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님의하루

2021.10.8 들깨 베기, 정토대전 회의, 금요 즉문즉설
“아내와 이혼한 지 2년, 다시 합쳐야 할지 고민입니다.”

안녕하세요. 두북 수련원의 아침이 밝았습니다.

새벽 기도와 명상을 마친 후 발우공양을 하고 7시 30분부터 농사일을 시작했습니다. 오늘은 들깨를 베는 날입니다. 날이 흐리고 비가 온다는 일기예보도 있어서 들깨를 베기에는 딱 좋은 날씨였습니다.

들깨가 가득 심어져 있는 산윗밭으로 올라갔습니다. 깻잎이 누렇게 변한 것이 대부분이고, 꼬투리가 검게 변한 것도 있었습니다.

구수한 들깨 향기를 맡으며 낫으로 들깨를 베기 시작했습니다. 스님이 낫으로 베면 행자님들이 베어진 들깨를 옮겼습니다.


“깨가 떨어지지 않게 살살 옮겨 주세요. 머리를 아래로 하고 옮기면 깨가 다 떨어져요. 머리를 위로해서 옮겨 주세요.” (웃음)

들깨를 베어낸 공간이 점점 더 넓어질수록 옮기는 동선이 점점 길어졌습니다.

“비닐을 한 장 깔고 여기에 깨를 모아 두고 한 번에 옮깁시다.”

바닥에 비닐을 깔고 그 위에 들깨를 모은 후 다 모아지면 나르는 것을 반복했습니다.

드넓은 깨밭이 어느 순간 텅 비었습니다. 사람 손이 무섭다고 모두가 한 마음으로 집중을 하니 금방 끝이 보였습니다.

작업이 끝나갈 무렵 빗방울이 한 두 방울씩 떨어지기 시작했습니다. 갑바를 씌워서 깨를 덮고, 그 위에 비닐을 덮고, 갑바의 끝에는 비가 새지 않도록 돌돌 말아서 그 위는 큰 돌로 고정을 시켰습니다.


마지막에 한 번 더 갑바를 씌워 단속을 한 후 작업을 마쳤습니다.

“수고했어요. 시간이 좀 남았는데 밤이 더 떨어졌는지 가볼까요?”

윗 밭 옆에는 큰 밤나무가 있는데 엊그제는 떨어진 밤이 거의 없었습니다. 혹시나 하면서 가보니 예상보다 굵은 알밤이 많이 떨어져 있었습니다. 스님의 바구니에는 또 밤이 수북이 담겼습니다.

비가 쏟아지는 가운데 두북 수련원으로 돌아왔습니다. 오전 10시 30분부터는 정토대전 성전팀 법사님들과 회의를 시작했습니다.


지난 시간에 이어서 화엄경 입법계품에서 정토대전에 포함시키면 좋을 내용들을 각자 발췌해 와서 발표했습니다. 양이 너무 방대해서 함께 읽는 데만 해도 많은 시간이 걸렸습니다. 각 경전마다 정토대전에는 어떤 내용을 넣을 것인지 스님의 의견을 들은 후 회의를 마쳤습니다.

해가 지고 저녁 7시 30분부터는 금요 즉문즉설 강연을 시작했습니다. 시도별 밴드를 통해 1400여 명의 시청자들이 생방송에 접속했습니다.

먼저 스님이 즉문즉설이 무엇인지 소개했습니다.

“정답이 있는 얘기를 가르치고 배우는 것은 '지식'입니다. 지식은 네이버나 구글에 검색을 하면 다 나오기 때문에 굳이 강의할 필요가 없습니다. 그런 지식적인 문제는 대화의 소재로 굳이 삼을 필요가 없어요. 그런데 어디에도 없는 내 인생의 고뇌는 어느 사전에서도 찾을 수가 없습니다. 그런 문제를 갖고 대화해 보는 것이 즉문즉설이에요. 대화를 하다가 의문이 안 풀리면 계속 질문하면 되고, 의문이 풀리면 ‘잘 알았습니다’ 하고 대화를 마치게 되는 게 즉문즉설입니다.”

