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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년 2월 3일 법륜스님의 하루(불교대, 경전반 졸업식 및 수계식)
오늘은 대전 컨벤션홀에서 정토불교대학과 경전반 졸업식 및 수계식이 있는 날이었습니다. 이른 아침 스님을 모시고 대전으로 출발했습니다. 스님께서는 어젯밤 필리핀에서 돌아오셨습니다.비행기가 한 시간 연착되어 평화재단에는 밤 10시가 되어 도착할 수 있었습니다. 스님 오시기를 기다리는 손님들이 있어, 약속을 다 마치고 새벽 2시경에나 잠자리에 드셨는데, 오늘도 하루 종일 졸업식과 수계식 일정이 잡혀 있었습니다. 스님께서는 인도 일정 마치고 바로 필리핀으로 가셨다가 어제 입국하셔서, 오늘 불교대학 졸업식을 하고는 내일 바로 미국으로 출국하실 예정입니다. 대전 컨벤션홀에는 1,200여명이 졸업 가운을 입고 행사가 진행되기를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말끔하게 차려 입은 서울정토회 대표 김환기 님이 마이크를 잡고 행사를 시작했습니다. 오전에는 스님의 졸업 법문이 가장 감동적이었고, 법문을 마치고 각 법당에서 준비한 장기자랑도재미있었습니다.nbspnbsp 스님 말씀은 언제 들어도 마음에 와닿습니다. 오늘 졸업한 졸업생들에게는 더 크게, 더 많이 와닿았겠지요?nbsp “많은 종교들은 믿음을 중요시합니다. 불교에도 믿음이 아주 중요합니다. 그러나 불교에서는 믿음보다 더 중요시 생각하는 것이 있습니다. 그것이 깨달음입니다. 불교에서는 어떤 이치를 가르칩니다. 자연의 이치, 생명의 이치, 마음 작용의 이치. 이치를 가르치기 때문에 법이라고 말합니다. 부처님의 가르침을 담마, 법, 진리, 이렇게 말합니다. 이치라는 것은 누구나 다 알 수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부처님께서 부처님의 가르침에 대해 ‘눈 있는 자 와서 보라’라고 하는 것입니다. 누구든지 눈이 있으면 와서 볼 수 있는 것처럼, 누구든지 정신만 차리면 그 이치를 이해하게 됩니다.” “우루벨라 가섭이 부처님께 절을 하면서 ‘이 분은 저의 스승이고, 저는 이 분의 제자입니다. 제가 이 분을 만나기 전에는 윤회의 씨앗을 심었습니다. 제가 이 분을 만나고 나서는 윤회의 씨앗을 버렸습니다.’ 하고 말했습니다. 즉, 천상에 태어나는 복을 구하다가 육도윤회를 벗어나는 ‘해탈, 열반’을 증득했다는 것입니다. 세상 사람들과 비슷한 것 같고, 세상 종교와 철학과 윤리도덕과 비슷한 것 같지만 사실은 이렇게 확연히 다른 면이 있습니다. 이것은 나를 자유롭게 하고 행복하게 하고, 동시에 타인을 자유롭게 하고 행복하게 하고, 우리 모두를 행복하고 자유롭게 합니다. 타인의 불행 위에 나의 행복을 쌓는 그런 제로섬 게임이 아닙니다.” 스님께서 불교대학 과정에서 불교란 무엇인가? 부처님의 생애, 근본 불교, 불교 변천사의 의미와 경전반에서 공부하고 있는 경전들을 왜 공부하고 있는지에 대한 전반적인 설명을 해 주셨습니다. 그리고 오늘 이 소중한 자리에 함께 하게 된 분들에게 축하의 말씀을 전해 주셨습니다. 스님의 졸업 법문 후에는 수원, 대전, 거제, 대구정토회 불교대학 졸업생들이 나와 장기자랑을 펼쳤습니다. 우리가 준비하고, 우리가 공연하고, 우리가 관객이 되어 박수를 칩니다. 그래서일까요? 더 재미있고, 더 신나고, 더 즐겁습니다. 주, 야간이 같이 모여서 연습하기가 쉽지 않았을텐데, 다들 준비를 신나게 한 것 같았습니다. 몸 놀림이 제대로 되지 않는데도, 무대에 서서 옆 도반을 흘깃흘깃 쳐다보며 열심히 몸을 놀리는 연세든 거사님들의 몸동작이 더 재미있었던 시간이기도 했습니다. nbsp nbsp 개근상과 정근상 시상식도 있었습니다. 정토회 불교대학을 개근하기란 쉽지가 않습니다. 다른 절에는 우리처럼 졸업하기도, 수계받기도 까다롭지가 않습니다. 적당히 해도, 돈만 내도 졸업을 하고 수계를 받는데, 정토회는 인정사정이 없습니다. 정토회에서 가는 인도성지순례에 참석하느라 수업을 빠져도 출석에서 제외됩니다. 그만큼 수업 한 시간, 한 시간을 소중하게 생각하는 것이고, 또한 개근하기도만만치 않음을 이야기하는 것입니다. 특히, 올해는 전국 300강부터 시작해서 회에 일이 많았습니다.그런 와중에도 개근과 정근을 하신 분들은 그만큼 열정이 많은 분들이지 않을까 싶었습니다. “지난 1년은 어떻게 보면 여러분 인생에 있어서 너무나 소중한 1년이었고, 어떻게 보면 쉽지 않은 1년이었습니다. 여러분들이 발심을 하고 입학할 때는 1천 4백여명이 입학했는데, 그 발심이 오래가지 못하고 중도에 허지부지되어 탈락을 하고, 졸업 비율이 60가 채 되지 않습니다. 반타작을 한 것 같습니다.초등학교, 중학교, 고등학교, 대학교 중에 입학생의 절반이 탈락하고, 절반이 졸업하는 학교가 어디 있습니까? 그래서 이 졸업이 소중한 거예요. 많은 사람들이 인터넷에서 보고 보충하면 안 되냐고 묻습니다. 지식을 위한 것이라면 그렇게 해도 됩니다. 그러나 이것은 경험하고 체험하고 함께 나누어야 하기 때문에 그렇게 해서는 졸업할 수 없습니다. 이런데서 여러분들의 졸업은 너무나 소중합니다.” 스님의 이 말씀에 오늘 졸업하시는 분들은 더 큰 힘을 얻었을 것 같습니다. 오전 시간을 마치고, 영남권 졸업생들이 스님과 법사님들과 함께 사진을 찍었습니다. 행사 진행측에서 준비를 참 많이 했구나 싶었습니다. 척척 손발이 맞고, 대중들이 헷갈리지 않게 사진찍는 순서들이 잘 준비되어 있었습니다. 점심을 먹고, 오후에는 수계식이 진행되었습니다. 수계식은 언제해도 설레이는 것 같습니다. 새로운 이름을 받는다는 것, 새로이 불자로서 태어난다는 것 자체가 감사하고 고마운 일인 것 같습니다. 제가 수계받는 것이 아닌데도, 저도 같이 마음이 설레었습니다. “불교대학 졸업하시고, 누구의 꼬임이나 권유나 다른 사사로운 목적으로서가 아니라 스스로 ‘나도 이 거룩한 길에 참여해서 부처의 길로 나아가겠다’ 이렇게 원을 세우고 출발하는 것이 수계입니다. 수계라고 하는 것은 내가 ‘내 인생의 목표가 부처되는 것이다.’라는 것을 맹세하는 의식입니다. ‘오늘부터 인생의 최고 목표가 대통령되는 것도 아니고, 재벌 되는 것도 아니고, 유명한 사람이 되는 것도 아니고, 부처되는 것입니다. 그 길에 도움이 안 되는 것은 안할 것이고, 도움이 되는 것은 무엇이든지 하겠습니다.’ 이렇게 맹세를 하는 것이 수계식입니다.”먼저 법사님들이 스님으로부터 연비를 받고, 이어서 법사님들께서 오늘 수계받는 모든 대중들에게연비를 하셨습니다. nbsp 오늘 불교대학 졸업생 821명이 수계를 받았습니다. 스님께서 수계의 의미와 법명의 의미에대해서도자세하게 말씀해 주셨습니다. 그리고 한 명 한 명에게 법명을 설명해 줄 수가 없기 때문에 전체적으로 법명에 대해서 설명해 주셨습니다. “법명 중에 ‘일, 월, 광’이 들어가는 사람은 수행을 더 많이 하고, 전법을 많이 해야 합니다. 법명 중에 자, 비, 공, 덕자가 들어가면 보시를 하고, 봉사를 하고, 중생을 많이 보살펴야 합니다. 무량덕, 이런 법명은 한없이 베풀어야 합니다. 누가 달라고 하면 차비밖에 없으면 차비를 주고 자기는 걸어가야 합니다. 베풀고 베풀어도 끝이 없어야 합니다. 법명에 향자가 들어 있다 하면 이런 법명은 계율을 철저히 지켜야 합니다. 보통 사람은 술 한 잔을 먹어도 이런 사람은 먹으면 안됩니다. 법명에 금강이 들어있는 사람은 금강은 변하지 않는 것이니까남편이나 아내를 바꾸면 안 됩니다. 종교도 바꾸면 안되고, 종파도, 절도 바꾸면 안 됩니다. 청련화, 홍련화는 연꽃을 말합니다. 벽화같은데 보면 연꽃이 부처님이나 보살님을받들고 있는 것 보셨죠? 이런 법명을 받은 사람은 부처님을, 스님을 잘 시봉을 해야 합니다. 혜등명은 지혜가 등불처럼 빛나라는 이야기니까, 수행정진을 많이 해서 지혜가 밝아져야 하고, 그 밝은 지혜로 전법을 많이 해야 합니다, ‘진실행이다’ 하면 ‘진실여래불’처럼 행하라, 이런 불명을 받은 사람은 거짓말 하면 안 됩니다. ‘청정안’이라 하면 이런 사람은 ‘깨끗한 눈, 맑은 눈’이란 말입니다. 맑은 눈은 보는데 걸림이 없어야 합니다. 청정안은 무애안과 같은 뜻으로 보는데 걸림이 없는 사람을 말합니다.” 스님께서는 오늘 법명받은 모든 분들이 법명처럼 살아갈 수 있기를 기원하셨습니다. 그리고 오늘의 이 공덕이 북한동포와 조상영가에게 회향되기를, 특히 북한동포들에게 회향되어 배고픔과 추위로 굶어죽거나 얼어죽지 않기를 발원했습니다. 행사를 마치고 나서는 중부권과 수도권 사진을 찍었습니다. 영남권과 중부권을 나누고, 바로바로 사진을 찍을 수 있도록 사전 브리핑한 것까지 잘 진행이 되었습니다. 스님께서는 오늘 행사를 마치자마자 바로 서울로 향하셨습니다. 서울에 오니 폭설이 내리고 있어 도로변에는 눈이 쌓이고 있었습니다. 스님께서는nbsp무리가 되셨는지, 몸이 좀 불편하다 하시며 서울까지 오는 동안 내내 휴식을 취하셨습니다. 서울에서 스님을 기다리는 손님이 있어, 오늘도 스님의 밤은 짧을 것 같습니다. 내일 스님께서는 이른 새벽에 법사님들과 회의를 하고, 10시 15분 비행기로 미국 워싱턴으로 이동하실 계획입니다. 미국에서는 해외정토행자대회가 진행될 예정입니다. 미국에서의 스님의 하루도 계속 이어질 계획입니다. 감사합니다.nbspnbsp
