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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월 5일 법륜스님의 하루(미국 시애틀)
2012년 9월5일 시애틀 9월 6일부터 북미주지역 12개 도시에서 법륜스님의 희망세상만들기 강연을 위하여 법륜스님께서 오늘 시애틀에 도착하셨습니다. 법륜스님과 일정을 함께 하기 위하여 저도 시애틀로 왔습니다. 시애틀과 워싱턴은 시차가 3시간이나 납니다. 시애틀은 서부지역에 있고, 워싱턴은 동부에 위치해 있습니다. 오전 5시에 일어나 워싱턴볼티모어공항에서 7시40분에 출발하는 비행기를 타고 시애틀에 도착하니 법륜스님께서는 한국에서 출발한 비행기를 타고 12시05분에 도착해 있었습니다. 우리 짐을 찾아서 국제선이 도착하는 곳으로 가보니 시애틀정토회의 신정식거사님과 최재동거사님이 반갑게 맞아주십니다. 시애틀 국제공항은 북미주 지역에서 가장 큰 공항이므로 스님은 12시 05분에 도착했지만 입국심사자가 많아서 2시간이 넘어서야nbsp게이트로nbsp나오셨습니다. 반갑게 인사를 나누고 짐을 찾아서 시애틀정토회 총무님댁으로 와서 늦은 점심겸 저녁을 먹었습니다. 우리는 맛있게 식사를 하였지만, 스님께서는 아직 보식중이라 식사를 하지는 않고 간단한 야채랑 음료만 드셨습니다. 식사를 하고 바로 한국에서 온 메일을 체크하고 쉴틈도 없이 새롭게 이사를 할 새법당 둘러보러 서둘러 자리를 출발하셨습니다. 신정식거사님의 설명을 들으니 새법당이 이사할 곳은 시애틀의 중심부라고 합니다. 3.0 에이커의 땅에 사과나무, 블루베리 등 과일나무도 많지만, 야생의 복분자가 엄청나게 많습니다. 새법당이 될 곳을 둘러보고 서둘러서 정토불교대학 졸업식과 경전반수료식, 그리고 수계식이 진행될 현법당으로 이동을 하였습니다. 현재의 장소에서 열심히 공부한 법우님들이 마지막으로 졸업식을 하고 수계식을 하는 시애틀정토법당을 저도 처음 와 보았습니다. 작은 웨어하우스에서 3년만에 넓은 뜰과 숲을 가진 새법당으로 이사를 하게 되는 시애틀정토법당.nbsp신도님들이 참 수고를 많이 하셨구나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도착하자마자 졸업식을 준비하고 있는 신도님들과 반갑게 인사를 하고, 바로 6시30분부터 불교대학 졸업식 및 경전반 수료식이 진행되었습니다. 이번에 시애틀정토불교대학 졸업생은 10명이고, 경전반 수료생은 8명이었습니다. 스님께서 졸업 축하법문으로 정토불교대학은 교양과정이고, 경전반은 실질적인 불교대학 졸업이라고 하시면서, 불교대학 졸업하신 분들은 그 다음 과정으로 경전반을 수료하여 실질적인 불교대학을 졸업해야 하고, 경전반을 수료하시는 분들은 머리속의 지식이 일상의 삶속에서 작용할 수 있도록 이제부터 부지런히 수행,정진을 하여야 한다고 말씀해주셨습니다. “될 때도 있고, 안 될 때도 있지만, 꾸준히 정진하는 것이 수행입니다” 하시면서 매일매일 천일결사기도를 하고, 깨달음의 장, 나눔의 장, 명상수련 등을 함께 하면서 정진을 하여야 한다고 말씀해 주셨습니다. 또한 개인의 정진뿐만 아니라 다른사람과 함께 전법활동, 봉사활동을 하면서 나의 삶이 세상에 도움이 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그 다음 단계이며, 봉사, 보시를 포함한 실천적 활동이 전개되어야 한다고 하셨습니다. 자기정진을 늘 계속하면서 봉사, 보시하는 삶을 사는 사람을 보살이라고 하는데, 보살의 원을 세운 사람들의 모임이 정토회이기 때문에 우리는 자기정진을 하고 사회에 도움이 되는 보살로서의 새로운 출발을 다짐하여야 한다고 하시면서 졸업을 축하해주셨습니다. 이렇게 새롭게 불교대학을 졸업하고 경전반을 수료하는 모든 분들의 졸업을 축하하면서 함께 졸업사진 및 수료사진을 찍었습니다. 졸업식을 마치고 잠시 휴식시간을 갖고 바로 이어서 수계식을 하였습니다. 스님께서는 수계를 하는 모든 분들과 수계에 참석한 모든 분들에게 축원을 하면서, 한반도의 평화와 통일을 발원하며, 더 이상 이 땅에 전쟁이 없기를 발원하시고, 또한 북한동포들의 인권과 더이상 굶주림이 없기를 발원하시는 모습에 마음이 울컥해지기도 했습니다.nbspnbsp수계자는 모두 9명이었지만 이분들이 앞으로 시애틀정토법당을 잘 이끌어가실 주춧돌이 될 거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2000년 동래정토법당에서 수계식을 한 이래로 다시 진지하게 수계식에 참가하면서 지도법사님의 법문을 들으니 2000년 수계식을 할 때의 마음이 다시 떠올랐습니다. 한 사람 한 사람에게 지도법사님께서 불명을 설명해주실 때, 동참한 모든 분들도 같이 진심으로 축하를 드렸습니다. 9시30분 수계식을 마치고 간단하게 인사를 나누고 다시 숙소로 돌아오니 11시가 다 되어옵니다. 시애틀로 오기 위해서 저도 어제 3시간도 채 못자고 시애틀로 날아왔는데 지금 여기는 12시 30분이지만, 동부시간으로는 새벽 3시30분이 됩니다. 저도 이제 잠이 오네요. 숙소로 들어가서 내일을 위해서 잠을 자야겠습니다. 내일부터 북미주 지역의 희망세상만들기가 진행됩니다. 그 첫번째로 김제동님과 함께하는 청춘콘서트가 시애틀에 있는 워싱턴주립대학교에서 열립니다.nbsp그럼 내일 행사와 함께 다시 찾아뵙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시애틀에서 지혜광 김순영 두손모음
8월 11일 법륜스님의 하루(발해 유적지)
중국역사기행 일곱쨋 날입니다. 내일이면 벌써 끝나는 날이네요. 시간이 빠릅니다. 오늘은 발해의 유적을 둘러보고, 발해의 역사를 알아보는 날입니다. 어젯밤 방학봉 교수님의 발해강연을 들었고, 오늘은 현장에서 발해의 숨결을 느껴보는 시간입니다. 오늘도 여전히 3시 30분 기상을 해서, 4시에 발해진으로 출발했습니다. 숙소에서 나오니 호텔 입구에 도시락이 준비되어 있습니다. 오늘 아침은 차 안에서 도시락을 먹는 것으로 했습니다. 빵, 우유, 소시지, 달걀, 짠지, 물까지 고루 담긴 푸짐한 아침식사였습니다. 모두들 발해진까지 꿀맛나는 단잠을 잤습니다. 3시간 넘게 아침 잠을 자고 일어나 창밖을 보니, 주변에 보이는 넓은 들판이 과연 만주구나하는 생각을 절로 하게 합니다. 옥수수밭이며, 콩밭, 해바라기꽃밭 뿐만 아니라 이 곳에는 금잔화도 약재를 만드느라 재배를 많이 하고 있었습니다.nbsp넓은 밭 가득 주황빛 금잔화꽃도 장관이었습니다. 발해진에 도착하자 스님은 발해의 역사에 대해서 차근 차근 설명해 주십니다. “저 멀리 백양나무 보이죠? 저 백양나무가 서 있는 곳이 발해 외성의 한 면입니다. 발해 외성은 한 면의 길이가 4km나 됩니다. 엄청나게 큰 성이죠. 중국의 장안성 다음으로 큰 성입니다. 동북아에서 제일 큰 성이죠. 성의 규모로만 봐도 발해가 얼마나 융성했었는지 알 수 있습니다. 외성안에 내성인 궁성이 있었습니다. 발해가 상경용천부로 수도를 옮길 때는 이미 평화시대였기 때문에 넓은 평지에 수도를 정했습니다. 멀리 산능성이가 있어 적을 방어할 수 있는 요새 역할을 했습니다만 그러나 이렇게 평지에 성을 쌓았기 때문에 요나라의 공격에 쉽게이 함락되었습니다.” 스님은 고향 동네 설명하듯이 발해성 주변을 소개합니다. 어디서부터 어디가 성이고, 성안은 어떻게 구성이 되어 있는지, 외성의 위치와 형태, 발해 당시와 현재의 발해진에 대해서까지, 어디가 어화원인지, 목단강이 어떻게 성 외곽으로 돌고 있는지, 7공교가 어디쯤인지 직접 발로 하나하나 답사하지 않았다면 이야기하기 어려운 내용을 자연스럽게 이야기해 주십니다.nbsp18년에 이르는 중국역사기행의 역사 속에서 스님이 얼마나 많은 애정을 가지고 발품을 팔며 역사현장 하나하나를 살피며 오늘에 이르렀는지를 알 것 같습니다. 버스에서 내려 먼저 박물관으로 갔습니다. 방교수님 말씀처럼 발해관련 남아있는 유적이 별로 없어서인지 발물관에 보관되어 있는 유물도 많지 않았습니다. 방학봉 교수님의 발해 관련nbsp책을 팔고 있는 것을 보고 반가운 마음이 들었습니다. 박물관을 보고 다음으로 상경왕궁터로 갔습니다. 넓은 성터는 발굴을 해서 1궁부터 5궁까지 배치가 되어 있었습니다. 아직도 동궁과 서궁은 발굴이 되지 않았습니다. 궁궐 양쪽에 있는 회랑의 주춧돌을 보면서 정말 궁궐이 컸었구나 싶었습니다. 지금도 스님은 천천히 걸으면서 각 궁의 역할과 전체 궁의 배치 등에 대한 전반적인 말씀을 해 주십니다. 성에서 나와 조금 더 가니 목단강이 있습니다. 멀리 다리 아래서 여인네들이 방망이질을 하는 모습이 정겹게 느껴졌습니다. 스님은 목단강 다리 위에서 저 멀리 보이는 지점들을 지목하여 7공교의 위치를 설명해 주십니다. 발해성 외곽을 돌면서 흐르는 목단강에 발해 당시 다리가 있었던 흔적으로 7공교가 있다고 합니다.nbsp옛날 다리를 만들어 목단강을 건너가던 선조들의 모습을 떠올리며 다시 차를 타고 이동을 해습니다. nbsp 목단강을 지나 발해 절로는 유일하게 남아 있다는 흥룡사로 갔습니다. “흥룡사는 발해 때 건축되었다가 중간에 유실되고, 청나라 때 다시 복원을 해서 지금에 이르고 있습니다. 