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님의하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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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월 9일 법륜스님의 하루(오렌지 카운티의 청춘콘서트)

안녕하세요. 오늘은 LA인근의 오렌지카운티에서 법륜스님과 김제동님의 청춘콘서트가 있는 날입니다. 숙소에서 오전 5시에 샌프란시스코공항으로 출발하여 7시 비행기를 타고 오렌지카운티 존웨인 공항에 8시 30분에 도착하였습니다. 짐을 찾아 LA정토회 총무님댁에 도착하여 아침식사를 한 후 스님께서는 잠시 휴식을 취하셨습니다. 오전에 오렌지카운티에 도착하였기때문에 오늘은 저도 그동안 밀린 이메일 등을 체크하면서 조금 여유롭게 시간을 보냈습니다. 3시에 오늘 청춘콘서트가 열리는 행사장으로 출발하였습니다. 행사장소는 에인절스 애너하임 야구구장 바로 옆에 있는 극장이었습니다. 애너함임은 캘리포니아 오렌지카운티에 속한 도시로서 오렌지카운티에서는 산타아나에 이어 두번째로 큰도시로서 에너하임 야구장과 디즈니랜드가 있으며, 미국에서 가장 살기좋고 안전한 도시들중의 하나로 꼽히는 아주 아름다운 도시입니다. 지난 4월 LA 시내에서 있었던 청춘콘서트에는 무려 4천여명이 참석하여 엄청난 열기를 뿜어내었는데, 오늘은 1200여명이 참석하였습니다. 그러나 오늘의 특징은 주된 참석자들이 주부들과 3040대 분이었습니다. 아직 캘리포니아주는 대학들이 개학을 하지 않았습니다. 9월말경에 개학을 한다고 합니다. 그래서 학생들의 참석보다는 청장년들의 참석이 두드러진것 같았습니다. 거의 모든 공연들이 LA다운타운에서 이루어지기 때문에 오렌지카운티에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모이기는 처음이라고 합니다. 그래서 오렌지카운티에 청춘콘서트가 열린 것이 너무 기쁘다고 합니다. 법륜스님의 등장과 함께 힘찬 박수소리가 들려옵니다. 먼저 유학온지 6년된 여학생이 , 방황하는 남동생이 한명있는데 하고 싶은것도 없고, 목표의식도 없고 누나가 보기에는 시간낭비를 하고 있는것 같은데 어떻게 하면 도와줄수 있는지 질문합니다. 그리고 친한 친구가 알콜중독이고, 또 다른 한 친구는 게임중독이라 밤새 게임을 하고 회사도 짤렸는데 게임만하고 있는데 중독현상을 앓고 있는 당사자와 주변인들을 어떻게 하면 도와줄 수 있는지 알고 싶다는 30대 여성분, 괴롭거나 힘들때 기도를 많이 하는데 기도를 한번도 들어준적이 없어서 기도보다 더 효율적인 방법은 없는지 묻는 젊은이의 질문에 웃음이 빵빵 터졌습니다. 사회생활을 하면서 복잡하거나 남들이 하기 싫은 일을 먼저하는 경향이 있어서 좋은 이미지는 생겨났지만, 안으로는 스트레스가 너무 많이 쌓이는데 어떻게 하면 좋을까요? 억울하면 남한테 화를 잘 내는데 어떻게 하면 좋은지? 딸이 결혼할 나이가 되었는데 능력도 없고 해서 맘에 들지 않는남자친구를 계속 만나고 있고, 딸하고는 대화가 현재 잘 안되고 있습니다. 어떻게 하면 좋을까요? 어려서 이민와서 한국말이 서투르다는 20대 대학생은 20대에 가지고 있던 꿈과 희망을 30대, 40대, 50대가 되면서 점점 없어지는데 어떻게 하면 20대에 가지고 있던 꿈을 나이가 들어도 계속 가질 수 있는지요? 라고 질문을 합니다. 그리고 성폭력, 성매매의 합법화에 대한 질문 등 다양한 질문들이 쏟아져 나오면서 오늘도 질문은 10개가 훌쩍 넘어갑니다. 여러가지 질문들과 대답들이 오고가는 도중에 법륜스님의 희망세상만들기 강연이 우리사회에 필요한 여러가지 사회문제에 대한 토론의 장 역할을 하고 있음을 느낄 수 있고,nbsp이런 행사를 치루어내는 우리 정토행자들이 너무나 자랑스럽게 느껴졌습니다. 오늘 법륜스님과 질문자 사이에 오고간 질문과 대답 중에서 가장 가슴에 남는 질문은 한 50대 여성분이 나오셔서 다음과 질문을 했는데, 그질문에 대한 스님의 답변이었습니다. “스님께서 통일 운동을 하시고, 우리민족을 위해서 이렇게 열심히 활동하시는 모습에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요즘 우리 젊은이들이 우리문화와 역사에 대해 자긍심이 약한것 같습니다. 우리문화가 굉장히 지혜로운데 우리 젊은이들이 잘 모르는것 같이 안타깝습니다. 어떻게 하면 우리 젊은이들이 우리문화에 대해 자긍심을 가질수 있을까요?” 스님께서는 다음과 같이 답변을 해주셨습니다. “우리가 왜 자긍심을 가지지 못하는지 살펴보면 우리 무의식 저변에는 세가지 열등의식을 갖고 있습니다. 첫째는 중국문화에 대한 열등감입니다. 우리문화의 뿌리에 대해 잘모르고 있기 때문에 우리는 우리문화가 중국의 변방문화라고 생각하고 느끼는 열등감입니다. 둘째는 근대화과정에서 오는 일본에 대한 열등감입니다. 이것은 일본의 식민지 지배로 인해 온 열등감입니다. 세째는 현대화과정에서 온 미국과 서양에 대한 열등감입니다. 현대화 과정에서 서양은 선진이라는 의미에서 모든 교육과 문화를 전수받았고, 이것 때문에 오는 열등감입니다. 이러한 열등감은 치유하여 극복해야만 합니다. 중국문명은 황화문명을 뿌리로 하여 삼황오제로 시작이 되고 있습니다. 반면에 우리문명은 환웅의 배달나라와 단군의 조선나라로 이어지는 요하문명이 그 뿌리입니다. 황화문명과 요하문명은 완전히 그시원이 다릅니다. 오히려 요하문명이 황화문명보다 천년이상 앞선 문명이어서 요하문명이 황화문명에 더 큰 영향을 주었습니다.그러므로 우리문명은 중국 가까이 있을 뿐이지 중국문명과는 그 뿌리를 달리하는 배달의 문명입니다. 이것을 우리가 모르기 때문에, 우리의 상고사를 잊어버렸기 때문에 결국 우리의 역사를 잃어버리게 된 것입니다. 그래서 결국은 중국문명의 변방문명인 것처럼 착각을 하고 있습니다. 우리민족문명의 근본인 환웅의 배달문명, 단군의 조선문명을 안다면 중국문명에 대한 열등의식에서 벗어날수 있습니다. 둘째는 일세시대에 나라의 독립을 위해 수많은 사람들이 노력을 했습니다. 20년 이전에는 대종교를 중심으로 민족주의자들이 독립운동을 많이 했고, 20년 이후에는 사회주의자들이 주로 독립운동을 했습니다.남한에서는 사회주의자들이 독립운동한 것은 독립운동사에서 제외시키고, 북한에서는 김일성과 함께 한 사람들의 독립운동만을 인정하였기 때문에 우리가 볼때 독립운동한 역사가 별로 없는것처럼 된 것입니다. 원래 없는게 아니라 분단에 의해서 역사적 왜곡을 가져온 것입니다. 통일을 통해 일본에 대한 열등의식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습니다. 세째는 서양문명에 대한 열등의식인데, 서양문명보다 앞서가기 위해서는 창조성이 있어야 합니다. 이것은 권위주의가 조금 덜한 문화, 예술, 체육분야에서 먼저 일어나고 있습니다. 이제까지는 서양문명을 따라배우는 모방이었지만 서양문명을 리드하기 위해서는 창조성이 있어야 합니다. 창조는 억지로 하는것이 아니라 정말 연구하고 싶어서 할 때 일어나는 것입니다. 이런 창조성이 일어날려면 교육시스템부터 바뀌어야 합니다. 이제는 정말로 창조가 필요한 시대인데, 권위주의에 막혀서 제대로 발현되고 있지 않은데,nbsp일부 권위주의가 덜한 기술분야나 문화예술분야에서 점차 발현되고 있습니다. 또한 우리의 정신세계에 대해 자긍심을 가져야 합니다. 미국인의 정신적 방황에 대해서 우리가 치유해주고 도와줄 때 열등의식에서 벗어날 수 있습니다. 도와준다는 것은 앞서간다는 것이며, 창조해야만 우리가 도와줄 수 있습니다. 이럴 때 우리가 자신감을 가질 수 있으며, 우리에게는 그럴 가능성이 열리고 있습니다. 유럽에서 미국시대로, 미국시대에서 동아시아시대로 문명이 옮겨가고 있다고 하지만, 군사력, 경제력만으로서는 동아시아 시대가 열릴 수 없습니다. 세계문명을 이끌어 나가기 위해서는 정신문화수준이 높아야 합니다. 아시아시대는 아직 요원하지만, 만약에 한국이 민족의 화해와 통일을 이루어 낸다면 통일 한국이 동아시아 시대를 이끌어 나갈 수 있는 가능성이 있습니다. 즉 남한이 중심이 되어 통일 한국을 이루어 낸다면 통일 한국은 동아아시아 공동체 시대를 열 가능성이 열려 있는 것입니다. 통일 한국은 한국의 발전, 더불어 동아아시의 발전, 그리고 미국과 유럽, 세계의 발전을 이끌어 나가야 합니다. 이것은 한반도의 평화와 통일을 통해 새로운 백년을 만들어가며, 새로운 희망을 만들어 갈 수 있습니다. 이제 우리는 단순히 역사의식을 가지는 것이 아니라 세계에 대한 주인 의식을 가지고 미래문명의 주인이 되어야 합니다. 이것은 통일한국으로서만이 가능할 수 있으니 미래문명의 주인이 통일 한국이 될 수 있습니다.” 스님의 열정적인 답변과 함께 우뢰와 같은 박수소리가 터져나왔습니다.nbsp정말 이번 대선에서는 우리한반도의 평화와 통일을 열어갈 지도자를 대통령으로 국민들이 뽑아서 새로운 대한민국, 새로운 백년을 준비해 나갈 수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질문자가 더 많았지만, 김제동씨는 내일 한국으로 돌아가고, 법륜스님은 내일 LA시내에서 희망강연이 또 있으니 질문하지 못한 분들은 내일 만나자고 하시면서,스님께서 질문받은지 1시간 지나자마자 정확하게 마이크를 김제동씨에게로 넘깁니다. 김제동씨의 소개영상이 나오자마자 관중들은 영상과 함께 박수를 치며 환호성이 터져나옵니다. 오늘도 김제동씨는 재치있는 유머와 웃음으로 관중을 사로잡았습니다. 김제동씨는 오늘이 이번 청춘콘서트의 마지막날이라서 그런지 더 탄력을 받아 관중을 쥐락펴락합니다. 제일 앞좌석에 임산부 두분이 연신 웃음을 터트리고 너무 웃어서 눈물까지 닦고 있었습니다. 두분이 친구라고 하는데 김제동씨가 이제 출산예정일이 한보름 남았죠. 그러니 너무 웃음이 터져나와 대답도 하지못하고 고개만 끄덕입니다. 정말로 너무 웃음이 터져나와 청춘콘서트 도중에 애기가 나오는것 아니냐는 약간의 우려도 있었습니다. 그렇게 예정된 시간을 넘겨 1시간 30분이 훌쩍 지나가고 제동씨가 정중한 인사와 함께 무대를 내려왔습니다. 마지막 3부를 위해 두분이 함께 또 무대에 오르자 1부해서 미처 하지 못했던 질문들이 또 터져 나옵니다. 예정했던 시간은 이미 지나갔지만, 무대에 서서 질문을 못한 젊은 학생 2명이 더 질문을 하고자 기다리고 있어 스님께서는 마지막까지 질문을 받았습니다. 행사를 시작한지 4시간이 지나 8시가 되어서야 행사를 마칠수 있었습니다. 행사를 마치고서 서포터즈들과 인사를 하고 숙소로 돌아오니 9시30분이 넘어갑니다. 그때서야 부랴부랴 준비하여 늦은 저녁을 겸하여 간단하게 식사를 하고 서로에게 오늘 수고많았다는 인사를 하였습니다. 내일은 LA 다운타운에서 법륜스님의 희망세상만들기 강연이 있습니다. 내일 LA에 도착하시는 김홍신 님과 함께 희망콘서트로 찾아뵙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오렌지카운티에서 지혜광 김순영 두손모음

