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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월 1일 법륜스님의 하루(안산, 인천 계양구)
오늘 오전 강연은 경기도 안산이었습니다. 안산은 산업 인구가 많아, 강연을 돕는 자원봉사자들도 연차를 내고 자원봉사를 하고 있었습니다. 인근 안양과 인천에서 나와서 지원을 해 주고 있었습니다. 안산에서 첫 질문자는 청소년에 대해 관심이 많은 젊은 남자였습니다. 청소년들의 많은 문제가 사회와 어른들에게 있지 않냐며 질문을 하자 스님께서 인연과를 비롯한 여러 가지 설명을 해 주시면서 1시간동안 강연을 하셨습니다. “너무 길게 답변을 했죠? 제가 이렇게 답변이 길어지는 경우가 있는데, 아이 키우는 것, 육아에 대한 부분이 나오면 이렇게 길어집니다.” 스님은 강연을 하실 때 답변이 길어지는 경우는 보통 두 가지 주제에 대해서입니다. 육아에 대한 부분과 통일에 대한 부분입니다. 한 가지 주제에 대해서 너무 길게 이야기하니까 즉문즉설의 간결하고 명쾌한 느낌이 없어서 약간 아쉬운 마음이 있었는데, 그 질문 이후부터는 명쾌하고 간결함, 감동스러움과 함께 재미도 있었던 시간이었습니다. nbsp 장애 아이를 가진 젊은 엄마의 사연을 함께 공유해 봅니다. “10살, 12살 아들을 키우는 엄마입니다. 스님 말씀을 들으니까 저는 아이들을 어린이집에도 늦게 보내고 맘껏 뛰어놀게 키워서 마음으로 뿌듯했습니다. 큰 애는 공부를 못하는 편은 아니어서 만족하면서nbsp행복하게 살고 있습니다. 그런데 작은 아이에게 장애가 있어요. 한글도 간단한 것은 읽고 쓰고 치료도 열심히 다니고 있습니다. 그 아이의 됨됨이보다는 애가 공부를 얼마나 잘하냐를 우선시 보는 사회인데, 남들이 볼 때 저희 작은 아이의 경우 모자라게 볼 것입니다. 제 자식이라서 그런지 저에게는 정말 예쁩니다. 성장과정이 보통 아이들과는 다르지만, 작은 아이를 키우면서 주는 행복도 굉장히 커거든요. 그런데 이 아이는 성인이 되어서도 정상으로nbsp따라가지는 못할 것입니다. 저희들이 살아있을 때는 잘 보살피면서 키우겠는데 우리가 없으면 어떻게 될까? 일어나지도 않은 먼 미래의 일을 걱정하는 것은 아는데도 걱정이 됩니다.” 젊은 엄마는 둘째아이 키우는 것이 참 행복하다는 말을 여러 번 강조했습니다. 그러다가 중간에 중간에 울먹울먹 눈물을 글썽이기도 했습니다. nbsp “아이는 멀쩡해요. 눈이 하나 없으면 없는대로 멀쩡한 거예요. 팔이 하나 없으면 팔이 하나 없는대로 멀쩡한 거예요. 부모가 자꾸 그것을 보고 안타까워 하기 때문에 아이가 열등감을 느끼는 거예요. 엄마가 열등감을 느끼면 아이도 열등감을 느끼고, 엄마가 괜찮으면 아이도 괜찮아요. 팔이 하나 없다고 아이들이 놀리면, 엄마가 ‘괜찮아, 괜찮아, 애들이 어리석어서 그래. 괜찮아, 괜찮아’ 하면서 엄마가 괜찮으면 아이는 정신적으로 괜찮아요. 뭘 중심으로 엄마가 사느냐가 중요합니다. 그런데 질문하는 엄마는 이미 마음의 뿌리가 열등의식에 젖어 있어요. 아이가 잘 살려면 자기가 떳떳해야 돼요. 헬렌켈러의 엄마 보세요. 엄마가 정성을 기울이니까 훌륭한 사람이 되잖아요. 아이가 문제가 아니라 자기가 문제예요. 아무 문제가 없어요. 아이는 멀쩡합니다. 그리고 3040년 지나면 사회보장제도가 어떻게 바뀔지 상상해보세요. 그 때는 이미 늙은이도, 어린이도, 장애인도 보호받을 거예요. 사회에서 책임져 줘요. 걱정 안 해도 돼요. 남이 다르게 보는 것을 어떻게 간섭하겠어요? 사람들은 자기와 다르면 쳐다봅니다. 어떻게 남의 자유를 막으려고 그래요? 그 사람을 차별해서 쳐다보는 것이 아니라 나와 다르니까 쳐다보는 겁니다. 내가 버스를 타거나 전철을 타고 앉아 있으면 사람들이 나를 쳐다봐요. 교회 다니는 사람들은 옆에 잘 앉으려고도 안 해요. 거기에 구애를 받지 말아야 합니다. ‘이상하다’ 하는 것이 자연스러움이예요. 사람이 장애인이라고 차별받지 않는다고 법으로는 보장되어 있지만 아직까지 관습적으로 남아 있습니다. 관습적으로 남아있는 것은 세월이 흘러야 해결될 수 있습니다. 너무 신경쓰지 마세요. 엄마가 당당해야합니다. 엄마 심리가 불안해요. 엄마가 문제예요.” 젊은 엄마는 답을 얻은 것 같았습니다. 마음 깊은 곳의 불안함을 행복하다는 말로 스스로 부정한 듯 해서 안타까웠는데, 스님께서 말씀을 해 주시니까 정리가 된 것 같습니다. 장애를 가진 엄마의 마음이 진하게 다가왔습니다. nbsp 안산에서 강연을 마치고 바로 종로 평창동에 있는 대화문화아카데미로 이동했습니다. 오늘은 대화문화아카데미 초청 대화모임 논찬이 있는 날입니다. 주제는 ‘18대 대선과 2013년 이후의 한국정치’였는데, 스님께서는 토론자로 참가하셨습니다. 2시부터 6시까지 논찬에 참가하셨다가, 다음 강연이 있는 인천 계양구로 이동했습니다. 오늘같이 강연이나 모임이 3개 이상 있는 날은 차안에서 이동하면서 간편하게 먹을 수 있는 김밥이nbsp제일 좋은 음식입니다. 그렇잖아도 오늘 인천 계양에서 어떤 중년의 남자분이 일어나서 스님이 이 큰 일을 하시면서 어떻게 건강관리를 하는지, 식단은 어떤지, 잠은 어디서 자는지, 식사는 어디서 하는지 묻는 질문이 있었습니다. 사람들은 스님이 저렇게까지 활동을 하면서 건강은 어떻게 유지하는지 불가사의하게 느껴진다고 합니다. 어떻게 저렇게 활동을 할 수 있을까? 많은 사람들이 궁금해 합니다. nbsp “소박한 질문이 아니라 굉장히 어려운 질문이네요. 밥은 차에서 먹을 때가 많습니다. 오늘 아침은 일찍 조찬모임이 있었어요. 하루에 모임이 많을 때는 10개도 있습니다. 아침에 죽을 줘서 먹었어요. 안산에서 강의끝나고 서울 가면서 희망세상만들기 봉사하는 분들 먹는 김밥 한 줄 먹었어요. 차타고 가면서 헐레벌떡 2시 회의에 참석했어요. 차에 타고 가면 원고 봐라, 뭐 봐라 하면서 전화도 많이 옵니다. 거기서 4시간 회의하고 여기로 오다가 아침에 도시락 싸놓은 것이 있어서 그것 김치랑 먹고 이도 안 닦고 지금 여기 들어온 거예요. 주로 이렇게 보냅니다. 저녁을 못 먹는 날은 끝나고 가다가 먹어요. 우동 사먹을 때도 있어요. 옛날부터 먹는 건 아무거나 잘 먹었어요. 국수도 먹고 고구마도 먹고 그래요. 그런데 저는 밥을 먹든 고구마를 먹든 그런 건 괜찮은데 빵은 잘 안 먹어요. 빵은 과자니 식사 같지가 않아요. 그래서 빵은 진짜 한 달에 한 번 먹을까 말까 해요. 평상시의 건강관리는 특별히 없습니다. 음식은 조금 밖에 안 먹는데 살이 쪄요. 운동을 하나도 안 합니다. 나가면 차타고 강의하고 차타고 강의하고 그래요. 하루에 강연을 두 번 할 때는 걸을 시간이 있어요. 그런데 세 번 하면 거의 꼼짝을 못해요. 그리고 잠자는 곳은 서울 경기에서는 서초법당에서 자요. 그 다음에 충청 호남권에서는 대전법당에서 자요. 그 다음 부산 경남 강의는 울산에 수련장이 있어서 거기서 자요. 그 다음 강원도나 경상북도는 문경에 수련장에서 자요. 같은 방에 이틀을 연달아 잘 때는 거의 없습니다. 늘 짐 보따리를 매고 하루씩 옮겨다니면서 자요. 한군데서 이틀 자면 굉장히 좋아요. 보따리 안 풀어도 되니까요. 그런데 보따리도 별로 든 게 없어요. 양말하고 내의하고 밖에 없어요. 스님은 옷이 똑같애요. 여름, 겨울만 다르죠. 그래서 속옷 가지고 조절해요. 외출해도 그 옷, 잘 때도 그 옷, 다른 옷이 따로 없어요. 그리고 옷 가지고 다닐 일이 별로 없어요. 생활이 이래요. 또 뭐 궁금하세요? 계속 물어보세요.” “아플 때는 없어요? 아프면 어떻게 합니까?” “이제 지금부터 아프기 시작하는 단계예요. 아픈 데는 주로 목하고 감기드는 겁니다. 병원에 가면 이비인후과밖에 안 가요. 유일하게 이비인후과에 가요. 그래서 목이 따갑고 아프면 치료를 해야 돼요. 지금도 목젖이 부어있어요. 아픈데도 못 쉬고 계속하면 열이 나서 하다가 누울 정도가 돼요. 그러면 주사를 한 대 맞아야 돼요. 그렇게 1년 끌고 가다가 여름에 단식하고 새로 리모델링 해서 가는 거예요. 그래서 1년에 한 번이나 두 번 단식하는 거예요. 운동할 시간은 하루에 30분만 해도 건강할텐데 nbsp시간을 못 내고 있어요. 그렇게 살아요. 그런데 가장 중요한 건 사는 걸 늘 놀기 삼아 살아요. 그래서 가능해요. 일 삼아 했으면 과로로 죽었죠. “녜, 스님. 감사드리고요, 내년에도 강의다니면서 5천만명의 외로운 고민을 들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고맙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스님 건강을 걱정하시는 것 같아 스님 관련 질문을 올려 봅니다. 스님 건강은 걱정하지 않으셔도 될 것 같습니다.nbsp항상 스님 건강을 걱정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오늘nbsp정성껏 종이꽃을 만들어 스님께 선물해 주신 분께도 감사드립니다.nbsp nbsp 강연 마치고, 스님 잘 아시는 분 어머님이 돌아가셔서 삼성의료원 장례식장에 들렀다가 돌아왔습니다. 오늘로서 260강이 마무리되었습니다. 하루 하루가 역사 속에 튼실하게 엮어져 가고 있는 것 같습니다. 내일은 오전 10시 30분에 여주, 오후 2시 30분에 증평에서 강연이 있습니다. 저녁 7시 오산은 장소 관계로 취소가 되어서 강연이 없습니다. 내일 다시 뵙겠습니다. nbsp
10월 31일 법륜스님의 하루(대전 가을강좌, 평화재단 심포지엄)
