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토행자의 하루

일산지회
나는 지금 가벼워지는 연습 중입니다

오늘 만나볼 정토행자는 2020년 행복학교를 시작으로 정토회와 인연을 맺기 시작하여 2023년 8월 제5차 전법활동가 교육을 수료하고, 정토불교대학 첫 진행자 소임을 맡은 김수연 님입니다. 정토회를 만나 수행의 관점을 바로잡으면서 헌 옷을 벗고 새 옷으로 갈아입은 것 같다며 웃음 짓는 일산지회 김수연 님의 수행담을 소개합니다.

법륜스님 즉문즉설 안내봉사(왼쪽 김수연 님)
▲ 법륜스님 즉문즉설 안내봉사(왼쪽 김수연 님)

혼자 남겨진 외동딸

부모님은 늦은 나이에 재혼하여 저를 낳았습니다. 외동딸이었지만 칭찬하면 버릇 나빠진다며 엄하게 키우셨고, 상을 받아도 집 청소를 해 놓아도 칭찬하지 않았습니다. 두 분은 의견충돌로 자주 싸웠고, 아버지는 어머니에게 폭력과 욕설을 일삼았습니다. 어머니는 그런 남편이 싫어질수록 종교 생활을 더욱 열심히 했고, 자식보다 종교가 우선순위가 되었습니다. 유치원 소풍 날, 어머니는 불공을 드리러 가야 해서 저 혼자 덩그러니 앉아 있던 쓸쓸한 기억이 있습니다.

어릴 때는 어머니 편에서 아버지를 미워했지만, 커서는 어머니도 이해되지 않아 싸우는 일이 잦았습니다. 불만과 원망이 많던 20대에 아버지와 어머니 모두 돌아가셨습니다. 혼자가 되고 나니 막막하고 걱정스러웠지만, 종교 활동을 같이하던 주변 분들의 도움과 마음을 나눌 수 있는 어릴 적 친구들 덕분에 크게 외롭다는 생각 없이 지냈습니다.

행복 뒤의 괴로움

남편과는 불교 청년회 선후배로 알고 지내다가 서로 호감이 생겨 사귀기 시작했습니다. 군 장교였지만 딱딱하지 않고 가볍고 유쾌한 사람이었습니다. 그 사람의 말에 용기를 얻어 새로운 일을 시도하는 게 좋았고, 말이 잘 통해서 결혼해도 괜찮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시어머니에게 인사드린 후 일사천리로 결혼까지 진행되었습니다.

결혼 초 친구들과 주변 사람들에게 세상의 모든 남편, 모든 시어머니가 다 내 남편, 내 시어머니 같으면 좋겠다고 할 정도로 좋았습니다. 종교도 같았고 이야기도 잘 통했습니다. 무엇보다 나를 챙겨주는 사람들이 있다는 게 너무 좋았습니다.

일산지회 운정모둠 JTS활동(왼쪽에서 두 번째 김수연 님)
▲ 일산지회 운정모둠 JTS활동(왼쪽에서 두 번째 김수연 님)

하지만 남편은 신혼 초부터 아침밥 때문에 늘 불만이었습니다. “어머니는 언제나 아침밥을 지어주었는데, 왜 당신은 차려주지 않느냐?”며 크게 화를 낸 적도 있습니다. 저도 노력은 해 보았지만, 아침에 일찍 일어나는 것이 힘들다 보니 챙기기 어려웠습니다.

그러다 남편이 시댁에 가서 아침밥을 챙겨주지 않는다고 말하는 바람에 저는 일가 친척들이 모인 자리에서 시어른에게 크게 혼나고 나쁜 며느리 취급을 받았습니다. 심지어 시어머니는 형제간, 동서 간의 불화도 모두 ‘네 탓’이라며 저를 원망하여 억울한 마음이 크게 들었습니다. 그 후 시댁과 연락하는 것도, 찾아뵙는 것도 점점 뜸해졌습니다.

너 때문이다!

결혼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아이를 낳을 수 없다는 걸 알았지만 남편에 대한 불만이 없었기 때문에 가볍게 내려놓았습니다. 그러나 아침밥 문제로 시댁이랑 갈등이 깊어지면서 남편에 대한 불신이 커지고 큰 싸움이 반복됐습니다. 부부 상담을 받고 다시 신뢰가 회복되어 두 번의 시험관 수술을 시도했지만 임신에 실패했습니다. 그때 십 년 만에 임신에 성공한 친구가 알려준 곳에서 약을 지어 먹으며 다시 임신을 꿈꿨습니다. 엄마보다 한 살이라도 일찍 아이를 낳고 싶다는 열망이 생겼습니다. 하지만 엄마가 저를 낳은 마흔한 살이 넘도록 아이는 생기지 않았습니다.

