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륜스님의 하루

2019.4.2 서암 대종사 16주기 추모법회, 즉문즉설 (1) 서울 은평구
“결혼한 지 한 달, 사랑하는 아내를 잃었습니다”

안녕하세요. 오늘 스님은 오전에 조계종 제8대 종정을 지낸 서암 큰스님의 16주기 추모법회에 참석한 후 저녁에는 서울 은평구에서 2019년 상반기 첫 즉문즉설 강연을 했습니다.

하늘이 파란 화창한 날씨입니다. 오늘은 조계종 8대 종정을 지내셨으며, 정토회가 초창기에 바른 법을 배울 수 있게 많은 지도를 해주신 서암 큰스님이 열반하신 지 16주기가 되는 날입니다. 스님은 매년 이 날이 되면 문경 봉암사에서 열리는 추모법회에 참석하고 있습니다.

추모법회가 시작되기 1시간 전인 9시 30분에 봉암사에 도착한 스님은 구불구불한 산길을 걸어올라 서암 큰스님의 부도탑을 먼저 참배했습니다. 돗자리를 깔고 삼배를 한 후 큰스님의 가르침을 다시 한번 가슴에 새겨보았습니다.

부도탑을 참배한 후 봉암사로 내려온 스님은 봉암사 주지인 원광스님, 수좌인 적명스님을 차례로 만나고 인사를 나누었습니다.

주지 스님은 지난 3월에 인근 산에 불이 나 화재를 진압하느라 애를 먹었는데 정토행자들이 도와주어서 고맙다고 인사를 했습니다. 그리고 부산 태종사 조실 도성스님도 95세의 노구를 이끌고 자리하셔서 스님의 비롯해 문도 스님들 모두가 반갑게 맞이했습니다.

그리고 수좌인 적명스님이 머물고 있는 조실채에 가서 담소를 나누었습니다. 적명스님은 한반도가 분단이 되어 있는 문제가 극복되지 못하는 게 무척 안타깝다며 꼭 통일을 이루었으면 하는 바람을 말했습니다.

“남한과 북한이 같이 동시 선거를 해서 분단을 막았어야 했는데, 민족의 오랜 비극입니다. 이런 비극을 극복할 수만 있다면 우리가 세계적인 평화를 만들어낼 수 있을 텐데요.”

스님도 평소 통일에 대해 생각하는 바를 이야기하며 적명스님과 대화를 나누었습니다.

“어떤 일이든지 스스로의 힘으로 이루어내야 부작용이 없습니다. 해방을 우리 힘으로 못 이뤄내고 일본이 연합군에게 패배를 해서 해방이 되었기 때문에 승자인 미국과 소련이 우리나라를 나눠서 자기 세력화를 한 거예요. 앞으로 우리가 통일을 할 때도 남의 힘을 빌리면 그 힘이 통일 후에도 계속 작용하게 됩니다. 지금은 중국과 미국이 또 세력 다툼을 하고 있기 때문에 우리 힘으로 통일을 이뤄내기가 쉽지는 않아요.”

“미국, 중국, 일본, 러시아가 모두 다 한반도의 통일을 반대하고 있다는 얘기가 들리더라고요.”

“중국이든 미국이든 통일을 무조건 반대하는 건 아니에요. 미국 관계자들과 이야기를 나눠보면, 통일된 한국이 미국편이 될 것인지, 중국편이 될 것인지를 못 믿는 것 같아요. 어차피 못 믿을 바에야 지금처럼 절반이라도 차지하고 있는 게 낫다는 입장입니다. 그래서 통일이 된 뒤에도 미국, 중국과 잘 지내겠다는 확신을 우리가 줄 수 있어야 해요. 그게 쉽지가 않죠.”

한반도의 통일을 우리 힘으로 이뤄낼 수 있었으면 좋겠다는 것에 서로 공감을 한 후 추모법회가 열리는 대웅전으로 향했습니다.