어제는 창녕에서 저녁 강연을 마친 후 대전정토회에서 잤습니다. 오늘은 일어나서부터 계속 바빴던 하룹니다. 아침 7시에 대전 리베라호텔에서 한국표준협회 CEO 아카데미 초청 조찬이 있었습니다. 주제는 ‘법륜스님과 함께하는 새로운 100년’이었고, 참가자는 기업 최고 경영자 및 임원, 지역 유지, 고위 공무원들이었습니다. 6시 30분에 대전정토회를 출발해서 리베라호텔로 가서 KSA 중앙회장님과 사전에 간단한 차담을 나누고 식사 후 스님 강연이 있었습니다. 서울에서 오랫동안 명성을 가지고 활동중인 모임인데, 오늘 대전지역 창립이었습니다. 창립일날 좋은 강사를 모셔야 된다고 해서 법륜스님을 추천해서 모셨다고 합니다. nbsp 스님께서는 “올바른 역사인식이 우리 삶에서 왜 필요한가? 중국이 급격히 부상하여 미중이 패권 경쟁을 하는 G2시대에 분단된 채로는 강대국의 하위 변수로 편재되어 갈등을 계속하는 분쟁지역이 될 수밖에 없지만 우리가 통일하면 통일한국은 미중사이에서 세력 균형자 역할을 하여 한반도를 평화지대로 만들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통일은 우리민족의 비전이며 나아가 동아시아 공동체의 구심체가 될 수 있습니다. 우리에게는 통일한국이라는 새로운 시대가 펼쳐짐으로 해서 작지만 강한 영향력을 끼치는 세계 일류 국가가 될 수 있습니다. 또한, 사업을 하는 사람은 멀리 미래를 볼 수 있는 눈을 가져야 하고, 시대적 과제를 읽고 사업을 했을 때 진정한 성공을 할 수 있습니다.”며 구체적인 현실부터 미래의 큰 그림까지 제시를 해 주셨습니다. 지역의 인사들이라 그런지 충청도라 그런지 환호하거나 큰 반응은 없었지만, 자리에서 계속 고개를 끄덕이며 진지하게 듣는 분위기였습니다. 이런 자리가 많아서, 스님의 분권과 통일, 경제 민주화를 비롯한 희망 세상을 열어가는 많은 이야기들을 사회를 이끌어가는 지도층이 충분히 들을 수 있으면 좋겠단 생각을 했습니다. nbsp 조찬 강연을 마치고 대전정토회에 도착하니 10시가 다 되어 갑니다. 10시부터 법회가 시작되었습니다. 잠시 숨을 돌리고 나니, 법당에서 스님의 법문을 청하는 청법가가 울려 퍼집니다. 스님께서 법상에 오르셔서 양해를 구했습니다. “평화재단 8주년 기념식이 당겨지게 되었는데 도저히 시간이 나지 않아 수요일인 오늘 하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1시간만 간단히 질문을 받고 다음에 보충하겠습니다”며 죄송한 마음을 전했습니다. 1시간동안 미리 예약되어 있던 질문 5개를 다 받을 수 있었습니다. 다행입니다. 질문하려고 온 사람들의 질문을 다 받고 서울로 향할 수 있어서 마음이 가벼웠습니다. 머리가 하얀 할머니는 부끄럽지만 딸문제 때문에 스님을 찾아왔다고 합니다. nbsp 돈을 벌어주지 않는 무능한 남편과 헤어져 자식 둘을 데리고 인도로 간 딸이 꼭 남편과 다시 만나nbsp행복하게 살기를 매일 부처님 전에 빈다며 이 딸 때문에 말도 못하고 괴롭다면서 어떻게 해야 하는지 스님께 물었습니다. “가만히 놔 두세요. 결혼하면 옛날에는 무조건 남편하고 살아야 했는데 지금은 괜찮아요. 애를 버리고 갔으면 야단칠텐데 자기 자식 자기가 데리고 가서 사니까 괜찮아요. 그 정도의 책임의식이 있으니까 괜찮습니다.” “스님이 보시기에 남편과 같이 살 것 같애요? 저는 그 애가 마음을 바꿔서 그 사람과 행복하게 사는게 꿈이거든요.” “행복하게 살아야 하는 건 맞는데 꼭 그 사람과 살 필요는 없어요. 시대가 바뀌었어요.” “어휴” “그렇게 해 주면 좋은데 그렇게 하지 않는다고 해서 꼭 나쁜 것은 아니예요.” “부처님에게 원을 세우길, 그 애 마음을 좀 돌려달라고 기도했어요.” “그렇게 하지 말고 ‘자식 잘 키우고 행복하게 살도록 해 주세요.’ 하고 기도하세요. 그 사람과 같이 살아서 행복하면 같이 살거고, 안 행복하면 같이 안 살거니까, ‘어떻게 살아도 행복하게만 살도록 해 주세요.’ 이렇게 기도하세요.” “스님 말씀이 그렇다면 그렇게 생각하겠습니다.” “노인들은 어떻게 결혼을 했든 백년해로를 해야 하는데, 남편 두고 멀리 떠나 있으니까 마음이 무겁습니다. 남편과 같이 살았으면 좋겠다고 하는 것이 부모 마음이예요. 여러분들이 싸우면 자기 괴롭고 아이들 괴롭고 부모가 괴롭습니다. 어지간하면 같이 사세요. 늙은 부모는 무조건 같이 살아라 하는데 무조건 같이 사는 것이 꼭 행복한 것은 아니예요. 무조건 같이 살아라고 하면 딸이 엄마 때문에 고통을 받아요. 자기 인생 자기가 살도록 길을 열어줘야 됩니다.” 할머니의 질문을 이어, 대인관계가 어렵다는 충남대 여학생, 태어날 때 작은 크기의 자비를 가지고 태어나서 이렇게 힘든 것 같다며 자기 생각 속에 빠져, 질문을 알아듣기도 어려웠던 아주머니, 대선의 문, 안 캠프에 대해서 의견을 내놓은 분 등 여러 질문에 대해서 답을 하고 바쁘게 서울로 향했습니다. 오후 1시경에 행사장에 도착할 수 있었습니다. 서울 종로의 천도교 수운회관에서 행사가 열렸습니다. 행사를 시작하자 300여명의 사람들이 진지하게 행사에 참가를 했습니다. 먼저 세 대선 후보 진영에 들어가 있는 김종인, 윤여준, 최상용 님의 기조발제로 심포지엄이 시작되었습니다. 안철수씨의 멘토로 알려졌던 세 분이 지금은 대통령 후보 3명의 각 선거캠프에 들어가서 경제 민주화, 정치쇄신을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이 분들을 한 자리에 모운다는 것이 쉽지 않은데,nbsp스님께서 평상시에 어르신을 잘 모시는 부분도 있지만, 큰 틀에서 대한민국의 미래에 대해서 모두 걱정하시는 분들이라 스님과 마음이 맞아 오늘 심포지엄에 참가해 주신 것 같습니다. 고맙습니다. nbsp 김종인 수석님은 양극화를 해소할 수 있는 경제민주화의 중요성을 말씀하셨고, 윤여준 전 장관님은nbsp정치쇄신의 필요성에 대해서 말씀해 주셨습니다. 최상용 교수님은 후보의 자질에 대해서 말씀해 주셨습니다. 세 분의 기조강연 후, 이어서 통일시대를 대비한 국가혁신방향에 대해 발표와 토론이 이어졌습니다. 오늘은 공간이 주는 어려움이 많았던 것 같습니다. 날이 갑자기 추워졌는데, 수운회관도 오래된 건물이라 그런지 내부도 많이 추웠습니다. 마이크 시설도 좋지가 않아 집중을 시키기에 어려움도 있었습니다. 그래서 마지막까지 사람들이 많아 남아 있지 않았습니다. 좋은 내용들이 뒤에도 많았는데, 듣는 사람이 많지 않아 아쉬웠습니다. 그래도 국가혁신 방향과 정치, 경제혁신 방향에 대해 충분한 토론이 진행되었습니다. nbsp 심포지엄을 마무리하며 스님의 정리 말씀이 있었습니다. 오늘 내용을 총괄적으로 짚어주셨습니다. 전문을 다 올려 봅니다. “오늘 발표해주신 여러분께 진심으로 감사 말씀 드립니다. 추운데 늦게까지 앉아계신 여러분들 감사합니다. 결국 오늘 말씀하신 것들을 제가 정리해보면 87년 민주화 이후 지난 25년 동안 우리사회가 많이 변했습니다. 그 변화된 상황이 현재의 국가운영 시스템에 충분히 반영되지 않고 있습니다. 그러니 과거 25년동안 경험한 것에서 필요한 것을 반영하고, 앞으로 25년간 변화할 것을 예측하여nbsp이를 반영한 새로운 국가운영 시스템이 필요합니다. 필요하다면 헌법개정이라도 해서 새로운 국가혁신 방향이 잡혀야 합니다. 우리 대한민국은 국가로서의 대한민국인 코리아가 있고, 국민으로서의 대한민국인 코리안이 있는데, 국가는 발전해야 하고, 국민은 행복해야 합니다. 국가가 더 발전하려면 첫째 국가의 기반이 안정되어 있어야 합니다. 그런 면에서 남북관계가 평화적이어야 합니다, 둘째 국제정세의 변화 속에서 특히 미중의 경쟁이 치열해져가는 상황속에서 통일이 중요한 국가발전의 요소가 됩니다. 통일 없이는 대한민국의 비전을 만들기가 어렵습니다.nbsp그러므로 국가발전에 대한 기본 방향은 평화와 통일입니다. nbsp 그 다음 국민이 행복하려면 첫째 정치적 자유가 좀 더 확대되어야 합니다. 지금까지는 지도자를 뽑는 잠시동안의 시민의 권리는 확보되었지만 일상적으로 주민들이 시민적 권리를 행사할 수 있지는 못합니다. 일상적으로 시민이 자기 권리를 행사하려면 지방 분권이 이루어져 자신이 사는 지역에서 시민의 권리가 일상적으로 행사되어야 합니다. 또 정당이 다양한 시민의 요구를 반영할 수 있도록 지역정당이나 이념정당이 손쉽게 만들어질 수 있고 각 정당은 시민의 다양한 요구를 일상적으로 반영할 수 있는 시스템을 갖추어야 합니다. 그리고 그러한 국민의 다양한 요구를 반영해서 통합해내는 일상적인 정치 행위가 국회에서 이루어져야 합니다. 둘째 국민은 경제적 풍요로워야 합니다. 그럴려면 성장뿐만 아니라 분배가 잘 이루어져야 합니다.nbsp성장하려면 통일이 바로 한국이 다시 한 번 더 크게 성장하는 기회가 될 것입니다.nbsp또 하나는 우리 자체의 성장동력은 이미 감소되고 있지만 중국의 성장에 힘입어 당분간 더 성장을 할 수 있으므로 한중관계를 돈독히 해야 합니다. 그리고 지난 100년은 서구문명을 모방하여 따라배우기 식으로 발전해 왔는데 이제는 선진국 대열에 합류했기 때문에 여기서 더 나아가려면 창의력이 있어야 합니다. 이 창의력이 성장동력이 됩니다. 그럴려면 창의력을 갖춘 인재를 양성하는 창의적 교육이 이루어져야 합니다.nbspnbsp 그 다음은 분배문제입니다. 전에는 성장으로 떡고물이 떨어졌는데 지금은 떡고물이 안 떨어짐으로 해서 분배가 굉장히 중요한 문제가 되었습니다. 먼저 경쟁의 룰을 공정하게 만들어야 합니다. 그리고 룰을 공정하게 관리해야 합니다. 현재 정부가 그것을 제대로 못하거나 한 쪽에 편듦으로 해서 더 큰 문제가 발생하고 있습니다. 불공정하면 패자가 승복하지 않습니다. 그러면 사회가 불안해집니다. 공정하기만 하면 되느냐? 그렇지만은 않습니다. 이 경쟁에 참여하지 못할 약자도 있습니다. 어린이라든지, 노인이라든지, 신체장애라든지 환자라든지 이런 사회적 약자층에 대한 안전망이 충분히 구축되어야 합니다. 이 안전망을 복지라고 합니다. 이 공정과 복지가 함께 가야 합니다. 이 문제를 풀기 위해서는 세금을 어떻게 거둘까 하는 조세정책과 이 돈을 어떻게 쓰야 하는가 하는 재정정책을 잘 운영함으로 해서 강자나 약자 다 함께 잘 살 수 있는 공평한 사회를 만들 수 있습니다. 바로 2013년에는 이런 공정한 사회, 복지사회를 만들어가는 중요한 분기점이 될 것입니다. 이런 사회를 만들기 위해서는 성장시대에 나를 따르라는 리더쉽만으로도 안 되고, 민주화시대에 단결투쟁을 외치는 리더쉽만으로도 안 되고 이제는 국민의 다양한 요구를 합리적으로 통합해내는 통합의 리더십이 어느 때보다 필요한 때입니다. 원로 세 분께서 직접 머리를 맞대어서 이야기하듯이 대선 주자 셋이 머리를 맞대어서 어떻게 우리 국가가 발전할 수 있겠느냐. 변화와 안정을 함께 이끌어가는 데 있어서 경쟁할 때는 경쟁하더라도 서로 대화를 하는 아름다운 모습을 만들어간다면 국민들에게 새로운 희망을 줄 수 있을 것입니다. 앞으로도 평화재단은 한국사회의 발전과 한반도의 평화와 통일을 위해서 민간차원에서 작지만은 도움되는 일을 할 것을 약속하면서 오늘 토론을 마치겠습니다.” nbsp 스님께서 오늘 발표와 토론을 맡은 분 한 분, 한 분에게 발표해 주셔서 감사하다며 깊이 고개 숙여nbsp인사를 하십니다. 그 모습에 또 숙연한 느낌이 들었습니다. 오늘 심포지엄에 많은 사람들이 참가하지는 않았지만, 내용은 참 좋았습니다. 더 많은 사람과 함께 하지 못해서 아쉬운 마음이 들었습니다. 내일도 바쁘게 하루를 보내야 하는 날입니다. 오전에 안산 갔다가 2시에는 종로 평창동에 있는 대화문화아카데미 여해관에서 열리는 ‘18대 대선과 2013년 이후의 한국정치’에 토론자로 참가하십니다. 그 후 저녁에는 인천광역시 계약문화회관에서 300강 강연이 이어집니다. 내일 뵙겠습니다. nbsp
