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토행자의 하루

성북법당
'정토회는 사이비'라는 남편에게,
정토회 다녀오겠습니다

묵묵히 걸어가는 한 걸음 한 걸음이 다른 사람들에게 삶의 본보기가 되는 사람이 있습니다. 정토회와 인연을 맺고, 봉사와 소임을 맡았던 매 순간들이 자신을 돌아보는 연습이었다고 말하는 한정선 님. 직접 만나니, 성북 법당에서 본보기가 된 이유를 알 수 있었습니다. 반나절의 짧은 만남에서 충분히 느낄 수 있었던 한정선 님의 따뜻하고 담담한 수행담을 나누겠습니다.

어린 시절과 종갓집 맏며느리의 인정 욕구

저는 시골에서 4명의 언니와 쌍둥이 오빠, 그리고 남동생의 8남매 중 7번째로 태어났습니다. 아버지는 묵묵한 편이었고, 어머니는 자식들을 크게 혼내지 않았습니다. 큰 아픔 없이 컸지만, 늘 아들을 우선시하는 집안 분위기와 많은 형제, 자매들 속에서 자라다 보니, 인정받고 싶은 마음이 유난히 컸습니다. 언니들뿐만 아니라 저 역시도 초등학교 5학년 때부터 서울로 유학 간 오빠들을 뒷바라지해야 했습니다. 딸이라서 뒷전인 저는 ‘나도 잘할 수 있는데.’라는 마음이 항상 있었고, 쌍둥이 오빠들과 남동생이 부러웠습니다.

성북법당 도반들과 함께(앞줄 맨 왼쪽)
▲ 성북법당 도반들과 함께(앞줄 맨 왼쪽)

간호대학을 졸업하고 병원에서 간호사로 일했습니다. 간호사라는 직업이 저의 적성에 잘 맞아서 재미있게 일하던 중, 소개로 지금의 남편을 만났습니다. 남편은 키도 크고 잘생긴 데다가 아나운서 같은 목소리를 지닌 멋진 남자였습니다. 종갓집 장손인 남편은 말이 많지 않았습니다. 그 말 없음이 저를 무척이나 힘들게 했습니다. 특히, 시댁과 관련된 일은 항상 남편 혼자서 결정하고 저에게 통보하는 식이었습니다. 심지어 손아래 동서를 통해 알게 되는 경우도 많았습니다. 그런 일들이 반복되면서, 저는 자존심이 많이 상했습니다. 하지만, 저는 ‘그럴수록 내가 잘하면 되겠지.’하면서 시댁과 남편에게 인정받고자 더 열심히 했습니다.

무엇보다 종갓집 맏며느리로 결혼한 지 7년이 되도록 아이를 낳지 못한 것이 저를 힘들게 했습니다. 시부모님은 아들을 원했고 저 역시도 아들을 낳고 싶었지만, 마음만큼 쉽지 않았습니다. 남편은 저에게 울타리가 되지 못했고, 저 역시 가시 돋친 말을 남편에게 했습니다. ‘내가 이만큼 하는데, 남편이라면 이 정도는 해줘야지!’라는 생각이 강했습니다. 스스로 괴로움을 만들었고, 결국 마음의 문을 닫고 더이상 표현하지 않았습니다. 몇 번의 유산을 겪고, 결혼 7년 만에 어렵게 귀한 딸을 낳았습니다.

정토회와의 인연

한창 힘들 때 받은 심리상담에서 위로를 받아 마음이 많이 편안해졌습니다. 하지만, 저의 근본적인 어려움을 극복할 수는 없었습니다. 사춘기 시절에 겪은 저 자신의 억압, 원하는 것을 표현하지 못하고 남에게 맞추고만 살았던 저를 벗어나기는 쉽지 않았습니다. 저 자신을 있는 그대로 바라보지 못해서 생긴 어려움이 2016년 정토회 가을 불교대학에 입학하면서 서서히 풀렸습니다.

불교대학홍보(가운데)
▲ 불교대학홍보(가운데)

어릴 적 할머니와 어머니가 절에 다녀서 불법을 배우는 것이 어색하지 않았습니다. 불교대학에 다니면서 특히 좋았던 것은 수업 후의 마음 나누기와 도반들과 함께한 봉사활동이었습니다. 9-3차 〈천일결사1〉에 입재해서 ‘내 인생의 주인으로 살겠습니다.’라고 굳게 다짐했습니다. 2017년, 〈깨달음의 장2〉에 다녀왔고, 2018년에는 가을 불교대학 담당자를 했습니다. 이어서, 경전반, 인도성지순례, 동북아역사기행, 통일의병3, JTS봉사, 천일결사 모둠장 등 다양한 정토회 활동을 하면서 저의 삶에는 변화가 일어났습니다. 제 중심으로만 세상을 보던 습관에서 벗어나 상대방의 처지에서 보게 되니, 모든 것들이 새롭게 보였습니다.

