같이 마스크를 끼고 있었습니다. 그나마 건기이기 때문에 길이 많이 패이지 않아 다행이라고 생각했는데 이내 좁은 길이 나타났고 길도 움푹움푹 패어 있었습니다. JTS 캄보디아 본부에서 가지고 있는 5인승 왜곤차량에 6명이 함께 타자니 뒷자리에 4명이 끼어 앉아 비좁은 데다 아래 위로 요동을 치니 뿌연 황토먼지만 아니라면 차라리 짐칸에 타는 것이 편할 것 같기도 했습니다. 한 시간쯤 달려 첫 번째로 도착한 곳이 따뱅끄로움 초등학교 신축현장이었습니다. 뚬픈릉통, 쌩싸이, 꺽벙, 깩꿍, 퍼양, 이렇게 다섯 마을 1,300명 주민들의 자녀 300명이 다닐 초등학교 교실 4칸과 교사들의 숙소, 화장실을 짓고 있는 현장입니다. 이들 마을의 아이들이 다니는 기존학교가 이 현장에서 500m 거리에 있는데 지은 지가 오래된 목조건물이라 나무로 된 벽이 뜯어지고 뚫려 있는 데다 기울어져 붕괴위험이 있다고 해서 JTS에서 새로 짓고 있는 데 공사가 40 정도 진행되다가 중단된 상태였습니다. 교실 3칸과 복도, 교사의 기숙사, 화장실이 벽돌공사만 된 채 지붕이 마감되지 않고 있습니다. 앞으로 지붕을 만들고 기와도 이어야 하고 바닥타일과 벽에 시멘트 미장, 페인트 외장 등 작업이 남아 있는 상태입니다. 작년 8월에 시작된 공사가 12월에 중추적인 역할을 맡은 엔지니어가 학교를 짓다 가버려서 다른 엔지니어를 아직 구하지 못해 멈춰 있는 안타까운 현장이었습니다.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 스님께서는 중단된 공사현장 구석구석을 찬찬히 살피시고, 입고된 자재의 보관상태도 하나하나 챙기셨습니다. 우기에 대비하여 자재들을 보관할 방법과 대책에 대하여도 말씀하시고, 물이 없는 우물을 들여다보시고 건기에 우물을 파야 하는데 우기에 우물을 파서 그렇다고 하시며 어떤 일은 구체적으로 지적하기도 하셨습니다. 학교신축현장에서 조금 떨어진 목공소에서는 교실에 들여놓을 책상을 만드느라 목수들이 분주히 움직이고 기계소리도 요란해서 빈 공사장을 돌아볼 때보다는 좀 위안이 되었습니다.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 다음에는 땅아마을에 짓고 있는 땅아초등학교 현장을 방문했습니다. 땅아마을은 주민이 32가구 130여명이고, 초등학교에 다니는 학생이 70명쯤 된다고 합니다. 이곳은 교실 2칸짜리 학교인데 역시 공사가 40 가량 진행되다 중단된 상태였습니다. 웽찬마을도 32가구의 작은 마을인데 아이들이 메콩강의 지류인 상당히 큰 강을 나룻배로 건너 학교를 다닌다고 합니다. 웽찬초등학교 신축현장에 가려고 뱃사공에게 연락을 해서 보트를 기다리는 잠깐 사이에도 스님께서는 강기슭에 선채로 보고서를 검토하시고 지도를 살피셨습니다. 이윽고 그림에서나 보던 댓잎처럼 뾰족한 보트가 모터소리를 줄이며 미끄러져 강기슭에 닿았습니다. 이 보트의 정원은 사공을 포함해서 4명인데 우리 일행이 여섯 명이라 보트 두 대에 나누어 타야 했습니다. 보트가 하도 좁고 뾰족한 데다 흔들릴 때마다 물이 조금씩 들어와서 타고 내릴 때는 더욱 아슬아슬했습니다. 보드가 물위를 미끄러져 가는 동안 조마조마하면서도 강의 경치는 너무나 아름다웠습니다. 뱃삯은 1대당 왕복 5,000리엔이라는 얘기를 듣고 값이 너무 싸서 사공에게 미안한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 학교는 공정율 75 정도로 벽의 미장과 지붕도 완성되고 일부 페인트공사까지 되어있었습니다.