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토행자의 하루

부천지회
고군분투하던 알파걸, 마침내 자유로워지다!

김옥희 님은 인터뷰 끝에 “제 이야기가 너무 밍밍하죠?”라고 했습니다. 하지만 평생 타인의 평가를 자신이라 여겼던 ‘착한 소녀’가 부처님의 가르침을 통해 자신을 인정한 순간은, <겨울왕국>에서 “렛잇고”를 부르던 엘사를 볼 때만큼이나 감동적입니다. 2020년, 정토회를 만나 현재는 부천지회 홍보 꼭지와 소사 모둠장 등의 소임을 하며 자유롭게 살아가고 있는 김옥희 님의 이야기를 전합니다.

내 삶의 일 순위는 일 그리고 일

저는 태어났을 때부터 몸이 약했습니다. 어린 시절의 기억이 병상에 누워 억지로 약을 삼키던 것밖에 없을 정도로 병약한 아이였습니다. 하지만 남아선호 사상이 깊이 뿌리 박힌 종갓집에 일곱 남매 중 넷째로 태어난 저는 공부 욕심 많고, 지기 싫어하는 딸이었습니다. 남자 형제들에게 뒤처지지 않으려고 코피를 쏟아가며 공부했고 어른들 눈에 띄려고 항상 바르게 생활했습니다.

어려서부터 선생님이 되는 게 꿈이었던 저는 교육대학에 진학했고, 대학교 1학년 때 미팅에서 지금의 남편을 만나 결혼했습니다. 남편은 서울에서 학교에 다니고 있었고 저는 고향에서 교직 생활을 하느라, 부부가 되었는데도 떨어져 사는 기간이 일 년이 넘었습니다. 선생님이 되는 꿈을 포기할 수 없었습니다. 그러다 아이가 생겨 남편이 결국 내려왔습니다. 고향으로 돌아온 남편은 10년 동안 건축설계 회사를 운영하며 바쁘게 일했습니다. 그러던 중에 1997년 IMF가 터졌습니다. 일거리가 사라진 남편은 사업체를 정리하고 다시 서울로 가야 했습니다.

얼마 후, 저도 수원으로 발령받았지만 도시 생활에 적응하는 일이 쉽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상황이 어려워질수록 ‘내가 끝까지 교직 생활을 해야겠다’라는 생각이 들면서 승진 욕심이 생겼습니다. 대부분 삼십 대부터 승진을 준비하기 시작하는데, 저는 마흔다섯 살에 승진하기로 마음먹었으니 준비가 늦은 편이었습니다. 하지만 남편은 도움을 주는 것은 고사하고 ‘승진은 무슨 승진이냐’며 크게 반대했습니다.

정토행자의 하루 인터뷰하는 김옥희 님
▲ 정토행자의 하루 인터뷰하는 김옥희 님

아프고 나서야 나를 바라보다

저는 제가 하는 일에 자부심이 강했지만, 그 안에는 제가 없었습니다. 어린 시절 대가족 안에서 눈에 띄기가 쉽지 않았던 저는 '잘한다'라는 소리를 듣고 싶었고, ‘실수하면 어쩌지?’ 하며 늘 걱정했습니다. 인정받기 위해 무엇이든 열심히 해야 한다는 강박을 가지고 살았습니다. 집에서는 착한 딸, 학교에서는 모범생, 결혼 후에는 현모양처, 직장에서는 좋은 동료가 되려고 아등바등했습니다.

일 중독에 걸린 것처럼 일하면서 아이도 보살폈습니다. 저는 일할 때가 가장 행복했습니다. 일할 때는 남들이 저를 인정해주었기 때문입니다. ‘어쩌면 그렇게 일을 잘하느냐?’라는 한마디를 들으려고 더욱 목을 맸습니다. 그렇게 치열하게 살다가 몸에 이상이 생겼습니다. 밥숟가락을 들 힘도 없을 만큼 피곤했지만, 병원에도 가지 않았습니다.