2012.09.11. 16,797 읽음 댓글 9개

9월 8일 법륜스님의 하루(샌프란시스코 청춘콘서트)

오늘은 도시 자체도 아름답고 한국교민들도 아주 많이 사는 곳이며, 유명한 대학이 있어서 유학생들도 많은 도시 샌프란시스코에서 청춘콘서트가 있는 날입니다. 잠을 거의 자지 못하고 아침 8시 비행기를 타기위해 오전 6시에 숙소에서 시애틀 공항으로 출발했습니다. 스님께서도 꼬박 밤을 새우시고 시애틀을 떠나게 되었습니다. 공항에 도착하여 짐을 부치고 8시 비행기를 타고 10시 30분 경에 샌프란시스코 Oakland 공항에 도착했습니다. 거의 한시간이나 걸려서 짐을 찾은후에 숙소에 도착하였습니다. 간단하게 점심식사를 한 후 김제동씨가 Stanford 대학을 방문한적이 없다고 하니 법륜스님께서 스탠포드 대학교를 둘러보자고 하셨습니다. 스탠포드 대학은 서부의 하버드라 불리는 유명한 사립대학입니다. 또한 샌프란시스코에는 캘리포니아 주립대학교 버클리 캠퍼스 가 있고 야후, 구글, 이베이 등이 있는 곳으로 IT 산업이 아주 유명한 도시입니다. 저도 스탠포드 대학은 첫 방문인데 건물 하나하나가 참 아름답게 지어졌고, 도시에 위치에 있지만 넓은 캠퍼스에 아름다운 공원같은 캠퍼스를 가지고 있어 관광객들도 아주 많았습니다. 스탠포트 대학교에서 교정을 걸어면서 이곳저곳을 둘러보고 있는데 어디서 법륜스님과 제동씨께 달려오는 분들이 보입니다. 대학원에서 공부하는 유학생부부가 애기를 데리고 사진을 찍고 싶다고 하고, 한국에서 잠깐 방문하신 분들이 스님 진해100강에 갔었다며, 오늘 청콘에도 오겠다고 하면서 아이들과 함께 사진을 찍고 싶다고 하십니다. 여기서도 두 분의 인기를 실감합니다. 스탠포드대학교에서 돌아오자마자 바로 준비를 한 후 행사장인 Santa Clara Convention Center로 이동하였습니다. 행사장에 도착하니 벌써부터 스님책을 구입한 다음에 사인을 받기위해 줄을 길게 서있어서nbsp스님께서 사인을 해주셨습니다. 드디어 4시부터 행사가 진행되었습니다. 컨벤션센터에 약 1300여명의 청년학생들과 교민들이 모였습니다. 스님께서 이번 행사를 주최한 취지를 말씀해주셨습니다. 지난 4월 워싱턴, 뉴욕, LA에서 있었던 청춘콘서트에 대해서 호흥이 엄청나서 이번에는 시애틀, 벤쿠버, 샌프란시스코, 오렌지카운티에서 하겠되었다는 설명과 함께, 첫째는 젊은이들에게 꿈과 희망을 주고, 둘째 이민생활을 하면서 오는 심리적불안과 함께 이민생활에 지친분들에게 웃음을 주고 새롭게 인생에 다시 한번 도전할 마음을 주기 위해서 이렇게 유학생, 교민들을 위한 청춘콘서트를 열게 되었다고 설명해주었습니다. 청년들에게 있어서 스님의 인기를 오늘 여기 샌프란시스코에서도 어김없이 느낄 수 있습니다. 정말 많은 학생들이 스님께 질문을 합니다. 오늘은 UC Berkley에 재학중인 학생들의 질문이 참 많았습니다. 오늘 로비에서는 설문조사를 하였습니다. “나를 불안하게 하는 청년”들의 고민을 들어보니, 연애결혼, 취업진로보다는 가족관계의 불안, 나의 존재에 대한 불안에 대해 훨씬 더 고민이 깊었습니다. 오늘은 대학생인데 꿈이 없어서 어떻게 꿈을 가져야 하는지, 대학생이 살아가면서 알아야 하는 한가지가 있다면 무엇인지, 아들이 고등학교 졸업생인데 출가하고 싶어하는데 어떻게 해야할지, 무아와 참나가 헷갈린다는 분, 신에 대한 질문, 안경을 벗는다는 의미가 무엇인지, 인간관계때문에 행복과 불행이 반복된다는 분, 그리고 20대에 이민와서 30년이 넘었는데 한국이 자랑스럽기도 하지만 한국의 정치현실, 지도자를 보면 답답하고 짜증나는데 어떻게 봐야 하는지, 이기적이지 않게 살고 싶은데 어떻게 해야 하는지, 화가 날 때 어떻게 화를 다스려야 하는지, 부모님의 요구와 상충하는 것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에 대한 질문 등 오늘도 질문이 10개 이상 넘어갑니다. 그중에서도 기억에 남는 것은 한 사람을 7년간 사귀다가 올 초에 헤어졌다고 합니다. 미국에 방문연구원으로 나오면서 스님의 주례사를 선물로 주었는데 그 책을 읽은 여자친구가 연락이 와서 다시 만나고 있다면서 스님께 깊은 감사를 드리기 위해 질문자 자리에 나왔다는 젊은이가 있었습니다. 좋은 책을 써주셔서 진심으로 감사드린다는 인사말이었습니다. 그리고 또 한 가지 기억나는 질문은 기독교에서도 배울 것이 있는지에 대한 질문이었습니다. “예수님의 가르침 중에서도 여러가지가 훌륭한 가르침이 있지만 그 중에서도 제가 죽었다가 다시 깨어나도 예수님을 따라갈 수 없는 것이 있는데, 그것은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박혀 죽으면서도nbsp‘주여 저들을 용서하소서. 저들은 자기 지은 죄를 모르옵니다.’ 하셨습니다.이렇게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것은nbsp죽으면서도 자기를 죽인 사람을 진심으로 이해하고 그를 사랑하는 마음을 가진다는 것은 현재의 저로서는 가능하지가 않습니다. 그래서는 저는 예수님을 존경합니다. 그런 예수님을 따라 배워야 합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못박혀서 이렇게 말한 것은 상대에 대한 깊은 사랑이며, 진정한 사랑, 참사랑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인간은 이렇게 말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이렇게 말한다는 것은 인간성을 넘어선 문제입니다. 예수님임이 인간이냐 신이냐를 따지기 이전에 인간의 일반적인 마음을 훨씬 더 넘어서는 것입니다. 따라서 참기독교인이라면 예수님의 이러한 가르침을 목표로 삼아서 한번 따라서 해보는 것입니다. 일반인들은 하기 힘들지라도 내가 진정한 기독교인이라면 예수님의 가르침을 따라 그렇게 될려고 노력해야 합니다” 라고 답변을 해주셨습니다. 저는 이것이 가장 큰 울림으로 다가왔습니다. 물론 더 많은 비유와 웃음으로 모든 질문에 답을 해주셨기 때문에 법륜스님의 질문은 현장에서 빛을 발합니다. 그러니 주위에 널리 알려주셔서 이번 북미주 지역에서의 법륜스님의 희망세상만들기 강연에nbsp많은 분들이 참석할 수 있게 해주시면 좋겠다는 마음이 일어났습니다. 이어진 김제동씨의 무대에서도 큰 박수와 함께 또 재밌고 웃음이 넘쳐나는 시간이 되었습니다. 김제동씨는 자기는 마음만 먹으면 사람을 웃겨서 죽일 수도 있다고 했습니다. 정말 웃겨서 죽을 수도 있을 것 같았습니다. 그만큼 김제동씨의 무대에도 웃음과 해학이 넘쳐났습니다. 오늘도 3시간 30분의 콘서트를 마치고 스님께서는 바로 사인회를 시작하였습니다. 스님께서 끝까지 사인을 다해주시고, 또한 서포터즈들과 인사하는 시간도 가졌습니다. 오늘 행사를 준비해준 서포터즈들에게 고마움을 표하고 잠시 시간을 가진 후에 함께 기념사진을 촬영하였습니다. 샌프란시스코에서 이렇게 많은 교민이 모여서 행사를 가진 경우는 10년만에 처음있는 일이라고 합니다. 다시 한번 교민들의 목마름을 느껴보며 법륜스님과 김제동씨의 인기도 실감합니다. 이어서 숙소로 돌아와서 샌프란시스코정토회 신도님들이 정성껏 준비한 음식으로 함께 식사를 하였습니다. 스님께서 1년에 한번 미주지역을 돌면서 순회강연을 하시니 영상으로만 뵙던 스님께 다같이 인사를 하고 스님께 이런저런 질문도 하고, 함께 얘기를 나누니 12시가 훌쩍 넘어갑니다. 스님께서는 신도님들께 행사준비하신 노고를 치하해주셨습니다.nbsp샌프란시코정토회에서는 이번 행사를 준비하면서 경비를 절약하기 위해 자체 인력으로 무대 셋팅, 음향, 조명준비 등 모든 준비를 다 했다고 합니다. 이런 행사를 잘 치루어낸 정토행자님들이 자랑스러운 날이었습니다. 매일매일이 감동의 연속입니다. 다들 정말 수고가 많았습니다. 내년에 샌프란시스코에서 다시 만나기를 기원하며 아쉬운 발걸음으로 LA로 옮깁니다. 내일은 LA 오렌지카운티에서 청춘콘서트가 있습니다. 오렌지카운티 청춘콘서트로 내일 찾아뵙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샌프란시스코에서 지혜광 김순영 두손모음

