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님의하루

2019.4.3. 즉문즉설 (2) 충북 음성
“아이들이 다 클 때까지 이혼하고 싶지 않아요”

안녕하세요. 오늘은 충북 음성군에서 2019년 상반기 즉문즉설 두 번째 강연이 열렸습니다.

오후 내내 정토회 행정처 집행부와 통일특별위원회 사무처 간 합동회의를 했습니다. 회의에서는 2019년 통일의병의 활동 방향과 천일준비위원회에서 제안한 제10차 천일결사 조직 구조에 대해 다양한 의견을 수렴했습니다.

회의를 마친 후 오후 4시 30분에 강연이 열리는 충북 혁신도시로 출발했습니다. 충북 혁신도시는 음성군과 진천군에 걸쳐있는 신도시입니다. 오늘 강연은 혁신도시에 위치한 한국가스안전공사 본사에서 열렸습니다. 6시 30분에 도착한 스님은 장소를 대여해준 한국가스안전공사 사장님과 차담을 나누었습니다.

혁신도시의 거리는 퇴근 시간에도 한적했습니다. 어디에서 사람이 올까 싶었지만 강연이 시작하기 전 430석이 다 찼습니다. 뒤늦게 도착한 100여 명은 통로 한쪽과 뒤편에 앉았습니다. 한국가스안전공사 사장 김형근 님도 참석하여 청중에게 인사를 했습니다.

“평소 존경하던 법륜스님께서 저희 가스안전공사에서 강연을 해주셔서 매우 영광입니다. 스님께서 쓰신 새로운 백 년도 몇 번이고 되풀이해서 읽었습니다. 오늘 오신 분들에게도 스님의 법문이 큰 힘이 되기를 바랍니다.”

7시가 되자 스님이 무대에 올랐습니다. 스님은 즉문즉설에서는 솔직하게 자신의 이야기를 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하며, 재미있는 사례를 들려주었습니다.

즉문즉설은 솔직하게

“오늘 바람이 불긴 해도 날씨가 좋죠? 이 좋은 봄날에 여러분을 만나서 기쁩니다. 보통 법문에서는 부처님의 이야기를 우리 삶에 적용하는 법을 알려주고, 설교에서는 신의 이야기를 우리 삶에 적용하는 법을 알려줍니다. 즉문즉설은 부처님, 신의 이야기가 아니라 우리의 이야기에서 시작합니다. 지금 우리의 문제를 어떻게 해결해야 할지 찾아가다 보면 그 결론이 부처님, 예수님의 이야기와 같아요.

많은 사람이 한 방에 자면서 꿈을 꾼다고 해봅시다. 호랑이에게 쫓기는 꿈, 뱀을 피하는 꿈, 강도를 만난 꿈 등 꿈은 다 달라도 그 사람을 깨우는 방법은 같아요. 무슨 꿈이든 흔들면 됩니다. 그러니 어떤 이야기를 하든 크게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즉문즉설에서는 남 눈치 보지 말고 솔직하게 말하는 것이 가장 중요해요. 몇 년 전 괴산에서 강연을 하는데 70대 할아버지가 처음 질문을 했어요. 할아버지가 대뜸 “요새 중놈들은 뭘 처먹었길래 뚱뚱하고 얼굴이 번들번들하노.(모두 웃음)”하시면서 그날 자신이 입은 양복이 30년이 넘었대요. 자신은 그렇게 아껴 쓰는데 수행자라는 스님들이 좋은 옷 입고 좋은 차 타는 게 말이 되냐는 거였지요 이렇게 솔직하게 말하는 것이 좋습니다. 그러나 이 할아버지처럼 욕은 하지 마세요.”

한바탕 웃고 나니 분위기가 한결 부드러워졌습니다. 바로 질문을 받았습니다.

“매일 아침마다 108배와 금강경 독송을 3번 하는데 하기 싫을 때가 있습니다. 또 관세음보살 보문품을 108일 동안 사경 하고, 삼천배도 했고, 자비도량참법도 했는데 딸이 임용고시에서 떨어졌어요.(모두 웃음) 실망이 커서 기도하기도 싫고, 부처님이 저를 싫어하는 것 같은데 어떻게 하면 좋을까요?”

첫 질문에서부터 웃음이 터져 나왔습니다. 스님은 종교와 기도의 본질이 무엇인지에 대해 명확히 설명해주었습니다. 두 번째 질문자는 중년 남성이었습니다.

“삶 속에서 허상과 실상을 구분하기 어렵습니다. 허상과 실상을 알기 쉽게 풀어주십시오.”

