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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월 29일 법륜스님의 하루(충남 서천, 경기 동두천)
동두천 강연장으로 가는 길에 비가 한 두 방울씩 떨어집니다. “내일은 천둥번개를 동반한 폭우가 쏟아진대요.” 하고 스님께 말씀을 드리니“내일 강연장에 사람들이 못 오더라도 비가 올만큼 충분히 와야 할텐데...” 하십니다. 내일은 대구 경북대 강연과 울산 북콘서트가 있는 날입니다. 비가 안 와서 곡식이 제대로 안 된다는데, 충분히 해갈이 될 수 있기를 기원해 봅니다. 강연을 마치고 나오니, 비가 시원하게 내립니다. 얼마나 애타게 기다리던 비였던가? 목마른 대지가 시원하게 물을 들이키는 것 같습니다. 농사짓는 분들은 더 좋아하시겠지요. 산천초목이 생생하게 살아날 것 같습니다. 고맙습니다. 스님은 아침 일찍 평화재단에서 조찬모임을 하시고, 8시 충남 서천으로 출발했습니다. 어젯밤에도 사람만나 늦게 들어오셨고, 오늘 아침에도 일찍 조찬모임이 있어서, 잠을 제대로 못 주무신 것 같습니다. 차에 타자마자 깊은 잠에 빠져 듭니다. 서천은 518석인데, 처음 시작할 때는 2층도 거의 비었었는데 계속 사람들이 들어와 480명이 참가를 했습니다. 모두가 편안하게 자리에 앉아서 강연을 들을 수 있어서 좋았습니다. 연세드신 할머니, 할아버지들은 시골에서 첫 차를 타고 나오셔서, 2시간이나 전에 강연장에 오셨다고 합니다. 마침 떡과 김밥과 차가 준비되어 있어서, 시장하지 않으시도록 잘 챙겨드렸다고 합니다. 지역인데도 질문들이 끊어지지 않고 나왔습니다. 스님의 간결하게 정리해주는 맛이 잘 살아났던 강연이었습니다. nbsp 시누이가 3명이 있는데 시댁일을 간섭을 많이 해서 마음이 상한다는 아주머니의 질문에, 스님께서 구체적으로 어떤 간섭을 하는지 물었습니다. 돌아가신 시아버지 제사를 성당에서 제사 미사를 지내자고 하고, 1주기 때는 집에서 제사를 지내자고 자기들끼리 정해서 요구한다는 것이었습니다.nbsp그러자 스님이 개신교 다니는 시누이가 질문자가 다니는 성당에서 제사를 지내자고 하는 것도 고마운 일이고, 개신교인데도 시아버지 1주기 제사를 지내자고 하는 것도 얼마나 고마운 일인가?nbsp만약 교회에서 추모제를 지내자고 하고, 제사를 지내지 말자고 하면 얼마나 갈등이 심하겠는가? 오히려 시누이가 고맙다고 생각할 수도 있지 않은가? 하며 질문한 내용을 가지고 하나씩 하나씩 문답을 해 나가니, 금방 문제가 풀립니다. 질문만 들었을 때는 시누이들의 간섭이 문제인 것 같았는데, 스님과의 문답이 오가는 속에서는 친정일에 간섭하는 시누이를 못 마땅해 하는 질문자의 문제로 귀결이 됩니다.시누이가 친정일에 관여하는 것은 그녀로서는 마땅히 관여할 일이라고 생각하는 것이 보편적인 시각이라는 스님의 말씀에 질문자가 웃으며 가볍게 받아들입니다. 사람들이 와하며 박수를 칩니다. 오늘 오전 강연이 있었던 서천 희망지기는nbsp27개월 된 애기를 데리고 다니며 홍보를 열심히 했다고 합니다. 특히, 희망지기 부부는 홍제동 정토포교원 시절, 청년정토회 활동을 열심히 했던 사람들입니다. 귀농해서 서천에 살고 있는데, 두 사람의 꿈이 서천에 정토회를 만드는 것이라고 합니다. 두 사람은 특히, 스님께 항상 감사하다고 하는데, 스님께서 처음으로 주례를 섰던 부부이기 때문입니다. ‘스님의 주례사’의 주례 내용이 이 부부가 정토법당에서 결혼할 때, 스님께서 말씀해 주셨던 내용입니다. 그래서 그런지 두 사람이 서로를 배려해 가면서 열심히 정진해 나가는 모습이 주변 사람들에게도 많은 감동을 주었다고 합니다. 훈훈한 소식에 저도 두 사람의 모습이 떠올라 얼굴에 절로 미소가 지어집니다. nbsp 서천에서 강연을 마치고, 바로 서울로 올라왔습니다. 올라오는 차 안에서 김밥을 먹었는데, 밥이 꼬들하지도 않고 질지도 않게 잘 되어서 맛있었습니다. 스님은 오후 3시 30분에 mbc 파업 관련해서 사람들을 만나, 이 일의 해결을 위한 의견을 나누셨습니다. 이어 정치인 한 분과도 만나 현재 심각하게 갈등을 일으키고 있는 사회문제들을 어떻게 해결할 것인지, 해결방법을 찾기위해 함께 의견을 나누시고, 5시에 동두천으로 향했습니다. 미리 준비한 도시락으로 간단하게 차안에서 식사를 드시고,nbsp 동두천으로 가는동안 휴식을 하셨습니다. 동두천에 도착하니 사람들이 우루루 강연장으로 모여듭니다. 동두천 시장님 부부와 사전에 간단한 차담을 나누고 강연장에 들어갔습니다. 사람들이 강연장에 들어서는 스님께 열렬한 환호를 보냅니다. 동두천 시장님이, “법륜스님께서 동두천까지 찾아주시리라 생각지도 못했는데 이렇게 찾아주셔서, 희망이 생깁니다, 자신감이 생깁니다.” 하시던 인사말씀이 생각납니다. 작은 시나 군소재지에서는 법륜스님이 그 지역까지 와 주신 것만으로도 참으로 감사하다는 인사말을 지자체장님들에게서 많이 듣습니다. 강연 끝까지 자리를 함께 해 주신 시장님 부부에게도 감사말씀 드립니다. 480석인 공간에 무대와 복도까지 꽉 채워서 865명이 강연을 들었습니다. 분위기가 좋았습니다. 경기 북부쪽도 분위기가 항상 밝습니다. nbsp 오늘도 부모들의 자식 걱정에 대한 질문이 많았습니다. “아이가 셋이 있습니다. 큰아들하고 문제가 있습니다. 어렸을때는 유대관계가 있고 좋았는데 아이가 성장할수록 겝이 생깁니다. 둘째, 셋째 아이와는 잘 지냅니다. 큰아들과의 간격을 좁히고, 제 마음이 편안해지는 방법이 없을까요?” “질문자 마음이 괴롭지 않으려면 아이에게 간섭하지 않으면 됩니다. 그러면 애도 편하고 질문자도 편합니다. 둘째와 셋째도 더 나이가 들면 일방적인 사랑에 저항감을 느껴서 큰 아이와 똑같이 표출이 됩니다.nbsp너를 사랑하니 내 말을 들어라, 이것은 내 뜻대로 하고자 하는 오만함입니다. 애도 독립된 인간입니다. 아이를 자기 뜻대로 변하게 하려는 것이 갈등의 원인이예요. 질문자의 태도는 아빠의 자세가 아니예요. 이웃집 아저씨예요. 부모라는 것은 애가 신체장애더라도, 성질이 더러워도, 온 세상 사람들이 저런 인간 죽는 것이 낫지 해도, 그런 아이를 따뜻하게 돌볼 때 부모라고 하는 거예요. 아이들이 정 붙일 데가 없어요. 이웃집 아저씨에서 부모로 돌아가세요. 지금부터 아이에게 신경쓰지 말고, 아이에게 쏟을 정을 오직 부인에게만 쏟으세요. 부인이 남편을 좋아하면, 아이들은 저절로 아버지를 좋아하게 됩니다. 오늘부터 둘째든, 셋째든 애에게 그렇게 시간을 보내지 말고, 부인일을 거들어 주고, 부인을 사랑하는데nbsp온 시간을 보내세요.” 사람들이, 특히 여성분들이 환호를 하며 박수를 칩니다.nbsp nbsp 동두천 강연을 마치고 밖으로 나오니 비가 더 많이 옵니다. 비를 뚫고 다시 서울로 향했습니다. 비도 오고, 금요일이라 그런지 차가 많았습니다. 재단 사무실에서 계속 연락이 옵니다. 밤에 또 회의가 있어, 사람들이 스님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오늘밤에도 스님의 잠자리에 드는 시간은 짧을 것 같습니다. 계속 비가 내립니다. 비 소리가 좋습니다. 오랫동안 비를 기다리다가 비를 맞으니 참 고맙고 감사합니다. 많은 사람들이 힘들어하고 고통스러워 하다가 가뭄의 단비처럼 스님 법문을 만나, 새로이 인생을 설계합니다. 마냥 고맙고 감사하기만 합니다. 내일은 오후 3시에 대구 경북대학교에서 강연이 있고,nbsp 오후 7시에는 울산nbsp상공회의소에서 ‘새로운 100년’ 북콘서트가 있습니다. 내일 대구와 울산에서 뵙겠습니다. nbsp nbsp
