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토행자의 하루

서울공동체
분쟁의 땅 민다나오를 산책하다 - 최정연활동가

간밤에 비가 내렸다. 만개했던 꽃잎들이 봄바람에 흩날렸다. 비 섞인 바람이 휘휘 부는데 맨 발의 한 사람이 정토회관에 들어섰다. 필리핀 민다나오 JTS의 최정연 활동가였다. 1년 만에 찾은 서울, 그녀는 그렇게 필리핀의 열기를 맨발에 담아 왔다.

환한 얼굴의 그녀를 만나면서 그 동안 우리들이 알고 있었던 필리핀에서의 JTS활동이 표면에 불과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몇 컷의 사진과 보고회를 통해서 알게 되는 학교 건축 이야기, 밝은 아이들에 대한 이야기, 먼 거리를 걸어서 고생했다는 이야기의 이면에는 <평화, 전통문화보존과 계승, 공동체 그리고 사람>이 있었다.


민다나오에서 JTS는 주로 어떤 활동을 하나요? 빈곤퇴치 차원에서 학교를 짓고, 마을을 지원하고 있다고 알고 있지만 상세하게 알고 싶어요.

민다나오 JTS의 목적은 교육지원, 마을 지원 및 개발 그리고 상호 교류를 통한 평화정착이 궁극 목적입니다. 민다나오에는 다양한 토착 원주민들과 종교적으로 무슬림 그리고 스페인 식민통치를 통해 들어온 크리스챤 사이의 갈등 그리고 이후 필리핀 정부의 무슬림에 대한 차별과 고립 정책 등으로 인해 분쟁이 아직 상존해 있어요.

이런 민다나오에 어떻게 평화를 만들어 갈 지 고민하는 가운데 우선 학교가 없는 곳엔 학교 건설을 하고 주로 깊은 산 속에 거주하고 있어 외부와의 소통과 지원이 어려운 곳의 주민들에게는 곡식건조장, 식수시설 등 마을 개발 지원 등을 하고 있어요. 그러던 중 그들만이 가지고 있는 독특한 음악과 춤을 고스란히 보존하고 있는 부족을 알게 되었어요. 송코라는 지역의 딸란딕 부족이었죠. 그곳에서는 전통문화 보존을 위해 상당한 노력과 정성을 기울이고 있었어요. 딸란딕 부족은 전통음악과 춤 뿐 아니라 전통의상, 공예품 그리고 그림, 조각품등이 아름답게 잘 보존하고 있고 이를 다음 세대에게 전수하는 데 열의와 사명감을 가지고 있었어요. 서구의 문화가 무분별하게 들어오고 있는 상황에서 이들의 노력은 감동이었어요. 그래서 그러한 노력을 기울이고 있는 그들을 적극지원하게 되었고 이번 3월에 준공하게 된 Hall of Peace가 그들의 희망과 미래를 만들어갈 전통문화를 보존하고 다른 다양한 부족과의 문화까지도 교류하는 센터라고 볼 수 있습니다.

그 동안 저희는 JTS의 활동 범위를 단순하게 생각하고 있었던 것 같습니다. 이런 지원활동의 의미라고 할까요? 좀 더 듣고 싶네요.

그들 원주민들이 살고 있는 곳은 척박해요. 푸르지만 실상 사람이 살기에는 힘들지요. 하루 세끼를 고스란히 고구마로 먹어야하는 작고 가난한 곳이지만 자신이 태어나고 자란 곳이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곳이고, 자기를 길러준 산과 강 그리고 부모와 친지들이 가장 소중한 사람들이라는 것을 아는 사람들은 그 삶에 대한 태도가 기본적으로 긍정적이에요. 자기 자신이 그처럼 소중한 존재인 것을 아는 사람들이죠. 그래서 내 이웃도 그와 같이 귀한 존재라는 것을 알아요. 그런 속에서 갈등은 일어나더라도 개방적인 관점에서 개선적인 방향으로 문제를 해결 발전해 나가죠.

