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님의하루

2021.10.9. 천일결사 기도, 화엄반 입재식, 지회장과 모둠장 소임자 교육
“행복에 가장 큰 장애가 되는 세 가지”

안녕하세요. 오늘 스님은 하루 종일 네 번의 생방송 법회를 했습니다.

새벽 4시 30분, 두북 수련원 방송실에서 천일결사 기도 생방송을 하며 하루를 시작했습니다.

“정토행자 만일결사 중 제10차 천일결사, 제6차 백일기도 중 83일째 기도를 시작하겠습니다.”

삼귀의, 수행문, 참회, 108배, 명상, 경전 독송을 차례대로 했습니다.

사홍서원으로 천일결사 기도를 마친 후 스님의 법문이 이어졌습니다. 오늘은 한글날입니다. 스님은 한글이 우리 문화를 발전시키는 데 얼마나 큰 기여를 했는지 언급하며 우리가 알지 못하는 숨은 공로자들을 이야기해 주었습니다.

“오늘 한글날을 맞이해서 한글이 우리의 문화를 발전시키는 데 정말 큰 기여를 했다는 점을 다시 생각해봐야 합니다. 흔히 한글 창제를 생각하면 주로 세종대왕과 집현전 학자들이 조명을 받는데, 배후에는 스님들의 숨은 공로가 있었습니다. 또 한글이 만들어진 다음에도 널리 사용하는데 당시 스님들이 앞장섰습니다.

한글 창제에 기여한 숨은 공로자들

세종대왕과 학자들이 우리글을 만들고자 하는 뜻은 세웠지만 한글이 그들에 의해서만 만들어진 것은 아닙니다. 어떤 문자를 만들 것인지 참고자료를 살피는 과정에서 소리글자를 접해본 경험이 있던 스님들의 제안에 의해 소리글자에 대한 가능성을 열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글자 모양은 단군 시대에 사용되던 가림토 문자에서 원형을 찾아서 정비를 했습니다. 이렇게 보면 한글 이전에 이미 가림토 문자가 있었고, 또 그 이전에는 배달 시대에 이미 사슴의 발자국 모양을 본떠서 의사소통을 하는 녹도문이 있었습니다. 한국 사람이라면 우리나라의 역사, 우리말의 역사에 대해 이런 배경 지식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그래야 우리말, 우리글에 대해 더 큰 자부심을 가질 수 있습니다.

지난 역사를 보면 우리나라 사람들은 우리말, 우리글을 외면하고 오히려 다른 나라의 말을 좋아하는 경향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요즘 한류 열풍이 불다 보니 도리어 외국 사람들이 우리나라 말과 글에 관심을 보이기 시작합니다. 우리 영화를 보고, 우리 드라마를 보고, 우리 노래를 부르고, 우리 춤을 따라 춥니다. 우리 것만 좋다는 것이 아니라, 우리 것이 곧 세계적인 것이라는 자부심이 있어야 합니다.

세계화란 우리 것을 세상 사람들과 공유하는 것

세계화라는 것이 꼭 남의 것을 익히고 배워야 하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 것을 세상 사람들과 나누고, 그들이 우리 것을 따라 할 때 그것이 곧 세계화입니다. 우리 음식을 세상 사람들이 먹으면 그것이 곧 우리 음식의 세계화이고, 우리 문화를 세상 사람들이 즐기면 그것이 곧 우리 문화의 세계화입니다.

지금까지 우리는 남을 추종하고, 그들을 따라 하는 것이 세계화로 나아가는 것이라고 잘못 생각해 온 측면이 큽니다. 우리의 것을 세상 사람들과 공유하는 것이 세계화입니다. 그렇다고 우리 것만이 최고라고 자만하거나 편협하게 생각해서는 안 됩니다. 문명의 확산은 우리가 먹는 것을 다른 나라 사람도 같이 먹을 때 이루어지고, 우리가 입는 것을 다른 나라 사람도 같이 입을 때 이루어지고, 우리가 추는 춤을 다른 나라 사람도 같이 출 때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우리만 우리 것을 누리는 게 아니라 다른 나라 사람도 우리 것을 따라 해보니 좋은 줄 알고 함께 할 때 세계화가 이루어집니다. 문명의 확산을 위해서는 열린 자세가 필요하고, 그럴 때 비로소 우리가 문명의 중심이 될 수 있습니다.