6월 28일 법륜스님의 하루(강원 영월, 경기 평택)
오늘 오전 강연이 강원도 영월입니다. 어젯 밤, 광주에서 ‘새로운 100년’ 북콘서트를 마치고, 대구에 도착했더니 새벽 2시였습니다. 광주에서 영월까지 거리가 멀어, 중간 지점인 대구에서 자고, 오늘 아침 대구에서 7시에 다시 영월로 출발했습니다. 영월문화예술회관에 도착해서 영월군수님과 군의회 의장님, 의원님들과 이런저런 이야기들을 나누었습니다. 영월은 동강과 서강이 있어서 자연적인 풍광도 수려하고, 귀농정책을 잘 써서 귀농자들도 많다고 하면서 영월에 대한 자부심들이 대단한 것 같았습니다. 작은 지자체들이 지역의 특성을 살려 행정을 잘해 나가고 있는 모습을 간접적으로나마 보게 되면 괜히 뿌듯하고 자랑스러워집니다. 영월에는 정토회 회원이 없어 자원봉사자를 모집해서 강연 준비를 했는데, 힘들었지만 화합해서 즐겁게 강연 준비를 했다는 말을 들었습니다. 영월에도 강연장에 많은 사람들이 찾아왔습니다. 496석 자리를 꽉 채워 앉아 스님 강연에 함께 호흡하며 즐거운 시간을 보냈습니다. 영월 강연장 분위기도 참 밝았습니다. 사업장을 운영하고 있는데 매출도 늘이고, 스님이 운영하시는 정토회처럼도 만들고 싶은데 어떻게 하면 좋은지 물어본 분에게는 스님께서 ‘욕심을 버려라, 이익과 공익을 처음부터 다 추구해 나가기는 쉽지 않다’며 회사를 운영할 때의 마음가짐과 원칙에 대해서 조언을 해 주셨습니다. 결혼전과 결혼 후에 사람의 마음이 변하는데 왜 변하는지, 스님은 결혼을 했으면 어떻게 살았을 것 같은지에 대해서 궁금해 하는 사람도 있었고, 4형제 중 39살짜리 막내아들이 엄마 말을 잘 안 듣는데 어떤 기도를 해야 하는 지 묻는 41년생 엄마도 있었습니다. 스님이 북한어린이 돕기를 하고 계신 걸로 알고 있는데, 북한동포들의 실제 상황이 어떤지, 통일을 위해서는 국민들이 어떤 노력을 해야 하는지 묻는 질문도 있었습니다. 공무원 시험을 본 건실한 청년의 질문을 함께 공유해 봅니다. “안녕하십니까? 저는 강원도 정선에서 온 청년입니다. 이번에 공무원 시험을 봤습니다. 앞으로 공직에 나가서 공익을 위해서 살고 싶은데, 시간이 지나다 보면 사익에 치우치게 될 것 같아서 어떻게 초심으로 살아야 하는지 묻고 싶습니다.” “공무원이 되면 주로 봉사하는 마음을 가져야 하는데, 주로 부탁하는 사람이 많아요. 시간이 흐르게 되면 부탁받는 것을 당연한 걸로 여기게 되는데, 습관이 들어서 그렇습니다. 받는데 익숙해지면 고마운 줄을 잘 모릅니다. 뭐든지 가지면 집착이 생깁니다. 그래서 오히려 공무원이 되면 거꾸로 국민위에 군림하기가 쉽습니다. 자기가 원하는 인생이 되기가 어렵습니다. 요즘 서비스가 많이 개선되었지만, 이렇게 결심을 해도, 출발할 때 마음은 없고, 목에 힘을 주기 쉽습니다. 초심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매일매일 기도하면서 ‘저는 국민의 머슴입니다. 저는 시민의 심부름꾼입니다. 심부름 잘 하겠습니다.’ 하세요. 매일 108번 절하고 스스로에게 암시를 하면 극복할 수 있습니다. 그렇지 않으면 극복하기 어렵습니다.” 질문한 청년이 공익을 지키는 공무원이 되기를 기대해 봅니다. 강연을 마치고 영월 고씨동굴에 잠시 들렀습니다. 임진왜란 때 고씨 일가가 피난을 했던 곳이라고 합니다. 저는 석주와 종류순이 있는 동굴 구경은 처음이라 신기하고 재미있었습니다. 그런데 다른 동굴을 이미 본적이 있는 분들은 볼 것이 별로 없다며 아쉬워 합니다. 매일 차만 타고 숙소와 강연장, 평화재단을 오가기 때문에 달리 운동을 할 시간이 없어, 지역으로 갔을 때는 가능하면 운동을 하려고 하는데, 오늘 동굴은 길이가 길지 않아, 2km 정도의 간단한 걷기로 오늘의 운동을 마쳤습니다. 오후 강연은 경기도 평택입니다. 평택은 평택항도 있고, 경부고속도로상에 있는 지명이라 낯익은 지명이기도 했지만, 언젠가부터 해고노동자 문제를 안고 있는 쌍용자동차가 있는 곳이란 인식도 같이 생긴 것 같습니다. 가슴 아픈 일들이 일어날 때마다 저 문제를 어떻게 풀 수 없을까? 제발 더 이상의 목숨을 앗아가는 일이 없었으면 좋겠다는 바람을 가져보곤 했었습니다. 평택 강연 전에, 스님은 쌍용자동차 해고노동자와 그 아이들을 위한 공간인 상담치유센터 ‘와락’에 잠시 들리셨습니다. 몇 명의 아이들이 즐겁게 놀고 있었습니다. 천진난만한 아이들의 웃음소리가 싱그러웠습니다. 와락 대표님을 포함한 몇 몇 분들과 함께 잠시 이야기를 나눴습니다. 대부분이 다 아이를 가진 주부였습니다. ‘엄마수업’, ‘스님의 주례사’, ‘깨달음’, ‘새로운 100년’에 사인을 해 주시면서, 아이를 가진 엄마는 어떤 외부적인 안 좋은 상황이 생기더라도 마음을 가볍고 편하게 가져야 한다, 그래야 내 소중한 아이들이 상처받지 않고 건강하고 밝게 자라날 수 있다, 또한 내가 마음을 가볍게 가져야 투쟁도 지치지 않고 오래 할 수 있다며 엄마들에게 용기와 격려의 말씀을 해 주셨습니다. 다음에 아이를 가진 엄마들을 대상으로 한 번 상담을 해 주시겠다는 말에 다들 즐거워하고 고마워했습니다. 강정마을, mbc 노조, 쌍용자동차... 사회적 갈등이 있는 이런 문제들을 해결하기 위해서 틈만 나면 사람들을 만나고, 전화 통화를 하고, 사람과 사람을 연결해주는 일을 소리없이 하고 계신 스님의 모습을 가까이서 보게 됩니다. 빨리 해결이 되어서 서로가 조금이라도 덜 상처받기를, 더 밝고 환하게 맡은 직무를 할 수 있기를 기원해 봅니다. 저녁 강연인 평택에도 사람들이 많이 모였습니다. 786석인데 1020여명이 모였습니다. 스님이 입장하시자 강연장이 떠나갈 듯한 박수로 스님을 맞이해 주셨습니다. 요즘은 사람들이 스님의 사생활에 대해서도 많이 궁금해 하는구나 싶습니다. 오늘은 스님이 돈을 어떻게 적절하게 배분해서 쓰는지 알고 싶어 하는 사람도 있었습니다. 스님의 작은 생활 하나, 생각 하나 하나에 대해서 궁금해 하는 사람들이 늘어나는 것 같습니다. 정토회는 공동체 생활을 하고 모두가 자원봉사를 하는 시스템인 것을 잘 모르다 보니, 궁금할 수도 있겠다 싶었습니다. 그리고, 우울증을 앓아 잘못된 생각까지 했다가 스님의 즉문즉설을 보고 지금까지 살아있다는 분, 작년 한 해 너무 힘들어 우울증, 대인기피증까지 갔다가 교회에 다니게 되었는데, 아직 자기 문제 해결이 되지 않아 스님을 찾아왔다는 분, 스님 책 사인할 때, ‘스님의 주례사’를 읽고 저희들 잘 살고 있어요 하면서 스님께 감사의 인사를 전하는 젊은 부부. 사연 하나 하나가 다 감동입니다. 스님의 말씀이 정말 많은 사람들의 마음에 감동과 희망을 선물하고 있구나 싶어서 혼자 또 감동을 했습니다. 강연을 마치고 평화재단으로 바로 이동을 했습니다. 스님은 오늘 밤에도 사람을 만나고 돌아오시면 주무시는 시간이 많지 않을 것 같습니다. 내일은 충남 서천과 경기 동두천에서 강연이 있습니다. 또 어떤 분들과 만나게 될까요? 기대가 됩니다. 내일뵙겠습니다.