잠시 휴식을 취하고 있던 것으로 보이는 인부들이 스님일행이 도착하자 스님 앞으로 모여들었습니다. 이곳 JTS 책임자인 박병수씨가 마을이장을 스님께 소개하자 그 분은 스님께 감사하다고 합장을 하였습니다. 공사현장을 돌아보고 나오면서 스님께서는 공사장 인부들과 함께 기념사진을 찍으셨습니다. 웽찬학교를 돌아보고 다시 나룻배를 타고 나오면서 이 마을야말로 학교가 절실히 필요하다고 생각되었습니다. 어린이들이 매일 배를 타고 학교에 다니기가 위험하기도 하고 배가 많지도 않은 데다 3명밖에 탈 수가 없으니 말이지요. 3개 학교 신축공사장을 살펴보고 돌아와 늦은 점심을 드신 스님께서는 감사 진행상황을 챙기시고내일 중으로 감사내용을 보고받을 수 있는지 묻기도 하셨습니다. 5시 반쯤에는 이곳 사무실에서 가까운 곳에 화산폭발로 형성된 호수에 산책을나가자고 하셨습니다. 호수까지는 이곳 사무실에서 자동차로 10분 정도 걸렸습니다. 호수의 직경은 약 1km 남짓 되어 보여 규모는 그리 크지 않지만 물이 맑고 주위를 두르고 있는 숲이 매우 아름다웠습니다. 호수에서는 자유롭게 수영을 할 수 있도록 목재로 전망대를 겸한 계단시설과남녀 탈의장이 이 네 군데나 설치되어 있는 것이 이채로웠습니다. 또 호수를 내려다 보며 40분 정도면 일주할 수 있는 산책로가 나있는데 이내 날이 어두워져서 14 정도만 갔다가 돌아왔습니다. 내일 스님께서는 베트남 사업예정지를 답사할 계획입니다
2013년 3월 8일 법륜스님의 하루(캄보디아 JTS 사업장 방문)
아침 6시에식사를하였습니다. 식사가 끝나갈 즈음에 간밤에 집으로 가셨던 김재성거사님이오셨습니다. 라타나끼리로 7시 출발할 차가 와 있다고 알려주셨습니다. 짐을 챙겨 나와보니 정철상 거사님이 운영하시는 회사 직원들이 승합차 기사와 함께 와서 스님께 인사를 드렸습니다. 또한 정 거사님은 스님 일행의 안전을 위하여 캄보디아인 한 분을 라타나끼리까지 동행하도록 배려해주셨습니다. 7시 25분에 숙소를출발한 버스가 시가지를 벗어나자 끝없는 평원이 시원하게 펼쳐지고 도로 연변에는 민가들이 띄엄띄엄 이어졌습니다. 한쪽에서는 벼가 누렇게 익어가고, 한쪽에서는 어린 벼가 자라고, 한쪽에는 벼를 베어내고 그루터기만 남아있는 빈 논이 한눈에 다 보였습니다. 우리나라 같으면 서너 계절에 걸쳐 볼 수 있는 정경인데 한 눈에 다 볼 수 있다는 것이 신기하기만 했습니다.3시간쯤 달렸을 때, 길 양 옆으로 쭉쭉 줄지어 심어진 나무 숲이 지평선을 이룰 정도로nbsp끝도 없이 펼쳐졌습니다. 스님께서는 고무나무 숲이라고 알려 주셨습니다. 나무마다 밑동에서 2m 정도 높이까지 상처가 나 있었는데 그 상처 골 사이로 흐르는 진액을 받은 것이 고무원료가 된다고 설명하여 주셨습니다. 우리나라에서 이 맘때 고로쇠나무에 구멍을 뚫고 호스를 박아 가지 끝으로 올라가는 수액을 받는 것과 흡사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10시40분쯤 휴게소에 자동차에 기름을 넣기 위해 주유소 겸 휴게소에 멈춰서자 느닷없이 차문이 밖에서 열려서 깜짝 놀랐습니다. 손에 손에 구운 옥수수며 예쁘게 썬 과일을 담은 비닐봉지를 든 크고 작은 소녀들이 몰려들어 문을 연 것입니다. 스님께서 드시겠다고 하면 한 번 사보려 했는데 배부르다고 하셔서 맛볼 기회를 놓쳤습니다. 아침공양 때도 그러셨는데 아무리 진기하고 맛있는 음식이라도 배부를 때는 드시지 않는 스님의 모습에서 식탐을 부렸던 저 자신을 돌아보기도 했습니다. 12시20분 메콩강이 시원하게 내려다보이는 끄라체의 한 식당에서 점심을 먹었습니다. 