2013년 1월 31일 법륜스님의 하루(필리핀 인라보 초등학교 준공식 )
오늘은 부키드논 주 다물록 시 바랑가이땅꿀란, 인라보 마을에 세워진인라보 초등학교 준공식이 있었습니다. 새벽 4시에 숙소를 출발하여 시장님댁에 도착하였습니다. 밤새 내린 비 때문에 오늘 인라보에 어떻게 갈지 걱정이 되었습니다. 도로가 뚫려 차가 들어갈 수 있는 곳이지만 1주일 내 비가 와서 10km를 걸어야 될 수도 있다는 얘기를 다물록 시 관계자가 얘기하기도 해서 걱정이 되었습니다. 가능한 한 차가 들어갈 수 있는 곳까지 가기 위해 힘이 좋은 꼬몽꼬몽 트럭을 빌렸습니다.중간 중간 길이 진창이기도 하였고, 산사태가 나서 어떤 곳은 곡예를 하며 차가 간신히 지나갈 수 있었습니다. 걷다가 차를 다시 타고 다시 걸어서, 차로 가면 1시간이면 도착하는 곳에 3시간만에 도착하였습니다. 준공식이 시작되었고 스님은 아이들에게 말씀하셨습니다. 이 학교 누가 지었어요? 엄마아빠한테 고맙다고 박수 쳐 주세요. 엄마아빠한테 학교 지어줘서 고맙다고 인사하세요. 모든 분들께 감사합니다.하고 박수 쳐 주세요. 이 학교를 지어 준 모든 분들께 은혜를 갚아야 해요. 여러분들이 할 수 있는 일은 공부를 열심히 하는 거에요. 첫째 학교 빠지면 안 돼요. 날씨가 더워도 빠지면 안 돼요. 비가 많이 와도 빠지면 안 돼요. 집에 농사일이 바빠 엄마 아빠가 학교 가지마라 해도 학교 와야 돼요. 언니나 오빠, 삼촌이 시집 장가 간다고 집에 잔치가 있다고 해도 학교 와야 돼요. 어떤 핑계를 대도 빠지면 안 돼요. 약속해야 해요. 아이들은 매 질문마다 예 하고 큰소리로 대답했습니다. 그리고 학부모에게도 말씀하셨습니다. 우리 부모는 가난하게 살지만 아이들은 가난하게 살지 않게 해야되겠죠. 그럴려면 아이들이 공부를 열심히 해야 해요. 집안 일이 바쁘다고 학교 못 가게 하면 안 돼요. 아이들을 학교에 빠지지 않고 보내는 것 스님하고 약속하죠? 어린이 여러분, 저도 시골에서 자랐는데 학교가 2km 떨어져 있었어요. 초등학교 6년 동안한 번도 결석하지 않았어요. 여러분도 결석하지 않고 학교 다녀야 해요. 알겠죠? 여러분이 열심히 공부하면 학용품은 JTS에서 지원해 줄 거에요. 감사해요 스님의 말씀이 끝나고 학생들의 선서식이 있었습니다. ‘나는 결석하지 않겠습니다. 나는 공부를 열심히 하여 훌륭한 사람이 되겠습니다.’ 이어서 학부모들도 오른손을 들고 맹세했습니다. ‘아이를 학교에 꼭 보내겠습니다. 선생님들과 함께 학교를 잘 가꾸겠습니다.’ nbsp 오늘의 약속대로 아이들이 이 학교에서 공부를 열심히 해서 인라보 마을에, 다물록 시에,민다나오에서 좋은 일을 하는 훌륭한 사람이 되기를 기도합니다. nbsp 준공식이 끝나고 다물록 시에 돌아와 스님은 시청에 방문하셔서 다물록 시 관계자들을 만나 격려하였습니다. 그리고 차로 5시간을 달려 JTS 센터에 도착하셨습니다. nbsp 내일은 JTS 센터를 둘러보고 나무를 심을 예정입니다.
2013년 1월 30일 법륜스님의 하루(필리핀 준공식)
2013년 1월 30일 필리핀 민다나오에서 준공식 행사가 있었습니다. 타퓨난 초등학교 준공식과 다물록시 보건소 준공식입니다. 인도에서 막 도착하신 법륜스님을 모시고 준공식을 가졌습니다. 박지나 JTS 대표, 이원주 필리핀JTS 대표, KOICA 필리핀 부소장 김미연님을 비롯하여 한국과 마닐라에서 15명이 참석하여 자리를 빛내 주셨습니다. 타퓨난은 몰리타 강변에 위치한 마긴다나오 무슬림 마을로 지난 2012년 8월에 학교 건축이 시작되었습니다. 준공식에서 학생들이 결석하지 않고 열심히 공부하겠다는 선서를 하였고학부모는 아이들을 학교에 꼭 보내고 학교를 잘 가꾸겠다는 선서를 하였습니다. 엄숙하게 맹세하는 학생들과 학부모들의 선서를 듣고 법륜스님께서도 자리에서 일어나 학생들이 열심히 공부하면 JTS에서는 학용품을 지원하겠다고 선서하셨습니다.nbsp학교 준공식을 기념하여 아이들이 열심히 공부하기를 바라며 기념식수를 심었습니다.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 타퓨난에서 준공식 행사를 마치고 부키드논 주, 다물록 시, 포블라시옹에 위치한 다물록시 보건소에서 준공식이 있었습니다. Region 10 보건복지부 디렉터와 부키드논주 행정자치부 디렉터가 참석하여 다물록시에 새로 들어선 보건소 준공을 축하해 주었습니다. 다물록시 보건소는 2012년 6월 시작하여 12월 완공되었습니다. 보건소 준공식을 마치고 마카파리고등학교로 이동하신법륜스님께서는 고등학교 학생들에게 연설하셨습니다. 공부를 잘 하는 방법을 말씀해 주셨고, 학생들은 공부를 열심히 해서 좋은 건물을 지어준 사람들 다물록 시장님, JTS 필리핀, KOICA를 비롯하여 기술자 등 건물 공사에 참여한 모든 사람들에게 은혜를 갚아야 한다고 하셨습니다..학생들은 스님의 말씀을 집중해서 들었습니다. 학생들이 열심히 공부할 수 있도록 JTS에서는 필요한 물품 지원을, KOICA에서는 컴퓨터실과 실험실, 도서실 지원을, 교육부에서는 선생님 지원을 약속하였습니다. nbsp 학교가 성립하려면 몇 가지가 있어야 해요? 학교 할 때 제일 중요한 게 뭐에요?nbsp학생이 잇어야 해요. 여러분들이 있기 때문에 학교가 될 수 있어요. 두번째 선생님이 있어야 해요. 세번째 교실이 필요해요. 그 외에도 교과서, 노트, 공부할 재료가 필요합니다. 그 다음에 부모님입니다. 재워주고, 먹여주고, 학교에 보내 줍니다. 제일 첫번째 중요한 것은 여러분 자신입니다. 두번째는 선생님입니다. 그 선생님을 보내준 분이 저 교육감입니다. ‘좋은 선생님 보내주세요’ 외쳐 보내쇼. , 선생님 말씀 잘 듣고 공부하겠습니다. 하고 약속하세요. 결석하면 안 돼요. 덥다고 안 오고, 비온다고 안 오고, 추수철에 집안 일 바쁘다고 안 오고 그런 식으로 이 핑계 저 핑계 대면 안 돼요. 핑계대지 말고 무조건 와야 합니다. 공부 잘 하는 방법에 대해 말하겠습니다. 반드시 오늘 배울 내용에 대해 미리 예습을 해야 합니다. 그래서 무엇을 알고 무엇을 모르는지 체크해서 와야 선생님 말을 잘 받아들여요. 문제의식이 있어야 자기 것이 됩니다. 모르겠으면 반드시 질문을 해서 알아야 합니다. 아무 준비 없이 그냥 와서 멍청히 들으면 들어도 기억에 안 남습니다. 선생님의 눈을 쳐다보며 집중해서 들어야 해요. 선생님이 마음에 안 든다고 영어 시간에 수학 공부하면 학습효과가 안 납니다. 수업시간에 선생님 말에 귀를 기울이고 충실히 들어야 해요. 수업 끝나고 선생님이 나가자마자 책 덮고 나가면 안돼요. 잠시 35분 오늘 배운 걸 복습하고나서 책 덮고 나가야 해요. 예습해서 들으면 준비없이 들은 것 보다 기억이 5배는 더 잘 됩니다. 공부한 것을 짧은 시간이지만 복습하면 다른 사람보다 3배 이상 기억력이 좋아집니다.’ 이렇게 공부하는 시간을 적게 투자하고 공부를 할 수 있습니다. 학교 성립의 세 번째 요소, 교실에 대해 말씀드리겠습니다. 새교실 누가 지었을까요? 건물 지어준 사람에 대해서 고마운 마음이 있어야 해요. 제일 큰 공로자는 시장님입니다. 왜냐하면 JTS는 초등학교 지원을 원칙으로 하고 있는데시장님이 여러 번 얘기해서 고등학교를 짓게 되었습니다. 시장님의 마음을 알아서 고등학교를 짓자고 크게 마음을 낸 사람이 필리핀 JTS 이원주 대표입니다. 세 번째 고마워해야 할 사람이 KOICA 입니다. 큰돈이 들어가는 데 재정 부담을 한 것이KOICA 입니다. 이렇게 건물이 이쁘게 지어지는 데 많은 사람의 노력이 있었습니다. 그 뿐만 아니라 기술자 등 많은 사람의 공덕이 들어갔습니다. 앞으로 교실 5개 건물 한 동, 교무실, 과학실, 도서관 등을 포함한 교실 5개 건물을 2개 더 지어서 다물록에서 제일 좋은 고등학교를 지을 것입니다. 이 모든 것들이 다 여러분들을 위해서 지어지는 것입니다. 학생인 여러분의 의무는 첫째 감사할 줄 알아야 합니다. 둘째 고마움에 대해서 은혜를 보답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무엇으로 은혜를 갚을 수 가 있는가? 이 모든 것이 공부를 하기 위해서 만들어진 것이기 때문에 여러분들이 공부를 열심히 하는 것입니다. 두번째로는 훌륭한 사람들이 되어서 이후에 다른 사람이 훌륭한 사람이 되게 하는 것입니다. 여러분들 가운데에서 저기 교육감님과 같은 선생님이 나올 것입니다. 여기 시장님과 같은시장, 주지사가 나올 것입니다. 기술자가 나올 것입니다. 이 지역을 발전시키는 사람이 나올 것이라 믿습니다. 제 얘기 이해하겠어요? nbsp내일은 인라보 초등학교 준공식에참석하고 5시간을 달려 JTS 센터로 이동할 예정입니다.
