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토행자의 하루

월간정토
아버지, 감사합니다!

이 글을 읽기 위해서는 반드시 손수건이 필요합니다. 그리고 지하철이나 버스에서 읽으신다면 고개를 45도 정도 숙여서 눈물을 재빨리 떨어뜨리기를 권합니다. 안 그러면 사연 있는 사람으로 보이기 딱 좋기 때문이지요. 누군가의 자식이면서 이제는 부모가 되어, 어린 시절 내가 받은 사랑이 얼마나 큰 것이었는지 알게 된 사람이라면 공감이 많이 되리라 생각합니다. 김현석 님은 맹목적으로 잘살아야 한다는 생각에 빠져 괴로운 사람에게 백일출가를 강력히 권하였습니다. 자, 올해 진행되는 48기 백일출가는 9월에 시작되고, 정토회 홈페이지에서 신청하실 수 있습니다.

깨달음의 장에서 맛본 삶의 가벼움

저는 환경미화원이고 28개월 된 아이가 있습니다. 인생이 괴로움으로 가득하던 2019년, 유튜브에서 우연히 법륜스님의 즉문즉설을 듣고 ‘이 스님 정말 대단하다’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날부터 몇 날 며칠 동안 즉문즉설을 들었는지 모릅니다.

그러다 저와 처지가 비슷한 질문자에게 ‘깨달음의 장’에 가보라고 하셔서 저도 여름휴가를 이용해 깨달음의 장(이하 깨장)에 다녀왔습니다. 그간 누구에게도 털어놓지 못했던, 학교폭력을 당했던 이야기를 깨장에서 꺼내놓을 수 있었습니다. 그러면서 제가 얼마나 그 사건을 가슴에 담아 움켜쥐고 살았는지 알 수 있었습니다. 당시 저는 가해자에 대한 미움이 가득차 세상을 분노의 시선으로 보았고, 무엇이든 부정적으로 느꼈습니다. 하지만 깨장에서 내놓고 보니 별일 아니라는 생각이 들면서 마음이 시원하고 가벼워졌습니다.

그렇게 삶의 무게가 한결 가벼워지자, 제 생각에 빠져 일방적으로 이별을 통보했던 지금의 아내와 다시 만나 결혼하게 되었고, 예쁜 딸도 낳아 행복하게 살고 있었습니다. 그러다 어느 날 문득 ‘이 아이가 자라 초등학생이 되었을 때 환경미화원인 아빠를 길에서 만나면 외면할지도 모르겠다’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지금은 세상에서 아빠를 가장 좋아하는 아이가, 자라서 아빠를 미워하게 될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사로잡히자 마음이 무겁고 머리가 복잡해지기 시작했습니다.

천도재 준비 일수행 중(김현석 님)
▲ 천도재 준비 일수행 중(김현석 님)

부끄럽게 생각했던 나의 아버지

어린 시절, 유난히도 가난했던 저희 가정은 기초생활보호대상자로 지원받으며 살았습니다. 학교에서 선생님에게 이름이 불려 나가기라도 하면, 친구들에게 부끄럽고 창피해 어린 나이였음에도 ‘차라리 죽고 싶다’라는 생각이 들기도 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친구들과 집으로 가는 길에 횡단보도 건너편에 서 있는 초라한 모습의 아버지를 마주한 적이 있었습니다. 아버지는 선천적 청각장애가 있어 말투가 어눌한 데다 당시에 연탄공장에서 근무하셔서 늘 얼굴과 몸에 연탄 검정이 묻어 있었습니다. 그런 아버지 모습이 너무 창피해서 모른 척하고 싶어 눈을 피한 채 조마조마하게 아버지 옆을 그냥 스쳐 지나갔습니다.

지금 생각하면 그때 아버지가 얼마나 상처받으셨을지 죄송해서 눈물이 납니다. 어린 시절 제 기억 속의 부모님은 단돈 1,000원이 없어서 옆집에 돈을 빌리러 갔고, 학원에 보내달라고 하면 그럴 돈이 어디 있냐며 되레 야단치셨습니다. 부모님은 늘 돈 문제로 다투셨고 아버지는 술에 취하면 폭력을 행사하곤 했습니다. 그런 아버지의 모습을 보며, 나는 절대 아버지처럼 살지 않겠다고 다짐하며 하루하루를 살아갔습니다. 고등학교에 가자마자, 편의점과 PC방 아르바이트를 시작했습니다. 밤새워 일하고 학교에 가서는 종일 엎어져 자는 일과를 졸업할 때까지 이어나갔습니다. 어떻게 해서든 돈을 벌어 이 집에서 벗어나고 싶었습니다.