오늘은 네 명이 사전에 질문을 신청하고 스님과 대화를 나누었습니다. 그 중 한 명은 이혼한 아내와 재결합이 고민이라며 스님의 조언을 구했습니다.

아내와 이혼한 지 2년, 다시 합쳐야 할지 고민입니다

“저는 올해 나이가 마흔다섯이고, 자녀가 다섯 명이 있는 아빠입니다. 현재 아내와는 이혼한 상태예요. 애들 엄마와 성격 문제로 6년을 줄곧 싸우다가 너무 화가 나서 남자로서 하지 말아야 할 손찌검도 했습니다. 이혼한 지 2년 되었습니다. 19살 때 아내와 결혼해서 어머니보다 더 오래 같이 살았습니다. 이혼의 이유에는 서로 오해한 것도 있고 여러 가지가 있어요. 지금은 다시 합쳐서 살고 싶은 마음이 드는데. 제가 아내를 아직도 이해하지 못하는 게 많아서 고민입니다.

아내의 성격은 불같고 뭐든지 자기 위주예요. 자기가 하면 괜찮지만 상대가 하면 안 된다는 식입니다. 싸우고 나면 제 말을 아예 들어주지 않습니다. 저도 영업을 많이 했지만 아내도 영업직을 오래 하다 보니 제가 말발로 이기지 못해요. 아내는 20년을 저와 살면서 한 번도 자기가 잘못했다고 사과한 적이 없습니다. 화가 많이 났더라도 아내가 미안하다고 한 마디만 해주면 화가 수그러들 수 있는데, 아내는 항상 ‘내가 뭘 잘 못했냐’ 하면서 쏘아붙여요. 그러다 보니 싸움이 길어집니다. 최근에 아내가 집에 자꾸 늦게 들어간다는 얘기를 듣고 그러면 되냐고 했더니, 이혼하고 남남인데 왜 간섭을 하냐고 해서 그 말에 마음이 상해 두 달 가까이 연락을 안 하고 있습니다.”

“아직도 미련을 갖고 있네요. 왜 미련을 갖고 있어요? 질문자가 말한 내용에 따르면 아내는 성격이 불같고 질문자를 이해해주지도 않는데 왜 미련을 가질까요? 이혼을 했으면 깨끗하게 아이 아빠로서의 역할만 하면 되잖아요. 아내가 늦게 들어오든 말든 그건 자신의 삶인데 왜 간섭을 해요? 간섭받기 싫어서 이혼했는데 이혼해 놓고 간섭하는 게 말이 되나요? 아직도 내 부인이라고 생각하니까 그런 행동을 하는 겁니다.”

“그건 맞습니다.”

“그렇다면 이혼을 왜 했어요? 부인 얘기는 안 들어보고 질문자의 얘기만 들어봐도 요즘 여성은 질문자랑 같이 살기 힘들어요. 자기도 영업하면서 술 먹고 사람 사귀듯이, 부인도 영업하고 친구 사귀고 술 먹고 늦게 들어오는 걸 인정해줘야 아내와 같이 살 수 있습니다. 이 문제를 풀려면 두 가지 길이 있어요. 첫째, 관점을 이렇게 가져야 해요.

‘그래, 애들 아빠 역할은 내가 착실히 할게. 너하고는 20년 살아봤는데도 서로 안 맞으니 남녀 관계는 끝이다. 그러나 애들 엄마와 애들 아빠로서는 친구가 되어 협조하자.’

둘째, 그게 아니라 아내와 다시 합치고 싶은 마음이 든다면, 아내에게 무릎 꿇고 이렇게 얘기하세요.