100여 명의 문도 스님들이 함께 자리한 가운데 여법하게 추모법회가 시작되었습니다. 서암 큰스님이 기틀을 잡아놓은 봉암사 선방의 전통에 따라 죽비 삼성으로 추모의 뜻을 기리는 것이 무척 인상 깊었습니다.

스님은 서암 큰스님의 영정 앞에 서서 문도 스님들과 함께 향을 사르고 찻잔을 올린 후 삼배를 하며 추모의 마음을 새겼습니다.

서암 큰스님은 법륜스님이 정토회의 고문으로 모셨던 분입니다. 겉치레에 연연하지 않고 한평생 문중도, 자기 절도 없이 수행자로만 사셨습니다. 어디를 가시든 언제나 통일호 기차나 버스를 타고 다니셨고, 어쩌다 새마을호 표를 끊어드리려 하면 마다하며 꼭 통일호를 타고 가겠다 하셨다고 합니다. 이유를 여쭈어보면 “통일호 타는 노인에게는 승차비를 할인해 준다. 통일호 의자는 딱딱해서 참선하기에 좋다”라며 아주 단호하셨다고 하는 유명한 일화도 있습니다.

또 봉암사와 가은 버스터미널은 20리가 넘는 거리인데 큰스님은 늘 그 길을 걸어 다니셨습니다. 어쩌다 선방 수좌들이 시내에서 택시를 타고 들어오다가 큰스님이 앞에 가시면 지나칠 수도 없고 해서 어쩔 수 없이 내려서 걸어갔다 합니다. 또 대중이든 신도든 음료수를 마시는 것을 보면 “왜 맑은 물 놔두고 썩은 물을 돈 주고 사 마시나?” 하셨고, “공부하는 사람은 차 달여 마시는 것도 엉뚱한 짓”이라고 질책하셨다고 합니다. 쓸데없는 일에 욕심 안 부리고 공부에만 전념하면 저절로 수행이 된다는 것을 큰스님께서는 늘 생활 속에서 깨우쳐주셨습니다.

스님은 큰스님의 뜻을 기린 후 봉암사 대웅전을 나왔습니다.

곧바로 선유동 정토 연수원 공사 현장을 찾았습니다. 4월 14일에 개원식이 진행될 예정이어서 인테리어를 마감 짓는 공사가 한창이었습니다. 우선 개원식 행사를 할 야외 마당을 둘러보았습니다. 무대를 어디에 설치할지, 현수막을 어디에 걸지 두루두루 점검했습니다.

개원식 행사와 관련해 이야기를 나누던 중 주방 시설을 갖추는 과정에서 남이 버린 것을 받아오느라 설치가 지연되고 있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새것을 구매하면 금방 해결될 일이지만, 스님은 이 건물이 소박하고 검소한 삶을 보고 배울 수 있는 수행처소의 모델이 되면 좋겠다는 바람을 거듭 강조했습니다.

“이곳 정토 연수원이 남들이 버리는 물건들도 재활용을 해서 잘 사용할 수 있다는 것을 배우는 교육의 산실이 되면 좋겠어요. 그래서 필요한 물건이 있으면 대중들에게 ‘이러이러한 물건들이 필요합니다’라고 공지를 하세요.

냄비, 그릇, 주방 기구, 책상, 의자, 회의 테이블, 이런 것들이 필요하다고 공지하면 사람들로부터 안 쓰는 물건들을 많이 받을 수 있어요. 그걸 받아서 우리가 재활용을 하면 돼요. 책상을 받을 때도 높은 것, 낮은 것을 가리지 말고 받고, 의자를 받을 때도 플라스틱으로 된 것, 쇠로 된 것을 가리지 말고 받으세요. 주워 온 물건을 재활용해서 곳곳에 설치해두면, ‘아, 이렇게도 살 수 있구나’ 하는 것을 연수생들이 느끼고 갈 수 있잖아요. 책상이나 의자를 똑같은 크기로 획일적으로 맞출 필요가 없어요. 어떤 사람은 높은 의자에 앉아서 밥을 먹고, 어떤 사람은 낮은 의자에 앉아서 밥을 먹어도 괜찮아요. 그게 연수원의 컨셉이에요.