우리가 빠른 속도로 발전할 수 있었던 이유는 우리말을 쉽게 표현할 수 있는 한글의 기여가 큽니다. 한글은 누구나 금방 배울 수 있습니다. 외국인이 우리나라 말을 배우는 건 어려운 편입니다만, 일단 말을 할 줄 알면 그걸 글로 표현하는 건 아주 짧은 시간에 할 수 있습니다. 이는 우리만 주장하는 것이 아니라 세계적으로도 그렇게 인정되고 있다고 합니다.

오늘 10월 9일 한글날을 맞이해서 우리 모두가 나라 사랑, 우리말 사랑, 우리글 사랑, 국민 사랑의 자세를 가져보면 좋겠습니다.”

이어서 오늘 읽은 경전의 내용을 해설해 준 후 법문을 마쳤습니다.

스님은 곧바로 두북 수련원을 출발하여 문경 수련원으로 향했습니다. 북쪽으로 올라갈수록 들판은 이미 누렇게 물들었고, 산은 단풍으로 서서히 물들어가고 있었습니다.

휴게소에서 우동 한 그릇을 먹은 후 차 안에서 각종 보고 서류를 읽으며 업무를 보다가 오전 9시에 문경 수련원에 도착했습니다.

주황빛으로 변한 감나무가 반갑게 스님 일행을 맞이해 주었습니다.


화엄반 예비 법사 교육 입재식

법사 교육 입재식에 참석하기 위해 10명의 예비 법사 교육 행자님들도 새벽부터 전국에서 출발해 문경 수련원에 도착했습니다.

화엄반 입재식은 코로나 방역 수칙을 준수하여 행자님들과 공동체 법사단만 참석한 가운데 모두 마스크를 쓰고 진행하였습니다.

10시 정각, 타종이 시작되자 행자님들이 발우를 불단에 올렸습니다. 1년 동안의 용맹 정진을 다짐하며 헌공, 예참, 반야심경 봉독을 거룩하게 했습니다. 대중 법사인 향광 법사님과 김은숙 정토회 대표님의 축사가 있은 후 행자님들은 스님에게 입재 법문을 청했습니다.

스님은 정토회에서 법사가 된다는 것은 어떤 의미인지, 어떤 자세로 법사 교육에 임해야 하는지, 한 시간 동안 법문을 해주었습니다.

“화엄반 입재식은 정토회에서 법사로 활동하기 위해 1년 동안 교육, 수련, 연수를 받는 분들의 출발점입니다. 먼저 이 교육에 참여해주신 열 분에게 축하와 환영을 표합니다.

정토회는 부처님의 바른 가르침을 대중들에게 쉽게 전달해서 그들이 일상생활 속에서 그것을 경험하여 삶이 보다 자유롭고 행복하도록 돕는 일을 하자는 뜻으로 창립되었습니다. 정토회에 참여하는 모든 분들은 부처님의 바른 가르침에 귀의하고, 그 가르침을 올바르게 이해해서, 그 가르침을 체험하고 실천해야 합니다. 그 결과 자신의 삶이 조금 더 자유롭고 행복해지는 경험을 해야 합니다. 이것이 바로 ‘수행’입니다. 정토행자라면 누구나 자신의 ‘수행’이 첫 번째로 해야 할 일입니다.

행복에 가장 큰 장애가 되는 세 가지

그러나 이렇게 자유와 행복을 향해 나아가는 데 있어서 장애가 되는 것이 있습니다. 첫째, 욕구, 욕망, 탐욕입니다. ‘무언가를 하고 싶다’, ‘무언가를 하기 싫다’ 하는 이런 욕구가 우리의 삶을 매우 왜곡시킵니다. 이 욕구는 우리에게 즐거움도 주지만 이 욕구로 인해 많은 인생의 괴로움이 발생합니다. 이 욕구로부터 자유로워지면 많은 괴로움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습니다.