2012.09.10. 18,898 읽음 댓글 14개

9월 7일 법륜스님의 하루(캐나다 벤쿠버 청춘콘서트)

아침부터 날씨가 화창합니다. 오늘은 시애틀에서 캐나다 벤쿠버로 이동을 하지만, 차로 34시간 정도 가면 될 것 같아서 오전 시간이 조금 여유가 있습니다. 스님께서는 아침 일찍 폭포가 있는 산으로 가벼운 산행을 다녀오셨습니다. 산행에서 돌아오시자마자 짐을 꾸려 간단하게 과일과 쥬스로 아침요기를 하고 캐나다로 9시에 출발을 했습니다. 입국수속을 간편하게 받고 캐나다로 들어섰습니다.nbsp워싱턴주와는 산새도 다르고 나무도 다른 것 같습니다. 요즘 서북미의 날씨가 아주 좋다고 하는데, 캐나다 벤쿠버의 날씨도 너무 좋습니다. 도시도 정말 아름답고, 약간은 한국같은 정감이 가는 그런 느낌이 들었습니다. 12시경에 벤쿠버정토회 대표님댁에 도착하니 벌써 많은 분들이 도착해서 함께 식사를 할 준비를 해놓고 계셨습니다. 반갑게 서로 인사하고 식사한 후에 조금 휴식을 취했습니다. 저는 주변 풍경이 너무 좋아서 산책도 조금 즐겼습니다. 금요일 퇴근시간과 맞물려서 행사장으로 가는 시간이 많이 막힐수 있다고 하여 서둘러 행사장으로 출발하였습니다. 청춘콘서트가 6시부터시작되는데 저희는 5시 30분경에 행사장에 도착하니 벌써 주차장에 주차할 공간이 없습니다. 많은 분들이 줄을 서 있고, 2030대 청년들이 아주 많이 보입니다. 시애틀의 열기와는 또 조금 다릅니다. 1200석 좌석이 만석이 되고 뒤에는 서계신분, 그리고 무대앞에는 서포터즈들이 자리를 잡고 간이의자에 앉았습니다. 드디어 시간이 되어서 스님께서 무대에 등장하셨습니다. 많은 분들이 큰박수로 열렬히 환호해주셨습니다. 이번 벤쿠버는 90 이상이 젊은층이었고, 질문도 젊은이들의 질문이 다 차지했습니다. 인사말과 함께 1부를 스님께서 진행하였고 어제보다도 젊은층이 더 많아서 그런지 스님의 촌철살인의 답변에 박수와 웃음이 쏟아집니다. 제 뒤에 앉아계신 어르신들이 스님의 답변에 연신 고개를 끄덕이시면 스님께서 정말 현명하게 말씀을 잘 하신다고 하십니다. 오늘 젊은이들의 질문은 의대를 진학해야 하는지, 본인이 의대를 진학할 경우에 다른 한사람이 못가야 하는데 이것이 다른 사람의 불행위에 내가 행복해지는 것인지 헷갈린다는 20살 여성분의 질문에 스님께서는 웃으시면서 영화배우 장동건씨 처럼 잘생긴 남자가 있을때 내가 저사람과 결혼하면 다른 사람의 불행위에 결혼하는 것이니 저사람과 결혼하면 안되지 않을까 이렇게 생각해야 하냐는 말씀에 웃음이 연신 터집니다. 우주속에 인간은 아주 작은존재로 느껴지는데 사람들이 싸우는 모습이 우습게 보이며, 내가 아둥바둥 열심히 살아갈 필요가 있을까 이렇게 느껴진다는 젊은이의 질문에 대해서도nbsp스님께서는 소립자에 비하면 우리몸은 아주 어마어마하게 큰 것이고, 소립자의 움직임에 비하면 우리의 1초는 엄청난 시간이다, 시간의 절대성, 크기의 절대성은 없기 때문에 사물의 한쪽면만 보지말고 함께 보는 것이 좋겠다는 말씀을 해주셨습니다. 사랑하는 사람과 내년에 결혼을 할 생각인데 학생이다 보니 여자친구의 부모님께서 반대를 하는데 어떻게 하면 좋겠냐는 질문, 여자친구 집안은 술을 마시는 사람이 없는데 본인은 술을 너무 좋아하고 친구를 만나는 것이nbsp너무 좋다는 젊은이의 질문에 대한 답변에 많은 분들의 박수가 쏟아집니다. 정말 하고싶은 것을 찾기위해 대학을 현재 4년째 다니고 있는데 4년으로 부족한것 같다는 남학생의 질문, 친구의 괴로움을 보고 본인이 어떻게 해야할지 잘 몰라서 괴로운 남학생의 질문, 정말 다양하고 많은 질문들이 쏟아집니다. 현장에 오셔서 그 뜨거운 분위기를 느껴야 할 것 같습니다. 또한 대한민국에서 종북주의를 어떻게 하면 뿌리뽑을 수 있느냐는 어르신에 질문에 대해서nbsp대한민국은 사상의 자유가 헌법에 보장되어 있는 나라이므로 현행법에 저촉되지 않으면 자유롭게 의사표현을 할 수 있으므로 이런 헌법정신에 맞게 사상의 자유를 인정하면 종북이라는 말이 없어질 수도 있습니다라는 스님의 답변, 그리고 또 연이어서 편견을 가지고 함부로 말하거나 글을 쓰는 사람을 어떻게 하면 없앨 수 있느냐는 젊은이의 질문에 그런 편견을 가진 사람에게 그런 생각을 가질 수도 있겠구냐하고 나부터 편견없이 그들을 대한다면 없어질 수 있다는답변은 서로 일맥상통하면서 많은 사람들의 공감과 우뢰와 같은 박수가 터져나왔습니다. 저의 글 솜씨로는 이 다양한 질문들에 대한 스님의 지혜로운 답변, 관객들의 호응과 쏟아지는 박수를 다 표현할 수가 없어서 너무 아쉬운 마음이 많이 듭니다. 그렇게 훌쩍 1시간 30분이 지나가고, 김제동님의 시간이 되었습니다. 김제동님께서도 캐나다를 처음 방문했다고 합니다. 많은 분들이 열렬한 환영의 박수를 쳐주셨습니다. 김제동님의 인기가 하늘을 찌를 듯 하네요. 1시간 30분이 어떻게 흘러가는지도 모르게 관객들과 함게 웃고 즐기는 시간이 되었습니다. 캐나다 벤쿠버에서만 38년을 사셨다는 어른신 한분이 마이크앞으로 나오셔서 김제동님을 개그콘서트 특별콘서트를 열게 해달라고 PD님께 연락을 해야겠다고 하십니다.nbsp벤쿠버에서 이렇게 많은 한인들이 모여서 이런 행사를 가진 것은 처음이라고 하면서. 이번 청춘콘서트가 개그콘서트보다도 더 재밌다고 하십니다. 행사가 끝남을 아쉬워하면서 내년에도 꼭 다시 한 번 벤쿠버를 찾아주기를 부탁하는 20대 여성분들의 호소에 법륜스님과 김제동님은 웃으면서 다시 찾겠다고 하시고 행사를 마무리 했습니다. 약속한 3시간 30분을 넘기고 9시 40분이 되어서야 행사를 마무리 할 수 있었습니다. 이번 벤쿠버 청춘콘서트에도 정말 많은 서포터즈들이 함께 해준 것 같습니다. 이분들 덕분에 행사가 잘 치뤄질 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 행사를 마치고 책을 사서 사인을 하기위해 오늘도 줄이 길게 널어서 있습니다. 스님께서 끝까지 사인을 다해주시고, 준비해놓은 책이 모두 다 판매되어서 더이상 책을 구입할 수 없으니 많은 분들이 아쉬워합니다. 서포터즈들과 인사를 하고 우리는 짐을 꾸려서 다시 시애틀로 넘어왔습니다. 오늘은 샌프란 시스코에서 청춘콘서트가 있기 때문에 시애틀에서 8시 비행기로 샌프란 시스코로 옮기기 때문입니다. 샌프란시스코에서도 청춘콘서트가 대박이 날 것 같습니다. 지금 시각은 새벽 4시 30분을 넘어서고 있습니다. 곧 세수를 하고 공항으로 나서야 할 것 같습니다. 그럼 샌프란시스코에서 뵙도록 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시애틀에서 지혜광 김순영 두손모음 nbsp

2012.09.09. 16,500 읽음 댓글 6개

9월 6일 법륜스님의 하루(시애틀 청춘콘서트)