부처님은 당시 부처님인데 손, 코, 귀 등잘려 나간 부분은 복원을 해서 모셔 놓았습니다. 그리고 마당에 있는 석등은 발해의 유일하게 남은 석등입니다.” nbsp 스님은 부처님께 향을 올리고 대중들과 함께 예불을 드렸습니다. 그리고, 언제나와 같이 스님은 이 땅의 평화와 통일을 염원하며 발원을 하셨습니다. nbsp 발해시대의 불상을 볼 수 있다는 것이 신기한 느낌이었습니다. 불상이 남아 있다는 것만으로도 괜히 감동이 됩니다. 크지 않은 흥룡사에 향내가 진동을 하고, 사람들은 전각과 석등 앞에서 저마다의 포즈를 취해가며 사진기에 추억을 담습니다. 흥룡사까지 살펴본 후 점심 식사를 했습니다. 기름기많은 중국음식이 힘들다는 분들도 있고, 이제 며칠 되니까 뭐든 잘 먹는다는 분들도 있습니다. 그래도 조별로 모여 함께 식사하는 시간은nbsp언제나 즐겁습니다. 식사를 마치고 발해의 유적 중 돈화시 요전자촌 동쪽 언덕에 있는 요전자 24석을 살펴보았습니다. 돈화시에 있는 강동 24석도 보았습니다. 똑같은 모양의 8개 돌이 나란히 3줄로 놓여있는데 아직도 무엇에 쓰였던 돌인지 알지를 못한다고합니다. 그러나 발해 외 다른 곳에서는 발굴되지 않는 발해의 독특한 문화라고 합니다. nbsp 발해에서의 장정을 마치고 돌아가는 길에 경박호에 잠시 내려 사온 수박을 잘라 먹으며 넓고 시원한 경박호를 잠시 구경했습니다. 그 다음으로 발해의 산성인 동모산으로 향했습니다. “전에는 동모산에 올라가 노래도 부르고 이쪽 저쪽 다 살펴볼 수도 있었는데, 지금은 아예 못 올라가게 합니다. 여기서 멀리 바라보며 이야기할 수밖에 없겠네요. 동모산은 대조영이 처음 나라를 세운 곳입니다. 대석하를 자연 해자로 해서 산성을 쌓았죠.” 대석하 건너편에 서서 모두 스님의 설명을 들었습니다. 우리 선조들의 혼이 담긴 유적지에 들어가지도 못하고 멀리서 바라만 본다는 것이, 그것도 큰 길에는 중국 공안이 감시를 하고 있는 상황이 가슴 아프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위대한 선조가 고구려 후손으로서 대제국 발해를 처음 세운 곳에 지금 우리가 서 있다는 것도 가슴 벅찬 일이기도 했습니다. 동모산 앞에서 역사기행 유적지 순례를 거의 끝을 내고 돈화로 향했습니다. 순례를 모두 마치고, 저녁 식사전에 이번 여행을 전체 정리하는 스님의 정리강의가 있었습니다. 우리의 상고사, 우리의 독립운동사에 대한 정리와 더불어 새로운 문명의 구심점이 되고, 동아시아 평화의 구심점이 되기 위해 우리가 이뤄야만 하는 미래비전으로서의 통일에 대해서 정리말씀을 해 주셨습니다. 스님의 정리 강의 이후 참가자 한 분이 자청해서 꼭 하고 싶은 말이 있다고 합니다. “저는 이번 중국역사기행에 참가하면서 세 가지와 만났습니다. 첫째, 스승을 만났습니다. 이 부분은 참가하신 다른 분들도 아마 마음으로 깊이 공감하는 부분일 것입니다. 둘째, 역사를 만났습니다. 법륜스님에게 통찰력과 민족애를 배웠습니다. 저는 이번에 스님을 보면서 원효를 떠올렸습니다. 그리고 사람이 하늘이다 하신 최제우 선생, 나라가 위기에 처했을 때 우리나라 상고사를 쓰기 시작한 단재 신채호 선생이 떠올랐습니다. 100년 후 우리는 이 시대에 법륜스님이 있었다고 기억할 것입니다. 셋째, 대한민국 최고의 시민을 만났습니다. 이번 기행에 참가한, 지금 이 자리에 있는 모든 분들은 통일의병으로서, 분단을 넘어서 이미 통일 시대에 살고 있는 시민임을 자부합니다. 참으로 감사하고 고마운, 저에게는 평생 잊을 수 없는 시간들이었습니다. 감사합니다.” 스님의 민족에 대한 사랑과 북한 동포들에 대한 사랑, 깊은 통찰력, 그리고 단식 후 보식 기간이라 된장국 몇 모금 마시면서도 그 많은 일정들은 다 진행하는 열정이 사람들에게 깊은 감동을 준 것 같습니다. 몇 분이 더 나와서 이번 역사기행에 대한 소감을 이야기합니다. 평생 잊을 수 없는 시간들이 될 것이라며 감동을 전합니다. 순식간에 감동의 분위기가 강연장 안에 가득 찼습니다. “예. 자, 그래도 저녁 식사는 해야죠? 저녁 식사하러 내려 가겠습니다.” 하는 스님의 말씀으로 정리강의는 마무리가 되고, 여행중의 공식적인 마지막 식사를 하러 갔습니다. 식사 후, 조별로 이번 역사기행 소감문을 쓰고, 조원들끼리 돌아가면서 나누기를 했습니다. 조별로 한 명씩 나와서 소감문 발표하는 시간을 가졌는데 참 좋았습니다. nbsp “우리가 6000년전 그러했듯이 동북아의 중심이 되어 아이들과 희망을 이야기할 수 있다고 생각하니 가슴이 뜁니다.” “국경선을 따라 북한의 실상을 보았을 때 한국사회에서 피상적으로 보고 듣고 느끼던 것과는 180도 다른 통일에 대한 신념과 방법에 대해 이전과 다른 깨우침을 강하게 느꼈습니다.” “고구려의 역사와 항일운동의 현장들, 찬란했을 발해, 그리고 천지. 많은 사람들을 만나고 많은 이야기들을 들으며 작은 곳에 갇혀있던 나를 끄집어내는 느낌이다.” 오늘은 밤새 심양으로 버스를 타고 달려 갑니다. 내일 아침 심양 공항에서 1차팀을 보내주고, 같은 시간 한국에서 출발하는 청년대학생들과 2차 기행을 떠나게 됩니다. 스님은 내일부터 1차팀과 똑같은 일정으로 2차 역사기행을 떠나게 됩니다. 다음에 또 뵙겠습니다.
8월 10일 법륜스님의 하루(청산리 전투, 일송정, 봉오동 전투)
여섯째날 아침이 밝았습니다. 오늘도 변함없이 3시 30분 기상해서, 4시에 오늘의 첫 탐방지인 청산리 전투터로 출발을 했습니다. 오늘은 청산리 전투터, 대종교 3인묘, 일송정, 대성학교, 봉오동 전투터 등 독립운동 유적지를 탐방하는 날입니다. 청산리 전투터는 12km를 걸어야 한다는 스님 말씀에 사람들은 운동화로 갈아 신고, 마음을 단단히 하여 스님을 뒤따랐습니다. 숙소에서 버스로 30분 정도의 거리에 청산리 전투를 기념하는 비석이 높이 솟아 있었습니다. 그 곳에서부터 걷기 시작했습니다. 스님은 보통 걸음으로 걷는다고 하시지만, 걸음이 빨라 사람들이 따라가기가 힘들었습니다. 밥 먹는 우리들보다 아직도 물종류만 드시는 스님이nbsp더 빠른 것을 두고, 모두들 웃으면서 한 마디씩 합니다. 그러면 스님은 죽도 안 먹는 사람이 이 정도로 걷는데, 밥 먹는 사람은 더 빨리 걸어야 하는 것 아니예요?해서 또 다같이 웃었습니다. 아침의 상쾌한 기분으로 청산리전투터로 향했습니다. nbsp 우리가 가는 곳마다 중국의 공안들이 찾아 옵니다. 우리들이 무엇을 하는지 감시를 합니다. 우리 땅이 아닌, 남의 나라에 우리의 유적지가 있어 마음껏 순례하기도 어려운 현실이 안타깝습니다. 백운평까지 걸었을 때, 지금도 움막이 하나 있는 넓은 터를 가리키며 이 곳에 살던 조선족 주민들을 일본군들이 모두 다 죽여버렸다는 말에 가슴아팠습니다. 청산리 전투터로 가는 길에 작은 냇가를 건넜습니다. 물이 뼛속까지 차갑습니다. “지금 이 여름에도 이렇게 물이 찬데, 초봄이나 늦가을, 겨울에는 얼마나 물이 차겠어요? 그래서 북한사람들이 중국으로 넘어오다가 압록강, 두만강 차가운 물에 다리에 쥐가 나서 물에 휩쓸려 죽는 거예요.” 97년 혹독하게 추웠던 봄에 저희들에게 학교 다니는 일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두만강을 건너며 죽어가는 난민으 구하는 것이 더 급하다며 가슴아파하시던 스님의 모습이 떠오릅니다. 작은 내를 건너 2.5km 정도를 더 올라가니 냇가에서 폭포 떨어지는 소리가 납니다. 이곳이 청산리전투가 있었던 직소택입니다. “백운평 마을로부터 2.5km 들어간 직소택까지 추격해간 일본군 보병 200여명은 일렬종대로 산길로 들어섰습니다. 이 때 김좌진 장군 지휘 아래 독립군의 집중 사격이 쏟아졌고, 일본군 선발대는 거의 전멸 당했습니다. 반면 독립군 피해자는 전사자와 부상자를 합쳐 23명에 불과했습니다.” 청산리전투에 대해 어젯밤 설명에 이어, 오늘도 현장에서 간단하게 설명을 하고, 직소택 앞에서 스님과 참가자 전원은 간절하게 발원을 했습니다. 백운평에서 독립군을 도왔다며 일본군에게 무고하게 죽어간 주민들, 직소택에서 죽어간 일본군사들과 독립군 모두의 왕생극락을 빌었습니다. 100여년전 지금 우리가 서 있는 이 자리에서 많은 젊은이들이 조국의 독립을 위해 일본군들과 싸우다 장열히 산화해 갔습니다. 또한 일본 군인들도 군국주의가 강제로 동원해 이 곳 오지에 와서 희생된 사람들입니다. 아군이든 적군이든 부당한 전쟁으로 희생된 젊은 영령들의 혼을 달래며, 숨져간 목숨들이 헛되지 않도록 다시는 이런 비극적인 전쟁이 일어나지 않기를 기원하며 남북의 평화와 통일을 만들어 가겠다는 스님의 발원이 가슴에 남았습니다. nbsp 독립군들이 걸었던 길을 다시 걸어 내려왔습니다. 화룡에서 점심식사를 하고, 땡볕아래 대종교 3인묘를 찾았습니다. 