일반적으로 ‘사람은 욕망의 노예’라고 표현합니다. 우리는 욕망의 노예에서 벗어나서 욕망으로부터 자유로운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먹고, 입고, 자는 ‘의식주’를 간소하게 하는 삶의 자세가 필요합니다. 의식주에 대해 지나치게 집착하게 되면 평생 먹고, 입고, 자는 문제로 인해 전전긍긍하게 됩니다. 욕망이 없어야 한다는 뜻이 아닙니다. 욕망은 없어질 수가 없습니다. 다만 욕망의 노예가 되지 말아야 합니다. 욕망에 목을 매고 따라다니는 것으로부터 벗어나야 합니다.

둘째, 태어나서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형성된 삶의 습관입니다. 다른 말로는 성질 또는 성격이라고 표현합니다. 우리는 성질에 매여 있습니다. 그래서 옛날 사람들은 성질을 천성이라고 했습니다. ‘저 사람은 저게 천성이다’, ‘저건 태어날 때부터 받은 거다’, ‘저건 전생에 지은 거다’ 이렇게 말했습니다. 그만큼 이 성질이라는 것은 바꾸기가 어렵습니다. 우리는 자기 성질대로 못하면 스트레스를 엄청나게 받습니다. 성질은 오랜 기간에 걸쳐 만들어진 것이기 때문에 쉽게 바꿀 수는 없겠지만, 대신 거기에 너무 매이지 말아야 합니다.

불교의 전통적인 표현을 빌리면, 욕망에 끄달리는 것을 ‘탐심(貪心)’이라고 하고, 성질대로 안 되어 스트레스받는 것을 ‘진심(瞋心)’이라고 합니다. 일상적인 표현으로 말하자면, 하나는 욕망이고, 다른 하나는 성질입니다.

셋째, 시비 분별입니다. 앞에서 살펴본 두 가지는 마음 작용이고, 세 번째는 생각 작용입니다. 옳다, 그르다, 맞다, 틀리다, 내 것이다, 네 것이다 하는 것이 바로 시비 분별입니다. 그러나 조금만 정신을 차리고 자세히 살펴보면 옳다고 할 것도 없고, 그르다고 할 것도 없고, 서로 다를 뿐입니다. 자세히 보면 맞다고 할 것도 없고, 틀리다고 할 것도 없고, 내 것이라고 할 것도 없고, 네 것이라고 할 것도 없습니다. 이치에 어두워서 시비가 생기는 것입니다. 이를 불교 전통적인 용어로는 어리석은 마음, 즉 치심(痴心)이라고 합니다. 치심은 ‘내가 옳다’ 하는 집착에서 일어납니다.

우리는 주로 이 세 가지에 매여 노예 생활을 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늘 삶이 괴롭습니다. 작게는 의식주에 묶여 있는 것이고, 크게 보면 자기의 욕망, 자기의 성질, 자기의 견해에 묶여서 인생을 고달프게 살고 있는 것입니다. 나만 고달프게 사는 것이 아니라 타인을 괴롭히면서 삽니다.

눈을 뜨면 이 세상은 감사할 일뿐입니다

그러나 이 탐진치 삼독(三毒)으로부터 자유로워지면 괴로울 일이 없습니다. 자기의 욕망, 자기의 성질, 자기의 견해로부터 자유로워지면, 괴로울 일이 없어지고, 괴로울 일이 없어지면 남을 시비할 일도 없고, 남에게 빌 일도 없고, 남을 원망할 일도 없어집니다. 오히려 감사할 일만 있습니다.

수행을 가르칠 때 ‘감사하라’ 하고 자주 말하는 이유는 억지로 감사하라는 게 아니라, 자기 문제가 해결되면 저절로 감사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한 끼 밥 먹는 것에 대해서도 감사하고, 추위에 떨지 않는 것만 해도 감사하고, 건강한 것만 해도 감사하고, 다리 한쪽을 다치게 되면 다른 한쪽을 다치지 않아서 감사하고, 사람뿐만 아니라 천하 만물에 대해 자연스럽게 감사한 마음이 일어나게 됩니다. 산이 푸른 것에 대해서도 감사하고, 물의 귀함도 알게 되어 감사하고, 공기의 귀함도 알게 되어 감사하고, 음식의 귀함도 알게 되어 감사하게 됩니다.