스님은 먼저 비유를 통해 허상과 실상의 개념을 설명해주었습니다.

“허상이란 ‘없는 것을 있다고 착각하는 것’입니다. 실상이란 ‘있는 것은 있다, 없는 것은 없다고 사실대로 아는 것’입니다. 넘어졌으면 넘어졌다고 아는 것이 실상이에요. 허상이 따로 있고, 실상이 따로 있는 것이 아닙니다. 내가 잘못 알면 허상이고, 사실대로 알면 실상입니다. 이 컵을 유리컵으로 아는 것이 실상이고, 금이라고 아는 것이 허상이에요.

우리는 어떤 허상을 가지고 있을까요? 예를 들어 설명해볼게요. 프리즘에 무색의 빛을 비추면 일곱 가지 색으로 갈라집니다. 그것처럼 우리의 눈, 귀, 코, 혀, 감촉, 생각에는 다 자신만의 프리즘이 딱 들어 있어요. 그래서 같은 사물을 봐도 그 반응은 사람마다 다 다릅니다. 이 프리즘이 업식이에요. 각자 가진 프리즘에 따라 같은 빛을 보고도 어떤 사람은 빨갛게 보이고, 어떤 사람은 노랗게 보입니다. 다 달라요. 내가 빛이 빨간색으로 보이는 사람이라면, 빛은 원래 빨간색이라고 생각합니다. 나에게 잘못은 없어요. 내 눈에 그렇게 보이는 거니까요. 그런데 다른 사람은 노란색, 주황색, 초록색, 파란색이라고 해요. 그럼 나는 당장 ‘눈이 삐었냐? 이게 빨갛지 어떻게 노랗냐?’고 해요. 그럼 빛을 노랗게 보는 사람은 ‘아니 이게 노랗지, 어떻게 빨갛냐?’고 해서 싸워요.

이 두 사람이 남편과 아내고, 사장과 종업원이고, 기독교와 불교고, 남한과 북한이고, 한국과 일본이에요. 가끔 남편이나 아내가 말도 안 되는 행동을 할 때가 있죠? 빨간 걸 보고 노랗다고 하면 처음에는 같이 싸우다가 나중에는 ‘그래 노랗다고 해라. 너하고 얘기하면 힘들다.’고 체념합니다. 이때 빛이 빨갛다는 사람도, 노랗다는 사람도 허상을 보고 있는 거예요. 허상을 보기 때문에 갈등이 생기는 겁니다. 그러면 이 프리즘을 벗어버리면 어떨까요? 빨간 것도 아니고, 노란 것도 아니에요. 여기서 실상이란 빨갛다고 고집했는데 ‘빨간 것이 아니네!’하고 아는 거예요. 그러면 그냥 갈등이 없어져 버려요. 그런데 여러분은 또 노란 것도 아니고 빨간 것도 아니면 그게 뭐냐고 묻습니다.

다른 예를 들어볼게요. 산 하나를 두고 저쪽에서 본 사람은 서산이라고 하고, 이쪽에서 본 사람은 동산이라고 해요. 자기 동네 안에서는 실상을 아무리 알려고 해도 알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첫째, ‘동네 사람한테 물어보자!’고 합니다. 자기 동네 사람한테 물어보면 다 동산이라고 해요. 둘째, 책을 찾아봐도 자기 동네에서 쓴 책에는 옛날부터 다 동산이라고 적혀있어요. 이런 식으로는 해결이 안 됩니다. 실상을 알려면 자기 동네에서 나와야 해요. 자기가 사는 동네에서 나오면 저절로 ‘서산이 아니네! 동산이 아니네!’하고 알게 돼요.

그런데 사람들이 또 ‘그러면 무슨 산이예요?’ 하고 묻습니다. 동산도 아니고 서산도 아닌 것을 한문으로 비동비서(非東非西)라고 합니다. 사람은 정답 찾기를 좋아해요. 지금까지 동산이다, 서산이다 주장하다가 이제 이 산은 비동비서산이라고 주장합니다. 그래서 누가 동산이라고 하면 또 싸웁니다. ‘당신은 진실을 모른다. 이 산은 비동비서산인데 무슨 동산이냐?’ 이렇게 비동비서라는 또 하나의 허상을 만듭니다.

정말 진리를 알면 누가 동산이라고 할 때 허상을 본다고 말할까요? 아니에요. 동산이라고 하는 사람을 보면 ‘이 동네에서 왔구나’ 하고 압니다. 서산이라고 하는 사람을 보면 ‘저 동네에서 온 사람이구나’ 하고 알아요. 그러면 다툴 일이 없습니다. 이것이 실상을 아는 사람입니다.”