일본 신도에 맞서 단군을 국조로 받들며 민족의식 고취를 위해 대종교를 만들었던 대종교 창시자인 나철, 2대 교주인 김교헌, 북로군정서 총재 서일의 묘가 단정히 자리잡고 있었습니다. 한국에서 가지고 간 낫으로 벌초를 했습니다. 벌초후 깨끗해진 묘소를 보니까 기분이 좋았습니다. nbsp 벌초를 마치고, 가져간 과일과 술을 올리고 간단하게 예를 올렸습니다. 옛날에는 아무도 벌초도 하지 않고 정리가 안 되어 있었는데, 지금은 한국의 대종교에서 주변 울타리도 치고 정리를 해 두어서 보기가 좋았습니다. 옛 선조들의 정신을 잘 이어가는 것이 현재 우리들이 해야 할 역할이지 않나 싶었습니다. nbsp 다음은 일송정으로 올랐습니다. 일송정에 올라 다같이 ‘선구자’를 불러 보았습니다. 감회가 새로웠습니다. 멀리 해란강이 굽어 흐르고, 그 옛날 용주사의 종소리 바람에 실려 오는 듯 했습다. “일송정 푸른 솔은 늙어 늙어 갔어도 한 줄기 해란강은 천년 두고 흐른다......” 노래를 3절까지 부르자 모두 숙연해집니다. 조국의 독립을 위해 멀리 만주벌판까지 와서 온 몸으로 독립운동을 했던 사람들. 조국에 대한 그리움이 얼마나 컸을까? 눈을 감고 100년전 일송정에 앉아 조국을 그리던 선구자들의 모습을 그려 봅니다. nbsp 일송정에서 내려와 많은 독립운동가를 배출한 대성학교에 잠시 들렀습니다. 윤동주의 생애와 민족교육의 선구자들, 연변의 항일운동 전반에 대해 정리가 되어 있었습니다. nbsp 대성학교까지 돌아본 후, 용정냉면점에서 커다란 그릇에 담긴 냉면을 배불리 먹었습니다. 점심을 먹고는 봉오동 전투터로 가서 지금은 댐이 만들어져 현장은 수몰이 되고 그 댐 아래 세워진 봉오동전투터 기념비 앞에서 순국선열을 위해 묵념을 했습니다. nbsp 오늘 저녁 발해에 대해 강의해 주기로 하신 방학봉 교수님이 봉오동전투의 의미에 대해서 말씀해 주셔서 지금은 단지 기념비밖에 없는 곳이지만, 이 곳이 독립운동가들의 치열한 전장이었음을 알 수가 있었습니다. 봉오동전투 기념비 참배 후 한반도 최북단까지 올라갔다가 도문해관앞에서 북한 땅을 바라보았습니다. 북한으로 이어진 다리 중간까지 사람들이 20원을 내고 들어가 사진을 찍습니다. 다리도 놓여있고, 사람도 살고 있는데 자유롭게 오가지 못하는 현실이 안타까웠습니다. 더군다나 도문해관 주변에는 많은 음식점에 음식이 넘쳐 나는데, 바로 다리로 뛰어가면 1분도 걸리지 않는 곳에 있는 사람들은 밥이 없어서 굶주리고 있다는 현실이 가슴 아팠습니다. 북한은 우리의 사진 배경만 될 뿐 더 이상 가까이 할 수 없는 곳이었습니다. 도문회관에서 돌아와 저녁식사를 한 후, 올해 83세의 노교수이신 방학봉 교수님으로부터 저녁 강의를 들었습니다. nbsp “대학교 1학년 때 정혜공주 묘를 한 달동안 발굴하면서부터 발해와 인연이 되었습니다. 그런데 그 인연이 지금까지 지속되리라고는 당시 생각지도 못했습니다. 실증적인 자료가 많이 남아 있지 않은 발해의 역사를 연구하기는 쉽지가 않습니다. 발해 연구를 하면서 신라와 백제, 고려의 탑과 문화는 어떤가 많이 궁금했어요. 법륜스님을 만나서 제가 남한의 탑과 유적지를 보고 싶다고 했더니, 저에게 기회를 만들어주어서 한 달동안 전체 탑과 유적지를 거의 다 봤습니다. 그것이 연구에 크나큰 도움이 되었습니다. 법륜스님께 언제나 감사한 마음을 가지고 있습니다.” 연변대학교에 재직 중이실 때부터 정토회에서 방학봉 교수님의 발해사 관련한 책을 일년에 한 권꼴로 발행을 해 드렸습니다. 평생을 발해사 연구에 바친 교수님의 발해에 대한 애정이 강의하는 내내 느껴집니다. 내일은 오늘 교수님께 들었던 발해를 생각하며 발해 유적지를 돌아보는 시간을 가질 예정입니다. 내일 뵙겠습니다. nbsp
8월 9일 법륜스님의 하루(비룡폭포, 소천지, 지하삼림)
어제 백두산 서편의 한 호텔에서 잠을 잤습니다. 오늘은 백두산 북편 장백폭포로 올라가기로 되어 있습니다. 짐을 챙겨 싣고 또 새로운 하루를 위해 버스 3대가 나란히 서로 간격을 맞추어 가며 출발을 했습니다. 스님은 2호차에 타셔서, 내려서 직접 유적지를 가지 못하는 곳은 버스 안에서 설명을 해 주십니다. “앞차는 조금 천천히 가 주세요. 여러분 오른편 3시 방향을 보세요. 멀리 마을이 보이죠?” 하면서 가는 곳곳마다 차를 타고 가면서 설명을 해 주십니다. 스님과 인도에 같이 가게 되면, 스님은 전생에 인도에서 태어나지 않았을까 싶은데, 스님과 중국엘 같이 와 보니, 스님은 전생에 중국에서도 살았을 것 같습니다. 이렇게 소소하게까지 당시의 유적지며 역사의 현장을 다 알고 있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싶어 감동스럽습니다. 5시 30분경 이도백하에 도착했습니다. 이도백하는 미인송이 유명합니다. 소나무가 커 가면서 바깥 껍질이 벗겨지고, 색깔이 여자의 살갗처럼 변한다고 미인송이라 한다 합니다. 그리고 뻗은 가지에는 오목 오목하게 솔잎이 달려 있어 기품이 있어 보입니다. 길 양 옆에 뻗어 있는 미인송에 대해서도 스님은 잊지 않고 설명을 해 주십니다. 이도백하의 고려식당에서 아침 식사를 했습니다. 매년 찾아오는 곳이라 이제는 스님을 보고 반겨하는 이들이 있습니다. 식당 밖에서 장사를 하는 분은 스님께 반가이 인사를 하며 스님과 친구라고 자기를 소개합니다. 식사를 마칠 시간쯤에는 부인도 와서 스님께 인사를 드리고, 어머니가 직접 꺾어서 말린 고사리, 더덕이라며 시중에 파는 것과 다른 것이라는 말도 덧붙이며 스님께 선물을 드립니다. 농약치지 않은 좋은 것이라며 장뇌삼 스무 뿌리도 같이 주면서 싱글벙글합니다. 스님도 고맙다며 ‘새로운 100년’과 ‘깨달음’ 책 한 권씩을 부부 이름을 적어서 직접 사인해서 선물로 주십니다. 우리 입맛에 맞는 음식이라 다들 맛있게 아침식사를 하고 백두산 북편으로 향했습니다. 벌써 많은 사람들이 와서 백두산으로 올라가는 버스를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장백폭포는 장관이었습니다. nbsp 폭포 물양도 많은 것 같았습니다. 그런데, 이 곳 저 곳 공사 중이라 폭포 가까이 들어가지 못하게 해 놔서 손도 한 번 담그지 못해서nbsp아쉬웠습니다. 백두산 천지에서는 시간이 부족해 스님과 개인 사진을 찍지 못해서, 장백폭포 앞에서 참자가 한 사람 한 사람과 사진을 찍었습니다. 햇살이 뜨거워 금새 스님 머리가 발갛게 됩니다. 장백폭포에서 소천지까지 자작나무 숲 속으로 길이 잘 만들어져 있었습니다. “자작나무 껍질에다가 사랑 고백을 하면 남녀의 사랑이 이루어진답니다.” 하며 웃으며 자작나무 숲 산책을 했습니다. 소천지에는 산과 하늘이 다 들어와 있었습니다. 작은 연못이 아름다웠습니다. nbsp 연못을 천천히 한 바퀴 돌아 녹연담으로 갔습니다. 폭포와 연못이 참 아름다웠습니다. 비룡폭포를 보면서 장엄하지만, 가까이 다가가지 못한 아쉬움이 마음에 조금 남아 있었는데, 녹연담을 가까이에서 보면서 아쉬움이 날아가는 느낌이었습니다. nbsp 비취색 연못과 시원하게 쏟아지는 폭포. 장백 폭포는 장엄하고 선이 굵은 아버지의 느낌이라면, 녹연담은 가까이서 언제라도 어리광부리며 다가갈 수 있는 엄마같은 느낌이었습니다. nbsp 다시 소형버스를 타고 지하삼림으로 향했습니다. 지하삼림 입구에는 숲이 우거져 있었습니다. 산책로로 왕복 3km가 되었는데, 이 곳도 정비가 잘 되어 있었습니다. 중간쯤에 있는 원통형인 동천폭포도 있었는데 계곡물이 모두 용암에 갈라진 틈바구니로 있었는데nbsp흘러서 지하에서 폭포가 되어 떨어지고 있었습니다. 동천폭포를 지나 조금 더 가면 지하삼림을 만나게 됩니다. “스님. 지하삼림이 뭐예요? 무슨 뜻이예요?”하고 참가자 한 분이 묻습니다. “가보면 알지요.” 하면서 스님이 지하삼림으로 먼저 걸음을 옮깁니다. 지하삼림은 땅속에 숲이 있는 것이 아니라 함몰이 된 곳에 숲이 형성된 곳을 주변 절벽에서 보면 마치 땅 아래 숲이 있는 것 같아서 붙여진 이름이라고 합니다. “김홍신 소설가가 ‘대발해’를 쓰면서 이 곳 지하삼림에서 대조영이 군사를 훈련시겼다고 썼지요.”하면서 지하삼림에 대해서 설명을 해 주셨습니다. 지하삼림에서부터 몇 방울씩 비가 떨어지기 시작했습니다. “머리를 삭발하면, 비 떨어지는 것을 제일 먼저 알지.” 하면서 웃으시는 스님. 정말 그럴 것 같습니다. 다시 고려 식당으로 와서 점심을 먹고 화룡으로 출발했습니다. 어제까지는 압록강과 만났는데, 오늘은 두만강과 만났습니다. 두만강 상류의 물은 “두만강 푸른물에 노젖는 뱃사공”하는 우리 어르신들이 즐겨 부르는 노래와는 너무 다르게, 흙빛 물이 쏟아져 내립니다. “무산철광이 생기고 나서 두만강 물이 이렇게 바뀌었습니다. 무산철광 위로는 물이 맑아서 목욕도 하고 빨래도 하는데, 이 곳은 무산철광 때문에 저 강 바닥 한 번 보세요. 강바닥에 검게 쌓여 있는 것들이 보이죠?” 정말 강물도 흑빛이고, 강바닥에 검은 흙들이 침전되어 쌓여있습니다. “저 쪽 산을 보세요. 노천 철광입니다. 노천에서 저렇게 파내기만 하면 됩니다. 