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토행자의 하루

부천지회
정토회를 통해 이루는 '청춘의 꿈'

대학생 시절, 학생운동을 하며 모두가 평등하고 정의로운 사회를 꿈꾸었던 전 부천지회 지회장 허남희 님. 허남희 님은 정토회가 추구하는 것이 곧 자신의 젊은 시절 꿈과 다르지 않다는 것을 봉사하며 알았습니다. 그 이야기를 풀어내는 미소가 맑고, 아름다웠습니다. 봉사를 통해 성장하고 남편 도반과 함께 공동의 가치를 추구하는 허남희 님의 수행담을 들어보겠습니다.

깨달음의 장1이 준 두 가지 선물

제가 정토회를 만나게 된 것은 1990년 소련 붕괴 이후 삶의 방향을 잃고 무척 힘들어할 때였습니다. 그런 제게 법륜스님 소식을 꾸준히 보내주는 선배가 있었습니다. 선배를 통해 정토회가 통일문제와 북한문제에 대해서도 관심을 가지고 한반도의 평화와 통일을 위해 꾸준히 실천하고 있음을 알았습니다. 선배의 추천으로 <깨달음의 장>에 갔습니다.

인도성지순례중 앙굴리말라탑터에서
▲ 인도성지순례중 앙굴리말라탑터에서

별생각 없이 참석한 깨달음의 장에서 새로운 삶의 방향을 찾고 있던 저는 두 가지 중요한 경험을 선물 받았습니다. 하나는 오로지 현재에 몰두함, 즉 밥 먹을 때는 밥 먹는 것에만 몰두하는 자세입니다. 다른 하나는 세상 모든 만물의 덕으로 제가 살아감을 깨달았습니다. 흔들리고 갈피를 잡지 못하던 제게 이 두 가지 선물은 제 삶이 다시 안정된 궤도에 오르는데 큰 도움이 되었습니다.

하지만 그 후 10여 년 넘게 정토회 법당을 찾아갈 여유도 없이 아이들을 키우며 바쁜 세월을 보냈습니다. 그러나 늘 마음속 한 모퉁이에는 언젠가 정토회를 찾아가 봉사하리라는 원이 있었습니다. 2008년 어느덧 아이들이 엄마 손에서 벗어나 혼자 밥 먹고 학교 다닐 수 있게 되었습니다. 당시에는 수도권에 은평구와 서초구에만 정토회 법당이 있었습니다. 당시 인천에 살던 저는 멀지만, 일주일에 한 번 서초 법당에서 봉사하기로 했습니다. 2008년 3월 18일은 아직도 잊을 수 없는 날입니다.

봉축법요식 전 연등제작 중 오른쪽 첫번째
▲ 봉축법요식 전 연등제작 중 오른쪽 첫번째

일주일에 한 번 봉사 하러 갔다가 결국, 중앙사무처와 행정처에서 10여 년간을 상근봉사자로 일하게 되었습니다. 10여 년을 무보수로 매일 출근하였지만, 이에 대해 부모님을 비롯한 가족 친지들에게서 어떤 비난이나 한심하다는 소리를 듣지 않았습니다. 학생 때부터 학생운동, 노동운동에 삶을 바치겠다며 살아온 덕분에 아무도 이상하게 여기지 않는 분위기였습니다.

봉사라는 값진 일

처음 중앙사무처에서의 일은 주로 천일결사 입재식을 준비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때는 오프라인으로 입재식을 하던 시절이었습니다. 수천 명이 모이는 행사를 치러야 하는 일 자체가 버거워서 그만두고 싶은 생각이 한두 번 든 것이 아니었습니다. 어떤 날은 서초 법당, 맞은 편의 중앙사무처 사무실에 들어가기 싫어 주위를 몇 번이나 뺑뺑 돌았던 일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경험이 쌓여 8차 천일결사 때는 힘들지 않았습니다.

부천정토회법당에서 총무업무 중
▲ 부천정토회법당에서 총무업무 중

하지만 봉사를 통해 저의 업식을 제대로 알게 된 것은 2020년 부천지회 총무와 지회장 소임을 맡으면서였습니다. 그 이전의 봉사는 아무것도 아니었습니다. 봉사자가 풍족하지 않았던 부천지회에서 매번 불교대학 담당, 경전대학 담당, 모둠장, 꼭지장 등의 소임을 맡겨야 하는 일은 제 업식을 정면으로 보게 했습니다. 상대로부터 한 번 ‘NO’란 대답을 들으면 두 번 다시 물어보지 않는 저는 다른 사람에게 봉사업무를 부탁하는 일이 무척 힘들었습니다. 일에 대해 무겁게 생각하는 것이 저의 업식이었습니다. 하지만 절실하게 되니까 제 업식도 어쩔 수 없었습니다. 몇십 명의 회원 모두를 개별적으로 전화해서라도 1명의 소임자를 찾아낼 각오를 하니 무서울 것이 없었습니다.

지회장 소임을 내려놓고 보니 아쉬운 점은 당시 일이 많기도 했지만, 일만 보고 사람을 볼 여유가 없었다는 점입니다. 많은 일을 해야 하니 일을 쳐내는 식으로 하던 중 지회장 소임 마감 6개월을 앞두고 류머티스 질환이 발병하였습니다. 스테로이드제를 복용하며 24시간 병과 씨름하면서 누워있으니 비로소 봉사할 수 있는 것이 얼마나 귀중한 것인지 알았습니다. 건강할 때는 느끼지 못했던 봉사의 감사함과 그 값어치를 절절하게 느꼈습니다. 3개월간 휴식으로 류머티스가 어느 정도 회복되었지만, 지회장 소임을 끝까지 할 것인지 말 것인지 갈림길에 섰습니다. 지금 돌이켜보니 남은 마지막 3개월을 마무리한 것은 참 잘한 일이었습니다.

