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토행자의 하루

인천지회
이별은 눈물의 씨앗이 아닌 새로운 시작

2014년 가정 법회를 보러 다니던 때가 엊그제 같은데 코로나19 이후로 많은 것들이 변화했습니다. 정토회도 온라인으로 전격 전환함에 따라 급기야는 송도 법당도 정리하는 날을 맞았습니다. 직접 송도 법당 정리에 참여한 두 도반의 이야기를 함께 들어보겠습니다.

제행무상으로 거듭나다 (오지수 님)

제가 처음 송도 법당에 간 날은 2018년 10월 첫째 주 수행 법회 날이었습니다. 그때 저는 영종도 공항신도시에 사는 독실한 천주교 신자였습니다. 고등학교 때 세례를 받은 후 가톨릭 재단에서 근무했습니다. 결혼식도 성당에서 하고 자녀들도 하느님께 봉헌할 만큼 신앙심이 두터웠습니다. 천주교 신자인 저는 가족 모두가 신앙생활을 잘하는 신실한 가정을 이루기를 소망하면서 기도했습니다. 그런 저에게 결혼 20년 만에 큰 시련이 닥쳤습니다. 저의 기도와는 정반대로, 남편은 갑작스럽게 대구로 발령이 남과 동시에 독립을 선언했습니다.

괴로워하며 잠을 설치던 어느 날, 우연히 유튜브에서 법륜스님의 즉문즉설을 들었습니다. 교회법에 갇혀 옴짝달싹하지 못하고 있는 저에게 ‘모든 것은 나에게서 나와서 나에게 돌아온다.’라는 스님의 법문은 등불이었고 감로수였습니다. ‘하늘은 스스로 돕는 자를 돕는다.’라는 격언이 떠올랐습니다. 서울 지하철 벽보에서 정토불교대학 홍보물을 보고 기뻐서 가슴이 벅차올랐습니다. 그 길로 바로 정토회 홈페이지에 들어가 영종도에서 가장 가까운 법당으로 송도 법당을 찾아냈습니다.

송도 법당은 상가건물 7층에 있었는데, 부처님 불상 하나 없는 작은 규모였지만 깔끔하고 아늑했습니다. 몇 달 뒤 2019년 정토회 봄 불교대학 입학생이 되어 당당히 송도 법당을 다시 찾았습니다. 저는 매주 화요일과 목요일, 가끔 주말에 봉사 시간을 채우기 위해 법당에 갔습니다. 30년 다닌 성당보다도 법당이 더 편안했습니다. 어느새 송도 법당은 자꾸 가고 싶은 곳이 되었습니다.

왼쪽에서 첫 번째 오지수 님
▲ 왼쪽에서 첫 번째 오지수 님

2019년 송도 법당에서 난생처음 참석한 부처님 오신 날 행사는 매우 큰 문화적 충격이었습니다. 부활절미사, 성탄 미사 등의 경험이 많았기 때문에 봉축식 행사쯤이야 하며 자신만만했습니다. 좌선하며 절하고 염불하는 몇 시간 동안 다리가 저리고 아파서 너무 힘들었습니다. 아침 9시에 시작해서 12시쯤 1부 행사가 끝났는데 저는 점심 공양만 하고 줄행랑쳤습니다. 동지 법회를 포함해서 송도 법당에서는 각종 프로그램을 많이 진행했는데 제가 다 참여하기는 힘들었습니다. 간신히 천일결사1에 입재해서 모둠활동을 하는 것이 다였습니다.

공들인 탑, 정리는 한순간

2년 동안 봄 불교대학과 경전반에 다니며 법당에 대한 애착과 부담이 동시에 생겼습니다. 그 무렵, 코로나19가 발생해서 모든 수업과 활동이 비대면으로 전환되었고 법당에 가지 못했습니다. 매주 만나던 도반들을 화면에서만 겨우 만나니 몹시 안타까웠습니다. 몸이 멀어지면 마음도 멀어진다고 한 명, 두 명 떨어져 나가는 도반도 생겼습니다. 코로나가 끝나면 다시 법당에 갈 수 있겠지 하는 막연한 희망이 있었습니다. 하지만, 코로나는 끝날 기미가 없었고 법당에 갈 수 있는 날이 언제일지 점점 알 수 없었습니다.

2021년 1월, 정토회의 모든 프로그램을 온라인으로 전환하고 법당을 모두 철거한다는 공문을 받았습니다. 그러자, 모든 일은 순식간에 일어났습니다. 법당 정리는 한 달 만에 끝이 났습니다. 탑을 쌓는 데는 오래 걸리고 무너지는 데는 한순간이라는 말처럼, 송도 법당도 짧은 시간에 정리되었습니다.

모든 물품을 정리한 후, 법당 총무가 나비 장터를 열었습니다. 저는 기도용 방석 4개와 학생용 책상을 구입했습니다. 매일 108배를 하니 처음 산 방석이 자꾸 얇아졌습니다. 기도 방석을 하나 더 깔면 아픈 무릎에 좋을 것 같았습니다. 함께 천일결사에 입재한 도반에게도 나비 장터 소식을 공유했습니다.

드디어 법당 물품을 두북 수련원으로 보내는 날 새벽에, 천일 결사 기도를 끝내고 바로 법당으로 달려갔습니다. 법당 가는 마지막 날이라고 생각하니 마음이 착잡했습니다. 법당 도반들은 2인 1조로 물건들을 엘리베이터로 운반해서 차에 실었습니다. 1.5 톤 트럭이 너무 작아 염려스러웠는데 기적처럼 많은 물건을 다 실을 수 있었습니다. 물건을 실은 트럭이 떠나자, 깔끔하고 아늑했던 법당은 사라지고 휑한 공간이 덩그러니 남아 있었습니다. 참으로 마음이 공허하고 쓸쓸했습니다.

