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토행자의 하루

수성지회
나는 스님께 질문할 복이 많은 사람

넘치는 호기심과 의욕으로 중학교를 비롯해 인문계고교 입시지도, 농업고, 경영・상업계 학교 교사를 했습니다. 정토회를 다니면서 얻은 자신감으로 대안학교 교사로 자원한 열혈 교사이자 주어진 일에 직진! 일사천리로 진행하는 제1차 만일결사 10차 대구경북지부 전 수성지회장 김민숙 님의 이야기를 들어보았습니다.

2018.8.19 9-6차 입재식 공연준비(가운데)
▲ 2018.8.19 9-6차 입재식 공연준비(가운데)

외면하던 나를 만난 기도 시간

선배와 차를 마시러 간 자리에 함께 온 동료 교사를 통해 정토회를 알게 되었습니다. 중학생 아들이 한창 멋을 부린다고 했더니, 정토회 공부를 하면 좋겠다며 스님의 법문 테이프, 유튜브 주소, 《기도》책을 선물해 주었습니다. 종교는 멀리해왔지만, 스님 법문을 들으며 사춘기 이후 성장하지 못하고 고민만 늘어온 제 삶이 보였습니다. 《기도》 책을 읽고, 여름 한 달을 혼자 기도하며 많이 울었습니다. 결혼하고 아이를 키우면서 외면했던 저를 만나는 시간이었습니다. 부모님 생각도 많이 났습니다.

엄마는 엄청나게 무서운 시어머니 아래서 어린 삼 남매와 아픈 남편을 책임져야 했습니다. 보험 적용도 안 되는 병원비를 감당하느라 낮에는 장사하고, 밤에는 병원에서 자는 생활을 3년간 했습니다. 엄마 나이 마흔쯤에 술을 좋아하던 아버지가 쉰 살의 젊은 나이로 돌아가셨습니다. 할머니도 돌아가실 때까지 집에서 모셨습니다. 제가 정토회를 만났을 때가 그때 엄마 나이인 마흔둘이었습니다. 저라면 열 번도 더 도망갔을 겁니다.

저는 좋은 직장도 다니고, 남편도 잘 도와주고 시어머니가 애들도 키워줍니다. 그런데도 아이를 멋대로 휘두르지 못해 괴로운데 엄마는 어땠을까 생각하니, 엄마한테 잔소리하고 해준 게 뭐 있냐며 철없이 말한 게 미안했습니다. 그때 엄마의 그늘을 알았고 고마웠습니다. 단단하게 버텨준 엄마 덕분에 경제적으로 어려움을 겪지 않고, 우리에게는 자상한 할머니 밑에서 편안하게 자랐습니다. 제가 돌아가신 아버지 나이가 되니, 아버지가 아플 때 어떤 마음으로 저희를 지켜봤을지 헤아려졌습니다. 저한테는 큰딸이라고 무조건 잘해줬지만, 본인의 건강을 돌보지 않은 아버지를 굉장히 원망했습니다. 그러나 돌아보면 아버지 입장에서는 최선을 다했을 것이기에 고맙습니다.

2022.5.5 아도모례원 마을잔치 공양 준비(제일 오른쪽)
▲ 2022.5.5 아도모례원 마을잔치 공양 준비(제일 오른쪽)

문제 삼지 않으면 문제가 안 된다

그 당시 친정과 시댁에도 문제가 있었지만, 오직 아들한테만 관심을 가졌습니다. 술 때문에 일찍 돌아가신 아버지 탓에 남편의 술 약속에 불안했습니다. 그 불안이 사춘기 아들에게 옮겨져 그 나이에 흔히 있을 수 있는 게임, 야동, 담배 문제로 휴대전화를 던지는 일도 있었습니다. 아들을 과하게 통제한다는 말에 ‘엄마니까 그렇지, 교사니까 더한 거다’라고만 생각했는데 그날 처음 이런 불안이 제 문제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그래서인지 그 말이 굉장히 와닿았고 중2 아들의 방황이 시작된 2012년 정토불교대학에 입학했습니다.

불교대 특강 때 아들이 담배 피우고 거짓말도 한다며 질문했습니다. 엄마가 엄하면 아이가 숨어서 하니 잘못된 건 가르치되 너무 다그치면 안 된다고 했습니다. 그때 오계에 어긋나는 건 아이한테 담담하게 하지 말라고 말하고, 자기 삶이니 간섭하지 않겠다고 입장을 정리했습니다. 그래서 고등학교 가면서부터는 공부하라는 잔소리도, 생활에 간섭도 하지 않았더니 오히려 알아서 공부도 하고 자기 생활을 조절하려고 엄청 애를 썼습니다. 문제 삼지 않으면 문제가 안 된다는 말이 딱 맞습니다. 아들한테는 굉장한 불안이 있는데 딸한테는 그렇지 않습니다. 저를 닮은 딸을 믿고 지켜볼 수 있었던 건 저를 무섭게 키웠지만, 대학생이 되고부터는 간섭하지 않고 믿어준 엄마 덕분입니다.