‘나는 너의 종이고, 너는 나의 여왕이다. 어떤 경우에도 이의 제기를 안 하겠다. 같이 살아만 주면 더 이상 간섭도 안 하고, 뭐든지 '알겠습니다' 하고 살겠다. 나도 힘들고 너도 힘들었는데, 생각해보니 내가 그동안 남자의 자존심을 세우고 살았던 것 같다. 성질이 날 때마다 나도 모르게 고함을 지르지만, 막상 떨어져 있어 보니 나는 너 없이는 못 살 것 같다. 그러니 우리 다시 결합하자. 앞으로는 절대로 간섭을 하지 않을게.’

이렇게 말한 후 아내가 다른 남자를 새로 만나기 전에 빨리 잡아야 됩니다. 부부가 서로 얼마나 좋았으면 열아홉 살에 결혼해서 애들을 다섯 명이나 낳았겠어요? 그러니 자존심 세우지 말고 무릎 꿇고 빌어서라도 같이 살아보세요. 길게 얘기해 봐야 끝이 안 납니다. 제3의 길은 없고 두 가지 길 밖에 없어요.”

“..........”

질문자는 고개를 갸우뚱하며 망설였습니다. 스님은 화통하게 대화를 이어나갔습니다.

“내 마누라한테 무릎 꿇는 게 뭐 그렇게 자존심이 상하나요?”

“자존심은 없어요.”

“결혼해서 같이 살려면 성격을 맞춰 줘야죠. 상대가 주장하면 뭐든지 ‘그래, 맞다. 네 말대로 해보자’ 이렇게 해야 합니다. 남자가 배짱이 없어 보이네요. (웃음) 두 가지 길 중에 어느 쪽으로 결정할래요?”

“무릎을 꿇을 수는 있지만, 사람이라는 게 쉽게 바뀌지 않잖아요. 마음은 먹었지만 제가 얼마나 바뀔 수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그런 정도로는 안 돼요. 전파상에 가서 전기충격기를 하나 사세요. 부인한테 전기충격기를 주면서 ‘만약에 내가 성질내면 이걸로 지져버려라’ 이렇게 말해야 합니다. 본인부터 딱 고칠 생각을 해야죠. 자녀가 다섯이나 있는 남자가 그 나이에 다른 여자를 새로 만나서 무슨 비전이 있겠어요? 한 번 생각해 보세요. 본인이 재벌도 아니잖아요.”

“다른 여자를 만날 생각은 아직 없습니다.”

“그래요. 애들 보기에도 늙어서 무슨 꼴입니까. 요즘 서른이 되어도 결혼을 안 하는 시대에 서로 얼마나 좋았으면 열아홉 살에 만나서 결혼을 했겠어요. 그러니 서푼 어치도 안 되는 자존심 세우지 말고 ‘너 없으면 안 되겠다’ 이렇게 딱 얘기하세요. 그리고 전파상에 가서 전기충격기를 사 와서 아내에게 선물로 주면서 이렇게 말하세요.

‘나도 모르게 또 성질이 나오고 간섭할 수는 있다. 그럴 때는 이 전기 충격기로 네가 사정없이 나를 지져버려. 약속할게.’

그리고 부인이 밖에 가서 다른 남자를 만나든 밤늦게 돌아다니든 일체 신경 끄겠다고 마음을 먹어야 해요. 이렇게 해서라도 아내와 같이 사는 게 낫지 않아요? 그렇게만 하면 나중에 스님한테 고맙다고 말하는 날이 올 겁니다.”

“잘 알겠습니다.”

“애를 다섯이나 낳았으면 상대가 특별하게 정신 이상이 아닌 이상은 다른 고려를 안 하는 게 좋아요. 부인의 성격이 괄괄한 정도는 좀 맞춰주고 살아봐요. 시대가 달라져서 '남자다' 이런 생각을 자꾸 하면 나만 힘들어져요.”

“그래도 술을 먹고 너무 늦게 들어오는 건...”

“늦게 들어오면 어때요? 남자들은 지난 몇 백 년을 늦게 들어오고 딴짓하면서 살았잖아요.”

“저는 집안일도 다 하거든요.”