메콩강은 강가강만큼이나 크고 넓었습니다. 스님께서는 점심을 드시면서 메콩강에 대하여 설명하여 주셨습니다. 메콩강은 세계 10대 강 중에 하나일 만큼 큰 강이다, 중국 칭하이성 티베트고원에서 발원하여 윈난성 고지대를 거쳐 남쪽으로 흘러 라오스와 타이국경, 미얀마와 라오스 국경 일부를 이루다가 라오스, 캄보디아, 베트남을 거쳐 남중국해로 흘러 든다, 후일 메콩강의 물 때문에 각국의 이해가 엇갈려 분쟁과 환경에 끼칠 악영향이 예상된다, 중국에서 댐을 막으면 그 아래에는 물 부족이 일어나고 댐 수위가 100m 가량 높아지면 물의 중력으로 인하여 지진이 일어날 수 있고, 잠기기 전에 산이었던 사면에 물이 스며들어 지반이 약해지고 수면 위는 수증기가 끼어 기후변화가 일어난다. 식사 후 스님께서는 강변에 다가가 수면을 내려다보시며 ‘지금은 건기라 물이 적어 백사장이 많이 드러나 있지만 우기 때는 풀섶이 있는 곳까지 물이 차면 장관이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1시10분 다시 차에 올라 북쪽으로 달리면서 스님께서는 이미 확보되어 있는 JTS공간을 보다 체계적으로 활용할 수 있는 방안에 대하여 1시간 가량 회의를 주재하시면서 여러 의견을 들으셨습니다. 그리고는 의자를 뒤로 제쳐 휴식을 취하셨습니다. 도로가 포장이 되어 있다고는 하나 매우 거칠고 군데군데 패어 있어서 요동이 심했습니다. 그런데도 스님은 곤히 주무시는 것 같았습니다. 잠 잘 기회가 주어져도 자리가 바뀌었다는 둥, 옆에서 코를 골아 잠들 수가 없다는 둥, 차 안에서는 자리가 불편하여 도리어 아픈 데만 많아진다는 둥 핑계를 대면서 피곤하다고 했던 것을 떠올리며,nbsp다시 한 번 자신을 돌아보았습니다. 프놈펜을 출발한지 9시간 30분 만에 라타나끼리의 주도 반룽에 있는 캄보디아 JTS본부에 도착했습니다. 스님께서는 도착하자마자 사무실 내부를 찬찬히 둘러보시고 반팔차림으로 바닥청소를 시작하셨습니다. 여기까지 올 때 보니 이 나라는 온천지가 황토 흙으로 덮인데다 건기라서 황토 먼지가 많이 날렸는데 여기 사무실이 맨질맨질한 대리석 바닥이라 깨끗한 줄 알았는데 양말 바닥이 금세 벌겋게 되는 것을 보시고 청소부터 하신 것입니다. 여기 책임자가 어제 청소를 하고 오늘 미처 못했는데 이렇다는군요.저녁 식사는 최보살님께서 멸치다시물을 내어 국수를 말아주셨는데 반찬은 김치 한 가지였지만 스님께서는 아주 맛있게 드셨습니다. 이 지방 쌀국수보다 훨씬 맛있다고 하시면서요. 냉장고 김치통에 가지런히 들어있던 포기김치는 무채도 곱고 고춧가루와 간도 적당해서 우리는 전문가가 담근 김치인줄만 알았는데요, 이곳 실무책임자가 손수 담갔다는 말에 또 한 번 놀랐답니다. 스님께서는 이곳 사업현황 서류 검토하시랴, 서울에서 온 전화 받으시랴, 메일 서류 검토하여 다시 보내시랴, 여기서도 매우 바쁘셨습니다. 스님께서는 저녁 9시 30분부터 한 시간가량 이 곳 실무책임자와 서울에서 함께 온 JTS대표들과 회의를 하셨습니다. 이 곳의 그간 사업진행 상황에 대하여 궁금하신 점을 꼼꼼히 챙기신 다음 이번 방문 기간 동안 진행하실 일정을 논의하셨습니다. 스님께서는 회의가 끝나고도 12시 넘도록메일로 받은 서류를 살펴보시고 다시 서울과 인도에서 온 전화를 받으시고 업무를 협의하셨습니다. 캄보디아에서 이틀째 밤은 이렇게 깊어 갑니다. 내일 또 뵙겠습니다.