이 많은 철광을 지금은 모두 중국에서 수출을 하는데 계속 실어나르는 차를 보면 참 가슴이 아팠습니다. 저 철도가 개통이 되면 더 많은 철광석이 수출이 되겠죠. 어제 본 통화제철소에 산처럼 쌓인 그 철광석이 모두 이곳에서 가져간 것입니다 ” 두만강을 뒤로 하고, 화룡 숙소에 도착해서 저녁을 먹고 스님 강의가 진행되었습니다. nbsp 내일 독립운동 전적지를 돌아보기전에 중국 동북지방 항일독립운동에 대해 살펴보았습니다. 내일은 청산리 전투와 봉오동 전투, 대종교 3인묘, 일송정을 돌아보는 일정입니다. “봉오동 전투는 항일독립운동부대의 첫 무장전투였습니다.그 이전에는 무기를 들고 일제와 싸워본 적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봉오동 전투의 큰 승리는 일제의 군대를 무장으로 물리칠 수 있고,nbsp이길 수 있다는 그런 믿음을 준 것입니다. 그런 기세를 타고 승리를 하니 기세가 좋았습니다. 두 전투는 군사적인 면에서 조선이 독립하는데 큰 변수라고는 볼 수 없었으나 1919년 국민적으로 일어난 만세운동이 일제의 무력 진압으로 실패로 끝나자 좌절감 속에 있던 상황 속에서 이러한 무장투쟁의 승리는 당시 조선민중들에게 엄청난 희망이 되었습니다.” 암담한 조국의 현실 속에서 자신의 목숨을 버려가며 독립운동을 해 나갔던 사람들. 그들이 있었기에 오늘 우리 대한민국의 평화로움과 번영이 있음을 우리는 늘 잊고 사는 것 같습니다. 내일 현장에서 다시 한 번 독립운동가들의 숨결을 느껴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내일 뵙겠습니다. nbsp
8월 8일 법륜스님의 하루(백두산 천지)
넷쨋날 아침입니다. 오늘은 사람들이 그리고 그리던 백두산에 가는 날입니다. 백두산까지의 여정이 길어서 이른 새벽 출발을 해야 합니다. 새벽 3시 30분 기상을 해서 4시 10분 출발을 했습니다. 다들 졸린 눈을 부비고 일어나 차에 짐을 싣고 백산을 떠나 백두산으로 향합니다. 한 시간 후, 임강에 도착했습니다. 오늘 아침은 임강 야시장에서 각 자 아침을 사 먹기로 했습니다.nbsp새벽 5시인데 길거리 시장에 상인들이 가득합니다. 각 종 과일들, 야채들, 튀김류, 약종류, 빵, 돼지고기, 생선들 등 갖가지 음식들이 신선하고, 싱싱하고, 따끈합니다. 사람들은 과일과 땅콩, 만두, 튀김, 빵, 고구마를 사 먹으면서 잠시 또다른nbsp즐거움을 맞보고 다시 백두산으로 향합니다. 임강에서 압록강을 따라 상류를 향해 쭉 올라갑니다. 임강에서부터 시작해서 1도구, 2도구라는 이름을 붙혀 최상류까지 24도구로 구분하고 마을 이름을 정하고 있습니다. 임강에서 압록강 최상류 24도구까지는 4시간 정도 걸리는데, 압록강 건너 북한 땅을 바라보며 계속 달렸습니다. 백두산에서 압록강으로 흘러 드는 계곡물을 24개로 나눠서 24도구로 구분하고 있습니다. nbsp 압록강 너머 북한땅을 바라보면서 안타까운 탄식이 절로 흘러 나오고, 북한을 바라보고 있는 현실 자체도 믿기지가 않는 듯 북한 땅에서 눈을 떼지 못합니다. 산에 기어오르기도 어려울 정도로 비탈지고 가파른 경사면까지 뙈기밭이 만들어져 있는 것을 보고북한동포들의 식량난의 고통이 얼마나 심한지를 실감할 수 있었습니다. 소위 뙈기밭이라는 것도 직접 보고, 나무 하나 없는 민둥산도 직접 눈으로 확인합니다. 검은 회색빛 집들도 보고, 제대로 자라지 못한 옥수수들도 봅니다. 자전거 타고 가는 북한 사람들을 보며 사람이 살고 있구나 싶어 반가운 마음이 들고, 냇가에서 수영하는 아이들, 빨래하는 여인들의 모습이 반갑기만 합니다. 차를 향해 손을 흔드는 북녘땅 꼬맹이들에게 두 손을 마구 흔들며 반가움을 표하기도 합니다. 압록강 상류로 올라갈수록 강 폭은 좁아지고, 사람들의 모습도 더 뚜렷하게 보입니다. 검고, 작은 사람들. 작은 강 하나가 무엇이라고 건너지도 못하고, 우리는 배불리 먹고, 저들은 저렇게 굶주려야 할까?nbsp점심을 먹고 남는 음식들을 보면서, 내일부터는 음식을 좀 줄여 달라는 제안부터, 밥 먹는 마음이 너무 불편하다는 분, 북한에 어떻게 밥을 줄 수 있는 방법이 없을까 문의하는 분들의 안타까운 마음이 그대로 느껴집니다. 긴 시간 달려 장백에 도착했습니다. 장백에는 발해의 유일한 탑인 영광탑이 남아 있습니다. 지난 강연 때 스님이 말씀하신 것처럼, 침략이 많았던 민족이라 우리 손으로 쓴 우리 역사책이 거의 없어진 상태에서 제대로 남아있는 유적은 우리에게 너무나 소중한 보물이란 생각이 들었습니다. 교과서에 몇 페이지도 되지 않는 발해에 대해서 거의 잊고 살다가 스님을 통해서 고구려를 계승한 발해가 얼마나 우리 역사 속에서 중요한지, 발해를 잊는 것은 우리 역사의 한 부분을 잃어버리는 것과 같고, 우리 역사를 잃어버리는 것과 같다던 스님 말씀이 떠올랐습니다. 그래서 유일하게 남은 발해의 영광탑에 와서 천년 후의 후예들이 선조의 기상을 이어받아 새로운 미래를 만들어 갈 것을 발원하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북한 혜산시가 아래로 훤하게 내려다보이는 영광탑 앞에서 통일을 염원하는 스님의 발원은 간절합니다. 지척에 있는 북한동포들을 만나지도, 손을 어루만져 보지도 못하고 남의 땅에서 바라볼 수밖에 없는 현실이 안타깝습니다. 수영하며 놀고 있는 북한 아이들을 보면서“우리도 더운데 들어가서 같이 수영이나 할까요?”하며 툭 한마디nbsp던지시는 스님. 정말 아무렇지도 않게 함께 물장구치고 뛰놀 수 있으면 좋겠단 생각이 들었습니다. 장백의 한 호텔에서 점심 식사를 하고, 백두산으로 향했습니다. 압록강 상류로 갈수록 강폭은 좁아지고, 나중에는 우리 집 옆의 냇가보다도 더 좁아집니다. 그래도 국경이라 함부로 건널 수 없는 곳입니다. 탈북하는 사람들을 막기위해 중국 쪽에는 곳곳에 살벌한 철망을 쳐 놓은 것을 볼 수 있었습니다. 그런 속에서도 아름다운 산야의 경치는 사람의 마음을 흔듭니다. 백두산 천지가 가까워지고 있다는 것 자체만으로도 사람들의 마음은 설레이는 것 같습니다. 오늘 코스는 어렵지 않은 코스였습니다. 백두산 남편으로 올랐는데, 거의 정상까지 차가 올라갔습니다. 주차장에서 소형버스로 갈아타고 올라가는데 정말 마음이 설레입니다. 소형버스로 3040km를 간다고 합니다. 어떤 곳일까? 산으로 오르는내내 눈을 창밖에 두고 하나하나 살펴봅니다. 산에 오를수록 함성이 절로 납니다.nbspnbsp nbsp 백두산에 오르면서 사람들은 모두 하나같이 탄성을 지릅니다. 지리산이나 한라산과 같은 산으로 생각했다가, 이것은 그냥 그런 산이 아니구나, 산이 아니라 뭔가 신령스러운 도량같구나 싶었습니다. 천지를 보면 더 입이 안 다물어진다는 말을 듣고 가슴 설레며, 천지 앞에 섰을 때는 올라오면서 본 백두산과는 또다른 세상을 본 기분이었습니다. 하늘의 구름과 16개의 날카롭거나 기이한 봉우리들과 짙고 옅은 잉크가 풀린 것 같은 너무도 잔잔하고 맑은 실크같이 부드러운 수면이 이 세상 속 같지가 않았습니다. 맑고 깨끗하고 투명한 스크린을 바라보고 있는 것만 같았습니다. 그러면서도 뭔가 숙연해지는 느낌입니다. nbsp 사람들은 말을 잊은 채 천지를 보다가, 카메라에 천지를 담기 시작합니다. 가족들과, 조원들과, 지인들과 나란히 서서 환하게 웃으며 사진을 찍습니다. 스님 사진을 한 장 찍으려 하니, 카메라들이 온통 몰려와 스님을 찍습니다. nbsp 많은 사람들이 감동의 천지 앞에서 스님과 사진찍기를 원합니다. 그래서 조별로 돌아가면서 사진을 찍었습니다. nbsp 6월이 되면 야생화 군락이 참으로 아름답다는 스님의 설명을 들으며, 아쉬운 발걸음을 옮겼습니다. 내일은 백두산 북편으로 오르게 되기 때문에, 저녁을 서편의 식당에서 먹기로 했습니다. 남편에서 서편으로 넘어오는데만 2시간 30분이 걸렸습니다. 백두산이 크긴 큰가 봅니다. 내일 올라가게 될 북편도 기다려집니다. 서편에 있는 식당에서 식사를 하고, 호텔에 들어갔습니다. 스님의 저녁강의가 이어졌습니다. 스님은 저녁 강의를 시작하면서, 백두산에 대한 설명을 먼저 해 주셨습니다. 오늘은 남편으로 올랐는데, 서편은 완만하면서 야생화 군락도 많고 여성적인 아름다움이 있는 곳이라 하셨고, 내일 오르게 될 북편은 장엄한 비룡폭포와 지하삼림을 만나게 될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백두산 천지의 물은 북쪽으로 흘러 송하강으로 가고, 두만강은 동편 기슭에서 발원하고, 압록강은 남편 기슭에서 발원한다고 합니다. 백두산 천지를 한 번 보고 오니, 백두산 설명만 들어도 기분이 좋고, 또 가고 싶습니다. nbsp 백두산에 이어서 스님은 오늘 압록강 1도구부터 24도구까지 오면서 고개가 아프도록 바라봤던 맞은편 북한에 대한 이야기를 하기 시작합니다. 굶주리는 북한 동포들에 대한 이야깁니다. “압록강 쭉 따라오면서 북한을 보셨는데 소감이 어때요? 