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님의하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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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년 1월 9일 법륜스님의 하루(라즈기르)

수자타 아카데미에서의 마지막 밤을 보냈습니다. 새벽 4시 30분에 일어나 5시에 수자타 아카데미에서 라즈기르로 향했습니다. 짙게 안개가 끼어 차가 속도를 내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예상 시간보다 한 시간 늦게 라즈기르에 도착했습니다. 날도 추웠습니다. 스님께서도 “무슨 날씨가 이렇게 춥나?”하면서 발토시를 하셨습니다. 인도가 많이 춥다고 옷 준비를 단단히 하라고 해서 설마 하면서도 겨울 옷 준비를 많이 해 왔는데,정말 날이 많이 추워서 안 입을 줄 알았던 겨울옷을 겹쳐 입고 인도의 새벽을 보내고 있습니다. “라즈기르는 북인도의 정치, 경제, 문화의 중심지로 꽃피우던 곳으로, 당시 강대국이었던 마가다국의 수도였습니다. 라즈기르는 부처님과 인연이 깊은 고장입니다. 부처님은 카필라바스투를 떠나 출가하여 이 곳에서 두 분의 스승을 만나 수행하였고, 빔비사라왕과 첫 만남을 가진 곳이기도 합니다. 부처님이 성도 후 1000명의 비구를 이끌고 돌아와 오랫동안 머물면서 교화설법하여 빔비사라왕은물론 사리풋트라와 목갈리나, 마하 가섭 등 유명한 제자의 귀의를 받고 최초의 불교 사원인 죽림정사를 기증받은 곳이기도 합니다.” 스님께서 라즈기르에 대해서 설명을 해 주셨습니다. 라즈기르에서 맨 먼저 간 곳은 영축산이었습니다. 영축산 오르는 입구에는 빔비사라왕이 말에서 내려 부처님을 뵈러 올라가는 빔비사라 로드가 시작되는 곳이 표시되어 있었습니다. 이 곳에서 선생경이 설해지기도 했고, 데바닷타가 돌을 굴려부처님 발을 다쳤을 때, 아난존자가 이 곳까지 부처님을 엎고 내려와 지이바카로부터 응급 처치를 받은 곳이기도 하다는 스님의 말씀에 그 당시의 상황이 그대로 느껴지기도 했습니다. nbsp 영축산으로 천천히 올라갔습니다. 부처님은 이 산에 머무시면서 반야심경, 법화경 등 잘 알려진 대승경전이 설하셨다고 합니다. 부처님이 계셨던 곳, 빔비사라왕이 직접 이 곳까지 걸어와서 부처님을 친견하던 곳, 부처님의 제자들이 수행하던 굴들, 데바닷다가 돌을 굴린 곳... 2600년전의 일들이 어제 일처럼 가깝게 다가오고, 상상 속의 부처님이 아니라 현실의 살아계셨던부처님으로 생생하게 다가왔습니다. nbsp 영축산 정상에서 참배를 하고, 경전을 독송하고, 잠시 부처님 당시를 생각하며 명상을 했습니다. 부처님 이 곳에 앉아 설법을 하셨던 부처님... 스님께서는 영축산을 올라가고 내려오면서 영축산과 부처님, 빔비사라왕에 대한 이야기를 자세하게 말씀해 주셨습니다. 영축산에서 얼마 떨어지지 않은 빔비사라왕 감옥터로 이동했습니다. 가는 길 양 옆에 부처님의 주치의였던 지이바카 망고동산과 집터를 지나쳐 갔습니다. 빔비사라왕 감옥터에서는 빔비사라왕과 위제희 부인, 아들 아자타삿투, 데바닷다에 대한 이야기를재미있게 해 주셨습니다. 이 곳은 또한 위제희 부인을 위해서 관무량수경이 설해진 곳이기도 하다고 하셨습니다. nbsp 이 곳에서 각 조별로 아침을 먹고 다음 순례 장소인 죽림정사로 향했습니다. 죽림정사에서도 참배를 하고 경전독송을 하고, 명상을 했습니다. 스님께서 죽림정사에 대한 설명을 해 주셨습니다. “죽림정사는 라즈기르 북문 밖으로 나가면 멀지도 않고 가깝지도 않은 거리에 위치한 최초의 정사입니다. 라즈기르 빔비사라왕이 부처님께 공양을 하겠다고 여러 번 청했으나, 부처님이 거절하시자 빔비사라왕이 부처님께 기증한 곳이 죽림정사입니다. 코살라국의 수닷타 장자가 사위성에 지은 기원정사의 모델이기도 합니다.” 죽림정사는 대나무가 많았으나, 2년 전 ‘대나무 꽃’이 피어 모두 죽고, 새롭게 대나무숲을 조성하고있었습니다. nbsp 죽림정사를 나와 칠엽굴로 향했습니다. 춥던 날이 해가 나니 금새 따뜻해졌습니다. 칠엽굴은 산으로 1.5km 가량 올라가야 해서, 땀을 흘리며 천천히 올라갔습니다. “칠엽굴은 부처님과 직접 관계가 있는 곳은 아닙니다. 부처님이 열반에 드시고, 부처님 말씀이 잘못 전해질 수 있어서 이 곳 칠엽굴에서 깨달음을 얻었다고 인정되는 최고의 장로 500명이 모여 부처님이 말씀하셨던 경과 율을 결집하였습니다. 부처님의 법을 가장 많이 들었던 아난다 존자가 ‘나는 이렇게 들었다, 부처님께서...’하고 부처님 말씀을 전하면, 나머지 제자들이 ‘맞다’, 혹은 ‘거기에는 이런 부분이 더 들어간다’ 하며, 부처님이 말씀하셨던 것을정리하였다고 합니다. 이것을 제 1결집이라고 합니다. 이후 제 2결집은 바이샬리에서, 제 3결집은파탈리푸트라에서 있었습니다.” 칠엽굴 입구에 앉아 스님께서 당시 결집할 때의 상황에 대해서 말씀해 주셨습니다. nbsp 칠엽굴에서 천천히 내려와 나란다대학으로 이동했습니다. 나란다대학은 2팀으로 나눠서 현지 가이드의 설명을 쁘리앙카지와 JTS 실무자 김혜원 님이 통역해주는 형식으로 진행되었습니다. “나란다대학은 불교대학이지만 불교만 가르친 것이 아니고 힌두교라든지 다른 종교나 철학이나 수학 등 전 학문을 가르친 종합대학이었다고 합니다. 7세기경 현장법사가 이 곳에 왔을 때는 학생 수가 만명, 선생이 천 오백명이었다고 합니다.” 스님에게 나란다대학에 대한 전체적인 말씀을 듣고, 나란다대학에 들어가서 구체적인 설명은 현장의 가이드로부터 들었습니다. 쁘리앙카지와 김혜원씨가 통역을 해줘서 현장 곳곳을 다니면서 자세하게 설명을 들을 수 있었습니다. 지금 1km만 발굴했는데 그 길이가 10km나 되었다고 합니다. 10분의 1만 발굴된 상태라고 합니다.내부에는 불상 모신 곳, 강당과 침실, 도서관, 목욕탕 등이 갖춰져 있었습니다. 당시 어마어마한 학교였겠구나 싶었습니다. 대단했습니다. 7세기까지 세계 최고의 대학이었다고 합니다. 그런데 무슬림이 침공해 대부분 파괴하고, 도서관은 6개월이나 불탔다고 합니다. 지금도 도서관 벽면이 불에 탄 흔적이 그대로 남아있었습니다. 오늘은 라즈기르의 영축산, 빔비사라왕 감옥터, 죽림정사, 칠엽굴, 나란다대학까지 순례를 하고 숙소로 돌아왔습니다. 내일은 당시 가장 진보적인 도시였다고 하는 바이샬리로 갑니다. 바이샬리라는 도시를 떠올리면 부처님이 쿠시나가르로 가시기전 늙은 코끼리가 고개를 돌리듯이 천천히 바이샬리를 돌아보셨다는 장면이 항상 떠오릅니다. 내일은 바이샬리 순례 이야기를 전하겠습니다. 내일 뵙겠습니다.

2013.01.16. 16,879 읽음 댓글 8개

2013년 1월 8일 법륜스님의 하루(수자타아카데미, 개교기념식)