이렇게 헌 물건을 재사용하다가 나중에 다른 물건이 보시 들어오면 그때 가서 물건을 교체해도 돼요. 지금 평화재단에서 스님이 손님 접대용으로 사용하는 탁자와 의자도 길거리에서 주워 온 겁니다. 15년째 쓰고 있는데도 아무런 이상이 없어요. 대통령이 된 분도 그 의자에 앉았고, 우리나라 유명한 정치인, 연예인들도 다 그 의자에 앉아서 스님과 밥먹고 대화 나누고 그랬어요.

이곳은 수행처소이기 때문에 검소해야 합니다. 어떤 물건도 새 것을 자꾸 구입하는 것은 안 됩니다. 이 건물은 우리가 필요해서 마련한 곳이지 세상에 홍보하기 위한 곳이 아니에요. 밖에서 볼 때는 새 건물처럼 보였는데, 막상 건물 안에 들어와 보니 ‘헌 물건을 주워서 쓰고 있네!’ 이렇게 느끼고 가도록 해야 합니다.”

스님의 말씀을 듣고 나니 방금 서암 큰스님의 일화가 다시 생각나면서 정토행자들이 검소한 삶을 살도록 안내하고자 하는 스님의 뜻이 더욱더 깊이 있게 다가왔습니다.

마지막으로 전국에서 주워 온 물건들이 쌓여 있는 창고를 둘러보았습니다. 학교가 이사를 가면서, 식당이 문을 닫으면서 생긴 다양한 크기의 책상, 의자, 책꽂이, 테이블이 가지런하게 종류별로 쌓여 있었습니다.

이 물건들이 자리를 잘 잡고 나면 다양한 크기의 물건들을 통해 ‘검소한 수행자의 삶을 체험할 수 있는 곳이 되겠구나’ 싶었습니다. 스님은 지난 1년 동안 이곳에 상주하며 공사 현장에서 봉사한 이복희 보살님과 거사님 부부에게 감사의 마음을 전했습니다.

“정말 수고 많으셨어요. 여러분의 봉사 덕분에 몇 억 원은 아낀 것 같아요. 감사합니다.”

문경을 출발한 스님은 서울로 향했습니다. 며칠 무리를 해서 몸이 편찮으신지 강연장에 도착하기 전에 병원에 들르자고 했습니다. 병원에서 주사를 맞고 잠시 휴식을 취한 후 저녁 강연이 열리는 은평구청에 도착했습니다.

오늘부터 2019년 상반기 즉문즉설 강연을 시작합니다. 즉문즉설은 살아가면서 겪는 괴로움과 의문에 대해 법륜스님에게 무엇이든 묻고 대화하는 자리입니다. 스님은 매년 전국을 다니며 강연을 하고 있습니다.

올해 첫 강연은 서울 은평구청에서 열렸습니다. 활짝 핀 꽃을 시샘하듯 쌀쌀한 날씨에도 많은 시민이 강연장을 찾아왔습니다. 강연장 입구에는 ‘언제 행복한가요?’, ‘즉문즉설을 듣고 달라진 점은?’, ‘우리 동네 좋은 점, 불편한 점?’에 대해 쓸 수 있는 판이 있었습니다. 참가자들은 입장을 기다리며 각 질문에 메모지를 써 붙여보기도 했습니다. 6시부터 입장을 시작하자 금세 좌석이 다 찼습니다. 늦게 오신 분들은 뒤 공간 바닥에 자리를 깔고 앉았습니다.

강연 전, 사회자가 청중에게 ‘언제 행복한지?’ ‘즉문즉설을 듣고 무엇이 달라졌는지?’에 대해 물었습니다. 이번 강연에서 새롭게 진행해보는 프로그램입니다. 마이크를 건네받은 시민은 부끄러워하면서도 자신의 생각을 이야기해주었습니다.

