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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월 20일 법륜스님의 하루(진도, 함평, 군산)
어제 대전 대강연을 마치고 대전정토회에 들어와서 잤습니다. 새벽 5시, 대전정토회에서 오늘 첫 강연이 있는 진도로 향해 달렸습니다. 진도는 땅끝마을 해남보다도 더 남쪽에 있는 섬이었습니다. 아마 서울을 기준으로 했을 때, 300강연 중 가장 먼 곳이었을 것 같습니다. 가는 길에 스님께서 지도를 펴놓고 진도에 대해 설명을 해 주셨습니다. 진도는 전라 우수영이 있었던 곳이며 이 곳 울돌목이라는 곳은 물살이 빨라 이순신 장군이 임진왜란 때 그 물살을 이용해서 12척의 군선으로 133척의 일본수군을 물리친 명랑대첩이 있었던 곳이라고 설명해 주셨습니다. 스님 설명을 듣고 진도로 들어가니, 스님께 먼저 들은 명랑대첩, 우수영, 울돌목 등의 지명이 표시되어 있었습니다. 역사의 현장을 지나가고 있는 느낌이었습니다. 오늘은 강연이 세 군데나 있어서 그냥 역사의 현장 옆으로 지나가는 것만으로 만족해야 했습니다. 아쉬웠습니다. 가는 도중 고속도로에서 간단하게 식사를 하고, 강연 20분 전쯤에 오늘 강연이 있는 진도향토문화회관에 도착했습니다. 강연장에 도착해서 보니 강연 참가자가 10명 남짓 앉아있었습니다. 구기자 수확철이라 사람이 적다며 300강연 중 최저 인원이 오면 어떻게 하냐며 담당자가 걱정을 하고 있었습니다. 진도 인구가 3만 3천명인데, 더군다나 오전 강의인데 700석이 넘는 강연장을 잡아놔서 더 썰렁한 느낌이었습니다. 행사를 준비한 사람의 초조한 마음이 전달되었습니다. 10분 전에 재능기부해 준 진도민족문화예술단의 공연을 재미있게 봤습니다. nbsp 공연을 마치고 뒤를 돌아보니 사람들이 계속 들어오고 있었습니다. 270명이 넘는 사람들이 함께 강연에 참가했습니다. 담당자의 마음이 좀 놓였겠다 싶었습니다. 오늘은 사전에 질문하겠다는 사람이 한 명도 없었다고 하는데, 막상 강연이 시작되니까 질문하는 사람들이 많았습니다. 첫 번째 질문자는 고등학교 3학년생이었습니다. “저는 고등학교 3학년인데요, 원래 이 자리에 오고 싶어서 선생님께 말씀드렸는데 선생님이 안 된다고 하셔서 땡땡이를 치고 여기 왔습니다. 사람들이 살면서 크고 작은 일에서 뭐가 옳고 그른지 모르지만 판단해야 할 때가 있잖아요. 오늘 이 자리에 온 것도 옳은 지 그른지, 어떻게 판단하면 되나요?” “4가지를 빼면 자기 판단대로 해도 돼요. 첫번째, 사람을 해치지 마라. 사람을 죽이거나 때리지 말라는 것입니다. 두번째, 남에게 손해 끼치지 마라. 남의 물건을 훔치거나 뺏지 말라는 것입니다. 세 번째, 남을 괴롭히지 마라. 성추행하거나 성폭행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네 번째, 남을 속이지 마라. 거짓말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이 네가지 빼고는 다 해도 됩니다. 그러나 3살짜리 아이라도 이 네 가지에 대해서는 질서를 잡아줘야 됩니다. 학교 폭력도 이 네 가지밖에 없어요. 인간은 가능하면 이 네 가지 빼고는 자유롭게 행동해도 됩니다. 이것은 종교와 관계 없어요. 이 네가지는 다른 사람에게 피해를 줍니다. 또한 이 네가지를 하게 되면 그 과보가 반드시 다시 나에게 돌아옵니다. 오늘 강연 듣고 도움이 되었으면 결석 처리를 했다 하더라도 감수해야 해요. 결석 처리하는 손해를 봤지만, 여기서 강연을 듣고 이익이 남으면 괜찮아요. 듣고 이익이 아무것도 없으면 ‘아, 내가 여기 온다고 한 판단이 잘못되었구나’ 할 수 있겠죠? 꼭 손해는 아니예요. 뭐든 해 봐야 알죠? 이렇게 몇 번 해 보면 이익이 될 때도 있고, 손해를 볼 때도 있어요. 경험이 쌓이면 판단이 생깁니다. 100 맞는 것은 아니지만 시간이 흘러가면서 경험이 쌓이면 8090 맞는 판단을 하게 됩니다. 젊을 때는 이 네 가지 빼고는 해 보는 거예요. 그렇게 하면서 경험이 쌓여 나가다 보면 제대로 된 판단을 해 나갈 수 있게 됩니다.” “예, 알겠습니다.” 고등학생이 힘있게 대답을 했습니다. nbsp 진도는 귀농자를 비롯해 소위 지식인들이 많은 것 같았습니다. 남편이 술을 많이 마셔서 화를 억제할 수 없다는 아주머니의 질문 이후부터는 거의 사회적인 질문이었습니다. 통일운동을 하다가 8년 징역을 살고 나왔는데 비전향이라는 이유로 딱지가 붙어서 다른 일을 하기도 어려워 귀향살이처럼 진도에 내려와서 산다는 남자분도 있었고, 폐비닐 처리 등에 문제 의식을 느끼며 지구 환경을 걱정하는 아주머니, 왜 전라도 사람들이 홀대를 받는 지 묻는 남자분 등 사회적인 질문들이 많아서 개인의 어려움에 대해서 진솔하게 묻고 답하는, 즉문즉설의 맛이 덜 살아나는 느낌이 있어서 약간은 아쉽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전체 분위기가 상당히 밝고 쾌활한 느낌이었습니다. 진도는 종교간의 갈등이 거의 없는 지역이라고 합니다. 그래서 이번 강연 홍보를 할 때 기독교, 천주교인도 홍보를 많이 도와 주었다고 합니다. 지역 분위기가 스님 강연을 반기는 분위기라 포스터를 붙여주는 은행, 가게들도 많았다고 합니다.오늘 강연에도 비구니스님들과 수녀님이 오셔서 사인회 후 스님과 같이 사진을 찍기도 했습니다.진도는 전체 분위가 좋아서 인상에 남는 지역이었습니다. nbsp 진도 강연을 마치자마자 바로 다음 강연이 있는 함평으로 향했습니다. 다음 강연이 바로 붙어 있어서 휴게소에 갈 시간도 없이 이동을 했습니다. 점심은 미리 준비해 주신 김밥으로 이동하는 차안에서 맛있게 먹었습니다. 진도를 벗어나 함평으로 가는 길 양 옆으로 파란 배추와 대파 밭이 펼쳐져 있었습니다. 그리고 영암을 지나갈 때는 무화과 과수원이 펼쳐져 있어서 이 곳이 남도구나 하는 생각이 절로 들었습니다. 강연장인 함평엑스포공원에 20여분 전에 도착해서 함평군수님과 유마사 주지스님과 강연전 간단한 차담을 했습니다. 군청 총무과장님이 스님께 함평을 방문한 기념으로 글 한 줄을 남겨달라는 부탁을 했습니다. 나비 축제로 유명한 함평에 맞게 스님께서 한 줄 글을 써 주셨습니다. nbsp 강연이 낮 2시라 사람들이 오기가 쉽지 않은 시간인데도 200명이 넘는 사람들이 참가했습니다. 첫 번째 질문은 대선에 대한 내용이었습니다. 대선이 가까이 다가오고 단일화 문제가 연일 신문에 오르내리다보니, 강연장에서도 꼭 대선에 대한 질문은 나오는 것 같습니다. 아들이 41살인데 장가를 아직 못가서 걱정이라는 아주머니도 있었고, 시골에서 시부모, 시고모, 친정부모까지 가까이에서 모시고 산다는 젊은 여자분은 도시에 나가면 도시에 살고 싶고, 시골에 있으면 시골에 계속 살아야 할 것 같아 왔다갔다 하는 이 마음을 어떻게 잡아야 하는 지 물었습니다. 중 3 아들을 둔 아주머니는 이 아이가 사회에 나가는 15년20년 후에는 어떤 일이 각광을 받을지 궁금하다며 진로 상담을 했습니다. 45세 자영업자인 남자분은 계속 경제가 안 좋은데, 앞으로 경제는 어떨 것 같은지, 매출을 더 올릴 수 있는 방법은 어떤 것인지까지 스님께 물어서 사람들이 많이 웃기도 했습니다. 사람들이 정말 모든 것을 다 스님께 묻습니다. nbsp 마지막 질문을 하신 아주머니는 결혼 23년차인데 돈도 벌지 않으면서 라이온스 클럽 회장 등 외부에서 인정받는 남편에 대한 원망이 쌓여 이제는 먹을 수도 없어 정신과 치료를 받고 있다고 했습니다. 아이들과 남편과의 갈등도 심해져 이제는 혼자 감당할 수가 없어서 스님께 질문을 드린다고 했습니다. 정말 절박하고 힘들어 보였습니다. 스님을 만나 이렇게 질문을 하고 답을 얻을 수 있어서 참 다행이다 싶었습니다. 며칠 전 국향대전이 끝났다는 함평엑스코 공원을 한 바퀴 돌아보고 다음 장소로 이동을 했습니다. 다음 강연은 오후 7시 군산시청 대회의실에서 있었습니다. 군산시장님과 사전 차담을 나누면서 새만금 사업에 대해서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새만금 간척사업을 반대하던 수경스님과 수녀님들, 3보 1배를 하던 수많은 사람들의 모습이 떠올랐습니다. 스님께서 자연이 인간에게 재앙을 주는 요소를 막는 것은 어쩔 수 없지만, 사람들의 레져를 위해서 억지로 무리하게 자연을 파괴하는 일은 앞으로 없어야 하지 않겠냐, 자연은 10년, 20년 후가 아니라 적어도 100년 후를nbsp바라보고 사업을 해야 하지 않겠냐며 안타까운 마음을 표하셨습니다. nbsp 군산시청 대회의실은 560석이었는데 600여명이 참가해서 진지하면서도 재미있게 강연을 들었습니다. 질문자와 깊이있게 문답이 오가다보니, 2시간이 언제 지나갔는지 모르게 지나갔습니다. 대선에서 후보를 선택하는 기준을 어떻게 잡아야 하는지, 폭언을 하는 형님과의 관계를 앞으로 어떻게 해 나가는 것이 좋은지, 대기업을 그만 두고 귀농해서 좋아하는 남편이 얄미운데 계속 남편을 데리고 살아야 하는 지, 이혼한 아버지와 엄마 사이에서 어떤 입장을 가져야 하는 지 등 많은 질문들이 있었습니다. nbsp 강연에는 비구니 스님들도 많이 오셨습니다. 군산 흥천사에는 스님께서 몇 번 법문을 한 인연도 있어서 큰스님을 비롯한 여러 스님들이 다 오신 것 같습니다. 감사합니다. nbsp 강연을 마치고 책 사인과 사진촬영을 마치자 오늘이 전북지역 300강 마지막 강연이라며 자원봉사자 한 분이 스님께 꽃다발을 안겨 드렸습니다. 케익의 촛불을 스님께서 후불어서 끄자 자원봉사자들이 손뼉을 치며 감사함을 표했습니다. nbsp 내일은 대전정토회에서 마지막 가을강좌가 있어서 군산강연을 마치고, 대전정토회로 와서 잠을 청합니다. 오늘 하루 정말 바쁘게 다녔지만 각 지역마다 분위기와 특색이 달라서 재미있었던 하루였습니다. 내일 뵙겠습니다.
