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토행자의 하루

전주지회
108배로는 어림없지

광주전라지부장 임정아 님을 만났습니다. 인터뷰가 끝난 후 ‘머무르는 마음이 없는’이란 말이 생각났습니다. 인터뷰 내내 맑은 목소리로 웃던 임정아 님. 자신의 수행을 돌아보고 정리하게 되어 감사한 마음이라는 주인공. 남편을 빼놓고는 이야기할 수 없는 임정아 님의 수행 세계로 들어가 볼까요?

결혼은 차선책

저는 대학에서 20년째 철학을 강의하고 있습니다. 박사과정을 미국 대학에서 하고 싶었습니다. 미국에서 1년 정도 준비하고 지원했지만, 오라는 곳이 없었습니다. 제가 너무 눈을 높여 지원한 탓이기도 했습니다.

막상 한국에 돌아오니 다시 미국으로 돌아갈 용기가 나지 않았습니다. 그냥 모교에서 박사과정을 마치기로 마음먹었습니다. 미래에 대한 막막함, 어린 시절부터 그림자처럼 막연하게 따라다니는 외로움에 방황하던 그때, 남편을 만났습니다.

전주지회의 날 지부장 환영사(단상 왼쪽 임정아 님)
▲ 전주지회의 날 지부장 환영사(단상 왼쪽 임정아 님)

사실 남편과 저는 대학 시절 보육원 봉사활동을 하면서 서로 이미 알고 있었습니다. 철학을 전공한 남편은 음식점을 운영했는데, 함께 술을 마시면서 한 주제를 놓고 이야기 나누는 것을 좋아했습니다. 술안주로 ‘어떻게 하면 정의로운 세상을 만들까?’, ‘무엇이 옳고 그름인가’를 이야기하곤 했습니다.

한 마디로 우리는 술로 잘 통하는 사이였습니다. 남편은 사업가 마인드가 뛰어나고 진취적이었습니다. 저는 그런 사람과 결혼하여 편안하게 살고 싶었습니다. 남편도 결혼하면 제가 자기 사업을 적극적으로 도와주기를 원했습니다. 이렇게 우리는 다른 곳을 바라보며 서로 덕을 보려고 결혼했습니다.

다 남편 탓이야

남편은 서울에서 큰 식당을 세 개나 운영했습니다. 처음 몇 달은 잠도 안 자고 죽기 살기로 열심히 일해서 가게를 안정시켰습니다. 그러나 그런 다음에는 전부 직원들에게 맡겨놓고 집에서 게임만 했습니다.

임정아 님과 남편
▲ 임정아 님과 남편

저는 가게를 돌보지 않는 남편의 행동이 너무 불안했고 게임을 하며 노는 모습도 보기 싫었습니다. 남편은 제가 가게 일을 도와주길 바랐지만 저는 그러고 싶지 않았습니다.

남편은 물려받은 유산을 들고 말없이 해외 원정도박을 떠났습니다. 일주일 정도 지나면 자기 행동을 후회하며 집으로 돌아왔고, 보름쯤 지나면 또 돈을 들고 말없이 떠났습니다. 결혼생활은 엉망이 되었고, 이제 남편은 제 모든 괴로움의 원인이 되었습니다.

더는 같이 못 살겠다

괴로워하는 저에게 친구가 좀 쉬고 오라며 <깨달음의 장1> 수련비를 대신 내주었습니다. 그동안 이곳저곳을 헤매면서 마음공부를 했지만, 그 공부를 지속하지는 못했습니다. 그러나 <깨달음의 장>에서는 ‘마음이 바로 가벼워지는 새로운 느낌’을 받았습니다. ‘아, 이것은 나에게 새로운 길을 열어주는 계기가 되겠구나!’ 싶었습니다.

정토불교대학에 입학했습니다. 6개월쯤 다녔을까, 남편은 여전히 제가 자기 일을 도와주기를 바랐습니다. 제가 남편이 마음에 안 들 듯이, 남편도 저의 행동을 마음에 들어 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인지 남편은 제가 법당에서 사 온 법륜스님의 책을 불태웠습니다.

그리고 계속 가게에 나와서 일하라고 윽박질렀습니다. 이를 지켜보던 친정 부모님이 “자네 너무 한 거 아닌가?” 하자, 마음이 격해진 남편이 부모님과 서로 밀치며 몸싸움을 벌였습니다. 이 일로 제 육아를 돕고자 함께 살았던 부모님은 고향으로 가 버렸습니다.