10월 30일 법륜스님의 하루(성주, 창녕, 고성)
오늘 오전 강연은 경북 성주에서 있었습니다. 성주는 참외가 유명한 지역입니다. 참외 농사를 준비하는 시기라 바쁜 계절이라고 합니다. 그리고 이번에 태풍 삼바로 인해서 농사 피해가 너무 커서 아직까지도 농민들의 마음의 상처가 크다고 합니다. 위로의 말씀을 전하고 싶습니다. 그런데도 많은 분들이 강연장에 찾아 오셨습니다. 젊은 분들도 많았고, 연세드신 분들도 많았습니다. 비구니 스님들도 많이 오셨습니다. 지방이라 질문이 적을 것 같았는데 질문도 많았습니다. nbsp 80세 넘는 할머니가 일어나서 질문하기를 죽을 때 잘 죽을 수 있는 기도법, 또 자손들을 잘 되게 하는 기도법을 물으셨습니다. 또 결혼 생각이 없는데 가게에 오는 손님들이 결혼을 왜 안하느냐고 자꾸 물어서 힘들다는 31살의 여성, 직장도 안가고 집에 있는 남편에게 화가 난다는 주부 등 많은 질문이 있었습니다. 결혼 전에 바람둥이였던 남편이 결혼하면 그러지 않겠다고 다짐하며 구애를 해서 결혼했는데 6개월 전 바람핀 사실을 알게 되어 지금은 분노와 화로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다는 결혼 10년차 주부와 스님의 문답은 강연장을 거의 코매디판으로 만들어 놓았습니다. 솔직한 아주머니와 핵심을 콕콕 짚어가는 스님과의 문답에 사람들이 박수를 치며 재미있어합니다. 그러면서도 하나씩 하나씩 풀려져 가면서 해답이 보여지자 마지막에 사람들이 큰 박수를 보냈습니다. 당장 이혼할 듯 툭툭 속내를 털어내던 아주머니는 남편을 때로는 엄마처럼 안아주고, 때로는 기생처럼 받아주라는 스님의 말씀에 자기 성질에 기생같이 하기는 쉽지 않지만 한 번 해 보겠다며 스님께 약속을 합니다. 처음 화가 나서 질문하던 큰 목소리도 어느새 잦아들어 공손해져 있었습니다. 사람들이 큰 박수를 보냈습니다. 강연을 마치고 스님께서 강연에 오신 할머니들 한 분 한 분 손을 잡아주며 인사를 드립니다. 사진도 한 컷 찍었습니다. nbsp 성주는 정토회나 평화재단 회원이 없어서 대구정토회에서 직접 와서 홍보를 했다고 합니다. 오늘 강연장에 235명이 참가해서 강연장을 꽉 채우자, 그동안 열심히 홍보했던 자원봉사자들이 얼굴이 환해졌습니다. 열심히 한만큼 성과가 나온 것 같습니다. 수고많으셨습니다. 성주 강연을 마치고 바로 경남 창녕으로 향했습니다. 창녕은 결혼식을 많이 하는 경화회관을 오늘 강연장으로 준비했습니다. “주례하러 온 것 같네?”하시며 스님께서 웃으십니다. 한 분이 야구르트 500개를 보시하셔서 강연장에 들어가시는 한 분 한 분께 야구르트 하나씩을 드렸습니다. 창녕 강연장도 340명이 참가해서 강연장이 꽉 찼습니다. nbsp 창녕 강연장도 분위기가 밝았는데, 그 중 할머니 한 분의 사연을 소개합니다. 사투리를 워낙 심하게 써서 사람들이 더 많이 웃었습니다. 두 분이 이야기하는 내내 웃었습니다. “저는 딴 것도 아니고예, 다른 소원은 없는데 우리 주인 양반이 말을 안 들어서, 옷을 안 갈아 입고 방에 들어가고, 씻어라고 하면 욕을 하고예. 어떻게 하면 깨끗이 해 놓고 살꼬?” “남자가 옷 자주 갈아 입으면 빨래도 많이 나오지, 자주 안 씻으면 물 아껴쓰고 얼마나 좋아요?nbsp씻는 것도 습관이라서 안 고쳐져요. 자주 씻는 것은 몸에도 안 좋아요. 옷도 너무 자주 갈아 입어도 안 좋아요.” “욕을 안 하면 좋은데” “질문자가 가만 있는데도 욕을 해요?” “다른 것도 아니고 씻어라 하는데, 옷 갈아 입어라고 하는데 욕을 해.” “결혼한 지 얼마나 됐어요?” “21살 때 결혼해서 지금 71살이니까 50년 되었지.” “50년간 옷 갈아 입어라, 씻어라 하니 고쳐졌어요? 안 고쳐졌어요?” “안 고쳐지더라고.” “50년간 안 고친 남자가 고집이 세요? 안 고쳐지는 줄 알면서도 50년간 따라다니면서 잔소리한 여자가 고집이 세요? 이제 고집 그만 부리고 그냥 두세요. 질문자가 고집이 더 세요. 남편 고집을 한번 꺽어보겠다는 거죠? 아내가 고집이 세니까 남편이 화를 내는 거예요. 여자가 50년을 따라 다니면서 잔소리를 하니까 성질을 내는 거예요. ‘무슨 여자가 50년을 따라 다니면서 잔소리를 하나?’ 하는 거예요. 이제부터 남편이 씻으려고 하면 물이 아깝다고 하고, 옷을 갈아입으려고 하면 벗어놓은 옷을 들고 가서 깨끗한데 며칠 더 입어라고 말을 그렇게 해 봐요. 그렇게 마음을 쓰면 오히려 좋아져요. 한 번 더 이야기하는데 고칠까요? 안 고칠까요?” “안고쳐지겠지.” “그러니 그냥 두세요.” “그런데 자꾸 욕을 하니까.” “질문자가 고치라는 소리하니까 욕을 하지요. 이제 고치라고 하지 말고, 자기가 생각을 내려놔야 합니다. 어차피 안고칠 사람을 고치려고 하면 내 가슴만 답답해지죠? 고쳐라 고쳐라 하면서 50년간 미워하면서 살았잖아요? 어차피 안 고쳐지니까 이제는 그냥 두고 편안히 사세요. 영감이 사람은 좋아요?” “사람이야 좋치.” “그러면 이제 고치라고 하지 말고 그냥 편안히 사세요.” 알았다는 시원한 할머니의 대답에 사람들이 환호를 하며 큰 박수를 보냈습니다. nbsp 강연을 마치고 다음 강연장으로 가기 전에 창녕박물관에 잠시 들렀습니다. 창녕은 비화가야가 있었던 땅입니다. 비화가야 유물이 전시되어 있었는데, 초곡리발굴유물특별전이 열려서 비화가야 유물 전시공간이 줄어들어 아쉬웠습니다. nbsp 박물관을 둘러본 후 박물관 뒤에 있는 고분군에 올라갔습니다. 해질녁 저녁 노을이 아름다웠습니다. 30분 정도 겨우 시간을 내어 박물관과 고분군을 둘러보고 바로 다음 강연장인 고성으로 향했습니다. 우포늪을 못 보고 가는 것이 못내 아쉬웠습니다. 고성 강연은 시작전에 사전 공연으로 사회복지시설 보리수동산 아이들의 풍물 공연이 있었습니다.nbsp쾡과리, 북과 장구, 징이 어울러져 경쾌한 울림이 되어 강연장에 퍼져 나갔습니다. nbsp 보리수동산 아이들이 폐품을 팔아 기금을 100만원 만들었다고 합니다. 강연시작전에 스님께 북한어린이들을 위해서 써 달라며 전달을 했습니다. 스님께서 이 돈은 일반 사람들이 내는 1억원보다도 더 귀한 돈이라며 감사함을 전했습니다. 아이들의 따뜻한 마음이 북한 아이들에게도 전달될 것입니다. 감사합니다. 오늘 강연이 있었던 성주, 창녕, 고성은 군소재지인데도 여태껏과 다르게 질문이 많았습니다. 고성에서는 아이 가진 엄마들이 질문을 해서 스님께 꾸지람을 많이 들었습니다. 스님과 같이 강연을 다니면서 수많은 사연들을 접하게 됩니다. 왜 스님께서 그렇게 아이 엄마에게는 신이 되어야 한다, 엄마가 편안해야 한다고 강조를 하시는지를 어린 시절을 불안하게 보낸 사람들의 고통을 보면서 더 절실하게 느끼게 됩니다. nbsp 고성의 많은 질문 중 42세의 장가 못간 남성의 고민을 함께 나눠 봅니다. 이 분과 스님의 문답도 강연장을 즐겁게 해 주었습니다. 많이 웃었습니다. “저는 42살된 사람입니다. 다름이 아니고 대인관계가 너무 안 되어서 사람들과 이야기도 못하고 장가도 못가고 살아가는데 상당히 애로가 많습니다. 스님처럼 농담도 잘하시고 그렇게 하고 싶습니다.” “스님처럼 농담을 잘 해도 60살이 된 지금도 장가를 못 갔는데, 농담도 못하는 자기가 장가 못간 것은 너무 당연하지. 이야기 들어보니 별 문제 없어요. 그 정도면 말도 잘해요. 자기 병은 ‘내가 문제가 있다’하는 병에 걸린 거예요. 문제가 없는데 환상에 사로잡혀 나는 문제가 있는 인간이라고 하는 깊은 병에 걸렸다는 거예요. “솔직히 대인관계가 진짜 안 좋거든요”. “대인관게가 다 고만고만해요. 현실의 나와 자의식이 그리는 나와 겝이 너무 커요. 현실의 나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여야 합니다. 인간관계가 서툴면 서툰 그것이 나예요. 그런데 나를 항상 높은 곳에 두고 있으니까 불만이 되는 거예요. 목표를 낮춰야 됩니다. 긍정적 사고가 필요합니다. 애가 꼴찌를 해도 긍정적인 사람은 ‘그래도 우리 애는 학교는 다녀요’ 이렇게 이야기합니다. 학교 안 다니는 아이들도 많죠? 사물을 어떻게 보느냐 하는 문제예요. 자기는 자기를 부정적으로 봅니다. 자기가 자기를 긍정적으로 봐야 합니다. 키도 그 정도면 됐고, 건강도 그 정도는 됐고, 말도 그 정도면 잘 합니다. 그러면 노래 한 곡 시켜 볼까요?” 사람들이 박수를 치며 재촉을 합니다. “제가 아는 노래가 ‘희나리’밖에 없습니다.” “뭐든 해 봐요.” “사랑함에 세심했던 나의 마음이 ♬♩♪ 그렇게도 그대에게 구속이었소? ♬nbsp믿지 못해 그런 것이 아니었는데 ♪어쩌다가 헤어지는 이유가 됐소 ♬ 내게 무슨” “그 정도면 장가 가겠어요. 그런데 빼지 말고 바로 했으면 더 좋았죠. 여자가 마음에 들면 ‘나 너 좋다.’ 이야기 해 버리세요. ‘나는 니가 싫어’ 하면 ‘알았어’ 하면 됩니다.nbsp싫다는 말도 자꾸 들으면 면역이 돼요. 상처받을 필요가 없어요. 나는 너를 좋아 하는데 너는 싫다고 하면 작전을 짜야 됩니다. 노력을 해야 되지요. 비상한 노력을 해야 됩니다. 자꾸 그렇게 하다 보면 능력이 생겨요. 연애 몇 번 해 봤어요? 42살이 되도록 한 번 밖에 못했어요? 너무 깊이 사귀려고 하지 말고 가볍게 사겨봐요. 신차만 돼요? 중고차도 돼요? 너무 따지면 안됩니다. 신구를 따지지 말고 만나면 언제라도 만날 수 있어요.” “고맙습니다.” nbsp 오늘은 다 많이 웃었습니다. 재미있었습니다. 사람들이 울면서 질문하기도 하고, 심각한 표정으로nbsp질문을 하기도 하는데, 스님과 대화가 시작되면 모든 문제들이 가벼워지는 것 같습니다. 오늘도 질문한 몇 분이 다른 사람 질문을 들으니까 자기 질문을 질문도 아닌 것 같다는 말을 했습니다. 그래서 여러 사람의 인생 이야기를 듣는 것도 내 문제 해결의 한 방법이기도 한 것 같습니다. 직접 질문은 하지 않아도 몇 사람의 질문을 통해 내 문제를 해결해 가는 것 같습니다. 내일은 오전에는 대전정토회 가을강좌가 있고, 오후에는 평화재단 제8주년 기념 심포지엄이 있습니다. ‘통일시대를 대비한 국가혁신 방향’에 대해 오후내내 행사가 진행됩니다. 기대가 됩니다. 내일 많은 분들이 오셔서 함께 하시면 좋을 것 같습니다. 내일 뵙겠습니다.
