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륜스님의 하루

2019.4.1 농사일
“저기 봐라. 꽃이 오지게 피었다!”

안녕하세요. 오늘 스님은 하루 종일 농사일을 했습니다. 바람이 제법 쌀쌀했지만, 햇살이 따스해서 농사일을 하기에는 좋았습니다.

아침 일찍 스님은 비닐하우스로 가서 상춧잎을 땄습니다. 상추는 하루가 멀다 하고 쑥쑥 자라서 언제든지 따서 먹을 수 있을 정도입니다. 아침 햇살을 받은 상추가 아주 먹음직스러워 보였습니다.

봄소식에 새들도 기분이 좋은지 여기저기서 지저귀는 소리가 참 듣기 좋습니다.

아침 8시가 되자 농사일을 하러 온 실무자들이 도착했습니다. 먼저 스님은 지난 일주일 간 실무자들이 정비해 놓은 비닐하우스 두 동을 둘러보았습니다. 지난 주말 공동체 울력으로 5년 간 방치되어 있던 폐자재들을 깨끗이 걷어낸 후 일주일 동안 밭고랑을 각 동마다 4개씩, 총 8개를 만들었습니다. 두둑을 만든 후 물을 공급하는 호스를 각 고랑마다 깔았습니다. 물탱크에서 물이 공급되면 가뭄에 상관없이 작물을 키울 수 있는 장치입니다.

아직 배수로도 제대로 파야하고 할 일이 많이 남긴 했지만 이제 작물을 심을 수 있는 토대는 마련된 것 같습니다.

“스님, 그런데 밭고랑 사이에 돌이 많습니다. 시간 날 때 돌을 다 골라내야 할 것 같아요.”

비닐하우스 안에 돌이 많다는 것은 뜻밖이었습니다. 스님은 “알았다”라고 한 후 창고 정리를 하러 농사 창고로 향했습니다. 밭일은 크게 할 일이 없어 오늘은 창고를 깨끗이 정리하기로 했습니다. 어지럽게 흩어져 있는 비료와 자재들을 가지런하게 정돈하니 창고가 금세 깔끔해졌습니다.

창고를 정리하는 과정에서 아직 심지 않은 감자 한 박스가 나왔습니다.

“일단 밭에 심어 보자. 싹이 올라오면 다행이고, 아니면 그만이니까.”

쓰다 남은 유기질 비료를 밭에 뿌리고 밭고랑을 만든 후 물을 흠뻑 주었습니다. 감자는 적당한 크기로 눈을 잘라 줄을 맞춰 심었습니다.




창고 정리를 마치고 밭으로 향했습니다. 작물을 심을 수 있게 삽으로 땅을 뒤집는 일을 했습니다. 바람이 쌀쌀해서 땀이 나도 금방 시원해졌습니다.


밭일을 마치고 나오는데 밭 주변 곳곳에 민들레와 달래가 보였습니다.

“아이고, 여기에 민들레 봐라.”
“저기에 달래가 많네.”

점심시간이 되었지만 민들레와 달래가 스님의 발목을 잡았습니다. 스님은 삽으로 땅을 푹푹 뒤집은 후 그 속에서 금세 민들레와 달래를 골라내었습니다. 능숙한 손놀림에 잠깐 사이에 민들레와 달래가 한 통 가득 채워졌습니다.




밭일을 마치고 내려오는 길에는 벚꽃이 활짝 피어 있었습니다.

“이야, 저기 봐라. 꽃이 오지게 피었다! 점심 먹고 진달래, 연달래 구경하러 갈래?”

“네!”

아무리 농사일도 좋지만 봄꽃 구경을 놓칠 수 없죠. 점심식사 후 서둘러 진달래 구경을 하러 길을 나섰습니다. 스님은 _“저기 산 위에 가면 진달래가 산 전체에 벌겋게 피는 곳이 있다”_며 그곳으로 안내했습니다.

도로 양 옆에 가로수 전체가 벚꽃으로 둘러 쌓였습니다. 절로 탄성이 나왔습니다.

“꽃이 아니라 하얀 눈송이 같다!”