11월 19일 법륜스님의 하루(대전 대강연)
오늘은 오전 강연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스님께서는 오전에 평화재단에서 일상업무를 보셨습니다.오후 4시경 서울에서 대전으로 출발했습니다. 한 시간 가량 일찍 강연이 있는 충남대에 도착해서 주변 식당에서 칼국수를 저녁으로 먹고 강연장으로 들어갔습니다. 대강연이라 그런지 로비에 많은 자원봉사자들이 안내를 하고, 강연에 참가하기 위해 들어가는 사람들도 많아서 꼭 잔치집 같았습니다.nbspnbsp 수요일 대전정토회에서 마지막 가을 강좌가 있긴 하지만, 300강 중 대전충남지역 시, 군, 구 강연을마지막으로 결산하는 자리라 강연전에 축하공연도 있고, 수행담 발표도 있었습니다. nbsp 아름다운 피리의 선율로 매번 대중들을 감동시키는 조성환님의 공연과 광주에서 올라온 인디가수 주권기 님의 신난 음악에 강연전부터 강연장은 열기로 가득 찼습니다. nbsp 전해종 님이 300강 강연을 준비하면서 자원봉사한 이야기를 담담하게 이야기했습니다. 비오고 바람부는 날도 홍보하고, 낮이고 밤이고 가리지 않고 홍보한 많은 희망봉사단 덕분에 오늘까지 강연을 할 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 정말 수고많으셨습니다. 이어서, 300강 시작부터 지난 온 일들을 돌아보며 영상물을 만들었는데 감동적이었습니다. 1년동안 참 큰 일을 한 것 같다 싶었습니다. 스님도 대단하시지만, 이 일을 있게 만든 희망봉사단의 힘이 무엇보다 크다는 생각도 같이 들었습니다. nbsp 오늘 강연은 충남대 유학연구소와 함께 공동 주최를 했습니다. 유학연구소장인 김세정 교수님은 인사말에서 이 자리에서 청춘콘서트도 했었고, 법륜스님 강연도 하게 되어서 감회가 새롭다며, 종교를 떠나 우리 모두의 멘토인 스님과의 인연을 앞으로도 계속 이어나가겠다고 하였습니다. nbsp 이어 1700여명의 사람들이 큰 박수로 스님을 모셨습니다. 스님께서 활짝 웃으시며 대전시민들에게 인사를 하셨습니다. 2층에 앉은 사람들에게도 손을 흔들며 인사를 하셨습니다. “오늘 대전충남지역 마지막 강의라고 이렇게 사전에 음악공연도 있고 그런 것 같애요. 이 강연은 올해로서는 마치고요, 내년에 가서 여러분들을 뵙도록 하겠습니다. 이렇게 사람들하고많이 만나 보니까 제일 많은 고민이 결국 인간관계였습니다. 주부들이 많다 보니까 자녀고민이 제일 많았고, 그 다음이 부부관계, 그 다음이 부모님 모시는 것이었습니다. 그 다음이 직장, 그 다음이 우울증환자 특히 젊은이들의 우울증이 많았던 것 같습니다. 삼천여명의 질문을 받았으니까 인간이 살면서 겪는 모든 얘기는 다 나온 것 같애요. 민원해결해 준 것도 많아요. 부동산이 안 팔린다고 해서 부동산 업자 소개시켜 주고, 재판이 너무 억울하다고 해서 변호사하고 연결해서 처리해 준 분 등 이렇게 민원처리 해준 것도 있었습니다. 서울 같으면 재개발지역 개발 때문에 자기가 너무 억울하다는 분도 있었고, 요즘은 성추행, 성폭력, 학교폭력 이런 것에 대한 것도 많았습니다. 온갖 얘기가 있었습니다마는 결국 인간이 살아가면서 겪는 삶의 문제가 아닌가 생각합니다. 개인 개인에게는 다 다른 문제이고 성격을 분류하자면 다 다른 얘기겠지만 결국은 모두다 인생사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스님께서 서두에 그동안 강연을 하면서 느낀 부분들을 말씀을 해 주시고 바로 질문을 받으셨습니다. nbsp 충남대내에서 강연을 해서 그런지 오늘은 20대의 질문이 그 어느 때보다도 많았던 것 같습니다. 대학 1학년생인 여대생은 집안형편이 좋지 않아, 공무원 공부를 하는 오빠와 자기가 둘 다 공부하기에는 부모님께 부담을 너무 많이 주는 것 같아 계속 학업을 해 나가야 할지, 취업을 하는 것이 나을 지를고민하고 있었습니다. 9살 난 남자아이를 키운다는 엄마는 잘 키운다고 키웠는데 아이가 불만이 많고 속에 화가 많아 소리도 지르는데 그것을 보고 8번은 참는데 2번은 못 참아서 화를 낸다며 어떻게 해야 하는지 물었습니다. 충남대 다니는 22살의 남학생은 잘 아는 동생이 좋아하는 여자가 있다고 해서 상담을 해 줬는데, 동생이 좋아하는 여자가 자기도 좋아하는 여자인데 어떻게 해야 할지 물어서 사람들이 많이 웃었습니다. 플롯을 전공하고 있는 고등학교 1학년 여고생은 엄마가 싱글맘인데, 월급도 많지 않은데 한 달에 150만원씩 학원비가 들어가야 해서 엄마에게 너무 미안하고 죄스러워 지금의 이 선택이 나중에 엄마와 자기를 행복하게 해 줄지 모르겠다며 울면서 질문을 했습니다. 좋아하는 여자에게 좋아한다고 말을 했는데 그 후 말도 안하는 그 여자가 잊혀지지 않는다는 20살 대학생, 스님의 새로운 백년을 읽고 가슴이 뛰고 너무 감동을 받았는데, 자기가 통일을 위해서 무엇을 할 수 있는 지 묻는 24살 청년도 있었습니다. nbsp 그리고 대전에 살고 있다는 새터민 여성분은 새터민의 현재 실태에 대해서 이야기하면서 한국사회에 정착하기 어려움에 대해서 토로했습니다. 한국 사회가 새터민에 대한 편견을 버리고 소통과 화합 그리고 이 사회에 정착하는 문제들에 대해서 어떻게 하면 좋을지 물었습니다. “사람이 전라도에서 태어나서 서울에 가서 살아도, 충청도에서 태어나 경상도에 가서 살아도 말이 조금 다르고 풍속이 달라서 적응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그런데 하물며 남북이 분단되고 65년이 지난 상태에서 북한에서 홀홀단신으로 남한에 와서 생활을 한다는 것이 얼마나 어렵겠느냐 하는 것은 우리가 짐작을 할 수가 있습니다.” “그러나 이렇게 자꾸 힘든 쪽으로만 보고 생각을 하면 앞으로 희망이 없어져요. 그러니까 입장을 이렇게 바꿔놓고 생각을 해 보셔야 돼요. 북한에서 살 때 먹고 살기도 어렵고, 인권침해도 심각한 상태에서도 지금 2천만 동포가 살고 있고 자기도 살았잖아요. 지금 남한에서 아무리 어렵다고 해도 북한에서 사는 것보다는 나아요, 안 나아요?” “생활은 낫습니다.” “두 번째, 북한을 탈출해서 중국에 갔을 때 중국만해도 북한보다는 천국 같았어요, 그렇지 않았어요?” “천국 같았습니다.” “그런데 처음에는 천국 같았는데 중국에서 살면서 체포되고 송환이 될 위험도 있고 인신매매되고 그렇잖아요? 그래도 북한에 안 돌아가고 중국에 사는 이유는 뭐예요? 북한 돌아가서 살 생각을 하니까 그래도 여기 사는 게 낫겠다해서 중국에 사는 거 아니에요? 그런데 중국에 살면서 한국에 올려고 얼마나 몸부림쳤어요? 한국에 오고 싶다고 다 올 수 있는 게아니었잖아요. 그런데 여기 와서 살아보니까 또 문제가 발생하는 거예요. 이럴 때 여기서 다시 또 못살겠다 해서 캐나다나 영국으로 간다? 미국이나 캐나다나 영국가면 북한사람이라는 차별이 없지만 동양인, 유색인 차별이 있을까요, 없을까요? 캐나다나 영국가면 3D업종 말고 다른 업종 일을 할 수 있을까요, 없을까요? 거기 가면 똑같은 문제가 발생합니다. 즉 북한에서 중국 오면 중국이 살 것 같은 데 살아보면 못 살고, 거기 있다가 한국오면 거기 있던 문제는 없어져서 살 것 같은데 여기 또 다른 어려움이 있습니다. 외국을 가도 또 새로운 문제가 발생합니다. 이렇게 방황하면 인생에 어디를 가도 안 됩니다. 즉 천국에 가도 불평이 생깁니다. 그래서 자기가 생각을 어떻게 해야 되느냐하면 북한에서도 살았는데 한국에서 무엇 때문에 내가 못살겠느냐? 중국에서도 살았는 데 내가 왜 한국에서 못살겠느냐? 내가 3D업종에 근무한다하지만 중국에서 그보다 더 더러운데서 일하고 차별받고 저임금받고 일했잖아요? 그래도 한국에서는 시민권이 주어졌잖아요? 그런데 한국에 와있는 제3세계 노동자 중에는 중국에서의 탈북자들이 사는 것처럼 한국신분없이 불법체류하는 사람이 굉장히 많습니다. 그런 사람은 잡히면 바로 송환입니다. 그런데 새터민들은 신분 주어지죠, 아파트 우선 주어지죠, 정착금 3천만원 주어지죠, 초기에는 생활자금 주어지잖아요, 최저생계비 주어지죠. 그렇기때문에 외국인 불법체류자에 비해서 새터민들은 월등하게 조건이 좋은 거예요. 그런데 다만 어떤 생각을 하면서 못견디느냐 하면 한국사람하고 비교해서 ‘저 사람들은 저렇게 사는데 나는 문제다’ 이렇게 생각하는 거예요. 그렇게 하면 살 수가 없어요. 남한의 교육 하나도 안 받고, 인가친척 없고, 동문도 없으니까 외로운 것이 당연한 것이고, 한국에서 태어난 사람들은 나라에 세금도 내고 일한 게 있었잖아요? 그런데 새터민들은 남한테 이득준 게 하나도 없잖아요? 그런데 지금 정착금도 주고 시민권 준 것만 해도 고맙다고 해야 됩니다. 여기에 불평을 하기 시작하면 살 수가 없어요. 불평을 할 때는 일리가 있고 기여한 바가 있어야 돼요. 이민자에게 정착금을 주는 나라는 전세계에 우리나라밖에 없습니다. 이런 것을 생각하셔서 여기 와서 불편한 것만 생각하지 마시고, 여기의 좋은 점, ‘아, 대한민국에 오니까 시민권도 주고, 정착금도 주고, 어디 가서나 일할 수 있는 권리도 있구나.’해야 합니다. 북한에는 일하고 싶어도 일자리가 없잖습니까? 한국에서는 청소를 하든 농사를 짓든 뭘 해도 먹고 살 수있는 경비를 벌잖습니까? 이런 생각으로 딱 마음먹고 살면 다 먹고 살 수 있게 되어 있습니다. 어려움만 이야기하면 정착하기가 어렵습니다. 전세계 어디를 가도 마찬가지입니다.” 스님의 말씀을 들으니 새터민에 대해서도 명확히 정리가 되는 느낌이었습니다. 북한동포와 관련해서는 워낙 오랫동안 애정을 가지고 살아오셨던 스님이셔서 새터민 정착을 위해서 어떻게 해야 하는지에 대해서 제시해주는 내용도 구체적이고, 관점도 명확히 잡아주셔서 좋았습니다. 질문이 많아서 강연이 조금 늦게 끝났습니다. 스님 강연이 끝나자마자 그동안 300강 자원봉사를 했던 희망봉사단이 우루루 나와 무대를 가득 채웠습니다. 그리고 스님께 감사함을 전하는 꽃다발 증정이 있었습니다. nbsp 스님과 희망봉사단이 다함께 ‘젊은 그대’를 부르며 밝고 힘차게 대전충남지역 강연을 마무리했습니다. 스님도, 희망봉사단도, 그리고 그동안 강연장을 찾아주신 분들도 모두 모두 감사하고 고맙습니다. nbsp 그러나 아직 끝나지 않았습니다. 내일도 바쁘게 하루를 보내야 합니다. 오전 10시에 진도, 2시에 함평, 7시에 군산에서 강연이 있습니다. 마지막 그 순간까지 파이팅입니다 내일 뵙겠습니다.nbspnbsp
11월 18일 법륜스님의 하루(정토불교대학 특강수련)
새벽 5시에 울산 두북에서 문경정토수련원으로 향했습니다. 문경정토수련원에서 토, 일요일 1박 2일간 전국 가을정토불교대학 특강 수련이 진행되고 있었습니다. 오전 8시에 불교대학을 다니면서의 궁금한 점에 대해 질문을 받고 답하는 즉문즉설 법문이 잡혀 있었습니다. 7시 30분경 문경정토수련원에 도착했습니다. 문경답게 공기가 차가웠습니다. “날씨가 영하인 것 같네?”하고 스님께서 물으셔서, 요사채에 걸려 있는 온도계를 보니 영하 1도를 가리키고 있었습니다. 아직 햇볕이 나지 않아 싸늘한 아침공기를 들이키니, 문경에 온 상쾌한 느낌이 온 몸을 타고 내리는 것 같았습니다. 머리 끝까지 명징해지는 느낌이었습니다. 차에서 휴식을 하시다 내리신 스님은 아침 공양을 드시고 수련장인 대강당으로 올라가셨습니다.300여명의 수련생들이 스님을 반가이 맞이했습니다. nbsp “인생에 대한 질문은 전국 300강 하면서 많이 하고 있으니까, 여기서는 실천적 불교사상 공부하면서 들었던 의문들을 한 번 이야기해 봅시다.” 하면서 법문을 시작하셨습니다. 사전 질문지를 받았는데 질문지가 두툼했습니다. 질문이 많았습니다. 중학교 때부터 불교학생회 다녔는데 천당과 지옥이 실제 있는 것인지, 방편으로 있다고 하는 것인지 알고 싶다는 분, 불교와 양자역학의 관계가 궁금하다, 오온개공이고 무아라고 했는데 왜 참회를 해야 하는지?, 이렇게 수행해 나가면 법사가 될 수 있는 지? 앞으로 5년이 통일에 있어 중요한데, 북한은 이에 동조할 준비가 되어 있는지? 죽을 때 관세음보살을 7번 부르면 극락간다는데 사실인지?, 관세음보살이 실존한 인물인지? 오계의 생활규범 중 가무를 즐기지 마라고 했는데 가무의 기능을 평가 절하하는 것이 아닌 지 묻는 분 등 공부를 하면서 막연히 불교나 스님의 활동에 대해 가졌던 궁금했던 많은 내용들이 질문으로 나왔습니다. 