사막에 가보면 산이 푸른 것만 해도 금덩어리와 같은 가치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먼 거리를 걷다 보면 트럭 뒤에 타는 것만 해도 감사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배가 고파보면 고구마 하나에도 정말 감사한 줄 알게 되고, 심하게 아파보면 진통제 하나, 해열제 한 알에도 눈물이 나도록 감사하게 됩니다. 추위에 떨어보면 따뜻한 옷과 온기가 있는 처소가 얼마나 감사한지 알게 됩니다.

이처럼 산다는 것이 사실은 모두 감사할 일입니다. 그런데도 감사할 줄 모른다는 건 아직 자기 문제에서 벗어나지 못해서 그렇습니다. 자기 문제를 갖고 남 탓을 하고 있으니까 감사할 줄 모르고 늘 원망만 하게 되는 겁니다. 자기 문제가 해결되면 자연스럽게 마음이 가벼워집니다.

다른 사람이 봤을 때 좋은 일을 많이 하고 헌신적으로 사는 사람도 삶이 무거운 이유는 아직 자기 문제가 해결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좋은 일도 욕심을 내서 하고, 자기주장으로 하기 때문입니다. 삶이 가벼워지면 남의 이야기도 들을 수 있게 되고, 주위도 둘러보게 됩니다.

삶이 가벼워지면 저절로 하게 되는 전법

주위를 둘러보면 마치 봉사가 눈을 감고 세상이 어둡다며 고함을 치듯 아무 일도 없는데 사람들은 죽겠다고 고함을 치고 원망을 하고 난리를 피웁니다. 그들을 보면 ‘저 사람 눈만 뜨면 되는데’ 하는 생각과 함께 자연스럽게 연민이 생깁니다.

그래서 이 좋은 법을 전하고자 하는 마음이 저절로 일어나게 됩니다. 내가 이 좋은 법을 만나서 삶이 가벼워지는 경험이 없으면 전법도 억지로 하게 됩니다. 무거운 사명감을 가지고 하기 때문에 힘이 듭니다. 자기가 직접 경험을 해서 ‘이 법이 내 삶을 가볍게 했다’는 게 확실하면 마치 아프다가 어떤 약을 먹고 나았을 때 다른 사람이 아프다고 하면 ‘이 약 한번 먹어 봐’ 하고 가볍게 이야기가 나오는 것처럼 그렇게 전법을 하게 됩니다.

이런 전법이 자연스럽게 나오지 않는 건 아직 자기가 경험을 제대로 하지 못해서 그렇습니다. 자기가 체험을 하면, 자기 삶이 바뀌었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권하게 됩니다. 옛날 아플 때를 생각하면 병이 다 나은 지금이 아주 감사합니다. 그러다가 누가 아프다는 이야기를 들으면 ‘그 약 한번 먹어 봐’ 하고 말하게 됩니다. 이건 서로 경쟁할 일도 아니고, 돈이 드는 일도 아닙니다. 이 법(法)은 무한히 열려있기 때문에 인연만 맺어주면 됩니다.

이렇게 전법을 하는 사람을 ‘법사’라고 하는 겁니다. 법사가 따로 있는 게 아니라 법을 전하는 사람이 법사입니다. 법사란 ‘법을 전하는 사람’이라는 뜻이에요. 그런데 법을 배우는 사람의 입장에서는 법을 전하는 사람의 도움을 받게 되니까 ‘스승’이라고 부르게 되는 것이고, 그래서 끝에 스승 사(師) 자를 붙이는 것입니다.

그러나 법을 전하는 사람이 ‘내가 스승이다’ 이런 생각을 하면 안 됩니다. 그저 내가 이 약을 먹고 나았기 때문에 ‘너도 한번 이 약을 먹어 봐’ 하듯이 법을 전하는 거예요. 다른 사람이 이 약을 먹고 안 나아도 본전입니다. 이렇게 전법은 자연스럽게 이루어지는 일입니다.