남편은 평소 성품이 온화하고 배려심이 많았지만, 어딘가 자기 생각과 맞지 않고 뜻대로 되지 않으면 돌변하여 화를 불같이 냈습니다. 살면서 심하게 화를 내는 사람을 겪어보지 못했던 저로서는 이런 상황이 굉장히 두려웠고, 피하고 싶었습니다. 부모님과 몸싸움하는 것을 보니, ‘아니, 사람이 어떻게 저럴 수가 있나?’라는 생각이 들어 이혼을 결심하고 아이를 데리고 전주로 내려왔습니다.

법당에서 아들, 법사님과 함께(맨 왼쪽 임정아 님)
▲ 법당에서 아들, 법사님과 함께(맨 왼쪽 임정아 님)

108배로는 어림없지

전주 법당에서 가을 정토불교대학 저녁반과 저녁 수행법회를 맡으면서 소임을 시작했습니다. 참 신기하게도 소임을 맡고 봉사하면서 법륜스님의 법문이 더 잘 들렸습니다. 개원한 전주법당 안정화를 위해 300배 정진이 시작되었습니다.

남편이 너무 미운 마음에 저도 덩달아 300배 정진을 시작했습니다. 매일 몸을 굽혀 300배를 하다 보니 제 모습이 조금씩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자신을 돌이키는 힘도 생겼습니다. 당시 법당 총무였던 도반과 저는 이런 농담을 했습니다.

“우리의 두꺼운 업식은 108배로는 어림도 없지, 답답함이 안 풀려!"

정토사회문화회관 개관식(왼쪽에서 네번째 임정아 님)
▲ 정토사회문화회관 개관식(왼쪽에서 네번째 임정아 님)

사람이 되어 가는 나

남편은 저를 따라 전주로 내려왔습니다. 감사하게도 제가 경전대학을 담당할 때 ‘수행연습’이 막 경전대학 프로그램 안에 들어왔습니다. 배운 법문을 자기 삶에 바로 적용해 보는 연습이었습니다.

경전대학을 담당할 때 학생들과 함께(가운데 임정아 님)
▲ 경전대학을 담당할 때 학생들과 함께(가운데 임정아 님)

하루는 남편의 눈을 바라보며 그의 말을 끝까지 듣는 연습을 했습니다. 순간 눈물이 확 밀려왔습니다. 남편의 눈을 바라보며 이야기를 해 본 적이 언제인지 생각도 나지 않았습니다. 남편이 무슨 말을 하면 속으로 ‘또 자기 말만 한다’라며 잘 새겨듣지 않았습니다.

중학생이던 아들에게는 엄마가 고쳤으면 하는 것 하나를 말해보라고 했습니다. 아들은 하나만 말해야 하느냐면서, “엄마는 남의 말을 귓등으로도 안 들어요” 했습니다. 남편이 자기 말만 한다고 생각했는데, 저도 남편 말을 들어주지 않았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그리고 점점 남편의 말이 들리는 것을 보니, ‘이제야 내가 사람이 되어 가는구나’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남편을 보다

시어머니가 뇌경색이 와서 남편이 병간호하던 때였습니다. 남편이 집에 와서 이런저런 말을 하기에 대수롭지 않게 “그건 해도 그만, 안 해도 그만 아니야?” 했습니다. 그 말에 남편이 화를 벌컥 내는데 문득, 남편의 손이 덜덜 떨리는 게 보였습니다.

그의 화가 그대로 느껴졌습니다. 그러나 남편의 화난 모습이 더 이상 두렵지 않았고, 상황이 있는 그대로 보였습니다. ‘지쳐 있고, 힘들고, 자기 말을 좀 들어주길 바라는 남편의 그 모습’이 보였습니다. 제가 잘못했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미안해. 당신 많이 힘든 거 알아.”라고 말했습니다.

지금까지 매일 300배를 하면서 제 뜻대로 돼야 한다고 생각했던 집착을 조금씩 내려놓았습니다. 남편을 있는 그대로 보지 못하고 제 마음에 들기를 바랐던 무지와 억지를 참회했습니다.