스님께서는 한 분 한 분의 질문에 대해서 상세하고 자상하게 답을 해 주셨습니다. 저런 것도 질문하나 싶은 것도, 질문한 사람의 심정을 알고, 하나 하나 설명을 해 주셨습니다. 2시간 넘게 즉문즉설 법문이 이어졌습니다. 마지막으로 스님께서 전체 정리말씀을 해 주셨습니다. nbsp “공부 열심히 하세요. 세상일이라는 것은 정해져있는 것이 아니예요. 우리가 무당이 굿하는것을 틀렸다, 옳다 이야기 할 것이 아니라는 거예요. 어떻게 무당이 되었나, 또 굿을 하면 치료효과가 있는데 왜 치료효과가 있는지 연구하는 게 수행자입니다. 수행자는 연구하는 사람이예요. 그것이 옳으니 그러니 따지는 것이 아닙니다. 윤회가 있나 없나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 인도사람은 저렇게 생각하는 전통이 있구나, 저런 믿음이 있구나 하면 됩니다. 우리도 돼지머리 따서 고사 지내잖아요. 재사 지낼 때 생선 올리잖아요? 이런 것은 문화예요. 저런 문화는 어떻게 해서 생겼을까. 저것은 이런 저런 역사 속에서 생겨났구나하고 이해해 나가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그것을 좋다 나쁘다 보지말라는 거예요. 부처님의 가르침은 어떤 것이든 좋다 나쁘다로 보지 않고, 하나의 현상으로 봅니다. 그러나 그런 현상이나 작용이 지나쳐서 사람을 해치게 되면 비판을 하셨어요. 다섯 가지 계율에 어긋나지 않으면 사람들이 어떤 문화를 즐기든 그런 것을 가지고 너무 간섭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기독교인들이 ‘예수믿으세요 천당 갑니다’ 하는 것은 나쁜 것이 아닌데 불교 믿으면 지옥갑니다 하는 것은 잘못된 것입니다. 그러니 ‘예수천당, 불신지옥’이라고 할 때 ‘예수천당’은 상관없는데, ‘불신지옥’은 타인의 신앙을 비난하는 것이 됩니다. 우리가 그런 것을 보고 세상을 어떻게 좀더 상식적으로 바람직하게 나아가게 할 것인가 하는 것을 연구해야 합니다. 콩과 팥은 달라요. 그러나 콩이든 팥이든 먹으면 몸에 좋은 것은 같잖아요. 같다는 것은 어떤 관점에서 같다고 하는가, 다르다고 할 때는 어떤 관점에서 다르다고 하는가. 이것을 알고 같다는 용어도 쓰고, 다르다는 용어도 써야 합니다. 그러면 인식의 폭이 좀더 넓어지고, 인식의 폭이 넓어지면 감정 기복이 좀 적어지고, 그러면 마음이 편안해지고 세상을 보는 눈이 넓어지고 포용력이 생깁니다. 그렇게 되면 그것이 남편에게도 그렇게 적용되고,자식에게도, 다른 종교에도, 다른 나라 사람에게도 그렇게 적용을 해 나가면 됩니다. 그러면 점점 시간이 흐르면 좀더 통찰력이 생기고, 다른 사람들이 보면 ‘저 사람 지혜롭구나’ 하게 됩니다. 나에게도 좋고 다른 사람에게도 좋은 일이 점점 생겨나는 것입니다. 지금은 살아온 삶의 습관에 딱 갇혀서, 이것은 옳고 저것은 그르고, 거기에 따라서 감정이 일어납니다. 그런 것은 나의 습관, 나의 사고방식, 나의 업식일 뿐이지 이것이 진리의 기준이 될 수는 없습니다.내가 하는 것은 다 틀리고 옳고의 문제가 아니라 나는 이런 습관, 카르마, 업식을 가지고 있구나, 저 사람은 저런 업식, 저런 카르마를 가지고 있구나 하면 됩니다. 그런데서 이해의 폭을 넓혀 나가면 포용력있는 삶이 되고 좀더 여유가 생기고 행복해집니다. 번뇌는 점점 줄어들고 마음의 기쁨은 점점 늘어납니다. 좋고 나쁘다고 하는 감정의 기복으로부터 점점 자유로워져 간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nbsp 스님께서는 불교대학 즉문즉설을 마치고, 대웅전으로 올라가셨습니다. 희망세상 만들기 강연을 시작하고부터 문경정토수련원에서는 1분 1초도 빠지지 않고 목탁소리 울리면서 정진을 해 나가고 있습니다. nbsp 스님께서도 수련원에 오면 잠시 잠시 기도 동참을 해 오셨는데, 오늘도 한 시간 가량 정진을 하셨습니다. 우리가 걷는 이 한 걸음, 한 걸음이 개인에게는 희망이 되고, 더 나아가 남북의 평화와 통일을 이룰 수 있는 밑받침이 되길 기원하며 저희도 스님의 발원에 동참을 했습니다. nbsp nbsp 요사채로 내려오니 일수행을 하고 있던 백일출가생들이 달려 옵니다. 입재를 하고 지도법사님을 뵙고 인사드릴 시간이 별로 없었던 것 같습니다. 밥하다가, 화장실 청소하다가, 빨래 돌리다가 앞치마를 두르고 요사채앞으로 달려옵니다. 스님께서 웃으시면서 “정진 열심히 하고 있죠?” 하시면서 백일출가생들을 격려해 주셨습니다. “하루 하루가 중요합니다. 5일 수련이면 5일이 다 중요하잖아요. 그런 것처럼 하루 하루를 소중하게, 내일 회향해도 회향한다는 생각하지 말고, 마지막 하루까지 정진하는 자세로 임하시기 바랍니다.” 백일출가생들이 스님의 한 말씀이라도 놓치지 않으려는 듯 스님을 바라보는 눈에 힘을 주며 꽂꽂히 서서 열심히 들었습니다. nbsp 문경정토수련원도 햇살이 마당까지 비치는 점심시간이 되니 따뜻한 온기가 느껴졌습니다. 인사를 하고 서울로 향했습니다. 스님께서는 오후에는 평화재단에서 일상 업무를 보셨습니다. 300강이 마무리가 되어 가는 것 같습니다. 빡빡해서 잠시의 틈도 없는 일상이었는데, 조금씩 여유가 생깁니다. 내일도 오전에는 강연 일정이 없고, 오후 7시에 대전 대강연이 잡혀 있습니다. 내일 대전에서 뵙겠습니다. 감사합니다.
11월 17일 법륜스님의 하루(산책, 경주 역사 기행)
오늘 아침 새벽 2시경 울산 두북에 도착했습니다. 저희들은 모두 아침에 잠이 들었는데, 스님 방에는 새벽까지도 불이 켜져 있었습니다. “방에 불 켜 놓고 주무시나 싶었습니다.” “차 타고 내려오면서 충분히 잤잖아.” 스님의 대답입니다. 잠에 대해서 스님이 생각하시는 것과 저희들이 생각하는 것은 많이 다른 것 같습니다. 차안에서 잤지만 내려서 편하게 누워서 더 자야 한다는 생각으로 당연하게 더 잠을 청했던 저희들과는nbsp다릅니다. 조금 늦은 아침을 먹고, 마을 뒷산 너머에 있는 저수지 주변 산책을 했습니다. 아직도 남은 단풍들이 마지막 잎을 붉게 물들이고 있었습니다. nbsp “일주일 전에만 왔어도 진짜 아름다웠겠네.” 하시며 한 시간 가량 걸었습니다. nbsp 풍경이 참 아름다웠습니다. 예쁜 꽃들도 만났습니다. nbsp “어릴 때 이 곳에 많이 와 보셨어요?” “어릴 때는 여기 안 왔지. 어른들이 물이 위험하다고 아이들은 여기에 데려 오질 않았어.”하시면서 자연스럽게 스님 자랄 때의 이런 저런 이야기들을 해 주셨습니다. nbsp 아름다운 풍경과 함께 참으로 오랜만에 가진 여유있는 산책이었습니다. nbsp 산책을 끝내고 경주 법흥왕릉으로 이동했습니다. 평화, 여성, 대학생 리더십 아카데미 수강생들이졸업 수련으로 경주에 역사기행을 왔습니다. 스님께서 신라의 역사에 대해서 설명해 주시면서, 오늘날 우리가 어떤 것을 교훈 삼아야 할 지에 대해서 안내를 해 주셨습니다. 오늘 역사기행을 시작했던 법흥왕릉에서는 가야의 신라 복속과정을 설명해 주시면서, 가야와 신라가 평화롭게 통합해서 신라의 국력이 커지고, 불교 문화가 받아들여져 문화도 훨씬 더 발달하게 된 역사의 경험 속에서, 우리의 남북통일을 어떻게 하는 것이 좋을 지에 대해서배울 수 있다는 말씀을 강조하셨습니다. nbsp 무열왕릉 묘 앞에서는 신라시대 삼국통일의 위업을 이룬 사람들과 신라의 왕족과 역사에 대해서 자세하게 설명을 해 주셨습니다. 설명을 마치고 고분 주변을 한 바퀴 돌면서 각 리더쉽 아카데미별로 사진도 한 컷씩 찍었습니다. nbsp 무열왕릉에서 조금 떨어진 김유신 장군묘로 이동했습니다. 김유신 장군 묘는 참 잘 가꿔져 있었습니다. 삼국통일을 이룬 인물의 한 사람인 김유신 장군은 신하로서는 가장 높은 지위가 주어졌고 나중에는 우리나라에서는 처음으로 신으로까지 숭배된 인물임을 말씀해 주셨습니다. 워낙 스님께서 생생하게 당시의 상황을 설명해 주셔서 김춘추, 김유신, 선덕여왕 등 당시의 인물들이 살아서 이 자리에 올 것만 같았습니다. nbsp nbsp 다음으로 낭산으로 이동했습니다. 나는 죽어서 이 나라를 호위하는 용이 되겠다며 감포앞바다에 묻힌 문무왕을 화장했던 장소인 능지탑 앞에서 스님께서 당시의 역사를 설명해 주셨습니다. 특히, 불교적인 세계관에서 용이 된다는 것은 인간보다 한 단계 아래인 축생인데 어찌 용이 되시겠냐는 주변의 만류에도 내가 용이 되어 나라만 구할 수 있다면 그것이 인간계든, 축생계든 무슨 문제가 되겠냐고 했다던 문무왕의 나라를 위하는 마음이 참으로 감동적이었습니다. nbsp 능지탑을 지나 선덕여왕릉으로 가는 길에 삼국유사에 나온 선덕여왕의 지혜로움을 일러 주는 세 가지 일화를 설명해 주시면서 여왕으로 주변의 업신여김도 많았지만, 지혜로운 왕이었다는 설명을 해 주셨습니다. 특히, 선덕여왕 때 길러진 사람들이 이후 삼국의 위업을 이루게 되었다며 인제 양성에 대한 업적도 설명을 해 주셨는데, 이야기를 들으면서 참 뿌듯한 느낌이었습니다. nbsp 낭산 꼭대기에 있는 선덕여왕릉을 지나 한참 발굴작업이 진행중인 사천왕사지를 지나면서 당나라의 침입과 이를 막기 위해 온 나라가 신앙심으로 나라를 지켜낸 호국의 산물인 사천왕사지 이야기, 망덕사 이야기 등이 곧 살아뛰는 것처럼 생생하게 다가왔습니다. 사천왕사지에서 차를 타고 분황사로 이동했습니다. 그런데 오후 5시가 넘어 분황사 관람시간이 지나서 분황사는 보지 못하고 바로 황룡사로 가서 황룡사에 대한 스님의 설명을 들었습니다. 왕궁을 지으려다가 절을 짓게 된 배경, 호국을 위해서 나라가 짓었던 어마어마하게 큰 절이었던 황룡사와 황룡사 9층 목탑 이야기는 듣기만 해도 우리 조상들의 뛰어남에 자긍심이 솟는 것 같습니다. nbsp 스님은 젊었을 때 힘든 일이 있으면 가끔 황룡사 빈 터에 와서 당시 역사를 떠올리며 눈을 감고 누워 있으면 다시 힘이 나곤 했다고 합니다. 지금까지도 우리 국민들에게 가장 존경받는 스님으로 꼽히는 원효스님의 이야기도 황룡사에서 스님의 설명을 들으면 원효스님의 일생이 그대로 한 편의 파노라마처럼 생생하게 느껴지고, 무애가를 부르며 훌훌 민중속으로 떠난 모습과 지금 이 시간에도 못 먹어서 고통스러운 북한동포들과, 잘 먹어도 정신적으로 괴로워 하는 남한의 사람들의 고통 속에서 그들의 아픔을 들어주며 사람들과 함께 하시는 법륜스님의 모습이 참 많이 닮아있다는 생각도 하게 됩니다. 황룡사에서 역사기행을 마치고 숙소로 돌아와서 저녁 식사를 하고, 7시 30분부터 즉문즉설이 이어졌습니다. nbsp 스님께서는 모두 강연에서 국가는 안전과 평화가 담보되어야 하고, 국민은 민주주의가 더 성숙하고 경제적으로 안정이 되어야 행복해질 수 있다고 말씀하시면서 좀 더 구체적으로 하나 하나 설명을 해 주셨습니다. 국가의 발저을 위해 평화를 통일을 이뤄야 하고, 국민의 행복을 위해 일상속에서의 민주주의 실현을 위한 지방자치제 강화와 삶의 안정을 담보할 공정한 사회와 복지사회를 이뤄야한다고 하셨습니다. 이번 선거에서 누가 한반도를 평화와 통일로 이끌고 가겠는가, 누가 사회를 더 공정하게 만들고 사회안전망을 구축하겠는가를 보고 선택을 하면 우리가 희망을 가질 수 있을 것이라며 정리말씀을 해주셨습니다. 이어 참가자들의 질문을 받는 즉문즉설을 시작했는데, 강의를 하시는 스님도, 강의를 듣는 80여명의 참가자들도 진지했습니다. 2시간 40분 가량을 참가자들 바로 앞에 서서 눈을 마주치며 열강을 하셨습니다. 현 시대의 고민을 함께 나누고, 스님의 지혜로운 말씀을 듣는 값진 시간이었습니다. 오늘은 경주에서 하루를 보냈습니다. 내일은 아침 일찍 문경정토수련원에서 전국 가을정토불교대학 특강이 있어서 아침 일찍 문경으로 이동할 계획입니다. 오늘 하루는 약간 여유롭기도 했고, 스님의 역사 이야기에 풍덩 빠져 선조들에 대한, 우리 민족에 대한 자긍심으로 가슴 뿌듯해진 하루이기도 했습니다. 감사합니다. 내일 뵙겠습니다. nbsp
11월 16일 법륜스님의 하루(서울 동작구, 평화재단 전문가포럼)