2013년 1월 28일 법륜스님의 하루(방콕 법회)
어젯밤 11시경에 방콕정토법당에 도착했습니다. 공항에 마중나온 방콕정토법당 회원님들 덕분에 편안하게 잘 올 수 있었습니다. 법당에 들어서니대표님과 총무님이 반가이 맞이해 주셨습니다. 방콕 쌀국수가 맛있다며 그 늦은 시간에 준비를 해 놓고 계셔서 배부르게 먹었습니다. 스님 숙소는 법당에, 저희들은 법당 바로 옆에 방을 구해 주셔서 편안하게 잘 잤습니다. 아침 일찍 일어나 천일기도를 하고, 아침밥도 일찍 먹었습니다. 오전에는 스님을 모시고 불교대학 졸업식과 수계식이 있었습니다. nbsp 불대 졸업생은 4명이었고, 수계자는 5명이었습니다. 한국에서는 불대 졸업생과 수계자가 많아서 컨벤션홀을 빌려서 하는데, 이 곳은 45명 졸업식과 수계식에 스님을 모시고 해서, 스님께서 “초미니 학급이고, 초미니 졸업식입니다. 그래도 4명 모운다고 엄청 고생했다고 합니다. 지난 1년동안 공부하신다고 수고들 하셨습니다.”하셔서 다같이 웃었습니다. 기독교인이 많은 교민 사회에서 불교대학생 만들기도 어렵고, 졸업시키기도 어렵다며 스님을 모시고 오늘 행사를 하는 방콕총무님은 싱글벙글합니다. 스님께서 조그마한 방콕법당에서 청법삼배를 받으시고 졸업 법문을 먼저 해 주셨습니다. 불교대학을 졸업했으니 이제는 실천을 해야 한다며 대승보살의 가야할 길, 육바라밀에 대해 정리말씀을 해 주셨습니다. “대승보살이 가야 할 길이 육바라밀입니다. ‘보시’함으로 해서, 누군가에게 베품으로 해서 구걸하는 마음이 없어집니다. 내가 ‘계율’을 바르게 지킴으로 해서, 나쁜 인연을 짓지 않고 좋은 인연을 짓는 태도를 가지게 됩니다. 우리가 지은 인연과보는 없어지는 법이 없기 때문에 마음이 흔들릴 필요가 없습니다. 오늘 나타나든, 내일 나타나든, 10년 후에 나타나든 공덕은 없어지지 않기 때문에 쉽게 흔들리지 않아 인욕의 힘이 나타나게 됩니다. 수행자는 꾸준히 정진해야 합니다. 부처님께서 낙숫물이 바위를 뚫듯이 부지런히 정진해라 하셨습니다. 4가지 기본에다가, 선정을 닦아야 합니다. 항상 자기 마음이 고요히 깨어 있어야 합니다. 그 다음 지혜를 증득해야 합니다. 이 육바라밀을 우리가 사는 세상 속에서 실천해야 합니다. 그래서 우리가 환경, 복지, 통일 등의 사회 여러 활동을 하는 것입니다.” 졸업법문 후, 수계식이 이어졌습니다. 총무님까지 총 5명이 수계를 받았습니다. 수계식은 언제 참가해도 감동적입니다. 오늘 수계를 받은 분들도 수계를 받으면서 몇 분이 눈물을 훔쳤습니다. 새로운 법명을 받고 새로 태어났습니다. nbsp “부처님 당시 야사의 부모가 삼보에 귀의하자, 부처님께서 부처님께 귀의한 재가자는 5계를 지켜야 한다하시며 5가지 진리를 말씀하셨습니다. 이렇게 해서 부처님이 깨달음을 얻으신 초기부터 재가 신도가 출현했습니다. 지금 이 자리에 제가 부처님을 대신해서, 여러분들이 구리가 장자 부부를 대신해서 앉아 있습니다.” 구리가장자가 부처님으로부터 계를 받았던 것처럼, 오늘 스님께 부처님 제자됨을 감사해 하며 5명의 불제자가 계를 받았습니다. “‘효명여래불’의 이름에다가 마음 심을 붙여서 ‘효명심’입니다. 원래 부처님은 ‘효명여래불’입니다. ‘효명’이라는 것은 ‘새벽 빛’이라는 뜻으로, 새벽에 먼동이 환하게 트는 것을 말합니다. 이 부처님은 항상 어두운 곳에 가서 밝음을 가져오는 부처님입니다. 새벽빛과 같은 사람입니다. 불자님은 이런 불명을 받았으니까, 방콕정토회가 잘 되도록 해 놓고, 좀 잘 되면 캄보디아로 이사 가서 전법하고, 자카르타에 가서 전법하고, 방콕 안에서도 다른 곳에 전법해야 됩니다. 항상 대낮이 되면 떠나고, 항상 어두운 곳에 가서 날이 밝도록 하는 역할을 하는 사람입니다. 어려운 일을 피하지 말고, ‘어려운 데가 내가 있어야 할 곳이다.’ 하세요. 일이 잘 되면 다른 사람에게 하라고 넘기고, 나는 더 어려운 일을 하는 것, 이것이 효명여래불의 원입니다.” nbsp 졸업식과 수계식을 마치고, 점심식사를 했습니다. 스님과 함께 해외 교포들이 사는 곳에 가면 정말 잘 먹게 됩니다. 스님 오신다고 회원들이 집에서 음식을 정성드려서 하나씩 만들어서 싸오기 때문에 그 어느 유명한 뷔페보다 더 맛있습니다. 식사 후에는 무변심 법사님과 나누기를 했습니다. 참 솔직한 나누기였습니다. 서운했던 것, 감사했던 것, 배움이 있었던 것, 깨침이 있었던 것, 새로운 다짐을 이야기하는 좋은 시간이 되었습니다. 그 어느 순간에도 ‘현재 지금 내가 행복한가?’를 기준으로 삼고, 언제나 밖이 아닌 내 안을 먼저 살펴라는 무변심 법사님의 이야기도 참 좋았습니다. nbsp 방콕 회원들은 저녁에 있을 공개강연 준비를 위해 4시에 식사를 하고, 4시 30분 강연장으로 출발했습니다. 시내 중앙에 있는 쟈스민호텔 11층에서 강연이 있었습니다. 방콕에는 교민이 2만여명이 살고 있다고 합니다. 오늘 강연장에는 100여명이 모여서 스님 즉문즉설 법회를 들었습니다. 교민 사회라서 솔직하게 이야기하기가 쉽지 않을 것 같았는데, 모두들 참 솔직하게 질문을 했습니다. nbsp 남편과 의견이 맞지 않아 매일 다투며 살기 때문에 삶의 희망이 없다는 젊은 여자, 학교 다니기가 싫다는 14살 학생, 좋은 남편, 좋은 아빠가 되고 싶은데 불안하고 두렵다는 여행객 젊은 남자, 남북 관계를 어떻게 바라봐야 하는지 묻는 중년 아저씨, 좋은 배우자를 선택하는 조건에 대해서 묻는 분, 이웃집 아이가 시도때도 없이 울어서 힘들다며 마음을 어떻게 다스려야 하는지 묻는 아저씨 등 질문이 참 많았습니다. 스님께서 가슴에 와닿게 하나 하나 말씀을 해 주셨습니다. 학교 다니기 싫다는 14살 아이는 질문하고는 표나게 얼굴이 환해졌습니다. 저는 많은 질문 중 옆집 태국부부 아이가 시도때도 없이 울 때 어떻게 마음을 다스려야 하는지 물었던 것에 대한 스님의 답변이 기억에 남습니다. 스님께서는 간단하게 말씀해 주셨는데 가장 현실적인 답변이면서,또한 마음을 이렇게 쓰는 것이구나 하는 생각에 잔잔한 감동이 일었습니다. “내 의지와 관계없이 옆집에서 아이가 우는 문제가 생겼다하면 제일 좋은 것은 이사를 가는 것입니다. 미국 같은 경우는 재판할 수 있지만 여기서는 항의하면 싸움이 될 것이고, 법원에 고소하면 승소하기가 쉽지 않을 것입니다. 이사가 제일 좋습니다. 이사가기가 어렵고 여기서 살아야 한다면 아이 울음 소리를 개짓는 소리처럼 듣고 사는 수밖에 없어요. 제일 좋은 것은 아이에 대해 안타까워하는 마음을 내는 것입니다. 아이가 시도 때도 없이 운다는 것은 뭔가 아픔이 있기 때문이겠죠? 아이가 뭣 때문에 저렇게 울까? ‘부처님. 저 아이 병이 낫게 해 주세요’ 하고 기도하고 주무시면 됩니다.” nbsp 3시간동안 강연이 이어졌습니다. 힘들었던 사람들이 스님 말씀을 듣고 인생의 희망을 찾는 모습들이 감동적이었습니다. 그래서 스님 가시는 곳마다 스님께서 더 오래 머물기를, 더 자주 와 주시기를 원하는 것 같습니다.방콕은 인도갈 때나 미주지역으로 갈 때, 싼 비행기를 타게 되면 경유하게 되는 지역이라 다행히 다른 곳보다는 더 자주 스님을 뵙게 되는 것 같다며 방콕 회원들도 좋아들 하였습니다. 참가한 사람들 단체 사진을 찍고, 스님 책 사인을 했습니다. 그리고, 오늘 봉사했던 회원들도 다같이 모여서 스님과 한 컷 기념 사진을 남겼습니다. nbsp 강연 마무리를 하고 헤어지기가 아쉬워서 가까이 있는 이태리 음식점으로 가서 피자와 스파게티를 먹었습니다. 늦은 밤에 무슨 음식을 먹냐 하며 들어갔는데, 하하 호호 웃으며 즐겁게, 맛있게 먹었습니다. 방콕 정토행자들을 만나면서, 방콕에도 우리 식구들이 참 열심히들 전법을 하고 있구나 싶어서 뿌듯했습니다. 그리고, 스님 공덕으로 가는 곳마다 이렇게 많은 보살핌을 받는구나 싶어서 고맙기도 하고 죄송하기도 했습니다. 숙소로 들어와 짐을 챙기고 떠날 채비를 했습니다. 한국으로 가는 저희는 내일 방콕에서 오전 7시 15분발 비행기라 새벽 4시 30분에 공항으로 출발하기로 했습니다. 스님과 필리핀으로 가는 일행은 오전 9시 10분발 비행기입니다. 이번 스님의 필리핀 방문 일정은 민다나오섬에 가서 고등학교 준공식에 참가하시고, 새로 사업할사업장 답사를 하시고, 마닐라에서 법회를 한 후 토요일 돌아오실 예정입니다. 저희는 한국으로 귀국하기 때문에 스님께서nbsp한국으로 돌아오시면 다시 스님 소식 올리겠습니다. 감사합니다.