수자타 아카데미에 울려 퍼지는 도량석 목탁소리를 듣고 일어났습니다. 종성에 이어 아침 예불과 천일결사기도를 하고, 6시 20분에 교문 앞에 모였습니다. 날이 환하게 밝았습니다. 스님께서 많이 피곤한 사람은 휴식을 하고 전정각산 아침 산행을 할 사람만 같이 가자고 하셨습니다. 올라가는 입구에도 탑터가 있었습니다. 조금 더 올라가니 작은 물웅덩이가 있었습니다. “이 곳이 전정각산에서 유일하게 물이 있는 곳입니다. 사람도, 짐승도 모두 여기서 물을 마십니다. 부처님도 이 물을 마셨다고 해서 ‘부처님 샘터’라고 합니다. 지금은 건기라 모든 곳의 물이 마르고 없는데, 이곳에는 물이 조금 있네요.” nbsp 돌산이라 걷기가 불편했습니다. 스님께서는 그래도 소가 다니면서 길을 내어놓아 그나마 다니기 쉬운 길이라며, 가시나무가 많으니까 조심해라는 말씀도 해 주셨습니다. 걷다가 분위기가 안온한 바위로 둘러싸인 곳에 잠시 쉬었습니다. 맨 마지막 사람이 올 때까지 다 같이 명상을 했습니다. “자, 여기까지라도 오시느라 수고하셨습니다. 지금 여기서부터는 힘든 사람은 따라오지 마시고, 여기 앉아서 명상을 하고 계셔도 좋겠습니다.” 이렇게 말씀하시고는 스님의 원래 속도대로 빠르게 산을 오르기 시작하셨습니다. 산 정상 부근에 명상하기 좋은 자리가 있었습니다. 전에 스님께서 명상하고 계신 사진이 정토회 달력으로 나온 적도 있었습니다. 같이 갔던 사람들이 스님께 자리에 한 번만 앉아 달라고 부탁을 하고는 비디오, 사진기를 가진 사람들이 그 뒤에 포토존을 이루고 열심히 사진을 찍었습니다. 참 멋있는 장면이었습니다. nbsp 산 정상에 올라가니 주변 경치가 멋있었습니다. 거기다 저 멀리 붉은 태양이 떠올라 운치가 더했습니다. “스님. 부처님도 여기서 저렇게 해가 뜨는 것을 보셨을까요?” “당연하죠. 여기서 6년을 사셨으니까 일출도 당연히 보셨겠죠.” “와, 부처님이 일출을 보셨던 곳에서 우리도 일출을 보고 있다는 것이네요? 와, 정말 행복합니다.” nbsp 전정각산에서 내려와 아침식사를 맛있게 했습니다. 잠시 휴식을 하고 설성봉 거사님 추모식을 했습니다. 설성봉 거사님과 함께 부산정토회에서 활동을 했던 하경화 님이 발원문을 읽고, 설거사님과 함께 서울, 대전정토회 등의 불사를 같이 했던 청덕님이 추모문을 읽었습니다. 청덕님은 추모문을 읽으면서 많이 울어서 동참한 사람들도 같이 눈물을 흘렸습니다. 이어서 비구니스님들과 함께 정성드려 천도제를 봉행했습니다. 착한 염소같은 작은 눈으로 두꺼운 안경너머 우리를 바라보던 거사님의 모습이 떠올랐습니다. 부산정토회에서 같이 활동할 때 거리에 모금하러 나가고, 사무실에서 같이 회의하고, 가끔씩 옥상에 올라가 이런 저런 이야기도 참 많이 나눴었던 설성봉 거사님. 거사님 덕분에 수자타아카데미는 아무런 사건 사고 없이 잘 지내고 있는 것 같습니다. 감사한 마음을 다시 전하며 왕생극락을 기원했습니다. nbsp 추모식을 하는 동안에 학교에는 사람들이 모여들기 시작했습니다. 수자타아카데미 학생들과 동네 사람들, 부다가야에서 오신 스님들과 국회의원 등의 내빈들이 수자타아카데미 19주년 개교기념식에 참가하기 위해서 오셨습니다. 개교기념식이 시작되었습니다. 오늘을 위해 그동안 준비한 학생들의 공연이 하나 둘 무대에 올라오면서 분위기도 무르익어 갔습니다. 학생들의 공연 하나 하나가 재미있고 또한 감동적이었습니다. 스님 말씀처럼 그냥 뒀으면 거리에서 동냥을 하고 있을 아이들인데, 학교가 설립되고 교육을 받다 보니 이렇게 도시의 어느 아이들 못지않는 자랑스럽고 늠름한 학생들이 되어 있었습니다. 정말 교육의 중요성을 다시 실감하게 되는 자리였습니다. nbsp nbsp nbsp 수자타아카데미에서 처음 박명주 군에게서 태권도를 배웠던 학생이 전 인도 태권도대회에서 우승을해서 2개 분야에서 금메달을 따서 세계선수권대회 참가자격을 받았는데, 인도에서 여권이 늦게 나와 작년 11월에 한국에서 있었던 세계선수권대회에 참가하지를 못했다고 합니다. 그 소식에 기념식에 참가한 대중들이 ‘아이구, 쯧쯧’하며 아쉬움을 표했습니다. 그래서 그 때 받은 메달을 오늘 스님께서 직접 목에 걸어주었습니다. 감격스런 장면이었습니다. nbsp 성지순례객들도 정말 좋아했습니다. “뿌듯했어요.”“울컥해서 많이 울었어요.”“스님이 너무 자랑스럽고 고맙고 말로 다하지 못하겠어요.” 유영굴까지 쭉 줄서서 구걸하던 아이들이 이제는 어엿한 수자타 아카데미 학생이 되어서 춤도 추고 태권도도 하고 컴퓨터도 배웁니다. “언제나 스텝진을 자비롭게 돌봐주시는 미얀마 큰 스님께 감사드립니다. 그리고 19년 동안 계속 지원해 주신 한국의 후원자분들에게도 감사를 드립니다. 여기 함께 있지는 못하지만, 한국에 계신 후원자님들께 감사함의 큰 박수를 보내 주십시오.” 스님께서 그동안 도와주신 모든 분들게 깊은 감사를 표했습니다. 내년이면 수자타 아카데미도 20주년을 맞습니다. 수자타 아카데미도 이제 새로운 방향으로 나아가야 할 것 같습니다. 둥게스와리에서 태어난 것이 자랑스러울 수 있도록 만들겠습니다. 학부형의 많은 참여와 어르신들의 도움, 한국 후원자들의 힘이 필요합니다. 함께 노력해서 이 아이들이 훌륭하게 자랄 수 있도록 했으면 합니다. 저희들도 최선을 다할 것입니다.” 학생들을 바라보는 스님의 얼굴 표정이 환했습니다. 미얀마절의 큰스님과 스님, 박지나, 김기진 JTS 대표님이 무대에 올라가서 마지막 무대를 장식했습니다. nbsp 성지순례객들도 오늘은 인도식으로 점심식사를 했습니다. 유미죽과 뿌리와 달과 야채를 손으로 먹었습니다. 이 많은 사람들 음식 준비하느라 정말 수고가 많았겠다 싶었습니다. 맛있게 먹었습니다. 점심 식사 후에는 마을 방문이 있었습니다. 6개 마을로 나눠서 실제 이 마을 사람들이 어떻게 살아가고 있는지, 무엇이 필요한지, 우리가 도울 것이 뭐가 있겠는지 살펴보기 위해 마을 방문을 했습니다. 스님께서는 두르가푸르라는 마을을 방문했습니다. 이 곳은 스님께서 93년에 한 달간 살았던 동네이기도 했습니다.“가야에서 출퇴근하기도 어려워서 이 동네에 방 하나 달라고 했더니 이 방을 줬어요. 이 방에서 한 달간 살았죠. 이 집 아들이 우리 학교 교사를 했어요. 유일하게 초등학교를 졸업한 유일한 청년이었어요. 그 때 제가 이 마을 사람 10명에게 45평씩 보시 받아서 학교를 시작했어요. 없는 사람에게도 이렇게 보시받았죠.” 스님께서는 20여년 전의 일들을 떠올리며 한 달간 사셨던 집도 소개를 해주고, 그 때 있었던 일들도 이야기해 주셨습니다. 몇 집을 돌아봤습니다. 둘러본 집에는 목도리, 모자 등 작은 선물도 했습니다. nbsp 마지막 방문한 집은 마당에 나락이 쌓여 있었습니다. 이 동네에서 잘 사는 집인 것 같았습니다. 작은 집에 작은 할머니, 부부, 자녀 6명, 결혼 안 한 남자동생 2명까지 11명이 사는 집이었습니다. 11명이 사는데 다른 집보다는 좀 낫지만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집 안을 돌아보고 가족과 함께 사진 촬영도 했습니다. “너무 충격적이었어요. 그렇게 살 수가 있는 건가? 지금도 그 충격이 남아 있습니다.” “왜 사람들이 집 밖에 나와 있는지 알겠더라고요. 집에 있어도 할 일도 없고, 집도 춥고, 햇빛도 안 들어오고. 그래서 다 밖에 나와 있는 것 같아요. 아이들도 하나같이 얼마나 손이 찬지 몰라요.” “음식 안 남기고 먹어야겠어요. 물도 전기도 아끼고. 정말 내가 많은 것을 가지고 살고 있다는 것을 다시 한 번 느꼈습니다. 저렇게 사람이 살 수도 있구나 싶어서 현재의 제 삶이 벅차도록 고마웠습니다.” “돌아가면 바로 JTS 후원금을 늘려야겠어요.” “피아노를 배워서 몇 년 후에는 이곳에 와서 아이들에게 피아노를 가르쳐 주고 싶어요.” 마을 방문을 하고 와서 조별로 마음 나누기를 하고, 우리가 도울 수 있는 일이나 할 수 있는 일이 어떤 것이 있는지 토론을 했습니다. 저녁식사를 하고 저녁 예불 후 강당에 모여서 소감 발표시간을 가졌습니다. 많은 의견들이 나왔습니다. 많은 배움이 있었던 것 같습니다. 스님께서 마지막 정리말씀을 해 주셨습니다. “여러분 소감문 잘 들었습니다. 저희가 사업을 시작한지 내년에 20년이 되는데 제일 많이 변한 것은 아이들 교육입니다. 지금은 20세 이하 젊은이들은 7080가 글을 압니다. 아이들은 자라고 그들이 변해가는 것이 장기적으로는 지역 발전의 원동력이라 생각합니다. 처음에 새마을 운동 비슷한 것을 하려해도 같이 할 사람이 없었습니다. 230년 기다려야한다고 했습니다. 아이들이 커서 청년이 되면 마을의 주민이 되면 마을 변화를 일으킬 수 있는 일을 할 수 있지 않겠나 생각해서 제일 중요시한 것이 아이들 교육이었습니다. 그리고, 가난한 것은 어쩔 수 없다고 해도 질병에 병들어 죽는 것은 막아야 하지 않겠나해서 보건의료에 관심을 가졌습니다. 이 마을 최고의 질병이 결핵이었는데, 이제 결핵의 위험으로부터 거의 벗어났고, 유아사망률도 급격히 줄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마을의 빈곤문제는 쉽게 해결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닙니다. 20년 전에는 벽돌집이 거의 없었는데 정부지원으로 마을절반이상이 벽돌로 이루어진 변화가 왔으나, 수입구조는 20년 전과 큰 차이가 없는 상황에 놓여있습니다.” nbsp 스님께서는 조별로 제안한 사항들에 대해서 제안을 받아들이기도 하고, 잘못 이해가 된 것은 현재 상황에 대한 설명과 함께 어려움에 대한 설명도 해 주셨습니다. 전체적으로 직접 마을 방문을 함으로써 두 눈으로 상황을 직접 볼 수 있어서 대안도 이야기할 수 있었고, 현재 내 삶이 얼마나 풍족한지에 대해서 느낄 수도 있는 소중한 시간이었습니다. 내일은 아침 일찍 라즈기르로 이동할 계획입니다. 라즈기르에서 영축산, 빔비사라왕 감옥터, 칠엽굴, 나란다 대학 등을 순례할 계획입니다. 내일 뵙겠습니다.