6월 27일 법륜스님의 하루(전북 장수, 광주 북콘스트)
이른 새벽, 인천공항으로 향했습니다. 스님이 3일간의 필리핀 일정을 마치시고, 04시 40분nbsp인천공항에 도착하시기로 되어 있습니다. 스님은 공항에 도착하자마자 희망세상만들기 본부 책임자들과 가을 강연 일정 관련해서 회의를 하셨습니다. 회의를 마치자마자 바로 전북 장수 죽림정사로 향하셨습니다. 오늘은 백용성조사의 149회 탄신일입니다. 용성조사의 유훈 10가지를 실현해 내는 것을 당신의 평생의 원으로 삼으시는 도문큰스님께서는 용성조사의 탄신일, 오도일, 열반일을 추모하는 행사를 매년 진행해 오고 계십니다. 스님은 장수 죽림정사에 도착해서 바로 도문큰스님께 인사를 드렸습니다. 민주통합당 정세균의원이 인사차 방문해 함께 잠시 차담을 나누는 시간도 가졌습니다. 교육관에서는 영남지역 봄불교대학생들 200여명이 역대제대조사님들께 다례를 올렸습니다. 행사를 시작하면서 참여하신 여러 스님들과 손님들의 인사하는 시간에 이어 큰스님의 말씀이 있었습니다. 사회를 맡으신 총무스님이, 아침에 발우공양을 하면서 큰스님 말씀에 감동이 되어 눈물이 났다는 말을 했는데, 인사를 하시는 원로스님 한 분도, 교계의 많은 직책들을 다 마다하고 오로지 용성스님의 유훈을 실현하는데 온 평생을 바치는 큰스님을 뵈면 눈물이 난다는 말씀이nbsp감동적이었습니다. 언제나 힘이 넘치시고, 원력이 바다보다 넓으신 큰스님을 뵐 수 있어서 좋았습니다. 큰스님과 원로스님들은 공양을 드시기 위해 이동을 하시고, 봄불교대학생들을 대상으로 스님의 즉문즉설 법회가 이어졌습니다. 용성조사의 삶과 수많은 업적들, 오늘 우리들이 계승해야 할 일들에 대한 말씀을 먼저 상세하게 해 주셨습니다. 결국 개인의 행복은 본인의 노력과 더불어 시대적 과제를 볼 수 있어야 완성될 수 있다고 하시면서, 용성큰스님이 계실 때의 시대적 과제가 민족의 독립이었다면, 지금의 시대적 과제는 바로 민족의 통일이라는 말씀을 오늘도 강조하셨습니다. 즉문즉설 법회를 마치고, 점심공양을 드신 후, 바로 다음 강연이 있는 장수군청으로 이동하셨습니다. 장수군청에서 군수님과 먼저 간단한 차담을 나누고 강연에 들어가셨습니다. “장수 죽림정사 주지입니다. 그럼에도 정녕 장수군민들을 대상으로 하는 강연회는 처음이네요. 그동안 죽림정사 불사에 협조해주신 장수군과 군민 여러분께 감사드립니다.”하면서 스님의 장수군청에서의 강연이 시작되었습니다. 장수군청에도 사람들이 많이 모였습니다. 중 3학년생 50명을 포함해서 총 542명이 참가했습니다. 강연장 분위기도 뜨거웠습니다. 시골인데도, 질문자도 끊어지지 않습니다. 10년을 함께 산 부인이 3주전부터 방에서 나오지도 않고, 두문불출하면서 계속 이혼을 요구하고 있는데 어떻게 해야 되는지 묻는 젊은 남자분의 질문에 가슴 아팠습니다. 그리고, 60세정도의 아주머니는 딸을 제대로 대우하지 않는 사위가 밉다면서, 어떻게 이 미운 마음을 내려놓아야 하나, 스님은 그냥 내려 놓아라고 하는데 스님은 결혼을 안 해 봐서 그렇지 그것이 쉬운 줄 아냐며 스님께 따집니다. 딸에 대한 엄마의 심정은 충분히 이해가 되지만 계속 상대를 고치려고 하고, 결혼한 딸에게 집착하면서 문제 해결의 근본을 보지 않으려고 한다면, 그렇게 해서는 세상이 다해도 해법은 없으니 그냥 괴로워하면서 살아라는 스님 말씀에 사람들이 공감의 박수를 신나게 쳤습니다. “제일 중요한 첫 번째 원칙은 딸이든 아들이든 결혼을 했으면 간섭하지 말아야 합니다. 이웃집 젊은 부부로 생각해야 합니다. 결혼을 하면 나하고 인연을 끊어야 합니다. 자식집에 가더라도 어떻게 살든 간섭하지 말라는 거예요. 간섭하는 것은 자연의 이치에 안 맞는 거예요. 비자연적으로 비순리적으로 비인간적으로 살기 때문에 괴로운 것은 어쩔 수 없는 거예요. 방법이 없어요.nbsp심정은 이해가 되지요. 그런데, 자기한테 딸이지, 사위에게는 아내일 뿐이예요. 시어머니에게는 며느리일 뿐이예요. 이미 다른 인간관계라는 거예요. 내 생각이 잘못되었구나, 자각을 하고, 안 끊어지면, 안 끊어지는 나를 보고 정진을 해야 합니다. 자기가 딸에게 그렇게 집착을 하면 딸의 부부는 헤어지는 길밖에 없습니다.” 스님의 정리말씀이 시원했습니다. 거의 마칠 때쯤 50 중후반의 남자분의 통일에 대한 진지한 질문에, 스님의 통일에 대한 애절한 설명이 보태져 강연이 조금 늦게 끝났습니다. 강연을 마치자마자 ‘새로운 100년’ 북콘서트가 준비되어 있는 광주로 달려 갔습니다. 전남대에 도착하니, 컨벤션홀 바깥으로 줄이 길게 늘어서 있었습니다. 800여명이 참가하여 통일과 주한 미군문제를 비롯해서 궁금한 것들, 쉽게 이해되지 않는 것들에 대해서 많은 이야기를 나눌 수 있었습니다. 분위기는 진지했습니다. 나중 한 시간은 대중들 속에서 질문을 받았습니다. 통일과 한국사회, 동북아의 미래에 대한 이야기를 계속 하고 있었는데, 한 젊은이가 힘있게 손을 들어 “여자친구와 헤어졌습니다. 마음이 너무 아픕니다. 어떻게 해결해야 할까요?” 합니다. 많이 웃었습니다. 그 분에게는 통일보다도 현재 가장 큰 괴로움인 여자친구와 헤어진 아픔을 어떻게 치유할 것인가가 제일 큰 고민인 것 같았습니다. 잠시 머리를 쉬는 듯한 느낌이 있어 좋았습니다. 북콘서트도 한 번, 두 번 이어지다 보니까, 내용도 조금씩 더 채워지는 것 같고, 스님과 오연호 기자님과의 호흡도 더 맞아들어가는 것 같습니다. 광주시민들의 호응이 컸던 북콘서트였습니다. 스님은 콘서트를 마치고, 강연을 들었던 광주지역 시민활동가 3분과 만나 1시간 가량 한국사회와 북한의 인도적인 지원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셨습니다. 오늘 스님의 하루도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바쁘게 지나갔습니다. 여독이라는 개념도 스님에게는 없는 것 같습니다. 인천공항에서 내려서 간단하게 회의하고, 죽림정사로, 장수군청으로, 광주 전남대로, 다시 오늘 우리의 숙소인 대구에 이르기까지 쉴 새없이 일정이 이어졌습니다. 옆에서 샤워정도라도 할 시간이 있었냐고 묻자, “샤워가 어딨어요? 삭발도 못하고 돌아다녔네요, 오늘은.” 하십니다. 피곤하실텐데 청년들과 대중들에게서 힘을 받으셨는지 스님 목소리는 밝습니다. 스님의 생활을 옆에서 지켜보면서, 스님은 우리들에게 법문을 하신 내용대로, 일상을 살아가시는구나 싶습니다. 과거에 집착하지 않고, 미래를 미리 걱정하지 않고, 오롯이 현재를 살아가시는 것 같습니다. 스님을 모시고 함께 동행함이 참으로 감사합니다. 내일은 강원도 영월과 경기도 평택에서 강연이 있습니다. 2차 100강도 막바지를 향해 달려가고 있네요. 내일 뵙겠습니다.