10월 29일 법륜스님의 하루(목포, 광주)
새로운 일주일이 시작되었습니다. 매일 매일 스님의 강연이 있고 여러 일정들이 있어서 사실 요일 개념이 없습니다. 월요일과 일요일의 차이를 못 느끼며 살고 있습니다. 고속도로나 도시에서 차가 많이 막힐 때면 아, 오늘이 월요일이구나 혹은 아, 오늘이 금요일이구나 하면서 요일을 실감하게 됩니다. 오늘은 목포에서 오전 강연이 있어서 울산에서 새벽 5시경에 목포로 출발했습니다. 차 안에서 세상 모르고 자다가 목포를 25km 정도 남겨둔 임시 휴게소에서 일어나 싸간 도시락으로아침을 먹었습니다. 목포에 도착하니 사전 공연으로 재능기부를 해 준 진도실버예술단 단장님과 단원들이 공연전에 스님께 반갑게 인사를 합니다. 단장님은 미국 콜롬버스정토회 대표님과 친하게 지내고 있다며 진도에서 강연할 때도 재능기부를 해 주시겠다고 하였습니다. 오늘은 진도실버예술단의 북춤과 진도아리랑으로 흥겹게 강연이 시작되었습니다. 강연 시작할 때 비어있던 자리도 강연 중간쯤에는 사람들도 많이 차서 560명이 강연에 참가했습니다. nbsp 처음 질문이 4년째 투병하고 있는 남편의 짜증을 받아내기가 힘들다는 63세 아주머니의 어려움에 대한 호소였는데 스님과 문답을 하며 참 재미있게 진행이 되었습니다. 사람들도 많이 웃고 아주머니도 스님과 문답이 오가면서 가볍게 자기 문제로 받아 안았습니다. 이 아주머니도 스님의 주례사를 읽고 많은 감동을 받았다며 질문을 시작했습니다. 그 다음 질문들은 대중들과 쉽게 소통하기 힘들거나 질문 자체가 애매하거나 정신적으로 힘든 사람의 질문이라 처음 시작은 재미있게 되었는데 뒤로 가면서 약간 심각해진 분위기가 되었습니다. 스님께서 마지막에 정리를 하시면서 행복을 위한 조건을 말씀해 주셨습니다. nbsp “행복하려면 첫째 마음이 가벼워야 합니다. 둘째, 마음이 맑아야 합니다. 셋째 마음이 밝아야 합니다. 그런데 근심걱정이 많으면 마음이 어두워요. 종교인들은 다수가 비교적 마음이 맑은 편이지만 밝거나 가볍지는 않아요. 그 이유는 사명감으로 인해 마음이 무거운 편입니다. 어떤 사물을 가볍게 못 받아들인다 이 말이예요. 그래서 선비들이 평민보다 얼굴이 안 밝아요. 늘 자기를 억압하고 살아요. 그래서 사람들에게 훌륭한 사람이라고 평가받을 지는 몰라도 자기가 행복한 것은 아니예요. 이런 것도 하나의 상이예요. 욕심만 내려놓는 것이 아니라 사명감도 내려놔야 합니다.”nbsp우리 모두가 마음이 가볍고 욕심을 내려놓아 맑은 얼굴로, 근심걱정 없는 밝은 얼굴로 살아갈 수 있기를 기원해 봅니다. nbsp 목포 강연을 마치고 광주로 가는 길에 목포에서 싸준 연밥 도시락을 휴게소에서 맛있게 먹었습니다. 오랜만에 여유있게 식사를 하고, 스님은 차에서 휴식을 하셨습니다. 광주 강연은 여태껏 광주 강연 중 가장 큰 강연장이 준비되어 있었습니다. 1700석이 넘는 문화예술회관이었습니다. 가는 차안에서 스님은 식사를 하시고, 오늘도 재능기부를 하신 분들이 있어서 조금 일찍 강연장으로 들어가셨습니다. 광주 인디가수인 주권기 님이 먼저 기타를 신나게 연주하며 노래 2곡을 선물해 주셨습니다. nbsp 이어서 지난 번 천안에서도 재능기부를 해 주셨던 조성환님이 오늘도 아름다운 노래 2곡을 피리로 연주해 주셨습니다. 1, 2층 1700석을 가득 채운 대중들이 같이 손뼉을 치며 즐겁게 강연을 시작했습니다. 스님이 등장하시자 뜨거운 박수로 대중들이 스님을 맞이해 주었습니다. 오늘 광주는 가슴 아픈 사연들이 많았습니다. 2개월전에 아들을 저 세상으로 보낸 엄마의 목메이는 사연, 며칠 전 유산을 한 젊은 주부, 아들의 폭력에 힘들어하는 부부, 아내의 초기 치매 증세와 조울증으로 가사와 아들 3명의 양육의 어려움에 대해서 이야기하는 남편 의 사연 등이 듣는 대중들의 가슴을 아프게 했습니다. 그런데 오늘 질문하신 분들은 대부분은 스님 법문이나 책을 먼저 접한 분들이었습니다. 그래서 질문 내용도 솔직하고 진솔했습니다. 구체적이고 깊이있게 자기 문제를 질문하니 듣는 대중들도 질문자의 말에 공감이 많이 되고, 스님의 답변에 대한 이해도 잘 되는 것 같았습니다. 스님 말씀따라 해 보는데 잘 안된다, 제대로 하고 있는 것이 맞는지, 이제는 어떻게 해야 하는지 스님께서 방향을 잡아주기를 원했습니다. nbsp 강연이 다른 때보다 훨씬 늦게 끝났는데도 일어서는 사람없이 집중되고, 중간 중간 격려의 박수도 치고, 같이 즐거움의 박수도 치면서 1750명이 함께 만들어간 강연이었습니다. 가슴 뜨거운 사람들과 만난 광주였습니다. 책 사인회 장은 대중들이 너무 많이 몰려와서 사진을 찍는 바람에 자원봉사자들이 급히 인간띠를 만들어야 할 정도였습니다. nbsp 오늘의 많은 질문 중 아들의 폭력에 대한 질문을 함께 나눠 보고자 합니다. “나이가 54세이고 공무원입니다. 술을 많이 마셨습니다. 심하게 많이 마셔서 아내를 많이 힘들게 했습니다. 그러다 법륜스님을 만나서 인생이 180도 바뀌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아들에 대해 죄스럽습니다. 고2인 아들은 자퇴상태입니다. 중2때부터 폭력이 시작되었고, 고2때부터는 통제가 불가능해졌습니다. 손에 잡히는 대로 부수고 엄마를 협박하기도 하였습니다. 부모에게 욕도 합니다. 핸드폰을 잃어버리거나 부숴놓고 안 사주면 폭력성을 드러냅니다. 아들의 요구를 들어주지 않으면 안 되게 되었고 상담도 효과가 없었고, 112구조대의 협조를 얻어 정신병원에 입원을 시켜보기도 했습니다. 결국 퇴원에서 집에 있지만 지금도 폭력성이 계속 되고 있습니다. 어떻게 해야 할까요?” “부인 같이 왔어요? 먼저 부인이 남편에게 엎드려 참회해야 합니다. 남편을 미워하고 원망한 과보로 지금 이런 고통을 받는 줄을 알아야 합니다. ‘제가 죄 값을 톡톡히 받겠습니다.’하면서 매일 300배 하세요. 질문자가 술을 먹고 횡포를 부린 것은 어려서 억압된 심리가 있어서 제정신이 아닌 상태가 되어서 그래요. 화를 어려서 풀면 어른이 되면 덜 합니다. 질문자는 아들이 이런 것이 다 나를 닮아서 생긴 것임을 알아야 합니다. 아들을 불쌍히 여겨야 합니다. ‘내가 한 것을 닮아서 그렇구나. 내가 잘못 살아서 그렇구나.’하고 아들을 향해서 매일 108배 절을 해야 합니다. 또 부인을 향해서 ‘얼마나 나를 만나서 힘들었소’ 이렇게 108배 하면서 참회 기도를 해야 합니다. 오늘부터 정말 깊이깊이 참회를 해야 합니다. 안 그러면 이 뒤에는 재앙이 계속 따르게 되고 집안이 풍비박산이 됩니다. 간절히 기도해야 합니다. 아이가 남을 때리거나 부수거나 하면 절대로 인간이 가야 할 길이 아닙니다. 오계를 어기면 내 아이라도 봐주지 말고 바로 경찰에 연락해서 처벌해야 합니다. 부모로서는 참회를 하고, 공동체 일원인 공인으로서는 아이가 나쁜 일을 하면 처벌을 해야 합니다. 그것이 아이에게 좋습니다. 작은 처벌을 미리 받아야 나중에 큰 화를 면할 수 있습니다. 자식에 대한 부모의 정은 기도할 때만 쏟으세요. 정이 있어서 잘못을 봐줘도 안되고 밉다고 외면해도 안 됩니다. 남이 우리 집에 와서 살림을 부쉈다고 하면 처벌하겠죠? 그것은 딱 남처럼 대해서 처벌을 해야 합니다. 인간적으로 아이가 어떤 잘못을 해도 부모가 자식을 사랑해야 하기 때문에 그것은 부모로서 내 잘못으로 받아들여야 합니다. 그러나 아이를 바른 길로 가게 하려면 가슴이 아파도 처벌을 해야 합니다. 거기에 부모의 정을 개입하지 마세요. 냉정하게, 객관적으로 처벌을 해야 합니다. 부모가 자식이라고 봐줬다가 큰 범죄가 일어나는 거예요. 정말 부모가 자식을 사랑한다면 자식을 바로 이끌어야하잖아요. 부모는 아무리 자식이 범죄를 저질러도 자식을 사랑해야 합니다. 자식을 미워해서는 안 됩니다. 자식이 어떤 행패를 부려도 두려워 하거나 피해서는 안됩니다. 아주 냉정하게 자식이 바른 길로 갈 수 있도록 해야 합니다. 법대로 처벌해야 합니다. 기도하면서 그렇게 하시면 3년이면 좀 안정이 될 거예요. 안 그러면 죽을 때까지 끝이 안 납니다.” nbsp 스님 법문을 들으면서 항상 느끼는 것이지만, 우리가 참 어리석게 살고 있구나 싶었습니다. 5년 후, 10년 후에 올 과보에 대해서 미리 알지 못해서 화를 키우는 것 같습니다. 부모는 기도해서 마음이 편해질 수 있지만 어린 아이들의 기본 심성이 되어 버린 화와 폭력성은 어떻게 책임질 수 있을까 안타까운 마음이 들었습니다. 그래도 법의 인연을 만나서, 스님과 인연이 되어 지금이라도 참회할 수 있다는 것, 진정 자유로운 삶을 만날 수 있다는 것이 큰 선물인 것 같습니다. 부처님 법 만나 지금 이렇게 살아가고 있음이 참으로 감사하고 고맙습니다. 내일은 세 개의 강연이 있는 날입니다. 바쁘게 다녀야 할 것 같습니다. 경북 성주, 경남 창녕과 고성에서 뵙겠습니다. 감사합니다.nbspnbsp
10월 28일 법륜스님의 하루(경주평지순례, 포항 강연)
어젯밤, 서울에서 울산으로 내려왔습니다. 내려오는 길에 전화가 한 통 왔습니다. 오랫동안 문경정토수련원에서 행자원 반장으로 소임을 맡아서 일을 했던 길상 최동호 법우가 인도로 발령받아, 내일 아침 인도로 떠나기 전 스님께 인사를 드리는 전화였습니다. “내가 시간을 좀 내서 한 번 본다는 게 바빠서 시간을 못 냈네. 잘 다녀오고.” 길상 법우가 어떤 마음가짐으로 가야 하는지 묻는 것 같습니다. “처음 가서 3개월간은 아무런 의견내지 말고, 먼저 현지에 적응해야 합니다. 현재 그 곳이 어떻게 진행되고 있는지 상황 파악을 하는 게 필요해요. 처음 가면 제대로 안 된 것들이 눈에 많이 들어오고, 어떻게 바꾸는 것이 좋겠다는 아이디어도 많이 생길 거예요. 그러나 나중에 보면 그것이 대부분 내 분별심인 경우가 많아요. 항상 그곳에 살던 사람들은 매너리즘에 빠져서 현지의 문제점들이 잘 안 보이게 되고, 또 처음 가는 사람은 현지 상황을 잘 이해하지 못하면서 이런저런 문제점만 보이게 되는 것이 일반적인 현상이예요. 그러니까 가서 문제점이 보이더라도 말을 하지 말고, 다 적어 두었다가 3개월이 지난 뒤에 다시 보면 그 중 대부분이 내가 분별한 것이고 몇 개만 쓸만한 게 나오지. 그 때는 그것을 개선해야 돼요. 외국에 떨어져 혼자 있게 되면 외로울 때가 많아요. 외롭게 되면 인간관계가 공적으로 흐르기보다 사적으로 흐르기가 쉽지요. 그래서 자꾸 정에 끄달리게 됩니다. 마음을 밖에 두지 말고, 안으로 잘 챙겨야 경계에 끄달리지 않게 되지, 항상 수행하는 마음으로 정진하세요. 2개월 후면 인도성지순례 때 내가 가니까 그 때까지 현지에 잘 적응하고 있고, 그 때 가서 이야기 나눕시다.” 하나 하나 짚어주시고 살펴 주시는 스님의 모습에서 따뜻한 아버지같은 느낌과 길을 알려 주시는 스승님으로서의 느낌이 함께 느껴집니다. 늦은 시간에 도착해서 자고, 아침 일찍 밥을 해 먹고, 경주로 향했습니다. 오늘은 ‘법륜스님과 함께 하는 경주 평지 순례’가 있는 날입니다. 전국에서 불대생이 660여명 참가했습니다. 어제까지 비가 와서 날이 흐리지 않을까, 너무 춥지 않을까 걱정을 했는데, 바람은 좀 많이 불었지만 하늘도 맑고 기온도 그리 내려 가지 않아 가을 여행하기에 좋았습니다. nbsp 봄에는 남산성지순례를 하고, 가을에는 경주 평지순례를 합니다. 오늘은 불국사, 사천왕사지, 선덕여왕릉, 능지탑, 황복사지, 황룡사지를 지나 분황사에서 마무리 회향을 하는 일정입니다. 불교대학생들이라 거의 처음 보는 얼굴들입니다. 불교대학 학장인 스님을 매주 영상으로 만나다가 오늘은 직접 얼굴을 마주보며 함께 하는 시간이라 그런지 다들 틈만 나면 스님 옆에 따라붙거나 무슨 기자회견장처럼 스마트폰 세례를 쏟아붓곤 합니다. 먼저 불국사 입구에서 입재식을 하고 불국사 경내를 돌아보았습니다. 불국사에 대해서 상세하고 자세하게 스님께서 설명을 해 주십니다. 