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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년 3월 19일 법륜스님의 하루(출가기념일, 전문가 포럼, 여여회)
서울에서는 정말 스님 공양하실 시간도 없을 정도로 일정이 빠듯합니다. 오늘도 역시나 시간 시간 바쁘게, 알차게 보내셨습니다. 오늘도 아침 일찍 재단에서 모임이 있었습니다. 모임 후에는 서초정토회관에서 출가일 기념 법문이 있었습니다. 오늘은 부처님 출가 기념일이고, 26일은 부처님 열반 기념일입니다. 그래서 부처님 출가열반일을 맞이 하여 매년 8일동안 특별 정진을 합니다. 매일 정진을 하고, 매일 법문을 듣습니다. 올 해는 출가 기념일과 열반 기념일은주, 야로 서초정토회관에서 스님께서 직강을 하시기로 했습니다. 오늘은 주간과 야간에 부처님 출가기념 법문을 하셨습니다. nbsp 오전, 오후 법문이 참 밝고 가벼운 분위기에서 진행되었습니다. 봄이라 그런지, 스님을 오랜만에 만나서 반가워서 그런지 더 활기차고 즐거운 분위기 속에서 법회가 진행되었습니다. 출가에 대해서 말씀해 주셨는데 재미있었습니다. 특히, 부처님께서 출가하시면서 다 버리고 떠난 지위와 권력과 재물을 지금 불자들은 절에 가서 다리 아프게 절하면서까지 달라고 기도한다는 말씀에 다들 많이 웃었습니다. 웃으면서도 한쪽 가슴엔 안타까움이 스며들었습니다. “가출은 집을 나가서 다시 다른 집을 찾아 들어가는 것이고, 출가라는 것은 집을 떠나면서 집을 불살라버리는 것, 다시는 집에 들어가지 않을 때 그것을 출가라고 합니다. 여기서 집은 무엇을 상징할까요? 집은 보금자리입니다. 집은 우리를 보호해 주는 곳이고 내가 의지할 수 있는 곳입니다. 그런데 집은 또 다른 의미가 있어요. 집은 굴레예요. 집은 속박이고 감옥이예요. 이렇게 집에는 두 가지 의미가 있어요. 보금자리의 의미가 있고, 굴레의 의미가 있어요. 여러분들이 집을 그리워하는 것은 보금자리를 그리워하는 것이고, 집을 뛰쳐 나올 때는 굴레가 싫어서 뛰쳐 나옵니다. 굴레가 싫어서 뛰쳐 나오면 보금자리가 그리워 다시 들어가고, 보금자리가 좋아서 들어가면 굴레가 싫어서 또 다시 뛰쳐 나옵니다. 그래서 영원히 가출을 하고 삽니다. 윤회의 수레바퀴를 돌리지요. 여러분들은 집이 굴레는 없고 보금자리만 있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그런 곳이 없나 해서 이 집도 가보고 저 집도 가 봅니다. 그런데 그 둘은 분리 될 수가 없습니다. 보금자리가 곧 굴레입니다. 보금자리가 굴레임을 꿰뚫어 볼 수 있어야 출가를 할 수 있습니다. 영원히 굴레에서 벗어나서, 감옥에서 벗어나서, 굴레를 불사를 때 보금자리도 함께 불살라집니다. 의지처가 집이고, 집이 의지처임을, 그것이 굴레임을 꿰뚫어 알아야 합니다. 의지처를 불살라야 굴레가 없어집니다. 그럴 때 자기 힘으로 설 수 있습니다. 붓다는 자기 인생의 주인, 자기 운명의 주인입니다. 어디에도 의지하지 않습니다. 수많은 연관을 맺고 살지만 거기에 의지해서 자기 삶의 기쁨을 누리지 않습니다. 의지처를 버리고 출가를 하셔야 합니다.” 부처님의 출가를 다시 한 번 되새겨보고, 나는 지금 출가해서 살아가고 있는가 돌아보는 시간이 되었습니다. nbsp 스님께서 오전 법문 후 점심공양을 하시자마자 오후 2시부터 있었던 평화연구원 전문가 포럼에 참가하셨습니다. 오늘은 ‘한반도 신뢰프로세스, 첫 단추가 중요하다’는 주제로 한반도 신뢰프로세스에 대한 전문가들의 깊이 있는 토론이 이어졌습니다. nbsp 스님께서 먼저 인사말씀을 하신 후 토론이 진행되었습니다. 스님 말씀 중 일부분을 올려 봅니다. “남북간에 갈등과 대립이 상존하고 있지만, 우리가 만약 남북관계를 적극적으로 개선한다면, 10년이 지나고, 20년이 지나서 되돌아본다면 지금의 한일, 한중관계보다 훨씬 더한 이익이 있을 것이라고 예측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서, 이런 이웃나라와도 어려운 관계를 개선해서 국가이익을 도모하는데, 우리가 늘 옛날 이야기, 현존하는 갈등 이야기만 하면서 남북관계를 계속 뒤로 미뤄서 되겠느냐, 이런 말씀을 드리고 싶습니다. 해방68년, 전쟁을 휴전한지 60년이 지났는데도 우리는 분단도 극복 못할 뿐 아니라 평화도 제대로 정착시키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런데서 정전60주년을 맞아서 한반도에 다시는 전쟁은 없어야 한다는 종전선언, 그리고 앞으로 전쟁이 없도록 평화체제를 공고히 하는 일이 우리에게 정말 시급합니다. 더 나아가서는 동아시아의 정세 변화, 미국과 중국의 세력 변화가 이뤄지는 시대에 통일없이 우리 민족이 어떤 비전을 가질 수 있겠는가? 주변 정세에 능동적으로 대응하려면 통일은어느 때보다도 더 절실합니다. 희망은 이런데 현실은 정반대로 되고 있습니다. 정전협정 60년동안 많은 일이 있었지만 지금이 전쟁 위험이 가장 높은 때가 아닌가 싶을 만큼 고조되고 있습니다. 이런데서 우리 국민의 염원인 통일을 가져오는 그런 어떤 희망을 만들려면 북한을 나쁘다고만 한다고 해서 해결될 수 는 없습니다. 북한이 만약 나쁘다면 어떻게 상대하고 어떻게 관리해서 북한을 껴안아서 통일국가를 만들 것인가? 이것이 가장 중요한 정책의 모토가 되어야 하지 않겠나 싶습니다.” 스님은 통일을 위해, 북한동포들의 굶주림을 해결하기 위해 온 몸으로 절규하시는 것 같습니다. 가슴이 아픕니다. 전쟁의 위험이 그 어느 때보다도 높다는 지금의 남북한 현실이 참으로 안타깝습니다. 스님께선 인사말씀 후 뒤쪽 자리에 앉아서 포럼에 참가하고 계시다가 다음 일정에 맞춰 정토회관으로 오셨습니다. 오후 4시에는 정토회관 다담실에서 불자모임인 ‘여여회’ 회원 20여명과 이야기 나누는 시간이 있었습니다. 여여회는 여여한 사람들의 모임이라는 뜻이고, 주로 참선을 하는 사람들의 모임이라고 합니다. 김홍신 작가님과 인연이 있는 분들인데, 작가님의 소개로 오늘의 자리가 마련되었습니다. 먼저 자기 소개하는 시간을 가진 후 스님께 질문하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힐링캠프, 불교TV, 책 등여러 매체를 보고 스님을 뵙고 싶었는데, 오늘 만나게 되어 정말 기쁘다면서 직장에 휴가를 내고 온 사람도 있었습니다. 나이드신 분, 젊은 분, 남자, 여자, 주부, 변호사, 연예인, 고시생, 신문기자, 방송PD, 임용고시생, 학원 강사 등 회원으로 다양한 사람들이 참가하고 있었습니다. 좋은 배우자를 만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불교에서는 인생이 고라고 하는데 그 의미는 무엇인지에 대해서 질문을 했습니다. 스님께서 질문을 가지고 많은 말씀을 해 주셨는데, 직접 스님을 만나고 싶어서 찾아온 사람들이니만큼 진지하게 스님 말씀을 경청했습니다. 2시간 넘게 이야기를 나누고 단체사진을 찍고 마무리를 했습니다. nbsp 스님께서는 저녁 공양을 하신후 저녁반 출가 기념일 법문을 하셨습니다. 신발장이 가득 차고, 현관바닥에까지 신발들이 줄줄이 놓여졌습니다. 오랜만에 법당에 찾아온 사람들도 많아 반갑게 인사를 나눴습니다.스님 법문 후, 소리높여 관음정근을 하면서 출가열반일 정진을 시작했습니다. 내일부터 올 해 100강이 시작됩니다. 서울 도봉구에서 첫 테이프를 끊게 되네요. 오전에는 도봉구민회관, 오후에는 수원 장안구민회관에서 강연이 있을 예정입니다. 내일 뵙겠습니다.