2013년 3월 7일 법륜스님의 하루(캄보디아로 출국)
스님께서는 오후 4시 정토회관을 출발하여 인천공항으로 향하셨습니다. 캄보디아 라타나끼리에서 진행되는 JTS사업이 공정률에 맞추어 재정지출이 적절히 되고 있는지 살펴보시고, 또 베트남과 라오스에서 새로운 구호사업 대상지를 답사하기 위하여 JTS 실무자들을 포함하여 다섯 분이 함께 출발했습니다. nbsp 오늘은 우선 저녁7시에 출발하는 베트남 호치민행 비행기를 탈 예정이었습니다. 인천공항에 도착하여짐을 부치려는 중에 KAL 직원의 안내로 미국국적을 가진 박지나 대표는 베트남 비자가 없어서 입국이 불가능하다는 사실을 알았습니다. 스님께서는 영어에 능통한 박 대표가 함께 가지 않으면의사소통을 할 수 없기 때문에 베트남에 가도 소용이 없다고 하셔서 집으로 되돌아가나 보다 했습니다. 그런데 여행사에서 신속하게 6시 30분에 출발하는 프놈펜행 티켓으로 바꾸어 주었답니다. 우리는 부랴부랴 짐을 부치고 프놈펜행 비행기에 탑승해서 현지시간으로 10시37분 프놈펜공항에 착륙하였습니다. 프놈펜의 기온은 31도라 하는데 습도가 높지 않아서인지 생각보다 덥지는 않았습니다. 캄보디아의 면적은 181,035㎢로 우리나라 남북한을 합친 면적보다는 작고 인구는 2010년 통계로 천사백만 오천 명쯤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공항에는 캄보디아에서 사업을 하시는 김재성거사님이 늦은 시간임에도 불구하고 마중을 나와주신 덕분에공항에서 멀지 않은 숙소에 12시쯤 도착할 수 있었습니다. 거사님께서는 원래 방을 3개 예약해 두었는데 스님께서 남녀 한 방씩 두 개로 줄이셨습니다. 매사에 절약하시는 스님의 모습에 다시 한번 고개가 숙여졌습니다. 체크인을 하는 동안 스님께서는 김재성거사님과 이번 일정 마지막에 있을 프놈펜법회 등에 관해서 담소를 나누시고, 가지고 계시던 저서 ’새로운 100년’에 사인을 하여 거사님께 선물하셨습니다. 내일은 아침 일찍 서둘러 자동차로 10시간 정도 거리에 있는 라타나끼리로 갈 예정입니다.