2013년 1월 27일 법륜스님의 하루(인도JTS 이사회 및 총회)
오늘은 인도에서 방콕으로 출발하는 날입니다. 오전에 인도JTS 이사회와 인도정토회 총회를 하고,바로 출발하는 일정이라, 현지 스텝들은 행사 준비로 분주하고, 저희들은 짐정리와 출발 준비하느라 바빴습니다. 오전 10시 30분, 이사회와 총회는 수자타아카데미 JTS 홍보센터에서 진행되었습니다. 깨끗하게 정리가 잘 되어 있었습니다. nbsp 이사들과 총회 회원은 현지 인도인들과 한국인 활동가들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인도JTS 사무국장을 맡고 있는 김정준 법우님이 작년 인도JTS 사업과 올해 계획에 대해 발표를 했습니다. nbsp 이어서, 발표한 내용에 대한 토론이 이어졌습니다. 주요 토론내용은 역시 수자타아카데미 운영에 대한 것이었습니다. 한국 스텝, 인도인 스텝, 마을 사람들과 함께 의논했던 수자타아카데미 ‘너스리’ 운영과 초등학교와 중학교 입학생들에 대한 토론이 1차로 진행되면서 많은 의견들과 함께 초안에 대해 만장일치로 동의를 했습니다. 2013년도 지이바카 병원, 마을 개발 사업 계획에 대해서도 모두 동의를 했습니다. 인도JTS와 인도정토회 사무국장을 김정준 법우님이 겸하고 있었는데, 오늘 인도JTS 사무국장으로김신아 법우님이 선임되었습니다. 그리고, 5년동안 거의 활동하지 않은 회원들은 제외하기로 했습니다. nbsp 스님께서 회의 마지막에 마을개발에 대한 제안을 하셨습니다. “제가 이번에 마을을 돌아다니면서 생각을 해 봤습니다. 혼자는 어렵지만 여럿이 모이면 가능한 일이 있습니다. 나락 타작하는 탈곡기 알아요? 여기는 나락을 두어달 쌓아두었다가 탈곡을 하던데, 그렇게 하면 유실이 많습니다. 어떤 보고에 의하면 30까지 유실이 된다는 말이 있습니다. 전기 탈곡기는 아직 이 곳에 전기가 안 들어오는 것도 있고, 디젤유가 너무 비싸기 때문에 실제 사용하기도 어렵습니다. 디젤유를 사용하지 않고 발로 밟는 탈곡기가 있어요. 이런 것은 개인이 구입이 어려우니까 사용할 마을 사람 10명이 같이 구입을 하면 어때요? 6000루피라 하면, JTS에서 3,000루피를 내고,10명이 각 300루피씩을 내는 겁니다. 여러분들이 흙집에서 관리하면 금방 못 쓰기 때문에 관리는 JTS 창고에서 하고, 필요할 때 돈을 낸 사람들이 사용하는 겁니다. 탈곡기의 경우, 일년 중 잠깐 사용하는 것인데 개인이 구입해서 쓰는 것은 너무 비효율적입니다. 그 다음 못자리에 대해서입니다. 6월 중순부터 비가 오는데, 이 곳은 비가 충분히 온 후 모를 심습니다. 그런데 그 때 심으면 모가 조금 자랐을 때 우기가 끝나버려, 물이 충분하지 않은 곳은 제대로 곡식이 되지 않습니다. 농업용수를 위해 지하수를 퍼 올리면 디젤유를 감당할 능력이 안 됩니다. 농사짓는 10명이 공동으로 우기가 시작되기 전에 공동 못자리를 하면 우기가 시작될 때 이미 모가어느 정도 자라있고, 우기가 끝날 때쯤에는 모가 많이 자라있기 때문에 수확이 훨씬 많아질 수 있습니다. 잔치 때 쓰는 그릇도 학교에 빌리러 오는데, 학교는 그 다음날 바로 쓰야 하기 때문에 개인적으로빌려주기가 어렵습니다. 한 마을이 30가구라면 JTS가 6,000루피를 내고, 한 집에서 200루피씩을 내어서 12,000루피로 잔치 때 사용할 그릇을 공동으로 구매해서, 필요할 때 사용하는 안이 있습니다. 돈을 낸 사람은 언제라도 빌려 쓸 수 있습니다. 빌려 쓸 때도 약간의 돈을 내면, 그릇을 보충하거나낡았을 때 교체도 가능합니다. 건축자재도 공동으로 구매해서 집을 지을 때 사용할 수 있습니다. 혼자서는 어렵지만 공동으로 하면 쉽습니다. JTS도 개인은 빌려주기 어렵지만 공동으로 하면 빌려줄 수 있습니다. 이것을 한국에서는 ‘새마을운동’이라고 합니다. 한국에서는 정부에서 이 운동을 지원하지만, 여기서는 처음 자리잡을 때까지는 JTS가 지원할 수 있습니다. 마을마다 조합을 만들 수 있습니다.여러분들이 뭔가 스스로 먼저 노력을 해야 합니다. 주택도 공동으로 여러 집을 짓는 것도 좋습니다.우리가 사는 마을을 잘 가꾸어서 모범이 되면 이후에는 정부가 지원할 수도 있습니다. 아무것도 안하고 정부에 돈만 달라고 하니까 안 주는 거예요. 뭔가 스스로 노력을 해야 합니다. 물건도 공동구매하고 생산물도 공동판매하는 등 함께 하면 많은 일을 할 수가 있습니다.모범적인 한 마을을 만드는 것이 중요합니다. 바가히을 시범으로 한 번 해 보세요.스님이 처음 이 곳에 왔을 때는 사람들이 글도 모르고 해서 할 수가 없었습니다. 그런데 이제 수자타아카데미가 20년이 되어 마을 청년들이 글을 알기 때문에 충분히 가능한 일입니다.” nbsp 이사들과 회원들의 반응이 좋았습니다. 어젯밤에 한국인 스텝들과 회의하면서 이런 저런 많은 의견이 나왔었는데, 평소 그런 쪽에 아이디어가 많으셨던 스님께서 오늘 회의에서 바로 제안을 하셨습니다. 한국 마을마다 ‘계’라는 것이 있어서 공동으로 하는 일들이 많듯이, 둥게스와리도 공동으로 하는 일들을 하나씩 시작해 봐도 좋을 것 같습니다. 회의 참가한 사람들도 의지가 있어 보였습니다. 마을개발 사업을 담당한 최동호 법우님도 아이디어가 많아서 잘 하면 새로운 사업들이 재미있게 전개될 수 있을 것 같았습니다. 농사에 관심이 많거나, 건축에 재능이 있는 분, 공동체 운동이나 마을개발에 관심이 있는 분들은 3년 정도 시간을 내어서 이 곳에 와서 자원봉사를 하면 좋을 것 같습니다. 스님께서 “한국에서 죽네, 사네 하면서 살지 말고, 이런 곳에 와서 딱 30년정도 자원봉사하면서 살겠다 하는 사람 없을까? 정말 의미있게 인생을 살 수 있을텐데. 내가 이 곳에서 살면서 일을 하면 할 일이 정말 많아.”하며 웃으셨습니다. 회의를 마치고, 참가한 분들에게 선물을 주고, 단체 사진까지 찍으니 시간이 12시 20분이 다 되었습니다. 후다닥 서서 끓여놓은 라면 한 그릇 먹고, 바로 차를 타고 가야공항으로 출발했습니다. 가야공항에 도착해서 수속을 밟고, 예정시간보다 15분 일찍 출발하는 비행기를 타고, 바라나시를 경유해서, 지금은 방콕으로 가고 있는 비행기 안입니다. 오후 9시 15분 방콕에 도착할 예정입니다. 비행기 창너머로 해가 지고 있습니다. 참 아름답습니다. nbsp 내일 뵙겠습니다.