오늘 오전은 서울 동작구에서 강연이 있었습니다. 서울정토회관에서 1시간전에 이동했습니다. 출근시간을 지나서인지 차가 막히지 않아서 강연시작 30분전에 도착할 수 있었습니다. 들어가니 자원봉사자들이 곳곳에 서서 사람들을 안내하고 있었습니다. 오늘 강연은 서초정토법당 봄 불대생, 가을 경전반 학생들이 중심이 되어서 홍보를 하고, 준비를 했다고 합니다. 강연 시간이 다 되어 가자 사람들이 우루루 밀려 들어왔습니다. 금새 1층 강당을 다 채우고 이어 2층 강연장도 채워졌습니다. 스님께서 강연하러 나오실 때쯤에도 사람들이 자꾸 들어와 좌석 사이 복도에까지 사람들이 줄지어 앉아 강연을 들었습니다. 540석인데 730명이 와서 강연장을 꽉 채워 강연을 시작했습니다. nbsp 개인적인 질문들이 대부분이었는데 정말 많이 웃었습니다. 강연을 마치고 나가면서도 사람들이 오늘 너무 많이 웃은 것 같다며 웃고 나갈 정도였습니다. 생활 속에서 겪는 어려움들을 이야기했는데, 스님과 함께 고민을 풀어나가다 보면 어렵고 힘든 이야기들도 쉽고 가볍고 별 일 아닌 것이 되어 버립니다. 분명 질문할 때는 무거워 징징대기도 했는데, 스님과의 대화 속에서 다시 웃음을 찾게 됩니다. 300강연이 막바지가 다 되어 가는데, 강연이 진행될수록 더 깊은 속내를 들어내는 사람들이 많아지는 것 같아 약간 안타까움도 생기는 것 같습니다. 스님 강연이 끝나고 나면 저 사람들은 누구에게 물을 수 있을까 싶습니다. nbsp 7년동안 남편에게 잔소리를 들으며 살고 있다면서 결혼이 적성에 안 맞는 것 같다고 하는 철없어 보이는 아이 둘을 가진 34살 아줌마와 스님과의 문답은 거의 배를 잡고 웃는 수준이었습니다. “지난 7년동안 남편에게 하루에 20개는 잔소리를 듣는 것 같애요. 저는 자랄 때 잔소리를 안 듣고 자라서 너무 힘들어요.” “남편 잔소리가 자기가 볼 때 필요 없는 잔소리요, 가만히 보며 맞는 소리예요?” “다 맞는 소리인 것 같아요. 너무 맞는 말이라서 설 자리가 없고 마음이 아파요. 결혼이 적성이 맞는지 확신도 안 서요.” “그걸 지금와서 물어보면 어떻게 해요? 처녀면 모르겠는데, 결혼한 사람이 지금 결혼이 적성이 맞고 안 맞는 게 어디있어요?” “노는 거 진짜 좋아하는 스타일인데 결혼하니까 놀지도 못하고...더 놀고 싶어요.” “애들하고 놀면 되잖아요. 방청소하면서 놀고, 저녁에 남편하고 놀면 되지요. 내가 보기에 맨날 노는 것 같은데 뭐 해요? 뭐하고 놀아야 노는 거예요? 결혼한 여자가 남자 동창들 만나 놀아야 노는 거예요? 그럼 집에서 못살아요. 남자가 마음에 안 들어요? 하나 가지고는 안된다 이 말이예요? 그래도 애 엄만데 애가 클 때까지는 조금 참아야 돼요.” “주변의 유혹도 너무 많아요.” “그럼 쥐약 먹는 거예요. 부부 갈등 생기면 부모 속 썩이죠, 남편과 싸워야죠, 애들 힘들죠.nbsp자기가 지금 잠깐이라도 유혹에 끄달렸다가는 앞으로 나쁜 과보를 톡톡히 받아요. 그래서 그런 것보다는 아까 얘기한대로 수련 좀 하고 봉사하고 이렇게 건강한 사람들과 어울리는 것이 좋아요. 술 먹고 춤추며 노는 것보다는 이런 쪽으로 어울려서 스트레스를 풀어야 돼요. 남편이 생활 문제로 잔소리한다고 하는데 다 이유가 있어요. 음식 만들 때도 채소를 살짝 뜨거운 물에 데쳐야 할 것이 있고 푹 삶아야 할 것이 있고 다 달라요. 그런데 데쳐야 할 걸 푹 삶아서 주니까 남편이 잔소리 하는 거예요. 남편이 그런 걸 잘 아는 사람이니까 좀 배우세요. 미리 물어보세요. 그러면 잔소리가 아니잖아요. 그러면 풀려요. 남편을 스님이라고 생각하고 녜, 녜, 알겠어요, 이러면 돼요. 자꾸 물어보면 니가 알아서 해라 이렇게 하도록 자기가 거꾸로 귀찮도록 계속 먼저 물어요. 집에 오자마자 문 열자마자 물어요. 자꾸 그러면 남편이 나중에 니 알아서 해라, 이렇게 나올 거예요. 이렇게 지혜로워야 돼요. 착하기만 해서는 안 되고 지혜로워야 돼요. 그렇게 하면 버릇도 고치고 그래요. 시어머니 얘기도 잔소리로 듣지말고 인정하면 돼요.” “예, 감사합니다.” 이 분은 꼭 철없는 어린애 같아서, 다들 신랑이 잔소리하며 부인을 키우는 것 같다며 많이 웃었습니다. 오늘도 질문이 많았는데, 미리 예정되었던 질문을 다 마치고 뒤쪽에 있던 여자분이 손을 들어서 마지막 질문으로 받았습니다. nbsp 처음에는 2살 어린 아는 동생이 돈을 너무 밝혀서 불편하다는 질문을 하더니, 뒤 이어 본인의 깊은 속내 이야기를 했습니다. “제가 연애를 한 번도 못해보고 결혼을 했어요. 아버지가 너무 엄했어요. 그래서 밤 9시면 무조건 들어오라고 해요. 남자 만나다가도 9시만 되면 택시타고 들어갈 정도였어요. 그러다 보니 남자랑 같이 있으면 침도 못 삼킬 정도로 긴장을 해요.” “그럼 남자 안 만나면 되지요.” “신랑이 많이 예뻐 해주고 아무 문제없이 행복한데요. 그런데 가끔 다른 남자 생각이 나요.” “그럴 수 있어요.” “내가 좋아하는 남자랑 커피 한 번 마시는 기분을 느껴보고 싶어요. 그렇게 자꾸 잡념이 생겨요.” “충분히 그럴 수 있어요. 여기 앉아 있는 여자들도 다 속으로는 다른 남자이 들 때도 있어요. 남자도 마찬가지구요.” “회사를 다녔는데 연하의 남자가 저를 좋아했었는데 그 때는 그건 아닌 거라 생각했어요. 그래서 상대를 안 했는데 나중에 보니 마음속으로는 미련이 있더라고요. 신랑도 제가 좋아서가 아니라 저희 아버지가 너무 엄격하다 보니 아버지와 반대되는 사람을 만나서 결혼을 했어요.” “아버지가 엄격하다 보니 자기는 사람 만나는 것에 대해 심리적 억압이 있어요. 그래서 지금도 그 심리적 억압에 대한 반발 심리가 생겨나요. 늘 나는 사람을 못 만났다, 나는 사람을 좀 만나야 한다 이런 껄떡거림이 늘 있습니다. 그래서 그런 것이지 남자를 만난다고 꼭 해결되는 것은 아닙니다. 계속 만나고 싶은 갈증이 있는 거예요. 그건 충분히 이해가 되요. 윤리적으로 뭐라고 하지만 자기 심리가 그렇다는 건 이해가 되니까 깨달음의 장이란 수련에 참석해서 자기 상태를 체크해보는 게 좋아요. 솔직하게 점검해보고 마음껏 내 욕구를 충분히 말로라도 풀어버리면 훨씬 줄어요. 그런데 그걸 계속 혼자서 윤리, 도덕적으로 억압하고 있다면 어느 순간에 사고 칠 확률이 높다는 거예요. 그러니까 오히려 편안하게 그런 걸 드러내고 충분히 자기 욕구를 풀어내야 돼요. 이것을 충분히 풀어내면 압력이 줄어서 훨씬 자연스러울 수 있습니다. 사실은 결혼해서 살아보면 무슨 계속 뜨겁고 그런 게 아니잖아요. 그런데 저런 사람은 연애를 너무 못해봤기 때문에 남편이 아무 문제가 없지만 늘 따끈따끈한 뭔가가 없는 게 아쉬워요. 이런 심리적 압박을 잘못 풀면 불행을 자초할 수 있습니다. 이건 인간이면 누구나 갖는 억압된 심리의 분출이기 때문에 그걸 합리적으로 풀어나가는 게 중요해요. 오늘 정말 질문 잘 했어요.” 저는 뒤에 질문한 사람이 700여명이나 되는 사람 앞에서 그런 이야기를 질문하기가 쉽지 않았을텐데 질문한 용기에 박수를 보내고 싶었습니다. 자기 문제를 풀려고 하는 스스로의 의지만큼 자기 숙제는 풀리는 것 같습니다. 한 사람이 평생 억압되어 살거나 아니면 한 가정이 파괴될 수도 있는 사안인데, 이야기를 잘 해 준 것 같았습니다. 속에 있는 억압심리가 잘 해소되기를 기원합니다. nbsp 동작구에서 강연을 마치고 사인회와 단체사진을 찍고 바로 평화재단 평화연구원의 정기 전문가포럼이 있는 프레스센타로 이동했습니다. 프레스센터에도 행사 시작전 여유있게 도착을 해서, 사회자, 발표자, 토론자들과 사전에 충분히 인사할 수 있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nbsp 2시에 심포지엄이 시작되었습니다. 오늘 평화재단 평화연구원 제58차 전문가포럼의 주제는 ‘통일, 외교, 안보정책, 어떻게 추진할 것인가? 대선후보의 정책방향을 점검한다’였습니다. 전 외교부 장관이었던 송민순 장관님의 사회로 두 사람이 3명의 대선 후보의 통일, 외교, 안보정책에 대해서 비교 발표를 하고, 각 캠프의 통일, 외교, 안보 관련 사람들이 나와서 토론을 하는 형태로 진행이 되었습니다. 진지하게 토론이 진행되었습니다. 특히 사회를 본 송민순 전 장관님의 재미있고 내용있는 진행에사람들이 즐거워 했습니다. 세 후보 캠프에서 나온 분들은 저마다 각 후보 정책에 대해서 사람들에게 설명하고, 반론에 대해서 덧붙이고, 다른 캠프의 정책에 대한 일정정도의 비판을 하기도 했습니다. nbsp 기억에 남는 키워드가, 박근혜 후보는 신뢰, 문제인 후보는 평화, 안철수 후보는 과정으로서의 통일이었는데 여기에 대해서 객석에 있는 사람들의 날카로운 질문이 쏟아지기도 했습니다. 오늘 전문가포럼을 마치면서 스님께서 마지막 인사말씀을 하셨습니다. nbsp “저는 대권후보가 잘하겠다고 말하지 말고 ‘내년되면 우리나라가 정말 어렵습니다. 경제문제가 올해보다 더 어려워질 겁니다. 내년에 전부 허리띠 졸라 매야 한다고 국민들에게 말해야 합니다. 그 방법밖에 특별한 길이 없습니다. 제가 대통령이 되면 국민들에게 허리띠를 졸라 매자고 할 때 대통령 특권부터 내려놓겠습니다, 정치인들에게도 특권을 내려놓게 하겠습니다, 이렇게 국가의 지도자가 솔선수범하면서 재벌들에게도 이런 어려운 시절에 고통을 분담하자고, 가진 것을 내어 놓아야 한다고 설득하겠습니다.’ 이렇게 솔직하게 이야기하는 지도자가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마찬 가지로 마찬가지로 남북관계와 미중관계도 풀기가 어렵다고 솔직하게 인정하고, 시작했으면 좋겠습니다. ‘그러나 이명박 정부처럼 대화를 단절하지는 않겠습니다. 우선 조건없이 대화부터 시작하겠습니다.테이블에 먼저 앉아서 사과를 받든 뺨을 때리든 일단 테이블에 먼저 앉아 대화를 시작해 보겠습니다.’ 이렇게 하면 신뢰가 생기지 않을까 생각을 합니다. 우리의 지난 역사를 돌아보면, 우리가 일본으로부터 식민지 지배로 36년간 고통을 겪고 그 응어리가 채 풀리지 않았는데 해방 20년만인 65년도에 한일국교정상화를 했습니다. 사실 그 때 굉장히 감정이 좋지 않았습니다. 그런데도 지나놓고 보면 아직도 일본이 사과도 안 하고 얄밉지만 그래도 한일국교정상화를 한 게 우리 국가발전의 이익이었습니다. 그럼 중국은 어땠느냐. 6.25전쟁 때 100만 중공군이 침공해와서 우리가 많은 피해를 입었습니다. 그런데 사과도 한 마디 안받고 수교했습니다. 그런데 한중수교를 한 지 올 해20년이 되었습니다. 한중간의 교역이 한미간의 교역의 두 배가 넘고 있습니다. 한중수교 참 잘했다고 말할 수 있죠. 그렇다면 남북문제는 어떻게 풀어야 하겠습니까? 남북문제 또한 과거를 따지면 도저히 함께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앞으로 20년 후를 지나서 오늘을 되돌아 볼 때 남북관계에 많은 어려움이 있다 하더라도 이런 악감정 때문에 갈등하고 대립하는 것이 좋으냐, 아니면 대화하고 교류협력하는 것이 좋으냐, 또 분단된 상태로 가는 것이 좋겠느냐, 평화통일로 가는 것이 좋겠느냐를 살펴보면 어떻게 하는 것이 좋은지를 알 수 있습니다. 교류협력을 한다고 하더라도 앞으로도 계속 문제는 생길 겁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남북관계를 개선해 나가는 것이 우리 민족의 미래에 엄청난 발전의 기회가 될 것입니다. 이런 것을 우리가 생각해본다면 남북관계는 현재의 몇 가지 문제로 지체시킬 사안은 아닌 것 같습니다. 우리민족의 미래 비전이 되는 통일문제와 동아시아 평화 공동체로 향하는 외교문제만큼은 누가 되더라도 꼭 해결해 나갔으면 좋겠습니다. 오늘 세 분이 조금 차이가 있지마는 그래도 공통점이 더 많았습니다. 이것은 우리 나라의 큰 복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내년 새로운 대한민국의 희망을 봅니다. 감사드립니다.” 프레스센터 20층 대강당에 사람들이 꽉 차서 끝까지 집중해서 포럼이 진행되었습니다. 조금 더 치열하게 서로 논쟁이 진행되면 더 좋겠다는 생각도 들었지만 이런 자리가 만들어진 것만으로도 충분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nbsp 포럼 후, 사회자, 발표자, 토론자들과 저녁식사를 같이 하고, 평화재단으로 돌아와 스님께서는 한겨레 신문사와 며칠 후 나올 신간 책 관련해서 인터뷰가 있었습니다. 그런 후, 밤을 타고 울산 두북으로 내려왔습니다. 비가 옵니다. 이 비가 그치면 더 추워질 것 같습니다. 그래도 조용히 혼자 앉아 글을 쓰는데, 처마에서 비떨어지는 소리가 아름답습니다. 내일은 평화리더십 아카데미, 여성리더십 아카데미, 대학생 리더십 아카데미 참가자들과 함께 경주 역사 기행이 있습니다. 내일 아침이면 비가 그치겠죠? 내일 뵙겠습니다.