2021.11.2 두북 가을농사 주말 봉사(제일 왼쪽)
▲ 2021.11.2 두북 가을농사 주말 봉사(제일 왼쪽)

자가 절에 다니니 좀 낫다

철철이 옷 사 입고 여행 다니고 스포츠에 하나 빠지면 끝을 보았습니다. 정토회 오니 절하고 스님 법문 듣는 거 외에는 할 게 없었습니다. 그동안 재미있던 걸 탁 놓으니 굉장히 무기력했습니다. 아이 간섭도 안 하니 더 할 게 없었습니다. 경전대학 다닐 때 법사님한테 무기력하다고 했더니 이제야말로 봉사할 때라고 했습니다.

그 무렵 법당에서 ‘사이숲’ 봉사1를 제안받았습니다. 유치원생이랑 3살짜리 아이가 있는 새터민 가정인데 엄마가 토요일에 출근하니 도움이 필요하다고 했습니다. 3년 동안 매주 토요일 그 집으로 봉사하러 갔습니다. 어린애들 키우며 억척같이 사는 모습을 보면서 친정엄마 생각이 많이 났습니다. 그 사람 사는 이야기를 들으면서 엄마를 이해할 수 있어 좋았습니다.

‘사이숲’ 봉사 다음으로 경전반 담당을 제안받았습니다. 학생들이 저보다 나이도 많고 불교도 더 많이 아는데 경전반 담당을 어떻게 할지 걱정스러워 스님한테 질문했습니다. 스님은 법문하는 것도 아니고 출석 체크만 하면 되니 걱정할 것 없다고 했습니다. 그 말에 마음이 굉장히 가벼워졌습니다. 그래서 경전반 담당을 마치고 불교대학 담당을 한 번 더 했습니다. 그때부터는 부담스러워하는 진행자들에게 제가 “자기는 학생이 왔나 안 왔나 표시하고, 안 오면 오라 하고, 모르는 건 물어서 알려주면 돼”라고 말했습니다. 그렇게 제가 담당한 경전반 학생 열다섯 명이 적극적으로 정토회 활동을 합니다.

제가 맏딸이자 맏며느리여서 친정과 시댁에 갖은 간섭하며 살았습니다. 진짜 심했는데 정토회에 다니면서 입을 닫으니까 양쪽이 다 조용해졌습니다. 한번은 시어머니가 말했습니다. “자가 그래도 절에 다니니까 좀 낫다.” 그리고 제가 아이들한테 요구하는 게 많고 고함지르고 야단치며 키우니까 손윗동서는 애를 너무 잡는다는 말을 많이 했는데 요새는 제가 제일 물렁합니다. 차를 같이 타고 가면 제 잔소리에 긴장하던 아들에게 옆에 있어도 편한 엄마가 되었습니다.

2022.6.16 두북 나비장터 음식부스 준비(제일 오른쪽)
▲ 2022.6.16 두북 나비장터 음식부스 준비(제일 오른쪽)

기꺼이 받은 지회장 소임

지회장 말이 나오자, 종일 사무실과 법당을 오가며 아침부터 밤늦게까지 분주하던 총무의 모습이 떠올랐습니다. ‘예전 총무처럼 할 자신도, 시간도 없는데 제대로 할 수 있을까?’라는 걱정이 앞섰지만, 지부 활동과 지원국 소임을 함께한 도반들이 지지해주었습니다. ‘정말 계획대로 새로운 모습의 온라인 정토회로 될까?’ 하는 궁금증과 그것이 실현되는 모습을 보고 싶은 마음에 지회장 소임을 기꺼이 받았습니다.

대구법당을 없애면서 대구정토회는 수성, 동대구, 경주, 구미지회로 갈라졌습니다. 이렇게 구성하니 모르는 사람이 많아 온라인 초기에는 예전 도반들이 그리웠습니다. 그래서 수성지회보다 동대구와 경주지회 도반하고 더 친했습니다. 그런데 1년이 지나면서 팀워크가 생겼습니다. 다른 지회 도반들이 수성지회는 도반을 무척 챙기며 친하다는 말을 많이 합니다.

