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토행자의 하루

남울산지회
다음 생을 기다리지 않습니다

2024년 새해, 1월의 마지막 날에 남울산지회 정경례 님을 컴퓨터 화면으로 만났습니다. 따뜻하고 가슴 찡한 정경례 님의 이야기를 듣고 나니, 제 마음 안에서 뭔가가 꿈틀거렸습니다. 정토행자들이 정경례 님 처럼만 수행한다면 세상과 나를 바르게 볼 수 있을 것입니다. 환경도 날로 좋아질 것이고, 모두가 지행일치를 이룰 것입니다. 정경례 님의 수행 이야기를 시작합니다.

불교로 다시 태어난 느낌

저는 30대부터 절에 다녔습니다. 다니던 절에 있는 스님들의 말에 의지하며 생활했고, 자식들이 잘 되기를 빌었습니다. 그러던 중 한 스님의 말만 믿고 시작한 식당이 두 달 만에 망하고서야 ‘아, 뭘 빌거나 뭘 믿는 게 불교는 아니구나.’ 하고 크게 깨달았습니다.

식당을 넘기고 남은 돈 일부를 신문지에 싸서 다니던 절에 보시했습니다. 깨달음을 주었으니 원망하지 않았습니다. 돌아서면서, 기복신앙은 여기에서 멈추기로 했습니다.

어느 날 지인에게 “남편이 <깨달음의 장1>에 다녀와서 많이 변했다.”라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법륜스님의 즉문즉설을 오랫동안 들었기 때문에 정토회를 알고는 있었습니다. 문득 저도 깨달음의 장에 가보고 싶다는 마음이 생겼습니다.

남울산지회 법당에서(앞줄 왼쪽에서 두 번째 정경례 님)
▲ 남울산지회 법당에서(앞줄 왼쪽에서 두 번째 정경례 님)

저는 어릴 적부터 삶을 긍정하기보다는 부정적으로 생각했습니다. 시기 질투심도 많았습니다. 남에게 말은 안 했지만, 마음속에 미움과 원망이 가득했습니다. 남편은 말할 것도 없었고 아버지, 엄마, 형제 다 미워했습니다. 그저 결혼을 했으니 이혼을 하면 안 되고, 애를 낳았으니 당연히 키워야 한다는 책임감으로 살았습니다.

그러던 제가 깨달음의 장을 마치고 나서 ‘다시 태어난 느낌’이었습니다. 제2의 삶을 사는 것 같았습니다. 다시 태어나 <정토불교대학>과 <경전대학>을 마쳤습니다.

42년 만의 이별

IMF 때 남편이 하던 사업이 크게 망했습니다. 비누 한 장 살 돈이 없었고 전화도, 의료보험도 되지 않았습니다. 이 와중에 남편은 속옷까지 챙겨 집을 나갔고, 오래지 않아 완전히 연락이 끊겼습니다.

아이들은 살려야 했습니다. 혼자서 포장마차를 열어 짜장면과 우동을 팔았습니다. 세 아이를 1톤 트럭에 싣고 절에 다녔습니다.

때로는 사는 게 너무 힘들어서 ‘차라리 전쟁이라도 일어나라. 다 죽든지 말든지.’ 하는 생각까지 했습니다. 지금은 사천왕사지에서 4년째 간절한 마음으로 통일 염원 기도를 올리고 있으니, 이런 것을 두고 ‘삶이 180도 뒤집어졌다’라고 하는 모양입니다. 그렇다면 180도를 뒤집는 데 축이 된 것은 정토회일 것입니다.

사천왕사지 기도 후 도반들과(오른쪽에서 두 번째 정경례 님)
▲ 사천왕사지 기도 후 도반들과(오른쪽에서 두 번째 정경례 님)

남편이 15년 만에 집을 찾아왔습니다. 아이들은 아빠를 만나려 하지 않았습니다. 그래도 아빠라고 생색을 내려 했는지, 결혼한 아들 집에 불쑥불쑥 찾아가 결국에는 다투기 일쑤였습니다. 정토회를 만나기 전이라면 제가 해결하려고 간섭했을 테지만, 어디까지나 ‘남편과 아들의 일’이니 내버려두었습니다.

그러나 제 나이가 일흔에 가까워지자, 서류상 배우자로 남아있는 남편 때문에 노령연금 수급이나 노인으로서 받을 수 있는 각종 혜택을 누리기가 어려웠습니다. 이것은 ‘저와 남편의 일’이었습니다.

그래서 남편에게 “이혼하자.”고 말했습니다. 그리고 “지나간 일은 아무것도 아니다. 이야기할 필요도 없다. 이혼은 하지만, 가끔 만나거든 차도 한잔하면서 각자 남은 인생을 살아가자.”고 덧붙였습니다.

