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토행자의 하루

제주지회
'못살'에서 ‘보살’로의 변신
김문정 님 첫 번째 이야기

10차 천일결사 시작할 즈음 제주도에 드디어 세 번째 법당이 이제 막 자리를 잡았습니다. 세 법당을 기반으로 지금의 제주지회가 탄생했습니다. 제주 도반들과 함께 어떤 사연을 가지고 지금의 제주지회를 일궈냈을지 궁금합니다. 언제까지라도 정토회의 큰 원과 함께 나아 가겠다는 전 제주지회장 김문정 님의 수행 사례담, 들어 보겠습니다.

엄마의 변화 비법

저는 제주도가 고향이 아닙니다. 남편을 만나 2007년도에 제주도로 ‘시집’을 온 것 입니다. 정토회는 2015년 가을 불교대학으로 처음 만났습니다. 저를 전법한 사람은 바로 친정엄마입니다. 제 엄마는 평생 아빠와의 관계에서 굉장히 힘들게 살았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부터 되게 편안해졌습니다. 알고 보니 엄마가 법륜스님의 즉문즉설을 듣고 2012년에 불교대학에 다니면서 달라졌던 겁니다.

그 무렵 저는 결혼 초였는데 급격한 환경변화에 적응을 못 해 성인 아토피가 올 정도로 힘들었습니다. 손에서 진물이 줄줄 나는데 누구에게 도움을 청할 수도 받을 수도 없는 여건이었습니다. 둘째가 세 돌 되었을 무렵 SNS에서 우연히 정토불교대학 홍보문구를 보았습니다. ‘이거 우리 엄마가 다녔던 그거 아닌가?’ 엄마한테 바로 전화했습니다. 그날이 불교대학 입학 신청 마감 전날이었습니다.

“엄마 이거, 엄마가 다녔던 불교대학 그거 아니야?”
“맞다!”
“나도 가볼까?”
“당장 등록해라!”

많은 우여곡절을 뒤로하고, 걱정 반 설렘 반으로 바로 제주법당에 가서 입학했습니다.

천일결사 입재식에서 만난 엄마와 김문정님
▲ 천일결사 입재식에서 만난 엄마와 김문정님

더블클릭 장군들

2014년 4월에 최초로 제주 법당이 열렸고, 이어 2017년에 서귀포 법당이 열렸습니다. 드디어 2019년에 신제주 법당까지 열리면서 안정적인 삼각형 구도의 제주지회가 구성되었습니다. 신제주 법당 불사는 제 담당이었습니다. 법당 개원일이 2019년 11월 1일이었는데 코로나가 터져서 두 달 만에 바로 문을 닫았습니다.

2020년 정토회가 온라인으로 전환될 때, 컴퓨터를 못 해서 정토회 활동 못 한다고 손사래 치는 도반들이 많았습니다. 모둠 짜고 전법 활동하자 했을 때, 안 하겠다는 도반도 많았습니다. 온라인 법회 진행을 해야했기 때문에, 일대일로 천천히 하나씩 안내했습니다. 더블클릭부터 시작했습니다. 그때 연습했던 도반들이 지금은 착착 발표도 잘합니다. 다른 도반들이 못 한다고 빼면 “나도 한다. 다 할 수 있다!”라고 자기 경험에서 나온 말을 들려주니 정말 감동입니다. 그렇게 자기 극복을 경험한 도반들이 모여 제주지회가 더 단단해졌습니다.

제주 여자들이 생활력이 강하다는 말이 있습니다. 도반 중에 굉장히 적극적이고 야무진 장군들이 많습니다. 제주지회 담당 법사로 배정된 다른 지역 출신 법사님들이 제주 도반들과 함께 활동할 때마다 제주는 정말 열정이 대단하다고 말합니다. 우리는 원래 이렇게 살아서 잘 모르지만, 남들이 보기에 우리가 좀 활발하고 의욕적인가 봅니다.

법당 불사 발원문을 들고 새벽정진_맨 앞 김문정 님
▲ 법당 불사 발원문을 들고 새벽정진_맨 앞 김문정 님

그 사람은 그럴 수 있지!

저는 일을 잘해야 하고, 칭찬받아야 하는 업식이 매우 강합니다. 돈과 권력에는 별로 관심이 없는데 일 잘하는 능력, 여기에 제가 집착합니다. 그래서 저보다 일 잘하는 사람을 보면 부럽고, 시기 질투가 올라옵니다. 또 반대로 일이 조금 부실한 사람을 보면 저도 모르게 못마땅하고 무시하는 마음이 올라옵니다.

저를 적나라하게 비난했던 도반이 있었습니다. 저는 잘못한 게 하나도 없다고 생각하는데 그 도반은 저에게 너무 넌덜머리 난다며 소리 질렀습니다. 저는 그 도반을 몇 달간 미워했습니다. ‘어떻게 나한테 저런 말을 해? 내가 뭘 잘못했어?’ 온갖 억울한 마음이 올라왔습니다.

그런데 정진하면서 ‘그 사람은 그런 말을 할 수도 있지’를 느꼈습니다. 나와 관계없이 그 사람은 자기 업식에 걸린 것을 이야기했을 뿐입니다. ‘나는 그 사람한테까지도 인정받고 싶었구나, 그 사람한테까지도 잘 보이고 싶었구나, 내가 어리석어서 이렇게 몇 달을 억울해했구나!’를 알았습니다.