남편과의 관계 변화

저의 이런 변화에 남편이 가장 많이 놀랐습니다. 처음에는 시도 때도 없이 나가는 저를 보고, “정토회는 사이비고, 그 스님은 땡중이야.”라며 몰아세웠습니다. 그런데도, 저는 남편에게 일부러, “오늘은 정토회 00행사에 갑니다.”라고 나가기 전에 말했습니다. 저의 고지식한 면과 남편에게 인정받고 싶은 마음에 그랬습니다.

인도성지순례(뒷줄 왼쪽에서 두번째)
▲ 인도성지순례(뒷줄 왼쪽에서 두번째)

전과 달리 직장에서도 저절로 저 자신을 굽혔지만, 유난히 남편에게는 그럴 수가 없었습니다. 〈새물정진4〉때, 선배와의 대화시간에 이 부분에 대해 질문을 했습니다. “남편이 아내에게 정말 미안하면 말할 수가 없을 것이다.”라는 선배의 말에, 남편을 이해했습니다. 요즘은 남편이 알아서 해주길 바라지 않고, “아내를 생각해서, 미리 이야기해주는 것이 좋겠다.”라고 제가 먼저 말합니다. 또한, “오늘은 약속이 있어서 나갑니다.”라고 남편의 반응에 집착하지 않고 담백하게 말하니, 저의 마음 역시 가볍습니다. 남편도 제가 정토회 활동하는 것에 대해 지금은 별 말이 없고 반대하지 않습니다.

직장에서 달라진 나

2017년에 다니던 직장을 잠시 쉬면서, 〈깨달음의 장〉에 다녀오고, 인도성지순례와 동북아역사기행, 통일의병 활동을 했습니다. 그 후, 2019년 1월에 지금 다니는 직장에 재입사했습니다. 쉬는 동안 다양한 정토회 활동을 할 때는 분별심이 많이 일어났는데, 그 2년의 세월이 저에게는 복을 짓는 기간이었습니다. 예전에 저는 ‘000는 이래야 한다.’라는 생각이 매우 강해서, 제 기준에 맞지 않는 사람과의 만남에서 늘 분별심이 생겼습니다.

인도성지순례(앞줄 왼쪽에서 두번째)
▲ 인도성지순례(앞줄 왼쪽에서 두번째)

그러나, 정토회 활동과 수행으로 제가 많이 달라졌음을 깨달았습니다. 우선, 사람들과의 관계가 좋아졌습니다. ‘저 사람으로서는 당연히 그럴 수 있겠구나.’라고 이해했고, 속상하고 어려운 상황이 생겨도 가볍게 받아들였습니다. ‘법당 총무라면, 직장 상사라면, 이렇게 해야 한다.’라는 관점이 ‘그 사람 처지에서는 얼마든지 그럴 수 있겠구나.’로 바뀌었습니다. 제가 어떤 사람인지를 알고 나니, 상대방도 잘 보입니다. 간호사로서 환자들에게 도움을 주고, 환자들이 고마워하니, 저는 큰 복을 누리고 있습니다.

마음의 장애를 이기는 방법

자활팀장으로 시작한 정토회 소임들은 어려운 도전의 연속이었고, 제 안 깊숙이 숨어있는 또 다른 저를 만나는 기회였습니다. 소임을 권유받을 때마다, 일단 “네, 알겠습니다.”하고 받아들였습니다. 마음속으로 ‘다 이유가 있으니, 소임을 나에게 주었겠지.’라고 생각했습니다. 가볍게 소임을 받아들였지만, 정작 소임을 맡은 후에는 ‘내가 잘할 수 있을까. 내가 맡아도 될까?’ 걱정을 많이 했습니다.

성북법당 도반들과 함께(맨 오른쪽)
▲ 성북법당 도반들과 함께(맨 오른쪽)

2년의 공백기 후에 맡은 천일결사 모둠장 소임이 버거울 때도 있었습니다. 많은 분량의 일을 급작스럽게 처리해야 하거나, 전달된 내용을 숙지하기도 전에 모둠원들에게 공유해야 하는 상황이 연속적으로 일어나면 불편한 마음이 생겼습니다. 익숙하지 않은 공유시스템을 사용하다 보니 놓친 부분들이 생겼고, 함께하는 도반들에게 무척 미안했습니다.