무엇이든 가볍게 해 봅니다

법사가 되려면 관점이 분명해야 합니다. 부처님 당시로 표현하면 여러분은 출가 수행자의 자세를 갖추어야 합니다. 대승 보살로 표현하면 발심한 보살의 자세를 갖추어야 합니다. 선불교로 표현하면 초견성 한 선사의 자세를 갖추어야 합니다.

한마디로 법사가 되려면 관문을 발로 차고 나가는 기상이 있어야 합니다. 머뭇거리거나, 조마조마해 하거나, 미적거리는 자세를 버려야 합니다. 법사는 솔직해야 하고, 무언가 할 때는 거침없이 해야 합니다. 과격하게 하라는 게 아니라 무엇이든 가볍게 하는 자세가 필요합니다. 아침에 벨이 울리면 탁 일어나야 합니다. 일어났는데 너무 피곤하면 기도를 마치고 다시 잠깐 눈을 붙이는 한이 있더라도 일어날 때는 탁 일어나는 자세가 필요합니다.

그리고 법사는 지나간 일을 가지고 꽁해 있으면 안 됩니다. 순간 삐치는 마음이 생길 수는 있지만 꽁한 마음이 오래가서는 안 됩니다. 그 마음이 2차, 3차로 옮겨가서 실제로 일은 여기서 일어났는데 저 일까지 관두는 일이 벌어지곤 합니다. 그런데 수행자는 그러면 안 됩니다.

어제도 즉문즉설을 하는데 시누이한테 마음이 상한 것 때문에 남편과의 이혼을 고민한다는 질문자가 있었어요. 아무런 관계가 없는 문제를 연결 지어서 엉뚱한 방식으로 문제를 해결하려고 하는 겁니다. 그런데 우리의 마음이 그렇습니다. 여기서 마음이 틀어지면 기분이 확 나빠져서 아무런 관계가 없는 저것에도 불똥이 튀곤 합니다. 그런데 수행자라면 이런 일이 발생하지 않도록 잘 살펴야 합니다. 살다 보면 마음이 상할 수는 있지만 그것이 오래가서는 안 되고, 엉뚱한 곳에 불똥이 튀어서도 안 됩니다. 이런 관점을 가지고 1년 동안 공부해 나가시기 바랍니다.”

입재 법문을 마친 후 스님의 안내에 따라 법사 교육 행자가 되는 의식을 거행했습니다. 스님의 안내에 따라 총 세 번에 걸쳐 삼배를 했습니다.

“첫째, 여러분은 오늘부터 출가 수행자와 같은 행자가 되었기 때문에 먼저 불법승 삼보에 귀의해야 합니다. 집을 떠나 부처님, 부처님의 가르침, 그 가르침을 따르는 수행 공동체에 귀의하는 마음으로 삼배를 하겠습니다.”

“둘째, 현실에서는 여러분이 가르침을 받아할 대상은 정토회 법사단입니다. 법사님들께 삼배를 하겠습니다.”

“셋째, 태어나서 지금에 이르도록 여러분은 많은 은혜를 입었습니다. 나라의 은혜, 국민의 은혜, 가족의 은혜, 나를 낳고 키워 준 부모의 은혜, 결혼해서는 남편이나 아내의 은혜, 자식을 낳아 키우면서 그들이 잘 자라준 은혜, 이것이 내가 세속의 삶에서 입은 은혜였습니다. 이에 대해 감사의 마음을 표함과 동시에 이제 오늘부터는 세속을 떠나 부처님의 법에 귀의해서 만중생의 스승으로서의 역할을 해야 합니다.

오늘부터는 한 남자의 아내, 한 아이의 어머니, 한 노인의 아들딸, 대한민국 국민, 이런 것들로부터 벗어나야 합니다. 이제 법사가 되면 내 아들 네 아들 나누지 말고, 내 부모 네 부모 나누지 말고, 우리 집 너희 집 나누지 말고, 한국 사람 일본 사람 나누지 말고, 모든 세속적인 인연을 떠나서 일체중생을 평등하게 보는 관점을 가져야 합니다. 지금까지는 대한민국이 나를 보살펴주고, 우리 사회가 나를 보살펴주고, 우리 가족이 나를 보살펴주고, 부모가 나를 보살펴주었기 때문에 이에 대해 감사의 삼배를 함과 동시에 이제 앞으로는 가족에 매이지 않고 만중생을 평등하게 보는 수행자로 살아갈 것을 다짐하는 겁니다. 세속과 하직하고, 가족과 하직하는 마음으로 삼배를 합니다.”