6/26(화)까지 쉼(내용없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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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월 22일 법륜스님의 하루(강원도 양양, 인제)
서울정토회관에서 아침 6시 강원도로 출발했습니다. 스님은 차에 타자마자 바로 주무셨습니다. 오전 양양 강연 전에 낙산사를 먼저 참배하기로 했습니다. 낙산사는 화마가 다 집어 삼킨 뒤에 다시 지어 새롭게 정리되어 있었습니다. 스님은 부처님 계신 곳마다 참배를 하며 남북의 평화와 통일을 기원하며 기도를 드렸습니다. nbsp nbsp낙산사를 전체적으로 돌아보다보니, 아침 밥 먹을 시간이 없었습니다. 싸간 도시락을 얼른 비벼서 꿀꺽 삼키고 강연장으로 들어섰습니다. 양양은 380석이었는데 502명이 참가해서 많은 성원 속에서 강연이 진행되었습니다. nbsp 주황색 옷을 입은 자원봉사자들이 안내하기 바쁩니다. 낯익은 사람들이 많아 물어보니 경기도 용인수지지역 자원봉사자들이라고 합니다. 양양에는 우리 회원이 없어, 용인수지에서 7번을 와서 홍보를 했다고 합니다. 한 번은 평택에서, 또 한 번은 수지에서nbsp와서 홍보를 했는데, 그 과정에서 많은 보람을 느꼈다고 합니다. 처음에는 강원도는 서로 누가 담당할 거냐고 약간 미루는 모습이었는데, 지금은 용인수지지역 자원봉사자들이 강원도 지원 나오면서 오히려 더 활성화되고 재미있어졌다고 합니다. 홍보를 하면 사람들이 모이는구나 하는 것을 직접 체험하고는 각자 지역에서도 열심히 홍보를 하고 있다고 합니다. 많은 사람들이 같이 즐거워하며 웃었던 질문 하나를 소개합니다. “둘째 오빠일입니다. 10년전부터 올케언니와 트라블이 있는 것 같애요. 몇 일전에는 몸싸움이 있어 병원까지 갈 정도였습니다. 싸우면 올케언니가 시어머니한테 전화를 하고, 시어머니는 저희 딸들에게 전화를 합니다. 그런데 며칠이 지나면 싸운 부부는 다시 잘 지내는 거예요. 자기 둘만 아무렇지도 않고 그 나머지 주변 가족들은 다 괴로워 하는 거예요. 제가 그 집안을 돌봐줄 수 있는 방법이 있는 건지, 너무 괴로워요.” “아니, 싸웠으면 서로 안 봐야지, 왜 금방 좋아하냐? 이 말이예요? 싸웠더라도 금방 좋아지는 것은 좋은 일이잖아요.” “둘이만 화해하고, 주변이 자기들 때문에 그렇게 힘들어하는지 몰라주는 것도 억울해요. 둘이 좋아해도 또 싸울 거예요. ” “그러면 또 좋아지겠지.” “그러면 내버려 둘까요?” “자기가 뭔데 내버려 둔다 만다하세요. 왜 남의 집 일에 관여하세요? 그러면 오빠부부가 싸워서 다시는 안 보고 살았으면 좋겠어요? 정말 이상한 동생이네요. ‘부처님 감사합니다. 저렇게 싸우더라도 금방 화해하니 정말 감사합니다.’ 이렇게 기도하세요. 얼마나 감사합니까?” 질문이 처음에는 상당히 심각한 줄 알았다가 스님과의 몇 마디에 다들 넘어갔습니다. 강연을 마친 후에는 낙산사 주지스님과 군법사님 한 분과 간단하게 차담을 나누었습니다. 강연장에서 오늘은 김밥이 준비되지 않아 덕분에 맛있는 막국수를 먹을 수 있었습니다. 김밥이 있으면 있어서 좋고, 없으면 또 그 지역 음식을 먹어 볼 수 있어서 좋은 것 같습니다. 양양 강연 후 인제로 가는 길에 잠시 낙산해수욕장에 들렀습니다. 끝없는 백사장에 사람은 없고 파도만 열심히 노래부르고 있었습니다. nbsp 백담사로 갔습니다. 워낙 가뭄이 심해서 내설악의 계곡물도 힘없이 흐르고 있었습니다. 그래도 참으로 아름다웠습니다. 넓은 계곡과 하얀 돌들, 높은 산이 어우러져 한 폭의 그림을 만들고 있었습니다. 백담사 참배를 먼저 했습니다. 스님은 다른 곳에서와 마찬가지로 남북의 평화와 통일을 기원하며 기도를 하셨습니다.nbspnbsp 원주보살님이 스님께 차 공양을 올려서 저희들도 덩달아 맛있는 차를 한 잔씩 얻어 마셨습니다. 그 후 계곡을 따라 산책을 했습니다. 전에 대청봉까지 올라갔다 이 쪽으로 내려온 적이 있는데 그 때는 지쳐서 그런 지 참 길고 지루했던 길이었습니다. 그런데 오늘은 걸어보니 평평하면서도 숲으로 우거져 있는 길이 산책하기에 딱 좋았습니다. 스님은 20대에 이 곳 설악을 여러 번 다녔던 이야기들을 해 주십니다. 그 때도 워낙 바빠서 따로 시간을 낼 수가 없었는데, 너무 무리를 해서 몸이 안 좋아 주로 요양차 이 곳 설악으로 와서, 내설악, 외설악, 소금강 곳곳을 다 다니셨다고 합니다. nbsp “참 그 때는 왜 그렇게 정상까지 간다고 기를 쓰고 다녔을까? 이렇게 슬슬 산책해도 좋은데”하면서 웃으십니다. 설악산 바위를 타고 내려오다가 거의 죽을 뻔한 이야기부터 스님의 설악산에서의 추억들도 많았습니다. nbsp 백담사를 뒤로 하고, 인제 강연장으로 향했습니다. 인제는 군인들이 많은 곳이라고 합니다. 그래서인지 군인들도 스님께 고민을 털어놓았습니다.nbspnbsp “00연대 상병 000입니다. 올 해 12월에 전역을 합니다. 사회에 나가서 일을 해야 하는데, 너무 많이 두렵습니다. 두려운 감정을 어떻게 해야 할지 고민이 됩니다.” “사회 나가보지도 않고 왜 그래요?” “군대에서 너무 오래있다 보니까.” “2년 밖에 안 있었잖아요?” “녜” “두려움이라는 것은 머리 속에 상상할 때 생기는 거예요. 내가 전역을 하면 어떻게 하지, 뭘 하지? 생각하니까 두려운데, 막상 전역을 하고 나오면 두려움이 없어져 버려요. 두려움이란 사회 안 나가고 있을 때 생기는 번뇌예요. 지금 자기가 해야 할 일은 6개월 후에 할 일을 생각하지 말고, 6개월간 군대 있을 때만 할 수 있는 일이 뭔지 찾아봐요. 체력단련을 열심히 한다든지 뭘 찾아보세요. 군대 안에서 할 수 있는 일을 충실히 하는 것이, 인생을 가장 효과적으로 사는 거예요.” “예, 알겠습니다.” 옆에서 보기에는 별 문제가 아닌 것 같은데, 본인에게는 심각한 문제인 것 같았습니다. 질문자가 스님 책 사인을 받으면서 스님께 씩하고 웃으며 감사하다고 인사를 합니다. 인제도 320석인데 445명이 참가해서 많은 사람들이 복도에 앉고 뒤에 서서 들었습니다. 후끈한 열기를 느낄 수 있었습니다. nbsp 인제는 용인에서 지원을 나오고, 강원도 회원 몇 분과 인제군 자원봉사센터 회원들이 자원봉사를 했습니다. 주황색 자원봉사자 티를 입은 분들이 다른 강연 참자가들보다 더 스님과 사진찍고 싶어하고, 까르르 웃으며 좋아하기에 다른 곳과 분위기가 다르다 싶었는데, 여러 단체에서 나온 분들이라 그랬던 것 같습니다. 교회 다니는 분, 성당 다니는 분, 다른 불교사찰에서 온 분들이 스님과 악수를 하고, 사진을 찍으면서 좋아합니다. 보현사 선다회에서는 곱게 한복을 차려입고 와서, 오시는 분들에게 정성껏 차 공양도 올렸습니다.nbspnbsp 오늘은 강원도 낙산사와 백담사도 참배하고, 낙산해수욕장과 설악산도 구경할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양양과 인제의 열기도 느낄 수 있었습니다. 즐거운 하루였습니다. 감사합니다. 내일부터 다음 주 화요일까지는 스님 해외 일정이라, ‘법륜스님의 하루’는 쉬겠습니다. 내일은 하루만에 중국 다녀오시고, 모레부터는 필리핀에서 일정이 있으십니다. 모레는 필리핀 정토불교대학 졸업식, 수계식이 있고, 저녁에는 교민들 대상으로 법문이 잡혀져 있습니다. 그리고 월, 화요일은 필리핀에서 진행되는 한민족포럼에 참가하십니다. 수요일 오전 5시 인천공항에 도착해서 바로 용성큰스님 탄신일 행사가 있는 장수 죽림정사로 이동하실 예정입니다. 죽림정사에서 만나요.nbsp 다음 주 수요일날 뵙겠습니다.