딸에게 자랑스러운 아빠가 되기 위해서

우연한 기회에 환경미화원 시험을 보았고, 합격해서 현재 근무 7년 차가 되었습니다. 처음에는 안정적인 직업을 가진 것이 매우 기뻤지만, 환경미화원으로 사는 것 역시 쉽지 않았습니다. 새벽 3시 반에 일어나 잠이 덜 깬 상태로 엄청난 양의 쓰레기를 실어 나르기 시작하기 때문에 일을 마칠 무렵이면 녹초가 되곤 했습니다. 여름에는 악취와 구더기, 겨울에는 추위와 빙판길과 싸우며 하루하루를 견뎠습니다. 하지만 이런 고단함보다 저를 더 힘들게 했던 것은 사람들의 시선이었습니다.

‘젊은 사람이 뭐 할 짓이 없어 그런 일을 하느냐’는 말도 자주 들었고 민원인들은 늘 환경미화원들을 무시하였습니다. 이런 가운데 ‘딸이 나의 직업 때문에 아빠를 싫어하게 되지 않을까’라는 생각이 더해지면서 이직에 대한 고민이 깊어졌습니다. 결국 육아휴직 기간을 이용해 소방공무원 시험 준비를 하기로 마음먹었습니다.

JTS 거리모금 캠페인 중(김현석 님)
▲ JTS 거리모금 캠페인 중(김현석 님)

휴직계를 준비하던 중, 불현듯 ‘백일출가’가 머릿속에 떠올랐습니다. 언젠가 꼭 한 번 백일출가에 도전해보고 싶었고, 언제 또 시간이 날지 모르는 만큼 본격적인 시험 준비 전에 다녀오고 싶어 아내에게 백일출가 이야기를 꺼냈습니다. 깨달음의 장을 통해 가벼워진 저를 봤던 아내는, ‘아이는 내가 잘 돌보고 있겠다’라며 선뜻 허락해주었습니다. 제 아내는 정말 고마운 사람입니다.

그렇게 백일출가에 입방해 첫 관문인 1만 배를 하면서 어릴 때 사고로 안 좋던 무릎과 발목이 걱정되었지만, 어린 아기를 아내에게 홀로 남겨두고 온 만큼 대충 할 수 없다는 생각이 들어 아주 열심히 절을 시작했습니다. 첫날 5,000배를 넘겼고 절대 물러서지 않겠다는 각오로 이어나갔습니다. 그러나 이튿날 8,000배에 가까워질 무렵 무릎과 발목이 참을 수 없도록 아팠습니다. 통증을 이겨보기 위해 부처님 고행상을 바라보며 딸의 이름을 부르기 시작했습니다. ‘아빠는 절대 여기서 도망치지 않겠다. 이 관문을 잘 넘어 나의 업식을 너에게 물려주지 않고 멋진 아빠가 되겠다’라고 되뇌며 엎어졌다 일어서기를 반복했습니다.

아버지에 대한 진정한 참회의 눈물

그러던 중 갑자기 아버지가 떠오르며 눈물이 나기 시작했습니다. ‘아버지도 나를 키우실 때 이런 마음이었을까, 자식을 위해 뭐든 해주고 싶은 마음이 간절했지만 그러지 못해서 얼마나 가슴이 아프셨을까, 얼마나 속앓이 하셨을까’라는 생각이 들자, 눈물이 멈추지 않았습니다. 아버지는 장애를 가지고 있었고 초등학교도 졸업하지 못했으면서도 오로지 자식들을 위해 낮에는 연탄공장에서 고된 노동을 했고, 퇴근 후에는 밤늦게까지 농사 일을 하셨습니다. ‘어떻게 그렇게 사셨는지, 나라면 단 하루도 힘들어서 그렇게 못했을 텐데’라는 생각이 들어 계속 눈물이 났습니다.

말로는 존경한다고 하면서 아버지를 무시하지는 않았는지 돌아보라는 법사님 말씀에 도반들 앞에서 또 목 놓아 펑펑 울었습니다. 남에게 조금이라도 흠 잡히기 싫어 늘 완벽한 모습을 보이려 한 제가 그렇게 눈물, 콧물을 흘리며 아버지께 죄송한 마음을 털어놓으리라고는 상상도 하지 못했습니다. 그렇게 실컷 울고 나니 후련해졌고 아버지가 보고 싶어졌습니다.