그러다 2년마다 받는 건강 검진에서 악성 종양이 발견되었고, 갑상선암 3기 진단을 받았습니다. 암 진단을 받고도 건강을 걱정하기보다는 ‘지금 승진을 못 하면 언제 하나?’ 하는 생각뿐이었습니다. 한창 뒷바라지해 주어야 할 아이와 집안 살림을 전혀 못 하는 남편도 걱정됐습니다. 당시 교무주임으로서 한창 바쁜 2월을 지나고 있었으므로 학교에 이 사실을 알릴 일도 걱정됐습니다. 그러나 교장 선생님은 당장 병가를 내고 수술을 받으라고 했습니다. 하지만 저는 바쁜 일을 모두 처리하고, 4월이 되어서야 수술을 받으러 갔고, 그제야 ‘내가 죽을 수도 있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광복절 임진각 평화통일기도, 가운데 김옥희 님
▲ 광복절 임진각 평화통일기도, 가운데 김옥희 님

병상에서 지난 삶을 되돌아보다

입원해 있는 동안 처음으로 제 삶을 돌아보았습니다. 평생 앞만 보고 달려왔던 삶이 너무나 허망하게 느껴졌습니다. ‘누구를 위해, 그리고 무엇을 위해 이렇게 살았나’라는 생각에 슬프기도 하고 억울하기도 했습니다. 다른 사람들 불편하지 않게 해주려고 정작 저 자신은 돌보지 않았던 것을 깨달았습니다. 그때부터는 몸을 돌보기 시작했습니다. 그동안 승진 준비와 집안일, 다섯 번이나 되는 제사까지 혼자 처리하면서 남편에게는 힘들다고 말하지 않았습니다. 자존심 때문에 동료나 친구들에게도 힘든 내색을 하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아프고 나서는 제가 그동안 잘못 살아왔다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습니다.

소사법당에서 만난 새로운 세상

경전반 졸업식에서 김옥희 님
▲ 경전반 졸업식에서 김옥희 님

2017년 3월 1일, 교감으로 발령받은 저는 설레는 마음으로 학교에 출근했습니다. 하지만 승진의 기쁨도 잠시뿐, 얼마 지나지 않아 학교에 큰 민원이 터졌습니다. 해결 방안을 찾느라 골머리를 앓는 동안, 학부모는 계속해서 담임 교사를 자르라고 요구하며 학교에 압박을 가했습니다. 학교와 학부모 사이에서 끙끙대며 잠도 못 자고 고민하던 저에게 남편이 즉문즉설을 권했습니다. 그때, 법륜 스님을 처음 알았습니다. 시간이 날 때마다 법문을 찾아 들으며, ‘그렇게 깊이 생각하지 않아도 될 것을 내가 너무 깊이 생각했구나.’ 하고 스스로 돌아보기도 했습니다. 그러는 동안 학교 일도 해결되었습니다.

이후 몇 해 동안 저는 즉문즉설과 함께 한결 가볍고 편안한 나날들을 보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운동을 마치고 돌아오는 길에 사무실처럼 생긴 소사법당을 발견했고, 불교대학 입학 신청서를 냈습니다. 그날 이후 저는 완전히 새로운 세상을 만났습니다.

어깨의 짐을 내려놓다

정토회를 만나 불교 공부를 하면서, 평생 어깨에 짊어지고 살아온 짐을 탁 내려놓을 수 있었습니다. 그동안 어깨에 힘을 잔뜩 주고서 갑갑한 틀에 스스로 갇혀 살아왔는데 그럴 필요가 없다는 것을 알게 된 것입니다. 잘나고 못난 것이 없고, 옳고 그름이 없다는 부처님 가르침이 저를 바꾸었습니다. 이런저런 의미를 부여할 필요 없이 길가에 피어 있는 풀꽃처럼 그냥 살면 된다는 것을 배웠습니다. 잘나고 못난 것이 없으므로, 실수하고 부족하고 결핍이 있어도 그것이 모두 나라는 것을 인정하기 시작했습니다. ‘내가 이런 사람이었구나’ 하고 알아갑니다. 저는 항상 좋은 사람, 모범적인 사람인 줄만 알았는데 그렇지 않다는 것을, 고집 세고 나 잘난 맛에 사는 사람이라는 것을 이제는 압니다.