2013년 3월 4일 법륜스님의 하루(충남도청 명사 특강)
두북정토마을에서 새벽을 맞이했습니다. 날이 차가웠지만 어제보다는 조금 풀린 듯한 느낌이었습니다. 새벽 5시경 두북에서 충남 홍성으로 출발했습니다. 그런데 가는 길에 왜관IC 부근에서 큰 사고가 있어서 이른 아침부터 차량이 정체되어 고속도로가 주차장이 되어 있었습니다. 한참을 고속도로에 있다가마침 왜관IC부근이라 IC에서 국도로 나와 다시 김천IC에서 고속도로로 올렸습니다. 아침에 여유있게 출발했는데 고속도로에서 지체되는 바람에 아침 식사도 제대로 하지 못하고 바로 충남도청으로 향했습니다. 충남도청은 거의 허허벌판에 들어서 있었습니다. 새 건물이라 깔끔하고 좋았습니다. 도청 입구에 들어서니 도청 관계자분이 나와 스님을 깎듯이 맞이했습니다. 작년에 충남도지사님이 스님께 도청을 이전하면 직원들을 대상으로 강의를 해 달라는 요청을 받았던 터라, 원래는 오늘 인도불자대회 때문에 출국하게 되어 있었는데도 오전에 강의를 하고, 오후에 출국할 예정이었습니다. 그런데 마침 인도일정이 취소가 되어 조금은 더 여유있게 시간을가질 수 있었습니다. 오늘은 도청 월례 조례가 있는 날이었습니다. 대강당에 들어가니 충남도지사님이 도청직원들에게 이야기를 하고 있었습니다. 도지사님의 말씀이 끝나자, 단상에서 내려와 스님과 인사를 나누었습니다. 이어서 스님께서 도청 전체 직원들을 대상으로 강의를 하셨습니다. 오늘의 강의 주제는 ‘금강경을 통해 본 인생의 지혜’였습니다. 스님께서 신해행증을 통해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 행정관으로서는 어떻게 일을 해야 할 지에 대한 기조강연을 먼저 하시고 질문을 받았습니다. 군대나 경찰, 공무원 등 같은 직장에 있는 사람들은 위계가 강해서 그런지 쉽게 개인적인 질문은 잘 못하는 것 같습니다. 두 개의 질문이 있었는데 그 중 다수결의 원칙에 대한 질문에 스님 말씀을 나눠 봅니다. “스님. 다수결의 원리가 민주주의에서는 적용이 되는데, 그것만 적용을 하면 안 될 것 같습니다. 다수결의 원리와 소수자에 대한 보호가 어느 정도까지 해야 적절한지 궁금합니다.” “예. 민주주의는 상대적으로 다른 정치 체제와 비교해 보면 낫다고 할 수 있지만 민주주의가 최고의 형태라고 말할 수는 없습니다. 오늘날 미국식 민주주의와 중국식 사회주의는 어느 것이 더 효율이 있을지는nbsp역사가 평가를 해 주겠지요. 그러나 우리가 경험했을 때는 다수의 의사를 존중하는 다수결의 원칙의 민주주의가 소수의 의사에 의해서 결정되는 사회주의보다는 단 1점이 많더라도 더 좋다고 말할 수있을 것 같습니다. 그러나 여기서도 문제는 있죠. 부처님 당시의 승단은 매우 민주주적이었습니다. 승단의 결정 원칙으로 삼의제라는 것이 있었습니다. 처음 결정할 때 다수가 나왔다면 소수에게 ‘당신들의 소수 의견을 철회하겠느냐?’고 묻습니다. 이 때는 백명 중 한 명이 반대를 해도 소수가 되고, 반대자가 13 이하로 떨어져야 소수가 됩니다. 소수의견을 철회하겠느냐고 물었는데 철회하지 않겠다고 하면 다음은 소수에게만 발언의 기회를 줍니다. 자기가 왜 그것을 주장하는지를 충분하게 설명하게 해요. 그리고 다시 투표를 합니다. 이 때 소수의 의견이 13이 넘으면 앞의 결정과 상관없이 새로이 토론을 합니다. 