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님의하루

2019.10.20 인도 다람살라(Dharamshala)
“인도 다람살라에 도착했습니다.”

안녕하세요. 스님은 2019년 INEB(International Network of Engaged Buddhist, 국제참여불교연대) 대회에 참여하기 위해 인도로 도착했습니다.

스님은 인도 델리에서 하루 밤을 보내고, 오늘 새벽 6시 30분 비행기로 출발하여 오전 8시에 다람살라 공항에 도착했습니다.

스님은 INEB 대회 전 내일 열리는 달라이 라마 법회에 참석하기 위하여 다람살라로 왔습니다. 전날 다람살라에 도착하여 있던 국제국 활동가들이 공항에서 스님을 맞이했습니다. 공항에서 올해 한국을 방문한 태국의 INEB 비구니 스님들과 대만의 요 박사님을 만나 반갑게 인사했습니다.

다람살라(Dharamshala)는 인도 서북부에 있는 도시로 달라이 라마가 중국의 암살 위협을 피해 티베트에서 히말라야 산맥을 넘어 인도로 망명한 곳입니다. 1959년에 이 곳 다람살라의 맥로드 간지(Mcleod Ganj)에 티베트 망명정부를 세웠습니다. 다람살라 공항은 다람살라의 낮은 지대에, 맥로드 간지는 다람살라의 1700m 고지에 있습니다. 다람살라의 아침은 한국 가을처럼 청명하고 선선한 날씨입니다.

택시를 타고 구불구불 가파른 절벽을 따라 45분을 달려 히말라야 산기슭에 있는 맥로드 간지에 도착했습니다. 숙소는 맥로드 간지에서 10분 정도 떨어진 박수(Bhagsu) 마을에 잡았습니다. 스님은 20년 전 다람살라를 방문했을 때 박수에 있는 폭포를 방문했었는데, 당시에는 이 마을이 개발되지 않아 집도 몇 채밖에 없었다고 합니다. 세월이 흘러 오지 마을은 가파른 산기슭까지 여행객을 위한 숙소들이 옹기종기 모여 있는 제법 큰 동네가 되었습니다.

숙소에 도착한 후, 국제국 및 JTS 봉사자들은 스님께 삼배로 인사드렸습니다.

인도 음식으로 간단하게 아침 식사를 하고, 10시 30분에 박수 폭포로 향했습니다. 박수 폭포는 맥로드 간지와 박수 마을의 수원지입니다. 산길을 따라 물을 운반하는 파이프가 연결되어 있었습니다. 짧은 산행이었지만, 히말라야 산의 일부답게 길이 가팔랐습니다. 모두 미끄러질세라 조심스럽게 한발 한발 옮겼습니다.


폭포 위에 도착하니, 인도 젊은이들이 신나게 물싸움을 하고 있었습니다. 스님은 가파른 물살 사이로 얼굴을 내민 돌들을 딛고 더 위로 훌쩍 올라갔습니다. 활동가들은 대부분 스님을 따라 바위를 오르는 일을 포기했습니다. 스님은 사람들이 없는 곳에 자리를 잡고 발이 시릴 정도로 차가운 물에 발을 담그고 세수를 했습니다.

폭포 위에서 폭포 아래로 내려오니 시원하게 물이 떨어지는 폭포를 볼 수 있었습니다. 잘 정리된 길을 따라 내려오다 보니, 스님이 20년 전에 박수 폭포를 가기 위해 지나갔던 길이 보였습니다. 그리고 그 길가에는 스님들이 빨래를 해서 승복을 말리고 있었습니다. 한국에서는 보기 힘든 광경이었습니다.

숙소로 돌아온 스님은 원고 교정 업무를 보았습니다. 4시에는 태국에서 온 INEB 사무총장과 2021년 한국에서 열리게 될 INEB 대회에 대한 회의가 잡혀 있어 시내로 나갔습니다.

INEB 대회는 2년에 한 번씩 열리고 있습니다. 2년 전에는 대만에서, 올해는 인도 다람살라에서, 그리고 2021년에는 한국에서 열릴 예정입니다. 스님은 INEB 사무총장에게 대만과 인도 다람살라에서 열린 INEB 대회의 특징에 대해 질문했습니다. 그리고 2021년에 한국에서 열릴 INEB 대회 참여 국가와 인원, 콘퍼런스 주제 및 프로그램 전반에 대해 논의했습니다.