2013.01.11. 22,474 읽음 댓글 19개

2013년 1월 7일 법륜스님의 하루(보드가야, 수자타아카데미)

수자타 아카데미에서의 하룻밤을 보냈습니다. 새벽 4시 30분 기상해서, 5시에 다같이 강당에서 새벽 예불을 올렸습니다. 예불 후, 바로 부다가야까지 걸어가기 위해서 학교 교문앞에 모였습니다. 어젯밤 12시까지 스텝들과 공양 조에서 준비한주먹밥과 오렌지 한 개를 교문 입구에서 나눠주고 있었습니다. 아직 깜깜한 새벽인데다, 날씨도 싸늘했습니다. “자, 여기서 뒤떨어지면 못 따라 옵니다. 쳐지지 말고 잘 따라 오세요.” 참가자들을 2줄로 세워서 긴 줄을 만들어 부다가야로 향했습니다. 걷기 시작하면서 전정각산을 향해 먼저 서서 삼배를 드리고 걸었습니다. “어두워서 안 보이지만, 여러분들 앞에 있는 산이 부처님께서 6년동안 고행했던 전정각산입니다.전정각산을 향해서 먼저 서서 삼배드리겠습니다.”스님 말씀을 따라 삼배를 드리고 어둠을 뚫고 길을 걸었습니다. 2600년 전 부처님께서도 이 길을 걸었을 것입니다. 하늘에 그믐달이 떠 있고, 마을의 개짓는 소리가 온통 마을을 흔들었습니다. 날이 차츰 밝아지니 안개가 제일 먼저 우리를 맞이했습니다. nbsp 새벽부터 볼 일 보러 나온 사람도 있고, 가족이 다같이 나와서 인사를 하는 사람도 있었습니다. 갑자기 나타난 많은 사람들 때문에 어린 여자아이는 울음을 터뜨리기도 했습니다. 새벽 공기는 갈수록 차가워졌습니다. 온 몸을 오싹하게 하는 아침 추위였습니다. “날이 추우니 좋은 점도 있네요. 빨리 가자 하지 않아도 다들 빨리 걷네요.” 스님 말씀처럼 추우니까다들 걸음을 빨리하는 것 같았습니다. 건기라 네이란자라강에 물이 거의 없었습니다. 전에는 신발을 벗고 맨발로 물을 건넜던 기억이 있는데 신발도 벗지 않고 편안하게 강을 건넜습니다. “부처님이 고행림을 나와서 네이란자라강에서 목욕을 하게 됩니다. 부처님이 아마 힘이 없어 물에 쓰러져 떠내려 가다가 아사나 나뭇가지를 잡고 강기슭으로 나왔다고 합니다. 저쪽이 부처님이 쓰러지셨던 곳입니다. 참배를 하고 경전독송하겠습니다.” nbsp 긴 행렬이 때로는 밀밭길을 지나기도 하고, 때로는 강을 건너기도 하고, 마을길을 지나가기도 했습니다. 가는 길에 네이란자라강 옆에 인도정토회에서 명상센터를 할려고 구입한 터를 지나 수자타 공양터로 이동했습니다. 수자타공양터에는 탑 2개가 쌓인 흔적이 있었습니다. “우리가 부처님에게 공양을 올리기는 어렵지 않습니다. 그러나 강가에 쓰러져 있는 볼품없는 수행자를 지극정성으로 돌보기는 쉽지 않습니다. 부처님이 강가에 쓰러졌을 때 지극정성으로 부처님을 보살핀 수자타의 후손들이 여기 살고 있습니다. 수자타의 후손들에게 고마움을 표하기 위해, 부처님께 공양을 올리는 마음으로 수자타 아카데미를 지었습니다.” 스님 말씀을 들으니 수자타의 공양이 더 위대하게 느껴졌습니다. 참배를 한 후 경전독송을 하고, 아침에 싸온 주먹밥을 먹었습니다. 참기름과 깨소금으로 양념한 밥 위에 달걀 후라이까지 올려져 있어서 정성이 느껴졌습니다. 그런데 갈수록 날씨가 차가워져서 옷을 단단히 입고 오지 않은 사람들은 많이 떨었습니다. 우리나라는 해가 뜰 때 기온이 가장 많이 내려가는데 이 곳은 해가 났는데도 안개가 끼여서 기온이 계속 내려가고 있어서 추위가 뼛속까지 스며드는 느낌이었습니다. 그런데 아이들은 맨 발로 뛰어다녔습니다. 수자타 공양터에서 계속 더 걸어서 우루벨라 가섭을 교화했던 곳으로 갔습니다. 이 곳도 역시 힌두사원이 되어 있었습니다. 스님께서 앉아서 충분히 설명을 해야 하는데, 추워서 서서 간단히 설명을 한다고 하시면서 부처님의 카사파 3형제를 교화한 이야기를 해 주셨습니다. 부처님이 전법선언을 하신 후, 이 곳 병장촌으로 오셔서 카사파 3형제를 교화함으로써 1000명의 제자가 생긴 것은 이후 교단발전에 있어서도 큰 전환점이 되었을 것 같습니다. 우루벨라 가섭 교화 이야기는 언제 들어도 감동적입니다. 이야기가 많은데 간단하게 설명을 해서 아쉬웠습니다. 다음으로 간 곳은 수자타의 집터였습니다. 아쑈카 대왕도 수자타의 공양을 위대하게 생각해서 탑을 크게 쌓은 것 같았습니다. 참배를 하고 참가자들이 손에 손을 잡고 탑 전체를 애워싸고 간절한 마음을 담아 보현행원을 다같이 불렀습니다. nbsp 부처님이 걸으셨던 것처럼 저희도 걷고 또 걸어서 부다가야에 도착했습니다. 11km정도 걸었습니다. 부처님은 길에서 태어나셔서, 길에서 평생을 사시다가 길에서 돌아가셨습니다. 부처님이 2600년 전 걸었을 땅을 내 발로 걸어보는 것만으로도 감동이 살아났습니다. 부다가야 대탑에 도착해서, 스텝들이 준비한 공양물을 가지고 부처님께 사시 공양을 올렸습니다. nbsp 부처님께서 깨달음을 얻으신 곳. 우리도 부처님이 앉으셨던 보리수나무 아래에 앉아 경전을 읽고명상을 하면서 아득히 먼 2600년전 한 수행자를 떠올려 보았습니다. 부처님이 이 땅에 오신 것만으로도 고맙고 감사했습니다. nbsp 대탑에서 참가자들에게 자유시간을 주고, 기도도 하고, 점심도 자유롭게 사 먹고 오후 1시 30분에 대탑 앞에서 만나기로 했습니다. 나중에 보니 자유시간에 점심도 안 먹고 기도를 한 사람들이 많았습니다. “언제 이 좋은 곳에 다시 오겠어요? 부처님 계셨던 곳에서 기도하는 것만으로도 참 행복했습니다.108배 하고, 명상하다 왔습니다. 점심은 이렇게 바나나 몇 개 샀어요.”하며 바나나를 들어 보이는 거사님의 표정이 환했습니다. 버스를 타고 학교에 들어오니, 음악 소리가 빵빵 터지고 있었습니다. 어제는 성지순례객들이 밤 늦게 수자타 아카데미에 들어와서 아이들과 만나지를 못했습니다. 오늘 아이들이 성지순례객을 환영하기 위한 준비를 하고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인도에서는 스승에게나 환영하는 사람에게 꽃목걸이를 해 주고, 꽃을 뿌립니다. 스님께 학생들이 꽃목걸이를 많이 걸어줘서 앞이 안보일 정도였습니다. nbsp 앞에는 흰 코끼리를 탄 어린 아이가 꽃을 뿌리며 길을 안내하고, 뒤에 선 성지순례객들에게도 아이들이 꽃목걸이를 모두 걸어줬습니다. 살아오면서 이렇게까지 환영을 받은 적이 또 있을까 싶었습니다. 학교에 들어와 법당 참배를 하고, 이어서 설성봉 거사님 추모탑에 참배한 후 받은 꽃목걸이를 추모탑에 빙 둘러 걸었습니다. nbsp 이어서 쉬는 틈없이 바로 전정각산으로 향했습니다. 둘쨋 날 기차시간 때문에 일정 전체가 약간 늦어진 면이 있었는데, 스님께서는 시간을 쪼개서라도 하나도 빠지지 않고 다 보여주려고 하셨습니다. 힘들면 산에 오르지 말고 유영굴에 가 있어라는 스님 말씀에도 사람들은 끝까지 스님을 따라 산에 올랐습니다. 스님께서 칼산 끝에 서서 학교 주변을 설명해 주셨습니다. nbsp 전정각산을 내려와 유영굴 참배를 했습니다. 부처님께서 이 곳 전정각산에서 6년 고행을 하고 성도를 위해 떠날 때 섭섭해 하는 산신을 위로하기 위해 이 동굴에 부처님의 그림자를 남기고 떠나셨다고 해서 유영굴이라 이름붙였다 합니다. 모두 유영굴 참배를 하고, 경전 독송을 하고 당시 부처님을 떠올리며 명상하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nbsp 새벽부터 걸으면서 부다가야 주변의 부처님의 자취를 그대로 느낀 하루였습니다. 많이 걸었고, 많이 보았고, 스님으로부터 부처님 이야기도 많이 들었습니다. 하루를 빡빡하게 지내서 그런지, 저녁을 준비해 준 분들의 정성이 그대로 녹아 있어서 그런지 저녁은 꿀맛이었습니다. 저녁 공양 후, 수자타 아카데미사업에 대해 발표하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인도에서 활동하는 활동가들이 자기가 맡은 각 파트 사업을 발표했습니다. 수자타 아카데미, 지이바카 병원, 마을개발, 인도정토회 불교부흥사업에 대한 소개가 있었습니다. nbsp 스님께서 마지막 정리 말씀을 해 주셨습니다. 스님께서는 매우 세밀하게 사물을 바라보십니다. 그래서 뭐가 필요한지, 뭐가 중요한지, 뭐가 부족한지를 바로 아시는 것 같습니다. 그것은 깊은 관심과 사랑이 있어야 나올 수 있는 관찰력이지 않을까 싶습니다. 오후 9시 30분경에 전체 일정이 마무리 되었습니다. 오늘 하루는 새벽부터 열심히 다녔습니다. 모두들 몸은 피곤해도, 부처님의 삶을 직접 느낄 수 있었던 하루여서 마음은 그 무엇보다 행복하지 않았을까 싶었습니다. 내일은 아침에 전정각산 올랐다가, 설성봉 거사님 추모제를 하고, 10시에 수자타아카데미 19주년 기념식을 하고, 오후에는 전정각산 인근 마을 방문을 할 예정입니다. 내일 뵙겠습니다.nbspnbsp

2013.01.09. 20,749 읽음 댓글 25개

2013년 1월 6일 법륜스님의 하루(사르나트, 수자타 아카데미)