“네. 감사합니다!”

질문자는 아주 만족하며 자리에 앉았습니다. 스님은 실제 사례를 통해 설명을 더해주었습니다.

‘정말 아니야’라고 생각하는 것은 99%가 허상입니다

“여러분들이 누군가의 얘기를 들을 때 ‘이건 아니야!’, ‘저건 아니야!’ 하는 생각이 든다면 그건 99.9%가 허상을 보기 때문입니다.

예를 들어 남편이 성질이 확 나서 씩씩대면서 한 대 때리려고 손을 들었다가 옆에 있던 컵을 바닥에 팍 던져 버렸다고 합시다. 이때 여러분들은 어떻게 생각하고 행동합니까? ‘저 인간이 버르장머리가 더 나빠졌네. 큰소리치는 것만 해도 꼴 보기 싫은데 그릇까지 깨? 이렇게 못된 인간이 있나!’ 이런 생각이 들면서 화를 냅니다. 그다음부터는 ‘네가 감히 그릇을 깨?’ 이러면서 싸웁니다. 이렇게 싸우게 되는 이유는 실상을 보지 못하고 허상을 보기 때문입니다.

남편이 그릇을 탁 깰 때 실상을 본다는 것은 뭘까요? 그때 남편의 마음은 실제 어땠을까요? 아내를 한 대 때리고 싶지만 차마 아내를 못 때리니까 대신 분풀이로 그릇을 깬 겁니다. 실상을 보면 이렇게 말이 딱 나오게 됩니다.

‘아이고, 여보, 고마워. 나를 차마 못 때리겠으니까 그릇을 깼구나. 그래도 나를 사랑하는 마음이 아직 남아 있네. 고마워.’ (모두 웃음)

그런데 우리는 실상을 못 보고 그릇을 깼다는 형상만 봅니다. 그래서 성질이 더 올라와서 점점 고조됩니다. 실상을 본다는 게 무슨 말인지 이해하시겠어요?”

“예.” (모두 대답)

“예를 들어 기도를 1년 동안 하루에 세 번씩 했는데도 딸이 시험에 떨어졌다고 합시다. 그래서 ‘부처님한테 기도해봐야 소용도 없더라. 이제 절하기 싫다’ 이런 마음이 든다면, 그건 허상을 보는 거예요.

기도는 내 마음을 편안하게 하고자 하는 겁니다. 그렇기 때문에 딸이 시험에 떨어졌을 때 보통 사람은 난리를 피우더라도 기도를 한 사람은 마음이 편안해야죠. 마음이 편안하기 때문에 딸이 막 난리를 피우고 슬피 울어도 ‘괜찮아. 밥 먹고 오늘 하루 쉬었다가 다시 하면 되지. 그게 뭐 큰 걱정이야?’ 이렇게 말이 쑥 나오게 돼요.

그런데 여러분들은 안 그래요. 매일 절에 가서 아이를 위해 108배 기도를 하는데도 만약 아이가 공부를 안 한다면, 기도를 한 사람이 성질을 더 낼까요, 기도를 안 한 사람이 성질을 더 낼까요?”

“기도를 한 사람이 성질을 더 냅니다.”

“다리 아픈 걸 무릅쓰고 절까지 하고 왔는데, 아이는 공부를 안 하니까 성질이 더 나는 거예요. 그렇다면 이건 기도를 하고 온 게 아니라 다리 운동을 하고 온 거예요. (모두 웃음) 기도를 할 때 ‘우리 딸이 합격하게 해 주세요’라고 기도하니까 효험이 없는 거예요. 이렇게 기도를 해야 효험이 있습니다.

‘이 좋은 봄날에 너도 친구들과 놀고 싶을 텐데 공부한다고 얼마나 고생이 많니? 아이고, 아이의 마음을 알겠습니다. 부처님, 제 생각만 하지 않고 아이의 마음을 알아주겠습니다.’