그런데 다시 소수가 되면 철회하겠는지 또 묻습니다. 철회하지 않겠다고 하면 다시 소수가 자기 의견을 충분히 발표할 수 있도록 합니다. 이렇게 3번을 했는데도 소수가 될 때는 소수가 자발적 철회를 해야 합니다. 그러면 결론은 다수결이 아니라 만장일치가 됩니다. 보통 만장일치제라고 할 때는 한 명이라도 끝까지 반대를 하면 통과가 되지 않으므로 이것은 소수의 횡포가 됩니다. 다수의 횡포도 막아야 하지만 소수의 횡포도 막아야 합니다. 이것을 극복하는 방법으로 나온 것이 삼의제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렇게 해 가면 소수의견을 충분히 반영할 수 있습니다. 현실적으로 적용하기 어렵겠습니까?” “결정을 하려면 시간이 많이 걸릴 것 같습니다.” “서로 자기 주장 내세우며 싸워서 결정이 안 나는 것보다는 빠릅니다. 폭력적으로 밀어붙여서 결정내는 것보다는 이렇게 함으로서 충분히 논의해서 합의를 하는 것이 효과적입니다. 저희 정토회 대의원회에서는 이 제도를 도입해서 20년째 하고 있습니다. 정토회는 수행단체라서 이해관계를 가지고 있지 않기 때문에 쉬울 수 있습니다. 삼의제의 핵심은 소수의 의견을 충분히 반영하는데 있습니다. 소수에게 3번까지 발언의 기회를 줍니다. 이렇게 해서 결정해도 어떤 때는 철회한 소수의 의견이 맞을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현실에서는 소수의 의견이 맞다고 검증할 수가 없기 때문에 옳든 그르든 삼의제를 거친 다수의 의견을 수용해야 합니다. 그리고 결론이 나면 소수의견을 낸 사람이었다 하더라도 전체가 내린 결론이 자신의 의견이 되어야 합니다.” 다수결의 원칙이 최고의 가치라고 배워오고 그렇게 생활을 해 왔기 때문에 스님께서 말씀하시는 소수자의 의견을 최대로 수용하는 삼의제가 쉽게 이해되지는 않을 것 같았습니다. 두 번째 질문은 자녀 교육에 대한 질문이었습니다. “방을 따뜻하게 하기 위해서 겨울에는 장작 10개를 때지만, 봄에는 5개, 여름에는 안 때도 되는 것처럼, 아이들도 3살까지는 엄마가 희생을 하면서 아이를 보살피고, 어릴 때는 부모가 모범을 보여야 하고,사춘기에는 지켜봐 줘야 하고, 성인이 되면 자립을 할 수 있도록 해야 합니다. 그런데 보통의 경우겨울에 불을 때던 습관으로 여름에도 장작 10개를 때어서 따뜻한 것이 아니라 뜨거워서 못 사는 화를 일으키는 것처럼, 아이들이 성장해 가는데도 어린아이 돌보듯이 하게 되면 커가는 아이들에게는 결국 과잉보호가 되어 노력은 많이 하고 성과없이 망치는 결과를 가져옵니다. 아이들 교육에 대한부모의 생각을 바꾸어야만 창조적인 아이로 키울 수 있습니다.” 강의를 마치고, 스님께서는 충남도지사님과 차담을 나누었습니다. nbsp 원래 이전한 새 충남도청 청사를 둘러보기로 했는데 시간이 늦어져서 바로 점심 식사를 한 후, 저희는 서울로 향해 출발했습니다. 스님께서는 오후 3시부터 밤 늦게까지 평화재단에서 여러 업무가 있어서 오늘도 늦은 밤에 정토회관으로 돌아오셨습니다. 스님께서는 3월 8일부터 8일간 베트남, 캄보디아, 라오스 현지 답사가 계획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내일부터 출국전까지는 평화재단 내부업무를 보실 예정이라 스님의 하루는 당분간 쉴 예정입니다. 감사합니다.