2013년 3월 18일 법륜스님의 하루(LG하우시스, 협동조합, PLA 동문모임)
어젯밤 주룩주룩 내리던 비가 아침이 되니 빗살이 약해졌습니다. 어제 캐온 쑥으로 쑥국을 끓이고,냉이를 데쳐 냉이나물을 해서 봄내음을 가득 몸에 불어 넣고 서울로 향했습니다. 서울에 도착하니 점심시간이었습니다. 스님께서 정토회관 공양간에 내려 가시니, 공양 자원봉사를 하던 분들의 눈이 휘둥그레졌습니다. 전에는 자주 공양간 내려 오셔서 공양을 하셨는데 요즘은 바빠서 공양간에서 공양하실 일이 거의 없어서 반갑기도 하고 어렵기도 한 것 같았습니다. 오후 3시에는 LG하우시스 임직원 대상으로 강의가 있었습니다. 강연전에 여의도 LG본사 건물 커피숍에서 사전 만남이 간단하게 있었는데, 사장님이 소탈해 보였습니다. 스님이 한 해 선배라 그런 지 스님을 깎듯하게 대하는 모습이 재미있었습니다. 강당에 들어가니 380여명의 임직원들이 자리를 가득 채우고 있었습니다. 직원들이 많은데 강당이 커지 않아 강당 자리 수만큼 인원을 채웠다던 직원의 이야기가 생각났습니다. 건물, 차량 내장재를 주로 다룬다고 하는데 그래서 그런지 여직원보다 남자직원이 많고, 젊은 사람들이 많았습니다. nbsp “제가 동일 직종 강의는 잘 안 가려고 합니다. 그 첫 번째가 방송국 강의입니다. 방송국에서 방청객으로 앉아 있는 분들은 3만원을 받고 강의를 듣습니다. 카메라가 가면 웃고, 카메라가 안 가면 집중을 잘 안 해요. 강의하기가 제일 어렵습니다. 두 번째가 회사 교육입니다. 강제 동원해 놓고 강의해라고 하는데 대부분 잡니다. 그리고 소통이 잘 안 됩니다. 자기 이야기를 마음대로 못 꺼내놔요. 군대, 경찰은 더 어렵습니다. 강의하기 제일 좋은 것은 자발적으로 자기 돈을 내어서라도 들으러 오는 사람들, 멀리서 강의듣기 위해 차를 몇 번이고 갈아타고 오는 사람들을 대상으로 강의하는 겁니다.” 그러자 사람들이 자기들 처지를 이야기하는 줄 아는지 큰 소리로 웃었습니다. 그렇게 스님께서 강의를 시작하셨는데 2시간 30분동안 열강을 하셨습니다. 너무 길게 해서 제가 괜히 주변이 신경이 쓰였습니다. 그래서 돌아보니 사람들이 재미있어 하면서 강의를 듣고 있었습니다.조는 사람은 보이지 않고 스님께 눈을 고정시키고 열심히 듣고 있는 모습을 보면서 사람들이 스님 말씀에 참 공감을 많이 하고 있구나 싶었습니다. 스님의 강연에 이어 질문을 3명이 했는데, 아이 교육과 종교의 문제, 직장인으로서의 행복에 대한 문제였습니다. 스님께서 꾸미지 않고 직설적으로 바로 이야기를 하니사람들이 시원해 하는 것 같았습니다. 사람들이 어디서 이런 이야기를 들을 수 있겠나 싶었습니다. “노동시간의 단축과 보수의 증가로 노동 해방에 이를 수 있을까요? 진정한 노동의 해방은 노동을 놀이화 하는 것입니다. 똑같은 일을 해도 돈받고 하면 노동이고 돈내고 하면 놀이입니다. 노동이 놀이화한다는 것은 돈받고 일하는 것이아니라 돈내고 일하는 것을 말합니다. 여러분들의 직장생활이 놀이처럼 될려면 돈을 내고 직장에 다니면 됩니다. 그러니 내일부터 다 돈을 내고 다니세요. 그러면 아주 즐거워요.” nbsp 스님의 말씀을 듣고 사람들이 박장대소를 하였습니다. 노동의 변화 역사를 살펴보면, 노동해방 쪽으로 조금씩 이동해 가고 있습니다. 고대에는 일을 하고도 돈을 받지 못하는 노예들이 대부분이었습니다. 노예는 신분으로 묶어놨어요. 그런데 그 다음은 신분이 아니라 토지로 묶어 놨어요. 그것이 농노예요. 그 다음은 토지에 묶인 것을 돈을 주고 풀었어요. 그러나 오늘 날 노동자는 돈에 묶여 있어요. 옛날 노예는 주인이 사고 팔았습니다. 자기에게 아무런 결정권이 없이 팔려 다녔습니다. 오늘 날 노동자는 자기가 결정을 하죠. 그런데 여러분들은 돈에 팔려 다니고 있어요. LG에서 500만원 받고 일하다가삼성에서 700만원 준다고 하면 가죠? 돈에 팔려 가죠. 돈으로부터 자유로운 상태가 아니예요. 묶여 있다는 것입니다. 돈에 우리의 삶이 묶여 있는 거예요. 그래서 돈에 급급할 수밖에 없는 거예요. 노동 다음이 자원봉사예요. 자원봉사는 돈을 받으려고 안 해요. 내 재능을 그냥 쓰는 거예요.” “우리의 문명도 노예에서 농노로, 농노에서 노동자로, 노동자에서 자원봉사자로 가는 거예요. 여러분들이 60세까지 어쩔 수 없이 돈을 벌고 살지만, 60대 이 후에는 자원봉사를 하세요. 여러분들이 현재 자본주의 시스템에서는 자신의 재능을 팔고 살지만 앞으로는 재능을 팔지 않고 필요한 곳에 사용할 수 있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그것이 자원봉사예요. 일요일이나 저녁 시간에 자원봉사를 하든지, 직장에 다니면서도 내 번 돈을 보시하든지, 내 재능을 돈으로만 거래하지 말고 봉사를 해 보세요.” 큰 박수로 강의를 마무리 하자마자 인사할 시간도 없이 바로 뛰어 나왔습니다. 대학생 때부터 지금까지 30여년간 스님과 인연을 맺어온 김성오씨가 『우리, 협동조합 만들자』라는 책을 출판해서 출판기념회 및 한국협동조합 창업경영자원센터 출범기념식에 축사를 해 주시기로 했는데, 시간이 빠듯했습니다. 다행히 차가 많이 막히지 않아 행사진행시간에 도착할 수 있었습니다. 스님께서 그동안의 김성오씨와의 인연을 이야기하면서, 앞으로 협동조합 운동이 사람답게 사는 세상에 기여할 수 있기를 바란다며 축사를 해 주셨습니다. 행사를 마치고도 참가해 주신 분들과 인사를 하면서 사람들이 거의 다 갈 때까지 자리를 지켜주시는 모습이 꼭 아버지같단 생각이 들었습니다.nbspnbsp nbsp 뒷정리를 하는 것을 보고 평화재단으로 돌아왔습니다. 저녁에는 평화리더쉽아카데미 동문회 모임이 있었습니다. 스님께서 동문회 행사하는 것을 지켜보고 계시다가, 짧은 강의를 하셨습니다. 스님의 화두는 통일입니다. 국가의 미래 비전, 동아시아와 인류의 번영을 위해 통일을 해야 하고, 통일만이 살 길이고 통일만이 희망임을 이제는 이야기할 수 있어야 한다며 오늘도 통일 이야기를 온 몸으로 해 주셨습니다. nbsp 오늘도 바쁘게 서울 시내를 돌아다녔습니다. 스님께선 어제 흠뻑 받은 봄 기운때문인지 더 신나게 강의하시고 사람들과 만나는 것 같습니다. 오늘 하루도 즐거웠습니다. 내일 뵙겠습니다. 감사합니다.