이렇게 기도를 하면, 집에 왔을 때 아이가 게임하고 있으면 성질이 팍 올라오다가도 기도했던 마음으로 돌아가서 ‘아이고, 얼마나 공부하기 힘들면 게임을 하겠나?’ 이 생각이 들어요. 주스 한 잔 따라주고 아이 등을 두드려 주면서 ‘아이고, 공부하기 힘들지? 엄마도 공부하는 게 힘들더라. 주스 한 잔 마시고 해라’라고 말하게 됩니다. 그러고 나서 조금 있다가 ‘게임하면 재미있긴 하지. 그래도 게임만 계속할래? 대학은 안 갈래?’ 이렇게 슬쩍 물어보는 거예요. 아이가 ‘대학은 가야죠!’ 이러면 ‘게임만 계속하는데 대학에 갈 수 있을까? 게임도 좋지만 그래도 대학에 가려면 조금은 공부해야 하지 않을까?’ 이렇게 말하고 보내줘야 아이가 방에 들어가서 공부를 하게 돼요.

‘요게! 나는 기도하고 왔는데 너는 게임이나 하고!’

이렇게 악을 쓰면 아이가 방에 들어가자마자 부모가 못 들어오게 문을 팍 잠가버립니다. 그러고는 침대에 벌렁 누워서 씩씩대다가 그냥 자버려요. 이러면 아이 공부에는 아무 도움이 안 됩니다. (모두 웃음)

산에 가서 열심히 절한다고 해서 기도가 아닙니다. 삶의 변화를 가져와야 기도예요. 삶의 변화를 가져오려면 실상을 여실히 알아야 합니다.”

개념 설명에 이어 보충 설명까지 들으니 더욱 이해가 잘 되었습니다. 허상과 실상에 대한 개념은 이어진 질문들 속에서 더욱 깊이 이해할 수 있었습니다.

다음으로 50대 여성이 재혼한 남편의 욱하는 성질이 견디기 어렵다고 질문했습니다. 이어서 40대 남성이 자신의 욱하는 성질 때문에 아내가 이혼을 요구하지만, 이혼하고 싶지 않아 어떻게 하면 좋을지 물었습니다. 서로 반대되는 사례를 통해 많은 것을 배울 수 있었습니다. 욱하는 남편의 질문을 자세히 소개해드리겠습니다.

아이들이 다 클 때까지는 이혼하고 싶지 않아요

“저는 지금 결혼한 지 9년 되었고, 두 딸의 아빠입니다. 가정을 위해서 아내와 정말 열심히 살았고 행복했습니다.

그런데 제가 욱하는 성질이 있어서 아내와 심하게 다투는 일이 종종 있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둘 다 참지 못하고 폭발해버렸어요. 아내의 날 선 반응에 제가 너무 분하고 억울해서 이성을 잃고 물건을 던졌습니다. 급기야 아내를 처음으로 밀치고 때리기까지 했습니다. 하지 말아야 할 일을 저지르고 말았습니다. 아내는 충격이 컸는지 병원에 가서 진단서를 끊고 다음날부터 이혼을 요구했습니다. 합의 이혼을 안 해주면 바로 소송을 진행하겠다고 하고요.

저는 그래도 두 딸을 생각하면 가정을 지키고 싶습니다. 주말부부가 되더라도 아이가 성인이 될 때까지 이혼은 하지 말자고 설득했지만 아내는 변함이 없습니다. 합의 이혼을 하러 가야 하는지, 아니면 소송까지 가서 이혼하고 싶지 않은 제 마음을 끝까지 말해야 하는지 갈등이 됩니다. 그리고 이혼을 하더라도 아이들이 덜 상처 받게 하려면 제가 어떻게 해야 할까요? 제가 잘못을 저지른 입장에서 앞으로 아내한테도 어떻게 해야 할까요?”

“연애결혼이에요, 중매결혼이에요?”

“같은 직장에서 만나 1년 연애하다가 결혼했습니다.”

“질문자는 평소에도 자주 화를 내는 성격이에요?”

“예, 자주 화를 냅니다. 노력을 안 하는 건 아닙니다. 마음공부도 해보고, 법문도 많이 듣고, 지금 정토불교대학에 입학해서 수행도 하고 있어요.”

“질문자는 지금 정신과 치료를 좀 받아야 할 상태예요.”

“...”

질문자는 다소 당황한 듯 얼굴이 붉어졌습니다. 스님은 조심스럽게 말을 이어갔습니다.

“이혼을 하든 안 하든, 아내와 자식을 논하기 전에 질문자부터 먼저 정신적으로 좀 건강해져야 해요. 이혼을 하고 안 하고는 중요하지 않고, 애들을 위해서라는 이유도 중요하지 않아요. 본인이 환자일 때는 자기부터 먼저 치료를 해야 해요. 내가 치료되는 것이 진정으로 아이들을 위하는 길이자 아내를 위하는 길입니다. 그러니 아내에게 이렇게 얘기를 해보세요.