2022.11.12 두북수련원 나비장터(첫줄 오른쪽에서 두 번째)
▲ 2022.11.12 두북수련원 나비장터(첫줄 오른쪽에서 두 번째)

한번에 두 명과는 연애를 못하듯이

직장, 가정, 취미 생활까지 하며 바쁜 가운데도 정토회 봉사하는 도반들이 고맙지만, 가끔 섭섭할 때도 있습니다. 주말에는 활동하기 어려우니 봉사 부탁하지 말라는 답이 올 때입니다. 바쁜 도반을 보며 소소한 일은 직접 했는데 어느 순간 혼자 할 일이 너무 많아져 짜증 났습니다. 두북수련원에서 주말 활동이 있을 때는 주간 활동가가 많은 지회가 부러웠습니다.

역할을 나눌 때도 배우고 연습해서 하도록 격려하기보다 일 잘할 사람을 찾으니 힘에 부쳤습니다. 빨리하고 잘하고 싶은 업식이 빚어낸 과보였습니다. 그걸 알고는 한사람과 하나씩 공부하며 함께 성장했습니다. 지나고 보니 그런 균형이 지치지 않고 오래 봉사할 수 있게 한 힘이었습니다.

급하고 잘하고 싶고 잘해야 한다는 밑 마음에 아버지가 있었습니다. 아버지를 무척 좋아했는데 어느 날 학교에서 상장을 받아왔더니 정말 행복해하셨습니다. 그때 저를 좋아하는 사람이 만족하도록 잘해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지회장 회의에서 지부장이 뭘 해야 한다면 그걸 백 퍼센트 다 하고 싶어서 회의 시간에 계획을 짜서 설명을 많이 했습니다.

스물네 살에 직장생활을 시작해서 일 년도 쉬지 않고 28년을 달렸습니다. 직장에서 도반의 전화나 문자에 바로 답할 수 없어서 주위 사람이 많이 답답해했고, 연락해야지 하면서 잊어버리기도 해서 원망을 들었습니다. 법회에서 질문을 했더니 “지회장 그만해야지, 왜 받았느냐! 죄송하다고 해야지” 그 말을 듣고 정신이 들었습니다. ‘내가 선택한 일이니 죄송하다며 최선을 다하자’

2022.6.9 수성못에서 행복학교 홍보(첫줄 왼쪽에서 두 번째)
▲ 2022.6.9 수성못에서 행복학교 홍보(첫줄 왼쪽에서 두 번째)

쉰 살 즈음에는 체력도 떨어지고 지회장을 하면서 정토회가 더 재미있고 할 일도 많아져서 학교 일이 지루하고 의욕이 사라졌습니다. 정토회 전화 받는 일이 많으니 직장에 미안했습니다. 돈 받고 하는 일이라 하긴 하지만 예전처럼 학교 일을 하지 않는 제 모습도 보기 싫었습니다. 이렇게 재미없게 학교생활을 계속해도 되나 싶었습니다. 연애를 두 명하고 못 하는 거랑 같습니다.

여러모로 보아 한 일 년은 쉬면 좋겠다 싶었습니다. 새벽 4시 반에 일어나 기도하고, 회의 마치면 자정입니다. 절대적인 수면량이 부족하니 자주 입 안이 헐고 목도 쉬었습니다. 그때는 힘든 줄도 모르고 재미있어서 했는데 몸에 무리가 되었나 봅니다. 지회장 하는 2년 중 첫해는 직장을 다니고 이듬해는 휴직했습니다.종일 시도 때도 없이 불려 다니고, 누구도 점심시간이나 퇴근 시간이라고 얘기 안 해주는 주간반 활동가들의 노고를 그때 알았습니다. 진짜 고마웠습니다. 그리고 회의를 왜 3시간씩 하는지 이해할 수 있었습니다. 주간에서 1년 활동하면서 얻은 결과입니다.

1년 휴직 막바지에는 학교 가서 적응할 수 있을지 걱정스러웠지만 복직해서 일하고 싶은 마음도 들었습니다. 일 년 쉬니까 몸도 좋아졌습니다. 한 해를 쉬니 직장이 참 고맙게 느껴졌습니다. 어느 날 집 근처 한 고등학교 앞에서 남편과 짜장면을 먹는데 학생들이 우르르 들어와서 선생님하고 짜장면 먹는 걸 보니까 부럽고 눈물이 났습니다. 제 나이에 저런 아이들 곁에 함께하면서 말을 듣는 것만도 복이라 생각합니다. 스물넷에 시작한 일을 쉰둘에 여전히 할 수 있다는 게 고맙고 기뻤습니다.

2023.5.14 행복학교 5월 모둠홍보(제일 왼쪽)
▲ 2023.5.14 행복학교 5월 모둠홍보(제일 왼쪽)

은퇴하고 아파트 경비 일하듯이

행복운동특별본부(이하 행복본부)로 가서 홀가분합니다. 지회 법사님은 회사 은퇴하고 아파트 경비 일을 시작한다 생각하라고 했는데, 그 말을 들으니 함께 하는 도반이 보였습니다. 2% 부족한 업식이 보석이고 발견한 까르마가 기쁘고 고맙습니다. 제 과제는 자신을 모르면 주위에 세게 부딪혀 도망가고 싶어지니 본인 업식은 봐주고 도반 업식도 받아보는 것입니다. 그리고 왕초보이니 집중해서 잘 듣고 정해진 대로 하는 것입니다.