9월 6일 시애틀 청춘콘서트 오늘은 시애틀에서 청춘콘서트가 열리는 날입니다. 법륜스님의 일정은 그날 행사가 하나 있는 것은 이상한 날이 되는 것 처럼 오늘 청춘콘서트가 시작되는 날이지만 스님께서는 오전 10시부터 시애틀정토회에서 마련한 집들이 행사에 참석하셨습니다. 숙소에서 아침식사를 한 후에 저희들은 모두 새로 이사를 할 시애틀정토법당으로 이동하였습니다.nbsp법당에 도착하니 많은 신도님들이 바쁘게 움직이고 있었습니다. 어제 말씀드린대로 시애틀정토회에서 새 건물을 마련하였는데, 스님께서 시애틀을 방문하신 김에 간단하게 집들이 행사를 갖기로 하였다고 합니다. 새법당은 구입한지 이제 이주일밖에 되지 않았기 때문에 아직 수리를 하지 못했습니다. 큰 차고가 있어서 이차고를 수리하여 법당으로 사용할 계획인데, 차고에다 간이 불단과 간이 법상을 만들고 오전 10시 30분부터 집들이 행사를 시작하였습니다. 목요일 오전임에도 불구하고 한 30여명의 신도님들과 축하객들이 참석하셨습니다. 시애틀정토회원뿐만 아니라 몇분의 축하객들도 오셔서 집들이를 축하해주셨는데 시애틀 전한인회장님께서도 오셔서 축하해주셨습니다. 시애틀지역에는 18여만명의 한인들이 살고 있다고 합니다. 법당이 마련된 이 곳은 광역시애틀의 중심이 되는 곳으로 교통이 편리하여 교민들의 접근이 아주 용이하다고 합니다. 이런 좋은 곳에 3에이커의 큰 땅이 마련 된 것은 아마도 법륜스님의 법문이 교민들의 아픈마음을 치유할 인연인것 같고, 앞으로 시애틀정토회가 더 큰 발전을 하기를바란다는 말씀으로 시애틀전한인회장님께서 축하인사 말씀을 해주셨습니다. 또한 법륜 스님께서는 축하 기념법문을 통해서 처음 시애틀에서 정토법회를 할때 가정에서 시작하여 이곳저곳에 공공건물을 빌려서 사용하기도 하고, 또 세를 얻어 공부하기도 했는데 이 때가 가장 순수하게 수행하고 공부하던 시기였다고 볼 수 있다고 하셨습니다. 정토행자들이 부처님법을 공부하는것은 복을 비는 것보다는 갈등을 해결하고자 하는 것인데, 수행을 통하여 스스로 도움을 받은 사람이 다른사람들에게 도움이 되도록 인연을 맺어주는 것이 중요하지 건물이 크냐 작으냐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고 하였습니다. 마음의 무지를 깨치고 좀 더 자유롭고 행복해지고, 또한 남에게도 그런 좋은 인연을 맺어주는 전법의 정신이 정토법당을 마련한 것입니다. 오늘은 차고에서 법문을 듣지만, 법문을 들으면 그곳이 바로 법당이 되는 곳이고, 순수함이 이어지고 확대되어야 하지 혹시라도 순수함과 진리를 놓치게 되면 아무리 좋은 공간이라도 진리와는 거리가 멀어집니다. 먼저 자기정진부터 부지런히 하고 또 다른사람에게 전법을 하며, 내가가진 여러가지 재능들이 다른 사람들을 행복하게 하는데 쓰일수 있도록 보시하고 봉사를 해야 합니다. 오늘 아침에 이곳을 둘러보니 일거리가 많습니다 라고 하시면서 이곳을 함께 만들어가고 같이 가꾸어 가는 역할을 이곳에 오늘 모인 분들이 해야 하는데, 고생하겠다고 웃으시면서 말씀해주셨습니다. 일을 잘 하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을 의견을 모아서 하는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기도하는 마음으로 일을 해야 분란이 생기지 않고, 재앙이 생기지않는다고 하시면서 수행하는 마음으로 기도하고 정진하면서 법당수리불사를 하면 좋겠다고 하셨습니다. 또한 서북미지역을 넘어서서 미주포교의 중심이 되기를 발원해주시고 오늘은 이렇게 간단하게 우리신도님들끼리 집들이 행사를 하지만 수리불사를 원만히 잘 하여 다음에 정식으로 많은 교민들을 초청하여 개원식을 하자고 하시면서 법문을 마무리해주셨습니다.nbsp행사를 마친후에 함께 단체 사진을 찍었습니다. 간단하게 집들이 행사를 마치고 점심식사를 하는 중에 김제동씨가 한국에서 도착하여 함깨 식사하고 잠시 휴식을 취한후에 오늘 행사가 열리는 시애틀주립대학교로 이동을 하였습니다.nbsp시애틀주립대학교는 시내에 있었는데 아주 멋진 건물과 캠퍼스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퇴근시간과 맞물려서 행사시간을 5분정도 초과하여 행사장에 도착하였습니다. 숨을 돌릴 여유도 없이 스님께서 바로 무대로 올라가시니 큰 박수와 함께 열렬한 환호를 외칩니다. 약 750800명이 참석한 것 같은데 시애틀에서 이렇게 많은 분이 모인 것은 처음이라고 참석하신 분들이 말씀하십니다. 젊은이들뿐만 아니라 가족단위로 많은 분들이 오셔서 질문을 하십니다. 부모님으로부터 경제적인 도움을 받아서 공부를 하고 있지만, 공부는 하기 싫다고 하는 젊은 학생의 질문을 시작으로 이곳저곳에서 많은 분들이 손을 듭니다. 미국에서 태어나 다섯살에 한국으로 들어가서 다시 미국으로 온지 2년된 젊은 학생이 어렸을때는 한국말을 못한다고 놀림을 받았고, 또 지금은 여기서 다른사람들보다 영어를 못한다고 울먹거리면서 질문을 하였습니다. 질문한 여학생에게 한국에서 태어나서 지금까지 있는 사람들보다는 영어를 잘하고 이곳에만 있는 사람들보다는 한국말을 더 잘하지 않느냐고 하시면서 영어도 잘못하고 한국말도 잘 못하는 것이 아니라 나는 영어와 한국말을 두개다 할 줄안다고 자기 장점을 내세워야 한다고 답변을 해주니 질문을 한 여학생의 목소리가 금방 밝아졌습니다. 사회부조리, 구조적인 모순에 대한 질문, 어제 면접에서 떨어졌다는 20살 여학생의 질문 등 다양한 질문들이 있었습니다. 한국에서 7살까지 살고 있던 아들을 데리고 와서 지금 8년이 되었는데 엄마와 떨어져 있있던 기간이 있어서 그런지 아들이 방황하고 있고 엄마를 멀리하는데, 이 아들에게 어떻게 도움이 될수 있는지 질문하는등 다양한 질문등이 나왔습니다. 또한 시간이 초과할때 까지 질문들이 넘쳐났습니다. 스님께서 답변을 하는 동안에 웃음과 큰 박수가 계속 터져나옵니다. 관객들과 공감하고 소통하는 것이 참으로 밝은 모습을 보여주었습니다. 스님께서는 8시 30분까지 답변을 해주시고 질문을 받으셨습니다. 그러나 아쉽게도 다음 순서가 기다려서 김제동씨가 무대에 올라왔습니다. 김제동씨의 등장도 처음부터 큰박수와 함께 이어졌습니다. 한시간이 어떻게 지나갔는지도 모르게 훌쩍 지나갔습니다. 저는 김제동씨의 토크콘서트가 오늘로서 5번째인데, 언제나 들어도 너무 재밌고 좋습니다. 김제동씨의 재능기부에 다시한번 감사드리면서 큰 박수를 쳤습니다. 김제동씨의 시간을 아쉬워 하면서 두분이 마무리를 하기 위해서 무대에 다시 함께 섰습니다.nbsp 함께 두분이 미진한 질문을 다시 받았는데, 개인적으로 저는 재일동포 3세인 여학생이 더듬거리는 목소리로 질문을 한 것이 가장 인상적이었습니다. 울산광역시가 고향인데, 재일동포 3세로서 현재 미국에 유학을 와있으며, 남북분단문제에 대해서 어떻게 보고 있는지에 대한 질문이었습니다. 스님께서 오연호 기자와 대담한 새로운 100년을 읽어보았는데 다시 새로운 100년을 요약해주시는 말씀처럼 스님께서 끝맺음을 해주셨습니다. 장소 관계로 10시까지 행사를 마쳐야 하는데 10시10분 되어서야 행사를 마칠수 있었습니다. 행사를 마치고 나오니 많은 분들이 책을 구입하고 스님께 사인을 받을려고 줄을 길게 서 있습니다.nbsp줄을 선 분들중에 2030대 청년들이 아주 많습니다. 청년들이 스님께 반갑게 인사를 하고 사진을 찍는 모습이 참 좋습니다. 스님께서는 30분동안 일일히 책을 구입하여 사인을 받을려고 하는 분들께 사인을 끝까지 다해주시고 숙소로 이동 하였습니다. 11시 30분이 넘어서야 숙소로 돌아왔습니다. 정리하고 씻고 나니 새벽 1시가 가까이 되어옵니다. 동부시간으로 새벽 4시가 되니 저는 머리가 아프네요. 현장에서 듣는 스님의 즉문즉설과 현장에서 듣는 김제동씨의 토크콘서트는 너무 재미있습니다. 상세한 현장 스케치는 지역에서 작성하여 왁자지껄에 올릴것이니 더 상세하고 재밌는 글은 그것으로 대신하고 저는 현장 분위기만 전달하였습니다. 내일은 아침부터 캐나다 벤쿠버로 떠납니다. 캐나다 벤쿠버에서 다시 청춘콘서트가 열립니다. 캐나다에서 뵙도록 하겠습니다. nbsp 감사합니다. 시애틀에서 지혜광 김순영 두손모음nbsp

2012.09.08. 16,278 읽음 댓글 9개

9월 5일 법륜스님의 하루(미국 시애틀)