스님은 저녁 6시 30분에 이 지역 국회의원인 박주민 의원과 김미경 은평구청장과 차담을 나눈 후 7시가 되어 강연장으로 들어갔습니다. 스님이 모습을 보이자 자리를 가득 메운 500여 명의 시민들이 큰 박수로 스님을 환영했습니다. 김미경 은평구청장은 “오늘 마음이 편안해지는 시간이 되시길 바랍니다.”라고 인사했고, 박주민 의원은 스님과 인연을 소개했습니다.

“저는 대학교 때 스님을 만나서 북한동포 돕기 운동을 하게 되었습니다. 변호사가 되어서도 스님과 인연이 계속되어 북한의 인도적 지원법을 주장했습니다. 국회의원이 되어서도 스님과의 인연이 계속되어 그 법안을 발의했습니다. 아직 법안이 통과는 못했지만 스님께서 항상 힘이 되어주신 것에 감사드립니다. 제가 느낀 감사함, 따뜻함을 여러분도 느끼시길 바랍니다.”

이어서 스님이 무대에 올랐습니다.

“강연 전에 화장실에 다녀왔는데 화장실에 서양사람이 쓴 문구가 적혀 있었습니다. ‘우리가 행복해야 할 시간은 지금이다. 우리가 행복해야 할 장소는 여기다.’ 지금 여기 행복하기는 불교의 수행자만 가져야 할 관점이 아니라 모든 사람이 가져야 할 관점이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여러분은 지금 여기 행복하세요?”

“네!”

“아닌 거 같은데요. 이 질문지함에 행복하지 않은 이야기만 들어있어요.”(모두 웃음)

스님은 가득 찬 질문지를 보고 바로 질문을 받기 시작했습니다. 첫 번째 질문자는 40대 남성이었습니다. 우울한 감정이 들 때가 많은데, 스님도 우울한 감정에 빠질 때가 있는지 물었습니다.

“저도 그런 감정이 올라오기도 합니다. 똑같이 밥 먹고 똥 누고 잠자고 살아요. 기분 나쁜 일도 있고, 좋은 일도 있지만 감정이 널뛰는 폭은 적다고 할 수 있습니다. 꼭 ‘스님도 괴로워요’라는 말을 들어야 시원하겠습니까?”

“네. 감사합니다.”(모두 웃음)

가벼운 질문에 이어 36세 남성이 질문을 했습니다. 얼마 전까지 행복한 남편이었다던 질문자의 사연에 청중은 탄식했습니다.

“저는 몸과 정신 모두 건강한 30대 남자였습니다. 그리고 행복한 남편이었습니다. 결혼한 지 한 달 반 되었는데 열흘 전에 사랑하는 아내가 집에서 자살을 했습니다. 술에 만취해서 충동적으로 저지른 일이었습니다. 저와 다투고 나서 제가 자고 있을 때 목을 매달아 세상을 떠났습니다.

이를 막지 못했다는 죄책감, 자책감, 자괴감, 그리움에 지금 매우 괴롭습니다. 저는 그래도 부모님 때문에 살아 있습니다. 정신과에 가서 진료도 받고, 약도 먹고, 정토불교대학도 입학하고, 이런저런 것을 다 해보고 있습니다. 가족들도 많이 만나고 있고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모든 일에 의욕이 없습니다. 길을 다니다 보면 저 빼고 다 행복해 보입니다. 12년 다니던 직장도 그만두려고 준비 중입니다. 집도 내놨습니다. 어떻게 보면 살려고 발버둥 치고 있습니다. 지금 이 자리에 와 있는 것도 그래서 그렇습니다. 제 바람은 그녀가 좋은 곳에서 편안히 있기를 바라는 마음뿐입니다. 스님 도와주세요.”

“지금 본인이 겪고 있는 아픔에 대해서 어떤 말로 위로가 될 수 있겠습니까. 그것은 겪어본 사람만이 알 수 있는 일입니다. 제 삼자가 그 아픔을 이해한다는 것은 어려운 일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저는 별로 도움이 되지 않는 허례허식적인 위로의 말은 하지 않겠습니다. 이야기하다가 아픈 상처가 조금 덧날 수도 있겠다고 생각하지만, 지금 이 자리까지 와서 질문한 분에게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도록 이야기를 해보겠습니다.