트럭에 가까스로 실은 짐
▲ 트럭에 가까스로 실은 짐

이어서, 법당 개원에 정성을 다했던 선배 도반들에게 감사한 마음이 올라왔습니다. 송도 법당 도반들이 불법을 배우고 수행하는 장소로서 역할을 다해 준 법당 건물에도 고마운 마음이 들었습니다. 옆에서 말없이 서 있는, 법당 정리를 함께 한 도반들에게도 고마웠습니다. 그동안 고마웠던 상가건물이 또 다른 인연의 장소로 잘 쓰이길 빌었습니다. 법당 총무의 마음 나누기를 들으며 자연스레 발원하는 마음이 생겼습니다. 비록 송도 법당은 사라졌지만, 제 생활 공간을 청정한 법당으로 만들어 진정한 수행자로 거듭날 것을 두 손 모아 발원했습니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제행무상을 실감하는 뜻깊은 날이었네’라는 생각이 떠올라 옅은 미소를 지었습니다.

정토회 온라인 시대에 환호하다 (함지윤 님)

저에게 송도 법당은 5년 전 첫발을 내디뎠을 때부터 지금까지 깨달음과 지혜를 얻고 수많은 인연을 만들어 준 장소였습니다. 그래서 법당이 없어진다는 것이 참으로 아쉽고 서운했습니다. 몇 개월에 걸쳐 여러 도반이 법당의 물품 정리에 힘써 주었습니다. 그리고 2021년 4월 17일 토요일 오전 7시. 재활용할 수 있는 마지막 물품들을 두북 수련원으로 보내기 위해 법당에 모였습니다.

함께 한 도반들 모두가 법당의 주인이 되어 제 일처럼 착착 정리하기 시작했습니다. 특별한 업무 분담 없이 각자가 보이는 대로 하나씩 짐을 옮기고 정리했습니다. 1시간쯤 지나자 짐이 트럭에 빈틈없이 빼곡히 쌓여 있었습니다. 큰 책장 3개가 엘리베이터에 들어가지 않아서, 거사들이 7층에서 1층까지 직접 들고 내려갈 때는 정말 대단하다 싶었습니다. ‘서로 힘을 합해서 하면 못 하는 일이 없겠구나!’라는 마음이 들었습니다.

7층에서 1층까지 계단으로 옮기는 모습
▲ 7층에서 1층까지 계단으로 옮기는 모습

정리를 마치고 트럭을 보낸 후 모여서 마음 나누기를 했습니다. 아쉽고 서운한 것보다 앞으로 온라인 정토회 활동이 더 기대되어 마음이 가벼워졌습니다. 또한 이렇게 함께 힘과 마음을 합칠 수 있는 도반들이 있어서 든든하고 고마웠습니다. 위기는 곧 기회라는 말처럼, 코로나19를 계기로 정토회는 법당을 토대로 했던 모든 활동을 온라인으로 전환했습니다. 그 변화를 기꺼이 받아들여 앞으로 나아가는 것이 수행자의 태도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아쉽고 서운한 마음이 앞으로 성장할 정토회에 대한 기대감으로 바뀌었습니다. 한발 먼저 앞장서서 시대 변화에 맞추는 정토회의 일원인 것이 자랑스럽습니다. 이제 저도 온라인에서 재미있고 활기차게 법을 전하는 행복한 수행자로서 앞으로 나아가려 합니다.

왼쪽에서 두 번째 함지윤 님, 다섯 번째 오지수 님
▲ 왼쪽에서 두 번째 함지윤 님, 다섯 번째 오지수 님


희망 리포터도 송도 법당이 개원할 때부터 함께 했습니다. 매주 법회에서 스님 법문을 들으며 일주일 동안 살아갈 힘을 얻었습니다. 법당에 모인 도반들과 마음 깊이 따뜻해지는 위로와 격려를 나누었습니다. 텅 빈 법당을 보며 쓸쓸한 마음도 들었지만, 강을 건너고도 뗏목을 이고 가겠냐는 스님의 질문에 마음을 돌이켰습니다. 정토회 온라인 시대를 맞아 새로 시작하는 마음입니다. 끝까지 함께할 정토회 도반들이 있어서 행복하고 감사합니다.

글_오지수 님, 함지윤 님(인천경기서부지부 인천지회)
정리_황정의 희망리포터(인천경기서부지부 인천지회)
편집_성지연(강원경기동부지부 경기광주지회)


  1. 천일결사 정토회는 개인의 행복과 정토세상 실현을 위해 1993년 3월 만일결사를 시작. 3년을 정진하면 개인의 의식 흐름이 바뀌고, 30년(만일)을 정진하면 한 사회가 바뀔 수 있다는 믿음으로 3년(천일) 단위로 천일결사 정진을 이어오고 있음.  

전체댓글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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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희

변화를 기꺼이 받아들여 앞으로 나아가는 수행자의 태도..
잘 배웠습니다.

2021-05-24 06:28:26

혜당

많이 서운 하셨겠어요..
앞으로는 좋은일만 가득할거예요...
잘 읽었습니다 ~~♡

2021-05-22 11:52:19

정 명

송도법당 도반님들의 나누기 잘 보았습니다
아쉬움을 뒤로 한채 새희망을 찾으시는 모습에 잔잔한 감동을 느꼈습니다
저도 3년여동안 함께 했던 법당이 가끔 그립습니다
좋은 기억을 남겨준 법당과 도반들께 감사하며 개인법당에서도 인연의 끈을 잘 이어갑니다
오늘도 좋은 글과 편집 감사합니다

2021-05-22 08:20: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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