어제 사르나트에 연락을 해 보니 아침 6시에 문을 연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5시 30분에 기상해서, 6시 10분에는 사르나트로 출발하기로 했습니다. 그런데, 아침 일찍 행사 준비차 사전팀이 사르나트에 가보니 7시에 문을 연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출발하려고 차에 탔던 사람들에게 다시 호텔로 들어가서 쉬다가 연락을 하면 바로 출발할 수 있도록 해 달라고 양해를 구했습니다. 이런 일도 인도니까 더 쉽게 양해가 되는 것 같습니다. 30분가량 더 호텔에 머물다가 사르나트로 향했습니다. 사르나트는 부처님께서 5비구에게 처음으로 설법을 하셨던 곳입니다. 불교인로서는 참으로 역사적인 장소입니다. 부처님이 있었고, 설한 법이 있었고, 법을 들은 5비구가 있었기에 그 법이 2600여년이 지난 오늘에까지 이르고 있습니다. 수많은 사람들의 희생과 노력으로 지금 나에게 부처님의 가르침이 내려오고 있는 것 같아서, 언제나 사르나트에 가면 감사한 마음에 눈물이 납니다. 또한 사르나트는 야사 비구가 출가한 곳이고, 야사 비구 친구들이 모두 출가함으로써 처음으로 61명의 비구 교단이 성립하게 되었고, 드디어 부처님께서 전법선언을 하신 곳이기도 합니다. 또한 야사의 부모님이 재가자로서 처음 삼귀의, 오계를 받게 되어 우바이, 우바새가 탄생한 곳이기도 해서 우리 불자들에게는 특히 의미있는 도시가 바라나시의 사르나트인 것 같습니다. 초전법륜 성지 입구에서부터 석가모니불 정근을 하면서 들어갔습니다. 정근을 하면서 탑을 세 바퀴 돌고 탑이 잘 보이는 곳에 앉아 간절한 마음으로 사시예불을 올렸습니다. 사시예불 후 스님께서 이 곳 사르나트에서의 부처님의 행적에 대해 설명을 자세히 해 주셨습니다. 부처님의 초전법륜을 생각하며 숨을 들이쉬고, 내어쉬면서 다같이 명상을 하는 시간도 가졌습니다. nbsp 그리고 이 곳은 처음으로 구리가 장자가 삼귀의 오계 수계를 받은 곳으로 우리도 그와 같이 이 곳에서 삼귀의 오계 수계를 받아 12일간의 단기 출가를 통해서 단순한 여행자가 아니라 수행자로서 부처님의 성지를 순례를 해 나가자는 의미로 수계식을 한다고 설명해 주셨습니다. nbsp 이어서 삼귀의 오계 수계식이 거룩하게 진행되었습니다. 법륜스님을 수계법사로 모시고, 가사를 받고, 향으로 연비를 함으로써 성지순례 참가자들이 모두 부처님 재자로서 삼귀의 오계를 받았습니다. 노란 가사까지 받아서 수행자로서의 위의를 다 갖췄습니다. 혜초스님께서 부처님의 성지를 순례하기 위해 1년간이나 배를 타고 인도에 와서 부처님 성지를 순례를 했던 간절한 마음을 떠올리며 우리도 성지순례기간동안 수행자로서 하루 하루 생활할 것임을 다짐하는 시간이 되었습니다. 수계식을 마치고는 사르나트 탑을 배경으로 단체 사진을 찍고, 조별 사진도 찍었습니다. nbsp 스님께서는 사르나트를 나오면서 아쑈카 대왕 때 만든 아쑈카 석주에 대한 설명을 해 주시면서, 처음 인도에 오셨을 때의 경험도 말씀해 주셨습니다. nbsp 스님의 인도와의 첫 인연을 들으며 사르나트에서 나와 바로 앞에 있는 박물관 관람을 했습니다. 스님께서는 박물관내 공간이 좁고 대중이 너무 많아 박물관에서 일일이 설명할 수가 없어 입구에서미리 전체 설명을 먼저 하셨습니다. 참가대중들이 박물관 관람을 하는동안 스님께서는 잠시 수련장 부지가 나왔다고 해서 주변에 부지를 보러 다녀오셨습니다. 물가가 많이 올라서, 전보다 10배 이상 땅값이 올랐다고 합니다. 부지의 위치와 값을 알아보고 박물관 앞으로 돌아오니 참가자들이 거의 박물관 관람을 마치고 나오는 시간이었습니다. nbsp 사르나트에서 조금 떨어진 영불탑으로 이동했습니다. 영불탑은 5비구가 부처님을 맞이했던 곳에 탑을 세워 영불탑이라 이름했습니다. 시간이 없어 차에서 내려 영불탑 앞에서 스님 설명만 간단하게 듣고 바로 수자타 아카데미가 있는 둥게스와리로 이동했습니다. nbsp “지금 우리가 버스를 타고 가고 있는 이 길은 부처님이 전법선언을 하고, 우루벨라 가섭을 교화하기 위해 사르나트에서 부다가야로 내려온 길입니다. 그 전에 부처님이 성도 후 5비구를 교화하기 위해 거꾸로 부다가야에서 사르나트로 걸어갔던 곳이기도 합니다. 부처님은 걸어서 갔던 길을 오늘 우리는 편안하게 버스를 타고 이동을 하고 있습니다. 제가 20년째 이 길을 가고 있는데 사르나트에서 부다가야가 250km인데, 오늘 시간이 제일 적게 걸린 것 같애요. 보통 810시간 정도 걸리는데 오늘은 6시간밖에 안 걸리네요. 도로가 갈수록 잘 정비가 되고 있습니다.” “지금 우리는 부처님께서 6년 고행을 하셨던 전정각산 아래 수자타 아카데미로 가고 있습니다. 숙소가 좀 불편할 것입니다. 숙소가 좋은 날은 첫 날과 마지막 날 밖에 없습니다. 숙소가 불편하더라도 수자타 아카데미는 우리가 직접 지은 집이라 마음은 더 편할 것입니다. 15년전부터 들어온다던 전기는 아직도 안 들어오고 있습니다. 불을 지펴 뜨거운 물을 끓여 놓았으니 물을 떠가서 세수를 하시면 됩니다.” 겨우 버스가 지나갈 듯한 덜컹이는 비포장 도로로 한참 들어가니 수자타 아카데미가 있었습니다.그런데 어두워서 건물이 보이지는 않았습니다. 박명송 군이 전체 공양준비를 맡아 맛있는 저녁을 준비해 두고 있었습니다. 저녁을 맛있게 먹고 저녁예불을 하고, 스님으로부터 수자타아카데미의 역사에 대한 강의를 들었습니다. “제가 처음 인도와 인연이 된 것은 1991년이었습니다. 지금부터 22년전이죠. 단체 관광으로 왔다기보다 가까이 있는 사람의 인연으로 인도여행을 하게 되었습니다. 배낭여행도 아닌 단체 관광도 아닌 상태로 처음 인도에 왔습니다. 그 때 저는 인도를 너무 그리워했기 때문에 비행기 활주로에서 내리자마자 땅바닥에 이마를 대고 오체투지 절을 했습니다. 인도라는 곳에 온 것이 그렇게 기뻤습니다. 버스를 타고 캘커타시내에서 박물관 옆 골목에 있는 어떤 한 모텔에 갔더니 방이 없었어요. 어떻게 어떻게 해서 캘커타하우스라는 게스트하우스에 들게 되었는데 방 하나에 100루피 였습니다.사전교육받기를 미네랄 워트 외 물은 절대 먹지마라, 그리고 1루피 이상 아이들에게 주면 아이들이 따라와서 순례가 지속될 수 없다는 등의 주의를 받았습니다. 짐을 내려놓고 물을 사러 나갔습니다. 깜깜한 골목에 나섰는데 어떤 여인이 저를 잡았어요. 1루피 주었더니 안받고 또 달라해서 1루피 주니 안받았습니다. 그러다 희미한 가로등 불빛아래 서서 보니 조그마한 아이를 안고 있었습니다. 내가 그 아이를 보자 아이배에 손을 댓다가 입에 댓다를 반복하는 거예요. 아이가 배고프다는 뜻 같았습니다. 그래서 그 여인이 이끄는대로 따라갔습니다. 조그마한 가게 앞에서 분유통을 가리켰습니다. 아이가 배고파 분유 사달라고 하나보다 해서 물어보았습니다. 물어보니 60루피라 하였습니다. 제가 너무 깜짝 놀라서 도망치다시피 그냥 와버렸습니다. 물만 사서 게스트하우스로 돌아왔는데 마음이 찝찝했습니다. 그래서 들어오자마자 같이 간 교수님에게 60루피면 얼마입니까? 하고 물었더니 2400원이라고 해요. 그 당시 1루피가 40원정도였던 것 같습니다. 2400원이라는 소리를 듣자마자, 뭐라 할 수 없이 마음이 찌릿찌릿했습니다. 아이 배고프다고 우유 사달라는데, 그냥 돌아온 나를 내 자신이 감당하기가 어려웠습니다. 다시 사주러 나가니 여인이 온데간데 없었습니다. 그 때 제 자신에 대해 굉장히 실망을 하였습니다. 늘 민중을 위해서라면 목숨을 버릴 것 같이 해놓고, 막상 눈앞에서 아기 우유를 사달라는 것을 외면하는 모순투성이의 나를 발견하고 어쩔 줄 몰라했습니다. 출가해서 스님이 되면서 자연히 감정이 억제되고 냉정해져 가는 그런 부분이 있었던 것 같습니다.또한 사회운동을 하며 자선사업가에 대한 부정적인 시각도 많았던 것 같습니다. 거시적인 것, 근본적인 것을 위해서는 목숨을 버릴 것처럼 하다가 내가 실천할 수 있는 작은 것에는너무 소홀했던 것 같았습니다. 그런 나를 보면서 제가 굉장히 힘들었습니다. 언젠가 내가 이 빚을 꼭 갚으리라 다짐을 했습니다.” “저희들이 인도JTS사업은 93년도에 시작하였고, 이 곳 수자타아카데미는 94년도에 시작했습니다.인도JTS는 첫째, 문맹퇴치를 위한 교육사업이고, 둘째는 결핵, 산모건강, 모자 건강 등 유아사망률을 줄이기 위한 마을의 질병퇴치사업이고, 셋째는 마을개발사업입니다. 이곳은 인도에서 가장 가난한 마을입니다. 첫째 인도에서 제일 살기 어렵습니다. 가난합니다. 둥게스와리마을은 천민들의 집단마을입니다. 마을에 부자가 없습니다. 둥게스와리 산주변에 있는천민들 집단거주지역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이곳 둥게스와리는 돼지를 키우거나, 산에 돌을 캐거나, 일부는 부자집 농사를 거들어주며 사는 가장 가난한 사람들의 마을입니다. 교육혜택은 전혀 못받고 있었습니다. 최소한도 사람으로 태어나서 초등학교 교육, 글 읽을 줄 아는 정도는 되어야 하지 않을까 해서 수자타 아카데미를 설립했습니다. 적어도 간단한 질병, 이질, 결핵에 의해 죽는 사람은 없도록 해야 하지 않을까 해서 질병퇴치 운동을 벌였습니다. 지금은 공식적으로 결핵은 거의 퇴치된 상태입니다. 그러나 마을의 빈곤퇴치라는 것은 거의 제대로 해결이 안된 상태입니다. 빈곤하게 생활하는 그 삶 자체는 뚜렷한 해결책을 못잡고 있는 그런 상태에서 아이들은 건강하게 자라고, 기초교육을 받는 그런 상태라고 말할 수 있겠습니다.” 스님께서 인도와의 첫 인연, 인도 사업을 하게 된 계기, 아이의 우유를 사달라고 하던 여인의 이야기, 현재 수자타 아카데미의 상황과 어려운 점 등 수자타 아카데미가 오늘에 이르기까지의 역사를 자세히 말씀해 주셨습니다. 강의를 마치자 시간이 거의 10시가 다 되었습니다. 사람들이 많이 피곤한 것 같았습니다. 스님께서 푹 쉬라고 하며 내일 아침일정에대해서 간단히 공지를 하고 마쳤습니다. 오늘은 차를 많이 타고 와서 좀 피곤한 것 같습니다. 내일은 아침 4시 30분 기상해서 5시에 기도하고, 예불 후에는 걸어서 부다가야까지 가는 일정입니다. 내일 일정도 만만치 않겠네요. 내일 뵙겠습니다.