‘내가 당신이 원하는 만큼은 아니더라도 ‘못 살겠다!’ 하는 지경은 안 되도록 노력할게. 정신과 치료를 받으라면 치료를 받고, 뭐든지 하라면 시킨 대로 할 테니까 아이들이 클 때까지만 같이 살아다오. 약속해놓고 깨는 일은 없도록 할게. 한 번 더 이러면 내가 무조건 이혼하겠다고 아예 각서도 써줄게.’

옛날에 이렇게 각서를 써준 적이 있어요?”

“예, 있습니다.”

“전과가 많아서 어렵겠네요.” (모두 웃음)

“사실 가정을 지켜보려고 그렇게 다짐을 했었는데 그게...”

“다짐한다고 해서 지켜지는 게 아니에요. 질문자는 환자니까요. 만약 아내가 질문자를 환자로 대해 줄 수만 있다면, 화를 버럭 낼 때 ‘죄송합니다’ 하면서 그때 질문자의 감정을 가라앉혀줄 수 있거든요. 그런데 아내는 질문자를 자신과 똑같이 정상적인 사람으로 생각하기 때문에 지금 해결책이 안 나오는 거예요. 정상적인 사람이 왜 그런 행동을 하는지 아내는 질문자를 이해할 수가 없는 거예요. 약속을 해도 믿을 수 없고요.

다리나 팔이 부러졌다면 상대가 버리고 가지 않아요. 환자라는 인식을 하기 때문입니다. ‘아, 환자구나’ 이렇게 생각하기 때문에 불편이 있어도 화를 내지 않고 옆에서 거들어준단 말이에요. 그런데 눈에 보이는 신체가 아니라 안 보이는 정신에 탈이 난 것은 상대가 잘 몰라요. 그러나 겉으로는 멀쩡해 보이지만 실상은 환자란 말이에요. 환자를 환자로 딱 보면 화를 벌컥 내도 ‘아이고, 환자니까 저렇구나. 재발했구나’ 이렇게 생각하고 넘어갈 수 있지만, 지금 아내는 그렇게 볼 수가 없는 상황입니다. 그러니 아내의 입장을 이해하고, 그래도 내일 한 번 더 얘기해보세요.

‘치료받으라면 치료받고, 당신이 하자는 대로 한 번 해볼게. 옛날에도 약속해놓고 못 지켰으니 더 이상 내가 할 말은 없어. 그러나 이제 치료도 받고 제대로 노력을 한 번 해 볼 테니 이혼은 조금만 더 연기를 해다오. 6개월만 연기를 해주면 내가 6개월 동안 적극적으로 치료를 받을게. 그렇게 해도 안 되면 이혼을 하자.’

이렇게 제안을 한 번 더 해보세요. 아마 설득이 안 될 확률이 높겠지만 한 번 더 제안을 해보고, 아내가 안 되겠다고 하면 그래도 제안을 다시 해보고, 또 안 되겠다고 하면 그냥 부인이 원하는 대로 이혼 서류를 제출하세요.

이혼 서류를 제출한다고 세상이 끝나는 건 아니에요. 길 가던 사람과도 만나서 결혼하잖아요. 같이 살던 사람과 이혼했다고 해서 관계가 영원히 끝나는 건 아니에요. 나중에 내가 치유가 되면 언제든지 재결합도 가능하니까 지금은 미련을 갖지 마세요. 그리고 병원에 가서 치료도 받고, 여러 가지 노력을 해보는 게 필요해요. 물론 수행도 해야 하고요.

무엇보다 아내의 입장을 이해해야 합니다. 병원에 가서 치료받으라는 것은 이유가 있어요. 성질이 확 날 때 눈앞이 안 보이는 건 혈압에 관계된 것일 수도 있고 여러 가지 물질적인 원인도 있을 수 있어요. 그냥 참는다고 해결되는 게 아닙니다. 자기 컨트롤이 안 되기 때문에 병이라고 하는 겁니다. 지금 질문자는 감정 조절이 안 되고 있어요. 상대편은 그걸 못 견디는 겁니다. 감정조절이 안 되는 사람과 같이 사는 건 정말 힘든 일입니다. 질문자야 화를 벌컥 냈다가도 다음날 ‘미안합니다’ 하면 되지만, 상대는 그런 경험이 몇 번 반복되면 진절머리가 나요. 벌써 결혼생활이 10년은 되었으니 얼마나 많이 겪었겠어요? 10년을 겪으면 ‘아이고, 나는 이런 꼬라지 두 번 다시 보기 싫다. 같이 안 살고 싶다’ 이렇게 돼요. 이 정도 같이 산 것만 해도 아내가 굉장히 인내하고 산 거예요. 그걸 질문자가 이해를 해야 합니다. 그래서 이렇게 기도를 해보세요.