우리는 부부로 42년을 살았습니다. 20년을 붙어 살았고 22년은 떨어져 살았습니다. 이혼한 이후로 제 전화도 안 받고 생일 축하 문자에 답도 없지만, ‘그냥 놔두자. 애쓸 필요 없다.’고 생각합니다. 그에게 전화가 오면 반갑게 받아 줄 것이고, 밥을 먹자고 하면 밥을 같이 먹을 것입니다.

말과 글을 배우는 수행자

초등학교만 졸업한 채, 집농사를 도왔습니다. 밭에서 일을 하다 보면, 자주색 책가방을 메고 하얀 카라가 달린 중학교 교복을 입은 아이들이 언덕길을 내려오는 게 보였습니다. 여자라는 이유로 더 이상 공부를 시켜주지 않은 아버지가 원망스러웠습니다.

정토회에서 제 이름을 적을 일이 있을 때마다, 갈매기처럼 날아가는 필체가 부끄러웠습니다. 부처님 법 아니었으면 그 부끄러움 때문에 정토회 활동을 진즉 그만뒀을 것입니다.

인도 성지순례 중(오른쪽 첫 번째 정경례 님)
▲ 인도 성지순례 중(오른쪽 첫 번째 정경례 님)

그래도 꾸준히 전법을 하며 중학교 검정고시를 치렀습니다. 한 친구가 “네가 고등학교 공부를 한다면 나도 정토회 나가는 걸 생각해 보겠다.”고 하기에 고등학교 검정고시도 시작했습니다.

몇 번을 떨어졌는지 모릅니다. 합격할 때까지 노트필기를 정말 많이 했습니다. 그러다 보니 글씨가 늘어서 두꺼운 노트에 금강경2 필사를 여섯 권이나 했습니다. 혼자 세 아이를 잘 키웠고 공부도 해낸 것을 보면, '내가 아버지에게 강인함을 물려받았구나' 싶어 고맙기도 합니다.

화장지, 세제, 음식물 쓰레기가 없는 일상

저는 불교대학 다닐 때부터 환경 실천을 했습니다. 정토회에서 좋은 방향을 알려 주면 항상 실천합니다. 돈도 안 들고, 환경도 지키고 일석이조라 안 할 이유가 없습니다.

뒷물 수건을 사용하고, 일주일에 한 번 과탄산소다로 세탁합니다. 샴푸나 세제를 안쓴지 2년이 되었습니다. 지금 음식 만드는 곳에서 일을 하는데 쌀뜨물이 많이 나옵니다. 그것을 통에 담아와서 설거지도 하고 데워서 머리도 감습니다. 자식들이 집에 오면 설거지 세제가 없다고 불평하지만, 제 집이니 제가 설거지를 하면 됩니다.

음식물 찌꺼기는 빈 화분 3개로 처리합니다. 음식물 찌꺼기를 송송 썰어서 화분에 파묻으면 퇴비가 됩니다. 가끔 아이들 먹이려고 다시마와 멸치로 국물을 내면, 다시마는 썰어서 제가 반찬을 해 먹고, 멸치는 잘 먹는 길고양이들에게 줍니다.

이렇게 일상에서 환경 실천을 하니 집에 화장지, 세제, 음식물 쓰레기가 없습니다. 하수도에 거품이 없는 것을 보면 마음이 맑아집니다.

인도 성지순례 중 (오른쪽 정경례 님)
▲ 인도 성지순례 중 (오른쪽 정경례 님)

궁상을 배워간 두 사람

직장에 아주 공격적인 두 동료가 있었습니다. 제가 시금치 삶은 물을 기름이 많은 설거지에 쓰고, 일할 때 나오는 비닐을 씻어 재사용하니 “왜 그렇게 궁상맞게 사냐.”라고 했습니다. 더운데 뜨거운 물을 받아 놨다고 핀잔을 주며 얼른 버리는 동료도 있었습니다.

그래도 싫은 소리를 하지 않고 일 년간 꾸준히 했습니다. 여럿이 일을 하니 어쩌다 오해를 받아 잘못을 뒤집어써도 “내가 하지 않았다.”고 말할 뿐, 해명하지 않았습니다. 나중에 제 잘못이 아니라는 게 밝혀졌어도 “봐라. 내가 잘못한 게 아니지 않느냐.”라는 말도 하지 않았습니다. 싸우지 않았습니다.

미워하는 마음이 없었던 것도 아니고, 일어난 미운 마음이 쉽게 사라지지도 않았지만, 매일 3백배를 하면서 미워하는 그 마음을 돌아보았습니다.

직장에서 쌀뜨물을 가방에 담으며
▲ 직장에서 쌀뜨물을 가방에 담으며

어느날 한 동료가 말했습니다. “집에서 음식물 쓰레기를 버리려는데 경례 네 생각나서 다 먹었다. 비닐도 쓰레기통에 버리려다가 씻어서 다시 쓰고 있더라 내가.”