11월 15일 법륜스님의 하루(원주, 인천)
오늘 오전은 원주에서 강연이 있었습니다. 대학을 졸업하고 몇 년동안 원주 치악산 밑에 있던 소쩍새 마을에 자원봉사를 하러 가곤 했었습니다. 처음에는 지저분한 것 같고 이상한 냄새도 나는 것 같아서 원생들과 밥도 같이 먹지 못했던 제가 나중에는 같이 어울러 자고 먹고 뒹굴며 생활했던, 참으로 소중한 경험을 했던 곳이었습니다. 그리고 원주에서 한살림운동을 시작하셨던 무위당 장일순 선생님은 제가 존경하는 분 중의 한 분입니다. 그래서 원주에 가는 발걸음에 약간의 설레임도 함께 했습니다. 서울 정토회관에서 아침 9시에 원주로 출발했습니다. 스님께서는 어제 원고 수정하시느라 한 잠도 못 주무셨다고 합니다. 차에 타자마자 휴식을 하셨습니다. 장거리면 쉴 수 있는 시간도 많았을텐데 서울에서 짧은 거리라 아쉬웠습니다. 강연장에 들어가니 열기가 느껴집니다. 강연장 의자에 사람들이 다 앉고 바닥에 앉고, 옆에 줄줄이 서서 강연을 들었습니다. 분위기가 좋았습니다. nbsp 첫 질문자가 질문을 했습니다. “엄마랑 둘이서 같이 사는데, 나이들어 얹혀 살고 있어서 부담스럽습니다. 엄마가 밭을 팔아서 오빠 빚을 갚아주는 것을 보면서 엄마와 오빠에게 서운한 마음이 일어났습니다. 자식에게 그렇게 해 주는 것이 안 좋다고 스님께서 이야기하셨는데, 그런 엄마를 보면서 불편해 하고 있는 나를 보면서 내가 부모에게 바라는 마음이 있어서 불편했구나 하는 생각은 했지만 혼란스럽습니다.” “어머니 인생이니까 간섭하지 마세요. 지금까지 이야기한 것을 보면 꼭 자기 재산 가지고 이야기하는 것 같애요. 나이가 몇 살인데 그런 생각하고 있어요? 내가 드린 돈도 어디에 쓰든 그것은 어머니 자유예요. 그런데 어머니 돈을 어머니가 어디에 쓰든 그것은 자식이 상관할 바가 아니예요.그것도 어머니 자유예요. 스님의 법문을 남에게 적용하면 안됩니다. 부처님 말씀은 자기에게만 적용해야 합니다. 자기가 이야기하듯이 ‘나도 좀 안 주나?’ 하고 넘겨다 봤더니 안 줘서 서운했던 거예요. 이것이 요지예요. 정신차리고 사세요. 내가 너무 심하게 이야기 했나요? 저런 경우는 욕 좀 얻어 먹어야지?” nbsp 이렇게 강연이 시작되었습니다. 사람들이 많이 웃고 박수도 많이 쳤습니다. 이어서 일어나신 60대가 넘어보이는 할아버지는 온 국민이 통일을 염원하고 있는데, 통일이 언제쯤 될 것 같은지 스님께서 이야기를 해 달라고 해서, 또 대중들이 한 번 신나게 웃었습니다. 할아버지의 간절함이 느껴졌지만 그래도 꼭 스님이 모든 것을 알고 있는 듯, 스님께서 언제 통일이 된다고 꼭 대답을 드려야 할 듯이 질문을 하셔서 사람들이 많이 웃었습니다. 스님께서 지금은 통일이 될 수 있는 가능성이 높고 조건도 좋은데 국민들이 간절히 통일을 원하지 않고, 정치 지도자들이 그렇게 나라를 지도하지 않기 때문에 통일이 어렵다며 통일을 위해서 어떻게 해야 하는지에 대해서 쉽게, 잘 알아들을 수 있도록 체계적으로 말씀을 해 주셨습니다. 저는 스님 설명을 들을 때마다 정말 모든 것이 잘 될 수 있는데도 아직 성숙되지 않은 국민과 지도자로 인해서, 앞으로 더 큰 성장을 할 수 있는 성장동력인 통일이 자꾸 멀리 가고 있는 것 같아서 안타까운 마음이 들어 조급해질 때도 여러 번 있었습니다. 그럴 때마다 스님께서는 세상과 우리가 나아가야 할 길은 알려주시지만 그 행동의 주체는 우리가 될 수밖에 없기에 그런 우리를, 그런 세상을 언제나 지켜봐 주시는 스님의 모습을 떠올리며 다시 일상의 마음으로 돌아오게 되는 것 같습니다. 원주시청에서 30년 공무원 생활하다가 공무원 노조활동으로 인해 잘렸다는 분은 정세에 대해서 스님께 질문을 하면서 쌍용자동차 등 억울한 노동자의 삶에 대해서 스님의 의견을 듣고 싶어 했습니다. 스님과 이 분의 대화를 들으면서, 우리는 언제나 자기 편을 들어주기를 원하는구나, 그렇지 않으면 내가 가진 생각을 쉽게 내려놓지 못하는구나 하는 생각을 했습니다. 스님께서 질문하신 분께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즉문즉설은 객관적으로 사물을 보는 법을 알려주는 것이지 어느 한 쪽을 편들어 주는 것이 아닙니다. 현실을 인정해서, 우리가 이런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은 뭐가 있겠나, 찾아보는 거예요. 사람마다 권리가 똑같지만 현실에서는 노동자와 재벌 회장의 권리가 똑같지 않아요. 이를 개선할 수 있는 최고의 기회는 선거 때예요. 삼성의 이건희회장도 한 표고 저도 한 표예요. 다만 재벌은 돈을 이용해서 언론을 통해 선전을 하거나 할 수는 있겠죠. 그러나 국민들만 깨어있으면 선거 때 바꿀 수 있는 거예요. 지난 30년 돌아보면 조금씩 조금씩 개선되어 왔어요. 이번에 못 고치면 5년동안 싸워서 다음에 고쳐야지요. 이것 가지고 너무 억울해 하면 자기가 먼저 죽어요. 죽음을 통해서 국민들에게 부당한 것을 알릴 수 있지만, 옛날에는 한 사람 죽으면 분개를 했는데,지금 국민들은 죽으면 그것을 불쌍히 여기기보다는 너무 과격하다고 민심이 도로 돌아서요. 이것이 현실이예요. 그러기 때문에 싸우더라도 현명하게 대처해야 합니다. 노동자의 억울함만 가지고 이야기를 하면 동조하는 사람이 10도 안됩니다. 억울한 심정을 굉장히 합리적으로, 시민이 보기에도 이것은 좀 심하지 않느냐 생각할 수 있도록 굉장히 지혜롭게 해야 확산이 됩니다. 일반 국민들이 볼 때 MBC 노동자들이 투쟁하는데 국민 70가 지지해도 해결이 안 됩니다.nbsp이런 사람들이 파업을 해도 국민들은 동조가 안돼요. 그런데 노동자 입장에서는 합당합니다. 기업을 보고 투쟁을 하지 국민을 보고 투쟁을 하는 것은 아니잖아요. 국민의 지지를 받으려면 국민이 어떻게 볼 것이냐를 보고 투쟁을 해야 하는데, 대부분이 노동자들의 억울한 것만 가지고 투쟁을 하기 때문에 국민들의 동조가 안됩니다. 어떻게 승리할 것이냐? 국민의 지지를 얻어야 합니다. 요즘 국민들은 직업으로 청소부 되기도 힘들어요. 공무원 입장에서, 대기업 노동자 입장에서 볼 때는 억울할지 몰라도, 소기업이나 자영업자의 종업원은 노조고 뭐고 할 수도 없어요. 대기업 노동자, 공무원보다 비정규직, 직장 없는 사람들 숫자가 더 많아서 대기업이나 공무원 노조의 투쟁이 배 부른 사람의 소리처럼 들리기 때문에 국민적인 지지가 없는 것입니다.” 스님의 말씀을 들으면서 양극화의 심화로 인해 많은 문제들이 하나 하나 드러나고 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원주에서는 사회적인 문제에 대한 질문으로 진지하기도 했고, 개인적인 문제를 풀면서는 재미있기도 했습니다. 시간이 금방 지나간 것 같았습니다. nbsp 원주 강연을 마치고 평화재단으로 와서 스님께서는 잠시 일상업무를 보시고, 저녁 강연이 있는 인천으로 이동했습니다. 저녁 강연은 인천 송도에 있는 인천대학교에서 진행이 되었습니다. 600여명이 모여서 강연에 함께 했습니다. 인천에서는 서울시청 비정규직으로 있는 분이 동료들과 비정규직 단체 투쟁에 함께 하고 있지 않는데서 오는 부담감과 현재 비정규직에 만족하고 있는 자신에 대해서 스님께 복잡한 심경을 토로했습니다. 스님께서 비정규직은 필요에 의해서 뽑기 때문에 안정적인 정규직보다 더 많은 임금을 줘야 정상인데, 우리나라의 현재 모습은 정규직의 일을 비정규직에게 주면서 임금도 적고, 노동자로서의 권리도 보장되지 않는 비정규직에 대한 문제가 제기되고 있는 것이라며 진정한 노동 해방, 새로운 문명속에서의 노동의 의미에 대해서 깊이있게 정리를 해 주셨습니다. 저는 전체적으로 정리가 되는 것 같아서 참 좋았습니다. nbsp 그리고 통일을 원하는 청년으로서 생활 속에서 실천할 수 있는 방법을 물었을 때는 스님의 「새로운 100년」을 사서 친구들에게 선물하고 함께 스터디모임을 만들어 보는 일, 작은 돈이라도 북한동포를 위해서 성금을 내는 일 등을 말씀해 주셨습니다. 설명을 들으면서, 저도 주변 사람들과 스님의 「새로운 100년」 책을 가지고 세미나를 해 보고 싶단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렇게 주변 사람들에게 과거식의 당위적인 통일이 아니라 우리 민족의 미래비전으로서의 통일을전파해 나가는 것이 정말 필요하겠단 생각을 했습니다. nbsp 인천 강연도 그동안 전국 시군구 300강연 중 인천지역에서의 마지막 강연이라, 사전 공연도 있었고, 300강의 지나간 발자취를 돌아보는 영상물도 있었고, 아이를 가진 엄마가 스님의 희망세상 강연을 듣고 변화된 모습을 이야기한 수행담도 있었습니다. nbsp 마지막에 스님께 꽃다발을 전하고 함께 ‘사랑으로’을 부르며 인천에서의 300강을 마무리했습니다.nbsp단체사진까지 다 찍고 나서니, 이 곳에도 케익을 준비해 놓고 있었습니다. 케익 커팅식을 하는 환한 스님의 미소를 보면서 세상 사람들도 모두 어렵고 힘든 개인 문제가 해결되고, 나아가 사회도 맑고 깨끗해져서 스님처럼 맑고 환한 미소를 모두가 다 지을 수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nbsp 내일은 오전은 서울 동작구에서 강연이 있고, 오후 2시부터는 평화재단 심포지업이 있습니다. 내일은 서울에서의 일정들이네요. 어제 밤을 새며 원고 작업을 마친 스님은 오늘 밤은 푹 주무실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감사합니다. 내일 뵙겠습니다.