‘여보, 미안해. 나는 감정 조절을 못하는 환자야. 그런데도 나하고 지금까지 이렇게 같이 살아줘서 고마워.’

앞으로 잘할 테니까 계속 같이 살자고 기도하면 안 돼요. 그건 욕망이에요. ‘지금까지 참고 나랑 살아줘서 고마워. 얼마나 힘들었니?’ 이렇게 기도를 해야 해요. ‘앞으로 잘하겠다’ 이런 마음으로 기도하면 안 돼요. 잘한다고 해봤자 잘해질 수 없어요. 안 잘해지기 때문에 실없는 말이 돼 버리고, 질문자 스스로도 ‘나는 안 되는 인간이야’ 하고 자학을 하게 됩니다. 지금 질문자는 자학 증상이 굉장히 심합니다. 자학 증상이 심하면 사람이 약간 비굴해져요. 그런데 또 여자들은 남자가 비굴한 꼴을 못 봐줘요. 너무 목에 힘주는 것도 꼴 보기 싫지만, 너무 잘못했다고 비는 것도 꼴 보기 싫어해요. 비굴한 남자와는 서로 의지하면서 살고 싶지 않아 지거든요. 그러니 너무 비굴하게 굴어도 안 돼요.

화를 낼 때는 불같이 화를 내놓고, 그다음엔 다시 비굴하게 구니까, 아내 입장에서는 양쪽 다 꼴 보기 싫은 겁니다. 화낼 때도 꼴 보기 싫고, 빌 때도 꼴 보기 싫다는 거예요. ‘화 안 내겠습니다’라는 약속은 지켜질 수가 없어요. 그래서 ‘지금까지 나하고 살아줘서 고맙습니다. 얼마나 힘들었어요? 고맙습니다’ 이렇게 기도를 해야 해요. 자꾸 자기를 학대하지 마세요. 질문자는 치료를 받아야 할 사람이지, 나쁜 사람은 아니에요.

그리고 때린 건 잘못됐어요. 아무리 화가 났더라도 폭행은 범죄입니다. 그건 내가 눈에 뵈는 게 없었다고 해도 변명이 되지 않아요. 눈에 뵈는 게 없어서 사람을 죽였다고 해서 그 행동이 이해받을 일은 아니잖아요. 그래서 이렇게 기도해야 합니다.

‘지금까지 나하고 살면서 얼마나 힘들었어요? 정말 고맙습니다. 지금까지 살아준 것만 해도 고맙습니다.’

그래야 심리가 안정이 됩니다. 아내와 다시 얘기를 해보고, 합의 이혼을 하든, 이혼 연기를 시키든, 이혼 서류를 제출하는 건 전적으로 아내 뜻에 맡기세요. 질문자는 최선을 다하되 고집하면 안 돼요. 아내의 뜻에 따라 이혼 서류를 제출했다 하더라도 재판정에 가서 ‘아내가 원해서 서류를 내긴 했는데 저는 가정을 지키고 싶습니다. 치료를 받으라면 치료도 받으면서 노력하겠습니다. 제가 부족한 줄은 잘 알고 있습니다’ 이렇게 판사한테 얘기하면 돼요. 그렇게 얘기를 해야 나중에라도 필요하면 재결합할 여지가 생겨요. 그래야 헤어져도 내 마음속에 죄의식이 좀 적습니다. 이게 다 나를 위해서 하는 거예요. 아내를 위해서 하는 게 아니에요.

그리고 아내 입장에서도 남편이 자기에게 매달리는 모습을 보면서 헤어지는 게 기분이 좀 좋아요. (모두 웃음) 안쓰럽기도 하지만 그래야 기분이 좀 나아집니다. 큰소리치고 잘났다고 싸우면서 원수 지는 것보다 그게 나아요. 미안하다고만 하지 말고 ‘그동안 나하고 산다고 얼마나 힘들었니? 지금까지 나하고 살아줘서 고맙다. 우리 아이들 잘 키워줘’ 이렇게 얘기해주세요.

그리고 아이들을 위해서 자주 연락도 하고요. 아내가 보기 싫다고 안 만나주면, 애들이라도 자주 보세요. 이혼을 하느냐 마느냐, 이런 법적 형식이 중요한 게 아니에요. 형식이야 별거를 하든 이혼을 하든, 그들이 내 아내와 내 자식이라는 사실에 대해서 나는 변함없이 대하면 돼요.