“그러셨어요? 죄송합니다.” 하면 될 건데 ‘아니 어떻게 나한테 그런 말을 하지?’ 이거였던 겁니다. 제 마음대로 모든 사람한테 인정받고, 잘 보여야 하고, 모두가 날 이해해줘야 한다는 엄청난 고집이 있었습니다. 이런 제 마음을 확연히 보았습니다. 그때는 마음이 힘들었지만, 이렇게 저를 비춰준 도반 덕분에 상대보다 더 독한 제 고집을 봤습니다.

저는 칭찬과 비난에 너무 많이 흔들리는 사람이었는데, 그때의 내 마음이 어떤지 알아차리니 칭찬과 비난에 덜 흔들렸습니다. 그 사람은 자신의 이야기를 한 것이니 비난도 더이상 상처가 되지 않고 제 마음에 집중할 수 있었습니다. 저한테는 대단히 큰 하나의 업식을 넘어섰던 경험이었습니다.

불교대학 홍보 활동_맨 앞 김문정 님
▲ 불교대학 홍보 활동_맨 앞 김문정 님

얼마나 좋은지 몰라서!

제가 일하기 좋아하고 잘한다는 이야기도 듣지만 일을 잘 나누지는 못합니다. 처음에는 도반한테 일감을 나누는 게 상대에게 부담을 준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내가 하고 말지!’ 했는데 이걸 선배도반들이 자꾸 지적하는 겁니다. 저는 ‘일이 잘되는 게 중요한 거 아닌가? 좀 더 잘하는 사람이 하면 되지 않나?’ 이런 마음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지회장 간담회에서 지부 법사님이 아주 따끔하게 “지금 자기가 우리 회를 뭐로 보고 그러냐, 이거는 자기도 망치고 회를 망치는 길이다.”라고 했습니다. 그때는 '내가 잘한다고 하는 게 잘하는 게 아닌 것'을 알고 충격받았습니다. 머리로는 알았지만 여전히 행동으로는 안 나눠졌습니다. 제 마음에서 탁 믿고 맡기지 못하는 겁니다.

나중에 저를 돌아보면서 제가 원하는 만큼의 결과가 나오지 않을까 봐 못 믿고 못 놓는 것을 알았습니다. 물론 도반을 위하는 마음도 있었습니다. 이걸 일로만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제가 그랬듯이 도반들도 일을 통해서 성장할 것이라는 생각을 하지 못했습니다. 저는 일하면서 깨지고 욕 들으며 성장해 놓고 도반에게는 이 좋은 기회를 못 나눴습니다.

“보살님 이것 좀 해주시면 안 돼요?” 물어서 못 한다고 하면 “알겠습니다.” 이랬습니다. 그런데 지금은 “보살님, 이거 꼭 하셔야 해요, 이게 보살님께 얼마나 좋은지 해보시면 알아요. 꼭 받으셔요!” 이렇게 바뀌었습니다. 이 일이 얼마나 좋은지 진짜로 알게 되니, 지금은 일을 잘 나눌 수 있습니다. 제가 전 같으면 부담될까 봐 소임을 못 맡길 텐데 지금은 누구에게나 아주 뻔뻔하게 맡깁니다. 왜냐하면 너무 좋은 걸 알기 때문입니다.

북한 어린이에게 옥수수 1만톤 보내기 활동_맨 오른쪽 김문정 님
▲ 북한 어린이에게 옥수수 1만톤 보내기 활동_맨 오른쪽 김문정 님


결혼과 함께 제주도로 이주해 큰 변화를 겪느라 힘들었던 주인공이 엄마의 비법 전수로 정토회를 만나게 되는 인연이 흥미로웠습니다. 소임을 통해 자신과 다른 사람을 점점 폭넓은 눈으로 바라보게 되는 생생한 변화는 감동적이었습니다. 일로 여겨 나누지 못했던 소임이, 도반의 성장 기회라는 것을 깨닫고부터 뻔뻔하게 나눌 수 있게 된 경험은 왠지 뭉클했습니다. 나 하나도 힘들어서 못 살겠던 '못살'이가 수행, 보시, 봉사를 통해 점점 중생을 구제하는 '보살'로 변신하는 이야기 같았습니다.

글_김경호 희망리포터(광주전라지부 전주지회)
편집_박은영(대전충청지부 천안지회)

전체댓글 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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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영지

일 '성장할 수 있는 기회'
저도 부탁하는 거 잘 못했는데 상대가 성장할 기회를 뺏는 거라니
새로운 관점을 배웠습니다
도반님 정말 감사합니다

2023-09-17 06:59:12

eugene

저도, 돈과 권력엔 관심없는데 일하는 것, 배우는 것 이런 것에 욕심이 있습니다. ^^
불안한 거나, 다른 사람에게 미안해서 일을 잘 못 맡기는 것 등등 비슷한 점이 많습니다.
저도 글 읽으면서 같이 편안해지는 느낌입니다.

2023-09-11 13:03:40

이현주

앞부분 읽다보니 저랑 꼭 같은 분이시네요. 저도 돈과 권력엔 관심없는데 일잘하는 능력에 매우 집착했습니다😅

2023-08-15 20:23: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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