2012년 9월5일 시애틀 9월 6일부터 북미주지역 12개 도시에서 법륜스님의 희망세상만들기 강연을 위하여 법륜스님께서 오늘 시애틀에 도착하셨습니다. 법륜스님과 일정을 함께 하기 위하여 저도 시애틀로 왔습니다. 시애틀과 워싱턴은 시차가 3시간이나 납니다. 시애틀은 서부지역에 있고, 워싱턴은 동부에 위치해 있습니다. 오전 5시에 일어나 워싱턴볼티모어공항에서 7시40분에 출발하는 비행기를 타고 시애틀에 도착하니 법륜스님께서는 한국에서 출발한 비행기를 타고 12시05분에 도착해 있었습니다. 우리 짐을 찾아서 국제선이 도착하는 곳으로 가보니 시애틀정토회의 신정식거사님과 최재동거사님이 반갑게 맞아주십니다. 시애틀 국제공항은 북미주 지역에서 가장 큰 공항이므로 스님은 12시 05분에 도착했지만 입국심사자가 많아서 2시간이 넘어서야nbsp게이트로nbsp나오셨습니다. 반갑게 인사를 나누고 짐을 찾아서 시애틀정토회 총무님댁으로 와서 늦은 점심겸 저녁을 먹었습니다. 우리는 맛있게 식사를 하였지만, 스님께서는 아직 보식중이라 식사를 하지는 않고 간단한 야채랑 음료만 드셨습니다. 식사를 하고 바로 한국에서 온 메일을 체크하고 쉴틈도 없이 새롭게 이사를 할 새법당 둘러보러 서둘러 자리를 출발하셨습니다. 신정식거사님의 설명을 들으니 새법당이 이사할 곳은 시애틀의 중심부라고 합니다. 3.0 에이커의 땅에 사과나무, 블루베리 등 과일나무도 많지만, 야생의 복분자가 엄청나게 많습니다. 새법당이 될 곳을 둘러보고 서둘러서 정토불교대학 졸업식과 경전반수료식, 그리고 수계식이 진행될 현법당으로 이동을 하였습니다. 현재의 장소에서 열심히 공부한 법우님들이 마지막으로 졸업식을 하고 수계식을 하는 시애틀정토법당을 저도 처음 와 보았습니다. 작은 웨어하우스에서 3년만에 넓은 뜰과 숲을 가진 새법당으로 이사를 하게 되는 시애틀정토법당.nbsp신도님들이 참 수고를 많이 하셨구나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도착하자마자 졸업식을 준비하고 있는 신도님들과 반갑게 인사를 하고, 바로 6시30분부터 불교대학 졸업식 및 경전반 수료식이 진행되었습니다. 이번에 시애틀정토불교대학 졸업생은 10명이고, 경전반 수료생은 8명이었습니다. 스님께서 졸업 축하법문으로 정토불교대학은 교양과정이고, 경전반은 실질적인 불교대학 졸업이라고 하시면서, 불교대학 졸업하신 분들은 그 다음 과정으로 경전반을 수료하여 실질적인 불교대학을 졸업해야 하고, 경전반을 수료하시는 분들은 머리속의 지식이 일상의 삶속에서 작용할 수 있도록 이제부터 부지런히 수행,정진을 하여야 한다고 말씀해주셨습니다. “될 때도 있고, 안 될 때도 있지만, 꾸준히 정진하는 것이 수행입니다” 하시면서 매일매일 천일결사기도를 하고, 깨달음의 장, 나눔의 장, 명상수련 등을 함께 하면서 정진을 하여야 한다고 말씀해 주셨습니다. 또한 개인의 정진뿐만 아니라 다른사람과 함께 전법활동, 봉사활동을 하면서 나의 삶이 세상에 도움이 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그 다음 단계이며, 봉사, 보시를 포함한 실천적 활동이 전개되어야 한다고 하셨습니다. 자기정진을 늘 계속하면서 봉사, 보시하는 삶을 사는 사람을 보살이라고 하는데, 보살의 원을 세운 사람들의 모임이 정토회이기 때문에 우리는 자기정진을 하고 사회에 도움이 되는 보살로서의 새로운 출발을 다짐하여야 한다고 하시면서 졸업을 축하해주셨습니다. 이렇게 새롭게 불교대학을 졸업하고 경전반을 수료하는 모든 분들의 졸업을 축하하면서 함께 졸업사진 및 수료사진을 찍었습니다. 졸업식을 마치고 잠시 휴식시간을 갖고 바로 이어서 수계식을 하였습니다. 스님께서는 수계를 하는 모든 분들과 수계에 참석한 모든 분들에게 축원을 하면서, 한반도의 평화와 통일을 발원하며, 더 이상 이 땅에 전쟁이 없기를 발원하시고, 또한 북한동포들의 인권과 더이상 굶주림이 없기를 발원하시는 모습에 마음이 울컥해지기도 했습니다.nbspnbsp수계자는 모두 9명이었지만 이분들이 앞으로 시애틀정토법당을 잘 이끌어가실 주춧돌이 될 거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2000년 동래정토법당에서 수계식을 한 이래로 다시 진지하게 수계식에 참가하면서 지도법사님의 법문을 들으니 2000년 수계식을 할 때의 마음이 다시 떠올랐습니다. 한 사람 한 사람에게 지도법사님께서 불명을 설명해주실 때, 동참한 모든 분들도 같이 진심으로 축하를 드렸습니다. 9시30분 수계식을 마치고 간단하게 인사를 나누고 다시 숙소로 돌아오니 11시가 다 되어옵니다. 시애틀로 오기 위해서 저도 어제 3시간도 채 못자고 시애틀로 날아왔는데 지금 여기는 12시 30분이지만, 동부시간으로는 새벽 3시30분이 됩니다. 저도 이제 잠이 오네요. 숙소로 들어가서 내일을 위해서 잠을 자야겠습니다. 내일부터 북미주 지역의 희망세상만들기가 진행됩니다. 그 첫번째로 김제동님과 함께하는 청춘콘서트가 시애틀에 있는 워싱턴주립대학교에서 열립니다.nbsp그럼 내일 행사와 함께 다시 찾아뵙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시애틀에서 지혜광 김순영 두손모음

2012.09.06. 16,913 읽음 댓글 16개

8월 11일 법륜스님의 하루(발해 유적지)

중국역사기행 일곱쨋 날입니다. 내일이면 벌써 끝나는 날이네요. 시간이 빠릅니다. 오늘은 발해의 유적을 둘러보고, 발해의 역사를 알아보는 날입니다. 어젯밤 방학봉 교수님의 발해강연을 들었고, 오늘은 현장에서 발해의 숨결을 느껴보는 시간입니다. 오늘도 여전히 3시 30분 기상을 해서, 4시에 발해진으로 출발했습니다. 숙소에서 나오니 호텔 입구에 도시락이 준비되어 있습니다. 오늘 아침은 차 안에서 도시락을 먹는 것으로 했습니다. 빵, 우유, 소시지, 달걀, 짠지, 물까지 고루 담긴 푸짐한 아침식사였습니다. 모두들 발해진까지 꿀맛나는 단잠을 잤습니다. 3시간 넘게 아침 잠을 자고 일어나 창밖을 보니, 주변에 보이는 넓은 들판이 과연 만주구나하는 생각을 절로 하게 합니다. 옥수수밭이며, 콩밭, 해바라기꽃밭 뿐만 아니라 이 곳에는 금잔화도 약재를 만드느라 재배를 많이 하고 있었습니다.nbsp넓은 밭 가득 주황빛 금잔화꽃도 장관이었습니다. 발해진에 도착하자 스님은 발해의 역사에 대해서 차근 차근 설명해 주십니다. “저 멀리 백양나무 보이죠? 저 백양나무가 서 있는 곳이 발해 외성의 한 면입니다. 발해 외성은 한 면의 길이가 4km나 됩니다. 엄청나게 큰 성이죠. 중국의 장안성 다음으로 큰 성입니다. 동북아에서 제일 큰 성이죠. 성의 규모로만 봐도 발해가 얼마나 융성했었는지 알 수 있습니다. 외성안에 내성인 궁성이 있었습니다. 발해가 상경용천부로 수도를 옮길 때는 이미 평화시대였기 때문에 넓은 평지에 수도를 정했습니다. 멀리 산능성이가 있어 적을 방어할 수 있는 요새 역할을 했습니다만 그러나 이렇게 평지에 성을 쌓았기 때문에 요나라의 공격에 쉽게이 함락되었습니다.” 스님은 고향 동네 설명하듯이 발해성 주변을 소개합니다. 어디서부터 어디가 성이고, 성안은 어떻게 구성이 되어 있는지, 외성의 위치와 형태, 발해 당시와 현재의 발해진에 대해서까지, 어디가 어화원인지, 목단강이 어떻게 성 외곽으로 돌고 있는지, 7공교가 어디쯤인지 직접 발로 하나하나 답사하지 않았다면 이야기하기 어려운 내용을 자연스럽게 이야기해 주십니다.nbsp18년에 이르는 중국역사기행의 역사 속에서 스님이 얼마나 많은 애정을 가지고 발품을 팔며 역사현장 하나하나를 살피며 오늘에 이르렀는지를 알 것 같습니다. 버스에서 내려 먼저 박물관으로 갔습니다. 방교수님 말씀처럼 발해관련 남아있는 유적이 별로 없어서인지 발물관에 보관되어 있는 유물도 많지 않았습니다. 방학봉 교수님의 발해 관련nbsp책을 팔고 있는 것을 보고 반가운 마음이 들었습니다. 박물관을 보고 다음으로 상경왕궁터로 갔습니다. 넓은 성터는 발굴을 해서 1궁부터 5궁까지 배치가 되어 있었습니다. 아직도 동궁과 서궁은 발굴이 되지 않았습니다. 궁궐 양쪽에 있는 회랑의 주춧돌을 보면서 정말 궁궐이 컸었구나 싶었습니다. 지금도 스님은 천천히 걸으면서 각 궁의 역할과 전체 궁의 배치 등에 대한 전반적인 말씀을 해 주십니다. 성에서 나와 조금 더 가니 목단강이 있습니다. 멀리 다리 아래서 여인네들이 방망이질을 하는 모습이 정겹게 느껴졌습니다. 스님은 목단강 다리 위에서 저 멀리 보이는 지점들을 지목하여 7공교의 위치를 설명해 주십니다. 발해성 외곽을 돌면서 흐르는 목단강에 발해 당시 다리가 있었던 흔적으로 7공교가 있다고 합니다.nbsp옛날 다리를 만들어 목단강을 건너가던 선조들의 모습을 떠올리며 다시 차를 타고 이동을 해습니다. nbsp 목단강을 지나 발해 절로는 유일하게 남아 있다는 흥룡사로 갔습니다. “흥룡사는 발해 때 건축되었다가 중간에 유실되고, 청나라 때 다시 복원을 해서 지금에 이르고 있습니다. 부처님은 당시 부처님인데 손, 코, 귀 등잘려 나간 부분은 복원을 해서 모셔 놓았습니다. 그리고 마당에 있는 석등은 발해의 유일하게 남은 석등입니다.” nbsp 스님은 부처님께 향을 올리고 대중들과 함께 예불을 드렸습니다. 그리고, 언제나와 같이 스님은 이 땅의 평화와 통일을 염원하며 발원을 하셨습니다. nbsp 발해시대의 불상을 볼 수 있다는 것이 신기한 느낌이었습니다. 불상이 남아 있다는 것만으로도 괜히 감동이 됩니다. 크지 않은 흥룡사에 향내가 진동을 하고, 사람들은 전각과 석등 앞에서 저마다의 포즈를 취해가며 사진기에 추억을 담습니다. 흥룡사까지 살펴본 후 점심 식사를 했습니다. 기름기많은 중국음식이 힘들다는 분들도 있고, 이제 며칠 되니까 뭐든 잘 먹는다는 분들도 있습니다. 그래도 조별로 모여 함께 식사하는 시간은nbsp언제나 즐겁습니다. 식사를 마치고 발해의 유적 중 돈화시 요전자촌 동쪽 언덕에 있는 요전자 24석을 살펴보았습니다. 돈화시에 있는 강동 24석도 보았습니다. 똑같은 모양의 8개 돌이 나란히 3줄로 놓여있는데 아직도 무엇에 쓰였던 돌인지 알지를 못한다고합니다. 그러나 발해 외 다른 곳에서는 발굴되지 않는 발해의 독특한 문화라고 합니다. nbsp 발해에서의 장정을 마치고 돌아가는 길에 경박호에 잠시 내려 사온 수박을 잘라 먹으며 넓고 시원한 경박호를 잠시 구경했습니다. 그 다음으로 발해의 산성인 동모산으로 향했습니다. “전에는 동모산에 올라가 노래도 부르고 이쪽 저쪽 다 살펴볼 수도 있었는데, 지금은 아예 못 올라가게 합니다. 여기서 멀리 바라보며 이야기할 수밖에 없겠네요. 동모산은 대조영이 처음 나라를 세운 곳입니다. 대석하를 자연 해자로 해서 산성을 쌓았죠.” 대석하 건너편에 서서 모두 스님의 설명을 들었습니다. 우리 선조들의 혼이 담긴 유적지에 들어가지도 못하고 멀리서 바라만 본다는 것이, 그것도 큰 길에는 중국 공안이 감시를 하고 있는 상황이 가슴 아프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위대한 선조가 고구려 후손으로서 대제국 발해를 처음 세운 곳에 지금 우리가 서 있다는 것도 가슴 벅찬 일이기도 했습니다. 동모산 앞에서 역사기행 유적지 순례를 거의 끝을 내고 돈화로 향했습니다. 순례를 모두 마치고, 저녁 식사전에 이번 여행을 전체 정리하는 스님의 정리강의가 있었습니다. 우리의 상고사, 우리의 독립운동사에 대한 정리와 더불어 새로운 문명의 구심점이 되고, 동아시아 평화의 구심점이 되기 위해 우리가 이뤄야만 하는 미래비전으로서의 통일에 대해서 정리말씀을 해 주셨습니다. 스님의 정리 강의 이후 참가자 한 분이 자청해서 꼭 하고 싶은 말이 있다고 합니다. “저는 이번 중국역사기행에 참가하면서 세 가지와 만났습니다. 첫째, 스승을 만났습니다. 이 부분은 참가하신 다른 분들도 아마 마음으로 깊이 공감하는 부분일 것입니다. 둘째, 역사를 만났습니다. 법륜스님에게 통찰력과 민족애를 배웠습니다. 저는 이번에 스님을 보면서 원효를 떠올렸습니다. 그리고 사람이 하늘이다 하신 최제우 선생, 나라가 위기에 처했을 때 우리나라 상고사를 쓰기 시작한 단재 신채호 선생이 떠올랐습니다. 100년 후 우리는 이 시대에 법륜스님이 있었다고 기억할 것입니다. 셋째, 대한민국 최고의 시민을 만났습니다. 이번 기행에 참가한, 지금 이 자리에 있는 모든 분들은 통일의병으로서, 분단을 넘어서 이미 통일 시대에 살고 있는 시민임을 자부합니다. 참으로 감사하고 고마운, 저에게는 평생 잊을 수 없는 시간들이었습니다. 감사합니다.” 스님의 민족에 대한 사랑과 북한 동포들에 대한 사랑, 깊은 통찰력, 그리고 단식 후 보식 기간이라 된장국 몇 모금 마시면서도 그 많은 일정들은 다 진행하는 열정이 사람들에게 깊은 감동을 준 것 같습니다. 몇 분이 더 나와서 이번 역사기행에 대한 소감을 이야기합니다. 평생 잊을 수 없는 시간들이 될 것이라며 감동을 전합니다. 순식간에 감동의 분위기가 강연장 안에 가득 찼습니다. “예. 자, 그래도 저녁 식사는 해야죠? 저녁 식사하러 내려 가겠습니다.” 하는 스님의 말씀으로 정리강의는 마무리가 되고, 여행중의 공식적인 마지막 식사를 하러 갔습니다. 식사 후, 조별로 이번 역사기행 소감문을 쓰고, 조원들끼리 돌아가면서 나누기를 했습니다. 조별로 한 명씩 나와서 소감문 발표하는 시간을 가졌는데 참 좋았습니다. nbsp “우리가 6000년전 그러했듯이 동북아의 중심이 되어 아이들과 희망을 이야기할 수 있다고 생각하니 가슴이 뜁니다.” “국경선을 따라 북한의 실상을 보았을 때 한국사회에서 피상적으로 보고 듣고 느끼던 것과는 180도 다른 통일에 대한 신념과 방법에 대해 이전과 다른 깨우침을 강하게 느꼈습니다.” “고구려의 역사와 항일운동의 현장들, 찬란했을 발해, 그리고 천지. 많은 사람들을 만나고 많은 이야기들을 들으며 작은 곳에 갇혀있던 나를 끄집어내는 느낌이다.” 오늘은 밤새 심양으로 버스를 타고 달려 갑니다. 내일 아침 심양 공항에서 1차팀을 보내주고, 같은 시간 한국에서 출발하는 청년대학생들과 2차 기행을 떠나게 됩니다. 스님은 내일부터 1차팀과 똑같은 일정으로 2차 역사기행을 떠나게 됩니다. 다음에 또 뵙겠습니다.