저는 그 중에서도 불국사 축대에 대한 말씀을 하실 때면 항상 감동을 받습니다. nbsp “자, 정면을 보시고 축대를 한 번 보세요. 기둥이 있고 중간에 돌들이 있고 또 기둥이 있죠? 기둥이 돌들을 받쳐 주는 역할을 합니다. 기둥 사이의 돌은 다 다듬을 필요가 없습니다. 자연석을 편편한 면만 바깥으로 보이도록 배치해서 잘 맞췄습니다. 하나 하나는 부족하지만 서로 끼워지면 다듬은 돌과 같습니다. 그러나 한 면은 편편해야 합니다. 다른 면들은 울퉁불퉁하더라도, 한 면은 제대로 되어 있어야 합니다. 그 한 면이 바로 우리에게 보여지는 면입니다. 불국토에 사는 중생은 완전한 인격체는 안되더라도 적어도 한 가지 정도는 부처님을 닮아야 합니다. 5000만이 다 깨우치지는 못해도 1인 50만명만 깨우치면 불국토가 됩니다. 읍, 면, 동 단위로 아침마다 수행하는 정토법당이 있어서 이 사람들이 정진, 보시하고 환경, 통일 등의 활동을 활발하게 하는 것입니다. 읍, 면, 동에 100명이면 한 시군에 2000명 정도가 됩니다. 이 사람들이 수행, 보시, 봉사하면 시 행정이 똑바로 됩니다. 기둥사이에 있는 자연석이 개개인이라면 즉 중생이라면, 기둥은 보리샤트바, 즉 보살입니다. 이 원리를 가지고 정토행자의 서원을 만들었습니다.” 스님의 설명에 따라 칠보교, 연화교를 보고, 다보탑, 석가탑, 대웅전을 지나 무설전, 비로전, 관음전으로 쭉 돌아봤습니다. 문화적으로 뛰어나고 정교한 불국사를 보면서 중국의 황하문명보다 1천년은 앞선nbsp우리의 배달문명, 요하문명이 계승되어서 그렇다며 자랑스럽게 말씀해 주셨습니다. nbsp 불국사 참배 후 사천왕사지로 갔습니다. 발굴작업이 한창인 사천왕사지를 바라보며 낭산 입구에 앉아 삼국유사에 나오는 사천왕사지에 얽힌 이야기들은 신나게 말씀해 주셨습니다. 선덕여왕릉에서는 도시락을 맛있게 먹고, 노래자랑도 했습니다. 봄 남산순례 때 신나게 노래자랑을 했던 적이 있어 사람들이 모이자 손뼉부터 치게 됩니다. 신나게 웃고 신나게 노래불렀습니다. nbsp 나와서 노래부른 사람 중에 오늘은 남자분들이 주로 많았고, 그 중에서 해운대 불대생들이 특별히 많았습니다. 스님 앞에서 남자, 여자 상관없이 모두들 사랑한다며 사랑고백을 합니다. nbsp 다시 능지탑으로, 황복사지 석탑으로 이동해서 너른 황룡사에 도착했습니다. 황룡사에서는 호국사찰로서의 황룡사의 역사와 황룡사 9층 목탑, 그리고 금당과 금당의 장육존불상, 솔거의 금당벽화, 원효스님에 대한 이야기들은 재미있고 실감나게 이야기해 주셨습니다. 스님의 학창시절 이야기도 같이 들을 수 있었습니다. 천년 전의 신라의 숨결을 느끼며 다같이 명상을 하는 시간도 감동적이었습니다. nbsp 스님께서 출가하신 분황사에서 간단한 설명과 더불어 오늘 장을 마무리 했습니다. nbsp 4시에 경주성지순례 일정이 마무리가 되었습니다. 마치고 분황사를 나와 잠시 스님의 모교인 경주중교등학교에 들렸습니다. 스님 중고등학생 때의 이런저런 이야기를 들을 수 있는 귀한 시간었습니다. nbsp 포항 강연은 7시라, 중간 틈에 조금의 시간이 있어서 경주정토법당에 가서 1시간 넘게 휴식을 한 후nbsp포항으로 향했습니다. 경주에서 포항은 40여분밖에 걸리지 않았습니다. 강연장에 들어서니 980석 좌석이 꽉 차고, 오는 사람들은 무대 앞 바닥과 통로 중간중간에 앉고 있었습니다. 1230여명이 참가했습니다. nbsp 오늘 강연은 ‘방황해도 괜찮아’ 북콘서트로 청년들을 위한 강연으로 포항 청년정토회에서 책임을 맡고, 포항정토회에서 지원을 한 행사였습니다. 강연장의 뜨거운 열기가 얼마나 청년들이 열심히 준비했는지를 보여주는 것 같았습니다. nbsp 청년을 위한 강연인데 마음이 젊은 늙은 청년들이 더 많이 온 것 같았습니다. 분위가가 밝고 좋았습니다. 질문을 준비하고 있는 사람이 열 명이나 되어서 바로 즉문즉설에 들어갔습니다. 오늘 특이한 점은 군인들 20여명이 참가해서 4명이 군대생활을 어떻게 잘 할 것인지에 대해서 질문을 한 것입니다. 그러자 스님께서, “이렇게 군인들이 많이 올 줄 알았으면 내가 군대에 가서 강연을 할 걸 그랬네요?”해서 많이 웃었습니다. 오늘도 문답이 오가는 중간중간에 계속 박수가 터졌습니다. 강연 중간에는 스님 강연 찾아온 청학동 훈장 김봉곤씨에게 스님께서 마이크를 넘기셔서, 나눔에 대한 당신의 생각을 잠시 이야기하셨고, 이어서 심청전 중 뺑덕어멈에 대한 판소리를 해 주셔서 관객을 즐겁게 해 주었습니다. nbsp 오늘은 군인들의 질문이 많아 그 중 군생활을 어떻게 하면 보람되고 잘 보낼 수 있는지에 대한 설명을 나눠봅니다. nbsp “학교 다닐 때 한 번 보세요. 영어 선생이 잘 못 가르친다고 영어수업시간에 책상 밑에 수학책 넣어 놓고 공부하는 학생들이 있어요. 아무리 선생이 잘 못 가르쳐도 영어시간에는 영어공부에 집중하는 것이 좋아요. 그처럼 군대 있을 때는 군인에 충실하는 게 좋아요. 군인으로 잘 할 수 있는게 뭘까요? 첫째, 체력을 단련하는 것이 좋습니다. 훈련 있는 날은 훈련하고, 훈련 없는 날은 나 혼자 뛰면서 체력 단련을 하면 군인으로서 칭찬받는 일이잖아요. 둘째, 요즘 자식이 한 둘이라서 공동생활이 서툴잖아요. 어차피 사회 나가도 생활하려면 그것도 조직생활입니다. 군대 있을 때 조직생활 연습을 많이 하는 것이 좋습니다. 셋째, 상사가 시키면 무조건 해 보는 것입니다. 비굴하게 하라는 것이 아니라 나를 내려놓는 하심하는 마음으로 해 봅니다. 그러면 수행이 많이 됩니다. 넷째, 돈만 재산이 아니라 사람이 재산입니다. 부하들 대할 때 직위로 대하지 마세요. 군대의 질서상 필요한 것은 그렇게 대하더라도 평상시에는 사람과 사람으로 대하세요. 그 안에서 인간관계라고 하는 큰 자원을 확보할 수 있습니다. 그런 식으로 군대안에서 할 수 있는 것을 해야지, 군대 밖에서 할 수 있는 일을 군대안에서 눈치보면서 할려고 하면 맞지도 않고 나도 힘들고 또 효율적이지도 않습니다. 제대 얼마 남았어요?” “500일 넘게 남았습니다.” 갓 입대한 군인이었습니다. 제대할 때까지 스님 말씀따라 군생활 잘 하시길 기원해 봅니다. 오늘은 경주에서 천년 신라의 역사와 함께 가을에 흠뻑 취하고, 포항에서 천 여명의 사람들과 함께 인생이야기를 나누며 재밌고 보람된 시간을 보냈습니다. 하룻동안의 일들이지만, 적을 것들이 많아 항상 줄이고 줄여서 쓰는데도 어떤 날은 글이 길어지곤 합니다. 오늘 하루도 함께 나누고 싶은 이야기들이 참 많았던 하루였습니다. 내일은 목포와 광주에서 강연이 있습니다. 가슴 뜨거운 사람들이 사는 전라도에서 만나뵙겠습니다. 감사합니다. nbsp
10월 26일 법륜스님의 하루(부천, 인천 북콘서트)
오늘은 10월 26일입니다. 보통 10.26하면 1979년 박정희 대통령이 김재규로부터 살해당한 날로, 유신의 한 획을 그은 날로만 기억들을 하고 있을 것 같습니다. 오늘은 안중근 의사가 민족의 독립을 위해서 1909년 하얼삔역에서 이토 히로부미를 저격한 날이기도 합니다. ‘내가 한국 독립을 회복하고 동양 평화를 유지하려고 3년 동안 풍찬노숙을 하다가, 마침내 그 목적을 이루지 못하고 이곳에서 죽느니 우리 2천만 형제, 자매는 각각 스스로 분발하여 학문에 힘쓰고 산업을 진흥하여 나의 끼친 뜻을 이어 자유 독립을 회복하면 죽는 자 유한이 없겠노라.’라고 동포들에게 마지막 고하는 말을 남겼습니다. 스님께서는 아침 일찍 효창공원의 백범 김구선생과 안중근 의사의 가묘에 참배하셨습니다. nbsp 삼의사의 묘는 조국의 독립을 위해 몸을 바친 이봉창, 윤봉길, 백정기 의사를 모신 묘역이었습니다.nbsp그 옆에는 1910년 3월 26일 중국 뤼순 감옥에서 순국한 안중근 의사의 유해를 찾으면 안장하려고 마련한 빈 무덤이 있었습니다. nbsp 당시 조국의 독립을 위해 온 몸을 받친 의사들의 정신을 이어받아, 분단을 극복하고, 조국의 평화와 통일을 위해, 안중근 의사의 마지막 고한 말에서처럼 동양의 평화를 위해 오늘도 스님은 잠시도 머무르지 않고nbsp쉼없이 움직이시는 것 같습니다. 효창공원에서 참배를 한 후 경기도 부천으로 이동하였습니다. 부천은 700석 좌석인데 760명이 참석을 해서 강연장을 꽉 채워 강연을 시작하였습니다. 스님 말씀에 웃으며 손뼉치고, 어떤 분들은 까르르 넘어가기도 합니다. 밝고 활기찬 강연 분위기였습니다. 질문자가 많아서, 서두 말씀은 간단하게 하시고 바로 즉문즉설로 들어갔습니다. 어떤 젊은 남자분은 일어나서 스님께 먼저 감사하다고 인사를 했습니다. 본인의 성격이 까칠했는데 스님의 인터넷 강의를 많이 들으면서 스님께 야단을 많이 듣다보니 이제는 아내가 스님께 고마워하는 상황으로 바뀌었다고 합니다. 교회에 다님으로 인해 편견이 있어서 안 듣다가 우연한 기회에 스님 법문을 만나게 되어 인터넷 강의는 수백편을 보고 책도 다 읽었다고 합니다. 스님 법문 덕분에 성경도 더 깊이 이해하게 되었다고 합니다. 전국 강연을 다니면서 질문하는 분들을 보면, 스님의 책을 읽고 인터넷 강의를 듣고 혼자서 수행을 해보다가 잘 되지 않아서 질문하는 경우들이nbsp많아지는 것 같습니다. nbsp 어떤 여자분은 스님의 새로운 백년을 읽고 많은 감동을 받았다면서 통일에 대한 질문을 하기도 했습니다. 서울 인근에서 20년동안 경찰공무원을 한 남자분은 이제 나이가 드니까 외로워서 부모, 형제들이 있는 광주로 귀향을 하고 싶은데, 중2, 고1인 자식들이 내려가고 싶어하지 않아서 아내와 자식들만 두고 혼자 내려가는 것이 좋을지 묻는 분이 있었습니다. 스님께서 총각이면 마음대로 해도 되는데 결혼을 했기 때문에 부인의 의사를 들어야 하고, 부부는 아이들 교육을 위해서 헤어져 사는 것이 좋지 않고, 자녀들이 중2, 고1이기 때문에 가더라도4년을 더 기다렸다가 자녀가 20살이 되었을 때 고향으로 가는 것이 좋겠다고 하셨습니다. “제가 귀향하자는 것은 부모 형제들을 떠나 살아서 외로워서 가족이 있는 곳으로 가고 싶다는 거예요.” “누구의 부모고 누구의 형제예요? 부인도 같은 의견이예요? 가면 시댁이 더 가까워지는데? 그런 마음이라면 더더욱 안 돼요.” 그러자 청중의 23 이상을 차지하고 있는 여자분들이 환호와 박수를 아낌없이 보내면서 스님 말씀에 100 동의를 표합니다. 많이 웃었습니다. nbsp “결혼해서 살면 나는 내 형제지만 부인은 내 형제가 아니고, 나는 추억이 있지만 부인은 일이 많아집니다. 좋은 것 아니예요. 부인과 합의해서 가세요. 그래도 일단 4년 지난 뒤에 가세요.” 스님께서는 오늘 아줌마들의 열렬한 지지를 받았습니다. 오늘은 다른 강연보다 더 많이 웃었던 것 같습니다. 부천은 서울과 가까워서 강연을 마친후 어제처럼 평화재단으로 와서 업무를 잠시 보신 후 북콘서트가 열리는 인천으로 향했습니다. 인천 인하대에서 상반기에도 북콘서트를 한 번 한 것으로 기억됩니다. 그 때 통일에 대해서 이야기하던 뜨거운 분위기도 기억이 납니다. 오늘은 그 때보다 참가한 수는 적었지만 여전히 가슴 뜨거운 청년들과 시민들을 만나는 시간이었습니다. nbsp “안녕하세요. 10.26이 무슨 날이에요? 103년 전 10월 26일 하얼빈 역에서 안중근 열사가 이토히로부미를 저격한 날입니다. 100년 전 20세기 초입에서 새로운 100년의 시작이 결국 우리민족이 나라를 빼앗기는 것으로 시작되었습니다. 그것을 막아보려고 한 젊은이가 온몸을 던졌습니다. 그러면서도 동양의 평화를 위해 원흉을 처단할 수밖에 없다, 이것은 증오의 총이 아니라 평화의 총이다, 이런 뜻으로 온 몸을 던졌습니다. 그것처럼 우리가 21세기 초엽인데 앞으로 미래 100년을 어떻게 만들 것인가? 기울어져 가는 100년을 만들 것인가, 아니면 일어서는 100년을 만들 것인가? 우리가 안중근 열사의 의거 날에 이것을 생각해보면 좋겠습니다.” 이렇게 강연을 시작하셨고, 강연내내 통일의 필요성, 통일 한국에 대해서 가슴 뛰는 상상의 그림을 펼쳐 보이셨습니다. 