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토행자의 하루

의정부법당
깊어지는 괴로움 속 자유를 맛보다

부모님의 잦은 싸움은 어린 시절 극심한 공포와 불안을 느끼게 했습니다. 도망치고 싶은 친정에서 결혼으로 벗어났으나, 다시 친정과 가까이 살면서 쏟아지는 어머니의 넋두리는 저를 다시 열 두살 어린아이였던 괴로운 시절로 데려가곤 했습니다. 깊어지는 괴로움 속에서 정토회를 만나 자유를 맛보게 된, 의정부 법당 강영란 님의 이야기를 함께 합니다.

괴로운 곳, 벗어나고 싶은 곳

가진 것 하나 없는 가난한 집의 셋째 딸로 태어나, 부지런한 부모님 덕분에 큰 어려움 없이 살았습니다. 오롯이 사 남매 뒷바라지에 매진한 부모님께 고마운 마음 말고 무슨 문제가 있을까 싶지만 제가 열두 살 되던 무렵의 기억이 오랫동안 저를 옭아매었습니다.

법당 연등 만들기(왼쪽 첫 번째 강영란 님)
▲ 법당 연등 만들기(왼쪽 첫 번째 강영란 님)

아버지가 운영하는 작은 가게가 점차 번창해 갈 즈음, 아버지가 극심한 통증을 호소하여 병원을 찾았으나 병명은 나오지 않았습니다. 아버지는 그나마 입원하고 있으면 통증이 사라진다며 병원에 사정해 입원해 있었습니다. 어머니는 아버지의 알 수 없는 통증이 마음에서 비롯된 것으로 생각하고 마음을 편하게 해주려 했습니다. 여행을 가든 뭘 하든 편히 놀러 다니라 했고, 아버지는 낚시로 마음을 달랬습니다. 그러다 지인의 소개로 춤을 배우면서 외도를 시작했습니다.

아버지의 외도로 부부싸움이 잦았고, 이를 지켜보던 저는 유독 극심한 공포를 느꼈습니다. 그런데도 어머니는 아버지 없는 아이를 만드느니, 외도하는 남편이라도 남편 그늘이 낫다는 생각에 이혼은 할 수 없었다고 합니다. 아들과 겸상은 해도 딸과는 절대 겸상하지 않는 엄한 아버지는 제 마음에서 점점 멀어졌고, 힘들어하는 어머니가 안타까워 친정은 괴로운 곳, 벗어나고 싶은 곳이 되었습니다.

그러다 술도 마시지 않고, 권위적이지 않은 남자를 만나 결혼해 친정을 벗어났습니다. 새로운 곳에서 시작하는 신혼생활은 평온함 그 자체였고 안정감 속에 세 아이 낳고 무탈하게 지냈습니다. 사정이 생겨 친정 가까이 이사를 하게 되었고 왕래가 잦아졌습니다.

저를 만나면 쏟아지는 어머니의 넋두리로 사라진 줄만 알았던 공포와 불안이 되살아나 저는 열두 살 소녀의 마음으로 되돌아갔습니다. 그때는 어려서 속수무책이었지만 이제 어른이니 해결할 수도 있겠다싶어 부모님을 따라다니며 노력했습니다. 그러나 해결되기는커녕 버겁기만 했고 그럴수록 점점 괴로워졌습니다.

인도성지순례 중 조원들과 함께(첫 번째 사진 왼쪽 두 번째)
▲ 인도성지순례 중 조원들과 함께(첫 번째 사진 왼쪽 두 번째)

비로소 자유를 맛보다

서점에서 우연히 발견한 《스님의 주례사》를 읽고, 마치 사막에서 오아시스를 만난 듯 하염없이 기쁨의 눈물을 흘렸습니다. 그 뒤로 스님의 모든 책을 사서 읽고 이어서 유튜브 즉문즉설도 보기 시작했습니다. 제가 주변 일을 문제로 삼아 무겁게 받아들이고, 해결해야 한다는 강박감에, 자신을 괴로움의 구렁텅이에 몰아넣는 성향이 있음을 자각하게 되었습니다. 스님의 말씀에 큰 울림이 있었지만, 다른 절에 다니고 있어 정토회에 갈 생각은 하지 못했습니다.