2013년 3월 17일 법륜스님의 하루(봄나들이)
어제 늦은 밤 스님께서 공항에 도착하셔서 12시가 넘어 공항을 출발해서 두북으로 왔습니다.문수팀 행자님들 5명과 함께 이동했습니다. 서울의 회색빛 시멘트 건물들 속에 살다가 시골로 내려오니 봄 기운이 그대로 느껴졌습니다. 서울에서는 다시 갑자기 추워진 날씨에 다들 두꺼운 외투를 걸치고 어깨를 움츠리고 있다보니 제대로 봄을 느끼지 못했던 것 같습니다. 스님께서도 지난 1월부터 계속 이어진 해외 일정과 전국 정초순회강연, 그리고 또 다시 이어진 해외일정으로 계속 바쁘게 생활하시다가 원래 계획되었던 중국 연변에서 가난한 아이들에게 옷을 나눠주는 행사가 취소되면서 갑작스레 오늘 하루 여유로운 시간을 보내셨습니다. 쑥이 그렇게 많이 컸는 줄 몰랐습니다. 꽃들이 벌써 그렇게 피었는지도 몰랐습니다. 오늘 저녁은 쑥국을nbsp끓여 먹자며, 칼 한 자루씩을 들고 산책길에 올랐습니다. 야산을 하나 넘고 계곡을 지나 탑곡수련장까지 가기로 했는데, 가는 길에 쑥을 만나면 앉아서 쑥을 캐고, 꽃을 만나면 꽃을 보고 감탄하며 이야기를 나누다보니, 2시간이면 충분히 다녀올 거리를 4시간이 걸려서 다녀왔습니다. “햇살 좋은 곳에는 아마 진달래가 피었을 거야.” 산책을 시작하면서 스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산에 접어들어 조금 가다가 스님께서 “저기 봐라.”하시는 소리에 다들 스님이 가리키는 쪽을 보니진달래가 예쁘게 피어 있었습니다. 다들 “와아”하면서 반가움의 함성을 질렀습니다. 그런데 가다보니 햇살 좋은 양달에는 진달래가 곳곳에 무더기 무더기 꽃을 피우고 있었습니다. 스님 어릴 때 진달래꽃 따던 이야기를 들으며, 꽃잎도 입 속에 넣어 분홍빛 꽃잎즙을 목으로 천천히 넘기며 봄을 즐겼습니다. nbsp 쑥도 많이 자라 있었습니다. “여기 쑥이 많네.”하며 앉아 쑥을 캤는데, 처음 만난 쑥이라 그 쑥이 제일 큰 줄 알고 열심히 캤습니다. 그런 후 작은 야산을 넘어 햇살 잘 드는 곳에서 아까보다 더 큰 쑥들이 의기양양하게 자라고 있는 것을 발견했습니다. “와아”하며 우리는 또 한 번 함성을 지르고는 쑥을 캐기 시작했습니다. 스님께서 “왜 ‘쑥대밭’이란 말이 생겼는 줄 알아?”하며 이런 저런 이야기를 해 주셨습니다. 스님도 앉아서 쑥을 캐셨습니다. 저희도 주변으로 둘러앉아 어느새 성큼 자란 쑥을 보며 감탄하다가, 쑥국, 쑥떡, 쑥버무리 등 쑥을 넣어 요리하는 음식들 이야기를 하며 따사로운 햇살 아래서 즐거운 시간을 보냈습니다. 작은 야산을 넘어, 마을로 들어서자 목련꽃, 매화, 개나리를 비롯해 이름 모를 수많은 풀꽃들이 아름답게 꽃을 피우고 있었습니다. “와 자목련이 벌써 꽃을 피웠네. 꽃봉우리 정말 이뻐다.” “저기 보세요. 청매화랑 홍매화가 다 피었어요.” ㅍnbsp 햇살 좋은 담장아래엔 큰개불알풀의 은은한 푸른 꽃들이 군락을 이루며 맘껏 피어있고, 밭에는 광대나물이 분홍꽃을, 보라색 제비꽃도, 흰색 냉이꽃도, 노란색 꽃다지도 서로 질새라 곳곳에 꽃을 피우고 있었습니다. 성질 급한 벚꽃도 몇 몇 꽃잎을 벌써 터뜨렸고, 천리향도 피어서 봄의 꽃잔치에 동참하고 있었습니다. 마을에서 산으로 들어가는 입구 밭엔 농부 한 분이 경운기로 밭을 갈고 있고, 옆의 매화나무들은 상관없이 꽃을 활짝 피워서 무리를 이루고 있었습니다. 청매화꽃이 하도 예뻐서 사진찍느라 일행과 잠시 떨어졌더니, 스님께서 부르시기에 얼른 뛰어갔습니다. 산 초입에 짙은 진달래가 예쁘게 피어 있었습니다. 스님은 꽃을 좋아하십니다. 특히 어릴 때 봄이면 언제라도 볼 수 있었던 진달래를 좋아하시는 것 같습니다. 진달래앞에서 다같이 사진을 찍었습니다. nbsp 산 초입에 들어서니 생강나무 노란꽃이 곳곳에서 꽃을 피우고 있었습니다. 같이 동행한 한 분이 “저 노란 꽃이 산수유 아닌가?” 하고 묻기에 생강나무 가지를 하나 꺾어 주었더니, “어? 정말 생강냄새가 나네?”하며 신기해 했습니다. 양지바른 곳에는 양지꽃이 무더기로 피어 있고,찔레꽃 넝쿨에선 제일 먼저 파릇파릇 새싹들이 돋아나 있었습니다. nbsp 스님을 따라 사람이 거의 다니지 않는 계곡으로 들어갔습니다. 올 해는 눈이 많이 와서인지 계곡에 물이 많았습니다. 경쾌한 계곡물 흐르는 소리를 들으며 갯버들도 피어 있고, 떨어진 낙옆들 사이에 원추리, 개불주머니 새 잎들이 고개를 쑥쑥 내밀고 있었습니다. 현호색도 피어 있고, 꿩의바람꽃도 피어 있고, 이름모르는 여러 꽃들도 보일 듯 말 듯 피어 있었습니다. nbsp 스님께서 갯버들 가지 하나를 꺾어서 껍질을 비틀었습니다. “아직 물이 안 올라 껍질이 안 틀어지네?”하십니다. 시골에서 살지 않은 분들은 영문을 몰라 뻔히 쳐다보고 있었습니다. “물이 올라야 이렇게 비틀면 껍질이 잘 벗겨지는데... 이걸 가지고 버들피리를 만드는 거야.” 그제야, “아”하며 고개를 끄덕였습니다. 낙엽으로 덮혀 길이 없는 계곡 옆으로 길을 만들어 가며 걸었습니다. 선녀탕 같은 물웅덩이, 작은 폭포들, 맑은 냇물들을 보며 걸었습니다. 중간에 계곡에 앉아 잠시 다리쉼을 하며 먹은 간식도 참 맛있었습니다. 산책을 마치고 돌아와서는 봄맞이 밭갈이를 했습니다. 밭의 풀들을 뽑아내고 상추씨를 뿌리고 비닐을 덮었습니다. 오늘 저녁은 두북정토마을 하우스에서 뜯은 고소잎을 생절이로 무치고, 민들레잎도 잘게 썰어서 생절이를 했습니다. 두북정토마을 담벼락 아래에서 캔 달래로 달래장도 만들어서 봄을 비벼 먹었습니다. 산에도 갔다오고 밭일도 했더니 밥맛이 꿀맛이었습니다. 스님께서는 식사 후에 원고 교정과 업무 처리할 일이 많아서 업무를 보시고, 다른 일행들은 일찍 쉬었습니다. 저녁 먹은 후에 비가 한 방울씩 떨어지더니, 지금은 주룩주룩 비가 많이 오고 있습니다. 비 떨어지는 소리가 좋은 봄날 밤이네요. 다들 다음 휴일엔 도시를 나와 봄나들이 떠나보시는 것도 좋을 것 같습니다.nbsp감사합니다.