2013년 1월 26일 법륜스님의 하루(인도 공화국 수립 행사, 마을잔치)
오늘은 인도 공화국 수립 63주년이 되는 날입니다. 공화국 행사와 함께 처음 인도사업을 시작할 때 함께 했던 두르가푸르, 자가디스푸르 마을 사람들까지 초대해서 마을 잔치도 있는 날이라 아침 일찍부터 인도 전체 스텝들이 분주하게 움직였습니다. 어젯밤에 벌써 10여명의 요리사들이 들어와서 밤새 오늘 2000여명이 먹을 뿌리, 사부지, 분디야, 샐러드 준비를 했습니다. 공화국 수립 63주년을 맞이해서 선생님들과 학생들이 국기 게양대 주변을 예쁘게 장식했습니다. 바닥에 색색깔 가루를 놓아 인도 국기를 만들어 놓고, 화분으로 주변을 꾸몄습니다. 10시에 행사가 시작되었습니다. 어린 학생들이 하얀 옷을 입고 길을 만들고, 국기 게양대 앞쪽에는학교를 지키는 군인들이 큰 목소리로 사열을 하고 섰습니다. 스님과 두르가푸르 이장님, 지역 관리 한 분이 함께 나가서 국기를 게양했습니다. 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 여학생들이 무대에서 인도 국가를 부르고, 참가한 사람들도 다 같이 인도 국가를 불렀습니다. nbsp 공화국 수립 행사가 끝난 뒤부터는 인사할 분과 학생들 재롱잔치가 이어졌습니다. 두르가푸르 이장님이 먼저 나오셔서 인사말씀을 하였습니다. nbsp 성지순례 때 재롱을 피웠던 아이들이 나와서 더 깜찍한 모습으로 공연을 하기도 하고, 새로운 공연이 올려지기도 했습니다. nbsp 오늘은 마당에 무대가 만들어졌습니다. 태권도 사범이 구령을 하자, 힘차게 태권도복을 입은 아이들이 뛰어나와 공연을 펼쳤습니다. 참가한 모든 사람들이 박수를 치며 즐거워했습니다. nbsp 아이들 공연 중간 중간 지역 관리와 학생 대표 인사말도 있었습니다. 마지막 부분에 스님께서 제안하셔서 프리댄스타임을 넣었습니다. 처음에는 한 명도 안 나오더니, 나중에는 무대가 부족해서 운동장에까지nbsp많은 아이들과 젊은이들이 나와서 춤을 추었습니다. 역시, 인도 사람들은 막춤의 대가인 것 같았습니다. 정말 잘 췄습니다. 하루종일 출 수도 있을 것 같았습니다. 신나게 춰서, 보는 사람들도 같이 신이 났습니다. nbsp 이 후 스님의 인사말씀이 있었습니다. 스님 말씀을 간단히 정리해 봤습니다. “오늘은 인도 공화국 수립 63주년 기념일입니다. 축하드립니다. 인도가 영국으로부터 독립해서 국가를 수립한 날입니다. 어떤 나라도 다른 나라로부터 억압받지 않아야 합니다. 그렇듯이 어떤 사람도 그 누구로부터 억압받아서는 안됩니다. 계급이 낮다고, 여자라고 차별 받아서는 안됩니다. 인도 공화국의 헌법에는 그 누구도 평등하고 독립되어 살 수 있는 권리가 보장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현실은 그렇지 않습니다. 공부를 해야 합니다. 공부를 해서 모든 사람이 평등하다는 것을,독립되어 살 수 있는 권리가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하고, 그런 사회를 만들어 나가야 합니다. 만약 여기서 우리 아이들이 교육을 받지 않았다면 지금도 구걸을 하고 있을 것입니다. 그런데 지금은 여느 도시 아이들 못지않게 얼마나 잘 합니까? 정말 예쁘게 춤을 추죠? 벌써 2600년전 부처님께서 모든 사람은 평등하다고 말씀하셨습니다. 부처님께 감사한 마음을 내어야 합니다. 그리고 영국 독립을 위해 노력한 많은 사람들에게 감사해야 합니다.” nbsp 아이들이 공연하는 것을 지켜보고 있는 마을 사람들 표정이 밝았습니다. 재미있어 했습니다. 이 곳은 한 집에 사는 사람이 평균 10명정도 된다고 합니다. 아이가 평균 6명 정도 되고, 부모나 결혼 안한 삼촌들이 같이 살면 그 정도 된다고 합니다. nbsp 점심 식사시간이 되었습니다. 15개 마을 대표들과 초기 땅을 기증했던 사람들 100여명은 따로 식사 대접을 하고, 마을 분들은 마을별로 모여서 식사를 했습니다. nbsp 스님께서는 마을 대표분들과 식사를 같이 하신 후, 학교와 마을 관련해서 회의를 하셨습니다. 어제 인도인 스텝들과 이야기했던 것처럼, 학교 운영을 올 해부터는 어떻게 하는 것이 좋겠는지 물었습니다. 스텝들과 논의되었던 것과 같은 의견들이었습니다. 그 다음 마을 펌프에 대한 이야기가 나왔습니다. 마을에 JTS에서 펌프를 파주는데 주인이 없다 보니 함부로 사용하고, 고장이 나도 고치지를 않는다고 합니다. 그래서 먹을 물이 없고, 먹을 물을 긷기 위해 먼 이웃 마을까지 다녀와야 하고, 가까이 있는 지저분한 우물물을 먹고 와서는 사람들이 배가 아프다고 호소한다고 합니다. 그래서 마을 펌프를 고치긴 고쳐야 하는데, 그렇다고 JTS가 매번 고쳐줄 수도 없어서 오늘 스님께서 마을 대표자 회의에 안건으로 붙였습니다. 스님께서 첫째, JTS에서 다 지원해 주는 안, 둘째, 사용하는 마을 사람들이 돈을 내어서 고치는 안, 셋째, JTS와 마을 사람들이 반반씩 내는 안으로 3가지를 제안하셨습니다. 그러자, 마을 사람들이 모두 세 번째 안이 좋다고 합니다. 마을 펌프 고치는 값은 JTS와 사용하는 마을 사람들이 반반씩 내는 것으로 결정이 났습니다. nbsp “이제 제발 고장내지 말고 잘 써요. 잘만 쓰면 훨씬 더 오래 쓸 수 있을텐데... 알겠어요?”하며 스님께서 웃으면서 이야기하자 사람들도 그렇게 하겠다며 고개를 끄덕였습니다. 2000여명의 사람들이 밀물 빠져 나가더니 싹 빠져 나가고, 학교엔 덩그러니 사람들이 앉았던 바닥 깔개만 놓여 있었습니다. 마을 잔치가 끝나고 바로 스님과 중학생들의 만남이 있었습니다. 오전에는 유치원 선생님을 하고,오후에 학교에 와서 공부를 하는 학생들입니다. 스님께서 어느 어느 마을인지 일일이 물어보시고,격려 말씀을 해 주셨습니다. 그리고, 달력과 새해 용돈을 선물로 주셨습니다. 중학생 다음으로 학교 노동자들과도 잠시 만나 격려를 해 주시고, 새해 용돈을 주셨습니다. nbsp 저녁을 먹고는 한국 스텝들과 다같이 모여서 마지막 사업 논의를 했습니다. 어제는 지바카병원과 마을개발 관련해서 회의를 했고, 오늘은 인력, 불사, 마을개발, 인도불자대회 등에 대해서 전반적으로 논의하고 정리하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인도 한국인 스텝들도 스님께 새해 용돈을 받고 즐거워했습니다. 회의를 마치자 최보살님께서 따끈한 감자를 삶아 주셔서, 뒷풀이를 겸해서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누면서 하루를 마무리를 했습니다. 내일이면 저희들도 인도 일정을 마치고 방콕으로 떠납니다. 내일은 오전에 인도JTS와 인도정토회 이사회와 총회가 있고, 간단하게 점심식사를 한 후 가야공항으로 떠날 예정입니다. 가야공항에서 오후 2시 40분 비행기를 타고 방콕으로 가서 방콕정토법당으로 이동할 계획입니다. 내일 뵙겠습니다.
2013년 1월 25일 법륜스님의 하루(인도인 스텝 수련)
오늘은 스님을 모시고 인도인 스텝 수련이 있었습니다. 어제는 스님을 모시고 전정각산 산행을 하고, 부처님이 이 지역에서 어떻게 수행하시고 도를 이루셨는지, 성도 후 우루벨라 카사파 교화이야기까지 자세히 들었습니다. 오전 9시부터 법당에서 수련이 있었습니다. 스님께서 어제 산행을 시작하기 전에 말씀하셨던 시체를 버린 부정한 곳이라 생각하는 둥게스와리와 부처님이 수행을 하셔서 성스러운 곳이라 생각하는 둥게스와리에 대해서 이야기하시면서 존재를 어떻게 바라볼 것인지, 부정한 것도 없고 성스러운 것도 없는 이치에 대해서 알아듣기 쉽게 다시 설명을 해 주셨습니다. nbsp 인도에는 아직 카스트가 존재하고, 남녀 차별이 심합니다. 많은 어려움이 있었지만 20여년을 교육해 오면서 이제 학교 내에서는 카스트나 남녀 차별이 없이 모두 평등합니다. 그러나 학교 문을 나가면 바로 학생들과 인도인 스텝들은 계급 차별과 남녀 차별의 현실과 만나게 됩니다. 스님께서 계급 차별에 대해서, 남녀 차별에 대해서도 스텝들이 이해하기 쉽게, 그러나 이치를 파악할 수 있도록 끊임없이 묻고 답하면서 정성을 쏟으셨습니다. “가야 사람들은 이 곳을 부정한 곳이라고 하고, 불교 신자들은 이 곳을 성스러운 곳이라고 합니다.이 곳은 부정한 곳입니까? 성스러운 곳입니까? “이 곳이 성스러운 곳도 아니고 부정한 것이 아니라 그냥 땅이라면 그것처럼 사람들이 높은 카스트라고 생각하고 낮은 카스트라고 생각하지, 사람에게는 높은 카스트도 없고 낮은 카스트도 없어요. 이해하겠어요? “여자 스텝 한 명 나오세요. 인도에서 남자는 높고 여자는 낮다고 합니다. 남자는 높고 여자는 낮을까요?” “아니예요. 평등해요.” “그런데 만약에 가야 사람들에게 둥게스와리는 성스러운 곳도 아니고 부정한 곳도 아니라고 하면그렇게 알아들을까요? “아니예요. 