스님은 _“한국 INEB 대회 사전 프로그램에는 명상 수련을 진행할 계획인데, 앉아서 하는 명상만 하는 것이 아니라 일상과의 결합을 체험할 수 있는 명상을 해 보면 좋을 것 같다”라고 하면서 “밭에서 일하면서 마음을 관찰하고, 자신이 먹을 음식도 직접 만들어 보면서 마음을 관찰해 보는 명상을 해보자”_ 라고 제안했습니다.

INEB 사무총장은 “한국 대회 콘퍼런스의 주제는 언어 표현의 전문가이신 스님이 마음에서 울림이 있는 내용으로 만들어달라”라고 부탁했습니다. 앞으로 2년이 남았기에 차근차근 준비해 나가기로 하고, 한 시간 남짓하게 걸린 회의를 마쳤습니다.

지난 6월에 한국에서 열린 INEB 정토회 투어 프로그램에 참여했던 태국의 피차이 씨가 스님에게 저녁 공양을 올리고 싶다고 하여, 스님 일행이 모두 피차이 씨의 에어비앤비 숙소로 초대받았습니다.

가는 길에 있는 달라이 라마 사원에 잠시 들르기로 했습니다. 스님은 이미 와 본 적이 있어 성큼성큼 일행을 안내하며 갔습니다.

특이하게 사원의 건물들 사이로 큰 나무가 있었는데, 스님이 그 이유에 대해서 설명해 주었습니다.

“여기서는 건물을 만들 때 나무가 있으면 베어버리지 않고, 건물을 뚫어서라도 나무가 자라게 해 주는 것이야.”

건물 구조를 바꾸는 일은 비효율일 수 있는데, 비효율을 무릎 쓰고 나무 한 그루의 소중함까지 고려하는 티베트 문화에 감탄했습니다.

안으로 들어가니 인도네시아에서 온 젊은이들과 한국에서 온 비구니 스님들이 스님을 알아보고 스님을 에워쌌습니다.

서로 먼저 스님과 사진을 찍으려고 해서 스님이 순서를 정해 기다리라고 하자, 인도네시아에서 온 분들은 스님이 비구니 스님들과 이야기를 마칠 때까지 기다렸습니다.

비구니 스님들은 7년째 다람살라에서 공부하고 있는 분들입니다. 매일매일 스님의 법문을 유튜브로 들으며 마음공부를 하고 있으며, 스님의 법문을 통해 정치, 경제, 사회 모든 면에서 생각과 행동의 기준을 잡아가고 있다고 하며 거듭 감사 인사를 했습니다. 그리고 스님을 만난 것이 믿어지지 않는다고 어쩔 줄 몰라했습니다.

“자기가 스스로 생각하고 주체적인 기준을 가져야지 저를 따라 하면 어떡해요?”

스님도 웃으며 얘기했습니다. 인도네시아 분들도 차례를 기다려 스님과 사진을 찍고, 책에 사인을 받기도 했습니다.

넓은 달라이 라마 사원 이곳저곳에서는 스님들이 각자 다양한 일을 하고 있었습니다. 오체투지를 하는 티베트 스님도 있었습니다.

저녁 장소로 걸어가는 길에는 티베트의 문화를 느낄 수 있는 경전들이 작품처럼 벽에 걸려있었습니다. 이 곳은 석양을 멋지게 감상할 수 있는 곳이었습니다.


피차이 씨는 92세 노모와 부인 등 가족과 함께 왔는데 “스님이 와 주셔서 너무 감사하다”라고 고개 숙여 인사했습니다.

피차이 씨 집에서 몇 년 전 INEB 정토회 투어 프로그램에 참여한 태국에서 온 윈 스님을 만났습니다. 윈 스님은 올해 6월에 스님이 방콕에서 태국 스님을 대상으로 한 즉문즉설에도 오셨고, 몇 년 전 선주 법사님이 태국 불교단체 활동가 및 스님을 대상으로 한 자원봉사 워크숍에도 참여했었던 분으로 스님과 정토 활동에 큰 관심을 가지고 있습니다.

얼마 전 스님의 전 세계 100강을 책으로 엮은 야단법석 영문판을 슐락 박사님에게 받아서 읽고, 감동받아 현재 태국어로 번역을 준비 중이라고 합니다.

윈 스님은 “책에서 스님이 어느 성당에서 무릎을 꿇고 기도하는 사진을 보았는데, 스님으로써 그렇게 하기가 쉽지 않았을 것 같다”라고 했습니다. 스님은 “해외에서 강연할 때는 교민들이 교회를 빌려서 강연하는 경우도 있고, 교회에서 초청해서 강연을 하는 경우도 있다” 면서 “그때는 터키 이스탄불에 사는 교민들이 성당을 빌려서 장소를 사용했는데, 신부님들이 직접 나오셔서 환대를 해 주시는 바람에 함께 예를 갖추어 기도를 했다” 라고 설명했습니다.