행자님들은 화엄반 4기로서 몸과 마음을 다해 법사 교육에 임할 것을 다짐했습니다.

“앞으로는 수행자가 되어 잘 생활하시기 바랍니다.”

다 함께 기념사진을 찍은 후 점심 식사를 했습니다. 각자 집에서 싸온 도시락으로 식사를 한 후 1시부터 2부 행사를 시작했습니다.


2부에서는 행자님 한 명 한 명을 소개하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각자 정토회와의 인연과 활동, 입재 법문을 들은 소감,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본인이 느낀 수행과제에 대해 1인당 3분씩 발표를 했습니다.

마지막으로 스님이 정리 말씀을 한 후 화엄반 입재식을 모두 마쳤습니다. 행자님들은 담당 법사님과 모둠별로 소감 나누기 시간을 가졌고, 스님은 곧바로 명상원으로 내려와 오후 4시부터 전국 지회장 소임자 교육에 참가했습니다.


지회장 소임자 교육

온라인 정토회 정식 출범과 동시에 전국에서 새로 지회장이 선출되었습니다. 지난 5개월 간의 임시 기간 동안 모범적으로 지회를 운영해 온 분들의 사례담 발표를 들은 후 전국 지회장들은 스님에게 법문을 청했습니다.

스님은 온라인 정토회의 방향과 그 속에서 지회장의 역할에 대해 기조법문을 한 후 궁금한 점을 질문받았습니다. 현장에서 생기는 고민들에 대해 여러 가지 질문이 쏟아졌습니다. 질문 내용 중에서는 원칙과 융통성에 대해 묻는 내용이 많았습니다. 원칙을 너무 강조해서 융통성이 부족한 것 아니냐는 의견들이었는데, 스님이 이에 대해 관점을 잡아 주었습니다.

원칙과 융통성 사이에서 헷갈릴 때 어떡하죠?

“여러분들 질문을 보니 원칙과 융통성에 대한 질문이 많네요. 원칙이 바로 서면 융통성이 저절로 생깁니다. 비유하자면, 원칙은 ‘서울에 간다’ 하는 목표입니다. 융통성은 ‘당신은 어디에 살고 있습니까?’ 하고 물어서 출발하는 위치에 따라 가장 올바른 방법을 제시하는 것입니다. 목표는 바뀔 수가 없습니다. 정토행자가 가져야 할 목표는 ‘수행과 전법’입니다. 그런데 사람에 따라 모두 처지가 다릅니다. 모두가 서울에 가려고 하지만, 어떤 사람은 수원에서 출발을 하고, 어떤 사람은 인천에서 출발을 합니다. 각자 출발하는 위치가 다르니까 ‘당신은 동쪽으로 가세요’, ‘당신은 서쪽으로 가세요’ 이렇게 융통성이 발휘되는 겁니다.

이때 그 사람의 처지를 봐서 ‘당신은 서울 대신 수원까지만 가세요’ 이렇게 말하는 건 융통성이 아닙니다. 원칙은 목표에 도달하는 것입니다. 그 목표에 도달하는 방법은 그 사람의 조건과 처지에 따라 그에게 가장 도움이 되는 방법을 선택하면 됩니다.

전법활동가가 된 사람은 수행과 전법을 해야 합니다. 전법활동가가 된 사람이 몸이 아파서 전법 활동을 하지 못하는데도 융통성을 발휘해서 전법활동가로 계속 묶어 둬서는 안 됩니다. 전법이라는 목적을 달성할 수 없기 때문에 이때는 일반회원이 되었다가 몸이 다 나아서 다시 전법 활동을 할 수 있을 때 다시 전법활동가를 신청하도록 해야 합니다. 모둠장을 신청했다가 회사일이 바빠져서 모둠장을 맡지 못하게 되면 그때도 잠시 일반회원으로 활동하다가 여건이 될 때 다시 모둠장 신청을 하도록 해야 합니다.