2013년 3월 3일 법륜스님의 하루(경주남산답사, 평화재단회의)
오늘은 두북정토마을에서 아침을 맞았습니다. 새벽 일찍 일어나 천일결사 기도를 하고, 아침 식사를 한 후, 어젯밤 논의한대로 경주 남산으로 출발했습니다. 어젯밤 오늘 남산행에 대한 논의가 있었습니다. 잘 아는 용장골과 삼릉골을 제외하고 탑골, 약수골, 오산골을 답사하기로 했습니다. 탑골은 스님 중심으로, 약사골은 유수스님 중심으로,오산골은 종법행자님 중심으로 78명씩 한조가 되어 산에 오르기로 했습니다. 저희들은 스님과 함께 탑골에서 올라갔습니다. 맨 처음 옥룡암 위쪽에 위치한 부처바위와 마주쳤습니다. 부처바위에는 동서남북 사면에 불, 보살, 스님, 탑 등 34점의 여러 상이 새겨져 있습니다. 황룡사 9층 목탑이라 여겨지는 탑상도 새겨져 있습니다. 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 부처 바위를 지나 길을 찾아가며 산에 올랐습니다. 스님은 워낙 지리적인 감각이 뛰어나시기 때문에 길을 따라 가면서도 위치 파악을 하면서 가서, 스님도 처음 가보는 코스인데도 헤매지않고 무사히다함께 만나기로 한 장소까지 쉽게 도착할 수 있었습니다. 가는 길이 완만하고 주변 경치도 좋았습니다. 봄이 되면 지천에 진달래가 피어서 참 아름다울 것 같았습니다. “경주 남산에 이렇게 완만한 길이 있었나? 참 걷기 좋네.”하시며 스님께서 천천히 걸으면서 길을 안내해 주셨습니다. 산행하면서 카카오톡으로 서로 소통하면서 갔는데, 다른 팀들은 길 입구에서 헤매기도 하고, 왔던 길을 다시 되돌아가기도 해서 10시에 산 정상 부근 헬기장에서 만나기로 했는데, 저희는 30분 전에 도착하고 다른 팀들은 10시가 지나서야 목적지에 도착했습니다. 사람들을 기다리는동안 스님께서 따뜻한 곳으로 저희를 안내하셨습니다. 순환로 옆으로 가니 바람이 없고, 햇살이 따뜻한 곳이 있었습니다. 추운날인데다가 30분을 넘게 앉아 있었는데도 잠이 올 정도 따뜻했습니다. 스님은 바람 방향을 살피고 태양이 비치는 방향을 보면서 위치를 잡으신 것 같았습니다. 스님과 함께 다니면 생활의 지혜를 그 때 그 때 느낄 수가 있습니다. 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 한참 지나니 우리 팀들의 말소리가 들려왔습니다. 오늘 아침에도 봤던 얼굴들인데, 산 위에서 만나니 더 반가웠습니다. nbsp 헬기장에서 3팀이 만나 올라온 코스에 대해서 의견을 교환했습니다. 너무 가파른지, 많은 대중들이 오르기에 무리가 없는지, 다른 등산객들에게 피해를 줄 것 같은지 하나 하나 살펴 보았습니다. nbsp 산을 내려가면서는 탑골팀은 오산골로, 약수골팀은 탑골로, 오산골팀은 약수골로 내려가 보기로 했습니다. 저희는 스님과 함께 오산골로 내려갔습니다. 팔각정과 흔들바위를 지나 지바위를 만났습니다. 지바위 아래 쪽 부분에 마애석불 두 분이 장난스러운 얼굴로 저희를 맞이해 주셨습니다. 바로 아래엔 3층 석탑이 늠름히 자리하고 있었습니다. nbsp 처음 내려올 때는 좀 가파르더니, 조금 내려온 후에는 길이 완만하고 좋았습니다. 오산골 입구에 다다르니 일요일 아침이라 그런지 산에 오르는 등산객들이 많았습니다. 차를 타고 경주남산순례시 입재식할 장소 답사까지 하고, 점심으로 칼국수를 먹었습니다. 목욕을 하고 두북정토마을에 들어와 밤 10시까지 회의를 했습니다. 정리가 덜 되어 있던 것들이 명확히 정리가 되어서 좋았습니다. 많은 이야기들이 오갔습니다. 스님과 도반들과 함께 하는 자리가 참 소중하게 느껴졌습니다. 이렇게 오늘 하루도 저물었습니다. 내일 스님은 ‘충청남도 도청 이전 명사특강’ 첫 회에 초청되어 오전 9시 30분 충남도청에서 강연이 있을 예정입니다. 새벽에 두북에서 충남도청이 있는 홍성으로 출발할 계획입니다. 내일 뵙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