2013.01.08. 19,369 읽음 댓글 16개

2013년 1월 5일 법륜스님의 하루(강가강)

덜커덩거리는 기차 안에서 한참을 자고 눈을 떴습니다. 새벽 5시 전이었습니다. 어젯밤 10시부터 5시까지 푹 잤습니다. 아무 소리도 못 듣고, 세상모르고 잤습니다. 눈을 뜨니 찬바람도 많이 들어오고, 바깥은 안개가 가득 낀 느낌이고, 새벽녘 기차에 인도 사람들이우르르 타고 내리고 타고 내리곤 했습니다. 완행열차라 조금 가다 쉬고, 조금 가다 쉬기를 반복했는데도 저는 집에서 잔듯이 참 잘 잤습니다. nbsp 새벽 5시, 무변심 법사님의 집전으로 송수신기로 천일기도를 했습니다. 달리는 새벽 기차 안에서 도반들과 함께 기도하는 느낌도 좋았습니다. 기차는 섰다 달리기를 계속 반복하고, 스텝들은 늦어진 일정을 어떻게 수습하고, 이후 일정 조절을 어떻게 해야 할지 회의를 했습니다. 사르나트에서 수계식을 하는 순서에 대해서,나눠줄 물품을 어떻게 순서 있고 편리하게 전달할지, 어떻게 해야 전체의식이 여법하게 진행될 수 있을지, 공양 물품부터 향 전달, 가사 전달, 신발 벗어 놓는 위치까지 하나하나 다 점검을 했습니다. nbsp 그런데 12시 10분경에 무갈사라이역에 도착할 예정이던 기차가 연착하여 오후 1시 30분경에 도착했습니다. 내려서 공용 짐을 다 같이 개미떼처럼 들고 나르고, 개인 짐까지 실으니 또 1시간 가량이 훌쩍 지나갔습니다. nbsp 오후 시간이 너무 빨리 지나갔습니다. 무갈사라이역에서 사르나트로 갔다가, 사르나트에서 수계식을 할 시간이 부족할 것 같습니다. 그래서 스님께서 전체 일정을 바꾸셨습니다. 부처님의 법이 처음 설해진 사르나트가 성지순례로서 첫 방문하는 성지인 만큼 여유롭게 순례를 하는 것이 나을 것 같다고 판단을 하신 것 같습니다. 무갈사라이역에서 바로 강가강으로 갔습니다. 인도성지순례 네 번째인데 해질녘에 강가강에 간 것은 오늘 처음이었습니다. 2인 1조로 자전거 릭샤를 타고, 30루피에서 50루피까지 가격을 흥정하며 힌두교인들이 성스러운 곳으로 여기는 강가강으로 갔습니다. 사람들이 정말 많았습니다. 자전거, 릭샤, 오토바이, 자가용, 소, 개까지 길거리를 지나가고, 차들은 낼 수 있는 경적은 다 울려서 지나가던 사람들이 돌아보지 않을 수 없게 했습니다. 갈 때는 자전거 릭샤를 타고 다시 차로 돌아올 때는 여러 명이 어울려서 오토릭샤를 탔는데, 이리저리 피해서 운전하는 것을 보고 같이 탄 분이 운전 잘 한다고 감탄을 했습니다. 스님께서는 먼저 강가강 선착장 앞에 도착하셔서 사람들이 배를 탈 수 있도록 위치를 안내해 주고계셨습니다. 사람들이 어느 정도 다 왔을 때 스님도 사람들과 함께 배를 탔습니다. 해질녘인데다 노를 젓는 배를 타니 한층 운치가 더했습니다. nbsp 스님께서는 강가강과 강가강물을 성수로 생각하는 힌두교도인들의 문화에 대해 설명을 해 주셨습니다. 부처님 당시에도 강가강에서 목욕을 하면 업이 사라진다고 믿었던 힌두교도인에 대한 이야기도 해 주셨습니다. 그리고 강 저 쪽에 보이는 모래벌이 우기가 되면 다 물에 잠긴다는 설명도 해 주셨습니다. 우기가 되면 저 강이 끝이 보이지 않는 바다처럼 보일 것 같았습니다. 그래서 옛날 인도에서 고통 받는 이 피안의 언덕을 너머, 저 강 너머 희망의 세상으로 가는 것을 도피안이라고 했다던 스님 말씀도 기억이 났습니다. nbsp 배를 타고 화장장이 있는 곳으로 가봤습니다. 장작불이 곳곳에서 넘실대고 있었습니다. “오늘 화장을 많이 하네요. 요즘 추워서 얼어 죽는 사람들이 많아서 그런 것 같습니다. 거리의 걸인들도 동냥을 해서 자기 화장할 돈은 자리밑에 모아놓고 죽는다고 합니다. 그러면 그 돈으로 화장을 해 줍니다.” 강물 가까이에는 노란 천, 황금색 천으로 시신을 둘러싸고, 가족들이 손으로 강가강물을 한 움큼씩 떠서 시체 얼굴 쪽에 뿌리는 장면도 보였습니다. 화장장 주변에는 나무가 가득 쌓여 있었습니다. “돈이 있는 사람들은 나무가 활활 잘 타도록 관솔을 사서 넣고, 전단향나무도 같이 태웁니다. 자 다 같이 돌아가신 영가를 생각하며 해탈주 3독과 나무아미타불 염불을 하겠습니다.” 스님의 말씀에 따라 다같이 화장장을 바라보며 영가의 왕생극락을 발원하며 염불을 했습니다. nbsp 해가 지면서 기온도 따라 떨어졌습니다. 우리는 내의도 입고 오리털 파카로 온 몸을 감싸고도 올 해는 더 추운 것 같다며 덜덜 떨고 있는데, 현지 인도인들은 얇은 옷에다 양말도 신지 않고 다니는 사람도 많았습니다. 참 춥게 보였습니다. 그런데도 강가강에 들어가 세수를 하고, 물을 입에 넣고, 몸을 씻는 여자분을 보면서 종교적인 부분이라 저런 것이 가능하겠구나 싶었습니다. 더 어두워지기 전에 버스를 타라는 스님 말씀에 다들 자전거 릭샤 하나씩을 다시 흥정해서 버스가 있는 곳까지 왔습니다. 전체 중 4명이 제 시간에 오지 않아 차는 그냥 출발했습니다. 갈 때부터 스님께서 “늦게 오면 개인들이 알아서 수라비호텔로 오세요.”라고 설명을 하신 이유를 알 것 같았습니다. 오후 7시 10분경에 호텔에 도착했습니다. 그런데 호텔내 큰 공간이 없어서 옥상에다 저녁 만찬을 준비했다는 말에 밖에서 추워서 떨다가 온 사람들이 “아이고... 너무 춥겠는데...”했지만, 이미 준비가 다 되어 있는 먹음직스러운 음식들을 보고는 다들 음식 먹기 바빴습니다. 오늘은 제대로 된 식사를 할 시간이 거의 없어서 그런지 다들 인도음식인데도 가리지 않고 잘 먹었습니다. 역시 시장기가 제일 좋은 반찬이었습니다. 맛도 있었습니다. 식사를 하고, 2층 홀로 내려가 바닥에 깔판을 깔고 앉아 오늘 참가한 사람들 소개하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스님께서 이번 성지순례에는 어떤 지역의 어떤 사람들이 참여를 했는지 정도는 같이 알고 성지순례를 해야 되지 않겠냐며 직접 사회를 보셨습니다. 경남, 경북, 미주, 유럽, 서울, 충청, 광주 등 여러 지역의 사람들이 참가했습니다. nbsp 성지순례를 하기 위해서 공직에 사표를 내고 왔다는 분도 있고, 여태껏 법당에서 스님 얼굴 본 것보다 성지순례 와서 하루 이틀 사이에 얼굴 본 시간이 훨씬 많다며 즐거워하는 사람도 있었습니다. 이 자리에 이렇게 있는 것 자체가 참으로 감사하다는 분도 있었고, 열의에 차서 왔지만 감기와 이국이 주는 피곤함이 아직 얼굴에 묻어있어 인상이 굳어 있는 분도 있었습니다. 소개를 들으며 많이 웃었습니다. 재미있었습니다. 그리고 성지순례 마지막 날까지 운전을 담당해 줄 운전사와 조수를 소개하는 시간도 가졌습니다. 많은 사람들 앞이라 그런지 많이 수줍어하고 부끄러워했습니다. 앞으로 수고해 주실 것을 요청하며 수고비도 드렸습니다. “우리가 다른 성지순례에 비해서 제대로 못 먹고, 제대로 못 자지만 그래도 버스 하나는 직접 보고검증까지 해서 최고급으로 준비합니다. 인도성지순례는 차를 타고 이동하는 시간이 대부분이라 저희가 버스에 신경을 많이 씁니다.” 무갈사라이역에서 버스를 타며 스님께서 하셨던 말씀이 생각났습니다. 버스를 워낙 오래 타야 하기 때문에 운전자가 중요합니다. 마지막 날까지 한 대의 차량도 사고 없이무사히 마칠 수 있기를 바라며 모두가 드라이버지와 컨턱트에게 큰 박수를 보냈습니다. nbsp 내일부터 본격적인 성지순례가 될 것 같습니다. 부처님의 초전법륜지 사르나트를 방문하고, 원래 일정대로 수자타 아카데미로 갈 예정입니다. 내일 뵙겠습니다.