2013년 3월 15일 법륜스님의 하루(종교인모임, 청춘학교)
스님께서는 지난 3월 7일 캄보디아, 베트남, 라오스 답사를 떠나셨는데, 오늘 아침 일찍 귀국하셨습니다. 스님과 함께 동행하셨던 분들 모두 건강하게, 무사히 잘 돌아오셨습니다. 공항에 마중나간 저희들에게 환한 웃음으로 귀국 선물을 주셨습니다. 이번에 다녀오신 답사에 대해서 저녁에 있었던 ‘청년학교’에서 말씀을 해 주셨는데, 먼저 그 내용을 올려봅니다. “저는 지난 한 주 동안에 캄보디아, 라오스, 베트남 갔다가 오늘 아침에 왔습니다. 간 목적은 캄보디아 북동쪽이고, 베트남과 라오스 국경지역에 ‘나타나끼리’라는 주가 있어요. 그 주는 산악지대로 캄보디아 사람들 중 원주민이 많이 살고 있어 캄보디아에서는 지역 개발이 가장 낮은 수준입니다. 학교가 없어서 많은 아이들이 학교를 못 다니고 있어요. 그 지역에 학교를 지어주는 일을 우리가 하고 있어요. 주 교육청 말로는 필요한 학교가 100개정도 된답니다.그래서 정부가 50개 짓고, 우리가 50개를 지어서, 일년에 10개씩을 짓는마면 5년 안에 학교문제를해결할 수 있을 것 같아 의논을 하고 있어요. 또 건축현황이나 학교 실태를 살펴봤습니다. 날짜를 길게 잡았던 것은 캄보디아 국경과 인접해 있는 라오스, 베트남 지역은 국가는 다르지만 같은 원주민들입니다. 라오스와 베트남도 캄보디아와 동일한 조건이지 않을까 싶어서 답사를 했습니다. 베트남은 생각했던 것보다 지역 개발이 많이 되어 있는 편이었어요. 문맹퇴치를 위해 학교를 짓는 일은 필요없을만큼 어느 정도 개발이 되어 있는 편이고, 라오스는 모든 마을에 학교가 있기는 있는데 그 상태가 다 열악했습니다. 나무기둥 세우고, 위에 양철지붕 하나 올리고, 대나무로 벽을 쳐서 배우는 그런 수준이 아직도 많았습니다. 아이들이 공부를 잘 할 수 있도록 교실을 제대로 만들어 주는 일이 우리가 할 일입니다. 또 이번에 돌아보니, 아이들이 대부분 교과서가 없어요. 선생님만 교과서를 가지고 있어요. 아이들에게 교과서를 지급하는 것, 연필이나 학습 교재를 공급하는 것이 필요했습니다. 선생님은 교사용 학습 참고서가 많이 필요하다고 했습니다. 여러 곳을 돌아보면서 우리가 무엇을 할 수 있나 살펴봤습니다.” 돌아오시자마자 평화재단에서의 일정이 계속 이어졌습니다. 10시 약속에 이어, 12시에는 ‘민족의 화해와 통일을 위한 종교인 모임’이 평화재단에서 있었습니다. 자주 뵈어서 이제는 저희들에게도 친근한 목사님, 신부님, 교무님, 선도사님 등 10여명이 넘는 분들이 활기차게 웃으시며 재단을 찾아 주셨습니다. 한 목사님은 빵과 오렌지를 사들고 오셨는데 꼭 다정한 할아버지 같았습니다. 재단에서 정성껏 점심식사를 드신 후, 말씀들을 나누셨습니다. 남북 관계가 워낙 살얼음 걷듯 하고, 국내정치도 만만치가 않아서 나눌 말씀들이 많았을 것 같습니다. nbsp 종교인 모임 이후에도 재단에서 계속 스님은 업무가 있으셨습니다. 사람도 만나고, 업무 점검도 하셨습니다. 그리고 저녁에는 ‘청년학교’ 개강 강연이 있었습니다. ‘청년학교’는 오늘은 서울에서, 다음 주에는 대전, 대구, 부산, 울산, 창원에 개강을 합니다. 총 11주 동안 ‘법륜스님으로부터 배우는 삶, 사랑, 시대’라는 소주제로, 스님의 저서를 가지고 이 시대의 젊은이로서 어떻게 살아야 할 지를 함께 토론하고 나누며 젊은이들이 자기 길을 찾아가는 프로그램입니다. 작년 300강을 할 때도 후반부로 가면서 특히 젊은이들의 참가가 늘어났었는데, 그래서인지 올 해 청년들을 대상으로 하는 프로그램에 젊은이들의 참가가 눈에 띄게 많은 것 같습니다. 청년들을 대상으로 하는 청춘학교, 대학생들을 대상으로 하는 붓다캠퍼스, 청년대학생을 위한 정토불교대학 등에 전국에서 많은 젊은이들이 노크를 하고 있습니다. 강당을 가득 채우고 있는 젊은이들의 모습이 든든했습니다. 스님께서는 환히 웃으시며 강단에 오르셨습니다. 스님의 책과 스님의 영상물로 인생을 공부하기 위해 모여든 청년들인만큼 스님을 향한 환호성이 대단했습니다. 스님께서도 거의 2시간동안 열강을 해 주셨습니다. nbsp 먼저 캄보디아, 라오스, 베트남 답사 다녀오신 이야기를 시작으로 이야기를 풀어가기 시작했습니다. “한국에 살면 한국내의 여러 문제가 참 크다고 느끼는데 외국에서 한국을 바라보면 사실은 별 문제가 아닙니다. 그런데 외국에서 보아도 한국이 왜 저럴까 하고 걱정되는 문제가 두 개 있습니다. 하나는 남북간의 전쟁문제이고, 또 하나는 북한 주민들의 굶어죽는 문제입니다.” “캄보디아, 라오스, 베트남 이런 나라에 가도 저에게 묻는 것이 있어요. 첫째가 남북한이 싸우는 전쟁문제입니다. 외국인들도 싸움이 걱정이 되어서 저한테 물어요. 그러니까 남북한의 평화문제는 우리나라만의 문제가 아니예요. 세계적인 이슈입니다. 두 번째가 북한의 아이들이 굶어죽는 문젠데 이것도 가난한 나라에 갔을 때 저에게 걱정이 되어서 진짜로 굶어 죽는지 거꾸로 물어봅니다. 그래서 이 두 가지 문제는 한국문제인 동시에 세계적인 문제입니다. 제가 필리핀 민다나오의 분쟁문제, 스리랑카의 분쟁문제, 평화의 문제를 이야기하다가도 한국문제에 대해서 질문을 받으면 힘이 쫙 빠져요. ‘자기나라 문제도 해결하지 못하면서 무슨 남의 나라 문제를 해결하려고 하느냐?’는 생각이 들어 자괘감이 들 때도 있습니다. 이 한반도의 평화문제와 그리고 북한주민의 문제는 우리가 같은 민족이 아니라도 우리가 마땅히 해결해야 할 인류 보편적인 문제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우리들의 문제가 무엇인지를 잊고, 개인 문제에만 빠져 있습니다. 한반도 평화와 통일은 우리문제이기도 하지만 세계 문제입니다. 그래서 이 두 가지 문제는 우리 문제인 동시에 보편적인 인류의 문제이기 때문에 이것을 잘 해결하지 못한다는 것은 인류의 보편적인 문제에 우리가 관심을 갖지 않고 있는 것이 됩니다. 그러므로 이 문제 해결없이 앞으로 대한민국 미래의 비전, 국가발전의 비전을 만들 수 있을까요?” nbsp 청년들이 진지하게 강의를 들었습니다. 시간이 늦었는데도 질문자들이 많아 3명만 한정해서 질문을 받았습니다. 다음 주부터는 먼저 스님의 책 ‘새로운 100년’을 가지고 2번에 걸쳐 세미나를 하게 됩니다. 그래서 스님께서 직접 한 명 한 명 이름까지 써주면서 사인을 해 주셨습니다. nbsp 11주 동안 이 청년들은 책으로, 영상으로, 직접 스님과 역사기행을 같이 하며 스님의 삶과 만나고,스님의 사상과 만나게 될 것입니다. 이를 통해 스님의 민족에 대한 사랑을, 역사와 인류에 대한 사랑을 느끼게 되고, 자연스럽게 보다 가슴 뜨거운 젊은이들로 거듭 나게 될 것입니다. 진정 주인된 삶으로 한 발자국 대딛는 기회가 되기를 기원합니다. 참가한 모든 청년들에게 큰 박수를 보내고 싶습니다. 감사합니다.nbspnbsp
2013년 3월 14일 법륜스님의 하루(프놈펜왕립대학에서 즉문즉설)
오늘은 프놈펜왕립대학에서 스님의 즉문즉설 강의가 열리는 날입니다.nbsp 라오스를 떠나 프놈펜으로 가기 위해 새벽 5시에 라오스의 팍세를 출발하여 다시 캄보디아 국경을 넘어 저녁 6시에 프놈펜에 도착하였습니다. 무려 13시간을 쉬지 않고 달려온 것은 프놈펜왕립대학 코이카강당에서 캄보디아 불자회가 주최하여 캄보디아 교민을 위한 스님의 즉문즉설 강의가 예정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7시 20분 국경에 도착하여 1시간 동안 캄보디아 입국비자를 다시 받는 등 수속을 마치고 캄보디아로 다시 들어섰습니다. 텡트렁 삼거리에서 쌀국수로 간단히 아침식사를 하고 박지나 대표와 박병수 법우, 문태훈 법우는 라따나끼리 사무실로 돌아가고 스님과 서울에서 온 일행은 정 대표님과 함께 프놈펜을 향하여 달리고 달렸습니다. 프놈펜 시내에 들어서자 퇴근시간에 임박해서인지 길이 많이 막혔지만 다행히 6시전에 강의장에 도착할 수 있었습니다. 강연장에는 10여명의 교민들이 미리 와서 스님을 반갑게 맞았습니다. nbsp 지난 7일 캄보디아에 오신 스님을 마중한 김재성 거사님께서 스님께 요청하여 캄보디아 교민을 위한 즉문즉설 법회를 계획하신 것입니다. 캄보디아 불자회는 2012년 12월 창립하여 회원 40명이 매월 2회 정기모임을 갖고 있다고 합니다. 이 법회를 준비한 스탭들은 홍보기간이 짧아 많이 참석하지 못한 것을 매우 안타까워했습니다. 