송코의 딸란딕 원주민들은 그런 면에서 자신들의 전통문화를 지켜가는 자생력이 강하고 자긍심 또한 높습니다. 세계화 되어가는 세상에 대해서도 개방적인 태도를 가지고 배워 나가지만 흡수되지는 않아요. 그만큼 자부심과 긍지가 강하죠. 하지만 자신들의 문화가 소중하듯이 다른 문화들도 마찬가지라는 것을 알고 있으니까 교류 개방을 확대하고 연대하려는 노력을 지속적으로 하고 있습니다.

무엇보다도 이곳의 아이들이 맑고 당당하게 자신들의 노래와 춤 그리고 방문객들이 찾아오면 밝게 순수하게 받아주는 모습들이 그 표상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JTS는 단순히 어려운 곳의 사람들에게 물건이나 식량을 지원하는 단체가 아닙니다. 이 지구상의 인류는 한 공동체임을 알아서 어느 한 쪽에서 힘들고 어렵게 살아가는 사람이 있다면 당연히 서로 도와 함께 살아갈 수 있도록 공생하자는 공동체를 이루어 가야한다는 것이지요.

이 원주민들의 생활과 사상과 그들의 전통문화는 그런 의미에서 적극적으로 지원되고 보존되어야 한다는 뜻이에요. 그들에게 그 문화는 먹고 사는 것 만큼이나 중요한 것이거든요.

그렇군요. 원주민들이 가지고 있는 삶의 모습 자체가 평화를 지향하고 있는 듯 한데 이들 사이의 갈등의 원인은 무엇인가요? 정부차원에서는 지원을 하지 않습니까?

토착 원주민 마을은 자신들이 대대로 살아온 영토와 전통 문화 법 사회 규범의 독립성을 유지하기 위해 노력해왔어요. 이곳 원주민들은 중앙 정부에 대한 개념이 우리가 생각하듯 나와 연결된 국가의 개념으로 보는 것이 아니거든요. 스페인 식민 통치를 300년 이상 겪었고 현대에 이르러 미국 식민지 하로 넘어가면서 그들은 제국주의적 통치 지배의 아픔을 고스란히 겪었어요. 이것이 원주민과 정부 간의 가장 기본적인 갈등입니다. 이런 상황에서 정부 차원의 지원은 미약합니다.

JTS의 전통문화 보존과 계승에 대한 지원 활동이 새로운데요. 이러한 전통문화의 보존 문제는 현대사회에 미치는 영향도 크지요. 산업사회가 발달하면 할수록 나타나는 여러 가지 문제에 대해 그 해답을 공동체에서 찾으려는 시도가 많은데 여기 원주민의 삶과 긍지에 대해서 좀 더 소개해주세요. 또 이후에 이들 원주민들과 한국의 정토회는 어떤 연관을 맺으면 좋을까요? JTS의 활동성과와 연관해서 듣고 싶어요.

우선 이들의 전통문화가 우리나라에도 소개되어 우리 전통문화와 교류 되었으면 하는 바람이 있어요. JTS로서는 이런 원주민들의 문화를 다양하게 만나서 지원 교류할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전통문화 지원 사업은 빠르고 편리하고 편한 것을 추구해가는 세상의 큰 흐름 속에서 자연을 자신의 삶의 신앙으로 삼고 거칠고 억샌 손발로 땅을 일구어 자연의 논리에 어긋나지 않게 살아가려는 이들의 노력을 존중해요. 우리 또한 잊어버리고 잃어버리는, 계속 잊어버리게 되는 우리의 고향에 대한, 존재의 근원에 대한 물음과 그 성찰에 대한 노력과도 상통한다고 봅니다.

JTS는 기아, 질병, 문맹 퇴치를 모토로 하는 복지기구이다. 배고픈 사람은 먹어야 하고 아픈 사람은 치료받아야 하고 최소한의 교육은 받아야 한다는 누구도 무시할 수 없는 이 명제는 이제 그 나라의 문화와 전통과 역사와 만나 조화를 이뤄가고 있었다. 이것은 JTS가 단순한 지원만을 목적으로 하지 않는 다는 것을 말하고 있었다. JTS에 있어서 중요한 것은 JTS가 지원사업을 한다는 사실이 아니라 그 곳에서 사는 사람과 자연과 삶이다.

JTS사업에 대해서 새롭게 느껴지는 부분이 있어서 참 좋아요. 말씀이 감동이 되어 다가오는데요. (웃음) 이번에는 개인의 생활이야기를 듣고 싶네요. 활동공간에서 밥을 직접 해 먹으면서 채식을 하고 있다고 이야기를 들었어요.