2013.01.07. 19,765 읽음 댓글 55개

2013년 1월 4일 법륜스님의 하루(칼리사원, 인디안박물관)

어제 캘커타 공항에 11시 10분경에 도착해서 짐 찾고 숙소에 도착하니 새벽 2시가 거의 다 되었었습니다. 다들 간단히 씻고 잤는데, 시차 적응이 안 되는지 새벽 4시, 5시부터 일어나 부산스러웠습니다. 오전 8시에 출발한다고 했는데도, 해가 나서인지 아침 7시가 되니까 벌서 짐을 챙겨들고 1층 마당으로 나온 사람들이 많았습니다. “지금 한국 시간으로 오전 10시정도 돼요. 이 시간까지 어떻게 잠이 오겠어요?”하면서 늦게 잔 것에 상관없이 일찍부터 소란스러웠습니다. 아마, 여행 첫 날이라 그렇지 않을까 싶었습니다. 아침에 참가자들에게 달러를 루피로 환전해 주고, 따뜻한 물을 끓여 차를 마실 수 있도록 했습니다.아침으로는 간단하게 달걀 1개, 바나나 1개, 머핀 1개를 나눠 주었습니다. 다들 잠시간이 부족했는데도 여행에 대한 설레임때문인지, 이국에 대한 궁금함 때문인지 차가 1시간동안 칼리사원으로 향하는 동안에도 자지않고 창밖을 바라보며 인도의 냄새를 실컷 맡고 있었습니다. 감기기운이 있으신 스님은 약이 독한 지 차에서 계속 주무셨습니다. 칼리사원 앞에서 내려 긴 행렬을 만들며 힌두교 사원인 칼리사원으로 향했습니다. 아침 일찍 사원에 참배하러 온 사람들이 많았습니다. 칼리사원으로 가는 길이 전보다 훨씬 깨끗해져 있었습니다. 칼리사원의 이름은 “깔리까트”인데 꼴까타 도시 이름이 이 사원에서 유래했다고 합니다. 여신 깔리는 쉬바신의 부인으로서 독립적이며 도전적이고 파괴자적인 성격이 부각되는 여신입니다. 이 곳에선 양의 목을 쳐서 그 피로 기도를 드리는 곳도 있었습니다. 참배하는 사람이 너무 많아 사원에는 들어가보지 못하고 사원밖만 빙 둘러보고 나왔습니다. nbsp 칼리 사원에 속한 한 건물에 있는 죽음을 기다리는 집으로 갔습니다. 죽음을 기다리는 집은 마더 테레사가 이 곳 행려자를 보호했던 곳으로 유명합니다. 저희들이 도착한 시간이 목욕시간이라개방이 되지 않아, 죽음을 기다리는 집도 직접 들어가 보지는 못했습니다. 마더 테레사의 사진을 보며 인사를 하고 돌아왔습니다. 다시 덜컹이고 급정거를 시도 때도 없이 하는 버스를 타고 인디안 박물관으로 향했습니다. 인디안 박물관은 영국지배기에 세워진 박물관으로 성지에서도 보기 어려운 유물이 많은 박물관이었습니다. 사람이 많아 스님께서 두 팀으로 나누어 안내를 했습니다. 불상과 신상을 보면서 인도에서 불교와 힌두교의 문화가 뒤섞여 서로 영향을 준 것들에 대한 설명을 해주셨습니다. 12시까지 자유롭게 나머지 전시실들을 둘러보게 하고, 스님께서는 전에도 둘러보신 전시관을 하나 하나 빠지지 않고 다 둘러보셨습니다. 불교 유물, 인도의 문화와 역사를 전시한 전시실과 더불어 고고학, 예술, 민속, 지질, 산업, 생물 등 여섯가지를 전시실을 다 둘러보았습니다. 깨끗하거나 세밀하게 정리가 되어 있진 않았지만 많은 내용들이 담겨져 있는 전시실이었습니다. 저도 여러번 와 봤는데, 전체를 둘러본 것은 오늘 처음이었습니다. nbsp 12시까지 박물관 관람을 한 후, 조별 자유시간을 가졌습니다. 인도라는 곳, 그 중에서도 켈커타라는 곳을 조금이나마 느낄 수 있도록 조별로 같이 식사도 하고, 쇼핑도 할 수 있는 시간이었습니다. 인디안박물관 뒤편에는 시장도 있고, 인도음식 거리도 있고, 고급식당들도 있어서 인도사람들의 생활과 문화를 짧은 시간에 느끼기엔 적당한 곳 같았습니다. 시장은 깊고 넓어서 충분한 구경거리가 되었습니다. 자료집 뒤에 주변 지도까지 부착을 해 두어 길을 잃지 않도록 배려를 한 부분도 눈에 띄었습니다. 저희 스텝들도 스님을 모시고 점심식사를 했습니다. 식사 후 조금 있으니, 인도 현지 스텝이 “스님. 큰 일 났습니다. 오늘 저녁 예약된 기차가 취소되었습니다. 북쪽에 안개가 너무 많이 끼어서 운행이 취소되었다고 합니다.” 하고 걱정스런 표정으로 보고를 했습니다. 221명이 예약되어 있고, 이 기차를 안 타면 내일부터의 일정들이 당장 문제가 되는데, 기가 차지만 또한 이런 일이 있을 수 있는 곳이 인도이기도 했습니다. 바로 간단한 대책회의를 했습니다. 한 쪽에서는 켈커타에 오늘 잘 수 있는 숙소가 있는 지 체크를 하고, 제이티에스 박지나 대표님과 쁘리앙카, 제이제이 브라더가 급히 하울라역에 역장을 만나러 떠났습니다. 소식을 기다리는동안 스님께서는 처음 인도성지순례를 하러 왔다가, 아이 우유를 사달라는 여인의 요구를 외면했다가, 그것이 계기가 되어 배고파도 먹지 못하고, 배우고 싶어도 배우지 못하고, 아파도 치료받지 못하는 사람들을 위해 제이티에스를 설립하게 되었던 그 현장에서 그 때의 상황들에 대해 이야기를 해 주셨습니다. nbsp “이 집이 내가 제일 처음 인도에 와서 묶었던 집입니다. 길에 나오니 아이를 안은 여인이 자꾸 저를어디로 데리고 가는 거예요. 그래서 이 길을 따라 계속 따라 나왔더니, 저렇게 조그맣고 어두침침한 가게에 들어가요. 그 여인이 분유를 가리키고 아이 입을 가리키기를계속 반복하는 거예요. 아, 아이 우유를 사달라고 하는구나. 그런데 분유가 60루피인 거예요. 인도 사람들에게 1루피 이상은 절대 주지 말라는 교육을 받았던 터라, 얼른 외면하고 돌아섰지요.그런데, 숙소에 와서 60루피가 얼만지 물어보니 그 때 돈으로 2400원인 거예요. 얼마되지 않는 돈인데 배곯는 아이를 외면한 내 모습이 죄스럽고 부끄러워서 얼른 다시 그 자리에 가보니 아이를 안은 그 여인이 없었습니다. 그 때 제가 세운 원이 오늘날 제이티에스가 생기게 된 이유가 되었죠.” 항상 법문 속에서 듣던 스님의 고전같은 이야기였는데 오늘 직접 그 현장에서 스님께 이야기를 들으니 감회가 더욱 새로웠습니다. 그 때의 아이 안은 여인이 관세음보살님이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도 잠시 해 보았습니다. 다시 식사했던 곳으로 돌아오니 전화가 왔습니다. 하우라역이 아닌 켈커타역에서 17시간동안 가는 완행 기차를 겨우 예약할 수 있었다는 것이었습니다. 와, 역시 일은 또 되는구나 싶으면서 안도의 한숨이 쉬어졌습니다. 4시 30분, 박물관 앞에서 다같이 버스를 타고 켈커타역으로 향했습니다. 기차표를 반환하고, 다시 예약해서 받는 과정을 거치는동안, 대중들은 역사 바닥에 앉아 저녁도 먹고, 이야기도 나누었습니다. 뭔가 돌발현상이 생기고, 또 해결을 하고, 기차에 짐을 싣기 위해서 짐지키는 몇 사람을 빼고는 모두 짐을 나르는 모습도 재미있었습니다. nbsp 지금은 기차를 타고 가고 있는 중입니다. 완행이라 중간중간 계속 기차가 섭니다. 자리가 입구라 화장실 냄새가 인도냄새인 것처럼 진하게 밀려 옵니다. 그래도 앉아서 자지 않고 누워서 잘 수 있는 기차를 탈 수 있어서, 내일까지 바라나시에 갈 수 있어서 정말 다행입니다. 내일은 부처님이 처음 5비구에게 설법을 하셨던 녹야원에서 수계식이 있을 예정입니다. 기차가 오후 1시에 무갈사라역에 도착을 한다고 하는데, 별 일 없이 도착할 수 있기를 기원해 봅니다. 오랜만에 인도의 침대기차에서 잠을 청합니다. 내일 뵙겠습니다.

2013.01.06. 20,063 읽음 댓글 45개

2013년 1월 3일 법륜스님의 하루(인도성지순례 첫 날)