아내도 다른 남자를 만날 자유가 있어요. 그걸 질투하면 안 돼요. ‘다른 남자를 만나서 살아보니 그래도 옛 남자가 낫더라’ 이렇게 될 수도 있어요. 인간은 자유로운 존재이고, 모든 인간은 자기의 행복을 추구할 권리가 있습니다. 자꾸 ‘내 여자다!’ 이렇게 생각하면 안 돼요. ‘내 여자니까!’라고 생각하는 건 집착이에요. 질문자는 어떤 면에서 약간 정신적으로 집착하는 면이 있어요. 아내 입장에서는 그런 질문자가 귀찮은 겁니다. 더 나아가서는 질문자가 무서운 거예요. 그러니 그런 아내의 마음을 풀어 주세요. 그리고 항상 ‘그래도 지금까지 나랑 살아줘서 고맙다’ 이런 마음을 가지세요. 그래야 아이들도 잘 됩니다.”

“사실은 아이들 때문에 망설이고 있습니다. 딸이 저와 애착이 굉장히 강하거든요. 태어나서 8살이 된 지금까지 계속 제 옆에서 잤어요. 그런 아이가 울먹이면서 가정을 지켜달라고 매달리는 얘기를 몇 번 들었습니다.” (질문자 울먹임)

“그것도 다 아이 핑계 대는 거예요. 아내가 ‘내가 너 때문에 사는 게 아니라 아이 때문에 산다’라고 하면 질문자는 기분이 좋겠어요? 질문자는 좀 멍청한 사람 같아요. (모두 웃음)

그렇게 기도하기 때문에 자꾸 기도가 거꾸로 된다니까요. 아이들에게 좋은 영향을 주려면 내가 아내에게 진심으로 참회를 해야 합니다. 아이들이 아무리 뭐라 해도 ‘아빠가 잘못해서 이런 일이 생겼어. 엄마 문제가 아니야’ 이렇게 말해줄 수 있어야 해요. 아이들에게 ‘나는 같이 살려고 했는데 네 엄마가 이래 가지고 못 사는 거야!’ 이렇게 말하면, 아이들이 엄마를 미워하게 됩니다. 아이들이 엄마를 미워하게 되면 엄마 말을 안 듣게 돼요. 엄마 말이 듣기 싫으면 ‘엄마도 아빠 말 안 들었잖아’ 하면서 따집니다. ‘엄마는 뭐 잘했어?’ 속에 이런 마음이 생기기 때문에 그렇게 말하는 건 아이들 교육상 정말 나쁜 겁니다. 헤어지게 되더라도 항상 아이들한테는 아내를 두둔해줘야 해요.

‘엄마 말 잘 들어야 한다. 너희 엄마는 진짜 좋은 사람이야. 아빠가 잘못해서 그래. 아빠가 엄마에게 고함을 지르고 폭행을 했어. 그런데 누가 같이 살겠니? 아빠가 좀 부족해서 그래.’

항상 이렇게 아이들에게는 아내를 두둔해주면서 좋은 엄마라고 강조해야 아이들 교육에 도움이 됩니다. 지금은 아이들이 아빠가 엄마를 욕하는 걸 듣기 싫어 하지만 나중에 자기들이 엄마하고 싸울 때는 그때 들었던 말을 다 갖다 댑니다. 아이들에게 그동안 쌓였던 게 ‘아빠가 그랬어! 엄마는 나쁜 여자래!’ 이러면서 전부 다 드러납니다.

남편이든 아내든 헤어지더라도 반드시 상대를 두둔해줘야 합니다. 남성분이 질문하셨지만 여성분들도 마찬가지예요. 조그마한 아이를 자기편으로 끌어들이려는 건 어른으로서 굉장히 비겁한 태도예요. 세 살짜리 애를 안고서 거기다 대고 막 ‘너희 아빠는 나쁜 놈이다’라고 하는 분도 있어요. 얼마나 비겁한 짓입니까. (모두 웃음)

아이들에게는 항상 아내를 두둔해줘야 하고, 아내에게는 항상 ‘고맙다’라고 해야 합니다. 헤어지더라도 그렇게 해야 나에게 좋습니다.”

“감사합니다.” (모두 박수)

질문자의 붉었던 얼굴이 차분해져 있었습니다.