2012.08.19. 19,579 읽음 댓글 11개

8월 10일 법륜스님의 하루(청산리 전투, 일송정, 봉오동 전투)

여섯째날 아침이 밝았습니다. 오늘도 변함없이 3시 30분 기상해서, 4시에 오늘의 첫 탐방지인 청산리 전투터로 출발을 했습니다. 오늘은 청산리 전투터, 대종교 3인묘, 일송정, 대성학교, 봉오동 전투터 등 독립운동 유적지를 탐방하는 날입니다. 청산리 전투터는 12km를 걸어야 한다는 스님 말씀에 사람들은 운동화로 갈아 신고, 마음을 단단히 하여 스님을 뒤따랐습니다. 숙소에서 버스로 30분 정도의 거리에 청산리 전투를 기념하는 비석이 높이 솟아 있었습니다. 그 곳에서부터 걷기 시작했습니다. 스님은 보통 걸음으로 걷는다고 하시지만, 걸음이 빨라 사람들이 따라가기가 힘들었습니다. 밥 먹는 우리들보다 아직도 물종류만 드시는 스님이nbsp더 빠른 것을 두고, 모두들 웃으면서 한 마디씩 합니다. 그러면 스님은 죽도 안 먹는 사람이 이 정도로 걷는데, 밥 먹는 사람은 더 빨리 걸어야 하는 것 아니예요?해서 또 다같이 웃었습니다. 아침의 상쾌한 기분으로 청산리전투터로 향했습니다. nbsp 우리가 가는 곳마다 중국의 공안들이 찾아 옵니다. 우리들이 무엇을 하는지 감시를 합니다. 우리 땅이 아닌, 남의 나라에 우리의 유적지가 있어 마음껏 순례하기도 어려운 현실이 안타깝습니다. 백운평까지 걸었을 때, 지금도 움막이 하나 있는 넓은 터를 가리키며 이 곳에 살던 조선족 주민들을 일본군들이 모두 다 죽여버렸다는 말에 가슴아팠습니다. 청산리 전투터로 가는 길에 작은 냇가를 건넜습니다. 물이 뼛속까지 차갑습니다. “지금 이 여름에도 이렇게 물이 찬데, 초봄이나 늦가을, 겨울에는 얼마나 물이 차겠어요? 그래서 북한사람들이 중국으로 넘어오다가 압록강, 두만강 차가운 물에 다리에 쥐가 나서 물에 휩쓸려 죽는 거예요.” 97년 혹독하게 추웠던 봄에 저희들에게 학교 다니는 일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두만강을 건너며 죽어가는 난민으 구하는 것이 더 급하다며 가슴아파하시던 스님의 모습이 떠오릅니다. 작은 내를 건너 2.5km 정도를 더 올라가니 냇가에서 폭포 떨어지는 소리가 납니다. 이곳이 청산리전투가 있었던 직소택입니다. “백운평 마을로부터 2.5km 들어간 직소택까지 추격해간 일본군 보병 200여명은 일렬종대로 산길로 들어섰습니다. 이 때 김좌진 장군 지휘 아래 독립군의 집중 사격이 쏟아졌고, 일본군 선발대는 거의 전멸 당했습니다. 반면 독립군 피해자는 전사자와 부상자를 합쳐 23명에 불과했습니다.” 청산리전투에 대해 어젯밤 설명에 이어, 오늘도 현장에서 간단하게 설명을 하고, 직소택 앞에서 스님과 참가자 전원은 간절하게 발원을 했습니다. 백운평에서 독립군을 도왔다며 일본군에게 무고하게 죽어간 주민들, 직소택에서 죽어간 일본군사들과 독립군 모두의 왕생극락을 빌었습니다. 100여년전 지금 우리가 서 있는 이 자리에서 많은 젊은이들이 조국의 독립을 위해 일본군들과 싸우다 장열히 산화해 갔습니다. 또한 일본 군인들도 군국주의가 강제로 동원해 이 곳 오지에 와서 희생된 사람들입니다. 아군이든 적군이든 부당한 전쟁으로 희생된 젊은 영령들의 혼을 달래며, 숨져간 목숨들이 헛되지 않도록 다시는 이런 비극적인 전쟁이 일어나지 않기를 기원하며 남북의 평화와 통일을 만들어 가겠다는 스님의 발원이 가슴에 남았습니다. nbsp 독립군들이 걸었던 길을 다시 걸어 내려왔습니다. 화룡에서 점심식사를 하고, 땡볕아래 대종교 3인묘를 찾았습니다. 일본 신도에 맞서 단군을 국조로 받들며 민족의식 고취를 위해 대종교를 만들었던 대종교 창시자인 나철, 2대 교주인 김교헌, 북로군정서 총재 서일의 묘가 단정히 자리잡고 있었습니다. 한국에서 가지고 간 낫으로 벌초를 했습니다. 벌초후 깨끗해진 묘소를 보니까 기분이 좋았습니다. nbsp 벌초를 마치고, 가져간 과일과 술을 올리고 간단하게 예를 올렸습니다. 옛날에는 아무도 벌초도 하지 않고 정리가 안 되어 있었는데, 지금은 한국의 대종교에서 주변 울타리도 치고 정리를 해 두어서 보기가 좋았습니다. 옛 선조들의 정신을 잘 이어가는 것이 현재 우리들이 해야 할 역할이지 않나 싶었습니다. nbsp 다음은 일송정으로 올랐습니다. 일송정에 올라 다같이 ‘선구자’를 불러 보았습니다. 감회가 새로웠습니다. 멀리 해란강이 굽어 흐르고, 그 옛날 용주사의 종소리 바람에 실려 오는 듯 했습다. “일송정 푸른 솔은 늙어 늙어 갔어도 한 줄기 해란강은 천년 두고 흐른다......” 노래를 3절까지 부르자 모두 숙연해집니다. 조국의 독립을 위해 멀리 만주벌판까지 와서 온 몸으로 독립운동을 했던 사람들. 조국에 대한 그리움이 얼마나 컸을까? 눈을 감고 100년전 일송정에 앉아 조국을 그리던 선구자들의 모습을 그려 봅니다. nbsp 일송정에서 내려와 많은 독립운동가를 배출한 대성학교에 잠시 들렀습니다. 윤동주의 생애와 민족교육의 선구자들, 연변의 항일운동 전반에 대해 정리가 되어 있었습니다. nbsp 대성학교까지 돌아본 후, 용정냉면점에서 커다란 그릇에 담긴 냉면을 배불리 먹었습니다. 점심을 먹고는 봉오동 전투터로 가서 지금은 댐이 만들어져 현장은 수몰이 되고 그 댐 아래 세워진 봉오동전투터 기념비 앞에서 순국선열을 위해 묵념을 했습니다. nbsp 오늘 저녁 발해에 대해 강의해 주기로 하신 방학봉 교수님이 봉오동전투의 의미에 대해서 말씀해 주셔서 지금은 단지 기념비밖에 없는 곳이지만, 이 곳이 독립운동가들의 치열한 전장이었음을 알 수가 있었습니다. 봉오동전투 기념비 참배 후 한반도 최북단까지 올라갔다가 도문해관앞에서 북한 땅을 바라보았습니다. 북한으로 이어진 다리 중간까지 사람들이 20원을 내고 들어가 사진을 찍습니다. 다리도 놓여있고, 사람도 살고 있는데 자유롭게 오가지 못하는 현실이 안타까웠습니다. 더군다나 도문해관 주변에는 많은 음식점에 음식이 넘쳐 나는데, 바로 다리로 뛰어가면 1분도 걸리지 않는 곳에 있는 사람들은 밥이 없어서 굶주리고 있다는 현실이 가슴 아팠습니다. 북한은 우리의 사진 배경만 될 뿐 더 이상 가까이 할 수 없는 곳이었습니다. 도문회관에서 돌아와 저녁식사를 한 후, 올해 83세의 노교수이신 방학봉 교수님으로부터 저녁 강의를 들었습니다. nbsp “대학교 1학년 때 정혜공주 묘를 한 달동안 발굴하면서부터 발해와 인연이 되었습니다. 그런데 그 인연이 지금까지 지속되리라고는 당시 생각지도 못했습니다. 실증적인 자료가 많이 남아 있지 않은 발해의 역사를 연구하기는 쉽지가 않습니다. 발해 연구를 하면서 신라와 백제, 고려의 탑과 문화는 어떤가 많이 궁금했어요. 법륜스님을 만나서 제가 남한의 탑과 유적지를 보고 싶다고 했더니, 저에게 기회를 만들어주어서 한 달동안 전체 탑과 유적지를 거의 다 봤습니다. 그것이 연구에 크나큰 도움이 되었습니다. 법륜스님께 언제나 감사한 마음을 가지고 있습니다.” 연변대학교에 재직 중이실 때부터 정토회에서 방학봉 교수님의 발해사 관련한 책을 일년에 한 권꼴로 발행을 해 드렸습니다. 평생을 발해사 연구에 바친 교수님의 발해에 대한 애정이 강의하는 내내 느껴집니다. 내일은 오늘 교수님께 들었던 발해를 생각하며 발해 유적지를 돌아보는 시간을 가질 예정입니다. 내일 뵙겠습니다. nbsp