몇 달 전에는 또 다른 동료가 말했습니다. “언니 정말 대단하다. 내가 얼마나 언니를 힘들게 했는데 어떻게 한 번도 싫은 소리를 안 하냐. 내가 너무 많은 잘못을 했어. 언니한테 잘할게.”

직장을 수행터로 여깁니다. 저는 늙어서 가진 것도 없고 어차피 여기서 일을 해야 먹고 살 수 있으니, 모욕과 오해를 수행과제로 삼았을 뿐입니다. 행복학교3도 소개하고 전단지도 여기저기 붙여 두었습니다. 꾸준히 제가 할 수 있는 일을 합니다.

손주의 3천원

인도 성지순례에서 일가족이 신발도 없이 구걸하는 모습을 보았습니다. 아기를 안고 구걸하며 먼 길을 따라온 엄마도 있었습니다. 저는 버스비를 아껴 보시해야겠다고 마음먹었습니다.

일 나가는 길에는 버스를 타고, 돌아오는 길에는 걸어옵니다. 아낀 버스비 1천 5백원에 제 돈 1천 5백원을 보태어 3천원씩 보시했습니다. 하얀 봉투를 만들어 ‘화장지, 세제 아낀 돈을 한 달에 만원씩 여기에 모으겠다.’라고 적었습니다. 그렇게 1년에 12만원을 모아 JTS에 보시했습니다.

두북수련원 봉사(왼쪽 정경례 님)
▲ 두북수련원 봉사(왼쪽 정경례 님)

인도에서 쌀을 보시하는 영상을 손주에게 보여주었더니, 어느 날 손주가 3,510원을 가져와 제 보시함에 넣었습니다. 제 엄마가 어묵 사 먹으라고 500원, 100원씩 준 것을 모은 것입니다. 손주가 태어나서 처음 한 보시입니다.

이 몸으로 해탈하기

매일 3백배를 하고 있습니다. 친정엄마가 죽은 날에도, 동생이 죽은 날에도 장례식장에서 3백배를 했습니다. 어떤 상황에서도 한다고 생각하면 자연스러워집니다. 한때 삶이 괴로워 ‘다음 생에는 남자로 태어나게 해주세요. 수행자가 되겠습니다.’하는 기도를 한 적이 있습니다.

지금은 ‘다음 생을 기다릴 필요가 있나. 이생에서 제 몸뚱아리를 가지고 있을 때 모든 괴로움에서 벗어나 해탈 열반하면 되지.’라고 생각합니다.

우리 도반님들도 꾸준하게 아침 수행을 하시길 바랍니다. 저는 108배, 300배를 꾸준히 하는 힘으로 70세를 살고 있습니다. 긴 글로 제 마음의 찌꺼기를 다 퍼 올린 것 같아 죄송한 마음이지만, 도움이 되기를 바랍니다.


희망리포터 소임을 맡아 정경례 님을 인터뷰하는 좋은 기회를 가졌습니다. 인터뷰하면서 정경례 님의 수행담을 제대로 전달하고 싶은 마음이 점점 커졌습니다. 비록 제 마음만큼 잘 담아내지는 못했지만, ‘낙숫물이 바위를 뚫듯이 정진하라’는 말씀을 가슴에 안고 매일 꾸준히 수행하는 정경례 님의 모습을 닮고 싶습니다.

글_김선화 희망리포터(광주전라지부 서광주지회)
편집_이승준(광주전라지부 전주지회)


  1. 깨달음의 장 4박 5일 기간의 정토회 수련 프로그램. 평생에 한 번만 참여할 수 있음. 

  2. 금강경대승불교 경전의 하나 

  3. 행복학교 법륜스님 행복학교는 온라인에서 일주일에 한 시간 법륜스님의 즉문즉설을 보고 진행자와 참가자가 행복을 배우고 연습하며 '내 것으로 만드는 체험의 장'입니다. 행복학교는 종교를 떠나 누구나 함께 할 수 있습니다.
    행복학교 신청: http://hihappyschool.com 

전체댓글 7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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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덕

삶 속에서 부처님 법을 실천하는 보살님
이런 삶이 재가 수행자의 표본이라는 생각을 해 봅니다
어려운 시절을 꿋꿋하게 이겨낸 힘과 아침 기도가 보살님의 원동력이지 않을까요
남은 인생 부처님의 가피 속에서 영원히 행복하시길 기원합니다 -불대 동기 올림-

2024-03-16 08:59:52

ARH

감사합니다. 글을읽으며 다시한번 제삶의모습을 살펴봅니다.
존경과 감사의마음으로 본받아가겠습니다

2024-03-15 22:23:34

자재왕

존경심은 높은 학벌, 지위, 재산 등으로 받는 것이 아니라, 어떤 삶을 사느냐에 따라 생기는 것이지요. 모든 분들에게 삶의 본보기가 될 수행담 내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읽게 해주신 리포터님들께도 감사드립니다.

2024-03-14 03:58: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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