6월 21일 법륜스님의 하루(전남 담양, 무안)
오늘은 전라도 담양과 무안에서 강연이 있었습니다. 아침 일찍 거제도에서 담양으로 향했습니다. 담양은 대나무로 유명한 곳이라고 알고 있고, 여행을 하게 되면 꼭 소쇄원에 한 번 들리리라 했는데 아직도 못 가봤습니다. 담양에 들어서니 정말 대나무가 많더군요. 도시가 아기자기하게 참 잘 가꾸어졌다는 느낌이었습니다. 담양문화회관으로 들어서니, 차량 자원봉사자들이 환하게 웃으면서 맞이해 줍니다. 사회에서 어떤 위치에 있던 상관없이, 필요한 곳에 잘 쓰인다는 마음으로 자원봉사를 하시는 분들입니다. 그래서 사회에서 교수든, 회사 사장이든 필요하면 햇볕 아래서 사람들을 반가이 맞이하는 차량 봉사 일을 하게 됩니다.nbspnbsp nbsp 오늘 담양에는 꼬맹이들이 많이 왔습니다. 아마 엄마들이 여럿 어울려서 강연들으러 와서, 한 두명이 아이들 돌보는 일을 하는 것 같습니다. 스님이 귀빈실에서 나가시면서, 아이들을 귀빈실에서 놀도록 해도 좋겠다 하셨습니다. 귀빈실로 들어가, 만화영화 하나 틀어주고, 과자를 풀어주니, 아이들이 완전 TV에 집중합니다. 엄마들이 마음놓고 강연을 들을 수 있겠습니다. nbsp 드디어 강연이 시작되었습니다. 처음 180석을 잡았다가, 사람들이 많이 올 것 같아서 다시 670석으로 조정했다고 합니다. 참 잘 판단한 것 같습니다. 710명이 참가를 했는데, 대부분이 편안하게 자리에 앉아서 강연을 들을 수 있어서, 스님도 마음이 조금은 더 편안하지 않으셨을까 싶었습니다. nbsp 오늘도 지역이라서 그런지, 담양 사람들보다는 광주, 전주, 고흥 등 외지에서 온 사람들의 질문이 더 많았습니다. 기독교 신앙을 가지고 있다는 분도 두 사람이나 질문을 했습니다. 그 중 한 분의 사연을 소개합니다. “고흥에서 왔습니다. 저는 기독교 신앙인입니다. 92년도에 제 와이프가 휴거라는 신앙에 빠졌어요. 그런데 교통사고가 나서 죽었습니다. 그런데 계속 꿈에 나타나는 거예요. 그래서 잊으려고 술을 자꾸 먹어 알콜 병원에까지 입원하게 되었어요. 지난 주 토요일에 정목스님의 ‘마음으로 듣는 음악’을 듣고 마음의 감동을 받았습니다. 정목스님 말씀이, 너무 마음에 와닿는 거예요. 눈물이 철철 철철 났습니다. 저에게 불도로 갈 수 있는 방법을 좀 가르쳐 주십시오. ” “기독교 신앙인이라고 하셨으니 기독교식으로도 해결을 할 수 있어요. 사람이 나고 죽는 것은 사람이 합니까? 하나님이 합니까?” “태평양에 있는 멸치 하나도 어디로 가서 죽는 지 하느님은 다 아신다는 이야기를 들었어요.” “예. 믿음의 입장에서 보면, 와이프가 어떻게 죽었든, 주님의 뜻입니다. 어떻게 기도해야 하냐면, ‘주여, 뜻대로 하옵소서.’ 주님의 뜻을 받아들여야 해요. 자기가 정말 기독교 신자라면 주님이 하는 일에 아쉬워하면 안 된다는 거예요. ‘주여, 뜻대로 하옵소서’ 하면서 부인에 대한 마음을 놔야 합니다. 부인은 휴거한다고 믿었잖아요. 휴거를 하려면 영혼이 가죠? 몸뚱이가 죽어야 영혼이 가겠죠? 부인 신앙의 입장에서도 부인은 제 갈 길을 간 거예요. 부인은 놔 두시고, 자기 남은 인생을 행복하게 살아야 하잖아요. 정목스님의 음악에 감동을 했으면 거기에 의지를 해도 되고, 불교에 의지를 해도 됩니다. 종교 바꾸는 것은 문제가 안 됩니다. 헌법에 믿음, 신앙, 사상, 이념 등은 자유라고 되어 있죠? 죄의식 갖지 말고 편안하게 자기 원하는대로 선택하시면 됩니다.” “고맙습니다.” 담양 강연을 마치고, 아는 분이 소개를 해서 잠시 대담미술관에 들렀습니다. 미술관장님과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누고, 미술관도 돌아보셨습니다. nbsp 다음 무안 강연이 오후 4시에 있는 바람에, 아름다운 담양을 돌아보지 못하고 못내 아쉬워하면서 무안으로 향했습니다. 스님은 차안에서 싸간 도시락으로 점심식사를 하셨습니다. 무안에 도착해서 무안군수님과 무안사암연합회 여러 스님들과 사전 차담이 있었습니다. 오늘 강연에는 비구, 비구니 스님들이 많이 참석하셨습니다. 무안에서도 처음에는 질문할 사람 손들어라니까 한 명이 들더니, 계속 질문자가 있어서, 강연을 재미있게 진행할 수 있었습니다. 지역이라 사람들이 쉽게 개인적인 이야기를 하지 않습니다. 또한 남자분들의 질문이 많았습니다. nbsp 마지막 질문을 받고 스님이 말씀해 주신 내용이 좋았습니다. “부처님의 가르침을 가만히 보면 순리입니다. 자연법칙대로 사세요. 우리 전부 자연을 거슬러고, 순리를 거슬러고 있습니다. 이것이 욕심입니다. 생각을 좀 바꿉시다. 행복이라는 것은 마음에서 일어나는 것이기 때문에 이제는 마음 관리를 잘해야 합니다. 우리는 만족할 줄 모릅니다. 늘 입이 나와서 삽니다. 결혼생활이 힘들다고 하지만 선택한 것이잖아요? 둘이 살아온 환경이 다른데 자기 걸 고집하면 갈등이 생길 수밖에 없어요. 맞춰야 됩니다. 자기 선택에 대한 책임을 지세요. 둘이 살면 둘이 살아서 좋다, 혼자 살면 혼자 살아서 좋다 이런 마음으로 사세요. 매일 아침 기적이 일어나고 있습니다. 눈 뜨면 살았잖아요. 눈 못 뜨면 죽은 거잖아요. 아침마다 ‘아이고, 살았네.’ 하세요. 자기의 기적을 매일매일 만끽하면서 살면 재밌습니다. 그렇게 행복하게 살아야 돼요.” 무안 강연을 마치고 서울로 향했습니다. 서울에서 10시에 스님 약속이 있어서 바로 출발을 했습니다. 평화재단 실무자 고향집이 무안이라, 어머니가 정성스레 도시락을 준비해 주셨습니다. 휴게소에서 어머니의 정성이 가득 든 도시락을 맛있게 먹었습니다. 내일은 강원도의 날입니다. 양양과 인제에서 강연이 있습니다. 전에 양양에 가면 낙산사에 가보자고 했었는데 시간이 될지 모르겠습니다. 내일 강원도에서 뵙겠습니다. nbsp
6월 20일 법륜스님의 하루(부산 금정구, 창원 mbc)