이외에 시어머니가 기독교를 믿으라고 하는데 어떻게 대처하면 좋을지에 대한 질문과 청년들의 질문이 있었습니다. 요양원을 운영해서 돈을 벌고 싶지만 갈팡질팡하고 있다는 청년에게 스님은 요양시설의 수요가 어떤지 실제로 파악해보고 1년간 무보수로 봉사를 해볼 것을 제안했습니다. 생각을 바꿔 성공한 세계의 다양한 사례도 알려주었습니다. 스님이 웃으며 ‘너무 많은 아이디어를 줬다.’고 하자 질문자는 “잘 되면 다시 찾아뵙겠습니다.”하고 흔쾌히 대답하고 앉았습니다. 또 자신이 원하는 모습과 현재의 모습이 달라 괴롭다던 22살 청년은 고민이 말끔하게 해결됐다며 스님에게 감사인사를 했습니다. 한 청년은 스님의 꿈이 무엇인지 궁금해했습니다.

어느새 아홉 시가 넘어 아쉽지만 질문은 그만 받기로 하고, 질문자들의 소감을 들어보았습니다. 질문자들은 한 줄씩 가볍게 소감을 말했습니다. 청중은 가벼워진 질문자들에게 큰 박수를 보냈습니다. 스님은 관점의 전환이 중요함을 강조하며 강연을 마무리했습니다.

“네. 살다 보면 이런저런 예기치 못한 일이 생깁니다. 마지막으로 관점을 어떻게 잡는지 한 가지만 말씀드릴게요. 병원에서 종합검진을 했는데, 의사가 암이 있다고 하면 좋은 일이 생긴 걸까요, 나쁜 일이 생긴 걸까요?”

“나쁜 일이요.”

“좋은 일이 생긴 거예요. 왜냐하면 의사가 암이라고 진단할 때 암이 생겼어요, 암은 원래 있었어요? 원래 있던 암을 오늘까지 몰랐던 거죠. 그걸 의사가 찾아낸 겁니다. 그래서 좋은 일이에요. 이게 실상입니다. 실상을 아는 것은 좋은 일입니다. 그러면 이렇게 말해야죠.

‘선생님, 감사합니다. 드디어 발견하셨네요!’ (모두 웃음)

암을 발견한 건 좋은 일이에요. 그래야 수술을 하든지, 방사선 치료를 하든지, 자연치료를 하든지 판단을 할 수 있잖아요. 너무 늦게 발견해서 곧 죽는다고 해도 내 인생의 마지막을 준비할 수 있어요. 이런 관점이 중요한 겁니다. 그러면 살아있는 것만 해도 행복할 수 있습니다. 아침에 눈 딱 뜨면 ‘오늘도 살았네! 감사합니다.’ 이런 마음을 내보세요. 하루가 아주 좋아집니다. 감사합니다.”

강연장을 나서는 사람들의 얼굴이 환합니다. 공기마저 가벼워진 것 같습니다. 이혼 문제로 고민하던 질문자를 만나 소감을 더 들어보았습니다.

“이혼 과정에서 관련 즉문즉설 유투브를 몇 편 봤는데 볼수록 마음이 더 흔들렸어요. 스님께 직접 묻지 않고는 참을 수가 없더라고요. 오늘 질문하길 정말 잘했어요. 가장 중요한 건 제 마음을 잡을 수 있어서 좋았고 많이 가벼워졌어요.

스님께서 병원에 가서 진료를 받아보라고 하셨는데 처음에는 충격이었어요. 아내도 저에게 평상시에는 좋은 남편이고 좋은 아버지지만, 화가 나면 주체를 못 하니까 괴롭다고 했거든요. 그런데 정신과 치료까지는 생각을 못해봤어요. 스님께서 직설적으로 이야기해주시니까 ‘아, 내가 환자가 맞구나’,‘나는 잘 몰랐는데 내가 집착이 심하구나.’하고 인정이 됐습니다. 그게 제일 핵심이었어요. 지금은 가볍습니다.”

담담하게 자신을 인정하는 모습이 인상적이었습니다. 내일은 또 어떤 사람들을 만날까요. 대구에서 소식 전해드리겠습니다.

전체댓글 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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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지나

이리저리 흔들리는 나를 봅니다.정확한 관점잡기. 다시 흔들리고 다시 흔들리고
하지만 다시 해봅니다.
감사합니다 꾸벅^^

2019-04-10 10:42:29

임규태

감사합니다!!!^_^

2019-04-08 14:42:03

김혁

저를 반성하게 되었습니다 ~

2019-04-08 02:16: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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