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토행자의 하루

정토행자의 하루
하기 싫은 마음이 만든 스토리

오늘 정토행자의 하루는 편집자 님이 전하는 일상에서의 ‘소소한 깨달음’입니다. 짜증나고 주저앉고 싶은 상황속에서도 “아!” 하고 깨닫고 앞으로 나아가는 모습이 흥미롭습니다. 생활하면서 마주치는 다양한 상황 모두가 수행을 위한 소중한 재료가 되어가는 일상의 이야기를 함께 보아주세요.

도반들과 함께
▲ 도반들과 함께

뭐가 그렇게 무서운가

토요일 천일결사 기도를 마치고, 그 날 오후에 도반들과 함께 동탄 호수공원을 한바퀴 돌기로 했습니다. 부지런히 식구들 식사를 챙기고 나갈 준비를 마쳤습니다. 근데, 평소 같으면 늦잠을 자고 있을 남편이 나갈 채비를 다하고 현관에 서있었습니다.

“나 지금 운동하러 가니까, 막내는 오늘 1시까지 운동장에 데려다 줘”라는 말만 남긴채 남편은 나가버렸습니다.
‘나도 1시에 약속인데, 막내 데려다주고 가려면 너무 늦겠네.’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할 수 없이 ‘저는 오늘 못가겠어요. 죄송합니다’ 라는 메시지를 보냈습니다.

잠시 뒤 막내가 일어났습니다.
“씻고 밥 먹자. 오늘 1시까지 KT 운동장이래”
“아닌 것 같은데” 하더니 아들은 감독님한테 확인 전화를 했습니다. “엄마, 오늘 3시에 광교구장인데?” 합니다.

‘그래? 그럼 빠듯하게 움직이면 동탄 호수공원에 한 시간은 다녀올 수 있을 것 같은데....’
다시 도반들에게 ‘저도 갑니다’ 메시지를 보냈습니다.
그리고 부랴부랴 버스 정류장으로 나갔습니다.

정류장에 도착해서 버스시간을 검색해보니 시간이 너무 빠듯했습니다. 집에서 동탄 호수 공원까지 소요 시간은 1시간, 배차간격은 45분. 약속 시각까지는 1시간밖에 남지않았습니다. 할 수 없이 집으로 돌아가서 차를 타고 출발했습니다.

아파트 주차장을 나서며 크게 심호흡을 했습니다. 저는 평소 운전하는 것을 무서워합니다. 그래서 되도록이면 운전할 일을 안 만드는데, 오늘은 일이 이렇게 되었습니다. ‘어차피 이렇게 된 것 도대체 운전할 때 뭐가 그렇게 무서운가 마음이라도 살펴보자’ 생각했습니다.

운전이 왜 무서운가 살펴보기로 합니다
▲ 운전이 왜 무서운가 살펴보기로 합니다

운전하지 말라는 징조?

도로에 들어서 차에 속력이 붙어 속도계가 80Km가 넘으면 오금이 저렸습니다. 옆에 큰 차가 지나가면 머리 끝에서 손끝까지 찌르르 신경이 곤두섰습니다. 차선 바꿀 때는 상대차에 스칠까봐 숨죽여지는 마음이었습니다.

“목적지에 도착했습니다. 안내를 종료합니다.”

드디어 언제 들어도 반가운 내비게이션 목소리를 끝으로 공원주차장에 도착했습니다. 공원주차장에 도착한 반가움도 잠시, 주말이어서 그런지 주차할 자리가 없었습니다. 빈 자리를 찾아 주차장 안을 대여섯 바퀴 돌았습니다. 편한 자리를 고르려던 처음 마음은 곧 ‘빈곳만 있어주세요’로 바뀌었습니다. 그러다 결국 ‘주차를 못하니 그냥 집으로 돌아가야하나?’까지 갔습니다. 약속시간에도 늦고 마음도 조급해졌습니다. 이도 저도 못하고 차를 버리고 싶을 때 마침 한 자리가 비었습니다.