11월 14일 법륜스님의 하루(대전 가을강좌6, 충남 농민 후계자 강연)
울산 두북에서 아침 6시 30분에 출발해서 대전으로 왔습니다. 오늘 서울은 0도까지 내려간다더니, 대전 가까이 오니 눈이 흩날리고 있었습니다. 날이 추워지고 있습니다. 옷을 단단히 입고 겨울채비를 해야 할 것 같습니다. 오늘은 가을강좌 6번째 시간이었습니다. 강연전에 스님께서 희망세상 만들기에 대해서 말씀을 하셨는데, 그 중 정치민주화와 경제민주화에 대해서 말씀하신 내용 일부분을 옮겨 봅니다. “우리 사회가 옛날에 비해서 경제적으로 살기 좋아졌고 민주화도 많이 진척이 되었습니다. 그러나 아직 그것이 우리 생활속에서 정착된 것은 아닙니다. 대통령을, 국회의원을, 시장을, 시의원을 뽑을 권리는 우리에게 주어졌는데, 우리가 일상 속에서 시민의 민주적 권리를 행사할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왜 그렇냐하면 우리나라는 모든 권력이 너무 중앙에 집중이 되어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이렇게 중앙에 집중된 권력을 지방분권을 통해서 지방에 돌려줘야 합니다. 지방자치가 더 강화되어야 합니다. 그래서 내가 사는 동네, 내가 사는 지역에서 시민의 권리가 일상적으로 행사될 수 있도록 그런 분권형 국가를 만들어 가야 합니다. 또 경제가 많이 발전하기는 했지만 너무 부가 몇몇 사람들에게, 소수집단에게 집중되어 있기 때문에 우리가 상대적 빈곤감을 많이 느끼게 됩니다. 밥을 못 먹고 사는 것은 아니지만, 옷을 못 입고 사는 헐벗는 수준은 아니지만 그러나 늘 삶이 불안하고 위축되어 있는 것 또한 현실입니다. 이런 문제들을 극복을 할려면 소위 독점된 부를 잘 분배해야 됩니다. 소위 경제민주화가 이루어져야 합니다. 그럴려면nbsp공정사회가 이루어져야 합니다. 너무 가진 사람에게, 재벌에게 불공평하게 권력과 돈이 집중되어 있고 그들에게 유리하도록 룰이 만들어져 있습니다. 또 심판보는 사람들이 그들에게 너무 유리하도록 판정을 하고 있습니다. 이것을 좀 고쳐보자 하는 것이 경제 민주화예요.” nbsp 전체적으로 희망세상 5가지 실천에 대해서 설명을 하시고, 즉문즉설을 시작했습니다. 알 수 없는 불안함이 들 때가 있는데 어떻게 해야 하는 지 묻는 분, 쉬고 싶어 일을 그만 뒀더니 오히려 답답하다며 40대를 행복하게 보낼 수 있는 방법이 뭔지 묻는39살의 미혼여성, 아버지 술버릇이 안 좋아 부모님이 이혼하고 친척집에서 살다가 중학교 때부터아버지랑 살게 되었는데 올 8월에 병으로 아버지가 돌아가셨다는 젊은 여자분은 마침 스님 법문을 접하게 되어 아버지를 감사한 마음으로 보낼 수 있었다며, 이제 혼자서 이 생을 어떻게 담대하게 살아낼 수 있을지 울면서 스님께 질문을 했습니다. 많은 질문이 있었는데, 요즘 질문하는 사람들을 보면 이혼한 사람들이 참 많구나 싶습니다. 이혼한 부부의 자녀들, 이혼한 부인들의 질문들이 많습니다. 상처가 치유되지 않아서 스님 법문을 듣고 용기를 내는 사람, 답답해서 스님께 질문하기 위해서 전국에서 찾아오는 사람들, 이혼한 가정의 불안정한 심리를 가지고 외로움과 어려움을 스님께 토로하는 아이들. 정말 화목한 가정이 건강한 사회의 기반이 되겠구나 하는 생각을 부쩍 더 하게 됩니다. nbsp 오전 강연을 마치고 바로 논산으로 향했습니다. 오후 2시에 젊은 농업인 후계자 대상의 특별 강연이 논산의 상상마당이란 곳에서 계획되어 있었습니다. 전에 안희정 도지사님이 스님께 부탁한 강연입니다. 2시전에 안희정 도지사님도 도착을 해서, 관계자들과 함께 사전 차담을 잠시 나누고 강연장에 들어갔습니다. 강연장에는 젊은 청년들이 쭉 둘러 앉아 있었습니다. 4H 운동을 하는 34살 이하의 젊은 농업인 후계자들이었습니다. 안희정 도지사님도 같이 참가를 했습니다. 스님께서 서두에 먼저 강연을 하시고, 질문을 받는 식으로 진행이 되었습니다. nbsp 스님께서는 앞으로 농업의 발전 방향에 대해서 말씀을 해 주시고, 창조적인 농업인이 되어야 하며,큰 시대적인 흐름을 아는 농업인이 되어야 진정한 성공을 할 수 있다고 하셨습니다. “중국 농산물이 제조 과정이 청결하지 못한 경우가 많습니다. 중국 부유층을 만나보면, 현재는 자동차나 핸드폰은 주로 외제를 씁니다. 이런 사람들은 나중에 먹거리를 대부분 수입해서 먹을 거예요. 그런 것 생각하면 만약 우리가 지금부터 젊은 사람들이 우리의 농산물 수출을 5년, 10년을 내다보고 중국 상위층 사람들의 식재료를 생각하고 농업을 한다면 엄청난 수출상품이 될 수 있을 것입니다.10년쯤 지나면 중국의 자동차 기술이 우리를 따라오기 때문에 자동차 수출은 잘 안될 거예요. 10년 후에는 지금 우리나라의 중국 주 수출품인 자동차, TV, 핸드폰 등 첨단산업은 중국 기술의 발달로 오히려 사양산업이 될 수 있고, 농업분야가 거꾸로 주 수출품이 될 수 있는 가능성이 있어요. 중국 상위 계층 10만해도 그 인구가 1억 4천만명이나 되니 고급식품 수요가 국내하고는 비교가 되지 않습니다. 단순히 벼농사가 아니라 수출을 생각하는 농업 신상품을 개발하면 성공 가능성이 매우 높습니다.환경상품, 웰빙상품 개발이 가능성이 있어요. 농업은 꼭 불리한 부분이라 생각할 필요가 없어요. 성경에 보면 먼저 간 자 뒤에 가고, 뒤에 간 자 먼저 간다는 말이 있어요. 이렇게 새로운 상품을 개발하려면 많은 도전과 실패가 따라야 합니다. 개인이 이 실패를 감당하기 어려우니까 누군가가 뒷받침을 해 줄 수 있다면, 새로운 아이디어로 시도를 한다면 도시에서 월급 받고 일하는 것과는 또 다른 세상을 열어갈 수 있습니다. 농업은 장사처럼 욕심으로 하면 안 됩니다. 진실성을 가지고 꾸준히 개발을 해야 될 문제입니다. 그런데서 지금 우리 나라 자연환경이 비교적 잘 보존되어 있는 충청도나 호남지역은 중국이 발전하면서 서해안 시대가 열리면 새로운 농산물 생산지역으로, 중국 상류층을 대상으로 하는 농산물 수출지역으로 각광을 받을 수 있습니다. 또한 농촌의 자연환경이 잘 보존되면 관광지 개발로도 좋습니다. 중국 사람들은 기수련을 좋아합니다. 우리나라의 수려한 자연환경과 함께하는 기수련 테마 광광 개발을 할 수 있습니다. 관광이 처음에는 먹고 마시는 것이지만, 나중에는 테마관광이 됩니다. 중국인의 관광도 기련과 관련한 테마관광을 하면 굉장히 많은 관광객을 유치할 수 있습니다. 공장 세우는 것만 생각하면 안 됩니다.이제는 산업사회에서 지식정보사업으로 바뀌어 가기 때문에 생각을 바꿔야 합니다.” nbsp 젊은 농민 후계자들의 질문도 굉장히 많았습니다. 현실적으로 농사를 지으면서 생기고 있는 어려움들이라 내용이 구체적이고 현실적이었습니다. 시설농을 하면서 겪는 어려움, 농사짓는 것에 대한 부모와의 세대차이로 인한 갈등, 자연재해로 인한 어려움 등 서천, 예산, 천안 등 충남 지역 곳곳에서 온 젊은 사람들의 고민들이 삶의 치열함을 보여주는 것 같았습니다. 스님께서도 농촌의 어려움을 잘 알고 있는 터라 누구보다도 대화가 깊이 있게 될 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 도지사님이 젊은 농민 후계자들과 편안하게 격의없이 지내는 모습도 보기 좋았습니다. nbsp 강연을 마치고, 안희정 도지사님의 배웅을 받으며 인사를 하고 대전으로 다시 이동을 했습니다. 스님께서는 시간 틈틈이 원고 수정을 하고 계십니다. 원고 수정하는 일이 예삿일이 아닌 것 같습니다. “어젯밤에는 원고를 보면서 계속 고개가 쳐박혀서 나도 모르게 자버렸네. 오늘 밤까지는 다 봐야 할 텐데... ”하십니다. 피로가 축적되어 있어서, 원고 보시기가 쉽지 않을 것 같습니다. 오늘밤에도 아마 스님은 원고와 까만 밤을 하얗게 보내고 계실 것입니다. 대전 저녁 강연은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7시 30분에 시작되었습니다. 질문자들이 많아 모두 강연을 오전보다는 간단히 하고 질문을 받았습니다. 총 9명이 질문을 했습니다. 그 중에는 외교관이 되고 싶은데 공부하기가 싫다는 초등학교 6학년생도 있었고, 수능시험을 친 고3 수험생도 2명이 있었습니다. 서울에서 스님께 질문을 하기 위해 일부러 내려온젊은 여자분도 있었고, 부산에서 13개월 된 아이를 안고 찾아온 부부도 있었습니다. nbsp 이번에 수능을 친 고3 학생 중 한 명은 할머니, 아버지가 심리적 불안함이 있는데 자기도 대학진학에 있어서 불안하다며 대학을 가야 할지, 안 가야 할지 스님께 물었습니다. 또 한 명의 고3 학생은 너무 내성적이고 어른들을 만나면 낯을 가리고 장난도 못 받아쳐서 어떻게 하면 내성적인 성격도 고치고 사람들과도스스럼없이 지낼 수 있는 지 물었습니다. 스님께서는 2명 모두에게 먼저 올 겨울에 깨달음의 장에 다녀오라고 하셨습니다. 첫 번째 질문한 고3생에게는 “아주 훌륭한 학생이예요. 첫째, 엄마 아빠 사이가 안 좋으면 대부분 엄마를 미워하거나 아빠를 미워하면서 자기 신세타령을 해서 문제아가 되는데, 자기는 그 갈등 속에서도 고등학교를 올해 졸업하는 것이니까, 중간에 학교 그만 두는 애들이 얼마나 많은데 그것만으로도 아주 장한 학생이예요. 심리가 쬐끔 불안한 것은 그 정도는 괜찮아요. 엄마, 아빠 싸우는 등살에 그 정도 심리불안 안 하는 애들이 어디 있겠어요? 수능시험도 빼먹고 안 치는 애들도 많은데 친것도 축하드려요.” 하면서 격려를 해 주셨습니다. 두 번째 질문한 고 3 학생에게는, “이번 방학 때 먼저 깨달음의 장에 다녀오세요. 자기를 좀 살펴보세요. 두 번째는 나눔의 장이라는 수련이 있어요. 그렇게 투자를 해서 자기를 드러내는 훈련을 많이 받아야 해요. 그러면 조금 개선이 돼요. 이것이 출발이예요. 전부가 아니고. 그렇게 해서 남하고 대화가 되면 사람들하고 자꾸 어울려야 됩니다. 거북하다고 피하지 말고 억지로라도 연습을 해야 됩니다. 자기 내면에 거부감의 업식이 있는 줄을 모르면 사람 만나는 것을 싫은데 억지로 하게 되니까 스트레스를 받게 돼요. 연습은 하는데 힘이 들어요.그렇기 때문에 자기 업식의 거부감을 알아차려야 해요, 알았죠? 대화하는 중에 나하고 눈이 마주쳤는데 처음에는 눈을 내리깔고 이야기하더니, 지금은 뻔히 쳐다보고 이야기하잖아요? 좋아질 거예요.” 하시며 또한 격려를 해 주셨습니다. 강연을 마치면서도 “오늘 수능 시험친 고 3 학생 두 명이 질문을 했는데, 시험 준비하느라 수고많았다고, 격려의 박수 한 번 보내주세요.”하셔서, 강연에 참가한 전체 대중들이 열렬히 격려의 박수를 보냈습니다. 스님의 마음씀이 고맙고 감사했습니다. nbsp 이제 가을강좌도 다음 주가 마지막이네요. 하나씩 하나씩 마무리가 되어 가는 것 같습니다. 대전에서 강연을 마치고 서울로 이동했습니다. 내일은 오전에 강원도 원주, 오후에 인천에서 강연이 있습니다. 내일 원주와 인천에서 뵙겠습니다. 감사합니다.nbspnbsp