법회에는 100여 명의 교민이 모였습니다. 교민들이 모이는 동안 작년에 SBS에서 방영했던 ‘힐링캠프’를 스님과 함께 보았습니다. 6시 20분 캄보디아 불자회 총무 이승익 거사님의 사회로 행사를 시작하였으며, 작년 스님께서 하신 300강 이야기를 담은 ‘법륜스님의 외출’을 함께 보며 300강의 여운과 감동을 다시한번 느끼고 바로 이어 스님의 법문이 시작되었습니다. nbsp 스님께서는 강단에 오르셔서 요즘시대에 성공신화의 기준을 돈과 지위로 잡고 있는데, 돈과 지위가 필요한 것은 인정하지만 그것만으로 행복해지 않는다, 돈이 많은 것, 지위가 높은 것이 행복의 기준은 아니라고 하시면서 행복이라는 마음작용에 대한 공부가 필요하다, 마음작용의 원리를 알아 원리에 맞게 접근하면 괴로움이 사라지고 행복해진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이어서 왜 즉문즉답이라고 하지 않고 즉문즉설이라고 하는지를 설명하신 후 강단을 내려 오려서 청중들과 눈높이를 맞추시고 의문 나는 것을 물으라고 하셨습니다. 첫 번째 질문을 하신 분은 기독교인인데 참여할 수 있어서 감사하다고 한 후 팟캐스트에서 스님의 즉문즉설을 듣고 스님 팬이 됐다고 하면서 막연한 미래에 대한 불안감과 가장으로 역할을 잘할 수 있을까에 대하여 걱정이 된다고 했습니다. 또 한분은 캄보디아에 온지 1년 반이 됐는데 보증을 서주고 잘못되어 잠 못 이루는 밤이 많아 유투브로 즉문즉설을 듣는다면서 불교신자 중에 젊은 사람이 거의 없고 아들들한테 절에 가자고 하면 창피하다고 안 가려 하는데 그 이유가 뭘까를 물었습니다. 다른 한 여자 분은 세상에 잘 쓰이는 사람으로 살고 싶다는 마음으로 이곳에 왔는데 시간이 지나면서 안락해지니 이전마음으로 생활하는 모습을 본다, 거만한 마음이 생기니 원래의 마음으로 돌아가는 게 잘 안 된다, 혼자 사는 삶의 장점보다 단점이 많다는 걸 느낀다. 그런 자신이 욕심이 많은지 당연한 건지를 물었습니다. 한국식당 2개를 운영 중이라는 다른 한 분은 젊은 후배세대에게 부족한 점이 무엇인지를 물었습니다.nbspnbsp 첫 번째 질문에 대하여 스님께서는 신앙심이 부족하다, 참된 신앙인이 되라고 하시면서 내가 최선을 다하고 설령 실패를 했더라도 그 경험이 쌓이면 더 큰 실패를 막을 수 있다, 실패가 꼭 나쁜 게 아니다, 고통 속에서 하나님의 음성을 듣는다, 내가 원하는 대로 되고자 하면 신앙인이 아니다 라고 하시면서 교회만 다니지 말고 신앙심이 깊어야 한다고 말씀 하실 때 참 편안하고 좋았습니다. 스님께서는 마지막 질문에 하신 말씀을 옮겨봅니다. 요즘 젊은 세대는 선배세대보다 경제적으로 혜택을 받고 교육을 잘 받아서 혜택이라고 생각할 수 있지만 엄마가 다 해줘서 야생성을 상실한 불행한 세대다, 비유하자면 야생동물들이 집에서 키워진 살찐 돼지, 가축 수준이 되어 버린 것과 같다. 지금 5060대는 젊을 때 초등학교만 나와도 자기 아버지보다 유식했다. 그래서 공부를 하든 안하든 나의 문제, 나의 자유 나의 책임이다. 시행착오를 통해 삶의 방식을 터득했기 때문에 자생력이 있다. 자기가 호기심을 갖고 원해서 공부하면 기억력이 5배 높다. 또 단순지식으로만 남지않고 융합이 일어나고 창조력이 생겨난다. 그러므로 야생성을 키우라, 자기 삶을 살아라. 20세가 넘으면 부모에게 의지하지 마라. 판단은 자기가 하고 부모님께 조언을 구해라. 부모 또한 자녀가 결혼문제를 상의하면 ‘네가 살 사람인데 네가 선택해라, 나는 너를 믿는다. 네가 선택하면 OK다 라고 말하라. 자식에게 조언이 필요하지 간섭해서는 안된다.nbspnbsp 그러나 20세 미만은 다르다. 미성년자라고 하는 것은 최종결정권이 없고 미성숙한 사람이다. 20세가 넘으면 삶이 자립이 되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부모에게는 자식이 무거운 짐이 되고 자식에게는 부모가 감옥이 된다. 어릴 때는 보살펴주는 것이 사랑이지만 자식이 커가면 자식의 아픔을 지켜보는 게 사랑이다. 사춘기 때 지켜봐 줘야 한다. 부모는 자식을 독립시키고 정을 끊어야 한다. 자생성, 야생성을 가져라, 고생을 좀 해야 한다. 실패도 해야 한다. 세상의 뜨거운 맛은 젊었을 때 보아야 한다. 자연이 우리에게 가장 좋은 스승이 된다. 나는 새도 내일 먹을 것을 걱정 안 하는데 걱정하는 사람은 결국 새보다 못하다는 것이다. 최선을 다하되 결과에 연연하지 말고 놓아버려라, 방하착. 마음이 가벼워야 한다. 오늘 기뻐야 내일도 기쁘다. 욕망대로 사는 것이 행복이 아니다.nbspnbsp 어떤 경우에도 다음에 말하는 다섯 가지는 꼭 지켜야 한다. 아무리 화가 나도 남을 때리거나 죽여서는 안 된다. 아무리 탐이 나도 훔치거나 빼앗으면 안 된다. 남을 속여서는 안 된다. 타인의 의사에 반해서 성추행, 성폭행을 해서는 안 된다. 남을 괴롭히면 안 된다. 술은 안 먹는 게 좋고 먹더라도 취하면 안 된다.진리를 알고 진리에 귀의하는 태도가 필요하다. 그런 계율이 있어서 자기 삶의 변화를 가져오기를 당부한다. 캄보디아 생활, 유학생활, 봉사생활이 하루하루 삶이 소중하게 생활하기를 바랍니다.nbspnbsp 9시 20분경 법회를 마친 스님께서는 교민들과 저녁식사를 함께하시고 11시 30분발 인천행 비행기에 오르셨습니다.
2013년 3월 13일 법륜스님의 하루(팍세 교육현장 답사)
간밤엔 따엥 지역 전체에 에어컨을 빵빵하게 켜 놓은 듯 시원해서 잘 잤습니다. 오늘은 팍세를 향하여 6시에 출발했습니다. 7반 쯤 또 쌀국수로 요기를 하고 팍세주교육청에 도착했습니다. 팍세주교육청장과 다른 한분의 공무원이 별도의 차로 우리를 안내하였습니다. 스님께서는 10시 10분쯤 구 교육청에 도착해서 구 교육청장과 JTS의 설립 취지와 사업지원 원칙에 대하여 구체적으로 설명하셨습니다. 스님께서 팍세주교육청장이 있는 자리에서 주민들과 협력하여 학교를 신축하면 교사를 보내주겠냐고 물으시자 교육청장은 학교가 있으면 교사를 보낸다고 확답을 하였습니다. 스님께서 필리핀에 학교를 지었는데 정부에서 교사를 파견하지 않았던 경험을 말씀하시자 교육청장은 우선 학교가 급하다고 다시 한번 교사파견을 약속하였습니다. 오늘은 교육청에서는 주로 짓다가 만 학교를 보여주었습니다. 농팡아이라는 학교는 1,2,3학년 41명이 건물을 빌려 교실 하나로 공부를 하고 있고, 조금 떨어진 곳 기둥 일부와 함석지붕만 해놓은 채로 공사가 중단된 학교 현장에 갔습니다. 기둥 하나는 주춧돌이 빠져나가 덜렁덜렁하고, 다른 기둥은 윗부분이 부식이 돼서 곧 부러질 것만 같아 그 상태에다가 자재를 지원하는 것이 오히려 무모하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습니다. nbsp 마을 사람들이 따라왔습니다. 마을 사람들은 매우 적극적이었습니다. 스님께서 주민들을 모아놓고 JTS의 사업원칙을 설명하시고 자재를 지원하면 주민들이 지을 건지를 물었습니다. 주민 315명이 6개월이면 짓는다고 하면서 지붕도 다시 해야 하고 교실 4개가 필요하다며 도와달라고 했습니다. 스님께서 기왕 지으려면 지금 있는 것 철거하고 다른 학교처럼 잘 지어야 하는데 일이 많아지면 주민들이 할 수 있겠냐고 하자 주민들이 모두 서명해서 새로 짓겠다고 주민들 모두 입을 모아 의욕의 보였습니다.nbspnbsp 오늘도 3개 학교를 돌아보았습니다. 오늘은 다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짓다가 만 현장들이었습니다. 도저히 학교를 짓는 건물이라고 보기에 어려운 곳도 어제 돌아보았던 아타푸주의 학교들보다 훨씬 심각하였습니다. 열악한 건물도 건물이려니와 학교 운동장에 나무 한그루 없는 현실이 참으로 답답하고 안타까웠습니다. 돌아오는 길에 정 대표님의 건의로 크메르 왕국시대에 건립하였다는 힌두사원 왓 푸에 들러 모처럼 여유로운 시간을 가졌습니다. 왓푸는 작은 앙코르왓트라고도 불리며 유네스코에서 지정한 인류문화유산이라고 하는데, 일반 사람들에게는 많이 알려져 있지 않다고 합니다. 입장 마감시간 30분을 남겨두고 입장하여 편안하게 사원을 둘러보았습니다. 사원은 건립시기가 오래된 것을 증명하듯 파손이 심했습니다. 더욱이나 딱한 것은 허물어진 석축위에 난 잡초를 제거한다고 불을 질러 연기가 나고 있는 장면이었습니다. 내일은 다시 국경을 넘어 프놈펜으로 갑니다.