첫째, 앞으로 많은 난관이 있겠지만 저는 질문자가 잘 해갈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이유는 오늘 이 자리에 와서 질문을 했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모두 박수)

스님의 말에 청중석에서 진심 어린 박수가 터져 나왔습니다. 질문자도 말없이 꾸벅 인사를 했습니다.

“우울증 환자가 ‘제가 우울증을 앓고 있습니다. 그래서 이런 어려움이 있습니다’ 이렇게 말할 수 있기까지 엄청난 시간이 걸립니다. 그 사람에게는 엄청난 용기가 필요한 일이기 때문입니다. 시작이 반이듯이 그렇게 자기의 아픔을 내어놓으면 이미 절반이 치료가 된 거예요. 그래서 제가 도와줘서 치료가 되는 것이 아니라 본인이 자기를 치료하려고 하는 요구가 그만큼 강렬하기 때문에 치료가 되는 겁니다. 그렇기 때문에 질문자도 이 어려움을 잘 극복할 것입니다.

저를 안 만나도 극복을 잘하겠지만, 극복하는 시간을 조금 단축하기 위해서 어떻게 사물을 봐야 되는가에 대해 제가 이야기해 보겠습니다.

질문자가 괴로움에 빠져 있다가 도저히 못 견뎌서 본인도 따라 자살을 해버린다면 그것은 어쩔 수 없는 일이지만, 만약 본인이 그런 선택을 안 하고 살아간다면 1년 정도 지나면 이 아픔이 지금 열흘 지난 아픔과 같을까요, 더 심해질까요, 더 약해질까요?”

“조금 약해질 것 같습니다.”

“2년 지나면요.”

“더 약해질 것 같습니다.”

“3년 지나면요.”

“더 약해질 것 같습니다.”

“지금은 다른 여자분을 도저히 못 만날 것 같지만 3년쯤 지나면 만날 가능성이 있을까요, 없을까요?”

“있을 것 같습니다.”

“지금 열흘밖에 안됐는데 제가 이런 것을 물어서 죄송합니다. 3년쯤 지난 뒤에는 이 아픔이 많이 사라져 있을 겁니다. 이 아픔은 지금 관점에서는 말할 수 없는 큰 아픔이지만, 시간이 지나면 조금씩 옅어집니다. 물론 시간이 흐를수록 옅어지지 않고 점점 더 깊어지는 사람도 백 명 중 한 명, 천명 중 한 명은 있습니다. 시간이 흐를수록 아픔이 깊어지면, 이것은 사랑이 커서 그런 것이 아니고 편집증, 즉 정신 질환에 걸렸기 때문에 그런 겁니다. 이것은 윤리 도덕적인 관점 하고는 다릅니다. 아내가 죽었다는 그 생각에 사로잡혀서 헤어 나오지 못하면, 마치 수렁에 빠져서 움직이면 움직일수록 깊이 빠지듯이 상처가 점점 더 깊어져서 마지막에는 본인도 아내를 따라가는 그런 지경에까지 이를 수도 있습니다. 세상 사람들의 평가로는 이것을 ‘사랑’이라고 합니다. 남편이 죽고 아내도 따라 죽으면 ‘열녀’라고 해요. 그런데 정신적인 관점에서 설명하면 이것은 질환에 속합니다. 아내가 죽고 굉장한 죄책감에 사로잡혀 있는 것을 일반적으로는 ‘사랑’이라고 표현하는데, 정신적인 관점에서 보면 그 충격에 따른 정신 질환에 속합니다.

제가 너무 냉정하게 말하나요? 의사가 병을 병이라고 말해야지 병을 미화할 수는 없잖아요. 그런데 이 병은 시간이 경과하면 자연적으로 조금씩 치유가 됩니다. 아무리 사랑하는 사람이 죽거나 헤어졌다 하더라도 1년, 2년, 3년 지나면 점점 괜찮아져요. 그런데 이 일을 당한 순간에는 천년 가도 변하지 않을 것 같이 느껴집니다. 여기서 병으로 악화가 되면 죽는 쪽으로 가고, 병으로 악화가 안 되면 자연 치유 쪽으로 갑니다. 그래서 ‘세월이 약이다’ 이런 말을 하는 겁니다.