안중근 의사가 동양의 평화를 이야기한 것처럼, 스님께서는 한반도의 평화와 통일한국이 동북아시아의 평화의 구심체가 되도록, 나아가서는 세계 평화에 기여할 수 있는 그런 가능성과 희망을 이야기해 주셨습니다. nbsp 강연을 마치면서는 우리 모두 통일 의병이 되자며 통일의병에 대한 말씀을 해 주셨습니다. “관군은 정부에서 돈받고 지위가 주어지고 훈련받은 게 관군이죠. 그런데 이 관군이 제 역할을 못할 때 늘 국가로부터 소외되고 혜택을 못 받은 민중들이 항상 최후의 보루가 됩니다. 사실 감정적으로 보면 억압받은 민중은 억압하던 나라가 망할 때 만세를 불러야 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히려 민중은 떨쳐 일어나 나라를 지킵니다. 그렇게 나라를 지켜놓으면 또 나라를 관군이 말아 먹어요. 그래도 의병은 후회하지 않습니다. 공과는 관군이 가져가고 의병은 모함을 받아서 죽거나 감옥에 가지요. 그렇다고 억울해 해면 의병이 아닙니다. 의병은 그런 걸 다 알고도 의병을 하지요. 우리가 통일의병이 된다는 것은 통일에 대한 전문가도 아니고 통일부 직원도 아니지만 내가 내 돈 내고 내가 노력하는 게 통일의병이지요. 이 시대는 통일의병이 필요한 시대예요. 즉 한 마디로 말하면 자원봉사죠. 관군가지고는 부족하니까 의병이 필요해요. 그래도 관군은 또 있어야 돼요. 이번 선거는 관군을 뽑는 선거에요. 관군을 정비시켜 놓고 뒤에서 의병이 허드렛일을 하고, 좋은 세상이 오면 관군은 좋은 자리 차지하고 의병은 집으로 가서 농부는 농사짓고 이렇게 해야 됩니다. 야심을 가지고 의병 하면 안됩니다. 의병은 헌신적이어야 합니다. 그게 사실은 좋은 겁니다. 그 삶이 훨씬 가볍고 좋아요. 그런 의병이 되자, 그런 통일 의병이 되자, 그게 저의 주장이예요.” 큰 박수로 강연이 마무리 되었습니다. 강연장에 모인 모든 분들은 이미 통일의병이 되었으리라 믿어 봅니다. nbsp 오늘 북콘서트에서 질문자들이 일어나서 통일에 대한 스님의 이야기들을 국민들 모두와 함께 듣지 못해서 안타깝다, 이 나라를 운영해가는 정치인이 스님의 새로운 백년을 다 읽어야 하지 않냐며 안타까운 마음을 표하기도 했습니다. 오늘 인하대에서 진행된 북콘서트도 정말 뜻깊은 자리였습니다. 내일은 강연이 없고, 10월 31일 평화재단 창립 제 8주년 기념 심포지엄이 있어서 그 준비를 해야 합니다. ‘통일시대를 대비한 국가운영방향’이란는 주제로 심포지엄을 여는데 내용 점검도 해야 하고 준비회의도 해야 합니다. 그래서 스님의 하루도 내일은 쉬겠습니다. 오늘 부천 강연장에서 한 분이 스님께 선물하신 예쁜 꽃바니 사진 올려봅니다. 주말 잘 보내시기 바랍니다. nbsp
10월 25일 법륜스님의 하루(이천, 대전 북콘서트)
오늘 오전 강연은 경기도 이천이라 정토회관에서 여유롭게 출발했습니다. 강연장은 마룻바닥에 의자를 깔아놓았는데, 도착하니 깔린 자리가 거의 다 차 있었습니다. 어르신들도 많았습니다. 강연을 마치고 나오면서 할머니 한 분은 “법륜스님 법문은 이해를 하고 들어야 해. 나는 맨날 불교텔레비젼을 보기 때문에 이해가 잘 돼. 오늘 직접 스님을 만나서 좋았어.”하면서 흡족해 하십니다. 옆에 같이 있던 할머니 두 분도 활짝 웃으시며 “재미있었어. 좋았어.”하면서 나가십니다. nbsp 스님께서 오전 강연에서 모두 강연을 1시간 넘게 하셨습니다.nbsp질문하는 사람들의 시간이 부족하지 않을까 싶었는데 마지막 질문까지 다 받을 수 있었습니다. 첫 번째 질문한 분의 사연을 들으면서는 가슴이 아팠습니다. 일주일 전에 이혼을 했는데 5살, 7살, 9살인 세 아이를 남편에게 두고 왔다고 했습니다. 가난한 고시생과 결혼을 했는데, 결혼후 합격을 해서 지금은 지위가 높아져서 사람이 달라졌다고 합니다. 더 이상 억울하게 살고 싶지 않아서 이혼을 했다고 하는데, 저는 아이 3명이nbsp마음에 걸렸습니다. nbsp “만약에 남자가 고시생이 아니고 판사, 검사였다면 자기랑 결혼했을까요? 인물, 학벌, 나이 다 따져서 자기보다 훨씬 좋은 조건에 있는 남자가 즉, 검사, 판사면 자기랑 결혼 했을까요?” “아니요.” “그런 고시생이었으니까 결혼할 수 있었던 거예요. 그래서 합격을 하니 판검사의 부인이 되었죠? 그런데 자기 인생에 자기 실력 가지고는 그리 될 수가 없잖아요. 어려운 고시생이라고 돌봐줬더니 그 과보를 받은 거요. 자기가 받을 복은 이미 받았어요.” “저는 솔직히 고시에 떨어지길 바랐거든요.” “그런데 어쨌든 고시에 걸렸잖아요. 그렇게 한 번 판검사와 살아본 건 내 인생에 괜찮잖아요. 그렇게 한 번 살아봤으니까 이제 자기 수준에서 살면 됩니다. 자기가 불쌍한 사람을 봐준 공덕으로 그런 일이 생긴 거예요. 판검사 부인은 원래 자기 복이 아니예요. 아시겠어요? 자기 수준을 알아야 됩니다. 그러니 그 남편을 미워해야 되겠어요? 아니면 그래도 살아봐서 다행이다 해야 되겠어요? 지난 삶을 고맙게 생각해야 됩니다. 남편에게 “고맙습니다. 당신 만나서 내 분수에 이렇게 살아봤습니다. 감사합니다.” 이렇게 해야 돼요. 그러면 애들 아빠가 좋은 사람이 됩니다. 그러면 애들도 잘 돼요. 또 남편이 괜찮은 사람이다하면 지난 10년을 나도 괜찮은 남자랑 살았기 때문에 나도 괜찮은 여자예요. 어떤 놈에게 속아서 희생했다 생각하면 자기의 결혼생활 10년이 낭비가 돼요. 그런데 지난 10년 간 그래도 잘 살았다, 이렇게 생각해서 남편을 좋은 사람이라고 생각해야 됩니다. 쥐약을 먹은 거예요. 그러니 다시는 쥐약을 안 먹어야겠죠? 남편을 미워하는 마음을 가지면 자기에게도 애들에게도 안 좋아요. 그러니 생각을 크게 바꿔서 “내가 어리석어서 분수를 모르고 그래서 당신을 미워했습니다. 죄송합니다.” 하면서 남편에 대한 원한을 해소해야 나도 행복하고 내 아이도 행복해요. 애들한테는 다 느껴져요. 그러니 항상 남편을 정말로 좋은 사람이라고 생각해야 아이가 잘 됩니다. 엄마가 성격이 좀 나빠서 그렇지 아빠는 좋은 사람이다, 이게 진심에서 우러나와야 됩니다. 미워하는 마음으로 엄마가 뱃속에서 키웠기 때문에 아이들은 사춘기를 넘어가면 굉장히 잘못될 수 있습니다. 남편은 또 판사나 검사나 하면 애들한테 왕노릇 할 거예요. 그러면 그 사이에 엄청난 갈등이 생길 겁니다. 그 때 자기라도 애를 보호해야 됩니다. 그러니 “너희 아빠가 너희들을 정말 사랑한다. 좋은 사람이다.” 이렇게 해야 아이가 삽니다. 그런데 대부분 이렇게 헤어지면 또 다른 쥐약을 먹어요. 그러니 지금부터라도 애들 보려고 하지말고 애들의 지지를 받으려고 하지 말라는 거예요. 아빠가 나쁜 사람이라고 얘기하면 절대로 안 됩니다. 엄마, 아빠가 이혼을 해도 서로를 욕하지 않으면 정서적으로 아이는 안정이 되는데 서로 욕을 하고 그러면 안정이 안 됩니다. 가능하면 내가 키우면 좋은데 그렇지 못한 상황이니까 그렇게 기도해보세요. 자기 인생 얼마든지 잘 살 수 있어요. 그러니 과거에 연연하지 말고 후회하지 말고 딱 뉘우치고 살면 돼요. 자식에 연연하면 안 되지만 자식을 위해서 최고로 할 수 있는 건 아빠를 나쁘게 하지 않게 하는 게nbsp최고의 선물이에요.” 이혼은 했지만, 이후에 생길지 모르는 아이들의 문제까지 엄마가 안을 수 있도록 스님께서 방향을 잡아주시는 것 같았습니다. 질문자가 스님 말씀을 잘 받아들여서 자기 인생을 잘 살 수 있기를 기원해 봅니다. 강연을 마치고 책 사인까지 자원봉사자들과 사진 촬영을 했습니다. 열심히 활동을 했던 자원봉사자들이 환하게 웃으며 사진을 찍었습니다. nbsp 그런 후 바로 서울로 이동했습니다. 오는 길에 차안에서 어제 대전에서 싸준 김치와 함께 김밥을 맛있게 먹었습니다. 오후 강연은 대전에서 있어서 시간 틈이 2시간 가량 있었습니다. 그 시간동안 스님께서는 평화재단에서 업무를 보셨습니다. 5시경에 다시 평화재단에서 오후 강연이 있는 대전으로 향했습니다. 가을강좌 때문에 하루 전날 대전정토회에서 잔 적이 있었습니다. 거의 새벽 1시가 될 때까지 대전정토회 청년들이 오늘 있을 새로운 백년 북 콘서트를 준비하느라 회의하고 전단 접어서 정리하는 모습을 봤습니다. 그 후에도 여러 번 행사 준비를 하느라 분주한 모습을 봤는데, 대전청년모임이 생기고 처음 해보는 사업이라 다들 더 열심히 준비를 한 것 같습니다. 오연호 대표님과 오랜만에 만났습니다. 여태껏 북콘서트는 오연호 대표님이 기본적인 질문을 한 후에 강연 참가자들에게 질문을 받았는데, 오늘은 처음부터 오연호 대표님과 강연 참가자 질문을 섞어 가면서 했는데, 분위기는 더 좋았던 것 같습니다. 북콘서트는 희망세상 만들기와 또 다른 맛이 있습니다. 사회문제와 통일에 대해서 젊은 사람들과 대화를 할 수 있는 장으로서의 역할을 충분히 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nbsp 오늘은 질문을 한 사람이 주로 대학생이거나 20대였습니다. 스님은 학생들과의 문답을 통해 통일과 역사의식과 앞으로 통일 한국의 미래에 대한 그림을 그려 주셨습니다. 오늘과 같은 이런 시간들이 참으로 소중하게 다가왔습니다. 스님께서는 젊은 사람들에게 우리 역사를 통해 미래를 설계하게 하고, 현실의 삶을 있는 그대로 보게 함으로써 굳건히 땅에 발을 딛고 세상을 바라볼 수 있게 합니다. 또한 앞으로 다가 올 미래에 대한 비전을 제시해 줌으로써 젊은이들이 희망과 꿈을 가질 수 있도록 해 주십니다. 젊은 사람들이 만들어가야 할 세상에 대한 밑그림을 같이 그려 주시는 것 같습니다. 스님의 열정이 대학생들에게 전해지는 것 같습니다. “안녕하세요. 저는 카이스 박사과정 ○○○입니다. 첫 번째 질문입니다. 이번 대선에서 야권 지지자층에서도 통일에 대한 공감대가 시대정신화되어 있지 않은 것 같습니다. 통일이 시대 정신화 되어서 대선 이슈가 되어 공감대를 형성해야 될텐데 어떻게 통일을 시대정신화할 수 있는지요? 두 번째는 남북통일의 문제를 중국, 러시아, 일본 등 6자회담에서 문제를 풀고 있습니다. 주변 열강을 설득하지 못하면 통일단계까지 가지 못할텐데 어떻게 열강들을 설득해 낼 수 있을까요?” “녜. 이 시대상황이라는 것은 늘 바뀝니다. 지금부터 오십년 전이라고 한 번 가정해 봅시다. 그 때는 남북간에서는 남한이 우위에 있었어요? 북한이 우위에 있었어요?” “북한요.” “예. 그 당시에는 북한이 컸습니다. 군사력도 세고 경제력도 세고 정치적으로도 셌습니다. 그리고 또 하나는 이 때는 소위 미국의 영향력이 절대 우위에 있었어요. 우리는 미국이 하자는 대로 해야 되는 상황에 놓여 있었어요. 이랬을 때 우리가 취해야 될 태도는 남북간에는 우리의 체제를 유지하는 입장이고 미국과는 미국의 의도가 뭔지를 빨리 알아차리는 것이 가장 중요한 문제였습니다. 강대국과의 관계속에서도 주도적인 역할을 못하고 북한과의 관계에서 전혀 주도적인 역할을 할 수 없었습니다. 그런 시대 상황와 지금은 다르다는 겁니다. 지금은 남한이 북한보다 모든 면에서 우위에 있습니다. 또 미국이 과거와 같은 미국이 아니라는 거예요. 그래서 이번 대선국면에서도 보셨지만 미국에서 외교는 별로 이슈가 안 됩니다. 전부 국내 이슈예요. 옛날 같으면 대선 캠프에 한국담당관이 누군지가 굉장히 중요했어요. 그런데 지금은 이쪽이든 저쪽이든 한반도 담당관이 없어요. 그만큼 미국이 자기 문제에 빠져 있습니다. 반대로 한국은 40년, 50년 전에에 비해서 그 힘이 커졌어요. 아직도 미국이 크고 우리가 적지만 지금은 미국이 우리에게 이래라 저래라 간섭하기가 쉽지 않아요. 이런 상태에서 통일문제를 풀려면 한국이 중심이 되어야 해요. 한국이 어떻게 할 것이냐, 즉 남한이 북한을 어떻게 다룰 것이냐가 중요합니다. 북한이 어떤 선택을 할 것이냐는 이제 중요하지 않습니다. 통일에 대한 영향이 있고 책임의식이 있는 한국이 어떤 선택을 할 것이냐가 중요합니다. 옛날에는 미국이 어떻게 생각하느냐가 중요했는 데 이제는 안 그렇습니다. 미국은 한국이 어떻게 할 것인지를 중요하게 생각합니다. 미국의 국익에 특별히 배치만 안 된다면 한국이 어떻게 하느냐 따라갈 겁니다. 중국이 커지고 있지만 아직 한반도에 미국처럼 적극적으로 개입할 수 있는 단계까지는 안 왔습니다. 바로 이 미중의 세력교체기에 권력공백기가 생겼습니다. 거기에 한국이 주도적으로 딱 입장을 가지면 남북대화도 이끌어갈 수 있고 미중의 협력관계도 이끌어갈 수 있습니다. 여기에 한국이 어떤 자세를 취할 것이냐입니다. 통일을 어떻게 이룰 것인가? 첫째 남남의 통합입니다. 두 번째는 남북의 통합, 세 번째는 미중의 이익 균형 잡기 이 세가지 관계를 동시에 풀어내야 통일문제로 갈 수 있습니다. 그 키는 남한에 있다는 말씀을 드리고 싶습니다.” nbsp 젊은이들의 많은 고민과 질문이 있었는데 다 담지를 못해서 안타깝습니다. 내일은 인천 인하대에서 북콘서트가 열립니다. 서울 인근에 계신 분들은 가능하면 시간을 내어서 현장에 와서 질문도 하고, 젊은이들의 고민도 한 번 들어보면 좋겠다 싶습니다. 내일 오전은 부천에서 희망세상 만들기 강연이 있습니다. 오후에는 인천 인하대에서 새로운 백년 북 콘서트가 있습니다. 인생이야기도 재미있고, 통일 이야기도 재미있습니다. 내일은 또 새로운 사람들과 새로운 사연들을 만나게 되겠네요. 내일 뵙겠습니다. nbsp nbsp