2013년 3월 12일 법륜스님의 하루(라오스 사업 예정지 답사)
오늘은 라오스 아타푸주에서 가장 열악한 초등학교 교육 현장을 답사하기로 한 날입니다. 스님께서는 새벽 5시 40분에 팍세의 숙소를 출발하였습니다. 라오스도 우리나라 1970년대처럼 개발 바람이 불기 시작했는지 여기저기에 도로 공사와 건축 공사가 한창이었습니다. 우리가 가려고 한 큰길이 막혀 있어서 아직 어둑한 새벽이라 옆으로 난 작은 길로 들어섰더니 아주 큰 농산물 도매시장으로 통하는 길이었고 농산물을 가득 실은 차들이 비좁은 도로를 가득 메우고 있었습니다. 길이 막히는 바람에 갈 길은 바쁘고 멀지만 한참 열기가 오르는 아침 시장구경을 덤으로 했습니다. 호박, 무, 양배추같이 우리나라에도 나는 야채는 물론 우리나라에는 없는 바나나꽃봉오리 같은 식품재료들이 커다란 바구니에 수북수북 쌓여있고 상인들은 활기가 넘쳐 보였습니다. 2시간 쯤 차를 달려 따엥이라는 곳에서 쌀국수로 아침식사를 하였습니다. 그곳은 긴팔을 입어야 할 만큼 서늘해서 좋았습니다. 우리가 간 식당의 쌀국수 한 그릇 값은 라오스 화폐로 15,000키프이고, 해물쌀국수와 돼지고기쌀국수가 있는데 둘 다 시원하고 단백한 맛이 그런대로 괜찮았습니다. 10시 20분에 아따포교육청에 도착하여 2층에 마련된 자그마한 회의실로 안내를 받았습니다. 교육청 공무원 네 분이 나와 아타푸교육청 관내 각급 학교 현황을 설명하였습니다. 우리가 관심을 가지고 있는 초등학교는 87개에 학생 수는 22,306명이라고 했습니다. 스님께서는 ‘관내에 학교가 없는 마을이 있는지, 학교가 없거나 낡아서 새로 이을 필요가 있는 학교가 있는지, 학교가 낡은 이유는 무엇인지를 물으시고, JTS의 설립취지와 지원하는 방식에 대하여 설명하셨습니다. nbsp ‘우리 단체의 이름 JTS는 Join Together Society의 약자인데 학교를 그냥 100 지원하는 것이 아니고 주민과 정부와 JTS가 함께 일하는 것이라는 것, JTS가 건축자재 및 책상 칠판 등 교육자재를 제공하고 정부는 기술자를 제공하고, 마을사람은 노동력을 제공하는 것으로 총 소요되는 비용을 비율로 얘기하면 JTS가 70, 정부가 10, 주민이 20라는 것, 주민이 참여하여 주민의 자녀가 공부할 학교를 함께 지으면 교육열도 높아지고 학교에 대한 애정이 있다는 것, 주민들은 돈을 내는 것이 아니고 마을 전체가 의논해서 열흘정도 노동력을 제공하는 것이라는 것, 이렇게 학교를 지어서 아이들이 어릴 때 공부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 주자는 것, 상황이 열악할수록 우선순위를 둔다는 원칙을 가지고 사업지를 선정한다는 것, JTS는 이런 방식으로 필리핀 민다나오에서 9년 동안 40개 학교를 짓고, 캄보디아 라타나끼리에서 3년 동안 9개 학교를 완성하고 3개 학교를 신축 중이라는 것, 이러한 JTS의 취지를 이해해서 몇 군데 학교를 방문할 수 있도록 안내해 달라’고 요청하니 공무원들도 충분히 수긍한 듯 표정이 밝아졌습니다. 스님께서는 점심식사를 마치고 초등교육을 담당한다는 여자 공무원과 함께 두 군데 학교와 분교를 돌아보았습니다. 돌아본 학교마다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교실 상태가 열악했습니다. 땅바닥에 벽이 없는 학교도 있고, 교과서를 가지고 있는 학생이 한 명도 없을 정도였습니다. 교사에게 제일 필요한 것이 무엇이냐고 물으니 교사용 교재를 요청하기도 했습니다. nbsp 마을 이장이 오셨는데 JTS의 사업방식을 얘기하자 주민들의 협조를 받기가 어렵다고 하면서 지난 번에도 주민들의 협조가 필요할 때 단합이 잘 안 되었다고 했습니다. 교사도 학부형을 설득할 의욕이 없는 듯 했습니다. 어떤 학교에서는 마을주민 29가구가 떨어져 살기 때문에 힘을 모으기가 어렵다고 했습니다. 스님께서는 여러 학교를 돌아보면서 가장 시급한 문제는 학교 건물이 낡고 교실이 부족한 것도 문제지만 그보다는 학생들에게 교과서가 지급되지 않는다는 점을 가장 걱정하셨습니다. 교사들도 교재가 제공되지 않고 돈을 주고도 살 수가 없는 상황을 시원하게 설명하지 못했습니다. 학교 현장을 답사하고 돌아오는 마음이 무거웠습니다. 스님께서 오늘 저녁에는 어제 밤 머물렀던 팍세까지 가지 말고 오늘 아침식사를 했던 따엥의 게스트하우스에서 쉬자고 하셨습니다. 팍세는 너무 습하고 더웠기 때문입니다. 9시 30분에 모여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스님께서는 오늘 돌아본 학교 지원의 문제점을 분석하고 평가하시는 중 주민참여에 대하여 ‘시간이 흐를수록 주민참여 문제가 난관이다, 주민참여는 단순히 경비절약의 문제가 아니다. 오히려 비효율적일 수도 있다, 가난할수록 자기 살기 바빠 공익적인 마음을 내기가 어렵기 때문에 공공성을 유도하기 위한 목적이 있다, 참여했던 주민이 학교를 준공할 때 기쁨의 눈물을 흘린다, 주민이 참여했을 때 자기일이 되고 아이들 학교 보내는 데 적극적이 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또 주민참여가 적극적으로 이루어지려면 주민들과의 대화가 중요하다고 하셨습니다. 그리고 파견 봉사자들의 생활 원칙, 사업의 원칙에 대해서도 말씀하셨습니다. “학교 건물 하나 덩그렇게 짓는 것이 목표가 아닙니다. 이를 통하여 공공의식, 참여, 정리하는 습관을 가르치는 교육이 됩니다. JTS사람들이 까다롭긴 하지만 성공한다는 믿음을 심어 줍니다. 내 삶의 일부를 어려운 사람과 함께하여 내 일생의 새로운 목표로 정하고 경험합니다. 현지 물가에 맞고, 주민들의 생활에 맞게, 검소하게 주민의 수준으로 살아보고 수행자의 자세로 살 때 소득이 훨씬 많습니다.” 오늘 저녁 스님께서 해외봉사자들에 하신 생활원칙은 일상을 사는 우리들도 지니고 지키면 삶이 한 층 달라질 법문이었습니다. 내일은 팍세주교육청을 방문하고 그 곳 교육현장을 답사할 예정입니다.