지회장과 모둠장은 다양한 의결과정과 회의에 참여해 정토회에서 일어나는 일을 전반적으로 잘 알 수 있습니다. 그러나 모둠원은 현재 자기 소임 외에는 전체적으로 볼 기회가 적습니다. 지회장을 회향하니 지회 안에서 일어나는 일을 알기가 어려웠습니다. 그래서 행복본부 모둠원도 정보를 공유하고 사소한 일도 같이 의논하고 결정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모둠장 회의의 중요 내용은 꼭 회의록과 회의를 통해 공유합니다. 자기가 속한 곳 말고는 알 수 없는 것이 온라인 정토회의 과제라고 생각합니다.

항상 내려오는 일이나 일정 소화하기에 급급하니 회의 결과를 어떻게 집행할 것인지에 집중하느라 도반들의 어려움을 진심으로 이해하지는 못했습니다. 지금이라면 힘들다는 도반들한테 어떤 부분이 무리고 힘든지 물어볼 텐데, 그때는 저도 처음이라 여유가 없었고, 하면 될 것 같은데 왜 그러는지 이해하기 힘들다는 생각이 더 컸습니다. 지금 목표는 일을 열심히 많이 하는 것보다 도반 눈높이에 맞춰 스트레스 없이 편하고 여유 있게 하는 것입니다. 주변에 관심 없고, 상대 배려 안 하며 정해진 대로 딱딱하게 할 말 다 하며 살았는데, 상대 말을 귀담아들으며 주변 상황을 살펴 가면서 일하는 것입니다.

청도에 사는 정토회 도반들과(오른쪽에서 세 번째)
▲ 청도에 사는 정토회 도반들과(오른쪽에서 세 번째)

지금은 대구에서 조금 떨어진 청도에서 남편과 둘이 지내며 시골 중학교에서 아이들과 좌충우돌하며 소소하고 편안한 일상을 보내고 있습니다. 불교대학 입학 당시 중2, 초6이던 아들과 딸은 직장인이 되어 모두 독립해서 제 몫을 다하는 멋진 어른으로 성장했습니다. 기도와 봉사하는 시간 동안 스스로 성장하고 둥지를 날아간 아들, 딸 그리고 모든 것을 지켜보고 함께 해준 남편이 정말 고맙습니다. 또 집에서 5분 거리에 전 청도법당 총무, 수성지회 도반, 전 필리핀 정토회 대표가 삽니다. 이렇게 정토회 식구들과 좋은 이웃으로 지내게 된 건 덤입니다.


사이숲 교사, 경전반과 불교대학 담당, 수성지회장을 거쳐 지금은 행복본부 모둠장을 하면서 온라인정토회가 놓치지 말아야 할 소통과 정보 공유를 위해 노력하는 김민숙 님. 논리적이고 공평함을 중요한 가치로 여기는 요즘 학생들을 이해하고 바라봐 주며 숨통을 틔워 주는 멋진 교사의 모습에 참 안심되고 좋았습니다. 교육계에 선한 영향력이 널리 퍼질 것을 믿어 의심치 않습니다.

글_손해경 희망리포터(경남지부 창원지회)
편집_도경화(대구경북지부 동대구지회)


  1. 사이숲 봉사 새터민 자녀들 공부를 봐주거나 문화생활을 함께 하며 돌보는 봉사 

전체댓글 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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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희순

민숙님~♡
글 잘 읽었습니다.^^
밤낮으로 수성지회를 위해 열심히 일하시던 모습이 눈에 선합니다.
고맙고 사랑합니다. 💗

2023-06-18 23:12:33

송석 김인규

"정토회"를 알고 있는 나 자신이 자랑스럽습니다.
항상 가까이 에서 늘~부처님의 말씀을 듣고 좋은 도반들과함께 마음의평화 를 얻으니 이 얼마나
행복하네요. 감사합니다 감사드립니다.

2023-06-18 21:14:45

성정은

행복학교로 가신후 한번도 볼수 없어 궁금했는데
이렇게 만나네요 ^^
첫 만남부터 지금껏 제게 언제나 도움을 주셨어요. 늘 들어주기만 하셔서 민숙님에 대해 잘 몰랐네요. 힘든 과정을 겪고 지금의 민숙님이 되신것, 저도 힘을 내어 봅니다. 감사합니다.

2023-06-18 19:59: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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