정토사회문화회관 방문(두 번째 줄 오른쪽에서 네 번째가 김현석 님)
▲ 정토사회문화회관 방문(두 번째 줄 오른쪽에서 네 번째가 김현석 님)

‘내가 옳다’는 사로잡힘

전전긍긍하며 아등바등 살던 습관은 행자 생활에서도 이어졌습니다. 뭐든지 달려들어 열심히 하고 완벽히 해내려고 했고, 시간이 촉박한 일을 할 때는 조급함에 사로잡혀 행동이 느린 도반들을 시비분별하였습니다. 일을 빨리 끝내려는 마음에 일이 서툰 도반을 가르치듯 행동하곤 했습니다.

매일 도반들을 답답해하고 그러면서도 제발 머릿속에 시비분별이 멈췄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던 중에, 한 도반과 사진 분류작업을 맡게 되었습니다. 평소에도 고집이 세다고 생각해 가까이 하지 않았는데 단둘이 일을 하게 되니 역시 불편한 마음이 올라왔습니다. 아니나 다를까 시작부터 의견이 부딪치기 시작했습니다. 저는 오랫동안 취미로 사진을 하고 있어서 나름 잘 알고 있다는 생각에 빠져 도반이 고르는 사진마다 시비하였습니다. 도반 역시 저를 답답해하면서 의견충돌이 계속되었습니다. ‘아무것도 모르면서 왜 자꾸 고집을 부릴까?’ 하는 생각이 멈추질 않았고 가슴이 답답해 터질 것 같았습니다. 그래서 혼자서 하든지 말든지 알아서 하라는 마음으로 입을 꾹 닫아버렸습니다.

그렇게 작업을 마치고 돌아서면서 ‘왜 내가 이렇게 괴로워할까?’ 물음을 던지니 ‘이 모든 것이 상대의 다름을 인정하지 않고 내가 옳다는 생각에 고집을 피웠구나, 내 식대로 안 되니 이렇게 괴롭구나’ 하고 돌이키게 되었습니다. 그러자 가슴 속 막혔던 것이 씻은 듯이 내려갔고 지금까지 행자 생활 내내 고집부리고 있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저 스스로 지어놓은 기준에 맞으면 좋은 도반이고 그렇지 못하면 못난 도반이라며 상을 지었습니다. 상대의 다름을 인정하지 못하고, 도반들의 고집이라고 분별했던 것이 오히려 저의 고집이었다는 것을 알게 되자 저도 모르게 웃음이 나오고 얼굴이 밝아졌습니다.

공양간은 최고의 수행도량

저를 괴롭혀오던 큰 고민 중 또 하나는 뭐든지 완벽히 잘해야 한다는 강박이었습니다. 혹여 해내지 못할 것 같은 일을 마주하게 되면 얼른 뒤로 빠지거나 숨어버렸고 남들에게 잘하지 못하는 모습을 보일 때면 ‘나를 어떻게 생각할까, 무시하진 않을까?’ 부정적인 생각에 빠져 괴로워했습니다.

시작부터 저를 딱 걸리게 한 곳이 공양간이었습니다. 저는 늘 남이 해주는 음식만 먹어왔고 주방일이라고는 해본 적이 없는데, 대뜸 ‘밥을 해라, 찬을 해라’ 하니 두려움과 도망치고 싶은 마음이 올라왔습니다. 그래도 명심문대로 ‘예’하고 해보자 하고, 죽이 되든 밥이 되든 요리 잘하는 도반들에게 물어가며 하루하루 밥을 짓고 찬을 만들고 국을 끓여내었습니다. 그런데 막상 해 보니 걱정과 달리 두렵지도 않았고 도망칠 일도 없었습니다. 맛없는 공양을 내어 대중에게 미안했을지언정 그것 외에는 아무런 문제가 없었습니다. 모두 다 그저 제 생각이 일으킨 것이었습니다.

못해도 괜찮아

잘하지 못하더라도 가볍게 하면 된다는 것이 몸과 마음에 익어갈 즈음 INEB 행사로 법륜스님과 9개국 스님들을 모시고 발우공양을 함께 한 일이 있었습니다. 공양을 마치고 법문을 해주신 스님께서 백일출가 행자 중에 영어로 소감 발표를 해볼 사람이 없느냐고 물었습니다.