가랑비에 옷 젖듯 유튜브를 보며 지내던 어느 날, 다가가기 어려웠던 아버지와 긴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긴 외도로 어머니를 힘들게만 하던 아버지가 아닌 한 남자의 이야기.

아내를 아끼고 사랑했지만, 무속인에게 의지하는 아내를 지켜보는 마음이 답답했다 합니다. 아픈 남편을 고치겠다는 일념으로 무속인의 말에 의지해, 남편에게서 귀신을 쫓겠다며 온 동네 사람들 보는 앞에서 멍석말이했던 사건. 그 일로 아버지는 큰 상처를 받았고, 남자로 위엄을 잃은 것 같아 무척이나 힘들었다고 합니다.

인도성지순례 중 주인공
▲ 인도성지순례 중 주인공

외도의 상대를 친구라 칭하며 친구와 친하게 지냈다고 표현하는 아버지를 이해하는 마음이 생기니 수십 년 동안의 미움이 녹아내리기 시작했습니다. 2년 후 아버지가 사고로 돌아가시기 전까지, 스님의 말씀을 들으며 아버지를 이해하는 시간이 주어져 참으로 고마웠습니다.

어머니는 오랜 기간 불자였지만 기복신앙에 가까워 집안의 대소사를 무속인에 의지해 결정하는 일이 많았습니다. 사 남매는 잘 성장했고, 가정 형편도 나쁘지 않았기에 어머니는 이 모든 것이 기복신앙과 무속인의 방편 덕분이라고 굳게 믿었던 것 같습니다. 이러한 어머니의 믿음은 가까이 사는 저에게 강요되었습니다.

직장을 그만둔 남편을 두고 지장기도를 해야 하느니, 부처님 전에 가서 빌어야 하느니 하며 무속인의 집, 철학관 등 이리저리 끌고 다니는데 그 당시에는 제가 어리석어 의심 없이 따랐습니다. 그랬던 제가 정토회 불교대학에 들어와 부처님 법 만나 이치를 배웠습니다. 부모님을 챙길 수 있어 챙기면 좋지만 꼭 의무는 아니라는 말씀이 저를 숨 쉬게 했고 친정엄마로부터 벗어나 비로소 자유를 맛볼 수 있었습니다.

내 안의 나를 만나다

불교대학을 다니면서 배우면 꼭 실행해 보는 성격이라, 매주 주어지는 수행연습을 가족과 함께 실천하며 생각지도 못한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화목한 가정을 꿈꾸었기에 삼 남매 앞에서 남편과 한 번도 큰 소리 내 싸운 적 없었고, 좋은 엄마가 되기 위해 각종 세미나 및 부모 수업을 참여하며 노력했기에, 우리 가정은 어느 가정보다 행복하다고 생각했습니다.

둘째 아이가 발달장애지만 주말마다 가는 온 가족 나들이가 훗날 자립할 수 있는 훈련으로, 가족 간 추억을 쌓는 시간으로 약이라고 생각했는데, 그건 저만의 생각이었습니다. 발달장애가 있는 동생을 책임져야 한다는 생각에 장녀로서 느꼈을 큰딸의 압박감, 부모님처럼 살지 말아야겠다는 생각으로 꾹 참고 살았던 저, 아픈 딸을 생각해 자신을 희생하고 참기만 했던 남편. 친정 부모님으로부터 자유로워지자 가족을 통해 풀어야 할 숙제들이 물밀 듯이 밀려왔습니다.

인도성지순례 중
▲ 인도성지순례 중

천일결사1 기도에 입재해 수행정진하며 자신을 알아가던 중 정일사2, 졸업수련을 통해 수행 점검을 받을 기회가 있었습니다. 아버지를 이해하는 만큼 엄마에 대한 미움이 커졌다는 이야기에 미움의 대상이 바뀐 것뿐이라는 것, 아이들을 잘 키우기 위해 노력했고 화목한 가정을 이룬 것 같았지만 결국 제 방식대로 고집하고 가족들을 좌지우지하며 휘두른 것뿐이라는 말씀에 머리가 멍해졌습니다. 저는 숨죽인 가족들 마음을 보지 못한 독불장군이었습니다. 날카롭지만 따뜻한 위로를 받은 수행 점검은 스스로를 돌아보고 부지런히 수행정진하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둘째 아이가 발달장애라는 진단을 받고 '부모 다 정상이고 가족력도 없는데 왜?'라는 물음표만 가득해 인정하기 쉽지 않았습니다. 우두커니 있을 수만은 없어서 발달장애 치료 센터를 찾았고 다행히 열정적인 원장님을 만나 17년간 치료를 받았습니다. 아이보다 부모가 깨어 있어야 한다며 각종 부모교육을 추천해 주어 아이의 생각을 끌어내 들어줄 수 있는 수준은 되었습니다. 지금 딸은 설거지, 밥과 간단한 요리는 합니다. 자립할 수 있도록 이끌어준 원장님과 아이의 교육에 도움 준 많은 분을 생각하며 조금이라도 사회에 갚고 싶어 야학 봉사를 합니다.