경전대학에 다니면서 남편도 다른 시선으로 보게 되었습니다. ‘저 사람도 자기 업식대로 사느라고 애쓰고 있구나.’ 남편을 이해하게 된 후로는 크게 싸운 일이 없습니다. 남편이 저에게 한마디 하면, 예전에는 반드시 맞받아치곤 했습니다. 하지만 지금은 남편에게 “응, 당신 말이 맞아. 그런데 내 입장이 이러저러해서 이렇게 할 수밖에 없네.”라고만 합니다. 불교대학에 다니고 나서 제 말과 행동이 부드러워지니 남편이 가장 좋아했습니다. "불교대학 다음에는 무슨 공부를 하느냐?"라고 물어보더니, 경전대학에도 가고 전법활동가 교육도 받으라고 제 등을 떠밀 정도였습니다.

JTS 거리홍보캠페인, 오른쪽 두 번째 김옥희 님)
▲ JTS 거리홍보캠페인, 오른쪽 두 번째 김옥희 님)

수행의 목표는 겸손과 자비심

저는 아상이 강하고 아집도 셉니다. 수행해도 쉽게 사라지지 않는 업식을 깨닫고 ‘당신이 옳습니다. 무조건 옳습니다.’ 하며 1년쯤 기도했더니 제가 시비하고 갈등을 겪던 도반과도 잘 지내게 되었습니다. 소임을 하는 중에 경계에 부딪히고 분별심이 일어나면 ‘내가 문제구나. 내가 또 시비하고 있구나’ 하고 알아차립니다. 분별심은 여전하지만 그래도 나아진 것이 있다면 과거에는 나를 돌이키기까지 며칠 걸렸지만, 요즘은 그 시간이 조금 짧아졌다는 것입니다.

지금 저의 첫 번째 수행과제는 겸손해지는 것입니다. 지금까지의 저는 스트레스를 잔뜩 받아가며 최선을 다해 살아왔지만, 저 잘난 맛에 살았던 것도 사실입니다. 37년간의 교직 생활을 은퇴한 저는 정토회 소임을 할 때도 남을 진두지휘하려는 습이 튀어나오곤 합니다. 그럴 때면 ‘아, 내가 여기서도 교장인 줄 아네?’ 하고 알아차리려 합니다. 두 번째 수행과제는 분별심을 줄이고 자비심을 좀 더 내는 것입니다. 상대를 이해하고 인정하는 자비심이 부족하다는 걸 알았기 때문입니다. 또, 정토회 환경, 복지, 평화 실천을 해나가다 보면, 나만 좋은 것이 아니라 모두가 같이 좋아질 것이라는 믿음이 있습니다. 그래서 이 길을 계속 걸어가려고 합니다.


이야기를 듣는 내내 제 머릿속에는 당차고 똘똘한 ‘소녀, 옥희’가 떠올랐습니다. 딸로 태어난 사람들에게 쉬이 기회를 주지 않던 세상이었기에, 김옥희 님은 더욱 고군분투할 수밖에 없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정토회를 만나 나비가 고치를 뚫고 나오듯 자유로워진 김옥희 님을 보며 불법의 위대함을 느낍니다. 당신처럼 저도 자유로워지겠습니다.

글_윤자형(인천경기서부 인천지부)
편집_홍윤미(인천경기서부 부천지회)

전체댓글 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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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숫대야

자비와 겸손~고개가 끄덕여집니다~~고맙습니다()

2024-03-26 07:33:08

장영지

귀한 사연 전해주시고 수고해주셔서 감사드립니다.
사연을 읽고 슈퍼우먼인 친구가 생각났습니다.
내려놓고 가벼워지는 연습을 하지만 쉽지 않습니다.
함께 하는 도반님들 덕분에 즐겁게 그 길을 가는 중입니다
잘 쓰일 수 있도록 수행 정진하겠습니다

2023-10-02 07:04:29

고명희

모둠장님, 이야기 잘 보았습니다. 열정적으로 살아오신 여정이 부처님 법 만나는 길이었나 봅니다. 그 길에서 만난 인연에 감사드립니다.

2023-09-16 18:29: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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