이렇게 가만히 놔둬도 치유가 되지만, 수행이라는 것은 자연치유보다는 조금 나아야 되잖아요. 감기 걸렸을 때 가만히 내버려둬도 일주일 있으면 나아요. 그러나 아픈 기간을 줄이려면 약을 먹어야 합니다.

그런데 질문자가 저한테 질문한 이유는 아픈 기간을 줄이려고 그런 거겠죠. 그러니 이렇게 한 번 생각해봐요.

‘1년 지나고, 2년 지나고, 3년 지나면 점점 나아질 것이다. 그러면 3년 지나면 어차피 나아질 것을 꼭 3년을 앓다가 나아지는 게 좋은가, 아니면 오늘부터 나아지는 게 좋은가?’

질문자가 생각하기에는 어느 쪽이 더 나아요?”

“오늘부터 나아지는 게 낫습니다.”

“노력하지 않고 가만히 놔둬도 자연 치유가 되어서 3년이 지나면 나아집니다. 그렇다고 아내가 살아 돌아오는 것도 아니고, 아무런 변화는 없어요. 그러면 지혜라는 것은 이것을 알아차리는 겁니다.

‘굳이 3년 동안이나 괴로워할 필요가 뭐가 있나. 오늘부터 좋아지면 되지.’

예를 들어 다리를 다쳐서 그대로 놔두면 석 달 지나서 치유가 될 것을 병원에 가서 치료를 받으면 그 기간을 일주일로 단축시킬 수 있어요. 그것처럼 수행을 하면 그 즉시 말 떨어지자마자 바로 치유를 할 수 있어요. 그런데 ‘나는 죽어도 치유가 안 될 것이다’ 이렇게 생각하면 제 말이 안 먹힐 겁니다. 병이 점점 악화가 되면 저도 치료를 할 수가 없어요. 그때는 병원에 가서 정신과 치료를 받아야 돼요. 그래서 지금 질문자가 정신과 치료를 받고 있다는 것은 굉장히 좋은 태도예요. 보통은 괴로워만 하지 정신과 치료를 안 받으려고 하거든요.

여러분들도 앞으로 누가 죽거나 애인이 바람을 피우거나 어떤 충격이 와서 정신적으로 괴로우면, 먼저 병원에 가야 됩니다. 육체만 병에 걸리는 게 아니라 정신도 병에 걸립니다. 다만 정신적인 질환은 심한 게 아닌 이상 자연 치유가 됩니다. 감기 걸린 것도 가만히 내버려 두면 자연 치유가 되지만, 자칫 잘못하면 폐렴으로 번질 경우 생명이 위독할 수 있듯이 정신 질환도 마찬가지예요. 대부분 자연 치유가 되는데 조금 심해지면 같이 따라 죽는 쪽으로 갈 위험이 있어요. 그래서 일단 질문자는 병원에 다니면서 그런 위험을 방지하기 위한 치료를 받아야 해요. 그전에 우선 오늘 저와 대화를 나눈 후부터는 자꾸 이 생각을 해야 돼요.

‘3년 후에 내가 정상인으로 돌아온다면, 오늘 돌아오지 굳이 3년까지 시간을 연기할 필요가 뭐가 있나.’

그래서 좋은 사람 있으면 오늘 바로 만나세요. 그것은 죄가 안 됩니다. 아내나 남편이 있는데 다른 사람을 만나면 그것은 윤리 도덕적으로 바람직하지 못해요. 그런데 상대가 돌아가셨거나 이미 서로 약속을 해서 헤어졌을 때는 다음날 다른 상대를 만난다고 해서 아무런 문제가 안돼요. 문제가 되는 것은 내 미련이고 집착일 뿐입니다. 지금 당장 누군가를 만나라는 것이 핵심이 아니고 사람을 만날 때 죄의식을 가질 필요가 없다는 겁니다.