서원행자 중에도 다른 일로 인해 지회장을 맡지 못하는 사람은 서원행자를 그만둬야 하고, 모둠장도 하기 어려울 때는 일반회원으로 활동해야 합니다. 그러다가 다시 목적에 맞는 활동을 할 수 있는 조건이 되면 그때 다시 신청하면 됩니다. 그때 모둠장을 할 수 있으면 전법활동가로 복귀하면 되고, 지회장을 할 수 있으면 서원행자로 복귀하면 됩니다.

이때 ‘그래도 정토회에 10년을 다녔는데’ 이런 이야기는 할 필요가 없습니다. 전법활동가는 전법을 할 수 있는 사람을 의미합니다. 지금까지 어떤 활동을 했는지와 관계없이 현재 전법을 할 수 있는 여건이 아니라면 전법활동가에 해당되지 않습니다. 이 관점이 분명하면 복잡하게 생각할 필요가 없습니다.

일반회원이나 전법활동가나 모두 수행은 해야 합니다. 그런데 수행과 함께 전법까지 할 수 있는 사람이라야 전법활동가가 됩니다. 전법을 할 수 있는 조건, 능력, 원(願)이 있는 사람이 전법활동가입니다.

어떻게 전법을 하는 것이 좋겠는지 연구할 때는 가능하면 전법활동가 모두의 의사를 받아들이는 것이 좋기 때문에 전법활동가 전원이 찬성하는 방향으로 의사결정을 해나가야 합니다. 이의가 있는 경우에는 삼의제를 통해 세 번까지 소수의 의견을 경청한 후 최종 결정을 합니다. 누군가 단독으로 결정하지 않고 전법활동가들의 의견을 최대한 반영하자는 취지입니다.”

현장에서 즉석 질문을 계속 받았습니다. 궁금증을 모두 해소하고 나니 두 시간이 훌쩍 지났습니다. 6시에 지회장 소임자 교육을 마친 후 잠시 휴식을 했습니다.

모둠장 소임자 교육

해가 지고 6시 30분부터는 모둠장 소임자 교육을 시작했습니다. 전국에서 모둠장으로 선출된 분들이 화상회의 방에 모두 입장하자 스님이 기조법문을 한 후 질문을 받았습니다. 현장에서 느낀 의문점에 대해 수많은 질문이 쏟아졌습니다. 질문과 대답을 모두 마치자 저녁 8시 30분이 되었습니다.

“오늘은 여기까지 하겠습니다.”

긴 시간 동안 질문에 답해 준 스님에게 모두 감사의 마음을 전한 후 소임자 교육을 마쳤습니다.

스님은 곧바로 차를 타고 문경 수련원을 출발해 봉화 수련원으로 이동했습니다. 1시간 30분을 달려 밤 10시 30분에 봉화 수련원에 도착했습니다.

내일은 하루 종일 봉화 수련원 전체를 예초하고 정비하는 울력을 한 후 다시 두북 수련원으로 돌아와 온라인 일요명상 생방송을 할 예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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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롱불

가림토 문자와 녹도문에 관한 설명을 듣고보니 우리나라의 역사, 우리말의 역사에 대해 너무 무지하여 부끄러운 마음입니다. 또한 전법을 어렵게 대하는 것은 저 자신의 문제가 해결되지않아서라는 말씀을 새겨 저자신을 살피겠습니다. 감사합니딘.

2022-05-02 17:23:25

굴뚝연기

[…소리글자를 접해본 경험이 있던 스님들의 제안에 의해 소리글자에 대한 가능성을…글자 모양은 단군 시대에 사용되던 가림토 문자에서 ……한글 이전에 이미 가림토 문자가 있었고, 또 그 이전에는 배달 시대에 이미 사슴의 발자국 모양을 본떠서 의사소통을 하는 녹도문이 있었습니다. ]한글창제와 소통의 숨은 공로자분들과,한글창제의 역사까지를 잘알고 있어야겠네요^^

2021-10-27 08:23:25

김애자

원칙은 목표에 도달하는 것입니다. 그 목표에 도달하는 방법은 그 사람의 조건과 처지에 따라 그에게 가장 도움이 되는 방법을 선택하면 됩니다.

2021-10-18 00:56: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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