인도성지순례를 가는 날입니다. 새벽 3시 30분, 인도성지순례 스텝들은 인천공항으로 향했습니다.참가자가 많아서 미리 공항수속 밟고, 인도에 가져갈 많은 짐들도 미리 부치고, 참가자들이 편하게 출국 수속을 받을 수 있도록 미리 준비하기 위해서였습니다. 영하 16도를 밑도는 새벽 추위는 살을 에는 듯 했습니다. 이 시린 새벽 공기를 뚫고 전국에서 인도성지순례를 떠나기 위해 사람들이 인천공항으로 모여들었습니다. 켈커타에서 합류할 미국, 방콕 분들을 포함해서 순례객이 207명, 스텝이 13명으로 220명이 함께 15박 16일동안 법륜스님과 함께 부처님의 발자취를 찾아 여행하게 되었습니다. 드디어 모든 수속절차를 마치고 인천공항을 떠나 방콕공항에 도착했습니다. 방콕 공항에 오후 2시경에 도착했는데, 인도 켈커타행 비행기는 저녁 9시 55분 출발이라 방콕 공항에서의 시간이 많았습니다. 준비해온 간단한 김밥과 빵 등으로 조별로 모여앉아 간단한 점심 식사를 하고 자유시간을 가졌습니다. 오후 4시부터 방콕 공항 한 쪽에서 인도성지순례 입재식을 했습니다. 스님께서 이번 성지순례에 임하는 자세, 성지순례를 하면서의 여러 어려움에 대해서 이야기해 주시면서 여행이라 생각했을 때는 힘들고 어렵겠지만, 순례라고 생각했을 때는 많은 것을 느끼고 깨달을 수 있다고 하셨습니다. 인도성지순례를 하면서 나중에는 제일 큰 걱정이, 부처님은 온데 간데 없고, 어디서 어떻게 싸느냐, 무엇을 먹느냐, 어떻게 자느냐는 것이 됩니다. 그 때 자기 마음을 보는 것입니다. 이 마음이라는 것이 얼마나 변화무쌍하게 움직이는 지, 똑 같은 조건에서 밥먹고 차타고 자는데, 누군가 특별한 조건이 없는데 얼굴이 환해서 좋아죽겠다, 내년에 또 오고싶다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인상 팍 쓰고 다른 사람들이웃는 것도 보기 싫어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이런 것이 나타날 때, 조건이 다르면 감정이 다를 수 있는데 조건이 똑 같은데 감정이 다르다고 하면 감정의 원인은 누구에게 있을까요? 자기에게 있습니다.자기 문제라는 것입니다. 그것이 자기 업식입니다. 순례다니면서 즐거우면 한국에서도 즐거울 수 있고, 순례다니면서 불평하면 평소에 내가 세상을 부정적으로 보고 산다고 보시면 됩니다. 자기 업식이 다 드러나기 때문에 45일 지나면 숨길래야 숨길 수가 없습니다. 머리도 못 감고, 몸도 못 씻고, 피난민처럼 이리 치이고 저리 치이고, 밤에 방에 들어갔는데도 습해서 축축합니다. 그러니까 이 마음이 자기 성질대로, 자기 까르마대로 가는 것입니다. nbsp 스님께서는 2시간에 걸쳐서 열강을 하셨습니다. 그리고 30분 휴식을 하고, 다시 인도의 역사와 기후, 관습, 현재의 인도 상황인 종교갈등, 인종갈등, 민족갈등, 언어갈등을 포함한 인도 전반에 대한 설명을 해 주셨습니다. 그런 후, 우리가 순례하는 길이 부처님이 다니신 순서대로 가는 것이 아니라서 헷갈릴 수 있다며 부처님의 생애와 10대 성지에 대해서 자세하게 안내를 해 주셨습니다. 스님께서는 서서 1시간 30분가량 열정적으로 강의를 해 주시면서, 처음 서암큰스님과 만났을 때의 이야기를 해 주셨습니다. “마음 가는 곳에 부처님이 있습니다. 저의 스승님이셨던 서암큰스님과 처음 인연이 되었을 때, 그 때는 그 분이 누군지도 몰랐어요. 둘이서 우연히 함께 있는 시간이 되었어요. 미국 LA에 있는 한 작은 법당에 하룻밤 묵으려고 찾아갔더니 절 주지는 외출하고 없고, 노승이 한 분 계셨어요. 먼저 왔으니 대접을 하겠다고 하며 먹던 밥으로 볶음밥을 해 주셨어요. 밥을 먹고 나서 이야기를 했어요. 그 때만 하더라도 제가 30대 열혈청춘이라 불교계에 불만이 많았어요. 이것도 고쳐야 하고 저것도 고쳐야 한다며 데모도 하고 그러던 때였어요. 불교계에 대한 불만 이야기를 두어시간 말씀을 드렸어요. 노승께서는 한 말씀도 안 하시고 다 들으셨어요. 다 듣고 나서 “여보게, 어떤 한 사람이 말이야. 논두렁 밑에 앉아서 그 마음을 청정히 하면 그 사람이 중이네. 그 곳이 절이야. 이것이 불교라네.” 그랬어요. 그 때 저는 그 이야기를 듣고 정말 뒷통수를 몽둥이로 한 대 맞은 기분이었어요. 이론적으로는 ‘제법이 공하다’ 이런 것을 다 알죠. 그러나 현실에서 스님은 머리깎고 먹물 옷 입은 사람이다, 절은 기와집이다, 이런 관점에서 이것이 불교라고 규정짓고 이 불교가 잘못되었다, 고쳐야 한다는 입장에서 접근을 했는데, 큰 스님 말씀은 마음이 청정한 사람이 수행자다, 수행자가 머무르는 곳이면 어떤 곳이든 절이다, 도량이다, 수행처다 이런 이야기였어요. 이것이 불교다 이런 거예요. 그런데 나는 그동안 불교 아닌 것을 불교로 삼고, 그것을 고치려고 애쓰고 안 고쳐진다고 불만을 토로해 왔어요. 선에서 마치 어리석은 자가 환화를 꺾으려는 것과 같다, 허공의 헛꽃을 꺾으려는 것과 같다고 하는데 이 때 환화라는 것은 꿈 속에서 본 환상의 꽃을 말하는데요, 그처럼 나도 또한 불교 아닌 것을 불교로 삼고 그것을 고치려고 한 헛된 노력이었습니다. 이런 스승의 지도와 작은 깨달음이 계기가 되어서, 소위 말하면 형식적인 것보다는 내용적으로 어디서든지 법담을 나눌 수 있다면 그 어떤 곳이나 다절이지 어떤 절이 따로 있는 것이 아니라는 거예요.” nbsp 그래서 지금 우리가 앉아 있는 방콕공항에서 법이 설해지니 이 곳이 또한 절이고 수행처라고 하시면서 부처님의 생애를 전반적으로 쭉 훑어 주셨습니다. 자상하게 설명을 해 주셨습니다. 참가한 분들도그렇게 오랫동안 앉아 있기가 쉽지 않았을텐데 스님과 함께 하는 역사순례라 그런지 자료집을 앞에 두고, 눈을 반짝이면서 들었습니다. 분위기가 좋았습니다. 스님 입재법문을 마치고 나니, 이번 순례에 대한 전체적인 흐름과 자세, 우리들의 역할에 대해서도정리가 확실히 되는 느낌이었습니다. 강연 후 인도성지순례 스텝들이 퀴즈를 통해 부처님 성지에 공양 올릴 조를 배정하기도 하고, 넌센스 퀴즈를 통해 순례기간동안 주의해야 할 것들에 대해서 재미있게 놀이로 진행을 하기도 했습니다. 재미있었습니다. nbsp 방콕에서의 일정을 마치고 인도 켈커타로 들어왔습니다. 올 때보다 더 좁고 작은 비행기를 타고, 인도 켈커타의 늦은 밤에 도착했습니다. 내리자마자 매연의 매케한 냄새가 이곳이 인도구나 하는 생각을 떠오르게 했습니다. 짐이 많아 스텝들은 거의 모두 짐을 찾고 체크하고 정리하는 업무를 했습니다. 그리고 인도스텝들이 미리 준비해 놓은 트럭에 짐을 싣고, 6호버스까지 본인이 배정된 차에 모두 올라탔습니다. 현지에서 활동하는 스텝들을 만나니 반가움이 더했습니다. 잠시 눈 인사를 나눴지만, 함께 하는 도반이 있다는 것이 참 고마웠습니다. 오늘은 숙소가 두 군데로 나눠졌습니다. 저희가 머문 곳은 세바켄드라입니다. 씻지도 못하고, 양치질만 겨우 하고 잠을 잡니다. 벌써 새벽 3시가 넘었네요. 내일은 켈커다 칼리사원과 죽음을 기다리는 집을 보고, 인디안박물관 참배를 하고, 하우라역에서 기차를 타고 밤새 무갈사라역으로 이동할 계획입니다. 내일 소식 다시 전하겠습니다. nbsp

2013.01.05. 21,684 읽음 댓글 41개

2013년 1월 2일 법륜스님의 하루(정토회, 평화재단 시무식)

날이 많이 추워졌습니다. 지난 번 왔던 눈들이 녹지 않고 얼어붙어 해가 들지 않는 길들은 모두 빙판길이 되었습니다. 모두 조심 조심 다니고, 차 옆에도 바로 붙어서 가면 안 될 것 같습니다. 스님께서는 아침 일찍부터 조찬 모임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10시경에는 안과와 안경점, 이비인후과에 다녀오셨습니다. 지난 번 눈에 실핏줄이 터져 정토회관 가까운 안과에 갔었는데, 원장님이 그렇잖아도 존경하는 스님을 기회가 되면 눈을 전체적으로 검사를 해 주고 싶었는데 잘 됐다며 검사를 다해 주셨습니다. 오늘 한 번 더 오라고 해서 가서 마지막 검사를 받았습니다. 그리고 감기가 아직 딱 떨어지지 않아 이비인후과에까지 다녀오셨습니다. 병원 다녀오셔서도 약속이 있어 계속 재단에서 일정을 하시다가, 오후 2시 정토회와 평화재단 전체 시무식이 있어 정토법당으로 오셨습니다. 시무식에는 실무자들과 중앙사무처와 서울정토회 활동가들이 참가했습니다. 삼귀의와 반야심경에 이어 서울정토회 상임법사님이신 자재법사님의 인사말씀으로 2013년 시무식이 시작되었습니다. 오늘은 평화재단 평화교육원장이신 윤여준 님께서도 함께 자리를 하셔서 더 좋았습니다. “저도 스님뵌지 5년 되는데 그 뒤부터 편하게 사는 것 포기한 사람입니다. 그런데 스님이 하도 열심히 하시길래 스님을 절반따라 가려다가 병원에 여러 번 갔습니다. 그 때 반성한 게, 흉내낼 수 없는 걸 흉내내다가 당한 벌이다, 그래서 올해는 아무리 스님이 열심히 하셔도 저는 잘 거 다 자고 해야겠습니다. 계사년 올해에도 저는 스님 모시고 여러분과 열심히 일하겠습니다.” 원장님의 인사말씀을 들으며 많이 웃었습니다. 언제나 가까이에 계셔 주셔서 든든하고 포근한 원장님이십니다. nbsp 스님께서 시무식 법문을 해 주시면서 새해 인사도 겸하여 해 주셨습니다. “안녕하세요. 2013년도 계사년 새해 첫인사를 드립니다. 본래 시작도 없고 끝도 없지마는 또 우리는 이렇게 시작과 끝을 만들어 놓고 한해를 보내고 또 한해를 맞습니다. 한 생각 일으켜서 세상을 바라보면 세상 일이라는 것이 너무나 복잡합니다. 그러나 한 생각 쉬고 본래 자리로 돌아가보면 이 세상에는 아무 일도 없습니다. 아무리 사랑하는 애인이나 부부관계더라도, 또 사랑하는 부모자식관계라고 하더라도, 아무리 절친한 친구관계라 하더라도 내가 옳으니 네가 옳으니 하면서 자기 생각에 빠져서 살펴보면많은 차이가 있고, 도저히 함께 못할 많은 이유들이 있고, 또 아무리 해결하려해도 해결할 수 없는그런 복잡한 관계가 생겨납니다. 그런데 한 생각 놓아버리면 철천지 원수인 사람도 사실은 아무 문제가 없고, 사람과 산천초목까지도 별 차이가 없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눈을 감고 귀를 막고 조용한 곳에서 마음을 쉬면, 다만 들숨과 날숨만 있고 이 천지 우주간에 아무것도 없는 텅 빈 자리로 돌아가게 됩니다. 사실은 이 텅 빈 자리가 본래의 모습입니다. 우리는 언제나 그 곳을 고향으로 삼아야 합니다. 그것이 자기 본래 자리입니다. 그런 곳에서는 나도 없고 너도 없고 내 것도 없고 네 것도 없고, 내가 옳다 네가 옳다 할 것도 없습니다. 그 곳에는 중생도 없고 부처도 없고 사람과 사람 아닌 것도 차이가 없습니다. 그러기 때문에 옛 스승들은 그런 자리를 부처라 불렀다, 이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그런 텅 빈 자리에 앉아 있어보면 사실은 한국이니 미국이니 하는, 또 한국 안에서도 서울법당이니 문경이니 부산이니 하는 이런 것도 다 구분이 없어집니다. 그러니 이것도 아니고 저것도 아니고 나도 아니고 너도 아니고 옳은 것도 아니고 그른 것도 아닌 그런 자리에 우리가 설 때, 안온한 진정한 마음의 평화를 얻을 수 있습니다.” nbsp “지난 한 해동안 우리가 세상에 나가서 많은 일들을 했습니다. 만가지 몸을 나투었습니다. 무슨 팜플렛을 안돌려보나, 플랭카드를 안붙이나, 포스터를 안붙이나, 전국 시군구 강당을 빌려서야단법석을 안 벌리나, 길거리에서 춤을 추고, 이런 혼탁한 세상에 나가서 조금이라도 맑은 기운을만들어 볼까해서 우리에게 똥물튀기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고 그 속에 거닐었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세상 사람과의 다른 점은 바로 언제나 제자리로 돌아와서, 텅빈 자리로 돌아와서 본래 자기모습을 유지하는 것입니다. 또 이렇게 고요적정속에 있다가 또 필요하면 세상에 만가지 모양을 나툴 줄을 알아야 합니다.” 스님 법문을 듣고 다같이 잠시 명상을 하면서, 오늘 들은 법문을 올 한 해동안 명심해서 살아가리라다짐을 했습니다. 스님 법문 뒤에는 각 부서별로 나와서 올 한 해를 다짐하는 시간이 있었습니다. “올 해는 신나게 놀면서 ‘놀자정신’으로 열심히 일하겠습니다.” 몰빵정신, 춤박정신, 피라미드정신,도발정신 등을 내세우며 올 한 해 열심히 할 것을 다짐하였습니다. nbsp 스님께서도 끝까지 자리에 함께 하며 활동가들의 재롱을 즐겁게 봐 주셨습니다. nbsp 시무식을 마치고도 스님은 평화재단에서 계속 회의와 약속이 이어져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늦은 시간에 돌아오셨습니다. 내일부터는 인도성지순례를 떠납니다. 성지순례는 15박 16일이고, 스님께서는 성지순례 후에도 인도석가족 수계식, 수자타아카데미 스텝 수련 및 회의, 방콕 법회 등의 일정이 있어 1월 29일 귀국하셨다가 바로 당일날 필리핀 학교 준공식 참석차 필리핀으로 떠나실 예정입니다. 저도 스님과 인도 일정에 동행할 예정입니다. 인도 인터넷 사정이 어떨지 모르겠습니다. 최대한 스님의 인도의 하루를 올려서 공유하겠습니다.nbsp잘 다녀오겠습니다.