남편 덕분에 남편을 보았습니다. 남편은 평범한 남자였습니다. 오히려 제가 함께하는 사람의 마음을 헤아리지 못하고 고마워하지도 않는, 무심한 여자였습니다.

임정아 님의 소박한 개인법당
▲ 임정아 님의 소박한 개인법당

남편 말이 맞네?

지회장, 지부장 소임을 거치면서 도반과 크고 작은 갈등을 겪다 보니 제가 갈등 상황을 두려워하고 회피하려는 경향이 있음을 알았습니다. 갈등이 두려워 변명하고, 갈등이 두려워 피하게 되는 것은 남편과의 관계에서도 마찬가지였던 것입니다. 남편은 “차라리 싸워야 풀린다.”라고 말했지만 저는 싸움을 피했습니다.

남편은 제가 실수나 잘못을 잘 인정하지 않는다고 말했는데 그것도 사실이었습니다. 일단 지적을 당하면 위축됐고, 제가 뭘 잘 모르거나 잘못했다면 스스로 ‘부족한 사람 같다’라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입니다.

이제는 남편에게든 도반들에게든 그냥 모르면 모른다고 사실대로 말합니다. “어떡하지, 나 진짜 잘 모르는데” 이렇게 툭 말해보니까, 세상 편했습니다.

경전대학을 담당할 때 학생들과 함께(아랫줄 가운데 임정아 님)
▲ 경전대학을 담당할 때 학생들과 함께(아랫줄 가운데 임정아 님)

여전히 싸웁니다. 그러나 고맙습니다.

지나고 보니 남편은 매우 단순한 사람이었습니다. “여보, 당신 너무너무 수고하고 너무너무 잘하고 있어. 정말 고마워.” 그냥 이렇게 얘기해 주면 다 되었습니다. 일부러 말할 것도 없이 고마운 마음이 절로 듭니다. 정토회 활동하면서 남편뿐만 아니라, 아이에 대한, 같이 활동하는 사람들에 대한 고마움을 알게 되었습니다.

시어머니가 돌아가시고 입관할 때 많이 울었습니다. 옆에서 형님들이 “나쁜 기억은 하나도 안 나고, 좋았던 것만 생각나나 봐.” 하는데, 실제로 그랬습니다. 고인이 잘해준 것들과 고마운 일만 생각났습니다.

남편과의 갈등은 여전합니다. 그러나 두려워하거나 회피하지 않습니다. 그냥 ‘갈등이 일어나는구나!’ 하고 알아차리고 제 마음을 솔직히 표현합니다. 언성을 높일 일이 있으면 그렇게도 합니다. 남편과의 관계 안에서 제 참모습을 알게 되었으니,

“당신에게 정말 고맙습니다.”


저는 ‘모든 인연에 감사합니다.’라고 매일 기도 나누기를 합니다. 그러나 임정아 님의 수행담을 듣고 나니, 그저 말로만 하고 있었단 생각이 듭니다. 스님 법문에 상대의 말, 행위, 사건이 있을 뿐이지 그것이 나를 화나게 하려고 있는 것이 아니라고 했습니다. 저도 남편의 행동과 말에 끌려다니지 않는 연습을 해 보렵니다. 모든 인연에 진심으로 감사하고 그 감사함을 봉사로 회향하는 수행자가 되겠습니다. 덕분입니다.

글_신정순 희망리포터(대구경북지부 경주지회)
편집_이승준(광주전라지부 전주지회)


  1. 깨달음의 장 4박 5일 기간의 정토회 수련 프로그램. 평생에 한 번만 참여할 수 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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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호

임정아님!
수행담 차분히 잘 읽어 보았습니다.
이렇게 늦게야 읽어 보게 되다니 제 자신이 부끄럽습니다.
부부사이 갈등없이 사는 사람이 얼마나 있을까요? 그냥 더 깊이 들어가 그를 알면 이해가 되는 것을요.
내가 변해가니 상대도 달라지는 것 그래서 자등명이라는 진리의 말이 존재 하는가 봅니다~^^
뵐 때 마다 편안한 모습이 늘 내 눈에는 느껴졌습니다*^^*

2024-01-24 21:26:31

노금찬

감동입니다. 🙏🙏🙏

2023-11-30 17:59:47

이윤주(대정진)

감동적인 수행담 잘 읽었습니다.
감사합니다. 덕분입니다.

2023-11-17 16:35: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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