차로 10분을 달린 후 고불고불한 산길을 오르자 거짓말처럼 진달래가 분홍빛으로 산을 수놓은 듯한 곳이 나타났습니다. 탄성을 지를 세도 없이 저절로 핸드폰 카메라에 손이 옮겨갔습니다.


옆에 채석장이 생겨 산이 절단이 날 정도로 파괴되고 있어 안타깝긴 했지만, 그래도 진달래가 한 곳에 이렇게 많이 피어있는 모습은 정말 절경이었습니다. 실컷 진달래와 연달래 구경을 한 후 산을 내려왔습니다.

오후에는 벚나무와 매화나무 가지치기를 했습니다. 봄이 되었는데도 꽃이 안 피는 가지들은 가위로 싹둑 잘라내었습니다. 머리를 산발한 사람처럼 어수선해 보이던 나무가 스님의 손을 거치고 나니 이발을 한 것처럼 깔끔해졌습니다.

그리고 잔디를 깎았습니다. 잔디를 깎다가 담벼락 밑에 돌나물이 곳곳에 많이 나 있는 것을 발견했습니다. 칼을 가져와 돌나물을 뜯기 시작했는데, 잠깐 사이에 작은 바구니를 가득 채웠습니다. 오늘 저녁 밥상에 반찬으로 내기에는 충분한 양이었습니다.


스님은 _“땅에서 캔 그대로 요리하는 사람에게 가져다주면 손질하는데 힘들다”_며 스님이 직접 나물을 다듬었습니다. 깨끗하게 다듬어서 부엌으로 건네자 요리하는 분이 아주 좋아했습니다.

벌써 해질녘이 되었습니다. 스님은 아침에 비닐하우스를 돌아보면서 밭고랑 사이에 돌이 많았다는 실무자의 얘기가 생각이 났나 봅니다.

“1시간만 더 일하자.”

비닐하우스로 들어가서 괭이로 땅을 뒤집으니 정말 돌이 많았습니다. 멀리서 볼 때는 부드러운 땅으로만 보였는데, 조금만 땅을 파도 돌이 많이 나왔습니다.

“아이고, 돌이 이렇게 많은 줄 몰랐네.”

1시간만 돌을 주웠는데도 소쿠리 가득 대여섯 번을 날라야 했습니다. 아마 이번 주 주말에 공동체에서 울력을 오면 여러 사람이 붙어서 일해야 돌을 어느 정도는 골라낼 것 같습니다.

하루 일과를 마치고 돌아오는 길. 발길도 가볍고 마음도 가볍습니다. 스님은 농사일을 할 때가 가장 즐겁고 무아지경이 된다고 자주 말씀하시는데, 4월의 첫날을 어느 때보다 행복하게 보낸 것 같습니다.

아궁이에 불을 땔 수 있게 나무를 자르고, 불이 나간 전구를 새 것으로 교체한 후 오늘 일정을 모두 마쳤습니다.


“모두 수고했어요. 오늘은 여기까지만 일합시다.”

해가 산 너머로 뉘엿뉘엿 넘어가고 있었습니다.

저녁 밥상에는 오늘 스님이 틈틈이 채취한 돌나물, 상추, 달래와 각종 나물이 양념장과 함께 버무려져 나왔습니다. 된장과 함께 비벼 먹으니 정말 꿀맛이었습니다.

“오늘 저녁 식사는 1만 원짜리 산채 비빔밥이다.”

수고했다는 스님의 격려에 마음이 더 배부른 저녁식사였습니다.

내일은 문경 봉암사에서 대한불교 조계종 제8대 종정이셨던 서암 대종사님의 16주기 추모법회가 있는 날입니다. 날이 어두워지자 스님은 문경 정토수련원으로 향했습니다.

오늘은 법문이 없었기 때문에 지난 30일 용성조사 열반기념일에 경전반 학생들을 대상으로 한 즉문즉설 강연 중에서 소개하지 못한 대화 하나를 소개해 드리겠습니다. 수행자가 조금 더 존경받는 사람이 되기 위해서는 오계 외에 무엇을 더 지켜야 하는지 스님의 설명이 참 좋았습니다.

“부처님께서는 마음이 들뜨지 않게 가무(歌舞)를 하지 말라고 하셨는데, 정토회에서는 행사 때마다 가무를 하고 박수를 쳐서 마음이 들뜨게 됩니다. 부처님께서 하지 말라고 한 것 같은데 왜 정토회에서는 하는지 평소에 궁금한 마음이 들어 질문드립니다.”