2013년 3월 11일 법륜스님의 하루(라오스 방문)
오늘은 라오스로 가는 날입니다. 스님께서는 JTS대표들과 캄보디아 JTS 사업진행 및 재정지출이 적정한 지에 대한 현지확인과 서류를 통하여 감사를 진행한 김기진 감사님으로부터 보고를 받고 8시부터 11시 45분까지 회의를 진행하셨습니다. 점심공양 후 스님께서는 이곳 JTS에서 운전기사로 일하다가 지병인 간암이 악화되어 작년 11월 작고하신 쁘띠의 유가족을 위로하러 가셨습니다. 쁘띠의 미망인은 이 곳 시장에서 잡화상을 운영하고 있는데스님께서 가신다는 연락을 받고 잠시 집으로 왔습니다. 미망인보다는 스님께서 먼저 도착하셨는데 쁘띠의 집은 잘 정돈되어 있고 마당에 화초도 잘 가꾸어져 있었습니다. 스님께서는 생각보다 가난하지는 않은 것 같아 다행이라고 하셨습니다. 미망인이 곧 와서 쁘띠의 영정이 모셔진 대청으로 스님을 안내하자 스님께서는 쁘띠의 영정 앞에 합장하고 해탈주를 독송하신 후 미망인을 위로하고 조위금을 드렸습니다. 밝게 웃는 미망인을 뒤로 하고 돌아오는 마음이 가벼웠습니다. 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 오후 1시, 스님과 서울에서 온 일행 그리고 캄보디아 JTS 정철상 대표님과 책임자 박병수 법우, 캄보디아 JTS 실무자로 새로 파견된 문태훈 법우 이렇게 8명이 라오스를 향하여 출발하였습니다.스님께서는 온가족이 외국여행을 간다고 하셔서 우리는 한바탕 또 웃었습니다. 라오스로 가는 길은 황량하기만 했습니다. 고무나무 숲도 없고 가꾸지 않아 멋대로 자라고 쓰러진 나무와 불에 탄 나무가 뒤섞인 황무지가 지평선 끝까지 이어지는 듯 했습니다. 라오스국경에 도착한 4시 35분까지 스님께서는 서울에서 걸려온 전화를 받고 이메일로 받은 서류를 검토하시느라 잠시도 쉴 틈이 없었습니다. 캄보디아 출국수속과 라오스 입국수속, 세관 통과까지 1시간 10여분이 걸렸습니다. 국경을 지나자 도로변이 끝없이 평평한 것과 가옥 형태는 캄보디아와 별반 다르지 않은데 제법 경지정리가 된 논이 이어지는 것이 이채로웠고 캄보디아보다는 정돈된 느낌이 들었습니다. 평지에 끝이 없을 듯 직선으로 이어진 도로를 달리다보니 어느새 어둠이 내렸습니다. 얼마나 달려왔을까요? 7시 50분 쯤 차가 갑자기 속도를 줄이고 어둠속에서 한 여인이 다가와 다급한 소리로 창문을 두드리며 손가락으로 가리키는 10여m 전방에 오토바이와 사람이 나뒹굴고 사람들이 모여 있었습니다. ‘교통사고다’ 우리들은 반사적으로 몸을 일으켜 환자가 있는 곳으로 달려갔습니다. 라오스 현지인으로 보이는 몸집이 작은 한 남자가 머리와 다리에 피를 흘리며 정신을 잃은 채로 오토바이 옆에 버둥거리고 있었고, 길 건너편에 자지러지는 듯한 아이울음 소리가 나서 달려가 보니 네댓 살 되어 보이는 어린이가 머리에 피를 철철 흘리며 어떤 여인에게 안겨 울고 있었습니다. 아이의 상처가 무척 커 보였고 전문의사의 응급조치를 받지 않으면 생명이 위독해 보였습니다. 정철상 대표님이 수건을 꺼내다가상처 주변의 피를 닦다보니 두개골이 보였다고 했으니까요. 우선 병원의 위치를 알아보고 병원으로후송하는 일이 급한데 둘러서 있던 주민들과 전혀 말이 통하지 않았습니다. 캄보디아 사람인 우리 차의 기사가 주민들에게 말을 시켜보았지만 역시 서로 알아듣지를 못했습니다. 다행히 우리가 오늘밤 묵을 팍세라는 도시에 라오스의 수도 비엔티엔에서 미리 와 있는 통역사 김수연 씨와 전화 연락이 닿았습니다. 주변에 둘러섰던 한 주민과 이중 통화를 해서 겨우 병원이 20여km 정도 거리에 있는 것을 알았습니다. 정 대표께서 수건으로 아이를 감싸 안고 차에 올랐습니다. 다행히 오토바이 옆에 쓰러진 남자는 정신이 조금 들었고 생명이 위독할 정도의 중상은 아닌 듯 했습니다. 박병수 법우와 문태훈 법우가 그 남자를 끈질기게 주무르고 남자를 부축해서 어린 아이를 안고 있는 정 대표님 옆에 태웠습니다. 연고자를 함께 태우고 가려 했지만 누가 연고자인지 알 수도 없고 아무도 나서질 않아 환자들과 우리들만 출발하였습니다. 이 남자가 차에 타자 차안에 술냄새가 진동했습니다. 정신은 조금 들었지만 축 늘어진 남자와 아이가 대화하는 것을 보니 알아들을 수는 없지만 두 사람은 부자지간이었습니다. 쯧쯧쯧, 어쩌자고…….nbsp참 할 말이 없었습니다. 아버지가 만취한 채로 어린 아들을 오토바이 뒤에 태우고 가다가 넘어지는 바람에 아이가 튕겨져 나가 도로바닥에 부딪혀 큰 상처를 입은 것 같았습니다. 아이가 잠들지 않도록 말을 걸고 달래는 정 대표님의 모습은 정말 천사 같았습니다. 남자는 아이를 부르기도 하고 물을 달라는 시늉을 하며 소리쳤습니다. 외상이 있고 아직 어디를 다쳤는지 모르는 환자가 물을 달란다고 주어야 할지 판단하기가 참 어려웠습니다. 그렇지만 물을 안 주기도 참 안타까워서 조금만 물을 주었습니다. 더 달라고 소리치던 이 남자는 고개를 문 쪽으로 돌린 채 토하기 시작했습니다. 우웩 정말로 술을 많이 마셨나 봅니다. 우리 나라에서 자동차로 20km 거리라면 지척인데, 인적도 없는 외국에서 생판 모르는 긴급 환자를 태우고 가는 밤길은 정말 어둡고 멀었습니다. 아이는 자꾸만 울고 마음은 다급한데 혹여 길을 잘못 들까봐 여러 번을 묻고 또 물었습니다. 팍세 시내 어느 큰 호텔에 들어가 영어가 조금 되는 듯한 호텔직원에게 동승을 요청해서 8시 45분 팍세병원에 도착했습니다. 통역 김수연씨가 먼저 와서 응급병상을 준비해 놓아서 아이와 남자를 눕혀 수술실로 들여보내고야 마음을 좀 놓았습니다. 이런 경우에 우리가 이 환자들을 치었다는 오해를 받기 십상이겠다고 예견은 한 일이었는데요, 환자를 병원에 내려놓자 경찰이 올 때까지 기다리라고 했습니다. 9시 10분 쯤 온 경찰은 차의 둘레와 그 남자가 토해놓은 곳까지 다 살펴본 후 웃으면서 우리에게 가도 좋다고 말하였습니다. 9시 반에야 숙소에 갈 수가 있었는데 저녁을 먹으려니 웬만한 식당은 다 문을 닫고 숙소에서 운영하는 식당에는 우리가 주문하는 음식은 다 떨어져서 식당에서 주는 대로 저녁을 때웠습니다.nbspnbsp 스님께서는 ‘오늘 우리가 복을 많이 지을 뻔 했는데 우리가 사고현장 사진을 찍어놓는 바람에 그 기회를 놓쳤다, 좋은 일을 하고도 누명을 써서 비난을 받고 감옥에 가고 벌금을 문다면 이는 지옥에 갈 죄가 소멸되는 큰 복을 갖는 것이 되는데 오늘 우리는 좋은 일을 하고 누명을 쓰지 않아서 큰 복 받을 기회를 놓쳤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 말씀 속에서 우리는 만약 오늘 같은 경우 누명을 썼다면 후회하면서 억울해했을텐데 그럴 경우에도 가볍게, 행복하게 살아갈 수 있다는 것을 다시 새기는 기회가 되었습니다.nbspnbsp 이렇게 라오스에서 첫밤이 깊어갑니다. 내일은 아타푸주 교육청을 방문하고 열악한 교육현장을 답사할 예정입니다.nbsp
2013년 3월 10일 법륜스님의 하루(베트남 사업예정지 답사)