10월 24일 법륜스님의 하루(대전정토회 가을강좌3)
오늘은 대전정토회 가을강좌가 있는 날입니다. 서울에서 아침 7시 30분 출발해서 대전으로 향했습니다. 스님께서는 어젯밤 업무하느라 잠을 주무시지 않으셨습니다. 어젯밤 못 잔 잠을 차에서 보충하셨습니다. 오전 강좌에 오늘도 많은 사람들이 참가했습니다. 매주 즉문즉설 전에 모두 강연을 하고 있는데, 오늘 주제는 희망세상 만들기 5가지 실천 중 세 번째인 ‘내가 우리 사회의 희망이 되어 공정사회 이루겠습니다.’였습니다. 스님께서 공정한 사회에 대해서 한 시간 넘게 강연을 하셨습니다. “사람이 혼자 살지 않고 무리를 지어 모여사는 것은 함께 사는 것이 혼자 사는 것보다 더 큰 이익이 있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서로에게 이익이 되기 때문에 함께 하는 무리를 공동체 사회라고 합니다. 공동체 사회는 서로가 공생관계에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공동체 안에서도 각각의 구성원간에는nbsp이익을 다투는 경쟁관계에 있습니다. 이 경쟁관계가 지나쳐서 공동체 이익을 훼손하면 공동체가 파괴됩니다. 그러므로 사회구성원간의 경쟁은 사회활력을 넣어주고 개인의 발전을 가져오지만 지나치면 공생관계를 파괴하므로 개인간의 경쟁은 공동의 이익을 파괴하지 않는 범위내여야 합니다. 그래서 인간은 이런 개인의 자유와 창의성을 마음껏 발휘하면서도 공동체 전체 이익을 훼손하지 않는 범위 안에서의 자유로 제한되어야 합니다. 그래서 인간을 사회적 존재라고 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어떻게 서로 경쟁해야 공동체 이익을 훼손하지 않으면서 개인의 창의성을 높일 수 있는가?nbsp그것은 모든 이에게 기회가 균등하게 주어지고 경쟁의 룰이 공정하게 적용되고 그럼으로 해서 패자가 깨끗이 승복해야 하며 또한 패자에게도 적절한 보호장치가 있어야 합니다. 그럼으로 해서 경쟁 가운데서도 공존하고, 공존하면서 경쟁하는 아름다운 사회, 활력있는 사회를nbsp만들어갈 수 있습니다. 지금 우리 사회는 공정성이 담보되지 않기 때문에 불평불만이 많아지고 패자와 약자에 대한 안전망이 제대로 구축되어 있지 않기 때문에 사회구성원으로서의 자존감과 행복도가 떨어지고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공정한 사회, 약자도 보호받는 복지사회를 만들어가야 합니다. nbsp 사회의 구성, 공동체의 의미, 경쟁 관계와 공생의 관계, 기회의 균등과 룰 집행의 공정성, 패자와 약자를 보호하는 공평한 사회, 양극화와 경제 민주화, 공정과 복지의 상관관계 등에 대해서 자세하게 정리를 해 주셨습니다. 스님께서는 전문가들이 어렵게 이야기하는 경제와 복지와 공정, 공평한 사회, 공동체 등에 대해서 누구라도 알아 들을 수 있도록 쉽게 설명을 해 주셨습니다. “앞 강의가 좀 길었는데, 이해하시겠어요?” “예.” 사람들이 큰 소리로 대답을 합니다. “이렇게 듣고 나면 신문이나 방송에 자주 나오는 양극화, 경제 민주화, 복지 등이 왜 대선주자간에 논쟁이 되고 있는지를 좀 더 이해하기가 쉬울 거예요. 자, 그럼 질문 한 번 해 보세요.” 스님 말씀에 이어 질문자가 일어나 질문을 하기 시작합니다. nbsp 오늘 질문 중에서는 한의사 한 분의 고민을 나눠 볼까 합니다. “저는 궁금한 것이 있어서 서울에서 왔습니다. 한의원을 하고 있습니다. 동업을 하다가 정리를 했는데 한의원 건물 주인이 바뀌어서nbsp쫓겨나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동업자의 빚까지 저에게 넘어 왔습니다. 자리 잡은 것이 아까워서 지인들에게 돈을 빌려서 다시 한의원을 차렸습니다. 동업한 것도, 한의원을 다시 차린 것도 후회되고 괴롭습니다. 한의원이 장기적으로 보면 가능성은 많은데 제가 방향을 못 잡고 있습니다. 법적인 책임 등 상황이 복잡합니다. 병원을 접고 출가를 할까? 그러면 도피성으로 보이지 않을까? 어떻게 기도를 해야 하는지요?” “첫 번째는 만약 정리가 다 되었다면 우선 문경에서 백일출가를 해서 예비 출가자 생활을 해 보는 거예요. 할만 하다고 생각이 되면 정식 출가를 하면 되고 어려우면 안 하면 됩니다. 두 번째는 백일출가해서 괜찮다고 하면 3년 정도 서울법당이나 대전법당에서 무료 진료를 해 주는 거예요. 결혼 했어요? 잘 됐네요. 무료로 진료해서 3년간 공덕을 쌓아야 합니다. 3년간 돈 안 받고 진료를 하면 임상이 많겠죠? 돈 받고 할 때는 치료해서 안 나으면 말이 많지만, 돈 안 받고 치료하면 안 나아도 그만입니다. 그런데 나으면 입소문이 퍼집니다. 그러다 한의원을 차리면 환자들이 많이 오겠죠? 그러면 성공합니다. 그래서 옛날부터 공덕을 쌓아라고 하는 겁니다. 수행하는 마음으로 하면 됩니다. 인도 수자타아카데미에 가면 병원도 크게 지어놨습니다. 돈 벌 생각만 안하면 내일이라도 당장 원장할 수 있습니다. 의사가 별 거예요? 임상을 많이 하다보면, 환자를 많이 접하다 보면 명의가 되는 거예요. 한방뿐만 아니라 외상도 치료하다 보면 양의까지 겸하게 되어 가정의로서 종합의가 될 수 있습니다. 길은 여러 가지가 있습니다. 수행이 깊어지면 환자 데리고 법문도 합니다. 이렇게 하면서 자신의 역할이 세상에 쓰임새가 커지는 것입니다. 이런 마음으로 환자를 치료해서돈을 번다고 생각하지 말고, 환자를 치료하다 보면 돈이 벌리는 것입니다.” nbsp “한의원을 그대로 한다면 적자는 안나게 할 수 있겠어요?” “상황이 복잡해서 환자를 제대로 못 보고 있습니다.” “환자는 많이 와요?” “점점 늘어나고 있습니다.” “현상 유지는 할 수 있어요?” “예. 할 수 있습니다.” “오늘 한의원을 정리한다고 마음을 먹어 버리고, 백일 출가해서 3년간 복 짓겠다는 마음으로, 이왕 의사니까, 경영에 대해서는 마음을 탁 놔 버리고 한 번 해 보세요. 법원에서 문 닫아라고 하면 그 때 정리하면 되니까 정리할 때까지 병원 일에 집중하면 어떻겠어요? 내가 병원 문을 닫을까 말까 신경쓰지 말고, 나는 문 닫는 전날까지 환자에게 집중하는 겁니다. 행정, 경영에는 신경쓰지 말고 환자에게만 집중하세요. 오늘 법문 듣고 ‘한의원 문 닫는다고 결정을 했다, 문 닫힐 때 가겠다, 닫힐 때까지는 환자에게 집중을 한다.’하는 마음으로 하세요. 혹시 병원 문이 닫히더라도 환자가 의사에게 감동을 하면 나중에 문 열면 또 오게 됩니다. 한의원 파산해 봐야 뭐가 큰 문제예요? 파산하면 출가해도 되고, 행자하면서 공짜로 침을 놔 주면nbsp어디로 가도 환영받겠죠? 진료만 하면 돈은 저절로 들어오게 됩니다. 그것을 빨리 해결하려고 하니까 힘든 거예요. ‘어리석은 과보구나’ 하고 과보를 달게 받으면 됩니다. 오늘부터 가서 마음을 탁 놓아버리면 길이 열립니다.” nbsp 오전 강연을 마치고, 스님께서는 공양 후 잠시 휴식을 하셨습니다. 저녁 식사 전에는 30분 가량 시청앞 산책길을 걷다가 들어오셨습니다. 저희는 지난 주에 이어 오늘도 2시간 가량 시청 주변과 한밭수목원을 걸으며 운동을 했습니다. 단풍과 국화와 억새와 파란 하늘을 도시 한가운데서도 맘껏 느낄 수 있어서 좋았습니다. 저녁 강좌에는 항상 주간보다는 사람이 많습니다. 오늘도 법당이 꽉 찼습니다. 오전과 마찬가지로 스님께서 한 시간 모두 강연을 하시고 질문을 받았는데, 오전보다 많은 사람들이 질문을 했습니다. 친정 부모가 여행갈 때 용돈주는 것조차 반대하는 남편에 대한 서운함을 이야기하는 결혼 2년차 주부를 시작으로 이제는 신앙을 가지고 싶은데 어떤 종교를 신앙으로 가져야 할 지를 묻는 아주머니, 자신을 소심한 A형이라고 소개하면서 불교인으로 같이 만나 결혼을 한 아내가 교회에 나가서 기독교를 배우고 싶어하는 것을 강제적으로 반대했는데 이후에도 이런 경우가 오면 어떻게 해야 할 지를 묻는 남자분도 있었습니다. 30년 군생활을 한 분은 힐링캠프를 통해 스님을 알게 되었고, 스님 말씀을 행동으로 실천해보고 싶어서 가족과 함께 오늘 처음으로 왔다고 자기를 소개하면서, 4년 후 퇴직했을 때에 대한 대비를 어떻게 해야 할지, 경찰 시험에 두 번 떨어진 큰 아들에 대한 걱정스러운 아버지의 마음을 스님께 이야기합니다. nbsp 그 뒤 15살 여학생이 평소에 대화도 많이 하고 정말 친했던 친오빠를 작년에 잃고, 괜찮아진 줄 알았는데 오빠 생각이 계속 난다며 오빠에 대한 그리움을 이야기하면서 오빠 생각을 하면 안 되냐고 스님께 물었습니다. 스님께서 오빠를 마음으로부터 가볍게 보내줘야 오빠도 무주고혼이 안 되고, 나도 가볍게 살아갈 수 있다고, 이 자리에서 오빠를 보내라고 하면서 “잘 가, 오빠. 안녕.”을 해 보라고 했습니다. 목 메는 목소리로 여러번 오빠를 보냈지만, 스님께서 아직 마음에 많이 남아 있다고 다시 시키고, 다시 시켰습니다. 오빠를 보내는 목멘 여학생의 목소리에 강연을 듣던 남자들도 안경을 벗고 눈물을 닦습니다. 마지막에 여학생이 그나마 가벼운 목소리로 “잘 가, 오빠. 안녕.” 하자, 대중들이 모두 내 일처럼 기뻐하면서 큰 박수로 격려를 했습니다. 가슴이 뭉클했습니다. “얼굴이 탁 밝아야 돼, 알았지? 집에서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밝아야 돼. 웃어 봐.” “저, 잘 웃어요.” “그래야 억압되어 있는 슬픔이 털어져. 그럼 오늘부터 매일 108배 하면서 오빠를 위해서 기도해 줘. 어떻게? “오빠, 잘가. 안녕.” 이렇게 100일동안 108배 절하세요. 알았지?” 다시 한 번 사람들이 큰 박수로 여학생을 격려해 주었습니다. nbsp 오늘 하루도 이렇게 저물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스님께 질문을 했고, 질문을 한 사람, 스님과 질문자의 문답을 들은 사람들이 삶의 지혜를 얻어서 각 자 자리로 돌아갔습니다. 저는 특히 15살 여학생과 그 뒤에 질문한 남자 중학생을 보면서 아직 어린 학생인데도 고민을 스님께 털어놓고 뭔가 길을 찾고자 하는 그 모습이 고맙게 느껴졌습니다. 내일은 경기 이천에서 오전 강연이 있고, 오후에는 대전 카이스트대학교에서 새로운 100년 북콘스트가 있습니다. 내일 뵙겠습니다.