못 알아들어요.” “남자와 여자가 평등하다는 말을 이야기하면 남자가 이해하기 쉬울까요, 여자가 이해하기 쉬울까요?” “여자가 이해하기 쉽습니다.” “그 말은 반대로, 남녀가 평등하다고 할 때 누가 더 못 알아들을까요?” “남자요.” “그러면 낮은 카스트와 높은 카스트에게 ‘사람은 누구나 평등합니다.’ 하고 이야기하면 높은 카스트 사람이 빨리 알아들을까요? 낮은 카스트 사람이 빨리 알아들을까? “낮은 카스트요.” “그러면 높은 계급과 낮은 계급에게, 사람에게 높고 낮음은 없다고 할 때 높은 사람이 이해를 못할까요? 낮은 계급이 이해를 못할까요?” “높은 계급요.” 스님께서 인도인 스텝들이 이해를 못하면 다시 묻고 답하고, 다시 묻고 답하면서 이치를 이해시켜 주셨습니다. 인도인 스텝들도 맞든 틀리든 상관없이 생각나는대로 신나게 대답을 합니다. 분위기가 활기차졌습니다. nbsp 스님께서 부처님 교화사례 중 똥군 니이다이 이야기와 바보 주리반특 이야기를 해 주시면서, 비굴함과 교만함에 대해서 말씀해 주셨습니다. “내가 낮다, 낮은 계급이라는 생각을 가지고 있으면 이를 열등의식이라고 하고 열등의식이 있으면비굴해집니다. 내가 높은 계급이라고 생각하면 이를 우월의식이라고 하고 우월의식이 있으면 교만해집니다. 이 둘은 다 잘못된 것입니다. 높다는 생각도 버리고, 낮다는 생각도 버려야 합니다. 우월의식도 버리고, 열등의식도 버려야 합니다. 교만함도 버려야 하고, 비굴함도 버려야 합니다. 그러면 교만함을 버리고 어떻게 해야 하느냐? 겸손해야 합니다. 비굴함을 버리면 어떻게 해야 하느냐? 당당해야 합니다. 그래서 부처님께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나의 제자들아. 너희들은 교만해서는 안 된다. 겸손하라. 나의 제자들아. 너희들은 비굴해서는 안된다. 당당하라.’ 잘났다, 못 났다는 생각을 둘 다 버리면, 높다, 낮다는 생각을 다 버리면 교만하지 않고 겸손해지고,비굴해지지 않고 당당해집니다. 우리는 그렇게 나아가야 합니다. 내가 잘 났다는 생각도 버리고, 내가 못 났다는 생각도 버려야 합니다. 남자가 높다는 생각도 버려야 하고, 여자가 낮다는 생각도 버려야 합니다. 브라만이 높다는 생각도 버리고, 하리잔이 낮다는 생각도 버려야 합니다. 모든 사람은 다만 사람일 뿐입니다. 모든 땅은 다만 땅일 뿐입니다. 모든 존재는 다만 존재일 뿐입니다. 이것이 부처님의 가르침입니다. 여러분들이 부처님의 가르침을 배우면 교만한 사람은 겸손해지고, 비굴한 사람은 당당해집니다. 무슨 말인지 알아 들었어요?” “녜” 이어서 개인의 성공은 함께 살아가는 사람들의 공동 이익과 부합될 때 이를 진정한 성공이라 할 수 있다는 말씀을 인도의 영국 식민지 때를 예를 들며 말씀해 주셨는데, 이 내용은 좀 어려워하는 것 같았습니다. nbsp 그 후 스님께서 오전 전체 정리 말씀을 해 주셨습니다. “오늘 제가 여러분들에게 이야기한 것은 크게 두 가지입니다. 어떻게 하면 내가 행복해지느냐하는 것입니다. 이 행복은 누가 주는 것이 아니라 내가 만든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항상 자기가 자기 행복을 만들어야 합니다. 내 인생의 주인은 나지 그 누가 아닙니다. 두 번째는, 나만 잘한다고 되는 것이 아니라, 나와 같이 사는 사람에 대해서 책임을 다 하는 것입니다. 가족에 대한 책임, 마을, 사회, 나라, 지구에 대한 책임을 다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나에 대한 책임도, 세상에 대한 책임도 같이 져야 합니다. 그것이 행복으로 가는 길이고, 그렇게 살아갈 때 진정한 인생의 성공이라 할 수 있습니다. 한국의 브라더, 시스터들이 왜 여기까지 왔느냐? 그것은 개인의 문제를 넘어서서, 자기 마을의 문제를 넘어서서, 한국 나라를 위한 문제를 넘어서서, 전 세계 사람에 대한 한 부분의 책임을 지겠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우리는 마음을 넓혀 가야 합니다.” 오전 법문을 마치고 점심을 먹었습니다. 1시간동안 점심시간을 가지고 바로 이어서 다시 수련을 시작했습니다. 오후에는 수자타아카데미 현안 문제에 대해서 토론을 했습니다. 작년에 정부학교에 학생들을 보내기로 하고 수자타아카데미는 초등학교, 중학교 1학년을 받지 않고 1년을 지냈더니 천민아이들이 차별받아 학교에 가지 않고 양민아이들도 학교에 가지 않는 아이들이 많이 생기고 있는데 이 문제를 어떻게 푸는 것이 좋은지에 대해서 토론을 했습니다. 활발하게 토론을 했습니다. 전원 찬성을 하는 경우도 있고 반대 의견을 몇 차례 계속 내는 경우도 있었습니다. nbsp 스님께서 하나의 문제에 대해서 해결방법을 세 가지 정도 제안을 하면 그것을 가지고 주로 토론을 했는데, 스님 의견에 대해서 새로운 의견을 내는 스텝들도 있었습니다. nbsp 그리고 4살 유아를 가르치는 반을 ‘너스리’반이라고 하는데, 너스리반을 운영하는 것에 대해서 대부분 찬성을 했는데 반대하는 사람도 몇 명 되었습니다. 그래서 소수의견을 낸 사람 이야기를 충분히 듣고 다시 표결을 했습니다. nbsp 스님께서 마무리 정리 말씀을 해 주셨습니다. “수자타 아카데미를 어떻게 운영할 것인가에 대해서 같이 의논해서 방안을 만들었습니다. 스님이 의견을 내어서 결정된 것이예요? 여러분들 의견을 모아서 결정된 것입니다. 여러분들이 자기 결정에 대해서 책임을 져야 합니다. ‘너스리’가 많이 늘어났고, 초등학교 1학년도, 중학교 1학년도 다시 받으면 학생 수가 늘어나요. 그러면 선생님 역할이 더 많아질 것입니다. 여러분들이 책임을 져야 합니다. 수업시간이 더 늘어납니다. 여러분들이 수업해야 하는 시간이 더 많아집니다. 책임지겠어요? 스님하고 약속했어요? 앞으로 ‘너스리’를 어떻게 운영할 것인지, 유치원을, 초등학교를, 중학교를 어떻게 운영할 것인지, 스님과 의논하듯이 교장, 교감선생님과 여러분들이 의논해서 좋은 계획을 세워보세요. 무조건 다수 의견이면 되는 것이 아니고, 소수 의견이라도 충분히 받아들여야 합니다. 내가 아무리 좋은 의견이라 하더라도 소수가 되면, 내 생각을 내려놓고 다수 의견을 받아들이는 자세가 필요합니다. 오늘 모은 의견이 최종 결정된 것은 아닙니다. 90는 그대로 하겠습니다. 내일 마을잔치 있는 것 알죠? 내일 마을 어른들이 오시는데 그 중에서 각 마을 대표 100명을 따로 모아 그 분들의 의견도 들어보겠습니다. 그 분들도 이렇게 생각하면 결정하겠습니다. 혹시 그 사람들 중에 우리보다 더 좋은 의견이 있을 수가 있으니 약간 변경될 수도 있습니다.” nbsp 스님께서 오늘 인도인 스텝들과 수련을 하면서, 사실은 대중공사를 진행한 느낌이었습니다. 상가에는 대중공사라는 것이 있습니다. 공동체 구성원들이 모두 모여 공동체의 문제를 다같이 충분히 토론해서 함께 결정을 하는 것입니다. 스님께서 결정을 하시는 것이 아니라, 실제 학교에서 실무를 맡고 있는 스텝들이 현재 무엇이 문제인지를 충분히 알 수 있도록 정보 공유하는 시간을 가지고, 이것을 어떻게 풀어갈지 함께 결정을 했습니다. 그래서 결정된 사항에 대해서도 스님 책임이 아니라 실제 현장에서 일을 하는 스텝들이 책임질 수 있고, 책임질 수 있는 내용들이 결정이 된 것입니다. 토론 방식도 부처님 때부터 상가에 전통적으로 내려오고 있는 삼의제 방식대로 오늘 토론을 진행해 나가셨습니다. 다수가 찬성하더라도 소수의견을 3번까지 충분히 듣고, 그런 후 마지막 결정된 사항에 대해서는 전원 동의를 하는 방식입니다. 일은 이렇게 진행되면 어디에서나 갈등이 적을 것 같습니다. 그리고 스님이라고, 한국인 스텝이라고, 지위가 높다고, 나이가 많다고 쉽게 내 의견대로 진행해 버리기가 더 쉬운데, 의견 있는 사람은 충분히 이야기하면서 토론으로 문제를 풀어나가는 스님의 진행방식을 보면서 또 한 번 큰 배움이 있었습니다. 수련을 마치면서 스님께서 달력과 새해 용돈을 한 명 한 명에게 선물로 주었습니다. 스님과 어제, 오늘 이틀을 온통 같이 지냈습니다. 스텝들의 얼굴이 환했습니다. 앞으로 1년간 살아갈 힘이 되었을 것 같습니다. 인도 스텝 수련 후, 해질녘에는 전정각산에 올라가 수자타아카데미가 멀리 내려다보이는 곳에서 불교TV와 ‘수자타아카데미가 걸어온 길’에 대한 인터뷰와 영상 촬영을 하고, 어두룩해질 때 내려왔습니다. nbsp 밤에는 다시 한국인 스텝 전체 회의를 하고, 오늘 하루를 접었습니다. 내일은 인도공화국 수립 63주년이 되는 날입니다. 공화국 기념행사를 하고, 처음 사업할 때 함께 했던 옆 마을인 두르가푸르, 자가디스푸르 마을 사람들 전체를 초대해서 마을 잔치를 할 예정입니다. 내일 뵙겠습니다.