사건이 일어난 날 공원에서
▲ 사건이 일어난 날 공원에서

신이 나서 콧노래까지 흥얼거리며 주차를 했습니다. 드디어 반가운 도반들을 만났습니다. 함께 호수공원을 한바퀴 돌며 사진도 찍고, 보온병에 싸온 커피와 차도 나누어 마셨습니다. 한 시간은 금방 지났습니다. 저는 막내아이를 데려다 주어야해서 아쉽지만 먼저 나왔습니다.

주차장에 돌아와 차에 시동을 거는데, 웬일인지 시동이 걸리지 않았습니다. 어디가 잘못되었나 살펴보니 기어가 R에 있었습니다. ‘주차할 때 마음이 들떠 기어를 R로 두고 내렸구나’ 싶었습니다. 기어를 P로 바꾸고 다시 시동을 거는데, 여전히 브레이크 패들이 밟히지 않습니다.

“어! ”
그 순간, 아침부터 있었던 일들이, 학교 다닐 때 수업시간에 장난으로 노트 귀퉁이에 그렸던 휘리릭 넘기면 움직이던 만화처럼, 순식간에 스쳐지나갔습니다. 그리고 결국은 ‘오늘 운전하지 말라는 징조였네’로 귀결되었습니다.

그와 동시에 ‘아! 스님이 스토리 만들지 말라고 하신 말씀이 이거였구나!’ 알아차렸습니다. 저는 그런 자신이 너무 웃겼습니다. ‘일어난 각각의 일이 예상치 못한 불편한 상황이 되니, 인과로 엮어서 운전하기 싫음을 정당화하는구나. 마음이 이렇구나.’ 시동도 안 걸리는 차 안에서 혼자 소리내서 미친여자처럼 “크크크크” 웃었습니다.

한바탕 웃고 가벼워진 마음

한바탕 웃고 나니 마음이 가벼워졌습니다. 우선 친정 엄마에게 아이를 데려다 달라고 부탁했습니다. 남편과 보험사에 전화해 배터리 충전 서비스도 받았습니다. 일을 다 처리하고 집으로 돌아오는데 마음이 한가했습니다. 같은 도로, 같은 차, 같은 운전자인데, 무서움에 집중하지 않으니 올 때와 달랐습니다.

마음이 이렇구나 알아차리면 가벼워집니다
▲ 마음이 이렇구나 알아차리면 가벼워집니다

차선 변경도 했지만 대부분은 곧게 정해진 차선을 달렸습니다. 옆에 큰 차가 지나갈 때보다 작은 차가 지나가거나 차가 없는 순간이 더 많았습니다. 속력도 계속 빠르게 달리지만은 않았습니다. 빨간불에서는 멈추기도 했습니다. 무서움에만 집중해서 보지 못했던 차들 사이의 빈 공간이 보였습니다. 제 마음은 마치 음악 소리와 쉼표처럼 움찔거림과 잔잔함을 드나들었습니다. 음악 듣듯이 그런 마음을 살폈습니다.

“목적지에 도착했습니다. 안내를 종료합니다.”

언제 들어도 반가운 내비게이션 소리와 함께 아파트 주차장에 도착했습니다.


글_장은미(강원경기동부지부 수지지회)
편집_허란희(강원경기동부지부 수지지회)

전체댓글 22

0/200

김문정

모든 것은 내 마음이 일으킨다
매일 읽는 수행문이 생각나네요!
훌륭하십니다 도반님 🙏🏻

2022-02-26 18:19:49

연이다

관점을 달리하니 긴장이 여유로 바뀌네요
스토리 만들지 마라~ 너무 공감됩니다~^^

2022-02-26 06:28:57

무애심

모든게 마음에 달렸음을~
알아차림이 중요하네요^^

2022-02-25 16:08: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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