새벽 5시, 정토회관에서 부산으로 출발했습니다. 오늘은 부산과 창원에서 강연이 있었습니다. 저는 부산에 오래 살아서 부산이 고향같습니다. 그래서 부산으로 가는 길은 언제나 즐겁습니다. 그런데 오늘은 즐거운 마음을 느낄 새도 없이 잠에 빠져 들었습니다. 스님도 어젯밤 늦게까지 회의하고 새벽에 들어오셨습니다. 스님도 차에 타자마자 바로 주무십니다. 청도휴게소까지 가서 아침을 먹었습니다. 오늘 강연이 있는 부산대에 도착해서 총장님, 부총장님, 사무처장님, 대학원장님과 총장실에서 간단한 차담이 있었습니다. 스님과 알고 지내던 분들이라 편안하게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눴습니다. 사무처장님이 오늘 행사 지원을 많이 해 주셨습니다. 7월 4일날은 북콘서트도 부산대 학생회관에서 열릴 예정이라고 이야기하면서, 9월에는 부산대 넓은 터에서 1만명정도의 학생과 시민을 모아놓고 스님 강연을 한 번 해 보자며 제안을 하십니다. 9월의 어느160저녁에 넓은 야외에서 많은 시민들과 야단법석의 장을 마련해보는 것도 좋겠단 생각이 들었습니다. 부산대는 강연장이 적어 걱정을 했습니다. 364석인데 시작하기 전에 벌써 자리는 다 차고 사람들을 무대와 복도에 앉히기 시작합니다. 요즘 도시에서는 웬만하면 1000명이 넘는 것 같습니다. 부산대도 1030명이 참가해서 강연을 들었습니다. 로비에도 TV와 스피커를 설치해서, 밖에서도 많은 사람들이 들었습니다. 160 부산대에서는 2030대 질문이 많았지만 전체적으로는 남녀, 나이가 고루 있었던 것 같습니다. 18살 아들이 죽은 후, 5년동안 부인과 성생활을 하지 않고 있는데, 부인이 바람날까 걱정이 된다는 50대 남자분, 6살 연상의 여인과 사귀는데 이 말을 들은 어머니가 앓아누웠는데 어떻게 하는 것이 좋겠냐고 묻는 20대 남자, 예쁘고 머리도 좋고 집도 부자인, 자기에게 과분한 여자친구와 얼마전 헤어졌는데 너무 힘들다며 괴로운 심정을 토로하는 대학생, 사춘기 자녀와의 갈등을 이야기하는 40대 여자분, 15년 전부터 폭식증에 시달리고 있다는 여자분, 임용고시 준비하는 학생, 큰 아들 생일 때만 되면 몸이 아프다는 70대 할머니, 어머니가 돌아가셨는데 아버지와 같은 날에 제사를 지내도 되는지 묻는 50대 여자분 등 다양한 인생사들이 질문이 되어 나왔습니다. 남동생이 미국에 살고 있어 미국까지 가서 어머니 제사지내려고 했는데, 어디서든 제사를 해도 된다는 스님 말씀에 좋아하던 분의 이야기가 기억납니다. 160 그 중 연상의 여인을 사랑하는 20대 남자 이야기를 전합니다. “저에게는 사랑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3개월정도 일하는 모습을 보고 너무 예뻐서 제가 꼬셨습니다. 그런데 여자 친구가 6살 연상입니다. 처음으로 제가 사랑받고 있구나, 내가 사랑하고 있구나 하는 것을 느끼게 된 소중한 사람입니다. 그런데 어머니가 앓아 누웠습니다. 제 고집을 계속 부리면 부모님께 불효가 될 것 같고, 부모님의 기대를 만족시켜 드리지 못하고 가슴 아픈 상황을 안겨드리고자 하니, 현재 딜레마에 빠져 있습니다.” “몇 살이예요?” “27살입니다. 곧 졸업합니다.” “부모님에게 의지해서 살아요?” “예. 부모님께 의지해서 삽니다.” “20살이 넘으면 독립을 해야 하는데, 자기는 독립을 못했어요. 엄마 말을 참고사항으로 안 듣고 고민을 하는 이유는, 부모로부터 독립을 하지 못했기 때문에 스폰서의 규제를 받을 수밖에 없는 처지입니다. 나같으면 저런 남자랑 안 사귀겠어요. 20살이 넘은 사람이 어머니 앓아 눕는다고 머리를 이리 굴리고 저리 굴리는 남자를 왜 사랑하겠어요?” “경제적인 독립은 바로 할 수 있는 상황입니다.160매형이 부모님에게 충족이 안 되는 거예요. 그래서 제게 더 많은 기대를 합니다.” “그것은 부모의 문제죠. 남을 해친 것이라면 부모의 지시를 받고 반성을 해야 하는데, 20살이 넘은 성인이 어떤 사람을 만나서 살든 자기인생의 선택입니다. 부모의 의견은 나에게 조언이지, 그것을 가지고 망설이고 있다면 자기가 마마보이거나, 아직도 미성년자거나, 아직 연애할 수준의 나이가 안 되는 거예요.” “알겠습니다.” 사람들이 연애이야기가 나오면 더 즐거워하는 것 같습니다. 부산 강연장도 그렇고 마산 강연장도 그렇고 환호와 박수가 참 많았습니다. 스님의 말씀에 대해서도 시원하게 묻고 시원하게 답하는 모습들이 인상적이었습니다. 점심을 먹고 5시에 스님 약속이 있어 바로 마산으로 향했습니다. 마산가던 길에 진영휴게소에서 1시간가량 다같이 휴식을 했습니다. 마산도 요즘 강연장에 오는 사람들을 생각하면, 자리가 부족할 것 같았습니다. 아니나다를까, 1200석인데 2300명이 참가해서 비좁은 속에서 재미있게 강연을 들었습니다. 200여명이 자리가 없어서 돌아갔다고 하는데, 죄송합니다. 요즘은 질문자는 많지만, 사람들이 너무 많이 참가해서 앉아있기 불편할까봐, 스님이 가능하면 2시간안에 마치십니다. 그래서, 질문도 전에보다 많이 받고, 조금더 타이트하게 진행하시는 것 같습니다. 스님은 대중들이 불편한 것에 대해서는 작은 것 하나하나까지 신경을 쓰십니다. 160 마산에서도 질문이 많았습니다. 그 중 자녀의 결혼에 대해 걱정하는 어머니의 질문을 나눠봅니다. “아들이 2년간 교제를 했는데 궁합이 너무 안좋다고 해서 결혼을 못하고 있습니다. 누가 한 명 죽는대요.” “이 여자가 너무 좋다, 그런데 결혼하면 3년 안에 죽는다고 해서 헤어지는 것은 비겁하잖아 요.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3년만이라도 살아보는 게 좋잖아요? 괜찮아요. 며느리가 죽는대요? 아들이 죽는대요? “아들이 죽는대요.” “큰 문제 없어요. 궁합이 맞느냐 안 맞느냐는 별로 중요하지 않습니다. 맞다고 하더라도 문제가 별로 없습니다. 궁합이 안 좋다고 해서 두 사람을 말릴 수 있을 것 같애요? 없을 것 같애요?” “저는 말리는 입장이고, 둘이는 걱정 하고 있어요.” “그 여자 입장에서는 안하는 것이 낫겠네요. 남자가 궁합이 안 좋다, 엄마가 말린다고 망설이는 인간하고는 안 하는 것이 좋아요.. 엄마가 이렇게 이야기해야 돼요. ‘그 여자 좋으니? 죽어도 좋으니? 사나이가 죽는게 겁나서 못하면 바보다, 죽을 때 죽더라도 하고 싶은 거 해보고 죽어라’ 이렇게 이야기하세요.” “아들하고 둘이는 그 말 들으면 좋아 죽을라 하겠네요.” “아들이 너무너무 좋아하겠죠? 엄마가 멋있어야 돼요 궁합이 좋아도 차 뒤집어지면 죽어요. 죽고 사는 것을 너무 그렇게 연연해할 필요없어요. 오늘 가서 엄마가 아들에게 그렇게 이야기해 주세요.” 사람들이 모두 자기 일인 것처럼 좋아합니다. 2300명이나 되다보니, 나가는데도 시간이 많이 걸립니다. 스님이 연예인인 것처럼 사진을 찍는 사람도 밀려듭니다. 어제, 오늘은 아예 사인하기 전에 사진찍는 시간도 잠시 배정을 했습니다. 내일은 전남 담양과 무안에서 강연이 있습니다. 내일은 전남 여행이네요. 오늘 하루도 즐거운 하루였습니다. 감사합니다. 내일 뵙겠습니다. 160160160