“네, 질문 잘했어요.(모두 웃음) 수행자가 되려면 우선 다른 사람에게 해를 끼쳐서는 안 됩니다. 남에게 해를 끼치는 사람은 수행자가 될 자격이 없습니다. 그래서 나온 것이 계율입니다.

첫째, 남을 때리거나 죽이거나 해치지 말라.
둘째, 남에게 손해를 끼치지 말라. 즉 훔치거나 빼앗는 행위를 멈추어라.
셋째, 남을 괴롭히지 말라. 즉 성추행이나 성폭행을 하지 말라.

이 세 가지 계율은 때리거나 손해를 끼치는 등 행동으로 남을 괴롭히지 말라는 거예요.

넷째, 말로 남을 괴롭히지 말라.

요즘은 말로 성희롱을 하는 것도 법적인 죄목으로 인정이 됩니다. 다른 사람에게 욕을 하거나 거짓말을 하는 것도 그 사람을 괴롭히는 행동입니다. 여기에는 아양 떠는 말을 하지 말고, 다른 사람을 이간질시키지 말라는 것도 모두 포함됩니다. 핵심은 말로도 남을 괴롭히지 말라는 거예요. 원래는 ‘사(四)바라이’라고 해서 이렇게 네 가지 계율이 기본 바탕이었는데, 여기에 한 가지 계율이 추가됩니다.

다섯째, 술 먹고 취하지 말라.

여러분들 주변을 가만히 보면 주로 술 먹고 취했을 때 남을 괴롭히거나 폭력을 행사해서 남을 괴롭히는 경우가 많습니다. 술을 취할 정도로 먹었을 때 주변에서 입는 피해는 당하는 입장에서는 이루 말할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이 계율까지 포함하면 다섯 가지 계율이라고 해서 ‘오계(五戒)’라고 합니다.

이 다섯 가지만 지키면 다른 사람에게 피해를 줄 일이 없습니다. 아무리 낯선 사람이라고 하더라도 이 계율만 지키면 두려워할 이유가 전혀 없습니다. 아무리 가족이라고 하더라도 이 계율을 지키지 않으면 상대를 괴롭히게 됩니다.

이 다섯 가지 계율을 지키는 것은 수행자로서의 기본 바탕을 갖추는 것입니다. 그러나 다섯 가지 계율만으로는 좋은 사람이라는 평가를 받을 수 있을지는 모르지만 사람들로부터 존경을 받기에는 부족합니다. 머리를 기르고 살더라도 세상 사람들로부터 존경받을 만한 단계로 나아가려면 여기에 세 가지를 더 지켜야 합니다.

첫째, 머리에 꽃을 꽂지 말라, 사치하지 말라.

부자인데도 불구하고 집을 간소하게 하고, 옷도 검소하게 입고, 먹는 것도 간단하게 먹으면 사람들이 존경합니다. 이것을 옛날 표현으로는 ‘머리에 꽃을 꽂지 말라’라고 되어있습니다. 장식을 하지 말라는 말은 곧 사치를 하지 말라는 뜻입니다. 그래서 정토회 안에서도 자신이 수행자의 모범이 좀 되려면 화장하지 말고, 귀걸이나 목걸이 등 장신구를 하면 안 됩니다. 머리도 지지고 볶는 머리 스타일은 안 됩니다.(모두 웃음) 명품 가방을 메고 다니거나 명품 옷을 입는 것도 지양하고, 집을 너무 화려하게 꾸미거나 비싼 외제차를 타는 것도 안 됩니다. 사치하지 말라는 것에는 이러한 것이 모두 포함되어 있습니다.

둘째, 높은 평상에 앉지 말라, 교만하지 말라.