정회원 간담회(뒷 줄 중간 강영란 님)
▲ 정회원 간담회(뒷 줄 중간 강영란 님)

남은 내 삶은

앞으로는 불법 만나 받은 은혜에 회향하는 삶을 살고자 합니다. 현재 법당 교육연수담당과 봄불교대학 꼭지를 맡고 있는데, 봉사를 하다 보면 잘하지 못 할까봐 물러서는 마음이 일 때도 있습니다. 이런 마음이 어릴 적 결핍으로 인해 칭찬받고 싶은 욕구에서 비롯됨을 알기에 ‘내가 그렇구나. 오랜 습이구나.’ 하고 다만 알아차립니다. 그러면서 점차 마음이 편안해집니다.

욕심과 집착이 많은 사람임을 알고, 최소한 가족을 휘두르거나 남 탓하는 삶을 살지 않기로 다짐했습니다. 그러기 위해 청정한 수행 공동체에 몸담아 함께 물들어 가고 싶습니다. 더 나아가 다름을 인정하고 흑과 백으로 구분지어 보는 카르마3를 녹이는 수행자가 되고 싶습니다.


경전반을 졸업하자마자 선뜻 법당의 큰 소임을 맡은 강영란 님이 어떤 분인지 궁금했습니다. 인터뷰를 통해 정토회에 오기 전부터 이미 수행자의 마음으로 행하고 있었기에 큰 소임도 가볍게 받을 수 있던 것 같습니다.
인터뷰를 마치며 어둠 속에서 반짝반짝 빛나는 반딧불이 떠올랐습니다. 봄불교대학 꼭지로 학생들을 아낌없이 지지하는 그 사랑과 관심이 반딧불의 예쁜 불빛처럼 세상을 환히 밝히는 날이 오기를 기대해 봅니다.

2020 하반기 온라인 정토불교대학 입학생 모집
▲ 2020 하반기 온라인 정토불교대학 입학생 모집

글_양미영 희망리포터(남양주정토회 의정부법당)
편집_도경화(달서정토회 구미법당)


  1. 천일결사정토회는 개인의 행복과 정토세상 실현을 위해 1993년 3월 만일결사를 시작. 3년을 정진하면 개인의 의식 흐름이 바뀌고, 30년(만일)을 정진하면 한 사회가 바뀔 수 있다는 믿음으로 3년(천일) 단위로 천일결사 정진을 이어오고 있음.  

  2. 정일사정토회를 일구는 사람들의 준말로 정토회 활동가들을 위한 수행 프로그램. 

  3. 카르마(karma) [산스크리트어] 미래에 선악의 결과를 가져오는 원인이 된다고 하는, 몸과 입과 마음으로 짓는 선악의 소행을 뜻함. 정토회에서는 '몸에 배어 고치기 힘든 습관'으로 사용함. 

전체댓글 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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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미자

보살님... 건강히 잘 지내시는군요^^
인도성지 순례때 밝고 씩씩한 모습만 뵙다가
지면을 통해 살아온 날들과
수행담을 읽게 되었네요.

친정아버님께서 돌아가시기 전에
아버지의 삶을 인정해 드릴 수 있었던
마음과 시간이 주여져 참으로 다행입니다.

보살님의 자유롭고 행복한 삶을 응원합니다.

2020-09-02 09:11:30

김태휘

유투브에스님의말씀에감동받았습니다
정말감사합니다

2020-08-28 17:28:18

감사합니다

수행담 잘 읽었습니다-
나눠 주셔서 감사합니다^^

2020-08-28 12:33: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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