2012.08.18. 18,704 읽음 댓글 6개

8월 9일 법륜스님의 하루(비룡폭포, 소천지, 지하삼림)

어제 백두산 서편의 한 호텔에서 잠을 잤습니다. 오늘은 백두산 북편 장백폭포로 올라가기로 되어 있습니다. 짐을 챙겨 싣고 또 새로운 하루를 위해 버스 3대가 나란히 서로 간격을 맞추어 가며 출발을 했습니다. 스님은 2호차에 타셔서, 내려서 직접 유적지를 가지 못하는 곳은 버스 안에서 설명을 해 주십니다. “앞차는 조금 천천히 가 주세요. 여러분 오른편 3시 방향을 보세요. 멀리 마을이 보이죠?” 하면서 가는 곳곳마다 차를 타고 가면서 설명을 해 주십니다. 스님과 인도에 같이 가게 되면, 스님은 전생에 인도에서 태어나지 않았을까 싶은데, 스님과 중국엘 같이 와 보니, 스님은 전생에 중국에서도 살았을 것 같습니다. 이렇게 소소하게까지 당시의 유적지며 역사의 현장을 다 알고 있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싶어 감동스럽습니다. 5시 30분경 이도백하에 도착했습니다. 이도백하는 미인송이 유명합니다. 소나무가 커 가면서 바깥 껍질이 벗겨지고, 색깔이 여자의 살갗처럼 변한다고 미인송이라 한다 합니다. 그리고 뻗은 가지에는 오목 오목하게 솔잎이 달려 있어 기품이 있어 보입니다. 길 양 옆에 뻗어 있는 미인송에 대해서도 스님은 잊지 않고 설명을 해 주십니다. 이도백하의 고려식당에서 아침 식사를 했습니다. 매년 찾아오는 곳이라 이제는 스님을 보고 반겨하는 이들이 있습니다. 식당 밖에서 장사를 하는 분은 스님께 반가이 인사를 하며 스님과 친구라고 자기를 소개합니다. 식사를 마칠 시간쯤에는 부인도 와서 스님께 인사를 드리고, 어머니가 직접 꺾어서 말린 고사리, 더덕이라며 시중에 파는 것과 다른 것이라는 말도 덧붙이며 스님께 선물을 드립니다. 농약치지 않은 좋은 것이라며 장뇌삼 스무 뿌리도 같이 주면서 싱글벙글합니다. 스님도 고맙다며 ‘새로운 100년’과 ‘깨달음’ 책 한 권씩을 부부 이름을 적어서 직접 사인해서 선물로 주십니다. 우리 입맛에 맞는 음식이라 다들 맛있게 아침식사를 하고 백두산 북편으로 향했습니다. 벌써 많은 사람들이 와서 백두산으로 올라가는 버스를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장백폭포는 장관이었습니다. nbsp 폭포 물양도 많은 것 같았습니다. 그런데, 이 곳 저 곳 공사 중이라 폭포 가까이 들어가지 못하게 해 놔서 손도 한 번 담그지 못해서nbsp아쉬웠습니다. 백두산 천지에서는 시간이 부족해 스님과 개인 사진을 찍지 못해서, 장백폭포 앞에서 참자가 한 사람 한 사람과 사진을 찍었습니다. 햇살이 뜨거워 금새 스님 머리가 발갛게 됩니다. 장백폭포에서 소천지까지 자작나무 숲 속으로 길이 잘 만들어져 있었습니다. “자작나무 껍질에다가 사랑 고백을 하면 남녀의 사랑이 이루어진답니다.” 하며 웃으며 자작나무 숲 산책을 했습니다. 소천지에는 산과 하늘이 다 들어와 있었습니다. 작은 연못이 아름다웠습니다. nbsp 연못을 천천히 한 바퀴 돌아 녹연담으로 갔습니다. 폭포와 연못이 참 아름다웠습니다. 비룡폭포를 보면서 장엄하지만, 가까이 다가가지 못한 아쉬움이 마음에 조금 남아 있었는데, 녹연담을 가까이에서 보면서 아쉬움이 날아가는 느낌이었습니다. nbsp 비취색 연못과 시원하게 쏟아지는 폭포. 장백 폭포는 장엄하고 선이 굵은 아버지의 느낌이라면, 녹연담은 가까이서 언제라도 어리광부리며 다가갈 수 있는 엄마같은 느낌이었습니다. nbsp 다시 소형버스를 타고 지하삼림으로 향했습니다. 지하삼림 입구에는 숲이 우거져 있었습니다. 산책로로 왕복 3km가 되었는데, 이 곳도 정비가 잘 되어 있었습니다. 중간쯤에 있는 원통형인 동천폭포도 있었는데 계곡물이 모두 용암에 갈라진 틈바구니로 있었는데nbsp흘러서 지하에서 폭포가 되어 떨어지고 있었습니다. 동천폭포를 지나 조금 더 가면 지하삼림을 만나게 됩니다. “스님. 지하삼림이 뭐예요? 무슨 뜻이예요?”하고 참가자 한 분이 묻습니다. “가보면 알지요.” 하면서 스님이 지하삼림으로 먼저 걸음을 옮깁니다. 지하삼림은 땅속에 숲이 있는 것이 아니라 함몰이 된 곳에 숲이 형성된 곳을 주변 절벽에서 보면 마치 땅 아래 숲이 있는 것 같아서 붙여진 이름이라고 합니다. “김홍신 소설가가 ‘대발해’를 쓰면서 이 곳 지하삼림에서 대조영이 군사를 훈련시겼다고 썼지요.”하면서 지하삼림에 대해서 설명을 해 주셨습니다. 지하삼림에서부터 몇 방울씩 비가 떨어지기 시작했습니다. “머리를 삭발하면, 비 떨어지는 것을 제일 먼저 알지.” 하면서 웃으시는 스님. 정말 그럴 것 같습니다. 다시 고려 식당으로 와서 점심을 먹고 화룡으로 출발했습니다. 어제까지는 압록강과 만났는데, 오늘은 두만강과 만났습니다. 두만강 상류의 물은 “두만강 푸른물에 노젖는 뱃사공”하는 우리 어르신들이 즐겨 부르는 노래와는 너무 다르게, 흙빛 물이 쏟아져 내립니다. “무산철광이 생기고 나서 두만강 물이 이렇게 바뀌었습니다. 무산철광 위로는 물이 맑아서 목욕도 하고 빨래도 하는데, 이 곳은 무산철광 때문에 저 강 바닥 한 번 보세요. 강바닥에 검게 쌓여 있는 것들이 보이죠?” 정말 강물도 흑빛이고, 강바닥에 검은 흙들이 침전되어 쌓여있습니다. “저 쪽 산을 보세요. 노천 철광입니다. 노천에서 저렇게 파내기만 하면 됩니다. 이 많은 철광을 지금은 모두 중국에서 수출을 하는데 계속 실어나르는 차를 보면 참 가슴이 아팠습니다. 저 철도가 개통이 되면 더 많은 철광석이 수출이 되겠죠. 어제 본 통화제철소에 산처럼 쌓인 그 철광석이 모두 이곳에서 가져간 것입니다 ” 두만강을 뒤로 하고, 화룡 숙소에 도착해서 저녁을 먹고 스님 강의가 진행되었습니다. nbsp 내일 독립운동 전적지를 돌아보기전에 중국 동북지방 항일독립운동에 대해 살펴보았습니다. 내일은 청산리 전투와 봉오동 전투, 대종교 3인묘, 일송정을 돌아보는 일정입니다. “봉오동 전투는 항일독립운동부대의 첫 무장전투였습니다.그 이전에는 무기를 들고 일제와 싸워본 적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봉오동 전투의 큰 승리는 일제의 군대를 무장으로 물리칠 수 있고,nbsp이길 수 있다는 그런 믿음을 준 것입니다. 그런 기세를 타고 승리를 하니 기세가 좋았습니다. 두 전투는 군사적인 면에서 조선이 독립하는데 큰 변수라고는 볼 수 없었으나 1919년 국민적으로 일어난 만세운동이 일제의 무력 진압으로 실패로 끝나자 좌절감 속에 있던 상황 속에서 이러한 무장투쟁의 승리는 당시 조선민중들에게 엄청난 희망이 되었습니다.” 암담한 조국의 현실 속에서 자신의 목숨을 버려가며 독립운동을 해 나갔던 사람들. 그들이 있었기에 오늘 우리 대한민국의 평화로움과 번영이 있음을 우리는 늘 잊고 사는 것 같습니다. 내일 현장에서 다시 한 번 독립운동가들의 숨결을 느껴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내일 뵙겠습니다. nbsp

2012.08.13. 18,732 읽음 댓글 8개

8월 8일 법륜스님의 하루(백두산 천지)