2013.01.03. 19,224 읽음 댓글 42개

2013년 1월 1일 법륜스님의 하루(해돋이, 현대자동차 농성장)

새벽에 일찍 일어나 다같이 천일결사 기도를 했습니다. 그 후 오늘도 따끈한 김치국밥 한 그릇을 먹고는 2013년 첫 해를 맞이하기 위해서 경주 양남면 해변가로 서둘러 이동했습니다. 한 시간 가량 이동해서 바닷가에 내리는 순간, 해가 수평선 너머에서 떠오르기 시작했습니다. 하늘이 맑아 구름 한 점 없이 깨끗하고 환하게 해가 솟아 올랐습니다. 함성을 지를 시간도 없이 모두가 스마트폰을 들고 사진 찍기에 여념이 없었습니다. nbsp 오랜만에 붉게 온 바다를 물들이며 당당하게 떠오르는 일출을 보았습니다. 참으로 아름다웠습니다.파도와 물안개가 어우러져 더 아름다운 풍경을 만들어 내었습니다. 새해 떠오르는 첫 햇님을 보면서 다같이 남북의 평화와 통일을 기도했습니다. 그리고 다같이 둘러서서 이번 대통령님이 말씀하셨던“잘 살아보세” 노래를 큰 소리로 부르며 정말 잘 난 사람, 못난 사람, 가진 사람, 못 가진 사람, 배운 사람, 못 배운 사람, 가리지 않고 모두가 잘 살 수 있기를 기원했습니다. 새로운 대한민국을 생각하며 크게 만세 삼창도 하고, 가슴 절절하게 ‘우리의 소원은 통일’도 불러 보았습니다. nbsp 스님과 함께, 도반과 함께 하는 이 시간들이 구름 한 점 없이 밝고 환하게 뜬 일출과 어울려 새해 첫 아침을 행복하게 만들어 주었습니다. 스님과 개인적인 사진도 찍고, 부서별 사진도 찍었습니다. 서울팀, 문경팀, 법사단, 행자팀하며 각 묶음 이름들을 만들어 스님과 이리도 찍고 저리도 찍었습니다. 새해를 맞이 하는 기분이 상쾌하고 즐거웠습니다. nbsp 해가 한참 떠오른 것을 보고 울산 현대자동차공장으로 향했습니다. 2013년 첫 날, 철탑 위에서 아침을 맞이한 노동자들의 마음을 어떠할까? 울산현대자동차 송전탑에서 농성하는 비정규직 노동자들을 격려 방문하였습니다. 농성장 앞은 천막만 쳐져 있고, 조용한 느낌이었습니다. 그런데 천막을 돌아가니, 송전탑 앞에 노조 관계자분들이 여러분 계시고, 송전탑 농성장과 연결하는 크레인도 와 있었습니다. “와 즉문즉설 법륜스님이시네요. 저기 올라가 있는 동지 두 명이 다 불교 신자들입니다. 그렇잖아도 왜 연말연시인데 불교계쪽에서는 한 분도 안 오시나 하며 기다리는 마음이 있었는데, 새해 첫 날부터 이렇게 와 주셔서 정말 고맙습니다.”하면서 관계자가 반갑게 맞이해 주셨습니다. 그리고는 저 높은 곳의 농성장을 향해 “어이, 즉문즉설 법륜스님이야. 질문 준비해”하면서 소리를 지르기도 했습니다. 반갑게 맞이해 주셔서 감사했습니다. nbsp 경향신문 특별 취재팀이 취재와서 크레인이 준비되어 있었던 것임을 뒤늦게 알았습니다. 운이 좋아 크레인을 타고 스님께서는 철탑 위의 농성하는 두 분과 직접 만나서 악수도 하고, 격려의 말씀도 드릴 수 있었습니다. 사진을 통해서 봤지만, 두 분의 표정이 밝고 환해서 좋았습니다. nbsp 송전탑 위에서 농성중인 두 분과 크레인을 타고 올라갔던 사람들이 오늘 떠오른 해처럼 환하게 웃으며 기념 촬영을 했습니다. nbsp 송전탑의 두 노동자는 대법원에서 판결난대로 비정규직 파견근무 2년 후에는 정식 채용을 해 달라는 것이었습니다. 사업주부터 법을 제대로 지켜달라는 절규였습니다. 오늘로서 77일째 고공 농성을 하시는 분들. 안타깝고 가슴이 아팠습니다. “비정규직이 얼마나 됩니까?”하고 스님께서 노조위원장님께 물었습니다. “하청업체 빼고 울산자동차에만 8천여명이 됩니다.”하였습니다. 스님께서 언젠가 정규직과 비정규직에 대해 말씀하시면서, 유럽처럼 직업이 안정되지 않는 비정규직이 모든 혜택을 받는 정규직보다 더 많은 월급을 받아야 한다던 말씀이 생각났습니다. 근 10년째 비정규직 관련 투쟁을 한다는 노조 임원들. 끝이 보이지 않는 투쟁 속에서 참으로 어렵고 힘들겠구나 싶었습니다. 스님께서 인사말씀을 하셨습니다. “저희들은 오늘 아침 해가 떠오르는 것을 보고 절에 가서 부처님께 인사를 하려고 하다가 살아있는 부처님인 이곳에서 고통받고 있는 사람들에게 첫 예배를 올리는 마음으로 이 곳을 방문했습니다. 지난 대통령 선거에서 뭔가 변화가 있으면 희망이 생기지 않겠나 생각했을텐데 그것이 뜻대로 이뤄지지 않아서 약간 절망적일 수도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새로운 대통령 당선자가 100 대한민국을 만들겠다고 했습니다. 이렇게 곳곳에서 마음고생을 하고 있고 고통을 받고 있는 이런 분들에게 희망을 주는 정치가 되어야 100 대한민국이 되지 않겠나 생각합니다. 이 곳에서 고통받고 있는 사람들의 마음과 눈물을 조금이라도 헤아려서, 이런 아픔을 해소하는 정치가 새해에 펼쳐지기를 기원합니다. 또한 여러 가지 어려움이 있더라도 오늘 아침 밝은 해가 떠오르듯이 여러분들에게 그런 밝은 희망의 해가 떠오르기를 다시 한 번 기원합니다. 세상사가 다 뜻대로 되는 것은 아니잖습니까? 그러나 우리의 인생은 뜻대로 안 된다고 포기할 수는 없는 것입니다. 우리의 뜻이 이루어질 때까지 꾸준히 노력하는 것이 우리가 해야 할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저희들이 여러분들의 이런 어려움에 충분히 함께 동참하지 못한 것을 반성하면서 새해에는 여러분과 함께 좋은 희망의 한 해를 만들기 위해서 노력하겠습니다. ” nbsp 이 분들에게 2013년 첫 날 아침, 법륜스님의 방문이 또 하나의 힘이 된 것 같습니다. 하루속히 이런 풀리지도 않고 매듭지어지지도 않는, 사용자와 노동자 모두가 힘겨운, 그것을 바라보는 국민도 힘겨운 이런 싸움이 없는 세상, 함께 상생하는 세상을 꿈꿔 봅니다. 크레인 위의 두 노동자를 향해 “힘내세요. 와”하고 큰 함성을 보내며 인사를 하고 농성장을 나오는데, 농성장 앞에 경찰차가 서 있었습니다. 스님께서 차창을 열고 경찰 관계자들에게 수고 많으시다며인사를 했습니다. 두 사람이 달려와 스님께 꾸뻑 인사를 합니다. 스님께서도 차에서 내려 “얼른 문제가 풀려서 서로 고생을 안 하도록 해야 될텐데, 수고가 많습니다.”하면서 손을 잡아주었습니다. 스님께 사진 한 장 같이 찍어도 되냐며 스마트폰을 들고 겸연쩍게 웃는 모습이 꼭 초등학생들 같았습니다. nbsp 철탑 위에서 투쟁하는 노동자들, 철탑 아래에서 함께 투쟁하는 노동자들, 농성장 밖의 경찰들 모두가 수고로움을 벗어나서 서로가 잘 살려지는 세상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2013년 첫 날, 어려움 속에 놓여있는 사람들을 방문한 것 자체가 의미가 있었던 것 같습니다. 서울로 돌아오는 길 중간에 폭설이 내리고, 7중 충돌사고도 있었습니다. 조심조심하며 서울로 왔습니다. 스님께서는 “쌍용자동차에도 들렸다가 가려고 했는데, 시간이 안 되네.”하고 아쉬워하시면서 다음 약속이 잡힌 서울 평화재단으로 이동을 하셨습니다. 곧 해외 나가시는 일정이라 각 단위별 회의와 만남들이 쭉 잡혀 있어서, 오늘 밤 늦게 들어오셨습니다. 내일도 계속 회의와 만남 일정이 있습니다. 오후 2시에는 정토회 본부와 서울지역 시무식에 참가하실 예정입니다. 내일은 시무식 소식 간단히 올리겠습니다. 내일 뵙겠습니다.

2013.01.02. 16,999 읽음 댓글 9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