6월 19일 법륜스님의 하루(kbs 힐링, 평화재단 심포지엄, 서울 강서구)
오늘 스님의 하루는 잠시의 휴식시간도 없을 정도로 바쁜 날이었습니다. 아침 7시부터 약속이 잡혔습니다. 스님이 sbs 힐링캠프 출연했을 때, 20대에 학원강사를 한 적이 있다고 하셨었습니다. 그 방송을 보고 스님께 배운 그 때의 학생들이 이제는 반백이 되어 스님을 찾아왔습니다. 모 대기업의 부사장으로 있는 분, 음대 교수로 계신 분, 건축학과 교수로 계신 분들이었습니다. 사람 얼굴을 정말 잘 못 알아보는 스님이신데, ‘자세히 보니 얼굴들이 다 기억 나더라’ 하십니다. 이어서 정부의 주요한 직책을 맡으셨던 정치인 한 분을 만나 현재까지 해결되지 않고 있는 우리 사회의 몇 가지 갈등 문제에 대해서 어떻게 해결할 것인가 깊이 의견을 나누었습니다. 바로 이어 불교TV로 가서 서암스님과의 인연에 대해 방송 촬영을 했습니다. 촬영 현장에 있으면서 스님으로부터 전해 듣는 서암큰스님의 행적이 참으로 감동스러웠습니다. “큰스님은 소박하고 검소하고 유머러스합니다. 도시로 올 일이 있으면 동승해서 오시거나, 지방에 내려 가실 때도 ‘등 받침이 딱딱해서 참선하기 좋다, 노인 할인이 된다.’하시면서 꼭 통일호를 타셨어요. 생활 자체가 검소하고 소탈합니다. 정말 내가 저렇게 살아갈 수 있을까? 늘 큰스님의 모습을 염두에 두고 살피게 됩니다. 비구니스님이나 작은 단체에도 항상 법문을 해 주셨습니다. 스님께 은혜입은 사람이 많습니다. 권위주의 같은 게 전혀 없습니다. 항상 저에게 경책의 대상이 되고 있습니다.” 오늘 스님은 거의 분, 초를 다투며 하루를 보내셨습니다. 불교TV 촬영을 마치자마자, KBS 방송국으로 향했습니다. 오늘은 화요일인데 차가 진짜 많이 막힙니다. 겨우 11시 30분에 맞춰서 KBS 방송국에 도착했습니다. KBS 직원들이 따로 시간을 내기가 어려워서 점심시간에 방송국내에서 『법륜스님과 함께 하는 즉문즉설 ‘힐링 KBS’』를 진행했습니다. KBS 파업 등으로 직원들이 마음 고생을 해서 힐링이 필요하다며 스님께 강의 요청을 했었습니다. nbsp 최근 갈등 구조가 계속 되면서 회사생활하는 것이 싸움같고, 파업하면서 분노하고 울컥하는 이 마음을 다스리기가 어렵다, 어떻게 마음을 다스려야 하나? 어려서부터 공부도 열심히 하고, 안정된 직장도 다니고, 결혼해서 애도 낳아 누가 봤을 때 잘 사는구나 할텐데 행복하지 않고 아무 의욕이 없다, 어떻게 해야 하나? 솔직하고 진솔하게 질문들을 합니다. 같은 방송국 직원들이라 질문이 잘 나올까 싶었는데 사회적인 고민부터 개인적인 어려움까지 걸림없이 질문하는 모습을 보면서 스님에 대해서 기본적인 신뢰가 바탕에 깔려 있구나 싶었습니다. 빵과 샌드위치를 먹으면서 2시간 가량 스님의 강연에 심취하고 있는 KBS 방송국 직원들에게 용기를 주고, 희망을 전해주는 힐링의 시간이 되어서 괜히 제가 뿌듯한 느낌이었습니다. KBS 강연을 마치고 바로 프레스센터로 갔습니다. 오늘은 평화재단의 심포지엄 ‘국가비전과 통합적 통일정책통일정책의 과제와 대안’이 열리는 날입니다. 엘리베이트에서 새누리당 한 국회의원을 만났습니다. 스님께서 어디 약속이 있어서 오셨냐고 묻자 “스님이 쓰신 『새로운 100년』을 다 읽었습니다. 감동적이었습니다. 통일에 대한 스님의 생각이 저와 거의 같아서, 오늘 공부하러 왔습니다.” 합니다. 바빠서 중간에 가야 한다더니, 맨 앞에 앉아 학생처럼 열심히 메모를 하면서 집중해서 듣고 강연 마칠 때 갔습니다. 심포지엄에는 350여명이 참가해서 강당이 꽉 찼습니다. 그런데 아직 통일 문제에는 젊은 사람들이 관심이 덜한가 봅니다. 스님 강연에는 요즘 3040대가 주를 이루는데, 여기는 어르신들이 더 많습니다. 젊은이들이 이런 통일문제에 관심을 많이 가지면 좋겠단 생각이 들었습니다. 오늘 심포지엄에는 통일부 차관을 지난 분과 통일연구원에 계신 전문가가 발표를 했습니다. 그리고 새누리당, 민주통합당 중진의원 2분, 진보와 보수 양쪽을 대표하는 중진 학자 2분이 토론자로 나와 열띤 토론이 진행되었습니다. 원로 교수님이 사회를 보셨는데, 전체를 아우르면서 힘있고도 재미있게 사회를 참 잘 봤습니다.nbsp nbsp 스님이 평소에 항상 하시던 통일 이야기가, 전문가들의 입을 통해, 잘 만들어진 ppt를 통해 정리가 되어 발표되었습니다. 미래를 바라보며, 균형잡힌 시각으로, 국가의 통일정책을 연구하고 토론하기를 거듭해서 나온 자료인 것 같습니다. 발표된 내용에 대해 보수적인 시각에서, 진보의 입장에서 다시 의의를 달고, 자기의 주장을 폅니다. 여러 의견이 오갔습니다. 여러 의견들을 들을 수 있는 좋은 시간이었습니다. 또한, 오늘 발표된 내용을 만들기 위해서 스님이 얼마나 많은 애정과 노력을 기울였는지가 보이는 것 같아 혼자 괜히 감동받기도 했습니다.nbspnbsp 심포지엄을 마치자마자, 강서구민회관으로 향했습니다. 강연장에 들어가니 열기가 후끈후끈합니다. 스님이 강연장에 들어서자 사람들이 환호와 박수로 스님을 맞이합니다. 609석인데, 1800명이나 참가를 했습니다. 자연스럽게 무대에 앉고 통로에 앉고, 1, 2층 여유공간에는 모두 앉았습니다. 그리고, 안전사고의 위험이 있어서, 더 이상 강연장 안으로는 못 넣고, 뒤에 오신 분들은 로비에서 강연을 들었습니다. 이제는 스님 강연장에 자리에 앉으려면 적어도 30분 전에는 와야 할 것 같습니다. nbsp 질문할 사람 손들어라고 하니 27명이나 손을 듭니다. 여태껏 강연 중, 처음 시작할 때 손든 사람으로는 제일 많은 숫자인 것 같았습니다. 2시간 넘게 강연을 했는데 질문 12개에 답을 하셨습니다. 강서구도 활발하고 밝은 분위기에서 강연이 진행되었습니다. 재미있었습니다. 많이 웃고 박수도 많이 쳤습니다.nbsp nbsp 강서구 강연 후, 평화재단에서 회의가 있어 바로 평화재단으로 이동했습니다. 스님은 평화재단에 도착할 때까지 잠깐동안 주무셨습니다. 재단에 도착해서 스님을 깨우니, 일어나자마자 “아, 오늘은 힘들다.”하십니다. 그래서 저희가 “스님, 오늘 일곱 탕째예요.”하고 웃으면서 말씀드렸습니다. 오늘 밤 회의까지 약속 7개를 소화해 내신 스님. 서울에 오면 스님 시간에서 조금의 틈도 허용이 되지 않습니다. 오늘도 스님에게 힐링을 받은 사람이 많았습니다. 희망씨앗이 많은 사람들의 가슴에 심어졌으리라 생각합니다. 언제가 이 씨앗이 아름다운 꽃으로 피어서, 개인 개인이 행복하고, 사회는 맑아질 것입니다. 내일은 부산과 창원에서 강연이 있습니다. 새벽 5시에 서울에서 출발할 예정입니다. 부산과 창원에서 뵙겠습니다. 감사합니다. nbsp