일산지회 행신모둠 도반들과 함께(앞줄 맨 오른쪽 김수연 님)
▲ 일산지회 행신모둠 도반들과 함께(앞줄 맨 오른쪽 김수연 님)

그 무렵 시댁에 갔다가 동서와의 일로 시어머니와 큰 소리까지 내며 싸운 일이 있습니다. 남편은 어머니와 싸우는 제 모습에 크게 실망했습니다. 저는 시어머니와의 문제를 풀기 위해 다시 개인 상담도 받고 부부 상담도 받던 중이었는데, 마무리되었다고 생각했던 아침밥 문제가 다시 불거졌습니다. 신혼 초 주말부부로 지낼 때 매번 자기만 서울에 올라왔지, 한 번도 제가 먼저 내려가겠다는 말이 없었다며 그때까지 알지도 못했던 온갖 불만을 쏟아냈습니다. 심지어 남편은 벌써 아이 가질 생각을 접었다고 했습니다.

아이를 열망하던 저로서는 남편의 말에 큰 충격을 받았습니다. ‘너 때문에 내가 아이를 갖지 못했다’라는 생각이 꽉 찼습니다. 분노로 가득 찬 시간을 보내다가 이사 후 무기력증, 우울증이 심하게 왔습니다. 시어머니에게는 서운함이 가득했고, 남편에게는 원망이 가득했습니다. 아이를 가질 수 없다는 공허함을 잊으려고 일을 시작하려고 해도 코로나 탓에 일을 벌이기 힘들었습니다. 내 마음대로 되는 것은 아무것도 없고, 내 마음을 터놓을 친구, 지인 그 누구도 없었습니다. 오롯이 나 혼자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하루 종일 눈물만 나고 어떻게 죽을까 하는 궁리만 했습니다.

괴로움 속에서 길을 찾다

2023년 초파일 점등식 봉사(오른쪽)
▲ 2023년 초파일 점등식 봉사(오른쪽)

법륜스님의 유튜브 즉문즉설을 보다가 저와 비슷한 상황인 질문자에게 스님이 정신과에 가 보라고 하시길래 저도 집 근처 정신과를 방문했습니다. 8개월 만에 치료가 마무리 되었습니다. 그러나 치료가 다 된 줄 알았는데 아이 문제나 제 상처와 관련된 상황을 맞닥뜨리자 다시 원래 상태로 돌아갔습니다. 얼마 지나지 않아 드라마를 보던 중 “이번 생(生)에는 엄마라는 이름은 가질 수 없나 봐요.”라는 대사에 다시 울음이 터졌습니다. 한참을 울고 있는데, 예전에 같이 공부했던 분이 “언제까지 울고만 있을 거냐?”며 혼내다시피 말했습니다. 그리곤 행복학교1를 추천해 주었습니다. 그 분의 한마디에 정신이 들어 행복학교를 신청했습니다.

그 당시 행복학교 수업에서 제가 가장 자주 했던 말이 있습니다. “머리로는 알겠는데 마음으로는 모르겠어요!” 울분에 가득 찬 마음을 끌고 행복학교 과정을 다 마쳤습니다. 그리고 시민모임을 하던 중 불교대학을 권유받았습니다. 제가 다른 공부를 해 보려고 고민하던 때였는데, 누군가 “그것보다 더 중요한 공부다. 나도 이 공부 안 했으면 얼마나 더 어리석게 살았을지 모른다.”라는 말에 불교대학에 입학했습니다.

조금씩 마음이 진정되었지만, 남편과 시어머니에 대한 원망은 쉽게 놓지 못했습니다. 그러던 중 경전대학 때 〈깨달음의 장2〉에 다녀왔습니다. 그곳에서 남편과 시어머니에 대해 쏟아내고 집에 돌아온 후 저 스스로 느낄 정도로 남편에게 화를 내는 것도, 잔소리하는 것도 줄었습니다. 그냥 제가 해 버리거나 눈에 거슬려도 남편이 할 때까지 그냥 둡니다. 남편에게 ‘설거지 좀 하지’, ‘티브이 좀 그만 보지’ 하고 작게든 크게든 바라는 마음을 내면 말이 곱게 나가지 않는구나, 바로 화를 내는구나 하는 것을 알았습니다. 그 후로 화가 날 때마다 돌아보면 어김없이 바라는 마음이 있음을 확인하며 내려놓는 연습을 했습니다.

그즈음 남편도 행복학교 공부를 시작했습니다. 심화 과정 들어가면서 불교대학을 추천했더니 같이 해 보겠다며 열심히 공부했습니다. 남편은 불교대학 공부하면서 한 번씩 지나가는 말로 ‘미안했다, 고맙다’며 얘기하기 시작했습니다. 어느 날 남편에게 왜 행복학교를 시작했냐고 물었더니 제가 변하는 게 신기했다고 합니다. 도대체 어떤 공부를 하길래 사람이 저렇게 변하는지, 처음엔 본인이 잘해서 잔소리를 안 하는 줄 알았는데 공부하다 보니 제가 바뀐 게 더 확연히 보였다고 합니다.