처음부터 채식을 한 것은 아니었어요. 채식을 하자고 제안한 것은 비록 해외에 떨어져 있지만 법당에서 생활하듯 수행자로서 살아보자는 의미에서 시작되었지요. 처음에는 결사정진도 각자 따로 하고 포살법회도 안했는데 6개월쯤 지나서 인터넷 설비를 갖추면서 법회도 시작했어요. 지금은 아침이면 천일결사 정진도 함께 하고 매주 일요일 법회, 한 달에 한 번 포살법회도 하고 있어요. 그 이후로 계속 공양도 불가의 예법에 어긋나지 않도록 채식으로 하고 있어요.

함께 살다보면 좋은 점도 있겠지만 어려운 점이 생기잖아요. 생활의 어려움이나, 관계의 불편함 등 어떤 갈등이 있었어요?

(웃음) 제가 남자와 둘이 지내는 게 처음이어서(하하). 생활에 좀 불편한 점이 있었어요. 그때는 나누기를 해도 기분이 좋지 않고 풀리지도 않더라구요. 그런데 최근에야 깨달았어요. ‘내가 참 내 마음대로 살고 있구나.’ 하는 것과 ‘내 기준으로 상대에게 맞추지 않고 살고 있다.’는 것을 말이에요. 부끄럽지만. 그렇게 알게 된 기쁨이 있었어요.


쑥스럽게 이야기하는 그녀를 보면서 해외에서 활동하는 활동가들의 어려움을 어렴풋이 느낄 수 있었다. 언어의 어려움,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는 부분과 더불어 언제나 관계의 문제는 우리가 풀어나가야 할 과제였다.

언어소통에는 어려움이 없나요?

저를 아는 사람들이 많이 말씀하시는 것이 “정연씨는 영어를 잘 하고 못하고의 문제가 아닌 것 같다.”고 해요. 맞는 것 같아요. 음, 실제로 소통하는 부분에서보다 제 스스로 느끼는 저의 영어실력에 대해서 자신감이 없어요. 사무실에 있을 때는 한국 사람들과 있으니까 영어를 잘 안쓰게 되는데 그러면 영어실력이 늘지 않더라구요. 생활 자체를 영어로 하는 게 필요하다는 생각을 하고 있어요. 일을 하는데 집중이 필요한데 이 부분도 집중해야 가능한 것 같아요.

앞으로는 달라질 거에요. 실제로 저에게는 ‘영어실력향상’이라는 업무도 있거든요. 하하. 제 개인의 취향과 성격에 따라 게을리 할 수 없잖아요? 열심히 노력하겠습니다.


인터뷰를 하는 내내 우리들은 일과 열정, 삶과 수행에 대해 많은 이야기를 나눴다. 최근 언론에서 발표한 내용을 살펴보니 훌륭한 협상가가 되려면 상대의 ‘요구’를 넘어 ‘욕구’를 파악해야 한다는 내용이 있었다. 표면적으로 요구하는 내용에 묶여서 일을 그르치기보다 그 사람이 내면깊이 무엇을 요구하는지 마음을 알아야 한다는 뜻이었다.

사람이 일을 한다. 일은 사람이 하는 것이다. 함께 일하는 사람과의 관계가 중요하고 그러기 위해서는 그 마음을 읽을 줄 알아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민다나오JTS 최정연 활동가는 함께 일하는 여러 사람들 속에서 많이 배운다고 했다. 송코 마을의 다투 미키타이, 현지 활동가 도동과 트렐, 그리고 함께 부대끼며 살고 있는 활동가 최기진, 송현자. 많은 사람들이 그녀와 어우러지면서 민다나오를 밝게 하고 있다. 그녀가 마지막으로 한 이야기를 간단하게 정리하면 이렇다. 모든 일이 성공할 것이라는 기대를 버려야 한다. 어려움이 있고, 쉽게 풀리지 않는 일이기 때문에 나를 필요로 하고 나에게 이런 과제를 주는 것이다 라고 생각하면서 살고 있다고.

대담진행_정토회 홍보국
정리_임혜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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