11월 13일 법륜스님의 하루(합천, 울산 대강연)
오늘 오전은 합천 강연이었습니다. 합천은 5만여명의 인구가 있는 군소재진데, 팔만대장경이 보관되어 있는 해인사로 인해 우리 국민이라면 누구나 알고 있는 지명일 것 같습니다. 저도 해인사를 여러 번 다녀봐서 합천이 가깝게 느껴지는 지명이었습니다. 합천종합사회복지관에서 강연이 있었습니다. 낯선 사람들이 주황색티를 입고 열심히 자원봉사를 하고 있었습니다. 모두 합천에 사는, 이번 강연을 위해 모인 자원봉사자들입니다. 열심히 홍보도 하고,자원봉사를 한 분들끼리도 분위기가 좋았다고 합니다. 320석 강연장에 사람들이 가득 찼습니다. 몇몇 분들은 서서 강연을 들었습니다. 350여분이 참가를 했는데, 5060대 아주머니들과 어르신들이 많이 오셨습니다. 스님들도 많이 오셨습니다. 어제 진주 강연에는 30대 주부들이 많이 왔었는데, 오늘은 어제와 참 대조적인 모습이었습니다. 그래서 그런지, 어제는 하하하, 깔깔깔 하며 웃는 젊은 분위기였다면, 오늘은 역사깊은 해인사가 있는 지역이라 그런지, 연세가 드신 분들이 많아서 그런지 강연분위기가 참 젊잖은 느낌이었습니다. nbsp 20살 대학생이 되어서, 평소 생각했던 장기기증 신청을 하려고 했더니 엄마가 반대를 한다는 여대생, 수업시간에 폰으로 게임을 하다가 폰을 뺏겨서 담임선생님과 상담을 했다며 아들을 걱정하는 고2 아들을 둔 엄마, 일을 할 때 의지와 근성이 부족해서 일을 그르친다는 공익요원, 27살 딸아이가 시험쳐도 안되고, 취업을 해도 안된다며 걱정하는 엄마 등 여러 사연들을 오늘도 만났습니다. 86세의 시어머니를 모시고 산다는 60대 가량의 아주머니는 처음부터 스님께 손을 번쩍 들고 씩씩하게 질문을 하셨습니다. “저의 시어머니가 86센데, 옛날 것을 고집하십니다. 초등학교 친구를 찾아간다고 하고, 친정아버지 산소에 찾아간다고 하고, 34일전부터는 우유나 과자는 드시는데 밥을 안 드실려고 합니다. 어떨 때는 답답하기도 하고해서 스님 뵌 김에 여쭤볼려고 이렇게 찾아왔습니다.” “돌아가실려고 하는 것 같네요. 하고싶은대로 하게 해 주세요.” “할아버지 산소에 왜 가시려고 하냐고 물으니까 가고싶은데 어쩌냐고 하십니다. 아무도 없을 때는 빛을 싫어 하셔서, 방의 커턴을 닫고 지냅니다.” “본인이 생각할 때 갈 때가 다 되어간다고 생각하고 있고, 의식이 희미해지고 무의식이 조금씩 올라옵니다. 치매끼가 조금씩 올라오는 증세예요.” “금방 속을 뒤집어 놨다가 정상이 되기도 하고..” “그 분은 자기 이야기만 할 뿐이지, 질문자 속을 뒤집지는 않습니다.” “어머니가 제 속을 뒤집지는 않는데, 스님 법문을 들으면 그렇는데 그게 잘 안 됩니다.” 질문하신 분도 불교TV 스님 법문을 내내 듣고 계신 것 같았습니다. “이성적인 의식이 없어지고, 무의식의 세계에 들어가게 되면 어릴 때 이야기를 계속 하는 거예요.의식이 꿈 속을 헤매는 거예요. 잘 때와 똑같은 증세가 나타납니다. 친구가 보고싶다구요? 녜, 녜, 친구에게 연락 한 번 해 볼까요? 하면 됩니다. 그냥 받아주시면 됩니다.” “친구를 만나보고 오셔도 며칠 있으면 또 만나러 가야 한다고 합니다.” “그러니까 고칠려고 하면 안 됩니다. 안 고쳐져요. 꿈처럼 일어나는 현상이기 때문에 고칠 수가 없어요.” “잠깐 잠깐 그렇고, 그냥 이야기할 때는 평상시와 같거든요.” “그런 것이 심해지면 치매라고 하는 거예요. 일일이 다 따지면 안 된다 이 말이예요.” “요즘은 말씀을 하셔도 아무 말도 댓구 안 하고 내버려 두거든요.” “그러면 안돼요. 서운해 하세요.” “답변을 안 하면 서운해 하고, 그렇다고 계속 말을 할 수도 없어서 답답해요.” “친구가 보고싶다고 하면 아, 녜, 어머니 친구가 보고싶으세요? 하고 이해하는 마음을 내면 됩니다. 산소에 가고 싶다고 하면 녜, 산소에 가고 싶으세요? 하고 받아주면 됩니다. 따지지 말고 그냥 받아만 드리면 됩니다. 모시고 갈 필요도 없어요. 이야기를 다 따를 필요도 없어요. 아버지가 보고싶으신가 보죠? 어릴 때 아버님이 좋으셨어요? 하고 물으면 됩니다. 마음이 열살로 무의식세계로 돌아가서, 어릴 때로 돌아간 꿈 속에서 이야기 하고 있어요. 다시 이야기하지만, 나이가 들면 어린 애가 된다는 것은 의식이 희미해지고 무의식 세계로 빠져든다는 말이예요. 그 시절로 돌아가는 거예요. 그냥 받아 주시면 됩니다.” nbsp 오늘 자원봉사하신 분들 중에는 가족이 함께 봉사한 분들도 있었습니다. 대부분 처음 봉사를 한 분들인데 재미있고 행복했다고 합니다. 스님께서 고맙다고 인사를 하고, 강연장을 떠났습니다. 오후가 울산이라 시간적 여유가 약간 있었습니다. 그래서 합천에서 밀양, 언양으로 국도를 따라 가면서 마지막 가을 구경을 했습니다. 스님께서는 새로운 책 준비를 하고 있는데 원고 수정이 밀려 있어서, 두북으로 들어와 원고수정작업을 하셨습니다. 1시간 30분가량 원고수정작업을 하고 울산 강연장으로 향했습니다. 오늘 울산은 전국 시군구 희망세상만들기 300강연 중 울산지역 마지막 강연이었습니다. 그래서 kbs홀에서 대강연으로 준비를 했습니다. 1800석에 1750여명의 사람들이 참가해서 울산의 마지막 강연을 함께 했습니다. 요술당나귀와 자유인 벤드가 나와 축하공연을 하고, 스님에게 질문을 했던 사람들이 변화된 인생에 대해 수행담 발표를 했습니다. 참 감동적이었습니다. nbsp 특히 저는 두 번째 발표한 분의 내용이 마음에 많이 남았습니다. 하나밖에 없는 귀한 아들에게 뭐든지 해 준 엄마와 그로 인해 숨이 막혀서 결국은 우울증으로 방에 혼자 들어앉아 있던 아들. 엄마가 남편에 대한 참회기도를 하면서부터 아들도 좋아지고, 남편과 아들, 엄마와 아들의 관계가 풀려가는 과정에 대한 이야기를 들으면서 저런 것이 기적이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했습니다. 스님께서 전국 시군구에서 희망세상만들기 300강연을 하면서 가는 곳마다 이런 작은 기적들을 끊임없이 뿌려놓고 가시는 것 같습니다. 괴롭던 사람들의 얼굴에 웃음이 피어나고, 그 웃음이 가족을 웃게 합니다. 희망의 홀씨가 발아해서 노랗고 빨간 꽃을 피우고, 노랗고 빨간 꽃들이 가정을 꽃밭으로 만들고, 어느새 화목해진 가정에 나비가 날아들어 평화로운 사회가 만들어져 가는 것 같습니다. nbsp 수행담 이후에 스님의 즉문즉설이 이어졌습니다. 참가자가 많은만큼 질문자도 많았습니다. 여러 질문자 중에 저는 중학교 2학년 학생의 질문이 마음에 와닿았습니다. 엄마, 아빠가 이혼을 해서 동생과 자기를 앞에 사는 고모가 돌봐주고 있는데, 고모가 고등학교를 인문계 가지말고, 실업계 가서 돈 벌어서 동생 뒷바라지를 해라고 한다며 억울한 심정으로 눈물을 흘리며 질문을 했습니다. 저도 집이 가난해서 고등학교 원서 쓰기 전에 오빠를 위해 실업계에 가라는 말을 듣고 힘들어했던 경험이 있어서 질문하는 학생의 이야기가 더 귀에 잘 들렸던 것 같습니다. nbsp “얼마전에 고모에게 들었는데, 고등학교 실업계로 가서 일을 해라고 했어요. 공부는 못하지만 하고싶은 것이 많아요. 싫다고 말씀드렸어요. 그것 때문에 고모와 싸우기도 했어요. 동생이 공부를 잘 하는데 저는 못하니까, 동생 공부를 받쳐 주라고 하는 거예요. 동생이 군대 가 있는동안 돈을 모아서 동생 등록금을 대 주라는 거예요. 내가 너희 뒷바라지를 다 해 줬는데, 너라고 왜 동생 뒷바라지 못하냐고 이야기합니다. 몇 달전의 일인데, 자꾸 그것이 생각이 나요. ” “조금전 질문한 아주머니가 이혼했다는 이야기 들었죠? 저렇게 서로 악을 쓰면서 오래 사는 것이 나아요, 아니면 저럴 때는 빨리 이혼하는 것이 나아요?” “이혼하는 것이요.” “그런데 왜 저 아주머니가 이혼 못하고 있었을까? 자식들 때문에 그랬겠죠? 엄마는 이혼한 게 잘 했어요, 못했어요?” “잘 했어요.” 스님께서는 질문한 학생이 사회에 나오는 20여년 뒤에는 학벌이 그리 중요하지 않고, 실제 얼마나실력이 있고 능력이 있는지, 얼마나 창조적인 지를 따지게 될 것이다, 꼭 대학에는 안가도 된다, 가고 싶으면 실업계 고등학교 졸업하고 취직을 한 후에 돈을 벌어서 내가 가고 싶은 대학에 가면 그 때 오히려 정말 내가 내 재능을 가지고 하고 싶은 공부를 할 수 있다며 용기를 주었습니다. 그리고 질문자와 동생을 돌봐 주고 있는 고모에 대한 고마움, 부모님에 대해서도 이렇게까지 키워주신 것에 대해 고마움을 가져야 한다고 하셨습니다. 학생은 스님말씀을 잘 받아들이고 처음에 울던 얼굴이 나중에는 환해졌습니다. 중학교 2학년인데 2000여명이 있는 대중앞에서 자신의 어려움을 스님께 질문하는 것을 보면서, 이 아이는 충분히 자신의 어려움을 잘 극복해 나갈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nbspnbsp 스님 즉문즉설이 끝나자, 울산 및 인근 지역 희망세상만들기 마지막 강연을 기념하며 청년들이 꽃다발과 함께 무대 마지막을 장식하며 노래로 대단원의 막을 내렸습니다. nbsp 책사인회를 하고, 자원봉사자들과 단체사진을 찍은 후, 자원봉사자들이 로비 한쪽으로 스님을 모시고 갑니다. 한국전도를 넣은 케익이 준비되어 있습니다.nbsp그동안 강연 준비하느라 수고하신 자원봉사자들끼리 모여 조촐한 행사를 했습니다.nbsp스님과 김용주 대표님이 케익 컷팅을 하고, ‘우리의 소원은 통일’ 노래를 다같이 부르는데 가슴이 뭉클했습니다. 우리의 마음이 한데로 모아지고 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정말 통일이 되어서 이 겨울, 이 추위에 떨고 있을 북한동포들이 하루빨리 고통에서 벗어나게 되었으면 좋겠다는 마음이 올라와 숙연해지기도 했습니다. 언젠가 이뤄질 통일을 염원하며, 오늘 울산 강연도 잘 마무리를 할 수 있었습니다. nbsp 내일은 대전정토회 가을강좌가 있는 날입니다. 낮시간에는 농민후계자를 위한 외부 강연도 잡혀 있습니다. 스님께서는 준비하고 있는 새 책 원고수정 때문에 아마 오늘밤을 꼬박 새실 것 같습니다. 오늘 하루도 다들 수고많으셨습니다. 내일 대전에서 뵙겠습니다.