순간 제 마음속에서 물러서는 마음보다 업식을 뛰어넘어 가볍게 해보고 싶다는 마음이 더 크게 일어났습니다. 번쩍 손을 들었고 잘하지도 못하는 영어로 소감 발표를 시작했습니다. 그전의 저로서는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었습니다. 70여 명의 대중에게 영어를 잘하지 못하지만 해보고 싶다고 솔직하게 이야기하고, 어설픈 영어로 시작해서 급하게 마쳤더니 대중들이 다 함께 박장대소하였습니다.

그 순간 저는 너무 행복했습니다. 그동안 제 생각으로 자신을 가두고 편하게 살지 못하다가 이렇게 가볍게 살면 된다는 것을 알게 되니 마음이 이루 말할 수 없이 시원해졌습니다. 늘 남들에게 인정받고 싶고 잘 보이고 싶어 못난 모습을 감추며 살았는데, 그것이 오히려 나를 더 못나게 만들고 괴롭혔다는 것을 명확히 알게 되었습니다.

명상원에서 도반들과 함께(오른쪽에서 두 번째가 김현석 님)
▲ 명상원에서 도반들과 함께(오른쪽에서 두 번째가 김현석 님)

길가에 난 풀 한 포기처럼

지난 100일 동안 많은 것을 보고 듣고 느꼈지만, 한편으로는 얻고자 하는 생각에 빠져 늘 조급했다는 생각이 듭니다. 솔직히 백일출가를 통해서 내려놓으려 하기보다 얻어가려는 욕심으로 입방했습니다. 인생의 주인이 된다기에, 이곳에서 내 게으름과 업식을 고쳐서 잘살아야겠다는 욕심으로 입방한 것이었습니다.

백일출가 이전에도 저는 늘 얻으려고만 했습니다. 돈이 더 많으면 행복해지지 않을까, 직업을 바꾸면 행복해지지 않을까, 사람들이 나를 좋아해주면 더 행복해지지 않을까 하며 외부 조건에 내 행복을 맡겼습니다.

백일출가를 통해 이미 제가 부족함이 없고 제 삶에는 아무 문제가 없다는 것을 알게 되니 더 이상 얻을 것이 없었고, 지금까지 헐떡거리고 살아온 자신이 안쓰럽게 느껴졌습니다. 아무도 힘들게 한 사람이 없는데 스스로 채찍질하며 스스로 사랑하지 않고 살아온 것입니다.

백일출가를 마치며 앞으로의 수행과제는 ‘길가에 난 풀 한 포기’처럼 살아보는 것입니다. ‘잘나야 한다, 남들에게 특별하게 보여야 한다’라는 생각에서 벗어나 있는 그대로의 내 모습을 인정하고 사랑하며, 편안한 마음으로 주변을 돌아 볼 수 있는 그런 사람이 되고자 합니다.

그리고 저처럼 맹목적으로 잘살아야 한다는 생각에 빠져 괴로운 사람이 있다면 꼭 백일출가를 추천하고 싶습니다. 제가 이만큼 돌이켜 가볍게 살 수 있도록 해주신 부처님 법에 감사드리고, 엉뚱한 질문에도 늘 명쾌한 답을 주신 묘수법사님, 불편하지 않도록 꼼꼼하게 챙겨주신 반장님, 행자들 챙기느라 잠도 못 자고 고생해준 스태프들, 그리고 늘 양보하고 배려해주신 문경의 상주 대중들께 감사드립니다.


이 글은 <월간정토> 2023년 9월 호에 수록된 김현석 님의 백일출가 수행담입니다.

글_김현석(백일출가 45기)
편집_월간정토 편집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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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주행

절을 하면서 8000배 넘을 즈음 고통을 이겨내기 위해 고행상을 바라보며 딸의 이름을 부르며 절을 하면서 의지를 다졌다는 내용에 왈칵 눈물이 솟구칩니다. 수행으로 장애를 극복해내신 모습이 밝은 얼굴에 잘 드러나 있습니다. 장하십니다 장하십니다 장하십니다

2024-04-25 13:51:50

은행나무

저를 보는것 같아 짠한 마음이 올라옵니다. 지금 이대로도 충분히 좋은 아버지와 남편으로 부족함이 없으며 감동적인 사연 고맙습니다

2024-04-19 18:23:21

평화

충분히 좋은 아버지 모습인 도반님, 응원과 박수 보냅니다.
옆집 아주머니가 아닌 진짜 엄마 마음으로 살도록 하겠습니다.

2024-04-17 15:03: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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