부처님오신날 문경수련원에서 가운데
▲ 부처님오신날 문경수련원에서 가운데

무서운 것이 도반

지금까지 15년을 봉사해왔지만, 매일 아침 5시에 일어나 수행하는 것은 힘들었습니다. 온 가족이 늦게 자는 생활 리듬에 맞추어 살다 보니 새벽 5시에 일어나는 것은 육체적으로 무리였습니다. 그러나 무서운 것이 도반이었습니다. 남편이 2014년 드디어 불교대학에 입학한 것입니다. 남편은 한 번 하고자 하는 일은 무슨 일이 있어도 하는 뚝심이 있고, 자기주장이 강한 성격이었습니다. 불교대학 학생으로서 스승이 시키는 일은 그대로 실천하는 모범생이기도 했습니다.

남편은 불교대학 원서 접수하고 바로 다음 날부터 새벽 기도를 시작하겠다고 해서 입재하고 기도해도 된다고 말려야 했을 정도였습니다. 어쨌든 남편은 불교대학 입학부터 지금까지 하루도 빠지지 않고 새벽에 수행하고 있습니다. 그러니 그동안 이런저런 사정을 핑계로 새벽 수행을 미루어 왔던 저는 남편의 불교대학 입학과 함께 매일 새벽 수행을 하지 않을 수 없게 되었습니다. 정토회의 선배인 제가 오히려 후배인 남편에게 도움을 받는 상황이 된 것입니다.

남편이 도반이 되니 변화는 이것만이 아니었습니다. 집안일에 소극적이었던 남편이 법당에서는 솔선수범하여 행동하는 모습에 저도 몰랐던 분별심이 올라왔습니다. 제가 아무리 무거운 가방을 들고 있어도 한 번도 들어준 적이 없던 무심한 남편이 정토회에서는 자진해서 남의 가방을 들어주는 친절하고 따뜻한 도반이었습니다. 그동안 제가 남편에 대해 가졌던 고정된 이미지와는 전혀 다른 면을 보는 순간마다 당황스러웠습니다. 하지만, ‘내가 상을 짓고 있었구나’ 하며 스스로 돌아보니 조금씩 남편을 객관적으로 볼 수 있었습니다.

2017년 11월 5일 평화협상캠페인에서 가족과 함께
▲ 2017년 11월 5일 평화협상캠페인에서 가족과 함께

청춘의 꿈을 이루는 길

류머티스가 완전히 낫지 않았지만, 2023년 1월 코로나로 그동안 중단되었다가 재개된 인도 성지순례를 가기로 했습니다. 아는 만큼 보인다는 말처럼 9년 전에 준비 안 된 상태에서 참가했던 인도 성지순례보다 이번 순례는 많은 것을 느꼈습니다. 특히 베사카 부인이 지었다는 동원정사에 갔을 때였습니다. 베사카 부인이 부처님께 여덟 가지 청을 하는 장면을 독송할 때 눈물이 핑 돌았습니다. 일생 동안 비옷을 승가에 보시하고, 병든 비구에게 음식을 보시하고, 병든 비구를 간호하는 비구에게 음식을 보시하고, 병든 비구에게 약품을 보시하고, 죽을 보시하며, 비구니 승가에 목욕옷을 보시하는 베사카 부인의 무량한 보시처럼 저도 남은 일생 동안 꾸준히 봉사하며 살리라고 다시 원을 세웠습니다.

저의 젊은 시절과 지나온 세월이 비디오 영상처럼 빠르게 지나갔습니다. 제가 젊었을 때 꿈꾸고 소원했던 세상과 정토회가 추구하는 가치가 다르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평등하고 정의로운 세상, 한반도의 평화, 차별받지 않고 함께 행복한 사회, 내가 주인이 되는 삶.’ 원래 제가 가려고 했던 길을 정토회에서 발견했으니 이 공덕을 갚으며 살고 싶은 마음입니다.


허남희 님의 수행담을 들으니 1980년대~90년대 한국의 민주화를 위해, 다 같이 행복한 사회를 만들기 위해, 헌신했던 수많은 청춘들의 역사를 엿보는 것 같았습니다. 인터뷰 중에 노동운동을 하며 일생을 살리라 크게 각오를 하니, 일상의 소소한 일은 문제도 아니었다는 허남희 님의 말에서, 108배가 힘들 때 천 배를 하면 108배가 아무렇지 않게 되어버리는 이치가 떠올랐습니다. 인터뷰를 통해 저를 돌아보는 감사한 시간이었습니다.

글_ 이경분 희망리포터(서울제주지부 관악지회)
편집_ 홍윤미(인천경기서부지부 부천지회)


  1. 깨달음의 장 4박 5일 기간의 정토회 수련 프로그램. 평생에 한 번만 참여할 수 있음. 

전체댓글 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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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월해

부천지회에 너무나 훌륭하신 선배 도반님들이 많이 계셔서 저에겐 이 보다 더한 복이 따로 없습니다.

2023-09-13 13:06:50

해탈광 김희숙

오늘 허남희님 정토행자의 하루를 다시 읽어보니 감사한 마음이 한없이 올라옵니다.
늘 변함없이 도반들을 편안하게 품어주시는 관음보살의 모습으로 계셔주셔서 감사합니다.
뒤꽁지 붙잡고 따라 갑니다. ㅎ

2023-09-13 09:21:07

조윤정

선배도반님들의 보이지 않는 많은 노고에 감사함
을 깨닫고 갑니다. 이끌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받은 공덕 내어놓을수 있는 수행자가 되도록 하겠습니다.

2023-07-29 06:04: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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