11월 12일 법륜스님의 하루(진주, 김제동의 어깨동무)
오늘 오전은 진주에서 강연이 있었습니다. 아침 6시에 서울에서 출발해서 천리길 진주로 달려갔습니다. 고등학교 때까지 진주 문화권에서 살았던 저에게는 거리를 지나가는데도 벌써부터 마음이 따뜻해지는 느낌이었습니다. 진주 강연장에 도착하니 분위기가 심상치 않습니다. 강연시간이 임박해지자 사람들이 물밀 듯이 밀려 들어갑니다. 오늘 강연장에는 사람이 엄청 많을 것 같습니다. 720석을 깔았는데, 1200명이 넘는 사람들이 복도에도 앉고 벽에 기대고 서서 강연을 들었습니다. nbsp 2시간 강연이 너무 짧게 느껴지는 시간이었습니다. 재미있었습니다. 소개하고 싶은 구체적인 질문도 많았습니다. 오늘은 그 중 대를 이어 이어지는 업식에 대한 질문 두 가지를 소개합니다. “올해 결혼 29년차 주부입니다. 남편이 고집이 세고, 자존심이 너무 강합니다. 참으면서 지금껏 살아왔습니다. 그런데 큰아들이 26살에 결혼을 해서 결혼 3년찬데 며느리하고 싸워서 안 산다는 이야기가 오고 갑니다. 그 이야기를 들으니 가슴이 덜컹하고 뭐라고 해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어떻게 하면 되나요? 며느리한테 불만을 물어보니 아들이 카드값을 어디에 썼는지 답도 없고 차를 사든 오디오를 사든의논없이 산다고 합니다. 며느리가 울고 있으면 잘못했다고도 안하고 위로도 안한다고 합니다 그래서 크게 싸웠다고 합니다. 큰 손자는 2살이고, 태중 5개월 아이는 이번에 안 산다고 낙태를 했다고 해서 마음이 너무 아픕니다. 이 집 남자들이 아내를 무시하고 권위적입니다. 자기하고 싶은 것은 다 해야 됩니다. 빚을 내어서 해외에도 72번인가 다녀왔습니다. 시장본 것 차에 실어 준다든가 하는 것은 꿈도 못 꿉니다. 그러면 자존심이 상하는 줄 압니다. 시아버지도 그랬고, 남편도 그랬습니다. 그런데 아들도 똑같이 합니다. 내가 살기 위해 새벽기도를 15년간 하면서 참고 참으며 살아왔는데, 큰 아들 가정이 무너진다니 가슴이 아픕니다.” nbsp “자기는 옛날이라 그렇게 참고 살았는데, 요즘 같은 세상이면 그냥 살았겠어요? 못 살았겠죠? 그러니 며느리한테 ‘아이고, 요즘 같은 세상에 그런 남자와 어떻게 사냐? 나라도 못 살겠다’ 하면서격려를 해 주세요. 자기 딸이라면 계속 살아라고 하겠어요?” “저는 기도를 해서라도 아들 가정을 지키고 싶습니다.” “자기가 그렇게 고생을 했으면 깨달은 것이 있어야 하지 않겠어요? 요즘같은 세상에 그런 남자하고nbsp살 여자가 어디 있어요?” “낙태를 하러 갈 적에도 며느리가 아들한테 한 번 더 물어봤대요. ‘아이 지워도 되나?’ 하니까, ‘병원 가려면 가라’ 이랬나 봐요.” “경상도 남자는 주로 그래요. 친구가 ‘우리집에 놀러 오너라’ 하면 ‘응, 갈께’ 하면 될텐데, ‘가면 뭐 주노?’ 하고, 늦게 가면, ‘내 니 죽은 줄 알았다’ 합니다. 말투가 그래요. 제가 중이 된 것도 제가 그런 인간인 줄 알고 여자 속썩이지 않을려고 혼자 사는 거예요. 나는 그래도 내 꼬라지는 알지요? 질문자는 자기가 그런 남자를 겪어보면서 그렇게까지 참고 살 필요가 없겠다 생각하면 며느리에게‘내가 살아보니까 죽을 때까지 그 인간 버러장머리 안 고쳐지더라. 그러니 너는 미리 관 둬라. 애기는 니가 키우면 생활비는 내가 도와줄께.’하고, 손자 만 3살 때까지는 시어머니가 돈을 보내서 도와주고, 3살이 지나면 며느리에게 돈 벌게 하고 손자 좀 봐주세요. 이것은 집안 내력이기 때문에 잘 안 고쳐집니다. 또 며느리가 속 끓이고 살면 손자가 똑 같아집니다. 그러니 우선은 이혼은 아직 시키지 말고, 별거하겠다면 별거를 시켜주세요. 숨겨둔 돈이 있으면 며느리 줘서 도와주고, 아들 만나서 내 아들이지만 남편 닮아가고 있으니 남편이라고 생각하고 욕을 해 주세요. “이 놈아, 니가 니 아버지를 닮아서 벼르장머리가 어째 이리 똑 같노. 요즘 어느 똑똑한 여자가 니랑 같이 살겠노.”하면서 아들을 원수보듯이 야단을 쳐 줘야 합니다. 그러면 고칠 방법이 없는 거냐? 꼭 그렇지만은 않습니다. 고칠려면 내가 인연을 바꿔야 합니다. 그럴려면 내가 남편에게 엎드려서 절을 해야 돼요. 남편이 저래서 아들이 저렇게 된 것이 아니고 남편이 저런 것을 내가 못 받아냈기 때문에 아들이 저렇게 된 거예요. 남편의 영상이 나를 통해 아들에게 가는 거예요. 남편이 잘 해서 참회하는 것이 아니라, 그런 남편을 내가 시비했기 때문에 아들이 그렇게 되었다는 거예요. 남편의 방황을 못 받아내고 남편을 미워하고 원망한 나를 반성해라 이 말예요. 사실은 남편도 그렇게 하고 싶어서 그런 것이 아니예요 시어머니의 원망과 미움을 받아서 그렇게 된 거예요. 그런 업을 받았기에 그렇게 사는 겁니다. 남편도 이러면 안되는데하고 생각하면서도 또 그렇게 살아갑니다. 미안 마음이 있어도 말이 안 나온단 말이예요. 그러니 이렇게 기도하세요. ‘제가 당신 마음을 못 헤아려서 당신을 미워했습니다’ 하고 남편에게 엎드려서 절을 해야 합니다. 내가 변하면 아들에게 조금 영향이 갈 거예요. 혹시 며느리가 이혼을 하더라도손자부터는 안 그럴 거예요. 며느리를 다독거려서 해결하려고 하지 말고, 아들은 야단치고 나는 기도해서 고치고, 이렇게 해서 해결해야 돼요.” “그런데요, 저도 남편하고 안 살고 싶거든요. 그동안 무시당하고 살았고, 이제 아들도 그러니 무서울 것도 없어요.” 이 말에 대중들이 빵 터졌습니다. 며느리는 이혼이 안 된다고 하고는 시어머니는 이혼을 하고 싶다고 합니다. nbsp “그러면 며느리랑 둘이 살면 되겠네요. 지금 남편과 자기랑 두 사람만 생각하면 이혼해도 괜찮아요.그러면 손자가 또 닮습니다. 이혼을 하더라도 참회해서 이 업을 소멸하고 미운 마음을 없애고 난 뒤에 이혼해야 돼요. 그러니 우선은 3년은 기도하세요. 3년 더 살아라고 하는 것은 결혼했으니까 살아라는 것이 아니라, 이것을 풀고 이혼을 하더라도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왕 29년 참고 살았는데 3년 더 못 살겠어요? 참고 살면 안 돼요. 참회해서 풀어야 돼요. 남편이 진짜 불쌍한 사람이구나. 이렇게 미움을 풀고 헤어져도 헤어져야 합니다. 그래야 손자에게 그 업이 내려가지 않습니다. 자기는 15년동안 기도해도 부처를 밖에서 찾았기 때문에 도망 안 가고 산 영험밖에 없습니다. 이제는 인연의 씨앗을 소멸하는 기도를 해야 합니다. ‘남편 마음을 헤아리지 못하고 당신을 미워한 것이 정말 어리석었습니다’ 하고 기도해야 합니다. 물론 하다보면 내가 왜 저 인간에게 참회를 하나 하는 생각이 듭니다. 내가 죽는 한이 있더라도 이 업을 안 물려줘야지 하는 마음으로 며느리를 감싸면 손자에게 업이 안 내려 갑니다.” “예. 그리고 낙태한 아이를 위해 49재를 하는 것이 좋은지 여쭙습니다.” “유아사망의 처지에 있는 100여명의 아이들을 살린다고 생각하고, 북한이나 제3세계 아이들을 위해 보시하세요.” nbsp 스님과 시어머니의 대화를 재미있게 들었습니다. 시어머니, 며느리의 아픔도 이해가 되고, 시아버지와 아들의 소리없는 괴로움도 느껴지는 것 같았습니다. 사람들이 많이 웃고, 박수를 치며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업식이 대를 이어 내려가는 것이 끔찍하단 생각이 들었습니다. 자기도 어쩔 수 없는 업식. 가슴이 아팠습니다. 그런데 또 다른 질문자는 이 업식을 스스로 끊고자 쉼없이 정진하고 있었습니다. “저는 어렸을 때 할아버지가 할머니를 폭행하는 것을 보고 자랐습니다. 그런데 지금은 할아버지가 거동을 못해서 할머니가 똥기저귀 갈고 뒷바라지 하고 있고, 아버지가 어머니한테 폭행하는 것을 봤는데 어머니가 니는 아버지 닮았다고 하는 것을 들었습니다. 그런데 이제 나이가 들어 좋아하는 사람이 생겨 결혼하고 싶은데 아버지처럼 나중에 저도 사랑하는 사람을 폭행할까 봐 두렵습니다. 그래서 스님의 인터넷에 올라와 있는 영상은 다 보고 수백 번도 더 봤습니다. 그 업을 끊고 싶어 매일 108배를 드리고, 부모로부터 독립하는 것이 업을 끊는거라 생각해서 독립해서 살고 있습니다. 한번씩 아버지를 볼 때마다 불편한 마음이 듭니다. 그리고 제가 제 꼬라지를 알다보니 사랑하는 여자와 살다보면 악업을 물려주지 않을까 두려움이 들어 어찌 해야할까 스님께 여쭙고 싶습니다.” “자기도 결혼하면 할아버지처럼, 아버지처럼 여자 때릴 거예요. 결혼을 안하면 됩니다. 안하면 수행할 것도 없어요. 업은 무의식세계에 잠재된 것입니다. 어릴 때 형성된 것이예요. 어릴 때 의식은 나는 절대 술 안 먹어야지, 부인 때리지 말아야지 하지만 습이 되어 있기 때문에 자기도 화가 나면, 술을 먹게 되고, 부인을 때리게 됩니다. 부모가 이혼하게 되면 자식들도 이혼할 확률 높습니다. 이혼 안한 집안의 아이는 성질이 나서 머리는 이혼해야지 하면서 마음은 못합니다. 부모가 이혼하는 것을 보고자란 사람은생각은 안해야지 하는데 현실은 하는 쪽으로 되어 버립니다. 질문자가 결혼 안하면 수행할 것도 없어요. 그런데 결혼을 하려면 내가 그런 업이 있다는 것을 알고수행해서 소멸해야 합니다. 어떻게 할 거예요? 고치고 수행하겠습니다. 그럴려면 맨 먼저 문경정토수련원의 ‘깨달음의 장’이라는 수련을 다녀와서 자기 업을 봐야 합니다.자기가 콘트롤이 안 되는 업이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리고 매일 빠지지 말고 108배 절을 하면서 기도하세요. 엄마가 아버지에게 당하는 것을 보고 아버지에 대한 미움이 있습니다. 아버지를 때려 버려야 할 그 심정으로, 화가 나면 부인을 때립니다. 그래서 아버지에 대한 미움을 없애야 합니다. 그럴려면 아버지에 대한 감사기도를 해야 합니다. 엄마, 아빠가 나를 키워주고 여기까지 왔잖아요? 아버지에 대한 상처가 없으면 부인에게 그렇게 되지 않습니다. 업장소멸하려면 독한마음을 가져야 합니다. 꼭 소멸하겠다고 독한 마음먹고 수행을 하면 결혼을 할 수 있습니다.” “그렇게 하겠습니다. 결혼하겠습니다.” 내 업식을 알고 바꾸려고 노력하는 사람들의 모습이 아름다웠습니다. nbsp 오늘은 젊은 주부들이 정말 많았습니다. 왜 그럴까 하고 물어보니, 이번 진주 희망봉사자들의 홍보 때문이었습니다. 3명이서 정말 열심히 홍보를 했다고 합니다. 플랭카드나 포스터는 붙이면 떼고, 붙이면 떼고 해서다른 방법이 없을까 고민을 했다고 합니다. 그래서 작전을 바꿔서 옷을 예쁘게 잘 갖춰 입고, 여성들이 많이 모이는 약국이나 미용실을 공략했다고 합니다. 주인에게 다가가서 강연 포스터 한 장 가게에 붙이자고 하면, 언제나 고객이 될 수 있는 이 여성들에게 대부분 다 호의적이었다고 합니다.90 이상이 포스터 붙이는 것을 허락해서 포스터가 오랫동안 붙어 있을 수 있었다고 하네요. 2주전까지는 눈에 덜 띄었는데, 강연이 가까이 다가오니까 곳곳에 강연포스터가 붙어 있었다고 합니다. 홍보를 함께 하면서 너무 신심이 났다고 하네요. 신나게 하니까 새로운 아이디어도 떠오르고, 그것이 좋은 성과로 이어진 것 같습니다. 진주 희망봉사자님들, 파이팅입니다. 수고하셨습니다. 진주 강연을 마치고 촉석루를 잠시 돌아보고 왔습니다. 스님께서는 “진주는 여러 번 다녀봤어도 촉석루는 한 번도 안 와 봤네.”하셨습니다. 촉석루에 올라보고, 논개의 의암바위에도 가 봤습니다. 김시민 장군의 동상을 멀리 바라보며 진주를 떠났습니다. nbsp 오늘 저녁 강연은 원래 창원 북콘서트였는데, 장소 관계상 취소가 되었습니다. 그래서 오늘 저녁에는 경북대에서 진행되는 ‘김제동이 어깨동무합니다’ 격려 방문을 하시기로 했습니다. 대구로 가는 도중 창년 우포늪에 들려서 잠시 산책을 하고 다시 대구로 향했습니다. nbsp ‘김제동이 어깨동무합니다’는 평화재단에서 진행하는 프로그램으로, 자살하고 스펙쌓기에 여념이 없는 대학생들을 위한 힐링 토크 콘서트라고 할 수 있습니다. 전국 40개 대학 총학생회와 협약식을 하고현재 매주 월, 화 매일 두 차례씩 주 4번 진행하고 있습니다. 많은 경북대 학생이 참여해서 김제동씨와 즐거운 시간을 보냈습니다. 스님께서도 콘서트 전에 도착해서 김제동씨와 인사를 나누고, 한 쪽 객석에 앉아 관람을 하셨습니다. 제가 보기에는 처음 김제동씨 콘서트할 때보다 훨씬 안정되고, 내용성 있게 느껴졌습니다. 진심을 가지고 하는구나 싶어서 참 고맙고 감동적이었습니다.nbspnbsp nbsp 콘서트가 1시간 20분이 지나갈 무렵, 김제동씨가 오늘 이 자리에 법륜스님께서 참가를 했다며 소개를 하자, 참가한 대학생들이 뜻밖의 스님의 등장에 환호를 하며 스님을 반가이 맞이합니다. 20여분간 대학생들과 즉문즉설을 하신 스님께서는 질문자들이 서로 질문하겠다며 손을 이쪽 저쪽에서 번쩍 번쩍 들고 있는데, 김제동씨 무대임을 대중들에게 알려주듯이 웃으며 내려와 객석 자리에 다시 앉아 콘스트 마치고 나온 김제동씨를 안아주고 자리를 떴습니다. 스님께서 어르신들을 모실 때 보면 정말 어르신들을 존중하고 깎듯이 공손한 자세로 당신의 자세를낮추는 모습입니다. 오늘 같은 날은 김제동씨가 손 아랫사람인데도 참으로 깎듯하고 겸허한 스님 모습에 저도 같이 숙연해지는 느낌이었습니다. 오늘은 오랜만에 여유가 있었던 날이었습니다. 내일은 오전에는 합천에서 강연이 있고, 오후에는 울산 대강연이 있습니다. 내일은 경남에서 보내는 하루가 되겠네요. 내일 뵙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