넷쨋날 아침입니다. 오늘은 사람들이 그리고 그리던 백두산에 가는 날입니다. 백두산까지의 여정이 길어서 이른 새벽 출발을 해야 합니다. 새벽 3시 30분 기상을 해서 4시 10분 출발을 했습니다. 다들 졸린 눈을 부비고 일어나 차에 짐을 싣고 백산을 떠나 백두산으로 향합니다. 한 시간 후, 임강에 도착했습니다. 오늘 아침은 임강 야시장에서 각 자 아침을 사 먹기로 했습니다.nbsp새벽 5시인데 길거리 시장에 상인들이 가득합니다. 각 종 과일들, 야채들, 튀김류, 약종류, 빵, 돼지고기, 생선들 등 갖가지 음식들이 신선하고, 싱싱하고, 따끈합니다. 사람들은 과일과 땅콩, 만두, 튀김, 빵, 고구마를 사 먹으면서 잠시 또다른nbsp즐거움을 맞보고 다시 백두산으로 향합니다. 임강에서 압록강을 따라 상류를 향해 쭉 올라갑니다. 임강에서부터 시작해서 1도구, 2도구라는 이름을 붙혀 최상류까지 24도구로 구분하고 마을 이름을 정하고 있습니다. 임강에서 압록강 최상류 24도구까지는 4시간 정도 걸리는데, 압록강 건너 북한 땅을 바라보며 계속 달렸습니다. 백두산에서 압록강으로 흘러 드는 계곡물을 24개로 나눠서 24도구로 구분하고 있습니다. nbsp 압록강 너머 북한땅을 바라보면서 안타까운 탄식이 절로 흘러 나오고, 북한을 바라보고 있는 현실 자체도 믿기지가 않는 듯 북한 땅에서 눈을 떼지 못합니다. 산에 기어오르기도 어려울 정도로 비탈지고 가파른 경사면까지 뙈기밭이 만들어져 있는 것을 보고북한동포들의 식량난의 고통이 얼마나 심한지를 실감할 수 있었습니다. 소위 뙈기밭이라는 것도 직접 보고, 나무 하나 없는 민둥산도 직접 눈으로 확인합니다. 검은 회색빛 집들도 보고, 제대로 자라지 못한 옥수수들도 봅니다. 자전거 타고 가는 북한 사람들을 보며 사람이 살고 있구나 싶어 반가운 마음이 들고, 냇가에서 수영하는 아이들, 빨래하는 여인들의 모습이 반갑기만 합니다. 차를 향해 손을 흔드는 북녘땅 꼬맹이들에게 두 손을 마구 흔들며 반가움을 표하기도 합니다. 압록강 상류로 올라갈수록 강 폭은 좁아지고, 사람들의 모습도 더 뚜렷하게 보입니다. 검고, 작은 사람들. 작은 강 하나가 무엇이라고 건너지도 못하고, 우리는 배불리 먹고, 저들은 저렇게 굶주려야 할까?nbsp점심을 먹고 남는 음식들을 보면서, 내일부터는 음식을 좀 줄여 달라는 제안부터, 밥 먹는 마음이 너무 불편하다는 분, 북한에 어떻게 밥을 줄 수 있는 방법이 없을까 문의하는 분들의 안타까운 마음이 그대로 느껴집니다. 긴 시간 달려 장백에 도착했습니다. 장백에는 발해의 유일한 탑인 영광탑이 남아 있습니다. 지난 강연 때 스님이 말씀하신 것처럼, 침략이 많았던 민족이라 우리 손으로 쓴 우리 역사책이 거의 없어진 상태에서 제대로 남아있는 유적은 우리에게 너무나 소중한 보물이란 생각이 들었습니다. 교과서에 몇 페이지도 되지 않는 발해에 대해서 거의 잊고 살다가 스님을 통해서 고구려를 계승한 발해가 얼마나 우리 역사 속에서 중요한지, 발해를 잊는 것은 우리 역사의 한 부분을 잃어버리는 것과 같고, 우리 역사를 잃어버리는 것과 같다던 스님 말씀이 떠올랐습니다. 그래서 유일하게 남은 발해의 영광탑에 와서 천년 후의 후예들이 선조의 기상을 이어받아 새로운 미래를 만들어 갈 것을 발원하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북한 혜산시가 아래로 훤하게 내려다보이는 영광탑 앞에서 통일을 염원하는 스님의 발원은 간절합니다. 지척에 있는 북한동포들을 만나지도, 손을 어루만져 보지도 못하고 남의 땅에서 바라볼 수밖에 없는 현실이 안타깝습니다. 수영하며 놀고 있는 북한 아이들을 보면서“우리도 더운데 들어가서 같이 수영이나 할까요?”하며 툭 한마디nbsp던지시는 스님. 정말 아무렇지도 않게 함께 물장구치고 뛰놀 수 있으면 좋겠단 생각이 들었습니다. 장백의 한 호텔에서 점심 식사를 하고, 백두산으로 향했습니다. 압록강 상류로 갈수록 강폭은 좁아지고, 나중에는 우리 집 옆의 냇가보다도 더 좁아집니다. 그래도 국경이라 함부로 건널 수 없는 곳입니다. 탈북하는 사람들을 막기위해 중국 쪽에는 곳곳에 살벌한 철망을 쳐 놓은 것을 볼 수 있었습니다. 그런 속에서도 아름다운 산야의 경치는 사람의 마음을 흔듭니다. 백두산 천지가 가까워지고 있다는 것 자체만으로도 사람들의 마음은 설레이는 것 같습니다. 오늘 코스는 어렵지 않은 코스였습니다. 백두산 남편으로 올랐는데, 거의 정상까지 차가 올라갔습니다. 주차장에서 소형버스로 갈아타고 올라가는데 정말 마음이 설레입니다. 소형버스로 3040km를 간다고 합니다. 어떤 곳일까? 산으로 오르는내내 눈을 창밖에 두고 하나하나 살펴봅니다. 산에 오를수록 함성이 절로 납니다.nbspnbsp nbsp 백두산에 오르면서 사람들은 모두 하나같이 탄성을 지릅니다. 지리산이나 한라산과 같은 산으로 생각했다가, 이것은 그냥 그런 산이 아니구나, 산이 아니라 뭔가 신령스러운 도량같구나 싶었습니다. 천지를 보면 더 입이 안 다물어진다는 말을 듣고 가슴 설레며, 천지 앞에 섰을 때는 올라오면서 본 백두산과는 또다른 세상을 본 기분이었습니다. 하늘의 구름과 16개의 날카롭거나 기이한 봉우리들과 짙고 옅은 잉크가 풀린 것 같은 너무도 잔잔하고 맑은 실크같이 부드러운 수면이 이 세상 속 같지가 않았습니다. 맑고 깨끗하고 투명한 스크린을 바라보고 있는 것만 같았습니다. 그러면서도 뭔가 숙연해지는 느낌입니다. nbsp 사람들은 말을 잊은 채 천지를 보다가, 카메라에 천지를 담기 시작합니다. 가족들과, 조원들과, 지인들과 나란히 서서 환하게 웃으며 사진을 찍습니다. 스님 사진을 한 장 찍으려 하니, 카메라들이 온통 몰려와 스님을 찍습니다. nbsp 많은 사람들이 감동의 천지 앞에서 스님과 사진찍기를 원합니다. 그래서 조별로 돌아가면서 사진을 찍었습니다. nbsp 6월이 되면 야생화 군락이 참으로 아름답다는 스님의 설명을 들으며, 아쉬운 발걸음을 옮겼습니다. 내일은 백두산 북편으로 오르게 되기 때문에, 저녁을 서편의 식당에서 먹기로 했습니다. 남편에서 서편으로 넘어오는데만 2시간 30분이 걸렸습니다. 백두산이 크긴 큰가 봅니다. 내일 올라가게 될 북편도 기다려집니다. 서편에 있는 식당에서 식사를 하고, 호텔에 들어갔습니다. 스님의 저녁강의가 이어졌습니다. 스님은 저녁 강의를 시작하면서, 백두산에 대한 설명을 먼저 해 주셨습니다. 오늘은 남편으로 올랐는데, 서편은 완만하면서 야생화 군락도 많고 여성적인 아름다움이 있는 곳이라 하셨고, 내일 오르게 될 북편은 장엄한 비룡폭포와 지하삼림을 만나게 될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백두산 천지의 물은 북쪽으로 흘러 송하강으로 가고, 두만강은 동편 기슭에서 발원하고, 압록강은 남편 기슭에서 발원한다고 합니다. 백두산 천지를 한 번 보고 오니, 백두산 설명만 들어도 기분이 좋고, 또 가고 싶습니다. nbsp 백두산에 이어서 스님은 오늘 압록강 1도구부터 24도구까지 오면서 고개가 아프도록 바라봤던 맞은편 북한에 대한 이야기를 하기 시작합니다. 굶주리는 북한 동포들에 대한 이야깁니다. “압록강 쭉 따라오면서 북한을 보셨는데 소감이 어때요? 가까이 볼 수 있어서 좋은 면도 있고 안타깝기도 하고 화가나기도 하고 감정이 교차한다고 볼 수가 있습니다. 그러나 외면할 수 없는 현실입니다.” “왜 북한이 이렇게 되었나? 첫번째, 대외적으로는 사회주의권의 몰락과 경제 봉쇄정책 때문입니다. 두번째, 대내적으로는 소위 말해서 김일성 유일사상으로 가면서 기술보다 이념이 앞섰기 때문입니다. 세번째는 군비에 GDP의 25 이상을 사용하는 등 비경제적인 것에 돈을 너무 많이 썼기 때문입니다.” 스님은 북한이 왜 못 살게 되었는지에 대한 구체적인 설명부터, 왜 북한동포돕기를 하게 되었는지,nbsp왜 북한을 돕지 않으면 안 되는지를 그동안의 스님의 북한동포돕기 활동 경험을 간단히 이야기하면서 북한동포들이 겪는 고통, 탈북한 사람들의 아픔에 대해 하나 하나 말씀을 해 주십니다. “이런 아픈 현장을 눈으로 직접 보면 북한동포돕기를 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십년 넘게 이 문제를 풀어보려고 노력하면서 얻은 결과는, 이 문제는 통일을 해야만 해결될 문제라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스님과 통일은 떼어 놓을 수 없는 관계가 되었습니다. 스님은 북한동포들의 고통과 아픔을 결코 외면할 수 없기 때문에 통일을 해야 하고, 통일을 위해서 당신이 할 수 있는 모든 일들을 불철주야 가리지 않고 하고 계십니다. 오늘 이 중국땅에서, 처음 만나는 124명의 참가자들에게 민족과 역사를 이야기하고, 통일의병을 이야기하는 것도 스님의 통일을 향한 활동의 한 부분입니다. 내일은 백두산 북편nbsp비룡 폭포를 보고 독립유적지가 많은 두만강 유역을 보게 됩니다. 오늘은 백두산 천지를 본 것이 가장 기억에 남습니다. 지금도 백두산 천지를 생각하니 가슴이 벅찹니다. 스님의 말씀처럼, 이제는 중국에 비싼 입장료내고, 눈치보면서 천지를 오를 것이 아니라 내 나라, 내 땅에서 천지를 바라보고, 맘껏 바라볼 수 있는 날을 빨리 만들어야 할 것 같습니다. 내일 뵙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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