이것은 교만하지 말고 겸손하라는 뜻입니다. 높은 평상에 앉지 말라는 것은 옛날 인도식 표현이에요. 우리는 평소에도 평상에 앉을 일이 없으니까 무슨 뜻인지 이해하기 어려운데, 이 계율이 내포하는 뜻은 잘난 체 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요즘에도 인도 시골 마을에 초청을 받아서 법문을 하러 가면 대중들은 모두 바닥에 포장을 깔고 앉고, 법문을 하는 스님에게는 커다란 평상 위에 앉도록 합니다. 스님은 그 가운데 앉아서 법문을 해요. 그런데 그 동네 유지들도 모두 다 평상 위에 앉아서 대중을 마주 봅니다. 우리나라에서 그런 행사가 있다면 동네 유지들은 모두 다 앞에서 첫 번째 줄에 앉잖아요. 그래도 우리나라 유지들은 대중과 함께 앞을 쳐다보는데, 인도 문화에서는 평상 위에 앉아서 대중을 마주 봅니다. 그래서 평상 위에 자리가 부족하면 행사를 주최하는 쪽에서 매우 곤란해합니다. 그러다 보니 행사 때마다 평상이 자꾸 넓어집니다. 이때 평상 위에 앉으려는 이유는 ‘나 잘 낫다’ 하는 마음 때문이겠죠. 그러니 ‘평상 위에 앉지 말라’는 말은 교만하지 말고 겸손하라는 뜻입니다.

첫 번째 계율은 부(富)를 탐하지 말라는 것이고, 두 번째 계율은 지위를 탐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계율에 돈을 적게 가지라는 말은 없어요. 돈은 많이 갖든 적게 갖든 상관하지 않습니다. 아무리 돈이 많아도 수행자라면 검소하게 살라는 것이 계율입니다. 마찬가지로 지위가 높으면 안 된다는 계율도 없습니다. 지위는 대통령이 되어도 되는데, 다만 아무리 지위가 높아도 목에 힘주지 말고 겸손하라는 의미입니다. 이렇게 행동하면 주변으로부터 존경받을 만합니다. 여러분이 법사가 되려면 이 정도는 되어야 합니다. 검소하게 살고 겸손해야 합니다.

그러나 스님이라는 형식을 갖추면 겸손하기 어려운 점이 있습니다. 스님이라고 대우를 해주게 되기 때문에 목에 힘을 주기가 쉬워요.(모두 웃음) 아상을 버리라고 하니 대신 법상(法相)을 얻듯이 ‘내가 스님이다’라는 생각에 사로잡히면 그렇게 됩니다. 수행자는 늘 겸손해야 합니다. 그것이 ‘높은 평상에 앉지 말라’는 말로 표현되어 있습니다.

셋째, 가무를 즐기지 말라, 평정심을 유지하라.

이것이 질문자가 질문한 내용입니다. 가무(歌舞)는 춤추고 노래하면서 기분이 들뜨는 것을 말합니다. 이 계율은 기분 좋은 것으로 행복을 삼지 말라는 의미입니다. 기분 좋음에는 반드시 기분 나쁨이 따라옵니다. 예를 들어, 시험에 걸려서 기분이 좋다면 나중에 시험에 떨어지면 반드시 기분 나쁨이 따라오게 되는 겁니다. 무언가 얻어서 기분이 좋다면 그것을 얻지 못할 때 기분 나쁨이 반드시 생겨나요. 기분 좋음과 나쁨을 오가는 이것을 ‘윤회(輪廻)’라고 합니다. 고(苦)와 락(樂)이 윤회하는 거예요. 이런 기쁨을 추구하면 윤회에서 벗어날 수 없습니다.

그래서 고(苦)도 아니고 락(樂)도 아닌, 기분 좋음도 아니고 기분 나쁨도 아닌 평정심을 유지해야 합니다. 마음이 고요 적정하여 늘 편안해야 합니다. 좋은 일이 있어도 들뜨지 않고 빙긋이 웃을 뿐이고, 나쁜 일이 있어도 ‘아미타불’ 할 뿐이에요.(모두 웃음) 여러분 중국 영화 보시면 누가 ‘불이야!’ 하고 외치는데도 조실 스님은 ‘아미타불’ 하는 걸 볼 수 있죠. 들뜬 기쁨과 가라앉는 괴로움을 같은 것으로 보기 때문에 그렇게 할 수 있는 거예요. 그러니 ‘가무를 즐기지 말라’는 계율은 평정심을 유지하라는 의미입니다.