가까이 볼 수 있어서 좋은 면도 있고 안타깝기도 하고 화가나기도 하고 감정이 교차한다고 볼 수가 있습니다. 그러나 외면할 수 없는 현실입니다.” “왜 북한이 이렇게 되었나? 첫번째, 대외적으로는 사회주의권의 몰락과 경제 봉쇄정책 때문입니다. 두번째, 대내적으로는 소위 말해서 김일성 유일사상으로 가면서 기술보다 이념이 앞섰기 때문입니다. 세번째는 군비에 GDP의 25 이상을 사용하는 등 비경제적인 것에 돈을 너무 많이 썼기 때문입니다.” 스님은 북한이 왜 못 살게 되었는지에 대한 구체적인 설명부터, 왜 북한동포돕기를 하게 되었는지,nbsp왜 북한을 돕지 않으면 안 되는지를 그동안의 스님의 북한동포돕기 활동 경험을 간단히 이야기하면서 북한동포들이 겪는 고통, 탈북한 사람들의 아픔에 대해 하나 하나 말씀을 해 주십니다. “이런 아픈 현장을 눈으로 직접 보면 북한동포돕기를 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십년 넘게 이 문제를 풀어보려고 노력하면서 얻은 결과는, 이 문제는 통일을 해야만 해결될 문제라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스님과 통일은 떼어 놓을 수 없는 관계가 되었습니다. 스님은 북한동포들의 고통과 아픔을 결코 외면할 수 없기 때문에 통일을 해야 하고, 통일을 위해서 당신이 할 수 있는 모든 일들을 불철주야 가리지 않고 하고 계십니다. 오늘 이 중국땅에서, 처음 만나는 124명의 참가자들에게 민족과 역사를 이야기하고, 통일의병을 이야기하는 것도 스님의 통일을 향한 활동의 한 부분입니다. 내일은 백두산 북편nbsp비룡 폭포를 보고 독립유적지가 많은 두만강 유역을 보게 됩니다. 오늘은 백두산 천지를 본 것이 가장 기억에 남습니다. 지금도 백두산 천지를 생각하니 가슴이 벅찹니다. 스님의 말씀처럼, 이제는 중국에 비싼 입장료내고, 눈치보면서 천지를 오를 것이 아니라 내 나라, 내 땅에서 천지를 바라보고, 맘껏 바라볼 수 있는 날을 빨리 만들어야 할 것 같습니다. 내일 뵙겠습니다.
8월 7일 법륜스님의 하루(중국 국동대혈, 광개토대왕비, 장군총)
민족의 뿌리를 찾아서 떠난 중국역사기행 셋쨋날입니다. 오늘부터 강행군 시작입니다. 매일 새벽 3시 30분에 일어나야 한다는 사실이 사람들에게는 힘들게 다가가는 것 같습니다. 중국 문화를 잘 모르는 사람들이 있어 수건으로 신발을 닦아 수건 손해배상해 주느라 아침에 출발시간이 5분가량 늦었지만 참가자들이 모두 3시 30분 일어나 4시에 출발할 준비가 다 되어 있었습니다. 벌써 밝아진 새벽 공기를 가르며, “잘 주무셨어요? 오늘 하루 일정을 말씀드리겠습니다.”하는 스님의 말씀으로 역사기행의 하루가 시작이 됩니다. 오늘 아침에는 국동대혈로 맨 먼저 이동했습니다. 버스에서 내려 산을 오르는데, 며칠 전 왔다는 큰 비로 인해 바닥도 많이 패여 있었습니다. 옆으로 흐르는 작은 냇가 바닥에는 하얀 돌들이 깔려 있어 맑은 물이 더 맑게 보입니다. 새벽 산책을 하는 기분이 상쾌하고 좋습니니다. 국동대혈로 가는 길목에 있는 다른 큰 동굴에는 마을 사람들이 모셔놓은 관세음보살상과 재신과 의신이 있어서 사람들은 건강과 복을 빌기도 했습니다. 국동대혈은 사람이 100명은 충분히 들어갈 수 있는 큰 동굴이었습니다. nbsp “국동대혈은 국내성에서 동쪽으로 가면 큰 동굴이 있다는 뜻입니다. 이 곳은 고구려 시기의 중요한 제사를 지내는 곳이었습니다. 해마다 10월이면 고구려왕은 군신들은 거느리고 직접 이 곳에 와서 제사를 지냈습니다. 왕이 직접 제사장이 되어 천신에게 제사를 지내는 최고의 의식을 치르게 됩니다.” 스님의 설명을 들으며 국동대혈을 찬찬히 살펴 보았습니다. 앞 뒤로nbsp트인 동굴안에 천제를 지내기 알맞게 큰 돌이 제단처럼 올려져 있습니다. 아마 그 제단 위에 제물을 올리고 왕들은 태평성대를 기원하며 제사를 지냈을 것입니다. 고구려 왕들이 나라의 태평성대를 기원한 것처럼, 우리도 개인의 건강과 행복, 나아가 남북의 평화와 통일을 기원하며 발원을 했습니다. 다같이 손을 잡고 ‘우리의 소원은 통일’ 노래 한 곡을 부르며, 옛 고구려 왕들의 지극한 마음을 떠올려 보았습니다. nbsp국동대혈에서 걸어내려오니, 바로 앞에 압록강이 흐르고 있었습니다. 일찍 내려온 사람들은 얼른 강가에 내려가 손을 씻고 건너편 북한땅을 바라봅니다. 우리 집을 남의 집에서 바라만 봐야 하는 현실이 안타깝기도 하고, 끊임없이 북한땅으로 눈길이 가는 것을 보면서 우리들 가슴 깊이에는 너무나 자연스럽게 북한을 남의 나라가 아니라 내 나라로 생각하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nbsp 집안의 숙소로 다시 돌아와 아침 식사를 하고 짐을 챙겨서 다음 유적지로 이동을 합니다. 5회분 5호묘, 장군총, 광개토대왕비, 광개토왕릉을 차례로 살펴 보았습니다. 15년전 왔을 때와는 다르게 주변을 정말 잘 정돈해 놓았습니다. 유네스코 등재를 하면서 관광객을 받을 수 있도록 정리를 많이 한 것 같습니다. 먼저 5회분 5호묘에도 들어가서 벽화에 대한 설명을 들었습니다. 무덤에 직접 들어가 벽화를 본 것이 인상적이었고, 그 오랜 세월동안 아직도 선명하게 남아있는 벽화의nbsp선명한 색깔과nbsp모양이 놀라웠습니다. 5호묘 외의 다른 고분의 벽화에 대한 설명도 스님으로부터 자세히 들을 수 있어 좋았습니다. nbsp 햇살이 뜨겁습니다. 뜨거운 햇살 아래서도 장군총과 광개토대왕릉에 대한 조선생님의 설명을 모두들 열심히 듣습니다. “돌을 쌓은 것을 보면 아주 과학적으로 쌓았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중심에 있는 돌 바로 곁에 계단식으로 쌓은 돌이 두 개 있는데 마치 벽돌처럼 만들어서 집어넣은 것 같습니다. 이것은 균형을 잡기 위하여 쐐기를 박은 것 같은데 이것은 본래 모습으로 앞을 받친 돌입니다. 이렇게 받침으로 밀려나오지 않습니다. 또 큰 돌을 옆의 한 면에 세 개씩 받쳐서 벌어지는 것을 방지하고 있습니다.” 장군총에 대한 설명을 들으면서 선조들의 지혜에 다시 한 번 탄복하게 됩니다. 이런 유적이 남아 있다는 것 자체만으로도 내 뿌리의 한 부분이라 그런지 괜히 뿌듯해지고 자신감이 생깁니다. 장군총 앞에서는 1, 2, 3호차별로 스님과 함께 사진 촬영을 했습니다. 햇살이 뜨거워도 수학여행온 학생들처럼 모두들 즐거운 것 같습니다. 다음은 광개토대왕비로 이동을 했습니다. “광개토대왕비는 장수왕 때 만든 것으로 높이 6.39m, 너비는 1.34m에서 2m입니다. 장수왕은 그의 아버지가 이룬 역사를 기록하고 건국부터 호태왕까지의 역사도 기록했습니다. 중심은 호태왕의 역사를 기록한 것입니다. 이 비석은 어마어마한 큰 돌을 자연스럽게 다듬고 글자를 새긴 것인데, 웅대한 자연미를 나타내고 있습니다.”nbsp 집안에서 고구려 유적지를 탐방하고, 내일 만나게 될 백두산에 가기 위해 백산으로 출발했습니다. 백산으로 가는 길에는 적을 차단하기 위한 성벽인 관마산성 성터가 아직 남아 있습니다. 통화는 머루포도로 만든 포도주가 유명하다고 합니다. 우리를 안내한 조선생님의 고향이 통화라 통화 포도주를 선물하셨습니다. 그래서 저녁을 먹으면서 선물받은 포도주 맛도 보면서 조원들과 무대에 나와서 소개도 하고, 노래도부르며 친목의 시간을 가졌습니다. 이제는 조원들과도 더 친밀해지고, 긴장감도 풀어진 것 같습니다. 그렇다고 저녁강의를 뺄 수는 없습니다. 식당에서 강연장으로 자리를 옮겨 오늘은 고구려의 역사에 대해 강의를 들었습니다. 고구려를 건국한 주몽으로부터 유리왕, 광개토대왕, 장수왕에 이어 고구려의 멸망과 발해 건국에 이르기까지 전체 역사를 짚어 주십니다. 그러나 오늘도 마찬가지로 결론은 통일로 이어집니다. “고구려가 우리의 연결고리입니다. 고구려가 우리 민족사의 뿌리를 보여줍니다. 고구려는 우리 민족사의 가장 중요한 위치에 놓여 있습니다. 그러나 평양의 유적까지 봐야 강대한 고구려의 나머지 절반을 볼 수 있습니다. 평양에 여행가는 사실상의 통일을 다음 5년안에 꼭 만들어내야 합니다.” 한반도의 평화와 통일. 다음 5년안에 꼭 이루어지기를 스님과 함께 발원드려 봅니다. 오늘도 빡빡한 하루 일정이 끝났습니다. 우리가 풍성하다 못해 미안하기까지한 잘 차려진 밥을 먹으면서도 힘들다고 헉헉거릴 때, 이른 새벽부터 유적지 안내를 하고, 매일 밤마다 강의를 하는 스님은 아직도 단식 보식 중이라 맑은 된장국 한 컵 드시면서 전체 일정을 소화하고 계십니다. “나는 밥을 안 먹고도 이렇게 걷는데, 매일 그렇게 먹으면서도 힘이 들어요?” 하며 웃으시는 스님. 매일 매일 탐방하는 유적지마다 스님의 민족에 대한 애정과 역사에 대한 깊은 이해를 느끼게 됩니다. 스님과 같이 유적지를 도는 것만으로도 막혔던 것이 뚫린 듯 시원해지고, 역사에 대한 배움과 민족에 대한 자긍심으로 자신에 대해서도 넉넉해지는 것 같습니다. 감사합니다.nbsp내일 숙소에서는nbsp인터넷이 되기를 기원해 봅니다. 내일 뵙겠습니다.