10월 23일 법륜스님의 하루(태안, 보령, 천안)
새벽 일찍 울산에서 출발해서 태안으로 향했습니다. 약 4시간 30분 가량 걸렸습니다. 시간이 얼마나 걸릴지 몰라 아침에 준비해온 도시락으로 차안에서 식사를 했습니다. 태안에 생각보다 일찍 도착해서 스님은 강연장 주변의 산을 한 바퀴 돌아보고 강연장으로 들어가셨습니다. 태안은 정토회 회원이 없어서 3개월 전에 태안으로 이사온 희망지기 중심으로 주변 지역에서 도와주면서 홍보를 했다고 합니다. 아무도 아는 사람이 없어서 무작정 아무 곳에나 열심히 홍보를 해서, 이제 태안 사람들을 다 아는 것 같다고 합니다. 강연을 마치고 강연장 입구에서 나가는 사람 한 사람 한 사람에게 머리 숙여 인사를 합니다. “오늘 오신 분 한 분 한 분이 다 너무 고마운 거예요. 그래서 이렇게 막 인사를 하게 됩니다. 와 주셔서 정말 감사해요” 얼굴에 웃음을 가득 담았습니다. nbsp 요즘은 지방으로 가도 질문없는 지역이 없습니다. 처음 손을 들 때는 보통 3명부터 시작해서 강연 끝날 때까지 계속 질문이 이어집니다. 오늘도 여러 질문들이 있었습니다. 1년 반 전에 혈액암으로 6개월간 투병을 하던 청소년 아들을 저 세상으로 떠나 보낸 엄마가 삶의 의미가 없다고 괴로움을 호소했습니다. 이런 저런 계획했던 것들도 아무런 의미가 없고 뭔가 이루어져도 ‘이 것 해서 뭐 하나’하는 회의가 드는데 어떤 마음 가짐으로 살아야 하는지 담담하게 스님께 물었습니다. 스님께서는 이미 간 아들을 두고 보고싶다고 울고불고 하면 돌아올래야 돌아올 수도 없고, 떠날래야 떠날수도 없기 때문에 무주고혼이 된다고 말씀하시면서, “정말 아들을 위한다면 ‘잘 가라 안녕’하고 가볍게 보내야 합니다. 이렇게 가볍게 보내는 것을 천도라고 합니다. 이렇게 가볍게 보내주면 아들에게도 좋고 살아있는 나도 좋고 남편과 남아있는 자식들에게도 좋습니다. 모두 좋은 길을 가야지 모두에게 나쁜 길을 갈 필요는 없습니다.”하고 말씀해 주셨습니다. 이어서 한 아주머니는 44살인 이혼한 아들과 애증관계로 매여사는 이 괴로운 삶에서 어떻게 벗어날 수 있는지 묻습니다. “그래도 당신 아들은 살아있잖아요? 먼저 질문하신 분은 ‘애를 먹이더라도 아들이 살아있었으면 좋겠다’ 이렇게 당신의 처지를 부러워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니 괴로워하지 마시고 이런 경우에도 ‘우리 아들은 살아있지 않느냐’하고 좋게 생각해야 합니다. 다만 계속 엄마가 아들을 미워했다가 돌봤다가 하면 나도 힘들고 자식도 힘이 듭니다. 그러니 정을 끊고 자식을 미워하지도 말고 돌보지도 말아야 합니다. 그러면 나도 편하고 자식도 편합니다. 물론 쉬운 일은 아닙니다. 그러나 그렇게 해야 합니다.” 이렇게 대중들 앞에서 질문함으로써 자연스럽게 내 문제를 내려놓고, 다른 사람의 문제를 통해서 나를 바라보게 되는 것 같습니다. nbsp 태안에서 강연을 마치고 다음 강연이 있는 보령으로 향했습니다. 태안까지 와서 태안반도도 못 가보고 간다며 안타까워하자, 스님께서 지도를 보시고 태안반도는 못가더라도 안면도는 가는 길이니까 가 볼수 있겠다고 하시며 길을 안내해 주십니다. 저는 동해와 남해를 많이 보고 커서인지 서해와 만나게 되면 새로운 세상과 만나는 듯한 즐거움이 있습니다. 안면도에 들어서서 해봉해수욕장 앞에 섰습니다. 물이 빠져서 그런지 해변이 해운대와는 비교가 안 될 정도로 넓습니다. 물이 빠져서 바닷물까지 100m도 더 되는 것 같습니다. 시간이 없어서 바다까지 달렸습니다. 100m 달리기를 했습니다. 바닷가에 선 스님을 바다와 함께 한 컷 담아보았습니다. 파도랑 은빛 햇살이랑 바람, 넓은 해변과 더 넓은 바다를 눈에 가득 담아왔습니다. nbsp 시간이 없어서 바다 끝에 점만 콕 찍고 다시 달려와서 봉고를 타고 보령으로 달렸습니다. 전에는 길가 좋은 장소나 휴게소에서 식사를 할 때도 많았는데 요즘은 하루 세 번 강연을 하다보니nbsp거의 차안에서 먹게 됩니다. 어제, 오늘 같은 경우는 식사를 챙겨먹기조차 쉽지 않은 일정입니다. 보령으로 가는 중에 현대가 개발한 서산 간척지의 넓은 들판을 보았습니다. 스님께서 정주영 회장이 간척지를 만들 때 있었던 일화를 이야기해 주셨습니다. 모르고 스치고 지나갔으면 그냥 넓은 평야가 펼쳐져 있구나 생각했을 것 같습니다. 보령에 겨우 시간에 맞춰 도착할 수 있었습니다. 보령 지역에 계신 스님 몇 분이 스님을 맞이해 주셨습니다. 보령도 강연 분위기가 밝았습니다. nbsp “제가 결혼을 해서 아이를 낳음과 동시에 직장을 그만 뒀습니다. 그런데 아이만 키우면서 지내다보니까 제 자신을 모르겠어요. 자신을 찾는 방법을 알려주세요.” 요즘 아이를 낳는 젊은 여성들 중 많은 여성들이 가지는 고민인 것 같습니다. 아이를 낳고, 혼자서 아이를 키우다보면 직장 다니는 친구들과 비교되기도 하고, 자기 자신의 인생이 뒤쳐져지고nbsp뭔가를 잃어버린 것 같다는 젊은 엄마들의 질문이 많습니다. “나를 내세우지 마세요. 그럼 엄마가 될 자격이 없어요. 나를 찾으면서 애에게는 관심이 없다는 거예요. 그럼 나중에 애는 엄마의 사랑이 고플 거예요. 허전함이 생기기 때문에 심리가 불안하게 됩니다. 엄마의 심리상태가 좋아야 합니다. 아기에게 엄마는 신입니다. 엄마는 태산과 같습니다. 남편이 행패를 피우더라도 아기가 없을 때 싸워야 됩니다. 아기가 있을 땐 일체 흔들리지 말아야 합니다. 아기가 있는 엄마는 태산이 되어야 합니다. 눈도 깜짝 안해야 됩니다. 마음이 안정되어야 합니다.nbsp아이가 몇 살이예요?” “3살입니다.” “부부 관계는 어때요?” “부부 관계는 이상 없어요. 친구는 일하고 저는 아기를 보고 있으니까, 그런 제모습을 보니까 비교가 되더라구요.” “이 세상에서 제일 소중한 것이 한 아이를 잘 키우는 거예요. 그건 천금하고도 바꿀 수 없고, 임금자리랑도 바꿀 수 없는 거예요. 내 아이를, 한 아이를 바르게 키우는 것이 가장 중요합니다. 그러니까 아이를 키우는 것에 대한 자부심을 가지세요, 아시겠죠? 아이랑 책도 같이 읽고, 아이를 업고 뭘 해도 좋습니다. 장사를 해도 되고, 자원봉사를 해도 되고, 무슨 일을 해도 됩니다. 애를 버리지 말고 업고 다니면서 등산도 하세요. 활동적인 것은 좋습니다. 내 직장을 위해 아이를 버리면 안됩니다. 남에게 맡기면 안됩니다. 밝게 사세요. 종교가 있어요? 그러면 절을 좀 많이 해야 합니다. 자기 심리에 빠져 우울해지니까 하루 300배 절을 하세요. 할 수 있겠죠? 한 시간정도 걸리니까, 자기가 제일 편한 시간을 정해서 하루에 300배 절을 하세요. 꾸준히 해 나가면 다 잘 될 겁니다.” “녜, 감사합니다.” 보령 강연을 마치고, 바로 천안으로 향했습니다. “오늘은 세 군데가 다 충청남도인데도 왜 이래 바쁘지? 충청남도가 엄청나게 큰 것 같네?” 하시면서 스님도 웃으십니다. 천안 강연장에는 30분정도 일찍 도착했습니다. 주차장 차안에서 점심 때 먹다남은 도시락으로 저녁 식사를 하고, 강연장으로 이동했습니다. 사전 오프닝 공연으로 조성훈 님의 피리연주가 있었습니다. 피리로 비틀즈의 ‘Let it be’를 연주합니다. 사람들이 좋아합니다. 각 지역에서도 여력이 된다면 문화공연이 하나쯤 강연전에 있어면 분위기가 더 좋겠다 싶었습니다.nbsp스님께서도 눈을 감고 감상을 하셨습니다. nbsp 오프닝 공연이 있어서인지, 강연을 시작하는 영상과 음악이 나오자 강연장에 앉은 사람들이 음악에 맞춰 박수를 치며 스님을 맞을 준비를 합니다. 천안은 큰 도시인데 비해서 오늘 참가인원이 390여명이라nbsp참가자가 적은 것에 대해서 자원봉사자들이 못내 아쉬워했습니다. 천안도 질문이 많아 2시간 넘게 강연이 이어졌습니다. 젊은 남자분이 일어나 질문을 합니다. 취업 준비생인데 첫 인상이 안좋다는 말을 많이 들었다고 합니다. 사람들 앞에도 쉬 나서지를 못하는 것 같아서 노력을 많이 해서 어디든지 찾아가고 해외 봉사도 다녀오고 사람들 앞에 나서서 회장같은 역할을 하려고 노력을 한다고 합니다. 스님께서 “자, 한 번 돌아보세요, 이 청년이 인상이 어때요? 좋아요? 안 좋아요? 좋다고 생각하는 사람 손 한 번 들어 보세요.” 많은 사람들이 좋다고 손을 듭니다. 말도 참 잘 했습니다. “처음 보자마자 호감을 느끼는 형은 아니지만 말 잘 하고, 건강하고, 키도 그만하면 됐는데 스스로 자신을 너무 높이 설정한 데서 오는 현실의 자기에 대한 위축감이 클 뿐입니다. 현실의 자기를 높이 설정해 놓은 이상에다 맞추려 하지 말고 이상의 자기를 버려 버리고 현실의 자기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면 자신에 만족하게 됩니다. 이 젊은이는 이대로 좋아요. 고칠 것도 없습니다. 노력할 것도 없고 그냥 사세요.” 하자 사람들이 또 와하며 폭소를 터뜨렸습니다. “자기에게 불만족스러우니까 얼굴이 어둡습니다. 마음은 항상 가볍게 가져야 됩니다. 어디 가서 앞에 서야 한다고 강박관념을 가질 필요는 없습니다. 삶에 편안하게 접근하면 항상 얼굴이 밝아요. 마음이 편안하면 저절로 호감이 있게 됩니다.” 사람들이 다시 박수를 치면서 청년을 격려해 주었습니다. nbsp 오늘은 충청남도 3개 지역을 다녔는데도 시간이 넉넉지 않았습니다. 없는 시간 속에서도 넓은 서해의 바다를 잠시나마 볼 수 있어서 좋았습니다. 태안, 보령, 천안에서 그동안 자주 보지 못했던 반가운 얼굴들도 만날 수 있어서 좋았습니다. 내일은 대전정토회 가을강좌가 있는 날입니다. 내일 뵙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