2013년 1월 24일 법륜스님의 하루(인도인 스텝 성지순례)
오늘은 스님과 인도JTS 인도인 스텝들과 함께 하는 날입니다. 인도JTS 각 부서에는한국인 스텝과 인도인 스텝이 함께 일을 하고 있습니다. 오늘 인도인 스텝은34명이 참가했는데 수자타아카데미, 지바카병원, 마을개발, 건축 파트 스텝 중 수자타아카데미 대학생 교사들의 숫자가 제일 많았습니다. 인도JTS도 정토회 방침대로 자원봉사로 운영이 되고 있어서, 대학생들은 학교에 다니면서 자원봉사로 수자타아카데미 상급반 교사를 하고 있습니다. 새벽 6시, 천일기도를 끝내고 내려오니 인도인 스텝들이 한 두명씩 오고 있었습니다. 오늘 아침은 달걀 2개, 빵1개, 바나나1개, 짜이가 준비되어 있었습니다. 인도인 남자 스텝들은 모두 운동화를 신고 왔는데, 여자들은 전원 슬리퍼를 신고 왔습니다. 운동화 자체가 없다고 합니다.슬리퍼를 신고 산에 오를 수 있을까 약간 걱정이 되기도 했지만 오전 6시 40분경 스님으로부터 오늘 하루 전체 일정에 대한 소개를 듣고 전정각산으로 출발했습니다. 교문을 나서면 바로 앞에 돌무더기가 있습니다. 그 앞에 서서 스님께서 전정각산 전반에 대한 설명을 해 주셨습니다. nbsp “우리가 살고 있는 ‘둥게스와리’는 부정한 땅이라는 의미입니다. ‘둥그’는 부정한, ‘스와리’는 땅이라는 의미입니다. 여기는 옛날 가야 사람들이 시신을 버리던 곳입니다. 시타림이라고 합니다. 부정하다는 것은 위생적인 의미가 아니라 시신을 버리는 곳이라 사람들이 잘 오지 않는 그런 부정적인 의미입니다. 부처님이 5비구에게 최초의 법을 설했던 바라나시의 사르나뜨도 둥게스와리와 같이 시신을 버리던 곳입니다. 시신을 버리는 곳은 부정한 곳이라 사람들이 잘 오지 않기 때문에 조용해서 수행자들이 주로 그 곳에서 수행을 했습니다. 부정하다는 것은 정해져 있는 것이 아닙니다. 같은 땅인데 시신을 버렸을 때는 부정한 땅이었는데부처님께서 수행했던 곳이라서 지금은 성스러운 곳이 되었습니다. 부처님께서 깨닫기전 정진한 곳이라고 해서 이 곳을 쁘락보디힐이라고 하고, 유영굴은 쁘락보디 케이브라고 합니다. 지금 여러분 앞에 보이는 돌무더기있는 곳은 부처님께서 시신옆에서 명상하시던 곳입니다. 전정각산은 부처님께서 6년동안 정진하셨던 곳이라 여러분들이 기억하고 있어야 합니다. 6년이나 계셔서 명상하셨던 곳마다 탑터가 있습니다. 부처님과 친구 5명이 같이 수행했던 자랑스러운 곳입니다. 지금은 자랑스러운 곳이 되어 있습니다. 부정한 곳이라도 부처님이 깨달아성스러운 곳이 되었듯이, 여러분들도 열심히 공부해서 자랑스러운 사람이 되도록 하세요.” 스님을 따라 전정각산으로 올랐습니다. 유영굴 앞에서 부처님께서 그림자를 남기고 간 이야기, 부처님이 오래 여기 계셨기 때문에 흔적이 남겨져 있다는 의미에 대해서 말씀해 주시고, 전정각산에 유일하게 물이 나오는 ‘부처님 샘터’에서도 잠시 머물러 부처님과 이 곳에 사는 동물들이 먹었을 샘에 대한 이야기를 해 주셨습니다. 스님께서 전정각산에서 명상하기 제일 좋은 곳인 것 같다고 지난 번 성지순례 때도 말씀해 주셨던 곳에 앉아 오늘도 다같이 명상을 했습니다. nbsp “내 생각에는 전정각산 전체에서 여기가 명상하기가 제일 좋은 것 같습니다. 앉아 있으면 여름에는시원한 바람이 불고, 겨울에는 따뜻한 바람이 불어요. 부처님께서도 여기에서 명상을 많이 하지 않았을까? 싶습니다.” 다들 조용히 앉아 바람을 느끼고, 햇빛을 느껴 보면서 늠름한 수행자 폼을 한 번 잡아봤습니다. 전정각산은 완전 칼산입니다. 그런데 한 두명의 여자 스텝을 빼놓고는 다 잘 걸었습니다. 성지순례 때는 스님이 맨 먼저 갔는데, 오늘은 대부분의 인도스텝들이 스님을 앞질러 갔습니다. 동네 앞산이라 항상 다니던 곳이어서 험한 칼산도 쉽게 쉽게 뛰어 다녔습니다. “여기 탑터 보이죠? 여기도 부처님이 계셨던 곳입니다. 부처님이 계셨던 곳에 아쇼카왕이 탑을 세워 놨는데 훼손되어서 지금은 이렇게 벽돌조각과 탑의 흔적만 남아 있습니다. 전정각산 정상부분에 지금 남아 있는 탑터가 총 몇 개나 되는지 한 번 세어 봅시다. 자, 총 몇 개? 열 개네요.” 스님 옆과 뒤에는 항상 사람들이 붐빕니다. 스님 옆에서 같이 가고 싶어서 다가옵니다. 전정각산 제일 높은 탑에서 단체 사진을 찍었습니다. 환한 웃음이 참 아름다웠습니다. 스님과 함께 하는 시간은 언제나 즐거운 것 같습니다. nbsp 전정각산 낙타등까지 넘어서 평지로 내려왔습니다. 네이란자라강쪽으로 접어드는데 길가에 우리나라 엉겅퀴같은 잎새에 노랗고 예쁜 꽃이 피어 있었습니다. 스님께서 “그 꽃 참 예쁘지?” 하십니다. 살짝 카메라에 담아봤습니다. nbsp 성지순례 때는 그나마 조금이라도 물이 있었는데, 오늘 네이란자라강은 완전히 물이 말라 그냥 전체가 넓은 모래밭 같았습니다. 강을 건너자마자 부처님이 쓰러지셨던 곳에서 스님께서 부처님의 중도의 발견과 고행을 그만두고 목욕을 하고 수자타에게서 유미죽을 얻어 먹게 되는 과정들을 이야기로 재미있고 알기 쉽게 말씀을 해 주셨습니다. 시간이 벌써 11시 30분이 되었습니다. 산을 탔더니 배가 고팠습니다. 부처님 쓰러지신 곳에서 500미터 정도 더 부다가야쪽으로 가면 정토회에서 명상센터를 짓기 위해 구입한 부지가 있습니다. 지난 번 성지순례 때는 열쇠를 챙겨오지 않아 들어가지 못했었는데, 오늘은 그 곳에 들어가 간식을 먹었습니다. 부지 바깥으로는 벽돌로 벽을 치고, 내부에는 나무도 심어놓고 풀도 깨끗하게 정리가 되어 있었습니다. 성지순례객들이 봤으면 참 좋아했겠다 싶어 괜히 뒤늦게 아쉬운 마음이 들었습니다. 간식을 먹고, 수자타 공양터에 들러 스님 설명을 듣고, 우루벨라 가섭을 교화했던 곳으로 갔습니다.강가 모래밭에 둘러앉아 스님께 우리벨라 카사파를 교화한 재미있는 부처님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nbsp 그 후, 논길을 걸어 수자타스투파에 갔습니다. 이 곳은 수자타의 공덕을 기려 수자타의 집에 지어놓은 스투파입니다. 수자타스투파에서 참배를 드리고, 부다가야로 향했습니다. 부다가야에 들어가니 차도 많고 사람도 많고 혼잡스러웠습니다. 그래도 스텝들의 얼굴표정은 신난 것 같았습니다. 대탑에 들어가, 그늘진 잔디밭에 앉아 스님께서 다시 부처님의 성도 과정에 대해서 자세하고 알기 쉽게 하나 하나 설명해 주셨습니다. 스텝들도 진지하게 스님 말씀을 들었습니다. 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 설명을 다한 후에는 스님께서 대탑을 돌며 부처님께서 성도를 이루신 곳, 성도 후 첫 일주일을 보내신 곳, 두 번째 일주일을 보내신 곳, 세 번째, 네 번째 일주일을 보내신 곳을 차례로 다니며 스텝들에게 설명을 하셨습니다. 성지순례 때는 인원이 너무 많아 전체적으로 설명을 할 수 밖에 없었는데, 오늘은 스님께서 직접 스텝들을 데리고 다니며 하나 하나 일러 주셨습니다. 이렇게 오늘 성지순례는 마쳤습니다. 이제 1년에 한 번, 스님께서 오시면 하는 전체 외식을 하러 갔습니다. 식당에는 한국인 스텝들이 미리 배식을 준비하고 있었습니다. 맛있게, 실컷 점심겸 저녁을 먹고, 대절한 버스를 타고 학교로 돌아왔습니다. 인도인 스텝들의 얼굴 표정이 참 밝았습니다. 오늘 하루를 스님과 보내면서 어떤 마음이었을까 궁금해서 몇 명의 스텝들에게 물어봤습니다. “저는 스님을 보고 놀랐습니다. 부처님께서 무엇을 했고, 어떻게 살았는지에 대해서 외우고 계신 것이 신기하고 놀라웠습니다.” “저에게 스님은 힌두신 같이 하나의 신과 같은 분이라는 느낌이 있습니다. 정말 감사하고 존경스럽습니다.” “저는 여기서 태어나서 이 마을에 살면서 매일 산에도 올라가곤 했지만 이 지역에 대해서 자세하게는 잘 모르고 있었습니다. 책에도 간단하게는 나와 있는데, 오늘 스님께 자세하고 구체적으로 처음 들었습니다. 부처님이 깨달으셨던 곳에 직접 가서 자세하게 이야기를 들을 수 있어서 정말 좋았습니다. 이제는 다른 사람들에게도 이야기를 해 줄 수 있을 것 같습니다.” nbsp 스님께서 인도인 스텝들에게 부처님에 대해서 정성을 다해 말씀하시는 것을 보고, 동행했던 불교TV 감독님이 “수행을 열심히 하면 스님처럼 될까요?”하고 저에게 물었습니다. 스님과 함께 동행하면 누구나 느끼게 되는 존경과 감동의 표현인 것 같습니다. 내일은 스님을 모시고, 오늘 함께 동행했던 인도인 스텝들과 수련이 있을 예정입니다. 인도인 스텝들은 일을 하면서 어떤 고민들을 하고 있는지 궁금해집니다. 내일 뵙겠습니다.