질문자는 아무런 죄를 저지른 바가 없어요. 본인이 죽인 것도 아니고, 아내의 병을 알았던 것도 아니잖아요. 질문자가 그 사실을 알았다면 그걸 방지했을 겁니다. 그런데 자고 일어나니까 일어난 일이었단 말입니다. 충격을 받은 것은 이해하지만 자기 잘못은 아니에요. 그러니 죄의식을 가지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습니다. 아쉬운 것은 이해가 돼요. 그러니 정신과 치료를 받으시고 더 빨리 건강하게 사시기 바랍니다.

다음에 새로운 사람을 만날 때 이것 때문에 또 어떻게 될까 봐 두려워하면 이것은 트라우마가 생긴 겁니다. 그러나 이 경험을 잘 살리면 큰 깨달음을 얻을 수 있어요. 사랑하는 사람과 사랑을 나누는 것이 꼭 좋은 것만은 아니거든요. 갑자기 상대가 죽거나 상대와 헤어지는 사건이 일어나면 엄청난 괴로움이 뒤따릅니다. 질문자가 이것을 알아서 출가를 해버리면 제일 좋아요. (모두 웃음)

옛날에 위대한 고승이 된 사람 중에는 가족이 죽거나 무슨 일이 생겨서 ‘아, 인생이 아무것도 아니구나’ 하고 깨달은 분들이 많습니다. 아무리 높은 지위가 있고, 아무리 많은 재산이 있고, 아무리 많은 인기가 있다 하더라도 숨이 딱 끊어지는 순간에는 아무런 의미가 없거든요. 그걸 제대로 깨닫게 되면 진정한 출가를 하게 되기 때문입니다.”

“네. 감사합니다.” (모두 박수)

질문자가 밝게 대답하자 청중은 긴 박수를 보냈습니다. 안도와 격려가 섞인 박수였습니다.

이 외에도 다음과 같은 질문이 있었습니다.

  • 철학, 종교를 비롯한 다방면의 공부를 하다 보니 식욕이 떨어지고 체력이 떨어졌는데 올바르게 공부하고 있는 걸까요?
  • 우울증이 많이 좋아져 자신감이 생겼는데 자궁에 이상이 생겨 걱정입니다.
  • 마음의 상처를 받은 아들이 12년째 다니던 직장을 그만두려 해서 걱정입니다.
  • 조두순의 출소가 두렵습니다. 외국에서도 흉악범이 출소할 수 있나요?
  • 알콜중독인 남편이 밉고, 착했던 아들이 사춘기라 속을 썩여서 힘들어요. 어떻게 기도해야 할까요?

때로는 손뼉을 치며 웃기도 하고, 때로는 몰입하여 듣다 보니 금세 두 시간이 흘렀습니다. 스님은 마지막으로 질문한 분들에게 소감을 물었습니다. 아내를 잃은 질문자도 훨씬 밝은 얼굴로 소감을 말해주었습니다.

“오늘 말씀 잘 들었습니다. 스님 말씀대로 오늘 하루 만에 떨쳐버리면 좋겠지만 솔직히 어렵고요. 3년이 아니라 1년으로 줄여보겠습니다. 그리고 아까 저희 어머니께서 제 직장 문제로 질문을 하셨어요. 지금 저에게 직장 그만두는 것 정도는 아무것도 아닌데 어머니께서는 그것을 가장 크게 걱정하고 계시더라고요. 어머니께도 감사드리고 법륜스님께도 감사드립니다.”

스님은 질문자들의 소감을 듣고 보충해서 설명을 해주었습니다.