8월 6일 법륜스님의 하루(중국 졸본성, 환도산성, 국내성)
중국역사기행 둘쨋날입니다. 6시 기상해서 짐을 모두 버스에 싣고, 6시 30분 아침 식사를 했습니다. 중국 아침 식사에 항상 빠짐없이 나오는 팥같은 앙꼬가 들어가지 않은 흰 빵과 손 대기에도 뜨거운 삶은 달걀, 삭힌 오리알 등 전에 먹어봤던 음식들이 나오니 반갑습니다. 오늘은 졸본산성과 환도산성, 국내성을 돌아보며 역사 속의 고구려를 만나보는 시간입니다. 처음 고구려를 건국한 주몽에 대해서는 스님의 법문시간에 어머니인 유화부인에 대한 이야기를 통해 많이 들었습니다. 스스로 천손이라는 남자와 하룻밤을 자고 낳은 주몽을 유화부인은 항상 너는 천손의 아들이라는 자긍심을 심어줬기 때문에 훌륭한 사람이 될 수 있었다는 이야기였습니다. “본래 부여의 왕족인 주몽은 왕실의 배척을 받아 오이, 마리, 협보 등 세 사람과 함께 도망쳐 환인지역에 이르렀고, 지방 토착세력과 연합하여 고구려를 건국하였습니다. 고구려가 처음 수도를 정한 곳이 환인입니다.” 스님의 자세한 설명이 이어집니다. 졸본산성은 사진으로 여러 번 봤지만 직접 멀리서 바라보면서 정말 요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큰 산 한 가운데 자연 절벽 위에 세워져 있는 산성이었습니다. 차를 타고 올라가면서 바라보고, 차를 타고 내려오면서 뒤돌아보며 다시 한 번 탄성을 울리게 하는 산성이었습니다. 산성 위에서 고구려시대의 많은 무덤들이 수몰되었다는 댐을 바라보며 말에 물 먹이고, 전투를 하던 고구려 시대로 한 번 돌아가봅니다. 깎아지르는 듯한 계단을 땀을 흘리며 올라가고, 내려왔습니다. 땀이 나도 아침의 신선한 공기가 기분을 상쾌하게 합니다. 스님은 졸본산성의 구조에 대해서 자세하고 상세하게 설명을 해 주십니다. 중간에 안내를nbsp조선생님이 하고, 부족한 부분에 대해서는 다시 하나 하나 덧붙이며 설명을 해 주십니다. 우리가 올라온 입구만 막으면 그 누구도 침략할 수 없었다는 졸본산성. 정말 천연의 요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환인에서 점심식사를 하고 집안으로 출발을 했습니다. 집안에서는 환도산성과 국내성을 살펴보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펄펄나는 저 꾀꼬리, 암수 서로 정답구나.”의 주인공인 고구려 2대 유리왕 22년에 졸본에서 집안으로 서울을 옮긴 이후 장수왕 15년까지 425년간 고구려의 서울이 되었다고 합니다.nbsp먼저 환도산성으로 향했습니다. “환도산성은 고구려의 대표적인 산성으로서 국내성과 함께 하나의 방어체계를 이루고 있습니다. 국내성은 고구려의 도읍지고, 환도산성은 비상시에 군사들이 가서 방어를 하고 임금이 피신해 있으면서 저항한 곳이었습니다. 환도산성은 지세가 좋고 자연조건이 워낙 견고해서 적의 공격을 막기에 좋은 구조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 함락이 잘 안 되는 곳이었습니다. 그래도 고구려가 국내성을 수도로 하고 있는 동안에 국내성은 3번, 환도산성은 2번 함락이 되었습니다.” 스님은 끊어지지도 않고 고구려 이야기가 술술술 나옵니다. 같이 설명을 해 주던 조선생님은, 이런 요새가 없다며, 군사전략가들이 외국에서도 견학을 온다며 선조들이 어떻게 이런 자연조건을 갖춘 곳을 선택할 수 있었는지 지혜가 대단하다며 탄식을 합니다. nbsp “고구려가 동북아 대륙의 강자가 된 것은 졸본성과 국내성을 깊은 산 속 험한 요새에 두고 있어 수도가 안정되었기 때문입니다.”하는 스님의 설명을 들으면서,nbsp수도가 안정되어 있는 것이 참으로 중요하구나 하는 생각을 했습니다. 환도산성에 대한 설명을 듣고 산성 아래의 무덤떼 앞을 산책했습니다. 스님은 하나라도 더 보여주고 싶어 하십니다. 천천히 무덤떼 앞을 지나면서 사람들과 사진도 찍었습니다. 다음으로 간 국내성은 집안시내에 있는데, 아파트가 들어서 있고, 성이 상당히 많이 파괴되어 제 모습을 많이 잃었지만, 아파트 사이로 길게 늘어서 있는 성곽에 대한 설명을 들으면서 또 다시 선조들의 지혜에 탐복을 했습니다. 적들의 침입에 대비한 성의 구조, 물의 흐름과 세기를 고려한 곡선의 성벽, 성내의 물의 배수까지 고려한 배수구 등을 보며 참 대단하다 싶었습니다. 특히 성문을 보호하기 위한 공자형 성문은 세계 어디에도 없을 것 같은 독특한 형이었습니다. nbsp 국내성 앞으로 통구하가 흐르고 있고, 쭉 따라 내려가다 보면 압록강과 만납니다. 압록강 너머로 북한 땅이 보입니다. 스님은 압록강변에서 북한을 바라보며 북한 땅과 옛날 북한돕기 활동했던 내용에 대해 말씀을 해 주십니다. 저녁을 맛있게 먹고, 집안의 한 호텔에 도착해서 저녁 강의를 들었습니다. 단군 조선과 부여, 고구려의 역사에 대한 강연이었지만, 마지막은 통일의 필요성으로 돌아갑니다. “자기 문화의 정체성을 잃어 버리고, 이웃 문화의 아류가 되어 버리면 안됩니다. 선진문화를 따라가며 모방할 때는 괜찮은데, 그러면 선진문명을 스스로 창조할 능력은 없어집니다.nbsp그러므로 경제력의 신장보다 더 중요한 것이 민족사의 정립과 민족 문화에 대한 자긍심입니다. 현재 중국의 발전은 모방단계이지 창조의 단계는 아닙니다. 그래서 아직 세계 문명을 주도하기에는 한계가 있습니다. 통일은 미래의 개척을 위한 첫 단계입니다. 단순한 영토의 문제가 아니라 세계 문명을 주도할 수 있는 가능성을 여는 것입니다. 고구려, 발해 역사기행은 그 자체가 아니라 그 뿌리에 대한 이해를 갖기 위해서입니다.” 스님의 말씀을 듣고 있으면 단군조선, 고구려의nbsp역사가 앞으로 다가오지도 않은 미래를 위한 밑받침이 되어 있어, 과거와 현재, 미래가 동떨어지지않고 단단히 연결되어 있는 느낍입니다. 고구려, 발해 유적지를 탐방하면서 미래 통일 한국이 세계 문명을 주도할 꿈을 그립니다. 강연 공간도 좁은데다 에어콘도 나오지 않아 찜통같은 강의실이었습니다. 사람들은 강의를 들으면서도 연신 땀을 닦고 부채질을 해 댑니다. 그런데도 사람들은 졸지 않고 스님을 바라보며 열심히 강의를 듣습니다. 참 재미있는 일입니다.nbsp몸은 힘들지만 강의가 진행될수록 차츰 스님의 많은 내용성에nbsp탐복해 가는 분위깁니다. 내일은 3시 30분 기상입니다. 국동대혈과 장군총, 광개토대왕비, 5회분 5호묘 등 집안에서 둘러보고 백두산으로 가기 위해 백산으로 이동하는 일정입니다. 하루 하루가 쌓여져 가고 있습니다. 오늘은 그냥 오늘이 아니라 어제에 이은 오늘이라던 스님 말씀이 생각납니다. 내일 뵙겠습니다. nbsp
8월 5일 법륜스님의 하루(중국역사기행 첫 날)