음악 중에도 사람의 마음을 고요하게 하는 음악이 있습니다. 계율에서 하지 말라고 하는 가무는 기분이 들떠서 흥분하는 가무를 뜻해요. 노래하고 춤추는 기쁨을 행복으로 삼는다면 그건 수행자로서의 자세가 아닙니다. 그게 아니라 평정심을 유지하는데 해가 되지 않는 음악은 괜찮아요. 요즘은 음악 명상도 있고, 춤 명상도 있습니다. 마음을 편안하게 하고, 평정심을 유지하는 것이 핵심입니다.

질문자의 질문에도 일리가 있습니다. 우리가 노래하고 춤출 때 너무 들뜨는 것은 안 하는 것이 원칙입니다. 그러나 하루에 한 끼를 먹어야 한다는 계율도 우리가 현실적으로는 세 끼를 먹되 과식하지 않고 검소하게 먹는 것으로 적용을 하듯이, 또 분소의를 입는 대신 옷을 화려하게 입지 않고 검소하게 입는 것으로 적용하듯이, 기분이 좋아서 춤추고 노래하는 것은 지양해야 하지만 경주 남산 순례를 가서 점심 먹는 사이에 노래를 몇 곡 하거나 오늘처럼 행사의 취지를 살린 노래를 함께 부르는 것은 쾌락을 위한 것이 아니라고 볼 수 있어요.

물론 질문자가 그 기준을 엄격하게 적용해야 하는 것 아니냐고 주장한다면, ‘그렇게 안 하는 것이 원칙입니다’라고 말할 수밖에 없습니다.(모두 웃음) 그러나 우리가 다른 사람에게 피해를 주면서까지 노래를 하는 건 아니고, 또 노래하는 것을 기쁨으로 삼지도 않잖아요.

요즘 미디어에 나오는 일들 중에 연예계 관련 뉴스나 정치권 별장 뉴스 등 쾌락을 좇다가 발생되는 사건들이 많은데, 그런 일들은 모두 돈이 많다고, 지위가 높다고, 인기가 있다고 들뜬 쾌락을 즐기거나 사치를 하거나 교만해서 생긴 일들이에요. 이런 일들을 보면 부처님의 말씀이 오늘날에도 그대로 적용된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우리가 이 세 가지 계율을 지키면 비난받을 일도 없고, 주변으로부터 존경받는 사람이 될 수 있습니다.

정토행자는 우선 다섯 가지 계율부터 지켜야 합니다. 아이가 아무리 말을 안 듣는다고 하더라도 때리면 안 됩니다. 아무리 좋아도 상대방의 허락 없이는 껴안거나 만져서는 안 됩니다. 상대방이 동의하지 않으면 성추행입니다. 처음 이야기한 다섯 가지 계율은 지키지 않으면 범죄에 속합니다. 사기를 치거나 술 먹고 행패를 부리는 것도 모두 범죄에 해당되는 일들이에요. 이건 무슨 일이 있어도 금해야 합니다.

뒤에 이야기 한 세 가지 계율은 지키지 않아도 범죄에 해당되지는 않습니다. 화장했다고 범죄가 되지 않고, 교만하다고 범죄가 되지 않고, 즐거움을 행복으로 삼아도 범죄는 되지는 않습니다. 그러나 세상 사람들로부터 존경을 받으려면 돈이 있더라도 검소하게 살아야 하고, 지위가 높더라도 겸손하게 살아야 하고, 마음이 들뜨지 않게 자기 마음을 잘 간수해가며 살아야 합니다.”

“잘 알겠습니다. 감사합니다.”(모두 박수)

전체댓글 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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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지나

순간순간 들뜨고 우왕좌왕하며 기분 좋으것을 쫓아갑니다
기분이 좋아도 가라않아도 그저 자각할 뿐 지금 여기서
한발한발 걸어갈 뿐입니다 감사합니다 꾸벅^^

2019-04-08 08:11:45

도원행

스님께서 뜯으신 봄나물이 너무 맛있어 보입니다. 오계를 잘 지키며 쾌락, 인기, 돈, 사치를 쫓아 들뜨고 교만하지 않으며 겸손하고 검소하게 살겠습니다.

2019-04-07 06:16:29

임규태

감사합니다!!!^_^

2019-04-06 13:29: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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