그리고 윈 스님은 한국과 태국의 관계에 대해서 물었습니다.

“한국과 태국의 관계에 있어서 제가 아는 것이라곤 한국 전쟁 때 태국이 참전했다는 정도밖에 없습니다. 한국과 태국이 교류한 역사에 대해 스님께서 아시는 것이 있나요?”

“한국에 처음으로 불교를 전래한 아유디아(Ayudia) 공주가 인도에서 온 게 아니라 태국에서 왔다는 일부 학설이 있어요. 인도에서 왔다는 것이 정설이긴 합니다.”

“아유디아는 어디에 있습니까?”

“인도의 중북부에 있어요. 아유디아에 가면 인도와 한국이 2천 년 전에 교류가 있었다는 것을 기념하는 큰 공원을 인도 정부가 만들어 놓았어요. 아유디아 공주가 한국에 와서 당시에 ‘가야’라고 불리는 나라의 김수로 왕과 결혼해서 자손을 많이 나았는데, 그것이 한국의 김해 ‘김’씨 성의 시작입니다. 현재 한국 인구의 10%를 차지하고 있습니다. 몇 해 전에 인도의 모디 총리가 한국을 방문했을 때 ‘한국사람 중에 10%가 인도계입니다’ 이렇게 말했어요.

아유디아 공주가 한국에 올 때 인도의 스님도 함께 와서 불교를 전했어요. 사실은 스님이 불법을 전하기 위해 왔는데, 공주도 함께 따라온 것이라고 볼 수 있죠. 그러나 공주가 한국의 왕과 결혼하다 보니까 역사 기록에는 공주가 더 중심이 되고, 스님은 널리 알려지지 않았어요. 그분이 장유 화상입니다. 지금도 한국에는 그 스님의 이름을 딴 장유면과 장유폭포가 있어요.

창원에는 봉림사지라는 곳이 있는데, 그곳이 처음으로 불교 사찰이 지어진 곳입니다. 지금은 터만 남아 있는데, 그 절을 복원하라는 유언이 저의 3대 위의 스승 때부터 내려오고 있습니다. 그 절을 새로 복원한다면 테라밧다 절로 만들어야겠어요. 그때는 아직 마하야나(대승불교)가 생기기 전이니까요. (웃음)

아유디아 공주와 장유 화상이 한국에 온 게 AD 48년이니까 약 500년 뒤에 가야가 망하면서 그 절이 없어진 겁니다. 그 후 약 300년 후에 중국에서 선불교가 들어왔습니다. 중국에서 선불교를 가져온 스님이 창원 봉림사지에 또 절을 지었습니다. 한국 불교 역사에는 그 절에서 선불교가 시작되었다는 기록이 남아 있습니다. 선불교의 도래지라는 기록만 남아 있지, 가야에 처음으로 불교가 전래된 곳이라는 것은 근거 자료가 아직 부족해요. 지금은 빈 터만 남아 있습니다.”

“텐트를 가져가서 거기서 하룻밤 머물고 싶습니다.”

“오케이. 제가 텐트를 쳐줄게요.” (웃음)

오랜만에 만남을 반가워하며 이야기하는 가운데 다람살라의 석양이 멋지게 물들었습니다. 스님과 일행은 저녁 식사 후 숙소로 돌아가 각자 맡은 업무를 하였습니다. 내일은 스님이 달라이 라마를 친견할 예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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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디사트바

봉림사지에 남방불교 사찰을 짓는다는 것이 참 좋은 아이디어 같습니다. ㅎㅎ
나무불 나무법 나무승 _()_

2020-09-03 18:56:30

감로향

건물을 뚫어서라도 나무가 자라게 해 주는 마음들도 아름답고 다람살라의 석양도 참 아름다워요‥감사합니다_()_

2019-10-25 09:3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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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이 참 곱습니다^^스님도 예쁘시구^^*다람살라~느낌이 부처님곁에 간듯 안온합니다~~스님께서두 고향에 가신 듯 편안해보이시구‥ 창원 봉림사지와 장유화상도 기억하겠습니다~김해김씨에 대해서도 알게되고ㆍ모르는 것이 없으신 우리 법륜스님^^*태국판 야단법석도 기대가 됩니다^^*

2019-10-23 17:45: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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