새벽 4시, 정토회관에서 인천공항으로 출발했습니다. 오늘은 좋은벗들에서 매년 여름 고구려, 발해 유적지를 찾아가는 중국역사기행을 떠나는 날입니다. 올 해로 18번째 맞이하는 중국역사기행은 예년과 마찬가지로 법륜스님의 안내로 진행이 됩니다. 124명의 참가자와 15명의 진행 스텝이 7박 8일간 함께 여행을 하게 되었습니다. 스님은 매년 인도성지순례 안내와 고구려 발해 유적지 안내, 그리고 국내 경주순례 안내를 하면서 부처님의 발자취와 한민족의 시원과 역사, 그리고 삼국 통일의 위업을 이루어낸 신라 역사의 현장인 경주에서 역사를 통해 돌아볼 것과 미래를 위해 배워야 할 것에 대해 안내를 해 주십니다. 역사의식이 있어야 미래를 통찰할 수 있고, 올바른 방향으로 세상을 이끌어 갈 수 있다는 스님의 말씀은 삶을 살아가는 현장에서 그 때 그 때 직접 몸으로 만나게 됩니다. 정치, 사회적인 사건들을 보면서는 더 크게 느끼게 되는 것 같습니다. 사회의 지도자가 왜 역사의식이 있어야 하는지를 더 여실히 깨닫게 됩니다. 오늘은 7박 8일 여행 중의 첫 날입니다. 인천공항을 출발해서 중국 심양공항에 도착, 요녕성박물관을 둘러보고, 다시 백암산성으로 갔다가 환인에서 휴식을 취하는 것으로 일정이 잡혀져 있습니다. 스님은 지난 20여일간의 단식을 마치고 보식에 들어가셨습니다. 살이 많이 빠진 모습으로 밝게 참가자들에게 인사를 하십니다. “몸은 괜찮은데 이렇게 목소리가 아직 잘 안 나오네요.” 몸을 걱정하는 분들에게 웃으며 말씀하십니다. nbsp 중국역사기행 실무 준비를 하고 있는 자원봉사자와 중국 현지에서 도움을 준 분들 덕분에 실무자들은 21일 동안의 안거를 마치고도 편안하게 참가할 수 있었습니다. 별 문제없이 전원이 모두 중국에 무사히 도착했습니다. 심양공항에 3대의 버스가 준비되어 있었습니다. 첫 목적지인 요녕성 박물관으로 향했습니다. 16년전, 처음 스님을 따라 중국에 왔을 때는 겨울이라 매캐한 매연과 안개가 저희를 가장 먼저 맞이해 주었는데 오늘 중국은몰라보게 깨끗해진 거리와 높은 빌딩들, 쭉쭉 뻗은 길들이 제일 먼저 눈에 들어왔습니다. nbsp 요녕성 박물관으로 가는 길에 차안에서 먼저 요하문명에 대한 스님의 설명을 들었습니다. 동북아의 요하문명과 황하문명의 시원에 대한 이야기, 환인, 환웅, 단군에 이르는 한나라, 배달나라, 조선나라로 이어지는 역사 이야기, 환웅천황의 신시개천 아래 5천년간을 이 좁은 한반도가 아니라 동북아를 중심 무대로 활동했던 우리 민족에 대한 말씀들이 한민족으로서의 자부심을 심어줍니다.nbspnbsp 요녕성 박물관 1, 2, 3, 4, 5관을 훑어 보듯 살펴보고, 심양시내를 빠져나와 백암산성으로 향했습니다. 그런데, 산성으로 향하는 길에 보니 냇가에 황톳빛 물이 넘실거리며 흘러내립니다. 다리에 닿을 듯 밀려내려오는 물결들, 가장자리에는 이미 쓰러져 부러진 나무들도 보입니다. 어제까지 이 곳에는 비가 많이 왔다고 합니다. “아하. 작년에도 백암산성에 못 올라갔는데, 올 해도 못 갈 수도 있겠네. 저 정도 물이면 물을 건널 수가 없겠는데...” 하시며 스님이 안타까워 하십니다. 백암산성까지 가는 길은 넓게 펼쳐진 만주 벌판을 바라보는 시원함과 즐거움이 있었습니다. 그 넓은 땅에 온통 옥수수가 심어져 있습니다. 쓰러져 가듯이 군데 군데 촌락을 이루고 있는 집들도 정겨워 보입니다. 백암산성 앞 태자하도 역시 물이 넘실거리며 흘러 내리고 있었습니다. 강을 건너 백암산성으로 갈 수가 없어 일행들은 할 수 없이 차를 돌렸습니다. 멀리 백암산성을 바라보며, 옥수수밭 옆에 차를 세워놓고, 차안에서 스님의 설명이 있었습니다. nbsp 백암산성의 역사와 성의 구조, 백암산성의 특색까지 하나 하나 상세히 설명을 해 주십니다. 고구려 성의 특징에 대한 설명, 지난 역사 속에서 선조들이 이 나라를 지키기 위해 노력했던 모습들이 눈에 하나씩 그려집니다. 스님 말씀을 들으면서, 아, 이 곳이 우리 고구려 땅이었구나 하는 것이 새삼 느껴졌습니다. 이 광활한 땅이 내가 교과서에서 배우고 있는 우리 선조들이 숨쉬며 살아왔던 땅이라는 생각에 내가 선 이 곳이 다시 한 번 더 바라봐지고, 발에 힘을 주고 땅을 다시 밟아 봅니다.nbspnbsp 시간이 여의치 않아서 점심은 옥수수 한 개씩을 먹었는데, 백암산성 오르는 일정이 취소되면서 저녁식사를 더 일찍하게 되었습니다. 본계의 한 호텔에서 식사를 했습니다. 이번 일정 중 중국 음식과의 첫 만남이었는데, 다들 배가 고팠던 탓인지 입맛에 맞다며 맛있게 먹었습니다. 전체가 함께 있는 이 시간에 어떤 분들이 참가했는지, 그리고 행사를 진행하는 스텝들에 대해 간단히 소개하는 시간도 가졌습니다. nbsp 다시 두 시간 정도를 차를 타고 오늘의 숙소인 환인으로 들어왔습니다. 두 시간동안은 각 차량별로 참가자 한 사람 한 사람이 나와서 어떻게 이번 여행에 참가하게 되었는지와 자기 소개시간을 가졌습니다. 저희 차량에는 부부도 몇 커플이 되고, 미국, 일본, 태국, 중국 등 외국에서 오신 분들, 정치인, 공무원, 언론인 등 다양한 분들이 타고 계셨습니다. 서로를 알아가는 즐거운 시간이었습니다. 숙소에 돌아와서는 바로 짐만 풀어놓고 강연장에 모여 스님의 첫날 강연을 들었습니다. 왜 우리가 역사를 배워야 하는가에 대해 말씀을 하시면서, 역사의 중요성에 대해서 말씀을 해 주셨습니다. 특히 6천년 우리 민족 역사에서 역사유실과 역사왜곡이 심각한 부분에 대해서 자세한 정리를 해 주셨습니다. “첫째는 민족사의 뿌리에 해당하는 상고사 부분이고, 둘째는 일제침략기에 행한 독립운동사이고, 셋째는 현대사 부분입니다. 상고사 부분이 많이 유실되고 왜곡되었기에 우리 민족사가 중국사의 변방이 되어 버려서 중국에 대한 열등의식과 피해의식을 갖고 있고, 남북분단으로 인한 독립운동사의 왜곡은 일본에 대한 피해의식과 열등의식을 갖게 만들었습니다.nbsp현대사는 서양문명, 특히 미국 문화에 대한 열등의식을 갖게 만들었습니다. 이러한 열등의식을 극복하지 않고는 새로운 인류문명을 개척하고 창조해 나가는데 앞장서기가 어렵습니다. 이 셋 중에서 이번 역사기행의 주과제는 고구려 발해사를 중심으로 해서 상고사 부분을 정리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우리의 운명을 새롭게 개척하려면 첫째, 역사관이 올바르게 정립되어야 합니다. 둘째, 주변국의 정세를 정확히 파악해야 합니다. 셋째는 우리의nbsp역량을 정확히 타산해야 하며 넷째는 우리의 목표를 달성하기 위한 올바른 전략과 전술을 구사해야 합니다. 여기서도 민족사관의 정립이 첫째 과제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이번 역사기행동안 나의 정체성과 민족의 정체성을 확립하기 위해서 올바른 민족사관을 정립해야 합니다. 이것이 이번 여행의 중요한 목적입니다.” nbsp 여행 첫 날이라 다들 피곤할텐도 민족의 자긍심이 가슴 깊이 느껴져서인지눈을 똑바로 뜨고 스님 강연을 진지하게 듣습니다. 다른 나라 역사가 아니라 우리 역사를 바로 알아야 하고, 상고사, 독립운동사, 현대사의 열등감을 극복할 때 동북아의 새로운 중심이 될 수 있다는 말씀에 새로운 기운들이 생기는 것 같습니다. 첫 날, 오랜 역사를 가진 한민족으로서의 자부심들을 마음에 차곡차곡 새기고, 다들 잠자리에 들었습니다. 스님은 된장국물 몇 모금만 마시면서, 오늘 하루도 참가자들에게 우리 민족의 뜨거운 가슴을 일깨워주고, 새로운 역사를 써 나갈 수 있는 희망과 용기를 채워 주십니다. 내일은 둘쨋 날입니다. 졸본산성과 환도산성, 국내성을 돌아보며 단군조선과 부여를 계승했다는 위풍당당한 고구려의 역사와 만나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내일 뵙겠습니다.