얼마 전 남편은 〈깨달음의 장〉을 마치고 집에 들어서자마자 펑펑 울었습니다. 그동안 제가 항상 정성스러운 밥을 해줬는데 본인이 몰라줬다며 미안하다고 했습니다. ‘내가 죽기 전에 이런 말을 듣다니!’ 울컥해서 서로 한참을 부둥켜안고 엉엉 울었습니다. 남편과 저는 이제 서로를 인정하고 다양한 주제를 함께 나누는 도반으로 성장하고 있습니다.

일산지회 초파일 등 만들기(맨 오른쪽 김수연 님)
▲ 일산지회 초파일 등 만들기(맨 오른쪽 김수연 님)

바라지 말라

〈깨달음의 장〉에서 남편에 대한 원망은 ‘내가 피해자’라는 생각에서 비롯됨을 알았습니다. 그러자 《보왕삼매론》에서 ‘바라지 말라’는 문구가 마음에 크게 다가왔고, 바라는 마음을 내려놓는 연습을 합니다. 그러다 보니 남편에게도 ‘저랑 사느라 고생이 많으십니다. 감사합니다.’라는 인사가 절로 나옵니다.

시어머니와 그렇게까지 큰 소리로 싸운 것은 내가 이기려는 마음, 인정받고 싶은 마음이었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화날 때마다 무엇을 이기려고 하는지, 무엇을 인정받으려 애쓰는지 살펴봅니다. 그래도 불쑥불쑥 시어머니에 대한 원망이 올라오곤 했었는데, 법륜스님의 《금강경3》을 읽다가 문득 연락조차 안 하는 저에게 김장하면 꼭 연락하고 보내주시는 시어머니가 생각났습니다. 생판 모르는 남에게도 나를 도와주면 고맙다고 하는데, 얼마나 감사한 일인가 하는 생각에 미치자 더 이상 원망하는 마음이 들지 않습니다.

싫은 소리 듣기 싫어서 열심히 애쓰는 나의 속마음은 책임지기 싫은 마음이었음을 알았습니다. 내 마음에 안 들면 시시비비를 가리려 들고, 내가 옳음을 주장하던 그 마음은 상대를 인정하기 싫음이었습니다. 그리고 이런 나를 더 이상 고치려고만 하지 않고, 있는 그대로 받아주는 연습을 합니다. 화나면 버럭 화내거나 참으려 애쓰지 않고 상대를 인정하고 나를 표현하는 연습을 합니다.

하다 보니 여기까지 왔습니다

2023년 가을 불교대학 전단지 홍보
▲ 2023년 가을 불교대학 전단지 홍보

어릴 때부터 불교를 종교로 믿어 왔지만 행복학교, 불교대학, 경전대학을 다니면서 그전에는 몰랐던 것들을 깨우쳤습니다. 시간이 갈수록 감정 기복이 줄고, 괴로워하는 시간이 줄고, 내가 이렇구나 조금씩 더 빨리 알아차립니다. 꽁하기보다는 상대에게 “기분 나빴어?”하고 묻기도 하고, “내가 순간 화냈네. 참회합니다.”하고 먼저 인사하는 사람이 되어가고 있습니다. 한 번씩 예전 습(習)으로 되돌아가기도 하지만 참회하고 다시 시작하는 힘이 생겼습니다. 정토회 소임을 하며 어려움에 부딪칠 때면 내가 이렇구나 더욱 확실히 알게 되고, 나를 조절할 수 있는 더 큰 힘이 생기는 것 같습니다.

정토회를 만나 이렇게 한 겹 한 겹 묵은 때를 벗겨내며, 감정을 조절하여 유연하고 세심한 나를 만들어 가고 있습니다. 조금씩 가벼워지는 나를 만납니다. 나는 행복한 수행자입니다.


누군가의 인생을 만나는 것은 하나의 우주가 생성하고 변화하는 것을 마주하는 것과 같습니다. 복잡하게 형성된 마음 습관을 바꾸는, 어렵고 긴 수행의 길을 선택하여 꾸준히 나아가는 김수연 님께 응원의 박수를 보냅니다.

글_민헌기(인천경기서부지회 인천지회)
편집_박선희(강원경기동부지부 수원지회)


  1. 행복학교 법륜스님 행복학교는 온라인에서 일주일에 한 시간 법륜스님의 즉문즉설을 보고 진행자와 참가자가 행복을 배우고 연습하며 '내 것으로 만드는 체험의 장'입니다. 행복학교는 종교를 떠나 누구나 함께 할 수 있습니다.
    행복학교 신청: http://hihappyschool.com 

  2. 깨달음의 장 4박 5일 기간의 정토회 수련 프로그램. 평생에 한 번만 참여할 수 있음. 

  3. 금강경 대승불교 경전의 하나 

전체댓글 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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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덕행

온 가족의 화목이 내 마음 잘 살피는데서 시작되었군요. 경험담에 공감합니다. 저도 아침밥 차려주기가 어렵네요. ^^

2024-03-08 14:33:10

대정진

이미 충분히 가벼워진 모습입니다.
수행담 감동깊게 잘 읽었습니다.
감사합니다. 덕분입니다;

2023-11-17 15:02:54

ubaTaeCJ

1

2023-11-16 02:38: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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