“저는 질문을 들을 때 걱정을 했습니다. 부부가 싸우고 나서 아내가 우울증이 있어 화를 못 추스리고 자살을 했잖아요. 아내의 가족 입장에서 보면 사위가 미울 겁니다. 그런데 제가 ‘죽은 사람은 죽은 사람이고 당신은 잘 살아라’라고 했어요. 아내의 가족이 들으면 굉장히 섭섭할 거예요. 저는 질문자를 깨우쳐 주려고 얘기했지만 그쪽에서는 ‘그러면 나쁜 놈도 다 괜찮다는 거냐’ 이렇게 말할 수도 있겠죠. 그러니 죽은 아내의 가족에게 꾸준히 잘해줘야 합니다. 그들이 질문자를 욕하고 비난하더라도 딸 잃은 부모의 아픈 마음을 헤아려서 자주 찾아뵙고요. 내가 죄지었다고 생각하지 말고, ‘제가 부족해서 아내를 잘 보살피지 못하고 이렇게 됐습니다. 죄송합니다’는 마음을 내시기 바랍니다. 만약 아내의 가족이 싫어해서 못 찾아오게 하더라도 그 아픔을 헤아려주는 기도를 해야 합니다.

질문자의 어머니도 자꾸 자기 아들만 걱정하기보다 며느리 가족의 아픔을 헤아리는 기도를 해야 합니다. 그러면 오히려 아들의 마음이 풀릴 거예요. 우리는 늘 자기 생각만 하거든요.”

“며느리가 원래 우울증 약을 먹었어요.”

“우울증 약을 먹어서 자살을 한 것은 자기 책임이지만 우울증 약을 먹거나 우울한 사람을 어떻게 다루는가에 대한 것은 내 책임입니다. 상대를 정상인처럼 다루었기 때문에 이런 결과가 발생한 거예요. 정상인이 아닌데 정상인처럼 생각한 것은 나의 무지라는 겁니다. 내가 나쁜 짓을 했다가 아니라 내가 어리석었기 때문에 이런 화를 가져오게 된 거거든요.

질문자의 어머니는 아들이 직장을 다닐지 말지에 대해서는 그만 걱정을 하셔야 해요. 오히려 딸을 잃은 사돈의 심정을 생각해서 기도를 해줘야 합니다. 그래도 우리 아들은 살았잖아요. 안 죽고 살았다는 것이 중요하지, 직장 그만두는 게 무슨 큰 문제입니까. 딸을 잃은 사람은 엄청난 충격을 받았기 때문에 오히려 그분들을 위해서 기도를 해주면 그게 나한테 복이 됩니다. 관점을 이렇게 가져야 서로에게 쌓여 있는 원한을 풀어나갈 수 있어요. 그렇게 하지 않으면 원한이 원한을 낳으면서 점점 확대가 됩니다.

이것을 관점의 전환이라고 해요. 사물을 보는 관점을 탁 바꿔야 합니다. 남편이 화가 나서 물건을 집어던지면 ‘어떻게 네가 그릇을 깰 수 있어!’하고 화가 나잖아요. 이렇게 보다가 ‘아이고, 그래도 나 안 때리고 그릇을 깨네, 여보 고마워’ 이렇게 관점을 탁 바꿀 때 기적이 일어납니다. 이게 관점의 전환이에요. 이것을 할 수 있으면 새로운 세상이 열립니다. 이것을 한 번 도전해 보세요. 머리를 깎으라는 것도 아니고 고기 먹지 말라는 것도 아니고 결혼하지 말라는 것도 아니예요.

관점만 바꾸면 어떤 사람도 행복할 권리가 있습니다. 나날이 행복하시기 바랍니다. 감사합니다.”

자신의 이야기를 솔직하게 드러내 준 질문자들 덕분에 삶의 지혜를 풍성하게 배울 수 있었습니다. 혼자, 둘이서, 여럿이서 강연장을 떠나는 청중은 선물을 한 아름 받은 듯 기뻐 보였습니다.

내일은 충북 음성에서 두 번째 즉문즉설 강연이 이어집니다. 또 다른 삶의 이야기와 지혜를 전해드리겠습니다.

전체댓글 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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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지나

나보다 더 힘든 상대를 위해 기도합니다
아 그랬구나 나보다 더 힘들수 있겠구나...
감사합니다 꾸벅

2019-04-09 21:43:19

보문성

스님의 귀하신 법문 잘 들었습니다.

2019-04-07 21:48:43

임규태

감사합니다!!!^_^

2019-04-06 13:52: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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