“집안일은 당연히 다 해야 됩니다. 설거지 좀 해줬다고 생색내는 거예요? 아내도 질문자와 똑같이 영업직에서 일하는 사람이니까 당연히 늦게 들어올 수 있잖아요. ‘늦게 들어오면 걱정되니까 전화는 해라. 술 먹고 운전하지 말고, 내가 데리러 갈게’ 이렇게 말하면서 친근감을 표시해 봐요. 내일 당장 아내한테 전화하세요.” (웃음)

“네, 그렇게 하겠습니다.”

“한번 생각해 보세요. 애가 없거나 한둘 정도는 괜찮은데 다섯 명이나 되면 아내와 헤어졌을 때 일이 복잡해요.”

“스님 말씀대로 전기충격기로 안 지지려면 아내에게 잘해야 될 것 같습니다. 그런데 저도 제 성격을 어느 정도 아니까 잘할 수 있을지 모르겠어요.”

“말하는 거 보니 안 되겠어요. 지금 잘 될 것 같아도 현실에서 막상 해보면 안 되는데, 하기도 전에 안 되겠다고 하면 어렵지요. 그러면 그냥 포기하세요.

‘너와 나는 그냥 친구로 지내자. 애들 아빠와 애들 엄마로만 만나고, 남녀 관계는 끊자.’

미련을 갖지 말고 그냥 이렇게 입장을 정하세요. 그래야 그 여자 분도 자기 인생을 살 수 있으니까요. 나랑 20년 같이 산 사람인데, 자기 인생을 잘 살 수 있게 도와줘야죠. 질투할 걸 질투하고, 손해 끼칠 걸 손해끼쳐야죠. 아이 다섯이나 낳고 나와 그렇게 오래 산 사람인데, 비록 나와 헤어지더라도 그가 잘 살 수 있도록 도와줘야 그게 사람이고 의리죠. 나랑 헤어졌다고 미워하는 것은 남자답지 않은 태도예요. 알았죠?”

“네.”

“화끈하게 밀어주든지, 화끈하게 잡아서 같이 살든지, 둘 중에 하나를 정해야 합니다. 중간에 끼어서 이 눈치 저 눈치 보면 안 돼요.”

“알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이 외에도 다음과 같은 질문이 있었습니다.

  • 저는 시어머님을 신혼 때부터 24년째 모시고 살고 있습니다. 시어머님은 아들이 어떤 일을 해도 무조건 아들 편이고, 잘못된 것은 며느리 탓을 하시니 마음이 늘 괴롭습니다.
  • 시누이가 저를 도둑년 취급하고 자기 말 안 듣는다고 따귀 때렸던 일이 용서가 안 됩니다. 남편과 이혼을 하면 시누이를 미워하는 게 없어질까요?
  • 저는 명문대를 졸업하고 우리나라 최고의 공기업에 입사하였고, 남편은 교수였습니다. 그렇게 잘 나가던 제가 스트레스로 인해 조현병 비슷한 진단이 내려졌습니다. 현재는 식당에서 설거지 아르바이트를 하고 있습니다. 한순간에 모든 것이 무너져 내렸습니다. 어떻게 살아야 할까요?

대화를 다 마치고 나니 밤 10시가 다 되었습니다.

내일은 새벽에 천일결사 기도 생방송을 한 후 문경 수련원으로 이동하여 오전 10시에는 법사 교육 후보생을 위한 화엄반 입재식 법문을 하고, 오후 4시에는 전국 지회장 온라인 교육, 오후 6시 30분에는 전국 모둠장 온라인 교육을 할 예정입니다.

전체댓글 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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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윤경

크 역시 명쾌하심

2021-10-17 16:58:47

김민정

스님과 함께 있으면 너무 가벼워져요
이 가벼움을 놓치고 또 무거워지기가 대부분이지만 이 시간 만큼은 훌훌 날개를 답니다
스님 감사합니다

2021-10-13 19:37:48

ㅎㅎ

그냥 숙이겠습니다 감사합니다

2021-10-12 19:49: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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