오늘 스님과 함께 베트남 사업예정지를 함께 답사하실 정철상 대표님이 프놈펜에서 밤길을 달려 새벽 4시경에 이곳에 도착하셨답니다. 정 대표님은 프놈펜에서 사업을 하시면서 캄보디아 JTS 대표를 맡고 계십니다. 정 대표님은 지난 9일 부산을 출발하여 호치민을 거쳐, 9일 오후 5시경 프놈펜 공항에 도착해서 하루 먼저 온 새로운 자원활동가 문태훈 법우를 만나 이곳에 오셨는데 밤길이라 속도를 내면 위험해서 낮보다는 훨씬 시간이 많이 걸렸다고 합니다. 낮에도 8시간이 걸리는 거리이거든요. 스님께서는 정 대표님이 조금 쉬시도록 기다렸다가 8시 50분 베트남 국경을 향하여 출발하셨습니다. 국경으로 향하는 길은 포장상태가 좋아서 먼지도 덜 나고 한결 빨리 달릴 수 있었습니다. 도로 연변에는 고무농장과 캐쉬넛 농장이 끝없이 펼쳐지고 있었습니다. 참, 어제 학교신축현장 일대와 사무실로 오는 길에도 캐쉬넛 농장이 연이어 있었는데요, 이 농장들이 대부분 베트남의 자금이 들어와 운영된다고 합니다. 한 시간 가량 국경 쪽으로 달렸을 때 길 옆에 잘 정돈된 후추농장 앞에 싸론이라는 분이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싸론은 캄보디아 JTS 사업 초기에 라타나끼리의 교육청과 관련되는 업무를 하면서 JTS가 사업지를 선정하고 교육청과 협의하는 데 많은 도움을 주신 분입니다. 싸론을 추가로 태우고 조금 더 가다가 경찰서에서 전직 경찰 한 분이 우리의 안전과 통역을 위해 함께 가겠다고 탑승하였습니다. 이후 국경까지 가는 길 연변에는 어제까지는 볼 수 없었던 많은 후추농장이 있고, 후추농장을 새로 설치하는 곳도 많았습니다. 전 세계적으로 육식을 좋아하는 인구가 늘어나게 되니 후추 수요도 증가하여 일어나는 현상이 아닐까 생각했습니다. 10시 30분 국경에 도착하였습니다. 캄보디아인은 신분증만 있으면 간단한 증명서로 국경을 통과하는데 우리는 불과 3일 전에 프놈펜 공항에서 미화로 한 사람당 20달러나 들여 발급받은 비자를 반납하고 출국허가를 받았습니다. 10시 50분 도착한 베트남출입국관리소에서는 캄보디아인을 제외한 외국인은 당일로 돌아와야 한다는 것 입니다. 11시20분에 베트남 입국수속을 마칠 수 있었습니다. 스님께서는 ‘시간이 넉넉하지 않으니 오늘은 국경변 베트남 사람들의 생활정도와 교육시설이 어떠한지 둘러보기로 하자’고 하셨습니다. 베트남의 면적은 33만㎢로 우리나라 남북한 합친 면적의 1.5배 쯤이고, 인구는 2010년 통계로 8천8백5십만 명이며, 사회주의공화제를 실시하는 나라입니다. 스님께서는 아이패드가 보여주는 지도를 보시면서 출입국관리소에서 100m 쯤 들어와 왼쪽으로 난 길로 가보자고 하셨습니다. 아무래도 국경변의 교육여건이 열악하다고 생각하신 게지요. 그 길은 지도상으로는 제법 크고 좋은 길로 표시되어 있지만 들어가자마자 이내 차 한 대가 겨우 지날 정도로 좁아졌습니다. 길이라고 하기도 어려울 정도로 울퉁불퉁한 데다가 구불구불해서 그 길을 따라 국경변을 답사하기는 어렵겠다고 판단하여 돌아나와 플레이꾸시 쪽으로 방향을 잡았습니다. 베트남 영토에 들어서니 캄보디아와는 사뭇 다른 분위기가 느껴졌습니다. 우선 가옥구조부터가 눈에 띠게 달랐습니다. 캄보디아는 우리나라의 누각처럼 일층은 비워두고 2층에 벽을 둘러 주택으로 사용하고 있는데, 이 나라는 바로 땅 위에 집을 짓고 살고 있습니다. 도로 옆으로 펼쳐지는 땅은 평지가 아니라 대부분 구릉으로 이루어져 있는데도 그 지형과 지세를 이용해서 고무농장, 후추농장, 커피농장이 끝도 없이 잘 가꾸어져 있었습니다. 그리고 캄보디아에서는 단 한 그루도 볼 수 없었던 소나무가 나타나기 시작하더니 한두 그루가 아니라 가로세로 줄을 맞춰 조성한 송림이 드넓게 펼쳐져 있었습니다. 스님께서 싸론에게 소나무를 심은 이유를 물으니 ‘자기 생각으로는 미군이 월남전 때 이곳에 고엽제를 엄청나게 살포했는데 아마도 생명력이 강한 소나무를 심은 것 같다’고 대답했습니다. 싸론의 대답을 듣기 전에는 소나무가 목재로서 가치가 있어 계획적으로 조림한 것 아닌가 혼자 생각하고 있었는데 의외의 대답을 듣고 놀랐습니다. 전쟁의 잔혹함에 진저리가 처지는 한편, 전쟁의 상흔을 딛고 그 위험한 지뢰밭을 저토록 쭉쭉 뻗은 아름다운 송림으로 가꾸어 놓은 베트남 사람들의 의지에 마음속으로 갈채를 보냈습니다.도로변에 나타나는 주택과 건물들의 형태나 농토와 숲의 모습, 사람들의 움직임, 농장과 수목의 모습으로 보아 주민들의 생활이 호화롭지는 않으나 매우 안정되어 보였습니다. 스님께서는 ‘베트남 사람들은 미국을 이겼다는 자부심이 있고, 호치민이라는 존경할 만한 지도자가 있다는 긍지가 대단해서 사회를 안정적으로 이끄는 원동력이 된다, 이 점이 존경할 만한 청렴한 지도자가 없는 우리나라와는 다른 점이다.’ 라고 말씀하셨습니다. 플레이꾸시에는 오후nbsp1시쯤 도착하였습니다. 이곳에는 10층이 넘는 고층빌딩도 많고, 꽃가게가 많은 것으로 보아 주민들의 생활이 매우 안정된 도시 같았습니다. 점심을 먹으려면 우선 환전이 필요해서 은행으로 가자 하니 싸론은 귀금속가게 앞에 차를 세웠습니다. 그곳에서 환전을 하면서 우리나라에서도 예전에 명동과 남대문시장 등지에서 달러를 바꾸던 기억이 새로웠습니다. 쌀국수집을 찾으려고 몇 바퀴 돌다가 들어간 식당에서 시원한 국물을 생각하며 해물쌀국수를 시켰는데 라면처럼 구불구불한 면을 볶아서 그 위에 새우와 함께 볶은 야채를 얹은 접시가 나와서 스님과 함께 한바탕 크게 웃었습니다. 밥은 옹기솥에 담겨 나왔는데 바닥에 눌어 있는 밥을 보신 스님께서 물을 부어 숭늉을 만들자고 하셨습니다. 종업원이 와서 보고 밥을 한 솥 더 가져왔습니다. 아마도 밥이 부족해서 그런 줄 알았나봅니다. 아까 주방에서 밥솥을 커다란 설거지통에 담근 채로 밥솥에 붙은 밥을 긁어서 그냥 설거지물에 버리는 것을 보았다고 말씀드리자 스님께서는 이 사람들에게도 누룽지 만들어 먹는 법을 알려주었으면 좋겠다고 하셔서 또 한번 웃었습니다. 밥맛도 좋았지만 아작아작 씹히는 누룽지 맛이 일품이었습니다. 2시 10분에 플레이꾸시를 출발하여 시내 서쪽의 구릉 일대를 돌아보았습니다. 멀리 갔다가 출국수속 마감 시간에 쫓길 일을 감안하여 지름길을 택했는데 능선길이었습니다. 오가는 차나 인적이 거의 없는 한산한 길이었는데도 포장도 잘 되어 있고, 농장은 농장이라 그렇다 치더라도 황무지 마저도 캄보디아와는 다르게 정돈된 느낌이 들었습니다. 3시 50분 베트남출국 수속을 무사히 마치고 4시 15분에 캄보디아 출입국관리소에 도착하여 또 20달러를 지불하고 입국비자를 새로 받았습니다. 삼면에 바다가 있고 휴전선이 막혀 도로로 출입국을 할 일이 없는 우리나라에 비하면 그 나라에서는 당연한 일이 참으로 생소하고 몇 시간 만에 새로 지불하는 비용이 아깝게 여겨졌습니다. 베트남 국경근처를 돌아보신 스님께서는 ‘사람 사는 모습으로 보아 절대 빈곤은 없는 것 같고, 사회주의제도의 틀 안에서 문맹도 없는 것 같아 보인다, 캄보디아와는 다른 방향의 사업이 필요하다, 예를 들면 의료지원 사업 같은 것을 생각해 볼 수 있겠다.’며 시간을 가지고 논의해 보자고 하셨습니다. nbsp 스님께서는 저녁 10시부터 11시 반까지 오늘 베트남 사업예정지답사에 동행하지 못하고 감사를 마무리한 김기진 감사님으로부터 감사결과를 보고 받으시고 내일 아침 8시 감사결과와 사업방향에 대한 회의를 하자고 하셨습니다.nbs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