6월 18일 법륜스님의 하루(경북 경산, 의성)
오늘 오전 강연은 경북 경산에서 진행되었습니다. 강연장에 도착하니 740석 좌석이 다 차고 복도와 무대에 사람을 앉히고 있었습니다. 요즘은 복도와 무대에 앉는 것이 자연스러운 일이 되어 버렸습니다. 경산 강연에는 1,153명의 많은 사람들이 참가했습니다. 맨 처음 질문한 사람은 결혼한 지 1년이 된 새내기 주부였습니다. 성격이 조용해서 시댁 사람들과 잘 친해지지 않는데, 시댁 사람들에게 이쁨받는 며느리가 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 지 물었습니다. “내가 즐거우면 자연스럽게 주변에서 이뻐하게 됩니다. 시부모님에게 당신의 아들을 내가 차지한 것에 대해 미안한 마음과 감사한 마음을 가지고 용돈도 드리고, 식사도 대접하면서 고마움을 표현하게 되면 사랑받습니다. ‘어머니 죄송해요’, ‘어머니 고마워요’ 하는 마음을 내면 저절로 이쁨을 받는데, 그런 마음이 안 들죠?” 하는 스님 말씀에 사람들이 박수를 치며 즐거워 했습니다. 첫 번째 결혼에서 아이 둘을 남편에게 두고 나와, 초혼인 남자와 다시 결혼해서 아이 한 명을 낳고 지금 임신해 있는 주부가 스님께 목이 메여하며 질문을 했습니다. “남편이 무속신앙을 하게 되면서 내 업연때문에 남편이 안 좋다고 친정과의 인연도 끊어라고 하고,nbsp남편을 보좌해서 제 업보를 씻어야 한다고 합니다. 무속신앙을 하지 않으면 이혼하자고 합니다. 그런데 또 이혼하면 아이에게 죄를 짓는 것 같아서 살고 있어요. 남편은 폭력도 행사합니다.” “요즘같은 세상에 남자한테 두들겨 맞으면서 왜 살아요? 이혼한 것이 무슨 죄예요? 지금이 어떤 시댄데 여자라는 것이 죄예요? 그런 바보같은 생각을 하지 마세요. 여성으로서, 사람으로서 당당하게 사세요. 그러나 애를 버리고 온 것은 엄마로서 죄예요. 애를 낳았으면 엄마가 책임지고 키워야죠. 그리고 대한민국은 헌법에 누구나 사상과 종교의 자유가 있다고 명시되어 있어요. 무교를 믿는 것은 남편의 자유고, 그것을 안 믿는 것은 내 자유예요. 남편이 이야기하면 ‘예, 예’하고, 내가 하고 싶은 것이 있으면 하면 됩니다. 그리고, 남편이 왜 그랬냐 하면 ‘죄송합니다’ 하면 돼요. 친정에 가지 말라고 하면 ‘예, 예’ 하고, 필요하면 다녀 오세요. 가지말라고 했는데 왜 갔냐? 하면 ‘죄송합니다’ 하고 숙이면 됩니다. 겸손하게 살되, 자기 중심이 잡혀 있어야 합니다. 자기 주관을 가지고 산다는 것과 고집하고 산다는 것은 달라요. 이 남자랑 살려면 엎드려서 ‘당신이 왕이로소이다’하고 살아야 합니다. 안 살거면 ‘안녕히 계세요’ 하면 됩니다. 살꺼요? 안녕히 계세요 할꺼요?” “살아야지요. 감사합니다, 고맙습니다.” 이 여자분도 스님의 ‘엄마수업’을 읽고 와서 질문을 했습니다. 스님의 책을 읽고 와서 질문을 하는 사람들도 갈수록 늘어나는 것 같습니다. 경산에서 강연을 마치고, 바로 문경정토수련원으로 향했습니다. 정토회 활동가들이 어제와 오늘 정일사 교육을 하고nbsp있는데, 스님이 마지막 회향법문을 해 주시기로 했습니다. 반가운 얼굴들이 많습니다. 스님은 앞으로 100년 내의 가장 큰 문제는 환경문제지만 우리 현실에서 30, 40년 안에 가장 지대한 영향을 미치는 것은 통일문제라고 하셨습니다. 환경문제가 해결되면 작은 미물까지도 혜택을 받게 되고, 통일문제가 해결이 되면 수많은 북한동포들이 굶주림에서 벗어날 수 있어, 이렇게 중생의 고통을 덜어주는 이런 세상을 ‘정토’라고 하셨습니다. 이를 위해 우리는 시대적 과제를 읽을 수 있어야 하고, 또한 개인의 수행과 전법을 함께 해 나가야 한다고 하셨습니다. “자기에게 도움이 되면 기쁨, 남에게 도움이 되면 보람이 됩니다. 그래서 욕망을 따라 맛있는 것만 먹으면 순간은 기뻐지만 지나놓고 돌아보면 허전하고 보람이 없습니다. 그런데서 우리가 하는 일이 개인에게도 좋고 남에게도 이익이 되어야 합니다. 남을 위한 일이 나를 희생하는 것이 아니라 바로 나를 위한 길입니다. 이럴 때 일과 수행이 통일이 됩니다. 이것이 상구보리 하화중생입니다.” nbsp 문경에서 회향법문을 마치고, 바로 다음 강연이 있는 경북 의성으로 갔습니다. 의성은 인구가 5만 7천명인데, 통크게 1300석짜리 강연장을 빌려놨습니다. 마늘 농사로 바빠서 사람들이 참가를 많이 못했다고 했지만, 700명이나 강연장을 찾은 것은 대단히 많은 인원입니다. 의성도 젊잖은 도시인 것 같았습니다. 대중들의 반응이 충청도와 비슷하다며 저희들끼리 웃었습니다. 사람들이 진지했습니다. 재래시장에서 건어물 가게를 하는 아저씨가 중학생 자녀가 둘 있는데, 장사는 잘 안되고 자녀들은nbsp대학에 보내야 할 것 같은데 어떻게 하는 것이 좋겠냐고 시원시원하게 질문을 했습니다. “자식이 20살이 넘으면 독립을 시키세요. 부자면 자식이 부모를 원망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형편이 어려워 자식들을 도와줄 수 없는 것이니까, 자식이 부모를 원망하지 않을 겁니다. 오히려 더 자녀를 잘 키울 수 있습니다.” 그러자, 아버지의 마지막 자존심이 있지 않냐는 말에 스님이 그것이 바로 집착이라고 말씀해 주시는 그 과정이 재미있었습니다. 또 아저씨는 재래시장에서 파는 명태, 멸치가 더 질이 좋은데도 요즘 사람들은 다 마트에 가서 물건을 사기 때문에, 시장에 사람이 없다며 하소연을 합니다. 그래서 스님께서 양극화와 경제 민주화에 대해서 간략하게 정리를 해 주셨습니다. 12시가 넘는 늦은 밤에도 스님은 서울에서 약속이 있어서, 또 의성에서 강연을 마치자마자 서울로 달려왔습니다. 오늘도 하루종일 고속도로와 친구가 되었었네요. 이번 강연 장소와 다음 강연 장소간 거리가 멀어, 오늘은 휴게소에 갈 시간도 없이 뺑뺑이를 돌았습니다. 내일은 오후 2시에 평화재단 심포지엄이 있는 날입니다. 오전에는 KBS 직원들을 위한 힐링캠프가 있고, 오후 7시에는 서울 강서구 강연이 있습니다. 요즘 스님이 서울에 있는 날이 적기 때문에 서울에 있는 날은 약속이 빼곡이 잡혀 있어, 내일의 스님의 하루는 다른 날보다 더 바쁠 것 같습니다. 오늘은 바쁘게 돌아다니긴 했지만, 강연장도 그렇고 전체적으로는 차분한 느낌의 하루였던 것 같습니다. 좋은 밤입니다. 내일 뵙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