7월 22일 법륜스님의 하루(백일기도 입재식)
7월 12일부터 9박 10일간 문경정토수련원에서 2012년 제 1차 명상수련이 있었습니다. 180여명이 스님의 안내에 따라, 평소의 14도 안 되는 밥과 감자로 소식을 하며 몸과 마음을 맑히는 수련에 참가하였습니다. 단지, 숨 하나 들고 남을 바라보며 새벽부터 밤까지 묵언하며 조용히 앉아 수련을 합니다. 명상수련 들어가기 이틀 전부터 단식을 시작하신 스님은, 오늘로 단식 13일째가 되었습니다. 단식 중임에도 수련하는 대중들과 똑같이 정진을 하시고, 정진 안내를 하시고, 매일 법문을 해 주셨습니다. 수련에 참가한 사람들은 오로지 스님의 말씀을 나침반 삼아서 한 숨 한 숨 따라가며 9박 10일 수련을 마칠 수 있었습니다. 수련을 마치면서 부처님 법 만남이 감사하고, 매일 매일 힘을 잃지 않고, 포기하지 않도록 격려하면서도 바르게 정진해 나갈 수 있도록 안내해 주시는 스님이 계심이 너무 감사해서, 또 쉽지 않았던 그 과정을 도망가지 않고 마지막까지 정진을 한 자신에 대한 뿌듯함에 눈물을 흘립니다. 지난 삶을 참회하고, 새로운 삶을 다짐하며 희망을 이야기합니다. 맑아진 한 사람 한 사람의 환한 얼굴이 모두 부처님 얼굴입니다. nbsp 오늘은 제 7차 천일결사 중 제 6차 백일기도 입재식이 충주에서 있었습니다. 2500여명이 참가해서 가슴 뜨거운 하루를 보냈습니다. 지난 100일동안, 전국을 뜨겁게 달구었던 희망세상 만들기의 열정이 그대로 입재식 현장에도 옮겨져 왔습니다. 참가하는내내 가슴이 뛰고, 눈시울이 여러번 붉어졌습니다. 여러 번 울컥 울컥했습니다. 내가 희망임을 이야기합니다. 그 희망이 그대로 느껴집니다. 나를 바꾸고, 세상을 바꾸는 힘. 가능성을 보여 줍니다. 희망이 보입니다. 나를 바꿀 수 있다는 믿음, 세상을 바꿀 수 있다는 희망을 가슴 가득 안고 가는 것 같습니다. nbsp 스님은 단식으로 약간 야위어진 모습으로 5차 백일기도 회향법문을 해 주셨습니다. 언제나 희망세상 강연에서 하시는 말씀입니다. 그런데 더 간절하게 다가옵니다. 참가한 많은 대중들에게 기운을 받으셨는지, 어제 명상수련 마칠 때보다는 조금 더 기운이 있어 보입니다. “수행은 우리의 부족함을 알아서 부족한 가운데 두 발로 디디고 서서, 한 발 한 발 나아가는 것입니다. 너무 목표에만 집착을 하게 되면 부족한 자기를 용납하기가 어렵습니다. 수행이라는 욕심을 부리고 있는 것입니다. 경계에 부딪히면 화를 내고 짜증을 내는 것이 현재의 나입니다. 이런 나를 거부하지 말고 인정을 하자, 이런 나를 받아 들이자, 여기서부터 시작을 하자는 것입니다. 여기서 출발해서 한 발 한 발 나아가자는 것입니다. 그래서 수행에서 중요한 것은 꾸준한 정진입니다. 꾸준히 해 나가다 보면 하나도 된 게 없는 것 같은데, 백일 전을, 일 년 전을, 천일 전을 돌아보면 내가 많이 왔구나, 옛날보다는 많이 안정이 되었구나 하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이것이 수행이고, 이것이 정진입니다. 이렇게 정진을 해 나가면서 우리는 새로운 원을 세웠습니다. 세상에 보탬이 되어 보자는 것입니다. 나의 경험을 이웃에게 나눠주자는 것입니다. 이웃에게 옛날의 나처럼 법의 인연을 맺어주어서 괴로움에서 벗어나게 해 주자는 것입니다. 우리가 하고 있는 희망세상 만들기의 가장 중요한 목표는 이 기쁨을 세상에 전하자는 것입니다. 법의 인연을 맺기 어려운 사람들에게 좀 더 적극적으로 다가가서, 희망의 홀씨를 세상에 전하자는 것입니다.”nbsp 모두 진지하게 스님 말씀을 듣습니다. 스님 말씀을 듣고 있는 사람들 중의 많은 사람들이 지난 100일동안 희망세상 만들기 강연 현장에서 희망씨앗으로 활동을 했던 사람들입니다. 스님 말씀을 들으면서 지난 100일을 돌아보며, 자신의 수행을 점검하고, 활동을 스스로 평가해 봅니다. 때로는 고개를 끄덕이고, 때로는 활짝 웃으면서 2500명이 스님과 하나의 호흡이 됩니다. 희망세상 만들기팀만이 아니라 ‘새로운 100년’ 북콘서트를 진행한 사람들, 정토법당, JTS, 좋은벗들, 에코붓다, 평화재단의 대중들과 활동가들, 청년, 대학생, 각 직능별 사람들, 해외 정토회, 해외 사업장의 활동가들이 모두 지난 100일간도 열심히 각 자의 위치에서 열심히 활동을 하였습니다. 가슴이 뿌듯해집니다.nbsp그 모든 정토행자들에게 스님이 감사함을 전하십니다. 오후 프로그램을 시작하면서 신나게 다같이 노래를 불렀습니다. 매번 느끼지만, 정말 끼많은 정토행자들이 많은 것 같습니다. 유명한 가수가 오지 않아도, 이름 알려진 누군가가 오지 않아도, 내 가진 재능을 흔쾌히 내어놓는 사람만 있으면 정토행자들은 언제나 즐겁습니다. 신규입재자 결의식을 마치고, 6차 백일기도 입재법문이 있었습니다. 하반기에는 지금 하고 있는 희망세상 만들기 전국 시군구 300강연 뿐만 아니라 100만인 함께하기 캠페인 “내가 희망입니다.”에 힘을 모아서 국민운동으로 확산하자는 것이 주요내용이었습니다. 천일결사자들이 100일간 하루에 한 명 서명받기를 해서 100만인 인연을 맺어주고, 이 세상이 희망세상이 될 수 있도록 만들어 나가자는 것이 이번 실천과제였습니다. 법문을 마무리하시면서 스님의 새로운 계획을 발표하셨습니다. “제가 전국 시군구를 모두 찾아 다니면서 강연을 해 나가면서도 2정도 약간부족함을 느꼈는데, 그것이 뭐였는지 잘 몰랐습니다. 그동안은 북한동포들이 굶어 죽는다는 소식을 들으면 북한동포돕기를 해 왔는데, 올 해는 남한에 신경을 쓰다보니 북한동포들이 굶어 죽는다는 소식을 듣고도 돕는 운동을 하지 못해서 내 마음 밑바닥에 가시가 되어 남아 있었습니다. 명상 중에 단식하며 간절하게 관세음보살을 부르며 기도를 하고 있는데, 불현듯 이런 생각이 떠올랐어요. 단식이 며칠 지나면서 배가 고프고 힘이 빠지고, 오르내리며 걷는 것도 힘들고, 절하려고 엎드리면 힘들고 어지러워지기까지 했는데, 그 때 북한동포를 내가 마음으로 잊어버렸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래서 이런 원이 생겼습니다. 그게 뭐냐면 우리가 올해는 전국을 다니면서 남한 국민을 위해 강연을 하는데, 내년에는 북한동포들도 도와야 되겠다, 북에 가서 모든 군을 다 돌아다녀봐야겠다, 그런데 아무리 생각해봐도 북한 정부가 허락하지지 않을 것 같고, 북한 주민도 법문을 듣고 싶어하지 않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배가고파 죽겠는데 무슨 쓸데없는 소리냐 하겠지요. 그래서 딱 생각이 난 것이, 밥을 주자는 것이었습니다. 그럴려면 모든 시군에 100톤씩 식량을 주자, 북한은 2000만 동포인데 200개 시군이니까, 한 개군에 평균 10만명이 된다고 보고, 그 중 20 정도 되는 극빈자들 5000가구에 100톤을 주면 한 가구에 20kg 한 포대씩은 돌아가겠다, 그들에게 우선 배고픔을 면해주는 것부터 시작을 해 보자. 이것이 우리가 간절하게 통일을 기원하며 기도하는 것입니다. 이 식량은 비록 적은 양이지만 그들을 염려하는 우리의 간절한 마음이 담겨있으므로 큰 공덕이 될 것입니다. 배고픈 동포들에게 식량을 보내자는 것입니다. 이렇게 부처님께 공양 올리듯이 이렇게 해 보자는 겁니다. 이런 간절한 기도로 천지신명이 감동해서 통일이 되도록 해야 합니다. 북한동포들의 배고픔을 외면하고 어떻게 통일이 되겠습니까? 그래서 올 해는 남한 국민들은 정신적으로 괴로워 하기 때문에 그 괴로움에서 벗어나는 법문을 통해 마음의 양식을 주고, 내년에는 배고픈 북한 동포들에게 그 배고픔을 달랠 수 있는 한 숟갈의 밥을 줌으로써 모든 국민들의 고통을 조금이라도 덜어주는 이 공덕으로 통일이 꼭 이루어질 것입니다. 이것이 우리 제 6차 백일기도의 가장 강력한 내용입니다. 개인이 열심히 정진하면서 온 힘을 다해서 노력을 한다면 2012년도에 대한민국의 운명을 바꾸는 그런 기적이 일어날 것입니다. 그런 기적을 함께 만들어 봅시다.” 사람들이 환호를 하며 박수를 쳤습니다. 벌써 15년이 넘는 시간동안 북한동포들 돕기를 스님과 함께 해 온 정토행자님들. 희망세상 만들기를 하면서도 북한동포들의 굶주림에 대해서 스님만큼은 아니라도 조금씩은 마음이 쓰였었나 봅니다. 스님의 내년 계획을 듣자, 당장 옥수수를 짊어지고 북한으로 떠날것처럼 환호를 하며 좋아합니다. nbsp 정말 내년에는 그런 날이 오기를 기원해 봅니다. 명상수련을 하면서 한 숟갈도 되지 않는 밥을 매 때마다 꼭꼭 씹어먹으며 북한동포들 생각이 났습니다. 한 숟갈이라도 매일 먹을 수 있으면 굶어죽지는 않을텐데...스님의 원이 우리의 원이 되고, 우리의 원을 성취하기 위해서 올 한 해 하늘을 감동시키는 기적을 반드시 만들어야 할 것 같습니다. 스님은 내일부터 8월 3일까지 다시 명상수련에 들어가십니다. 명상수련 이후에 뵙겠습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