2013년 1월 23일 법륜스님의 하루(인도 한국인 스텝 나들이)
새벽 도량석 소리를 들으며 깊은 잠에서 깨어났습니다. 천일결사 기도를 하고, 간단하게 아침을 먹고, 학교 교문앞에서 오전 6시 40분 라즈기르로 출발했습니다. 오늘은 스님께서 인도 한국인 스텝을 위해서 하루 일정을 뺀 날입니다. 매년 성지순례를 마치고 이 맘 때쯤 스님을 모시고 인도JTS에서 활동하고 있는 한국인, 인도인 스텝들과 수련을 하게 됩니다. 한국인 스텝과는 주로 인근 지역 불교 유적지 답사차 스님과 함께 나들이를 하는 시간을 가집니다.성지순례 때는 부처님 10대 성지 중심으로 정해진 곳만 가지만, 이 때는 한 번도 가보지 못했거나가봤던 곳이라도 성지순례객들에게 안내할 수 있는 유적인지 사료를 확인해 본 후 다시 확인을 하기 위해 답사를 합니다. 오늘은 라즈기르의 부처님 유적지를 찾아보기로 했습니다. 라즈기르는 수자타아카데미에서 승용차를 타고 가면 2시간가량 되는 곳에 위치해 있습니다. 라즈기르는 부처님과 인연이 많은 곳입니다. 성지순례를 했던 것처럼 영축산, 죽림정사, 빔비사라왕 감옥터, 칠엽굴 등이 있는 지역으로 마가다국의 빔비사라왕이 다스리던 왕사성의 현재 지명입니다. 인도JTS 김정준 법우님이 생활하면서 보드가야나 지역 불자들로부터 들었던 사전 정보를 바탕으로오늘 답사 계획을 세웠습니다. 그렇지만 그 위치가 정확하지 않아 좀더 자세한 정보를 얻기 위해 라즈기르 지역 불자인 살렌드라씨와 날란다에서 고고학 관련 일을 하고 있는 아난드씨의 도움을 받아 자세한 위치를 알게 되었습니다. 특히 살렌드라씨는 가는 길에 직접 만나서 약도까지 그려가며 상세한 설명을 해 주었습니다. 그 자세한 설명이 없었더라면 오늘 못 보고 지나쳤을 유적지들이 많았을 것 같습니다. 스님께서는 아이패드로 길을 찾아보면서 살렌드라씨의 설명을 자세히 들으셨습니다. nbsp 스님의 안내에 따라 첫 번째 간 곳은 ‘인드라살라’란 동굴이었습니다. 몸이 안좋은 사람들은 산 아래에 남고, 가파른 산에 잘 올라갈 수 있는 사람들만 올라갔습니다. 이 동굴에서 부처님께서 정진을 하셨다고 전해지는데 아직 확실한 사료가 있는 것은 아니라고 합니다. 동굴 앞에는 가지런하게 돌이 쌓여져 있었습니다. 스님께서 “여기 동굴 앞에 돌이 쌓여져 있네요. 돌 쌓은 흔적으로 봐서 여기도 부처님이 머물렀던 유적일 가능성이 많습니다.”하시면서 동굴 앞 바위산을 올라가셨습니다. nbsp 동굴 앞에서 다같이 참배를 드리고 동굴 안으로 들어갔습니다. 바깥에서 볼 때보다 안이 훨씬 넓었습니다. 동굴 안에 또 작은 동굴이 이어져 있었습니다. 먼저 작은 동굴 안으로 들어가셨던 스님께서 5m정도 들어가셔서는 “갑자기 온도가 달라지네요. 덥습니다. 안경에 김이 다 서렸어요.” 스님 안경이 하얗게 변했습니다.저희도 따라 들어가 보니 불을 피워놓은 것처럼 더웠습니다. “스님. 부처님께서 여기서 정진을 하셨다면 고행을 하신 게 아니겠는데요? 겨울엔 따뜻하고, 여름엔 시원하고.”하고 농담하는 무변심 법사님 이야기에 다함께 웃었습니다. 정말 바깥 기온은 약간 초가을처럼 싸늘한 편인데, 동굴 안은 여름날처럼 더웠습니다. 부처님께서 이 곳에서 얼마나 정진을 하고 계셨을까? 눈으로, 마음으로 한 번 더듬어 보고 내려왔습니다. nbsp 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 nbsp동굴에서 내려와 가까이 있는 ‘고다카토라’호수에 가봤습니다. 건기라 물이 많지 않았습니다. ‘고다카토라’호수와 ‘인드라살라’동굴을 살려 이 지역을 라즈길의 새로운 관광지로 만들 계획을 가지고 있다고 합니다. 그래서 호수 반대편에 보이는 곳에 거대한 불상을 세울 예정이라고 이 지역 불자들이 이야기합니다. nbsp 호수에서 나와 다시 돌아오던 길로 되돌아갔습니다. 올 때 돌산 입구에 힌두신을 모셔놓은 곳이 있어서 눈에 띄었었는데, 앞서 가던 스님 차량이 그 앞에 섰습니다. 산꼭대기에 탑이 있다는 이야기를 듣고 여기쯤일 것 같다는 스님 판단에 따라, 저희 일행이 산에 올랐습니다. 아랫마을에는 사람이 죽었는지 강가에 사람들이 모여 화장할 나무들을 준비하고 있는 것이 멀리 산에서 내려다보였습니다. 천천히 올라갔습니다. “자, 여기도 탑터네요. 그리고 저기 보세요. 성벽을 쌓은 흔적들이 보이죠?저것이 왕사성 외성을 쌓았던 흔적이고, 이 탑터는 아쇼카왕이 부처님이 머무셨던 자리마다 쌓았던 그 탑이 무너져 탑터만 남아 있는 것이네요.”하고 스님께서 설명해 주셨습니다. 산꼭대기까지 올라가는 동안에도 탑터가 두어 개 더 있었습니다. “스님. 부처님께서 이 산에도 많이 계셨나 봐요. 탑터가 저렇게 계속 나오는 것 보면요.” “부처님은 안거 3개월 외에는 내내 다니셨으니까, 이 곳에도 오셔서 정진을 하셨겠지.” 스님의 말씀을 들으면서 산으로 올라갔습니다. nbsp 그런데 산 중간쯤 올라서 위를 보니 멀리 우뚝 솟은 탑이 하나 보였습니다. 가까이 가면 갈수록 탑의 위용이 드러났습니다. 전정각산에서도 그렇고, 올라오면서도 탑 윗부분이 다 없어지고 탑터만 남은 것을 많이 봤는데, 이 곳은 탑이 손상이 되긴 했지만 탑 윗부분까지 잘 남아있었습니다. nbsp 스님과 함께 탑에 먼저 참배를 드렸습니다. “탑 아랫 부분에 푹 들어간 이 곳에는 작은 부처님이 한 분 한 분 모셔져 있던 곳이고, 저 윗부분에 모셔진 부처님은 파트나박물관으로 옮겨져 있어요. 우리도 오늘 여기는 처음이예요.약도를 알려줘서 그냥 이 곳일 것 같아서 찾아와 봤는데, 제대로 찾아왔네요.”하시며 스님께서도 반가운 표정을 지으셨습니다. 여기는 기리약힐이라고 하는데 굽타팔라시대의 유적지가 남았다고 책에 표기되어 있다고 합니다. 탑터는 워낙 많이 봤는데 탑신까지 남아있는 새로운 탑을 보게 되니까 기분이 좋았습니다. “여기까지 왔는데, 산꼭대기까지 더 올라가 봅시다.”하며 성큼 한 걸음 먼저 내딛으시는 스님을 따라 조금 더 떨어진 꼭대기에 올라가니 아까 본 호수며 산너머 마을까지 환하게 다 보였습니다. 커다란 야생 사슴도 봤습니다. 10마리 정도 되는 사슴들이 우리가 다가가니 천천히 다른 곳으로 도망갔습니다. 기리약힐에서 내려오니, 발이 아파 산에 못 올라간 사람들이 라면을 끓이고 있었습니다. 점심으로 라면을 먹고, 다음 유적지를 찾아 갔습니다. 다음 유적지는 찾기가 쉽지 않은가 봅니다. 앞서 나가던 차가 여러 번 동네 사람들에게 길을 물어보고, 차를 돌리기도 하면서 동네의 작은 길도 찾아들어가면서 겨우 찾은 것은 작은 연못 앞에 있는 검은 색 불상이었습니다. nbsp 청소를 하지 않아 지저분한 바닥에 맨 발로 들어가 참배를 하고 스님께서 불상에 대한 설명을 해 주셨습니다. “동네 연못가에 큰 불상이 있다고 해서 찾아 찾아 왔어요. 불상이 그냥 있었는데, 사람들이 집을 만들어 주고, 지금은 힌두 사원에서 관리를 하고 있어요. 이 불상은 파트나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는 검은 석불들과 양식이 거의 유사합니다. 그것으로 비추어 볼 때 8세기경의 불상이지 않을까 추정해 봅니다.” 우리가 찾아가니 마을 아이들이 우루루 몰려왔습니다. 그래서 아이들에게 불상에 대해서 알고 있는 것이 있는지 물어보기도 하고, 스님과 인도 활동가들은 다음 유적지 가는 길에 대해서 의논을 했습니다. nbsp 다시 다음 유적지로 향해 갔습니다. 마을들을 돌아 돌아 한참을 가니 동네 가운데 돌로 된 동산이우뚝 솟아 있고, 돌산 위에 힌두사원이 서 있었습니다. 선두로 가던 차량이 돌산 앞에 섰습니다. 동네 사람들의 화장실인지 곳곳에 똥이 많아서 조심스레 올라갔습니다. 꼭대기에 올라가니 힌두사원 안에 어깨아래가 없는 불상 하나가 옆에 놓여 있고 힌두사원 뒤로 돌아가니 불상의 떨어진 어깨 아래 부분이 놓여 있었습니다. 불교가 없어지고 힌두교가 불교 유적지까지 다 관리하는 인도 현실을 보여 주는 것 같아서 마음이 아팠습니다. 스님께서 머리가 없는 불상 앞에 참배를 하고,nbsp전체를 쭉 둘러 보셨습니다. nbsp nbsp “이 곳은 샤카빤하경에 의하면 부처님께서 인드라신에게 속세에서의 도덕적 삶에 대한 8가지 의심에 대해서 설법했다고 알려진 곳이란 말이 있는데, 여긴 지 처음 갔던 동굴인지 아직 확실치가 않습니다.” 사전조사를 했던 김정준 법우님의 이야기였습니다. 주변을 다시 한 번 돌아본 후 부다가야로 돌아와서 저녁 식사를 하고 수자타아카데미로 들어왔습니다. 스님께서는 한국에서도 저희 실무자들과 역사 유적지 탐방을 가끔 하십니다. 스님과 함께 하는 역사 유적지 탐방은 항상 흥미롭습니다. 오늘 유적지 탐방은 특히 더 흥미로웠습니다. 한국에는 이미 다 발굴되어 있는 유적지가 대부분인데 인도는 아직 문화재에 대한 중요성을 덜 인식하고 있어서 그런지 아직 발굴되지 않은 유적지가 많은 것 같습니다. 그래서 스님의 역사에 대한, 지리에 대한 예리한 관찰력으로 새롭게 유적지를 찾아보고, 줄거리를 만들어 보고, 다시 역사와 불교를 공부하게 되는 시간들이 참 즐겁고 흥미로웠습니다. 내일은 인도인 스텝들과 함께 전정각산 등산과 함께 부다가야까지 걸어갈 예정입니다. 이 곳에 살면서도 부처님의 발자취에 대해서 정확히 잘 몰라서 스님께서 자세한 설명을 해 주었으면 좋겠다는 인도인 스텝들의 요청이 있어서 일정을 잡았다고 합니다. 내일 소식 전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