그리고, 저도 모르게 ‘사전에 설명을 좀 해주지.’라는 분별심이 일어나면서, 어김없이 첫 번째 화살을 상대에게 쐈습니다. ‘그래도 모둠장인데, 내가 모둠을 잘 이끌어야 했어.’라며 두 번째 화살을 저에게 쐈습니다. 그러나, 다행히도 즉시 ‘아차! 내가 또 틀에 갇혔구나! 모르면 물어보면 될 것을, 내가 잘해야 한다는 부담감을 가지고 있구나!’하고 깨달았습니다.

성북법당 도반들과 함께(뒷줄 가운데)
▲ 성북법당 도반들과 함께(뒷줄 가운데)

한편으로는, 지난 2년 동안 소임을 맡지 않아서, 제가 정토회의 변화된 시스템을 모르는 것도 당연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처음 불교대학 담당 소임을 맡았을 때 그랬듯이, ‘버겁기는 하지만, 이유가 있으니 나에게 소임을 주었겠지. 모르면 묻자.'하면서 저의 상황을 인정하고 받아들였습니다. 예전에는, 어릴 적부터 있었던 인정받지 못할 수 있다는 두려움으로 그런 제 모습에 실망했을 텐데, 지금은 저의 어떠한 모습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일 수 있습니다.

지난날 저는 인정받고 싶어 잘하려고 무던히도 애를 썼습니다. 아들이 아닌 딸로서, 종갓집 맏며느리로서 인정받고 싶었고, 특히 남편의 인정을 간절히 바랐습니다. 그러나, ‘내 인생의 주인으로 행복하게 살겠다.’라는 굳은 다짐 아래, 다양한 정토회 활동을 하고 꾸준하게 수행하면서, 그 인정받고 싶은 마음이 조금씩 사라졌습니다. 이렇게 삶이 가벼워졌기에, 전법도 가볍게 하고 있습니다. 지금은 친정 큰 올케가 경전반에 다니고 있는데 함께 공부할 수 있어서 정말 고맙습니다.

남편과 함께
▲ 남편과 함께

누군가 수행의 좋은 점을 물으면, 저는 망설임 없이 “내가 나를 인정하고, 내 인생의 주인으로 사는 것입니다.”라고 말합니다. 그리고, “당당한 수행자로서 늘 저 자신을 내려놓는 연습을 하며, 중생의 요구에 수순(隨順)하는 보살이 되겠습니다.”라는 저의 기도문도 자신 있게 소개합니다.


멀리서 한눈에 봐도 정토행자임을 알 수 있는 한정선 님. 대개의 사람은 살아가는 동안 수도 없이 흔들리고, 지금 가고 있는 길이 맞는지 자신에게 묻거나, 다른 사람을 통해서 그 답을 찾으려고 합니다. 그럴 때 한정선 님의 수행담을 떠올리면서, ‘내 인생의 주인’이 되는 멋진 모습을 상상하면 어떨까요?

2020 하반기 온라인 정토불교대학 입학생 모집
▲ 2020 하반기 온라인 정토불교대학 입학생 모집

글_김명옥_희망리포터(노원정토회_성북법당)
편집_성지연(서초정토회_서초법당)


  1. 천일결사 정토회는 개인의 행복과 정토세상 실현을 위해 1993년 3월 만일결사를 시작. 3년을 정진하면 개인의 의식 흐름이 바뀌고, 30년(만일)을 정진하면 한 사회가 바뀔 수 있다는 믿음으로 3년(천일) 단위로 천일결사 정진을 이어오고 있음.  

  2. 깨달음의 장 4박 5일 기간의 정토회 수련 프로그램.  

  3. 새로운 100년을 여는 통일의병은 화해·상생의 평화통일을 염원하는 시민들이 자발적으로 만든 비영리민간단체.
    통일의병학교 과정을 수료하고 강령과 정관에 동의하면 가입 가능하며, 정기회비를 내고 각종 통일의병 활동에 참여할 수 있음.
    홈페이지: http://www.tongilkorea.kr 

  4. 새물정진 정일사 프로그램을 마친 정토회 신규 활동가를 대상으로 하는 수련프로그램. 

전체댓글 22

0/200

깨어라

당신의 남편은 당신을 포기한 상태입니다!
인생의 주인이 되기 위해선 수행자로서 가정이 필요없으며 오로지 정토회 회관에서
깨달음을 얻어야 합니다!

2020-11-04 15:50:08

선승화

잘 읽었습니다^^
보살님, 홧팅!!

2020-08-29 10:11:47

감사합니다

잘 읽었습니다~
저도 제 인생의 주인이 되기위해 오늘도 가볍게 시작해봅니다 나눠주셔서 감사합니다^^

2020-08-28 12:42:54

전체 댓글 보기

정토행자의 하루 ‘성북법당’의 다른 게시글

목록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